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 4장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창조성
생명 존중
이 절의 구절들은 생명 존중에 부합되는 윤리를 규정한다. 도교와 불교의 경전은 인간세계의 인위성에 대해 지적하며, 자연의 순수와 무위로 돌아가라고 촉구한다. 어둡고 불결한 도시환경과 비교할 때 자연 속의 삶은 곧 정화이며 영적 삶에 도움이 된다.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어떤 사람에게 자연세계에 대한 존중과 그 속의 피조물들에 관한 공경은 강제된 어떤 것이 아니라 사랑이 충만한 심정에서 저절로 흘러나온다. 그래서 아힘사, 즉 인도 아대륙에서 일어난 비폭력 불살생 교의가 있다. 채식주의는 흔히 이 교의의 윤리관에 따라 출현된다. 더욱이 자연의 피조물들 중에서 암소보다 더 아낌없이, 아무런 불평없이 주는 동물은 없으며, 따라서 암소는 힌두교인들과 다수의 원주민들에 의해서 마땅히 공경된다.
문선명 선생의 가르침은 위에서 언급한 측면들과 여러 가지로 부합하지만, 특히 자연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며, 그것은 환경윤리를 위한 출발점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그는 하위체계의 피조물은 상위체계의 피조물에 의해 먹히고 흡수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는 개념에 입각하여 채식주의에 대한 흥미로운 이의를 제기한다. 하위체계의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구현하므로 피조물들의 정상에 선 인간을 위한 자양분이 되기를 당연히 원할 것이다. 그러나 참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음식을 섭취할 만한 자격이 없는 것이다.
1.생명체에 대한 외경과 보살핌
종교 경전
어머니가 자기의 목숨을 바쳐 아들의 목숨을 지키듯이, 일체중생에 대한 지극한 자비심이 그대 가슴에 가득하라.
쿳다카 파타, 멧타 숫다 (불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에 대한 완전한 무해나, 불가피한 경우에 이의 극소화로 이루어지는 삶은 덕행 중의 덕행이다.
마하바라타, 샨티 파르바 262.5-6 (힌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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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동물이나 생물, 유기체 또는 의식적인 존재를 상하게 하거나 예속시키거나 고통을 주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 비폭력 교의는 청정하고 불변이며 영원하다. 고통이 그대에게 아픔을 주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그것은 모든 동물, 생물, 유기체, 의식적인 존재들에게 아픔을 주고 불안하게 하고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아차랑가 수트라 4.25-26 (자이나교)
사도가 이르기를, ‘이슬람에는 해도 없거니와 해에 대한 근거도 없느니라’ 하였다.
마즈마 알 자와드 4.6536 (이슬람)
어떤 사제가 뱀에 물려 죽자 그들이 세존께 이를 알렸다. “오, 사제들이여! 놀랍도다. 저 사제는 결코 뱀들의 네 왕족들에 호의를 보인 적이 없도다. 왜냐하면 만일 저 사제가 뱀들의 네 왕족들에 호의를 보였더라면, 그는 뱀에게 물려 죽는 일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발 없는 중생에게 내 사랑이 머물고, 두 발 지닌 짐승에게 또한 그러하며, 네 발 지닌 짐승을 내가 사랑하며, 많은 발 달린 중생도 또한 그러하리라.
비나야 피타카, 출라박가 5.6 (불교)
낳았으되 소유하지 않고,
해주었으되 믿지 않고,
길렀으되 지배하지 않는다.
이것을 그윽한 덕[元德]이라 말한다.
도덕경 51 (도교)
소나 말이 네 개의 발을 가지고 태어난 것, 이것을 일러 자연(天)이라 하고, 말 머리에 고삐를 두르고 쇠코에 구멍을 뚫는 일, 이것을 일러 인위(人)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위로 자연적 본성을 망치지 말고 조작으로 천성[性命]을 파괴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장자 17 (도교)
야마토의 땅에는 많은 산들이 있다.
카구산의 천계에 올라,
나는 그 나라를 내려다보네.
땅 위에 여기저기 피어오르는 연기와,
바다 위 여기저기 떠다니는 갈매기들을 보네.
참으로 좋은 나라가 여기,
잠자리들의 섬,
야마토의 이 땅이로다.
만요수 I (신도)
전 세계의 중심 수미산의 동편에, 가파르고 완만한 산비탈을 따라 흘러내리는 푸른 시냇물, 희고 푸른 온갖 나뭇잎들, 향기로운 백합화, 천계 위 나무들이 제각기 아름답고, 이름 모를 온갖 수풀과 넝쿨이 울창하며 고행승과 구도자들이 거두는 거위, 오리, 백조들의 울음소리가 평화로워라.
