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을 위한 준비 3, 4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5장 죽음 이후의 삶과 영계)

훈독왕 | 20200329101741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5장 죽음 이후의 삶과 영계


영생을 위한 준비


3. 지상생활 방식대로 사는 천상생활

종교경전 

계로가 귀신 섬기는 일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 “감히 또 묻겠습니다. 죽음은 어떤 것입니까?” “삶도 아직 모르는데 어찌 죽음에 대해 알겠느냐? ” 라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논어 11-11 (유교)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태복음 18.18(기독교)

사람은 스스로 이 세상에서 지은 업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자신을 만들어 간다. 그가 이생을 떠날 때 바로 그와 같이 되리라. 
샹카라, 베단타 수트라 1.2.1(힌두교)

고행을 행하며, 청정계율을 닦아 구족하는 자는 이승에서나 저승에서 모두 훌륭한 과보를 얻으리니, 살아서는 영예를 얻고 죽어서는 또한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누린다.
그러나 죄악을 탐닉하는 자의 삶이나 죽음은 모두 악한 과보를 얻나니, 살아서는 원한을 쌓고 죽어서는 어둠 속에 내던져진다. 
다르마다사가닌, 우파데사말라 443-444(자이나교)

약한 짓을 일삼는 자는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도 근심한다. 스스로 지은 더러운 행업을 보고 그는 슬퍼하고 괴로워한다. 
선한 일을 즐거워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도 기뻐한다. 스스로 행한 청정행을 보고 그는 기뻐하고 또 기뻐한다. 
못된 짓을 즐거워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도 고통당한다. “내가 못된 짓을 저질렀구나” 하고 뉘우치며 괴로워하고 지옥에 떨어져 거듭 괴로워한다. 
선한 일을 즐거워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도 행복하다. “선한 일을 했구나”라고 여기며 기뻐하고 좋은 세상에 태어나 거듭 행복하다. 
법구경 15-18(불교)

하나님은 지상에서 해악을 구하지 않고 타락하지 않은 자를 위해 내세의 안식처를 마련하셨도다. 축복받은 종말은 악함을 멀리하는 자들을 위해 있느니라. 선행을 실천하는 자, 그들은 그 이상으로 보답을 받게 되며, 악행을 행하는 자는 단지 그들이 행한 것으로 징벌을 받으리라.
꾸란 28.83-34(이슬람)

말씀선집

생애의 가치적인 내용이 어디에서 결정되느냐 하면 생애를 다 살고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삶의 그 날들이 결정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197.186, 1990.01.14)

여기서 그렇게 살던 사람이 저 세계에 가서 갑자기 변할 수 없습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 살까지 간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타고난 성격은 고치기 힘든 것입니다. 저 나라에 가 있는 영인체는 지상에서 살던 것과 갑자기 달라질 수 없습니다. 여기서 살던 그 모양 그대로 수확되어 가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 있는 모든 영인체는 결국 지상에 살던 사람들의 영인체입니다. 그렇게 보게 되면 오늘날 이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과 별다름이 없는 세계라는 것입니다. (141.268, 1986.03.02)

영인체의 모든 감성도 육신생활 중 육신과의 상대적인 관계에 의하여 육성되는 것이므로, 인간은 지상에서 완성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체휼해야만 그 영인체도 육신을 벗은 후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체휼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영인체의 모든 소성은 육신을 쓰고 있는 동안에 형성되기 때문에 타락인간에 있어서의 영인체의 악화는 육신생활의 범죄행위에 유인하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그 영인체의 선화도 또한 육신생활의 속죄로 인하여서만 이루어진다. 죄악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육신을 쓰고 지상에 오셔야 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상에서 선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따라서 구원섭리의 제1차적인 목적이 지상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천국문의 열쇠를 지상의 베드로에게 주셨고, “땅에서 매고 푸는 대로 하늘에서도 매이고 풀린다.”(마 16:19)고 말씀하셨던 것이다.(원리강론, 창조원리 6.3.2)

여러분의 습관성을 어떻게 타도하겠습니까?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사탄세계에서 자기 중심삼고 ‘내가 잘나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습관성을 지니고 살았는데, 그 습관성이 고질적인 것입니다. 그렇게 고착되어 버린 그 습관성이 김치 된장 고추장 습관성보다도 더 하겠습니까, 약하겠습니까?
이것은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악마가 출발한 그날부터 뿌리가 박힌 이러한 전통적 습관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빼 버리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타락한 세계에서 선생님으로 말미암아 원리를 배웠다고 큰소리 말라는 것입니다. 구덩이를 파고 뿌리까지 묻으려 해도, 이것이 내 키보다 더 커서 저 나무에 올라가서 빼려고 해도 못 뺄 정도로 긴데 앉아 가지고 뺐다고 큰소리를 하겠습니까? 이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늘나라에 갈 자신 있습니까? 하늘나라에 가려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전통적 습관성이 있어야 됩니다. (213.20.1991.01.13)

