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제력은 모든 덕목의 기본 요소이다. 정신 훈련을 소홀히 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흐트러진 생각, 감각의 유혹, 욕정, 분노, 물질과 금전적 탐욕 같은 감정들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 감정들이 우리가 악한 행동을 이끌도록 하기도 한다. 자신의 생각이나 욕망, 행동도 제어할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타인과 관계를 원만하게 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진리의 길을 따라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철학자 존 로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욕망을 다스릴 수 있는지 여부가 사람의 성격을 좌우한다.”
아래경구들은 두 가지 공통된 비유로 자제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바로 정복 전쟁과 말과 기수의 비유다.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중요한 싸움이 나를 정복하는 싸움이다. 문선명 선생은 어떤 사람이 세계 변혁에 아무리 고귀한 뜻을 품었다 할지라도 그 바탕에 자아주관성을 완성하지 못하면 그의 모든 노력은 헛될 수밖에 없다고 하신다. 자제력을 키우는 것은 야생마를 타는 기수에 비유할 수 있다. 숙련된 기수가 말을 제어하듯이, 고귀한 뜻과 양심으로 자기 내면의 괴수를 제압해야 한다. 말에게 재갈을 물리듯 자신을 부정하고 금욕의 굴레에 자신을 제어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욕망에 의해 꿈틀대는 변덕스럽고 저속한 적들을 굴복시키고 길들여야 할 것이다.
1. 자신을 이겨라
종교경전
어떤 이가 싸움터에서 백만적군을 이긴다 해도 자기 자신을 이기는 자가 더 뛰어난 승리자이다.
법구경103(불교)
함부로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은 용사보다 낫다. 제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을 탈취하는 것보다 낫다.
잠언 16.32(기독교)
강한 자가 누구인가? 그는 자신의 열정을 제어할 수 있는 자이다. 미슈나, 아보스4.1(유대교)
남을 이기는 자를 유력이라고 하고, 자신을 이기는 자를 강력이라 한다. 도덕경33(도교)
사도님 선언했노라. “우리는 작은 성전(聖戰)에서 큰 성전으로 돌아왔노라.” 그들이 “오, 하나님의 사도여! 무엇이 큰 성전입니까?”라고 물으니 그가 대답하였노라. “약한 자신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니라.”
하디스(이슬람)
수천수만의 용맹스런 적을 정복함도 자기를 정복함만 못하다. 그대 자신과 싸우라. 어찌 그대 밖의 적들을 염려하는가? 자신과 싸워 이를 정복하는 자는 지복을 얻을지니, 실로 정복하기 어려운 것은 자신이다. 그러나 자신이 정복되면 모든 것이 정복되리라. 웃타라드야야나 수트라 9.34-36(자이나교)
사람은 자신의 실재를 발견해야 하며 자신을 망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에게 자신은 유일한 친구이자 또는 유일한 적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정복했을 때 그는 자신을 친구로 지니지만, 만일 그가 자신의 실재를 거부하면 자신은 그에게 적대 행위를 하게 될 것이다. 바가바드기타 6.5-6(힌두교)
말씀 선집
천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과 진리도 자아주관의 기대 위에서 넓혀 나가게 된다. (뜻길, p.193)
원수가 누구냐? 사탄이 아닙니다. 내가 원수입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하나 되었습니까? 그게 얼마나 힘듭니까? 세계 통일과 하늘땅 통일, 그리고 나 하나 통일 중에 어떤 게 더 쉽습니까? 어떤게 더 어렵습니까? 나 하나 통일되면, 그것을 세계화 하면 세계 통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원수라고요? 이놈의 눈깔이 원수입니다. 이놈의 귀때기가 원수입니다. 이놈의 콧대가 원수입니다. 이 입이 원수입니다. 생각이 원수입니다. (91.285-286, 1977.02.27)
타락되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이것을 극복해야 할 요소가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우주주관, 천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는 표어를 세운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일대 표어였습니다. 세계를 지배하고 세계를 주관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자아주관을 어떻게 하느냐, 이것이 수련의 절대적인 목표이며, 역사를 대표한 종교들이 지향해야 할 책임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중요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 과제를 망각하고 있습니다. (82.281, 1976.02.01)
세계 전쟁이 휴전하는 것보다도 나를 중심삼고 몸 마음이 싸우는 이 원수관계를 해소시키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20.249, 2000.04.16)
2. 자기 수련 : 내부의 야수성 다듬기 종교경전
철없는 말이나 노새처럼 되지 마라 재갈이나 굴레라야 그들을 휘어잡는다 시편 32.9 (기독교) 사람은 자기의 동물과 같은 성질에 재갈을 물려야 한다. 나아가서 악마적 욕망에도 재갈을 물려야 한다. 예루살렘 탈무드, 산헤드린 10.1(유대교) 잘 길들여진 노새도 좋고 인더스 산의 순종말도 좋으며 당당한 상아의 코끼리도 좋다. 그러나 자신을 닦는 이는 더욱 좋다. 예전에 이 마음은 좋아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욕망하는 대로 따라 헤매었다. 이제 나도 이 마음을 다잡아야 하리. 코끼리 다루는 이가 발정하여 날뛰는 코끼리 다루듯 하리. 법구경 322, 326(불교) 자아는 마차의 주인이며 육신은 마차, 지성은 마부, 마음은 말고삐임을 알라. 현자들은 말하나니, 길길이 날뛰는 감각들은 마차를 끄는 군마요, 그들이 여행하는 길은 감각의 대상들이니라. ··· 어떤 이가 사려분별이 모자라 자기의 마음이 통어되지 못할 때, 그의 감각들은 마치 마부가 다루기 어려운 조련되지 않은 군마와도 같아 통어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그가 분별력을 지녀 마음이 스스로 통어될 때에는 마치 잘 조련된 군마처럼 그의 감각들도 고삐에 잘 순종하게 되느니라. 카타 우파니샤드 1.3.3-6(힌두교) 물 대는 이는 물을 끌어들이고 화살 만드는 이는 화살을 고른다. 목수는 재목을 다듬고 덕 있는 이는 자기 자신을 통어한다. 법구경 80(불교) 의심의 여지없이, 마음은 산만하며 제어하기 어렵다. 그러나 수련과 이욕(離慾)을 통해 그것은 정복될 수 있다. 아르주나여, 자기 제어가 부족한 사람은 명상에서 진전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바른 방편으로 꾸준히 노력하며 자신을 제어하는 자는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바가바드기타 6.35-36(힌두교) 이른바 몸을 닦는 것이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다고 한 것은, 몸이란 마음에 분하고 노여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근심하고 걱정하는 것이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하다. 이를 두고 몸을 닦음은 그 마음을 바로잡는 데 있다고 일컫는 것이다. 대학 7(유교) 자신의 육체를 떠나기 전 바로 이 세상에서 욕망과 분노에서 생겨나는 동요를 잠재울 수 있는 자, 그는 제어된 자이며 행복하다. 바가바드기타 5.23(힌두교) 말씀 선집
인간의 양심은 하나님을 대표하는 마음입니다. 양심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하늘의 의를 위해 존재합니다. 양심은 항상 선을 향해 달리려 합니다. 여기에 몸은 반항을 합니다. 몸은 자기만 편하고자 하고, 이기적이며, 본능적 요구에 따라 욕심을 부립니다. 양심은 이 몸을 질책하여 마음에 순응케 하려고 합니다. 한 몸 안에서 항상 피나는 갈등과 투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은 이런 이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통하여 모든 종교는 내 몸을 치는 길을 가르쳤습니다. 종교는 육욕을 제어하고, 몸을 마음에 굴복시키는 도장입니다. 종교는 타락한 인간을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이끌어 가는 도장입니다. (219.118, 1991.08.28)
선생님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3대요건이 들어갑니다. 먹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자는 것이 문제이고, 사랑이 문제입니다. 이 세 가지가 3대 원수입니다.
(366.287, 2002.01.17)
아무리 도를 닦았다 하더라도 사랑 때문에 걸리는 겁니다. 나중에 미남이나 미녀가 유혹을 하게 되면 모두 다 걸려 버리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랑의 자립권을 세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될 경우에는 컨트롤할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있으면 성욕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영화 같은 것을 봐도 그렇습니다. 강간을 당하게 될 때, ‘안돼, 안돼, 안돼!’ 하다가도 그런 감정이 생기면 끌어안아 버립니다. 그런 영화를 많이 볼 것입니다. 원수까지도 끌어안을 수 있는 힘이 사랑의 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306.196, 1998.09.22)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오늘날 사랑은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인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랑은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중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육체는 사탄이 활동하는 곳입니다. 육체는 사탄의 무도장이요, 사탄의 정박지입니다. 정신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 즉 주체의 위치가 됩니다. 그런데 정신의 대상 위치에 있어야 하는 육체는 또 하나의 주체가 되려고 노력하며 계속해서 정신을 유혹하며 속이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에서 이러한 관계를 수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탕감복귀 시키고자 종교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종교를 통해 하나님 중심의 정신을 강화시키는 방법, 삶과 인격에 대한 육체의 지배를 역전시키는 방법을 가르치시고 계십니다. 종교가 종종 단식, 희생적인 봉사, 온순하고 겸손한 태도 등을 요구하는 까닭은 바로 이런 데서 연유합니다. 이는 육체의 세력을 감소시키고 육체가 정신에 복종하게 하는 방법들입니다. 신앙생활을 통해 육체 중심적인 생활습관에서 벗어나 새로이 정신 중심적인 생활방식을 만들어 내기까지는 통상 3년 내지 5년이 걸립니다. (201.209, 1990.04.09) 우리는 먼저 개인으로서 완전한 나의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길은 자기를 영점에 놓고 자기를 완전 부정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 자리라야 몸과 마음이 완전 통일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356.299, 2001.10.21) 각자가 지향하는 양이 100이라 할 때, 여기서 몸과 마음이 50대50이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중간 영계에 머물게 됩니다. 완충지대에 머둔다는 것입니다. 만일 몸이 60이면 틀림없이 지옥에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항상 ‘나’라는 존재가 선악의 모체라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37.122, 1970.12.23) 하나님 자신도 영적으로 보게 되면 몸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도 몸 마음이 싸우겠습니까? 싸우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게 하나 안 되면 절대 천국 못갑니다. (305.111, 1999.04.19)
억제
자제의 길은 억제로부터 시작한다. 억제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면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환경을 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 자각이 필요하다. 자신의 약점을 제대로 알 때 타협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돌발적 성깔, 교만, 순간적 충동으로부터 벌어지는 행동들을 억제해야 한다.
문선명 선생도 자신의 본래 성격이 불같은 것을 아시기 때문에 끊임없이 화를 누르려고 하신다고 한다. 그것이 타인에게 초래할 해를 아시기 때문이다. 셋째, 비폭력적이고 온화할 것, 남을 해치기보다 차라리 맞는 쪽을 택하라는 종교적 가르침 역시 억제력을 단련하는 데 도움이 된다. 넷째, 문선명 선생은 수천 년 동안 모멸과 분노를 참아 오신 하나님의 인고와 자제력에 대해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인내에 대한 가르침은 자제력을 키우려 노력하는 우리에게 하나의 고무적인 사례가 되고 있다.
종교경전
화를 내더라도 죄는 짓지 마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악마에게 틈을 주지 마십시오. 에베소서 4.26-27(기독교)
실로 하나님께서는 나의 백성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악의 충동을 용서해 주신다. 그들이 그것을 입 밖에 내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무슬림 하디스(이슬람)
만일 선법을 듣고 있는 중에 어떤 악인이 와서 훼방을 놓는다면, 그대는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아야 한다. 화가 나서 그를 욕해서도 안 된다. 그러면 그대를 욕하러 왔던 그는 단지 자신에게 해를 입힐 뿐이다. 사십이장경 7 (불교)
하나의 팔찌는 소리를 내지 못한다. 이갈라족의 격언(아프리카 전통 종교)
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20(기독교)
아부 후라이라가 하나님의 사도의 말씀을 전하였다. “강한 자는 힘있는 장사가 아니라 화가 났을 때 자신을 통제하는 자이니라.” 부카리 및 무슬림 하디스(이슬람)
옛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는 사람은 재판을 받을 것이다’ 한것을 너희가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자기 형제나 자매를 모욕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의회에 불려 갈 것이요, 자기 형제나 자매를 바보라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지옥 불 속에 던짐을 받을 것이다. 마태복음 5.21-22(기독교)
아힘사, 곧 불살생은 주 마하비라가 세운 다섯 계율 가운데 가장 종요로운 것이니, 엄수하여 조금도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 일체 중생에 대해 늘 삼가고 자비의 마음을 내어 산목숨을 죽이지 말라. 다샤바이카리카 수트라 6.9(자이나교)
“가리개 너머로 보이는 그대 두 뺨은 쪼개 놓은 석류 반쪽 같아.” (노래) 네 자신을 비우는 것은 씨앗을 가득 품은 석류처럼 종교적 규율로 네 마음을 채우는 것이다. 죄를 지을 기회를 가지고 그 죄로부터 도망쳐 나올 수 있고 범죄 행위를 억제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보다 고귀한 종교적 행동을 수행하게 된다. 그렇다면 겸손과 자제의 베일로 자신을 가리는 자는 얼마나 좋은 일인가! 송가 랍바 4.4.3(유대교)
내 마음에 탐착이 일어날 때, 역정내는 마음이 일어날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다만 묵묵히 참아야 하리. 한 토막 통나무처럼··· 나를 자랑하고픈 마음이 일어날 때, 남을 책하고픈 마음이 일어날 때, 격한 말로 시비를 가리고픈 마음이 일어날 때, 다만 묵묵히 참아야 하리. 한토막 통나무처럼. 재물이나 명예를 탐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 싲드는 이를 두고 싶을 때, 벗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때, 내 마음에 모심을 받고픈 욕망이 일어날 때, 다만 묵묵히 참아야 하리. 한 토막 통나무처럼. 남의 일을 망쳐 놓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때, 내 욕심만을 차리고 싶을 때, 〔그러한 생각으로〕무엇을 말하고 싶을 때, 다만 묵묵히 참아야 하리. 한 토막 통나무처럼 샨티데바, 보살행의 도 5.48-52 (불교)
말씀 선집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그냥 흘려버려야 합니다. 기분 나쁜 마음을 가지고 대중 앞에 나가서 이러고저러고 하는 것은 가짜입니다. (45.269, 1971.07.04)
아무리 친구가 많다 하더라도, 여러분이 항상 자기주장만 한다면 다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36.181, 1977.11.29)
신앙 길에 들어선 사람들은 자기를 중심삼고 화내는 것이 제일 무섭습니다. 그러니 화내지 마십시오. 화내지 마세요. 하나님을 믿고 나가는 데 있어서 자기의 욕심을 중심삼고 화를 냈다가는 몽땅 걸려 버립니다. (32.34, 1970.06.14)
선생님도 본래부터 선한 사람이 아닙니다. 원래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 그렇게 되나 안 되나 혓바늘을 물고, 이렇게 억제하고 ‘이렇게 가야 된다!’해서 훈련해야 되는 것입니다. 외적인 원수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320.250-251, 2000.04.16)
만약에 내가 누구 죽으라고 하면, ‘저놈의 자식 저거’ 하며 분해 가지고 참지 못하여 입을 다물고 악- 이러고만 있어도, ‘두고 봐라, 몇 개월만 두고 봐라’ 그러면 옥살 박살되고 터져 나갑니다. 그래서 혀를 깨물면서 내가 많이 참았습니다. 내 입으로 저주를 못 하겠습니다. 참부모의 이름을 가진 내가 내 입으로 저주를 할 수 없어서 입을 물고 있으면, 그 원한을 다 하늘이 풀어주었습니다. 그거 보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 같아요. (162.206, 1987.04.12)
역사노정을 보면 항상 먼저 친 자가 집니다. 세계대전을 보십시오.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먼저 친 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먼저 친 편이 졌습니다. 제3차 전쟁에서도 먼저 친 편이 집니다. 그래서 개인의 생활에서도 ‘참아라, 참는 자에게 복이 있으니, 맞고 참아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참으면 세워질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7.222, 1959.09.13)
천년 한 가운데 수난 길을 자기 자체를 제어하면서 입을 다무시고 인내해 온 그 하나님을 존경할 줄 알아야 됩니다. ‘진짜 내 아버지입니다.’ 할 수 있는 마음을 여러분이 가져야 됩니다. 내가 그 이상 참더라도 아버지의 전통을 후대 천년만년에까지 남길 수 있는 중심 조상이 되겠다는 결의를 해야 되는 거예요. (363.254, 2001.12.25)
오늘날 우리들이 참고 참아야 할 원인이 어디 있느냐? 우리가 참지 못하면 우리가 진 빚을 갚을 수가 없고, 하늘이 품고 참아온 원한을 해원할 수가 벗기 때문입니다. 천지의 운세는 하나님의 섭리와 더불어 돌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이 노할 때 같이 노할 줄 알고, 하나님의 분함과 하나님의 울분에 대해서 편들면 사탄세계는 심판받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노정을 가고 있는 우리를 대해서 하늘이 온유겸손하고 화내지 말고 참고 견뎌라 하는 이런 모든 가르침이 다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거기에 같이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하나님의 섭리와의 사이에 틈이 나게 되면 사탄이 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믿는 사람들은 무조건 희생하고 무조건 순종하여 사랑의 내적인 부분만을 따라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1.113, 1956.06.10)
진실
진실하다는 것은 불변하는 성격을 말한다. 진실한 사람은 어떤 상황이 닥쳐도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약속을 지키며, 자신의 의무를 다한다. 무엇보다도 진실한 사람은 가족과 공동체에 도덕적, 영적 중심존재가 된다. 다른 이들은 그 사람에게 기대하고, 신뢰하고, 의지하려 한다. 문선명 선생의 말씀처럼 다이아몬드와 금이 귀한 이유가 그것의 불변하는 광택 때문이듯이, 다이아몬드 같은 가치를 지닌 사람은 불변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책임과 역경은 그 사람의 진실함을 시험한다. 안락보다는 원칙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진실한 사람들이다. 그 한 예가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느니 차라리 왕국을 포기해 버렸던 힌두교 라마야나의 영웅 라마이다. 때로는 내가 맡은 책임을 이용해 자기 부와 발전의 기회로 삼고 싶은 유혹이 올 때가 있다. 역경에서도 항상 긍정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일종의 도전이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의무를 지키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 그러나 진실한 사람은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책무를 다한다. 그런 사람은 과제가 주어졌을 때 변하지 않는 자세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다.
