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선생말씀선집 - 제3권 9. 뜻을 배신하는 자가 되지 말자

만리향 | 20180611194850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3권 9편

                  뜻을 배신하는 자가 되지 말자
                     1957.10.20 (일), 한국 전본부교회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들과 같이 잠깐 동안 생각하려는 말씀의 제목은 `뜻을 배신하는 자가 되지 말자'입니다.


인간이 영원한 이념과 생활권에서 살지 못하게 된 이유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생활환경은 신의(信義)의 법도를 찾아 세우기에는 지극히 어려운 환경입니다. 또 한 사람의 친구를 찾아서 영원한 친구의 관계를 맺으면서 생애노정을 거쳐 영생의 노정까지 같이 즐길 수 있으며, 같이 살 수 있는 그러한 친구를 갖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비단 친구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영원히 같이 살 수 있는 부부, 영원히 같이 살 수 있는 부모, 영원히 같이 살 수 있는 형제를 갖기가 어려운 세상에 처해 있음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두고 보게 될 때, 내 마음이 변치 아니하고 내가 살고있는 환경의 모든 것이 변치 않는 가운데 놀랍고도 크신 어떠한 이념권내에서 더불어 살기를 인간은 이 시간도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서로 영원히 믿을 수 있고, 영원히 의지할 수 있으며, 또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니고, 자기의 모든 것을 남에게 맡기고, 자기의 모든 좋은 것을 남에게 자랑할 수 있는 그러한 환경 속에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환경을 잃어버림으로써 그것을 다시 찾아야 할 필연적인 운명을 짊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그저 우연한 역사로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떠한 곡절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노정을 지내온 우리 선조들에게 절대적인 신의의 대원칙을 배반했던 조건들이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저질러진 흑암의 조건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오늘날 여러분들의 피와 살을 억누르고 있는 동시에 여러분의 생활환경까지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입장에 처한 것은 모두가 타락했기 때문인데, 그 타락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이 영원히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중심체로, 믿음의 목적을 완성한 이념의 중심체로, 또는 만물을 대하여 영원한 중심 존재로 나타나지 못한 것입니다. 즉, 서로 변할래야 변할 수 없고, 갈라 질래야 갈라질 수 없는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가 갈라지게 되고 변하게 된 것이 타락인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서러움으로 남아지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서러움을 지니게 된 것은 하늘이 세워놓은 원칙을 스스로 배신했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이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창조원칙을 중심삼고 이 땅 위에 하나님을 대신한 중심존재로 나타나야 할 그 뜻을 불신하고 깨뜨림으로 말미암아 서러움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배신함으로 인해 이어진 서러운 역사

