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뜻인가 - 제5장 섭리의 패러다임

무지... | 20180721123251

누구를 위한 뜻인가

 

제5장 섭리의 패러다임

지금까지의 패러다임이 점차성을 띠고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확진성을 띠어 폭발적으로 해일이 몰려오듯 확산될 것입니다.
그것이 선천시대 역사와 후천시대 역사의 차이점입니다.

 
목차(제5장) 

뜻을 위한 사투
임을 위한 행진
충 성 
영 생
접붙임
헛 것 
허 상 
정오정착 시대 
눈 가리고 아웅 
청심원
등 불
용기 있는 사람
이상열 한국 협회장께
평화통일성전 교(橋)
즐거이 노래하자
천일국
천일국의 이상
가짜 신
가짜 신은 이러하다
진짜 신
참목자
금후의 섭리 패러다임
신문명의 세기
펜타코스트의 세기
하늘나라의 소식
인간의 도리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하나님의 사랑을 아십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참아버님 성화 4주년, 기원절 1주년 기념 헌시



뜻을 위한 사투

어린양이라
순수와 성결이라
티 없이 맑아 백옥이라
임을 위한 길에 나 없음입니다.
성결과 의로움이라
지고지선이라
무사와 같아 강건하리니
임을 위한 길에 순진한 양입니다.
선을 위한 투쟁이라
전통을 지키기 위한 열망이라
효성으로 아버지를 지키려는 무장이라
임을 위한 만 개의 십자가를 졌음입니다.
뜻을 위한 사투라
생명을 걸고 나아감이라
천도를 지키려는 몸부림
임을 위한 맘부림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

몸부림입니다
죽음으로 지키려는 의요
산 자의 외침으로 정의입니다
임을 위한 출발입니다.
맘부림입니다
전통을 지키려는 사투입니다
참을 수호하려는 항거요
임을 위한 행진입니다.
보혈의 피입니다
몸부림이 맘부림으로
맘부림이 순혈의 피로
임을 위한 왕가의 전통입니다.

 
충 성

충성!
한 마음 한 뜻으로 충성을 노래할 때
나는 소망을 느낀다.
충성!
3대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칠 때
나는 희망을 본다.
충성!
세 개의 뿌리가 하나로 정렬할 때
나는 영생을 본다.
충성!
가인과 아벨이 하나로 믿을 때
나는 승리를 확신한다.
 


영 생

한 번 죽은 영 다시 살리란 희망입니다.
첫째 아담이 죽음으로 인함입니다
둘째 아담이 피 흘림으로 인함입니다
셋째 아담의 완성으로 인함입니다.
칠사 부활 팔단 완성
헌신과 희생입니다
참사랑의 만 개의 십자가를 짐이요
생명을 버림으로 세상을 구함입니다.
뿌리를 찾음입니다
하늘의 순한 혈통입니다.
뿌리와 참혈통을 잃으면 죽음입니다
뿌리의 소중함을 알아서 그와 한 몸을 이루므로
영생은 뿌리의 접붙임에 있습니다.

 
접붙임

접붙임이라
접붙이지 않으면 잡종입니다
잡종으로는 아무리 튼실하고 화려한 고목이라도
참감람나무의 열매라 할 수 없습니다.
붙어야 삽니다
서까래나 대들보에 붙음이 아니라
원뿌리에 붙어야 합니다
참뿌리에서 나온 세 뿌리의 연리지라야 합니다.
곁가지에서는 천년만년을 기다려도 헛것입니다.

 
헛 것

뿌리를 잃으면 큰 거목도 일거에 쓰러지고 마느니
뿌리가 성치 않으면 거목인들 무사하랴.
세상만사가 하나이거늘 어찌 둘이라 하느냐
인사가 만사이거늘 만사를 어지럽히니
하늘이 어찌 통곡하지 않겠느냐.
하늘을 가리려 하느냐
하늘을 속이려 드느냐.
헛것이니라
속빈 강정이니 모두가 허상이니라.

 
허 상

허상은 망상입니다
헛된 것을 구하지 마십시오
헛된 망령이 들 것입니다
망령된 도깨비가 될 것입니다.
도깨비의 유래를 아십니까
허상이 만들어 낸 욕심입니다
광명 천지에서도 도깨비는 있는 것입니다
세상천지에도 도깨비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마땅히 따라야 할 천도가 있거늘
허상을 따라서 망상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세상을 미혹하려는가
주의 백성을 혹세무민하려는가.
허상입니다 
백일하에 모든 거짓이 드러나리니 
지금은 정오정착의 때입니다.
정오정착 시대

그림자 없음이라
광명한 세상이로다
악한 것이나 미혹한 것이 드러나리라
하늘의 뜻이 드러나리라.
흑암이 없어 맑음이며 깨끗함이라
더 이상 숨기거나 몸통을 가릴 수 없어 민낯이라
시커먼 속내가 드러나리라.
흑암의 권세가 드러나 만인이 알겠노라
만상이 보리라
하늘을 어찌 가리려 하느냐
가린다고 가릴 수 있다더냐
지엄하신 하늘의 형벌을 어이하랴.
하늘은 이미 실형선고를 내렸느니라
지금은 정오정착으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시대는 지났느니라.
 


