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과 같이 생각하려는 말씀의 제목은 `강하고 담대하여 잃어버린 복지를 회복하자'입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과 기독교인의 사명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끝날에 오시는 주님은 6천년간 하나님을 탄식하게 했던 조건들을 없애고 수많은 성도들의 신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오신다는 것을 아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민족이 처음 모세를 맞을 때에는 자기들의 소유를 모두 버려야 모세를 따를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출발했듯이, 광야에 나와서도 자기들의 모든 것을 저버리고 모세만을 믿고 따랐다면, 그들과 모세와는 갈라지게 되지 않았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이상의 동산을 바라보며 재림의 한날을 맞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우리들이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것은 오실 주님은 6천년 동안 하나님이 수고하고 선조들이 수고한 결실로 찾아지는 분이라는 것을 명심하는 일입니다.
그분이 만약 이 땅에 오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그분께 다 바쳐드리고, 그분만을 역사의 대신존재로, 죄악의 역사를 종결지을 수 있는 존재로, 그분만을 하나님의 대신 존재로, 그분만을 인류를 대표한 존재로 모실 줄 아는 마음을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결심과 각오를 갖지 않는다면, 광야에서 유리하고 있는 이 민족을 수습하여 가나안복지에 들어갈 수 없고, 성전이상(聖殿理想)을 완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하나님의 사랑과 원한을 알았으므로 기도하는 목적이 달라져야 하겠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모세와 불신하는 이스라엘 60만 대중을 광야에서 쓸어버리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세워 2세들을 데리고 다시 가나안으로 향하게 하신 그 심정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떠한 단계에 도달했는가? 선조들이 고난받으며 걸어온 6천년 역사를 발판으로 하여 심판의 깃발을 높이 들어야 할 입장에 도달했고, 이스라엘민족을 향하여 요단강을 건너가자고 호령하던 여호수아와 갈렙의 사명을 대신해야 할 위치에 와 있는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그러면, 우리들이 그러한 책임과 사명을 맡겠다고 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강조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모세의 사명을 인계맡은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셨던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강하고 담대하라'고 강조하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계 가나안복지를 바라보고 거기에 들어가기를 소망하면서 광야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여호수아와 갈렙같은 여러분의 몸 마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세계적인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존재가 나타나 이 땅 위의 기독교를 이끌어가기를 하늘 앞에 호소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중심을 잃어버리고 혼돈과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이 광야시대에서 이를 수습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존재가 나타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확실히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자기의 교파가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에서는 두 감람나무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세계적인 가나안복귀의 노정을 출발하기에 앞서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존재가 나타난다는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모세를 대신하여 나타난 여호수아와 갈렙이 유대민족을 인도하여 가나안땅으로 들어간 것과 같이,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고 세계적인 가나안복지 새로운 소망의 가나안복지를 향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여호수아와 갈렙을 따라 가나안에 들어간 무리들이 가나안 7족을 멸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는 사탄을 멸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늘의 용장들이 되어야 하고, 그런 노정을 걸어야 할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는 것을 명심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말씀을 주장하는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 땅의 어느 곳에 나타난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마음문을 열어놓고 그 말씀을 듣고 하늘을 위할 수 있게 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민족을 이끌고 가나안복지를 향해 출발하려 할 때 바로왕이 모세를 죽이려 했고 이스라엘민족 가운데서도 모세를 불신하고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호수아와 갈렙에게도 그러한 일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인간적인 모든 조건을 넘어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3대시험을 통해서 인간적인 모든 조건을 넘어서는 데 승리하셨습니다. 따라서, 2천년이 지난 오늘날의 여러분도 인간적인 모든 조건을 넘어서는 길에 있어서 강하고 담대해야 하겠습니다.
