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지킴이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 4장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창조성)

훈독왕 | 20201014091342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 4장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창조성


자연 지킴이


기독교 성서에서 인간 본향의 이미지는 광야가 아니라 아름다운 동산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보호되고 유지되며 또한 풍요로운 동산으로 가꾸도록 자연을 위탁했다. 자연 지킴이에 관한 윤리가 이 구절들에 묘사되어 있다. 이 구절들은 고통을 받고 있는 동물들의 보호, 천연자원의 합당한 관리,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들의 보전, 적당량의 어획고, 환경 친화적 개발을 권고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지나친 어획량, 산림의 훼손, 물과 대기의 오염을 피하고 자연의 균형을 소중히 여길 것을 가르친다. 우리는 지나친 소비와 과도한 쓰레기 배출을 피해야 하며, 자연이 베푸는 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책무를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 있다. 우리는 다른 인간들과 조화롭게 사는 것을 배워야 한다. '늑대가 어린 양과 함께 살지니' 라는 기독교 성서의 예언은 천륜에 따라서 서로 평화롭게 살아가야 할 인간들에 관한 서술이다.


1. 피조물의 보호 


종교 경전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잠언 11.30)고 랍비께서 말씀하셨다. “이 구절은 노아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극진하게 동물들을 먹이고 돌봐주었습니다. 동물 하나하나마다 특별한 음식을 주었고 제때에 이들을 먹였습니다. 어떤 동물들은 낮에, 다른 동물들은 밤에도 먹이를 주었습니다. 낙타에게는 썬 지푸라기를, 나귀에게는 보리를, 코끼리에게는 덩굴을, 타조에게는 잔디를 주었습니다. 늘 동물들의 밥을 주느라 바빠서 그는 열두 달 동안 밤낮 잠도 제대로 자지 못 했습니다.”

탄후마, 노아 151 (유대교)


아부 후라이라가 하나님의 사도 말씀을 전하였다. “길 가던 한 여행자가 극심한 갈증을 느끼고 우물로 내려가 물을 마셨다. 그가 올라오니 개 한 마리가 목이 말라 헐떡거리며 젖은 땅을 핥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이 동물이 나만큼이나 목이 말라 고통을 받고 있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그래서 그는 다시 우물로 내려가 자신의 신발에 물을 가득 채운 다음 그것을 입에 물고 우물을 기어 올라와 개에게 물을 주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행동을 보고 기뻐하시어 그의 죄를 모두 사하여 주셨다.”


누군가가 말했다. “하나님의 사도여, 그렇다면 우리 동물에게 좋은 일을 한 것도 보상을 받을 것이리까?” “보상이 있으리라” 하고 그가 대답했다.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존재에게 물을 준 자는 누구든 그러하리라.”

부카리 하디스 (이슬람)


일체중생, 심지어 벌레들까지도 

윤회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그 누구도 윤회의 속박에 갇히지 않게 하소서 

나에게 그들 모두를 구할 힘을 주소서.

밀라레파 (불교)


개미집 언덕의 입구들에서 

부디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 

항상 음식과 물을 먹고 마실 수 있게 하며, 

설탕과 곡식을 취할 수 있게 하소서. 

음식을 먹기 전과 그 후에 

배고픈 영혼들과 개들과 

개미들과 새들 등등에게 

적당한 양을 나누어주어라.

나가르주나, 보의 화환 249-250 (불교),


공자는 낚시질을 하되 그물질을 하지 않았으며,

주살질은 하되 잠자는 새를 쏘아 잡지는 않았다.

논어 7.26 (유교)


황소의 영이 불평을 했다. “누구를 위해서 나를 만들었습니까? 누가 나를 만들었습니까? 광포함과 폭력이 나를 짓누르고 잔인함과 압제가 있습니다. 당신밖에는 내게 목자가 없으니 나를 위해 좋은 목장을 얻어 주소서.” 

그때 황소의 창조자가 정의의 신에게 물었다. “그대는 황소를 위한 판결이 있는가? 황소에게 목장을 주고 가축이 자라도록 보호해 주는 게 어떤가? 그대는 누구를 황소의 주인으로 삼아 그 사악한 것과 그 광포함을 없애도록 하였는가?" 

