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 3부 인생의 여정 - 제17장 복종과 희생

훈독왕 | 20180429164933
세계경전

제3부 인생의 여정

17장 복종과 희생

 

 소명과 사명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엄청난 영적 자각을 경험한 사도 바울은 그 당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무언가를 영적으로 간절히 요구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그것은 단순히 기독교 신앙에의 개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바울은 그 이상의 사명,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알리라는 사명을 받았던 것이다. 이 사명의식이 그의 마음에 불타올랐고 이것이 곧 남은 일생 동안 그리스 전역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겠다는 동기를 불러일으켰다. 거기서부터 그는 자신을 산 제물로서 하늘 앞에 바치고 하나님의 소명에 복종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역사를 통해 성인들과 사도 바울 같은 의인들을 부르셔서 당신의 도구로 쓰셨다. 하나님은 다양한 사명을 띠고 하늘의 이름으로 그 임무를 수행할 신앙인들을 필요로 하신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 예수님의 제자들, 무함마드의 교우들, 그리고 하늘의 소명에 응답한 후 이를 따라갔던 수많은 신도들까지 모두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소명을 받는 자는 도전과 역경에 부딪힐 때가 많았다. 그러나 그 신성한 목적을 가슴에 품고 뜻을 이루고자 하는 강한 책임감이 있었기에 그들은 참고 견딜 수 있었다.

 

1. 하나님의 소명과 우리의 사명의식

 

종교 경전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창세기 12.1-3(기독교)

 

, 믿는 자들이여, 하나님을 돕는 자가 되어라. 마치 마리아의 아들 예수가 제자들에게 말하길 누가 하나님을 위해 나를 돕겠느냐.’ 제자들이 말하길 우리가 하나님을 돕겠습니다라고 말한것처럼.

꾸란 61.14(이슬람) 

 

나 여호와가 너를 부른다. 정의를 세우라고 너를 부른다. 내가 너의 손을 잡아 지켜 주고 너를 세워 인류와 계약을 맺으니 너는 만국의 빛이 되어라. 소경들의 눈을 열어주고 감옥에 묶여 있는 이들을 풀어주고 캄캄한 영창 속에 갇혀 있는 이들을 놓아주어라.

이사야 42.6-7(기독교)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환희 비추었다. 그가 땅에 엎드러지자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사울이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일어나서 시내로 들어가거라. 그러면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사울과 동행하던 사람들도 그 음성은 들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벙벙해서 서 있기만 하였다.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끌고 다마스쿠스로 데리고 갔다. 사울은 사흘 동안 앞을 못보고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다마스쿠스에 아나니아라는 제자 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주께서 신비로운 영상 가운데 나타나 아나니아야!” 하고 부르셨다. 아나니아가 , 주님, 말씀하십시오하고 대답하자 주께서는 어서 일어나 곧은 거리라는 동네에 사는 유다의 집으로 가서 다르소 사람 사울을 찾아라. 사울은 지금 기도를 하고 있는데... 그는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들어와서 손을 얹어 다시 눈을 뜨게 해주는 것을 신비로운 영상으로 보았다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듣고 아나니아가 주님, 그 사람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에게서 들은 바 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사는 주님의 성도들에게 많은 해를 끼쳤다고 합니다. 더구나 그는 대사제에게서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갈 권한을 받아가지고 여기 와 있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주께서는 그에게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도 가야 한다. 그 사람은 내가 뽑은 인재로서 내 이름을 이방인들과 제왕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널리 전파할 사람이다. 나는 그가 내 이름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지 그에게 보여주겠다.” 그래서 아나니아는 곧 그 집을 찾아가서 사울에게 손을 얹고 이렇게 말하였다. “사울 형제, 나는 주님의 심부름으로 왔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여기 오는 길에 나타나셨던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이 나를 보내시며 당신의 눈을 뜨게 하고 성령을 가득히 받게 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그러자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사도행전 9.3-18(기독교)

 

게으른 시인, 내가 그대의 부름을 받았도다.

밤낮없이 그대를 찬미하라는 명을 받았도다.

시인은 거룩한 스승의 부름으로

영원한 그의 집에 소환되어 거룩한 찬야양의 옷을 받았으며,

신성한 이름의 거룩한 음식을 대접받았도다.

스승의 인도하심으로 이들을 받음에,

시인의 가슴은 지복으로 충만하였고,

거룩한 말씀을 따라 드높은 찬미를 온 세상에 널리 펼쳐냈도다.

이디 그란트, 바르 마즈, M.1, p.150(시크교)

 

말씀 선집

 

장차 하나님이 이 죄악세계에서 선한 개체를 부르시어 그들을 중심하고 선의 씨족사회를 세우고, 나아가 선의 봉건사회를 이루어서 선의 왕국을 건설함으로써 메시아를 맞기 위한 선의 판도와 주권을 수립하려 하셨기 때문에, 사탄이 또한 이것을 먼저 알아서 그러한 형의 노정을 앞질러 걸어 나온 것이었다.

 

실상 하나님은 이러한 죄악사회에서 선의 중심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그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받들 수 있는 자녀를 번식케 함으로써, 이스라엘 씨족사회를 세우셨던 것이다.

(원리강론, 섭리적 동시성으로 본 복귀섭리시대와 복귀섭리연장시대 7.1)

 

하나님의 창조가 그러했듯이, 그의 재창조역사인 구원섭리도 한꺼번에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전체적인 것으로 넓혀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가 그러하기 때문에 구원섭리를 위한 예정에 있어서도, 먼저 그 중심인물을 예정하시고 부르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므로, 어떤 사람이 복귀섭리의 중심인물이 될 수 있는 조건을(본장 제3) 갖추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와 같이 미리 알고 계시는 인물을 예정하시고 부르시는 것이다. 그러나 의롭다 함을 얻어 영화를 누리는 데까지 이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부름 받는 입장에서 자기의 책임을 완수할 때 비로소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고, 의롭다 함을 얻은 후에야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영화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원리강론, 예정론 3.4)

 

타락된 인간은 신령에 대한 감성이 극히 둔하기 때문에, 대개 진리 면에 치중하여 복귀섭리 노정을 따라 나가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들은 흔히 낡은 시대의 진리 관에 집착되어 있기 때문에, 복귀섭리가 새로운 섭리의 시대에로 전환하고 있어도 그들은 이 새 시대의 섭리에 쉽게 감응하여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구약성서에 집착되었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따라 신약시대의 섭리에 호응할 수 없었던 역사적인 사실은 이것을 입증하는 좋은 예라 하겠다.

 

그러나 기도로써 신령한 것을 감득할 수 있는 성도들은 새 시대의 섭리를 심령적으로 알게 되므로 낡은 시대의 진리 면에서는 상충적인 입장에 서면서도 신령을 따라 새 시대의 섭리에 호응하게 되는 것이다.

(원리강론, 인류역사 종말론 5.2)

 

하나님이 있다면 미국에, 자유세계에 레버런 문을 그 경계선, 그런 찰나에 보냈다는 것이 지금부터 10년 전의 일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전부 레버런 문의 말을 들어라 이것입니다. 그러면 레버런 문한테 책임 다했느냐 묻게 될 때, 레버런 문의 말이 미국 사람들이 병이 났으니 의사는 외부에서 데려와야 되니 동양에서 레버런 문이 았다는 것입니다. 그게 얼마나 실감이 납니까. 불이 나면 소방대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걸 다 했다는 것입니다. 다 했다 이겁니다.

(123.320, 1983.01.09)

 

하늘은 나를 대하여 요구하고 계신다. 새 세계를 건설하라는 것이다. 이미 저끄러진 사건들을 해결하라는 책임을 부여하셨다. 그러면 나는 어떠한 입장에 있는가. 내 한 개체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인류의 것이요, 세계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인 까닭이다.

 

부족한 민족이요, 부족한 우리들이지만 부르심을 받았다는 황공한 심정을 가져야 한다. 국가, 민족을 위해서 자진해 간 사람들도 허락받지 못하였는데, 우리들을 불러서 아들로 삼아 주셨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감사한 마음과 황공한 심정을 가져야 한다.

(9.344, 1960.01.30)

 

방대하고도 엄청난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있어서 그 누구도 신임할 수 없는 고독한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가 신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있겠습니까? 그 이상 바랄 것이 있느냐 이겁니다. 죽어도 좋다는 겁니다. 내 육신이 물이 되어 흘러간들 무슨 한이 있고, 가루가 되어 날아간들 무슨 한이 있느냐 이겁니다. 세상에는 개돼지처럼 죽어가는 무가치한 인생이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62.140, 1972.09.17)

 

2. 사명 성취의 노력과 고난

 

종교 경전

 

우찌야 왕이 죽던 해에 나는 여호와께서 드높은 보좌에 앉아 계시는 것을 보았다. 그의 옷자락은 성소를 덮고 있었다. 날개가 여섯씩 달린 스랍들이 그를 모시고 있었는데, 날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나머지 둘로 훨훨 날아다녔다. 그들이 서로 주고받으며 외쳤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여호와, 그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시다.”

그 외침으로 문설주들이 흔들렸고 성전은 연기가 자욱하였다. 내가 부르짖었다. “큰일났구나. 이제 나는 죽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 입술이 더러운 사람들 틈에 끼여 살면서 만군의 여호와, 나의 왕을 눈으로 뵙다니...”

그러자 스랍들 가운데 하나가 제단에서 뜨거운 돌을 불집게로 집어 가지고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고 말하였다. “보아라, 이제 너의 입술에 이것이 닿았으니 너의 악은 가시고 너의 죄는 사라졌다.”

그때 주의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누구를 보낼 것인가?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하고 내가 여쭈었더니 주께서 이르셨다. “너는 가서 이 백성에게 일러라. ‘듣기는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마라. 보기는 보아라. 그러나 알지는 마라.’ 너는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고 귀를 어둡게 하며 눈을 뜨지 못하게 하여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서 성해지면 어찌 하겠느냐?”

이사야 6.1-10(기독교)

  

여호와여, 주께서는 저를 아시지 않습니까? 저를 잊지 마시고 도와주십시오. 저를 못살게 구는 자들에게 원수를 갚아주십시오. 언제까지나 모르는 체 하시다가 이 몸 죽는 모양을 보시렵니까? 제가 주님 때문에 수모를 받고 있는 줄을 알아주십시오. 말씀 내리시는 대로 저는 받아 삼켰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이 몸을 주님의 것이라 불러주셨기에 주님의 말씀이 그렇게도 기쁘고 마음에 흐뭇하기만 하였습니다. 저는 웃으며 깔깔대는 자들과 한자리에 어울리지도 않았습니다. 주님 손에 잡힌 몸으로 이렇게 울화가 치밀어 올라 홀로 앉아 있습니다. 이 괴로움은 왜 끝이 없습니까? 마음의 상처는 나을 것 같지 않습니다. 주께서는 물이 마르다가도 흐르고 흐르다가도 마르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도랑같이 되셨습니다.

예레미야 15.15-18(유대교)

 

타키프가... 부랑배와 노예들을 선동하여 [무함마드]를 모욕하고 비난하였는데, 그때 한 무리의 군중이 다가와 그를 과수원에 피신하도록 하였다... 선지자가 안전한 곳에 닿았을 때 그가 말하기를, “오 하나님이시여, 당신께 저의 나약함과 자원이 없음과 사람들 앞에서 보잘 것 없음을 호소하나이다. 가장 자비로우신 분이여, 당신은 약자의 주님이요, 따라서 나의 주님입니다. 당신은 나를 누구에게 맡기려 하나이까? 나를 악용하는 자에게 입니까? 아니면 나를 누를 힘을 가진 적들에게 입니까? 만약 당신이 나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면 저는 근심하지 않겠나이다. 당신의 호의는 내게 더욱 광대한 것입니다. 당신의 노여움과 분노가 나에게 내려지지 않는다면, 어둠이 빛나고 현세와 내세의 모든 일이 바른 질서를 잡는 당신의 도움에 보호를 구하나이다. 당신의 기쁨이 바로 만족입니다. 당신 외에는 어떤 권능도 없나이다.”

