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제2장 진리와 우주 법칙
영원한 진리
영원한 말씀, 진리, 또는 신성한 지혜는 우주가 창조되기 이전부터 있었다. 말씀은 우주에 두루 편재한다. 그것은 우주 창조의 견인력이었으며, 자연법칙으로 지속적 작용을 한다. 그것은 물리적 법칙과 도덕법칙, 그리고 영적 법칙으로 작용한다. 어떤 사람들에게 진리는 이성적으로 파악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의 본질은 말씀으로 파악된다. 그런데 그것은 오직 완성 인간인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성육화 된 말씀인 것이다.
말씀은 우주에 그 목적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 목적은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한 이유에 관해 신비로움과 관련된 것이다. 전지전능한 절대자로서 하나님이 그와 다른 어떤 대상을 창조함으로써 무엇을 얻을 수 있었을까? 이 절 말미의 경전 구절들은 창조의 근본 주제가 사랑이었음을 시사한다. 오직 관계를 맺을 때에만 드러나는 사랑은 플러스와 마이너스, 남성과 여성이라는 보편적인 이원성의 특징을 띠면서 우주에 편만해 있다. 사랑의 기쁨을 누리고 싶었던 하나님도 사랑의 관계를 맺기 위해 자신과는 별개의 대상들을 창조했을 것이다. 여기에 창조의 목적, 즉 창조의 청사진 속에 숨어 있었던 하나님의 근본적인 의도를 읽을 수 있다.
1. 태초의 말씀
종교 경전
해와 달은 정해진 궤도에 따라 운행되고 수목도 그분께 순종하느니라.
하늘을 높이 두시고 균형을 두셨느니라. 꾸란 55.5-7 (이슬람)
하나님은 진리로 천지를 창조하셨도다. 꾸란 16.3 (이슬람)
여호와는 지혜로 땅을 세우시고 슬기로 하늘을 굳게 펴셨으며, 주희(朱熹) (유교)
지식으로 해양을 갈라지게 하시고 공중에서 이슬을 내리게 하셨노라.
잠언 3.19-20 (기독교)
진리로 말미암아 대지가 유지되며,
태양으로 말미암아 천체들이 운행되도다.
천칙(天則)으로 말미암아 신들이 있으며,
소마는 하늘에 매여 있도다. 리그 베다 10.85.1 (힌두교)
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과 똑같은 분이셨습니다. 말씀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모든 것이 말씀을 통해 생겨났으며,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고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1-5 (기독교)
처음에 이것이 우주의 유일한 주였다. 지고한 이의 말씀이 그와 더불어 있었으니, 이 말씀이 그의 두 번째이다. 그가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이 말씀을 이끌어내어 그로 하여금 이 세계를 만들고 유지하게 하리라.”
탄드야마하 브라흐마나 20.14.2 (힌두교)
그 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만물이 그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왕권이나 주권이나 권력이나 권세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를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는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그의 안에서 존속합니다. 골로새서 1.15-17 (기독교)
여호와께서 만물을 지으려던 한 처음에 모든 것에 앞서서 나를 지으셨다.
땅이 생기기 전, 그 옛날에 나는 이미 모습을 갖추었다···
땅의 터전을 잡으실 때, 나는 붙어 다니며 조수 노릇을 했다.
언제나 그의 앞에서 뛰놀며 날마다 그를 기쁘시게 해 드렸다.
나는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이 즐거워 그가 만드신 땅 위에서 놀았다.
잠언 8.22-31 (기독교)
왕이 비록 궁전을 짓지만, 그것도 결국은 건축사의 기술로 짓는 것이다. 건축사가 사용하는 개념 역시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도 목재와 문을 놓으려면 도표를 그리고 설계도를 그려야 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 전부는 하나님이 토라를 통해 가르치면서 지으신 것이다. 창세기 랍바 1.1 (유대교)
도는 실재하고 겉으로 나타나는 작위도 없고 형체도 없다. 전할 수는 있어도 받을 수는 없다. 마음으로 터득할 수는 있어도 눈으로 볼 수는 없다. 도는 스스로 근본이자 뿌리이며, 천지가 아직 없었던 태고 때부터 이미 존재하였다. 도는 귀신과 상제를 신통하게 만들었으며, 하늘과 땅도 낳았다. 도는 태극 위에 있으나 높지 않고, 천지와 사방의 아래에 있으나 깊지 않고, 천지보다 먼저 있었으나 오래되지 않고, 까마득한 옛날보다 더 오래 되었으나 늙지 않았다. 장자 6 (도교)
말씀 선집
창조할 때 무엇으로 하느냐? 처음에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더불어 계획이 있었습니다. 인간을 창조해 가지고 이러이러한 인간 세계를 만들겠다는 본래의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인간이 타락했을지라도 오늘날 하나님의 구원섭리권의 인간들은 어떤 자리에 서야 되느냐 하면, 오늘날 하나님의 뜻 가운데, 하나님의 뜻과 계획권 내에 서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76.92, 1975.02.01)
하나님은 지식의 대왕입니다. 이 우주세계는 질서를 통한 법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그것이 모든 상대 이념을 갖추어서 인연과 인연을 통해서 관계를 지어 연관성을 가지고 운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방대한 대우주가 그런 걸 볼 때, 여기에는 모든 공식, 이론, 원칙을 초월할 수 있는 이상의 지식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지식의 대왕이시다 하더라도 누가 반대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127.11, 1983.05.01)
세계에 아무리 위대한 과학자, 위대한 학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 학자의 지식이라는 것은 지극히 적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깊은 곳으로 전진하면 전진할수록 거기에는 무궁한 법을 중심삼은 원리 원칙적 작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감안해 보게 될 때, 이 모든 것이 막연하게 자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내용과 근원을 통해서 반드시 작용을 하고 있고, 우주에 배치(背馳)된 방향성이 아닌 전체 목적에 일치될 수 있는 방향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여기는 무한 광대하고, 무한 미묘한 법칙 세계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와 같은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은 지혜의 왕이시오, 지식의 왕이시다 하더라도 아니라고 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냐?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127.11, 1985.05.01)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짓고 인간을 짓기 전에는 자기를 중심삼고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우리도 자신을 중심삼고 생각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대상의 세계를 전개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자기의 상대 존재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체를 투입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서 보이는 하나님으로 전개시키자는 것입니다. (69.81-82, 1973.10.20)
창조를 하는 데는 인간을 중심으로 인간을 모델로 해서 동시에 사방에 벌여 다리를 놓아서 지은 것입니다. (173.212, 1988.02.18)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기 전에 앞으로 창조하시게 될 인간의 성상과 형상을 형상적으로 전개하여 만물세계를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은 만물세계를 총합한 실체상이 되는 것입니다. (원리강론, 창조원리 3.2)
하나님이 창조 이전에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참부모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참부모, 참부부, 그리고 참자녀가 하나 되는 곳이 가정입니다. (339.212, 2000.12.26)
2. 절대적 진리
종교 경전
정의와 공정이 당신의 옥좌를 받들고
사랑과 진실이 당신의 거동을 인도하옵니다. 시편 89.14 (기독교)
하나님의 말씀에는 변함이 없으니, 그것이 위대한 승리이니라. 꾸란 89.14 (기독교)
거룩한 말씀으로부터 그가 세계를 생기게 하였나니, 천상에서도 지상에서도 그는 스스로 법 안에 거하도다. 아타르바 베다 4.1.3 (힌두교)
진리만이 승리하며, 진리만이 영원하다.
진리는 길이요, 삶의 목표이다.
아만을 여읜 현자들이 이루었던 바로다. 문다카 우파니샤드 3.1.6 (힌두교)
거룩한 법으로 인하여 모든 형상들이
현현하였으니, 법은 실로 설명할 길 없도다.
거룩한 법으로 인하여 만유가 생겨났으니,
법으로 인하여 어떤 이는 드리움을 받고,
법으로 인하여 고결함과 비천함이 가름되며,
법으로 인하여 그들이 행·불행을 헤아려 받도다.
그의 법에 따라 어떤 이에게는 은총이,
또 어떤 이에게는 생사윤회의 과보가 되돌려지도다.
모두가 그의 법에 기대어 있나니,
아무도 이를 벗어나 도망칠 수 없도다.
나나크가 말하노니, 법의 권능을 안다면
스스로 아만(我慢)을 벗어나리. 아디 그란트, 자푸지 2, M.1, p.1 (시크교)
지극한 정성됨은 그침이 없다. 그침이 없으면 영원하게 된다. 영원하면 효험이 나타나게 된다. 효험이 나타나면 유구하게 된다. 유구하면 넓고 두터워진다. 넓고 두터워지면 높고 밝아지게 된다. 넓고 두텁기 때문에 모든 존재(物)를 싣는다. 높고 밝기 때문에 모든 존재를 덮어준다. 유구하고 영원하기 때문에 모든 존재(物)를 완전하게 이루어준다. 중용 26 (유교)
무엇을 일러 영구히 지속되는 실유라 하는가? 실유의 영원한 길은 마치 땅 속에 숨겨진 금은보화와도 같아, 이전에도 있었고 이후에도 또한 있느니라. 법계는 여래가 세상 가운데 현현하든지, 또는 아니든지 간에 영원히 있다. 항구한 실유가 스스로 법에 어긋남이 없이 지속되는 것은 마치 오래된 도성에 나 있는 길과 같다.
예를 들어, 숲 속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다가 질서 정연한 길이 있는 오래된 도성을 발견한 사람은 그곳에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고, 마치 그 도성의 시민처럼 행동하며,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온갖 즐거움을 향유하리라. 어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이 스스로 그 도성으로 들어왔던 길을 만들고 도성 안에 온갖 것들을 만들었느냐? [아닙니다.]
바로 이와 같으니라! 나 자신과 다른 여래들이 깨달았던 바는 바로 이러한 실상이니, 이 영원히 있는 실유, 스스로 법에 어긋남이 없는 실유, 사물의 여여함, 사물의 진실성, 진리 자체가 바로 그것이니라. 능가경 61 (불교)
말씀 선집
그분은 영원하고 불변하며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가 바라는 이상도 그러할 것이고 사랑도 그러할 것이며, 평화와 행복도 그러할 것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74.161, 1974.12.07)
하나님은 절대자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사장이 이미 타락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피조물을 그가 세우신 법칙 또는 규칙에 따라서 주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52.87, 1971.12.22)
참사랑의 삶은 어떤 것입니까? 한마디로, ‘위하여 사는 삶’입니다. 남이 자기를 위해 주기를 바라기전에 먼저 남을 위해 주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했고,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고자 하는 자는 높아진다”고 하신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하여 당신이 세우신 창조원리를 무시하고 무조건 원하는 대로 창조와 파괴를 거듭하실 수는 없는 것입니다. (433.179-180, 2004.01.27)
우주의 구성체 자체가 맹목적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이 방대한 우주가 상대적, 주체와 대상관계에 있어서 대응하면서, 주고받는 운동을 하면서 영속적인 법도의 궤도를 따라서 영속합니다. 법도의 궤도를 따라가지 않으면 영속하는 것입니다. 법도의 궤도를 따라가지 않으면 영속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가 벌어집니다. 우리도 이제 밥 먹고 소화가 정상적으로 되어서 영양 요소가 정상적으로 혈관을 통해서 보급되어야 영속이 벌어집니다. 정상적으로 보급되어야 됩니다. 잘 주고 잘 받아야 영속이 벌어지는 것입니다.(182.117, 1988.10.16)
새로운 종교를 위한 본체론은 종래의 모든 절대자가 각각 별개의 신이 아니라 동일한 하나의 신임을 밝혀야 됩니다. 그와 동시에 신의 속성 중 단지 일부를 파악한 것이 각 종교의 신관이었음을 밝히고, 신의 전모를 옳게 파악하여 모든 종교는 한 하나님으로부터 세워진 형제 종교임을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본체론은 하나님의 속성과 함께 창조의 동기와 창조의 목적과 법칙을 밝혀서 그 목적과 법칙이 우주 만물의 운동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과 인간이 지켜야 할 규범도 결국 이 우주의 법칙, 즉 천도와 일치함을 해명해야 할 것입니다.
우주의 일월성신이 창조의 법칙, 즉 천도에 의하여 종적 질서와 횡적 질서의 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과 같이, 가정에서도 조부모, 부모, 자녀로 이루어지는 종적 질서와 형제자매로 이루어지는 횡적 질서의 체계가 세워지는 동시에 동시에, 상응하는 가치관, 즉 규범이 성립됨을 밝혀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 본체론은 그 이론의 전개가 자연과학적 지식과도 모순되지 않아야 하며, 양성의 판단에 의해서도 수긍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역사 속에 ‘역천자(逆天者)는 망하고 순천자(順天者)는 존(存)한다’는 명제가 적용되어 왔음이 증명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본체론에 의해서 세워지는 가치관이야말로 참된 의미의 절대적 가치관이며, 이러한 가치관의 확립과 그 절대가치(절대진, 절대선, 절대미)를 이해하고 실천함으로써 인류의 정신개혁이 이루어지는 동시에 세계의 혼란은 점차로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122.304, 1982.11.25)
3. 사랑의 법도
종교 경전 사랑은 이 강자와 거룩한 순환을 지배하는 위대한 법이며, 이 물질세계의 다양한 요소를 한데 묶는 유일한 힘이며, 천계 내에서 체가 움직이는 방향을 잡아주는 최고의 자력이라. 사랑은 끝없고 무한한 힘, 우주 속에 숨어 있는 미스터리와 함께 나타난다. 사랑은 인류의 치장한 몸 위에 있는 생명의 영혼이며, 이 인간 세상에서 참된 문명의 설립자이며, 모든 높은 곳을 향하는 인종과 국가에 대한 영원한 영광의 파편이라.압둘 바하 (바하이교)
사랑, 곧 신성원리는 인간을 포함하는 우주의 부모이다.
