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아버지 앞에 나는 설 것인가
1957.09.08 (일), 한국 전본부교회
하나님과 인연맺는 길
그러면 무엇으로서 이 말씀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바로 여러분의 정성과 충성입니다. 예수님이 4000년 역사를 대표하여 하늘 대해 충성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6000년 역사를 대신하여 하늘과 예수 앞에 충성해야 합니다. 이러한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전체적인 해명이 되는 시대에 도저히 나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앞으로의 시대에는 그런 구체적인 내용을 갖춘 말씀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타날 그 말씀을 우리 개인에게 적용시켜보면, 그 말씀은 우리의 생활환경을 지배할 수 있는 말씀으로 나타날 것이고, 또 그 말씀을 통해서 영원한 세계를 목적하고 있는 절대자의 치리(治理)의 권한과 우리의 생활은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이런 구체적인 내용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일체화된 그 말씀과 일체가 되면 그 일체된 자리에는 어떤 의심이나 사망이나 죄악의 침범해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우리의 신앙을 완성시켜 줄 수 있는 절대적인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또 우리로 하여금 절대적인 선을 지향하게 할 수 있는 말씀이어야 하며, 영원한 생명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말씀이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인간들이 추구해 온 진리탐구의 역사를 살펴보면, 처음 인간 들의 탐구대상은 우주였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이성을 중심삼고 이제까지 진리를 탐구해 왔는데, 인간의 그 이성은 완전한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이성 그 자체만으로서는 완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이성은 인간들로 하여금 절대적인 가치를 증진시키게 할 수 없고, 영원한 인간의 생활이념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절대자 즉, 종교적으로 말하면 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신은 인간들이 지은 죄의 용서를 빌기 위한 인륜적인 신이었습니다. 논리를 초월한 신으로서 인간 개개인과 관계를 맺는 신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사고에 의한 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관은 완전한 신관이 아닙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한걸음 비약하여 바른 신앙인들은 절대적인 신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적인 신을 인정하면서도 신앙생활에 있어서 자신이 그 신과 어떤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논리적인 입장에 머물러 있을 뿐 어떻게 해야 비약적인 신의 실존을 느낄 수 있고, 그 신의 실존이 나와 생활적으로 인연을 맺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이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념은 우주론을 대신하고, 인간의 이성의 가치를 대신하고, 인간의 생명의 가치를 대신하며, 절대자의 이념, 즉 신의 이념에까지 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이념이 우리와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인간의 표현가지고는 되지 않습니다. 어떠한 인간들의 인격 수양으로서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신앙의 기준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천륜의 새 이념권내에 태어난 이상 우리는 자신의 생애기간 중에 천주적인 이념을 찾아야 합니다. 신의 이념에 통과되신 예수님이신 것을 알아야 하고, 최고의 양심의 기준과 최고의 선의 기준에 서신 예수님은 신의 전체적인 성품을 대신한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자동적으로 믿을 수 있고 알 수 있는 경지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우리 자신들은 예수님과 같이 되지 않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들이 지금 무엇을 한다 하더라도 그 머물러 있는 환경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을 억압하는 힘으로 강하게 밀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본심, 본성의 힘을 억누르고 있는 내 마음의 힘보다 더 강한 어둠의 세력이 우리를 억누르고 있습니다. 이 어둠의 세력을 기독교에서는 사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어둠의 세력을 어떻게 타파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둠의 세력과 우리 몸에 있는 악의 요건들은, 우리로 하여금 의심을 품게 하고 죄악의 행동을 하게 하여 우리를 사망의 세계로 끌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로막아 밀어낼 수 있는 환경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환경을 찾아 세우고자 하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을 믿고 나섰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 `나'라는 것은 예수님만이 성취한 `나'였지만, 그러한 개인을 만들어 인간세계에 확장시키는 운동을 누가 할 것인가.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인간의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주위 환경에 널려 있는 어둠의 세력을 생활 가운데서 물리치신 것과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나서게 될 때에, 순간적으로 사탄이 우리의 일과 우리가 움직이는 곳에 나타나지만, 결국 하늘이 나타나셔서 사탄을 물리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예수께서는 믿음의 조건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음의 조건을 세우려면 어느 기준까지 믿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이 상상하여 믿을 수 있는 정도만큼 적당히 믿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미치는 정도까지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기준은 오늘날 이 세상에서 믿고 있는 기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크고 높으신 신의 실존체를 위하여 믿어야 한다면 그 크고 높으신 신의 가치에 비교될 수 있는 신앙의 기준을 여러분이 세워야 됩니다.