이븐 이사크, 시라트 라술 알라(이슬람)

 

다른 어떤 사람이 육체에 신뢰를 둘 만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합니다. 나는 난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율법의 의로는 흠 잡힐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나에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오물로 여깁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인정받으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에서 오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를 가지려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내가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요, 또 이미 목표점에 이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단 한 가지입니다. 곧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만을 바라보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숙한 사람은 이와 같이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도 여러분에게 드러내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3.4-15(기독교)

 

말씀 선집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는 어려운 문제가 많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소명을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소명을 따라가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소명을 따라가는 것도 어렵겠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충효의 도리를 다한다는 것은 더욱더 어렵습니다.

(40.86, 1971.01.24)

 

소명의 길을 따라 가는 데는 언제나 내적인 투쟁이 있는 것입니다. 내적인 투쟁을 가려 가는 것은 책임자가 잘하지 않고서는 안 됩니다. 책임자가 잘못하면 망하게 되는 거싱니다. 책임자가 잘못하면 큰 문제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보더라도 지나치게 기뻐하지 말고, 나쁜 것을 보더라도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든지 자기 마음의 자세를 바로잡아 가지고 정부(正否)를 가려 가면서 조심스럽게 나가야 됩니다.

(40.98-99, 1971.01.24)

 

이제 저희들에게 남아진 우주적인 소원이 있다면 그 소원은 우리가 우주만상의 전체적인 책임을 질 수 있는 정병들이 되어 온 피조만물을 해방시키고 만인을 기쁘게 해 주는 것임을 알게 하여 주시고, 하늘의 명령을 받들어 책임 다 할 수 있고 그 사명감에 취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하늘의 뜻을 이 땅 위에 찾아 세우기 위해서 하늘의 법도를 알고 우주의 싸움의 법도를 알아서 불변의 중심을 대신하여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상과 복귀의 영광이 온 피조만물에 나타날 때까지 저희들은 변할 줄 모르고 쉴 줄 모르고 오직 싸울 줄만 아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2.181, 1957.04.14)

 

소명을 받아 가지고 뜻의 길을 가는 사람이 생각해야 될 것은 항상 정성을 들이면서 뜻의 목적을 찾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복귀섭리의 전체적인 문제를 중심하고 나아가는 선생님의 길은 평탄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나 자신도 생각할 수 없는 초조한 자리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길을 가야 하는가? 자기 마음에 있어서나 심정에 있어서 욕심을 가지면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일을 해보겠다, 내가 무엇을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하게 되면, 그것은 불가능할 때가 많습니다. 계획대로 되었더라도 이것은 인간적인 시각에서 벌어진 계획이기 때문에 섭리와 상충될 때가 많습니다.

(40.77,1971.01.24)

 

아버님! 외로운 이 한 자리에 찾아온 당신의 아들 딸들, 이들이 갈 방향을 당신은 알고 있사옵고, 이들이 취하여 나아갈 길도 당신은 알고 있사옵니다. 이들의 마음의 시작도 자기로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옵고, 이들의 권고의 자리에 서는 것도 자기를 위함이 아니고, 남을 위하고 아버지를 위함이었을진대, 끝까지 그 심정이 변하지 말게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6.62, 1959.03.29)

 

순종과 복종

 

세속적 목적과 생활 방식이 하나님의 의지와 행위 기준에서 계속 격리되면 될수록, 순종 자세가 더욱 절실해진다. 아담에게 에덴동산의 과일을 따먹지 말라는 계명이 내려진 이후, 하나님은 자기 중심적, 인간 중심적 욕망과 배치되는 계명을 계속 견지하였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자기를 부정하는 자세가 절실히 요구된다. 이것은 이슬람에서 특히 강조되는 덕목이다. ‘이슬람의 의미는 곧 신에의 복종을 의미한다.

 

복종은 희생을 요구한다. 예수께서 제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듯이 예수님은 생명을 초월하는 상황에서도 복종을 이행하였다. 복종함은 인간이 좋아하고 편리한 사고방식에 따라 하나님의 섭리에 가담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헌제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을 때 아브라함의 경험처럼, 복종은 상상활 수 없는 일을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

 

이처럼 순종과 복종 자체는 어떤 상황일지라도 인간과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의 구현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완성의 길로 선도하기 위해 특별한 계명을 주신다. 부모는 자녀가 사회에서 성장하여 성현이 될 것을 염원하고 자녀에게 규범을 준수하라고 가르친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해와에게 계명을 주신 것은 그들의 궁극적 목적, 곧 사랑의 실현에 있다. 오늘날 우리의 계명 역시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 실현에 있다.

 

1. 하나님의 뜻과 계명에의 순종

 

종교 경전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하여 선을 행한다면 주님의 보상이 있으리라. 그들에게는 두려움도 슬픔도 없느니라

꾸란 2.112(이슬람)

 

이제, 이스라엘아!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겠느냐, 네 마음을 다하고 네 영혼을 다하여서 여호와 너희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여호와의 계명과 규칙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이 내(모세)가 오늘 너희의 유익을 위해 명령하는 것이다.

신명기 10.12-13(유대교)

 

여호와께서 당신의 말씀을 따르는 것보다 번제나 친교제를 바치는 것을 더 기뻐하실 같소? 순종하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그분의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염소의 기름기보다 낫소.

사무엘상 15.22(유대교)

 

수천, 수만으로 드려지는 제의식도 마음을 정하게 하지 못하며,

아무리 오랫동안 지속되는 무아의 황홀경도 또한 그러하다.

온 세상을 다 가진다 해도 타는 욕망과 탐욕을 가시게 하지 못하며,

다함없는 지식도 해탈을 가져오지 않는다.

그러면 창조자에게 어떻게 진실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미망의 벽을 허물 것인가?

다만 그의 명령과 뜻을 따르다.

아디 그란트, 자푸지 1.M.1, p.1(시크교)


여러분이 자기를 누구에게나 종으로 내맡겨서 복종하게 하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복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 되는 것임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죽음에 이르는 죄의 종이 되거나 아니면 의로움에 이르는 순종의 종이 되거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할 일은 여러분이 전에는 죄의 종이었으나, 이제 여러부은 전해 받은 교훈의 본에 마음으로부터 순종함으로써 죄에서 해방을 받아서 의의 종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해력이 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방식으로 말을 합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자기 지체를 더러움과 불법의 종으로 내맡겨서 불법에 빠져 있었지만, 이제는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종으로 바쳐서 거룩함에 이르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이 죄의 종일 때에는 의로움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그때에 무슨 열매를 거두었습니까? 이제 와서 여러분이 그러한 생활을 부끄러워하지마는 그러한 생활의 마지막은 죽음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을 받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죄의 삯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로마서 6.16-23(기독교)

 

말씀 선집

 

일에 있어서 절대 복종하고, 생활에 있어서 절대 복종하고, 심정문제에 들어가서도 절대 복종하여 하늘 법도를 세워 나가야 됩니다.

(45.88, 1971.06.13)

 

내가 기원이 아닙니다. 기원도 나를 초월한 것이어야 하고 목적도 나를 초월한 것이어야 됩니다. 그러지 못하고서 이 세계와 대립되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나의 생명은 부모나 사회나 민족, 국가를 통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한 하나의 기원, 즉 절대자인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야 합니다. 동기를 절대적인 입장에 있는 초월적인 동기와 결부시켜야 합니다. 시대적인 인연이라든가, 환경적인 인연, 혹은 사회적인 여건에 결부시켜서는 안 됩니다. 초월적인 원인에 결부시키고 초월적인 목적에 결부시켜야만 비약하고 초월하고 탈출할 수 있는 것입니다.

(36.64, 1970.11.15)


사회생활, 회사에 가도 회사가 왜 이 모양이야? 내 마음대로 하지미국 자체도 그렇습니다. ‘이거 뭐 수많은 법이 있어 가지고, 이렇게도 못 하고 저렇게도 못 하고 이게 뭐야!’ 하며 전부 다 부정합니다. 대통령이 뭐고, 지사고 뭐고... 그렇게 생각하면 종교나 어떤 사회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모든 길은 누구나 다 가는 겁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가고 있는 겁니다.

 

종교의 길을 다릅니다. 종교의 길은 특별한 길입니다. 종교 생활은 이 세계에서 두 세계의 생활을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두 세계를 사는 사람입니다. 사회의 사람으로서, 어느 누가 사는 사람으로서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는 딴 분야의 한 세계를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92.298, 1977.04.24)

 

아버님! 이와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이 우주의 중심에 계시고, 높고 지존하신 자리에서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의 주체 되시는 아버지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을 스스로 깨닫고 있사오니 이 먼 거리를 메우기 위해서는 순리적 노정이 아니라 역리적 노정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저희들이 알고 있는 탕감노정과 한스러운 복귀의 길이 가로놓여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110.65-66, 1980.11.09)

 

2. 절대순종의 추구: 나의 뜻과 하나님의 뜻의 일치

 

종교 경전

 

, 너희 믿는 자들이여! 하나님에 대한 너희 의무를 상기하고 그분께 다가가는 길을구하라. 그리고 너희에게 성공을 가져다줄 그분의 길에서 분투하라.

꾸란 5.35(이슬람)

 

군자는 자기 위치를 바로 하고 천명을 굳게 지킨다.

역경 50(유교)

 

하나님의 뜻을 네 뜻으로 삼아라.

하나님께서 너의 뜻을 당신의 뜻으로 받아주신다.

하나님의 뜻 앞에서 네 뜻을 다 버려라.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의 뜻을 네 뜻 앞에서 다 비워 주신다.

미슈나, 아보스 2.4(유대교)

 

보상을 바라고 섬기는 종이 되지 마라. 아무 기대 없이 섬기는 종이 되어라. 그리고 하늘 향한 경외가 늘 너와 함께하게 하라.

미슈나, 아보스 1.3(유대교)

 

하나님의 허락으로 복정하는 예언자만을 우리(하나님)가 보냈느니라. 그리고 만일 그들이 그들 스스로 죄를 짓고 너에게 와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한다면...

그러나 아니다, 너의 주님에 의해 그들은 믿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이 너를 그들 사이의 논쟁에 재판관으로 마들 때까지는. 그리고 너의 결정에 대항해서 어떤 저항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 자신이 발견하고 완전한 복종을 할 때까지는.

만일 우리가 그들에게 너희들의 생명을 끊어라 혹은 너희들의 집을 떠나라고 명령했다면 그들 중 소수만이 그것을 행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말씀된 것을 행하였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가장 좋은 것이 되었을 것이고(그들의 신앙이) 더욱 더 견고해졌을 것이니라.

하나님과 예언자에게 복종하는 자,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예언자들과 진실한 자들과 순교자들 그리고 의인들과 함께 할 것이며 매우 좋은 친구가 되리라.

꾸란 4.64-69(이슬람)

 

내가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는 것이다.

요한복음 6.38(기독교)

 

아버지, 만일 아버지의 뜻이면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십시오.

누가복음 22.42(기독교)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으로 판정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이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으로 판정을 받을 것입니다.

로마서 5.19(기독교)

 

예수께서는 인간으로 세상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께 큰 부르짖음과 많은 눈물로써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경외심을 보시고서 그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그의 경외하는 마음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간구를 들어주심을 얻었습니다. 그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복종을 배우셨습니다.

히브리서 5.7-8(기독교)

 

말씀 선집

 

복종에는 주체 앞에 대상이 자기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순종과 다릅니다. 순종하는 자리에는 자기 개념이 있습니다. 순종하는 자리에는 자기라는 개념이 있지만 복종이라는 데는 자기의 개념이 없습니다.