과학과 건강, 256 (크리스천 사이언스)
한번 음(陰)하고 한번 양(陽)하는 것을 일러 도(道)라고 한다.
이러한 운행을 계속하는 것이 선(善)이요 이러한 운행을 이룩하는 것이 성(性)이다.
어진 자는 이것을 보고 인(仁)이라 하고 지혜로운 자는 이것을 보고 지혜(智)라고 하며, 백성들은 날마다 사용하면서도 모른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가 드문 것이다.
인(仁)에서 드러나며 에 용(用)에 감추어져, 만물을 고무하되 성인과 함께 근심하지 않으니, 성대한 덕[盛德]과 위대한 사업[大業]이 지극하게 된다.
풍부하게 소유함을 대업이라 이르고, 날로 새로워지는 것을 성덕이라 이른다.
역경, 계사전, 1.5 (유교)
말씀 선집
사랑의 원칙을 중심삼고 우주를 지었기 때문에 우주는 그 박자에 놀아나게 되어있지, 개인박자에 놀아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31.124, 1984.04.22)
하나님이 무엇이 그리워서 창조를 했느냐? 절대자인데 그가 무엇이 그리워서 창조를 했느냐? 그분은 무슨 황금도 필요하지 않고, 지식도 필요하지 않은 전지전능하신 분인데, 갖추지 않은 것이 없는 분인데 무엇이 필요해서 사람을 지었느냐? 창조의 근본 동기가 무엇이냐? 그건 권력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고 소유물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무엇이 없었겠느냐? 사랑의 기반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역시 혼자 있으면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창조의 동기, 알파적 기원도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149.150-151, 1986.11.21)
우주 창조의 내용은 사랑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존재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거기에 상응적, 대응적, 평행적 위치에서 자기의 존재 축을 중심삼고 있으며, 하나님과 인간의 큰 축을 중심삼고 평행적인 존재로서 돌아가면서 세포의 입장에서 사랑의 상대로서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을 대해서, 인간을 대해서 반대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될 때, 이 세포가 반대합니까? 반대로 감사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급한 것이 제일 바라는 것이 뭐냐? 최고급의 존재의 사랑의 축에 결착합니다. 그게 최고의 의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크나큰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자기를 먹어 주기를 바랍니다. 먹더라도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 되는 입장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여자의 사랑을 해방하는, 그 주인의 세포 활동에 자극을 주는 요소로서 이동하여 살아가고 싶다고 하는 것입니다.
동물 가운데 있는 세포라든가, 저급한 동물들은 모두가 높은 주인의 세포권, 중핵에 포함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에 연결되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희망입니다. 횡적인 존재는 이렇게 돌아가면서 종적인 사랑의 주체인 하나님에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남자 여자의 생식기는 하나님의 사랑에 연결되는 중심 세포입니다.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걸 중심삼고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걸 중심삼고 상대권에 서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고 싶은 곳이 여자에 있어서 여자가 아닙니다. 남자에게 있어서 남자가 아닙니다. 미국의 호모라든가 레즈비언 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자는 남자, 남자는 여자라는것입니다. 여자로서 여자를 중심삼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부인으로서 남자를 위하여 살아야 되는 것이 여자의 길입니다.
왜냐? 태어나게 될 때 사랑이라는 관념이 먼저 있었습니다. 사랑의 관념이 없었다고 하게 되면 암컷 수컷의 관념을 설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광물의 세계도 플러스 이온, 마이너스 이온이 있어서 이것이 수컷 암컷과 같습니다. 곤충의 세계도 수컷 암컷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동물세계도 수컷 암컷으로 되어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도 남자와 여자지요? 수컷 암컷의 관념 이전에, 그것이 태어나기 전에 사랑이라는 관념이 있어서 사랑을 중심삼고 그것이 하나 되게끔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수컷, 암컷의 관념입니다.
이 사랑의 관념이 없었다면 수컷 암컷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 처음이냐 하면 수컷 암컷이 처음이 아닙니다. 사랑의 감성과 관념이 처음입니다. 실재와 관념, 철학에 있어서 관념과 실재의 문제는 세계적인 싸움의 토대가 되어 가지고 지금은 모두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사랑의 개념으로부터 태어난 여자가 여자 때문에 태어난 게 아닙니다. 사랑을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의 중심 사상과 여자의 중심 사상은 모두 사랑입니다. 그 이외에는 없습니다. 돈이 아닙니다. 지식이 아닙니다. (218.339-340, 1991.08.22)
피조세계에는 주체와 대상이 있기 때문에 남자 여자가 있고 수놈 암놈이 있습니다. 이것이 주체 대상의 관계입니다. 그 다음에, 꽃에는 수술 암술이 주체 대상이며, 분자세계에서는 플러스 이온, 마이너스 이온이 주체 대상이요, 원자세계에서는 양전자 음전자가 주체 대상입니다. 이와 같이 전부 다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생존의 가치와 역사를 이어 나가는 것은 사랑 이외에는 없습니다. 남녀도 사랑을 통해서 번식합니다. 다른 존재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사랑이 있습니다. 곤충도 마찬가지고, 식물도 마찬가지고, 광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쌍쌍제도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쌍쌍제도로 되어 있느냐? 반드시 환경에는 주체와 대상이 있습니다. 왜 주체 대상이 있느냐? 사랑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문제되는 것이 뭐냐 하면, 사랑이 먼저냐, 주체와 대상이 먼저냐 하는 것입니다. 여자 남자 때문에 사랑이 생겨났어요, 사랑 때문에 여자 남자가 생겨났어요? 사랑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생겨났다는 것입니다.(227.268, 1992.02.14)
하나님의 참사랑에 의한 투입이 없었으면 우주는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우주의 존재 법칙은 주체가 대상을 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세계에서는 주체가 대상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자기중심으로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종교는 상대가 먼저 좋아하고 난 다음, 자기가 좋아하려는 천리 원칙을 교육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봅니다.(271.70, 1995.08.21)
도덕 법칙
신성한 법이나 불변의 자연법칙은 본질적으로 도덕적이다. 신성한 법은 우주적, 윤리적, 사회적, 법률적 차원들을 하나의 원리로 묶는다. 그러므로 종교는 사실(자연법칙)과 가치(도덕법칙)의 현대적 구분을 뛰어넘어 선다. 인간의 삶을 주관하는 도덕법칙은 오히려 중력법칙 만큼이나 절대적이다.
우주의 질서와 인간 삶의 질서는 일관되므로, 우리가 삶에서 바른 질서를 확립하는 것은 번영과 장수에 이르는 길이다. 도덕법칙을 따르면 생명을 얻고 천상에 다다르게 되지만 그 법을 무시하면 쇠퇴하고, 고통과 죽음에 이르게 된다.
경전 속에 드러난 인간 삶의 도덕적 규범은 율법 또는 토라(유대교), 담마(테라바다 불교), 도(도교), 다르마(힌두교), 도덕적 질서(유교)라는 이름으로 다양하게 불려진다. 그러나 이 도덕적 규범들은 단지 인간 본성에 내재되고 심정 안에 새겨진 자연법칙, 즉 종교나 사회적 상황과 관련이 없는 것 같은 자연법칙의 표현들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문선명 선생의 가르침과 유교 경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도덕법칙은 가정 안에서 특징적으로 가장 잘 나타나 있다. 조화로운 인간관계를 확립하는 일이 근본적인 원리이며, 이러한 인간관계는 이타적인 실천 행위와 남을 위한 삶을 통해 실현된다.
1. 법칙에 따른 삶
종교 경전 그렇게 하고 우리를 언제까지나 오늘처럼 이렇게 복되게 잘 살도록 하시려고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모든 규정들을 지키라고 분부하신 것이다. 신명기 6.24 (기독교)
번영하는 자는 알아보기 쉽고, 쇠망하는 자도 알아보기 쉽다. 진리를 즐거워하는 자는 번영하고, 진리를 꺼리는 자는 마땅히 패망한다. 숫타 니파타 92 (불교)
하나님께서 계시를 내리어 가장 아름다운 말씀으로 일관된 성서를 주셨나니, 때로는 서로 유사하고 때로는 반복 되었도다. 주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살결은 떨리나니 그들의 살결과 마음은 하나님을 찬미함으로 편하여 지리라.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가르침이다.꾸란 39.23 (이슬람)
한 번 지나간 밤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 법을 따라 행하지 않는 자들의 밤은 헛되이 지나가도다. 웃타라드야야나 수트라 14.24 (자이나교)
여호와의 율법은 이지러짐이 없어 사람에게 생기를 돌려주고, 여호와의 법도는 변함이 없어 어리석은 자도 깨우쳐 준다.
여호와의 분부는 그릇됨이 없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맑아서 사람의 눈을 밝혀 준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여 영원토록 흔들리지 아니 하고, 여호와의 법령은 참되어 옳지 않은 것이 없다.
금보다, 순금덩이보다 더 좋고, 꿀보다, 송이 꿀보다 더욱 달다.
시편 19.7-10 (기독교)
꿋꿋한 믿음으로 불평 없이 천칙을 따라 사는 사람들, 그들은 행위 가운데서도 업을 짓지 않으리라. 그러나 나의 이 가르침을 불평하며 준행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미망에 빠져 스스로 고통을 불러들이느니라. 바가바드기타 3.31-32 (힌두교)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자기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
비가 내리고 큰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쳐도 그 집은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자기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비가 내리고 큰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치면 무너져 버린다. 그리고 그 무너짐이 대단할 것이다. 마태복음 7.24-27 (기독교)
비길 데 없고 다함없는 덕성을 지닌 부처들은 정법의 소산이니, 그들은 법 안에 거하며, 법으로 더불어 살며, 법을 자기의 스승으로 삼고, 법을 자기의 빛으로 삼으며, 법을 자기의 행위기준으로 삼으며, 법을 자기의 귀의처로 삼는다···
법은 한결같아 만유에 두루 평등하며, 천하거나 존귀하거나 그 중간이거나 치우쳐 사랑하는 일이 없나니, 이와 같이 나도 나의 생각을 그 법과 같이 해야 하리.
법은 유쾌한 일만을 좇아가는 일이 없으니, 이와 같이 나도 나의 생각을 그 법과 같이 해야 하리···
법은 피난처를 구하는 일이 없으며, 만세상의 피난처가 법이니, 이와 같이 나도 나의 생각을 그 법과 같이 해야 하리.
법은 편애하는 일이 없으며, 편애하지 않는 것이 법이니, 이와 같이 나도 나의 생각을 그 법과 같이 해야 하리.
법은 생사윤회의 두려움을 지니지도, 해탈에 유혹되지도 않으며, 근심 걱정 없음이 법이니, 이와 같이 나도 나의 생각을 그 법과 같이 해야 한다. 법집경 (불교)
도를 잘 세우면 뽑히지 않고, 잘 품으면 빠지지 않는다.
오직 그 덕으로 자손들도 젯를 끝없이 지내고 집안이 번성할 것이다.
도로써 몸을 닦으면 그 덕이 진실하게 되고, 도로써 집안을 다스리면 그 덕이 넉넉해지고, 도로써 고을을 다스리면 그 덕이 영원히 자라고, 도로써 나라를 다스리면 그 덕이 풍성해지고, 도로써 천하를 다스리면, 그 덕이 두루 펴져 나간다.
도덕경 54(도교)
말씀선집
흥하는 길은 무엇이냐? 흥하는 길은 법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창조목적을 이룰 수 있는 법은 하나님이 보호하고 하나님이 협조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 법을 따라가면 흥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법을 반대한 사탄편이 되게 될 때, 하나님이 치기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103,275, 1979,03,11)
법도를 따라 법대로 사는 사람은 어떻다고 합니까?
그렇게 사는 살마을 정직한 사람이라고 하빈다. 정직은 바를 정(正)하고 곧을 직(直)입니다. 발고 곧다. 똑바르다는 것입니다. 법이라는 것은 뭐냐? 똑바른 것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과 악은 무엇으로 가르느냐? 법으로 가르는 것입니다. 교만은 법도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법도를 무시하고 위치와 환경을 무시하며 행동하는 것을 꺾어 놔야 합니다. 교만을 제어하고 겸손을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37.130. 1970.12.23)
여기에 미터자가 있다고 합시다. 실제 1미터는 이만한데 자기 멋대로 자를 만들어 가지고 이만큼이 1미터다. 하고 재어서는 안됩니다. 자기 멋대로 재면 안 되는 것입니다. 미터자는 반드시 미터의 원기(原器)를 중심삼고 제작된 것이어야 합니다. (51,80,1971,11,01)
법정에서 살인강도 하 사람에 대해서 ‘우리나라 헌법 몇 조 몇에 의해서 사형선고다’ 라고 하면 기분 좋아하는 사람 있나요? 판정은 그렇게 났지만 ‘이놈의 자식들, 뭐야?’ 이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미국이면 미국의 헌법을 중심삼고 보면 용서법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렇지만 희생하고 봉사하면 용서받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동정을 받을 수 있고, 삶의 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회개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서 무엇을 회개하라는 것입니까? 간단합니다 희생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무얼 회개하는 것입니까? ,,,,.남을 미워하지 않고 자기를 위한 데서 모든 죄악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도둑질이 왜 나쁘다는 말입니다. 그 도둑질은 내가 하고 싶어서 했는데 그게 뭐 나쁜게 있느냐 말입니다. 거기에는, 그 하나의 옷에도 희생의 대가가 들어가 있고 봉사의 대가가 들어가 있습니다.
공적인 것이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그냥 가져왔기 때문에 죄입니다. ‘거짓말 하는게 무슨죄냐? 나는 기분 좋은데’ 그저 나는 기분이 좋은데, 속은 걸 보면 말이야‘ 그렇게 말합니다.