그러면 현재 인간들은 어느 정도까지 믿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 믿음의 정도는 예수께서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2)라고 말씀 하신 것과 같이 아주 낮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인간들의 믿음의 정도에 대해 낙망적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신앙을 하는 사람들이 절대적인 신앙의 기준을 세울 수 있겠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까지 기독교는 성경 속의 하나님으로만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가운데도 신앙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무한한 창조의 이념이 있는 한 그 이념을 실현시키기 위한 신념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믿고 계신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무한대의 신앙을 추구하여 나가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그런 신앙을 소유한다면 성경 가운데 있는 모든 말씀을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성경 가운데 있는 모든 말씀을 믿을 수 있어야 예수께서 이땅에 오셔서 하지 못하셨던 말씀까지 여러분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시지 못한 부분을 여러분이 찾아야만 우주적인 의심의 고개를 넘어갈 수 있고, 우주적인 사망과 고난 그리고 우주적인 죄악 역사를 거쳐나온 선조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참신앙인은 악한 환경에 영향받지 않는다
이제 여러분은 자신이 걷고 있는 신앙노정에서 생명의 조건을 통과할수 있어야 하고, 천륜의 비밀을 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길을 찾아 세워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들을 통하고 난 다음에는 의심의 고개를 넘고, 죄악의 고개를 넘고, 사망의 고개를 넘고, 악을 중심한 모든 욕망의 고개를 다 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고개들을 다 넘고 난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우리가 모셔야 됩니다. 믿음의 주체이시고, 선의 주체이시며, 생명의 주체이신 그분을 우리의 마음에 모셔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고 하신 말씀과 같은 일체의 경지입니다.
무한대의 소망을 가진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을 자신의 마음에 모셔 놓고 태연자약할 수 있는 그 모습이 얼마나 멋진 것인가.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모습이 되기를 바라고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영계의 사실은 책에 기록한다고 하면 몇 만권의 책으로도 다 기록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인간들에게 보여 주고 가르쳐 준 영계는 일부분이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영계를 소개한 책으로는 전체의 영계를 해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인간이 가야할 신앙노정의 전체을 담고 있는 말씀인가, 전체의 가치를 회복시킬 수 있는 내용을 갖추고 있는가 할 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말 하면 욕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래서 신앙의 조건으로 예수님을 믿으라고 한 것이고, 하나님은 인간들이 예수님을 최대의 가치를 지니신 분으로 믿게 하기 위해 여러가지 역사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관계를 맺고 나가면 나갈수록 더 직접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활을 주관하실 수 있고, 하나님의 주관을 받음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대상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가치와 연결될 수 있으며, 하나님과 심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진리도 우리의 생활 가운데 나타낼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진리와 상대되는 요소를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모든 주의 사상을 통합시키고 모든 민족을 통합시킬 수 있는 생활환경을 건설해야 됩니다. 