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기도 - 결단편
오늘도 변함없이을 향해 달음질치게 하소서
오늘도 변함없이 뜻을 향해 달음질치게 하소서 (아버지의 기도 - 결단편)
오늘날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은 마음으로 천국을 고대하고 그리워하고 있으나
천국을 찾는 데에 싸움의 행로가 남아 있다는 것은 망각하고 있사옵니다.
더욱이나 끝날인 오늘날에는
역사도 변하고 있고, 신앙도 변하고 있고, 인심도 변하고 있고, 전통도 변하고 있고, 주의도 변하고 있고,
이것 아니면 죽는다던 사랑의 심정도 변하고 있는 이때,
변하지 않는 이념, 변하지 않는 모습,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자체, 그것,
그 동산, 그 세계, 그 주권, 그 지도자, 그 음성, 그 생활, 그 환경이 그립사옵니다.
아버님!
맺혔던 가슴을 여시옵소서.
통일신도들이 가는 걸음에 핍박이 있다 하더라도
그 핍박을 저희가 가는 길을 막는 악의 요소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저희를 하늘의 심정으로 더 가까이 몰아내주는 자극적인 작용으로서 이용할 수 있는
신도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핍박은 핍박이 아니라
심정을 연결시키기 위한 아버지의 역사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의 은사 앞에 길을 막는 자신이었음을 탄식하는 마음이 우러나게 하시옵소서.
이제 심정의 자극을 받고 사명감에 불타,
오라 하실 때에 기쁘게 오고, 가라 하실 때에 기쁘게 갈 줄 아는 사람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부르시는 음성을 고마워했거든 명령하시는 음성도 고마워하며
원수들의 진영을 향하여 돌진할 수 있는 하늘의 용자들이 되고,
하늘 세계의 주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는 화살을 맞아 쓰러지는 자도 있을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런 마당에서도 패배하여 후퇴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행복에 잠겨 아버지와 의논하는 순간이 있는 반면에
싸움터에서 피눈물을 뿌리고 하늘의 원한을 호소하며 쓰러지는 순간이
이 아들딸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쁨도 책임지고 슬픔도 책임지고 싸움도 책임지고 억울함도 책임지고,
끝날의 심판대 앞에서 역사적인 것을 거부하고
‘아버지시여, 손을 들어 저희를 축복해 주시옵소서.
아버지시여!
저를 보고 분함을 참으시옵소서.
아버지시여!
저를 보고 고통과 억울함을 참으시옵소서.
아버지시여!
저를 보고 수고를 거두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아들딸이 나타나기를 바라기를 육천 년,
조심스럽게 찾아오시기를 육천 년이셨으니,
아버지, 황공하고 망극하옵나이다.
찾으시는 그 시선, 찾으시는 그 모습, 조심스러운 그 발자취를 저희가 망각하였나이다.
이제 저희가 아버지 앞에 서고, 아버지와 인연된 생활을 하고,
아버지를 대신하여 조심히 찾아가야 할 길을 가게 해주시옵소서.
이 길을 다 간 후에,
이 길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찾아갈 수 있는
방향을 가르쳐 주어야 할 저희들이온데, 그런 천적인 명령을 받은 저희들이온데,
여기에서 슬픈 눈물을 흘리며 후퇴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 이때는 많은 무리가 필요치 않음을 아옵니다.
이때는 넘고 가야 할 때요, 이때는 청산하고 가야 할 때요,
이때는 모든 것을 맺고 넘어가야 할 때요, 이때는 있는 그대로 나타나야 할 때입니다.
이 길은 불평하는 자 못 갈 길이요, 스스로 변명하는 자 못 갈 길이요,
스스로 자기를 세우는 자 후퇴할 길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 길은 예수님이 피 흘리며 가신 십자가의 길,
연장된 골고다의 길인 것을 알았기에 변명할 몸이로되 변명할 줄 모르고,
자기 자신을 세워 자랑하고 싶으나 자랑할 줄 모르고,
분함을 알면서도 밟히며 가야 할 길임을 알았사옵니다.
육천 년 섭리노정에서 이런 길을 걸어간 하늘의 성도들을 생각할 때 원통하옵나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아버지의 심정이 더 원통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회개해야 할 저희들이옵니다.
슬픔 중의 슬픔이요, 말할 수 없이 후회해야 할 사정인 줄 아옵니다.
저희 일체의 소원이 아버지 것이요, 저희의 일체가 아버지의 소유요,
저희의 심정과 사랑의 중심이 아버지시온데,
이러한 것을 느끼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불쌍한 자임을 아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그런 아버지를 알고 붙드셨기에 죽음도 두렵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원수를 대하여 복을 빌던 그 늠름하고 여유 있는 인격이 그립사옵니다.
그 걸음이 그립사옵니다.
오늘도 내일도 역사의 변함과 생활의 변함과 자기 일신의 변함을 비웃을 수 있는
승리의 왕자는 어디에 있사옵니까?
아버지, 그립고 그립습니다.
역사적인 주인공, 시대적인 주인공, 미래적인 주인공이 갈라질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실체로 나타나고 당신의 심정을 인간들에게 옮겨 줄 수 있는
그때, 그 세계, 그 동산이 그립사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무리가 나와야 되겠고 교단이 나와야 되겠사옵니다.
모든 것을 잊고 그것을 찾기에 준비하고
성심을 기울여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모든 것을 탕감하고 아버지 앞에 서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개의치 않고 달음질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면서,
모든 말씀 주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959. 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