1.원리적 생활 종교 경전
정직하게 살면 그의 길이 안전하지만 비뚤게 살면 곧 드러나고야 만다. 잠언 10.9(기독교) 떳떳한 덕이 굽어지지 아니함은 녹을 요구해서가 아니며, 언어를 반드시 미덥게 함이 행실을 바르게 하려고 해서가 아니다. 군자는 법을 행해 명을 기다를 뿐이다. 맹자Ⅶ.b.33(유교) 덕은 근본이고 재물은 말단이다. 근본을 밖으로 하고 말단을 안으로 하면(근본을 무시하고 말단을 중시하면) 백성들을 다투도록 하고 남의 것을 빼앗도록 인도하게 된다. 대학 10.7-8(유교) 칭찬을 듣는다고 기뻐하지 말고 비난을 받는다고 슬퍼하지 말라. 자신의 공덕과 힘을 잘 아는 것, 그것은 탁월한 사람의 특징이네. 고결한 말씀의 귀한 보배 29(불교) 마음이 편안하고 티 없이 맑으며 슬픔을 여읜다면, 세상사 변화무쌍한 일들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숫타 니파타 268(불교) 공자가 말하였다. “어질지 않은 자는 오랫동안 곤궁함에 처할 수 없으며 오랫동안 즐거움에 처할 수 없으니, 어진 자는 인(仁)을 편안하게 여기고 지혜로운 자는 인(仁)을 이롭게 여긴다.” 논어 4.2(유교) 말씀 선집
어떤 사람을 인격자라고 할 때, 그것은 그 사람의 외모나 학벌, 경력 또는 지위를 보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얼마만큼 원리적인 입장에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화려하고 다양한 어떤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을 섬기는 데 있어서 마음이 변함없는 사람,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생활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인격자인 것입니다.(19.285, 1968.03.10) 사람의 인격에 뼈가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인격의 뼈를 보았습니까? ‘인격’ 하게 되면 사람의 형태, 사람의 갖추어진 모양을 말하는데, 그 가운데는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게 보이게 하는 근본을 보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숨어 있는 뼈 같은 형성체가 있습니다. 그 형성체로 말미암아 보이는 형체가 이렇게 있게 되는 원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177.315, 1988.05.22) 하나님의 정통을 인계받은 자로서 곧은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옳지 못한 것은 굴복시켜야 합니다. 힘에 대항하여 힘 아닌 다른 것으로 그것을 굴복시키려면 몇 천 배의 수고를 해야 합니다. 어떤 환경이든 수습하여 정복할 수 있는 충효의 절개를 세워야 합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출발하고 확고부동한 행보로써 목적을 달성해야 합니다. (21.83, 1968.10.27) 변하는 선을 중심삼고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없다. 중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깊을수록 잔잔하다. 태평양을 보라. 표면에는 폭풍이 일고 파도가 일지만 속 깊은 곳에는 정(靜)이다. 그것을 배워라.(뜻길, P.198) 어떤 사랑이 귀한 보석 같은 사랑, 보물 같은 사랑입니까? 불변의 사랑입니다. 보물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힘과 가치를 가지고 상대방을 움직이게 되어 있지, 상대방이 이 보물을 움직이게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상대방에게 영향 주는 사람이 귀한 사람입니다. 영향을 받는 사람이 귀한 사람입니까? 영향을 주는 사람 중에서도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귀한 사람입니다. (118.95, 1982.05.09) 역사상의 성현들은 이 땅에 왔다 간 그 누구보다도 참된 사람입니다. 그러면 참은 어떻게 성립되는가? 참이라는 것은 미래에만 성립되는 것이 아니고, 현재에만 성립되는 것도 아닙니다. 참은 과거에도 참이어야 하고, 현재에도 참이어야 하고, 미래에도 참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참은 환경을 초월합니다. 참된 사람은 과거에도 중심이요, 현재에도 중심이요, 미래에도 중심인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참된사람이 성립됩니다. 그러면 인간 세상에서 가장 참에 가까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갔지만 참에 가장 가까운 것이 무엇이냐 할 때, 상대적으로 나타난 스승이나 부모보다도, 참의 모체를 이룰 수 있는 존재는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면 자신에게 제일 가까울 수 있는 참의 상대는 무엇이냐? 그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 곧 양심입니다. 우리는 곧잘 ‘그 사람 양심적이다. 그 사람 마음이 곧다’고 합니다. 마음이 곧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과거도 곧고 현재도 곧고 미래도 곧아야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8.159, 1970.01.11) 자신을 믿고 가라! 오로지 홀로 간다는 입장에서 결정체가 되어야 한다. (뜻길, P.97)
2.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는 진실한 사람
종교 경전
믿으며 경외하는 자들은 그들에게는 현세와 내세에서 좋은 소식이 있으리라. 꾸란 10.63-64(이슬람)
군자는 나라를 창건하고 전통을 전하여 계승할 수 있게 할 뿐이다. 저 공을 이루는 것은 하늘의 뜻이다. 맹자 I.B.14(유교)
군자는 언제나 그가 처해 있는 위치에 따라 행동하고 그의 분수에 벗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 자신이 부귀하다면 부귀한 처지에 알맞게 행동한다. 그 자신이 빈천하다면 빈천한 처지에 알맞게 행동한다. 그 자신이 오랑캐들 사이에 처한다면 오랑캐들 처지에 알맞게 행동한다. 그 자신이 위험과 어려움에 처한다면 위험과 어려움을 당한 처지에 알맞게 행동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어디를 들어가도 득의(得意)하지 않는 일이 없다. 군자는 윗자리에 있더라도 아랫사람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그 자신의 행위를 바르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서 구하지 않으면 서로 원망하는 일이 없게 된다. 군자는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아래로는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평이하게 처신하며 천명을 기다리고 반면에 소인은 위험하게 처신하며 요행을 바란다. 중용 14(유교)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람은 정직한 사람에게 존경받지 못한다. 사람의 고결함이나 천함을 드러내는 것, 정직한 사람이냐 부정한 사람이냐를 구별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떻게 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비천한 자가 고귀한 사람과 유사할 것이며, 명예롭지 못한자가 고결한 사람과 비슷할 것이다. 가치 없는 사람이 가치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며, 타락한 사람이 덕 있는 사람으로 간주될 것이다. 민일 의무를 빙자하여 내가 사회적 역할의 혼동을 야기하도록 의도된 이 부당한 길을 택하고 경전에 의해 인정된 행위들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선을 부정하면서 다만 악을 거두어야 할 것이다. 만일 내가 사악하게 그리고 명예롭지 못하게 행동한다면, 의와 불의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과연 누가 이 세상에서 나를 존경하겠는가?··· 나, 라마는 어찌 진리의 숭배자였던 내 아버지의 명을 완수하지 않아야 하겠는가? 야망도 망각도 자부심도 나로 하여금 도덕의 다리를 부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라마야나 아요드야 칸다 109(힌두교)
섭공 자고(葉公子高)가 사신으로 제나라에 가게 되었을 때, 중니에게 물었다. “왕이 내게 내린 사명은 매우 중대합니다. 제나라는 사신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중하지만 교섭에는 빨리 대응하지 않을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 하더라도 마음을 움직이기가 힘든데, 하물며 제후야 어떻겠는가! 나는 이 일을 매우 걱정하고 있습니다···.” 중니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천하에는 크게 경계할 일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운명이고 또 하나는 의무이다. 자식이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은 운명으로, 마음에서 그것을 풀어 버릴 수는 없다. 신하가 군주를 섬기는 일은 의무로, 어디를 가나 군주는 군주이다. 천지간에 어디를 가나 이 두 가지로부터 떠날 수는 없다. 이를 두고 크게 경계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어버이를 섬기는 자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어버이를 편하게 모시는 것이 최고의 효행이다. 대저 군주를 섬기는 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군주를 편하게 모시는 일이 최고의 충성이다. 그리고 스스로 자기 마음을 섬기는 자는 슬프고 즐거운 감정이 눈앞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것으로 변하지 않으며,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음을 알고 마음 편하게 운명이라 여기고 따르는데, 이것을 덕의 지극함이라고 한다. 남의 신하와 자식으로서, 본래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다. 충실히 일하며 자기 자신을 잊어야 한다. 삶을 기뻐하고 죽음을 싫어할 여유가 어찌 있겠나?··· 그저 사물의 흐름을 타며 마음을 유유히 자유롭게 한다.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상태에 몸을 맡긴 채 중도를 지켜 가는 것이 최상이다. 더 무엇을 작위해서 보고할 필요가 있겠나? 군주의 명령을 사실 그대로 전하는 것이 좋지만, 그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장자4(도교)
말씀 선집
충신과 간신은 본래 동급의 인물에 속한다. 다만 충신은 왕의 뜻에 순종하나 간신은 자기를 내세운다. 충신은 항상 직선을 걸으며 하는 일은 시작과 끝이 같다. (뜻길, P.150)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절대적인 중심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아침저녁으로 변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인격자라 할 수는 없습니다. 인격자란 일생을 통해서 약속한 것을 지키려는 사람이고, 의의 수준이 높은 사람입니다. 무엇이 결정된 후에는 이런저런 변명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기가 약속한 일에 대해서는 우주의 법칙이 변할지언정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인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23.100, 1969.05.14)
천륜에 대해 인간의 절개를 지켜서 천상의 인연을 대신할 수 있고, 인륜의 인연을 대신할 수 있으며, 우주의 인연을 대신할 수 있는 가치를 찾아 세워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뜻에 대해 영원히 위하여 사시는 그 분의 가치를 노래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자체가 전체와 인연을 맺어 그 인연의 실천상이 하나님의 창조의 미를 완전히 나타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생의 가치를 찾아 나가게 하는 것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의 최고 목표입니다. (2.336-337, 1957.08.04) 통일교회 문선생은 하나님이 왜 필요로 하느냐? 왜 필요로 합니까? 얼굴이 잘나서 입니까? 무엇 때문에? 지식이 뭐 세계적인 게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권력이 있습니까? 돈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것을 해드리겠다고, 그것을 생명을 다해서 한번 이루어 드리겠다고 하는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붙드는 것입니다.
나를 붙들고 있습니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을 필요로 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돈을 먹겠다는 것입니까? 내가 권력을 얻겠다는 것입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겠다는 실낱같은 조그마한 그 마음이 어떤 미국권력보다도 필요하고, 어떤 누구보다도 강하다고 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내가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77.16-17, 1975.03.23)
3. 환경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 진실한 사람 종교 경전
베데히카 부인은 온화하고 겸손하며 정숙하다는 평판을 받았다. 그녀에게 칼리라른 하녀가 있었는데, 영리하고 부지런하며 맡은 일을 잘 처리했다. 그런데 칼리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일어났다. ‘나의 안주인에 대해서 좋은 평판이 있는데, 과연 그녀는 본성적으로 선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일을 잘 처리하니까 그녀가 기분이 좋아서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디 한 번 시험해 보는 것이 어떨까?’ 다음날 아침 칼리는 늦게 일어났다. 그러자 베데히카 부인은 하녀에게 언성을 높여 말했다. “애야 칼리야” “예, 부인, 무슨 일입니까?” “이렇게 늦게 일어나다니, 무슨 일이냐?” “아무 일도 없습니다. 부인” “아무 일도 아니라니, 이 못된 하녀야, 이렇게 늦게 일어나고도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이냐?” 그녀는 화가 나서 불쾌한 얼굴을 했다. 그러자 칼리에게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을 잘 처리하기 때문에 화를 내지 않을 뿐이지, 속에는 화를 내는 기질이 있는 게 분명하다. 좀 더 시험해 보는 것이 어떨까?’ 그래서 그녀는 더 늦게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베데히카 부인이 하녀에게 언성을 높여 말했다. “애야, 칼리야.” “예, 부인, 무슨 일입니까?” “이렇게 늦게 일어나다니, 무슨 일이냐?” “아무 일도 없습니다. 부인” “아무 일도 아니라니, 이 못된 하녀야, 이렇게 늦게 일어나고도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이냐?” 그녀는 화가 나서 하녀에게 욕지거리를 해댔다. 그러자 칼리에게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을 잘 처리하기 때문에 화를 내지 않을 뿐이지, 속에는 화를 내는 기질이 있는게 분명하다. 좀 더 시험해 보는 것이 어떨까? 그래서 그녀는 더 늦게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베데히카부인이 하녀에게 언성을 높여 말했다. “얘야, 칼리야.” “예, 부인, 무슨 일이냐?” 그녀는 화가 나서 문간의 돌쩌귀를 집어서 하녀의 머리를 때리는 바람에 하녀의 머리가 찢어졌다. 그러자 칼리는 찢어진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 이웃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험담했다. “부인, 그 온화하다던 숙녀의 행동을 보세요. 부인, 그 겸손하다던 숙녀의 행동을 보세요. 부인, 그 정숙하다는 숙녀의 행동을 보세요. 어째서 그녀는 내가 늦게 일어났다고 하나뿐인 하녀인 나를 때려서 머리가 찢어지게 만듭니까 그래서 그 부인은 좋은 평판을 잃었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마찬가지로 여기 있는 어떤 수행승이 불쾌한 일을 당하지 않는 한 그는 지극히 온화하고 지극히 겸손하며 지극히 정숙한 사람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가 실제로 온화하고 겸손하고 정숙한가 하는 것은 오직 그가 불쾌한 일을 당했을 때만 알 수 있다. 맛지마 니카야 1.123-124(불교) 잘 배운 고결한 제자는 고통스런 느낌에 닿았을 때 흐느끼지 않으며, 울부짖지도 않으며, 가슴을 치지도 않으며, 어쩔 줄 몰라 하지도 않는다. 그는 육체적으로 느낌을 받지만, 정신적으로는 아무런 느낌도 받지 않는다···. 더욱이 그는 고통스런 느낌에 대해 강한 반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는 그것에 전혀 반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고통스런 느낌에 반발하는 잠재성향은 그를 잡아 가둘 수 없다. 왜 그런가? 비구들이여, 잘 배운 고결한 제자는 감각적인 편안함 외에 고통스런 느낌에서 벗어나는 의지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감각적인 편안함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감각적 편안함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감각적 편안함에 대한 잠재 성향은 그를 잡아 가두지 않는다. 만일 그가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면, 그는 그것을 속박에서 자유로운 것으로 느낄 것이다. 만일 그가 고통스런 느낌을 느낀다면, 그는 그것을 속박에서 자유로운 것으로 느낄 것이다. 만일 그가 고통스런 느낌을 느낀다면, 그는 그것을 속박에서 자유로운 것으로 느낄 것이다. 만일 그가 즐겁지도 고통스럽지도 않는 느낌을 느낀다면, 그는 그것을 속박에서 자유로운 것으로 느낄 것이다. 상윳타 니카야 36.1.1.6(불교) 말씀 선집
금덩어리의 가치는 불속에 들어가도 그 본질이 변하지 않는 데 있다. 인간의 가치도 어떤 고생길에 부닥쳐 그 뜻이 변질한다면 인격자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뜻길p200) 마음이 달라지기 때문에 가는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요, 가는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목적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달라져 가지고는 어떤 목적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하나 되어도 목적을 이루기 힘든데 두 마음을 가지고 하나의 목적을 성사시킨다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볼 때, 모든 일에는 한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침의 마음과 낮의 마음과 저녁의 마음이 하나 되어야 하고, 초년 시대의 마음과 중년 시대의 마음과 말년 시대의 마음이 하나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누구든지 한 마음을 가지고 시작하고, 한 마음으로 그 과정을 개척하고, 한 마음을 중심하여 결과를 추구한다면, 그 기간이 길면 길수록 그 사람의 바라는 목적도 클 것입니다. 우리는 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목적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도 한 마음을 가져야 하며, 한 마음을 떠나서는 그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도 두 마음을 가지고 천지를 창조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방향을 갖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사람들은 한 마음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28.155, 1970.01.11) 타락 이후의 인간을 보게 되면 얼마나 마음의 세계가 변하는지, 천태만상입니다. 마음의 본성이 절대로 변하지 않고, 몸이 원래의 영원한 형태를 지닌다면, 그런 남자 여자는 거룩한 남자 거룩한 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백인 컬러는 유일하고 변하지 않기 때문에 거룩한 것입니다. 흑인 컬러도 유일하고 변하지 않기 때문에 거룩한 것입니다. 거룩한 것이 뭔지 알고 있습니까? 아무리 백인이라도 마음이 변하고 행동이 변하면 세속적이고 사탄 편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백인이 훌륭한 입장에서 그들의 역할을 자랑한다 할지라도 마음이나 행동이 변하게 되면 세속적인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변하지 않는 모든 것은 언제 어디서나 성스러운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비록 위치가 다르다할지라도 이 역사에서, 이 세계에서 거룩한 사람입니다. 손 모양이나 얼굴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람에게서 변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마음이 변하기 때문에 바로 여기가 악마의 무도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변하는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 자신이 완전한 여자일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거룩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그러면 거룩한 커플이란 어떤 커플입니까? 한 번 참사랑으로 하나가 되면 영원히 변치 않는 것입니다. 세월이 그 커플을 따라가지, 그 커플이 세월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수천 년의 세월이 그들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영원한 생명의 중심입니다. 그러니까 수천 년을 컨트롤하는 중심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 같은 성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수천년 동안 우주를 컨트롤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계절이 바뀌고 지구가 변하고 우주가 변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걸 따라가지 않습니다. 이것은 아주 명백한 결론입니다. (217.303-304, 1991.06.12)
정의 정의로운 삶이란 고귀한 가치를 받들며 공동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는 삶이다. 정의로운 사람들은 사회에 비전을 제시하고 참된 가치를 고무하는 영적 도덕적 기둥 같은 존재들이다. 이들의 용기와 도덕적 청렴함, 사회봉사는 선한 시민의 본부기다. 의로움은 종종 보다 큰 선을 지역사회나 국가, 심지어 세계 향한 노력으로서 표출된다. 문선명 선생은 이런 사람을 공적 삶을 살아가는 공인이라고 부르신다. 그리고 이기적이며 자기 욕구만 채우겠다는 동기를 버리고 우리가 보다 큰 선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치고 계신다.
정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사람들은 언제나 개인의 이득에 앞서 공적인 의무를 우선시한다. 자신이 취하는 모든 행동이 적절한지 진지하게 생각한다. 부패하고 타락한 사회에서 의로운 이들이 늘 환영받지는 못 한다. 심지어 핍박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구약의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에서 10명의 의인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죄 많은 도시를 기꺼이 용서해 주셨듯이, 의로움이란 고귀한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어느 사회에서든 그런 사람이 요구된다.
1. 자신을 희생하여 악에 대항하는 의인 종교 경전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천하에 오로지 주장함도 없으며 오로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도 없이 의로움만을 좇을 뿐이다.” 논어 4.10(유교) 만일 하나님께서 다른 자들로 일부 사람들을 쫓아내지 않으셨다면 이 땅은 부패하였을 것이니라.
