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 왕님 말씀
진리의 영(훈독본)
오늘 말씀의 제목은 “진리의 영” 입니다.
성경 요한 복음 14장 15절부터 20절입니다.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정말 대단한 성경구절이지요. 성경은 그냥 책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참아버님께서 성경에 완전히 통달하셨던 것을 알고 계시는지요? 참아버님께서는 매일 시작과 끝을 이 성경을 중심으로 사셨으며, 성서를 통해 섭리의 비밀을 찾게 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원리강론과 천성경이 나온 근본입니다.
하지만 전 통일가에서는 살아있는 말씀의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들의 삶의 길잡이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통일가의 큰 문제입니다. 삶의 조언과 인도가 필요할 때, 우리는 성경을 통해 답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무당에게 점을 보거나, 역경을 통해 점을 치는 것은 문제삼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인생의 역경을 헤쳐 나가는 것은 어색하게 느껴지십니까?
인생에 있어서 안 풀리는 문제가 있을 때는 말씀으로 되돌아 가십시오. 혼자서 풀려고 하다가는 혼란에 빠질 수 있습니다. 감정이 저희의 판단을 흐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령의 이끌림을 받을 때도 말씀을 들여다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부르심을 자신의 의도를 가지고 해석하게 되면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셨을 때 말씀에 뿌리를 두고 재확인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육신의 마음이 얼마나 빨리 우리 자신을 속일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또한 육신의 마음은 우리로 하여금 자만과 우상숭배에 빠지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있는 말씀과 교류하며, 성령과 함께 생활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말씀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을 무시하고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무도 참아버님의 성령을 찾고 있지 않습니다. 통일가에서 가장 외로운 분은 참아버님의 성령이십니다. 아무도 참아버님께서 저희 곁에 있어 주시고 저희를 인도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가에 진리가 존재하지 않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왜곡하고 모독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펜실베이니아에 왔을 때가 생각나는군요. 그때 이곳에는 국진형과 저 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들을 다 만나기 전이였죠. 그리고 우리는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참아버님의 성령을 뵐 수 있었는데 너무나 애통해 보이시고 너무나 힘들어 보이셨습니다. 마치 축복가정이 즐비하게 서있는 천정궁의 복도를 쓸쓸히 걸으시듯이, 누가 참아버님을 간구하고 필요로 하는지 찾고 계셨습니다. 누가 흥남 감옥에서 참아버님의 피와 땀으로 쓰여진 천일국가를 찬송하고 있는지, 어느 누가 살아있는 말씀에 목말라 참아버님을 애절하게 부르고 있는지 찾아다니는 모습이셨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도 찾을 수 없으셨습니다.
오로지 초점은 새로운 지도부가 누구인지와 교회지침이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참어머님과 하나되야 하고 참어머님의 명을 따라야 한다는 말들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참아버님에 대해서 이야기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원리적 관점에서 이 사태를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체 어떤 일이 벌어 지고 있는 것입니까?
참어머님은 사탄에 의해 주관 받고 있습니다. 참어머님은 사탄 힘의 상징인 천사장들과 하나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참아버님의 말씀과 전통과 경전을 왜곡하며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사탄권의 대표자들입니다. 천사장들은 참어머님을 자기들과 하나되게 만들고, 천사장들과 부합하지 않는 자녀들을 축출했습니다. 저희가 참아버님의 전통을 버리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무시하려고 합니다. 생각해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괴로운 일이고 자신의 세계를 뒤흔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부정하는 타조처럼 머리를 땅에 묻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는 말을 듣기 원하고 있을 뿐입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하나님과 멀어져 사탄의 주관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에 뭐라고 나오나요? 요한계시록에 보면, 바빌론 교회는 큰 도시였는데, 그 자체가 교회였습니다. 교회는 주님과 절대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주님의 신부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바빌론의 창부가 되어버립니다. 하나님과 주님 앞에 간음한 자가 되어버립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죽이려 합니다. 그리고 심판을 받습니다.
이러한 일이 지금 우리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교회의 모습은 바빌론의 창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참신랑을 배반했습니다. 이것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천사장 무리들이 참어머님으로 하여금 자신은 참아버님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으며, 자신이 독생녀이며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게 만들었습니다. 참어머님께서는 그러한 일련의 것들을 믿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재림주님의 신부로써 50년동안 함께 사시며 참아버님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다니요! 참어머님께서는 신부들 중에 최고의 신부의 자리에 계시는 분이신데 말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말인지 여러분은 알고 계십니까?
저희는 70년대, 80년대 참아버님과 같이 노래를 부르시던 아름다웠던 참어머님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게 저희가 가지고 있는 기억입니다. 참어머님은 정말 아름다우셨습니다. 참아버님께 순종하셨고 오로지 참아버님을 모시고 위하셨습니다. 정말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참어머님의 자리를 넘보는 많은 사람들과 어려운 상황을 모두 극복하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참아버님께서는 어머님께서 실패할 경우, 새로운 사람이 참어머님이 될 거라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벨베디아에서 수십번도 넘게 말씀하셨지요. 그것이 우리가 좋든 싫든 일어났던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 저희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을 목격했습니다. 천정궁이 완공되고 김효남씨가 대모님의 영매가 되어 어머님을 이용하려고 하면서부터 말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있었던 기억입니다. 어머님께서는 종종 무속인이나 점쟁이들을 불러들여 그들의 조언과 계시를 듣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천정궁이 완공되면서부터 뭔가 이전과 다른 영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참아버님을 만들었다' '이 왕궁은 내 혈통이 좋아서 지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라는 분위기였습니다. 이젠 하다하다 아버님 존함까지 바꾸려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아버님 존함 앞에 한 씨 성을 붙여 ‘한문선명’으로 소개를 한다고 말입니다.
이런 얘기들은 아마도 충격적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식구님들께서는 지금에서야 이것을 아시고 겪고 계실테니까요. 하지만 저희는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을3년 전에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저희는 궁에서 떠나온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희는 이 끝이 어떨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참아버님께서도 천정궁을 굉장히 불편해하셨습니다. 그래서 한국 남쪽 거문도라는 섬에 새로운 연수원을 지은 것입니다. 아버님께서는 그곳에 새로운 영적 섭리의 센터를 만들고자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천정궁은 사탄의 소굴로 변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희 아들을 궁에서 데리고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그냥 뒀다가는 사탄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스스로가 자기숭배의 늪에 빠져 본인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궁의 거대한 돌기둥이 곧 본인의 권력을 상징한다고 믿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아이는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칠 수 있는 자녀, 자신의 옛모습은 죽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중생하고 거듭나는 사람 말입니다.
대리석 왕궁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없어질 먼지, 잿더미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곳에 진정한 권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힘과 권능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힘이라는 것입니다. (박수)
도대체 지금 통일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이스라엘 선민의 역사를 중심삼고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남쪽의 유다왕국으로부터 갈라져 나왔고, 그 초대 왕은 여로보암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백성들이 남쪽 유다왕국에 위치한 예루살렘 성전으로 순례하는 것을 막고자 북이스라엘 두 곳에 이교도들의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황금소와 우상을 만들어 모든 잡신들과 이방신을 섬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선민이었던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대교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공감하실 겁니다. 그들은 왜 순식간에 우상숭배자로 전락해버렸던 걸까요?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당시 유대교의 체제 안에서 아무 생각없이 복종했기 때문입니다. '여신도 숭배할 수 있다' 라는 목회자의 말에도 아무 생각없이 따라갔던 것입니다. 아무런 생각없이, 영생에 대한 한점의 고민도 없이 그저 따라만 갔던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영계에 갔을 때 과연 하나님 곁에 가까이 갈 수 있을까요?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숭배하지 말라'는 제1의 계명을 어긴 그들이 하나님 곁에 있을 수 있을 까요? 그 누구라도 만약 이런 일을 행한다면, 그 왕국은 몰락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죽음의 계명을 지키고 있는 형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재 교회 내부의 비원리적인 지배체제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천사장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참어머님을 여신(하나님 어머니)으로 만들어 이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식구님들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가운데, 여신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어머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전파하라고 지시하시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참아버님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으며, 자신은 원죄 없는 혈통을 타고 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어머님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탄에게 지배당한 한 여성의 모습에 지나지 않습니다. 진정 참어머님이라면 이렇게 하실 수 없는 것이지요.
아무런 생각 없이 이런 체제에 복종하는 사람들은 현 상황을 원리적 시각에 입각해서 바라볼 수조차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의문을 가지는 것 자체가 본인의 신앙에 해를 끼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는 식구님들의 신앙에 나쁜 영향을 주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맞서는 이유는 어머님께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그런 상황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참어머님을 구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님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저에 대한 평판 따위는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저희는 어머님을 진실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제 심정이 이해가십니까?
몇몇 분들이 말하더군요, 왜 그냥 가서 어머님이 원하시는 데로 도와주시지 않느냐고요? 기가 막힙니다. 제가 어떻게 어머님이 스스로 자멸하게끔 도와드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멸하게끔 도와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멈추게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천정궁에서 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국진형도 마찬가지로 자멸하려는 어머님을 말리려 하였지요.
또한 저에게 "왜 형진님은 참어머님과 함께 일하며 평화와 통일을 이루고자 하지 않습니까?"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평화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평화란 한 분으로 정의됩니다. 주님 자체가 곧 평화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 안에 임재할 때, 비로소 우리에게 평화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평화이시자 희망이시며 저희의 모든 것입니다.
