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손주들에 전하는 하나님 말씀
아담 해와의 핑계는 사탄에게 천주를 내주었다(주관권을 천사장 누시엘에게 내어준 아담 해와)
창세기 3장 8절 이하에 보면 아담 해와가 타락한 이후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를 찾아가서 왜 따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먹었는지 문책을 하시는 것이 나와. (창3:8-13)
먼저 하나님이 아담을 찾아가서 물었단다.(창3:11)
하나님께서 내가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왜 따먹었느냐고 물으셨어.
그런데
아담은 자기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해와 때문이라고 변명을 하고 말았어.
그러자 하나님은 다시 해와를 찾아가셔서 아담에게처럼 해와야 왜 선악과를 따먹었느냐고 물으셨어.
해와 역시 아담처럼
자기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뱀(천사장 누시엘, 사탄)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고 말았어.
그러자 하나님은 더 이상 천사장 누시엘을 찾아가 문책을 한 기록은 없어.
순서대로라면 하나님이 해와가 선악과를 따먹게 한 누시엘 천사장을 찾아가 문책을 하셔야 하지만 그런 기록은 성경에 없단다,
위의 성경 내용을 통해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단다.
먼저 왜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놓고 봐도 분명 해와가 먼저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하였는데 하나님이 왜, 맨 먼저 아담을 찾아 가서 문책을 했느냐?
그것은
아담과 해와 중에 아담이 주체이기 때문이야.
비록 해와가 먼저 타락을 했지만 그 주 책임은 주체인 아담이 져야 하는 것이 창조원리야.
이 땅에 후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은 당신이 잘못한 것이 없지만 대상인 인류가 잘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도 바로 이러한 대상 입장의 인류가 잘못한 것을 주체 입장인 예수님이 책임을 지시고 십자가를 지셨던 것이야.
그렇게 해서 영적인 구원이라도 이루려 하셨던 하나님과 예수님의 뜻을 헤아려 드릴 수 있어야 한단다.
이런 내용을 알게 되면 하나님이 해와를 찾아가 문책을 하신 후 더 이상 뱀(천사장 누시엘)을 찾아가 문책하지 않으신 뜻도 자연히 알게 되잖아.
결과적으로
해와가 천사장 누시엘을 타락하게 한 입장이 되는 거야.
비록 천사장 누시엘이 해와를 유혹하였지만 종의 주인인 해와가 그 꼬임에 넘어가지 않고 자신의 주체인 아담과 상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더라면 타락하지 않았을 거잖아.
즉 천사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하여 타락한 해와가 천사장의 주인, 주체 입장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창조원리야.
마찬가지로 해와의 주체는 아담이기 때문에
아담의 대상인 해와가 잘못한 것은 주체인 아담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원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가장 먼저 아담을 찾아가 문책을 하신 거야.
원리적으로 표현을 하자면
타락에 대한 책임은 아담(주체)이 95%, 해와(대상)가 5%의 책임을 져야 하는 거야.
똑같은 원리로 아담 해와의 근본 주체인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의 타락에 대해 책임을 지셔야 하는 거야.
자식이 잘못한 것을 부모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창조원리야.
그래서
하나님 역시 창조원리에 의해 인간 타락에 대한 95%의 책임을 지고 탕감복귀의 고난 길을 가신 거야.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몽땅 쓸어버리시지 못하고 복귀섭리를 하셔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거야.
오늘 창세기 말씀을 통해 공부한 대로 아담 해와가 타락한 것도 문제지만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찾아가 문책을 하실 때 그때라도 아담 해와가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고 책임을 지는 자세를 지녔더라면 아담 해와 당대에 복귀될 수 있는 길이 있었다는 거야.
더 좋은 방법은 해와가 타락한 후 스스로 타락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타락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세를 지녔다면 아담까지 타락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해와 한 사람을 복귀하는 것은 아주 쉬웠다는 거야.
문제는 해와는 자기가 타락한 것을 범죄에 대해 회개는 커녕 아담까지 유혹하여 타락을 하게 했다는 거야.
또한 아담이 타락을 하였더라도 그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하나님을 먼저 찾아가 죄를 고백하고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였더라면 하나님이 아담을 복귀하기가 훨씬 쉬웠다는 거야.
그런데 위 성경 내용 대로
아담 해와는 자기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세가 아닌 핑계와 변명으로 일관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복귀할 수 있는 길이 없어진 것이야.
