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참부모란 (천성경 - 제2권 참부모) L

훈독왕 | 20190201094413

천성경 - 제2권 참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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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QFQvyfcwZvM&list=PLtan-zpeJeinrhgP7utpMjrLbDDbeemDH



제 1 장  참부모란


1) 참부모라는 말의 의미


우리 통일교인들이 평소 쓰는 말 중에는 '참부모'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간단한 말이지만, 그 내용은 참 놀랍습니다. 역사 이래 그 어떤 책에도 없습니다. 참부모라는 말이 가장 쉬운 말이지만, 그 말은 우리만이 갖고 있는 말이고, 우리만이 쓰는 말입니다. 인류 조상이 타락했다고 하면, 기독교가 2천 년 역사를 거쳐 나오면서 타락한 부모는 거짓부모, 나쁜 부모이고 타락하지 않은 부모는 선한 부모요 참부모다 하는 것을 대번에 알았을 것인데, 그것을 지금까지 발표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발표할 수 있는 이 때를 기다려 왔다는 것입니다. 
과거 역사시대에 참부모라는 것을 생각한 사람이 있었을런지 모르지만, 그 배후가 어떻다는 것까지는 풀 도리가 없었습니다. 통일교회의 방대한 원리강론의 전체 내용을 갖추지 않고는 그것을 확실하게 풀 수 없었기 때문에, 누구도 간단히 참부모란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원리 말씀, 혹은 우리가 알고 있는 통일교회의 역사관, 또 인류의 근원에 대한 사실을 밝혔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참부모라는 말을 확실히 앎으로 말미암아 무엇을 알 수 있느냐? 우리 인류 시조의 타락이 불륜한 관계로 말미암아 되어졌고, 하나님과 관계 없는, 창조이상으로 세우려던 참된 부모와 관계없는 혈통적 인연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즉, 그릇된 핏줄을 이어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라는 말은 인류 시조로부터 모든 인간들이 그릇된 혈통 가운데 살던 것을 청산해 버리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새로운 본연의 뿌리를 중심삼은 사랑과 생명과 혈통이 이어진다는 뜻을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이건 참 놀라운 말입니다. (201-60)


2) 참의 기원


  ①'참'이란


이 천지간(天地間)에 참된 분이 있다면 그분은 누구일 것이냐? 절대자입니다. 이 절대자를 오늘날 우리 한국말로 하면 '한 분밖에 없는 주인 양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주인 양반을 더 줄여서 말하면 하나님이 됩니다. 한 분밖에 없는 주인 양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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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땅 위의 좋은 사람도 좋아하고, 나쁜 사람도 좋아합니다. 죄를 지어서 사형장에 나가 죽게 되는 사형수도 '하나님, 저를 불쌍히 보시옵소서!' 하고 죽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하나님 앞에서는 나쁜 짓을 해서 죽어 가는 입장에 있는 사람도 좋은 마음으로 회생해서 희망의 재출발을 다짐하면서 그 하나님 앞에 최고로 기여하고, 또 의지하고, 그분과 더불어 있고 싶어하고, 내심으로는 부모와 형제를 떠나서 누구보다도 간절히 가까이에서 사정을 통하고 싶어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참되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참된 분은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죽으라고 하는 원수까지도 좋아해야 합니다. 그 앞에는 모든 것을 맡길 수 있고, 모든 것을 의논도 하고 싶고, 모든 것을 바랄 수도 있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야 참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자라 나오는 과정에서 미운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미운 사람이 있는 사람은 참된 사람입니까, 거짓된 사람입니까? 거짓된 사람입니다. 틀림없이 거짓된 사람입니다. 이 세계에는 거짓된 사람이 많습니다. 
참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양면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통일교회의 패들 중에서도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주 좋아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적극적으로 미워한다면 좋은 패입니까, 나쁜 패입니까? 나쁜 패입니다. 
그래서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좋아하자는 것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내가 좋아하면 그 사람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내가 세 번 이상 좋게 대해 주면 그가 고개를 숙이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만 잘 해주면 고개를 숙인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한번 해보십시오. 사람에게는 양심이 있어서 자기가 잘못했는지 잘했는지 안다는 것입니다. (39-302)


여러분, 우리나라에는 좋은 사람이 많지요? 세상에는 훌륭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위인(偉人)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위인은 누구입니까? '대한민국의 위인' 하면 대개 이순신 장군을 말합니다. 이순신 장군도 위인입니다. 여러분은 그 이순신 장군을 다 좋아합니다.
그러면 이순신 장군이 참된 사람일까요, 아닐까요? 그건 모른다는 것입니다. 모르는데,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이러니까 '이상하다. 저 분이 왜 저래? 우리나라의 충신을 싫어하다니! 그러면 저 사람은 공산당인가, 민족 반역자인가?' 할 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이순신 장군을 싫어합니다. 왜 싫어하는지 얘기하겠습니다.
'이순신 장군' 하면, 한국 사람은 모두 충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원수로 압니다. 일본 사람은 이순신 장군을 원수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본의 역사책에도 밝혀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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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은 일본 사람 앞에는 원수요, 한국 사람 앞에는 충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이라는 것은 영국에 가도 참이요, 독일에 가도 참이요, 미국에 가도 참이요, 한국에 와도 참이요, 아프리카에 가도 참이요, 일본에 가도 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은 원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한 편에서는 좋아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싫어하는 것은 완전한 참이 못 되는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완전한 '참사람'이라면 일본 사람도 한국 사람과 같이 위인, 참사람으로 숭배해야 합니다. 그러나 참된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이순신 장군은 완전한 참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조금은 참사람이 될 수 있지만 말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참사람이지만,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의(異議)가 없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참된 사람을 원하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처럼 덜 참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참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앞에서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쁜 사람도 좋아하고 좋은 사람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을 나쁜 사람은 제일 미워해야 합니까? 나쁜 사람도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여기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섞여 있지만, 모두가 소망하는 것은 최고의 것입니다. 최고를 다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다 좋아한다는 것은 좋은 사람도 좋아하는 것이요, 나쁜 사람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쁜 사람이라고 해서 나빠하면 참이 아닙니다. 나쁜 사람도 최고로 좋아하고 좋은 사람도 최고로 좋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사람의 정의입니다. 참된 사람이란, 나쁜 사람도 제일 좋아하고 좋은 사람도 제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양반이 있으면, 그 양반이 참된 분입니다. (39-301)