그런 생활환경권내에 들어가야 선의 희망을 가질 수 있고, 선의 생명을 소유할 수 있으며, 선의 절대적인 가치를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인류가 그런 입장에 서게 되면, 하나님은 어느 특정민족의 하나님이 아니고 만유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살아 생전에 그렇게 되지 않으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직계의 아들딸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참것은 악과 같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악에 영향을 받아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환경이 아무리 악하더라도 하나님의 참아들딸이 되면 그 환경에 지배받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참신앙자가 되지 않으면 천륜을 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찌하여 스스로를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하셨는가.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인간들이 도저히 믿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하신 것은 그들에게 이것을 믿으면 순간적으로 비약할 수 있는 혜택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무한한 믿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진심으로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게 되면 비약적으로 신앙이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중심을 향한 여러분의 신앙의 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만큼 영계도 여러분을 통해 더 크게 역사할 수 있는 것이고, 여러분이 무한한 신앙심을 소유한다면 여러분의 그 인격을 통해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초감각적인 세계의 사실과 우주의 사실을 일시에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런 놀라운 것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가고 가고 또 가야 하는 것이 무한한 세계를 지향하고 있는 신앙자의 자세라 할진대, 어떤 한계권내에 머물게 하는 신앙을 부르짖고 있는 무리들을 물리치기 위해 끝날에는 우주적인 큰 싸움을 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참아들딸이 되려면
오늘 죽음을 각오하고 새로운 신앙길을 따라 나선 여러분, 여러분들이 절대적인 믿음으로 하나님의 소망을 향해 나가면 그런 신앙노정의 통하여 여러분은 하나님적인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런 믿음을 갖고 책임감을 느껴야 하고, 이런 믿음을 갖고 실천하는 참사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여러분이 되지 않고는 도저히 아버지 앞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아버지 앞에 참아들딸로 설 수 없고, 충신의 모습으로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절대적인 아버지 앞에 참아들딸로 서기 위하여 새로운 신앙으로 이 모든 의심의 세계, 이 모든 사망의 세계, 이 모든 죄악의 세계, 이 모든 공포의 세계를 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늘이 요구하는 신앙의 내용을 안다면 그것을 입증시킬 수 있는 기준을 세워 하늘 앞에 나서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도저히 하나님의 참아들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을 갖고 나설 때 여러분은 하나님과 영원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영원한 선과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고, 고통으로부터 영원한 해방을 받을 수 있어, 영원한 천국권내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 말씀선집 제3권 1편, 원문 &&&&
언제 아버지 앞에 나는 설 것인가
1957.09.08 (일), 한국 전본부교회
말 씀
하나님과 인연맺는 길
그러면 무엇으로서 이 말씀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바로 여러분의 정성과 충성입니다. 예수님이 4000년 역사를 대표하여 하늘 대해 충성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6000년 역사를 대신하여 하늘과 예수 앞에 충성해야 합니다. 이러한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전체적인 해명이 되는 시대에 도저히 나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해명의 말씀은 어떤 말씀일 것인가? 이것은 여러분이 들어 보지 못한 새로운 말씀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또 이 말씀은 어떠한 말씀일 것인가? 이 말씀은 개인적인 의문을 해명해 줄 수 있는 말씀인 동시에 세계에 관한 의문과 우주에 관한 의문을 해명해 줄 수 있는 말씀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또 어떠한 체계를 갖춘 말씀일 것인가? 이것은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대충 말씀드린다면, 6000년 동안 흘러온 의문의 역사를 해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을 갖춘 말씀일 것입니다.
