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재와 마음 속에 머무름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1장 하나님)

訓讀王 | 20180223070229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1장 하나님


첨부파일 24 경전 1-7 내재와 마음속에 머무름 1.mp3


  내재와 마음 속에 머무름

하나님은 마음속에 거함으로 우리가 깨닫기만 한다면, 그가 지척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성서에서 엘리야의 계시에 나타난 하나님의 임재는 어마어마한 지진이나 폭풍을 몰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고 작은 목소리’로 나타났다. 우리는 믿음과 겸손을 통해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감지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현존함에 귀먹고 눈먼 상태로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주변에 가까이 머물고 있다.

아브라함의 종교 전통에서 하나님의 현현은 순수영혼의 자기 구현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없지만, 동양의 종교 전통에서는 일관되게 신성의 내재성 개념을 가르친다. 수피들은 꾸란에 나오는 등불의 비유를 몸을 비추는 빛으로서 마음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임재로 해석한다. 힌두교에서 신성의 내재는 존재론적이다. 즉, 궁극적 실재는 자아, 곧 아트만이다. 불교에서 신성의 내재는 여래 또는 불성이라 불리는 참된 내재적 본질을 마음에 의해서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내재성 개념은 결코 이기심에 의해 가려지고 미혹된 자아인 개별 영혼과 하나님을 동일한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다(제7장 ‘각성’ 참고). 내재적인 하나님의 완전한 구현은 하나의 가능성이며 이상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존재목적이기 때문이다. 문선명 선생의 가르침처럼, 하나님은 우주를 완성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도록 인간 각자를 창조하였다.

종교 경전 

진실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여, 인간이 자기의 마음속에 속삭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은 인간의 목에 있는 혈관보다 내가 인간에게 더욱 가까이 있느니라. 
꾸란 50.16 (이슬람)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누가복음 17.21 (기독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양날 칼보다도 날카로워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향을 가려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고, 모든 것이 그의 눈앞에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앞에 모든 것을 드러내 놓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4.12-13 (기독교)

이 땅의 모든 백성에게 생명을 부여하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바로 나를 살찌우는 마음이다. 
아라키다 모리타케, 세상에 대한 백편의 시 (신도)

그대는 어찌 신을 구하려 숲으로 가는가? 신은 모두의 가슴속에 살아 숨쉬나니, 그는 또한 그대와 더불어 있음을 알라. 향기가 꽃 속에 머물듯, 사물이 거울 속에 비쳐 있듯, 신이 만유에 거하나니, 그대 안에서 신을 구하라. 
아디 그란트, 다나사리, M.9, p.684(시크교)

지극히 높으신 이, 보좌에 영원히 앉아 계시는 이, 거룩하신 분이라 불리는 이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높고 거룩한 보좌에 앉아 있으면서도 얻어맞아 용기를 잃은 사람들과 함께 살며, 잃은 용기를 되살려 주고 상한 마음을 아물게 해 주리라.” 
이사야 57.15 (기독교)

빛나는 황금의 갑 속에 사랑과 자비의 주가 숨어 있나니,
그는 물듦이 없는 무구청정이며,
부분으로 나누어짐이 없어라.
알지어다, 빛 중의 빛이신 그를.
태양도 달도 별들도 그를 비추지 못하고,
번갯불의 섬광도, 땅 위의 그 어떤 불빛도 
그를 비출 수 없나니,
주는 만유를 비추시는 빛이라.
그가 빛날 때 만유도 그를 따라 빛난다. 
문다카 우파니샤드 2.2.10-11 (힌두교)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빛이라. 그 빛을 비유하사 벽 위의 등불과 같은 것으로, 그 안에 등불이 있으며, 그 등불은 또한 유리 속에 있도다. 그 유리는 축복받은 올리브기름으로 별처럼 밝게 빛나도다. 그것은 동쪽에 있는 나무도 아니요 서쪽에 있는 나무도 아니니라. 그 기름은 불이 닿지도 아니하나 더욱 빛나 빛 위에 빛을 더하도다. 하나님은 그분이 원하는 자를 그 빛으로 인도하시며 사람들 위에 비유를 보이시니,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심으로 충만하시노라. 
꾸란 24.35 (이슬람)

주는 청각, 시각, 촉각, 미각, 후각
그리고 마음에 서 있으며,
그는 마음과 감관들이 향수하는 것을 향한다.
미혹된 자들은 그의 흔적을 감지하지 못한다.
오직 지혜의 눈을 지닌 자만이
존재의 상태에 있거나 나아가거나
육체 안에 있거나 경험하고 있는 그를 본다.
또한 요가행자들도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그를
보려고 노력하면 볼 수 있다. 
바가바드기타 15,9-11 (힌두교)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14.20 (기독교)

대매가 마조에게 물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마조가 답했다. “바로 이 마음이 부처이니라.” 
무문관 30 (불교)

