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3장 인생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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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성
종교 경전들은 절대자와 하나 된 사람, 진리로 체현된 사람, 죄 또는 세속적인 타락의 족쇄에서 자유로운 사람, 성스러운 은총의 충만을 드러내 보이는 사람의 공덕들을 묘사한다. 그들은 성자, 현자, 붓다, 또는 신성한 인간이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완전 상태는 우리가 닿을 수 없는 영역 너머가 아니다. 우리가 단지 노력하기만 한다면 성취할 수 있는 목적지이다. 간디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삶은 열망이다. 그것의 임무는 완성, 즉 자기실현을 위해 분투하는 것이다. 그 이상은 결코 우리의 나약함이나 불완전함 때문에 낮추어져서는 안 된다." 여기에 기술된 구절들은 완전 상태를 성취한 사람의 탁월한 품성을 묘사한다. 특히 완전함의 세 가지 품성이 강조된다.
첫째는 몸과 마음의 통일이다. 성자는 이기적인 욕망을 극복하고 성욕, 탐욕 또는 다른 욕망을 정화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주관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오직 하나님의 뜻과 양심의 지시에 따라서 옳은 것만 행하고자 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에 의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당신의 의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라는 것이다.
둘째, 완전성은 하나님과의 통일이다. 하나님은 최고의 인간적 열망들의 전형이며 모델이다. 그래서 성자는 하나님 자신의 완전성에 동참하고자 노력함으로써 하나님의 속성들, 즉 절대, 불변, 사랑, 정의 등을 구현하게 된다.
셋째, 완전성은 하나님의 참사랑을 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 또는 자비는 죄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그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에서 나타난 것으로서 하나님 본질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남자와 여자는 다른 사람들의 풍요한 삶을 즐거워하며 사회의 이익을 위해 사심 없이 노력한다. 성자의 사랑은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으며 그 누구도 적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항상 선으로 악을 갚는다.(제13장 '참사랑' 참조)
1. 완전성은 마음과 몸의 일치에서 시작
종교 경전
어떤 사문이 부처께 여쭈었다. "선이란 무엇이며, 또한 무엇을 일러 위대하다 합니까?" 부처께서 대답하셨다. "도를 따르며 참을 굳게 지니는 것, 그것이 선이요, 자신의 뜻이 도에 어긋남이 없을 때 이를 일러 위대하다 하느니라."
사십이장경 15 (불교)
너희의 성향이 내가 가져온 것과 부합될 때까지 너희 중 누구도 진정한 신자라 이를 수 없느니라.
알 나와위 하디스 40선 41 (이슬람)
깨달음에 넉넉한 자는 사악한 행위에 끌려 다니지 않나니, 그는 언제나 진리로 일깨워진 지성에 의해 인도되는 까닭이니라.
아차랑가 수트라 1.174 (자이나교)
깨달음을 얻는 방법으로
마음을 바르게 닦고
집착을 끊고 소유욕을 버리고
항상 편안하고 즐거우며
번뇌가 사라져 빛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열반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법구경 89 (불교)
마부에 의해 잘 길들여진 말처럼
모든 감관이 잠잠하고
교만과 번뇌를 끊어버린 사람은
신들조차도 그를 경애한다.
대지처럼 너그럽고 잘 수양된 사람은
화를 내는 법이 없다…
그는 마치 흙탕에 휘둘리지 않는 호수 같으며
그와 같이 평정심을 지닌 사람에게 윤회는 없다.
바른 지혜를 얻고 오염을 여의었으며
완전한 평온과 부동심을 지닌 자
그의 마음은 고요하고 그의 말은 고요하며
그의 행동 또한 고요하다.
사특한 믿음 없이 절대를 깨달아
윤회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욕망을 버린 사람
그는 참으로 뛰어난 사람이다.
법구경 94-97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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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주나가 말했다. 자신의 존재가 지고자 안에 굳건히 서서 부동의 지혜를 지닌 자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오, 크리슈나여! 그는 어떻게 말하며, 어떻게 앉고, 어떻게 걷습니까?