실제로 앞으로의 시대에는 그런 구체적인 내용을 갖춘 말씀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타날 그 말씀을 우리 개인에게 적용시켜보면, 그 말씀은 우리의 생활환경을 지배할 수 있는 말씀으로 나타날 것이고, 또 그 말씀을 통해서 영원한 세계를 목적하고 있는 절대자의 치리(治理)의 권한과 우리의 생활은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이런 구체적인 내용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일체화된 그 말씀과 일체가 되면 그 일체된 자리에는 어떤 의심이나 사망이나 죄악의 침범해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우리의 신앙을 완성시켜 줄 수 있는 절대적인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또 우리로 하여금 절대적인 선을 지향하게 할 수 있는 말씀이어야 하며, 영원한 생명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말씀이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인간들이 추구해 온 진리탐구의 역사를 살펴보면, 처음 인간 들의 탐구대상은 우주였습니다. 즉 `이 우주는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인간들은 고심해 왔습니다. 그다음에는 인간을 중심삼고 탐구해 왔습니다. 즉 `사람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이성을 중심삼고 이제까지 진리를 탐구해 왔는데, 인간의 그 이성은 완전한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이성 그 자체만으로서는 완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이성은 인간들로 하여금 절대적인 가치를 증진시키게 할 수 없고, 영원한 인간의 생활이념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절대자 즉, 종교적으로 말하면 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신은 인간들이 지은 죄의 용서를 빌기 위한 인륜적인 신이었습니다. 논리를 초월한 신으로서 인간 개개인과 관계를 맺는 신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사고에 의한 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관은 완전한 신관이 아닙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한걸음 비약하여 바른 신앙인들은 절대적인 신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적인 신을 인정하면서도 신앙생활에 있어서 자신이 그 신과 어떤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논리적인 입장에 머물러 있을 뿐 어떻게 해야 비약적인 신의 실존을 느낄 수 있고, 그 신의 실존이 나와 생활적으로 인연을 맺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이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념은 우주론을 대신하고, 인간의 이성의 가치를 대신하고, 인간의 생명의 가치를 대신하며, 절대자의 이념, 즉 신의 이념에까지 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이념이 우리와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인간의 표현가지고는 되지 않습니다. 어떠한 인간들의 인격 수양으로서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신앙의 기준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천륜의 새 이념권내에 태어난 이상 우리는 자신의 생애기간 중에 천주적인 이념을 찾아야 합니다. 신의 이념에 통과되신 예수님이신 것을 알아야 하고, 최고의 양심의 기준과 최고의 선의 기준에 서신 예수님은 신의 전체적인 성품을 대신한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자동적으로 믿을 수 있고 알 수 있는 경지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우리 자신들은 예수님과 같이 되지 않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들이 지금 무엇을 한다 하더라도 그 머물러 있는 환경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을 억압하는 힘으로 강하게 밀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또 내 양심이 최고의 선, 즉, 절대자의 실존을 향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마음은 순조롭게 행동으로 옮겨지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타락의 보응으로 인해 이 세계가 죄악의 세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본심, 본성의 힘을 억누르고 있는 내 마음의 힘보다 더 강한 어둠의 세력이 우리를 억누르고 있습니다. 이 어둠의 세력을 기독교에서는 사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어둠의 세력을 어떻게 타파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둠의 세력과 우리 몸에 있는 악의 요건들은, 우리로 하여금 의심을 품게 하고 죄악의 행동을 하게 하여 우리를 사망의 세계로 끌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로막아 밀어낼 수 있는 환경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환경을 찾아 세우고자 하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을 믿고 나섰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 `나'라는 것은 예수님만이 성취한 `나'였지만, 그러한 개인을 만들어 인간세계에 확장시키는 운동을 누가 할 것인가.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인간의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주위 환경에 널려 있는 어둠의 세력을 생활 가운데서 물리치신 것과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나서게 될 때에, 순간적으로 사탄이 우리의 일과 우리가 움직이는 곳에 나타나지만, 결국 하늘이 나타나셔서 사탄을 물리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예수께서는 믿음의 조건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음의 조건을 세우려면 어느 기준까지 믿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이 상상하여 믿을 수 있는 정도만큼 적당히 믿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미치는 정도까지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기준은 오늘날 이 세상에서 믿고 있는 기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크고 높으신 신의 실존체를 위하여 믿어야 한다면 그 크고 높으신 신의 가치에 비교될 수 있는 신앙의 기준을 여러분이 세워야 됩니다.