정의의 신이 대답했다. “황소에게는 그를 학대하지 않을 그 어떤 동료도 없다. 사람들은 위대한 자가 비천한 자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지 못 한다. 사람은 모든 존재 중에서 최강자이니 나는 다만 사람들의 요구에 응할 뿐이라....” “손을 뻗어 우리가 주께 간구합니다. 우리 둘, 내 영과 어미 소의 영은 지혜의 주께서 그 정직한 사람, 사악한 무리에 둘러싸인 그 목자에게 아무런 해가 없도록 명령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때 지혜의 주는 그의 영혼에 들리는 기도를 알고 말했다. "의롭다 할 어떤 주인도 심판자도 있은 적이 없다. 창조자는 주인과 목자를 위해 너희 가축을 만들었다. 가축에게 물을 뿌려주는 의식은 소의 번성을 위한 것, 우유는 양식을 바라는 인간의 복리를 위한 것, 이 모든 지혜의 주, 거룩한 자가 정의롭게 자기의 뜻에 따라 만들었다.” 

황소의 영이 말했다. “선한 마음이신 당신에게 누가 있어 사람들을 위해 우리 둘을 돌보아 줄 것입니까?” “나는 오직 이 한 사람 짜라투스트라 스피타마를 알고 있다. 그는 우리의 가르침을 들은 유일한 자이다. 오, 지혜로운 이! 그는 우리의 목적과 정의의 목적을 알릴 것입니다. 그에게 찬미의 소리 있으리." 

그러자 황소의 영이 신음했다. “돌보는 힘이 없는 인간의 나약한 말에 만족했어야 했구나. 나는 힘있는 주인을 원하네! 그런 이가 있을까? 스스로 도울 그런 이가 언제나 올까? 

아베스타, 야스나 29.1-9 (조로아스터교)


--165--

말씀 선집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 발밑에서부터입니다. 자기 앞에 있는 물질을 사랑하고 만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한 물건을 내가 생명의 요소로 흡수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과 같이 대등한 사랑을 해줘야 됩니다. 이런 사랑을 모르면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우주라는 것이 전체가 사랑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나도 거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해 주면 천하가 다 내 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290.129, 1998.02.15)


동물세계도 말이 통합니다. 꽃을 보고 노래하면 꽃이 잘 자랍니다. 꽃이 내뿜는 향기도 더 신선하다는 것입니다. 꽃도 음악을 좋아하고 예술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262.127, 1994.07.23)


옛날에는 소를 붙들고 '이랴 낄낄' 해 가지고 논을 갈면서 기분 나쁠 때가 많았습니다. 그 때는 소 궁둥이를 갈기며 '이놈의 소야, 너 왜 이래? 내가 있는 정성을 다해서 한때 써 먹으려고 길렀는데 왜 말을 안 들어?' 하면서 회초리로 사정없이 갈기고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는 것보다도 '야, 겨우내 잘 쉬던 너를 인사도 하지 않고 봄날에 끌어내어 잘 먹이지도 않고 일을 시켜서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소보다 더 참는 마음을 갖고 철벅철벅 하면 하늘이 그 사람을 더 가까이 할 것입니다. (127.90, 1983.05.05)


피조세계의 중심인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원합니다. 또 동물세계의 개새끼나 돼지새끼나 말새끼들도 누구의 사랑을 원할까요? 사람의 사랑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식물까지도 그렇습니다. 식물들은 동물의 사랑을 원합니다. 동물 중에 최고의 존재가 인간이라면 인간의 사랑을 받는 그 동물들이 만물을 사랑하고.... 사랑도 계열적으로 모든 것과 연결되는데 이것이 뭐냐 하면 참사랑입니다.