거짓말을 해서 뭘 하자는 것입니까? 자기 이익을 위해서 하려는 것입니다. 원칙에 위배되면 전부 조건에 걸리는 것입니다. 또, 보기 실은 동시에 우리 엄마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미국 사람 전부 다 보기 싫은데 그것 때려죽이면 그게 무슨 죄에요? 우주의 공법이 그도 여러분들과 같이 동등하게 미국을 대표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을 대표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공법을 유린한 것입니다.
그런 것을 전부 종합해 보면 무엇이 들어가 있느냐? 어디에 귀결이 되느냐 하면 희생과 봉사에 귀결됩니다.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을 헌법, 무슨 법 몇 조의 공판에 건다는 세계의 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 사람을 법정에서 악하다고 벌을 주는 그런 법이 있느냐 이겁니다. 이 공법이 나쁘다고 하는 공법입니까, 좋다고 하는 공법입니까? 그 나라의 대통령이 있으면 그 사람을 불러 그 나라를 대표해서 표창을 하고 상을 주게 됩니다.
그러면 그게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가? 어디서부터 그런 출발이 벌어졌어요? 나를 중심삼고 하면 좋겠는데, 왜 전체를 중심삼고 하라고 하는 것이냐? 남이 나를 위해서 희생하게하고 나는 희생을 시키게끔 만들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만약에 그런 법을 세웠다고 한다면, 한 집안이 뭉쳐서 살 수 있겠습니까? 그 집안은 산산조각이 납니다. 열 사람이면, 열 사람이 그런 주장을 하면 열 조각이 납입니다. 또, 백 사람이면 백 조각, 2억 4천만 미국 사람이 그런 주장을 하면 2억 4천 조각으로 동강이 납니다.
그런 법을 정했다면 물질세계에서부터 어떤 존재세계에도 적용해야 된다는 이런 말이 성립됩니다. 여러분들만, 사람만 그럴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눈 안에 있는 한 세포가 말하기를, ‘나도 존재이기 때문에 , 내 존재를 중심삼고 온 우주가 나를 위해 있어라’ 할 때 그렇게 된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눈이 말하기를 ‘야, 김 아무개! 굴복해라. 그리고 너라는 사람이 네 주장하면 나 눈은 너 싫다’ 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주장하는 것이 존재 파괴 형성의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눈을 대해 ‘자, 이놈아, 눈 세포 너도 귀하지만 나라는 보다 공적인 존재 앞에 네가 흡수되어 있으니 우주 공법대로 따르는 거야!’ 하면, ‘예‘ 하게 돼 있습니다.
보다 가치있는 것, 그것은 공적인 것입니다. 그건 어디서나 ‘예예’ 할 수 있는 것입닏. 이런 원칙이 있는 걸 알기 때문에 불평할 수 없습니다. (105.92.-93,1979,09,30)
2.자연법
종교경전
군자의 도는 널리 쓰이면서도 은밀하다. 일반 남녀의 어리석음으로도 군자의 도를 알 수 있지만 그 지극한 경지에 이르면 군자라도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일반 남녀의 어리석은 수준으로도 실행할 수 있지만 그 지극한 경지에 이르면 군자라도 실행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천지가 비록 크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항상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며 유감으로 생각하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군자가 큰 것을 말하면 천하에 큰 것을다 포용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군자가 작은 것을 말하면 천하에 작은 것을 더 쪼갤 수 있는 것이 없다.
시경에서 “솔개는 날아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 고 읊고 있다. 즉, 가장 높은 하늘이나 가장 낮은 물 속 상하에 군자의 도가 두루적용되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군자의 도는 단서가 평범한 남녀 부부의 관계에서 시작되지만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하늘과 땅의 온 우주에 드러난다. 중용12(유교)
군자는 중용에 알맞게 행동하지만, 소인은 중용과 반대되는 일을 한다. 군자가 중용에 알맍게 행동하는 것은 군자다우면서 때에 맞게 적절하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소인이 중용과 반대되는 일을 하는 것은 소인스럽게 거리낌 없이 행동하기 때문이다. 중용 2(유교)
말씀선집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순환운동을 통해서 나이 많은 사람들은 본연의 원소로 돌아가고, 새로운 사람들이 태어나고, 이렇게 순환하면서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연의 순환법칙을 통해서 자기의 한계 내에서 각자가 그것을 따라 운동하고 작용하면서 존속하는 것입니다.
태양계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9개의 위성이 태양을 중심삼고 돌고 있는데, 이 위성들이 ‘아’ 이거 내 마음대로 하겠다. 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 궤도를 벗어나 자유행동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동물이나 식물도 봄이 되면, 아이고, 내 마음대로 안 자라겠다. 고 해서 자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름이 되면 무성해져야 되고, 꽃을 피워서 가을에 되면 열매를 맺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207.61-62, 1990,11,01)
태양계가 하나 되어서 대우주에서 돌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센터로 하느냐 하면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에서는 부모를 중심삼고 사랑으로 하나 되어라. 나라를 중심삼고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으로 하나 되어라. 또 세상에서는 성인이 나와서 사랑을 중심삼고 전 세계인이 하나 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세너가 되어서 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으로만 돌면 모든 것은 그것을 따라서 자동적으로 돌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 축은 변하지 않습니다.
(146,166,1986,06,15)
자연 가운데서는 봄이 되면 틀림없이 꽃이 피고, 여름철에 자라서, 가을에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한 자연의 법칙에 따라서 사는 것이 천국과 통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393,215,2002,10,04)
인륜은 정(精)을 통해서 형성됩니다. 가족 관계라든가, 도덕관념이라든가. 사회제도라던가, 질서라는 것은 전부 정서적인 면이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서 인륜은 시작 됩니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데서 참다운 인간관계는 성립되는 것입니다. 또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데서,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데서 인간관계가 맺어집니다. 인륜의 형성을 반죽한 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64,124-125, 1972,12,29)
오늘날의 법은 로마법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졌고, 로마법이 현재 세계 문화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인륜 도덕은 어디까지나 양심을 근거로 합니다. 법보다도 양심이라는 것입니다. (33,44,1970,08,02)
과학 문명의 세계를 앞당기게 한 것은 법칙을 중심한 하나의 공식이었습니다. 공식은 전체의 각 분야에 얼마나 적용시킬 수 있느냐에 따라서 체택의 여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교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맹목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공식적인 법도를 통해서 섭리하시기 때문에 그 공식을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회 원리는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복귀섭리역사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확실하게 가르쳐 주고있습니다. (16,119,1978,10,22)
황금률
황금률은 거의 모든 종교 경전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흔히 가장 간결하고 보편적인 윤리적 원리로 간주된다. 이따금, “상호성”이라 불리어지긷 h하는 황금률은 앙갚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먼저 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무례한 짓에 대해 똑같이 무례한 짓으로 반등할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해서 먼저 친절을 베풀고 배려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활금률은 그것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상당한 도덕적 노력을 기우려야 하는 윤리이다.
황금율의 윤리에는 세 가지 차원이 있다. 첫째, ‘네가 원치 않는 일을 남에게 행하기 말라’ 라는 소극적 표현은 우리가 남에게 해침 당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처럼, 우리도 남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다음으로 ‘남에게 대접 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남을 대접하라’ 또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는 적극적인 표현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욕구와 기분을 헤아릭 그들에게 자애롭게 대할 것을 요청한다. 끝으로 문선명 선생의 가르침은 황금율을 ‘위하여 살라‘는 그 가르침의 윤리는 우리에게 희생과 봉사를 끊임없이 촉구한다. 그것은 종적 관계인 하나님과 그의 한없는 사랑을 전수받아 늘 상 이타적으로 살아 갈 것을 요구한다.
종교경전
너희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마태복음, 7,12(기독교)
자공이 물었다. “한마디 말로써 평생토록 지켜 행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용서니라! 내가 원치 않는 바를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
논어 15.23(유교)
너희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레위기 19.18(기독교)
너희가 자신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너희의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너희들 중 누구도 신자라 이를 수 없느니라. 알 나와위의 하디스 40선 13(이슬람)
남이 나에게 해주기를 원하는 바를 남에게 베풀도록 애써라. 그것이 인에 이르는 가장 가까운 길이다. 맹자 Ⅶ, A, 4(유교)
자신에게 유쾌하지 못한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지니. 이것은 모든 도덕의 근본이다. 이외의 다른 모든 행위들은 다만 이기심의 발로에 불과함을 알아라.
마하바라타. 아누샤사나 파르바 113, 8(흰두교)
행복할 때나 고통 속에 있을 때나,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일체 중생을 그대 자신처럼 여겨야 하며 ,다른 존재들을 상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다른 존재들을 상하게 하는 것은 곧 그대 자신을 상하게 하는 것이다. 요가샤스트라 2.20(자이나교)
그들은 나와 같고 나는 그들과 같다고 생각하여 산목숨을 죽여서는 안 된다. 또한 남들 이 죽이게 해서도 안 된다. 숫타 니파타 705(불교)
뾰족한 막대기로 어린 새를 찌르려 하는 자는 먼저 자신을 찔러 얼마나 아픈지 느껴 보아야 한다. 요루바족의 격언 (아프리카 전통종교)
한 이교도가 샤마이에게 와서 말했다. “나를 전도해 보시오, 내가 한 쪽 다리고 서 있는 동안 당신이 나에게 토라를 가르친다는 조건에서 말이오” 그러자 샤마이가 손에 들고 있던 회초리로 그를 내쳤다. 그가 힐렐에게 자가 힐렐이 말했다. “당신이 싫하는 것을 이웃에게 강요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토라의 가르침입니다. 그 외 나머지 부분은 다 부연설명일 뿐입니다. 자, 이제 다시 가서 배우십시오” 탈무드, 샤바트 31a(유대교)
여기 나는 내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죽는 것을 원치 않으며, 즐거움을 좋아하고 고통을 싫어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내 생명을 앗으려 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기쁘거나 즐거운일이 아닐 것이다. 거꾸로 만일, 내가 그의 생명을 앗아야 한다면 ,,, 자신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죽기를 원치 않으며 즐거움을 좋아하고 고통을 싫어하는 그에게 그것은 즐겁거나 기쁜일이 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에게 즐겁거나 나쁘지 못한 상태는 또한 그에게도 반드시 그럴 것이다. 그런데 어찌 내가 다른 이에게 그와 같은 아픔을 줄 수 있겠는가?
상윳타 니카야 5, 353(불교)
말씀선집
오늘날 인륜 도덕이라든가, 이 사회의 도덕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원리원칙 있는데, 이 원리는 어떠한 기준에 의해 성립되느냐 하면, ‘나를 위해라’하는 데서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위하려고 하는 데서 원칙이 성립되느 것입니다. (71,125,1974.04,29)
참된 인생이 가는 길은 뭐냐? 이 길에서 하나의 공리로 세워야 할 것은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공자님이나 예수님이나 석가모니나 무함마드 같은 성자들 앞에 하나님이 나타나서 ‘당신들 어떻게 생각하오’하면, 그게 옳습니다. 라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주의 법칙 입니다. 그것이 인생에서 참된 모습으로서 살 수 있는 하나의 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133,18,1984,07,01)
대접받고자 하면 남에게 먼저 대접을 해야 됩니다. 내가 대접을 받고 나서 남을 대접하겠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면 먼저 대접하라고 했습니다. 먼저 대접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통일교회 문 선생은 어떠냐? 여러분을 대접하려고 했느냐, 아니면, 내가 대접 받겠다고 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대접받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습니다. 남에게 빚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50,339,1971,11,08)
참사랑의 삶은 어떠한 것입니까? 한마디로 ‘위하여 사는 삶’입니다. 남이 자기를 위해주기를 바라기 전에 먼저 남을 위해주는 삶입니다. 위해준 것을 잊어버리는 삶입니다. 위해주었다고 해서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삶이 아닙니다. 위해주고도 많이 위해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삶입니다.
위하는 데도 겸손하게 머리 숙여 위해주는 삶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했고,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고자 하는 자는 높아진다”고 하신 것입니다. (433,179,2004.01.27)
십계명
십계명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윤리적 가치관의 토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와 유사한 윤리적 원리의 항목들은 다른 종교에서도 발견된다. 꾸란은 이슬람의 십계명으로 명명된 몇 가지 목록의 윤리규범을 담고 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이계명들이 복종을 강요하는 계율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 살도록 하는 교훈이라고 말했다. 불교, 흰두교, 자이나교에는 출가자와 재가자를 위한 열가지 계율의 목록들이 있으며, 이들은 사마냐 다르마라는 다섯 가지 보편적 다르마들의 목록들의 목록으로 압축된다. 이에 비견할 만한 또 다른 하나의 계율은 불교의 팔정도이다. 동양적 시각에 걸맞게 이들 대부분은 내적인 요소들, 즉 자제심과 자비심의 함양 등을 포함한다. 유교는 계율보다 관계성에 특별한 강조점을 둔 다섯 가지 윤리적 관계를 강조한다.
문선명 선생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데 지켜야 할 세 가지 계명을 공표하였다. 첫째, 순결을 지켜라. 둘째, 다른 사람의 심정을 유린하지 말라. 셋째, 공금을 횡령하지 말라. 이 세 가지 계명은 특히 간음, 살인, 도둑질에 대한 십계명들과 비교될 수 있지만 , 그 중 두 번째 계명은 십계명의 내적 측면에 대한 그리스도의 가르침뿜만 아니라 올바른 인간관계에 대한 유교의 가르침을 반영한 심정 문제와 깊이 관련된다.
