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 왕님 말씀 축약훈독본 - 2015.07.22)
심오한 신앙(훈독본)
오늘은 심오한 신앙에 대해서 공부해 봅시다.
오늘 성서는 히브리서 11장 1절과 6절입니다.
(히브리서 11장 )
1. 믿음(Pistis: 신앙)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6. 믿음(Pistis: 신앙)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신앙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아주!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pistis라는 단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희랍어 pistis는 믿음이 아니고 신앙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윗 성경구절은 사실은 잘못된 번역입니다. 그래서 위의 내용을 다시 읽어보면 “신앙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신앙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가 됩니다.
또 다른 유명한 예로 고린도전서 13장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의 귀에 익숙한 이 구절도 희랍어 성서를 기반으로 해서 올바르게 번역을 한다면, 사실은 신앙과 소망과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신약 성서는 본래 희랍어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원어인 희랍어 성서를 보면 신앙(Faith)과 믿음(belief)을 구분하여서 말합니다. 하지만 한국어로 번역이 될 때는 신앙과 믿음을 구별하지 않고, 믿음(belief)으로 다같이 통일해서 번역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이 두 단어는 신앙인들에게 은연중에 동일시 되어 왔습니다.
또한 우리는 신앙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강한 믿음, 혹은 종교적인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고방식 하에서는 믿음과 신앙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믿음과 신앙을 동일시하는 이러한 생각이, 우리를 신앙의 함정에 빠트릴 수 있음을 여러분은 생각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왜냐하면 믿음과 신앙은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심령의 어두운 시간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 어려운 시기에 믿음과 신앙을 구분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의지하는 잘못된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믿음과 신앙은 어떤 차이점이 있고, 어떤 면에서 다른 것인지 여러분과 함께 깊이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칼빈에 대해 살펴봅시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아버님께서도 젊은 시절, 교회에서 주일학교 선생님으로 활동을 하셨습니다. 그때 다니셨던 교회가 칼빈의 영향을 받았던 교회였지요.
칼빈에 의하면, 우리는 신앙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섭리의 의지’ 즉 하나님의 의지를 알게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면에서 칼빈은 신앙이란 믿음에 가까운 것이라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일종의 최고의 지식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신앙은 하나님의 선물인 동시에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지혜는 어떤 지혜를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의지를 알게 되는 지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게 되는 지혜를 말합니다. 즉 믿음이란 내가 하나님에 대해 무엇인가를 믿는 것인 반면, 신앙이란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 섭리에 대한 이해를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주님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그 의지를 깨닫는 선물, 은혜 은총의 선물, 신앙의 선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을 보면 좀더 명확하게 신앙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pistis: 신앙)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신앙이란 어디까지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라면 내가 열심히 믿고 노력할수록, 하나님께서 내게 신앙을 더해주시고 복을 주실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신앙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선물로서 주어지는 것이지, 결코 우리가 우리 안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어려우시다면 여기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폭포가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우리는 신앙을 세우기 위해 이 폭포를 잡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손을 모으고 선물로 주시는 폭포물을 감사히 받으면 됩니다.
믿음과 신앙에 대한 다른 예를 든다면, 믿는다는 것은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물로 주시는 신앙이란, 우리가 두드릴 때 하나님께서 들어오라고 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해하세요, 여러분? 이것은 엄청나게 다른 것입니다. 다시 말해 믿는 것은 우리의 5% 책임분담이에요. 이에 반해 신앙은 주어지는 것으로, 하나님의 95% 선물입니다. 이 내용을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참 어머니가 어떻게 타락할 수 있느냐?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라고 묻고 있습니다. 한씨 어머니가 신앙의 길에 있어서 어두움이 찾아왔을 때,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어떻게 보냈느냐? 심령의 고뇌가 있을 때 어떻게 소화를 했느냐? 이것은 신앙의 길을 가는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의 자녀들과 미래 세대를 신앙으로 인도하는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이 문제에 여러분과 함께 깊이 분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심령의 고뇌로 가득 차 있을 때 우리는 이렇게 묻게 됩니다. 하나님 제가 뭘 잘못 했나요? 제가 뭔가를 잘못 했으니까 이렇게 고통 속에 빠져 있는 것이겠지요?
이런 의문은 뭐예요? 내가 잘 했을 때는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받는데, 이제 내가 잘못 했으니까 나는 심령의 고뇌에 빠졌다. 이런 말이지요. 그렇지요?
우리는 여기에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렇게 질문하는 것 자체가 완전히 틀린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은 일방적인 하나님의 선물이지, 우리 행위의 선악의 여부나 금식이나 경배 등 어떤 조건의 유무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앙 pistis의 뿌리되는 원 단어는 피에토입니다. 피에토의 뜻은 설득, 즉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설득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실 우리를 설득하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니까 설득하시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설득 방법이 무엇인지 아세요?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선물이냐 하면 그리스도 선물입니다. 즉 그리스도로 우리를 설득하신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여러분?
신앙은 우리가 만들거나 계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그 의지를 깨닫는 선물, 신앙의 선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과 ‘믿음'에 대해 신학자 찰스 프라이스의 설명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찰스 프라이스, 참신앙, 로고스 출판, Charles PRice, The Real Faith, Logos/publications)
“우리는 신앙을 관념으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신앙이란 은혜로써 부여받은 것이다. … 우리가 신앙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셔야만 가능한 일이다. … 신앙은 우리가 우리 안에서 제조 생산해 낼 수 없는 것이다. 신앙은 우리가 노력해서 받는 것이 아니다. …성서에 기반을 둔 진실한 신앙은 “이루실 것을 믿는다"가 아니다. … 오히려 그와 반대로 “벌써 이루어졌음을 받는다" 라는 신실한 심정에서 나오는 자각이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곳으로 가는 것에 저항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믿음을 신앙심이라고 부르는 잘못을 범하지 마십시오. … 주님, 그분은 살아 계시는 말씀체, 우리를 온전히 만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내가 이 내용을 믿는다. 이것이 신앙이다.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아니에요. 이것은 어디까지나 믿음일 뿐이예요. 믿음은 관념적으로 되기 쉽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 말씀대로 우리는 신앙이 없이는 하나님에게 기쁨을 돌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신앙을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오직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앙은 열심히 믿는다고 해서 계발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5% 책임분담인 믿음으로써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자리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이 오는 순간은 언제예요?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을 경험했을 때 우리의 믿음이 신앙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때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주시는 95%의 신앙의 선물을 받게 됩니다. 즉 그리스도를 만나야만 신앙이 생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원리말씀 24쪽을 한번 봅시다.
(원리강론 24쪽)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범죄를 하게 되었던 것은 실상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신앙이 어디까지나 관념적이요,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신앙이) 실감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존재성을 실감하는 자리에서 범죄한 인간은 부득이 지옥으로 보내질 수밖에 없는 천법을 안다면, 거기에서 누가 감히 죄를 범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통일교인들도 똑같아요. 많은 통일교인들 보게 되면 자기들이 노력해서 신앙했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노력해서 신앙 생활했다.' 정직하게 여러분 자신을 돌이켜 보세요. 그렇지만 그것은 신앙이 아니에요. 여러분, 그것은 믿음, 주님 따라가는 책임분담이에요.
