신성한 사랑과 자비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1장 하나님)

訓讀王 | 20180228043352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1장 하나님


 신성한 사랑과 자비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서 사랑은 가장 매력적이고 탄복하지 않을 수 없는 속성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와 은총을 느끼는 신비한 경험을 계기로 하나님을 믿는다. 심지어 마음 한가운데 의심을 갖고 있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마음을 움직여 믿음이 생기도록 한다. 창조자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 피조세계는 생명을 유지하고 보호받는 자비로 충만한 세계가 된다. 선한 창조는 실로 선한 사랑의 표현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이다. 아니,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 그 이상이다. 문선명 선생의 가르침처럼, 사랑은 하나님의 창조의 동기 그 자체이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창조 이유’이다. 사랑은 또한 하나님이 수많은 고난의 길을 통해 구원섭리 역사를 추구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사랑은 오래 전에 길을 잃고 성령의 자비로운 부름에 귀먹은 우리, 무지한 인간들에 대하여 인내하며 용서하는 하나님을 가르쳐준다. 귀먹고 눈먼 우리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품에 안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하는 섭리를 멈추지 않는다.

1. 사랑: 하나님의 본질


종교 경전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요한일서 4.16 (기독교)

··· 하나님의 자비는 모든 것을 포용하나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자선을 베풀며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들에게 은혜가 있게 하리라. 꾸란 7.156 (이슬람)


사랑함으로써 내가 누구인지, 나의 가장 내밀한 본질이 무엇인지를 진실로 알게 된다.

바가바드기타18.55 (힌두교)


대자비심은 깨달음의 본질이다.

화엄경 입법계품 (불교)

주여! 당신은 간청의 유무와 무관한 구세자요, 까닭 없이 자비를 베푸는 분이며, 기도가없을 때도 기꺼이 들어주시는 분이며, 관계가 없을 때도 정다운 친구이십니다.
비타라가스타바 13.1 (자이나교)

빛나지만 감추어진 참된 자아는 심장 속에 거한다. 움직이는 것, 숨 쉬는 것, 열리거나 닫혀 있는 모든 것이 참된 자아 속에 산다.
그는 사랑의 원천이며, 그는 생각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통해서 알려질 수 있다.
그는 인생의 목표이니, 이 목표를 실현하라.

문다카 우파니샤드 2.2.1 (힌두교)

사랑은 맨 처음으로 생겨났으니, 천상의 신들보다도 높고 조상이나 사람들보다 고결하도다. 오, 사랑! 그대는 모든 이의 장자요 지극한 권능이로다. 그대에게 경의를 표하노라!


땅과 하늘 혹은 대양들과 거룩한 불의 너비보다 너 넓은
오, 사랑! 그대는 모든 이의 장자요 지극한 권능이로다. 그대에게 경의를 표하노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것들 가운데,
오, 사랑! 그대는 선의 형상을 그대의 얼굴에 드러내 보이나니, 이 형상들이 우리의 가슴속으로 스며들게 하라.
모든 사악은 다른 곳으로 보내 버리시라!

아타르바 베다 9.2.19-25 (힌두교)

선남자야! 자비는 위대한 브라흐마이니,
위대한 브라흐마가 자비요 자비가 곧 여래니라.


선남자야! 자비는 일체중생의 불성이로되
이와 같은 불성이 미망으로 덮인 까닭에
중생이 이를 보지 못한다.
불성이 자비요 자비가 곧 여래니라.

대반열반경 259 (불교)

법(달마)의 황소는 자비의 소산이며,
마음의 흡족함이 창조를 끌어안도다.
이를 아는 자는 누구나 깨달음을 얻으리니,
황소의 등에 지워진 짐의 무게가 실로 놀랍구나.
아디 그란트, 자푸지 16, M.1, p.3 (시크교)

인간의 아들아! 잊히도록 오래된 내 존재와 내 본질이 옛 영원 속에 가려진 채, 나는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을 알았노라. 그래서 내가 너를 창조하여, 네 위에 나의 모습을 새기고, 너에게 나의 아름다움을 계시하였노라. 바하울라의 숨겨진 말씀 아라비아어 3 (바하이교)

