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에 관한 지식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1장 하나님)

訓讀王 | 20180214064625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1장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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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관한 지식

인간은 어떻게 궁극적 실재를 알 수 있는가? 철학자들은 항상 이 문제에 대해 탐구해 왔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어떤 지식도 얻을 수 없다는 회의주의적인 입장을 보인다. 비록 이와 같은 논의는 이 선집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어떤 종교의 경전에서는 이 논의가 등장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증거를 어디엔가 남겼으며, 만일 사람들이 알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은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에 이르는 첫 번째 길은 피조물 속에 스며있는 하나님의 손길을 찾는 것이다. 수많은 과학자들은 자연에 대해 연구하면 할수록 자연을 설계한 어떤 제작자의 존재를 증거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발명가인 토머스 에디슨도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단언하건대, 우주에는 우주적 지성이 충만해 있다. 이 세계의 배후에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지 않은 채 자연의 신비함과 긴밀하게 교감한다든가 과학을 탐구한다고 할 수 없다. 어떤 초월적인 우주적 지성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나님에 이르는 두 번째 길은 하나님의 실재를 감지할 수 있는 내면적 자아를 통해 도달하게 될 명상의 길이다. 하나님은 지성이 아니라 신비로운 방식으로 감지된다. 블래즈 파스칼은 “하나님은 이성이 아니라 심정으로 감지된다.”고 말하였다. 문선명 선생도 하나님을 가장 본질적인 인류의 부모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의 부모를 아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을 직접 체휼해야 한다.

하나님에 이르는 세 번째 유형은 초자연적인 길이다. 극소수의 특정한 사람들만 이러한 초자연적인 원천에 접근할 수 있으며, 우리는 그와 같은 체험을 한 사람들을 신뢰할 만한 종교적 지도자로 간주한다. 그들이야말로 영적 세계를 여행한 종교의 창시자들이다. 

1. 피조물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흔적

종교 경전


하나님에 관해 알 만한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밝히 보여 주셨기 때문에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그의 보이지 않는 특성들, 말하자면,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창조물을 통해 분명히 알려져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핑계할 여지가 없습니다. 로마서 1.19-20(기독교) 

하나님은 대지 위에, 그리고 그들의 영혼 속에서 하나님의 예증들을 보여 주리니, 그들이 그것이 진리임을 깨달을 때까지라. 꾸란 42.53(이슬람)

그분의 징표 중의 하나는 이러하니라, 그분이 흙에서 너희를 창조하여 인간으로 번성케 하심이니라. 그분의 징표 중의 하나는 이러하니라. 너 자신으로부터 너희 배필을 창조하여 배필과 함께 안주케 하심이니라. 또한 너희들 마음속에 사랑과 자비를 주셨으니, 생각하는 백성을 위한 분명한 징표이니라.
그분의 징표 중의 하나는 이러하니라. 천지를 창조하고 각기 다른 너희의 언어와 피부색을 만드심이니, 실로 그 속에는 자각하는 백성을 위한 분명한 징표가 있느니라.
그분의 징표 중의 하나는 이러하니라. 너희가 밤에는 숙면을 취하고 낮에는 그분의 은혜로부터 양식을 구하게 됨이거늘, 실로 그 속에는 듣는 백성을 위한 분명한 징표가 있느니라.
그분의 징표 중의 하나는 이러하니라. 너희에게 공포와 희망을 갖도록 번갯불을 보이심이며, 하늘에서 비를 내리어 죽은 대지를 소생케 하심이니라. 실로 그 속에는 지혜 있는 백성을 위한 분명한 징표가 있느니라.
그분의 징표 중의 하나는 이러하니라. 하늘과 대지가 그 분의 명령에 의해 존재함이며, 그분이 언제나 지하의 너희를 부르실 때 너희가 지상으로 나타남이니라. 
꾸란 30.20-25(이슬람)

