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기도
믿음편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체휼케 하소서 / 9
예수님의 대신자가 되게 하소서 / 12
그리스도의 생의 가치를 실현하게 하소서 / 16
예수님의 심정을 체휼하며 골고다의 길을 가겠나이다 / 20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 25
그리스도의 심정을 체휼하게 하소서 / 30
하늘의 애달픈 심정을 체휼하게 하소서 / 34
예수님의 슬픔을 해원하는 한 날이 되게 하소서 / 37
이 날, 예수님의 심정을 헤아리게 하소서 / 42
배척당한 예수님의 슬픈 사정을 통찰케 하소서 / 45
십자가를 넘어 부활의 영광을 노래하게 하소서 / 49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모습 되게 하소서 / 52
예수님의 슬픈 심정을 느끼게 하소서 / 58
예수님을 통한 역사적 통한의 심정을 느끼게 하소서 / 62
예수님의 슬픈 심정을 붙들고 나서는 자녀 되게 하소서 / 66
뜻 저버린 이스라엘을 교훈 삼게 하소서/ 71
메시아를 맞이하기에 합당한 모습 되게 하소서 / 75
예수의 위로자가 되고 위안자가 되게 하소서 / 80
예수와 같이 천적인 책임을 감당하게 하소서 / 83
예수의 역사적 서러움의 한 날을 회상케 하소서 /86
예수와 같은 심정으로 아버지 앞에 서게 하소서 / 90
한을 남기고 가신 예수님의 심정을 위로케 하소서 / 95
이스라엘이 못 한 사명을 저희가 이루어 드리게 하소서 / 100
예수님이 못다 이룬 뜻 해원성사하게 하소서 / 105
예수님의 한을 해원성사하는 통일교단 되게 하소서 / 109
마지막 개척자의 사명을 다하게 하소서 / 114
한 많은 복귀의 길을 책임지게 하소서 / 117
복귀의 노정에서 승리하게 하소서 / 121
복귀섭리의 책임을 다하는 자녀 되게 하소서/ 125
원리와 일치하는 견고한 기반을 닦게 하소서/ 128
미래의 소망세계를 상속받는 모습 되게 하소서/ 132
심정의 체휼을 갖게 하소서 / 136
하늘의 사정과 심정에 인연 맺어질 수 있게 하소서 / 141
뜻 중심한 하나의 몸과 마음 갖게 하소서 / 145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체휼케 하소서
아버님!
사랑하는 제자들을 남겨 두고
십자가의 고개를 넘어
영원한 세계로 가야 하는
예수님의 심정을 알게 해주시고,
3년 동안 희로애락을 같이하며 따르던
사랑하는 제자들을 당신의 무릎 앞에 모아 놓고
염려하시며 간곡히 부탁하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체휼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으로 헤아리고
몸으로 체휼하여
그에 응할 수 있는 마음이
하늘에 사무치고
땅 위의 인간을 움직여
그의 마음이 동하면 같이 동하고,
하나의 뜻을 대하여
겸손한 제물로 드려질 수 있는
사랑하는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고해와 같은 처지에서
따르던 수많은 무리는 다 떨어지고 12사도만 남았으나
그 가운데서도 오래지 않아
자신을 배반할 유다가 있다는 것을 느끼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저희들이 체휼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을 믿고 역사하였던 3년 공생애의 노정이
이렇듯 쓸쓸한 환경으로 남아졌을 때의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오늘날 저희들이 몸 마음으로 체휼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십자가의 죽음길을 앞에 놓고
하늘과 일문일답하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애달픈 심정을
오늘날 저희들이 체휼하게 해주시사,
아버지 앞에 엎드린 산 제물로서
그의 마음에 위로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자녀들로 세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니다. 아멘.
(1956. 5. 23)
예수님의 대신자가 되게 하소서
사랑하는 아버님이여!
예수님께서는 믿어 주지 않는
이스라엘 민족을 대하여,
바리새교인과 유대교인들을 대하여
회개하기를 몇 번이나 바라셨나이까?
몰리고 쫓기며
안식의 잠을 이루지 못했던 예수님의 노정이
저희들 마음 몸에 사무치어서,
예수님의 심정을
아니 느낄래야 아니 느낄 수 없고
그 심정을
안 닮아 갈래야 안 닮아 갈 수 없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 그러한 마음이
저희들 가운데서 나타나야 할 것이
아버지께서 요구하시는 뜻이요,
또한 저희들이 바라는 소원이 아니옵나이까?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걸어가던 그 노정을,
예수 그리스도가 남기고 가신 그 복음의 말씀을
대신 짊어지고
억천만 사탄과 싸워
승리의 영광을 아버지 앞에 돌려 드려야 할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다는 것을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을 믿고 모인 전체의 무리를 대하여
당당하게 나섰던 예수님의 늠름한 태도와 같이
저희들도 아버지의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을 믿고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태도를 가진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의 저희 자신을
예수님 앞에 자랑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오늘의 저희 사정을
아버지 앞에 드러내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과 같은 입장을 취할 수 있고,
아버지의 마음을 대신할 수 있게 이끌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대신하여
만민 앞에 어느 때 어느 시간에도
서슴지않고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이
아버님의 소망이라 할진대는,
아버님,
일일이 찾아 주시옵고
일일이 명령해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 대신 싸워 나갈 수 있고,
아버지의 뜻 앞에 동하는
성도들이 되게 이끌어 주시옵길,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
아버지의 뜻을 만민 앞에 당당하게 외치겠사오니,
아버님,
하늘의 용사로서 세워 주시옵고,
아버지의 자녀로 세워 주시옵소서.
분부하시옵고,
권고하시옵고,
찾으시옵고,
자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세워 주시옵소서.
사랑해 주시옵고,
인도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면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956. 5. 27)
그리스도의 생의 가치를 실현하게 하소서
복귀의 생명을 천주적으로 인연맺기 위하여
천륜의 법도를 세우시어
섭리하여 오신 아버님의 수고의 역사를
저희들이 마음으로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님,
당신께서 세계적인 생의 가치를 세우기 위하여
6천 년 동안 수고해 오셨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 저희들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개체에서부터 전체에 이르기까지
관계를 맺지 않는 종교는
하나님께서 간섭하실 수 없다는 것이
천법인 것을 알았사오니,
이제 저희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라는 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가치를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니셨던 생의 각오를
저희들도 가져야 된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저희 개체의 생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싸움터에서
사탄의 침범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도록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남기신
생의 가치의 복귀노정을
저희들이 대신해 나가는 데 있어서
사탄의 참소가 있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저희 개인의 생애로부터 세계의 생,
우주의 생까지 뻗어 나가는 노정에 있어서
사탄의 참소받는 자들이 되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당당하게 사탄의 참소를
한 날의 생활에서 막아내고,
역사적인 면에서 막아내겠다는 각오를 지니고,
그 책임을 완수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가
만물을 주관하셨던
예수님의 완전한 인격을 닮아야 할 것을 아오니,
사랑의 아버님,
그리스도의 그 인격을 닮을 수 있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또 저희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실제적으로 싸움의 노정을 걸어야 할
입장에 처해 있사오니,
아버님,
사회생활에 있어서나 인격적인 면에서,
혹은 사랑의 면에서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영원하신 아버지의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그리스도가 세우신
생명적인 가치를 저희들이 지니고,
그 가치를 이 땅에서 실현시킬 수 있게
주관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면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1957. 1. 6)
예수님의 심정을 체휼하며 골고다의 길을 가겠나이다
아버님!
저희는 현재의 자신의 부족함을 염려하여
울 수 있는 자도 물론 되어야 하겠지만,
먼저 예수님이 뜻하시는 결실을 염려하여
울 수 있는 아들딸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 자체의 불완전함을 염려하여
우는 자가 되어야 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고 악한 세상이 되어
예수님을 대하여 아우성치며 훼방하는
사탄의 농락을 보고 눈물지을 수 있고,
참회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께서 그의 생애노정에서
항상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시선을 느끼면서
탕감복귀의 노정을 완결짓기 위해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복귀의 제물로 자신을 바쳐 드렸듯이,
저희들도 어느 날 어느 때에
예수님께서 저희를 찾아오신다 하더라도
저희를 바라보시는 시선과
찾아오신 그 발걸음을
잊지 말게 허락하시옵소서.
이제까지 저희들은
예수님의 그 시선과
찾아오신 그 발걸음을 배척한 때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음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저희가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까지 배반할지라도
변함없이 저희 인간들을 찾아오신 예수님의 심정을
얼마나 위로해 드렸으며,
얼마나 하늘 앞에 눈물 흘렸는가 하는 것을
회개하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이여!
외로운 당신의 아들딸들,
세계적인 심판의 때가 멀지 않았사옵고
우주적인 골고다의 동산이
저희 목전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아오니,
저희들이 자신을 중심삼은 신앙노정을
걸어가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생명은 저희 것이 아니옵고,
저희가 생활하는 생애도 저희 것이 아니오며,
저희가 소망하는 소원도 저희 것이 아니었사오니,
저희들을 위하여 사는 생활이 되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능력과 저희의 요구와 저희의 욕망,
이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해 갖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이 예수님 대신
십자가의 죽음길에 나갈지라도
마침내 예수님의 변함없는 믿음을 알아 가지고,
베드로가 마음으로 탄식하여
하나님을 신봉하는 동지로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것을 보고
눈물지은 것과 같이
골고다의 심판날이 오기 전에
저희들이 예수님 앞에 회개의 눈물을 흘릴 수 있으며,
우주적인 회개를 도맡아
아버지 앞에 울 수 있고
자신의 잘못을 토로할 수 있는
아들딸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시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저희들이 예수님의 발걸음을 대신 걷겠사오니,
아버지께서 저희들에게
이 땅의 불쌍한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사명을 맡겨 주시옵고,
남아진 골고다의 길을
저희들이 걸어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이 세계 도처의 사탄을 쳐부수어
승리의 영광의 터전을 이루어
저희들 생전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모실 수 있게끔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면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957. 2. 10)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아버님!
