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진님 간증 (천일국 7년 1월 17일)
-천정궁 훈독회
문형진님 간증 -2007년1월17일
7년 전에 제일 가깝게 지내던 형님이 승화했습니다. 영진 형님이 승화하기 전에 저는 그저 노는 것을 좋아하며 장난치고 문제를 일으키는 철없는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영진 형님은 아주 모범적이셨습니다. 아버님이 시키신 일은 제일 훌륭하게 하셨습니다. 모두들 영진 형님을 '성인' 이라 말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시절에는 무술에 빠져 있었습니다.영진 형님이 콜롬비아 대학에 진학했을 때 저는 우루과이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했는데 갑자기 아버님께서 장가가고 싶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가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고 고등학교 졸업 후 축복을 받았습니다.
대학은 코넷티컷에 있는 천주교 예수회 계통의 대학을 다녔습니다. 대학을 1년 다닌 후 아들을 낳고 1년간 휴학하여 영진이 형과 여행도 하며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영진이 형은 저를 많이 지도해주었고 공부법을 전수해 줬습니다. 영진이 형 덕분에 시험 성적도 좋아졌고 하버드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영진이 형이 승화하기 전에 저는 뭘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저 사회학이나 경영학을 공부해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영진이 형 승화 후에 인생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으며 종교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부터 아버님과 보다 진지하게 대화하며 관계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부모님께서는 항상 세계복귀를 위해 분주한 삶을 보내셨습니다. 따라서 부모님과 함께할 시간이 적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한 때는 교회 다니는 것 자체가 힘들었습니다. 그 때 영진 형이 "다른 사람들이 변하기를 바라는 것보다 네가 변하는 것이 제일 빠른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살면서 그 말을 더 이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천일국 백성 수련회를 하면서 통일교회에는 통일교인과 분리교인이 있다는 말을 합니다. 여기서 분리교인은 나를 중심삼고 벽을 만들어 다른 사람 탓을 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원리에는 심오한 진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개성진리체이고 연체입니다. 그걸 잊어버리면 진정한 통일교인이 될 수 없습니다. 연체라는 말은 다른 개성진리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을 핍박하면 나를 핍박하는 것입니다.
영진 형이 1999년 10월말에 승화했습니다. 그 다음에 저는 보스턴에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영진 형이 영적으로 많이 찾아왔습니다. 한 번은 제가 공부하다 누워 있는데 영진 형이 제 머리 맡에 앉아 있었습니다. 제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실감나던지, 제 손은 조금 길고 여자 손 같습니다. 영진이 형 손은 조금 두껍습니다.형님이 저를 잡고 있는데 형님의 손가락 굵기까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영진이 형이 말했습니다. "내가 항상 너하고 같이 다니고 있다. 걱정하지 마라."
제가 무언가를 잘해서가 아니라 부모님 덕분에 제일 좋은 학교, 안전하고 윤택한 뉴욕의 마을에서 자랄 수 있었고 참가정의 자녀이기에 식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감사를 몰랐습니다. 하지만 영진 형님이 승화한 후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지를 생각했습니다.
영진 형님은 참 효자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원리 시험을 보면 영진 형이 첫째였습니다. 저희 동생들과 2세들을 지도해 주었습니다. 2세들과 수련회를 매주 했는데, 2세들은 영진 형을 통해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영진이 형은 자신이 이해 받기보다 2세들을 먼저 이해했습니다. 2세들과 토론하고 문제 있으면 도와주었습니다. 영진이 형은 학교에서도 성공적이었습니다. 성적도 우수했고 운동도 잘했습니다. 그러나 겸손했습니다.
