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선생말씀선집 - 제5권 11.다시 눈을 떠서 하늘을 바라보자

만리향 | 20180725012237


말씀선집 제5권 11편

                        다시 눈을 떠서 하늘을 바라보자

 

                                     마태복음 26:36-46              1959215(), 전 본부교회



<말 씀> 이 시간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려고 하는 제목은 다시 눈을 떠서 하늘을 바라보자 입니다. 다시 눈을 떠서 하늘을 바라보자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담 해와의 무지로 인한 타락의 결과와 하나님의 소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하나님의 창조의 이념이 이루어진 새로운 아침을 바라보지 못한 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기나긴 잠 가운데 흘러 내려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역사가 그러하였거니와 우리가 지니고 있는 마음 역시 그러하며, 우리가 바라는 심정, 우리가 찾고자 하는 모든 것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즉 사탄권 내에서 깊은 잠에 빠져 깨어날 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들은 잘 알고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 해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2:17)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너희는 "만물의 주인공이 되고, 만우주의 주관자가 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만일 말씀하시던 하나님의 심정과 그 말씀을 듣던 아담 해와의 심정이 완전히 하나되었던들 타락이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하늘은 내가 졸고 있을 때나 깨어 있지 못할 때에도 늘 깨어 나를 바라보고 계셨으며, 내가 나의 가치를 알지 못할 때에도 하늘은 내 가치를 알고 나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맡은 바의 책임과 사명과 지켜야 할바의 그 무엇을 알지 못할 때에도 하늘은 그 책임과 사명과 지킬 바의 전

체의 가치를 알고 나를 바라보셨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부자관계의 일체적인 이념권 내에서 , 그 심중에 사무친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히 같이 살아야 할 전체적인 가치를 아시고 아담 해와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는 그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입장에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지 못하였고,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지켜야 할지, 또 자신들이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가를 알지 못한 채타락하였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알고 깨닫고 체휼해야 할 것들

 

  하늘이 아는 것과 인간이 아는 것이 상반되었던 것이 타락의 곡절인 연고로, 이제 우리들은 나를 일으켜 나의 존재를 회상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내가 나를 회상하고 나를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인간에게 이런 의무가 있는 연고로, 수많은 철학자나 종교인들이 이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싸워 나왔으나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입니다. 즉 나라는 존재는 누구의 것이냐 이거예요.

  필연적인 인연을 맺고 있는 인간이라면 그 인연의 주체가 있어야 할 것인데, 우리를 존재케 한 그 주체, 그 주인은 어떤 분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 주체 앞에 얼마만한 가치의 소유물인가? 우리는 이런 것을 밝혀내어 그주인과 나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마음의 주인, 내 몸의 주인, 내 심정의 주인, 그리고 내 생명의 주인이 있다 할진대, 그 주인은 어떤 분일 것인가? ! 그분만이 나의전체를 대신한 분이요, 그분만이 이념을 대신한 분이요, 그분만이 내 생명을 대신한 분이요, 그분은 내게 없어서는 안 될 분입니다 라고 할 수 있는분입니다. 바로 그분을 안 그날 우리는 변하는 역사과정을 거쳐 나오시면서도 변치 않는 주인의 입장에서 우리들을 붙들기 위하여 싸워 나오신 하나님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부터 만사가 해결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상생활권 내에서 하나님께서 어떠한 심정으로 만물을 지으셨는가를 마음으로 느끼고 체휼한 적이 있습니까? 있다 할진대 만물을 붙들고 사랑할 수 있는 감정이 동할 것이며 정이 동할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귀에 쟁쟁함을 느낄 것입니다. 만물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당시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여 즐거운 심정으로 대했어야 할 아담 해와, 다시 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아야 할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과 소유해야 할 것

 

  아담 해와는 자신들로 하여금 만물을 주관하게 하신 하나님의 창조의목적이 어디 있는가를 몰랐습니다. 이렇게 하라 하신 말씀을 지키고 난 후에 올 것, 즉 말씀의 고개를 넘은 후에 올 것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생명에 대한 인식과 생활 감정을 잊어버리지 않고 따먹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지키고 난 후에는 무엇이 올 것인가 하는, 이후에 나타날 것에 대한 흠모의 심정이 그들의 생활을 지배하여 끌고 나갈 수 있었던들, 아담 해와는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을 것입니다.

  흠모의 감정이 없었던 아담 해와는 옆으로 들어오는 천사장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귀한 줄 알았습니다. 거기서부터 인류의 슬픔은 시작되었습니다. 어두운 잠의 기원은 바로 그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순간에 아담 해와가 다시 한번 눈을 떠서 따먹지 말라고 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인식하고, 만물을 주관하라고 축복하신 그 이후에 자신들에게 허락하시려는 그 무엇이 찾아든 천사장의 유혹보다도 크다는 것을 느꼈던들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의 모든 곡절의 근원이 되었으므로, 오늘날 우리들은 나를 찾는 운동을 해야 되겠고, 내게 맡겨진 책임을 찾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그 이후에는 내가 무엇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아담이 장성하여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심정을 갖췄다면 그 다음엔 무엇이 이루어졌을 것인가? 아담의 사랑과 해와의 사랑, 만물의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로 묶어져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전체적인 인연이 완결지어졌을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을 물리치고 다시 눈을 떠 하나님을 재인식할 수 있는 심적인 변혁이 여러분 자체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할진대는, 절실한 심정이 여러분 자체에서 우러나지 않는다 할진대는, 심적인 새로운 존재 의식이 여러분 자체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자기 가치를 자랑하고 싶되 자랑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가치는 하늘과 아무런 인연이 없는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의 생명의 권한을 아무리 자랑한다 할지라도 그것 역시 하늘과는 하등의 인연도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은 천사장의 말을 재분석하여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했던 아담 해와의 입장을 되풀이하는 자리에 서지 말고, 오늘의 나를살펴 제2의 나로서 다시 눈을 떠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순간에서부터 참다운 나의 모습이 싹틀 수 있은것입니다.