지금의 통일가는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신을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축복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령과 함께 움직이는 것을 배워야 하는 까닭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영계에 가시고 난 후, 성령과 함께 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것입니까?
그 해답을 우리는 말씀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세상은 능히 성령을 받지 못하나니 이는 성령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이렇게 간단합니다. 세상은 성령을 보지도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금 전 세계 통일가에는 참아버님의 성령을 추구하고, 갈망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식구들이 참아버님을 벌써 잊어버렸습니까!
자신들이 섭리의 중심사명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들의 심정에는 아버님의 성령을 갈망하는 마음이 티끌만큼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민족들이 처해 있던 상태였습니다.
우리는 아버지를 저버렸습니다. 완전한 이교도가 되어, 자기자신을 숭배하고, 다른 신을 섬기고, 여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면 우리는 저주에 놓이게 됩니다. 아버님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버님께서도 인간이신데 그리스도로서 당신의 목숨을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바치셨습니다. 사랑때문에 당신의 생명을 우리를 위하여 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방신과 관계를 맺게 되면,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친 내 영혼의 반려자를 배신하고 간음하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그만큼 심각한 것입니다. 그렇게 무서운 내용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두려움을 심으려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성경을 직접 한번 읽어보십시오. 우리는 여신이나, 우상을 숭배해서는 안됩니다. 이건 옳은 길이 아닙니다. 이교도들의 우상숭배를 답습하는 순간, 선민의 나라일지라도 폐망에 이르게 됩니다. 죽음에 이르고, 천벌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보우하심이 사라지고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유일신에 대해서 한마디를 하겠습니다. 유일신교에는 단 한 분의 최고의 신이 있을 뿐입니다 단 한 분의 최고 신! 지금 당신네들이 말하는 참부모님 50대 50 관계 설정의 문제점을 아십니까? 비록 두 명중에 한 명은 '남자 신' 또 다른 한 명은 '여자 신'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바로 '다신교'를 말합니다. 만약 '2명의 신이 존재한다'고 말한다면, 한쪽 신이 다른 한쪽의 신을 소멸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이 바로 가정연합에서 진행되는 것을 여러분들은 보고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교회내에서 행해지고 있는 하나님어머니의 숭배때문에 참아버님의 전통, 경전들이 임의대로 변경되고 훼손되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지 않으십니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저희에게는 단 하나의 최고 권위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 분은 바로 재림주님이십니다. 재림주님! 지금 교회의 상태는 너무나 섭리에서부터 멀리 떠나버렸기 때문에 교회 내에서 성령의 권능이 완전히 메말라 버렸습니다. 아니, 이젠 기독교가 저희보다 더 높은 입장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은 적어도 자신의 삶을 성령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과 함께 사는 삶을 지각하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무소부재하신 참아버님의 영적역사는 기원절에 일어났어야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육신은 떠나시지만 우리에게 보혜사를 보내주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왕관을 쓰시고 왕권 상징의 지위봉을 친히 드신 참어머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참아버님의 권능과 영적 역사가 함께해야 했던 기원절에 그 어떠한 하나님의 영적역사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저의 어머니를 사랑하기 때문에 어머님께 사정하고 매달렸습니다. "제발 이러시면 안됩니다." "어머님께서 더 이상 자기자신을 높이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어머님께서 자신을 높이려 하시면 하실 수록 하나님께서는 어머님을 비참한 자리에 끌어내리실 것입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자신을 낮추시면 하나님께서는 어머님을 더욱더 높여 주실 것입니다" 라고 충언을 드렸습니다. "어머니, 기원절에 나가셔서 전 세계의 형제자매 식구님 여러분! 참아버님께서는 이제 저희와 성령으로 함께 계십니다. 하늘의 전지전능하신 권능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제, 우리 모두 아버님의 신령과 권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천상과 지상에 건설합시다!" "우리 모두가 아버님을 모시고 나아간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눈앞에서 펼쳐질 것입니다." 그렇게 어머님께서 하셨다면, 참아버님의 권위와 권능이 임하시는 승리의 기원절이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어머님께 말씀을 올렸습니다. "참아버님께서는 함께 사시기에 쉬우신 분이 아니셨다는 것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참된 대상의 입장에서 어머님의 사명은 참아버님의 옆에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어떠한 시련이 와도 그 자리를 지키시는 것이 어머니의 숭고한 사명이셨습니다." "어머니, 이제 아버님을 향한 그 한을 다 훌훌날려버리세요. 그러지 않으면 그 한이 어머니의 목을 조여올까 두렵습니다." 사실 한국의 많은 식구들은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식구들은 '참어머님은 참아버님께 맺힌 한을 이렇게 풀고 있다' 라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의 이러한 진언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아무리 충언을 드려도 어머님의 주변에는 50명에서 140명에 이르기까지, 어머님은 하나님이시며 어머님께서는 너무나 잘하시고 있다고 다시 말씀드리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 병들었습니다. 평화의 주체이신 주님으로부터 떠나버렸습니다. 우리의 전부이신 재림주님으로부터 떠나버렸습니다. 정말로 기가 막힌 일입니다. 하지만 예상외로 그 해결책은 참으로 간단합니다. 말도 안될 정도로 쉽고 간단합니다. 주님 중심으로 되돌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평화와 화합은 그 어떤 종착점이 아니라 사람이십니다. 그분은 재림주님이시며 메시아이십니다.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 되시며 하나님아버지와 하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주님에게로 돌아갈 때, 우리에게는 평화와 통일이 함께 하며 권능 또한 함께 오는 것입니다.
이제는 정오정착의 시대를 맞이하여, 오로지 하나님의 자녀들이 무엇이 진실인지 알고 깨닫게 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원리에 입각하여 자신의 자리를 세우고 참어머님을 파멸과 파탄의 길에서 구해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성령이 강하게 임하시는 이 때에 말입니다.
요한복음 16장의 내용입니다.
7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요16:7)
아십니까? 참아버님께서 떠나신 지금, 아버님은 이제 성령으로 계십니다. 참아버님께서는 영으로 계시며 저희 안에 살아 계십니다. 그러기에 지금이야 말로 정말로 축복받은 시기이기도 한 것입니다.
진실로 참아버님의 성령께서는 무엇을 하기 위해서 현현하실까요? 참아버님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과연 무엇을 하길 원하실까요? 참아버님께서는 성령으로 저희를 움직여 주시고 당신의 자녀들과 함께 하고 싶으실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저희와 함께 거하시면서, 저희에게 새로운 문을 열어 주시고 산을 움직이기를 원하십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창건하기를 원하십니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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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4FmCtmDr_kg
■ 제목 : 진리의 영
■ 일자 : 2015년 3월 29일
■ 장소 : Sanctuary Church
오늘 말씀의 제목은 “진리의 영” 입니다. 요한 복음 14장을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을 다같이 보겠습니다. 성경책을 가지고 오셨는지요? 그러시다면 자신의 성경책에서 이구절을 찾아보십시오. 요한복음 14장 15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을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아멘 우와, 정말 대단한 성경구절이지요. 우리는 성경의 말씀는 능력과 힘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냥 책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냥 가지고 다니는 보통 책이 아닙니다.
러시아의 한 여왕이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네요. 한 러시아이 여왕이었던 것만 기억을 합니다.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성경이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읽지는 않고 보기만 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역시 성경책을 쳐다보고 소장서로만 가지고 있어서도 안됩니다. 성경은 원리강론이 나온 근본입니다. 참아버님께서 이 책을 완전히 통달하셨던 것을 알고 계시죠?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참아버님께서는 매일 시작과 끝을 이 성경을 중심으로 사셨습니다. 우주의 비밀을 밝히고 인간 타락의 비밀을 찾는데 이 성서밖에 없었습니다.
살아 숨쉬는 성서의 힘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한번도 열어 본 적이 없으시면 열어보세요. 그리고 읽어 보세요.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기위해서 어떻게 성령과 진정으로 같이 움직일 수 있는지에 대해 배운 것 기억하세요? 어떻게 우리가 성령과 함께 움직이며 그것을 말씀으로 확인하는지를 말입니다. 살아있는 말씀과 어떻게 교류하는지를 말이지요. 성경은 죽은 말씀도 아니고, 단순한 종이조각이 아니며,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점성술의 별자리 운세를 보거나, 무당에게 점을 보거나, 역경을 통해 점을 보는 것은 문제삼지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인생의 역경을 헤쳐나가는 것에는 어색해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문제시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과 얼마나 멀어져 있는 것이 보이십니까?
