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제3부 인생의 여정
제13장 사랑
참사랑
참사랑은 최고의 사랑이다. 최고로 추앙받지만, 현실에서 체험하기는 매우 드문 사랑이다. 이번 장에서 이상적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다룬다. 다음 장에서 이상적 사랑의 다양한 속성에 대해 다룰 것이다.
참사랑의 원천은 하나님이다. 궁극적 실재의 핵심인 사랑과 연민은 자기중심적 집착과 욕망을 뛰어넘은 성인에게서 구현될 수 있다. 하나님이 피조물을 위해 창조를 시작하셨듯이, 참사랑 역시 상대의 안위를 위한 헌신적 사랑이다. 하나님이 절대 불변 영원하시듯, 참사랑 역시 변하지 않고 운명의 장난에 굴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인루의 부모이자 만물의 창조주이시듯, 참사람을 실천하는 인간 역시 공명정대하며 전체를 포용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참사랑은 하나님과 진실로 하나되고 일생을 하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살아가는 개인들에게서 구현될 수 있다.
자기중심적 욕망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자는 참사랑을 결코 실현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참사랑의 잠재력을 생리적으로 지니고 태어나기 때문에 참사랑의 실현은 불가능하지 않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부모라면 이것을 체휼했을 것이다. 그런 사람도 자식이 태어나기 전에는 자신의 쾌락만 좇으며 살아왔을지 모른다. 하지만 자녀의 탄생은 부모의 삶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자기에서 타인으로, 받는 것으로부터 주는 것으로의 전환이 벌어진다. 부모의 사랑은 하나님의 참사랑과 가깝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인간이 선천적으로 사랑을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은 중국 한자 어질 인(仁)자에도 표현되어 있다. ‘仁’을 보면 하늘 천(天)과 같이 두 이(二)자와 사람 인(人)자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랑은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으며, 하나님은 사랑을 통해서 우리에게 임재하시고우리는 또 하나님을 닮을 수 있다.
1. 참사랑의 본질
종교 경전
내가 사람의 방언과천사의 방언으로 말할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내가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고, 내게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내 모든 재산을 나누어 줄지라도, 자랑스러운 일을 하려고 내 몸을 넘겨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을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언도 사라지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사라집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인 것은 사라집니다.
내가 어릴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거울 속에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마는, 그때에는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마주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마는,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 (기독교)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랑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드러났으니, 곧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로 말미암아 살게해주신 것입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시고, 우리의 죄를 속하여 주시려고, 속죄제물이 되게 해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랑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게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형벌과 맞물려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의 형제나 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4.7-12,18-20 (기독교)
브라흐만과의 접촉으로부터 오는 무한한 즐거운은 무거운 죄악의 짐을 벗어버리고 자기 자신 안에 확립되 자에 의해 쉽게 얻어진다. 그들은 모든 존재 안에서 자아를 보며 자아 안에서 모든 존재를 본다. 명상을 통해 전일된 의식으로써 그들은 동등한 눈으로 모든 것을 본다.
나는 모든 존재 속에서나를 실현한 자들 속에 항상 있다. 모든 생명을 나의 현현으로 보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나와 분리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존재의 가슴속에 있는 나를 숭배하며, 그들의 모든 행위들은 나에게로 온다. 그들이 어디에 살든 그들은 내 속에 거한다. 다른 사람들이 마치 자기자신인 것처럼 그들의 즐거움과 고통에 감응할 때, 그는 최상의 영적 합일의 상태에 도달한다.
바가바드기타 6.28-32 (힌두교)
말씀 선집
참사랑의 삶은 어떤 삶입니까? 참사랑은 공익성을 띤 무형의 질서요, 평화요, 행복의 근원입니다. 참사랑의 본질은 위함을 받겠다는 사랑이 아니고 남을 위해, 전체를 위해 먼저 베풀고 위해 주는 사랑입니다. 기쁨으로 주는 사랑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품에 안고 젖을 먹이는 기쁨과 사랑의 심정입니다. 자식이 부모 앞에 효도하며 기쁨을 느끼는 그런 희생적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인류 창조가 그랬듯이 아무것도 돌려받겠다는 기대나 조건없이 베푸는 절대 유일 불변 영원적 사랑의 창조입니다.
참사랑은 우주의 원천이요, 우주의 중심, 우주의 주인을 만들어 주는 사랑입니다. 참사랑은 하나님의 뿌리요,의지와 힘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참사랑으로 맺어지면 영원히 같이 있어도 좋기만 하고, 우주는 물론 하나님까지도 끌면 따라오는 사랑입니다. 타락의 후예 된 인간이 만들어 놓은 국경의 벽, 인종의 벽, 더 나아가서는 종교의 벽까지도 영원히 종식시킬 수 있는 힘이 참사랑의 가치입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의 주류 속성은 절대 유일 불변 영원한 것이어서 누구나 이 참사랑을 실천궁행할 때, 하나님과 동거 동락하게 되며 동참권까지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천국 들어가는 절대 필요조건이 바로 ‘위하는 삶’, 즉 참사랑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평화신경, 평화메시지 1.25-26,2005.09.12)
고린도전서 13장, 사랑 장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데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다’ 했습니다. 그걸 몰랐다는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는 것이 무엇이냐? 생명을 내놓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목을 내놓고 사랑하라는 얘기입니다 전체를 투입해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몽땅 사랑하라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들 누굴 그렇게 몽땅 사랑해 봤습니까? 아내 된 자가 남편 몽땅 사랑해 보고, 부모 된 자가 자식을 몽땅 사랑해 보고, 자식 된 자가 부모를 몽땅 사랑해 보고, 스승된 자가 제자를 몽땅 사랑해 보고, 제자된 자가 스승을 몽땅 사랑해 보고, 백성 된 자가 나라를 몽땅 사랑해 봤느냐는 것입니다. 못 했습니다. 그러니 그렇지 못한 인간에 대해서 하나의 타입, 금형(金型)을 만든 것입니다.
공장에서 대량생산하기 위해서는 금형에서 째까닥 째까닥 만드는데 타입, 모델을 만들어야 됩니다. 인간의 모델을 만들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랑을 중심삼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모델, 그 이상 없다는 것입니다.
(143.274,1986.03.20)
참사랑이 뭐냐? 참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참사랑이 가는 길이 어떤 것이냐? 하나님을 영원히 사랑하겠다면 나는 참사랑의 소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간단한 겁니다. 왜 그러냐? 사랑의 특징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랑의 조건이 되려면 영원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영원히 그 사랑을 대하겠다고 해야만 그 참사랑이 나와 상관관계를 맺기 때문에 그게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사랑은 영원불변하고 유일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내용으로 백 퍼센트 다 되어 있으니 우리 자체가 참된 사랑을 대해서 영원히 하늘 앞에 마음을 갖는 데 있어서 사랑의 길이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123.329,1983.01.09)
사랑의 주인은 하나입니다 참사랑의 ‘참’ 이라는 것은 둘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참은 절대적으로 오직 하나입니다. 참사랑은 누가 제일 먼저 사랑할 수 있는 사랑입니까?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게 참사랑의 근본이요, 본질입니다. 하나님만이 참사랑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참사랑도 참사랑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참생명도 참사랑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참혈통도 참사랑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참양심도 참사랑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빼게 되면 참사랑은 없습니다. 개재하지 않는 사랑은 참사랑이 아니 것입니다.
(300.220,1999.03.14)
하나님이 창조주의 능력을 행사할 때 사랑을 중심하고 지었다는 것입니다. 참사랑과 관계를 맺은 후에 말입니다 영적 세계에서는 참사랑이 연결되면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이상향입니다. 참사랑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다 허사라는 것입니다.
(147.116,1986.08.31)
사랑은 궁극적으로 우리 인간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고 절대불변의 원인적 주체로부터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그를 중심한 사랑의 가정이 인간사회 이상구현의 기본 단위가 되는 것입니다. 절대가치의 이상실현을 위한 사랑의 가정으로부터 국가, 세계로 확대하여 사랑을 완성한 통일권의 세계, 그야말로 절대가치의 영원한 행복이 약속되는 이상세계는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89.227,1976.11.27)
만일 어떤 부부 사이에 불구아이가 태어났다면, 그 어머니 아버지가 ‘아이고! 다리병신 아기, 차버리자’그럽니까? 그게 참사랑입니까? 아닙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끝까지 차 버리게 안 돼있는 것입니다. 더 불쌍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틀립없이 그 사람은 영계 법도에 그냥 통과해 갑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게 귀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참된 남편이라 하는것입니다. 좋을 때 좋아하는 것이 참사랑이 아니고, 나쁠 때 더 좋아하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사제지간도 그런 관계입니다. 그리고 나라의 대통령이나 백성들도 그러한 사랑의 관념을 가져야 합니다.
(117.292,1982.04.11)
하나님께서 제일 사랑하고 제일 귀하게 여기는 물건이 있다면 그것을 하루, 혹은 10년이나 100년쯤 같이 지낸 후에 집어던지게끔 지었겠습니까, 영원히 같이 있게끔 지었겠습니까? 영원히 함께 있도록 지으신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태어났다가 죽으면 그만이면 좋겠습니까, 영생해야 되겠습니까? 영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 절대자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좋아할 수있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루나 이틀, 혹은 10년, 100년 좋아하다 던져 버린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아내가 죽으면 그 아내의 손수건을 갖고 독신으로 살았던 사람도 있습니다. 네루 같은 양반은 자기 아내가 젊어서 죽었는데, 그 아내가 장미를 좋아했다고 해서 일생 동안 장미꽃을 꽂고 다니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39.342-343,1971.01.16)
참사랑이라는 것은 뭐하는 것이냐? 영원히 계속되는 사랑입니다. 봄에도 그 사랑, 여름에도 그 사랑, 가을에도 그 사랑, 겨울에도 그 사랑, 소년 시대에도 그 사랑, 노년 시대에도 그 사랑, 장년 시대에도 그 사랑, 그 다음에 영원한 영계에 가서도 그사랑. 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194.303,1989.10.30)
2. 긍휼과 자비
종교 경전
‘인(仁)’은 ‘사람(人)’이란 뜻이므로 합하여여 말하면 ‘도(道)’가 된다.
맹자VII.B.16 (유교)
자비는 다만 연민과 사랑의 맛이 나는 마음이다.
나가르주나, 보의 화환 437(불교)
아나스와 압둘라가 하나님의 사도의 말씀을 전하기를, “모든(인간)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식이거늘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는 자는 그 분의 자식들을 친절하게 돌보는 자이니라” 하였다.
바이하키 하디스 (이슬람)
신의 사랑에 빠진 자는 만유를 사랑한다.
아디 그란트, 와단스, M.1,p.557 (시크교)
널리 이로운 일에 능숙하고 고요한 마음상태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행해야 한다. 그는 유능하고 정직하고 고결하고 상냥하고 온유하며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만족할 줄 알아서 다른 사람들이 공양하기 쉬워야 하며, 분주하지 않고 생활이 간소하며, 몸과 마음이 고요하고 슬기로우며, 가족에 대하여 무모한 집착을 지니지 않아야 한다.
그는 항상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 ‘일체 존재가 행복하고 편안하며 그들의 마음이 건전할지이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 약하거나 강하거나, 키가 크거나 억세거나 또는 중간이거나, 짧은 것이거나 작은 것 또는 큰 것이나, 예외 없이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사는 것이거나 가까이 사는 것이거나, 이미 생겨난 것이거나 장차 생겨날 것이거나 일체 존재가 행복할지이다!
서로가 속이지도 말고 어느 곳에 있는 어떤 사람이든 경멸하지 말게 하소서. 누구든지 분노나 증오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마음을 내지 말게 하소서. 어머니가 외아들을 목숨 바쳐 구하듯이, 모든 존재를 향한 자애로운 마음이 돈독해지소서. 한량없는 사랑의 마음이 일체의 세게에 위오 아래로, 아무런 장애 없이 원한 없이 적의 없이 두루 퍼져 나가게 하소서. 서 있거나 가거나 앉아 있거나 누워 있거나 깨어 있는 한 자애의 마음이 굳게 새겨지게 하소서.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청정한 삶이라고 합니다.
쿠다카 파타, 멧타 숫타 143-151 (불교)
이제 시샘하는 마음이 다하여 내가 성자들의 세계에 들었도다. 누구와도 수원하지 않으며, 누구와도 타인이 아니며, 진실로 모든 이가 나의 벗이라.
신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 이와 더불어 내가 즐거워하나니, 이것이 내가 성자들로 받은 지혜라. 오, 만유에 충만하신 신이시여! 당신을 바라봄에 내가 활짝 피어납니다.
아디 그란트,카나라.M.5.p.129 (시크교)
시장에서 남의 발을 밟으면 잘못을 사과하지만, 자기 형의 발을 밟았을 대는 애정 어린 가벼운 동작만으로 얼버무리면 되고, 크게 친한 어버이의 발을 밟았을 때는 아무런 표시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다음과같이 말한다. “지극한 예(禮)는 자기와 남과의 구별을 인정하지 않고, 지극한 의(義)는 자기와 사물과의 구별을 하지 않으며, 지극한 지(智)는 모의하지 않고, 지극한 인(仁)은 각별한 친근함이 없으며, 지극한 신(信)은 금(과 같은 물질)이 필요하지 않는다.
장자 23 (도교)
말씀 선집
하나님은 수많은 종교를 통해 ‘사랑해야 된다’고 가르칩니다. 석가모니가 말하는 자비도 사랑을 중심삼은 말입니다. 사랑을 빼놓으면 성립이 안 된는 것입니다. 유교에서 말하는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인의라는 것도 사랑을 빼놓으면 아무 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인(仁)이라는 말도 두 사람 아닙니까? 사람 인(人)자 앞에 두(二) 사람입니다.하늘(天)이라는 말도 두(二)사람(人)이라는 말입니다.
(256.205,1994.03.13)
참다운 사랑은 위하는 데서부터, 참다운 이상도 위하는 데서부터, 참다운 이상도 위하는 데서부터, 참다운 평화, 참다운 행복도 위하는 자리에서 성립되지, 위하는 자리를 떠나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75.318,1975.01.16)
타락한 인간이라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절대 중의 절대입니다. 그것은 존재의식을 넘어서 존재할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만 우주의 어떠한 원동력이나 어떠한 존재물의 주관권내에서 머물지 않고 초월합니다. 사랑은 이념을 초월합니다. 인격적인 가치를 초월합니다. 이 기준은 하나님의 가치까지도 초월할 수 있습니다.
(8.273,1960.02.07)
도대체 참된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사랑인데 어떤 사랑을 참된 사랑이라 하는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것은 원수를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이 참된 사랑이다 이런 말입니다. 백인끼리 사랑하는 거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백인이 흑인을 사랑하는 것이 참된 사랑에 가까운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참된 사랑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어째서 참된 사랑입니까? 그것은 아무도 비판할 수 없고 불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둥글고,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상충 없이 운동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사랑은 나의 눈에 들어와도 좋고, 코에 들어와도 좋고, 입에 들어와도 좋습니다. 걸리는 게 없다는 말입니다 그게 왜 편합니까? 어디에 가든지 막히는 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115.315-316,1981.11.29)
이 악한 세계를 무엇으로 소화할 것이냐? 군사력으로 경제력으로, 지식의 힘으로, 함금의 힘으로 이 악한 세계를 어떻게 소화해야 되느냐? 사랑의 힘으로 소화해야 됩니다. 능력이 많고 권능이 많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굴복 시킬 수 잇는 하나의 비법은 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지식 가지고도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역심을 볼 때, 하나님까지도 싸워서 이기고 싶은 것입니다.
‘왜’ 이런 사랑이 억 천만년 걸려 먹었소! 하나님까지도 내가 굴복시킬 수 있고, 하나님의 모든 것 까지도 내가 전부 빼앗아 가지고 하나님보다 높은, 하나님 이상이 되고 싶다‘ 하는 것이 힘 가지고 됩니까? 지식 가지고 됩니까? 돈 가지고 됩니까? 안 됩니다. 오직 참사랑 하나만 가지면 됩니다. 하나님도 그 사랑 앞에는, 하나님이 아무리 크더라도 참사랑에 걸리면 ’하나님도 내 독에 따라 들어가 있어요.‘ 하면 ’어, 그러자, 그러자!‘ 한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나 중조할아버지, 이제 늙어 죽게 된 할아버지 상투 끝에 증손자가 올라가자마자 미끄러져 내리면서 오줌똥을 확 쌌다고 합시다. 그걸 용서할 법이 어디 있습니까? 얼굴로부터 오만 가지 볼장 다 봤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도 아이구, 어머니 아버지도 아이구, 형제들도 아이구 큰일 났다고 하지만 ‘그놈의 자식, 복수해라!’그럴 수 있습니까? 할아버지가 ‘이이구 원통해, 역사 이래.... 증조할아버지 간판 갖고 죽지를 못해! 하는 선포식이 통합니까?
이럴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위대한 힘, 위대한 능력, 위대한 조화단지, 얼마나 좋습니까? 조화가 데굴데굴 굴러서 얼마든지 들어가는 조화단지, 얼마나 좋습니까?
(139.209-210,1986.01.31)
3. 사랑의 원형운동
종교 경전
나를 사랑하면 내 사랑을 받고 애타게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잠언 8.17 (기독교)
현세에서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보상이 있으리라.
꾸란 39.10(이슬람)
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자비함을 입을 것이다.
마태복음 5.7(기독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안에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11-12,16.19(기독교)
그날에 너희가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내 계명을 받아서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드러낼 것이다.
요한복음 14.20-21(기독교)
남자 신도들과 여자 신도들은 서로 상호 보호자이니라.
꾸란 9.71(이슬람)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아내이신 여러분 주님께 순종하는 것같이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에베소서 5.22(기독교)
말씀 선집
절대적 사랑은 강제가 아닙니다. 자연적으로 순환하는 것입니다. (196.134,1989.12.31)
사랑은 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걸 알았기 때문에 남자를 만들때 위해서 살라고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를 위해서 태어났고, 여자는 남자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그 사랑을 찾는 데는, 그 사랑을 맞이하는 데는 위하는 길에서만이 가능하지, 위하지 않고 위하라고 하는 길에서는 참된 사랑은 없습니다.
(143.54,1986.01.15)
남자로 태어난 사람이 가야 할 길은 자기를 위하는 것으로 종극(終極)지을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하는 것으로 종극 짓게끔 태어났습니다. 남자가 무엇 때문에 태어났느냐? 자기를 위해서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상대를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존재의 기원은 나를 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하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세상이 되거들랑 천국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하고 자식은 부모를 위하게 될 때, 서로 위해 주니까 돌아가는 것입니다. 위하면 위할수록 빨리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상적입니다. 사각형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둥글둥글 한 것입니다. 위하는 것은 밀어 주는 것입니다. 저쪽에서 나를 위하여 밀고 나도 그쪽을 위하여 밀어 주니 빨리 돌아가는 것입니다.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원형을 닮아 있습니다. 얼굴도 둥글합니다. 여기에 둘이 있는데 이 둘이 합해 있는 것입니다. 눈도 동그랗습니다. 상부 하부가 있습니다. 그것이 전부 다 완전히 주고받아야 됩니다. 정맥, 동맥이 주고받습니다. 주는 길은 있는데 받는 길이 없으면 병나는 것입니다. 깨진다는 말입니다. 존재물은 운동을 하는데, 그 존재의 근원에 있어서 위할 수 있는 작용의 원칙을 세우지 않고는 영원히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69.83-84,1973.10.20)
그렇기 때문에 운동을 하게 되면 반드시 점점 가운데가 불러 올라옵니다. 원형이 된다는 겁니다. 소용돌이치는 거기는 파고들어가기도 하지만, 파는 작용도 하지만 올라오는 작용도 합니다. 모래 같은 것을 보면 그런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주위에 있는 것을 모은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주고 받는 힘의 작용에 의해서 이런 원형운동이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내 안에 이쏘 예수님도 내 안에 있고 나도 예수님 안에 있다는 개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셋이 합해서 하나의 원형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124.51,1983.01.23)
수직과 수평이 어디서 합하느냐? 이것은 운동하기 때문에, 구형의 운동이기 때문에 제일 중앙선에서 합해야 된다는 논리가 나옵니다.이것을 중심삼고 저것을 딱 긋게 될 때 그 선에 딱 들어가면 전우주가 공명됩니다. 영계도 환히 알게 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관계되는 세계는 교육이 필요없습니다. 누가 지배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자체가 나를 지배합니다. 하나님까지도 절대 복종한다고 했지 않습니까? 방향성이 틀리면 그 자체가 나를 바로잡아 줍니다.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를 안다는 것입니다.