(271.118, 1995.08.23)

 

순종은 누구나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이지만 복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오직 복종을 통해서 탕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8.188, 1967.06.07)

 

완전한 주체는 완전한 대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원리가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주체의 자리에서 세계를 재창조해야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타락한 세상을 넘어서지 않으면 하나님에게로 연결될 수 없습니다. 이제 잘난 사람, 못난 사람 할 것 없이 절대 신앙, 절대 사랑, 절대 복종해야 됩니다. 일방통행입니다. 돌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것으로, 우리 것으로 두고, 하늘나라의 것으로 승리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고하고 가치적 기준을 갖췄어도 전부 다 탕감의 눈물로 씻어 버렸지만 이제는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 이룬 모든 것은 탕감이 아닙니다. 축복의 기대로써 여러분의 후손 앞에 연결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268.302, 1995.04.23)

 

여러분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을 하늘 앞에 굴복시키고 복종시켜, 누구보다도 먼저 하늘을 대신하여 사탄의 화살을 맞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탄과의 싸움에 누구보다도 먼저 나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인간을 대하여서도 그래야 하고,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도 그래야 하며, 물질을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먼저 자신을 희생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204, 1957.11.01)

 

예수님이 무엇을 보여주셨는가 하면, 순종과 복종입니다. 손종은 응할 수 있는 환경에서 명령에 따르는 것이고, 복종은 응할 수 없는 환경에서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불신하는 인간들에게 이런 순종과 복종의 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 역시 사탄의 본질, 사탄의 모든 생활적인 요소를 가로막기 위한 것입니다.

 

사탄세계는 사람을 대하든지 혹은 피조물을 대하든지 무한히 이용하고 착취하려고 하는데 예수님은 그 반대 입장을 취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탄이 하지 못하는 생활을 예수님이 대표적으로 하셨기 때문에, 즉 온유겸손하고 순종하고 복종하며, 희생과 봉사의 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사탄도 그러한 면에서는 굴복해야 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예수님이 가르치신 온유와 겸손, 순종과 복종, 희생과 봉사에 비추어 보고 거의 가리침을 자신의 생활권내에서 실천할 수 없다고 생각되면 아직까지 사탄의 종족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3.188-189, 1957.10.27)

 

하나님은 긴 역사를 통하여 책임분담을 모르는 인간들이 책임 분담했다 할 수 있는 정책을 펴 나왔습니다.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먼저 책임분담을 완성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복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첫째 조건이 무엇이냐? 책임분담을 완성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복종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고 한 말씀에 절대 복종했으면 책임분담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복귀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복종해야 됩니다. 적당히 복종하라는 게 아닙니다. 자기 생명을 부정하더라도 나는 갈 수 있다고 해야 됩니다. 사탄세계의 꼭대기를 딛고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하기를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딸이나 아들이나 아내나 그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139.255-256, 1986.01.31)

 

자기희생

 

자기희생이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는데 자신의 모든 것-, 마음, 영혼-을 헌신하는 것이다. 박해 시기의 자기희생은 문자 그대로 순교자로서 자신의 일생을 포기하는 것이다. 비교적 안정 시기의 자기희생은 산 제물로서 자신의 모든 행동을 하나님 창조목적의 구현에 헌신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헌제하는 자기희생의 전형적 모델이었으며, 제자들에게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동일한 계명을 준수할 것을 교시하였다. 개인 단위에서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십자가-경우에 따라 여러 개의 십자가-를 지고 있다. 종교는 우리에게 희생과 복종의 자세로 자신의 책임을 수행하기를 요구한다. 문선명 선생은 역사상의 모든 성인들이 그렇게 한 것처럼 공적 십자가를 지고 전 생애를 투여하면서 인류구원을 위해 세상의 악과 대치하고 계시다. 이것이 바로 고귀한 삶, 곧 절대 자기희생의 삶일 것이다.

 

1. 자신을 산 제물로 바침

 

종교 경전

 

나는 하나님의 자비를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시오. 이것은 여러분이 드릴 영적 예배입니다.

로마서 12.1(기독교)

  

당신께 산 제물인 짜라투스트라는 생명과 영혼을 모두 바칩니다.

그는 아후라 마즈다에게 자신의 자비로운 생각의 첫 열매를 봉헌하고 그는 자신의 말과 행동 가운데 최선의 것을, 자발적 순종을 신서한 법 앞에 바칩니다.

아베스타, 야스나 33.14(조로아스터교)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대신하여 자기 몸을 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20(기독교)

  

, 인간이여! 나를 사랑하거든 너 자신을 외면하고, 나의 기쁨을 바라거든 너의 기쁨을 생각지 말라. 그래야 네가 내 안에서 죽을 수 있고 내가 영원히 네 안에서 거할 수 있으리라.

바하울라의 숨겨진 말씀, 아라비아어 7(바하이교)

 

진실로 사람 그 자체가 거룩한 제사니라.

찬도그야 우파니샤드 3.16.1(힌두교)

 

나는 신의 손에 쥐어진 공물이고 싶습니다.

나의 신에게 가까이 이끌리고, 나의 신에게 가까이 이끌렸으면 좋겠습니다.

가구라 우타(신도)

 

말씀 선집

 

인간은 하나님 앞에 산 제물의 입장이 되어 하나님 아버지의 내적 심정을 나타낼 수 있는 선의 결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2.78, 1957.03.03)

  

제물이란 소유관념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목적만을 바라보고 움직여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사명을 위해, 민족이면 민족을 대신하여 희생의 자리에 나가는 것이 제물인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제물은 자기의 사적인 목적을 세워 나가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목적을 세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을 퇴치하고 선의 이념을 세우는 데 있어서 하나의 발판이 되고 밑거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14.10, 1964.04.19)

 

선한 사람은 하나님을 절대시하고 하나님과 하나되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서 자기를 절대 희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선이 가는 단계를 보면,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절대 복종해야 되고, 가정은 하나님을 위한 씨족을 위해서 절대복종해야 하며, 씨족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민족을 위해서 절대복종해야 됩니다. , 그 민족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날, 그 나라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세계를 위해서 절대복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절대 중심으로 하여 사탄을 이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거야 하고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으로까지 이겨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53.241, 1972.02.29)

 

살기를 바라고, 중심존재가 되기를 바라고, 좋기를 바라기 전에, 먼저 죽어라 이런 말입니다. 개인을 위주로 한 사상으로 말미암아 역사를 망쳤다면, 그 반대의 길이 아니고서는 살릴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말도 이런 말입니다.

(67.183, 1973.06.10)

 

선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야? 희생과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희생의 본질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했다고 할 때, 그 희생은 희생으로 생각되지 않는 것입니다. 희생하면 희생할수록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그런 특별한 소성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얼마만큼 크냐 하는 것은 희생하는 양이 얼마나 크냐 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이에 따라서 높고 낮은 사랑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희생이 크면 클수록 큰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요, 희생이 적으면 적을수록 높지 못한 사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63-26, 1972.10.01)

 

사랑의 마음으로 볼 때는 자기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를 희생시키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완전한 플러스 앞에 완전한 마이너스는 없는 것입니다. 플러스를 따라가지만 이 끝에는 플러스가 또 딸려오는 것입니다. 완전한 플러스 앞에 완전한 마이너스가 생겨날 때는 상대방 플러스가 아 붙는다는 것입니다. 여기 국가면 국가 앞에 있어서 완전한 마이너스가 될 때 여기에 무엇이 와 붙느냐 하면 플러스가 와 붙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와 붙는다는 것입니다. 한바퀴 돌아와 가지고 붙는다는 것입니다. 이게 그냥 와 붙는 게 아니라 한 바퀴 뻥 돌아 가지고 와서 붙는다는 것입니다. 천지이치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의 애국자의 역사의 전통은 눈물과 피와 땀의 역사를 남기고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효자의 전통도 눈물과 피와 땀을 통해서 이어 옵니다. 열녀도 그렇고, 열남도 그렇고, 충신도 물론 그렇고, 성인의 도리도 그렇습니다. 피와 눈물과 땀을 엮는 거기에서만이 주류 전통의 역사는 연이어 나가 하나의 세계와 하나의 천국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은 틀림없는 진리입니다.

(113.118-119, 1981.05.01)

 

하늘의 복을 바라는 사람은 많사옵고, 아버지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정성들이는 사람은 많사오나, 6천년 역사가 경과한 오늘날은 아버지의 참다운 아들딸, 아버지 앞에 제물이 되고자 하는 충성된 사람을 찾기가 어려운 때인 줄 아옵니다.

(5.8,1958.11.09)

 

2. 십자가를 짊: 희생의 죽음

 

종교 경전

 

바른 법을 받아들임에서 나는 몸, 생명, 소유물을 포기하고 바른 법을 받들 것입니다.

승만경 3(불교)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보다 낫습니다.

베드로전서 3.17(기독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뜻 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살기 위해 인을 해치는 일이 없고 몸을 죽여 인을 이룩한다.”

논어 15.8(유교)

 

물고기도 내가 원하는 것이고, 곰의 발바닥도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다 얻을 수 없다면, 나는 차라리 물고기를 포기하고 웅장을 취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바이고, 의도 내가 원하는 바이다. 그러나 돌을 다 함께 얻을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겠다. 삶은 내가 원하는 바이다. 그러나 삶보다 더욱 심하게 원하는 것, 즉 의가 있기 때문에 구차하게 삶을 얻고자 하지 않는다. 한편 죽음은 내가 싫어하는 바이다. 그러나 죽음보다 더욱 심하게 싫어하는 것, 즉 불의가 있기 때문에 비록 의를 지킴으로써 환난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굳이 피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원하는 바에 있어 삶보다 더 귀한 것이 없다면 그 삶을 얻기 위해 무슨 짓인들 못하겠느냐? 반대로, 사람이 싫어하는 바에 있어 죽음보다 더 한 것이 없다면 그 죽음을 피하기 위해 무슨 짓인들 못하겠느냐? 그러나 사람들은 이렇게 하면 산다는 경우에도 그렇게 하지 않고, 또 이렇게 하면 죽음을 피할 수 있다고 하는 경우에도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는 수가 있다.

그런고로 원하는 바가 삶보다 더 심한 것이 있고, 또 싫어하는 바가 죽음보다 더 심한 것이 있다고 하겠으며, 이러한 마음은 오직 현자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오직 현자는 그 마음을 잘 간직하고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맹자 VI.A.10(유교)

 

말씀 선집

 

하나님이 그걸 원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자기를 희생시킨 것입니다.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서 자기를 희생시키면서 죽음의 길을 자처하는 길로 이 모든 교인들을 내모는 하나의 종교가 나온다면 그 종교로 말미암아 사탄세계를 방어하고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최후의 기반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서 죽음 길을 자처해 십자가를 진 것처럼 자기를 희생시켜서 가는 길을 자처해 가는 세계적인 하나의 교단이 나오게 되면, 그 교단을 통해서 하나님과 예수가 제일 소망을 갖고 바라볼 것입니다.

(124.299-300, 1983.03.01)

 

이 길은 불평하는 자 못 갈 길이요, 스스로 변명하는 자 못 갈 길이요, 스스로 자기를 세우는 자 후퇴할 길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 길을 예수님이 피 흘리며 가신 십자가의 길, 연장된 골고다의 길인 것을 알았기에 변명할 몸이로되 변명할 줄 모르고, 자기 자신을 세워 자랑하고 싶으나 자랑할 줄 모르고, 분함을 알면서도 밟히며 가야 할 길임을 알았사옵니다.

