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장
주님은 철장으로
그들을 지배할 것이다.
예수님의 복음은 왕국의 복음이다.
좋은 소식은 전통적으로 십자가 처형,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만 설명되어진다. 그러면 예수님은 좋은 소식에 대해서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의 복음은 왕국의 복음임이 드러난다. 마태복음에서 만도, 예수님은 다가올 왕국의 메시지를 주변에 모여든 군중에게 40회나 설교한다.
대조적으로 그는 임박한 십자가 달림에 관해서는 단지 3번만 그의 핵심 제자에게만 말한다. 신약 전체를 통해, 예수님의 설교는 하나님 주권 통치의 메시지 전달에 집중된다.
이때부터 비로소 예수께서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시더라.
마태 4:17
그리고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악한 것을 고치시니.
마태 4: 23
두루 다니시며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마태 10:7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태 24:14
그 때에 그 임금이 그 오른 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마태 25:3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로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 . . 마가 1:14
마태 6:33에서, 예수께서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우리가 내일 일을 걱정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하나님 왕국을 추구해야 함’을 명백하게 하신다. 예수께서는 “먼저 너의 민주주의를 추구하라”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너의 공산주의를 추구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또한 “어떤 쓸모없는 졸업장를 추구하라”라고 하지 않았으며, 그는 “왕국과 의를 먼저 구하라 그러면 모든 것이 너에게 보태리라”고 말씀하셨다.
마태 9:35에서, 예수께서 모든 마을과 동네로 다니시며, 회당에서말씀하시며 왕국의 복음을 설파하며, 군중들의 모든 병을 치료하셨다.
누가 4:43 에서는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나는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왕국 복음을 전해야 하며,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라고 하셨다. 그는 십자기 처형의 복음, 혹은 사망의 복음, 그리고 3일째 날에 있을 부활의 복음을 전파하러 왔다고 말씀하지 않았다. 그와는 정반대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왕국을 전할 목적으로 보내졌다’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그의 왕국은 영적인 존재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존재가 되어야 함을 분명히 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다. 왕국이 임하옵시며,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 6:9-10. 그것은 단지 우리가 죽은 후에 들어가는 장소인 천상의 왕국만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그가 이 땅에 안내하게 될 정의와 선이 함께하는 왕국이 될 것이다.
철 장
우리는 말세에 살기 때문에, 천국에 관한 약속은 지금 실행되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으로부터 계시와 영감을 받고 있다. 예수께서는 새로운 이름으로 오실 것이며(계시록 3:12), 그는 예수님과 함께, 선한 사람들이 철장으로 지배하게 될 통치권을 수립할 것이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리며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시편 2:8-9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를 다스려 질그릇을 깨뜨리는 것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계시록 2: 27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계시록 12:5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를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계시록 19:15
예수께서 재림하면, 말씀이 나라를 심판하는 그런 통치지가 될 것이다. 요한이 계시록을 쓸 때, 칼은 보통 전쟁의 무기였다. 칼은 주권이 그들 권력의 위치를 유지했던 수단이었다. 즉 그것은 그들의 군주에 대해서 사탄이 지배하지 못하도록 안전하게 지켰다. 하나님의 왕국이 지상에 다가 올 것을 대비하여 예수님을 중심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악의 권세 보다 강력한 불의 권세를 휘두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계시록 20장)
신약 성경의 마지막 책의 말씀에서는 재림할 때 예수께서 어떻게 통치하실 것인 지를 나타내 보여주는 중요한 장비로 그리고 필수적이고 물리적인 도구로써 철장을 묘사하고 있다. 계시록 20장에서는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을 처벌하기 위해 사탄을 불 연못으로 던져넣고,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사악한 자들을 대적하기 위해 불의 힘을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는 예수님과 무기를 결합시키는 것은 어렵다. 그 두 실체는 상호간에 배타적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치명적인 힘 때문에 총을 두려워한다. 죽음을 야기시키는 물건은 반사적인 동작을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어 종종 ‘어떤 시민도 총을 소유해서는 안된다’라는 믿음을 가진다. 집단체제 신봉자들은 하나님만이 생사에 관한 힘을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주장은 다음 의문을 제기한다. 어떻게 보이지 않는 신이 무기를 통제할 수 있을까? 그것이 일상생활에 어떻게 작용하는가?