(214.233,1991.02.01)
4. 신앙과 품성에서 비롯된 참사랑
종교경전
이른바 그 집을 가다듬는 것이 그 몸을 닦는 데 있다고 말한 것은 사람들이 그 친하고 사랑하는 데에서 편벽되며, 그 천하게 여기고 미워하는 데에 서 편벽디며, 그 두렵고 공경하는 데에서 편벽되며, 그 슬퍼하고 불쌍히 여기는 데에서 편벽되며, 그 오만하고 게으른 데에서 편벽된다. 그러므로 좋아하면서도 그의 잘못을 살 필줄알고, 미워하면서도 그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은 그 자식의 악함을 알지 못하며, 그 곡식 싹 큰 줄은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것을 일러 몸을 닦지 않으면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지 못한다고 말한 것이다.
대학 8 (유교)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8 (기독교)
사랑하는 이여, 남편이 사랑스런 것은 남편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아뜨만이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아내가 사랑스런 것은 아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아뜨만이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자식이 사랑스런 것은 자식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아뜨만이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브리하드아란야카 우파니샤드 2.4.4-5 (힌두교)
온유와 절재입니다. 이런 것들을 금할 법은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5.23(기독교)
다른 이에게 전해질 수 있는 사랑이란 어떤 것인가? 나나크가 말하노니, 늘 사랑의 주께 몰입하는 이가 참으로 사랑하는 이로다. 호의와 악의를 구별하는 이는 참으로 사랑하는 이가아니며, 그는 오히려 셈에 사로잡힌 불쌍한 이로다.
아디 그란트, 아사 키 바르, M.2,p.474(시크교)
말씀 선집
우리 인간이 찾는 사랑은 횡적인 사랑, 횡적인 터전이고 하나님의 사랑은 종적인 사랑이기 때문에 종횡이 연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38.140,1992.11.22)
여러분의 몸과 마음 가우데는 누가 들어와 있느냐 하면 하나님이 들어와 있습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하나되면 하나님이 임재한다는 것이 원리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왜 거기에 임재하느냐? 사람의 몸과 마음이 하나되면 반드시 거기에는 사랑이 있습니다.하나되는 원칙이 사랑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상대적 사랑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임한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성전은 어떤 곳입니까? 일하는 곳입니까? 어떤 곳입니까? 성전 하게 되면 안식처라는 말고 통합니다. 그러면 쉬는 데는 무엇 가운데서 쉬는 것입니까? 사랑 가운데 안식하는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쉴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 인간이 바라는 이상이 있다면, 그러한 사랑이 있는 최고의 내심적 기준입니다.그러한 마음의 사랑을 지닌 곳을 심정의 세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솟는 샘터와 마찬가지여서 퍼내고 퍼내더라도 끝이 없습니다. 왜냐?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므로 끝이 없다느 것입니다.
(91.77-78,1977.01.30)
이 경계선, 영점을 왕래할 수있는 것은 참사랑밖에 없습니다. 몸 마음이 이 점에서 하나됩니다. 빈자리가 생기면 메우고 하는 것입니다. 몸 마음이 완전히 거기에서 스톱하는 것입니다. 영점을 통과하는 것은 참사람밖에 없습니다. 그 길밖에 없습니다. 영점, 여자 마음도 영, 남자 마음도 영, 거기에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영점에서 완전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개념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남편과 아내라는, 둘이라는 개념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딱 하나입니다. 그건 뭐냐 하면, 나는 당신을 위한다는 것입니다. 영점입니다. 어디 가나 자유입니다. 돌아서나 엎어지나 자유입니다. 그게 영점입니다. 모든 구형의 중심이 영점입니다. 양쪽을 다 소유한 것이 영점이라는 말입니다. 참사랑이 그렇게 해서 영점에 오는 것입니다.
(230.103,1992.04.26)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나라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또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부모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부모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요,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요,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22.97,1969.01.26)
사랑의 이상을 중심하고 볼 때, 동.식물세계에서는 그 사랑의 관계가 모두 번식을 전제로 하여서만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인간만은 예외입니다. 인간은 부부사랑의 관계에 자유를 누립니다. 이것이 만물의 영장된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아들딸인 인간이 무한한 사랑의 기쁨을 갖도록 축복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참된 자유는 책임성을 전제로 합니다. 만일 책임성이 없이 개개인이 사랑의 자유만 주장하고 실천한다면 얼마나 큰 혼란과 파국이 오겠습니까? 지고한 사랑 이상을 이룰 인간의 완성은 사랑에 대한 책임성을 지닐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 책임성은 다음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인간은 사랑의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자기 수양, 자기 관장으로 자유로운 참사랑의 주체가 되는 책임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사랑의 책임성은 법이나 이목 때문에 지켜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생명적 종적 관계 속에서 자아주관, 자기 결단으로 지켜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상대에 대한 책임성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기 상대의 자기에 대한 사랑이 나누어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부부간의 횡적인 사랑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 간의 종적인 사랑의 관계와 달이, 나누어지면 벌써 그 온전성이 파괴됩니다.이는 부부간에 절대적인 사랑의 일체를 이루게 되어 있는 창조원리 때문입니다.사람은 가지 상대를 절대로 위해야 할 사랑의 책임성이 있습니다.셋째는 자녀에 대한 사랑의 책임성입니다. 자녀들의 자랑과 행복의 기지는 부모의 사랑입니다.
자녀들은 참사랑으로 화합 일체 된 부모를 통해 생명이 태어나고, 그러한 사랑 속에서 양육되기를 바랍니다. 부모의 자녀에 대한 가장 귀한 책임은 외적인 양육만이 아니라 그들의 영성을 온전하게 해 줄 참사랑의 생명적인 요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가정이 소중한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생활적인 경험을 통해 체득하는 참된 자식의 심정, 형제의 심정, 부부의 심정,부모의 심정은 참되 가정 이외 그 어느 곳에서도 얻을 수 없습니다.
(277.201-202,1996.04.16)
남을 위한 삶
신에 대한 헌신가 믿음으로 시작하는 영적인 구도의 삶은 자비와 타인에 대한 봉사를 통해 완성된다. ‘주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에 우리도 사랑하는 것이다.’(요한일서 4.19).위해 사는 사랑의 핵심이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은 인간 내면에 자발적으로 흐르고 있는 사랑하는 마음의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닮아났기 때문이다. 창조의 시작부터 끊임없이 피조물을 위해 살아오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타락으로 인간은 점점 부패해 갔고, 사랑을 성스러운 근원과 분리하고 자기 쾌락적 측면으로 이해함으로써 우리의 마음과 태고, 습관은 모두 자기 중심적으로 변했다. 따라서 조건 없이 먼저 베푸는 것은 상당한 노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우리는 먼저 주는 사회가 아니라 받기만 하는 사회를 만들어 왔다. 이런 사뢰는 자연스럽게 불평등과 원한, 범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세계 종교인들은 봉사하며 남을 위해 사는 삶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가르친다. 예수도 참된 리더쉽은 봉사하는 자세라고 하며, 본인도 “나는 대접받고자 온 사람이아니라 대접하기 위해 온 사람” 이라고 말씀하셨다.
유명한 종교 서적인 바가바드기타와 더덕경에서도 남을 위한 삶이야말로 신이 이 세상을 창조하고 경륜해 가는 근본원리라고 설명하고 있다.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이타적인 행위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행위다. 문선명 선생도 위해 사는 삶이 곧 천국 생활이라고 하며 이 주제에 대한 많은 말씀을 전해주고 계신다.
1. 타인을 돌보는 것이 인생의 근본 도리
종교 경전
서로 남의 무거운 짐을 져줍시다. 그리하면 그리스도의 법을 이룰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2(기독교)
남을 돕는 것은 모든 사람의 마땅한 직분이다.
탓트바르타 수트라 5.21 (자이나교)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줍니다. 불평하지 말고 서로 따뜻하게 대접하십시오, 모두 자기가 받은 은사를 따라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아 선한 관리인으로서 서로 봉사하십시오.
베드로전서 4.8-10 (기독교)
모든 사람은 이웃에 대해 책임지는 존재들이다.
탈무드 산헤드린 27b(유대교)
최상의 인간이란 다른 사람에게 유용한 자이니라.
부카리 하디스(이슬람)
누구든지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24(기독교)
부모님과 친척들, 고아들과 가난한 자들, 네가 아는 이웃과 네가 모르는 이웃들, 동료들과 여행자들, 그리고 너의 오른손이 소유하고 있는 자들에게 친절히 하여라. 하나님은 거만하고 허풍 떠는 자를 사랑하지 않으시노라. 또한 인색한 자, 다른 사람들에게 인색하게 명령하는 자 또한 하나님께서 은혜로서 베푸신 것을 은폐하는 자들이노라.
꾸란 4.36-37(이슬람)
지금까지는 온 세상이 한결같이
각자 제 생각만 하고 있지만.
안타깝다 아무리 생각을 할지라도
남을 구제할 마음이 없으므로.
이제부터는 월일 부탁이야 모든 사람들을
마음을 단단히 바꿔다오.
이 마음 어떤 것으로 바꾸는가 하면
세계를 구제할 한결같은 마음으로.
앞으로 온세상이 한결같이
만가지를 서로 도와 간다면
월일도 그 마음을 받아들여서
어떤 구제도 할 것이라 생각하라.
친필 12.89-94 (천리교)
너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지 말고 타인도 생각하라. 네가 풍족하다 하여 “남들이 내게 관심두지 않으니 나도 그들에게 신경 쓸 필요 없다!” 고 말하지 말라. 네가 운 좋게 사냥했으면 타인에게도 나누어주어라. 또한 많은 강치를 쉽게 잡을 수 있는 좋은 장소를 남들에게알려 주어라.
가끔은 타인들도 그들의 몫을 가질 수 잇게 해주어라. 만일 네가 모든 것을 너를 위해 쌓아 놓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너를 떠날 것이고, 아무도 너와 같이 있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네가 어느 날 병에 걸린다면, 네가 이전에 남들에게 관심두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너를 문병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무엇을 주어라 야마나는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야마나 에스키모족의 입회식 (미주 원주민 종교)
말씀 선집
사랑의 본질은 위함을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가르침을 보면 남을 위하고 절대 복종하고 희생 봉사하라는 것인데, 세상에는 이런 놀음이 없습니다.
(46.42,1971.07.18)
이타주의, 남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모든 것을 몰입하고 희생 봉사하는 삶이 이 세상에서는 가장 멍청한 바보의 인생철학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정말 심오한 진리를 깨닫고 보면 오직 이 길만이 인간세계에 가장 유익한 길이요, 영원히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198.163,1990.02.01)
원리원칙에 들어가서 남을 위해, 상대를 위해 투입하는 자는 천국 가는 것입니다. 교육이라든가 모든 지도 이념에서 막연하게나마 이러한 관점에서 선을 세워 나왔기 때문에, 오늘날 이 지구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69.86,1973.10.20)
상대가 없어 가지고는, 위해서 살 수 있는 상대가 없어 가지고는 참사랑의 길은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398.284,2002.12.15)
넓고 크게 하늘나라의 레일에 맞게끔 지상에서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태어나기를 위해서 태어났으니 위해서 살고, 더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사랑하고 잊어버리고 무한히 사랑해야 합니다.
(306.215,1998.09.23)
참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참은 곧 선한 것인데, 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자기를 중심삼고 전체가 자기 앞에 굴복하기를 바라는 자리에 선 사람은 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선한 사람은 전체를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집안에서도 제일 착하고 귀하고 소망적인 아이라고 할 때, .... 미래에 선을 차지할 수 있는 소망적인 아이라고 할 때는, 할아버지도 ‘그래’ 할머니도 ‘그래’ 어머니 아버지 할것없이 형제 가족 일가친척까지도 ‘그렇다’고 할수 있는 아이라고 할 때는, 그 아이는 틀림없이 할아버지를 좋게 하는 아이일 것입니다.
할아버지에게 매일같이 ‘나좋게 해! 나 좋게 해’ 그러는 아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작은 아이지만 나이 많은 할아버지에 대해서 밤이나 낮이나 할아버지가 좋을 수 있는 길을 언제나 생각하고, 그걸 위해 언제나 행동하고, 언제나 모셔 드리려고 하는 아이임에 틀림없다 하는 결론이 나옵니다.
할아버지에게 뿐만 아니라,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형님 누나 할 것 없이 일가친척 전체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생활양식과, 혹은 예의범절을 따라가는 그아이가 참된 소망의 아들임에 틀림없고, 손자임에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이 결론은 부정될 수 없습니다. 전체를 위해 기쁠 수 있는 환경의 요건을 만들고, 그러한 내용을 제시하려고 하는 사람이 역사시대를 거쳐 와서 선을 이어받을 수 있는 참의 자리에 서 있다는 말입니다.
(174.11-12,1988.02.23)
위하는 사랑을 중심삼고 투입해서 우주가 창조됐기 때문에 우주가 생겨났습니다. 내가 위하면 우주 존속 기원과 일치되니 하나님과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망하지 않으니 나는 망하지 않고, 하나님이 우주의 주인 되니 내가 우주의 주인이 아니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위하는 사람은, 위하는 자는 중심자가 되는 것입니다.
(270.166,1995.05.29)
미국 국민들은 개인주의 사상을 존중시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망각한 개인주의 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막다른 골목에 온 것입니다. 이러한 미국을 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어디서 나올 것이냐? 이제야말로 기독교 정수의 노정을 파헤쳐 가지고 하나님 본연의 생명 길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길 외에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에 있어서 미스터 문이 여러분이 환영하지 않는 놀음을 이렇게 하더라도 필요한 사람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리원칙을 통하여 주장핳나니, ‘네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있고, 네 가정은 민족을 위해서 있고,네 민족은 나라를 위해서 있고, 네 나라는 세계를 위해서 있고, 세계는 하나님을 위해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따르게 되면 하나님 것이자 내 것이 되는 겁니다.
(69.88-89,1973.10.20)
2. 어떤 보답을 바라지 말고 남을 섬겨라
종교 경전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도 아는 대로 이방의 통치자들은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교관들은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중에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마태복음 20.25-27 (기독교)
사심 없는 봉사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상의 청정행은 사심 없는 봉사에 있다.
아디 그란트, 마루, M.1,p.992 (시크교)
남을 위하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자는 주와 하나됨을 얻는다.나나크가 말하노니, 그와 같은 종만이 거록한 주의 이끄심을 받으며 거룩한 은총이그에게 내린다.
아디 그란트 가우리 수크마니 18,M.5,p.286 (시크교)
너희가 이웃을 위해 일하는 것이 다만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임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몰론경, 모사이야서 2.17(예수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성인은 자기를 위해 쌓아 놓지 않는다.
본래부터 남을 위해 모든 것을 주기 때문에 도리어 자기에게 더 많이 있게 되고
본래부터 남을 위해 모두 베풂으로써 도리어 자기에게 더 많게 된다.
하늘의 도는 오직 만물을 이롭게 하고 다치지 않으며
성인의 도는 오직 남을 위해 베풀기만 하고 다투지 않는다.
도덕경 81 (도교)
어떤 일을 하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서로 자기보다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또한 여러분은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볼보아 주십시오,
빌립보서 2.3-4(기독교)
말씀 선집
복 중의 최고의 복이 무엇이냐 하면 희생적인 사랑, 봉사적인 사랑, 남을 위한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43.309,1971.05.02)
어느 누구나, 남자나 여자나 노인이나 젊은이나 할 것 없이 사랑을 다 원하지요? 무슨 사랑? 위하는 사랑! 위하라는 사랑이 아닙니다. 위하는 사랑을 원하는 것입니다.
(211.207,1990.12.30)
나를 중심삼고 사랑을 받겟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입장에 선 것이 하나님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희생하려고 합니다. 양보하려고 합니다. 주고도 또 주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나에게 100억이 있어서 길가에 나가 전부 다 나눠 주었는데, 그래도 마음은 편치 않다는 것입니다. 세계 인류를 못 도와주었기 때문에 돈이 더 있으면 더 나눠 주고 싶다는 말입니다.
(133.180,1984.07.10)
하나님의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 주고 나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주고도 더 주고 싶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을 가지는 사랑입니다. 주고 나서 부끄러운 마음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진정한 사랑의 주인입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옷을 해 입히고 나서도 더 좋은 옷을 해 입히지 못해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주면서도 충만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에 그것을 사랑을 통해서 보충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족하게 주지만 완전한 것으로 보답해 오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하면 할수록 더 큰 것으로 보태지기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 없이는 흥하는 법이 없습니다. 사랑 없이는 영생이 없다는 것입니다.
(38.327-328,1971.01.08)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가? 남을 위하려는 것입니다. 자기의 자주적인 본질을 중심삼아 가지고 남에게 주려고 하는 것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그 사랑은 어디에서 왔는가? 하늘에서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 사랑의 주체이기 때문에 주려고 하는 것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부모가 눈물을 흘리며 ‘내 사랑이 부족하여서 그렇가. 모든 것은 내가 너를 더 사랑하지 못한 탓이다’ 하면서, 그 자식의 뼛골리 녹아나도록 눈물을 흘리면서 더 큰 사랑을 가지고 자식 앞에 나서게 될 때에, 그 자식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돌아서는것입니다. 더 큰사랑은 약한 사랑을 전부 다 소화, 통합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닙니다.
(48.182-183,1971.09.12)
하나님은 왜 위해서 존재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느냐? 그 몇 가지 요건을 들어 보겠습니다. 우선 여러분들에게 묻겠는데 만일 여러분들을 위해서 누군가가 진정으로 생명을 다하고 희생을 다하면서 100퍼센트 은사를 베푼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의 본심이 그 은사를 갚는 데 50퍼센트는 주머니에 집어넣고 50퍼센트만 갚고 싶습니까, 아니면 있는 대로 다 갚고 싶습니까? 우리의 본심이 어떻게 작용합니까? 누구나 더 갚고 싶어하는 것이 본심입니다. 여기 통역하고 있는 미스터 박에 대해서 내가 만약에 100퍼센트 그런것을 줬다면 주는데도 진정 사랑하는 가운데서 준 것을 안다면 이 사람은 100퍼센트 이상을 돌려보낸다는 것입니다.
100퍼센트가 110퍼센트로 돌아오고 그 110퍼센트 돌아온 것은 또 그쪽에서 진정으로 주었기 때문에 120퍼센트를 갚게 되고.....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여기에서 영원이라는 개념이 설정된다는 것입니다. 영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으며 그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비로소 발전과 번창이 생기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뭐냐? 여러분의 가정에 있어서도 다섯 식구가 있는데 누군가가 그 다섯 식구를 위해서 살게 되면 나중엔 그 위해서 살앗던 사람이 그 가정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과 같이. 그러한 중심이 결정됨과 동시에 주체와 대상, 중심과 상대관계에 있어서의 자원적(自願的)인 주관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절대 위하는 그 주체 앞에 주관 받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다는 것을 오늘날 인간들은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게 되면 하나님의 직접주관을 받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인지 모릅니다. 이처럼 여기에서 비로소 주종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무엇이냐? 이상과 사랑은 인간에 있어서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간들은 이런 것이 자기의 것으로서 자기에게 나타나는 줄 아는 것, 이것이 큰 오해라는 것입니다. 사랑과 이상은 어디에서 오느냐? 대상에게서 옵니다. 대상에게서 오기 때문에 위하는 법도를 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혜의 왕 되신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든 결과를 아시기 때문에 그런 법도를 세우지 않을 수없다는 것을 이제 여러분들이 아셨으리라 믿습니다.
(73.326-327,1974.10.08)
3. 우주 창조에서 모든 것을 투입하신 하나님
종교 경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19 (기독교)
천지는 영원무궁하다. 천지가 영원무궁할 수 있는 까닭은 자신을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도를 체득한 성인은 자신을 남보다 뒤로 돌림으로써 남보다 앞에 나서게 되고, 자신을 잊고 남을 위함으로써 자신이 영원히 있게 된다. 이는 결국 자기 자신을 버리고 남을 위한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을 영원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니라.