(6.125, 1959.04.12)

 

종교생활은 뭐냐?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사적인 기반의 사탄 마귀와 더불어 지옥으로 통하는 길을 갈 것이 아니라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러한 공적인 길에서 천국으로 통하는 길을 가자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과는 다른 생활이념을 지니고 가는 것이 종교인들의 생활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공적인 일을 위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적인 일을 위해서는 자기의 나라를 희생시킬 수 있습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가정도 희생시킬 수 있는 것이요, 자기의 세계까지 희생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권한을 지닌 분이지만 공적 인간을 위해서 역사를 넘고 넘으면서 역사시대의 수많은 슬픔과 고통을 홀로 겪으면서라도 누구를 탓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고 그것을 감수해 나오는 것입니다. 공적인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러한 입장에 서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잘했다고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공적인 무엇을 했다고 자랑하는 분이 아닙니다. 묵묵히 끝까지, 공적인 세계가 완성되기까지 하나님은 공적인 일에 전심하는 분입니다.

(101.146147, 1978.10.29)

 

지금까지는 내 것, 내 것. 돈도 내 것했습니다. 하지만 돈을 벌어서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 전부다... 그 대신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일수록 복되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지금 제일 그리운 것이 감옥에서 고문 받아 가지고 피를 토하던 자리입니다.


이놈의 몸뚱이가 사탄의 바위에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몸뚱이가 하나님과 공명해야 될 텐데 바위에 붙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한꺼번에 끊을 수 있는 힘을 통일교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희생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행해라, 고행! ? 어째서? 하나님의 공명체가 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102.35-36, 1978.11.19)

 

지금까지의 종교는 뭐냐 하면, 자기를 희생하고 봉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희생의 목적이 뭐냐하면, 구원받기 위한 것인데, 그게 틀렸다는 것입니다. 내가 희생하는 것은 하나님을 해방하고 인류를 해방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걸 몰랐다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류를 위해서 일한다는 말입니다. 목적이 다릅니다. 악한 종교로 귀결되느냐, 선한 종교로 귀결되느냐 하는 출발점이 바로 이 점에 있다는 것을 오늘날 종교인들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102.234, 1979.01.01)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땀은 땅을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라고 했는데 어찌하여 이런 표어가 필요합니까? 이는 눈물을 흘리되 부모를 대신하여 흘리고, 땀을 흘리되 부모를 대신하여 흘리고, 피를 흘리되 부모를 대신하여 흘리자는 것입니다. , 이 말은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죽음의 길을 도맡아서, 하늘을 위하여, 땅을 위하여, 인류를 위하여, 내가 먼저 죽음의 제단에 오르자는 것입니다.

(14.244, 1965.01.01)

 

나는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것을 모르고, 밤을 아침같이 새벽같이 느끼면서 밥 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이 놀음 해온 사람입니다. 편안하게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안 죄, 누구보다도 비통한 하나님인 걸 알았기 때문에 내 일신이 갈갈이 찢기는 한이 있고, 가루가 되어 날아가는 일이 있더라도 이 모든 날아가는 세포는 하나님의 한 점의 세포라고 울부짖을 수 있다면 사나이로 태어나서 보람 있는 죽음이라고 하면서 죽음 길을 찾아 뒤넘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137.179, 1986.01.01)

 

악과 전쟁

 

죄악의 투쟁에서 일말의 타협이 없는 신앙이 살아있는 역동적 신앙이다. 최고선의 실현은 하나님의 방식을 고수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을 이슬람에서 지하드(성전)’ 라고 부른다. 그중 하나의 차원은 악령과 이기적 욕망을 다스리는 내적 투쟁이다. 기독교에서는 이를 영적 투쟁이라고 부르고, 이슬람에서는 위대한 성전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사회가 부정부패로 뒤덮여 있고 평화가 공격자에게 위협받는다면, 그 세계에서는 정의 편에 설 투사가 필요하다. 실제로 많은 종교에서는 약자를 보호하고 공격자들의 악행을 저지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을 사랑의 외침으로 여기는 반면, 사회적 부정에 수동적으로 대처하는 곳을 죄로 다룬다.

 

자기 방어나 공격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특히 총(무기)이 필요할 경우도 있다. 그러나 최고 선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할 때 무기를 사용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다. 영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전사들의 임무는 세계 정의를 향한 것이기에 그 투쟁은 근본적으로 영적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지상의 적들이 갖는 적대감 배후에 악령의 권려과 주권이 작용하고 있다. 적진의 육신을 공격하여 승리하는 것이 반드시 그들의 내면적 원한까지 소멸시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더 악화할 수 있다. 특히, 승리자들이 무자비하고 보복심을 가지고 대처했다면 더욱 그렇다. 이와 달리, 상대방의 내면적 전쟁에서 승리할 경우 악령은 자연굴복하고 퇴각할 것이다. 비록 적이 깊은 원한에 차 있어서 반드시 무력을 통해서만이 굴복시킬지라도, 진정한 승리는 적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교육할 때까지 확보되었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영적 전사들이 가야할 길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의 실천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우리들 자신을 희생하여 - 비록 그들이 거부하거나 비웃거나 심지어 핍박할지라도 - 원수의 복리를 위해 수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원수를 향한 사랑은 오직 희생을 통해서만 명백히 드러난다. 마치 예수님이 그렇게 한 것처럼, 원수의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다면 죽음도 문제되지 않아야 한다(13원수 사랑참고). 어느 측면에서 영적 전쟁은 어떤 물리적 전쟁만큼이나 위험하기 때문에 영적 투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각별한 용기와 강한 의지가 요구된다. 문선명 선생의 전투의식이란 대부분 영적 전사로서 영적 투쟁의 길을 의미한다.

 

1. 정의의 용사

 

종교 경전

 

그는 의지할 데 없는 이들을 수호하여 싸우는 참된 영웅이다.

아디 그란트, 샬로크, 카비르 p.1412(시크교)

 

전사에게는 본연의 의무인 악을 쳐부수는 싸움보다 더한 선행은 없다. 이제 그대는 기꺼이 나아가야 하느니라. 아르주나여! 다행이도다. 이와 같은 전쟁은 그대에게서 천계로 가는 열린 문이나 다름없나니, 그러나 만일 그대가 악을 대항하는 이 의무를 그만둔다면 이것은 그대의 의무와 명예를 저버리는 것이며 자신에게 악을 초래할 것이로다.

 

이 명예로운 싸움에서 죽임을 당한다면 천계를 얻을 것이요, 살아서 승리한다면 또한 땅 위의 영광을 누리리라. 그러므로 일어나라 아르주나여! 주저하지 말고 싸우라! 즐거움과 고통, 이득과 손실, 승리와 패배를 하나로 보고 이 숭고한 싸움터로 박차나가라. 그리하면 그대는 마땅히 죄악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리라.

바가바드기타 2.31-38(힌두교)

 

, 사도여! 신자들을 싸우도록 권고하라. 너희 가운데 스무 명이 결사 항쟁한다면 이백 명을 물리칠 것이고 백 명이 결전을 치른다면 불신자 천 명을 물리치리니 그들은 우매한 자들이로다.

꾸란 8.65(이슬람)

 

그리스도 예수의 훌륭한 군인답게 고난을 함께 받으시오. 군에 복무하는 사람이 자기 살림에 얽매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군인으로 부른 자를 기쁘게 해야 하기 때무입니다.

디모데후서 2.3-4(기독교)

 

, 지혜의 주여! 선한 마음으로

당신의 의롭다고 언명하신 그 뜻을 이루고자 힘을 다하여 분투하는 사람들,

그들은 만인을 위한 미래의 구세자입니다.

광포한 자들을 무찌르도록

택함 받은 자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베스타,야스나 48.12(조로아스터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용기 백배, 있는 힘을 다 내어라. 그래서 내 종 모세가 너에게 지시한 모든 법을 한 눈 팔지 말고 성심껏 지켜라. 그리하면 네가 하는 모든 일이 뜻대로 되리라. 이 책에 있는 법이 네 입에서 떠나지 않게 밤낮으로 되새기며 거기에 적혀 있는 것을 어김없이 성심껏 실천하여야 한다. 그렇게만 하면 네 앞길이 열려 모든 일이 뜻대로 되리라. 너는 내 명령을 듣지 않았느냐? 힘을 내고 용기를 가져라. 무서워 떨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여호수아 1.7-9(기독교)

 

진정한 승리를 갈망하는 그들은 무력으로 정복하려 하기보다는 진리, 사랑, 정의, 그리고 끊임없는 수련으로 정복하려 합니다. 더욱이 의와 불의를 분간할 줄 알며, 탐욕이 가져오는 결과를 잘 이해하며, 의로운 전투에 전념할 뿐 결코 자만하지 않습니다. 정의가 있는 곳에 승리가 있음을 아는 까닭입니다.

, 왕이시여! 지금 이 전투에서의 승리는 우리의 것임을 의심하지 마소서. 진실로 크리슈나가 있는 곳에 승리가 있습니다.

마하바라타, 비슈마 파르바 21(힌두교)

 

, 나의 아버지, 위대한 선조여!

나는 당신에게 감사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깊은 지혜로써

내가 영광스러운 당신의 선물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를

당신은 알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 나의 아버지!

내가 당신의 위대함을 생각할 때에,

나는 경외함으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 위대한 선조여!

땅과 하늘 모든 것의 지배자여!

나는 당신의 전사입니다.

당신의 뜻대로 행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키쿠유족의 기도(아프리카 전통 종교)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이쪽저쪽 산 위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불레셋 진영에서 골리앗이라고 하는 장수 하나가 싸움을 걸어 왔다. 그는 갓 출신으로서 장신이었다.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비늘갑옷을 입었는데, 그 갑옷의 무게는 놋 오천 세겔이나 나갔으며, 정강이에는 놋으로 만든 정강이받이를 찼고 어깨에는 놋으로 만든 창을 메고 있었다. 그 창대는 베틀 용두머리만큼 굵었고 창날은 쇠로 되어 있었는데, 그 무게는 육백 세겔이 넘었다. 방패당번을 앞에 세우고 나서서 그는 이스라엘 진영을 향하여 고함을 질렀다. “전열을 갖추어 가지고 나오면 어쩌겠다는 말이냐? 너희 사울의 졸개들아, 이 블레셋 장수와 싸울 자를 골라 이리로 내려 보내라. 만약 그자가 나한테 이겨서 나를 쳐 죽이면 우리가 너희 종이 될 터이나, 내가 이겨서 그자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겨야 한다.” 그러고 나서 그 블레셋 장수는 다시 소리쳤다. “내가 오늘 이렇게 너희 이스라엘 진영에 욕을 퍼붓는데도 나와 결판을 낼 사람을 내보내지 못하겠느냐?” 사울과 이스라엘 전군은 이 블레셋 장수의 말을 듣고 너무나 겁에 질려 떨고만 있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저자 때문에 상심하지 마십시오. 소인이 나가 저 블레셋 놈과 싸우겠습니다.” 그란 사울은 다윗을 말리며 말했다. “네가 나가 저 블레셋 놈과 싸우다니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싸움으로 몸을 단련해 온 자인데, 너는 아직 나이 어린 소년이 아니냐?” 그러나 다윗은 굽히지 않았다. “소인은 아버지의 양을 쳐 왔습니다. 사자나 곰이 나타나 양 새끼를 한 마리라도 물어 가면 소인은 한사코 뒤쫓아 가서 그놈을 쳐 그 아가리에서 양 새끼를 빼내곤 했습니다. 그놈이 돌앙서서 덤벼들면 턱수염을 휘어잡고 때려 죽였습니다. 소인은 이렇게 사자도 죽이고 곰도 죽였습니다. 저 블레셋의 오랑캐 놈도 그렇게 해치우겠습니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서 거느리시는 이 군대에게 욕지거리를 퍼붓는 자를 어찌 그냥 내버려 두겠습니까?”