그래서 하나님은 할 수 없이 그의 후손인 가인 아벨을 세워 복귀하시려 했던 것이야.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담 해와의 타락에 대한 책임전가, 즉 변명하고 핑계한 것이야.
자기가 잘못한 것(타락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 변명하거나 핑계했을 경우, 자기 잘못을 남에게 책임전가를 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자.
이는 바로 자신의 잘못을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핑계하게 되면 그것은 주관권이 상대에게 있다는 것을 자증하는 행위가 되어 주관권을 상대에게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하는 거야.
아담은 해와의 주체이므로 해와를 주관해야 하는 원리적 입장에 있는 거야.
그런데 그 주체인 아담이 대상인 해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은 바로 역주관이 이루어졌다는 것이야.
그것은 주관의 창조원리를 뒤집어 놓은 것인야.
창조원리는 아담이 대상인 해와를 주관하는 위치에 있었는데, 아담이 해와 때문에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해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변명을 했을 때 아담의 주관권은 바로 해와에게 있다는 것을 자증하는 행위가 되는 거야.
마찬가지로 해와에게 문책을 했을 때 해와가 뱀(천사장 누시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변명을 한 것은 해와 스스로가 해와의 주관권은 바로 천사장 누시엘에게 있다는 것을 자증하는 행위가 되는 거야.
아담과 해와는 이렇게
자신의 잘못(타락행위)을 전부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변명과 핑계로 일관함으로 상대에게 자신의 주관권을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던 것이야.
즉 아담은 자신의 주관권을 해와에게 넘겨주고, 또 해와는 천사장 누시엘에게 자신의 주관권을 넘겨주고 만 것이야.
이렇게 해서 아담 해와는 최종적으로 자신들의 주관권을 모두 종인 천사장 누시엘(사탄)에게 넘겨준 꼴이 되었어.
결국 아담과 해와는 이렇게
타락행위에 대한 책임전가를 하는 핑계와 변명으로 아담의 주인(주관자)은 해와요, 해와의 주인(주관자)은 천사장 누시엘이라는 것을 자증한 것이야.
하나님이 아담 해와에게 축복해주신 것은 3대축복이야.
그 3대축복을 사탄이 된 천사장 누시엘에게 다 넘겨주게 되었단다.
이렇게
아담 해와의 책임전가, 변명과 핑계는 하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모두 사탄에게 넘겨주는 천주사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어.
아담 해와는 천주까지 주관할 수 있는 주인으로 축복을 해주셨는데
아담 해와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은 주관권을 스스로 사탄에게 넘겨준 그 행위는 결과적으로 사탄에게 온 천주를 주관하는 주관자, 주인의 입장에 세워준 것이야.
결과적으로 사탄은 아담 해와가 받은 3대축복을 고스란히 인계 받아 세상의 임금 노릇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야.
그것이 바로 아담 해와의 잘못(타락행위)에 대한 변명과 핑계로 책임을 전가했기 때문이야.
그래서 너희들도
아담 해와처럼 자기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질 줄 모르고 남 핑계를 하면 하나님이 축복해주신 3대 축복을 이루지 못하고 사탄 주권 하에서 살아가게 된단다.
우리가 살면서 주어진 환경을 탓하거나 남을 탓하게 되면 이는 스스로 주관권을 포기하는 타락행위가 되는 거야.
그래서 인간 세상에는 이러한 아담 해와의 타락성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환경이나 남을 탓하면서 불평 불만하는 버릇이 만연해 있는 거야.
그것이 심해지면 부모를 탓하거나 원망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탓하고 원망하는 자리에까지 가는 거야.
하나님에 대한 원망은 실망에서부터 시작하여 원망으로, 원망에서 절망으로, 절망에서 사망(인생을 자포자기하거나 자살하는 행위)에 까지 이르게 되는 거야.
인간은 원래 스스로의 책임분담을 통하여 완성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질 줄 알아야 하고 자기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회개하고 반성하고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하나님이 부여해주신 인간의 주관권을 지킬 수 있는 것이야.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은 어떠한 경우라도 스스로 책임을 통해 승리의 길을 가야 하고 설사 잘못을 하더라도 그 잘못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자신의 주관권을 지킬 수 있는 거야.
주관권을 지켜야 하나님이 축복하신 3대축복도 지킬 수 있는 거야.
