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1월 13일 형진님 설교 말씀
오늘 설교 제목은 '하나님의 천금 같은 평화' 입니다.
설교에 앞서 아버님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말씀선집 162권 P59입니다.
"마음의 자유, 마음의 평화, 마음의 행복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을 중심삼고 병 나지 않는 데서 완전한 사람이 되고, 최대 행복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을 성공하는 최대 목적지 입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여러분들을 불편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환경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화를 가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평화로운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보다 축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특별한 자기 만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기를 원하신다면 우리 스스로를 바라볼 때, "나는 선한 사람이다." "나는 좋은 사람이다." "나는 우주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등 긍정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고, 우리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 이래 어떤 처절한 상황에서도 인류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이 순간도 그러하실 것이고, 앞으로도 그러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우리 자신에 대해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 평화로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미국 인디안 전통에 의하면, 늑대는 신성한 동물입니다. 부족의 안녕을 지켜주는 수호 동물입니다. 또한 그 전통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 속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있다고 합니다. 그 중 한 마리는 이기적인 늑대입니다. 우리 마음의 불평, 화,미움, 복수심, 질투 등과 같은 부정적인 양식을 먹으며 점점 그 힘을 키워갑니다. 다른 한 마리는 선한 늑대입니다. 우리 마음의 자비, 사랑, 용서,인내, 명예, 평화 등과 같은 긍정적인 양식을 먹으며 점점 그 힘을 키워갑니다. 우리 마음 속에 늑대들은 죽지 않고 영원히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양식으로 어떤 늑대를 성장시키느냐에 따라서 우리 인생도 바뀌게 된다고 합니다.
평화는 영어로 Peace이고, 히브리어로는 '샬롬' 입니다. 이런 말들의 어원을 연구해보면, '평화' 라는 말에는 '안전, 복지, 번영' 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마음 속에 평화가 있다면, 우리는 그 평화 안에서 위험이 아닌 '안전' 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복지(福祉)' 즉, 평안하고 행복한 삶과 연결되어 있고, 결국 그 안에서 우리는 더욱 ‘번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의 부인이 해 준 이야기 하나를 하겠습니다. 부인이 어렸을 때 같은 반 옆 자리에서 함께 공부했던 여자 친구가 시험에서 93점을 받았다고 합니다. 좋은 점수인데, 그 친구가 울고 불고 난리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인이 왜 우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또 다른 친구가 95점을 받았기 때문에 운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93점은 객관적으로 봐도 좋은 점수입니다. '그래, 93점이면 잘했다. 앞으로 더 노력하면 더 좋은 점수를 받을 것이다.' 이렇게 결심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은 95점을 받았는데, 나는 93점 밖에 못 받았어. 나는 실패했어."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면 공부하는 것이 더욱 어렵고 힘들게 될 것입니다.
삶을 살면서 여러분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나 상황을 만나게 되실 겁니다. 직장 상사가 여러분을 무시하고 있다고, 남편이나 부인이 혹은 자식이 여러분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인생이 여러분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그런 사람들이 변화하면 혹은 여러분에게 다가온 어려운 상황이 좋게 변하면 마음의 평화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여러분에게 주어진 상황이 변화하기만을 기다린다면 여러분들은 영원히 기다리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다른 사람이나 상황이 변하기를 기대하기 보다 여러분이 변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 그 변화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마음의 평화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큰 자산입니다.
기독교를 세계로 전파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그의 인생의 모든 문제를 없애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인생에서 어떤 형태로든 어려움과 고난을 만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바울은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삶에서 만나게 될 장애물을 넘어갈 수 있는 힘과 용기와 능력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우리들도 이제 바울처럼 인생의 어려움, 장애물 자체를 만나지 말게 해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도전에 직면해서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나' 가 될 수 있도록 힘과 용기와 능력을 주실 것을 기도해야겠습니다.
식구 여러분! 여러분은 어떨 때 스트레스를 받습니까? 스트레스라는 말은 다 아시죠? 스트레스라는 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억압하다. 압박하다.' 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통계를 보면 현대인들의 질병 중에90%가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생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는다면 보다 더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참부모님께서는 하늘 섭리를 위해 바쁜 일정을 보내셨습니다. 세계적으로 활동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를 돌봐주는 '언니' 가 있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자녀들에게는 '언니' 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남자니까 '언니' 가 아니라 '누나' 라고 불러야 되는데, 이스트 가든에서는 그런 분들을 다들 '언니' 라고 불렀습니다.저를 돌봐주었던 분은 '혜영 언니' 였습니다.
