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조세계의 주인 1, 2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 4장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창조성)

훈독왕 | 20201014090143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 4장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창조성


--157--

피조세계의 주인

인간은 자연계의 일부이면서 피조세계의 주인으로서 독특한 지위를 지닌다. 기독교 성서에서 아담과 이브는 만물의 주관주로서 축복을 받았으며, 꾸란은 각 사람에게 하나님의 ‘대리인’의 지위를 부여한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은 인간의 풍요를 위하여, 즉 생육하고 번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는 터전으로 자연계를 창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지를 오염시키고 자연을 훼손하고 인위적인 환경을 개조하면서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것은 진정한 주관의 축복이 아니다. 
 
자연주관의 위임이 처음으로 주어진 농경사회에서 인간의 창조성은 본질적으로 자연의 성쇠와 조화를 이룬 것으로 나타난다. 심지어 인간이 자연을 이용할 경우, 만물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자연의 풍요를 증진하기 위해 창조성을 발휘할 때 비로소 인간은 피조세계의 진정한 주인이 된다.
 
자연에 대한 인간 주관권은 규모나 힘의 문제가 아니다. 그 잣대로 본다면 인간은 지구상에서 아주 작은 한 점에 불과하며, 지구 또한 광대한 우주 가운데 한 점에 불과하다. 그것은 오히려 인간의 고유한 영적 자질에 기인한다. 인간만이 하나님을 추구한다. 
 
그리고 인간만이 자기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며 보다 나은 세계를 열망한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여타의 동물들과 차이를 지닌 존재일 수 있게 한다. 우주의 창조자를 알고 그와 친밀한 관계를 갖는다는 점에서 인간은 잠재적으로 전체 피조세계보다 더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인간은 이러한 영광을 누릴 자격이 있는가? 문선명 선생의 가르침처럼 인간은 창조주의 충만한 사랑을 받아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피조세계를 사랑해야 한다. 그때 인간은 하나님과 자연계를 잇는 다리가 된다.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서 피조물을 사랑하며, 인간을 통해서 전체 세계를 완전하게 한다.

1. 만물의 주관권을 부여받은 인간

종교 경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 

창세기 1.28 (기독교)
 
내가 지상에 대리자를 창조하리라.

꾸란 2.30 (이슬람)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너희에게 유용하도록 하였으며,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너희에게 한없는 은혜를 주심을 너희는 알지 못하느뇨? 

꾸란 31.20 (이슬람)
 
당신의 작품, 손수 만드신 저 하늘과
달아 놓으신 달과 별들을 우러러 보면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 주시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십니까?
그를 하나님 다음 가는 자리에 앉히시고
존귀와 영광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시편 8.3-5 (기독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여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하셨으며, 그로부터 열매를 맺게 하여 너희에게 일용할 양식으로 하셨도다. 또 너희를 위해 배를 만들어 그분의 명령에 따라 바다에서 운행하게 하시고 너희를 위해 강을 만드셨도다.
그분은 너희를 위해 끊임없이 궤도를 운행하는 해와 달을 두셨고, 그리고 밤과 낮을 만드셨도다. 또 그분은 너희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주셨도다. 너희가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려 보려 하나 결코 계산할 수 없으니, 진실로 인간은 우매하고 감사할 줄 모르노라.

꾸란 14.32-34 (이슬람)

--158--

들짐승과 공중의 새를 하나하나 진흙으로 빚어 만드시고, 아담에게 데려다 주시고 그가 무슨 이름을 붙이는가 보고 계셨다. 아담이 동물 하나하나에게 붙여준 것이 그대로 그 동물의 이름이 되었다. 

창세기 2.19 (기독교)
 
말씀 선집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전 피조세계의 주인공으로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323.165, 2000.06.01)
 
이상세계는 창조 목적이 실현되어야 하는 세계요, 신을 닮아야 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인간은 항상 사랑이 넘치는 조화롭고 평화로운 생활을 원하며, 부단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서 환경을 개선해 나가기를 원합니다. 창조는 비단 제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창의적인 활동 전체를 말하는 것으로 항상 새로운 것을 창안해내고, 계획하고, 개선하고, 생산하는 등의 활동 전부를 말합니다.
 
그런데 신은 통일적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도 통일적이어야 하며 사회생활도 통일적인 것이 아니면 안 됩니다. 사랑하면서 창조하고, 창조하면서 사랑하는 통일적인 인간, 통일적인 세계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날까지 인간은 눈부신 과학적 발전을 이뤄놓음으로써 창조적 생활면에서는 신을 닮았다고 할 수 있으나 사랑의 생활에 있어서는 아직 전혀 신을 닮지 못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슬픔과 고통과 불행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랑은 조화이기 때문에 사랑이 없는 곳에 조화가 있을 수 없으며 조화 없는 곳에 평화나 행복이 또한 있을 수 없는 것이니, 여기서 여러 가지 비참상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65.259-260, 1972.11.26)
 
