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5장 죽음 이후의 삶과 영계
불멸의 영혼
영 또는 혼은 불멸의 인간 본질이다. 영혼은 영원한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므로 그것은 마침내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 한편, 흙으로 만들어진 육신은 영혼을 감싸는 옷에 불과하다. 사소한 차이는 있으나 모든 종교에서 발견되는 일반적인 관념이다. 영혼은 천국으로 올라가거나, 지옥으로 떨어지거나, 신성과 하나되거나, 부활의 날까지 잠들어 있거나, 또 다른 육신으로 환생한다. 이러한 차이와는 무관하게 영혼의 존속은 모든 신앙체계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종교 경전들은 내세에서 영혼을 감싸고 있는 ‘영적 몸’에 대한 묘사를 포함하고 있다. 어떤 경전들은 그 자체의 형태와 구조를 지닌 영혼을 상징한다. 그것은 지상생활 동안 육신과 함께 있다가 사후에 분리되어 영계로 올라간다. 문선명 선생은 어떻게 지상사람들이 영혼과 육신의 공명에 의해 두 세계에 살고 있는가에 관한 이해를 돕는다. 이것은 영적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어떻게 지상생활을 하면서 영계를 지각할 수 있는가를 말한다.
영혼이 더 이상 육신에 묶여 있지 않고 의지대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을 때, 실로 사후에 그 날개를 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의 삶은 천국에서 요구되는 완전한 영혼의 성품을 훈련하는 수련장소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다음 절에서 이 주제를 다룰 것이다.
1. 육신과 영혼
종교경전
여호와 하나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창세기 2.7(기독교)
육체는 영혼의 집이다.
탈무드, 산헤드린 108a(유대교)
그분은 흙에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 평범한 액체의 추출물에서 그의 후손이 있게 하셨으며, 그런 후 그의 형상을 만들고 그 안에 그분의 영혼을 불어넣었도다.
꾸란 32.8-9(이슬람)
영혼은 지혜와 통찰의 주체요, 무형상의 행위자이며, 그 자신의 육신과 동일한 크기를 지닌다. 영혼의 또한 카르마의 과보들을 향수하는 자이며, 삼사라의 세계에 거하지만 밝히 아는 자이며, 언제나 지고한 경지를 지향하고 있다.
네미찬드라, 드라브야상 그라하 2(자이나교)
재아가 물었다. “저는 귀신이란 말을 들었으나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기는 신이 성한 것이고 백은 귀가 성한 것이다. 귀와 신을 합쳐서 제사를 지냄은 성인의 가르침의 지극함이니라. 모든 중생은 반드시 죽는다. 죽으면 반드시 흙으로 돌아간다. 그것을 귀의라고 한다. 사람이 죽으면 뼈나 살이 땅 밑에 묻혀 스러지고 들의 흙으로 변한다. 그러나 그 기는 하늘위로 솟아올라가 귀의라고 한다. 사람이 죽으면 뼈나 살이 땅 밑에 묻혀 스러지고 들의 흙으로 변한다. 그러나 그 기는 하늘 위로 솟아올라가 소명(昭明)한 신이 된다. 기가 증발해 나타나서 사람을 처연하게 느끼게 하는 것은 만물의 정이며 신이 나타난 것이다.”
예기 21.2.1 (유교)
그러나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나며, 어떤 몸으로 옵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대가 뿌리는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뿌리는 것은 장차 생겨날 몸 그 자체를 뿌리는 것이 아닙니다. 밀이든지 그 밖에 어떤 곡식이든지, 다만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뜻하신 대로 그 씨앗에 몸을 주시고, 그 하나하나의 씨앗에 각기 고유한 몸을 주십니다. 모든 살이 똑같은 살은 아닙니다. 사람의 살도 있고, 짐등의 살도 있고, 새의 살도 있고, 물고기의 살도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몸도 있고, 땅에 속한 몸도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몸들의 영광과 땅에 속한 몸들의 영광이 저마다 다릅니다.