   

  다시 눈을 떠서 하늘을 바라보아야 할 이유

 

  우리는 다시 눈을 떠야 되겠습니다. 다시 눈을 떠서 하늘을 바라보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게 될 때에 여러분은 황공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깊은 잠 가운데서, 사망의 세계에서 갈팡질팡 허덕이면서 생의 가치를 잃어버린 채 죽음을 앞에 놓고 탄식해 온 인간들을 하늘은 어느 한 날 어느 한 순간도 잊지 않으시고 지켜보셨고, 배역하는 인류를 몇천만 번이나 재인식하셨다는 것과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느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 순간, 슬픈 일면 고마움의 심정에 사무쳐 통곡하지 않을 수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다시 눈을 떠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를 다시 바라볼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성신과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사명을 맡고 왔다 갔던 수많은 선조들을 다시 바라볼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를 다시 바라보는 동시에 이 시대를 다시 바라보, 앞으로 올 시대를 염려하며 어떻게 될 것인가도 생각하면서 다시 바라 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다시 눈을 떠 하늘을 보면서도 여러분에게 하늘이시여! 하고 울부짖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여러분의 소망은 끊어질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가는 길이 왜 다 막히느냐? 종교를 세워 인도하던 성직자마저도 근본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고 막혀 버리고, 철학이니 과학이니 하는 것도 전부 막히는 원인은 무엇이뇨? 그것은 다시 눈을 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지니고 있던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니 그것을 저버리고 다시 하늘을 바라볼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을 향하는 마음과 하늘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사람, 그 바라보고 싶은 마음으로 슬퍼하는 사람, 그 바라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인류역사를 종결지을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망해 들어가는 국가의 운명을 염려하여 나서는 자가 있다 하더라도 민족을 위해서 먼저 외치면 안 됩니다. 먼저는 북받치는 마음으로 하늘을 위하여 외쳐야 합니다. 그 다음에 민족을 위하여 외쳐야 합니다. 그럴 때 그민족은 살아날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가 증거합니다.

  그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찾아도 찾을 수 없고 허덕여도 해결점이 나지않는 미지의 세계를 추방해 버리고, 본연의 마음으로 돌아가 아무것도 없는 공()의 상태에서 다시 눈을 뜨는 그날, 그 순간은 곧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순간이 될 것이며, 새로운 인생이 출발되는 순간이 될 것이며,새로운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 재창조의 순간이 될 것입니다.

  하늘을 대해 기도하면서 하늘을 찾아 헤맸던 예수였던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30년 준비 기간에 있었던 예수는 형제들이 기뻐한다고 기쁜 표정을 지을 수 없었고, 친척과 이웃이 즐거워한다고 같이 즐거워할 수 없었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에 하늘이 바라는 방향과 전세계 인류의 방향이 너무나 차이가 있는 것을 바라보고, 이 차이가 크면 클수록 예수님은 더 굳은 결심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입을 다물고 지냈던 예수님의 30년 준비 기간의 슬픔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30년 준비 기간이 지난 다음에 예수님은 하나의 개척자로서 가정을 박차고 나섰습니다. "죽음의 고개가 닥쳐와도 나는 간다, 피곤한 길일지라도 나는 간다. 망하는 일이 있더라도 나는 간다"는 마음을 품으시고, 자기의 환경을 청산하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생활 태도

 

  아담이 옆으로 들어오는 말을 통째로 받아들이다가 망한 것처럼, 우리도 흘러 내려오는 사조를 통째로 받아들이다가는 죽는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재감정하여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자신의 마음과 생명과 정적인 이념을 통하여 이것을 감정할 수 있는 주인의 입장에 선다면 어떤 사상이 여러분을 구속하겠습니까? 어떠한 사상도 여러분을 구속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근본 문제가 해결되었던들 여러분의 마음세계에 평화가 찾아졌을 것이며, 여러분의 생활 환경에도 행복이 찾아졌을 것입니다. 자유와 평등을 향유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상을 부르짖고 있는 주의가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심적인 해, 정적인 해방, 이념적인 해방을 시켜 준 주의는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눈을 들어 잠자고 있던 자기 일신을 서러워하고 깨어난 해방의 한날을 소망하고 오늘의 환경을 박차고 나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거기에 주인이 계시다는 것을 인간들은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타락 이후 4천년 만에 나타난 하나의 청년,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먼저 시대를 부정하고 환경을 부정하고 그때까지의 교단을 부정하고 나섰던 청년 예수는 무엇을 주장했던가? 예수님은 인간이 모르던 하나님의뜻을 주장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품은 예수는 현실의 모든 것이 인생의 전체적인 이념의 재료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는 세상이 배반하여도 이것을 박차고 다시 새로운 눈으로써 새로운 자아를 바라보았고, 새로운 가정, 사회, 국가, 세계를 바라보았으며, 나아가 새로운 주의를 늠름히 바라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 가치가 현세적인 어떤 가치보다도 높고 귀하고 크다는 것을 알았던 그였기에 이스라엘이 배반하고 유대교단이 배반하여도 까딱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회와 가정, 어떤 유명한 학자가 배반하고 어떤 제사장이나 교법사가 반대하더라도, 어떤 풍파나 곡절이 사방에서 자기의 일신에 마구 부딪쳐 들어온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까딱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직 다시 눈을 들어 하늘이시여! 하셨습니다. 런 것이 예수님의 생활신조였던 것입니다.

     

  메시아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과 심정 기준을 가져야 할 우리 인간

 

  예수님이 왔다 가신 이후 2천년, 하늘을 위하여 나선 자 가운데 자신의 생명에 애착심이 없었던 사람이 어디 있었으며, 심정에 느껴 오는 슬픔을 느낄 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에 대한 애착과 슬픔보다도 주인의 슬픔과 주인의 생명이 찢기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던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하늘을 향하여 솟구치는 심정을 지녔던 무리였습니다.

  그러한 선조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져 내려온 하늘의 섭리노정은 어디로 갔는가?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노정을 동반하여 내려왔는데 이제 역사의 종말에는 어디로 갈 것인가? 여기에서 끝나고 말 것인가, 아니면 어떠한 새로운 방향을 찾아 다시 갈 것인가? 이렇게 볼 때 이 섭리의 종말시대를 맞이하여 전체를 대신한 피의 제물, 눈물의 제물, 땀의 제물이 되어 하늘이시여! 나를 받으십시오 할 수 있는 한 모습이 나타난다면 그는 이 종말시대의 눈물의 구세주요, 피땀의 구세주요, 생명의 구세주일 것입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자리에서 다시 눈을 떠 바라보아 가지고 자기들이 모르는 제2의 가치와 제2의 인격의 기준을 분별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그렇게 하지 못한다 할진대 여러분은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시더라도 그를 모를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스라엘 민족 60만 대중 앞에 선 모세는 바로 궁중에서 자랐고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목자였습니다. 그 자체를 그냥 바라보면 아무 가치도 없고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천적인 심정과 천적인 인격을 갖추어 나타나게 될 때에 이스라엘 민족은 다시 눈을 떠서 그를 바라보아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였으므로 그들은 모세를 따라 다녔지만 광야에서 다 쓰러졌던 것입니다. 예수시대에도 마찬가지였으며, 오늘날 역사의 종말시대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죄악 역사는 여러분 자신에서부터 청산하여야 합니다. 여러분이 역사에 마이너스 되는 입장에 서면 지옥이요, 플러스 될 수 있는 입장에 서면 천국입니다. 또 시대와 여러분을 비교할 때, 시대가 여러분보다 크면 지옥이, 여러분이 시대보다 크면 천국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 제자를 거느리고 기도하던 예수의 모습을 회상해보면, 그는 천지의 심정을 통하여, 자기의 심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움직이려는 비장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던 곳이 겟세마네 동산 이었습니다. 인류의 심정을 움직여 하늘과 땅, 천정과 지정을 통합시켜야 할 예수가 인정에서 배척을 당하고, 땅에서 축출당하는 입장에 서게 됨으로써 천정의 인연을 맺고 넘어가야 했습니다. 그런 자리가 겟세마네 동산 이었던 것입니다.