눈 가리고 아웅

눈 가리고 아웅 한다고 안 보인다더냐.
하늘의 눈이 수천수만이라 자신도 속일 수 없으련만
어찌 하늘을 가리려 하느냐.
하늘을 가린다고 가려지면 그것으로 끝이란 말이냐
천부당만부당함이라.
스스로도 속일 수 없음이 인지상정이거늘
가면을 쓰고 가린다고 가려진다더냐.
가렸거니 하여 속이지 말고 아예 포기하여라
차라리 포기를 하고 나오면 크신 임께서 어여삐 보시리라.
 


청심원

청심원이라
마음이 맑아 청심이요. 심령이 밝아 청심원입니다
도의심이 깊어 명경지수니 왕(혈통)의 상속자입니다.
하늘의 뜻을 하나로 관통하여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으니
천지가 하나로 귀일하여 새로운 세상을 열리란
하늘의 언약입니다.
청심원이라
원리의 도를 세우리라
수수작용 사위기대를 세우고
칠사 부활 팔단 완성으로 
흩어진 모래알을 하나로 수습하여 
새로운 세상을 열리란 예언으로
천일국의 주인은 문형진 2대 왕입니다.
 


등 불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라
썩은 환부를 도려내리라
골수를 쪼개서 수술하리라.
귀 있는 자 듣겠고
눈 있는 자 보리라
영안이 열려 환히 보리라.
환한 대낮처럼 보리라
만상이 보겠고 만인이 보리라.
해처럼 밝으리라
달처럼 환하리라
온 세상이 보아 알리라.
 


용기 있는 사람

법 없이 살아가는 사람
순전하여 흠과 티가 없어 백옥처럼 희고 순애하여라
뜻길 따라 외길 어린양처럼 희생하였네.
부모형제, 이웃의 비웃음과 조롱 마다않고 
죽음으로 넘어선 그대
올바름과 정의로움으로 달려온 그대
그대 이름은 용기라.
든든한 버팀목으로, 굳건한 의지로 임 향한 일편단심
오랜 세월 인내로 임의 뒤를 따라온 그대
이제는 쉬어야 하거늘 
기어이 좁은 길로 가시려는가.
모두가 망설일 때
옳은 줄 알면서 눈치 볼 때
선뜻 앞장서서 나팔수 되었으니
유암의 의지는 오직 주님의 것이라.
믿음의 반석으로 든든한 버팀목이라
용맹한 자의 화신 
심정의 불사조
만세에 길이 빛날 반석 훈사님이라.

 
이상열 한국 협회장께

이상열 협회장께 문안을 드립니다.
나는 천상에서 참아버님을 모시고 사는 축복가정의 한 사람입니다.
작금의 영계의 상황을 전해 드리고 싶어 김 목사님의 손을 빌려 
몇 자 적습니다.
참아버님은 많은 시간 지금의 가정연합의 상황을 놓고 고심을 
하시던 중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지금의 참어머니로서는 더 이상 하늘의 뜻을 이룰 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시고 형진님을 전면에 세우신 것입니다.
형진님 연아님을 중심한 평화통일성전을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형진님 연아님의 출발은 곧 참아버님의 의지의 결단이며 출발이기도
합니다.
50년 역사의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역사의 출발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고자 합니다.
형진님이 선포하신(첫 설교를 하신) 날을 디데이(D-day)로 참아버님의
새로운 섭리가 시작된 것입니다.
참아버님은 112세 이상을 지상에 계시면서 모든 권한을 형진님께 
맡기셔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서 지금의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현 가정연합은 이미 사탄의 권세 하에 넘어갔습니다.
참아버님은 가정연합을 떠나셨으며, 가정연합에는 아무것도 없고
오직 참어머니만 있습니다.
참아버님이 떠난 자리에 참어머님이 대신 앉아서 임금님이 되셨습니다.
하늘나라의 임금이 아니라 세상의 임금이 되셨습니다.
참어머님의 끝이 얼마나 비참하게 될는지 영계에서는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한 씨 성을 가진 여인으로 한 씨 어머니란 명칭을 받고 있는 어머님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입니다.
하늘의 명을 어긴 죄가 큽니다.
참아버님의 진노를 산 불경죄라 그렇습니다.
하늘의 명을 스스로 저버린 죄, 스스로 신이라 칭한 것이며 
참아버님의 자리를 탐한 것입니다.
주체의 자리에 서서 스스로 독생녀라 칭한 것이며, 참아버님을 능멸한 
것입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자리에 빠진 한 씨 어머니는 세상의 신이 되어 
하늘을 떠났기에 더 이상 참어머니가 될 수 없습니다.
이 점을 확실히 아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현 가정연합은 하늘의 소속이 아니라, 세상의 신 사탄의
왕국이 되었습니다.
참아버님이 떠난 자리에 사탄이 참어머님을 조종하여 앉히니 세상의
여신이 되었습니다.
여왕의 자리를 탐하여 스스로 하늘의 여왕이 되신 참어머니는 
한 씨 핏줄을 어어 받은 한 씨 여인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여 형진님 연아님께서 참어머니를 한 씨 어머니로 부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상열 협회장님!
어려운 시기에 앞장서서 형진님 연아님을 중심한 행보를 하심에 감사
올립니다.
끝까지 형진님 연아 왕비님을 모시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 2015년 10월 6일, 오전 4시 3분.
 