 

블레셋 장수는 다윗을 건너다보고 볼이 붉은 잘 생긴 어린아이라는 것을 알고는 우습게 여겨, “막대기는 왜 가지고 나왔느냐? 내가 개란 말이냐?” 하고는 자기 신의 이름을 부르며 다윗을 저주하였다. 그리고 블레셋 장수는 다윗에게 을러메었다. “어서 나오너라. 네 살점을 하늘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 주마.”

 

그러나 다윗은 블레셋 장수에게 이렇게 응수하였다. “네가 칼을 차고 창과 표창을 잡고 나왔다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믿고 나왔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아귀에 넣어 주셨다. 나야말로 네놈을 쳐서 목을 떨어뜨리고 네 시체와 블레셋 전군의 시체를 하늘이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 주리라.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모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천하에 알리리라. 여기 모인 모든 사람은 이제 여호와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써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리라. 여호와께서 몸소 싸우시어 네놈들을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블레셋 장수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자, 다윗은 재빨리 대열에서 벗어나 뛰쳐나가다가 주머니에서 돌 하나를 꺼내어 팔매질을 하여 그 블레셋 장수의 이마를 맞혔다. 돌이 이마에 박히자 그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다윗은 달려가서 그 블레셋 장수를 밟고 서서 거의 칼집에서 칼을 빼어 목을 잘랐다.

사무엘상 17.4-51(기독교)

 

말씀 선집

 

아침이나 저녁이나 강해야 됩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어떠한 장벽도 치면 그것이 깨지고 그것이 깨지지 않으면 주먹이 나가고 내 몸뚱이가 나간다는 신념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이 나를 통하여 미래의 사명을 완결하여야 하는 나의 현재 입장인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과거를 부활시키고, 현재를 부활시키고, 미래를 부활시키는 그런 왕자들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73.106-107, 1974.08.04)

 

나는 하나님의 참용사가 될 것이다. 그 어떤 하나님을 위한 전장이 비참할지라도 나는 그 전선에 참여할 것이다하는 것이 선생님의 정신입니다. 아무리 세계의 핍박이 몰려와도 고독단신의 핍박의 자리입니다. 고통의 자리입니다. 나는 하나님에게 불평 한번 안 했습니다. 이것이 레버런 문의 자랑입니다.

(193.74, 1989.08.20)

  

고문에 쓰러져 가는 자리에서도 하나님 앞에 기도를 안 했습니다. 나를 구해 달라고, 내가 몰려다녔지만 하나님 앞에 가 가지고 내 갈 길을 지켜달라고, 날 구해 달라고 기도 안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사나이로서의 내 여력을 갖고 있고 내 기백을 갖고 있고 싸울 수 있는 자체력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 힘이 부족해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거들랑 나를 구해 주겠지, 그전에는 내 힘으로... 내가 가기 전에 하나님은 미리 앞에 준비해 놓고 기다린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138.360, 1986.01.24)

 

하나님의 승리를 내가 안겨 드려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전쟁에서는 내가 먼저 나가겠다. 내가 먼저 나간다, 골리앗 앞에 다윗과 같이라고 그렇게 하겠습니까?

(118.129, 1982.05.09)

 

12지파를 대신한 열두 사람을 세워서 가나안 땅을 정탐시켰을 때 그들이 하는 말을 자기들 힘으로는 가나안 7족을 당하지 못한다는 보고였습니다. 그러나 열두 사람 중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반기를 들고 있을 때, 당당하게 나타나서 우리를 지금까지 인도해 오신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가로막고 있던 홍해를 갈라 쳐서 탄탄대로의 길을 만들어 건너게 해주신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가는 길만이 우리가 살 길입니다라고 외쳤던 여호수아와 갈렙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보시고 그들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19.240, 1968.01.15)

 

이것은 골리앗과 다윗의 비유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기도 없고 훈련도 안 되어 있습니다. 꿰매진 한 조각의 옷을 입은 철부지한 목동 다윗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쥐어진 물매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미국 땅에서 안 되면 한국 땅에서 될 것이고 한국 땅에서 안 되면 중동에서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모스크바 대회 같은 데서 될 것입니다. 그날을 위해서 우리는 단결하고, 훈련하고, 집결해야 되겠습니다. 내 이마가 깨지더라도, 내 눈이 튀어나와도, 내 생명의 피를 흘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 일을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16개국 유엔군이 한국 도처에서 피를 흘렸는데 우리 통일교회 사람들은 도처에서 공산주의와 싸우면서 세계와 하나님을 위해 그보다 많은 피를 흘리는 한이 있더라도 가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일을 단행하는 나라와 국민이 없으면 하나님의 소망의 기준이 이 지구상에서 날아가 버린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 천지의 공동 운명을 걸고 전진해야 합니다.

(88.323-324, 1976.10.03)

 

나의 용맹스럽고 기운찬 이 맹세의 소리와 더불어, 혹은 젊은 가슴에서 뛰는 고동 소리와 내가 부르짖는 함성 소리와 적진을 항하여 행군하는 대열과 더불어, 이 행차에 달렸구나! 이렇게 되면 그것을 바라던 영계의 수천억 영인들도 박수를 치며 환영할 것입니다. 지옥에 가 있는 영인들까지도 제발 승리 하소서. 제발 승리 하소서, 나는 고개를 들고 가지만 엎드려서라도 할 것이요이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천지가 동원될 수 있는 숨 가쁜 찰나가, 이 한 나라를 중심삼고 몇 년 안에 그런 일이 결정되어서 그 결전장에 나아가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사나이답게, 의의 있게 싸워 가지고 정의에 입각한 하늘의 공신으로서 자기의 생명을 바친다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새로운 역사가 시작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한 때를 표준해서 나왔기 때문에, 이 하나를 다짐시키기 위한 하나의 소원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집에서 배척받고, 나라로부터 배척받고, 수많은 교단으로부터 배척받아 나온 것이 아니냐? 하늘이 바라고 역사가 바라고 인류가 바라는 최후의 결정적인 그 한날을 위해서 장엄하고 멋지게 승리하라고 수많은 사람들을 억울한 운명 길에서 희생시키며 가게 했던 것이 아니냐? 그것이 우리의 한칼로 말미암아 내가 흘리는 땀과 내가 하는 행동으로 말미암아 연결될 수 있다니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사실이 아니냐? 그것을 내 눈으로 볼 수 있고 내 감촉으로 느낄 수 있고 그것을 활동 무대로 삼아 가지고 싸울 수 있다면 그 이상 보람 있는 인생이 어디 있을 것이냐. 그것을 느껴야 됩니다.

(57.352-353, 1972.06.05)

 

2. 영적 투쟁

 

종교 경전

 

비록 우리가 세상에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속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싸우는 데 쓰는 무기는 육적인 무기가 아니라 견고한 성이라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강한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허황된 이론과 하나님의 지식을 대적하여 일어나는 모든 교만을 쳐부숩니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킵니다.

고린도후서 10.3-5(기독교)

  

겸손은 나의 방패이다. 스스로 모든 이의 발 아래 먼지가 되는 것이 나의 검이니 감히 어느 악한 자가 맞설 수 있으랴.

아디 그란트, 소라트, M.5, p.628(시크교)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그분의 힘찬 능력을 받아 굳세게 되십시오.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장비로 완전무장을 하십시오. 우리의 싸움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와 권세자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악한 날에 능히 대항할 수 있고 모든 일을 한 뒤에 서 있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장비로 완전무장을 하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은 진리로 허리를 동이고 정의의 가슴막이를 하고 버티어 서십시오. 발에다가는 평화의 복음을 전할 채비를 하십시오.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손에 드십시오. 여러분은 그것으로 악한 자가 쏘는 모든 불화살을 막아 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칼,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십시오.

에베소서 6.10-17(기독교)

 

성자들의 군대는 무적이다. 그들이 위대한 전사이니 겸손은 그들의 갑옷이로다. 주를 찬양함이 그들의 창칼이며 구루의 말씀은 그들의 방패라.

그들이 거룩한 길을 밝히 아는 말과 전차와 코끼리를 타고 두려움 없이 적진을 짓쳐 나아가도다. 주를 찬양하며 싸움터로 돌진하도다. 저 다섯 우두머리 도적들, 저 사악한 무리들을 정복함에 또한 온 세상이 그들의 발 아래 엎드렸도다.

아디 그란트, 샬로크 셰스크리티, M.5, p.1356(시크교)

 

말씀 선집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 편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52.87, 1971.12.22)

 

예수님은 개인적인 원수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정적인 원수가 있고, 종족적인 원수가 있고, 민족적인 원수가 있고, 국가적인 원수가 있고, 세계적인 원수가 사방에서 얽어매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말은 나를 따르고 내가 가는 길을 가려는 사람에게는 수많은 원수가 기다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가정적으로 가면 가정적인 원수가 기다리고 있고, 종족적으로 가면 종족의 원수가 기다리고 있어서 치열한 싸움이 예상되지만, 그 때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정신을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7.19, 1980.02.21)

 

이제 우리가 싸워야 할 원수는 땅 위의 어느 한 사람이 아니고, 6천년이라는 기나긴 역사과정을 거쳐 오면서 하나님에 대해 반기를 들었고 하나님께 참소했던, 공중 권세를 잡은 사탄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3.180, 1957.10.27)

 

우리는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탄알을 쏘는데, 저 악마의 권에서는 사랑과 반대인 시기와 질투의 화살을 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총탄을 쏜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총탄을 악한 사람이 반대한 이상 쏴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레버런 문의 주장입니다. 그들의 시기와 질투의 총찬, 모략의 총탄은 오더라도 우리를 뚫지 못하고 비켜납니다. 그렇지만 우리 총탄에 그들이 맞는 날에는 녹아져 가지고 본래 사람은 없어지고 딴 사람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레버런 문은 싸우면서 발전하고, 욕을 먹으면서 발전해 나오고, 쫓기면서 발전해 나왔습니다. 이번 법정투쟁도 미국 정부 대 레버런 문의 투쟁입니다. 미국 정부는 시기와 교만과 모략을 중심삼고 나왔지만 나는 사랑으로 응수하겠다는 것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처럼 말입니다.

(119.111-112, 1982.07.04)

 

하나님께서는 선한 한 사람을 세워서 악한 열 사람을 굴복시키는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악까지도 슬퍼할 수밖에 없는 내용을 안고 나가게 함으로써 악이 스스로 굴복하고, 절대 복종할 수 있게 하여 진정한 승리자로 만들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땅에서 승패의 결정을 해 가지고 악한 나라를 선한 나라 앞에 굴복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그런 하나님의 아들딸을 찾아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41.115, 1971.02.14)

 

이상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 편의 사람이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보다 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탄은 사람을 가운데 놓고 빼앗기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 편의 사람이라 하더라도 사탄 편의 사람이 쳐서 꺾어질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 편의 사람이 못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핍박을 하고 아무리 박해를 하고 죽음의 길에 내몰리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야 사탄도 당신은 하나님편의 사람이라고 증거 할 수 있으며, 하나님도 그래야만 인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싸워서 사탄을 이길 뿐만 아니라 천사까지 이겨야 되고, 인간 그 누구도 이길 수 있는 하나의 승리적인 아들딸, 남자든가 여자가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54.36-37, 1972.03.10)

 

하늘이 그와 같은 자리에 둬 두심은 한때에 전체를 구원하기 위한, 섭리의 판도를 넓히기 위한 것이요, 청산 지을 수 있는 한 시대의 분별기준을 세우기 위해서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그들을 위해서 그들까지도 살 길을 열어 주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면서 십자가에 못을 박는 로마 병정을 위하여 복을 빌어 주던 것과 마찬가지로, 저희들은 실체적인 현장에서 실체적으로 그들을 구해 주는 구주의 사명을 대역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기를 새로이 맹세합니다.