주위를 둘러보세요. 우리 통일교인들 봐도 믿는 사람은 많지만, 아버님을 직접 경험했던 사람들! 아버님의 성령을 직접 경험했던 사람들! 그래서 그 믿음이 신앙으로 변화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몇 명밖에 없잖아요. 그래요, 안 그래요?
신앙은 아버님의 성령을 직접 느끼고 체험하면서, 아버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심을 실감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관념이 아니예요. 그런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살게 됐을 때 그것이 바로 신앙이란 것을 깨닫게 되시길 바랍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유명한 백부장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가 예수님께 자기 하인이 중풍에 걸렸으니 도와주실 것을 간구하자, 예수님께서 당신이 가서 고쳐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백부장이 대답했습니다. 주님께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보시면서, 너의 하인이 중풍병에 이제 치유됐다 하시며, 이스라엘 중 누구에게서도 이만한 신앙을 보지 못하였노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상황에 대해 한번 생각해 봅시다. 이 백부장은 예수님을 찾아 갔을 때 그는 믿고 있었어요. 내가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면 중풍에 시달리는 내 하인이 나을 수 있겠다 하면서 믿으면서 가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이 백부장의 믿음은 신앙이 돼 버린 거예요.
마태복음 9장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태복음 9장 )
20.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pistis: 신앙)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여기서도 번역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네 믿음이 아니고 네 신앙이 너를 구원하였다. 입니다. 네 신앙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는 말씀은, 너의 5% 믿음과 95% 선물인 신앙이 너를 낫게 하였다. 라는 뜻입니다.
이 혈루증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면 그 겉옷만 만져도 나을 거라는 믿음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한번 그 상황을 구체적으로 상상해 봅시다. 예수님께서 병 고치는 이적을 베푸신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군중이 예수님이 가는 길에 모여들었습니다. 모여든 많은 사람들은 병고침을 받고자 손을 내밀어 예수님의 겉옷을 만졌을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겉옷을 만진 사람은 단지 이 여자뿐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서로 부딪치고 밀치는 군중에 섞여 그 여자도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을 만집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됐어요? 성서에는 그 여자만이 예수님을 만짐으로써 온전함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왜 이 여자만이 병고침의 선물을 받았을까 하는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해 하나님을 추구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어느 순간에 나를 만나주시고 그러면 나의 믿음이 신앙으로 바뀌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 순간을 결정하시는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 신앙의 선물을 받은 후에야 비로서, 나는 절대신앙과 사랑과 복종을 할 수 있는 시작점에 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을 만나야 돼요. 아버님의, 하나님의 성령을 만나야 됩니다. 그래야만 내 믿음이 신앙으로, 선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아버님께서 한씨 어머니께 힘드신 부분들을 주실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을 저는 기억합니다. 애들한테 항상 "야아! 아버지는 왜 엄마한테 이렇게 하냐? 엄마가 얼마나 힘든지 아냐?" 항상 이렇게 소화하셨어요. 이러한 문화를 만드셨던 거예요. 물론 우리는 아무도 식구들한테 말하지 않았죠.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어머니를 보호하고 싶었으니까요. 우리를 길렀던 수십년 동안, 아버님께서 힘들게 하실 때마다, 아버님 따르는 것이 힘들 때마다, "얘들아! 아빠는 왜 이렇게 엄마를 힘들게 만드냐", 항상 이거예요.
아버지의 첫 대상, 제일 중요한 대상이신 어머니가 그러한 문화를 만들고 반복되면서 모두가 어머님을 보면서 따라하게 됩니다. 아버님은 못된 사람이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다 라고 분석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스도의 대표 신부로서 어머니의 책임은 항상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아버님은 힘든 길을 가시면서도 어머니께 모든 편안함과 럭셔리한 환경들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님께서 모든 식구들을 살리시려고 열 시간 스무 시간 말씀하실 때 어머니는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아! 또 약속 안 지키셨다. 또 내가 혼자 차가운 음식을 먹어야 된다.
마음의 어려움과 고뇌가 있을 때마다, 한씨 어머니가 지니게 된 습관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힘들게 만든다. 내가 너무 불쌍하다. 그리스도의 대표 신부가 이러한 자기 중심한 습관에 젖어 사니까, 참가정도, 2세들도, 간부들도 그런 거짓된 문화를 배우게 되지요. 이러한 거짓된 문화 속에서 비밀적으로 아버님을 찌르고 비판하는 문화,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문화가 싹트고 커 나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메시아가 성화하신 다음에 그러한 타락 행위를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는 사실 나를 불쌍하게 만들고 못되게 구는 사람인데, 식구들이 계속 따라오는 것은 나 때문이다. 내가 참고 내가 뒤에서 정리 다하니까 식구들이 남고 따르는 것이다. "내가 아니면 안돼! 아, 내가 불쌍해!" 어머니는 힘들수록 이런 착각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돼요? 사탄 주관권에 살게 됩니다. "사실은 아버님 필요 없어. 사실은 내가 메시아였어! 한씨 집안이 메시아 혈통이야." 이런 거짓된 타락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한씨 어머니는 믿음과 신앙을 구별하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했지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신앙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행위와 믿음을 내세웠습니다. 스스로 자신은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는 충직하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희생하고 잘 했으니까 하나님께서도 나를 보면서 감동하실 것이다 라는 거만함에 가득 차 있었다는 말입니다.
주님을 찾아가는 우리의 신앙의 여정에는 반드시 심령의 어두운 밤이 있기 마련입니다. 낮이 지나면 밤이 찾아오듯이 누구에게나 심령 속에 고뇌가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생은 불공평 하다든지, 왜 내게만 이런 고통이 주어지는 것인지 하는 생각은 맞지 않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어두운 밤이 찾아오면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여쭤야 합니다. 하나님! 이 고통을 통해 당신이 제게 하시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저를 어디로 데리고 가시길 원하시나요? 저한테 뭘 보여주시고 싶으신가요? 하나님! 저를 인도하소서. 저는 배우고 싶습니다. 하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살아야 합니다.
테레사 아벨라는 유명한 수녀였습니다. 그 분이 수백 년 전에 이렇게 썼죠. 심령의 고뇌가 찾아왔을 때는, 심령의 정원에 돋아난 잡초를 뽑는 시간이 아니다. 그 정원을 관리하는 그리스도이신 정원사를 찾아가 잡초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이다.
그 잡초는 그동안 나한테는 보이지도 않고, 내가 볼 수 없는 잡초들이었다. 지금이야 말로 내 안에서 자라고 있는 잡초의 잎이며 줄기며 뿌리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분석해 볼 수 있는 시간이다. 나를 이러한 고뇌의 시간으로 인도하신 분은 주님이시다. 주님은 내가 이 잡초를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바라보시기를 원하신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일평생 이 잡초로 평생을 고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런 자세를 취하게 될 때, 주님은 우리한테 새로운 신앙의 선물을 주실 수 있는 시간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이다.
심령의 깜깜한 밤이 왔을 때 우리는 그 밤의 소리도 들어봐야 돼요. 하나님께서 우리한테 뭘 보여주고 싶으신지, 어디로 인도하고 싶으신지 하나님께 의지하고 기대야 돼요. 시편 23편의 말씀을 아시지요.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두렵지 않은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아무리 어두운 밤이 찾아오더라도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과 함께 한다면, 그 시간은 우리에게 있어서 계시의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고린도 후서 12장 9절 한번 읽어봅시다.