나아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는
상대의 잘못까지 책임을 질 줄 아는 절대적 주체여야 하는 거야.
주체의식을 가진 자라면 대상 입장에 있는 자의 잘못까지 주체로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주체로서의 위신과 권한을 세울 수 있는 것이야.
하나님의 참아들이신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 모든 인류의 잘못을 책임지고 십자가의 길도 가셨어.
인류의 참부모님이신 아버님도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탕감의 길을 가셨어.
예수님과 참부모님은 참주인이시고 절대주체이시기 때문이야.
때문에 너희들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이 세상 죄를 스스로 책임을 지려는 자세를 배워야 하는 거야.
절대 이 세상을 원망하거나 거기에 영향(주관)을 받지 않고 이 세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나아가 잘못하는 이세상의 죄를 너희들이 책임을 지고 탕감하겠다는 자세로 살아야 하는 거야.
이 세상은 사탄주의 문화세계야.
그러기 때문에 창조본성을 지니고 태어난 너희들은 당연히 반발하게 되어 있어.
하지만 절대 그 환경 문화에 대해 불평 불만하지 말고 하나님이 원래 소망하시고 이상하셨던 천일국을 창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거야.
그 천일국은 너희들 개인 속에서부터 이루어야 하는 거야.
그것은 지난 번 말씀했던 3대 축복을 이루는 것이야.
너희들은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절대 하나님께 불평 불만하거나 하늘을 원망하는 일이 없어야 한단다.
부모님께도 마찬가지야.
하나님이 부모님을 통해서 너희들을 하나님의 아들딸로 낳아 주신 것을 알고 부모님께도 절대 감사해야 하는 거야.
부모에게 불평 불만하면 그것은 곧 하나님께 불평 불만하는 것과 같은 입장에 서기 때문에 하나님이 너희들을 사랑해 주실 수가 없게 되는 거야.
너희들 가정을 놓고 생각해 보자.
너희들은 형제자매가 많아서 조용한 날이 없는 너희 가정에 대해 쉬이 불평 불만할 수가 있어.
특히 여자일 경우 더할 거야.
만물주관이란 바로 환경을 주관하는 것인데 너희들이 주어진 최소 공간인 가정에서 불평하게 되면 그것은 스스로 만물주관권(환경주관권)을 상실하는 길이 되는 거야.
자기가 극복해야 할 환경(대상 세계)을 탓하고 불평 불만하니 아담 해와가 자기 잘못은 탓하지 않고 남의 핑계를 하듯이 환경 탓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야.
그것은 바로 환경이 나의 주체이고 나는 환경에 의해 주관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증하는 행위가 되어 만물주관권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야.
그런데 비좁고 시끄러운 이 가정에서 살기 싫다고 불평 불만하면 너희들은 누나와 형아 외에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아야 하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많은 형제자매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아름답고 다양한 가정천국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주어진 가정 환경 속에서 어떻게 천국을 이룰 수 있을지 연구해야 하는 거야.
그 방법은 형제자매간에 서로 우애를 가지고 사랑하는 거야. 하나님의 참사랑을 실현하는 거야.
요즘 할아버지가 보아하니 너희들은 너무 잘 하고 있는 것 같아.
큰형아가 막내 00이를 목마 태워주니까 00이가 얼마나 신나하니.
또 담요로 동생을 흔들그네 태워주니 얼마나 행복해하던...
그렇게
우리는 형제자매가 많아서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서 더 행복하고 더욱 다양한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 나갈 수 있게 축복해주신 하나님과 부모님께 감사하며 살아가게 될 때, 하나님이 더 큰 축복을 내릴 수 있는 거야.
그렇게 형제간의 우애로 살아가면서 천국생활을 하는 자가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딸이야.
바깥 세상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야.
세상을 절대 원망하거나 비판해서는 안돼.
타락권에서 불쌍하게 사는 사람들을 안쓰럽게 여기며 그들을 깨우쳐 주기 위한 참사랑으로 살아가야 해.
설사 누가 나를 비방하고 핍박하더라도 맞받아서 대응하거나 미워하거나 화를 내서는 안돼는 거야.
그렇게 되면 너희들 자신이 그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서 그들처럼 악화되었다는 결과를 초래해.
만약 그럴 때 하나님이 너희들을 찾아와서 왜 화를 내고 남을 미워하느냐 하면 아담 해와처럼 핑계하고 변명하면서 너희들의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이 되고 마는 거야.
