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제20장 사회
사회의 토대로서 가정
사회는 각 가정들이 세포의 역할을 하는 하나의 유기체이다. 각 세포인 가정이 건강해야 그 세포들이 모인 사회도 건강해진다. 반대로 가족이 파괴되면 사회도 마찬가지로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최근 가족해체의 확장은 국가의 미래에 우려되는 걱정거리다.
그러나 ‘가정 가치’를 가정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다. “나의 가정은 나의 성채다”라는 태도는 또 하나의 이기주의가 될 수 밖에 없다. ‘사랑의 수련장’ (제19장 ‘삶의 기본 형태’ 참조)인 가정에서 배우는 교훈은 모든 수준의 사회조직에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교윤리는 효도의 규범을 사회봉사를 위한 기초 윤리로 본다. 즉, 가정에서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이 나라에 봉사하는 훈련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형제, 부모, 그리고 자식에 대한 사랑이 우리와 동년배, 우리의 보모와 같은 세대, 우리의 자식과 같은 세대의 이웃들을 생각하는 사랑으로 확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로써 각 가정에서 사랑의 관계가 인류 대가족을 포괄하도록 확장되는 것이다.
1. 건강한 가정이 튼튼한 국가를 형성함
종교 경전
도는 가까운 곳에 있지만 먼 곳에서 찾으며, 일은 쉽지만 어려운 데서 찾는다. 사람마다 각기 그 어버이를 친하게 하고 그 어른을 어른으로 섬기면 천하가 태평해질 것이다.
맹자 IV.A.11(유교)
가정이 파괴되면 고대의 법도가 무너진다. 가정과 법도가 무너짐으로써 삶의 영적 토대가 상실되며, 가정에는 일체감이 사라진다. 일체감이 없는 곳에서는 여인들이 타락하며, 여인들이 타락하면 사회가 무질서에 빠지게 된다. 사회적인 무질서는 가정에 대하여 지옥이며 가정을 파괴한 자들에 대해서도 또한 지옥이다.
바가바드기타 1.40-42 (힌두교)
말씀 선집
인류가 하나 되기 위한 가장 튼튼한 기초는 바로 참가정 이상에서 비롯되는 보편적이요 핵심적인 참사랑이라는 것이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330.252. 2000.08.18)
가정교육은 그 나라가 금후에 복 받을 수 있는 운명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한 공적인 법리에 의해서 살고 있는 가정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나라는 흥하는 것이요, 사적인 기준에서 사는 가정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나라는 망하는 것입니다.
(31.243.1970.0604)
현대사회에서 청소년 문제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를 잘 갖지 못한 데에서, 형제를 잘 갖지 못한 데에서, 남녀관계에서 결여된 사정들이 원인이 되어 그런 결과를 자아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이 모든 병폐를 시정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 이것 역시 가정에 있습니다.
(23.13, 1969.01.11)
오늘날 청소년 문제라든가 모든 사회 문제들의 내용을 파헤쳐 보면, 그 연유가 전부 거기에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부모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있긴 있는데, 부모의 마음이 아들딸의 마음 깊이에 있지 않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부모의 정이 자식들의 뼛골에 깊이 다져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서부터 부모 자식 간에 틈이 벌어집니다.
(25.60, 1969.09.28)
세계에서 인류를 괴롭힐 가장 큰 문제는 본인이 통찰한 바로는 바로 가정의 가치를 파괴하는 불륜과 퇴폐의 문제입니다. 도덕적 퇴폐야말로 인류를 고통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원죄인 것입니다. 미래의 세계는 가정의 순결을 보존하고 가정의 가치를 수호하는 도덕률이 자리 잡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288.140, 1997.11.26)
미국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문제가 혼란된 로마는 싸우지 않고 그 자체의 부패로 망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미국도 망하고 있습니다. 오래 안 가는 것입니다. 지금 제일 혼란합니다. 문명국인 미국이 성에 대해서 엉망진창이고, 저개발 국가에서도 엉망진창입니다. 그 질서를 못 세우는 날에는 인류의 희망의 세계, 행복의 세계, 이상의 세계는 없습니다.
(118.296,1982.06.20)
2. 가정 덕목은 사회 덕목의 토대
종교 경전
내 어른을 공경하여 남의 어른을 공경하는 데에까지 미치며, 내 어린이를 사랑하여 남의 어린이를 사랑하는 데에까지 미친다면, 천하를 손바닥 위에 놓고 움직일 수 있다. 시경에 이르길, “나의 아내에게 모범이 되어서 형제까지 이르게 하여 집과 나라를 다스린다”고 하였는데, 말하자면 이 마음을 들어 저들까지 더할 뿐임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은혜를 펴 나가면 족히 사해를 보전할 수 있고, 은혜를 펴 나가지 못한다면 처자도 보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옛 사람이 지금 사람보다 크게 뛰어난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 그 하는 바를 잘 펴 나갔을 뿐이다.
맹자 I.A.7(유교)
나이 많은 남자를 나무라지 말고, 아버지를 대하듯이 권면하십시오. 젊은 남자는 형제를 대하듯이 권면하십시오.
나이 많은 여자는 어머니를 대하듯이 권면하고, 젊은 여자는 자매를 대하듯이 아주 순결한 마음으로 권면하십시오.
디모데전서 5.1-2 (기독교)
연로한 여인은 그대의 어머니처럼 대하라. 그대보다 나이 많은 여인은 누나처럼 대하라. 그대보다 나이 어린 여인은 누이동생처럼 대하라. 어린아이들은 그대의 자녀처럼 대하라. 그들을 구제할 생각을 해야 하며, 나쁜 생각으로 끝내지 마라.
사십이장경 29 (불교)
부모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조상에 대한 존경이 생겼다. 조상에 대한 존경으로부터 가정의 우두머리에 대한 존경과 정중함이 생겼다. 우두머리에게 보이는 존경과 정중함에 의해서 그 가문의 모든 구성원들이 통합되었다. 그들의 통합을 통해서 사당의 위험이 생겼다. 그 위험으로부터 땅과 곡식의 제단에 부속된 중요성이 생겼다.
그 중요함으로부터 만백성에 대한 사랑이 생겨났다. 그 사람으로부터 형벌의 올바른 시행이 생겼다. 그 시행으로부터 사람들은 평안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 평온함을 통하여, 소비하기 위한 모든 물자들이 충분해졌다. 이들의 충분함을 통하여 모든 원하는 것이 실현되었다. 그 실현이 모든 예법, 예절의 관례와 훌륭한 관습들을 이끌었고, 이것들로부터 결국 모든 행복과 기쁨이 생겼다.
예기, 대전(유교)
효란 하늘의 법칙이며, 땅의 올바름이며,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늘과 땅의 변하지 않는 상도(常道)이므로 백성들은 효도를 행위의 준칙으로 삼아야 한다. 성인은 하늘의 해와 달의(만물을 밝게 비추어 주는)빛남을 본받고, 땅이(만물을 배양하고) 산출하는 이로움을 따름으로써, 천하의 사람들을 가르쳐 이끄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가르침은 엄숙하지 않지만 완성되고, 그 정치는 엄격하지 않지만 완전하게 다스려진다.
효경7(유교)
말씀 선집
인간은 자기 부모를 사랑하듯이 이웃 동네의 부모를 사랑하고, 자기 할아버지를 사랑하듯이 이웃 동네 할아버지를 사랑해야 되고, 자기 아들딸을 사랑하듯이 이웃 동네의 아들딸들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서 상하 관계가 벌어지고, 좌우가 벌어지고 전후관계가 거기서 벌어집니다. 그것이 벌어져야 이 종적인 심정의 기준이 자리 잡아 가지고 천도가 생기는 것입니다.
(70.152, 1974.02.09)
나가 싸울 때는 부모의 자격으로 싸워야 합니다. 즉 싸우는 상대가 원수라 할지라도 궁극적인 의미에서는 자기 자식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표어가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종의 몸을 쓰고,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자’입니다. 그래야만 완전히 복귀됩니다.
(17.338-339, 1967.04.30)
내 부모는 선생 대신이요, 친구 대신이요, 모든 사랑을 주시는 주체 대신입니다. 그래서 인류를 대신할 수 잇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느냐? 인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앞에 효도해야 되는 것이 역사적인 결론을 가진 이론입니다.
(105.108, 1979.09.30)
참된 부모는 효자가 됐으니 충신이 되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다. 참된 부모는 그 효자에게 가정을 희생시켜 충신의 길을 찾아서 나라를 섬겨야 되고 나라를 희생시켜 성인의 도리를 다하여 세계를 위하여야 되고, 세계를 희생시켜서라도 하늘땅이 바라는 길을 가야 ELH고 하늘땅을 희생시켜 하나님을 찾아가야 된다고 가르쳐 주어야 됩니다. 그렇게 되려면 개인은 가정을 위하여 희생해야 됩니다. 가정을 위해서 희생해야 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또, 나라의 애국자가 되려면 그 가정 전체를 희생시켜서라도 나라를 구하여 애국자가 되는 것입니다. 성인이라는 것은 자기 나라를 희생시켜서 세계를 구해야 합니다. 성자는 세계를 희생시켜 하늘나라와 지상천국 천상천국을 이루어야 됩니다.
(287.25, 1997.08.10)
사회의 도덕적 기반
좋은 사회는 영적 도덕적 기반 위에 건설된다. 오늘날 과학적이고 물질적인 시대에 문선명 선생은 현대의 많은 영적 지도자들과 함께 도덕성과 영적 가치가 점점 추락하고 있는 것은 사회적 평화에 불안하게 다가오는 위협이라고 경고하신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경시되고 있는 기본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올바른 시민을 형성하는 도덕과 덕행이다. 둘째, 교육, 특히 젊은이들에게 목적의식과 방향의식을 제시하고 섹스와 마약에 의한 쾌락적인 생활방식을 멀리하게 하는 인격교육이다. 셋째 종교이다.
종교는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통해 전쟁이나 파벌 정친인의 자기 이익 극대화 태도를 진정시킬 수 있다. 그리고 종교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림으로써 국가를 위해 하나님의 축복을 주선할 수 있다. 특히, 미국에서 건국의 선도들은 미국의 자유를 확보하고 번영을 유지하기 위해 도덕과 종교의 역할을 분명하게 밝혔다. 미국에서 오랜 목회활동 과정에서 문선명 선생은 자주 미국이 하나님으로 돌아갈 것과 하나님의 뜻을 존중할 것을 권고하였다.
1. 도덕의 기반
종교 경전
세상은 자기의 감정을 제어할 줄 아는 자들, 그리고 올바른 실천수행을 통하여 욕망과 탐욕과 분노에 더럽혀지지 않는 자들에 의하여 지탱되느니라.
비슈누 푸라나3.12(힌두교)
그들의 생각과 행동의 바탕이 경건함과 신앙심, 진리와 정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어느 개인도 손해를 입지 아니할 것이고, 어느 국가도 번영과 성공이 거부되지 아니하리라.
나흐줄 발라가, 설교 21 (시아파 이슬람)
세계는 세 가지 위에 서 있다. :법, 하늘 향한 경배, 타인 향한 호의,
미슈나, 아보스 1.2(유대교)
힘으로써 남을 굴복시킨 자에게는(상대방이) 마음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복종하고, 덕으로써 남을 굴복시킨 자에게는 속마음으로 기뻐해서 진실로 복종한다.
맹자 II.A.3(유교)
몸이 닦인 후에 집안이 안락해지고, 집안이 안락해진 후에 나라가 다스려지며, 나라가 다스려진 후에 천하가 태평해진다.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모두가 몸을 닦는 일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그 근본이 어지러운 데도 그 말단이 잘 다스려지는 일은 없다.
대학(유교)
너희 중에는 선으로 초대하고 옳은 것을 권하고, 악을 멀리하는 집단이 있으니 그들은 번성하리라.
꾸란 3.104(이슬람)
시경에 이르기를 “그의 덕을 드러내지 않지만 모든 제후들이 본받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군자는 공손함을 독실함으로써 천하를 태평하게 한다.
중용33(유교)
말씀 선집
성경에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5:22)를 말하였습니다. 이 성령의 아홉 가지 성품, 이것은 하나님이 주장하고 하나님이 건설하고 하나님이 세우려 하시는 그 나라의 표준이요, 그 사회의 제도요, 생활의 이념인데 이것을 여러분은 몸 마음에 사무치게 느껴 본 적이 있습니까?
(4.112, 1958.03.16)
나라에 충성하는 충신은 대번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정에서부터, 개인의 심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 자체의 인격심성과 그 가정의 교육을 중심한 가정생활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회활동을 거쳐 그 국가의 국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반을 바탕으로 하여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자리에 서야지, 그런 기반이 없으면 간신 모리배밖에 될 수 없습니다.
(34.19-20, 1970.08.29)
평화와 인간의 행복은 사람들의 도덕성과 영성 개발에 달려 있습니다. 세계평화나 화평한 나라도 그 구성원 개개인과 가정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과학과 기술도 선한 사람들에 의해서 응용될 때 그것이 인류의 생활 향상을 위해서 의롭게 쓰일 수 있습니다.
역사를 통해서도 성현들이나 큰 스승들이 평화롭고 행복한 세계를 위해 가정, 사회, 국가를 지도하는데 그들 자신들을 바쳐 왔습니다. 우리는 21세기에 도전하기 위해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완벽한 지도자를 키워 낼 수 있는 인류의 참부모, 참스승, 참주인을 필요로 합니다.
(271.74, 1995.08.22)
공의주의는 참사랑을 중심한 보편적인 유닐 도덕을 지키며, 구성원 모두가 선과 의의 생활을 추구하는 주의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에 의한 절대가치 아래 만민이 윤리 도덕을 보편적으로 실천하는 도의사회를 지향하는 이상이 되겠습니다.
이상세계는 이상가정과 완성한 인간을 전제합니다. 참사랑에 의한 이상적인 부모, 이상적인 부부, 이상적인 자녀의 통일적인 조화가 이상가정의 요건이 됩니다. 또한 완성한 사람은 참사랑에 의해서 심신이 조화 통일을 이룬 사람이 됩니다. 이렇게 완성한 사람들이 참사랑의 기지인 가정생활, 또 그 확대인 사회생활에서 자율적으로 선과 의를 행하는 최고의 사랑의 세계, 도의세계가 이상세계입니다.
(271.78, 1995.08.22)
2. 교육의 기반
종교 경전
교육 시찰 중이던 랍비 아시와 아미는 한 마을에 들러, 그 마을의 수호자를 만나자고 요청했다. 마을 의원들이 자신들이 수호자라며 나타나자 랍비가 말했다. “이 사람들은 수호자는 커녕 오히려 마을을 파괴하는 자들이 아닙니까! 마을의 수호자란 청년들의 스승이요, 노인들의 지도자입니다. 시편에도 나와 있습니다. ‘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된 일이다.’ (시편 127.1)
에이하 랍바(유대교)
공자가 위나라에 갈 때 염유가 수레를 몰았다. 공자가 말하길, “백성들이 많기도 하구나!” 하였다. 염유가 “이미 백성들이 많다면 또 무엇을 더하여야 합니까?”하고 묻자, 공자가 “부유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염유가 말하길, “이미(백성들이)부유하다면 또 무엇을 더하여야 합니까?” 하고 묻자, 공자가 “가르쳐야 한다”고 대답하였다.
논어 13.9(유교)
말씀 선집
민주주의 세속적 인본주의를 만들어 하나님을 추방 하였습니다. 인간의 정의의 도리, 성인 성자들이 가르쳐 준 도리를 추방하고 말았습니다. 프리섹스가 무엇입니까? 이 망국지 사탄의 피, 지옥의 늪에 송두리째 빠져 들어가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을 방어해야 할 사명이 통일교회에 있는 것입니다.
(193.306, 1989.10.08)
미래의 세계는 가정의 순결을 보존하고 가정의 가치를 수호하는 도덕률이 자리 잡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세계 각국이 다함께 고민하는 청소년의 퇴폐와, 끈임없는 마약 범죄, 증가하는 가정 파괴와 이혼, 에이즈 창궐, 성범죄 등을 정치권력으로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현재의 학교교육이나 종교적 가르침으로도 해결을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가정의 고민이 해결되지 못하는 사회가 경제적으로 풍요하면 무엇하고 정치적으로 자유로우면 무엇 합니까? 인류는 이제 가정의 가치를 수호하고 고양할 수 있는 가르침과 그 방법을 찾아 내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온 것입니다. 냉전 이후의 시대는 바로 이 가정의 가치를 수호하고 고양해야 할 시대입니다.
(288.140, 1997.11.26)
3. 하나님과 종교의 기반
종교 경전
결국에는 하늘 위한 집회가 열릴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하늘 뜻에 반한 집회는 열리지 못할 것이다.
미슈나, 아보스 4.14(유대교)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일이다.
시편 127.1(기독교)
말씀 선집
저희는 잃어버린 본연의 동산, 잃어버린 아버님의 이념을 찾아서 만물을 주관하고 지켜야 할 자요, 만물과 더불어 사랑의 인연을 맺고 그것을 묶어서 아버지 앞에 돌려드려야 할 자요, 아버지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심정을 통하여 아버지의 사랑의 꽃을 피워 묶어드려야 할 전체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런데 한걸음도 옮겨 놓지 못한 채 깊은 잠 가운데 들어 있는 모든 세계 인류를 깨우쳐 주시어서, 새로운 광명의 아침을 맞아 하늘을 바라보고 다시 눈을 뜰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5.277. 1959.02.15)
향후 세계질서는 정치주권이 도덕적, 영적 가치와 별개로 작용해서는 공익과 평화가 보장되기 어렵습니다.
(359.143. 2001.11.06)
하나님께서는 마음과 몸, 그리고 종교와 정치가 하나 되어서 ‘위하여 살라!’는 원리를 실천하는 나라만을 축복하십니다. 그러나 하늘의 권능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고, 눈먼 정치가들은 아직도 지상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지도자들은 70여 년 동안 하나님 없이 부를 실현하려고 노력하여 왔지만 그들의 나라는 이미 파산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서구 국가들도 경기 후퇴, 범죄, 사회적 부패 등으로 무서운 열병에 걸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제는 종교 지도자들이 눈을 뜨고 그것들의 참된 원인을 발견할 때까지는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234.225. 1992.08.20)
국가 지도자 가운데는 독재자들이 많았습니다.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을 수습할 뿐만 아니라 자기 일족과 일국을 넘어 세계를 자기 뜻대로 전부 다 수습해서 자기의 욕망을 충당하려 했던 정치가들이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배후를 보면 오늘날 이 세계의 모든 국가들은 힘의 정치로써 자기 민족을 이끌어 나왔습니다. 민족을 중심삼은 선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힘이었습니다. 힘을 가지고 약한 사람들을 점령해서 자기 판도권, 소유권을 확장해 나왔던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반해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종교 역사가 있는데 그 종교 역사는 박애주의가 중심 사조입니다. 종교는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 편을 중심삼은 주류이기 때문에 사랑을 말하고, 자비를 말하고 공의를 말하고, 선을 말하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자기 야욕을 확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이익에 부합할 수 있는 자기의 모든 소성을 악한 세계의 영에 투입해 가지고 악한 세계를 하늘 편으로 넘겨 놓자는 것입니다. 그것은 악을 중심삼고 싸우는 세상이 아니라 선을 중심삼고 화평을 도모하고 평화를 도모하고, 요즘에 많이 쓰는 말인 ‘화해의 무드’를 조성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213.7-8, 1991.01.13)
우리는 이러한 위기가 신을 부정한 데서 유래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공산주의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했기 때문에 멸망한 것입니다. 미국도 미국의 정신적 유산을 회복하지 않으면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기독교도 신을 외면할 경우 세계의 몰락을 막을 힘을 잃고 말 것입니다. 철할과 경제, 정치와 예술 등도 신의 의미를 깨달아야 그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세계적 문제의 해결은 ‘신’으로 귀결됩니다. 신의 섭리를 이해하는 것만이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습니다.
(262.234-235. 1994.07.26)
이제 때가 왔습니다! 미국이 다시 한 번 깨어나야 할 때가 왔습니다. 제2의 건국운동을 거국적으로 전개하여 하나님을 중심한 참부모, 참가정, 참국가, 참세계를 찾아야 할 때입니다. 그리하여 떠나시려는 하나님을 다시 모셔와야 합니다.
6천년 동안이나 준비하여 찾아오신 하나님이 미국을 떠나시면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하나님만 바로 모신다면 가정문제, 윤리문제, 청소년문제, 인종문제는 자동적으로 해결됩니다. 오색 인종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는 미국은 지상천국의 모델인 것입니다.
(참가정과 세계평화, p475. 2000.01.22)
애국심과 사회봉사
시민정신, 애국심, 사회봉사 등의 용어들은 가족과 친구의 수준을 넘는 윤리적 행동 범위를 규정한다. 시민들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봉사하고 이웃과 지역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 참여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갖는다면, 그 사회는 각 기능이 잘 발휘된다. 특히 ‘국민의, 국민에 의한’ 정부인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봉사에 대한 태도가 훌륭한 시민의 특성을 결정하는 것이다.
국가가 위험에 직면할 때 애국심은 희생을 발산한다. 애국자들은 자기 자신을 필요하면 자기 생명까지 나라에 봉사하고 희생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성서의 인물 에스더는 자기 생명을 걸고 사람들을 멸망에서 구해 달라고 탄원한다.
시편의 시인은 ‘바빌론의 물가에서’탄식하며 조국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 왕조에 절대적 충성을 맹세한 중세 한국인의 시 한편을 여기에 소개한다. 그 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헌신의 노래로 선용해온 통일주의자에겐 매우 낯익은 것이다.
