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 제3부 인생의 여정 - 제22장 평화

훈독왕 | 20180712045616

세계경전 - 3부 인생의 여정


제22장 평화 



하나님의 평화


1.하나님의 평화


하나님이 평화의 원천이다. 우리가 주위를 둘러보고 갈등과 분쟁만을 보았을 때, 지상에서 평화를 찾다가 절망할 때 위는 하나님, 곧 평화의 왕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실 때, 그분은 우리의 가슴에 있는 분노를 진정시켜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원수를 다른 관점, 즉 형제자매의 관점으로 보게 하신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과 함께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원수조차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된다.(제13장 ‘원수를 사랑하라’ 참조). 그러므로 평화에 이르는 실마리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문선명 선생은 특별한 통찰력을 제시한다. 하나님 사랑은 특별히 결혼과 가정의 두터운 인간관계에 임하므로, 하나님을 중심한 평화로운 가정이 평화로운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건설하는 실질적인 단위이다.
 
종교경전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누가복음2.14(기독교)
 
여호와께서 너희를 고이 보시어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 
민수기6.26(기독교)
 
하나님은 평화이시며 그분의 이름 또한 평화니 모든 것이 그 평화 안에 머무느니라.²
조하르3.10b(유대교)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은 것이 아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14.27(기독교)
 
알라는 올바른 길로 가는 이를 평화의 처소로 부르고 인도하신다.
꾸란10.25(이슬람)
 
토라의 목적은 전부 이 땅에 평화를 이루는 데 있다.
탈무드, 가탄59b(유대교)
 
마음이 한결같아 당신께 몸을 맡기는 그들, 당신께서는 번영과 평화로 그들을 지켜 주시옵니다. 
이사야26.3(기독교)
 
우리의 선조여, 이것은
당신의 세계이고 당신의 뜻입니다.
우리를 평화롭게 하시고
사람들의 영혼을 냉철하게 하소서.
그대는 우리의 선조, 우리의 인생길에서 모든 악을 제거하소서.
누에르족의 기도(아프리카 전통종교)
 
어떤 다른 무슬림도 그의 혀나 그의 손으로부터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도 될 때 진정한 무슬림이 되리라. 
부카리 하디스(이슬람)
 
도는 항상 함이 없지만 하지 않는 일이 없다. 군주가 만약 이것을 지킬 수 있다면 만물은 저절로 화육될(생성하고 변화할)것이다. 화육하는 데 인위적으로 하고자 한다면, 내 장차 아무 이름도 없는 나무 등걸(과 같은 道)로 진정시킬 것이다.
아무 이름도 없는 나무 등걸이란 또한 아무런 욕망도 없는 것이니 욕망이 없음으로써 마음이 고요해지면 천하는 장차 저절로 안정될 것이다. 
도덕경37(도교)
 
말씀선집
하나님 자체는 사랑의 왕이시며, 혹은 평화와 행복의 왕이시며, 이상의 중심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그런 것을 추구해 나가다가 한계에 막혀 버리게 되면 하나님을 통해서 타개해 나가는 길 외에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72.11, 1974.05.07)
 
싸우던 사람들이 하나님만 딱 와 서면, 서로 위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330.267, 2000.08.20)
 
참된 평화, 참된 행복, 참된 자유는 인간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참되 신으로부터 오기 때문에, 신의(神意)에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고, 그 무엇인가 잘못된 자리에 서 있는 인간은 그러한 곳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78.103, 1975.05.06)
 
지금까지 평화를 추구해 오지 않은 시대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변화와 불신이 가득 찬 이 땅이 지금 와서는 그러한 이상적 요건을 성사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변하는 인간세계를 넘어서 절대적이며 불변인 동시에 영원하신 분이 계신다면 그분을 통하여 이와 같은 요건을 성사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분이 계신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하나님은 이상의 주체이시오, 사랑의 주체이시오, 행복과 평화의 주체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과 이와 같은 행복이니 이상이니 혹은 평화니 사랑이니 하는 말을 볼 때, 이 말은 하나님 혼자 두고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상대적인 존재가 있다면 도대체 그 존재가 어떠한 존재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인간 외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성사시킬 수 있고, 하나님의 이상과 행복과 평화를 완결시킬 수 있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것입니다.
(74.46-47, 1974.11.27)
 
싸우면 왜 악한 것입니까? 싸우는 데는 하나님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평화의 주인이요, 통일의 주인이요, 최고의 선의 주인이시기에 싸우는 자리에는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떠나기 때문에 악한 세계가 됩니다.
(261.292, 1994.07.24)
 
‘평화’ 하게 되면 무엇을 두고 하는 말입니까? 평화는 혼자를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상대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사랑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떠난 곳에는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175.196-197, 1988.04.17)
 
평화가 된다는 말은 주체와 대상이 서로 하나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동양의 한문으로 말하면 평(平)은 호리존탈, 화(和)는 하모니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상대가 중심이 돌아가는 데에도 같이 돌아가려고 하는데, 중심과 상대가 상충이 벌어지는 데서가 아니라, 화해로 들어가는 데서만 벌어진다는 것입니다.³
(82.133, 1976.01.04)
 
하나님을 핵으로 해서 동서사방 구형 형태의 균일적인 사랑의 감사, 사랑의 심정의 통일권을 갖지 않고는 인류 평화의 기원의 착지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 입장에서 하나님의 평화이상을 이룰 수 있는 ‘나’, ‘우리’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못 가졌다는 말은 이론적입니다.
(357.131, 2001.10.29)
 
하나님이 평화의 교육재료를 이 땅 위의 인간들 앞에 가르쳐 주려면 어떤 재료를 구할 것입니까? 사랑의 재료를 구할 것입니다. 사랑의 재료를 구하려면, 사랑은 보이지 않으므로, 사랑을 가진 남자 여자를 구할 것입니다. 그것은 필연적 귀결입니다. …평화의 기원을 어떻게 찾아 나갑니까?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 힘이 사랑입니다.
(193.153, 1989.10.03)
 
평화세계의 기본 단위는 국가가 아닌 화평한 가정입니다. 하나님을 모신 인격, 즉 몸과 마음이 하나로 조화를 이룬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의 축복 아래 부부를 이룬 가정이 그 단위가 됩니다. 인류역사 이래 참부모를 통하여 처음으로 찾아지는 복된 가정들입니다. 참사랑으로 가정 구성원이 조화 일체를 이룬 화락한 가정입니다. 이런 가정이 번성하여 평화로운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이루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400.98, 2002.12.27)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인간은 곧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집과 같은 성전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인간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집으로 완성되었다 할 때, 어찌 인간끼리의 투쟁과 살육이 가능하겠습니까? 창조 본연의 세계에서 인간이 싸우는 것은 오른팔이 왼팔과 싸우는 것과 같은 일이며, 자기가 자기 손으로 자기 눈을 빼는 것과 똑같은 일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본연의 세계에서는 전쟁은 있으려야 있을 수 없으며, 서로서로 사랑하며 화목하게 사는 세계이며, 어떻게 하나님께 더 영광 드리느냐하는 선의의 경쟁만이 있는 세계입니다. 거기에는 갈등이 있을 수 없고, 오해도 있을 수 없으며, 아름다운 협조와 상호 부조로 오직 화목 단결해서 진 ․ 선 ․ 미를 추구하는 평화의 세계만이 영속될 뿐입니다. 이 세계는 하나님을 닮은 세계요, 하나님의 이상과 본질을 위해서 사는 세계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세계의 기본 이념을 하나님주의 또는 두익사상이라 칭하는 것입니다. 위하는 사랑, 서로 위하여 사는 곳에 평화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이 세계를 종교적으로 표현하면 지상천국이라 하는 것입니다. 
(219.116, 1991.08.28)
 
2. 내적 평화
 
평화는 평화로운 개인들로부터 우러나온다. 내적 평화에 이른 사람들은 타인에게 평화를 확산한다. 그들은 타인을 평화롭게 상대하는 내적 힘, 열정을 지닌다. 문선명 선생의 말씀에 따르면 몸과 마음의 통일을 배양함으로써 우리는 타인과 풍부한 사랑을 주고받기에 적합한 그릇이 된다.
 
내적 평화의 배양은 외적 평화 창조의 출발점이 된다. 어떠한 정치적 경제적인 프로그램일지라도, 그것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가슴에 증오와 폭력을 가득 담고 있다면, 공정하고 합당한 평화를 도출 할 수 없다.
 
종교경전
깊은 연못은 맑고 고요해서 물결에 흐르지 않는 것처럼, 현명한 자는 진리를 듣고 마음이 저절로 깨끗해진다. 
법구경 82 (불교)
 
사람은 흐르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머물러 있는 물로 거울을 삼는다. 머물러 있는 것만이 다른 모든 사물의 머물러 있는 상태를 머물게 할 수 있다.
장자5 (도교)
 
강들이 바다로 흘러들어가지만 대양이 넘치게 할 수 없는 것처럼, 감각세계의 온갖 갈래들이 평화의 바다, 즉 지혜로운 자 속으로 흘러들어간다.
바가바드기타2.70(힌두교)
 
너희 자신의 욕심에 대해 성전(聖戰)을 행하라. 그러면 너희 마음을 지혜가 차지하리라.
최상의 성전은 누군가가 다른 이를 거역하리라 생각지도 못하는 것을 지키는 것이라.
하디스(이슬람)
 
주는 모든 존재의 심장 속에 거하신다. 그는 자신의 마야의 바퀴 위에서 그들을 돌리고 계신다. 온 존재로써 그에게 귀의하라. 그의 은총으로 인해 그대는 궁극의 평안을 찾고 모든 변화를 여읜 상태에 이를 것이다. 
바가바드기타 18.61-62(힌두교)
 
이 모든 것이 충만하고 저 모든 것도 충만하도다. 충만함에서 충만함이 나오도다.
충만함이 충만함으로부터 취해질 때 충만함은 그대로 남아 있도다.
오옴. 평화, 평화, 평화
이샤 우파니샤드 평화찬트(힌두교)
 
승려가 자신 내부의 평화를 찾지만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이 내적으로 고요하면 자신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아가 보일 것인가?
깊은 바다에는 파도가 없다. 오직 그곳은 고요하고 어떤 것도 파괴도지 않도다. 승려도 이와 같도다. 그에겐 어떤 욕망의 흔들림도, 자만과 욕망을 세울 어떤 찌꺼기도 없이 고요하다.
숫타 니파타 919-920(불교)
 
무엇 때문에 여러분 가운데 싸움이나 분쟁이 일어납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지체들 안에서 싸우고 있는 육욕에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은 욕심을 부려도 얻지 못하면 살인을 하고, 탐내어도 가지지 못하면 다투고 싸웁니다. 여러분이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쾌락을 누리는 데다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4.1-3(기독교)
 
그러므로 선한 자의 영적인 욕망은 다른 선한 이의 육신의 욕망과 대립될 수 있다. 마치 한 사람의 육신의 욕망이 다른 이의 영성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 여기서의 전쟁은 선한 자와 악한 자의 싸움과 유사하다. 동시에 두 선한 사람의 육신의 욕망이 서로 대립하는 형상은 악인이 또 다른 악인과 싸우는 모습과 비슷하다. 선이 악을 이기는 궁극적인 영광이 찾아올 때까지 이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신의 도성 15.5(기독교)
정신적인 폭력은 아무런 힘도 지니지 못하며, 다만 자신의 생각이 폭력적인 그 사람을 상하게 할 뿐이다. 그것은 정싡거 비폭력과 전혀 다르다. 정신적 비폭력은 세계가 아직 알지 못하는 힘을 지닌다. 
모한다스 K.간디(힌두교)
 
