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선생말씀선집 - 제6권 2. 소망을 품고 지나가야 할 인생길

만리향 | 20180802150038

  말씀선집 제6권 2편          

                 소망을 품고 지나가야 할 인생길

                                   로마서 8:18-21             1959322(), 전 본부교회




<말 씀> 여러분들에게 잠깐 동안 말씀드리려 하는 제목은 소망을 품고지나가야 할 인생길 입니다.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 드리겠습니다.

 

  소망을 잃어버린 인간

 

  인간이 타락한 연고로 하늘의 참다운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하늘이 허락하셨던 그 소망을 잃어버린 채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차피 태어난 그날부터 죽는 날까지 참다운 소망의 한 길을 찾아서 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여 있다는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타락 전 아담 해와에게 땅에 충만하여 모든 만물을 주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담 해와에게 소망의 한 기준을 허락하신 것이었는데, 인간시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허락하였던그 소망의 기준도 잃어버리고, 더 나아가서는 아담 해와가 완성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영원히 살 수 있는 행복의 동산, 즉 전체적인 이념의 세계까지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참다운 소망의 길을 잃어버린 인간들은, 이 땅에 태어난 이후 잃어버린 그 소망의 길을 다시 찾기 위하여 온갖 곡절의 노정, 싸움의 일로를 걸어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들은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는바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까지 우리 인간은 영원하신 하늘을 중심삼고 무한한 소망권 내에서 영원한 생명을 구가하며 사는 존재가 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은 인간들이 그런 소망권 내에서 살지 못하는 것을 긍휼히 보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비참한 생활 환경을 넘어서서 소망의 한길을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해 주시기 위해 무한히 애쓰셨다는 것입니다.이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땅 위에 태어난 인간들 가운데는 소망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있고,소망을 갖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소망은 인간을 중심삼은 소망과 하늘을 중심삼은 소망의 두 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난 그날부터 어머니 품속이 그 무엇보다도 자기에게 제일좋은 것으로 알고 자라나지만 자라면서 어머니의 품을 떠나게 되고, 다음에는 친구들을 사귀어 친구들이 제일 좋은 것으로 알고 지내지만 친구들과도 헤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점점 자라면서 사랑하는 부모도 자기 소망의 전체가 못 되고, 사랑하는 부부도 자기의 소망의 전체가 못 되고, 더 나아가서는 사랑하는 자녀도 자기 소망의 전체가 못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인간들이 많은 것을 소망하지만 소망하는 그 마음이 사라지고 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정에 대한 소망, 혹은 국가에 대한 소망, 더 나아가서는 세계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지만 연령이 많아짐에 따라 그 소망하는 마음이 점점 약해져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중에는 그 소망을 자기의 전체 소망으로서 자랑하고, 자기의 생명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그렇게 살다가 최후에는 죽음과 싸워서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에 봉착하게 됩니다.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소망

 

  인간은 일생 동안 온갖 소망을 품고 살지만 나중에는 죽음에 부딪쳐 자기가 품었던 소망의 전부를 다 버린 채 가고 만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살기를 바라고 내일도 살기를 바라며 새로운 소망을 찾아 헤매고 있으나, 음에 부딪치게 될 때에는 소망을 갖지 못한 채 절망하면서 최후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기를 중심삼고 볼 때는 소망을 가진 듯하나 죽음의 고개를 넘을 수 있는 소망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소망을 갖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일생의 본으로 알고 죽어갈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죽음도 비웃고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소망을 찾아 그 소망을 즐기면서 갈것이냐? 이것이 오늘날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하늘은 인간적인 소망을 중심삼고 살고 있는 지상의 인간으로 하여금 새로운 소망을 갖고 죽음의 고개도 넘을 수 있고, 영원한 세계를 흠모하면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무한히 애쓰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땅 위의 어떤 소망을 품고 살 것이 아니라 죽음까지도 넘어설 수 있는 소망을 품고 영원한 소망의 세계를 꿈꾸며 생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우리들도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온갖 고난과 죽음을 이기실 수 있었던 이유

 

  예수님은 인간들이 품고 있는 지상의 소망 일체를 어렸을 때부터 다 버리고 사신 분이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자기 가정도 버리고, 자기의 환경도 버리고, 또 자기의 교단도 버리고, 더 나아가서 자기의 국가까지 버릴수 있는 소망, 어느 누가 움직일래야 움직일 수 없는 하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소망을 갖고 살았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린 마음에 품었던 그 소망은 어떠한 어려운 환경에 부딪칠지라도 그것을 넘어설수 있는 철두철미한 불변의 소망이었던 연고로, 꾸준히 자기 갈 길을 달려갔다는 것을 우리들은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두 살 되던 해에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 갔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모는 먼저 돌아오고 예수님만 그곳에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의 부모가 예수님을 찾으러 왔을 때에, 예수님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