인간조상의 타락으로 인하여
멀어진 당신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하여
영원하신 선의 주관자로,
또 영원하신 이상의 주관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으나
아버님을 대신하여 실체로 오신
예수님을 주로 모시지 못한 인간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을 서럽게 해드린 것이
선조들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임을 알고 있사옵고,
오늘날 저희들이 부족하여
아직도 예수님의 서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하오니,
선한 목자의 위업을 상속받아
만물만상 앞에 어엿이 나서기를 바라는
아버님의 소망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예수님의 소망을 이루어 드릴 수 있게
허락해 주시며,
아버님의 생명과 아버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생명과 예수님의 사랑을 갖고
나타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러한 저희들이 되지 않는다면
선한 목자로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서러운 사정을
금후에 인간세계에서
영원히 풀어 드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오니,
저희의 마음문을 여시어
저희를 향해 부르짖고 있는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서러운 아버지의 사정을 알고,
외로운 사정을 알고,
수고하시는 아버지의 사정을 알고 보니
몸둘 바를 찾지 못하겠나이다.
아버님이시여,
부디 저희들의 슬픔과 외로움과 수고와 고통을
예수님께 떠넘기기 위해
애걸복걸하는 처참한 모습들이 되지 말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저희들 이제
사탄의 모든 비밀과
아버님의 내적 사정과
예수님의 내적 심정까지 알아서
아버님의 그 사정을 맡고,
예수님의 서러움과 외로움과 고통과 부자유하심을 맡아서
억만 사탄과 싸울 수 있도록 힘을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저희들의 사정을 염려하시며
수심에 잠겨 일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저희가 바라볼 수 있게 해주시고,
예수님은 오늘도
저희들의 애달픈 사정으로 인하여
십자가에 달리시는 고통을 느끼고 계신 주라는 것을
저희들이 깨닫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저희가 하늘을 대하여 서러워하고,
하늘을 대하여 슬퍼하고,
하늘을 대하여 외로운 입장이 될 때,
이것을 위로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큰 외로움과
더 큰 슬픔과
더 큰 고통을 느끼시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던 저희들이옵니다.
이제 예수님의 고통보다 내 고통이 크고,
예수님의 슬픔보다도 내 슬픔이 크며,
예수님의 어려움보다도 내 어려움이 클지라도
오히려 예수님의 슬픔을 제거해 드리기 위하여
애걸하고 염려할 수 있는
참아들딸의 모습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선한 목자의 뒤를 따르고
선한 목자의 사무친 심정을 위로할 수 있는
저희 모습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보이지 않는 사탄이
저희들의 생활 속에 직접적으로 침범하여
환난과 공포를 일으킬지라도
이를 대적하여 묵묵히 싸워 승리할 수 있는
예수님의 대신 사명자들이 되게 해주시고,
예수님의 생을 대신 이어 갈 수 있는 아들딸로서
저희들을 새로이 세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
(1957. 3. 31)
그리스도의 심정을 체휼하게 하소서
아담 이후
4천 년 동안 수고하여 오신 아버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는
눈물과 땀과 피의 열매로서,
아버님의 실체로서
아버님의 눈물을 대신하고
땀을 대신하고
피를 대신해야 할 사명과
아버님의 원한을 풀어 드려야 할
사명을 띠고 오셨던 것을 저희들이 아옵나이다.
그러한 그리스도께서
하늘을 대신하여 눈물의 길을 걸었고,
만민을 대신하여 쉴 사이 없는
수고의 길을 걸었고,
땀 흘리는 공생애 노정을 걸었던 것을 생각할 때에,
아버님,
저희들이 그러한 그리스도를 대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 있는지 진심으로 반성하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4천 년 동안 수고하여 온
수많은 선지선열들의 피의 제단을 연하여
그 실체로 찾아오셔서 피 흘리며 가시던
그 모습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저희들이 될 수 있게 이끌어 주시옵소서.
예수께서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 산정을 향하여 올라가실 때,
멀리서
그를 바라보며 애도하는 연약한 여인들을 보고,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시던
간곡한 그리스도의 심정을 오늘 이 시간
저희들이 체휼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십자가의 정경을 알지 못하는 자는
십자가의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십자가에 나아갈 때의
예수님의 심정을 체휼할 줄 모르는 자는
진리의 자리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
이 시간 모인 아들딸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저희들이 가진 것 없고,
아버님께 드릴 것이 없을지라도
겟세마네 동산의 외로운 그리스도의 모습을
마음속에 새겨
침범해 들어오는 원수들을 맞아 싸우는
선의 파수꾼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외치던
그 최후의 호소를
저희들이 오늘날
황무지와 같은 이 세상을 향하여 외치면서
세계적인 골고다 산정을
넘어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오니,
그리스도를 멀리하고
자신을 위하여 사는 아들딸이 되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대신하여
어려움이 있을 때에
자신이 먼저 그 어려움을 책임지고,
슬픈 일이 있을 때도
자신이 먼저 그 슬픔을 책임지고,
자신이 고통을 당하여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하늘이 원하시는 뜻이라면
이를 기꺼이 감수하면서
싸워 나갈 수 있는 모습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1957. 6. 30)
하늘의 애달픈 심정을 체휼하게 하소서
사랑하는 아버님!
아버지께서 정하시면 저희들도 정하고,
아버지께서 동하시면 저희들도 동하여
오직 한마음 한뜻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예수님이 당시
불신의 땅을 대하여 염려하시면서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을 위로하시며 안타까워하시던
그 심정을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의 마음이
그저 이 시간에 머물지 말고
아버지의 심정과
역사적인 예수님의 심정과 연하여서
움직일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안타까운 아버지의 심정을
저희 마음에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애달팠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저희들이 체휼하게 허락하여 주시어서,
마음속에 남아 있는 어두움의 모든 죄악을
청산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항상 저희 앞에는
아버지의 은사를 가로막으려는
사탄의 역사가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언제 어떠한 입장에서
아버지의 은사가 임하게 되는지를 깨달음으로써,
사탄의 침범을 벗어나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의 품에 품길 수 있는
저희가 될 수 있게,
아버지,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6천 년 동안 섭리해 오시면서
어리석고 부족한 저희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찾아주신 아버지의 긍휼의 손길을
느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오면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1958. 1. 12)
예수님의 슬픔을 해원하는 한 날이 되게 하소서
사랑하는 아버님!
저희들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비극과 슬픔을 남긴
역사의 사실들을 알고 있사옵고,
에덴 동산을 바라보면서
즐거워하시던 아버지의 심정이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슬픔의 심정으로 화하였고,
그것이 6천 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통하여
역사적인 서러움이 되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나이다.
또한,
저희가 마음과 몸을 다하여
아버지의 염려하시는 심정을 붙들고
잃어버린 에덴 동산을 회복해 드려야 할
역사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잃어버린 아담과 해와를 다시 찾기 위하여
아버지께서 4천 년 동안 수고한 끝에,
아담의 형상을 갖추어 이 땅에 보내진 분이
예수님이었음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예수가 탄생할 때까지의
아버지의 수고가 크면 클수록
그 수고로 인하여 탄생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하늘의 자랑거리가 되어야 했고,
피조만물과 인류의 자랑이 되지 않으면
안 될 모습이었사옵니다.
그러한 사실을 하늘은 알고 있었으나
땅은 무지하여 알지 못하였고,
하늘은 이를 환영하였으나
땅은 알지 못하여 환영하지 못하였음을
오늘날 저희들이
부끄러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수고하신 아버지의 소망의 눈길이
말구유에 누우신
예수의 가련한 모습에 머물러야 했던
이 처량한 사실을 저희들이 회상하면서,
선조들이 불신하였고 선조들이 불충하였던 것을
통절히 느끼옵니다.
아담 해와의 타락의 허물을
인간들이 다시 그 자리에 나타냈다는
이 한 사실을 알고 있사옵기에,
오늘 저희들은
역사적인 서글픈 사실을 마음으로 느끼며
심히 슬퍼할 수밖에 없사옵니다.
옛날에 아버지를 위로해 드리지 못했던
그 이스라엘 민족,
택함받은 선민을 대신하여
저희들이 아버지의 슬픔을 위로해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 가신 지
어언 2천 년이나 경과하였지만,
심정의 세계는 시간을 초월하는 줄 아옵니다.
역사를 초월하여 계시는 아버님,
슬픈 심정을 품고 천성에 가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붙안고
이 시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오셨다 가신 이후 2천 년의 서러움을,
오늘 이때까지 하늘과 땅에 남아진
사무친 원한을 저희들이 알아,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그 당시의 모습을
저희들이 마음으로 받들 수 있는
이 한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그 날을 기념하는 이 한 시간을,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고,
예수님께서 소원하셨던
그 기쁨의 영광을 나타내시어서
2천 년 전에 왔다 가신 예수님께서 슬퍼하셨던 것이
이 한 날로 말미암아
해원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내적 심정을 알고 있는 저희들이
이 날을 기념하고자 하오니
인간들이 알지 못하여 남긴 모든 과거의 서러움을
이 한 시간으로 말미암아
탕감받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가 아버지 앞에 설 수 있게 허락하시어서
예수님이 기뻐하시고
아버지께서 위로받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이 마음을 묶어
아버님께 바쳐 드리는 이것이
역사적인 해원의 제물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남겨진 천추의 한을
저희들로 말미암아 해원함으로써
행복의 기원을 찾을 수 있는 거룩한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올 때에,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1959. 1. 3)
이 날, 예수님의 심정을 헤아리게 하소서
아버지!
땅 위의 모든 사람들이
이 날을 알지 못하옵고,
맺혀진 하늘의 서러움을
깨닫지 못하옵고,
한없이 슬픈 당신의 심정은
더더욱 알지 못하옵니다.
그 날의 통탄스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저희들에게,
아버지,
이 날을 허락하여 주시어서
만민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 한 날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서 축하할 수 있는
영광의 은사를 허락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제 이 날을 축하하는 것이
2천 년 동안 서러워하신 예수의 심정을
위로할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서러운 자리에서 탄생하여
30여 년의 생애를 바쳐
골고다의 길을 개의치 아니하시고 가신
그리스도를 회상하며,
그의 전적(戰跡)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분이 생전에 남기신 위업을
저희의 사명으로 인계받을 수 있는
이 시간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이시여!
예수님께서 남기신 원한이
땅 위에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것을
이 땅 위에 있는 인간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 여기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
그 몸과 마음이
당신의 심정에 붙잡힐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런 예수님의 심정을 알고,
죽을 지경에 처했던 예수님의 심정을 깨달아
위로해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귀중한 이 날,
저희들이 새로운 뜻을 받들어서라도
한 조건을 세워
아버지 앞에 승리의 표적을 남기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날이오니,
이 날을 기억하시옵소서.
