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창조성 (제1부 하나님과 창조)

훈독왕 | 20171221095811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제 4장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창조성

건강과 질병

인간의 몸은 분명히 창조주의 최고의 성과 중 하나이다. 몸은 각 부분들이 균형과 생명의 움직임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상호 작용하는 작은 우주와 같다. 그것은 건강을 유지하고 질병과 싸우는 자연의 원리에 의해 움직인다. 
 
그러나 몸의 놀라운 기능에 관해 많은 부분이 아직도 신비로 남아 있다. 불균형이나 불소통 현상으로 말미암아 몸의 세포와 기관 사이의 상호 작용이 무너질 때, 그 결과로 질병과 고통이 생겨난다. 그러면 몸 전체는 문제가 생긴 부분을 돕기 위해 동원된다. 
 
이 점에서 몸은 우주적인 도덕률을 보여준다. 즉, 보다 크고 중요한 것을 위해 사는 삶, 그리고 전체가 손상되기 전에 전체가 한 부분의 결핍을 돌보는 삶을 예시해 준다. 더욱이 치유에 있어서 마음 또는 심리적 요소의 중요성은 결코 과소평가 될 수 없다.
 
의학은 건강 증진을 위해 많은 것을 이루었고, 종교경전에서도 의사의 역할이 인정된다. 이 절에서 우리는 의학 분야에서 권위자들, 히포크라테스, 갈렌, 파라셀수스, 그리고 황제내경의 몇몇 구절들을 세계경전에 부가했다. 
 
문선명 선생은 동양의학과 서양의학, 과학적 의학과 영적 치유 방식 중 최고를 이용하도록 하는 종합적 치료방식을 촉구한다. 우리가 장수하려 한다면,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고, 깨끗한 물을 마시며, 오염되지 않은 공기를 마시며 규칙적으로 운동해야 한다. 이에 덧붙여 문선명 선생은 모든 사람을 사랑할 것을 부가한다.

1. 몸의 치유력
 
 종교 경전  

그런데 실은 지체는 여럿이지만 몸은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눈이 손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게 쓸 데가 없다” 할 수 없고, 머리가 발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게 쓸 데가 없다” 고 할 수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이 몸 가운데서 더 약하다고 여기는 지체가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그리고 몸 가운데서 덜 귀하다고 생각하는 지체들을 더욱 귀한 것으로 입히고, 볼품없는 지체들을 더욱 더 아름답게 꾸며 줍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지체들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몸을 골고루 짜 맞추셔서 부족한 지체에게 더 큰 존귀함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게 하시고, 지체들이 서로 같이 걱정하게 하셨습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같이 고통을 당합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고린도전서 12.20-26 (기독교)
 
온 세상 어디가 나쁘다 아프다 한다.
신의 길잡이 인도임을 모르고서. 
친필 2.22 (천리교)
 
말씀 선집 
  
우리 인체를 보십시오. 우리 인체의 혈관이라든가 수많은 것은 신비의 왕궁입니다. 세계에 안과 의사만 해도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여기 안과 의사 왔습니까? 세계에 안과 의사가 몇 백만이 되는지 모르지요? 앞으로 수천만이 된다 해도 그것을 아니라고 부정할 사람 없습니다. 코 박사, 입 박사, 이 박사가 그렇고 귀 박사가 그렇습니다. 앞으로는 손톱 박사도 있을 것이고, 세포 박사도 나올 것입니다. 무진장입니다. 진리의 보고입니다. 이런 막대한 우주 전체를 총합한 것을 대신할 수 있는 상응적 상대체의 내용을 내 일신에 갖춘 존재는 소우주라 해도 누가 부정할 수 없고 신비의 왕궁인 것입니다.(203.327, 1990.06.28)
 
이 모든 사지백체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원만히 주고받을 수 있는 화합적 하나의 종합왕국입니다. 그런 모든 주고받는 환경권 내에 있을 때는 우주가 보호하기 때문에 아프지 않습니다. 내 세포 1제곱센티미터에는 1기압이 누르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균형을 취해야 되는 것입니다. 병이 났다는 것은 한 부분이 결여되었다는 것입니다. 우주의 본연적 기준으로 볼 때 주체와 대상이 완전한 이상적 상대권을 상실했기 때문에 불합격자는 우주가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미는 힘입니다. ‘너는 이제부터 탈락하는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픔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논리적입니다.(204.112, 1990.07.01)
 
여러분 앓아 봤지요? 왜 아프냐는 것입니다. 의사들에게 그렇게 물으면 그것은 모릅니다. ‘아프니까 아프지’ 그러는데,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왜 아픕니까? 근본에 문제가 생기면 아픈 것입니다. 그러면 근본이 뭐냐? 이 몸을 중심삼고 자기 생명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모든 지체들이 주체와 대상이 주고받는 수수작용을 잘 해야 됩니다. 전체가 잘 주고 받으면 그 육체가 원활히 운동을 하고 계속 생존하게 됩니다.
 
이 우주는 하나님의 이상적 존재형으로 잘 주고 잘 받는 것은 전부 옹호합니다. 옹호하는 이 세계의 요소 가운데 반대요소가 벌어지고, 결여되고, 한 곳이 막히게 되면 옹호권에서 작용할 수 없는 불합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 그 반작용으로 내뱉게 됩니다. 그것은 우주 자체의 보호를 위해서입니다. 세계에는 작용과 반작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반작용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대개 나쁜 것으로 보지만 그것은 큰 것을 보호하기 위한 작용입니다. 그러니 보는 관이 달라져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가 아프다면, 그것은 배를 중심삼고 어떤 주체 앞에 대상적인 위치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회로가 막혔다는 것입니다. 막혀 버린 만큼 반대로 몰라내게 되는 것입니다. 우주력에 의해 몰아내는 힘이 거기에 작용하니 아픈 것입니다. 막힌 것을 열어만 놓으면, 약으로 그 문을 열어 놓기만 하면 괜찮아지는 것입니다.(165.176, 1987.05.20)
 
병이 나게 되면 왜 아픕니까? 균형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균형이 무너진 것은 우주력이 몰아냅니다. 안 아프다고 하더라도 상충이 벌어지기 때문에 우주력이 몰아내는 것입니다. 죽는 것입니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양심에 가책을 받는다는 자체는 우주력의 침해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 일은 절대 생각도 말고 하지도 말아야 됩니다.(400.113, 2002. 12.28)

2. 마음의 치유력

종교 경전  

마음이 즐거우면 앓던 병도 낫고 속에 걱정이 있으면 뼈도 마른다.
잠언 17.22 (기독교)
 
마음이 타면 뼛속이 썩는다. 잠언 14.30 (기독교)
 
말씀 선집  
  
그것을 전부 시적으로 소화하고 심정으로 소화하는 것입니다. 그 관념이 무서운 것입니다. 병이 나도 ‘아이구, 나 병나 죽겠다’ 하면 죽는 것입니다. ‘병난 것은 나에게 복을 갖다 주기 위해서, 더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생각하면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더 건강해진다는 것입니다. 그 병이 나를 침범했다가 떠나면 더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118.327, 1982.06.20)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하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그러면 노인같이 되는 것입니다. 늙은 자신에게서 정신이 시들지 않게끔 일을 만들어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언제든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정신적인 기대가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건강을 유지하면서 어떤 어려움도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정신력은 위대한 것입니다.(205.91, 1990.07.07)
 
아무리 건전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건강한 육체를 갖지 못하면 온전한 사람이 못 되고, 그와 반대로 건강한 육체를 육체를 소유했어도 정신이 올바르지 못하면 사람의 구실을 올바로 못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여러분 모두는 몸과 마음이 올바르게 통일을 성취해 나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정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271.151, 1995.08.27)
 
혁명가가 되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합니다. 신체적으로 허약하면 혁명적 임무를 수행할 수 없습니다. (203.177, 1990.06.24)

3. 의약
 
종교 경전  
 
하나님의 종복들이 치료를 행한다. 하나님께서 치료도 주시지 아니하고 병을 주시지는 않기 때문이다. 단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늙는 것이다.
아흐마드, 티르미디 및 아부 다우드 하디스 (이슬람)
 
향과 고운 밀가루 제물을 드리고 풍성한 제물을 아낌없이 바쳐라. 그리고 의사를 찾아가라. 그는 주님께서 내신 사람이다. 너에게 필요한 사람이니 그를 멀리하지 말라. 대개 건강은 의사들의 손에 좌우된다. 그들은 그들대로 주님께 기도를 올려 환자의 고통을 덜고 병을 고치는 은총을 빈다. 집회서 38.11-14 (기독교)
 
치료사들은 환상 속에서 영혼들로부터 의술에 대해 배웠다. 그 영혼들은 그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말해 주었다. 그들의 약물은 거의 항상 풀잎[와토]이거나 뿌리[훗칸]이다···. 그들은 질명을 땀, 구토, 배변, 오줌, 호흡을 통해 몰아낸다.
오글라라 수우족의 전승 (미주 원주민 종교)
 
헤쿠라[수호령]는··· 네가 도둑맞은 영혼을 되찾아 오도록 도와준다. 너의 길을 잃지 않은 것에 대해 헤쿠라에게 감사하라. 너는 질병의 귀신들을 쫓아 낼 수 있다. 그들의 냄새 때문에 너는 그들을 알아 볼 수 있다. 모든 귀신은 독특한 냄새를 풍긴다. 그리고 그들의 해먹도 그 냄새로 배어 있다. 그 냄새는 그들 모두가 소지한 와토타로부터 나온다. 질 좋은 환각제는 네가 막 영혼을 훔친 귀신을 보고 그 이름을 말할 수 있게 한다. “죄 있는 자는 누구누구이다”라고 너는 생각한다. 그리고 너는 네 친근한 헤쿠라가 그 귀신을 내쫓도록 한다.
야노마미족 무당의 가르침 (미주 원주민 종교)
 
말씀 선집 
  
의학에서는 타락으로 인해 생긴 육신의 병을 치료할 뿐 아니라 동서 문화의 화합을 통해 동서양의 갈등까지도 고치게 한다는 차원에서 통일사상과 통일의학을 개발해야 합니다. 동서 사상과 의학이 합해야 앞으로 에이즈와 같은 난치병을 고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의학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농촌의 젊은 사람들 중에 에이즈와 같이 현대의학으로도 고치기 힘든 병들을 고칠 수 있는 특별한 치료법을 영계로부터 가르침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세계의 사실을 인정하지 않게 되면 큰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287.39 1997.08.10)
 
약이라는 것은 뭐냐? 상충적인 천적이 약입니다. 머리에 병이 났으면 천적의 꽁지를 쓰면 그게 약이 되는 것입니다. 한약의 재료를 찾아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약이라는 것이 말이에요. 동쪽에서 병이 났으면 서쪽 끝을 치료하는 것이 약입니다.(325.148, 2000.06.30)
 
4. 훌륭한 위생
 
종교 경전 

무엇으로도 운동을 대신할 만한 것은 없다··· 인간이 따르는 사악한 지배로 인한 해로움도 운동이 추방해 줄 것이다. 그러나 움직임이 모두 운동은 아니다. 운동이란 강력하거나 재빠른 것, 또는 이 둘의 결합니다. 숨결을 변화시켜 이것을 빨리 하는 역동적인 움직임이다.
마이모니데스, 미슈네 토라 (유대교)
 
말씀 선집    
여러분, 아침에 운동합니까? ‘운동을 왜 해? 그렇지 않아도 고달픈데 편안히 쉬지’ 하겠지만, 건강을 위해서 투입하지 않는 사람은 점점 병들어서 퇴화됩니다. 자연의 이치가 그렇습니다. (380.164, 2002.06.07)
 
우리 같은 사람은 운동을 했습니다. 지금도 몸의 컨디션이 안 좋으면 풀 줄 압니다. 가다가 허리가 아프면 이렇게 푸는 것입니다. 안마예요, 안마. 침놓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싹 이렇게 훑어 보면 알아요. 벌써 다 압니다. 훈련이 돼 있기 때문에 어디에 지장이 있으면 반드시 그걸 푸는 것입니다. 자기 몸 관리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건강하지요? 지금도 이렇게 하면 딱 들어갑니다. 칠십난 노인은 보통 이렇게 걷잖아요? 그렇지만 나는 딱 붙지요? 그건 운동해서 그런 것입니다. 자기 몸을 관리해야 됩니다.(203.177, 1990.06.24)
 
하나님을 직접 사랑하기 전에 여러분의 발 앞에서부터 여러분이 먹는 음식을 사랑하고, 물질을 사랑하고, 만물을 사랑하고, 여러분의 몸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만물을 사랑함으로써, 만물의 요소를 흡수하여 내 몸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138.99, 1986.01.19)
 
하나님 아버지의 손길을 거쳐 지어진 순수한 이 풀 한포기를 무엇보다도 가치 있게 느낄 수 있는 세계가 되기를 나는 바라고 있습니다. 어떠한 향기보다도 공기의 맛이 더 좋습니다. 사람이 공기의 맛을 알고 햇빛의 맛을 알고 물의 맛을 알면 병나는 법이 없습니다. 이런 심정으로 살면 누구나 건강체가 될 것입니다. (9.177-178, 1960.05.08)
 
건강하기를 바라거든 위하는 사랑을 중심삼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병 없이 이 땅 위에서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331.23, 2000.08.23)
 
말씀 선집   

천륜의 뜻 앞에 완전히 화하여 천상의 인정을 받은 사람, 신비스런 체험을 한 사람은 알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대해 그대는 내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을 느끼는 동시에 만물이 나를 대해 머리 숙이게 되는 것을 볼 것입니다. 온 피조만물이 그대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나님 것이라고 인정하는 날에는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은 물론 땅 위의 만물까지도 그에게 머리 숙여 송영하게 된다는 사실을 오늘날 인간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고 만물이 인정할 수 있는 입장에 들어가게 된다 할진대, 참다운 양심을 가진 사람들 역시 그 앞에 자연히 화하여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4.102, 1958.03.16)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야야 땅아, 너를 제일 부모의 입장으로 세웠으니 아들딸을 낳아서 너에게 영원한 사랑을 전해 줄 수 있는 아들딸을 만들어 봐라!’ 할 때, 땅이 ‘음’- 이래 가지고 계약이 되어 있다고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또, 땅이 ‘아, 나는 당신의 사랑을 좋아합니다. 당신의 사랑을 다리 놓을 수 있는 중간 매개체를 만들라고 해서, 그런 공약에 의해 환영하고 지지해서 모든 것을 양보하기로 했습니다.’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래서 내 몸뚱이가 하나님의 사랑과 접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몸뚱이가 된다고 할 때, 땅이 ‘영광스러운 사람을 지어 놓은 것을 좋아합니다’ 그럴 것입니다. (97.143, 1978.03.12)
 
만물이라는 것은 뭐냐? 우리가 본성의 사랑을 꾸미는 데 있어서 응원해 주는 아름다운 표시체들입니다. 빨갛고, 노랗고, 자극적인 모든 것을 충만케 해주는 사랑을 찬양할 수 있는 하나의 선물입니다. 이 세계의 만물들은 인간이 이상적인 사랑을 하는데 상징적인 다리가 되어서 전부 찬양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만물이 존재하는 본래의,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적인 존재의 기원이요,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식물들도 우리 인간의 사랑을 추구하기 위해 서로서로 아름다운 것으로 전부 장식해서 환영하고, 동물이라든가 새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수컷 암컷 서로 좋아하면서 짹짹하며 ‘아이고, 당신이 이렇게 사랑하지요? 나도 당신을 따라 가지고 좋아합니다.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그래 그래’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만물과 인간이 하나되는 동시에 하나님이 사랑을 하는. 사랑의 구름이 끼고, 사랑의 바람이 불고, 사랑의 물이 흐르고, 사랑의 노래가 터져 나오는 이 우주가 얼마나 아름다운 동산이냐는 것입니다. 꽃을 보고 ‘야, 너 어느 자리에 가고 싶으냐? 전부 장식하고 모든 아름다움을 가지고 기쁘게 해줄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가겠느냐?’ 하고 물어본다면, ‘제일 최고의 자리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깃드는 그러한 안방에 찾아가서 이 아름다움을 가지고 찬양하고 싶다고 다 그럴 것입니다. 
 