도덕경 7 (도교)
옛날 창조자 프라자파티는 인간과 더불어 사심없는 봉사의 의무를 지어낸 후 말햇다. “사심 없는 봉사로 너희는 번성할지어다. 너희의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리라.”일체의 사심 없는 행위는, 오, 아르주나여! 영원 무한한 신성으로부터 일어남을 알라! 또한 신은 모든 봉사의 행위와 함께 거하나니 모든 삶은 이법을 지향하느니라. 오, 아르주나여! 자신의 쾌락을 위해 감각적 대상들을 탐닉하고 남의 아픔을 외면하며 이 법을 어기는 자는 누구나 헛되이 사는 것이니라. 그러나 내면에 있는 신을 깨달은 자들은 언제나 스스로 족하다. 내면에서 기쁨과 성취의 원천을 발견함으로써 그들은 더 이상 외계 대상에서 기쁨을 구하지 않느니라. 무엇을 하든 그들은 잃는 것도 얻는 것도 또한 없나니, 아무도 아무것도 그들의 흔들리지 않음을 어찌 할 수 없느니라.
뛰어난 자가 하는 일은 다른 이들도 하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세운 기준은 온 세상에 따르게 되리라. 오, 아르주나여! 삼계에서 내가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얻어야 하나 얻지 못한 것 또한 없느니라. 나는 여전히 행위에 임하지만 나 자신의 필요에 내몰리는 것이 아니다. 만일 내가 지속적인 행위를 멀리 한다면 사람들이 나의 예를 따를 것이며, 만일 내가 행위를 멈춘다면 세상은 혼돈으로 내몰릴 것이며, 이로써 온 세계와 온 인류가 파멸에 이르리라.
일체만유의 복지를 증장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라. 집착 없이 행하라. 사심 없는 봉사와 헌신은 구극의 경지를 얻게 하느니라.마음속에 언제나 다른 이들의 복지와 안녕을 생각하면 지신의 일을 행하라. 지나카 왕이 완성에 이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와 같은 사심 없는 행위를 통해서였으며, 다른 이들도 또한 이러하였느니라.
무릇 무지한 자들은, 아르주나여! 다만 자신의 유익함을 구하여 행하되 지혜로운 자들은 사심없이 일체만유의 복지를 위해 행하느니라. 행위를 포기함으로써 행위에 집착하는 무지한 자들을 혼란으로 내몰지 말라. 자비와 사랑으로 그들이 행위 속에서 행위를 즐기면서 또한 행위에 집착하지 않도록 할지어다.
바가바드기타 3.10-26(힌두교)
프라자파티의 세 자손, 즉 신들, 인간, 악마들은 거룩한 지식을 구하는 학생으로서 그들의 아버지 프라자파티와 살았다. 거룩한 지식을 구하는 학생기를 마친 후, 신들이 말했다. “스승이시여, 저희에게 말해주소서.”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다”라는 음절을 말해 주었다. “너희들은 이해하는가?” “저희는 이해합니다.” 그들이 말했다. “당신은 우리에게 ‘자제하라’(단야타)고 말했습니다.”“옴, 너희는 바르게 이해했다.”그가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에게 말했다. “스승이시여 저희에게 말해주소서.” 그는 그들에게 “다”라는 음절을 말해 주었다. “너희들은 이해하는가?” “저희는 이해합니다.”그들이 말했다. “당신은 우리에게 ‘베풀어라’(닷타)고 말했습니다.” “옴, 너희는 바르게 이해했다.” 그가 말했다.
그러자 악마들이 그에게 말했다. “스승이시여, 저희에게 말해주소서.” 그는 그들에게 “다”라는 음절을 말해 주었다. “너희들은 이해하는가?” “저희는 이해합니다.” 그들이 말했다. “당신은 우리에게 ‘자비심을 지녀라’(다야드왐)고 말했습니다.” “옴, 너희는 바르게 이해했다.” 그가 말했다.
여기서 신의 목소리로 똑같이 “다!다!다!” 즉 “자제하라, 베풀어라, 자비심을 지녀라”하고 천둥친다. 우리는 이 세 가지, 즉 자제, 보시,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
브리하드아란야카 우파니샤드 5.2.2(힌두교)
말씀 선집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냐? 우주의 공법을 지닌 존재입니다. 우주의 공법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하는 것입니다. 그 속성은 뭐냐? 희생과 봉사의 정신을 지니는 것입니다.
(105.99,1979.09.30)
사랑은 자기를 백 퍼센트 투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사랑 때문에 모두, 백 퍼센트를 투입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위해서, 참사랑은 위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189.203,1989.04.06)
하나님이 사랑의 상대로 인간을 지으신 것은, 당신이 인간을 위하는 입장에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도 하나님을 본받아 위하여 존재하게 되어 있었는데, 타락으로 자신을 위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로부터 오기 때문에 ‘위해서 살라’는 철리(哲理)가 생겨난 것입니다.
(149.273.1986.11.27)
하나님이 백 만한 것을, 백 퍼센트 만한 것을 가지고 사랑하면 상대가 백 퍼센트밖에 안 나옵니다. 일대일입니다. 이것이 무한배수가 되니 백 퍼센트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잊어버려야 이게 자꾸 높아집니다. 투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을 가지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우주 창조의 원칙, 존재하는 세계의 근원입니다. 그래서 자기 생명까지도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또 투입하려고 하는 데서 참사랑이 시작됩니다. 참사랑을 위해서는 자기 생명을 투입하고 또 투입하고 또 투입하려고 하는데, 이러한 사랑의 마음이 결속된 세계가 참사랑의 세계입니다.
(253.66,1994.01.07)
하나님의 창조의 원칙이 무엇인가? 창조는 하나님 자체를 투입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투입하는 데서만이, 완전 투입하는 데서만이 완전 결과가 보장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원칙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을 진실 되게 투입해야 되겠습니다. 진실되게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진실 되게 주는 데서만이 미래의 자기의 상대가 벌어지는 것이요, 자기의 발판이 형성되는 것이요, 나를 입증할 수있는 환경적 여건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받는 데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은 창조 원칙에 없습니다.
(82.323,1976.02.01)
창조역사를 한다는 것은 힘의 투입을 말합니다. 창조란 힘을 소모시키는 것입니다. 투입했는데 얼마나 투입했느냐?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하나님이 말씀으로 ‘어! 이래라’해서 장난식으로 창조한 것처럼 알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여기에는 참된 생명을 완전히 투입하고, 참된 사랑을 완전히 투입하고, 참된 이상을 완전히 투입한 것입니다. 창조하기 전과 창조하고 난 후가 다른 것입니다. 창조하기 전에는 자기를 생각했지만 창조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대상을 위하는 시대로 절로 전환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있는 것은 나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 있다, 아들딸을 위해 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하나님은 상대를 만드는 데 있어서 완전 투입함으로 말미암아 보다 가치적이고 이상적인 완전형을 전개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는 아담 해와를 위해서 있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기를 위하던 때에서 상대를 위하는 때로 전개되는 것입니다. 이상적 존재라는 것은 자기를 위주하지 않습니다. 이상적 존재는 남을 위하는 데에, 대상을 위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이 원칙이 우주의 근본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69.82,1973.10.20)
희생적 사랑
참사랑은 희생하는 사랑이다. 남을 위해 살려면 자신의 희생이 필요하다. 세께의 난문제 해결에 동참 하도록 자극하는 것도 사랑이다 타인의 약점이나 실패에 관용을 베풀 수 있는 힘을 주는 것도, 어떠한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타인을 돕도록 이끄는 것도 사랑이다. 예수는 죄지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버린 사랑의 실천자였다. 모세와 무함마드 모두 당대에 핍박을 받고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지만 민족을 해방하고 계몽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일했다. 이 모든가 하나님과 인류를 위한 사랑 때문이다.
불교에 보살이라는 존재가 나온다. 보살은 만유의 존재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것을 다짐했다. 그는 자신의 행복을 타인의 행복과 연관된 것으로 보았고, 타인을 먼저 해방하기 전에는 자신의 행복을 즐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문선명 선생은 희생적 사랑의 근원을 하나님으로부터 찾고 있다. 하나님은 자녀에게 줄 아름다운 집을 짓기 위해 창조를 시작하신 이래로 쉬지 않고 투입해 오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부모가 탕자인 자녀를 슬픔과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구원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인간 타락 이후부터 쉬지 않고 슬픔 속에서 투입해 오셨다. 성스러운 사랑은 우리의 삶 속에서 매일매일 부모들을 통해 구현되고 있다. 부모는 자식의 미래를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1.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조차 바침
종교 경전
사람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한복음 15.13(기독교)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해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주러 왔다.
마태복음 20.28(기독교)
여러분은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자기 몸을 내주신 것같이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에베소서 5.1-2(기독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기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나 자매의 궁핍함을 보고도 마음 문을 닫고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안에 머물겠습니까? 자녀 여러분, 우리는 말로나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
요한일서 3.16-18(기독교)
진실로 우리는 너희를 위했고 너희의 구원을 위해 세상의 불행을 견디어 왔다. 너희는 너희를 소생시키기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신 분을 회피했느냐? .... 너희는 그분이 적의 칼에 위협을 당할 때는 언제나 그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생각하느냐? 또는 그분이 가장 황량한 도시에 감금된 이후에 세상의 헛된 것을 추구한다고 생각하느냐? ....
참으로 그분은 너희가 영광을 얻도록 스스로 굴욕을 당하려고 하셨다. 그러나 너희는 무관심의 골짜기에서 즐기면 놀고 있구나. 사실상 그 분은 너희가 너희의 궁전에서 살 동안 너희를 위해 가장 황량한 처소에서 거하신다.
키타비악다스 이후 바하울라의 서판들(바하이교)
말씀 선집
내가 생명을 바쳐 악을 굴복시키게 되면 생명을 찾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40.243,1971.02.06)
이웃을 위하여 내 생명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는 희생정신이 곧 참사랑입니다.
(224.254,1991.12.07)
사랑이라는 것은 희생의 본질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했다고 해서 그 희생을 희생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희생하면 희생할수록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63.25,1972.10.01)
참된 부모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자식을 사랑할 때, ‘아이고, 내 이거 전부 다 이자 쳐서 받겠다.’ 하는 마음을 가진 부모는 참부모가 아닙니다. 밤낮으로 희생을 하면서도 위하여 사랑하고, 또 하고 또 하려고 하고, 시장에 나갈 때에 거기서도 잊지 않고 더해 주려하며, 24시간 거리를 초월하여 그를 위하는 사랑이야말로 본질적인 사랑과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이런 사랑의 기원이 있기 때문에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기초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142.35,1986.03.03)
사랑하는 경지에서는 모든 것이 통한다는 것입니다. 법을 넘어갈 수 잇다는 것입니다. 법을 넘어갈 수 있다는 말은 사망선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서게 될 때는, 여기서 사랑하는 마음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입장에서는 여자가 남자의 가슴 깊이 파고들어가더라도 남자가 반대하지 않습니다. 반대합니까? 환영합니다. 남자도 그렇습니다. 천만세의 담이 막혀 있다 해도,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담이 있더라도 그 담을 무난히 헤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고, 전체를 투입하고 달려드는 거기에서는 그 어떤 담도 전부 무너지는 것입니다.
(49.52,1971.10.03)
자기와 제일 가까운 사람을 희생시켜야 됩니다. 지금까지 이 세상을 복귀하기 위해 수고해 나오신 하나님의 주의는 어떤 주의냐? 악한 세계를 구하고, 불쌍한 사람을 구하고, 가난한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에게 제일 가까운 사람을 희생시켜 가지고 구원해 나오셨습니다.
종의 종에서부터 아들까지 제물로 삼았습니다. 원수의 족속들을 위해서 사랑하는 아들딸까지 희생시켜 나오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지금까지 이 세계를 위해서, 제일 원수의 종자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제일 사랑하는 당신 편을 희생시키며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이시오, 자기편을 위해서가아니라, 이 세계와 원수의 편을 휘해서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전 인류는 하나님을 푸대접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푸대접하는 현상이 벌이지고 있지만 이것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33.298,1970.08.21)
개인이 전체를 위해서 희생하면 그는 전체 앞에 선한 사람입니다. 어떤 가정이 전체의 가정을 위해서 희생의 생활을 하면, 전체의 가정 앞에 선한 가정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어떤 민족이 자기 민족보다 전체의 민족을 위해서 희생을 하고 그 민족들을 위해서 총력을 기울인다면, 그 민족은 선한 민족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또 어떤 나라가 전 세계 국가를 위해서 희생하고 나서면, 그 국가는 선한 국가로 등장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예수를 보낸 것은 그런 뜻을 이루기 위해서 보냈을 것입니다. 전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이 인류와 국가를 구하기 위해서 자기 국가를 희생시키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희생시켜 나왔더라면, 기독교는 선한 하나님의 뜻을 성취 시킬 수 있는 교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69.86-87,1973.10.20)
참사랑은 누구나 원하는데 누구나 나를 위하라는 감정이 있게 되면 다 도망가는 것입니다. 전체를 위해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주의는 사탄의 전략이요, 사탄의 목적입니다. 세속적인 세계에서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것은 사탄이 붙여준 열매요, 지옥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위해 주는 것입니다. 봉사하고 희생해야 됩니다. 그렇게 봉사 하게 되면 이 모든 전부가 와서 나를 사랑해 주는 것입니다.
‘나를 위하라’ 는 사람은 천국에 못갑니다. 하나님이 걸작품 전부를 품고 사랑하던 것처럼 위할 수 있는 사랑을 찾아가는 사람만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세 번 이상 생명을 바치고도 위하겠다고 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그렇게 세 번 죽어서도 부활해 가지고 하나님에게 ‘나 알아주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하겠습니다.’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 알아주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사는 이 세상이 되면 지상이 천국입니다 천국은 그런 사람이 사는 곳입니다.
(300.223,1999.03.14)
2. 궁핍한 사람을 돕기 위해 고난과 슬픔을 참음
종교 경전
믿는 자들이라면 살아가는 동안 고통과 고난에 스스로 직면하는 것이 그것을 피해 가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로다.
이븐 마자흐 하디스 (이슬람)
그늘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태양의 뜨거움을 모른다.
이갈라족의 격언(아프리카 전통종교)
우리는 마땅히 공동체가 겪는 어려움을 나누어야 한다. 우리의 스승이신 모세가 공동체의 어려움을 같이 나누었음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탈무드, 타아니트 11a(유대교)
예수께서 집에서 음식을 드시는데, 많은 세리와 조인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자리를 같이하고 있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예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당신네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서 음식을 드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그 말을 듣고 말씀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마태복음 9.10-12(기독교)
육체적으로 용감한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사람은 현재의 인생에 직면하고 슬픔을 헤쳐 가며 언제나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킵시기족의 속담(아프리카 전통종교)
믿음이 강한 우리는 약한 사람들을 도와 그들의 짐을 져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에게 좋을 대로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각 사람은 자기 이웃에게 유익을 주어 그들을 기쁘게 함으로써 덕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시기 않았습니다. 도리어 성경 말씀에“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내렸다”고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로마서 15.1-3(기독교)
(도에) 맞는 이가 (도에) 맞지 않는 이를 길러주며, 재주 있는 이가 재주 없는 이를 길러준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어진 아버지와 형이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만일 (도에) 맞는 이가 (도에) 맞지 않는 이를 버리고 재주 있는 이가 재주 없는 이를 버린다면, 어진 이와 어질지 아니한 이가 떨어짐이 그사이가 한 치도 못되는 것이다.
맹자IV.B.7(유교)
보살은 다음과 같이 서원한다. “일체 중생의 모든 괴로움은 나 스스로 지리라. 나는 이와 같이 굳게 결심하고, 그것을 참아 견뎌내며, 뒤돌아보거나 피하려 하지 않으며, 떨거나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겁에 질리거나 낙담하지도 않으리. 그러면 왜냐?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일체 중생의 모든 괴로움을 내가 감내하리라. 이렇게 함에 있어서 나 스스로 기분을 따르지 않으리.
모든 중생을 구제할 것을 서원하고 그들을 내가 필경 구하고야 말리니, 생로병사와 재생의 두려움에서 그들을 구하고, 온갖 도덕적 죄악의 두려움에서 그들을 그해 내야 하리. 내가 애쓰고 노력하는 것은 다만 나 자신의 구원을 위함이 아니며, 일체를 꿰뚫어 아는 지혜의 배를 지어 이 모든 중생을 삼사라의 강물을 건너게 하리, 심히도 건너기 어려운 그 강물을. 일체 중생의 온갖 고통을 몸소 대적하여 내가 맞붙어 싸워야 하리. 내게 목숨이 남아 견뎌낼 수 있는 한 모든 비탄과 괴로움을 참고 견디며, 만세계의 모든 고통과 대적하리.
그러면 왜냐? 모든 중생이 괴로움 가운데 떨어져 있으니, 차라리 내가 홀로 그 고통을 참아 견뎌내는 편이 오히려 나은 까닭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인질이 되어 이로써 모든 중생이 나를 밟고 육도 고해를 건너며, 나는 다만 모든 중생을 위해 그들의 고통을 대신해야하리. 그리고 모든 중생의 다행을 위해 그들에게 틀림없는 믿음을 심어 주리니, 이를 행함에 있어서도 참을 말하며, 스스로 진실하게 하며, 내 말을 번복하지 않으며, 끝까지 그들을 버리지 않아야 하리.“
시크샤사뭇차야 280-281,바즈라드바자수트라(불교)
나는 모든 중생의 주처가 되어 이로써 그들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야 하리. 나는 모든 중생의 수호자가 되어 이로써 그들이 모든 번뇌에서 해방을 받도록 해야 하리. 나는 모든 중새의 피난처가 되어 이로써 그들이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야 하리.
나는 모든 중생을 위해 그 어떤 괴로움도 받아 감당하며, 이로써 그들이 깊이 모를 생사의 심연에서 벗어나게 해야 하리. 나는 고통 가운데 있는 삼계의 모든 중생을 위해 영원히 그 어떤 고통이라도 받아 견뎌내며, 항상 그들을 위해 선의 토대를 쌓으리.
무슨 까닭인가? 다른 모든 중생들이 지옥에 떨어지게 하느니보다는 나 스스로 이 모든 괴로움을 받아 감당하는 편이 나으리라. 나는 공통 가운데 있는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자 대신 고통 받는 볼모 가 되어 그들이 지옥⋅축생⋅아귀의 모든 악도에서 벗어나게 해야 하리.
나는 모든 중생을 지키며 결단코 버리지 않을 것을 서원하니니, 내가 하는 말이 모두 진실하여 추호의 거짓이 없어라. 무슨 까닭이냐? 내가 스스로 온 마음을 다만 다른 모든 중생들의 해탈에 두며, 나 자신을 위하는 불의한 길을 구하지 않는 까닭이다.
대방광불화엄경23(불교)
말씀 선집
사랑은 반드시 희생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또, 사랑은 극복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46.35,1971.07.18)
천국은 지옥을 통과해서 가는 길이다.
(뜻길, p.165)
학생시절에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교복을 벗어 던지고 노동판에 가서 일했습니다. 내가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석탄을 나르는 일도 해보았고, 배도 타 보았고, 머슴살이도 해봤습니다. 온갖 일을 다 해보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고락이 어떤 것인가를 다 알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고락을 겪으며 살고 있는 인간들을 해방시키는 책임자가 되어 이들을 완전히 해방시켜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37.35-36,1970.12.22)
이런 비참한 세계에서 행복한 세계를 찾으려는 사람은 더 비참한 길을 뚫고 넘어가야 됩니다. 더 비참한 데서 찾지 않으면 찾을 수 없습니다. 그 길 밖에 없습니다 만일 그래도 없다면, 하나님도 없고 다 없다고 해야 합니다.
레버런 문도 일생 동안 그런 길을 가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욕먹고 핍박받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런 일 하는데 있으면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그래도 그 자리에 서서 하늘을 중심삼고 ‘나를 따르라! 나는 실망하지 않으며 나는 행복하다’ 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거기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역사적 영웅 열사, 애국 충신, 열녀, 성인들은 그런 자리에서 역사적 인물이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미국의 애국자는 미국을 위해서 비참하게 붙들고 싸운 사람입니다. 생명을 걸고 비참하게 살던 사람입니다. 세계적인 성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91.287,1977.02.27)
우주의 공법은 어떤 사람을 보호할 것이냐? 전체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겠다는 사람은 보호합니다. 그렇지만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희생을 싫어하는 사람은 이 우주 공법이 제거할 것입니다.