종교경전
이 모든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너희 여호와 하나님은 나 여호와다, 바로 내가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지에서 끌어낸 하나님이다.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 나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신이다. 나를 싫어하는 자에게는 아비의 죄를 그 후손 삼 대에까지 갚는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여 나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그 후손 수천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푼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함부로 부르는 자를 죄 없다고 하지 않는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엿새 동안 힘써 네 모든 생업에 종사하고 이렛날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쉬어라. 그날 너희는 어떤 생업에도 종사하지 못한다. 너희와 너희 아들딸,남종 여종뿐 아니라 가축이나 집 안에 머무는 식객이라도 일을 하지 못한다.
여호와께서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시고, 이레째 되는 날 쉬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안식일에 복을 내리시고 거룩한 날로 삼으신 것이다. 너희는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래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살인하지 못한다.
간음하지 못한다.
도둑질하지 못한다.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못한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 네 이웃의 아내나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네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지 탐내지 못한다.“ 출애굽기 20,1-17(기독교)
일러 가로되 내게로 오라! 내가 하나님 너희에게 준 종교적 의무를 일러 주리라. 그 무엇도 그분과 비견하지 말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가난을 구실로 자녀를 살해하지 말라. 하나님이 너희와 그들을 위한 양식을 주리라. 공개적이건 은밀한 것이건 악행에 가까이 하지 말며, 정의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만드신 생명을 살해하지 말라. 이것이 하나님이 나희에게 명한 것이니. 여기서 지혜를 얻어리라.
고아가 성년이 될 때까지 그의 복지를 위한 것은 제외하고 그의 재산에 가까이 가지 말라. 치수와 무게를 공정하게 충분히 계산해 주어라.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그의 능력 이상으로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으신다. 비록 가까운 친지에게도 공정하게 말하라. 하나님 앞에서 너희 약속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명하신것이니, 기억할지니라.
진실로 이것이 바른 길로 인도하는 나의 길이니 너희를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 길을 좇지 말라. 그것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것이니. 그리 하면 너희가 올바르게 되리라.
꾸란.151-153(이슬람)
노아의 자녀들에게 7가지 계명을 주어졌다: 사회법(사회 정의): 신성모독, 우상숭배, 간통, 유혈, 강도짓, 살아 있는 동물에서 잘라낸 고기를 먹는 것을 금하라.
탈무드, 산해드린 56a(유대교)
옛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는 사람은 재판을 받을 것이다.’한 것을 너희가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자기 형제나 자매를 모욕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의회에 불려갈 것이요, 자기 형제나 자매를 바보라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지옥 불 속에 던짐을 받을 것이다.... ‘간음하지 말라’고 이른 것을 너희가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를 보음욕을 품는 사람은 누구나 이미 아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마태복음 5.21-22,27-28(기독교)
용서, 겸손, 정직, 결백, 정언, 자제, 내핍, 의욕, 무집착, 순결, 이들 열가지는재가자들도 마땅히 존행해야 할 본분이다. 탓트바르타 수트라 9.6(자이나교)
산목숨을 죽이지 말 것, 도둑질하지 말 것,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 것, 거짓되고 불화를 일으키고 가혹하고 무분별한 말들을 일체 삼가 할 것, 허무주의자의 소견을 멀리 할 것,,, 이들은 열 가지 청정행이며, 이에 반하는 것은 부정한 행위이다. 나가르주나, 보의 화환 8-9(불교)
비폭력, 정직, 절제, 순결, 성욕제어,,,,이들은 마누가 말하노니,사성의 모든 이들이 닦아야 할 덕목이다. 마누 법전 10,63(흰두교)
괴로움을 없애기에 이르는 길의 거욱한 진리가 이 팔정도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직업, 바른 노력, 바른 상념, 바른 선정 등을 일러 말함이다.
바른 견해란 무엇인가? 괴로움, 괴로움이 일어난 원인, 괴로움을 없애는 것, 괴로움을 없애기 위해 이르는 길을 올바르게 보는 것을 일러 바른 견해라 말한다.
바른 생각이란 무엇인가? 욕심을 버리는 것을 생각하고, 선법을 생각하며, 해롭지 않음을 생각하는 것을 일러 바른 생각이라 한다.
바른 말이란 무엇인가? 참이 아닌 말을 삼가고, 교활한 말을 삼가며, 가혹한 말을 삼가고 쓸 데 없는 우스갯소리를 삼가는 것을 일러 바른 말이라 한다.
바른 행위란 무엇인가? 일체중생에 대한 살생을 금하고, 주지 않는 것을 취하지 않으며,
감각적 쾌락을 탐하지 않는 것을 일러 바른 행위하 한다.
바른 직업이란? 존귀한 이들의 제자가 그릇된 방법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는 것을 버리고 정당한 방법으로 자신의 가계를 유지하는 것을 일러 바른 직업이라 한다.
바른 노력이란 무엇인가? 비국 애써 의욕을 내어 노력하고, 힘을 소구치게 하며, 자신의 마음을 채찍질하여, 아직 일어나지 않는 사악하고 닦여지지 못한 상태를 없애려 노력하며, ,,,, 일어나지 않는 닦아야 할 상태는 일으나도록 분투하며,,,, 이미 일어난 닦여진 상태는 잘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것을 일러 바른 노력이라 한다.
바른 상념이란 무엇인가? 비구가 몸속의 몸을 관함에 순일하며,.....마음속의 마음을 관함에 순일하며,.... 심상의 심상을 관함에 순일하며,,,,, 그들을 밝히 보아 마음을 전일함으로써 탐욕과 낙담을 바로잡는 것을 일러 바른 상념이라 한다.
바른 선정이란 무엇인가? 비구가 감각적인 쾌락을 초탈하고 조야한 마음을 떠나서, 처음의 산만한 생각을 동반하고 초탈함의 산물이며 환희가 일어나는 첫 단계의 선정에 든다. 차츰 처음의 산만한 생각을 가라앉혀 마음을 한 점에 전일함으로써 처음의 산만한 생각이 사라지고 집중의 소산이며 환희가 있는 두 번째 단계의 선정에 들어 머물며,,,, 마침내 네 번째 단계의 선정에 든다. 이것을 일러 바른 선정이라 한다. 맛지바 니카야 3.251-52 : 팔정도(불교)
천하에 보편적으로 행해지는 도, 다섯 가지가 있다. 그것은 곧 군주와 신하의 관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남편과 아내의 관계, 형과 아우의 관계, 벗들의 관계이다. 이 다섯 가지가 천하에 보편적으로 행해지는 도이다. 중용 20,79(유교)
말씀선집
지금까지 이 땅 위에 성현 혹은 현철들이 나와서 인생의 갈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렇게 가라’ 혹은 이러한 주의에서 살라‘ 함녀서 어떤 방향성을 세워 주기도 해습니다.,,,,, 그래서 타락의 인생길을 걷고 있는 불쌍한 인간들에게 수많은 성현들은 삼강오륜10 등으로 인류를 가르쳤고 모세는 십계명을 소개하였으며, 나아가 수많은 도인들도 그런 일면을 개척하기 이하여 수고해 왔음에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7.16-24, 1959,07,05)
이제부터 지켜야 할 철칙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로 죽을 일이 있더라도 핏줄을 더럽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축복받은 혈통은 하나님의 혈대요,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을 이어받은 것인 만큼, 지금까지 타락세계에 젖은 습관적인 행동으로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부부든, 배우자가 없으면 혼자라도 좋으니 온전한 핏줄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사람은 눈을 감고 결심하고 하나님만 보시도록 힘 있게 손을 들어 맹세합시다.
둘째로 인사 조치를 잘 못 해서 인권을 유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평등합니다. 인권을 차별하거나 유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 인권을 정상적으로 지도하는 데는 참사랑, 위하는 사랑을 갖고 사는 사람이 주류입니다. 천지창조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주류사상을 흩어버리는 것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죄 중에 두 번째 죄입니다.
셋째로 공금을 도둑질하지 말라, 공금을 마음대로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일은 안 하고, 규례도 안 지키면서 잠은 좋은 데 가서 자겠다고 하는 것이 다 공금약취입니다. 공적인 환경을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국가재산 약취와 마찬가지로 무서운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아무리 잘 되려고 해도 안 됩니다. 아무리 하나님께 기도해도 전도가 안 됩니다.
이상 세 가지입니다. 이것 때문에 감옥 가는 사람이 70% 이상 됩니다. 감옥에 들어가 보면 그렇습니다. 인권을 유린하고 핏줄을 더럽히고 남녀문제에 걸려 있습니다. 그 다음엔 돈 문제, 권력문제입니다. 돈과 지식과 권력이 원수였다는 것입니다.
첫째가 뭐라구요? 순결하라! 둘째는? 인권을 유린하지 말라! 오늘 이 기념의 날 하늘나라 왕권을 유지하고 여러분이 왕권 앞에 백성이 되고 부모가 되고, 처자가 되고 형제가 되기 위해서는 이것이 절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님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친인척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전부 무시합니다. 지식이 있다고 대학 나온 사람이라고 고등학교 나와도 무시해버립니다. 그러면 인권유린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잘 살아야 합니다. 잘 사는데 혼자 사는 걸 잘 산다고 합니까? 더불어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도 공식법도로 세워진 가운데 어떤 환경, 어떤 사람들과 같이 살아야 잘 사는 것입니까? 간단합니다. 그것도 세 개입니다. 부자관계, 부부관계, 형제관계입니다. 형제관계는 부부 앞에서는 자녀가 됩니다.
자녀관계를 형제관계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그들과 하나 되어서 잘 살아야 합니다. 잘 사는데는 잘 살게 지도해야 합니다. 서로서로가 본이 되어야 그게 잘 사는 것입니다. 본이 안 되면 잘못 사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앞에, 부부 앞에, 자녀 앞에, 본이 될 수 있도록 살면 잘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잘 살면 저 하늘나라의 왕이 있고 자상의 왕이 있으면 그 왕들이 잘 사는 가정을 심방할 날이 옵니다. 해마다 정초가 되면 그 나라에서 제일 잘 사는 가정을 방문해 포창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역적으로 몰려 죽는 일이 있더라도 이법을 지키고 살면 틀림없이 하늘나라의 황족이되어 어디서든지 자유와 통일과 해방의 가정이 됩니다. 오늘 이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표어로 정하는 것입니다.
3000년 표어 가운데서 모두 다 순결혈통, 인권평준화, 그리고 국가 공적 재산 약취, 그 다음에 부자관에, 부부간에, 자녀간에 본이 되자는 것입니다. 형제라고 해도 됩니다. 형제를 먼저 하는 것은 그 삶을 자녀들이 본받는 것입니다. 자기 사촌들이 다 잘 되면 아들딸이 본 받게 돼 있습니다. 그래야 본이 됩니다. 동네방네가 전부다 ‘저 사람 따라가야 되겠다’ 하고 ‘저 사람과 같이 살고 싶다’ 하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천국의 백성이 되고 하늘나라에 기억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오늘 하나님의 왕권 즉위식에서 제일 중요한 3대 철칙을 말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공인으로서 필히 지켜야할 내용입니다. 가정에 들어가서든 나라에 들어가서든 걸리지 않을 지침입니다.
이 날에 가히 지켜야 할 내용인 것을 명심해서 생애의 표적으로 삼아주시기 바랍니다.
(324,298-306,2001,01,13)
부부들이 타락하면 절대 안 됩니다. 타락하면 큰일 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사람을 상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공금을 중요시하라는 것입니다. 심정문제, 인간문제, 만물문제, 이 셋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헌법을 제정하더라도 심정문제가 제1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간문제, 사랑의 인간이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인간문제를 중요시 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문제, 조부모 부모 자기들 문제, 그 다음에 형제들 문제와 이웃 친척간의 문제, 사회문제 등이 전부 인간문제입니다. 인간을 사랑해야 합니다. (169,2171987,10,31)
율법을 넘어서
율법은 하나님에 이르는 길을 안내하지만, 많은 종교 전통에서 거룩한 삶의 이상은 율법의 경계 너머에 있다. 그러므로 율법은 속박을 벗어나게 하는 가르침인 동시에 또한 하나의 속박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바울은 교훈적이긴 하나 여전히 구속적인 모세의 율법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구원의 은총과 대조하였다. 율법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그것은 여전히 선과 악의 끊임없는 갈등 속에 빠져든 마음의 가장 깊은 내면을 자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기껏해야 예비적인 가치를 지닐 뿐이다. 더욱이 세속적인 격률들이 오용되거나 남용되는 상황에서 양심은 보다 높은 마음의 법을 따르도록 인도한다.
율법 너머에 절대자와 관련된 더 높은 차원이 있다. 거기에 이르러 사람들은 행하는 일에 제한이 없고, 양심의 파동이 하나님의 소원과 늘 일치한다는 점을 확신한다. 그러나 자유롭게 행한다 하여 영성의 삶이 아무 죄나 저질러도 괜찮다는 것으로 오해해선 안된다. 완전히 자유롭다 하더라도 여전히 천적인 기준과 원리들이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올바르게 깨달은 사람은 그 천적 원리와 하나되면서도 그로 인한 속박 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
종교경전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났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3.9(기독교)
깨달음으로 충만한 자는 결코 어떤 악행에 탐닉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양심은 진리로 완전하게 비추어진 지성에 의해 인도되기 때문이다. 아차랑가 수트라 1.714(자이나교)
그날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맺을 계약이란 그들의 가슴에 새겨 줄 내 법을 말한다. 내가 분명히 말해둔다. 그 마음에 내 법을 세겨주어,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내가 그들의 잘못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 죄를 용서하여 주리니. 다시는 이웃이나 동기끼리 서로 깨우쳐 주며 여호와의 심정을 알아드리자고 하지 않아도 될 것이며,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내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예레미야 31.33-34(기독교)
우리는 율법에 있는 모든 말씀이 율법 아래 사는 사람에게 말한 것임을 압니다. 그것은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이식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모든 믿는 사람에게 옵니다. 거기에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
이전에 우리가 육신을 따라 살 때에는, 율법에 따른 죄의 정욕이 우리 몸의 지체 안에서 작용해서 죽음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우리를 얽어매던 것에서 죽어서 율법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자를 따르는 낡은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성령이 주시는 새 정신을 하나님을 섬깁니다. 로마서 3.19-22, 7.5-6(기독교)
상급의 덕을 지닌 사람은 덕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덕을 지니게 된다.