그 얼마나 아름다워요. 참사랑을 가지고 사랑하는 부부의 안방에 피는 그 꽃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 자리뿐만 아니라 하나님까지도 모실 수 있는 자리의 장식품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얼마나 아름다워요. 참사랑을 가지고 사랑하는 부부의 안방에 피는 그 꽃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 자리뿐만 아니라 하나님까지도 모실 수 있는 자리의 장식품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얼마나 영광이겠느냐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옛날 아담시대나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 시대나 앞으로 몇 만 년 후의 시대나 변함이 없기 때문에 그 자리를 아름답게 꾸미는 데 동참하는 것이 영광이요, 이렇게 역사시대에 꽃으로 태어난 것을 나는 자랑으로 아오’ 할 것입니다. (146.107, 1986.06.07)
 
우리 몸뚱이는 소우주입니다. 이 몸뚱이에는 광물도 있고, 식물도 있고, 동물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 앞에 참사랑을 갖다 대면 세포까지 좋아해서 ‘왁’ 소리 지르는 것입니다. 입을 가진 것들은 키스를 하고 싶어서 ‘오호’ 하고, 눈을 가진 것들은 눈을 맞추기 위해서 ‘오호’하고, 귀를 가진 것들은 귀를 맞추기 위해서 ‘오호’ 모두 그럽니다. 
 
그러니 그것들이 눈을 다 열고, 귀를 다 열고, 입을 다 열고, 거기다 힘을 들여 가지고 움직이게 되면 얼마나 신나고 얼마나 멋져요? 훌훌 날아다닐 것 같고, 세상 천지에 무서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눈이 이렇게 뒤집어졌더라면 그 힘을 만나면, ‘야, 이놈아, 빨리 대답해!’ 하면 ‘예이’ 한다는 것입니다.
 
눈을 똑바로 뜨고 동물세계의 수놈 암놈이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을 보고, 세균의 세계, 세포세계, 광물세계의 부처끼리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도 ‘나는 참사랑을 가진 실체다. 내 몸가 마음, 내 모든 세포는 완전히 하나가 되어서 천주적으로 부동된 그런 실체가 돼 있다’ 할 때는 이 우주가 째까닥 째까닥 전부 와서 붙는 것 같습니다.
 
우주의 피조물은 전부 그렇게 움직이기 때문에 참사랑, 참된 사랑을 가진 참된 사람이 가는 데는 모든 동물이 따라가고, 모든 식물도 따라가고 모든 광물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은 자연히 큰 둥지를 틀고 보호를 받으며 살게 마련입니다. 본연의 세계는 그러한 사랑을 중심삼고···. 경계선이 없습니다. 어디나 통합니다.(163.44, 1987.04.01)
 
이러한 어머어마한 천체, 우리가 숫자로 헤아릴 수 없는 놀라운 가치의 천체이지만 그 천체 자체가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태양계의 하나의 위성인 지구라는 땅덩이 위에 대우주에 비하면 티끌만도 못한 보잘 것없는 인간을 지어 놓으시고 인간을 중심한 하나의 이념의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그 고마움과 기쁨과 영광됨과 장함이 얼마나 커야할 것인가를 여러분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5.343, 1959.03.08)

교사로서의 자연
 
자연에는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들이 널려 있다. 부지런히 식량을 저장하는 개미에서 짝을 위해 감미롭게 노래하는 새들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피조물이 살아가는 방식을 관조하면 자연은 삶의 근본윤리에 관한 많은 가르침을 제공한다. 땅을 일구고 동물을 돌보는 것은 인내와 희생을 가르치며, 수확이 풍성할 때 하나님에게 품기우는 은혜를 알게 한다. 문선명 선생은 하나님이 식물과 동물을 통해 태초의 사람들에게도 사랑과 가치 있는 삶에 대해 충분한 교훈을 주었다고 가르친다.
 
종교 경전

짐승들에게 물어보게, 가르쳐 주지 않나. 공중의 새들에게 물어보게, 알려주지 않나.
들풀에게 물어보게, 가르쳐 주지 않나. 바다의 고기들도 알려줄 것일세.
이런 일을 한 것이 여호와의 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세상에 그 누가 이것을 모르랴?
욥기 12.7-9
 
너희가 뿌린 씨앗을 보지 않았느냐?
너희가 그것을 자라게 하느냐, 아니면 우리가 자라게 하느냐?
우리가 원한다면 그것을 부수어 버릴 수도 있노라.
그러면 너희들은 비탄에 빠지게 될 것이며,
우리는 망해 빚을 지게 되었다.
아니 우리는 모든 것을 빼앗겼다 하리니.
너희가 마시는 물을 보지 않았느냐?
너희가 그것을 구름으로부터 내리게 하느냐, 아니면 우리가 내리게 하느냐?
우리가 원한다면 그것을 짜게(마실 수 없도록)만들 수도 있노라,
너희는 왜 감사할 줄을 모르느냐.
너희가 지핀 불을 보지 않았느냐?
너희가 그 나무들을 길렀느냐, 아니면 우리가 길렀느냐?
우리는 그것을 교훈으로 만들었으며 여행자들도
유용하게 쓰게 하였노라.  꾸란 56.63-73 (이슬람)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요한복음 12.24 (기독교)
 
그러니 그리운 여호와님 찾아 나서자. 그의 정의가 환히 빛나 오리라. 어김없이 동터 오는 새벽처럼 그는 오시고 단비가 내리듯 봄비가 촉촉이 뿌리듯 그렇게 오시리라.
호세아 6.3 (기독교)
 
말씀 선집

인간은 자연세계나 지구의 움직임을 보고 취미를 느낍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체의 사랑의 속성을 다 배우는 것입니다. 벌레들이 살고 곤충들이 살고 혹은 동물들이 사는 것을 보면 전부 쌍쌍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자연은 인간 하나를 사랑의 대상으로서 상대 이상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전개시켜 놓은 교재요 박물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137.212, 1986.01.03)
 
만물세계는 서로 사랑을 합니다. 동물들을 보나, 곤충을 보나, 식물을 보나, 광물세계를 보나 모두가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서로 상대를 중심삼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날기도 하고, 기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 ‘저들이 뭘 하나?’ 하고 보면 다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자연이란 아담을 교육할 수 있는 박물관이요, 아담을 교육할 수 있는 산 교과서입니다. (134.194, 1985.07.20)
 
환경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쌍쌍 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이 우주는 사랑을 핵으로 한 박물관입니다. 쌍쌍 박물관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가 둘이 서로 좋아하면서 열심히 집을 짓고, 새끼를 낳고 먹이는 것을 보면서 배워야 합니다. ‘내 새끼를 위해서 그 이상 몇 백 배 해야지’ 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벌레들도 암수 두 마리가 전부 사랑하고 새끼 치는 것입니다. 그들도 자기 생명을 걸고 새끼들을 기르려고 합니다.(229.287, 1992.04.13)
 
이 새먼(salmon;연어)같은 것도 참 놀라운 인간의 교재입니다. 한번 사랑하고는 죽습니다. 새끼들을 위해서 먹이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사랑 때문에 죽으니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우냐는 것입니다. (132.81, 1984.05.20)
 
내가 자연을 사랑했습니다. 원리의 80퍼센트를 다 자연 가운데서 찾았습니다.
(374.235, 2002.04.10)
 
세상만사 교재 중에 제일 훌륭한 교재가 나무와 풀입니다. 봄이 되면 씨가 뿌려져 커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주인 앞에 보답할 수 있는 선물을 하고 사르라지는 것입니다. 또 매년 더 훌륭한 가지를 쳐서 더 많이 더 크게 수확되어 번창하는 것이 자연세계입니다.
(386.298, 2002.07.18)
 
선생님의 동네에는 때가 되면 철새가 날아들었습니다. 서울과 같은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철새를 모를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정서적인 면에 있어서 미달한 사람들입니다. 자연의 교류, 교류의 심정을 모르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철새를 살살 따라가 본 적이 있습니다. 새가 예쁘니까 그 쌍쌍이 낳아 놓은 알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알의 색깔은 어떠할까, 하고 궁금해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저 철새를 지키는데 어떤 때는 일주일 지키는 것은 보통입니다. 그런 새들은 드러나는 곳에 둥지를 안 틉니다. 썩은 나무 구멍 같은 데는 뱀이 타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위험한 데는 안 튼다는 것입니다. 단단한 밑으로 통할 수 있는 굴에 둥지를 틉니다. 누가 다 가르쳐 주었는지 외구멍에 둥지를 틀어 놓는 것입니다. 둥지도 깊이 트는 게 아니고, 언제든지 주변상황을 살필 수 있게 만듭니다. 그 세계에서 자기 서식을 위해 보호할 수 있는 감각과 지능이라는 것은 천재적인 것입니다. (137.223-224, 1986.01.03)
 
새도 국경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들은 비자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태풍이 불어오는데, 태풍에게 ‘미국은 세계에서 제일 위대한 나라, 큰 나라기 때문에 여기는 누구도 못 들어오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태풍도 못 들어온다’ 그것이 통합니까?
 
조그만 개미새끼도 마음대로 넘어가고, 조그만 뱀 새끼도 마음대로 넘어가고, 벌레도 날아갑니다. 전부 이러는데 인간은 왜 마음대로 못 넘어가느냐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렇지만, 멕시코 개미하고 아메리카 개미하고 쌍쌍이 붙어서 새끼도 마음대로 낳고, 멕시코 참새하고 아메리카 참새하고 마음대로 알 낳고 새끼 낳고, 멕시코 돼지, 호랑이, 전부 하나되어서 살고 있는데 사람은 왜 그래요? 그러한 자연을 바라볼 때 참 신기하다는 것입니다.(106.138, 1979.12.24)
  

생명 존중
 
이 절의 구절들은 생명 존중에 부합되는 윤리를 규정한다. 도교와 불교의 경전은 인간세계의 인위성에 대해 지적하며, 자연의 순수와 무위로 돌아가라고 촉구한다. 어둡고 불결한 도시환경과 비교할 때 자연 속의 삶은 곧 정화이며 영적 삶에 도움이 된다.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어떤 사람에게 자연세계에 대한 존중과 그 속의 피조물들에 관한 공경은 강제된 어떤 것이 아니라 사랑이 충만한 심정에서 저절로 흘러나온다. 그래서 아힘사, 즉 인도 아대륙에서 일어난 비폭력 불살생 교의가 있다. 채식주의는 흔히 이 교의의 윤리관에 따라출현된다. 더욱이 자연의 피조물들 중에서 암소보다 더 아낌없이, 아무런 불평없이 주는 동물은 없으며, 따라서 암소는 힌도교인들과 다수의 원주민들에 의해서 마땅히 공경된다.
 
문선명 선생의 가르침은 위에서 언급한 측면들과 여러 가지로 부합하지만, 특히 자연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며, 그것은 환경윤리를 위한 출발점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그는 하위체계의 피조물은 상위체계의 피조물에 의해 먹히고 흡수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는 개념에 입각하여 채식주의에 대한 흥미로운 이의를 제기한다. 하위체계의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구현하므로 피조물들의 정상에 선 인간을 위한 자양분이 되기를 당연히 원할 것이다. 그러나 참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음식을 섭취할 만한 자격이 없는 것이다.

1.생명체에 대한 외경과 보살핌
 
종교 경전
 
어머니가 자기의 목숨을 바쳐 아들의 목숨을 지키듯이, 일체중생에 대한 지극한 자비심이 그대 가슴에 가득하라. 쿳다카 파타, 멧타 숫다 (불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에 대한 완전한 무해나, 불가피한 경우에 이의 극소화로 이루어지는 삶은 덕행 중의 덕행이다.  마하바라타, 샨티 파르바 262.5-6 (힌두교)
 
어떤 동물이나 생물, 유기체 또는 의식적인 존재를 상하게 하거나 예속시키거나 고통을 주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 비폭력 교의는 청정하고 불변이며 영원하다. 고통이 그대에게 아픔을 주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그것은 모든 동물, 생물, 유기체, 의식적인 존재들에게 아픔을 주고 불안하게 하고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아차랑가 수트라 4.25-26 (자이나교)
 
사도가 이르기를, ‘이슬람에는 해도 없거니와 해에 대한 근거도 없느니라’ 하였다.
마즈마 알 자와드 4.6536 (이슬람)
 
어떤 사제가 뱀에 물려 죽자 그들이 세존께 이를 알렸다. “오, 사제드리여! 놀랍도다. 저 사제는 결코 뱀들의 네 왕족들에 호의를 보인 적이 없도다. 왜냐하면 만일 사제가 뱀들의 네 왕족들에 호의를 보였더라면, 그는 뱀에게 물려 죽는 일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발 없는 중생에게 내 사랑이 머물고, 두 발 지닌 짐승에게 또한 그러하며, 네 발 지닌 짐승을 내가 사랑하며, 많은 발 달린 중생도 또한 그러하리라.
비나야 피타카, 출라박가 5.6 (불교)
 
낳았으되 소유하지 않고, 
해주었으되 믿지 않고,
길렀으되 지배하지 않는다.
이것을 그윽한 덕[元德]이라 말한다. 도덕경 51 (도교)
 
소나 말이 네 개의 발을 가지고 태어난 것, 이것을 일러 자연(天)이라 하고, 말 머리에 고삐를 두르고 쇠코에 구명을 뚫는 일, 이것을 일러 인위(人)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위로 자연적 본성을 망치지 말고 조작으로 천성[性命]을 파괴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장자 17 (도교)
 
야마토의 땅에는 많은 산들이 있다.
카구산의 천계에 올라,
나는 그 나라를 내려다보네.
땅 위에 여기저기 피어오르는 연기와,
바다 위 여기저기 떠다니는 갈매기들을 보네.
참으로 좋은 나라가 여기,
잠자리들의 섬, 
야마토의 이 땅이로다 만요수 I (신도)
 
전 세계의 중심 수미산의 동편에, 가파르고 완만한 산비탈을 따라 흘러내리는 푸른 시냇물, 희고 푸른 온갖 나뭇잎들, 향기로운 백합화, 천계 위 나무들이 제각기 아름답고, 이름 모를 온갖 수풀과 넝쿨이 울창하며 고행승과 구도자들이 거두는 거위, 오리, 백조들의 울음소리가 평화로워라. 자타카 (불교)
 
오, 호랑이들이여, 다시 숲으로 돌아와서,
숲이 평지나 다름없게 되 않게 하라.
그대들이 없다면 도끼가 숲을 무참히 도륙하리라.
숲이 없다면 그대들은 영원히 집 없이 떠돌아다니리라. 쿳다카 파타 (불교)
 
말씀 선집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알아야 됩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연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만물은 하나님의 상징적 존재요, 인간은 실체적 존재이기 때문에 만물과 인간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70.182, 1974.02.09)
 
자연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연의 주인 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연을 자기 이상 사랑하고 또 사람들을 자기 이상 사랑해야 됩니다. (375.20, 2002.04.13)
 
아네를 사랑하는 데도 아네에게 먹고 살 수 있는 영양소를 보급하는 모든 공기와 태양 빛과 물과 풀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물과 태양이 없어서는 초목이 자랄 수 없지요. 자연을 사랑하고 나서야 자기가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마음대로 잡아먹으면서 사랑 못 하며, 잡아먹으면 병이 납니다. 사랑하면 병이 안 납니다. (385.200-201, 2002.07.11)
 
우리 몸과 제일 가까운 것이 자연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탄식하는 자연의 소원을 풀어 주어야 합니다. 산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높은 것을 추앙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자, 석가, 예수님은 모두 산을 사랑한 분들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명승지에 가게 되면, 그것이 하늘의 운세를 중심하고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하는 입장에서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늘의 운세와 연결하게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의 초창기에는 산으로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한 나라의 산과 땅과 물을 보면 그 나라의 민족성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물은 어디에 가서 마셔도 옥수(玉水)입니다.
외국에 나가기 전에 우리나라의 자연을 깊이 사랑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자기가 태어난 땅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자기의 몸도 사랑할 줄 압니다. 또 자기의 몸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사랑하는 사미요,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러한 사람은 하늘도 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나이아가라 폭포보다도 자기가 태어난 이땅을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자연이 하나님의 섭리노정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위로했던가 하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14.102, 1964.06.20)
 
바다를 사랑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바다에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이 많습니까? 미지의 사실이 많습니다. 그것을 파고 들어가고 더 사랑하겠다고 해야 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산도 위험한 곳이 많습니다. 그것도 더 체험하고 자기가 더 개발 하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자기 가슴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391.218, 2002.08.26)
 