(고린도 후서 12장)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 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약할 때, 고난의 시간을 거칠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는 온전하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약할 때 우리의 능력을 더 크게 만들려고 하면 실패합니다. 신앙의 선물을 못 받습니다. 우리는 심령의 고뇌가 있을 때, 그 약함 속에 있을 때,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느끼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원하는데 왜 하나님은 나를 찾아오시지 않는 것일까? 왜 성령의 선물을 주시지 않는 것일까?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까지 우리는 기다려야 돼요. 그렇지요?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이 있습니다. 딱 그 순간이 오면 우리의 믿음이 신앙으로 변합니다. 파워가 생겨요.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면서 그 심령의 고뇌는 팡 하고 일순간에 없어집니다.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어도, 믿음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그게 아니라 신앙pistis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겨자씨 만한 신앙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고 하셨을까요?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만들고 세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내가 해야 되는 것이지만, 신앙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 겨자씨 만한 선물이어도 거대한 산을 옮길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란 것을 깨닫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천성경 160쪽 한번 봅시다.
(천성경 160쪽)
우리가 정성을 드릴 때는 절대신앙의 자리에 들어가야 한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섭리에 절대신앙의 자리에 들어가야 한다. 그 자리에 들어갔을 때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31-290 1970. 6. 4)
우리도 정성 드릴 때 절대신앙의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들어갈 수 있어요? 우리의 능력으로는 들어갈 수 없어요. 우리가 믿음으로 문을 두드리면 하나님께서 그 문을 열어주시는 순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믿고 따를 수는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령으로 만나 주셔야지 우리는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들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를 당신에게로 더욱 가까이 이끄시려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약점을 알게 하실 때, 심령의 고뇌가 찾아올 때 빨리 지나갔으면 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는 일부러 우리 약점들을 보게 하시고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책임은 거기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 약점들을 직시하면서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우쳐 주시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은총이나 계시, 지혜, 감동.감화 등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는 신앙의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다시 아버지께 돌아가 천일국을 창건할 수 있는 효자 효녀들이 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 저희들 모두 믿음을 넘어서서 신앙의 선물, 아버지의 은총가운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주!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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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오한 신앙
안녕하십니까? 식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와 벌써 일주일이 이렇게빨리 지나가네요. 오늘은 심오한 신앙에 대해서 예배 드리면서 공부해 봅시다. 아주! 자 오늘 성서는 히브리서 11장 1절부터 6절까지 (다같이 읽으시겠습니다. 히브리서 11장입니다. )
히브리서 11장
1. 믿음(Pistis:신앙)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아주 와우 여기에 우리는 오늘 아주 깊이 갈 겁니다. 깊이 심오한 곳으로 가봅시다. 여기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 믿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이 실상이요. 등등등 6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만들지 못한다. 이런 내용인데요. 한국 성서에서 믿음으로 번역 했습니다. 믿음! 그러니까 사실 그 깊은 이 Pis(tis) 그 원어 원어 성서 원어 희랍어 단어는 pistis(신앙)입니다 pistis(신앙) 그 내용이 믿음이 아니에요. 믿음! 잘못 번역했어요. 한국 성서에서! 믿음이 아니라 신앙이에요. 신앙!신앙입니다. 이것을 다시 읽어보면은 신앙은 바라는 것들이 실상이요. 등등등 6절 신앙이 없니는 하나님을 기뻐하게 못 하니라. 이러한 내용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금더 깊이 들어갑시다.
우리는 우리 현 실상 보게되면은 우리는 통일가 현 실상 보고 한씨 어머니가 타락한 함으로써 천사장들과 한나 하나되면서 모든 내용 변화하는 것을 변경 했던 것을 보면은 다 연결돼 있어요. 아버님의 천성경 80% 까지 수집 뭐지? 편집 수정 삭제 하면서 천일국가도 바꾸고 아버님께서 피를 흘리시면서 흥남 감옥에 계셨을 때 쓰셨던 쓰셨던 천일국가 피의 국가 그러한 고통 속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주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그러한 기가막힌 용사 사나이의 훌륭한 하나님의 아들의 사랑 그 삭제! 가정맹세도 변하게 되고 축복식도(성혼문답) 변하게 되고 축복 자체도 변경되고 이제는 거짓 축복 되면서 어머니께서 한씨 어머니가 하나님을 될려고 하면서 하나님 아버지가 하늘 부모님 되면서 본인이 이제 하나님 될려고 여신 될려고 하는 그러한 타라의 역사 우린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헌법에서 타락된 헌법에서도 원리도 뺐고 한씨 어머니의 근본 자리 대상! 대상의 자리를 떠나고 주체로서 자기가 본인이 하나님 메시아 뭐 독생녀 이러한 내용들 우리는 다 이제는 이제는 다 봤습니다. 또 한씨 한씨 집안 한씨 집단 한씨 종족을 메시아의 핏줄과 메시아 위에 올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 여러분도 다 보셨던 것처럼 3년 전에 또 이거 올해! 아버님 자리에 앉으고 대상이 주체라고 생각하는 착각하는 한씨 어머니 됐어요. 완전히 아버님 떠났던 한씨 어머니 아버님 보좌위에 앉으는 타락된 행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또 여기 또 하고 이 거짓 사기꾼들이 아무 말 안하고 그냥 박수 박수 박수만 하는.
우리도 우리는 이 것을 잘 몰랐는데 어떤 식구가 자기 축복식 반지도 보여줌으로써 거짓 실패 기원절에서 만들어져있는 축복 반지 이거는 하나님의 언약을 상징하는 반지 우리는 하나님와 영원한 관계를 맺으는 반지 하고 2013년 타락된 실패 기원절에서 이 반지 만들었는데 이반지는 문선명 참 아버님의 메시아 구세주 재림주 이름도 삭제 돼 버렸습니다. 이 반지에서 그냥 한씨 어머니 한학자 한씨 어머니의 이름만 새겨있어요. 이러한 내용들 보면서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멍청 돈 받는 사기꾼들 말 듣고 멍청함에 빠져있어요. 멍청함에! 근데 우리는 원리 입장과 아버님 생각하면서 본 다면은 이거는 뭐지? clear as night and day(밤과 낮처럼 명확하다) 선악 구별하는거 너무 쉬워요. 한씨 집안이 타락된 핏줄 사탄의 핏줄입니다. 왜? 메시아 핏줄 위에(외에) 다 타락된 핏줄이에요. 메시아는 참된 혈통을 가져오시는 분 입니다. 참된 혈통 하나님의 혈통을 가져오시는 분 이에요. 메시아 이름과 메시아를 삭제하면 축복 언약식에 우리의 제일 중요한의식 언약식 하나님과 관계에서 메시아의 핏줄을 쳐내고 지워버리고 타락된 사탄 핏줄 한씨 핏줄을 세겼어요. 어 축복식 반지에! 하고 아무 생각없이 너무나 많은 멍청이들이 이런 반지쓰고 그러한 그런 그런 반지쓰고 왜 계속 운이 나빠지는 것을(지를) 몰라요. 왜 계속 망하는지 몰라요. 왜? 타락된 핏줄과 타락된 언약을 입고 있으니까!