? (2:49) 하고 도리어 부모를 책망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오직 아버지에 대한 소망만을 품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철이 들면 들수록 주위환경을 정리하기 위하여 무한히 애쓰셨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늘을 위한 신념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진 그 신념은 어느 누구도 갖지 못한 신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소망의 왕국을, 새로운 소망의 세계를 건설하겠다는 신념을 가졌기 때문에 그의 나아가는 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것들이 그가 품고 있던 소망을 제거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생애 기간에 요셉가정에서 목수의 일을 하셨는데, 자유롭지 못한 환경, 내적으로 고충을 느끼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고 그자리를 극복해 나갔습니다. 하늘을 위하는 마음, 간곡한 소망을 품고 싸워 나가셨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30살이 되매 뜻을 품고, 새로운 각오와 결의를 하고, 모험의 길로 나서게 될 때에 주위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는 길을 옹호하지 않았습니다. 가정은 가정대로 핍박하고, 교회는 교회대로 핍박하고, 사회는 사회대로 핍박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돌아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낙망하실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도 그 어려움을 뚫고 나온 것은, 어느 누구도 가지지 못한 신념, 즉 하나의 소망을 가지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소망과 신념을 품고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하면서 모든 환경을 정리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열두 제자를 세웠으나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그러나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면 몰릴수록, 어느 누구도 그의 심정을 알아주지 못하면 못할수록 그가 더 간절히 생각한 것은 무엇이뇨? 그것은 아버지의 나라였습니다. 아버지의 심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싸움과 어려움에 부딪쳤지만 그것들이 한번 품은 예수님의 그 소망의 심정을 물리쳐 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살아 생전의 생명도 귀하지만 죽음 후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의 마음이 더 컸기에 십자가의 길도 늠름히 넘어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예수님은 죽음을 통하여 하늘과 땅 앞에 소망의 전체를 실제적으로 증거하였던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 십자가 도상에서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26:39)라고 기도하신 예수께서는 그 마음에 죽음의 공포가 휩쓸면 휩쓸수록 소망의 날이 가까워온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철저히 느끼셨던 것입니다.

  육신의 죽음을 넘고 난 후에는 새로운 소망의 세계가 그 앞에 전개될것을 느끼며 그 세계를 동경하였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죽음 이후에 영원한 자유의 몸으로 부활하기를 소망하고 동경하였기 때문에, 죽은 후에 부활의 영광을 입을 수 있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소망에 대한 자각과 신념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믿는 신도들은 땅 위에 남아질 수 있는 어떤소망을 붙들고 사는 것보다도 영원한 세계에 남아질 수 있는 소망을 붙들고 사는 것이 얼마나 더 귀한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도들은 신앙생활을 통하여 중요시해야 할 그 영원한 소망을 중요시하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한 세계와 연결될 수있는 소망을 붙들고 그 소망으로 인해 모든 것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참다운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

  예수뿐만이 아니라 과거의 모든 선지선열들도 죽음의 길을 개의치 않고 그 길을 갔습니다. 모든 사람이 비웃는 것도 개의치 않고 갔습니다. 핍박도 개의치 않고 갔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이 그 모든 어려움의 길을 걸어간 것은 그들이 어느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소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소망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을 통하여 자기 심중에 연결되어 들어오는 간절한 소망을 가졌던 연고로, 죽음의 길 핍박의 길 고난의 길을 개의치 않고 갔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

   

  인간들은 지금까지 마음으로 선한 것을 동경하고 더 좋은 것을 동경해 나왔습니다. 오랜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하늘을 잊지 못하고 그 마음으로 사모하며 몸으로 노력해 나왔습니다. 하늘은 누구나 다 동경해야 하는 것이요, 모든 인간이 지향해야 할 하나의 목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수많은 인류들이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늘을 소망의 기준으로 대하여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에게는 하늘을 소망하는 사무친 마음이 환경을 뚫고 나가도록 충격을 주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주는 이런 충격의 횟수가 줄어든다 할진대, 여러분은 죽음에 봉착하여 쓰러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어렸을 때 품은 뜻을, 싸우는 중에도, 싸우다가 쓰러지는 그자리에서도, 쓰러졌다가 부활한 후에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소망을 일생 동안 저버리지 않고 하늘을 붙들고 싸웠던 연고로 예수님은 만민이 살 수 있는 소망의 길을 개척하게 되었고, 만민이 의지할 수 있는 소망의 중심존재로 세워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은 무엇을 소망해야 되겠습니까? 죽음의 고개를 넘어 부활의 영광을 차지하고 싶은 소망, 부활의 영광을 차지한 후에는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딸이 되고 싶은 소망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과 영원히 동거하고, 영원히 하나님을 위하여 살고, 하나님의 참다운 사랑을 찾고 싶은 소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소망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무한한 십자가의 길이 있을지라도, 무한한 고통이 여러분을 휩쓸지라도, 무한한 어려움의 고비 고비가 있을지라도 거기에서 후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당연히 이런 고통을 당할 것을 알고 그것을 몸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확고한 소망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여러분이 되지 않는다 할진대 여러분은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소망과 실천생활

 