우리는 국가의 복지를 위해 희생과 헌신의 모범이 되고, 폭정에 맞서 국민을 승리로 이끈, 현대의 애국자들이 만긴 기념비적인 어록을 여기에 보충한다. 그러한 신전의 영웅들 중에서 문선명 선생은 나이어린 소녀로서 한국 독립운동의 불꽃을 지피다가 일본 경찰에게 처형된 유관순을 특별히 치하한다.
문선명 선생은 국가는 국민, 국토, 그리고 주권의 3국면을 지닌다고 언급한다. 많은 경전구절에서 통치 권력에의 복종 강요는 정권유지를 위한 질서와 공동체 안전을 위해 독재자에게조차 끈기 있게 인내하도록 권고하고 있음을 기술한다.
그러나 문선명 선생은 통치자에 대한 충성과 존경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통치하도로고 통치자에게 훈계하고 안내하는 예언자의 의무와 연결시킨다. 그는 애국은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하여 인류와 우주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연대되는 우주적 사랑의 사닥다리에서 하나의 단계라고 가르친다.(제20장 ‘세계 시민’참조). 그는 이러한 사랑을 갈등 반목이 아니라 유대 제휴 속에서 찾을 것을 당부하고, 특히 부모는 젊은이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1. 국가에 봉사하는 시민의 의무
종교 경전
우리 중에 정해진 자리가 없는 자는 아무도 없노라. 실로 우리는 봉사를 위해 잘 정렬되어 있노라.
꾸란 37.164-165 (이슬람)
너의 아들들은 허물어진 옛 터전을 재건하고 오래오래 버려두었던 옛 터를 다시 세우리라. 너는 ‘갈라진 성벽을 수축하는 자’ ‘허물어진 집들을 수리하는 자’라고 불리리라.
이사야 58.12 (기독교)
믿음을 가진 자가 사후에도 보상을 받게 되는 일과 선행은 그가 가르치고 퍼뜨린 지식이며, 그가 유산으로 남긴 꾸란 한 권이며, 그가 지은 모스크이며, 그가 여행자를 위해 지은 집 한 채이며, 그가 흐르게 했던 냇물이며, 그가 생전에 형편이 좋았을 때의 재산으로 배풀었던 희사이니라. 이로 인하여 그는 사후에도 계속해서 보상을 받게 되리라.
이븐 마자흐 하디스(이슬람)
세계의 복지에 기여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라. 사심 없는 행위에 전념함으로써 우리는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성취한다.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복지를 생각하면서 그대 자신이 해야 할 바를 행하라.
아르주나여, 무지한 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한다. 그러나 지혜 있는 자들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복지를 위하여 행동한다.
베가바드기타 3.23-25(힌두교)
말씀선집
하나의 국가에 속하여 살면 그 나라의 국민을 사랑할 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1.336. 1956.12.30)
애국자가 무엇입니까? 나라를 중심삼고, 자기의 오관으로 볼 때에 있어서 염려의 대상이 안 되고 더더욱 좋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나쁜 일이 있으면 내가 책임지고 그것을 전부 다 해결해 주겠다고 할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161.133. 1987.01.18)
말없이 충성하고 말없이 봉사하는 무리는 어떠한 국가나 어떠한 사회나 어떠한 곳에 가더라도 주인이 됩니다.
(5.16. 1958.11.09)
선생님은 언제나 일선에서 살려고 합니다. 고생하고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사는 동네에서 제일 나쁜 곳을 보면 ‘저걸 내가 청소해야 되겠다’ 하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248.154. 1993.08.01)
더 나아가서는 세계에서 제일 힘든 걸 내가 했다 할 수 있어야 돼요. 이걸 나바하면서 하면, 싫어하면서 하면 종으로서 끝나지, 양자의 다리를 놓고 못 올라옵니다. 오늘날 세계의 모든 어려운 것들, 종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어려운 것을 내가 기쁨으로 소화시켜야 됩니다. 그러면 종의 자리에서 양자의 자리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113.111. 1981.05.01)
자기를 위주한 주의나 사상을 가진 자는 망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욕망을 위해서 인명을 헤치고 자기의 욕망을 위해서 나라에 피해를 입혔다 할 때에는 망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개인에게 이용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라에 이용당해야 하는 것이 국가권내에 있는 국민의 도리입니다. 또한 그것이 국민이 가야 할 방향입니다.
인간은 본래 자기 개인만을 우해 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땅 위에는 자기 개인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를 위해서 일을 한다.’고 말합니다. 곧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산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불쌍한 사람입니까? 부모도 형제도 없는 고아와 같습니다. ‘나는 세계의 인류를 위해서 산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24.20-21. 1969.06.22)
인간은 사회적 차원에서, 가정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 우주적 차원에서 하나님을 중심한 희생, 봉사, 진실과, 참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탐욕, 방종, 불신과, 거짓 사랑 등 악의 근거를 제거해야 합니다.
(167.100. 1987.06.30)
2. 왕, 국민, 그리고 국가를 위한 애국자의 희생
종교 경전
바빌론 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눈물 흘렸다. 그 언덕 버드나무 가지 위에 우리의 수금 걸어 놓고서, 우리를 잡아온 그 사람들이 그곳에서 노래하라 청하였지만, 우리를 끌고 온 그 사람들이 기뻐하라고 졸라대면서 “한 가락 시온 노래 불러라”하였지만 우리 어찌 남의 나라 낯선 땅에서 여호와의 노래를 부르랴!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이 말라버릴 것이다. 네 생각 내 기억에서 잊힌다면 내 만일 너보다 더 좋아하는 다른 것이 있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을 것이다.
시편 137.1-6(기독교)
모르드개는 ... 자기 몸에 닥친 일과 하만이 유다인을 학살하고 얼마나 많은 돈을 내탕고에 거둬들이겠다고 장담했는가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유다인을 학살하라고 수사 성에 내붙인 포고문 한 장을 주면서, 에스델에게 보이고 왕 앞에 나아가 겨레를 살려 달라고 애원해 보도록 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왕후께서 내 손에서 자라던 그 비천했던 지난날을 생각해 보시오, 왕국의 제이의 인물인 하만이 우리를 몰살시키라고 왕에게 탄원하였으니, 주님께 기도드리시고 왕에게 간청하여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구해 주시오.”
하닥이 돌아와 모르드개의 말을 에스델에게 전하였다. 그러나 에스델은 하닥을 다시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왕께서 부르시지도 않는데, 궁궐 앞뜰로 어전에 들었다가가는 남자든지 여자든지 사형을 받는 법입니다. 왕께서 금지팡이를 내밀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살아나지 못합니다. 이것은 왕의 신하들은 물론 전국 각 지방의 백성도 다 아는 일입니다. 그런데 왕께서 저를 부르지 아니하신 지 이미 달포나 되었습니다.”
모르드개는 그가 전하는 에스델의 이 말을 듣고 에스델에게 다시 이렇게 이르게 하였다. “궁 안에 있다고 해서 왕후만이 유단인 가운데 홀로 묵숨을 부지하리라 생각 마시오, 이런 때에 왕후께서 끝내 입을 다물고 있으면, 다른 데서라도 구원의 손길이 와서 유다인들 앞에 살 길이 열릴 것이오, 그렇게 되면 왕후는 일가친척들과 함께 망할 줄 아시오. 바로 이런 때에 손을 쓰라고 왕후의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겠소?”
그러자 에스델은 모르드개에게 이렇게 전갈을 보냈다. “빨리 수사에 있는 유다인들을 한자리에 모으십시오. 그리고 저를 생각하고 사흘 동안 밤낮으로 먹지도 마시지도 말고 단식기도를 올려주십시오. 저도 시녀들과 함께 단식기도를 올리겠습니다. 그런 뒤에 법을 어겨서라도 어전에 나가 뵙겠습니다. 그러다가 죽게 되면 기꺼이 죽겠습니다.”
에스더 4.7-16(유대교)
말씀 선집
나라에는 애국심이 필요합니다. 나라가 움직여 나가기 위해서는 사랑이라는 닻줄이 필요한데, 이것을 소위 애국심이라호 합니다. 애국심이 있는 사람은 나라를 버릴 수 없습니다. 갔다가도 또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그 애국심이란 줄이 얼마나 강한지, 불쌍한 민족을 위해서는 큰 성공도 부정하고, 자기가 불행해지는 것을 개의치 않고 그 길을 택해 갈 수도 있습니다. 사랑의 힘이 없으면 그건 불가능합니다.
(175.204. 1988.04.17)
애국자들이 압제 하에서 모든 조건에 대항해 싸워 나왔던 것은 물론 민족을 사랑하고 국토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에게는 승리의 한 날을 바라며 소망하는 마음과 그 승리의 한날이 기필코 올 것을 믿는 강한 마음이 있었던 고로, 그런 압정 하에서도 굴하지 않고 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5.321. 1959.03.01)
어제는 3.1절인데, 유관순 당시 소녀 아니었나요, 열여섯 살 때였으니까? 왜경한테 비참하게 죽은 소녀인데 왜 그녀를 민족이 전부 다 애국자로 추앙합니까? 나라를 위해서 자기의 생명까지 초개와 같이 버렸고, 보다 더 나라를 사랑하려고 했고, 민족을 사랑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어려서부터 죽을 때까지 누구보다도 나라를 사랑했고, 자기 생명을 투입해서 나라를 사랑한 그것이 귀한 것입니다.
(141.293. 1986.03.02)
한 나라에 있어서 어떠한 사람이 애국자입니까? 잘 먹고 호령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말단 자리에서 누더기 옷을 입고 소금국에 보리밥을 먹으며 가난하게 살면서도, 그 보리밥 상을 지나가는 왜국 사람들이 볼까봐 두려워하고 나라의 위신을 생각하며 자기 모습이 드러날까 봐 물래 숨으려고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애국자입니다. 자기 국가의 체면과 위신은 생각지 않고 시기 질투하고 체통 없이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나라를 좀 더 아름답고 가치 있게 드러내려고 애쓰는 사람이 애국자입니다.
(26.136. 1969.10.19)
애국자는 사랑을 중심삼고 주권을 사랑해야 되고, 국토를 사랑해야 되고, 국민을 사랑해야 됩니다. ‘국가’ 하게 되면 주권, 국토, 국민이 있어야 됩니다. 이 3대 요소를 모두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가정을, 일가 자체를 투입해야 됩니다. 일가 자체를 끌어넣어야 됩니다. 모든 가정적 요소가 결합되어서 국가 형성이 벌어지게 됩니다. 가정을 내세우는 사람이 애국한다는 논리는 이 우주에 공인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더 큰 것을 연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207.251. 1990.11.11)
모든 이상의 원점이요, 미래를 향한 영원히 작동하는 참사랑은 청년들에게 생명 이상의 힘이 됩니다. 청년들이 참사랑을 중심한 새로운 국가관을 가질 때 국가는 새로운 발전의 가능성을 찾습니다. 참사랑의 자세를 지님으로 모든 집단들은 상충하는 이해관계의 틀을 뛰어넘어 협력과 조화와 발전의 사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나라를 움직이고 이끄는 원동력은 희생적인 애국 충정의 참사랑으로부터 나옵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많은 애국적 열사들은 참사랑을 중심하고 희생의 생애를 거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288.201. 1997.11.28)
3. 지배권위의 존중
종교경전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으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라. 마가복음12.17(기독교)
제국의 복지를 위해 기도하라. 제국이 고취시키는 공포가 없으면 인간들은 서로를 산채로 잡아먹으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미슈나, 아보스 3.2 (유대교)
술탄은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그림자이니, 잘못을 저지른 그의 종복들은 각자 그를 따라 잘못을 쳐야 하리라. 그가 공정하면 보상을 받을 것이니, 그에게 감사해야 함은 일반 백성의 의무이니라. 그러나 그가 폭정을 일삼으면, 그 짐이 그에게 있나니, 일반 백성들은 인내심을 보여야 하느니라.
바이하키 하디스(이슬람)
사람은 누구나 다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사람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을 거스르는 것이며, 따라서 거스르는 사람은 자기에게 내릴 심판을 각오해야 합니다.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통치자가 두려울 것이 없고, 악을 행하는 자에게만 두려움이 됩니다. 당신이 집권자를 두려워하지 않으려거든 선을 행하시오. 그리하면 그가 당신을 칭찬할 것입니다. 그는 당신의 유익을 위하여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더구나 당신이 악한 일을 행하면 두려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공연히 칼을 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악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해서만이 아니라 또한 양심을 위해서도 복종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세금 바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로서 이 한 가지 임무에만 종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들에게 여러분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국세를 바쳐야 할 자에게는 국세를 바치고, 관세를 바쳐야 할 자에게는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는 두려워하고, 존경할 자를 존경해야 합니다.
로마서 13.1-7(기독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를 하도록 명하지 않는 한 좋든 싫든 정부의 시책을 듣고 따르는 것은 무슬림의 의무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 무슬림은 듣지도 보지도 말아야 한다.
부카리 및 무슬림 하디스(이슬람)
말씀선집
우리 개인은 존중시되고 높이 평가되어야 하며 우주를 대신할 수 있는 가치를 갖고 있는 존재로되, 횡적인 관계를 맺어 가정에 들어가게 되면 가정의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천리원칙이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자기 개인을 하늘땅과 맞먹는 가치로 평할 만큼 귀하다 해도 가정이 있으면 가정을 위해 봉사해야 됩니다. 개인보다는 가정을 위주 해야 하고, 가정보다는 사회를 위주 해야 하며, 사회보다는 국가를 위주 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국가보다도 세계, 세계보다도 하늘, 하늘보다는 하나님을 위주 해야 합니다.
(10.329. 1960.11.27)
나라님을 모시는 데는 부모와 같이 스승과 같이 모셔야 됩니다. 또 부모님을 모시는 데는 스승과 같이 모시고 나라님과 같이 모셔야 됩니다. 또 스승을 모시는 데는 부모와 같이 모시고 나님과 같이 모셔야 됩니다. 이것을 통일교회에서는 3대 주체사상의 사상, 참사랑을 중심삼은 3대 주체사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212.28-29. 1991.01.01)
오늘날 미국 청년들에게 나라를 사랑하라 했을 때 ‘그거 나라 사랑은 어떻게 하는 것이냐?’ 하면서 눈을 껌벅이며 ‘그것 하긴 해야 할 텐데 어떤 것이 나라 사랑하는 거야?’합니다.
거기에 대한 교육을 하는 사람이 없거든요. 집의 어머니 아버지도 전부 다 동물적인 인연밖에 없습니다. 형제도 동물적 인연밖에 없습니다. 전부 다 동물과 같은 사랑, 나아가 동물만큼도 사랑 못하는 그런 단계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니 ‘나라 사랑하는 건 뭐야? 내가 세금 내는 것이 나라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밖에 모릅니다. 관념이 그것밖에 없습니다.
사랑을 어디서 배우겠습니까? 그것을 가정에서 가르쳐야 됩니다. 그러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형제끼리 사랑하는 걸 가르쳐 주고 어머니 아버지 사랑하는 걸 가르쳐 주는 동시에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나라를 이렇게 사랑하니 너희는 나라를 이렇게 사랑해야 된다.’하며 교육해야 됩니다. 그렇게만 가르쳐주면 대번에 ‘아!’ 하며 압니다. 다른 교육이 필요없습니다. 대번에 수긍 합니다.
‘미국에 대한 애국심이 뭣이냐’고 눈을 멀건이 뜨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얘기하면 머리가 쏙 들어갑니다. 뭐 다른 것 필요 없습니다. 그러한 전통을 만들어 놔야 됩니다. 이것을 만들어 놓으면 전부가 없는 데에서도 다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대통령의 말을 아버지의 명령보다 더 높은 명령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 부모를 위하는 것보다 더 크다고 가르쳐 줘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와 나는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게되면 나라에 충성을 하고 나라에 애국하기 위해 서 너와 내가 죽음 길을 같이 가야 한다’는 교육을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하는 사람은 그런 전통을 중심삼고 생각하고 국가적 역사를 바로잡아 나가고 국가적 전통을 남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95.51-52. 1977.10.23)
노동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노동을 통해서 사회에 봉사한다. 인간은 어른이 되어 자기와 가족을 위해 일하면서 인생을 영위한다. 그러나 우리의 노동은 개별적 이익을 얻기 전에 국가 전체의 풍요와 번영으로 연결된다. 더 나아가 노동은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을 우리가 닮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다. 하나님은 노동하는 인간에게 만족하고 노동의 결과를 보고 기뻐하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인간 창조목적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인간은 노동을 함으로써 하나님과 함께 공동 창조자가 되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은 노동윤리에 관한 교육을 받고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사회적 기회를 얻는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어떤 사회도 발전할 수 없다. 종교의 실체적인 기능은 정치적 경제적 성공을 위해 사회 구성원을 격려하고 고무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일터에서 근면, 절약, 신뢰, 책임감과 성실성, 그리고 자기 직업에 대한 애착이다.
어떤 종교 전통은 생산적인 일을 장려하기보다 가난과 청빈 생활을 강조하지만 대부분의 종교 전통은 성직자에까지 성실하게 노동할 것과 자급자족을 장려한다. 대부분의 종교가 세속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생활을 거부함에도 불구하고, 그 이익은 사회봉사, 자선행위나 올바른 예배 등에 적절하게 쓰인다면 그런 삶은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셨다고 높이 평가한다.
1. 모든 일은 신성하며 하늘에 봉사하는 것
종교 경전
아부 후라이야가 이르길, 우리가 사도와 함께 있을 때 한 젊은이가 나타났다. 우리가 말하길, ‘이 젊은이는 그의 젊음, 에너지, 힘을 제물로 바쳐 알라께 경배를 드려야 하리라’ 하였다. 사도께서 우리가 하는 말을 듣고 대답하길, ‘어떤 이가 알라의 방식대로 살해당하거나 그의 부모를 봉양하거나 그의 가족들을 먹여 살리거나 자신이 살기 위해 노력한 것 외에 알라의 방식은 아무것도 없도다. 이것들이 알라의 방식이라.’ 하였다.
알 송요우티 하디스(이슬람)
힘써 일하는 것, 그것이 곧 제사이니라.
비리샤이바 금언 (힌두교)
노동은 위대하다. 노동자에게 영광이 수여된다.
탈무드, 네다림 49b (유대교)
쟁기를 잡고 막대기를 휘두르며 소를 모는 데 여념이 없고, 송아지 이야기밖에 할 줄 모르는 농부가 어떻게 현명해 질 수 있으랴? 그의 머릿속에 이랑을 짓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고, 저녁에는 암소에게 먹이 주는 일로 시간을 다 보낸다.
모든 직공과 기술자는 물론 주야로 일만 하는 자들은 모두 마찬가지다. 도장을 새기는 사람은 새로운 도형을 만드는 데 열중하고 그 도형과 똑 같은 것을 파느라고 부심하며 일을 완성하려고 밤을 새운다. 마찬가지로 대장장이는 모루 옆에 앉아서 이 쇠로 무엇을 만들까를 생각한다. 그의 살은 불길에 화끈 달아 뜨거운 화롯불과 맞싸우듯 한다. 망치 소리에 고막이 터질 듯하고 그의 눈은 모형을 노려본다. 일을 잘 마치려고 심혈을 기울이고 완성품을 내기까지 밤을 새운다.
또 옹기장이는 일터에 앉아서 자기 발로 풀무를 돌리며, 생각은 항상 자기 작품에 집중돼 있고, 동작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한다. 손으로 진흙을 빚으며 발로 반죽을 갠다. 그릇에 윤을 잘 내려고 온 정성을 기울이며 가마를 깨끗이 하느라고 밤을 새운다. 이 사람들은 모두 자기 손재주에 자신을 갖고 있으며, 저마다 자기 일의 특기를 지니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없이는 도시를 건설할 수가 없고 거주민도 없을 것이고 여행자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시의회에 불리지도 않으며 공중 집회에서 윗자리를 차지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재판관 자리에 앉지도 않으며 법률을 잘 알지도 못한다. 그들의 교양이나 판단력은 출중하지 못하고 격언을 만드는 사람들 축에 끼지도 못하지만, 그들 때문에 이 세상은 날로 새롭게 되고 지탱이 된다. 그리고 그들은 오직 자기들이 하는 일이 잘되기를 바랄 뿐이다.
집회서 38.25-34(기독교)
야브네의 랍비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나는 주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저 이웃 소작농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나는 마을에서 일하며, 그는 시골에서 일한다. 나는 내 일을 위해 일찍 일어나고 그도 그의 일을 위해 일찍 일어난다. 그가 나의 일을 무시하지 않는 것처럼 나 또한 그의 일을 무시하지 않는다. 과연 내가 더 많이 일하고 그는 적게 일한다고 할 수 잇겠는가? 우리는 배워왔다. ‘그 사람이 남보다 일을 더 많이 할 수도 적게 할 수도 있다. ; 그러나 그 마음이 언제나 하늘로 향해 있다면 결국은 같은 일이다.’
탈무드, 베라코트 17a(유대교)
모든 자리는 하늘이 임명하신다. 청소부의 일까지도 하늘이 정하신 것이다.
탈무드, 바바 바트라 91b(유대교)
일을 사랑하고 권력을 증오하라.
미슈나, 아보스 1.10(유대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들어라. 나는 유다 지파에서 후르의 손자이며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불러 그에게 신통한 생각을 채워주어, 온갖 일을 멎지게 해내는 지혜와 재간과 지식을 갖추게 하겠다. 그러면 그는 여러 가지를 고안하여 금, 은, 동으로 그것을 만들고 테에박을 보석에 글자를 새기고 나무를 다듬는 온갖 일을 다 잘 해낼 것이다.