--166--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의 종점에 가서 쭉 내다보면 저 끝에는 하나님이 보이고, 그다음에는 사람이 보이고, 그다음엔 동물이 보이고, 그다음엔 식물이 보이고, 그다음에는 광물이 보입니다. 이걸 툭툭 차면 전부 다 짤랑짤랑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166.51-52, 1987.05.28)


처음에 잡은 잉어를 놓아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원칙을 두고 '너는 사랑을 통해서 태어났고 사랑을 위해서 죽는 것이 도리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는 것이 좋으냐, 죽는 것이 좋으냐?' 이런 문제를 걸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93.190, 1977.05.29)


고기도 수놈 암놈을 해방해 주고 동물도 해방해 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연에서 잡아먹고 이렇게 사는 것보다도, 주인이 있어서 잡아먹지 않고도 주인이 준비해 준 것을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388.270, 2002.08.02)


2. 보존과 지속 발전 


종교 경전  


무슬림이 나무를 심거나 땅을 경작하지 않으나 그곳에서 새들과 사람, 짐승이 먹고 지낸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그를 대신한 자비이니라.

무슬림 하디스 (이슬람)


대지는 신실한 자가 밀과 목초와 과일을 가꾸는 곳에서, 마른 땅에 물을 주거나 축축한 땅을 말리는 곳에서 행복을 느낀다.

아베스타, 벤디다드 3.1.4 (조로아스터교)


농사철을 어기지 않으면 곡식을 먹을 수 있을 것이며, 촘촘한 그물을 웅덩이와 연못에 넣으면 고기와 자라를 다 먹을 수 있을 것이며, 도끼와 자귀를 제때 산림에 들게 하면 재목을 다 쓸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왕도의 시작이다.

맹자 I. A.3 (유교)


어느 날 호니 하마겔이 여행을 떠났을 때 한 남자가 쥐엄나무를 심는 것을 보았다.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 나무가 열매를 맺으려면 얼마나 걸립니까?” 그 남자가 대답했다. “70년 걸립니다.” 또 다시 물었다. “70년을 더 살아서 열매를 볼 수 있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그 남자가 대답했다. “저는 여기저기서 다 자란 쥐엄나무들을 봅니다. 우리 선조들이 저를 위해 심어 놓으셨으니 저도 후손들을 위해 심는 것입니다."

탈무드, 아니트 23 a(유대교)


어느 부족의 신성한 고리라도 천지만물의 거대한 원을 구성하는 많은 것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 가운데서 한 어머니와 한 아버지의 모든 자녀들을 보호해 주는 강력한 생명의 꽃나무가 자란다. 모든 생명은 거룩하다. 

이 땅의 원주민들은 우리가 대지의 일부분이고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의식하는 그 원의 지혜로 오래 살아왔다. 신에게 소중한 이 대지를 손상하는 것은 - 그 원의 균형을 흔들어 놓는 것은 - 창조주에게 경멸을 수북이 쌓아 바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우리의 손자손녀들과 7대 후손까지 위하여 대지의 균형을 회복시켜야 한다.

블랙 엘크족 (미주 원주민 종교)


여호와께서 시나이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일러 주어라. 너희는 내가 주는 땅으로 들어가서 여호와의 안식년이 되거든 그 땅을 묵혀라. 너희는 육 년 동안 밭에 씨를 뿌리고 육 년 동안 포도순을 쳐 그 소출을 거두어라. 칠 년째 되는 해는 여호와의 안식년이므로 그 땅을 아주 묵혀 밭에 씨를 뿌리지 말고 포도순을 치지도 말라.” 

레위기 25.1-4 (기독교)


--167--

지상에서 재앙을 퍼트리고 전답과 가축을 파괴하는 자들이 있노라.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재해도 좋아하지 않으시니라.

꾸란 2.205 (이슬람)


한 성을 함락시키려고 포위 공격하는 데 오랜 세월이 걸리더라도, 거기에 있는 나무를 도끼로 마구 찍어내지는 말라. 나무에 열리는 것을 따먹어야 할 터인데 찍어내면 되겠느냐? 들에 서 있는 나무가 사람처럼 너희를 피하여 성 안으로 들어갈리 없지 않으냐?

신명기 20.19 (기독교)


식물의 성장을 파괴하는 것은 참회가 요구되는 바일제법(波逸提法)에 대한 위반이다.

파칫티야 11 (불교)


식물의 성장을 파괴하는 것은 참회가 요구되는 바일제법(波逸提法)에 대한 위반이다. 