인드라는 일체만유의 기틀이니,
보이는 모든 것이 그의 형상이로다.
인드라는 자신의 창조력으로 
온갖 형상이 되나니,
그의 수레에 매어진 군마가 수천이로다. 
리그베다 6.47.18(힌두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권능과, 하늘과 땅의 법칙을 보여주어 그로 하여금 확신을 가지게 했도다. 밤이 되어 어둠이 그를 덮자, 그는 별을 보고 말하기를 “이것이 나의 주님이다”하고, 별이 지자 다시 그가 말하기를 “나는 지는 것을 좋아하지 아니함이라”라고 하였다.
그가 찬연하게 떠오르는 달을 보고 말하기를 “이것이 나의 주님이뇨”하더니, 달이 지자 다시 말하기를 “만약 주님이 나를 인도해 주시지 않으면 나는 분명코 방황하는 무리들 속에 있게 되리라”하였다. 그가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말하기를 “이것이 나의 주님이고 만물 중에 가장 위대하시도다”고 하더니, 태양이 사라질 때 그가 말하기를 “나의 백성들이여, 이제야 내가 하나님께 비견할 상대를 두는 너희의 잘못을 분명히 알았나니”라고 하더라.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향해 나의 얼굴을 돌렸으니, “나는 결코 하나님과 비견할 우상을 두지 않으리라”하더라. 
꾸란 6.75-79(이슬람)
 
보라, 만물은 각기 닮은 것이 있고, 나를 증거하기 위해 창조되고 지음을 받았나니, 속세의 것이나 영의 것을 막론하고 우리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안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있는 것, 위에 있는 것이나 아래에 있는 것, 모든 것이 다 나를 증거 하느니라 하셨더라. 
값진 진주, 모세서 6.63(예수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속삭이고, 창공은 그 훌륭한 솜씨를 일러 줍니다.
낮은 낮에게 그 말을 전하고, 밤은 밤에게 그 일을 알려 줍니다.
그 이야기, 그 말소리 비록 들리지 않아도 그 소리 구석구석 울려 퍼지고 온 세상 땅 끝까지 번져 갑니다. 시편 19,1-4(기독교)

말씀선집


무형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신성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피조세계를 관찰함으로써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 1:20)”라고 기록하였다. 마치 모든 작품은 그 작자의 보이지 않는 성품의 실체적인 전개인 것같이, 피조세계의 삼라만상은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의 보이지 않는 신성을 그의 실체대상으로 전개해 놓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작품을 보아 그 작자의 성품을 알 수 있는 것같이, 이 피조만물을 보아서 하나님의 신성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원리강론, 창조원리 1.1.1)

인간의 몸은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왕국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몇 십만, 몇 백만 명이 있어도 아직까지 모르는 것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과 의사는 ‘이제 연구할 것이 없다. 그만둬라’ 할 수 없습니다. 눈에 대해서 전부 다 알 때까지 몇 단계나 갔겠습니까? 초입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런 과학자들이 하나님은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95.123, 1977.11.06)

눈이 생겨날 때, ‘내가 이렇게 생겨나고 싶다’ 한다고 눈 자체가 그렇게 생겨날 수 있습니까? ‘나는 돌아가야 되겠다. 눈꺼풀이 깜빡깜빡하는 그 속에 들어가야 되겠다. 물을 뿌려서 축이는 놀음을 해야 되겠다. 공기에는 먼지가 있기 때문에 여기 눈썹으로 스크린을 만들어야 되겠다’ 이렇게 눈이 생각해서 태어났겠습니까?

 속눈썹이 있는 걸로 볼 때, 눈썹이 이 세상에 공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생겼겠습니까, 없다는 것을 알고 생겼겠습니까? 이렇게 된 것을 이미 알고 그렇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눈 자신이 알아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벌써 눈으로 생겨날 때 이 우주의 공기에 먼지가 있다는 걸 알고 생겨났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바람이 불고 먼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까, 몰랐습니까? 눈 자체가 알고 생겨났습니까, 모르고 생겨났습니까? 모르고 생겨났지만, 그 자체의 누군가가 알아 가지고 눈 자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지구상에 생긴 복사열에 의해서 수증기가 증발된다는 것을 알고 그걸 방어하기 위한 장치를 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눈 자체가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눈 자체가 알았습니까?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눈이 생겨나기 전에 이 우주적인 지식을 가진 배경적 관념이 있었다 하는 논리를 추리할 수 있습니다. 
(117.78-79, 1992.02.01)

하나님을 상상하면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님과 상관하려고 하는 세계적인 조직이 무엇입니까? “종교입니다.” 세계적인 국가가 어떤 국가입니까? 그럼 종교를 분석해 보면 그런 게 있습니까? 없으면 그거 다 하나님이고 뭐고 없다는 것입니다. 종교 속에는 그런 사상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사상을 무엇보다도 강력히 주장하고 내적인 내용을 갖춘 그러한 세계적이며 초민족적인 애국사상을, 초민족적인 부자관계의 효자 사상을 지니고 ‘민족을 초월하고 세계를 위해서 가자’고 주장하는 종교가 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이고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95.53, 1977.10.23)