하급의 덕을 지닌 사람은 덕일 잃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덕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도를 잃은 뒤에 덕이 드러나고,,,,
덕을 잃은 뒤에 인이 드러나고,,,
인을 잃은 뒤에 의가 드러나고,,,,
의를 잃은 뒤에 예가 드러난 것이다.
대저 예란 진심과 신의가 엷어진 것으로서 혼란의 시초이다.
도덕경 38(도교)
미혹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때가 낀 공덕을 쌓으며 바른 길을 가지 않는다.
그들은 공벋을 쌓는 것과 바른 길을 가는 것이 같다고 여긴다.
비록 탁발에 응하고 보시를 하는 그들의 공덕이 실로 무한하다 할지라도 ,
죄악의 궁극적인 원친이 그들 마음속의 3독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육조단경 6(불교)
유한하고 무상한 것이 제사의 결실이다. 그것을 지고선으로 간주하는 미혹된 자들은 생사에 사로잡혀 있다.. 종교 제사를 지내고 자선을 행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미혹된 자들은 지고선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산다. 그들의 선행에 대한 공덕을 천계에서 향수한 후에 그들은 필멸자들의 세계로 다시 들어간다. 그러나 자기를 제어한 지혜로운 자들, 영혼에 만족하며 고요하고 외진 곳에서 명상과 고행을 실천하는 자들은 모든 불순함을 떨쳐버리고 불멸에 이르는 이르는 해탈의 길을 통해 참으로 존재하는 것, 불변의 자아를 실현한다. 문다카 우파니샤드 1.2.7-11(흰두교)
수보리여, 만일 그대가 무상 정등각이 밝아온 어떤 사람이 모든 법의 소멸이나 단멸을 인정한다는 생각을 품어야 한다면, 그대는 참으로 그런 생각을 품어서는 안된다.
금강경 27(불교)
“모든 것이 나에게 허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나에게 허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에도 제재를 받지 않겠습니다. ,,,
몸음 음행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님을 살리셨으니, 그 권능으로 우리도 살리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12-14(기독교)
말씀선집
참사랑으로 가정교회를 완성하면, 천국에 들어가는데 문을 몰라서 동쪽, 서쪽, 열두 진주문을 거꾸로 들어가도 오케이입니다. 졸면서 들어가도 오케이입니다. 얼마나 자유롭습니까? 참사랑은 법을 초월합니다. 이런 특권을 가진 참사랑을 이제 알았습니다. 이제 알았으나. 실천하면 여러분들은 천국에 다 갈 수 있습니다. (116, 249, 1982.01.01)
몸과 마음이 하나 되면 우주가 ... 전부 우주의 축소체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 되면 다 아는 겁니다. 베울 필요 없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윤리 도덕이 필요 없습니다. 참새 세계에, 동물세계에 무슨 윤리 도덕 교육을 합니까? 자기들끼리 다 보호하고, 생리적으로 자기 족속을 연결시켜서 살 줄 아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왜 몸과 마음이 싸웁니까? 타락되었기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162,223, 1987,04,12)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더라도 인륜 도덕은 마음에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언제나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일을 행하여서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사람은 그 무엇도 무섭지 않습니다. 아무리 악한 세계의 폭군 앞에 가더라도 당당한 것입니다. (19.288, 1968,03,10)
선은 이 우주가 보호 육성하고 자유와 평화가 깃들어 있고 생명과 권세가 같이 하는 것입니다. 이를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은 천지에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선하게 될 때 대통령이 무섭지 않습니다. 육법전서가 적용된다 하더라도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형법이 많다. 하더라도 그 법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세상 법은 양심의 가준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세상 법은 선의 권한을 침범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16,134,1966,01.02)
통일교회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지만 경계선이 있느냐 없느냐 할 때, 경계선이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엄연히 경계선이 있습니다. 또, 그 선을 넘어가서는 안 되는, 넘어가지 말라는 그런 선이 있습니다. 거기를 넘어가게 되면 반드시 어떤 딴 형태로 전환되든가, 딴 데 속하게 되던가 하는 이러한 존재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90.9-.1976,12,05)
‘나는 비밀수런 힘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슴을 파고 들어가도 하나님이 성내지 않고 좋아하는 비밀을 갖고 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 이상적인 참사랑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공식을 적용한것입니다. 모든 것을 공식적으로 하게 되어 있습니다. 수학으로 모든 우주를 .... 자연과학도 풀어내는 공식이 있는데, 사랑의 세계에 그런 공식이 없겠습니까? 그런 그런 유니트가 없으면 세계의 땅 끝에서 오는 사람 전부를 무엇으로 조종합니까?(170.256. 1987,11,22)
이중속성
이중 속성은 널려있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모든 존재는 남성과 여성, 빛과 어둠, 하늘과 땅, 마음과 몸, 주체와 대상,개체와 전체, 그리고 존재와 비존재라는 이중 속성을 지닌다. 이 양극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 작용은 생식력과 창조력의 원천이다. 이것은 자연의 주기적인 순환, 낮과 밤의 변화 그리고 계절의 변화 등에서 나타난다. 이중 속성은 남성 신과 여성 신의 우주적 결합에 의해 신화적으로 묘사되며, 과학에서 보듯 원자와 분자를 구성하는 전자기적 상호 작용에 의해 알려진다. 어떤 종교들, 특히 유교와 도교는 양(남성)과 음(여성)의 우중 속성을 자연의 지배적인 원리, 그리고 올바른 방식으로 인간을 교육 할 수 있는 삶의 원리로 간주한다.
문선명 선생은 자연을 깊이 있게 통찰한 결과, 자연의 이중 속성을 하나의 체계적인존재론으로 발전세켰다. 그는 자연의 상호 작용을 세밀히 관찰한 후, 위하여 사는 삶의 원리의 기반을 발견하였다. 주는 것이 받는 것에 선행해야만 원만한 관계성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연의 반발력은 3조를 한쌍으로 전환시키는 효과를 발휘함으로써 기존의 한 쌍이 갖는 창조적이며 포용적인 관계성의 영역을 더욱 보호한다. 또한 문선명 선생은 이런 근거를 기반으로, 대립과 갈등에 뿌리를 두고 실재에 대한 그릇된 관념을 가르치는 마르크스의 변증법을 비판한다.
1.남성과 여성의 이중 속성
종교경전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한 쌍으로 만들어 놓았나니 이는 너희가 교훈으로 받아들이게 하려 함이니라.
꾸란 51.49(이슬람)
주님이 만드신 것으로 흠이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은 서로 짝이저 마주 있으며 서로 도와서 훌륭하게 된다. 과연 주님의 영광을 보고 권태를 느낄자 누구인가.
집회서 42.24-25(기독교)
하늘과 땅의 창조자께서 너희를 위하시어 부부를 그리고 가축에게도 암수의 짝을 만드시어 너희가 그 속에서 번식하게 하였노라. 꾸란 42.11(이슬람)
태극은 양의를 낳고 양의는 사상을 놓고, 사랑은 팔괘를 낳으니, 팔괘가 길흉을 정하고 길흉은 위대한 사업을 낳는다. 역경, 계사전, 1.11.5-6(유교)
자손을 낳으려는 욕망에서, 창조자는 강렬한 고행에 전념한 결과로 그는 “이 둘이 나를 위해 모든 형태의 피조물들을 생산 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물질과 생명(프라나)이라는 한 쌍을 생산했다. 이제 생명은 태양이며 물질은 달이다. 프라슈나 우파니샤드 1.4-5(흰두교)
무자히드가 말했다. “하나님은 만물을 쌍으로 창조하셨다. 남자와 여자, 하늘과 땅, 해와 달, 밤과 낮, 밝음과 어둠, 인간과 정령, 선과 악, 아침과 저녁, 온갖 종류의 양식과 바람과 소리를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위대함의 증표로 이 모든 것들을 지으셨다”
알 쿠르투비, 알 투리아트 수라트 17(이슬람)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다. 하나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셨다. 창세기 1.27(기독교)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더라” 이 말씀은 남자 여자의 조건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은 참되고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보라, 주 하나님은 남녀가 함께 있지 않는 곳에 거하지 않으시며, 그분의 축복역시 그 처소에는 임하지 않는다.조하르 1.55b(유대교)
창조에서 모든 생명과 모든 박동은 쉬바와 샥티,현현 속에서 놀이 중인 영원한 ‘그’와 영원한 ‘그녀’에 대한 위대한 진리 선언으로써 시작된다. 쿨라르나바 탄트라 3(흰두교)
저 하늘이 가득 차 잉태하고 두 자녀를 함께 낳았으니 남성과 여성이니라. 이들이 천상의 모양을
띠고 하늘과 땅이 되었다. 땅은 하늘에서 부어주는 물을 먹고 산다. 상층은 남성이고, 하층은 여성이다. 여성은 남성으로부터 부양받는다. 하층 물은 여성이 남성을 받아들이듯, 상층 물의 주의를 끈다. 그리고 씨를 잉태하려는 나성 물과 만나기 위해 물을 쏟아 붓는다.
조하르 1.29b(유대교)
본유적 특성은 두 가지이다. 왜냐하면 지혜는 여자이며, 수단은 남자이기 때문이다. 그 후 이둘은 상대적인 것과 절대적인 것으로 구별되는 이중적인 것이 되었다. 남자 속에 이 두가지 본질, 즉 깨달음에 대한 생각(상대성)과 그것으로부터 일어나는 자복(절대성)이 있다. 여자 속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즉 , 깨달음에 대한 생각과 그것으로부터 일어나는 지복이 있다.
희금강 8.26-29(불교)
말씀선집
모든 존재세계는 쌍쌍제도로 돼 있습니다. 인간도 남자 여자, 동물도 수놈 암놈이지요? 곤충도 수놈 암놈이지요? 나비도 새도 개미도 전부 그렇고, 광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광물도 원소가 107개나 되지만 그것이 함부로 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상대가 되는 것은 합하지 말라고 해도 합하는 것입니다. 플러스, 플러스 서로 반발하는 것은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못 붙입니다. 그러나 상대성이 되면 붙지 말라고 해도 자동적으로 붙어 버리는 것입니다. (03.355-356, 1990,06.28)
우주를 관찰해 보면 모든 존재에 있어서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이 상대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광물 차원에서부터 시작해서 모든 경우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분자는 양이온과 음이온의 결합을 통해 형성되었습니다. 식물의 경우 생존과번식은 암수를 대표하는 암술과 수술의 결합을 통해 형성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성성상은 동물의 경우 더욱 분명합니다.
어류, 조류,포유동물 등 모든 동물은 수컷과 암컷으로 존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최고의 창조물인 우리 인간도 남자와 여자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최초의 남자와 여자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최초의 남자 아담과 최초의 여자 해와는 인류의 시조입니다. 이러한 이성성상의 존재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인 왜 이런 방식으로 창조를 하셨겠습니까?
창조주는 만물을 양성과 음성으로 구분하여 창조하심으로써 이들이 서로 사랑을 주고받음을 통해 결합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사랑의 행위를 통해서 모든 종은 그 수를 늘리고 계보를 이어나가는 것입니다. (201,204-205, 1990.04.09)
쌍쌍제도는 우주 창조의 원칙입니다. 상하, 전후, 좌우, 새끼를 쳐서 모든 우주가 생겨났기 때문에 곤충의 세계에서부터 식물세계, 동물세계, 인간세계, 하늘땅 전부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오관도 쌍쌍으로 돼 있습니다. 손도 쌍쌍이고 몸과 마음도 쌍쌍입니다. 우리 인간에게서 제일 문제되는 것이 몸과 마음이 하나되지 않는 것입니다. 눈도 양쪽이 동시에 깜빡깜빡합니다. 코도 같이 숨쉽니다. 입술도 말할 때 마음대로 하지 않습니다. 듣는 것도 삼반규관이 있어서 공명할 수 있도록 다 하나 되어 있습니다. 손도 손 하나가지고 일할 수 없습니다. 혼자 작용해서는 하나님을 닮지 못합니다. 오관 자체가 아버지, 부모를 닮았기 때문에 상대관계를 필요로 합니다. 상대관계에 적응돼서 큰 우주가 상대성을 중심삼고 고동적인 목적을 위해서 대응적인 화합한 세계에 연결돼야만 완성품이 됩니다. 작으면 작은 대로, 큰 것은 큰 대로, 우주는 우주대로 대응관계에 균형이 잡혀 있습니다. 그것은 수수작용하지 않으면 운동하지 않으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391,174, 2002,8,21)
창조를 하는데는 인간을 중심으로 인간을 모델로 해서 동서 사방에 벌여 놓아 가지고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광물, 식물, 동물계 전부가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전부 쌍쌍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부 쌍쌍으로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종적 길과 횡적인 길을 쌍으로 엮으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지그재그하는 놈, 이렇게 운동하는 놈, 별의별 형태의 작용을 거치면서 쌍쌍제도를 중심삼은 만물은 이상적 사랑을 찾아갈 수 있는 인간의 교재들입니다. (173,212,1988,02,18)
모든 식물의 씨를 볼 때, 그 내부에 상대적인 두쪽이 있기에 완전일체가 된 채 하나의 껍질 속에서 배자를 통하여 수수작용을 함으로써만 생명을 번식하는 것입니다. 계란을 보더라도 노른자위와 흰자위 사이에 배자가 있는데 한 껍질로 싸인 채 일체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태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생물은 주체와 대상이 수수작용에 의하여 일체화하면 인간이면 인간, 식물이면 식물은 그 원인을 닮아 번식하고 결국 근본으로 환원하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궁극의 제1원인을 닮았기 때문이라면 그 제1원인적 존재도 주체와 대상이 완전일체화한 기본 형태로서 모든 존재에 대해서 주체격을 지니고 있다는 결론이 됩니다. (89,226,1976,11,27)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게 되면, 하나님이 아무리 주체이며, 아무리 절대자라고 하더라도 상대가 없으면 고독한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자기가 아무리 가진 것이 많고, 혹은 지식이 많고, 또 권한이 많다 하더라도 고독단신의 자리에서 기뻐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왜 창조하게 되었느냐? 하나님은 절대적인 주체이지만 주체로만 계셔서는 기쁨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기쁨이라는 것이 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관계에서 되어지는 되어진ㄴ 것입니다. 평화니, 행복이니 하는 것도 혼자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적 관계에서만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이요, 행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독자적인 입장에서는 하나님 노릇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58,210, 1972,06,11)
우주의 모든존재를 보면 주체와대상,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쌍쌍으로 돼 있습니다. 광물계, 식물계, 동물계, 그리고 인간세계도 모두 쌍쌍제도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이러한 상대관게를 통하여 참사랑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 가운데 절대 혼자서는 취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이지만, 반면에 상대가 나타남으로써 사랑으로 연결된 모든 것을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자녀가 없이는 자녀를 사랑할 수 있는 부모의 사랑이 나타나지 않고,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의 주인도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참사랑을 이루시기 위해 그 상대로서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자녀의 사랑이나 형제의 사랑, 부부의 사랑 그리고 부모의 사랑 모두가 주체와 대상이 하나 됨으로써 나타나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으로 하나 되면 이들 둘을 가를 수 없습니다. 만일 가른다면 참사랑이 파괴도고 맙니다. 그러므로 이혼이라는 개념이 있을 수 없습니다.