선한 이들이 온전히 선하다면 더 이상의 전쟁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선한 자들도 여전히 완성의 도상에 있기에, 그들 마음 한구석에서도 두 가지 다른 마음이 싸우고 있다. 이 반항하는 두 마음 때문에 선한 두 사람들이 서로 전쟁할 수 있다. 모두가 그렇다.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갈라디아서 5.17(기독교)
 
자신의 욕망으로부터 성전을 행하라. 그러면 너의 마음은 지혜로 충만하게 되리라. 최고의 지하드는 다른 사람에게 죄를 범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니라.
하디스(이슬람)
 
사람은 반드시 자신을 업신여긴 뒤에야 남이 그를 업신여기며, 집안은 반드시 스스로 훼손한 뒤에야 남이 그를 훼손하며, 나라는 반드시 자신이 공격한 뒤에야 남이 공격하는 것이다. 서경 ‘태갑(太甲)’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늘이 만든 재앙은 오히려 피랄 수 있거니와 사람이 만든 재앙은 피하여 살 수 없다.” 
맹자Ⅳ.A.8(유교)
 
말씀선집
몸 마음이 싸우는데 거기에 행복이 있습니까? 몸 마음이 하나 안 된 거기에 행복이 어디 있고 평화가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246.60, 1992.12.27)
 
세계에 대한 불평을 하기 전에, 세계에 대한 평화와 행복을 부르짖기 전에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평화의 기점을 이루고 있느냐, 평화의 중심의 기점이 하나님이 되어 있느냐, 평화의 중심의 기점이 하나님이 되어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140.17-18, 1986.02.01)
 
자고로 수많은 성인 현철들은 원수와 싸우는 격한 자리에서 자기의 분노와 혈기를 드러내어 원수와 겨루는 자리에서 말한 것이 아니라, 원수의 칼 앞에서도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고요히 하늘을 그리워하며 참배하는 자리, 평화롭게 그 하늘의 품에 안기는 자리, 원수의 환경을 초월하는 자리에서 천국을 말했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25.38-39, 1969.09.28)
 
사람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성전은 어떤 곳입니까? 일하는 곳입니까? 성전은 안식처라는 말과 통합니다. 그러면 쉬는 데는 무엇 가운데 쉬는 것입니까? 사랑 가운데 안식하는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쉴 수 있는 곳입니다. 인간이 바라는 이상이 있다면 그러한 내심적 기준이 최고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을 지닌 곳을 심정의 세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솟는 샘터와 마찬가지여서 퍼내고 퍼내더라도 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니까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91.78, 1977.01.30)
 
평화라는 것이 무엇이냐? 몸 마음이 하나 되고 가정이 평화로워야 국가적 평화, 세계적 평화가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조작한 사상을 가지고는 평화가 안 됩니다 본연적인 하나님의 심정으로부터 몸 마음이 하나 되고, 그 다음엔 부부가 하나 되고, 부자가 하나 된 가정적 기반이 평화의 초석이 되는 것입니다. 그 가정에 우주까지 갖다 올려놓더라도 뿌리의 지시를 받아야 됩니다. 
(305.203, 1998.07.14)
 
유엔이 지난 60년 동안을 바쳐 노력했지만 아직도 세계평화는 요원할 뿐입니다. 몸과 마음의 가인 아벨 관계도 해결하지 못한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평화신경, 평화메시지 1.21, 2005.09.12)
 
내속에서 영원히 계속할 이 전쟁을 어떻게 평화로 뒤집어 만드느냐가 문제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중요합니다. 이것이 안 되면 세상이 평화세계가 되더라도 전부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것을 알기에 이 길을 나설 때 제일의 표어가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 였습니다. 
(131.34, 1984.03.11)
 
 
화해와 평화의 중재
 
예수는 평화 중재자를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불렀다. 갈등하는 집단들을 화해시키는 것은 사실 그분 가족의 구성원들이 서로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위업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러나 평화를 중재하는 사맘의 일은 까다로울 수 있다. 비록 그 사람이 양쪽에 공평하고 관심을 보이고 공감하려고 노력할지라도, 평화 중재자는 어느 한 쪽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거나 비난을 받기 쉽다. 그러므로 평화 주 중재자는 평화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심지어 자기 목숨조차 버릴 것을 각오해야 한다.
 
화해는 반목하는 집단들에게 많능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일시적 휴전을 넘어 진심에서 우러나는 관용을 요구한다. 궁극적으로 화해는 이전의 원수를 사랑의 유대와 결속으로 이끌어야 한다. 문선명 선생은 우리가 우리의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의 나라와 화해하고 원수의 종교와 화해하라(제13장‘원수를 사랑하라’참조)는 종교 경전의 윤리를 적용하도록 가르친다.
 
1. 화해


종교경전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할 때에 형제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은 것이 생각나거든,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두고 나가서 먼저 형제와 화해라라. 그리고 와서 제물을 드리라.⁶
마태복음 5.23-24(기독교)
 
우리 사람들과 하합하게 하시고, 낯선 사람들과도 화합하게 하소서.
쌍둥이 신들은 우리와 낯선 사람들 사이에 심정 통일을 만드신다.
우리가 마음으로 하나 되게 하시고, 목적에서 하나 되게 하시며,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들과 싸우지 않게 하소서.
또한 날이 밝아올 때, 전쟁신의 화살들이 떨어지지도 않게 하소서.
아타르바 베다 7.52.1-2(힌두교)
 
더욱 좋은 보상은 하나님의 보상이니, 믿음을 갖고 그분께 의지하는 자, 큰 죄악과 추잡한 행위를 피하고 화가 났을 때 기꺼이 용서할 줄 아는 자를 휘함이니라. 악에 대한 보상은 상응하는 악으로 이루어지나, 용서하고 화해를 구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상을 받으리라. 진정한 기개는 관용과 인내이니라.
 
만일 그들이 평화로 기운다면 너희도 그쪽으로 기울어라. 그리고 하나님에게 믿음을 맡기도록 하여라. 
꾸란 8.61(이슬람)
 
하나님의 사도가 이르기를 “현재와 미래에 가장 훌륭한 교훈을 가르쳐 주리까? 너희를 억합하는 자를 용서하고, 너희에게서 등 돌린 자와 유대를 맺고, 너희를 모욕한 자에게 친절하고, 너희에게서 빼앗은 자에게 주는 것이라.” 
하디스(이슬람)
 
말씀선집
혼자라도 화평한 자리에서 조건을 세워 나가야 됩니다. 싸움하는 자리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조건이 어디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느냐? 모든 악한 것이 굴복하고 제거된 선한 자리에서 이것을 이루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싸움을 하고 불평하는 입장에서는 조건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끼리 무슨 문제가 있으면 제사를 지낼 때는 화해하고 오라는 것입니다. 
(286.209-210,1997.08.11)
 
내가 나를 위해서 있다고 하는 자리에서는 하나 될 수 없습니다. 식구들이 평화의 동기를 이룰 수 있고 서로 안위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너를 위해서 있다고 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있다고 하는 데에서만 평화는 그려지는 것입니다. 
(60.21, 1972.08.01)
 
지금까지 국가의 형성 과정은 자기에게 끌어다 붙이는 놀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는 자기를 버려야 됩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도하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 나라를 버려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는 나라의 주의나 사상은 세계를 규합하지 못합니다. 
(26.294, 1969.11.10)
 
각국 나라가 자기 나라를 중심삼과 하나님이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나라 외의 나라는 전부 다 원수시하면 그 세계는 어떤 세계입니까? 싸움의 세계일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려면 하나님이 사랑하듯이 사랑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인류를 사랑할 수 있어야 됩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은 원수, 원수 국가들이 서로가 화해하기를 바라고, 친화(親和)하기를 바라고, 서로서로 통하고 하나 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오늘날 국경을 넘어 세계를 하나 만들기 위한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83.312, 1976.02.25)
세계경전-제3부 인생의 여정-제22장 평화 -3.화해와 평화의 중재(2)
 
2. 평화의 실현
 
종교경전
그는 분열된 자들을 화합하게 하며, 그는 서로 우호적인 사람들을 격려한다. 그는 평화를 조성하는 자, 평화를 사랑하난 자, 평화를 열망하는 자, 평화를 일구는 말을 하는 자이다.
디가 니카야 13.75, 데빗자 숫타(불교)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릴 것이다.
마태복음 5.9 (기독교)
 
만일 믿는 자들 두 그룹이 싸운다면 그들을 화해시키도록 하라. 그리고 만일 그들 중 한쪽이 다른 쪽에 불의를 저지른다면 불의를 저지른 자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응할 때까지 싸우라. 그리고 그들이 응하면 그 두 그룹을 정의롭게 화해시키고 공정하게 하라. 진실로 하나님께서는 공정한 자를 사랑하시노라.
꾸란 49.9 (이슬람)
 
무력의 짧은 몇 겁 동안 수많은 중생들에 대한 비폭력을 실천하며 그들은 사랑에 대하여 명상했도다.
큰 전쟁의 한가운데서 그들은 양평에 공평하게 남아 있었네. 큰 힘을 지닌 보디사뜨와들에게 갈등의 조정은 큰 즐거움이었네.
유마경 8 (불교)
 
후자의 랍비 바루카는 종종 라페트의 시장에 갔다. 어느 날 선지자 엘리야가 그에게 다가왔다. 그러자 바루카가 엘리야에게 물었다. “이 자들 중에 앞으로 올 그 날을 볼 자가 있습니까?” 엘리야가 대답했다. “저기 두 사람이 그러할 것이다!” 바루카가 바로 그 두 명의 새로운 이들에게 물었다, “당신의 직업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대답했다, “우리는 광대입니다. 우리는 슬픈 사람을 만나면 웃게 하고, 싸우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 사이에 화해를 가져다줍니다.”
탈무드, 타아니트 22a (유대교)
 
모든 왕들이 자리에 앉고 완전히 조용해졌을 때, 훌륭한 치아와 북소리처럼 깊은 목소리를 지닌 크리슈나가 말하기 시작했다.
“오, 바리타의 후손들이여, 영웅들에 대한 살육 없이 꾸루족과 판다와족 사이에 평화가 확립되도록 하기 위해 나는 여기에 왔습니다. 오, 왕이여, 내가 할 수 있는 유익한 말은 이것 외에는 없습니다. 오, 꾸루족이여, 덕과 이익 모두를 내팽개치고 도덕을 무시하며 탐욕에 사로잡혀 제 정신이 아닌, 듀로다나가 이끌고 있는 저 사악한 아들들은 이제 자신들의 가장 가까운 친척들에게 가장 몹쓸 짓을 하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살육의 무시무시한 위험은 꾸루족의 행위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만일 그대들이 그것을 모른 체한다면 엄청난 살육을 낳을 것입니다. 오, 바라타의 후손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하고자 한다면 지금이라도 평화를 위해 위험을 해소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오, 왕이여, 평화의 확립은 그대와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대의 아들들이 의로운 판단을 하게 하십시오,그러면 나 또한 판다와족이 의를 저버리지 않게 할 것입니다.”¹⁰
마하바라타 우드요가 파르바 95 (힌두교)
 
말씀
하나님의 사랑 속에는 상극은 있을 수 없고, 다만 상화 상응만이 있다. 성경에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고 기록된 뜻도 이런 점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뜻길, p.268)
 
하나님이 얼마나 참았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조금만 힘들어도 불평하고, 입이 주먹만 하게 나오고…. 그럴 때 하나님은 얼마나 참았겠습니까? 그와 같이 우리도 참아야 됩니다. 천년만년을 참아가야 됩니다. 싸우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둘 다 좋을 때는 싸우는 것입니다. 하나가 망할 때는 싸워서는 안 됩니다. 싸우더라도 내 편을 만들고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 싸워야지, 원수 되기 위해서 싸워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104.33-34, 1979.03.25)
 
세계적 차원에서도 역시 지역 ․ 인종 ․ 종교 ․ 문화 ․ 관습 ․ 언어 ․ 국적 등 하나의 평화세계를 위하여 뛰어 넘어야 할 도전의 과제가 산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 우주 만상을 지으신 하나님의 시각, 하나님의 참사랑의 눈을 통해 세계를 볼 때 세계는 인종 ․ 언어 ․ 종교 ․ 이념적 차이를 넘어 하나로 보이는 것입니다.
 