평화통일성전 교(橋)

돌다리도 두드리는 자 됩시다. 
천신만고 만든 다리가 아니던가?
전신에 피멍이 들고 가슴이 무너져서 피눈물로 놓은 다리, 
정신을 잃고 까무러치고 목숨을 바쳐서 만든 다리가 
평화통일성전 교(橋)입니다.
어떻게 놓은 다리인가요? 
천신만고 깜깜한 밤중에 계명성의 외침으로 왕국을 사수하려는 
열망으로 만들어진 튼튼한 다리, 수난 속에서도 우리 꿈쩍하지 않고 
강인하게 건널 수 있는 천하무적의 나라, 만인이 모두 건너갈 수 
있는 튼튼한 다리를 만들어 갑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함께 건너갈 수 있는 투명한 다리, 
병든 자와 건강한 사람이 손잡고 건널 수 있는 희망의 다리, 
너도 나도 웃으며 즐거이 걸어갈 수 있는 덩실덩실 춤사위 다리를 
만들어 갑시다. 
흑인과 백인과 황인이 마음 놓고 걸어갈 수 있는 평화의 다리, 
만인이 망설이지 않고 즐거이 건널 수 있는 자유의 다리를 
돌다리도 두드리는 심정으로 우리 함께 만들어 갑시다. 
누구나 마음껏 하하 호호 웃음으로 걸어갈 수 있는 자유, 해방, 
석방의 다리를 만들어 갑시다.
지난날의 아픔을 이제는 재연하지 맙시다.
더 이상 헌금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지 않고, 
가난한 자가 더 이상 가난하게 살지 않고, 
부자처럼 행동할 수 있게 합시다.
돈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행복하게 하고, 
섬김과 모심으로 기쁘게 합시다. 
말씀으로 본심을 길러서 본성을 행복하게 하여 스스로 헌금하게 합시다. 
마음에서 우러나 하고 싶어서 하게 합시다. 
자의적으로 선을 그어 본성을 억압하지 말고, 자유와 해방, 석방을 
위한 헌금으로 아버지와 아들을 기쁘게 합시다.
돈 때문에 신앙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돈 때문에 생명의 길 신앙생활을 망설이게 하지 맙시다. 
돈이 없어도 신나고 기뻐서 생명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합시다. 
돈을 내야 신앙이 좋다는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언제 하나님께서 돈을 내라고 하시던가요? 
야곱이 먼저 드리겠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성령의 은사로써 감화 감동을 받으면 스스로 내는 것이 참된 
헌금이지 않을까요?
필요에 의한 헌금 강요는 도적질이라는 걸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습성으로는 참된 헌금의 정신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고는 천일국의 헌금정신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선한 목자들은 심시숙고해야 할 것입니다.
참아버님의 정자 씨로 태어나신 문형진님을 따라가면 삽니다.
그분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본받아 교훈을 따라 살면 틀림없습니다.
그분은 참을 찾되 생명보다 더한 열정으로 전통을 찾으리니, 
전통보다 앞선 것은 악으로 거짓입니다. 
만약 전통(참)보다 헌금을 앞세운다면 그것은 형진님께 이단이며 
거짓인 것입니다.


⁕2015년 10월 10일, 오전 5시.
 


즐거이 노래하자

만인이 즐거이 노래하게 하자
하늘이 높고 푸르게 하자
시냇물이 흐르듯이 하자
인공적으로 댐을 만들어 환경을 오염시키지 말자.
자유롭게 하자
즐겁게 하자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해맑게 하자
즐거이 노래하게 하여
기쁨과 행복으로 살아가게 하자
누구나 기꺼이 동행하게 하자.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막힘이나 답답함이 없게 하자
동서남북, 전후좌우, 상하고저간의 갈등이나 
불평등이 없어
만인이 춤추고 즐거이 노래할 평화통일성전 교(橋)를 
만들어 만인이 즐거이 노래하게 하자.
 


천일국

천일국의 이상은 
만인이 함께 사는 곳
즐거이 노래하는 곳.
즐거이 노래하여 자유를 꽃피우는 곳
즐거운 노래로 평화를 꽃피우는 곳
즐거운 노래로 기쁨 소망 행복 이상의 열매를 맺는 곳.
천일국은 두 사람이 하나 되어 살아가는 곳
내 안에 있는 두 사람, 몸 사람과 맘 사람
개체와 개체, 남과 여, 남편과 아내, 가정과 가정
민족과 국가, 세계와 천주까지 하나로 이어진 사랑의 세계.
참사랑이 꽃핀 향기로운 나라
축복이 이루어진 나라
개성완성, 가정완성, 만물주관이 이루어진 나라
인간이 신이 되어 신과 함께 사는 나라
인성이 신성으로 화하여 심정으로 사는 나라.
너와 나의 개성이 다름으로 인하여 불편하지 않고
 
개개인의 사생활과 인권을 옹호하며 자유롭게 사는 나라
그 곳이 천일국의 이상이라.
 