꾸꾸란 2.251(이슬람)
의를 위해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복음 5.10(기독교) 유대 사람의 유월절이 가까워지자 예수계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는데, 성전 뜰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환전상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상을 둘러 엎으셨다. 비둘기를 파는 사람에게는 “이것을 거둬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2.13-16(기독교) 승리를 바라는 그들은 힘이나 에너지로 정복하기보다는 진리, 자비, 정의, 그리고 영적 수련으로 정복합니다. 불의와 정의를 분간하고, 탐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며, 자만하지 않는 싸움, 즉 노력에 호소해야 한다. 승리는 정의가 있는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조건 하에서, 오 왕이여, 이 전쟁에서 우리에게 승리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아십시오. 실로 끄리슈나가 있는 곳에 승리가 있습니다. 마하바라타 브히스마 파르바 21(힌두교)
말씀선집
의로울 의(義)자도 보게 되면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양(羊)같은 나(我)라는 뜻입니다. 참 이상하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92.309, 1977.04.24)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모험이 필요하면 그 모험을 통해서 전진하게 될 때, 하나님이 ‘음! 해라! 해라!’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욕먹을 자리로 찾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부딪치게 되면 하나님은 ‘저거 한번 부딪치면 어떻게 될 것이냐?’ 하고 ···. 그래서 자력(自力)으로 굴복시키게 되면 하나님은 ‘하~ 좋구만’하고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자, 이건 싸움도 하지 않고 겁을 먹었는데 하나님이 그를 도와주겠습니까? ‘응응, 해라! 해라!’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 선의의 문제를 일으켜라 이것입니다. (104.108, 1979.04.15)
여러분은 제일 먼저 선이냐 악이냐를 가려내야 합니다. 선악이 어디에 있느냐? 선악은 세계에 꽉 차 있지만 선악을 가려야 할 그 분기점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세계가 악하다고 할 때, 그 악한 세계와 상충이 없이 사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나는 이 세계와 상충이 없이 산다고 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타락권내에 있으면서도 그물에 걸려 있는 고기와 마찬가지로 반기를 들지 않고 그냥 살고 있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악의 세계와 상충을 벌여야 할 때, 그냥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세계가 악한 세계라는 것을 안다면 반기를 들어야 합니다. 그럼 왜 그렇게 되었느냐?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하여 떨어졌기 때문에 해방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다시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고, 다시 올라가기 위해서는 몸부림을 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통해서는 인류가 추구하는 새로운 세계를 맞이할 수 없고, 새로운 역사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고, 역사적인 선의 흔적을 남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을 들고 나온 사람들은 투쟁해야 되는 것입니다. (33.42, 1970.08.02) 핍박을 받고 어려울수록 더 강해지는 것이 정의의 본질이기 때문에, 치면 반대로 더 발전한다는 원칙이 성립됩니다. (93.134, 1977.05.21) 선한 마음은 어떠한 목적을 지향하더라도 그 목적하는 바를 확실히 알 수 없고, 그 과정에 있어서도 선의 마음을 자극시킬 수 있는 인연을 발견하기 어려운 반면에, 악한 것은 그 과정에 꽉 차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참을 추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고독한 생활, 슬픈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몰리게 되어 있습니다. 선을 붙잡고 나가는 사람의 길은 평탄한 길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남다르게 선한 인격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고 할 때 그를 환영하는 사람은 이 땅에 많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선한 개인이 선의 가정을 그려 나가는 데도 그 환경이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선의 가정이 선의 종족을 그리면서 가는 길에는 더더욱 어려운 악조건이 그 환경에 에워싸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36.52, 1970.11.15) 이제 한 고비를 넘고 가야 할 그 길을 지켜보시는 아버지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대담하고 호탕한 사나이로서 가오니, 아버지, 그 길을 지켜보시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립니다.
(134.142, 1985.02.25)
2. 의인은 공적으로 살고 자신의 복지와 공공의 선을 동일시함 종교 경전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 이 모든 것은 이방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마태복음 6.31-33 (기독교) 진정한 신앙심은 너희가 너희의 얼굴을 (예배에서) 동쪽과 서쪽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니라. 진정한 신앙심은 하나님과 최후 심판일과 천사와 성서들과 예언자들을 믿고 친척 고아 곤궁한자 나그네 자비를 구하는 자들을 사랑하기 위해 재산을 나누어 주고 노예를 해방시키고 예배를 근행하고 자카트를 내고 일단 약속을 하면 약속을 지키고 불행이나 곤궁한 역경에 처하여서도 인내하는 자이니라. 이와 같이 행하는 자만이 성실한 자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이다. 꾸란 2.177(이슬람) 도와달라고 아우성치는 빈민들, 의지할 데 없는 고아를 내가 건져주지 않았던가? 숨을 거두며 하는 마지막 축복은 모두 나에게 쏠렸고 과부의 서러움은 나에게서 기쁨으로 바뀌었네. 정의가 나의 옷이었으며, 공평이 나의 두루마기요, 나의 면류관이었는데···. 나는 소경에는 눈이었고 절뚝발이에게는 다리였었지. 거지들은 나를 아버지로 여겼으며, 낯선 사람들도 나에게 와서 억울함을 호소하였네. 악인의 턱을 때려 부수고 그가 물고 있는 것을 이빨 사이에서 빼내기도 하였지 욥기 29.12-17(기독교) 그는 소리치거나 고함을 지르지 않아 밖에서 그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갈대가 부러졌다 하여 잘라버리지 아니하고, 심지가 깜박거린다 하여 등불을 꺼버리지 아니하며, 심지가 깜박거린다 하여 등불을 꺼버리지 아니하며, 성실하게 바른 인생길만 펴리라. 그는 기가 꺽여 용기를 잃는 일 없이 끝까지 바른 인생길을 세상에 펴리라. 바닷가에 사는 주민들도 그의 가르침을 기다린다. 이사야 42.2-4(기독교) 공손추가 맹자에게 물었다. “감히 묻건대 부자(夫子)께서는 어디에 장점이 있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나는 말을 알며, 나는 나의 호연한 기운(浩然之氣)을 잘 기른다.” “감히 묻건대 무엇을 호연한 기운이라고 합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말하기 어렵다. 그 기운 됨이 지극히 크고 지극히 굳세니, 곧음으로써 잘 기르고 해침이 없으면 곧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하게 된다. 그 기운 됨이 의리와 도덕에 배합되니 이것이 없으면 굶주리게 된다. 이것은 의리를 많이 축적하여 생겨나는 것으로, 의리를 갑자기 빼앗아서 되는 것이 아니다. 행동이 마음에 흡족하지 못함이 있으면 굶주리게 된다. 반드시 호연한 기운을 기름에 종사하고 마음에 잊지도 말아야 하며, 억지로ㅓ 조장하지도 말아야 한다.” 맹자Ⅱ.A.2(유교)
말씀 선집
여러분, 복 받기를 원합니까? 영생하기를 원합니까? 그러려면 공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31.168, 1970.05.24) 다른 사람들을 감동받게 하는 위하는 자리에 서게 될 때 개인의 고개를 넘는 것입니다. (241.118, 1992.12.20) 인간은 본래 자기 개인만을 위해 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위에는 자기 개인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를 위해서 일을 한다’고 말합니다. 곧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산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불쌍한 사람입니까? 부모도 형제도 없는 고아와 같습니다. ‘나는 세계의 인류를 위해서 산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24.21, 1969.06.22) ‘본부에서 제일 힘든 것, 나라에서 제일 힘든 것을 내가 했다’ 해야 됩니다. 통일교회에서 힘든 걸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는 세계에서 제일 힘든 걸 내가 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걸 나빠하면서 하고, 싫어서 하면 종으로서 끝나지, 양자의 다리를 놓고 못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모든 어려운 것을, 종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어려운 것을 내가 기쁨으로 소화시켜야 됩니다. (113.111, 1981.05.01) ‘된다, 안 된다’ 염려할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했느냐 안 했느냐가 문제입니다. (308.209, 1999.01.05) 공적인 사람들은 말을 하되 공적인 말을 했습니다. 행동을 하고,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먹고, 자고, 하는 것 전부 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공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눈은 전부 다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11.244, 1981.02.22) 신앙자로서 제일 주의할 것이 무엇입니까? 일을 대하는 데 있어서 사소한 일이든 큰일이든, 어떤 일을 막론하고 개인적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의 마음이 팽팽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팽팽하게 공기를 넣어 완전히 둥글게 된 공과 같은 마음 자세를 가지라는 말입니다. 찌그러지지 않고 완전히 팽팽한 공과 같은 마음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불안한 마음이라든가 혹은 개인의 욕심을 중심삼고 사된 마음을 가지면 둥그런 공과 같은 마음에 모가 생깁니다. (40.278-289, 1971.02.07)
3. 의인은 민족의 수호자 종교 경전
아브라함이 다가서서 물었다. “당신께서는 죄 없는 사람을 죄인과 함께 기어이 쓸어버리시렵니까? 저 도시 안에 죄 없는 사람이 오십 명이 있다면 그래도 그곳을 쓸어버리시렵니까? 죄 없는 사람 오십 명을 보시고 용서해 주시지 않으시렵니까? 죄없는 사람을 어찌 죄인과 똑같이 보시고 함께 죽이시려고 하십니까?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이라면 공정하셔야 할 줄 압니다.” 창세기 18.23-25(기독교)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도, 입 맞추지도 않았던 칠천 명을 남기 두리라.
열왕기상 19.18(유대교) 예루살렘 거리를 돌아다니며, 너희 눈으로 찾아보아라. 장마당마다 찾아다녀 보아라. 바르게 살며 신용을 지키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면 나는 예루살렘을 용서하리라.··· 여호와께서 눈여겨 찾으시는 것은 신용을 지키는 사람인데, 이 백성은 얻어맞으면서도 아픈 줄을 모릅니다. 죽도록 맞고서도 타이르시는 말씀을 귓전으로 흘려버립니다. 얼굴에 쇠가죽을 쓴 것들, 도무지 하나님께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5.1-3(유대교) 언제나 국가에는 삼십 명의 의인이 있었고, 그들 덕택에 세상의 나라들은 계속 존속할 수 있다. 탈무드, 훌린 92a(유대교)
말씀 선집
레버런 문이 이렇게 미국에 와서 될 수 있으면 많은 일을 하면서, 많은 미국 사람들을 고생시키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발전을 하면 미국의 복이 되는 것이요, 미국이 하나님이 주신 책임을 못한 것을 종식시킬 수 있는 하나의 탕감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이 사람들을 보고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미국은 망하더라도 이들을 보고 망하지 않게···’ 소돔과 고모라가 망할 때 의인 열 사람만 있으면 용서하겠다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미국은 망해야 당연하지만 이런 이들을 중심삼고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103.200, 1979.02.25) 애국자는 많지만 성인은 드뭅니다. 성인은 세계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레버런 문이 사랑하는 여러분을 데려다가 성인을 만들고 싶겠습니까, 애국자를 만들고 싶겠습니까, 아니면 효자를 만들고 싶겠습니까? 나는 여러분을 성인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111.141-142, 1981.02.08)
성실과 확실 사람의 내적 의도는 행동의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서 어떤 행동이 선한지 악한지,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동기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부처가 담마파다에서 강하게 설교했듯이, 모든 행동은 마음으로부터 시작한다. 마음에서 창출되는 것이다. 내적 마음의 상태에 따라 행동이 나오기 마련이다. 아래의 어떤 경전 구절에서는 ‘신실’이란 모든 가식과 이기적 욕심이 배제된, 마음의 자연적이고 자발적인 흐름이라고 정의한다. 또 다른 경전에서는 진실로 신실한 마음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기 탐구와 자기 함양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문선명 선생은 스스로 ‘정성’이라고 부르시는, 이 신실한 마음을 고양시키는 것이 영적인 삶에 필수적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번 장에서는 정성을 일상생활에 필요한 덕목으로 다루고 있다. 하나님꼐 다가가는 신실함과 관련된 주제는 제16장 ‘헌신’과 ‘순수한 의도’에 더욱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1. 성실은 심정에서 자동적으로 우러남 종교경전
어떤 이의 마음이 건실하다면, 그의 몸도 느긋할 것이며,… 어떤 이의 마음에 악의가 있다면, 그 몸도 악의를 가지리라. 하디스(이슬람) 마음에서 비롯되고 마음이 으뜸이니, 마음으로부터 다 이루어진다. 악한 마음 가지고 말하거나 행하면 괴로움이 그를 따른다. 수레바퀴가 마소의 발자국을 따르듯이. 마음에서 비롯되고 마음이 으뜸이니, 마음으로부터 다 이루어진다. 선한 마음 가지고 말하거나 행하면 즐거움이 그를 따른다. 마치 그림자가 그 형체를 따르듯이. 법구경 1-2(불교) 아부 후라이라가 하나님의 사도의 말씀을 전하기를, “하나님은 네 외모와 소유물을 보지 않으시도다. 다만 네 마음과 행위를 보시도다.” 무슬림 하디스(이슬람) 깨끗한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합니다. 그러나 더럽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깨끗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도리어 그들의 생각과 양심까지도 다 더러워졌습니다. 디도서 1.15(기독교) 참된 자기 속을 밝혀 보지 않고 밖으로만 치달으려 한다면 그 매번의 행동들은 자연의 도에 맞지 않을 것이다. 장자 23(도교) 사랑에는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악한 것을 미워하고 선한 것을 굳게 잡으십시오. 육친의 사랑으로 서로 다정하게 대하며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십시오. 로마서 12.9-10(기독교) 정성됨[절대적인 참됨]은 하늘의 도요, 정성되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도다. 정성된 사람은 힘쓰지 않아도 도에 맞으며, 생각하지 않아도 터득하여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도에 맞으니 성인이라 할 것이다. 중용 20.18(유교) 기뻐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감정이 아직 밖으로 나타나지 않은 것은 ‘중(中)의 상태라 한다. 나타나서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의 상태라고 한다. ‘중’이란 천하의 큰 뿌리이고 ‘화’란 천하의 통용되는 도이다. ‘중화’를 이루면 하늘과 땅이 질서가 확립되고 만물이 자라고 번성하게 된다. 중용 1.4-5(유교) 참은 정성의 최고 경지이다. 정성이 없으면 남을 움직이게 할 수가 없다. 억지로 우는 사람은 슬픈 표정을 꾸밀 수는 있어도 진정으로 속에서 우러나오는 슬픈 정감이 없다. 억지로 성낸 척하는 사람은 표면으로 사나운 척해도 속에서 우러나오는 위압감이 없다. 억지로 친한 척하는 사람은 웃는 낯을 꾸며도 속으로부터 화목할 수가 없다. 참으로 슬퍼하면 소 리 없이 울어도 속에서 슬퍼하고, 참으로 노여워하면 밖에 나타나지 않아도 속의 위압감이 전달되고, 참으로 친하면 웃는 낯을 안 지어도 화목하게 된다. 속에 참이 있으면 보이지 않는 신이 밖으로 동하고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참’을 귀하게 친다. 장자 31(도교)
말씀선집
내 속사람인 마음과 이야기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과 더불어 공명되게 된다면 하나님과 관계 맺게 되고, 우주의 진리는 자동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102.34, 1978.11.19) 선한 사람은 자연을 보나, 사람을 만나나, 어디를 가나, 어느 때나 심정으로 덮어 줄 수 있는 자다. (뜻길, p.210) 하늘 앞에 지성을 드리는 것은 남으로부터 듣거나 배우거나 끌려서 되는 것이 아니다. 자동적으로 심정에서 우러나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충, 효, 열은 가르쳐 주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뜻길, p.215) 내가 정성 들이고 사랑하는 것은 내 것이라는 것입니다. 복은 하나님이 가지고 있습니다. 한을 넘어서서 복 주고 싶은 마음이 저장되어 있으니, 복을 받을 수 있나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복은 자동적으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마음을 가지고 생활에 적용해서 움직여 보기 바랍니다. 선생님은 무엇을 하나 손대게 되면, ‘이것 때문에 태어났다.’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나는 이것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생겨나기를 이것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좋아서 하는 겁니다. 좋아서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기쁨의 고개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이 사랑의 인연입니다. 자기가 싫은 것은 손을 안 대는 겁니다. 안 하는 겁니다. 좋아서 하는 데에는 하나님이 그 세계에 복을 빌어주는 것입니다. (308.214, 1999.01.05) 경천(敬天), 인화(人和), 애지(愛地)의 내적인 심정기준이 흔들리지 않는 자가 복된 자이다. (뜻길, p.213-214) 정성들이는 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마음이 통일되어야 합니다. 즉 일편단심을 지녀야 합니다. 두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통일된 마음으로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정성은 누구에게 빌려 주었다 다시 찾아올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작이나, 과정이나, 끝이 여러 가지 형태로 변화되어서는 정성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7.227-228, 1967.01.29) 무엇을 가지고 극복하느냐? 그것은 어떤 수단을 가진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무슨 재간 가지고도 안 됩니다. 오직 정성으로만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42.228, 1971.03.14)
2. 행동하기 이전에 정성을 들여라
종교 경전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그것이 바로 복된 삶의 샘이다. 잠언4.23(기독교) 진실로 곧다는 것은 신께서 현시하신 성실함의 결과로서 그대의 지정한 내면의 자아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행동의 가장 사소한 부분에 있어서까지도 그대는 성실함을 다하도록 애써야 한다. 성실함과 정직함이 없는 예의나 제의는 잘못된 것이며 불충분한 것이다. 이는 마치 팔을 고정하지도 않고 활을 당겨 살을 쏘거나 노 없이 배를 움직이려는 것과 같다. 히키타 모치마사, 신풍기(신도)
