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선집 제1권 2편
승리하는 하나님의 정병이 되자(훈독본)
1956.04.08 (일), 한국 전본부교회
디모데후서 2:1-13
<기 도>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I30s/1
오늘 드릴 말씀은 '승리하는 하나님의 정병이 되자'입니다. 이런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싸움의 감당자요 소망의 실체인 우리
'정병'이라는 말은 본래부터 있었던 말이 아닙니다.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요,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 없었던 말입니다. 즉, 싸움이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 대신 싸움을 감당할 수 있는 아들 딸이 필요했기 때문에 생겨난 말입니다.
이런 아들 딸을 세워서 어느 시기까지 싸움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완성될 수 없겠기에 이런 아들 딸을 택하신 것이고, 변하는 역사를 거듭하여 6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하나님께서 친히 땅을 대하여 사탄과 싸움을 해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 싸움의 역사를 대신 책임지고 최일선에 나와서 실제 전투를 해야 하는 책임자들은 어떤 존재들인가.
하나님이 직접 싸우시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싸우시는 것도 아니며, 성신이 직접 싸우시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과 하나님을 배경으로 잘 믿는 성도들이 이 싸움의 직접적인 책임을 맡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아는 바입니다.
이 싸움은 기필코 종결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왔다 가신 지가 2천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이 싸움이 종결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이 싸움의 터를 넓히고, 승리의 토대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 책임을 감당할 존재들은 누구인가. 바로 아무것도 아닌, 보잘것 없는 우리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걸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소망은 하나님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도 예수 그리스도 자체에 있지 않고, 성신의 소망도 성신 자체에 있지 않고, 선지성현들이 바라는 소망도 그들 자체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름 아닌, 오늘날 이 지상에 남아 있는 보잘것 없는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땅 위에 있는 여러분들을 하늘이 부르고 계신다 할진대는 어떠한 표준을 두고 여러분을 부르고 계시는가. 하나님은 6천년 섭리의 전체를 표준하고 여러분을 부르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6천년, 더 나아가 억천만년 동안 이어온 인류역사를 승리로 종결시켜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버지께서 우리를 부르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시대를 책임지고, 역사를 책임지고, 영원한 섭리를 책임지는 하늘의 참다운 정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크나큰 섭리의 운명을 직접 개척해 나가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가 해야 할 일이 아니고, 성신이 해야 할 일이 아니며, 하나님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늘 정병이 되려면
우리는 이렇듯 크나큰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 자신을 놓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비판해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질문하시더라도 늠름히 대답할 수 있는 내가 되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섭리의 전체를 책임지고 싸울 수 있는, 용기와 긍지와 신념을 갖춘 하늘의 정병이 되었는가?' 라고 아버지께서 물으시더라도 '예 ! 옳소이다'라고 서슴치않고 대답할 수 있는 내가 되었는가…. 하늘은 늠름히 대답할 수 있는 이런 존재를 찾고 계십니다.
그러면, 이런 정병이 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우리 자체에서는 하늘의 정병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늘의 정병이 될 수 있겠는가?
우리가 하늘의 정병이 되려면 이미 대표적인 하늘의 정병으로 나타나신 분, 즉,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 배경으로부터 그의 생애와 그의 이상 전부는 사탄에 대해 자랑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늘의 정병이 되려면 반드시 본받아야 할 내용이요, 조건들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의 말씀도 역시 마찬가지요, 그가 돌아가시며 보여 주신 십자가의 도리 역시 마찬가지이며, 그가 남겨 주신 부활의 도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모든 것은 우리들이 역사적인 모든 싸움을 종결시키고 하늘 정병이 되는데 있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절대적인 조건이요 법도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조건들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도 하늘의 정병이 갖추어야 할 모든 조건들을 구비할 때까지 30여 평생 동안 준비하고, 노력하고, 고생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된 것도 아니고, 어떤 한 순간에 된 것도 아닙니다. 30여년이라는 기나긴 시련의 과정을 거쳐야 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걸으신 노정은 무엇인가. 하늘의 정병으로서 땅 위에서 사탄 대해 승리하려면 넘어야 할 시련의 조건, 시련의 노정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정병으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을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다 이루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 정병으로서 해야 할 사명을 다 이루었다는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하늘 정병이 되신 예수님이셨기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 가신 이후에 하늘은 예수님을 부활시키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 이후 예수님은 하늘에서 성신은 땅에서 역사하시며 2천년 동안 사탄과 싸움을 해오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이 주는 교훈
이제 하늘로부터 불림받은 우리가 지켜 나가야 할 시련의 과정이 남아 있는데 다름 아닌 30여 평생 동안 걸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행로임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30여 평생의 노정을 헤아려 보면, 30년 사생애노정을 걸으시고, 3년 공생애노정을 거쳐서, 3일 무덤기간에 시련을 종결시킨 것입니다.
내 한 개체가 십자가의 도리를 따라가고 부활의 길을 따라가는 것은 물론이요, 전세계 인류가 다 이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나서 부활의 은사를 받으셨는데, 이것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한날에 이루어진 도리가 아니요, 몇 시간에 이루어진 도리가 아닙니다. 기나긴 4천년 역사를 거치신 하나님의 심정과 예수그리스도의 심정이 합해져서 30여 평생 고난의 길을 걸으시고 승리하여 되어진 도리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성경을 읽고 있는데, 성경을 각자의 임의대로 번역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흔히 믿는 사람들은 십자가의 도리가 십자가상에서만 되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30여 평생 잘 먹지 못하고, 잘 입지 못하면서 남 모르는 고난의 생활을 거친 끝에 되어진 도리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남겨진 하늘정병의 조건을 완비한 하나님의 독생자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분석하여 예수를 믿는 시작부터 그리스도의 고난의 노정을 다시 되풀이하여 나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도 시련의 과정을 거쳐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시련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는 싸움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10년도 아니고 20년도 아니고, 30년간 싸우신 그리스도를 본받고, 죽는 것도 겁내지 않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불변의 심정을 본받아아 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남아진 고난의 길과 죽음의 길을 감당하고 십자가를 수호하고, 십자가의 도리를 지켜 나갈 사람이 여러분 자신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왔다 가신 이후, 예수께서 이 땅 위에 쌓아 놓으신 십자가의 성을 수호하고. 격전의 제일보를 내디뎌야 할 책임이 사도들에게 있었습니다. 이제 남아진 십자가의 성을 수호할 책임이 끝날의 성도들에게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최후의 결전에서 승패를 결정짓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는데, 여기에서 남아질 수 있는 정병이 되었는가, 그리스도가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것처럼 나도 다시 소생할 수 있는, 제 2의 부활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중대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계에 가셔서도 싸움을 전개하고 계십니다. 수많은 선한 성도들을 대표해서 사탄과 싸우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영계에서 싸우시는 예수님을 모방하여 지상에서 싸움을 전개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 성신입니다. 그 성신의 협조를 받아 실제로 싸워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즉, 실제적으로 그 싸움을 도맡아 감당하는 하늘정병이 되어야할 우리라는 것입니다.
6천년의 원한을 풀어드려야 할 때
이제 최후의 싸움이 벌어졌는데, 오늘날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싸우는 싸움이 여러분 하나를 위한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 싸움은 하늘로부터 성신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연결된 싸움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싸움의 목적은 사탄을 추방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싸움의 고개를 넘고 넘어 본향까지 가는, 남겨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책임지는 정병이 되어 승리의 개가를 불러야 하겠습니다, 6천년의 원한을 풀어 버리고, 6천년의 소원을 성취한 승리의 정병, 환희의 정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 이후 남겨진 십자가의 성을 책임진, 대표적인 정병으로 나타난 무리가 12사도였습니다. 12사도는 죽음을 넘어서 십자가의 성벽을 수호했고, 몸 마음 다 바치고, 피살을 뿌리면서도 서슴치 않고 십자가의 성벽을 지켰습니다. 하늘은 이런 정병들을 찾고 있습니다.
선지선열들이 복음의 길을 걸으며 뿌린 피의 흔적이 십자가의 성벽에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은 선조들의 원한과 피가 어려 있는 땅이고, 피의 호소가 남아 있는 땅입니다. 이 원한을 풀어 줄 사람이 누구인가 하면, 바로 우리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도 원망스러운 일이지만 선지선열들의 죽음도 원망스러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아울러 선지선열들의 죽음도 원망스러워 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원망을 가질 때가 왔음을 알아야 합니다. 6천년 동안 참고 참던 하늘의 원한을 풀어드려야 할 때는 되었습니다. 이때에 필요한 것이 하늘 정병입니다. 이 시대에 요구되는 것은 하늘 정병입니다.
'아버지여! 6천년의 원한을 나를 통해 폭발하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참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참아들딸이 3천만 민중 가운데 많게 되면 삼천만 민중의 살 길이 열릴 것입니다. 또, 그런 사람들이 제사장이 되어 십자가의 성벽을 지키고, 싸우는 정병이 되면 이 민족은 파멸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렇듯 하늘 정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땅에 오셨다가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는 영계에서 승리의 성전을 쌓으셨고, 그 성전을 넓혀 나왔습니다. 여러분이 영계를 통해 보면 알겠지만, 타락의 흑암이 하나님의 보좌 밑에까지 미쳐졌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싸움을 거듭하고, 수고에 수고를 더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이후 비로소 하나의 터전이 마련되었습니다. 더욱더 이 터전을 넓히기 위한 싸움이 오늘날까지 계속되었고, 땅 위에서도 사탄과의 싸움이 계속되었습니다. 이제 이 싸움을 마무리지을 수 있는 하늘 정병이 나오기를 하늘은 바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분발해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30여 평생, 이 땅에 오셔서 죽음의 십자가의 고개를 넘으실 때까지 수고하시고 싸우셨을 뿐만 아니라 2천년 동안 계속해서 싸우셨다는 것입니다. 이 싸움을 모르는 무지몽매한 인간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에게 호소해야 하겠습니다. 백성들에게 호소하기 전에, 가정과 사회와 세계와 땅에게 호소하기 전에 여러분 자신에게 호소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2천년 동안 뜻을 위해 싸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뜻을 위해 싸워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승리하고 땅에서 승리하여 하늘과 땅이 화답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고, 창조본연의 미를 나타내게 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섭리하신 목적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뜻입니다.
하늘 정병이 알아야 할 것
이제 우리는 하늘 정병이 되어서 십자가의 성벽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이 하늘 정병이 되어야 하는데, 여러분은 자신이 어느 대열에 속해 있는 정병인가 하는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땅의 역사는 하늘의 역사를 형상적으로 전개하는 역사이기 때문에 하늘에 12사도를 중심삼은 12대열의 정병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상에도 이스라엘 12지파형과 같은 12교파와 무수한 지엽적인 대열이 있는 것입니다.
2천년 역사를 거쳐 오면서 이러한 대열이 형성되었는데, 여러분은 어느 대열에 속해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소대와 중대와 대대, 연대. 사단 등으로 편성되어 있는 세상 군대와 마찬가지로 조직적으로 편성된 하늘 군대의 어느 부대에 속해 있는 자신인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들은 어떠한 사명을 중심삼고 명령받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싸움의 과정을 거친 후에 하나의 중심을 중심삼고 전 피조세계가 기뻐할 수 있는 때를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그 중심은 누구인가 하면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인 것입니다.
하늘 정병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사탄과의 싸움을 완결지어 놓고 하나님과 그리스도로부터 상받는 것입니다. 싸움에서 승리를 해가지고 땅에서 하늘의 상을 받는 것입니다.
이제 싸움은 각 방면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또, 하늘 땅 전체에 섭리의 뜻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개체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고, 가정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고, 사회, 국가, 세계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고, 하늘 땅에서 벌어지는 싸움에서 승리하는 정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을 종결짓지 못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각 방면의 부서를 수호하고, 각 방면의 싸움을 종결짓는 정병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로서 승리해 가지고, 몸과 마음이 하나된 연후에 하늘 앞에 경배드려야 비로소 천지 만물이 화동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사도들이 남긴 피의 자국을 거쳐 나가야 하고, 사도들이 지휘하던 중대면 중대, 대대면 대대를 대신 지휘하고 책임져야 하겠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이 지고 계신 책임을 대신 져야 하겠습니다.
하늘 정병의 궁극적인 목표
하늘은 땅 위에 싸움의 터가 남아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땅에서 원한이 맺힌 연고로 땅에서 승리하고 원한을 풀어야, 예수 그리스도의 싸움이 종결되고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오신 다음에는 무엇하시느냐. 6천년 동안 끌어온 싸움을 종결짓고,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쌍수를 들어 축복하시는 잔치. 승리의 정병들이 모여 다 함께 축복받는 잔치가 어린양 잔치인데, 이 어린양 잔치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총사령관이신 하나님이 분부하시는 말씀을 직접 받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 받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요한계시록 14장에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1절)"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 같이 여러분은 아버지의 인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성신의 인도를 받아 나왔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아 나왔는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인을 받아야 땅 위에서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 가서도 영원무궁한 정병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까지 나아가야만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개인이 이런 정병이 된 연후에 전체 인류가 이런 정병이 되게 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싸움에시 승리하여 그리스도의 정병이 되는 동시에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본연의 인간, 창조이상을 완성한 참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런 하늘 정병들이 돌려드리는 호산나의 승리의 개가가 온 땅을 진동시키는 때가 와야 사탄 대한 하나님의 원한이 일시에 풀려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아직까지 싸움은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최후의 공격을 감행하여 싸움의 고개를 넘어 하나님의 인을 받고 하나님 앞에 사탄을 굴복 시킬 수 있는 정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사탄과의 싸움이 종결된다는 것입니다.
성신 앞에 사탄을 굴복시키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사탄을 굴복시켜도 싸움은 끝이 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사탄을 굴복시켜야 싸움이 종결되는 것입니다.
이런 승리의 정병을 만들기 위해 6천년의 섭리역사를 거쳐 오면서 아버지께서 고생하신 것입니다. 이런 아버지를 알아서 여러분이 승리의 하늘 정병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추신: 용량 문제로 저음질로 녹음되었으니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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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오늘 드릴 말씀은 '승리하는 하나님의 정병이 되자'입니다. 이런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싸움의 감당자요 소망의 실체인 우리
'정병'이라는 말은 본래부터 있었던 말이 아닙니다.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요,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 없었던 말입니다. 즉, 싸움이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 대신 싸움을 감당할 수 있는 아들 딸이 필요했기 때문에 생겨난 말입니다.
이런 아들 딸을 세워서 어느 시기까지 싸움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완성될 수 없겠기에 이런 아들 딸을 택하신 것이고, 변하는 역사를 거듭하여 6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하나님께서 친히 땅을 대하여 사탄과 싸움을 해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 싸움의 역사를 대신 책임지고 최일선에 나와서 실제 전투를 해야 하는 책임자들은 어떤 존재들인가.
하나님이 직접 싸우시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싸우시는 것도 아니며, 성신이 직접 싸우시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과 하나님을 배경으로 잘 믿는 성도들이 이 싸움의 직접적인 책임을 맡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아는 바입니다.
이 싸움은 기필코 종결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왔다 가신 지가 2천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이 싸움이 종결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이 싸움의 터를 넓히고, 승리의 토대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 책임을 감당할 존재들은 누구인가. 바로 아무것도 아닌, 보잘것없는 우리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걸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소망은 하나님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도 예수 그리스도 자체에 있지 않고, 성신의 소망도 성신 자체에 있지 않고, 선지성현들이 바라는 소망도 그들 자체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름 아닌, 오늘날 이 지상에 남아 있는 보잘것없는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땅 위에 있는 여러분들을 하늘이 부르고 계신다 할진대는 어떠한 표준을 두고 여러분을 부르고 계시는가. 하나님은 6천년 섭리의 전체를 표준하고 여러분을 부르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6천년, 더 나아가 억천만년 동안 이어온 인류역사를 승리로 종결시켜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버지께서 우리를 부르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시대를 책임지고, 역사를 책임지고, 영원한 섭리를 책임지는 하늘의 참다운 정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크나큰 섭리의 운명을 직접 개척해 나가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가 해야 할 일이 아니고, 성신이 해야 할 일이 아니며, 하나님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늘 정병이 되려면
우리는 이렇듯 크나큰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 자신을 놓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비판해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질문하시더라도 늠름히 대답할 수 있는 내가 되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섭리의 전체를 책임지고 싸울 수 있는, 용기와 긍지와 신념을 갖춘 하늘의 정병이 되었는가?' 라고 아버지께서 물으시더라도 '예 ! 옳소이다'라고 서슴치않고 대답할 수 있는 내가 되었는가…. 하늘은 늠름히 대답할 수 있는 이런 존재를 찾고 계십니다.
그러면, 이런 정병이 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우리 자체에서는 하늘의 정병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늘의 정병이 될 수 있겠는가?
우리가 하늘의 정병이 되려면 이미 대표적인 하늘의 정병으로 나타나신 분, 즉,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배경으로부터 그의 생애와 그의 이상 전부는 사탄에 대해 자랑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늘의 정병이 되려면 반드시 본받아야 할 내용이요, 조건들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의 말씀도 역시 마찬가지요, 그가 돌아가시며 보여 주신 십자가의 도리 역시 마찬가지이며, 그가 남겨 주신 부활의 도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모든 것은 우리들이 역사적인 모든 싸움을 종결시키고 하늘 정병이 되는데 있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절대적인 조건이요 법도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조건들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도 하늘의 정병이 갖추어야 할 모든 조건들을 구비할 때까지 30여 평생 동안 준비하고, 노력하고, 고생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된 것도 아니고, 어떤 한 순간에 된 것도 아닙니다. 30여년이라는 기나긴 시련의 과정을 거쳐야 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걸으신 노정은 무엇인가. 하늘의 정병으로서 땅 위에서 사탄 대해 승리하려면 넘어야 할 시련의 조건, 시련의 노정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정병으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을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다 이루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 정병으로서 해야 할 사명을 다 이루었다는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하늘 정병이 되신 예수님이셨기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 가신 이후에 하늘은 예수님을 부활시키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 이후 예수님은 하늘에서 성신은 땅에서 역사하시며 2천년 동안 사탄과 싸움을 해오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이 주는 교훈
이제 하늘로부터 불림받은 우리가 지켜 나가야 할 시련의 과정이 남아 있는데 다름 아닌 30여 평생 동안 걸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행로임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30여 평생의 노정을 헤아려 보면, 30년 사생애노정을 걸으시고, 3년 공생애노정을 거쳐서, 3일 무덤기간에 시련을 종결시킨 것입니다.
내 한 개체가 십자가의 도리를 따라가고 부활의 길을 따라가는 것은 물론이요, 전세계 인류가 다 이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나서 부활의 은사를 받으셨는데, 이것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한날에 이루어진 도리가 아니요, 몇 시간에 이루어진 도리가 아닙니다. 기나긴 4천년 역사를 거치신 하나님의 심정과 예수그리스도의 심정이 합해져서 30여 평생 고난의 길을 걸으시고 승리하여 되어진 도리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성경을 읽고 있는데, 성경을 각자의 임의대로 번역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흔히 믿는 사람들은 십자가의 도리가 십자가상에서만 되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30여 평생 잘 먹지 못하고, 잘 입지 못하면서 남 모르는 고난의 생활을 거친 끝에 되어진 도리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남겨진 하늘정병의 조건을 완비한 하나님의 독생자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분석하여 예수를 믿는 시작부터 그리스도의 고난의 노정을 다시 되풀이하여 나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도 시련의 과정을 거쳐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시련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는 싸움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10년도 아니고 20년도 아니고, 30년간 싸우신 그리스도를 본받고, 죽는 것도 겁내지 않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불변의 심정을 본받아아 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남아진 고난의 길과 죽음의 길을 감당하고 십자가를 수호하고, 십자가의 도리를 지켜 나갈 사람이 여러분 자신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왔다 가신 이후, 예수께서 이 땅 위에 쌓아 놓으신 십자가의 성을 수호하고. 격전의 제일보를 내디뎌야 할 책임이 사도들에게 있었습니다. 이제 남아진 십자가의 성을 수호할 책임이 끝날의 성도들에게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최후의 결전에서 승패를 결정짓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는데, 여기에서 남아질 수 있는 정병이 되었는가, 그리스도가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것처럼 나도 다시 소생할 수 있는, 제 2의 부활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중대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계에 가셔서도 싸움을 전개하고 계십니다. 수많은 선한 성도들을 대표해서 사탄과 싸우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영계에서 싸우시는 예수님을 모방하여 지상에서 싸움을 전개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 성신입니다. 그 성신의 협조를 받아 실제로 싸워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즉, 실제적으로 그 싸움을 도맡아 감당하는 하늘정병이 되어야할 우리라는 것입니다.
6천년의 원한을 풀어드려야 할 때
이제 최후의 싸움이 벌어졌는데, 오늘날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싸우는 싸움이 여러분 하나를 위한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 싸움은 하늘로부터 성신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연결된 싸움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싸움의 목적은 사탄을 추방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싸움의 고개를 넘고 넘어 본향까지 가는, 남겨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책임지는 정병이 되어 승리의 개가를 불러야 하겠습니다, 6천년의 원한을 풀어 버리고, 6천년의 소원을 성취한 승리의 정병, 환희의 정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 이후 남겨진 십자가의 성을 책임진, 대표적인 정병으로 나타난 무리가 12사도였습니다. 12사도는 죽음을 넘어서 십자가의 성벽을 수호했고, 몸 마음 다 바치고, 피살을 뿌리면서도 서슴치 않고 십자가의 성벽을 지켰습니다. 하늘은 이런 정병들을 찾고 있습니다.
선지선열들이 복음의 길을 걸으며 뿌린 피의 흔적이 십자가의 성벽에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은 선조들의 원한과 피가 어려 있는 땅이고, 피의 호소가 남아 있는 땅입니다. 이 원한을 풀어 줄 사람이 누구인가 하면, 바로 우리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도 원망스러운 일이지만 선지선열들의 죽음도 원망스러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아울러 선지선열들의 죽음도 원망스러워 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원망을 가질 때가 왔음을 알아야 합니다. 6천년 동안 참고 참던 하늘의 원한을 풀어드려야 할 때는 되었습니다. 이때에 필요한 것이 하늘 정병입니다. 이 시대에 요구되는 것은 하늘 정병입니다.
'아버지여! 6천년의 원한을 나를 통해 폭발하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참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참아들딸이 3천만 민중 가운데 많게 되면 삼천만 민중의 살 길이 열릴 것입니다. 또, 그런 사람들이 제사장이 되어 십자가의 성벽을 지키고, 싸우는 정병이 되면 이 민족은 파멸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렇듯 하늘 정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땅에 오셨다가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는 영계에서 승리의 성전을 쌓으셨고, 그 성전을 넓혀 나왔습니다. 여러분이 영계를 통해 보면 알겠지만, 타락의 흑암이 하나님의 보좌밑에까지 미쳐졌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싸움을 거듭하고, 수고에 수고를 더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이후 비로소 하나의 터전이 마련되었습니다. 더욱 더 이 터전을 넓히기 위한 싸움이 오늘날까지 계속되었고, 땅 위에서도 사탄과의 싸움이 계속되었습니다. 이제 이 싸움을 마무리지을 수 있는 하늘 정병이 나오기를 하늘은 바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분발해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30여 평생, 이 땅에 오셔서 죽음의 십자가의 고개를 넘으실 때까지 수고하시고 싸우셨을 뿐만 아니라 2천년 동안 계속해서 싸우셨다는 것입니다. 이 싸움을 모르는 무지몽매한 인간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에게 호소해야 하겠습니다. 백성들에게 호소하기 전에, 가정과 사회와 세계와 땅에게 호소하기 전에 여러분 자신에게 호소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2천년 동안 뜻을 위해 싸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뜻을 위해 싸워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승리하고 땅에서 승리하여 하늘과 땅이 화답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고, 창조본연의 미를 나타내게 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섭리하신 목적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뜻입니다.
하늘 정병이 알아야 할 것
이제 우리는 하늘 정병이 되어서 십자가의 성벽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이 하늘 정병이 되어야 하는데, 여러분은 자신이 어느 대열에 속해 있는 정병인가 하는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땅의 역사는 하늘의 역사를 형상적으로 전개하는 역사이기 때문에 하늘에 12사도를 중심삼은 12대열의 정병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상에도 이스라엘 12지파형과 같은 12교파와 무수한 지엽적인 대열이 있는 것입니다.
2천년 역사를 거쳐 오면서 이러한 대열이 형성되었는데, 여러분은 어느 대열에 속해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소대와 중대와 대대, 연대. 사단 등으로 편성되어 있는 세상 군대와 마찬가지로 조직적으로 편성된 하늘 군대의 어느 부대에 속해 있는 자신인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들은 어떠한 사명을 중심삼고 명령받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싸움의 과정을 거친 후에 하나의 중심을 중심삼고 전 피조세계가 기뻐할 수 있는 때를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그 중심은 누구인가 하면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인 것입니다.
하늘 정병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사탄과의 싸움을 완결지어 놓고 하나님과 그리스도로부터 상받는 것입니다. 싸움에서 승리를 해가지고 땅에서 하늘의 상을 받는 것입니다.
이제 싸움은 각 방면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또, 하늘 땅 전체에 섭리의 뜻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개체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고, 가정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고, 사회, 국가, 세계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고, 하늘 땅에서 벌어지는 싸움에서 승리하는 정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을 종결짓지 못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각 방면의 부서를 수호하고, 각 방면의 싸움을 종결짓는 정병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로서 승리해 가지고, 몸과 마음이 하나된 연후에 하늘 앞에 경배드려야 비로소 천지 만물이 화동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사도들이 남긴 피의 자국을 거쳐 나가야 하고, 사도들이 지휘하던 중대면 중대, 대대면 대대를 대신 지휘하고 책임져야 하겠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이 지고 계신 책임을 대신 져야 하겠습니다.
하늘 정병의 궁극적인 목표
하늘은 땅 위에 싸움의 터가 남아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땅에서 원한이 맺힌 연고로 땅에서 승리하고 원한을 풀어야, 예수 그리스도의 싸움이 종결되고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오신 다음 에는 무엇하시느냐. 6천년 동안 끌어온 싸움을 종결짓고,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쌍수를 들어 축복하시는 잔치. 승리의 정병들이 모여 다 함께 축복받는 잔치가 어린양 잔치인데, 이 어린양 잔치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총사령관이신 하나님이 분부하시는 말씀을 직접 받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 받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요한계시록 14장에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1절)"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 같이 여러분은 아버지의 인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성신의 인도를 받아 나왔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아 나왔는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인을 받아야 땅 위에서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 가서도 영원무궁한 정병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까지 나아가야만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개인이 이런 정병이 된 연후에 전체 인류가 이런 정병이 되게 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싸움에시 승리하여 그리스도의 정병이 되는 동시에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본연의 인간, 창조이상을 완성한 참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런 하늘 정병들이 돌려드리는 호산나의 승리의 개가가 온 땅을 진동시키는 때가 와야 사탄 대한 하나님의 원한이 일시에 풀려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아직까지 싸움은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최후의 공격을 감행하여 싸움의 고개를 넘어 하나님의 인을 받고 하나님 앞에 사탄을 굴복 시킬 수 있는 정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사탄과의 싸움이 종결된다는 것입니다.
성신 앞에 사탄을 굴복시키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사탄을 굴복시켜도 싸움은 끝이 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사탄을 굴복시켜야 싸움이 종결되는 것입니다.
이런 승리의 정병을 만들기 위해 6천년의 섭리역사를 거쳐 오면서 아버지께서 고생하신 것입니다. 이런 아버지를 알아서 여러분이 승리의 하늘 정병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말씀선집 제1권 2편
승리하는 하나님의 정병이 되자 (훈독본)
1956.04.08 (일), 한국 전본부교회
디모데후서 2:1-13
승리하는 하나님의 정병이 되자 (말씀선집 제1권 1편) - YouTube
<기 도>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I30s/1
오늘 드릴 말씀은 '승리하는 하나님의 정병이 되자'입니다. 이런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싸움의 감당자요 소망의 실체인 우리
'정병'이라는 말은 본래부터 있었던 말이 아닙니다.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요,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 없었던 말입니다. 즉, 싸움이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 대신 싸움을 감당할 수 있는 아들 딸이 필요했기 때문에 생겨난 말입니다.
이런 아들 딸을 세워서 어느 시기까지 싸움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완성될 수 없겠기에 이런 아들 딸을 택하신 것이고, 변하는 역사를 거듭하여 6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하나님께서 친히 땅을 대하여 사탄과 싸움을 해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 싸움의 역사를 대신 책임지고 최일선에 나와서 실제 전투를 해야 하는 책임자들은 어떤 존재들인가.
하나님이 직접 싸우시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싸우시는 것도 아니며, 성신이 직접 싸우시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과 하나님을 배경으로 잘 믿는 성도들이 이 싸움의 직접적인 책임을 맡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아는 바입니다.
이 싸움은 기필코 종결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왔다 가신 지가 2천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이 싸움이 종결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이 싸움의 터를 넓히고, 승리의 토대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 책임을 감당할 존재들은 누구인가. 바로 아무것도 아닌, 보잘것 없는 우리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걸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소망은 하나님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도 예수 그리스도 자체에 있지 않고, 성신의 소망도 성신 자체에 있지 않고, 선지성현들이 바라는 소망도 그들 자체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름 아닌, 오늘날 이 지상에 남아 있는 보잘것 없는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땅 위에 있는 여러분들을 하늘이 부르고 계신다 할진대는 어떠한 표준을 두고 여러분을 부르고 계시는가. 하나님은 6천년 섭리의 전체를 표준하고 여러분을 부르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6천년, 더 나아가 억천만년 동안 이어온 인류역사를 승리로 종결시켜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버지께서 우리를 부르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시대를 책임지고, 역사를 책임지고, 영원한 섭리를 책임지는 하늘의 참다운 정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크나큰 섭리의 운명을 직접 개척해 나가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가 해야 할 일이 아니고, 성신이 해야 할 일이 아니며, 하나님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늘 정병이 되려면
우리는 이렇듯 크나큰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 자신을 놓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비판해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질문하시더라도 늠름히 대답할 수 있는 내가 되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섭리의 전체를 책임지고 싸울 수 있는, 용기와 긍지와 신념을 갖춘 하늘의 정병이 되었는가?' 라고 아버지께서 물으시더라도 '예 ! 옳소이다'라고 서슴치않고 대답할 수 있는 내가 되었는가…. 하늘은 늠름히 대답할 수 있는 이런 존재를 찾고 계십니다.
그러면, 이런 정병이 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우리 자체에서는 하늘의 정병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늘의 정병이 될 수 있겠는가?
우리가 하늘의 정병이 되려면 이미 대표적인 하늘의 정병으로 나타나신 분, 즉,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 배경으로부터 그의 생애와 그의 이상 전부는 사탄에 대해 자랑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늘의 정병이 되려면 반드시 본받아야 할 내용이요, 조건들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의 말씀도 역시 마찬가지요, 그가 돌아가시며 보여 주신 십자가의 도리 역시 마찬가지이며, 그가 남겨 주신 부활의 도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모든 것은 우리들이 역사적인 모든 싸움을 종결시키고 하늘 정병이 되는데 있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절대적인 조건이요 법도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조건들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도 하늘의 정병이 갖추어야 할 모든 조건들을 구비할 때까지 30여 평생 동안 준비하고, 노력하고, 고생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된 것도 아니고, 어떤 한 순간에 된 것도 아닙니다. 30여년이라는 기나긴 시련의 과정을 거쳐야 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걸으신 노정은 무엇인가. 하늘의 정병으로서 땅 위에서 사탄 대해 승리하려면 넘어야 할 시련의 조건, 시련의 노정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정병으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을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다 이루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 정병으로서 해야 할 사명을 다 이루었다는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하늘 정병이 되신 예수님이셨기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 가신 이후에 하늘은 예수님을 부활시키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 이후 예수님은 하늘에서 성신은 땅에서 역사하시며 2천년 동안 사탄과 싸움을 해오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이 주는 교훈
이제 하늘로부터 불림받은 우리가 지켜 나가야 할 시련의 과정이 남아 있는데 다름 아닌 30여 평생 동안 걸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행로임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30여 평생의 노정을 헤아려 보면, 30년 사생애노정을 걸으시고, 3년 공생애노정을 거쳐서, 3일 무덤기간에 시련을 종결시킨 것입니다.
내 한 개체가 십자가의 도리를 따라가고 부활의 길을 따라가는 것은 물론이요, 전세계 인류가 다 이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나서 부활의 은사를 받으셨는데, 이것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한날에 이루어진 도리가 아니요, 몇 시간에 이루어진 도리가 아닙니다. 기나긴 4천년 역사를 거치신 하나님의 심정과 예수그리스도의 심정이 합해져서 30여 평생 고난의 길을 걸으시고 승리하여 되어진 도리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성경을 읽고 있는데, 성경을 각자의 임의대로 번역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흔히 믿는 사람들은 십자가의 도리가 십자가상에서만 되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30여 평생 잘 먹지 못하고, 잘 입지 못하면서 남 모르는 고난의 생활을 거친 끝에 되어진 도리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남겨진 하늘정병의 조건을 완비한 하나님의 독생자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분석하여 예수를 믿는 시작부터 그리스도의 고난의 노정을 다시 되풀이하여 나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도 시련의 과정을 거쳐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시련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는 싸움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10년도 아니고 20년도 아니고, 30년간 싸우신 그리스도를 본받고, 죽는 것도 겁내지 않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불변의 심정을 본받아아 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남아진 고난의 길과 죽음의 길을 감당하고 십자가를 수호하고, 십자가의 도리를 지켜 나갈 사람이 여러분 자신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왔다 가신 이후, 예수께서 이 땅 위에 쌓아 놓으신 십자가의 성을 수호하고. 격전의 제일보를 내디뎌야 할 책임이 사도들에게 있었습니다. 이제 남아진 십자가의 성을 수호할 책임이 끝날의 성도들에게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최후의 결전에서 승패를 결정짓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는데, 여기에서 남아질 수 있는 정병이 되었는가, 그리스도가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것처럼 나도 다시 소생할 수 있는, 제 2의 부활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중대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계에 가셔서도 싸움을 전개하고 계십니다. 수많은 선한 성도들을 대표해서 사탄과 싸우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영계에서 싸우시는 예수님을 모방하여 지상에서 싸움을 전개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 성신입니다. 그 성신의 협조를 받아 실제로 싸워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즉, 실제적으로 그 싸움을 도맡아 감당하는 하늘정병이 되어야할 우리라는 것입니다.
6천년의 원한을 풀어드려야 할 때
이제 최후의 싸움이 벌어졌는데, 오늘날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싸우는 싸움이 여러분 하나를 위한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 싸움은 하늘로부터 성신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연결된 싸움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싸움의 목적은 사탄을 추방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싸움의 고개를 넘고 넘어 본향까지 가는, 남겨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책임지는 정병이 되어 승리의 개가를 불러야 하겠습니다, 6천년의 원한을 풀어 버리고, 6천년의 소원을 성취한 승리의 정병, 환희의 정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 이후 남겨진 십자가의 성을 책임진, 대표적인 정병으로 나타난 무리가 12사도였습니다. 12사도는 죽음을 넘어서 십자가의 성벽을 수호했고, 몸 마음 다 바치고, 피살을 뿌리면서도 서슴치 않고 십자가의 성벽을 지켰습니다. 하늘은 이런 정병들을 찾고 있습니다.
선지선열들이 복음의 길을 걸으며 뿌린 피의 흔적이 십자가의 성벽에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은 선조들의 원한과 피가 어려 있는 땅이고, 피의 호소가 남아 있는 땅입니다. 이 원한을 풀어 줄 사람이 누구인가 하면, 바로 우리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도 원망스러운 일이지만 선지선열들의 죽음도 원망스러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아울러 선지선열들의 죽음도 원망스러워 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원망을 가질 때가 왔음을 알아야 합니다. 6천년 동안 참고 참던 하늘의 원한을 풀어드려야 할 때는 되었습니다. 이때에 필요한 것이 하늘 정병입니다. 이 시대에 요구되는 것은 하늘 정병입니다.
'아버지여! 6천년의 원한을 나를 통해 폭발하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참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참아들딸이 3천만 민중 가운데 많게 되면 삼천만 민중의 살 길이 열릴 것입니다. 또, 그런 사람들이 제사장이 되어 십자가의 성벽을 지키고, 싸우는 정병이 되면 이 민족은 파멸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렇듯 하늘 정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땅에 오셨다가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는 영계에서 승리의 성전을 쌓으셨고, 그 성전을 넓혀 나왔습니다. 여러분이 영계를 통해 보면 알겠지만, 타락의 흑암이 하나님의 보좌 밑에까지 미쳐졌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싸움을 거듭하고, 수고에 수고를 더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이후 비로소 하나의 터전이 마련되었습니다. 더욱더 이 터전을 넓히기 위한 싸움이 오늘날까지 계속되었고, 땅 위에서도 사탄과의 싸움이 계속되었습니다. 이제 이 싸움을 마무리지을 수 있는 하늘 정병이 나오기를 하늘은 바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분발해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30여 평생, 이 땅에 오셔서 죽음의 십자가의 고개를 넘으실 때까지 수고하시고 싸우셨을 뿐만 아니라 2천년 동안 계속해서 싸우셨다는 것입니다. 이 싸움을 모르는 무지몽매한 인간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에게 호소해야 하겠습니다. 백성들에게 호소하기 전에, 가정과 사회와 세계와 땅에게 호소하기 전에 여러분 자신에게 호소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2천년 동안 뜻을 위해 싸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뜻을 위해 싸워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승리하고 땅에서 승리하여 하늘과 땅이 화답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고, 창조본연의 미를 나타내게 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섭리하신 목적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뜻입니다.
하늘 정병이 알아야 할 것
이제 우리는 하늘 정병이 되어서 십자가의 성벽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이 하늘 정병이 되어야 하는데, 여러분은 자신이 어느 대열에 속해 있는 정병인가 하는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땅의 역사는 하늘의 역사를 형상적으로 전개하는 역사이기 때문에 하늘에 12사도를 중심삼은 12대열의 정병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상에도 이스라엘 12지파형과 같은 12교파와 무수한 지엽적인 대열이 있는 것입니다.
2천년 역사를 거쳐 오면서 이러한 대열이 형성되었는데, 여러분은 어느 대열에 속해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소대와 중대와 대대, 연대. 사단 등으로 편성되어 있는 세상 군대와 마찬가지로 조직적으로 편성된 하늘 군대의 어느 부대에 속해 있는 자신인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들은 어떠한 사명을 중심삼고 명령받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싸움의 과정을 거친 후에 하나의 중심을 중심삼고 전 피조세계가 기뻐할 수 있는 때를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그 중심은 누구인가 하면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인 것입니다.
하늘 정병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사탄과의 싸움을 완결지어 놓고 하나님과 그리스도로부터 상받는 것입니다. 싸움에서 승리를 해가지고 땅에서 하늘의 상을 받는 것입니다.
이제 싸움은 각 방면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또, 하늘 땅 전체에 섭리의 뜻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개체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고, 가정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고, 사회, 국가, 세계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고, 하늘 땅에서 벌어지는 싸움에서 승리하는 정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을 종결짓지 못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각 방면의 부서를 수호하고, 각 방면의 싸움을 종결짓는 정병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로서 승리해 가지고, 몸과 마음이 하나된 연후에 하늘 앞에 경배드려야 비로소 천지 만물이 화동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사도들이 남긴 피의 자국을 거쳐 나가야 하고, 사도들이 지휘하던 중대면 중대, 대대면 대대를 대신 지휘하고 책임져야 하겠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이 지고 계신 책임을 대신 져야 하겠습니다.
하늘 정병의 궁극적인 목표
하늘은 땅 위에 싸움의 터가 남아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땅에서 원한이 맺힌 연고로 땅에서 승리하고 원한을 풀어야, 예수 그리스도의 싸움이 종결되고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오신 다음에는 무엇하시느냐. 6천년 동안 끌어온 싸움을 종결짓고,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쌍수를 들어 축복하시는 잔치. 승리의 정병들이 모여 다 함께 축복받는 잔치가 어린양 잔치인데, 이 어린양 잔치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총사령관이신 하나님이 분부하시는 말씀을 직접 받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 받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요한계시록 14장에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1절)"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 같이 여러분은 아버지의 인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성신의 인도를 받아 나왔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아 나왔는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인을 받아야 땅 위에서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 가서도 영원무궁한 정병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까지 나아가야만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개인이 이런 정병이 된 연후에 전체 인류가 이런 정병이 되게 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싸움에시 승리하여 그리스도의 정병이 되는 동시에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본연의 인간, 창조이상을 완성한 참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런 하늘 정병들이 돌려드리는 호산나의 승리의 개가가 온 땅을 진동시키는 때가 와야 사탄 대한 하나님의 원한이 일시에 풀려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아직까지 싸움은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최후의 공격을 감행하여 싸움의 고개를 넘어 하나님의 인을 받고 하나님 앞에 사탄을 굴복 시킬 수 있는 정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사탄과의 싸움이 종결된다는 것입니다.
성신 앞에 사탄을 굴복시키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사탄을 굴복시켜도 싸움은 끝이 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사탄을 굴복시켜야 싸움이 종결되는 것입니다.
이런 승리의 정병을 만들기 위해 6천년의 섭리역사를 거쳐 오면서 아버지께서 고생하신 것입니다. 이런 아버지를 알아서 여러분이 승리의 하늘 정병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추신: 용량 문제로 저음질로 녹음되었으니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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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오늘 드릴 말씀은 '승리하는 하나님의 정병이 되자'입니다. 이런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싸움의 감당자요 소망의 실체인 우리
'정병'이라는 말은 본래부터 있었던 말이 아닙니다.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요,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 없었던 말입니다. 즉, 싸움이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 대신 싸움을 감당할 수 있는 아들 딸이 필요했기 때문에 생겨난 말입니다.
이런 아들 딸을 세워서 어느 시기까지 싸움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완성될 수 없겠기에 이런 아들 딸을 택하신 것이고, 변하는 역사를 거듭하여 6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하나님께서 친히 땅을 대하여 사탄과 싸움을 해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 싸움의 역사를 대신 책임지고 최일선에 나와서 실제 전투를 해야 하는 책임자들은 어떤 존재들인가.
하나님이 직접 싸우시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싸우시는 것도 아니며, 성신이 직접 싸우시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과 하나님을 배경으로 잘 믿는 성도들이 이 싸움의 직접적인 책임을 맡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아는 바입니다.