이제 내가 그에게 단 지파에 속한 아히사막의 나들 오홀리압을 조수로 붙여주겠다. 그리하면 그들은 너에게 만들라고 명령한 다음과 같은 것을 다 잘 만들 것이다. 만남의 장막과 증거궤와 그 위에 덮을 속죄판과 장막에 딸린 모든 기구, 제사상과 거기에 딸린 모든 기구, 순금 등잔대와 거기에 딸린 모든 기구, 분향단과 번제단과 거기에 딸린 모든 기구, 물두멍과 밑받침, 성별하는 기름과 성소에서 쓸 향기로운 향을 너에게 지시한 그대로 다 만들 것이다.
출애굽기 31.1-7(기독교)
말씀선집
나는 여기서 영생과 참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여기서 하는 무엇이든지, 공장에서 일하고 무엇을 하는 것이 영생을 위한 재료들이라는 것입니다.
(216.127-128, 1991.03.09)
일할 때 왜 있는 정성을 다 하라고 합니까? 일하더라도 건성으로 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심부름꾼이 하는 것입니다. 심부름꾼은 자리 못 잡습니다. 일하더라도 본심을 가지고 이것이 내 절대적 상대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절대적 상대를 창조하는 데에는 투입하고 잊어버려야 합니다. 잊어버려야 나와 더불어 관계를 맺습니다.
(330.117, 200001.14)
경제문제는 언제나 나와 물질의 관계입니다. 장사를 하더라도 그 사업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100이라는 가치가 있게 될 때, 이 물건은 100에 대한 대상의 가치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내가 1000이라는 가치가 있으면 아무리 작은 물건, 조그만 수첩을 하나 대하더라도 이건 몇 푼짜리 안 되는 것이지만 1000에 대한 상대적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훌륭한 사람이 갖고 있던 만년필이라든가 아무 곳에 쓰던 것이 왜 가치가 있느냐? 그 사람의 사랑이 깃들어져 상대적 가치를 지녔기 때문에 귀하다는 것입니다.
(102.126. 1978.11.27)
경제를 중요시 하는 것보다 경제를 중요시 하는 사람을 중요시해야 되고, 물론 과학도 중요시해야 되지만 과학을 중요시 하는 사람을 중요시해야 되고, 예술을 중요시 하는 것보다도 예술을 중요시 하는 사람을 중요시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게 결론지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는 어떻게 됐느냐 하면, 경제를 중심 삼고 볼 때, 경제권 내의 사람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학이면 과학권 내에 있는 사람이 중요시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이 중심이 되었고, 경제가 중심이 되었고 외교가 중심이 되었고, 예술이 중심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무가치하게 돼 버렸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통해서 기술을 보고, 사람을 통해서 경제를 보고, 사람을 통해서 예술을 봐야 할 텐데 지금은 거꾸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99.116. 1978.09.10)
선생님은 노동판에 가면 노동자가 되고 농촌에 가면 농부가 됩니다. 선생님은 못 하는 것이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대중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그런 경험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산에 가서 숯을 굽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광산에 가서 굴을 파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만일 박해를 받아 어쩔 수 없으면 광산에 가서 석탄을 캐는 굴속에서 운동을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 훈련도 되어 있습니다.
(256.100. 1994.03.12)
여러분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있습니까? 이 땅을 위해서 땀을 흘려 본 적이 있습니까? 노동도 해야 됩니다. 공적으로 땀을 흘리는 일도 해야 됩니다. 10리, 20리 길이라도 사람을 구해 주기 위해서 하루에 왔다 갔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철칙을 세워 놓고 거기에 일치하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말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실체와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땀을 얼마나 일본 전국을 위해서 흘렸느냐는 것입니다.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인류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1960년대까지 설교할 때 눈물과 땀을 힐리지 않은 때가 없었습니다. 땀방울을 뚝뚝 흘리면서 통곡할 수 있는 가슴이 터져 버릴 듯한 설교를 했습니다.
(256.146. 1994.03.12)
2. 근면, 열성, 그리고 자조의 덕목
종교 경전
여기서 사람들이 근면을 실천하게 하자. 사람들이 궁핍한 자들을 도와 번영을 누리게 하라.
아베스타, 비스파라드 15.1(조로아스터교)
예배가 끝나거든 각자 대지에 흩어져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라. 하나님을 수시호 염원하는 자는 번성하리라.
꾸란 62.10(이슬람)
게으른 자는 개미에게 가서 그 사는 모습을 보고 지혜를 깨쳐라. 개미는 우두머리도 없고 지휘관이나 감독관이 없어도 여름 동안 양식을 장만하고 추수철에 먹이를 모아들인다.
그런데 너 게으른 자야, 언제까지 잠만 자겠느냐? “조금만 더 자야지, 조금만 더 눈을 붙여야지, 조금만 더 일손을 쉬어야지!” 하겠느냐? 그러면 가난이 부랑배처럼 들이닥치고 빈곤이 거지처럼 달려든다.
잠언 6.6-11(기독교)
눈물은 가난에 대한 대답이 아니다. 배고픈 게으름뱅이는 자신 이외는 어느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게으른 자에게만 성공할 터전이 없다. 오, 신이여! 그 어느 곳도 나에게 적합하지 않는 곳이 없나이다.
요루바족의 격언(아프리카 전통종교)
하던 일을 중도에서 그만두며 언제나 “너무 춥다, 너무 덥다, 너무 늦다!”고 불평하는 이, 그는 호기를 다 놓쳐 버리리라. 그러나 춥고 더운 것을 지푸라기처럼 하찮게 여기며 매사에 끝을 보는 이, 그에게는 행복이 떠나지 않으리라.
디가 니카야 3.185(불교)
일하는 사람은 즐겁게 산다.
집회서 40.18(기독교)
네 손으로 일하여 그것을 먹으니, 그것이 네 복이며 너의 행복이다.
시편128.2(기독교)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게으르지 않았고 아무에게서도 빵을 거져 얻어먹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중 어느 누구에게도 부담이 되지 않게 하려고 수고하며 애서 밤낮으로 일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여러분이 우리를 본받게 하려고 몸소 모범을 보인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고 명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여러분 가운데는 일은 도무지 하지 않고 쓸데없이 일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명하며 또 권합니다. 말없이 일하여 제 힘으로 벌어먹도록 하십시오.
데살로니가후서 3.8-12(기독교)
부러진 곡괭이로 스스로 생산해낸 적은 것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은 많은 것보다 더 좋다.
부지족의 격언(아프리카 전통 종교)
방랑 걸식하며 스스로 거룩한 자라 외치는 이 그의 발아래 절하지 말라!
열심히 일하여 생계를 유지하며 자비의 걸식으로 일부를 구하는 이 나나크, 그와 같은 이가 참으로 신의 길을 아는 이로다.
아디 그란트, 바르 사랑, M.1P.1245(시크교)
궁핍한 이에게 돈을 빌려주는 이가 자선을 베푸는 이보다 더 위대하다. 가난한 자를 도와 사업을 해 스스로 돈을 벌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 어떤 누구 보다도 위대한 사람이다.
탈무드, 샤바트63a(유대교)
친척 가운데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의 재물은 자신의 근면한 노력으로 얻은 것이었으며, 자신의 튼튼한 팔과 땀의 대가로 쌓은 것이었으며, 도리에 어긋나지 않고 정당하게 얻은 것이었다. 그는 ‘부란 근면한 노력으로 얻어지며, 도리에 어긋남이 없이 정당하게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까닭에 축복이 그에게 내려지며, 만족이 그에게 가득하니, 이것을 일러 ‘소유의 축복’이라 한다.
금면하게 노력하여 얻은 재물로써.. 그는 스스로 자신의 부를 즐기며, 또한 이로써 많은 덕행을 쌓았다. 그는 ‘근면하게 노력하여 얻은 재물로써 내가 스스로 나의 부를 즐기며, 또한 이로써 덕행을 쌓는다’고 생각하는 까닭에 축복이 그에게 내려지며 만족이 그에게 가득하니, 이것을 일러 ‘부의 축복’이라 한다.
앙굿타라 니카야2.68(불교)
말씀 선집
‘부자 집안은 다 배짱이같이 먹고 술 먹고 놀고 춤춰라. 나는 개미와 같이 허리가 가늘어지도록 일하겠다. 노래하기 좋아하고 춤추기 좋아하고 농담해서 희롱하기 좋아하는 그런 행동을 어서 계속해라. 나는 땅을 파고 들어가 너희들을 장사할 구덩이를 메우고도 내가 살 수 있는 것까지 만들어 놓겠다.’ 하면 지옥까지 점령하고 천국의 왕이 된다는 것입니다.
(339.146. 2000.12.10)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은 노동판에 가서 하루만 일하게 되게 되면 스트레스가 전부 풀립니다. 스트레스는 생각할 수도 없고, 잠 못 자던 것도 해결 됩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잠 못 자는 그런 사람들이 있을 때는 잡아다가 전부 땅굴 파는 데 데리고 가서 며칠만 일하게 하면 잘 자게 됩니다.
(230.168. 1992.05.01)
재미를 느껴야 됩니다. 농사짓는 것도 재미입니다. 땀을 흘리고 땅 파는 것도 재미입니다. 일생을 이렇게 담 흘려 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짐 지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안 해본 노동이 없습니다. 자연과 화합하고 환경여건의 무엇이든지 나와 더불어 관계를 맺어 그 일에 손을 댈 때는 성공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355.96. 2001.10.03)
여러분들이 일을 하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누가 돈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내 손으로 만들어야 됩니다. 오늘날 세계적인 기반을 전부 내 손으로 닦았습니다. 누가 해준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쫓겨나더라도 섬나라든, 어디에서든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다 죽더라도 나는 산다는 것입니다. 무슨 버섯이 먹을 수 있는 것이고, 약초가 무엇이고 독초가 무엇인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하고 쇠줄만 하나 있으면 낚시를 만들어서 고기를 얼마든지 잡을 수 있습니다. 어디서든지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자립할 수 있는 지혜가 있습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삼십 세 전에 이것을 공식적으로 훈련해야 되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철학입니다.
(117.24-25. 1982.01.30)
내가 못 하는 일이 없습니다. 광산에 가면 광부가가 되고 동발까지 버틸 줄 아는 사람입니다. 반대를 받으면 뜻을 광산에 가서도 이루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산중의 산적과 같은 생활을 하면서라도 도적질 안 하고 산중에서 모든 것을 파먹고 살 수 있는 훈련을 한 것입니다. 먹을 것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바다에 가게 되면 어부 중의 어부입니다. 농촌에 가면 농부 중의 농부입니다. 농사법을 다 잘 압니다. 이 지구성의 어디 가든지 3주일만 되면 맨손 가지고 기반을 닦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273.305. 1995.10.29)
복지 혜택을 받고 잘 되겠다는 사람은 영원히 안 되는 것입니다. 신세를 지면 종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남을 도와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저 나라에 가서 높은 데가는 것입니다. 자기만 위하는 입장에서 신세를 지고 받기를 좋아하고, 주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전부 다 깜깜한 지옥 가는 것입니다.
(248.98. 1993.08.01)
자유
자유에 대한 갈망은 인류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에너지로 분출되었다. 하나님은 이집트에 있는 이스라엘인 노예들에게 하나님의 자유에 대한 사랑을 보여 주셨고 그들을 해방함으로써 모든 곳에 있는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의 본보기로 삼았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인간은 어디에 있을지라도 자유를 갈망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를 존중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그릇된 선택을 해도 그리고 죄를 짓고 비참하게 될지라도 간섭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 존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상적인 대상으로서 완성해야 하는 목표를 지향하도록 자유를 부여하였다. 그래서 자유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참사랑 참된 공동체, 하나님의 나라 등 더 큰 목적을 향한 하난의 수단이다. 더 나아가 자유는 인간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도움이 돌 때에만 유의미하고 유효한 것이다. 죄를 짓는 경우처럼 잘못 사용된 자유는 노예상태로 이끌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면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선한 방향으로 안내할 내적 나침반으로 양심을 주었다. 그리고 모든 자녀에게 그들로 하여금 자유를 적절하게 사용하도록 교육하고 사랑할 수 있는 부모를 보내주었다. 자유를 둘러싼 논쟁들은 주로 민주주의에 기초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세속적 민주주의의 자유에 대한 관념의 비판, 특히 천주교 교회의 비판은 자유에 대한 과도한 가치 부여와 서양 민주사회에서 널리 퍼진 남용에 대한 문선명 선생의 일부 부정적인 판단에 공명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은 자유롭지 않고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해방이 필요한 본이라는 문선명 선생의 독특한 가르침을 묘사하고 있는 몇몇 구절을 포함시킬 것이다.
1. 하나님과 그의 창조에서 구현된 자유의 초석
종교 경전
주님은 영이십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3.17(기독교)
여호와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나는 내 백성이 이집트에서 고생하는 것을 보았고, 억압을 받으며 괴로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나 이제 내려가서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그 땅에서 이끌어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답고 넓은 땅, 가나안족과 헷족과 아모리족과 브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땅으로 데려가고자 한다.
출애굽기 3.7-8(기독교)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레위기 25.10(기독교)
주 여호와의 영을 내려주시며 여호와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고 나를 보내시며 이르셨다. ‘억눌린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라. 찢긴 마음을 싸매주고, 포로들에게 해방을 알려라. 옥에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여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반겨주실 해, 우리 하나님께서 원수 갚으실 날이 이르렀다고 선포하여라. 슬퍼하는 모든 사람을 위로하여라.
이사야 61.1-2(기독교)
오, 믿는 자들이여! 너희의 영혼을 지켜라.
꾸란 5.105(이슬람)
진리를 알게 될 것이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복음 8.32(기독교)
우리 고향과 우리 영토에서 자기 결단 저의, 자유, 그리고 평화에 대한 우리의 요구는 ..
백인 형제들이 바다를 건너 들어오기 전에 우리가 즐겼던 것의 갱신이다. 우리는 위대한 평화의 법, 곧 ‘가이 에네샤 고 나’ 아래 만족스럽게 살았다. 우리는 평화, 평등,정의, 선한 마음의 힘의 원리에 기초한 사회를 만들도록 교육되었다.
우리 사회는 사람들의 권위에 대한 위대한 민주적 원리와 남녀에 대한 동등한 책임에 기초하고 있다. 이것이 이 거대한 거북이 섬을 가로지르는 생활의 대도였다. 존중을 수반하는 자유는 모든 곳에 있다. 우리의 지도자는 비전을 지닌 사람이 되도록, 그리고 모든 결정에서는 미래의 일곱 세대를 대신하여 판단하도록 배웠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저 세대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가지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생존케 하는 모든 것에 감사하도록 배웠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계의 생명을 주는 힘에 대한 큼 감사제를 만들었다. 우리가 이 의식을 치르는 한 생명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씨앗이 법’이라고 들었다. 실로 그것은 생명의 법이다. 그것은 ‘재생의 법’이다. 씨앗 속에 생명과 창조의 신비로운 힘이 들어 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저 씨앗을 양육하고 보호한다. 이에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들을 존중하고 사랑한다. 우리가 우리의 어머니 대지를 사랑하는 것과 똑 같은 영적인 노력과 신비로움으로.
오렌 리온스 추장(미주 원주민 종교)
말씀 선집
자유는 실로 창조주로부터 받은 가장 귀중한 선물 중의 하나입니다. 인간은 자유로운 정신적 존재로 청조되었습니다.
(133.289. 1984.11.19)
지금 이 세계의 인류는 자유를 누리는 개인이 되어, 자유의 사회, 자유의 나라, 자유의 세계에서 살기를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 평화가 없고, 내 마음에 자유가 없고서는 진정한 행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자유를 부르짖고 있으나 심정에서 우러나 살 수 있는 자유스러운 환경이 못 되어 있음을 시인하고 있습니다.
(7.14-15. 1959.07.05)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자유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에게도 이 자유를 추구하는 본성만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자유를 복귀하는 섭리를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역사가 흐를수록 인간이 자기의 생명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자유를 찾으려는 심정이 고조되어 가는 것은 인간이 사탄으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이 자유를 복귀해 나아가고 있는 증거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유를 찾는 목적은, 자유의지에 의한 자유행동으로 원리적인 책임과 실적을 세워서 창조목적을 완성하는 데 있는 것이다.
(원리강론, 타락론5.2)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어서 못하시는 일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능력 많으신 하나님이라 해도 하나님의 심정을 헤치고 들어가 그 마음이 과연 자유한 입장에 있는가라고 묻게 될 때, 저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또 하나님의 본심은 소망에 찬 섭리를 앞에 놓고 해방의 기쁨 가운데 계시는가 하고 묻게 될 때, 이도 역시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자유롭게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 본성이요, 본연의 심정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해방된 입장에서 만 우주를 주관해야 할 아버지이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슬픔이요, 온 피조만상의 슬픔이요, 역사상의 슬픔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아직까지도 하나님도 자유스런 입장에 계시지 못하고, 해방의 자리에 계시지 못하고 통일된 위치에 계시지 못한 연고로, 오늘날 이 땅에서 자유를 부르짖고 있으되 그 자유는 우리가 누려야 할 참된 자유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유와 해방과 통일의 기준이라는 것을 우리는 논리적인 견지에서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4.315-317. 1958.10.12)
사랑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자유의 기원을 설정하지 않고는 이상적 기원은 없는 것이고, 이상적 기원이 없고서는 이상적 세계의 완성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에게는 모든 것이 자유입니다. 또 사랑하는 아내한테는 남편이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자유입니다. 얼마만큼 자유냐? 가슴을 내밀고 남편을 찾아가도 되고, 발가벗고 가서 무슨 짓을 해도 괜찮습니다. 그 이상 자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여자가 벗는 것이 자유 때문에 벗는 것입니까, 사랑 때문에 벗는 것입니까? 사랑 때문에 벗는 것입니다. 자유는 어떻습니까? 사랑을 중심삼고 자유라는 것입니다.
(203.10. 1990.06.10)
이 자연의 보호 가운데서 나 자신이 잘 살 수 있는 길은 가는 것이 최고 자유의 길이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주의 법 가운데 보호를 받고, 거기에 상충되지 않게 나 자신이 모순 없이 갈 때, 거기 그 자리에서 자유가 보장된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117.290-291. 1982.04.11)
우리가 자유를 찾기 위해 나선 우리의 심중을 더듬어서 판단해 볼 때, 과연 우리의 마음에, 이 모든 만상 앞에 화할 수 있는 자유의 심정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유하심의 입장에 선다면, 우리의 그런 자유의 심정은 온 천하 만민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그런 기준이 될 것입니다.
(4.318. 1958.10.12)
지금까지 민주주의는 ‘인간의 자유’와 ‘인간의 해방’을 주장하여 왔습니다. 이에 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자유’와 ‘하나님의 해방’을 주장해야 합니다. 이 문제만 해결한다면, 인간 해방은 물론 인간의 자유 회복은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344.54. 2001.03.01)
2. 도덕법에 따라 자아를 주관할 때 자유를 향유함.
종교 경전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죄를 짓는 사람은 다 죄의 종이다.
요한복음 8.34(기독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갈라디아서 5.1(기독교)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자유를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구실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갈라디아서 5.13(기독교)
쾌락의 추구는 고통을 불러들일 뿐이며,
사악한 욕망으로 목에 쇠사슬을 채울 뿐이라.
그릇된 쾌락을 쫓아가는 그대여,
해방은 다만 신의 사랑으로 이루어진다네.
아디 그란트, 가우리 아슈트파디, M.1.P.222(시크교)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고 해서, 마음놓고 죄를 짓자는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자기를 누구에게나 종으로 내맡겨서 복종하게 하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복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 되는 것임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죽음에 이르는 죄의 종이 되거나, 아니면 의로움에 이르는 순종의 종이 되거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할 일은, 여러분이 전에는 죄의 종이었으나 이제 여러분은 전해 받은 교훈의 본에 마음으로부터 순종함으로써 죄에서 해방을 받아서 의의 종이 된 것입니다.
로마서 6.15-18(기독교)
말씀 선집
자유는 실로 창조주로부터 받은 가장 귀중한 선물 중의 하나입니다. 인간은 자유로운 정신적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됨과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책임도 부여받은 것입니다. 자유는 자기 규율과 자기 억제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자유는 법칙을 떠나 존재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스스로 창조목적을 정하고 정신적 법칙을 정하셨습니다. .. 우리들은 창조주가 정한 인간의 근본적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이 땅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적 행복은 인간이 하나님이 정하신 도덕률을 따라서 개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함으로써 증진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이 법칙을 위반하면 자연의 법칙을 위반할 때와 마찬가지로 자기의 파멸을 초래하고 마는 것입니다.
(133.289-290. 1984.11.19)
하나님이 허락한 참된 자유는 책임성을 전제로 합니다. 만일 책임성이 없이 개개인이 사랑의 자유만 주장하고 실천한다면 얼마나 큰 혼란과 파국이 오겠습니까? 지고한 사랑이상을 이룰 인간의 완성은 사랑에 대한 책임성을 지닐 때 가능한 것입니다.
(277.201. 1996.04.16)
사랑으로써 완전히 점령하는 데서 자유가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몸뚱이가 자유로이 행동하려면 참된 사랑에 속하지 않고는 안 됩니다. 미국의 자유에 대한 관념이 얼마나 엉터리 같은가를 알아야 됩니다. 역사 이래 제일 어려운 존재가 자기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게 무자비해라 이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되지 않고는 자유가 없습니다.
(203.23-24. 1990.06.10)
미국 국민이 자랑할 수 있는 참된 사랑이 있습니까? 미국인의 사랑이 어떠한 것입니까? 그것은 쓰레기 같은 사랑입니다. 자유세계를 전부 다 망친 것은 미국 사람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미국 사람한테서 자유라는 말은 치워 버려야 됩니다. 자기 혼자 좋다고 향락 중의 향락을 찾아가는데, 자기 아들딸이 울고 여편네가 울고 자기 일가가 우는데도 그것이 행복의 길입니까?