그야말로 우리는 아버님으로 다시 메시아로 돌아오지 않으면 지옥 갑니다. 지옥은 뭐에요? 하나님과 분리된 삶을 사는 것이 지옥이에요. 왜? 하나님 영계가면은 하나님은 사랑과 공기 사랑은 공기이니까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공기 숨 쉴수 없는 것과 같은 겁니다. 그쵸? 그러니까 영계에서 삶 영계의 삶 영원한 삶에서는 하나님와 분리되면서 살니까 사니까 공기가 없는 삶과 같은 삶을 살게 되는 거죠. 그거는 지옥이죠. 엄청난 고통스러운 삶! 그러한 사기꾼들의 거짓 사기와 내용들을 들으면서 식구들이 정말로 유치원 학생들 처럼 멍청이들 처럼 돼 버려 처럼 돼 버려서 선과 악을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멍청함에 빠져 있는 거에요. 그런 그러나 우리는 용기를 갖고 선과 악을 분리 함으로써 아버님 참부모님의 후계자 대신자가 내 책임으로써 선과 악을 분리하면서 마음이 아파도 선과 악을 분리 함으로써 이제 식구들이 점점 점점 깨닫고 있어요. 이거는 우리 책임입니다. 여러분 우리 책임! 아버님하고 분리된 삶을 살면 저주받게 됩니다. 지옥이에요. 지옥이에요. 그리스도 없는 삶을 살게… 공(기) 없는 삶을 살게 되면은 공기가 없는 삶과 같은 삶 이에요. 영원한 고통이에요. 영원한 고통! 왜? 사랑이 없는 사람 삶! 친구들과 친하는 삶 있을 수 있지만 영원한 깊은 심오한 사랑이 있을 수 없어요. 참된 사랑 근 사랑의 근본을 만질 수는 없어요.
이러한 내용들 보게되면은 한씨 어머니가 완전히 한학자 집단을 만들었던 것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거는 이제는 통일가는 이제 타락된 한학자 집단 돼 버렸어요. 이러한 말씀들이 듣기 어려워도 사실이에요. 선과 악을 분리할 줄 알아야 돼요.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이거는 뭐야? 이거는 뭐야? 여러분 한국말 다 읽어 보잖아요? 이거 뭐야? 어? 어떻게 축복 영원한 축복 언약에 그냥 바꾼것만 아니고 아버님 남기신 그리스도가 남기신 모든 내용들 바뀌는 것 뿐만 아니라 타락된 핏줄 사탄의 핏줄을 세겼어요. 여러분 끼고 있는 사탄과 언약의 반지에 제대로 생각하라고! 생각하라고! 여러분은 영생을 어디에 집어넣고 있어요? 누구아래? 재림주님 그리스도 메시아 아래 놓고 있어요? 아니면 타락된 핏줄 아래 넣어요? 벌써 거의 6개월 됐죠. 제가 이런 내용 6개월 전에 말 하기 시작하면서 처음에 이런 내용 말할 때 다들 욕 핍박 다 했죠. 근데 여러분 눈앞에 있는 증거들만 봐도 선과 악을 분리할 수 없는 사실에 여러분도 타락된 사람들 이에요. 그럼 너무 간단해요. 아버님께서 여기 계셨으면 이거 허락 하겠느냐? 하겠느냐? 멍청한 멍청함을 멍청이들 하지 말라고 여러분 다 알잖아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존귀와 사랑이 없으면은 하나님을 하나님을 두려워(경외)하지 못해요. 솔로몬이 뭐랬어요? 지혜는 지혜의 근본 지혜의 시작점은 뭐야? 하나님 두려워 하는 거! (경외하는 거) 경외 하는거! 그 말은 뭐야? 공포에 살란 말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지 아는 거! 하고 내가 그 분 없으면은 내가 어떻게 살겠느냐? 그 두려움! 그것이 지혜에요. 지혜에요. 그래 안그래요? 멍청함부터 지혜로 승전 성장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다 이제는 멍청함에서 빠져나와야 돼요. 너무 명쾌하게 볼 수 있어요. 이제! 아버님 아버님 아래로 다시 와야 돼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런 내용들 보게 되면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아니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냐? 참 어머니는 어떻게 타락할 수 있느냐?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한번 한번 investigation 뭐야? 우리 한번 분… 조사 분석 해봐야 돼요. 한씨 어머니가 그 힘든 시간 시간들에 뭐야? (심령의 고뇌가 있을 때) 심령의 고뇌가 있을 때 심령의 고뇌! 심령의 고뇌가 있었을 때 어떻게 했느냐? 어떻게 소화를 했느냐? 이것이 참 중요해요. 한씨 어머니의 믿음고 신앙이 흔들릴 때! 뭐 신앙의 뭐? 뭐야? (심령의 고뇌가 있을 때) 심령의 고뇌가 있을 때 어떻게 했느냐? 믿음과 신앙을 구분할 수 있었냐? 하고 심령의 고뇌가 있을 때 이것을 어떻게 넘어갈 수 있었냐? 이러한 내용들 알게 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한번 들어갑시다.
우리는 자서전 보게 되면은 (사전) 아 사전! 사전 보게 되면은 신앙에 대한 단어를 찾아보면은 어떻게 나와요?
신앙 - 강한 믿음 또 무엇인가를 강하게 신뢰하는 것!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 확고한 종교적인 신념! 조직화된 종교적인 믿음을 신앙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원래 우리 신앙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면은 믿음! 강한 믿음 그죠? 강한 믿음 아니면은 강한 신뢰 그죠? 아니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 아니면은 뭐 종교적인 믿음! 믿음! 믿음! 신앙 = 믿음 신앙은 믿음이다. 라고 원래 원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죠. 그죠? 이해하죠 여러분? 원래 그렇게 생각하죠. 심령의 고뇌가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신앙과 믿음을 구분할 수 있겠느냐? 또 우리는 원래 심령의 고뇌가 있을 때 하나님 제가 잘 못 했었나요? 제가 뭔가 잘 못 했으니까 이렇게 고통 속에 있나요? 라고 물(묻)잖아요. 라고 생각하잖아요. (제가 뭘 잘못 했나요?) 제가 뭘 잘못 했습니까? 그 의문은 뭐에요? 내가 잘 했을 때 나는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받는데 이제 내가 뭐 잘 못 했으니까 이제는 나는 심령의 고뇌에 빠졌다. 이런 말 이에요. 그죠? 그야말로 뭐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 질문을 답 답장을 찾아봐야 됩니다. 신… 믿음과 신앙에 차별점이 있느냐? 믿음과 차… 신앙이 같은 것이냐? 라고 살펴봅시다.
칼빈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아버님께서도 기독교 목사님 뭐지 주일학교 선생이셨을 때 칼빈! 칼빈 교회 right? 칼빈에 영향을 받았던 교회에서 하셨는데 칼빈은 믿음 신앙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했습니까? 한번 읽어봅시다.