  ② 참의 기원


참이라는 것은 개인에게 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를 넘고 넘어서 적용되고, 전체를 넘고 넘어서 가치적인 인연을 맺고자 하는 것이 참입니다. 참은 누구나 좋아하고, 누구나 찾는 것이기 때문에, 어디에나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63-89)


우리는 개인의 목적을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라 전체의 목적을 위해서 모였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개인보다 가정을 위하고 가정보다 민족, 민족보다 국가, 국가보다 세계를 먼저 위해야 합니다. 또한, 자기 개인이 참되기 전에 가정이 참되어야 되고, 나아가서는 국가와 세계가 참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자기 개체로서는 모든 복의 동기가 될 수 없는 복귀노정에 서 있습니다. 그러면 그 동기는 무엇이냐? 참입니다. 인간이 참된 모습을 이루려면 모든 생사화복(生死禍福)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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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관계를 맺지 않으면 인간 개체 내에서는 참된 모습을 이룰 수 없습니다. 
참은 반드시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을 전체적으로 수습하고 주관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반을 갖게 될 때 참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기반을 갖지 못하면 '참'이라는 명사는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참의 기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계심으로 말미암아 참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떠나게 될 때 참도 떠나게 됩니다. 거기에는 참이 아닌 악의 기원이 생기는 것입니다. 
참이 있어야 참된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계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이니, 선이니 하는 명사는 인간을 위주로 해서 세워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주로 해서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더라도, 참은 인간이 마음대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즉, 타락한 인간이 마음대로 관리하는 그런 자리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참이 우리를 주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참 앞에 굴복해야 됩니다. 참을 세우고 거기에 순응해야 됩니다. 여러분의 현실적인 생활이나 양심을 살펴보더라도 참은 완전히 하늘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참된 하나님, 하늘에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이란 말을 막연히 습관에 의해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참은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그것이 없었기 때문에 참의 기원은 인간들이 걸어 온 역사 배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초월한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즉, 그 기원은 환경을 초월한 자리에서부터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종교는 사람을 중심삼고 믿고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교주를 중심삼고 신앙의 표준을 세워 놓고 나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초월한 입장에서 하나님을 개재시켜 참을 추구해 나오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역사과정을 거쳐 온 수많은 인간들의 생활노정에서나 현실 사회에서도 참의 기원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인간 자체들로 연결된 자리에서는 참의 기원을 마련할 수 없습니다. 참은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절대자, 혹은 신(神)이라는 명사가 여기에 등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지금까지 땅 위에 참사람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을 지향하면서 사는 사람 자체로서는 참의 동기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동기는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반드시 종교나 인류 역사상에 있어서 최후의 중요한 분기점(分岐點)에 가서는 신이 등장합니다. 절대자가 반드시 필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철학이 추구하는 목표, 즉 진리를 통하여 최후의 목표를 두고 추구해 나가거나, 존재의 기원을 파고 들어가더라도 반드시 여기에는 신이나 초월자, 절대자라는 명사가 개재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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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왜 그러냐? 절대자와 관계를 맺지 않고는 어떠한 학문이나 존재 가치도 그 기원 문제가 해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심각한 자리에 가서는 반드시 참을 통해서 해결지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의 기원은 인간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절대자, 하나님이 개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을 주장하는 종교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참을 주장하는 인륜 도덕도 신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공자도 '순천자(順天者)는 흥(興)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한다.'고 했습니다. 천(天)을 중심하고 한 말입니다. 반드시 하늘을 개재시켜야 합니다. 흥망성쇠(興亡盛衰)가 인간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하늘이 동기가 될 수 있는 기원이 마련되지 않고는 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이 땅에 살고 있는 인류 가운데 참된 사람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러면 참이 머무를 수 있는 장소는 어디냐? 물론, 하늘을 기원으로 해서 참의 자리를 땅 위에 세우려고 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래서 어디에 머무를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우리의 생활 주변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참된 나라인 천국은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아무런 사심이 없는 깊디깊은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바탕을 분석해 보면 지․정․의(知情意)로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어디에 머무를 것이냐? 지․정․의(知情意) 중에서 무엇이 근본이냐? 그것은 의(意)도 아니요, 지(知)도 아닌 정(情)입니다. 
여러분은 자기에게 제일 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어디에 두고 싶습니까? 자기만이 아는 곳에 두고 싶을 것입니다. 거기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고 관여할 수 없는, 즉 자기만이 관리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곳이 어디겠습니까? 마음 깊은 곳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 묻어 두는 것입니다. '이곳이라면 안심하겠다!' 할 수 있는 곳에 두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이 흔히 귀중품을 넣어 두는 장롱 같은 곳에 두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참이 머무를 수 있는 곳은 자신의 마음 깊은 자리입니다. (24-317)


3) 참의 원기(原器)