말씀 선집


사랑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사랑을 우주적인 것으로 만들고, 사랑을 영원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정서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사랑의 모체입니다. 사랑의 모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부모의 사랑이 우러나왔고, 자녀의 사랑이 우러나왔고, 형제의 사랑이 우러나왔고, 친척의 사랑, 민족의 사랑이 우러나왔습니다. 사랑의 갈래라는 것은 원줄기에서 뻗어나가는 가지나 잎과 같이, 물결이 파문이 되어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먼 곳으로 가면 갈수록 점점 감도의 차이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50.267, 1971.11.08)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줄을 누가 끊을 것이냐”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 역시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무엇보다도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의 원천이요, 행복의 원천이요, 평화의 원천입니다. 여러분이 영적 체험을 해보면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24.325, 1969.09.14)

심정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이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의 바탕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창조는 거기서 우러난 것입니다. 모든 이상도 거기서 우러난 것입니다. 모든 것의 완전한 바탕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완전과 완성은 거기서 우러나는 겁니다. 그것을 떠나서는 완전과 완성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82.292, 1976.02.01)

하나님은 심정의 주체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무한히 기쁜 감정을 갖고 계시며 무한히 슬픈 감정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이라고 해서 기쁘고 좋은 감정만 갖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슬프다면 인간들이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넓은 슬픔의 심정을 갖고 계시는 분입니다. (11.89, 1961.02.12)

하나님이 왜 생겨났느냐 할 때 사랑 때문에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에게 필요한 사랑이 됐을 때 하나님의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까지도 사랑 때문에 태어났다는 논리를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사랑 때문에 태어나 사는 하나님은 사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사랑을 위해 태어난 만물도 사랑 때문에 태어났기 때문에 사랑의 세계에서는 자기를 위해서 산다는 개념이 없습니다. (303.287, 1999.09.09)

하나님은 모르는 게 없습니다. 지식의 대왕이시고, 능력의 대왕이시며, 전지전능하십니다. 또, 무소부재하십니다. 안 계신 곳이 없습니다. 그분이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다이아몬드인가? 그건 언제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황금, 보석인가? 하나님이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혼자 있어서 ‘아이구, 나 사랑하니 좋다’고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필요한 게 뭐냐? 하나님도 인격적 신이라 하면 입이 있겠지요. 입도 코도 있고, 눈도 귀도 있고, 손 발도 있고, 마음도 있고, 심정도 있을 것입니다. 인격적 신이라면 말입니다.(142.31, 1986.03.03)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랑 때문에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랑은 혼자로서는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절대로 필요한 오직 한 가지는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대상, 즉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인 것입니다. 반드시 상대가 있어야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과 심정의 본체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동기가 돼서 우주를 창조하셨으며, 특히 이 기간에 창세기 1장 27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닮은 실체대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만민에 있어서 하나님은 영원한 무형의 내적 부모요, 완성한 아담 해와은 영원한 유형의 외적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135.11, 1985.08.20)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 사랑이라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을 닮은 것과 사랑하겠습니까, 하나님과 닮지 않은 동물새끼하고 사랑하겠습니까? 닮은 것과 사랑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은 어떠하냐?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는,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상대적인 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그런 상대라면 인간을 중심삼고 볼 때 신은 인격적인 신이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모든 요소가 백 퍼센트 화합해야 됩니다. 몸과 마음의 소성에 있어서 전부가 화합할 수 있는 신이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정의(知情意)를 가진 신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162.274, 1987.04.17)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로부터 찾아지는 것입니다. 상대가 없으면 못 찾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최고의 귀한 것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상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상대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를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상대로부터 절대적인 사랑을 이룰 수 있도록 상대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사랑을 위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람을 위해 있고,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사랑이라는 것은 위하는 자리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이 태어나기를 어디에서부터 태어났느냐? 하나님의 사랑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사랑이 기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이어받은 생명이 귀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이념을 통해서 생명이 나왔기 때문에 생명에 앞서서 사랑이 먼저입니다.

사랑에 뿌리를 박고 인간의 생명이 흘러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에서 태어나 사랑에서 자라고 사랑의 상대를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1대라면 2대에서도 그와 마찬가지로 서야 됩니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딸을 사랑하듯 그 사랑을 체휼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하나님 앞에 완전한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43.310, 1986.03.21)

2. 신성한 자비

종교 경전


하나님은 가장 훌륭한 보호자이시니, 그분은 자비가 있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시니라.