하나님 편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를 방어할 힘이 부족할 때, 악은 많이 득세하게 된다는 것은 아주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그예로써, 중앙 집권화 된 정부는 지난 100년에 걸쳐 2억 2천만 명의 비무장 시민들을 학살했는데, 그들 중의 다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살해됐다.
정통 기독교 작가이며 러시아 반체제주의자인 알렉산더 솔제니친(Solzhenitsyn)은 중앙정부에 의해 자행된 비극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었다. 조셉 스탈린(Stalin)이 세운 수용소 노동 캠프에서 죄수로 8년을 보냈다. 솔제니친은 러시아 문학의 거장인데, 공산주의에 의해 야기된 6천만 러시아인들의 죽음의 주요 이유를 묘사할 떼 이렇게 간단히 표현했다. “인간이 하나님을 망각했다. 그것이 이런 모든 일이 발생한 원인이다.” 1)
기독교인들은 보다 높은 권위를 인식한다.
기독교인으로, 우리는 사탄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지배하고, 노예로 만들고, 살해하기 위해서 국가의 힘을 사용해 왔다. 기독교는 특히 국가의 정체성에 대해 위협이 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는데, 왜냐하면 기독교는 개인의 가치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결속을 만들고, 연대를 장려하고, 곤궁에 빠진 사람들을 돕는다. 여러 정부들은 기독교는 사회적 봉기가 힘을 얻을 수 있는 채널이 될 것이라고 두려워한다.
예수님의 인생과 교훈을 공부하면, 성경은 충성과 대조적인 가르침을 밝히는 경우가 있다. 예수님은 평생을 정치적인 집무실을 취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로마제국에게는 잠재적으로 위험한 인물로 여겨졌다. 해롯왕은 유대 왕으로서 무심코 예수님의 지위의 타당성을 확인하고, 주님 탄생기에 태어난 모든 남자 아이들을 대량 살해하는 법령을 내렸다. 첫 세권의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은 반복하여 하나님의 임박한 군주통치를 설파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화신이시며 유대의 왕이란 주장들은 그가 유대민족이나 로마 지배층으로부터 받은 가혹한 반응에 있어서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예수님은 유대 지배계층에게 충격을 주어 화나게 했던 진정한 혁명가였다. 그 이유는 그가 단신으로 그들의 충성심에서 주권적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그를 따르는 것은 로마의 집권세력 위에 있는 반란의 지도자를 존경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충성심의 이동은 유대교 지도자들을 불안정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으로 처하게 했을 것이다.
로마당국은 재빨리 그리고 단호하게 잠재적 가능성이 있는 반란을 다루었다. 그 나라는 노예나 반란자들을 다룰 때 행하는 전형적인 행위로 고문과 십자가 처형을 주저하지 않았다. 대규모 군중을 움직일 수 있는 기적을 일으키고 카리스마가 있는 유대의 예언자는 체제유지에 위협적인 인물로 쉽게 감지되었다.
예수님은 힘의 사용을
거부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파시스트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는 사원 안에서 탐욕스럽고 자기 잇속만 차리는 환전상들을 혼을 내기 위해 채찍을 사용했을 때 예수님은 그가 직접 힘을 증가시키는 무기를 제조했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22:36에서 제자들에게 말하면서 군대 수준의 방어무기를 사용할 권리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르시대 이제는 지갑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짐 보따리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8:6에서, 그의 사형에 대해 저항해 줄 것을 제안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리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게
하는 것이 나으리라.