  그 자리에 인간을 대표한 세 제자가 같이 있었지만 예수가 느끼는 심정과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느끼는 심정이 달랐습니다.

  천정을 그리며 죽음을 앞에 놓고 재차 하늘을 바라보는 예수의 시선은 죽음의 고개를 넘어 부활의 영광에 사무칠 수 있었으나, 자기를 중심삼고 바라보던 제자들은 천정에 사무친 예수의 심정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염치없는 사람들이었습니. 이것이 하늘을 배반한 선조들의 행동이었습니다.

 

  최후에 남아질 것

 

  우리의 참부모요, 우리의 주인이요, 우리의 신랑이요, 우리의 이념의 주체요, 생명의 주체요, 우리 전체를 대신한 하늘의 실체인 예수는 이렇게 배반하였던 선조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조상들의 후손임을 뼈저리게 느껴 여러분의 심중에 역사적인 인물을 원망하는 사무친 마음이 있습니까?

  제자들이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지 못할 때, 예수는 기도하다가 몇 번이나 제자들을 바라보았는지 모릅니다. 시험에 들지 말라고 권고하는 예수의 조급하고 안타까운 심정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심정을 가진 예수는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면서 자기 자신을 잊은채 사랑하는 제자들을 몇 번이나 생각하고 몇 번이나 바라보셨는지 모릅니. 그러나 세 제자는 그러한 예수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졸고 있었던것입니다. 이는 비단 세 제자들만의 표상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내막을 폭로시킨 일면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비장하고 피눈물이 어린 울부짖음이 귀에 쟁쟁하게 울려 와도 모르고 있습니다. 눈을 들어 다시 바라보라고 소리쳐도 못 듣고 있습니다. 잠들어 있는 인류를 깨우려 몸을 뒤흔들고 머리를 때리고 때려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불쌍한 인류를 찾아 세워 아들딸로 삼는 축복의 한 날을 바라시며 수고하시는 하나님의 서글픈 심정을 아는 자가 이 땅 위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고로 여러분은 선의 이념을 갖고 살 수 있는 본연의 아들딸로서, 하늘의 가슴에 박힌 못 자국을 메우고 역사적인 서글픔을 청산하여 기쁨의대신 존재요, 만물과 온 천하를 대신한 화동의 매개체로서 너는 나의 자랑이요, 나의 사랑이요, 나의 행복의 제일 기준이다 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늘과의 심정의 합일점, 만물과의 심정의 합일점을 찾아 주인의 실체가 되어 하늘 앞에 고스란히 바쳐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순간의 하늘이 바라고 우리 인간이 바라던 종착점이요, 하늘과 우리 인간이 상봉하는 종결점인 것입니다. 그 일은 하나님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추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최후에 남아질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천지의 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권에서 새로운 본연의 심정을 갖춘 자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늘이 허락하실 수 있는 새로운 인간으로 보여질 수 있고, 나타날 수 있는 본연의 완성된 아담 해와의 모습을 갖추어 하나님께서 쌍수를들어 축복하시고 기뻐하실 수 있는, 새롭게 찾아진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영원히 같이 살 수 있는, 인간이 하나님의 친아들딸로 세워져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네가 없어도 안 되고, 내가 없어도 안 되고, 형제가 없어도 안되고, 만물이 없어도 안 되는 하나의 가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가정을 바라고 나오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내 것이 아니에요. 내가 살고 있  는 이 사회가 내 것이 아니에요. 내가 살고 있는 이 국가가 내 것이 아니에요.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하늘이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다시 눈을 들어 제2의 나, 2의 내 것을 찾아 하늘을 향하여 나설 줄 알아야 합니다. 끝날 성도들의 모습은 바로 이런 모습이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끝날의 성도들의 모습

 

  그리하여 인류의 참부모를 모시고 모든 곡절과 슬픔과 원한을 해원하고 여러분 자체의 마음이 몽땅 그 마음에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그럼으로써 어느 한 부분도 기쁨이 안 되는 부분이 없는 기쁨의 자체가 되어서 참부모님께서 너는 나의 사랑이요, 너는 나의 기쁨이요, 너는 나의 선이며 나의행복이라 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나를 부정하고 새로운 인정을` 받아야 할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과 이 땅에서의 생활은 우리에게 천적인 소득을 거두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세상이 가고, 친구가 가고, 부모가 가고, 처자가 가고,땅 위의 모든 것이 다 간다 할지라도 다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간절한 이 마음은 갈 수 없다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다시 눈을 들어 하나님께서 변치 않는 존재이신 것과 같이 나도 변할수 없다 할 수 있는 그 모습, 또 천적인 인연과 축복의 인연을 붙들고 죽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 사정을 땅 위에 남기고 가겠다는 그 마음, 내 심정이 찢기고 사탄의 제물이 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하고 싶은 그 마음, 타락의 조건들을 몰아낼 수 있는 그 마음이 남아지기를 소망하여 허덕이는 내가 되었습니까? 하늘이 찾고 있던 내가 되었습니까? 하늘 앞에 보여 줄 수 있는 내가 되었습니까? 하늘땅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내가 되었습니까? 하늘이시여! 내려오소서. 인류여! 모이소서. 만물이여! 춤을 추소서 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역사적인 비운의 장벽을 헤치고 하늘의 심정을 통하여 잠들어 있는 인간들의 심정을 깨워 일으킬 자는 누구일 것이며, 잠들어 있는 자기 자체를 깨워 일으킬 자는 누구인고? 폭발되어 오는 하늘의 사랑의 심정을 소개할자 그 누구일 것인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여러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밀리고 쫓기며 처참하게 몰려다니더라도, 자신이 그 한 점과 관계맺어야 할 입장에 처한 선봉자가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책임을 갖고 하늘과 땅, 만물 앞에 불러 세워졌으니, 우리는 그 사명과 책임을 다하여 하늘땅의 원한을 풀고 하늘땅의 제2의 소망의 존재로서, 하나님이 모든 원한을 잊고 다시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실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하겠고, 인류가 기쁨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하겠, 만물이 기뻐하고 화동하며 바라볼 수 있는 그러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가 이념의 동산이요, 거기가 본연의 천국이요, 그러한 자리에 화하여 하나의 이념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곳이 지상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소개하기 위하여 하늘은 천만 번 우리를 찾아 깨우치고 일으켜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는 잊었으니, 이 슬픔을 마음에 새겨 이것을 책임지기 위하여 제2의 나를 찾아 허덕일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말씀선집 제5권 11편, 원문 &&&&