참부모님의 자녀로서 저와 저의 형제자매들은 공부에 대한 많은 중압감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저를 돌봐주었던 '혜영 언니' 를 저를 다른 방법으로 양육했습니다. '혜영 언니' 는 저에게 공부를 너무 강요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공부를 잘 못했습니다. 좋지 않은 성적을 받았습니다. 그 때 '혜영 언니' 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주변에서 좋지 않은 말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혜영 언니’는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선택한 방법이 잘 적용이 될까? 만약에 내가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혜영 언니' 는 어느 순간에 그런 고민을 멈추고, '내가 내린 결정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던 것' 이라고 믿고, 흔들리지 않고 마음의 평화를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하버드 대학과 대학원을 나와서 지금 이렇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혜영 언니' 의 양육법은 결국 성공적이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자녀들을 키울 때 공부를 시키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 2세, 3세들은 다 공부를 잘해야 합니다. 다만, 제가 성장할 때에 너무 많은 중압감에 시달리지 않고 제가 쉴 수 있는 '마음의 평화' 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잘 성장해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참가정의 자녀로서 학업 성적에 대한 중압감은 항상 있었지만 '혜영 언니' 의 도움으로 중압감 때문이 아니라 보다 자연스럽게 공부에 대한 의지를 키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지난 월요일, 참 좋은 친구와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그 친구를 조금씩 통일교회에 대해 배우고 있습니다. 그 친구는 자신의 이야기를 했는데, 어렸을 때는 공부를 참 못했다고 했습니다. 대학입시에서도 3-4번 정도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 친구의 어머니는 항상 사랑으로 그 친구를 돌봐주었다고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화' 를 잃지 않고 그 친구를 키우셨다고 합니다.그 어머니는 아들이 못난 모습을 보일 때도, 지금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언젠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성공할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그 친구는 30대에 자신의 길을 찾았고 지금은 한국은 톱 스타 중에 한 명이 되었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그 친구 인생의 꽃이 핀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늦게 꽃 피우는 인생이 더욱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아내나, 남편, 혹은 자식들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면 '한 마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한 마디 했으면 오늘도 한 마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잘못을 지적하고 잘 되기 위해서 충고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을 대함에 '마음의 평화' 를 잃지 않는 것, 보다 긍정적인 미래를 다짐하며 기다려 주는 것 역시 필요합니다.
제가 하버드 대학에서 동양 불교 관련 과목들을 공부했습니다. 그 과목들은 라버 지멜로 교수 담당이었습니다. 그는 천주교인이었는데 동양 불교, 중국 불교에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분이었습니다. 그 분 수업을 들었을 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제가 삭발을 하고 한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 분은 내 외모를 보고 스님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과목에서 첫 Report를 제출했는데, A학점을 받았습니다. 학점 옆에 '아주 뛰어남' 이라는comment도 받았습니다. 기쁜 마음에 교수님을 찾아가 함께 대화를 나누게 됐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교수님이 제가 스님인지를 물었습니다. "저는 문선명 총재의 아들입니다." 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교수의 턱이 이렇게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저는 또 다시 "저는 결혼해서 다섯 명의 아이가 있습니다." 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자 더욱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두 번째 Report를 썼습니다.첫 번째 것과 비교해서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C학점을 받았습니다. 편견 없이 공정하게 받은 점수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결국 학기가 끝나고 그 과목에서 저는 B학점을 받았습니다.
제가 비교 종교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중국 불교, 9세기의 천주교 등을 공부해야 했습니다. 지멜로 교수는 저에게 아주 중요한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록 공정한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그것에 대해서 화 내고 그 교수에게 따지지 않고 '마음의 평화' 를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분을 대함에 있어 평화로운 마음을 유지했습니다. 통일교인으로서의 자부심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국 조계종에서 50여 명의 스님들이 하버드 대학에 왔습니다. 그 스님들은 저에게 친절하게 다가와서 대화를 나누었고, 어떤 스님은 저와 사진을 찍기를 원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지멜로 교수가 깜짝 놀랐습니다. 지멜로 교수는 통일교회와 참부모님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불교 전통을 대표하는 조계종 스님들이 문선명 총재의 아들인 저를 친근하게 대하며 존중해 주는 것을 보고 놀란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저를 대하는 교수님의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그 분의 저의 지도교수가 되어 주셨고, 그 분이 강의하는 과목 중 제가 수강한 모든 과목에서 A학점을 받았습니다. 만약 제가 그 교수가 저에게 행한 불공정한 일에 대해 마음의 평화를 잃고 화를 냈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그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평화를 지키려는 노력으로부터 그 분과의 관계가 좋아질 수 있는 계기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그 교수님과 연락을 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마음의 평화를 가집시다. 마음의 평화는 우리 삶의 중요한 자산입니다. 우리를 축복의 삶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인디안 전통에 따르면 우리 마음 속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있습니다. 사랑과 인내, 평화, 용기, 자비, 용서로 선한 늑대를 강하게 만듭시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선한 존재다.' 라는 믿음을 잃지 맙시다. 통일교인이라는 것에 대해 자긍심을 가집시다. 여러분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지멜로 교수처럼 여러분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여러분의 편에 서게 될 것입니다.
참부모님의 삶이 그것을 보다 실질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반대와 핍박을 받으셨지만 사랑으로 품으셨습니다. 참부모님의 마음 속에 참된 평화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비방하던 사람들도 참부모님의 사랑 앞에 자연굴복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삶에서 화나 분노가 아니라 평화와 용서를 선택한다면 결국 우리의 적들은 자연 굴복할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 속에 평화를 지킬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마음의 평화를 빼앗지 않는다면 우리는 축복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에서 더 많은 승리, 더 많은 깨달음, 더 많은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하나님의 천금 같은 평화|작성자 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