기쁨으로 현현하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올 때,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959. 1. 3)
배척당한 예수님의 슬픈 사정을 통찰케 하소서
아버지시여!
사랑하는 제자들을 앞에 놓고
머지않아 땅 위에서의 생애를 종결짓고
아버지의 나라로 갈 것을 얘기해야 했던
예수님의 서글픈 마음을
통찰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시간적으로 보면
예수님과 저희 사이에는
2천 년이라는 간격이 있사오나
심정의 세계에서는
시간을 초월할 수 있는 줄 아오니,
오늘도 예수님의 초초한 모습과
서글픈 심정에 어리어
한마디한마디 간곡히 훈계하시던
성상을 바라볼 수 있는
직접적인 체휼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옵소서.
이러한 장면은 인간 된 저희들로서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옵니다.
이 땅 위에 어느 누가
예수님의 마음을 알았사옵니까?
수심에 잠긴 그 모습을 보고
마음 깊이 사무쳐 오는 하늘의 슬픔을
체휼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니,
하늘은 이러한 인간들을 놓고
탄식하실 수밖에 없었음을 아옵니다.
하늘의 심정을 알아
‘주여’ 하고 부르는
제자 하나도 갖지 못한 예수님께서
의심으로 점철된 생애노정을 가셔야 했고,
또한 의심을 받으며
그 서글픈 생애의 종말을 맞아야 했던 슬픔을
이 시간 저희들이
마음으로 동정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께서 간곡한 하늘의 심정을 품고,
하늘의 전체의 위업을 품고
인간을 찾아오셨사오나
인간들은 그러한 예수님을
자기들 멋대로 대하였고
배척할 대로 배척하였사옵나이다.
외로운 자리로 몰아넣을 대로 몰아넣었사옵니다.
그러나 슬픔에 잠기고 탄식의 자리를
여지없이 밟아 나오시면서도,
예수님은 그러한 인간들을 버리지 못하시고
생명의 동산을 향한 한 길을 개척하시기 위하여
그들을 끌고
겟세마네 동산을 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과
골고다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시는 예수님의 처참한 가슴 앞에,
믿음직한 제자 하나 없었던 서글픈 사정을
저희들이 알게 해주시옵소서.
오늘 저희들이
이런 사실들을 생각하면서 천상을 대할 수 있고,
고아와 같은 입장이었던 예수의 심정을 가지고
‘아버님이시여!’ 하고 사정할 수 있으며,
그 때의 심정을 통할 수 있게 하옵소서.
이들로 하여금 마음을 헤쳐 놓고
믿을 수 있는 제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존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예수의 슬픔이
얼마나 컸는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하였던 제자들,
이런 제자들을 남겨 두고
한 생애를 종결지어야 할 입장에 있던 예수님의 심정,
생애의 전부를 인간을 위하여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생애의 결실을 보지 못하고
처절한 심정에 잠기어
하늘을 염려하시던 예수의 마음을,
저희들이 동정할 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올 때,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이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959. 1. 11)
십자가를 넘어 부활의 영광을 노래하게 하소서
아버지시여!
때가 가까워오면 가까워올수록
부활의 주를 만나기를
주저하는 마음이 우러나옵니다.
때가 가까워오면 가까워올수록
죽음의 슬픈 인연을 품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연상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형틀에 달려 돌아가신 그는
원한을 품고 가신 분이었음을 알았사옵니다.
그가 거니신 골고다의 산정은
인연의 눈물고개인 것을 알았사오니,
그가 흘리신 피와 땀은
오늘까지 인연의 역사에 살아남아
인류의 심중심중에
부활되어 들어가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 모든 것이
인연의 역사적인 섭리의 뜻 가운데서
흘리신 피와 땀이 있었던 연고로
그 인연이 존재할 때까지
그 피와 땀으로 인해 움직여 나갈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날 그런 심정에 사무치는 저희,
그런 경지에 있는 저희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렇게 가신 주님,
신랑 되신 주님은 인연의 역사를 거쳐
다시 찾아주마 하셨사옵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마음 몸을 기울여
저희를 찾아 세우고자 하는 심정이 간절하신 줄 아오니,
저희들 자신의 모습을 갖추어
만민 앞에 단장된 모습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길을 나가려니 악한 세상이요,
주가 가시던 그 길이 남아 있으므로
참고 또 참고 또 참아
민족의 남은 고개를 걸어야 되겠사옵고,
세계의 남은 고개를 걸어야 되겠습니다.
이제 땅에 남아진 십자가의 고개를 넘을 수 있는
순교의 역사를
참음으로써 지탱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저희들이 비로소 알았사옵니다.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인연을 느끼고,
새로운 마음으로 고대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참으면서
아버지를 붙들고 통곡할 수 있는
그 날까지 나아갈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맺혀진 슬픔의 인연을 넘을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기쁨의 인연을 자랑할 수 있는 그 시간까지
참고 남아져서 사망의 권한을 밟고
부활의 영광을 노래할 줄 아는
아들딸들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올 때에,
이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1959. 3. 29)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모습 되게 하소서
아버님!
30여 년 동안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수도하던
세례 요한이 품은 소원은 무엇이었나요?
그의 소원 전체는
오시는 메시아를 맞는 것이었음을 알고 있사옵니다.
메시아를 증거한 그는
메시아와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될
천륜의 인연이었으나,
그가 내 마음에 있고
내가 그 안에 있으며,
그의 것이 내 것이요,
그의 심정이 내 심정이요,
그의 생애가 내 생애라고 하는,
즉 예수의 모든 것이
세례 요한의 심중에 반영되어
일체를 이루었어야 했는데,
그는 그러지를 못했사옵니다.
요단강의 많은 무리 앞에서
손을 들어 하늘의 아들이라고
증거한 기억을 갖고 있던 세례 요한은
슬프고 외로운 모습으로 철창에 갇혀,
자신의 서글픈 신세를
탄식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서,
자기가 증거했던 메시아,
하늘이 증거하시고 세워 주신 메시아에게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고
반문했던 장면은 역사적인 슬픈 장면이요,
하늘이 넘기 어려운 서러운 장면이었음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역사의 흐름 속에 세례 요한의 노정은
그대로 남아 있사옵니다.
새로운 이념을 찾기 위해 허덕이고 있는 저희들,
새로운 역사를 고대하면서 준비한다는 저희들이
이제 세례 요한과 자신을 바꾸어
생각할 줄 아는 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의 백성들이 하늘 뜻을 배척한 사실을
역사를 통하여 알았사오니,
오늘날 저희는
그러한 역사적인 전철을
다시 밟는 자들이 되지 말게 주관하여 주시옵고,
광야에서 단장시키고 준비시켰던 그 뜻을
잃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저희들의 몸과 마음이
아버지 앞에 면목이 없음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권고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슬픈 심정을
인계받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천적인 슬픈 심정을 안고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이념의 주인공을 맞을 수 있는
마음과 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대를 지켜 나갈 주인공은 누구이며,
이 시대에 남아질 수 있는 민족은
어떠한 민족일 것인가를 염려하며
그러한 모습을 그리워하며
슬픈 심정에 사무칠 수 있는
이 한 시간이 되게 해주시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들려오는 말씀과 들려오는 음성에 귀를 기울여
거기에 동조하고 반응하는 생활을 하는 저희들,
이제 저희가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고
새로이 각성하여야 할 때가 되었사옵니다.
혼란과 혼돈 가운데 놓여 가지고
생사를 결판해야 할 입장에 있는
자기 자신을 염려하는 입장에서
저희가 벗어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믿을 수 없는 사회요,
믿을 수 없는 세계인 것을 알고 있사옵고,
믿을 수 있는 이념의 세계에 잠기고,
그 이념의 세계와 인연맺을 수 있도록
스스로 각성하고,
자아를 인식하여
하늘을 붙들어야 할 때가 되었고,
마음의 변혁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환경에 처해 있는 자신임을 명심하여
새로운 나를 추구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고,
원한에 사무친 슬픔의 고개를 넘고 넘어
환희의 모습을 맞이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그 모습을 그리워하며
그 세계에 이끌리고
그 세계와 화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사회환경이 자유롭지 못하고
슬픔에 사무쳐 있는 것을 비통히 여겨
이것을 가로막고 싸울 수 있는
힘과 용맹을 주시옵소서.
영원하시며 절대적이신 하늘이 있다 할진대,
죄악의 일체를 밀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오며,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1959. 4. 12)
예수님의 슬픈 심정을 느끼게 하소서
아버님!
2천 년 전 예수님의 성상이 그리워지나이다.
말씀을 전하시던 예수님 앞에는
삭막한 세상이 놓여 있었고
자신을 위주하고 자기를 높이고자 하는
무리들이 있었사온데,
그러한 무리들을 바라보시던 예수님의 시선에
무한히 슬픈 심정이 흐르고 있었음을
깨닫겠나이다.
유대교단은 교파교파끼리 싸우고,
교인들은 교인들끼리 다투는 실정을
바라보시던 예수님!
자기의 흠은 숨기고
남의 흠을 들추어 자기를 내세우기에 허덕이던
그 때의 시대상을 저희들이 회고하게 될 때에,
과연 세상과 시대를 책임지고 오셨던
예수님의 마음이 무한히 슬펐음을 알겠나이다.
그런데도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외치시던
예수님의 심정이 측량되옵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할 자들은
민족이었고 교단이었고 개인이었으나,
구해야 할 자들이 구할 줄 모르고
찾아야 할 자들이 찾을 줄 모르며
두드려야 할 자들이 두드릴 줄 모르는 것을
바라보시는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대신하여
구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계셨고,
인간을 대신하여
찾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계셨고,
인간을 대신하여
두드리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계셨으니,
아버지,
슬픈 일이 이것이었습니다.