                        다시 눈을 떠서 하늘을 바라보자

                                    마태복음 26:36-46              1959215(), 전 본부교회



<말 씀> 이 시간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려고 하는 제목은 다시 눈을 떠서 하늘을 바라보자 입니다. 다시 눈을 떠서 하늘을 바라보자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담 해와의 무지로 인한 타락의 결과와 하나님의 소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하나님의 창조의 이념이 이루어진 새로운 아침을 바라보지 못한 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기나긴 잠 가운데 흘러 내려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역사가 그러하였거니와 우리가 지니고 있는 마음 역시 그러하며, 우리가 바라는 심정, 우리가 찾고자 하는 모든 것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즉 사탄권 내에서 깊은 잠에 빠져 깨어날 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들은 잘 알고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어 놓으시고 손을 들어 축복하실 때의 아담 해와는, 깨어 있는 모습이었고 영원한 이념 세계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목적을 위하여 아담 해와를 지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는 자신들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이며, 어떤 이념밑에서 온 만물을 대해야 하는가를 확실히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이와 같

이 완성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미완성 단계에서 타락이라는 서글픈 과오를 저질렀습니다. 이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 해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2:17)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너희는 "만물의 주인공이 되고, 만우주의 주관자가 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만일 말씀하시던 하나님의 심정과 그 말씀을 듣던 아담 해와의 심정이 완전히 하나되었던들 타락이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말씀하시던 하나님과 말씀을 대하던 아담 해와 사이에는 심정적인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담 해와는 성장과정을 거쳐서 말씀의 목적을 성취하여야만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런 입장에 있었던 아담 해와가 만물과 천사를 볼 때마다, 또 어떤 존재물을 대할적마다 자신들에게 분부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말씀이고, 하나님의 심정이 어떤 심정인가 하는 것을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생각하며 대할 줄 알았던들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위치를 알고 깨어난 심정으로 하늘을 생각하고 하늘의 심정을 생각하였던들, 하나님의 말씀과 옆으로 들어오는 천사장의 말을 분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언제나 깨어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있어야 할 아담 해와요, 언제나 깨어 하나님의 심정과 더불어 있어야 할 아담 해와가 그러한 입장에 서지 못하게 될 때, 천사의 유혹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내가 졸고 있을 때나 깨어 있지 못할 때에도 늘 깨어 나를 바라보고 계셨으며, 내가 나의 가치를 알지 못할 때에도 하늘은 내 가치를 알고 나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맡은 바의 책임과 사명과 지켜야 할바의 그 무엇을 알지 못할 때에도 하늘은 그 책임과 사명과 지킬 바의 전

체의 가치를 알고 나를 바라보셨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부자관계의 일체적인 이념권 내에서 , 그 심중에 사무친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히 같이 살아야 할 전체적인 가치를 아시고 아담 해와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는 그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입장에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지 못하였고,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지켜야 할지, 또 자신들이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가를 알지 못한 채타락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슬픔이 있다 할진대는, 아담 해와를 지어 놓으시고 시간 시간마다 순간 순간마다 그들을 바라보시며 지켜 주시고 위해 주셨던 하나님을 알아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어떤 목적을 향하여 자라기를 고대하고 있는 하늘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 조상이 하늘과 종적인 인연을 맺지 못하였던 연고로, 후손들은 하늘을 모르고 있고,그 자신들의 존재 위치를 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들이 누구의 것이며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을 모르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을 지켜 주시고 책임져 주시며 모든 것을 아시고 바라보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들도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지향해야 하며 무엇을 지켜야 할 것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사랑의 심정으로 인간과 하나될 것을 소망하시고 바라보셨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몰랐던 연고로, 인간들은 사랑의 길을 찾아 헤매고 있으되, 그 목적마저

알지 못한 채 6천년이 경과했습니다.

 

  인간이 알고 깨닫고 체휼해야 할 것들

 

  하늘이 아는 것과 인간이 아는 것이 상반되었던 것이 타락의 곡절인 연고로, 이제 우리들은 나를 일으켜 나의 존재를 회상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내가 나를 회상하고 나를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인간에게 이런 의무가 있는 연고로, 수많은 철학자나 종교인들이 이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싸워 나왔으나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입니다. 즉 나라는 존재는 누구의 것이냐 이거예요.