진실로 사람의 생각이 삼라사의 원인이다. 자신의 생각들을 청정하게 닦도록 하라. 자신이 생각하는 것, 사람은 그것이 된다. 이것은 오랜 비밀이다. 자신의 생각을 고요하게 함으로써 그는 선악의 모든 행위들을 잠재울 수 있다. 생각이 고요하게 머무는 자는 영원한 자아 속에서 불멸의 행복을 누린다. 만일 자신의 생각들이 이 세상 것들에 대한 것만큼 브라흐만에 오로지 할 수 있다면,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지 못할 자 누군가? 마음은 청정하고 부정한 두 얼굴을 지니나니, 욕망에 끌려 다녀 더러움에 물들며, 이를 떠나 있음이 곧 청정한 마음이다. 먼저 자신의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방일하게 하지 말라. 연후에 흔들리지 않고 적정 속에 머무는 것, 그것이야말로 무심의 경지요 구극의 경지이다. 마이트리 우파니샤드 6.34.3-7(힌두교)
이른바 뜻을 정성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않는 것이다. 나쁜 냄새를 싫어하고, 좋은 색상을 좋아함과 같으며, 스스로 정성스런 경지에 만족하고 있음을 말한다. 고로 군자는 반드시 자기 혼자 있는 경우에 신중하게 행동한다. 소인은 한가롭게 혼자 있으면 선하지 못한 짓을 하고, 그 한도가 끝이 없이 뺃는다. 군자의 언행을 본 후에야 슬쩍 시치미를 떼고, 자신의 불선을 가리고, 반대로 선함을 나타내려고 한다. 그러나 남들이 그를 보기를 마치 폐나 간을 봄과 같이 할 것이니 숨겨도 소용이 있겠느냐? 이런 것을 이른바 속에서 정성스럽게 하면 밖으로도 나타나 보인다고 함이니라. 고로 군자는 반드시 혼자 있는 경지에서 신중하게 하느니라. 증자가 말했다. “열 개의 눈이 보고, 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바이니 그 얼마나 엄격해야 하느냐! ” 부유함은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성은 몸을 윤택하게 한다. 마음이 넓으면 몸이 편하게 된다. 고로 군자는 반드시 그 뜻을 정성되게 한다. 대학 6.1-4(유교)
우리는 우리 자신을 검사해야 하고, 무엇이 심정의 영향이고 목적인지 배워야 한다. 이런 식으로 해야만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정직하게 배울 수 있다. 과학과 건강, 8(크리스천 사이언스)
비구니들이여! 만일 스스로 몸단장하기를 좋아하는 여인이나 젊은이, 혹은 어린 소년이 있어 밝고 깨끗한 거울이나 맑은 물이 담긴 항아리에 제 모습을 비춰 보고 그 속에서 어떤 얼룩이나 때가 묻은 것을 발견한다면, 그는 그 얼룩이나 때를 지우려 애쓸 것이며, 마침내 뜻을 이룬다면 그는 매우 기뻐하며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깨끗하게 된 것은 나에게 참 ㅈ호은 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비구의 내적 성찰은 그것이 잘 닦여질 때 그에게 가장 큰 이득이 된다. 이에 그는 이와 같이 자신을 돌아본다. 내가 평소에 혹 남의 것을 탐하지는 않는가? 내가 평소에 악의를 품고 말하거나 행한 적은 없는가? 내가 평소에 수행을 닦는 일에 게으름을 피우지는 않는가? 내가 평소에 마음이 들떠 평정심을 잃지는 않는가? 내가 평소에 의심이 들어 마음이 동요하며 혼란에 빠지지는 않는가? 내가 평소에 화를 잘 삭여 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내가 평소에 탁한 상념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는가? 내가 평소에 색을 탐하는 마음을 품지는 않는가? 내가 평소에 무기력하게 지내는가, 아니면 활기찬 모습으로 수행에 임하는가? 내가 평소에 나를 통어하며 사는가, 아니면 그렇지 못한가? 만일 이와 같이 자신을 돌아보고 어떤 비구가 생각하기를, “나는 평소에 남의 것을 탐하고, 가슴에 악의를 품으며, 방일하고 지둔(遲鈍)하며, 마음에 평정심을 집지하지 못하며, 의심에 들어 마음이 동요하고 혼란에 빠지기 잘하며, 화내기 좋아하며, 색욕에 빠진 몸을 지니며, 굼뜨고 나를 통어하지 못한다.” 이와 같이 여기면, 그 비구는 자신을 책망하여 한층 더 수행에 전념해야 하리니, 보다 더 많이 노력하고, 보다 더 높은 열망을 내며, 보다 더 많이 실천하고 마음을 흩트리지 않으며, 사악하고 우익하지 못한 것들을 멸쳐버림에 전심전력하여야 한다. 앙굿타라 니카야 5.66(불교)
말씀 선집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우리 한국의 격언이 있지만, 참 그건 천리(天理)를 통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정성을 다 드린다’ 하는 그 정성 드리는 거기에는 안팎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또, 언행심사와 모든 실천, 안팎의 모든 우리 양심 생활권까지도 몽땅 합해 가지고 바친다는 것입니다. 그게 정성이라 이겁니다. ‘정(精)’은 정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誠)’은 말씀 언변에 이룰 성을 한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안팎의 모든 것을 이루어 가지고 바친다는 뜻입니다. 거렇게 돼야 감천(感天)입니다. 하늘이 감동한다는 것입니다. (78.31-32, 1975.05.01)
평소에 느낌의 몇 퍼센트가 적중하느냐? 이것은 여러분이 생활과정을 분석해서 그 결과를 살펴봐야 합니다. ‘내가 느끼는 것의 몇 퍼센트는 맞는다, 몇 퍼센트는 틀림없다’ 하는 결과를 측정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하나님이 같이하고 계시는지, 악이 같이하고 있는지 분석해 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런 신앙태도가 필요합니다. 이런 신앙태도를 키워 나가면 틀림없이 정확한 느낌이 체휼되어 들어옵니다. 그렇게 되면 길을 나설 때 기도를 안 해도 괜찮습니다. 첫 걸음을 내디딜 때, 이 길이 어떤 길이냐, 좋은 길이냐, 가면 하나님에게 좋을 수 있는 길이야, 섭섭한 길이야, ‘아 이건 좋다, 나쁘다’ 하는 느낌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쁘다’ 할 때는 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감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내적인 느낌과 관련된 체휼신앙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40.288, 1971.02.07)
원망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이고, 힘들다! 선생님이 알아준다, 안 알아준다’ 하는데, 정성들인 것을 알아주면 어떻게 됩니까? 사랑하는데 알아주면 어떻게 됩니까? 알아주면 사랑이 막혀 버립니다. 안 알아줌으로 말미암아 정성이 흘러갈 수 있고 사랑이 흘러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흘러가야 됩니다. 물도 흘러가고, 공기도 흘러가고, 사랑도 틈만 있으면 전부 채우는 것입니다. (308.205, 1999.01.05)
신앙생활에서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폭발적이고도 자극적인 힘을 가지고 뜻의 세계를 향하여 끊임없이 가고자 하는 여력이 있다면, 그런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여러분과 같이하신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반면에 그런 힘이 없다면 하나님이 여러분과 분리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이 솟구치고 인류와 더불어 자기의 생명을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하늘에 속해 있다는 증거입니다. 자기중심의 사랑과 자신의 가치를 자랑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자신에게서 이미 하나님이 이별하고 있다는 증거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갈 길은 하늘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중심의 한계점에 도달할 것입니다. 나를 중심한 한계의 세계는 하나님의 뜻의 세계와는 다른 것입니다. (32.21-22, 1970.06.14)
준비 못 한 사람은 흘러가는 겁니다. 준비 못 한 사람은 상속자가 못 됩니다. 중요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나 자기가 하늘을 동정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시간이 어떠한 자리인가 하는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은 정성 들이고 또 들이려고 할 때이고, 위하려고 할 때이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려고 할 때라는 것입니다. (308.203, 1999.01.05)
아직도 타락권에 속해 있는 인류는 양심혁명을 완성해야 합니다. 즉 이 세상의 어떤 주권이나 이념 앞에서도 일점일획 가감함이 없이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본심의 지향성을 따라 참생명 참혈통의 전통을 지키라는 뜻입니다. 하늘 앞에서나 만물 앞에서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정오정착적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삶이 일심 일체 일념 일핵의 경지에 도달하여 순결 순혈 순애성을 영원불변의 전통으로 안착시키고 일화통일시대를 꽃피울 때 비로소 양심혁명은 완성을 보는 것입니다. (433.202, 2004.01.27)
정직
정직은 진실을 말하고, 마음과 심정에 내재한 것을 사실대로 말하고, 약속을 지키며, 말과 행동이 일치되게 행동한다는 것을 포함한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려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거듭나겠다고 반성, 맹세하며, 악을 행하게 하는 유혹과 맞서 싸우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따라서 문선명 선생은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대해 하나님께 정직하게 보고 드리는 시간이 기도시간이라고 하신다. 기도는 또한 미래에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목표를 세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1. 타인과 하나님과 진실 말하기 종교 경전
여호와께서는 거짓말하는 입술을 미워하시고 참되게 살아가는 사람을 좋아하신다. 잠언 12.22(기독교) 거짓을 버리고 이웃에게 참된 말을 하시오. 우리는 서로 한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이다. 에베소서 4.25 말, 행동, 생각에서 그대의 모든 행위가 진실 되게 하라. 타잇티리야 우파니샤드 1.11.1(힌두교) 네 마음이 부인하는 것을 네 입이 고집하지 말라. 음즐문, 정숙의 도(도교) 입으로 하는 말과 마음에 품은 생각이 달라서는 안 된다. 탈무드, 비바 메챠49 (유대교) 몸, 말, 생각으로 하는 행위들에서 정직과 진실은 행운의 길로 통한다. 탓트바르타 수트라 6.23(자이나교) 거짓말을 한다 하여 부자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며, 배반한다 하여 오래 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죽음〔심판〕의 날에는 그것들로 인해 당황하게 될 것이다. 거짓이 이십 년 동안을 달려가도 진실은 그것을 단 하루에 따라잡는다. 진실은 시장에 나오나 팔리지 않는다, 거짓은 매우 싸게 살 수 있다. 요루바족의 격언(아프리카 전통종교) 우리는 진실을 말해야 하며 듣기 좋게 말해야 한다. 듣기에 좋지 않더라도 진실을 말해야 하며, 듣기에는 좋으나 진실이 아닌 것은 말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영원한 법칙이다. 마누법전 4.138(힌두교) 군자는 말을 조심하고 행실을 말보다 앞서게 한다. 논어 14.29(유교) 오, 믿는 자들이여! 왜 너희는 너희가 하지 않은 일을 말하는가? 너희가 하지 않은 일을 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느니라. 꾸란61.2-3(이슬람) 거짓말을 하는 자는 지옥에 떨어진다. 거짓말을 했으면서도 “나는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자도 지옥에 떨어진다. 그런 사람들은 죽은 후 저 세상에서도 똑같은 짓을 한다. 법구경306(불교) 만일 그대가 사람들을 속이고자 음모를 꾸민다면, 당분간 그들을 속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에게 틀림없이 신의 응징이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그대에게 틀림없이 신의 응징이 찾아올 것이다. 절대적인 정직은 융통성도 없고 독선적인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그와 같은 사람은 태양과 달의 축복을 받는다. 실수 없이 정직함을 좇아야 한다. 코타이 신사에 내린 아마테라스신의 신탁(신도) 섭공이 공자에게 말했다. “우리 마을에 궁이라는 강직한 사람이 있는데, 그는 자기 아버지가 양을 훔친 것을 증언했었소.”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말하는 강직이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버이는 자식을 위해 숨기고 자식은 어버이를 위해 숨겨 줍니다. 강직은 그렇게 부자간의 애정 속에 있어야 합니다.” 논어 13.18(유교)
말씀 선집
여러분들이 도의 길을 가면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사제지간에 있어서 위장전술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 솔직해야 합니다. 지극히 정성들여 서로를 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33.125, 1970.08.11) 솔직한것은 정의와 통하고, 정직하지 못한 것은 불의와 통합니다.(364.266, 2002.01.03) 하나님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늘을 중심삼고 마음과 몸이 하나 되어 있습니다. 마음과 몸이 하나 된 곳에는 생각과 하나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일상에서 말할 때 언행심사를 바로 해야 된다고 합니다. 언행심사는 말과 행동과 마음과 일이 하나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공적인 것으로서 보호하고 증거하고 선전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381.65, 2002.06.11) 사람은 솔직해야 합니다. 솔직한 것은 세상 어느 곳에서나 통합니다. 솔직한 것은 어떤 것에도 통한다는 말입니다. 솔직한 것은 어떤 것에도 통한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잘못했다면, 잘못했다고 솔직하게 말할 때는 발전합니다. 선도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언제나 잘할 수 있습니까? 사람은 잘못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잘 못 했다 할지라도 거기서 솔직히 고백하고 후회함으로써 새로운 결심을 할 수 있습니다. 잘못한 것이 나쁜 게 아닙니다. 잘못했으면 이로 인한 새로운 자극을 받아 가지고 도약할 수 있습니다. 자극을 받아서 선하게 비약할 수 있습니다. 자극을 받아서 선하게 비약할 수 있다면, 잘못하는 것도 좋습니다. 공부를 못해서 낙제를 했다 해도, 한 번 낙제함으로써 그것을 계기로 우등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솔직해야 합니다. 우물우물하고 숨기려고 하는 사람은 발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솔직한 사람은 발전합니다. 이 우주가 밀어 주기 때문에 발전합니다. 어디 가든지 우주가 밀어 준다는 말입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과거나 현재나 미래를 막론하고 솔직한 사람은 모든 이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100.87-88, 1978.10.08) 솔직한 신앙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이렇습니다. 마음은 이렇습니다. 아버지, 나도 솔직하겠사오니 당신도 내게 솔직하게 대해 주십시오. 당신은 정의에 입각한 자리에서 얼마나 솔직한 마음을 가지고 나를 대햐 주셨습니까? 내가 부정의 마음을 가진 입장에 있기 때문에 당신도 부정의 마음을 가지고 나를 대하시겠지만, 이제 마음에 있는 그대로를 가지고 대하려 하니 정의의 판단을 내려 나를 가려 주시옵소서’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심정은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다년간 거쳐 오면서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45.242-243,1971.07.04) 나는 원리적 입장에서 정직과 순결과 희생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정직해야 합니다. 인간의 거짓됨이 하나님과 인간의 분리를 가져온다고 통일원리는 가르칩니다. 우리 신도들이 좀 더 심한 박해를 받는다 하더라도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절로서 임해야 하며, 우선 자신이 통일교도임을 사람들에게 밝힐 것을 강조합니다. 통일교회 신도들은 레버런 문을 따르는 자라고 말해야 합니다. 만일 그렇게 말할 용기가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우리에게 필요가 없는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닥쳐올 보다 큰 고난이 두려워 자기 신분을 말할 수 없는 사람은 박해로 인하여 돌아오는 모든 축복을 놓치는 것입니다. 어떤 지역의 지도자들이 일시적인 수단으로 숨기고 있는지 모르지만, 나쁜 동기에서 그렇게 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나는 고난에 직면해서 그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러한 행동은 칭찬하지는 않습니다. (91.128, 1977.02.03)
2. 약속 이행 종교 경전
여호와께서 서원하거나 맹세코 자제하기로 서약했을 경우에 누구나 자기가 한 말을 이기지 못한다. 제 입에서 나온 말을 낱낱이 지켜야 한다. 민수기 30.2(기독교) 너희가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이행하라. 너희가 하나님께 맹세한 서약을 깨뜨리지 말라. 너희가 자신을 위한 보증인으로 하나님을 설정하였음이라. 하나님은 너희가 하고 있는 행위를 모두 아시니라. 실로 단단히 짠 후 그것을 풀어버리는 여인과 같이 되지 말라. 다른 사람에 대해 이득을 획득하는 수단으로, 또는 한쪽을 다른 쪽보다 우월하게 하기 위해 너희 맹세를 기만하지 말라. 하나님은 그것으로 너희를 시험하시니라. 꾸란 16.91-92(이슬람) 사람이 하늘나라의 심판대에 서게 되면 제일 먼저 듣는 질문은 “너는 하나님을 믿었느냐?” 또는 “너는 기도를 하고 종교의식에 참여하였느냐?” 라는 것이 아니라 “너는 네 이웃들을 충심을 다하여서 신앙적으로나 명예스럽게 대해 주었느냐?” 라는 것이다. 탈무드, 샤바트 31a (유대교) 자장이 남하고 잘 사귀어 나가는 길을 묻자, 공자가 말했다. “말을 충성되고 신의롭게 하고 행동을 돈후하고 공경스럽게 하면 오랑캐 나라에서도 통할 것이다. 그러나 말이 충성되고 신의롭지 않고 행동이 돈후하고 공경스럽지 않으면 향리에서도 통할까 보냐?” 논어 15.5(유교)
말씀선집
친구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것은 반드시 주어라. 약속을 위반하는 것은 자신의 인격을 깎아 내리는 것이다.
(뜻길, p.199) 덕망지우(德望之友)를 많이 가질 수 있는 길, 혹인 윗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길, 혹은 손아랫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길, 혹은 손아랫사람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길은 변명이 아닙니다. 대체로 변명하는 사람들은 손해를 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변명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생님은 죽어도 변명은 못하는 사람입니다. 솔직한 사람은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 환경을 계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솔직한 신앙자’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45.269, 1971.07.04) 인격자는 누구와 약속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이행하고 실천합니다. 이것은 당신이 주장해서 약속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따르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인격자가 아닙니다. 법은 공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약속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법의 약속권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지켜야 합니다. 약속한 사람이 그 법을 지키지 못할 때는 공공 규범에 의해서 제재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법을 준수해야 하는 사람들의 책임입니다. (31.13, 1970.04.08) 기도라는 것은 하다가 힘이 다 진(盡)하게 될 때 하는 것입니다. 약속을 했으면 행동을 하고, 그러나 내가 미치지 못해서 쓰러지게 될 때 기도해야 됩니다. (113.60, 1981.04.26)
조심과 경계
인생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늘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태만하고 느긋한 삶은 용납되지 않는다. 매 순간 우리는 선악의 갈림길, 원칙과 위법의 갈림길에 선다. 그 길에는 언제나 뜻하지 않은 함정과 유혹이 있어 우리를 재앙으로 이끌 수도 있다. 따라서 영적 구도를 걸어감에 있어 우리는 늘 조심하고 경계하며 주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세계의 경전들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죄를 짓거나 타락한 삶을 살지 않기 위해 우리가 늘 방심하지 말 것을 가르친다. 성경의 “주는 밤에 도둑같이 임하신다!” 는 구절처럼 기독교에서는 현자와 우매한 자의 비유를 들어 살면서 끊임없이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을 가르친다.
이슬람에서는 항상 신(자카라)을 기억하며, 그의 계명과 자비를 기억하며, 매일의 기도생활을 통해 이것들을 되새기도록 독려하고 있다. 유대교 현인들은 어떠한 죄의 가능성도 배제하기 위해 ‘밤의 태두리 안에서’ 모든 계명을 해석할 것을 주장한다. 동양 종교는 수도자들에게 항상 생각의 흐름을 경계하는 명상훈련을 장려한다. 문선명 선생님 늘 신중한 주의가 필요함을 강조하신다. 그리고 순간의 부주의로 심각한 과오를 저질렀던 성경의 중심인물들의 예를 들어 이 내용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신다.