자타카 (불교)
오, 호랑이들이여, 다시 숲으로 돌아와서,
숲이 평지나 다름없게 되지 않게 하라.
그대들이 없다면 도끼가 숲을 무참히 도륙하리라.
숲이 없다면 그대들은 영원히 집 없이 떠돌아다니리라.
쿳다카 파타 (불교)
말씀 선집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알아야 됩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연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만물은 하나님의 상징적 존재요, 인간은 실체적 존재이기 때문에 만물과 인간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70.182, 1974.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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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연의 주인 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연을 자기 이상 사랑하고 또 사람들을 자기 이상 사랑해야 됩니다. (375.20, 2002.04.13)
아네를 사랑하는 데도 아네에게 먹고 살 수 있는 영양소를 보급하는 모든 공기와 태양 빛과 물과 풀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물과 태양이 없어서는 초목이 자랄 수 없지요. 자연을 사랑하고 나서야 자기가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마음대로 잡아먹으면서 사랑 못 하며, 잡아먹으면 병이 납니다. 사랑하면 병이 안 납니다. (385.200-201, 2002.07.11)
우리 몸과 제일 가까운 것이 자연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탄식하는 자연의 소원을 풀어 주어야 합니다. 산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높은 것을 추앙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자, 석가, 예수님은 모두 산을 사랑한 분들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명승지에 가게 되면, 그것이 하늘의 운세를 중심하고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하는 입장에서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늘의 운세와 연결하게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의 초창기에는 산으로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한 나라의 산과 땅과 물을 보면 그 나라의 민족성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물은 어디에 가서 마셔도 옥수(玉水)입니다.
외국에 나가기 전에 우리나라의 자연을 깊이 사랑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자기가 태어난 땅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자기의 몸도 사랑할 줄 압니다. 또 자기의 몸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이요, 자기의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러한 사람은 하늘도 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나이아가라 폭포보다도 자기가 태어난 이 땅을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자연이 하나님의 섭리노정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위로했던가 하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14.102, 1964.06.20)
바다를 사랑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바다에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이 많습니까? 미지의 사실이 많습니다. 그것을 파고 들어가고 더 사랑하겠다고 해야 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산도 위험한 곳이 많습니다. 그것도 더 체험하고 자기가 더 개발 하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자기 가슴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391.218, 2002.08.26)
미국의 뉴욕이라든가 워싱턴의 일부 지역은 지옥중의 지옥입니다. 제일 어두운 곳이에요. 섬나라처럼 사람들을 한 10리 정도 가야 한 사람씩 만나고, 하루 종일 만나야 열 사람 만날지 말지 한데 가서 살면 거기서는 본심이 눈을 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이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자연 환경이 80퍼센트 되고 사람 환경이 20퍼센트 되어 가지고도 균형을 취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도시에 있는 사람들을 시골로 쫓아내서 공해문제와 환경문제를 해결해야 됩니다. 인류가 3백년, 3세기를 어떻게 남아지느냐 이거예요. 그러니 내쫓아야 됩니다. 특히 선진 국가들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도시가 문제입니다. 마약, 범죄, 에이즈 등 복잡한 문제들이 많습니다. 듣는 것, 보는 것, 느끼는 것들이 전부 문제입니다. 이러한 문제들로부터 어떻게 도망을 갈 것이냐? 그러므로 시골로 흩어져야 됩니다. 지금은 시골에 가서도 문화생활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이 있지, 이메일과 전화가 있지, 어디 가든지 다 마찬가지입니다. 저 산꼭대기, 로키산맥 같은 7천 미터 이상 되는 곳에서도 말이에요, 인터넷을 통해서 세계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레버런 문은 남미 시골로 가는 것입니다. 모기가 많지만 공기가 좋고, 물이 좋고, 태양 빛이 좋습니다. 바다를 보라고요. 태평양 섬에 가더라도 공기 좋고 물이 좋습니다. 공해가 없지, 환경은 더 좋지···.자연과 더불어 얘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연에 가까운 것입니다. (339.163-164, 200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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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성한 암소
종교 경전
암소들이 다가와 우리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누나.
그들이 외양간에 있으며
우리와 더불어 즐겁게 지내리라.
풍성하게 번식하고 갖가지 모양을 나타내며,
그들이 여기에 살았으면
인드라를 위해 아침마다 젖을 짜내면서···.
그들을 잃지 말며
도둑들이 해치지 못하게 하고
못된 마음으로 그들을 겁주거나
죽이려 들게 내버려두지 말라.
암소의 주인으로 오래오래 살면서
신들을 섬기고 그들을 잡아 제사지내라.