천일국의 이상

사생활이 보장되고 인권이 옹호되는 나라
그 나라는 천일국의 이상이다.
미래에는 사생활이 중요하다
사생활이 이슈로 떠오른다
사생활을 보호받지 못하는 한 자유로울 수 없다.
헌법에 자유를 명시했지만
그 법이 사생활을 침해하고
개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면 안 된다
사생활 보호야말로 천일국의 이상이다.
인권문제는 그 무엇보다도 더 중요하다
인권을 보호하고 옹호하지 않는 한 
천일국의 이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하지 않는 한 
하늘나라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하여서 
보호 육성하여야 한다.

 


가짜 신 

인간이 만든 신이 있다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신
물신이다.
헌금을 강조하는 목자는 물신의 노예다
자신 안에 물신이 자리를 잡고 있어 
돈에 눈이 멀어 신보다 돈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
말씀이나 신앙의 우위에 서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돈이라
돈을 섬기는 신앙이라
기묘하게 헌금을 강요해 뜯어내는 목자는 분명 가짜 신
물신의 노예다.
 


가짜 신은 이러하다

가짜 신을 아는가.
가짜 신을 보았는가.
가짜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이 보인다.
자신을 진짜처럼 포장하여 악마의 사주를 받는 목자다.
자신을 낮춰 겸손을 위장한 채 스스로를 신격화 하는 목자,
교묘하게 자신을 신처럼 포장하여 거만을 떠는 목자.
신을 위장한 거짓 신, 살아있는 신들이 부지기수다.
자기의 말이 곧 법인 것처럼 상대를 무참히 공격하는 목자,
내 말을 들어야 신성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거짓 선지자,
은근히 자기를 자랑하며 내게 잘 보여야 천국에 간다고 말하는 가짜 목자,
거짓 영을 받아서는 진짜 선령으로 둔갑시켜 성도의 도를 훔치고
혹세무민하여 꼬이는 목자,
성령을 가장한 거짓 선지자들이라.
거짓말로 세인을 속여서 자신의 이득을 챙기는 뻔뻔한 목자,
뺀질뺀질 행동은 안 하고 말로만 하는 목자,
가진 언행으로 양들의 심혈을 빠는 흡혈귀 목자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우리 모두 돌다리를 두드리는 심정으로 두드리며 가자.
우리가 만든 돌다리를 무너지게 하지 말자.
가짜로부터 지켜서 진짜 신을 찾아서 가자.
 


진짜 신

진짜 신을 만나자.
진짜 신은 허공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
진짜와 가짜의 신이 공존하는 우물에서 진짜 신을 만나기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렵다.
한 우물에서 진짜와 가짜가 공존하고 있다.
진짜는 단물이나 가짜는 쓴물이다.
단물과 쓴물이 동시에 나오니 
어찌 단물인지 쓴물인지 알 수가 있겠는가.
단물은 마음의 기쁨에 있고, 쓴물은 본성을 억압함에 있다.
종교와 신앙은 인간을 위한 도구이며, 인간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종교나 신앙의 이름으로 인간의 마음을 억압하고
본성을 아프게 하거나 답답하게 해서는 참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본성의 자유를 위한 것이 신앙이요 종교이다.
종교로 인해서 인간이 본성의 억압을 받거나 자유를 잃는다면 
그건 참된 종교가 아니다.
참된 종교는 자유와 책임을 통해서 본성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
종교나 교리 혹은 신앙 때문에 본성의 억압을 받고 기쁘지 않다면 
그건 잘못된 종교이거나 거짓 신앙이다.
그런 종교나 신앙은 빨리 떠나는 것이 상책이다.
모름지기 모든 종교는 인간의 본성을 기쁘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참된 종교는 단물을 내어서 먹여야 한다.
단물로써 인간을 위한 진짜 신을 만나게 해야 한다.
인간을 위한 진짜 신으로서 참하나님을 만나게 해야 한다.