인간이 찾아 주기를 고대하여 보냈던 메시아가
오히려 찾아야 할 입장에 계셨고,
인간들이 모셔 주기를 바라며
하늘은 오랜 역사노정을 준비하였사오나
인간들로부터 모심받지 못한 입장에 계셨던
예수님의 서글픈 심정을
저희들이 이 시간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예수님은 땅의 인간을 대할 때
눈물지으며 한탄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었지만
오히려 아버님께서
축복해 줄 수 있는 땅이 되기를 고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성상이
오늘 저희의 목전에 현현하게 역사해 주시옵고,
저희들이 그의 분부하시는 음성을 들어
묵묵히 그 내심에 흐르는 천적인 심정을 사모하고 체휼하여
눈물지으며 경배드릴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해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들은
아버지를 향하여 손을 들고
벌거숭이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사오니,
긍휼히 보시옵소서.
저희의 마음에는
아버지밖에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소망과 저희의 욕망과
저희의 일체의 요구조건은
아버지 것 외에는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무한한 아버지의 심정에 사무친
그 마음을 붙들고 살고,
그 마음을 체휼하며 살고,
그 마음과 더불어 싸우며 살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해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며,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959. 4. 26)
예수님을 통한 역사적 통한의 심정을 느끼게 하소서
바라고 기다리던
소망의 한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섭리해 나오신 아버지,
불신했던 인간들을 버리지 못하시고
수많은 외로운 무리들을 품으시기 위해
이스라엘이라는 축복을 해놓고
역사를 끌고 오다가,
약속하였던 한 존재를 보내시던 그 날은
아버지의 영광이 하늘에 사무쳐야 했고,
만민의 환희의 심정으로 말미암아
천상에도 기쁨이,
땅에도 기쁨이 충만해야 할 것이었사온데,
4천 년의 서러움이
예수님 한 분을 대해 가해졌다는
역사적인 통분의 사실을,
아버님,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마구간에서 탄생하여 사신 30여 년 생애는
그렇게도 처참하였고,
그렇게도 외로웠고,
그렇게도 의지할 곳 없었사옵니다.
땅 위에 그렇게도 믿을 자 없었던 예수님,
땅 위에서 자신의 흉금을 털어놓고
그 간곡한 심정을 전하지 못한 채
원한의 주인공으로 가신 예수님이었다는 것을
오늘날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권고하여야 할 천적인 말씀이 남아 있었사오나
받아야 할 인간이 믿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 말씀을 다하지 못하고 품고 가신 서러움,
2천 년 전 예수님의 서러움을
모르고 있는 만민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래도 하늘을 따르던 제자들을 모아 놓고
권고하시고 부탁하신 말씀과 기도를
저희들은 들었사옵니다.
당신의 인연과 하늘의 인연이 상봉하는 그 순간
하늘의 기쁨이 나타나야 했고,
나아가 땅 위에
새로운 나라가 건설되어야 할 것이었는데,
부딪치는 그 순간 기쁨은 사라지고
탄식과 서러움이 시작되고
원한의 십자가의 길이 생긴
역사적인 통분의 사실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의 선조들은 하늘 앞에 빚을 졌고
저희들도 하늘 앞에
우주적으로 빚을 지고 있사온데,
그것을 탕감할 줄 모르고
자기의 안일을 위해
허덕이는 무리가 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비통한 심정을 체휼하여
땅을 염려하고
하늘을 염려하는 마음을 가진 아들딸들이
이 땅 위에 얼마나 있사옵니까?
아버지,
심히 희귀하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불쌍한 만민을 구하시기 위해
수많은 수고를 개의치 않으시고
외로운 저희들을 권고하시기에
시일을 경과해 오신 아버지,
저희들 앞에 새로운 약속을 세우시옵소서.
이들에게
새로운 약속과 새로운 시대의 사명을 맡기시려는
천적인 뜻이 있다 할진대,
아버지,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959. 5. 17)
예수님의 슬픈 심정을 붙들고 나서는 자녀 되게 하소서
오늘날 저희들은
과거 역사상에 왔다 갔던
예수님은 알고 믿고 있사오나,
그 당시 이스라엘 민족에게
몰리고 쫓기시던 처참한 예수,
이 마을에서 쫓기면 저 마을로,
이 고을에서 쫓기면 저 고을로 방황하던
그 예수와 그의 심정을 알고 믿는 자는 없사옵니다.
하늘의 심정을 대신하여 나타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아는 자는
역사상에서 찾아볼 수 없사옵니다.
메시아를 고대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메시아를 맞이할 소망을 품고
수천 년 동안 참으면서 싸워 나왔고,
메시아가 어느 때에 오실 것인가 하며 고대해 나왔으나
정작 그 소망의 표적이 나타났을 때에는
자기들의 사정과
자기들이 처한 환경에 치우친 나머지
하늘의 심정을 알지 못한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던 것을
저희들은 상기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러한 한탄스러웠던 역사가 있었던 것을 상기하여
오늘 저희들에게
아버님의 마음속에 사무쳐 있는 원한을
풀어 드려야 할 책임이 있다 할진대,
오신 예수님을 몰라봤던 이스라엘의 죄상을
저희들이 대신 감당하여
풀어 드릴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를 슬프게 하였던
이스라엘의 실수를 책임지고
대신 회개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은 슬픈 30여 년의 생애를 보냈사옵니다.
더욱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3년 공생애가 있었으나
누가 그의 심정을 알았사오며,
누가 그의 사정을 알았사옵니까?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희로애락을 같이하고
슬플 때 같이 슬퍼하고
외로울 때 같이 외로워하며
스승이라고 모시던 제자들도 몰랐습니다.
스승이 죽음의 길을 갈 것을 염려하여
간곡한 심정으로 하늘을 붙들고
호소해야 할 제자들이
도리어 예수님이 누구인가 하고
반문하는 처지에 있었으니,
3년 공사(功事)가 허사였음을 느끼신 예수님의 심정,
슬픔이 있다 할진대
이 이상의 슬픔이 어디 있으며,
복통할 일이 있다 할진대
이 이상 복통할 일이 어디 있겠사옵니까?
권능을 행하신 예수님을
숭상하고 모실 줄 아는 크리스천은 있사오나,
밟히고 밀리던 예수님의 그 발자취를
붙들고 살고자 하는 크리스천은 없사옵니다.
아버님,
불쌍하신 예수님의 심정을
붙들고 나설 수 있는 아들딸들이
이 만민 가운데 많이 나오기를
저희들은
피눈물로 호소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살아 계시어
역사의 배후를 조종하시는 아버지!
저희에게 은은히 갈 바를 가르쳐 주심을 아옵니다.
아버지시여,
과거의 예수님을 그리워하는
저희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시대적인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하여 허덕일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
아버지 앞으로 가야 했던
예수님의 심정을 동정하고
그 심정 앞에 머리숙일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예수님이 기뻐하시고 소원하시던
그 무엇이 있사올진대,
그것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2천 년 전 인류의 생명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예수님의 심정에 사무칠 수 있고,
그의 심정과 관계맺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며,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959. 7. 19)
뜻 저버린 이스라엘을 교훈삼게 하소서
선민의 권한을 자랑하고
택한 백성임을 자랑하며,
축복권 내에 살던
이스라엘은 어디 갔는가 하고 탄식하시는
아버지의 슬픈 눈물이 이 땅에 남아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께서 4천 년 동안
역사적인 서글픔을 참으시면서도
택한 이스라엘 민족을 붙들고 나오신 것은
메시아 한 분을 보내시기 위함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메시아를 두고 사탄의 품에 품기었으니,
그것을 바라보신 아버님의 서글픔은
그때만의 서글픔이 아니라
억천만 년 역사의 서글픔으로
남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옵니다.
당시에 택한 이스라엘 민족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는 것을
저희들이 회상하게 될 때,
오늘 몸을 굽히고 마음을 가다듬어
역사적인 범죄성을 폭로시키고,
그 역사적인 죄악을
대신하여 회개해야 할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음을
저희들은 슬퍼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예수께서는 하늘의 서글픈 심정을 갖고
쓰러져 가는 민족을 찾아 주셨사옵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고 그들을 찾아 주셨사오나,
택한 민족이라 자칭하던 이스라엘 민족은
하늘이 보내신 메시아와 준비하신 세례 요한을
자기들 멋대로 대접하여
역사적인 슬픔의 그늘에 숨겨 버렸다는 사실을
오늘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 여기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로 하여금
그때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저희들보다 못해서 하늘을 배반한 것이 아니었고,
하늘을 위하는 심정이
저희들만 못해서 하늘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새시대에 대한 소망이 부족하였고,
새로운 메시아의 이념을 갖고 오실 주님의 모습이
클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정작 나타난 메시아가
너무도 초초하고 불쌍하고 형펀없이 작은 모습이었기에
그들이 배척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 한 자체가
어떠한 자리에 처해 있는가
살피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오늘 저희들은 흔히
역사적인 이스라엘 민족을 비방하고,
당시의 사정을 비판하기 좋아하나
그때의 사정이나 오늘의 사정이
차이가 없음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그때에 있었으면
그들과 같은 무리였을 것이며,
저희들이 그 시대에 있었으면
그들과 같은 입장에 있었을 것임을
자인하는 마음을 갖게 해주시고,
그러한 역사적인 죄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
자신들이라는 것과
사탄의 마수가 저희의 몸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올 때,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1959. 2. 22)
메시아를 맞이하기에 합당한 모습 되게 하소서
오늘날 저희의 생애노정은 처참한 노정이요,
생활환경은 복잡하여
저희는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없는
혼동상태에서 살고 있사옵니다.
이와 같은 땅에
하나의 생명의 길을 개척해 주시기 위하여
하늘은 애썼사옵고,
인류 앞에
하나의 참다운 사람의 모습과
참다운 이념과
천주의 참모습을 소개하기 위하여
수많은 선지들이 이 땅 위에 왔다 갔던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 중에서도 만민의 메시아로서 이 땅 위에 나타나
십자가상에서 초개같이 사라지면서도
만민을 위하여 복을 빌 수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존엄하신 그 형상과
그로부터 흘러나온 그 심정,
사무친 그의 이념을
그리워해야 할 때가 왔사옵니다.