인간이 천륜을 배신하지 않았다면 배신이라는 명사, 불신이라는 명사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아들딸의 관계를 세워놓아야 할 아담 해와가 하늘의 뜻을 배신하였던 이 한 사실이 오늘날 우주의 서러움이요, 역사상의 모든 인생의 서러움으로 남아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오늘날 나의 마음과 몸의 서러움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의 내 한 모습을 세워 하나님의 절대적인 신의의 법도를 찾아 나서려 할 때에, 자신도 알 수 없는 사이에 배신의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막을 것인가. 혈통적으로 인연되어 있고, 마음과 생활과 사회환경 전체가 이와 같은 배경을 갖추고 있는 것을 어떻게 해야 뚫고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이후 6000년의 역사를 섭리해 오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선지 선열들을 보내시면서 그들로 하여금 당신을 믿게 하여 영원히 변치 않은 인연을 맺고자 수고하셨다는 것을 또한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했습니까? 무한히 인간을 사랑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인간을 위해 배후에 수고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그와 같이 수천년의 역사과정을 참으시면서 떨쳐버리지 못하신 하나님의 내적 서러움, 영원히 변치 않는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영원한 뜻을 대신하여 나설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나오시는 하나님의 내적인 안타까움을 더듬어 살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6000년 동안 참으시며 인간들로 하여금 하늘을 믿는 믿음의 조건을 세우도록 해주시기 위하여 수고하신 분이십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 오늘 이 시간까지 당신을 배신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입장에서 그들을 용서하고 품어주지 않으면 안 되었던 서러운 심정을 갖고 계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믿고 있는 아버지와 우리들이 모시고 있는 예수, 그 예수와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수없이 배신당하시면서도 믿고 또 믿어주셨던 그 심정을 아는 사람이 있다 할진댄, 그는 사회적이요 국가적이요 역사적인 모든 배신의 조건을 밟고 넘어서서 아버지와 함께 직접 의논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러한 사람이 되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심정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신하는 인간들을 지금까지 용납해 나오신 그 심정을 아는 사람이 이 땅 위에 몇명이나 있을 것인가. 오늘 이 시간에 모인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그 심정을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배신하는 인간들을 바라보시고도 참으시며 그들을 다시금 찾아나오신 하나님의 애달픈 사정을 느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지금까지 수천년의 역사 속에서 배신당하면서도 참으시면서 인간을 사랑하고 믿어주신 그 하나님의 심정을 아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역사적인 배신의 노정을 타파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인류역사 과정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배신한 것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하였던가. 제일 먼저 아담 해와가 가정을 단위로 하나님의 사랑의 주관권을 배신한 데서 출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이념을 세워드려야 할 아담이 천사장에 의해 타락하여 하늘의 뜻을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배신의 역사가 출발되었던 것을 오늘날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믿을 수 있는 하나의 사람을 다시 찾아 세우시려고 1600년을 수고하여 노아를 세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120년간 수고하게 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려 했으나 그도 성취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뜻은 노아 이후 역대의 믿음의 조상들을 거쳐 모세에까지 내려왔습니다.