(75.244, 1975.01.05)

 

3. 전쟁이 정당화되는 경우

 

종교 경전

 

만약 하나님께서 다른 무리를 통해 그 무리를 축출하지 않았다면 이 세상은 온통 타락하였으리라.

꾸란 2.251(이슬람)

 

하나님의 길에서 내세를 위해 현세의 생명을 버리고 싸우라. 하나님의 길을 위해 싸우는 자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승리를 하든 간에 우리가 그에게 커다란 상을 줄 것이니라.

우리의 주님이시여! 압제자로 가득 찬 이 마을로부터 구출해 주시옵고, 우리에게 당신의 보호자를 만들어 주시옵고, 우리에게 당신의 구원자를 만들어 주시옵소서! 라고 말하는 약한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들 그리고 하나님의 길을 위해 너희는 왜 싸우지 않는가.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길을 위해 싸우고 믿지 않는 자들은 우상을 위해 싸우노라. 그러므로 사탄의 친구들에게 대항하여 싸우라. 사탄의 책략은 약한 것이니라.

꾸란 4.74-76(이슬람)

 

이스라엘은 들어라. 오늘 너희는 요르단 강을 건너가 너보다 강대한 민족들을 쫓아내고 하늘에 닿을 듯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큰 성읍들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너희는 오늘 명심하여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불길이 되시어 너희 앞장을 서서 건너가실 것이다. 그가 몸소 그들을 멸하시어 너희 앞에 무릎 꿇게 하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약속해 주신 대로 너희는 그들을 단번에 쫓아내고 멸망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신 다음에, 행여나 너희가 착해서 그분이 너희를 끌어들여 이 땅을 차지하게 하셨거니 하고 속으로 엉뚱한 생각을 품지 않도록 하여라. 여호와께서 그 백성드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시는 것은 그들이 나쁘기 때문이다.

신명기 9.1-4(기독교)

 

사도가 한 지도자를 원정대의 대장으로 임명했을 때 그가 명하였다. “알라의 이름으로, 알라의 방식으로 싸우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과 싸우라. 배반하는 방법을 사용하지 말지며, 약탈하거나 불구자로 만들지 말지어다. 아이나 은둔자를 살해하지 말지며, 대추야자나무에 불을 지르거나 그들을 물에 빠뜨리지 말라. 열매 나무를 자르지 말며 곡식을 태우지 말라. 어느 순간 그것들을 필요로 할지 모르는 일이니, 먹어야 하는 동물을 제외하고 고기를 식용할 수 있는 동물을 죽이지 말라. 무슬림의 적을 만나거든 세 가지 중 하나를 청하라. 만약 그들이 너희의 요구를 따른다면 그들을 받아들이고 어떤 행동도 삼가라. 그들을 이슬람으로 불러라... 이슬람의 땅으로 이주하기를 청하라... 혹은 그들의 재산에서 지즈야를 지불하고 복종하도록 청하라.”

하디스 (이슬람)

 

변혁(): 불이 서로 멸하여 두 여자가 한 곳에 같이 살되 그 뜻을 서로 얻지 못함이 혁()이다. (개혁의) 하루가 지나서야 개혁한 것을 믿을 수 있는 것이다. 문명함으로 기뻐하게 하여 크게 형통함으로 바르게 하니, 개혁하여 마땅하기에 뉘우침이 이에 없어진 것이다. 천지가 변혁하여 사시가 이루어지며 탕과 무가 혁명을 하여 하늘에 순종하고 사름들에게 응하였으니 변혁(혁명)의 때가 크도다.

역경 49(유교)

 

탕왕이 [걸왕과 싸움을 앞에 두고 전국에게] 훈시하였다. 여러 군사들에게 고하노니 모드들 내 말을 잘 들어라. 지금 내가 군사를 일으켰지만 나 같은 작은 사람이 감히 난을 일으키려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라의 걸왕이 죄를 많이 지어 하늘이 치도록 명하신 것이다.

지금 그대들 가운데 우리 탕왕도 우리 백성을 사랑하시지 않는구나. 우리에게 농사일을 집어치우고 하나라를 치게 하니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나도 그대들의 말을 잘 이해한다. 그러나 하나라 걸왕은 죄를 짓고 있는데, 내가 가만히 보고만 있다면 하늘이 나까지 벌하실 것이다. 나는 하늘을 두려워한다. 그러니 걸왕을 쳐서 나라를 바로잡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제 그대들은 하나라의 죄란 어떤 것인가?’ 하고 생각하는 이가 있을 줄 안다. 내가 이를 밝히겠다. 하나라, 임금은 쓸데없는 일로 백성의 힘을 다하게 하였고 하나라 고을들을 해치기만 하였다. 그리하여 백성은 맡은 일을 전혀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왕에게 협력하려 들지 않고 있다. 심지어 임금은 언제나 멸망할 건가? 차라리 우리는 그대와 함께 망해 버리면 좋겠다고 저주하기에 이르렀다. 하나라 왕의 덕이 이러하니, 지금 나는 그를 쳐부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대들은 나를 잘 도와 벌을 내리는 하늘의 뜻을 이루도록 하라.

서경 4.1(유교)

 

말씀 선집

 

남다른 선의 인격을 추구하는 개인을 환영하는 사람은 이 땅에 많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선한 개인이 선의 가정을 그려 나가는 데 있어서도 환경이 환영해 주지 않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될 때, 선의 가정이 선의 종족을 그리면서 가는 길 앞에 있어서는 더더욱 어려운 악의 여건이 그 환경에 에워싸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선의 종족이 선의 국가를 이루어 간다 할 때는 더욱 엄청난 악의 세력이 반기를 들고 그 종족이 가는 길을 막으려 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또 선의 나라가 있어서 선의 세계를 추구해 나간다 할 때는 이 세계가 선한 세계가 못 되기 때문에 악한 나라들이 그 선의 나라가 가는 길을 협조하는 것이 아니라 백방으로 반대하고 나설 것이 틀림없습니다.

 

어떤 선한 종족이 가려고 하는 길 앞에는 수많은 악한 종족들이 반기를 들고 나와 싸웠고, 필연적으로 선한 국가를 요구하는 인류 앞에 선의 나라가 있다 할 때는 그 나라는 모든 나라로부터 환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반대를 받았던 것입니다. 선의 나라와 악의 나라가 대결하여 선이 남아지느냐, 악이 남아지느냐 하는 판가리 싸움을 거치지 않고는 선의 나라로 남아질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싸움의 역사과정을 거쳐 왔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36.52-53, 1970.11.15)

 

투쟁이나 전쟁을 단순히 어떠한 이해관계나 이념의 상충에서 빚어지는 결과라고 보는 것은 하나님의 근본섭리를 모르는 데서 일어나는 잘못이다. 인류역사는 인간시조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탄을 중심한 악주권으로 출발하여 죄악의 역사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남아 있는 한, 그 역사의 목적도 어디까지나 사탄을 분립하여 하나님의 선주권을 복귀하는 데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악주권의 세계에 전쟁도 분열도 없다면 그 세계는 그대로 영속할 것이요, 따라서 선주권은 영원히 복귀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타락인간에게 성현들을 보내시어 선을 세우고 종교를 일으키심으로써 보다 선한 주권으로 하여금 보다 악한 주권을 멸하게 하시면서, 점차적으로 하늘편 주권을 복귀하시는 섭리를 해 오신 것이다. 따라서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는 투쟁과 전쟁이라는 과정을 지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류역사는 탕감복귀의 섭리노정을 밟아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국한된 시간권내에서만 보면 악이 승세한 때도 없지 않았으나, 결국 이것은 패망하여 보다 선한 판도 내에 흡수되곤 하였다. 그러므로 전쟁으로 인한 국가의 흥망성쇠는, 선주권을 복귀하기 위한 섭리노정에서 일어나는 불가피한 결과인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 가나안 7족을 멸하셨던 것이고, 사울은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아말렉족과 그에 속한 짐승들을 전멸시키지 않았다가 엄벌을 받았던 것이다(삼상 15:18-23). 하나님은 이와 같이 직접 이민족들을 멸할 것을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선민이었던 북조 이스라엘도 악으로 돌아갈 때 아낌없이 그들을 앗시리아에 내주시어 멸망케 하셨던 것이다(왕하 17:23). 하나님이 이와 같이 하셨던 것은 오직 악주권을 멸하시고 선주권을 복귀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같은 하늘편 안에서의 개인적인 투쟁은 선주권 자체를 파괴하는 결과가 되므로 악이 되지만, 선주권이 악주권을 멸하는 것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므로 이것은 선이 된다.

(원리강론, 인류역사 종말론 4.2)

 

여러분들! 다윗 왕을 존경합니까, 안 합니까? 블레셋의 골리앗을 때려죽인 것이 좋은 것입니까? 3천 년의 역사를 지닌 이스라엘 나라의 기반이 왕창 무너져 없어질 것을 이 다윗이 가서 남기게 했으니 하난미 편에서 볼 때, ‘, 잘 했다!’ 하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103.181-182, 1979.02.25)

 

핍박

  

핍박의 형태로 인간의 신념을 시험할 때 종종 적지 않은 희생이 동반된다. 학대, 오해, 비난, 조소, 추방, 모욕 등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란 핍박은 의인에게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우리가 핍박으로 망가진다면 핍박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러나 불평이나 원한이 없이 핍박을 신념으로 이겨내고 소화한 사람들은 하늘의 높은 보좌에 자리할 수 있다.

 

절박한 핍박은 전적으로 자기희생과 자기부정의 경지에서 자신의 노력으로 도달할 수 없는 한계를 뛰어넘게 한다. 희생 후에 축복이 찾아온다는 맥락에서 본다면, 핍박의 수혜자들이 나중에 핍박의 가해자들에 대한 부정적 증오심이나 복수심을 버리고, 오히려 그들에게 동정심을 베풀 수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이타심은 성성(聖性)을 잉태하여 신성(神性)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핍박의 시대의 종교는 더욱 번성한다는 역설을 역사적 사실로 입증된다.

 

문선명 선생은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일종의 계약이 존재한다고 하신다. 사탄이 무고하게 의로운 사람을 핍박할 대 하나님은 그 보상을 요구할 권리를 확보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역사 속에서 선은 항상 먼저 맞았지만 결국 되찾아오는 섭리가 경륜된 것이다. 하나님은 이 원칙을 역사에 논리적 형식으로 적용하신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구현하는 방법으로서 신앙인은 핍박까지도 환영할 줄 알고 때로는 고난 길을 스스로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종교 경전

 

나를 위해 모욕당하고 박해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받으면 너희가복이 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너희보다 먼저 온 예언자들도 이와 같이 박해를 받았다.

마태복음 5.11-12(기독교)

 

싸움터의 코끼리가 쏟아지는 화살들을 참아 견디듯 나도 비난을 참아 견뎌 내리라. 기실 세상에는 사악한 무리들도 많나니라.

법구경 320(불교)

 

분명코 너희 재산과 너희 자신이 시험받게 될 것이고 너희는 그 이전에 경전을 받은 자나 우상숭배자들로부터 험담을 듣게 되리라. 그러나 인내하고 악을 멀리 한다면 그것은 실로 확고부동한 결단이리라.

꾸란 3.186(이슬람)

 

진나라에서 [공자 일행이] 양식이 떨어지고 제자들이 병들어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자로가 화를 내고 공자에게 물었다. “군자도 이렇듯 쪼들려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원래 쪼들리게 마련이다. 소인배는 쪼들리면 넘나드는 짓을 하느니라.”

논어 15.1(유교)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 가운데서도 자랑을 합니다. 우리가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품격을 낳고, 품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3-5(기독교)

 

사람들은 우리는 믿나이다라고 말하면 남겨지고 시험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우리는 그들 이전의 사람들을 시험하였노라. 하나님은 진실한 자들을 알고 계시며 거짓말을 하는 자도 알고 계시노라.