칼빈 - 신앙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섭리의 의지’를 신앙자들에게 알게 도와준다. 따라서 신앙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섭리의 의지’는 성경 말씀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는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보게 되면은 신앙은 신앙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섭리의 의지를 신앙자들에게 알게 도와준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원하시는 섭리의 의지 하나님의 의지를 알게 되는거에요. 알게 되는 것이 알게 되는 것도 한부분의 신앙이다 라는 것을 우리는 이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보게 되면은 한국 성경에서는 희랍성서 그러니까 신약 성서의 원어인 희랍 성서에 보면은 신앙(Faith)와 믿음(belief)을 구분하여서 말합니다. 하지만 한국 성서에서 번역이 될 때는 신앙(Faith)와 믿음(belief)을 같은 단어 즉 믿음(belief)으로 다같이 통일해서 번역하였습니다. 아까 히브리서 11장에서도 보셨죠. 그래서 예를 들면 가장 유명한 예를 들면요. 고린도 전서 13장을 보시면 Faith, Hope & Love 이렇게 굉장히 많지 않습니까? 믿음과 소망과 사랑 우리가 저희가 많이 이렇게 듣는 얘기중에 하난데요. 하지만 올바르게 이것을 번역을 한다면 사실은 희랍어 성서를 기반으로 해서 번역을 한다면 신앙과 소망과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면 희랍성서에서는 피스타 Fistis(Pistis) F아 P가 P되야 돼죠? 신앙이라는 단어를 여기에 썼었기 때문입니다. 신앙과 소망과 사랑에서 그렇기 때문에 신앙과 믿음은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그러니 한국 성서에서 믿음으로 항상 나오는데 아니에요. pistis가 나올때 그거는 신앙이란 뜻 이에요. 신앙! 신앙과 믿음의 차이가 뭐냐 뭐냐 이말이죠? 한번 살펴봅시다.
신앙이란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받는 것이지 우리가 우리 안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우리가 원래 믿음을 생각 했었다면 더 열심히 믿으면은 나는 더 열심히 신앙하면은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한테 뭐 인도하실 것이다. 아니면 복 주실 것이다. 아니면 등등등 그죠? 내가 만들면은 내가 더 믿으면은 내가 더 신학을 만들면은 이렇게 생각하죠 원래 그죠? 이거는 완전히 달… 완전히 틀렸어요. 그러니까! 참된 진짜 그 갈등이 왔을 때 정말로 자기 눈앞에서 이런 이런 타락된 한씨 어머니의 타락된 상황 봤을 때 이 구분 못해 사람들이! 믿기만 했으니까 신앙! 뭔지 몰랐으니까! 믿음과 신앙의 구분이 뭐에요? 신앙이란 것이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신앙은! 신앙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에요. 더 쉽게 말하면은 믿는 것이 우리가 5% 책임분담이죠. 하나님 믿는 거! 그죠? 근데 하나님께서 신앙이란 것이 신앙은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겁니다. 신기하요?좀더 깊이 살펴봅시다. 로마서 12장 10 아 3절 한번 읽어 봅시다.
로마서 12장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pistis: 신앙)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신앙 pistis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하나님께서 각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신앙! pistis 그죠? 우리가 만드는 신앙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pistis 신앙! 자 에베소서 2장 봅시다.
에베소서 2장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pistis: 신앙)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pistis pistis 신앙! 믿음 아니에요. 신앙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신앙이란 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란 말이 바로 나옵니다. 그죠? 바로 나오죠? pistis 신앙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작성한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개발하는 것 아니에요. 우리가 도 닦으면서 깨닫는 거 아니에요. 그래 안 그래요? 항상 이것은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뭐에요? 선물이라! 이야! 신앙은 너희에게서 난 거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선물! 믿음 아니에요. 믿음! 신앙! 와우!
우리가 보게 되면은 이거 한국말로 되지 않지만, 신앙 쉽게 설명하면 신앙은 하나님의 선물 이에요. 선물! 어느 한 곳에 지혜도 될 수 있(지) 어떤 지혜? 하나님의 의지를 알게 되는 지혜! 하나님 원하시는 것을 알게되는 지혜 쉽게 말하면 pistis 신앙 pistis 신앙 그 원 원 단어는 피에토에요 피에토! 라틴어 공부하시면 피에타스 는 뭐에요? 신앙! 그죠? 효 영어로 효 효 한국말로 효 쓸때 영어 번역할 때 Filial piety 똑같은 뿌리에요. 피에토! 피에토 그 뜻이 뭐에요? 설득!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설득! 하나님께서 사실 우리 설득하실 필요 없어요. 근데 하나님께서 우릴 사랑하시니까 선물로 주시는 그리스도로 우리를 설득하십니다. 선물을 주셔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여러분? 신앙은 우리가 만드는 우리가 계발 우리가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의지에 대한 선물 은혜 은총의 선물 신앙의 선물 받는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어려우면은 만약에 여기 폭포가 있으면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폭포가 있다면은 우리가 이 폭포를 잡고 신앙을 잡는 것이 아니라 손을 열고 폭포물을 받는 것입니다. 선물로! 그죠? 감사합니다. 선물로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에요. 믿는 것이 더 다른 예를 쓰면은 믿는 것이 믿는 것이 문을 두드리는 것이죠. 문을 두드리는 것이죠. 그죠? 신앙은 선물이니까 신앙은 하나님께서 문을 열려주시고 들어오라고 하시는 것이 신앙의 선물이죠. 이해하세요? 여러분? 이해하세요? 엄청난 큰 구별이 있어요. 믿는 것이 우리의 책임 이에요. 우리의 5% 책임분담 근데 신앙 받는 것이 그거는 하나님의 95% 선물입니다. 이해하십니까? 여러분? 엄청난 차이에요. 이 내용을 깊이 생각해 보셔야 돼요.
찰스 프라이스(?) 신학자 신앙과 믿음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 했습니까? 한번 봅시다.
‘신앙'과 ‘믿음'에 대한 찰스 프라이스 학장의 글 중에서
“우리는 신앙을 관념으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신앙이란 은혜로써 부여받은 것이다. … 우리가 신앙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셔야만 가능한 일이다. … 신앙은 우리가 우리 안에서 제조 생산해 낼 수 없는 것이다. 신앙은 우리가 노력해서 받는 것이 아니다. …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다고 하면서 그의 합당한 신앙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진실하고 성서에 기반을 둔 신앙은 “이루실 것을 믿는다"가 아닙니다. … 오히려 그와 반대로 “벌써 이루어졌음을 받는다" 라는 신실한 심정에서 나오는 길은 자각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곳으로 가는 것에 저항하지 마십시오. … 여러분은 우리의 믿음을 신앙심이라고 부르는 잘못을 범하지 마십시오. … 주님 그분은 살아계시는 말씀체, 우리를 온전히 만들어 주시는 분.”