이 땅에 믿음을 세우려고 나타난 예수

하나님께서는 아담가정에서 저끄러짐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간들이 여러 민족으로 화했으니, 그 수많은 민족을 대신하여 믿을 수 있는 하나의 이스라엘민족을 택하셨고, 또 그 민족 가운데서 모세를 택해 세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천륜의 법도는 세웠으나, 모세를 따랐던 그 민족은 하나님을 배신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가정적으로도 민족적으로도 뜻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다시금 이스라엘을 바로의 수중에서 빼앗아 가나안족과 싸우게 하는 싸움의 역사를 거쳐 4000년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을 보내셨는데, 그분이 누구였느냐 하면 바로 예수님이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당시 민족적으로 받들어야 할 모세를 배신한 인간들이 국가적으로 받들어야 할 예수를 과연 받들었던가. 오히려 그 이스라엘민족은 예수님을 가정적으로 배신했고, 사회적으로 배신했고, 국가적으로 배신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역대의 선지들, 혹은 역대의 선조들이 뜻 앞에 나타나 하늘의 사명을 감당하고 나서려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믿을 수 있는 그들이 되어지길 바랬습니다. 그러한 역사적인 조건을 세우려고 하늘의 사명을 맡았던 분들이 바로 노아요, 아브라함이요, 야곱이요, 모세였으며,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심정을 지니고 이땅에 나타나셨던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신해서 나타났고, 하나님의 역사적인 말씀을 대신하여 나타났으며, 하나님께서 찾으시려던 소망의 실체로 나타나셨던 분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셔서 무엇을 느끼셨던가.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타나 세상을 향해 외치실 때, 그 말씀은 역사적인 말씀인 동시에 오랜 역사과정을 통하여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나타내고자 하였던 말씀인 것을 느꼈습니다. 나아가 그 말씀은 또한 오랜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수많은 인간으로부터 배신당한 말씀인 것을 느꼈으며, 불신의 이 땅 위에 믿을 수 있는 하나의 모습을 무한히 찾고 계시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심정을 느끼셨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모든 정력을 다 기울여 인간을 지어놓고, 갈라질래야 갈라질 수 없는 영원한 이상적인 사랑의 실체로 세우고자 하시던 그 사랑의 심정을 느꼈고, 배반한 아담 해와의 입장을 자신이 복귀하여 완결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명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오랜 역사과정을 통하여 수많은 인간들로부터 배척받고 유린받던 그 말씀을 내 자신의 것으로, 배척받고 유린받던 그 마음을 자신의 것으로, 성전으로서의 몸을 자신의 것으로 예수님은 붙안고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선 예수님께서 소망으로 찾고 요구하신 하나의 목적이 있었다 할진대 그것은 선의 한날을 위한 염려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는 소망의 한날을 세우기 위하여 싸웠고 또 돌아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 말씀을 갖고 나타나게 될 때에, 역사적인 과정에서 배척받던 모든 말씀을 복귀하고 선조들이 그르쳐 놓은 배신의 죄악사를 탕감하여 아버지를 위로해야 할 책임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오, 아버지여! 아버지의 성전과 마음을 유린하고 짓밟던 선조들의 4000년 역사를 저를 보고 잊으시고 위로받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마음을 갖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땅 위에서 어떤 무엇을 청산해야 할 사명을 느끼신 것입니다. 역사적인 모든 배신과 현실적인 모든 배신의 내용을 추방하여 다시금 배신의 역사를 후대에 남기지 않겠다는 마음에 사무쳐 사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의 각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명을 책임지고 하늘 대해 각오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르짓는 곳에 배신의 역사가 벌어질 것이요, 하나님의 마음을 지니고 나타나는 곳에 서러움과 원통함이 있을 것이요, 하나님의 몸이 나타나는 곳에 사탄의 화살이 있을 것을 알았으며, 또한 각오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현실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옹호해 주고 자신을 지켜주기를 원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불신하는 인간을 대하여 묵묵히 참으셨던 것입니다. 남 모르는 슬픔을 머금고 인류를 위해 겟세마네동산에서, 혹은 감람산에서 홀로 기도하시던 그 서글픔 사정을 오늘날 여러분들은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당시 땅 위에 있는 인간과 예수님을 비교해 볼 때에 예수님은 어느누구보다도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역사과정의 수많은 인간으로부터 배신받던 말씀을 가지고 그 말씀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하여 땅 위에 나타나신 예수님 같이 그 말씀을 부등켜 안고 `오! 나의 주님이시여, 나의 신랑이시여, 나의 인도자이시여! 저희의 생명을 아버지 앞에 이끌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4000년 수고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배신으로 종결된 사실을 느끼신 예수님이었지만 그래도 배신한 그 인류를 위해 눈물을 흘리셨던 것입니다. 천지에 가득찬 하나님의 서글픔을 느끼면서도 배신하는 인간들을 찾아 나선 예수님에게 한이 있었다면 이것이 무한한 한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4000년 동안 배신을 당하시면서도 인간을 찾아오신 하나님을 생각하게 될 때, 배신을 당하여도 서러워할 수 없고, 생활이 곤궁하다하여 낙망할 수 없는 입장에 계셨으며, 자신의 생명이 제물되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의 뜻을 거부할 수 없는 입장에 계셨던 것입니다. 4000년 동안 배신한 민족을 그래도 버리지 않고 사랑으로 대하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느끼신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그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아버지와 친히 모든 것을 의논할 수 있는 입장에 서셨던 것을 오늘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민족 앞에 배척받고, 국가 앞에 반역자로 몰리고, 나중에는 강도보다도 더 중한 죄인으로 몰림받게 되었는데, 그러한 입장에서도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말게 해달라고 복을 빌던 그 마음은 어디서 나왔는가. 이는 역사상의 배신하는 민족을 대하여 수천년 동안 참아 나오셨던 아버지의 애달픈 심정을 느끼게 된 데서 나온 것입니다.

