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선집 제2권 24편
하나님을 위한 예수님의 지정
1957.08.04 (일), 한국 전본부교회
이 시간에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위한 예수님의 지정(至情)이라는 제목으로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한 종교라면 그 종교를 중심삼고 움직이는 근본 목적은 천륜을 대신하는 것이요, 인륜을 대신하는 것이요, 온 땅 위의 이념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또한, 불변의 절개를 갖춘 하나의 실천적인 존재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 종교가 바로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오늘날까지 발전해 나오기까지에는 예수님을 중심한 이념이 있었고, 그 이념을 실현시키기 위한 생활이 있었으며, 또, 그 이념을 이루어 놓기 위한 간절한 소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에서 부르짖고 있는 이념은 예수님이 출발하던 이념과 맞아야 하고 기독교인들의 실천적인 생활도 예수님이 행하신 실천적인 생활과 맞아야 하며, 기독교인들의 욕망도 예수님의 욕망과 동일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人格과 지조를 지키신 生活
그러면, 이제 우리가 예수님의 30여 평생의 인격을 살펴보게 될 때, 예수님은 그 당시에 국한된 일개인의 인격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인격은 자기 일신의 인격 뿐만 아니라 4천년 역사를 대신한 천적인 가치의 인격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주장하시던 이념은 어떠한 이념이었느냐 하면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역사적으로 바라왔던 소망의 이념인 동시에 섭리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창조주의 이념이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사명을 완수하시기 위해 피눈물 나는 길을 걸었던 예수님의 생애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불변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이념과 생애를 통하여서 그의 지조와 인격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4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천륜의 지조를 세우기 위하여 무한한 투쟁도 개의치 않고 싸워 나오신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그 예수님이 남기신 사명을 이어받아 2천년을 첨부한 6천년의 역사를 대신하여 불변의 절개심을 갖춘 인격자로서 하늘앞에 나타나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천륜을 대신한 이념, 예수 그리스도가 소망하신 이념, 오늘날 우리가 찾고 있는 이념과는 영원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살았는가?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생애의 목적으로 삼았고, 그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전체를 책임지겠다고 천륜 앞에 맹세하고 나선 이후 자신의 안락을 생각지 않고 절개를 지키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찌하여 예수님을 만민의 구주로 세울 수 있었던가? 4천년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예수 한분만이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전체의 생애를 바쳤고, 창세 이후 처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위해 충절과 절개를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영원한 메시아로 세워질 수 있었으며, 모세를 중심으로 이어져 내려온 섭리역사가 예수님의 이념을 통하여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던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을 앞두고 무한한 공포의 골고다의 고개를 넘어야 할 끝날에 처한 오늘날 여러분에게 있어서 여러분의 호소를 무엇으로 그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 이 땅에 있는 이념으로써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막혀져 있는 우리의 갈 길을 헤쳐 주는 하나의 중심존재가 필요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도 당시의 이념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를 지향하는 수많은 종교를 통하여 섭리의 중심인물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해 오셨습니다. 이것이 곧 재림이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대하여 혹은 피조만물을 대하여 상대적인 가치기준에 서 있으면 안 되겠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인격과 절대적인 하나님의 불변의 이념과 천적인 생활의 이념을 대신한 중심을 가진 자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처음과 끝이 영원히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입장에 서서, 만물만상 앞에 자신의 가치를 나타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러한 인간이 될 수 있게 인도해 주는 진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한 진리를 찾기 위해 나선 여러분들이라면, 여러분들은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소망, 예수님이 바라던 이념, 예수님의 생활의 표준을 이어받고 거기에 새로운 이념을 가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또한, 스스로 그러고 활동무대를 여러분들은 찾아야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개인이지만, 개인으로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기독교도 민족과 국가를 위한 종교로서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세계와 인류를 위하는 종교가 되어야 합니다. 