참된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없어 가지고는 여러분이 기준을 세울 수 없습니다. '이렇다, 저렇다' 하고 평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기준에서 공증(公證)받을 수 있는 내용의 뿌리를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되는 그 존재는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미터(meter) 같은 것도 원기(原器)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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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중심삼고 맞고 틀린 것을 판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문제가 벌어진다면 여기에 맞춰 보아서 딱 맞으면 만세에 불평하던 사람도 일시에 다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186-66)


사랑에는 혁명도 없고 변화도 없습니다. 변하는 것은 귀한 것이 없습니다. 다이아몬드는 굳기에 있어서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보물 취급을 받는 것이요, 황금은 누런 색깔이 변하지 않는 특이한 권위를 가졌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또 진주는 조화된 우아한 색깔이 변치 않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귀하다는 보물들을 왜 변치 않는 특성을 중심삼고 책정했느냐? 그것이 우주 만물의 존재 가치를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우주의 모든 것을 측정할 수 있는 가치의 기준에서 제일 가는 기준이 무엇이 되겠느냐? 그게 문제입니다. 금이겠습니까, 다이아몬드겠습니까? 그것은 변치 않는 사랑, 깨질 수 없는 사랑입니다. 깨질 것 같은데, 깰 수 없습니다. 마음대로 할 것 같은데,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내가 포함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책정당하지 내가 책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우주에서 그러한 원인 중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도량형(度量衡)이나 원기가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어떤 측정기의 원기가 아니고, 변하지 않는 어떤 물건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그 표준을 변경시킬 수 없고, 인간도 변경시킬 수 없습니다. 영원불변하면서 보화의 가치를 지니고, 땅 끝이나 지옥이나 천상세계나 어디나 밤낮을 극복하고, 지역을 극복하고, 거리를 극복하여 절대적인 측정의 기준, 비교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지구에도 위도(緯度), 경도(徑度)의 영점기준(零點基準)이 있습니다.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가 그것의 영점이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변하게 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기준이 있어야 됩니다. 그게 없으면 질서의 세계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이 우주에서 측정될 수 있는 모든 존재가 그 등차와 위치를 결정하고 싶은 본래의 기준, 하나님도 거기에 따를 수 있고 전체가 거기에 안 따를 수 없는 하나의 기준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돈, 황금덩어리, 다이아몬드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하나님이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혼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사랑도 물론 하나님이 만들 수 있다고 보지만, 그 사랑을 소유한다는 것은 혼자로서는 불가능합니다. 둘이서, 둘이서 소유해야 됩니다. 사랑은 하나님도 혼자서는 못 찾는 것입니다. 그 기준, 측정 원기가 뭐냐? 우주 만상의 존재세계뿐만 아니라, 영원한 세계에서 모든 것을 측정할 수 있는 기준, 절대적으로 하나밖에 없는 그 원기가 무엇이겠느냐? 근본 문제입니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춘하추동, 계절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137-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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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거리를 재는 척도(尺度)가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만약에 1센티미터가 단위라면, 그 모델이라는 것은 절대적입니다. 그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비교해서 같으면 그것은 다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가 제일이라고 하더라도 원형과 비교해 봐서 안 맞으면 불합격자입니다. 
또, 1센티미터는 10밀리미터입니다. 거기서 1밀리미터라는 것도 절대적입니다. 그것이 열이면 1센티미터가 되고, 백이면 10센티미터가 됩니다. 이렇게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것이 연결되고, 어디에서든지 그것은 공통적이고 통일적인 내용을 지니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의 세계에는 그런 것이 없느냐? 사람들의 세계가 통일되려면 원칙적인 기준에서 몸과 마음이 싸우지 않고 하나된 폼(형태, 모양), '이래야 된다.'는 폼이 있을 것입니다. (128-78)