미국의 뉴욕이라든가 워싱턴의 일부 지역은 지옥중의 지옥입니다. 제일 어두운 곳이에요. 섬나라처럼 사람들을 한 10리 정도 가야 한 사람씩 만나고, 하루 종일 만나야 열 사람 만날지 말지 한데 가서 살면 거기서는 본심이 눈을 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이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자연 환경이 80퍼센트 되고 사람 환경이 20퍼센트 되어 가지고도 균형을 취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도시에 있는 사람들을 시골로 쫓아내서 공해문제와 환경문제를 해결해야 됩니다. 인류가 3백년, 3세기를 어떻게 남아지느냐 이거예요. 그러니 내쫓아야 됩니다. 특히 선진 국가들ㅇ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도시가 문제입니다. 마약, 범죄, 에이즈 등 복잡한 문제들이 많습니다. 듣는 것, 보는 것, 느끼는 것들이 전부 문제입니다. 이러한 문제들로부터 어떻게 도망을 갈 것이냐? 그러므로 시골로 흩어져야 됩니다. 지금은 시골에 가서도 문화생활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이 있지, 이메일과 전화가 있지, 어디 가든지 다 마찬가지입니다. 저 산꼭대기, 로키산맥 같은 7천 미터 이상 되는 곳에서도 말이에요, 인터넷을 통해서 세계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레버런 문은 남미 시골로 가는 것입니다. 모기가 많지만 공기가 좋고, 물이 좋고, 태양 빛이 좋습니다. 바다를 보라고요. 태평양 섬에 가더라도 공기 좋고 물이 좋습니다. 공해가 없지, 환경은 더 좋지···.자연과 더불어 얘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연에 가까운 것입니다. (339.163-164, 2000.12.10)

2. 신성한 암소
 
종교 경전
암소들이 다가와 우리에게 
해운을 가져다주누나.
그들이 외양간에 있으며
우리와 더불어 즐겁게 지내리라.
풍성하게 번식하고 갖가지 모양을 나타내며,
그들이 여기에 살았으면
인드라를 위해 아침마다 젖을 짜내면서···.
그들을 잃지 말며
도둑들이 해치지 못하게 하고
못된 마음으로 그들을 겁주거나
죽이려 들게 내버려두지 말라.
암소의 주인으로 오래오래 살면서
신들을 섬기고 그들을 잡아 제사지내라.
흙먼지 속을 질주하는 군마들이
그들에게 닿지 않으며,
그들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일이 없노라.
신을 섬기는 이의 암소들은
광활한 풀밭을 활보하나니,
그들에게 아무런 위험도 없도다.
나에게 암속들은 바가, 인드라,
그들의 젖은 처음으로 짜낸
한 줄기 소마로 보이누나.
오, 사람들이여!
이들 암소, 그들은 인드라이로다.
인드라를 나는 진심으로 열망하노라.
그대, 암소들이여!
그대들은 쇠약한 이들을 살찌우고
추한 이들도 아름답게 하도다.
행복한 울음으로
집안을 행복하게 하누나.
그대들의 위대한 활력은
우리들의 모임에서 찬미되도다. 리그 베다 6.28 (힌두교)
 
오, 조상님! 당신이 우리에게 주신
이 들소를 보십시오.
그는 우리의 거룩한 어머니 위에 있는
모든 네 발 달린 동물의 우두머리입니다.
그 덕분에 사람들은 살아가고
그와 더불어 거룩한 행로를 갑니다. 수우족의 기도 (미주 원주민 종교)
 
말씀 선집

옛날에 내가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그 때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소 먹이러 가는 것이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처음에는 싫증났었는데 깨닫고 나서는 소를 참 사랑하게 됐습니다. 어떤 때에는 소가 오후가 되면 시간이 된 걸 뻔히 압니다. 그런데 나는 이거 장난치고 놀다가 끝내지 않고 그냥 가기는 싫거든요. 그래서 ‘야! 10분 기다려! 야! 30분 기다려!’ 이러다 보니 한 시간, 두 시간···. 이래 놓으니 소는 벌판에 매여서 ‘나를 모시러 올 주인이 어디 갔나?’ 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늦게 가더라도, 나 같으면 성을 내고 밀고 차고 할텐 데 아무 말도 안 하고 그저 이렇게 쳐다보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나는 ‘참 군자, 군자 양반이다! 아 고맙다!’ 고 속으로 그랬습니다. 그럴 때가 많았습니다. ‘야! 이게 참 나보다도···’ 그러고 나서는 ‘야! 너, 그런 모습을 볼 때 오늘은 먹여서 탕감 복귀해야겠다!’ 그리고 해가 져서 어둡도록 먹여 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배가 팽팽한데도 주인이 먹이니 자꾸 먹는 것입니다. 이게 밤을 새우더라도 먹는 것입니다. 위가 많으니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소에 대해 배운 것이 많습니다. 따가운 오뉴월 땡볕에 앉아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먼 산을 바라보고···.명상하는 대왕님이 소입니다. 그래서 세계 사람들이 호랑이 고기는 싫어해도 쇠고기는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얼마나 빨라요? 얼마나 양양거리느냐 말입니다. 개는 또 얼마나 짖어요. 그래서 ‘쇠고기는 다 좋아 하는구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치약 같은 것도 소 뼈다귀로 만듭니다. 어디 꽁지 하나 버릴 것이 없고, 뼈다귀 하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똥도 비료로 쓰지요. 그래서 ‘소가 좋긴 좋구만!’ 하는 것입니다.(109.40-41, 1980.10.26) 

3. 채식주의
 
종교 경전

살아 있는 목숨을 죽이지 말라. 이것은 모든 지혜의 요결이며, 이것이야말로 불살생에 관한 상호 관계의 이치에서 내려지는 지고한 결론임을 알라.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일체의 생명들, 공중에 나는 새들이나 땅 위 혹은 땅 속에 사는 일체의 생명들에 대한 위해나 살생이 없는 세계, 이러한 세계를 일러 안락과 평화가 충만한 구극의 열반이라 하느니라.···
진정한 구도자는 산목숨을 잡아 만들어진 음식이나 음료를 먹어서는 아니 되며, 금해진 음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식사에 동참해서도 아니 되나니, 이것은 계율에 충실한 자의 마땅한 도리이니라. 스스로 의혹이 일어나는 음식은 무엇이나 삼 갈 것이며, 자신의 영혼을 구극의 경지에 합당하게 하며, 감각을 통어하는 자는 살아 있는 목숨을 죽이거나 이러한 일에 함께 해서는 아니 됨을 늘 명심할지니라. 수트라 크리탕가 1.11.10-16 (자이나교)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않는다면 살코기란 있을 수 없으며, 살아 있는 생명을 거두는 것은 천계에 합당치 않다. 이런 까닭에 살코기를 먹는 일은 마땅히 피해야 한다.
마누법전 5.48 (힌두교)
 
살생을 금하지 않으면서 선정을 닦는다고 함은, 비유하여 마치 어떤 이가 제 귀를 막고 크게 소리 지르면서 남들이 듣지 못할 것을 구하는 것과 같다··· 청정한 비구는 길 다닐 적에 살아 있는 풀을 밟지 않거늘, 하물며 제 손으로 그것을 뽑겠느냐? 그런데 어떻게 자비를 말하면서 중생의 피와 살을 가져다가 식사에 충당하겠느냐? 청정한 비구들은 명주로 만든 의복을 입지 않으며,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신발을 신지 않는 것은 그것이 중생의 생명을 앗아 취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청정한 비구가 짐승의 젖이나 그것으로 만든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그 음식들은 어린 새끼들이 먹어야 할 것을 빼앗아서 얻는 것인 까닭이다.
수능엄삼매경 (불교)
 
말씀 선집

인간이 사랑의 오케스트라를 하고 사랑의 모든 맥박을 중심삼고 우주를 전부 살려 나갈 수 있는 동물세계와 식물세계를 먹는다는 것은 사랑의 결실을 먹고 산다는 것입니다. 열매를 먹고 산다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음식을 대할 때, 그 먹혀질 식물은 ‘비로소 당신의 피살이 되고 힘이 되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원소로 내가 흡수되는 놀라운 것을 감사합니다’ 하며 어서 입에 들어가겠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쇠고기를 먹더라도 ‘이 쇠고기는 송아지 때부터 어미가 사랑하고 주인이 사랑하여 길러서 여기까지 온 사랑의 열매로구나!’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의 열매로서 소화하고 먹고 산다는 개념을 중심삼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하나님의 본질적 사랑 분모의 내용과 일치된 자리에서 먹고 감사하는 사람은 병도 안 날 수 있다는 것은 이론적인 결론입니다.  (217.307-308, 1991.06.12)
 
요즈음 여러분들 아침에 매일 밥 먹나요, 안 먹나요? 그러면 먹을 때, 자라고 있는 야채를 무정하게 뚝 잘라다가 칼로 ‘다다다’ 할 때 미안한 생각 좀 합니까? 삶지도 않고 소금을 쳐서 토끼처럼 와작와작 먹는 걸 볼 때, 이 야채가 ‘아이구, 나 죽는다, 이놈의 자식아, 복수, 복수, 복수’ 그래요? 그거 어마나 무정해요? 그럴 수 있어요? 그렇지만 야채는 ‘내가 그걸 다 고맙게 생각하고 당신은 나보다 더 가치 있는 이 우주의 공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공적 가치가 있는 존재에게는 희생하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나는 감사하며 들어갑니다!’ 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내가 ‘하하하’좋다고 웃고 이럴 때, 여기에 들어간 그 음식들이 좋아서 그럴 수 있게끔 해야 합니다. 이게 기분이 좋아 가지고 들어가서 내 살이 되고 피가 되어 가지고 움직여야 됩니다. 이게 전부 다 불평 불만해 가지고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는 ‘하하하’ 할 때, 그저 ‘음음’ 이러면 어떻게 되겠는냐는 말입니다. 나 때문이 아니라 전체 때문에 ‘하하하’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을 모든 음식물이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자기를 위해서 ‘허허’ 하는 것은 ‘빌어먹을 자식 같으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몸은 우주의 공법에 의해 반동이 벌어지기 때문에 병이 나고 나쁜 일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이 우주의 공법에 의해 쇠퇴되어 망한다는 것입니다.
(105.94-95, 1979.09.30)
 
이 길을 가지 않겠다고 하는 존재는 고독한 것이요, 썩어 버리는 것이요, 폐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윈의 진화론 같은 것은 일면에는 일리가 있는 것입니다. 약육강식이란 말은 높은 것을 위해서는, 더 큰 것을 위해서는 통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주의 존재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기를 잡아먹고, 소를 잡아먹고, 다 잡아 먹고 그것을 흡수했으면, 그 이상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그렇게 하게 될 때 만 우주가 환영한다는 것입니다.
(124.320, 1983.03.01)
 
식물은 광물을 빨아먹고 동물은 식물을 먹고, 자꾸 먹는 것이 뭐냐 하면 높은 데 가는 것입니다. 사람 가까이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신경 세포에 도달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상적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희생해야 합니다. 사랑의 힘은 희생하려고 합니다. 사랑이 자꾸 발전을 거듭하다 보면 하나님의 사랑에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개념을 가진 사랑하는 부부 한 싸이 맺어진 것은 우주의 보물이기 때문에 전 우주가 보호하고 하늘땅이 보호하고 사람과 만물이 보호하니 만큼 그것을 보호할 줄 알아야 됩니다. (201.123, 1990.03.27)
소우주와 대우주
 
인간은 소우주로서 그 안에 모든 우주의 본질을 응축하여 지니고 있다. 역설하면, 전체 우주는 대우주속의 인간을 닮아 존재한다. 세계의 종교 경전들은 이러한 통찰을 신화적 철학적인 언어로 표현한다. 공간과 시간의 전 흐름 속에서 소우주로서 인간은 피조 만물 모두를 파악하고, 사용하고, 기뻐하며 즐길 수 있는 근거를 지닌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인간은 가장 광대한 사유와 행동 범위를 지니고, 모든 것을 포괄하고 모든 것을 알고 평가하며, 모든 것을 이끌고 풍요롭게 하며, 또한 모든 것을 초월한다. 문선명 선생의 가르침처럼, 소우주인 인간은 우주를 사랑하고 우주를 보호해야 할 책임을 지닌다.
 
대우주와 소우주가 상응하는 원천은 무엇인가? 우파니샤드와 여타의 신비적 경전들은 원초적 인간, 즉 푸루샤 또는 메타트론이 창조 이전에 존재했고 그것에 형태를 부여한 우주적 인간을 묘사한다. 문선명 선생은 창조 전 하나님의 마음속에 창조의 모델인 우주적 인간 ‘원형’ 을 말한다. 
 
그것을 창조의 시발로 하여, 우주 창조의 과정에서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의 자연의 모든 요소들은 그들이 창조될때 인간에서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로 재결합되었다. 나아가서 그는 영계를 한 사람의 거대한 인간을 모델화 한 모습으로 묘사한다.
 
종교 경전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되 그 모든 것을 사람을 닮게 지으셨다. 
탈무드, 아보스 드 랍비 나단 31 (유대교)
 
일체만유가 내 안에서 일어나고 삼계가 또한 내안에서 일어나며 나로 인하여 이 모두가 펼쳐지나니 이 세상은 그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로다. 희금강 8.41 (불교)
 
자신의 내밀한 자아를 아는 자는 또한 일체만유의 우주를 낱낱이 알며, 일체만유의 외부 세계를 아는 자는 또한 자신의 내밀한 자아를 아느니라. 아차랑가 수트라 1.147 (자이나교)
 
사람은 천지의 덕을 받고, 음양의 기가 교감하고, 귀신이 합하고 오행의 뛰어난 기를 타고 태어난 것이다.···
오행의 기는 앞의 것이 뒤의 것을 대체하면서 순환운동을 한다. 오행이 사게절과 열두 달로 배분 되지만 매달 한 행이 근본으로 되돌아온다.
오성이 육률(六律)과 십이관(十二管)으로 배분되지만 각 궁조(宮調)는 음의 근본으로 되돌아온다. 오미(五味)는 육화(六和)와 열두 달의 음식으로 배정되지만 매달 음식의 근본으로 되돌아온다.
오색이 육장(六章)과 열두 달의 옷으로 배정되지만 저마다 색의 근본으로 되돌아온다.
고로 사람은 천지의 덕의 중심을 얻고, 오행의 좋은 점을 받고, 오성을 구별하고, 오색을 갖추고 태어난 것이다. 예기 7.3.1-7 (유교)
 
처음에 오직 아트만이 있었다. 그 이외의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생각했다 “내가 세계들을 방출한다면 어떨까?” 그는 이 세상의 온갖 것들, 물 빛 죽음 그리고 바다 강 호수 폭포 등을 생겨나게 했다. 물은 하늘 위에 있고 하늘은 그것을  떠받치고 있다. 광선은 대기이며 죽음은 대지이다. 땅 속에도 바다 강 호수 폭포가 흐른다.
그가 다시 생각했다. “지금 여기에 세계들이 있다. 내가 이들의 수호자를 방출한다면 어떨까?” 그는 물로부터 원인 푸루샤를 일으킨 후 그에게 형상을 주었다.
그는 그 원인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그가 생각을 마치자 마치 계란이 터지며 병아리가 나오듯 입이 터져 열렸고, 그 입으로부터 말이 나왔으며, 그 말로부터 불이 나왔다.
콧구멍이 뚫리고 이로부터 호흡이 나왔으며, 호흡에서 바람이 생겨났다.
두 눈이 터져 열렸다. 귀로부터 청각이, 청각으로부터 허공이 생겨났다.
피부가 생겨났다. 피부로부터 머리카락과 터럭이, 그리고 이들로부터 초목이 생겨났다.
심장이 생겨났다. 배꼽으로부터 날숨이, 그리고 이로부터 죽음이 생겨났다.
생식기관이 생겨났다. 생식기로부터 정액이 생겨나고 정액으로부터 물이 생겨났다.···
신들[대우주적 존재들]과 불 등의 요소들이 생겨난 후, 그들은 큰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그때 최고아[아트만]가 푸루샤로 하여금 허기와 갈증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러자 신들이 그에게 말했다. “우리가 음식을 먹고 쉴 장소를 허락해 주시라.” 그가 한 마리 암소를 그들에게 가져다주자 그들이 말했다. “이것은 충분하지 않다.” 그가 말 한 마리를 그들에게 가져다주자 그들이 말했다. “이것은 충분하지 않다” 그가 다시 사람을 그들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러자 그들이 말했다. “실로 훌륭하도다.” 그러므로 사람은 흡족하다. 그가 그들에게 말했다. “각자 그의 장소에 따라서 그에게 들어가라.”
그때 언어가 된 불은 입 속으로 들어갔고, 호흡이된 바람은 콧구멍 속으로 들어갔으며, 시각이 된 태양은 눈으로 들어갔다. 청각이 된 허공은 귀 속으로 들어갔다. 날숨이 된 죽음은 배꼽 속으로 들어갔고, 정액이 된 물은 생식기 속으로 들어갔다.···
아트만이 생각했다. “어떻게 이 수호자들이 나 없이 있을수 있을까?”
그가 다시 생각했다. “어떻게 내가 그들 속으로 들어갈까?”
만일 나 없이도 언어가 입 밖으로 나오고, 호흡이 이끌어 내어지며, 눈이 보고, 귀가 들으며, 피부가 감촉을 느끼고, 의근이 생각하며, 생식기가 자손을 번식한다면, 그러면 나는 무엇인가?
그는 생각했다. “그 수호자들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그래서 그들의 정수리가 열리고 그가 그 속으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갔던 그 문은 지복의 문이라 일컬어진다.
아이타레야 우파니샤드 1.1-3.12 (힌두교)
 