(300,214-216,1993,03,14)
온 피조만물을 상대적으로 지은 것은 하나님의 참사랑을 받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사랑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남자, 그런 여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시키고 하나님의 사랑을 자신에게 결정적으로 결부시킬 수 있는 모습이 된다면, 같은 입장에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자리에 선다면 그들은 분명히 단 하나의 이상적인 부부가 됩니다. (26,155-156,1969,10,25)
하나님이 사람을 만든 것은 자기의 파트너를 만든 것입니다. 참사랑의 파트너로서 사람을 만든 것입니다. 그걸 본떠서 온 우주가 쌍쌍제도로 지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도 영원하고 남자의 사랑도 영원하고 여자의 사랑도 영원하고 자녀의 사랑도 영원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가정입니다. 그러니 이 가정은 영원한 가정이라는 것입니다.(201,193, 1990,04,01)
모든 존재는 이중목적을 지닌 연체이다. 위에서 논술한 바와 같이 모든 존재의 중심에는 성상적인 것과 형상적인 것의 두 가지가 있기 때문에, 그 중심이 지향하는 목적도 성상적인 것과 형상적인 것의 두 가지가 있어서, 그것들의 관계는 성상과 형상의 관계와 같다. 그리고 성상적인 목적은 전체를 위한 것이고, 형상적인 목적은 그 자체를 위한 것이어서, 전자와 후자는 원인적인 것과 결과적인 것,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주체적인 것과 대상적인 것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목적을 떠나서 개체적인 목적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삼라만상의 피조물은 이러한 이중목적에 의하여 얽혀있는 하나의 광대한 유기체인 것이다. (원리강론, 창조원리 3.1)
이 피조세계는 어떻게 존재하고 있느냐? 축이 있는데 두 축이 있습니다. 보이는 축과 보이지 않는 축,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주체를 중심삼고 돌아가는데 주체 자신도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상대를 중심삼고 주고 받으면서 돌게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모든 존재물은 이와 같은 원칙에 의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타락한 인간세계에 있어서 복귀의 길도 축을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축을 고쳐야 됩니다. 인간에 잇어서 몸의 중심은 마음입니다. 영인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영을 중심삼고 몸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영을 중심삼고 몸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몸은 영을 중심삼고 도는 겁니다. 마음의 명령에 몸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마음이 ‘동으로 가라’하면 동으로 가야 되고, ‘서로가라’ 하면 서로 가야 됩니다. 몸이 제멋대로 할 수 없습니다. (136.14.1985.12.20)
3. 주고 받음을 통해 나타난 이중 속성
종교경전
빗물이 땅에 떨어질 때마다 지구는 그 두 배의 수분을 올려 보낸다.
창세기 랍바 13.13(유대교)
진실로 하늘과 땅의 창조, 그리고 밤과 낮의 구별은 이해하는 인간들에 대한 징표이니라.
꾸란 3.190
주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이 얼마나 서로에게 빚지고 있는지 몽라. 낮은 밤에게, 밤은 낮에게 서로를 빚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인간들처럼 서로 고소하지 않는다. .... 달은 또 달에게 빚지고 있다. 하늘은 땅에게, 땅은 하늘에게, 모든 신의 창조물들은 서로에게 빚지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서로 재판하지 않고 평화를 유지한다. 그러나 인간은 친구에게 빌린 것을 오히려 강탈해 뺏으려고 한다. 출애굽기 랍바 31.15(유대교)
해가 지면 달이 뜨고 달이 지면 해가 뜬다. 해와 달이 서로 교체하며 밝은 빛이 생긴다. 추위가 가면 더위가 오고 더위가 가면 추위가 온다. 추위와 더위가 서로 교체하여서 세월이 생긴다. 가는 것은 굽히는 것이요, 오는 것은 펴는 것이다. 굽히는 것과 펴는 것이 서로 교감하여 이로움이 생긴다. 인간 마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인생의 평화가 생기면 인성이 계발된다.
역경, 계사전 2.5.2-3(유교)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 이루어지는 데서 있고,
길고 짧음은 서로 비교하는 데서 있고,
높고 낮음은 서로 기우는 데서 있고,
음과 소리는 서로 조화하는 데서 있고,
앞과 뒤는 서로 따르는 데서 있다. 도덕경 2(도교)
무엇인 다 정한 때가 있다. 하늘 아래서 벌어지는 무슨 일이나 다 때가 있다.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으면 뽑을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으면 살릴 때가 있고, 허물 때가 있으면 세울 때가 있다.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고 애곡할 때가 있으면 춤출 때가 있다.
연장을 쓸 때가 있으면 써서 안 될 때가 있고 건사할 때가 있으면 버릴 때가 있다.
모아들일 때가 있으면 없앨 때가 있고 건사할 때가 있으면 버릴 때가 있다.
찢을 때가 있으면 기울 때가 있고 입을 열 때가 있으면 입을 다물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으면, 미워할 때가 있고 싸움이 일어날 때가 있으면 평화를 누릴 때가 있다.
전도서 3.1-8(기독교)
하늘과 땅의 음과 양의 두 기운이 얽히고 설켜 만물이 화하여 엉기고, 남녀가 정을 맺음에 만물이 화생한다. 역에 이르기를 “세 사람이 가면 한 사람을 덜고, 한 사람이 가면 그 벗을 얻는다”고 하였다. 역경,계사전,2,4,13(유교)
하늘은 높고 낮으니 건과 곤이 정해지고, 낮은 것과 높은 것은 것이 베풀어지니 귀함과 천함이 자리하고 , 움직임과 고요함이 떳떳함이 있으니 강함과 유함이 판단되고15, 방향으로써 동류를 모으고 사물로써 무리를 나누니 길함과 흉함이 생기고, 하늘에서는 형상이 이루어지고 땅에서는 형체가 이루어지니 변화가 나탄난다.
이러므로 강함과 유함이 서로 갈리며 팔괘가 서로 섞여서 이것을 우레로써 고동하며, 이것을 바람과 비로써 적셔주며, 해와 달이 운행하며, 한 번 춥고 한 번 더워, 건의 도가 남성이 되고 곤의 도가 여성이 되었으니, 건은 큰 시작을 차지하고 곤은 물건을 만들어 완성한다.
역경, 계사전,1,1,1-5(유교)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한 바퀴에 꽃혀 있으나 바퀴의 한복판인 빈 곳, 즉 무에 바로 수레를 작용시키는 요인, 즉 유가 있다. 흙을 빚어서 기물을 만들지만 기물의 텅 빈 곳에 바로 기물의 쓸모가 있다. 문이나 창을 뚫어서 방을 만들지만 방의 공간이 바로 쓰이는 곳이다. 그런고로 유의 사물이 이롭게 쓰이는 까닭은 결국 공허한 무가 활용되기 때문이니라. 도덕경 11(도교)
말씀선집
주고 받는데 있어서 차이가 하나도 업으면 어떻게 되느냐? 그것은 오래 간다는 것입니다. 돌 같은 것도 오래가는 돌이 어떤 것이냐? 완전히 주고받은 것은 오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불순물이 끼어 있을 때 완전히 주고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 차이가 크면 클수록 빨리 붕괴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의 천법이 무엇이냐? 존재의 법칙이 무엇이냐? 그것은 주고 받는 것입니다. 완전히 주고받아야 됩니다. 잘 주고 잘 받으면 오래 존재하는 것이지만 잘못 주고 받으면 붕괴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157,266,1967,04,10)
작용에는 반드시 두 작용체, 주체와 대상이 그 과정을 통하여 보다 플러스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곳에서만 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용의 목적을 두고 보게 되면 이는 플러스(주체)보다도 크고 마이너스(대상)보다도 큰 제3의 존재, 결과적 존재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여기에 집회가 있다고해서 왔는데 이곳에 온 목적은 어디에 이느냐? 그것은 올 때의 그 마음보다도 더 플러스 될 수 있는 좀 더 나을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아서 온 것입니다. 만일 여기에 와서 마이너스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러한 작용은 점점 없어지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현상세계에서 보이는 모든 작용은 자체를 감소시키기 위해서 작용하는 존재는 하나도 없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56,134-135,1972,05,14)
나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받고 싶습니까? 주고 싶습니까?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통일원리는 수수작용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수수작용에서 이 ‘수(授)’가 먼저입니까, 이 ‘수(受)’가 먼저 입니까? 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줍니까, 자식이 부모를 위해서 줍니까? 부모가 주지요? 이것을 볼 때, 존재의 최초 기원이 되는 그분으로부터 주는 일이 시작되어서 작용이 연결되었다는 논리를 인정해야 됩니다. (239,59,1993,11,23)
세상의 모든 것은 돕니다. 운동을 안 하는 것이 없습니다. 움직이게 될 때, 어디서부터 시작했느냐? 여러분은 다 받기를 바랍니다. 돈을 끌어당기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옳은가 아닌가는 우주의 원칙에서부터 헤쳐 나가야 됩니다. 원칙이 그렇다면 하나님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기 시작할 때 받겠다고 당기는 힘을 가지고 창조했겠습니까? 주는 힘을 가지고 창조했겠습니까? 주는 힘입니다. 투입하는 힘입니다. (239,1992,11,25)
모든 것은 하나에서 많은 것으로 갈라져서 결국은 나의 큰 것으로 종합됩니다. 이렇게 발전하는 것입니다. 하나에서 여러 가지로 갈라졌다가 하나로 통합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갈라져서 보다 더 큰 것이 되는 것입니다. 더 큰 하나의 세계 가운데로 전부 들어간다는 애기입니다. (26,189,1969,10,25)
이 우주에는 상대권이 있기 때문에, 우주가, 천운이 보호하기 때문에 플러스에 플러스가 오게 되면 반발하는 것이고, 또 마이너스에 마이너스가 오게되면 함께 반발하는 것입니다. .... 이 우주에는 화합력과 배척려기 있는데, 상대되는 것은 화합하고 위반되는 것은 배척하는 것입니다. 우주의 천운은 자기를 손상시키려는 것으로부터 스스로 보호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적 논리가 부합되는 곳에서만 상대권이 형성되기 때문에, 여기에 다른 것이 올 때 상대권이 상처를 입게 되기 때문에 반발하는 것입니다. 반발하는 힘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우주는 화합과 동시에 반발하는 작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화합력과 반대되는 반발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상반된 힘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함께 동반하여 마이너스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천운의 완성을 돕기 위한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작용에 대해서 반작용의 힘이 없다면 걸을 수도 없습니다. (227,36,1992,02,10)
부인이 죽거나 남편이 죽으면 왜 슬픕니까? 자기의 남편이 죽었다고 왜 부인이 꼴사나운 모습을 하고 정신을 잃고 울고 불고 합니까? 우는 정도가 아니라 나자빠져 버리는데, 왜 그렇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의 상대권을 맺어서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한 우주의 법권에 들어갔던 것이,상대권이 흐트러짐으로 말미암아 피부가 빨개지도록 밀려오는 그 힘에 의하여 슬픔과 아픔을 느끼는 겁니다.
친구 간에도 그 상대권이 없어졌을 경우에는 외롭습니다. 지식도 친구고, 돈도 친구고, 권력도 친구고, 다 친구라는 것입니다. 그 친구 사이에 있어서도 그러는데, 영원의 주류가 되는 사랑의 기준을 중심삼고 이루어졌던 상대권을 잃은 그 아픔은 우주를 바꾸더라도 사라지지 않을 아픔이라는 것입니다.