고린도전서 15.35-40(기독교)
말씀선집
이 몸은 하나님께서 있는 정성을 다 들여 흙덩이와 같은 것을 수습하여 영원한 이념의 생명체, 즉 영인체가 자랄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예술품도 이 이상의 예술품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야, 일어나라’ 고 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최대의 정력을 기울여서 만드신 몸입니다. 거기에 영인체를 불어넣어 하나의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유.무형세계에서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그런 형상을 만들어 축복해 주셨습니다. (8.80,1959.11.08)
영인체는 인간의 육신의 주체로 창조된 것으로서 영감으로만 감득되며, 하나님과 직접 통할 수 있고, 또 천사나 무형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무형실체로서의 실존체인 것이다. 영인체는 그의 육신과 동일한 모습으로 되어 있으며, 육신을 벗은 후에는 무형세계에 가서 영원히 생존한다. 인간이 영존하기를 염원하는 것은 그 자체 내에 이와 같이 영존성을 지닌 영인체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영인체는 생심과 영체의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생심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영인체의 중심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영인체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소와 육신으로부터 오는 생력요소의 두 요소가 수수작용을 하는 가운데서 성장한다. 그리고 영인체는 육신을 터로 하여서만 성장한다. 그러므로 영인체와 육신의 관계는 마치 열매와 나무의 관계와 같다.(원리강론,창조원리 6.3.2)
사람은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마음적 사람이 있고, 몸적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마음은 종적인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몸은 무엇입니까? 횡적인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본래부터 하나님의 이상적 기준에 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된다면 종적인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울릴 때 횡적인 몸은 다 느끼게 됩니다. 종적 기준에 존재하는 영인체에 하나님의 참된 사랑이 울리면 횡적 기준이 되는 몸도 공명되게 되어 있습니다.(177.216, 1988.05.20)
사람에게는 영적 사람,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영인체가 있고 육신이 있습니다. 영인체 세포, 그것이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은 똑같다는 것입니다. 영계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합니다.
그러면 영인체와 육신이 언제 하나 됩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음차와 마찬가지로 공명되어야 합니다. 음차의 하나를 울리면 다른 쪽을 진동수가 같게 공명시키는 것과 같은 이치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작용이 우리의 마음에 오면 자동적으로 몸이 반응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을 백 퍼센트 공명시키고 하나되게 할 수 있는 권내로 몰아넣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도 아니요, 능력도 아니요, 힘도 아니요, 오직 사랑입니다.(138.225, 1986.01.24)
몸과 마음의 세포가 있습니다. 영적 오관이 있고 영인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의 세포가 공명해야 합니다. 영원히 살 수 있는 우리의 내적 사람과, 지상천국에 살 수 있는 외적 사람이 사랑을 중심삼고 공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인체와 육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공명되어 울리게 될 때 비로소 영적 세포와 육적 세포가 완전히 작동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이 그 작동을 할 때 눈을 뜨게 되면 천상천하 지상천하가 다 보이는 것입니다. 완전 작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영육을 중심삼고 사랑의 힘에 몸 전체가 일치해서 폭파될 수 있는 경지가 되면 거기서 비추어 나오는 하나의 힘과 빛에 의해 천상세계 지상세계 하나님 할 것 없이 다 공명하게 됩니다. (171.103,1987.12.13)
2. 죽음: 새로운 생명으로 전환
종교경전
그렇게 되면 티끌로 된 몸은 땅에서 왔으니 땅으로 돌아가고, 숨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니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
전도서 12. 7(기독교)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고 또 생명을 앗아가니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
꾸란 50.43(이슬람)
이제 나의 숨은 영혼은 불멸자에게 가며 이 육신은 재가 되어 끝난다.
음, 오, 의근(意根)이여, 기억하라. 그 행위들을 기억하라. 그 일들을 기억하라.
이샤 우파니샤드 17(힌두교)
인간의 본성이 지향하는 것은 영적 삶이다.
이 영적 삶은 육신이라는 고치를 만들어
그 속에 자신의 영혼을 담기 위하여
마음이라는 실을 짜는 것과 같다.
그때에 비로소 영은 육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분명히 알라.
고치가 누에일 수는 없다는 것을.
마찬가지로 육신이 바로 사람일 수는 없다.
단지 인간을 담고 있는 고치일 뿐이다.
누에가 고치를 깨고 자유롭게 날게 되듯이
사람도 그의 육신이라는 고치를 벗어버리고
때가 되면 영계로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결코 육신의 죽음이 인간의 죽음이라 생각하지 말라.
왜냐하면 인간이란 생명을 뜻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죽음이란 없는 것이다.
감로우 법우(생장의 집)
그[자아]를 죽이는 자로 생각하거나. 그를 죽임 당하는 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둘 다 무지한 자들이니, 실로 죽이는 자도 죽임을 당하는 자도 없다. 그는 결코 태어남이 없으며 죽음도 없다. 그는 변하지 않으며 변할 수도 없다. 그는 불생불사로 영원히 있는 자니라. 육신이 죽임을 당할 때에도 그는 죽지 않는다. 그는 불멸하며 연원하나니, 오, 파르타의 아들이여! 어떻게 누구를 죽이거나 죽게하겠는가?
사람이 낡은 옷을 벗어버리고 다른 새옷을 갈아 입는 것처럼, 그와 같이 몸의 주인도 낡은 육신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육신들로 옮겨 가느니라.