종교경전
시경(詩經)에 이르길, “전전 긍긍하여, 깊은 연못을 지나듯 하고, 엷은 얼음을 밟듯이 하라” 고 하였다. 논어8.3(유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빌립보서 2.12(기독교)
출가 수행자는 마치 모든 것이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는 덫인 양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웃타리디야야나 수트라 4.7(자이나교)
학식이 많고 믿음이 굳으며 기꺼이 참아 견뎌내는 이라고 개을러 늘 삼가지 못하면 쉬이 타락하여 헤어나지 못하느니. 샨티데바, 보살행의 도 5.26 (불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위태로운 자는 자기 위치에 안심하고 있는 사람이고, 망하는 자는 언제까지나 존속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흐트러진 자는 잘 다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위태롭지 않을 때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나라가 잘 존속되고 있을 때도 멸망을 잊지 않고, 잘 다스려지고 있을 때도 흐트러짐을 잊지 않는다. 그래야 몸이 위태롭지 않고 나라도 잘 보전할 수가 있다. 역경에서 ‘망한다, 망해, 나라를 튼튼한 뿌리줄기에 매어 두라’고 한 말이 이상을 경계한 것이다.” 역경, 계시전 2.5.9 (유교)
재앙은 복이 깃들어 있는 곳이요, 복은 재앙이 숨겨져 있는 곳이니, 누가 그 전환하는 극을 알 것인가? 도덕경 58 (도교)
정당한 것도 명백하고 부당한 것도 명백하도다. 그 사이는 모호하고 많은 사람이 무지하다. 그리하여 모호한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자는 그의 종교와 명예를 스스로 정당화할 수 있었음이라. 그러나 모호한 것을 범하는 자는 금하는 것을 범하게 되리니, 이는 마치 목동이 성역 주위에서 방목하다가 성역 경계 내에서 방목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 모든 왕이 성역을 갖고 있음은 사실이 아니며, 그것은 하나님이 금하던 하나님의 성역이 아닌가? 일 나와위 하디스 40선 6 (이슬람)
람비 아키바는 말했다, “헤픈 웃음과 경망스러움이 인간을 부덕하게 한다. 전통은 토라를 지켜주는 울타리, 십일조는 부자를, 맹세는 숭고함을 지켜주는 울타리이다. 그리고 지혜를 지켜주는 울타리는 침묵이다.” 미수나, 아보스 3.17 (유대교)
많은 제물을 가진 상인이 동행이 적으면 위험한 길을 피하듯 더 살려고 하는 사람이 독을 피하듯 모든 악행을 피해야 한다. 밥구경 123 (불교)
그러므로 나는 선한 마음이신 당신과 하나됨을 구라며, 사악한 자들과는 아예 왕래를 끊겠습니다. 아베스타, 야스나 49.3 (조로아스터교)
사람은 하지 않는 것(가릴 바를 아는 지조)이 있은 이후에야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맹자 Ⅳ.B.8 (유교)
나타난 죄와 숨긴 죄도 피하라. 죄를 저지른 자는 반드시 자기가 저지른 만큼의 응보를 받느니라. 꾸란 6.120 (이슬람)
그와 같이 비난할 점이 없는 행위들을 하라. …만일 아무튼 바른 행위에 대해 의문이 있다면, 간특하지 않고 훌륭한 판단을 하며 진리에 헌신하는 위대한 사람들의 실천을 따라야 한다. 타잇티리야 우파니샤드 1.11.2.4 (힌두교)
지각 있는 사람은 서 있을 때나 않아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나 항상 하나님을 염원하는 자이다. 꾸란 3.190-191 (이슬람)
그대의 침대 덮개의 그늘 아래에, 그대가 혼자 있을 때 주의하라. 음즐문 (도교)
비구들이여! 만일 길 가는 중에, 멈춰 서 있는 중에, 앉아 있는 중에, 혹은 누워 있는 중에 색을 탐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남을 증오하여 해치려는 마음이 일어날 때, 만일 이를 받아들인다면, 이를 버리지 못하고, 물리치지 못하고, 근절하여 버리지 못한다면, 비구들이여! 그는 힘써 정진하지 않는 사람이요,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며, 게으르고 서둘러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라 불린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만일 길 가는 중에, 멈춰 서 있는 중에, 않아 있는 중에, 누워 있는 중에 색을 탐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남을 증오하여 해치려는 마음이 일어나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버리고, 근절하며, 태워 없애 버린다면, 비구들이여! 그는 힘써 정진하는 사람이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며, 항상 노력하고 단호한 결단력을 지닌 사람이라 불린다. 이티붓타카 110 (불교)
하늘나라는 그들의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이하러 갔던 열 처녀와 비교될 수 있다. 그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미련한 처녀들은 등잔을 가지고 있었으나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잔도 가지고 기름 담은 그릇도 가지고 있었다. 신랑이 늦도록 오지 않아 처녀들이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소리가 났다. “보라, 신랑이 온다. 나와 맞으라.” 그 때 처녀들은 모두 일어나 각기 등잔을 손질했다. 미련한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말했다. “우리의 등불이 꺼져가니 기름을 나눠 주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이 대답했다. “안 되오. 그러면 우리에게나 그대들에게나 다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가게에 가서 쓸 만큼 사오는 것이 좋겠소.”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왔다. 준비가 된 처녀들은 그와 함께 결혼잔치에 들어갔고 문은 잠겼다. 그 후 미련한 처녀들이 와서 “주여, 주여, 문을 열어주십시오” 하고 청했으나 주인은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 시간을 알지 못한다. 마태복음 25.1-13 (기독교)
말씀선집
우리 젊은이들, 여러분들은 선악의 기로에 서 있기 때문에, 한 발자국 잘못 가게 되면 그것은 천야만야한 사망의 구렁텅이에 걸려들 수 있습니다. 힘들지만 한 발자국 딛고 올라서게 될 때는, 빛나는 내일의 소망의 산정을 넘어서 희망의 광야를 바라볼 수 있는 승리의 왕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한 발자국을 주의해야 되는 것입니다. (59.214, 1972.07.16)
커지면 커질수록 자기 발밑을 보아야 하고,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하늘을 쳐다보아야 한다. (뜻길,p.21)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눈을 주의해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귀를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자기중심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자기 중심삼은 행동은 보지 말고, 자기를 위해 사는 사람하고는 말도 하지 말고, 자기를 위한 변명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개일 방어책이라는 것입니다. (93.319, 1977.06.12)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가운데 공적인 것은 전체를 위한 것이요, 사적인 것은 자기를 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기를 조용히 반성해보면 자기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틈바구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자기 위주로 나아가려는 몸을 제지시키고자 ‘금식하라. 고생하라. 온유 겸손하라’고 가르칩니다. (149.271, 1986.11.27)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생각하여 행동하십시오. (93.320, 1977.06.12)
한 마디, 한 번 잘못 들음으로 말미암아 일생을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행동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한 번 잘 못 가게 되면 역시 일생을 망치게 된다는 말입니다. 또, 여러분이 친구를 사귀는데 있어서도 친구 한 사람을 잘 못 사귐으로 말미암아 일생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인생에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자고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말하는 것을 조심하고, 듣는 걸 조심하고, 행동을 조심하고, 친구를 조심하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이것은 고금을 막론하고, 혹은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똑같이 통하는 공식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말 한마디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그런 일이 생기는 반면 말 한마디를 잘함으로 말미암아 일생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듣는 것도 그렇고, 가는 것도 그렇고, 행동하는 것도 그렇고, 친구를 사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난데없이 지나가는 젊은 사람한테 말 한마디 함으로 말미암아 인연이 되어 사귀다 보면 남편도 될 수도 있습니다. (91.29-30, 1977.01.02)
불행한 길의 출발이라는 것은 큰 사건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한 번 더 생각해야 할 것을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했다가는 그 고개를 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중대한 결정을 하면 할수록 반드시 그러한 처지에 서지 않고는 일대의 비운이 찾아올 수 있는 일이 번번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한 생각을 하는 것이 원수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93.298, 1977.06.12) 우리가 지내고 있는 하루의 생활 중 한 시간 한 시간도 무섭지만 한 시간 속에 똑딱하는 순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무서운 순간인가 하는 것을 느끼며 싸워 나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영원한 천국도 한 순간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담 가정에서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것도 일년이나 십 년, 혹은 수 십 년을 계획하여 실수한 것이 아닙니다. 그 실수는 한 순간에 초래되었으며, 한 순간의 실수가 억만 년 이어온 그 나라를 팔아먹는 터전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순간이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한 순간의 실수로 말미암아 오랜 역사를 통하여 도의 길을 갔던 수많은 사람들이 수난의 보응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으며, 그 뜻을 따라가지 않는 수 많은 민족은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엄청난 탕감 제물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37.219, 1970.12.27)
노아가 40일 홍수 심판 이후에 조금만 더 깊이 생각했으면 벌거벗고 그런 행동을 안 했을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생각했으면 그 놀음했겠습니까? 조금만 참았으면 술을 먹고 그랬겠습니까? 조금만 더 참고 조금만 더 생각했다면 절대 그 놀음은 안 했을 것입니다. 또 아브라함이 제물을 드릴 때 3대 제물을 놓고 참고 가만히 보고 생각했다면 실수했겠습니까? 3대 제물 가운데 둘은 쪼개고 왜 하나는 안 쪼겠느냐 말입니다. (99.39, 1978.08.27)
하늘의 시련을 받는 입장에 있었던 야곱은 한시도 마음을 놓지 않았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굳게 믿고 싸움이 끝나기 전에는 팔이 떨어지는 한이 잇더라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굳은 신념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싸워 승리한 후에야 이스라엘이란 축복이 임하였던 것입니다. (3.337, 1958.02.19)
신중한 말
부주의하거나 고의적으로 한 공격적 발언은 타인에게 엄청난 상처를 줄 수 있다. 악한 발언은 우정을 파괴하고, 명성을 망치고, 불필요한 편견을 야기한다. 수많은 소문과 스캔들에 휩싸이지 않았다면 예수는 당대 사람들에게 더 많은 환영을 받았을 수도 있다. 말은 자신을 비롯해 타인에게도 엄청난 상처를 남기기 때문에 신중히 다뤄져야 한다.
종교경전
너희는 겨레 가운데서 남 잡을 소리를 퍼뜨리지 마라. 이웃을 죽을 죄인으로 고발하지 마라. 나는 여호와이다. 레위기 19.16 (기독교)
만약 귀가 악의에 찬 뜬소문을 들지 않는다면 마음은 비탄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요루바족의 격언 (아프리카 전통종교)
선한 사람은 선한 것을 쌓아 두었다가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악한 것을 쌓아 두었다가 악한 것을 낸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은 심판 날에 자기가 말한 온갖 쓸데없는 말을 해명해야 할 것이다. 너는 네가 한 말로, 무죄선고를 받기도 하고 유죄선고를 받기도 할 것이다.” 마태복음 12.35-37 (기독교)
마음은 군대를 가진 왕과 같노라. 왕이 훌륭하면 그의 군대로 훌륭할 것이요, 왕이 약하면 그의 군대로 남이 하는 대로 할지니…. 알라와 최후의 날을 믿는 자들이여! 좋은 것을 말하거나 침묵하라. 알 나와위, 하디스 40선 15 (이슬람)
말이 많으면 실수하게 마련, 지각 있는 사람은 입에 재갈을 물린다. 잠언 10.19 (기독교)
하나님의 사도가…침묵을 지키다가 이르기를, “말을 자제하라.” 내가 말하기를, “오 하나님의 사도여! 저희의 말이 저희에게 해가 되리까?” 하니, 그가 말하기를, “네 어머니가 너를 잃게 될지도 모르니, 무아다야! 그들의 혀로 인한 결과 말고 사람들의 얼굴을 지옥불로 향하게 하는 것이 또 있으랴?” 하였다. 알 나와위, 하디스 40선 29 (이슬람)
어떤 이에게든 거친 말을 하자 말라.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노기 어린 말은 고통이 된다. 그 보복이 네 몸에 들어온다. 법구경 133 (불교)
그런데 혀는 불이요 부의의 세계입니다. 혀는 우리 몸의 한 부분이지만 온 몸을 더럽히고, 인생의 수레바퀴에 불을 지르고, 마지막에는 혀도 지옥 불에 타 버립니다. 들짐승과 새와 기는 짐승과 바다의 생물들은 어떤 종류든지 모두 인류가 길들여서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혀는 누구도 길들일 수 없습니다. 혀는 걷잡을 수 없는 악이요,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으로 가득 찬 것입니다. 우리는 이 혀로 주 아버지를 찬양하기도 하고, 또 이 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야고보서 3.6-9 (기독교)
이 세상에서 모든 골칫거리의 원천은 성급하게 내뱉은 한마디 말이다. 아라키다 모리타케, 세계에 대한 100편의 시 (신도)
말이 없음은 자연이다. 그러므로 회오리바람은 하루아침을 넘겨 불지 못하고, 소나기는 하루 종일 계속해서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누가 이러한 비와 바람을 일어나게 하였는가? 그것은 하늘과 땅이다. 하늘과 땅도 오히려 오래가게 할 수 없거늘,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 어떻겠는가? 도덕경 23 (도교)
공자가 말하였다. “난이 생기는 것은 언어가 실마리가 된다. 군주가 비밀스럽게 하지 않으면 신하를 잃고, 신하가 비밀스럽게 하지 않으면 몸을 잃으며, 기밀의 일이 비밀스럽게 않으면 해로움이 이루어진다.” 역경, 계사전, 1.8.10 (유교)
사람은 입에 도끼를 가지고 태어난다. 어리석은 사람은 나쁜 말을 하여 그 도끼로 자신을 찍는다. 비난받아야 할 것을 찬양하고, 친양하여야 할 것을 비난할 때, 그는 입으로 불운을 쌓고 그 불운으로 안락을 얻지 못한다. 도박으로 돈을 잃거나 모든 재산과 함께 자신마저 잃어도 그 불운은 오히려 작은 것이다. 바른 길은 간 사람에게 적의를 품는다면 그 불운이야말로 참으로 큰 것이다. 입으로 또는 마음으로 악함을 기도하여, 거룩한 이를 비난하는 사람은 억겁을 통해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는다. 숫타 니파타 657-660 (불교)
오, 믿는 자들이여! 만일 불경스러운 자가 너희들에게 어떤 소식을 전해주면 무지한 탓으로 타인에게 해를 주고 행한 일을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그 소식이 틀립없는가를 확인하도록 하라. … 오, 믿는 자들이여! 설사 너희가 더 훌륭하더라도 다른 백성들을 비웃지 말거라. 또 여인들도 설사 한쪽이 더 훌륭하더라도 다른 여인들을 비웃지 말거라. 같은 백성을 중상하지 말 것이며 별명을 부르지도 말거라. 신앙을 가진 이후에 사악한 이름을 붙이는 것은 실로 악행이니라. 회개하지 않는 자는 불의를 행하는 자이니라. 오, 믿는 자들이여! 가능한 억측을 피하여라. 어떤 종류의 억측은 죄이니라. 서로가 살피고 험담해서는 안 되느니라. 그대들 중에서 누가 죽은 형제의 살을 먹는 자를 좋아하겠느냐? 아니 그대들은 싫을 것이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라.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관대하시고 자비로우신 분이시니라. 꾸란 49.6-12 (이슬람)
말씀선집
우리 동료지간에 있어서도 말 한마디 잘못하여 실수하게 되면, 그 말 한마디 잘 못한 것으로 말미암아 그 사이가 깨질 수도 있습니다. 만일에 말 한마디를 잘못하게 되면, 그 말을 한 사람도 고통을 받고 그 말을 듣는 사람도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부부끼리도 그렇습니다. 한마디의 말이 동기가 되어 가지고 기분 나쁘게 되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갈라지고 그러는 걸 볼 수 있습니다. (89.116, 1976.11.01)
말로써 전체에 지장을 주면 그것은 곤란하다. (뜻길, p.181)
여러분들이 말 한마디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은 사람을 희생시킬 수 있고, 세계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하는 말은 아무리 욕을 해도,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이것은 흥할 뿐이요, 발전할 뿐이요, 전부가, 우주가 좋아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이 무섭지요? 선생님이 한마디 딱 하면 여러분은 딱 걸립니다. 아무리 웃던 사람도 심각해집니다. 선생님이 여러분들에게 모든 것을 다 잊고 다 용서해준다 하면, 그 한마디 말은 간단한데 모든 것이 해방되는 기분을 느끼는 것입니다. (91.91, 1977.01.30)
말 한마디 잘못해서 3주일간 기도한 적이 있다. (뜻길, p.202)
이간질하고 쏙닥쏙닥해 가지고 누구는 나쁘고 누구는 어떻고 어떻고 평하는 것은 사탄입니다. 듣고도 모르는 척하는 사람하고 수다스럽게 떠들어 대는 사람이 사탄 편입니다. 말을 안 해야 됩니다. (215.240, 1991.02.20)
투입하고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침묵이 자기를 주인이 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어두움과 아침햇빛을 맞아들일 수 있는 푯대가 되는 것입니다. 고요한 아침이라고 하지요? 여명에는 더 어두워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325.117, 2000.06.30)
옛날에 명문가에서는 자식을 교육을 시킬 때 아침에는 가능한 한 함부로 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신앙생활에서도 필요합니다. (40.73-74, 1971.01.24)
일 많이 하고 말 없으면 승리하고, 일 안하고 말 많으면 패한다. (뜻길, p.192)
중용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여겨지는 중요한 덕목이 중용이다. 중용을 취하기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과도함도 - 지나친 인색 또는 헤픔, 고행 또는 방탕, 독선 또는 비굴한 복종 - 삼가야 한다. 그러나 각 전통마다 강조하는 부분에는 차이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중도를 찾고 지키는 데 이성의 역할을 강조한다.
기독교의 유명한 기도문에도 중도를 깨닫기 위해서 지혜가 중요함을 표기한 부분이 있다. “주여, 변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주시고, 변해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그것의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불교의 중도사상에서는 종교적 삶을 존재에 대한 집착과 무에의 해탈을 연결해 주는 끈으로서 정의한다. 불교 역사 가운데 많은 철학자와 수도자들은 속세로부터의 고립과 적극적 사회 참여 사이에 중도가 무엇인지, 영적 성장의 노력과 그것의 성취 후에 따라오는 자만심을 억제하는 것 사이에 중도가 무엇인지 등, 끊이지 않는 변증법에 대해 정의하려고 노력해 왔다. 유교에서 중용은 보다 개인적인 균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이 중용의 도를 아는 사람은 그의 행동 속에서, 그리고 타인과 관계 속에서 그 도가 드러난다. 이 같은 중도에 대한 전통적 가르침은 개인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문선명 선생은 보다 전 세계적인 전망을 제시하고 계신다. 말씀에 의하면 개인이 타인과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균형을 이루고, 그것이 사회로 확대되어 사회의 상하, 빈부, 흑백 문제를 평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까지 나아갈 때 중용의 길이 비로소 실현된다고 한다.
종교 경전
가장 품위 있는 종복은 소비함에 있어 낭비하지도 않고 인색하지도 않으며 그 중간을 취하는 사람들이니라.
