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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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장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창조성
자연의 신성함
자연은 참으로 신성하다. 크고 작은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생명을 부여 받고 하나님의 영을 분유 받았다. 모든 종교 전통이 공유하는 이런 통찰은 온갖 생물에 대한 존중과 공경의 초석이 된다. 아브라함의 종교 전통에 의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에 따라서 각각의 피조물을 창조했으며 사랑으로 충만한 자신의 심정을 부어 넣었다. 그러므로 모래알 하나, 풀잎 하나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는 신성의 요소들을 지닌다. 더욱이 자연은 놀라운 균형을 드러낸다. 따라서 자연은 시적 종교적 영감의 신뢰할만한 원천이다. 자연의 본래적인 순수를 묵상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과 맛 닿을 수 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모든 피조물이 일종의 의식적인 앎의 차원을 지닌다는 것을 감지한다. 다양한 종류의 동식물은 인간의 종족과 세계처럼 종과 유를 이룬다. 그들은 우리의 몸을 구성하고 삶을 지탱하는 요소를 우리에게 빌려준, 바로 그 어머니 대지에 의해 양육되는 형제자매들이다. 자연이 제공해 주는 모든 것을 고려하면, 우리는 자연에 대해 크게 감사해야 한다. 문선명 선생의 가르침처럼 각 피조물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걸작품으로서 우리를 위해, 즉 우리의 기쁨과 영감과 배움을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
1. 자연계에 내재한 신성
종교경전
하나의 나뭇잎도 혹은 여린 풀잎조차도 경외로운 신이 그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우라베노 기네쿠니(신도)
이 세상과 그 안에 가득한 것이 모두 여호와의 것, 이 땅과 그 위에 사는 것이 모두 여호와의 것이다.
시편 24.1(기독교)
세상은 정원,
주는 이를 가꾸는 정원사,
모두를 소중히 여기며,
하나같이 소홀함이 없도다.
아디 그란트, 마즈 아슈트파디 1,M.3, p.118(시크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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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활력은 땅 속으로 들어가
그 모든 생명들을 유지한다.
나는 물과 수액을 주는 자.
달이 되어 나무와 풀들을 키운다.
바가바드기타 15.13(힌두교)
짙은 하늘
구름 낀 하늘
좋은 하늘
곧은 하늘
대지가 초목을 낳는다.
초목이 우리를 살게 한다.
우리를 장수하게,
복되게 한다.
선한 생명이여,
대기중에 유포되어라.
늘어나거라.
끝까지 바르거라.
달콤한 주술의 대지는 착하다.
달콤한 주술의 대지는 온전하다.
달콤한 주술의 대지는 영원의 길을 간다.
달콤한 주술의 대지는 씻겨지고 물이 흐른다.
샤이엔족의 노래(미주 원주민 종교)
계곡마다 샘물을 터뜨리시어 산과 산 사이로 흐르계 하시니 들짐승들이 모두 마시고 목마른 나귀들도 목을 축입니다. 하늘의 새들이 그 가까운 곳에 깃들이고 나뭇가지 사이에서 지저귑니다. 높은 궁궐에서 산 위에 물을 쏟으시니 온 땅이 손수내신 열매로 한껏 배부릅니다.
짐승들이 먹을 풀을 기르시고 사람이 농사지어 땅에서 양식을 얻도록 곡식을 또한 가꾸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포도주도 내시고 얼굴에 윤기 내는 기름도 내시고 힘을 돋우어주는 양식도 내셨습니다.
여호와의 나무들은 배부르게 마시니, 손수 심으신 레바논의 송백은 새들이 거기에 깃들이고 그 꼭대기엔 황새가 집을 짓사옵니다. 높은 산은 산양들의 차지, 바위틈은 오소리의 피신처. 때를 가늠하도록 달을 만드시고 해에게는 그 질 곳을 일러 주셨습니다.
어둠을 드리우시니 그것이 밤, 숲 속의 온갖 짐승들이 움직이는 때, 사자들은 하나님께 먹이를 달라고 소리 지르며 사냥을 하다가도 해가 돋으면 스스로 물러가 제자리로 돌아가 잠자리 찾고 사람은 일하러 나와서 저물도록 수고합니다.
여호와여, 손수 만드신 것이 참으로 많사오나 어느 것 하나 오묘하지 않은 것이 없고 땅은 온통 당신 것으로 풍요합니다.
시편 104.10-24(기독교)
개울은 오솔길을 가로지르고,
오솔길은 개울을 가로지른다.
그들 중 무엇이 먼저인가?
우리는 이 개울을 만나고 걷기 위해
그 오솔길을 끊지는 않았는가?
개울은 그 기원이 아주 오래되었다.
그 기원은 창조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모든 것을 순수하게 타노로 창조하였다.