도인은 어떤 사람이뇨? 풀 한 포기를 붙들고도 ‘하나님!’ 할 수 있는 심정으로 자기의 가치와 동등하게 그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최고의 도인일 것입니다. 그렇게 그 가치를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최고의 예술가일 것입니다. 각양각색으로 존재하는 천지만상을 보고 하나님의 각양각색의 사랑과 심정의 묘미를 발견하고, 그것들과 친구가 되어서 더불어 즐길 수 있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만 우주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만물의 영장입니다. 그런데 먹을 것밖에 모르는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옛날에 성 프란체스코 같은 양반이 동물을 보고, 혹은 새를 보고 설교했다는 말도 거짓말이 아닙니다. 꿈같은 이야기입니다만 꿈이 아니고 사실입니다. (9.168-169, 1960.05.08)
 
참사랑은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만물도 원합니다. 그래서 만물의 영장된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걸작품을 품고 사랑할 뿐 아니라 모든 만물에게 사랑하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할 책임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만물들은 이러한 주인을 찾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준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면서 자신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300.222, 1999.03.14)
 
하나님은 어째서 아담과 같은 형(型)을 거치셨는가. 만물은 형상적인 꼴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이시다. 하나님은 어떠한 형도 가지고 있지 않다. 크다고 하면 무한대요, 작다고 하면 무한히 작은 분이시다. 그런 분의 어떤 표준적인 형을 형성하고 표시하더라도, 형체를 나타낸다 하여도 실체를 가진 만물은 하나님에게 직접 주관을 받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실체를 가진 피조 세계를 있어서 실체를 가진 주인의 인격과 형을 갖춘 존재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159--

하나님은 이 지상 만물의 주관뿐만 아니라 무한한 영계도 주관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 천사장이나 여러 형체를 가진 실체, 그리고 무형의 실체까지도 주관하려면 그 중심적인 타입, 곧 형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신 것이다. 그리고 아담을 중심삼고 영육 양면의 세계를, 즉 무형실체세계와 유형실체세계를 주관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인간 창조목적이다. 
 
따라서 하나의 인격적인 실체와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아담 완성과 더불어 하나님의 형상 완성, 곧 형이 완성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실 때 그의 형태, 인상(人相), 인격 등이 무형세계의 중심에 계시는 하나님과 같은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아담을 만들어낸 것이다. 형이 없으면 형(形)의 세계를 주관할 수 없는 것이다. (35.157, 1970.10.13)

2. 어느 피조물보다 뛰어난 인간

종교 경전

하나님은 아담의 자손을 영광되게 하셨으며 땅과 바다에 그들을 옮겨 좋은 양식을 베프셨으며 하나님이 창조했던 그 어떤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베프셨노라. 

꾸란 17.20 (이슬람)
 
하나님께서 세상과 그곳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을 창조했을 때, 그분은 당신의 구애받지 않는 주관 의지를 직접 작용시켜 인간에게 당신을 알고 사랑할 유일한 특성과 능력, 전 피조물에게 기초가 되는 창조 충동과 기본 목적으로 간주되어야 하는 능력을 베풀 것을 결정하셨다. 모든 피조물 개개의 내면적 실재에 그분은 자신의 여러 이름 중 하나인 빛을 비추셨고, 그것을 그분의 한 속성인 영광을 받는 수혜자로 만드셨다. 그러나 인간 실재에는 당신의 모든 이름과 속성을 발하셔서 당신의 자아를 반사하는 거울로 만드셨다. 모든 피조물 중에서 인간만이 매우 위대한 은총, 매우 영속적인 선물의 수혜자로서 발탁되었다. 
바하울라 저서의 낙수집 27 (바하이교)
 
인간은 신의 현현으로서 모든 만물의 주관자이기에 인간 이상으로 존경받아야 할 존재는 없다. 지상의 모든 만물은 각각의 이름대로 본연의 모습을 지니며, 신이 인간을 위해 그리 하였음을 알게 된다. 무엇이든 만물은 자신의 근원이 되는 신을 잃어버리거나 정해진 법도로부터 어긋남이 없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깨달은 만큼 일하도록 창조되었다. 자신을 낮추며, 인간을 존경하며, 화내지 아니하며, 그릇된 마음을 가지지 아니하며, 슬퍼하지 아니하며, 치우치지 아니하며, 자신의 본연의 개성을 발휘하기 위해 인간은 창조되었다.
기도 (피엘교단)
 
인간은 세 혼을 갖추고 있었다. 그의 동물적 혼은 동물과 교류하고, 육체적 혼은 식물과 연결하고, 인간적 혼은 천사와 유대한다.
인간의 기능인 이성적 혼은 그 어떤 것보다 고귀한 기능이다. 그것 자체가 가장 고귀한 영혼이기 때문이다. 그것의 기능은 예술품에 대한 감상과 미(美)에 대한 생각을 구성한다. 그것이 응시하는 것은 더 높은 세계를 향해 있고, 낮은 처소와 비열한 위치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러하듯이 사람은 더 높은 삶과 주요한 물질에 속해 있으며, 먹고 마시기 위해 일을 하지 않음은 물론 사치와 성관계를 필요치 아니한다. 오히려 그것의 기능은 진실의 계시를 위해 기다리는 것이다. 