참목자

참목자란 자유해방 석방을 위한 목자입니다.
자신은 물론 타인을 자유롭게 해야 합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성도들을 해방과 석방의 삶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자신도 자유롭지 못한 목자가 어찌 남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자신부터 자유로운 영혼이어야 합니다.
자유로운 영혼이란 진리를 아는 목자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는 말씀에 기초합니다.
문자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목자가 아니라,
문자를 넘어서서 문자 속에 있는 진리에 눈을 뜬 목자입니다.
신령한 눈으로 문자를 보고 본심으로 깨달아 사는 목자가 참목자입니다.
신령이 맑으면 본심이 보입니다.
신령이 흐리면 본성이 흐려서 자유롭지 못하고, 스스로 문자의 노예가
됩니다.
문자의 노예란 고지식한 제 관념을 고집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말을 듣지 않고 제 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무식한 목자입니다.
무식한 목자란 모자람을 알지 못하고 제 습성대로 판단하고 자의식을
고집하는 목자를 말합니다.
목자가 무식하면 어린양들이 고통을 당합니다.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읽되 글자(문자)에 매이면 안 됩니다.
문자에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말씀 속에 진리가 있는 것입니다.
문자에 매이면 진리가 죽습니다.
문자를 넘어선 자리에서만 진리를 알 수가 있습니다.
진리란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것으로 본성의 깨침으로부터 옵니다.
본성의 깨우침이란 영혼의 눈뜸을 말합니다.
영혼이 눈을 뜨지 않으면 본성의 깨침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영혼의 눈 뜸이란 성령의 은사를 말합니다.
성령의 은사로써 감화 감동의 역사를 체득(체감)해야 합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지 않고는 절대로 영혼의 눈을 뜰 수 없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지 못하면 눈먼 봉사에 귀머거리, 벙어리입니다.
참목자란 성령의 은사를 받은 목자를 말합니다.
그가 자의로 보고 읽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그와 
함께 계서서 동행하는 목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은사를 받지 않고 사는 목자는 참목자가 아닙니다.
자의로 해석하고 세상의 지식으로 가르치는 목자는 올바른 목자가 
아닙니다.
하늘의 지식과 하늘의 언어와 문화로 가르치는 목자가 
참목자입니다.
하늘의 언어와 문화로 가르치는 목자란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성경을
해석하고 성경의 숨은 뜻을 찾아서 가르치는 목자입니다.
성경은 하늘나라의 모형입니다.
성경은 여러 가지로 눈뜬 선지자들과 예언자들로 인한 하늘의 전통과
문화가 녹아 있기 때문에 성경의 바른 해석(진리)과 신령을 통해 참된
하늘의 문화를 접할 수 있습니다.
원리와 말씀은 성경의 해석과 하늘의 문화를 드러낸 하늘의 문서입니다.
하늘나라의 모형을 그대로 드러낸 하늘의 문화입니다.
원리와 말씀으로 들어가 원리와 말씀의 의미를 잘 알고 해석해야 합니다.
원리 안에 하늘나라가 있고, 말씀 안에 하늘나라의 문화가 있습니다.
원리와 말씀을 하나로 통합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루어야 
합니다.
 


금후의 섭리 패러다임

한 시대를 풍미했던 패러다임도 언젠가는 끝나고,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전환됩니다.
지금까지의 패러다임은 어떠한가?
기독교의 성서를 중심한 교리와 신앙이 한 세대를 움직여 왔으며
불교의 불경을 중심으로 한 패러다임의 세기였습니다.
나아가 각 종교마다 그의 패러다임들이 있으나, 종내는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가야 합니다.
수 세기를 걸쳐서 내려온 패러다임이 마치 시냇물이 강으로 바다로 
흘러가듯 했다면, 앞으로의 패러다임은 바다에서의 향해와 같이 
도도하고 웅대할 것입니다.
화산이 폭발하듯, 쓰나미가 밀려오듯 거대한 문화를 이룰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패러다임이 점차성을 띠고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확진성을
띠어 폭발적으로 해일이 몰려오듯 확산될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선천시대 역사와 새로이 시작되는 후천시대 
역사의 차이점입니다.
전후 역사상에 패러다임의 추이를 볼 때 점진성에서 확진성으로 
대이동하는 시대가 금후의 세기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의 용의주도함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인간의 주도적인 작품이었다면, 이제부터는 하늘이 
주도하는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금후의 세기는 인간에 의해 확산되는 문화가 아닌, 인간의 배후에 
계신 신에 의한, 신 중심한 신문명의 시대가 도래합니다.
이 시대를 말하여 신문명의 세기라고 할 것입니다.

 
신문명의 세기

신문명이란 하나님을 중심한 문화를 말합니다.
신문명의 세기란 인간에 의한 세기가 아니고 신에 의한 세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늘이 인간세상의 새로운 문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간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영계의 역사라고 합니다.
앞으로는 하늘나라 영계의 역사가 강물처럼, 바다의 해일처럼 
인간의 세계를 이끌어 나갈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이후 성령에 의한 역사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금후의 신 중심한 신문명의 세기인 것입니다.
이 시대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기로, 인간의 상상 이상을 
뛰어넘는 세기가 될 것입니다.
인간이 가진 이성의 상상을 불허하는 세기로서 하늘의 엄청난 
펜타코스트가 될 것입니다.

