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세계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5장 죽음 이후의 삶과 영계)

훈독왕 | 20180406113341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5장 죽음 이후의 삶과 영계


희망의 세계 

이 세계와 저 세계 사이에 꿈의 세계가 있다. 모든 꿈이 영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 중 몇몇은 분명히 영적이며, 영적인 꿈들은 흔히 매우 생생하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와 같은 영적 꿈을 꾸는 동안에 영혼은 잠시 육신을 떠나서 영계로 올라가며 거기서 여러 가지 현상을 경험한다. 이들 가운데 어떤 것은 하나님과 관련되며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받는다. 

그 외의 꿈들도 있는데, 저급한 영혼 또는 악령들과 조우하는 꿈이나 악몽에 시달리거나 성적인 꿈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 구절들은 꿈을 꾸는 영적인 과정들을 설명하며, 어떤 꿈이 하나님으로부터의 계시인가를 구별하는 방법에 대한 가르침들이다. 기독교 성서에서 하나님이 야곱과 요셉에게 했던 것처럼, 하나님은 꿈을 통해 인생의 전환을 가져오는 정보와 지침을 계시할 수 있다. 따라서 의미심장한 꿈들에 관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종교적인 삶에서 중요한 훈련 중 하나이다.

종교경전


야곱은…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을 향해 가다가 한 곳에 이르러 밤을 지내게 되었다. 해는 이미 서산으로 넘어간 뒤였다. 그는 그곳에서 돌을 하나 주워 베게 삼고 그 자리에 누워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그는 꿈에 땅에서 하늘에 닿는 층계가 있고 그 충계를 하나님의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옆에 나타나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여호와, 네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네 아버지 이사악의 하나님이다. 나는 네가 지금 누워 있는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주다가 기어이 이리로 다시 데려오리라.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어 줄 때까지 나는 네 곁을 떠나지 않으리라.” 야곱은 잠에서 깨어나 “참말 여호와께서 여기 계셨는데도 내가 모르고 있었구나” 하였다. 
창세기 28.10-16(기독교)

사람이 잠자리에 들면, 영혼을 그를 떠나 저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육신에는 심장소리 담을 그릇 정도의 흔적만 남겨 놓는다. 나머지는 점점 위로 올라가려 한다. 올라가는 동안에 밝지만 불투명한 어떤 실체에 부딪힌다. 순수하며 낮 동안 더렵혀지지 않은 영혼은, 그것을 뛰어넘어 올라간다. 그렇지 못한 영혼은 그 실체 사이로 들어가 때를 묻혀 동화되고 더 이상 오르지 못한다. 그안에서 그 실체는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을 보여준다. 때로는 거짓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것은 잠에서 깰 때까지 밤새 계속된다.

하나님이 꿈속에 나타나 당신의 비밀을 보여주는 의인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리하여 죄를 범할 수 없게 된다! 자기 육신과 영혼을 더럽히는 불쌍한 죄인들이여! 낮 동안 더럽히지 않은 이는 밤에 잘 때 영혼이 승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같은 단계로 들어간다. 하지만 그들은 그 불확실한 실체에 동화되지 않고 더 위로 올라간다. 그러므로 이 택함 받은 영혼들은 마침내 하늘 왕궁 문 앞에 도달하고, 왕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의 성지에 들어갈 것을 열망한다.…이사야서 26절 9절에 “나의 영혼이 밤에 주님을 사모합니다.”라고 적혀 있는 것과 같다. 그릇된 힘에 유혹받지 않고 주님을 따르겠다는 말이다. 

조하르 1.83a(유대교)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의 영혼과 죽지 않고 잠을 자는 영혼을 거두어두시니라. 죽음이 정해진 영혼은 거두어 두시지만 그 밖의 영혼은 정해진 시각까지 보내어 주신다. 이것은 진실로 회개하는 자들에게 대한 징표이니라. 

꾸란 39.42(이슬람)

우리가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 황금빛으로 스스로 빛나는 존재, 내면의 자아는 몸이 잠들게 한다. 그러나 그 자신은 영원히 깨어 있으며 자신의 빛으로 마음에 남겨진 잠재인상들을 자신의 빛으로 지켜보고 있다. 그 후 감관들의 의식과 그 자신이 다시 결합함으로써 자아는 몸이 깨어나게 한다.
우리가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 황금빛으로 스스로 빛나는 존재,내면의 자아, 불멸의 일자는 생기의 도움으로 몸집을 살아 있게 하지만, 또한 동시에 그는 이 몸집 바깥으로 걸어 나간다. 이 영원한 일자는 원하는 어느 곳이든 간다. 