자유를 찾기 전에 사랑을 찾아야 됩니다. 자유를 찾으려 하지 말고 참된 사랑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을 찾으면 자유는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사랑이 진짜 자유를 갖다 주는 것입니다. (203.12-13. 1990.06.10)
참된 자유에 대해 논의해 본다면, 원칙을 떠난 자유는 참된 자유가 아니고, 책임을 벗어난 자유는 참된 자유가 아니며, 실적을 남겨 놓지 않는 자유는 참된 자유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자유행동이든지 원칙을 벗어나서는 안 되고, 책임을 져야 하며, 그 행동의 실적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조건을 구비하지 못한 자리에서 자유하려고 한다면, 자연히 천륜과는 먼 거리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인식하여야 되겠습니다.
(4.318-319. 1958.10.12)
3. 개인주의 떠나 사회적 연대를 요구하는 자유
말씀 선집
위하고 받드는 거기서는 모든 것이 해방입니다. 위해서 살면 자기도 해방 받지만 위하는 자체가 해방이 됩니다. 그래서 위해서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323.73. 2000.05.31)
여러분들이 요전에 ‘자유’ 하던데 자유가 무엇입니까? 자유는 자기 주장하는 것입니다. 자기 주장하는 데 있어서 제일 방패가 되는 것이 자유입니다. 열 사람이 자유를 주장하게 되면 각각 성격이 다르고 취미가 다르니만큼 열 사람의 경계선이 생겨난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 서구사회가 자유 때문에 전부 다 망해 버리고 있습니다.
오늘날 자유세계가 자유를 주장하는데, 여러분 자유라는 말을 참 무섭게 알아야 됩니다. 자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이 세계 위에 올라가서 ‘자유’ 하게 되면 그건 누구나 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밑에서 개인 중심삼고 자유가 어디 있느냐 말입니다.
(107.272-274. 1980.06.01)
보다 차원 높은 질서를 완전히 유지하기 위한 주장에서 자유가 나왔지, 질서를 파탄시키고 체제를 파괴시키기 위해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우리들이 제일이다.! 먹고 춤추고 록뮤직을 즐기고, 디스코 댄스 하는 것이 제일이다.’ 이렇게 합니다. 사회와 국가와 제도를 전부 다 파탄시키고 무시해 버리고, 질서를 파탄시키는 것이 자유입니까? 그것은 방종이요, 파괴적인 악마의 조작법이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116.102-103. 1981.12.27)
자유스러우면 자유스러울수록 그 세계는 질서와 규약이 지켜져야 되는 것입니다. 정밀한 기계면 기계일수록 종횡으로 원리원칙에 의한 질서대로 법칙적인 궤도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법칙에 따르게 될 때 자유로운 활동의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과학문명과 사회제도를 중심삼고 볼 때에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사회의 구조도 자유로운 형태를 요하고 있습니다.
인간만 자유를 요하고 사회제도는 자유를 요하지 않습니까? 사회제도는 인간과 상응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제도가 조직과 체계의 규제 밑에서 형성되었으면 인간은 그 체계화된 제도에 응하고 거기에 대빌 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주체적인 입장에서 도리어 보장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할 인간이라는 입장에서 보게 된다면 자유는 있을 수 없습니다.
가는 데에는 반드시 길이 설정되어야 합니다. 방향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자유주의 사상은 무방향적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데 방향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방향 없는 마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사고방식은 멸망의 사고방식입니다.
(49.190-193. 1971.10.10)
그들에게 최후로 남아지는 것은 무엇인가. 고독이 남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고독이 극치에 달하는 경지에 들어가게 될 때에는 너도 믿지 못하고 나도 믿지 못하는 불신의 자신들이 됩니다. 그리고 고독과 불신의 자신이 될 때 우주적인 공포가 휩쓸게 될 것이고, 결국에는 자멸을 초래하고 말것입니다. 오늘날의 역사는 이런 추세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자유를 부르짖으려면, 과거에 부르짖던 자유나 오늘날 부르짖고 있는 무책임한 자유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의 이념이 동반된 참된 자유를 부르짖어야 되겠고, 이념적인 동시에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자유를 부르짖어야 되겠습니다.
(4.319-320. 1958.10.12)
평등
모든 종교경전은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흑인이나 백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동양인이나 서양인이나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이 고귀한 이상은 실제와 거의 다르다. 우리의 제한된 문화적 시각에서 이질적 민족을 차별하고 편견을 갖고 상대하는 경향이 있다. 평등원칙을 선언하는 민주사회에서도 인종적 문화적 차별은 아직도 팽배해 있다.
평등의 기초는 무엇일까? 첫째, 평등의 기초는 아브라함 종교 신앙인은 모두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다는 점, 아담과 해와를 부모로 여긴다는 것이다. 둘째,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윤리적 법적 규정이다. 셋째, 인종이나 계급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똑같이 깨달음과 자아실현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선명 선생의 관점에 의하면 이것들은 참다운 평등을 이루기 위한 충분조건이 아니다. 문 선생님은 참된 평등은 하나님 사랑과 이타적 삶에 근거한 실천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사상, 인종, 문화를 연결하는 최선의 방책은 모든 편견을 사랑의 불꽃으로 불태울 수 있는 초인종적 초문화적 축복결혼이라고 주장하신다.
1. 공통 부모, 공통 인류, 그리고 신적 가능성에 의한 평등의 토대
종교 경전
우리의 조상은 한 분이 아니시냐? 우리를 내신 하나님도 한 분이 아니시냐?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는 서로 배신하여 우리 조상이 맺은 계약을 깨뜨리느냐?
말라기 2.10 (기독교)
오, 인간들이여! 한 영혼으로부터 너희를 창조하신 너희의 주님을 경외하라. 그것으로 배우자를 창조하시고 그 둘로 많은 남자와 여자를 퍼트리셨노라.
꾸란 4.1 (무슬림)
인간들 중에 오직 한 사람(아담)만이 평화를 위해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누구도 “우리 아버지가 너의 아버지보다 위대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미슈나, 산헤드린4.5(유대교)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예수 안에서 다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3.28(기독교)
나에게 모든 존재들은 평등하다. 나에게는 덜 사랑스런자도 없고 더 사랑스런 자도 없다.
바가바드기타 9.29(힌두교)
높은 산에서 살고 있거나 골짜기에서
살고 있거나 같이 혼인하는 거야.
친필 13.45(천리교)
공자가 말하였다. “가르침이 있으면 종류가 없다.”
논어 15.38(유교)
나를 귀의처로 삼는 모든 사람들은 태생, 종족, 성 또는 카스트에 관계없이 지고의 목적을 얻을 것이다. 이와 같은 실현은 심지어 사회가 멸시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얻어질 수 있다.
바가바드기타 9.32-33
바라문 여인의 태에서 태어나고 바라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이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는다.
자신의 소유물에 얽매여 있는 자 그는 다른 사람들을 ‘어르신’이라 불러야 한다.
그러나 아무데도 걸림이 없고 자신에 대한 집착을 여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법구경 396(불교)
조사(홍인)가 혜능에게 물었다. “자네는 쾅퉁 사람, 즉 야만인인데 어찌 붓다가 되기를 기대할 수 있는가?” 혜능이 대답했다. “비록 사람의 출신으로는 남쪽 사람 북쪽 사람의 구분이 있지만, 불성에는 남북의 구분이 없습니다. 비록 야만인의 몸인 저와 화상의 신분은 같지 않습니다만, 우리의 불성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육조단경 1(불교)
말씀 선집
여러분들 말입니다. 미국 사람이나 영국 사람이나 독일 사람이나, 흑인이나 백인이나 황인이나 모두 다 하나입니다. 하나, 완전히 하나입니다.
(132.130. 1984.05.27)
누구나 동등하게 하나님의 사랑에 동참할 수 있는 그러한 길이 있기를 바랐는데, 그러한 길이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이겁니다.
(97.266. 1978.03.19)
사람은 잘났든 못났든 그 어머니가 낳고서 같은 미역국밥을 먹고 같은 사랑을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자기 개인의 고귀한 생명체를 부모 앞에 맡겨서 자라 나온 것은 다 같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심정에는 사람을 차별대우 하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33.164. 1970.08.11)
사람은 평균적인 것을 원합니다. 같은 것을, 수평을 원합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 모든 환경이 다른 그런 사람들을 동등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사랑입니다. 우리 아기들, 사랑스러운 아기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뭐 말도 못 하고 아무 가치가 없지만 보면 귀엽습니다. 보면 갖다 입을 맞추고 싶고, 손을 이렇게 대고 싶은 것입니다. 강아지들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높고 낮은 게 없습니다. 어디나 다 수평입니다. 어디나 평균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254.208. 1994.02.13)
서양 사람이 우는 장면을 보고 동양 사람이 안 웁니까? 서양 사람이 눈물 흘리는 장면은 동야 사람이 봐도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이 보고 눈물 흘리는 장면은 원수 되는 일본 사람이 봐도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정적인 세계는 통일이 되어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한국의 부모는 사랑하지 않는데 일본의 부모는 사랑합니까? 그게 아니지요? 통일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41.331. 1971.02.18)
2. 인종 평등
종교 경전
너희는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물을 내려 보내시는 것을 보지 않았느냐? 우리는 그것으로 여러 가지 색깔의 열매를 맺게 하고 산에는 희고 붉은 여러 가지 색깔과 매우 검은색이 있노라. 마찬가지로 인간 짐승 가축에도 여러 가지 색깔이 있노라. 하나님의 종들 중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지식이 있는 자들이니라. 실로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고 관대하시노라.
꾸란 35.27-28 (이슬람)
이집트에서 우두머리들이 올 것이며 에티오피아는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들 것입니다.
시편 68.31(기독교)
이스라엘 백성들아, 너희가 나에게 있어 에티오피아 백성과 무엇이 다르냐? 여호와의 말씀이시다.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낸 것이 나라면, 블레셋 백성을 갑돌에서 데려 내오고 시리아 백성을 키르에서 데려 내온 것도 내가 아니겠느냐?
아모스9.7(유대교)
사도께서 아부 투르에게 이르시길, “아부 투르야, 너는 그들보다 공정한 자임에도 흑인이나 황인에게 호감을 얻지 못하고 있구나”하셨다.
알가마 알사가이르3.2740(이슬람)
영광의 주이신 신은 아리안들과 불촉천민들 모두에게 속해 있다.
리그베다8.51.9(힌두교)
크기야 어떻든 네 발 달린 짐승들 중에서, 그대들은 그 짐승들이 출생에 따른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배로 기어 다니는 것들, 물속에서 태어나 물에 사는 물고기들, 하늘을 나는 새들을 보십시오. 그대들은 그 동물들이 출생에 따른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에는 다른 유의 동물들 사이에 발견되는 것과 같은 출생에 기인한 종이나 유에 차이가 없습니다.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눈이나 귀, 입이나 코, 입술이나 눈썹, 심지어는 머리카락 모양도 같습니다. 목에서 음부에 이르기까지, 어께에서 엉덩이에 이르기까지, 등에서 가슴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경우에는 모두 종류가 같습니다. 손, 발, 손가락, 손톱, 종아리, 장딴지에서도 어떤 차이가 없으며, 사람에게는 다른 종처럼 종에 따른 특징의 다양성이 없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 차이란 단지 관습에 의한 것일 뿐입니다.
숫타 니파타603-611(불교)
말씀 선집
참사랑의 빛깔, 참사랑의 빛깔이 무엇입니까? 사랑은 빛깔이 없습니다. 빛깔을 말하는 사람은 참된 사랑을 못 갖습니다. 빛깔을 눈으로 보는 사람은 참된 사랑이 없는 사람입니다.
(161.22. 1987.01.01)
하나님 눈에는 검은 색, 노란 색, 하얀 색의 구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사랑의 색맹 눈입니다. 외적인 컬러를 보시지 않습니다. 심정의 컬러가 더욱 화려하고 강한 컬러가 되는 것입니다.
(258.122, 1994.03.17)
하나님이 이상 하는 예술 작품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중심삼고 볼 때, 흑백이 싸워 가지고 걸작품이 될 수 있습니까? 백인들이 하얀 페인트만 가지고 그림을 그려 보십시오. 그림이 되나 그려 보십시오. 안 됩니다. 왜 안 됩니까? 그림을 그릴 때는 검정색도 필요하고 중간샏고 다 필요합니다. 그림을 그릴때는 배경이 절대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배경을 하얗게 하는 사람의 그림을 봤습니까? 그래 뭐가 있어야 됩니까? 잡색이 있어야 됩니다. 여러 색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그게 걸작품입니다. 입체가 벌어지기 위해서는 그런 것이 전부 다 조화를 이루어야 됩니다. 화합이 되어야 합니다. 화합이 되어야 합니다.
(96.220. 1978.01.22)
무니는 쌍둥이를 낳는데 하나는 검둥이를 낳고, 하나는 노랭이를 낳으면 좋겠습니다. 백인 여자가 그렇게 되면 얼마나 멋져요? 3인종이 한꺼번에 되어 그게 얼마나 멋지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볼 때 ‘에이, 저 미친 간나! 저거 할 짓 아니다.’ 이러겠습니까? 백인 여자가 검둥이와 누렁둥이를 낳아 놓고 젖먹이는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이 ‘저것 망해라.’ 하겠습니까? ‘야! 훌륭하다. 감사하다. 아멘!’ 하겠습니까? 여러분들 말입니다. 노란 꽃에 노랑나비만 오면 재미없는 것입니다. 흰 나비도 오고, 검정 나비도 오고, 노랑나비도 날아와야 그것이 멋진 것입니다.
(130.102-103. 1984.01.01)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갈 때에 도와준 사람이 흑인입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이 흑인입니다. 끝 날이 오면 흑인들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91.219. 1977.02.20)
우리가 흑인 손을 잡게 될 땐, 역사적이고, 눈물이 교류된 그 손에 백인이 손을 잡고 사연을 나눌 수 있는 고차적인 관계가 열매 맺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다음엔 하늘과 땅이 갈라져 손을 못 잡던 것이 다시 손을 잡는 것입니다.
흰 것이 하늘을 상징한다면 검은 것은 땅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흑백이 손잡는 것은 땅과 하늘이 손잡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이 쌓인 높은 산이 백인이라면 저 골짜기, 아주 밑창에 거름이 쌓이고, 잎이 쌓여 있는 것이 흑인입니다. 이 둘이 손잡는 것이 그 높은 명산의 가치를 나타내는 형태를 구성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백인인 저 산 꼭대기가 ‘나 저 깊은 골짜기는 필요 없어!’ 또 골짜기가 ‘거 산꼭대기는 필요 없어!’하면 그건 명산이 못 되는 것입니다. ‘나 백인 필요 없어!’, ‘나 흑인 필요 없어.’ 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95.140. 1977.11.06)
다만 피부 색깔이 다른 것은 사는 지역에 따라 보호색깔을 맞추기 위한 기후와 환경의 영향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눈이 많은 지역에는 백인이 많습니다. 반대로 태양 빛이 강한 아프리카 같은 데는 흑인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다 근본적으로 같습니다. 예를 들면 피의 색깔이나 살과 뼈의 모양이 모두 같습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같습니다. 그러므로 인종의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연히 순리와 원칙을 존중하다 보니 오색인종이 서로 결혼하게 된 것입니다. 흑인하고 백인하고 결혼하는 것은 북극과 남극이 하나 되는 것과 같습니다. 또 황인과 흑인이 결혼하면 서로의 강점을 전수 받아 보다 나은 후손을 낳는다고 보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갈등이 없습니다. 비록 여러분이 태어난 고향과 조국은 다르지만 한 가지 틀림없는 것은 믿음의 본향입니다. 평화와 통일의 본향지는 참사랑을 중심삼은 조국과 고향이라는 것입니다.
(315.212. 2000.02.02)
이 우주는 자연적인 균형을 취해 가게 돼 있습니다. 보십시오. 저 입술도 하나님이 얼마나 묘하게 만들었나요. 여러분 백인들은 얼굴이 하얗기 때문에 파란 눈을 지녔습니다. 그거 새까만 눈보다 파란 눈을 지녔습니까? 그거 새까만 눈보다 파란 눈이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눈동자는 확실하게 그저 새파랗고 자극적이지만 흰자위가 자극적이면 안 됩니다. 그렇지만 흑인이라든가 황인종을 보면 무엇이 자극적이냐 하면 흰자위가 자극적이라는 것입니다. 검은 눈동자이기 때문입니다.
흑인 눈은 무엇이 매력이냐 하면 흰 자위가 매력적입니다. 파란 눈 같으면 흰자위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웃을 때 이빨이 얼마나 자극적이냐는 것입니다. 한번 웃어보십시오. 흑인들 웃어 보세요. 그리고 혓바닥이 새빨갛지요? 얼마나 자극적입니까? 그리고 흑인들은 암만 이빨 내고 웃더라도 혓바닥 낼 자격이 없습니다. 보세요. 이가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흑인들은 될 수 있으면 이가 보여야 합니다.
흑인들은 입술이 왜 두꺼우냐? 자연히 이가 보이게끔 두꺼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거 정말입니다. 다 매력이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야, 하나님은 멋진 분입니다. 앞으로는 백인들이 흑인을 좋아할 때가 온다고 보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백인 여자들은 자극적인 것, 다양한 자극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간세계에서는 이 본연의 상태를 파괴하고, 본연의 상태를 무시하는 족속들이 많았습니다.
흑인들을 보면 더러운 것 같은데, 더러울 수밖에요. 여기 골짜기로 전부 다 내리 밀려서 썩고 그래서 냄새납니다. 그것이 나쁜 게 아닙니다. 그래야 거름이 되어 가지고 생명이 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류세계에 흑인들이 전부 다 피땀을 흘려서 백인 사회의 문화를 창조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미국 문화를 누가 만들었느냐 하면, 흑인들이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여기는 생명력이 있고 사랑이 깃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 흑인들은 강합니다. 또, 백퍼센트 믿습니다. 누구나 잘 믿어 줍니다. 왜? 이거 골짜기니까 무엇이든지 전부 다 쌓인다는 것입니다. 백인은 뭐냐 하면 높은 산꼭대기와 마찬가지입니다.
여기는 뭐가 붙지 않습니다. 냉정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인은 믿을 수 없습니다. 냉정하다는 것입니다. 백인들은 말 같은 것이 다리가 부러지면 총으로 죽인다구요. 그게 좋지 않습니다. 그건 자연주의, 본연의 형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연의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흑인도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백인은 사랑도 결투를 해서 결정합니다. 생명을 보호하는 데에 이상적 사랑이 있지, 생명을 걸고 결투하는 데에 이상적 사랑이 있지 않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알게 될 때, 여기서 문화의 모든 기치라든가 현재의 모든 것도 이 본연의 상태를 앎으로 말미암아 이해하고 시정할 수 있는 원칙을 찾을 수 있습니다.
(107.308-309. 1980.06.08)
3. 하늘나라에는 인종이나 계급의 차별이 없음
종교 경전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같은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죄 없는 사람이나 죄 있는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깨끗한 사람이나 더러운 사람이나, 모든 사람이 같은 운명을 당하는데 하늘 아래서 벌어지는 일 중에서 잘못되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람들의 마음은 악으로 차고 넘쳐 얼빠진 생각을 하며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다.
전도서 9.2-3 (기독교)
악한 일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먼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 이르기까지, 환난과 고통이 있을 것이요, 선한 일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먼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함이 없이 대하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2.9-11(기독교)
모든 인류가 거룩한 빛의 보고임을 알지라.
그들의 계급을 묻지 말라.
이 이후 계급은 사라지리니.
아디 그란트, 아사, M.1.P.349 (시크교)
말씀 선집
영계에 가면 색깔이 없습니다. 너무 밝아서 은색같이 보이는 것입니다. 은색같이 보이다가도 너무 밝고 찬란하니까 보라색으로 보입니다.
(293.224. 1998.05.26)
만약에 영계에 백인하고 흑인이 가는데, 백인이 천국 들어가는 데는 흑인 파수꾼 세우고, 흑인이 천국 들어가는 데는 백인 파수꾼 세웠다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뒤로 돌아갈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하겠습니까? 못 간다고 욕을 하고 들이 차면 ‘살려 주소. 옛날엔 몰랐소.’ 하며 그저 붙들고 ‘살려 주소!’ 이렇게 사정하겠습니까? 도망가겠습니까?
(116.110. 1981.12.27)
4. 평등 기준에 의한 삶
종교 경전
남의 짐승을 죽인 자는 물어주어야 하고 살인한 자는 사형에 처해야 한다.
외국인이든 본국인이든 한 법이 있을 따름이다.
나 여호와가 너희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레위기 24.21-23(기독교)
너의 땅에 함께 사는 외국인을 괴롭히지 마라. 너에게 몸 붙여 사는 외국인을 네 나라 사람처럼 대접하고 네 몸처럼 아껴라. 너희도 이집트 나라에 몸 붙이고 살지 않았느냐? 나 여호와가 너희 하나님이다.
레위기 1933-34 (기독교)
한 왕자가 목동이 자고 있을 때 얼굴을 때렸다. 목독이 이에 대해 우마르 빈 알-카타브께 호소하자, 그는 같은 방식으로 왕자께 되받아쳤어야 했다는 판결을 내려주었다. 왕자가 말하길, “내가 왕자이고 그는 단지 평민이거늘, 어찌 그가 나를 때릴 수 있으리오.”하였다. 우마르가 대답하길, “이슬람에서는 너희가 동등한 위치에 있느니라.” 하였다.