거룩하신 주 크리슈나께서 말씀하셨다. 일체만유 속에서 자신을 보며, 자신 속에서 일체만유를 보는 자, 모든 이기적인 욕망과 헐떡이는 갈애를 떨쳐버린 자, 그를 일러 확고부동한 지혜의 사람이라 하느니라.
슬픔 속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쾌락에 끌려 다니지 않으며, 탐욕과 두려움과 노여움으로부터 자유로운 자, 그를 일러 확고한 통찰을 지닌 성자라 부르느니라.
이기적인 욕망으로 더 이상 흔들이지 않으며, 좋다 하여 의기양양해하거나 슬프다 하여 침통해하지 않는 사람, 그는 진실로 확고한 지혜 속에 머무는 자니라.
거북이가 사지를 갑 속으로 거두어들이듯 감관을 대상들로부터 거두어들이는 사람, 그의 지혜는 확고히 서 있느니라.
수행자가 아무리 애써도, 오, 쿤티의 아들이여! 날뛰는 욕망들은 그의 마음을 채어가 버릴 것이니라. 모든 감각기관들을 통어하며 언제나 내 속에 머물며 나에게 전일하는 자, 그는 진실로 확고한 지혜 속에 머무는 자니라.
바가바드기타 2.54-61 (힌두교)
아부 후레이라가 하나님의 사도가 하는 말을 전하였다. "가장 완벽한 신앙을 가진 자는 가장 훌륭한 성격을 가진 자이다."
아부 다우드 및 다리미 하디스 (이슬람)
마음의 해로운 독을 버리고 생명의 삶을 영위하며, 행해져야 할 모든 것을 행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목적을 성취했으며, 존재의 속박들을 파괴했으며, 충만한 영지로써 자유를 얻은 비구는 아래의 아홉 가지 규준들을 범할 수 없다.
마음의 해로운 독이 사라진 비구는 의도적으로 어떤 생명을 죽일 수 없으며, 주어지지 않은 것을 의도적으로 훔칠 수 없으며, 음행을 저지를 수 없으며, 의도적으로 거짓을 말할 수 없으며, 속가에서 가장으로 지녔던 지식 등에 대한 기억에서 오는 즐거움을 향수할 수 없다.
마음의 해로운 독을 버린 비구는 애욕 때문에 배회할 수 없으며, 증오 때문에 배회할 수 없으며, 미혹 때문에 배회할 수 없으며, 두려움 때문에 배회할 수 없다.
앙굿타라 니카야 4.370 (불교)
현묘한 도와 하나가 된 사람은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멀리할 수도 없고, 이롭게 할 수도 없고, 해롭게 할 수도 없고, 귀하게 할 수도 없고, 천하게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세상이(그를) 귀하에 여긴다.
도덕경 56 (도교)
말씀 선집
여러분이 여기서 출발하는 에 있어서 어떻게 가야 되느냐? 각자가 지향하는 양이 100이라 할 때, 거기에서 몸과 마음이 50대50이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중간 영계에 머물게 됩니다. 완충지대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만일 몸이 60이면 틀림없이 지옥에 갑니다. 지옥은 어떤 곳이냐? 그늘 진 곳입니다. 천국은 어떤 곳이냐? 빛나는 곳입니다. 그렇게 알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그늘 진 곳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이곳은 내려가면 갈수록 캄캄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항상 '나'라는 존재는 선악의 모체라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선생님도 여러분과 같은 연령일 때 이런 내용으로 고심했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내세운 표어가 뭐냐 하면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제1조입니다. 이런 면에서 자아를 완성하여 자아를 주관할 수 있게 될 때, 즉 내 몸을 제어하고 극복할 수 있는 자주성을 갖게 될 때, 비로소 내 몸과 마음의 상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37.122, 197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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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마음적 사람과 몸적 사람입니다. 그러면 마음은 도대체 뭐냐? 마음은 종적인 기준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몸은 뭐냐? 횡적인 기준을 갖고 있는 것이 몸입니다. 이것이 본래부터 하나님의 이상적 기준에 서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된다면 종적인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땡' 울릴 때 몸적인 모든 것, 횡적인 것을 다 느끼게 됩니다. 마음적, 종적 기준이 존재하는 영인체에 하나님의 참된 사랑이 '땡' 울리면 횡적 기준이 되는 몽뚱이도 '땡' 하고 공명되게 돼 있습니다.…영인체에 참된 사랑이 '땡' 울리게 되면 몸뚱이가 공명될 수 있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다면 그런다는 것입니다. 어떤 기준에 의해 그렇게 되어 있습니까? 무엇에 의해 공명이 되는 것인가? 참된 사랑의 울림에 공명되어 있습니다. (177.216, 1988.05.20)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하나 되면 하나님이 임재 한다는 것이 원리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왜 거기에 임재 하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이 하나 되면 반드시 거기에는, 하나 되는 원칙이 사랑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상대적 사랑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임한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성전은 어떤 곳입니까? 