우리는 성경말씀과 너무나 동떨어져 버렸습니다. 우리는 타락의 근원을 찾은 원리강론와 천성경의 기반인 성경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성경은 우리 안에 살아 있는 말씀이고 우리는 성경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 말이지요. 우리의 삶의 조언과 인도가 필요할 때, 성경을 통해 답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말씀은 진실로 아름답고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자신의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찾아오곤 합니다. 인생의 방향을 잡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 멀리서 찾아 오시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어느 나라에서 온 식구님이 있었는데, 저는 그 분께 성경을 열어 보라고 했습니다. 한 식구님께서는 저에게 자신의 성경책에다 싸인을 부탁하셔서 그러겠다고 대답한 저는 그 분께도 일단 성경을 열어 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분과 성령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바로 성령에 대한 구절이 나왔습니다. 여기 계신 몇몇 식구님들과 그렇게 같이 해보았죠. 그렇죠? 우리는 인생에 있어서 안 풀리는 문제가 있을 때는 말씀으로 되돌아 가십시오. 혼자서 풀려고 하다가는 혼란에 빠질 수 있습니다. 성령에 끌림을 받을 때, 자신의 의도와 해석을 가지고 보면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감정이 들어가 진정한 의미를 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감정이 저희의 판단을 흐릴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끌릴 경우에 말씀을 들여다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경전의 어떤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안내하실지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전 통일가에서는 아무도 이렇게 성령과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상하지 않으세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들떠도 보지 않고 있습니다. 말씀을 열어보지도 필요하다고도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원리강사 중에도 성경을 굳이 볼 필요가 없다고 하고 성경책을 버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참아버님께서는 절대로 그런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허락하신 적이 없습니다. 참아버님 말씀에도 성서통해서 하나님섭리비밀을 해답을 알게 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경전을 통해서 섭리가 완성되는 것을 보십시오. 재림주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의 근간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계통일가는 전혀 성경과 상관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몇 번 책장을 넘겨 봤다거나 가끔 읽고 있다고 하는 정도의 의미로 그냥 책장에 소장서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살아있는 말씀으로의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경전이 자신의 삶의 길잡이가 될 살아 있는 말씀으로써 존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통일가의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무시하고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통일가에서 가장 외로운 분은 참아버님의 성령이십니다. 아무도 참아버님의 성령을 간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정통성이 없는 지도부를 좇아 가기에 너무나도 바빠서 우리는 참아버님을 따르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참아버님의 성령을 찾고 있지 않습니다. 매일 참아버님께 저희 곁에 있어주시고 저희를 인도해 주시라고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가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 진리가 존재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왜곡하고 모독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멀어 지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상황을 들여다 보게 되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에 펜실베이니아에 왔을 때가 생각 납니다. 그때 이곳에는 국진형과 저 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들을 다 만나기 전이였죠. 그리고 우리는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참아버님의 성령을 뵐 수 있었는데 너무나 애통해 보이시고 너무나 힘들어 보이셨습니다. 마치 천정궁의 축복가정이 즐비하게 서있는 복도를 쓸쓸히 걸으시듯이 누가 참아버님을 간구하고 필요로 하고 있는지 찾고 계셨습니다. 누가 흥남감옥에서 참아버님의 피와 땀으로 쓰여진 천일국가를 찬송하고 있는지, 어느 누가 살아있는 말씀에 목말라있고 누가 참아버님을 애절하게 부르는지 찾아다니시는 모습이셨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도 찾으실 수 가 없으셨습니다.
오로지 초점은 새로운 지도부가 누구인지와 교회지침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밖에 없었고 그리고 참어머님과 하나되야 하고 참어머님의 명을 따라야 한다는 말들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참아버님에 대해서는 이야기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다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폭풍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더 생생히 볼 수 있었지요. 우리는 정황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참부모님과 참가정을 보호해야 할 천사장과 지도부가 자기들의 권력과 의미없는 자리를 보존에 미친듯 바쁜 모습을 말입니다. 그리고는 참어머님을 조정하고 참아버님을 모독하는 자리까지 가시도록 하였습니다.
여러분 그 모습을 한 번 떠올려 보세요 원리적인 관점에서 이 일을 한번 봐보십시오. 천사장들은 참어머님을 자신들과 하나가 되게 하여, 참아버님께서 임명하신 친아들들을 쫓아 버리게 하셨습니다. 참아버님의 전통을 버리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말이죠. 저희가 이렇게 함으로써 과연 얻은 게 무엇입니까? 전 세계교회를 흔들어서 과연 저희는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까? 저는 이를 통해 많은 적을 얻었고, 증오를 받았고, 저의 평판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고 참아버님을 끝까지 지킬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희는 충과 의리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박수)
한번 그 도표를 떠올리며 생각해 보십시오. 원리강론을 할 때 도표를 많이 이용하죠. 가끔은 원리차트로 설명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제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가라는 의심이 들때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자기들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이해하려면 도표가 필요한가 봅니다. (웃음) 천사장들은 참어머님을 자기들과 하나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위기대에서 천사장들과 부합하지 않는 자녀들은 축출했습니다. 머릿 속으로 도표를 그리면서 한번 생각 해보세요. 그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참어머님은 사탄의 힘의 상징인 천사장과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참아버님의 말씀과 전통과 경전을 왜곡하고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사탄권의 대표자들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천사장들의 만행의 하나하나를 살펴보았습니다. 참어머님께서 그런 자들과 하나가 되어계십니다.
여러분들도 원리적 관점에서 이 사태를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체 어떤 일이 벌어 지고 있는 것입니까? 참어머님은 사탄에 의해 주관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무시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상태를 설명해주는 도표를 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생각해보려 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두 번조차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괴로운 일이고 자신의 세계를 뒤흔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부정하는 타조처럼 머리를 땅에 묻고 사실을 보기도 싫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는 말은 듣기만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축복과 성령을 볼 수 없고, 말씀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
왜! 왜 그렇게 되고 있나요? 교회 현실의 도표를 보시면 답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주관을 받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바빌론 교회는 큰 도시였는데, 그 자체가 교회였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과 대응합니다. 교회는 주님의 신부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과 절대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태양을 돌고 있는 행성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참신랑의 신부로써 절대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요한 계시록에 뭐라고 나오나요? 교회가 신부가 되지 않고 바벨론의 창부가 되어버립니다. 하나님과 주님앞에 간음한 자가 되어버립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죽이려 합니다. 그리고 심판을 받습니다.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일이 우리교회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내막을 들여다 보면, 교회의 모습이 바빌론의 창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참신랑을 떠났습니다. 배반했습니다. 그리고 사탄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여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속으로는 알고 있으나 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용기가 없어 말을 못하고 있습니다. 원리강론 도표를 보면서 현실을 보십시오. 참어머님을 조정하는 천사장 무리들이 참어머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독생녀라고 믿게 하고, 참아버님으로부터는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다고 믿고 말씀하시게 하고 있습니다. 참어머님께서는 그러한 일련의 것들을 믿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말인지 여러분은 알고 있으십니까? 그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떠나가 버리는 일입니다. 엄청난 이별입니다.
재림주님의 신부로써 50년동안 함께 사시며 참아버님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다니요! 참어머님께서는 신부들 중에 최고의 신부의 자리에 계시는 분이신데 말입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제는 정오정착의 시대입니다. 비밀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때입니다. 사탄이 어떻게 움직여 왔는지를 알게 되는 때입니다. 어떻게 커텐 뒤에서 주님을 무너뜨리려고 해왔는지를요. 주님을 표적으로 항상 삼아왔죠. 그 사람이 누구이든지 어떤 형태이든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지른 일들이 어떤 것이었는지요 정말로 감정적으로 소화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희가 참어머님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70년대, 80년대에 참아버님과 같이 노래 부르시던 아름다웠던 참어머님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게 저희가 가지고 있는 기억입니다. 참어머님은 정말 아름다우셨습니다. 참아버님께 순종하셨고 오로지 참아버님을 모시고 위하시며 계셨습니다. 정말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참어머님의 자리를 넘보는 많은 사람들과 상황을 모두 극복하실 수 있었습니다.
참아버님께서는 어머님께서 실패할 경우, 새로운 사람이 참어머님이 될 거라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몇 번이나 아버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셨나요? 벨베디아에서 수십번도 넘게 말씀하셨지요. 그것이 우리가 좋든 싫든 사실이였습니다.