또, 인류역사를 대신할 수 있고 인류의 역사적인 소망을 책임질 수 있는 동시에 인륜과 천륜의 이념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역사와 역사적인 소망과 인륜과 천륜의 이념이 여러분이 생활하는 환경과 인연이 맺어져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똑똑히 느껴야 하고, 불변의 인격자로 소망의 실체로 2천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 앞에 부끄럼 없이 나타나 "주여 당신의 소원이 이것이 아니옵니까? 제가 이루어 드리겠나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천륜의 원칙을 대신하여 변치 않는 절개를 가지고 하늘 뜻을 위해 책임을 다한 후"하늘이여 받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예수님을 회고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외로운 환경을 극복하신 예수님의 마음자세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켜야 할 역사적인 사명을 가지고 오신 예수님은 어떠한 마음자세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며 개척해 나오셨는가? 예수님은 인간들로 하여금 인륜을 회복하게 해주고 천륜과 관계를 맺게 해주며, 인류의 역사적인 소망을 이루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끼며, 어느 누가 느낄래야 느낄 수 없는 비장한 심정을 품고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셨던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그 당시의 인간들이 가로막고, 역사적인 모든 습관성과 시대적인 사조가 가로막는 길을 홀로 개척해 나가야 할 어려운 입장에 처해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어렵고 외로운 입장에 처해 있었던 예수님을 위해 누가 예수님을 대신하여 사탄과 싸웠으며, 누가 예수님을 대신하여 용기를 내어 그 어려운 길을 개척해 나왔던가! 오늘날 여러분들은 이러한 입장에 있었던 예수의 사정을 대신하여 어느 한 때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싸울 수 있는 사람, 땅위에서 인간의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예수님이 바라신 이상을 이 땅 위에서 이루어 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가 가지신 소망은 오직 타락한 인간을 구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때까지 사람들은 예수님의 그러한 외로운 사정과, 또, 외로운 가운데에서도 자기 일신을 생각지 않고 인류를 구해내는데 전체적인 소망을 걸었던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까지도 이러한 예수님의 사정을 몰랐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슬픈 고독자의 대왕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남모르는 가운데 눈물 흘리며 서글픈 생활을 하셨지만 위대한 뜻을 품으신 예수님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그런 어려운 환경을 다 잊으며 창조주의 이념과 신념을 잃지 않고 사탄과 싸워 나가야 했던 안타까운 사정에 처해 있었음을 감히 헤아리지 못했던 것을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또 스스로 탄식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자기 일신을 이한 이념을 세우지 않았고, 천륜을 위한 이념을 세우셨습니다. 그의 이념은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대표한 불변의 이념이요, 역사상에 나타났던 수많은 주의나 사상 등의 근본이념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이념을 갖고 나선 예수님은 어떻게 사셨던가? 예수님은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환경을 극복하고 하늘과 인연을 맺었던가? 예수님 자신은 하나님의 선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는 본연의 인간, 타락하기 전 아담 해와가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것과 같이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실체요, 무한한 가치적 존재였지만 타락한 이 땅에 태어나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 어려운 환경을 제압하고 나서야 했던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슬픔의 생활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또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고통을 당해야 하고 사망의 세계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슬픔과 고통과 사망의 원한에 사무쳐 있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그 원한을 밟고 서 가지고 그 마음에 천륜의 중심을 세워 이것을 붙들고 싸우신 주인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으로 느끼기 위해 슬픔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가 안타까와한 것은 자기 일신을 위해 안타까와한 것이 아니었고, 자기 일신을 통하여 역사적인 민족의 서러움을 탕감해야 할 사명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역사를 대신해서, 섭리를 대신해서, 민족을 대신해서 안타까와한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忠誠·忍耐
예수님은 아무리 피흘리는 자리, 슬픔과 고통을 당하는 자리, 공포에 사로잡히는 자리에 처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중심만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일, 하늘의 이념을 인계받아 지상에 하나의 불변의 길을 개척하는 전체적인 사명을 담당해야 할 예수님이 그러한 환경에서 중심이 변하였던들 승리적인 천륜의 역사는 시작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려운 환경, 소망이 끊어진 입장, 사탄이 참소를 받는 자리에서도 그 모든 것을 이기고 넘어서서 승리적인 천륜의 길을 개척해 나갔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길을 개척하기 위해 역사상에 없었던 사랑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어려운 환경에 부딪치더라도 그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죄인들이 악을 대하여 충성하는 이상 하나님의 뜻을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신의 아홉 가지 열매의 근본입니다. 사랑의 생활을 하게 되면 희락과 화평이 나오고, 인내를 통해서는 자비와 양선(良善)이 나오며, 충성의 생활을 하면 온유와 겸손이 나옵니다.