 
펜타코스트의 세기

엄청난 펜타코스트의 세기가 올 것입니다.
인간이 상상하지 못하는 엄청난 세기가 될 것입니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쓰나미가 밀려올 것입니다.
그 날과 그 때는 반드시 옵니다.
그 날과 그 때를 위해 하늘이 사방팔방으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천군천사는 물론 4대 성인과 현철, 각 종교를 믿고 갔던 선인들까지 
총동원되어서 지상으로 재림할 것입니다.
영계인들은 각 종교를 믿는 지상인에게 나타나서 시대의 당위성과 
평화를 위한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과학자는 과학자들에게 나타나고, 종교지도자는 종교지도자들에게 
나타나 인류의 평화와 화합을 위한 천일국의 이상을 향해 전진하게 할 
것입니다.
기타 영인들은 지상에서 살았던 경험과 경륜을 갖고서 지상인에게 
재림 부활하여 성령의 역사를 할 것입니다.
미쳐 날뛰며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며 회개하는 무리가 부지기수일 
것이요, 구원을 받았노라고 기뻐 춤추며 노래하고, 별의별 일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날 것입니다.
점잖은 교수나 학자들도 점차 성령의 은사를 받아서 다시 사는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악하게 살다 간 사람들도 그 모양대로 비슷하게 재림하여 강도 
높게 회개의 역사를 할 것입니다.
새로운 성령의 역사가 임하리란 소식을 전합니다.
 


하늘나라의 소식

지상법과 영계법
하늘에서는 땅의 일을 위하여 땅에서는 하늘나라를 위하여 
상호작용을 해야 합니다.
하늘과 땅이 하나이듯 영계와 지상은 하나입니다.
지상인이 죽으면 그의 육신은 땅으로 들어가고 영혼은 하늘나라 
영계로 들어갑니다.
지상에서의 삶의 터전을 중심하고 형성된 영급에 따라 영계에 
들어가서 사는 것입니다.
‘땅에서 매이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리면 하늘에서도 풀린다’
한 성경의 말씀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상에서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잘 살아가야 합니다.
지상에서 잘못 살면 잘못 산 것을 기준으로 영계에서 걸립니다.
영계의 법은 지상의 법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지상에서는 잘못한 것에 대해 형을 받아 살면 되지만, 영계의 법은 
지상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지상에서 형을 살았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깨끗하게 정리된 것이 
아닙니다.
지상법과 영계법이 상이한 이유는 뭔가?
영계는 영계의 잣대로 영혼이 들어가야 할 기준을 정하니 지상과 
다른 것입니다.
지상에서 용서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영계법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상은 죄질에 따라 형을 언도하지만, 영계는 절대법에 
따라 스스로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실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계의 절대법에 따라 자동적으로 정해지는 것입니다.
싫다 좋다를 자기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영계의 절대법에 따라서 
가야 할 곳으로 자동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하늘나라의 법입니다.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영계의 절대법에 따라 하등의 차별 없이
공평하게 지상에서의 삶의 질에 따라서 들어가는 것입니다.
잘했다 잘못했다 하는 억지가 통하지 않는 곳입니다.
단호한 법에 따라 질서분란하게 움직이는 곳이 하늘나라의 법입니다.
하늘나라의 법
하늘나라의 법은 절대법으로 원리원칙이 적용됩니다.
원리원칙이란 하늘나라의 법으로 창조원리에 따릅니다.
창조원리란 통일원리로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신 천법입니다.
‘인간은 모름지기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대원칙입니다.
누구도 이 원칙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 원칙 안에서 자유·평화·기쁨·소망·행복·이상의 삶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원칙을 어기면 어긴 만큼 인간의 본성이 억압을 받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됩니다.
양심과 본성의 압박이나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하늘나라 법의 
개념입니다.
양심의 저울로 달아서 측정하는 곳이 영계의 법이며, 더 나아가 
본심의 저울로 달아서 측정하는 것이 영계의 상세계의 법입니다.
양심은 저급한 영계에 적용하는 측정법이라면, 본심은 상세계에 
적용하는 측정법입니다.
하늘나라 법의 원칙은 간단합니다.
지상의 삶에 있어서 양심을 따라 살았는가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자신의 영달과 이익을 위해 양심을 스스로 속였다면 그 만큼 영계 
법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점일획도 거짓이 없습니다. 자신이 산 대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지상법은 증거와 증인의 진술에 따라 형의 언도를 받고 형을 살면 됩니다. 
하지만 영계법은 양심의 측정에 따르기 때문에 지상에서 형을 
언도받고 감옥살이를 했더라도 영계법까지 피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 법은 양심과 창조본성에 관한 법
영계법의 지엄함은 사실 양심에 관한 문제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본성을 억압하고 외면한 죄입니다.
창조본성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살아온 죄가 얼마나 큰지 알아야 합니다.
창조본성을 무시한 것이란 내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계신 것을 모르고
살아온 것을 일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신데 그것을 모르고 무시하고 
외면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가슴)을 힘들게 한 죄, 심정유린(불신
죄)가 가장 큰 죄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억울하다고 항변하고 싶을 겁니다.
언제 하나님이 내가 너의 아버지라고 말씀해 주셨느냐고 따지고 
싶겠지요.
한 번이라도 네 안에 내가 있다고 말씀해 주셨느냐고 묻고 싶고 
따지고 싶겠지요.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수없이 많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양심을 속이지 말라고, 그러면 안 된다고 수없이 잔소리를 하셨지만,
당신은 스스로 따르지 않았지요.
본심은 또 어떻습니까? 양심보다도 더 세밀하고 부드럽게 본성의 
억압이나 불안 초조를 느끼게 하여 본성을 거스르지 않도록 일생동안 
얼마나 수고를 해오셨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인내와 사랑의 종소리를
진짜 모른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사람이 아닌, 짐승보다도 더 못한 기생충일 것입니다.
미물도 자연법을 따르고 짐승도 자연법을 따릅니다.
하물며 사람이 마음(본성)의 법을 따르는 것이야 말할 것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2015년 10월 27일, 오전 5시.     
 