그는 칼로도 베지 못하며, 불로도 태우지 못하며, 물로도 또한 적실 수 없으며, 바람으로 말려 버릴 수도 없나니, 베어질 수도 없고 태워질 수도 없으며, 적셔질 수도 말려질 수도 없는 이가 바로 그이니, 그는 영원 무소부재하며 확고하여 변함이 없느니라. 그는 나타나 보이지도 않으며, 모든 사량분별을 넘어 있으며, 변화를 초월하여 있느니라. 이와 같이 그를 안다면, 아르주나여, 그대는 슬퍼하지 말라.
바가바드기타 2.19-25(힌두교)
그래도 너희는 현세의 삶을 더 선호하는가.
내세가 더 좋으며 영원하리라.
이것은 옛 성서에도 계시되어 있으며
아브라함과 모세의 성서에도 그러하니라.
꾸란 87.16-19(이스람)
오냐메는 죽지 않는다. 따라서 나도 죽지 않을 것이다.
아칸족의 격언 (아프리카의 전통종교)
조상들을 만나라, 야마를 만나라. 그리고 최고의 천계에서 모든 바람을 이루어라.
불순함을 떨쳐버리고, 그대의 거처를 새롭게 찾아서 빛나는 몸을 받아라.
리그 베다 10.14.8(힌두교)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고 있으나 속사람은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일시적인 가벼운 환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큰 영광을 우리에게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순간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집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 집은 우리의 손으로 지은 집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입니다. 지금 육신의 장막을 쓰고 사는 우리는 이 하늘에서 오는 우리가 살 집을 덧입기를 사모하면서 이 장막 집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입을 때에 우리는 벌거벗은 사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장막 집에서 사는 동안 우리는 무거운 짐에 눌려 신음합니다. 그것은 이 장막을 벗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위에 덧입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는 그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마음이 든든합니다. 우리가 육을 따라 살고 있는 동안 주에게서 떠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는 것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이 튼튼하며 차라리 육신을 떠나서 주와 함께 살기를 원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난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우리가 육신으로 행한 모든 행위에 대해 그대로 보응을 받아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4.16-5.10(기독교)
말씀선집
한국말에는 재미있는 표현으로 ‘죽는다’는 것을 ‘돌아간다’는 말로 사용합니다. 어디로 돌아간다는 말입니까? 이는 단지 공동묘지로 가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래 인생이 출발하였던 본래의 처소로 되돌아간다는 뜻입니다. 멀고 먼 역사의 기원을 넘어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국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한국 사람으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류조상의 근원이 되는 그 세계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즉, 창조주가 계시다면 그 창조주가 계시는 곳으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거기에서 출발했으니 거기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주도 순환작용을 합니다. 예를 들어 산에 쌓여있던 눈이 녹게 되면 그 물이 조그만 계곡을 통해서 흐르게 되고 더 나아가서 여러 강들을 통해서 대해로 흘러 들어갑니다. 대해로 흘러 들어가게 된 그 물은 수증기가 되어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순환운동을 통해서 보다 더 높을수 있는 곳으로, 보다 더 좋을 수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299.61, 1999.02.04)
하나님이 인간의 부모이시라면 우리 인간을 ‘어떻게 왜 지었느냐?’ 할 때, 하나님의 사랑에 동참시킨 자리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서 출발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서 자라서,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서 성숙해서 가정을 이루어 이 땅 위에서 세계적인 사랑과 연결시킬 수 있는 성숙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길입니다. (135.267-268, 1985.12.15)
인간의 본질은 영적인 것입니다. 저 나라에 가면 그러한 인간의 본질이 남을 위하도록 되어 있는 것임을 더욱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2.138, 1957.03.17)
사람은 지상에서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어 살면서 그 속사람인 영인체를 완성시켜 천상세계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영인체가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영원히 사는 천상천국이 우리의 본향입니다. …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영인체가 있고, 또 반드시 가야 할 천상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43.196,2001.01.29)
이제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영원한 참사랑 자리에 동참한 것입니다. 바같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한국 어디를 가더라도 이 영생 개념은 없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나는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났으니 죽어서 영계에 가 보십시오. 일순간에 비약합니다.
제한된 이 지구의 삶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제한된 곳에서는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지만, 저 세계는 차원이 높은 세계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시간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무엇이든 바라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나 다 얻을 수 있습니다. 무궁무진합니다.
우리가 영생체로 지음 받았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영생의 참사랑을 중심한 대상체인 나는 영원한 생명체라는 결론이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기만 하면 우리는 자유로운 것입니다. (216.116.1991.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