무함마드 아흐마드 알 마울라, 아랍 이야기 126.2(이슬람)
만일 나의 거룩한 교단에서 수계한 바라문, 크샤트리아 등이 여전히 카스트제도를 동의하고 그곳에서 의기양양해한다면, 그들은 마치 거듭 태어나지 못한 존재들처럼 행동한는 것입니다
수트라 크리탕가 1.13.10-11 (자이나교)
백인이 흑인에게, 아랍이니 비아랍인에게, 부자가 가난한 자에게, 강자가 약자에게, 남성이 여성에게 우월감을 갖는 것은 부적절하고 잘못된 일이니라.
이븐 마자흐 하디스(이슬람)
종이신 여러분,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 같이 육신의 주인들에게 두려움과 떨림과 성실한 마음으로 복종하십시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과 같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십시오.
사람에게가 아니라 주님께 하듯이 기쁜 마음으로 섬기십시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그가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저마다 주께로부터 상급을 받게 됨을 여러분은 알아 두십시오.
주인이신 여러분, 종들에게 이와 같이 대하고 그들을 위협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주님이시요 여러분의 주님이신 분이 하늘에 계시다는 것과, 주께서는 사람을 차별해서 대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두십시오.
에베소서6.5-9 (기독교)
자애로운 사람은 종이 주인과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신은 흰 빵을 먹고 종에게 검은 빵을 먹게 하면 안 된다. 당신은 오래된 포도주를 마시고 종에게는 갓 담근 포도주를 마시게 하면 안 된다. 당신은 깃털로 덮인 침대에서 자면서 그는 지푸라기에서 자게하면 안 된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히브리 종을 얻는 것은 주인을 얻는 것과 같다.”
탈무드, 키두신 20a (유대교)
말씀 선집
인사 조치를 잘못해서 인권을 유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평등입니다. 인권을 차별하고 인권을 유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342.298. 2001.01.13)
사랑의 세계는 상하를 구별하지 않는다.
(뜻길,P.173)
남미에 대해서 선생님이 관심 갖는 것은 식량 문제 때문입니다. 인류가 1천5백만 명에서 2천만 명이 일 년에 죽어갑니다. 하루에 6만명씩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다섯 살 미만이 35퍼센트 죽어갑니다. 이것은 누가 책임집니까? 선진 국가가 안 지니 참부모 되는 사람이 이것을 생가 안 하면 저 나라에 가서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 일을 위해서 앞으로 전통을 만들어야 됩니다. 선생님의 일상생활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절약의 생활입니다. 수십 년 전부터 그 일을 준비했습니다. 선생님은 보통 넥타이를 안 메고 다닙니다. 앞으로 넥타이 반납입니다. 집에 돌아가게 되면 양말 벗고 맨발로 삽니다. 지금부터 그래야 됩니다.
수건도 큰 것은 안씁니다. 이 네모난 것 아니면 7부만 한 것을 쓰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그렇게 썼기 때문에, 내가 와이키키 호텔에 가게 되면 수건이 수십 가지 울긋불긋 한게 다 있습니다. 하나도 안 쓰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식이 되 있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수건도 쓸 줄 모른다’할지 모르지만, 아닙니다. 전통이란 한꺼번에 안 되는 것입니다.
(273.53. 1995.10.21)
사랑을 중심삼고 위해 줄 때만이 평등입니다.
(107.152. 1980.04.20)
인종차별이나 종교적 갈등 그리고 국수주의는 인권유린에 대한 원인 제공을 하게 됩니다. 힘으로 지배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21세기는 함께 더불어 사는 초인종 초국가 시대입니다. 참사랑이 지배하는 시대가 열렸다는 말입니다.
(369.221. 2002.02.15)
지금까지 평등권이 없었기 때문에 그 평등권을 만드는 작전이 뭐냐 하면 남을 위해 희생하고 복을 빌어 주고 맞아 나오면서 때린 녀석들을 굴복시켜 가지고 같은 복을 줌으로써 여기에는 완전 평등권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56.335. 1972.05.18)
역사적 상층과 하층의 사람을 일체화시키기 위해서 상층의 사람들은 하층에 동화시키고 하층의 사람들은 상층으로 끌어올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려면 절대적 가치의 중심점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신의 사랑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최상급의 사람들에게도 같이할 수 있고 또한 최하급의 사람들에게도 같이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일방향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구형으로 회전 작용을 하는 힘입니다. 최상에서 최하에 이르기까지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어디에 나타나든지 모든 곳에서 전체로부터 환영받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 어디에서도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 있으면 행복하며, 모든 것이 채워지며 보장됩니다. 최하의 곳에 있어도 최상의 사람을 사랑할 수 있으며, 최상의 입장에 있으면서도 최하의 입장에 있는 사람을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극히 자유롭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속에 있는 사람은 세계 어느곳에 가든지 대환영을 받을 것입니다.
(115.172-173. 1981.11.10)
자기가 백인이라고 해서 ‘아이구, 난 백인만 좋아. 백인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하기 때문에 흑인 할머니 할아버지, 아시아인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 못해. 잘 입고 아주 멋진 할머니 사랑하지, 저 미개한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 못해.’ 하면 안 됩니다. 그 할머니 할아버지를 자기 할머니 할아버지 같이 사랑해야 됩니다. 자기 집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하는 것같이 사랑해야 됩니다. 그게 공식입니다.
(130.274. 1984.02.05)
흑인이든 백인이든 평등입니다. 인권을 차별하고 인권을 유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어디 가더라도 흑인이 뭐 어떻고 차별해 가지고, 대학 나왔다는 그것을 가지고 인사조치하지 않습니다. 인권을 정상적으로 지도하는데는 참사랑을 가지고, 위하는 사랑을 갖고 사는 사람이 주류입니다. 천지창조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주류 사상을 전부 다 흩어 버리는 것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동생이 병신이라고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인척 친척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전부 다 무시하지요? 지식이 있다고, 뭐 대학 나온 사람들이라고 고등학교만 나와도 무시해 버립니다. 이건 인권 유린입니다.
(342.298.2001.01.13)
엊그제는 어떤 중국 음식점에 갔었는데 넥타이를 안 맸다고 해서 나가라고 해서 도로 나왔습니다. 나오는데 보니까 전부 다 손가락질하고, 내가 미국 식구 한 20명 데리고 갔었는데, 넥타이를 내다놓고 매라고 하는데 기분이 나빠서 나와 버렸습니다. 넥타이를 맬 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나오는데 쑥덕쑥덕하는 것입니다. 한 20명을 몰고 다니고, 굉장한 차를 몰고 다니는 그런 사람이 그렇게 넥타이도 안 매고 다닐 줄 꿈에도 생각 안 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장사 잘못했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이 선전하면 상당히 많이 팔아먹었을 것입니다. 다음부터는 그 집에 안 갑니다. 넥타이 하나 가지고 사람을 그렇게 대하면 안 됩니다. 내가 다시는 안 갔습니다. 레버런 문도 그러니 흑인들이 그냥 들어가게 되면 발길로 찰 게 아니냐,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93.67-68. 1977.05.01)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전통이 무슨 자유니 평등이니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전통을 사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평등이라는 것을 보게 될 때, 여자하고 남자하고 평등이 될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남자 여자가 있는데, 그 남자 여자가 평등하지 않는 그런 소성을 가진 남자 여자이기 때문에 바라는 평등의 세계, 자유의 세계, 모든 민주주의의 세계라는 것이 평등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 가지고 평등이 됩니까? 사랑을 빼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미국이라는 이 민주주의의 세상 가운데 사랑의 개념이 있습니까? 자유라는 개념 가운데 사랑의 개념이 있습니까? 평등이라는 개념 가운데 사랑의 개념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여기에 참된 사랑을 갖다 붙이면 다 됩니다. 남자 여자도 평등이 될 수 있고, 그 다음에 그 사랑을 중심삼고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을 중심삼고 민주주의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230.87-88. 1992.04.26)
앞으로 요색인종이 하나 됩니다. 사랑이란 것은 하나기 때문에 동서남북 방향과 계층이 다르다고 해서 그 축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같기 때문에 붉은 사랑의 마음에 피는 꽃은 그 어떠한 종류의 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종류의 꽃입니다. 그러므로 남극에 가서 피나 북극에 가서 피나, 동국에 가서 피나, 서극에 가서 피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초민족적인 결혼관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101.74-75. 1978.10.28)
여성의 권리
지난 세기에 시작된 여성권리와 양성평등을 위한 운동은 인간의 진보를 위한 주된 에너지다. 그러나 풍부한 여성주의적 사고와 경향 가운데서 경전들은 우리에게 무엇이 최상이고 가장 지속적인 것인지 구별하도록 가르친다. 이 절은 특별히 여성의 사회적 권리를 다룬다. 더 근본적인 남녀관계는 결혼이다. 결혼에서 성 역할과 양성평등의 문제가 각별한 관심 속에 다루어진다. (제19장 ‘결혼의 윤리 참조)
여성에의 지속적인 학대에 대항하여 경전은 하나님 앞에서 남녀의 본질적 평등과 존엄성을 확인한다. 경전은 또한 교육과 최상의 신앙목표 추구에서 여성의 권리를 분명히 말한다. 여성은 깨달음에 적합하지 않다는 악마의 속삭임을 극복하는 여승의 결의를 찬양하는 붓다의 구절이 두드러진다.
한편 경전은 여성적 존엄성의 근거로서 자녀를 낳는 전통적 여성의 역할을 격려한다. 게다가 여성의 종속성을 적어도 부분적으로 남성을 타락시킨 ‘천사장’의 탓으로 돌리는 독특한 비판을 추가한다.
남성과 여성이 신장과 육체적 능력에서 뚜렷이 다르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불교 경전은 마음의 유일한 실재라는 관점에서 그러한 외형적 차이가 어떠한 의미를 지닌다는 생각은 우스운 것이라고본다. 창조된 세계를 샐재로 확신하는 문선명 선생에게 그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오히려 그는 사랑이 남녀평등의 기초라고 가르친다. 그는 출산을 여성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로 여기며 그것의 전통적 가치를 지지한다. 그렇지만 그는 동시에 사회에서 지도자의 위치를 열망하는 여성을 칭찬한다. 그리고 그는 여성 추종자들이 전통적인 남성 역할을 담당하도록 격려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의 생각은 미국의 선구적 여성주의자로서 여기에 인용된 수잔 안토니의 꿈과 공명한다.
1. 남녀평등의 토대
종교 경전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다. 하나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시고.
창세기 1.27(기독교)
그들의 주님은 그들에게 대답하였노라. 나는 너희 중 어떤 장의 일이라도 남자건 여자건 동등하게 헛되게 하지 않을 것이다.
꾸란 3.195(이슬람)
여인들이 공경 받을 때, 거기에서 신들이 기뻐한다. 그러나 그들이 공경받지 못하는 곳에서는 어떤 제사도 성과를 낳지 못한다.
여성 가족들이 슬픔에 잠겨 살 때, 그 가정은 곧 몰락한다. 그러나 그들이 불행하지 않은 가정은 끝없이 흥한다.
마누법전 3.56-57(힌두교)
내 사랑하는 자매, 여성들이여! 너희는 이 세상에서 고난의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너희가 없다면 이 세상은 현재와 같을 수 없었을 것이다. 와칸 탄카는 너희가 많은 슬픔을 견디어 내고 비탄 속에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바란다. 너희 손에 의해 가정은 유지된다.
신성한 파이프에 관한 수우족의 전승(미주 원주민 종교)
수행녀 소마가 . 탁발을 하고 식사를 마친 후에, 대낮의 휴식을 위해 어두운 숲으로 들어갔다. 숲속 깊이 들어가 어떤 나무 아래에 앉았다. 그때 악마 마라가 그녀에게 소름끼치는 두려움을 일으켜서 선정에 드는 것ㅇ들 방해하려고 그녀에게 다가가서 시로 말하였다.
성자나 얻을 수 있는 [아라한이 되는]기회는 얻기 어렵도다.
두 손가락만큼의 지혜를 지닌 여자로서는 그것을 걷기 어렵다네.
그러자 소마가 생각했다. “이게 누구인가, 사람인가 사람이 아닌가, 누가 이 시를 읊조리는가? 분명히 이것은 나에게 소름끼치는 두려움을 일으켜서 선정에 드는 것을 방해하려고 시를 읊조리는 악마 마라이다.” 수행녀 소마가 시로 대답했다. “의식이 징중되고 흔들림이 없을때, 항상 지혜가 가려지지 않을 때, 그녀가 통찰로써 담마를 바르게 파악한다면 여성이라는 속성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런 의문이 일어나는 사람에게 나는(이 점에 있어서) 여자인가, 또는 남자인가, 그렇지 않으면 무엇인가 하는 의문에 일어나는 사람에게는 악마 마라가 말하기 딱 접합하리라.” 그러자 악마 마라가 “수행녀 쏘마는 나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슬퍼하며 사라졌다.
상윳타 니카야1.128(불교)
그대는 여자이며 그대는 남자이다. 그대는 장부이며 처녀이다. 태어나서 온갖 외양을 띠는 것은 오직 그대이다.
스베타스바타라 우파니샤드4.3(힌두교)
사리불이 말했다. “천녀여, 그대는 어찌하여 본래 부정하고 부적절한 그릇인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는가?” 천녀가 말했다. “저는 지난 12년 동안 여인의 몸이 지니는 특징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모르겠습니다. 마땅히 바꾸어야 할 어떤 이유라도 있습니까? 거룩한 사리불이여, 만일 어떤 마술사가 마술을 부려 스스로 여인의 몸을 취했다면, 당신께서 ‘어찌하여 그대는 여인의 몸을 바뀌지 않는가?’하고 물으시겠습니까?”
사리불이 말했다. “옳지 않다. 그와 같이 만들어진 여인은 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바꾸어질 무엇이 있겠는가?” “그와 같습니다. 거룩한 사리불이여, 모든 존재는 실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어찌하여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는가?’하고 물으시겠습니까?” 그때 천녀가 신통력으로 사리불을 변화시켜 처녀로 만들고, 자기는 변하여 사리불이 되고는 다시 물었다. “거룩한 사리불이여, 어찌하여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습니까?”
여인의 몸으로 바뀐 사리불이 대답했다. “나는 더 이상 남자의 몸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여인의 몸으로 바뀌었다! 나는 무엇을 바꾸어야 할지 모르겠노라!” 천녀가 계속하여 말했다. “사리불님이 그 여인의 몸을 바꾼다면, 이 세상의 모든 여인들도 몸을 바꿀 것입니다. 마치 사리불님이 본래 여인이 아니지만 여인의 몸을 나타내듯이, 모든 여인들도 또한 그리하여, 여인의 몸을 가졌지만 여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모든 존재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유마경7(불교)
말씀 선집
미국에서도 아직까지는 여권보다도 남자들이 우세해서 여자들이 여권복귀운동, 여권신장운동을 통해서 남녀평등을 주장해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 여자들은 좀 다르지만 전 세계의 여자들은 여자로 태어난 것을 한으로 품고 살아왔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부정할 수 없습니다. 미국에서 여자들에게 아무리 사회가 보장을 잘해 준다고 하더라도 여자 둘이 남자 하나를 이길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런 점에서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은 여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역사적으로 세상 사람 가운데 불쌍한 것은 남자보다 여자입니다. 역사를 통해서 보면 지금까지 여자가 나자를 겁탈했습니까, 남자가 여자를 겁탈했습니까? 남자가 여자를 겁탈했습니다. 몇 퍼센트나 될 것 같아요? 90퍼센트 이상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여자는 남자에 대한 적개심과 더불어 언제나 여자의 권리를 마음속으로부터 추구해 왔다는 것이 부절 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그런 것을 해결해서 이걸 전부 다 평등하게 만들고, 여기에 반대하고 핍박하는 남자들을 굴복시키는 놀음을 하지 않고 왜 지금까지 그대로 계속 놓아두고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243.268. 1993.01.28)
평등권을 어떻게 주장 할 것이냐? 힘으로, 외적으로, 아니면 정적으로? 사랑을 가지고 사랑을 가지고는 남자와 대등할 수 있고, 사랑을 가지고는 아무리 아들이 대통령이라도 그 아들과 어머니는 대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을 가진 거기에는 모든 것이 평등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을 중심으로 평화의 가정을 바라는 남자 여자에게 평등이 되는 중심핵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품에 돌아가기를 원하는 것이고, 아내는 암만 사랑이 많더라도 남편이 품에 돌아와 하나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평등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낮은 것도 없고 높은 것도 없는 하나입니다. 다른데 평등이 있습니까? 어디 다른 데 평등이 있는지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남녀평등권은 평화스런 가정에서만이 형성됩니다.
(129.51-52. 1983.10.01)
평등이라는 것은 우리가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나를 중심 삼으면 안됩니다. 우리여야 됩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우리를 중심삼은 평등이고, 사랑을 중심삼은 평등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개인을 중심삼은 평등이 아닙니다. 여권주의자도 틀리고 남권주의자도 틀리다는 말입니다. 인간주의자, 인권주의자가 맞습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우리와 사랑을 중심삼은 평등이라는 말이 되지 여자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여권 운동이 아니고 남권 운동이 아닙니다.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남자는 누구를 위해서 살아야 되느냐? 여자는 누구를 위해서 사느냐? 여자는 남자를 위해서 살고, 남자는 여자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왜 사느냐,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는 모든 것의 답변이 되고, 철학적인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된다는 결론입니다.
(131.109. 1984.04.22)
인간이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보기 원하듯이, 하나님도 참된 인간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그런데 인간 중에도 남자나 여자 어느 한 편을 먼저 보고 싶다고 하신다면 아마도 서로가 불평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내세우지 않으실 수 없습니다. 사랑만 내세우면 남자와 여자가 같이 볼 수 있고, 같이 만질 수 있고, 같이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이 있다면 남자와 여자가 서로 먼저 가지려 다투겠지만, 그것이 사랑이란 것을 알게 되면 둘이 서로 하나 돼 위하며 가지려 하는 것입니다.
(300.213. 1999.03.14)
2. 남성지배의 원인으로서 인간 타락
종교 경전
아담은 핑계를 대었다. “당신께서 저에게 짝지어 주신 여자가 그 나무에서 열매를 따주기에 먹었을 따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물으셨다. “어쩌다가 이런 일을 했느냐?” 여자도 핑계를 대었다. “뱀에게 속아서 따 먹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온갖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서 너는 저주를 받아 죽기까지 배로 기어 다니며 흙을 먹어야 하리라. 나는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 나는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네 후손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너는 그 발꿈치를 물려고 하다가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리라.” 그리고 여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기를 낳을 때 몹시 고생하리라. 고생하지 않고는 아기를 낳지 못하리라.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겠지만 도리어 남편의 손아귀에 들리라.”
창세기 3.12-16
나는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아내의 머리는 남편이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신 것을,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면, 그는 자기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은 채로 기도하거나 예언하면, 그는 자기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영광이니 머리를 가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의 영광입니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습니다.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 때문에 그 머리에 권위의 표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는 남자 없이 여자가 있을 수 없고 여자 없이 남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11.3-11(기독교)
내가 천국을 들여다보고 그곳 거주자 대부분이 가난한 자임을 보았느니라. 그리고 (지옥) 불을 들여다보니 그곳 거주자 대부분이 여성이더라.
부카리 하디스 8.76.554(이슬람)
말씀선집
지금까지는 여자의 절개를 강조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누가 절개를 잃어버렸습니까? 여자가 잃어버렸습니까? 남자가 잃어버렸습니까? 여자입니다. 남자도 잃어버렸습니다. 에덴의 중심인 남자도 잃고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 참사랑의 모범적인 실천운동을 전 세계적으로 전개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세계평화 구현을 위한 정치, 경제, 문화, 그리고 사회 각 분야에서 우리 여성이 앞장서야 되겠습니다.
여성으로서 구원섭리역사의 주역을 담당했던 리브가, 다말, 마리아와 같은 고난과 핍박의 선열들을 기억합시다. 그들이 생명을 건 모험과 역경을 이겨 천류의 도리를 세운 그 강인한 의지를 전수받아 우리의 가정을 참된 부모, 참된 부부, 참된 자녀의 보금자리로 가꾸어 나감으로써 오늘의 이 죄악세계를 천국세계로 변화시키는 성업에 우리 모두 궐기합시다.
(세계평화 여성연합 창설대회, 한학자 총재, 기조연설. 199204.10)
정의
불의와 압제는 하나님과 인류에 대한 범죄의 원인이 된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정의를 위해 싸우려고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포용하는 하나님 사랑을 체감하는 신앙인들은 정의를 증진시키기 위해 그들의 영향력을 사용해야 할 특별한 책임이 있다.
경전은 학대받는 자들이 당한 정의를 누리지 못하는데 신앙인들이 그들 곁에 한가하게 앉아서 그들을 구제하지 않는 것을 경고한다. 좌절 속에서 억압받는 자들이 자신들을 억압하는 환경에 대항하여 반란을 야기하고 무기를 들기 이전에, 종교인들이 오랫동안 불의를 당했던 자들에게 정의로운 삶을 누리도록 당국에 촉구하고 사회적 양심으로 고투해야 한다.
문선명 선생은 종종 자신이 불의를 겪었지만 자신을 박해한 자들에게 결코 복수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그는 봉사와 희생의 길이 모든 측면의 불의를 극복하는 가장 분명한 길이라는 확신 가운데 항상 사랑과 인내, 단호함의 방식을 택한다.
종교 경전
이 여호와가 말하지 않더냐? 법과 정의를 실천하고, 억울하게 착취당하는 사람들을 건져주며, 더부살이와 고아와 과부를 괴롭히거나 학대하지 말고 이곳에서 죄 없는 사람을 죽여 피를 흘리지 말라고.