여러분! 미터가 있으면 그 미터가 1미터, 100미터, 아무리 크더라도 문제가 아닙니다. 그 미터의 기본 단위가 뭐냐 하면 1밀리미터입니다. 1밀리미터는 너무 작으니까 대개 1센티미터로 합니다. 아무리 크더라도 그 단위는 1밀리미터에서부터 전부 맞아야 됩니다. 이것이 전부 다 맞아 떨어져서 모든 것이 1밀리미터라고 하게 될 때, 그것을 우리는 세계의 것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1밀리미터, 한국의 1밀리미터, 혹은 영국의 1밀리미터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변함이 없습니다. 그게 진리입니다. 
여러분, 진리가 뭡니까? 참입니다. 참이 뭐냐? 그 이상의 기준으로 세울 수 없다고 하는 자리에 선 것을 참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물리학 박사도 와 있지만, 물리학을 공부하려면 자연세계의 모든 움직임을 알아야 됩니다. 그 움직이는 것이 막연하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 지구가 얼마나 큽니까? 이 방대한 지구가 1년에 한 번씩 태양 주위를 순회하는데, 그게 1분도 차이가 없습니다. 1초도 차이가 없이 딱 맞다는 것입니다. 그게 차이가 있으면 큰일난다는 겁니다. 차이가 있으면 자꾸 작아지든가, 자꾸 커지든가 하는 문제가 벌어진다는 겁니다. 그러면 육지와 바다가 전부 다 갈라진다 이겁니다. 
지구의 연령을 45억 년으로 잡는데, 45억 년 동안 이상 없이 공식 기준 위에 연결된 운동과 작동을 해온 것입니다. 거기에는 원리라는 것, 공식이라는 것, 공리(公理)라는 것을 중심삼고 측정하는 단위를 필요로 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참이라는 것이 뭐냐? 참이란 것은 하나에도 맞지만, 천만을 맞추더라도 맞아떨어지는 겁니다. 
금 중에서 순금은 24금입니다. 24금은 참금입니다. 25금, 26금은 없지요? 중앙에 세워서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그런 자리, 시각적으로 최소 단위로 돌아갈 때 수직적인 평행선상에 맞아야 참입니다. 이게 수직이면 이것이 평행이 되는데, 이렇게 틀어지면 안 됩니다. 이런 건 참이 아닙니다. 
그래도 24금까지는 이것이 직선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 기준권 내에 서 있기 때문에 24금이 참이다 하는 겁니다. 거기는 수직을 갖다 맞춰도, 종적인 기준 앞에 갖다 맞춰도 전부 다 맞는 겁니다. 우주적인 종 앞에 평행선으로 서고 우주적인 횡 앞에도 평행선을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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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대운동을 보면, 그것은 막연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다 법도를 중심삼고 움직입니다. 주체와 대상 관계의 운동을 하는 데는 반드시 수직입니다. 
그 수직이 변경되는 것은 날아가 버립니다.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깨져 버리는 겁니다. 수직이 딱 자리를 잡아야 공간세계에 자기의 자리를 잡고 존속의 기반을 갖게 마련이라는 겁니다. 이런 말은 좀 어려울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람의 잼대가 뭐냐? 사람도 잼대가 있어야 됩니다. 수학 문제를 푸는 데는 세계적으로 공통된 수리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푸는 것입니다. 어떠한 기준에 합격된 공통적인 기반이 세계적인 무대에 서게 될 때, 그런 것들을 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진리 가운데는 무엇이 있느냐? 진리 가운데는 반드시 동서남북의 사방이 있습니다. 진리가 있을 때는 반드시 환경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환경이 먼저냐, 진리 자체가 먼저냐?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환경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어떻습니까? 참된 인간은 어떤 인간이냐 이겁니다. 종횡의 표준이 되어야 합니다. '종으로 봐도 맞다. 찌그러지지 않았다. 횡으로 봐도 맞다.' 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종횡이 일치되어야 공식적인 법도상에 있어서 전후․좌우․상하의 차이가 없이 같습니다. 이것을 어디에 갖다 맞추더라도 맞아떨어진다 이겁니다. 동에도 맞고, 서에도 맞고, 북에도 맞고, 남에도 맞고, 지상세계에도 맞고, 영계에도 맞다고 하게 될 때, '참이다!' 이렇게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크더라도, 밀리미터로 측정해서 남은 것이 반 밀리미터도 안 된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전부 다 부정하게 됩니다. 불완전한 것입니다. 이것은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측정하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80-14)


4) 참과 참사람


여러분! 참이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것이 동그란 것이냐, 모진 것이냐, 넙적한 것이냐? 그것의 정의가 무엇이냐? 그리고 참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데, 무엇을 중심삼고 그 정의를 내릴 것이냐? 그게 문제입니다. 우리가 '참사람' 할 때, 그 참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참사람도 눈, 코, 입, 몸뚱이가 다 있습니다.
그러면 참이라는 것은 어떠한 일정한 장소의 제한을 받는 것을 말합니까, 일정한 장소를 초월하는 것을 말합니까? 초월하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 제한선을 넘어가야 되느냐? 그건 무엇을 말하느냐? 모든 것을 대표해서 잴 수 있는 내용을 갖추어야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175---
수학에서는 공식을 말하고, 물리에서는 공리를 말하고 정의를 말하는데 그것은 어떤 것이냐? 공식이라는 것, 그것이 조그마한 것입니까? 공식의 단위라고 하는 것은 간단한 것이지만, 그 공식적이라는 것은 모든 물건을 비교할 수 있는 주체성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야 공식이나 단위의 기준이 설정됩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그것이 틀리면 이 방대한 우주에 들어맞지 않는다 이겁니다. 
우리가 척도 같은 것을 보더라도 십이진법이라든가, 십진법 같은 것 등이 있습니다. 그것은 작지만, 형태는 다 맞아 들어갑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게 물려 돌아가지 않습니다. 전체가 물려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맞지만, 전체가 맞지 않게 될 때에는 이것이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전체 존재의 성립이 상실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인간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참된 사람이 뭐냐?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스케일과 척도와 같은 것이 있어서 힘을 연결시켜 세계로 확대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 다 균형이 맞게끔 확대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인생살이, 인간이 살아가는 길에도 그러한 공식적인 길이 있어야 된다고 하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133-9)


지금 인간세계에는 수십억 인류가 사는데, 이 지구촌에 사는 사람의 선조들은 얼마나 많은 숫자가 지상에서 살다 갔을까요? 그거 생각해 봤습니까? 적어도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몇백 배, 몇천 배의 사람들이 살고 갔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 가운데 인류가 바라는 참된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되겠느냐? 참되다는 것은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언제든지 참입니다. 
'순금' 하면 24금입니다. 그건 공간이나 시간에 따라서 변하지 않습니다. 어떤 입장에 처하더라도 변하지 않는다 이겁니다. 그것은 왕의 손에 가나, 어떤 불량배의 손에 가나, 어떠한 변화무쌍한 환경에 가더라도 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의 황금색을 참된 빛깔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황금색을 좋아하지요? 빛은 무엇을 닮았느냐? 황금색을 닮은 것입니다. 밝은 빛은 황금색에 가까운 빛입니다. 태양빛도 황금색입니다. 저녁 노을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천년만년, 억만년 변할 수 없는 색깔을 가진 그런 참된 남자가 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참된 여자가 있느냐? 어떻게 생각합니까? 
종교세계에서는 인간을 타락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배경이 다른 종교들도 있지만, 전부 다 구원받기 위해서 가치 있는 새로운 인간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 말은 무슨 뜻이냐? 참된 본연의 인간, 참된 본연의 인간상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언제나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천년 전이나, 억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후에도 인류가 존속하는 어떤 환경이나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그것을 추구하기 마련입니다.