그러면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 인내심, 충성심은 어디로부터 기원한 것인가? 이것들은 예수님 자신에서 기원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은 그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들에게 연결시키는 중보의 역할을 하시는 것입니다. 무지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의 화신이요, 하나님적인 가치의 실체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역사상에 없었던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었던가? 그는 하나님과 뜻을 위하여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고, 자기 생명까지도 포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임할 수 있었고,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친히 재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것인가? 오늘날 이땅 위의 인간들은 천만번 배반하고, 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 불변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인간들이 몰랐기 때문에 인간들은 서로 배반하고 불신해 온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인내심은 어디서 나왔는가? 하나님이 싸움의 역사를 해오신 것은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악을 대하여 무한히 참아 나오신 것은 선의 생활이념을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인간 하나를 세워 놓기 위한 변할 수 없는 천리법도의 기준을 세워 놓고 6천년을 참아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참뜻을 이루기 위하여 당신과 같은 사람, 전체의 가치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인간이 하나님 대해 충성하기 전에 하나님이 인간 대하여 먼저 충성하셨으며, 무한히 인내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천륜을 중심삼고 운행하시는 하나님과 그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무한히 인간 대하여 충성했던 그 사정을 체휼해야 하겠고, 이 뜻을 세우기 위해 무한히 희생해 오신 하나님의 심정, 또 미래의 이념을 세우기 위해 무한히 당신을 초월하신 하나님의 심정, 무한히 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자기의 어떠한 주의 주장, 자기의 어떠한 관념을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한한 사랑을 주기 위하여 4천년 동안 참아 나오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는 누구였던가? 그런 자는 예수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을 아시는 예수님은 외로울 때도 그 사랑을 느끼며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4천년 동안 슬퍼하시고, 4천년 동안 싸우며 참아 나오시던 하나님인 것을 알고 그 인내심의 가치의 결과를 나타냄으로써 사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인격자는 어디 있었던가? 역시 예수님 한 분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통해 인간의 갈 길을 이끌어 주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소망을 짊어지고, 하나님의 인내를 대신하여 홀로 천륜의 길을 가야 하는 예수님은 비탄에 사무쳤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을 본받아야 할 끝날의 성도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인내심과 하나님의 충성을 느꼈던 예수님,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며 참으셔서 찾아진 소망의 자신이라는 것을 느꼈던 예수님을 본받아, 그의 사랑과 충성과 인내심을 인계받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그와 같은 한 사람을 찾기 원하셨던 예수님의 심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하늘의 사랑을 대표한 분이요, 하늘의 충성을 대표한 역사적인 분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즉, 천륜의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천상의 모든 싸움이 땅 위로 옮겨졌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가신 그 남겨진 사명을 인계받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예수님은 이 땅 위에 다시 오실래야 오실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땅과 인연맺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도 믿어 주지 않는 입장에 있었던 예수님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서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예수님 자신도 죽음의 길을 넘어야 할 입장에서 자기 하나를 찾기 위해 4천년 동안 수고해 나오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서러움을 느꼈던 것입니다.