예레미야 22.3(기독교)
오 믿는 자들아! 하나님의 증거자로서 공정함을 지키라. 너희 자신들이나 부모 또는 친척들에게 불리할지라도, 그들이 부자이건 가난하건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보다) 더 좋은 보호자이니라, 그러니 욕망을 따르지 말고 공정하라. 만일 왜곡하거나 거부한다면 진실로 하나님은 너희가 한 일을 알고 계시노라.
꾸란 4.135(이슬람)
그 시끄러운 노랫소리를 집어치워라. 거문고 가락도 귀찮다.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서로 위하는 마음 개울같이 넘쳐흐르게 하여라.
아모스5.23-24(유대교)
억압받는 자들의 탄원을 주의할지니, 그는 단지 그의 당연한 권리를 가장 고귀한 하나님께 탄원하도다. 하나님은 권리를 가진 자가 정당한 것을 받는 것을 막지 아니하신다.
바이하키 하디스(이슬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오 나의 종복들이여, 나 자신을 위해 부정을 금하고 너희를 위해서도 그것을 금하였으니, 서로가 부정한 일을 행하지 말지라.”
알 나와위 하디스 40선 24(이슬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너는 파라오에게 가서 히브리인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라하고 이렇게 전하여라. ‘나의 백성을 내보내어 나를 예배하게 하라.’
출애굽기 9.1(기독교)
너희 중 누구든 하나님이 금하신 행위를 보거든, 그 자신의 손으로 그것을 고치도록 하라. 그가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에는 그 자신의 혀로, 그래도 아니 될 경우에는 그 자신의 마음으로 그렇게 하도록 하라. 그것은 가장 미약한 믿음이니라.
알 나와위 하디스 40선 34 (이슬람)
비탄에 젖은 자의 고통을 덜어 주고, 억압받는 자를 도와주는 것은 많은 죄과에 대한 보상과 속죄의 행위와 같으리라.
나흐줄 발라가, 어록 22(시아파 이슬람)
죄를 짓거나 잘못된 길을 따르는 사람을 보면 그것이 자기 자신에 대한 죄임을 알려주고 그 사람이 선한 입장으로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계명이다. 성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동료를 꾸짖어라.” 누군가를 힐책할 때는 그 일이 사람 사이의 문제든 신과 인간 사이의 문제든 사적으로 평정심을 갖고 부드러운 톤으로 말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이 그를 위해 하는 것이며, 그가 앞으로 올 세상에 새로 태어나도록 돕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시켜야 한다.
마이모니데스, 미슈네 토라(유대교)
어떤 이가 말하길, “덕으로 원한을 갚는 것은 어떻습니까?” 하였다. 공자가 말하길, “그럼 무엇으로써 덕을 갚을 것인가? 정직으로써 원한을 갚고 덕으로써 덕을 갚아야 한다.”고 하였다.
논어 14.36(유교)
아나스 이븐 말리크가 전하길 사도께서 “억압하거나 억압받는 너희 형제를 도우라” 하시니, 아나스가 그에게 물었다. “하나님의 사도여! 억압받는 자에게 나는 기꺼이 도움을 주리라. 그러나 억압하는 자에게 어떻게 도움을 주리오?” 그러자 사도께서 “그가 잘못된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제재함으로써 이니라”고 답하셨도다.
부카리 하디스(이슬람)
말씀 선집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세상의 불의와 죄악에 도전하고 참사랑을 베풀기를 열망하고 계십니다.
(234.273. 1992.08.26)
종교인들이 이 시대의 상황과 여러 비리에 대하여 책임을 느끼고 깊은 자기 성찰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하나님은 우리 지도자, 특히 종교 지도자들을 소명하고 계십니다. 세상의 불의와 죄악에 도전하고 참사랑을 베풀기를 소망하고 계십니다.
(330.247. 2000.08.18)
하루의 승리의 기준을 갖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겠으며, 일 년의 승리의 기준을 갖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영원한 세계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의 생활에 있어서 영원을 꿈꾸고 나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 앞서서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늘의 현실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어떻게 청산 짓고 선의 기수가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37.219. 1970.12.27)
불의를 보고 그냥 그대로 놔두는 것은 양심가가 아니다.
(뜻길, p.207)
이 우주 간에 있어서 최고의 양심적 중심이 누구냐 할 때,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그렇지만 아무리 양심적이라고 하더라도 불의를 보고 ‘아이 좋다, 가만히 있어야 되겠다’합니까? 불의를 보게 될 때는 분노가 폭발하는 것입니다. 양심적인 하나님이 불의를 보고 6천년 동안 격분해 가지고 싸움터를 준비해 나온 것이 아니냐.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개인을 위주해서 세계를 망치는 놀음 가정을 위주해서 세계를 망치는 놀음, 종족을 위주해서 세계를 망치는 놀음은 하나님 앞에 불효하는 놀음입니다. 그런 일체를 하나님은 용서 할 수 없어서 때려 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맞는 선두에 선 기독교를 쳤던 로마제국이기에, 400년 동안 세계를 휘어잡고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로마제국도 돌아가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400년 이내에 굴복당하고 말았습니다.
(51.44. 1971.11.04)
선생님은 ‘정의는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참아서 이기는 것이다’ 하며 참고 나왔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어떤 때는 전신이 마비될 정도로 분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 이상 분해도 참아 오셨기 때문에 그 아들 된 죄로 참아야지 하며 참는 것입니다. 싸워서는 안 됩니다.
(74.252. 1974.12.31)
청년들이 하나님의 참사랑을 중심으로 희생과 봉사의 노력을 기울일 때 세계의 가난과 기아 문제, 그리고 더 나아가 빈부의 격차와 역사상 이질적인 경험에서 오는 갈등과 증오의 감정은 비로소 치유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288.201-202. 1997.11.28)
인간세계에 참사랑을 완성한다면,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참사랑의 세계에서는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참사랑의 세계는 곧 환희와 이상이 충만한 자유와 평화와 행복의 세계입니다. 참사랑의 동위권, 동참권, 상속권에 의해서 기쁨과 행복이 무한히, 그리고 영원히 확산되는 세계가 됩니다.
(294.65. 1998.06.11)
경제적 정의
어느 사회든 실제의 차원에서 빈부격차가 유지하는 한 정의사회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한 차이는 시민의 유대 결속을 약화시키고 계급차별과 그에 따른 편견을 야기하게 된다. 더구나 빈자보다 부자가 모든 이점을 누리는 사회에서 기회균등과 법 앞의 평등은 허상에 불과하다. 오늘날까지 인류의 지성인들은 정치적 민주주의에 따른 경제적 민주주의를 탐구했다. 다양한 유형의 사회주의가 인간 본심에 의한 항국적 욕망에 부응하여 나타났다.
경제적 정의는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으로부터 시작된다. 도둑의 유형에는 타인의 소유물을 훔치는 자들뿐만 아니라, 더 위험스러운 형태로서 공공의 수입원을 탈취하는 권력자들도 있다. 이런 이슈는 무엇이 ‘공적’인 것이며, 무엇이 ‘사적’인 것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출발한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지구, 공기와 물, 그리고 광물자원을 창조하였으며 이스라엘의 모든 땅은 인간을 청지기로 세우신 하나님에 귀속되었다. 이러한 관점은 자본주의의 사적 소유 개념에 도전하고, 정의로운 경제체제는 공유의 개념을 포함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하나님의 차원에서 볼 때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한 가족의 구성원이다. 그런데 자신의 형제자매가 배고파할 때 부자가 양심적으로 어떻게 잠잘 수 있을 것인가? 초기 기독교인들은 모든 소유를 공동체에 종속시켰다. 이것은 오늘날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사회주의자의 실험을 통해서도 주장되어 왔다. 문선명 선생에 따르면 사회주의 성공의 열쇠는 자비심과 형제애의 원천인 하나님 사랑의 실천에 있다, 그것은 부자는 자신의 축복을 사회 전체와 공유하도록 자극할 수 있다. 그리하면 인류 사회에는 나눔과 공유라는 미덕의 라이프 사이클이 지속적으로 공전될 수 있을 것이다.(제13장 ‘자비’참조)
한편, 공산주의는 부자의 것을 갈취해 빈자에게 분배하는 사회제도를 설정하고 공동소유를 제도화하려고 시도했다. 공산주의는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폭력을 정당화하고 잔혹한 만행을 저지르면서 무산계급의 분노를 악용하였다. 문선명 선생은 공산주의는 이론 자체가 무신론적이며 종교에 적대적이기 때문에 이처럼 비열한 전략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고 비판하신다.
우리가 경제적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정책에 우선하여 우리 자신을 성찰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개인적 이익을 위한 경제행위보다 인류 전체의 복리를 위한 경제행위에 주력해야 한다. 그것은 인류는 형제자매, 즉 하나님 가정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가족 구성원이 매달 예산을 세우고 수입과 지출을 결정하는 것처럼, 각 마을이나 이웃사람들이 공정과 평등의 증진을 위한 균형적 기반위에서 자발적으로 수입과 지출을 분류할 수도 있다. 나아가 기업 차원에서 고용주와 공장 소유자는 노동자들의 노력을 격려하고 인간 가치를 성찰하는 가운데 그들의 공동 생산물에 대한 적정한 임금을 대우해야 한다.
국가 가족이라는 측면에서 선진 국가는 지구상의 모든 인류는 동등한 생활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표 아래 개발도상국에 원조와 기술적 지원을 자발적으로 제공해야 할 것이다. 이것을 지지하면서 우리는 소유가치보다 남에게 베푸는 자비심을 터로 한 존재가치에 더 비중을 두고 인간 존중의 문화를 육성해야 한다. 문선명 선생은 이것이 경제 정의를 실현하는 실체적인 방법이라고 하신다.
1. 도둑질과 공적 재산 남용
종교 경전
진실로 고아들의 재산을 불법으로 삼키는 자들은 그들의 뱃속에 불을 삼키는 것이고 그들은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타리라.
꾸란 4.10(이슬람)
도둑질하지 못한다.
출애굽기 20.15(기독교)
마을에 있거나 숲에 있거나, 남에게 속해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훔치는 자,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십시오. 빚이 있으나 돌려 달라고 요구받을 때, “나는 빚진 게 없다”고 발뺌하는 자,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십시오.
하찮은 물건을 탐하여 행인을 죽이고 그 물건을 약탈하는 자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십시오.
숫타 니파타 119-121 (불교)
남자 도둑과 여자 도둑은 그들 행위의 대가로 그들의 손을 자르라, 이것이 하나님의 징벌이니라.
꾸란 5.38(이슬람)
작게 주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라.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올 때는 크게 받아오며 남에게 부피나 무게로 달아줄 때는 작게 하여 주노라.
꾸란 83.1-3(이슬람)
다음의 행위들 즉 다른 사람이 도둑질하도록 부추기는 행위, 장물을 받는 행위, 지나친 값의 청구나 불충분한 지급을 야기하는 행위는 도둑질에 포함된다.
아카랑카, 타트바르타라자바르티카 7.27(자이나교)
네 것도 참으로 네 것이 아닌데, 네 것이 아닌 것을 어찌 네 것이라 여길 수 있겠는가?
탈무드, 테레크 에레츠 주타 2.5 (유대교)
석유, 유황, 철 같은 금속과 천연자원들은 물, 유리, 소금과 같은 '공공자산‘이라. 그러므로 어떤 통치자도 누군가에게 그것들에 대한 독점권을 주지 못하며,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이라.
무함마드 이븐 이드리스 아시 샤피이 346.5(이슬람)
말씀 선집
종교의 가르침은 이 몸뚱이가 좋아하는 것을 다 거부 하라는 것입니다. 몸은 배가 고프면 도둑질이라도 해서 먹어야 된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하늘은 ‘안 된다, 죽더라도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라고 합니다.
(131.25. 1984.03.11)
도둑질이 왜 나쁩니까? 내가 하고 싶어서 옷을 도둑질을 했는데 무엇이 나쁘냐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그 하나의 옷에도 희생의 대가가 들어가 있고 봉사의 대가가 들어가 있습니다. 공적인 것이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그냥 가져왔기 때문에 죄라는 것입니다.
(105.9-93. 1979.09.30)
가정을 중심삼고 위할 수 있는 데는 위하고 희생하고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적 이상입니다. 여기에 반대되는 것이 타락한 것인데, 악의 시작은 증오라는 것입니다. 아담을 존경하고 위해야 될 텐데 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게 뭐예요? 기만한 것입니다. 희생해야 될 텐데 사기를 쳤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약탈했다는 것입니다. 약탈과 파괴, 사기는 뭐예요? 증오와 사기에 괄호해서 기만을 집어놓고 약탈, 괄호하고 파괴라고 하면 되요. 이런 것을 하게 되면 지옥 간다는 말입니다.
(310.199. 1999.06.15)
공금을 쓸 때는 선생님이 염려하면서 하던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한 푼이라도 자기 생명 이상, 손발을 잘라 쓰는 것 같은 아픔을 느끼면서 써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발전 못합니다. 될 것 같지만 안 됩니다. 360도 들어가 가지고 처음 모양과 맞추기 전에는 끝에 가서는 다 깨져 나갑니다. 사기를 당하든가, 도둑을 맞는가, 자기가 죽든가 말입니다.
(360.321. 2001.11.18)
역사적인 모든 움직임이라는 것은 개인을 확대시킨 것입니다. 지금까지 개인이 어떠한 출세라든가,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을 떠 나왔느냐?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체를 이용하기도 하고, 개인을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제 3의 무대를 이용하기가 일쑤였습니다. 그게 지금까지의 역사적 전통이었습니다.
결국은 자기 하나 잘되기 위해서 ‘제3자를 이용 하겠다.’ 해 가지고, 개인을 이용하고, 단체도 이용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나라까지 이용하는 부패상이 많습니다.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적 방향이었습니다. 인간이 타락하면서 출발한 그날부터 사탄의 피를 받고 난 그날부터 본의 아닌 교만을 중심으로 간접적인 무대를 이용하여 자기의 이익을 갈구해 나온 것이 그 역사저거 방향이 아니었더냐 이것입니다. 타락이 뿌린 씨가 바로 그것입니다.
(46.141-142. 1971.08.13)
어디 가다 좋은 물건이 있으면, 빌딩에서 금덩이가 떨어지더라도 그것을 가져가면 약취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없습니다. 공금입니다. 공금. 선생님은 여러분이 연보를 갖다 줘도 안 받습니다. 어머니를 통해서 받더라도 나는 안 씁니다. 그건 독약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재까닥 걸려버립니다. 저 나라에 가서.
(342.300. 2001.01.13)
자기의 사적인 물질을 공적인 물질보다 더 중요시 하는 사람은 천도에 위배되는 사람입니다. 사적인 자기의 인격을 공적 인격보다 더 중요시하는 자리는 뜻에 위배되는 자리입니다.
(51.291. 1971.11.28)
자기가 갖고 있는 물건, 혹은 자기 소유의 재산은 자신이 잠시 관리하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은 관리인이라는 것입니다.
(23.334. 1969.06.15)
내 것은 네 것이요, 네 것은 나라의 것이요, 나라의 것은 세계의 것이요, 세계의 것은 하나님 것이요, 하나님 것은 내 것이다. 이것이 통일사상의 정도입니다.
(57.272. 1972.06.04)
2. 공동 재산 분배와 경제 안정
종교 경전
너희 땅의 수확을 거두어들일 때 밭에서 모조리 거두어들이지 마라. 거두고 남은 이삭을 줍지 마라. 너희 포도를 속속들이 뒤져 따지 말고, 따고 남은 과일을 거두지 말며, 가난한 자와 몸 붙여 사는 외국인이 따먹도록 남겨 놓아라. 나 여호와가 너희 하나님이다.
레위기 19.9-10(기독교)
칠 년에 한 번씩 남의 빚을 석쳐 주어라. 빚은 이렇게 삭쳐 주어야 한다. 누구든지 동족에게 돈을 꾸어준 사람은 그 빚을 삭쳐 주어야 한다. 동족에게서 빚을 받아내려고 하면 안 된다. 빚을 삭쳐 주라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선포된 명령이기 때문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유산으로 주시어 상속받게 하신 땅에 틀림없이 복을 내려주실 것이다. 그러니 너희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없도록 하라. 물론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을 잘 들어야만 그렇게 될 것이다. 너희는 내가 오늘 내리는 이 모든 명령을 성심껏 실천해야 한다.
신명기 15.1-5 (기독교)
오십 년이 되는 이 해를 너희는 거룩한 해로 정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가 희년으로 지킬 해이다. 저마다 제 소유지를 찾아 자기 지파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네 동족 가운데서 누가 옹색하여 제 소유를 팔았을 경우에는 그와 가장 가까운 친척이 와서 그가 판 것을 되돌려 살 수 있다. 그것을 되돌려 살 친척이 없을 경우에 그가 나중에 스스로 힘이 생겨 되돌려 살 길이 트이면, 판 다음에 지나간 햇수에 해당하는 값을 빼고, 나머지를 그 땡을 산 사람에게 물어주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자기 소유지로 돌아갈 수 있다.
너희 동족 가운데 누가 옹색하게 되어 너희에게 의탁해야 할 신세가 되거든, 너희는 그를 몸 붙여 사는 식객처럼 붙들어 주고 함게 데리고 살아라. 너희는 그에게서 세나 이자를 받지 못한다. 너희는 하나님 두려운 줄 알아 그런 동족을 함께 데리고 살아야 한다. 너희는 그에게 이자도 놓지 못하고 그에게 양식을 장리로 꾸어주지도 못한다.
나 여호와가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낸 너희 하나님이다. 나는 너희에게 가나안 땅을 주어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너희와 함께 사는 너희 동족 가운데 누가 옹색하게 되어 너희에게 몸을 팔았을 경우에 너희는 그를 종 부리듯 부리지 못한다. 너희는 그를 품꾼이나 식객처럼 데리고 살며 일을 시키다가 희년이 되면 자식들과 함께 집에서 내보내어 자기 지파로 조상의 소유지를 찾아 돌아가게 해야 한다. 그들은 내가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낸 나의 종들이니 종이 팔리듯이 팔려서는 안 된다. 너희는 하나님 두려운 줄 알아 그를 심하게 부리지 말라.
레위기 25.10-43 (기독교)
등문공이 필전(畢戰)으로 하여금 ‘정전법(井田法)’ 을 묻게 하자 맹자가 대답하였다. “그대의 군주가 장차 어진 정치를 행하려고, 대저 어진 정치는 반드시 경계를 다스림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 경계를 다스림이 바르지 못하면 정치가 균등하지 못하며 곡록이 공평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포악한 군주와 부패한 관리들은 반드시 그 경계를 다스리는 일을 게을리 하나니, 경계를 다스리는 것이 이미 정확하면 토지를 나누어 주고 목록을 제정해 주는 일은 가만히 앉아도 정해질 수 있는 것이다. 청컨대 들에는 9분의 1(로 공전을 하는) 세법을 쓰고, 서울에서는 10분의 1(로 공전을 하는) 세법을 써서 스스로 세금을 바치게 하도록 하라. 사방 1리로 정(井, 정자를 그어 경계를 공평하게 나눔)하여, 한 정(井)은 9백 묘이니 그 가운데를 공전(公田)으로 한다. 여덟 집에서 모두 백 묘씩을 사전(私田)으로 받아서 함께 공전을 경작하여 공전의 일을 끝마친 다음에 감히 사전의 일을 하는 것이다.
맹자 III.A.3 (유교)
많은 신도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서 누구 하나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그들은 모두 큰 은혜를 받았다.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그 판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고, 사도들은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
사도행전 4.32-36
말씀 선집
이상적인 사회나 나라는 모든 사람이 국경과 피부색을 초월하여 상호 협력하고 조화를 이루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회다. 이 사회는 사람들이 한 하나님의 아들딸임을 자각하고 참부모를 중심하고 한 형제가 된 대가족 사회, 그곳은 혈통과 소유권과 심정을 복귀한 축복가정들이 참부모의 언어, 참부모의 문화 아래, 자유와 평화와 통일의 세계를 이루는 곳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정문화 속에서 공생(共生) 공영(共榮) 공의(公義)의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세계는 부패나 부정, 그리고 전쟁이나 죄악과 무관하며 인류는 지구환경에 대한 공해 요인들을 제거하고 만물에 대하여 참된 주인으로서 사랑하고 보호하며 살게 돼 있다. 그 세계에 있어서 생활을 위한 활동과 작업은 남을 위하고 사랑하는 심정을 바탕으로 한 기쁜 봉사요, 실천이며 따라서 구성원의 생활 정도는 평준화된다.
(269.156-157. 1995.04.17)
자기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표준하면 안 됩니다. 그 동네면 동네의 상.중.하를 중심삼고 거기에 맞춰 살아야 됩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우리 상.중.하의 생활 기준이 얼마라고 해서, 주 생활비는 얼마고, 경비는 얼마고, 소모비는 얼마인데 그 기준을 중심삼아서 어디 어디에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해 나간다는 것을 자동적으로 회의 결과에 의해 다음 달은 어떻게 나간다는 것이 정해지면 거기에 맞춰 살아야 됩니다.
