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렇듯 예수는 우리를 찾으신다 (말씀선집 제1권 3편)
마태복음 18:1 - 14. 1956년 5월 20일 (일) 전 본부교회
떨어진 한 마리의 양과 같은 타락 인간
타락한 이후 우리 인류는 하나님 앞에 있어서 아흔 아홉 마리의 양 가운데 있지 못하고 떨어진 한 마리의 양과 같은 입장에 처하여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천천만 천군 천사도 한 마리의 양과 같은 아담 해와를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기쁜 찬송을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천군 천사들로 하여금 기쁨의 찬송을 드리지 못하게 한 인간을 다시 찾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수고를 거듭해 나오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찾으셨던 한 존재로서 땅 위에 보내졌습니다. 그러한 예수는 사망 가운데 들어간 우리 인간들을 중생시키기 위하여 참부모의 입장에 서서 수고의 역사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유일한 독생자로 세워진 분이요, 죄악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짐으로써 사탄 대하여 승리한 분이라고 간단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한 중심으로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던가? 세계 인류를 대하여 섭리하시던 그 모든 것을 예수님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온 만민을 책임지고 구원해야 할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날 우리들을 찾아 주는 데는 어떠한 과정을 거쳐 찾아 주느냐? 하나님께서는 4천년의 역사를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말씀을 세우셨고 뭇 선지 성현들을 통하여 메시아가 강림하실 것을 수많은 군중 앞에 예고해 나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교 신자들은 뭇 선지자들이 호소하던 증거의 말씀을 통하여 메시아를 맞기 위한 준비를 해 왔습니다. 그것이 구약의 역사입니다. 이렇듯 준비된 터 위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 구약의 4천년 역사를 선의 역사로 종결지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하시는 새로운 말씀은 하나님의 4천년 복귀섭리 노정에 얽힌 서러움이 깃들인 말씀인 동시에 억조창생들이 신앙노정을 가는데 있어서 지니고 가야 할 천륜의 법도를 밝힌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발표하시는 이 새로운 말씀을 수많은 유대교 신자들이 귀담아 듣고 믿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하는 무리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했을 것인가? 예수님은 비통한 마음으로 호소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까지 하늘은 나 하나를 찾고, 죄중에 빠져 있는 우리 인류를 다시 찾아 세우기 위해 오랜 기간 수고해 나오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구약 율법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4천년의 서러운 역사를 해원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서 새로운 진리의 말씀을 발표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유대민족이 믿어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을 위로해 드리지 못하고 도리어 하늘의 서러운 심정을 자신의 마음에서부터 북돋우는 결과가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가야 할 방향을 알지 못하고 사탄의 수중에 있는 무리 앞에 나타나셔서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살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인류는 삶의 방향도 잃어버리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4천년 수고의 제단도 붕괴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의 터 위에서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되었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의해 결실되었을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자녀로 품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믿지 않은 유대민족
애초에 본이 되어야 할 이스라엘민족이 예수님이 주신 새로운 말씀을 믿지 않고 하나되지 못한 연고로 예수 그리스도는 슬픔의 말씀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우리는 한 마리의 잃어진 양과 같은 입장에 있는 이스라엘민족을 대했던 예수의 심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하늘이 나 하나를 찾기 위하여 4천년 동안 서러운 심정을 품고 섭리해 나오셨고, 그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을 계승하여 우리들의 뒤를 따라오면서 부르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30년간의 사생애 기간 동안 준비해 오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하는 말씀, '나를 믿으라' 하는 말씀 등 많은 말씀을 하였으나 그 슬픈 마음에서 호소하는 음성을 귀담아 듣고 따라 나가는 무리는 지극히 적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예수님은 비통한 심정을 품고 30평생을 지내셨고,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부르짖던 간절한 음성이 지금도 성경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호소하고 있으며. 오늘 이 시간에도 예수님은 영계에서 여러분을 향하여 간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하늘 앞에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과 같은 입장에 있는 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가야 할 방향도 모르고, 자기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도 모른 채 세상이 그냥 이대로 계속되는 줄 알고 있다면 여러분은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은 잘 모르겠지만 예수님은 태어나신 이후 지금까지의 2천년 역사과정을 거쳐 오면서 슬픈 음성으로 부르시고 있고, 그 부르심의 소리는 여러분의 소망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예수님의 음성
간절하게 부르시는 이 음성을 여러분은 외면하겠습니까? 듣지 못하는 자가 있다 하면 같은 원한의 마음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부르시는 음성을 그리워 할 줄 모르는 귀가 있습니까. 이 음성을 분별하기 위해서 분발해야 되겠습니다. 혹은 부르시는 음성을 여러분이 들었을지라도 몸이 튼튼하지 못하여 움직이지 못할 때에는 그 곳을 향하여 마음 모을 수 있는 내 한 자체가 돼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오늘의 내 한 개체를 6천년을 걸려서 찾아 오셨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듣지 못하는 연고로 실체의 하나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 주고, 실체되시는 예수로 하여금 하나님의 무형의 심정을 나타내게 하여 선포하신 말씀이 곧 복음의 말씀이었습니다.
