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1, 2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5장 죽음 이후의 삶과 영계)

훈독왕 | 20200406103524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5장 죽음 이후의 삶과 영계


심판

사후 세계로 통하는 첫 통로 다음에 또 다른 덜 편안한 관문이 있다. 각 개인은 가감 없이 정직하게 자신의 삶을 되짚어 보아야 하는 심판을 겪는다. 모든 행위와 그것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결과들을 기록하는 장부가 있다. 이제 그 장부가 펼쳐지고 읽힌다. 그 사람의 삶을 기록한 영화가 그 마음의 스크린에 투사된다. 모든 것이 숨김없이 드러나게 된다.

심판의 주요 기준은 자신의 행위들인 것 같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더 많이 살았는가.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이용했는가? 종교경전들은 그 심판 장면을 묘사한다. 여기서 하나님은 심판자로, 예수 또는 무함마드는 변호인이며, 때로는 악마가 죄를 참소하는 자로서 등장하기도 한다. 신은 증거에 의거해 심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에 대해 문선명 선생은 독특한 통찰을 제시한다. 심판에서 사탄의 참소를 면하기 위해, 우리는 지상생활에서 우리를 가장 미워하고 헐뜯는 사람들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들을 사랑스러운 ‘가인’이라고 부른다.

경전들은 오직 의로운 자만 들어갈 수 있는 문, 의로운 자만 건널 수 있는 ‘격리의 다리’, 모든 거짓을 불태우고 오직 참인 것만 남기는 불을 언급한다. 영계는 그 상태에 따라 영혼을 받아들이는 여러 영역들과 천국, 그리고 지옥들로 구성된다. 영혼들은 분류되어 자신에게 합당한 장소로 스스로 간다. 무자격자를 막기 위한 어떤 문지기도 없으며, 교통을 통제하는 어떤 경찰도 없다. 각 사람은 저절로 자신의 품격과 지난 삶에 가장 적합한 장소로 가기 때문이다.

1. 생의 회고

종교경전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심지어 남몰래 한 일까지도 사람이 한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는 심판에 붙이신다는 사실을 명심하여라.
전도서 12.14(기독교)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덮어둔 것이라 해도 벗겨지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라 해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마태복음 10.26(기독교)

나는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았습니다.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마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나는 또 죽은 사람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할 것 없이 다 그 보좌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책들을 펴놓고, 또다른 책 하나늘 펴놓았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었습니다. 죽은 사람들은 그 책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자기들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요한계시록 20.11-12(기독교)

대지가 지진으로 격렬하게 흔들리고

대지가 그 짐을 내던지고
인간들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말할 적에
그날 대지가 소식을 전하리라.
너의 주님이 계시를 내렸기 때문이니라.
그날 인간들은 흩어진 집단으로 되어 자기가 행한 것들을 보게 되리라.
티끌만한 선을 행한 사람도 그것을 보게 될 것이고

티끌만한 악을 행한 사람도 그것을 보게 되리라.
꾸란17.13,(이슬람)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목에 그들의 행위의 기록을 매어 놓았으며 부활의 날 그 기록을 펼쳐 보게 되리라.

너에 대한 기록을 읽어보라, 네 자신의 영혼은 너의 청산으로 충분하리라.

꾸란 17.13-14(이슬람)


너희가 이승을 떠난 후 신은 너희의 행업을 헤아려 셈하리니,
이 모두가 그의 장부에 낱낱이 적혀 있도다.
순종치 아니한 자들은 소환되리니,
죽음의 사자인 아즈라엘이 그들의 머리 위를 배회하리라.
캄캄한 좁은 길에서 덫에 걸린 그들은
도망칠 곳을 알지 못하리라.
나나크가 말하노니,
거짓은 쇠망하고 마침내 진리가 우세하라라.
아디 그란트, 람칼리 키 바르 13M.1.p. 953(시크교)

인간이 세상을 뜰 때 육신은 분해되고 영혼이 떠날 채비를 한다. 그날 비로소 인간은 육신이 강건했을 때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보도록 허락받는다. 세 명의 사자가 그 앞에 서서 그의 삶과 지상에서 했던 모든 것을 말한다. 그러면 자기 입으로 모든 것을 인정하고 자기 손으로 거기를 서명한다... 이를 마치 욥기 37장 7절의 “모두가 자신의 과업을 인정해야 한다.”고 적혀 있는 것과 같다.
조하르 1, 79a(유대교)