(105.91-92,1979.09.30)
종교를 믿는다 해도, ‘나 하나 천국 가자’ 하는 놈들은 사기꾼들입니다. 통일교회는 가정에서도 여편네는 ‘남편을 먼저 천국 보내고 내가 따라가겠다’ 고 해야 합니다. 우선 가정을 천국 보내고 자기가 천국가려 하는 게 통일교인입니다. 대한민국을 천국 보내고 자기가 천국가려고 합니다. 세계 만인을 천국 보내고 천국가려고 합니다. 하나님까지 해방시키고 천국가려 한다면, 그는 예수와 같은 사람입니다. 메시아의 책임이 그것입니다.
메시아가 와서 ‘아이고, 내가 빨리 천국 들어가겠다’고 생각 안 합니다. 개인을 천국 보내고, 가정들을 천국 보내고, 종족을 천국 보내고, 민족을 천국 보내고, 대한민국을 천국 보내고, 이 세계를 천국 보내고 지옥에 있는 모든 만민까지 해방시켜서 천국 다 보내고, 하나님의 자리에 슬픈 모든 것을 내가 다 책임지겠다고 할 때, 그런 책임을 짊어 지고 오신 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하나님이 지옥 보는 것이 마음에 편하지 않으니 하나님이 지옥을 보는 것까지 해방을 시켜 놓고, 천상천국 지상천국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 보기에 구원의 도리가 필요 없는 자리에 서 가지고 끝난 때 비로소 메시아는 천국 들어가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거 심각한 말입니다. 심각한 말 중의 가장 귀한 말입니다.
(188.283-284,1989.03.01)
보편적 사랑
참사랑은 보편적인 사랑이다. 끝이 없는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빠져본 사람은 모두가 한 형제자매임을 경험할 수 있다. 절대적 참사랑과 타락한 세상의 상대적 사랑에는 큰 차이가 있다. 참사랑은 공명정대한 보편적 사랑이 반면, 타락한 세상의 사랑은 일가친척과 친구, 동료만 사랑하는 편협한 사랑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한 개인이 개인적 관심사를 뛰어넘어 인류를 향한 더 큰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야 비로소 참된 인간으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인류를 향한 사랑, 그것으로 충분할까? 이 사랑이 고통 받는 이들을 향한 정치활동 혹은 자선활동으로 표현되는 일반적 동정심과 같을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랑의 진정한 단계는 실질적인 관계 형성이다. 어떻게 얼굴도 알지 못하는, 저 먼 나라에 사는 사람들을 가족을 사랑하듯 똑같은 강도로 사랑할 수 있을까?
여기에 모아 놓은 가르침은 낯선 타인들을 대할 때 가족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똑같이 대하라고 가르친다. 문선명 선생도 이 주제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인종을 초월한 보편적 사랑을 실천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문선생님은 자녀를 다른 인종의 자녀와 교체 결혼시킬 것을 제안하신다. 다른 문화에서 온 상대방 가족을 이해하려는 결코 쉽지 않은 노력을 통해서 우리의 사랑은 인종적 장벽을 넘어서는 진실한 사랑으로 거듭날 것이다.
1.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심정
종교 경전
모두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소서.
모두에게 평화가 있으소서.
모두가 완성에 적합하소서.
모두가 상서로운 것을 경험하소서.
옴, 모두가 행복하소서.
모두가 건강하소서.
그는 자신의 마음이 자비와 사랑의 마음으로 세계의 한 방향을 가득 채우게 한다. 그와 같이 두 번째 방향을, 그와 같이 세 번째 방향을, 그와 같이 네 번째 방향을, 그래서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세계에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한 자비와 사랑의 마음이 편안하게 한다. 마치 고동을 부는 자가 자신뿐만 아니라 어려움 없이 온 사방에서 다 들얼 수 있게 하는 것처럼, 생명의 형태를 지닌 모든 존재들 중에 그냥 지나치거나 내버려지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그들 모두를 마음이 자유로워진 것으로 간주하며 깊은 자비와 사랑을 느낀다. 실로 이것은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이다.
디가 니카야 13.76-77.테빗자 숫타(불교)
언젠가 한 사람이 사도에게 이슬람에서 가장 좋은 행위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사도가 대답하기를 “가난한 자에게 양식을 주고, 아는 사람이건 낯선 사람이건 그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건제는 것이다.”하였다.
부카리 하디스(이슬람)
공자가 말하였다. “오직 어진 자라야맘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사람을 미워할 수 있는 것이다” 공자가 말하였다. “진실로 인(仁)에 뜻을 두면 악함이 없다.
논어 4.3-4 (유교)
성인은 고정된(고집하는, 항상적인) 마음이 없고, 백성의 마음으로써 자기 마음으로 삼는다. 선한 사람은 선히 여기고 선하지 않은 사람도 또한 선하게 여기니, 덕은 선하기 때문이다. 진실한 사람을 진실하게 여기고 진실하지 못한자도 또한 진실하게 여기니, 덕은 진실하기 때문이다.
도덕경 49(도교)
말씀 선집
옛날의 성현들이 가르쳐 준 것은 마음을 중심삼고 하늘을 공경하는 경천사상과 더불어 만민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늘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19.285.1968.03.10)
우주의 본원적인 하나님의 사랑, 그런 사랑이 타락 이후 오늘날까지 살아 나오는 인간 개인에게 찾아 들어가 절충 되었다면 영원한 한날을 중심삼고 올라가도 사랑이요, 넘어져도 사랑이라 할수 있는 경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경지에서는 인격의 귀함이 어디에 있을 것이냐? 그 사람은 말을 잘해서 좋다거나, 그 사람의 눈이 비둘기 눈 같아서 좋다거나 하는 것을 초월합니다. 어디를 보아도 잘못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와 관게되어 있는 모든 것은 전부 향수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은 전부 하나님의 형상으로 볼 때 하나님의 분신이요, 하나님과 인연되어 있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는 심정을 가지고 보면 전부 친구입니다.
(33.89-90,1970.08.09)
적이든 친구든 사랑하는 마음은 마찬가지입니다. 우주적입니다. 전부가 하나의 세포와 마찬가지입니다. 4백조에 달하는 세포가 합해야 사람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든 전체의 세포와 통할 수 있는 사랑의 화신체가 되어야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25.132,1992.01.05)
사랑은 국경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오색 인종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흑인종⋅황인종 무슨 차별이 없습니다. 사랑은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흐름에 있어서 환경을 개의치 않고 흘러가면 환경이 동화되지, 환경이 반발하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상적인 내용을 갖춰야 하나님이 좋아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랑의 배급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64,93,1987.04.26)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할 때 자기보다도 상대를 더 사랑하는 분입니다 자기보다도 상대편을 더 사랑하여 두 사람이 하나 되어 가지고 더 큰 범위의 상대편을 사랑하기 위한 운동이 하나님의 운동입니다 하나님의 사상은 이것이 본질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제일 가까운 사람을 악한 세상에 보내서 세계 인류를 위해서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위인들, 과거에 왔다 갔던 성인 현철들은 전부 이 세상에 와서 ‘인류를 사랑하자’ 는 타이틀을 걸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가정을 중심삼고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국가라든가 세계를 사랑했습니다. 국가를 넘어서 세계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면서 환영받은 것이 아니라 전부 배척받아 희생되었습니다.
(100.81,1978.10.08)
2. 자기 가족을 사랑하는 심정으로 남을 사랑함
종교 경전
마치 어머니가 자신의 생명에 대한 위험을 무릅쓰고 외아들을 보호하듯이, 그로 하여금 모든 존재에 대한 무한한 동정심을 지니게 하라.
쿠아카 파타,멧타 숫타 (불교)
일체중생에 대한 자비심이 없다면 부모에 대한 효성도 윤회를 부른다.
밀라레파(불교)
내 어른을 공경하여 남의 어른을 공경하는 데에게까지 미치며, 내 어린이를 사랑하여 남의 어린이를 사랑하는 데에게까지 미친다.
맹자I.A.7(유교)
나는 마치 부모에게 효성을 보이듯 일체 존재의 편의를 도모하고 섬기리라. 스승들과 장로들과 아라한들과 여래들이 이르기까지 한 가지로 합당하게 공경하리라.
가다비유하 스트라,사만타바드라의 서원(불교)
자비와 연민과 기쁨을 실천한 위대한 분, 보디사트와 가장 사랑스런 외아들의 지위를 얻는다. 예를 들어, 아들이 평화롭게 있는 것을 볼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크게 기뻐하는 것과 같다. 이 단계에 머무는 보디사트와 의 경우는 바로 이와 같다. 그는 일체 존재를 마치 부모가 외아들을 보는 것처럼 본다. 그들이 선을 실천하고 있을 때 그는 크게 기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단계를 가장 사랑하는 계위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아들이 아플 때 걱정한다. 가엽게 여기는 마음이 그들의 가슴을 적신다. 그 마음은 아들의 아픔과 떨어질 수 없다. 이 계위에 있는 위대한 분, 보디사트와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가 미혹의 병에 걸린 존재들을 볼 때 그의 가슴은 아픔으로 가득하다. 그는 마치 외아들에 대한 부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걱정한다. 피부의 모든 모공에서 피가 난다. 우리는 이 계위를 외아들의 계위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흙, 더러운 것, 기와, 돌조각, 오래된 뼛조각, 나무토막을 집어서 입에 넣는다면, 그로부터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을 아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얼른 왼손으로 아기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입에 든 오물들을 꺼낸다. 보디사트와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는 일체 존재가 법신의 단계로 성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며 몸, 말, 뜻에서 불선이 행해진다는 것을 안다. 보디사트와는 그것을 알고 지혜의 손으로 불선을 뿌리 뽑는다.
그는 사람이 생사를 거듭하며 슬픔과 고통을 겪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아들의 죽음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와 이별할 때, 그들은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그와 함께 죽고싶은 마음이 든다. 보디사트와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가 지옥에 떨어진 어리석은 사람을 볼 때, 그 또한 몸소 그곳에 태아나고 싶어 한다. (그는 생각한다) ‘아마 저 사람은 스슷로 고통을 당할 때 참회의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그때 나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할 수 있을 것이며, 이로써 그가 선한 생각을 하게 할 수있다.’
외아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나 깨나, 걷거나 서있거나 앉아 있거나 쉬고 있거나 항상 그 아들을 생각한다. 만일 그가 그릇된 행동을 한다면, 그들은 상냥하게 타일러서 그 아이가 더 이상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인도한다. 보디사트와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지옥에 떨어진 중생들, 굶주린 아귀들이나 축생들을 볼 때, 또는 인간계나 천계에서 선하고 악한 행위를 하는 그들을 볼 때, 그의 마음은 항상 그들과 함께 있으며,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그는 그들이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여워하거나 악한 위도로 벌하지 않는다.
마하파리니르와나 수트라470-471(불교)
말씀 선집
자기 자식에게만 예쁘다고 젖을 먹일 것이 아니라, 남의 자식도 내 자식 같다는 심정으로 대하는 어머니가 되어 보십시오, 그런 어머니의 젖을 목고 자라나는 아기들은 반드시 위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31.168,1970.05.24)
여러분이 우주적인 천국의 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과 진리의 운동을 전개한다면, 평화의 세계가 이 땅에 건설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부모만이 부모가 아니고, 자기의 형제만이 형제가 아니며, 자기의 아들딸만이 아들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든 사람을 나의 부모, 형제, 자녀로 여길 수 있는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되면, 사망세계에서 시달리는 뭇 백성들을 바라볼 때 눈물 없이는 대할 수 없을 것이며 형제나 나이 어린 사람들을 바라보게 될 때에도 그들을 구하겠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눈물 흘리며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진정으로 그러한 여러분이 된다면 그러한 여러분을 중심삼고 이 땽에 천국이 건설 될 것입니다.
(2.144,1957.03.17)
예수님이 말하기를 ‘네 집안 식구가 원수’ 라고 했습니다. 집안 식구들을 더 사랑했다가는 그게 원수라는 것입니다. 천국 못 간다는 말입니다.
(161.249,1987.02.22)
참된 효자를 거느릴 수 있는 부모는 자기에게 효도하는 자식을 칭찬하는 것보다, ‘나에게 효도하듯이 형제를 나 이상 사랑하고, 이웃과 나라를 위해서 나 이상 사랑해라’ 하고 가르쳐 주는 부모입니다. 효자를 거느릴 수 있는 자격은 그런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군이 있다 할 때 그 선군은 충신을 대해서 말하기를 ‘충신아! 네가 나를 위해서 정성들이고 사랑하는 것은 좋지만 먼저 백성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난 후에 나를 사랑해라’ 하고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충신을 거느릴 수 있는 선군 자격이 있습니다.
오늘날 성인을 거느릴 수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겠습니까? 하나님이 말하기를 ‘너는 나한테 충성의 도리를 다 해라’ 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나를 버리고라도 만민을 사랑하고, 이 지구상의 모든 것을 해방하는 동시에 영계에 있는 영인까지 사랑하고 나서 나를 사랑해 달라’ 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기 때문에 만군의 여호와라는 명칭을 영원히 지닐 수 있습니다.
(85.265,1976.03.03)
누가 효자입니까? 부모님이 제일 좋아하는 것을 중심삼고 늘 생각하면서, 그 일을 행동으로 이루어서 상대역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 그런 자리에선 사람을 효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눈으로 보고 뭘 느낄 때 부모님이 더 좋아하시는 걸 보고 느끼고, 말씀을 듣게 될 때도 ‘아, 부모님이 이런 말 좋아하겠느냐, 어떻겠느냐? 하는 것을 중심삼고 듣는 겁니다. 느낄 때도 그렇고, 모든 오관의 감정이 부모님을 중심하여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사람, 심정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효자가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볼 때 어떤 효자가 있고 애국자가 있고 성인이 있다 한다면, 이들은 모두 세계를 중심한 생각을 한 사람들입니다. 이 지상을 중심삼은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우주의 중심된 하나님을 중심 삼으련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하늘과 땅을 사랑으로 품으려고 하고, 이 모든 우주의 존재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에 합당한 존재가 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161.132-133,1987.01.180
3. 특히 이방인, 외국인, 사회가 멸시하는 자를 사랑하라
종교 경전
세상에 신도 많고 주도 많지만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 말로 신이시오 주이시다. 크고 힘 있으며 지엄한 신이시오 뇌물을 받고 낯을 보아주는 일이 없는 신이시다. 고아와 과부의 인권을 세워 주고 떠도는 사람을 사랑하여 그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 너희도 한때는 이집트 땅에서 떠돌이 신세였으니, 너희도 또한 떠도는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신명기 10.17-20(기독교)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서 예수를 시험하여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하였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대답이 옳다. 그대로 행하여라. 그러면 살 것이다.”
그런데 그 율법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서 예수께 말하였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예수께서 응답하여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두고 갔다.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이와 같이 레위 사람도 그곳에 이르러서 그 사람을 보고 피아여 지나갔다.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잇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올리브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에 자기 짐승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었다. 다음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서 여관 주인에게 주고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 하였다. 너는 이 세 사람 사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 너도 그와 같이 하여라.”
누가복음 10.25-37(기독교)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널 때 천사들이 합창을 하려 하자 거룩하신 그분께서 그들을 책망하시며 말씀하시길 “내 자녀들이 물에 빠지는데 어찌 노래를 할 수 있는가?
탈무드, 메길라 10b(유대교)
보살은 일체 존재에 대해 한결같은 자세로 임해야 한다. 그의 마음은 일체 존재에 대해 평등해야 하며, 그는 한결같지 않은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대해서는 안 되며, 친근하고 우호적인 마음, 해를 끼치거나 미워하는 마음 없이 대해야 한다. 그는 다른 이들을 마치 자신의 어머니, 아버지, 아들 또는 딸인 것처럼 대해야 한다. 일체 존재의 구제자로서 보살은 일체 존재를 대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려 한다면 스스로의 마음을 닦아야 한다.
팔천송반야 321-322(불교)
말씀 선집
남남끼리 모여서 형제이상 사랑하지 못해 가지고는 천국에 못 간다. 하나님을 사랑하듯 사람을 사랑하여야 한다.
(뜻길, p.166)
우리는 그 사랑을 가지고 종족과 민족을 초월할 수 있는 사랑의 화신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사랑에는 개인과 종족, 종족과 민족, 민족과 국가, 국가와 세계, 천주 혹은 하나님까지 연결될 수 있는 종족적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즉, 그 사랑은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 하나님까지 종적인 인연을 맺게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원이 되는 동시에 횡적으로 세계에 까지 넓혀서 세계 인류를 형제의 인연으로 묶을 수 있고, 역사 과정에 나타난 모든 부정적 여건을 영원히 부정할 수 있는 절대적인 사랑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무엇을 중심삼은 것이냐? 그 사랑은 개인을 중심사은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가정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며, 종족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며, 민족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 또는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사랑입니다. 세계를 초월하여 천주를 중심삼은 것이며 천주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입니다. 또한 하나님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나가자 하는 것이 통일사상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35.271-272,1970.10.25)
자기가 백인이라고 해서 ‘아이고, 난 백인만 좋아, 백인 할머니 할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흑인 할머니 할아버지, 아시아인 할머니 할아버지는 사랑 못 해, 잘 입고 아주 멋진 할머니 사랑하지, 저 미개한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 못 해.’ 하면 안 됩니다. 그 할머니 할아버지를 자기 할머니 할아버지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집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하는 것같이 사랑해야 됩니다 그것이 공식입니다 사람이 이 땅 위에 살면서 훈련받기 위한 공식이라는 말입니다.
(130.274,1984.02.05)
우리 축복가정 가운데서 세 아들이 있다면 하나는 독일 사람 며느리를 얻고, 하나는 불란서 사람 며느리를 얻고, 하나는 영국 사람 며느리를 얻는 것입니다. 세 며느리 나라가 원수입니다. 전부 원수 나라의 며느리를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경쟁하며 싸울 겁니까, 밥 ajar는 것까지 ‘나눠 먹자’ 이럴 겁니까? 이건 독일 며느리 먹을 것, 이건 불란서 며느리 먹을 것, 이건 영국 며느리 먹을 것, 이렇게 할 겁니까, 섞어 놓고 먹게 할 것니까? 어떻게 할 겁니까?
섞어 놓고먹다가 흘리면 어떻게 할 겁니까? 흘렸어도 그저 긁어다 먹을 겁니까,어떻게 할 겁니까? 맨 처음에는 싫지만 눈을 이러고 긁어다 먹는 겁니다. 왜? 아프리카 사람이 먹던 것을 내가 먹지 않고는 사랑하는 것이 안 되니 그러는 것입니다. 백인들끼니만 아니라 아프리카 사람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때를 위해서 지금 준비를 다 해야 됩니다. 그게 얼마나 놀라운 사실이냐는 것입니다. 떨어뜨린 밥을 먹는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하고 사랑이 임재하는 것입니다.
(99.134-135,1978.09.10)
여러분들은 미국 사람은 미국 사람만, 동양 사람은 동양 사람만, 그리고 자기 씨족적, 민족적, 국가적 기준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사랑을 중심삼고 인종차별 문제를 소화시켜야 됩니다. 그건 무엇으로 증명하느냐? 국제결혼이다 이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것이 개략적인 입장의 역사적인 진실된 관점에서 보는 관입니다.
(112.86,1981.04.01)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라고 악을 선으로서 되돌려주라는 말은 때로는 아주 비현실적이고 완벽주의는, 도덕론자의 사상이라고 치부되기도 한다. 이는 세계적으로 많은 종교에서 널리 가르치는 사상이기도 하다. 이 정신은 타인과의 평화로운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근본원리다.
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정의’라는 이름으로 보복을 원한다. 모두가 ‘눈에는 눈’의 방식을 주장한다면 이 세상은 모두 눈 먼 세상이 될 것이다. 복수는 악을 증대시킬 뿐이다. 이 방법으로는 하나님과 인류를 향한 사탄의 참소인 악의 뿌리를 근절할 수 없다. 문선명 선생은 원수를 향해 베푸는 상상을 초월한 사랑은 악을 뿌리까지 근절하고, 나아가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까지 인도해 줄 것이라고 하신다.
이 장에는 십자가에 달리실 때까지 원수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이 포함되어 있다. 한편,현대의 유명한 도덕적 선구자 마하트마 간디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지침도 함께 실었다.
종교 경전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고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비추어 주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하면 무슨 보상을 받겠느냐? 세리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또 너희가 형제들에게만 인사하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이방 사람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저희도 완전하라.
마태복음 5.43-48(기독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닮아라. 내가 악을 선으로 갚는 것처럼 너희도 악을 선으로 갚아라.”
출애굽기 랍바 26.2(유대교)
하나님은 너희와 너희가 적대감정을 갖고 있는 자들 사이에 사랑을 주실 것이니라.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신 분이기 때문이도다.