  예수님께서 왔다 가신 이후 열두 사도들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에 들어가 무한한 학대를 받았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혔고, 톱에 쓸려 죽었으며, 혹은 기름가마에 넣어져 죽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소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소망은 죽음보다 더 강했고, 어떠한 고난보다 더 강하였으며, 어떠한 무기보다 더 강했습니다. 어떠한 권세보다 더 강하였고, 세상에서 자랑하는 그 무엇보다도 강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무엇보다 강한 소망을 품고 걸어간 그 터전 위에서 기독교가 세워졌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새로운 소망을 품고, 뜻을 세계적으로 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인한다 할진대, 여러분들은 자신들이 품고 있는 그 소망은 어떠한 힘보다도 강한 위력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죽음이 온다 할지라도 이것을 넘어설 수 있고, 전체가 사라지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이걸 넘어설 수 있는 위력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런 변치 않는 소망의 주인공이 되어야만이 여러분은 하늘 앞에 설 수 있으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소망, 단 하나인 내 생명보다도 더 귀한 소망을 품고 하늘을 위하여 충성하는 모습들이 되어 교회를 이루고 민족을 이루었다 할진대, 소망이 없는 이 땅 위에서 그 교회와 민족을 통하여 새로운 소망을 찾는 일이 벌어질 것이며, 소망을 찾지못하여 헤매던 만민이 그들로 말미암아 새로운 소망을 찾게 되리라는 것을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길을 찾아나선 여러분 각자 각자의 심중에는 어느 누구에게 자랑하지 않으면 안 될 소망, 만민 앞에 자랑하지 않으면 안될 소망, 어떠한 공포와 죽음 앞에서도 자랑하지 않으면 안 될 영원불변의 소망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소망을 가지고 있다는 신념 밑에서 어떠한 어려운 환경에 부딪친다 할지라도 그것을 늠름히, 기쁨으로써 넘어갈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늘은 우리 인간이 죽음의 고개를 넘고 난 후에야 영원한 소망, 영원한 행복, 영원한 이념이 있다고 강조하십니다. 실상 하늘은 이 죽음의 고개를 통하여 우리를 찾아 나오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죽음을 박차고 넘어설 수 있는 소망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소망이 없으면 우리들은 이 길을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8:18)는 말을하였던 것입니다. 바울도 역시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철저한 소망의 심정에 사무쳐 어려운 환경을 홀로 책임지고 싸워 나갔던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하늘도 인간들에게 이 소망을 찾아 주기 위하여 수천년 동안 수많은 죽음의 고개를 개의치 않고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천적인 소망을 품고 죽음의 고개를 넘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사람이 되지 못하면 영원한 하늘의 소망을 차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러분은 이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한 말이 아니라 하늘을 대신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모순된 말씀 같으나 인간에게는 모순된 환경을 타개하고 나가야 할 생명의 노정이 남아 있는 연고로 예수는 이러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최후로 남은 문제

 

  이 말씀은 인간 세상의 소망을 소망으로 삼지 말고 영원한 소망을 소망으로 삼으라는 부탁의 말씀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그 길을 가셨습니다. 소망 없는 이 땅 위에 소망을 세우고, 생명이 없던 이 땅 위에 생명의 길을 개척하고, 부활이 없던 이 땅 위에 부활의길을 개척하신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 소망을 어느 때까지 붙들고 나가야 하느뇨? 죽음의 , 부활의 고개를 넘어서 아버지의 보좌 앞에 나아가 아버지의 참다운 사랑을 받을 때까지입니다. 여러분이 그때까지 그 소망을 붙들고 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소망을 품고 그 소망을 바라보면서 결심하기는 쉬우나 소망을 붙들고 싸우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어떤 소망을 품기는 쉬우나 그 소망을 가지고 끝까지 살고, 만민이 그 소망을 갖고 살도록 그 소망의 일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자신이 선두에 서서 죽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길을 늠름히 가셨다는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최후의 부활의 한 날, 소망의 한 날을 바라고 있습니다.모든 사람이 바라고 있는 그 소망의 때는 만민이 즐길 수 있는 소망의 때로되 그 때는 쉽사리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소망은 죽음을이긴 자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소망은 하나님과 더불어 사탄과 싸운 자만이 차지할 것입니다. 그 소망은 하늘을 위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핍박을 받은 자라야만이 차지할 것입니다. 이런 때가 우리 앞에 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 생활 환경을 넘어서고, 죽음의 공포까지도 넘어설수 있는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런 간절한 마음이 여러분에게서 우러나지 않는다 할진대, 그 소망의 한 날을 여러분의 생활권 내에 끌어들여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다운 생활을 한다는 사람은 내가 어떠한 모습으로 죽을 것인고?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7, 80년 살다가 죽는 그 시간에야 나는 어떠한 모습으로 최후의 한 날을 장식할 것이냐? 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죽음의 자리에 가서 다 이루었다. 아버지여,

내 영을 받아 주시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과연 그는 인생 행로에 있어서 승리하신 분이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앞으로 어느 한 날에 죽음을 당하게 되고, 죽음을 앞에 놓고 지난날을 회고해 보게 될 텐데, 그때 어떠한 한 마디의 말을 남기고 갈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길은 친구도 없는 길입니. 사랑하는 부모도 없는 길이요, 사랑하는 형제도 없는 길이요, 사랑하

는 부부, 사랑하는 자녀도 없는 길입니다. 오로지 혼자 가야 하는 길입니. 다시 가볼 수도 없고, 갔다가 올 수도 없는 길, 한번 가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인데, 이 길을 가게 될 때에 여러분은 어떠한 마음을 갖고 갈 것인가? 여러분이 죽음에 봉착하는 그 순간에 그 죽음을 넘어설 수 있

는 소망이 없다 할진대는 거기에서 마지막입니다.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하나님의 뜻을 세워 나온 수많은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었느냐 하면, 죽음의 길 앞에서 후퇴한 자들이 아니라 죽음을 비웃고 죽음을 늠름히 넘어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하늘의 길을 세워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잘 아는 바입니다.

