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있으라 (2대 왕님 옛 말씀)

訓讀王 | 20191022094027

천기2년 6월 3일(양 2011.7.3) 



빛이 있으라 (Fiat Lux)


안녕하십니까, 식구님 여러분.
아주 오래간만입니다. 그리고 이곳 라스베이거스에서 설교를 보냅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피앗 룩스' (Fiat Lux:  Let there be light, 빛이 있으라) 입니다.
아주 신기하게 들리실 수도 있을텐데, 그것은 라틴어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나오는 "빛이 있으라" 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라틴어로 표현한, 아주 유명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요한복음 3장 19절부터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3:19 – 3:21)

"이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은 미워하며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아주"

여러분,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정죄' 가 나왔습니다. 우리는 가까이 보아야 합니다.  이 요한복음 3장에서 나오는 것은 빛이 세상에 왔는데 사람들이 빛보다 어두움을 '선택' 하는 것이 아니고, 그쪽으로 '끌리는 것' 도 아니라 빛보다 어두움을 '사랑' 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 라고 하신 말씀과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5장 14절에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신도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고 말씀하신 것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이 구절에서 참 중요한 부분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만나게 되면 우리가 그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것을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이기 때문에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내신 아들의 피와 탕감, 고문들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랑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자신을 보게 되면,  그 '정죄' 가 무엇입니까? 우리 자신을 보십시오.  매순간 우리가 눈을 감고 우리 자신의 생각들이나 하고 싶은 말들만 봐도 우리는 항상 어두움을 더 사랑합니다. 항상 비판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다른 상황에 대해서도 불만하고 싶어하는 등 우리는 항상 어두움을 더 사랑하는'정죄' 가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빛이십니다. 세상 안에 있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을 우리는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의 '빛이 있으라' 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셨을 때 빛도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아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을 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빛으로 이 세상에 보내셨던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것은 새로운 창조였습니다. 새로운 창세 기록이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창조가 되는 것입니다.

원리적인 해석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핏줄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위기대와 참가정을 이루지 못한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참부모님께서 오셨고, 참부모님께서 재림주요  그리스도로서 똑같이 예수님처럼 세상의 빛이 되십니다. 그 빛은 새로운 창조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창세 기록처럼 하나님께서 새로운 창조를 하고 계십니다.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고 계십니다.  우리로부터가 아닙니다. 참부모님으로부터 시작입니다. 