꾸란 60.7(이슬람)
하나님의 사도가 이르기를 “현재와 미래가 가장 훌륭한 교훈을 가르쳐 주겠노라. 너희를 억압하는 자를 용서하고 너희에게서 등 돌린 자와 유대를 맺고 너희를 모욕한 자에게 친절하고 너희에게서 빼앗은 자에게 주는 것이니라.”
하디스 (이슬람)
“그가 나를 헐뜯고 상하게 했다. 나를 누르고 내 것을 앗아갔다.” 이러한 생각을 품지 않으면 마침내 원한이 가라앉으리라.
이 세상에 원한은 결코 원한에 의해서는 풀리지 않는다. 원한을 버릴 때에만 풀리나리, 이것은 변치 않을 영원한 진리다.
법구경 3-5 (불교)
덕으로 원한에 보답하라.
도덕경 63(도교)
선행과 악행이 서로 같지 않으니 좋은 행동으로 악을 퇴치할지니라. 그리하면 너희와 적은 절친한 친구가 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오직 인내하는 자에게 그것이 주어지며, 큰 행운을 가진 자만이 그것을 얻을 수 있다.
꾸란 41.34-35(이슬람)
너희는 길을 잃은 원수의 소나 나귀를 만나면 그것을 임자에게 반드시 데려다 주어야 한다. 너희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에 깔려 잇는 것을 보면 내버려두지 말고 그곳을 일으켜 세우는 것을 반드시 도와주어야 한다.
출애굽기 23.4-5(기독교)
증오심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네 친구를 도와주기 이전에 먼저 원수를 도와주어라.
토세프타,바바 메치아 2.26(유대교)
그들은 ‘해골’ 이라는 곳에 이르러서,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죄수들도 그렇게 하였는데, 하나는 그의 오른쪽에, 하나는 그의 왼쪽에 달았다. 그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제비를 뽑아서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가졌다.
누가복음 23.33-34(기독교)
말씀 선집
천국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과 같은 사람이라고 했으니, 하나님이 원수를 사랑하는 하나님이라면, 원수를 사랑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그것을 위해서 전부를 투입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계시는 높은 보좌 가까운 데 가서 살 것입니다. 이렇게 볼때, 교육 중에서 제일 귀한 교육이 무엇이겠습니까? 수양 중에서 제일 귀한 수양이 무엇이겠습니까? 무슨 교육이니 수양이니 해도 원수를 사랑하려고 노력하기 위해 배우고, 그렇게 노력하기 위해 수양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것입니다.
(124.155,1983.02.06)
사탄세계의 사랑과 하늘 세계의 사랑이 어떻게 다르냐? 사탄세계는 원수를 원수로 갚는 것이고, 하늘세계의 사랑은 원수를 사랑으로 갚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겠다면 원수는, 도망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역설적인 길을 간 것입니다. 종교인들이 역설적인 길을 간 것은 전부 다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전부 다 거꾸로 되었기 때문에 할 수 없다. 이것입니다. 서쪽이 동쪽이 되고, 동쪽이 서쪽이 되고 거꾸로 되었습니다. 남북도 남쪽이 북쪽이 되고, 북쪽이 남쪽이 되었습니다.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개인 원수를 사랑하고 가정 원수, 민족 원수, 국가 원수, 세계 원수, 우주 원수까지 사랑하지 못하면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자리에 있습니다.
(130.161,1984.01.08)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좋아하자는 것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내가 좋아하면 그 사람이 나빠합니까? 좋아하는 것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내가 세 번 이상 좋게 대해 주면 그가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세 번만 잘 해주면 고개를 숙입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한번 해보세요. 사람에게는 양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잘못했는지 잘했는지 빤히 압니다.
(39.303-304,1971.01.16)
성경에 말하기를 ‘원수를 사랑하라’ 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원수에게 그 사랑이 미쳐서 1차 2차 3차 4차만 지나가게 되면 원수는 반드시 없어집니다. 이런 위대한 힘을 가졌기 때문에 예수도 원수를 사랑한 것입니다.
(121.173,1982.10.24)
여러분들, 누구 반대하는 사람을 볼 때 ‘아, 불쌍하다’ 고 생각해 봤습니까? ‘내가 그런 자리에 가기 때문에 시기해서 그러는구나! 하고 생각해 봤습니까?
(105.31,1979.07.08)
때려죽이고 싶은 원수가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왜 벌을 못 주느냐 하면 그 원수를 사랑하는 그의 부모와 아내와 아들딸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눈물의 골짜기를 넘어서 그 원수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그의 부모와 아내와 지식들의 심정을 체휼할 때 채찍을 내려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런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심정을 정말 느끼게 되면 원수를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걸 알고나면 도리어 사람을 시켜서 원수를 도와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천지의 대도,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로 품으려는 그 대도 앞에 내가 가까이 서게 되고, 거기에 천지가 진동하고, 하나님도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입니다. ‘너, 나를 닮았구나. 아이구 좋아! 이러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힘이 나오는 것은 지식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닙니다. 참사랑에만 있는 것입니다.
(201.150,1990.03.30)
자기 집보다 자기 일족을 더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 예수보다도 원수인 이스라엘, 유대나라를 위하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아들을 죽음의 자리에 내세운 것입니다. 이스라엘, 유대나라를 더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십자가에서도 원수를 사랑했습니다. 창으로 찌르는 로마 병정에 대하여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했습니다. 로마 병정의 죄를 사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렇게 한 것은 로마의 평화가 아니라 하늘 가정의 평화의 기준을 찾기 위해서 시작했던 것입니다.
(235.224,1992.09.20)
원수의 아들딸을 위해서 하나님 편 사람을 희생시켜 제물삼아 오는 것이 하나님의 길입니다. 아벨은 하나님 편의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 아들딸 보다도 더 사랑하고, 자기보다도 더 사랑하는 입장을 취하자는 것이 아벨의 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만 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탄도 ‘아이고, 나는 하나님과 같은 사랑을 못 받게 되어 있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거기서부터 사탄이 물러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갈 때에도 그들에게 복을 빌어주고 자기가 죽어서 복 받는 것보다도 자기가 희생되어 없어지더라도 그들의 복을 빌어주는 것입니다. 양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러한 자리에서 머리 숙이지 않고 마음이 뒤집어지지 않는 존재가 있을 것 같습니까? 그렇게 해서 영원히 원수와 영원히 이별하고야 이상시대로 들어갑니다.
사탄이 이런 원칙에 의해서 ‘하나님이 아들딸로서 원수 되는 나를 사랑했다.’는 사인, 증명서를 발급해 줘야 도는 것입니다. 사탄이 ‘이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래야 됩니다. 그때에 품고 사랑하는 그 사람을 보고 사탄이 ‘에이, 이놈아!’ 해서는 안 됩니다. ‘아멘!’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사탄과의 관계를 청산해야 됩니다.
(118.172,1982.05.30)
반대하면 할수록 세계를 대했던 하나님은 레버런 문 편으로 가겠습니까, 반대하는 편으로 가겠습니까? ‘선생님 편으로는요,’ 왜 선생님 편으로 옵니까? 반대하는 사람까지도 사랑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반대하는 원수를 복수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피에는 피,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소화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168.204,1987.09.20)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통일의 세계입니다 즉 하나의 세계인 것입니다. 그런 세계는 국경이 없는 세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국경이 없기 때문에 원수를 갚으라는 말을 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그 말속에는 국경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해서 하나 만들면 국경이 무너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략전술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위대한 전략이요 위대한 전술적인 내용이 됐다는 것을 오늘날 인류 역사가 몰랐고, 오늘날 현재 살고 있는 인간들도 몰랐습니다.
원수 국민들끼리 서로 결혼해서 아들 며느리 삼지 않으면 못 살겠다고 하는 사람들만 되는 날에는 통일천하가 자동적으로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오늘 저녁 여러분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국경이 있는 데는 반드시 악마의 족속이 사는 것이요, 삼팔선이 없이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는데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족속, 하나님의 혈통을 지니고 난 족속이 사는 것입니다.
(330.255,2000.08.18)
내가 사람을 의심할 때 나는 고통을 느낍니다.
내가 사람을 심판할 때 나는 견디지 못합니다.
내가 사람을 증오할 때 나는 존재의 가치를 잃습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믿으면 나는 분명히 속임을 당합니다.
내가 만일 사랑하면 나는 거역을 당할 것입니다.
오늘 저녁 내 머리오 몸은 고통과 슬픔에 떨고 있습니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나는 잘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내가 속임을 당할지라도 나는 역시 믿습니다.
내가 반역을 당할지라도 나는 역시 용서합니다.
나는 나를 증오하는 자를 송두리째 사랑할 것입니다.
오, 주여! 사랑한다는 아픔이여
내 손을 보아주세요.
이 내 가슴에 주의 손을 얹어보소서.
나의 가슴은 말할 수 없는 고뇌 속에 터질 듯만 하옵니다.
그러나 나는 거역한 자들을 내가 사랑할 때 승리를 성취하옵니다.
만일 당신도 나같이 사랑한다면
나는 당신께 영광의 왕관을 드리오리다.
(518.221-222, 영광의 면류관, 1935년)
[참고사항]
⊙ 드러난 겉모습을 넘어서 경솔한 악행의 이면을 바라보면 그 원수 같은 이웃의 내면에도 어느 정고 선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악행이 그 사람의 모든 성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증오가 공포와 자만, 무지, 편견, 오해에서 시작되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형상이 존재 안에 새겨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결국 그의 모두가 악한 것은 아니며, 그 역시 하나님의 구속을 벗어난 존재가 아님을 알게 되고, 그렇게 하면 우리는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틴 루터 킹 2세, 사랑의힘(기독교)
⊙ 우리가 단지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비폭력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할 때 그것이야말로 비폭력입니다. 이 놀라운 사랑의 법칙을 따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나는 압니다. 그러나 위대하고 선한 모든 것은 행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미워하는 자에 대한 사랑은 모든 일 중에 가장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꺼이 하고자 한다면 가장 어려운 이 일조차도 신의 은총에 의해 쉬워집니다.
모한다스 K.간다,모든 사람은 형제(힌두교)
⊙ 자신의 친구에게 우호적인 것은 아주 쉽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당신의 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우호적이 되는 것이야말로 참된 종교의 핵심입니다 그 외의 것은 단지 비즈니스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한다스 K.간디,모든 사람은 형제(힌두교)
용서
내게 잘못을 행한 자에게 용서를 베풀라는 관용의 태도는 모든 경전에서 강조한는 내용이다. 용서는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이다. 기독교인의 의무는 용서하는 것이라고 기도에도 나와 있다. 하나님이야 말로 언제나 용서해 주시는 분이다. 꾸란에도 나와 있듯이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가고자 열망하는 가는 용서의 마음으로 가득 차야 한다.
부모에게는 용서가 자연스럽다. 우리가 타인에게 부모의 심정으로 다가갈 때,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같은 심정으로 그들을 대할 때 우리는 용서할 수 있다. 나에게 엄청나 불의와 해를 가져다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원한을 품음으로써 내 영혼을 다시 한 번 상처 입히고 곪게 하는 것보다 훨씬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면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용서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다. 가볍게 잊어버리고 발로 뭉개버릴 문제가 아니다. 쉽게 형식적으로 용서하는 것은 위선이며, 계속되는 원한의깊은 감정을 가면으로 덮어 놓는 것일 뿐이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이렇게 말했다. “용서한다는 것에 기억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마치 어제 날씨를 잊어버리듯 자연스럽게 잊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는다는 것입니다.”
문선명 선생은 남을 용서하고 싶으면 용서가 필요한 긍정적 이유를 찾으라고 하신다. 과거 잘못에 대한 아픈 기억을 대체하고 새롭게 관계를 시작할 만한 이유를 찾으라는 것이다. 그분도 하나님이 인간을 용서하신 이유를 탐구하셨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이해하고 동정하기 위해서 그의 단점과 고뇌가 무엇이었는지를 찾고자 노력하셨다.
종교 경전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마태복음 6.11-12(기독교)
만약 너희가 용서하고 관용을 베푼다면, 그렇게 하나님은 관대하고 자비로우실 것이다.
꾸란64.14 (이슬람)
알라는 가장 관대하시며 다른 이를 용서하는 자를 사랑하시니라.
알가마 알사가이르 2.1749(이슬람)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해 주면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남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으실 것이다.
마태복음 6.14-15(기독교)
가장 좋은 보상은 믿는 자들에게 주는 하나님의 보상이며, 화를 냈다가도 곧 용서해 주는 자들이노라. 악에 대한 보답은 같은 악이니라. 용서도 잘하고 화해도 잘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보상을 주시노라. 실로 그분께서는 불의한 자들을 사랑하시지 않노라.
꾸란 42.36-37,40,43(이슬람)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다른 제자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 주어라. 그가 네게 하루에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서 ‘회개 한다’ 고 하면 너는 용서해 주어야 한다.
누가복음 17.3-4 (기독교)
진정으로 위대한 자는 사람들에게 용서받지 않고 사람들을 용서해야 한다.
주희(朱熹) (유교)
훌륭한 사람의 최상의 행위는 용서와 불문이니라.
나흐즐 발라가, 어록 201 (이슬람)
군자는 잘못을 용서해 주고, 또 그들의 죄를 관대하게 감해준다.
역경 40 (유교)
이므란의 아들 모세가 “주여, 당신의 눈에 가장 훌륭한 당신의 종복은 누구입니까?” 라고 묻자 그 대답은 “권력 있는 지위에 있을 때 용서해 주는 자이니라” 였다.
바이하키 하디스(이슬람)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간음을 하다가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워 놓고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인, 이 여자가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런 여자를 돌로 쳐서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이 일을 놓고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예수를 시험하여 보고 고소할 구실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몸을 굽혀서 손가락으로 따에 무엇인가를 쓰셨다. 그들이 다그쳐 물으니, 예수께서 몸을 일으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에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러고는 다시 몸을 굽혀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이로부터 시작하여 하나하나 돌아가고 마침내 예수만 남았으며, 그 여자는 그대로 서 있었다. 예수께서 몸을 일으켜 여저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사람들은 어디에 있느냐?” 너를 정죄한 사람이 하나도 없느냐? 여자가 대답하였다. “주님 한사람도 없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요한복음 8.3-11(기독교)
원수가 넘어졌다고 좋아하지 말고 그가 망했다고 기뻐하지 마라. 여호와께서 그것을 못마땅하게 보시고 네 원수에게서 노여움을 돌이키신다.
잠언 24.17-18(기독교)
복수를 하거나 적의를 가지고 행하는 자는 칼을 쓰면서 자기 손을 자르는 것처럼, 다른 손에 상처를 냄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앙갚음하는 것과 같다.
예루살렘 탈무드, 네다림 9.4(유대교)
관용으로 분노를 흩어 버리라.
가마나숫캄 136(자이나교)
관중은 “백씨의 읍 삼백호를 빼앗았는데, 백씨는 거친 밥을 먹으며 평생을 마칠 때까지도 원망하는 말이 없었다” 고 하였다. 공자가 말했다. “가난하면서 원망이 없기는 어렵고 부자이면서 교만이 없기는 쉽다.”
논어 14.11 (유교)
그때에 베드로가 다가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한 신도가 내게 죄를 지을 경우에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일곱 번까지가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해야 한다.”
마태복음 18.21-22(기독교)
용서가 있는 곳에 신이 있다.
아디 그란트, 샤로크, 카리르,P.1372(시크교)
상해는 너를 상대의 밑에 들어가게하고, 복수는 너를 그와 같은 사람으로 만들며, 용서는 너를 그의 위에 세운다.
벤저민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
말씀 선집
크게 용서해 주는 것도 그 사람의 사정을 백퍼센트 알게 될 때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사정을 아시기 때문에 인간을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2.221,1957.05.26)
요셉이 자기 형제들을 용서한 것은 부모를 용서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전부 다 원수입니다. 내가 요셉 입장에서 볼 때, 전부 다 원수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요셉 입장에서 볼 때 전부 다 원수지만,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봐서라도 용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146.125,1986.06.06)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나오면서 잘못한 사람이 많이 있지만, 잘못했을 때 척 보고 ‘백 번 용서해 주마’ 하는 마음으로 대합니다. 선생님은 대하는 사람들을 백 번 용서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게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지금 자기의 아들이 살인강도를 해 가지고 사형수가 되었다 합시다. 그래서 아들이 형장으로 끌려가고 있는데, 자기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야, 너는 잘 죽는다. 자, 어서 죽어야지, 이 자식아’ 라고 합니까? 결과는 사형이라 다더라도 그 심정은 천번 만번 용서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용서해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157.259-260,1967.04.10)
여기 책임자들 중에 식구를 데리고 사는 사람은 식구가 잘못됐으면 잘못됐다고 정면적으로 말하기 보다 잘못된 사람을 어떻게 용서하느냐, 그 부인이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부인을 보라는 것입니다. 부인이 그 남편보다도 악하냐 이겁니다. 다음에는 자식을 두고 보십시오. 자식을 볼 때 그 아버지보다도 나쁘냐 이겁니다. 다음에는 어머니 아버지르 두고 볼 때 어머니 아버지가 자식보다 나쁘냐 이겁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 나쁘더라도 어머니 아버지는 나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대하게 된다면, 그 가정에 지금까지 쌓아 둔 복이 나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복을 접붙이는 방법이 그렇습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망하려고 하면 하늘이 보호하는 것입니다.
(308.208,1990.01.05)
하늘은 망한 자를 또 치지는 않습니다. 망한 자 가운데서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사죄하는 자에 대해서는 긍휼로 대하는 것입니다. 그런 하늘이 있기 때문에 패자에게 또 칼을 들어 치게 되면 친 자의 후손이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위해 친구 이상 가까운 자리에서 정성을 들이고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25.333,1969.10.12)
기독교 역사를 두고 볼 때, 로마의 400년 박해시대에 있어서 사자으 lqkq이 되거나 희생하는 순교자가 많았습니다. 그들 중에는 불의의 시저(Caesar)왕에게 항거하기 위해서 ‘하나님이여 벌을 내리소서! 전부 망하게 하소서’ 하면서 죽어간 순교자들이 있는가 하면, ‘저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이루소서! 하고 죽어 간 순교자가 있을 것입니다.
로마 황제인 시저를 위해 기도하고 원수이지만 로마를 위해 기도한 사람은 원수 사탄세계를 이긴 자리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로마를 반대하고 나 하나 구원받기 위해서 죽어 갔던 사람은 로마 이하의 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30.233,1984.01.29)
예수님이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했으면 사탄을 사랑하라는 겁니까?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 가지고 사랑하라고 했지만, 사탄을 사랑하라는 말이냐는 겁니다.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형제가 죄를 범하면 일곱 번까지 용서 하리이까 할 때, 예수님이 말하기를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아들 되는 예수님이라면 사탄도 사랑해야 되는데, 왜 사탄을 사랑하지 못합니까? 사탄도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면 간단합니다. 그러면 그 사탄하고 하나님하고 같이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습니다.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원수를 위해 기도한 것은.... 그 사람, 사탄이 붙은 그 사람을 원수시한 것이 아닙니다. 원수는 사탄인데, 사탄 편에 잇는 사람을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사탄 편에 잇는 사람을 찾기 위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사랑한 것이지, 사탄 그 자체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람을 사랑한 것을 알아야 됩니다.
왜 그러냐?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몸이었습니다. 그것을 안 찾으면 하나님이 완성 안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완성하는 데 있어서는 사람이 없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을 중심삼고 완성될 수 있는 이러한 입장에 서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차탄시켰으니 원수입니다, 원수. 만일 이것을 용서함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파탄시킨 사탄인데 이를 용서한다면, 이 우주의 이상이라는 것은 완전히 깨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92.187,1977.04.10)
당신은 선의 본체이시기에, 무한하신 사랑과 관용으로 이 나라의 수많은 종교인들이 통일의 자녀들을 핍박했던 과거지사를 용서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원하옵니다.
