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변과 영원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1장 하나님)

訓讀王 | 20180225073320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1장 하나님


첨부파일 24 경전 1-8 불변과 영원 1.mp3


  불변과 영원

불변과 영원 모든 종교에서 절대자는 이 속성을 지니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와 달리, 세계에 속한 모든 생물과 사물들, 그리고 현상은 덧없고 무상하며 상대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들은 절대자와 상호 관계를 지닐 수 없다. 인간은 두 유형의 성향을 지닌다. 우리는 불변의 요소를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지만, 동시에 우리를 신뢰할 수 없게 만드는 가변적 요소들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굳건하고 변하지 않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는 것은 절대자와 관계를 확립하는 데 핵심적인 요인이다.

이 점에 관한 문선명 선생의 가르침은 위에서 언급한 불변, 절대, 영원의 속성을 지닌 참사랑에 초점을 둔다. 문선명 선생은 하나님에게도 피조물들과 참사랑의 관계를 맺기 위한 이런 속성들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더욱이 하나님이 일괄성 없이 변덕스러운 인간과 관계를 맺을 때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갈망은 언제나 그 불변성을 시험 당한다.


종교 경전


그분은 시작과 끝이요, 드러내기도 하며 감추기도 하시니, 그분은 만사에 능통하신 분이니라.
꾸란 57.3 (이슬람)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며, 시작과 끝이다.
요한계시록 22.13 (기독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같으십니다.
히브리서 13.8 (기독교)

불성은 그 무엇으로도 멸해 없어지지 않는다.
대반열반경 220 (불교)

위대하고 태어남이 없는 영원한 자아는 불멸·불사·무외·무한이며, 그가 곧 브라흐만이다.
브리하드아란야카 우파니샤드 4.4.25 (힌두교)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라고 말하면 그들이 ‘그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어떻게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곧 나다” 하고 대답하셨다.
출애급기 3.13-14(기독교)

수부티야, 만일 어떤 이가 말하기를, 여래가 간다거나 온다거나 앉는다거나 눕는다고 한다면, 이는 내가 말한 바를 바로 알지 못하는 것이니라. 무슨 까닭이냐? 여래는 어디로부터 오는 일도 없고 어디로 가는 일도 없으므로 ‘여래’라 이름하니라.
금강경 29 (불교)

주께서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베드로후서 3.8 (기독교)


브라흐마의 한 낮이 일천 유가요,
그 한 밤이 또한 일천 유가임을 아는 이,
그가 실로 낮과 밤을 안다.
낮에 이르러 삼라만상이 모습을 드러내니,
이는 저 미현현자에서 그들이 일어남이요,
밤이면 또한 그에게 스러져 녹아드도다.

거듭거듭 만물이 일어나고,
다시 그에게로 녹아들고,
오, 아르주나여! 낮이면 다시 일어나도다.

그러나 이 나타나 보이지 않는 이의 너머에
한층 더 나타나 보이지 않는 이가 있으니,
그는 구극의 경지, 불멸자,
만유가 다 멸해 사라진다 해도
영원히 멸하지 않는 자로다.
누구든 거기에 이르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곳,
그곳이 나의 지고한 거처이니라.
바그바드기타 8.17-21 (힌두교)

대지 위의 모든 것은 소멸되어도,
위엄, 축복, 영광으로 가득 찬 주님의 모습만은 영원하리라.
꾸란 55.26-27 (이슬람)

이전에도 이후에도 창조자가 있었으니, 영원한 그를 두고 무엇이 실유일 수 있는가? 또한 그 외에 무엇이 영원할까?
아디 그란트, 자푸지 1, M.1, p.1 (시크교)

모든 인생은 한낱 풀포기, 그 영화는 들에 핀 꽃과 같다. 풀은 시들고 꽃은 지나니.
스쳐가는 여호와의 입김에, 백성이란 실로 풀과 같은 존재이다···
풀은 시들고 꽃은 지지만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이사야 40.6-8 (기독교)

화려한 왕의 수레도 닳아 없어지고 이 몸도 그와 같이 늙어버리지만, 선한 이의 가르침은 시들지 않는다. 이에 선한 이는 선한 이들 가운데 선한 법을 드러낸다.
법구경 151 (불교)