말씀 선집

사람은 대우주의 축소체입니다. 여러분은 소우주입니다. 대우주는 무엇입니까? 대우주는 피조세계입니다. 대우주의 원천은 힘의 원천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입니다. 나는 대우주 앞에 선 하나의 소우주로서, 대우주의 끊임없는 힘의 원천이 되는 그 힘이 내 마음에 들어옴으로써 이 대우주와 상응적인 상대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121.193, 1982.10.27)
 
우리 인간을 소우주라고 하였습니다. 몸은 땅을 상징하고, 마음은 이념을 상징하고, 영은 하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8.78, 1959.11.08)
 
내가 깨어지는 날에는 나를 중심삼은 하늘의 인연이 깨어질 것이고, 땅의 인연이 깨어질 것이고, 세계 혹은 종족과 가정의 모든 인연이 깨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두고 하늘과 땅을 대신한 소우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8.10-11, 1959.10.25)
 
여러분, 이 손도 세 마디로 되어 있지요? 그리고 팔도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몸 전체를 두고 보더라도 머리와 몸통 그리고 다리, 이렇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복중에 있는 야기들은 손을 대개 쥐고 자랍니다. 하나님은 이성, 즉 두 성품을 가졌다고 말씀드렸듯이 엄지는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주의 중심인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또 네 손가락은 동서남북을 상징하고 춘하추동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손가락의 세 마디는 열두 달을 상징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을 소우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비록 작지만 인체의 구조에는 이 우주만상의 모든 것이 다 들어가 잇다는 것입니다. 우리 심장의 구조를 보면 뿌리와 마찬가지이고, 폐의 구조를 보면 나뭇잎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체구조는 나무의 줄거리가 들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체는 이 우주만상을 대표한 소우주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54.97, 1972.03.20)
 
내가 왜 태어났느냐 하면, 우주가 돌아가는 거기에 박자를 맞추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분 좋습니까? 바다의 물결이 출렁거리면 내 마음도 출렁거리고, 바람이 기분 좋게 불면 내 마음도 기분 좋고, 꽃이 피어서 향기를 풍기면 내 마음도 향기를 풍깁니다. 얼마나 기분이 좋으냐는 것입니다. (104.123, 1979.04.22)
 
‘나’라는 존재는 도대체 어디에서 태어났습니까? 여러분을 소우주라고 했습니다. ‘나’는 이 지구성의 축소체입니다. 우주의 축소체입니다. 여러분들의 몸뚱이에는 지구가 갖고 있는 모든 원소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주가 가담해 있습니다. 그럼 나를 누가 만들었습니까? 우주가 만들었습니다. 우주의 원소를 빌려 가지고 내가 형성됐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우주가 나를 낳아 주었고 만들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부모가 있다면 우주가 첫째 부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고 하는 존재는 이 모든 우주의 원소를 종합한 실체입니다. ‘나는 움직이는 우주요, 활동하는 우주다’라는 것입니다. 또 ‘나는 자유로이 행동할 수 있다.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너희들은 고착되어 있지만 나는 활동하는 우주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나에게 달려 있다. 너희들도 그것을 원하지?’ 하고 물어보면 ‘음,음’ 합니다. (105.106-107, 1979.09.30)
 
영계에 가 보면, 영계 전체가 사람 하나로 보입니다. 전체가 사람 하나로 보여요. 그래서 주체되는 하나님과 이 전체, 큰 한 사람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온 영계와 육계가 모두 흐물흐물해집니다. 하나님이 뛰면 당도 뛰고, 하나님이 웃으면 땅도 웃고···.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여러분들은 어떻게 중심이 될 수 있느냐? 여러분들은 어떻게 중심이 될 수 있느냐? 나와 이 세포를 두고 보면 전부 연결되어 있습니다. 손가락 세포를 보게 될 때, 손가락 세포가 나에게 전부 달려 있습니다. 그런 의미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내 손 끝을 볼 때, 손끝은 나와 1대1입니다. 전부 나에게 머물러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우주의 제일 중심이 된다는 말이 이해가 됩니까? 한 세포와 같은 입장에서 상대할 때 중심적 자격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세포를 통하던 피가 발바닥 세포를 통하던 피에게 ‘아이고, 머리로 오지 말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런 경계선이 있나요? 머리에 오지 말라는 경계선이 있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흑인, 백인, 황인 구별이 없습니다. 살이 요건 하얗고, 요것은 노랗고, 색까이 전부 다릅니다. 눈 색깔도 다르고, 머리칼도 다르고, 전부 다릅니다. 그렇다고 ‘아, 너는 나하고 다른데 너는 별종이야’ 그럴 수 있습니까? 
 
영계에 가 보면 한 사람과 같이 조직이 돼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성인들이라든가 이런 사람들은 눈의 역할을 하고, 귀의 역할을 하고, 냄새를···. 영계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이상을 가졌다면 지옥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볼 때 언제나 곪아 가지고 물이 나오고, 절름발이가 되고, 이것을 원하겠습니까? 원하지 않습니다. (91.280, 1977.02.27)
 
천지가 조화될 때 이 천지 대우주의 주체 대상이 좋아하는데, 이것이 우리 인간생활의 가정을 중심삼고 묶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우주의 핵이 되어 있습니다.
여자는 사랑! 사랑입니다. 남자가 크지만 여자에겐 사랑이 들어 있기 때문에, 여자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태양이 크다 하더라도 땅을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서로 주고 받는 데서부터 천지의 모든 기쁨과 모든 완성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크게 보면 이 우주의 태양계를 축소하고, 이 모든 동식물계를 축소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가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하늘의 모든 쌍쌍제도를 대표한 하나의 핵이라 할때, 센터가 싸우면 어떻게 됩니까? 여러분들 남자나 여자나 우주의 중심이 되고 싶지요? 동물도 그럴까? 이 태양계가 그럴까? 그렇게 보게 되면 그런 것은 사람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216.159, 1991.03.10)


아름다움 
 
산의 위엄, 꽃의 미묘한 색조, 일몰의 장려한 낙조, 풀잎 끝에 달린 아침이슬의 반짝임 등 아름다움은 자연 속에 가득하다. 거기엔 형태와 색깔, 빛과 그림자, 소리와 침묵의 조화가 있다. 조화는 아름다움의 한 측면이다. 조화는 우주의 구조 그 자체에 본래부터 깃들어 있다.
고대인들은 수학이야말로 음악의 토대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오늘날 과학자들은 별들의 움직임과 원자들의 특징에서 ‘행성들의 리듬’ 에 관한 보다 많은 것을 배운다. 지저귀는 새들과 찍찍거리는 곤충들은 그들이 사랑을 구할 때 자연의 리듬을 노래한다. 그들은 자신 속에 고유한 조화를 표현하고 있다. 인간의 음악은 그것과 비교될 수 없다. 인간 타락의 부조화 상태는 불협화음을 내도록 운명 지어져 있다. 그러한 인간이 실로 자연처럼 조화로울 수 있기만 하다면, 최상의 피조물로서 인간은 지고무상의 아름다움을 나타내야 한다. 
 
사람들은 노래하고 춤추며 아름다운 예술을 창조하지만, 그 이상으로 우리는 서로 관계 속에서 사랑을 나누면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서로 사랑하는 한 쌍의 남녀, 연로한 부모를 돌보는 효성스런 자녀, 자기 나라의 복지를 위해 희생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는 충직한 시민에게 내면의 아름다움이 있다. 
 
사람들이 이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는 아름다움은 또한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이며,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충만한 아름다움을 보고 즐거워한다. 이러한 내적 아름다움은 영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영계에서의 아름다움은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춘 자들에게만 충만하게 드러난다.
  
1. 자연미

 종교 경전  
 
어찌하여 너희는 옷 걱정을 하느냐? 들의 백합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하나만큼 차려 입지 못한다. 마태복음 6.28-29 (기독교)
 
하나님은 아름다움 자체이며 아름다움을 사랑하도다. 무슬림 하디스 (이슬람)
 
하나님은 너희를 위해 대지를 휴식처로 만드셨고 하늘을 만드시어 너희에게 모습을 주셨으면 그 모습을 가장 좋은 것으로 베풀어주신 분이라. 바로 그분이 너희의 주님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그분이 너희의 주님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모든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에게 영광 있으리라.
꾸란 40.64 (이슬람)
 
영원한 천칙을 부여받은 여신은 수호자라는 이름으로 알려진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의해 이 나무들이 푸르며, 그들의 푸른 화환들도 그녀의 덕분이다.아타르바 베다 10.8.31 (힌두교)
 
그 자신은 아무런 색도 없는 일자는 자신의 창조력의 다양한 적용을 통하여 자신의 감추어진 목적 속에 온갖 색깔을 퍼뜨렸으며, 그 속으로 그것의 끝과 그것의 시작과 온 세계가 해체된다. 그는 신이다! 스베타스바타라 우파니샤드 4.1 (힌두교)
 
내 앞의 아름다운 광경이여.
내 뒤의 아름다운 광경이여.
내 아래의 아름다운 광경이여.
내 위의 아름다운 광경이여.
나를 그 속에서 걷게 해 주오. 나바호족의 노래 (미주 원주민 종교)
 
하나님께서는 일곱 층의 하늘을 조화롭게 창조하셨느니라. 꾸란 71.15 (이슬람)
 
그가스며든 우주의 공(空)에서,
막힘없이 영묘한 가락을 뜯어내나니,
표현할 길 없는 장려함이로구나.
아디 그란트, 가우리 수크마니 23.1, M.5, p.293 (시크교)
 
음악의 기원은 아득한 옛날에 있다. 그것은 두 개의 극(極)으로부터 생겨났다. 두 극은 어두움과 밝음의 힘을 낳았다. 어둠과 밝음의 힘은 변화를 겪는다. 하나는 높은 곳으로 오르고, 다른 하나는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다. 상하로 동요하고, 전후로 동요하면서 그들은 합체되어 형체를 갖춘다. 그들이 분리되면 그들 스스로 다시 통합시킨다. 그들이 통합되면 그들 스스로 다시 분리시킨다. 그것이 영원한 천도이다. 천지는 하나의 순환 속에 운행한다. 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으로 연결된다. 모든 극은 되돌아옴으로 이어진다.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대등하게 된다. 해, 달, 별들은 부분적으로 빨리 움직이고 부분적으로 천천히 움직인다. 해와 달은 그들의 길을 완성할 필요가 있을 때 합치하지 않는다.
사계절은 더위와 추위, 짧음과 긺, 부드러움과 딱딱함을 드러내면서 서로 이어진다. 만물이 생겨는 것, 그리고 만물이 그들의 기원을 가지고 있는 것은 ‘태극’이다. 그들은 어두움과 밝음의 이원성에 의해 그들 자신을 형성하고 완전하게 한다··· 소리는 조화로부터 생겨난다. 조화는 관계성에서 생겨난다. 조화와 관계성은 고대 제왕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이 생겨난 근원이다. 예기 19 (유교)
 
말씀 선집  

박물관에 있는 무슨 작품이 아무리 귀중하다고 해도 살아 있는 작품에 당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작품인 이 지구성 만물 박물관을 누가 하나님 이상 사랑했느냐 이것입니다. 자기 나라의 박물관 이상 사랑했느냐는 것입니다.(175.187, 1988.04.16)
 
곤충세계를 보게 되면, 곤충세계에서도 오케스트라가 벌어집니다. 매미소리로부터 한번 들어보기 바랍니다. ‘맴맴’ 하게 되면 전부 다 그 박자에 맞추어서 노래합니다. 현재의 유명한 오케스트라가 문제가 아닙니다. (285.243, 1997.06.05)
우리가 삼라만상, 자연계를 바라볼 때, 사계절을 따라 변하는 자연현상과 때에 따라 모든 만물이 화동하여 미를 나타내는 것을 바라볼 때 우리는 무의미한 심정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나는 새를 본다거나 나비나 벌을 볼 때, 흐르는 물이나 솟아 있는 산봉우리를 볼 때도 이 모두가 창조하신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이 반영된 모습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많은 예술가가 있고 많은 문학가가 있지만 모든 예술가와 문학가들은 한결같이 많은 형용사를 모든 예술가와 문학가들은 한결같이 많은 형용사를 동원하여 피조세계, 즉 만물의 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자연은 예술이나 문학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피조세계, 즉 자연을 빼놓게 되면 우리들이 즐길 수 있는 상대적 조건이 말할 수 없이 감소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없어서는 안 될 자연이요, 느끼지 않으면 안 될 자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343, 1959.03.08)
 
혼자 외로워 죽겠는데. 외로워 죽기는 왜 외로워 죽습니까. 그럴 때는 정원에 나가서 꽃을 바라보고 향기를 맡으면서 ‘이놈의 향기, 너 어디서 왔지?’ 하고 향기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디서 오긴 어디에서 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향기에서 왔지’ 이렇게 찾아보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이러한 정원을 꾸며 준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살아 있는 박물관입니다. 산 생명을 가진 박물관을 나에게 부여한 것이 정원이라는 것입니다. 피카소의 그림 한 폭이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살아 있는 풀 한포기를 못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박물관 구경한다’ 고 생각해 봤습니까? 버들강아지를 들고서 ‘아이구, 좋아라. 요건 누굴 위해서 만들었지?’ 그런 생각 해봤습니까? 아, 쌀쌀한 봄날, 그 강가 얼음 아래에서 눈 녹은 물이 흘러가는데 버들강아지는 꽃이 핍니다. 그게 얼마나 멋지냐는 것입니다. 과연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피느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딸이 목이 말라 얼음물이 먹고 싶을 때, 주먹으로 얼음을 깨고 그 물을 먹고 나서 버들강아지를 볼 때 이렇게 노래할 수 있는 하나의 상징체로 이런 버들강아지를 만들거나 하면 그거 얼마나 멋집니까!
그러니 생활이 얼마나 윤택하냐는 것입니다. 사랑의 박물관을 우리가 관람하고, 그 모든 박물관과 말할 수 있고, 친구로 삼을 수 있는 이런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사랑의 세계와 인연을 맺기 위해서 지상세계에 태어났다는 것을 생각할 때 왜 외롭습니까?  
(112.220, 1981.04.12)
 
창조의 아버님이시여! 당신의 아름다움이 온 만물만상에 나타났사옵고, 당신의 손길이 거쳐 간 형상 위에는 오묘하심과 현현하심의 미가 충만하나이다. 인간에 대한 창조목적인 미를 오늘도 쉬지 않고 찾으시려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을 저희가 몸 마음으로 체휼할 수 있고, 당신의 사랑 앞에 아름다움으로 대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1.102, 1956.06.10)
2. 인간미
종교 경전   
꽃향기는 바람을 거스리지 못한다. 전단향도 타가라향도 쟈스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덕이 있는 사람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사방에 퍼진다.법구경 54 (불교)
 
공자가 말하였다. “마을이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 어짐이다.” 논어 4.1 (유교)
 
마을이나 숲이날 골짜기나 평지나 수행자들이 거하는 곳이라면 어디나 그곳은 즐겁다.
법구경 98 (불교)
 