우리 생활 방법을 보장하는 것은 언제나 법입니다. 월급을 얼마 받으면 이번 달에 얼마 받는 사람은, 몇 퍼센트는 얼마다 이겁니다. 상,중,하에 따라서 비례 기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철칙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틀리면 영계의 자기 생활에 침해를 당하는 것입니다. 영계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와 같이 돈을 쌓아 놓고 그렇게 살수 없습니다. 나는 돈을 쌓아 놓고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 아들딸하고 같이 살더라도 아들딸의 마을 전체 평준 기준이 셋이라면 셋을 기준 삼고 넷 다섯이 된다면 생활 비준을 자기들이 협력해서 부가해야 됩니다. 백 집이 살면 백 집이 분할해서 아기 많은 집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형제니까 조카와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마을에서 결혼하는 것입니다. 도와준 집, 도와준 인연을 따라서 연결됨으로 말미암아 평화의 터전이 점점 확대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324.254-256. 2000.06.24)
정치의 방향도 가정 이상을 중심삼고 참사랑에 맞춰야 됩니다. 경제나 모든 문화 전부 다 참사라에 맞춰야 됩니다. 이제 그렇게 자기들 멋대로 나가다가는 자꾸 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가 어차피 하나 안 되면 안 됩니다. 하나가 된다면 경제적 체제를 중심삼고 하나 되지 정치 체제가 아닙니다. 정치 체제는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의 그 기반 위에 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이 없어져 가지고 경제 체제 중심사고 관리 체제로 넘어가야 평화와 통일의 세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모델 세계화시대에 들어오기 때문에 그 다음에는 평준화 체제로 넘어가야 평화와 통일의 세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303.192-193. 1999.08.25)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한 인간이 이룩하는 이상세계에 있어서 전체목적과 개체목적은 자연스럽게 조화됩니다. 인간은 욕망도 있고 사랑의 자율성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인소유, 개체목적이 허락되어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무한정한 개인소유 또는 전체목적을 해치는 개체목적을 추구하지는 않습니다. 완성한 인간은 스스로의 양심과 본성에 의하여 자기분수에 맞는 소유 량을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참사랑에 의한 만물의 참주인의 인격 되는 이상적인 인간의 경제활동은 사랑과 감사를 저변으로 하기 때문에 과욕과 부정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동시에 전체목적에 배치되는 지역이나 국가 이익이 강조될 수 없으며 또한 경제활동의 목표가 이윤 추구가 아닌 전체 복지에 초점이 모아집니다. 공영주의는 하나님의 참사랑을 바탕으로 공동 참여를 해서 자유, 평등, 행복의 이상이 실현되는 정치를 추구하는 주의입니다.
(271.77. 1995.08.22)
영계의 조직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영계의 조직이 뭐냐 하면 생활을 중심삼아 가지고 전부 다 계열이 되어 있지, 정치라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직속 사랑을 중심삼은 가정이상을 확대한 세계라는 것입니다. 정치의 방향은 왔다 갔다 하고 투쟁개념이 있어서 강력히 군사 확장이라든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그런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경제 평준화 운동을 중심삼고 어떻게 잘 사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지상도 그렇게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참사랑이라는 것은 정치 경제를 다 넘어가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뭐냐 하면 힘이라든가 돈이라든가 지식이라든가 모든 것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뭘 할 것이냐? 생활 평준화입니다. 정치적 수단 방법을 확대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활 확대를 위한 세계입니다. 그것이 천상천국 지상천국이라는 것입니다.
(303.193-194. 1999.08.25)
3. 부자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국민에게 나누어줘야
종교 경전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이에게 나눠 주는 것,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고 헐벗은 사람을 입혀 주며 제 골육을 모르는 체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만 하면 너희 비치 새벽 동이 트듯 터져 나오리라. 너희 상처는 금세 아물어 떳떳한 발걸음으로 전진하는데 여호와의 영광이 너희 뒤를 받쳐 주리라.
이사야 58.7-8(기독교)
희사는 가난한 자, 곤궁 자, 그와 관련하여 고용된 자, 마음이 화합되어야 하는 자, 그리고 노예, 부채에 고생하는 자, 하나님의 길을 가기 위한 나그네를 위한 것이니, 이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의무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며 현명하시노라.
꾸란 9.60(이슬람)
내가 가난한 사람을 모른 체하였던가? 과부들의 눈앞에 캄캄하게 해주었던가? 나의 분깃을 혼자만 먹고 고아들에게는 나누어 줄 생각도 없었던가? 걸칠 옷 한 벌 없이 숨지는 사람, 몸 가릴 것도 없는 빈민을 못 본 체라도 했단 말인가? 나는 다만 하나님의 징계가 두렵고 그의 위엄에 눌려서라도 그런 짓을 하지는 못하였다네.
욥기 31.16-23(기독교)
사악한 인간이 번영하고, 정의로운 이들이 그렇지 못하게 되는 그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의인은 좌절하고 만다. 아주 작은 바늘과 같이 거짓된 행위의 처음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것이 팽이만큼 커지는 날에는 사람을 죽이게 된다.
요루바족의 노래 (아프리카 전통 종교)
최고의 자비는 가난한 동료의 일손을 돕고, 선물이나(이해관계 없이) 돈을 빌려줄 수 있는 것이다. 또는 사람의 동업자가 되어 일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그 가난한 자는 더 이상 공적인 보조에 의지하지 않고, 도움을 통해 결국 토라에서 가르치는 독립심 있는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 레위기 25장 35절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너의 동족 가운데 아주 가난해서 도저히 자기 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너의 곁에 살면 너는 그를 돌보아 주어야 한다.”
마이모니데스, 미수네 토라(유대교)
말씀 선집
문제는 돈 관리입니다. 먹고 사는 데 있어서 누가 좋은 것을 먹고 누가 좋은 것을 갖느냐 이것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좋은 것을 서로 갖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좋은 것은 전체를 위해서 주고, 중 이하의 것을 내가 바라고 이렇게 나가면 자동적으로 평준화가 되는 것이다.
(324.253-254. 2000.06.24)
물도 돌아가야 됩니다. 운동해야 되는 것입니다. 더우면 차가워져야 되고, 차면 더워져야 되는 것입니다. 더운 곳이 부자고 찬 곳이 가난하다면 더운 곳이 가난한 데로 이동되어야 됩니다. 그것은 자동적으로 옮겨집니다. 돈 있는 사람은 자동적으로 마을의 어려운 사람들을 책임지고, 전부 같이 생활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런 것이 전통이 되면 그런 마을은 서로 돕는 것입니다. 그러면 서로 신세 안 지려고 합니다. 서로 도우려고 하기 때문에 번창 하는 것입니다.
(253.238. 1994.01.30)
역사적 상층과 하층의 사람을 일체화시키기 위해서 상층의 사람들은 하층에 동화시키고, 하층의 사람들은 상층으로 끌어올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려면 절대적 가치의 중심점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신의 사랑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최상급의 사라들에게도 같이할 수 있고, 또한 최하급의 사람들에게도 같이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구형으로 회전 작용을 하는 힘입니다. 최상에서 최하에 이르기까지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어디에 나타나든지 모든 곳에서 전체로부터 환영받습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라도 동화를 이룩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 어디에서도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 있으면 행복하며, 모든 것이 채워지며 보장됩니다. 최하의 곳에 있어도 최상의 사람을 사랑할 수 있으며 최상의 입장에 있으면서도 최하의 입장에 있는 사람을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115.172. 1981.11.10)
여러분들이 진짜 부모 자식 관계의 사정을 안다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경영철학으로 보게 된다면, 고용주와 피고용주 관계입니다. 공산주의가 상부구조와 하부구조 간의 투쟁을 원칙으로 삼고 있는데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부자관계의 심정적 인연인 것입니다. 부자관계의 사랑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기업주 될 수 있는 입장은 부모의 자리요, 고용자 입장은 자식입니다. 부모가 자식에 대해 간여하듯 해야 됩니다. 부모님이 돈을 아껴서 싸 두는 것은 자식에게 주기 위해서입니다. 나중에 자식에게 상속해 주기 위해서 그런 놀음 한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116.121. 1981.12.27)
미국 같은 자유세계 민주세계는 노동조합 때문에 망합니다. 노동조합 해결 방법을 말해주겠습니다. 통일교회 단체에 노동조합이 있으면 내가 잡아 죽이려고 합니다. 노동조합은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노동자 농민의 노동조합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주들이 모여서 주주 조합ㅇ들 만들라 이것입니다.
둘(노동조합과 주주조합)이 합해서 우리 가정의 아기들과 여편네를 잘 먹여 살려야 되겠으니 작년 생산보다 금년은 전부 높아야 된다, 높아야 되는데 너희들하고 우리하고, 노동조합과 주주조합이 합해 가지고 경쟁하자 이것입니다. 그래서 이익이 나는 것을 한 3년 동안 주인에게 주지 말고 우리가 나우어 먹는데, 노동자 유니언이 열심히 했으면 몇 프로 더 주고, 주주 유니언이 열심히 했으면 더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러면 싸움하겠습니까? 서구사회에 이런 생각을 하는 녀석이 없습니다.
그것이 안 될 때에는 선생님이 ‘종교연합 세계조직이여, 모여라! 전 세계 축복가정 모여라! 지금 우리 종교 유니언 만들자!’ 해서 종교 유니언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일생 동안 봉사하려고 하는데 월급 3분의 1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회사가 망하게 생겼으니 벌어 대면서 나는 일하겠다. 그것은 그만두고라도 월급에서 30퍼센트 회사에 바치고 일하겠다고 한다면 유니언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일 안 하고 얻어먹을 수 있습니까? 일 안 하고 얻어먹으려고 하는 자들은 도적과 같습니다. 그런 자들은 선생님의 눈앞에 설 수 없습니다.
(342.288-289. 2001.01.13)
새 시대 21세기는 공의의 시대입니다. 새 시대 21세기는 물질이 판을 치지 않는 정신과 영의 시대입니다. 새 시대 21세기는 신인일체가 되어서 사는 시대입니다. 새 시대 21세기는 남을 위하여 사는 것이 나를 위하여 사는 것보다 더 영원한 가치가 있음을 깨닫고 사는 시대입니다. 이기주의는 퇴색하고, 공생, 공영, 공의의 이타주의가 드디어 개가를 올리는 시대, 그것이 바로 밝아오는 21세기인 것입니다.
(219.120-122. 1991.08.28)
4. 시장 자본주의 덕목: 정직한 노동과 “보이지 않는 손”
말씀 선집
나는 돈을 벌더라도 나를 위해서 벌지 않습니다. 내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서 벌지 않습니다. 세계를 위해서 버는 것입니다. 세계로 가려니 교회에서 필요하면 교회를 위해 쓰고, 나라에서 필요하면 나라를 위해서 씁니다. 나라가 살길은 세계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니 세계를 위해서 쓰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야 되겠습니다.
(113.52. 1981.04.26)
돈이 얼마나 힘이 셉니까? 돈이 얼마나 좋습니까? 거기에 참사랑만 있다면 그 참사랑을 가진 사람이 갖고 있는 돈은, 돈 자체도 좋아합니다. 참사랑을 중심삼은 사람이 힘을 가졌다면 그런 힘을 가져도 좋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힘은 세계를 보호하려고 하고 하늘과 땅을 보호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 지식은 이 우주를 편리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생활면에서는 세계적으로 편리하게 생활하도록 만들려고 합니다. 돈은 세계를 위해 쓰려고 합니다. 나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쓰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중심한다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모든 힘들이 타락한 이 세계에서 불평을 합니다. 모든 돈들이 전부 다 ‘참사랑을 만나야 할 텐데, 만나게 해 다오’ 하는데, 그것을 전부 다 저 악한 권세가들, 세계를 지배하는 사람들이 막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지식도 힘도 그것을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은 돈을 모으는 것도 아니요, 지식을 갖는 것도 아니요, 힘을 구하는 것도 아니라, 참된 사랑을 찾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인데, 이 타락한 세계에서는 참사랑을 모르는 것입니다.
(161.300-301. 1987.03.01)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남북의 격차입니다. 백인과 흑인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인은 잘 살고 부유하고, 흑인은 빈곤하다는 것입니다. 빈부의 격차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문제 되어 있는 현실에 있어서 백인들이 자기 재산을 팔고 자기의 모든 것을 팔아서 흑인들을 구해 주기 위해서 보따리를 싸서 흑인세계를 찾아가는 운동이 벌어지면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흑인들은 ‘우리가 잘못해서 지금까지 천대받고 못 살았지, 백인들이 잘못하지 않았어. 우리가 열심히 백인들을 따라가 가지고 백인들에게 지지 않게 일하겠다’고 할 수 있는 운동이 벌어져야 됩니다.
(161.19. 1987.01.01)
5. 공산주의와 그 오류
말씀 선집
역사 이래 인류는 상하간의 격차를 해소하려는 방향으로 진행하여 왔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이러한 조류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예가 공산주의입니다. 공산주의 사상은 인류사회에 있어서 계급간의 착취를 없애고 계급이 없는 사회를 건설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산주의의 최대의 문제점은 무신론이며, 신을 부정한 터 위에 그러한 이상 세계를 건설하려는 데 있습니다. 또 공산주의는 일부 독재자의 사의(私意)에 의해서 모든 것을 행하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115.170 1981.11.10)
공산세계에서는 ‘노동자, 농민이 주권자다’해 가지고 비참한 사람들을 영웅시하는데 이런 면을 보게 된다면 민주세계가 당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하나님이 있다고 하게 되면 민주세계를 망치더라도 공산세계를 남길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다고 하면 말입니다. 공산세계가 민주세계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없다고 하니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130.103. 1984.01.01)
오늘날 공산주의자들에게서는 ‘자본주의 세계의 노동자 농민을 해방해야 한다’는 소리가 드높이 들려옵니다. 그 해방의 소리가 과연 인류 역사를 통하여 완전히 주체적 선이 하나님이 되시고 선한 편에서 하나님이 주도하는 어떤 특정한 종교, 이 해방에 주력하는 종교들이 바라보는 해방의 기준과 일치될 수 있는 그런 함성이었느냐 하면 아닌 것입니다.
이 공산주의라는 것은 유물론에 입각한 세계의 해방을 꿈꾸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까지도 부정하고, 종교는 아편이라고 낙인을 찍어 놓고 산산 조각을 내어 그 세계에서는 형태까지도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해방을 주장하는 것을 볼 때에 이것이 이론적인 견지에서 보더라도 일치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 앞에 정반대되는 대립적인 해방이 틀림없기 때문에, 이는 악한 악마의 신이 있다면 악마의 신이 기수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는 종교기수 앞에 정면적인 세계적 공세를 가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공산당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85.230-231. 1976.03.03)
공산당은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모토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의 모토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양심 있는 사라들이여, 하나되고 단합하자!’라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중상류 계층의 사람을을 부정하지만, 우리 양심가들은 세 계층을 단결하게 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싸움터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 즉 흑인, 백인, 황인 모두를 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동원하여 공산주의자들을 이겨낼 때, 그때에 참다운 평화의 세계가 올 것입니다.
(52.136. 1971.12.26)
여러분들이 즐겁기 위해서 밥을 먹는다면 곡식, 혹은 채소, 생선들도 전부 즐겁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즐겁지만, 그 음식도 즐거워해요? 이게 문제입니다. 여기서 역사적인 문제, 상하관계의 조화라든가 그 다음에 강자 약자의 조화를 찾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말하자면 변증법적 논거가 있다고 보는 겁니다. 역사적인 상하투쟁 개념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헤겔 같은 사람은 그렇게 봤습니다. 이것을 해결 못 하게 되면 역사의 모든 이상세계니, 상하관계의 구조적 조직을 가진 어떠한 조직체의 평화라든가 이상경이라는 것을 찾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강자는 약자를 무시하고, 잡아 먹으려고 하고 천대하고,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32. 142. 1984.05.31)
공산주의 경제체제는 국가를 위한 것이고, 민주주의 경제체제는 개인을 위한 것입니다. 타협점을 찾아서 그 간격을 메워야 됩니다. 타협점을 찾아서 발전시켜 나가는 국가가 이상국가가 될 것이며, 그 국가가 이상적인 경제체제를 갖게 될 것입니다.
(52.267. 1972.01.02)
6. 지구화와 자본의 평준화
말씀 선집
선진국에는 돈이 많은데 그 돈은 누구의 것이냐? 하나님의 것입니다. 권세는 누구의 것이냐? 하나님의 것입니다. 지식은 누구의 것이냐?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냐? 만민의 아버지입니다. 그런고로 그 아버지의 인격, 경제, 권세, 진리는 모두 만민의 것입니다. 그래서 요즈음에 와서 민주주의가 출현하게 된 것입니다.
민주주의에서 주권은 백성의 것, 즉 만민의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이 주권을 좌우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주권이 백성에게 있다고 하지만 실상 그 주권은 재벌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은 배가 부르지만 혼자만 잘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 나누어 줘야 됩니다. 천리가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외국에 원조를 해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미국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미국만의 것이 아니라 세계의 것입니다. 어떠한 학식도 선진국만의 것이 아닙니다. 세계의 것입니다.
(26.53. 1969.10.18)
여러분이 먹는 식물이 여러분의 것입니까? 그것이 미국의 것입니까? 우주의 것이요, 만민의 것입니다. 이것을 자기를 중심삼고 서로 자기만 가지겠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루어 통일된 환경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공기가 이만큼 밀집되어 있으면 이것이 언제나 밀집되어 있습니까? 없으면 자연히 메워 주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여기가 진공 상태가 됐을 때 다른 곳에서 공기가 옵니다. 물도 그렇습니다. 물도 흘러가면서 비어 있는 곳은 전부 다 메워 주고 가는 것입니다. 식물을 먹는 것도 전부 다 메워주는 것, 배고프니까 갖다 채워 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흡수해야 됩니다. 지금 2천만이 굶어 죽는데 미국은 소비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아무리 잘되겠다고 마음대로 해 봐야 안 된다는 것입니다.
(247.94. 1993.04.25)
자기 나라만을 위하여 나가면 망하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를 자기나라의 경제 부흥만을 위한 발판으로 여기고 착취해가는 나라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다른 나라를 경제적으로 후원해 주고 거기에 덧붙여서 장사를 해 먹으려고 하기 때문에 미국이 지금까지 원조를 해 주고도 욕먹는 나라가 되었던 것입니다.
(26.294. 1969.11.10)
이제 미국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자국의 경제력을 풀어서 제일 못사는 나라를 찾아가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합니다.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입장에서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주어야 됩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대해서는 눈물을 흘리는 입장에 서서 주어야 됩니다. 주는 데 있어서도 지금까지 지니고 있던 권세의 자리에서 주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반발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누가 먼저 눈물을 흘려야 됩니까? 받는 사람이 먼저 눈물을 흘려야 됩니까? 받는 사람이 먼저 눈물을 흘릴 것이 아니라 주는 사람이 먼저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것이 부모의 입장입니다. 그러니 주는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는 데는 어떻게 주어야 됩니까? 눈물로 써 주어야 됩니다. 비웃으며 주다가는 망합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미국이 가끔 원조를 하고 있는데 권세를 가지고 하게 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대한민국도 그렇습니다. 미국을 대하여 ‘너희들 원조했다고 뻐기는데 언제 한번 너희들이 얻어먹어 봐라’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는 데는 눈물로 주어야 합니다. 눈물로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 할진대 서로는 형제가 아니라 원수입니다.
(13.27-28. 1963.10.16)
기술 평준화, 정치 평준화, 경제 평준화를 안 하기 위해서 선진국이 후진국에 가르쳐 주지 않고 오히려 지금까지 착취해 나왔습니다. 그것은 세계의 것이지 미국의 것이 아니고 독일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빨리 빨리 평준화, 평준화, 평준화시켜야 됩니다. 이제 중국에 그런 평준화를 시켰다고 해 보세요. 중국 국민들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야 지상천국이 빨리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135.107. 1985.09.03)
우리의 진실한 봉사의 기준인 절대적 가치의 수평적 측면에 눈을 돌려 세계의 결점들을 또한 점검해 봐야만 합니다. 예를 들면, 물질적 기술적인 면에서 축복을 받아온 국가들이 그렇지 못한 나라로가 기꺼이 이를 나누어 가지려 하기 이전에는 세계평화란 결코 이룰 수 없습니다. 과학과 기술의 혜택은 모든 인류를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누어 함께 누려져야 합니다.
모든 국가는 국민의 복리를 위해 기술을 이용할 공평한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이는 모든 국가의 선수들이 코치의 지도를 받고 한 운동장에서 경쟁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진국들은 그렇지 못한 나라들이 질서와 시기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통일운동은 기술 축복을 모든 나라에 나누어 주어, 개발 도상국가들의 경제적 독립의 필수요소인 자신의 공업기반을 세우는 데 도와주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제17차 ICUS 기조연설, 1988.11.25)
아직도 이 세계에는 많은 곳에서 가난이 있고 기아가 있고 불평등이 너무 심화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한 종교인의 책임은 대단히 크다고 하겠습니다. 본인은 지난 20년간 해양자원 개발을 위해 직접 선두에서 배를 타고 많은 자원을 투입하면서 노력하였습니다. 고단백질 수산물 파우더를 개발하는데 성공했으며 인체에 긴요한 제품들을 계속 연구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성과는 아프리카 등지에 효과적으로 지원되고 있습니다.
지구상에 굶주림의 참상을 없애기 위한 본인의 결의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농업개발과 해양기업을 통해서 식량을 생산하고 저개발 국가를 지원하는 일에 종단들이 서로 연합 협력해야 할 줄 압니다. 종단들이 선도하는 이와 같은 인적 물적 투자를 통해서 참사랑이 실천되면 세계에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봅니다.