몰리고 배척받으면서 하나님을 찾아나가는 길

예수님께서 이러한 역사적인 길을 거쳐갔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그 말씀을 붙들고 나갈 때는 반드시 형제로부터, 혹은 교단으로부터, 혹은 민족으로부터 배척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와 같이 배척받는 환경에서도 배신하는 자들을 위해 복을 빌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말씀, 믿고 있는 신앙, 세우고 있는 종교이념은 어떠한 상태에 처해 있는가. 2000년 전 예수님께서 개인으로부터 가정·교회·이스라엘민족·국가로부터 배신받는 입장을 거치었으니, 이것이 오늘날 민족·국가를 넘어 세계에 이르기까지 배척받는 단계에 머물러 있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에덴동산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후 지금까지의 역사가 악이 선을 치는 역사였다는 것은 안다 할진대는 하늘을 향하여 나아가는 데 있어서 배척하는 자가 참이 아니요 배척받는 자가 참인 것이며, 나아가 그들이 하늘의 역사를 이루어 나오고 있다는 것을 또한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어느 민족이 세계를 대신하여 모든 면에서 배척받는 입장에 처해 있는가. 하늘의 뜻을 찾아세워 하늘의 뜻을 대신할 수 있는, 하늘에 가까운 이런 민족이 있다 할진댄, 그 민족은 그 민족이 가진 모든 것에 걸쳐 배척당하는 이런 역사적인 운명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민족은 무엇으로부터 배신을 받겠는가. 아담 해와가 타락하게 될 때에 천사장과의 사이에서 벌어진 그 모든 조건을 통하여 배신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는 말씀을 중심삼은 배신을 받게 됩니다. 동산 가운데의 모든 열매는 따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따먹지 말라 하던 약속의 말씀이 배신당하는 입장에 서게 될 것입니다.

즉 천사장이 나타나 따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그 말을 통하여 하나의 나라, 하나의 이념권내에 딴 나라의 이념적인 것이 나타나게 된 것과 같은 그러한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이념, 하나의 목적, 하나의 중심을 향해야 될 마음이 제2의 마음의 형태로 나타나 새로운 목적을 소개하는 듯하였지만 결국 배신의 기원을 만들어내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배신의 기원은 무엇을 통하여 벌어졌던가. 말을 통하여 벌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끝날에 있어서도 하늘 앞에 세워져야 할 어떠한 민족이 있다 할진대 그 민족은 어느 한때, 언어에서까지도 배신당하는 입장에 설 것이요, 그 나라의 말을 대신하는 글이 있다 할진대는 그 글까지도 배신당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 나라의 역사 그 나라의 민족성까지도 유린되는 입장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세기말적인 종말의 한때를 두고 볼 때에, 그러한 나라가 어디냐 하면 바로 이 한국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은 역사상에 수많은 민족의 침범을 받아왔고 많은 배신자들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일제의 압정하에서 우리의 언어도 다 잃다시피했었습니다. 우리의 글자도 우리의 민족성도 우리의 자랑도 우리의 이념도 다 말살당했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오늘날에는 같은 민족끼리 서로 배신하는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같은 민족끼리 서로 배신하는 동시에 형제들끼리 배신하고, 부모 친척이 배신하고, 부자간에 배신하고, 부부간에 배신하는 이러한 배신의 한 고비를 거쳐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민족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 민족은 하나님의 인류 앞에 배신당하고 그 서러움의 심정을 어느 한때 한 순간에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이 민족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배신하는 민족을 대하여 저주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 민족도 배신하는 세계를 위하여 하늘을 향해 기도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이 민족의 살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민족은 배신하는 세계를 극복해야 되겠습니다. 오히려 그 배신을 통하여, 배신받던 예수님의 말씀을 내 말씀으로, 배신받던 하나님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배신받던 선조들의 몸을 나의 몸으로 여기어 하늘 앞에 엎드려 호소해야 할 것입니다.