하지만 그 후, 저희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을 목격했습니다. 천정궁이 완공되고 나서부터 김효남씨가 대모님의 영매가 되어 어머님을 그저 쓸모 있는 도구로만 이용하려고 하면서부터 말입니다. 제가 이제서야 깨닫게 된 것이 하나있습니다. 어머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길, 한평생 원리공부를 해 본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성경공부를 해 본적이 없다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공부는 안 했어도 모든 말씀을 다 알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점은 제가 어렸을 적에 있었던 일을 아직 기억하는데요. 어머님께서는 종종 무속인이나 점쟁이들을 불러들여 그들의 조언과 계시를 듣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억합니다. 천정궁이 완공되고 나서부터는 뭔가 전과 다른 영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영적인 분위기는, 그러니깐 그 뭐랄까. '내가 참아버님을 만들었다'라는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내가 없었으면 이 영광은 오지 않았을 거야' '이 승리는 나였으니까 가능한 거야' '이 왕궁은 내 혈통이 좋아서 지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보였습다. 이것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어떤 분이 저에게 보내신 것을 읽었는데요. 이젠 하다하다 아버님 존함까지 바꾸려고 한다고요. 한문선명으로 바꾼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얘기들은 아마도 여러분들에게는 충격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식구님들께서는 이것을 지금 아시고 겪고 계실테니까요. 하지만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저희는 3년 전에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저희는 궁에서 떠나온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희는 이 끝이 어떨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동조할 수 없었습니다. 저희는 모든 것 다 내려놓고 이곳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궁에서 나왔지요. 왜냐하면 그 궁은 사탄의 궁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참아버님께서도 천정궁을 굉장히 불편해하셨습니다. 그래서 한국 남쪽 거문도라는 섬에 새로운 연수원을 지은 것입니다. 아버님께서는 그곳에서 새로운 영적 섭리의 센타를 만들고자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천정궁은 사탄의 소굴로 변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일요학교에서 예배보고 있는 저희 아들을 궁에서 데리고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그냥 뒀다가는 사탄같은 이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악마가 되어 갈 거라 것을 알았으니까요. 그리고 스스로가 자기숭배의 늪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본인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궁의 거대한 돌기둥은 곧 본인의 권력을 상징한다고 믿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아이는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칠 수 있는 자녀말입니다. 자신의 옛모습이 죽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중생하고 거듭나는 사람 말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시면 모든 권위과 권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저희가 가진 온전한 권위이지요. 대리석 왕궁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뼈다귀, 재, 없어질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진정한 권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힘은 하나님께서 우리안 거하실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아주? (아주!) 그것이 진정한 힘이라는 것입니다. (박수)
하지만 지금 전세계 통일가 내부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제 부인이 성경공부를 하는데요. 이번 주에는 여로보암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성경에는 무수히 많은 특이한 이름이 있다고 말씀드렸었죠? 하지만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지 않고 그 지속적인 탐구를 통해 원리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기 때문에 선민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전혀 감이 없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습니다. 남쪽의 유다왕국으로부터 갈라졌죠. 그래서 여로보암이 남긴 행적이 무엇입니까? 백성들이 남쪽 유다왕국에 위치한 예루살렘 성전으로 순례하는 것을 막고자 북쪽 이스라엘왕국 두 곳에 이교도들의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는 황금소 우상을 만들어 바알 신을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섬기게 하였고 바벨론 여신인 아세라 등 모든 잡신들을 북쪽왕국에서 섬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세요. 이게 다 유대인들이 한 일들입니다. 유대인들, 하나님의 선민인 유대교인들 말입니다. 이들이 바알신 앞으로 나가 찬양을 드리고 향을 피워 제사를 올렸습니다. 또 한쪽은 아세라 여신한테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유대교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황당한 일인지 아실 겁니다. 이건 죽음의 계명을 지키고 있은 형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누구라도 만약 이런 일을 행한다면, 그 왕국은 몰락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죠? 유대교를 잘 아시는 분들께서는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다들 공감하실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왕이 지상에서 이런 일들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로보암 왕은 이스라엘백성들로 하여금 이교도를 숭배하게끔 인도하고 타락한 우상을 숭배하게 만든다고 말입니다.
지금 통일가의 모습을 한번 뒤 돌아보십시오. 우리는 말 그대로,
현재 교회 내부의 지배체제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비원리적인 지배체계를 말입니다. 자기들의 지위를 지키고 합리화시키고자 참어머님을 여신(하나님어머니)으로 만들어 이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식구님들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가운데, 여신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어머님께서 스스로 자신은 유일한 독생녀라고 믿게끔 하고 설교하시게 만들었습니다. 나만이 유일한 독생녀라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파하라고 지시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난 죄없는 혈통을 타고 났지만 참아버님은 죄를 가지고 태어났다'라고 말하고 계십니다. '나는 아버님에게 배운 것은 하나도 없다'라고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참어머님의 모습이 아닙니다.
여러분,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참어머님의 모습이 아니라고요. 이건 사탄에게 지배당한 한 여성의 모습에 지나지 않습니다. 참어머님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진정 참어머님이라면 이렇게 하실 수 없는 것이죠. 그런 일들을 자행하면서 어머님의 본연의 위치에서 완전하게 벗어난 것입니다. 완벽하게 말입니다. 교회 내부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이런 체제에 복종하는 사람들은 원리적 시각에 입각해서 현 상황을 바라볼 수조차 없는 것입니다.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의문을 가지는 것 자체가 본인의 신앙에 해를 끼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는 식구님들의 신앙에 나쁜 영향을 주기 위해서 이런 말들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맞서는 이유는 어머님께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어머님께서 평생토록 회개해야 될 벌을 받지 않게끔 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어머님이 참아버님을 등졌다는 이유로 평생을 고문과 고통으로 살아야 되는 그런 상황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저에 대한 평판 따위는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참어머님을 구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희는 어머님을 진실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제 심정이 이해가십니까? 몇몇 분들이 말하더군요, 그냥 가서 어머님이 원하시는 데로 도와주시지 않느냐고요? 어머님 스스로 자멸하게끔 도와드리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여러분도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이 자멸하게끔 도와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자멸하는 것을 멈추게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천정궁에서 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어머님께서 더 이상 본연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않으시도록 멈추고자 했던 것입니다. 국진형도 마찬가지로 자멸하려는 어머님을 말리려 하였죠. 이게 바로 파멸이요, 자멸인 것입니다. 우리는 여신이나, 우상을 숭배해서는 안됩니다. 이건 옳은 길이 아닙니다. 이교도들의 우상숭배를 답습해서 하는 순간, 선민의 나라일지라도 폐망에 이르게 됩니다. 죽음에 이르고, 천벌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보우하심이 사라지고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당시 유대교의 체계 안에서 아무 생각 없이 복종했기 때문에 '여신도 숭배할 수 있다' 라는 목회자의 말도 아무 생각없이 따랐던 것입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영생에 대한 한점의 고민도 없이 그저 따라만 갔던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영계에 갔을 때 어디에 다달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 곂에 가까이 있을 수 있을까요?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숭배하지 말라'는 제 일의 계명을 어긴 그들이 하나님 곁에 있을 수 있을 까요? 자기 자신숭배을 비롯한 여타의 우상들을 말이지요.
우리는 가만히 보면, 아버님이 진짜가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실존하시던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모양입니다. 참아버님을 그저 환상 속에나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면서 그냥 잊어버리기를 원하는 모양입니다. 우리의 구미와 관습대로 맘내키는대로 만들어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해하시겠는지요? 간혹 저에게 "왜 형진님은 참어머님과 함께 일하며 평화와 통일을 이루고자 하지 않습니까?"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평화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한번도 '평화란 어떤 특정 장소이며 목적지다' 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더욱이 평화는 과정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에서는 이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요.
평화란 한 분으로 정의됩니다. 단 한 분으로 말이죠. 주님 자체가 곧 평화입니다. 아시겠어요? 주님께서 우리 안에 임재할 때, 비로소 우리에게 평화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평화이시자 희망이시며 저희의 모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임재하실 때 우리는 비로소 평화롭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평안이 찾아오는 것이죠. 성령은 우리에게 보혜사로써 평안을 줍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주님을 모실 때 보혜사는 특정 장소나 자리가 아닙니다. 평화는 어떤 장소에 머물러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란 주님 그 자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여러분 안에 임재하실 수 있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자로서 지켜야하는 가장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여러분이 혈통을 이어받았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주님을 향한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의 혈통을 이어받은 것인지 신앙으로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의 통일가의 모습은 바벨론 창부와 흡사해져 버렸습니다. 주님을 남편으로 두고 타락한 관계를 맺은 상황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로 통일가의 모습이 이교도인들의 것과 비슷해져 버렸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성경책을 도외시하는 것쯤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죠. 또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는 이유도 설명이 되고요. 그저 듣고 싶은 말은 '나는 아무 잘못도 실수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아요.' 라는 자기정당화입니다. '우리가 지금 얼마나 잘되고 있는데!'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말이지요. 이스라엘민족들은 아세르여신을 숭배하면서 대체 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요?
생각해보세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했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민족들은 모세오경을 배우며 자랐는데 말입니다. 구약, 즉 하나님의 계명을 배우고 자랐는데 바알신이나 섬기고 있었다니 이게 무슨 말이라고 생각되십니까? 우리에게 성경은 그냥 공상소설의 하나쯤으로 생각되는 모양입니다. 정말 어이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선민이었던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들이 순식간에 우상숭배자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지금 통일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성경말씀을 중심삼고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지금 우상숭배로 치우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아닌 다른 신을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축복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령과 함께 움직이는 것을 배워야 하는 까닭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초창기 때 예수님께서 영계에 가시고 나서 사도들은 성령과 함께 하며 주님과 사는 방법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함께 살수 있는 것입니까?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길,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위로해주시고 나를 도와주신다고 했지만, 하나님께선 눈에 안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저기 성경에 써져 있지 않습니까? '세상은 능히 성령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성령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대체 어떻게 하면 성령을 모시고 함께 살 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앞으로도 우리는 주님을 중심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니까? 참부모를 놓고 봐서도 참아버님께서 참부모의 95%의 주체이시라는 사실을요. 참부모의 주인은 참아버님이십니다. 참어머님께서 나머지 5%입니다. 어머님께서는 참아버님을 중심으로 궤도를 도셔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참아버님과 참어머님의 관계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95%이시고 인간은 5%입니다. 참부모님의 관계안에서 어머님께서는 인류를 대표하시고 아버님은 그리스도로서 하나님을 대표합니다. 95대5의 관계입니다. 이방 여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50대50의 관계가 아닙니다. 그들의 말을 믿고 행하면, 여러분은 지옥의 나락으로 보내질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서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을 제가 감히 말씀드립니다. 아버지의 아들로서 말씀드리건데, 그것을 믿으면 아버님께서는 자신의 집에서 당신을 쫓아 낼 것입니다. 그런 말들은 신학적 용어로 포장된 포스트모던주의, 제3차 페머니즘에 불과합니다.