인간이 무형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이것을 해소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실체로 나타나신 예수였습니다. 또 그가 전하는 말씀과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알고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어 회개해야 할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민족은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예수님을 멀리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들려오는 예수의 슬픈 음성을 알아듣기 위하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진정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만민 앞에 나타난 예수를 '믿습니다'할 수 있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예수는 무형의 하나님을 대신하여 와서 무지한 인간들을 대신하여 속죄의 노정을 걸으셨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대신하여 부르짖던 음성을 분별할 줄 알았더라면, 실체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서러움에 사무쳐 부르짖던 말씀을 문제없이 알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민족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말씀만으로 만족하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최후의 말씀이 구약에 다 기록되어 있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서러움은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세워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실체로 보이고 증거할 때에 이를 모시지 못하면 하늘의 서러움이 땅 위의 서러움으로 연결되는 것을 이스라엘민족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무형의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셨던 그 서러움을 지상에서 기쁨으로 해원해 드려야 할 예수 그리스도였는데, 이러한 예수를 알지 못한 이스라엘민족 때문에 하나님의 서러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해원되지 못하고 또다시 서러움으로 남아지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4천년의 역사를 대신하여 땅 위에 왔던 예수 그리스도는 기쁨의 말씀을 발표하지 못하고 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이후 2천년 역사가 경과하였지만, 오늘날 6천년의 역사를 통하여 보게될 때 아직도 하나님의 서러움과 예수 그리스도의 서러움은 땅 위에 사무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서러움과 예수 그리스도의 서러움을 알고, 이제 하나님의 기쁨의 말씀과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헤아릴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우리를 찾은 목적이 언제나 슬픔의 말씀만을 전하려 함은 아니었습니다. 잃어버린 양떼와 같은 우리들을 찾기 위해서 수고하는 과정에서는 언제나 비애의 말씀만을 해서는 안 됩니다. 6천년 동안 비애의 말씀을 하셨으니 잃어버린 양떼가 찾아지는 그 순간에는 6천년의 서러움을 송두리째 잊어버릴 수 있는 기쁨의 말씀이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기쁨의 말씀이 하늘로부터 나타날 줄 알고 있는데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2천년 동안 수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 앞에, 우리들을 찾아오시는 주 앞에 달음질쳐 나갈 수 있는 양떼가 되어야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홀연히 찾아오셔서 비애의 음성으로 여러분을 부르실 때 여러분이 그 자리에서 몸을 움추려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비애의 음성이 들리기 전에 여러분이 먼저 비애의 음성으로 부르짖어야 되겠습니다.
내가 먼저, '나의 목자시여 ! 주여 !' 하는 음성이 천지에 사무치게 부르짖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찾아오시는 예수께서 여러분이 부르짖는 음성을 귀 기울여 들으시고 다시 부르짖으실 때 슬픈 음성으로 부르짖으시지 앉고 기쁜 음성으로 부르짖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비애의 심정을 증거해야 할 우리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비애의 심정을 증거해야 되겠습니다. 목자를 잃어버린 것을 슬퍼만 할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목자를 찾기 위하여 부르짖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듯 부르짖던 예수가 남기신 수고의 걸음이라도 책임질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만 이 예수 앞에 만족을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는 비애의 음성으로 우리들을 찾고 있으며 또 우리를 찾기 위하여 고통의 생활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예수의 30여 평생은 고통의 생활이었습니다. 목수인 요셉의 아들로서의 30년 준비기간에 있어서의 그의 생활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고통의 생활이었다는 것입니다.