여호수아는 개인의 싸움의 노정으로부터 최후의 순간까지 승리의 노정을 걸어가야 할 모세 대신 입장에 세워졌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에게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과 더불어 "대하는 개인을 원수로 알고, 대하는 민족을 원수로 알고, 대하는 땅을 원수의 땅으로 알라"는 충고의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호수아와 같은 입장에 서 있는 우리라 한다면 우리에게도 가는 곳곳마다 개인적인 원수가 있을 것입니다. 환경도 우리를 때릴 것입니다. 민족과 국가도 우리를 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놓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먼저 강하고 담대해야 할 입장에 있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로 볼 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자신을 놓고 잘못한 점이 있으면 스스로 비판할 줄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30년 혹은 40년 생애를 거친 자신이라고만 생각하지 맙시다. 살아있는 현재의 자신으로서만 알아서도 안 되겠습니다.
人間의 存在意義와 使命
수천년 역사를 거쳐 오면서 우리의 선조들은 피의 제단을 쌓아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제물로 돌아가셨으며, 예수님 이후 2천년 동안 기독성도들도 피의 제단을 이루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러한 제단의 터 위에 올려진 자신들임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아버지를 부르고, 아버지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인류를 구하기 위해 아버지 앞에 호소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6천년 역사를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과 원한을 알고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모든 일은 여러분 자신들이 판단하고 해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부른다면 하나님은 옛날 모세만을 대하던 하나님이 아니요, 이스라엘만을 대하던 하나님이 아니며, 오늘날 우리와도 함께하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4천년 역사를 대신한 예수님께서 남기신 진리의 말씀을 믿고 있는 성도들은 장차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사탄의 철망 속에 사로잡혀 있는 인류를 구해 줄 수 있는 하늘 용사의 모습을 갖춘 아들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깨달아, 옛날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여 광야에서 사탄의 밥이 되었던 전철을 되 밟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모세가 하나님 앞에 다시 설 때까지 광야에서 40년 동안 정성드렸던 그 지조를 신앙의 뿌리로 삼아야 되겠으며,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80일 동안을 하나님을 붙들고 호소했던 그 끈질기고 강인한 모세의 성품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또 여러분은 제 2 이스라엘 선민권을 대표하여 세계 가나안복귀의 이상을 성취시켜야 할 재림의 종족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런 것을 생각하여 "아버지! 6천년 섭리과정에 나타났던 전체의 싸움이 내 일신에 나타난다 할지라도 나는 넘겠나이다"라고 맹세하고 나설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6천년 동안 하늘 뜻을 세우기 위하여 죽음의 고비고비를 넘어 온 선지 선열들의 대신자가 되어 이 땅을 지배하고 있는 사탄족속을 향해, "나는 폭탄이다, 너희들의 가슴을 폭발시키고 말 것이다!"라고 외칠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셨던 말씀을 우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스라엘민족이 그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가나안땅에 들어가서도 12사도를 중심하여 재탕감의 역사를 거쳤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원리를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그러한 여호수아적인 책임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천국이념을 건설하기 위해 이 땅을 찾아오시는 주님도 여러분과 더불어 수난의 길을 가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福地에 對한 所望
여러분이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6천년 섭리역사를 대신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원수들과 일대 판가리싸움을 하여 승리하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때서야 비로소 천지가 화동할 수 있는 한날을 맞게 되고, 수천년래의 선조들이 하늘 대하여 피의 호소를 하던 그 원한이 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창조주의 기쁨이 나타나고, 영원 불변의 하나님의 사랑권내에서 천천만 성도들이 즐기고, 땅 위에 있는 만민들이 즐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그는 당신의 아들이니 그를 사랑해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하나의 존재가 여러분 가운데서 나타나야 됩니다. 참된 진리에 의하여 그러한 한 존재가 이 땅 위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인간의 기쁨도, 영계의 기쁨도, 하나님의 기쁨도, 천지의 기쁨도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6천년 섭리역사를 종결지어야 할 때이므로 최후의 용단을 내려 뜻을 향하여 전진해야 합니다.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소돔. 고모라가 멸망하게 될 때, 롯의 처는 옛날 고향에서의 가정생활이 그립고, 이웃에 살던 친구들이 그립고, 그곳의 환경과 습관이 그리워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던 것입니다.