이 싸움은 기필코 종결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왔다 가신 지가 2천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이 싸움이 종결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이 싸움의 터를 넓히고, 승리의 토대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 책임을 감당할 존재들은 누구인가. 바로 아무것도 아닌, 보잘것없는 우리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걸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소망은 하나님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도 예수 그리스도 자체에 있지 않고, 성신의 소망도 성신 자체에 있지 않고, 선지성현들이 바라는 소망도 그들 자체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름 아닌, 오늘날 이 지상에 남아 있는 보잘것없는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땅 위에 있는 여러분들을 하늘이 부르고 계신다 할진대는 어떠한 표준을 두고 여러분을 부르고 계시는가. 하나님은 6천년 섭리의 전체를 표준하고 여러분을 부르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6천년, 더 나아가 억천만년 동안 이어온 인류역사를 승리로 종결시켜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버지께서 우리를 부르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시대를 책임지고, 역사를 책임지고, 영원한 섭리를 책임지는 하늘의 참다운 정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크나큰 섭리의 운명을 직접 개척해 나가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가 해야 할 일이 아니고, 성신이 해야 할 일이 아니며, 하나님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늘 정병이 되려면
우리는 이렇듯 크나큰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 자신을 놓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비판해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질문하시더라도 늠름히 대답할 수 있는 내가 되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섭리의 전체를 책임지고 싸울 수 있는, 용기와 긍지와 신념을 갖춘 하늘의 정병이 되었는가?' 라고 아버지께서 물으시더라도 '예 ! 옳소이다'라고 서슴치않고 대답할 수 있는 내가 되었는가…. 하늘은 늠름히 대답할 수 있는 이런 존재를 찾고 계십니다.
그러면, 이런 정병이 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우리 자체에서는 하늘의 정병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늘의 정병이 될 수 있겠는가?
우리가 하늘의 정병이 되려면 이미 대표적인 하늘의 정병으로 나타나신 분, 즉,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배경으로부터 그의 생애와 그의 이상 전부는 사탄에 대해 자랑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늘의 정병이 되려면 반드시 본받아야 할 내용이요, 조건들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의 말씀도 역시 마찬가지요, 그가 돌아가시며 보여 주신 십자가의 도리 역시 마찬가지이며, 그가 남겨 주신 부활의 도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모든 것은 우리들이 역사적인 모든 싸움을 종결시키고 하늘 정병이 되는데 있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절대적인 조건이요 법도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조건들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도 하늘의 정병이 갖추어야 할 모든 조건들을 구비할 때까지 30여 평생 동안 준비하고, 노력하고, 고생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된 것도 아니고, 어떤 한 순간에 된 것도 아닙니다. 30여년이라는 기나긴 시련의 과정을 거쳐야 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걸으신 노정은 무엇인가. 하늘의 정병으로서 땅 위에서 사탄 대해 승리하려면 넘어야 할 시련의 조건, 시련의 노정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정병으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을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다 이루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 정병으로서 해야 할 사명을 다 이루었다는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하늘 정병이 되신 예수님이셨기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 가신 이후에 하늘은 예수님을 부활시키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 이후 예수님은 하늘에서 성신은 땅에서 역사하시며 2천년 동안 사탄과 싸움을 해오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이 주는 교훈
이제 하늘로부터 불림받은 우리가 지켜 나가야 할 시련의 과정이 남아 있는데 다름 아닌 30여 평생 동안 걸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행로임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30여 평생의 노정을 헤아려 보면, 30년 사생애노정을 걸으시고, 3년 공생애노정을 거쳐서, 3일 무덤기간에 시련을 종결시킨 것입니다.
내 한 개체가 십자가의 도리를 따라가고 부활의 길을 따라가는 것은 물론이요, 전세계 인류가 다 이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나서 부활의 은사를 받으셨는데, 이것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한날에 이루어진 도리가 아니요, 몇 시간에 이루어진 도리가 아닙니다. 기나긴 4천년 역사를 거치신 하나님의 심정과 예수그리스도의 심정이 합해져서 30여 평생 고난의 길을 걸으시고 승리하여 되어진 도리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성경을 읽고 있는데, 성경을 각자의 임의대로 번역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흔히 믿는 사람들은 십자가의 도리가 십자가상에서만 되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30여 평생 잘 먹지 못하고, 잘 입지 못하면서 남 모르는 고난의 생활을 거친 끝에 되어진 도리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남겨진 하늘정병의 조건을 완비한 하나님의 독생자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분석하여 예수를 믿는 시작부터 그리스도의 고난의 노정을 다시 되풀이하여 나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도 시련의 과정을 거쳐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시련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는 싸움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10년도 아니고 20년도 아니고, 30년간 싸우신 그리스도를 본받고, 죽는 것도 겁내지 않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불변의 심정을 본받아아 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남아진 고난의 길과 죽음의 길을 감당하고 십자가를 수호하고, 십자가의 도리를 지켜 나갈 사람이 여러분 자신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왔다 가신 이후, 예수께서 이 땅 위에 쌓아 놓으신 십자가의 성을 수호하고. 격전의 제일보를 내디뎌야 할 책임이 사도들에게 있었습니다. 이제 남아진 십자가의 성을 수호할 책임이 끝날의 성도들에게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최후의 결전에서 승패를 결정짓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는데, 여기에서 남아질 수 있는 정병이 되었는가, 그리스도가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것처럼 나도 다시 소생할 수 있는, 제 2의 부활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중대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계에 가셔서도 싸움을 전개하고 계십니다. 수많은 선한 성도들을 대표해서 사탄과 싸우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영계에서 싸우시는 예수님을 모방하여 지상에서 싸움을 전개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 성신입니다. 그 성신의 협조를 받아 실제로 싸워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즉, 실제적으로 그 싸움을 도맡아 감당하는 하늘정병이 되어야할 우리라는 것입니다.
6천년의 원한을 풀어드려야 할 때
이제 최후의 싸움이 벌어졌는데, 오늘날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싸우는 싸움이 여러분 하나를 위한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 싸움은 하늘로부터 성신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연결된 싸움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싸움의 목적은 사탄을 추방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싸움의 고개를 넘고 넘어 본향까지 가는, 남겨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책임지는 정병이 되어 승리의 개가를 불러야 하겠습니다, 6천년의 원한을 풀어 버리고, 6천년의 소원을 성취한 승리의 정병, 환희의 정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 이후 남겨진 십자가의 성을 책임진, 대표적인 정병으로 나타난 무리가 12사도였습니다. 12사도는 죽음을 넘어서 십자가의 성벽을 수호했고, 몸 마음 다 바치고, 피살을 뿌리면서도 서슴치 않고 십자가의 성벽을 지켰습니다. 하늘은 이런 정병들을 찾고 있습니다.
선지선열들이 복음의 길을 걸으며 뿌린 피의 흔적이 십자가의 성벽에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은 선조들의 원한과 피가 어려 있는 땅이고, 피의 호소가 남아 있는 땅입니다. 이 원한을 풀어 줄 사람이 누구인가 하면, 바로 우리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도 원망스러운 일이지만 선지선열들의 죽음도 원망스러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아울러 선지선열들의 죽음도 원망스러워 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원망을 가질 때가 왔음을 알아야 합니다. 6천년 동안 참고 참던 하늘의 원한을 풀어드려야 할 때는 되었습니다. 이때에 필요한 것이 하늘 정병입니다. 이 시대에 요구되는 것은 하늘 정병입니다.
'아버지여! 6천년의 원한을 나를 통해 폭발하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참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참아들딸이 3천만 민중 가운데 많게 되면 삼천만 민중의 살 길이 열릴 것입니다. 또, 그런 사람들이 제사장이 되어 십자가의 성벽을 지키고, 싸우는 정병이 되면 이 민족은 파멸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렇듯 하늘 정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땅에 오셨다가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는 영계에서 승리의 성전을 쌓으셨고, 그 성전을 넓혀 나왔습니다. 여러분이 영계를 통해 보면 알겠지만, 타락의 흑암이 하나님의 보좌밑에까지 미쳐졌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싸움을 거듭하고, 수고에 수고를 더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이후 비로소 하나의 터전이 마련되었습니다. 더욱 더 이 터전을 넓히기 위한 싸움이 오늘날까지 계속되었고, 땅 위에서도 사탄과의 싸움이 계속되었습니다. 이제 이 싸움을 마무리지을 수 있는 하늘 정병이 나오기를 하늘은 바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분발해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30여 평생, 이 땅에 오셔서 죽음의 십자가의 고개를 넘으실 때까지 수고하시고 싸우셨을 뿐만 아니라 2천년 동안 계속해서 싸우셨다는 것입니다. 이 싸움을 모르는 무지몽매한 인간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에게 호소해야 하겠습니다. 백성들에게 호소하기 전에, 가정과 사회와 세계와 땅에게 호소하기 전에 여러분 자신에게 호소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2천년 동안 뜻을 위해 싸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뜻을 위해 싸워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승리하고 땅에서 승리하여 하늘과 땅이 화답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고, 창조본연의 미를 나타내게 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섭리하신 목적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뜻입니다.
하늘 정병이 알아야 할 것
이제 우리는 하늘 정병이 되어서 십자가의 성벽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이 하늘 정병이 되어야 하는데, 여러분은 자신이 어느 대열에 속해 있는 정병인가 하는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땅의 역사는 하늘의 역사를 형상적으로 전개하는 역사이기 때문에 하늘에 12사도를 중심삼은 12대열의 정병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상에도 이스라엘 12지파형과 같은 12교파와 무수한 지엽적인 대열이 있는 것입니다.
2천년 역사를 거쳐 오면서 이러한 대열이 형성되었는데, 여러분은 어느 대열에 속해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소대와 중대와 대대, 연대. 사단 등으로 편성되어 있는 세상 군대와 마찬가지로 조직적으로 편성된 하늘 군대의 어느 부대에 속해 있는 자신인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들은 어떠한 사명을 중심삼고 명령받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싸움의 과정을 거친 후에 하나의 중심을 중심삼고 전 피조세계가 기뻐할 수 있는 때를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그 중심은 누구인가 하면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인 것입니다.
하늘 정병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사탄과의 싸움을 완결지어 놓고 하나님과 그리스도로부터 상받는 것입니다. 싸움에서 승리를 해가지고 땅에서 하늘의 상을 받는 것입니다.
이제 싸움은 각 방면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또, 하늘 땅 전체에 섭리의 뜻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개체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고, 가정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고, 사회, 국가, 세계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고, 하늘 땅에서 벌어지는 싸움에서 승리하는 정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을 종결짓지 못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각 방면의 부서를 수호하고, 각 방면의 싸움을 종결짓는 정병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로서 승리해 가지고, 몸과 마음이 하나된 연후에 하늘 앞에 경배드려야 비로소 천지 만물이 화동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사도들이 남긴 피의 자국을 거쳐 나가야 하고, 사도들이 지휘하던 중대면 중대, 대대면 대대를 대신 지휘하고 책임져야 하겠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이 지고 계신 책임을 대신 져야 하겠습니다.
하늘 정병의 궁극적인 목표
하늘은 땅 위에 싸움의 터가 남아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땅에서 원한이 맺힌 연고로 땅에서 승리하고 원한을 풀어야, 예수 그리스도의 싸움이 종결되고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오신 다음 에는 무엇하시느냐. 6천년 동안 끌어온 싸움을 종결짓고,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쌍수를 들어 축복하시는 잔치. 승리의 정병들이 모여 다 함께 축복받는 잔치가 어린양 잔치인데, 이 어린양 잔치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총사령관이신 하나님이 분부하시는 말씀을 직접 받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 받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요한계시록 14장에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1절)"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 같이 여러분은 아버지의 인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성신의 인도를 받아 나왔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아 나왔는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인을 받아야 땅 위에서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 가서도 영원무궁한 정병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까지 나아가야만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개인이 이런 정병이 된 연후에 전체 인류가 이런 정병이 되게 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싸움에시 승리하여 그리스도의 정병이 되는 동시에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본연의 인간, 창조이상을 완성한 참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런 하늘 정병들이 돌려드리는 호산나의 승리의 개가가 온 땅을 진동시키는 때가 와야 사탄 대한 하나님의 원한이 일시에 풀려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아직까지 싸움은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최후의 공격을 감행하여 싸움의 고개를 넘어 하나님의 인을 받고 하나님 앞에 사탄을 굴복 시킬 수 있는 정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사탄과의 싸움이 종결된다는 것입니다.
성신 앞에 사탄을 굴복시키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사탄을 굴복시켜도 싸움은 끝이 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사탄을 굴복시켜야 싸움이 종결되는 것입니다.
이런 승리의 정병을 만들기 위해 6천년의 섭리역사를 거쳐 오면서 아버지께서 고생하신 것입니다. 이런 아버지를 알아서 여러분이 승리의 하늘 정병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말씀선집, 제1권 2편
하나님의 자랑이 된 예수 그리스도 (훈독본)
1956년 5월 16일(水), 전 본부교회.
고린도후서 8:16-24
하나님의 자랑이 된 예수 그리스도 (말씀선집 제1권 2편) - YouTube
<기 도>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I30s/4
하나님의 자랑이 되었어야 했던 아담 해와
천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천지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자랑의 실체로 지으셨습니다. 또, 아담 해와를 천사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자랑의 실체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담 해와가 만물 앞에 서면 만물은 아담 해와에게 경배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지어 놓으신 피조의 동산이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깨어졌던 것입니다. 즉, 인간의 타락으로 인간 앞에 자랑이 되어야 했던 만물의 가치가 제대로 나타날 수 없었고, 무형세계의 가치의 중심으로 나타날 수 있었던 인간이 그 자격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자랑의 뜻으로서 하나님 대신 만물 앞에 나타나 화동의 중심으로서의 영광을 받아야 할 인간의 위치가 근본적으로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타락 이후 6천년이 경과한 오늘날까지 하나님이 찾아오신 표준은 무엇이었던고?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하고, 형상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대신하고, 천륜의 행사를 대신한 전체의 대표자,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하나의 대표자를 찾아오셨습니다.
또, 지금까지 이 하나의 뜻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도 수고해 나왔습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의 타락 이후 4천년 만에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한 분이었던가. 그는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대신하고, 외적 형상을 대신한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의 이념으로 세웠던 '자랑의 기준'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수행해야 했던 본래의 사명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실체로 나타났어야 했습니다. 먼저 만물 앞에 자랑할 수 있어야 했고, 그 다음에는 사탄 앞에 자랑할 수 있어야 했으며, 천천만 성도들 앞에 자랑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기뻐하며 영광을 누리려던 것을 복귀하는 한날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중심존재인 예수를 세워놓고 역사하며 섭리하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민족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하게 하셨고, 그 가운데에 당신 앞에 세워질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칭송하고, 하나님이 자랑하고자 하셨던 그 기준에서 감사의 심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대했던들 이렇듯 역사적인 서러움이 6천년까지 연장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랑으로 세워진 믿음의 왕 예수
하나님의 자랑으로 나타났던 예수 그리스도의 눈에 보여지는 것과 이스라엘민족이 자랑하고 있던 것과는 판이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뜻을 대해 나온 이스라엘민족이 스스로 하나님의 선민임을 자랑했던 형과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뜻을 받들면서 싸우시던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자랑했던 형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민족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랑할 수 있었던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예수님의 생애 앞에서 자기들이 그때까지 세워나오던 민족적인 자랑을 포기하는 자리에 처해야 했던 것입니다.
자기들의 자랑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자랑하기 위한 새로운 자랑을 가지고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앞에 온유겸손히 엎드렸던들 십자가의 어려운 관문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남아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십자가의 도라는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의 말씀을 경청함으로 말미암아 구원되었다는 말은 있었어도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 되었다는 이런 말은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축복하여 십자가에 속죄의 권한이 있음을 믿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생전에 하신 말씀에 속죄의 권한이 있었다는 것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물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써 영적인 속죄가 가능하지만, 예수님이 살아 생전에 하신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실천하였더라면 영육 아울러 구속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와서 먼저 무엇을 자랑해야 했던가. 아담 해와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여 타락했고 4천년 동안 섭리역사가 연장되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연장된 4천년 역사를 가로막기 위해 사탄 앞에 세운 하나의 중심이 뭐냐 하면 믿음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믿음의 왕으로 이 땅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는 어떤 분이냐, 또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랑으로 설 수 있는 하나의 가치의 기준을 어디에서 세웠느냐? 4천년 역사가 흘러오는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대할 수 없었던 온 만민들 앞에 예수님은 믿음의 왕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자랑하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랑으로 세워졌던 믿음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인가. 우리는 우리가 어떤 한계 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강림하시기 전의 4천년 역사와 예수님의 30여 생애와 영원한 미래에까지 미치는 그의 가치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우리는 억조창생이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반대하는 자리에 서 있더라도 '나는 그 뜻 하나만을 붙들겠나이다.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는 것을 나는 믿겠나이다'라고 할 수 있는 믿음의 기준이 세워져야 예수님이 만민의 구세주, 믿음의 왕으로 설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대표자, 믿음의 왕으로서 구약성경에 없었던 새로운 말씀을 발표했습니다. 그 말씀은 신약의 말씀으로서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 오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갖추어야 할 것은, 오늘 이 시대는 새로운 시대요, 앞으로 영광의 시대가 올 것인데 그 영광의 시대에 남아질 수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과 믿음은 인간들이 4천년 동안 믿어온 차원의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일대를 거쳐 먼 후대, 즉 영원까지 미치는 믿음, 하나님이 생각지 못했고 그 당시에 나타나지 못했던 사랑과 선을 나타낼 수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상에 없었던 믿음의 왕이었고,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이러한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사탄을 이긴 승리의 왕 예수
그 다음 두번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이 수천년 동안 사탄과 싸워 나왔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비로소 승리의 왕으로 설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자랑하신 것입니다.
4천년 동안 수많은 선조들이 이 땅에 와서 사탄과 싸웠습니다. 메시아를 보내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수많은 선지자들이 와서 사탄과 싸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탄을 굴복시키지 못했습니다. 4천년 동안 사탄과 싸웠지만 사탄을 점령하지 못했고, 사탄을 굴복시킬 수 없었으나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사탄을 점령하고 굴복시켰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가지고 사탄을 굴복시켰느냐? 하늘의 사랑의 원칙을 가지고 굴복시켰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사탄을 굴복시키는 데는 사랑의 원칙이 아니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의 원칙은 어떤 원칙일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 앞에서 돌아 가셨습니다. 또, 이 땅 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신 외아들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30여 평생의 생활을 보면 어느 한 부분 효자의 생활이 아닌 부분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있어서의 한날의 생활은 밤이건 낮이건 어떤 시간도 떼어버릴 수 없는, 하나님의 마음에 알맞는 생활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이 땅 위에 너 하나밖에 없구나'하는 말씀을 하실 정도로 효자의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일생의 모든 것이 사라질지라도 오로지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자기의 육신은 무시되더라도 만민의 구주로서의 사명을 다하겠다는 마음밖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아버지여 ! 나 하나가 사라져서 당신이 4천년 동안 찾아오신 사랑의 대신 존재, 당신의 사랑을 받는 아들로서 그 사랑의 대가를 돌려 드릴 수 있는 효자가 되겠습니다' 하는 이 하나의 마음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억천만민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럴래야 그럴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천지의 중심으로 맺어진, 하나님의 사랑에 인연된 부자관계의 천륜의 힘은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환경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골고다 산상의 외로운 자리에서도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을 아셨고, 4천년 동안 고대하신 아버지의 사랑의 심정을 잘 아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이 변치 않는 이상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있는 아들로서의 자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독생자로,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의 화신체로 온 피조만물 앞에 자랑했습니다. 사탄세계 앞에 자랑했습니다.
오늘날까지의 6천년 역사상에는 자기를 낳아 준 부모에게 효성을 다한 사람이 많습니다. 사탄 품안에서의 효자 효녀는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할 수 있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려면 역사상의 모든 사탄권내의 효자 효녀들을 합한 이상의 가치와 실적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이는 내 사랑 하는 아들' 이라고 할 수 있고, 천상천하에 유일하게 천륜을 대신한 효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을 가지고 예수님이 수많은 군중을 바라보게 될 때 어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의 심정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와 그들의 가치 사이에는 천지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스스로 늠름하게 하늘 앞에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과 사랑으로 맺어진 부자의 관계에서 나오는 힘에 의해 사탄까지 망하게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탄권내의 많은 사람들이 사탄에게 동조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기준과는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사랑을 갖고 나타나는 거기에는 원수들 앞에 있어서 철옹성과 같은 방패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중심삼고 모이는 곳곳마다 사탄을 굴복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4천년 동안 선조들이 승리한 것과 패한 것 모두를 합하여 자신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쟁취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무엇이뇨? 지금까지 인류가 6천년 동안 사탄과 투쟁해 나왔는데, 어찌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4천년 동안 많은 선지자들이 승리한 것을 전부 합한 가치 이상의 승리의 실적을 거둘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또, 우리의 선조들이 어떻게 사탄 대해 승리할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줄 알아야 하며, 여러분 자신이 그분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볼 줄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이 이제 이 땅 위의 성도들에게 염원하는 것이 무엇일 것이냐. 예수 그리스도만 사탄을 굴복시킬 것이 아니라 오늘날 끝날의 전체의 성도들이 모두 사탄을 굴복시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30여 평생 승리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승리 하지 못할 말은 피했다는 것입니다. 승리할 수 없는 말은 피했습니다. 예수님이 패할 수 있고, 사탄이 접근해올 수 있는 말은 피했다는 것입니다. 남 보기에는 한 사람의 동네 총각이었지만 일단 전체를 책임지고 나서면, 그의 말이나 행동이나 소망은 전체를 승리의 기대 위에 올려 놓을 수 있는 말과 행동과 소망이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님이 이렇게 수고하시며 다져 놓으신 승리의 발판 위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으로부터 이런 은사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서 승리하여 이뤄 놓으신 승리의 발판 위에 서서 어떻게 하면 더 높이 올라가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하늘이 여러분을 위해 이 땅에 내려오셨음을 알고 하늘에 올라갈 때까지 승리의 땀을 흘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채워야 하겠습니다. 예수와 성신의 사랑을 느껴서 하늘의 사랑을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승리하셨지만 십자가에 돌아가신 연고로 영적으로만 승리의 기대를 닦으셨습니다. 그래서 2천년의 역사를 종결해야 하는 우리는 예수의 영적인 기대 위에 서서 예수의 몸을 대신하여 승리의 터전을 이루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에게는, 영적인 구원을 완성시켜 주는 신약성경의 차원을 넘어서 실체적인 구원을 완성시켜 주는 새로운 말씀을 하늘이 이 땅에 선포하게 될 때에 사탄이 이를 반박할 것인데, 이것까지 책임지고 싸워 이겨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전체의 뜻을 책임진 왕자
예수님의 생활은 전부 자신의 책임과 사명을 완수하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는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책임을 땅 위에 완수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30여 평생의 생애는 영원 불변의 실적, 책임을 다한 실적을 이 땅위에 이루어 놓은 생애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리스도의 믿음의 복음이 남아 있는 이상 그의 생애도 남아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홀로 전체의 뜻을 책임지는 것에 대해 외로워한 반면 더 큰 책임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하루하루의 생활은 전체적인 책임을 완수하기 위한 발판을 놓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리고 30년 준비시대와 3년 실천시대, 3일간의 완성시대까지 예수님의 시선 앞에는 사탄을 굴복시키는 것과 그 토대 위에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켜 드리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임을 절감하며 산 생애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한 순간에도 이 책임을 잊어버린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산정에 나갈 때에도, 온 만민이 비방하고 사탄이 조롱하는 그런 최후의 순간에도 예수님은 맡은 바의 천륜의 책임을 홀로 감당하겠다는 마음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책임완수의 일념을 갖고 십자가의 고비를 넘었기 때문에 부활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상에 남아있는 제자들을 재 수습해야 할 책임이 있었으므로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 가셨다가 다시 내려오셔서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여 부활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어서도 흩어진 제자들을 염려했고, 무덤의 3일간에도 이 제자들을 영원히 지키겠다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 해변가로 제자들을 찾아다니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책임감이 없었던 그들을 대하여 예수님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어려운 자리에서 배척한 제자들이지만, 예수님은 부활 후에 먼저 갈릴리로 찾아가셔서 자신의 책임을 수행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죽음의 고개를 넘을때 변하지 않는 제자들로 세워 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야말로 오늘날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인격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 당시의 제자들과 그 이후의 수많은 성도들, 2천년이 경과한 오늘날 우리들까지 책임지셨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구원의 역사가 전체의 역사였습니다. 하늘의 뜻은 전체를 구원하는 것이므로 예수님은 전인류까지 책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떠한 책임을 지고 계신가. 예수님은 세상적인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계신 것이 아니고, 잘 사는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명을 책임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어려운 일이 많지만 이 이상 어려운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는 옛날에 30여 평생을 지낼 때도 그랬고, 죽음의 길에 들어 섰을 때에도 그랬으며, 어느 때 어느 시기에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인간들은 이런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끼지 못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는 이 책임과 사명, 이 한 뜻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전체의 책임을 감당해야 할 우리
그러면 이러한 예수님, 오늘날 우리들이 믿고 있는 예수님을 모시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언제나 예수님에게 책임을 지우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느냐. 예수님은 4천년 역사를 책임지셨었고, 당대의 인류를 책임지셨었고, 돌아가신 이후 2천년 동안 인류를 책임져 나오셨는데, 우리 자신들도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께 책임을 지우는 생활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아바 아버지여 2천년 동안 책임져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려움을 알겠나이다'라고 하면서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책임을 지고 계신 예수님을 원통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일들이 누구때문이었던고! 보잘것없는 우리들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생각하여 예수 앞에 머리를 숙일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여!' 라고 부르면서도 뼈가 녹는 듯한 심정, 살이 녹는 듯한 심정을 느껴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비로소 4천년의 뜻을 책임지려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너 하나만이 내가 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구나'라고 하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었습니다. 모든 책임의 보따리를 뒤집어 쓸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대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세워진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전체의 책임을 감당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책임하는 그 일이 어렵다면 '어려운 그 일을 나에게 지워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심정으로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 나타나 '염원하시는 그 심정을 나를 통하여 나타내시옵소서' '나를 통하여 보여 주시옵소서'라고 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끝날, 이때에 들려오는 것은, '내 생명의 호소를 들을 자가 누군고?'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을 물려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호소를 들어줄 사람은 누구인가! 하늘은 이런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책임이 이 땅위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남아진 생명의 책임을 완수해야 하는 때가 재림시대라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이 나타남으로써 재림시대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는 역사적인 생명의 책임과 미래적인 생명의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이기에 여러분은 최후의 싸움에서 그와 더불어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재림시대의 시작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세우셔서, 믿음의 예수님을 통하여, 혹은 진리의 예수님을 통하여. 인간들을 사랑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여러분을 사랑하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마음으로라도 믿음의 예수를 본받으라 할 때, '예, 그렇소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승리하신 예수를 본받으라 할 때 '그렇소이다', 책임지고 계신 예수님을 본받으라 할 때, '예, 그렇소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어느 한 때, 어느 한 시간도 쉬시지 못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쉬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랑으로 세우셨던 이런 조건들을 여러분들이 대신 맡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영계에 가신 예수님의 자랑의 조건을 이 땅 위에서 이루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먼저는 믿지 못하는 세상에서 믿는 것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책임지지 못하는 이런 세상에서 책임지는 것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랑이 영계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땅위의 우리에게 미쳐지고, 땅 위의 우리를 통하여 만물세계도 그 자랑이 미쳐져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창조의 이념, 인간을 만물의 주인공으로 세워 만물 앞에 자랑하시려고 했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로소 인간과 만물이 자랑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경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전체적인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모든 책임을 지고 나가는 모습을 하나님께 보여 드리고. 억천만 인간, 혹은 천천만 성도들과 피조세계 앞에 책임지고 나가는 중심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을 통하여 땅을 대한 하나님의 원한을 해원할 수 있으며 그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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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랑이 된 예수 그리스도
1956.05.16 (수), 한국 전본부교회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를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저희에게 보이라.(고후 8:24)"는 말씀을 중심삼고, 오늘은 '하나님의 자랑이 된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랑이 되었어야 했던 아담 해와
천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천지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자랑의 실체로 지으셨습니다. 또, 아담 해와를 천사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자랑의 실체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담 해와가 만물 앞에 서면 만물은 아담 해와에게 경배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지어 놓으신 피조의 동산이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깨어졌던 것입니다. 즉, 인간의 타락으로 인간 앞에 자랑이 되어야 했던 만물의 가치가 제대로 나타날 수 없었고, 무형세계의 가치의 중심으로 나타날 수 있었던 인간이 그 자격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자랑의 뜻으로서 하나님 대신 만물 앞에 나타나 화동의 중심으로서의 영광을 받아야 할 인간의 위치가 근본적으로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타락 이후 6천년이 경과한 오늘날까지 하나님이 찾아오신 표준은 무엇이었던고?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하고, 형상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대신하고, 천륜의 행사를 대신한 전체의 대표자,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하나의 대표자를 찾아오셨습니다.
또, 지금까지 이 하나의 뜻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도 수고해 나왔습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의 타락 이후 4천년 만에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한 분이었던가. 그는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대신하고, 외적 형상을 대신한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의 이념으로 세웠던 '자랑의 기준'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수행해야 했던 본래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일대에서 그의 생활을 통하여, 어느 부분 부분 또는 어느 한 부분이라도 하나님의 심정과 형상을 대신한 자녀로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될 중대한 책임자의 자리에 서 있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실체로 나타났어야 했습니다. 먼저 만물 앞에 자랑할 수 있어야 했고, 그 다음에는 사탄 앞에 자랑할 수 있어야 했으며, 천천만 성도들 앞에 자랑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기뻐하며 영광을 누리려던 것을 복귀하는 한날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중심존재인 예수를 세워놓고 역사하며 섭리하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민족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하게 하셨고, 그 가운데에 당신 앞에 세워질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칭송하고, 하나님이 자랑하고자 하셨던 그 기준에서 감사의 심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대했던들 이렇듯 역사적인 서러움이 6천년까지 연장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랑으로 세워진 믿음의 왕 예수
하나님의 자랑으로 나타났던 예수 그리스도의 눈에 보여지는 것과 이스라엘민족이 자랑하고 있던 것과는 판이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뜻을 대해 나온 이스라엘민족이 스스로 하나님의 선민임을 자랑했던 형과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뜻을 받들면서 싸우시던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자랑했던 형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민족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랑할 수 있었던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예수님의 생애 앞에서 자기들이 그때까지 세워나오던 민족적인 자랑을 포기하는 자리에 처해야 했던 것입니다.
자기들의 자랑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자랑하기 위한 새로운 자랑을 가지고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앞에 온유겸손히 엎드렸던들 십자가의 어려운 관문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남아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십자가의 도라는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의 말씀을 경청함으로 말미암아 구원되었다는 말은 있었어도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 되었다는 이런 말은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축복하여 십자가에 속죄의 권한이 있음을 믿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생전에 하신 말씀에 속죄의 권한이 있었다는 것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물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써 영적인 속죄가 가능하지만, 예수님이 살아 생전에 하신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실천하였더라면 영육 아울러 구속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와서 먼저 무엇을 자랑해야 했던가. 아담 해와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여 타락했고 4천년 동안 섭리역사가 연장되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연장된 4천년 역사를 가로막기 위해 사탄 앞에 세운 하나의 중심이 뭐냐 하면 믿음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믿음의 왕으로 이 땅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는 어떤 분이냐, 또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랑으로 설 수 있는 하나의 가치의 기준을 어디에서 세웠느냐? 4천년 역사가 흘러오는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대할 수 없었던 온 만민들 앞에 예수님은 믿음의 왕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자랑하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노라 하였지만, 그러한 믿음으로써는 하나님의 천륜의 심정을 통한 상하의 내적인 관계를 맺어 놓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왔다 갔지만 그들이 믿고 그들이 따라가던 것을 통해서는 하나님 속에 사무쳐 있는 사랑의 원칙을 알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는 수많은 성도들이 걸어 나오던 그 역사적인 믿음의 과정 전체를 도맡아서 혈혈단신으로 모든 사탄의 역사를 끊어놓으려 했습니다. 4천년의 믿음을 총 결실하는 입장의 예수 그리스도는 우주의 중심형으로, 믿음의 주인공으로 왔다 가셨습니다.
이 하나의 기준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대신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했는데. 선포하신 말씀은 구약 말씀 그대로가 아니었습니다. 구약 신앙을 가지고 믿은 것이 아닙니다. 선지선열들이 말씀하고 예언했던 그 한계권 내에서 믿은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이스라엘민족이 믿고 나온 구약성경의 말씀권 내에서의 메시아의 사상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한 믿음을 가졌느냐 하면, 구약성경에 없는, 그때까지의 역사상에 없었던 믿음, 그때까지 나타나지 아니 한 새로운 믿음, 세계의 어떤 환경,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믿음을 가졌던 믿음의 대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역사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달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랑으로 세워졌던 믿음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인가. 우리는 우리가 어떤 한계 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강림하시기 전의 4천년 역사와 예수님의 30여 생애와 영원한 미래에까지 미치는 그의 가치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우리는 억조창생이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반대하는 자리에 서 있더라도 '나는 그 뜻 하나만을 붙들겠나이다.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는 것을 나는 믿겠나이다'라고 할 수 있는 믿음의 기준이 세워져야 예수님이 만민의 구세주, 믿음의 왕으로 설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생전에 말씀을 다 해주고 가셨던가. 만일 말씀을 다 해주고 가시지 않았다면, 우리에게는 다시 오시는 주님이 해 주시는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담 해와의 타락 이후 4천년만에 사탄 앞에서나 모든 피조세계 앞에서 자랑할 수 있었던 믿음의 왕이요, 하나님이 찾으시려던 믿음의 왕이었는데, 유대민족이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그를 원수에게 내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다시 온 피조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기준을 갖고 오셔서 여러분에게 새로운 말씀을 해 주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대표자, 믿음의 왕으로서 구약성경에 없었던 새로운 말씀을 발표했습니다. 그 말씀은 신약의 말씀으로서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 오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갖추어야 할 것은, 오늘 이 시대는 새로운 시대요, 앞으로 영광의 시대가 올 것인데 그 영광의 시대에 남아질 수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과 믿음은 인간들이 4천년 동안 믿어온 차원의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일대를 거쳐 먼 후대, 즉 영원까지 미치는 믿음, 하나님이 생각지 못했고 그 당시에 나타나지 못했던 사랑과 선을 나타낼 수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상에 없었던 믿음의 왕이었고,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이러한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사탄을 이긴 승리의 왕 예수
그 다음 두번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이 수천년 동안 사탄과 싸워 나왔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비로소 승리의 왕으로 설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자랑하신 것입니다.
4천년 동안 수많은 선조들이 이 땅에 와서 사탄과 싸웠습니다. 메시아를 보내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수많은 선지자들이 와서 사탄과 싸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탄을 굴복시키지 못했습니다. 4천년 동안 사탄과 싸웠지만 사탄을 점령하지 못했고, 사탄을 굴복시킬 수 없었으나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사탄을 점령하고 굴복시켰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가지고 사탄을 굴복시켰느냐? 하늘의 사랑의 원칙을 가지고 굴복시켰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사탄을 굴복시키는 데는 사랑의 원칙이 아니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의 원칙은 어떤 원칙일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 앞에서 돌아 가셨습니다. 또, 이 땅 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신 외아들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30여 평생의 생활을 보면 어느 한 부분 효자의 생활이 아닌 부분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있어서의 한날의 생활은 밤이건 낮이건 어떤 시간도 떼어버릴 수 없는, 하나님의 마음에 알맞는 생활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이 땅 위에 너 하나밖에 없구나'하는 말씀을 하실 정도로 효자의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일생의 모든 것이 사라질지라도 오로지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자기의 육신은 무시되더라도 만민의 구주로서의 사명을 다하겠다는 마음밖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아버지여 ! 나 하나가 사라져서 당신이 4천년 동안 찾아오신 사랑의 대신 존재, 당신의 사랑을 받는 아들로서 그 사랑의 대가를 돌려 드릴 수 있는 효자가 되겠습니다' 하는 이 하나의 마음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억천만민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럴래야 그럴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천지의 중심으로 맺어진, 하나님의 사랑에 인연된 부자관계의 천륜의 힘은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환경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골고다 산상의 외로운 자리에서도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을 아셨고, 4천년 동안 고대하신 아버지의 사랑의 심정을 잘 아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이 변치 않는 이상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있는 아들로서의 자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독생자로,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의 화신체로 온 피조만물 앞에 자랑했습니다. 사탄세계 앞에 자랑했습니다.
오늘날까지의 6천년 역사상에는 자기를 낳아 준 부모에게 효성을 다한 사람이 많습니다. 사탄 품안에서의 효자 효녀는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할 수 있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려면 역사상의 모든 사탄권내의 효자 효녀들을 합한 이상의 가치와 실적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이는 내 사랑 하는 아들' 이라고 할 수 있고, 천상천하에 유일하게 천륜을 대신한 효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을 가지고 예수님이 수많은 군중을 바라보게 될 때 어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의 심정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와 그들의 가치 사이에는 천지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스스로 늠름하게 하늘 앞에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과 사랑으로 맺어진 부자의 관계에서 나오는 힘에 의해 사탄까지 망하게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탄권내의 많은 사람들이 사탄에게 동조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기준과는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사랑을 갖고 나타나는 거기에는 원수들 앞에 있어서 철옹성과 같은 방패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중심삼고 모이는 곳곳마다 사탄을 굴복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4천년 동안 선조들이 승리한 것과 패한 것 모두를 합하여 자신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쟁취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무엇이뇨? 지금까지 인류가 6천년 동안 사탄과 투쟁해 나왔는데, 어찌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4천년 동안 많은 선지자들이 승리한 것을 전부 합한 가치 이상의 승리의 실적을 거둘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또, 우리의 선조들이 어떻게 사탄 대해 승리할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줄 알아야 하며, 여러분 자신이 그분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볼 줄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이 이제 이 땅 위의 성도들에게 염원하는 것이 무엇일 것이냐. 예수 그리스도만 사탄을 굴복시킬 것이 아니라 오늘날 끝날의 전체의 성도들이 모두 사탄을 굴복시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30여 평생 승리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승리 하지 못할 말은 피했다는 것입니다. 승리할 수 없는 말은 피했습니다. 예수님이 패할 수 있고, 사탄이 접근해올 수 있는 말은 피했다는 것입니다. 남 보기에는 한 사람의 동네 총각이었지만 일단 전체를 책임지고 나서면, 그의 말이나 행동이나 소망은 전체를 승리의 기대 위에 올려 놓을 수 있는 말과 행동과 소망이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님이 이렇게 수고하시며 다져 놓으신 승리의 발판 위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으로부터 이런 은사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서 승리하여 이뤄 놓으신 승리의 발판 위에 서서 어떻게 하면 더 높이 올라가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하늘이 여러분을 위해 이 땅에 내려오셨음을 알고 하늘에 올라갈 때까지 승리의 땀을 흘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채워야 하겠습니다. 예수와 성신의 사랑을 느껴서 하늘의 사랑을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승리하셨지만 십자가에 돌아가신 연고로 영적으로만 승리의 기대를 닦으셨습니다. 그래서 2천년의 역사를 종결해야 하는 우리는 예수의 영적인 기대 위에 서서 예수의 몸을 대신하여 승리의 터전을 이루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에게는, 영적인 구원을 완성시켜 주는 신약성경의 차원을 넘어서 실체적인 구원을 완성시켜 주는 새로운 말씀을 하늘이 이 땅에 선포하게 될 때에 사탄이 이를 반박할 것인데, 이것까지 책임지고 싸워 이겨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 예수그리스도는 어떤 조건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가. 예수님은 '책임을 지는 왕자'가 되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태어날 적부터 요셉의 집에서 목수의 일을 했지만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가정에서 목수의 일을 도우면서 부모가 떠맡고 있는 가족의 생계를 도와주는 이런 생활을 했지만, 예수님의 마음에는 그것만이 생활의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또, 큰 뜻을 마음에 품은 동시에 작은 일에까지도 책임을 다하신 예수였습니다. 이런 예수님이었음을 여러분은 망각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전체의 뜻을 책임진 왕자
예수님의 생활은 전부 자신의 책임과 사명을 완수하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는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책임을 땅 위에 완수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30여 평생의 생애는 영원 불변의 실적, 책임을 다한 실적을 이 땅위에 이루어 놓은 생애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리스도의 믿음의 복음이 남아 있는 이상 그의 생애도 남아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일대에 있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역사적인 면에서도 책임을 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역사해 오신 뜻에 대해서도 홀로 책임을 졌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하나님의 책임을 대신하여 나서는 이가 이 땅 위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혈혈단신으로 책임을 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홀로 전체의 뜻을 책임지는 것에 대해 외로워한 반면 더 큰 책임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하루하루의 생활은 전체적인 책임을 완수하기 위한 발판을 놓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리고 30년 준비시대와 3년 실천시대, 3일간의 완성시대까지 예수님의 시선 앞에는 사탄을 굴복시키는 것과 그 토대 위에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켜 드리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임을 절감하며 산 생애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한 순간에도 이 책임을 잊어버린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산정에 나갈 때에도, 온 만민이 비방하고 사탄이 조롱하는 그런 최후의 순간에도 예수님은 맡은 바의 천륜의 책임을 홀로 감당하겠다는 마음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책임완수의 일념을 갖고 십자가의 고비를 넘었기 때문에 부활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상에 남아있는 제자들을 재 수습해야 할 책임이 있었으므로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 가셨다가 다시 내려오셔서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여 부활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어서도 흩어진 제자들을 염려했고, 무덤의 3일간에도 이 제자들을 영원히 지키겠다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 해변가로 제자들을 찾아다니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책임감이 없었던 그들을 대하여 예수님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어려운 자리에서 배척한 제자들이지만, 예수님은 부활 후에 먼저 갈릴리로 찾아가셔서 자신의 책임을 수행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죽음의 고개를 넘을때 변하지 않는 제자들로 세워 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야말로 오늘날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인격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 당시의 제자들과 그 이후의 수많은 성도들, 2천년이 경과한 오늘날 우리들까지 책임지셨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구원의 역사가 전체의 역사였습니다. 하늘의 뜻은 전체를 구원하는 것이므로 예수님은 전인류까지 책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떠한 책임을 지고 계신가. 예수님은 세상적인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계신 것이 아니고, 잘 사는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명을 책임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세상에 어려운 일이 많지만 이 이상 어려운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생사의 문제를 책임졌기에…….