만민의 구주답게 산 줄 알고 있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의붓아버지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동생들에게까지도 비난받는 자리에서 고통의 생활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고통은 예수 일신을 위한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4천년 동안 수고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내가 아니면 잃었던 가정을 다시 찾을 자가 없다는 것을 아시고 일구월심 하늘을 대한 마음만으로 간절했던 것입니다. 4천년 동안 하나님의 산 말씀을 대신하여 이상세계를 이루기 위하여 생명을 바쳐서 싸웠던 것입니다.
낳을 때부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예수는 죽을 때까지 광야의 생활과 같은 외롭고 힘든 생활을 했습니다. 이런 예수의 외적인 고통도 고통이지만 외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내적 심정 가운데 숨은 고통이란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예수를 믿고 따라야 할 이스라엘민족은 알아야 할 사람을 몰라보고 몰라도 될 사람은 알아 주었습니다.
그가 먹고 입고 마시던 모든 생활은 예수 자신을 넘어 하나님을 위하고 세계 인류를 위하고 민족을 위한 것이었으며, 옮겨 놓는 발자취 또한 그러한 발자취였습니다.
그 사정을 알아 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외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품고 '당신의 마음과 심정을 제가 아오니, 당신의 마음을 위로하는 친구가 되겠나이다'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까지도 예수의 숨은 내적 심정을 위로해 드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생애는 고통의 생활로 점철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파한 3년 공생애 노정이 시작된 날부터 그가 전한 말씀은 자기의 이익을 위하거나 자신의 어떠한 능력을 세우기 위한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하신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씀과 뜻을 가지고 오셨던 예수를, 민족 전체를 대신하여 알아 주고 친구되고자 한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마을에서의 천대거리였고 민족 전체의 천대거리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편안하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이때를 놓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고통의 예수
예수님 당시에는 말씀을 전하는데도 남 몰래 전해야 했고, 말씀을 듣는 데도 숨어서 들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가는 곳이 광야였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예수는 수많은 군중을 광야로 끌고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 했습니다. 그렇게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듯이 예수가 뭇 무리에게 복음을 전파했으나 그것을 환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마음이 아무리 간절해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예수가 부여받은 사명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 수고하면 할수록 그것에 대하여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자가 많았다는 거예요.
따르는 제자들은 흩어지고 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받고 다시 제 2차로 사탄과 싸울 수 있는 힘을 보충하기 위한 예수의 수고를 여러분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30여년의 평생을 불태워서 고통 중의 고통스런 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비단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의 고통이 30여년의 생애의 고통에서 끝난 것으로 아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영계에 가서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는 고통 속에 있는 것입니다.
2천년 역사가 연장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할 하나의 목적을 두고 섭리의 뜻을 대행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이 시간까지도 고통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하나의 고통을 어디 가서 해결할 것인가. 오늘을 책임질 수 있는 여러분을 통하여 그 고통과 수고 속에서 맺힌 한을 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사실을 알진대 여러분 자체들은 예수의 고통스런 손을 붙들고 위로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무친 원한을 대신 짊어지고 위로해야 할 책임이 오늘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환경에서 예수의 고난을 느끼고 고난의 생활을 분석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는 무슨 죄가 있었기에 30여 평생의 고난의 생활, 고통의 생활을 해야만 했었는가.
죄가 있었다면 하나님 앞에 만민을 구원해야 하는 구주로 세움을 받은 죄밖에는 없습니다. 이런 예수가 만민을 위하여 괴로워하고. 만민을 위하여 애타게 부르짖었던 사연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예수를 대하여 오늘 우리들은 회개의 마음이라도 가져야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도 예수 그리스도의 30여년 생애의 고난의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거두어야 할진대, 마굿간에서 태어날 때의 고난에서부터 골고다 산상까지의 고난, 그리고 부활 이후 2천년의 고난의 자국까지도 몽땅 거두어야 합니다. 이러한 전체적인 뜻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의 슬픔은 애타게 부르짖고 고난과 수고의 생애를 거쳐서도 끝나지 않았어요. 오늘날 사람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슬픔이 끝난 줄 알고 있지만 그로 말미암아 오히려 뜻이 연장되어 예수의 슬픔은 풀래야 풀 수 없는 한으로 남아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여러분은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를 슬픔에서 구해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찾기 위하여 6천년 역사가 지난 오늘 날까지 수고하고 원한에 사무친 길을 가고 생명을 내어 놓고 십자가의 길을 갔으니, 여러분은 그러한 예수를 붙들어야 되겠습니다.