애급을 떠나 모세를 따르던 이스라엘민족도 광야에 나와 고생이 되자 옛날의 애급을 그리워하다가 가나안복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도중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광야에 나와 머무를 곳도, 먹을 것도 없게 되자 `애급에 있었더라면 떡도 먹고 가끔 고기도 먹었을 텐데….' 하며 모세를 원망하고 그에게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였던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민족 가운데 그렇게 과거를 회상하면서 불평을 했던 자들은 누구였느냐 하면 애급에 있을 때 부유했던 자들이었고, 남을 지배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늘길을 가는 데 있어서 개인으로부터 가정.사회.민족.국가까지 갈라 세워 세상 것은 다 버리고 하늘 것으로 모든 것을 대치시킬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즉 세상의 나를 버리고 하늘의 나를 찾아야 하고, 세상의 가정을 버리고 하늘의 가정을 찾아야 하며, 세상의 종족을 버리고 하늘의 종족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의 민족을 버리고 하늘의 민족을 찾아야 하고, 세상의 국가를 버리고 하늘의 국가를 찾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여러분은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힘을 다하고 있는 정성을 다하여 전진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려는 말씀의 제목은 `강하고 담대하여 잃어버린 복지를 회복하자'입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과 기독교인의 사명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끝날에 오시는 주님은 6천년간 하나님을 탄식하게 했던 조건들을 없애고 수많은 성도들의 신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오신다는 것을 아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민족이 처음 모세를 맞을 때에는 자기들의 소유를 모두 버려야 모세를 따를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출발했듯이, 광야에 나와서도 자기들의 모든 것을 저버리고 모세만을 믿고 따랐다면, 그들과 모세와는 갈라지게 되지 않았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이상의 동산을 바라보며 재림의 한날을 맞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우리들이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것은 오실 주님은 6천년 동안 하나님이 수고하고 선조들이 수고한 결실로 찾아지는 분이라는 것을 명심하는 일입니다.
그분이 만약 이 땅에 오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그분께 다 바쳐드리고, 그분만을 역사의 대신존재로, 죄악의 역사를 종결지을 수 있는 존재로, 그분만을 하나님의 대신 존재로, 그분만을 인류를 대표한 존재로 모실 줄 아는 마음을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세계의 기독교인들이 그러한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수천년간 수고하여 세우신 모세가 광야에서 쓰러짐으로 말미암아 원한이 남게 된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오시는 주님을 위해 수고할 줄 아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입장에 처해 있는 오늘날의 우리들은 가나안복지를 바라보고 나가던 모세가 죽은 후, 그의 후계자로 세워졌던 여호수아와 갈렙의 사명을 역사적인 입장에서 인계받고 있다는 것을 각자는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60만 대중을 이끌고 가나안땅에 들어감으로써 수천년간 땅에 맺힌 하나님의 원한을 풀어드릴 수 있는 제물적인 조건을 갖추고 나선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결심과 각오를 갖지 않는다면, 광야에서 유리하고 있는 이 민족을 수습하여 가나안복지에 들어갈 수 없고, 성전이상(聖殿理想)을 완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하나님의 사랑과 원한을 알았으므로 기도하는 목적이 달라져야 하겠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모세와 불신하는 이스라엘 60만 대중을 광야에서 쓸어버리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세워 2세들을 데리고 다시 가나안으로 향하게 하신 그 심정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떠한 단계에 도달했는가? 