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선집 제1권 12편)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영광에 참여하자
1956.07.19 (목), 한국 전본부교회
오늘 드리려 하는 말씀은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영광에 참여하자'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영광에 참여하자'입니다.이러한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① 나를 알아준다는 것
천륜의 뜻을 증거해야 할 세례 요한이 뭇 세계 앞에 그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연고로 예수는 사탄과 싸워야 하는 어려운 관문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사정을 알아주어야 할 이스라엘민족이 예수의 사정을 알아주지 못하고, 사탄이 예수 앞에 놓인 어려운 고난의 길을 재촉하는 입장에서, 온 천상천하의 어떠한 존재라도 예수를 알아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입장에 홀로 서서, 천상의 뜻을 알지 못하는 민족에게 예수는 그 뜻을 전하려 하였습니다.
자신이 내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무지한 백성 앞에 전해야 할 사명을 느낀 예수는 자기의 일신을 만민 앞에 세워 놓고 하나님만이 알아준다는 하나의 마음을 의지하여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희망과 새로운 결심을 민족앞에 선포하기 위해 나섰던 것입니다.오늘 말씀은 이러한 내용으로서 중요한 말씀입니다.
사람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하면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가질 때 오는 것입니다.더군다나 자신의 과거를 알아주고 현실을 알아주고 나아가서 자신의 미래까지 알아주는 어떤 친구나 어떠한 동지, 또는 스승을 가졌다 할진대 그는 행복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안식의 터는 그런 분들의 품을 중심하고 이루어지는 것이고, 또 그런 분들이 계시는 환경을 통해서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상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해서 자신을 알고 계셨고, 30평생을 통하여 자신을 아시며, 영원하신 섭리의 뜻을 통하여 자신을 알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신을 알아주셨듯이 인간 세상에서 만 인간들을 역사를 통하여 알아주어야 했었고, 그들의 생활을 통하여 알아주어야 했었으며, 미래를 통하여 알아주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이것을 아신 예수님은 인간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해야 할 중심적인 존재가 바로 자기 자신임을 느끼면 느낄수록 어떠한 형태로라도 민족 앞에 하나님의 앎을 증거해야 했던 것입니다.
② 하나님의 알아주심을 민족에게 증거해야 했던 예수님
먼저 예수가 증거하고자 한 것은, 자신은 하나님의 뜻 앞에 4천년 동안 거쳐온 섭리노정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의 인연을 대표한 존재라는 것이었습니다.4천년 섭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예수를 알아주었듯이 전체 이스라엘민족을 하나님에게 영도해야 할 책임을 느낀 예수는 자신의 생애노정에서 하나님의 앎을 민족 앞에 나타내려 했던 것입니다.
또 그의 30평생 이후의 섭리노정에서 온 인류가 자신의 미래의 이상과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게 될 때, 예수는 하늘로부터 인류가 자기를 알아주는 이상세계까지 그의 일신을 통하여 인류 앞에 알려주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을 느꼈습니다.
과거로부터 현실로, 현실로부터 미래에 이루어질 영원한 천상세계의 일이나 지상의 일이나, 또 어떤 존재물이 무한한 시기를 거쳐 예수님 한분에게로 미쳐지는 섭리역사가 남아 있음을 생각할 때, 이 섭리를 하늘 앞에 알려주는 것이 예수만의 사명이 아니었고, 천천만 성도들 앞에 알려주는 것도 예수만의 사명이 아니었으며, 역사적인 선조들 앞에 알려주는 것도 예수만의 사명이 아니었습니다.