청년들이 하나님의 참사랑을 중심으로 희생과 봉사의 노력을 기울일 때 세계의 가난과 기아 문제, 그리고 더 나아가 빈부의 격차와 역사상 이질적인 경험에서 오는 갈등과 증오의 감정은 비로소 치유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것까지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참사랑이라는 정의에서 우리는 관념, 갈등관계가 극복될 수 있는 확실한 방향성을 알게 됩니다. 자유와 평등 사이의 이념적 모순도 참사랑의 자리에서 비로소 하나의 만남의 자리를 찾습니다. 주고 또 주고, 그리고 준 것을 잊어버린 채 더 주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참사랑으로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화합과 번영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특히 가정은 나라를 위하여, 나라는 세계를 위하여, 그리고 세계는 하나님을 위하고 희생하는 자리에 나아가야 한다는 참사랑의 윤리 전개에서 민족 이기주의, 국가 이기주의를 넘어서서 영원한 평화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288.201-202, 1997.11.28)
 
레버런 문 같은 사람이 여기에 와서 흑백을 조정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흑백문제를 조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레버런 문이 가르치는 것은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124.275-276, 1983.02.27)
 
흑인들은 이 미국에서 하늘의 탕감노정에 있어서, 아벨적 역사에 있어서 노예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 나라를 창건한 것은 여러분 흑인들이지 백인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백인이 아니라 흑인입니다. 먼저 흑인을 희생시켜 나오고, 그다음에는 인디언을 다 희생시켜 나오지 않았습니까? 싸우게 된다면 흑인들이 원수를 갚을 것이고, 유색 인종이 백인 인종과 싸우게 된다면 백인 여러분을 남겨 둘 것 같습니까? 그런 것을 알아야 합니다.
 
레버런 문이 왜 여기에 왔겠습니까? 인디언은 사실 우리 사촌과 같습니다. 나라로 보면 사촌 간, 형제간이라는 말입니다. 이들이 전부 다 죽겠으니 내가 와서 말려 주어야 합니다. 원수를 갚겠다고 온 것이 아니고, 구해 주고 화해시키러 왔습니다.
 
그런 일을 누가 하겠습니까? 백인이 하겠습니까, 흑인이 하겠습니까? 그건 안 됩니다.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백인의 말도 안 듣고, 흑인의 말도 안 듣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멸종당한 유색인종은 같은 황인종인 우리도 원수인 이 미국을 용서하는데 너희들도 용서해라’ 이러면 통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아벨이 가는 길이 그랬습니다.
(106.241, 1979.12.30)
 
페르시아만의 문제를 기독교의 책임자들이 못 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전 세계의 기독교 중진들과 회회교 중지들을 만나 이것을 방어하기 위한 회합을 지금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 사는 사람이 페르시아 만이야 죽겠으면 죽고, 원자탄이 떨어지면 떨어지는 거지 나하고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그러나 세계 인류의 갈 길이 암담한 것을 문에 그걸 아는 내가 책임을 지고 돈을 써 가면서 주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미국과 소련까지 잡아넣어서 이걸 박자를 맞추어 가지고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공하고 대만의 제2인자들을 화해를 붙인 것이 누구냐? 나입니다. 유대교와 아랍권과 화해를 붙이 것이 내가 만든 세계평화교수 아카데미입니다. 그런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211.183, 1990.12.30)
 
본인은 이제 85세의 노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숭고한 천명을 완수하여 이 지구성이 하나님의 참된 가정들로 넘쳐나는 그 날까지, 중동지역에서 총소리가 그치고 평화와 환희의 축포가 울려 퍼지는 그 날까지, 그리고 본인의 조국 한반도에서 들려오는 통일의 만세소리가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까지 울려 퍼지는 그 날까지 레버런 문은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뛸 것입니다. 
(443.191, 2004.03.23)
 
3. 평화실현의 귀감인 예수의 희생적 사랑
 
종교경전
그들은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서, 거기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죄수들도 그렇게 하였는데, 하나는 그의 오른쪽에 , 하나는 그의 왼쪽에 달았다. 그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제비를 뽑아서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가졌다.
누가복음 23.33-34 (기독교)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졌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형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려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된 것을 없애시고,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것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드셔서 평화를 이루시고,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시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13-16 (기독교)
 
우리는 이제부터는 아무도 육신의 잣대로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육신의 잣대로 그리스도를 알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과를 따지지 않으시고 화해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겨 주심으로써,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와 화해하게 하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6-19 (기독교)
 
말씀선집
예수님은 싸우고 있는 이 세상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철학은 로마나 이스라엘과 같이 압박국가와 피압박 국가 사이에는 서로를 원수시하는 높은 담벽이 있는데 그것을 헐어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 로마는 힘으로 나를 정복하려 하지만 나는 그 반대로 사랑을 가지고 너를 정복 하겠다’ 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리면서도 원수를 위해 복을 빌어주셨습니다.
 
그러한 사상은 로마병정들에 대해 ‘저들이 행한 죄를 저들이 알지 못하니 저들을 용서해 달라’ 는 놀라운 선언으로 나타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심으로써 세계의 모든 나라가 서로 원수시하는 것을 넘을 수 있고, 두 국가 사이의 국경을 넘을 수 있는 하나의 원형 또는 전범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개인적인 원수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가정적인 원수가 있고, 민족적인 원수가 있고, 국가적인 원수가 있고, 세계적인 원수가 사방에서 얽어매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말은 나를 따르고 내가 가는 길을 가려는 사람에게는 수많은 원수가 기다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가정적으로 가면 가정적인 원수가 기다리고 있고, 종족적으로 가면 종족의 원수가 기다리고 있어서 치열한 싸움이 예상되자만, 그때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정신을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가정과 세계평화 356-357, 2000.03.09)
 
악을 자연 굴복시키려는 하나님의 전법은 ‘원수를 사랑하라’ 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놀랍고 고맙습니다. 내용은 간단하지만 이것이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승패로 갈라지는 경계선이 되어 왔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기독교의 사랑의 정신에 의하여 극심하게 박해를 가해 온 로마 제국이 굴복했습니다. 기독교는 그렇게 해서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크리스천들은 개인적인 원수만을 생각해 왔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원수 국가라든가 나아가 원수 세계도 사랑해야 합니다. 원수지간의 국가들을 자기의 조국 이상으로 사랑할 수 있는 터전과 전통을 이루어 놓지 않는 한 이 지상에 천국은 현현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전통의 수립은 하나님의 참사랑 안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316.81, 2000.02.10)
 
성경에 원수 개인을 사랑하라는 말은 있지만 원수 나라를 사랑하라는 말은 없습니다. 우리는 원수 개인을 넘어서 원수 나라를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사지에 있는 나라를 구해 주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메시아사상입니다.
(93.160, 1977.05.22)
 
화목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고 성경에서 말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에 하늘나라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인류가 화목할 수 있도록 일을 하려니 거기에서 창을 맞더라도 먼저 맞아야 됩니다. 화해를 붙이려면 그렇게 해야 됩니다. 피, 피를 먼저 묻혀야 됩니다. 그것을 개의치 않고 싸움하는 두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런 놀음도 할 수 있어야 됩니다.
(211.182, 1990.12.30)
 


상환
 
평화는 정의가 있는 곳에서 번창한다. 정의는 갈등하는 양쪽의 사람들에게는 동일하게 나타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잘못을 바로잡고 빚을 갚고 손상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어떠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이웃에게 잘못함 것에 대해 보통 회개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회개에는 상환이 뒤따라야 한다.
 
상환은 손해에 정확히 상응하는 값은 아닐지라도 잘못한 사람이 손해를 본 사람에게 자진하여 보상할 때 가장 효과적이다. 베르사유조약에 따라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 후 독일이 프랑스와 영국에 제공하도록 강요된 전쟁 배상금과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이 유태인과 그 외의 나치 희생자들에게 제공한 상환을 비교해 보라. 독일에 전쟁 배상금이 강요된 전자의 경우에 그 전쟁 배상금은 독일인들에게 커다란 분노를 일으켰고, 히틀러의 등장으로 직접 연결되는 복수에 대한 요구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었다. 나치의 범죄에 대해 독일인들이 진정으로 회개한 후자의 경우에 그 상환은 독일과 이전의 원수국가들 사이에 선의지를 신장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우리가 범한 잘못에 대한 진심어린 회개에 이어서 우리가 손해를 끼친 사람들에게 자발적으로 상환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평화 창조의 원칙이다. 또한 우리가 의식하지 않은 채 지은 죄, 또는 우리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부채, 또는 우리가 집단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잘못도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이것들에 대해서도 상환해야 한다.
 
문선명 선생은 이 개념을 ‘탕감복귀’의 가르침으로 정립하였다. 그는 ‘탕감’이란 보험에서 손해 배상청구액처럼 고정된 액수가 아니라 오히려 상대편의 괴로운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주는 일이라고 가르친다. 만일 상대편이 용서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작아질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수년 동안 배신과 불신으로 관계가 긴장된 상태라면 그것은 커질 것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구절은 본래의 성경적 의미에서 반환을 만들기 위한 법적 공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유대교에서 그렇게 이해되었다.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자신들이 빚진 전부를 되갚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 구절은 종종 복수의 정당화를 위해 잘못 인용되었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고통을 당한 집단에 의한 복수는 일종의 거친 정의이지만 그것은 평화에 도움이 도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폭력의 악순환을 조장할 뿐이다. 세계경전은 용사하는 것이 더 좋다고 가르친다.
 
종교경전
오, 내 몸 안에 거하는 이여, 당신이 행한 모든 것을 보상하소서!
가루다 푸라나 2.35 (힌두교)
 
속죄 날은 하늘 향한 죄를 속죄하는 날이다. 그러나 인간을 향한 죄는 상처받은 자가 용서하지 않는 한 속죄 받을 수 없다. 
미슈나, 요다 8.9 (유대교)
 
사마아가 이맘 말리에게 계획적인 살인을 한 자가 회개할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 그가 답하길 “없다. 살해당한 자의 친척에게 위자료를 주고, 노예들을 풀어주고, 두 달 내내 금식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고, 자발적인 기도를 하는 방법 외엔 없느니라. 만약 그가 이를 행하면 나는 그의 회개가 받아졌으리라 희망하리라.”
사마아가 물었다. “그런데 그가 돈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이까?” 그가 말하길 “그러면 무슬림에게 돈을 구해 그의 혈족에게 배상을 할 수 있으리라” 하였다.
하디스 (시아파 이슬람)
 
다른 사고가 생겨 목숨을 앗았으면 제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
출애굽기 21.23-25 (기독교)
 
우리는 그 속에 그들을 위해 생명에는 생명, 눈에는 눈, 코에는 코, 귀에는 귀, 이에는 이, 상해에는 동형동태 형을 규정해 놓았다. 그러나 그것(동형동태의 응징)에 대해 (포기의) 자선을 베푼 자는 그것으로 (그의 죄를) 속죄 받으리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리신 것으로 심판하지 않는 자들은 그들이 바로 불의를 행하는 자들이니라.
꾸란 5.45 (이슬람)
 
큰 원한을 풀어 줄지라도 반드시 나머지 원한은 남게 마련이다. 어찌 그것을 훌륭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성인은 계약문서의 왼쪽 반만을 잡고서, 백성들에게 독촉하지 않는다. 덕이 있는 위정자는 계약문서만을 맡아 관리하지만, 덕이 없는 위정자는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데에만 힘쓴다.
도덕경 79 (도교)
 