진실은 예수님이 유대인과 로마 지도층에 천국의 복음으로 위협을 가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점차로 분노하고 위협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 발언은 그들의 중앙집권 권력을 전복시키려는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재림의 시기에, 그가 재림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어떤 식의 통치자로 기대할까? 어떤 기독교인들은 인간이 하나님의 왕국에 의해 지배되는 때가 되면 하나님의 왕국이 우리를 안내하게 될지 아닌지를 궁금해하고 있다. 또 일부는 예수님의 통치가 공공연하게 억압적이 될 것이라고 암시했는데, 그 곳은 모든 민족들이 절대적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게 되어 왕 중의 왕이 지배하는 곳이 된다. 아마 비밀리에, 어떤 교인들은 하나님 왕국에서, 추측컨대 그곳은 전체주의 통치가 될 것으로 간주하여, 사느니보다 자유로운 미국에서 사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사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기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는 양치기
그러나,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통치에 대해 사용된 그리이스 단어를 조사해 볼 때, 성경은 예수님이 재림하게 될 때, 그가 전과 똑 같은 인격체를 가지리라는 것을 나타낸다. 2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리이스어 ‘poimaino’는 계시록에 있는 철장이란 구절에서 예수님의 통치를 언급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이다. 철장 통치는 ‘poimaino’ 이다. ‘poimaino’는 문자 그대로 독재자가 아닌 양치기로 행동함을 의미한다. 양치기는 목동, 보호자, 안내인, 그리고 안전요원이다. 좋은 양치기는 그 양떼를 공포에 떨게하지 않으며. 철장으로 양떼를 지킬 것이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막대기
와 지팡이가 나를 편안하게 하리라 - 시편 23: 4
‘Poimaino’ 통치는 보살피는 통치이며, 정의롭고, 자비롭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왕 중의 왕, 예수님은 그의 양떼를 잘 알므로 왕국에서 여전히 좋은 양치기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 히브리스 13:8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 있기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아주 강해서 악의 힘이 그들을 파괴할 수 없기를 바라는 보호자 아버지이시다.
사악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선하고 도덕적인 사람들은 정의를 수호하는 데 있어 굳세고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해야 하며, 단지 철장만이 예수님의 추종자들이 폭군에게 ‘아니요’를 말할 능력을 제공한다. 인간의 고통이 끝임없이 반복되어 왔는데, 중앙집중화된 정부, 귀족계급, 법위에 있는 엘리트 상위그룹에 의해 반복해서 영세농으로 지배당했다.
그러나 과거의 군주 국가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왕국은 완전히 바뀐 왕국이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나님의 왕국에서는, 이전에 신령면에서 가난한 자들과 노예였고 농노였던 사람들이 왕국의 권위와 힘을 전수받아 주님과 함께 공동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마태복음 5장 참조) 예수님은 결코 전체주의 군주로서 통치하지 않을 것이며, 그가 수령으로서 통치하는 동안 우리는 왕국의 공동 상속인이 될 것이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 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로마서 8:15-17
예수의 고통과 영광을 같이 나눠가진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 인생을 예수님에게 바쳤으며(로마서 13:14 참조) 견고함과 정의뿐만 아니라 사랑과 자비로 큰 힘을 행사하기 위해서 신임받은 자들이 된다. 그의 산상설교에서, 예수님은 개개인 제자들에게만 설교한 것이 아니라, 그는 또한 다가올 왕국의 상속자들의 문화에 대해 인류를 교육하고 있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이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해서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 3-12
그의 무한한 지혜로 인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권이 있는 왕국, 무장한 사람들에 필요한 특성을 가르치고 계셨다. 겸손, 열정, 자비, 순결, 의로움 - 이러한 것들은 왕국의 미덕이다. 그 때 왕국은 기독교의 틀 안에서 철장을 이용한다. 철장은 단지 왕국을 유지하기 위해서 적절하게 도덕적인 예수를 갈망하는 시민들에 의해 사용될 수 있다. 찰스 캐롤(Carroll)같은 건국자들은 이 점을 이해했다.
도덕이 없으면, 공화국은 한시도 유지될 수 없다 ; 그렇게되면
그들은 기독교란 종교를 매도하게 되며, 기독교의 도덕성은 아주 숭고하고 순수하지만, 그리고 자유 정부의 최선의 보안책인, 도덕성의 굳건한 기초를 약화시키게 된다. 2)
하나님 왕국의 시민들은, 예수의 주권을 공유하게 되며, 철장으로 그들 가족과 이웃 그리고 나라를 방어할 책임을 지게된다. 철장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들은 육체적인 훈련뿐만 아니라 영적인 훈련을 경험하도록 소환된다. 그래서 그들은 개인과 국가기준에서 이런 왕국의 가치를 구체화할 수도 있다.