  필연적인 인연을 맺고 있는 인간이라면 그 인연의 주체가 있어야 할 것인데, 우리를 존재케 한 그 주체, 그 주인은 어떤 분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 주체 앞에 얼마만한 가치의 소유물인가? 우리는 이런 것을 밝혀내어 그주인과 나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마음의 주인, 내 몸의 주인, 내 심정의 주인, 그리고 내 생명의 주인이 있다 할진대, 그 주인은 어떤 분일 것인가? ! 그분만이 나의전체를 대신한 분이요, 그분만이 이념을 대신한 분이요, 그분만이 내 생명을 대신한 분이요, 그분은 내게 없어서는 안 될 분입니다 라고 할 수 있는분입니다. 바로 그분을 안 그날 우리는 변하는 역사과정을 거쳐 나오시면서도 변치 않는 주인의 입장에서 우리들을 붙들기 위하여 싸워 나오신 하나님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부터 만사가 해결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한 주인으로부터 생겨난 우리들이었으니,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 한 자체들을 세워 놓으시고 우리들 앞에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주관하게 하기 위해서 수고하고 계시는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만물을 주관하라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인간을 지어 놓고 만물을 주관하라고 축복하셨던고? 지으신 하나님께서 직접 주관하지 않으시고 인간을 세우시어서, 우리를 세우시어서 만물을주관하라고 축복하신 원인은 어디 있는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의 심정을 인간에게 알게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만물을 주관하라고 축복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신 사정과 심정을 우리 인간들로 하여금 체휼하게 하기 위하여 만물을 주관하라는 축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는 자신들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지키라 하는 것을 지키고, 만물에 대한 자기들의 의식이 높아가는 정도에 따라,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실 때 느끼시던 미의 감정과 사랑의 감정과 만물을 붙들고 기뻐하시던 심정을 체휼하여 만물을 사랑하고 만물 앞에 하나님의 대신적인 입장에서 기뻐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은 하나님의 창조의 심정을 체휼하려는 입장을 떠나 난데없는 사탄의 유, 즉 천사장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느껴서는 안 될 심정을 느끼고 허락하지 않는 곳에 발을 들여 놓아 타락을 저질렀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듯 우리들은 타락한 아담 해와의 후손인 연고로, 오늘날 피조세계를 바라볼 때에 그 마음에 사무쳐 천지 만물을 지으시던 하나님의 기쁨의 심정을 체휼할래야 체휼할 도리가 없는, 영락해 버린 인류가 되어 버렸습니.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 한 자체를 회복하여 주인을 모시는 입장에서 가지고 에덴동산에서 만물을 주관하라고 축복해 주시던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해야 되겠고, 그 심정을 갖고 나설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되지 않는 한 아담 해와가 저질러 놓은 타락의 원한을 풀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상생활권 내에서 하나님께서 어떠한 심정으로 만물을 지으셨는가를 마음으로 느끼고 체휼한 적이 있습니까? 있다 할진대 만물을 붙들고 사랑할 수 있는 감정이 동할 것이며 정이 동할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귀에 쟁쟁함을 느낄 것입니다. 만물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당시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여 즐거운 심정으로 대했어야 할 아담 해와, 다시 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아야 할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과 소유해야 할 것

 

  그도 그럴 것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아담 해와가 그때까지 인지가 발달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연고로 하나님의 심정을 깊이 느낄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생활의 표어로, 느낌 전체의 표어로, 생애의 표어로 그리고자신들의 생명의 표어로 삼고 지켰던들, 옆으로 들어오는 어떠한 유혹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자신들로 하여금 만물을 주관하게 하신 하나님의 창조의목적이 어디 있는가를 몰랐습니다. 이렇게 하라 하신 말씀을 지키고 난 후에 올 것, 즉 말씀의 고개를 넘은 후에 올 것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생명에 대한 인식과 생활 감정을 잊어버리지 않고 따먹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지키고 난 후에는 무엇이 올 것인가 하는, 이후에 나타날 것에 대한 흠모의 심정이 그들의 생활을 지배하여 끌고 나갈 수 있었던들, 아담 해와는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을 것입니다.

  흠모의 감정이 없었던 아담 해와는 옆으로 들어오는 천사장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귀한 줄 알았습니다. 거기서부터 인류의 슬픔은 시작되었습니다. 어두운 잠의 기원은 바로 그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순간에 아담 해와가 다시 한번 눈을 떠서 따먹지 말라고 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인식하고, 만물을 주관하라고 축복하신 그 이후에 자신들에게 허락하시려는 그 무엇이 찾아든 천사장의 유혹보다도 크다는 것을 느꼈던들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의 모든 곡절의 근원이 되었으므로, 오늘날 우리들은 나를 찾는 운동을 해야 되겠고, 내게 맡겨진 책임을 찾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그 이후에는 내가 무엇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아담이 장성하여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심정을 갖췄다면 그 다음엔 무엇이 이루어졌을 것인가? 아담의 사랑과 해와의 사랑, 만물의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로 묶어져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전체적인 인연이 완결지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연고로 오늘날 우리들은 탄식하고 있습니다. 죄악 된 이 땅을 원망하며 살고 있습니다. 생의 진정한 가치와 목적을 알지 못한 채 사탄에게 사로잡혀 생의 노정을 걷고 있으며, 죽음의 가치마저 헤아릴 수 없는 흑암 권세권 내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을 물리치고 다시 눈을 떠 하나님을 재인식할 수 있는 심적인 변혁이 여러분 자체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할진대는, 절실한 심정이 여러분 자체에서 우러나지 않는다 할진대는, 심적인 새로운 존재 의식이 여러분 자체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자기 가치를 자랑하고 싶되 자랑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가치는 하늘과 아무런 인연이 없는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의 생명의 권한을 아무리 자랑한다 할지라도 그것 역시 하늘과는 하등의 인연도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은 천사장의 말을 재분석하여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했던 아담 해와의 입장을 되풀이하는 자리에 서지 말고, 오늘의 나를살펴 제2의 나로서 다시 눈을 떠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순간에서부터 참다운 나의 모습이 싹틀 수 있은것입니다.

  우리가 아직까지 새로이 눈을 떠 보지 못한 연고로 타락으로 얻어진 슬, 타락으로 유전 받은 절망과 비운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날 수 없는 우주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 이상 슬픈 일이 없으며, 이 이상 분한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슬픔과 분함을 풀어야 할 입장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간들은 이런 슬픔과 분함이 어디서 생겼는지조차 모르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들도 불쌍하거니와 그런 모습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불쌍합니까?

  말세에 있어서 모든 것을 재확인하고 재인식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타락한 인간들의 운명입니다. 모든 것을 재인식하여 다시 눈을 뜨는 날, 시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기쁨의 그날, 새로운 나의 가치를 중심삼고 만우주와 인연맺을 수 있는 그 순간, 전체적인 가치를 통합하여 하나님과 끊을 수 없는 사랑의 인연을 맺는 그 순간이 인간들이 알지 못하면서도

허덕이며 찾아 나온 역사적인 행로의 목적이며 생애의 목적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눈을 떠서 하늘을 바라보아야 할 이유

 

  우리는 다시 눈을 떠야 되겠습니다. 다시 눈을 떠서 하늘을 바라보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게 될 때에 여러분은 황공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깊은 잠 가운데서, 사망의 세계에서 갈팡질팡 허덕이면서 생의 가치를 잃어버린 채 죽음을 앞에 놓고 탄식해 온 인간들을 하늘은 어느 한 날 어느 한 순간도 잊지 않으시고 지켜보셨고, 배역하는 인류를 몇천만 번이나 재인식하셨다는 것과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느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 순간, 슬픈 일면 고마움의 심정에 사무쳐 통곡하지 않을 수없을 것입니다.