파칫티야 11 (불교)


코라비야 왕에게는 '확고부동' 이라 불리는 큰 반얀나무가 있었는데, 넓게 펴진 가지들이 드리우는 그늘은 시원하고 사랑스러웠다. 그 밑의 쉼터는 12제곱리그나 될 정도로 넓었다.... 아무도 그 과일을 지키는 사람이 없었으며, 그 과일 때문에 다른 사람을 해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와서 배불리 그 과일을 따서 먹은 후, 가지를 부러뜨리고는 가던 길을 가버렸다. 그 나무 안에 사는 영이 생각했다. 놀랍도다. 실로 놀랍도다! 과일로 배를 채운 후 나무의 가지를 마구 부러뜨리고 가는 저 사람의 악행이 실로 놀랍도다!” 그 나무는 더 이상 열매를 맺지 않았다.

앙굿타라 니카야 3.368 (불교)


말씀 선집


인간이 공해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지금 학자들은 오존층이 파괴되면 세계 인류는 태양의 자외선 때문에 생존할 수 없다고 합니다. 기후의 변동이 전부 다 그런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빨리 인류를 원시시대와 같이 산비탈에 가서 살게 해야 합니다. 오줌을 누더라도 거름이 되면 되었지 공해가 되지 않게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203.56, 1990.06.14)


동물도 멸종시키면 안 됩니다. 전부 우리가 길러서 내놓아야 됩니다. 이러한 동물원을 만들어야 됩니다. 전시하는 동물원인 동시에 생산하는 동물원을 만들어야 됩니다. 곤충도 보호해야 됩니다. 식물이라든가 동물들의 먹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호해서 길러야 됩니다. 세계에 종자가 없어지지 않게 보호해야 됩니다. (324.118, 2000.06.17)


인류가 자연을 가공하고 평준화시켜서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가 멸망합니다. 벌써 곤충이 죽어가고, 고기가 죽고, 짐승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면 이제 6백년, 아니 3백년을 못 넘긴다는 것입니다. 그냥 방치해 두면 인류는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326.152, 2000.07.07)


이제부터는 우리가 고기를 집에서 길러서 내보내는 것입니다. 닭을 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양식해서 바다에 많은 종류의 고기를 보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보내줘서 사랑하고 나서 잡아먹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은 만물은 주인 앞에 보답하기 위해 생명을 산 제물로 봉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잡는 것보다도 길러서 내놔야 됩니다. 크릴새우는 고성능 단백질을 가졌기 때문에 만물을 자라게 할 수 있는 자원이 되는 것입니다. 새끼로부터 모든 동물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사료가 됩니다. 그것은 인류를 위한 사료입니다. 만물을 위한 사료로서 우리가 공급해 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이런 놀음을 계속함으로 말미암아 바다에서부터 인류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인류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이 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68 --

사막지대에도 파이프를 묻어서 양식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알래스카에 있는 석유를 미국 본토까지 몇 천만리를 옮겨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닷물을 어디는지, 또 담수를 어디든지 옮길 수 있는 것입니다. 담수를 그렇게 하려면 아마존 강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세계로 보내 가지고 사막지대에서도 양식을 하는 것입니다. 고기를 사랑으로 길러 가지고 먹고 사는 것입니다. 거기에 동반해서 양식장을 사막에 만들게 되면 거기서 수초를 얼마든지 기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육지가 점점 사막으로 바꿔지고 있습니다. 그 반대로 인공적으로 양식장을 하고 양식장을 중심으로 해양의 수초를 길러서 육지의 수목과 합해 영양소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양식은 한 분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사막에서도 양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식량을 무한히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324.114-115, 2000.06.17)


로마 클럽의 연구는 세계의 자원과 환경의 한계를 분명히 지적하고, 이런 세계적인 문제들에 대한 타당하고 완벽한 해결을 위한 범세계적 접근과 협동적 노력이 절대로 필요함을 명백하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세계 모든 민족에게 헌신적 태도와 협력을 요하며 어떠한 사회나 국가의 이익을 초월하는 세계관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한 협동정신은 전 인류가 같은 인간가족 구성원들이라고 스스로 간주할 때에만 이룩될 것입니다. 그러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인간의 이 혁명적인 변화는 오늘날 인간의 생존을 위해 오랫동안 필요했고, 또 그것은 필수불가결의 것입니다. (74.108-109, 1974.11.22)  


3. 에덴동산의 복귀


종교 경전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을 데려다가 에덴에 있는 이 동산을 돌보게 하시며 말했다. 