마음의 본바탕 속에 부처(트리카야)의 삼신이 있으며, 이들은 누구에게나 있다. 마음이 미혹되어 허망한 외부 사물을 따라 수고로이 움직이는 까닭에 스스로 자신의 내밀한 본질을 알지 못하고, 따라서 그 자신 속에 있는 삼신을 깨닫지 못하여 그들이 외부에서 구해지는 줄로 그릇되게 믿고 있다. 마음의 본바탕의 현현인 삼신을 그대의 내면에서 찾으라. 바깥에서 이들을 구하려 하지 말라. 
육조단경 6 (불교)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앞으로 나가서 여호와 앞에 있는 산 위에 서 있거라.” 그리고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 한 줄기가 있어 산을 뒤흔들고 여호와 앞에 있는 바위를 산산조각 내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바람 가운데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다음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지진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다. 지진 다음에 불이 있어났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불길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다. 불길이 지나간 다음 조용하고 여린 소리가 들려왔다. 
열왕기상 19.11-12 (기독교)

말씀 선집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느냐? 영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마음, 그 중심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145.310, 1986.06.01)

하나님은 관념적 하나님이 아니라 내 생활권 안에 살아 계시는, 피부로 느끼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본인은 하나님의 맥박을 듣고 삽니다. 하나님과 호흡을 같이하며 하나님의 체온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본인은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그 심정 속에 인류를 타락으로 잃어버린 슬픔이 꽉 차 있는 것을 알고 냇물 같은 눈물을 흘린 사람입니다. (234.233, 1992.08.22)

밥 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잠자는 것을, 잊어버리면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아버지!’ 하게 되면, 아버지가 보이지 않아도 아버지 손이 잡힙니다. 그런 일이 있습니다. 꿈같은 사실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면 아버지 품에 안깁니다. 이러한 체휼적 감정을 어떻게 체득하느냐 하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무엇보다도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랑의 감정을 가졌다면, 어디를 가든 ‘내가 이것을 해야 된다’ 할 때, ‘하늘이여, 같이해 주시옵소서’ 하기 전에 벌써 하나님은 같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느끼게 될 때, ‘고마우신 하나님’ 하게 되는 것입니다. (58.299, 1972.06.25)

하나님은 어떻게 사랑하느냐 할 때 그거 답변하기 곤란하지요? 하나님은 무형의 신이기 때문에 어디든지 통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아씨의 눈 속에도 들어가고, 어디든지 안 가는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 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디서 사느냐? 하나님의 집이 어디냐? 하나님이 사는 집이 어디냐 하면, 우리 마음의 한복판입니다. 남자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남성격 심정이 머무르고, 여자의 마음에는 여성적 심정이 들어가 산다는 것입니다. (128.325-326, 1983.10.02)

오늘날 많은 기독교 신자들은 하나님은 유일무이하신 분이요, 절대적인 분이요, 창조주요, 신성 자체로서 지고한 자리에 계시기 때문에 인간, 즉 피조물과 창조주는 관계를 가질 수 없다고 봅니다. 피조물은 속된 것이고 창조주는 절대적이며 신성한 분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사랑의 개념을 중심삼고 볼 때, 아무리 지고지선하신 하나님이요 아무리 저속한 피조물이라 할지라도 사랑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인격적인 내용이 같아야 됩니다. 심정적 내용이 같아야 됩니다. 즉, 인격을 갖춘 사람과 성품이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138.247, 1986.01.24)

우리가 몸담고 있는 우주는 신비에 싸여 있습니다. 그 크기가 210억 광년이나 되는 대우주입니다. ··· 최고의 보물인 하나님을 어디에 모셔 두겠는가를 자문할 때 우리의 마음보다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모실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상 자리에 서서 구형운동을 하면서 영속할 수 있는 것이 마음이기에 인간은 영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447.155-156, 2004.05.01)

거대한 하나님이지만 인간은 소우주이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 안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그 거대한 하나님이 내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한 느낌을 받아야만 하나님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런 얘기를 했던 것입니다. 무한히 크신 하나님이지만 인간이 그 속에 흠뻑 들어가야만 하나님도 작용하신다는 것입니다.  (31.210, 1970.05.31)

섭리적인 혜택에 의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이 우리 지근(至近)에 계십니다. 이제부터는 인류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했던 영적인 경험들, 즉 초월의 세계와 교류를 많이 하게 될 것입니다. 빈번히 일어나는 영적 역사로 말미암아 인류는 직접 간접으로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과 선령의 역사에 의한 감화를 경험한 인간은 하나님을 중심하고 영성의 계발과 함께 결정적인 인격변화를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천도에 합당한 인격으로 바뀐 자가 곧 하나님께서 소망하셨던 참사랑입니다. (404.323-324, 2003.02.06)

아버님께서는 먼 상대의 세계에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 계시고 우리의 몸을 에워싸고 계셨사옵니다. 우리 주위에 공기가 있어도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것처럼 아버지께서 저희들의 생애 전체를 덮고 계시지만 알지 못했다는 것을 저희들이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을 둘러싸고 있는 그 힘을 받을 때 무한한 힘이 거기에 동하는 것이요, 그 힘을 흡수하게 될 때 영원한 힘으로써 저희들에게 새로운 충격과 새로운 자극을 주심을 아옵니다. (27.41-42, 1969.11.23)

첨부파일첨부된 파일이 1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