꾸란 25.67(이슬람)
너무 착하게 살지 마라. 지나치게 지혜롭게 굴 것도 없다. 그러다가 망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렇다고 너무 악하게 살지도 말라. 어리석게 굴 것도 없다. 그러다가 때가 되기 전에 죽을 까닭이 없지 않은가? 전도서 7.16-17(기독교)
평상의 덕을 실천하고 평상의 말을 삼간다. 덕에 부족함이 있으면 노력하지 않을 수 없고, 말에 지나침이 있으면 말을 덜 한다. 말할 때는 행할 것을 생각하고, 행할 때는 말한 것을 생각한다. 그러니 군자는 어찌 독실하지 않으라? 중용 13.4(유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시경의 관저편은 즐거우나 음란하지 않고 애처로우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논어 3.20(유교)
아낌이 없어야 하지만 지나치지 않아야 하고, 겸손하지만 빈곤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나흐줄 발라가, 어록32(이슬람)
오, 캇차야야나여! 사물이 실유를 지닌다고 설하는 것, 또는 이에 대해 사물은 궁극적으로 실유를 지니지 않는다고 설하는 것은 다만 단견의 소치이며, 여래는 이러한 단견에서 벗어나 다만 중도를 설한다. 상윳타 니카야 22.90(불교)
네가 아무리 배고파도 양손으로 먹어서는 안 된다. 아칸족의 격언(아프리카 전통종교)
먹고 마셔라. 그러나 낭비하지 말라. 그분께서는 낭비하는 자들을 사랑하지 않으시니라. 꾸란 7.31(이슬람)
허황된 거짓말을 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마십시오. 먹고살 만큼만 주십시오. 배부른 김에 “여호와가 다 뭐냐?” 하며 배은망덕하지 않게, 너무 가난한 탓에 도둑질하여 하나님의 이름에 욕을 돌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잠언 30.8-9(기독교)
명리와 생명은 어느 쪽이 더 절실한 것이냐? 생명과 재물은 어느 쪽이 더 귀중한 것이냐? 명리를 얻는 것과 생명을 잃는 것은 어느 쪽이 더 걱정스러운 일이냐? 명리를 심히 좋아하면 반드시 본성을 손상하게 될 것이며, 재물을 많이 쌓아 두면 반드시 크게 잃게 될 것이다. 만족할 줄 알면 욕을 안 보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고, 언제까지나 장구할 수가 있다. 도덕경 44(도교)
기뻐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감정이 아직 밖으로 나타나지 않은 것을 평형의 상태(中)라 한다. 나타나서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조화의 상태(和)라고 한다. 중(평형)이란 천하의 큰 뿌리이고 화(조화)란 천하의 통용되는 도이다. 중(中)과 화(和)를 이루면 하늘과 땅이 질서가 확립되고 만물이 자라고 번성하게 된다. 중용 1.4-5(유교)
말씀전집
정상적인 게 뭐냐? 모든 면에서 평균을 취해 가지고 화합될 수 있는 중용지도(中庸之道)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중간 입장을 가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치우쳐도 안 되는 것입니다.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고 그렇게... 조화가 되어서 가는 데에 있어서는 그것이 정상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정상저기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중용지도라는 것입니다. (120.224, 1982.10.17)
죄라는 것은 무엇이냐? 죄는 사적인 곳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망하는 것도 사적인 기준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적인 것이 도를 넘게 되면 악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적인 것ㅇ는 한계가 있는데, 그 한계를 넘으면 악하게 되고, 망하게 되고,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31.165, 1970.05.24)
한 사람이 이 땅 위에서 사는 데에 얼마만큼 물질을 소모하고 갈 것이다 하는 그 양이 있습니다. “나는 이만큼, 될 수 있는 대로 양을 적게 하겠다. 이만큼만 쓰고 가겠다.” 이래야 됩니다. 쓰고 남아진 것을 어떻게 되느냐? 그 사람의 후손 앞에 복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을 가진 나라는 발전하고 흥한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161.127, 1987.01.11)
원만한 사람은 사방성이 갖추어진 사람이다. (뜻길, p.202)
밸런스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밸런스를 부정하면 인간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미국 청년들, 미국의 가정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개인과 가정에 밸런스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339.139-140, 2000.12.10)
동서가 합쳐짐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훌륭한 것이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결혼 한 부부에게서 천재적인 아들딸이 태어납니다. (376.277-280, 2002.04.29)
수평이 없으면 통일할 수 있는 안정권이 영원히 존속 안 합니다. 찌그러지고 미끄러지고 하면 안 됩니다. 언제나 수평이어야 됩니다. 이 수평을 이루기 위해서는 주체와 대상관계가 균형을 이루어야 됩니다. 반드시 균형을 위해서 주체 대상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면 균형을 이루어서는 무얼 하느냐? 수평을 만들어야 됩니다. 주체 대상은 균형을 이루어야 됩니다. 한꺼번에 수평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높고 낮은 것을 균형을 맞추고 조정해 가지고 수평을 이루는 겁니다. 수평이 되면 거기서부터 안착기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거기서 중심을 중심삼고 통일적인 개념이 생겨난다는 결론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균형과 수평과 통일은 삼위일체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디가 하나님자리냐 하면, 통일입니다. 통일을 위해서 수평이 필요하고, 수평을 취해서 균형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기의 움직이는 동작에 있어서 하나라도 부족하면 통일과 수평과 균형의 세계는 깨져 나간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298.168-169, 1999.01.01)
정숙
경전에서 정숙한 의복과 최소한의 화장이 바람직하다고 가르치는 이유는 내적으로 순결한 생활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다. 개인의 외형은 그 사람의 내면을 반영한다. 진하게 화장한 얼굴과 정숙하지 못한 의상은 방탕한 마음을 드러내는 표시인 반면, 수수한 의상과 꾸미지 않고 자연스러운 얼굴은 온화하고 순수한 영혼을 표현해 준다. 아름다움이란 신성한 것이면서 유학을 불러일으키는 원인도 된다. 이것은 개인의 동기에 달려 있다.
이런 측면에서 문선명 선생은 다음과 같은 적나라한 질문을 던지신다. “누구를 위해 화장을 하는 것입니까? 남편을 위해서, 아니면 다른 남자들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주길 원해서 꾸미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눠주기 위해서 꾸미는 것입니까?”
1. 정숙한 차림
종교 경전
이와 같이 여자들도 소박하고 정숙하게, 단정한 옷차림으로 자기를 단장하십시오. 머리를 지나치게 꾸미지 말며, 금붙이나 진주나 값비싼 옷으로 치장하지 말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자에게 어울리게, 착한 행실로 치장하기를 바랍니다. 디모데전서 2.9-11(기독교)
믿는 남자들에게 말하라, 눈을 아래로 뜨고 정숙함을 간직하라. 그것이 그들에게 가장 순결한 것이니라. 실로 하나님은 그들이 하는 일을 다 아시는 분이시니라. 믿는 여자들에게 말하라, 눈을 하래로 뜨고 정숙함을 간직하라. 밖으로 드러난 것 외에는 그들의 장식을 보이지 말고 베일로 그들의 가슴까지 가리거라. 자기 남편 아버지... 여인의 감추어진 부분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는 어린아이 외에 장식을 드러내지 말라. 그리고 발을 굴러 소리 내어 장신구로 감춘 것을 드러내려 하지 말라. 오 믿는 자들이여! 너희 모두는 하나님에게 회개하라. 그리 하면 너희는 번성하리라. 꾸란 24.30-31(이슬람) 여러분은 머리를 치장하거나 금붙이를 달거나 옷을 차려 입거나 하는 겉치장을 하지 말고, 썩지 않는 온유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속사람을 단장하도록 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입니다.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던 거룩한 여인들도 이와 같이 자기를 단장하고 자기의 남편에게 순종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3.3-5(기독교)
여인이여, 얼굴을 단장하기 전에 스스로 그대의 주께 합당하게 하라. 만일 주께서 그대의 침실에 들지 않는다면, 그대의 치장이 무슨 소용인가. 단장의 아름다움은 주께 합당함을 얻은 여인의 것이니, 그녀의 단장이 합당하게 하면, 그녀가 주의 사랑을 얻으리라. 주를 경외하여 그녀가 치장하게 하고, 신과 더불어 그녀의 향기를 즐기며, 그녀의 살림살이를 사랑하라. 몸과 마음을 주께 바치고, 그녀가 먼저 주를 사랑하여 하나 되게 하라. 아디 그란트, 바르 수히, M3, p.788(시크교)
「시경」에 이르기를 “비단 옷을 입은 후에 흩옷을 덧입는다.”고 하였다. 그것은 속 비단옷의 문채가 드러남을 꺼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는 은은하되 날로 드러나고, 소인의 도는 선명하되 날로 없어진다. 군자의 도는 담박하지만 싫증을 느끼게 하지 않고 간략하지만 문채가 나며 온화하되 조리가 있다. 그는 심원한 이치가 가까운 사소한 일로부터 시작됨을 알고 있고 바람이 불러오는 본원(커다란 결과를 낳는 작은 원인)을 알며 은미함이 드러남을 안다. 그러므로 더불어 덕(德)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중용33(유교)
육신은 부정하고 악취를 풍기며 온갖 오물이 가득 차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다. 만일 이런 육신을 가지고 있으면서 거만하거나 남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다만 통찰이 없기 때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숫타 니파타 205-206(불교) 말씀 선집 화장한 미인의 얼굴과 화장하지 아니한 미인의 얼굴이 웃을 때 어느 얼굴이 더 조화로울 것 같습니까? 여러분, 어린 아이들을 보면 다 예쁘지요? 만약에 그 얼굴에다가 눈썹을 그리고 입술을 그리고 화장을 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게 얼마나 기분 나쁜 건가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들도 그런데, 우리보다 한참 더 나이 많은 하나님은 어떻겠습니까? 우리 인간들이 화장하고 좋아하는 것을 하나님이 볼 때, 화장한 아기를 보고 우리가 기분 나빠하는 것 보다 훨씬 더 기분 나빠할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97:49-50, 1978.02.26)
여러분은 하나님이 볼 때도 나가 넘어지고, 냄새 맡고도 넘어지고, 부딪히게 될 때도 밖으로 넘어지는 패입니다. 그러한 인간 중에서 여자라고 “내가 화장을 한다. 목걸이를 한다. 귀고리를 한다. 반지를 낀다. 하나님이 좋아하겠지!”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게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얼마나 기가 막힌 것입니까? (94.42. 1977.06.26)
여자들이 화장하는 것, 자기 남편 때문에 합니까, 딴 사람들한테 좋게 보이기 위해서 합니까? 남편만을 위해서? 남편은 그런 거 좋아하지 않습니다. 매니큐어 칠한 손톱은 여우 발톱 같다고 합니다. 매우 위험합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그 발톱 만지고 싶어 합니까? 그거 좋을 거 같으면 매일 발라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거 발라주는 남편 있습니까? 그런 사람 한 사람이나 있습니까? 난 하나도 못 봤습니다. 그게 바로 사탄의 전파입니다. 사탄이 전파를 보내면 여자가 화장을 하는 것입니다. (201.104-105, 1990.03.11)
분을 바르고 향수를 뿌려서라도 여자는 언제든 아름다워야 한다. 여자는 정서생활에 있어서 빚지지 말라. 또, 남편의 몸이나 의복 등에 대하여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남편이 집에 들어왔을 때 피곤해 보이면 세숫물도 떠다 주고, 양치질할 준비도 해주고, 발도 씻어 주고, 머리도 빗겨 주고 하라. 여자의 웃음은 집안의 꽃이다. 원만한 가정을 이루려면 여자는 희비극의 일등 배우가 되어야 한다. 남편이 기쁠 적에도 완전히 녹여 놓고, 슬플 적에도 완전히 녹여 놓아야 한다. (27.88, 1969.11.26)
여자들이 경대 앞에 앉아서 화장하는 것은 “아이고, 나를 사랑해 다오. 나를 생각해 다오! 이래서 하는 것입니까? 남이 보기 좋으라고 하는 것입니까? 둘 가운데 어떤 쪽에 더 마음을 둡니까? 자신이 아름답게 보이려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름답게 보이려고 그렇게 하잖습니까? 그런 입장은 사탄 편에 속하는 것입니다. 나비가 알록달록하고 예쁩니다. 꽃이 아름답거든요. 왜 그렇습니까? 전체를 좋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화장하는 것은 꽃처럼, 나비처럼 전체를 좋고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다“ 하면, 그럴 때는 암만 화장을 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는 지옥이요, 하나는 천국이 된다는 말입니다. (129.316-317, 1983.12.01)
2. 정숙한 품행 종교 경전
사람들을 경멸하여 너의 얼굴을 돌리지 말고 이 땅 위에서 거만하게 걷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거만함을 사랑하지 않으시노라. 겸손한 걸음으로 걸을 것이며 소리를 낮추어 말하라. 가장 듣기 싫은 소리는 당나귀 소리이니라. 꾸란 31.18-19(이슬람) 여호와께서 계속 문책하신다. “시온의 딸들은 잘난 체 목을 빼고 추파를 던지며 돌아다니고 발목으로 잘랑잘랑 소리나 내며 이리저리 꼬리치고 돌아다닌다.” 그런즉, 주께서는 시온의 딸들의 정수리를 버짐 먹게 하시고 그들의 머리를 밀어버리시리라. 이사야3.16-17(기독교) 네가 훌륭한 외모를 가졌다고 하여 음탕함을 좇지 말라. 대신 너에게 그 미를 주신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그분을 경회하며 찬양하라. 페시크타 라바티 127a(유대교) 아름다운 여인을 보는 자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우주에 이런 미를 창조하신 그분을 축복하소서.” 그러나 아름다운 여인을 잠시라도 바라보는 것이 용납되는가? 다음 구절을 통해 보자. “모든 악한 것들을 멀리하라.”(신명기 23장 10절) 이것은 아름다운 여인을 함부로 쳐다보면 안 된다는 뜻까지 함축한다. 나아가 그 여인이 혼인을 했든 하지 않았든, 얼굴이 못났든, 야한 옷을 입고 있든지 간에 어떤 여인도 빤히 보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심지어 돼지나 나귀, 닭들이 짝짓기 하는 것도 보아서는 안 된다. 탈무드, 아보다 자라 20ab(유대교) 낯이 두터워 수치를 모르고 뻔뻔스럽고 어리석고 무모하고 마음이 때 묻은 사람에게 인생은 살아가기 어렵다. 수치를 알고 청정한 마음을 추구하며 집착을 여의고 겸손한 사람에게 인생은 살아가기 쉽다. 법구경 244-245(불교) 말씀 선집 사랑에도 사랑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사랑의 법도가 있다는 말입니다. 시부모가 찾는데 “아, 엄마 아빠 좀 기다려요! 나 키스하니까 기다려요!” 그럴 수 있습니까? 미국식은 “예스”지요? 질서와 법도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남편이면 남편으로서 예의가 있고, 아내면 아내로서 예의가 있습니다. (112.65, 1981.03.29) 여러분이 “그 집안은 괜찮은 가문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 있다고 해도 그 집안의 자식들은 무엇이든지 조심해야 합니다. 즉, 훌륭한 가문에서 자라난 아들들은 무엇이든 조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 발자국을 옮기더라도 조심해야 하고,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조심해야 하고,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조심해야 합니다. 예법이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요즈음엔 자유가 지나치다 보니 방종적인 자유가 되어 이제는 포화 상태에까지 이르러 아주 심각하게 되었습니다. 요즈음의 젊은 사람들이 그런 예법을 좋아합니까? 그러니 그냥 그대로 두었다가는 다 망하는 것입니다. 갈 곳이 없다는 말입니다. 위험이 있는 집안에서는 자식을 교육할 수 있는 자료가 많이 있습니다. 어른을 대할 때, 형제를 대할 때, 부모를 대할 때 어떻게 하라고 자리는 아이들을 모아 놓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42.17-18, 1971.02.19) 엘비스 프레슬 리가 노래 한 번만 하면 전부 붙들고 달려드는 것이 남자입니까, 여자입니까? 아마 엘비스 프레슬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엘비스 프레슬 리가 “오늘 저녁에 나 좋아하는 여자들 와라” 하변 주~욱 줄지을 것입니다. 미국 여자들은 전부 남편 있어도 갈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노래를 하고 세계 챔피언이라는 사람이 선한 종류의 사람입니까, 악한 종류의 사람입니까? 사탄편입니다. 세계의 스타라는 그 남자나 여자나 전부 사탄편입니다. 그러면 요렇게 기름을 쪽 바르고 싹 빼 입고 미인이 되겠다는 것은 남자나 여자나 어느 편입니까? 사탄편입니다. (122.263, 1982.11.21)
순결 순결이란 성적 욕망을 억제하며, 혼전 성관계를 맺지 않고, 결혼 후에 오직 배우자와만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순결한 사랑의 최고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결혼제도가 필요하다. 수도승이나 수녀들의 금욕생활은 그들 소구가 선택한 삶이다. 그들은 하늘이 주신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은 욕구까지 희생할 것을 각오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서로 사랑하고 가정을 꾸리며 자식을 키워서 대대손손 번성하길 바라시며 인간을 창조하셨다. 이런 면에서 결혼생활에서 부부관계는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자 축복이고 한없는 기쁨의 체험이다. 그러나 타락 인간들은 자신의 성적 욕구가 결혼의 결합 속에 머물도록 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훈련이 필요하다. 종교들은 전통적으로 이 목적을 위해 봉사해 왔다. 간통죄가 죄 중에 가장 악한 죄라고 많은 종교에서 가르친다. 그리고 마음으로 육신의 욕망을 굴복시키고, 죄의 유혹을 피하기 위해 행동반경을 제한할 것을 가르친다. 또한 결혼을 신성한 의식으로서 바라본다. 그러나 오늘날 세속 사회에서 사람들은 욕망을 억제하는 훈련을 잊고 살고 있다. 난잡한 성행위와 “프리섹스”가 도처에서 이뤄지고 있고 즉각적 행복만을 추구하지 그로부터 초래되는 좌절과 상심, 가정의 붕괴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결혼이 위기에 처해 있다. 결혼의 영원성을 불신하는 많은 젊은이들은 결혼보다 동거를 택하고 있다. 정절을 지키는 결혼 본래의 기준은 잊혀지고, 동성애가 대안적 살의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문선명 선생은 매우 직접적으로, 열성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 말씀하신다. 인간 타락이 곧 불륜한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원리 말씀에 기초해 모든 죄와 범죄, 불행과 고통의 근원이 사랑을 잘못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가르치신다(제6장 참조). 타락은 인간으로 하여금 사랑의 가치를 저하시키게 했고, 사랑을 잘못 사용하게 했다. 그러므로 이렇게 잘못된 사랑을 마나님과 인간이 연결되는 지점으로서 본래의 하늘 목적지까지 고양시키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결혼한 부부의 사랑은 성스러운 행위이며 문선명 선생은 이것을 “절대성”이라 부르신다. 남편과 아내의 사랑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같은 절대성을 갖고 있다. 그에 적합하지 못한 것은 하늘과 점점 멀어질 뿐이다.