  여러분은 각자 각자가 죽음에 봉착하게 되더라도 이것을 넘어설 수 있는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길을 넘고 나면 나는 하늘 앞에 떳떳이 서게 될 것이라는 소망과, 마음으로 동경하던 세계 그 본향을 향해 기쁨으로 달음질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상세계를 소망하는 마음이

간절하여야만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세상만사는 다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사랑하는 부모, 사랑하는 아내,사랑하는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 나중에는 죽음 앞에 봉착하게 됩니다. 런데 그 죽음까지도 지나가 버리게 하는 승리적인 소망을 가진 자라야만이 하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소망을 성취한 하나님의 아들딸

 

 

  인간은 영물인 고로 그 생명이 영원합니다. 사람들이 하늘 앞에 충성을 다하고, 하늘을 위하여 죽음의 길도 가고, 많은 사람이 싫다 하는 길도 소망을 품고 간 것은 보통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꼈고, 보통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가치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랬기에 죽음의 길도 갈 수

있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동경하는 마음이 현실 생활에서 부딪치는 어떠한 역경과 어려움과 슬픔 혹은 죽음보다도 더 강하지 못하다 할진대, 여러분들은 죽음 앞에서 후회할 자요, 슬픔과 고통 앞에서 후퇴할 자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고개를 넘어 영원한 세계를 가셨기에, 부활의 세계를 건설하였기에 오늘날 우리들도 어차피 죽음의 고개를 넘어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의 소망을 품고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뇨? 인간이 슬퍼하는 죽음의 고개도 기쁨으로 넘어설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늘의 소망을 품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죽음을 앞에 놓고 세상만사를 원망하고 탄식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기뻐하고 하늘 앞에 서서 자기의 죽음의 가치를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하늘은 이러한 소망의 아들딸들을 찾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는 그런 심정에 사무쳐 있었습니다. 그래서 뭇사람이 배척하는 자, 원수들에 의해 죽음을 당하는 자리, 즉 세상에서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불쌍한 처지에 봉착했을지라도 자신의 불쌍한 처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니라 하늘의 소망의 심정에 사무쳐서 원수를 대하여 복 빌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은 깨닫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도 자신이 갖고 있는 소망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이 땅위의 어떠한 귀한 것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요, 내 생명을 희생시키고서라도 이루지 않으면 안 될 귀한 소망이라는 불타는 마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마음이 확실히 자리잡지 않는다 할진대 하늘은 여러분을

믿어줄 수 없다는 것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심정이 되어 있지 않는한 하늘은 여러분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세상만사는 다 버리면서까지 하늘의 소망을 붙들고자 하는 아들, 하늘이 믿고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들을 수천년 동안 찾아 나오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깨달으시고 이제 소망을 가지고 살고, 망을 세우기 위하여 싸우고, 소망을 성취하기 위하여 죽음도 개의치 않고

나서는 사람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 말씀선집 제6권 2편,원문&&&&          

                 소망을 품고 지나가야 할 인생길

                                   로마서 8:18-21             1959322(), 전 본부교회




<말 씀> 여러분들에게 잠깐 동안 말씀드리려 하는 제목은 소망을 품고지나가야 할 인생길 입니다.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 드리겠습니다.

 

  소망을 잃어버린 인간

 

  인간이 타락한 연고로 하늘의 참다운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하늘이 허락하셨던 그 소망을 잃어버린 채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차피 태어난 그날부터 죽는 날까지 참다운 소망의 한 길을 찾아서 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여 있다는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타락 전 아담 해와에게 땅에 충만하여 모든 만물을 주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담 해와에게 소망의 한 기준을 허락하신 것이었는데, 인간시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허락하였던그 소망의 기준도 잃어버리고, 더 나아가서는 아담 해와가 완성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영원히 살 수 있는 행복의 동산, 즉 전체적인 이념의 세계까지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참다운 소망의 길을 잃어버린 인간들은, 이 땅에 태어난 이후 잃어버린 그 소망의 길을 다시 찾기 위하여 온갖 곡절의 노정, 싸움의 일로를 걸어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들은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는바입니다.

 

  세상에 태어나고 보니 소망이 없는 인간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인간들은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긍휼하신 은사로 말미암아 인간들에게 하나의 소망의 약속이 세워졌습니다. 이것은 인간들 앞에 그무엇보다도 다행한 일이요, 복이라면 이 이상 더 복된 일이 없을 정도의

복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까지 우리 인간은 영원하신 하늘을 중심삼고 무한한 소망권 내에서 영원한 생명을 구가하며 사는 존재가 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은 인간들이 그런 소망권 내에서 살지 못하는 것을 긍휼히 보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비참한 생활 환경을 넘어서서 소망의 한길을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해 주시기 위해 무한히 애쓰셨다는 것입니다.이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땅 위에 태어난 인간들 가운데는 소망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있고,소망을 갖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소망은 인간을 중심삼은 소망과 하늘을 중심삼은 소망의 두 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난 그날부터 어머니 품속이 그 무엇보다도 자기에게 제일좋은 것으로 알고 자라나지만 자라면서 어머니의 품을 떠나게 되고, 다음에는 친구들을 사귀어 친구들이 제일 좋은 것으로 알고 지내지만 친구들과도 헤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점점 자라면서 사랑하는 부모도 자기 소망의 전체가 못 되고, 사랑하는 부부도 자기의 소망의 전체가 못 되고, 더 나아가서는 사랑하는 자녀도 자기 소망의 전체가 못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인간들이 많은 것을 소망하지만 소망하는 그 마음이 사라지고 마는 것