(271.71-72. 1995.08.21)
행정부가 우루과이 라운드를 중심삼고 세계 모든 약소국가에 대해서 잉여 농산물을 전부 다 팔아먹겠다고 고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주장하기를 ‘농산물을 자유 유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유 유통을 허락해라’ 한 것입니다. 국경을 철폐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강제했다가는 미국은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앞으로 통일교회 교인들은 전부 다 자기가 가진 소유와 재산을 팔아 가지고 아프리카 사람을 위해서 종이 되라고 보내지 않고는 미국은 망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은 그런 것을 싫어합니다. 할 수 없이 통일교회 교인에게 그 놀음을 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행동을 하게 하여 망하는 미국에 균형을 취함으로써 지속적인 존재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261.309. 1994.07.24)
일치와 공동체
모든 종교는 자신의 신앙 일치에 대한 비전을 지닌다. 오늘날 우리는 온갖 인종,종교 그리고 국적을 포함하는 인류 전체의 일치에 대한 거대한 비전을 염원한다. 그럼에도 공동체 형성을 위한 원칙원리만이 남아 있다. 모든 종교는 보편적 가르침을 중심한 새로운 사회를 형성하기 위해 분열된 여러 집단을 통합하는 일치운동을 시작했다. 세계경전들은 그에 대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문선명 선생은 가정이 모든 사회적 일치의 기초이기 때문에 이 일치는 가정을 통찰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여기의 여러 구절은 인체의 다양한 기관들이 협력하여 자신의 기능을 수행하기에 이를 비유로 사용한다. 이는 조화로운 공동체 안에서 서로 지지해야 하는 다양한 사회적 역할들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다. 인체는 가장 낮은 것으로부터 가장 높은 것까지 모든 부분의 적절한 기능 수행에 의존한다.
이처럼 진실한 공동체에서 모든 사람은 영예로운 지위를 가진다.
1.하나님의 백성과 가정으로서 일치
종교 경전
너희 중에는 선으로 초대하고 옳은 것을 권하고 악을 멀리하는 집단이 있으니 그들은 번성하리라. 명백한 증거가 온 뒤에도 분열하고 논쟁하는 사람들처럼 되지 말라. 그들에게는 무거운 징벌이 있을 것이니라.
꾸란 3.104-105 (이슬람)
이다지도 좋을까, 이렇게 즐거울까! 형제들 모두 모여 한데 사는 일!
시편 133.1(기독교)
믿는 자들은 형제들이니라. 그러므로 너희의 두 형제 사이를 화해시키고 하나님을 경외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있을 것이니라.
꾸란 49.10(이슬람)
주께서 자기 백성을 시온이라 칭하였으니, 이는 저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의롭게 생활하여 저들 가운데 가난한 자가 없음이더라.
값진 진주, 모세서 7.18(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회)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니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서 우리 안에 있는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서 우리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여 주십시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20-22(기독교)
함께 만나서 함께 대화하라.
제사에서 자기의 몫을 받아들이며,
한마음이었던 고대의 신들처럼,
그대들의 마음이 하나되게 하라.
그대들의 협의가 공통이며,
그대들의 모임이 하나되기를 원하며,
마음을 서로 통하게 하며,
이러한 생각들이 일치하기를 원합니다.
내가 하나의 공통목표를 그대들 앞에 제시하니,
공통의 헌물로써 숭배하라.
그대들의 목적이 공통되게 하며,
그대들의 마음이 일치되게 하며,
그대들 모두가 한마음이 되게 하며,
그대들이 함께 잘살기를 기원합니다.
리그 베다 10.191.2-4(힌두교)
유대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가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3.28(기독교)
우리의 본질은 어느 곳에도 제한되어 있지 않으며, 우리 포도주의 활력은 어떤 그릇에도 담겨 있지 않도다.
우리 항아리를 이루고 있는 도자기와 같이 중국인도 인도인, 우리 몸을 형성하고 있는 진흙과 같은 터키인과 시리아인,
우리의 심정은 인도,시리아,루마니아 어느 것도 아니거니와, 이슬람 외에 어떤 조국도 우리는 선언하지 않노라
무함마드 이크발, 이타심의 이스터리(이슬람)
말씀선집
역사상에 하나님이 제일 소망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소망이 있다면 구원도 개인구원이 문제가 아니고, 백인구원이 문제가 아닙니다. 제일 소원하는 것이 뭐냐 하면, 인류가, 오색 인종이 하나되어 하나님하고 살고 죽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93.15-16, 1977.05.08)
외적 통일보다도 내적 심정 통일이 중요합니다.
(60.34, 1973.08.01)
선생님은 미래세계의 문제점 중 하나인 인간과 관련된 장벽들을 무너트리려 하는 것입니다. 어떤 종류의 유명한 국가 지도자도 문화적 배경의 장벽,습관 등과 연관된 인간들 간의 장벽을 허물지 못하는 것입니다. 누가 그런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습니다. 미래에 닥칠 인종문제, 문화와 연관된 문제들, 국가 간의 국경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을 중심삼고 문화가 다르고 문명이 다르고 종교가 다른 세계 국가들을 하나로 통일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입니다.
(215.203,1991.02.17)
여러분들은 앞으로 한집에서 살 것입니다. 내가 콘도미니엄을 지으면 네 세대가 살 수 있는 집을 지을 것입니다. 리셉션 장소로 하나 만들고 식당도 하나 만들고 한국 사람,일본 사람,미국 사람,독일 사람 네 세네가 살 수 있는 콘도미니엄을 만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 되어야 됩니다. 하나 안 되면 천국이 안 됩니다.
(131.244, 1984.05.04)
가장 저주하고 싶고 꿈에라도 만나기 싫은 원수 집안과 결혼 축복을 통해 한 가족이 되어 보십시오. 원수의 감정에 젖어 있던 부모들의 혈통은 사라지고 새롭고 강력한 참사랑의 핏줄이 창조되는 것입니다. 양가의 자식들이 부부가 되고, 서로 사랑하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사는 것을 저주할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리 미워하는 원수의 딸이라고 할지라도 자기 아들의 사랑을 받는 며느리가 되어 수정처럼 맑고 깨끗하고 참된 하늘의 손자손녀를 안겨줄 때, 기쁨의 미소를 짓지 않을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디 있겠습니까?
백인과 흑인이, 동양과 서양이, 유태교와 회회교가, 더 나아가서는 오색인종이 한 가족이 되어 살수 있는 길이 교차결혼의 길 외에 또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더불어 사는 삶의 전형은 가정입니다. 부모와 자식은 사랑과 존경으로, 부부는 상호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형제자매간은 서로서로믿고 의지하며 하나되어 사는 보금자리가 바로 모델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생명을 걸고라도 참부모님으로부터 결혼축복을 받고 하늘의 전통인 이상가정을 찾아 세워야 하는 근본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평화신경, 평화메시지 1:23-24, 2005.09.12)
2. 공공의 적에 대항하는 일치단결
종교 경전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지면 망하고, 어느 성이나 가정도 서로 갈라지면 버티지 못한다.
마태복음 12.25(기독교)
내 자녀들아. 전쟁,두려움 그리고 불일치가 너희를 너희의 마을엣 이 성스러운 모임의 불로 데려왔다. 공통의 위험에 부닥쳐서, 그리고 너희 가족의 생존을 두려워하면서, 그리고 너희 가족의 생존을 두려워하면서, 너희는 아직도 분열되어 표류하고 있다. 내가 어떻게 너희를 작은 집단으로부터 이끌어내어 큰 부족연맹으로 길러냈는지 생각해 보아라. 너희는 지금 다시 결합하여 한 몸처럼 행동해야 한다. 어느 부족도 홀로 우리의 야만스러운 적들에 대항할 수 없다. 저들은 영원한 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저들은 모든 곳에 죽음과 파괴를 퍼뜨리면서 혹한의 폭풍처럼 우리를 쓸어버린다. 내 자녀들아, 잘 들어라. 너희는 형제임을 기억하라. 한 부족의 멸망은 모든 부족의 멸망임을 기억하라. 너희는 반드시 하나의 불, 하나의 파이프, 하나의 전투조직을 가져야 한다.
테카나위타(미주 원주민 종교)
말씀선집
완전히 악한 모마제국의 속국이 된 것은 무엇을 하려고 그랬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내적으로 하나되어 가지고 독립운동 하는 것입니다. 로마를 행해서 대항할 수 있는 이런 터전을 만드는 것입니다. 강한 원수를 맺게 해준 것은 내적으로 하나 된 하나의 통일운동을 시키기 위한 하늘의 작전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섭리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로마제국시대의 카타콤 같은 곳을 가보면 기독교인들이 땅굴에서 살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로마에게 핍박받으면서도 얼마나 기독교를 중심으로 하나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한 것은 기독교를 하나 만들게 하고, 로마에서부터 유대교를 하나 만들어서 강력한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입니다
(105.124-125, 1979.10.04)
오늘날 여러분과 본인은 공통의 운명 앞에 함께서 있습니다. 본인은 이 악한 세계에서 정의를 옹호하는 사람이 만약 어떤 실질적 기반을 갖지못한다면 쉽게 제거될 수 잇다는 것을 뼛속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따라서 학자와 학생들의 연합전선과 함께 크리스천과 모든 종교의 신앙자들으 함께 일해야 합니다.
(129.304, 1983.11.25)
3. 인간의 몸을 모형으로 한 상호 의존
종교 경전
몸은 하나인데 만은 지체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한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합니다. 우리는 유대사람이든지, 그리스 사람이든지,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서 한 몸이 되었고, 또 모두 한 성령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여러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발이 말하기를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속한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고 해서 발이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또 귀가 말하기를“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속한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고 해서 귀가 몸에 속한 것은 아닙니다. 온몸이 다 눈이라면, 어떻게 듣겠습니까? 또 온몸이 다 귀라면, 냄새는 어떻게 맡겠습니까? 그런데 실은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우리 몸에다가 각각 다른 여러 지체를 두셨습니다. 전체가 한 지체로 되어 있다고 하면, 몸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데 실은 지체는 여럿이비맘 몸은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눈이 손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게 쓸 데가 없다”고 할 수가 없고, 머리가 발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가 쓸데 없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뿐만 아이라 사람이 몸 가우데서 더 약하다고 여기는 지체가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그리고 몸 가운데서 덜 귀하다고 생각하는 지체들들 더욱 귀한 것으로 입히고, 볼품없는 지체들을 더욱더 아름답게 꾸며 줍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지체들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지체들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몸을 골고루 짜 맞추셔서 부족한 지체에게 더 큰 존귀함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게 하시고, 지체들이 서로 같이 걱정하게 하셨습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같이 고통을 당합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고린도전서 12.12-26
아부 무사가 사도의 말씀을 전하노니,“신자들이란 서로에게 각 부분이 서로를 지탱하는 건물과 같도다”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의 손가락을 깍지끼여 보였다.
부카리 및 무슬림 하디스(이슬람)
육체와 타락한 성향의 욕망이 너희를 가라놓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희는 한 손의 손가락처럼, 한몸의 지체처럼 살아라. 그리하여 만일 너희가 믿음을 가진 자라면 계시의 펜과 상의하라.
바하울라 저서의 낙수집 72(바하이교)
손가락 하나가 아프다고 그것을 잘라낼 수는 없는 것이다.
은자크족의 격언(아프리카 전통 종교)
말씀선집
이상세계를 창건하기 위해서, 우리는 전체적인 모델,즉 청사진을 가져야만 합니다. 통일운동이 제시하는 이상세계상은 마음과 몸이 일치된 완성한 한 인간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인간의 정신적및 영적 생활로부터 삶의 이상과 목적이 나옵니다. 신경조직은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각 세포에게 전달하고, 사지백체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를 두뇌에 전달합니다. 이 수수의 과정이 순조로울 때 개인은 조화로운 상태에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류 전체의 정신적 및 영적 생활이 한 개인의 그것에 견줄 수 있다면, 인류 사회의 경제적 및 외적 측면은 개인의 신체에 견줄 수 있습니다. 인류의 영적 이상과 하나님을 향한 염원과 사랑은 종교를 통하여 사회와 문화 속에 표현되며, 그를 중심으로 신학,철학,예술및 모든 문화 속에 표현되며,그를 중심으로 신학,철학,예술 및 모든 문화가 회전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종교지도자,신학자 및 철학자들은 마치 인체의 신격조직과도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메시지를 해독하여 전 인류에게 전달해야 하는 것입니다.
(133.272, 1984.08.13)
여기 세포를 통하던 피가 발바닥 세포를 통하던 피에게 ‘아이고,머리로 오지 말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런 경계선이 있습니까? 머리에 오지 말라는 경계선이 있습니까? 머리에 오지 말라는 경계선이 있습니까? 없습니다.그런 의미에서 흑인,백인,황인 구별이 없습니다. 살이 요건 하얗고,요것은 노랗고, 색깔이 전부 다 다르지요?
눈 색깔도 다르고, 머리칼도 다르고, 전부 다 다르지요? 그렇다고 ‘ 아,너는 나와다른데 너는 별종이야 ’ 그럴 수 있습니까?
(01.280, 1977.02.27)
폐장과 심장과 위장이 말초신경을 통하여 전달되는 두뇌의 명령을 따라, 서로 상충이 없이 원만한 수수의 작용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 같이, 이3장기에 해당되는 이상사회의 입법,사법,행정의 3기관도 정당에 해당되는 그리스도를 중심한 성도들을 통하여 전달되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서로 원리적인 수수의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사지가 두뇌의 명령을 따라, 인간의 생활목적을 위하여 활동하고 있는 것과 같이, 사지에 해당되는 경제기구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이상사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실천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체에 있어서 간장이 전신을 위하여 영양을 저축하는 것과 같이, 이상사회에서도 항상 전체적인 목적 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저축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인간의 사지백체가 두뇌의 종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체들 사이에 자동적으로 횡적인 관계가 맺어져서, 불가분의 유기체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이상사회도 모든 사회인들이 하나님과 종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횡적인 관계를 맺게 되기 때문에, 희로애락을 같이하는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회에 있어서는, 남을 해치는 것이 바로 자기를 해치를 결과로 돌아오기 때문에, 범죄를 행할 수 없는 것이다.
(원리강론, 메사아 강림준비시대.3.2)
세계시민
세계적 조류는 일치를 향해 끊임없이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원심력이 그 흐름을 위협하고 있다. 오늘날 통신,교육,운송과 무역등에서 국가와 국가 사이를 서로 유익하고 의존적인 그물망으로 제도화 하면서 세계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세계의 일치는 단지 무역의 토대에만 의존할 수 없다. 세계적 현안이 경제적인 주도 세력들에 의해 조정된다면 개발도상국 국민은 세계화의 희생물로 남아 치명적 위협을느낄 것디아. 인류 역사상 영광스러운 국민은 자신의 자만심을 담보할 대아을 강구할 것이다. 이슬람주의의 등장에 하나의 예이다. 세계 일치의 열쇠는 경제에게 양도될 수 없다. 그열쇠의 주인공은 바로 종교이다.
각 종교적 가르침에는 불화 반목의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각 종교에는 세계 일치의 이상을 제고하는 가르침-- 인류의 부모인 하나님에 근원을 둥 가르침---을 함유하고 있다. 요컨대 세계일치의 주인공은 하나님이다.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따라서 세계는 하나님을 중심한 하나의 가족공동체이다. 종교적 가르침은 이런 일치를 현실화하는 방도를 제시한다. 예를 들면 문선명 선생의 초인종 초종교적 추복결혼이 그것이다.
종교 경전
오, 인간들이여! 우리(하나님)는 너희를 한 쌍의 남녀로부터 창조하였으며 우리는 너희로부터 민존과 부족을 만들었느니라. 이것은 너희가 서로 알게 하기 위함이노라. 너희 중에서 하나니에게 가장 고귀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이니라.
꾸란.49.13(이슬람)
인류라는 가족을 하나로 여겨야 한다.
지나세나.아디푸라나(자이나교)
온 세상 사람들은 모두 형제야.
남이라곤 전혀 없는 거야
이 근본을 아는 자는 없으므로
그것이 월일로서는 섭섭할 뿐이야
친필 13.43-44(천리교)
온 인류가 당신 편이 되게 하라
아디 그란트, 타푸지 28.M.1.p.6
분쟁하는 땅의 백성과 종족들아! 일치를 향해 너희의 얼굴을 돌려서 그 빛이 너희에게 빛나도록 하여라. 너희는 함께 모여라.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너희에게 있는 모든 싸움의 원인을 발본색원할 것을 결의하여라. 그러면 세상의 위대한 광원의 광채가 지구 전체를 뒤덮을 것이고, 그 주민들은 한 도시의 시민이 될 것이며 동일한 옥좌의 주인이 되리라.
바하울라 저서들의 낙수집 111(바하이교)
말씀선집
우리 인간에게 국적을 초월한 하나의 통일세계에 살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이 각자의 내면세계에서 용솟음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면의 외침은 참된 인간의 이상이자 심정이요, 이는 곧 하나님의 심정이자 소망이기도 합니다.
(115.177, 1981.11.10)
초민주적인 주의라야 합니다. 초민족적 주의라야 합니다. 초민족적인 심정을 중심삼고, 자기 민족보다 그 나라를 더 사랑할 줄 아는 민족이 나와야 합니다.
(34.337, 1970.09.20)
이제부터 ‘내나라’라는 정의가 발전적이어야 합니다. 물론 내가 태어나 사는 나라가 우선 내 나라임에 틀림없으나, 보다 큰 견지에서 보면 내 아버지는 되시는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가 또한 모두 내 나라인 것입니다.
(219.121, 1991.08.28)
지금까지 역사는 국가를, 자기 나라를 중심삼고 그렇게 나왔습니다. 인간들은 그렇게 생각하였지만, 하나님이 있으면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하나님이 가라사대 ‘미국 나라만 사랑한다. 나는!’ 하신다면 그 하나님은 미국의 하나님밖에 안 됩니다. 그 하나님은 미국 망할 때 망해야 할 하나님입니다, 망해야 할 하나님.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행각하지 않아요. 인간들보다도 차원 높은 행각을 하기 때문에 가정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사상보다도 더 철두철미한 세계를 위하는 사상을 하나님이 세우려고 할 것입니다.
(95.53, 1977.10.23)
미국을 세운 목적은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미국이 세계를 구해야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세계 역사상에 있어서 단일국가가 중심이 되어 종교와 문화적으로 세계 전역을 통일한 것이 단 한 번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세계2차 대전 직후 미국이 전 세계를 점령한 것이 아니겠느냐. 미국 케네디 대통령을 중심한 미국은 전 세계의 살기 어려운 나라들에게 도움을 주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215.200-201, 1991.02.17)
천주주의라는 것은 세계를 하나의 집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집에는 어머니 아버지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 하늘은 아버지요, 땅은 어머니입니다. 다음에 형제가 있어야 됩니다.
(36.296-297, 1970.12.13)
‘우리의 가정은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창조이상인 천주대가족을 형성하여’..... 하나님 이상은 세계가 전부 한 가정입니다. ... ‘천주대가족을 형성하여 자유와 평화와 통일과 행복의 세계를 완성할 것을 맹세하나이다.’ 자유라는 것은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전 세계 대가정에 있는 사람들의 자유고, 대가정의 평화고, 대가정의 행복입니다. 전 인류가 전부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영계에 가게 되면 전 세계의 사람들의 한꺼번에 다 모이는데 국경이 없습니다. 오색 인종이 모여 있습니다. 누가 과거,현재,미래까지 전부 다 하나될 수 있는 가정적 이념을 가지고 준비되어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260.191-193, 1994.05.08)
7개국 사람과 인연된 생활을 하여야 천국에 들어간다.
(뜻길. p.167)
사람은 반드시 공간의 세계에 서게 되면 상하가 필요하고, 좌우가 필요하고, 전후가필요합니다. 그래야 내 존재 위치가 확정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상하를 바로 갖추고 있느냐. 좌우 전후를 바로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상하 좌우 전후관계, 그리고 가정의 문제나 나라의 문제, 세계의 문제를 다루는데 공식은 하나입니다. 개인을 중심삼고 상하 좌우 전후가 있듯이 가정에서도 부모와 자식이 있어야 하고,남편과 아내가 있어야 하고, ,형제자매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라에도 나라와 주인을 중심삼고 모든 가정이 동서의 문명, 남북의 문명을 다 품고, 그 다음에 세계의 만민을 형제자매와 같이 품어 결국 하나의 가정 모델을 이루는 것입니다. 모델은 똑같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그 모델의 중심입니다. 자기가 있는 후에는 자기 가정이 있어야 되고, 나라와 세계와 하늘 땅, 그리고 하나님까지 나아가야 된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278.19-20, 1997.08.10)
하나님이 바라시던 섭리의 집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 집이 우리나라도 되고, 우리 세계도 되고, 우리 하늘땅도 됩니다. 우리 집에 가게 되면 오색인종이 다 있습니다. 미국 사람, 독일 사람,불란서 사람,이태리 사람,그 다음에 영국 사람,일본 사람,원수들끼리 있습니다. 옛날원수의 감정을 느끼려야 느낄 수 없습니다. 옛날에 독일사람,미국 사람,영국 사람,일본사람이라는 이런 감정을 느끼려야 느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원수라 하더라도 위하는 사랑을 가지면 모두 합해집니다.
(106.83, 1979.12.09)
자기 일개 민족을 위주한 종교를 가지고 세계적인 뜻을 성취하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민족이나 국가를 넘어야 하고, 자기 민족의 전통적인 사회제도나 문화, 그 밖의 모든 관습을 전부 다 타파해 버리고 세계인을 중심삼은 사회, 하나님의 뜻과 일치될 수 있는 하나의 세계를 모색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모든 심정을 일체화시키고 생활 전체를 일체화시켜야 됩니다. 인생관이면 인생관을, 세계관이면 세계관을 일체화시키는 놀음을 단행하지 않고는 종교로서 남아지지 못할 것입니다.
민족을 위주한 행복의 이념을 찾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주한 행복의 이념을 찾으려고 하는 통일교회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역사과정의 종교를 중심삼고 볼 때에 현재가 그러한 시점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를 위주한 관념, 자기 가정을 위주한 관념, 자기 국가를 위주한 관념을 가지고는 세계화가 안되는 것입니다.
(27.179, 1969.12.14)
역사는 하나의 세계를 지향해 나오고 있기 때문에 개인, 가정, 민족, 국가를 위하는 것은 다 지나가 버립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세계적인 표준존재에게 접붙여 주십니다. 그것은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기준을 바라보고 사는 여러분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12.45, 1962.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