전체를 대신하여 뜻 앞에 선 예수는 하나님이 자신을 알아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민족을 알아줘야 되었고, 예수가 하나님을 대신하듯이 민족이 예수를 대신해야 함을 민족에게 알게 해야 했으며, 예수가 하나님을 알아주듯이 민족이 예수를 알아주어야 할 관계를 맺지 않으면 예수는 일생에서 앎의 행복을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예수님은 천상을 향하여서는 하나님과 더불어 기뻐할 수 있으되 지상을 대하여서는 사람을 알아주지 못한 연고로 기뻐할 수 없는 입장에 설 수밖에 없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하늘만을 알아달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그가 전한 복음은 하늘만을 위한 복음이 아니었습니다.그의 말씀이나 수고하심이나 모든 어려운 싸움은 역사적인 민족을 위함이었고, 역사를 이끌어 갈 미래의 민족을 위함이었습니다.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예수를 대하던 당시의 사람들은 몰랐습니다.예수가 하나님을 알듯이 땅 위의 사람들이 예수를 알아주었던들, 예수의 생애가 그토록 서러움으로 엉클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③ 하나님과 예수님이 서로 알아주신 정도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수를 알아주었는데 어디까지 알아주셨는가. 하나님은 예수를 어떻게 알아주셨는가.창조 역사의 기원에서부터 인류 역사의 과정을 통하여, 역사의 인연을 통하여, 그 당시 현실사회 전체에까지, 더 나아가서는 예수의 미래의 이상까지 알아주셨습니다.
무지한 백성 앞에 나타난 예수는 하늘의 분부를 받고 자기 일신을 세워 수고하였습니다.그리고 역사노정에서 무한정 수고하신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에 사무쳐 싸웠습니다.또, 역사과정에 수고하신 선조들을 위로하고 역사과정에 어려 있는 서러움을 해원하려 했던 것입니다.하나님은 예수를 이러한 존재로 세우신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을 위한 마음이 있었고, 그 마음을 인간 앞에 전하고 싶은 애달픈 심정이 있었습니다.이러한 애달픈 마음이 예수님에게 남아있는 이상 예수님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애달플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인간이 책임을 못한 연고로 하나님이 서러움 속에, 그리고 슬픔 속에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예수를 어느 정도까지 아셨는가.아담 가정을 중심삼은 신랑 신부의 이념을 통하여 자녀의 영광을 온 세계에 드러낼 수 있는 예수로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있었는가.자신을 역사를 대신한 존재로 알아주신다는 것을 아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중심한 가정생활에서부터 현실 생애노정에까지 신랑 신부의 믿음을 자신으로 인해 지상에 나타내고 선의 영광까지 지상에 나타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씀은 역사의 원한을 풀어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복종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리아의 사정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도 알았습니다.누구보다도 낮은 자리에서 출발의 터를 닦아야 할 신랑 신부의 믿음을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또 억조창생 중에서 선의 기대를 원하시는 사실도 알았습니다.이렇듯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는 앎을 인간들이 알아주었어야 예수님이 가지신 사랑의 뜻과 인간들이 관계맺을 수 있었는데 당시의 인간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은 하나님과 의논할 수 있었으되 사람과는 의논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입니다.예수님의 앎과 원한의 심정, 그리고 땅 위에서의 구원섭리를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니 예수님의 서러움이 온 천하를 잃은 서러움보다 더 큰 것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겠습니다.
④ 사랑은 3시대를 거쳐 완성
사랑은 1대에서 완성하지 못하면 3시대를 거쳐 갑니다.맨 처음에는 천륜의 사랑을 거쳐 부모의 사랑을 거쳐 부부의 사랑을 거쳐갑니다. 우리는 이렇듯 타락과 인간들의 거듭되는 실수 때문에 복귀노정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 중에서 성년이 될 때까지는 부모의 사랑을 받는 시기입니다.그 시기가 지난 후 자기를 중심삼은 사랑의 시기가 신랑 신부 시기입니다.그 다음에는 자녀를 대하는 사랑의 시기가 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6천년 역사를 섭리해 오시는데 있어서 예수님이 올 때까지는 어떠한 사랑의 시기였는가.예수님을 내세워서 하나님이 친히 부모로서 사랑을 주는 시기였습니다.그 뒤 예수님이 부모의 사랑권을 벗어나 자신의 가정생활을 건설하는 것이 신랑신부의 시기입니다.