그러면 현재 인간들은 어느 정도까지 믿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 믿음의 정도는 예수께서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2)라고 말씀 하신 것과 같이 아주 낮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인간들의 믿음의 정도에 대해 낙망적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신앙을 하는 사람들이 절대적인 신앙의 기준을 세울 수 있겠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까지 기독교는 성경 속의 하나님으로만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가운데도 신앙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무한한 창조의 이념이 있는 한 그 이념을 실현시키기 위한 신념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믿고 계신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무한대의 신앙을 추구하여 나가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그런 신앙을 소유한다면 성경 가운데 있는 모든 말씀을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성경 가운데 있는 모든 말씀을 믿을 수 있어야 예수께서 이땅에 오셔서 하지 못하셨던 말씀까지 여러분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시지 못한 부분을 여러분이 찾아야만 우주적인 의심의 고개를 넘어갈 수 있고, 우주적인 사망과 고난 그리고 우주적인 죄악 역사를 거쳐나온 선조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신앙의 주체되시는 주님을 믿고 있지만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그 믿음의 조건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걸어놓고 예수님과 관계와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님과 믿음의 관계를 맺은 그 터 위에서 하나님의 실존까지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으면 이와 같은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무한한 신앙의 노정을 탐구해 나가는 사람들에게는 무한한 발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일반 기독교인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무한한 신앙의 이념에 사로잡혀서 천국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진정한 신앙인을 하늘은 기다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신앙인은 악한 환경에 영향받지 않는다
이제 여러분은 자신이 걷고 있는 신앙노정에서 생명의 조건을 통과할수 있어야 하고, 천륜의 비밀을 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길을 찾아 세워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들을 통하고 난 다음에는 의심의 고개를 넘고, 죄악의 고개를 넘고, 사망의 고개를 넘고, 악을 중심한 모든 욕망의 고개를 다 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고개들을 다 넘고 난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우리가 모셔야 됩니다. 믿음의 주체이시고, 선의 주체이시며, 생명의 주체이신 그분을 우리의 마음에 모셔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고 하신 말씀과 같은 일체의 경지입니다.
무한대의 소망을 가진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을 자신의 마음에 모셔 놓고 태연자약할 수 있는 그 모습이 얼마나 멋진 것인가.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모습이 되기를 바라고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영계의 사실은 책에 기록한다고 하면 몇 만권의 책으로도 다 기록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인간들에게 보여 주고 가르쳐 준 영계는 일부분이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영계를 소개한 책으로는 전체의 영계를 해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인간이 가야할 신앙노정의 전체을 담고 있는 말씀인가, 전체의 가치를 회복시킬 수 있는 내용을 갖추고 있는가 할 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말 하면 욕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래서 신앙의 조건으로 예수님을 믿으라고 한 것이고, 하나님은 인간들이 예수님을 최대의 가치를 지니신 분으로 믿게 하기 위해 여러가지 역사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관계를 맺고 나가면 나갈수록 더 직접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활을 주관하실 수 있고, 하나님의 주관을 받음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대상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가치와 연결될 수 있으며, 하나님과 심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진리도 우리의 생활 가운데 나타낼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진리와 상대되는 요소를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모든 주의 사상을 통합시키고 모든 민족을 통합시킬 수 있는 생활환경을 건설해야 됩니다. 그런 생활환경권내에 들어가야 선의 희망을 가질 수 있고, 선의 생명을 소유할 수 있으며, 선의 절대적인 가치를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인류가 그런 입장에 서게 되면, 하나님은 어느 특정민족의 하나님이 아니고 만유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살아 생전에 그렇게 되지 않으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직계의 아들딸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남이 아니라는 길을 이미 나섰습니다. 남이 아니라는 길을 이미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신앙의 표준을 우주적인 창조주의 인격에 두고 신앙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표준을 달성하는 날에는 악의 요소가 여러분에게서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이 세상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것은 악과 같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악에 영향을 받아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환경이 아무리 악하더라도 하나님의 참아들딸이 되면 그 환경에 지배받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참신앙자가 되지 않으면 천륜을 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찌하여 스스로를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하셨는가.