영적 힘을 위해, 신의 맥박에 의해 정화됨으로써 우리는 아름다운 모든 것들을 생각한다.
리그 베다 5.82.6 (힌두교)
여호와를 생각하면 나의 마음은 기쁘다. 나의 하나님 생각만 하면 가슴이 뛴다. 그는 구원의 빛나는 옷을 나에게 입혀주셨고 정의가 펄럭이는 겉옷을 둘러주셨다. 신랑처럼 빛나는 관을 씌워주셨고 신부처럼 패물을 달아주셨다.이사야 61.10 (기독교)
여러분은 머리를 치장하거나, 금붙이를 달거나, 옷을 차려 입거나 하는 겉치장을 하지 말고 썩지 않는 온유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속사람을 단장하도록 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3-4 (기독교)
말씀 선집   
도의 세계에서 느낌은 이렇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으면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느냐? 빛과 같이 보입니다. 그러기에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존재가 그러한 빛을 발하게 되면 잘나지 않은 사람, 즉 못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33.88, 1970.08.09)
본연의 미는 어떠한 미이겠습니까? 그것은 웃음과 노래와 춤으로 나타낼 수 있는 미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는 영원한 가치로서 미인 것입니다. 본연의 에덴동산이 바로 이런 미의 세계였습니다. (2.245, 1957.06.09)
사랑의 안경을 끼고 있으면 전부 다 좋지 않은 것이 없고, 나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못 생겨도 맛있다는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도 그렇습니다. 잘 생기고 고운 것은 그 안이 나쁩니다. 그러나 못 생긴 것은 그 안이 좋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상대적으로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인 하게 되면 박복하고 잘 변하지만, 호박처럼 못생겼으면 내적으로 모든 것이 아름답습니다. 양심도 아름답고, 보기에도 아름답고, 요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여자가 세상을 지배하더라도 여자의 완성은 사랑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귀중한 진리입니다.(162.47, 1987.03.22)
 
아무리 호수가 좋더라도 구정물로 싸여 있으면 재미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정물 가운데서 푸른빛을 띤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입니다. 꽃이 피었기 때문에 연못에 사는 것입니다. 꽃 한 송이로 말미암아 추한 것이 될 수 있는 연못이 아름답게 됩니다. 사람들도 악한 사람 가운데 사랑이 남아져 있으면 아름다움이 드러나게 됩니다.(354.21, 2001.09.16)
 
아무리 여자가 아름답더라도 그 아름다운 것만 돼 있고 목적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통 안에 들어가 있는 아름다운 인형이 좋습니까? ‘녀, 그런 미인이 돼서 하루 종일 앉아 봐라’ 하면 ‘아이코!’ 하며 여자들은 다 도망갈 것입니다. 그렇게 앉아 있는 것이 아름다움에 있어서 이상합니까, 나돌아 다니는 게 이상합니까?
여자의 아름다움의 꿈이 남자한테 가서 그친다면 그게 기분 좋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꿈 자체가 남자가 아니라 남자 가운데 또 하나의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그것이 사랑입니다. 아름다움의 꿈이 정착해서 좋아할 수 있는 종착점이 뭐냐 하면 사랑입니다. (116.10-11, 1981.12.01)
 
진정한 사랑의 마음으로 보면, 화장을 곱게 해서 아름답게 꾸민 것과 그저 고생하며 수고하는 여인에서 어느 것이 더 아름답습니까? 빨래를 하고 마루를 닦고 애기들을 위해 치다꺼리를 하는 거기에 이상경이 있다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129.176, 1983.10.30)
 
저 나라에는 봉사도 없습니다. 얼마나 서로 위는 삶을 살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이 저 나라의 인격의 미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완성을 이루기 때문에 아름다움 중에 최고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입니다. 둥글고 예쁜 형태는 있지만 말입니다.(307.166, 1998.11.08)
 
저 나라의 중요 화제가 무엇이겠습니까? 조화입니다. 균형과 통일입니다. 무엇을 중심 삼을까요? ‘아이고, 나는 얼굴이 예쁘니까 나를 중심삼고 조화를 이루어 돼!’ 그렇게 말합니까? 저 나라에서는 아무리 아름다운 것을 자랑할지라도 모두가 ‘내가 너보다 더 아름다워!’ 한다는 것입니다. 주위가 다 아름다움을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주위를 볼 줄 알아야 됩니다. 그곳은 입체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217.143, 1991.05.19)
 

자연의 신성함
 
자연은 참으로 신성하다. 크고 작은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생명을 부여 받고 하나님의영을 분유 받았다. 모든 종교 전통이 공유하는 이런 통찰은 온갖 생물에 대한 존중과 공경의 초석이 된다. 아브라함의 종교 전통에 의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에 따라서 각각의 피조물을 창조했으며 사랑으로 충만한 자신의 심정을 부어 넣었다. 그러므로 모래알 하나, 풀잎 하나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는 신성의 요소들을 지닌다.  더욱이 자연은 놀라운 균형을 드러낸다. 따라서 자연은 시적 종교적 영감의 신뢰할만한 원천이다. 자연의 본래적인 순수를 묵상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과 맛 닿을 수 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모든 피조물이 일종의 의식적인 앎의 차원을 지닌다는 것을 감지한다. 다양한 종류의 동식물은 인간의 종족과 세계처럼 종과 유를 이룬다. 그들은 우리의 몸을 구성하고 삶을 지탱하는 요소를 우리에게 빌려준, 바로 그 어머니 대지에 의해 양육되는 형제자매들이다. 자연이 제공해 주는 모든 곳을 고려하면, 우리는 자연에 대해 크게 감사해야 한다. 문선명 선생의 가르침처럼 각 피조물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걸작품으로서 우리를 위해, 즉 우리의 기쁨과 영감과 배움을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 


1. 자연계에 내재한 신성
 
종교경전

하나의 나뭇잎도 혹은 여린 풀잎조차도 경외로운 신이 그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우라베노 기네쿠니(신도)
 
이 세상과 그 안에 가득한 것이 모두 여호와의 것, 이 땅과 그 위에 사는 것이 모두 여호와의 것이다 시편 24.1(기독교)
 
세상은 정원,
주는 이를 가꾸는정원사,
모두를 소중히 여기며,
하나같이 소홀함이 없도다. 
아디 그란트, 마즈 아슈트파디 1,M.3, p.118(시크교)
 
나의 활력은 땅 속으로 들어가
그 모든 생명들을 유지한다.
나는 물과 수액을 주는 자.
달이 되어 나무와 풀들을 키운다. 
바가바드기타 15.13(힌두교)
 
짙은 하늘
구름 낀 하늘
좋은 하늘
곧은 하늘
 
대지가 초목을 낳는다.
초목이 우리를 살게 한다.
우리를 장수하게,
복되게 한다.
 
선한 생명이여,
대기중에 유포되어라.
늘어나거라.
끝까지 바르거라.
 
달콤한 주술의 대지는 착하다.
달콤한 주술의 대지는 온전하다.
달콤한 주술의 대지는 영원의 길을 간다.
달콤한 주술의 대지는 씻겨지고 물이 흐른다.
샤이엔족의 노래(미주 원주민 종교)
 
계곡마다 샘물을 터뜨리시어 산과 산 사이로 흐르계 하시니 들짐승들이 모두 마시고 목마른 나귀들도 목을 축입니다. 하늘의 새들이 그 가까운 곳에 깃들이고 나뭇가지 사이에서 지저귑니다. 높은 궁궐에서 산 위에 물을 쑫으시니 온 땅이 손수내신 열매로 한껏 배부릅니다.
짐승들이 먹을 풀을 기르시고 사람이 농사지어 땅에서 양식을 얻도록 곡식을 또한 가꾸셨슶니다.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포도주도 내시고 얼굴에 윤기 내는 기름도 내시고 힘을 돋우어주는 양식도 내셨습니다.
여호와의 나무들은 배부르게 마시니, 손수 심으신 레바논의 송백은 새들이 거기에 깃들이고 그 꼭대기엔 황새가 집을 짓사옵니다. 높은 산은 산양들의 차지, 바위틈은 오소리의 피신처. 때를 가늠하도록 달만드시고 해에게는 그 질 곳을 일러 주셨습니다.
어둠을 드리우시니 그것이 밤, 숲 속의 온갖 짐승들이 움직이는 때, 사자들은 하나님께 먹이를 달라고 소리 지르며 사냥을 하다가도 해가 돋으면 스스로 물러가 제자리로 돌아가 잠자리 찾고 사람은 일하러 나와서 저물도록 수고합니다.
여호와여, 손수 만드신 것이 참으로 많사오나 어느 것 하나 오묘하지 않은 것이 없고 땅은 온통 당신 것으로 풍요합니다. 시편나 0옴묘하0-24(기독교)
 
개울은 오솔길을 가로지르고,
오솔길은 개울을 가로지른다.
그들 중 무엇이 먼저인가?
우리는 이 개울을 만나고 걷기 위해
그 오솔길을 끊지는 않았는가?
개울은 그 기원이 아주 오래되었다.
그는 모든 것을 순수하게 타노로 창조하였다.
아산티족의 시(아프리카 전통종교)
 
말씀선집

들에 자라고 있는 미미한 풀 한 포기라도, 거기에 하나님의 손길이 거치지 않은 것이 없음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자라고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보더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무한한 내적 심정의 인연을 통한 사정이 거쳐나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다시 한 번 상기해 보아야 되겠습니다.(6.338, 1959.06.28)
 
만물 모두가 그렇게 인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인연이란 것은 지극히 작은 데서부터 맺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체도 수십조(4백조) 개나 되는 세포로 인연되어 있는 생명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한 창조이념체계, 즉 대우주의 모든 존재물은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의 샘정 밖에서 생겨난 것이 없습니다. 이런 것을 느끼는 시인은 위대한 시인일 것입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천주적인 심정을 느껴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시인이 있다면 그는 우주적인 시인일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것에 대해 너무나 무시하고 무관심 했습니다. 우리 주위에 우리도 모르게 벌어져 있는 천하 만상이 하나님의 사랑과 더불어 존재하는 것이란 사실을 몰랐습니다. 신령한 경지에 들어가 보면 조그만 모래 한 알에도 우주의 이치가 들어 있고, 하나의 원자에도 무궁무진한 우주의 조화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잘 알 수는 없지만 어떤 복합적인 힘을 통하여 나타난 결과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분자를 지나 원자, 원자를 지나 소립자... 이런 것들이 무의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의식과 목적을 갖추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거쳐 나온 것이요, 반드시 하나님과 심정적인 관계를 맺고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철두철미하게 알아야 되겠습니다.
 
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풀 한 포기를 붙들고도 ‘하나님!’ 할 수 있는 심정으로 자기의 가치와 동등하게 그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최고의 도인일 것입니다. 그렇게 그 가치를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최고의 예술가일 것입니다. 각양각색으로 존재하는 천지만상을 보고 하나님의 각양각색의 사랑과 심정의 묘미를 발견하고, 그것들과 친구가 되어서 더불어 즐길 수 있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는 우주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만물의 영장입니다.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지으실 때 거기에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지어 놓고는 보기에 선한지라 하셨습니다. 기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쁨이 무엇입니까? 어떤 목적을 이루었을 때 느끼는 것입니다. 만물에 하나님의 목적의식이 내재되어 있기에 창조된 만물을 놓고 하나님은 기쁨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러면 복귀의 세계은 어떠한 세계입니까? 한마디로 말한다면 삼라만상의 개체개체를 보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심정적인 인연을 입체적으로 갖춘 사람들이 사는 세계입니다. 하늘이 보시는 인격의 가치는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성 프란체스코 같은 양반이 동물을 보고 혹은 새를 보고 설교했다는 말도 거짓말이 아닙니다. 꿈같은 이야기입니다만 꿈이 아니고 사실입니다. (9.168-169, 1960.05.08)
 
절대자가 있다면 그 절대자가 천지만물을 창조할 때 슬픈 마음으로 창조했겠느냐? 아닙니다. 기쁜 마음으로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창조되어 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절대자인신 하나님은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기뻐했을 것이냐? 얼마나 좋아했을 것이냐? 그리고 얼마만한 가치로서 모든 것을 만들었겠느냐? 하나님이 용인하신 그런 가치의 내용을 지금까지 인간들은 몰랐습니다.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까지 인간들은 하나님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그 가치를 규명하고, 그 가치의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진정한 기쁨으로 지었다면, 그 인간을 대해서 얼마만한 가치의 내용을 부여했으며 얼마만한 기쁨의 대상으로 지었겠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27.223, 1969.12.14)
 
우리 인간은 자연을 사랑합니다. 자연을 좋아합니다. 인간보다 자연을 더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자연은 순수합니다. 본연의 상태를 그냥 그대로 소지하고 있습니다. 좋은 문화주택에 살고 좋은 문화생활을 하면서도 ‘아, 산에 가고 싶다. 바닷가에 가고 싶다’ 하는데, 왜 가고싶어 합니까? 그런 데가 본연의 상태를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107.311-312, 1980.06.08)
 
인류의 문화는 자연을 벗어나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자연을 떠난 인류문화는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제 아무리 당당하게 그 위세를 자랑하고 권세를 누린다 해도 자연을 무시한다면 그 모든 것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생활을 가치있게 해 주는 것이 자연입니다. 우리의 생애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자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 만상에 흐르고 있는 심정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참다운 행복을 누릴 수 없고 하늘과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영광의 자리에 나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의 풀을 바라보더라도 하나님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되겠고, 꽃을 바라보더라도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입장, 하나님의 심정과 통할 수 있는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되겠습니다. 곤충이나 새, 혹은 어떤 동물을 발보게 될 때에도 하나님의 심정과 인연 맺어지는 그런 내적인 감정을 체득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6.340, 1959.06.28)
 
아버님! 만유의 주인 되시는 당신앞에 온 천지만물은 영원무궁토록 찬송을 돌려 드리기를 원하옵니다.
어느 하나 당신의 인연가운데서 벗어나서 지음받은 존재가 없기에 아버지로 말미암아 아버지지의 심정을 통하여 빚어진 온 천지만물은 아버지의 영광을 높이고, 아버지의 거룩함과 심오함을 드러내어, 아버지의 무한한 가치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20.243, 1968.07.07)

2. 의식적 삶은 목적이 부여된 것
 
종교경전

땅 위를 기는 동물도, 날개로 나는 새들도 너희와 마차나가지로 공동체의 일부이니라. 
꾸란 6.38(이슬람)
 
내가 말한다. “비유하여 마치 어떤 감각기관을 구유하지 못한 채 태어난 사람(즉 생래적인 소경, 귀머거리, 벙어리, 앉은뱅이, 등과 같은 불구자들)의 의식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 그들이 칼에 찔리거나 폭행을 당할 때 아무런 고통이나 아픔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흙으로 이루어진 존재들(즉 광물질이나 원자), 물로 이루어진 존재들,... 불로 이루어진 존재들도 그들의 의식이나 고통을 느끼는 것이 다만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을 뿐이며, 그렇다고 하여 아픔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차랑가 수트라 1.28-17(자이나교)
 
그들이 입을 다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 누가복음 19.40(기독교)
 
우리 부족에게는 이 땅의 모든 부분이 신성하다. 모든 언덕, 모든 계곡, 모든 평원과 숲이 아득히 사라져 간 날들의 슬프거나 기뻤던 사건으로 신성하게 되었다. 
고요한 해안을 따라 태양 아래 지쳐 죽은 듯이 입다물고 있는 바위조차도 우리 부족의 삶과 연결된 가슴 찡한 사건들에 대한 기억으로 몸을 떨고 있다. 지금 그대가  서 있는 이 흙도 그대들보다 우리 부족의 발걸음에 더욱 다정하게 반응한다. 이 흙은 우리 조상의 피로 기름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애틀 추장(미주 원주민 종교)
 
피조물의 선함을 설명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선하심을 말하는 것이다...그러나 어떤 이교도들은 많은 피조물이 인간에 적합하지 않으며, 심지어 가난하고 약한 이들에게는 해를 끼친다... 물론 이것은 죄에 대한 형벌일 뿐이다---는 근거로 이에 의심을 품는다. 그들은 불과 추위, 야생동물 같은 것들을 예로 든다. 그러나 이는 그들이 그 자체로 또는 바른 곳에 쓰였을 때 얼마나 위대한지. 우주적인 미의 공화국에 얼마나 기여를 하는지, 우주 전체 모습에 얼마나 아름답게 들어맞는지를 생각해 보지 않아서이다. 또 인간이 현명하게 사용했을 때 그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독’을 생각해 보자. 독은 잘못 사용하면 치명적이지만 적절하게 사용하면 약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 신의 도성 11.22(기독교)
 
말씀선집

인간 자체가 자연입니다. 완전한 자연은 성스러운 것입니다. (90.24, 1976.12.10)
 