을 알고 있습니다. 가정에 대한 소망, 혹은 국가에 대한 소망, 더 나아가서는 세계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지만 연령이 많아짐에 따라 그 소망하는 마음이 점점 약해져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중에는 그 소망을 자기의 전체 소망으로서 자랑하고, 자기의 생명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그렇게 살다가 최후에는 죽음과 싸워서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에 봉착하게 됩니다.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소망

 

  인간은 일생 동안 온갖 소망을 품고 살지만 나중에는 죽음에 부딪쳐 자기가 품었던 소망의 전부를 다 버린 채 가고 만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살기를 바라고 내일도 살기를 바라며 새로운 소망을 찾아 헤매고 있으나, 음에 부딪치게 될 때에는 소망을 갖지 못한 채 절망하면서 최후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기를 중심삼고 볼 때는 소망을 가진 듯하나 죽음의 고개를 넘을 수 있는 소망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소망을 갖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일생의 본으로 알고 죽어갈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죽음도 비웃고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소망을 찾아 그 소망을 즐기면서 갈것이냐? 이것이 오늘날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오늘날 세상만사는 다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가정도 지나가고 국가도 지나가고 세계 혹은 어떤 주의도 다 지나가고 마는데, 최후에 남아져야 할것은 무엇이냐 하면, 죽음과 싸워 승리할 수 있는 하나의 소망일 것입니. 우리에게 그런 소망이 없다면 우리는 인생의 패배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태어나면서부터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일체의 소망을 거부하고, 생활하면서 인간적인 것 일체를 거부하고, 인간 세상의 소망이 아닌 새로운 하늘의 소망, 영원한 소망을 품고 사는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인간적인 소망을 중심삼고 살고 있는 지상의 인간으로 하여금 새로운 소망을 갖고 죽음의 고개도 넘을 수 있고, 영원한 세계를 흠모하면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무한히 애쓰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땅 위의 어떤 소망을 품고 살 것이 아니라 죽음까지도 넘어설 수 있는 소망을 품고 영원한 소망의 세계를 꿈꾸며 생활해

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우리들도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온갖 고난과 죽음을 이기실 수 있었던 이유

 

  예수님은 인간들이 품고 있는 지상의 소망 일체를 어렸을 때부터 다 버리고 사신 분이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자기 가정도 버리고, 자기의 환경도 버리고, 또 자기의 교단도 버리고, 더 나아가서 자기의 국가까지 버릴수 있는 소망, 어느 누가 움직일래야 움직일 수 없는 하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소망을 갖고 살았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린 마음에 품었던 그 소망은 어떠한 어려운 환경에 부딪칠지라도 그것을 넘어설수 있는 철두철미한 불변의 소망이었던 연고로, 꾸준히 자기 갈 길을 달려갔다는 것을 우리들은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두 살 되던 해에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 갔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모는 먼저 돌아오고 예수님만 그곳에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의 부모가 예수님을 찾으러 왔을 때에, 예수님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

? (2:49) 하고 도리어 부모를 책망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오직 아버지에 대한 소망만을 품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철이 들면 들수록 주위환경을 정리하기 위하여 무한히 애쓰셨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늘을 위한 신념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진 그 신념은 어느 누구도 갖지 못한 신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소망의 왕국을, 새로운 소망의 세계를 건설하겠다는 신념을 가졌기 때문에 그의 나아가는 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것들이 그가 품고 있던 소망을 제거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생애 기간에 요셉가정에서 목수의 일을 하셨는데, 자유롭지 못한 환경, 내적으로 고충을 느끼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고 그자리를 극복해 나갔습니다. 하늘을 위하는 마음, 간곡한 소망을 품고 싸워 나가셨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30살이 되매 뜻을 품고, 새로운 각오와 결의를 하고, 모험의 길로 나서게 될 때에 주위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는 길을 옹호하지 않았습니다. 가정은 가정대로 핍박하고, 교회는 교회대로 핍박하고, 사회는 사회대로 핍박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돌아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낙망하실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도 그 어려움을 뚫고 나

온 것은, 어느 누구도 가지지 못한 신념, 즉 하나의 소망을 가지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소망과 신념을 품고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하면서 모든 환경을 정리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열두 제자를 세웠으나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그러나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면 몰릴수록, 어느 누구도 그의 심정을 알아주지 못하면 못할수록 그가 더 간절히 생각한 것은 무엇이뇨? 그것은 아버지의 나라였습니다. 아버지의 심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싸움과 어려움에 부딪쳤지만 그것들이 한번 품은 예수님의 그 소망의 심정을 물리쳐

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면서부터 소망을 붙들고 끝까지 싸워 나갔습니다. 교단과 민족이 예수님을 배반하고 제자들까지도 배반했지만 소망을 버리지 않았고, 더 나아가서는 자신이 십자가에 달릴 것을 알면서도 소망을 붙들고 후퇴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물론 살아 생전의 생명도 귀하지만 죽음 후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의 마음이 더 컸기에 십자가의 길도 늠름히 넘어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예수님은 죽음을 통하여 하늘과 땅 앞에 소망의 전체를 실제적으로 증거하였던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 십자가 도상에서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26:39)라고 기도하신 예수께서는 그 마음에 죽음의 공포가 휩쓸면 휩쓸수록 소망의 날이 가까워온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철저히 느끼셨던 것입니다.