말을 분별할 줄 아는 인격완성자

하늘이 무심하여 이스라엘이 망할 줄 알았지만 이스라엘 가운데 예수님이 나셨듯이, 이 나라가 망하는 것 같지만 이 나라에 하나님의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민족이 해야 할 것은 6000년 동안 배신 받던 아버지의 말씀을 내 말씀과 내 몸, 마음으로 여기고 6000년 아버지의 서러움을 나의 심정으로 체휼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누구를 의지하지 마십시오. 누구의 말을 믿지 마십시오. 누구를 평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본래 누구를 의지할 사람이 아닙니다. 누구를 믿어야 할 사람이 아닙니다. 또 누구를 평해야 할 사람이 아닙니다. 본래의 사람이 못 되었기 때문에 남에게 의지하고 남의 말을 믿고 남의 행위를 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래의 목표를 향해 나가야 할 여러분은 믿을 수 있는 믿음의 자체가 되어야겠고, 의지할 수 있는 자체가 되어야 하겠고, 평할 수 있는 자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즉 자체를 의지하고 자체를 믿고 자체를 평할 수 있어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 대하여 묵묵히 참아 내려오신 것 같이 여러분도 어느누구보다도 잘 참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묵묵히 내 스스로 의지할 줄 알고 내 스스로 믿을 줄 알고 내 스스로 평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자체를 세워 `아버지여! 나를 보시고 위로받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입장이 되어, 아버지가 나를 믿어 주고 내가 아버지를 믿고, 아버지가 나요 내가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관계가 맺어지게 될 때에 하늘의 서러움은 여러분 자체에서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 자체에서는 하나님의 싸움이 끝나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이제 옛날 아담 해와가 옆으로 들려오는 말을 분별하지 못하여 타락했음을 깨닫고,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인격의 완성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아담 해와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성에 의하여 천사장의 말을 분별할 수 있었던 그들은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도 그 마음이 영원한 이념을 통하고 영원한 천륜을 대신하여 부동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완전성을 갖추었다면, 그 마음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타락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수천년 역사를 통하여 배신받은 가운데 변명하려면 얼마든지 변명할 수 있었지만 한날 한 시간도 변명하지 않으신 아버지와, 또한 2000년 동안 변명하려면 무한히 변명할 수 있었으나 변명하지 않고 땅을 위해 염려하고 계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로서, 묵묵히 참고 견디며 변명하지 않은 사람들이 되어야겠으며, 나아가 자신이 제2의 천사장 입장이라는 것을 폭로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살고 싶은 대로 산 사람은 후세에 반역자가 되고 배신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배신당하는 입장에서도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살고 싶은 대로 다살지 못한 분이 바로 예수님이요, 또 우리의 선조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도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생활권내에서 불변의 자체로서 자신을 억제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느때, 어느 시기에 하늘을 배신하는 자리에 설는지 모른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배신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여러분은 어떠한 조건에 걸리는 줄 아닙니까? 여러분이 6000년 동안 배신의 서러움을 참고 나오신 그 아버지를 배신하게 될 때, 여러분은 끝날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여러분을 대하여 6000년의 서러움을 일시에 탕감시키고자 하는 대심판의 날을 여러분은 넘어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들은 세상의 제물이 되어 말없이 십자가에 돌아가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대신하는 마음을 갖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나가는 데는 일년이 아닙니다. 십년이 아니고 삼십년이 아닙니다. 일생을 거쳐 여러분 후대에까지 계승시킬 만한 믿음을 갖고 나아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오늘의 나를 찾아 나를 개척하고 나라를 밝혀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나와 하늘과 맺어진 인연이 이 모든 사악한 세상을 초월하고 우주적인 종말권까지 넘어설 수 있음을 깨닫고, 자신의 생활권내에서 아버지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승리적 조건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은 천륜과 뜻을 배신하지 않은 영원한 승리의 아들딸로 설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