---176---
여러분도 그 참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참된 남자, 참된 여자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생명을 지니고 태어난 남녀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거기에 목을 걸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마을에서 살게 되면, 그 마을에서 제일가는 참된 사람이 되겠다고 하는 겁니다. (177-100)


5) 참부모가 뭐냐


  ① 두 석판과 참부모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에서 인도할 때,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있었습니다. 낮에 인도한 것이 구름기둥이고, 밤에 인도한 것이 불기둥이었습니다. 그건 무엇을 의미하느냐? 남자 여자를 대표해서 끝날에 부모가 와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모심을 받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이 불 기둥과 구름 기둥의 인도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다 멸망하는 겁니다.
또,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 나가서 40년 동안 유리고객하며 방향을 잡지 못하니 하나님은 그 민족이 멸망할 것을 염려해서 모세를 시내산에 불러 올려서 40일 금식을 하게 하고 두 석판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아담과 해와, 참부모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법궤 안에 어찌하여 두 석판을 넣었느냐? 두 석판은 하나님의 뜻을 종결지을 수 있는 중심으로서 아담과 해와를 상징한 것입니다. 그래서 법궤 안에 집어 넣은 것입니다. (134-174)


우리의 소원이 뭐냐? 하나님은 종적인 부모요, 아담과 해와는 횡적인 부모인데 그 종횡의 부모가 하나되어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 된 것이 한입니다. 그런 사랑을 한번 받아 보고 싶어하는 열망을 다 갖고 있다 이겁니다. 종교도 전부 다 그런 것입니다. 
종적인 하나님과 횡적인 면에서 하나되어서 사랑할 수 있는 부모가 이 땅 위에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인류의 첫조상이 타락했기 때문에 거짓부모가 되었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거짓부모가 되었기 때문에 그런 부모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참부모가 나와야 됩니다. 참부모가 역사상에 나와야 됩니다. 
그러한 역사적인 사명을 대행하는 하나의 명사를 씌워서 부르는 그 존재가 누구냐? 이것이 구주라는 존재요, 메시아라는 존재입니다. 구해 주는 데는 무얼 구해 주느냐? 몸뚱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사랑의 소원을 이루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구하는 것을 이루어 주려면, 메시아는 어떤 존재로 와야 되느냐? 틀림없이 참부모로 와야 됩니다. 메시아는 참부모로 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기독교에서는 메시아, 구주로 믿습니다. 참부모로 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혼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참된 아비를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남자로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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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수많은 종교는 하나의 남자를 찾아 나왔습니다. 남자 중에서도 생활을 잘하는 남자를 찾아 나온 것이 유교의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고, 영계를 위주한 남자를 찾아 나온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뭐냐?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사랑하는 가정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인 내용을 갖고 온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있어서 '나는 독생자'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독생자가 나왔는데, 독생자 혼자 살다가는 큰일나는 것입니다. 독생녀(獨生女)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독생녀를 찾아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독생자와 독생녀가 서로서로 좋아하는 자리에서 결혼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종적인 부모로서 기뻐하고, 그 독생자와 독생녀가 횡적인 부모로서 기뻐할 수 있는 신랑 신부가 되어서 지상에서 아들딸을 낳아야 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일족이 퍼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이스라엘 나라를 저버리더라도, 유대교를 저버리더라도 제일 필요로 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이었느냐? 바로 여자입니다. 남자 앞에 여자가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그 뜻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죽어 가면서도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래서 기독교에서는 2천 년 동안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며 기독교 신자들이 신부 되겠다고 허덕이고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 표준이 뭐냐? 그것이 메시아인데, 참된 부모의 자리를 갖다 맞추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린양 잔치입니다, 어린양 잔치. (58-218)


  ② 참부모의 정의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가 뭐냐? 이게 문제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이 종적인 사랑이 되고,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몸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몸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뼈와 같고, 아담과 해와는 몸과 같은 것이다 이겁니다. 하나님도 마음이 있고 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적인 자리에서 내적인 부모가 되고, 아담과 해와는 외적인 자리에서 외적인 부모가 되는 겁니다. 내적인 부모와 외적인 부모가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사랑으로 결탁되어 참부모, 완성한 인간이 성사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결탁되지 않으면 완성한 인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본연의 우리 조상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연의 인간입니다. 그런 사람한테서 우리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신성을 지닌 사람에 의해서 우리가 태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성(神性)을 띤 하나님의 성품도 갖고, 인성(人性)을 띤 부모의 성품도 갖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과 해와의 완성은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에 묶어져야 완성이 나오지, 이게 묶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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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종적인 사랑과 횡적인 육적 사랑이 한 점에서 묶어진 것이 바로 우리 조상의 혈통의 뿌리입니다. 거기가 우리 조상의 혈통입니다. 거기에서 전인류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 때문에 남자의 사랑, 여자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다 갈라졌습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남자의 사랑, 여자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묶어지지 않았습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자동적으로 묶어집니다. 남자 여자는 자동적으로 사랑으로 묶어집니다. 왜 남자 여자가 하나되려고 하느냐? 사랑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으로 하나된 후에 뭘 하려고 그러겠느냐?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는 겁니다. 그것이 목적입니다. (184-71)