오늘날 신앙자들은 까딱하면, 까딱하기만 하면 생사가 왔다갔다하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칼날과 같은 아슬아슬한 선상에 서 있는 사람들을 모두 오른편으로 끌어내는 책임을 예수님은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는 옛날에 30여 평생을 지낼 때도 그랬고, 죽음의 길에 들어 섰을 때에도 그랬으며, 어느 때 어느 시기에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인간들은 이런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끼지 못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는 이 책임과 사명, 이 한 뜻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전체의 책임을 감당해야 할 우리
그러면 이러한 예수님, 오늘날 우리들이 믿고 있는 예수님을 모시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언제나 예수님에게 책임을 지우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느냐. 예수님은 4천년 역사를 책임지셨었고, 당대의 인류를 책임지셨었고, 돌아가신 이후 2천년 동안 인류를 책임져 나오셨는데, 우리 자신들도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께 책임을 지우는 생활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아바 아버지여 2천년 동안 책임져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려움을 알겠나이다'라고 하면서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책임을 지고 계신 예수님을 원통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일들이 누구때문이었던고! 보잘것없는 우리들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생각하여 예수 앞에 머리를 숙일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여!' 라고 부르면서도 뼈가 녹는 듯한 심정, 살이 녹는 듯한 심정을 느껴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비로소 4천년의 뜻을 책임지려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너 하나만이 내가 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구나'라고 하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었습니다. 모든 책임의 보따리를 뒤집어 쓸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대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세워진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전체의 책임을 감당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책임하는 그 일이 어렵다면 '어려운 그 일을 나에게 지워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심정으로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 나타나 '염원하시는 그 심정을 나를 통하여 나타내시옵소서' '나를 통하여 보여 주시옵소서'라고 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끝날에 남아질 무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무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2천년 동안 인류를 위해 책임을 져 나오시던 그 목적을 어디에서 이룰 것인가?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생명을 걸고 책임의 노정을 걸으신 예수께서 책임질 줄 아는 사람들을 못찾으신다면…….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상에서 역사에 대한 책임과 현실에 대한 책임과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하나님 앞에 맹세하던 그 책임을 우리에게 지워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하늘 앞에 책임을 돌릴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4천년 동안 안타까와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땅 위에서 책임의 왕으로서 역사적인 모든 책임을 감당해 나오시던 예수 그리스도 대신 그 책임을 지고 싸우겠나이다. 원수 사탄과 수천만 인간들이 환영하지 않더라도 제가 대신 책임지고 싸우겠나이다.'라고 기도할 줄 아는 사람들이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나와야만 예수님께서 안식의 동산에서 쉬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끝날, 이때에 들려오는 것은, '내 생명의 호소를 들을 자가 누군고?'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을 물려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호소를 들어줄 사람은 누구인가! 하늘은 이런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은 만민을 위해서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쉬지 못하시고 아직까지 기도하고 계신 것은 예수님에게 무슨 잘못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또 예수님이 아버지 앞에 서시지 못할 자리에 서 계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들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2천년 동안 수고하고 계신 예수님을 위해서 여러분은 무엇보다도 생명을 끊어서라도 생명의 책임을 완수하려고 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책임이 이 땅위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남아진 생명의 책임을 완수해야 하는 때가 재림시대라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이 나타남으로써 재림시대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는 역사적인 생명의 책임과 미래적인 생명의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이기에 여러분은 최후의 싸움에서 그와 더불어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재림시대의 시작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세우셔서, 믿음의 예수님을 통하여, 혹은 진리의 예수님을 통하여. 인간들을 사랑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여러분을 사랑하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마음으로라도 믿음의 예수를 본받으라 할 때, '예, 그렇소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승리하신 예수를 본받으라 할 때 '그렇소이다', 책임지고 계신 예수님을 본받으라 할 때, '예, 그렇소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어느 한 때, 어느 한 시간도 쉬시지 못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쉬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랑으로 세우셨던 이런 조건들을 여러분들이 대신 맡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영계에 가신 예수님의 자랑의 조건을 이 땅 위에서 이루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먼저는 믿지 못하는 세상에서 믿는 것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책임지지 못하는 이런 세상에서 책임지는 것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랑이 영계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땅위의 우리에게 미쳐지고, 땅 위의 우리를 통하여 만물세계도 그 자랑이 미쳐져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창조의 이념, 인간을 만물의 주인공으로 세워 만물 앞에 자랑하시려고 했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로소 인간과 만물이 자랑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경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전체적인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너무나 형편없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앙도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인간들이 사탄과 싸워야 할 때, '아바 아버지여, 이 세계 만인간이 사탄과 싸워 이길 수 있게 힘을 주시옵소서. 온 인류가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전체의 적을 맞아 혼자 싸워서 승리해 가지고 '아버지여 기뻐하시옵소서' 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세계의 모든 책임을 지고 나가는 모습을 하나님께 보여 드리고. 억천만 인간, 혹은 천천만 성도들과 피조세계 앞에 책임지고 나가는 중심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을 통하여 땅을 대한 하나님의 원한을 해원할 수 있으며 그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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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랑이 된 예수 그리스도
1956.05.16 (수), 한국 전본부교회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를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저희에게 보이라.(고후 8:24)"는 말씀을 중심삼고, 오늘은 '하나님의 자랑이 된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랑이 되었어야 했던 아담 해와
천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천지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자랑의 실체로 지으셨습니다. 또, 아담 해와를 천사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자랑의 실체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담 해와가 만물 앞에 서면 만물은 아담 해와에게 경배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지어 놓으신 피조의 동산이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깨어졌던 것입니다. 즉, 인간의 타락으로 인간 앞에 자랑이 되어야 했던 만물의 가치가 제대로 나타날 수 없었고, 무형세계의 가치의 중심으로 나타날 수 있었던 인간이 그 자격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자랑의 뜻으로서 하나님 대신 만물 앞에 나타나 화동의 중심으로서의 영광을 받아야 할 인간의 위치가 근본적으로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타락 이후 6천년이 경과한 오늘날까지 하나님이 찾아오신 표준은 무엇이었던고?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하고, 형상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대신하고, 천륜의 행사를 대신한 전체의 대표자,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하나의 대표자를 찾아오셨습니다.
또, 지금까지 이 하나의 뜻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도 수고해 나왔습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의 타락 이후 4천년 만에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한 분이었던가. 그는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대신하고, 외적 형상을 대신한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의 이념으로 세웠던 '자랑의 기준'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수행해야 했던 본래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일대에서 그의 생활을 통하여, 어느 부분 부분 또는 어느 한 부분이라도 하나님의 심정과 형상을 대신한 자녀로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될 중대한 책임자의 자리에 서 있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실체로 나타났어야 했습니다. 먼저 만물 앞에 자랑할 수 있어야 했고, 그 다음에는 사탄 앞에 자랑할 수 있어야 했으며, 천천만 성도들 앞에 자랑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기뻐하며 영광을 누리려던 것을 복귀하는 한날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중심존재인 예수를 세워놓고 역사하며 섭리하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민족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하게 하셨고, 그 가운데에 당신 앞에 세워질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칭송하고, 하나님이 자랑하고자 하셨던 그 기준에서 감사의 심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대했던들 이렇듯 역사적인 서러움이 6천년까지 연장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랑으로 세워진 믿음의 왕 예수
하나님의 자랑으로 나타났던 예수 그리스도의 눈에 보여지는 것과 이스라엘민족이 자랑하고 있던 것과는 판이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뜻을 대해 나온 이스라엘민족이 스스로 하나님의 선민임을 자랑했던 형과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뜻을 받들면서 싸우시던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자랑했던 형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민족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랑할 수 있었던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예수님의 생애 앞에서 자기들이 그때까지 세워나오던 민족적인 자랑을 포기하는 자리에 처해야 했던 것입니다.
자기들의 자랑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자랑하기 위한 새로운 자랑을 가지고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앞에 온유겸손히 엎드렸던들 십자가의 어려운 관문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남아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십자가의 도라는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의 말씀을 경청함으로 말미암아 구원되었다는 말은 있었어도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 되었다는 이런 말은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축복하여 십자가에 속죄의 권한이 있음을 믿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생전에 하신 말씀에 속죄의 권한이 있었다는 것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물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써 영적인 속죄가 가능하지만, 예수님이 살아 생전에 하신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실천하였더라면 영육 아울러 구속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와서 먼저 무엇을 자랑해야 했던가. 아담 해와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여 타락했고 4천년 동안 섭리역사가 연장되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연장된 4천년 역사를 가로막기 위해 사탄 앞에 세운 하나의 중심이 뭐냐 하면 믿음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믿음의 왕으로 이 땅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는 어떤 분이냐, 또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랑으로 설 수 있는 하나의 가치의 기준을 어디에서 세웠느냐? 4천년 역사가 흘러오는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대할 수 없었던 온 만민들 앞에 예수님은 믿음의 왕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자랑하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노라 하였지만, 그러한 믿음으로써는 하나님의 천륜의 심정을 통한 상하의 내적인 관계를 맺어 놓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왔다 갔지만 그들이 믿고 그들이 따라가던 것을 통해서는 하나님 속에 사무쳐 있는 사랑의 원칙을 알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는 수많은 성도들이 걸어 나오던 그 역사적인 믿음의 과정 전체를 도맡아서 혈혈단신으로 모든 사탄의 역사를 끊어놓으려 했습니다. 4천년의 믿음을 총 결실하는 입장의 예수 그리스도는 우주의 중심형으로, 믿음의 주인공으로 왔다 가셨습니다.
이 하나의 기준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대신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했는데. 선포하신 말씀은 구약 말씀 그대로가 아니었습니다. 구약 신앙을 가지고 믿은 것이 아닙니다. 선지선열들이 말씀하고 예언했던 그 한계권 내에서 믿은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이스라엘민족이 믿고 나온 구약성경의 말씀권 내에서의 메시아의 사상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한 믿음을 가졌느냐 하면, 구약성경에 없는, 그때까지의 역사상에 없었던 믿음, 그때까지 나타나지 아니 한 새로운 믿음, 세계의 어떤 환경,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믿음을 가졌던 믿음의 대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역사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달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랑으로 세워졌던 믿음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인가. 우리는 우리가 어떤 한계 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강림하시기 전의 4천년 역사와 예수님의 30여 생애와 영원한 미래에까지 미치는 그의 가치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우리는 억조창생이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반대하는 자리에 서 있더라도 '나는 그 뜻 하나만을 붙들겠나이다.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는 것을 나는 믿겠나이다'라고 할 수 있는 믿음의 기준이 세워져야 예수님이 만민의 구세주, 믿음의 왕으로 설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생전에 말씀을 다 해주고 가셨던가. 만일 말씀을 다 해주고 가시지 않았다면, 우리에게는 다시 오시는 주님이 해 주시는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담 해와의 타락 이후 4천년만에 사탄 앞에서나 모든 피조세계 앞에서 자랑할 수 있었던 믿음의 왕이요, 하나님이 찾으시려던 믿음의 왕이었는데, 유대민족이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그를 원수에게 내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다시 온 피조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기준을 갖고 오셔서 여러분에게 새로운 말씀을 해 주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대표자, 믿음의 왕으로서 구약성경에 없었던 새로운 말씀을 발표했습니다. 그 말씀은 신약의 말씀으로서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 오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갖추어야 할 것은, 오늘 이 시대는 새로운 시대요, 앞으로 영광의 시대가 올 것인데 그 영광의 시대에 남아질 수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과 믿음은 인간들이 4천년 동안 믿어온 차원의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일대를 거쳐 먼 후대, 즉 영원까지 미치는 믿음, 하나님이 생각지 못했고 그 당시에 나타나지 못했던 사랑과 선을 나타낼 수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상에 없었던 믿음의 왕이었고,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이러한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사탄을 이긴 승리의 왕 예수
그 다음 두번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이 수천년 동안 사탄과 싸워 나왔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비로소 승리의 왕으로 설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자랑하신 것입니다.
4천년 동안 수많은 선조들이 이 땅에 와서 사탄과 싸웠습니다. 메시아를 보내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수많은 선지자들이 와서 사탄과 싸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탄을 굴복시키지 못했습니다. 4천년 동안 사탄과 싸웠지만 사탄을 점령하지 못했고, 사탄을 굴복시킬 수 없었으나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사탄을 점령하고 굴복시켰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가지고 사탄을 굴복시켰느냐? 하늘의 사랑의 원칙을 가지고 굴복시켰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사탄을 굴복시키는 데는 사랑의 원칙이 아니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의 원칙은 어떤 원칙일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 앞에서 돌아 가셨습니다. 또, 이 땅 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신 외아들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30여 평생의 생활을 보면 어느 한 부분 효자의 생활이 아닌 부분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있어서의 한날의 생활은 밤이건 낮이건 어떤 시간도 떼어버릴 수 없는, 하나님의 마음에 알맞는 생활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이 땅 위에 너 하나밖에 없구나'하는 말씀을 하실 정도로 효자의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일생의 모든 것이 사라질지라도 오로지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자기의 육신은 무시되더라도 만민의 구주로서의 사명을 다하겠다는 마음밖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아버지여 ! 나 하나가 사라져서 당신이 4천년 동안 찾아오신 사랑의 대신 존재, 당신의 사랑을 받는 아들로서 그 사랑의 대가를 돌려 드릴 수 있는 효자가 되겠습니다' 하는 이 하나의 마음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억천만민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럴래야 그럴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천지의 중심으로 맺어진, 하나님의 사랑에 인연된 부자관계의 천륜의 힘은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환경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골고다 산상의 외로운 자리에서도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을 아셨고, 4천년 동안 고대하신 아버지의 사랑의 심정을 잘 아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이 변치 않는 이상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있는 아들로서의 자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독생자로,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의 화신체로 온 피조만물 앞에 자랑했습니다. 사탄세계 앞에 자랑했습니다.
오늘날까지의 6천년 역사상에는 자기를 낳아 준 부모에게 효성을 다한 사람이 많습니다. 사탄 품안에서의 효자 효녀는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할 수 있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려면 역사상의 모든 사탄권내의 효자 효녀들을 합한 이상의 가치와 실적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이는 내 사랑 하는 아들' 이라고 할 수 있고, 천상천하에 유일하게 천륜을 대신한 효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을 가지고 예수님이 수많은 군중을 바라보게 될 때 어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의 심정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와 그들의 가치 사이에는 천지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스스로 늠름하게 하늘 앞에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과 사랑으로 맺어진 부자의 관계에서 나오는 힘에 의해 사탄까지 망하게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탄권내의 많은 사람들이 사탄에게 동조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기준과는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사랑을 갖고 나타나는 거기에는 원수들 앞에 있어서 철옹성과 같은 방패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중심삼고 모이는 곳곳마다 사탄을 굴복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4천년 동안 선조들이 승리한 것과 패한 것 모두를 합하여 자신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쟁취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무엇이뇨? 지금까지 인류가 6천년 동안 사탄과 투쟁해 나왔는데, 어찌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4천년 동안 많은 선지자들이 승리한 것을 전부 합한 가치 이상의 승리의 실적을 거둘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또, 우리의 선조들이 어떻게 사탄 대해 승리할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줄 알아야 하며, 여러분 자신이 그분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볼 줄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이 이제 이 땅 위의 성도들에게 염원하는 것이 무엇일 것이냐. 예수 그리스도만 사탄을 굴복시킬 것이 아니라 오늘날 끝날의 전체의 성도들이 모두 사탄을 굴복시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30여 평생 승리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승리 하지 못할 말은 피했다는 것입니다. 승리할 수 없는 말은 피했습니다. 예수님이 패할 수 있고, 사탄이 접근해올 수 있는 말은 피했다는 것입니다. 남 보기에는 한 사람의 동네 총각이었지만 일단 전체를 책임지고 나서면, 그의 말이나 행동이나 소망은 전체를 승리의 기대 위에 올려 놓을 수 있는 말과 행동과 소망이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님이 이렇게 수고하시며 다져 놓으신 승리의 발판 위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으로부터 이런 은사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서 승리하여 이뤄 놓으신 승리의 발판 위에 서서 어떻게 하면 더 높이 올라가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하늘이 여러분을 위해 이 땅에 내려오셨음을 알고 하늘에 올라갈 때까지 승리의 땀을 흘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채워야 하겠습니다. 예수와 성신의 사랑을 느껴서 하늘의 사랑을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승리하셨지만 십자가에 돌아가신 연고로 영적으로만 승리의 기대를 닦으셨습니다. 그래서 2천년의 역사를 종결해야 하는 우리는 예수의 영적인 기대 위에 서서 예수의 몸을 대신하여 승리의 터전을 이루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에게는, 영적인 구원을 완성시켜 주는 신약성경의 차원을 넘어서 실체적인 구원을 완성시켜 주는 새로운 말씀을 하늘이 이 땅에 선포하게 될 때에 사탄이 이를 반박할 것인데, 이것까지 책임지고 싸워 이겨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 예수그리스도는 어떤 조건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가. 예수님은 '책임을 지는 왕자'가 되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태어날 적부터 요셉의 집에서 목수의 일을 했지만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가정에서 목수의 일을 도우면서 부모가 떠맡고 있는 가족의 생계를 도와주는 이런 생활을 했지만, 예수님의 마음에는 그것만이 생활의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또, 큰 뜻을 마음에 품은 동시에 작은 일에까지도 책임을 다하신 예수였습니다. 이런 예수님이었음을 여러분은 망각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전체의 뜻을 책임진 왕자
예수님의 생활은 전부 자신의 책임과 사명을 완수하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는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책임을 땅 위에 완수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30여 평생의 생애는 영원 불변의 실적, 책임을 다한 실적을 이 땅위에 이루어 놓은 생애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리스도의 믿음의 복음이 남아 있는 이상 그의 생애도 남아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일대에 있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역사적인 면에서도 책임을 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역사해 오신 뜻에 대해서도 홀로 책임을 졌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하나님의 책임을 대신하여 나서는 이가 이 땅 위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혈혈단신으로 책임을 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홀로 전체의 뜻을 책임지는 것에 대해 외로워한 반면 더 큰 책임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하루하루의 생활은 전체적인 책임을 완수하기 위한 발판을 놓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리고 30년 준비시대와 3년 실천시대, 3일간의 완성시대까지 예수님의 시선 앞에는 사탄을 굴복시키는 것과 그 토대 위에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켜 드리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임을 절감하며 산 생애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한 순간에도 이 책임을 잊어버린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산정에 나갈 때에도, 온 만민이 비방하고 사탄이 조롱하는 그런 최후의 순간에도 예수님은 맡은 바의 천륜의 책임을 홀로 감당하겠다는 마음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책임완수의 일념을 갖고 십자가의 고비를 넘었기 때문에 부활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상에 남아있는 제자들을 재 수습해야 할 책임이 있었으므로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 가셨다가 다시 내려오셔서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여 부활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어서도 흩어진 제자들을 염려했고, 무덤의 3일간에도 이 제자들을 영원히 지키겠다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 해변가로 제자들을 찾아다니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책임감이 없었던 그들을 대하여 예수님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어려운 자리에서 배척한 제자들이지만, 예수님은 부활 후에 먼저 갈릴리로 찾아가셔서 자신의 책임을 수행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죽음의 고개를 넘을때 변하지 않는 제자들로 세워 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야말로 오늘날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인격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 당시의 제자들과 그 이후의 수많은 성도들, 2천년이 경과한 오늘날 우리들까지 책임지셨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구원의 역사가 전체의 역사였습니다. 하늘의 뜻은 전체를 구원하는 것이므로 예수님은 전인류까지 책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떠한 책임을 지고 계신가. 예수님은 세상적인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계신 것이 아니고, 잘 사는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명을 책임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세상에 어려운 일이 많지만 이 이상 어려운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생사의 문제를 책임졌기에…….
오늘날 신앙자들은 까딱하면, 까딱하기만 하면 생사가 왔다갔다하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칼날과 같은 아슬아슬한 선상에 서 있는 사람들을 모두 오른편으로 끌어내는 책임을 예수님은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는 옛날에 30여 평생을 지낼 때도 그랬고, 죽음의 길에 들어 섰을 때에도 그랬으며, 어느 때 어느 시기에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인간들은 이런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끼지 못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는 이 책임과 사명, 이 한 뜻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전체의 책임을 감당해야 할 우리
그러면 이러한 예수님, 오늘날 우리들이 믿고 있는 예수님을 모시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언제나 예수님에게 책임을 지우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느냐. 예수님은 4천년 역사를 책임지셨었고, 당대의 인류를 책임지셨었고, 돌아가신 이후 2천년 동안 인류를 책임져 나오셨는데, 우리 자신들도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께 책임을 지우는 생활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아바 아버지여 2천년 동안 책임져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려움을 알겠나이다'라고 하면서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책임을 지고 계신 예수님을 원통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일들이 누구때문이었던고! 보잘것없는 우리들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생각하여 예수 앞에 머리를 숙일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여!' 라고 부르면서도 뼈가 녹는 듯한 심정, 살이 녹는 듯한 심정을 느껴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비로소 4천년의 뜻을 책임지려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너 하나만이 내가 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구나'라고 하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었습니다. 모든 책임의 보따리를 뒤집어 쓸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대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세워진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전체의 책임을 감당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책임하는 그 일이 어렵다면 '어려운 그 일을 나에게 지워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심정으로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 나타나 '염원하시는 그 심정을 나를 통하여 나타내시옵소서' '나를 통하여 보여 주시옵소서'라고 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끝날에 남아질 무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무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2천년 동안 인류를 위해 책임을 져 나오시던 그 목적을 어디에서 이룰 것인가?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생명을 걸고 책임의 노정을 걸으신 예수께서 책임질 줄 아는 사람들을 못찾으신다면…….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상에서 역사에 대한 책임과 현실에 대한 책임과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하나님 앞에 맹세하던 그 책임을 우리에게 지워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하늘 앞에 책임을 돌릴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4천년 동안 안타까와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땅 위에서 책임의 왕으로서 역사적인 모든 책임을 감당해 나오시던 예수 그리스도 대신 그 책임을 지고 싸우겠나이다. 원수 사탄과 수천만 인간들이 환영하지 않더라도 제가 대신 책임지고 싸우겠나이다.'라고 기도할 줄 아는 사람들이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나와야만 예수님께서 안식의 동산에서 쉬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끝날, 이때에 들려오는 것은, '내 생명의 호소를 들을 자가 누군고?'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을 물려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호소를 들어줄 사람은 누구인가! 하늘은 이런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은 만민을 위해서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쉬지 못하시고 아직까지 기도하고 계신 것은 예수님에게 무슨 잘못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또 예수님이 아버지 앞에 서시지 못할 자리에 서 계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들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2천년 동안 수고하고 계신 예수님을 위해서 여러분은 무엇보다도 생명을 끊어서라도 생명의 책임을 완수하려고 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책임이 이 땅위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남아진 생명의 책임을 완수해야 하는 때가 재림시대라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이 나타남으로써 재림시대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는 역사적인 생명의 책임과 미래적인 생명의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이기에 여러분은 최후의 싸움에서 그와 더불어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재림시대의 시작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세우셔서, 믿음의 예수님을 통하여, 혹은 진리의 예수님을 통하여. 인간들을 사랑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여러분을 사랑하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마음으로라도 믿음의 예수를 본받으라 할 때, '예, 그렇소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승리하신 예수를 본받으라 할 때 '그렇소이다', 책임지고 계신 예수님을 본받으라 할 때, '예, 그렇소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어느 한 때, 어느 한 시간도 쉬시지 못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쉬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랑으로 세우셨던 이런 조건들을 여러분들이 대신 맡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영계에 가신 예수님의 자랑의 조건을 이 땅 위에서 이루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먼저는 믿지 못하는 세상에서 믿는 것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책임지지 못하는 이런 세상에서 책임지는 것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랑이 영계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땅위의 우리에게 미쳐지고, 땅 위의 우리를 통하여 만물세계도 그 자랑이 미쳐져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창조의 이념, 인간을 만물의 주인공으로 세워 만물 앞에 자랑하시려고 했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로소 인간과 만물이 자랑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경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전체적인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너무나 형편없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앙도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인간들이 사탄과 싸워야 할 때, '아바 아버지여, 이 세계 만인간이 사탄과 싸워 이길 수 있게 힘을 주시옵소서. 온 인류가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전체의 적을 맞아 혼자 싸워서 승리해 가지고 '아버지여 기뻐하시옵소서' 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세계의 모든 책임을 지고 나가는 모습을 하나님께 보여 드리고. 억천만 인간, 혹은 천천만 성도들과 피조세계 앞에 책임지고 나가는 중심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을 통하여 땅을 대한 하나님의 원한을 해원할 수 있으며 그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기도합시다.
말씀선집, 제1권 2편
하나님의 자랑이 된 예수 그리스도 (훈독본)
1956년 5월 16일(水), 전 본부교회.
고린도후서 8:16-24
<기 도>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I30s/4
하나님의 자랑이 되었어야 했던 아담
해와
천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천지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자랑의
실체로 지으셨습니다. 또, 아담 해와를 천사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자랑의 실체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담 해와가 만물 앞에 서면 만물은 아담
해와에게 경배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지어 놓으신 피조의 동산이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깨어졌던 것입니다.
즉, 인간의 타락으로 인간 앞에 자랑이 되어야 했던 만물의 가치가 제대로 나타날 수 없었고, 무형세계의 가치의 중심으로 나타날 수 있었던 인간이
그 자격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자랑의 뜻으로서 하나님 대신 만물 앞에 나타나 화동의 중심으로서의 영광을 받아야 할 인간의 위치가
근본적으로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타락 이후 6천년이 경과한 오늘날까지 하나님이 찾아오신
표준은 무엇이었던고?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하고, 형상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대신하고, 천륜의 행사를 대신한 전체의 대표자,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하나의 대표자를 찾아오셨습니다.
또, 지금까지 이 하나의 뜻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도 수고해 나왔습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의 타락 이후 4천년 만에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한 분이었던가. 그는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대신하고, 외적 형상을
대신한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의 이념으로 세웠던 '자랑의 기준'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수행해야 했던 본래의 사명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실체로 나타났어야 했습니다. 먼저
만물 앞에 자랑할 수 있어야 했고, 그 다음에는 사탄 앞에 자랑할 수 있어야 했으며, 천천만 성도들 앞에 자랑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기뻐하며 영광을 누리려던 것을 복귀하는 한날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중심존재인 예수를 세워놓고 역사하며
섭리하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민족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하게 하셨고, 그 가운데에
당신 앞에 세워질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칭송하고, 하나님이 자랑하고자 하셨던 그
기준에서 감사의 심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대했던들 이렇듯 역사적인 서러움이 6천년까지 연장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랑으로 세워진 믿음의 왕 예수
하나님의 자랑으로 나타났던 예수 그리스도의 눈에 보여지는 것과 이스라엘민족이
자랑하고 있던 것과는 판이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뜻을 대해 나온 이스라엘민족이 스스로 하나님의 선민임을 자랑했던 형과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뜻을 받들면서 싸우시던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자랑했던 형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민족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랑할 수 있었던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예수님의 생애 앞에서 자기들이 그때까지 세워나오던 민족적인 자랑을 포기하는 자리에 처해야 했던
것입니다.
자기들의 자랑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자랑하기 위한 새로운 자랑을
가지고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앞에 온유겸손히 엎드렸던들 십자가의 어려운 관문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남아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십자가의 도라는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의 말씀을 경청함으로 말미암아 구원되었다는 말은 있었어도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 되었다는 이런 말은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축복하여 십자가에 속죄의 권한이 있음을
믿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생전에 하신 말씀에 속죄의 권한이 있었다는 것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물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써 영적인 속죄가 가능하지만, 예수님이 살아 생전에 하신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실천하였더라면 영육 아울러 구속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와서 먼저 무엇을 자랑해야 했던가. 아담
해와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여 타락했고
4천년 동안 섭리역사가 연장되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연장된 4천년 역사를 가로막기 위해 사탄 앞에 세운 하나의 중심이 뭐냐 하면
믿음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믿음의 왕으로 이 땅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는 어떤 분이냐, 또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랑으로 설 수 있는 하나의 가치의
기준을 어디에서 세웠느냐? 4천년 역사가 흘러오는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대할 수 없었던 온 만민들 앞에 예수님은
믿음의 왕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자랑하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랑으로 세워졌던 믿음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인가. 우리는 우리가 어떤 한계 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강림하시기 전의 4천년 역사와 예수님의
30여 생애와 영원한 미래에까지 미치는 그의 가치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우리는 억조창생이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반대하는
자리에 서 있더라도 '나는 그 뜻 하나만을 붙들겠나이다.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는 것을 나는 믿겠나이다'라고 할 수 있는 믿음의 기준이 세워져야
예수님이 만민의 구세주, 믿음의 왕으로 설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대표자, 믿음의 왕으로서 구약성경에 없었던 새로운 말씀을
발표했습니다. 그 말씀은 신약의 말씀으로서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 오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갖추어야 할 것은, 오늘 이 시대는 새로운 시대요, 앞으로
영광의 시대가 올 것인데 그 영광의 시대에 남아질 수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과 믿음은 인간들이 4천년 동안 믿어온 차원의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일대를 거쳐 먼 후대, 즉 영원까지 미치는 믿음, 하나님이 생각지 못했고 그 당시에 나타나지 못했던 사랑과 선을 나타낼 수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상에 없었던 믿음의 왕이었고,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이러한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사탄을 이긴 승리의 왕 예수
그 다음 두번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이 수천년 동안 사탄과 싸워 나왔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비로소 승리의 왕으로 설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자랑하신 것입니다.
4천년 동안 수많은 선조들이 이 땅에 와서 사탄과 싸웠습니다. 메시아를
보내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수많은 선지자들이 와서 사탄과 싸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탄을 굴복시키지 못했습니다. 4천년 동안 사탄과
싸웠지만 사탄을 점령하지 못했고, 사탄을 굴복시킬 수 없었으나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사탄을 점령하고 굴복시켰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가지고 사탄을 굴복시켰느냐? 하늘의 사랑의 원칙을 가지고
굴복시켰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사탄을 굴복시키는 데는 사랑의 원칙이 아니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의 원칙은 어떤 원칙일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 앞에서 돌아
가셨습니다. 또, 이 땅 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신 외아들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30여 평생의 생활을 보면 어느 한 부분 효자의 생활이 아닌 부분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있어서의 한날의 생활은 밤이건 낮이건 어떤
시간도 떼어버릴 수 없는, 하나님의 마음에 알맞는 생활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이 땅 위에 너 하나밖에 없구나'하는 말씀을 하실 정도로
효자의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일생의 모든 것이 사라질지라도 오로지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자기의 육신은 무시되더라도 만민의 구주로서의 사명을 다하겠다는 마음밖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아버지여 ! 나 하나가
사라져서 당신이 4천년 동안 찾아오신 사랑의 대신 존재, 당신의 사랑을 받는 아들로서 그 사랑의 대가를 돌려 드릴 수 있는 효자가 되겠습니다'
하는 이 하나의 마음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억천만민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럴래야 그럴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천지의 중심으로 맺어진, 하나님의 사랑에 인연된 부자관계의 천륜의 힘은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환경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골고다 산상의 외로운 자리에서도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을 아셨고, 4천년 동안 고대하신 아버지의 사랑의 심정을 잘 아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이 변치 않는 이상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있는
아들로서의 자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독생자로,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의 화신체로 온 피조만물 앞에 자랑했습니다.
사탄세계 앞에 자랑했습니다.
오늘날까지의 6천년 역사상에는 자기를 낳아 준 부모에게 효성을 다한 사람이
많습니다. 사탄 품안에서의 효자 효녀는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할 수 있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려면 역사상의 모든 사탄권내의 효자 효녀들을 합한 이상의 가치와 실적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이는 내 사랑 하는
아들' 이라고 할 수 있고, 천상천하에 유일하게 천륜을 대신한 효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을 가지고 예수님이 수많은 군중을 바라보게 될 때 어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의 심정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와 그들의 가치 사이에는 천지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스스로
늠름하게 하늘 앞에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과 사랑으로 맺어진 부자의 관계에서 나오는 힘에 의해 사탄까지
망하게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탄권내의 많은 사람들이 사탄에게 동조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기준과는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사랑을 갖고 나타나는 거기에는 원수들 앞에 있어서 철옹성과 같은 방패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중심삼고 모이는 곳곳마다 사탄을 굴복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4천년 동안 선조들이 승리한 것과 패한 것 모두를 합하여 자신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쟁취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무엇이뇨? 지금까지 인류가 6천년 동안
사탄과 투쟁해 나왔는데, 어찌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4천년 동안 많은 선지자들이 승리한 것을 전부 합한 가치 이상의 승리의 실적을 거둘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또, 우리의 선조들이 어떻게 사탄 대해 승리할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줄
알아야 하며, 여러분 자신이 그분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볼 줄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이 이제 이 땅 위의 성도들에게 염원하는 것이 무엇일 것이냐. 예수
그리스도만 사탄을 굴복시킬 것이 아니라 오늘날 끝날의 전체의 성도들이 모두 사탄을 굴복시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30여 평생 승리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승리 하지
못할 말은 피했다는 것입니다. 승리할 수 없는 말은 피했습니다. 예수님이 패할 수 있고, 사탄이 접근해올 수 있는 말은 피했다는 것입니다. 남
보기에는 한 사람의 동네 총각이었지만 일단 전체를 책임지고 나서면, 그의 말이나 행동이나 소망은 전체를 승리의 기대 위에 올려 놓을 수 있는
말과 행동과 소망이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님이 이렇게 수고하시며 다져 놓으신 승리의 발판 위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으로부터 이런 은사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서 승리하여 이뤄 놓으신
승리의 발판 위에 서서 어떻게 하면 더 높이 올라가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하늘이 여러분을 위해 이 땅에 내려오셨음을 알고 하늘에
올라갈 때까지 승리의 땀을 흘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채워야 하겠습니다. 예수와 성신의 사랑을
느껴서 하늘의 사랑을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승리하셨지만 십자가에 돌아가신 연고로 영적으로만 승리의
기대를 닦으셨습니다. 그래서 2천년의 역사를 종결해야 하는 우리는 예수의 영적인 기대 위에 서서 예수의 몸을 대신하여 승리의 터전을 이루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에게는, 영적인 구원을 완성시켜 주는 신약성경의 차원을 넘어서 실체적인 구원을 완성시켜 주는 새로운 말씀을
하늘이 이 땅에 선포하게 될 때에 사탄이 이를 반박할 것인데, 이것까지 책임지고 싸워 이겨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전체의 뜻을 책임진
왕자
예수님의 생활은 전부 자신의 책임과 사명을 완수하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는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책임을 땅 위에 완수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30여 평생의 생애는 영원 불변의 실적, 책임을 다한 실적을 이 땅위에
이루어 놓은 생애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리스도의 믿음의 복음이 남아 있는 이상 그의 생애도 남아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홀로 전체의 뜻을 책임지는 것에 대해 외로워한 반면 더 큰
책임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하루하루의 생활은 전체적인 책임을 완수하기 위한 발판을 놓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리고 30년 준비시대와
3년 실천시대, 3일간의 완성시대까지 예수님의 시선 앞에는 사탄을 굴복시키는 것과 그 토대 위에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켜 드리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임을 절감하며 산 생애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한 순간에도 이 책임을 잊어버린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산정에 나갈 때에도, 온 만민이 비방하고 사탄이
조롱하는 그런 최후의 순간에도 예수님은 맡은 바의 천륜의 책임을 홀로 감당하겠다는 마음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책임완수의 일념을 갖고
십자가의 고비를 넘었기 때문에 부활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상에 남아있는 제자들을 재 수습해야 할 책임이 있었으므로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 가셨다가 다시 내려오셔서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여 부활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어서도 흩어진 제자들을 염려했고, 무덤의 3일간에도 이 제자들을
영원히 지키겠다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 해변가로 제자들을 찾아다니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책임감이 없었던 그들을 대하여 예수님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어려운 자리에서 배척한 제자들이지만, 예수님은 부활 후에 먼저 갈릴리로 찾아가셔서 자신의 책임을
수행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죽음의 고개를 넘을때 변하지 않는 제자들로 세워 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야말로 오늘날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인격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 당시의 제자들과 그 이후의 수많은 성도들, 2천년이
경과한 오늘날 우리들까지 책임지셨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구원의 역사가 전체의 역사였습니다. 하늘의 뜻은 전체를 구원하는 것이므로 예수님은
전인류까지 책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떠한 책임을 지고 계신가. 예수님은 세상적인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계신 것이 아니고, 잘 사는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명을 책임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어려운 일이 많지만 이 이상 어려운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는 옛날에 30여 평생을 지낼 때도 그랬고, 죽음의 길에 들어 섰을 때에도 그랬으며, 어느 때 어느 시기에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인간들은 이런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끼지 못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는 이 책임과 사명, 이 한 뜻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전체의 책임을 감당해야 할 우리
그러면 이러한 예수님, 오늘날 우리들이 믿고 있는 예수님을 모시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언제나 예수님에게 책임을 지우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느냐. 예수님은 4천년 역사를
책임지셨었고, 당대의 인류를 책임지셨었고, 돌아가신 이후 2천년 동안 인류를 책임져 나오셨는데, 우리 자신들도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께 책임을 지우는 생활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아바 아버지여 2천년 동안 책임져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려움을 알겠나이다'라고 하면서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책임을 지고 계신 예수님을 원통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일들이 누구때문이었던고! 보잘것없는 우리들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생각하여 예수 앞에 머리를 숙일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여!' 라고 부르면서도 뼈가 녹는 듯한 심정, 살이 녹는 듯한
심정을 느껴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비로소 4천년의 뜻을 책임지려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너 하나만이
내가 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구나'라고 하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었습니다. 모든 책임의 보따리를
뒤집어 쓸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대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세워진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전체의 책임을
감당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책임하는 그 일이 어렵다면 '어려운 그 일을 나에게 지워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심정으로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 나타나 '염원하시는 그 심정을 나를 통하여 나타내시옵소서' '나를 통하여 보여 주시옵소서'라고 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끝날, 이때에 들려오는 것은, '내 생명의 호소를 들을 자가
누군고?'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을 물려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호소를 들어줄 사람은 누구인가! 하늘은 이런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책임이 이 땅위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남아진 생명의 책임을 완수해야 하는 때가 재림시대라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이
나타남으로써 재림시대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는 역사적인 생명의 책임과 미래적인 생명의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이기에 여러분은 최후의 싸움에서 그와
더불어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재림시대의 시작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세우셔서, 믿음의 예수님을 통하여, 혹은 진리의
예수님을 통하여. 인간들을 사랑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여러분을 사랑하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마음으로라도 믿음의 예수를 본받으라 할 때, '예,
그렇소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승리하신 예수를 본받으라 할 때 '그렇소이다', 책임지고 계신 예수님을 본받으라 할 때, '예,
그렇소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어느 한 때, 어느 한 시간도 쉬시지 못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쉬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랑으로 세우셨던 이런 조건들을 여러분들이 대신 맡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영계에 가신 예수님의 자랑의 조건을 이 땅 위에서 이루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먼저는 믿지 못하는 세상에서 믿는 것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책임지지 못하는 이런 세상에서 책임지는 것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랑이 영계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땅위의
우리에게 미쳐지고, 땅 위의 우리를 통하여 만물세계도 그 자랑이 미쳐져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창조의 이념, 인간을 만물의 주인공으로
세워 만물 앞에 자랑하시려고 했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로소 인간과 만물이 자랑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경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전체적인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모든 책임을 지고 나가는 모습을 하나님께 보여 드리고. 억천만 인간,
혹은 천천만 성도들과 피조세계 앞에 책임지고 나가는 중심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을 통하여 땅을 대한 하나님의 원한을 해원할 수 있으며 그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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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랑이 된 예수 그리스도
1956.05.16 (수), 한국 전본부교회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를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저희에게 보이라.(고후 8:24)"는 말씀을 중심삼고, 오늘은 '하나님의 자랑이 된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랑이 되었어야 했던 아담 해와
천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천지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자랑의
실체로 지으셨습니다. 또, 아담 해와를 천사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자랑의 실체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담 해와가 만물 앞에 서면 만물은 아담
해와에게 경배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지어 놓으신 피조의 동산이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깨어졌던 것입니다.
즉, 인간의 타락으로 인간 앞에 자랑이 되어야 했던 만물의 가치가 제대로 나타날 수 없었고, 무형세계의 가치의 중심으로 나타날 수 있었던 인간이
그 자격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자랑의 뜻으로서 하나님 대신 만물 앞에 나타나 화동의 중심으로서의 영광을 받아야 할 인간의 위치가
근본적으로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타락 이후 6천년이 경과한 오늘날까지 하나님이 찾아오신
표준은 무엇이었던고?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하고, 형상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대신하고, 천륜의 행사를 대신한 전체의 대표자,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하나의 대표자를 찾아오셨습니다.
또, 지금까지 이 하나의 뜻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도 수고해 나왔습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의 타락 이후 4천년 만에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한 분이었던가. 그는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대신하고, 외적 형상을
대신한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의 이념으로 세웠던 '자랑의 기준'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수행해야 했던 본래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일대에서 그의 생활을 통하여, 어느 부분
부분 또는 어느 한 부분이라도 하나님의 심정과 형상을 대신한 자녀로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될 중대한 책임자의 자리에 서 있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실체로 나타났어야 했습니다. 먼저
만물 앞에 자랑할 수 있어야 했고, 그 다음에는 사탄 앞에 자랑할 수 있어야 했으며, 천천만 성도들 앞에 자랑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기뻐하며 영광을 누리려던 것을 복귀하는 한날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중심존재인 예수를 세워놓고 역사하며
섭리하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민족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하게 하셨고, 그 가운데에
당신 앞에 세워질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칭송하고, 하나님이 자랑하고자 하셨던 그
기준에서 감사의 심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대했던들 이렇듯 역사적인 서러움이 6천년까지 연장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랑으로 세워진 믿음의 왕 예수
하나님의 자랑으로 나타났던 예수 그리스도의 눈에 보여지는 것과 이스라엘민족이
자랑하고 있던 것과는 판이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뜻을 대해 나온 이스라엘민족이 스스로 하나님의 선민임을 자랑했던 형과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뜻을 받들면서 싸우시던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자랑했던 형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민족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랑할 수 있었던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예수님의 생애 앞에서 자기들이 그때까지 세워나오던 민족적인 자랑을 포기하는 자리에 처해야 했던
것입니다.