성전은 안식처라는 말과 통합니다. 그러면 쉬는 데는 무엇 가운데 쉬는 것입니까? 사랑 가운데 안식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바라는 이상이 있다면 그러한 내심적 기준이 최고의 이상의 기준이 아니겠느냐. 그러한 마음의 사랑을 지닌 곳을 심정세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솟는 샘터와 마찬가지여서 퍼내고 퍼내더라도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기에 끝이 없다는 논리를 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91.78, 1977.01.30)
하나님이 순금입니까, 가짜 금입니까? 순금입니다. 하나님이 순금이니 우리가 같이 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가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 몸과 같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장 48절에 "하나님이 완전한 것같이 너희들도 완전하라"는 말이 나옵니다. (91.321, 1977.03.01)
그렇다면 지상에서 가정천국은 어떻게 이루는 것입니까? 첫째, 가정을 형성하는 모든 요원들은 개인완성을 이루어야 합니다. 타락으로 인해 선택의 여지도 없이 상속받게 된 타락성을 벗고 자신의 인격완성을 보아야 합니다.
즉, 몸과 마음의 갈등과 싸움을 완전히 극복하고 승리하여 일심 일체 일념의 경지에서 완전 일화의 세계가 인격완성으로 열매 맺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에게서는 시기, 질투, 욕심, 증오 등 모든 악의 요인이 되는 타락성이 다시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443.175, 2004.03.23)
종교의 목적은 심정세계의 법도를 활용하여 생활적인 감정과 대하고 있는 우주 만상의 모든 이치를 관할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그런 인격자를 배양하기 위한 것입니다. (6.349, 1959.06.28)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나라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또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부모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부모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요,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요,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 주관을 바라기 전에 자아 주관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사랑의 실체인 개체를 주체적인 입장에 세워 놓지 않고는 가정도 불가능한 것이요, 나라도 불가능한 것이요, 국가도 세계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완전히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고는 완전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33.97-98, 1969.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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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완전성은 하나님과 일치하는 것
종교 경전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하라.
마태복음 5.48 (기독교)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3.9 (기독교)
성은 천도이고 그 성을 이룩함이 인도이다. 성의 경지에서는 애쓰지 않고도 중정하게 되고, 생각하지 않고도 터득하고, 모든 행동이 자연히 도에 맞는다. 이러한 경지의 사람을 성인이라고 한다. 중용 20장 18 (유교)
첨으로 그리스도께서 나아와 그 안에서 온전하게 되며, 경건하지 아니한 모든 것을 부인하라. 너희가 경건하지 아니한 모든 것을 부인하고 너희의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자비하심이 너희에게 충만할 것이요, 그 자비하심으로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되리라. 또한 너희가 하나님의 은총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되면 결코 하나님의 권세를 부인하지 못하리로다.
몰몬경, 모르나이서 10.32-33 (예수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그러나 나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으리라. 물가에 심은 나무처럼, 개울가로 뿌리를 뻗어 아무리 볕이 따가워도 두려워하지 않고 잎사귀는 무성하여 아무리 가물어도 걱정없이 줄곧 열매를 맺으리라.
예례미야 17.7-8 (기독교)
지고한 스승은 만족과 관용의 나무이니,
정의가 그 꽃이며 교화는 그 열매로다.
이 나무는 신 안에서 기쁨에 겨워 영원히 시들지 않으며,
명상의 실천으로 열매를 맺도다.
주안에서 그것은 기꺼이 쓰여지나니,
자기 없는 행위로서
기고한 사랑을 베푸는 것과 같은 것이로다.