섭리의 시대를 보면, 복귀섭리는 끝날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끝날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종교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그 종교의 목적이 이루어질 수 있는 최후의 때가 부모님이 나타나는 때라는 것입니다. 
그 부모는 참부모인데, 참부모라는 분은 어떤 분이냐? 이게 문제입니다. 참부모라는 분은 우리 원리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원리결과주관권과 직접주관권, 즉 간접주관권과 직접주관권을 다 거쳐서 책임분담을 완성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의 이상을 이룬 부모입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님과 인간이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의 이상을 이룬 부모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상이 비로소 지상에 참부모의 가정을 중심삼고 착륙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 참부모의 이상이 깨져 나갔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책임분담이라는 사명을 앞에 놓고 원리결과주관권, 즉 간접주관권에서부터 직접주관권에 다리를 놓아서 이것을 다 완결지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이 간접주관권 내를 침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안 됩니다. 이걸 모르면 저나라에 가서 등록을 할 수 없습니다. (14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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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부모가 도대체 뭐냐? 이 우주가 생겨난 이래 비로소 참된 사랑, 이상적인 사랑이 스파크될 수 있는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부모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부모 앞에는 무슨 아들딸이 있어야 하느냐? 참된 자녀가 있어야 됩니다. 참된 자녀는 어떤 자녀냐? 참된 부모의 첫번째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안팎의 미를 갖춘 아들딸이다 이겁니다. (125-166)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라는 말이 뭐냐? 하나님이 참부모를 지명하신 것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 그게 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비로소 인간세계에 착륙했다 이겁니다. 참부모가 기점이다 이겁니다. (130-111)


참부모가 뭐냐? 하나님의 사랑을 핵으로 한 그 사랑을 중심삼고 아담과 해와가 완전히 절대적으로 하나되어서 출발할 수 있었던 최초의 우리 인간 조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걸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참부모를 모르면 참자녀라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 (135-161)


역사의 핵심이 되고, 시대의 핵심이 되고, 미래의 핵심이 될 사상은 무엇이냐? 다시 말하면, 역사를 두고 볼 때는 역사적인 열매요, 시대를 두고 볼 때는 시대의 중심이요, 미래를 두고 볼 때는 미래의 기원이 될 수 있는 세계의 사상의 중심은 무엇일 것이냐? 그것은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입니다. 
그러면 그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의 생활관은 무엇일 것이냐? 세계를 위하여 보람 있게 사는 것입니다. 둘이 사랑하는 것은 세계를 위해서 사랑하는 것이고, 아들딸을 낳는 것도 세계를 더 사랑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기 위해서 낳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이 우리가 지금 주장하고 있는 사상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여러분이 세밀히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내가 알고 있는 입장에서 볼 때는, 횡적인 모든 입체적인 세계를 보나, 종적인 세계 역사 전반을 보나 기필코 역사는 그 기준에서 해명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건 자동적인 결론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25-147)


타락의 기원이 되는 곳이 어디냐? 아담과 해와, 즉 한 부모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여 거짓부모가 됨으로 말미암아 모든 문제가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심정문제, 혈통문제, 인격문제, 언어문제, 생활문제, 국가문제, 세계문제가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한꺼번에 축적시킬 수 있고, 이 모든 것을 총합할 수 있는 참된 기준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이것은 어떠한 종족권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사회권 내라든가 국가권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세계권 내에서도 절대 불가능한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기원이 거짓된 부모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참된 부모의 인연을 중심삼고서만 복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중심삼고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중심삼고 본연의 혈통이 시작되고, 참부모를 중심삼고 본연의 인격이 시작되고, 참부모를 중심삼고 언어가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고, 참부모를 중심삼고 생활이 본연의 형태로 돌아가고, 참부모를 중심삼고 본연의 국가가 형성되고, 참부모를 중심삼고 본연의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전체를 총집약한 핵심적인 모체가 무엇이냐? 참부모입니다. 참부모 한 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의 모든 사상을 내가 전부 인계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의 심정, 그의 인격, 그의 생활관, 그의 국가관, 그의 세계관을 전부 인계받지 않고는 중심 된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28-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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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부모를 빼놓고는 교육도 없어야 되는 것이요, 생활 터전도 없어야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와 완전히 하나돼야 하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생활이 내 생활이요, 참부모의 이념이 내 이념이요, 참부모의 일이 내 일이요, 참부모의 사랑권이 내 사랑권이다.' 이렇게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습니까? (44-145)


  ③ 참부모는 인격의 실체


역사상의 성현들 가운데 '나는 인류 역사에서 인간들을 대표해서 몸과 마음이 싸우지 않고 완전히 통일을 이루었으니 내 본을 받아라!'고 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몸이 중요하냐, 마음이 중요하냐? 마음도 중요하고 몸도 중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내 몸 마음의 통일권입니다. 그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것이 안 된 사람은 아무리 세계가 통일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세계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입니다. (142-325)


지금 여러분은 몸이 다르고 마음이 다릅니다. 그러면 이것이 언제 하나될 것이냐? 지금까지 인류역사 노정에서 몸과 마음이 싸우는 이것을 통일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안 나왔다는 것입니다. 
바울 같은 사람도 탄식했습니다. '마음의 법과 몸의 법, 이 두 법이 있어 서로 싸우니,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다. 이 사망의 법에서 누가 나를 해방할 것이냐? 거기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했는데, 바로 봤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해방되는 것입니다. (164-41)