자신을 멸시하여야 할 이 때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높여
만물만상을 멸시하고,
자신을 세워
하늘을 멸시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참다운 마음,
참다운 선을 향하여 움직이고자 한다면
하늘땅 앞에 빚진 자이고,
인류 역사노정에서
말할 수 없이 험상스런 상처를 입은
죄악의 종족임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에게는
아버지를 찾아 헤맬 수 있는 마음,
본연의 자아를 찾아 헤맬 수 있는 충절,
그것만이 필요하오니,
아버지,
그것을 지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살아 나온 생애노정이
처참한 눈물의 길이었음을
저희들은 부인할 수 없사오며,
지내 온 역사의 모든 페이지 페이지도
피어린 혈투전으로 엮어졌음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그리하여
저희들은 자신을 세워
역사적인 그 무엇을 해명하지 못하고,
시대적으로 자랑할 그 무엇을 갖지 못한
우주사적인 낙오자의 입장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러기에 참다운 지도자,
참다운 생명과 참다운 심정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여,
하늘이 인간 앞에 보내신 분이 구주요,
메시아라고 저희들은 믿고 있습니다.
하오나 저희들이
메시아인 그분 앞에 나아가기 위하여
그에 합당한 지조와 충절과 심정을 지녔는가,
스스로 더듬어 살피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은 메시아를 맞이하는 데 있어서
인간이
최고의 정열과
최고의 충성과
최고의 성심을 다 기울일 것을
고대하시는 것을 알고 있사옵고,
사탄과 짝하지 않는 최고의 지성과
불타는 심정을 요구하시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 저희가
그런 자리에 나가 있지 못하더라도
그 자리를 그리워하는 마음이라도 가지고
무릎을 꿇고 속죄의 은사를 바랄 수 있는
겸손한 어린 아들딸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959. 7. 19)
예수의 위로자가 되고 위안자가 되게 하소서
아버지시여!
오늘 이 시간은
예수와 역사적인 거리가 있는 시간이옵니다.
역사에는 거리가 있으되
심정의 세계에는 거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예수를 믿는 저희들이 되지 말고
심정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예수를 알고 믿을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하시던 예수의 초초한 성상을 그리면서
마음으로 슬퍼하며
그 앞에 머리숙일 수 있고,
호소하던 그 때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사무친 마음,
간절한 마음,
황공한 마음이 저희의 몸 마음에 어리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라 부를 수 있으며
알 수 없는 사이에
주의 황홀한 은사를 느껴 감사드리고,
보내신 메시아의 성상은
천상이 옹호하여 받들어야 할 존재였으나
땅 위에 나타나
처참한 행로를 가신 것을 슬퍼하고,
그의 수고를 염려하고,
그의 분함을 분히 여기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때의 선조들이 행치 못한 모든 것을,
오늘 저희들이 심정적으로 인계받아
그들 대신 예수의 위로자가 되고
위안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그분 앞에 소망의 상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는 얼마나 불쌍한 분이었사옵니까?
민족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교단을 바라보는 그의 심정은
통곡밖에 남아 있지 않았사옵니다.
천륜의 섭리를 책임져야 했던 그의 사정을
인간이 알지 못하였습니다.
사정을 통해야 할 인간들,
심정을 나누어야 할 교단,
같이 살아야 할 민족을 뒤에 놓고,
홀로 밤중에 산중을 헤매시던 그의 심정을
아는 자 없었습니다.
오늘 저희들은 예수를 모르면서 따르고,
예수를 모르면서 믿는 자들과 같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불쌍한 그의 심정을 붙들고
한없이 울어 줄 수 있으며,
한없이 염려할 수 있으며,
그를 위해서는 죽음의 자리도 개의치 않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올 때,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1959. 10. 18)
예수와 같이 천적인 책임을 감당하게 하소서
아버님!
2천 년 전에 외로이 왔다 가신
예수의 사정이 어떠했던가를
저희들이 살피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는 이 땅 위의 인간들을 구하기 위해서
자기 전체를 제물로 드리고
쓰러지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염려의 마음을 가지셨사옵고,
그 모진 어려움도 달게 받으셨사옵고,
외로운 자리도 즐겨 가셨사옵니다.
그런 예수님의 외로운 모습을
저희들이 동정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께서는
개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싸우신 것이 아니라,
죄인 된 뭇 중생을 구하는 동시에
사망권 내에 있는 이 세계를 하늘세계,
즉 광명의 세계로 이끌어 내시겠다는
천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싸우신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그 당시 예수님의 전체 생활환경은
어느 것 하나 기쁜 것이 없었사옵니다.
가는 곳곳마다 핍박이 있었고
가는 곳곳마다 억울함이 앞을 가로막았사오나
그는 탄식하지 않았사옵니다.
낙망할 자리에 처해도
결코 낙망하지 않았사옵니다.
소망의 세계를 위하여,
미래의 천국을 위하여,
아버지의 경륜을 바라보며 참아 나오신
그 뜻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여기 모인 아들딸들,
비록 2천 년이라는 역사적인 거리는 있사오나
심정적으로는
2천 년 전 예수의 심정과 통할 수 있고,
하늘의 천적인 책임을 짊어진 입장에서
아버지를 대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외로운 심정을 붙안고
이 땅 위의 인류를 대신하여
아버지를 위로해 드리고,
이 민족과 이 세계 인류 앞에 호소하여
그들을 아버지와 인연맺게 해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며,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960.6. 12)
예수의 역사적 서러움의 한 날을 회상케 하소서
아버지!
하늘을 품고
땅에 대한 구원섭리의 뜻을 품고
30여 년의 생애를 사신 예수가
자신을 구주로 대해 주는 한 사람을 찾지 못하고,
구주로 모셔 주는 한 가정을 찾지 못하고,
구주로 따르는 한 민족을 거느리지 못한 채,
한스러운 운명의 날을 맞아야 했던
역사적인 서러움의 날을 회상하게 되옵니다.
원치 아니한 때에
십자가의 길을 가셔야 했고,
때 아닌 때에
사명을 종결지어야 했던 예수였기에,
할 말도 다 못 하고
심정에 세운 비장한 각오와
결심의 행사도 하지 못한 채
한을 남기고,
또 안고 가셨사온데
그 심정을 아는 자가 어디 있사옵니까?
아버님이시여!
하늘을 우러러보는 예수의 눈에는
만민을 대한 서글픈 눈물이 고였었고,
죽음을 앞에 둔 그의 초초한 형상은
인류를 대신한 모습이었음을,
오늘날 저희들도
뼈에 사무치게 알지 못하거니와
그 당시의 사람들 가운데도
그토록 처절한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안 자가 없었사옵니다.
예수를 알고 모셔야 할 민족이
오히려 그를 반대하여
죽음의 길로 내몰기 위해 날뛰었으니
뜻을 품고 온 예수는
얼마나 불쌍하였사옵니까?
하늘의 심정을 통하고
예수의 심정을 통해야 할 민족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예수께서 민족을 염려해야 했고,
원수에게 끌려가는 예수의 슬픔도 모르고
원수의 장중에서 놀고 있는,
사망권에 있는 민족을 바라보고
‘아바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며 기도해야 했던 예수의 심정을
저희들이 더듬어 느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십자가라 하면
저희들은 이름으로만 알았습니다.
예수가 간 골고다 산정이
예수에게 있어서는 지옥이요,
죽음의 형장이었던 것을
저희들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오니 이제는
저희들이 십자가를 생각할 때,
예수의 몸이 찢기는 아픔보다
4천 년 동안 쌓여 온 하나님의 한의 심정이
찢기는 서글픔이 얼마나 컸던가를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가 십자가에서
살이 찢겨 피를 흘린 것이 서러움이 아니라,
심정을 짜내야 했던 것이
더 서러운 일이었음을 알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여기에 모인 무리 가운데
진정한 당신의 아들딸이 있사옵니까?
예수가 흘린 피를 무시하고
하늘의 복을 받기를 바라는 자가 있사옵니까?
예수의 심정을 밟고
하늘의 뜻을 대하고자 하는 자가 있사옵니까?
울고 울고 또 울어도
한이 풀릴 수 없는 슬픔의 한 날을 기억하고,
예수의 죽음에 대해 끝도 없이 통곡할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1959. 6. 21)
예수와 같은 심정으로 아버지 앞에 서게 하소서
아버지!
4천 년 동안 수고하여 이끌어 오신
이스라엘의 종말을 바라보면서
그 민족을 대하여 치하의 말을 하지 못하고
탄식의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이
얼마나 안타깝고 한스럽고 슬펐으며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나이까?
아버지!
사망선상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수많은 백성들을 바라보는 예수의 심중에는,
권고하여도 듣지 아니하고
깨우쳐 주어도 깨우칠 줄 모르는
무지한 무리들을 대하게 될 때,
하늘의 안타까움이
그 일신(一身)에 사무쳤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안타까움이 사무치면 사무칠수록
땅을 대해 원망하고 싶은 마음도
아울러 높아간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이것을 억누르고 참으신 그리스도의 심정을
아는 사람은 땅 위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외로운 노정을 개척하기 위해
수고하시던 그리스도의 성상을
형같이,
아버지같이 모시면서,
그와 한마음이 되어,
그가 눈물짓는 자리에 있으면 같이 눈물짓고,
굶주리는 자리에 있으면 같이 굶고,
헐벗는 자리에 있으면 같이 헐벗고,
매맞는 자리에 있으면 같이 매맞고,
몰리는 자리에 있으면 같이 몰리는 자리에 서지 못한 것이
역사적인 한이었음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심정의 세계는
역사적인 거리를 초월한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저희들,
이제 심정의 바탕을 찾아 들어가
그리스도의 성상을 붙안고,
그의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심정의 친구가 되어
예수 대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줄 알고
예수 대신 갈보리 산상을 향하여 달려갈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아들딸이라 할진대,
그는 그리스도의 친구요,
역사를 넘어 하늘의 아들을 모신 자라는 것을
저희들이 체휼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예수는 이 땅 위에 와서
수없이 눈물을 흘렸사오나
그 누구도 그것을 몰랐사옵고,
피눈물나는 애통(哀痛)의 심정을 갖고
천성을 대하여 호소하였사오나
그것을 아는 자도 없었사옵니다.
아버님,
오늘날 통일의 신도들을
불쌍한 자리로 몰아 연단시켜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굶주림 가운데에서 단결시켜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나이다.
아버지,
헐벗으면서도 뜻을 염려하고
매를 맞으면서도 당신을 염려하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아버지의 소원이요,
이런 모습을 세워
이 민족 앞에 자랑하시려는 것이
아버지의 뜻인 것을 아옵니다.