1. 가장 심각한 죄, 간음을 하지 말라 종교 경전
이들은 간음을 하지 않으며 이러한 죄를 행하지 않는 자이니라. 그러한 것의 벌은 부활의 날에 두 배로 받을 것이니라. 꾸란25.68-69(이슬람) 모두 혼인을 귀하게 여겨야 하고 잠자리를 더럽히지 말아야 압니다. 음란한 자와 간음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13.4(기독교) 서로 사랑에 빠지거나 또는 무력으로 친척이나 친구의 아내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천한 사람으로 알아야 합니다. 숫타 니파타 123(불교) 음행이나 모든 더러운 행위나 탐욕은 그 이름조차도 여러분의 입에 담비 마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성도에게 합당한 것입니다. 더러운 말이나 어리석은 말 또는 상스러운 농담은 여러분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감사에 찬 말을 하십시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두십시오. 음행하는 자나 행실=이 더러운 자는... 우상숭배자여서, 그리스도의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에서 상속받을 몫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헛된 말에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이런 일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순종하지 않는 자식들에게 내리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3-6(기독교) 간음을 가까이 하지 말라.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악한 길이나라. 꾸란 17.32(이슬람) 간통을 범한 자는 이 세상과 저 세상 모두에서 벌을 받는다. 이 세상에서는 그의 수명이 짧아지며, 저 세상에서는 지옥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비쉬누 푸라나 3.11(힌두교) 이렇듯이 그는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요셉의 손에 내맡겼다. 그리고 그가 있는 한, 자신이 먹는 음식을 빼놓고는 아무것에도 마음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요셉은 아주 깨끗하고 잘생긴 사나이여서 얼마쯤 시간이 흐르자 주인의 아내가 눈짓을 하며 자기 침실로 가자고 꾀는 것이었다. 그는 주인의 아내에게 그럴 수 없다고 사정했다. “보시다시피 주인께서는 제가 있는 한, 집안일에 통 마음을 쓰시지 않습니다. 당신께 있는 것을 모두 제 손에 맡겨주셨습니다. 이 집안에선 제가 그 분보다 실권이 더 있습니다. 마님만은 당신의 아내이기 때문에 범접할 수 없지만 그 밖의 일은 못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짓을 제가 어떻게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께 죄가 됩니다.” 상세기 39.6-9(기독교) 방종하여 남의 아내를 탐하는 자는 다음 네 가지 일과 만난다. 화를 불러들이고 편히 잠들 수 없으며 비난을 받고 지옥에 떨어진다. 화를 스스로 불러들이고 지옥에 떨어지고 두려운 가운데 늘 조마조마하고 왕도 엄중한 벌을 내린다. 그러니 남의 아내와 가까이 하지 말라. 법구경 309-310(불교)
네 우물의 물을 마셔라. 네 샘에서 솟는 물을 마셔라. 어찌하여 네 샘을 바깥으로 흘려보내고 그 물줄기를 거리로 흘려보내느냐? 그 물은 너 혼자 마셔라. 다른 사람과 함께 마시지 마라. 네 샘터가 복된 줄 알아라. 젊어서 맞은 아내에게서 즐거움을 찾아라. 사랑스러운 네 암노루, 귀여운 네 암사슴, 언제나 그 가슴에 파묻혀 늘 그의 사랑으로 만족하여라. 아들아, 어찌 탕녀에게 빠지며 유부녀를 끼고 자겠느냐?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발자국 하나하나 살피시니 사람의 일이 그의 눈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악인은 제 잘못에 걸리고 제 죄의 올무에 얽매인다. 그런 사람은 교훈을 받지 않아 죽게 되고 너무나 어리석어 망하게 된다. 잠언 5.15-23(기독교)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이 성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음행을 멀리해야 합니다. 각 사람은 자기 아내를 거룩함과 존중함으로 애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과 같이 색욕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3-5(기독교) 몸은 음행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있는 것이며...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알지 못 합니까? 그런데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떼어다가 창녀의 지체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창녀와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두 사람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영이 됩니다. 음행을 피하십시오. 사람이 짓는 다른 모든 죄는 자기 몸 밖에 있지만, 음행하는 사람은 자기 몸에다가 죄를 짓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아서 여러분 안에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스스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사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고린도전서 6.13-20(기독교)
말씀 선집
사랑을 농락하고 사랑을 유린하는 것은 우주의 범죄 중에 최고의 범죄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자기의 사랑이 유린당하게 될 때는 목을 잘라 버리고 싶은 것입니다. 목을 잘라 버리고 싶고 생명을 쳐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에 대하여 죄를 범하는 것은 이 우주의 모든 생명의 근원보다 더 큰 범죄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92.79, 1977.03.20) 인간 조상 아담과 해와를 비롯해서 인류 역사상 숱한 영웅이나 도인들이 넘지 못한 고개가 바로 이 순결한 사랑의 고비였습니다. 순결에 대해서는 가정은 물론 학교와 교회, 그리고 정부조차도 책임질 수 없는 것이 오늘의 문제점입니다. 순결을 지키는 최선의 방안으로 본인이 가르쳐온 것은 “절대 성”입니다. 이것은 한번 맺어진 사랑의 상대는 영원한 것이며 어떤 조건하에서도 변할 수 없는 절대적 사랑 관계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두 배우자의 만남은 영원하고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남자에게만 강조되는 것이 아니요, 여자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닙니다. 남녀 모두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천륜인 것입니다. 반면에 프리섹스야말로 이 지구성에서 완전히 근절시켜야 할 사악한 풍조입니다. 이 프리섹스와 관련된 요소들은 마약, 폭력, 동성애, 에이즈 등과 같이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가는 인자들일 뿐입니다. (288.283-284, 1997.11.30)
프리섹스는 모든 것을 열어버리는 행위입니다. 독사가 입을 벌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자의 생식기가 그런 것이고, 남자의 생식기가 뱀의 대가리입니다. 이것이 에이즈를 퍼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독사에 한번 물리면 이상세계는 끝나는 것입니다. 미국 여자들의 혀는 뱀의 혀와 같이 둘로 되어 있습니다. 양심을 중심삼고 어떻게 그것을 완전히 정복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을 가르치는 곳이 소위 종교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어떻게 몸을 정복할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술 마시지 말라, 담배 피우지 말라, 프리섹스를 하지 말라!” 고 하는 것입니다. (279.174, 1996.08.04)
어째서 한 남자, 한 여자여야 됩니까? 미국식으로 말하면 만나 가지고 하룻밤 쓱 지내고 굿바이하면 그것으로 끝나는데, 뭐 하나의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어디 있습니까? 한 남자가 여러 남자가 되고, 한 여자가 여러 여자들이 되고 말입니다. 그게 왜 틀렸습니까? 그게 왜 틀렸느냐 말입니다. 거기에는 참사랑이 결핍돼 있기 때문입니다. 참사랑이 뭐냐? 남자의 참사랑과 여자의 참사랑은 같습니다. 참사랑은 여기 있지만 이것은 남자의 사랑도 아니고 여자의 사랑도 아닌 하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에 대해서 “나만 사랑하지?” 하고, 또 여자는 남자에 대해서 “나만 사랑하지?”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사랑하느냐?” 고 물어 봅니다. 전부 다 물어보는 것입니다.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물어보고는 우주보다 더 크게, 제일 크게 사랑한다고 해야 “허허허허” 하는 겁니다. (118.291, 1982.06.20) 인간이 타락할 때 사랑 때문에 타락했기 때문에 이 성기가 제일ㄹ 무서운 것입니다. 종교에서는 간음하는 것을 제일 무서운 죄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프리섹스가 악마의 지옥 팽창주의입니다. 지옥입니다. 지상지옥이고 천상지옥입니다. 이건 전부 다 멸망하는 것입니다. (261.303-304, 1994.07.24) 사랑과 생명과 혈통은 남자 여자의 생식기에서 확정되는 것입니다. 거기가 하나님과 접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과 접하는 자리라는 것은 우리 인류의 근본부모가 찾아올 수 있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생식기가 사랑의 왕궁이고, 생명의 왕궁이고, 혈통의 왕궁, 양심의 왕국입니다. 출발지입니다. 그거 없으면 사랑도 못 찾고 생명도 못 찾는 것입니다. 그거 없으면 남자의 생명과 여자의 생명이 하나로 만날 길이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혈통이 거기서 생기는 것입니다. 양심도 거기를 통하지 않고는 자기 양심이 안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개인에게도 사랑이 있고 생명이 있고 혈통이 있고 양심이 있는데, 그게 어디서부터 나오느냐 하면, 부모의 그곳으로부터 나옵니다. 부모의 생식기를 통한 사랑과 연결된 것입니다. 그렇게 귀한 것입니다. 우주의 모든 이상적 전통의 핵이 그 문을 통해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말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생수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말입니다. 영원한 생수가 되기 위해서는 사랑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귀한 것이므로 귀한 물건, 보물들은 이 자연 가운데 드러나 있는 것이 아니라 숨겨져 있습니다. 금도 그렇잖습니까? 장석 같은 데 들어가 박혀 있습니다. 숨겨져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뒤집혔습니다. 여자가 그것을 자기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완성하는 데 있어서 남자의 사랑을 완성시키려면 여자의 그것이 아니고는 영원히 불가능합니다. 여자에게 사랑을 갖다 줄 수 있는 것은 남자의 그것이 아니고는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자기 것 중심삼고 영원히 못 이룹니다. 이게 바뀌어져야 합니다. 주인이 누구냐 하면 남자 것은 여자가 주인이고, 여자 것은 남자가 주인입니다. 주인이 엇갈려 있는 것입니다. (300.320-321, 1999.04.15)
2. 청소년의 혼전 금욕 종교 경전
젊은이가 어떻게 하면 깨끗한 길을 가오리이까? 당신께서 일러주신 말씀대로 살면 되오리이다. 시편 119.9(기독교) 그대는 젊음의 정욕을 피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는 사람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평화를 좇으십시오.
디모데후서 2.22(기독교) 그들은 그들의 순결을 지키노라. 결혼으로 맺어진 성교를 제외하고... 낙원을 상속하고 그곳에서 영원히 살리라.
꾸란 23.5-11(이슬람) 결혼자금을 얻지 못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풍성하게 될 때까지 정숙하라. ... 너희늬 영종이 정숙함을 원한다면 너희의 현세에서의 이익을 위해 그녀들에게 매춘을 강요하지 말라. 꾸란 24.33(이슬람) 누가 아내를 맞아 한자리에 들고는 싫어져서 “이 여자를 아내로 맞아 가까이 하고 보니 처녀가 아니다” 하고 누명을 씌워 고발했을 경우에 그 여자의 부모는 그 여자가 처녀였다는 증거를 가지고 성문께로 나가 그 성읍의 장로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여자의 아버지는 장로들에게 진술하여라. “나는 나의 딸을 이 사람에게 아내로 주었는데, 이 사람은 내 딸이 싫어졌다고 하여 이렇게 고발했습니다. 내 딸이 처녀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내 딸이 처녀였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딸의 자리옷을 그 성읍의 장로들 앞에 펴 보여라... 그러면 성읍의 장로들은 그를 잡아 때리고 이스라엘의 처녀에게 누명을 씌운 대가로 벌금 백 세겔을 여자의 아버지에게 물어주게 하여라. 그는 그 여자를 내보내지 못하고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 고발이 사린이어서 그 여자가 처녀였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으면, 그 여자를 아비의 집 문 앞에 끌어다 놓고 친정이 있는 성읍의 시민들이 돌로 쳐 죽일 것이다. 그는 제 아비의 집에 있을 때 몸을 더럽혀 이스라엘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짓을 저지른 것이다. 이런 부정한 짓을 너희 가운데서 송두리째 뿌리 뽑아야 한다. 신명기 22.13-21(기독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바람과 욕망 중에서 성욕보다 더 강한 것은 없다. 어떤 욕망도 성욕에 비교할 만한 것은 없다. 어떤 욕망도 성욕에 비교할 만한 것은 없다. 오직 일원에 의지하라. 만일 이원론을 받아들인다면 하늘 아래 그 누구도 도를 따르는 자가 될 수 없다.” 사십이장경 25(불교) 말씀선집
처녀들이 자라면 남자한테 눈이 갑니다. 그 남자에게 참사랑이 있습니까? 남자, 여자한테 참사랑이 있습니까? 남자를 믿을 수 있습니까? 여자를 믿을 수 있습니까? 여자들이 태어나기를 남자 때문에 태어났다는 것을 모르고 있고, 여자 때문에 태어났다고 하는 남자가 없습니다. 자기 때문에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는 뭘 하려는 것입니까? 종을 삼겠다고 하지, 위하겠다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위하지 않는 데는 사랑이 없습니다. 첫 사랑은 시작해 가지고 영원입니다. (297.145-146, 1998.11.19)
20대에 가까운 청소년으로서 더럽혀지지 않고 물들지 않은 거룩한 순정을 고이 꽁꽁 싸 가지고 어디에 갖다 놓을 것이냐? 하늘이 제일 기뻐할 수 있는 그 제단 앞에 놓고 하나님이 기뻐하고, 다음에는 자기와 같은 순정을 가진 그런 사나이와 혹은 아낙네가 만나서 하나님이 같이 묶어질 수 있는 거룩한 터전이 신랑 신부가 만나는 자리입니다. (64.85, 1972.10.24) 청춘시대에 순정을 잃어버렸던 아담 해와의 한을 밟고 탕감할 수 있는 귀한 때인 사춘기에 순정을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그 순정을 깨끗하고 귀하게 보존해 가지고 “천세 만세 혼자 가더라도 사랑이 유린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는 지조와 경의를 갖야 합니다. 민족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지 않고는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를 사랑하지 않고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가질 수 없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사랑하는 사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전통적인 사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난 후에 자기 아내를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37.108, 1970.12.22) 남자도 절개를 지켜야 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남자가 절개를 지키지 않고 잘못하게 되면 그 문중이 뜻 앞에 중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감님들이라고 해서 바람을 피워도 괜찮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남자가 잘못하면 그 문중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가 온다는 겁니다. 통일사상을 알게 되면 그럴 수 없습니다. (38.281, 1971.01.08) 선생님이 축복가정 아이들은 빨리 결혼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을 그래서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첫사랑! 그거 무슨 말인지 이해됩니까? 여러분들도 그런 뜻을 알고 첫사랑을 중심삼고 사춘기에 상대를 만났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첫사랑! 첫사랑! 그러한 첫사랑이 왜 필요하냐 하면, 순수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가 어머니 아버지를 좋아하듯이 충분히 그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수 있는 이상적인 부부가 돼서, 이상적인 아들딸을 두고, 이상적인 부모를 모신 그삼이 얼마나 행복하겠는지 생각해보십시오. (118.310, 1982.06.20)
3. 만지거나 보는 것도 금지되는가?