선조들이 고난받으며 걸어온 6천년 역사를 발판으로 하여 심판의 깃발을 높이 들어야 할 입장에 도달했고, 이스라엘민족을 향하여 요단강을 건너가자고 호령하던 여호수아와 갈렙의 사명을 대신해야 할 위치에 와 있는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그러면, 우리들이 그러한 책임과 사명을 맡겠다고 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강조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모세의 사명을 인계맡은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셨던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강하고 담대하라'고 강조하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계 가나안복지를 바라보고 거기에 들어가기를 소망하면서 광야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여호수아와 갈렙같은 여러분의 몸 마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세계적인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존재가 나타나 이 땅 위의 기독교를 이끌어가기를 하늘 앞에 호소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중심을 잃어버리고 혼돈과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이 광야시대에서 이를 수습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존재가 나타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확실히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자기의 교파가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에서는 두 감람나무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세계적인 가나안복귀의 노정을 출발하기에 앞서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존재가 나타난다는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모세를 대신하여 나타난 여호수아와 갈렙이 유대민족을 인도하여 가나안땅으로 들어간 것과 같이,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고 세계적인 가나안복지 새로운 소망의 가나안복지를 향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여호수아와 갈렙을 따라 가나안에 들어간 무리들이 가나안 7족을 멸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는 사탄을 멸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늘의 용장들이 되어야 하고, 그런 노정을 걸어야 할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는 것을 명심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말씀을 주장하는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 땅의 어느 곳에 나타난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마음문을 열어놓고 그 말씀을 듣고 하늘을 위할 수 있게 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는 길은 모험의 길이었습니다. 그들이 걸은 길은 어려운 개척의 길이었고 싸움의 길이었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개척자의 사명을 해야 할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때로는 개인적으로, 또는 환경적으로 부딪쳐 오는 시련과 싸워야 했던 노정이 그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민족을 이끌고 가나안복지를 향해 출발하려 할 때 바로왕이 모세를 죽이려 했고 이스라엘민족 가운데서도 모세를 불신하고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호수아와 갈렙에게도 그러한 일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인간적인 모든 조건을 넘어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3대시험을 통해서 인간적인 모든 조건을 넘어서는 데 승리하셨습니다. 따라서, 2천년이 지난 오늘날의 여러분도 인간적인 모든 조건을 넘어서는 길에 있어서 강하고 담대해야 하겠습니다.
여호수아는 개인의 싸움의 노정으로부터 최후의 순간까지 승리의 노정을 걸어가야 할 모세 대신 입장에 세워졌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에게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과 더불어 "대하는 개인을 원수로 알고, 대하는 민족을 원수로 알고, 대하는 땅을 원수의 땅으로 알라"는 충고의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호수아와 같은 입장에 서 있는 우리라 한다면 우리에게도 가는 곳곳마다 개인적인 원수가 있을 것입니다. 환경도 우리를 때릴 것입니다. 민족과 국가도 우리를 칠 것입니다. 그러나, 택함받은 우리들이 단결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끝까지 싸우는 제 2의 여호수아들이 된다면,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세계 기독교를 책임질 수 있는 성도들이 된다면, 우리는 우리 앞에 전개되는 어떠한 싸움의 길도 넘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들이 강하고 담대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놓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먼저 강하고 담대해야 할 입장에 있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로 볼 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자신을 놓고 잘못한 점이 있으면 스스로 비판할 줄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30년 혹은 40년 생애를 거친 자신이라고만 생각하지 맙시다. 살아있는 현재의 자신으로서만 알아서도 안 되겠습니다.