인간의 도리

인간이라면 인간다워야 합니다
인간답다는 말이 뭡니까
인간의 도리를 따라야 한다는 말 아닙니까
인간의 도리란 최소한의 예의범절을 말합니다.
인간의 예의범절이란 인간의 품격으로 
선행을 말합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 
이성과 감성이 있습니다
이성은 선과 악을 분별하는 분별심이고
감성은 옳고 그른 것을 알 수 있는 느낌입니다.
인간의 이성과 감성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최고의 선물입니다
이것으로서 인간은 하나님과 한 마음
한 뜻으로 결합된 동지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엄히 말하면 동지의 개념은 아닙니다. 
동지란 인간과의 관계에서 이념과 뜻을 같이하는 부류를 말합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좀 더 친밀한 관계로서 부자의 관계입니다. 
이념과 뜻으로 얽힌 동지가 아니라, 피로써 연결된 아버지와 아들딸의 
관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최고의 선물을 가장 깊은 곳, 가슴과 영혼에 심어 
주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가슴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동질성을 이룰 수 있는 것도 영혼으로 느낄 때입니다.
인간은 영으로써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영혼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과의 합일을 이룰 수 있는 합일점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영혼은 쉼 없이 하나님을 간구합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합일을 원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영혼의 갈급증을 자신도 모르게 느끼는 것입니다.
불만족이란 대체로 하나님과의 합일을 이루지 못한 결과입니다. 
부족해서가 아닌 하나님과의 합일을 이루지 못한 영혼(생령)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과의 합일을 이루어 사는 사람들에게 불만족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영혼 가득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물질로써가 아닌 하나님과의 사랑으로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대면하면 삶은 신비 자체가 됩니다.
누구라도 체험 가능한 세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십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아십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행복이란 여러 가지 조건이 성립돼야 하지만, 그 중에 제일은 
하나님과의 합일에 있습니다.
세상에서 모든 것을 누리고 가졌다 해도 하나님과의 합일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의 영혼은 매우 불만족할 것입니다.
스스로 허전함을 메울 수 없어 고독한 존재로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와 합일을 이룬다면 그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보다도 더 기쁘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아들딸은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받아야 하듯,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인간의 세계에서 사랑을 빼면 남는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남는 게 없습니다.
있다면 허무라는 단어만 남겠지요.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과는 전혀 다른 
심정입니다.
인간의 사랑이 자기애 가족애 민족애 국가애 인류애로 구분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이 모든 것을 넘어선 초월적인 사랑입니다.
초월적인 사랑이란 인간과 우주, 자연과 과학, 그리고 예술의 
총체적이고 입체적인 무형의 요소입니다.
초월적인 사랑이란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극치인데, 그 꼭짓점에 
들어가면 보통은 까무러치거나 실신을 합니다.
백만 볼트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타 버립니다.
그것이 성령과 성신의 역사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모든 것이 탑니다.
그것이 회개요 새 사람 됨입니다.
하늘나라가 그의 마음속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세 가지 사랑과 접속하게 됩니다.
그것은 아버지 성부의 사랑과 어머니 성신의 사랑 그리고 아들 
성자의 사랑입니다.
인간이 이 하나님의 세 가지 사랑을 받으면 다시 사는 부활, 
즉 중생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하여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반드시 두 가지 이상의 사랑을 경험해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성부인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 아들의 사랑과 성신인 
어머니의 사랑을 받아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더불어 중생 부활이 
일어나 하나님의 나라가 마음 안에 이루어집니다.
부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버지와 아들의 말씀(진리)을 통해 부활이 
이루어집니다.
성서의 가르침이나 설교 혹은 독서 등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한 진리의
깨달음으로부터 부활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출석하거나 기타 종교생활을 하지 않아도 구도의 길을 
가노라면 그 진리의 방편에 따라 내면의 부활이 이루어집니다.
꼭 기독교의 성서나 진리로써만 부활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각종 진리라고 하는 것을 진심으로 공부하고 실천하면 진리의 범위 
내에서 내면의 변화가 이루어지는데, 변화가 일어난 만큼 부활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부활이란 명사는 기독교의 전유물이 아니며, 누구나 진리를 실천하고
살아가면 내면의 변화로써 부활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하신 예수님의 
이야기는 전체적인 공의의 말씀입니다.
그래야 하늘나라의 주인이지, 기독교인에게 국한된 말씀으로 
해석하면 예수님을 기독교에 가두어 놓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서 전 세계인을 구원하시는 
메시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만의 메시아가 아닌 세상 모든 사람들의 메시아 
구세주로 오셨습니다.
하늘의 구원섭리는 예수님만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각 시대와 환경에 따라서 특정 사명자를 세워서 진리의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불교나 유교, 기타 모든 종교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구원의 범위는 진리의 특성에 따라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인들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여 함께 
구세의 길로 가야 합니다.
종교인들끼리 대립이나 마찰을 일으키는 것은 참된 신앙인의 행태가
아닙니다. 
그런 행태는 부활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의 행위라는 증거가 될 
뿐입니다.
어느 종교건 간에 진정으로 부활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웃과 타인에 
대해 너그럽고, 이해를 넘어서 하나 됨을 본성적으로 추구합니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형태이며 본성적인 발로의 흐름입니다.
내 것만 최고라고 우기고 타인의 종교를 무시하는 사람들은 단언컨대
부활이란 경험을 하지 못한 속물에 속한다고 봅니다.
사람의 내면이 진리로 채워지면 너그러움과 자비심, 사랑의 감정이 
생깁니다.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만 보면 표현이나 
정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지만 결론은 하나입니다.
기독교든 불교든 유불선이든 모든 종교는 부활을 위한 도구로 세워진
것입니다. 
시대에 따라 그 시대 상황에 맞게 세운 구원을 위한 종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임을 인정하고 하나의 길로 가야 합니다.
종교의 공통분모를 찾아서 한 길로 한 목소리를 내야지, 종교 간에 
서로 반목과 질시로 대립하여 세계의 평화를 깬다면 그건 참된 
종교가 아닙니다.
그것은 참을 위장한 거짓 종교이며, 가짜 신의 장난임에 틀림없습니다.
중생에 대하여
중생이란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말합니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과거의 나는 죽고 새로운 부활체로 변화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를테면 진리로써 내면의 부활이 이뤄지면 심령의 기쁨과 소망 등 
행복한 감정이 유발됩니다.
인간이 이런 감정을 느껴서 신의 사랑, 즉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부활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과 말씀으로 이뤄진다면, 중생은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 어머니의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신의 역사라고 합니다.
즉 아버지의 사랑과 어머님의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에서도 어머니에 해당하는 여성신을 강조하는 
것이며, 그에 상응하는 교리가 있는 것입니다.
인류의 진정한 구원은 하나님과 아들, 어머님의 사랑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와 사랑은 한 묶음으로서 인류 구원을 위한 방편에 있어 단짝입니다. 
말씀(진리)만으로도 안 되고, 사랑만으로도 안 됩니다.
진리와 사랑이 온전히 내면에 이루어지게 될 때 부활과 중생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하늘나라가 내면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개인에서 이루어지고, 나아가 가정과 사회, 국가, 세계에 
전반적으로 이루어지게 됨으로써 인류 평화의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015년 10월 31일, 오전 7시.
 