2. 인간 자체에 내재한 하나님의 모습

종교 경전


눈으로 볼 수 있는 이가 아니며, 언설로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이가 아니다.
감관으로도, 고행으로도, 혹은 거룩한 제사로도 그는 알려지지 않으며, 다만 마음이 지혜의 은총을 입어 청정하게 될 때, 명상 가운데 자기를 드러내 보이나니, 그는 부분 없는 일자이니라. 
문디카 우파니사드 3.18(힌두교)

도라는 것은 있는 듯 없는 듯 황홀하기만 하다. 황홀하면서도 그 안에 형상이 있고, 그 속에 모든 것이 있다. 깊고 그윽하여 보이지 않지만, 그 속에 생명의 본질인 정령이 있고, 그 정령은 심히 진실하여 그 속에서 뻗어 나타난다.
예부터 오늘까지 여전히 도라고 부르며, 만물의 근원을 총체적으로 통솔한다. 우리가 무엇으로 만물의 근원의 실상을 알 수 있는가? 바로 도를 가지고 알 수 있다. 
도덕경 21(도교)

오, 지혜의 주여! 나는 당신이
거룩한 분인 줄 알아보았습니다.
당신이 내게 선한 마음으로 나타났을 때
무언의 생각이 되어, 내게 지고선을 일어 주었고, 
그래서 나는 그것을 널리 외쳤습니다. 
아베스타, 야스나 45.15(조로아스터교)

실로 누가 이것을 아는가? 지금 누가 언명할 수 있을 것인가? 어느 길이 실로 신들에게 이르게 하는가? 최고의 천상에서 굽어보는 이, 다만 그 존재의 가장 낮은 측면들만 드러나 보이도다. 
리그베다 3.54.5 (힌두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귀신의 성정과 공효는 위대한 것이다. 보려 해도 보이지 않으며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아니 하되, 만물의 본체가 되어 있어서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귀신은 온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목욕재계하고 옷을 단정히 하여 제사를 받들게 하고, 그들 위의 어느 곳에나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고, 그들의 좌우 어느 곳에나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시경에 ‘신의 강림하심은 사람으로서는 감지할 수 없는 것인데, 사람이 어찌 그것을 꺼리고 피할 수 있으랴!’ 라고 노래하였다. 그것은 사람으로서 잘 감지할 수 없는 귀신의 나타남을 말한 것이다. 
중용 16(유교)

말씀 선집


‘하나님이 있다’ 하는 것은 말 뿐이 아닙니다. 원리를 통해서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불가피적으로 있어야 된다는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은 내가 있기 전에 있었으며, 내가 생각하기 전에 있었으며, 내 모든 감각, 나의 일체를 주관하는 하나님이라는 입장인 것입니다.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인식하고 아는 것이 원칙이 아닙니까? 알고 인식하는 것이 원칙이 아니라 인식하고 알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추우면 춥다 하는 것을 알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추우면 추운 것을 느껴서 아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이 계시다면 신이 계신 것을 여러분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세포로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 경지가 문제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체휼적 입장을 어떻게 우리가 확정짓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58.291-292, 1972.06.25)

하나님은 살아 있습니다. 악마도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과 악마가 살아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공산주의에서 말하는 관념과 실재가 철학에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전부 다 관념입니다. 추상명사입니다. 양심도 관념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사랑도 관념입니다. 추상명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랑은 관념이 아닙니다. 실생활의 모든 면에서 접촉하고 있는 것입니다. 
(186.67, 1989.01.29)

여러분은 사랑을 갖고 있습니까? 생명을 갖고 있습니까? 혈통과 양심도 갖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사랑을 본 적이 있습니까? 생명, 혈통, 양심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분명히 존재하는 것은 알지만, 이것들을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직 마음으로 느껴서만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같은 논리로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할 때, 또는 하나님을 보았느냐 못 보았느냐 물을 때, 못 보았다는 말도 없다는 말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들어와 계시면 마음이 압니다. 
(447.154-155, 2004.05.01)

자식을 낳아 보아야 부모님께 진정한 의미의 효도를 할 줄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스스로 실천해 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가는 길에 대한 가치를 느낄 수 있고, 하나님께서 같이 하신다는 것을 체휼할 수 있는 것입니다. 
(29.198, 1970.02.28)