아산티족의 시(아프리카 전통종교)
말씀선집
들에 자라고 있는 미미한 풀 한 포기라도, 거기에 하나님의 손길이 거치지 않은 것이 없음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자라고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보더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무한한 내적 심정의 인연을 통한 사정이 거쳐나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다시 한 번 상기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6.338, 1959.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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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 모두가 그렇게 인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인연이란 것은 지극히 작은 데서부터 맺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체도 수십조(4백조) 개나 되는 세포로 인연되어 있는 생명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한 창조이념세계, 즉 대우주의 모든 존재물은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의 심정 밖에서 생겨난 것이 없습니다. 이런 것을 느끼는 시인은 위대한 시인일 것입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천주적인 심정을 느껴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시인이 있다면 그는 우주적인 시인일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것에 대해 너무나 무시하고 무관심 했습니다. 우리 주위에 우리도 모르게 벌어져 있는 천하 만상이 하나님의 사랑과 더불어 존재하는 것이란 사실을 몰랐습니다. 신령한 경지에 들어가 보면 조그만 모래 한 알에도 우주의 이치가 들어 있고, 하나의 원자에도 무궁무진한 우주의 조화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잘 알 수는 없지만 어떤 복합적인 힘을 통하여 나타난 결과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분자를 지나 원자, 원자를 지나 소립자... 이런 것들이 무의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의식과 목적을 갖추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거쳐 나온 것이요, 반드시 하나님과 심정적인 관계를 맺고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철두철미하게 알아야 되겠습니다.
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풀 한 포기를 붙들고도 ‘하나님!’ 할 수 있는 심정으로 자기의 가치와 동등하게 그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최고의 도인일 것입니다. 그렇게 그 가치를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최고의 예술가일 것입니다. 각양각색으로 존재하는 천지만상을 보고 하나님의 각양각색의 사랑과 심정의 묘미를 발견하고, 그것들과 친구가 되어서 더불어 즐길 수 있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는 우주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만물의 영장입니다.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지으실 때 거기에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지어 놓고는 보기에 선한지라 하셨습니다. 기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쁨이 무엇입니까? 어떤 목적을 이루었을 때 느끼는 것입니다. 만물에 하나님의 목적의식이 내재되어 있기에 창조된 만물을 놓고 하나님은 기쁨을 느끼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복귀의 세계은 어떠한 세계입니까? 한마디로 말한다면 삼라만상의 개체개체를 보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심정적인 인연을 입체적으로 갖춘 사람들이 사는 세계입니다. 하늘이 보시는 인격의 가치는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성 프란체스코 같은 양반이 동물을 보고 혹은 새를 보고 설교했다는 말도 거짓말이 아닙니다. 꿈같은 이야기입니다만 꿈이 아니고 사실입니다. (9.168-169, 1960.05.08)
절대자가 있다면 그 절대자가 천지만물을 창조할 때 슬픈 마음으로 창조했겠느냐? 아닙니다. 기쁜 마음으로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창조되어 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절대자인신 하나님은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기뻐했을 것이냐? 얼마나 좋아했을 것이냐? 그리고 얼마만한 가치로서 모든 것을 만들었겠느냐? 하나님이 용인하신 그런 가치의 내용을 지금까지 인간들은 몰랐습니다.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까지 인간들은 하나님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그 가치를 규명하고, 그 가치의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진정한 기쁨으로 지었다면, 그 인간을 대해서 얼마만한 가치의 내용을 부여했으며 얼마만한 기쁨의 대상으로 지었겠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27.223, 1969.12.14)
우리 인간은 자연을 사랑합니다. 자연을 좋아합니다. 인간보다 자연을 더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자연은 순수합니다. 본연의 상태를 그냥 그대로 소지하고 있습니다. 좋은 문화주택에 살고 좋은 문화생활을 하면서도 ‘아, 산에 가고 싶다. 바닷가에 가고 싶다’ 하는데, 왜 가고 싶어 합니까? 그런 데가 본연의 상태를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107.311-312, 1980.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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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문화는 자연을 벗어나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자연을 떠난 인류문화는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제 아무리 당당하게 그 위세를 자랑하고 권세를 누린다 해도 자연을 무시한다면 그 모든 것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생활을 가치있게 해 주는 것이 자연입니다. 우리의 생애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자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 만상에 흐르고 있는 심정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참다운 행복을 누릴 수 없고 하늘과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영광의 자리에 나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의 풀을 바라보더라도 하나님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되겠고, 꽃을 바라보더라도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입장, 하나님의 심정과 통할 수 있는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되겠습니다. 곤충이나 새, 혹은 어떤 동물을 바라보게 될 때에도 하나님의 심정과 인연 맺어지는 그런 내적인 감정을 체득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6.340, 1959.06.28)
아버님! 만유의 주인 되시는 당신앞에 온 천지만물은 영원무궁토록 찬송을 돌려 드리기를 원하옵니다.
어느 하나 당신의 인연가운데서 벗어나서 지음받은 존재가 없기에 아버지로 말미암아 아버지지의 심정을 통하여 빚어진 온 천지만물은 아버지의 영광을 높이고, 아버지의 거룩함과 심오함을 드러내어, 아버지의 무한한 가치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20.243, 1968.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