누구든 선행으로 악행을 덮어버릴 수 있으리라. 그와같은 사람은 이 세상을 비추리라. 마치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법구경 173 (불교)
 
만일 한 사람이 진실로 악한 행위를 했다면, 그러나 그 후에 그의 길을 변경하고 뉘우친다면, 사악한 어떤 것도 행하지 않고 모든 선한 것을 경건하게 실행하기로 결심했다면, 그는 결국은 틀림없이 좋은 우명을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을 재난을 축복으로 바꿈이라고 한다.
태상감응편, 보상과 응답 5 (도교)
 
나에게 사형을 선고받은 죄인이라도 자기 죄를 청산하고 돌아와 오라로 살기만 하면 죽지 아니하리라. 전당 잡은 것을 돌려주고 훔친 것을 갚아주며 생명을 보장해 주는 법규를 따라 살고 그릇된 일을 하지 않으면 죽지 않고 살게 된다. 전에 저지른 잘못은 모두 잊어주겠다. 그가 올바로 살았으니 정녕 죽지 아니하리라.
에스겔 33.14-16 (기독교)
 
마침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는데, 그는 세리장이고 부자였다. …삭개오가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탈을 했으면 네 배로 갚아 주겠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누가복음 19.2,8-9 (기독교)
 
말씀선집
복귀섭리는 반드시 탕감을 중심삼고 발전도 하고 새로운 계기를 마련한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탕감이 왜 필요합니까? 역사적인 실수를 청산함과 동시에 역사적인 죄를 중심삼고 언제나 참소해 나오는 사탄을 분별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을 중심 삼고 보더라도, 현재의 ‘나’라는 자체가 현재만의 ‘나’라는 것은 오늘날 개인을 중심삼고 있는 현재의 ‘나’가 아니고 전 세계를 대표한 입장에 있는 ‘나’라는 것입니다. 각자가 그런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99.164-165, 1978.09.18)
 
탕감복귀는 잃어버린 그와 같은 정상 그대로 놓고 복귀하는 것입니다. 탕감복귀라는 것입니다. 병이 났으면 병이 난 상태에서 거꾸로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구약시대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입니다.
(252.128, 1993.11.14)
 
법정에서는 판사, 검사들이 구형할 때, 그것을 고맙게 받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감형을 해주려고 하는 것이 판사의 심정이요, 검사의 심정이라는 것입니다. 판사나 공판정을 무서워하는 것보다, 자기에게 충고하는 개인을 무서워할 수 있는 사람이 죄를 짓고 형을 살더라도 벗을 길이 있지, 전부 다 무서워하지 않고는 벗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104.279-280, 1979.06.01)
 
우리 동료지간에 있어서도 말 한마디 잘못하여 실수하게 되면, 그것으로 사이가 깨질 수도 있습니다. 부부끼리도 그렇습니다. 한마디의 말이 동기가 되어 가지고 기분 나쁘게 되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갈라지고 그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고통을 받는 자리에 떨어졌을 때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먼저 말한 것의 근원을 파서 이것이 잘못 됐으니 이것은 이렇고 이것은 이렇다고 하여 당신이 잘못한 것인가 내가 잘못한 것인가를, 친구라면 그대가 잘못한 것인가 내가 잘못한 것인가를 가려 이것을 청산지어야만 거기서 풀리는 일이 벌어지지, 그냥 그대로 덮어놓고 ‘그러자’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이 남아지면 남아질수록 그것으로 인해 두고두고 원수가 되어 영원히 남아진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국가 간에 전쟁을 했을 때도 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누가 옳고 그른가를 판단해가지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든가 뭐하든가 다 해서 메워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89.116-117, 1976.11.01)
 
빚을 지면 그 사람을 위하여 종노릇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망한다. 반대하려야 반대할 수 없는 자리까지 나가야 그때에 비로소 자리를 잡을 수 있다.
(뜻길, p.324)
 
탕감복귀는 외적 세계를 완전히 부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완전히 복귀돼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 부정할 수 있는 단계가 남아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참사랑의 기준 앞에 서지 못하면 완전부정입니다. 
(312.334, 1999.11.07)
 
하나님은 맞고 빼앗아 나옵니다. 레버런 문은 지금까지 맞고 반대를 받으면서 빼앗아 나왔습니다. 전 세계가 반대했습니다. 전 세계가 반대하는 것은 전 세계가 굴복한다고 예고하는 것임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반대하면 할수록 세계를 대했던 하나님은 레버런 문편으로 가겠습니까, 반대하는 편으로 가겠습니까? 왜 선생님 편으로 옵니까? 반대하는 사람까지도 사랑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다릅니다. 반대하는 원수를 복수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피에는 피,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소화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168.204, 1987.09.20)
 
 
전쟁의 무용성
 
전쟁은 평화를 낳는 것이 나니라 더 많은 전쟁을 낳을 뿐이다. 제1차 세계대전은 모든 전쟁을 종식시킬 전쟁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30년도 채 안 되어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에 휩쓸렸다.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기에 위대한 성현들이 비폭력주의를 가르쳤다. 그들은 보복하지 않고 상냥한 마음으로 기꺼이 공격을 감내한다. 이것이 평화세계를 건설하는 데 최상의 가르침이다. 이것 이외에 어떤 방식으로도 하나님 왕국은 구현될 수 없다.
그럼에도 흥망성쇠의 역사에서 사람들이 잔혹한 침략자를 만났을 때, 하나님은 그들이 자신을 스스로 방어할 것을 허락했다. 갈등하는 두 집단 사이에서 하나님은 침략자에 대항하는 방어자의 편에 선다. 그래서 역사를 통해 자신이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전쟁을 일으킨 침략자는 한 결 같이 패배자가 되었다. 이것은 국가 정책의 수단으로서 전쟁이 무용하다는 것을 다시 깨우친다.
 
1.비폭력의 길
 
종교경전
그때에 예수의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 손을 들어 자기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내리쳐서 그 귀를 잘랐다. 그때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쓰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한다.”  
마태복음 26.51-52 (기독교)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외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너를 걸어 고소하여 네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누가 너더러 억지로 5리를 자자고 하거든 10리를 같이 가주어라.
마태복음 5.39-41(기독교)
 
승리는 원한을 낳는다. 패자가 고통 속에 살아가기 때문이다.
마음이 평화로운 자는 승패를 버리고 행복하게 산다.
법구경 201 (불교)
 
보라! 저들은 적의 생명을 빼앗기보다는 자기들의 목숨을 먼저 희생하려 하였고, 형제를 사랑하매 전쟁에 쓰일 무기들을 땅속 깊이 파묻었나니라.
몰몬경,앨마서26.32(예수그리스도후기 성도교회)
 
죄지은 자들이 죽어야 한다고 기도하는가? 그보다는 그들이 회개하여 더 이상의 악이 없도록 기도하라.
탈무드, 베라코트 10a (유대교)
 
무력은 평화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못한다. 만일 그대가 사탕수수로써 바라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면 왜 독약을 사용하겠는가? 
소마데바,니티바크야므리타 344 (자이나교)
 
갑자기 왕(襄王 숙)이 묻기를 ‘천하가 어떻게 안정되겠는가?’ 하거늘, 나는 ‘하나로 통일되는 데서 안정될 것이다’고 대답하였다. ‘누가 능히 통일시키겠는가?’ 하고 묻거늘, 나는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자가 통일할 수 있을 것이다’고 하였다.
맹자Ⅰ.A.6(유교)
 
몇몇 아이들이 강가에서 놀고 있었다. 그들은 모래성을 만들었으며, 각기 자신의 모래성을 지키며 말했다. “이것은 내 것이야.” 그들은 자신의 모래성을 만들면서 무너지지 않게 최선을 다했다. 모래성들이 완성되었을 때, 한 아이가 다른 아이의 모래성을 발로 차서 완전히 망가뜨려 버렸다. 부서진 모래성의 주인이 화가 나서 부순 아이의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주먹으로 때리며 소리쳤다. “이 아이가 내 모래성을 망가뜨렸어! 모두 와서 내가 이 아이를 혼내줄 수 있게 도와줘.” 다른 아이들이 와서 그를 도왔다. 그들은 모래성을 부순 아이를 막대기로 때렸으며, 그 아이가 땅바닥에 넘어지자 짓밟기까지 했다. 그런 후에 그들은 각자의 모래성으로 계속 놀았으며, “이것은 내 것이야, 다른 누구도 이것을 가질 수 없어. 가까이 오지 마! 내 모래성을 건드리지 마!” 그러나 저녁이 되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그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그 누구도 자신의 성이 되었던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한 아이가 자기 것을 발로 짓밟자, 다른 아이는 두 손으로 자기 것을 눌러 부숴버렸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각기 집으로 돌아갔다.¹³
요가차라 부미 수트라 4 (불교)
 
그가 민족 간의 분쟁을 심판하시고 나라 사이의 분규를 조정하시리니,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민족들은 칼을 들고 서로 싸우지 않을 것이면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2.4 (기독교)
 
말씀선집
무기를 써서 평화의 세계를 만들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또, 레버런 문의 뜻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전부 다 힘을 대변하지만, 힘을 쓰지 않고 사랑으로써 어떻게 소화시키느냐를 생각하고 계십니다. 
(103.184, 1979.02.25)
 
과거의 역사적인 위인들, 성인들 중에 와 가지고 그 시대에 핍박을 안 받은 사람 있습니까? 그렇게 역사과정에서 반대 받게 될 때, 내가 옳다고 변명한 사람들은 성인 축에 못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역사와 더불어 그런 비난을 받고 한을 품었지만, 묵묵히 입을 다물고 갔습니다. 그렇지만 역사시대의 승리자로서 다시 등장한 것은 왜냐? 악과 더불어 싸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80.34, 1975.10.04)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왜 한 대 치면 같이 치고, 서로 싸우고 대항하지 못합니까? 권력자가 있으면 권력자를 들이치고 싸움을 하라고 가르쳐 주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본래의 인류가 소망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싸움을 통해서 소망을 찾았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에덴동산의 이념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그렇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본래 우리가 구원섭리의 길을 가는 것은 본연의 동산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인데, 그 본연의 동산에서의 이상세계 실현이라는 것은 싸움을 해가지고 찾는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본래 에덴동산은 싸움이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서로가 자기를 높이는 세계가 아니라, 겸손과 사랑이 깃드는 세계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본래의 동산의 내용을 추구해 가는 이상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 앞에 싸우고 질투하고 시기해 가지고는 그 본질의 세계와는 상관없는 결과에 처하기 때문에, 그런 자들은 하늘에 속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길을 하늘은 지금까지 역사를 통해서 코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본래의 세계가 그렇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교만한 사람은 아무리 잘한다 하더라도 천국에 가서는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싸우는 사람,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의 참된 종교는 ‘나가서 싸워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을 이용하고, 남을 전부 다 지배하라는 종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모토로 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98.33, 1978.04.08)
 
 
2.침략전쟁의 부도덕성과 무용성
 
종교경전
땅을 다투어 싸움에 사람 죽인 것이 들에 가득하며, 성을 다투어 싸움에 사람을 죽인 것이 성에 가득하는 것이랴! 이것은 이른바 토지를 끌어다가(위해서) 사람의 고기를 먹는다는 것이니 죄가 죽어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맹자Ⅳ.A.14 (유교)
 
훌륭한 무기는 상서롭지 못한 연모이다. 만물 중에도 그것을 싫어하는 게 있다. 그러므로 도를 지닌 사람은 이것을 몸에 두지 않는다. 무기는 상서롭지 못한 연모이어서 군자가 쓸 연모가 아니다. 부득이하여 쓸 때에는 담박함이 최상의 원칙이다.
 