아버님께서는 그런 믿음을 가진 자들을 쫓아 내실 것입니다. 그렇게 간단합니다. 아버님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버님께서도 인간이신데 그리스도로서 자신의 목숨을 우리를 살리려 바치셨습니다.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 대가를 치러서, 공로가 있어서 그러신 것이 아니라 사랑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우리를 위하여 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약속하는 이방신과 타락적 관계를 맺게 되면,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친 내 영혼의 반려자를 배신하고 간음하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그만큼 심각한 것입니다. 그렇게 무서운 내용입니다.
그런데 세계통일가는 아무것도 모르는 체, 벼랑으로 달려가는 어리석게 순종하는 양떼처럼 교권이 말하는 것이라면 '절벽에서 투신하라' 라는 말이든 뭐든지 따릅니다. 말씀으로 돌아가자라는 말은 선택사항에 없습니다. 저희는 이제 성령과의 관계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그 지도를 받고 방향을 따르면서 또한 말씀으로 그를 확인하며 저희들은 성령과 진정으로 신앙을 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것을 저희의 삶속에서 실천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저희는 성령이 움직이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치유의 역사도 목격했습니다. 이번 주에도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를 드렸더니 치유되는 역사를 목격했습니다. 성령과 함께 하면 권능이 생깁니다.
그러나 지금 전 세계 통일가는 참아버님의 성령에 대해서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참아버님의 성령을 생각하고, 추구하고, 갈망하고, 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교회가 되었습니까? 통일가는 이방신을 섬기는 이교도들이 되었습니다. 완전한 이교도들로 전락했습니다. 이교도가 되어, 자기자신을 숭배하고, 다른 신을 섬기고, 여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의 아버지를 저 버렸습니다. 그러기에 저주를 받은 몸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져버리면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면 우리는 저주에 놓이게 됩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두려움을 심으려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성경을 직접 한번 읽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자신의 백성들로부터 보우하심을 걷어 내실 수도 있으십니다. 그러면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됩니다.
보십시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섭리의 중심사명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경전과는 너무나 멀어진 삶을 살고 있으며 타락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로부터 완전히 떠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가고 있는 길은 자신들의 심정에는 아버님의 성령을 갈망하는 마음이 한 점만큼도 없으며 그 상태가 바로 이스라엘민족들이 처해 있었던 상태였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의 역사를 한번 읽어보십시오. 이스라엘민족의 역사는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배신하고 다른 이방신들을 모셨는 지로 얼룩져 있습니다. 제가 유일신에 대해서 한마디를 하겠습니다. 유일신교에는 단 분의 최고의 신이 있을 뿐입니다.
단 한 분의 최고 신! 지금 당신네들이 말하는 참부모님 50대 50 관계 설정의 문제점은 2분의 최고 신이 존재하는 구조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다신교'를 말합니다. 만약 당신이 '2명의 최고 권위의 신이 존재한다'라고 말한다면, 그 두 명중에 한 명은 '남자 신' 또 다른 한 명은 '여자 신'이라고 말한다 하더라도 한쪽 신이 다른 신의 존재를 소멸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이 바로 여러분들이 가정연합에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내에서 행해지고 있는 하나님어머니의 숭배때문에 참아버님의 전통, 경전들이 취소되는 현상을 보고 있습니다. 임의대로 바꾸고 훼손하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유일신교에서는 단 하나의 최고 권위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저희에게는 단 하나의 최고 권위만이 존재하십니다. 그 분께서는 재림주님이십니다. 바로 재림주님! 여러분, 보십시오. 지금의 상태는 말도 안되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의 상태는 너무나 섭리에서부터 멀리 떠나버렸기 때문에 교회 내에서 성령의 권능이 완전히 메말라 버렸습니다. 아니, 이젠 기독교가 저희보다 더 높은 입장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은 적어도 자신의 삶을 성령과 함께 움직여야 하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과 함께 사는 삶은 알고 지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의 모습은 이교도인들, 즉 바알과 아세라 신을 우상숭배하는 모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떠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갈망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져버리고 떠났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다 배워야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집트인과도 다를 바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경외하고 찬양하는지 완전히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다시 새로이 배워야 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다 말이지요.
지금 우리는 그렇게 경전말씀으로부터 다시 배워야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참아버님의, 주님의 성령을 구할 것인가!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또다른 하나의 보혜사를 보낸다고 하셨는데, 여기 성경에서의 '또 다른' 이라는 말은 고대그리스어로는 '알로스'라고 하는데 '똑같은'이라는 뜻입니다. 또 다른 하나이나 똑같다 라는 뜻입니다. 완전한 하나! 뗄래야 뗄 수 없는! 온전히 같은! 그 보혜사가 임하실 때는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볼 수 있었던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것이고 주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온전한 동일성을 말합니다. 하나님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의 심정 속에 존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자신의 권위와 권능을 가지시고 매 하루하루를 저희와 같이 움직이시기를 바라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저희와 함께 거하시면서, 저희에게 새로운 문을 열어주고 산을 움직이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아멘? (아멘!)
하지만 (박수) 하지만 아직도 17절에서 뭐라고 얘기했다고요? '진리의 영' 성경의 이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바로 전이었습니다. 바로 유월절 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마지막 말씀을 주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하시는 말씀의 내용을 보면, 자신이 죽어서 영계로 가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지에 관한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자신이 죽으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사후, 성령이 올 것이라고 말하고 계십니다. 또 다른 보혜사가 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어로는 파라클레토라고도 합니다. 파라클레토! 그 분은 보혜사요, 저희의 대언자이기도 하십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저희와 함께 서 주십니다.
그렇지요! 17절을 보십시오. 진리의 영! 제가 성경공부시간에도 한 번 말씀을 드렸었지요! 진리의 영! 성령께서 임하실 때 그 영은 '진실의 영'이십니다. 저희를 어긋난 길로 인도하시지 않으시며 저희를 속이지 않으시며 거짓을 말하지 않으십니다. 그리하여 저희가 자신을 숭배하는 것을 막으시며 뒤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것도 막으십니다. 진리로 저희를 인도하십니다. 저희의 양심을 일깨워주십니다. 그렇지요? 성령은 저희를 양심을 가진 인간으로 만들어 주며 우리 자신을 부복하게 하십니다. 성령은 저희의 자신의 양심에 새겨져 있으시기도 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을 보십시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성령은 스승의 역할도 하시네요! 성령은 스승님도 되시는 것입니다. 아멘? (아멘!) 진리의 영! 우리의 스승이 되시는 분! 저희를 도와주시고 가르쳐주시는 분! 저희를 인도해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성령! 저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는 분! 여기서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성령은 주님을 다시 기억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휴우... 얼마나 많은 식구들이 참아버님을 벌써 잊어버렸습니까! 이 교회에서 얼마나 많은 식구님들이 벌써 참아버님을 까맣게 잊어버렸느냐는 말입니다. 지금 교회에서는 모든 이교도들이 했던 우상숭배가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잊어버렸습니다. 교회는 주님을 생각하지도 기억 하지도 묵상 하지도 않습니다. 교회는 재림주님을 새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교회에 성령의 권능이 없습니다. 보십시오. 성령은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그 모든 것을 말이지요. 성령은 우리에게 심어진 주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씨 뿌려진 주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십니다. 아멘? (아멘!)
제가 말했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이 성경 대목의 시기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얼마 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진리의 영! 보혜사! 예수님께서는 세번에 걸쳐서 성령이 보혜사며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은 또 다른 보혜사! 보혜사! 보혜사! 성령은 진리의 영! 진리의 영! 성령께서는 저희를 속이지 않으시리. 저희를 속이지 않는 이를 보내신다 하셨습니다. 아멘? (아멘!)
성령은 오직 진실만을 말할 것이다. 그리하니 성령의 임하심에 부복하라! 우리는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셨을 때 어떻게 경전 말씀에 우리의 뿌리를 두고 재확인을 해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육신의 마음이 얼마나 빨리 우리 자신을 속일지 있는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마음은 우리에게 거짓 유혹을 줄 수 있으며 자만과 자신 우상숭배의 마음을 가져다줄 수 있으며 세속적으로 유행하는 사상들의 영향을 가고 올 수도 있으며 이러한 많은 육신이 가져다주는 생각에 우리 자신을 완전히 혼란진창으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패닉 상태에 빠뜨리게 할 수 있습니다.
지금 현 세계교회가 얼마나 혼란진창 속에 있는지를 한 번 보십시오. 명확히 볼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너무나 많은 혼란이 와서 하나님의 권위와 권능으로 현주소를 타계해 나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원리강론이 말하는 것조차도 헷갈리는 모양입니다. 한국지배계층이 말하는 것을 따르는 것에 너무나 바빠 원리강론을 펼 시간조차 없는 듯합니다. 성경을 펴 볼 시간은 더욱 더 없겠지요. 하나님을 떠나면 어떻게 되는지 성경이 우리에게 진실을 말해줄까 두려워서 말이지요.