꾸란 12.64 (이슬람)

하나님은 그분의 종들에게 자비로우시며 그분이 원하시는 자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노라. 그분은 강함과 권능으로 충만하시니라.

꾸란 42.19 (이슬람)

우리는 신실하지 못하더라도, 그는 언제나 신실하십니다. 그는 자기를 부인할 수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2.13 (기독교)

자신이 들은 모욕을 하나님보다 더 잘 참는 자가 없느니라.
부카리 및 무슬림 하디스 (이슬람)

신은 꼬리가 없는 암소를 위해 파리를 쫓아 주신다.
요루바족의 격언 (아프리카 전통종교)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시련과 함께 벗어날 길도 마련하여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하십니다.

린도전서 10.13 (기독교)

하나님은 인간에게 지탱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짐을 지우지 않으시느니라. 인간은 자신이 행한 선의 보상을 받을 것이요, 자신이 저지른 악의 대가를 받느니라. 주여, 우리가 망각했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벌하지 마옵소서. 주여, 저희 선조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신 것처럼 저희에게 짐을 지우지 마시옵소서. 주여, 우리가 감내할 수 없는 것을 저희에게 지우지 마시옵소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소서. 저희를 용서하소서.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꾸란 2.286 (이슬람)

말씀 선집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시냐? 절대적으로 위해 살려고 하시는 분입니다. (175.158, 1988.04.16)

하나님과 우리를 놓고 볼 때 우리가 아무리 고생할지라도 그저 일생 동안, 80 몇 년, 100년 미만입니다. 그러니 3만 6천 날입니다. 여러분들이 백세를 살아야 3만 6천일밖에 못 삽니다. 3만 6천 날은 잠깐입니다. 그걸 못 참겠습니까? 하나님은 몇 만년, 몇 억년 계속해 나온 것입니다. 아무리 인간세계가 그래도 하나님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태연자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는 천만 사연이 끓고 있지만 태연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입을 열어서 그 사정이 통할 수 있는 말을 하게 된다면 천년만년 통곡할 수 있는 사연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통곡하는 것이겠습니까? 인류를 위해서 눈물을 지을 수밖에 없는 하나님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124.59-60, 1983.01.23)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너희들이 날 사랑해라, 너희들은 나를 위해서 희생해라’ 고 하는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건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전통을 세우기 위해서는 당신이 먼저 애기 똥을 치우고, 어머니 아버지로서 똥을 치우고, 먼저 희생 봉사하고 온유 겸손한 교육을 위한 교재의 센터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116.90-91, 1981.12.20)

하나님은 모든 피조세계를 자기가 지었으면 지은 그 역사를 두고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지었고,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했다는 것을 두고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원칙에 의해 세운 사랑을 중심삼고 위대한 사랑을 했기 때문에 인간이 타락하더라도 그 사랑을 잊을 수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을 중심 삼았는데 비참하게 된 것을 볼 때, 어떻게 ‘에이 이놈의 자식들! 너희들이 이래서야 되겠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 불쌍히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것입니다. (115.320, 1981.11.29)

3. 인류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심정

종교 경전


내 아들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 너무 사랑스러워 나는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그러나 부르면 부를수록 이스라엘은 나에게서 멀어져만 갔다. 바알 우상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향을 피워 올렸다.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팔에 안아 키워 주고 죽을 것을 살려주었지만, 에브라임은 나를 몰라본다.
인정으로 매어 끌어주고 사랑으로 묶어 이끌고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에 비비기도 하며 허리를 굽혀 입에 먹을 것을 넣어주었지만, 에브라임은 나를 몰라본다.
호세아 11.9-11 (기독교)

육도 중생 살펴보니 빈궁하고 지혜 없어
생사의 길 잘못 들어 그 고통을 끊지 못해
다섯 가지 욕심과 쾌락에 탐착하되 모우가 꼬리 사랑하듯
탐욕 속에 갇혀 있어 눈도 멀고 소견 없어
큰 부처를 구하지 않고 고통을 못 끊으며
삿된 소견 깊이 물어 괴로움에 얽혔으니
이런 중생 위하여서 큰 자비심 내었노라.