여기에 가중된 하나님의 서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아신 예수님은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이 어떻게 부활할 수 있었느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위신을 잃지 않으면서 자신의 죽음을 비웃는 사탄과 원수들을 대하여 오히려 그들을 비웃을 수 있었고, 죽음을 초월함으로써 사탄이 할 수 없는 우주적인 주인의 길을 개척하였기 때문에, 부활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사탄세계에 없는 인내와 사랑과 충성심을 계승하여, 사탄세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즉, 자기를 죽인 원수를 대해 복빌어 주는 일을 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부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부활의 주님을 믿음으로써 기독교인들은 중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천륜의 원칙을 아는 이상, 천만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천만번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변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나가신 예수님의 이런 심정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세우신 충절과 인내심을 본받아 그의 계승자가 되고 이 땅에 남겨진 그의 유업을 계승하여 실천하는 부활의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하나님과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변함 없는 심정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사랑을 같이 번식해 나가며, 사탄과의 싸움에서 예수님을 대신해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곧 예수의 형제요, 4천년 동안 하나님이 애달프게 찾고자 하셨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또, 끝날에 처한 여러분은 예수님의 사랑과 인내심과 충성심을 본받아 예수님의 대신자로서, 예수님의 이념을 평면적으로 완성할 뿐만 아니라 입체적으로도 완성해야 하며 역사적인 모든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끝날에 처한 성도들의 사명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위한 예수님의 지정
1957.08.04 (일), 한국 전본부교회
말 씀
그러한 종교라면 그 종교를 중심삼고 움직이는 근본 목적은 천륜을 대신하는 것이요, 인륜을 대신하는 것이요, 온 땅 위의 이념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또한, 불변의 절개를 갖춘 하나의 실천적인 존재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 종교가 바로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오늘날까지 발전해 나오기까지에는 예수님을 중심한 이념이 있었고, 그 이념을 실현시키기 위한 생활이 있었으며, 또, 그 이념을 이루어 놓기 위한 간절한 소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에서 부르짖고 있는 이념은 예수님이 출발하던 이념과 맞아야 하고 기독교인들의 실천적인 생활도 예수님이 행하신 실천적인 생활과 맞아야 하며, 기독교인들의 욕망도 예수님의 욕망과 동일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人格과 지조를 지키신 生活
그러면, 이제 우리가 예수님의 30여 평생의 인격을 살펴보게 될 때, 예수님은 그 당시에 국한된 일개인의 인격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인격은 자기 일신의 인격 뿐만 아니라 4천년 역사를 대신한 천적인 가치의 인격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주장하시던 이념은 어떠한 이념이었느냐 하면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역사적으로 바라왔던 소망의 이념인 동시에 섭리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창조주의 이념이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사명을 완수하시기 위해 피눈물 나는 길을 걸었던 예수님의 생애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불변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이념과 생애를 통하여서 그의 지조와 인격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4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천륜의 지조를 세우기 위하여 무한한 투쟁도 개의치 않고 싸워 나오신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그 예수님이 남기신 사명을 이어받아 2천년을 첨부한 6천년의 역사를 대신하여 불변의 절개심을 갖춘 인격자로서 하늘앞에 나타나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천륜을 대신한 이념, 예수 그리스도가 소망하신 이념, 오늘날 우리가 찾고 있는 이념과는 영원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살았는가?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생애의 목적으로 삼았고, 그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전체를 책임지겠다고 천륜 앞에 맹세하고 나선 이후 자신의 안락을 생각지 않고 절개를 지키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찌하여 예수님을 만민의 구주로 세울 수 있었던가? 4천년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예수 한분만이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전체의 생애를 바쳤고, 창세 이후 처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위해 충절과 절개를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영원한 메시아로 세워질 수 있었으며, 모세를 중심으로 이어져 내려온 섭리역사가 예수님의 이념을 통하여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던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을 앞두고 무한한 공포의 골고다의 고개를 넘어야 할 끝날에 처한 오늘날 여러분에게 있어서 여러분의 호소를 무엇으로 그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 이 땅에 있는 이념으로써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막혀져 있는 우리의 갈 길을 헤쳐 주는 하나의 중심존재가 필요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도 당시의 이념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를 지향하는 수많은 종교를 통하여 섭리의 중심인물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해 오셨습니다. 