그 원칙에 의해서 수억의 전기의 볼트가 플러스가 되는 데는 상대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플러스가 상대권이 성립되지 않게 될 때 깨지는 겁니다. 한번 플러스의 전기와 마이너스의 전기가 상대권을 만들었을 경우, 여기에 다른 플러스가 오게 되면 그 상대권은 파괴되는 것입니다. 우주 보호권을 침해하는 거와 같은 입장에 서기 때문에 플러스끼리 반발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상대 위치를 보호하기 위한 반발 작용이 제2의 보호 작용인 겁니다. 우주는 그러한 대응 반발이라는 힘에 의하여 균형을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건 나쁜 힘이 아니라. 작용과 반작용의 평균에 의하여 균형을 잡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해서 오느냐? 시집가기 전의 여자들은 장난도 하고 다니면서 많은 여자들이 서로 껴안기도 하고 할 수 있습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송아지들처럼 뒹굴면서 남자들끼리 마을을 시끄럽게 하면서 돌아다니기도 하고, 서로 뒹굴기도 하면서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남자가 어느 날 결혼을 해서 여자가 왔을 경우에 자기보다 미남인 친구가 자기 옆에 서 가지고 자기 부인 앞에 나타나기를 바라겠느냐? 그걸 바랄 남자가 없습니다. 차 버리는 것입니다. ‘내일부터는 오지 마, 이 자식! 가!’ 하는 것입니다.
이때, 가라고 하는 것은 나쁜게 아닙니다. ‘너도 나처럼 우주의 법을 받을 수 잇는 입장에 서!’ 하고 차 버리는 것은 완성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처음 듣는 논리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에 가더라도 플러스와 플러스일 때 상대권이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커지게 되면 주위 환경이, 저 사람이 중심에 서 가지고 상대권을 지배해 주지 않나 하고 바라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상대권에 서 있게 될 때 전체가 그렇게 되어가지고 하나의 관계를 중심삼고 상대 이상권을 만들자고 하게끔 되는 것입니다. (218,335,1991,08,22)
이러한 것이 원칙이라고 하면 진화론은 성립이 안됩니다. 대상의 노정을 통한 아메바로부터 원숭이까지 몇 천,몇 만 번의 사랑의 문을 통한 수컷 암컷의 관계를 무시하게 되면 연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참새도 그렇습니다. 겨울에 상대 같은 것을 모르니 장난을 하고 제각기 다른 프러스가 되어 있지만, 봄이 되어서 집을 만들고 상대권을 만들었을 때에는 절대적입니다. 제3자 참새에 대해서는 수컷과 암컷이 함께 절대적으로 배척하는 것입니다. 암컷이 오게 되면 수컷이 배척하고 수컷이 오게되면 암컷이 배척합니다. 자기 상대권을 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주 법권의 침략자가 되기 때문에 그걸 배척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218,339.1991.08.22)
말하자면 변증법적 논거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상호 투쟁 개념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헤겔은 그렇게 본 것입니다. 이것을 해결못하면 역사의 모든 이상세계나 상하관계의 구조적 조직을 가진 어떠한 조직체의 평화라든가 이상경이라는 것을 찾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강자는 약자를 무시하고, 잡아먹으려고 하고, 천대하고,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32,142,1984,05,31)
어떤 사람들은 우주가 힘에 의해서 만들어진 거이라고 합니다. 물론 모든 존재가 힘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힘이 존재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각각의 존재인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힘을 인정하기 전에 상대기준을 인정해야 합니다. 상대기준을 인정한다면 주체와 대상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체란 때에 따라서 변화되는 존재여서는 안 됩니다. 목적을 결정하고 영원한 존재권을 만들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인정할 수 있는 상대적 관계는 주체와 대해 상응할 수 있는 관계여야 하며, 상대적으로 반발하는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상대적 관계란 정이라는 기준에 반이라는 것이 서로 맞서서 그것이 하나로 통일된다고 하는 정반합의 관계가 아니라 주체 앞에 대상이 응하는 관계입니다. 즉 주체와 대상이 상응하여 공통의 목적을 중심으로 작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완전한 수수작용을 하여 상대권에 도달하면 힘이 나타나게 되고 그때 비로소 중심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작용하더라도 그것이 반대로 작용하게 되면 세계는 파괴되고 맙니다. (15,13,1965,02.07)
상호의존
크고작은 모든 존재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들의 그물망으로 영계되어 이다. 전체를 떠나서 개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의 분리된 개체로서 ‘자기자신’을 생각하는 것은 인식의 근본적인 오류이다. 아인슈타인은 그것을 “의식의 시각적 미망,,,,우리를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에 가두고 우리와 아주 가까운 몇몇 사람들에게 한정시키는 일종의 감옥 ” 이라고 불렀다. 그는 우리가 “살아있는 모든 것들과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자연 전체를 포옹함으로써 사랑의 범위를 넓혀 우리 자신을 이 감옥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말했다.
사실, 불교 경전에 따르면 우주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존재가 인과의 그물, 즉 인연의 사슬에 매여 있다. 이러한 이해는 불교, ‘우아설’ 의 토대가 된다. 모든 존재가 ‘나’요 ‘내’가 곧 모든 존재라는 인식, 그것이 불교의 자비윤리의 핵심이다. 그 윤리야말로 사람들이 ‘나의‘ 구원만을 목표라고 믿는 개인주의의 병폐를 치료하는 치료약이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고통 속에 있는 한, 그 누구도 궁극적인 평화를 얻을 수 없다.
종교경전
이 세상 사람들은 ‘내가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남이 한다’는 생각에 붙잡혀 이것을 진실로 알지 못한다. 즉, 그들은 그것이 각자를 다치게 하는 가시임을 깨닫지 못한다. 주의 깊게 이것이 가시라고 깨달은 사람에게는 ‘내가 한다’는 생각이 존재하지 않으며 ‘남이 한다’는 생각도 없다.
우다나 70 (불교)
우리는 서로 한 몸의 지체들입니다.에베소서 4.25 (기독교)
일체 만유는 그 자체 스스로의 것이라 할 수 있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으며, 태어나는 것도 아니며, 본래 이들은 마치 허공처럼 투명한 것이니, 상의적 관계의 사슬과 분리된 어떤 사물이란 다만 무지한 자의 허망한 차별상에 불과하다.
온 세상이 상호 관계의 사슬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님을 여실히 알게 될 때 마음에 고요함을 얻는다. 능가경 78 (불교)
어찌하여 나는 다른 이들의 몸을
‘나’로 여기지 못하는가?
내 몸이 또한 다른 이의 몸임을 아는 것이
어려운 일 아니거늘.
수족이 몸의 지체로 여겨지는 바와 같이
어찌 육신 쓴 중생들이
한 생명의 지체로 여겨지지 않는가?
다만 앎으로 이 의식 없는 육신에 ‘나’라는 생각이 일어나듯이
어찌 이러한 생각이 다른 중생들에게는 미치지 못하는가?
내가 남을 위해 이와 같이 행할 때
자부심이나 뽐내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하리.
그것은 마치 스스로 도모함과 같으니
나는 다만 아무런 되갚음도 바라지 않으리.
샨티데바, 보살행의 도 8.112-16 (불교)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름답게 보이는 것을 아름다운 것인 줄 알고 있지만 이는 추한 것일 뿐이다. 모두 착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착한 줄 알고 있지만 이는 악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유와 무는 서로를 낳는다. 도덕경 2 (도교)
말씀 선집
우주는 지극히 작은 것에서 지극히 큰 것까지 모두 관계와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16.119, 1960.01.02)
모든 존재의 중심에는 성상적인 것과 형상적인 것의 두 가지가 있기 때문에, 그 중심이 지향하는 목적에도 성상적인 것과 형상적인 것의 두 가지가 있어서, 그것들의 관계는 성상과 형상과의 관계와 같다. 그리고 성상적인 목적은 전체를 위한 것이어서, 전자와 후자는 원인적인 것과 결과적인 것,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주체적인 것과 대상적인 것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목적을 떠나서 개체적인 목적이 있을 수 없고, 개체적인 목적을 보장하지 않는 전체적인 목적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삼라만상의 피조물은 이러한 이중 목적에 의하여 얽혀 있는 하나의 큰 유기체인 것이다. (원리강론, 창조원리 1.3.1)
전부 상대성을 중심삼고 공동적인 목적을 위해서 대응하여 화합한 세계에 연결돼야만 완성품이 됩니다. 작으면 작은 대로, 큰 것은 큰 것대로, 우주는 우주대로 대응관계에 밸런스가 되어 있습니다. 왜? 수수작용, 운동하지 않으면 없어집니다.(391.175, 2002.08.21)
천운은 자기를 위하려고 하는 것은 전부 부정하지만 남을 위하려고 하는 것은 자꾸 품어 주는 것입니다. 눈이 1.2라고 얘기하게 되면 ‘야! 기분 좋다. 확실히 보인다’ 하고 눈이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왜 좋으냐? 천운이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천운이 전 우주에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히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무제한으로 투시되기 때문에 그 영역이 무한정 확대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귀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를 위하게 될 때, 관계성을 가지게 됩니다. 상대를 위하는 것이 관계성을 만드는 힘이라는 것입니다. (244.107-108, 1993.01.31)
인체 가운데서 눈을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눈 세포도 각각은 전부 복잡합니다. 전부 복잡하지만 하나의 생명체로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이것이 서로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조하며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눈이고 뭣이고 다 싫고 손이 제일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안 되는 것입니다. 전후·좌우·상하 관계에 있어서 위치와 계급에 따라 반드시 각각 제약된 법도와 조건에 순응하지 않고는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통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49.193, 1971.10.10)
인류는 무엇이냐? 하나의 세포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멋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하나의 극을 이루는 것입니다. 극을 이루어서 전체의 중심이 되는 신과 인간, 인간이 있으면 인간 전체를 합한 것이 서로 상대적 관계를 중심삼고 이 자체가 합한 것이 서로 상대적 관계를 중심삼고 이 자체가 사랑의 발로체로서 목적을 성사하는 그 원인과 결과가 맞아떨어지면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원인과 결과가 결합함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목적을 완성한 가치체로서 드러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110.73, 1980.11.09)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이상 요소가 사랑인데, 사랑이 잘 주고 잘 받을 수 있게끔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체를 중심삼고 우주를 연결해 전부 축이 되어 가지고 전기가 연결돼 있는 것처럼, 축을 통해서 잘 주고 잘 받는 나무와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맨 중심뿌리의 끝과 순의 끝은 언제나 상대적입니다. 이것이 잘 주고 잘 받아야 크지, 이것이 미치지 못하면 뿌리도 작아지고 전부 작아진다는 것입니다. (165.177, 1987.05.20)
원인과 결과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격언,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믿음, 그리고 업보의 교리 등은 세계가 정의에 의해 지배된다는 보편적인 생각을 다양하게 표현단 것이다. 여러 종교들은 현생에서의 운명이나 윤회 환생, 또는 내세의 삶을 통해서라도 정의가 실현된다는 특정 방식에 관한 가르침을 다양하게 제시한다. 이처럼 모든 종교는 정의가 이런저런 방식으로 보상 받게 된다는 점에 동의한다. 자비로운 창조자가 의도한대로, 선한 행위는 보상을 받고 악한 행동은 벌을 받는다는 것은 우주의 고유한 본질이다. 이것이 바로 인과의 법칙이다.
인과의 법칙은 신성한 법과 마찬가지로 궁극적 실재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모호하다. 동양종교에서 정의의 법칙은 우주구성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이며, 이런 점에서 그것은 해탈이라는 궁극적 목표에 종속된다. 업과 윤회의 수레바퀴는 인과 작용을 보여주지만, 이러한 것들은 인간 존재의 무시무시한 어두운 측면일 뿐이며 윤회의 순환이 소멸되는 열반과 해탈이라는 궁극적 목표와는 무관하다. 한편, 유일신 종교들은 정의를 지키기 위해 죄를 벌하는 신성한 심판관으로서 신을 묘사한다. 그렇지만 심판관으로 자녀를 심판하는 역할이 님 아버지의 목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은 사랑과 진리로써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문선명 선생이 지적하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그의 피조세계에 대한 주관, 즉 우주법칙의 작용을 통해 정의를 구현하도록 창조된 이 세계에 대한 주관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 구절들에서는 두 측면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 언급한다. 첫째는 뿌린 대로 거둔다는 정의에 대한 언급이다. 문선명 선생은 개인의 삶에서 뿐만 아니라 탕감해야 할 죄를 범한 나라와 민족의 역사에서도 이 법칙의 예들을 제시한다. 경전들은 설사 이 세계가 불의를 용인하고 옳지 못한 것을 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궁극적인 개인의 응보는 천국 또는 지옥으로 운명 지어진 내세에 있다고 말한다. 이에 관해 문선명 선생은 그 의미를 더하여, 죄인들은 천사의 심판 때문이 아니라 지상 삶의 악행 때문에 스스로 지옥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고 가르친다.
둘째는 만물의 성장과 완성 과정에서 작용하는 보편적 원리로서 원인과 결과에 대한 구절들이 있다. 우리는 결과가 원인과 무관하게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히려 그 둘은 서로 밀접하게 묶여 있다. 불교의 핵심 교리인 연기설은 이 개념의 소극적인 면을 보여주는데, 무지가 인과적 연쇄를 통해 고뇌라는 인간의 전체적 상황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도교 경전은 이 개념이 적극적인 측면을 보여주는데, 원인과 결과는 서로 꼬리를 물고 도는 하늘의 운행이라는 것이다. 문선명 선생은 원인자로서 하나님이 세상에 임재하여 세상 어디서나 역사하시면서, 결과로서 마침내 인간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 보인다고 가르친다. 궁극적으로 원인과 결과인 하나님과 인간은 사랑을 통해 시작과 끝이 되어 마침내 결합하게 된다.
1. 인과응보
종교 경전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맙시다.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7 (기독교)
너희에게 어떤 재앙이 닥친다는 것은 너희 손이 행한 결과이니라.꾸란 42.30 (이슬람)
검을 쓰는 사람은 검으로 망한다. 마태복음 26.52 (기독교)
폭력은 다만 고통을 낳으리니, 마땅히 이를 알고 늘 경계할지어다.