자기들의 자랑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자랑하기 위한 새로운 자랑을
가지고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앞에 온유겸손히 엎드렸던들 십자가의 어려운 관문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남아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십자가의 도라는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의 말씀을 경청함으로 말미암아 구원되었다는 말은 있었어도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 되었다는 이런 말은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축복하여 십자가에 속죄의 권한이 있음을
믿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생전에 하신 말씀에 속죄의 권한이 있었다는 것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물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써 영적인 속죄가 가능하지만, 예수님이 살아 생전에 하신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실천하였더라면 영육 아울러 구속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와서 먼저 무엇을 자랑해야 했던가. 아담
해와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여 타락했고
4천년 동안 섭리역사가 연장되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연장된 4천년 역사를 가로막기 위해 사탄 앞에 세운 하나의 중심이 뭐냐 하면
믿음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믿음의 왕으로 이 땅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는 어떤 분이냐, 또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랑으로 설 수 있는 하나의 가치의
기준을 어디에서 세웠느냐? 4천년 역사가 흘러오는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대할 수 없었던 온 만민들 앞에 예수님은
믿음의 왕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자랑하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노라 하였지만, 그러한 믿음으로써는 하나님의 천륜의
심정을 통한 상하의 내적인 관계를 맺어 놓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왔다 갔지만 그들이 믿고 그들이 따라가던 것을 통해서는
하나님 속에 사무쳐 있는 사랑의 원칙을 알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는 수많은 성도들이 걸어 나오던 그 역사적인 믿음의 과정 전체를
도맡아서 혈혈단신으로 모든 사탄의 역사를 끊어놓으려 했습니다. 4천년의 믿음을 총 결실하는 입장의 예수 그리스도는 우주의 중심형으로, 믿음의
주인공으로 왔다 가셨습니다.
이 하나의 기준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대신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했는데. 선포하신 말씀은 구약 말씀 그대로가 아니었습니다. 구약 신앙을 가지고
믿은 것이 아닙니다. 선지선열들이 말씀하고 예언했던 그 한계권 내에서 믿은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이스라엘민족이 믿고 나온
구약성경의 말씀권 내에서의 메시아의 사상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한 믿음을 가졌느냐 하면, 구약성경에 없는, 그때까지의
역사상에 없었던 믿음, 그때까지 나타나지 아니 한 새로운 믿음, 세계의 어떤 환경,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믿음을 가졌던 믿음의 대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역사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달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랑으로 세워졌던 믿음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인가. 우리는 우리가 어떤 한계 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강림하시기 전의 4천년 역사와 예수님의
30여 생애와 영원한 미래에까지 미치는 그의 가치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우리는 억조창생이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반대하는
자리에 서 있더라도 '나는 그 뜻 하나만을 붙들겠나이다.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는 것을 나는 믿겠나이다'라고 할 수 있는 믿음의 기준이 세워져야
예수님이 만민의 구세주, 믿음의 왕으로 설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생전에 말씀을 다
해주고 가셨던가. 만일 말씀을 다 해주고 가시지 않았다면, 우리에게는 다시 오시는 주님이 해 주시는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담
해와의 타락 이후 4천년만에 사탄 앞에서나 모든 피조세계 앞에서 자랑할 수 있었던 믿음의 왕이요, 하나님이 찾으시려던 믿음의 왕이었는데,
유대민족이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그를 원수에게 내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다시 온 피조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기준을 갖고 오셔서 여러분에게 새로운 말씀을 해 주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대표자, 믿음의 왕으로서 구약성경에 없었던 새로운 말씀을
발표했습니다. 그 말씀은 신약의 말씀으로서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 오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갖추어야 할 것은, 오늘 이 시대는 새로운 시대요, 앞으로
영광의 시대가 올 것인데 그 영광의 시대에 남아질 수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과 믿음은 인간들이 4천년 동안 믿어온 차원의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일대를 거쳐 먼 후대, 즉 영원까지 미치는 믿음, 하나님이 생각지 못했고 그 당시에 나타나지 못했던 사랑과 선을 나타낼 수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상에 없었던 믿음의 왕이었고,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이러한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사탄을 이긴
승리의 왕 예수
그 다음 두번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이 수천년 동안 사탄과 싸워 나왔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비로소 승리의 왕으로 설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자랑하신 것입니다.
4천년 동안 수많은 선조들이 이 땅에 와서 사탄과 싸웠습니다. 메시아를
보내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수많은 선지자들이 와서 사탄과 싸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탄을 굴복시키지 못했습니다. 4천년 동안 사탄과
싸웠지만 사탄을 점령하지 못했고, 사탄을 굴복시킬 수 없었으나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사탄을 점령하고 굴복시켰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가지고 사탄을 굴복시켰느냐? 하늘의 사랑의 원칙을 가지고
굴복시켰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사탄을 굴복시키는 데는 사랑의 원칙이 아니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의 원칙은 어떤 원칙일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 앞에서 돌아
가셨습니다. 또, 이 땅 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신 외아들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30여 평생의 생활을 보면 어느 한 부분 효자의 생활이 아닌 부분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있어서의 한날의 생활은 밤이건 낮이건 어떤
시간도 떼어버릴 수 없는, 하나님의 마음에 알맞는 생활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이 땅 위에 너 하나밖에 없구나'하는 말씀을 하실 정도로
효자의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일생의 모든 것이 사라질지라도 오로지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자기의 육신은 무시되더라도 만민의 구주로서의 사명을 다하겠다는 마음밖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아버지여 ! 나 하나가
사라져서 당신이 4천년 동안 찾아오신 사랑의 대신 존재, 당신의 사랑을 받는 아들로서 그 사랑의 대가를 돌려 드릴 수 있는 효자가 되겠습니다'
하는 이 하나의 마음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억천만민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럴래야 그럴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천지의 중심으로 맺어진, 하나님의 사랑에 인연된 부자관계의 천륜의 힘은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환경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골고다 산상의 외로운 자리에서도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을 아셨고, 4천년 동안 고대하신 아버지의 사랑의 심정을 잘 아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이 변치 않는 이상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있는
아들로서의 자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독생자로,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의 화신체로 온 피조만물 앞에 자랑했습니다.
사탄세계 앞에 자랑했습니다.
오늘날까지의 6천년 역사상에는 자기를 낳아 준 부모에게 효성을 다한 사람이
많습니다. 사탄 품안에서의 효자 효녀는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할 수 있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려면 역사상의 모든 사탄권내의 효자 효녀들을 합한 이상의 가치와 실적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이는 내 사랑 하는
아들' 이라고 할 수 있고, 천상천하에 유일하게 천륜을 대신한 효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을 가지고 예수님이 수많은 군중을 바라보게 될 때 어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의 심정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와 그들의 가치 사이에는 천지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스스로
늠름하게 하늘 앞에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과 사랑으로 맺어진 부자의 관계에서 나오는 힘에 의해 사탄까지
망하게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탄권내의 많은 사람들이 사탄에게 동조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기준과는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사랑을 갖고 나타나는 거기에는 원수들 앞에 있어서 철옹성과 같은 방패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중심삼고 모이는 곳곳마다 사탄을 굴복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4천년 동안 선조들이 승리한 것과 패한 것 모두를 합하여 자신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쟁취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무엇이뇨? 지금까지 인류가 6천년 동안
사탄과 투쟁해 나왔는데, 어찌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4천년 동안 많은 선지자들이 승리한 것을 전부 합한 가치 이상의 승리의 실적을 거둘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또, 우리의 선조들이 어떻게 사탄 대해 승리할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줄
알아야 하며, 여러분 자신이 그분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볼 줄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이 이제 이 땅 위의 성도들에게 염원하는 것이 무엇일 것이냐. 예수
그리스도만 사탄을 굴복시킬 것이 아니라 오늘날 끝날의 전체의 성도들이 모두 사탄을 굴복시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30여 평생 승리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승리 하지
못할 말은 피했다는 것입니다. 승리할 수 없는 말은 피했습니다. 예수님이 패할 수 있고, 사탄이 접근해올 수 있는 말은 피했다는 것입니다. 남
보기에는 한 사람의 동네 총각이었지만 일단 전체를 책임지고 나서면, 그의 말이나 행동이나 소망은 전체를 승리의 기대 위에 올려 놓을 수 있는
말과 행동과 소망이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님이 이렇게 수고하시며 다져 놓으신 승리의 발판 위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으로부터 이런 은사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서 승리하여 이뤄 놓으신
승리의 발판 위에 서서 어떻게 하면 더 높이 올라가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하늘이 여러분을 위해 이 땅에 내려오셨음을 알고 하늘에
올라갈 때까지 승리의 땀을 흘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채워야 하겠습니다. 예수와 성신의 사랑을
느껴서 하늘의 사랑을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승리하셨지만 십자가에 돌아가신 연고로 영적으로만 승리의
기대를 닦으셨습니다. 그래서 2천년의 역사를 종결해야 하는 우리는 예수의 영적인 기대 위에 서서 예수의 몸을 대신하여 승리의 터전을 이루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에게는, 영적인 구원을 완성시켜 주는 신약성경의 차원을 넘어서 실체적인 구원을 완성시켜 주는 새로운 말씀을
하늘이 이 땅에 선포하게 될 때에 사탄이 이를 반박할 것인데, 이것까지 책임지고 싸워 이겨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 예수그리스도는 어떤 조건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가. 예수님은 '책임을 지는 왕자'가 되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태어날 적부터 요셉의 집에서 목수의
일을 했지만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가정에서 목수의 일을 도우면서 부모가 떠맡고 있는 가족의 생계를 도와주는 이런
생활을 했지만, 예수님의 마음에는 그것만이 생활의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또, 큰 뜻을 마음에 품은 동시에 작은 일에까지도 책임을 다하신
예수였습니다. 이런 예수님이었음을 여러분은 망각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전체의 뜻을 책임진 왕자
예수님의 생활은 전부 자신의 책임과 사명을 완수하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는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책임을 땅 위에 완수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30여 평생의 생애는 영원 불변의 실적, 책임을 다한 실적을 이 땅위에
이루어 놓은 생애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리스도의 믿음의 복음이 남아 있는 이상 그의 생애도 남아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일대에 있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역사적인 면에서도 책임을
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역사해 오신 뜻에 대해서도 홀로 책임을 졌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하나님의 책임을
대신하여 나서는 이가 이 땅 위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혈혈단신으로 책임을 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홀로 전체의 뜻을 책임지는 것에 대해 외로워한 반면 더 큰
책임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하루하루의 생활은 전체적인 책임을 완수하기 위한 발판을 놓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리고 30년 준비시대와
3년 실천시대, 3일간의 완성시대까지 예수님의 시선 앞에는 사탄을 굴복시키는 것과 그 토대 위에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켜 드리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임을 절감하며 산 생애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한 순간에도 이 책임을 잊어버린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산정에 나갈 때에도, 온 만민이 비방하고 사탄이
조롱하는 그런 최후의 순간에도 예수님은 맡은 바의 천륜의 책임을 홀로 감당하겠다는 마음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책임완수의 일념을 갖고
십자가의 고비를 넘었기 때문에 부활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상에 남아있는 제자들을 재 수습해야 할 책임이 있었으므로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 가셨다가 다시 내려오셔서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여 부활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어서도 흩어진 제자들을 염려했고, 무덤의 3일간에도 이 제자들을
영원히 지키겠다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 해변가로 제자들을 찾아다니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책임감이 없었던 그들을 대하여 예수님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어려운 자리에서 배척한 제자들이지만, 예수님은 부활 후에 먼저 갈릴리로 찾아가셔서 자신의 책임을
수행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죽음의 고개를 넘을때 변하지 않는 제자들로 세워 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야말로 오늘날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인격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 당시의 제자들과 그 이후의 수많은 성도들, 2천년이
경과한 오늘날 우리들까지 책임지셨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구원의 역사가 전체의 역사였습니다. 하늘의 뜻은 전체를 구원하는 것이므로 예수님은
전인류까지 책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떠한 책임을 지고 계신가. 예수님은 세상적인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계신 것이 아니고, 잘 사는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명을 책임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세상에 어려운 일이 많지만 이 이상 어려운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생사의 문제를 책임졌기에…….
오늘날 신앙자들은 까딱하면, 까딱하기만 하면 생사가 왔다갔다하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칼날과 같은 아슬아슬한 선상에 서 있는 사람들을 모두 오른편으로 끌어내는 책임을 예수님은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는 옛날에 30여 평생을 지낼 때도 그랬고, 죽음의 길에 들어 섰을 때에도 그랬으며, 어느 때 어느 시기에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인간들은 이런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끼지 못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는 이 책임과 사명, 이 한 뜻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전체의
책임을 감당해야 할 우리
그러면 이러한 예수님, 오늘날 우리들이 믿고 있는 예수님을 모시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언제나 예수님에게 책임을 지우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느냐. 예수님은 4천년 역사를
책임지셨었고, 당대의 인류를 책임지셨었고, 돌아가신 이후 2천년 동안 인류를 책임져 나오셨는데, 우리 자신들도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께 책임을 지우는 생활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아바 아버지여 2천년 동안 책임져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려움을 알겠나이다'라고 하면서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책임을 지고 계신 예수님을 원통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일들이 누구때문이었던고! 보잘것없는 우리들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생각하여 예수 앞에 머리를 숙일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여!' 라고 부르면서도 뼈가 녹는 듯한 심정, 살이 녹는 듯한
심정을 느껴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비로소 4천년의 뜻을 책임지려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너 하나만이
내가 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구나'라고 하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었습니다. 모든 책임의 보따리를
뒤집어 쓸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대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세워진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전체의 책임을
감당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책임하는 그 일이 어렵다면 '어려운 그 일을 나에게 지워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심정으로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 나타나 '염원하시는 그 심정을 나를 통하여 나타내시옵소서' '나를 통하여 보여 주시옵소서'라고 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끝날에 남아질 무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무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2천년 동안 인류를 위해 책임을 져 나오시던 그 목적을 어디에서 이룰 것인가?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생명을 걸고
책임의 노정을 걸으신 예수께서 책임질 줄 아는 사람들을 못찾으신다면…….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상에서 역사에 대한 책임과 현실에
대한 책임과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하나님 앞에 맹세하던 그 책임을 우리에게 지워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하늘 앞에 책임을 돌릴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4천년 동안 안타까와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땅 위에서 책임의 왕으로서 역사적인 모든 책임을 감당해 나오시던 예수 그리스도 대신
그 책임을 지고 싸우겠나이다. 원수 사탄과 수천만 인간들이 환영하지 않더라도 제가 대신 책임지고 싸우겠나이다.'라고 기도할 줄 아는 사람들이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나와야만 예수님께서 안식의 동산에서 쉬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끝날, 이때에 들려오는 것은, '내 생명의 호소를 들을 자가
누군고?'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을 물려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호소를 들어줄 사람은 누구인가! 하늘은 이런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은 만민을 위해서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쉬지 못하시고 아직까지 기도하고 계신 것은 예수님에게 무슨 잘못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또 예수님이 아버지 앞에 서시지 못할
자리에 서 계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들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2천년 동안 수고하고 계신 예수님을 위해서 여러분은 무엇보다도
생명을 끊어서라도 생명의 책임을 완수하려고 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책임이 이 땅위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남아진 생명의 책임을 완수해야 하는 때가 재림시대라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이 나타남으로써 재림시대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는 역사적인 생명의 책임과 미래적인 생명의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이기에 여러분은 최후의 싸움에서 그와 더불어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재림시대의
시작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세우셔서, 믿음의 예수님을 통하여, 혹은 진리의
예수님을 통하여. 인간들을 사랑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여러분을 사랑하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마음으로라도 믿음의 예수를 본받으라 할 때, '예,
그렇소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승리하신 예수를 본받으라 할 때 '그렇소이다', 책임지고 계신 예수님을 본받으라 할 때, '예,
그렇소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어느 한 때, 어느 한 시간도 쉬시지 못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쉬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랑으로 세우셨던 이런 조건들을 여러분들이 대신 맡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영계에 가신 예수님의 자랑의 조건을 이 땅 위에서 이루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먼저는 믿지 못하는 세상에서 믿는 것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책임지지 못하는 이런 세상에서 책임지는 것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랑이 영계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땅위의
우리에게 미쳐지고, 땅 위의 우리를 통하여 만물세계도 그 자랑이 미쳐져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창조의 이념, 인간을 만물의 주인공으로
세워 만물 앞에 자랑하시려고 했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로소 인간과 만물이 자랑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경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전체적인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너무나 형편없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앙도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인간들이 사탄과 싸워야 할 때, '아바 아버지여, 이 세계 만인간이 사탄과 싸워 이길 수 있게 힘을
주시옵소서. 온 인류가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전체의 적을 맞아 혼자 싸워서 승리해 가지고
'아버지여 기뻐하시옵소서' 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세계의 모든 책임을 지고 나가는 모습을 하나님께 보여 드리고. 억천만 인간,
혹은 천천만 성도들과 피조세계 앞에 책임지고 나가는 중심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을 통하여 땅을 대한 하나님의 원한을 해원할 수 있으며 그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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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랑이 된 예수 그리스도
1956.05.16 (수), 한국 전본부교회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를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저희에게 보이라.(고후 8:24)"는 말씀을 중심삼고, 오늘은 '하나님의 자랑이 된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랑이 되었어야 했던 아담
해와
천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천지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자랑의
실체로 지으셨습니다. 또, 아담 해와를 천사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자랑의 실체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담 해와가 만물 앞에 서면 만물은 아담
해와에게 경배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지어 놓으신 피조의 동산이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깨어졌던 것입니다.
즉, 인간의 타락으로 인간 앞에 자랑이 되어야 했던 만물의 가치가 제대로 나타날 수 없었고, 무형세계의 가치의 중심으로 나타날 수 있었던 인간이
그 자격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자랑의 뜻으로서 하나님 대신 만물 앞에 나타나 화동의 중심으로서의 영광을 받아야 할 인간의 위치가
근본적으로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타락 이후 6천년이 경과한 오늘날까지 하나님이 찾아오신
표준은 무엇이었던고?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하고, 형상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대신하고, 천륜의 행사를 대신한 전체의 대표자,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하나의 대표자를 찾아오셨습니다.
또, 지금까지 이 하나의 뜻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도 수고해 나왔습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의 타락 이후 4천년 만에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한 분이었던가. 그는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대신하고, 외적 형상을
대신한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의 이념으로 세웠던 '자랑의 기준'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수행해야 했던 본래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일대에서 그의 생활을 통하여, 어느 부분
부분 또는 어느 한 부분이라도 하나님의 심정과 형상을 대신한 자녀로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될 중대한 책임자의 자리에 서 있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실체로 나타났어야 했습니다. 먼저
만물 앞에 자랑할 수 있어야 했고, 그 다음에는 사탄 앞에 자랑할 수 있어야 했으며, 천천만 성도들 앞에 자랑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기뻐하며 영광을 누리려던 것을 복귀하는 한날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중심존재인 예수를 세워놓고 역사하며
섭리하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민족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하게 하셨고, 그 가운데에
당신 앞에 세워질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칭송하고, 하나님이 자랑하고자 하셨던 그
기준에서 감사의 심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대했던들 이렇듯 역사적인 서러움이 6천년까지 연장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랑으로 세워진 믿음의 왕 예수
하나님의 자랑으로 나타났던 예수 그리스도의 눈에 보여지는 것과 이스라엘민족이
자랑하고 있던 것과는 판이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뜻을 대해 나온 이스라엘민족이 스스로 하나님의 선민임을 자랑했던 형과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뜻을 받들면서 싸우시던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자랑했던 형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민족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랑할 수 있었던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예수님의 생애 앞에서 자기들이 그때까지 세워나오던 민족적인 자랑을 포기하는 자리에 처해야 했던
것입니다.
자기들의 자랑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자랑하기 위한 새로운 자랑을
가지고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앞에 온유겸손히 엎드렸던들 십자가의 어려운 관문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남아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십자가의 도라는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의 말씀을 경청함으로 말미암아 구원되었다는 말은 있었어도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 되었다는 이런 말은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축복하여 십자가에 속죄의 권한이 있음을
믿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생전에 하신 말씀에 속죄의 권한이 있었다는 것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물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써 영적인 속죄가 가능하지만, 예수님이 살아 생전에 하신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실천하였더라면 영육 아울러 구속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와서 먼저 무엇을 자랑해야 했던가. 아담
해와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여 타락했고
4천년 동안 섭리역사가 연장되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연장된 4천년 역사를 가로막기 위해 사탄 앞에 세운 하나의 중심이 뭐냐 하면
믿음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믿음의 왕으로 이 땅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는 어떤 분이냐, 또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랑으로 설 수 있는 하나의 가치의
기준을 어디에서 세웠느냐? 4천년 역사가 흘러오는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대할 수 없었던 온 만민들 앞에 예수님은
믿음의 왕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자랑하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노라 하였지만, 그러한 믿음으로써는 하나님의 천륜의
심정을 통한 상하의 내적인 관계를 맺어 놓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왔다 갔지만 그들이 믿고 그들이 따라가던 것을 통해서는
하나님 속에 사무쳐 있는 사랑의 원칙을 알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는 수많은 성도들이 걸어 나오던 그 역사적인 믿음의 과정 전체를
도맡아서 혈혈단신으로 모든 사탄의 역사를 끊어놓으려 했습니다. 4천년의 믿음을 총 결실하는 입장의 예수 그리스도는 우주의 중심형으로, 믿음의
주인공으로 왔다 가셨습니다.
이 하나의 기준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대신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했는데. 선포하신 말씀은 구약 말씀 그대로가 아니었습니다. 구약 신앙을 가지고
믿은 것이 아닙니다. 선지선열들이 말씀하고 예언했던 그 한계권 내에서 믿은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이스라엘민족이 믿고 나온
구약성경의 말씀권 내에서의 메시아의 사상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한 믿음을 가졌느냐 하면, 구약성경에 없는, 그때까지의
역사상에 없었던 믿음, 그때까지 나타나지 아니 한 새로운 믿음, 세계의 어떤 환경,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믿음을 가졌던 믿음의 대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역사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달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랑으로 세워졌던 믿음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인가. 우리는 우리가 어떤 한계 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강림하시기 전의 4천년 역사와 예수님의
30여 생애와 영원한 미래에까지 미치는 그의 가치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우리는 억조창생이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반대하는
자리에 서 있더라도 '나는 그 뜻 하나만을 붙들겠나이다.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는 것을 나는 믿겠나이다'라고 할 수 있는 믿음의 기준이 세워져야
예수님이 만민의 구세주, 믿음의 왕으로 설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생전에 말씀을 다
해주고 가셨던가. 만일 말씀을 다 해주고 가시지 않았다면, 우리에게는 다시 오시는 주님이 해 주시는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담
해와의 타락 이후 4천년만에 사탄 앞에서나 모든 피조세계 앞에서 자랑할 수 있었던 믿음의 왕이요, 하나님이 찾으시려던 믿음의 왕이었는데,
유대민족이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그를 원수에게 내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다시 온 피조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기준을 갖고 오셔서 여러분에게 새로운 말씀을 해 주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대표자, 믿음의 왕으로서 구약성경에 없었던 새로운 말씀을
발표했습니다. 그 말씀은 신약의 말씀으로서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 오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갖추어야 할 것은, 오늘 이 시대는 새로운 시대요, 앞으로
영광의 시대가 올 것인데 그 영광의 시대에 남아질 수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과 믿음은 인간들이 4천년 동안 믿어온 차원의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일대를 거쳐 먼 후대, 즉 영원까지 미치는 믿음, 하나님이 생각지 못했고 그 당시에 나타나지 못했던 사랑과 선을 나타낼 수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상에 없었던 믿음의 왕이었고,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이러한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사탄을 이긴 승리의 왕 예수
그 다음 두번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이 수천년 동안 사탄과 싸워 나왔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비로소 승리의 왕으로 설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자랑하신 것입니다.
4천년 동안 수많은 선조들이 이 땅에 와서 사탄과 싸웠습니다. 메시아를
보내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수많은 선지자들이 와서 사탄과 싸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탄을 굴복시키지 못했습니다. 4천년 동안 사탄과
싸웠지만 사탄을 점령하지 못했고, 사탄을 굴복시킬 수 없었으나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사탄을 점령하고 굴복시켰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가지고 사탄을 굴복시켰느냐? 하늘의 사랑의 원칙을 가지고
굴복시켰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사탄을 굴복시키는 데는 사랑의 원칙이 아니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의 원칙은 어떤 원칙일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 앞에서 돌아
가셨습니다. 또, 이 땅 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신 외아들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30여 평생의 생활을 보면 어느 한 부분 효자의 생활이 아닌 부분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있어서의 한날의 생활은 밤이건 낮이건 어떤
시간도 떼어버릴 수 없는, 하나님의 마음에 알맞는 생활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이 땅 위에 너 하나밖에 없구나'하는 말씀을 하실 정도로
효자의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일생의 모든 것이 사라질지라도 오로지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자기의 육신은 무시되더라도 만민의 구주로서의 사명을 다하겠다는 마음밖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아버지여 ! 나 하나가
사라져서 당신이 4천년 동안 찾아오신 사랑의 대신 존재, 당신의 사랑을 받는 아들로서 그 사랑의 대가를 돌려 드릴 수 있는 효자가 되겠습니다'
하는 이 하나의 마음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억천만민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럴래야 그럴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천지의 중심으로 맺어진, 하나님의 사랑에 인연된 부자관계의 천륜의 힘은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환경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골고다 산상의 외로운 자리에서도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을 아셨고, 4천년 동안 고대하신 아버지의 사랑의 심정을 잘 아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이 변치 않는 이상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있는
아들로서의 자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독생자로,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의 화신체로 온 피조만물 앞에 자랑했습니다.
사탄세계 앞에 자랑했습니다.
오늘날까지의 6천년 역사상에는 자기를 낳아 준 부모에게 효성을 다한 사람이
많습니다. 사탄 품안에서의 효자 효녀는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할 수 있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려면 역사상의 모든 사탄권내의 효자 효녀들을 합한 이상의 가치와 실적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이는 내 사랑 하는
아들' 이라고 할 수 있고, 천상천하에 유일하게 천륜을 대신한 효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을 가지고 예수님이 수많은 군중을 바라보게 될 때 어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의 심정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와 그들의 가치 사이에는 천지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스스로
늠름하게 하늘 앞에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과 사랑으로 맺어진 부자의 관계에서 나오는 힘에 의해 사탄까지
망하게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탄권내의 많은 사람들이 사탄에게 동조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기준과는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사랑을 갖고 나타나는 거기에는 원수들 앞에 있어서 철옹성과 같은 방패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중심삼고 모이는 곳곳마다 사탄을 굴복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4천년 동안 선조들이 승리한 것과 패한 것 모두를 합하여 자신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쟁취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무엇이뇨? 지금까지 인류가 6천년 동안
사탄과 투쟁해 나왔는데, 어찌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4천년 동안 많은 선지자들이 승리한 것을 전부 합한 가치 이상의 승리의 실적을 거둘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또, 우리의 선조들이 어떻게 사탄 대해 승리할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줄
알아야 하며, 여러분 자신이 그분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볼 줄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이 이제 이 땅 위의 성도들에게 염원하는 것이 무엇일 것이냐. 예수
그리스도만 사탄을 굴복시킬 것이 아니라 오늘날 끝날의 전체의 성도들이 모두 사탄을 굴복시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30여 평생 승리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승리 하지
못할 말은 피했다는 것입니다. 승리할 수 없는 말은 피했습니다. 예수님이 패할 수 있고, 사탄이 접근해올 수 있는 말은 피했다는 것입니다. 남
보기에는 한 사람의 동네 총각이었지만 일단 전체를 책임지고 나서면, 그의 말이나 행동이나 소망은 전체를 승리의 기대 위에 올려 놓을 수 있는
말과 행동과 소망이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님이 이렇게 수고하시며 다져 놓으신 승리의 발판 위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으로부터 이런 은사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서 승리하여 이뤄 놓으신
승리의 발판 위에 서서 어떻게 하면 더 높이 올라가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하늘이 여러분을 위해 이 땅에 내려오셨음을 알고 하늘에
올라갈 때까지 승리의 땀을 흘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채워야 하겠습니다. 예수와 성신의 사랑을
느껴서 하늘의 사랑을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승리하셨지만 십자가에 돌아가신 연고로 영적으로만 승리의
기대를 닦으셨습니다. 그래서 2천년의 역사를 종결해야 하는 우리는 예수의 영적인 기대 위에 서서 예수의 몸을 대신하여 승리의 터전을 이루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에게는, 영적인 구원을 완성시켜 주는 신약성경의 차원을 넘어서 실체적인 구원을 완성시켜 주는 새로운 말씀을
하늘이 이 땅에 선포하게 될 때에 사탄이 이를 반박할 것인데, 이것까지 책임지고 싸워 이겨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 예수그리스도는 어떤 조건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가. 예수님은 '책임을 지는 왕자'가 되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태어날 적부터 요셉의 집에서 목수의
일을 했지만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가정에서 목수의 일을 도우면서 부모가 떠맡고 있는 가족의 생계를 도와주는 이런
생활을 했지만, 예수님의 마음에는 그것만이 생활의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또, 큰 뜻을 마음에 품은 동시에 작은 일에까지도 책임을 다하신
예수였습니다. 이런 예수님이었음을 여러분은 망각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전체의 뜻을 책임진 왕자
예수님의 생활은 전부 자신의 책임과 사명을 완수하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는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책임을 땅 위에 완수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30여 평생의 생애는 영원 불변의 실적, 책임을 다한 실적을 이 땅위에
이루어 놓은 생애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리스도의 믿음의 복음이 남아 있는 이상 그의 생애도 남아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일대에 있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역사적인 면에서도 책임을
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역사해 오신 뜻에 대해서도 홀로 책임을 졌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하나님의 책임을
대신하여 나서는 이가 이 땅 위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혈혈단신으로 책임을 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홀로 전체의 뜻을 책임지는 것에 대해 외로워한 반면 더 큰
책임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하루하루의 생활은 전체적인 책임을 완수하기 위한 발판을 놓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리고 30년 준비시대와
3년 실천시대, 3일간의 완성시대까지 예수님의 시선 앞에는 사탄을 굴복시키는 것과 그 토대 위에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켜 드리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임을 절감하며 산 생애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한 순간에도 이 책임을 잊어버린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산정에 나갈 때에도, 온 만민이 비방하고 사탄이
조롱하는 그런 최후의 순간에도 예수님은 맡은 바의 천륜의 책임을 홀로 감당하겠다는 마음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책임완수의 일념을 갖고
십자가의 고비를 넘었기 때문에 부활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상에 남아있는 제자들을 재 수습해야 할 책임이 있었으므로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 가셨다가 다시 내려오셔서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여 부활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어서도 흩어진 제자들을 염려했고, 무덤의 3일간에도 이 제자들을
영원히 지키겠다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 해변가로 제자들을 찾아다니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책임감이 없었던 그들을 대하여 예수님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어려운 자리에서 배척한 제자들이지만, 예수님은 부활 후에 먼저 갈릴리로 찾아가셔서 자신의 책임을
수행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죽음의 고개를 넘을때 변하지 않는 제자들로 세워 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야말로 오늘날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인격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 당시의 제자들과 그 이후의 수많은 성도들, 2천년이
경과한 오늘날 우리들까지 책임지셨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구원의 역사가 전체의 역사였습니다. 하늘의 뜻은 전체를 구원하는 것이므로 예수님은
전인류까지 책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떠한 책임을 지고 계신가. 예수님은 세상적인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계신 것이 아니고, 잘 사는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명을 책임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세상에 어려운 일이 많지만 이 이상 어려운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생사의 문제를 책임졌기에…….
오늘날 신앙자들은 까딱하면, 까딱하기만 하면 생사가 왔다갔다하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칼날과 같은 아슬아슬한 선상에 서 있는 사람들을 모두 오른편으로 끌어내는 책임을 예수님은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는 옛날에 30여 평생을 지낼 때도 그랬고, 죽음의 길에 들어 섰을 때에도 그랬으며, 어느 때 어느 시기에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인간들은 이런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끼지 못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는 이 책임과 사명, 이 한 뜻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전체의 책임을 감당해야 할 우리
그러면 이러한 예수님, 오늘날 우리들이 믿고 있는 예수님을 모시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언제나 예수님에게 책임을 지우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느냐. 예수님은 4천년 역사를
책임지셨었고, 당대의 인류를 책임지셨었고, 돌아가신 이후 2천년 동안 인류를 책임져 나오셨는데, 우리 자신들도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께 책임을 지우는 생활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아바 아버지여 2천년 동안 책임져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려움을 알겠나이다'라고 하면서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책임을 지고 계신 예수님을 원통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일들이 누구때문이었던고! 보잘것없는 우리들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생각하여 예수 앞에 머리를 숙일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여!' 라고 부르면서도 뼈가 녹는 듯한 심정, 살이 녹는 듯한
심정을 느껴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비로소 4천년의 뜻을 책임지려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너 하나만이
내가 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구나'라고 하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었습니다. 모든 책임의 보따리를
뒤집어 쓸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대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세워진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전체의 책임을
감당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책임하는 그 일이 어렵다면 '어려운 그 일을 나에게 지워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심정으로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 나타나 '염원하시는 그 심정을 나를 통하여 나타내시옵소서' '나를 통하여 보여 주시옵소서'라고 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끝날에 남아질 무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무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2천년 동안 인류를 위해 책임을 져 나오시던 그 목적을 어디에서 이룰 것인가?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생명을 걸고
책임의 노정을 걸으신 예수께서 책임질 줄 아는 사람들을 못찾으신다면…….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상에서 역사에 대한 책임과 현실에
대한 책임과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하나님 앞에 맹세하던 그 책임을 우리에게 지워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하늘 앞에 책임을 돌릴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4천년 동안 안타까와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땅 위에서 책임의 왕으로서 역사적인 모든 책임을 감당해 나오시던 예수 그리스도 대신
그 책임을 지고 싸우겠나이다. 원수 사탄과 수천만 인간들이 환영하지 않더라도 제가 대신 책임지고 싸우겠나이다.'라고 기도할 줄 아는 사람들이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나와야만 예수님께서 안식의 동산에서 쉬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끝날, 이때에 들려오는 것은, '내 생명의 호소를 들을 자가
누군고?'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을 물려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호소를 들어줄 사람은 누구인가! 하늘은 이런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은 만민을 위해서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쉬지 못하시고 아직까지 기도하고 계신 것은 예수님에게 무슨 잘못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또 예수님이 아버지 앞에 서시지 못할
자리에 서 계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들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2천년 동안 수고하고 계신 예수님을 위해서 여러분은 무엇보다도
생명을 끊어서라도 생명의 책임을 완수하려고 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책임이 이 땅위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남아진 생명의 책임을 완수해야 하는 때가 재림시대라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이 나타남으로써 재림시대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는 역사적인 생명의 책임과 미래적인 생명의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이기에 여러분은 최후의 싸움에서 그와 더불어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재림시대의
시작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세우셔서, 믿음의 예수님을 통하여, 혹은 진리의
예수님을 통하여. 인간들을 사랑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여러분을 사랑하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마음으로라도 믿음의 예수를 본받으라 할 때, '예,
그렇소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승리하신 예수를 본받으라 할 때 '그렇소이다', 책임지고 계신 예수님을 본받으라 할 때, '예,
그렇소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어느 한 때, 어느 한 시간도 쉬시지 못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쉬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랑으로 세우셨던 이런 조건들을 여러분들이 대신 맡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영계에 가신 예수님의 자랑의 조건을 이 땅 위에서 이루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먼저는 믿지 못하는 세상에서 믿는 것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책임지지 못하는 이런 세상에서 책임지는 것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랑이 영계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땅위의
우리에게 미쳐지고, 땅 위의 우리를 통하여 만물세계도 그 자랑이 미쳐져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창조의 이념, 인간을 만물의 주인공으로
세워 만물 앞에 자랑하시려고 했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로소 인간과 만물이 자랑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경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전체적인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너무나 형편없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앙도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인간들이 사탄과 싸워야 할 때, '아바 아버지여, 이 세계 만인간이 사탄과 싸워 이길 수 있게 힘을
주시옵소서. 온 인류가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전체의 적을 맞아 혼자 싸워서 승리해 가지고
'아버지여 기뻐하시옵소서' 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세계의 모든 책임을 지고 나가는 모습을 하나님께 보여 드리고. 억천만 인간,
혹은 천천만 성도들과 피조세계 앞에 책임지고 나가는 중심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을 통하여 땅을 대한 하나님의 원한을 해원할 수 있으며 그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기도합시다.
말씀선집 제1권 3편
이렇듯 예수는 우리를 찾으신다 (훈독본)
1956년 5월 20일(日), 전 본부교회.
마태복음 18:1-14
<기 도>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I30s/51
떨어진 한 마리의 양과 같은 타락 인간
타락한 이후 우리 인류는 하나님 앞에 있어서 아흔 아홉 마리의 양 가운데 있지 못하고 떨어진 한 마리의 양과 같은 입장에 처하여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천천만 천군 천사도 한 마리의 양과 같은 아담 해와를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기쁜 찬송을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천군 천사들로 하여금 기쁨의 찬송을 드리지 못하게 한 인간을 다시 찾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수고를 거듭해 나오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찾으셨던 한 존재로서 땅 위에 보내졌습니다. 그러한 예수는 사망 가운데 들어간 우리 인간들을 중생시키기 위하여 참부모의 입장에 서서 수고의 역사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유일한 독생자로 세워진 분이요, 죄악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짐으로써 사탄 대하여 승리한 분이라고 간단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한 중심으로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던가? 세계 인류를 대하여 섭리하시던 그 모든 것을 예수님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온 만민을 책임지고 구원해야 할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날 우리들을 찾아 주는 데는 어떠한 과정을 거쳐 찾아 주느냐? 하나님께서는 4천년의 역사를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말씀을 세우셨고 뭇 선지 성현들을 통하여 메시아가 강림하실 것을 수많은 군중 앞에 예고해 나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교 신자들은 뭇 선지자들이 호소하던 증거의 말씀을 통하여 메시아를 맞기 위한 준비를 해 왔습니다. 그것이 구약의 역사입니다. 이렇듯 준비된 터 위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 구약의 4천년 역사를 선의 역사로 종결지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하시는 새로운 말씀은 하나님의 4천년 복귀섭리 노정에 얽힌 서러움이 깃들인 말씀인 동시에 억조창생들이 신앙노정을 가는데 있어서 지니고 가야 할 천륜의 법도를 밝힌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발표하시는 이 새로운 말씀을 수많은 유대교 신자들이 귀담아 듣고 믿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하는 무리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했을 것인가? 예수님은 비통한 마음으로 호소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까지 하늘은 나 하나를 찾고, 죄중에 빠져 있는 우리 인류를 다시 찾아 세우기 위해 오랜 기간 수고해 나오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구약 율법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4천년의 서러운 역사를 해원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서 새로운 진리의 말씀을 발표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유대민족이 믿어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을 위로해 드리지 못하고 도리어 하늘의 서러운 심정을 자신의 마음에서부터 북돋우는 결과가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가야 할 방향을 알지 못하고 사탄의 수중에 있는 무리 앞에 나타나셔서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살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인류는 삶의 방향도 잃어버리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4천년 수고의 제단도 붕괴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의 터 위에서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되었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의해 결실되었을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자녀로 품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믿지 않은 유대민족
애초에 본이 되어야 할 이스라엘민족이 예수님이 주신 새로운 말씀을 믿지 않고 하나되지 못한 연고로 예수 그리스도는 슬픔의 말씀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우리는 한 마리의 잃어진 양과 같은 입장에 있는 이스라엘민족을 대했던 예수의 심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하늘이 나 하나를 찾기 위하여 4천년 동안 서러운 심정을 품고 섭리해 나오셨고, 그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을 계승하여 우리들의 뒤를 따라오면서 부르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환경에서 예수님은 비통한 심정을 품고 30평생을 지내셨고,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부르짖던 간절한 음성이 지금도 성경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호소하고 있으며. 오늘 이 시간에도 예수님은 영계에서 여러분을 향하여 간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하늘 앞에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과 같은 입장에 있는 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가야 할 방향도 모르고, 자기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도 모른 채 세상이 그냥 이대로 계속되는 줄 알고 있다면 여러분은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은 잘 모르겠지만 예수님은 태어나신 이후 지금까지의 2천년 역사과정을 거쳐 오면서 슬픈 음성으로 부르시고 있고, 그 부르심의 소리는 여러분의 소망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예수님의 음성
간절하게 부르시는 이 음성을 여러분은 외면하겠습니까? 듣지 못하는 자가 있다 하면 같은 원한의 마음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부르시는 음성을 그리워 할 줄 모르는 귀가 있습니까. 이 음성을 분별하기 위해서 분발해야 되겠습니다. 혹은 부르시는 음성을 여러분이 들었을지라도 몸이 튼튼하지 못하여 움직이지 못할 때에는 그 곳을 향하여 마음 모을 수 있는 내 한 자체가 돼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오늘의 내 한 개체를 6천년을 걸려서 찾아 오셨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듣지 못하는 연고로 실체의 하나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 주고, 실체되시는 예수로 하여금 하나님의 무형의 심정을 나타내게 하여 선포하신 말씀이 곧 복음의 말씀이었습니다.
인간이 무형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이것을 해소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실체로 나타나신 예수였습니다. 또 그가 전하는 말씀과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알고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어 회개해야 할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민족은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예수님을 멀리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들려오는 예수의 슬픈 음성을 알아듣기 위하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진정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만민 앞에 나타난 예수를 '믿습니다'할 수 있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예수는 무형의 하나님을 대신하여 와서 무지한 인간들을 대신하여 속죄의 노정을 걸으셨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대신하여 부르짖던 음성을 분별할 줄 알았더라면, 실체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서러움에 사무쳐 부르짖던 말씀을 문제없이 알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민족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말씀만으로 만족하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최후의 말씀이 구약에 다 기록되어 있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서러움은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세워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실체로 보이고 증거할 때에 이를 모시지 못하면 하늘의 서러움이 땅 위의 서러움으로 연결되는 것을 이스라엘민족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무형의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셨던 그 서러움을 지상에서 기쁨으로 해원해 드려야 할 예수 그리스도였는데, 이러한 예수를 알지 못한 이스라엘민족 때문에 하나님의 서러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해원되지 못하고 또다시 서러움으로 남아지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4천년의 역사를 대신하여 땅 위에 왔던 예수 그리스도는 기쁨의 말씀을 발표하지 못하고 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이후 2천년 역사가 경과하였지만, 오늘날 6천년의 역사를 통하여 보게될 때 아직도 하나님의 서러움과 예수 그리스도의 서러움은 땅 위에 사무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서러움과 예수 그리스도의 서러움을 알고, 이제 하나님의 기쁨의 말씀과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헤아릴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우리를 찾은 목적이 언제나 슬픔의 말씀만을 전하려 함은 아니었습니다. 잃어버린 양떼와 같은 우리들을 찾기 위해서 수고하는 과정에서는 언제나 비애의 말씀만을 해서는 안 됩니다. 6천년 동안 비애의 말씀을 하셨으니 잃어버린 양떼가 찾아지는 그 순간에는 6천년의 서러움을 송두리째 잊어버릴 수 있는 기쁨의 말씀이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기쁨의 말씀이 하늘로부터 나타날 줄 알고 있는데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2천년 동안 수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 앞에, 우리들을 찾아오시는 주 앞에 달음질쳐 나갈 수 있는 양떼가 되어야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홀연히 찾아오셔서 비애의 음성으로 여러분을 부르실 때 여러분이 그 자리에서 몸을 움추려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비애의 음성이 들리기 전에 여러분이 먼저 비애의 음성으로 부르짖어야 되겠습니다.