철장은 왕국 시민들이 힘을 통해서 평화를 유지하게 해준다. 그리스도의 공동 상속자는 왕국의 보호자가 되며, 스스로 통제를 하며 쉽게 화를 내지 않는다. 무기를 소지하는 자는 높은 수준의 훈련과 경계심을 유지해야한다. 자신을 숙달시키는 방법은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시민들은 그들이 철장을 지니게 될 때 굉장한 힘을 지니게 된다. 일단 총알이 발사되면, 그것은 결코 다시 돌아올 수 없다.
모든 책임있는 부모들은 그들 생활에서 위험한 순간에 자녀들을 보호할 선천적인 본능이 있다. 하나님 왕국은 우리가 이웃의 지킴이가 되는 문화를 분명히 보여준다. 철장은 허약한 사람이나, 나이가 많거나 혹은 자신의 존엄한 자주권을 유지하는데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철장 문화의 근본 원리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무장한 시민은 악을 행하는 자, 독재자, 사탄의 힘에 의해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아니오”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무장한 시민들만이 “아니오”를 말할 수 있다. 당신은 나를 지배할 수 없으며, 죽일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고, 나를 노예로 만들 수도 없으며, 나를 강간할 수도 없고 나와 나의 사람들에게 악을 행할 수도 없다. 당신이 나에 대해 치명적인 힘을 사용하려고 한다면, 나는 나자신과, 사람하는 사람들, 혹은 나의 왕국을 보호하기 위해서 치명적인 힘으로 대응할 것이다.
하나님 가족의 일부로써 그리스도의 주권을 공유하면서, 하나님 왕국의 시민들은 자랑스럽게 왕족의 왕관을 쓰게 된다. 우리의 충성심은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에 대해서이며, 국가의 신에 대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다음을 말한 이유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하라. (요한계시록 3:11)
우리가 왕관을 쓰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모든 폭군정치를 반대하며, 하나님의 왕국 시민으로 일어 서게된다.
18세기 미국인의 봉기 정신은 식민지 개척자들이 하나의 군주만을 즉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정신에서 영향을 받았다. 영국에서 임명한 한 주지사는 아래와 같이 했다.
당신이 만약 미국의 한 사람에게 누가 주인이냐고 묻는다면?
그는 당신에게 ‘자신은 어떤 사람도 어떤 정부도 아니라,
단지 예수 그리스도만 고려한다’라고 말할 것이다. 3)
이와 비슷하게, 영국인 시장 피트카인(Pitcairn)은 미뉴터멘에 운집한 다수 군중에게 소리쳤을 때:
“해산하시오, 그대들 반역의 무리들이여! 영국 주권자
조지왕의 이름으로 말하노니 여러분의 무기를 내려
놓으시오.”
그러자 조나스 크라크(Clark) 목사는 이렇게 응답했다.
“우리는 하나님 이외는 어떤 주권도, 예수님 이외는
어떤 왕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4)
비록 미국이 심각하게 하나님의 뿌리에서 벗어나 방항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이 특별한 나라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 이유는 미국 독립혁명은 미국인은 무기를 지닐 권리를 여전히 갖고 있다는 고귀한 가치에 근거하여 뭉쳤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사용하는 그 목적은 하나님이냐 아니면 배후에서 힘을 작용하는 사탄이냐를 결정한다.
무기는 힘이며, 혹은 힘의 곱셈이다. 우리가 폭군으로 부터의 자유, 자유의 보호 같은 의로운 목적을 위해서 총을 사용하면, 하나님은 그들 위에 권위를 부여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시편 2:8의 소유를 실현하기 위해 세상 끝까지 주신다는 이유는 우리가 이기주의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대신해서 책임지는 관리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남자·여자가 철장을 지니고 그들의 소유로 세상을 지구를 가질 때, 세상의 악한 독재자들은 두려움을 갖게 될 것이다. 무기를 지닌 양치기는 늑대에게 실망을 안겨주지만, 그들은 양떼에게 평안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고 그의 음성을 인식하는 사람들을 보호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철장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지배력을 가지도록 소명된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왕관과 철장에 대해 감사드린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숭배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숭배하며, 그 분이 우리에게 주신 주권과 권위에 대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