전쟁의 승리는 경사로 여겨서는 안 되며, 이것을 경사로 여기는 사람은 사람 죽이기를 즐기게 될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천하에서 뜻을 얻을 수 없다. 사람들을 죽인 것이 많으면 슬피 울어 애도해야 하는 것이다. 전쟁에 이겼다 하더라도 상례로써 삼아야 하는 것이다.
도덕경 31(도교)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그 일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십시오. 성경에도 기록되기를 “원수 갚는 것응 내가 할 일이나 내가 갚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였습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그가 목말라 하거든 마실 것을 주어라. 그렇게 하는 것은 네가 그의 머리 위에다가 숯불을 쌓는 것이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로마서12.18-21(기독교)
 
화내지 말고 격분을 가라앉혀라. 불평하지 마라. 자신에게 해로울 뿐이다. 악한 자는 망하게 마련이요, 여호와를 기다리는 자 땅을 물려받으리라.
(98.33. 1978.04.08)
 
조금만 기다려라, 악인은 망할 것이다. 아무리 그 있던 자리를 찾아도 그는 이미 없으리라. 보잘것 없는 사람은 땅을 차지하고 태평세월을 누리리라. 악한 자, 이를 갈며 의인을 모해하려 할지라도 여호와, 그 끝남을 보시고 비웃으신다. 올바른 사람을 목 조르고, 가난하고 약한 자를 쓰러뜨리려고 악한 무리 칼을 빼들고 활을 당기지만 제 칼에 염통이 터지고 활은 부러지리라.
시편 37.8-15(기독교)
 
이맘 말리가 하나님의 사도의 칼집에서 편지를 발견했는데,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하나님의 눈에 최악의 인간은 그와 싸우지 않은 자를 죽이는 자이며, 그를 때리지 않은 자를 때리는 자이니라.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무함마드에게 내리셨던 쿠프르(불신앙)의 죄를 범하게 되노라.”
하디스(시아파 이슬람)
 
그들이 먼저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싸우지 말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은총으로 너희는 정당화되리라. 그리고 그들이 싸움을 시작하기 전까지 그들을 내버려두는 것은 또한 또 하나의 정당성이 되리라. 그러고 나서 너희가 그들을 물리쳤다면 도망하는 자를 죽이지 말고, 부상당한 자의 목숨을 앗지 말고, 옷을 벗기지 말고, 시체를 토막 내지 말지라.
아미르 알 무미닌 알리. 다아임 알 이슬람(이슬람)
 
말씀선집
미국이 지난 3년 동안 이라크 전쟁에 쏟아 부은 전비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200조원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 예산이면 베링해협 프로젝트는 완성하고도 남을 돈입니다. 우리가 왜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들에 이처럼 엄청난 돈을 퍼붓는 어리석은 만행들을 계속해야만 하는 것입니까? 성경 아시아서 2장 4절의 가르침처럼 이제는 총칼을 녹여 쟁기와 보습을 만들 때입니다. 더 이상 인류는 이제 전쟁을 위한 전쟁에 자식들의 생명을 희생시키고 천문학적인 돈을 탕진하는 패악을 거듭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세계 모든 국가들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대우주의 주인 되신 하나님이 원하시는 평화이상세계왕국 창건에 총매진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평화신경. 평화메시지 1.32. 2005. 09 12)
 
지금까지 하나님의 만민의 평화의 무기로 주신 과학기술을 특정한 일국(一國)이 사용해서 세계를 탐하고 행복하게 되는 것을 하나님은 용서하지 않습니다. 만민의 행복을 위해 인간에게 주신 것이 과학기술입니다. 특정 백인만 그 혜택을 누리고 평화를 무시한 무기로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선생님이 기술평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190.178, 1989.06.19)
 
전쟁을 두고 볼 때 무엇으로 선한 편과 악한 편을 가를 수 있습니까? 가만히 있는데 먼저 때리는 사람이 악한 편이라는 것입니다. 학생 둘이 싸움을 했는데 누가 먼저 싸움을 걸었느냐가 문제입니다. 선생님은 공격 받은 편을 듭니다. 그래서 반드시 먼저 친 녀석이 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선생님이 그편 되어 주고 하나님이 그편이 되어 주니까 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치는 것이 왜 악입니까? 본래 이 우주에서 선이 먼저 출발을 해야 할 텐데 악이 먼저 출발을 했습니다. 아담 해와가 가만히 있는데 먼저 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만히 있는데 먼저 공격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을 침해했을 때는 그 침해한 그것을 물어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침해받은 사람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전략을, 적전을 알고, 그러한 내용을 아는 하나님은 가만히 있겠습니까, 공격하겠습니까? 가만히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 편에 있는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이 가만히 있으니 하나님을 따라가 하나님과 하나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가만히 맞고 있는 것입니다. 맞고 가만히 끝까지 참으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사탄은 공격자의 조상입니다. 사탄이 악한 조상이니 공격자의 조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수비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맞으면 맞을수록 그 기반 밑에는 탕감복귀를 단축시켜 나올 수 있는 원리가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사탄은 공격을 하고 빼앗기는 것이요, 하나님은 공격을 받고 찾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1차 세계대전을 한번 봅시다. 제 1차 세계대전 때 누가 먼저 쳤습니까? 독일이 먼저 쳤습니다. 그런데 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이겼습니까, 졌습니까? 졌습니다. 왜 졌습니까? 독일은 절대 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탄도 절대 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천리원칙에 의해서 졌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제 2차 세계대전 때는 누가 먼저 쳤습니까? 일본과 독일입니다. 그러면 졌습니까, 이겼습니까? 왜 졌습니까? 하나님이, 공의의 심판관이 ‘야! 이놈아 아무리 그랬댔자 네가 잘못 했어. 이놈아!’ 하는 것입니다. 
(91.243-244. 1977.02.23)
 


국가의 흥망성쇠
 
하나님은 역사에서 활동하고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계시의 제일 원리였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그 민족이 하나님의 뜻에 신실한지 아닌지에 따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축복과 징벌을 나눠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유교는 천명이 의로운 통치자를 돕고 부패한 왕조를 멸망으로 이끄는 고차적 힘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꾸란은 강력한 국가가 발흥하고 멸망하는 역사에서 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을 식별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전의 위대한 국가의 흔적을 아라비아와 이집트의 사막 가운데 얼룩진 폐허 속에 남겨 놓았다. 한때 강력했던 로마제국의 멸망은 무신론과 도적적 타락이 파멸에 이른 또 다른 증거이다. 문선명 선생은 미국과 서양 여러 나라가 같은 문명으로 고통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이러한 경전의 전통을 이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국민들이 하나님으로 향하기만 하면 그들의 임박한 멸망은 역전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종교경전
말씀대로 옹가장이 집에 내려가 보았더니 옹가장이는 마침 녹로를 돌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옹가장이 진흙으로 그릇을 빗어내다가 제대로 안되면 그 흙으로 다른 그릇을 다시 빚는 것이었다. 마침 여호와의 말씀이 나에게 들려왔다.
“진흙이 옹가장이의 손에 달렸듯이 너희 이스라엘 가문이 내 손에 달린 줄 모르느냐? 이스라엘 가문아, 내가 이 옹가장이만큼 너희를 주무르지 못할 것 같으냐”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나는 한 민족 한 나라를 뽑아 뒤엎어 없애버리기로 결심하였다가도 벌하려던 민족이 그 악한 길에서 돌아서기만 하면 내리려던 재앙을 거둔다. 그렇지 만 한 민족이 나의 말을 듣지 않고 나의 눈에 거슬리는 짓을 하기만 하면 약속한 복을 집어치운다. 그러니 너는 이제 여호와의 말이라 하고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시민에게 가서 전하여라. ‘나는 너희에게 내릴 재앙을 옹기장이처럼 마련하여 두었다. 너희를 벌할 계획을 이미 꾸며 놓았다. 그러니 모두들 악한 길을 버리고 돌아오너라. 너희 행실과 소행을 뜯어고쳐라.“
예레미야 18.3-11(기독교)
 
그들의 가슴에 공포를 드리우는 하나님에 의해 약탈품에 대한 부정이 나타나고, 그들 사이에 번져가는 죽음으로 인해 우상숭배가 만연되고, 그들의 양식이 줄어듦으로 해서 사람들은 저울을 깎게 되고, 그들 사이에 퍼져 있는 유혈살해 때문에 사람들은 불공정한 판결을 하게 되고, 그들 위에 군림하는 적들 때문에 서약을 깨뜨리게 되도다.  
말리크 하디스(이슬람)
 
삼대(하·은·주)가 천하를 얻은 것은 인(仁)으로써 하였고, 그 천하를 읽은 것은 인하지 못함으로 써였다. 나라가 쓰러지고 흥성하며 유지되고 망하는 것 또한 그러하다. 천자가 어질지 못하면 사해를 보전하지 못하고, 제후가 어질지 못하면 사직을 보전하지 못하고, 경과 대부가 어질지 못하면 종묘를 보전하지 못하고, 선비와 서인이 어질지 못하면 사지(四肢)를 보전하지 못한다. 
맹자 Ⅳ. A3 (유교)
 
왕이 자신의 왕국에서 악이 횡횡하는 것을 좌시할 때 위대한 33신들은 자신들의 궁궐에서 분노하네. 그때 그 나라는 무시무시한 범죄로 괴로워하며, 쇠퇴하여 적의 손아귀에 떨어지네.
그러면 재산과 가족, 모아둔 재물이 모두 사라지며, 온갖 협잡과 사기로 사람들이 서로 망가뜨리네. 이유가 무엇이든, 왕이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마치 큰 코끼리가 꽃밭을 짓밟아 망가뜨리듯이 그는 자신의 왕국을 황폐케 하네.
왕이 태만할 때, 거친 바람이 세차게 불고, 때 아니게 비가 오며, 해와 달 같은 행성들이 불길한 조짐을 보이며, 옥수수와 꽃들, 과일과 열매들이 적절하게 여물지 않으며, 모진 기근이 드네.
그러면 신들의 모든 왕들이 서로에게 말하네.
“이 왕은 의롭지 못한다. 그는 불의의 편을 들었다!”
그와 같은 왕은 오랜 기간 동안 신들을 노하게 할 수 없네. 신들의 분노로부터 그의 왕국은 곧 망하기 때문일세. 
금광명경 12(불교)
 
그들은 지상을 여행하면서 그들 이전 사람들의 말로가 어떠했는가를 보지 않았는가? 그들은 힘에 있어서 그리고 지상의 흔적(그들이 남긴)에 있어서 그들보다 더 강했노라. 그러나 그들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벌로서) 취하셨으며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할 것이 없었느니라. 그것은 그들의 예언자들이 그들에게 명백한 증거를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취하셨노라. 진실로 그분께서는 강하시며 징벌하심에 준엄하시니라.
꾸란 40.21-22(이슬람)
 
너희는 너의 주님께서 아드 백성에게 어떻게 하셨는지 보지 못하였느냐? 고상한 기둥을 가진 이람의 도시와 함께 지상에서 그와 같은 것이 세워진 것을 보지 못하였느냐? 그리고 (싸우기 위해) 계곡에서 바위를 깎는 사무드의 백성을 보지 못하였느냐? 그들은 지상에서 (하나님에게 불복종하면서) 죄를 저질렀으며, 수많은 해로운 짓을 하였노라.
그리하여 너희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여러 종류의) 엄한 징벌을 퍼부으셨노라. 실로 너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보시고 계시노라.  
꾸란 89.6-14(이슬람)
 