아비체나 (이븐 시나), 카타브 알 나자트 (이슬람)
 
실로 하나님은 하늘과 산과 대지에 신뢰를 보였으나 그것들은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하기를 거절했느니라.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하였으나 실로 그는 정직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자였느니라. 
꾸란 33.72 (이슬람)

--160--

말씀 선집

인간은 동물과 무엇이 다릅니까? 사람이 귀하다고 할 때, 그 사람은 육적인 사람이 아니고 영적인 사람입니다. 영적인 것이 귀하다는 것은 육적인 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이 높다면 육적인 것이 낮다는 것입니다. (129.307, 1983.12.01)
 
그러면 사람과 원숭이를 비교해 봅시다. 원숭이와 사람은 근본이 다릅니다. 원숭이는 그저 낑낑대고 먹고 자고 새끼 낳는 것이 제일입니다. 원숭이가 고향의 어머니 아버지를 보고 싶어서 웁니까? 원숭이가 형님을 염려해서, 혹은 부모를 위해서 죽으려고 합니까? 그러면 사람은 어떻습니까? 종자가 다릅니다.
 
사람은 자기를 중심삼는 것이 아니라 남을 중심삼고, 더 큰 것을 중심삼고 소망하면서 살게 되어 있지, 자기보다 낮은 것을 소망하면서 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인간은 고대로부터 곧, 인간이 생겨날 때부터 신을 숭상해 왔습니다. 
 
신을 숭상하지 않은 종족이 없습니다. 신을 생각하고 우리 인간이 보다 나을 수 있는 우주를 생각하면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원숭이가 그런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몇 천, 몇 만 단계가 지나도 안되는 것입니다. 원숭이에게 그럴 수 있는 내용의 힘이 어떻게 가중해 들어가겠습니까? (39.333, 1971.01.16)
 
하나님이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세울 때 하늘땅의 모든 환경을 대표한 그 가운데 중심으로 세웠겠느냐, 그렇지 않으면 한 부분으로 세웠겠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 되겠다고 주장할 수 있는 자주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원숭이라든가 사자, 호랑이의 세계에는 없습니다. 인간세계에만 있다는 것입니다.
동물적인 인간이냐, 인간적인 인간이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 동물적인 인간에 가깝습니까, 인간적인 인간에 가깝습니까? 지금 세상 인간은 어디에 가깝습니까? (117.35, 1982.01.31)
 
인격자는 어떤 사람이 인격자냐? 밥만 잘 먹고 밥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인격자입니까? 예술이나 문학이나 시에 조예가 있어서 풍부한 감상을 하면서 산을 대하고 속삭이고 들을 대하고 속삭이고 흐르는 물을 대하고 찬양할 수 있는 이런 사람이 인격자입니까? (85.143, 1976.03.03)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만물의 영장이 누구냐? 오늘날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만물의 근본된 영장은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은 영이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영이 있습니다. 인간은 영 중의 장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과 직결시켜서 영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 그 자체만으로는 될 수 없습니다. 인간도 피조물인데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피조물이란 상대적 결과체입니다. 피조물만 되어서는 원인을 통할 수 없고 원인을 점령할 수 없는 것입니다. 피조물은 원인으로 말미암아 점령당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과적 존재임이 틀림없습니다. 영장이라는 것은 영 가운데 중심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암암리에 본래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인 관계를 두고 하는 말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32.137, 1970.07.05)

--161--

하나님이 사랑을 찾기 위해서 만물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의 대상 존재로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의 주체로 되어 있느니만큼 그 주체 앞에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의 형태를 가진 물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형태라는 것은 그 주체의 성품에 반대되는 형태가 아닙니다. 모든 성품의 상대성을 지녀 가지고 사랑이라는 본질에 딱 들어맞을 수 있는 상대적 형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상대 존재인데 사랑에만 맞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무슨 지식이나 다른 것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이 우주의 중심이 될 수 있고 피조세계의 중심이 되는 것은 사랑으로 피조세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대표하여 그 주인 앞에 첫 번으로 중심자리에 서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하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 영장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상대적 사랑권을 빼버리고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특유한 가치는 사랑의 특권을 지닐 수 있는, 온 피조세계를 대표해서 하나님 앞에 첫 번으로 상대적 입장에 서서 이 우주를 지배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의 인연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빼놓으면 다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132.245-246, 1984.06.20)
 
사랑의 이상을 중심하고 볼 때, 동·식물세계에서는 사랑의 관계가 모두 번식을 전제로 할 때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인간만은 예외입니다. 인간은 부부사랑의 관계에 자유를 누립니다. 이것이 만물의 영장이 된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아들딸인 인간이 무한한 사랑의 기쁨을 갖도록 축복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참된 자유는 책임성을 전제로 합니다. 만일 책임성이 없이 개개인의 사랑의 자유만 주장하고 실천한다면 얼마나 큰 혼란과 파국이 오겠습니까? 지고한 사랑의 이상을 이룰 인간의 완성은 사랑에 대한 책임성을 지닐 때 가능한 것입니다. (282.213, 1997.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