(찰스 프라이스, 참신앙, 로고스 출판, Charles PRice, The Real Faith, Logos/publications)
우리가 너무 많은 통일 교인들 보게 되면은 자기들이 노력해서 그죠? 자기들이 노력해서 신앙 했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요 안그래요? 정직하게 여러분 자신을 보게되면 그래요 안 그래요? 내가 노력해서 신앙 생활했다. 그죠? 바로 딱 잡았어! 근데 그거는 신앙 아니에요. 여러분 그거는 믿음이에요. 믿음! 믿는 것이 우리가 작성해야되는 책임 분담이죠. 주님 따라가는 책임분담 그러나 신앙은 항상 신앙은 하나님에서 오신 것입니다. 이 내용들 한번 봅시다. OK? 히브리서 Go
믿음에서 (신앙으로)
히브리서 11장
6. 믿음(pistis: 신앙)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Change change ok 커봐 그거 믿음은 믿음이 pis(tis)믿음 아니고 pistis 신앙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기뻐하게 못하게 기쁘게 만들수는 없어요. 신앙이 없으면 하나님을 하나님에게 기쁨을 돌릴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으로서 우리는 5% 책임분담 하지만 마지막 신앙이 오는 순간은 언제에요? 하나님을 만났을 때 만났을 때 하나님을 경험 했을 때 우리 믿음이 신앙으로 바뀌게 됩니다. 선물로! 그 만남의 선물로서 믿음 우리 5% 책임 분담이 신앙으로 돼 버립니다. 어! 그죠? 그리스도를 만나야지 신앙 생길 수 있어요. 생각해봐요 우리 너무 많은... 여러분 교회 다니는 사람들 봐요. 교회 통일교인들 봐도 믿는 사람들 많지만 아버님 직접 경험했던 아버님의 성령 직접 경험했던 사람들! 그 믿음이 신앙으로 변화됐던거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몇명들인지 밖에 잖아요. 그래요 안 그래요?
믿… 열심히 믿으면서 열심히 믿으면서 신앙 계발하는 거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으로서 하나님을 만나게 될 수 있는 만날 수 있는 자리를 하나님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자리 마련 마련 해 주시고 그 5% 책임분담 믿음으로써 하나님이 우리를 만지실 때 성령을 부어주실 때 그 믿음이 신앙으로 남아진 95%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받게 됨으로써 신앙으로 돼 버립니다. 이야! 원리 말씀 보게 되면은 원리말씀 24쪽 한번 봅시다.
원리강론 24쪽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범죄를 하게 되었던 것은 실상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신앙이 어디까지나 관념적이요.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신앙이) 실감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존재성을 실감하는 자리에서 범죄한 인간은 부득이 지옥으로 보내질 수 밖에 없는 천법을 안다면, 거기에서 누가 감히 죄를 범할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범죄를 하게 된것은 실상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신앙이 어디까지나 관념적이 됐어 관념적이요. 관념으로 돼 버렸어요. 우리 통일교인들도 똑같아요. 관념으로 돼 버렸지 신앙이 아버님의 성령과 함께 살고 아버님으로 아버님께서 우리 삶을 인도하시는 성령이 충만하는 삶 우리 영적 오감이 열려있고 아 영 영계와 영통할 수 있고 아버님께서 우리 쓰시고 본인의 의지 본인의 일 위해서 우리를 쓰시는 삶 그죠? 관념이 아니요. 믿음 내가 이 내용을 믿는다 이거 신앙이다 아니에요. 그것이 믿는 것이지 신앙은 아버님을 직접 만나면서 성령을 직접 만나면서 아버님께서 직접 인도하심으로서 (실감) 실감하며 인도하심으로서 우리는 그러한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살게 됐을 때 그것이 신앙 이란 것을 깨닫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자 마태복음 8장 한번 봅시다.
마태복음 8장
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pistis: 신앙)을 보지 못하였노라
아멘 아주 이 내용은 보게 되면은 예수님은 이제 가버나움 가서 백부장을 만나게 되면서 백부장이 장군과 같은 책임자 로마군에서 책임자 그 사람 만나게 되면은 만나게 되면서 아 내 내 내 하인 하인이 중풍병을 걸렸으니까 이제 도와주십시요. 부탁을 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내가 가겠다. 그러면서 백부장이 아 저는 그러한 덕이 쌓여있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죠? 이렇게 말하면서 예수님이 그것을 보면서 너의 하인이 중풍병에 이제 치유됐다. 하고 이스라엘중 아무에게서도 이마한 이만큼 신앙을 보지 못하였노라 라고 말씀하셨죠. 그 말은 뭐에요? 여러분 이 백부장이 예수님 찾아 갔을 때 믿음 믿고 믿고 믿고 있었어요. 만약에 내 이 예수를 만나게 된다면 만약에 내 중풍 병 있는 누구 누구 하인이 이제 나을수 있겠다 하면서 믿으면서 가는 거에요. 그죠? 근데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서 만나게 되면서 아 주님은 그냥 말씀만 하셔도 저 집에 오셔도 하인을 치유도 하실 필요 없이 주님 보니까 주님 만났으니까 주님만 말씀만 하셔도 하인이 강건하게 될 것이다. 라고 하면서 이만한 신앙! pistis 믿음 아니에요. pistis 신앙을 보지 못하였노라.
그 순간에서 이 백부장의 믿음은 주님을 만남으로써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신앙이 돼 버린 거에요. 이해하세요? 여러분? 선 선물! 하나님의 하나님의 만남으로 말미암아 내 믿음이 신앙으로 돼 버리는 선물. 마태복음 9장 봅시다. 9장
마태복음 9장
20.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pistis: 신앙)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너 신앙 믿음 아니에요. 한국말 이거 틀렸어요. pistis 신앙 너의 신앙이 너를 구원하였다. 너의 신앙! 이 여자가 예수님을 찾아 갔을 때 중풍병 중풍 아니고 피병 혈루증! 그런 병이었는데 예수님을 예수 주님을 만나면은 만지면은 겉옷 겉옷만 만지면은 나는 낫게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믿음! 믿음 믿음으로 믿음으로 믿으면서 믿으면서 갔는데 예수님을 만나면서 예수님을 만짐으로써 예수님 받게 받게되는 예수님에게 주시는 선물은 뭐에요? 치유 뿐만 아니라 신앙! 자기 믿음이 신앙 돼 버리면서 예수님 어떻게 말했어요? 네 믿음 아아 믿음 아니고 네 pistis 신앙이 너를 구원하였다. 이 신앙 내가 주는 너한테 주는 신앙! 너 5% 믿음이랑 95% 남겨진 선물 신앙이 너를 낫게 하느니라 와! 이야! 여러분은 이러한 차이점 이러한 신앙과 믿음의 미묘한 차이점을 알게되면 여러분 인생이 완전히 바꾸게 될 줄 믿습니다. 아 신앙 믿습니다. 맞죠.
로마서 9장 봅시다. 로마서 9장
로마서 9장
31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pistis: 신앙)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33 기록된 바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where is the 신앙? 여기 다시한번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pistis: 신앙)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이스라엘 율법 처음부터 the ferores(?) 지? 여기에서 영어를 지웠네 영어를 지웠네 so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말하는 것이 이스라엘 특별히 바리새인들 책임자들 종교인들 로마 9장에서 로마서 9장에서 어떻게 했냐? 왜 이 사람들이 잘못 했느냐? 그러… 믿음 그들이 믿… 신앙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 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하나님 께서 주신 믿음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의 신앙! 의 신앙에 대해서 의지하지 않고 자기들의 자기들의 행위 내가 이거 잘 했으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보면서 감동 해야 된다 라고 하는 거만함. 그죠?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로 주시는 믿음 아 신앙! 아니고 그죠? 로마서에서 우리는 다시 볼 수 있어요. 이스라엘은 이것 때문에 타락했단 말이 나옵니다.