법화경 2 (불교)

말씀 선집


여러분은 자기 자식 하나 교육시키는 것도 힘들지요? 그 자식은 자기의 피살을 이어받은 아들딸입니다.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면 마음이 통하여 같이 눈물 흘릴 수 있는 아들딸입니다. 아버지가 눈물 흘리고 슬퍼하면 같이 슬퍼할 수 있는 마음이 자연적으로 동할 수 있는 아들딸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지도하고 육성하려면 지극히 어렵지 않습니까? 그것을 볼 때, 오늘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울어도 본체만체 합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슬퍼해도 본체만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사탄의 혈육을 받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슬퍼하는 것을 보고 찬양합니다. 망하는 것을 보면 좋아하며 웃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인간을 놓고 지도하고 개척의 방향을 가르쳐 주려니 얼마나 수고로우실 것이냐? 그러나 하나에서부터 백, 천, 만까지 위하시는 마음,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 하나님에게 없었더라면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섭리역사를 붙들고 나오실 수 있었겠느냐는 것입니다. (42.257, 1971.03.21)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를 붙들어 복귀섭리를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가인과 아벨을 택하였고, 노아를 택하였고, 또 그 밖의 수많은 가정을 택해 세우셔서 복귀섭리를 해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섭리역사를 이끌어 나오시는 하나님의 심정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안타까운 심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심정을 억제하면서 오늘 이 시간까지 참고 견디어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참고 견디어 나오신 그 안타까운 심정을 느껴 하나님을 붙들고 눈물 흘리는 사람이 오늘날 이 땅 위에 몇 사람이나 있겠습니까? 만약 이 땅 위에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눈물짓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즐거움이 있었던 반면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하나님의 서러움이 온 천지만물을 덮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이때까지 참고 견뎌 나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사람, 또는 하나님의 서글품을 같이하여 울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도 창조주의 체면을 잊어버리고, 창조주의 영광이나 권세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그와 함께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실 것입니다. 이런 사정에 사무친 하나님의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4.239, 1958.05.18)

하나님께서는 4천년 동안 인간을 대해 어떠한 마음을 갖고 나오셨는가? 자기를 위하려는 마음을 갖고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당장 죽어 마땅할 인간이요, 고통당해 마땅할 인간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대해 마음을 다하는 입장에서 참음의 4천년 역사노정을 걸어오셨으며, 뜻을 다하여 4천년 동안 사탄을 분별하는 싸움의 노정을 걸어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불변의 사랑의 마음을 갖고 4천년 동안 참아오셨고, 싸워오셨고, 사랑하여 오셨던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1.78, 1956.05.27)

인간이 죄를 지었다고 해서 ‘야, 이놈아, 왜 죄를 지었느냐’ 라고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죄지은 사정을 잘 아시는 하나님입니다. 당신의 사정은 생각지 않고 인간의 사정을 알아주려는 하나님입니다. 슬픈 자에게는 슬픈 사정을 갖고 찾아오셨고, 고통 받는 자에게는 고통의 사정을 갖고 찾아오셨고, 억울하고 분통한 자에게는 억울하고 분통한 사정을 갖고 찾아오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어느 정도 사정을 통해 보았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생활환경 가운데도 그렇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심정을 갖고 찾아오셨습니다. 너는 나를 배반해도 나는 네 아버지라는 마음이 있기에 6천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9.232, 1960.05.29)

아버님, 저희들은 고아와 같이 갈팡질팡, 목적도 방향도 모르고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역사와 흐름에 따라 뒤넘이 치면서, 생명의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밀리고 밀리면서 오늘까지 나온 불쌍한 모습들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반면, 이러한 저희들을 붙드시고, 저희들이 슬퍼할 때 같이 슬퍼하신 아버지가 계시다는 사실도 몰랐사옵고, 사망권내에 사로잡혀 신음하는 저희들을 찾으시기 위해 밤과 낮을 개의치 아니하시고 수고해 오신 주인공이 계시다는 사실도 몰랐사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기쁨의 심정이 하늘과 땅을 통하는 것보다 귀하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5.337, 1959.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