소공이 말하길 “왕과 공(주공)에게 아뢰노니, 여러 은나라 사람들을 훈계하는 일은 당신의 어사(御使)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아! 황천 상제가 그 큰아들과 이 큰 나라인 은(殷)나라의 명을 바꾸셨으니, 왕께서 천명을 받은 것이 끝없는 아름다움이지만 또한 끝없는 걱정입니다. 아! 어찌해야 합니까, 어찌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늘이 이미 큰 나라인 은나라의 명을 크게 끊으셨습니다. 이에 은나라의 많은 앞서가신 밝은 왕들께서도 하늘에 있지만, 뒤의 왕과 뒤의 백성이 이 명을 받드는데 있어서 종말에는 지혜로운 자가 숨고 백성을 괴롭히는 자들이 자리를 있게 되거늘, 농부들이 그 처자를 안고 붙잡고는 슬피 하늘을 부르짖으며 달아나 도망가다가 붙잡혔다. 아, 하늘이 또한 사방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어서 돌아보고 덕을 힘쓰는 자에게 명하니, 왕께서는 빨리 덕을 공경하고 조심하소서.” 
서경 5.12.2. 주소 (유교)
 
아름다운 문왕(文王)이시여, 아아, 끊임없이 공경을 밝히셨도다. 위대한 천명은 상(商)나라 자손들에게 있었느니라. 상나라 자손들이 그 수가 억(億)뿐만이 아니었건만, 상제가 이미 그 명(命)을 내시어 주(周)나라에 복종케 되었도다.
주(周)나라에 복종케 되었는데, 하늘의 명은 일정하지 않은 걸세. 은(殷)나라가 무리를 잃지 않았을 적에는, 능히 상제와 짝할 수 있었으니 마땅히 은나라를 거울로 삼을지어다. 위대한 명은 보존하기가 쉽지 않으리라.
천명은 보존하기가 쉽지 아니하니 네 몸에서 끊어지지 않도록 할지어다. 훌륭한 명성을 펴서 밝게 빛나게 하며 또 은나라를 헤아리되 하늘로부터 하기를.
시경235(유교)
 
만일 그릇된 가르침을 실천하는 악한 마음의 왕이 붓다의 제자들을 간섭하고, 그들을 중상모략하고 욕을 하며, 막대기나 칼로 그들을 상해하고, 그들의 필수품을 빼앗으며, 그들을 돕는 재가자들에 대해서도 그와 같이 한다면, 범천의 왕과 인드라는 즉각 군대를 보내어 그를 공격할 것이다. 또한 그의 악행들은 온갖 고통, 즉 내란, 기근, 원인 모를 태풍, 싸움, 소송 등이 나라 안에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재난들은 또한 머잖아 그가 나라를 잃게 만들 것이다. 
대집경(불교)
 
부드러운 파도가 밀려오는 그 땅에서 신의 심정은 견고해졌습니다. 내가 아는 폐허의 그 수도를 떠나 얼마나 슬픈가를 느껴라. 
만요슈Ⅰ(신도)
 
주께서 바부르의 침략으로부터 고라산을 수호하셨고 힌두스탄에 공포가 자유롭게 하셨도다. 주께서 몸소 벌하시지 않으시고, 다만 야마처럼 죽음을 다루는 무갈의 바부르를 내려 보내셨도다. 백성들이 고통 속에 울부짖고 있을 때, 그대는 그들에게 아무런 연민도 느끼지 못하였던가? 만유의 창조주이신 그대, 만일 힘센 적이 똑같이 힘센 자를 괴롭힌다면 마음이 이다지도 슬프지 않으리. 그러나 흉포한 호랑이가 순한 암소 무리 가운데 떨어질 때, 저 거룩한 스승이 원망스럽지 않을 수 없어라. 온갖 보화[인도의 자원]을 강탈하여 이를 탕진하였던 개 같은 자들 마침내 부끄러운 종말을 맞으리. 그대만이 결속시키고 재결합시켜 놓나니, 그대 권능의 위대함이 이와 같도다. 온갖 쾌락을 물리도록 즐기며 스스로 위대한 자라고 거짓을 말하는 자는 주의 눈에 곡식을 파먹는 하찮은 버러지에 불과할 뿐이라.  
아디 그란트, 아사, M.1, p.360(시크교)
 
나 여호와가 선고한다. 이스라엘이 지은 죄, 그 쌓이고 쌓인 죄를 때문에 나는 이스라엘을 벌하고야 말리라, 죄 없는 사람을 빚돈에 종으로 팔아넘기고, 미투리 한 켤레 값에 가난한 사람을 팔아넘긴 죄 때문이다. 너희는 힘없는 자의 머리를 땅에다 짓이기고 가뜩이나 기를 못 펴는 사람을 길에서 밀쳐낸다. 아비와 아들이 한 여자에게 드나들어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힌다. 저당물로 잡은 겉옷을 제단들 옆에 펴놓고 그 위에 뒹굴며, 벌금으로 받은 술을 저희의 신당에서 마신다. 아모리인들은 그 키가 잣나무 같았고 힘이 상수리나무 같았으나, 나는 열매를 가지째 땄고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버렸다. 누가 너희를 이집트에서 구해 내었느냐? 내가 아니었더냐? 나는 너희를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이끌어주었고 아모리족을 너희 앞에서 멸해 버렸다. 너희의 자손들을 예언자로 세웠고 젊은이들은 나지르인으로 삼았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사실이 그렇지 아니하냐? 여호와의 말씀이시다.
그러나 너희는 나지르인에게 술을 먹이고 예언자에게 입을 다물라고 명하였다. 보아라, 내가 너희를 무거운 짐을 싣고 뭉그적거리는 송아지 꼴로 만들리라. 아무리 걸음이 빨라도 달아나지 못하고, 아무리 힘이 세어도 그 힘을 써보지 못하고, 아무리 장사라도 목숨을 건지지 못하리라. 아무리 활 잘 쏘는 군인이라도 별 수 없고, 아무리 발이 빨라도 살아날 길 없고, 아무리 말을 잘 타도 목숨을 건지지 못하리라. 그날이 오면, 아무리 용감한 장사라도 맨몸으로 도망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시다.
아모스 2.6-16(유대교)
 
몇 번의 달이 더 기울고 몇 차례의 겨울이 더 지나가면, 한때 이 드넓은 대지 위를 옮겨 다니거나 행복한 가정에서 살며 위대한 정령의 보호를 받던 힘센 부족의 자식들 중에는 아무도 살아남아서 한때 당신들보다 더 강하고 희망에 차 있던 부족의 무덤에서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왜 우리 부족의 운명을 슬퍼해야 하는가? 바다의 파도처럼 부족은 왔다가 가고 종족도 왔다가 간다. 그것이 자연의 질서이니 후회는 헛된 것이다. 당신들이 쇠락하는 때는 멀리 있을지 모르나 분명히 올 것이다. 신과 친구처럼 함께 걷고 이야기하는 백인들조차 공통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 형제일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알게 되리라.
시애틀 추장(미주 원주민 종교)
 
아주 먼 옛날에 내린 저주처럼
우리에게 무서운 저주가 내릴 것이다.
그렇게 사람의 창조자는 말하지만
사람들은 듣지 않는다.
아주 먼 옛날 내린 저주처럼
우리에게 무서운 저주가 내릴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한마디만 말할 뿐이다.
나태함이여! 게으름이여!
이런 사람들은 아버지로부터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
그분의 목소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분은 사람을 사랑하는 존재이다.
딩카족의 기도(아프리카 전통 종교)
 
말씀선집
역사의 방향이 악을 향하여 나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억제하여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결심을 갖고 나아갈 방향을 취하듯이 역사도 역사 자체로써 지향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한때와 시기, 세기를 역사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이 간섭하고 지배해 나오는 과정을 거쳐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겠습니다.
(4.191, 1958.04.20)
 
우리는 역사를 통해 많은 문명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 문명들이 한때는 거대하고 융성했다가 멸망하고 잊혀져 같습니다. 이 같은 문명의 쇠퇴는 기후나 질병, 혹은 외침이나 자연재해 같은 외적인 원인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내적인 부패, 특히 종교나 도덕성이 쇠퇴해졌기 때문입니다.
(343.155, 2001.01.27)
 
흥망성쇠의 곡절이 나오는 것은 자기를 중심삼고 통일하려고 하느냐, 전체 평화의 세계를 중심삼고 통일하려고 하느냐 하는 것에 달린 것입니다. 이 두 차이에서 흥망성쇠가 벌어집니다.
(369.178. 2002.02.14)
 
이 땅 위의 어떤 나라가 우리나라는 망하더라도 하나님의 뜻과 세계를 구할 수 있다면, 희생하겠다는 그런 나라가 있습니까? 미국이 외국을 위해서 협조하고자 할 때는 미국은 전성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아이고, 우리나라가 망하고 세계가 흥하면 뭘 해, 세계를 집어던지고 우리나라를 붙들어야지’ 지금은 이렇게 됐습니다.
(69.87, 1973.10.20)
 
인종을 차별하는 사람들은 망합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반드시 망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에서 수많은 문명권이 전부 다 망하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문명이 발달하면 전부 다 자기를 중심삼고 세계를 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전부 다 먹어서 자기들 마음대로 하려고 했기 때문에 다 망했습니다.
미국으로 말하면, 미국은 세계의 주도국가이고, 전 세계의 문명권을 움직이니까 교만해 가지고 차별하는데, 그러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이름은 그렇게 났지만 내부적으로는 아들딸을 전부 다 치는 것입니다. 제일 사랑하는 후손을 치는 것입니다. 
(97.322, 1978.04.01)
 
영국이 해질 날이 없다고 하며 기독교 문화를 중심삼고 통일 세계를 만들었지만 영국을 위한 세계인 줄 알았습니다. 세계를 위한 영국인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세계의 중심 국가가 되었다고 이것이 미국을 위한 세계인 줄 압니까? 아닙니다. 세계를 위한 미국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그런 것입니다.
(247.111, 1993.04.25)
 
핍박받던 무리가 핍박하던 무리를 지배해 나오는 것입니다. 뒤집어지는 것입니다. 역사는 그렇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지배하던 그 시대의 사상적인 기준 이상의 사상적인 기준만 갖게 되면 반드시 예속 당하던 민족이 지배하던 그 사람들을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핍박받는 무리가 제2의 주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제2의 주인! 이와 같은 원칙이 있기 때문에 핍박받는 사람들이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타락권 내에서는 불가피한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95.105~106, 1977.11.01)
 
역사학자 슈팽글러가 지적했듯이, 문명은 1년의 춘하추동이 있듯이 흥망을 되풀이하여 왔습니다. 지금 때는 대서양문명 시대가 지나가고 태평양문명의 시대가 오는 때입니다. 
(115.171, 1981.11.10)
 
저기압 권에 공기가 없게 되면 고기압권의 공기가 흘러가서 채워 줍니까, 안 채워 줍니까? 물이 높은 데 있으면 아래에 구덩이에 흘러가서 매워줍니까, 안 매워 줍니까? 균형이 이상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선진 국가와 후진국가가 있는데, 후진국은 굶어 죽고 있습니다. 1년에 2천만 명이 굶어 죽고 있습니다. 1년에 2천만 명이 굶어죽고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뜻입니까? 우주의 자연적인 운동권을 박해하는 것이 선진 국가입니다. 선진 국가들이 지금 벼락을 맞는 것입니다. 하늘이 쳐버리는 것입니다. 심판하는 게 에이즈하고 마약입니다. 프리섹스, 호모섹슈얼, 레즈비언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고 사탄이 제일 좋아하는 것입니다. 반대입니다.레버런 문이 소비가 많은 미국나라, 선진 국가를 전부 다 굶게 해 가지고 굶어 죽는 후진국을 살려주자는 운동을 하려고 합니다. 자연세계는 전부다 균형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주대가족을 형성하여 자유와 평화와 행복의 세계를 완성할 것을 맹세하나이다.’ 자유라는 것은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전 세계, 대 가정에 있는 사람들의 자유이고, 대가정의 평화이고, 대가정의 행복입니다. 전 인류가 전부 다 행복하다 그 말입니다. 
(260.192, 1994.05.08)
 