말씀선집


이 땅 위에 왔다가 운명의 순간을 맞이하는 최후의 자리에서 과거를 뉘우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에는 과거의 모든 사실들이 영상으로 지나갈 것입니다.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 것입니다.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생명체를 가지고 지금까지 인연된 환경과 남겨 놓은 사연 등, 지난날의 모든 것이 일생의 최후의 순간에 자기의 마음에 영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 가운데 ‘ 참이 있었다. 내 생명보다도 귀한 그 무엇을 남겼다’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비록 이 땅에 왔다가 가더라도 보람 있는 한 때를 남기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왔다 가는 이 인생행로가 행인과 같이 그냥 지나가는 것이었다’ 하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모든 과거의 사연을 회상해 볼 때, 그 모든 사연이 머리를 흔들며 회상하고 싶지 않은 과거라면 그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과거를 회상하면 회상할수록 자기 얼굴에  환희가 넘치며 자기의 모든 문제가 이상에 잠길 수 있다면 죽음의 공포도 그에게는 위로의 한 장면으로 장식될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과거를 회상하는 순간이 공포의 순간이 아니고 다른 그 무엇을 남겼다면 그의 과거도 죽지 않은 것이요, 현실도 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과거를 지닌 사람은 반드시 민족이 따라올 수 있는 인연을 가진 사람이요, 세계 만민이 따라오지 않을 수 없는 인연을 남긴 사람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생애노정에서 자기를 위해 죽음의 자리까지 가는 것보다 형제면 형제, 친족이면 친족, 남이면 남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다 바쳐서 그들을 구했다면, 그들을 구하기 위해 부딪친 때가 있었다면 그러한 사실들이 최후의 운명의 자리에서 그의 마음 선상에 영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를 중심삼은 행복한 때가 있었고, 수많은 군중으로부터 환영받고 자기가 영광스럽게 찬양받는 거룩한 때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순간에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선하였느냐,참되었느냐, 하나님 앞에 홀로 설 수 있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볼 때, 참과 선은 자기로부터 시작하여 자기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로부터 시작하여 남에게서 결과를 맺게하든가, 남에 의해서 시작되어 나에게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야만 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리에서 천지의 모든 존재는 주고받는 인연을 거쳐야 된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생활이 주는 생활이었으면 죽음 길에도 공포가 없을 것입니다. 남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주었고 남을 위해 희생했으며, 참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 눈물도 남으로 말미암아 흘렸고, 내 생명도 남으로 말미암아 투입했고, 내 소원도 남으로 말미암은 것이기에 내 맥박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생명력을 끌어 모아 남을 취해서 투입했다고 할 수 있다면 그 과거는 빛나는 과거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험상스런 환경을 갖춘 이 타락권내에서 여러분 자신이 가는 모습을 도표로 그려 보게 될 때, 1년은 이렇게 가고 1년은 저렇게 갈 것이다, 혹은 10년은 이렇게 가고 10년은 저렇게 갈 것이라며 자기 나름대로 자기의 일생 행로를 계획하면서 높고 낮음을 예측할 것입니다. 그 높고 낮음이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사람은 최후의 운명을 맞이하게 될 때, 자기를 위해 살면서 남을 희생시킨 그 모든 것이 자기를 얽어맬 것입니다. (31.308-310, 1970.06.07)

2. 천국과 지옥의 구별

종교경전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 선한 일을 한 사람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한 일한 한 사람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는다.
요한복음 5.28-29(기독교)

사악한 사람도, 의로운 사람도, 그리고 선과 악이 섞여 있는 사람도 모두 현재적 실존의 법에 따라서 에누리 없는 방식으로 행하는 심판자를 만날 것이다.
아베스타, 야스나 33,1 (조로아스트교)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악의가 있는 신체적 형성을 의도하고, 악의가 있는 언어적 형성을 의도하고, 악의가 있는 정신적 형성을 의도한 후에 악의가 있는 세계에 태어납니다. 악의가 있는 세계에 태어났으므로, 악의가 있는 감각적 접촉에 의해 시달리며 악의 있는 느낌들을 경험합니다.

그는 마치 뭇 삶들이 지옥에 있는 것처럼 오로지 고통스러움을 경험합니다. 이와 같이, 존재의 태어남은 존재에 기인합니다. 그는 행위 그대로 태어납니다. 태어나면 감각적 접촉이 그를 접촉합니다. 그러므로 존재란 행위의 상속자라고 나는 말합니다.
맛지마 니카야 1. 389-90, 쿠쿠라와티카 숫타(불교)

인자가 자기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터인데, 그때에 그는 각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 줄 것이다.
마태복음 16.27(기독교)

자연히 모든 호피는 그가 사랑했던 죽은 사람의 영혼과 접하기를 원한다. 그러한 목적으로 그는 자신의 심정을 순수하게 유지하고 타인에게 친절하고 관대하다.
호피가 아닌 자로 알려진 나쁜 사람이 죽었을 때, 그의 운명은 매우 다르다. 그의 숨이 몸에서 빠져 나가자마자 ‘두 마음을 가진 자’로 불리는 마법사들이 손으로 그를 잡는다. 그리고 그들은 그를 그들의 나라로 데리고 간다. ‘두 마음을 가진 자’의 나라는 그들이 악한 것처럼 그렇게 악하다.
호피족의 전승(미주 원주민 종교)