그간 통일의 문을 두드렸으나 핍박의 길, 눈물의 역로를 개척하는 도상에서 위로받을 수 있는 한 사람을 맞지 못하였기 때문에 외로움에 지쳐 떨어져 나간 사람도 있사옵니다. 또한 이 길을 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지쳐 있는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도 거리거리에서, 혹은 처해 있는 자리에서 당신을 향해 머리를 숙이고 용서를 빌고 있을 그들의 모습을 생각할 때, 원한 맺힌 아버지의 심정을 풀어 드리고 싶은 참기 어려운 분한 심정도 있지만, 원수의 자식을 찾아오신 아버지의 긍휼하신 복귀의 길을 생각하면 눈물을 머금고 이들을 하시 축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들을 용서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버지, 배반하고 배신한 불쌍한 무리들을 용서해 주시고 다시 기억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7.301-302,1969.12.28)
바른 마음
자비와 깊은 연민은 바른 마음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덕복이다. 그러므로 바른 마음을 기르는 것이 인생의 최우선 과제다. 많은 경전에서는 믿음과 지식, 진리에의 헌신, 그 외 다른 덕목들보다 우월한 것이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마음은 하나님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나님의 마음은 문선명 선생의 말씀으로 표현하면 ‘심정’이다. 심정은 사랑하고 기뻐하고자 하는 정적 충동을 말한다. 이 충동이 바로 창조의 동기다 (제1장 ‘사랑과 긍휼’참고). 인간의 언어로 하면 이것은 어머니의 사랑과 가깝다. 어머니는 자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다. 바른 마음은 공명정대하고 모든 것을 포용하며 친절하고 선한 사람뿐만 아니라 악하며 싫은 사람까지도 소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상대방과 화해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데는 이 바른 마음자세가 반드시 필요하다.
1. 사랑 - 친절
종교 경전
서로 친절히 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같이 서로 용서 하십시오.
에베소서 4.32(기독교)
내가 벗의 눈으로 모든 존재를 바라보게 하소서!
벗의 눈으로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게 하소서!
야주르 베다 36.18(힌두교)
남을 받아들일 수 없으면 친한 이가 없고 친한 이가 없으면 모든 사람이 남이 된다.
장자 23 (도교)
네가 죽으면 그들이 너를 슬퍼할 것이며 그들이 너를 친구로 그리워하며 살 것이다. 그런 방법으로 사람이 대하고, 그런 태도로 그들과 어울려 살아가라
나흐줄 발라가, 어록 9(시아파 이슬람)
온화한 성품은 생명의 줄이 너의 손에서 끊어지지 않은 채 오래 머물 수 있게 한다.
요루바족의 격언(아프리카 전통종교)
비구니들이여, 내세에서 좋은 곳에 다시 태어나는 원인이 되는 어떤 공덕일지라도, 그것은 모든 집착을 떠나 선한 의지로 가득 찬 마음의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집착을 떠나 선한 의지로 가득 찬 마음은 공덕 있는 그 행위보다 더 환히 빛나고 밝게 비춘다.
이티붓타카 19(불교)
설사 불행을 피하기 위해 오랫동안 관리해온 어떤 사람의 가정이라 할지라도, 우리 신들은 비뚤어진 마음 바탕을 지닌 사람의 거처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설사 어떤 사람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원망한다 할지라도 만일 그가 자비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 신들은 그곳으로 들어간다.
카수가 신사으 신탁 (신도)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가 말했다, “나가서 인간이 따라야 할 선한 길이 무엇인지 찾아보아라.” 랍비 엘리에자르가 대답했다. “선한 눈입니다. ”; 랍비 여호수아가 대답했다,“선한 친구입니다. ”; 랍비 시미온이 대답했다,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는 사람입니다.”; 랍비 엘라자르가 대답했다, “선한 마음입니다.” 이때 요하난 벤 자카이가 말했다,“ 다른 누구보다 엘라자르의 말이 맞다. 그의 답 속에 다른 답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미슈나, 아보스 2.13(유대교)
말씀 선집
위하고 사랑하겠다는 마음은 아무리 이리 가겠다고 하더라도 남극과 북극 방향을 찾는 것과 같이 항상 이렇게 간다는 것입니다.
(138.99,1986.01.19)
사람을 좋아하는 습관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좋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싫다고 해도 좋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훈련입니다.
(118.116,1982.05.09)
여러분들은 누구를 위해서 눈물을 흘려 봤습니까? 자기를 위해서는 잘 웁니다. 남을 위해서 언제 눈물을 흘려 봤습니까? 눈물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우는 사람은 지옥 가는 것이요, 남을 위해서 많이 우는 사람은 천국 간다는 것입니다.
(96.172-173,1978.01.03)
모든 걸 성물로 취급하라 이겁니다 거룩한 물건으로 취급하라 이겁니다. 그 다음엔 거룩한 체(體), 사람을 거룩한 사람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몸같이 생각하라 이겁니다. 자기의 몸을 하나님의 몸같이 생각하고 자기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하는 생각을 가지라는 겁니다.
(102.113,1978.11.27)
우리가 ‘저 사람 잘났다’고 할 때, 지식을 가지고 잘났다고 합니까? 마음보가 잘나야 합니다.참 잘나고 좋은 사람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본성과 생명의 틀이 천성적으로 잘나야 하는 것입니다. 지식이야 있든 없든 마음이 잘나야 합니다.
(39.315,1971.01.16)
눈은 더 자비스러운 눈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 볼 때에는 물론이지만 악한 사람 볼 때에도 자비스럽고 사랑스런 마음을 일 단계 더 가해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참사랑은 악한 것까지도, 나쁜 것까지도 소화할 수 있습니다.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 힘을 가졌습니다.
(123.225,1983.01.02)
눈이 천하제일의 미인의 눈이라 해도 그 눈에 살기가 등등하고 자기를 위하고 무엇을 이용해 먹으려고 하고, 시기를 하는 눈은 싫습니다. 그 눈을 보면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추하겠습니까? 또 제멋대로 생긴 눈, 제일 못생긴 그런 눈이 있다고 합시다. 그렇지만 그 눈에 사랑의 깊이가 있고, 자비가 들어 있고, 평화가 깃들어 있을 때, 그 눈은 모든 사람을 매료시킵니다. 그런 매력적인 힘을 갖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모체가 되어 동작하게 되면 가면을 썼더라도 그것은 아름다운 것이 됩니다.
(116.53-54,1981.12.13)
2. 사랑으로 마음의 뿌리는 하나님의 심정
종교 경전
사랑하는 것은 나(크리슈나)를 아는 것이며, 그는 나의 가장 내밀한 본질, 진리 차제가 나임을 안다.
바가바드 기타 18.55 (힌두교)
자애로움과 선함은 인간의 근본이다.
예기 38.18 (유교)
사람은 모두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모두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까닭은, 사람이 갑자기 어린아이가 장차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고는 모두 깜짝 놀라고 측은해하는 마음을 가지니, 이것은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으려 해서도 아니며, 마을 벗들에게 명예를 얻으려고 해서도 아니며, 그 비난하는 소리를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맹자 II. A. 6 (유교)
여래가 사는 곳은 일체중생 안에 있는 대자비의 마음이다. 여래의 가사는 상냥하고 인내하는 마음이다.
법화경 10 (불교)
마치 어머니가 자신의 생명에 대한 위험을 무릅쓰고 외아들을 보호하듯이, 그로 하여금 모든 존재에 대한 무한한 동정심을 지니게 하라.
쿠다카 파타 멧타 숫타 (불교)
알라는 친절하시며 친절한 자를 사랑하시고, 알라는 깨끗하시며 깨끗한 자를 사랑하시고, 알라는 관대하시며 관대한 자를 사랑하도다.
무슬림 하디스 913.2 (이슬람)
사랑이 없다면 과연 어떤 종교가 가능하겠는가? 그대는 살아 있는 모든 존재에게 사랑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사랑은 모든 신앙의 뿌리이다.
바사반나 바차나 247(힌두교)
말씀 선집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의 본바탕인 심정을 중심삼고 거기서 솟아나는 인격을 중심삼아 나아가야 합니다.
(84.123,1976.02.22)
사랑의 마음은 전부 다 하나되는 것입니다. 분립이 아닌 포괄적입니다. 포괄적인 동시에 포용적입니다. 포용적 하게되면 포괄하고 이름이 비슷한 것 같지만, 안팎에 포용적인 관계를 맺어 가지고 순환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포괄, 포용적입니다.
그 다음에는 상응적입니다.
상응적이란 언제나 할아버지 절대주의 가 아닙니다. 손자 절대주의 가 아닙니다. 할아버지도 손자가 되고 손자도 할아버지가 되는 겁니다. 상응작용이란 것이 그런 것입니다. 그것만이 전체 분야에 적응시킬 수 있는 하나의 주체성으로 혹은 환경권으로 만들 수 있을 때에, 그 주체성과 환경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환경과 주체성이 뭐냐? 지식도 될 수 없고 권력도 될 수 없습니다. 포용될 수 있는 것은 사랑입니다. 배고플 때에 어머니의 품을 품기면, 배고픈 걸 잊고 그 자리에서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귀한 것이냐? 다른 게 귀한 것이 아니라. 귀한 사랑입니다.
암만 황금덩이가 쌓여 있다 하더라도. 세상에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이나 아내가 죽어 가는데 보석함에 든 다이아몬드를 빼서 팔아 가지고 병원비로 절대 만들 수 없다. 하는 것이 사랑이라더라 하면 어떨까? 그런 사랑이 필요합니까? ‘아닙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더라, 이래야 됩니다.
(139.196-197,1986.01.31)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의 심정세계에는 하나님 앞에 속할 수 있는 아무런 조건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 남아진 불변의 기준이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러한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식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 인류역사의 기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은 그러한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단 하나 하나님이 아담 해와가 타락하는 순간까지 사랑해 나오던 본성의 심정의 인연이 우리의 본심과 육을 하나되게 할 수 있는 인연으로 남아져 있기 때문에, 부모가 지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만이 타락권에 있는 우리 개체에 연결되어 남아질 수 있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준은 앞으로 영원한 기준으로 남아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23.206-207,1969.05.25)
여러분의 세상 부모도 자식이 병신 되면 그 병신 아들 보고 얼마나 더 가슴 아파하고 불쌍히 여깁니까? 부모의 사랑은 타락한 세계에서도 그런 책임의 자리에 놓여 잇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 앞에 효도하면 천국갈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효도해야 됩니다. 그러니 효도해야 됩니다. 그게 있기 때문에 복귀라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부모 앞에 효도해야 됩니다 그 사랑하는 마음 가지고 나라의 대통령을 사랑하고, 그 사랑하는 마음 가지고 주님을 사랑하고 그사랑하는 마음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천국과 통한다는 것입니다.
(99.127-128,1978.09.10)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의 후광입니다. 그물의 벼리와 같은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내게 닻을 내려야 합니다. 인격의 중심을 어디에 두어야 합니까? 진리에 두는 것이 아니라 심정에 두어야 합니다.
(33.68-69,970.08.08)
바른 행동
바른 행동은 건강한 영적 삶으로부터 구현된다 바른 행동은 타인과 관계에서 우정과 화합을 가져다 준다. 바른 행동은 하늘을 향한 공적을 쌓게 하고 하늘과 관계를 보다 고양시켜 준다. 종교가 구언의 열쇠로 믿음을 강조하지만 진정한 믿음은 외적으로 전개된 행동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문선명 선생은 쉬지 않고 바른 행동을 실천할 것을 가르치신다 남이 인정하든 말든, 바른 행동을 통해 온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 영적 훈련의 기회로 삼으라고 권고하신다.
종교 경전
쌓아 올린 꽃 무더기에서 많은 꽃다발을 만들 수 있듯이 사람으로 태어났을 때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한다.
법구경 53 (불교)
하나님에 대한 그대의 의무를 기억하고 선행하라. 그대의 의무를 다시 기억하고 믿음을 가져라. 그대의 의무를 또다시 기억하고 정의롭게 행동하라. 하나님은 바른 자를 사랑하시도다.
꾸란 5.93(이슬람)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습니다.우리가 이렇게 살도록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해 두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2.10(기독교)
아르주나여, 사심 없는 모든 행위는 영원 무한한 신성에서 생겨난다. 신은 모든 봉사 행위에 함께 한다. 모든 삶은 이 법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오, 아르주나여.
바가바드기타 3.16(힌두교)
각자의 신체 마디마디가 해가 뜨는 매일 자선을 베풀어야 할지어다. 두 사람 사이에서 공정하게 대하는 것이 자선이요, 탈것으로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 그를 태우거나 짐을 실어주는 것이 자선이요, 좋은 말 한마디가 자선이요, 예배드리는 동작 하나하나가 자선이요, 길에 놓인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 자선이라.
알 나와위 하디스 40선26(이슬람)
선행은 악행을 제거해 주리니, 이것은 기억하는 자를 위한 교훈이니라.
꾸란 11.114(이슬람)
혹시 그릇된 짓을 범했더라도 착한 행동으로 덮어 버린다면 그는 이 세상을 밝히 비추리라. 마치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법구경 173(불교)
한 가지 선행을 베푸는 사람은 자신을 지지해 주는 한 사람의 후보자를 얻는 것과 같고, 하나의 죄악을 범하는 자는 자기를 거슬러 고발하는 자를 얻는 것과같다. 회개와 선행은 재앙을 막는 방패와 같다.
미슈나, 아보스 413(유대고)
천국은 선행이 없다면 이를 수 없다.
아디 그란트, 람칼리 키 바르,M.1,p.952(시크교)
내 형제들이여,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의 양식조차 없는데 여러분 중에 누가 그들에게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어라”하고 말하면서 몸에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믿음에 행함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 만으로서는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네게는 믿음이 있고 내게는 행함이 있다. 이때에 해함이 없는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내 행함을 통해 믿음을 보이겠다.” 당신은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귀신들도 그렇게 믿고 떱니다. 아, 어리석은 사람이여, 당신은 행함이 없는 믿음이 무익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우리 조상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렸을 때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본 대로 그의 믿음에 행함이 따랐기 때문에 행함으로 믿음이 완전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으니 믿음으로 그는 의롭다함을 얻었다”고 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으며, 또 그는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리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이고 믿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 것입니다.... 영혼이 떠난 몸이 죽은 몸인 것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2.14-26 (기독교)
선한 의인이 있고 또 선하지 않은 의인도 있는가? 하늘과 인간 모두를 향해 선한 이는 선한 의인이다. 그러나 하늘 향해서는 선하나 인간 향해서 선하지 않은 이는 악한 의인이다.
탈무드,키두신40a (유대교)
말씀 선집
누구도 움직일 수 없는 절대적 실적과 신념을 가졌다면, 그는 절대적으로 선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원합니다. 모든 인류가 다 그렇습니다.
(73.116,1974.08.16)
사랑의 마음, 진실을 가지고 대해야 합니다. 말을 해도 하루에 좋은 말 세 마디씩 계속해서 해보십시오, 좋은 말을 하는 동시에 행동도 세 가지 좋은 행동을, 조그만 일이라도 하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인사를 해도 진정으로 고맙게 인사를 해야 합니다. 그런 훈련이 필요합니다.
(99.142,1978.09.10)
선을 행하고 나서 그것을 잊어버린다면, 그 선은 선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기억 가운데 옮겨집니다.
(뜻길,p.31)
남들이 피라는 것, 어려운 것을 다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초연한 태도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부모의 제일 어려운 문제를 대신 풀어야 하며 바깥의 어려움도 도맡아야 한다.
(17.338,1967.04.30)
남의 빚을 져 줄 수 있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다.
(41.91,1971.02.13)
육신이 선행과 악행에 따라서 영인체도 선화 혹은 악화 한다. 이것은 육신으로부터 영인체에게 어떠한 요소를 돌려주기 때문이다 이렇듯 육신으로부터 영인체에게 어떠한 요소를 돌려주기 때문이다. 이렇듯 육신으로부터 영인체에게 주어지는 요소를 우리는 생력요소라고 한다. 우리는 평소의 생활에 있어서 육신이 선한 행동을 할 때는 마음이 기쁘고 악한 행동을 할 때는 마음이 언짢은 것을 경험하거니와, 이것은 그 육신의 행동의 선악에 따라, 그에 적응하여 생기는 생력요소가 그대로 영인체에 돌아가는 증좌이다.
(원리강론, 창조원리 6.3.1)
주고 받음
베풂의 지혜가 이번 장의 주제다. 아무 대가 없이 조건 없이 서로 주고받을 때 기쁨은 배가 되고 슬픔은 반이 된다. 그리고 베푼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돌려받는다. 당장의 즉각적인 보답은 없을지라도 하늘은 알고 계시며, 결국 더 큰 사랑과 보답으로 축복을 돌려주신다. 먼저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면서 돌려받을 것을 기대하는 것은 하늘 법에 어긋난다(제2장 ‘이중 속성’ 참조). 반대로, 뭔가 바라는 마음으로 부탁을 하거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조건적으로 주는 것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베풂에 대한 문선명 선생의 폭넓은 가르침은 보편적 윤리 덕목에 대한 철학적 기반을 제공해 주고 있다. 베풀고자 하는 마음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나님은 자신을 다 투입해 지상 천상의 만물을 창조하셨다.
문선명 선생은 먼저 주면 보다 크게 돌아오는 역설적 힘이 작용한다는 데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 하신다. 첫째, 줌으로써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닮은 삶을 살게 된다. 둘째, 수수작용의 개념은 자연 세계가 순환하는 원칙이다. 셋째, 부모가 자식에게 투입하는 것은 수년동안 (자녀가 성장해서 결혼 하고 손자 손녀를 낳을 때까지) 기쁨으로 주는 것이다 조건 없이 먼저 줄 것을 강조하기 위해 문선명 선생은 “주고 또 주고 주었다는 사실까지 잊어버려라” 하고 가르치신다.
1. 베푸는 길과 그 보답
종교 경전
너희가 좋아하는 것으로 자선을 베풀 때 너희는 진정한 신앙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너희 가 베푸는 자선이 무엇이든 하나님은 그것을 알고 계시도다.
꾸란 3.92(이슬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
사도행전 20.35(기독교)
관대하게 주는 자, 그는 곧장 신들에게 간다. 그는 천계의 높은 산마루 위에 고귀하게 서 있다.
리그 베다 1.125.5(힌두교)
이득을 바라는 생각으로 베풀지 말라. 너희 주님을 위하여 인내하라.
꾸란 74.6-7(이슬람)
사람이 부드러운 땅을 걸어가려면 먼저 땅 위에 찬물을 부어야 한다.
요루바족의 격언(아프리카 전통종교)
인심이 후하면 더욱 부자가 되지만 인색하게 굴면 오히려 궁해진다. 남에게 은덕을 베풀어야 풍부해지고 남을 대접해야 저도 대접을 받는다.
잠언 11.24-25(기독교)
실로 불쌍한 자는 천계에 갈 수 없다.
어리석은 자는 자유를 찬양하지 않는다.
지혜로운 자는 보시를 좋아하므로
저 세상에서 복락을 누린다.
법구경 177(불교)
재물이 모이면 백성이 흩어지고 재물이 흩어지면 백성들이 모이는 것이다.
대학 10.9(유교)
적게 뿌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뿌리는 자는 많이 거둡니다. 각각 마음이 정한 대로 학 아까워하거나 마지못해 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하나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모든 은혜를 풍성하게 하셔서 모든 일에 언제나 여러분을 충족하게 하시며, 온갖 선한 일을 넘치도록 행할 수 있게 하실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고린도후서 9.6-8(기독교)
부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다른 이와 베푸는 보시의 도를 보고 그를 도와 크게 기뻐하면 또한 복의 과보를 얻으리라.” 어떤 사문이 물었다. “그 복은 장차 줄어지지 않겠나이까?” 부처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그것은 햇불과 같아서 수천 사람이 각기 햇불을 가지고 와서 그 불을 붙여 가서 음식을 익혀 먹거나 어둠을 밝히더라도 그 본래의 햇불은 전고 같은 것이니, 그 복도 그와 같느리라.”
사십이장경 10 (불교)
말씀 선집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과 우리 인간들의 사랑의 본질이 다르겠습니까, 같겠습니까? 이게 문제입니다. 같은 것은 같은 건데 하나는 주고자 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는 주체적 사랑이요, 하나는 대상적 사랑입니다.
(130.118,1984.01.01)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데서부터 참사랑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225.15,1992.01.01)
선한 것은 무엇입니까?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그러므로 주어야 됩니다. 주는 데는 무엇을 줘야 되는냐? 제일 나쁜 것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옷 짜박지를 주는 것이 아니며, 먹다 남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주어야 합니다. 생명뿐만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사랑까지 줘야 됩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며 사랑을 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4.246,1970.09.13)
우주운동의 발생은 주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모든 이론적인 기반에서 이 운동을 수수작용이라고 합니다. ‘수수작용’ 이라는 말은 ‘받고 주는 것’입니까, ‘주고받는 것입니까?’ 주고받을 때는 뿌듯하지만 받고 못 주면 창피한 것입니다.