내가 먼저, '나의 목자시여 ! 주여 !' 하는 음성이 천지에 사무치게 부르짖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찾아오시는 예수께서 여러분이 부르짖는 음성을 귀 기울여 들으시고 다시 부르짖으실 때 슬픈 음성으로 부르짖으시지 앉고 기쁜 음성으로 부르짖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비애의 심정을 증거해야 할 우리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비애의 심정을 증거해야 되겠습니다. 목자를 잃어버린 것을 슬퍼만 할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목자를 찾기 위하여 부르짖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듯 부르짖던 예수가 남기신 수고의 걸음이라도 책임질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만 이 예수 앞에 만족을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는 비애의 음성으로 우리들을 찾고 있으며 또 우리를 찾기 위하여 고통의 생활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예수의 30여 평생은 고통의 생활이었습니다. 목수인 요셉의 아들로서의 30년 준비기간에 있어서의 그의 생활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고통의 생활이었다는 것입니다.
만민의 구주답게 산 줄 알고 있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의붓아버지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동생들에게까지도 비난받는 자리에서 고통의 생활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고통은 예수 일신을 위한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4천년 동안 수고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내가 아니면 잃었던 가정을 다시 찾을 자가 없다는 것을 아시고 일구월심 하늘을 대한 마음만으로 간절했던 것입니다. 4천년 동안 하나님의 산 말씀을 대신하여 이상세계를 이루기 위하여 생명을 바쳐서 싸웠던 것입니다.
낳을 때부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예수는 죽을 때까지 광야의 생활과 같은 외롭고 힘든 생활을 했습니다. 이런 예수의 외적인 고통도 고통이지만 외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내적 심정 가운데 숨은 고통이란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예수를 믿고 따라야 할 이스라엘민족은 알아야 할 사람을 몰라보고 몰라도 될 사람은 알아 주었습니다.
그가 먹고 입고 마시던 모든 생활은 예수 자신을 넘어 하나님을 위하고 세계 인류를 위하고 민족을 위한 것이었으며, 옮겨 놓는 발자취 또한 그러한 발자취였습니다.
그 사정을 알아 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외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품고 '당신의 마음과 심정을 제가 아오니, 당신의 마음을 위로하는 친구가 되겠나이다'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까지도 예수의 숨은 내적 심정을 위로해 드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생애는 고통의 생활로 점철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파한 3년 공생애 노정이 시작된 날부터 그가 전한 말씀은 자기의 이익을 위하거나 자신의 어떠한 능력을 세우기 위한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하신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씀과 뜻을 가지고 오셨던 예수를, 민족 전체를 대신하여 알아 주고 친구되고자 한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마을에서의 천대거리였고 민족 전체의 천대거리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편안하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이때를 놓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고통의 예수
예수님 당시에는 말씀을 전하는데도 남 몰래 전해야 했고, 말씀을 듣는 데도 숨어서 들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가는 곳이 광야였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예수는 수많은 군중을 광야로 끌고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 했습니다. 그렇게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듯이 예수가 뭇 무리에게 복음을 전파했으나 그것을 환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마음이 아무리 간절해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예수가 부여받은 사명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 수고하면 할수록 그것에 대하여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자가 많았다는 거예요.
따르는 제자들은 흩어지고 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받고 다시 제 2차로 사탄과 싸울 수 있는 힘을 보충하기 위한 예수의 수고를 여러분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30여년의 평생을 불태워서 고통 중의 고통스런 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비단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의 고통이 30여년의 생애의 고통에서 끝난 것으로 아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영계에 가서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는 고통 속에 있는 것입니다.
2천년 역사가 연장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할 하나의 목적을 두고 섭리의 뜻을 대행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이 시간까지도 고통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하나의 고통을 어디 가서 해결할 것인가. 오늘을 책임질 수 있는 여러분을 통하여 그 고통과 수고 속에서 맺힌 한을 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사실을 알진대 여러분 자체들은 예수의 고통스런 손을 붙들고 위로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무친 원한을 대신 짊어지고 위로해야 할 책임이 오늘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환경에서 예수의 고난을 느끼고 고난의 생활을 분석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는 무슨 죄가 있었기에 30여 평생의 고난의 생활, 고통의 생활을 해야만 했었는가.
죄가 있었다면 하나님 앞에 만민을 구원해야 하는 구주로 세움을 받은 죄밖에는 없습니다. 이런 예수가 만민을 위하여 괴로워하고. 만민을 위하여 애타게 부르짖었던 사연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예수를 대하여 오늘 우리들은 회개의 마음이라도 가져야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도 예수 그리스도의 30여년 생애의 고난의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거두어야 할진대, 마굿간에서 태어날 때의 고난에서부터 골고다 산상까지의 고난, 그리고 부활 이후 2천년의 고난의 자국까지도 몽땅 거두어야 합니다. 이러한 전체적인 뜻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의 슬픔은 애타게 부르짖고 고난과 수고의 생애를 거쳐서도 끝나지 않았어요. 오늘날 사람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슬픔이 끝난 줄 알고 있지만 그로 말미암아 오히려 뜻이 연장되어 예수의 슬픔은 풀래야 풀 수 없는 한으로 남아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여러분은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를 슬픔에서 구해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찾기 위하여 6천년 역사가 지난 오늘 날까지 수고하고 원한에 사무친 길을 가고 생명을 내어 놓고 십자가의 길을 갔으니, 여러분은 그러한 예수를 붙들어야 되겠습니다.
예수는 십자가 상에서 죽으면서도 "아바 아버지여……."라고 애타게 호소하였습니다. 4천년 동안 수고한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부르짖던 피의 호소가 이스라엘민족으로 인하여 해원되어야 할 것이었는데, 이스라엘민족이 해원하지 못했으니 그 선조들의 피의 호소를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 것인가. 보답할 도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민족을 대신하여 역사적인 피의 호소의 대가를 치르고 탕감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4천년 동안 수많은 선지선열들의 피어린 호소의 목적이 예수 일신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또 죽은 후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이 땅 위에 피를 뿌리고 간 선조들의 원한이 거두어진 연고로 그들이 땅을 대하여 원망하고, 해원을 요구하던 뜻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때에야 비로소 예수를 앞장 세워 하늘 앞에 경배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해원해 드려야 할 우리
예수님은 후대에 십자가의 죽음의 피를 남겼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피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 앞에 서게 될 때에, 또 여러분의 일생을 보면 여러분의 인생에도 피의 고개가 있었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것은 선지선열의 피의 호소에 대한 보답인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호소에 대한 보답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우리를 오라고 하실 때에 우리는 십자가의 걸음을 통해 예수님을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골고다 산정 십자가 상에서 피로 호소하던 정열이 여러분의 맥박에서 뛰고 있음을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걸어 놓고 여러분을 찾아 주셨는데도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를 몰랐고, 십자가를 걸어놓고 예수님을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죽음 길을 걸으며 십자가를 지시며 나를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나를 위하여 부르짖고 계시고, 무한히 호소하고 있으며, 고통을 당하시며 나를 위해 수고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는 십자가를 사이에 두고 예수님을 대하고 있는데, 누가 이 십자가의 원한을 해원할 것인고.
오늘날 우리들이 해원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해원하기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나의 신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 직후에 막달라 마리아가 "오 주여!…"라고 했을때 예수께서 막으신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의 주를 만난 그 날부터 천국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2천년 동안 가로막혔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남아진 십자가의 원한을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해원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십자가의 고개를 넘고 넘어서 우리를 찾아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남기신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이 땅에 신랑 신부라는 명사를 남기셨습니다. 그래서 기도 가운데 여러분은 신부요 주님은 신랑의 모습으로 여러분에게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신랑으로 나타나시는 주님을 뵈올 때, 여러분은 언제나 십자가의 피의 대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십자가를 폐하고 만대에 복을 빌어 줄 수 있는 길, 십자가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개를 넘어 예수님이 마음대로 우리를 붙들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내 일신을 통하여, 제단을 통하여, 하늘 땅을 통하여 십자가를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불변의 기준을 세우기 전에는 재림역사는 완성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남겨 주신 빛과 물과 기름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빛을 남겨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하여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정을 알게 됩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는 시달릴 대로 시달리고 상처입을 대로 상처를 입은 우리를 고쳐 주기 위해서 예수님은 물과 기름을 남겨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께서 남겨 주신 빛을 밝혀서 자기의 상처를 알아내어 물과 기름으로 그것을 씻어야 하고, 자기가 죄인인 것과 벌거벗은 몸인 것을 알고 예복을 갖추어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이 자기의 심정과 마음에 등불을 밝히어서 자기의 죄를 깨끗이 씻고, 상처를 치료하고, 예복을 입고 난 후에라야 2천년 전에 돌아가신 예수의 소원을 오늘날 여러분이 이루어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마음의 등불을 밝히고, 물로 몸을 깨끗이 씻고, 상처에 기름을 바른 후에 허락하신 예복을 입고서 십자가를 넘어가지고 예수님께 경배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넘어오실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생명의 빛을 발하는 존재들이 되고, 예복을 입고 십자가를 넘어가서 예수님을 붙들고 '주님은 영원히 안식하시옵소서' 하며 경배드릴 수 있는 사랑하는 신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신부들이 나오기를 바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예수님께서 남기신 짐을 풀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마음의 빛을 상속받고, 예수님으로부터 물과 기름의 은사를 받고, 예복을 입음으로써 주 앞에 신부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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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마태복음 18:1-14
이 시간 말씀드리려는 내용은 '이렇듯 예수는 우리를 찾으신다' 입니다, 이런 제목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여 준비하신 한 사람으로서 땅 위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대신 하고,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대신하여 땅 위에 남아진 수많은 인류를 살리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떨어진 한 마리의 양과 같은 타락 인간
타락한 이후 우리 인류는 하나님 앞에 있어서 어떠한 자리에 섰느냐 하면, 아흔 아홉 마리의 양 가운데 있지 못하고 떨어진 한 마리의 양과 같은 입장에 처하여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천천만 천군 천사도 한 마리의 양과 같은 아담 해와를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기쁜 찬송을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천군 천사들로 하여금 기쁨의 찬송을 드리지 못하게 한 인간을 다시 찾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수고를 거듭해 나오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찾으셨던 한 존재로서 땅 위에 보내졌습니다. 그러한 예수는 만민 앞에 선의 조상으로서 사망 가운데 들어간 우리 인간들을 중생시키기 위하여 참부모의 입장에 서서 수고의 역사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4천년 섭리역사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유일한 독생자로 세워진 분이요, 죄악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짐으로써 사탄 대하여 승리한 중심존재로 세워진 분이라고 간단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한 중심으로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던가? 세계 인류를 대하여 섭리하시던 그 모든 것을 예수님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새로운 한 중심으로 세우심을 받아 온 만민을 책임지고 구원해야 할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러한 입장에 서게 될 때에 그의 마음과 몸은 말할 수 없는 서러움에 잠겼을 것입니다.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날 우리들을 찾아 주는 데는 어떠한 과정을 거쳐 찾아 주느냐? 하나님께서는 4천년의 역사를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말씀을 세우셨고 뭇 선지 성현들을 통하여 메시아가 강림하실 것을 수많은 군중 앞에 예고해 나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교 신자들은 뭇 선지자들이 호소하던 증거의 말씀을 통하여 메시아를 맞기 위한 준비를 해 왔습니다. 그것이 구약의 역사입니다. 이렇듯 준비된 터 위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 구약의 4천년 역사를 선의 역사로 종결지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하시는 새로운 말씀은 하나님의 4천년 복귀섭리 노정에 얽힌 서러움이 깃들인 말씀인 동시에 억조창생들이 신앙노정을 가는데 있어서 지니고 가야 할 천륜의 법도를 밝힌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발표하시는 이 새로운 말씀을 수많은 유대교 신자들이 귀담아 듣고 믿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하는 무리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했을 것인가? 예수님은 비통한 마음으로 호소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까지 하늘은 나 하나를 찾고, 죄중에 빠져 있는 우리 인류를 다시 찾아 세우기 위해 오랜 기간 수고해 나오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민족에게 구약 율법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4천년의 서러운 역사를 해원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서 새로운 진리의 말씀을 발표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유대민족이 믿어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을 위로해 드리지 못하고 도리어 하늘의 서러운 심정을 자신의 마음에서부터 북돋우는 결과가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가야 할 방향을 알지 못하고 사탄의 수중에 있는 무리 앞에 나타나셔서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살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인류는 삶의 방향도 잃어버리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4천년 수고의 제단도 붕괴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의 터 위에서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되었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의해 결실되었을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자녀로 품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믿지 않은 유대민족
애초에 본이 되어야 할 이스라엘민족이 예수님이 주신 새로운 말씀을 믿지 않고 하나되지 못한 연고로 예수 그리스도는 슬픔의 말씀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마리 양과 같은 입장에 서야 할 이스라엘 민족들이 어떠한 입장에 섰느냐 하면, 떨어진 한 마리의 양과 같은 입장에 세워져 있고 우리 역시 마찬가지의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한 마리의 잃어진 양과 같은 입장에 있는 이스라엘민족을 대했던 예수의 심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잃어진 이스라엘 민족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예수는 슬픈 심정을 가지고 부르짖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하늘이 나 하나를 찾기 위하여 4천년 동안 서러운 심정을 품고 섭리해 나오셨고, 그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을 계승하여 우리들의 뒤를 따라오면서 부르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예수는 30여 평생 동안 어떤 과정을 거쳤는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30년간의 사생애 기간 동안 준비해 오셨습니다. 그 기간이 지난 뒤 새로운 말씀을 가지고 나타나 전하게 될 때, 예수님은 기쁨을 느끼는 가운데서 말씀을 전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서러움을 품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나를 따르라' 하는 말씀, '나를 믿으라' 하는 말씀 등 많은 말씀을 하였으나 그 슬픈 마음에서 호소하는 음성을 귀담아 듣고 따라 나가는 무리는 지극히 적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예수님은 비통한 심정을 품고 30평생을 지내셨고,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부르짖던 간절한 음성이 지금도 성경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호소하고 있으며. 오늘 이 시간에도 예수님은 영계에서 여러분을 향하여 간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이 호소하시던 말씀의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아서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하늘 앞에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과 같은 입장에 있는 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가야 할 방향도 모르고, 자기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도 모른 채 세상이 그냥 이대로 계속되는 줄 알고 있다면 여러분은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은 잘 모르겠지만 예수님은 태어나신 이후 지금까지의 2천년 역사과정을 거쳐 오면서 슬픈 음성으로 부르시고 있고, 그 부르심의 소리는 여러분의 소망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예수님의 음성
간절하게 부르시는 이 음성을 여러분은 외면하겠습니까? 듣지 못하는 자가 있다 하면 같은 원한의 마음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부르시는 음성을 그리워 할 줄 모르는 귀가 있습니까. 이 음성을 분별하기 위해서 분발해야 되겠습니다. 혹은 부르시는 음성을 여러분이 들었을지라도 몸이 튼튼하지 못하여 움직이지 못할 때에는 그 곳을 향하여 마음 모을 수 있는 내 한 자체가 돼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양과 같은 입장에 있는 오늘의 내 한 개체를 찾기 위하여 허덕이며 찾아 오신 걸음이 하루도 아니요, 일년도 아니요, 백년도 아니요, 6천년을 걸려서 찾아 오셨습니다.
하늘 땅 위의 잃어버린 양떼를 찾기 위하여 애써오신 6천년의 역사는 하늘의 대속사(代贖史)였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듣지 못하는 연고로 실체의 하나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 주고, 실체되시는 예수로 하여금 하나님의 무형의 심정을 나타내게 하여 선포하신 말씀이 곧 복음의 말씀이었습니다.
인간이 무형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이것을 해소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실체로 나타나신 예수였습니다. 또 그가 전하는 말씀과 음성을 듣고 이스라엘민족이 예수께로 와서 4천년 동안 몰라보았던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알고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어 회개해야 할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민족은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예수님을 멀리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들려오는 예수의 슬픈 음성을 알아듣기 위하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이 세상적인 모든 말들을 잘 듣듯이 진정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만민 앞에 나타난 예수를 '믿습니다'할 수 있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예수는 무형의 하나님을 대신하여 와서 4천년 동안 하늘 앞에 서러움만을 안겨 준 무지한 인간들을 대신하여 속죄의 노정을 걸으셨습니다.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를 슬픈 자리에 세워 재결심하게 하셨던 하나님의 심정을 여러분은 헤아릴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이 마음을 넓히어 안타까운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대신하여 부르짖던 음성을 분별할 줄 알았더라면, 실체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서러움에 사무쳐 부르짖던 말씀을 문제없이 알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민족은 어떠했습니까? 구약성경에 나타난 말씀만으로 만족하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최후의 말씀이 구약에 다 기록되어 있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서러움은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세워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실체로 보이고 증거할 때에 이를 모시지 못하면 하늘의 서러움이 땅 위의 서러움으로 연결되는 것을 이스라엘민족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무형의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셨던 그 서러움을 지상에서 기쁨으로 해원해 드려야 할 예수 그리스도였는데, 이러한 예수를 알지 못한 이스라엘민족 때문에 하나님의 서러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해원되지 못하고 또다시 서러움으로 남아지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4천년의 역사를 대신하여 땅 위에 왔던 예수 그리스도는 기쁨의 말씀을 발표하지 못하고 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이후 2천년 역사가 경과하였지만, 오늘날 6천년의 역사를 통하여 보게될 때 아직도 하나님의 서러움과 예수 그리스도의 서러움은 땅 위에 사무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서러움과 예수 그리스도의 서러움을 알고, 이제 하나님의 기쁨의 말씀과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헤아릴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우리를 찾은 목적이 언제나 슬픔의 말씀만을 전하려 함은 아니었습니다. 잃어버린 양떼와 같은 우리들을 찾기 위해서 수고하는 과정에서는 언제나 비애의 말씀만을 해서는 안 됩니다. 6천년 동안 비애의 말씀을 하셨으니 잃어버린 양떼가 찾아지는 그 순간에는 6천년의 서러움을 송두리째 잊어버릴 수 있는 기쁨의 말씀이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기쁨의 말씀이 하늘로부터 나타날 줄 알고 있는데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2천년 동안 수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 앞에, 우리들을 찾아오시는 주 앞에 달음질쳐 나갈 수 있는 양떼가 되어야겠습니다.
서러움의 예수 그리스도, 상처 입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르짖는 음성을 듣고도 꾸물거리며 방향을 잡아 달음질치지 못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홀연히 찾아오셔서 비애의 음성으로 여러분을 부르실 때 여러분이 그 자리에서 몸을 움추려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비애의 음성이 들리기 전에 여러분이 먼저 비애의 음성으로 부르짖어야 되겠습니다.
내가 먼저, '나의 목자시여 ! 주여 !' 하는 음성이 천지에 사무치게 부르짖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찾아오시는 예수께서 여러분이 부르짖는 음성을 귀 기울여 들으시고 다시 부르짖으실 때 슬픈 음성으로 부르짖으시지 앉고 기쁜 음성으로 부르짖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비애의 심정을 증거해야 할 우리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비애의 심정을 증거해야 되겠습니다. 목자를 잃어버린 것을 슬퍼만 할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목자를 찾기 위하여 부르짖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듯 부르짖던 예수가 남기신 수고의 걸음이라도 책임질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만 이 예수 앞에 만족을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는 비애의 음성으로 우리들을 찾고 있으며 또 우리를 찾기 위하여 고통의 생활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류를 구하기 위하여 4천년 역사를 대신했던 예수는 전체 인류의 구원 섭리로 인하여 편안한 생활을 못했습니다. 고통의 생애를 거쳐 오늘 우리를 찾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예수의 30여 평생은 고통의 생활이었습니다. 목수인 요셉의 아들로서의 30년 준비기간에 있어서의 그의 생활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고통의 생활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같이 편안한 자리에서 마음대로 생활하지 못했습니다. 만민의 구주답게 산 줄 알고 있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의붓아버지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동생들에게까지도 비난받는 자리에서 예수는 할 말이 많아도 다 하지 못하는 고통의 생활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고통은 예수 일신을 위한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4천년 동안 수고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내가 아니면 잃었던 가정을 다시 찾을 자가 없다는 것을 아시고 일구월심 하늘을 대한 마음만으로 간절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위의 환경과 자신을 중심삼고 처참한 환경에서 투쟁하는 뭇 무리들을 보고 예수는 어려움과 비통의 생활 과정에 들어가서 4천년 동안 하나님의 산 말씀을 대신하여 이상세계를 이루기 위하여 생명을 바쳐서 싸웠던 것입니다.
낳을 때부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예수는 죽을 때까지 광야의 생활과 같은 외롭고 힘든 생활을 했습니다. 이런 예수의 외적인 고통도 고통이지만 외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내적 심정 가운데 숨은 고통이란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예수를 믿고 따라야 할 이스라엘민족은 알아야 할 사람을 몰라보고 몰라도 될 사람은 알아 주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민족 가운데서 예수는 본향의 생활을 그리워했던 것입니다.
그가 먹고 입고 마시던 생활은 자신을 위한 생활이 아니요 일신의 안일을 위한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먹고 입고 마시는 모든 일은 예수 자신을 넘어 하나님을 위하고 세계 인류를 위하고 민족을 위한 것이었으며, 옮겨 놓는 발자취 또한 그러한 발자취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메시아의 사정을 알아 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외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품고 '당신의 마음을 제가 아오니, 당신 심정을 제가 아오니, 가시는 곳곳마다 따라가 당신의 마음을 위로하는 친구가 되겠나이다'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마땅히 위로해 드려야 할 제자들까지도 예수의 숨은 내적 심정을 위로해 드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30여년의 생애는 고통의 생활로 점철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파한 3년 공생애 노정이 시작된 날부터 그가 전한 말씀은 사적인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한 말씀이 아니었고, 자신의 어떠한 능력을 세우기 위한 말씀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하신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씀과 뜻을 가지고 오셨던 예수를, 민족 전체를 대신하여 알아 주고 친구되고자 한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마을에서의 천대거리였고 민족 전체의 천대거리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편안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환경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렇듯 자유로운 환경에서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이때를 놓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고통의 예수
예수님 당시에는 말씀을 전하는데도 남 몰래 전해야 했고, 말씀을 듣는 데도 숨어서 들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가는 곳이 광야였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예수는 수많은 군중을 광야로 끌고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 했습니다. 그렇게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듯이 예수가 생활과정에서 뭇 무리에게 복음을 전파했으나 그것을 환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마음이 아무리 간절해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예수가 부여받은 사명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 수고하면 할수록 그것에 대하여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자가 많았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바라보면서 하루 종일 뭇 무리를 대하여 광야에서 외치시던 애처로운 예수 그리스도는 또 다시 하늘 앞에 호소하기 위하여 감람산의 험한 길을 찾아들어 갔습니다. 따르는 제자들은 흩어지고 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받고 다시 제 2차로 사탄과 싸울 수 있는 힘을 보충하기 위한 예수의 수고를 여러분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30여년의 평생을 불태워서 고통 중의 고통스런 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비단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의 고통이 30여년의 생애의 고통에서 끝난 것으로 아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오늘 저 나라 영계에 가서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는 고통 속에 있는 것입니다.
2천년 역사가 연장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할 하나의 목적을 두고 섭리의 뜻을 대행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이 시간까지도 고통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 고통의 생활이 연결되어 오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하나의 고통을 어디 가서 해결할 것인가. 오늘날 이 땅 만상이 아닙니다. 이 땅의 만상은 절대 아닙니다. 오늘을 책임질 수 있는 여러분을 통하여 그 고통과 수고 속에서 맺힌 한을 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영생섭리노정에서의 고통을 여러분 앞에 역사적인 거리를 개의치 않고 나타내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사실을 알진대 여러분 자체들은 예수의 고통스런 손을 붙들고 위로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증오받고 욕을 먹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무친 원한을 대신 짊어지고 위로해야 할 책임이 오늘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 서지 못했을 진대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여러분의 환경에서 예수의 고난을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생활을 분석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는 무슨 죄가 있었기에 30여 평생의 고난의 생활, 고통의 생활을 해야만 했었는가. 죄가 있었다면 하나님 앞에 만민을 구원해야 하는 구주로 세움을 받은 죄밖에는 없습니다. 이런 예수가 만민을 위하여 괴로워하고. 만민을 위하여 애타게 부르짖었던 사연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예수를 대하여 오늘 우리들은 회개의 마음이라도 가져야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도 예수 그리스도의 30여년 생애의 고난의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거두어야 할진대, 마굿간에서 태어날 때의 고난에서부터 골고다 산상까지의 고난, 그리고 부활 이후 2천년의 고난의 자국까지도 몽땅 거두어야 합니다. 이러한 전체적인 뜻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의 슬픔은 애타게 부르짖는 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고난과 수고의 생애를 거쳐서도 끝나지 않았어요. 오늘날 사람들은 예수가 고난의 생애를 거쳐 십자가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슬픔이 끝난 줄 알고 있지만 그로 말미암아 오히려 뜻이 연장되어 예수의 슬픔은 풀래야 풀 수 없는 한으로 남아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여러분은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를 슬픔에서 구해야 되겠습니다.
이렇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찾기 위하여 6천년 역사가 지난 오늘 날까지 수고하고 원한에 사무친 길을 갔으니, 생명을 내어 놓고 십자가의 길을 갔으니, 여러분은 그러한 예수를 붙들어야 되겠습니다.
예수는 30여년의 평생을 종결짓는 십자가의 죽음의 길로 나아가 죽게 될때 죽으면서도 "아바 아버지여……."라고 애타게 호소하였습니다. 4천년 동안 수고한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부르짖던 피의 호소가 이스라엘민족으로 인하여 해원되어야 할 것이었는데, 이스라엘민족이 해원하지 못했으니 그 선조들의 피의 호소를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 것인가. 보답할 도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민족을 대신하여 역사적인 피의 호소의 대가를 치르고 탕감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아벨의 피가 호소할 때에 보혈을 흘리신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찢기고 피묻은 땅을 대하여, 이스라엘민족을 대하여 호소하던 조건이 예수로 인하여 해원된 것입니다. 4천년 동안 호소하던 울음 소리가, 4천년 동안 수많은 선지선열들의 피어린 호소의 목적이 예수 일신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또 죽은 후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 졌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이 땅 위에 피를 뿌리고 간 선조들의 원한이 거두어진 연고로 그들이 땅을 대하여 원망하고, 해원을 요구하던 뜻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때에야 비로소 예수를 앞장 세워 하늘 앞에 경배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해원해 드려야 할 우리
이스라엘민족이 하늘을 믿고 받들지 못하여 희생됐던 선지선열들의 피의 호소를 완결하였던 예수는 동시에 후대에 무엇을 남겼는가. 예수님은 후대에 십자가의 죽음의 피를 남겼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피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 앞에 서게 될 때에, 또 여러분의 일생을 보면 여러분의 인생에도 피의 고개가 있었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것은 선지선열의 피의 호소에 대한 보답인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호소에 대한 보답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걸음을 통해 찾아 오신 예수께서 우리를 오라고 하실 때에도 우리는 십자가의 걸음을 통해 예수님을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골고다 산정 십자가 상에서 피로 호소하던 정열이 여러분의 맥박에서 뛰고 있음을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걸어 놓고 여러분을 찾아 주셨는데도 여러분은 지금까지 그렇게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를 몰랐고, 십자가를 걸어놓고 예수님을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죽음 길을 걸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시며 나를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나를 위하여 부르짖고 계시고, 나를 위하여 무한히 호소하고 있으며, 고통을 당하시며, 죽음길을 걸으시며 나를 위해 수고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는 십자가를 사이에 두고 예수님을 대하고 있는데, 누가 이 십자가의 원한을 해원할 것인고. 오늘날 우리들이 해원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해원하기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나의 신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 직후에 막달라 마리아가 "오 주여!……"라고 했을때 예수께서 막으신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의 주를 만난 그 날부터 천국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천국생활이 2천년 동안 가로막혔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남아진 십자가의 원한을 알고 이제 이 남아진 십자가의 원한을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해원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십자가의 고개를 넘고 넘어서 우리를 찾아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남기신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이 땅에 신랑 신부라는 명사를 남기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분의 기도 가운데 주님은 신랑으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부요 주님은 신랑으로서, 그런 모습으로 여러분에게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신랑으로 나타나시는 주님을 뵈올 때, 여러분은 언제나 십자가의 피의 대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에게 주님이 또 하나 찾아 주셔야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십자가를 폐하고 만대에 복을 빌어 줄 수 있는 길, 십자가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을 찾아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개를 넘어가지고 예수님이 마음대로 우리를 붙들 수 있지 않으면, 십자가를 떼어 버리는 이 하나의 원한을 풀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 일신을 통하여, 제단을 통하여, 하늘 땅을 통하여 십자가를 폐할 수 있는 하나의 불변의 기준을 세우기 전에는 재림역사는 완성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남겨 주신 빛과 물과 기름
이렇게 찾아 주신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고 갔습니까? 슬픈 생활을 통하여, 고난의 생활을 통하여,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나를 찾아주신 후에 우리에게 남겨준 것은 무엇인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빛을 남겨 주셨습니다. 예수가 목숨을 걸고 우리를 찾아 오셨는데, 무슨 선물을 갖고 오셨느냐 하면, 어둔 세상을 밝힐 수 있는 빛을 갖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하여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정을 알게 됩니다.
또, 그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 주셨던가. 물과 기름을 남겨 주셨습니다. 시달릴 대로 시달리고 상처입을 대로 상처를 입은 우리를 고쳐 주기 위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 주셨느냐 하면 물과 기름을 남겨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께서 남겨 주신 빛을 밝혀서 자기의 상처를 알아내어 물과 기름으로 그것을 씻어야 하고, 자기가 죄인인 것과 벌거벗은 몸인 것을 알고 예복을 갖추어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이 자기의 심정에, 마음에 등불을 밝히어서 자기의 죄를 깨끗이 씻고, 상처를 치료하고, 예복을 입고 난 후에라야 2천년 전에 돌아가신 예수의 소원을 오늘날 여러분이 이루어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마음의 등불을 밝히고, 물로 몸을 깨끗이 씻고, 상처에 기름을 바른 후에 허락하신 예복을 입고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넘어 오실 필요없이 우리 자신들이 십자가를 넘어가지고 예수님께 경배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땅 위에서 인간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넘어 오시기를 바라지 말고 여러분이 넘어가려고 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넘어오실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생명의 빛을 발하는 존재들이 되고, 그 다음에 모든 힘을 갖추어서 영원 불변한 가치의 빛을 대신할 수 있는 예복을 입고 십자가를 넘어가서 예수님을 붙들고 '주님은 영원히 안식하시옵소서' 하며 경배드릴 수 있는 사랑하는 신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신부들이 나오기를 바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예수님께서 남기신 짐을 풀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마음의 빛을 상속받고, 예수님으로부터 물과 기름의 은사를 받고, 그 다음에는 예복을 입고……. 이 예복은 여러분 일개인에 머물 예복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서 고착될 것이 아니라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빛을 받고, 물과 기름의 은사를 받고, 예복을 입음으로써 주 앞에 신부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선집 제1권 3편
이렇듯 예수는 우리를 찾으신다(훈독본)
1956년 5월 20일(日), 전 본부교회.
마태복음 18:1-14
<기 도>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I30s/51
떨어진 한 마리의 양과 같은 타락
인간
타락한 이후 우리 인류는 하나님 앞에 있어서 아흔 아홉 마리의 양 가운데 있지 못하고 떨어진 한 마리의 양과 같은 입장에 처하여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천천만 천군 천사도
한 마리의 양과 같은 아담 해와를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기쁜 찬송을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천군 천사들로 하여금 기쁨의
찬송을 드리지 못하게 한 인간을 다시 찾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수고를 거듭해 나오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찾으셨던 한 존재로서 땅 위에 보내졌습니다. 그러한 예수는 사망 가운데 들어간 우리 인간들을 중생시키기 위하여 참부모의 입장에 서서 수고의
역사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유일한 독생자로 세워진 분이요, 죄악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짐으로써 사탄 대하여 승리한 분이라고 간단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한
중심으로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던가? 세계 인류를 대하여 섭리하시던 그 모든 것을 예수님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온 만민을 책임지고 구원해야 할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날 우리들을 찾아 주는 데는 어떠한 과정을 거쳐 찾아 주느냐? 하나님께서는 4천년의 역사를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말씀을 세우셨고 뭇 선지 성현들을 통하여 메시아가 강림하실 것을 수많은 군중 앞에 예고해 나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교 신자들은 뭇
선지자들이 호소하던 증거의 말씀을 통하여 메시아를 맞기 위한 준비를 해 왔습니다. 그것이 구약의 역사입니다. 이렇듯 준비된 터 위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 구약의 4천년 역사를 선의 역사로 종결지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하시는 새로운 말씀은 하나님의 4천년 복귀섭리
노정에 얽힌 서러움이 깃들인 말씀인 동시에 억조창생들이 신앙노정을 가는데 있어서 지니고 가야 할 천륜의 법도를 밝힌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발표하시는 이
새로운 말씀을 수많은 유대교 신자들이 귀담아 듣고 믿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하는 무리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했을 것인가?
예수님은 비통한 마음으로 호소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까지 하늘은 나 하나를
찾고, 죄중에 빠져 있는 우리 인류를 다시 찾아 세우기 위해 오랜 기간 수고해 나오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구약 율법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4천년의 서러운 역사를 해원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서 새로운 진리의 말씀을 발표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유대민족이 믿어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을 위로해 드리지 못하고 도리어 하늘의 서러운 심정을 자신의 마음에서부터 북돋우는
결과가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가야 할
방향을 알지 못하고 사탄의 수중에 있는 무리 앞에 나타나셔서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살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인류는 삶의 방향도 잃어버리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4천년 수고의 제단도 붕괴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의 터 위에서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되었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의해 결실되었을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자녀로 품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믿지 않은
유대민족
애초에 본이 되어야 할 이스라엘민족이 예수님이 주신 새로운 말씀을 믿지 않고 하나되지 못한 연고로 예수 그리스도는 슬픔의 말씀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우리는 한 마리의 잃어진 양과
같은 입장에 있는 이스라엘민족을 대했던 예수의 심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하늘이 나 하나를 찾기
위하여 4천년 동안 서러운 심정을 품고 섭리해 나오셨고, 그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을 계승하여 우리들의 뒤를 따라오면서
부르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환경에서 예수님은 비통한
심정을 품고 30평생을 지내셨고,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부르짖던 간절한 음성이 지금도 성경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호소하고 있으며. 오늘 이
시간에도 예수님은 영계에서 여러분을 향하여 간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하늘 앞에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과 같은 입장에 있는 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가야 할 방향도 모르고, 자기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도 모른 채 세상이 그냥 이대로 계속되는 줄 알고 있다면 여러분은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은 잘 모르겠지만
예수님은 태어나신 이후 지금까지의 2천년 역사과정을 거쳐 오면서 슬픈 음성으로 부르시고 있고, 그 부르심의 소리는 여러분의 소망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예수님의
음성
간절하게 부르시는 이 음성을 여러분은 외면하겠습니까? 듣지 못하는 자가 있다 하면 같은 원한의 마음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부르시는 음성을 그리워 할 줄 모르는 귀가 있습니까. 이 음성을 분별하기 위해서 분발해야 되겠습니다. 혹은 부르시는 음성을 여러분이 들었을지라도 몸이 튼튼하지 못하여 움직이지 못할 때에는 그 곳을 향하여 마음 모을 수 있는 내 한 자체가 돼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오늘의 내 한 개체를
6천년을 걸려서 찾아 오셨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듣지 못하는 연고로 실체의 하나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 주고, 실체되시는 예수로 하여금 하나님의 무형의 심정을 나타내게 하여 선포하신 말씀이 곧 복음의 말씀이었습니다.
인간이 무형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이것을 해소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실체로 나타나신 예수였습니다. 또 그가 전하는 말씀과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알고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어 회개해야 할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민족은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예수님을
멀리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들려오는 예수의 슬픈 음성을 알아듣기 위하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진정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만민 앞에 나타난 예수를 '믿습니다'할 수 있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예수는 무형의 하나님을 대신하여
와서 무지한 인간들을 대신하여 속죄의 노정을 걸으셨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대신하여 부르짖던 음성을 분별할 줄 알았더라면, 실체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서러움에 사무쳐 부르짖던 말씀을 문제없이 알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민족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말씀만으로 만족하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최후의 말씀이 구약에 다 기록되어 있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서러움은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세워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실체로 보이고 증거할 때에 이를 모시지 못하면 하늘의 서러움이 땅 위의 서러움으로 연결되는
것을 이스라엘민족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무형의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셨던 그 서러움을 지상에서 기쁨으로 해원해 드려야 할 예수 그리스도였는데, 이러한 예수를 알지 못한 이스라엘민족 때문에 하나님의 서러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해원되지 못하고 또다시 서러움으로 남아지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4천년의
역사를 대신하여 땅 위에 왔던 예수 그리스도는 기쁨의 말씀을 발표하지 못하고 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이후 2천년 역사가 경과하였지만,
오늘날 6천년의 역사를 통하여 보게될 때 아직도 하나님의 서러움과 예수 그리스도의 서러움은 땅 위에 사무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서러움과 예수 그리스도의 서러움을 알고, 이제 하나님의 기쁨의 말씀과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헤아릴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우리를 찾은 목적이 언제나
슬픔의 말씀만을 전하려 함은 아니었습니다. 잃어버린 양떼와 같은 우리들을 찾기 위해서 수고하는 과정에서는 언제나 비애의 말씀만을 해서는 안
됩니다. 6천년 동안 비애의 말씀을 하셨으니 잃어버린 양떼가 찾아지는 그 순간에는 6천년의 서러움을 송두리째 잊어버릴 수 있는 기쁨의 말씀이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기쁨의 말씀이
하늘로부터 나타날 줄 알고 있는데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2천년 동안 수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 앞에, 우리들을 찾아오시는 주 앞에 달음질쳐 나갈 수 있는 양떼가 되어야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홀연히 찾아오셔서 비애의 음성으로 여러분을 부르실 때 여러분이 그 자리에서 몸을 움추려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비애의 음성이 들리기 전에 여러분이 먼저 비애의 음성으로 부르짖어야 되겠습니다.
내가 먼저, '나의 목자시여 ! 주여 !' 하는 음성이 천지에 사무치게 부르짖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찾아오시는
예수께서 여러분이 부르짖는 음성을 귀 기울여 들으시고 다시 부르짖으실 때 슬픈 음성으로 부르짖으시지 앉고 기쁜 음성으로 부르짖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비애의 심정을 증거해야 할
우리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비애의 심정을 증거해야 되겠습니다. 목자를 잃어버린 것을 슬퍼만 할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목자를 찾기 위하여 부르짖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듯 부르짖던 예수가 남기신
수고의 걸음이라도 책임질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만 이 예수 앞에 만족을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는 비애의 음성으로 우리들을 찾고
있으며 또 우리를 찾기 위하여 고통의 생활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예수의 30여
평생은 고통의 생활이었습니다. 목수인 요셉의 아들로서의 30년 준비기간에 있어서의 그의 생활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고통의 생활이었다는
것입니다.
만민의 구주답게 산 줄 알고 있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의붓아버지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동생들에게까지도 비난받는 자리에서 고통의 생활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고통은 예수 일신을 위한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4천년 동안 수고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내가 아니면 잃었던 가정을 다시 찾을 자가 없다는 것을 아시고 일구월심
하늘을 대한 마음만으로 간절했던 것입니다. 4천년 동안 하나님의 산 말씀을 대신하여 이상세계를 이루기 위하여 생명을 바쳐서 싸웠던 것입니다.
낳을 때부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예수는 죽을 때까지 광야의 생활과 같은 외롭고 힘든 생활을 했습니다. 이런 예수의 외적인 고통도 고통이지만 외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내적 심정
가운데 숨은 고통이란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예수를 믿고 따라야 할
이스라엘민족은 알아야 할 사람을 몰라보고 몰라도 될 사람은 알아 주었습니다.
그가 먹고 입고 마시던 모든 생활은 예수 자신을 넘어
하나님을 위하고 세계 인류를 위하고 민족을 위한 것이었으며, 옮겨 놓는 발자취 또한 그러한 발자취였습니다.
그 사정을 알아 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외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품고 '당신의 마음과 심정을 제가 아오니, 당신의 마음을 위로하는 친구가 되겠나이다'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까지도 예수의 숨은 내적 심정을 위로해 드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생애는
고통의 생활로 점철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파한 3년 공생애 노정이 시작된 날부터 그가 전한 말씀은 자기의 이익을 위하거나 자신의 어떠한 능력을
세우기 위한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하신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씀과 뜻을 가지고
오셨던 예수를, 민족 전체를 대신하여 알아 주고 친구되고자 한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마을에서의 천대거리였고 민족 전체의
천대거리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편안하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이때를 놓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고통의
예수
예수님 당시에는 말씀을 전하는데도 남 몰래 전해야 했고, 말씀을 듣는 데도 숨어서 들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가는 곳이 광야였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예수는 수많은 군중을 광야로 끌고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 했습니다. 그렇게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듯이 예수가 뭇 무리에게
복음을 전파했으나 그것을 환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마음이 아무리 간절해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예수가
부여받은 사명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 수고하면 할수록 그것에 대하여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자가 많았다는 거예요.
따르는 제자들은 흩어지고 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받고 다시 제 2차로 사탄과 싸울 수 있는 힘을 보충하기 위한 예수의 수고를 여러분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30여년의 평생을
불태워서 고통 중의 고통스런 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비단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의 고통이 30여년의 생애의 고통에서 끝난
것으로 아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영계에 가서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는 고통 속에 있는 것입니다.
2천년 역사가
연장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할 하나의 목적을 두고 섭리의 뜻을 대행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이 시간까지도 고통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하나의 고통을 어디 가서 해결할 것인가. 오늘을 책임질 수 있는 여러분을 통하여 그 고통과 수고 속에서 맺힌 한을 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사실을 알진대
여러분 자체들은 예수의 고통스런 손을 붙들고 위로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무친 원한을 대신 짊어지고 위로해야 할
책임이 오늘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환경에서 예수의 고난을 느끼고 고난의 생활을 분석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는 무슨 죄가 있었기에
30여 평생의 고난의 생활, 고통의 생활을 해야만 했었는가.