꽃도 수술이 키스해 줄 때 암술은 ‘아 좋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감각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 느낌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수컷 암컷의 감각은 최고의 감각인데, 그 감각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오관적 감각의 연결체로 말미암아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적입니다....
오관적 감각으로 사랑을 한다는 것은 남자 여자가 대등한 자리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급은 낮지만 공통분모로 평준화되어 그 세계에 있어서 통일적 내용을 갖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 또는 수컷과 암컷으로 된 것은 하나님의 모든 공통분모를 공개적으로 분배받은 것이 틀림없다 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217.306, 1991.06.12)
 
물질로 형성된 인간의 생리적 기능이 마음의 정. 지. 의에 완전히 공명되는 것은 물질도 역시 정. 지. 의에 공명될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물질의 성상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삼라만상은 각각 그 정도의 차는 있으나 모두 정. 지. 의의 감응체인 것이다. 우리가 자연계의 아름다움에도 취하여 그와 혼연일체의 신비경을 체험하게 되는 것은, 인간은 피조물의 이러한 성상의 중심도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리강론, 창조원리 2.3.4)
 
하나님께서도 자신을 자랑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멀리 역사 전 시대로 돌아가서, 창조의 세계를 흠모하시던 창조주께서 6일간 창조하신 창조물을 바라보고 기뻐하시던 그 시대를 회상해 보게 될 때, 하나님께서도 지어신 모든 만물을 통하여서 자신을 자랑하고 싶으신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지음 받은 어떠한 존재를 두고 보더라도 그러한 사연이 엉키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라보는 이 피조세계, 혹은 이 자연에는 각양각색의 피조물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존재하는 만상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창조되었느냐? 그것은 창조주의 정성어린 심정의 과정을 통하여 지어졌던 것입니다. 아무리 미미한 존재라도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자랑의 마음을 지닌, 그런 자리에서 지음 받은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작게는 지극히 미미한 존재로부터 크게는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광대한 우주에까지, 존재하는 모든 만물들은 하나님께서 자랑하고 싶어셨던 자랑의 존재로 지어졌음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20.248, 1968.07.07)
 
3. 어머니 대지와 그 자녀
 
종교 경전

하나님께서 “땅에서 푸른 움이 돋아나라! 땅 위에 낟알을 내는 풀과 씨 있는 온갖 과일나무가 돋아나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이리하여 땅에는 푸른 움이 돋아났다. 낟알을 내는 온갖 풀과 씨 있는 온갖 과일나무가 돋아났다. 하나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창세기 1.11-12(기독교)
 
아마 우리가 운 좋다면,
우리의 어머니 대지는 서리꽃으로 가득 찬
흰 가루의 네 겹옷으로 자신을 감쌀 것이며,
얼음 바닥이 세상을 덮어버릴 것이며,
추위로 수목이 한 쪽으로 기울 것이며,
그 팔들이 눈의 무게로 아래로 늘어질 것이다.
그래서 그 때가 되면 우리의 어머니
대지의 살갗이 추위로 틀 것이다.
그 다음에 생수로 대지가 충만된 봄에,
우리의 어머니들 모든 종류의 옥수수들을
그들의 어머니 대지에 쉬도록 눕혀 놓을 것이다.
어머니 대지의 생수로 인해
그들은 새로운 존재가 될 것이다.
아버지 태양의 빛으로 인해
그들은 일어설 것이다.
사방을 가리키며
그들은 손을 뻗쳐 비를 부를 것이다.
그때 신선한 물을 데리고
비의 신이 우리의 길을 지날 것이다.
그들의 팔에 어린 것들(옷수수의 열매)을 끌어안고, 
그들은 그들의 아이들을 기를 것이다.
그것을 우리 집에 그러모아,
우리의 생각이 기울어지는 사람들을 따라
그들을 따르는 우리의 생각과 더불어
그때 우리는 항상 살 것이다.
주니족의 노래(미주 원주민 종교)
 
오, 대지여, 나를 그대의 중심, 그대의 배꼽과
그대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활력 가운데 두시라.
모든 방면에서 우리를 정화하시라.
대지는 나의 어머니요, 나는 그의 아들이며,
하늘은 나의 아버지입니다.
그가 우리를 가득 채워 주시기를...
내가 그대, 대지에 심는 모든 것들이
금방 자라게 하시라.
오, 정화하는 이여, 우리가 그대의 활력이나 그대의
가슴에 상하게 하지 않기를...
말이 먼지를 흩날리듯이 대지도 그와 같습니다.
그녀가 태어난 이래로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이 흩뿌려졌으며
그녀는 기꺼이 세계의 수호자, 숲의 나무와 풀들을
지탱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내(대지)가 말하는 것, 나는 그것을 달콤하게 말하며, 내가 바라보는 것,
그것은 나에게 사랑스럽다.
나는 불같이 사납고 격렬하나니.
분노로써 나에게 날아오는 다른 이들을
나는 세차게 쳐부수어 쓰러트린다.
평화롭고, 향긋한 냄새가 나며,
은혜롭고 우유로 가득 찬,
그리고 그 가슴속에 감로를 간직하고 있는,
대지는 우유로써 축복을 나에게 내려주소서.
그대는 그릇, 사람들의 어머니
무한한 소망을 이루어주는 분이십니다.
그대 가슴에 일어나는 모든 바람은
영원한 법칙의 첫 자손(첫 신)인 프라자파티로 채워집니다.
그대로부터 태어난 것들이
오, 대지여, 우리의 편안한 삶을 위하여
병도 없고 쭉정이도 없게 하소서.
세세생생 방심하지 않으며
우리는 그대를 위한 공물을 가꾸는 자가 되리라.
대지여, 나의 어머니시여!
나에게 틀림없이 천계에 적합한 축복을 내려주소서.
지혜로운 이시여, 은총과 번영안에 나를 들어올리소서.
아타르바 베다 12.1(힌두교)
 
고귀하시며 전능하신 주님, 모든 찬양과 영광, 명예와 축복이 당신 것이옵니다. 오직 당신에게만 속하옵니다. 어느 누구도 감히 당신의 이름을 부를 자 없사옵니다.
찬양 받으소서, 나의 주님. 당신이 만드신 온 피조물과 함께, 태양으로 당신은 우리를 밝히시나이다. 이 얼마나 당당하고 밝으며 화려하가! 고귀하신 당신을 닮아 태어난 고로 그러하옵니다.
찬양 받으소서, 나의 주님. 달과 별 자매를 주신 분이여. 하늘에 지으신 달과 별이 밝게 비추며, 소중하고 아름답게 떠 있으니. 
찬양 받으소서, 나의 주님. 바람 형제를 주신 부이여. 대기와 구름과 맑은 날, 다양한 날씨를 주신 분이여. 이들로 인해 온 피조물에 영양을 주셨나이다.
찬양 받으소서, 나의 주님. 물 자매를 주신 분이여. 물은 어디에나 쓰임있고 겸허하고 소중하며 순결하구나.
찬양 받으소서, 나의 주님. 불 형제를 주신 분이여. 불로 인해 밤을 밝혀 주시나이다. 이 얼마나 당차고 유쾌하고 힘 있고 강한가!
찬양 받으소서, 나의 주님. 자매이자 어머니와 같은 땅을 주신 분이여. 이 땅이 우리를 풍요롭게 해주고 다스리며, 색색가지 꽃이 피는 열매를 주옵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태양의 찬가(기독교)
 
말씀선집

우주가 인간을 형성해 주었습니다. 우주의 원소를 빌려 가지고 내가 형성됐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우주가 나를 낳아 주었고 만들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부모가 있다면 우주가 첫째 부모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고 하는 존재는 모든 우주의 원소를 종합한 실체입니다. (105.106, 1979.9.30)
 
어머니 아버지는 여러분을 세상에 낳아준 두 번째 부모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영을 준 세 번째 부모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3대 부모를 가졌습니다. (106.84, 1979.12.09)
 
하나님이 만든 자연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찾아옵니다. ‘이래서 이렇게 됐다’하는 것을 전부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자연이 그렇게 귀한 것입니다. (278.120, 1996.05.01)
 
진정한 종교적인 심정이 우러나는 그 순간에는 만물을 바라보고 머리 숙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을 보거나, 자연을 보거나, 천체의 무수한 성운을 바라보게 될 때 신비스럽고 숭고한 감정이 마음에서부터 우러나게 됩니다. 이런 감정으로부터 종교가 출발된 것입니다.
나를 넘어 자연의 현상을 바라보고 높이 평가할 줄 알고, 움직이는 자연의 모든 것을 바라보고 내 심정세계의 고귀한 것을 대신하여 노래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움직이는 모든 것을 자연적인 음악과 같이, 자연적인 예술과 같이, 자연적인 문학과 같이 느낄 수 있는 심정이 내 마음에서 우러나게 될 때 비로소 천체를 지배하고 있는 하나님과 내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자신이 모든 것과 관계되어 있다는 심정이 강해져야만 사물을 대할 때 다시 감정할 수 있는 심적 기준이 잡혀집니다. 이것은 우리가 신령한 경지에 들어가면 그대로 느끼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만물은 이러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만 우주는 이러한 인연으로 엉클어져 있는데 다시 인간과 관계 맺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느끼며 자연을 바라볼 때 여러분은 비로소 인간의 존엄성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5.344-345, 1959.03.08)
 
하나님이 내 아버지인 것을 알았고, 하나님은 나를 위해서 이 우주를 지어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무엇이라 하든지 내가 하나님에게 ‘이 우주는 누구를 위해 지었소?’하고 물어볼 때, ‘레버런 문 너를 위해 지었다’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내 하나님이요, 우주도 내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 뿐이 아닙니다.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봄이 되면 꽃이 피고, 향기가 나고, 아름다운 꽃동산이 찾아듭니다. 나비가 날고, 벌이 날게 됩니다. 그것은 우주의 모든 것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아님의 고귀함과 천사세계가 화동하는 것을 나에게 전부 다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조그만 새가 짹짹거리는 것도 나를 보고 그렇게 하고, 배가 고프거나 친구를 찾기 원하니 내가 불러 주면 좋겠다고 하고, 전부 이렇게 인연되는 것입니다.
 
나비가 쌍쌍이 날게 되면 나비보다도 더 아름답게 인간은 살아야 되고, 새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면 새들보다도 더 아름답게 살아야 되고, 모든 동물들이 사는 것보다 더 이상적으로 살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봄이 오거들랑 ‘참새야, 너 금년 봄을 맞이하여 짹짹거리고 좋아하지만, 내년 봄에는 내가 너보다 더 즐거워할 것이다’라고 해야 됩니다.
 
내가 노래하고 내가 모든 향취를 풍기는 것은 누구 때문입니까? 하나님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따라와서 비교해 보고 자극을 받고 즐길 수 있도록, 내가 동물이나 만물을 통해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느낄 수 있도록 자극을 드릴 것입니다. 내가 비록 입을 것이 없고 나그네 신세가 되었더라도 뜰에 척 누워 있으면 ‘하늘이 내 이불이요, 옆에 흐르는 물이 내 수도요, 동산에 피고 있는 만물이 내 음식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물줄기를 보게 되면 그 물줄기는 지극히 적지만 ‘너는 이 대해의 조상과 인연을 가진 그런 위대한 물이구나!’라고 찬양합니다. 조그만 풀 한 포기를 보더라도, 인간들은 요즘 무슨 유명 화가가 있어서 그가 그린 그림을 박물관에 보관하고 세계에 자랑하고 몇 십만 불이니 몇 백만 불이니 야단하는데, ‘그것은 인간이 그런 그림밖에 안 된다.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생화면 생화, 그 꽃 한 포기가 거기에 비할 것이냐’ 하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어느 나라 박물관의 그 무엇보다도 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새 한 마리를 잡더라도 입을 맞춘 다음에 ‘너는 누구보다도 귀하구나!’라고 합니다. 여러분들, 습한 곳에 가서 들춰보면 보이지 않는 벌레도 쌍쌍이 전부 기어 다니고 자기들끼리 속닥이며 다 통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과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나를 위해 지어준 하나님 동산의 산 박물관입니다. 만물은 주인이 사람,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기 때문에 전부 그 주인에게 관심을 갖고 따라다니려고 합니다.(106.137, 1979.12.23)


창조성과 예술
 
예술가, 과학자, 발명가들은 하나님의 창조성을 닮았다. 우주는 하나님의 마음 속 관념에서부터 출발하여 창조되었으며, 그 관념을 실재 우주로 창조하기 위해 에너지가 투입되었다. 마찬가지로 예술가와 과학자는 그의 마음속에 있는 이미지와 생각을 작품으로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온 노력과 정성을 쏟아 붇는다.
 
이 절은 예술에 초점을 맞추며, 따라서 경전과 함께 자신의 예술이 지니는 의미를 성찰하는 유명한 예술가들의 언급들 중에서 선별된 몇몇 구절들을 포함한다. 그러나 창조성은 이런 탁월한 인물들의 독점적인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는 스포츠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하여 경기하는 운동선수에게서, 자신의 물품들을 매매하는 보다 훌륭한 방법을 찾는 상인에게서,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들에게서도 창조성을 발견한다. 
 
발레단과 예술학교를 설립하였으며, 또한 아내와 함께 듀엣으로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문선명 선생은 예술이 하나님을 중심삼은 문화를 창조하는 데 기여할 중요한 역할을 이해하고 있다. 상대물과 조화를 이룬 예술, 예술의 정서적인 힘과 그 정수, 시적 영감, 예술의 영성, 예술과 가치의 문제 등의 주제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1. 예술과 영성

 종교 경전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방탕이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며, 여러분의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찬송하십시오. 에베소서 5.18-19 (기독교)
 
인생은 예술이다.
인간의 모든 삶은 자기표현이다.
개개인은 신의 현시체이다.
자신을 나타낼 수 없으면 고통스러운 것이다. 
처세훈 1-4 (피엘교단)
 
유려한 말 속에 마력이 있으며, 지식 속에 무지가 있음이라. 시 속에 지혜가, 말 속에 지루함이 있도다. 아부 다우드 하디스 (이슬람)
 
하나님께서 보내신 악령이 사울에게 내릴 때마다 다윗을 수금을 뜯었다. 그러면 악령이 떠나고 사울은 회복되어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사무엘상 16.23 (기독교)
 
말씀 선집  

인간은 자신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여서만 완성되도록 하신 것은, 인간이 하나님도 간섭할 수 없는 그의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창조성까지도 닮게 하여 하나님의 창조의 위업에 가담께 하심으로써,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을 주관하시듯이 인간도 창조주의 입장에서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원리강론, 창조원리 5.2.2)
 
문화는 말로 이루어져야 됩니다. 말씀을 통한 문화입니다. 전부 다 말이 글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미술이든가 예술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예술은 뭐냐? 보이지 않는 말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원리와 말씀을 통해서 격이 나오는 것입니다. 실체가 나오는 것입니다. (107.317, 1980.06.08)
 
하나님이 혼자 있으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이 혼자 있으면 웃으시겠니까? 하나님도 혼자 있으면 미치광이가 됩니다. ‘하하하···!’ 할 때, 거기에 ‘흐흐흐’ ‘헤헤헤···!’ 하는 뭐라도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 환경이 전부 다 웃게 됩니다. 올라가서 춤을 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래가 필요하고, 춤이 필요하고, 예술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을 빼 놓고는 불가능합니다. 사랑을 빼 놓고는 예술도, 노래도 다 필요 없습니다. 핵이 없습니다. 예술의 핵이 사랑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이 우주의 기쁨을 위해서는 사랑 앞에 절대 복종합니다. (225.128-129, 1992.01.05)
 
여러분 작가들이 앞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풍경화를 그리고, 조각품을 만들어서 여러 가지를 상징적으로 표시할 때 그 가운데 사랑이 약동해야 됩니다. 사랑이 스며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작품에 작가가 얼마만큼 사랑을 투입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리라고 봅니다. 그 다음에 생명력을 얼마나 투입했느냐, 그 다음에는 피를 얼마나 말렸느냐? 이 세 가지 문제로 집약된다고 봅니다. 
 