일생동안 하늘 뜻을 위하여 얼마나 살았느냐가 천국에서 그의 자리를 결정한다. 고로 천국 가고 안 가는 것은 자기 자신이 잘 안다. 먹고, 자고, 좋고, 나쁘고, 오고, 가고 하는 것이 무엇을 위하여 하였느냐에 의하여 천국 가고 못 가는 것이 결정된다. (뜻길,p.167)

위해서 존재한다는 원칙으로 구성된 세계가 인간이 바라는 천국이라고 여러분이 단적으로 알아도 그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한 곳이 우리의 본향입니다. 우리는 싫든 좋든 어차피 그곳에 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길입니다. 우리는 나그네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생을 두고 문제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기를 위해서 살았느냐, 남을 위하는 생활을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차이에 따라, 남을 위해 산 것이 크다 할 때는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요, 그 반대가 되게 될 때는 지옥에 간다는 것입니다. 이 원칙은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는 믿어지지 않겠지만 죽어 보면 알 것입니다 .(74. 51, 1974.11.27)

4. 죽음의 종착지

종교경전

너는 산에 올라갈 수 있고 다시 내려올 수도 있다. 계곡 주위를 이리저리 돌아디니다가 되돌아올 수도 있다. 그러나 신에게는 갈 수도 돌아올 수도 없다.
누페족의 격언(아프리카 전통종교)

믿지 못할 죽음의 신은 일의 완성이나 미완성을 가려 기다리지 않으며, 내가 병상에 누웠거나 혹은 건강한 중에도 언제고 도망치듯 사라질 이 목숨은 예측할 길 없어라. 모든 것, 모든 이를 남기고 홀로 떠나야 하리.
내가 이를 낱낱이 깨닫지 못하였던 까닭에 벗을 위한다는 죄악은 얼마였으며 적을 위한다는 죄악은 또 얼마였던가. 결국 나의 적들이 허망하고 나의 벗들이 무상하며 나 또한 덧없으리니 일체만유가 헛되고 무상하여라.
마치 꿈속의 일처럼 내 즐거웠던 모든 일들이 마침내 기억이라 불리리니 흘러간 것은 다시 보이지 않으리.
이 짧은 한 토막 생애도 수많은 벗과 적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이들에게 지은 나의 죄악은 나를 앞세워 몰아가리. 내가 침상에 누워 있고 나의 벗들과 친척들이 둘러서 있지만 호된 생의 체험들은 마침내 홀로 삭여내야 하리.
죽음의 사자가 내 옷깃을 잡아 끌 때, 내 형제 내 친척들이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내 공덕만이 나를 막아 지키리. 그러나 나는 이를 믿지 못하였느니.
샨티데바, 보살행의 도 2.33-41(불교)

말씀선집 

이 길은 친구도 없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도 없는 길이요, 사랑하는 형제도 없는 길이요, 사랑하는 부부, 사랑하는 자녀도 없는 길입니다. 오로지 혼자 가야 하는 길입니다. 다시 가볼 수도 없고, 갔다가 올 수도 없는 길, 한번 가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인데, 이 길을 가게 될 때 여러분은 어떠한 마음을 갖고 갈 것인가. 여러분이 죽음에 봉착하는 그 순간에 그 죽음을 넘어설 수 있는 소망이 없다면 거기에서 마지막입니다.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하나님의 뜻을 세워 나온 수많은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었느냐 하면, 죽음의 길 앞에서 후퇴한 자들이 아니라 죽음을 비웃고 죽음을 늠름히 넘어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하늘의 길을 세워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잘 아는 바입니다. 
여러분은 각자가 죽음에 봉착하게 되더라도 이것을 넘어설 수 있는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길을 넘고나면 하늘 앞에 떳떳이 서게 될 것이라는 소망과, 마음으로 동경하던 세계, 그 본향을 향해 기쁨으로 달음질 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상세계를 소망하는 마음이 간절하여야만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6.53. 1959.03.22)

영계를 잘 알아야 한다는 말은 막연히 영계의 실존만을 믿고 살라는 뜻이 아니고, 좋든 싫든 영원히 살아야 할 영계에서의 생을 위해 우리가 지상계에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를 알고 철저히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중에서 문제가 있는 어린애는 태어나서도 잘못하면 평생을 불구자로 살 수밖에 없듯이, 우리가 짧은 지상계의 삶 속에서 하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죄를 짓거나 악을 행하면, 결국 인과응보의 우주 법칙에 따라 영계에 가서 그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입니다.영계에 들어간 영인체가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탕감을 치러야 한다는 뜻입니다. 
일단 육신을 벗고 나면 늦습니다. 육신은 죽으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말지만, 우리의 생명, 우리의 마음, 우리의 심정, 그리고 우리의 소망까지 묻히고 마는 것입니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백년 일생은 하나님이 설치해 놓은 영인체라는 슈퍼컴퓨터에 어김없이 기록이 되고 촬영이 되어 자동적으로 평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상계에서는 누구나 생을 영위하는 동안 가는 걸음을 붙잡아 놓고, 움직이는 마음과 기울어진 심정을 부추기며 ‘너는 어디로 가느냐?’고 수없이 자문자답을 해 보는 것입니다. (447.159-160, 2004.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