마음과 몸이 하나되지 못한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 아버지는 어떤 분이냐 하면, 이 우주의 근본 되는 종적인 사랑의 추입니다. 그 추가 땅에 내려지게 될 때에 하나님 혼자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하나님이라고 해도 사랑을 내리려면 수평선에서 이 기준을 끌어내릴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전기가 강하면, 마이너스 전기가 지상에 가까이 오게 되면 가까운 데서 벼락을 치는 것입니다. 내려와야 됩니다. 높은 데 있더라도 내려와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높은 사랑이 내려오려면 땅 위에 마이너스 사랑이 먼저 생겨나야 됩니다. 마이너스 사랑이 먼저 생기면 플러스 사랑은 자동적으로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게 쌍으로 되어 있습니다.
작용하는 세계에는 반드시 대응과 반작용이 있습니다. 서로서로 대응하고 서로서로 작용하는 반면, 반작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이 반작용이 대응하는 힘의 작용을 반대한다고 보지만, 그게 아닙니다. 반작용이라는 것은 대응된 존재들을 보호하기 위한 작용입니다. 이래야 이론적으로 선악의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선을 중심삼고 악이라는 것에 대해서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를 찾지 않고는 선악 대결의 역사를 치리할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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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어디를 통해서 왕림하느냐? 종적인 사랑이 설정되어야 합니다. 그 종적인 사랑이 종적인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횡적인 기반이 닦아져 들어와야 됩니다. 
남자 여자도 그렇잖아요? 철없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크게 되면 여자도 세계를 가지려고 하고, 남자도 세계를 가지려고 합니다. 그렇게 세계를 가지려고 할 때는 어떻게 되느냐? 이렇게 나가서는 안 됩니다. 어디에 가서 만나야 되느냐? 다 커서, 성숙해서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세계가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세계를 점령하겠다고 하지만, 점령하는 데는 내 힘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사랑이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힘이 있기 때문에 남자에게나 여자에게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이상과 꿈이 있는 겁니다. 여러분은 세계 전부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지요? 또 하늘이 있으면,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으면 그 보이지 않는 무한한 세계까지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종적인 욕망, 횡적인 욕망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횡적인 욕망은 횡적인 세계인 지구성 전체를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고, 종적인 욕망은 이 우주를 내 것으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몸뚱이는 제한되어 있습니다. 지구성의 한계선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종적인 세계는 얼마든지 커집니다.
그런 것을 볼 때, 마음의 자리를 대표할 수 있는 아버지가 하나님이고, 몸의 자리를 대표할 수 있는 아버지가 타락하지 않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인류의 시조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역사시대에 몰랐던 이러한 사실을 캐 가지고 참부모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횡적인 참부모의 자리가 본래 창조했던 이상관으로 본 하나님의 아들딸의 자리입니다. 즉 아담과 해와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뭐냐? 몸과 같은 것이 아담과 해와라면, 종적인 마음과 같은 아버지의 자리에 있는 것이 하나님입니다. 
마음과 같은 하나님과 몸과 같은 이 분이 하나되는 데는 무엇으로 하나되어야 되느냐? 힘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우리의 마음적인 인격, 몸적인 인격이 본래 하나될 수 있는 원칙적인 모델을 닮아 난 것이 내 개인이기 때문에, 원칙적인 근본을 찾아가 볼 때에, 몸 같은 아버지가 있어야 되고, 마음 같은 아버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마음적인 아버지의 자리가 하나님의 자리이고, 몸적인 아버지의 자리가 인류의 시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류 시조와 마음적인 아버지인 하나님이 어디에서 하나될 것이냐? 어디에서 하나되겠어요? 참사랑을 중심삼고 사랑의 구형 가운데, 핵의 자리에서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종적인 것을 중심삼고 남자 여자는 찾아가는 것입니다. (177-337)


6) 우리가 알아야 할 '참부모'의 어의(語義) 


 ① 참부모란 말은 귀하다


여러분은 참부모란 말이 얼마나 중요한 말이요, 얼마나 귀한 말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의 나라와 대통령, 선생님, 부모, 형제는 못 믿더라도 참부모만은 믿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참부모라는 관념 가운데는 지옥이라든가, 악한 사탄세계를 구할 구원의 관념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사탄세계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입장에 있는데, 부모가 여러분의 죽음 앞에 방패막이가 될 수 있는 힘이 되어 줌으로써, 하늘땅이 공인하고, 역사가 공인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자랑스럽겠습니까? 하나님이 보장하고 역사가 보장하는 참부모라는 것입니다. 참부모라는 말이 어떻게 나왔는지 그걸 알아야 됩니다.
레버런 문이 참부모가 되겠다고 이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레버런 문이 아니면 안 되겠으니까 할 수 없이 나서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116-113)


  ② 참부모란 말은 자랑스럽고 엄청나다


지금까지 우리 계대(繼代)의 입장은 어떤 것이었느냐? 우리 천만대(千萬代)의 선조들이 다 부활해서 그 부활된 영광을 찬양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타락권(墮落圈)에서 벗어나지 못한 영광이요, 찬양이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라는 말은 어떤 것이냐? 여러분의 자리는 비참하더라도 천천만 선조들, 혹은 만민의 해방권을 갖춘 영광의 자리에서 찬양하는 이상의 가치를 지닌 자랑스러운 말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부모님을 만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연결되고, 통일교회를 만난 이 자리에는 불원한 장래에 하나님의 나라와 부모님이 원하는 조국을 찾을 수 있는 길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류는 문화 배경이 다르고, 국경이 다른 나라에서 자기들의 조국이라고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과거의 조상들이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고, 후손들도 살겠지만 그것은 전부가 타락권임에 틀림없다는 겁니다. 
그 타락권을 박차고 나가서 오늘의 승리를 선조들과 더불어, 자기의 일족과 더불어 미래의 후손들 앞에 자랑스럽게 찬양할 수 있는 사랑의 조국을 찾아야 됩니다. 그 사랑의 조국 가운데서 사랑의 부모를 가질 수 있고, 뿐만 아니라 조국의 중심인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을 모실 수 있다고 할 때는 그 이상 영광스러운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138-106)