하나의 작품을 보게 되면 작가가 속한 나라에 대한 사랑, 애국정신과 가문에 대한 사랑이 있음과 동시에 생명력이 약동해야 합니다. 생명력이 비춰지지 않으면 걸작품이 못 됩니다. 그리고 얼마만큼 피를 말려가면서 투입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어떤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198.281, 1990.02.05)
 
예술은 정서적인 배후가 깊이 개제되어 있지 않으면 가치가 없습니다. 천년 전에 보던 것을 몇 천 년 후에 봐도 그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느낄 수 있는···. 그림 한 폭을 볼 때도 그런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심정이 유발, 자극이 될 때 걸작품이라고 하는 겁니다. (142.274-275, 1986.03.13)
 
예술이라 하면,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에 가서 대중 앞에서 환성을 받고, 세계 사람들이 ‘아! 훌륭하다’ 고 해야 세계적인 것으로 생각합니까? 예술은 생애를 아름답게 하는 것이요, 생활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라 생각해야 합니다. 자녀도 예술적인 감정으로 후대할 줄도 알고 감싸줄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게 더 멋진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정에 사랑을 미화시킬 수 있고, 승화시킬 수 잇는 것이 예술의 보다 보람 있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100.138-139, 1978.10.09)
 
동물세계에 소설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소설의 내용은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희비극의 연관성을 어떻게 우리 역사에 적용하고, 사회에 적용하고, 생활에 적용하고, 미래에 적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잘 적용한 것이 명작입니다. 딴 것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자연이 있다면 물이 장관으로 흐르기 때문에 영원불변하게 흐르는 물 같은 사랑이니, 자연이 아름다우니 언제나 아름다운 동산 같다느니 하고, 향기를 피우는 아름다운 꽃에 비유하고, 나는 새에 비유하고, 나비에 비유하고···. 그밖에는 형용사를 갖다 붙일 것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그것은 그것들이 우리에게 자극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자극의 촉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자극을 일으킬 수 있는 동기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전부 사랑을 중심삼고 그렇게 엮어지는 것입니다. 자연을 엮고, 강을 엮고, 산을 엮고, 나무를 엮고, 새를 엮고, 돌을 엮고, 태양을 엮고, 달을 엮고, 별을 엮고, 전부 사랑을 중심삼고 엮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멋지게 그려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명작 소설이더라 이것입니다. 그러한 형용사의 묘미, 아름다움에 대한 구성이 언제나 연관성 있게 쓰인 그런 작품이 아니고는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 페이지만 보게 되면 다 집어던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문학이 제일 중심 주류로 삼는 것은 사랑에 대한 미화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시의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압축시켜서 사랑을 중심삼은 몇 마디의 말로 표시하는 것이 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전부 시적 감정에 취하고 문학적 감정에 취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을 다룬다는 것입니다. (94.60, 1977.07.03) 
 
가지각색의 말을 하는 모든 나라 사람들이 그 감정을 순식간에 전부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건 문학도 안 됩니다. 예술도 안 되는 것입니다. 단지 노래만이 그걸 표현할 수 있습니다. 노래는 순식간에, 짧더라도 모든 정서적인 내용을 품게 될 때 어떤 사람의 마음이라도 움직여 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노래할 때 어떤 노래가 제일 좋으냐? 이 우주에 중심 되는, 제일 가치 있고 고귀한 그러한 중심존재를 찬양할 수 있는 노래는 모든 중심을 따라서 그 주위에 포용되어 있는 만물이 다 심각하게 듣는다는 것입니다. 해가 넘어가면서 저녁노을이 지는 그런 모습을 가슴에 넣고 하늘을 찬양한다고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느낀다면 얼마나 감동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노래를 하게 되면, 노래 그 자체를 부르지 말고 깊은 세게, 작곡을 하고 작사한 사람의 경지에 들어가서 그것을 찬양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리에서 노래를 불러 보라는 것입니다. 
 
노래 가운데는 즐거운 노래, 슬픈 노래가 있습니다. 즐거운 노래는 기쁠 때, 그 마음 전체의 기쁨의 동산을 다 불어내어 자연과 더불어, 이 하늘과 더불어 화동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멋져요! 슬픈 노래는 뭐냐? 가슴을 벌리고 이 세상의 모든 슬픔을 녹여서 청소하기 위해서 슬픈 노래를 힘껏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 얼마나 멋져요! 
 
인간에게는 노래가 필요하고 춤이 필요합니다. 예술이 필요한 것입니다. 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이라는 것은 뭐냐? 하나의 조그만 정수(精髓)를 중심삼고 모든 전체의 내용과 형식을 표시할 수 있는 이런 것이 되게 될 때, 누구나 다 그걸 바라보게 될 때, 새로운 것을 느끼고 감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술의 힘입니다. (270.10-11, 1995.05.03) 
 
2. 조화

 종교 경전   음악은 천지의 화합을 나타내고 예절은 천지의 질서를 표현한 것이다. 화합함으로써 모든 것이 생화(生化)하고, 질서를 지킴으로써 모든 것이 저마다의 자리를 지키게 된다. 
음악은 하늘의 생육의 덕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예절은 땅의 분별의 질서를 바탕으로 제작되는 것이다··· 만약 예절을 잘 못 제정하면 질서가 문란해지고, 음악을 잘 못 제작하면 조화를 잃고 포악하게 된다. 그러므로 천지의 도리에 밝은 성인이라야 비로소 능히 예절이나 음악을 제작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예기 19 (유교)
 
말씀 선집 
  
상대권을 갖지 못하면 안 됩니다. 남자와 여자 둘이 좋아할 경우에 천지의 조화가 나옵니다.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남녀의 사랑을 중심삼고 그리는 것입니다. 그 실체를 찾기 위해서 그리워하는 것이 문학입니다. 예술은 사랑을 중심삼고 아름답게 미화시킨 것입니다. (354.21, 2001.09.16) 
 
자신이 언제나 상대적 입장에 서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관념이 항상 자기 마음속에 새겨져 있어야 합니다. 늘 그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무용수가 춤을 추듯이 항상 예술의 미를 나타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 자체가 항상 상대적인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 기준에서 미남미녀가 결정되어 갑니다. 예를 들면 사랑은 동적이고 미는 정적입니다. 정과 동이 있어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15.171,1965.10.07) 
 
‘아이고, 노래 참 잘한다’는 것은 전부 조화가 잘 된다는 것입니다. 높은 데 올라갔다가 아이구, 더 올라가지 않는가, 하다가 멎어 버립니다. 싹 넘어서 쉬익 내려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거 없으면 큰일입니다. 소프라노가 좋다고 하는 사람도 올라가기만 하면 큰일 납니다. 올라갈 수도 있고 내려갈 수도 있기 때문에 소프라노가 좋은 것입니다. 세상만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행복한 것이 뭐냐? 높이 올라갔다가 멋지게 내려갈 수 있는, 이 둘 다 있는 것입니다. (98.50, 1978.04.09)   

3. 영감

종교 경전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 사람 후르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셨다. 그에게 신통한 생각을 가득 채워 온갖 일을 멋지게 해내는 지혜와 재간과 지식을 잦추게 해주셨다. 그래서 그는 여러 가지를 고안하여 금,은,동으로 그것을 만들고, 테에 박을 보석에 글자를 새기고 나무를 다듬어서 만드는 온갖 일을 잘하게 되었다. 출애굽기 35.30-33(기독교)
 
재경이 나무를 깍아 거(거 한자기입요: 종을 걸어 놓는 아기 틀)를 만들었는데, 그것을 본 사람들은 놀라면서 솜씨가 귀신같다고 했다.  
노나라 제후가 그것을 보고 물었다. “그대는 무슨 도술을 만들었는가?” 재경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저는 목수에 지나지 않는데, 무슨 도술이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한 가지 이런 건 있습니다. 신이 거를 만들 때 감히 기운을 소모시키지 않고 반드시 재계(齋戒)하여 마음을 고요하게 합니다. 재계를 사흘 동안 하면 상이나 작록을 얻는다는 생각을 품지 않고, 재계를 닷새동안 하면 비난과 칭찬, 교묘하다거나 졸렬하다는 생각을 품지 않으며, 재계를 이레 하면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내가 지닌 손발고 육체까지도 잊고 맙니다. 이때가 되면 조정의 권세도 마음에 없고, 그 기교에만 전념하여, 밖에서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이 모두 없어집니다. 그런 후에야 산림에 들어가서 나무 천연의 성질을 살피고 모양도 완전한 것을 찾습니다. 그 후 완성된 거를 생각해 보고 난 이후에야 손을 댑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그만둡니다. 저의 천성(天)과 나무의 천성(天)을 합치해야 되며, 제가 만든 물건이 귀신의 솜씨와 같다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장자 19(도교)
 
말씀 선집 

여러분 자체에 몸 마음의 사랑이 열릴 수 있는 그때가 가까이 오거들랑, 내 자체의 느낌이 우주에 공명되기 때문에 그때는 문학가가 되고, 전부 소설가가 되고 시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거들랑 입체적인 세계와 모든 관계를 맺고 싶은 것입니다. 그때가 가을 바람에 떨어진 낙옆이 떼굴떼굴 굴러가는 것을 보고도 ‘히히히히’ 웃는다는 것입니다. (137.232, 1986.01.03)
                                           
진정으로 세계적인 위대한 학자가 있다 할진대, 그 학자의 심정 깊이에는 자연의 심정과 화합할 수 있는 감성이 있을 것이요, 자기가 연구하는 그 분야이상으로 수시로 연락되는 감성이 있기 때문에 생각지도 않은 암시와 환상이니 혹은 몽시와 같은 현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기 전공 분야에 취해 들어가는 그러한 상태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6.341-342, 1959.06.28)

4. 예술과 도덕

 종교 경전   시인들은 사악 속에서 방황하며 그들(사탄들)을 따르는 것이니라. 
그들(시인들)이 모든 계곡에서 이성을 잃고 방황하는 것을 너희는 보지 못했느냐.
그들은 실천도 하지 않는 것을 말하지 않느냐. 그러나 믿음을 갖고 선을 행사며 하나님을 염원하고 자신을 구원한 자들은 예외이니라. 사악한 행동을 저지른 자들은 그들이 돌아갈 최후의 운명이 무엇인지 되느니라. 꾸란26.224-227(이슬람)
 
물이 수확을 낳듯이 노래는 마음속에 위선을 낳는다. 바이하키 하디스(이슬람)
 
아이샤가 말하길 시의 주제가 하나님의 사도를 이르는 것일 때, 그가 말했다. “그것이 말이요, 그것 안에 선한 것은 선이며 악한 것은 악이니라.”다라쿠니 하디스(이슬람)
 
만일 왕국이 잘 다스려지는지 그 나라의 도덕이 좋은가 나쁜가를 알고 싶다면, 음악의 질을 보면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군자의 음악은 부드럽고 섬세하며, 일정한 정조를 유지하며, 일정한 정조를 유지하며, 생기와 감동을 준다. 그런 사람은 마음속에 아픔을 품고 있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폭력적이고 대담한 행동은 그에게는 낯선 것이다.   예기,악기(유교)
 
음악의 효과로 오륜은 혼동이 없게 되고, 눈과 귀는 깨끗해지며, 혈기가 안정되고, 행위가 올바르게 되며, 관습이 개선되고, 제국은 완전히 평화롭게 된다. 춘추(유교)
 
말씀 선집 
  
인간은 이런 심정의 법도를 유린하였기 때문에 오늘날 심정의 세계에서 무한한 그리움에 허덕이게 된 것입니다. 어떠한 취미를 갖고 예술을 통하여, 학문을 통하여, 또는 땅 위에 있는 어떠한 사라의 대상을 통하여 이 그리움을 메우려 하지만 메울 길이 없어 허덕여야 하는 것이 타락한 인류의 실상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비애요 비극입니다. (6.348, 1959.06.28)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미국의 여자들이 천사장인 남자들을 좋아하는 것은, 남자 중에 딴따라패들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배우들이 세계에 선전했다는 것은…. 이 사람들은 하늘 앞에 맨 꼬래비입니다. 여자들이 그것을 따라서 섬긴 것입니다. 그것을 대할 수 있는 것이 천사장 끝 날의 역사입니다. 
 
레버런 문은 예술 중의 예술, 문학 중의 문학, 이상 중의 이상을 갖고 왔습니다.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 할리우드 패들은 프리섹스에 빠져 있는데, 우리는 절대섹스 입니다. 에이즈 환자들이 많습니다. 키로프 발레 아카데미에서 연애사건이 나고 남녀문제가 벌어지면 안 됩니다. 미국 여자들과 남자들이 망해 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339.152-153,2000.12.10)
 
미국에 가게 되면 텔레비전을 통해서 24시간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 싸움하는 영화를 보려면 보고, 전쟁하는 영화를 보려면 보고, 연애하는 영화를 보려면 보고, 별의별 영화가 다 나온다는 것입니다. 도색영화(桃色映畵)까지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청소년들은 대번에 거기로 끌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청소년들은 사상이라든가 전통적인 가치관이 없기 때문에 행동으로 직접 옮기는 것입니다. 밥 먹고 나가면 일을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청소년이 그걸 보고 자극적인 면을 추구하지만, 전통적으로 그것을 제재할 수 있는 환경적인 여건도 없습니다. 가정의 관심적인 뿌리가 청소년과 뗄 수 없는 인연도 안 되어 있고, 선생님의 가르침도 없고, 자기 나라에 인연도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자마자 즉각적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이 세계는 오래 안 가서 그냥 그대로 완전히 멸망하는 것입니다. 남녀가 붙들고 함께 멸망해 버리는 것입니다. 또, 그것도 보장을 못 하니 마약에 취해서 인류는 전부 그야말로 정신이 빠진 사람이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떨어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환경을 어떻게 돌이키느냐 하는 것이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앞으로 이상세계를 창건하겠다고 주장한다면 근본에 들어가서 이런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평가해서 앞으로 예술 면을 중심삼고 새로운 문화 창건의 전통기준을 얼마나 빨리 세우느냐 하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계를 통일하는데 있어서 제일 시급한 문제인 것입니다.  (241.197, 1992.12.26)
 
예술 하는 마음의 극치는 하나하나 손수 지으신 작품인 갖가지 만물만상을 통하여 무한히 기뻐하고자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심정세계에 도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주고도 또 주려고 하고 위하고도 또 위하려 하며 조건 없이 투입하고도 잊어버리려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 심정세계의 근본은 참사랑입니다. 피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그 심정에서 출발하신 것입니다. 
 
 예술의 원점은 그 마음을 닮은 것에 있습니다. 따라서 예술세계는 국경이 있을 수 없습니다. 특정 이념이나 이상이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조화와 통일이 기본 원리입니다. 분열과 갈등은 타락성의 열매입니다. 따라서 작품세계에서도 동양은 서양을 이해하고 서양은 동양을 받아들여 사방성과 세계성을 띠어야 합니다. (316.70-71, 2000.02.09) 


피조세계의 주인
 
인간은 자연계의 일부이면서 피조세계의 주인으로서 독특한 지위를 지닌다. 기독교 성서에서 아담과 이브는 만물의 주관주로서 축복을 받았으며, 꾸란은 각 사람에게 하나님의 ‘대리인’의 지위를 부여한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은 인간의 풍요를 위하여, 즉 생육하고 번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는 터전으로 자연계를 창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지를 오명시키고 자연을 훼손하고 인위적인 환경을 개조하면서 하나님이 허학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것은 진정한 주관의 축복이 아니다.  
 
자연주관의 위임이 처음으로 주어진 농경사회에서 인간의 창조성은 본질적으로 자연의 성쇠와 조화를 이룬 것으로 나타난다. 심지어 인간이 자연을 이용할 경우, 만물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자연의 풍요를 증진하기 위해 창조성을 발휘할 때 비로소 인간은 피조세계의 진정한 주인이 된다. 
 
자연에 대한 인간 주관권은 규모나 힘의 문제가 아니다. 그 잣대로 본다면 인간은 지구상에서 아주 작은 한 점에 불과하며, 지구 또한 광대한 우주 가운데 한 점에 불고하다. 그것은 오히려 인간의 고유한 영적 자질에 기인한다. 인간만이 하나님을 추구한다.  
 
그리고 인간만이 자기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며 보다 나은 세계를 열망한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여타의 동물들과 차이를 지닌 존재일 수 있게 한다. 우주의 창조자를 알고 그와 친밀한 관계를 갖는다는 점에서 인간은 잠재적으로 전체 피조세계 보다 더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인간은 이러한 영광을 누릴 자격이 있는가? 문선명 선생의 가르침처럼 인간은 창조주의 충만한 사랑을 받아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피조세계를 사랑해야 한다. 그 때 인간은 하나님과 자연계를 잇는 다리가 된다.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서 피조물을 사랑하며, 인간을 통해서 전체 세계를 완저하게 한다. 
 