나팔소리가 울리면 하나님의 뜻을 받은 자들을 제외한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자들이 정신을 잃게 되느니라. 그런 다음 나팔소리가 다시 울리면 그들은 일어나서 주위를 보게 되리라.
땅은 주님의 빛으로 빛나고 행위의 기록이 놓이며 예언자들과 증인들이 참석할 것이며 그들은 진리에 의해 심판받으며 부당한 처벌을 받지 않으리라.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에 대한 응보를 받으리라. 그분은 그들이 행한 일을 다 알고 계신 분이니라.
불신의 무리는 한 무리가 되어 지옥으로 쫒겨 갈 것이니라. 거기에 도착하면 문이 열리며 문지기가 그들에게 ‘너희 중에서 선택된 예언자가 너희에게 주님의 징표를 읽어 들려주고 이날이 올 것을 이미 경고하지 않았는가? ’라고 말할 것이니라. 그들은 대답하길 ‘사실입니다. 불신자들에 대한 형벌의 말씀이 사실로 나타난 것이옵니다. ‘ 하리라.
너희는 지옥의 문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여원히 살리라는 말이 들릴 것이다. 교만한 자의 거처가 얼마나 가련한가!
주님을 경외한 자들은 집단을 이루어 낙원으로 인도되리라. 그들이 그곳에 도착하면 문이 열리면서 문지기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그대들에게 평안함이 있으리라. 낙원으로 들어가서 영원히 살리라’고 할 것이니라.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라.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이행하셨고 우리에게 살 땅을 주셨고 낙원 속에서 우리가 원하는 곳에서 살게 하셨노라고 대답할 것이니라. 주를 경외하는 자들에 대한 보답이 얼마나 훌륭한가 !
꾸란 39.68-74(이슬람)

죽음의 세상 문턱에서
너는 심판관을 보는 앞을 통과할 것이다.
그의 심판은 진실하여 너의 두 발을 보리라.
비록 가죽에 덮여 보이지 않는다 해도
그는 모든 추함을 알 것이라
네가 타락한 적이 있다면 그가 알리라.
심판관이 너의 발에서
아무런 얼룩을 보지 못한다면
배를 열어 기뻐하라,
너는 모든 것을 이기고
깨끗한 배를 가졌기 때문이라.
팡족의 노래(아프리카 전통종교)

말씀선집


어떤 사람이 악한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선한 사람인지 무엇으로 측정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간단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종교인이라도 그가 천국에 갈 것이냐, 지옥에 갈 것이냐 하는 것을 무엇으로 측정할 수 있느냐? 나를 위해서 살아온 생애가 많으면 그는 지옥행입니다. 남을 위해서 산 생애가 자기를 위해 산 생애보다 1퍼센트라도 많으면 그는 지옥을 넘어서 천국을 향할 수 있는 길에 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를 위해서 비율이 높을 때는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75.330, 1975.01.16)

그러면 인간의 양심 기준은 천륜의 심정을 100퍼센트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 있는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고 수많은 장벽이 가로막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라는 희망봉, 즉 천국의 관문 앞에 곡절의 문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심판의 관문입니다. (4.269, 1958.08.03)

영생으로 가는 공식적 노정은 같은 것입니다. 거기에는 위해서 살던 사람들만이 통과할 수 있는 정문이 있고, 거기에 문지기가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거기를 통과할 수 있는 자격자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선생님이 부탁하는 것임을 잘 아시고, 오늘 돌아가서 과거를 반성하면서 새롭게 되기를 바랍니다. (203.193, 1990.06.24)

영계에 가보면 영계는 방대한데 3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누가 꼭대기에 올라가겠습니가? 보다 위한 사람입니다. 거기의 법이 그렇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여기서 출발해 가지고 저기에 가더라도 '좋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여기에 가더라도 '좋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라며 환영받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위하는 사람에게는 반대의 세계가 벌어집니다. 그것도 마찬가지로 세 단계입니다. 여기서는 전부 ‘흥! 우리는 너 같은 것은 싫어!’하고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두 종류입니다. 두 종류인데 그걸 분석해 보니까 자기를 위해서 살던 사람은 전부 반대 받고, 남을 위해서 살던 사람은 전부 환영을 받습니다.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천국에 들어갈 무리인지 지옥에 들어갈 무리인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레버런 문이 그냥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영계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 두 세계가 있습니다. 여기서 별의별 사람들이 살다가 가는 것입니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기서 살다가 가는데 나를 위한 사람은 이 세계로 가서 지옥으로 가는 것이고, 남을 위해 산 사람은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 두 세계가 죽음에서 갈라지는 것입니다. (203.100-101,1990.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