미혹된 일체의 상을 여의고 여여한 법에 거하라. 내가 그대에게 말하노니, 도망치듯 사라지는 무상한 세상을 알라.
문득 사라지는 새벽별처럼,
물 위에 떠다니는 거품처럼,
여름날 먹구름 속에 번득이는 번갯불처럼,
명멸하는 등불처럼, 유령처럼, 꿈처럼.
금강경 32 (불교)

비구들이여, 이러한 곳이 있다. 그곳에는 흙도 없고 물도 없으며, 불도 없고 바람도 없다. 그곳은 허공으로 가득 찬 곳도 아니고, 식별이 가득 찬 곳도 아니며, 어떤 것도 아닌 곳도 아니며, 상도 아니고 상 아닌 것도 아닌 곳도 아니다. 이 세상도 아니고 저 세상도 아니다. 해와 달도 없다.

비구들이여, 그곳에 온다고 말할 수 없고 그곳으로 간다고 말할 수도 없으며, 그곳에 머문다고도, 그곳에서 죽는다고도, 그곳에서 태어난다고도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무엇에 의해 있는 것도 아니며, 무엇으로부터 생겨난 것도 아니며, 무엇에 의지해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실로 고통의 끝이다.

자아 없음은 참으로 보기 어렵다.
진리는 결코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갈애를 완전히 끊고
집착할 아무것도 지니지 않는 자
오직 그만이 볼 수 있다.

비구들이여, 생겨난 것이 아닌 것,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것,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것, 합성되지 않은 것이 있다. 비구들이여, 만일 생겨난 것이 아닌 것,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것,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것, 합성되지 않은 것이 없다면, 그곳에는 생겨난 것과 이루어진 것과 만들어진 것과 합성된 것을 싫어하여 떠나는 일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우다나 80 (불교)

말씀 선집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언제나 영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무리 영원하시다 하더라도 거기에 내려감이 있고 세상과 하늘땅 앞에 손해를 준다면 그런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원하는 영원한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영원하신 하나님은 우리 인류, 혹은 피조세계에 필요 적절하고 가치 있는 내용을 언제나 보급해 주는 자리에서 영원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과거에도 필요했고 현재에도 필요하고 미래에도 필요한 것을 알아야 됩니다. 만일 그러한 내용이 우리에게 없다면, 영원한 하나님은 우리와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추앙하고 하나님께 속하기를 원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관계를 맺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22.317, 1969.05.11)

영원을 시간으로 포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영원 안에 시간이 있는 것입니다. (41.288, 1971.02.17)


하나님은 절대적이고 영원하신 생명의 중심이며, 하나님의 이상은 더 영원한 것이며, 그 이상의 중심이 바로 참사랑의 이상입니다. 그 사랑의 상대가 나입니다.(216.115.1991.03.09)


사랑을 하게 될 때 영원·유일·불변의 책임을 지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과 관계를 맺기 위한 것은 무엇이냐? 참사랑밖에 없습니다. 참사랑의 주체가 그런데 참사랑의 대상이 매일같이 변한다면 어떻게 믿고 대하겠습니까? (124.97, 1983.01.30)

영생이라는 것은 사랑의 본질적인 속성입니다. 하나님도 우주를 창조할 때 스스로 절대신앙·절대사랑·절대복종을 기준으로 세워 놓고 하신 것입니다. 세상은 지나가더라도 사랑은 영원무궁토록 더 크게 투입할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사는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절대·유일·불변·영원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을 수 있는 존재, 상대적 이념을 가진 존재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330.262, 2000.08.18)

하나님은 얼마나 나이가 많겠습니까? 몇 억만 년 동안 기다리며, 별 수 없이 나이가 많아졌습니다. 그 할아버지가 남자라면 수염이 발끝까지 갈 것입니다. 크다면 세계의 그 누구보다도 클 것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겠냐는 것입니다. 사랑밖에 없습니다. (111.77, 1981.01.25)

인간의 하루하루 생활이 순간적인 생명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면, 영원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무궁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를 맺는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영원하신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2.13, 1957.01.06)

하나님은 한번 정하면 억 천만 년이 가더라도 변하지 않고 행하지 않을 수 없는 분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을 보게 되면 하루에도 몇 번 변합니다. 아침에는 ‘이렇게 해야 되겠다’고 결심을 했다가도 저녁에 가서는 ‘아이쿠, 아니다.’ 합니다. 여러분이 수련을 받을 때, 말씀을 듣게 될 때 ‘그렇게 해야 되겠다’ 하고 결심을 하지만, 돌아서게 되면 며칠 안 가서 다 흘려버립니다.