이것이 곧 재림이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대하여 혹은 피조만물을 대하여 상대적인 가치기준에 서 있으면 안 되겠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인격과 절대적인 하나님의 불변의 이념과 천적인 생활의 이념을 대신한 중심을 가진 자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처음과 끝이 영원히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입장에 서서, 만물만상 앞에 자신의 가치를 나타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러한 인간이 될 수 있게 인도해 주는 진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한 진리를 찾기 위해 나선 여러분들이라면, 여러분들은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소망, 예수님이 바라던 이념, 예수님의 생활의 표준을 이어받고 거기에 새로운 이념을 가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또한, 스스로 그러고 활동무대를 여러분들은 찾아야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념적인 기준과 실천적인 기준을 갖추어 모든 면에 통솔할 수 있는 절대적인 위치를 여러분 자신들이 찾아 끝날에 하늘이 찾고자 원하시는 인격자, 천상의 전체목적을 대신할 수 있는 참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스스로 회개할 수 있는 심정이라도 지닐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개인이지만, 개인으로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기독교도 민족과 국가를 위한 종교로서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세계와 인류를 위하는 종교가 되어야 합니다. 또, 인류역사를 대신할 수 있고 인류의 역사적인 소망을 책임질 수 있는 동시에 인륜과 천륜의 이념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역사와 역사적인 소망과 인륜과 천륜의 이념이 여러분이 생활하는 환경과 인연이 맺어져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똑똑히 느껴야 하고, 불변의 인격자로 소망의 실체로 2천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 앞에 부끄럼 없이 나타나 "주여 당신의 소원이 이것이 아니옵니까? 제가 이루어 드리겠나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천륜의 원칙을 대신하여 변치 않는 절개를 가지고 하늘 뜻을 위해 책임을 다한 후"하늘이여 받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예수님을 회고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외로운 환경을 극복하신 예수님의 마음자세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켜야 할 역사적인 사명을 가지고 오신 예수님은 어떠한 마음자세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며 개척해 나오셨는가? 예수님은 인간들로 하여금 인륜을 회복하게 해주고 천륜과 관계를 맺게 해주며, 인류의 역사적인 소망을 이루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끼며, 어느 누가 느낄래야 느낄 수 없는 비장한 심정을 품고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떠한 어려운 사정에 처하셨던가? 예수님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당대의 인간들에게 침범해 들어오는 보이지 않는 억만 사탄과 싸워야 하는 어려운 입장에 처해 있었습니다. 또 예수님은 그 당시의 인간들이 가로막고, 역사적인 모든 습관성과 시대적인 사조가 가로막는 길을 홀로 개척해 나가야 할 어려운 입장에 처해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어렵고 외로운 입장에 처해 있었던 예수님을 위해 누가 예수님을 대신하여 사탄과 싸웠으며, 누가 예수님을 대신하여 용기를 내어 그 어려운 길을 개척해 나왔던가! 오늘날 여러분들은 이러한 입장에 있었던 예수의 사정을 대신하여 어느 한 때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싸울 수 있는 사람, 땅위에서 인간의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예수님이 바라신 이상을 이 땅 위에서 이루어 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인격을 대신한 존재로서 타락한 인간을 구해주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당시의 사람들은 몰라 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극히 외롭고 고독한 길을 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개인적인 소망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가 가지신 소망은 오직 타락한 인간을 구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때까지 사람들은 예수님의 그러한 외로운 사정과, 또, 외로운 가운데에서도 자기 일신을 생각지 않고 인류를 구해내는데 전체적인 소망을 걸었던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까지도 이러한 예수님의 사정을 몰랐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슬픈 고독자의 대왕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예수님은 자기 일신만을 위해 기도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예수님이 보고 듣고 느끼고 행한 모든 것은 자기 일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은 역사를 대신하고, 인류를 대신하고, 천륜을 대신하여 영원 불변의 하나님의 실존적인 가치를 나타내고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남모르는 가운데 눈물 흘리며 서글픈 생활을 하셨지만 위대한 뜻을 품으신 예수님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그런 어려운 환경을 다 잊으며 창조주의 이념과 신념을 잃지 않고 사탄과 싸워 나가야 했던 안타까운 사정에 처해 있었음을 감히 헤아리지 못했던 것을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또 스스로 탄식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자기 일신을 이한 이념을 세우지 않았고, 천륜을 위한 이념을 세우셨습니다. 