아디 그란트, 바르 마즈,M.1,p.147 (시크교)
지혜의 주는 부족함이 없는 지도를 통해
맹세한 벗인 그에게
온 마음으로, 또 행동으로,
완전불멸의 의․주권․선한 생각의
강력한 교제를 허락하시리라.
마음으로 아는 자에게,
통찰력 있는 자에게 이것이 명백하리니,
그는 말로 행동으로
선한 주권과 정의를 받드는 도다.
오, 지혜의 주여!
그는 당신에게 가장 좋은 조력자입니다.
아베스타,야스나 31.21-22 (조로아스타교)
노담이 말했다. "나는 만물이 근원하는 경지에 놀고자 하오." "어떠한 뜻이냐?" 하고 공자가 물었다. 노담이 말했다. "이 경지에 도달하면 지미하고 지락하다. 지미를 체득하고 지락의 경지에 노는 사람을 지인이라고 한다."
장자 21 (도교)
최고아는 생․로․병․사에 걸림이 없으며, 지고 청정하여 여덟 가지 업에 물듦이 없느니라. 그는 무한한 지혜와 통찰과 지복과 권능을 지니며, 파괴될 수 없으며, 또한 다함이 없느니라. 그는 사람의 감관이 닿을 바가 아니며, 일체의 걸림이나 장단점 또는 재생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영원불변하며, 비길 데 없는 자존자로다.
쿤다쿤다, 니야마사라 176-77 (자이나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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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선집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태복음 5장 48절)고 하신 말씀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창조원리에 의하면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은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어 신성을 갖게 되므로 죄를 지을 수 없다. 따라서 그러한 인간은 창조목적을 두고 보면, 하늘 아버지의 완전함같이 완전한 인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이 말씀은, 바로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으로 복귀되어서 천국인이 되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으로 복귀되어, 예수님이 하신 말씀대로 하늘 아버지의 완전함과 같이 완전하게 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일 것인가? 이러한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 그의 심정을 체휼함으로써 신성을 갖게 되어 하나님과 불가분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원리강론, 메시아의 강림과 그 재림의 목적 1.1)
인간이 참된 모습을 이루려면 모든 생사화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 관계를 맺지 않으면, 인간 개체 내에서는 참된 모습을 이룰 수 없습니다. 참은 반드시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을 전체적으로 수습하고 주관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반을 갖게 될 때 참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기반을 갖지 못하면 '참' 이라는 명사는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의 기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계심으로 말미암아 참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떠나게 될 때 참도 떠나게 됩니다. 거기에는 참이 아닌 악의 기원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더라도 참은 인간이 마음대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즉 타락한 인간이 마음대로 관리하는 그런 자리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참이 우리를 주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참 앞에 굴복해야 됩니다. 참을 세우고 거기에 순응해야 됩니다. (24.315, 1969.09.14)
하나님을 생활 속에 직접 오관을 통해 느껴서 하나님의 실존을 알게 되어야 진짜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실존을 체휼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실존을 생활 속에서 직접 체휼하며 살게 되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순간순간 느끼고 알아서 매사에 임하게 되고, 죄를 지으려야 지을 수 없는 완성한 인간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무형으로 계시는 하나님은 인간의 실체를 쓰고 주인적 인격과 형체를 갖추어 유형세계인 지상세계와 만물 만상은 물론 영계까지도 주관하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확실히 아는 것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우선적이고 중요한 요소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확실히 알아 생활 속에서 모시고 살고, 영계의 실존은 물론 실상까지도 믿고 알게 되면 인간 삶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처럼 쉽고 거리낌이 없어질 것입니다. 운전자가 고속도로의 법규를 지키며 운전대를 잡고 졸지만 않으면 무난히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처럼 하늘이 주신 양심의 지향을 따라서 열심히 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몸과 마음도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인간 완성의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것입니다. (447.157-158, 2004.05.01)
참된 인간은 뭐냐? 하나님과 놀고, 하나님과 쉬고, 하나님과 자고, 하나님과 살고자 하는 인간이 최고의 참된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찾느냐 하면 그러한 참된 인간을 찾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이 참된 것을 찾아 나가고 참된 세계를 찾아 나가는데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세계가 참된 사랑의 세계요, 참된 행복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비로소 우리의 이상경(理想境)이 현현하는 것입니다. (60.284, 1972.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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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완전성은 하나님처럼 사랑하는 것
종교 경전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고 이른 것을 너희가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또한 너희가 너희 형제자매들에게만 인사를 하면서 지내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이방 사람들도 그 만큼은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
마태복음 5.43-48 (기독교)
주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나를 닮으라; 내가 악에 대해 선으로 갚는 것처럼 너희도 나를 닮으라."