요한복음 16장을 한번 또 보시겠습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아십니까? 이제 참아버님께서는 성령으로 계십니다. 참아버님께서는 영으로 계시며 저희 안에서 거하시며 살아 계십니다. 아버님께서는 살아계시며 언제 어디서나 저희에게 임하실 수 있습니다. 청평에만 아버님의 영이 존재한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는 죄송하기까지 한 그 조그만 한국 땅 무덤에 가야지만 참아버님을 이제 만날 수 있다고 하는 말은 터무니없는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대체 참아버님께서 지금 영으로 계신 지금이 육신으로 계실 때보다 더 제약이 있으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원리강론에서 말하기를, 영계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곳이다라고 했습니다. 모든 곳에 또한 동시에 어떤 특정한 곳에 무소부재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이 정말로 축복받은 시기이기도 한 것입니다. 사실 이런 무소부재하신 참아버님의 영적역사가 기원절에 일어났어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참아버님의 성령으로 살고 움직이는 법을 배워야 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현존하시는 주님의 성령의 권위와 권능을 상속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내며 악마를 내치고 병자를 낫게 하며 죽은 자를 일으키는 주님의 권위와 권능을 말입니다. 그것이 기원절에 일어나야 했던 것입니다.
저는 참어머님께 분명히 말씀을 올렸습니다. 저는 저의 어머니를 사랑하기 때문에 저는 어머니께 충언을 드립니다. 어머니께 충언을 드리는 이유는 제가 어머니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의 어머니께서 벌을 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께서 지옥으로 던져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저는 어머니께서 벌을 받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님께 사정하고 매달렸습니다. "어머니, 제발 이러시면 안됩니다."라고 충언을 올렸습니다. "어머님께서 더이상은 자기자신을 더 높이려고 해서는 안된다" 고 진언드렸습니다. "어머님께서 자신을 높이려 하면 할수록 하나님께서는 어머님을 겸손한 자리에 끌어내리실 것입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자신을 낮추시면 하나님께서는 어머님을 더욱더 높여 주실 것입니다" 라고 충언드렸습니다. "어머니, 기원절에 나가셔서 전 세계의 형제자매 식구님 여러분!" "참아버님께서는 이제 저희와 성령으로 계십니다." "이제 아버님께서는 하늘의 전지전능하신 권능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제, 여러분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더욱 열렬히 아버지께 기도 올립시다!" "아버님과 우리 함께 삽시다!" "아버님의 신령과 진정과 권능으로 이제 우리 나아갑시다." "이제 하나님의 나라를 천상과 지상에 건설합시다!" "저희 모두가 아버님과 함께 이러한 자세로 나간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눈앞에서 펼쳐질 것입니다." 그렇게 어머님께서 하셨다면, 참아버님의 권위와 권능이 임하시는 승리의 기원절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참어머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참어머님께는 용포를 입으시고 왕관을 쓰시고 왕권 상징의 지위봉도 친히 드시고 '이제는 참어머니의 치리시대이다' 라는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그 다음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참어머니는 독생녀이다.' 입니다. '나도 하나님이다.' '아버지는 원죄를 갖고 태어났는지 몰라도 나는 원죄없이 태어났다' 라는 일련의 말씀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참어머니의 자리를 떠나신 행동입니다. 완전히 떠나신 행동입니다. 그랬기에, 하나님의 나라의 출발점이었으며 참아버님의 권능과 영적역사로 함께해야 했던 기원절에서는 그 어떠한 하나님의 영적역사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대신에 근 3년동안 교회가 급속도로 하향선 곡선을 그리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더욱더 많은 재난과 위기가 교회에 닥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회지도자층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더욱더 심하게 억압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하나님의 경전말씀보다 특정 영매를 더 믿어야 한다고 가르쳐졌습니다. 한국 영매이든 일본 영매이든 그 누구이든지 말입니다.
저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함께 계십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성령께서 저희에게 임하시면, 우리는 말씀으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이지요! 성령의 부르심을 성경으로 확인하고 천성경으로 하나님의 이끄심을 재차 또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가 기원절에 나타나야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육신은 떠나시지만 우리에게 보혜사를 보내주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 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참아버님의 성령께서는 무엇을 하기위해 현현하실까요? 참아버님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과연 무엇을 위해 참아버님께서 나타나실까요? 참아버님께서는 성령으로 저희를 움직여주시고 자신의 자녀들과 함께 하시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자녀들은 지도자계층의 드라마 방송을 보느라 너무 바빠 여념이 없습니다. 참아버님이 보고프지도, 갈망할 새도 없습니다. 참아버님의 성령과 함께 일하고 싶지도 함께 움직이고 싶지도 갈망하고 싶지도 뒤쫓아 가고 싶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을 한 번 보십시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의 병약함도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현 주소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교도들이 되었습니다. 교회의 모습은 바빌론의 음부의 형상이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교회는 지금 병들었습니다. 심각하게 병이 났습니다. 평화의 주체이신 주님으로부터 떠나버렸습니다. 우리의 전부인 주님으로부터 떠났습니다. 통일교회의 전부이신 재림주님으로부터 떠나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 교회가 병으로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저희의 연약과 병약을 도와줍니다. 도움이라는 이 단어는 성령께서 저희를 도우려는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저희가 이제껏 성령을 도움을 받지못한 것은 저희가 도와달라고 여쭈어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이 때에 저를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구하옵니다."라고 간절히 마지막으로 기도해 보신 적이 언제입니까? 여러분이 마지막으로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해준 적이 언제였습니까? "아버지, 도와주시옵소서." 우리가 병든 이를 위해 기도할 때, 우리 자신의 권능으로 기도를 합니까? 많은 이들은 '참아버지께서 이제 우리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시대를 열어주셨다.' 하며 기뻐했습니다.
참아버님께서는 저희 이름으로 보고 드리는 시대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예, 보고입니다. 한국어로는 '보고' 이지요! 그 말은 우리가 만왕의 왕과 직접 관계를 맺을 수 있으므로 그 분께 직접 보고를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 말은 결코 '우리가 예수님이고 재림주님이다' 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니면 '예수님께서는 더이상 주님이 아니고 권능이 없으시다' 라는 뜻이 결단코 아닙니다.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고 분석하는가에 있어 조심하십시오. 참아버님께서 주신 축복된 선물을 자기 숭배의 정당화의 수단으로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 자신의 권능으로 우리가 특별하다구요? 우리가 특별한 이유는 우리 안에 주님께서 임하시기에 우리가 특별한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주님의 말씀이 있고 평화가 있고 주님이 거하십니다.
예, 그러기에 우리는 다릅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이 특별해서 우리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바리새인들의 교만이었다는 거입니다. 나도 당신도 중요치 않습니다. 주님의 존재가 중요한 것입니다. 저희가 그 주님의 권위를 갖고 움직일 때, 저희는 지옥에서도 권능을 가지게 됩니다. 이 성경구절에서는 병약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다른 여러 타입의 병약을 치유해 주십니다. 다른 종류의 병들. 또한 이런 여러 종류의 병은 우리가 성령과 함께 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우리의 상태를 비유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병약은 모든 종류의 병을 막론하여 쓰고 있습니다. 노사시, 불치병을 가르키는 병명입니다. 자연적으로는 치유가 불가능하고 사람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병을 일컬어 말합니다. 의사 또한 더이상은 살기 힘들다고 말하는 병입니다. 멀라키안. 근육병의 하나로 절름발이가 되는 것을 멀라키안 타입의 병이라고 합니다. 카코스.
악령이 들린 것을 말합니다. 우울증의 악령, 초조증의 악령으로 악령이 육신을 점령한 상태를 말합니다. 멀라키안 아니 메스터간. 지병처럼 계속해서 재발되면서 사람을 괴롭히는 병입니다. 나았다가도 다시 또 도지고 마치 성경에 나오는 피와 관련된 지병을 가지고 있었으며 예수님의 옷단은 만지었던 여인처럼 말입니다. 12년이라는 세월동안 그 병은 낫고 재발되기를 반복되면서 그 여인을 괴롭혔습니다. 그런 병 또한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병약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아루스터스. 다른 말로는 코마토스라고도 합니다. 코마, 혼수상태. 이러한 병들은 우리가 성령이 없는 삶은 살게 되면 어떠한 상태로 전락하게 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저희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우리 안에 주님의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주님을 갈망하면서 자신을 계속해서 비우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떠한 상태가 되는지를 이 병명들은 말해줍니다. 우리가 조건을 세우고 경배정성을 드리고 금식정성을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을 설득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강요.이용해 먹기 위함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정성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 자신을 비움으로써 하나님께서 온전히 역사하시게끔 하기 위함입니다. 이제 하나님께 길을 내주고 갓길로 비켜서십시오. '오, 하나님! 제가 이렇게 조건도 세우고 금식도 하고 했으니 요런 것쯤은 저를 위해 해주셔야 하잖아요'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 동기라면 금식정성을 악한 쪽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독선적이고 바리새인과 같은 우상숭배자들의 관점과 같은 것입니다. 저희가 금식을 하고 조건은 세우는 이유는 우리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께서 온전히 임하시도록 하는 그 이유밖에는 없습니다. 그 비움에 하나님의 권능이 채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강요하기 위한 수단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십니까?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병든 자들입니다. 우리는 병들어 앓고 있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참아버님의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심각히 병든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병덩어리라는 것입니다.