갈라디아. 갈라디아서 4장 한번 봅시다.
갈라디아서 3장
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pistis: 신앙)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pistis 신앙으로 말미암은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다시한번 주려 함이라. 주려 함이라. 신앙을 주려 함이라 선물 주려 함이라. 주시는 겁니다. 내가 작성하고 만들고 계발하는 신앙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죠? 하나님 께서 내가 하나님을 추구 정말로 정성스럽게 하나님 추구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어느 순간에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순간에 저를 만약에 만지 시면은 그 믿음이 신앙의 선물로 돼 버립니다. 그 선물로서 나는 절대신앙 사랑과 복종할 수 있는 시작점 될 수 있는 거죠. 그죠? 근데 내가 하나님을 만나야 돼요. 아버님의 영계 영계에 계시는 영계에 계시면서 하나님의 성령을 만나야 됩니다. 그야말로 내 믿음이 신앙으로 선물로 변화 될 수 있습니다. 그죠?
우리는 한씨어머니 보게 되면은 수십년 동안에 천사장들의 거짓된 사기꾼 말만 듣고 아버님께서 힘드신 부분들 주실 때마다. 저는 기억해요. 애들 애들한테 항상 야 아 아버지는 왜 엄마한테 이렇게 하냐? 아버지는 왜 이렇게 엄마한테 하냐? 엄마는 얼마나 힘든지 아냐? 항상 이렇게 소화했어요. 항상! 이러한 문화를 만드셨던 거에요. 물론 우리는 누구도 찍소리 안했죠. 식구들한테 말하지 않았죠. 그거는 뒷얘기 뒤에서 이루어지는 내용이니까 우리 어머니를 보호하고 싶으니까 수십년 동안에 우리 길렀을 때 볼 때 아버님께서 힘들게 하실 때마다. 아버님 따르는 것이 힘들 때 마다 얘들아 아빠는 왜 이렇게 엄마를 힘들게 만드냐 항상 이거에요.
이런 문화 만들었으니까 이교회가 이런 악한 문화를 생겼지 아버지의 첫 대상 제일 중요한 대상이 그러한 문화를 만들면 반복 반복 반복 되면은 모두가 아버님은 아버님 보면서 아버님은 못됐… 아버님은 못된 사람이다. 우리 힘들게 하는 사람이다 라고 분석할 수 밖에 없어요. 그리스도의 부인 장 장의 책임은 항상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힘들어도 아버님은 모든 편안함과 럭셔리와 부자 집들과 크(큰) 차들과 쇼핑몰들과 수천 보… 수천억 보사들(보석들) 보석들 수억 보석 보석들도 뭐 다 그러한 환… 그러한 선물들과 다 환경들도 다 주셨는데도 모든 식구들 살릴려고 하시는 내용들 함으로써 아버님 개인적인 입장 때문에 식구들하고 20 스무시간 열시간 두시 열두시간 말씀하시는거 아니고 이 사람들 살리시라고 려고 하시는 내용 할 때 아 또 약속 안 지키셨다. 또 내가 혼자 차가운 음식 먹어야 된다. 이러한 심령의 고뇌를 있을 때 마다. 습관을 어떻게 한씨 어머니가 습관을 어떤 습관을 만들었냐? 아버지가 나를 힘들게 만듭니다. 이러한 습관 나의 중심한 습관 나의 중심한 그리스도의 부인 신부의 장의 입장으로서 그 내가 너무 힘든… 내가 너무 불쌍한데 이런 문화 그러니까 참가정도 그런 거짓된 문화도 배웠죠. 어 내가 너무 힘들어 어 내가 너무 힘들어 어 내가 너무 힘들어 이런 거짓된 문화 그러면서 또 2세들도 또 간부들도 등! 거짓된 문화 쉽게 말하면 비밀적으로 아버님을 찌르고 비판하고 있는 문화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있는 문화! 그러니까 메시아가 승화하신 다음에 이러한 타락을 타라가게 됐죠. 아무 생각없이 따라가게 돼죠.
믿음과 신앙이 다른 것 이에요. 이런 내가 너무 불쌍하다. 내가 너무 불쌍하다 너무 못되게 한다. 이러한 내용들로서 이거는 그러나 이렇게 성공되는 것이 사실은 아버지는 못된 사람이니까 나를 항상 못되게 하신 모습을 하니까 사실은 식구들이 계속 따라오는 것이 나 때문이다. 내가 참고 내가 다 하니까 뒤에서 정리 다하니까 식구들이 남고 따르는 것이다. 힘들어도 이러한 착각들이 되겠죠. 내가 불쌍하다. 내가 불쌍하다. 내가 불쌍하다. 내가 불쌍하다. 내가 불쌍한 아아 내가 불쌍해 이런 내용으로써 내 나때문에 사실은 사람들 따라온다. 이렇게 돼 버리지. 그러면서 어떻게 돼요. 사탄 주관돼죠. 그러면서 어떻게 돼요. 아버님 사실은 필요 없어 나는 사실은 메시아였다. 나는 한씨 집안이 메시아. 거짓된 타락!
이것을 우리 볼 줄 알아야 돼요. 여러분. 왜냐면 우리는 이렇게 하면 안 되니까! 특별히 여성들! 여성들이 이 한씨 어머니의 타락을 보면서 나는 이길 따르면 안 된다. 이길 가게 되면 욕먹고 욕먹고 영원히 저주받는 길이다 라는 것을 깨달아야 돼요.
그러니까 우리는 삶에서 (심령의 고뇌가... ) 심령의 고뇌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거는 보장 보장 보장! 심령의고난 고뇌가 와요! 보장! 100% 보장 보장 보장 여러분은 우리는 불쌍하기 때문에 오는 거 아니에요. 어 내가 불쌍하다 어 이거 너무 불공평해 아니에요. 다 한테 와요 다! 심령의 고뇌 다 옵니다. 근데 그 심령의 고뇌 오면은 하나님 제가 뭘 잘못 했는데 이런 고뇌속에 있습니까 이런 뭐 뭐지? 이것이 이런 것이 맞는 질문 아니에요. 맞는 질문은 뭐야? 내가 심령의 고뇌 있을 때 하나님께서 뭐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나한테 뭘 보여주시고 싶으십니까? 뭘 하십니까? 하나님께! 저는 배우고 싶습니다.
테리사 아벨라 테리사 아벨라 유명한 수녀였죠. 그 분이 수백년 전 이야기 수 백년 전에 이렇게 썼죠. 글에 그 신 심령의 심령의 고뇌가 왔을 때 풀 풀 나에 있는 잡초를 뽑는 시간이 아니다. 정원 안에 들어가서 정원자 정원자 그죠? 정원사 정원자 정원사 예수님 정원사 그리스도 정원사와 함께 정원에 들어가서 풀을 뽑는거 아니라 풀에대... 잡초 잡초 뽑는 거 아니라 잡초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이다. 공항자 누구? 정원사 한테… 그죠? (정원사는 주님이시죠.) 주님이죠. 주님! 주님에서 나에 대한 잡초에 대해서 보고 배우는 시간 그 다음에 뽑아야죠? 근데 내가 직접 뽑는게…(아니라) 먼저 주님의 인도 함으로써 이 고통 고뇌 안에 인도하심으로써 나한테 보이지 않은 내가 볼 수 없는 잡초들 분석 공부 what is it identify? identify(확인)? 에이구 참 보고 알 수 있고 뽑을 수 있는 어? 시간이다.