꾸란 29.2-3(이슬람)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세상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더라면 세상이 너희를 자기 사람이라고 하여 사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고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가려 뽑았으므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했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또 그들이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의 말도 지킬 것이다.

요한복음 15.18-20(기독교)

  

고난 없이는 이스라엘 민족이 그 의를 찾을 수 없다.

탈무드, 메나호트 53b(유대교)

 

이 고결한 길에서 진리를 구하는 자의 합당한 마음가짐은 이러하다. 부모형제들이 눈을 흘기며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아내와 아이들이 나를 등져버리며, 사람들이 나를 조롱하며, 왕들이 나를 응징한다 할지라도, 그러나 나는 꿋꿋하게 흔들리지 않으리니, , 지고하신 주여! 나는 몸과 마음과 말과 행위의 모두를 바쳐 당신을 섬기고 또 섬기리라. 그대의 법도를 떠나지 않으리라.

쿨라르나바 탄트라 2(힌두교)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있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우리의 처지는 당신 때문에 우리가 날마다 죽임을 다하며 도살장의 양처럼 찢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라고 성서에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그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에 있어서 이기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로마서 8.35-37(기독교)

 

너희 이전 사람들이 겪었던 시련 없이 너희가 낙원에 들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그들은 고통과 역경, 그리고 정신적 혼란을 맞이했으니, 심지어 사도와 그와 함께 하는 신자들조차 이처럼 외쳤다. “하나님의 구원이 언제 오리이까?” , 실로 하나님의 구원은 가까이 있도다!

꾸란 2.214(이슬람)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고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겨 줄 것이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왕들과 총독들 앞에 끌려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너희에게는 증언의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명심해서 별론할 말을 미리부터 생각하지 말라. 나는 너희의 모든 적대자들이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겠다. 너희의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줄 것이요, 너희 가운데서 더러는 죽일 것이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누가복음 21.12-17(기독교)

 

비구들이여! 탁발은 가장 낮은 생활이다. 더구나 탁발은 세간에서 그대들은 밥을 빌며 손에 발우를 들고 돌아다니고 있다고 매도되고 있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탁발은 선한 가문의 서한 후손들이 올바른 목적에서 스스로 나선 길이다. 누구에게 강요되어 하는 탁발이 아니며, 생계를 구하여 행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티붓타카 89(불교)

 

부처님 입멸하신 뒤 공포의 나쁜 세상에 저희가 마땅히 널리 설하리이다. 혹 무지한 이들이 욕설하고 힐난해도, 칼과 몽둥이로 치더라도, 저희들 모두 참으오리다. 저 악한 세대의 비구들이 간악한 지혜 굽은 마음으로 얻지 못한 것 얻었다고 하며 교만한 마음 가득 차고...

온갖 두려운 일 많을지니, 악귀가 그의 몸에 씌어 우리를 비방하고 방해하여도, 우리는 부처님을 공경하고 믿어 마땅히 인욕의 갑옷을 입고, 이 경전 설하기 위해 모든 어려움 참으리라. 우리늠 목숨도 아끼지 않으며 다만 위없는 도를 아끼리라.

법화경 13(불교)

 

주 여호와께서 나에게 말솜씨를 익혀 주시며 고달픈 자를 격려할 줄 알게 다정한 말을 가르쳐 주신다. 아침마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배우는 마음으로 듣게 하신다.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아니하고 꽁무니를 빼지도 아니한다. 나는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기며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턱을 내민다. 나는 욕설과 침 뱉음을 받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는다.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 조금도 부끄러울 것 없어 차돌처럼 내 얼굴빛 변치 않는다.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줄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 나의 죄 없음을 알아주시고 옆에 계시는데, 누가 나를 걸어 송사하랴? 법정으로 가자. 누가 나와 시비를 가리려느냐? 겨루어 보자. 주 여호와께서 이렇게 나를 더와주시는데 누가 감히 나를 그르다고 하느냐? 그들은 모두 낡은 옻처럼 좀이 슬어 삭아 떨어지리라.

이사야 50.4-9(기독교)

 

느부갓네살 왕은 금으로 신상 하나를 만들어 바빌론 지방 두라 벌에 세웠다. 그 높이는 육십 척이요, 너비는 육척이나 되었다... 신상의 제막식에... 그때 전령이 큰소리로 외쳤다. “인종과 말이 다른 뭇 백성은 들으시오. 나팔, 피리, 거문고, 사현금, 칠현금, 퉁수 등 갖가지 악기소리가 나거든 곧 엎드려 느부갓네살 왕께서 세우신 금신상 앞에 절을 하시오. 누구든지 엎드리어 절하지 않으면 장작 활활 타는 화덕에 집어넣을 것이오.” 그리하여 나팔, 피리, 거문고, 사현금, 칠현금, 퉁수 등 갖가지 악기소리가 울려 퍼지자 인종과 말이 다른 뭇 백성은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신상 앞에 절했다.

 

이때 어떤 바빌론 사람들이 나서서 유대인들을 고발하였다. 그들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이렇게 일러 바쳤다. “임금님! 만수무강을 빕니다!... 임금님의 칙령을 무시하고 임금님께서 위하시는 신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임금님께서 원하시는 신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임금님께서 바빌론 지방 관리로 임명하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는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임금님께서 세우신 금신상 앞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느부갓네살은 몹시 화가 나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잡아들이라고 명령하였다. 그들이 왕 앞에 끌려오자 느부갓네살이 물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너희는 내가 세운 금신상 앞에 절을 하지 않고 내가 위하는 신을 섬기지 않았다니, 그게 사실이냐? 이제라도 나팔, 피리, 거문고, 사현금, 칠현금, 퉁수 등 갖가지 악기소리가 나는 대로 곧 엎드리어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절할 마음이 없느냐? 절하지 않으면 활활 타는 화덕 속에 던질 터인데, 그래도 좋으냐? 내 손에서 너희를 구해줄 신이 과연 있겠느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대답했다. “저희는 임금님께서 물으시는 말씀에 대답할 마음이 없습니다. 저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저희르 구해 주실 힘이 있으면 임금님께서 소신들을 활활 타는 화덕에 집어넣으셔도 저희를 거기에서 구해 주실 것입니다. 비록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저희는 임금님의 신을 섬기거나 임금님께서 세우신 금신상 앞에 절할 수 없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말을 듣고는 금방 안색이 달라지며 노기에 차서 화덕의 불을 여느 때보다 일곱 배나 뜨겁게 지피도록 하고, 군인들 가운데서도 힘센 장정들을 뽑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묶어 활활 타는 화덕에 집어넣으라고 명하였다. 사람들은 그들을 도포와 속옷 등 옷을 입고 관을 쓴 채로 묶어서 활활 타는 화덕에 집어넣었다. 왕명이 그만큼 급했던 것이다. 화덕이 너무나 달아 있었으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넣던 사람들이 불길에 타 죽고 말았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세 사람은 꽁꽁 묶인 채 불타는 화덕 속에 던져졌다.

 

그런데 느부갓네살 왕이 깜짝 놀랄 일이 생겼다. 그는 벌떡 일어나 측근자에게 물었다. “꽁꽁 묶어서 화덕에 집어넣은 것이 세 명 아니었더냐?” 그들이 대답했다. “임금님, 그렇습니다.” “그런데 네 사람이 아무 탈 없이 화덕 속에서 거닐고 있으니 어찌된 일이냐? 저 넷째 사람의 모습은 신의 모습을 닮았구나하면서 느부갓네살은 활활 타는 화덕 어귀에 가서 이렇게 외쳤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아 어서 나오너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화덕에서 나온 다음 지방 장관들과 대신들, 총독들, 왕의 측근들이 모여 와 그들을 살펴보니, 몸이 불에 데기는커녕 머리카락 하나 그슬리지 않았고 도포도 눋지 않았으며 불길이 닿은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섬기는 신이야말로 찬양받으실 분이구나하며 느부갓네살은 외쳤다. “저들의 하나님께서, 어명을 어기면서까지 목숨 걸고 당신만을 믿고 저희의 신 아닌 다른 산 앞에서는 절하지도 섬기지도 않는 이 신하들을 천사를 보내시어 구해 내셨구나.”

다니엘 3.1-28(기독교)

 

말씀 선집

 

천국은 지옥을 통과해서 가는 길이다.

(뜻길, p.165)

 

핍박이라는 것은 사탄세계의 소유권을 양도받는 하나의 작전적인 방편입니다. 참된 종교는 핍박받을 때 왜 발전하느냐 하는 원칙을 역사시대에는 몰랐지만 이러한 원리를 통해서 자명해지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의 성인들 가운데 예수도 핍박받았고, 공자도 상가집 개라는 말을 들으며 핍박받았고, 불교의 석가모니도 핍박받았고, 마호메트도 핍박받았습니다. 그런 핍박받던 모든 사람들이 성인이 된 것은 이 원칙에 있어서... 역사가, 시간과 때가 지나감에 따라서 자연히 자기 때로 옴으로 말미암아 승리하기 마련입니다. 이 원칙에서 역사가 움직여 나가는 것임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세계적인 종교 지도자로서 온 세계가 몽땅, 공산주의 민주주의 할 것 없이 전부가 반대했다는 사실은 전 세계의 것을 하나님이 상속시키기 위한 작전이라는 결론도 타당한 이론이라는 것입니다.

(189.205-206, 1989.04.06)

 

인류역사는 지금까지 투쟁의 역사였으니, 그 내용은 하나님과 사탄, 선과 악이 그 한 가운데 있는 사람을 빼앗는 싸움이었습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악의 역사가 먼저 출발했기 때문에 싸움은 언제나 악한 편이 먼저 공격하여 선을 쳤고 선은 맞으면서 수세에 몰렸지만 하나님께서 선의 편이시기 때문에, 매양 승리를 거두게 되어 결국은 맞고 빼앗아 나오게 된 것입니다.

(88.209, 1976.09.18)

 

하나님의 전술 전략은 맞고 손해 배상을 추가해서 돌려받는 것이고 사탄은 치고 돌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치고 망하고 하나님은 맞고 번영해 가는 것입니다. 그 방법에 의해서 문 선생은 맞으면서도 사탄세계로부터 이자까지 더해 변상을 받아서 승리의 기반을 갖게끔 되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박해의 과정을 통과하면서 발전해 왔습니다.

(249.105, 1993.10.08)

 

종교가 순교자의 위협 아래 투쟁할 때 가장 성장하듯이 우리는 박해받을 때 부패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다. 종교는 순교의 투쟁 속에서 발전했듯이 핍박을 받을 때는 부패하지 않는다.

(뜻길, p.319)

 

하나님의 작전과 사탄의 작전은 반대다. 하나님은 맞고 빼앗아 오고, 사탄은 치고 빼앗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맞으면서 번성하고, 사탄은 치고 망하는 것입니다.

(234.69, 1992.08.04)

 

통일운동의 진정한 회원은 박해와 시련을 받을 때 박해한 사람들을 원망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영적 성장의 자양분으로 받아들입니다.

(129.303, 1983.11.25)

 

모든 십자가는 내가 책임지고, 동네에서 돌멩이를 던지더라도 내가 먼저 맞으려 하고, 욕을 먹어도 내가 먼저 먹으려 하고, 매를 맞아도 내가 먼저 맞으려 해야 합니다.