종교 경전
죽지 않으려거든 이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 창세기 3.3(기독교)
여인에게 선물을 주면서 구애하는 것, 그녀와 떠들며 장난치는 것, 그녀의 장신구나 옷을 만지는 것, 그녀와 더불어 침대에 앉는 것, 이 모두가 간통행위로 간주된다. 마누법전 8.357(힘두교)
“간음하지 말라” 하고 이른 것을, 너희가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사람은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마태복음 5.27-28(기독교)
음탕한 눈길은 눈의 간음이고, 음란한 말은 혀의 간음이라. (신체의)부분이 실행에 옮기든 옮기지 않던 마음은 원하고 갈망하도다. 무슬림 하디스(이슬람)
그대가 실제의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것은 진실이다. 그러나 그대가 다른 사람의 집에서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 그녀를 그대의 생각 속에서 떨쳐버리지 못했을 때, 그대는 마음속에서 그녀와 간통을 저지른 것이다. 한순간을 숙고하라. 그대가 성인 루난자(Lu Nan-tze)와 비슷한 위치에 있다면 그대는 성인(루난자)를 본받아 자신에 대한 충분한 통제를 가지고 있을 수 있는가? 그는 언젠가 여자 혼자 사는 집에서 밤을 보내야 했을 때, 그는 등불을 켜고 아침까지 흘로 책을 읽음으로써 그녀가 불공정한 혐의에 노출되는 것을 피하였다. 태상감응편, 부록(도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인들을 바라보지 않도록 조심하고 그들과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만일 너희가 부득이 그들과 대화해야 한다면, 다음과 같이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아라. ”나는 흙탕물의 세간에 사는 사문이다. 나는 진흙탕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아야 한다.“ 연로한 여인은 그대의 어머니처럼 대하라. 그대보다 나이 어린 여인은 누이동생처럼 대하라. 어린아이들은 그대의 자녀처럼 대하라. 그들을 구제할 생각을 내야하며 나쁜 생각으로 끝내지 마라. 사십이장경 29(불교)
말씀 선집
서양식은 하도 악수를 많이 하기 때문에 터치 감각이 없습니다. 그러나 동양식은 조금만 닿아도 “우-우” 합니다. 어떻습니까? 남자하고 여자하고 자주 접촉하는 게 좋습니까, 다 완성됐을 때 접촉하는 게 좋습니까? 전기는 100볼트에 접촉하는 게 좋습니까, 50볼트에 접촉하는 게 좋습니까? 100볼트입니다. 그때까지는 탁... 어떻습니까? 처녀 총각 때, “만나라” 입니까, “만나지 말라” 입니까? “만나지 말라”입니다. 이것이 100퍼센트 새빨갛게 익은 다음에, 손만 대도 찌르르 정신이 돌아가게끔 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미국 여자들은 첫사랑이 어떤 것인지 모릅니다. 50볼트와 30볼트는 등(燈)이 다릅니다. 미국식 사랑은 어떻습니까? 사탄이 방편적으로 전부 다 고차적인 사랑의 감촉세계를 자꾸 넘어다보는 것입니다. 사춘기의 남자에게는 신비의 왕궁이 여자입니다. 여자에게는 신비의 왕궁이 남자입니다. 지금 미스터리가 뭡니까? 동불과 마찬가지입니다. 고양이 사랑하는 것과 강아지가 사랑하는 것은 종적인 사랑이 없습니다. 그건 동물적인 사랑이지 종적인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종적인 사랑은 없다는 것입니다. (125.103-104, 1983.03.13)
종교를 믿는데 있어서 역사시대 어떠한 종교가 고행을 하는 이상의 고행을 하는 종교를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종교 생활은 뭐냐 하면, 양심이 고문하는 고문관이 돼 가지고“이놈의 몸뚱이야, 이놈의 몸뚱이야!” 하며 완전히 죽어 자빠질 때까지 고문을 해서 항복을 받고 다시는 깨어나지 않게끔 점령해 버릴 수 있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고문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눈이 한번 뒤집어져 가지고, 거꾸로 뒤집어져 가지고 바로 되어야 됩니다. 180도 다른 방향에서 전부 다 180도 전환해야 됩니다. 사탄 편은 왼편을 통해서 보려고 하는데 이게 다 뒤집어 가지고는 바른편을 통해서 볼 수 있게끔 돼 가지고 바로 돼야만 합니다. 그래서 180도 보이지 않는 눈이 양심의 눈과 하나 되어서 보일 수 있게 오른쪽의 360도의 본연의 자리에 돌아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 보는 눈은 마음의 눈이 돼 가지고 백 퍼센트 봐도 좋습니다. (261.303-304, 1994.07.24)
4. 동성애 : 프리섹스의 극단 종교 경전
여자와 자듯이 남자와 한자리에 들어도 안 된다. 그것은 망측한 짓이다. 레위기 18.22(불교) 보살은 다섯 가지 부류의 남자답지 못한 사람들과 가깝게 어울리지 않는다. 법화경 14(불교) 롯이 그의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너의 이전의 어떤 사람들보다도 음란 하노라. 남자를 가까이 하고 있지 않느냐? 꾸란 29.28-29(이슬람)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부끄러운 정욕 속에 내버려두셨습니다. 여자들은 남자와의 바른 관계를 바르지 못한 관계로 바꾸고, 또한 남자들도 이와 같이, 여자와의 바른 관계를 버리고 서로 욕정에 불탔으며,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잘못에 마땅한 대가를 스스로 받았습니다. 로마서 1.26-27(기독교)
말씀 선집
프리섹스라든가 호모 섹스라든가 레즈비언 운동이든가 이런 모든 것이 인간 관리, 인간 권위를 존중시하는 문제를 파탄시키는 하나의 행동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128.35, 1983.06.01) 사탄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프리섹스입니다. 하나님은 반대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성(性)”을 원합니다. 천사장은 상대가 없습니다. 그래서 호모, 레즈비언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는 절대 파트너십입니다. 완전히 반대되는 현상이 끝 날에 벌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그런 세계가 미국을 중심삼고 벌어지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프리섹스를 주동한 게 아담과 해와입니다. 에덴에 심었던 것을 지금 추수하는 때가 된 것입니다. 프리섹스의 씨를 심은 그것을 추수하는 끝 날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전세계가 프리섹스의 세계가 딘 것입니다. 가정이 깨졌습니다. 끝 날에는 사탄적인 결과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프리섹스가 충만한 세계가 되었습니다. 파트너십이 없으니까 “남자들끼리 결혼하자!” 그런 것입니다. (282.27, 1997.02.16) 천국 들어가는 절대 필요조건이 바로 “위하는 삶”, 즉 참사랑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 세계를 보십시오. 극도의 이기주의 덫에 걸려 물질만능을 외치며 가치관을 상실한 채 향락과 부패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가 우글거리고, 마약이나 프리섹스도 모자라 이제는 근친상간이라는 짐승보다 못한 만행들을 자행하고도 버젓이 고개를 들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왕 격의 여자, 할머니 격의 여자, 어머니 격의 여자, 아내 격의 여자, 딸 격의 여자, 이렇게 모든 단계의 여자들을 유린하고도 세상을 활보하는 인면수심의 작자들이 범람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부부들끼리 남편과 아내를 서로 바꾸어 가며 즐기는 스와핑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작태야말로 인륜도덕 파괴의 극치이며 타락행위의 단말마적 모습임에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세계 완성은 꿈도 꿀 수 없는 지상지옥이 되고 말았습니다. (평화신경, 평화메시지 3.61, 2006.04.10) 호모섹스가 원리에 있습니까? 레즈비언, 알코올중독 이런 것이 전부 정서적인 탈선입니다. 이런 세계가 지옥입니다. 우린 이것과는 반대, 180도 반대입니다. (243.192, 1993.01.10) 여기 미국에 동성연애 하다가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아직까지 그런 모든 인연이 끝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냥 그대로 지옥 가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냥 지옥 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감명을 받으면 그것이 다 도망가는 것입니다. 중생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던 것도 마음이 안된다고 하게 되면 그만입니다. 다 그렇게 되어야 됩니다. 그렇게 안 된 입장에 있다면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면서 그걸 회개하고 기도해야 됩니다. (219.233, 1991.09.08)
금주와 절제 술과 마약, 도박은 환각적 오락으로 보이지만 이것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늪에 빠뜨린다. 또한 인간을 진리의 빛에 눈멀게 하고 양심의 소리에 귀먹게 한다. 중독까지 이어지면 몸을 망가뜨리고 가정을 파괴하고 직업에 영향을 끼치며 심지어 범죄행위로 이어지는 반사회적 행위를 초래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무의미한 성관계를 잦기 위한 전조로서 금기를 무너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술과 마약을 이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담배도 같은 효과를 갖고 있다. 담배는 젊은이들이 보다 강한 마약에 접하게 하는 데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중독을 일종의 병으로 보는 현대의학과는 달리 세계 종들은 인간개개인이 술과 마약, 도박으로부터 자신을 절제하고 멀리하는 삶을 영위할 책임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문선명 선생은 자기 삶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사랑이 결핍된 자들이 담배와 마약, 술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신다. 그러나 이것들은 좋은 대안이 아니다. 술과 마약에 대한 해결책은 참사랑이다. 환작적 일시적 흥분은 참사랑의 깊은 정서적 만족감에 유비할 때 초라하기 그지없다.
종교 경전
오, 믿는 자들이여! 술과 도박은... 사탄의 소행이니라. 그러므로 이것을 피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번성하리라. 사탄은 술과 도박으로 너의 사이에 적의와 미움을 갖게 해서 너희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예배를 지키려는 것을 방해하고 있노라. 그러니 너희가 그만둘 수 있겠느냐? 꾸란 5.90-91(이슬람)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방탕이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에베소서 5.18(기독교) 아편에 빠진 자에게 아편만한 것이 없고, 물고기에게 물만한 것이 없으나, 신의 사랑에 빠진 자는 만유를 사랑한다. 아디 그란트, 와단스, M.1, p.557(시크교) 여러분은 지난날에 이방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였으니, 곧 방탕과 정욕과 술취함과 환락과 연회와 무분별한 우상숭배에 빠져서 살았습니다. 그것은 지나간 때로 충분합니다. 그들은 여러분이 자기들과 같이 지나친 방종에 빠지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기면서 여러분을 비방합니다. 그들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심판하실 분에게 사실을 다 아뢰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3-5(기독교) 엄숙하고 성스러운 사람은 술을 마셔도 온순함으로 이겨내거늘, 저 멍청하여 지혜가 없는 자들은 언제나 취하여 날로 교만해지네. 모두가 자기 행동을 삼가야 할지니 하늘의 명은 또다시 오지 않으니라. 시경 196(유교) 아, 너희가 비참하게 되리라, 새벽부터 독한 술을 찾아 나서고 밤늦게까지 술독에 빠져 있는 자들아! 수금과 거문고, 소구와 피리 소리 들으며 술이나 마시고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에는 관심도 없으며 그가 손수 이루시는 일은 아랑곳도 하지 않는 자들아! 이사야 5.11-12(기독교) 재물을 잃게 하는 여섯 가지 문이란 어떤 것인가? 술에 탐닉하는 것, 아무 일도 없이 때 아닌 때에 거리를 배회하는 것, 끊임없이 구경거리를 찾아다니는 것, 도박에 빠지는 것, 악한 친구와 사귀는 것, 게으른 습관이 그것이다... 도박과 여자, 음주, 가무, 낮에 자고 때 아닌 때에 배회하는 것, 사악한 친구와의 교제, 가슴이 메마른 것, 이 여섯 가지는 사람을 파멸로 이끈다. 도박과 음주에 빠지고, 다른 남자들에게 생명처럼 귀중한 여인들을 범하며, 덕 있는 자들이 아니라 어리석은 자들을 따르면, 그는 이지러지는 시기의 달처럼 기운다. 술에 탐닉하는 자는 항상 가난하고 궁핍하다. 술을 마시는 중에도 갈증을 느끼며, 술집을 찾아 돌아다니면, 물에 던져진 돌처럼 빚더미 속에 가라앉으며, 금방 자신 가문의 명성에 먹칠을 하게 된다. 나에 자는 버릇이 있고 밤을 마치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시간처럼 여기며 항상 술에 취해 사는 자는 가장의 지위룰 지닐 자격이 없다. 디가 니카야 3.182-185, 시갈로와다 수트라(불교)
재난을 맞을 사람이 누구냐? 근심하게 될 사람이 누구냐? 다투게 될 사람이 누구냐? 속상해할 사람이 누구냐? 애매하게 상처 입을 사람이 누구냐? 눈이 충혈된 사람이 누구냐? 술자리를 뜰 줄 모르고 혼합주만 찾아다니는 사람들이다. 전에 따른 술 빛깔이 아무리 빨갛고 고와도 거들떠보지 마라, 결국은 뱀처럼 물고 살무사처럼 쏠 것이다. 눈에는 이상한 것이 보이고 입에는 허튼소리를 담게 된다. 바다 한가운데 누운 것 같고 돛대 꼭대기에 누운 것 같아, “아무리 때려보아라. 아프지도 않다. 아무리 맞아도 아무렇지 않구나. 술이 깨면 또 마셔야지” 하고 말한다. 잠언 23.29-35(기독교) 랍비 이삭이 잠언 23장 31절을 인용해 말했다, “포도주는 세상의 사악한 붉은 얼굴을 띠고 있다. 그러나 주님 오실 그때에는 그 색이 희미해질 것이다.” 랍비 메이르가 말했다. “아담이 따먹은 나무는 포도나무였다, 그리하여 포도주는 인간에게 통탄함을 가져다준다.” 탈무드, 산헤드린 70ab(유대교) 도박꾼이 말하여; 바람 부는 키 큰 나무 위에서 흔들거리던 이 견과들, 지금 주사위 판 위에서 날쌔게 구르나니 나는 즐거워라. 산마루에서 한 모금의 소마만큼이나 나를 유혹하나니, 아슬아슬한 주사위는 내 가슴을 졸이네. 정숙한 아내는 나를 나무라지 않고 화내지 않나니, 나에게나 친구들에게나 그녀는 상냥했어라. 저주받은 주사위 놀음에 정숙한 그녀를 쫓아버렸네. 합창하여; 장모는 그를 질색으로 싫어하고 아내는 소원해하나니, 도움을 구하여도 그를 동정하는 이가 없어라. 저 가련한 도박꾼, 장터에서 팔리는 늙은 말만 못하도다. 주사위놀음에 미친 자는 돈과 재산을 날렸고 다른 이들은 그의 아내를 품는구나.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 모두가 말하기를 “우리는 그를 모르니 그를 묶어 감옥으로 끌고 가라.” 도박꾼이 말하여; 나는 도박을 그만두려 하나니 친구들은 떠나고 나만 뒤에 남겨졌도다. 그러나 갈색 견과들이 달그락거리며 던져지기가 무섭게 나는 그곳으로 직행하노라. 마치 사랑에 붙잡힌 여인처럼, 합창하여; 도박꾼은 도박장으로 서둘러 발리며 기대와 떨림으로 묻나니 내가 이길 수 있을까? 던져진 주사위는 그의 기대를 묵살하며 저 편에 최고점을 주는구나. 나를 믿어라. 갈고리 달린 주사위는 걸려 넘어지게 하고 구르며 다치게 하낟. 도박꾼에게 주사위는 아이들의 달콤한 선물과 같나니 주는 척 앗아가며 지는 척 되받아치는구나... 버림받은 노름꾼의 아내는 비탄에 잠기고, 그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닐 제 어머니도 슬픔에 잠겼어라. 빚을 지고 근심에 싸이니 늘 돈을 탐하여 한밤에 그는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누나. 단란한 가정의 여인네와 비교하여 자기 아내의 처지를 생각하고 그는 후회에 사로잡히는구나. 그러나 아침이면 갈색의 군마에 멍에를 jdsw고 저녁에는 사그라진 잿불 앞에 쓰러져 정신을 잃누나. 리그 베다 10.34(힌두교)
말씀 선집
양심이 반대하는 것은 나쁜 일입니다. 그러니 사회가 규제하는 것입니다. 술을 먹지 말고, 방탕하지 말고, 도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게 근본을 파탄시키는 놀음입니다. 사랑 문제는 가정을 파탄시키고, 도박은 사회를 파탄시킨다는 것입니다. (320.135, 2000,04,01) 사탄은 어떤 무기를 이용했느냐? 공기 무기를 이용했습니다. 그게 담배입니다. 그 다음에 액체 무기는 술입니다. 그 다음에 고체 무기는 무엇입니까? 마약입니다. 이 무기들을 가지고 정신까지 다 썩혀 놓는 것입니다. 몸뚱이 썩히고, 정신 썩히고, 콧구멍으로 폐를 다 썩혀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술을 안 먹는 것입니다. 담배를 안 피우는 것입니다.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한 사탄의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신과 통할 수 있는 정신을 방해하는 요소인 이 세 가지는 원수의 최고의 무기입니다. (126.71, 1983.04.10) 사탄은 무엇을 가지고 유혹하느냐? 담배입니다. 여자가 남자한테 담배를 빌려 달라고 해서 좋다고 해 가지고 프리섹스가 개재됩니다. 섹스의 개녑이 개재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동양에서는 남자들이 담배를 피우지 여자들은 담배 피워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쁜 여자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피울 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여자가 남자한테 담배를 빌려 달라고 하는 것은 “섹스하자!” 하는 의미입니다. 그런 조건물입니다. 미끼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술을 같이 마시자고 하는 것도 섹스하자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약도 같은 것입니다. 술 취한 다음에는 남자가 여자를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를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남자도 여자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취해서 뭘 합니까? 프리섹스 하는 것입니다. 마약도 그렇습니다.
(287.118-119, 1997.09.19) 자식을 위해야 할 부모인데도 불구하고 그 부모의 입장을 망각하고 술을 마시고 자기를 중심삼고 취하게 된다면 그것은 악에 속합니다. 사탄에게 속합니다. 그래, 술을 먹는 사람은 그 자신이 행복한가, 불행한가? 불행합니다. 좋은가, 나쁜가? 나쁩니다. 그 먹는 자체는 행복한 거지요? 술을 먹으면 춤도 추고 좋아하잖아요? 그것은 영원을 지탱시키지 못합니다. 며칠 가다가 맙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환경적 여건에 파탄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환경적 여건이 보모를 못 받고 그것이 영원히 계속되기 때문에 악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124.244, 1983.02.20) 동양에 주색잡기(酒色雜技)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게 뭐냐 하면, 술과 여자와 도박입니다. 세계의 범죄사건은 다 여기에 연유합니다. 그 배후에 술이, 그 다음엔 여자관계가, 그 다음엔 도박이 관계되어서 벌어집니다. 큰 사건에서 여자하고 술이 배제된 경우가 있습니까? 그 다음에는 마약입니다. 마약은 술보다 더 강한 것입니다. 취하게 됩니다. 취하는 것입니다. 마약을 하게 되면 여자관계가 벌어지기 마련합니다. 남녀관계가 전부 다 파괴됩니다. 도박장에 가게 되면 천년 역사를 한꺼번에 대 가지고 들이박는 것입니다. (230.115-116, 1992.04.26) 중국 사람들은 도박을 해서 돈이 떨어지면 자기 재산을 내놓고 여편네를 내놓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게 되면 죽습니다. 종하고 도박을 했더라도 그 종하고 약속한 판돈을 물어야 하기 때문에 자기는 죽습니다. 죽으면 그의 재산도 종이 갖고, 여편네도 그 종이 데리고 삽니다. 도박은 그만큼 무섭다는 것입니다. (124.157-158, 1983.02.06)
여러분의 집에 참사랑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대답에 자신감이 없습니다. “예” 하는 그 손에 연기를 피우던 담배의 노랑물이 들고 그 술 찌꺼기 냄새가 납니다. 참사랑이 있다면 향기가 나야 합니다.(215.244, 1991.02.20) 타락은 가정에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복귀도 가정에서부터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라고 하지요? 탕감복귀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계에 사는 가정은 전부 다 사탄의 가정입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뜻과는 전부 반대로 해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가정을 보면 할아버지 할머니도 원수고, 어머니 아버지도 원수입니다. 전부 다 원수로 만들어 가지고 가정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남편 아내, 아들딸이 전부 다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프리섹스가 난무한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정서적인 감각을 찾아가려 하니까 환각제나 아편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먹으면 환각세계에서 자극이 계속되니까 자연히 아편이나 마약으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알코올 같은 것을 먹는 것도 전부 다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243.251, 1993.01.17) 남자든 여자든 사랑의 힘을 가지게 되면 모든 세포가 집약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극은 최고의 총합적인 자극인 것입니다. 그때서야 몸과 마음이, 부체와 주체가 완전히 주고받는 것입니다. 이 작용이 보통 때는 그저 순리 법도대로 작용하지만 사랑하면 다릅니다. 보통 때는 자연적인 작용을 하지만, 사랑의 힘을 가지게 되면 백 퍼센트 폭발적인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 충격적인 자극에 취해 버립니다. 그래서 사랑이 좋다는 것입니다. 술 먹는 것보다도 아편 주사 맞는 것보다도 어떤 무엇보다도 자극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랑이 제일이라는 것입니다.
(117.76, 1982.02.01) 하나님의 참사랑이 참부모로부터 시작합니다. 이것을 완전히 따 버리려니까 뿌리가 없습니다. 뿌리가 없고 가지에 붙어 있지 않고 가을에 떨어진 열매와 같이 전부 다 굴러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꺼번에 다 쓸어버리는 것입니다. 갈 데가 없습니다. 미국도 갈 데가 없고 영국 같은 선진국도 갈ㄹ 데가 없습니다. 일본도 갈 데 없고 독일도 갈 데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계에 갈 데가 없습니다. 종적인 참사랑을 잃어버리고 이것을 횡적으로 찾으려고 모든 가정을 건드리고 나라를 건드리고 마침내는 프리섹스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사랑에는 감정이 있어서 고차원적인 우주와 통할 수 있는 안테나가 있는데, 그것이 다 없어졌으니 그것을 보충하려고 마약을 먹고 프리섹스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가지고는 보충이 안 됩니다. 하면 할수록 더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프리섹스를 하면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감정이 전부 다 사랑에 도취하던 그 경지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 그 순간을 갖기 원하기 때문에 전부 환각, 마약의 세계로 화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마약의 세계에서는 상상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약의 힘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그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약효가 떨어져버리면 그 감정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마약이 문제가 아닙니다. 마약 자체도 참사랑을 위해서 있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고차원적입니까? 천지에 “우~아” 하고 전기가 통하게 되면, 큰 라디오의 스피커 장치가 “우우” 하는 것처럼 줄만 닿으면 무주가 울리는 것입니다. “와아” 하고 울린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의 힘이 얼마나 큰지 사람 같은 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전부 다 녹아나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말하게 된다면, 우주가 춤을 춘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춤을 춘다는 것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트위스트 춤 같은 것은 비교도 안 됩니다. 거꾸로 날고 다 한다는 것입니다. (247.126-127, 1993.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