출애굽기 랍바 26.2 (유대교)
사랑하는 이들이여,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며 하나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시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요한일서 4.7-8,16 (기독교)
친구와 적을 동등하게 보며, 존경과 멸시를 평등하게 여기며, 추위와 더위, 즐거움과 고통을 평등하게 보며, 이기적인 집착을 버리고 칭찬과 비난을 동등하게 여기며, 고요하고 항상 만족하며 어디서나 조화로우며 믿음에 확고한 신애자, 그와 같은 사람은 나에게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바가바드기타 12.18-19 (힌두교)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와 친절과 양선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금할 법은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5.23 (기독교)
말씀 선집
도의 세계에서 인격완성이란 표준이 어디에서 나올 것이냐?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하고 절대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인격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33.79, 1970.08.09)
예수님은 승리적 천륜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 역사상에 없었던 사랑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어려운 환경에 부딪치더라도 그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죄인들이 악을 대하여 충성하는 이상 하나님의 뜻을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신의 아홉 가지 열매의 근본입니다. 사랑의 생활을 하게 되면 희락과 화평이 나오고, 인내를 통해서는 자비와 양선(良善)이 나오며, 충성의 생활을 하면 온유와 겸손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타락권내에 있는 인간들의 모든 악의 요소를 제거시켜 주기 위해서 천적인 사랑과 천적인 인내, 천적인 충성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이것들이 천국의 이념을 달성시킬 수 있는 실천적인 이념인데 오늘날 여러분의 마음에 이런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습니까? 또 인내와 충성심이 있습니까? (2.345, 1957.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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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땅위에 좋은 사람도 좋아하고, 나쁜 사람도 좋아합니다. 죄를 지어서 사형장에 나가 죽게 되는 사형수도 '하나님! 나를 불쌍히 보시옵소서. 나는 당신을 좋아합니다!' 하고 죽습니다. '요놈의 하나님! 나 죽소. 당신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소!' 라고 그러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하나님 앞에서는 나쁜 짓을 해서 죽어가는 입장에 있는 사람도 좋은 마음으로 희생해서 재출발로 희망을 다짐하면서 하나님 앞에 최고로 기여하고, 또 의지하고, 그와 더불어 있고 싶어 하고, 내심으로는 부모를 떠나서 형제를 떠나서 누구보다도 간절히 가까이에서 사정을 통하고 싶어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참되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참된 분은 좋아하는 양반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원수까지도 좋아해야 합니다. 그 앞에는 모든 것을 맡길 수 있고, 모든 것을 의논하고 싶고, 모든 것을 바랄 수도 있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야 참된 사람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는 자라 나오는 과정에서 미운 사람이 있는 사람은 참된 사람인가요, 거짓된 사람인가요? 거짓된 사람입니다. 미운 사람이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거짓된 사람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참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양면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좋아하자는 것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내가 좋아하면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내가 세 번 이상 좋게 대해 주면 그가 고개를 숙이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만 잘해주면 고개를 숙입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한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에게는 양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잘못했는지 잘했는지 빤히 안다는 것입니다. (39.302-304, 1971.01.16)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뿌리 박혀 있어서 떼려야 뗄 수 없게 되어 있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사랑에 꼼짝달싹 못하고 달려서 사는 녀석이다. 내 몸뚱이를 내 맘대로 어떻게 하려야 할 수 없어. 내 몸뚱이에 하나님의 사랑이 뿌리 깊게 박혀 있으니 나는 내 맘대로 살려야 살 수 없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아니 살려야 아니 살 수 없는 사람이다. 밥을 먹을 때도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먹고, 살더라도 몸과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사는 나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140.24-25, 1986.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