  하늘이 오늘날까지 우리의 생명을 붙들고 다시 바라보기를 몇 번이나 하셨던고! 하늘은 우리의 생애노정과 이념적인 조건을 붙들고, 우리가 소원하는 일체의 조건을 분들고,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때에도 그 조건을 통하여 우리를 바라보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하나님의 슬픔을 아십니까? 우리의 처참함과 슬픔에 비할 수 없는 하늘의 처참함을 느껴 본 때가 있었습니까? 없다 할진대는 오늘날 6천년 역사의 종말에 서서 이 모든 것을 해결할래야 해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안 된다는 거예요. 이 담을 전부 다깨고 본연의 아담의 위치로 돌아가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할 수 있는 그 한시간이 오기 전에는 인류의 근본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우리들은 다시 눈을 떠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를 다시 바라볼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성신과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사명을 맡고 왔다 갔던 수많은 선조들을 다시 바라볼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를 다시 바라보는 동시에 이 시대를 다시 바라보, 앞으로 올 시대를 염려하며 어떻게 될 것인가도 생각하면서 다시 바라 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다시 눈을 떠 하늘을 보면서도 여러분에게 하늘이시여! 하고 울부짖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여러분의 소망은 끊어질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가는 길이 왜 다 막히느냐? 종교를 세워 인도하던 성직자마저도 근본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고 막혀 버리고, 철학이니 과학이니 하는 것도 전부 막히는 원인은 무엇이뇨? 그것은 다시 눈을 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지니고 있던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니 그것을 저버리고 다시 하늘을 바라볼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을 향하는 마음과 하늘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사람, 그 바라보고 싶은 마음으로 슬퍼하는 사람, 그 바라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인류역사를 종결지을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망해 들어가는 국가의 운명을 염려하여 나서는 자가 있다 하더라도 민족을 위해서 먼저 외치면 안 됩니다. 먼저는 북받치는 마음으로 하늘을 위하여 외쳐야 합니다. 그 다음에 민족을 위하여 외쳐야 합니다. 그럴 때 그민족은 살아날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가 증거합니다.

  그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찾아도 찾을 수 없고 허덕여도 해결점이 나지않는 미지의 세계를 추방해 버리고, 본연의 마음으로 돌아가 아무것도 없는 공()의 상태에서 다시 눈을 뜨는 그날, 그 순간은 곧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순간이 될 것이며, 새로운 인생이 출발되는 순간이 될 것이며,새로운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 재창조의 순간이 될 것입니다. (정전으로녹음이 잠시 중단됨)

  하늘을 대해 기도하면서 하늘을 찾아 헤맸던 예수였던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30년 준비 기간에 있었던 예수는 형제들이 기뻐한다고 기쁜 표정을 지을 수 없었고, 친척과 이웃이 즐거워한다고 같이 즐거워할 수 없었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에 하늘이 바라는 방향과 전세계 인류의 방향이 너무나 차이가 있는 것을 바라보고, 이 차이가 크면 클수록 예수님은 더 굳은 결심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입을 다물고 지냈던 예수님의 30년 준비 기간의 슬픔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30년 준비 기간이 지난 다음에 예수님은 하나의 개척자로서 가정을 박차고 나섰습니다. "죽음의 고개가 닥쳐와도 나는 간다, 피곤한 길일지라도 나는 간다. 망하는 일이 있더라도 나는 간다"는 마음을 품으시고, 자기의 환경을 청산하실 수 있었습니다.

(정전으로 녹음이 잠시 중단됨)

 

  예수님의 생활 태도

 

  아담이 옆으로 들어오는 말을 통째로 받아들이다가 망한 것처럼, 우리도 흘러 내려오는 사조를 통째로 받아들이다가는 죽는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재감정하여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자신의 마음과 생명과 정적인 이념을 통하여 이것을 감정할 수 있는 주인의 입장에 선다면 어떤 사상이 여러분을 구속하겠습니까? 어떠한 사상도

여러분을 구속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근본 문제가 해결되었던들 여러분의 마음세계에 평화가 찾아졌을 것이며, 여러분의 생활 환경에도 행복이 찾아졌을 것입니다. 자유와 평등을 향유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상을 부르짖고 있는 주의가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심적인 해, 정적인 해방, 이념적인 해방을 시켜 준 주의는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눈을 들어 잠자고 있던 자기 일신을 서러워하고 깨어난 해방의 한날을 소망하고 오늘의 환경을 박차고 나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거기에 주인이 계시다는 것을 인간들은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그러면 역사노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나온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이? 그들은 시대를 박차고 오! 하늘이여! 하였던 사람들이며, 땅을 박차고 하늘을 향하여 솟구쳐 오르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시대에 용납을 받지 못하였고, 그 시대에는 낙오자와 같은 입장에 서서 불쌍한 생애의 노정을 걸어갔습니다. 이들은 인간세상에서 불쌍하다면 지극히 불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남들은 잘도 의지하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의지할 아무것도 갖지 못하고, 자기의 심정을 털어놓고 의논할 수있는 친구도, 자기와 더불어 생명을 걸고 싸워 줄 어떤 동지도 갖지 못한채 그들은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타락 이후 4천년 만에 나타난 하나의 청년,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먼저 시대를 부정하고 환경을 부정하고 그때까지의 교단을 부정하고 나섰던 청년 예수는 무엇을 주장했던가? 예수님은 인간이 모르던 하나님의뜻을 주장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품은 예수는 현실의 모든 것이 인생의 전체적인 이념의 재료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는 세상이 배반하여도 이것을 박차고 다시 새로운 눈으로써 새로운 자아를 바라보았고, 새로운 가정, 사회, 국가, 세계를 바라보았으며, 나아가 새로운 주의를 늠름히 바라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 가치가 현세적인 어떤 가치보다도 높고 귀하고 크다는 것을 알았던 그였기에 이스라엘이 배반하고 유대교단이 배반하여도 까딱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회와 가정, 어떤 유명한 학자가 배반하고 어떤 제사장이나 교법사가 반대하더라도, 어떤 풍파나 곡절이 사방에서 자기의 일신에 마구 부딪쳐 들어온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까딱하시

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직 다시 눈을 들어 하늘이시여! 하셨습니다. 런 것이 예수님의 생활신조였던 것입니다.