그의 이념은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대표한 불변의 이념이요, 역사상에 나타났던 수많은 주의나 사상 등의 근본이념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이념을 갖고 나선 예수님은 어떻게 사셨던가? 예수님은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환경을 극복하고 하늘과 인연을 맺었던가? 예수님 자신은 하나님의 선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는 본연의 인간, 타락하기 전 아담 해와가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것과 같이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실체요, 무한한 가치적 존재였지만 타락한 이 땅에 태어나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 어려운 환경을 제압하고 나서야 했던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슬픔의 생활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또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고통을 당해야 하고 사망의 세계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슬픔과 고통과 사망의 원한에 사무쳐 있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그 원한을 밟고 서 가지고 그 마음에 천륜의 중심을 세워 이것을 붙들고 싸우신 주인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으로 느끼기 위해 슬픔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가 안타까와한 것은 자기 일신을 위해 안타까와한 것이 아니었고, 자기 일신을 통하여 역사적인 민족의 서러움을 탕감해야 할 사명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역사를 대신해서, 섭리를 대신해서, 민족을 대신해서 안타까와한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忠誠·忍耐
예수님은 아무리 피흘리는 자리, 슬픔과 고통을 당하는 자리, 공포에 사로잡히는 자리에 처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중심만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일, 하늘의 이념을 인계받아 지상에 하나의 불변의 길을 개척하는 전체적인 사명을 담당해야 할 예수님이 그러한 환경에서 중심이 변하였던들 승리적인 천륜의 역사는 시작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려운 환경, 소망이 끊어진 입장, 사탄이 참소를 받는 자리에서도 그 모든 것을 이기고 넘어서서 승리적인 천륜의 길을 개척해 나갔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길을 개척하기 위해 역사상에 없었던 사랑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어려운 환경에 부딪치더라도 그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죄인들이 악을 대하여 충성하는 이상 하나님의 뜻을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신의 아홉 가지 열매의 근본입니다. 사랑의 생활을 하게 되면 희락과 화평이 나오고, 인내를 통해서는 자비와 양선(良善)이 나오며, 충성의 생활을 하면 온유와 겸손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타락권내에 있는 인간들의 모든 악의 요소를 제거시켜 주기 위해서 천적인 사랑과 천적인 인내, 천적인 충성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이것들이 천국의 이념을 달성시킬 수 있는 실천적인 이념인데 오늘날 여러분의 마음에 이런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습니까? 또 인내와 충성심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현현하신 사랑의 화신체였으며, 서러운 골고다의 길에서도 만민의 고통을 염려하신 인내의 주인공이었으며, 역사상의 어느 누구보다 하늘 대해 충성했던 충성의 대표자였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 인내심, 충성심은 어디로부터 기원한 것인가? 이것들은 예수님 자신에서 기원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은 그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들에게 연결시키는 중보의 역할을 하시는 것입니다. 무지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의 화신이요, 하나님적인 가치의 실체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역사상에 없었던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었던가? 그는 하나님과 뜻을 위하여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고, 자기 생명까지도 포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임할 수 있었고,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친히 재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찾으실 때 논리적인 면을 앞세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랑에 대한 정의와 사랑에 대한 논리를 말하지 않았지만 사랑의 실천적인 면에서 역사를 대표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자기가 느끼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한 것은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실천적인 행동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영원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예수님의 실천적인 사랑은 어디서 나왔는가? 예수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더듬을 수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런 내적 심적 기준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인간들은 잘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것인가? 오늘날 이땅 위의 인간들은 천만번 배반하고, 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 불변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인간들이 몰랐기 때문에 인간들은 서로 배반하고 불신해 온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인내심은 어디서 나왔는가? 