  육신의 죽음을 넘고 난 후에는 새로운 소망의 세계가 그 앞에 전개될것을 느끼며 그 세계를 동경하였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죽음 이후에 영원한 자유의 몸으로 부활하기를 소망하고 동경하였기 때문에, 죽은 후에 부활의 영광을 입을 수 있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소망에 대한 자각과 신념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믿는 신도들은 땅 위에 남아질 수 있는 어떤소망을 붙들고 사는 것보다도 영원한 세계에 남아질 수 있는 소망을 붙들고 사는 것이 얼마나 더 귀한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도들은 신앙생활을 통하여 중요시해야 할 그 영원한 소망을 중요시하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한 세계와 연결될 수있는 소망을 붙들고 그 소망으로 인해 모든 것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참다운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

  예수뿐만이 아니라 과거의 모든 선지선열들도 죽음의 길을 개의치 않고 그 길을 갔습니다. 모든 사람이 비웃는 것도 개의치 않고 갔습니다. 핍박도 개의치 않고 갔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이 그 모든 어려움의 길을 걸어간 것은 그들이 어느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소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소망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을 통하여 자기 심중에 연결되어 들어오는 간절한 소망을 가졌던 연고로, 죽음의 길 핍박의 길 고난의 길을 개의치 않고 갔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믿는 신자들은 소망에 불타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죽은 후에 이루어질 소망만을 갖고 믿어서는 안 될것입니다. 그 소망을 현실로 끌어들여 현실 생활권 내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있다할진대 그는 진정으로 승리한 신앙자라고 볼 수 있으며, 땅 위의 어떤 소망을 가진 자가 아니라 영원한 소망을 가진 자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이런 소망이 거짓이라면, 수천년 동안 하늘이 인간들에게 하늘 대한 소망을 가지라고 강조하였던 이 모든 사실들이 거짓이라면, 하늘은 말할 수 없이 거짓된 존재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을 기만하여도 이이상 더 기만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인간들은 지금까지 마음으로 선한 것을 동경하고 더 좋은 것을 동경해 나왔습니다. 오랜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하늘을 잊지 못하고 그 마음으로 사모하며 몸으로 노력해 나왔습니다. 하늘은 누구나 다 동경해야 하는 것이요, 모든 인간이 지향해야 할 하나의 목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수많은 인류들이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늘을 소망의 기준으로 대하여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에게는 하늘을 소망하는 사무친 마음이 환경을 뚫고 나가도록 충격을 주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주는 이런 충격의 횟수가 줄어든다 할진대, 여러분은 죽음에 봉착하여 쓰러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세상적인 모든 소망을 다 저버리고 영원하신 하늘의 소망을 붙들고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세상을 중심한 일체의 소망을 밀어낼 수 있는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런 신념이 없다 할진대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고통의 길, 핍박의 길, 혹은 죽음의 길을 걷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영원한 소망을 찾아 나서는 데 있어서, 내적 외적으로 어떠한 어려움이 부딪쳐 오더라도 이소망과 바꿀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렸을 때 품은 뜻을, 싸우는 중에도, 싸우다가 쓰러지는 그자리에서도, 쓰러졌다가 부활한 후에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소망을 일생 동안 저버리지 않고 하늘을 붙들고 싸웠던 연고로 예수님은 만민이 살 수 있는 소망의 길을 개척하게 되었고, 만민이 의지할 수 있는 소망의 중심존재로 세워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은 무엇을 소망해야 되겠습니까? 죽음의 고개를 넘어 부활의 영광을 차지하고 싶은 소망, 부활의 영광을 차지한 후에는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딸이 되고 싶은 소망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과 영원히 동거하고, 영원히 하나님을 위하여 살고, 하나님의 참다운 사랑을 찾고 싶은 소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소망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무한한 십자가의 길이 있을지라도, 무한한 고통이 여러분을 휩쓸지라도, 무한한 어려움의 고비 고비가 있을지라도 거기에서 후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당연히 이런 고통을 당할 것을 알고 그것을 몸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확고한 소망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여러분이 되지 않는다 할진대 여러분은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소망과 실천생활

 

  예수님께서 왔다 가신 이후 열두 사도들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에 들어가 무한한 학대를 받았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혔고, 톱에 쓸려 죽었으며, 혹은 기름가마에 넣어져 죽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소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소망은 죽음보다 더 강했고, 어떠한 고난보다 더 강하였으며, 어떠한 무기보다 더 강했습니다. 어떠한 권세보다 더 강하