1. 만물의 주관권을 부여받은 인간
 
종교 경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 창세기 1.28 (기독교) 
 
내가 지상에 대리자를 창조하리라 꾸란 2.30 (이슬람)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너희에게 유용하도록 하였으며,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너희에게 한없는 은혜를 주심을 너희는 알지 못하느뇨? 꾸란 31.20 (이슬람) 
 
당신의 작품, 손수 만드신 저 하늘과
달아 놓으신 달과 별들을 우러러 보면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 주시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십니까?
그를 하나님 다음 가는 자리에 앉히시고
존귀와 영광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시편 8.3-5 (기독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여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하셨으며, 그로부터 열매를 맺게 하여 너희에게 일용할 양식으로 하셨도다. 또 너희를 위해 배를 만들어 그분의 명령에 따라 바다에서 운행하게 하시고 너희를 위해 강을 만드셨도다.
그분은 너희를 위해 끊임없이 궤도를 운행하는 해와 달을 두셨고, 그리고 밤과 낮을 만드셨도다. 또 그분은 너희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주셨도다. 너희가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려 보려 하나 결코 계산할 수 없으니, 진실로 인간은 우매하고 감사할 줄 모르노라. 14.32-34 (이슬람)
 
들짐승과 공중의 새를 하나하나 진흙으로 빚어 만드시고, 아담에게 데려다 주시고 그가 무슨 이름을 붙이는가 보고 계셨다. 아담이 동물 하나하나에게 붙여준 것이 그대로 그 동물의 이름이 되었다. 창세기 2.19 (기독교)
 
말씀 선집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전 피조세계의 주인공으로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323.165, 2000.06.01
 
이상세계는 창조 목적이 실현되어야 하는 세계요, 신을 닮아야 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인간은 항상 사랑이 넘치는 조화롭고 평화로운 생활을 원하며, 부단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서 환경을 개선해 나가기를 원합니다. 창조는 비단 제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창의적인 활동 전체를 말하는 것으로 항상 새로운 것을 창안해내고, 계획하고, 개선하고, 생산하는 등의 활동 전부를 말합니다. 
 
그런데 신은 통일적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도 통일적이어야 하며 사회생활도 통일적인 것이 아니면 안 됩니다. 사랑하면서 창조하고, 창조하면서 사랑하는 통일적인 인간, 통일적인 세계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날까지 인간은 눈부신 과학적 발전을 이뤄 놓음으로써 창조적 생활면에서는 신을 닮았다고 할 수 있으나 사람의 생활에 있어서는 아직 전혀 신을 담지 못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슬픔과 고통과 불행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랑은 조화이기 때문에 사랑이 없는 곳에 조화가 있을 수 없으며 조화 없는 곳에 평화나 행복이 또한 있을 수 없는 것이니, 여기서 여러 가지 비참상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65.259-260, 1972.11.26) 
 
도인은 어떤 사람이뇨? 풀 한 포기를 붙들고도 ‘하나님!’ 할 수 있는 심정으로 자기의 가치와 동등하게 그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최고의 도인일 것입니다. 그렇게 그 가치를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최고의 예수가일 것입니다. 각양각색으로 존재하는 천지만상을 보고 하나님의 각양각색의 사랑과 심저의 묘미를 발견하고, 그것들과 친구가 되어서 더불어 즐길 수 있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만 우주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만물의 영장입니다. 그런데 먹을 것밖에 모르는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옛날에 성 프란체스코 같은 양반이 동물을 보고, 혹은 새를 보고 설교했다는 말도 거짓말이 아닙니다.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꿈이 아니고 사실입니다. (9.168-169, 1960.05.08)
 
참사랑은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만물도 원합니다. 그래서 만물의 영장된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걸작품을 품고 사랑할 뿐 아니라 모든 만물에게 사랑하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할 책임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만물들은 이러한 주인을 찾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준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면서 자신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300.222, 1999.03.14)
 
하나님은 어째서 아담과 같은 형(型)을 거치셨는가. 만물은 형상적인 꼴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이시다. 하나님은 어떠한 형도 가지고 있지 않다. 크다고 하면 무한대요, 작다고 하면 무한히 작은 분이시다. 그런 분의 어떤 표준적인 형을 형성하고 표시하더라도, 형체를 나타낸다 하여도 실체를 가진 만물은 하나님에게 직접 주관을 받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실체를 가진 피조 세계를 있어서 실체를 가진 주인의 인격과 형을 갖춘 존재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이 지상 만물의 주관뿐만 아니라 무한한 영계도 주관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 천사장이나 여러 형체를 가진 실체, 그리고 무형의 실체까지도 주관하려면 그 중심적인 타입, 곧 형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신 것이다. 그리고 아담을 중심삼고 영육 양면의 세계를, 즉 무형실체세계와 유형실체세계를 주관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인간 창조목적이다.  
 
따라서 하나의 인격적인 실체와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아담 완성과 더불어 하나님의 형상 완성, 곧 형이 완성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실 때 그의 형태, 인상(人相), 인격 등이 무형세계의 중심에 계시는 하나님과 같은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아담을 만들어낸 것이다. 형이 없으면 형(形)의 세계를 주관할 수 없는 것이다. (35.157, 1970.10.13) 
 

2. 어느 피조물보다 뛰어난 인간
 
종교 경전

하나님은 아담의 자손을 영광되게 하셨으며 땅과 바다에 그들을 옮겨 좋은 양식을 베프셨으며 하나님이 창조했던 그 어떤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베프셨노라. 꾸란 17.20 (이슬람) 
 
하나님께서 세상과 그곳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을 창조했을 때, 그분은 당신의 구애받지 않는 주관 의지를 직접 작용시켜 인간에게 당신을 알고 사랑할 유일한 특성과 능력, 전 피조물에게 기초가 되는 창조 충동과 기본 목적으로 간주되어야 하는 능력을 베풀 것을 결정하셨다. 모든 피조물 개개의 내면적 실재에 그분은 자신의 여러 이름 중 하나인 빛을 비추셨고, 그것을 그분의 한 속성인 영광을 받는 수혜자로 만드셨다. 그러나 인간 실재에는 당신의 모든 이름과 속성을 발하셔서 당신의 자아를 반사하는 거울로 만드셨다. 모든 피조물 중에서 인간만이 매우 위대한 은총, 매우 영속적인 선물의 수혜자로서 발탁되었다.  
바하울라 저서의 낙수집 27 (바하이교) 
 
인간은 신의 현현으로서 모든 만물의 주관자이기에 인간 이상으로 존경받아야 할 존재는 없다. 지상의 모든 만물은 각각의 이름대로 본연의 모습을 지니며, 신이 인간을 위해 그리 하였음을 알게 된다. 무엇이든 만물은 자신의 근원이 되는 신을 잃어버리거나 정해진 법도롤부터 어긋남이 없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깨달은 만큼 이하도록 창조되었다. 자신을 낮추며, 인간을 존경하며, 화내지 아니하며, 그릇된 마음을 가지지 아니하며, 글러하지 아니하며, 치우치지 아니하며, 자신의 본연의 개성을 발휘하기 위해 인간은 창조되었다. 기도 (피엘교단)
 
인간은 세 혼을 갖추고 있었다. 그의 동물적 혼은 동물과 교류하고, 육체적 혼은 식물과 연결하고, 인간적 혼은 천사와 유대한다.
인간의 기능인 이성적 혼은 그 어떤 것보다 고귀한 기능이다. 그것 자체가 가장 고귀한 영혼이기 때문이다. 그것의 기능은 예술품에 대한 감상과 미(美)에 대한 생각을 구성한다. 그것이 응시하는 것은 더 높은 세계를 향해 있고, 낮은 처소와 비열한 위치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러하듯이 사람은 더 높은 삶과 주요한 물질에 속해 있으며, 먹고 마시기 위해 일을 하지 않음은 물론 사치와 성관계를 필요치 아니한다. 오히려 그것의 기능은 진실의 계시를 위해 기다리는 것이다. 아비체나 (이븐 시나), 카타브 알 나자트 (이슬람) 
 
실로 하나님은 하늘과 산과 대지에 신뢰를 보였으나 그것들은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하기를 거절했느니라.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하였으나 실로 그는 정직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자였느니라. 꾸란 33.72 (이슬람)
 
말씀 선집

인간은 동물과 무엇이 다릅니까? 사람이 귀하다고 할 때, 그 사람은 육적인 사람이 아니고 영적인 사람입니다. 영적인 것이 귀하다는 것은 육적인 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이 높다면 육적인 것이 낮다는 것입니다. (129.307, 1983.12.01) 
 
그러면 사람과 원숭이를 비교해 봅시다. 원숭이와 사람은 근본이 다릅니다. 원숭이는 그저 낑낑대고 먹고 자고 새끼 낳는 것이 제일입니다. 원숭이가 고향의 어머니 아버지를 보고 싶어서 웁니까? 원숭이가 형님을 염려해서, 혹은 부모를 위해서 죽으려고 합니까? 그러면 사람은 어떻습니까? 종자가 다릅니다. 
 
사람은 자기를 중심삼는 것이 아니라 남을 중심삼고, 더 큰 것을 중심삼고 소망하면서 살게 되어 있지, 자기보다 낮은 것을 소망하면서 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인간은 고대로부터 곧, 인간이 생겨날 때부터 신을 숭상해 왔습니다.  
 
신을 숭상하지 않은 종족이 없습니다. 신을 생각하고 우리 인간이 보다 나을 수 있는 우주를 생각하면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원숭이가 그런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몇 천, 몇 만 단계가 지나도 안되는 것입니다. 원숭이에게 그럴 수 있는 내용의 힘이 어떻게 가중해 들어가겠습니까? (39.333, 1971.01.16)
 
하나님이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세울 때 하늘땅의 모든 환경을 대표한 그 가운데 중심으로 세웠겠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 되겠다고 주장할 수 있는 자주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원숭이라든가 사자, 호랑이의 세계에는 없습니다. 인간세계에만 있다는 것입니다.
동물적인 인간이냐, 인간적인 인간이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 동물적인 인간에 가깝습니까, 인간적인 인간에 가깝습니까? 지금 세상 인간은 어디에 가깝습니까? 
(117.35, 1982.01.31)
 
인격자는 어떤 사람이 인격자냐? 밥만 잘 먹고 밥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인격자입니까? 예술이나 문학이나 시에 조예가 있어서 풍부한 감상을 하면서 산을 대하고 속삭이고 들을 대하고 속삭이고 흐르는 물을 대하고 찬양할 수 있는 이런 사람이 인격자입니까? (85.143, 1976.03.03)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만물의 영장이 누구냐? 오늘날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만물의 근본된 영장은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은 영이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영이 있습니다. 인간은 영 중의 장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과 직결시켜서 영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 그 자체만으로는 될 수 없습니다. 인간도 피조물인데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피조물이란 상대적 결과체입니다. 피조물만 되어서는 원인을 통할 수 없고 원인을 점령할 수 없는 것입니다. 피조물은 원인으로 말미암아 점령당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과적 존재임이 틀림없습니다. 영장이라는 것은 영 가운데 중심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암암리에 본래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인 관계를 두고 하는 말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32.137, 1970.07.05)
 
하나님이 사랑을 찾기 위해서 만물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의 대상 존재로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의 주체로 되어 있느니만큼 그 주체 앞에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의 형태를 가진 물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형태라는 것은 그 주체의 성품에 반대되는 형태가 아닙니다. 모든 성품의 상대성을 지녀 가지고 사랑이라는 본질에 딱 들어맞을 수 있는 상대적 형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상대 존재인데 사랑에만 맞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무슨 지식이나 다른 것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인가이 이 우주의 중심이 될 수 있고 피조세계의 중심이 되는 것은 사랑으로 피조세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대표하여 그 주인 앞에 첫 번으로 중심자리에 서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하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 영장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상대적 사랑권을 빼버리고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특유한 가치는 사랑의 특권을 지닐 수 있는, 온 피조세계를 대표해서 하나님 앞에 첫 번으로 상대적 입장에 서서 이 우주를 지배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의 인연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빼놓으면 다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132.245-246, 1984.06.20)
 
사랑의 이상을 중심하고 볼 때, 동·식물세계에서는 사랑의 관계가 모두 번식을 전제로 할 때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인간만은 예외입니다. 인간은 부부사랑의 관계에 자유를 누립니다. 이것이 만물의 영장이 된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아들딸인 인간이 무한한 사랑의 기쁨을 갖도록 축복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참된 자유는 책임성을 전제로 합니다. 만일 책임성이 없이 개개인의 사랑의 자유만 주장하고 실천한다면 얼마나 큰 혼란과 파국이 오겠습니까? 지고한 사랑의 이상을 이룰 인간의 완성은 사랑에 대한 책임성을 지닐 때 가능한 것입니다. (282.213, 1997.03.13)
 

3. 피조물을 완성시켜 추앙받는 인간
 
종교 경전
세상의 모든 것은 오로지 의인을 위해서 창조되었다. 의인 한 사람의 가치는 온 세상과 같다. 세상은 오로지 의인과 하나 되기 위해서 창조되었다.  탈무드, 샤바트 30b (유대교)
 
(천도를 따르고 즐기는 사람이) 행동할 때는 하늘과 같고, 조용히 있을 때는 땅과 같다. 하나 된 마음, 즉 일심이 안정이 되면 왕자로서 천하를 다스린다. 귀신도 홀리지 못하고, 혼령도 피곤할 줄 모른다. 일심으로 안정이 되면 만물이 그에게 복종한다. 즉 허정으로써 천지에 뻗어 나가고, 또 만물에 통탈하며, 이를 천연의 즐거움이라 한다. 천연의 즐거움은 곧 성인의 마음을 가지고 천하 만물을 양육하는 것이다. 장자 13 (도교)
 
엘리야는···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요르단 강 동편에 있는 그릿 개울로 가서 살았다. 까마귀들이 아침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날라다 주었다. 그는 계곡의 물을 마셨다. 열왕기상 17.5-6 (기독교)
 
어느 때 깨달음을 얻은 직후 세존은 우루벨라 마을 무짤린다 나무 아래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세존은 이레 동안 앉은 채 열반의 법열에 젖어 계셨다. 그 때 때아닌 큰 구름이 일어나 이레 동안 계속 비가 내리더니 찬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러자 무짤린다 용왕은 자신의 거처에서 나와 똬리를 틀어 세존의 머리 위에 놓고,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추위와 더위가 세존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고, 모기나 파리, 바람이나 직사광선이 세존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리라’
이레가 지난 후 세존은 삼매에서 깨어나셨다. 그러자 무짤린다. 용왕은 비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맑아지는 것을 깨닫고 세존의 몸에서 똬리를 풀고 자신의 모습을 거두고 청년의 모습을 취한 후 합장하고 세존께 경배했다. 우다나 10 (불교)
 
지세(地勢)는 곤(坤)이다. 군자는 두터운 덕으로써 물(物)을 포용한다. 역경 2 (유교)
 
오직 천하의 지극한 정성됨만이 그 성을 다 발현시킬 수 있다. 그 성을 다 발현시킬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성을 다 발현시킬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성을 다 발현시킬 수 있다면 만물의 성을 다 발현시킬 수 있다. 만물의 성을 다 발현시킬 수 있다면 천지의 변화와 생성을 도울 수 있다. 천지의 변화와 생성을 도울 수 있다면 천지와 함께 하나가 될 수 있다. 중용 22 (유교)
 
“꽃 피고 새들이 노래하는 계절이 이 땅에 돌아왔소. 비둘기 우는 소리, 우리 땅에 들리오” (아가 2.12)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땅에 필수적인 만유의 힘을 먼저 주셨다. 그러나 인간 창조 전까지는 아무런 산물도 나오지 않았다. 인간이 창조되자 숨어 있던 생명체들이 땅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유사하게, 인간이 나오기 전까지 하늘도 땅에 힘을 불어 놓을 수 없었다. 
 
창세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주 하나님이 땅 위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땅을 갈 사람도 아직 없었으므로, 땅에는 나무가 없고, 들에는 풀 한 포기도 아직 돋아나지 않았다.” (창세기 2.5)··· 그러나 인간이 나오자 “모든 풀들이 돋아나고.” 숨겨져 있던 모든 힘들이 드러나고; “노래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이 땅은 이제 전능하신 그분에게 찬양을 돌려드리게 무르익게 되었다. 인간이 창조되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리고 비둘기 우는 소리가 땅에 들렸다” 이것은 주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인간이 창조되기 전까지는 이 세상에 없던 말씀이다. 
조하르, 창세기 97a (유대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