메시아는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한 아담격이기 때문에 본연의 아버지의 자격으로 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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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그 아버지를 중심삼고 어머니가 센터가 되어서 하나님의 본연의 사랑을 중심삼은 그 터전을 중심삼고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 기준까지의 소유권이 참사랑을 중심삼고 메시아의 것으로 된 이후에 국가의 것이요, 국민의 것이요, 가정의 것이요, 개인의 것이라는 소유권 판도가 벌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메시아 본연의 사랑이 비로소 개인에서부터 국가까지 형성되어서 로마와 세계까지 그 파문이 전파되었더라면, 오늘날의 재림 사상은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미국이 하나님의 사랑권에 속한 나라입니까? 아닙니다. 이 지구상에 그런 과정을 통과한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중심삼은 수많은 교회들이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 원칙에 일치된 소유권에 속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없습니다. 하늘나라가 지상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참부모라는 말이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엄청난 말이냐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타락권 사탄세계를 뚫고 올라갈 수 있는 하나의 기지가 됩니다. 
그러니 참부모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 말만을 천 번 듣고, 만 번 듣고도 감사해 하고 남을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129-194)


  ③ 참부모란 말은 놀라운 말


우리는 인류 시조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고향을 잃어버렸습니다. 또, 나라를 잃어버렸고, 세계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잃어버렸고, 하나님의 사랑까지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런 방대하고 엄청난 모든 것을 다시 찾을 수 있는 하나의 기원이 무엇이냐 하면, 참부모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소원해 오신 섭리의 목적이 무엇이냐? 참부모 기준입니다. 인류가 타락 이후 지금까지 탕감역사를 해 나온 것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냐? 참부모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지금까지 한날의 소원을 바라고 재림의 날을 기다리는 것도 이것을 위한 것이요, 수많은 종교가 전부 이 한 날을 바라고 있는 것도 이것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할 때, 참부모가 태어난 것은 무섭고도 놀라운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고향에 가려고 하는 것은 거기에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중심삼고 연결된 사랑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런 고향을 품고 있는 나라, 그런 고향의 사랑이 연결될 수 있는 그 나라를 사람들은 자기의 조국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조국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연의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에게는 고향도 없고, 조국도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에도 없습니다. 있다고 해도 그것은 악과 관련이 있는 것이지, 우리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참과는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67-227)


---184---

통일교회의 참부모라는 말은 놀라운 말입니다. 거짓부모는 사탄의 사랑을 중심삼고 떨어졌지만, 참부모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올라가니, 사랑의 세계로 전진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그 사랑을 찾아가려고 하느냐? 사랑은 위대한 것입니다. 영원히 평등한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아무리 높은 자리에라도 한꺼번에 동참할 수 있는 자격을 갖는 것입니다. (144-241)


통일교회에서는 참부모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거 놀라운 말입니다. 참부모가 뭐냐? 거짓부모가 생겨났으니 참부모가 나와야 됩니다. 참부모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사탄세계의 뿌리가 되는 그릇된 혈통을 바로잡아야 되고, 그릇된 생명을 돌이켜 놓아야 되고, 그릇된 사랑의 길을 바로 열어야 됩니다. (169-39)


선생님이 잘생기지는 못했지만 변하지 않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이상적인 목적의 기준, 그 정착점이 뭐냐 하면 참부모입니다, 참부모. 그러면 하나님의 뜻의 완성이 뭐냐? 창조이상의 완성이 뭐냐? 아담과 해와가 사랑이상을 이루어서 직접주관권 내에서 부모의 자리에 서는 것이 이상적인 기준입니다. 그게 뜻의 완성의 자리입니다.
선생님이 이 땅 위에 참부모라는 이름을 가지고 온 것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참부모라는 말! 세상의 말 중에 제일 복된 말이 무엇일 것이냐? 타락한 인간에게는 그 나라를 잃었다가 찾는 것보다도, 세계를 잃었다가 찾는 것보다도 참부모라는 말이 제일 복된 말입니다. 그것은 천지의 그 무엇보다도 귀한 말입니다. (127-221)


  ④ 참부모란 말은 무서운 말


통일교회에서의 무서운 하나의 가르침이 무엇이냐? 그것은 '참부모'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도 무서워하는 말이요, 사탄도 무서워하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은 타락권 내에 있기 때문에 참부모를 중심삼고 볼 때, 그 참부모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분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나왔기 때문에 심판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니까, 하나님이 그분의 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또, 사탄이 왜 참부모라는 말을 두려워하느냐? 이 말을 믿고 따라가는 날에는 자기의 모든 것이 파괴되어 버리고 파탄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지극히 무서운 말이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언제나 참부모의 가는 길을 막으며 쓰러지기를 바라고, 나빠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이 길을 따라가는데 얼마만큼 믿고 따라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첨단의 자리에 섰다면 한 발짝 한 발짝, 행동 하나를 천년 이상의 정성을 다해서 감격하면서 가려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65-277)


---185---

저는 참부모의 이름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평온한 자리를 찾기 위해서 삶의 길을 취한 것이 아니라, 이 뜻의 사명을 완결짓기 위하여 지금까지 싸워 나왔사옵니다. 지난날을 회상하면 사연도 많고 억울함도 많았습니다만, 당신의 사연, 당신의 억울함에 비할 수 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당신 앞에 보일 수 없는 부끄러운 모습임을 아옵니다. 그런 것을 느끼는 저의 마음을 아시사, 이 날을 기하여 천상세계와 지상세계의 문을 여시옵소서! (134-116)


참부모가 무엇이냐? 참부모란 말이 그리 간단한 말은 아닙니다. 제일 무서운 말입니다.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모릅니다. 
이 참부모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역사가 좌우됩니다. 이 말을 찾아 세우기 위해서 지금까지 수많은 선열들이 희생의 길을 갔습니다. 연속적인 피의 투쟁을 거치고 몸부림치며 절규하면서 소망을 품고 찾아 세운 이름이 참부모라는 거룩한 이름입니다. 
참부모 앞에는 참자녀가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은 참자녀가 되었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참이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33-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