였고, 세상에서 자랑하는 그 무엇보다도 강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무엇보다 강한 소망을 품고 걸어간 그 터전 위에서 기독교가 세워졌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새로운 소망을 품고, 뜻을 세계적으로 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인한다 할진대, 여러분들은 자신들이 품고 있는 그 소망은 어떠한 힘보다도 강한 위력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죽음이 온다 할지라도 이것을 넘어설 수 있고, 전체가 사라지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이걸 넘어설 수 있는 위력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런 변치 않는 소망의 주인공이 되어야만이 여러분은 하늘 앞에 설 수 있으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잘 믿는다고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그렇게 자랑하던 사람들도 일시에 사라져 버리는 것을 왕왕 보아 왔습니다. 아무나 잘 믿는다고 자랑한다 할지라도 최후의 죽음의 고개를 넘어 승리한 소망의 한 중심존재로 서지 못한다 할진대, 그는 결국 인생의 패배자가 되고 만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소망, 단 하나인 내 생명보다도 더 귀한 소망을 품고 하늘을 위하여 충성하는 모습들이 되어 교회를 이루고 민족을 이루었다 할진대, 소망이 없는 이 땅 위에서 그 교회와 민족을 통하여 새로운 소망을 찾는 일이 벌어질 것이며, 소망을 찾지

못하여 헤매던 만민이 그들로 말미암아 새로운 소망을 찾게 되리라는 것을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길을 찾아나선 여러분 각자 각자의 심중에는 어느 누구에게 자랑하지 않으면 안 될 소망, 만민 앞에 자랑하지 않으면 안될 소망, 어떠한 공포와 죽음 앞에서도 자랑하지 않으면 안 될 영원불변의 소망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소망을 가지고 있다는 신념 밑에서 어떠한 어려운 환경에 부딪친다 할지라도 그것을 늠름히, 기쁨으로써 넘어갈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된다 할진대, 여러분은 세상의 기쁨을 차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의 기쁨을 차지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찾아진 생명은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는 생명이 아니라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입니다. 또 그런 소망을 찾는 사람이 있다고 할진대, 그는 인간들이 부르짖고 있는 사랑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소망을 찾은 사람이 되었다 할진대, 그는 영원하신 아버지의 아들딸로서 만민 앞에 서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격자라고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땅 위의 소망이 아닌, 죽음의 고개에 막혀지는 소망이 아니라 죽음의 고개를 박차고 넘어설 수 있는 소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런 소망을 우리 자체가 갖지 못한다 할진대, 죽음의 고개를 넘어 우리를 찾아오신 하늘의 섭리역사는 실패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하늘은 우리 인간이 죽음의 고개를 넘고 난 후에야 영원한 소망, 영원한 행복, 영원한 이념이 있다고 강조하십니다. 실상 하늘은 이 죽음의 고개를 통하여 우리를 찾아 나오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죽음을 박차고 넘어설 수 있는 소망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소망이 없으면 우리들은 이 길을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8:18)는 말을하였던 것입니다. 바울도 역시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철저한 소망의 심정에 사무쳐 어려운 환경을 홀로 책임지고 싸워 나갔던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하늘도 인간들에게 이 소망을 찾아 주기 위하여 수천년 동안 수많은 죽음의 고개를 개의치 않고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천적인 소망을 품고 죽음의 고개를 넘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사람이 되지 못하면 영원한 하늘의 소망을 차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러분은 이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한 말이 아니라 하늘을 대신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모순된 말씀 같으나 인간에게는 모순된 환경을 타개하고 나가야 할 생명의 노정이 남아 있는 연고로 예수는 이러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최후로 남은 문제

 

  이 말씀은 인간 세상의 소망을 소망으로 삼지 말고 영원한 소망을 소망으로 삼으라는 부탁의 말씀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그 길을 가셨습니다. 소망 없는 이 땅 위에 소망을 세우고, 생명이 없던 이 땅 위에 생명의 길을 개척하고, 부활이 없던 이 땅 위에 부활의길을 개척하신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 소망을 어느 때까지 붙들고 나가야 하느뇨? 죽음의 , 부활의 고개를 넘어서 아버지의 보좌 앞에 나아가 아버지의 참다운 사랑을 받을 때까지입니다. 여러분이 그때까지 그 소망을 붙들고 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소망을 품고 그 소망을 바라보면서 결심하기는 쉬우나 소망을 붙들고 싸우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어떤 소망을 품기는 쉬우나 그 소망을 가지고 끝까지 살고, 만민이 그 소망을 갖고 살도록 그 소망의 일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자신이 선두에 서서 죽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길을 늠름히 가셨다는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최후의 부활의 한 날, 소망의 한 날을 바라고 있습니다.모든 사람이 바라고 있는 그 소망의 때는 만민이 즐길 수 있는 소망의 때로되 그 때는 쉽사리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소망은 죽음을이긴 자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소망은 하나님과 더불어 사탄과 싸운 자만이 차지할 것입니다. 그 소망은 하늘을 위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핍박을 받은 자라야만이 차지할 것입니다. 이런 때가 우리 앞에 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 생활 환경을 넘어서고, 죽음의 공포까지도 넘어설수 있는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런 간절한 마음이 여러분에게서 우러나지 않는다 할진대, 그 소망의 한 날을 여러분의 생활권 내에 끌어들여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다운 생활을 한다는 사람은 내가 어떠한 모습으로 죽을 것인고?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7, 80년 살다가 죽는 그 시간에야 나는 어떠한 모습으로 최후의 한 날을 장식할 것이냐? 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죽음의 자리에 가서 다 이루었다. 아버지여,

내 영을 받아 주시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과연 그는 인생 행로에 있어서 승리하신 분이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앞으로 어느 한 날에 죽음을 당하게 되고, 죽음을 앞에 놓고 지난날을 회고해 보게 될 텐데, 그때 어떠한 한 마디의 말을 남기고 갈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길은 친구도 없는 길입니. 사랑하는 부모도 없는 길이요, 사랑하는 형제도 없는 길이요, 사랑하