스스로 빛나는 일자는 꿈의 세계에서 높고 낮은 온갖 형태를 띤다. 그는 사랑의 유희를 즐기고 있는 것 같은가 하면, 친구들과 웃고 있으며,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고 있는 듯도 하다. 누구나 경험들을 알고 있지만 경험하는 자를 아는 자는 아무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꿈이란 깨어 있는 또 다른 하나의 형태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 각성상태에서 하는 경험들이 꿈속에서 다시 경험되기 때문이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실로 자아는 꿈속에서 그 자신의 빛에 의해 빛난다. 

꿈속에서 감각의 즐거움을 겪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선과 악을 경험한 자아는 그가 출발했던 각성상태로 서둘러서 돌아옵니다.
브리하드아란야카 우파니샤드 4.3.11-16(힌두교)

언제인가 장주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다. 그는 나비가 되어 펄펄 날아다니면서 유쾌하게 즐겼다.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이 장주임을 알지 못하였다. 갑자기 꿈을 깨니 틀림없는 장주였다. 그러나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되어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장주와 나비에는 반드시 구별이 있다. 이러한 것을 ‘물화(物化)’라 부른다.
장자2(도교)

너희 가운데 예언자가 있다면 나는 그에게 환상으로 내뜻을 알리고 꿈으로 말해 줄 것이다. 

민수기 12.6(기독교)

하나님의 사도가 말했다. “믿음을 가진 자의 환시는 예언의 46번째 부분이며, 예언에 속해 있는 것은 틀리지 않는다.” 그는 환시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내부에서 나오는 생각, 악에서 기인한 무서운 꿈, 하나님에게서 오는 좋은 소식이 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싫어하는 어떤 것을 보게 되면 그는 그것을 누군가에게 말하지 말고 일어나 기도해야 한다.  

무카리 및 무슬림 하디스(이슬람)

환시는 해석되지 않는 한 인간을 두근거리게 한다. 그러나 해석되면 그것은 가라앉는다. 오직 그것을 사랑하는 이나 판단을 할 수 있는 이에게만 말하라.  

아부 다우드 하디스(이슬람)

파라오는 요셉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꿈을 하나 꾸었는데 아무도 풀 사람이 없다. 그러던 중에, 너는 꿈 이야기를 듣기만 하면 푼다는 말을 내가 들었다”. 요셉이 파라오에게 대답하였다. “저에게 무슨 그런 힘이 있겠습니까? 폐하께 복된 말씀을 일러주실 이는 하나님뿐이십니다.”
파라오는 요셉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였다. “나는 꿈에 나일강 가에 서 있었다. 난데없이 살이 찌고 잘생긴 암소 일곱 마리가 강에서 나와 갈대풀을 뜯는 것이었다. 이어 암소 일곱 마리가 뒤 따라 나왔는데 나는 이집트 온 땅에서 그렇게도 볼품없고 여윈 소는 처음 보았다. 그런데 여위고 볼품없는 그 소들이 먼저 나온 살진 일곱 마리 소를 잡아먹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잡아먹고도 여전히  볼품없어서 그것들이 다른 소를 잡아 먹었으려니 짐작할 수도 없었다. 그때 마침 나는 깨어났다가, 다시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는 줄기 하나에서 이삭 일곱이 돋아나 토실토실 여물어갔다. 그러나 곧 뒤어어 돋아난 일곱 이삭은 샛바람에 말라 여물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마른 이삭이 잘 여문 일곱 이삭을 삼켜 버렸다. 내가 이 이야기를 마술사들에게 했으나 그 뜻을 일러주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폐하의 꿈은 결국 같은 내용입니다.” 하고 요셉이 파라오에게 말하였다. “앞으로 될 일을 하나님께서 폐하께 미리 알려주신 것입니다. 잘생긴 암소 일곱마리는 일곱 해를 말합니다. 잘 여문 이삭 일곱도 일곱 해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 꿈은 결국 같은 내용입니다. 뒤따라 나타난 마르고 볼품없는 일곱 암소나 샛바람에 말라비틀어진 일곱 이삭도 일곱 해를 말합니다. 이것은 흉년이 일곱해 계속 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폐하께 이미 말씀드린 것같이 폐하께서 하실 일을 하나님께서 미리 보여 주신 것입니다. 앞으로 일곱 해 동안 이집트 온땅에는 대풍이 들겠습니다. 그러나 곧 뒤이어 흉년이일곱 해 계속 될 것입니다. 