하나님이 싸움의 역사를 해오신 것은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악을 대하여 무한히 참아 나오신 것은 선의 생활이념을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인간 하나를 세워 놓기 위한 변할 수 없는 천리법도의 기준을 세워 놓고 6천년을 참아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참뜻을 이루기 위하여 당신과 같은 사람, 전체의 가치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인간이 하나님 대해 충성하기 전에 하나님이 인간 대하여 먼저 충성하셨으며, 무한히 인내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천륜을 중심삼고 운행하시는 하나님과 그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무한히 인간 대하여 충성했던 그 사정을 체휼해야 하겠고, 이 뜻을 세우기 위해 무한히 희생해 오신 하나님의 심정, 또 미래의 이념을 세우기 위해 무한히 당신을 초월하신 하나님의 심정, 무한히 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자기의 어떠한 주의 주장, 자기의 어떠한 관념을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한한 사랑을 주기 위하여 4천년 동안 참아 나오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는 누구였던가? 그런 자는 예수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을 아시는 예수님은 외로울 때도 그 사랑을 느끼며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4천년 동안 슬퍼하시고, 4천년 동안 싸우며 참아 나오시던 하나님인 것을 알고 그 인내심의 가치의 결과를 나타냄으로써 사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인격자는 어디 있었던가? 역시 예수님 한 분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통해 인간의 갈 길을 이끌어 주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소망을 짊어지고, 하나님의 인내를 대신하여 홀로 천륜의 길을 가야 하는 예수님은 비탄에 사무쳤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을 본받아야 할 끝날의 성도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모든 충절의 심정을 느낀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하나님의 충절의 심정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탕자의 입장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창조의 이념으로 세워 놓았던 하나님의 천륜의 전체적인 가치를 대신할 수 있어야 하고, 천주적인 가치와 역사적인 가치가 자신 하나의 가치와 비교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인내심과 하나님의 충성을 느꼈던 예수님,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며 참으셔서 찾아진 소망의 자신이라는 것을 느꼈던 예수님을 본받아, 그의 사랑과 충성과 인내심을 인계받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그와 같은 한 사람을 찾기 원하셨던 예수님의 심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하늘의 사랑을 대표한 분이요, 하늘의 충성을 대표한 역사적인 분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즉, 천륜의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천상의 모든 싸움이 땅 위로 옮겨졌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가신 그 남겨진 사명을 인계받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예수님은 이 땅 위에 다시 오실래야 오실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땅과 인연맺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도 믿어 주지 않는 입장에 있었던 예수님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서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예수님 자신도 죽음의 길을 넘어야 할 입장에서 자기 하나를 찾기 위해 4천년 동안 수고해 나오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서러움을 느꼈던 것입니다.
여기에 가중된 하나님의 서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아신 예수님은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이 어떻게 부활할 수 있었느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위신을 잃지 않으면서 자신의 죽음을 비웃는 사탄과 원수들을 대하여 오히려 그들을 비웃을 수 있었고, 죽음을 초월함으로써 사탄이 할 수 없는 우주적인 주인의 길을 개척하였기 때문에, 부활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사탄세계에 없는 인내와 사랑과 충성심을 계승하여, 사탄세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즉, 자기를 죽인 원수를 대해 복빌어 주는 일을 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부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부활의 주님을 믿음으로써 기독교인들은 중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천륜의 원칙을 아는 이상, 천만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천만번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변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나가신 예수님의 이런 심정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세우신 충절과 인내심을 본받아 그의 계승자가 되고 이 땅에 남겨진 그의 유업을 계승하여 실천하는 부활의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하나님과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변함 없는 심정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사랑을 같이 번식해 나가며, 사탄과의 싸움에서 예수님을 대신해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곧 예수의 형제요, 4천년 동안 하나님이 애달프게 찾고자 하셨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또, 끝날에 처한 여러분은 예수님의 사랑과 인내심과 충성심을 본받아 예수님의 대신자로서, 예수님의 이념을 평면적으로 완성할 뿐만 아니라 입체적으로도 완성해야 하며 역사적인 모든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끝날에 처한 성도들의 사명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