영진 형이 영적으로 찾아오고부터 제 삶이 바뀌었습니다. 한 번은 하버드 대학에서 내가 살고 있던 아파트까지 걸어가면서 '형이 진짜 나와 함께 할까?' 하는 의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형에게 '진짜 함께 있다면, 지금 내 말을 듣고 있다면 거리의 가로등을 꺼보라' 고 했습니다. 그러자 내가 아파트까지 가는 2-3분 동안에 내가 지나 온 뒤의 가로등이 하나씩 하나씩 꺼졌습니다. 그 때부터 진짜 영진이 형이 나와 함께 한다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보스턴에서 주말마다 가족이 있는 뉴욕을 왔다 갔다 하려면 고속도로를 운전해 가야 했는데 그 때마다 형이 바로 옆 자리에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 번은 운전을 하던 중이었는데 졸음운전으로 차가 길 옆으로 가 사고가 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길가의 등이 꺼졌습니다. 저는 불현듯 형님 생각이 나서 정신을 차리고 운전을 했습니다. 이스트 가든에서 보스턴까지 3-4시간을 운전하면서 형이 곁에 있다는 것을 느끼고 계속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세상적인 생각은 안 하고 싶다, 좀 더 다르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진 형이 승화하기 전에 저는 아주 멋쟁이였습니다. 비싼 옷 입고 다니는 것 좋아하고 다른 사람이 모델 같다고 말하면 아주 좋았습니다. 하지만 영진 형이 승화한 뒤부터는 그런 모습을 다 버렸습니다. 그 때부터 영진이 형과 약속을 많이 했습니다. 머리를 밀었습니다. 대머리가 되면 사람들이 많이 쳐다봅니다. 어디 다닐 때 편하게 못 다닙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스스로를 계속 돌아봐야 합니다.저는 머리 밀고 한복 같은 도복 입고 학교를 다녔습니다.우리 형제들이 아버님을 닮아서 여자에게 인기가 있습니다. 여자들이 관심 있어 했는데 머리를 밀고 도복 입고 다니니까 여자들의 관심도 멀어지고 아주 편했습니다.
저는 한 때 평생 영진이 형을 잊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손가락 하나를 태우려고 했습니다. 영진이 형이 못한 것에 대하여 형과 함께 하자는 마음으로 그러려고 했습니다. 손가락을 태우려고 하는데 우리 부인이 말렸습니다. 손가락을 태우지 않았지만 항상 어디가도 언제라도 나이가 들어 40이 되고 50이 되고 60이 되어도 형님을 기억할 것입니다.
먼 훗날 인생을 되돌아보며 영진이 형이 원했던 것을 다 했느냐, 형과 약속한 것을 다 했느냐를 제 자신에게 자신 있게 물어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사실 하버드 대학의 학자들과 학생들은 우리 교회를 아주 싫어합니다. 하지만 저는 열심히 그들과 대화했습니다. 선생님들과 친해졌습니다. 학생들, 다른 종교인들과도 대화하고 아버님을 설명했습니다. 이번에 하버드 신학대학원 석사를 마치고 졸업식에서 기도하고 소감을 말할 것을 부탁받았습니다. 기도를 할 때 저는 아버님 기도문을 읽었습니다. 기도 후 영진 형님에 대해 말하고 아버님에 대해 말했습니다.
아버님이 항상 여러분 앞에서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말씀을 많이 하시는 아버님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님을 모시고 다니면 아버님은 말씀을 많이 하지 않으십니다. 하루의 대부분을 침묵하시고 다른 사람 말을 들으십니다.
저 역시 아버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지시하시는 것만 봐서 아버님과 대화하기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종교를 공부하고 아버님과 함께 지내면서 그 전에 제가 생각하던 아버님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두 세 시간 동안 대화를 하는데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어 주셨습니다.
아버님과 시간을 보내며 아버님이 어떻게 살아가시는지,어떻게 행동하시는지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하루하루 한 순간 한 순간 모든 것을 하나님과 함께하십니다. 이를 닦으실 때도 옷을 입으실 때도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실 때도 하나님과 함께하십니다. 그런 아버님을 옆에서 뵈면 '이상세계' 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게 아버님은 항상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삶을 보여 주셨습니다.
또한 부모님은 바쁜 일정으로 자식들을 볼 수 없어도 전화를 하셨고 한 명 한 명에게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직접 쓰십니다. 저도 다섯 자식이 있는데 모든 아이들에게 편지 쓰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13명 자녀에게 편지를 쓰십니다. 우리도 안하고 있는 것을 하십니다. 이러한 부모님의 삶을 통해 '부모' 에 대해 깨닫습니다.
한 언어학자가 의사소통은 10%가 언어소통이고 90%가 말하지 않는 언어의 소통이라고 말했습니다. 말로 하는 토론은 10%입니다. 나머지 90%는 행함입니다.