(96.123, 1978.01.02)

 

사람의 뼈로 때린다고 해서 참사랑이 끊어지겠습니까? 그러면 어느 것이 깨지겠습니까? 참사랑이 깨집니까, 뼈가 깨집니까? 뼈가 깨집니다. 자꾸 쳐라, 자꾸 치면 너는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자꾸 친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치면 칠수록 치는 그것이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핍박하는 것을 왜 처치하지 않고 가만두느냐? 치면 칠수록 치는 그것이 없어지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가만두는 것입니다. 왜냐? 완전히 근절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게 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썩어 가지고 그게 전부 다 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230.131, 1992.05.01)

 

여러분은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혁명의 역사를 보면 그 뒷면에 반드시 피눈물이 어려 있습니다. 몰리고, 박해당하고, 욕먹고, 매 맞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도 그러한 투쟁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내 슬픔보다 하나님의 슬픔이 수천만 배 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평면적인 슬픔은 하나님의 입체적 슬픔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11.227, 1961.09.20)

 

하늘 앞에 감사하면서 달리다 보니 70이 가까워 오는 노년이 저의 목전에 다가왔습니다. 혈기왕성한 청춘시절에, 모든 정열을 다 불태워 하늘을 모시고 하늘 앞에 영광을 돌려야 할 그때를 다 잃어버리고, 민족의 배신자로, 인류의 반역자로 몰림을 당해 나온 그날부터 통일교회가 말없이 맞고 빼앗아오는 전법을 통하여 지금까지 참아 나오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당신은 사랑이었습니다. 철창문으로 몰아내는 당신은 저에게 환희에 찬 환경을 준비하고, 복을 주기 위한 자리였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지나고 보니 모든 것이 사랑이었고 당신의 넓으신 후덕의 손길이었습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감사하옵니다.

(162.334, 1987.04.17)

 

순교

 

신앙인이 자신의 확신과 가치에 위협을 느낀 적대적 위정자들을 만났을 때, 이들중 몇몇은 끔찍한 대가를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 문선명 선생은 영적인 현상에서 보면 선이 흥할 때는 언제나 사탄이 그 값을 지불하도록 한다고 하신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가장 선한 사람들이 먼저 희생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순교라는 단어의 의미는증거. 순교자들은 죽음에 직면해서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자신의 신념을 증거하고 그 신념을 고무시킨 하나님을 증거한다. 자신보다 하나님을 먼저 섬기는 순교자의 삶은 강력하고 고무적이다. 그러므로 순교는 신앙공동체를 강화시키고 그 뿌리를 공고히 하며 성장을 도모한다. 테르툴리아누스의 유명한 말이 있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오늘날 어떤 이들은 이슬람 자살폭탄 테러범들처럼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처절하게 앗아가는 무법자들까지도 순교자로 취급하고 있다. 그것이 순교라면 아마도 가장 저급한 수준의 순교일 것이다. 최고의 순교란 예수님이 자신을 십자가에 박은 로마 병사들까지도 축복해 주신 것처럼 지선과 자비의 기초 위에 현시되는 것이다.

 

종교 경전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줄 것이며 너희를 죽일 것이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마태복음 24.9(기독교)

 

여호와께 충실한 자의 죽음은 그분께 귀중하다.

시편 116.15(기독교)

 

실로 천국의 문은 검의 그림자 아래에 있느니라.

무슬림 하디스(이슬람)

 

하나님의 길에서 목숨을 잃은 자를 죽은 사람으로 생각지 말라. 그들은 오히려 주님 곁에 살아 있으니 하나님에 의해 부양되고, 하나님이 주신 은총에 기뻐하며, 그들 뒤에 남아 아직 그들과 합류하지 않은 자들을 위해 기뻐하리라. 그들에게는 두려움도 슬픔도 없나니,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으로 기뻐하리니,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보상이 헛되어 소모되도록 허락지 않으시도다. 또한 부상을 당한 후에도 하나님과 사도의 부름에 답하여 선을 행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모두 크나큰 보상이 주어지리라.

꾸란 3.169-171(기독교)

 

대의명분에 신명을 바치는 의로운 자들의 죽음은 거룩하다.

그들만이 영웅이라 이를 수 있도다.

신국의 대문에서 참된 영광을 얻으리니, 그들이 영광으로 더불어 떠나리라.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리라.

만일 그들이 저 유일자 주를 염하면 이와 같은 상을 받아 모든 두려움을 몰아내리라.

자신의 고통을 외쳐 말하지 않으며 다만 안으로 삭여내는 그들,

주께서는 그들의 모든 것을 낱낱이 헤아려 아시는도다.

대의명분을 구하여 신명을 바치는 의로운 자들의 죽음은 실로 거룩하여라.

아디 그란트, 와단스, 알라하니얀 디르게스, M.1, p.579(시크교)

 

랍비 아키바가 처형되어 숨을 거둘 때는 쉐마를 암송할 시간이었다. 사람들은 철빗으로 아키바의 몸을 빗어주었고 아키바는 [쉐마를 암송함으로써] 스스로 하늘나라의 왕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제자들이 그에게 물었다. “스승님, 이 순간까지도 외워야 합니까?” 아키바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하루 종일 나는 네 영혼을 다하여’[신명기 6.5]라는 말씀을 가지고 고심하였다. 나는 이 말씀을 비록 하나님께서 네 영혼을 취할지라도라고 해석한다. 이 말씀을 내가 성취할 때는 언제이겠는가? 이제 이 말씀을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다가왔지 않느냐?” 아키바는 숨을 거둘 때까지 [기도문의] 마지막 말을 길게 끌면서 말하였다.

탈무드, 베라코트 61b(유대교)

 

내가 옛날 카링가 왕에게 몸이 잘릴 때에도 나에게는 아상도, 인상도, 중생상도, 사자상도 없었나니 무슨 까닭이냐? 내 몸을 마디마디 자를 적에 만일 이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었으면 응당성을 내고 원망하는 마음이 났을 것이니라.

금강경 14(불교)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해서 백성 가운데서 놀라운 일과 큰 기적을 행하였다. 그때에 구레네 사람과 알렉산드리아 사람과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으로 구성된, 이른바 리버디노 회당에 소속된 사람들 가운데 몇이 들고일어나서 스데반과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므로 그들은 스데반을 당해낼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람들은 선동하여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다하고 말하게 하였다. 그리고 백성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을 부추겨 스데반에게로 몰려가서 그를 붙잡아 의회로 끌어오게 하였다. 그리고 거짓 증인들을 세워서 이렇게 말하게 하였다. “ 이 사람은 쉴 새 없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합니다. 이 사람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뜯어 고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습니다.”의회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모두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다. 대 제사장이 스데반에게 이것이 사실이오?” 하고 물었다. 스데반이 말하였다. “부형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격분해서 스데반에게 이를 갈았다. 그런데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쳐다보니,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였다.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하나님의 오른쪽에 인자가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사람들은 귀를 막고 큰소리를 지르고 일제히 스데반에게 달려들어서, 그를 성 바깥으로 끌어내어 돌로 쳤다. 증인들이 옷을 벗어서 사울이라는 청년의 발 앞에 두었다. 사람들이 스데반을 돌로 칠 때에 스데반은 주 예수님, 내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하고 부르짖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서 큰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하고 외쳤다. 이 말을 하고 스데반은 잠들었다.

사도행전 6.8-7.2, 7.54-60(기독교)

 

본서와 몰몬경이 진실하다는 간증을 인봉하기 위해 우리는 예언자 요셉 스미스와 대축복사 하이람 스미스의 순교를 발표하노라. 이 두 사람은 1844627일 오후 다섯 시 경, 얼굴을 까맣게 칠한 150명에서 200명가량의 무장 폭도에게 카테지 감옥에서 피격되었느니라. 하이람이 먼저 총격을 받아 나는 죽노라부르짖으며 조용히 넘어졌고, 요셉은 창문에서 뛰어내렸으나 도중 총탄을 받아 오 주, 나의 하나님이여라 외치며 죽었도다. 두 사람은 죽은 뒤에도 참혹하게 총격을 받았으니 두 사람 다 네 발의 총탄을 받았느니라.

교리와 성약 135.1(예수 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말씀 선집

 

위대한 종교들은 박해와 순교의 토양 위에 세워졌고 창시자의 귀한 전통 기반 위에 섰으니 우리 모두는 희생을 기피하지 말고 종교 본래의 명예를 찾아 세워야 합니다.

(271.72, 1995.08.21)

 

역사를 통해서 종교는 희생의 가치를 교훈으로 가르쳐 왔는데, 그것은 결국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는 수천 계단이 있는데, 각 계단마다 하나님은 승리를 거두고 사탄은 패배를 하게 되지만, 사탄은 최고의 희생의 대가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사판은 패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사에 있어서 수많은 순교자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가 어느 종교보다 많은 순교자를 배출했던 것은 기독교가 섭리의 중심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순교는 인간들의 눈에 좌절이나 실패로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승리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가 반대와 박해를 당하면서도 계속 승리하고 있는 이유인 것입니다. 사탄은 패배하는 대가로 항상 커다란 희생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130.283, 1984.02.07)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순교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기독교가 들어간 곳에서는 반드시 순교의 피를 흘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피를 흘리며 선교의 기반을 닦아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개인, 가정, 혹은 단체가 비참하게 희생되었다고 하는 것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비참함보다도 그들을 인도해 오신 하나님이 비참한 길을 걸어오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3.220-221, 1964.03.22)

 

여러분들은 나는 언제 패할 것이냐? 나라는 사람은 언제 꺾여 나갈 것이냐?’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거기서 내 손 마디마디가 잘리더라도, 잘리어 죽더라도, 한꺼번에 총 맞아 죽더라도 그러면 그게 가능합니다. 내 생애는 그것이었다, 내 전체는 그것이었다, 죽는 것도 그것에 의해서, 사는 것도 그것으로 인해서... 그런 사람은 죽음과 삶을 초월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죽음과 삶을 초월한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친구가 되는 겁니다.

(66.317, 1973.05.17)

 

어떤 고통과 슬픔, 그리고 어떠한 어려움이 닥칠지라도 대우주의 이념권내에 있는 자신의 위치가 그만한 어려움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는 자는 그 고통의 고개를 넘어갈 것입니다. 또 이만한 고통을 참지 못할 내가 아니며, 이만한 죽음의 고개와 바꿔버려야 하는 나의 생명이 아니라고 느끼는 자가 있다면, 그는 인생행로에 있어서 성공한 자입니다. ‘어떠한 핍박과 죽음의 고개가 닥쳐와도 내가 가는 방향을 바꿀 수 없다고 하는 자는 땅 위에 있어도 하늘의 사람입니다. 땅에서 죽더라도 그는 하늘의 사람입니다.

(9.166, 1960.05.08)

 

기독교를 통해서 수천 년 역사 가운데서 수많은 순교자가 나왔던 것같이, 그걸 각오하고 죽고 살겠다고 하는 가운데 하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만민과 더불어 해방의 기대를 닦고 죽습니다하는 그것에서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 중요한 사람, 종족에 중요한 사람들이, 펀만 사람들이 죽는 것보다 하늘이 우리의 약속을 갖추게 될 때 사는 것입니다. 그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한 기반이 남아지게 될 때 그 기반을 후대 사람이 밟고 올라오는 것입니다.

(218.236, 1991.08.19)

 

그렇기 때문에 예수 같은 분은 그런 길에서 몰리고 몰려 자기 민족한테 몰릴 뿐만이 아니라 로마제국 앞에 몰리어 죽어 가면서도, 원수가 이스라엘이고 로마인데도 불구하고, 이 원수를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라고 그들에게 가르친 것입니다. 로마는 오늘의 원수지만 내일에는 우리 후손을 통하여 로마에 주어야할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복은 로마를 구하고 남을 수 있는 사랑의 복이기 때문에, 그들이 바라게 될 이 복을 주고 싶은 마음이 앞선 예수의 마음에는 미래의 로마를 생각하고 용서하고 복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01.151, 1978.10.29)

 

천당 가겠다고 순교하는 사람은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해야 천당 가는데하는 사람은 지옥 단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는 지옥 가더라도 세계 사람을 천당 보내야 되겠다고 하는 사람은 천당 안 가겠다고 해도 천당 가게 되는 것입니다.

(39.197, 1971.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