(239.223,1992.11.25)
나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받고 싶습니까, 주고 싶습니까?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통일원리에는 수수작용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수수작용에서 ‘줄 수(授) 가 먼저입니까, ’받을 수(受) 가 먼저입니까? 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줍니까, 자식이 부모를 위해서 줍니까? 부모가 먼저 주지요? 이것을 볼 때, 존재의 최초 기원이 되는 그분으로부터 주는 일이 시작되어서 작용이 연결되었다는 논리를 인정해야 됩니다.
(239.59,1992.11.23)
통일의 원칙은 창조력을 투입하는 것입니다. 창조력을 투입하는 데서 통일은 벌어지는 것입니다. 받고자 하는 데서는 통일이 안 됩니다. 받는 것은 좋습니다. 받았으면 거기에 이자를 가산해 가지고 그 이상 줄 수 있는 나 자신이 되면 됩니다. 그렇지만 그 위에서 또 받고자 하는 사람은 하늘도 절대 싫어하는 것입니다. 안 줍니다.
(82.326-327,1976.02.01)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에 대해서 한 번 예를 들어 봅시다. 선한 사람은 열 친구가 있다면 그 열 친구에 대해서 아침이나 저녁이나 금년이나 내년이나 십년이나 일생 동안 시중들고 봉사합니다. 그러는 친구는 좋은 친구입니다. 열 사람 전부가 제일 좋은 친구라고 말합니다.자기들만 좋아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어머니라든가 자기 누이동생이 있으면 데려가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열 친구를 대해서 ‘야! 이놈아, 날 위해라’ 고 세 번만 그런다면 다 도망갑니다. 그가 따라올까 겁이 나서 도망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자기를 중심삼고 주장하는 자는 망하는 것입니다. 지옥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원리원칙에 입각해서 남을 위해, 상대를 위해서 투입하는 자는 천국 가는 것입니다.
인류 교육이라든가 모든 지도 이념에 있어서 막연하게나마 이러한 관점에서 선을 세워 나왔기 때문에, 오늘날 이 세계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어떤 개인이 전체를 위해서 희생하면 그는 전체 앞에 선한 사람이요, 어떤 가정이 전체의 가정을 위해서 완전히 희생하면 전체의 가정 앞에 선한 가정으로 등장하는 것이요, 또 어떤 민족이 전체의 민족을 위해서 등장하는 것이요, 어떤 나라가 전 세계 국가를 위해서 희생하고 나서면 그 국가는 선한 국가로 등장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69.86,1973.10.20)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했다는 것은 자기의 모든 사랑의 심정을 투입했다는 것입니다. 주었다는 겁니다. 그러한 신이라면 그러한 마음을 가진 대상이 반드시 생겨나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형성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현현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흥하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양심은 이런 사실을 이론적으로 확실히 모르지만 서로서로 사랑해라, 서로서로 위해라 하는 것이요, 종교는 남을 위해서 희생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 말이 우리의 인륜도덕과 상치되지 않습니다. 맞는 다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라 이겁니다. 남을 위해 희생하라는 말입니다. 남을 사랑해라 이겁니다. 그래서 위하여 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112.301,1981.04.25)
2. 품격을 갖춘 주고받음의 순환
종교 경전
남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나님도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너희가 남을 헤라리는 대로 하나님도 너희를 헤아리실 것이다.
누가복음 6.38 (기독교)
자비로운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자비함을 입을 것이다.
마태복음 5.7(기독교)
현세에서 친절을 행하는 자들은 보상을 받으리라.
꾸란 39.10(이슬람)
누가 명예로운 사람인가? 인류를 명예롭게 하느느 사람이 명예로운 사람이 된다.
미슈나, 아보스 4.1(유대교)
너희가 인사를 받았을 때 더욱 예의바르게 응답하라. 아니면 동일한 예의를 갖춰라. 하나님은 모든 일에 세심하게 계산하시노라.
꾸란 4.86(이슬람)
나에게 목과를 보내 주니, 나는 패옥으로 보답하네.
충분한 보담이 될 수 없겠으나 나의 고마움을 길이 남기고자!
나에게 복숭아를 보내 주니, 나는 미옥으로 보답하네.
충분한 보답이 될 수 없겠으나 나의 고마움을 길이 남기고자!
나에게 자두를 보내 주니, 나는 옥석으로 보답하네.
충분한 보답이 될 수 없겠으나 나의 고마움을 길이 남기고자!
시경 64(유교)
말씀 선집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는 것은 하나님을 더 사랑한 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했으니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40.244,1971.02.06)
사랑을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큰 사랑도 받지마는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게 몇 배 남는 장사입니까? 2배 남는 장사가 넘습니다. 몇 배 남는 장사다 이런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하면 할수록 입체적으로 장사하는 것입니다.
(90.21,1976.12.05)
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한 가지는 받은 것을 잘라먹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고, 받은 것에 대해 플러스 시켜 베푸는 사람은 선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이 자신보다도 낮아지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습니다. 높아지기를 바랍니다. 또 남편은 아내가, 그리고 아내는 남편이 자신보다도 훌륭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형은 동생이, 동생은 형이 더 훌륭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315.210,2002.02.020)
내가 제일 좋은 걸 가져서 좋아하는 마음하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남을 주고 기뻐하는 마음 중에 어떤 것이 더 기쁜가 비교해 보십시오. 거기서 번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주면 돌아올 때는 크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만들기 때문에 큰 데 점이 생겨 가지고 돌라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고받는 일은 거기서 생기는 것입니다. 기뻐서 주게 될 때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또 주려고 할 때 더 커지는 것입니다. 더욱 발전하는 것입니다.
(248.96,1993.08.01)
대기가 백퍼센트 절대 저기압권이 되면 절대 고기압권이 생겨서 자동적으로 순환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 지혜의 왕입니다. 왜 투입하고 잊어버려야 되느냐? 자동적 순환원리를 통해서 영원 회전이 시작되기 때문에 영생논리가 설정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투입하고 또 투입하는 데서 영생의 논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위하는 데는 망하지 않습니다.
(204.107,1990.07.01)
나무도 그렇잖아요? 뿌리에서 영양소가 오게 되면 잎사귀는 광합성작용을 해서 영양소를 뿌리에 보급해 주는 것입니다 주고받는 것입니다. 받고 주는 것이 아닙니다. .... 주체 되는 사람이 먼저 주어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먼저 주어야 됩니다. 물리 흐를 때 구덩이가 있으면 메우고 가야 됩니다. 공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흐릅니다. 사랑도 흐르는데, 구덩이가 있으면 메워 주고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241.306,1993.01.01)
참사랑은 투입하는 힘입니다. 주는 힘이지 받기만 하는 힘이 아닙니다. 전부를 다 주어 영점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온전히 빈 자리가 되니 영점 자리에는 무엇이든 들어와도 오케이입니다. 그래서 주는 힘이 영속하면 돌아오는 힘이 보태져서 영속하므로 영원한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을 중심으로 위하여 사는 세계는 수수작용을 통하여 완성되는 것입니다. 천지의 모든 것이 상대적 관계로 존재하고 있는 것도 이렇게 주고받는 작용을 통하여 참사랑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상대관계에 있어서 모든 주는 힘에 대하여 돌아오는 힘이 작용하므로 그 중심점은 영원히 정착할 수 있는 것입니다.
(315.209,2000.02.02)
주는 것이 왜 흥하고 왜 주는 것으로 말미암아 크느냐? 하나님의 본래 이 우주 창조의 근본과 통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잡아당기는 것입니까? 주는 것입니다. 주면 자꾸 커지는 법입니다. 모든 것이 주는 개념으로 바뀌면 미국은 점점 커집니다. 그게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의 창조원칙에 동반할 수 있기 때문에 우주가 나를 협조합니다. 우주가 나를 협조하기 때문입니다. 자꾸 받고 또 받으면, 모든 것이 작아집니다.
참됨 사랑의 뿌리가 뭐냐 하면, 영원히 주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은 영원히 주려고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참된 사랑은 작동하면 할수록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커진다는 것입니다. 이게 신비로운 것입니다. 세상의 힘은 작동하면 작아지는데, 이건 작동하면 할수록 커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랑을 가지고 수 천 년 전에 간 그런 사람도 지금 시대에 와서 천만으로 불어나는 것입니다.
(183.324,1988.11.09)
여러분의 상대는 자기의 이상적인 터전이요, 행복의 터전이요, 모든 기반이 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만물을 지으시고 사람을 지으신 것은 하나님의 대상으로 지은 것입니다.... 주고받는 수수작용의 원칙이 천지의 작용, 운동과 법칙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완전히 다 주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완전히 사랑하려면 남편으로부터 완전히 사랑받았다고 하는 그날에 가서야, ‘남편을 진짜 사랑하겠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완전히 사랑받게 될 때에, 완전히 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지의 원칙입니다. 주체로부터 완전히 받았을 때만 완전히 돌려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기 전에 돌려주기 시작하면 완전한 것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60.232,1972.08.17)
3. 조건 없이 과거를 기억하지 않고 줌
종교 경전
그는 자신을 정화하기 위해 재산을 베풀고, 그가 베푼 은혜에 누구로부터의 보상도 바라지 않으며, 오직 지고하신 주님의 기쁨을 구하니, 그는 분명 만족하게 되리라.
꾸란 92.18-21(이슬람)
올바른 때와 장소에서 합당한 자에게
보시의 대가를 기대할 수 없는 사람에게
단지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베풀어질 때
그 보시는 고결한 보시라 한다.
그러나 되돌아올 대가를 목적으로
또는 어떤 결과를 위하여
또는 마지못해서 주어지는 것,
그것은 격정적인 보시라고 전해진다.
합당하지 않은 때와 장소에서 합당하지 못한 사람에게
존중하는 마음도 없고 경멸하는 태도로 주어질 때
그것은 어둡고 게으른 보시라고 한다.
바가바드기타 17.20-22(힌두교)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은 능히 천승(千乘)의 나라를 양보할 수 있거니와, 진실로 그러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대그릇의 밥과한 나무그릇의 국에도 얼굴색이 나타나는 것이다.
맹자VII.B.11(유교)
“내가 이것을 준다면 무엇을 향유하게 될까?” 이와 같이 이기적인 생각은 마귀들의 습성이다. “내가 이것을 향유하게 되면 무엇을 나누어 줄까?” 이와 같은 자기 없는 생각은 신들의 덕성이니라.
샨티데바,바살행의 도 8.125(불교)
말씀 선집
참사랑은 주고 잊어버리는 사랑입니다. 주고도 잊어버리고, 하고 또 하고 싶은 사랑입니다.
(162.239,1987.04.12)
투입하고 그 다음엔 잊어버립니다. 투입하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고 잊어버립니다. 자꾸 투입하면 할수록 자기의 사랑의 상대가 자기보다 높아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 개념입니다. 기억하면 벌써 멈추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디서 통일이 벌어져야 되느냐? 남자가 남자를 주장하는 데서는 없는 것입니다. 여자가 여자만 주장하는 데서는 없는 것입니다. 투입에서부터 우주 창조가 시작했기 때문에 남자나 여자나, 남자는 상대에 대해서 무한히 투입하고 그 상대도 무한히 투입하는 데에서부터 하나되는 길이 시작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같이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데 통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67.301-302,1995.02.05)
하나님은 주는 데 있어서도 어느 누가 참소할 수 없고, 받는 데 있어서도 어느 누가 조건을 제시할 수 없는 그야말로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한 자리를 소원하십니다. 그러한 자리를 세계적으로 넓혀 온 만민을 거기서 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거두시려는 소기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13.249,1964.04.12)
자선
가난하고 불쌍한 자들에 대한 박애정신은 모든 종교에서 강조되는 덕목이다. 궁극적 선과 연결된 인간이기에 사회의 모든 이들과 우리는 그들이 부자든 가난하든 한 가족으로서의 유대감을 갖고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 자녀에 대해 느끼시는 사랑과 자애의 감정을 우리가 느낄 수 있고, 특히 가난, 질병, 전쟁, 기근과 자연재해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더 동정심을 느낀다.
위로금과 구호물품을 보내는 행동은 이런 영적인 사랑의 유대감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것이다. 신약성서의 양과 염소의 비유는 긍휼한 자를 돕는 것이 곧 하나님과 위대한 성인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심지어 주는 데 가장 인색한 사람들까지도 이런 박애정신에 예외일 수는 없다.
자비를 베풀 때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한 몇 가지 구절들이 있다. 베푸는 행위는 어떤 경우에든 그 존엄성을 유지해야 한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게 하지 마라.” 이 말은 수혜자와 기증자 사이의 익명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고 있다. 기증자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자만하는 경우를 피하기 위해, 수혜자는 자신의 위엄을 보존하기 위해 익명성이 필요하다.
마이모니데스에 따르면 최고의 자비로운 행위는 가난한 자가 사업이나 무역을 시작할 수 있도록 무 이자 대출 또는 경제적 원조를 해주어서 스스로 돈을 벌 수 잇게끔 도와주는 것이로 했다. 이것의 현대적 버전은 아마도 “물고기를 잡아주면 그 사람을 하루 동안 먹일 수 있지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면 그 사람을 영원히 먹일 수 있다”는 격언일 것이다. 문선명 선생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식량 자금자족을 할 수 있게끔 돕기 위해 다양한 해양사업을 전개해 오고 계신다.
1.하나님께 인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자선
종교 경전
복되어라, 딱하고 가난한 사람 알아주는 이여, 불행한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구해 주시리라.
시편 411.1(기독교)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 궁핍한 자와 고아, 포로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도다. 그리고 말하기를, “우리는 당신들로부터 보상을 받기도 감사의 말을 듣기도 바라지 않습니다.”
꾸란 76.8-9(이슬람)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 가졌다.
사도행전 2.45(기독교)
목마른 이, 배고픈 이, 고통 속에 잇는 이에게 측은지심을 내어 그들의 고통을 나누어가지는 자비행은 모든 덕행의 근본이다.
쿤다쿤다, 판차스티카야 137(자이나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의 어느 한 성읍에 동족으로서 가난한 사람이 있거든 너희는 인색한 마음으로 돈을 움켜잡거나 그 가난한 형제를 못본 체하지 말라. 손을 펴서 그가 필요한만큼 넉넉하게 꾸어 주어라.... 시원스럽게 꾸어 주어라. 주면서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손을 대는 모든 일에 복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너희가 사는 땅에서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너희가 사는 땅에는 너희 동족으로서 억눌리고 가난한 사람이 어차피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너희 손을 뻗어 도와주라고 이르는 것이다.
신명기 15.7-11(기독교)
인자가 모든 천사를 거느리고 영광 중에 와서 영광의 보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아 놓고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별하듯이 그들을 구별하여 양은 그들의 오른편에, 염소는 그의 왼편에 둘 것이다. 그때 임금이 자기 오른편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내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부터 너희를 위해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라.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했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주었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의인들은 “주여, 우리가 언제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렸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고,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했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고, 언제 병드셨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우리가 찾아갔습니까?”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때에 임금은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것이다.” 하고 말했다.
마태복음 25.31-40(기독교)
심판의 날 지고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실 것이다. “아담의 아들아, 내가 아팠을 때, 너는 나를 문병 하지 않았도다.” 그가 대답하기를 “주여, 제가 어찌 당신을 방문할 수 있으리오, 당신은 우주의 주님이십니다.” 그분이 말하기를 “나의 종복 누군가 병에 걸린 것을 몰랐더냐? 너는 그를 문병하지 않았도다. 만약 네가 그를 방문했더라면 내가 그와 함께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너는 몰랐더냐?”
무슬림 하디스(이슬람)
“너희는 주 하나님만을 따르거라.” (신명기13장 4절). 그러나 삼키는 불이신주 하나님을인간이 어떻게 따를 수 있는가?(신명기4장24절) 이 말은 곧 주 하나님의 속성을 닮으라는 뜻이다. 헐벗은 자들에게 옷을 해 입히고, 병든 자들을 방문하며, 장례식에 모인 자들을 위로하고, 죽은 자들을 장사 지내 주어라.
탈무드,소타14a (유대교)
거룩하신 분께서 사람을 사랑하실 때에,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의 모습으로 다가와서 선물을 주신다. 사람이 가난한 이웃에게 선행을 베풀게 되고, 하나님은 그 장점을 이용하여 은총을 베푸는 조건으로 삼으신다.
조하르, 창세기104a(유대교)
신들은 실로 기근만을 죽음의 원인이 되게 하지 않았으니, 먹을 것이 풍족한 자에게도 죽음은 다가오도다. 아낌없이 베푸는 자의 재물은 바닥나지 않으나 베풀지 않는 자를 위로할 자 아무도 없도다.
스스로 의식이 풍족하면서도 배고픈 이들에게 가슴을 닫는 자, 스스로 도움을 입엇던 지난날의 벗들을 푸대접하는 자, 진실로 그를 위로해 줄 자 아무도 없었다.
동냥을 원하는 이에게, 집 없는 이에게 먹을 것을 구하여 마음 졸이며 돌아다니는 이들에게 베푸는 자야말로 참으로 관대한 자로다. 싸움에 응하여 승리가 그에게 오나니, 이로써 그는 미래의 곤경들을 위하여 한 사람의 벗을 얻도다.
먹을 것을 구하여 찾아온 벗에게 음식을 베풀지 않는 자는 벗이 아니로다. 그냥 내버려두라. 그의 것은 마음 편한 것이 아니니 차라리 편안한 낯선 이를 찾아야 하리.
부유한 자는 실로 도움을 청하는 이에게 베풀어야 하리. 멀고 먼 앞날을 내다봐야 하리. 왜냐하면 재물이란 수레바퀴처럼 돌고 도는 것이라.. 이 사람에게, 또는 저 사람에게 다가가나니. 인색한 자는 헛되이 먹을 것을 구하는구나. 내 진실을 말하노니, 그것은 죽음을 가져올 뿐 벗이나 또는 가까이 있는 이들을 모르는 체하는 자, 혼자서 배를 채우는 자는 또한 혼자서 모든 재앙을 감당해야 하리.
리그 베다 10.117.1-6(힌두교)
말씀 선집
자녀들이 아플 때 부모가 아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형제가 아플 때 그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인은 세계 만민들이 살고 있는 정상을 바라볼 때 자기 아픔 대신 그들의 아픔을 느낍니다.
만민을 사랑하기 위해서 자기 처지를 잊어버리고 투입하려 하는 이런 사랑의 마음을 갖는 것, 이것이 성인의 도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의 도리는 역사를 넘어서, 시대를 넘어서, 세계를 넘어서 오늘날 전 세계에 모든 도덕 기중으로서 이어 받아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박애정신입니다.
(186.74-75,1989.01.29)
길가에 놀고 있는 못 입고 못 먹고 뼈만 남아 있는 아이들을 보면 자기 아이들처럼 안고 품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걸 못 하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합니다. 아이를 낳아 놓고 책임을 못 하는 부모처럼, 자기 아이를 어느 유모에게 주거나 혹은 어떤 동네에 버린 어머니가.... 지나가다가 그 아이를 보게 되면, 그 아이 앞에 얼굴을 못 드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그 이상의 부끄러움을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심정의 인연입니다. 만일 자기가 낳은 아들딸이 그렇게 헐벗고 있다면 그 아이를 붙들고 뼈가 녹아나고 살이 일그러지도록 눈물을 흘리지 않겠습니까?
(46.281,1971.08.17)
길을 가다 허리가 굽은 불쌍한 노인을 보게 되면 ‘내 아버지도 저런 모양으로 찾아오셨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또 부풀은 노동자의 손을 보게 될 때도 ‘아들을 찾으려는 내 아버지은 저 이상의 모양을 하셨겠구나!’ 불쌍한 거지를 보게 될 때도 ‘이 거지는 거지가 아니라 내 아버지구나’ 하며 머리 숙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보잘것 없고 가련한 인생이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심정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가 내 아버지라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고 자기의 처지와자기의 위신을 초월하여 행동할 수 있어야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8.346,1960.02.28)
나이 많은 사람을 보면 자기 할머니 할아버지 같이 생각하라는 거예요. 점심때가 되어 전부 식당에 들어가는데 돈이 없어서 걱정하는 빛이 보이면 데리고 들어가서 자기 할머니 할아버지 같이 잘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215.122,1991.02.06)
선생님 자신도 감옥에서 외로운 적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외로운 자리에 있을 때 와서 위로해 주고 간 사실이 언제나 잊히지 않습니다. 친척이나 다른 누가 왔던 것은 잊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랑의 인연을 맺은 사람은 잊히지 않습니다.