예수는 십자가 상에서 죽으면서도 "아바 아버지여……."라고 애타게 호소하였습니다. 4천년 동안 수고한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부르짖던 피의 호소가 이스라엘민족으로 인하여 해원되어야 할 것이었는데, 이스라엘민족이 해원하지 못했으니 그 선조들의 피의 호소를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 것인가. 보답할 도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민족을 대신하여 역사적인 피의 호소의 대가를 치르고 탕감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4천년 동안 수많은 선지선열들의 피어린 호소의 목적이 예수 일신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또 죽은 후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이 땅 위에 피를 뿌리고 간 선조들의 원한이 거두어진 연고로 그들이 땅을 대하여 원망하고, 해원을 요구하던 뜻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때에야 비로소 예수를 앞장 세워 하늘 앞에 경배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해원해 드려야 할 우리
예수님은 후대에 십자가의 죽음의 피를 남겼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피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 앞에 서게 될 때에, 또 여러분의 일생을 보면 여러분의 인생에도 피의 고개가 있었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것은 선지선열의 피의 호소에 대한 보답인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호소에 대한 보답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우리를 오라고 하실 때에 우리는 십자가의 걸음을 통해 예수님을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골고다 산정 십자가 상에서 피로 호소하던 정열이 여러분의 맥박에서 뛰고 있음을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걸어 놓고 여러분을 찾아 주셨는데도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를 몰랐고, 십자가를 걸어놓고 예수님을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죽음 길을 걸으며 십자가를 지시며 나를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나를 위하여 부르짖고 계시고, 무한히 호소하고 있으며, 고통을 당하시며 나를 위해 수고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는 십자가를 사이에 두고 예수님을 대하고 있는데, 누가 이 십자가의 원한을 해원할 것인고.
오늘날 우리들이 해원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해원하기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나의 신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 직후에 막달라 마리아가 "오 주여!…"라고 했을때 예수께서 막으신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의 주를 만난 그 날부터 천국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2천년 동안 가로막혔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남아진 십자가의 원한을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해원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십자가의 고개를 넘고 넘어서 우리를 찾아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남기신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이 땅에 신랑 신부라는 명사를 남기셨습니다. 그래서 기도 가운데 여러분은 신부요 주님은 신랑의 모습으로 여러분에게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신랑으로 나타나시는 주님을 뵈올 때, 여러분은 언제나 십자가의 피의 대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십자가를 폐하고 만대에 복을 빌어 줄 수 있는 길, 십자가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개를 넘어 예수님이 마음대로 우리를 붙들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내 일신을 통하여, 제단을 통하여, 하늘 땅을 통하여 십자가를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불변의 기준을 세우기 전에는 재림역사는 완성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남겨 주신 빛과 물과 기름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빛을 남겨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하여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정을 알게 됩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는 시달릴 대로 시달리고 상처입을 대로 상처를 입은 우리를 고쳐 주기 위해서 예수님은 물과 기름을 남겨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께서 남겨 주신 빛을 밝혀서 자기의 상처를 알아내어 물과 기름으로 그것을 씻어야 하고, 자기가 죄인인 것과 벌거벗은 몸인 것을 알고 예복을 갖추어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이 자기의 심정과 마음에 등불을 밝히어서 자기의 죄를 깨끗이 씻고, 상처를 치료하고, 예복을 입고 난 후에라야 2천년 전에 돌아가신 예수의 소원을 오늘날 여러분이 이루어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마음의 등불을 밝히고, 물로 몸을 깨끗이 씻고, 상처에 기름을 바른 후에 허락하신 예복을 입고서 십자가를 넘어가지고 예수님께 경배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넘어오실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생명의 빛을 발하는 존재들이 되고, 예복을 입고 십자가를 넘어가서 예수님을 붙들고 '주님은 영원히 안식하시옵소서' 하며 경배드릴 수 있는 사랑하는 신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신부들이 나오기를 바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예수님께서 남기신 짐을 풀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마음의 빛을 상속받고, 예수님으로부터 물과 기름의 은사를 받고, 예복을 입음으로써 주 앞에 신부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