흙먼지 속을 질주하는 군마들이
그들에게 닿지 않으며,
그들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일이 없노라.
신을 섬기는 이의 암소들은
광활한 풀밭을 활보하나니,
그들에게 아무런 위험도 없도다.
나에게 암소들은 바가, 인드라,
그들의 젖은 처음으로 짜낸
한 줄기 소마로 보이누나.
오, 사람들이여!
이들 암소, 그들은 인드라이로다.
인드라를 나는 진심으로 열망하노라.
그대, 암소들이여!
그대들은 쇠약한 이들을 살찌우고
추한 이들도 아름답게 하도다.
행복한 울음으로
집안을 행복하게 하누나.
그대들의 위대한 활력은
우리들의 모임에서 찬미되도다.
리그 베다 6.28 (힌두교)
오, 조상님! 당신이 우리에게 주신
이 들소를 보십시오.
그는 우리의 거룩한 어머니 위에 있는
모든 네 발 달린 동물의 우두머리입니다.
그 덕분에 사람들은 살아가고
그와 더불어 거룩한 행로를 갑니다.
수우족의 기도 (미주 원주민 종교)
말씀 선집
옛날에 내가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그 때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소 먹이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처음에는 싫증났었는데 깨닫고 나서는 소를 참 사랑하게 됐습니다. 어떤 때에는 소가 오후가 되면 시간이 된 걸 뻔히 압니다. 그런데 나는 이거 장난치고 놀다가 끝내지 않고 그냥 가기는 싫거든요. 그래서 ‘야! 10분 기다려! 야! 30분 기다려!’ 이러다 보니 한 시간, 두 시간···. 이래 놓으니 소는 벌판에 매여서 ‘나를 모시러 올 주인이 어디 갔나?’ 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늦게 가더라도, 나 같으면 성을 내고 밀고 차고 할텐 데 아무 말도 안 하고 그저 이렇게 쳐다보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나는 ‘참 군자, 군자 양반이다! 아 고맙다!’ 고 속으로 그랬습니다. 그럴 때가 많았습니다. ‘야! 이게 참 나보다도···’ 그러고 나서는 ‘야! 너, 그런 모습을 볼 때 오늘은 먹여서 탕감 복귀해야겠다!’ 그리고 해가 져서 어둡도록 먹여 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배가 팽팽한데도 주인이 먹이니 자꾸 먹는 것입니다. 이게 밤을 새우더라도 먹는 것입니다. 위가 많으니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소에 대해 배운 것이 많습니다. 따가운 오뉴월 땡볕에 앉아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먼 산을 바라보고···.명상하는 대왕님이 소입니다. 그래서 세계 사람들이 호랑이 고기는 싫어해도 쇠고기는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개고기도 싫어하고, 고양이 고기도 싫어합니다. 그런 것들은 얼마나 빨라요? 얼마나 양양거리느냐 말입니다. 개는 또 얼마나 짖어요. 그래서 ‘쇠고기는 다 좋아 하는구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치약 같은 것도 소 뼈다귀로 만듭니다. 어디 꽁지 하나 버릴 것이 없고, 뼈다귀 하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똥도 비료로 쓰지요. 그래서 ‘소가 좋긴 좋구만!’ 하는 것입니다.(109.40-41, 198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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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채식주의
종교 경전
살아 있는 목숨을 죽이지 말라. 이것은 모든 지혜의 요결이며, 이것이야말로 불살생에 관한 상호 관계의 이치에서 내려지는 지고한 결론임을 알라.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일체의 생명들, 공중에 나는 새들이나 땅 위 혹은 땅 속에 사는 일체의 생명들에 대한 위해나 살생이 없는 세계, 이러한 세계를 일러 안락과 평화가 충만한 구극의 열반이라 하느니라.···
진정한 구도자는 산목숨을 잡아 만들어진 음식이나 음료를 먹어서는 아니 되며, 금해진 음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식사에 동참해서도 아니 되나니, 이것은 계율에 충실한 자의 마땅한 도리이니라. 스스로 의혹이 일어나는 음식은 무엇이나 삼갈 것이며, 자신의 영혼을 구극의 경지에 합당하게 하며, 감각을 통어하는 자는 살아 있는 목숨을 죽이거나 이러한 일에 함께 해서는 아니 됨을 늘 명심할지니라.
수트라 크리탕가 1.11.10-16 (자이나교)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않는다면 살코기란 있을 수 없으며, 살아 있는 생명을 거두는 것은 천계에 합당치 않다. 이런 까닭에 살코기를 먹는 일은 마땅히 피해야 한다.