人間의 存在意義와 使命
그러면,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세계적인 싸움을 거치며 수고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수고에 의해 찾아진 자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을 길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수고를 대신한 제물이라는 것을 스스로 느낄 줄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있기까지에는 여러분을 찾아 세우시기 위해 고난의 길, 험하고 어려운 싸움의 길을 거쳐나오시며 말씀하시지 못한 하나님의 원한과 탄식이 있었다는 것과 수천 수만의 선조들의 피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구해 주기 위해 수고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느낄 줄 아는 아들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우리가 기도한다 할진대 ``6천년 전의 아버지의 마음과 6천년 후인 오늘의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아버님의 모습을 대신할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죽든 살든 제물이 되겠다는 마음의 다짐이 있어야 되겠고,“이미 제물로 바친 저희들이오니, 아버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수천년 역사를 거쳐 오면서 우리의 선조들은 피의 제단을 쌓아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제물로 돌아가셨으며, 예수님 이후 2천년 동안 기독성도들도 피의 제단을 이루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러한 제단의 터 위에 올려진 자신들임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아버지를 부르고, 아버지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인류를 구하기 위해 아버지 앞에 호소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6천년 역사를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과 원한을 알고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모든 일은 여러분 자신들이 판단하고 해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하나님의 구원섭리역사를 종결짓기 위해 수많은 선조들이 세워온 전통을 받들어야 되겠으며, 하나님이 운행하실 수 있는 조건을 파멸시키려고 하는 원수 사탄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그를 물리치기 위해 티끌만한 세포의 한 분자까지라도 동원시키겠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부른다면 하나님은 옛날 모세만을 대하던 하나님이 아니요, 이스라엘만을 대하던 하나님이 아니며, 오늘날 우리와도 함께하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던 하나님이요, 역사과정에서 선조들을 대하시던 하나님이요, 오늘날 나를 대해 주어야 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겟세마네동산에서 최후의 용단을 내려 하나의 제물로 바쳐지려 했을 때 함께해 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만민을 사랑하신 예수님의 희생정신이 후대 인간들에게 하나의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옴으로써 기독교의 부흥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4천년 역사를 대신한 예수님께서 남기신 진리의 말씀을 믿고 있는 성도들은 장차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사탄의 철망 속에 사로잡혀 있는 인류를 구해 줄 수 있는 하늘 용사의 모습을 갖춘 아들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깨달아, 옛날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여 광야에서 사탄의 밥이 되었던 전철을 되 밟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모세가 하나님 앞에 다시 설 때까지 광야에서 40년 동안 정성드렸던 그 지조를 신앙의 뿌리로 삼아야 되겠으며,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80일 동안을 하나님을 붙들고 호소했던 그 끈질기고 강인한 모세의 성품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또 여러분은 제 2 이스라엘 선민권을 대표하여 세계 가나안복귀의 이상을 성취시켜야 할 재림의 종족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런 것을 생각하여 "아버지! 6천년 섭리과정에 나타났던 전체의 싸움이 내 일신에 나타난다 할지라도 나는 넘겠나이다"라고 맹세하고 나설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6천년 동안 하늘 뜻을 세우기 위하여 죽음의 고비고비를 넘어 온 선지 선열들의 대신자가 되어 이 땅을 지배하고 있는 사탄족속을 향해, "나는 폭탄이다, 너희들의 가슴을 폭발시키고 말 것이다!"라고 외칠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셨던 말씀을 우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스라엘민족이 그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가나안땅에 들어가서도 12사도를 중심하여 재탕감의 역사를 거쳤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원리를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그러한 여호수아적인 책임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천국이념을 건설하기 위해 이 땅을 찾아오시는 주님도 여러분과 더불어 수난의 길을 가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福地에 對한 所望