"저들이 먼저 나를 비방하고 핍박하기 때문에 그랬다고..."
그렇게 되면 너희들의 주관권은 그들에게 넘겨준 꼴이 되는 거야.
나를 비방하고 핍박하는 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사람이 되어 나의 주관권은 그들에게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자증하는 행위가 되는 거야.
그렇게 되면 아담 해와처럼 사탄에게 너희의 주관권을 모두 넘겨주게 되는 거야.
그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야.
그래서 모든 상황에 대해서
너희들이 주체로서 주관자의 입장에서 위치를 잃지 않고 살아야 하는 거야.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참사랑으로 너희를 비방하고 미워하고 핍박하는 자를 극복해야 하는 거야.
그것을 자연굴복이라고 하는 거야.
하나님의 참아들이신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 연구해야 해.
참부모님이 어떻게 인류를 대해 참사랑을 하셨는지 연구를 해야 해.
그분들을 닮은 삶을 살아야 하는 거야.
너희들은 참부모님의 아들딸, 하나님의 아들딸이야.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나 참부모님을 닮은 삶을 살아야 하는 거야.
그래야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성장 완성할 수 있는 거야.
앞으로 너희들은 절대 환경이나 누구에게도 주관(영향)받아서는 안되는 거야.
언제 어디서든 위하여 사는 참사랑으로 살아서 승리해야 하는 거야.
그렇게 해서
이 세상 환경과 모든 관계를 극복하고 천국을 만들고 상대를 사랑해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게 인도해야 하는 거야.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딸이 가야 하는 길이고 너희들의 사명이야.
다들 잘 알았지?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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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셋째딸(15세)의 간증입니다.
막내 00이가 여느 때처럼 저의 팔을 꼬집었습니다. (막내는 갓 세살임)
이전 같으면 단호히 꼬집지 말라고 했겠지만 말씀을 들은 것을 실체적으로 해보기 위해 참고
꼬집는 것을 뿌리치지 않고 아픔을 참으면서 00 아리가또우네(고마워)하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4-5번 하니까 막내 00이가 '누나!, 이따쿠 나이! (아프지 않아!)' 하고 물었습니다.
그 때 응, 좃또 이따이케도 아리가또우네(응, 좀 아프긴 해도 고마워)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00이가 꼬집던 것을 멈추고 다른 데 가서 놀았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 모든 것은 나의 문제구나!' 하고 말입니다.
<평가>
우리 00이는 어른들이 수십년 신앙을 해도 잘 깨닫지 못하는 것을 깨달았구나!
어른들은 말씀을 머리로 들어서 배우긴 해도 실지로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외식하는 신앙자가 되기 일쑤야.
그런데 00이는 스스로 체험을 통해 모든 것이 내가 문제이고 내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상대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은 대단한 심령의 자산이 되는 거야.
우리 1세 신앙자들은 그런 내용을 배워서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것이 못 되고 이론만 알고 있는 경우가 허다해.
막내가 꼬집는 것을 감사하다는 말로 참아보겠다는 발상 또한 대단한 발상이야.
할아버지는 오늘 00이가 깨달은 것은 깨달음 자체만 아니라 그것이 원리적으로 승리했다는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라고 생각해.
할아버지가 이야기 했지,
비록 나이가 어린 막내 00이라도 그 속에 하나님이 계셔서 역사하고 계신다고.
그 동생 00속에 계신 하나님이 오늘 00이가 한 행동을 보고 너는 승리했다고 하셨을 거야.
동생이 누나를 장난감처럼 꼬집고 괴롭히고 했지만 그것을 참고 인내하며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극복했을 때 하나님은 대견해 하시고 승리자로 축하해주실 수 있는 대단한 내용이라 생각해.
그런 것을 바깥 세상에 가서 나를 비방하고 핍박하고 미워하고 반대하는 자들에게도 동생을 대하듯이 그런 마음으로 참고 인내하고 사랑으로 극복했을 때 00이는 하나님의 딸로서 승리하게 되는 거야.
그것을 복귀섭리의 관점에서 자연굴복이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00이가 동생을 통해서 참고 견디어 승리했다는 것은 주관권을 확립했고 사랑으로 극복하여 하나님의 딸로서 승리한 승리자라고 할아버지는 평가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