성령 없이는 우리는 불치병을 앓고 있고 성령없이는 우리는 절름발이이며, 아버지의 성령 없이는 우리는 멀라키안, 절름뱅이란 것입니다. 절뚝거리고 권능같은 것은 찾아볼 수도 없는 자라는 것입니다. 성령 없이는 우리는 악령에 지배되어 있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없이 살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순간,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자신을 악령에게 내어주게 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아멘 아주. 우리는 메스티간이라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계속 재발되는 전염병이 우리의 몸을 덮고 있는 것과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마치 재발되는 저주를 받은 것처럼 말이죠. 계속 도지면서 우리를 모질게 고통으로 몰아넣지요. 그리고 우리는 코마토스의 상태입니다. 성령 없이는 말 그대로 우리는 혼수상태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죽은 자가 걸어다니고 있는 것과 같은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계신 분 중에 몇 분이나 '나도 가끔 그렇게 느낀다'라고 생각하십니까? 말 그대로 죽은 듯 걸어다니고 있습니다. 전지전능한 권능을 가지신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교도들의 신들도 신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요. 특정한 수련과 요가 명상을 통해서 그들의 신력을 얻어보지 않겠냐고 유혹을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들의 능력은 아무것도 아니지요.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가장 위대한 권능이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거하시는 가장 거룩한 주님의 권능이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님의 권위를 갖고 반대하는 적의 세력에 대항하여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박수) 주님으로부터 멀어졌기에,
우리는 얼마나 약해져 버렸습니까! 성령은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은 탄식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친히 간구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성령은 응어리진 한을 다 풀어내어 해결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탄식은 한국어로 '한'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참아버님께서 항상 하시던 그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한'이란 긴 역사속에서 쌓여져 맺힌 감정으로 겁탈당하고 유린당하여도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짓밟히고 찟기어진 심정, '한' 바로 그 심정이 핵심이 아닙니까!
저는 마지막으로 어머님을 한국에서 만났던 것을 기억합니다. 작년에 만나뵈려고 했을 때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죠. 경호원들이 나와서 진을 치고 제가 어머님을 만날 수 없다고 쫓아내었죠. 하지만 그 전에 참어머님을 한국에서 직접 대면했을 때, 저는 어머님께 "어머니, 어머님의 한을 이제 날려버리셔야 합니다." 라고 말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아버님을 향한 한을 다 훌훌 털어버리십시오." "참아버님께서는 함께 사시기에 쉬우신 분이 아니었다는 것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참어머님으로서의 사명이셨습니다." "참어머님으로서 참된 대상의 입장에서 참아버님의 옆에 계시는 것이 사명이셨습니다." "그 어떠한 시련이 와도 그 자리를 지키시는 것이 어머니의 숭고한 사명이셨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님께 계속 말씀을 올렸습니다. "어머니, 이제 그 한을 훌훌 날려버리세요." "그러지 않으면 그 한이 어머니의 목을 조여올까 두렵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사실 한국의 많은 식구들은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국식구들은 참어머님의 일련의 행동들을 '한풀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식구들은 '참어머님은 참아버님께 맺힌 한을 이렇게 풀고 있다' 라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식구님,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저희는 더더욱 진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성령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개인적으로 조용히 참어머님께 진언 올리는 길은 벌써 시도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조용히 뒤에서 말씀 올려보았습니다. 궁궐에서 하는 식으로도 설득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참어머님께 전혀 효과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어머님께 제 아무리 충언을 드려도 어머님의 주변에는 50명에서 140명에 이르기까지 어머님은 하나님이라며 어머님께서는 너무나 잘하시고 있다고 다시 말씀드리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정오정착의 시대를 맞이하여, 오로지 하나님의 자녀들이 무엇이 진실인지 알게 되어 깨닫게 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원리에 입각하여 자신의 자리를 세우고 참어머님을 파멸과 파탄의 길에서 구해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성령이 강하게 임하시는 이 때에 말입니다. 왜냐하면 저희는 진리 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알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저울질하지 말고 진실을 말할 때입니다. 정말로 기가 막힌 일입니다. 우리가 지금 처해있는 상태를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예상외로 그 해결책은 참으로 간단합니다. 말도 않될 정도로 쉽고 간단합니다. 식은 죽 먹기처럼 쉽습니다. 정말로 쉽다니까요. 주님 중심으로 되돌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당신도 그도 그 누구도 주님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제 말을 이해하십니까? 우리는 다시 주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저희가 다 주님으로 돌아가는 순간, 모든 것의 자연정렬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마치 우주의 행성궤도처럼 말입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자신에 맞는 궤도를 스스로 찾아 돌아갑니다. 그러면 우주는 다시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그러면 우주의 질서와 평화는 찾아집니다. 사람들이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평화와 화합은 그 어떤 종착점이 아닙니다. 사람이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주님이십니다. 아버지이시며 재림주님이시며 메시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되시며 알파와 오메가 되시며 하나님아버지와 하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주님에게로 돌아갔을 때, 우리에게는 평화가 통일이 권능이 함께 하게 됩니다. (박수) 예, 권능 또한 함께 옵니다. 너무나 너무나 쉬운 해결책입니다. 혹시 이것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축사장님에게 큰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이연아 축사장 말씀
감사드립니다. 문목사님에게도 다시 한 번 큰 박수를 보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저희 아이들은 자기 전에 제가 책을 읽어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의 첫째가 이제 몇 살이냐면…16살이니까 17살? 제 딸이 저의 첫째 아들이 17살이라고 정정해 주네요. 첫째 아드님, 미안합니다. 예, 첫째가 17살이니까. 저의 첫째가 거의 1살때부터 자기 전에 책을 읽어주었으니 꽤 많은 시간동안 제 아이들에게 밤에 자기 전에 책을 읽어주어 왔네요. 이제 저는 넷째와 다섯째에게 자기 전에 책을 읽어줍니다. 물론 제가 바쁜 일이 없다면요. 이제는 매일 밤 잠자리 시간에 아이들에게 성경이야기를 읽어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흥미롭게도 제가 저의 아이들에게 성경이야기를 읽어 주면서 개인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예, 지금 말고도 성경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읽어 주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말하기도 좀 창피한 일이지만, 제가 예전에 저의 아이들에게 성경이야기를 읽어 주었을 때는 저는 성경책을 많고 많은 책 중에 하나로 여겼습니다. 마치 우리가 서점에 가면 무수한 책들이 진열되어 있듯이, 성경은 오직 서점의 한 쪽 면 만을 장식하듯이 저는 성경을 그런 식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세상에는 재미있고 예쁜 삽화가 그려진 아이들 동화책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저는 성경이야기책을 마치 그러한 이야기의 하나처럼 취급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제가 혼자 성경을 따로 공부하면서 아이들에게 자기 전 성경을 읽어주니 성경이야기를 대하는 느낌이 참으로 많이 달랐습니다. 어느 한 날 밤, 아이들과 요셉의 이야기를 막 마치고, 저는 아이들에게 "내일은 모세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거야."하고 미리 알려주었습니다. 9살 11살이되는 제 아들들은 "예, 알았어요."하고 대답했죠. 저는 열심을 다해서 '모세'를 아이들에게 소개했습니다. "내일 모세에 관해서 읽을 건데 말이야." "모세의 이야기는 정말 많은 하나님의 기적과 이사로 가득차 있단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그 이야기를 정말 좋아할거야." "하나님께서 아론의 지팡이를 뱀으로 변하게 하시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권능을 보이시어 10개의 재앙이 이집트에 닥치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홍해를 쩍하고 가르기도 하고" "정말 기적적인 이야기로 가득차 있어."
그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제 9살 아들이 뭐라고 말했는 줄 아십니까? 말하기를 "엄마, 근데 그건 다 가짜이야기잖아요." 제 아들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 순간 충격을 받았습니다. '와, 제 아들은 겨우 9살밖에 아닌데 벌써 이렇게 생각하다니' 이 자리를 함께하고 있는 몇몇 어린이들이 그 말에 공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이는데요. 저희의 생각으로 9살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이 되는데 말입니다. 엄마가 성경이 이렇다고 말하면 그냥 그렇구나라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벌써 분명한 자신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9살인데도 벌써 성경이야기는 다 사람이 지어낸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저에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렸지요. 제가 그말에 살짝 충격을 받았다고요. 하지만 저는 일단은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습니다. 그리곤 반문을 했죠. "그렇구나." "정말 그러네. 정말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모세가 한 일들은 정말 불가능해 보이지. 그렇지?" 저의 갑작스런 동조 모드에 저의 막내아들은 '엄마가 왜 저러시지?' '무슨 속셈으로 나에게 저렇게 강하게 동의를 하시는 거지?' 라며 의문을 품은 가재미 눈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래, 엄마도 네 나이에는 그렇게 생각했었어."하고 말했습니다. 그제서야 제 아들은 의심을 거두고, "예, 엄마. 제 생각에는 정말 불가능한 일들이라고 생각되요."
그 때 제가 계속 얘기했습니다. "그래, 그렇게 생각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들아." 하면서 저는 부연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넌 네 아이패드를 정말 좋아하지?" 하고 서두를 꺼냈습니다. 제 막내아들은 자신의 아이패드를 정말 끼고 삽니다. 게임을 참 좋아합니다. "그래 넌 네 아이패드를 정말 소중히 생각하지. 근데 말이야." "네 아이패드는 하늘에서 그냥 뚝하고 떨어졌니?" "아니면 그 누군가 그걸을 만들었니?" "누군가 만들었죠." 라고 제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아이패드를 창조물이라고 하고, "아이패드를 만든 사람을 창조주라고 한다면 그 중 어느 쪽의 능력이 더 크니?" "아이패드자체가 아니면 아이패드를 만든 사람 중에 누가 더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니?" 제 아들은 그 순간 어느 쪽인지 선택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생각해 봐. 아이패드 만든 사람은 두 발로 달릴 수도 많은 다른 것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만개의 아이패드를 만들 수 있잖아. 그렇지?" "어느 쪽이 능력이 더 크다고?" 제가 힌트를 좀 많이 주었지요.