아차랑가 수트라 3.13 (자이나교)
재는 그것을 뿌린 그 사람 앞으로 되돌아 날아간다.
요르바족의 격언 (아프리카 전통종교)
바람을 심어 회리바람을 거둘 것들, 곡식 줄기는 있어도 이삭은 여물지 아니하고, 여문다 해도 남이 거두어 먹으리라. 호세아 8.7 (기독교)
악행을 한 어리석은 자는 그 결과를 알지 못한다. 무분별한 자는 자신의 업으로 자신을 태워 없앤다. 마치 불에 타는 사람처럼. 법구경 136 (불교)
모든 일의 결말은 하나님에게 귀착하느니라. 꾸란 31.22 (이슬람)
신에게 뿔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도 뿔이 있다.
모든 행위에 대해 그는 호되게 심판을 내리신다.
오밤보족의 격언 (아프리카 전통종교)
이 생에서 지은 불의가 언제나 그 결과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유유히 나아가는 암소처럼 그것은 마침내 불의를 행한 이의 뿌리를 잘라버릴 것이다.
마누법전 4.172 (힌두교)
사람의 운명 속에 참화와 행복을 위한 특별한 문은 없다. 그것들은 사람들 자신이 그것들을 부름에 따라온다. 그들의 보상은 마치 그림자가 실체를 따르듯이 선과 악이 따른다.
음즐문, 응보서, 1 (도교)
허공중에서도, 큰 바다 가운데서도, 혹은 산 속의 동굴에 들어갈지라도 악업의 갚음에서 벗어날 그런 세계는 어디에도 없다. 법구경 127 (불교)
하늘의 그물은 큼직큼직하고 소홀하지만 놓치지 않는다.
도덕경 73 (도교)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그 일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십시오. 성경에도 기록되기를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12.19 (기독교)
믿음을 쉽게 저버리는 자들로 하여 비통해하지 말지니, 그들은 하나님께 어떤 해악도 끼칠 수 없느니라. 하나님은 내세에서 그들에게 아무런 몫도 주시지 않으니, 그들에겐 무서운 재앙이 있을 뿐이로다.
하나님이 불신자들과 잠시 머물러 있음이 그들에게 좋은 징표라고 생각하지 않게 할지니, 진실로 하나님이 그들과 잠시 체류함은 죄악을 증가시켜 굴욕적인 징벌을 주고자 함이니라.
꾸란 3.176, 178 (이슬람)
모든 거래에는 맹세가 뒤따른다. 이익을 도모하려는 마음이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에 퍼져 있다. 가게의 문이 열리고 상인들은 신용으로 거래를 한다. 거래 장부가 놓여지고 거기에 손이 기록을 한다. 돈을 빌리려고 하는 자는 누구나 와서 빌려 간다. 그러나 수금원은 정기적으로 매일 순회를 하고서 채무자의 사정에는 개의치 않고 꼬박 꼬박 정해진 액수를 받아간다. 채권자들은 그들이 요구할 수 있는 것들을 언제든지 취할 수 있다. 심판은 지닐의 심판이고 세상 모든 일은 축제를 위해 있다.
미슈나, 아보스 3.20 (유대교)
더욱이 하늘과 땅이 가장 큰 것이기 때문에 우주의 원리로 보아서 신령한 힘을 지니고 있음이 당연하다. 신령한 힘을 지니고 있으므로, 당연히 선에는 상을 주고 악에는 벌을 내린다. 그러나 천지가 광대하고 그 그물의 짜임이 크기 때문에 당장에 반응을 하지 않을 것이다. 포박자 (도교)
거룩하도다. 오, 지혜의 주여!
나는 당신을 알아보았습니다.
삶의 마지막 목적지에서, 당신의 지혜
악은 악으로, 거룩한 것에는 축복으로
말과 행동이 열매를 거두게 하실 때, 생명의 탄생 시에 나는 당신을 알았습니다.
아베스타, 야스나 43.5 (조로아스터교)
행하는 대로 거두리니, 선행을 짓는 사람은 선하게 되며, 악행을 짓는 사람은 악하게 되리라. 덕행으로 고결함을 얻고 불의로 비천하게 되리라.
그러나 사람들은 “행위가 아니라 다만 욕망으로 사람이 이루어진다” 라고 그릇되게 말한다. 내가 말하건대, 욕망이 있음과 같이 그렇게 그의 의지가 있고, 의지가 있음과 같이 그에게 그렇게 행하는 바가 있다. 그가 스스로 짓는 행위가 무엇인건 스스로 그 결과를 감수해야 하리라.
마음이 집착하는 곳에
미세신(微細身)이 행위로 따라가니,
그것에 탐착하는 까닭이다.
이 생에서 지은 행위가 무엇이든
스스로 행한 바의 결과가 다하면,
그곳으로부터 이 행위의 세계로 다시 오리라.
욕망에 끌려 다니는 이는 이렇다. 그러나 욕망을 여읜 이는 구극의 경계에 이르리라.
브리하드아란야카 우파니샤드 4.4.5-6 (힌두교)
말씀 선집
체(體)를 중심삼고 자기 생명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는 모든 지체들이, 주체와 대상이 주고받는 수수작용을 잘 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고받는 모든 것이, 전체가 잘 주고 잘 받으면 그 육체가 원활히 운동하고 생존이 계속됩니다. 그런데 어디가 막혔다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이 우주는 하나님의 이상적 존재형으로서 잘 주고 잘 받는 것은 전부 다 옹호합니다. 옹호하는 이 세계의 요소 가운데 반대요소가 벌어지고 결여되거나 한 곳이 막히게 되면 옹호권에서 작용할 수 없는 불합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반작용으로 내뱉게 됩니다. 그것은 우주 자체의 보호를 위해서입니다. 세계에는 작용과 반작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반작용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대개 나쁜 것으로, 반대로 보지만, 그것은 큰 것을 보호하기 위한 작용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보는 관이 달라져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가 아프다면, 그것은 배를 중심삼고 어떤 주체 앞에 대상적인 위치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회로가 막혔다는 것입니다. 막혔으니, 막혀 버린 비준만큼 반대로 몰아내게 되는 것입니다. 우주력에 의해 몰라내는 힘이 거기에 작용하니 아픈 것입니다. 막힌 것을 열어만 놓으면, 약으로 그 문을 열어 놓기만 하면 괜찮아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양심세계나 사람의 모든 세계가 고통을 받고 그러는데, 왜 고통을 받느냐? 그것은 우주력에 불합격될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주가 그걸 몰아냄으로 말미암아 양심의 가책을 받는 것입니다. 그게 정상적인 방향인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반대되는 입장에 서게 되면 그 작용을 못 하게 되니, 반드시 반대로 괴롭히는 작용이 아픔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반작용이 나타나서 지옥행이 되는 것입니다.(165.176-177, 1987.05.20)
미국도 천주교에서 갈라진 신교를 중심삼고, 구라파에서 새로운 종교를 반대하는 구교 가운데 잘 믿는 교파를 빼내어 이동시켜서 건설한 나라입니다. 대이동한 것입니다. 대이동해서 여기에 터를 닦은 것입니다.···
미국은 영국의 연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국 사람이 잘못한 것까지 미국에서 전부 다 탕감해야 됩니다. 영국이 지금까지 아시아, 중국에 와서 뭘 했느냐 하면, 아시아인들을 전부 아편으로 죽여 버렸습니다. 지금까지 아시아 지역에 와서 그러한 정책을 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력기반을 완전히 무너뜨려 마비상태가 된 걸 자기들이 지금까지 지배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죄를 탕감해야 됩니다. 그것을 미국에 있는 여러분들, 지금 젊은 가정이나 고등학교 학생들이 전부 탕감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망합니다. 역사에 위배되어 망한다는 것입니다. (105.134, 1979.10.04)
하나님의 사랑의 법을 어기는 것은 악이요, 원수요, 용납할 수 없는 죄라는 것입니다. 죄 중에 제일 무서운 죄입니다. 원수 중에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원수입니다. 그 길을 시정하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은 원수요, 죄인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들이쳐서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망하게 되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태리의 폼페이 시(市)를 가 본 사람도 있겠지만, 그 도시가 망하게 된 것도 문란한 사랑의 사회생활 때문이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도 그래서 멸망한 것입니다. 로마도 그래서 망한 걸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공식적인 역사관으로 미루어 볼 때, 미국도 그러한 사랑을 시정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망합니다. (104.141, 1979.04.29)
여러분! 일제하에서 반일 지하운동을 했던 본인에게 일본민족은 원수였습니다. 민족적으로는 물론, 개인적으로도 원수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패전한 후 본인은 일본인을 사랑했습니다. 지하 독립운동을 했다고 끌어다가 모진 고문을 했던 일본 경찰관들은 본인의 말 한마디면 모두 처형감이었는 데도, 오히려 쫓기고 있는 그들을 안전하게 보내준 것입니다.
오늘날 일본의 많은 젊은이들이 왜 본인에게 영원한 생명을 걸고 충성하는지 아십니까? 인과법칙에 따라서 보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원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국가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심정적인 뜻에 따라서 세계를 향해 참사랑을 심었기 때문입니다. 국가적인 원수를 사랑하며 사는 길로 이끄는 심정적 기반을 심었기 때문에 자신들도 모르게 천명에 따르고 있습니다. (316.82, 2002.02.10)
2. 인과의 연쇄
종교 경전 세상은 해위로 인해 존재하며, 모든 것들은 인과적 행위들에 의해 생성되며, 모든 존재는 행위에 의해 주관되고 행위에 묶여 있습니다. 그들은 마치 돌아가는 수레바퀴처럼, 중심축의 핀에 의해 고정되어 있습니다.숫타 니파타 654 (불교)
삼매에서 깨어나시어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연기에 온 마음을 쏟으셨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이것이 생겨날 때 저것이 생긴다. 다시 말하면 어리석음[무명]에서 결합[행]이 있고, 결합에 의해 식이 있고, 식에 의해 명색이 있고, 명색에 의해 육입이 있고, 육입에 의해 촉이 있으며, 촉에 의해 수가 있고, 수에 의해 애가 있으며, 애에 의해 취가 있으며 취에 의해 유가 있고, 유에 의해 생이 있고, 생에 의해 노여움, 후회, 근심, 슬픔, 괴로움, 절망이 일어난다. 이러한 괴로움의 덩어리인 인간 존재는 그렇게 생겨나는 것이다. 우다나 1.1 (불교)
만물은 모두 종류가 다르고 서로 다른 형체들이 변화하며 교대한다. 처음과 끝이 마치 둥근 고리와 같아서 그 선후의 순서를 알 수가 없다. 이것을 일러 하늘의 조화[天均]라고 말한다.
장자 27 (도교)
보아라, 내가 곧 가겠다. 나는 너희 각 사람에게 그 행위대로 갚아 주려고 상을 가지고 가겠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과 끝이다.요한계시록 22.12-13 (기독교)
말씀 선집
일은 원인과 결과가 있고 결과는 과정을 통과하므로 원인과 결과는 하나가 됩니다. 일치하는 데는 원인의 과정·조건이 필요합니다. 과정·조건은 원인에 통하지 않으면 안 되고 결과에 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관계를 떠나서는 하나가 될 수 없고, 목적완성도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출발점이 없다면 목적도 없습니다.(15.130, 1965.10.03)
본질세계와 현상 세계의 관계는 비유컨대 마음과 몸의 관계와 같아서 원인적인 것과 결과적인 것,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그리고 주체적인 것과 대상적인 것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원리강론, 총서)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언제나 기뻐할 수 있는 곳, 혹은 언제나 기뻐할 수 있는 분을 찾아가야 합니다. 이분은 절대자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동기의 세계와 결과의 세계에 계신 것입니다.
곧 원인과 결과로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알파요 오메가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원인과 결과의 과정에 있다는 것을 알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알게 됩니다. 역사는 원인의 세계에서 결과의 세계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양심은 이 과정의 길을 가고 있는데, 역사의 흐름이 빠르기에 이를 따르려는 양심은 두 배로 바쁩니다.
동기는 하나님이 되고 인간을 결과로 세워야 합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인간이 역사의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원인을 못 가진 것이 타락입니다.(11.114, 1961.02.19)
주체와 대상은 하나 되어야 합니다. 원인과 결과도 반드시 하나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나는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이자 끝이다”라고 했습니다. 둘이 떨어진다는 것입니까? 하나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알파라면 우리 인간은 오메가입니다. 하나님이 시작이라면 우리는 나중입니다. 하나님이 처음이라면 우리는 끝입니다.(69.76, 1973.10.20)
누구든지 근본을 부정하는 사람은 결과를 가질 수 없습니다. 모든 아들딸의 근본은 아버지인데, 그 아버지를 부정하면 결과인 아들딸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논리적입니다. 원인과 결과가 하나 됨으로 말미암아 이상이라든가 기쁨 같은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자가 어머니가 되는 원인도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328.185, 2000. 08.03)
남자를 통해서 여자세계를 한 바퀴 돌아 가지고 둘이 하나 됩니다. 둘이 딱 한 바퀴 빙 돌면 만납니다. 만나면 올라가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여자 남자가 만나 가지고 서로 위해야 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 가지고 쓰윽 한 바퀴 돌아 만나서 하나님에게 희생을 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정분합(正分合)입니다. 사랑 때문에 갈라져서 사랑 때문에 만났으니, 사랑 때문에 원인과 결과의 내용이 하나 된 자리에 전부 결착이 되어야 씨가 됩니다. 수수작용의 순환적 법도를 통하지 않으면 통일세계가 안 되는 것입니다.(389.303, 2002.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