이제 그런 모습을
찾아 세우기 위한 사명을 할 때가 왔사오니,
이 사명 앞에
저희들이 비굴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고,
이 사명 앞에
주저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에게 있는 모든 정열과 성심을 다하여
당신 앞에 실적을 남기고
당신의 심정에 기억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면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960. 7. 17)
한을 남기고 가신 예수님의 심정을 위로케 하소서
이 아침은
1965년 새해 들어
첫번째 맞이하는 안식일인 동시에
주 강생 1965년째를 맞이하는 날이옵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메시아의 탄생일을
자기들 마음대로 정하여 축하했사옵고,
메시아가 이 땅에 와서
인류와 더불어,
세계와 더불어,
우주와 더불어,
어떠한 인연과 가치를 결정지었는지도 알지 못하고,
그분의 명성만 기억하고서
메시아의 탄생일을 축하했사옵니다.
그러나
오늘 이렇게 모인 소수의 무리들은
지금부터 2천 년 전에
당신의 넓고 높으신 뜻과
존엄하신 경륜에 의해
보내심을 입은 예수님이었지만,
가련한 입장에 처했던
그의 사정을 마음으로 동정하면서,
그때에 이스라엘 민족이 사명 다하지 못한 것을
뼈아프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 땅 위에
당신의 귀하신 아들로 태어난 그분은,
천지창조의 이념을 저버린
아담을 잃어버린 슬픔을 해원하기 위해
보내진 분이었음을 아옵니다.
그를 통하여 뜻을 이루시고,
그를 통하여 영광받으시고,
그를 통하여 행복의 세계를
이루려 하신 소망을 성사시키기 위해
당신께서 보내신 메시아 예수님은
태어나는 그날부터
초초한 모습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메시아를 고대했지만
정작 메시아로 오신 그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 메시아는 홀로 하나님의 심정을 품고
하나님의 소망을 지니고 살아야 할
생활적인 사정을 지니시고,
남 모르는 가운데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나셨다가
불쌍한 신세로 십자가에 달려
눈물과 피를 흘리고 가셨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저희 선조들이 부족했던 것을
저희들이 이 시간에 사죄드리지 않을 수 없사옵고,
책임을 짊어진 유대교가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배반한 죄악을
저희들이 사죄드리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수많은 역대 저희 선조들을 피흘리게 한 죄의 역사를,
하나님을 배반해 온 수많은 인류의 죄악상을,
저희들이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더듬어 생각하고
회개하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당신의 서러움을 저희들이 살펴야 되겠사옵고,
예수님의 억울한 사정을
저희들이 동정해야 되겠사옵고,
지금까지 피의 노정을 걸어 나온 그의 제자들의
처량하고 비참했던 사정을 깨달을 수 있는
저희들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역사적인 한을 품고 가신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위로하고,
가정적으로 위로하고,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나아가 세계적으로 위로해 드리는 것이
오늘 메시아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전체적인 목적임을
저희들이 망각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2천 년 역사는 지나갔사옵니다.
그동안 슬픈 사정이 얼마나 많았사옵니까?
아버지도 슬펐고,
예수님도 슬펐고,
성신도 슬펐으며,
기독교인들도 슬펐던 것을 아옵니다.
또한 이토록 슬펐던 한을 풀기 위한
최후의 마지막 한 날,
즉 모두가 고대하는 심판의 그날이
가까워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쌓이고 쌓인 아버지의 한을 풀기 위해
오시는 메시아를
다시 맞이해야 할 입장에 있는
이 끝날의 성도들은,
메시아를 고대하던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오시는 메시아를 섬길 수 있는
마음과 준비는 갖추지 못하고
메시아를 고대하기만 해서는 안 되겠사오니,
저희들 각자가 이런 것을
자각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면서,
모든 말씀 주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1965. 1. 3)
이스라엘이 못 한 사명을 저희가 이루어 드리게 하소서
아버님!
2천 년 전에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여 놓으시고
그들로 하여금
마음으로 몸으로 아버지의 심정을
체휼하게 하려 하였으나
그 뜻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사옵나이다.
불신하는 사람은 많았사오나
섭리의 뜻을 대하는 하늘의 생명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었던 것을 저희들이 아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늘의 생명을 나타내려고 하셨으나
그를 따르는 사람이 없어 홀로 가셨사온데,
오늘 저희들이 온 인류의 등불이 되어
예수님의 사명을 이어받을 수 있고,
예수님의 뜻을 이어받을 수 있는
무리들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여!
지금까지 타락한 불신의 사회환경과
그 실정을 바라보시면서 참아왔사옵고,
이제 이 세상을 염려하사 저희들을 택하여
세상이 악하면 악할수록 부단히 하늘 앞에 설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신 은사 감사하옵나이다.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슬픔을 당할 수밖에 없게 되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그는 하늘의 슬픔을 대신하여 말씀하셨으며,
그가 하는 행동은 믿음에 의한 것이었으며,
아버지를 중심한 것이었음을 저희들이 아옵니다.
이제 끝날에 있어서
저희들이 인류의 죄를 탕감복귀하여
아버지의 심정과 연결되어
저희의 몸 마음에
아버지를 모시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 위에는 수많은 믿는 사람들이 있사오나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아버지를 진정으로 따른 사람이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 새로운 이스라엘을 대신하여야 할 기독교는
아버지의 뜻을 알지 못하므로
섭리의 전체의 뜻을 맡지 못하게 되었사옵나이다.
아버님이여,
그 뜻을 저희들이 이루게 하시옵고,
저희들을 인도하여 주시어서
아버지의 소명을 받아
영원히 남아질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이 저희를 택할 때에는
저희만을 위해 택한 것이 아니었사옵고,
민족을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택하였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뜻 대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뭇매를 맞고 찢기며 핍박을 받을지라도
아버지가 기대하시는
하나의 생명을 가질 수 있다 할진대는,
언제까지나 참아 나가
아버지께 승리를 안겨드릴 수 있는
저희들 되게 인도하여 주시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제 저희들의 심정을
하늘의 심정에 연결하여
아버지 뜻을 이루어드리고자 맹세하는
귀한 시간 되게 하시옵고,
섭리의 뜻을 허락하여
사랑을 가지고
아버지 뜻을 책임져 나갈 수 있도록 허락하시옵고,
하늘의 심정을 체휼하여
오직 뜻길만을 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의 뜻이라면
죽으나 사나 아버지를 붙들고
저희 마음은 당신의 생명을 찾고
저희 몸은 당신의 생명의 길을 찾아
오직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958. 4. 6)
예수님이 못다 이룬 뜻 해원성사하게 하소서
아버지!
통일교단이 지금까지 걸어 나온 길을
회고해 보게 될 때에,
이 교단은
그 누구도 사랑해 주지 않던 교단이었습니다.
나라가 반대하고,
기성교회가 반대하고,
부모가 반대하고,
개개인이 반대하던 그 입장은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의 도상까지 몰렸던 것과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몰리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2천 년 노정에 있어서
개인을 찾고,
가정을 찾고,
종족을 찾고,
민족을 찾고,
국가를 찾고,
세계를 찾아오셨으나
영적 기준에서만 찾아 나왔습니다.
이 영적 기준을 계승하여
실체기준까지 연결시키는 것이
당신께서 바라시던 소원의 일념이었고,
당신께서 6천 년 동안 수고하신
그 수고의 결과가 되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걸어온 것은
예수님의 한스러웠던 내정의 인연을 상속받아서
실체적으로
이 민족 앞에 쫓김받으면서도 죽지 않고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교회를
다시 한 번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될 때에
이 나라 이 민족에 있어서
교단끼리 서로서로가 같은 기준을 취하여
도리어 유대교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시대권을 맞이했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예수님을 반대하던 유대교 무리보다
예수님의 복음을 통하여 하나된 무리가
더 강한 입장에 섰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 저희를
그러한 입장에 세워 주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진실로 감사를 드립니다.
교회를 넘어서서
민족기준까지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될 필생의 사명이
저희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어떠한 어려움을 당하고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 길을 넘어서야만
비로소 저희가 살 길이 있고
정착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나깨나 이것만을 위해서
저희들이 온갖 정성을 투입하겠다고
다시 한 번 결의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의 멀지않은 장래에
필승의 한 날이 찾아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들은
예수님이 하지 못한 사랑을 해야 되겠고
예수님이 받지 못한 사랑을 받아야 되겠사옵니다.
이와 같은 일이 통일교단에서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저희들을 통하여
아버님의 한과 예수님의 한이 해원성사된다는
이 엄청난 역사적 사실을 고맙게 생각하고,
일생에 한 번밖에 없는 이 귀한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970. 12. 25)
예수님의 한을 해원성사하는 통일교단 되게 하소서
아버지!
유대교단과 수많은 제사장들은
스스로 하늘을 받들고
하늘의 내정적 인연을 생활에 나타내어
하늘의 규범을 세운다고 하면서 나가던 무리였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중심이요,
생명의 결정체요,
사랑의 중심이요,
사랑의 결정체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그렇게도 냉정하게 모른 체했사옵고,
이스라엘 나라의
정신적인 책임을 진 유대교단 중에
예수님의 편이 되었던 자가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원통한 아버지의
4천 년 수난의 결과였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눈물로써
아버지를 대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아버지!
마지막 길을 떠나는
한 많은 예수 그리스도의 편에 서서
생명을 걸고 울부짖으며
슬픔과 원한의 역사를
가로막고 나선 형제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어머니마저도 예수님의 죽음길을
‘내가 대신 가겠다’고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진정 불쌍하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종말이
이렇게도 억울하고 비참하였던
사실을 회상하게 될 때,
저희들은 원한에 사무친 마음으로
과거의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를
저주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저주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이 4천 년 동안 수고하여 쌓아 놓으신
이스라엘권이 무너질까봐
죽음길을 가면서까지도
그들의 복을 빌어 주어야 했으니,
그런 예수님의 원통한 심정을
저희들은 기필코 알아야 되겠습니다.