여러분이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6천년 섭리역사를 대신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원수들과 일대 판가리싸움을 하여 승리하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때서야 비로소 천지가 화동할 수 있는 한날을 맞게 되고, 수천년래의 선조들이 하늘 대하여 피의 호소를 하던 그 원한이 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창조주의 기쁨이 나타나고, 영원 불변의 하나님의 사랑권내에서 천천만 성도들이 즐기고, 땅 위에 있는 만민들이 즐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탄 앞에 세워 자랑하고, 여러분의 선조들도 여러분을 세워 자랑하고, 여러분도 형제가 되어 서로서로 자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그는 당신의 아들이니 그를 사랑해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하나의 존재가 여러분 가운데서 나타나야 됩니다. 참된 진리에 의하여 그러한 한 존재가 이 땅 위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인간의 기쁨도, 영계의 기쁨도, 하나님의 기쁨도, 천지의 기쁨도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그날을 위하여 6천년 원한의 죄악사를 청산하고 "하늘이여, 저를 보고 기뻐하시옵소서, 저를 보고 원한을 푸시옵소서, 저를 보고 6천년의 탄식을 잊으시고 창세 이후 처음으로 웃을 수 있는 한날을 맞으소서", 또 "영계에 가 있는 선조들이여, 하늘이 기뻐하니 우리와 함께 화답하소서"라고 할 수 있는 그러한 존재가 되어야만 허락하신 세계적인 가나안복지를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타락에 의한 6천년 원한을 사탄권내에 떠넘기고 인류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할 수 있는 우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러한 자가 되어야만 세계적인 가나안복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할 수 있고, 70문도를 대신할 수 있어 하나님이 찾고자 원하는 아들 딸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어 하나님이 찾고자 원하는 아들 딸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가정이 되고,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민족이 되며,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국가로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영원한 행복의 동산, 이상의 복지가 건설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6천년 섭리역사를 종결지어야 할 때이므로 최후의 용단을 내려 뜻을 향하여 전진해야 합니다.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소돔. 고모라가 멸망하게 될 때, 롯의 처는 옛날 고향에서의 가정생활이 그립고, 이웃에 살던 친구들이 그립고, 그곳의 환경과 습관이 그리워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던 것입니다.
애급을 떠나 모세를 따르던 이스라엘민족도 광야에 나와 고생이 되자 옛날의 애급을 그리워하다가 가나안복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도중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광야에 나와 머무를 곳도, 먹을 것도 없게 되자 `애급에 있었더라면 떡도 먹고 가끔 고기도 먹었을 텐데….' 하며 모세를 원망하고 그에게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였던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민족 가운데 그렇게 과거를 회상하면서 불평을 했던 자들은 누구였느냐 하면 애급에 있을 때 부유했던 자들이었고, 남을 지배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은 그러한 이스라엘민족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되겠습니다. 이것을 교훈삼아 여러분은 이 순간 무엇을 바라보아야 되겠느냐?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집입니까, 여러분이 사귀고 있는 친구들입니까? 여러분의 집과 친구는 여러분이 바라보아야 할 것들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머물러야 할 집이 있다면 그것은 황무지와 같은 광야일 것이며, 여러분의 친구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광야에서 유리하고 있는 형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늘길을 가는 데 있어서 개인으로부터 가정.사회.민족.국가까지 갈라 세워 세상 것은 다 버리고 하늘 것으로 모든 것을 대치시킬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즉 세상의 나를 버리고 하늘의 나를 찾아야 하고, 세상의 가정을 버리고 하늘의 가정을 찾아야 하며, 세상의 종족을 버리고 하늘의 종족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의 민족을 버리고 하늘의 민족을 찾아야 하고, 세상의 국가를 버리고 하늘의 국가를 찾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여러분은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힘을 다하고 있는 정성을 다하여 전진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자라면 개인을 찾는 마당에 개인이 쓸어져도 감사하고, 민족.국가를 찾는 마당에 민족.국가가 쓸어져도 감사할 수 있는 지조를 가진 하늘의 아들딸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각오로 개인을 대하여 싸울 수 있고, 가정·국가·세계를 대하여서도 싸울 수 있으며, 이 땅 위의 사탄 대하여 `물러가라' 할 수 있는 용맹심을 갖추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하늘을 향한 지조를 가지고 생애노정의 끝날까지 나아가는 자가 있다면 그는 죽더라도 부활하여 그 복지에 나타나 영광을 누릴 것이요, 만일에 죽지 않으면 제 2 이스라엘로서 허락하신 복지동산에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여러분은 명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