이러한 심령의 고뇌의 시간들에서 여러분 뭔가 뭐 만들려고 하지 마세요. 내 안에서 부터 신앙을 계발 하려고 하시면 안 되요. 틀렸어요. 틀렸! 성공 못해요 그렇게 이 고 심령의 고통 나올 순 없어요. 그렇게 신앙을 만들 순 없어요. 뭘 만들려고 하지마요. 그죠? 심령의 고뇌 있을 때 그 깜깜한 밤이 왔을 때 그 밤 소리도 들어봐야 돼요. 하나님께서 뭘 날 어떻게 인도 하시는지? where is that 영어말로 even though i walk through the shadow valley of death? 죽음의 계곡을 건너가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다. 당신이 저와 함께 가시니까! 시편 23장이죠 그거? 근데 그런 말이 나오죠 우리는 그러한 죽음의 언덕에 걸어가고 있어도 우리에서 나오는 신앙을 계발하려고 하면 안돼요. 하나님께서 우리한테 뭘 보여주고 싶으신지 하나님께 기대해야 돼요.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우리한테 새로운 신앙의 선물 주실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고린도 전 이 후서 12장 12장 9절 한번 읽어봅시다. 엄마
고린도 후서 9장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머물게 하려 함이라
너의 약함 네 나에게 이르시기를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우리는 약할 때 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 능력이 온전하게 될 수 있어요. 우리가 약했을 때 우리의 능력을 더 크게 만들려고 하면 하면 실패! 신앙 선물 못 받습니다. 우리는 그 심령의 고뇌 있을 때 그 약함속에 있을 때 그 하나님께서 우릴 인도하시는 것을 느끼고 추구하고 하나님께서 성령의 선물을 주실 때 우리를 만지시면은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시간에 우리가 지금 원하시는데 지금 왜 안 주시냐?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에 우리는 기다려야 돼요. 그죠?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에 딱 그 순간에 오시면 우리 믿음이 신앙이 돼 버려요. 파워가 생겨요. 능력으로 생깁니다. 그러면서 그 심령의 고뇌가 촹 한 순간에 없어집니다. 하고 우리는 그 산을 넘어가게 (소리 끊김) 한 점프해 넘어가야 됩니다.
예수님 어떻게 말했죠? what’s the mustard seed? 겨자씨! 씨는 겨자씨만큼 신앙만 있어도 믿음이라고 하지만 그거 틀렸어요. 신앙! pistis 신앙 겨자씨 만큼 신앙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는 능력 생기는 것이다. 그죠? 왜 왜 왜 그 조그만한 겨자씨 만한 신앙이 산을 옮길 수 있어요? 왜냐면 그것이 내가 작성했던 것이 아니니까 내가 만들었던 것이 아니에요. 믿음은 내가 이제 해야 되는 것이지만 신앙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에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겨자씨 만한 선물 이어도 엄청난 산들 옮길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란 것을 깨닫게 되시길 바랍니다.
와우 와와와 와우 일부러 우리 약함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약함을 열리십니다. 일부러 열리세요. 우리는 너무 이제 현대 시간을 시간을 생활을 사니까 뭐가 불편하면 빨리 빨리 피하고 싶고 빨리 빨리 딴 거로 가고 싶어요. 그죠? 아이패드 이거 뭐 안되면 아유 이거 왜 안돼 빨리 이렇게 돼 버려요. 그죠? 카카오톡과 이 뭐 한시간 동안 내려갔는데 아유 카카오톡 왜 안돼 그죠? 빨리 빨리 빨리 빨리 아 이 프로그램 안 재밌어 다음 채널 다음 다음 아 재미없어(?) 다음 이런 이런 습관 그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약점을 보여주실 때 우리는 약하고 심령의 고뇌와 아이 빨리 빨리 지나가자 이렇게 하죠. 그러나 그런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일부러 우리 약점들을 열리시는 겁니다. 우리 책임은 거기서 기다리는 거 기다려야돼요. 멈춰야 돼요. 그 약점들 봐야 돼요. 그 약점들 보게 되면은 하나님께서 우리한테 계시를 주시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계시! 감동! 신앙의 선물 은혜 은총 지혜 너무나 많은 새 하나님에 의한 의지에 대한 이해할 수 있는 신앙! 선물 받을수 있는 것입니다. 천성경 160장 한번 봅시다.
천성경 160쪽
우리가 정성을 드릴 때는 절대신앙의 자리에 들어가야 한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섭리에 절대신앙의 자리에 들어가야 한다. 그 자리에 들어갔을 때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31-290 1970. 6. 4)
우리도 정성 드릴 때 절대 신앙의 자리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들어가냐? 여러분의 능력으로 들어갈 수 없어요. 그죠? 우리의 능력으로 들어갈 수는 없어요. 우리는 믿고 따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령으로 만지셔야지 우리는 창!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문을 두드릴수 있는데도 하나님께서 그 문을 열려주시는 순간이 있습니다. 계속 두드리면은 열려주시고 들어오라고 할 때 그 때 우리는 신앙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죠? 그 때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 하시는 것이다. 아주! 아주! 아하 이야 다 같이 기도합시다.
보고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은 저희들에게서 큰 깨달음을 주시고 우리는 이 때까지 믿음! 신앙아니고 믿음으로 살고 있었는데 이제는 우리는 신앙 당신의 신앙의 선물로 살고 싶은 자들로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이제는 우리는 당신을 의지할 수 있는 효자 효녀들 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우리는 이제는 새로운 단계 새로운 차원 당신과 함께 성령 충만한 삶 영적 오감 열린 삶을 살고 싶은 아버지 믿는 자들 뿐만 아니라 신앙을 받는 자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당신께서 정하신 시간에서 이제는 식구들 각각 식구들 한명 한명 한명 한명씩 매주마다 십명 백명 천명이 눈 뜨고 당신으로 돌아오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하나님 그러나 그런 심령의 고뇌 그 고뇌가 생길 때 우리는 우리의 의지(하지) 않고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우리는 문을 두드리면서 당신께서 정하신 시간에서 아버지 신앙의 선물 능력의 선물을 허락해 주신다면은 아버지 우리는 다시 당신으로 돌아가서 다시 천일국 기원을 시작할 수 있는 아버지 남는 남는 신앙자들 될 수 있는 것을 확실히 아옵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 인도하시고 이제는 눈 눈이 멀어진 사람들도 심정의 심정으로 들어가시고 한명 한명씩 깨워주시는 역사를 보시면서 모든 감사와 영광과 기쁨을 당신께 돌리면서 축복 중심들 가정들 이름으로 당신께 모든 감사를 올리면서 보고 하나이다.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자 일어서시고 옆에 분을 격려 하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을 받으십시요.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