역사시대에 로마가 아무리 강했다 하더라도 그 내부에서부터 망해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무었 때문에 망해 들어갔습니까? 이 섹스 때문입니다. 섹스 때문에 망해 간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입니까, 아닙니까? 지금부터 2천 년 전, 품베이를 보게 되면 모두가 그저 먹고 마시고 춤추고 그러다가 망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사망과 망하는 거소가 직결되는 것으로 제일 효과적인 길이 무엇입니까? 사랑의 질서가 문란하게 될 때 망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레버런 문의 말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백인도 그렇고 흑인도 그렇고 유색인종 황인종도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만연하고 이런 놀음이 팽창한 나라와 그런 문화가 있는 국가를 볼 때, 어떠한 문하가 그렇고 어떠한 나라가 그러냐 하면, 강하고 권력을 갖고 있고, 돈을 갖고 있고, 자식을 갖고 있는 나라가 이 병에 걸리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같은 나라가 모든 면에서 좋은 줄 알았더니 그런 면에서는 미개한 민족보다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 병에 걸리면 역사 시대에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고, 쓰러지지 않은 나라가 없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문화를 지탱하는 나라가 없습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됩니까? 젊은 사람들이 질서가 없어지고, 젊은 사람들이 질서가 없으니 가정의 질서가 파탄되고, 교회의 질서, 사회의 질서, 모든 질서의 파탄을 가져오게 마련입니다. 지금 미국이 그런 실정입니까, 아닙니까? 나는 미국 청년들이 잘났다고, 잘 입고 으쓱거리고 가는 것을 볼 때 너희가 몇 년이나 가나 보자고 생각합니다. 
(103.97~98, 1979.02.11)
 
요즘 프리섹스니 뭐니 해서 젊은이들은 처녀 총각들이 만나서 키스도 마음대로 하고 하룻밤 자는 것도 마음대로 하고 있습니다. ˙˙˙ 망하는 것입니다. 절망이라는 것입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미국도 방법이 없고, 영국도 방법이 없고, 불란서, 이태리, 전 세계도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선진국가가 그러니 후진 국가들이 전부다 그리로 따라갑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세계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미국이라도, 선진국가라도 빨리 망하게 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후진 국가들이 침식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생각이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까? 하나님의 입장이 그러겠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그런 반대의 길을 취할 것이고, 또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을 막고 반대로 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할 것입니다. 
(117.201~202, 1982.03.07)
 
하나님이 미국을 왜 축복해 줬습니까? 하나님의 뜻입니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세계 평화의 기지를 만들기 위해서, 인류를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해방하기 위해서입니다. 사탄을 추방하고 지옥을 해방하기 위한 것이 그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옷을 하나 입어도 그 옷이 역사 과정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빗자국을 남기고 얼마나 많은 민족을 울게 하고 얼마나 비참한 골짜기를 거쳐 왔는가를 생각하는 사람 있습니까? 옷을 한 가지 입는 것도 세계 인류를 대표해서 입기 때문에 빚진 자리에서 입는다고 생각하는 미국 사람 있습니까? 옷도 그렇지만 사는 집, 환경도 전부 그런 것입니다. 자기들이 잘나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여기보다 더 세계를 위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고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여기 이 사람들에게서 빼앗아서 더 세계를 위하는 사람들에게 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 미국 백인들한테 희생된 사람들이 영계에 가서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인디언들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백인들이 약소국을 전부 침범하고 얼마나 약탈했습니까! 지금까지 미국이 모든 면에서 구라파보다 낫겠다고 했습니다. 영국이 선교하니까 ‘우리도 영국에 지지 않겠다’고 하면서 경쟁했습니다. ‘구라파 사람들보다도 우리가 낫다, 낫다’고 하면서 세계를 위해서 후원도 했습니다. 2차대전 전후까지는 전 세계를 후원하고 그랬습니다.
 
미국이 선교사를 많이 보낸 데가 어디입니까? 유럽에서는 아프리카나 남미로 보냈지만 미국은 아시아로 보냈습니다. 선교사를 보내서 미개한 지역을 점령하고 아시아에 대해서 힘을 끼쳐서 필리핀도 전부 자기 나라에 집어넣었습니다. 아시아 판도를 중심삼고 선교사를 보내면서 이렇게 확대한 것입니다. 미국이 점령한 신민지 사람들을 미국 사람보다도 더 위하면 하나님이 찬성합니다. 미국 국민보다, 본토 사람보다 더 위하면 말입니다. 불쌍하니까 위해야 합니다. 자기 집을 팔아서라도 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식민지가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가 하나 됩니다. 그런다면 식민지 사람들이 왜 반대합니까? ‘미국! 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면서 하나님 같이 따르게 됩니다. 그러기를 바랐는데 거기 가서 빼앗아 왔습니다. 전부 발로 밟고 말입니다. 역사에 반항한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틀어져 나가게 된 것입니다.  
(202.332~333, 1990.05.27)
 
세계 모든 지성인들이 지금은 급변하는 세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급변해 가지고 어디로 갈 것입니까? 일반 사람들은 이렇게 급변하면 절망의 세계에 도달할 위험성이 많다고 보고 있습니다. 희망의 세계로 도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지극히 적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근대 문명의 지도해 오던 서구문명은 이미 몰락했을 뿐 아니라 몰락해서 벌써 밤의 세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서구문명을 지도하는 데 있어서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왔던 기독교는 물론이요, 기독교를 중심삼은 가정이라든가 사회라든가 국가가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졌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세계의 젊은이 중에서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은 지극히 암담한 자리에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에 처해 있습니다. 이러한 실정 가운데 만일 하나님이 계산다면 하나님은 그런 절망의 종착점을 향해서 그냥 달리게 할 것이 아니라 이것을 대비하여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희망의 곳으로 연결시키는 길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103.39~40, 1979.02.02)
 
미국사람, 미국 청년들은 망해 갑니다. 이것은 미국의 위정자들, 미국의 학자, 미국을 안다는 사람들이 전부 다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종교 지도자들은 물론이고 전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통적인 결론입니다. 이병을 누가 치료하겠습니까? 미국의 군사력 가지고도 고칠 수 없습니다. 미국의 경제력, 미국의 정치력, 미국의 그 외 모든 과학적인 힘 가지고, 달나라 간다고 자랑하지만 그걸 고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도 안 됩니다. 레버런 문만이 미국을 구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레버런 문을 세워 미국에 보내지 않을 수 없다고 나는 봅니다.
(93.112, 1977.05.21)
 
 
세계 평화
 
새 천년기에 전 지구적인 환경오염, 부족한 천연자원의 경쟁, 폭력, 경쟁, 폭력, 그리고 핵무기 확산 문제에 직면한 세계에서 세계평화 건설을 외치고 있다. 예전에는 예언자들과 몽상가들의 막연한 꿈이었던 것이 이제는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현실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단지 현대에 출현한 것이기에 우리는 지난 세기의 주요 종교가와 몽상가의 발언으로 보충한다.
 
하나님은 문선명 선생으로 하여금 세계평화를 위한 실제적이며 무수한 구상을 제안하도록 영감을 주셨다. 그는 우리 시대의 세속적인 평화의 사도와는 특별히 다른 관점을 지닌다. 세속적 평화의 사도는 과학과 기술의 진보를 통해 인류는 모두 함께 풍요를 누리는 세계를 창조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세계에서는 종교와 문화의 오래된 편견들이 세속적인 민주주의적 가치와 시장의 자유에 자리를 양보할 것이다. 문 선생님은 평화는 하나님에서 발견되어야 하고, 종교와 영성은 세계인류가 한 가족 이념을 구현하는 데 중심역할을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유토피아 건설의 세속적 평화를 구현하려는 문 선생님의 주장은 새롭게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문 선생님은 평화 세계의 건설을 위한 아주 특별한 구상을 가지고 있다. 그 구상은 영적 차원을 추가하는 국제연합의 개혁, 국경선의 철폐, 초문화적 결혼에 의한 문화의 연대, 그리고 세계 도시들을 연결하는 국제고속도로를 포함한다. 세계평화는 참사랑의 실천에 의해 건설된다는 그의 근본적 신념이 현실화되고 있다.
 
1. 하나님: 세계평화의 토대
 
종교경전
장차 어느 날엔가 여호와의 집이 서 있는 산이 모든 멧부리 위에 우뚝 서고 모든 언덕 위에 드높이 솟아 만국이 그리로 물밀 듯이 밀려들리라. 그때 수많은 민족이 모여화서 말하리라. “자, 올라가자, 여호와의 산으로, 야곱의 하나님께서 계신 전으로! 사는 길을 그에게 배우고 그 길을 따라가자. 법은 시온에서 나오고 여호와의 말씀은 예루살렘에서 나오느니.” 그가 민족 간의 분쟁을 심판하시고 나라 사이의 분규를 조정하시리니,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민족들은 칼을 들고 서로 싸우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2.2-4 (기독교)
 
늑대가 새끼 양과 어울리고 표범이 숫염소와 함께 뒹굴며 새끼사자²⁰와 송아지가 함께 풀을 뜯으리니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친구가 되어 그 새끼들이 함께 뒹굴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리라. 젖먹이가 살무사의 굴에서 장난하고 젖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겁 없이 손을 넣으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를 가나 서로 해치거나 죽이는 일이 다시는 없으리라. 바다에 물이 넘실거리듯 땅에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차고 넘치리라.
이사야 11.6-9 (기독교)
 
우리는 세계의 종교 지도자들과 위정자들이 이 시대를 개혁하고 번영을 회복하기 위해 연합하여 일어설 것을 희망한다. 그 필요성에 대해 명상을 하고 난 후 그들이 함께 상의하게 하고, 열렬하고도 충분한 심사숙고를 통해 세계가 필요로 하는 치료법을 질병에 걸리고 심하게 괴로워하는 세계에 제공하게 하자.
바하울라 저서의 낙수집110(바하이교)
 
말씀선집
냉전시대가 종식되고 세계는 잠시나마 평화를 위한 축배를 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 인류는 그 냉전의 끝이 자동적으로 평화 시대로 연결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계는 도처에서 치열한 전쟁이 계속되었고, 지금도 여러 곳에서 살육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이 분쟁들은 주요 종교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이 배경이 되고 있음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종단간의 대화와 화합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 주는 사례입니다. 종종 현대에 있어서 종교적인 이상의 실현은 세속 권력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활동해 왔습니다. 오늘의 일반적인 인식은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 평화의 이상에 이바지하는 국제조직들은 세계의 위대한 종교적 전통과 자신들과의 관계를 재검토하여야 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330.245., 2000.08.18)
 
하나님의 경륜과 역사의 귀추를 놓고 보면 인류는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여 하나님을 참부모로 모시고 살아가야 할 거대한 한 가족입니다. 하나의 세계가족으로 한 울타리 안에서 어울리고 협력해야 할 운명 공동체입니다. 더 이상 이웃과 다른 나라의 어려움이 나와는 상관없는 것일 수 없는 시대에 왔습니다. 우리는 인류가 전쟁과 범죄, 마약과 폭력, 환경오염과 생태계의 파괴, 패륜과 에이즈 등에 휘말리어 떨어지는 것을 방관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역사 앞에 답해야 합니다. 크게 화합하고 하나를 이루어야 할 인류가 무엇으로 어떻게 현실을 극복하고, 다가오는 새 천년을 소망 속에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개체와 자국의 이익을 넘어서서 위하고 신뢰하며 살아가야할 평화세계를 이루고, 또 이를 지탱할 새 가치관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 과학, 기술의 찬란한 누각 위에서 인본주의의 안경을 끼고 물신의 유혹 아래서가 아니라, 본심의 문을 열고 겸허하게 답을 찾아야 합니다. 땅에서 잦지 못하면 하늘로부터 오는 소리를 통하여 해결을 보아야 합니다.
(279.211-212, 1996.08.20)
 
2.유엔과 글로벌 거버넌스
 
종교경전
자비로운 주의 명령이 세상에 선포되나니 남을 헤치거나 고통을 주는 자가 다시는 없으리라. 모든 인류가 평화 속에서 자비의 방패 아래 살아 갈지라.
아디 그란트, 스리 라가,M.5.p.74 (시크교)
 