그러면 이제 와야 할 시기는 어떤 시기인가.신랑 신부의 이념을 땅위에서 종결짓는 시기입니다.그리하여 땅 위에서 예수님이 내적인 하나님이 뜻을 중심하고 가정적인 기대를 땅 위에 전개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영적 신랑 신부의 생활을 땅 위에 전개시켜야 합니다.영적인 하늘의 가정생활을 땅 위에 전개시켜 지상에서 역사를 대표한 가정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후 2천년 역사를 거친 후 이제는 천상과 지상이 합하여 내적인 형과 외적인 형이 결부하여 하나의 실체를 이룸으로써 그와 관계를 맺어야 된다는 것입니다.여러분들은 자체를 중심삼고 새로운 부모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부모의 시기에는 새로운 자녀를 양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새로운 자녀로 말미암아 새로운 신랑 신부의 이념을 땅 위에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이러한 이상이 역사노정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⑤ 예수님이 오신 목적
그러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무엇이냐.내적인 가정형과 외적인 신랑 신부의 이념과 자녀의 생활을 총결산하는 것이었습니다.외적인 기반에서만이 아니라 안팎이 연하여 상대적인 기준을 종결지음으로써 천륜의 운세는 어느누구에게든지 내적인 것으로부터 하나의 기준을 세울 수 있는 역사적인 가정 형태의 복귀노정을 거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누구를 통해서든지 현실과 역사적인 사실 뿐만 아니라 결정적인 사실로서 여러분은 하나님이 예수를 세울 때까지의 가정적인 생활형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신약을 중심삼고 2천년 동안 섭리하던 노정의 신랑 신부의 실증적인 내용을 여러분 자체들이 갖지 않으면 신랑 신부의 기준을 당당히 찾아 나설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존할 수 있고 실존할 수 있는 하나의 실체적인 선의 자녀를 땅 위에 두고, 부끄러움의 자녀가 아니라 죄악 역사를 완전히 벗어난, 어떠한 원수도 참소 못할 자녀를 세운 후에는 감추었던 천상의 비밀의 심정을 알고 실체형인 나를 세워 하늘의 사랑을 받고, 하늘과 의논하고, 주고 받게 되는 하늘과의 인연을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신앙생활을 통하여 믿고 있는 예수, 하나님이 알아주셨던 그 예수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여러분이 예수를 아는 정도는 어느 정도인가?여러분은 신랑 신부의 모습을 예수와 성신으로만 알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일생에서 가정의 실체적인 사랑을 통하고 내적인 사랑을 거쳐서 영원한 생의 발판, 영원한 구원을 이루는 승리의 발판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하늘의 이상과 하늘의 소망은 여러분과 관계가 없게 됩니다.나아가 그것은 하나님 것은 될 수 있고 예수와 성신의 것은 될 수 있으되 내 것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님 알기를 예수님 그 자체만을 알아서는 아니 되겠습니다.그런고로 예수를 중심삼고 화합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예수를 알아주시던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와 이퀄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그는 지상에서 역사를 대신하고 현세를 대신하고 미래를 대신하여 당당코 나설 수 있을 것입니다.그러한 하나의 존재가 이 땅위에 나타난다 할진대는, 그 자체는 역사를 아는 자요 예수의 섭리를 아는 자요 예수가 소망하는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자일 것입니다.