인류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본심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인류가 타락하지 않고 본성의 선한 부모를 통해서 태어났던들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변론은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자연히 안다는 것입니다. 아기가 뱃속에서부터 젖 먹는 법을 배워 가지고 나옵니까? 나자마자 눈앞에 젖이 있으면 빨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동적으로 알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류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자동적으로 알고, 자동적으로 해결하고, 자동적으로 가야 할 입장인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전부 다 망각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를 논의하고 의심하는 결과의 세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참한 사실입니다. 
(20.306-307, 1968.07.14)

양자를 중심삼고 전자가 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전자와 같은 우리 인간의 마음이 양자와 같은 하나님 마음의 핵심과 관계를 맺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하여 복귀섭리를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헤아려 볼 때, 우리가 혼자라도 진리의 말씀을 찾아나간다면 우리는 거기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약동하는 것을 느끼고 하나님의 사랑이 화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진리의 길을 거쳐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찾아나가는 길이 가치 있는 내가 될 수 있는 길인 것입니다. 
(2.137-138, 1957.03.17)

여러분이 심정으로 그리는 세계는 어떤 곳입니까? 그 세계는 외계의 감각을 통하여 들어오는, 오관을 통하여 들어오는, 인식 세계에서 빚어진 세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 정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 세계는 아주 작은 하나의 미립자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정의 세계입니다. 그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마 11: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통념적인 감성을 가지고는 주체적이요 원형적인 이념세계를 느낄 수 없습니다. 
(7.255, 1959.09.20)

성약시대에는 본 전통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영계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의 본고향이 어디냐 하면 영계입니다. 영계를 모르면 하늘나라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영계를 알아야만 하나님을 압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안다고 할 때, 하나님이 살고 계신, 활동할 수 있는 영계를 모르면 안 됩니다. 
(365.302, 2002.01.14)

3. 역사 배후의 하나님

종교 경전


일찍이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나, 아버지의 품속에 계시는 독생자이신 하나님이 그분을 나타내 보이셨다. 
요한복음 1.18(기독교)

높은 언덕과 산봉우리와 우거진 참나무를 비롯해 무성한 온갖 나무 밑에서 모든 우상들에게 분향하다가, 거기에서 칼에 찔려 우상들이 서 있는 제단 둘레에 쓰러지게 되어야 너희는 내가 여호와임을 알 것이다. 그들이 어디에서 살든지 나는 손을 뻗쳐 그 땅을 리블라에 이르는 사막보다 더 황량하게 만드리라. 그제야 사람들은 내가 여호와임을 알 것이다.
에스겔 6.13-14(기독교)

여호와여, 당신의 온갖 피조물이 감사 노래 부르고 신도들이 당신을 찬양하게 하소서.
그들이 당신 나라의 영광을 들어 말하고 당신의 공적을 이야기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공적을 사람에게 알리고 당신 나라의 그 찬란한 영광을 알리게 하소서.
당신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당신만이 만세에 왕이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언제나 진실하고, 그 하시는 일 모두 사랑의 업적이도다.
누구나 쓰러지면 붙들어 주시고 거꾸러지면 일으켜 주신다.
모든 눈들이 당신만 쳐다보고 기다립니다. 철을 따라 양식을 주실 분 당신밖에 없사옵니다. 
당신께서 손만 벌리시면 살아 있는 모든 것 원대로 배부릅니다.
여호와 가시는 길은 언제나 바르시고, 그 하시는 일 모두 사랑의 업적이도다. 
시편 145.10-17(기독교)

말씀 선집


이 절대자는 결코 관념적 존재(觀念的存在)가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 그 자체를 드러내 온 실재적 존재(實在的存在)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역사상에 수많은 종교지도자 또는 성현(聖賢)들이 시간이나 장소를 달리하여 출현했던 것을 알고 있으며, 이들은 한결같이 인간의 양심과 심정에 호소하여 이웃에의 사랑을 실천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들의 가르침에 한 민족이나 국가가 순응할 때 평화와 융흥(隆興)을 누렸던 것이며, 그렇지 못할 때 혼란과 쇠망에 빠지곤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은 이 세계적인 혼란 속에서 인류를 구할 수 있는 현대적인 성현의 출현을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대망(待望)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모두 사랑의 주체이신 절대자가 있어서 역사나 현실의 배후에서 종교지도자나 성현들을 세워 그들을 통하여 자체의 사랑을 구현해서 도덕적 가치의 세계를 실현하고자 기획하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69.238, 197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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