말씀선집
아담가정에서 비롯된 가인과 아벨의 투쟁역사는 인류 역사를 몽땅 전쟁과 갈등의 역사로 만들어 놓고 말았습니다. 작게는 인간 개개인의 몸과 마음의 갈등으로부터 크게는 국가와 국가가,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가 물본주의와 신본주의로 갈라져 대립 투쟁해 나왔습니다. 극도의 이기적 개인주의는 오늘도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소망이요, 미래의 약속인 젊은이들을 프리섹스와 마약의 노예로 전락시켜 가고 있습니다. 물질만능 주의에 빠진 선진국들은 자국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하루에도 수만 명씩 굶어 죽어가는 불쌍한 생명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 수 천년 묵은 가인 아벨의 역사적 매듭을 풀어줄 수 있겠습니까? 세계평화를 주창하며 출발했던 유엔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유엔이 지난 60년간을 바쳐 노력했지만 아직도 세계 평화는 요원할 뿐입니다. 몸과 마음의 가인 아벨 관계도 해결하지 못한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제는 천명을 받들어 출발한 아벨적 평화이상세계왕국의 창건이 필요할 때가 왔습니다.
(평화신경,평화메시지 1.20-21, 2005.09.12)
 
하나님은 우리 지도자, 특히 종교 지도자들을 소명하고 계십니다. 세상의 불의와 죄악에 도전하고 참사랑을 베풀기를 소망하고 계십니다. 모든 종교인이 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열망을 대변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몸과 외적인 세계를 대표하는 정치인이나 외교가들의 경륜과 실천만이 아니라, 마음과 재적인 세계를 대표하는 초종교 지도자들의지혜와노력이 합해져야 평화세계가 완전히 이룩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유엔을 재평성하는 문제까지 심각히 고려해야 할 때입니다. 양원제의 형태를 갖춘 유엔을 상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국가대표들로 이루어진 기존의 유엔을 각 국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하원으로 바꾸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편 저명한 초종교 지도자 등 정신세계의 지도자들로 종교의회 혹은 유엔의 상원을 구성하는 것을 심각히 교려할 것을 당부합니다. 이 초종교적인 종교의회는 지역적인 개개 국가의 이익을 넘어 지구성과 인류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여야 할 것입니다.
 
양원이 상호 존중하고 협력함으로써 평화세계를 이루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 지도자들의 정치적 경륜은 세계의 위대한 초종교 지도자들의 지혜와 비전에 의해 효과적으로 보완 될 수 있습니다.
(330.247-248, 2000.08.18)
 
 
3. 평화의 문화 구축과 인류 통일
 
종교경전
오, 인간들이여! 우리(하나님)과 너희를 한쌍의 남녀로부터 창조하였으며 우리는 너희로부터 민족과 부족을 만들었느니라. 이것은 너희가 서로 알게 하기 위함이노라. 
꾸란 49.13(이슬람)
 
나라는 작고 백성들은 적어야 한다. 비록 뛰어난 재능이 있다 하더라도 사용하지 않는다. 백성들로 하여금 죽음을 중히 여기게 하고 멀리 이사하지 못하게 한다. 비록 배와 수레가 있다 하더라도 타고 갈 일이 없다. 비록 갑옷과 무기가 있더라도 벌려놓고 쓸 곳이 없다.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끝을 매듭니어 사용하게 하고, 그들의 음식을 달게 먹게 하고, 그들의 옷을 아름답게 여기게 하고, 그들의 거처를 편안히 여기게 하고, 그들의 풍속을 즐겁게 여기게 해야 한다. 이웃나라가 서로 바라보이고, 닭과 개의 소리가 서로 들려도, 백섣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게 한다.
도덕경 80(도교)
 
인도의 8만 4천 도성에 있는 8만 4천 왕들이 자신들의 영토와 왕국과 보물을 다툴 때, 그들은 서로 공격하거나 싸우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이전 행위들의 공덕의 합당한 축적에 의하여 왕좌를 얻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왕국에 만족할 것이며, 또한 황폐한 전체 영토를 놓고 혈기를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인도의 8말 4천 도성들의 8만 4천 왕들이 서로의 복지를 생각하고, 서로의 사랑을 느끼며, 자신의 영토에 만족할 때, 인도의 번성하고 풍족하며 즐겁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나라가 될 것이다.
금광명경(불교)
 
그날에 이집트에서 앗시리아로 가는 큰길을 트여앗시리아 사람과 이집트 사람이 서로 오가며 이집트 사람이 앗시리아 사람과 함께 예배하리라. 그날에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앗시리아 다음의 셋째 번 나라가 되어 세상에서 복을 받으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며 이르시는 말씀을 들어라. “복을 받아라. 내 백성 이집트야, 내가 손수 만든 앗시리아야, 나의 소유 이스라엘아!”
이사야 19.23-25(기독교)
 
말씀선집
21세기의 인간은 우주를 창조한 신의 근본 원리를 벗어나서는 더 이상 지구성의 주인으로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원치 않더라도 인류의 미래는 더 밀접한 인간관계를 요구합니다. 미래는 사람들이 지역과 민족과 혈색을 초월하여 더욱 가깝게 엉키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지구 한가정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종교와 문화 전통, 그리고 서로 다른 생활의식들을 이해의 차원을 넘어서서 서로 어울리고 수용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오고 있습니다. 개인이나 어떤 집단이 이기적인 선택으로 자기만의 분별된 도피처를 소유할 수는 없게 됩니다. 
(219.9, 1991.08.24)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국경선을 철폐하면 평화의 세계는 자동적으로 오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세계의 현존하는 국경선들의 주인이 과연 누구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국경을 만들기 시작할 장본인은 바로 다름 아닌 사탄마귀입니다. 따라서 어디든지 국경선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악마와 악마의 실체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겠습니다. 이런 결과는 인간 조상의 타락이 선악의 분기점이 되는 혈통을 엇바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통양과 서양을 비교해 보아도 문명권을 중심삼고 상반된국경선이 생겼는데, 그곳에는 악마가 진치고 있는 것입니다. 악한 문화적 배경, 역사와 전통적 배경, 인종적 차별 등 이런 모든 종류의 함정을 파고 국경선을 만든 장본인은 하나님이 아니고 사탄 악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소원해 오신 선한 세계는 통일의 세계입니다. 즉, 전 인류가 하나의 대가정을 이루어 사는 하나의 세계인 것입니다. 그런 세계에 어떻게 국경이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국경이 없는 세계이기에 원수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원수라는 말 속에는 국경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원수를 사랑해서 하나 만들면 국경이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략전술은 언제나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처럼 위대한 전략이 없고, 또 이처럼 위대한 전술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엄청난 내용을 오늘날까지 역사적으로 인류가 모른채 살아왔고, 오늘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429.290-292, 2003.10.03)
 
영계에서는 국경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국경을 초월해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이런 뜻을 주도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국경을 초월해야 됩니다. 우리는 종족을 초월해 있습니다. 섭리로 볼 때 아담의 세 아들 중 백인은 셋째 아들이고, 흑인은 둘째 아들이고, 황인은 첫째 아들입니다. 그 셋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중심삼은 문씨 종족을 센터로 해서 수많은 종족을 전부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중심 종족과 중심 종교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는 내적인 것으로 플러스가 되고, 다른 하나는 외적인 것으로 마이너스가 되어 전 세계적인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경을 넘어서 동양 사람이 서양으로 살 수 있고 서양 사람이 동양으로 갈 수 있으며, 동양 영(靈)이 서양에 갈 수 있고 서양 영(靈)이 동양에 갈 수 있으며, 회회교의 영이 기독교로 갈 수 있고 기독교의 영이 회회교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디든지 왕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다 각자였습니다. 이제, 유럽 경제공동체(EEC)같은 운동이 벌어지지요? 구라파 사람들은 전부 마음대로 왔다 갔다하지요? 앞으로 이것을 막는 날에는 세계는 망하는 것입니다. 
(101.331-332, 1978.11.12)
 
인간세계에 참사랑을 완성한다면,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참사랑의 세계에서는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참사랑의 세계는 곧 환희와 이상이 충만한 자유와 평화와 행복의 세계입니다. 참사람의 동위권, 동참권, 상속권에 의해서 기쁨과 행복이 무한히, 그리고 영원히 확산되는 세계가 됩니다. 오늘 세계 인류가 안고 있는 난문제들은 참사랑의 완성으로써만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한 것입니다. 
(229.65, 1998.06.11)
 
장래는 싸움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싸움은 자기를 중심으로 한 쓸모없는 싸움이었습니다. 그것은 서로 빼앗기 위한 싸움이었지만, 통일세계는 하나의 왕권을 세워 가지고 위하여 사는 세계이기 때문에 전쟁은 필요 없는 것입니다. 형제끼리 서로 빼앗을 필요가 없습니다. 너무나 주려고 하니까 도망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부락에 살게 되면 그냥 통과입니다. 하숙같은 것은 부락에서 하는 걸예요 그렇게 되면 아침, 점심, 그리고 저녁밥을 먹을 수 있도록 정성껏 준비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자고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장래는 삼권분립이라는 것도 없어집니다. 법률도 뭣도 없습니다. 사랑의 자치권이 완전히 이루어지면, 법률이 자동적으로 완성됩니다. 위하는 사랑, 그것을 이룩한 곳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상하가 하나가 되고, 전후·좌우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224.173, 1991.11.24)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역사 앞에 답해야 합니다. 크게 화합하고 하나를 이루어야 할 인류가 무엇으로 어떻게 현실을 극복하고, 다가오는 세 천년을 소망속에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개체와 자국의 이익을 넘어서서 위하고 신뢰하며 살아야 할 평화세계를 이루고, 또 이를 지탱할 새 가치관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 과학, 기술의 찬란한 누각 위에서 인본주의의 안경을 끼고 물신의 유혹 아래서가 아니라, 본심의 문을 열고 겸허하게 답을 찾아야 합니다. 땅에서 찾지 못하면 하늘로부터 오는 소리를 통하여 해결을 보아야 합니다.
(279.212, 1996.08.20)
 
본인은 오늘 이 귀한 하나님의 섭리역사적 완성의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하나님과 인류의 섭리적 최후의 목적인 평화천국 창건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조국과 본향의 창설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조국과 본향의 창설을 위해 실로 섭리적이고도 혁명적인 프로젝트를 선포하고자 합니다.
 
역사적으로 사탄에 의해 동과 서를, 남과 북을 갈라 놓았고, 지리적으로 북미대륙과 러시아 대륙을 갈라 놓은 베링해협에 교량을 건설하거나 해저를 터널을 뚤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프리카의 희망봉으로부터 칠레의 산티아고까지, 영국의 런던에서 미국의 뉴욕까지 자동차로 전 세계를 순회 질수할 수 있게 될 ‘세계초고속도로’를 연결해줄 ‘WORLD PEACE KING BRIDGE and TUNNEL'을 완성하고, 세계를 일일생활권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더 이상 분단과 분열은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 하늘의 경고입니다. 전 세계를 하루의 생활권으로 묶어 사탄이 만들어 놓은 인종, 문화, 종교, 국가의 벽을 헐어내고, 하나님이 그렇게도 소원해 오신 평화의 이상세계왕국을 지구성에 창건하자는 것입니다.
 
미국과 러시아가 하나되고, 유럽 대륙, 중국, 인도, 일본, 브라질 등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그리고 모든 종교들이 하나가 되어 함께 힘을 모아 이 역사적인 프로젝트를 성공시켜야 할 것입니다. 이 사업의 성공이야말로 인류에게 더 이상 전생과 분단이 필요 없는 평하이상세계왕국을 창건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평화신경, 평화메시지 1:30-31, 2005.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