(63.205,1972.10.14)
어떤 때는 공창가, 창녀 굴, 젊은 처녀가 그런 자리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을 구해 주기 위해 그저 동생같이 생각하고 구해 주던 일, 그런 사정을 듣고 그저 붙들고 통곡하던 것이 지금도 안 잊힙니다. 그렇게 붙들고 눈물 흘리던 일이 엊그제 같습니다. 이런 사실이 참 많습니다. 그것이 다 기도보다 귀한 자리입니다.
(93.66,1977.05.01)
이제 8월 초하루면 수산사업을 한 지 20년이 됩니다. 일 년에 2천만 굶어 죽는 사람들을, 아프리카의 오지나 제3세계 불쌍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선생님이 지금까지 20년 동안 배를 탔습니다. 그물이면 그물을 만드는 방법, 공장을 만들고, 배를 만들어 가지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준비를 다 했습니다. 아프리카의 어머니들이 낚시질을 할 줄 알았으면 왜 굶어 죽습니까? 물이 있고 고기가 있는 강이 있는데, 낚시질해서 잡은 고기로 아이들을 다섯, 여섯 먹여 살리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사냥해야 됩니다.
하루에 6만 명이 죽어 갑니다. 그들이 전부 하나님의 아들딸로, 우리 형제들이 죽어가는데 배를 쓸고 전부 곰같이 살이 쪄 가지고 살을 빼기 위해서 금식하고 안 먹고 있는 이런 미국이 벌 받아야 되겠습니까, 안 받아야 되겠습니까? 영계 가서 지옥 가야 되겠습니까, 천국 가야 되겠습니까?
(261.308-309,1994.07.24)
2. 자선의 자세
종교 경전
친절한 말과 용서가 위법한 행동 후 해야 하는 자선보다 좋은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부자이시며 인자 하시니라.
오, 믿는 자들아! 비난과 위법행위로 인해 너의 자선을 헛되게 하지 말거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재물을 사용하는 자와 하나님과 최후의 날을 믿지 않는 자들처럼
꾸란 2.263-264(이슬람)
비록 가진 것이 적더라도 누가 와서 빌거든 선뜻 내어주라
법구경 224(불교)
자신이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가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역시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탈무드, 기틴7b(유대교)
속옷 두 벌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과 나누어 가지고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라.
누가복음 3.11(기독교)
너는 자선을 베풀 때에는 네 오른손이 무엇을 하는지를 네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은밀한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마태복음 6.3-4(기독교)
깨달은 자들은 관대하게 주는 자들이다. 후회 없이, 대가를 바라지도 않으면서, 명예를 바라지 않으며, 물질적인 이익을 탐하지도 않으면서, 다만 일체중생을 구하고 보호하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아무 거리낌 없이 나누어 준다.
화환경 21(불교)
오, 믿는 자들아! 너희가 벌어들인 좋은 것과 우리(하나님)가 너희를 위해 대지로부터 나오게 한 것을 사용하라. 너라면 눈을 감지 않고서는 받지도 않을 나쁜 것만을 베풀려고 하지 말거라.....
너희가 공개적으로 자선을 한다면 그것을 잘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몰래 가난한 사람들에게 준다면 더욱더 좋은 것이니라. 이것으로 인해 너희가 나쁜 행동들도 속죄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행동들을 다 알고 계시는니라.
하나님의 길을 가기 위해 고생하며 땅 위를 활보하지 못하는(장사를 위해)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하라) 무지한 자들은 이들이 청하지 아니하므로 이들이 필요한 것이 없는 줄로 생각하리라. 너희는 그들의 모습에서 알 수 있노라. 이들은 집요하게 사람들에게 청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자선 행위를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시느니라.
꾸란 2.267-273(이슬람)
거지와 도움의 요청이 금지된 자에게도 그들의 재산에 권리가 있느니라.
꾸란 51.19(이슬람)
최고의 자비는 가난한 동료의 일손을 돕고, 선물이나(이해관계 없이) 돈을 빌려줄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의 동업자가 되어 일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그 가난한 자는 더 이상 공적인 보조에 의지하지 않고, 도움을 통해 결국 토라에서 가르치는 독립심 있는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 레위기 25장 35절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너의 동족 가우데 아주 가난해서 도저희 자기 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너의 곁에 살면 너는 그를 돌보아 주어야 한다.”
이보다 한 단계 낮은 자비는 베푸는 자가 수혜자에 대해 모르고, 수혜자도 베푸는 사람에 대해 모르는 경우이다. 즉, 남이 모르게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미츠바를 위해 자선 미츠바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런 자비는 고대 성전의 뜰에서 의로운 이가 가난한 자들이 가져가도록 남몰래 기부금을 놓고 갔던 것과 같다. 자선 상자에 돈을 넣어주는 행동이 이 성전 뜰에서의 행동과 흡사하다.
그보다 낮은 단계의 자비는 베푸는 자는 수혜자를 알지만 상대는 모르게 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성인들이 가난한 자의 집 앞에다 몰래 선물을 놓고 오던 것과 같다. 공공복지를 책임진 자가 의롭지 못할 때 이런 행위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수혜자는 베푸는 사람을 알지만, 베푸는 자는 누구에게 돈이 전해질지 모르는 경우가 다음 아래 단계이다. 그러나 이것의 장점은 수혜자가 직접적 대면을 통한 부끄러움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보다 덜 바람직한 경우는 둘 다 서로를 알지만. 가난한 자가 요구하기 전에 먼저 주는 것이다. 이보다도 낮은 단계는 요청을 받고 나서 도와주는 경우이다. 자신이 품위를 차릴 정도로만 주면서 실제 필요보다 적게 주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가장 최악의 경우는 억지로 베푸는 것이다.
마이모니데스, 미수네 토라, 자선의 8단계(유대교)
말씀 선집
불쌍한 사람을 만나서 동정하게 될 때 동전 한 푼을 주면서 ‘야! 젊은 사람이 뭐이래?’ 절대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작은 한 푼이라도 천 배 만 배 받들어서 오늘 이 시간 이후에 복을 받으소서’ 그런 말은 얼마든지 해도 좋습니다.
(127.89,1983.05.05)
천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전부 다 재료를 제공해야 됩니다. 재료를 제공하는 데는 재 것을 갖다가 제공한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하늘 것을 갖다가 제공한다고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에게 주게 되면 하늘 것으로써 준다고 생각해야지, 내 것으로 주지 말라는 겁니다. 그 받는 사람은 내 마음을 안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게 되면 손해 안 나게 하늘이 몇 십 배로 갚아 줄 것입니다.
(102.119-120,1978.11.27)
없는 가운데서 잘 주는 사람이 있기만 하다면 얼마나 잘 주겠느냐!
(뜻길,p.200)
마음은 선을 행하라고 몸에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라고 하고 자기를 어렵더라도 뭇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고, 도와줘야 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41.60,1971.02.13)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누구에게 몇 천만 원을 주었으미 그에 대한 이자를 얼마 가져와야 할 텐데 하면서, 준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천국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준 것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기를 때 몇 냥 전을 투자했으니 그 이자를 받겠다고 하는 그런 부모 있습니까? 주고도 다 잊어버리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준 것을 잊어버릴 뿐만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해 안타까워 하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36.85,1970.11.15)
호의
지나가는 손님이나 여행객에게 음식과 쉼터를 제공하는 것은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적 덕목이다. 아브라함은 낯선 손님들에게 , 결국 손님으로 나타난 세 천사에게 호의를 베푼 것으로 유명하다. 문선명 선생은 지나가는 손님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을 가훈처럼 정해 놓으셨던 어린 시절 그의 부모님의 이야기를 자주 하신다. 화목한 가정에서부터 그런 환경이 조성되고, 그 가정에는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수마일 떨어진 곳으로부터 동물들까지 찾아오는 것이다.
풍족하지 않은 집안이라도, 자선을 베풂으로 인해 집안이 조금 궁핍해지더라도,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손님에게는 최고의 호의를 베풀어야 한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이를 실천한 세 가지 대표적인 일화가 있다. 첫째는 소돔의 주민들이 마을에 찾아온 손님을 해하려고 할 때 이를 보호해준 롯의 이야기다. 그리고 무함마드를 찾아온 손님에게 그의 마지막 남은 음식 한 조각을 건네 준 무함마드의 친구가 있다. 마지막으로 목마른 낯선 손님에게서 음료수를 빼앗느니 차라리 자기가 갈증으로 죽어 갈 것을 선택한 힌두교의 가장 이야기가 있다.
종교 경전
계속하여 서로 사랑하십시오, 나그네 대접하기를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어떤 이들은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대접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3.1(기독교)
네가 아무리 적은 양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너의 집에 들어오는 누구든지 먹을 수 있도록 배려 하여라. 만일 네가 양식을 주지 않고 둔다면 그것은 네가 죽음의 근원이 될 것이다.
위네바고족 아버지의 훈계(미주 원주님 종교)
알라와 최후의 날을 믿는 자들이여! 네 이웃에게 친절하도록 하고, 알라와 최후의 날을 믿는 자들이여! 네 손님에게 친절하도록 하라
알 나와위 하디스 40선15(이슬람)
한 가정의 남편과 아내는 식사 중에 찾아와 먹을 것을 구하는 자를 외면하지 말아야 하느니, 만일 음식이 없다면 쉴 곳이나 마음을 상쾌하게 하는 물 한잔, 몸을 굽힐 수 있는자리, 그를 즐겁게 하는 말 한마디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이러한 일들은 덕 있는 자의 가정에서는 반드시 베풀어져야 마땅한 것이다.
아파스탐바 다르마 수트라 8.2(힌두교)
하나님의 천사 둘이 소돔에 다다른 것은 저녁때였다. 롯이 때마침 성문께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맞으며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 청하였다. “손님네들, 누추하지만 제 집에 들러 발을 씻으시고 하룻밤 편히 쉬신 다음 아침 일찍이 길을 떠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들은 밖에서 밤을 세우겠다고 하면서 사양하였으나, 롯이 하도 간청하는 바람에 롯을 따라 그의 집에 들어갔다. 롯은 그들에게 누룩 안 든 빵을 구워주어 대접하였다.
그들이 아직 잠자리에 들기 전이었다. 소돔 시민이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온통 몰려와 롯의 집을 둘러싸고 롯에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오늘 밤 네 집에 든 자들이 어디 있는냐? 그자들하고 재미를 좀 보게 끌어내어라.” 롯이 밖으로 나가 등 뒤로 문을 닫고 사정하였다. “여보시오, 제발 이런 못된 짓을 하지들 마시오, 아시다시피 나에게는 아직 남자를 모르는 딸이 둘 있소. 그 아이들을 당신들에게 내어줄 터이니 마음대로 하시오. 그러나 내가 모신 분들에게만은 아무 짓도 말아주시오.”
창세기 19.1-8(기독교)
어떤 사람이 사도를 만나러 왔을 때 사도가 부인들에게 손님께 먹을 것을 대접하라고 하자, 그들은 “물 외엔 정말 아무것도 대접할 게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사도가 “누가 이 사람에게 먹을 것을 줄 것인가?” 라고 물었다. 교우 중 한 사람이 “제가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그 사람을 자신의 부인에게 데리고 가서 말하기를 “하나님의 사도의 손님을 잘 대접하시오” 하였다. 부인이 대답하기를 “아이들 저녁 외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자 그가 말했다. “그럼 음식을 준비하고, 램프를 켜고, 아이들이 저녁을 찾거든 침대에 재우시오.” 그래서 그녀는 음식을 준비하고 램프를 켜고 아이들을 재웠다. 그러고 나서 일어나 램프를 손질하는 척하며 불을 껐다. 그리고 교우와 그 아내는 음식을 먹는 척했으나 사실 밤새 공복이었다. 다음날 교우가 하나님의 사도에게 왔을 때, 사도가 말하기를 “지난밤 하나님이 미소지으셨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계시하셨다. “비록 그들이 가난하지만 자신들보다 다른 사람을 우선시하는구나.”
부카리 하디스(이슬람)
란티데바의 성망은 이 세계뿐 아니라 다른 세계에서도 찬미된다. 그는 자신이 비록 굶주리고 있다 할지라도, 신이 그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리라는 믿음에서 재물이 들어오면 그 즉시 남에게 나누어 주곤 하였다. 세상에 기근이 들어 그의 가족이 모두 굶주림에 시달린다 해도 그의 관대함은 지속되었다.
사십팔 일 동안 그와 가족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었는데, 겨우 한 사람이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음료가 남아 있는 게 전부였다. 그가 그것을 막 마시려 하는 중에 어떤 불가촉천민이 먹을 것을 구걸하여 왔다. 이 광경에 란티데바는 가슴이 찢어질 듯하여 생각하기를 “나는 결코 신에게 권능 있는 위대한 국토를 바라거나 혹은 삼사라에서의 해방을 구하지 않으리라.나는 일체중생의 가슴속에 자리하여 그들의 슬픔을 없앨 수 있도록 하리라.” 하고는 비록 스스로 갈증으로 목이 타고 있었지만, 그 자비로운 왕은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은 음료를 그 천민에게 건네주었다.
스리마드 바가바탐 9(힌두교)
말씀 선집
집에 귀한 손님을 맞기 우해서 언제든지 준비를 하는 집은 복을 받습니다.
(100.259,1978.10.22)
오는 사람을 왕같이 대하고 왕같이 모시고 왕같이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89.290,1976.12.04)
친구들이 여러분의 집에 오면, ‘야, 우리 집보다 여기가 더 좋다. 보리밥을 먹어도 괜찮고, 죽을 먹어도 우리 집 밥보다 더 맛있다. 나 하룻밤만 더 재워줘’ 라고 할 수 있는 가정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찾아오는 사람, 찾아오는 친구마다 자기 집을 버리고 그 집에 오고 싶어 할 수 있는 가정이 도어야 그 가정이 천국가정 되는 것입니다.
(16.328,1966.07.31)
먼 곳에서 자기 집을 찾아 와 가지고 처마 끝 혹은 사랑방에서 자고 싶어 하는 손님들을 많이 가질수록 그 가정은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집이 소문이 나서 군(군)에서 몰려들고, 더 나아가 나라에서 몰려들고, 세계에서 몰려들 수 있는 가정이 되기를 서로가 경쟁하는 시대라는 겁니다. 물질이 풍부해서 그런 생활을 하는 게 아닙니다. 마음이 풍부해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굳은 빵을 먹더라고 그게 행복입니다.
(244.49,1993.01.29)
가정천국을 이루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가정천국이란 무엇입니까? 지나가는 거지도 이 집에 들어와 자고 싶다고 해야 되고, 추우면 이 문전에라도 들어와서 기대고 잠자고 가고 싶다. 해야 합니다. 지나가는 개도 들어와 '끙끙‘ 하면서 춥지만 문전에 와서 자고 가야 되고, 날아가는 새들도 그래야 됩니다. 새가 똥을 싸더라도 문전에 와서 똥 싸고 싶고, 살더라도 그 문전에 와서 살고 싶게끔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들도록 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집이 돼야 흥하고 하늘이 같이합니다. 왜냐? 하나님의 사랑이 깃든 곳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가 깃든 곳이 안식처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100.299,1978.10.22)
선생님 가문에 가훈이 있는데, ‘팔도강산 지나가는 사람에게 밥을 먹여 주어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해졌습니다. 거지라는 거지는 다 우리 집에 왔다갔습니다. 우리 어머니만 해도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고 있을 때 우리 집에서 그런 고생을 해도 불평 안 하는 것을 보면서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이 나와 가지고 세계를 먹여 살리는 운동을 할 수 있는 동지가 됐다는 것입니다.
(130.276,1984.02.05)
동네방네 몇 십 리 안팎에서는, 거지가 오게 되면 전부 우리 집이 거지 집합소였습니다. 언제나 사랑방에는 거지가 자게 마련이고, 우리 동네에 연자간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거지가 언제든지 모여 있기 마련이었습니다. 난 그 거지하고 친구 많이 했습니다. 집에서 떡을 하게 되면 불쌍해서 갖다가 주었습니다. 아침에 나왔다가 어디 가게 되면 점심을 누가 줘요? 점심을 누구 주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점심도 갖다 주고 이러던 생각이 납니다. 어머니 몰래 이래 가지고, 그게 다 좋은 것입니다. 그 마음에 어머니는 나를 먹이려고 두었지만 나는 나눠 먹으려고 어머니가 물어보기 전에 갖다 먹였습니다.
(127.111,1983.05.05)
위대한 계명
사랑의 법칙을 다루는 가장 대표적이며 함축적인 예수님의 계명은 그 어느 것에도 비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은 사랑의 두 가지 차원, 곧 하늘에 대한 종적인 사랑과 인류에 대한 횡적인 사랑을 모두 언급하고 있다. 짤막한 이번 장을 통해서 우리는 이 주제에 대한 문선명 선생의 몇 가지 말씀을 살펴볼 것이다.
종교 경전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가는 계명이다.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한것이다.”
마태복음22.37-39(기독교)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서 예수를 시험하여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하였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 ” 그가 대답하였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였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대답이 옳다. 그대로 행하여라. 그러면 살 것이다.” 그런데 그 율법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서 예수께 말하였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누가복음 10.25-29 (기독교)
말씀 선집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명을 허락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 22:37-38)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계명을 하늘은 인간들이 지키기 이전에 먼저 지키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오늘날 타락한 인간이 지켜야 할 첫째 계명임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 말씀을 듣게 될 때에 그 말씀이 나에게서부터 인연 되어 시작되는 줄 알면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이 말씀을 인간 앞에 나타내기 위해서 인간의 생명의 주체되시는 하늘이 먼저 인간을 위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한 역사과정을 거쳐 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느껴야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그 계명을 지키기 전에 하늘은 우리를 대하여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는 입장에서 인간을 붙잡고 사랑하여 나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기억하여야 되겠습니다. 도한 하나님 자신이 그것을 지키셨기 때문에 계명으로 세우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4.305,1958.10.05)
하늘의 헌법 중에서 제 1의 헌법이 뭐냐? 하나님을 자기의 몸 이상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형제들을 자기 몸 이상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서는 사람은 나면서부터 천상세계 어디 가든지 막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반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더럽혀졌기 때문에 이것을 청산해 나오면서 비로소 주류 되는 기독교 문화권을 중심삼고 세계를 통일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195.136,1989.11.07)
네 모든 것을 희생해서 사랑하는 것이 첫 번째 계명이 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설 수 있는, 하나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지상에서 기쁘게 모셔야 하는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모시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맞을 수 있는 우리 상대적 인격, 상대적 제물을 갖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 번째 계명이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에 대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내 아들을 사랑하라’ 하는 첫 번째 계명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했으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이 그러한 사랑을 가지고 모든 인간에 대해서 횡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렇게 되면 다 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되고 그 다음은 횡적으로 그 인류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집안 아버지 어머니를 지극히 사랑하고, 그 다음에 형제를 지극히 사랑하니 그 집안은 행복한 집안입니다.
오늘날 세계 인류역사 가운데서 하나님이 계시고 싶은 집, 그 집이 어디에 있는냐 할 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런 마음으로 부모를 사랑하는 이상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집입니다. 그런 집이 되면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습니다.
(101.153-154,1978.10.29)
둘째 계명은 세계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생명을 다 바쳐서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생명을 희생하더라도 이웃을 사랑해야 하고 내 생명을 희생하더라도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거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 인류를 보호하기 위해서 자기 생명을 걸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한, 사탄이 점령하지 못합니다. 사탄을 굴복 시킬 수 있습니다.
(143.137,1986.03.17)
예수님도 ‘이웃 사랑을 내 몸과 같이 하라’ 고 했는데 그것을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가서 세상 할아버지를 대할 때는 여러분의 할아버지 같이 대하라는 것입니다. 어머니같이 대하고, 아버지같이 대하라는 것입니다. 아들같이 대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가게 되면 전부 그렇게 해야 됩니다. 상중하, 전후, 좌우의 사람이 세계라는 전시장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사람 박람회가 세계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128.23,1983.05.29)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고 할 때 이웃이 뭡니까? 예수 믿는 사람만이 이웃입니까? 아닙니다. 그 이웃은 세상 끝에 있는 사람, 사탄 마귀의 품에 있는 사람까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로마병정까지 말한 것입니다. 이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이웃이 아닙니다. 자기 형님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원리를 보면 가인을 복귀해야 됩니다. 형님을 복귀해야 됩니다.
(138.187,1986.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