참아버님 성화 4주년, 기원절 1주년 기념 헌시 
 
만 개의 십자가를 지고 천성을 향하여 가신 임이시여.
억만 사탄과 싸워 승리하신 임이시여.
구세주·메시아·참부모·만왕의 왕으로 하늘 보좌에 오르신 참아버님.
만인의 가슴에 참사랑·참생명·참혈통으로 영생의 뿌리를 내려주신 
참부모님! 
만만세 영광과 찬양과 찬미를 올리나이다.
 
구세의 사명을 다하시고 평화의 왕으로 천상세계를 자유 해방 석방
하시려 성화의 불꽃으로 산화하신 임이시여!
성화 4주년에 기원절을 천상 천하에 선포하나이다.
타락하지 않은 참아버님의 혈통 가인 국진 형과 아벨 형진 동생이 
하나 됨으로 완성을 선포하신 참아버님이시여!
이제야, 이제야 기원절을 선포하오니 
천군천사, 영령들아, 만백성들아! 기뻐 춤추며 노래하라.
이 얼마나 놀라운 승리인가.
가인 형님이 아벨 동생에게 왕관을 봉정하여 참아버님의 실체 대신자
상속자로 왕관을 높이 올려 드렸으니 비로소 기원절이 왔구나.
      
왕이시여, 왕이시여, 천상의 참왕이시여! 
기뻐 받으소서.
두 아드님이 완성 승리하여 우뚝 섰나이다.
둘이 하나로 일체를 이루었으니 하늘이 승리하셨으며, 참아버님께서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다 말씀하셨나이다.
온 세상 만민들아, 일어나라.
천상의 뭇 성인 현철들아, 일어나서 큰소리로 외쳐라.
천기 7년 천력 7월 17일 기원절 1주년을 경하하고 경축하라.
승리하신 가인 아벨의 역사와 참가정 완성섭리를 마음껏 축복하라!
 
천상의 참아버지의 눈동자는 형진 왕을 주목하고 있으며,
참아버지의 불꽃같은 눈망울은 국진 형을 향하노라.
천상의 참아버님은 혈통의 계승자 문형진 왕만을 바라보고 있노라.
 
사랑 생명 혈통
2대 왕 문형진
이는 내 사랑하는 대신자 상속자라! 아주.
 
* 천기 7년 천력 7월 17일 기원절 1주년에, 운산 김종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