이러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을 제시하여도 하나님 앞에 감사드릴 수 있는 사람, 어떠한 환경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예수는 내가 어떤 무엇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강한 하나님의 희망과 사랑이 동해야 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이 변하고 역사가 변하고 천지가 혼돈되는 마당에서도, 최후의 순간에서까지도 예수가 생각했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하면, 인간이었습니다.인간을 위해 끊을 수 없는 영원한 관계를 맺어 영원한 생명과 중심의 심정을 대신하려 했던 것입니다.그런고로'십자가도 오너라, 죽음도 어서 오너라'고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생활을 통하여, 생애를 통하여 그러한 느낌을 느끼지 못한다 할진대, 여러분은 예수를 안다 해도 모르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섭리노정의 전반적인 역사 형태를 대표하고, 전체 역사를 대표하고 영원한 역사를 대표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동적인 심정과 정적인 심정에까지 통할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그리하여 역사에 맺힌 한을 해원하여 만민 앞에 나타나야 되겠습니다.그러한 사람으로 나타나지 못한다 할진대, 예수가 찾고 또 요구하고 있는, 즉 하늘이 알아주는 자녀라 할 수 없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러한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자신이 먹는 밥 한 숟갈을 놓고도 하나님께 감사를 돌릴 것이고, 숨쉬는 그 한 숨결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⑥ 하늘이 알아주는 자녀
천지의 운세가 말없이 돌아가는 것과 같이 내 마음도 새롭게 무한히 돌아가기를 바라는데, 어찌하여 그러하지 못하는가, 천지의 힘과 사랑이 연하여 천륜의 원칙의 기준이 연하여 있다는 것을 우리는 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오늘날 우리들은 내 생활에서, 예수가 하나님을 알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를 알아야 되겠습니다.그리고 예수가 하나님의 한을 알아 예수 일신의 영광이 하늘 앞에 돌아간 것과 같이, 나를 통하여 나의 영광을 예수에게 돌릴 수 있게끔 예수를 따라가겠다는 마음이라도 가져야 되겠습니다.예수가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아는데 우리가 예수를 알지 못하면 예수의 숙명적인 소원은 어디에 가서 풀것인가, 오늘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를 위하여 순간 순간은 산다고 할는지 모르겠습니다.여러분은 뭇 나라와 뭇 민족을 위하여 존재할 수 있어야겠습니다.역사의 종말시대까지 그 흐름과 천륜의 심정을 영원히 느끼며 만물의 주인공으로서 하늘의 영광을 노래하고 하늘에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의 소망이라 할진대 내 한 자체가 예수를 대신하여 하늘 앞에 영광을 돌려야 되겠습니다.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꿈과 같은 사실을 꿈이 아닌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어야겠습니다.하나님의 소원은 그러한 뜻을 종결짓는 것입니다.하나님과 예수의 심정에 사무쳐 있던 그 요구와 그 소망이 여러분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습니다.만일 이런 예수님의 심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좇아 아버지의 대신자가 되고 예수님의 대신자가 될 수 있는, 땅 위에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을 알아준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알아줄 것이요, 하나님이 알아 주는 동시에 예수와 성신도 알아줄 것입니다.또 예수와 성신이 알아주는 동시에 예수와 성신을 연하여 있는 천군천사들이 알아줄 것입니다.그런데 오늘의 인간들은 이런 영광의 은사를 은사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⑦ 승리의 영광을 돌리려면
예수님은 하나님만 알아주셨으나 우리는 하나님도 알아주시고 예수와 성신이 알아줄 것이며 하늘에 있는 천천만 성도들이 알아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 위에서 내가 천상의 하나님을 알 수 있다면 하늘로부터 예수와 성신을 통하여 영계에까지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그런고로 내 한 자체가 이런 인정권 내에 서서 예수님을 통하여 2천년 동안 섭리하시던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이념은 여러분들을 통해서 나타나야 합니다.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복된 무리입니다.예수님이 십자가에 나아가던 때보다 더 복된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위하여 홀로 죽어 갔습니다.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고 예수와 성신을 위해서도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그리하여 천천만 성도들이 우리의 나아가는 길을 옹위하고 우리를 환영할 수 있는 자체들이 되어야겠습니다.`내가 깨달았사오니, 아버지여, 운행하시어서 천천만 성도들이 오늘 나로 말미암아 위로받을 수 있게 하소서'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그럴 때에 여러분은 하늘의 섭리 전체를 대표하여 승리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