여러분이 지금 어떤 결심을 했다고 한다면 그 결심을 몇 해나 지니고 갈 자신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한번 결심하면 그것을 몇 천 년이고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분입니다. 가다가 이러고저러고 하는 게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은 ‘내가 뜻을 위해 간다’고 하지만 금년 말, 혹은 내후년 혹은 십 년, 이십 년, 일생을 그렇게 갈 수 있습니까? 그 기준이 내려가기 쉽다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좋아야 가지 나쁘면 못 가겠다’ 이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참이라는 것은 내가 죽든지 살든지 참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음 위에 있을 수 있는 것이요, 변하지 않는 불변의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나, 죽음 위에 있는 그것을 소유할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해서는 죽음을 극복해야 되고, 변치 않는 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은 확실히 다른 것입니다. 그 둘이 부딪치게 되면 변하는 것은 깨져 나가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완연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죽음과 삶이 부딪치는 것입니다. 그때 죽음을 극복하고 삶으로 남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넘어서야만 하나님과 관계된다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66.43-44, 1973.03.18)

하나님은 자신이 유일한 하나님이며 절대적인 하나님이라는 것을 표준해서 나왔기 때문에, ‘진짜 당신이 그래요? 한번 시험해봅시다’ 하고 하나님이 세계적 역사적인 테스트를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사탄도 테스트를 합니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을 사탄이 변하게 할 것이라고 야단을 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까딱없다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동요되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태연합니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하나님이 왜 사탄에게 참소 받을까 생각해 보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니까 변하는 사탄에 대해서 변하지 않는 위치를 갖기 위해서 그러는구나. 그것이 하나님의 자리로구나’ 하고 생각 안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볼 때 사탄의 인격은 변하는 인격이며 유일하지 않은 성격이며 절대적이 아닌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과는 전부 반대입니다.

그러면 인간을 중심삼고 볼 때 변하는 마음과 변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면 어느 것이 하나님과 더 가깝습니까? 변하지 않는 마음이 하나님과 더 가깝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이다 상대적이다 하는 것을 볼 때 여러분들은 절대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격이 그렇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닮아야 하나님의 상대가 되므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누구 때문에 영원하다고 합니까? 영원이란 개념은 누구를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까? 유일이란 개념이 누구를 중심삼고 하는 말이며, 불변이란 말은 누구를 중심삼고 하는 말이겠습니까? 하나님 자신을 중심삼고 하는 말인가, 아니면 상대를 중심삼고 하는 말인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했겠습니까, 상대적인 개념을 갖고 그런 성격을 세웠겠습니까? 그 개념은 자기를 중심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놓고 설정했을 것이라는 것이 이론적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변하더라도 하나님이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세상의 사람들이 욕을 하더라도 가만히 있고, 발로 차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 인간이 참사랑의 길을 찾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 인간도 절대·유일·불변·영원한 것을 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서는 절대적인 것이 필요 없습니다. 자기 혼자서는 유일한 것이나 변하지 않는 것이나 영원한 것이 다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상대라는 개념을 놓고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도 그랬고 인간도 그럴 수 있으니,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설정되어서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사랑이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123.330-332, 1983.01.09)

아버님!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주의나 주장과 인간이 가지고 있는 권리는 모두 없어지고 만다는 사실을 아옵니다. 하오니 저희의 마음과 몸이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근본 입장에 들어가 새로이 폭발되어 오는 힘과 부활의 눈을 저희의 마음에 갖출 수 있게 하시고, 자신을 중심한 생활을 버리고 천주를 중심한 생활로서 돌이켜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4-64, 1958.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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