죽음의 길에서도 동정을 받지 못한 예수님은
고독한 고아의 신세였다는 것을
저희들이 절절히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친구가 되어야 하고,
이러한 예수님의 친척이 되어야 하고,
이러한 예수님의 교단이 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이러한 예수님의 누나,
혹은 동생이 되어야 할 입장에 선 무리가
바로 이 역사시대에 홀로 남아진 통일교단이요,
저희들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예수님은 만민을 구원해야 하는
메시아의 사명을 가지고 탄생하신 분이라고
입에서 입으로 말을 놓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을 알고 보면
이토록 예수님은 역사적 슬픔 가운데
고독하게 태어나신 분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통곡을 하고,
그런 예수님의 슬펐던 내심의 정경을 통곡하며
위로할 수 있는 모습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는 뜻을 알고 난 그 날부터
예수님의 슬픈 한을 풀어 드려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아버님의 슬픈 한을 풀어 드려야 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날까지 싸워 나와
오늘 이 통일교단을 형성하였사옵니다.
이와 같이 슬펐던 아버지의 사연을 드러내어
가르쳐 줄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인연과 터전이
이 지구상에 역사 이래 처음 나타났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곳은 그야말로
아버님의 소망을 대할 수 있는 한 곳이라는 것을
저희들이 잊어서는 안 되겠사오니,
아버지의 심정이
여기에서 다시 묶어지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저희들 잊지 않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971. 1. 3)
마지막 개척자의 사명을 다하게 하소서
사랑의 아버님!
찾아 주셨사오니 감사하옵나이다.
오늘의 찾으신 걸음은 기쁨으로 찾아오셨사오나,
내일의 떠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환희의 송영(頌詠)의 날을 약속하고 떠날 수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되지 못할까봐 두렵사옵니다.
만나기는 기쁨으로 만났사오나
헤어지는 날은 슬픔으로 헤어지는 것이
인간을 대해 나오신
아버지의 곡절의 노정이었음을 알았사옵니다.
오늘보다도 내일이
아버지앞에 그리워지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청춘기보다도 노년기에 들수록
더 아버지를 그리워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마음의 깊고 높은 그 세계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줄 아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아가
아버지의 원한의 심정을 위로하고
예수의 원한을 해원하고
역사상의 선조들의 원한을 해원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오늘날 종말적인 사명,
천적인 해원성사를
저희들로 말미암아 이루어 받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저희들은
개척자의 심정으로 오셨던
예수인 것을 알았사옵나이다.
영광이 변하여 개척자가 웬말입니까?
세례 요한이 배반한 연고였사옵고,
교단이 배반한 연고였사옵고,
민족이 배반한 연고였사옵고,
세계 모든 사람들이 배반한 연고였사옵니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사에 남아진
사실(史實)인 것을 아는 한,
예수가 준비기간으로부터 실천기간을 통하여
완성기준을 향하여 넘어가던 그 내적 결의의 심정이
저희들의 마음터 위에
용솟음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는 민족적인 원수,
국가적인 원수를 대했사오나
오늘날 저희들에게는
민족을 넘어 세계적인 원수,
우주적인 원수를 대해야 할 책임,
즉 마지막 개척자의 사명을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있사오니,
아버지,
저희에게 능력을 주시옵소서.
이 책임을 홀로 지고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을 끝까지 늠름히 걸어 나가,
승리하는 영광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곡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959. 2. 1)
한 많은 복귀의 길을 책임지게 하소서
하늘을 바라보며,
만물을 바라보며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소원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그 부르시는 음성 따라 싸움터로 달려갈 줄 아는,
아버님께서 기뻐할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아버지의 서글프신 역사적인 한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사옵고,
이 세계를 찾아 나오시는 발걸음이
얼마나 초조하고 비통한가 하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저희의 몸이 아버지께서 가시는 발판이 되고,
평탄한 길을 닦는 데 쓰여져야 할
재료가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가시밭길이라
뒤넘이치고 몸부림치고 피를 뿌리게 되더라도
이 길을 개척해야 할 사명이
저희들이 해야 할 진정한 사명이요,
책임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저희들의 몸 마음을 바쳐
이 민족의 갈 길을 닦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 민족을 세우시어
만민이 아버지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직행 행로를 닦을 수 있게 하시옵소서.
이러한 사랑의 은사를 받을 수 있는
이 민족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남이 알지 못하고
남이 환영하지 아니하는 길을 걸어왔사옵니다.
슬플 때도 많았사옵고
외로울 때도 많았사옵니다.
그러하오나
아버지께서 가신 길이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눈물로써 환영하였고,
심정어린 음성으로
아버지를 부를 때가 천만 번임을 알고 있사오며,
아버지를 부르던 저희의 음성과 더불어,
저희의 눈물과 더불어
아버님도 눈물지었다는 그 사실이 얼마나 귀한가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길임을 알았기에
그 길을 가기 위해
통일의 역군들은 수고의 길도 개의치 않았사옵고,
고행의 길을 더듬으며
아버님을 부를 수 있는 기쁨의 한날을 맞이하기 위해,
세계적인 골고다 노정을 표준하여 찾아 나온
간절하고 갸륵한 그 이름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아버지의 뜻을 위하여
충성하기에 지친 사람이 있사옵니까?
다시 긍휼의 마음을 펴시어서
사랑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남은 한 많은 복귀의 길을 또 가야 되겠사오니,
그 발걸음을 거룩히 여겨 주시옵고,
그 모습을 아버지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보호와 권위가 같이해 주시어서
어디에 가든지 백전백승의 승리를 거두어
아버지 앞에 영광의 터전을 이루어 드림으로써,
아버지께서 친히 뭇 백성 앞에 내세우셔서
이는 내 아들이요,
딸이라고 칭찬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복귀의 길 위에,
아버님이 계획하시는 뜻 앞에
승리의 영광만이 남아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1965.12.26)
복귀의 노정에서 승리하게 하소서
아버님!
오늘 여기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이 자녀들은 모두 다
본향의 나라를 찾아가야 되겠사옵니다.
본향의 나라를 찾아가는 이 길이
이렇게 어려운 길일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사옵니까?
아버님! 한 많은 탄식의 세계 위에서
이 원한의 터전을 밟고,
이것을 박차고
새로운 경지를 향하여
유도탄같이 날아갈 수 있는 새로운 마음의 폭탄을
지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심정의 폭발력과 추진력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사랑을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런 사람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가 이 길을 막고 반대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문제가 아닌 줄 알고 있사옵니다.
가야 할 발걸음이 바쁘고 바쁘기 때문에
쉴래야 쉴 수 없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가야 할 운명에 처해 있는
통일의 자녀들인 줄 알고 있사오니,
부디 이들의 앞길을 평탄케 해주시옵고,
가는 길 앞에
한 고비 한 고비의 싸움을 다짐하게 하시옵소서.
올라갔다가
부디 떨어지지 않는 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숱한 역사과정에서
슬픔의 가슴을
억눌러 가면서 참아 나온 이들을 기억하시옵고,
이들의 얼굴에 수심과 낙망과 패자의 빛이
어리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그러한 과거를 지녔지만
소망에 넘치고 희열에 넘치어서
내일의 희망 가운데
벅찬 가슴을 안고 나아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상세계에서 탈선되지 않는 입장에서
보고할 수 있는 심정을 가지고
하루의 생활의 승리자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일년의 생활의 승리자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
생애노정의 승리자가 되게 하시어서
아버님께서 저희들에게 허락하시려는
행복의 터전인 본향의 나라를 창건할 수 있는
건국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평화의 왕국을 창건하여
아버님을 모셔 놓고
천년 만년 살고지고 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그날 위에
평화가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자녀들의 행복의 노정 위에
아버지의 가호가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온갖 충성과 희생을 각오하고 나가는 데 있어서
아버님의 동정의 심정이
언제나 이들의 생활 가운데 넘쳐 흐르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간절히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968. 3. 10)
복귀섭리의 책임을 다하는 자녀 되게 하소서
아버지!
저희는 아버지의 아들이면 좋은 줄만 알았지
거기에 해당하는 만큼 십자가가 지워진다는 사실은
잊어버리며 살아 왔습니다.
아버지!
하오나
이제 저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이
이래서 다른 것이요,
아버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이러한 내용이 있기 때문이며,
역사를 짊어질 수 있는 것도
이렇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사옵니다.
오늘날 사탄세계를 바라볼 때,
제2의 출발을 모색하기 위한 아버님의 사랑이
역사과정과 더불어 지금 이때에
깊이 동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옵니다.
이것을 감사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가야 할
필연적인 노정을 앞에 놓고 가는 데 있어서
개인적인 아벨의 길을 가야 되겠고,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적인
아벨의 노정을 가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이 이 길을 다 갈 때까지는
바쁘고 또 바쁘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먹을래야 먹을 시간이 없고,
잘래야 잘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쁜
저희들의 행로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뿐만 아니라 가인세계까지 구해 가지고
아버님 앞에 돌아가게 될 때,
아버지께서는 비로소 저희를 보고
안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책임을 다하는 저희들이 되고,
아버지의 분함을 탕감하는 데
부족함이 없게끔 노력하고 정성을 다 들이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모든 것에
당신께서 친히 같이하여 주실 것을 부탁드리면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1970.4. 5)
원리와 일치하는 견고한 기반을 닦게 하소서
아버지!
수천 년 동안 기독교 역사를 엮어 오신 아버님은
내심의 변치 않는 공고한 기반으로
역사를 대해 나오셨습니다.
그 과정에 죄악된 요소의 복잡한 단계들은
탕감의 대가를 치르며 축소시켜 나오신 것이
아버지가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신
역사적인 사연인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역사를 축소시킨 하나의 기점에서
‘이것이다’ 할 수 있는 기원을 마련하기 위하여
수천 년 동안 선한 사람들을 희생시켜 나온 것이
아버지의 뜻의 길인 것을 헤아리게 되옵니다.
그 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지만
진정 아버지가 바라시는 자리에 서서
피를 흘린 사람이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아옵니다.
그것이 아버님의 한이었기 때문에,
아버님께서는
그 결정적인 기점을 해결짓기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셨사오나
예수님마저 땅과 영계를 중심삼고
그 기점을 찾지 못하는 슬픔을 갖고 죽어갔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역사를 연장시켜 가며 섭리하신
아버지의 노고의 역사는
가중된 십자가의 비참한 길로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래서 아버님은 다시 한 번
역사적 끝날에 이것을 해결짓기 위하여
통일가를 세우시어
이런 엄청난 하나의 기점을 마련하신 줄 아옵니다.