이집트 땅에서 언제 배불리 먹은 일이 있었냐는 듯이 옛일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런 흉년으로 나라는 끝장이 납니다. 이렇듯이 뒤따라오는 흉년은 하도 심해서 배부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조차 아는 사람이 없게 될 것입니다. 폐하께서 같은 꿈을 두 번씩이나 꾸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어김없이 하시기로 정하셨고 또 지체 없이 그대로 하시리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창세기 41.15-32(기독교)

말씀선집


영계에서 가르쳐 줄 때는 꿈 가운데서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꿈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비몽사몽간에, 계시 가운데, 묵시로, 그리고 영계에 들어가서 전부 가르쳐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꿈 가운데 맞는 꿈이 있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됩니까? 우리 인간은 타락함으로 사탄의 혈통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움직이게 될 때는 이 악한 피가 동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리관 같은 데 넣어둔 흙탕물과 같습니다. 잠을 자면 육신이 쉬기 때문에 무거운 것은 가라앉고 맑은 물이 뜨는 것과 같습니다. 본래의 맑은 마음은 하늘과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 상징적이라든가 형상적으로 앞으로 갈 수 있는 것을 꿈 가운데 하늘이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꿈이 개꿈인지, 사탄이 가르쳐 주는지, 하나님이 가르쳐 주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압니까? 사탄이 가르쳐 주는 것은 꿈의 방향성이 없습니다. 흘러가는 것입니다. 얼른 잊어버립니다. 그렇지만 하늘이 가르쳐주는 것은 체계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전번 꿈과 다음 번 꿈이 연관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의 몽시 가운데서 연관성이 있을 때는 하늘의 계시인 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왜 안 잊혀지느냐 하면 본래 하늘과 인간은 영원히 하나 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하나 되게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 되어 있는 것은 잊을 수 없습니다. 사탄과의 관계는 얼른 잊어버립니다. 

이렇게 영계의 지도를 받는 사람들은 전부 그런 사실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악한 자리에 갈래야 갈 수 없습니다. 사탄세계에 가더라도 그것이 나타나고, 그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심리학자와 같은 사람들이 꿈에 대해서 말하기를 ‘잠재의식의 재현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얼른 잊어버립니다. 그리나 생각지 않는데 잊혀지지 않는 꿈은 영적인 현상입니다. (91.272-275,1977.02.27)

체휼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도해야 되고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거기서 나타나는 계시나 몽시를 절대 무시하지 마십시오. 그것을 조정해서 현실적 생활권 내에, 실천무대에 어떻게 적용시키느냐 하는 것이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76.153, 1975.02.02)

암시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내가 길을 무심코 가는데 어떤 집 담벽에 앉아 있던 새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을 때, 새는 날아갔지만 퍼뜩 새가 날아가는 그 자체를 통해서 암암리에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단계를 지나가게 되면 몽시 같은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꿈 가운데 일어나는 일인데 꿈도 깊은 잠 가운데서의 꿈이 아닙니다. 바울도 비몽사몽간에 3층천을 체험했습니다. 그런 것을 무심코 흘려보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종합해 어떤 방향의 인연을 나에게 연결시키기 위해 나타나는가 하는 것을 과학적인 면에서 분석해내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잊을 수 없는 몽시 같은 것은 100퍼센트 적중하게 됩니다. 그런 체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단계가 높아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계시라든가 지시라든가 이런 것이 벌어집니다. 계시라는 것을 우리가 분석해야 됩니다. 지시라는 것은 직접 가르쳐주는 것이지만, 계시는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해석을 해야 됩니다. 

무엇을 가르쳐 주는데는 음성으로 들려주기도 하지만 환상으로도 보여 줍니다. 좋은 봄날을 맞이하여 사슴 한 쌍이 시냇가에서 물을 마시면서 먼 산을 바라보는 이러한 환상은 지극히 행복스러운 소망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현상이 벌어집니다. 그런 것이 우연한 사실이 아닙니다. 내 마음의 밭을 개발하기 위한 하늘의 역사입니다. 

계시의 단계를 지나게 되면 묵시 단계입니다. 하루 종일 영계에 들어가서 체험을 한다든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까지 연결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생활적인 감정권까지 도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체율적인 신앙을 안 가지고는 위대한 하늘 뜻의 결과 세계를 우리의 생활무대에 적용할 수 없습니다. 체율적인 신앙을 안 가지고는 위대한 하늘 뜻의 결과 세계를 우리의 생활무대에 적용할 수 없습니다. 체휼적인 신앙이 고귀하기 때문에 계발해 나가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런 체휼 단계에 들어가면 여러분의 마음이 명령합니다. 누구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말을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혹은 내가 좋은 말로 그 사람을 위해서 말해야 할 텐데 책망의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집니다.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가끔 벌어집니다.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가끔 벌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조정할 줄 알아야 됩니다. 잘못하다가는 미치광이로 취급받기 쉽기 때문에 그것을 조정할 줄 모르면 안 됩니다. (76.130-135, 1975.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