참부모님께서 세상의 빛이시요, 하나님의 빛이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과 우리의 내용들이 아닌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로 창조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행동과 우리의 선함을 이유로 이러한 은혜와 은총을 받았다면 우리는 사실 우리 자신을 보았을 때 이렇게 악하고 어두운 요소를 항상 사랑하고 있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직하게 내 자신을 보게 되면, 나는 죄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자녀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데 어떻게 죄인이 될 수 있느냐, 말도 안 된다.' 라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정직한 질문도 아닙니다. 많은 자녀들,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모두 죄가 있는 자녀들입니다. 누가 참부모님 앞에 가서 "참부모님, 저는 죄가 없습니다!" 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참부모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요한복음 3장 19절에서 아주 중요한 내용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그 중요한 것, '하나님의 빛이 세상으로 왔는데, 세상은 빛보다 어두움을 사랑하게 된다' 는 것. 어두움을 사랑하는 사람은 빛과는 멀어지고, 빛을 사랑하게 되면, 어두움보다 빛을 사랑하는 사람의 그 행동과 내용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계 역사를 보게 되면 종교, 특별히 기독교에서 이 중요한 말씀을 예수님을 통해 세상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20세기에만 보더라도 우리는 종교를 없애려고 하는 세력들도 보았습니다. '종교는 문제다, 종교는 나쁘다, 종교 때문에 사람들이 세뇌 당하고 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 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여러분께서도 아시다시피, 공산주의 사상이었습니다. 이 공산주의 사상은 종교를 죽이고 종교를 없앨 수만 있다면 사람들을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부 세력으로 많이 건설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20세기에만 보아도 공산주의를 중심한 사회들이 모두 멸망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모든 공산주의 국가들 중 쿠바나 소련은 이미 그런 걸을 갔고, 중국은 순수한 공산주의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은 성공하여 발전하고 있습니다만, 순수한 공산주의 체제로 갔던 사회들은 모두 망했습니다. 하나의 예외도 없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정부가 악하고 인간이 만든 것으로 악해질 수는 있어도, 민주주의와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가치를 가진다는 내용을 가짐으로써 세계적으로 발전했던 나라들을 우리는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런데 참 중요한 것이 우리는 종교가 악하다는 소리도 많이 듣습니다. '종교는 나쁘다, 종교는 필요 없다' 라는 말도 합니다. 아버님께서도 어쨌든 종교가 필요 없다고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아버님의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아버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이상세계' 입니다. 이상세계에서는 물론 종교가 필요 없습니다. 학교도 필요 없습니다.  아버님께서도 에덴동산에는 대학들도 없다고 하셨던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상세계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대학도 필요하고, 교육도 받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회개도 해야 하고, 종교도 필요하고,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만약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와 그 믿음을 죽일 수 있다면 정부의 말을 듣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신앙이... 이 세상에서 얻는 만족이 충분하지 않다 하더라도 신앙을 통해 항상 이 산보다 더 멀리, 이 별보다 더 멀리, 이 행성보다 더 멀리, 이 구름보다 더 멀리, 이 우주보다 더 멀리, 모든 것을 초월하는 하나님을 추구하기 때문에, 공산주의 같은 사상들이 종교를 공격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우리 교회에서도 이런 소리들을 많이 들을 수 있는데요,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하는 것은, 신앙은 하나님을 추구하고, 초월적인 내용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 초월적인 내용이 바로 참부모님, 우리 눈앞에 계시는 참부모님이요,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게 된다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얻어도 여러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이번에도 아버님께서 아주 특별한 은혜를 주시면서, 이곳 라스베이거스에서 한 새로운 식구님을 축복시키셨습니다. 신랑이 되시는 식구님께서는 사회결혼에 실패했고, 부인이 되시는 분도 축복을 받았으나 그 축복이 잘 유지되지 못한 그런 상황에 있었습니다. 아버님께서 특별히 그 두 분을 다시 약혼시키셨고, 그 깨졌던 가정들을 하나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축복식의 주례로 섰는데, 축복의 말씀으로서 제가 여러 가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때 특별히 신랑에게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당신과 결혼하는 여성은 통일교의 선교사이십니다. 그 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신앙일 것입니다.  그 신앙을 발전시키고 그 신앙을 위대하게 만들어야만 나의 능력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은총, 은혜 앞에 그 마음이 열려야만 그것이 부인을 감동시킬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도 우리 마음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저도 하루 종일 제 마음이 명상 가운데 있거나 아니면 다른 순간에 있어도 항상 잡생각을 하고 있고, 항상 유혹에 빠질 수 있으며, 항상 다른 생각도 할 수 있습니다. 24시간 동안 항상 그리스도만을 생각하고 항상 참부모님만을 생각하고 항상 하나님만을 생각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을 보아도 100% 우리의 몸과 마음이 통일되지 못한 상황을 맞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요한복음 3장의 말씀처럼 우리는 어두움을 사랑하게 됩니다. 빛의 자녀인데 어두움을 사랑하게 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참부모님의 자녀이지만 우리는 죄를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쉽게 말하면 참부모님을 아프게 만드는 것이 죄입니다. 참부모님을 아프게 만들지 않았던 자녀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참부모님 앞에 모두 죄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회개를 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회개를 할 때에 사람이 더 어두워지면 안됩니다. 이것이 Key(중요한 내용)입니다.  회개를 할 때 더 어두워지면 우리는 회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에 대한 도취와 나의 혐오가 똑같은 내용임을 우리는 여러 번 들었습니다. 나만 사랑하는 것의 중심은 나이고, 나만 혐오하는 것의 중심은 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진정한 회개를 할 때는 나에게 도취되지도, 나를 혐오하지도 않습니다. 

진정한 회개를 하면서 내가 더 어두워져서 내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  어두움만 사랑하는 사람인지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고, 우리는 사실 더 밝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회개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빛! 빛을 만나게 됩니다. 회개를 통해서 우리는 나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나도 빛의 자녀로서 살 수 있다 라는 희망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 희망과 빛,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 은혜로 만나면서 우리는 더 힘찬 열정이 있는 그것을 증거하고 싶은 살아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진정한 회개를 통해서 우리는 더욱 행복한 사람이 되야 합니다. 더 아름다운,  빛나는 사람이 되야 합니다. 더 열정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더욱 잘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개를 잘못하면 안됩니다.