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인간들이 도저히 믿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하신 것은 그들에게 이것을 믿으면 순간적으로 비약할 수 있는 혜택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무한한 믿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진심으로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게 되면 비약적으로 신앙이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중심을 향한 여러분의 신앙의 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만큼 영계도 여러분을 통해 더 크게 역사할 수 있는 것이고, 여러분이 무한한 신앙심을 소유한다면 여러분의 그 인격을 통해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초감각적인 세계의 사실과 우주의 사실을 일시에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런 놀라운 것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가고 가고 또 가야 하는 것이 무한한 세계를 지향하고 있는 신앙자의 자세라 할진대, 어떤 한계권내에 머물게 하는 신앙을 부르짖고 있는 무리들을 물리치기 위해 끝날에는 우주적인 큰 싸움을 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참아들딸이 되려면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을 살펴보면, 새로운 시대를 소개하기 위하여 왔던 수많은 선지선열들은 거의 다 몰림받았습니다. 그들을 몰아낸 사람은 우리의 선조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도 유대교인들은 예수님을 싫어하고 반대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몰랐습니다. 자기들이 믿고 있는 것이 제일인 줄 알고, 우주를 대신하고 천주를 대신한 구원섭리를 자기 나름대로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선조들은 천륜의 길을 거역하고, 천륜의 역사를 깨뜨리는 잘못을 수없이 범해 왔습니다.
그러면, 오늘 이 끝날에 있어서 누가 백퍼센트의 믿음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인가. 죄악을 물리치기 위한 싸움에 나선 여러분이 그런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바탕 위에 투철한 책임감을 가지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실천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입장에 서지 않으면 무한한 사랑의 이념을 갖고 신랑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앞에 대상의 자격으로 설 수 없는 것이며, 또 무한히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죄가 무엇이냐 하면,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인물을 믿지 못하는 것이 죄요, 그분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우주적인 하나님의 이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확고한 믿음을 갖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이런 믿음을 갖고 나가려 할 때 여러분의 마음 속에는 그와 상반 되는 의심이 생길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에 악의 세력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 악의 세력은 여러분의 마음에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게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 악의 세력에 삼켜지는 신앙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런 것들을 소화하며 넘어갈 수 있는 아량을 갖고 나가야 됩니다. 이런 입장에 서셨던 예수님이셨기 때문에 그분은 십자가를 지는 자리라고 피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누가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도저히 비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서 우리는 새로운 신앙노정을 찾아 걸어가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진실되게 새로운 신앙노정을 걸어가면 거기에는 우리는 실증적인 사실, 하나님과 인연된 사실, 하나님과 관계된 사실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기에서 통일을 염원하시는 창조주의 이상을 실현시키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죽음을 각오하고 새로운 신앙길을 따라 나선 여러분, 여러분들이 절대적인 믿음으로 하나님의 소망을 향해 나가면 그런 신앙노정의 통하여 여러분은 하나님적인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런 믿음을 갖고 책임감을 느껴야 하고, 이런 믿음을 갖고 실천하는 참사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여러분이 되지 않고는 도저히 아버지 앞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아버지 앞에 참아들딸로 설 수 없고, 충신의 모습으로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절대적인 아버지 앞에 참아들딸로 서기 위하여 새로운 신앙으로 이 모든 의심의 세계, 이 모든 사망의 세계, 이 모든 죄악의 세계, 이 모든 공포의 세계를 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늘이 요구하는 신앙의 내용을 안다면 그것을 입증시킬 수 있는 기준을 세워 하늘 앞에 나서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도저히 하나님의 참아들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을 갖고 나설 때 여러분은 하나님과 영원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영원한 선과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고, 고통으로부터 영원한 해방을 받을 수 있어, 영원한 천국권내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