그러자 제 막내아들이 "아! 아이패드를 만든 사람이 더 능력이 커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래 맞아!" "넌 정말 똑똑하구나!"라고 격려를 덧붙였습니다. 그리곤 말했죠. "바로 그 관계는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와 같단다." "우리는 마치 아이패드와 같은 입장에 있단다." "우리는 하나님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단다." "우리는 육신을 가진 아주 한정된 입장에 있단다." "하지만 하나님의 입장을 한 번 생각해 봐." "하나님께서는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 존재하시는 분이란다." "하나님께서는 사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계신단다."
"아이패드와 같은 존재인 인간이 어떻게 아이패드를 만든 사람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겠니? (박수)
"그렇지요?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저는 또 하나의 성경의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하나님은 무자비하고 잔인하다고 말한단다." "또 심지어는 성경의 하나님은 피맛을 좋아한다고까지 말한단다." "그 예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에급 후에 황금소를 모실 때, 십계명을 들고 시내산에서 내려온 모세에게 3천명의 이스라엘 백성을 죽이라고 명령하셨단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났기 때문이지."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말하지. 하나님은 무자비하고 잔인한 신이다." "대체 누가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말했냐라고 말이지"
저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도를 잘못 이해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하나님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 아니라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곤 물었죠. "너는 그런 사람들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니?"라고요.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제 어린 아들은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경의 이야기를 내용전체를 이해하면서 판단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단다." 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막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셨단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적을 그들의 눈앞에 끊임없이 보여주셨단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시는지 친히 보여주셨단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어떻게 보답하였니?" "배신으로 대답하였지." "만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벌하지 않으셨다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수가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단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전통이 계속될 수 없는 상태에 놓인단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세계를 구원하시는 입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벌을 주신 것이란다."
"하나님께서는 감정컨트롤을 잃으시고 화를 부어셨을까? 아니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분노를 완전히 컨트롤 하실 수 있지."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셔야하는 일을 하셔야 했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벌하실 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단다." "그 당시에는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충분히 인내를 보여주셨고 어느 시점에서는 하나님께서는 더이상 참으시지 않으신단다." 아마도 저의 막내아들은 제가 하는 말의 반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해하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 아들은 제가 성경말씀을 얼마나 많은 자심감을 가지고 대하는지를 보았습니다. '어, 내 생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느껴지는 것들도' '가상의 세계라고 느껴지는 것들이 엄마는 뭔가 그에 부응하는 설명이 있구나!'라고 적어도 느꼈을 것입니다.' '그 설명에 자심감도 있어보이시네. 흠..' '아마도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보다.'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순간은 성경말씀의 자심감이 아이들에게 심어지는 것입니다. 식구님 여러분, 우리는 성경공부로 다시 돌아가야합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에 자신감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아이들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배울 수 없습니다. 누가 참아버님이셨는지 배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아버지께 찬양을 올려드립시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전통과 말씀이 영원히 영원히 전수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아주!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이제 천성경 117쪽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종을 세워 네 아버지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종을 시키고 천사를 시켜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한 시대가 구약시대입니다. 다음에는 아들을 시켜서 역사하였습니다. 그 시대가 신약시대입니다. 그 다음에는 성신을 시켜서 역사해 나오셨습니다. 아멘.
여러분 찬양을 올립시다. 모두다 일어나시겠습니다. 단상으로 오셔서 같이 기도드리시고 싶으신 분들은 내려오십시오. 오늘은 교회를 위해서 기도를 드립시다. 내려오십시오. 성경에서 말하기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단상 쪽으로 내려오셔서 하나님의 언약 위에 교회가 요한계시록의 바벨론 나라처럼 되지 않기를 기도합시다. 교회가 지금 가고 있는 악한 방향에서 재림주님의 중심으로 다시 돌아가도록 기도드립니다. 다같이 기도드립시다.
다들 내려오실 수 있도록 자리를 조금 옆으로 넓히겠습니다.
보고기도
아버지, 감사드리옵나이다. 아버지, 오늘 저희는 당신께 감사를 올리옵나이다. 당신의 왕좌 앞에 부복하고 엎드리옵나이다. 아버지, 저희는 당신께서 가르쳐 주신 원리의 눈으로 보기를 원하옵나이다. 저희는 사탄의 얄팍한 속임수에 혼동되고 싶지 않사옵나이다. 저희는 당신의 성령으로 움직이기를 원하오며 당신의 말씀으로 신앙의 뿌리를 내리기를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저희가 당신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져 상대주의적인 관점으로 당신을 바라보며, 저희가 당신의 말씀과 함께 실천하며 살지 않으면 사탄의 무리가 저희를 혼동하게 만들기란 너무나도 쉬운 일이옵나이다. 저희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고 당신이라는 중심으로부터 벗어나기가 너무나도 쉬운줄 아옵니다.
아버지, 오늘 저희가 당신의 성령으로 강하게 거듭나게 하여주시옵소서. 아버지, 당신께서 약속하시기를 당신의 영이 저희의 보혜사가 되시며 인도해 주실 것이라 말씀하셨나이다. 또한 주님께서 저희에게 가르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고 하셨나이다. 아버지, 오늘 당신께서 저희에게 가르치신 모든 것을 다시 생각나게 하시옵소서. 아버지, 저희가 당신의 전지전능한 성령의 권능을 친히 느끼게 하시옵소서. 아버지, 당신의 성령이 없이는 저희는 병약한 존재이오니 저희가 당신의 말씀에 뿌리를 두게 하소서.
아버지, 저희가 당신의 말씀으로 달려가게 하소서. 저희에게 당신과 살 수있는 새로운 법을 주시옵소서. 저희에게 성령께서 임하실 때에 저희에게 당신의 말씀으로 곧바로 찾아가는 새 습관을 주시옵소서. 지체할 것 없이 성경을 펼치어 그리고 당신의 말씀이 저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깨닫게 하여주시옵소서.
당신의 말씀의 이해의 부족으로 '지금까지 침노를 당하나니'라고 하였사오니 아버지, 저희에게 당신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교도들의 신비주의적 거짓의 유약함이 아닌 당신의 말씀 속에서 지혜를 구할 수 있도록 하시옵소서. 당신의 말씀만이 내 구원의 능력이시며 저희가 서있는 반석 되시며 저희가 당신의 권능을 가지고 원리를 가르치고 축복을 전파하고 삼일행사를 가르치고 축복의 성스러움을 가르칠 수 있는 기반이옵나이다. 성경에서 그 권위가 나오나이다.
저희가 그 주춧돌로 돌아가도록 하여주시옵소서. 이 교회에 새로운 계시가 내리도록 하여주시옵소서. 아버지, 세계교회가 이제 일어나 이를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많은 이들이 깨닫고 있나이다. 당신을 향해 일어서나니, 한때 겁장이였던 무리가 맹수가 되었나이다. 양다리를 걸치고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며 이득을 저울질하던 무리들이 성령께서 불처럼 임재하게 하시사 깨닫게 만드셨나이다. 아버지의 성령이 사탄의 무리 또한 단칼에 척결할 수 있음을 저희가 기억하게 하시옵소서.
아버지, 저희는 사탄의 왕국을 처단하고 부수기 위해 서있사옵나이다. 사탄의 왕국은 그럴듯해 보이나 너무나 약함을 아옵니다. 저희 무리가 당신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어 하나님아버지와 천군천사와 함께 서서 싸울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성령과 진정으로 천상의 모든 선한 조상들과도 함께 앞으로 나아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사. 저희는 약속의 땅으로 전진하나이다. 아버지, 오늘 당신의 성령의 기름을 부어어주시옵소서.
여기에 서있는 저희 각각의 병약함을 아시고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저희는 당신의 성령의 도움이 필요 하옵나이다. 저희는 당신의 성령이 간구 하옵나이다. 당신의 성령이 저희와 거하시지 않는 한, 저희는 절름뱅이이며, 저주를 받았으며 고질병에 시달리며 당신없이는 저희는 혼수상태에 있는 자와 마찬가지 이옵나이다. 아버지, 지금 이순간 혼수상태에 있는 저희를 흔들어 깨워 새롭게 하소서. 절름뱅이인 저희를 일으켜 걷게 하시옵소서. 저희를 누르고 있는 중압감과 우울증을 걷어내 저희의 영의 새롭게 하소서.
저희를 설 수 없게 하였던 과도한 걱정과 근심도 성령으로 다 날려보내게 하소서. 이제 저희의 두 다리에는 새로운 힘이 넘치 옵나이다. 저희의 영적 몸을 건강히 만드시고 영안과 귀가 열리고 영적감각이 열어지니 주님의 용안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거닐게 하시옵소서. 이제 당신의 역사를 보여주시옵소서. 아버지, 오늘 이 모든 말씀을 저희의 이름으로 보고드리며 당신의 존귀하신 이름받들어 간절히 기도드리고 아뢰었사옵나이다. 아주! 아멘!
하나님께 큰 영광과 찬양을 올립시다. 옆에 계신 식구님의 격려하시면서 안아주십시오. 옆에 계신 식구님에게 주님께서 내 안에 거하심을 말하십시오. 찬양을 올립니다.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