우리가 참부모님을 닮아야 하는데 참부모님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시고 하나님을 해방시킨 그 행함을 닮아야 합니다.
아버님 말씀은 10%일지 모릅니다. 아버님과 함께하면서 아버님 말씀이 아니라 삶 그 자체로 엄청난 가르침을 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언젠가 부모님을 모시고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아버님이 어머님 발을 간질이시며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게 사랑하시는지 저희는 너무 좋아서 웃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지나가는 순간이 아니라 심오한 가르침의 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수십 년을 부인하고 살아도 아버님이 보여주신 그런 자유, 통일, 평화, 행복으로 사랑을 표현해야 합니다. 저는 그 때 이게 아주 중요한 사랑 훈련법이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심오하게 참사랑의 원리를 실천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보통 부부들은 아이들 앞에서 사랑 표현을 잘 안 하려고 하는데 아버님은 우리를 교육하기 위해서 그렇게 표현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말로 표현하지 않으시는 가르침이 많습니다. 가까이 모시는 지도자들은 아실 겁니다.
아버님이 낚시하시는 그 곁에 그냥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많은 영적 가르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어나실 때부터 주무실 때까지 주무시는 동안에도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이상적인 삶을 사십니다. 부모님과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잘 몰랐습니다.
영진 형 승화 후 저는 삶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느끼게 됐습니다. 옆에 있는 식구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됐습니다. 숨을 쉴 수 없는 영진이 형을 생각하면 숨을 쉰다는 것이, 걸을 수 없는 영진이 형을 생각하면 걸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살아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얻은 후에 감사한 마음을 같겠다고 하는데 이것은 180도 틀렸습니다. 멋있는 차가 있고 돈만 있으면, 지위가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180도 틀립니다. 먼저 감사하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훈독회에 나오시기 전에 아버님께서는 10분간 조용히 명상하고 기도하십니다. 심오한 시간입니다. 아버님과 함께하는 가장 심오한 순간입니다. 훈독회에 오시기 전10분간 명상하시는 그 순간이 제일 심오하고 소중합니다.
그 때 저는 아버님의 칭찬을 바라지 않습니다. 아버님과 함께 있다는 것 자체로 감사하게 됩니다. 많은 것을 배웁니다.
며칠 전에 파주에 갔습니다. 대모님, 흥진님, 신길이 원전을 찾았고 영진이 형 원전에도 갔습니다. 영진이 형 원전에 가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2007년을 어떻게 지낼 것인지를 영진이 형에게 말했습니다. 형에게 감사하다고 흥진 형님과 잘 있는 거 안다고 말했습니다.
계단을 오르며 제가 지금 무엇을 하고 무슨 삶을 사는지,부모님과 하늘 앞에서 그리고 우리 모든 식구들 앞에 어떤 삶을 살고 있나 또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신기한 것은 가까운 사람의 죽음 앞에서 삶의 가치를 알게 된다는 겁니다. 영진 형이 승화한 다음 삶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버님이 언제 갈지 모른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제발 그런 말씀하지 말아달라고 아버님께 부탁드립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시냐고, 그렇게 말하지 마시라고 말합니다. 부모님이 여기 함께 계시다는 것은 진짜 엄청난 설명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우리는 부모님이 여기 계실 때 진짜로 훌륭한 아들딸들, 가인이든 아벨이든 상관없이 아들딸로서 훌륭한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몇 천 년이 흐른다 해도 참부모님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평화의 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축복 2세 3세 5세 100세라고 할지라도 항상 부모님이 중심이 되고 부모님의 말씀과 행하심,부모님의 삶을 닮아야 합니다. 부모님이 여기 계신 가치를 기억하셔야 합니다.
전 세계 식구들이 부모님께서 여기 계신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세계는 좋은 세계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아버님 어머님을 많이 사랑해 주세요. 여러분은 부모님과 평생 이 길을 걸으셨습니다. 자녀들의 사랑도 중요하지만 여러분의 사랑도 부모님께는 대단합니다. 여러분의 사랑이 부모님에게 생령요소를 많이 줄 수 있습니다. 자녀(참자녀님)들은 젊으니까 상관 마시고 참부모님을 제일 많이 사랑해 주세요.
[출처] 문형진님 간증 -2007년1월17일|작성자 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