마누법전 5.48 (힌두교)
살생을 금하지 않으면서 선정을 닦는다고 함은, 비유하여 마치 어떤 이가 제 귀를 막고 크게 소리 지르면서 남들이 듣지 못할 것을 구하는 것과 같다··· 청정한 비구는 길 다닐 적에 살아 있는 풀을 밟지 않거늘, 하물며 제 손으로 그것을 뽑겠느냐? 그런데 어떻게 자비를 말하면서 중생의 피와 살을 가져다가 식사에 충당하겠느냐? 청정한 비구들은 명주로 만든 의복을 입지 않으며,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신발을 신지 않는 것은 그것이 중생의 생명을 앗아 취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청정한 비구가 짐승의 젖이나 그것으로 만든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그 음식들은 어린 새끼들이 먹어야 할 것을 빼앗아서 얻는 것인 까닭이다.
수능엄삼매경 (불교)
말씀 선집
인간이 사랑의 오케스트라를 하고 사랑의 모든 맥박을 중심삼고 우주를 전부 살려 나갈 수 있는 동물세계와 식물세계를 먹는다는 것은 사랑의 결실을 먹고 산다는 것입니다. 열매를 먹고 산다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음식을 대할 때, 그 먹혀질 식물은 ‘비로소 당신의 피살이 되고 힘이 되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원소로 내가 흡수되는 놀라운 것을 감사합니다’ 하며 어서 입에 들어가겠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쇠고기를 먹더라도 ‘이 쇠고기는 송아지 때부터 어미가 사랑하고 주인이 사랑하여 길러서 여기까지 온 사랑의 열매로구나!’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의 열매로서 소화하고 먹고 산다는 개념을 중심삼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하나님의 본질적 사랑 분모의 내용과 일치된 자리에서 먹고 감사하는 사람은 병도 안 날 수 있다는 것은 이론적인 결론입니다. (217.307-308, 1991.06.12)
요즈음 여러분들 아침에 매일 밥 먹나요, 안 먹나요? 그러면 먹을 때, 자라고 있는 야채를 무정하게 뚝 잘라다가 칼로 ‘다다다’ 할 때 미안한 생각 좀 합니까? 삶지도 않고 소금을 쳐서 토끼처럼 와작와작 먹는 걸 볼 때, 이 야채가 ‘아이구, 나 죽는다, 이놈의 자식아, 복수, 복수, 복수’ 그래요? 그거 어마나 무정해요? 그럴 수 있어요? 그렇지만 야채는 ‘내가 그걸 다 고맙게 생각하고 당신은 나보다 더 가치 있는 이 우주의 공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공적 가치가 있는 존재에게는 희생하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나는 감사하며 들어갑니다!’ 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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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내가 ‘하하하’ 좋다고 웃고 이럴 때, 여기에 들어간 그 음식들이 좋아서 그럴 수 있게끔 해야 합니다. 이게 기분이 좋아 가지고 들어가서 내 살이 되고 피가 되어 가지고 움직여야 됩니다. 이게 전부 다 불평 불만해 가지고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는 ‘하하하’ 할 때, 그저 ‘음음’ 이러면 어떻게 되겠는냐는 말입니다. 나 때문이 아니라 전체 때문에 ‘하하하’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을 모든 음식물이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자기를 위해서 ‘허허’ 하는 것은 ‘빌어먹을 자식 같으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몸은 우주의 공법에 의해 반동이 벌어지기 때문에 병이 나고 나쁜 일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이 우주의 공법에 의해 쇠퇴되어 망한다는 것입니다. (105.94-95, 1979.09.30)
이 길을 가지 않겠다고 하는 존재는 고독한 것이요, 썩어 버리는 것이요, 폐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윈의 진화론 같은 것은 일면에는 일리가 있는 것입니다. 약육강식이란 말은 높은 것을 위해서는, 더 큰 것을 위해서는 통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주의 존재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기를 잡아먹고, 소를 잡아먹고, 다 잡아 먹고 그것을 흡수했으면, 그 이상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그렇게 하게 될 때 만 우주가 환영한다는 것입니다. (124.320, 1983.03.01)
식물은 광물을 빨아먹고 동물은 식물을 먹고, 자꾸 먹는 것이 뭐냐 하면 높은 데 가는 것입니다. 사람 가까이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신경 세포에 도달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상적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가자는 것입니다. 사람도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희생해야 합니다. 사랑의 힘은 희생하려고 합니다. 사랑이 자꾸 발전을 거듭하다 보면 하나님의 사랑에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개념을 가진 사랑하는 부부 한 쌍이 맺어진 것은 우주의 보물이기 때문에 전 우주가 보호하고 하늘땅이 보호하고 사람과 만물이 보호하니만큼 그것을 보호할 줄 알아야 됩니다. (201.123, 1990.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