죄가 있었다면 하나님 앞에 만민을 구원해야 하는 구주로 세움을 받은 죄밖에는 없습니다. 이런 예수가 만민을 위하여 괴로워하고. 만민을 위하여 애타게 부르짖었던 사연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예수를 대하여 오늘 우리들은 회개의 마음이라도 가져야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도 예수
그리스도의 30여년 생애의 고난의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거두어야 할진대, 마굿간에서 태어날 때의 고난에서부터 골고다 산상까지의
고난, 그리고 부활 이후 2천년의 고난의 자국까지도 몽땅 거두어야 합니다. 이러한 전체적인 뜻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의 슬픔은 애타게 부르짖고
고난과 수고의 생애를 거쳐서도 끝나지 않았어요. 오늘날 사람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슬픔이 끝난 줄 알고 있지만 그로
말미암아 오히려 뜻이 연장되어 예수의 슬픔은 풀래야 풀 수 없는 한으로 남아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여러분은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를
슬픔에서 구해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찾기
위하여 6천년 역사가 지난 오늘 날까지 수고하고 원한에 사무친 길을 가고 생명을 내어 놓고 십자가의 길을 갔으니, 여러분은 그러한 예수를
붙들어야 되겠습니다.
예수는 십자가 상에서 죽으면서도
"아바 아버지여……."라고 애타게 호소하였습니다. 4천년 동안 수고한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부르짖던 피의 호소가 이스라엘민족으로 인하여 해원되어야
할 것이었는데, 이스라엘민족이 해원하지 못했으니 그 선조들의 피의 호소를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 것인가. 보답할 도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민족을 대신하여 역사적인
피의 호소의 대가를 치르고 탕감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4천년 동안 수많은 선지선열들의 피어린 호소의 목적이 예수 일신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또 죽은 후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이 땅 위에 피를 뿌리고 간 선조들의 원한이 거두어진 연고로 그들이 땅을 대하여 원망하고, 해원을 요구하던 뜻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때에야 비로소 예수를 앞장 세워 하늘 앞에 경배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해원해 드려야 할
우리
예수님은 후대에 십자가의 죽음의 피를 남겼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피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 앞에 서게 될 때에, 또 여러분의 일생을 보면 여러분의 인생에도 피의 고개가 있었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것은 선지선열의 피의 호소에 대한 보답인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호소에 대한 보답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우리를 오라고 하실 때에 우리는 십자가의 걸음을 통해 예수님을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골고다 산정 십자가 상에서 피로 호소하던 정열이 여러분의 맥박에서 뛰고 있음을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걸어
놓고 여러분을 찾아 주셨는데도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를 몰랐고, 십자가를 걸어놓고 예수님을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죽음 길을 걸으며 십자가를 지시며
나를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나를 위하여 부르짖고 계시고, 무한히 호소하고 있으며, 고통을 당하시며 나를 위해 수고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는 십자가를 사이에 두고
예수님을 대하고 있는데, 누가 이 십자가의 원한을 해원할 것인고.
오늘날 우리들이 해원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해원하기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나의 신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 직후에 막달라
마리아가 "오 주여!…"라고 했을때 예수께서 막으신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의 주를 만난 그
날부터 천국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2천년 동안 가로막혔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남아진 십자가의 원한을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해원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십자가의 고개를 넘고
넘어서 우리를 찾아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남기신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이 땅에 신랑 신부라는 명사를 남기셨습니다. 그래서 기도 가운데 여러분은 신부요 주님은 신랑의 모습으로 여러분에게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신랑으로 나타나시는 주님을 뵈올 때, 여러분은 언제나 십자가의 피의 대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십자가를 폐하고
만대에 복을 빌어 줄 수 있는 길, 십자가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개를 넘어 예수님이 마음대로 우리를 붙들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내 일신을 통하여, 제단을 통하여, 하늘 땅을 통하여 십자가를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불변의 기준을 세우기 전에는 재림역사는
완성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남겨 주신 빛과 물과
기름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빛을 남겨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하여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정을 알게 됩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는 시달릴 대로
시달리고 상처입을 대로 상처를 입은 우리를 고쳐 주기 위해서 예수님은 물과 기름을 남겨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께서 남겨 주신
빛을 밝혀서 자기의 상처를 알아내어 물과 기름으로 그것을 씻어야 하고, 자기가 죄인인 것과 벌거벗은 몸인 것을 알고 예복을 갖추어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이 자기의 심정과 마음에 등불을 밝히어서 자기의 죄를 깨끗이 씻고, 상처를 치료하고, 예복을 입고 난 후에라야
2천년 전에 돌아가신 예수의 소원을 오늘날 여러분이 이루어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마음의 등불을
밝히고, 물로 몸을 깨끗이 씻고, 상처에 기름을 바른 후에 허락하신 예복을 입고서 십자가를 넘어가지고 예수님께 경배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넘어오실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생명의 빛을 발하는 존재들이 되고, 예복을 입고 십자가를 넘어가서 예수님을 붙들고 '주님은 영원히 안식하시옵소서' 하며
경배드릴 수 있는 사랑하는 신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신부들이 나오기를 바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예수님께서 남기신
짐을 풀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마음의 빛을 상속받고, 예수님으로부터 물과 기름의 은사를 받고, 예복을 입음으로써 주 앞에 신부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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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마태복음 18:1-14
이 시간 말씀드리려는 내용은 '이렇듯 예수는 우리를 찾으신다' 입니다, 이런 제목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여 준비하신 한 사람으로서 땅 위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대신 하고,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대신하여 땅 위에 남아진 수많은 인류를 살리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떨어진 한 마리의 양과 같은 타락 인간
타락한 이후 우리 인류는 하나님 앞에 있어서 어떠한 자리에 섰느냐 하면, 아흔 아홉 마리의 양 가운데 있지 못하고 떨어진 한 마리의 양과 같은 입장에 처하여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천천만 천군 천사도 한 마리의 양과 같은 아담 해와를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기쁜 찬송을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천군 천사들로 하여금 기쁨의 찬송을 드리지 못하게 한 인간을 다시 찾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수고를 거듭해 나오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찾으셨던 한 존재로서 땅 위에 보내졌습니다. 그러한 예수는 만민 앞에 선의 조상으로서 사망 가운데 들어간 우리 인간들을 중생시키기 위하여 참부모의 입장에 서서 수고의 역사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4천년 섭리역사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유일한 독생자로 세워진 분이요, 죄악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짐으로써 사탄 대하여 승리한 중심존재로 세워진 분이라고 간단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한 중심으로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던가? 세계 인류를 대하여 섭리하시던 그 모든 것을 예수님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새로운 한 중심으로 세우심을 받아 온 만민을 책임지고 구원해야 할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러한 입장에 서게 될 때에 그의 마음과 몸은 말할 수 없는 서러움에 잠겼을 것입니다.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날 우리들을 찾아 주는 데는 어떠한 과정을 거쳐 찾아 주느냐? 하나님께서는 4천년의 역사를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말씀을 세우셨고 뭇 선지 성현들을 통하여 메시아가 강림하실 것을 수많은 군중 앞에 예고해 나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교 신자들은 뭇 선지자들이 호소하던 증거의 말씀을 통하여 메시아를 맞기 위한 준비를 해 왔습니다. 그것이 구약의 역사입니다. 이렇듯 준비된 터 위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 구약의 4천년 역사를 선의 역사로 종결지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하시는 새로운 말씀은 하나님의 4천년 복귀섭리 노정에 얽힌 서러움이 깃들인 말씀인 동시에 억조창생들이 신앙노정을 가는데 있어서 지니고 가야 할 천륜의 법도를 밝힌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발표하시는 이 새로운 말씀을 수많은 유대교 신자들이 귀담아 듣고 믿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하는 무리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했을 것인가? 예수님은 비통한 마음으로 호소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까지 하늘은 나 하나를 찾고, 죄중에 빠져 있는 우리 인류를 다시 찾아 세우기 위해 오랜 기간 수고해 나오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민족에게 구약 율법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4천년의 서러운 역사를 해원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서 새로운 진리의 말씀을 발표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유대민족이 믿어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을 위로해 드리지 못하고 도리어 하늘의 서러운 심정을 자신의 마음에서부터 북돋우는 결과가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가야 할 방향을 알지 못하고 사탄의 수중에 있는 무리 앞에 나타나셔서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살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인류는 삶의 방향도 잃어버리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4천년 수고의 제단도 붕괴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의 터 위에서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되었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의해 결실되었을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자녀로 품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믿지 않은 유대민족
애초에 본이 되어야 할 이스라엘민족이 예수님이 주신 새로운 말씀을 믿지 않고 하나되지 못한 연고로 예수 그리스도는 슬픔의 말씀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마리 양과 같은 입장에 서야 할 이스라엘 민족들이 어떠한 입장에 섰느냐 하면, 떨어진 한 마리의 양과 같은 입장에 세워져 있고 우리 역시 마찬가지의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한 마리의 잃어진 양과 같은 입장에 있는 이스라엘민족을 대했던 예수의 심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잃어진 이스라엘 민족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예수는 슬픈 심정을 가지고 부르짖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하늘이 나 하나를 찾기 위하여 4천년 동안 서러운 심정을 품고 섭리해 나오셨고, 그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을 계승하여 우리들의 뒤를 따라오면서 부르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예수는 30여 평생 동안 어떤 과정을 거쳤는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30년간의 사생애 기간 동안 준비해 오셨습니다. 그 기간이 지난 뒤 새로운 말씀을 가지고 나타나 전하게 될 때, 예수님은 기쁨을 느끼는 가운데서 말씀을 전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서러움을 품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나를 따르라' 하는 말씀, '나를 믿으라' 하는 말씀 등 많은 말씀을 하였으나 그 슬픈 마음에서 호소하는 음성을 귀담아 듣고 따라 나가는 무리는 지극히 적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예수님은 비통한 심정을 품고 30평생을 지내셨고,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부르짖던 간절한 음성이 지금도 성경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호소하고 있으며. 오늘 이 시간에도 예수님은 영계에서 여러분을 향하여 간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이 호소하시던 말씀의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아서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하늘 앞에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과 같은 입장에 있는 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가야 할 방향도 모르고, 자기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도 모른 채 세상이 그냥 이대로 계속되는 줄 알고 있다면 여러분은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은 잘 모르겠지만 예수님은 태어나신 이후 지금까지의 2천년 역사과정을 거쳐 오면서 슬픈 음성으로 부르시고 있고, 그 부르심의 소리는 여러분의 소망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예수님의 음성
간절하게 부르시는 이 음성을 여러분은 외면하겠습니까? 듣지 못하는 자가 있다 하면 같은 원한의 마음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부르시는 음성을 그리워 할 줄 모르는 귀가 있습니까. 이 음성을 분별하기 위해서 분발해야 되겠습니다. 혹은 부르시는 음성을 여러분이 들었을지라도 몸이 튼튼하지 못하여 움직이지 못할 때에는 그 곳을 향하여 마음 모을 수 있는 내 한 자체가 돼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양과 같은 입장에 있는 오늘의 내 한 개체를 찾기 위하여 허덕이며 찾아 오신 걸음이 하루도 아니요, 일년도 아니요, 백년도 아니요, 6천년을 걸려서 찾아 오셨습니다.
하늘 땅 위의 잃어버린 양떼를 찾기 위하여 애써오신 6천년의 역사는 하늘의 대속사(代贖史)였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듣지 못하는 연고로 실체의 하나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 주고, 실체되시는 예수로 하여금 하나님의 무형의 심정을 나타내게 하여 선포하신 말씀이 곧 복음의 말씀이었습니다.
인간이 무형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이것을 해소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실체로 나타나신 예수였습니다. 또 그가 전하는 말씀과 음성을 듣고 이스라엘민족이 예수께로 와서 4천년 동안 몰라보았던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알고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어 회개해야 할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민족은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예수님을 멀리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들려오는 예수의 슬픈 음성을 알아듣기 위하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이 세상적인 모든 말들을 잘 듣듯이 진정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만민 앞에 나타난 예수를 '믿습니다'할 수 있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예수는 무형의 하나님을 대신하여 와서 4천년 동안 하늘 앞에 서러움만을 안겨 준 무지한 인간들을 대신하여 속죄의 노정을 걸으셨습니다.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를 슬픈 자리에 세워 재결심하게 하셨던 하나님의 심정을 여러분은 헤아릴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이 마음을 넓히어 안타까운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대신하여 부르짖던 음성을 분별할 줄 알았더라면, 실체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서러움에 사무쳐 부르짖던 말씀을 문제없이 알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민족은 어떠했습니까? 구약성경에 나타난 말씀만으로 만족하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최후의 말씀이 구약에 다 기록되어 있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서러움은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세워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실체로 보이고 증거할 때에 이를 모시지 못하면 하늘의 서러움이 땅 위의 서러움으로 연결되는 것을 이스라엘민족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무형의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셨던 그 서러움을 지상에서 기쁨으로 해원해 드려야 할 예수 그리스도였는데, 이러한 예수를 알지 못한 이스라엘민족 때문에 하나님의 서러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해원되지 못하고 또다시 서러움으로 남아지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4천년의 역사를 대신하여 땅 위에 왔던 예수 그리스도는 기쁨의 말씀을 발표하지 못하고 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이후 2천년 역사가 경과하였지만, 오늘날 6천년의 역사를 통하여 보게될 때 아직도 하나님의 서러움과 예수 그리스도의 서러움은 땅 위에 사무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서러움과 예수 그리스도의 서러움을 알고, 이제 하나님의 기쁨의 말씀과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헤아릴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우리를 찾은 목적이 언제나 슬픔의 말씀만을 전하려 함은 아니었습니다. 잃어버린 양떼와 같은 우리들을 찾기 위해서 수고하는 과정에서는 언제나 비애의 말씀만을 해서는 안 됩니다. 6천년 동안 비애의 말씀을 하셨으니 잃어버린 양떼가 찾아지는 그 순간에는 6천년의 서러움을 송두리째 잊어버릴 수 있는 기쁨의 말씀이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기쁨의 말씀이 하늘로부터 나타날 줄 알고 있는데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2천년 동안 수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 앞에, 우리들을 찾아오시는 주 앞에 달음질쳐 나갈 수 있는 양떼가 되어야겠습니다.
서러움의 예수 그리스도, 상처 입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르짖는 음성을 듣고도 꾸물거리며 방향을 잡아 달음질치지 못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홀연히 찾아오셔서 비애의 음성으로 여러분을 부르실 때 여러분이 그 자리에서 몸을 움추려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비애의 음성이 들리기 전에 여러분이 먼저 비애의 음성으로 부르짖어야 되겠습니다.
내가 먼저, '나의 목자시여 ! 주여 !' 하는 음성이 천지에 사무치게 부르짖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찾아오시는 예수께서 여러분이 부르짖는 음성을 귀 기울여 들으시고 다시 부르짖으실 때 슬픈 음성으로 부르짖으시지 앉고 기쁜 음성으로 부르짖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비애의 심정을 증거해야 할 우리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비애의 심정을 증거해야 되겠습니다. 목자를 잃어버린 것을 슬퍼만 할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목자를 찾기 위하여 부르짖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듯 부르짖던 예수가 남기신 수고의 걸음이라도 책임질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만 이 예수 앞에 만족을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는 비애의 음성으로 우리들을 찾고 있으며 또 우리를 찾기 위하여 고통의 생활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류를 구하기 위하여 4천년 역사를 대신했던 예수는 전체 인류의 구원 섭리로 인하여 편안한 생활을 못했습니다. 고통의 생애를 거쳐 오늘 우리를 찾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예수의 30여 평생은 고통의 생활이었습니다. 목수인 요셉의 아들로서의 30년 준비기간에 있어서의 그의 생활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고통의 생활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같이 편안한 자리에서 마음대로 생활하지 못했습니다. 만민의 구주답게 산 줄 알고 있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의붓아버지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동생들에게까지도 비난받는 자리에서 예수는 할 말이 많아도 다 하지 못하는 고통의 생활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고통은 예수 일신을 위한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4천년 동안 수고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내가 아니면 잃었던 가정을 다시 찾을 자가 없다는 것을 아시고 일구월심 하늘을 대한 마음만으로 간절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위의 환경과 자신을 중심삼고 처참한 환경에서 투쟁하는 뭇 무리들을 보고 예수는 어려움과 비통의 생활 과정에 들어가서 4천년 동안 하나님의 산 말씀을 대신하여 이상세계를 이루기 위하여 생명을 바쳐서 싸웠던 것입니다.
낳을 때부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예수는 죽을 때까지 광야의 생활과 같은 외롭고 힘든 생활을 했습니다. 이런 예수의 외적인 고통도 고통이지만 외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내적 심정 가운데 숨은 고통이란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예수를 믿고 따라야 할 이스라엘민족은 알아야 할 사람을 몰라보고 몰라도 될 사람은 알아 주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민족 가운데서 예수는 본향의 생활을 그리워했던 것입니다.
그가 먹고 입고 마시던 생활은 자신을 위한 생활이 아니요 일신의 안일을 위한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먹고 입고 마시는 모든 일은 예수 자신을 넘어 하나님을 위하고 세계 인류를 위하고 민족을 위한 것이었으며, 옮겨 놓는 발자취 또한 그러한 발자취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메시아의 사정을 알아 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외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품고 '당신의 마음을 제가 아오니, 당신 심정을 제가 아오니, 가시는 곳곳마다 따라가 당신의 마음을 위로하는 친구가 되겠나이다'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마땅히 위로해 드려야 할 제자들까지도 예수의 숨은 내적 심정을 위로해 드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30여년의 생애는 고통의 생활로 점철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파한 3년 공생애 노정이 시작된 날부터 그가 전한 말씀은 사적인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한 말씀이 아니었고, 자신의 어떠한 능력을 세우기 위한 말씀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하신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씀과 뜻을 가지고 오셨던 예수를, 민족 전체를 대신하여 알아 주고 친구되고자 한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마을에서의 천대거리였고 민족 전체의 천대거리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편안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환경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렇듯 자유로운 환경에서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이때를 놓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고통의 예수
예수님 당시에는 말씀을 전하는데도 남 몰래 전해야 했고, 말씀을 듣는 데도 숨어서 들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가는 곳이 광야였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예수는 수많은 군중을 광야로 끌고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 했습니다. 그렇게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듯이 예수가 생활과정에서 뭇 무리에게 복음을 전파했으나 그것을 환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마음이 아무리 간절해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예수가 부여받은 사명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 수고하면 할수록 그것에 대하여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자가 많았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바라보면서 하루 종일 뭇 무리를 대하여 광야에서 외치시던 애처로운 예수 그리스도는 또 다시 하늘 앞에 호소하기 위하여 감람산의 험한 길을 찾아들어 갔습니다. 따르는 제자들은 흩어지고 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받고 다시 제 2차로 사탄과 싸울 수 있는 힘을 보충하기 위한 예수의 수고를 여러분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30여년의 평생을 불태워서 고통 중의 고통스런 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비단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의 고통이 30여년의 생애의 고통에서 끝난 것으로 아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오늘 저 나라 영계에 가서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는 고통 속에 있는 것입니다.
2천년 역사가 연장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할 하나의 목적을 두고 섭리의 뜻을 대행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이 시간까지도 고통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 고통의 생활이 연결되어 오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하나의 고통을 어디 가서 해결할 것인가. 오늘날 이 땅 만상이 아닙니다. 이 땅의 만상은 절대 아닙니다. 오늘을 책임질 수 있는 여러분을 통하여 그 고통과 수고 속에서 맺힌 한을 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영생섭리노정에서의 고통을 여러분 앞에 역사적인 거리를 개의치 않고 나타내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사실을 알진대 여러분 자체들은 예수의 고통스런 손을 붙들고 위로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증오받고 욕을 먹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무친 원한을 대신 짊어지고 위로해야 할 책임이 오늘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 서지 못했을 진대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여러분의 환경에서 예수의 고난을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생활을 분석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는 무슨 죄가 있었기에 30여 평생의 고난의 생활, 고통의 생활을 해야만 했었는가. 죄가 있었다면 하나님 앞에 만민을 구원해야 하는 구주로 세움을 받은 죄밖에는 없습니다. 이런 예수가 만민을 위하여 괴로워하고. 만민을 위하여 애타게 부르짖었던 사연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예수를 대하여 오늘 우리들은 회개의 마음이라도 가져야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도 예수 그리스도의 30여년 생애의 고난의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거두어야 할진대, 마굿간에서 태어날 때의 고난에서부터 골고다 산상까지의 고난, 그리고 부활 이후 2천년의 고난의 자국까지도 몽땅 거두어야 합니다. 이러한 전체적인 뜻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의 슬픔은 애타게 부르짖는 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고난과 수고의 생애를 거쳐서도 끝나지 않았어요. 오늘날 사람들은 예수가 고난의 생애를 거쳐 십자가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슬픔이 끝난 줄 알고 있지만 그로 말미암아 오히려 뜻이 연장되어 예수의 슬픔은 풀래야 풀 수 없는 한으로 남아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여러분은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를 슬픔에서 구해야 되겠습니다.
이렇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찾기 위하여 6천년 역사가 지난 오늘 날까지 수고하고 원한에 사무친 길을 갔으니, 생명을 내어 놓고 십자가의 길을 갔으니, 여러분은 그러한 예수를 붙들어야 되겠습니다.
예수는 30여년의 평생을 종결짓는 십자가의 죽음의 길로 나아가 죽게 될때 죽으면서도 "아바 아버지여……."라고 애타게 호소하였습니다. 4천년 동안 수고한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부르짖던 피의 호소가 이스라엘민족으로 인하여 해원되어야 할 것이었는데, 이스라엘민족이 해원하지 못했으니 그 선조들의 피의 호소를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 것인가. 보답할 도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민족을 대신하여 역사적인 피의 호소의 대가를 치르고 탕감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아벨의 피가 호소할 때에 보혈을 흘리신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찢기고 피묻은 땅을 대하여, 이스라엘민족을 대하여 호소하던 조건이 예수로 인하여 해원된 것입니다. 4천년 동안 호소하던 울음 소리가, 4천년 동안 수많은 선지선열들의 피어린 호소의 목적이 예수 일신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또 죽은 후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 졌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이 땅 위에 피를 뿌리고 간 선조들의 원한이 거두어진 연고로 그들이 땅을 대하여 원망하고, 해원을 요구하던 뜻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때에야 비로소 예수를 앞장 세워 하늘 앞에 경배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해원해 드려야 할 우리
이스라엘민족이 하늘을 믿고 받들지 못하여 희생됐던 선지선열들의 피의 호소를 완결하였던 예수는 동시에 후대에 무엇을 남겼는가. 예수님은 후대에 십자가의 죽음의 피를 남겼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피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 앞에 서게 될 때에, 또 여러분의 일생을 보면 여러분의 인생에도 피의 고개가 있었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것은 선지선열의 피의 호소에 대한 보답인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호소에 대한 보답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걸음을 통해 찾아 오신 예수께서 우리를 오라고 하실 때에도 우리는 십자가의 걸음을 통해 예수님을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골고다 산정 십자가 상에서 피로 호소하던 정열이 여러분의 맥박에서 뛰고 있음을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걸어 놓고 여러분을 찾아 주셨는데도 여러분은 지금까지 그렇게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를 몰랐고, 십자가를 걸어놓고 예수님을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죽음 길을 걸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시며 나를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나를 위하여 부르짖고 계시고, 나를 위하여 무한히 호소하고 있으며, 고통을 당하시며, 죽음길을 걸으시며 나를 위해 수고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는 십자가를 사이에 두고 예수님을 대하고 있는데, 누가 이 십자가의 원한을 해원할 것인고. 오늘날 우리들이 해원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해원하기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나의 신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 직후에 막달라 마리아가 "오 주여!……"라고 했을때 예수께서 막으신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의 주를 만난 그 날부터 천국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천국생활이 2천년 동안 가로막혔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남아진 십자가의 원한을 알고 이제 이 남아진 십자가의 원한을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해원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십자가의 고개를 넘고 넘어서 우리를 찾아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남기신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이 땅에 신랑 신부라는 명사를 남기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분의 기도 가운데 주님은 신랑으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부요 주님은 신랑으로서, 그런 모습으로 여러분에게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신랑으로 나타나시는 주님을 뵈올 때, 여러분은 언제나 십자가의 피의 대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에게 주님이 또 하나 찾아 주셔야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십자가를 폐하고 만대에 복을 빌어 줄 수 있는 길, 십자가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을 찾아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개를 넘어가지고 예수님이 마음대로 우리를 붙들 수 있지 않으면, 십자가를 떼어 버리는 이 하나의 원한을 풀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 일신을 통하여, 제단을 통하여, 하늘 땅을 통하여 십자가를 폐할 수 있는 하나의 불변의 기준을 세우기 전에는 재림역사는 완성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남겨 주신 빛과 물과 기름
이렇게 찾아 주신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고 갔습니까? 슬픈 생활을 통하여, 고난의 생활을 통하여,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나를 찾아주신 후에 우리에게 남겨준 것은 무엇인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빛을 남겨 주셨습니다. 예수가 목숨을 걸고 우리를 찾아 오셨는데, 무슨 선물을 갖고 오셨느냐 하면, 어둔 세상을 밝힐 수 있는 빛을 갖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하여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정을 알게 됩니다.
또, 그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 주셨던가. 물과 기름을 남겨 주셨습니다. 시달릴 대로 시달리고 상처입을 대로 상처를 입은 우리를 고쳐 주기 위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 주셨느냐 하면 물과 기름을 남겨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께서 남겨 주신 빛을 밝혀서 자기의 상처를 알아내어 물과 기름으로 그것을 씻어야 하고, 자기가 죄인인 것과 벌거벗은 몸인 것을 알고 예복을 갖추어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이 자기의 심정에, 마음에 등불을 밝히어서 자기의 죄를 깨끗이 씻고, 상처를 치료하고, 예복을 입고 난 후에라야 2천년 전에 돌아가신 예수의 소원을 오늘날 여러분이 이루어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마음의 등불을 밝히고, 물로 몸을 깨끗이 씻고, 상처에 기름을 바른 후에 허락하신 예복을 입고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넘어 오실 필요없이 우리 자신들이 십자가를 넘어가지고 예수님께 경배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땅 위에서 인간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넘어 오시기를 바라지 말고 여러분이 넘어가려고 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넘어오실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생명의 빛을 발하는 존재들이 되고, 그 다음에 모든 힘을 갖추어서 영원 불변한 가치의 빛을 대신할 수 있는 예복을 입고 십자가를 넘어가서 예수님을 붙들고 '주님은 영원히 안식하시옵소서' 하며 경배드릴 수 있는 사랑하는 신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신부들이 나오기를 바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예수님께서 남기신 짐을 풀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마음의 빛을 상속받고, 예수님으로부터 물과 기름의 은사를 받고, 그 다음에는 예복을 입고……. 이 예복은 여러분 일개인에 머물 예복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서 고착될 것이 아니라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빛을 받고, 물과 기름의 은사를 받고, 예복을 입음으로써 주 앞에 신부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선집 제1권 4편
하늘 땅을 위하여 가고 오시고,
가고 오실 예수(훈독본)
1956.05.23 (수), 한국 전본부교회
요한복음 14:2-12
말씀선집, 하늘 땅을 위하여 가고 오시고, 가고 오실 예수1.mp3
<기 도>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I30s/52
오늘 말씀은 '하늘 땅을 위하여 가고 오시고, 가고 오실 예수' 입니다. 이런 제목으로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천주에 있어서의 아담 해와의 위치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였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무형의 천사세계를 창조하셨고, 다음으로 무형실체세계의 표상으로 유형실체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영계와 실체세계의 중심이자 대표로 아담 해와를 창조하셨습니다.
이 아담 해와는 천지가 변치 않는
이상 천지와 운명을 같이해야 했었습니다. 즉, 천지가 움직이는대로 같이 움직여야 할 운명을 가졌던 아담 해와였습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가 변하면
천지도 변하는 것이요, 아담 해와의 중심이 흩어지면 온 천지의 중심도 흩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 천주의 중심이 흩어지면 창조주의 중심도
흩어지는 필연적인 조건을 갖고 지음받은 아담 해와였습니다.
이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천주의 중심이 어긋났고, 천주의 중심이 어긋남으로 말미암아 창조주의 중심도 어긋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늘 땅의
중심을 다시 세워서 피조세계로 하여금 그 올바른 중심에 화하게 하여 창조주의 중심과 창조된 피조물의 중심이 둘이 아닌 하나가 되게 하셔야 하는
입장에 계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하늘이 기쁘면 땅도 기쁘고 땅이 기쁘면 하늘도 기쁘게 되는 것이요, 하늘이 영원하매 땅도 영원하며,
하늘이 무한지경의 기쁨에 잠기시면 땅도 무한지경의 기쁨에 잠기게 될 것입니다.
창조주의 운명이 그릇되지 않는
이상 피조세계의 운명은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피조세계의 중심인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만사는 흐트러졌고, 만사는 방향과
중심이 어긋나게 되었습니다. 이를 다시 회복하기 위한 역사가 복귀섭리역사요, 복귀섭리역사를 거듭하며 기나긴 6천년의 세월을 경과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 시간까지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는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통해서 나타내셨고, 선지선열들을 통해 상징적으로 사랑을 나타낸 동시에 그 전체적인 사랑의 결정체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는 실증적인 섭리의 사랑을 내적 외적으로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마음은
무형세계의 중심을 대신했고, 그의 몸은 유형실체세계의 중심을 대표했던 것입니다. 이런 예수이심을 알아야 할 이스라엘민족이 몰랐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주었습니다. 그래서 온 하늘 땅이 어둠에 잠겼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실천생활의
목적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단 하나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천지를 창조하시던 아버지의 심정을 갖추어서 하늘 땅에 변치 않는 영원한 중심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중심을 세우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말한 것은
자기의 어떤 중심을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어떤 동리나 이스라엘의 한 고을의 부분적인 중심을 세우려 한 것이 아니요, 전체
영계의 중심, 창조주의 중심에까지 연할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행동 또한 일개인의 행동이
아니었고, 그의 소망도 일개인의 소망이 아니었으며, 그가 싸우는 것도 일개인에서 그쳐지는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소망하는 목표는 온 천지
만물 전체를 품을 수 있는 불변의 중심으로 서서, 만물을 넘고 넘어 무형세계를 거쳐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는 자리까지 나아가는
것이었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소망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예수 그리스도의 실천적인 행동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의 행동은 하늘 땅을 새로이 건설하는 출발로서의
행동이었으며, 그가 하신 말씀은 그 하나의 뜻을 성사시키기 위한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키는 말씀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30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3년
실천생애노정에서 아담 해와 때에 잃어버렸던 하늘 땅의 불변의 중심을 다시 세우기 위해 말씀했으나, 말씀하신 그 말씀을 이스라엘민족들이 믿지 못한
연고로 영계와 육계의 중심으로 세워져야 했던 예수 그리스도는 영계의 중심으로만 세워졌고, 실체적인 육신세계의 중심으로는 세움받지 못하고 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고개를
넘을 때까지 무엇을 위하여 사셨던가? 이 땅에 오셔서 30여 평생 무엇을 위하여 수고했느냐 하면 일차적으로는 땅을 위해 수고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땅을 위해 수고한 그의
공적으로 말미암아 땅 위에서 거두시고자 했던 목적이 이루어지고, 영육을 합하여 땅 위에서 이루어야 할 하나의 중심이 하나의 실체에서 완결지어져야
할 것이었는데, 영과 육이 갈라 지게 됨으로 말미암아 땅 위에서 이루어야 할 실체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해침을 입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영적인 세계를 대표하여 예수님의 영만이 완성함으로 말미암아 부활 이후 오늘날까지 2천년의 역사는 영계 중심으로 복귀섭리를 한 기간이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후에
부활하셨고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지상에서 활동하신 후에 또 다시 영계로 가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시고, 부활하셨다가
다시 승천하신 이 사실은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날이니라(창1:5)"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면 밤시간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덤 3일기간은 바로 밤 시간과 같은
기간입니다. 30여 평생은 낮 시간인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우기 위하여 30여 평생 수고하셨습니다. 이 수고의 과정을 거친 후에 부활하신 것은
밤을 지나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는 땅 위에 등불을
세우기 위해 수고하셨으나, 땅 위에 등불을 세우지 못하셨습니다. 그런데 땅 위에 등불을 세우기 위해 부활하신 것 같으나 실상은 영계의 중심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땅 위에 계시지 못하시고 다시 영계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밤 기간을 지나 낮
기간을 맞이했던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저녁을 맞아 영원한 세계로 가버리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모른다'하는 인간들을 '안다'고 해야 했던
예수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이 무엇이냐? 남은 것이 무엇이냐하면, 밤기간입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아침이 되어야 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다시 저녁과 같은 기간이 남아지게 되었으니 이 밤 기간을 책임져야 할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내준 연고로 우리가 그 책임을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밤 기간의 책임을 완결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상에서 사탄을 이긴 승리의 기준을 세우셨듯이 오늘날 이 땅에 남아진 수많은 크리스찬들은 밤 기간의 싸움의 고개를 넘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 밤 기간의 고개를 넘어가지고
여러분 자신들이 예수를 본받아 부활하여 그와 더불어 새아침의 영광을 누리는 시대가 뭐냐 하면, 소망의 재림시대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30여 평생 이 땅을 위해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땅을 위하여 땅의 이 인류를 위하여 오셨기 때문에 땅 위에 있는 인간들은 반대할지라도, 땅 위의
인간들은 '모른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안다'하는 입장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을 거쳐
갈보리 산상에까지 나갈 때에 따르고 있던 제자들까지 예수를 버렸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예수를 '안다'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느 한 제자도 예수를 '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안다'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나 땅을 위하며 예수님은 오셨기 때문에 '모른다'하는
땅 위의 인간들을 대하여 '안다'하는 입장을 세우셨으니, 부활하셔서 갈릴리 해변가로 제자들을 찾아가신 것이 그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땅 위의
인간들이 알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남겨 놓고 40일 후에 다시 승천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우리가 '모른다'
하는 입장에 있을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안다'하는 입장에 계셨으므로, 예수님을 몰라보는 땅에 살고 있을지라도 예수님을 '안다'하는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왔다 가신
이후 2천년 동안 인간들은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아가는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해변가로 예수가 사도들을 찾아 주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찾아
주신 예수님의 그 은사에 보답하기 위해서 신앙자들도 2천년 동안 예수가 가신 하늘을 향하여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생활이
오늘날까지 2천년 동안 계속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님은 무엇을
위해 하늘나라에 가셨던고. 땅을 위하여 오셨던 예수님이 이루어야 할 것은 하늘의 뜻이기에 영계에 가셔서도 하늘의 뜻을 위하여 지금까지 일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땅을 위하여 오셨던 예수께서 땅
위에 '안다'하는 기준을 세워 놓으시고도 영계에 가셔서, 즉 무형세계에 가셔서 '안다'하는 기준을 세워 놓지 않으면 인간들이 '안다'하는 세계에
머물 수 없겠기에, 오늘날까지 2천년 동안 영계에서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 '안다' 하는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인간들을 위하여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하신다고 했는데 어떤 기도를 하고 계시는가. 피땀어린 기도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땅 위에서 예수님을 안다고 하면,
예수께서 영계에 가셔서 그들을 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하나님 앞에서
안다고 할 수 있는 입장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인간들이 갈 수 있는 영계가 아버지 앞에서 인정되지 않겠기에, 예수님은 오늘날까지 영계에 가셔서
하나님 앞에 우리들을 '안다'하는 수고의 기도를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일을 거친 이후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어떻게 오실 것인가? 오실 때에는 땅의 일과 하늘의 일을 합해 가지고 오실 것입니다. 땅의 일과 하늘의 일을 대신 책임지고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도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하셨다가 승천하여 천상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그 예수님이 넘으셨던
고개를 따라서 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또, 2천년의 밤 기간을 거쳐
부활의 아침에 해당하는 이때에 있어서 가신 예수님이 하늘에서 환영하는 하나의 중심을 세워 가지고 다시 오실 때에 여러분들은 그 예수님이 땅을
향하여 오시는 것을 마음으로 느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믿는 사람들의 신앙
형태는 하늘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사모해 왔습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의 우리들의 신앙의 모토요 표준이었습니다.
성신을 사모해야 할 오늘날
이제 우리가 사모해야 할 하나의 일이 남아 있나니 그 일이 무엇이뇨? 우리는 땅을 위하여 대신 일하고 있는 성신을 사모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제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2천년 동안 영적으로 사모해 왔으나 오늘날은 성신도 사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할 성도들이요 우리 인류라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성신을 사모해야 할 시대가 왔고, 신부의 몸을 완성해야할 때가 왔습니다.
성신은 신부의 신이시므로 신부의
모양을 갖추고 신부의 형체를 이루어 우리는 사모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는 영계에 가셔서 쉬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 땅에 하나의 중심을 세워 가지고 다시 우리들이 이 땅을 중심삼고 찾아들어가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영계를 사모하던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들에게 역사하시는 성신을 사모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인 상징인 예수님을 사모하고, 육적인 상징인 성신을
사모하여 우리 한 개체에서 영적인 예수를 사모하는 마음과 육적인 성신을 사모하는 몸이 하나됨으로 말미 암아 비로소 하늘의 중심과 땅의 중심이 내
한 마음 몸에서 합쳐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도 나를 대신하여 설 수 있고 성신도 나를 대신하여 설 수 있으며,
나는 그 가운데서 예수와 성신의 뜻을 대신하여 만민을 대표하여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 땅 위에 오셔야
할 주는 어떤 뜻을 갖고 오실 것이냐. 여러분은 예수님과 성신의 그 중심을 여러분 자체에 이루어 놓아야 합니다. 산 육체를 갖고 있는 여러분들이
영계를 상징하고 육계를 상징한 예수와 성신을 본받아 영육을 합한 하나의 실체의 중심체로서 완성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전체 창조의
이념이 여러분 하나에서 완결 지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의 중심의 사명이 예수와 성신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이 한 중심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재림 하시는 것입니다.
재림시대
성도들이 해야 할 일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이제 이 하나의 뜻을 받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갈릴리 해변가로 사랑하는 제자들을 찾아가시던 것을 생각만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들을 언제나 찾아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하나의 신부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야 하겠습니다.
예수와 성신은 하늘의 중심이므로
여러분은 몸 마음이 하나될 수 있는 중심을 갖춤으로써 땅의 중심이 되어 하나로서 대할 수 있는 이 한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때는 언제나 예수님을 사모만할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성신의 체를 갖추어 가지고 우리 한개체들이 예수님을 땅 위에서 대신 찾아모실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의 중심을 여러분이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의 중심을 소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을 위하여 성신을 세워서 오늘날까지 2천년 동안 수고해 오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 수고에 보답해야 하겠습니다. 하늘이 영과
육을 대표한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영적으로만 완성되었다는 기준을 세우셨지만, 여러분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모셔서
이 남겨진 육의 미완성한 부분을 완결지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일신에서 그것을 완결지으면 오늘날까지 수고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에
모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는 이제 예수님 앞으로
찾아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닮고, 성신의 마음을 닮고 성신의 몸을 닮아서 온 천지 만물 앞에 자신있게
나타나야 되겠고, 하나님 앞에 자기의 한개체를 세워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와 성신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그 다음엔 사도들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 앞에 나서서,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수고하신 아버지시여! 6천년 동안 원수였던 사탄을 내 일신에서 굴복시키겠사오니, 아버지, 오늘 이 시간부터는 나로 말미암아 사탄에
대한 염려를 놓으소서'라고 자신있게 외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그리고, '이 온 피조의
동산에 사무쳐 있는 죄악의 탄식이 나로 말미암아 다 물러갔사오니, 아버지여 ! 하늘 땅에 사무친 탄식을 이것으로써 해원하시옵소서' 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사랑하는 아들 딸을 세우시어서 한번도 사랑하시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우리 자체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진심으로 우리
자체를 찾아 세워 사랑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와 성신은 우리를 찾아와서 사랑하실 수 있으되 하나님은 우리가 그 말씀을 믿기 전에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의 책임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하나의 중심을 갖추어서 '아바 아버지시여 !
오늘날 이 땅의 인간들의 모든 죄와 탄식을 내가 책임지겠사오니, 6천년 동안 인간들을 사랑해 주고 싶으셨던 아버지시여 ! 이제 비로소 창조본연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해 주십시오' 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아버지 앞에 나아가서 '아버지시여 ! 나를 사랑해
주시옵소서. 아버지시여 ! 나를 사랑해 주시옵소서'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하늘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쳐 여러분 자체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을 위해서 오셔서
하늘을 위하여 수고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늘을 위하여 수고하신 예수, 하늘 땅의 중심으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온 피조세계를 대신하여,
무한한 영계를 대신한 중심존재로 당당코 설 수 있는 존재라야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땅의 기쁨을 갖고 나타나시는 영광의 세계에 참석하여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신과 여러분이 합하여 기쁨의 세계에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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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오늘 드리려 하는 말씀은 '하늘 땅을 위하여 가고 오시고 가고 오실 예수' 입니다. 이런 제목으로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천주에 있어서의 아담 해와의 위치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였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무형의 천사세계를 창조하셨고, 다음으로 무형실체세계의 표상으로 유형실체세계를 창조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계와 실체세계의 중심이자 대표로 아담 해와를 창조하셨습니다.
이 아담 해와는 천지가 변치 않는 이상 천지와 운명을 같이해야 했었습니다. 즉, 천지가 움직이는대로 같이 움직여야 할 운명을 가졌던 아담 해와였습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가 변하면 천지도 변하는 것이요, 아담 해와의 중심이 흩어지면 온 천지의 중심도 흩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 천주의 중심이 흩어지면 창조주의 중심도 흩어지는 필연적인 조건을 갖고 지음받은 아담 해와였습니다.
이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천주의 중심이 어긋났고, 천주의 중심이 어긋남으로 말미암아 창조주의 중심도 어긋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늘 땅의 중심을 다시 세워서 피조세계로 하여금 그 올바른 중심에 화하게 하여 창조주의 중심과 창조된 피조물의 중심이 둘이 아닌 하나가 되게 하셔야 하는 입장에 계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하늘이 기쁘면 땅도 기쁘고 땅이 기쁘면 하늘도 기쁘게 되는 것이요, 하늘이 영원하매 땅도 영원하며, 하늘이 무한지경의 기쁨에 잠기시면 땅도 무한지경의 기쁨에 잠기게 될 것입니다.