창세기 2.15 (기독교)


주 하나님이 첫 번째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나무를 보여주시며 말씀하셨다. “나의 작품을 보아라. 이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한가! 모든 피조물은 내가 너를 위해 만든 것이다. 그러니 이것들이 멸하지 않도록 주의 깊게 돌보아라. 네가 망치면 너를 대신해 복구할 이가 아무도 없느니라.”

전도서 랍바 7.13 (유대교)


지극한 덕이 행해질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걸었고, 또 눈을 크게 뜨고 밝게 보면서 살았다. 당시에는 산에 도로를 내고 뚫는 일도 없었고, 못에는 배를 띄우거나 다리를 놓는 일도 없었다. 만물이 떼 지어 살며 자랐고, 저마다의 자리에서 모여 살았다. 금수도 무리를 이루고, 초목도 마냥 성장했으며, 따라서 금수와 어울려 끌어당기며 놀기도 했고, 새들이 집에 기어 올라가는 것을 들여다보아도 새들이 놀라지 않았다. 

그렇게 지극한 덕이 행해진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금수와 함께 살았고, 함께 무리를 짓고 만물과 아울러 이웃하고 살았다. 군자나 소인 따위의 구별도 없이 다 같이 무지했으며, 저마다의 하늘이 준 본성의 덕을 따라 욕심 없이 살았다. 그런 상태를 소박이라 하며, 소박함으로써 백성이 본성대로 삶을 누렸다.

장자 9 (도교)


늑대가 새끼 양과 어울리고 표범이 숫염소와 함께 뒹굴며 새끼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풀을 뜯으리니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친구가 되어 그 새끼들이 함께 뒹굴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리라. 

젖먹이가 살모사의 굴에서 장난하고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겁 없이 손을 넣으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를 가나 서로 해치거나 죽이는 일이 다시는 없으리라.

바다에 물이 넘실거리듯 땅에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차고 넘치리라. 

이사야 11.6-9 (기독교)


--169--

말씀 선집


우리의 세계는 심각한 환경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환경오염과 자연훼손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답고 신성한 세계를 모독하는 것과 같습니다. 참사랑이 없는 사람은 자연세계를 단순히 이기적인 이용물로만 여길 뿐입니다. 타락이 가져온 심각한 결과의 하나는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참사랑을 상속받지 못하게 됨으로써 사람들이나 동식물이나 땅을 올바로 사랑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만물은 인간의 참사랑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남미에서 이상사회의 건설과 함께 인간이 자연과 올바른 사랑의 관계를 맺도록 하나의 모범을 보여 주고자 합니다. (271.75-76, 1995.08.22)


자연을 사랑할 줄 알아야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걸 다시 해야 됩니다. 복귀입니다. 아담이 만물을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에 만물을 사랑해야 됩니다. 향토로 돌아가서 자연을 사랑해야 됩니다. 자기 동네에 있는 풀부터 모든 산천초목들까지 전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 끝난 다음에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산천초목, 동물까지 다 사랑할 수 있는 입장이 되었거든 그 터전 위에서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175.32, 1988.04.06)


이 땅은 황폐해 가고 있습니다. 해마다 사막이 늘어가고 나무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는 하나님이 창조하던 것과 같이 씨라는 씨를 모두 구하고 뿌리라는 뿌리를 모두 구하여 심고, 가지를 잘라서 삽목을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 땅 위에 만물을 하나님이 창조하던 사랑 대신 심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국토를 보호해야 됩니다. 국토는 뭐냐 하면 초목이 있고 동물이 있고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폐허가 되면 인생살이는 자동적으로 폐허의 역사가 됩니다. 창조이상의 목적이 매몰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사랑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주권을 사랑하듯이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땅을 보호해야 합니다. 만물 전체를 재창조해서 하나님의 창조이상세계에 풍성한 해방적 자연세계를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304.254-255, 1999.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