는 부부, 사랑하는 자녀도 없는 길입니다. 오로지 혼자 가야 하는 길입니. 다시 가볼 수도 없고, 갔다가 올 수도 없는 길, 한번 가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인데, 이 길을 가게 될 때에 여러분은 어떠한 마음을 갖고 갈 것인가? 여러분이 죽음에 봉착하는 그 순간에 그 죽음을 넘어설 수 있

는 소망이 없다 할진대는 거기에서 마지막입니다.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하나님의 뜻을 세워 나온 수많은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었느냐 하면, 죽음의 길 앞에서 후퇴한 자들이 아니라 죽음을 비웃고 죽음을 늠름히 넘어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하늘의 길을 세워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잘 아는 바입니다.

  여러분은 각자 각자가 죽음에 봉착하게 되더라도 이것을 넘어설 수 있는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길을 넘고 나면 나는 하늘 앞에 떳떳이 서게 될 것이라는 소망과, 마음으로 동경하던 세계 그 본향을 향해 기쁨으로 달음질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상세계를 소망하는 마음이

간절하여야만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세상만사는 다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사랑하는 부모, 사랑하는 아내,사랑하는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 나중에는 죽음 앞에 봉착하게 됩니다. 런데 그 죽음까지도 지나가 버리게 하는 승리적인 소망을 가진 자라야만이 하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고통의 길이나 슬픔의 길을 원하지 않습니다. 어떤 기쁨의 장면이 있으면 그 기쁨의 장면이 지나가는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고, 기쁜 사실이 있었다 할진대 그때를 그리는 것이 인간의심성입니다.

 

  소망을 성취한 하나님의 아들딸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슬픔과 기쁨이 뒤넘이치고 있는 세상입니다.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기쁨은 죽음과 더불어 사라지는 기쁨, 즉 죽음을 넘어서 남아질 수 있는 기쁨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슬픔이 죽음과 더불어 사라지고, 즐거움도 죽음과 더불어 사라진다면, 인간이 기쁨을 찾고 더 좋은 것을 바라며 영원한 세계를 동경하는 그 마음도 죽음과 더불어 끝날 것이냐? 아닙니다. 마음이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심정이 그런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그런 세계가 실제로 있다는 증거입니다.

  인간은 영물인 고로 그 생명이 영원합니다. 사람들이 하늘 앞에 충성을 다하고, 하늘을 위하여 죽음의 길도 가고, 많은 사람이 싫다 하는 길도 소망을 품고 간 것은 보통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꼈고, 보통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가치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랬기에 죽음의 길도 갈 수

있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동경하는 마음이 현실 생활에서 부딪치는 어떠한 역경과 어려움과 슬픔 혹은 죽음보다도 더 강하지 못하다 할진대, 여러분들은 죽음 앞에서 후회할 자요, 슬픔과 고통 앞에서 후퇴할 자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고개를 넘어 영원한 세계를 가셨기에, 부활의 세계를 건설하였기에 오늘날 우리들도 어차피 죽음의 고개를 넘어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의 소망을 품고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뇨? 인간이 슬퍼하는 죽음의 고개도 기쁨으로 넘어설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늘의 소망을 품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죽음을 앞에 놓고 세상만사를 원망하고 탄식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기뻐하고 하늘 앞에 서서 자기의 죽음의 가치를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

습니다. 하늘은 이러한 소망의 아들딸들을 찾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자리에 서서 하늘의 기쁨을 느낀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을래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늘을 대하여 울부짖는 무리가 있다 할진대 하늘이 그 울부짖음에 응답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자신은 그러한 심각한 자리에서 오늘날까지 어느 누구도 갖지 못했던 소망을 갖고 하늘 앞에 울부짖으며 호소한 때가 있었느냐? 런 자리에서 사망의 권한을 물리치고, 승리의 기쁨을 느끼고, 영광을 하늘앞에 돌린 때가 있었느냐? 그러한 일을 이 육신이 죽기 전에 땅 위에서 체험하지 않는다 할진대, 그는 하늘 앞에 설 수 있는 영원한 소망을 가진 자라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는 그런 심정에 사무쳐 있었습니다. 그래서 뭇사람이 배척하는 자, 원수들에 의해 죽음을 당하는 자리, 즉 세상에서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불쌍한 처지에 봉착했을지라도 자신의 불쌍한 처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니라 하늘의 소망의 심정에 사무쳐서 원수를 대하여 복 빌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은 깨닫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도 자신이 갖고 있는 소망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이 땅위의 어떠한 귀한 것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요, 내 생명을 희생시키고서라도 이루지 않으면 안 될 귀한 소망이라는 불타는 마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마음이 확실히 자리잡지 않는다 할진대 하늘은 여러분을

믿어줄 수 없다는 것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심정이 되어 있지 않는한 하늘은 여러분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세상만사는 다 버리면서까지 하늘의 소망을 붙들고자 하는 아들, 하늘이 믿고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들을 수천년 동안 찾아 나오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깨달으시고 이제 소망을 가지고 살고, 망을 세우기 위하여 싸우고, 소망을 성취하기 위하여 죽음도 개의치 않고

나서는 사람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