창조주의 운명이 그릇되지 않는 이상 피조세계의 운명은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피조세계의 중심인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만사는 흐트러졌고, 만사는 방향과 중심이 어긋나게 되었습니다. 이를 다시 회복하기 위한 역사가 복귀섭리역사요, 복귀섭리역사를 거듭하며 기나긴 6천년의 세월을 경과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 시간까지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는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통해서 나타내셨고, 선지선열들을 통해 상징적으로 사랑을 나타낸 동시에 그 전체적인 사랑의 결정체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는 실증적인 섭리의 사랑을 내적 외적으로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마음은 무형세계의 중심을 대신했고, 그의 몸은 유형실체세계의 중심을 대표했던 것입니다. 이런 예수이심을 알아야 할 이스라엘민족이 몰랐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주었습니다. 그래서 온 하늘 땅이 어둠에 잠겼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실천생활의 목적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단 하나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천지를 창조하시던 아버지의 심정을 갖추어서 하늘 땅에 변치 않는 영원한 중심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중심을 세우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말한 것은 자기의 어떤 중심을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어떤 동리나 이스라엘의 한 고을의 부분적인 중심을 세우려 한 것이 아니요, 전체 영계의 중심, 창조주의 중심에까지 연할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행동 또한 일개인의 행동이 아니었고, 그의 소망도 일개인의 소망이 아니었으며, 그가 싸우는 것도 일개인에서 그쳐지는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소망하는 목표는 온 천지 만물 전체를 품을 수 있는 불변의 중심으로 서서, 만물을 넘고 넘어 무형세계를 거쳐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는 자리까지 나아가는 것이었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소망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예수 그리스도의 실천적인 행동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의 행동은 하늘 땅을 새로이 건설하는 출발로서의 행동이었으며, 그가 하신 말씀은 그 하나의 뜻을 성사시키기 위한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키는 말씀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30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3년 실천생애노정에서 아담 해와 때에 잃어버렸던 하늘 땅의 불변의 중심을 다시 세우기 위해 말씀했으나, 말씀하신 그 말씀을 이스라엘민족들이 믿지 못한 연고로 영계와 육계의 중심으로 세워져야 했던 예수 그리스도는 영계의 중심으로만 세워졌고, 실체적인 육신세계의 중심으로는 세움받지 못하고 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고개를 넘을 때까지 무엇을 위하여 사셨던가? 이 땅에 오셔서 30여 평생 무엇을 위하여 수고했느냐 하면 일차적으로는 땅을 위해 수고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땅을 위해 수고한 그의 공적으로 말미암아 땅 위에서 거두시고자 했던 목적이 이루어지고, 영육을 합하여 땅 위에서 이루어야 할 하나의 중심이 하나의 실체에서 완결지어져야 할 것이었는데, 영과 육이 갈라 지게 됨으로 말미암아 땅 위에서 이루어야 할 실체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해침을 입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영적인 세계를 대표하여 예수님의 영만이 완성함으로 말미암아 부활 이후 오늘날까지 2천년의 역사는 영계 중심으로 복귀섭리를 한 기간이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후에 부활하셨고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지상에서 활동하신 후에 또 다시 영계로 가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시고, 부활하셨다가 다시 승천하신 이 사실은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날이니라(창1:5)"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면 밤시간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덤 3일기간은 바로 밤 시간과 같은 기간입니다. 30여 평생은 낮 시간인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우기 위하여 30여 평생 수고하셨습니다. 이 수고의 과정을 거친 후에 부활하신 것은 밤을 지나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는 땅 위에 등불을 세우기 위해 수고하셨으나, 땅 위에 등불을 세우지 못하셨습니다. 그런데 땅 위에 등불을 세우기 위해 부활하신 것 같으나 실상은 영계의 중심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땅 위에 계시지 못하시고 다시 영계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밤 기간을 지나 낮 기간을 맞이했던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저녁을 맞아 영원한 세계로 가버리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모른다'하는 인간들을 '안다'고 해야 했던 예수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이 무엇이냐? 남은 것이 무엇이냐하면, 밤기간입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아침이 되어야 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다시 저녁과 같은 기간이 남아지게 되었으니 이 밤 기간을 책임져야 할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내준 연고로 우리가 그 책임을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밤 기간의 책임을 완결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상에서 사탄을 이긴 승리의 기준을 세우셨듯이 오늘날 이 땅에 남아진 수많은 크리스찬들은 밤 기간의 싸움의 고개를 넘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 밤 기간의 고개를 넘어가지고 여러분 자신들이 예수를 본받아 부활하여 그와 더불어 새아침의 영광을 누리는 시대가 뭐냐 하면, 소망의 재림시대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30여 평생 이 땅을 위해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땅을 위하여 땅의 이 인류를 위하여 오셨기 때문에 땅 위에 있는 인간들은 반대할지라도, 땅 위의 인간들은 '모른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안다'하는 입장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을 거쳐 갈보리 산상에까지 나갈 때에 따르고 있던 제자들까지 예수를 버렸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예수를 '안다'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느 한 제자도 예수를 '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안다'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나 땅을 위하며 예수님은 오셨기 때문에 '모른다'하는 땅 위의 인간들을 대하여 '안다'하는 입장을 세우셨으니, 부활하셔서 갈릴리 해변가로 제자들을 찾아가신 것이 그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땅 위의 인간들이 알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남겨 놓고 40일 후에 다시 승천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우리가 '모른다' 하는 입장에 있을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안다'하는 입장에 계셨으므로, 예수님을 몰라보는 땅에 살고 있을지라도 예수님을 '안다'하는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왔다 가신 이후 2천년 동안 인간들은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아가는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해변가로 예수가 사도들을 찾아 주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찾아 주신 예수님의 그 은사에 보답하기 위해서 신앙자들도 2천년 동안 예수가 가신 하늘을 향하여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생활이 오늘날까지 2천년 동안 계속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님은 무엇을 위해 하늘나라에 가셨던고. 땅을 위하여 오셨던 예수님이 이루어야 할 것은 하늘의 뜻이기에 영계에 가셔서도 하늘의 뜻을 위하여 지금까지 일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땅을 위하여 오셨던 예수께서 땅 위에 '안다'하는 기준을 세워 놓으시고도 영계에 가셔서, 즉 무형세계에 가셔서 '안다'하는 기준을 세워 놓지 않으면 인간들이 '안다'하는 세계에 머물 수 없겠기에, 오늘날까지 2천년 동안 영계에서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 '안다' 하는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인간들을 위하여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하신다고 했는데 어떤 기도를 하고 계시는가. 피땀어린 기도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땅 위에서 예수님을 안다고 하면, 예수께서 영계에 가셔서 그들을 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하나님 앞에서 안다고 할 수 있는 입장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인간들이 갈 수 있는 영계가 아버지 앞에서 인정되지 않겠기에, 예수님은 오늘날까지 영계에 가셔서 하나님 앞에 우리들을 '안다'하는 수고의 기도를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을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일을 거친 이후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어떻게 오실 것인가? 오실 때에는 땅의 일과 하늘의 일을 합해 가지고 오실 것입니다. 땅의 일과 하늘의 일을 대신 책임지고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도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하셨다가 승천하여 천상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그 예수님이 넘으셨던 고개를 따라서 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또, 2천년의 밤 기간을 거쳐 부활의 아침에 해당하는 이때에 있어서 가신 예수님이 하늘에서 환영하는 하나의 중심을 세워 가지고 다시 오실 때에 여러분들은 그 예수님이 땅을 향하여 오시는 것을 마음으로 느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믿는 사람들의 신앙 형태는 하늘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사모해 왔습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의 우리들의 신앙의 모토요 표준이었습니다.
성신을 사모해야 할 오늘날
이제 우리가 사모해야 할 하나의 일이 남아 있나니 그 일이 무엇이뇨? 우리는 땅을 위하여 대신 일하고 있는 성신을 사모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제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2천년 동안 영적으로 사모해 왔으나 오늘날은 성신도 사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할 성도들이요 우리 인류라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성신을 사모해야 할 시대가 왔고, 신부의 몸을 완성해야할 때가 왔습니다.
성신은 신부의 신이시므로 신부의 모양을 갖추고 신부의 형체를 이루어 우리는 사모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는 영계에 가셔서 쉬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 땅에 하나의 중심을 세워 가지고 다시 우리들이 이 땅을 중심삼고 찾아들어가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영계를 사모하던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들에게 역사하시는 성신을 사모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인 상징인 예수님을 사모하고, 육적인 상징인 성신을 사모하여 우리 한 개체에서 영적인 예수를 사모하는 마음과 육적인 성신을 사모하는 몸이 하나됨으로 말미 암아 비로소 하늘의 중심과 땅의 중심이 내 한 마음 몸에서 합쳐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도 나를 대신하여 설 수 있고 성신도 나를 대신하여 설 수 있으며, 나는 그 가운데서 예수와 성신의 뜻을 대신하여 만민을 대표하여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 땅 위에 오셔야 할 주는 어떤 뜻을 갖고 오실 것이냐. 여러분은 예수님과 성신의 그 중심을 여러분 자체에 이루어 놓아야 합니다. 산 육체를 갖고 있는 여러분들이 영계를 상징하고 육계를 상징한 예수와 성신을 본받아 영육을 합한 하나의 실체의 중심체로서 완성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전체 창조의 이념이 여러분 하나에서 완결 지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의 중심의 사명이 예수와 성신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이 한 중심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재림 하시는 것입니다.
재림시대 성도들이 해야 할 일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이제 이 하나의 뜻을 받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갈릴리 해변가로 사랑하는 제자들을 찾아가시던 것을 생각만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들을 언제나 찾아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하나의 신부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야 하겠습니다.
예수와 성신은 하늘의 중심이므로 여러분은 몸 마음이 하나될 수 있는 중심을 갖춤으로써 땅의 중심이 되어 하나로서 대할 수 있는 이 한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때는 언제나 예수님을 사모만할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성신의 체를 갖추어 가지고 우리 한개체들이 예수님을 땅 위에서 대신 찾아모실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의 중심을 여러분이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의 중심을 소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을 위하여 성신을 세워서 오늘날까지 2천년 동안 수고해 오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 수고에 보답해야 하겠습니다. 하늘이 영과 육을 대표한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영적으로만 완성되었다는 기준을 세우셨지만, 여러분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모셔서 이 남겨진 육의 미완성한 부분을 완결지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일신에서 그것을 완결지으면 오늘날까지 수고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에 모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는 이제 예수님 앞으로 찾아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닮고, 성신의 마음을 닮고 성신의 몸을 닮아서 온 천지 만물 앞에 자신있게 나타나야 되겠고, 하나님 앞에 자기의 한개체를 세워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와 성신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그 다음엔 사도들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 앞에 나서서,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수고하신 아버지시여! 6천년 동안 원수였던 사탄을 내 일신에서 굴복시키겠사오니, 아버지, 오늘 이 시간부터는 나로 말미암아 사탄에 대한 염려를 놓으소서'라고 자신있게 외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그리고, '이 온 피조의 동산에 사무쳐 있는 죄악의 탄식이 나로 말미암아 다 물러갔사오니, 아버지여 ! 하늘 땅에 사무친 탄식을 이것으로써 해원하시옵소서' 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사랑하는 아들 딸을 세우시어서 한번도 사랑하시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우리 자체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진심으로 우리 자체를 찾아 세워 사랑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와 성신은 우리를 찾아와서 사랑하실 수 있으되 하나님은 우리가 그 말씀을 믿기 전에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의 책임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하나의 중심을 갖추어서 '아바 아버지시여 ! 오늘날 이 땅의 인간들의 모든 죄와 탄식을 내가 책임지겠사오니, 6천년 동안 인간들을 사랑해 주고 싶으셨던 아버지시여 ! 이제 비로소 창조본연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해 주십시오' 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아버지 앞에 나아가서 '아버지시여 ! 나를 사랑해 주시옵소서. 아버지시여 ! 나를 사랑해 주시옵소서'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하늘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쳐 여러분 자체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믿는 자의 책임이란 것은….
예수님은 이 땅을 위해서 오셔서 하늘을 위하여 수고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늘을 위하여 수고하신 예수, 하늘 땅의 중심으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온 피조세계를 대신하여, 무한한 영계를 대신한 중심존재로 당당코 설 수 있는 존재라야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땅의 기쁨을 갖고 나타나시는 영광의 세계에 참석하여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신과 여러분이 합하여 기쁨의 세계에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말씀선집 제1권 4편
하늘 땅을 위하여 가고 오시고, 가고 오실 예수 (훈독본)
1956.05.23 (수), 한국 전본부교회
요한복음 14:2-12
하늘 땅을 위하여 가고 오시고, 가고 오실 예수(말씀선집 제1권 4편)
<기 도>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I30s/52
오늘 말씀은 '하늘 땅을 위하여 가고 오시고, 가고 오실 예수' 입니다. 이런 제목으로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천주에 있어서의 아담 해와의 위치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였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무형의 천사세계를 창조하셨고, 다음으로 무형실체세계의 표상으로 유형실체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영계와 실체세계의 중심이자 대표로 아담 해와를 창조하셨습니다.
이 아담 해와는 천지가 변치 않는 이상 천지와 운명을 같이해야 했었습니다. 즉, 천지가 움직이는대로 같이 움직여야 할 운명을 가졌던 아담 해와였습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가 변하면 천지도 변하는 것이요, 아담 해와의 중심이 흩어지면 온 천지의 중심도 흩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 천주의 중심이 흩어지면 창조주의 중심도 흩어지는 필연적인 조건을 갖고 지음받은 아담 해와였습니다.
이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천주의 중심이 어긋났고, 천주의 중심이 어긋남으로 말미암아 창조주의 중심도 어긋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늘 땅의 중심을 다시 세워서 피조세계로 하여금 그 올바른 중심에 화하게 하여 창조주의 중심과 창조된 피조물의 중심이 둘이 아닌 하나가 되게 하셔야 하는 입장에 계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하늘이 기쁘면 땅도 기쁘고 땅이 기쁘면 하늘도 기쁘게 되는 것이요, 하늘이 영원하매 땅도 영원하며, 하늘이 무한지경의 기쁨에 잠기시면 땅도 무한지경의 기쁨에 잠기게 될 것입니다.
창조주의 운명이 그릇되지 않는 이상 피조세계의 운명은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피조세계의 중심인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만사는 흐트러졌고, 만사는 방향과 중심이 어긋나게 되었습니다. 이를 다시 회복하기 위한 역사가 복귀섭리역사요, 복귀섭리역사를 거듭하며 기나긴 6천년의 세월을 경과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 시간까지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는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통해서 나타내셨고, 선지선열들을 통해 상징적으로 사랑을 나타낸 동시에 그 전체적인 사랑의 결정체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는 실증적인 섭리의 사랑을 내적 외적으로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마음은 무형세계의 중심을 대신했고, 그의 몸은 유형실체세계의 중심을 대표했던 것입니다. 이런 예수이심을 알아야 할 이스라엘민족이 몰랐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주었습니다. 그래서 온 하늘 땅이 어둠에 잠겼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실천생활의 목적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단 하나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천지를 창조하시던 아버지의 심정을 갖추어서 하늘 땅에 변치 않는 영원한 중심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중심을 세우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말한 것은 자기의 어떤 중심을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어떤 동리나 이스라엘의 한 고을의 부분적인 중심을 세우려 한 것이 아니요, 전체 영계의 중심, 창조주의 중심에까지 연할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행동 또한 일개인의 행동이 아니었고, 그의 소망도 일개인의 소망이 아니었으며, 그가 싸우는 것도 일개인에서 그쳐지는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소망하는 목표는 온 천지 만물 전체를 품을 수 있는 불변의 중심으로 서서, 만물을 넘고 넘어 무형세계를 거쳐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는 자리까지 나아가는 것이었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소망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예수 그리스도의 실천적인 행동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의 행동은 하늘 땅을 새로이 건설하는 출발로서의 행동이었으며, 그가 하신 말씀은 그 하나의 뜻을 성사시키기 위한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키는 말씀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30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3년 실천생애노정에서 아담 해와 때에 잃어버렸던 하늘 땅의 불변의 중심을 다시 세우기 위해 말씀했으나, 말씀하신 그 말씀을 이스라엘민족들이 믿지 못한 연고로 영계와 육계의 중심으로 세워져야 했던 예수 그리스도는 영계의 중심으로만 세워졌고, 실체적인 육신세계의 중심으로는 세움받지 못하고 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고개를 넘을 때까지 무엇을 위하여 사셨던가? 이 땅에 오셔서 30여 평생 무엇을 위하여 수고했느냐 하면 일차적으로는 땅을 위해 수고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땅을 위해 수고한 그의 공적으로 말미암아 땅 위에서 거두시고자 했던 목적이 이루어지고, 영육을 합하여 땅 위에서 이루어야 할 하나의 중심이 하나의 실체에서 완결지어져야 할 것이었는데, 영과 육이 갈라 지게 됨으로 말미암아 땅 위에서 이루어야 할 실체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해침을 입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영적인 세계를 대표하여 예수님의 영만이 완성함으로 말미암아 부활 이후 오늘날까지 2천년의 역사는 영계 중심으로 복귀섭리를 한 기간이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후에 부활하셨고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지상에서 활동하신 후에 또 다시 영계로 가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시고, 부활하셨다가 다시 승천하신 이 사실은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날이니라(창1:5)"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면 밤시간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덤 3일기간은 바로 밤 시간과 같은 기간입니다. 30여 평생은 낮 시간인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우기 위하여 30여 평생 수고하셨습니다. 이 수고의 과정을 거친 후에 부활하신 것은 밤을 지나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는 땅 위에 등불을 세우기 위해 수고하셨으나, 땅 위에 등불을 세우지 못하셨습니다. 그런데 땅 위에 등불을 세우기 위해 부활하신 것 같으나 실상은 영계의 중심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땅 위에 계시지 못하시고 다시 영계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밤 기간을 지나 낮 기간을 맞이했던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저녁을 맞아 영원한 세계로 가버리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모른다'하는 인간들을 '안다'고 해야 했던 예수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이 무엇이냐? 남은 것이 무엇이냐하면, 밤기간입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아침이 되어야 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다시 저녁과 같은 기간이 남아지게 되었으니 이 밤 기간을 책임져야 할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내준 연고로 우리가 그 책임을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밤 기간의 책임을 완결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상에서 사탄을 이긴 승리의 기준을 세우셨듯이 오늘날 이 땅에 남아진 수많은 크리스찬들은 밤 기간의 싸움의 고개를 넘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 밤 기간의 고개를 넘어가지고 여러분 자신들이 예수를 본받아 부활하여 그와 더불어 새아침의 영광을 누리는 시대가 뭐냐 하면, 소망의 재림시대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30여 평생 이 땅을 위해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땅을 위하여 땅의 이 인류를 위하여 오셨기 때문에 땅 위에 있는 인간들은 반대할지라도, 땅 위의 인간들은 '모른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안다'하는 입장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을 거쳐 갈보리 산상에까지 나갈 때에 따르고 있던 제자들까지 예수를 버렸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예수를 '안다'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느 한 제자도 예수를 '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안다'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나 땅을 위하며 예수님은 오셨기 때문에 '모른다'하는 땅 위의 인간들을 대하여 '안다'하는 입장을 세우셨으니, 부활하셔서 갈릴리 해변가로 제자들을 찾아가신 것이 그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땅 위의 인간들이 알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남겨 놓고 40일 후에 다시 승천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우리가 '모른다' 하는 입장에 있을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안다'하는 입장에 계셨으므로, 예수님을 몰라보는 땅에 살고 있을지라도 예수님을 '안다'하는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왔다 가신 이후 2천년 동안 인간들은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아가는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해변가로 예수가 사도들을 찾아 주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찾아 주신 예수님의 그 은사에 보답하기 위해서 신앙자들도 2천년 동안 예수가 가신 하늘을 향하여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생활이 오늘날까지 2천년 동안 계속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님은 무엇을 위해 하늘나라에 가셨던고. 땅을 위하여 오셨던 예수님이 이루어야 할 것은 하늘의 뜻이기에 영계에 가셔서도 하늘의 뜻을 위하여 지금까지 일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땅을 위하여 오셨던 예수께서 땅 위에 '안다'하는 기준을 세워 놓으시고도 영계에 가셔서, 즉 무형세계에 가셔서 '안다'하는 기준을 세워 놓지 않으면 인간들이 '안다'하는 세계에 머물 수 없겠기에, 오늘날까지 2천년 동안 영계에서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 '안다' 하는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인간들을 위하여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하신다고 했는데 어떤 기도를 하고 계시는가. 피땀어린 기도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땅 위에서 예수님을 안다고 하면, 예수께서 영계에 가셔서 그들을 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하나님 앞에서 안다고 할 수 있는 입장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인간들이 갈 수 있는 영계가 아버지 앞에서 인정되지 않겠기에, 예수님은 오늘날까지 영계에 가셔서 하나님 앞에 우리들을 '안다'하는 수고의 기도를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일을 거친 이후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어떻게 오실 것인가? 오실 때에는 땅의 일과 하늘의 일을 합해 가지고 오실 것입니다. 땅의 일과 하늘의 일을 대신 책임지고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도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하셨다가 승천하여 천상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그 예수님이 넘으셨던 고개를 따라서 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또, 2천년의 밤 기간을 거쳐 부활의 아침에 해당하는 이때에 있어서 가신 예수님이 하늘에서 환영하는 하나의 중심을 세워 가지고 다시 오실 때에 여러분들은 그 예수님이 땅을 향하여 오시는 것을 마음으로 느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믿는 사람들의 신앙 형태는 하늘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사모해 왔습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의 우리들의 신앙의 모토요 표준이었습니다.
성신을 사모해야 할 오늘날
이제 우리가 사모해야 할 하나의 일이 남아 있나니 그 일이 무엇이뇨? 우리는 땅을 위하여 대신 일하고 있는 성신을 사모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제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2천년 동안 영적으로 사모해 왔으나 오늘날은 성신도 사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할 성도들이요 우리 인류라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성신을 사모해야 할 시대가 왔고, 신부의 몸을 완성해야할 때가 왔습니다.
성신은 신부의 신이시므로 신부의 모양을 갖추고 신부의 형체를 이루어 우리는 사모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는 영계에 가셔서 쉬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 땅에 하나의 중심을 세워 가지고 다시 우리들이 이 땅을 중심삼고 찾아들어가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영계를 사모하던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들에게 역사하시는 성신을 사모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인 상징인 예수님을 사모하고, 육적인 상징인 성신을 사모하여 우리 한 개체에서 영적인 예수를 사모하는 마음과 육적인 성신을 사모하는 몸이 하나됨으로 말미 암아 비로소 하늘의 중심과 땅의 중심이 내 한 마음 몸에서 합쳐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도 나를 대신하여 설 수 있고 성신도 나를 대신하여 설 수 있으며, 나는 그 가운데서 예수와 성신의 뜻을 대신하여 만민을 대표하여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 땅 위에 오셔야 할 주는 어떤 뜻을 갖고 오실 것이냐. 여러분은 예수님과 성신의 그 중심을 여러분 자체에 이루어 놓아야 합니다. 산 육체를 갖고 있는 여러분들이 영계를 상징하고 육계를 상징한 예수와 성신을 본받아 영육을 합한 하나의 실체의 중심체로서 완성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전체 창조의 이념이 여러분 하나에서 완결 지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의 중심의 사명이 예수와 성신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이 한 중심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재림 하시는 것입니다.
재림시대 성도들이 해야 할 일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이제 이 하나의 뜻을 받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갈릴리 해변가로 사랑하는 제자들을 찾아가시던 것을 생각만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들을 언제나 찾아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하나의 신부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야 하겠습니다.
예수와 성신은 하늘의 중심이므로 여러분은 몸 마음이 하나될 수 있는 중심을 갖춤으로써 땅의 중심이 되어 하나로서 대할 수 있는 이 한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때는 언제나 예수님을 사모만할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성신의 체를 갖추어 가지고 우리 한개체들이 예수님을 땅 위에서 대신 찾아모실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의 중심을 여러분이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의 중심을 소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을 위하여 성신을 세워서 오늘날까지 2천년 동안 수고해 오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 수고에 보답해야 하겠습니다. 하늘이 영과 육을 대표한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영적으로만 완성되었다는 기준을 세우셨지만, 여러분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모셔서 이 남겨진 육의 미완성한 부분을 완결지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일신에서 그것을 완결지으면 오늘날까지 수고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에 모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는 이제 예수님 앞으로 찾아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닮고, 성신의 마음을 닮고 성신의 몸을 닮아서 온 천지 만물 앞에 자신있게 나타나야 되겠고, 하나님 앞에 자기의 한개체를 세워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와 성신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그 다음엔 사도들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 앞에 나서서,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수고하신 아버지시여! 6천년 동안 원수였던 사탄을 내 일신에서 굴복시키겠사오니, 아버지, 오늘 이 시간부터는 나로 말미암아 사탄에 대한 염려를 놓으소서'라고 자신있게 외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그리고, '이 온 피조의 동산에 사무쳐 있는 죄악의 탄식이 나로 말미암아 다 물러갔사오니, 아버지여 ! 하늘 땅에 사무친 탄식을 이것으로써 해원하시옵소서' 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사랑하는 아들 딸을 세우시어서 한번도 사랑하시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우리 자체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진심으로 우리 자체를 찾아 세워 사랑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와 성신은 우리를 찾아와서 사랑하실 수 있으되 하나님은 우리가 그 말씀을 믿기 전에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의 책임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하나의 중심을 갖추어서 '아바 아버지시여 ! 오늘날 이 땅의 인간들의 모든 죄와 탄식을 내가 책임지겠사오니, 6천년 동안 인간들을 사랑해 주고 싶으셨던 아버지시여 ! 이제 비로소 창조본연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해 주십시오' 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아버지 앞에 나아가서 '아버지시여 ! 나를 사랑해 주시옵소서. 아버지시여 ! 나를 사랑해 주시옵소서'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하늘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쳐 여러분 자체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을 위해서 오셔서 하늘을 위하여 수고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늘을 위하여 수고하신 예수, 하늘 땅의 중심으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온 피조세계를 대신하여, 무한한 영계를 대신한 중심존재로 당당코 설 수 있는 존재라야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땅의 기쁨을 갖고 나타나시는 영광의 세계에 참석하여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신과 여러분이 합하여 기쁨의 세계에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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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오늘 드리려 하는 말씀은 '하늘 땅을 위하여 가고 오시고 가고 오실 예수' 입니다. 이런 제목으로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천주에 있어서의 아담 해와의 위치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였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무형의 천사세계를 창조하셨고, 다음으로 무형실체세계의 표상으로 유형실체세계를 창조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계와 실체세계의 중심이자 대표로 아담 해와를 창조하셨습니다.
이 아담 해와는 천지가 변치 않는 이상 천지와 운명을 같이해야 했었습니다. 즉, 천지가 움직이는대로 같이 움직여야 할 운명을 가졌던 아담 해와였습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가 변하면 천지도 변하는 것이요, 아담 해와의 중심이 흩어지면 온 천지의 중심도 흩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 천주의 중심이 흩어지면 창조주의 중심도 흩어지는 필연적인 조건을 갖고 지음받은 아담 해와였습니다.
이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천주의 중심이 어긋났고, 천주의 중심이 어긋남으로 말미암아 창조주의 중심도 어긋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늘 땅의 중심을 다시 세워서 피조세계로 하여금 그 올바른 중심에 화하게 하여 창조주의 중심과 창조된 피조물의 중심이 둘이 아닌 하나가 되게 하셔야 하는 입장에 계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하늘이 기쁘면 땅도 기쁘고 땅이 기쁘면 하늘도 기쁘게 되는 것이요, 하늘이 영원하매 땅도 영원하며, 하늘이 무한지경의 기쁨에 잠기시면 땅도 무한지경의 기쁨에 잠기게 될 것입니다.
창조주의 운명이 그릇되지 않는 이상 피조세계의 운명은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피조세계의 중심인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만사는 흐트러졌고, 만사는 방향과 중심이 어긋나게 되었습니다. 이를 다시 회복하기 위한 역사가 복귀섭리역사요, 복귀섭리역사를 거듭하며 기나긴 6천년의 세월을 경과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 시간까지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는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통해서 나타내셨고, 선지선열들을 통해 상징적으로 사랑을 나타낸 동시에 그 전체적인 사랑의 결정체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는 실증적인 섭리의 사랑을 내적 외적으로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마음은 무형세계의 중심을 대신했고, 그의 몸은 유형실체세계의 중심을 대표했던 것입니다. 이런 예수이심을 알아야 할 이스라엘민족이 몰랐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주었습니다. 그래서 온 하늘 땅이 어둠에 잠겼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실천생활의 목적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단 하나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천지를 창조하시던 아버지의 심정을 갖추어서 하늘 땅에 변치 않는 영원한 중심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중심을 세우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말한 것은 자기의 어떤 중심을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어떤 동리나 이스라엘의 한 고을의 부분적인 중심을 세우려 한 것이 아니요, 전체 영계의 중심, 창조주의 중심에까지 연할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행동 또한 일개인의 행동이 아니었고, 그의 소망도 일개인의 소망이 아니었으며, 그가 싸우는 것도 일개인에서 그쳐지는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소망하는 목표는 온 천지 만물 전체를 품을 수 있는 불변의 중심으로 서서, 만물을 넘고 넘어 무형세계를 거쳐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는 자리까지 나아가는 것이었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소망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예수 그리스도의 실천적인 행동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의 행동은 하늘 땅을 새로이 건설하는 출발로서의 행동이었으며, 그가 하신 말씀은 그 하나의 뜻을 성사시키기 위한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키는 말씀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30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3년 실천생애노정에서 아담 해와 때에 잃어버렸던 하늘 땅의 불변의 중심을 다시 세우기 위해 말씀했으나, 말씀하신 그 말씀을 이스라엘민족들이 믿지 못한 연고로 영계와 육계의 중심으로 세워져야 했던 예수 그리스도는 영계의 중심으로만 세워졌고, 실체적인 육신세계의 중심으로는 세움받지 못하고 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고개를 넘을 때까지 무엇을 위하여 사셨던가? 이 땅에 오셔서 30여 평생 무엇을 위하여 수고했느냐 하면 일차적으로는 땅을 위해 수고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땅을 위해 수고한 그의 공적으로 말미암아 땅 위에서 거두시고자 했던 목적이 이루어지고, 영육을 합하여 땅 위에서 이루어야 할 하나의 중심이 하나의 실체에서 완결지어져야 할 것이었는데, 영과 육이 갈라 지게 됨으로 말미암아 땅 위에서 이루어야 할 실체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해침을 입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영적인 세계를 대표하여 예수님의 영만이 완성함으로 말미암아 부활 이후 오늘날까지 2천년의 역사는 영계 중심으로 복귀섭리를 한 기간이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후에 부활하셨고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지상에서 활동하신 후에 또 다시 영계로 가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시고, 부활하셨다가 다시 승천하신 이 사실은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날이니라(창1:5)"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면 밤시간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덤 3일기간은 바로 밤 시간과 같은 기간입니다. 30여 평생은 낮 시간인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우기 위하여 30여 평생 수고하셨습니다. 이 수고의 과정을 거친 후에 부활하신 것은 밤을 지나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는 땅 위에 등불을 세우기 위해 수고하셨으나, 땅 위에 등불을 세우지 못하셨습니다. 그런데 땅 위에 등불을 세우기 위해 부활하신 것 같으나 실상은 영계의 중심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땅 위에 계시지 못하시고 다시 영계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밤 기간을 지나 낮 기간을 맞이했던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저녁을 맞아 영원한 세계로 가버리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모른다'하는 인간들을 '안다'고 해야 했던 예수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이 무엇이냐? 남은 것이 무엇이냐하면, 밤기간입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아침이 되어야 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다시 저녁과 같은 기간이 남아지게 되었으니 이 밤 기간을 책임져야 할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내준 연고로 우리가 그 책임을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밤 기간의 책임을 완결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상에서 사탄을 이긴 승리의 기준을 세우셨듯이 오늘날 이 땅에 남아진 수많은 크리스찬들은 밤 기간의 싸움의 고개를 넘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 밤 기간의 고개를 넘어가지고 여러분 자신들이 예수를 본받아 부활하여 그와 더불어 새아침의 영광을 누리는 시대가 뭐냐 하면, 소망의 재림시대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30여 평생 이 땅을 위해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땅을 위하여 땅의 이 인류를 위하여 오셨기 때문에 땅 위에 있는 인간들은 반대할지라도, 땅 위의 인간들은 '모른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안다'하는 입장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을 거쳐 갈보리 산상에까지 나갈 때에 따르고 있던 제자들까지 예수를 버렸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예수를 '안다'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느 한 제자도 예수를 '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안다'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나 땅을 위하며 예수님은 오셨기 때문에 '모른다'하는 땅 위의 인간들을 대하여 '안다'하는 입장을 세우셨으니, 부활하셔서 갈릴리 해변가로 제자들을 찾아가신 것이 그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땅 위의 인간들이 알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남겨 놓고 40일 후에 다시 승천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우리가 '모른다' 하는 입장에 있을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안다'하는 입장에 계셨으므로, 예수님을 몰라보는 땅에 살고 있을지라도 예수님을 '안다'하는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왔다 가신 이후 2천년 동안 인간들은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아가는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해변가로 예수가 사도들을 찾아 주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찾아 주신 예수님의 그 은사에 보답하기 위해서 신앙자들도 2천년 동안 예수가 가신 하늘을 향하여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생활이 오늘날까지 2천년 동안 계속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님은 무엇을 위해 하늘나라에 가셨던고. 땅을 위하여 오셨던 예수님이 이루어야 할 것은 하늘의 뜻이기에 영계에 가셔서도 하늘의 뜻을 위하여 지금까지 일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땅을 위하여 오셨던 예수께서 땅 위에 '안다'하는 기준을 세워 놓으시고도 영계에 가셔서, 즉 무형세계에 가셔서 '안다'하는 기준을 세워 놓지 않으면 인간들이 '안다'하는 세계에 머물 수 없겠기에, 오늘날까지 2천년 동안 영계에서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 '안다' 하는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인간들을 위하여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하신다고 했는데 어떤 기도를 하고 계시는가. 피땀어린 기도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땅 위에서 예수님을 안다고 하면, 예수께서 영계에 가셔서 그들을 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하나님 앞에서 안다고 할 수 있는 입장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인간들이 갈 수 있는 영계가 아버지 앞에서 인정되지 않겠기에, 예수님은 오늘날까지 영계에 가셔서 하나님 앞에 우리들을 '안다'하는 수고의 기도를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을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일을 거친 이후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어떻게 오실 것인가? 오실 때에는 땅의 일과 하늘의 일을 합해 가지고 오실 것입니다. 땅의 일과 하늘의 일을 대신 책임지고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도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하셨다가 승천하여 천상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그 예수님이 넘으셨던 고개를 따라서 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또, 2천년의 밤 기간을 거쳐 부활의 아침에 해당하는 이때에 있어서 가신 예수님이 하늘에서 환영하는 하나의 중심을 세워 가지고 다시 오실 때에 여러분들은 그 예수님이 땅을 향하여 오시는 것을 마음으로 느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믿는 사람들의 신앙 형태는 하늘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사모해 왔습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의 우리들의 신앙의 모토요 표준이었습니다.
성신을 사모해야 할 오늘날
이제 우리가 사모해야 할 하나의 일이 남아 있나니 그 일이 무엇이뇨? 우리는 땅을 위하여 대신 일하고 있는 성신을 사모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제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2천년 동안 영적으로 사모해 왔으나 오늘날은 성신도 사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할 성도들이요 우리 인류라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성신을 사모해야 할 시대가 왔고, 신부의 몸을 완성해야할 때가 왔습니다.
성신은 신부의 신이시므로 신부의 모양을 갖추고 신부의 형체를 이루어 우리는 사모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는 영계에 가셔서 쉬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 땅에 하나의 중심을 세워 가지고 다시 우리들이 이 땅을 중심삼고 찾아들어가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영계를 사모하던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들에게 역사하시는 성신을 사모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인 상징인 예수님을 사모하고, 육적인 상징인 성신을 사모하여 우리 한 개체에서 영적인 예수를 사모하는 마음과 육적인 성신을 사모하는 몸이 하나됨으로 말미 암아 비로소 하늘의 중심과 땅의 중심이 내 한 마음 몸에서 합쳐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도 나를 대신하여 설 수 있고 성신도 나를 대신하여 설 수 있으며, 나는 그 가운데서 예수와 성신의 뜻을 대신하여 만민을 대표하여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 땅 위에 오셔야 할 주는 어떤 뜻을 갖고 오실 것이냐. 여러분은 예수님과 성신의 그 중심을 여러분 자체에 이루어 놓아야 합니다. 산 육체를 갖고 있는 여러분들이 영계를 상징하고 육계를 상징한 예수와 성신을 본받아 영육을 합한 하나의 실체의 중심체로서 완성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전체 창조의 이념이 여러분 하나에서 완결 지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의 중심의 사명이 예수와 성신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이 한 중심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재림 하시는 것입니다.
재림시대 성도들이 해야 할 일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이제 이 하나의 뜻을 받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갈릴리 해변가로 사랑하는 제자들을 찾아가시던 것을 생각만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들을 언제나 찾아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하나의 신부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야 하겠습니다.
예수와 성신은 하늘의 중심이므로 여러분은 몸 마음이 하나될 수 있는 중심을 갖춤으로써 땅의 중심이 되어 하나로서 대할 수 있는 이 한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때는 언제나 예수님을 사모만할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성신의 체를 갖추어 가지고 우리 한개체들이 예수님을 땅 위에서 대신 찾아모실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의 중심을 여러분이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의 중심을 소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을 위하여 성신을 세워서 오늘날까지 2천년 동안 수고해 오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 수고에 보답해야 하겠습니다. 하늘이 영과 육을 대표한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영적으로만 완성되었다는 기준을 세우셨지만, 여러분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모셔서 이 남겨진 육의 미완성한 부분을 완결지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일신에서 그것을 완결지으면 오늘날까지 수고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에 모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는 이제 예수님 앞으로 찾아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닮고, 성신의 마음을 닮고 성신의 몸을 닮아서 온 천지 만물 앞에 자신있게 나타나야 되겠고, 하나님 앞에 자기의 한개체를 세워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와 성신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그 다음엔 사도들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 앞에 나서서,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수고하신 아버지시여! 6천년 동안 원수였던 사탄을 내 일신에서 굴복시키겠사오니, 아버지, 오늘 이 시간부터는 나로 말미암아 사탄에 대한 염려를 놓으소서'라고 자신있게 외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그리고, '이 온 피조의 동산에 사무쳐 있는 죄악의 탄식이 나로 말미암아 다 물러갔사오니, 아버지여 ! 하늘 땅에 사무친 탄식을 이것으로써 해원하시옵소서' 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사랑하는 아들 딸을 세우시어서 한번도 사랑하시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우리 자체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진심으로 우리 자체를 찾아 세워 사랑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와 성신은 우리를 찾아와서 사랑하실 수 있으되 하나님은 우리가 그 말씀을 믿기 전에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의 책임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하나의 중심을 갖추어서 '아바 아버지시여 ! 오늘날 이 땅의 인간들의 모든 죄와 탄식을 내가 책임지겠사오니, 6천년 동안 인간들을 사랑해 주고 싶으셨던 아버지시여 ! 이제 비로소 창조본연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해 주십시오' 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아버지 앞에 나아가서 '아버지시여 ! 나를 사랑해 주시옵소서. 아버지시여 ! 나를 사랑해 주시옵소서'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하늘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쳐 여러분 자체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믿는 자의 책임이란 것은….
예수님은 이 땅을 위해서 오셔서 하늘을 위하여 수고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늘을 위하여 수고하신 예수, 하늘 땅의 중심으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온 피조세계를 대신하여, 무한한 영계를 대신한 중심존재로 당당코 설 수 있는 존재라야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땅의 기쁨을 갖고 나타나시는 영광의 세계에 참석하여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신과 여러분이 합하여 기쁨의 세계에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말씀선집 - 제1권 5편
예수와 같이 부활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자 (훈독본)
1956.05.27 (일), 한국 전본부교회
마태복음 22:34-40
예수와 같이 부활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자(말씀선집 제1권 5편 훈독본)
<기 도>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I30s/53
이 시간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려 하는 말씀의 제목은 '예수와 같이 부활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자'입니다.
창조이상과 예수의 강림 목적
에덴 동산은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영광을 누리시고, 온 피조만물이 하나님께 환희의 경배를 드리고 기뻐하며 사는 동산입니다. 이런 동산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습니다. 또 인간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망의 영광을 땅 위에 나타내야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실체로 나타내야 할 것이 우리 조상 아담 해와의 책임이었는데, 그들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뜻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려던 본연의 그 동산은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전 인류는 6천년 이나 부활의 영광을 소망하면서 어둠의 세력과 대결하여 싸움의 길을 거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역사를 경과하면서 전체적인 부활의 영광과 전체적인 부활의 유업을 이루고, 이 땅 위의 억조 창생과 영계의 천천만 천군천사 그리고 피조만물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며 감사의 경배를 드릴 수 있는 한 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수많은 선지자들을 이 땅 위에 보내셨고, 4천년 역사가 경과한 후에 하나님 자신의 내적 심정을, 외적 실체를 갖추어 영광의 실체로 보내 주신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의 존재가 나타났으므로 뭇 백성은 즐거워하고 감사를 돌려야 했었는데, 즉 택해 세웠던 이스라엘민족과 유대교단이 예수님의 영광을 대신 나타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서러움과 원한의 탄식을 남기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만민을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운명의 길을 나섰습니다. 타락한 인간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지 못한 것을 아신 예수님은'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말씀
예수님은 4천년 역사과정에 스며 있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내적 심정을 절절히 느꼈기에 하나님을 시봉하여야 할 책임을 느끼고,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는 대표자가 되어야 할 것을 재차 천명하신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이 예수님의 영광으로, 예수님의 영광이 만민의 영광으로 나타나고, 만민의 영광이 온 피조만물의 어느 것에도 미쳐져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민족이 단절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일신에 이루어졌던 부활의 영광, 감사의 영광은 오늘날 인류의 소망으로 남아 졌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신 하나의 존재, 역사과정에 없었던 승리의 화신이 바로 예수님이었던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이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셨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의 화신으로서 중보적인 존재로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 진리 말씀은 인간 창조이념과 영광의 이념으로 세워진 아버지의 숨겨진 마음을 나타낸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러한 말씀을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우기 위하여 수고하신 그 뜻을, 자기가 이제 실체적으로 이루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대해 다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들이 하나님을 대해 다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증거한 그 말씀을 아직까지 이루지 못한 채 내려오고 있습니다.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해 찾아오신 하나님
따라서 이제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공경해야 되겠고, 하나님 자신이 먼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우리를 찾아 나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장 죽어 마땅할 인간이요, 고통 당해 마땅할 인간이었지만 인간들을 대해 마음을 다하는 입장에서 참음의 4천년 역사노정을 걸어오셨고, 또 뜻을 다하여 4천년 동안 사탄을 분별하는 싸움의 노정을 걸어오셨습니다.