  자기를 부정하는 환경을 보고 무한히 슬픔을 느꼈던 예수는 자신을 바라보시는 하나님께서 슬퍼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몸둘 바를 모를 만큼 죄송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예수에게는 자신을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4년 동안 보내 주신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배척한 무리에 대해 가슴에 맺힌 서글픔의 장벽이 있었고, 그 하나님을 수없이 배반한 인간들에 대한 서글

픔의 장벽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는 자기 일신이 죽음의 제물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슬퍼하시고 인류를 위하여 싸워 나오신 안타까운 심정에 비하면 초개만도 못하다고 느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부정하고 하늘의 심정을 앞세워 머리 숙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여기서부터 인류의 새로운 각성은 촉구되었고 제2의 자아가 출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인류는 회생의 봄을 맞이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4천년간 슬픔과 어두운 잠 가운데 있던 인류가 예수를 믿었다면 새로운 봄을 맞이하고 회생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과 심정 기준을 가져야 할 우리 인간

 

  예수님이 왔다 가신 이후 2천년, 하늘을 위하여 나선 자 가운데 자신의 생명에 애착심이 없었던 사람이 어디 있었으며, 심정에 느껴 오는 슬픔을 느낄 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에 대한 애착과 슬픔보다도 주인의 슬픔과 주인의 생명이 찢기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던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하늘을 향하여 솟구치는 심정을 지녔던 무리였습니다.

  그러한 선조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져 내려온 하늘의 섭리노정은 어디로 갔는가?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노정을 동반하여 내려왔는데 이제 역사의 종말에는 어디로 갈 것인가? 여기에서 끝나고 말 것인가, 아니면 어떠한 새로운 방향을 찾아 다시 갈 것인가? 이렇게 볼 때 이 섭리의 종말시대를 맞이하여 전체를 대신한 피의 제물, 눈물의 제물, 땀의 제물이 되어 하늘이시여! 나를 받으십시오 할 수 있는 한 모습이 나타난다면 그는 이 종말시대의 눈물의 구세주요, 피땀의 구세주요, 생명의 구세주일 것입니다.

  그러한 분이 있어 그러한 섭리를 책임진다 할진대, 그는 천적인 조건을 동반하여 지상에 나타날 것이며, 천적인 심정을 대신하여 지상에 나타날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선지자를 대하게 될 때, 그분의 천적인 심정과 천적인 인격은 모를지라도 현실을 부정하고 다시 바라볼 줄 아는 마음이라

도 가질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자리에서 다시 눈을 떠 바라보아 가지고 자기들이 모르는 제2의 가치와 제2의 인격의 기준을 분별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그렇게 하지 못한다 할진대 여러분은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시더라도 그를 모를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스라엘 민족 60만 대중 앞에 선 모세는 바로 궁중에서 자랐고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목자였습니다. 그 자체를 그냥 바라보면 아무 가치도 없고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천적인 심정과 천적인 인격을 갖추어 나타나게 될 때에 이스라엘 민족은 다시 눈을 떠서 그를 바라보아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였으므로 그들은 모세를 따라 다녔지만 광야에서 다 쓰러졌던 것입니다. 예수시대에도 마찬가지였으며, 오늘날 역사의 종말시대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죄악 역사는 여러분 자신에서부터 청산하여야 합니다. 여러분이 역사에 마이너스 되는 입장에 서면 지옥이요, 플러스 될 수 있는 입장에 서면 천국입니다. 또 시대와 여러분을 비교할 때, 시대가 여러분보다 크면 지옥이, 여러분이 시대보다 크면 천국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천지 운세를 따라 나온 인간들은 천지 운세를 조정할 수 있는 날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한 날을 바라보시며 6천년의 기나긴 세월을 역사해 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천지 운세를 따라 나오던 역사의 슬픔을 박차고 이 운세를 주관할 수 있는 하나의 용자를 찾아 헤맨것이 하나님의 6천년 복귀섭리노정이라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이것을 회복하고 찾아야 할 운명에 처하여 있는 우리들은 제2 의 나의 눈을 가지고, 2의 나의 생명의 감촉을 느끼면서, 2의 나의 이념을 찾아, 2의 나의 인격을 갖추어 그 가치를 자랑하여야 합니다. 그리

하여 천지 운세를 대신하여 여러분을 세워 놓고 복 빌어 줄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나야만 6천년 섭리는 종결될 수 있습니다. 또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 제자를 거느리고 기도하던 예수의 모습을 회상해보면, 그는 천지의 심정을 통하여, 자기의 심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움직이려는 비장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던 곳이 겟세마네 동산 이었습니다. 인류의 심정을 움직여 하늘과 땅, 천정과 지정을 통합시켜야 할 예수가 인정에서 배척을 당하고, 땅에서 축출당하는 입장에 서게 됨으

로써 천정의 인연을 맺고 넘어가야 했습니다. 그런 자리가 겟세마네 동산 이었던 것입니다.

  그 자리에 인간을 대표한 세 제자가 같이 있었지만 예수가 느끼는 심정과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느끼는 심정이 달랐습니다.

  천정을 그리며 죽음을 앞에 놓고 재차 하늘을 바라보는 예수의 시선은 죽음의 고개를 넘어 부활의 영광에 사무칠 수 있었으나, 자기를 중심삼고 바라보던 제자들은 천정에 사무친 예수의 심정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염치없는 사람들이었습니. 이것이 하늘을 배반한 선조들의 행동이었습니다.

 

  최후에 남아질 것

 

  우리의 참부모요, 우리의 주인이요, 우리의 신랑이요, 우리의 이념의 주체요, 생명의 주체요, 우리 전체를 대신한 하늘의 실체인 예수는 이렇게 배반하였던 선조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조상들의 후손임을 뼈저리게 느껴 여러분의 심중에 역사적인 인물을 원망하는 사무친 마음이 있습니까?

  제자들이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지 못할 때, 예수는 기도하다가 몇 번이나 제자들을 바라보았는지 모릅니다. 시험에 들지 말라고 권고하는 예수의 조급하고 안타까운 심정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심정을 가진 예수는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면서 자기 자신을 잊은채 사랑하는 제자들을 몇 번이나 생각하고 몇 번이나 바라보셨는지 모릅니

. 그러나 세 제자는 그러한 예수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졸고 있었던것입니다. 이는 비단 세 제자들만의 표상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내막을 폭로시킨 일면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비장하고 피눈물이 어린 울부짖음이 귀에 쟁쟁하게 울려 와도 모르고 있습니다. 눈을 들어 다시 바라보라고 소리쳐도 못 듣고 있습니다. 잠들어 있는 인류를 깨우려 몸을 뒤흔들고 머리를 때리고 때려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불쌍한 인류를 찾아 세워 아들딸로 삼는 축복의 한 날을 바라시며 수고하시는 하나님의 서글픈 심정을 아는 자가 이 땅 위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고로 여러분은 선의 이념을 갖고 살 수 있는 본연의 아들딸로서, 하늘의 가슴에 박힌 못 자국을 메우고 역사적인 서글픔을 청산하여 기쁨의대신 존재요, 만물과 온 천하를 대신한 화동의 매개체로서 너는 나의 자랑이요, 나의 사랑이요, 나의 행복의 제일 기준이다 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심정으로 여러분을 바라보고 계시는데, 오늘 여러분이 눈을 들어 그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에 부활의 기준이 잡혀 있습니?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고 아담 해와에게 이를 주관하라 하신 것은 제2의 창조의 심정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심정을 느껴야 하고, 만물을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신 솜씨와

수고, 그리고 지어진 만물을 보고 기뻐하시던 그 심정을 느껴야 되겠습니.