여러분, 성령치유예배를 할 때에 진정한 회개를 합시다. 진정한 회개, 진정한 회개를 하면서 찬양을 할 때에 이것이 나를 중심한 것이 아니라, 오직 이 스포트라이트가 하나님과 참부모님께 계속 비치면서 그 분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 나는 이제야 이 사랑을 만날 수 있고,이 은혜와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이 자체가 얼마나 기가 막힌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나는 더 밝아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특별히 성령치유예배를 하실 때, '참부모님 억만세' 를 부르실 때,  너무나 열심히 노력하지 마세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신앙은 하나님의 은총,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써 신앙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노력으로써 신앙이 나타날 수 있었다면 모든 사람이 좋은 신앙을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 때문에 우리에게 신앙이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에 기대하지 마세요. 오직 빛 되시는 하나님과 참부모님께 기대해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제가 아주 좋은 예화를 들었는데, 어떤 사람이 큰 호수를 수영해서 건너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가 10대였을 때 친구들과 함께 수영하는 것을 참 좋아했었는데, 어느날 수영을 하고 있을 때 일입니다. 그 호수를 절반도 못 가는 상황에서 저 멀리 건너편까지 가야 하는데, 이제는 자신이 "살려주세요-" 라고 하고 싶지 않게 되었답니다. 만약 그가 자기의 능력, 자기 자신을 보면서 아직도 나에게 힘이 조금 남아 있다, 나는 아직도 나를 믿을 수 있다고 하면서 가는 사람은 절대로 "살려주세요!"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살려주세요" 라고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이제는 나의 능력을 믿을 수 없다, 나는 물에 빠지고 있다, 나는 죽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살려달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예수님 앞에서 물 위를 걸어가고 있을 때 물에 빠지게 된 순간에 주에게 어떻게 하였습니까? "주님! 살려주십시오!" 라고 외쳤습니다.  자기의 능력으로 못 하는 것입니다.

신앙도 똑같습니다. 우리도 자기 능력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벌써 자신에 대한 사랑, 거만함이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도 그 물에 빠지는 사람처럼  "주여, 살려주십시오." 해야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 은혜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그 상황에서 정말로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조금 힘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살려주세요" 라고 한다면 친구들에게 "너는 왜 이렇게 약하냐, 너는 물에 빠질까 봐 두려워하는 겁쟁이구나." 하는 놀림을 받을까 봐 두려울 수 있는데, 신앙에 대해서 우리는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사실 영광의 하나님과 참부모님 앞에 갈 수 없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 분들 앞에 갈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잘났기 때문도 아니고, 우리가 좋은 자녀들이기 때문도 아니며, 죄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도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은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참부모님의 은혜, 은총, 탕감이 위대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많은 것을 제가 말씀 드렸지만,  요한복음 3장 19절의 빛!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의 빛이십니다. 성령치유예배를 할 때 참부모님 억만세를 부르시면서 우리가 그 억만세를 부를 때 너무 노력하지 마시고, 그 참부모님 억만세가 자연스럽게 여러분의 심정에서 우러나오게 하십시오. 너무나 집착하면서 열심히 하지 마시고,그냥 그 빛이 빛나게 하십시오. 놓아 주십시오. 집착하지 말고 놓아 주시고, 그 빛이 빛나게 해 주십시오.

그 '참부모님 억만세' 를 외치시면서,  또 부르시면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시고, 성령이 우리 심정에 들어오셔서 다시 우리에게 새로운 심정, 죄를 미워하는 심정, 주를 사랑하는 심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심정, 빛이 되시는 참부모님을 사랑하는 심정을 기르면서 '참부모님 억만세' 를 외치면 여러분은 오늘 어떠한 순간보다 더 아름다운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에 찬 시간이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 그런 심정으로 우리는 정성을 모으고, 우리의 능력으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총, 은혜로 참부모님께 영광을 올려봅시다.
이곳 라스베이거스에서 여러분과 함께 진동을 모으면서, 오늘도 회개하면서 더 밝은 사람이 되어서 더 빛나는 빛의 자녀가 되고, 참부모님께 영광을 올리는 예배를 올려봅시다.

마지막으로 참부모님의 말씀으로 마쳐봅시다.

"내가 하나님이 레버런 문을 사랑하는지 모른다고 그랬지요. 그렇지만 그 길을 지나가 보고 나니까 하나님이 다 지켜 주셨고 하나님이 다 해결해 주셨다는 거예요. 
나는 여기서 고통 받지만 통일교회를, 세계에 뻗쳐 있는 통일교회를 나 이상 사랑하시는 것을 볼 때 고맙게 생각하는 거예요. 이게 귀한 거예요. 자기보다도 더 사랑하면 틀림없이 하늘은 같이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반대하는 모든 교파, 모든 종파, 모든 나라, 모든 세계가 결국은 밤이 되지, 낮이 되지 않는다 이거예요. 밤 가운데에 있던 레버런 문은 낮을 향해서, 아침 태양빛으로서 등장할 것입니다. 그때는 모든 자연의 만물, 생명 있는 것은 전부 다 그곳을 향하여 새로운 방향을 정할 것입니다. 
(124-107, 1983.02.01)

 아주.

[출처] 빛이 있으라 (Fiat Lux)|작성자 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