그런데 그 기점은
무모한 자리에서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공고한 어떠한 원칙을 따라
변치 않는 내용을 갖추어야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이 시점에서
아버님께서 저희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실 것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
그것은 외적인 세력 기반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공고한 터전 위에서 원리화된 하나의 개인과
하나의 가정과
하나의 종족을 형성하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 운동이 무엇보다도 귀하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지금까지 저희가
원리와 일치하는 생활관을
얼마나 중요시했느냐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반성해 보면
아버지 앞에 불충한 자신임을 깨닫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리는 원리대로 두어두고
생활은 생활대로 하고,
자신은 자신대로 간다고 하는 입장에서
지금까지 걸어 나온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나 자신을 위해 수고하신 아버지 앞에
불충이었고 불효이었음을
저희들 각자가 다시 한 번 자인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원리와 자신의 생활이 일체 된 자리에서
아버지와 일체 될 수 있는 주권을 갖지 못한
과거의 슬픔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러한 현재에 처해 있는 저희 자신을
폭파시켜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님께서 하나의 기점상에 머무를 수 있음과 동시에,
저희가 영원히 아버님을 대신하는 데 대해
자신감을 가지는 원리적인 내용을 지닌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1970. 4. 26)
미래의 소망세계를 상속받는 모습 되게 하소서
사랑하는 아버님!
영원한 주체 되시는 아버지 앞에
춘하추동의 인연을 거칠 수 있는 실체를 갖추어,
봄절기의 문화세계를 그 가슴에 흠뻑 추구하면서
내일의 승리의 영광을 찬양하는 승리의 왕자 왕녀를
아버지께서 찾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 거룩한 숙명 앞에 부름받은
자기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거룩한가를
자각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사람은 한 번 왔다 죽어 가는 것입니다.
이 생이 아무리 귀하다 해도
청춘시기에 비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저희가 장년이 되면 짐을 짊어지게 되고,
장년시기에 싸워서 지탱하지 못하게 될 때에는
그 결실된 후손이
비참하게 되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년시대를 힘차게 지내고
노년시대를 거쳐서
새로운 봄을 맞이하고
새로운 여름절기를 볼 수 있는 후손을
자기 품안에 가진 가정이어야만,
그 후에 다가오는 겨울절기를
무난히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것이 인생 세계의 역사시대에 있어서
상징적인 현상인 것을 바라보게 될 때에,
아버지의 뜻 앞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타락으로 인한 절망의 구렁텅이 앞에
30억 인류가
이제 최후의 운명을 저울질하는
선상에 서 있는 것을 알면 알수록,
여기에는 내일의 봄을 대신하고
내일의 여름을 대신할 수 있는
하늘의 왕자 왕녀가 있어야만
이 인간 세상에서
겨울절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 사실을 미루어 볼 때에,
하나님의 섭리는
여기서부터 인연에 인연을 연결시키어
사망권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결정적 기원을 이룬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되었사옵니다.
아버지여!
저희 자체가
오랜 역사노정에
슬픔을 남기고 간 선조들의 한을 박차고,
타락으로 말미암은 운명 가운데서 신음하는
인류에 원한 맺힌 이 원수의 근거지를 박차고
내일의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모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봄절기와 여름절기를 거쳐
가을절기의 결실적인 실체이오니
미래의 소망세계를 상속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다가오는 겨울절기를 무서워하지 않고
아버지의 승리의 죄표로 남아질 수 있는,
하늘의 왕자 왕녀의 모습을 갖춘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여기에 모인 보잘것없는 무리들이
그러한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970. 5. 3)
심정의 체휼을 갖게 하소서
아버지!
분부하시던 당신의 음성이 그립습니다.
최고의 선을 향해 가라 하시던
비장한 그 음성이
이 시간 저희의 마음을
다시 움직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가 남기신 핍박의 길,
고통의 길,
환난의 길,
골고다의 산정을 넘어
역사적인 비운의 길을 가라고 권고하시던
애달픈 당신의 사정이 그립습니다.
아버지!
마음대로 자랐고,
마음대로 살았고,
멋대로 되어 있는 저희들을 모으시사
지극히 높으신 주의 성상을 닮으라고 하옵시는
황공한 은사에 머리를 숙이오니,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본질이나 성품을 다 분석해 보아도
당신 앞에 내어 놓을
아무런 무엇이 없는,
죄악에 가득찬 저희들을 불러 모으시고
한량없는 축복의 은사를 베푸신 당신께
감사드리옵나이다.
다만,
간절히 믿음과 심정 하나만을 요구하시는
아버지의 애달픈 그 사정과 심정을
저희들이 체휼하고 실증하게 해주시옵소서.
아버지!
저희들은
어떠한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미 많은 말을 들었고
많은 사람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을 대하여 보았고
은혜스럽다는 자리도 찾아가 보았지만,
저희 자신과 관계맺지 못한 채
다 지나가 버렸습니다.
은혜는 은혜대로 지나가 버렸고,
사람들은 사람대로 지나가 버려
남은 것은 혼자밖에 없는
역사적인 고아와 같은 저희입니다.
때문에 저희는
새로운 봄바람이 불어오기를 바라고 있사옵니다.
아버지께서도
그와 같은 은사를 허락하실 수 있기를
얼마나 고대하고 계시옵나이까?
저희들,
갈급하고 조급한 마음과
직고하는 심정을 갖고
아버지의 성상 앞에 모이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가 무슨 말을 하오리까?
말하기 전에
마음속에 자신도 알 수 없는 사무친 감격이
체휼되게 하여 주시옵고,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뭉클하여져서
눈물 흘리며 통곡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이 움직여 주지 않으면
그런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고,
천만 마디의 말보다도
한 가지 체험이 더 귀한 것을 아옵니다.
이제 부족한 모습들이 아버지 앞에 나왔사오니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간이 배워서 안다 한들
얼마나 알며,
자랑할 무엇을 스스로 갖추었다 한들
천상에 내세울 것이 얼마나 있겠사옵니까?
아무것도 없음을 알고 있사옵니다.
변명보다는 사실,
사실보다는 심정의 체휼이
저희가 죽은 후에 수거될 것이요,
남아질 것임을 알고 있사오니,
역사적인 주인공이 되어야 할 저희들 위에
친히 현현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959. 10. 11)
하늘의 사정과 심정에 인연맺어질 수 있게 하소서
아버님이시여!
마음과 마음에 다리를 놓으시고
심정과 심정을 연결시키어서,
아버님의 사정을 통과시킬 수 있고
아버지의 심정을 체휼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역사노정에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왔다 갔사오나
하늘의 사정이 어떻다는 것을 몰랐사옵고
하늘의 심정이 어떻다는 것을 모르고 갔사옵니다.
끝날이 되어 오면 되어 올수록
의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는 하늘의 사정이요,
하늘의 심정인 것을
저희가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시키고도
즐거운 마음으로 나서겠다고
저희들 스스로 각오하고,
제물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고
하늘 앞에 부복하는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능력을 바라는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하늘은 모든 준비를 갖추고 있사올지라도
저희 자신들이 그 준비에 대응하여
마음과 몸에
준비의 터전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의 마음속에
지금까지의 그 무엇을 남기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어린애의 심정으로 돌아가
아버지의 은은하신
그 심정의 감촉을 통하여
다시 한 번 하늘과 인연맺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아버지의 명령하시는 은사에 잠기어
하늘과 더불어 화할 수 있고,
아버지께서 친히
저희들과 더불어 의논하고,
저희들과 더불어 새로운 약속을 세울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새로운 약속의 말씀을 통하여
아버지 앞에
다시 한 번 각오와 맹세를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과거의 모든 것을 뉘우쳐
아버지 앞에 성별된 한 기준을 세워 놓을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올 때,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959. 10. 11)
뜻 중심한 하나의 몸과 마음 갖게 하소서
사랑하는 아버님!
저희의 마음이 천태만상이오나,
저희들의 생활 가운데
아버지의 성품이 나타나게 하시고,
아버지께서 동하면 저희들도 동할 수 있고,
아버지께서 정하면
저희들도 정할 수 있는
의의 실체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연약한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천성을 향하고 있는 것을 아버지께서 아시오니,
비록 저희들의 몸이 속된 데에 사로잡혀
영원하신 아버지의 은사를 가로막고 있을지라도,
저희의 몸이 속된 바의
모든 것을 굴복시키어
당신의 형상을
저희의 마음 몸을 통하여 나타내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또 그러한 섭리의 뜻과,
섭리의 은사와,
섭리의 사랑이 저희들에게 연하고 있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고 몸으로 감지할 수 있게,
아버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마음은
오늘도 절대적인 선을 향하여 달리고 있사옵는데,
몸은 속된 것을 취하려고
마음을 대해 끊임없이
반격을 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옵니다.
그러하오니,
아버님,
저희의 마음 몸이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하나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와 저희와의 심정의 간격을 타개하시어서
사탄이 운행할 수 있는 발판을
저희 몸 마음에서 완전히 제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은 오늘날까지
저희의 마음을 중심삼은 몸을 붙안고
사랑하고자 하셨사오나,
아직까지 충정어린 아버지의 성상과 형상 앞에
완전한 미의 대상체로
나타나지 못하고 있사옵나이다.
이것이 역사적인 서러움이요, 탄식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나이다.
아버님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몸 마음이요,
죄악에 물들었던 몸 마음이요,
아버지의 충만한 은사를 바라는 부족한 몸 마음이오니,
이제 몸 마음 전체를
아버지께서 붙들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님의 성상 앞에 기쁨을 돌려 드리고
아버지의 마음에 호응하는 하나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이제 저희들,
아버지께서 6천 년 동안 소원하시던
그 소망의 기준을 갖추어
아버지의 존전에 무릎을 꿇고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게 허락해 주시고,
아버지께서 안식하실 수 있도록
당신의 성상을 나타내 드리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인간이 갖고 있는 모든 주의 주장과
인간이 갖고 있는 권리,
이 모든 것은 없어지고 만다는 사실을 아옵니다.
하오니
저희의 마음과 몸이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근본 입장에 들어가
새로이 폭발되어 오는 힘과 부활의 눈을
저희의 마음에 갖출 수 있게 하시고,
자신을 중심한 생활을 버리고
천주를 중심한 생활로서 돌이켜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의 마음을 저희 마음으로,
아버지의 심정을 저희 심정으로 체휼할 수 있는
저희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모든 것을 맡겼사오니 뜻대로 하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958. 3.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