  여러분은 하늘과의 심정의 합일점, 만물과의 심정의 합일점을 찾아 주인의 실체가 되어 하늘 앞에 고스란히 바쳐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순간의 하늘이 바라고 우리 인간이 바라던 종착점이요, 하늘과 우리 인간이 상봉하는 종결점인 것입니다. 그 일은 하나님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추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최후에 남아질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천지의 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권에서 새로운 본연의 심정을 갖춘 자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늘이 허락하실 수 있는 새로운 인간으로 보여질 수 있고, 나타날 수 있는 본연의 완성된 아담 해와의 모습을 갖추어 하나님께서 쌍수를들어 축복하시고 기뻐하실 수 있는, 새롭게 찾아진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새 천지에 이루어진 새로운 가정의 주인, 새 천지의 새로운 부모,새로운 자녀들의 부모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하나의 가정이 여러분을 중심삼고 이루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수천만 번 바라보시면서 역사 과정을 거쳐오셨는데, 그 역사의 최후의 종착지는 어디일 것인가? 하나님과 인간이 영원히 같이 살 수 있는, 인간이 하나님의 친아들딸로 세워져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네가 없어도 안 되고, 내가 없어도 안 되고, 형제가 없어도 안되고, 만물이 없어도 안 되는 하나의 가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가정을 바라고 나오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내 것이 아니에요. 내가 살고 있  는 이 사회가 내 것이 아니에요. 내가 살고 있는 이 국가가 내 것이 아니에요.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하늘이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다시 눈을 들어 제2의 나, 2의 내 것을 찾아 하늘을 향하여 나설 줄 알아야 합니다. 끝날 성도들의 모습은 바로 이런 모습이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끝날의 성도들의 모습

 

  그리하여 인류의 참부모를 모시고 모든 곡절과 슬픔과 원한을 해원하고 여러분 자체의 마음이 몽땅 그 마음에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그럼으로써 어느 한 부분도 기쁨이 안 되는 부분이 없는 기쁨의 자체가 되어서 참부모님께서 너는 나의 사랑이요, 너는 나의 기쁨이요, 너는 나의 선이며 나의행복이라 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슬픔을 겪어 온 나를 바라보게 될 때에, 나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한 형상을 하고 있는 나였습니다. 이제 수심에 잠긴 그 모습이 희락과 환희와 영광의 모습으로 변하여 춤을 출 수 있는 그런2의 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이 땅 위에 나타나지 않는다 할진대 하나님은 불쌍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나를 부정하고 새로운 인정을 받아야 할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과 이 땅에서의 생활은 우리에게 천적인 소득을 거두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세상이 가고, 친구가 가고, 부모가 가고, 처자가 가고,땅 위의 모든 것이 다 간다 할지라도 다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간절한 이 마음은 갈 수 없다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다시 눈을 들어 하나님께서 변치 않는 존재이신 것과 같이 나도 변할수 없다 할 수 있는 그 모습, 또 천적인 인연과 축복의 인연을 붙들고 죽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 사정을 땅 위에 남기고 가겠다는 그 마음, 내 심정이 찢기고 사탄의 제물이 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하고 싶은 그 마음, 타락의 조건들을 몰아낼 수 있는 그 마음이 남아지기를 소망하여 허덕이는 내가 되었습니까? 하늘이 찾고 있던 내가 되었습니까? 하늘 앞에 보여 줄 수 있는 내가 되었습니까? 하늘땅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내가 되었습니까? 하늘이시여! 내려오소서. 인류여! 모이소서. 만물이여! 춤을 추소서 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나를 조건으로 하여 천상의 원한을 풀고 지상의 원한을 풀고 만물의 원한을 풀고 천주에 사무친 모든 슬픔을 다 해원하고 하늘을 대신하여 노래하며, 땅을 대신하여 노래하며, 만우주를 대신하여 노래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사탄 대하여 명령할 수 있도록 간곡한 충절의 마음만이 저희에게 남게 해 주시옵소서 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

니다. 그 마음을 가진 자만이 역사의 주인이 되시옵소서, 그 마음을 가진자만이 인류역사를 움직여내게 하소서. 그 마음만이 우리 후손들의 소망의 표적이 되게 하옵소서 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고, 그런 마음을 넘겨주어야할 사명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도 이 이념을 위하여 싸웠고, 우리의 선조들도 이 이념을 위하여 싸웠으며, 하나님께서도 이 이념을 위하여 땅을 바라보고 어둠권내의 인간을 깨우쳐 나오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적인 비운의 장벽을 헤치고 하늘의 심정을 통하여 잠들어 있는 인간들의 심정을 깨워 일으킬 자는 누구일 것이며, 잠들어 있는 자기 자체를 깨워 일으킬 자는 누구인고? 폭발되어 오는 하늘의 사랑의 심정을 소개할자 그 누구일 것인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여러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밀리고 쫓기며 처참하게 몰려다니더라도, 자신이 그 한 점과 관계맺어야 할 입장에 처한 선봉자가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책임을 갖고 하늘과 땅, 만물 앞에 불러 세워졌으니, 우리는 그 사명과 책임을 다하여 하늘땅의 원한을 풀고 하늘땅의 제2의 소망의 존재로서, 하나님이 모든 원한을 잊고 다시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실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하겠고, 인류가 기쁨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하겠, 만물이 기뻐하고 화동하며 바라볼 수 있는 그러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가 이념의 동산이요, 거기가 본연의 천국이요, 그러한 자리에 화하여 하나의 이념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곳이 지상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소개하기 위하여 하늘은 천만 번 우리를 찾아 깨우치고 일으켜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는 잊었으니, 이 슬픔을 마음에 새겨 이것을 책임지기 위하여 제2의 나를 찾아 허덕일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