이와 같이 불변의 사랑의 마음을 갖고 4천년 동안 참아오셨고, 싸워 오셨고, 사랑하여 오셨던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이스라엘민족을 중심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자기 일신의 마음을 다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마음을 다하여 묵묵히 4천년 동안 참아오신 하늘의 심정을 체휼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4천년 역사 과정에 있어서 사탄과 관계된 곡절의 사실들을 느끼고 그것을 영계에서 내적으로 증거 받고 밝혀 내셨습니다. 나아가 4천년 역사 속에 숨겨져 있는 천륜의 비밀을 밝히고, 하나님의 내적인 참으심의 실체기대를 이루고, 외적인 실체기대를 30여 평생에 세워 놓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을 짊어졌던 예수님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어려운 입장에 처하면 처할수록 예수님 자신을 찾기 위하여 참아 나오신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그 마음을 해원하기 위한 실체로 나타나기 위해 30여년 준비의 생활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만민을 대해서도, 원수 사탄을 대해서도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전체의 심정을 체휼하려는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외로운 입장에 처할지라도 어느 누구에게도 변명하지 않고 참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참으심의 생활을 여러분은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를 위하여 참으셨고, 예수님은 아버지를 위하여 참으셨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기 위해 수고의 노정을 걸어오신 것을 느끼고 하나님을 위하여 참으셨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위해 참으신 연고로 사탄의 참음을 능가하였습니다. 사탄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참아 나오신 길, 그 길을 파괴하기 위하여 발버둥쳐 나왔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참은 이상의 아버지의 참음이 있었다는 것을 아신 예수님은 아버지와 같이 참았기 때문에 참음의 화신이 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 스스로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참아오신 심정의 기대 위에 서서, 그것을 승리의 발판으로 하여 사탄과 싸우는데 있어서, 인내심을 가지고 싸워 이겼으되 실체적인 승리의 기반을 갖추지 못하게 될 때에는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참아 나오신 심정은 파괴를 당하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음의 심정으로 사탄을 이기신 예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놓고 사탄이 참을 수 없는 입장에서 참고 또 참는 자의 표상으로서 세워졌기 때문에 사탄 대해 싸울 수 있는 주인공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한 분을 찾기 위해 4천년 피 흘리는 역사노정을 거치셨습니다. 또 인간은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몸부림쳤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위하여 싸움의 역사노정을 걸어오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하여 4천년 동안 사탄과 싸워 나오셨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오늘날까지 자기를 중심하고 자기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과 싸워 나오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위해서 싸우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싸우시는 목적은 사탄품에 있는 불쌍한 인류를 위한 것이었고 택한 민족을 통하여 예수님 한 분을 내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떠한 존재로 나타나셨던가.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사탄과 싸워 이긴 승리의 대신 실체요, 화신으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하나님을 대신한 싸움의 주인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적으로 승리의 기준을 세웠던 하나님의 뜻을 상속받아 외적으로 승리의 기준을 땅 위에 세워야 할 책임을 지고 실천했던 노정이 바로 3년 공생애 노정이었습니다.
사탄은 자기 일신의 승리를 위하여 예수님과 싸웠으나 패배하였으므로 다시금 민족을 동원하여 예수님과 싸우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3년 공생애 기간 동안 결코 자기를 중심하고 싸운 때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행한 일을 보고 행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대신 싸움의 화신으로,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을 토로하는 하나님의 대신 실체로서 3년 공생애 노정을 걸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변명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 자신도 만민 앞에서 사탄과 싸우는 입장에서 자신을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자기를 위해 섭리해 나오신 그 수고에 대해 변치 않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받들었던 예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섭리의 싸움의 노정으로 나타났던 이 한 사실을 깨달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내적으로 세우신 그 전체의 뜻을 외적으로 이루기 위해 싸움을 전개하셨던 것입니다. 사탄은 자기를 위하여 싸우는 것이었으나 예수님은 하늘을 위해 싸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승리의 기준이 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패배한 원인은 무엇인가? 자기를 위하여 싸웠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싸움의 목적을 자기에게 두었지만 예수님은 하늘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이 변치 않는 이상 끝까지 변치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뜻을 다해 싸웠기 때문에 승리의 기준을 세웠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한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인류 앞에 그러한 자세를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대신 실체
그리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의 내적인 성품을 대신하여, 모든 어려움과 슬픔을 참으면서 사랑하시던 하나님의 심정을 인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한 실체로서 사탄과 싸워 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사탄과 싸우는 과정에서, 사탄이 자기를 위한 목적을 중심삼고 공격하게 될 때 그 영향은 예수 자신에게만 미쳐지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에게까지 미쳐진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신과 만민을 위하여 참고 싸워 나오신 것'과 마찬가지로 30여 평생을 홀로 참으시면서 사탄 대해 싸우셨던 것입니다. 십자가 상에서 운명하는 순간까지의 예수님의 생애는 하나님의 실체로서 줄곧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나타낸 생애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생애노정, 곧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신 노정은 사탄과 싸우면서 걸은 시련 과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사탄 앞에 내주어 십자가에 죽게 하셨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시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사랑하시는데 어느 정도까지 사랑하셨는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은 실상 죽음을 넘어서는 자리에서 받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 대신 오신 예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죽음의 고개도 넘을 수 있다는 절절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사탄이 굴복하고야 말기 때문입니다.
4천년 동안 하나님 홀로 전체의 세계를 바라보며 슬퍼하고 걱정하고 수고하셨었는데 예수님 한 분이 지상에 세워짐으로 말미암아 그를 중심삼은 사탄과의 새로운 싸움이 전개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자기의 모든 것을 잊고 하나님을 위해 싸워 나갔을 뿐만 아니라, 죽는 자리에서도 자기를 위한 욕망을 지니지 않았기 때문에 부활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그러한 승리의 과정을 거쳐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쳤습니다. 그리고 죄악의 인간들을 위해 자기 일신을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사탄세계에서 나타낼 수 없는 사랑을 예수님께서는 나타냈기 때문에, 사탄이 그의 사랑 앞에 굴복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탄은 자기로서의 찾을 바의 뜻이 있었지만 예수님을 통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십자가로 인하여 4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이 서러워하기 시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간도 서러워하기 시작하였고, 또한 사탄도 서러워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을 놓고 하나님과 인간만이 슬퍼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죽음을 놓고 사탄도 슬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사탄의 슬픔이 커지면 커질수록 예수의 사랑의 결실은 더 많이 맺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랑을 실증하는 십자가의 승리로 말미암아 4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과 불변의 인연을 맺었고, 불변의 승리, 불변의 사랑의 실체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 인간을 대신하여 하나님과 하나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변하지 않는 이상 예수 그리스도 또한 변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4천년 동안 영광을 나타내려고 하셨지만 그 뜻이 이루어 지지 않았는데 예수 한 분을 세워 비로소 그 뜻을 이루시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을 통하여, 그 뜻을 이 땅 위에 나타내고자 하셨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4천년 섭리의 증거적인 실체로서 나타나야 했는데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 뜻이 사탄에게 짓밟힌 바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원한 실체로서, 4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부활의 영광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부활의 영광을 나타내신 예수
그 부활은 4천년 역사에 있어서 처음으로 사탄과의 싸움을 승리한 영광을 대신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승리적인 기준을 영적으로나 실체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죽은 예수님을 다시 일으켜 새로운 섭리를 전개하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림으로 인하여 4천년 섭리역사의 책임을 맡고, 선조들의 책임을 맡아 가지고 하늘의 영광을 대신하여 저 나라에 가신 것이 부활 승천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내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이 땅 위에 실체적으로 이루기 위하여, 즉, 하나님의 완전한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오신 분입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영광은 내적인 영광과 외적인 영광이 합해져야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사명을 하기 위해 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완전히 이루어지려면, 하나님의 내적인 영광의 실체로 오신 독생자 예수와 유대민족이 멀어지지 아니하고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속에 있는 하나님의 내적인 영광이 지상의 영광이 되어야 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4천년 섭리역사를 도맡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지상에서 실현시켜야 할 예수님이 유대인의 불신으로 인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하늘의 내적인 영광은 영적인 영광이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미완의 영광을 이루어 가지고 승천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한 후에 영계에서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사탄 대해 벌이던 하늘의 싸움과, 인간을 복귀하기 위해 벌이던 참의 싸움과, 뜻을 이루기 위한 섭리의 싸움과 성신을 대신하여 사랑의 싸움을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영계에 가셔서 하나님이 해 오시던 이 싸움을 인계 받아 가지고 하나님 대신 싸워 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4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 앞에 인간을 대신하고 만물을 대신하고 하늘의 사랑을 대신하였던 예수 그리스도가 진실로 승리해야 할 터전은 어디인고? 다름 아닌 이 땅이라는 것입니다.
땅 위의 싸움을 책임진 성신
그러면 땅 위에 남아 있는 이 싸움의 노정을 누가 책임져야 되겠느냐 이겁니다. 예수님이 영계에서 하나님의 내적인 싸움을 인계 받아 싸우고 계시는데 성신과 우리는 지상에서 합력하여, 내적인 싸움과 내적인 섭리를 실체적으로 완결하기 위한 사랑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부가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영육 아울러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이겨야 할 운명이 우리 인간에게 남아 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즉, 예수님이 영계에서 하나님의 내적인 싸움을 인계 받아 지금까지 싸워 나오시던 것과 이 땅에서 30여 평생을 희생해가며 인류 구원을 위해 싸워 나오신 것을 우리들이 인계 받아 이겨야 할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들은 '아버지여! 예수여! 성신이여 나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부르짖으면서 지상에서 하늘의 역사적인 소망을 이루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4천년 수고의 결실체로 오셨고, 하나님이 소망하던 최초의 완성체로 오신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다 이루어 드리지 못한 한이 남아 있고, 또 십자가의 피 흘린 사랑의 심정이 땅 위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님이 지상에서 못다 이룬 사명을 인계 받아 영육 아울러 이루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생애노정을 다 바치어 예수 그리스도의 가던 길을 계승하여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내 한 개체를 아버지 앞에 세워 놓고 비판해 보게 될 때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탄과 싸웠고, 예수님이 가신 이후 2천년 동안에도 성신과 함께 수고해 나오셨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을 여러분이 닮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아버지 앞에 자기 일신을 세워 승리의 싸움을 전개한 것이 어느 한날이 아니고 30여 평생의 기간이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6천년 동안 섭리하신 아버지의 마음, 뜻을 이루기 위해 안타까워하던 예수의 마음, 성신의 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여러분이 참아야 할 노정에 있어서 마음을 다해서 참지 못한다면, 여러분 하나로 말미암아 6천년 동안 슬퍼하시던 하나님의 뜻, 예수님이 평생 수고하신 뜻,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후 성신이 2천년 동안 수고한 뜻이 다 좌절되고 맙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이 뜻을 위한 싸움을 전개하여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사명
예수님은 원수들의 반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 성에서 몰리면 저 성으로 찾아갔고, 이 곳에서 천대하면 저 곳으로 피해 다녔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예수님은 자기의 일신을 변명할 줄 몰랐습니다. 하늘의 전체 생명을 갖고 오셨으나 그러한 가치를 나타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무언의 싸움의 노정을 거쳐 나온 예수, 나아가 십자가의 산정에서도 자기 일신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중심삼고 증거하기 위해 사탄과 싸우시던 예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에게 예수님 자체를 찾아 세우려는 어떠한 사랑의 마음이 있다 할진대는 그것이 예수님을 슬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실을 생각해서 오늘날 여러분이 예수님의 사무친 30여 평생을 대신해야 되겠고, 오늘날까지 참아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해야 되겠습니다.
4천년 동안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제단을 세우고 민족을 통하여 섭리하시던 선지자들의 마음을 대신해야 되겠고, 예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던 그 마음을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자기를 세우지 않고,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마음으로 승리의 기준을 세워 사탄을 슬프게 하셨던 것과 같은 그러한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6천년 동안의 모든 싸움을 종결 지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참음의 모든 싸움 노정에서 승리해야 됩니다. 또 하늘의 뜻을 증거하는 싸움에서 승리하여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한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야 되겠습니다. 4천년 동안 하나님께서 참으신 뜻, 참으신 영광, 참으신 사랑의 승리의 심정을 지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망각하고 오직 하늘 뜻 만을 이루기 위해 수고하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자기 한 자체를 망각하고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전체의 영광을 결실해 드리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마음으로 몸으로 승리의 결실을 맺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으로는 예수님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고, 몸으로는 성신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음으로는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을 대신하고 몸으로는 성신을 통한 부활의 영광을 대신하지 못한다면, 성신은 부활의 영광의 자리에 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할 수 있는 영광을 갖추었지만 성신은 아직까지 부활 승천할 수 있는 영광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오늘날까지 6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하여 영육을 갖춘 하나의 실체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한 승리의 영광을 대신한 사람이 나와야 되고, 성신으로 말미암은 부활의 영광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4천년 섭리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몸 마음으로 싸울 수 있었던 것과 같은 그러한 하나의 실체로 나타나지 않으면 6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뜻은 영광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이후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다함의 뜻과 다함의 마음과 다함의 성품을 갖춘 성신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뜻을 대신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대신실체, 성신의 대신실체가 이 땅에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 땅위에서 성신까지 해방시켜 드려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끝날인 오늘날 이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6천년 섭리의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하나님과 예수님, 성신이 바라는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싸움의 노정에 승리해야 되겠습니다. 삼위신의 부활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그 싸움의 노정, 인내의 노정을 넘어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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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5) 예수와 같이 부활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자
1956.05.27 (일), 한국 전본부교회
이 시간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려 하는 말씀의 제목은 '예수와 같이 부활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자'입니다. '예수와 같이 부활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자.' 이러한 제목으로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① 창조이상과 예수의 강림 목적
에덴 동산은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영광을 누리시고, 온 피조만물이 하나님께 환희의 경배를 드리고 기뻐하며 사는 동산입니다. 이런 동산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습니다. 또 인간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망의 영광을 땅 위에 나타내야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실체로 나타내야 할 것이 우리 조상 아담 해와의 책임이었는데, 그들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뜻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이상을 이루어 가지고 기뻐하시려던 본연의 그 동산은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전 인류는 부활의 영광을 소망하면서 어둠의 세력과 대결하여 싸움의 길을 거쳐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6천년 역사의 노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역사를 경과하면서 전체적인 부활의 영광과 전체적인 부활의 유업을 이루고, 이 땅 위의 억조창생과 영계의 천천만 천군천사 그리고 피조만물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며 감사의 경배를 드릴 수 있는 한 날을 맞이하고자 하셨습니다. 그 한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선지자들을 이 땅 위에 보내셨고, 4천년 역사가 경과한 후에 하나님 자신의 내적 심정을, 외적 실체를 갖추어 영광의 실체로 보내 주신 그 분이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의 존재가 나타났으므로 뭇 백성은 즐거워하고 감사를 돌려야 했었는데, 즉 택해 세웠던 이스라엘민족과 섭리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세웠던 유대교단이 예수님의 영광을 대신 나타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서러움의 탄식과 원한의 탄식을 남기셔야 했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남긴 말씀을 오늘날 우리들이 보게 될 때, 그의 말씀은 믿지 않는 백성만을 대해서 부르짖은 말씀이 아닙니다. 만민을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위해 죽음을 각오했습니다. 남아진 길이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운명의 길임을 아셨고, 타락한 인간들이 어느 한 때 어느 한 역사과정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지 못했는데, 이걸 아신 예수님은 당당하게 나서서 부르짖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한 마디의 말씀이 여러분 일신에만 해당되는 말씀으로만 알아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② 예수님이 주신 말씀
그러면 이 한 마디의 말씀은 무엇을 나타내는 말씀인가. 예수님은 4천년 역사과정에 스며있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내적 심정을 절절히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하나님을 시봉하여야 할 책임을 느끼고, 어느 때, 어느 한 시간에라도 자신은 지금까지 4천년 역사과정에 없었던 마음을 다하는 대표자가 되어야 하고, 목숨을 다하는 대표자가 되어야 하고, 뜻을 다하는 대표자가 되어야 할 것을 여기에서 재차 천명하신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이 예수님의 영광으로 나타나고 예수님의 영광이 만민의 영광으로 나타나고, 만민의 영광이 온 피조만물의 어느 것에도 미쳐져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민족이 단절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일신에 이루어졌던 부활의 영광, 감사의 영광은 오늘날 인류의 소망으로 남아 졌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화신으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신 하나의 존재, 역사과정에 없었던 승리의 화신이 바로 예수님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일신에는 하나님의 심정이 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아가 여러분은 예수님이 마음을 다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마음을 다하셨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뜻을 다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뜻을 다하셨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성품을 다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성품을 다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의 화신으로서 중보적인 존재로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 진리 말씀은 비단 곁에서 느껴지는 것을 통한 바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 창조이념을 통한 말씀이요, 전체의 가치를 드높일 수 있는 영광의 이념으로 세워진 말씀이요, 아버지의 숨겨진 마음을 나타낸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자기만을 사랑하셔서 하셨다고 생각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러한 말씀을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우기 위하여 수고하신 그 뜻을, 자기가 이제 실체적으로 이루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대해 다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들이 하나님을 대해 다해야 한 책임이 있다고 증거한 그 말씀을 아직까지 이루지 못한 채 내려오고 있습니다.
③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해 찾아오신 하나님
따라서 이제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공경해야 되겠고, 하나님 자신이 먼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우리를 찾아 나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4천년 동안 인간 대해 어떠한 마음을 갖고 나오셨는가. 자기를 위하려는 마음을 갖고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당장 죽어 마땅할 인간이요. 고통 당해 마땅할 인간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대해 마음을 다하는 입장에서 참음의 4천년 역사노정을 걸어오셨고, 또 뜻을 다하여 4천년 동안 사탄을 분별하는 싸움의 노정을 걸어오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불변의 사랑의 마음을 갖고 4천년 동안 참아오셨고, 싸워오셨고, 사랑하여 오셨던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이스라엘민족을 중심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자기 일신의 마음을 다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30여 평생의 노정은 마음을 다하는 희생의 기간이었던 것입니다. 30여 평생의 노정에 있어서 민족 앞에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묵묵히 4천년 동안 참아오신 하늘의 심정을 체휼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4천년 역사 과정에 있어서 사탄과 관계된 곡절의 사실들을 느끼고 그것을 영계에서 내적으로 증거받고 밝혀내셨습니다. 나아가 4천년 역사 속에 숨겨져 있는 천륜의 비밀을 밝히고, 하나님의 내적인 참으심의 실체기대를 이루고, 외적인 실체기대를 30여 평생에 세워 놓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을 짊어졌던 예수님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어려운 입장에 처하면 처할수록 자아를 찾을 입장에 있었지만 찾을 생각을 해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4천년 역사를 경과하면서 예수님 자신을 찾기 위하여 참아 나오신 그 하나의 마음, 인간 하나 하나를 찾기 위해 참으시던 그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그 마음을 해원하기 위한 실체로 나타나기 위해 30여년 준비의 생활을 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까지 누구를 대하여도 자신의 입장을 변명하시지 않았습니다. 만민을 대하여 변명하지 못하셨고, 원수 사탄을 대해서도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전체의 심정을 체휼하려는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외로운 입장에 처할지라도 어느 누구에게도 변명하지 않고 참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참으심의 생활을 여러분은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를 위하여 참으셨고, 예수님은 자기를 위하여 참으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위하여 참으셨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기 위해 수고의 노정을 걸어오신 것을 느끼고 자기를 위하며 참으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위하여 참으셨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30여 평생 자신을 떠나 하나님을 위해 참으신 연고로 사탄의 참음을 능가하였습니다. 사탄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참아나오신 길, 그 길을 파괴하기 위하여 발버둥쳐 나왔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참은 이상의 아버지의 참음이 있었다는 것을 아신 예수님은 그 아버지를 믿고 아버지와 같이 참았기 때문에 참음의 화신이 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 스스로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참아오신 심정의 기대 위에 서서, 그것을 승리의 발판으로 하여 그 위에 서가지고 사탄과 싸우는데 있어서, 인내심을 가지고 싸워 이겼으되 실체적인 승리의 기반을 갖추지 못하게 될 때에는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참아나오신 심정은 파괴를 당하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④ 참음의 심정으로 사탄을 이기신 예수
예수님께서 30여 평생을 통하여 자신이 참지 못한 환경에 처하게 되었어도 하나님의 뜻을 놓고 참았기 때문에, 또 사탄이 참을 수 없는 입장에서 참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었기 때문에, 또 참는 자의 표상으로서 세워졌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탄 대해 싸울 수 있는 주인공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한 분을 찾기에 4천년 역사의 피흘리는 노정을 거치셨습니다. 또 인간은 자기 개인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허덕이는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은 인간을 위하여 싸움의 역사노정을 걸어 오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4천년 동안 사탄과 싸워 나오셨지만 하나님은 자신을 중심하고 싸우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오늘날까지 싸워나오면서 원하는 것은 자기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또 지금까지 자기를 중심하고 하나님과 싸워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해서 싸우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싸우시는 목적은 사탄품에 있는 불쌍한 인류를 위한 것이었고 택한 민족을 통하여 예수님 한분을 내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떠한 존재로 나타나셨던가.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사탄과 싸워 이긴 승리의 대신 실체요, 화신으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하나님을 대신한 싸움의 주인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적으로 승리의 기준을 세웠던 하나님의 뜻을 상속받아 외적으로 승리의 기준을 땅 위에 세워야 할 책임을 지고 실천했던 노정이 바로 3년 공생애 노정이었습니다.
이 3년의 공생애 기간에 있어서 사탄은 자기 일신의 승리를 위하여 예수님과 싸웠으나 패배하였으므로 다시금 민족을 동원하여 예수님과 싸우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3년 공생애 기간에 어떠한 어려운 싸움의 자리에서도 결코 자기를 중심하고 싸운 때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행한 일을 보고 행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대신 싸움의 화신으로,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을 토로하는 하나님의 대신 실체로서 3년 공생애 노정을 걸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변명하는 싸움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변명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 자신도 만민 앞에서 사탄과 싸우는 입장에서 자신을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자기를 위해 섭리해 나오신 그 수고에 대해 변치 않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받들었던 예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섭리의 싸움의 노정으로 나타났던 이 한 사실을 깨달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내적으로 세우신 그 전체의 뜻을 외적으로 이루기 위해 싸움을 전개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사탄의 싸움에 있어서, 사탄은 자기를 위하여 싸우는 것이었으나 예수님은 하늘을 위해 싸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승리의 기준이 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패배한 원인은 무엇인가? 자기를 위하여 싸웠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싸움의 목적은 자기에게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싸움의 목적을 하늘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이 변치않는 이상 끝까지 변치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뜻을 다해 싸웠기 때문에 승리의 기준을 세웠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한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인류 앞에 그러한 자세를 보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⑤ 예수님은 하나님의 대신 실체
그리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의 내적인 성품을 대신하여, 모든 어려움과 슬픔을 참으면서 사랑하시던 하나님의 심정을 인계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어느 자리 어느 곳에 있든지 오직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한 실체로서 사탄과 싸워 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사탄과 싸우는 과정에서, 사탄이 자기를 위한 목적을 중심삼고 공격하게 될 때 그 영향은 예수 자신에게만 미쳐지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에게까지 미쳐진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어떤 수난을 당하게 되더라도 '하나님이 자신(예수)을 위하여 참으신 것 같이, 또 만민을 위하여 참으신 것 같이, 그리고 당시까지의 섭리노정에서 사탄 대해 하나님이 싸워 나오신 것'과 마찬가지로 30여 평생을 홀로 참으시면서 사탄 대해 싸우셨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십자가 상에서 운명하는 그 절정의 순간까지의 예수님의 생애는 하나님의 실체로서 줄곧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나타낸 생애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생애노정 곧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신 노정은 사탄과 싸우면서 걸은 시련 과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사탄 앞에 내주어 십자가에 죽게 하셨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시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사랑하시는데 어느 정도까지 사랑하셨는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은 실상 죽음을 넘어서는 자리에서 받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 대신 오신 예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죽음의 고개도 넘을 수 있다는 절절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사탄이 굴복하고야 말기 때문입니다.
4천년 동안 하나님 홀로 전체의 세계를 바라보며 슬퍼하고 걱정하고 수고하셨었는데 예수님 한분이 지상에 세워짐으로 말미암아 그를 중심삼은 사탄과의 새로운 싸움이 전개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자기의 모든 것을 잊고 하나님을 위해 싸워나갔을 뿐만 아니라, 죽는 자리에서도 자기를 위한 욕망을 지니지 않았기 때문에 부활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그러한 승리의 과정을 거쳐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쳤습니다. 그리고 죄악의 인간들을 위해 자기 일신을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우리는 사탄이 반대하는 것까지도 잊을 정도의 입장에서 인류를 위해 손을 들어 기도하신 예수의 사랑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탄세계에서 나타낼 수 없는 사랑을 예수님께서는 나타냈기 때문에, 사탄이 그의 사랑 앞에 굴복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탄은 자기로서의 찾을 바의 뜻이 있었지만 예수님을 통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십자가로 인하여 4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이 서러워하기 시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간도 서러워하기 시작하였고, 또한 사탄도 서러워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을 놓고 하나님과 인간만이 슬퍼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죽음을 놓고 사탄도 슬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사탄의 슬픔이 커지면 커질수록 예수의 사랑의 결실은 더 많이 맺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랑을 실증하는 십자가의 승리로 말미암아 4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과 불변의 인연을 맺었고, 불변의 승리, 불변의 사랑의 실체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 인간을 대신하여 하나님과 하나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변하지 않는 이상 예수 그리스도 또한 변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4천년 동안 영광을 나타내려고 하셨지만 그 뜻이 이루어 지지 않았는데 예수 한 분을 세워 비로소 그 뜻을 이루시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을 통하여, 그 뜻을 이 땅 위에 나타내고자 하셨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4천년 섭리의 증거적인 실체로서 나타나야 했는데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 뜻이 사탄에게 짓밟힌 바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원한 실체로서, 4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부활의 영광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⑥ 부활의 영광을 나타내신 예수
그 부활은 4천년 역사에 있어서 처음으로 하늘의 영광을 대신한 것이요, 4천년간의 사탄과의 싸움을 승리한 영광을 대신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승리적인 기준을 영적으로나 실체적으로 보여 주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죽은 예수님을 다시 일으켜 새로운 섭리를 전개하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림으로 인하여 4천년 섭리역사의 책임을 맡고, 선조들의 책임을 맡아가지고 하늘의 영광을 대신하여 저나라에 가신 것이 부활 승천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내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이 땅 위에 실체적으로 이루기 위하여, 즉, 하나님의 완전한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오신 분입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영광은 내적인 영광과 외적인 영광이 합해져야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사명을 하기 위해 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완전히 이루어지려면, 하나님의 내적인 영광의 실체로 오신 독생자 예수와 유대민족이 멀어지지 아니하고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속에 있는 하나님의 내적인 영광이 지상의 영광이 되어야 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4천년 섭리역사를 도맡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지상에서 실현시켜야 할 예수님이 유대인의 불신으로 인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하늘의 내적인 영광은 영적인 영광이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미완의 영광을 이루어가지고 승천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한 후에 영계에서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사탄 대해 벌이던 하늘의 싸움과, 인간을 복귀하기 위해 벌이던 참의 싸움과, 뜻을 이루기 위한 섭리의 싸움과 성신을 대신하여 사랑의 싸움을 하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영계에 가셔서 하나님이 해 오시던 이 싸움을 인계받아 가지고 하나님 대신 싸워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4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 앞에 인간을 대신하고 만물을 대신하고 하늘의 사랑을 대신하였던 예수 그리스도가 진실로 승리해야 할 터전은 어디인고? 다름 아닌 이 땅이라는 것입니다.
⑦ 땅 위의 싸움을 책임진 성신
그러면 땅위에 남아 있는 이 싸움의 노정을 누가 책임져야 되겠느냐 이겁니다. 예수님이 영계에서 하나님의 내적인 싸움을 인계받아 싸우고 계시는데 성신과 우리는 지상에서 합력하여, 내적인 싸움과 내적인 섭리를 실체적으로 완결하기 위한 사랑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부가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영적으로만 싸우는 싸움이 아닙니다. 영육 아울러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이겨야 할 운명이 우리 인간에게 남아 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즉, 예수님이 영계에서 하나님의 내적인 싸움을 인계받아 지금까지 싸워 나오시던 것과 이 땅에서 30여 평생을 희생해가며 인류 구원을 위해 싸워 나오신 것을 우리들이 인계받아 이겨야 할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들은 '아버지여! 예수여! 성신이여 나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부르짖으면서 지상에서 하늘의 역사적인 소망을 이루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4천년 수고의 결실체로 오셨고, 하나님이 소망하던 최초의 완성체로 오신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30여 평생에 못다 이룬 노정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3년 공생애 기간의 싸움의 노정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다 이루어드리지 못한 한이 남아 있고, 또 십자가의 피흘린 사랑의 심정이 땅 위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님이 지상에서 못다 이룬 사명을 인계받아 영육 아울러 이루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생애노정을 다 바치어 예수 그리스도의 가던 길을 계승하여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내 한 개체를 아버지 앞에 세워 놓고 비판해 보게 될 때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탄과 싸웠고, 예수님이 가신 이후 2천년 동안에도 성신과 함께 수고해 나오셨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을 여러분이 닮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아버지 앞에 자기 일신을 세워 승리의 싸움을 전개한 것이 어느 한날이 아니고 30여 평생의 기간이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6천년 동안 섭리하신 아버지의 마음, 뜻을 이루기 위해 안타까워하던 예수의 마음, 성신의 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여러분이 참아야 할 노정에 있어서 마음을 다해서 참지 못한다면, 여러분 하나로 말미암아 6천년 동안 슬퍼하시던 하나님의 뜻, 예수님이 평생 수고하신 뜻,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후 성신이 2천년 동안 수고한 뜻이 다 좌절되고 맙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이 뜻을 위한 싸움을 전개하여야 되겠습니다.
⑧ 우리의 사명
예수님은 원수들의 반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 성에서 몰리면 저 성으로 찾아갔고, 이 곳에서 천대하면 저 곳으로 피해 다녔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예수님은 자기의 일신을 변명할 줄 몰랐습니다. 하늘의 전체 생명을 갖고 오셨으나 그러한 가치를 나타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무언의 싸움의 노정을 거쳐 나온 예수, 나아가 십자가의 산정에서도 자기 일신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중심삼고 증거하기 위해 사탄과 싸우시던 예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에게 예수님 자체를 찾아 세우려는 어떠한 사랑의 마음이 있다 할진대는 그것이 예수님을 슬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실을 생각해서 오늘날 여러분이 예수님의 사무친 30여 평생을 대신해야 되겠고, 오늘날까지 참아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해야 되겠습니다.
4천년 동안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제단을 세우고 민족을 통하여 섭리하시던 선지자들의 마음을 대신해야 되겠고, 예수님께서 인간을 사랑 하시던 그 마음을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자기를 세우지 않고,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마음으로 승리의 기준을 세워 사탄을 슬프게 하셨던 것과 같은 그러한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6천년 동안의 모든 싸움을 종결지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참음의 모든 싸움노정에서 승리해야 됩니다. 또 하늘의 뜻을 증거하는 싸움에서 승리하여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한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야 되겠습니다. 4천년 동안 하나님께서 참으신 뜻, 참으신 영광, 참으신 사랑의 승리의 심정을 지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망각하고 오직 하늘 뜻만을 이루기 위해 수고하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자기 한 자체를 망각하고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전체의 영광을 결실해 드리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마음으로 몸으로 승리의 결실을 맺어야 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으로는 예수님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고, 몸으로는 성신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음으로는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을 대신하고 몸으로는 성신을 통한 부활의 영광을 대신하지 못한다면, 성신은 부활의 영광의 자리에 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할 수 있는 영광을 갖추었지만 성신은 아직까지 부활 승천할 수 있는 영광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오늘날까지 6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하여 영육을 갖춘 하나의 실체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한 승리의 영광을 대신한 사람이 나와야 되고, 성신으로 말미암은 부활의 영광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4천년 섭리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몸 마음으로 싸울 수 있었던 것과 같은 그러한 하나의 실체로 나타나지 않으면 6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뜻은 영광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이후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다함의 뜻과 다함의 마음과 다함의 성품을 갖춘 성신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뜻을 대신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대신실체, 성신의 대신실체가 이 땅에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생명을 주신 아버지 앞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 땅위에서 성신까지 해방시켜 드려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끝날인 오늘날 이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6천년 섭리의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하나님과 예수님, 성신이 바라는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싸움의 노정에 승리해야 되겠습니다. 삼위신의 부활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그 싸움의 노정, 인내의 노정을 넘어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말씀선집 - 제1권 5편
예수와 같이 부활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자(훈독본)
1956.05.27
(일), 한국 전본부교회
마태복음 22:34-40
말씀선집, 예수와 같이 부활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자2.mp3
<기 도>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I30s/53
이 시간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려 하는 말씀의 제목은 '예수와 같이 부활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자'입니다.
창조이상과 예수의 강림
목적
에덴 동산은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영광을 누리시고, 온 피조만물이 하나님께 환희의 경배를 드리고 기뻐하며 사는 동산입니다. 이런 동산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습니다. 또 인간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망의 영광을 땅 위에 나타내야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실체로 나타내야 할 것이 우리 조상 아담 해와의 책임이었는데, 그들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뜻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려던 본연의
그 동산은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전 인류는 6천년 이나 부활의 영광을 소망하면서 어둠의 세력과 대결하여 싸움의 길을 거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역사를
경과하면서 전체적인 부활의 영광과 전체적인 부활의 유업을 이루고, 이 땅
위의 억조 창생과 영계의 천천만 천군천사 그리고 피조만물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며 감사의 경배를 드릴 수 있는 한 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수많은 선지자들을 이 땅 위에 보내셨고, 4천년 역사가 경과한 후에 하나님
자신의 내적 심정을, 외적 실체를 갖추어 영광의 실체로 보내 주신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의
존재가 나타났으므로 뭇 백성은 즐거워하고 감사를 돌려야 했었는데, 즉 택해
세웠던 이스라엘민족과 유대교단이 예수님의 영광을 대신 나타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서러움과 원한의
탄식을 남기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만민을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운명의 길을
나섰습니다. 타락한 인간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지 못한 것을 아신 예수님은'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말씀
예수님은 4천년 역사과정에 스며 있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내적 심정을 절절히 느꼈기에 하나님을 시봉하여야 할 책임을 느끼고,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는 대표자가 되어야 할 것을 재차 천명하신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이 예수님의
영광으로, 예수님의 영광이 만민의 영광으로 나타나고, 만민의 영광이 온
피조만물의 어느 것에도 미쳐져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민족이
단절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일신에 이루어졌던 부활의 영광, 감사의 영광은
오늘날 인류의 소망으로 남아 졌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신 하나의 존재, 역사과정에
없었던 승리의 화신이 바로 예수님이었던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이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셨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의 화신으로서 중보적인 존재로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
진리 말씀은 인간 창조이념과 영광의 이념으로 세워진 아버지의 숨겨진 마음을 나타낸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러한
말씀을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우기 위하여 수고하신 그
뜻을, 자기가 이제 실체적으로 이루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대해 다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들이 하나님을 대해 다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증거한 그 말씀을 아직까지 이루지
못한 채 내려오고 있습니다.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해
찾아오신 하나님
따라서 이제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공경해야 되겠고, 하나님 자신이 먼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우리를 찾아 나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장 죽어
마땅할 인간이요, 고통 당해 마땅할 인간이었지만 인간들을 대해 마음을
다하는 입장에서 참음의 4천년 역사노정을 걸어오셨고, 또 뜻을 다하여
4천년 동안 사탄을 분별하는 싸움의 노정을 걸어오셨습니다.
이와 같이 불변의 사랑의 마음을 갖고 4천년 동안 참아오셨고, 싸워 오셨고, 사랑하여 오셨던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이스라엘민족을 중심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자기 일신의 마음을 다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마음을 다하여 묵묵히 4천년 동안 참아오신 하늘의 심정을 체휼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4천년 역사 과정에 있어서 사탄과 관계된 곡절의 사실들을
느끼고 그것을 영계에서 내적으로 증거 받고 밝혀 내셨습니다.
나아가 4천년 역사 속에 숨겨져 있는 천륜의 비밀을
밝히고, 하나님의 내적인 참으심의 실체기대를 이루고, 외적인 실체기대를
30여 평생에 세워 놓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을 짊어졌던 예수님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어려운 입장에 처하면 처할수록 예수님 자신을 찾기 위하여 참아 나오신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그 마음을 해원하기 위한 실체로 나타나기 위해 30여년 준비의 생활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만민을
대해서도, 원수 사탄을 대해서도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전체의 심정을 체휼하려는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외로운 입장에
처할지라도 어느 누구에게도 변명하지 않고 참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참으심의 생활을 여러분은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를
위하여 참으셨고, 예수님은 아버지를 위하여 참으셨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기 위해 수고의 노정을 걸어오신 것을 느끼고 하나님을 위하여 참으셨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위해 참으신 연고로 사탄의 참음을 능가하였습니다. 사탄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참아 나오신 길, 그 길을 파괴하기 위하여 발버둥쳐 나왔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참은 이상의 아버지의 참음이 있었다는 것을 아신 예수님은 아버지와
같이 참았기 때문에 참음의 화신이 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 스스로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참아오신 심정의 기대 위에 서서, 그것을 승리의 발판으로 하여 사탄과 싸우는데 있어서, 인내심을 가지고 싸워 이겼으되 실체적인 승리의 기반을 갖추지 못하게 될 때에는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참아 나오신 심정은 파괴를 당하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음의 심정으로 사탄을
이기신 예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놓고 사탄이 참을 수 없는 입장에서 참고 또 참는 자의 표상으로서 세워졌기 때문에 사탄 대해 싸울 수 있는 주인공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한 분을
찾기 위해 4천년 피 흘리는 역사노정을 거치셨습니다. 또 인간은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몸부림쳤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위하여 싸움의
역사노정을 걸어오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하여 4천년 동안 사탄과 싸워 나오셨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오늘날까지
자기를 중심하고 자기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과 싸워 나오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위해서 싸우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싸우시는 목적은 사탄품에 있는 불쌍한 인류를 위한 것이었고 택한 민족을
통하여 예수님 한 분을 내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떠한
존재로 나타나셨던가.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사탄과 싸워 이긴 승리의 대신 실체요, 화신으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하나님을 대신한 싸움의 주인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적으로 승리의 기준을 세웠던 하나님의 뜻을
상속받아 외적으로 승리의 기준을 땅 위에 세워야 할 책임을 지고 실천했던 노정이 바로
3년 공생애 노정이었습니다.
사탄은 자기 일신의 승리를
위하여 예수님과 싸웠으나 패배하였으므로 다시금 민족을 동원하여 예수님과 싸우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3년 공생애 기간 동안 결코 자기를 중심하고 싸운 때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행한 일을 보고 행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대신 싸움의 화신으로,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을 토로하는 하나님의 대신 실체로서 3년 공생애 노정을 걸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변명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 자신도 만민 앞에서 사탄과
싸우는 입장에서 자신을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자기를 위해 섭리해 나오신 그 수고에 대해 변치 않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받들었던 예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섭리의 싸움의
노정으로 나타났던 이 한 사실을 깨달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내적으로 세우신 그 전체의 뜻을 외적으로 이루기 위해 싸움을 전개하셨던
것입니다. 사탄은 자기를 위하여 싸우는 것이었으나 예수님은 하늘을 위해
싸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승리의 기준이 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패배한 원인은
무엇인가? 자기를 위하여 싸웠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싸움의 목적을 자기에게 두었지만 예수님은 하늘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이 변치 않는 이상 끝까지 변치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뜻을
다해 싸웠기 때문에 승리의 기준을 세웠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한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인류 앞에 그러한 자세를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대신
실체
그리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의 내적인 성품을 대신하여, 모든 어려움과 슬픔을 참으면서 사랑하시던 하나님의 심정을 인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한 실체로서 사탄과 싸워 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사탄과 싸우는
과정에서, 사탄이 자기를 위한 목적을 중심삼고 공격하게 될 때 그 영향은
예수 자신에게만 미쳐지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에게까지 미쳐진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신과 만민을 위하여 참고 싸워
나오신 것'과 마찬가지로 30여 평생을 홀로 참으시면서 사탄 대해 싸우셨던 것입니다. 십자가 상에서 운명하는 순간까지의 예수님의 생애는 하나님의 실체로서 줄곧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나타낸 생애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생애노정, 곧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신 노정은 사탄과 싸우면서 걸은 시련 과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사탄 앞에 내주어 십자가에 죽게 하셨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시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사랑하시는데 어느
정도까지 사랑하셨는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은 실상
죽음을 넘어서는 자리에서 받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 대신 오신 예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죽음의 고개도 넘을 수 있다는 절절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사탄이 굴복하고야 말기 때문입니다.
4천년 동안 하나님 홀로
전체의 세계를 바라보며 슬퍼하고 걱정하고 수고하셨었는데 예수님 한 분이 지상에 세워짐으로 말미암아 그를 중심삼은 사탄과의 새로운 싸움이 전개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자기의 모든 것을 잊고 하나님을 위해 싸워
나갔을 뿐만 아니라, 죽는 자리에서도 자기를 위한 욕망을 지니지 않았기
때문에 부활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그러한 승리의 과정을 거쳐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쳤습니다. 그리고 죄악의 인간들을 위해 자기 일신을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사탄세계에서 나타낼 수 없는
사랑을 예수님께서는 나타냈기 때문에, 사탄이 그의 사랑 앞에 굴복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탄은 자기로서의 찾을 바의 뜻이 있었지만
예수님을 통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십자가로 인하여 4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이 서러워하기 시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간도 서러워하기 시작하였고, 또한 사탄도 서러워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을 놓고
하나님과 인간만이 슬퍼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죽음을 놓고
사탄도 슬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사탄의 슬픔이 커지면
커질수록 예수의 사랑의 결실은 더 많이 맺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랑을
실증하는 십자가의 승리로 말미암아 4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과 불변의
인연을 맺었고, 불변의 승리, 불변의 사랑의 실체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 인간을 대신하여 하나님과 하나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변하지 않는 이상 예수 그리스도 또한 변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4천년 동안 영광을 나타내려고 하셨지만 그 뜻이 이루어 지지 않았는데 예수 한 분을
세워 비로소 그 뜻을 이루시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을
통하여, 그 뜻을 이 땅 위에 나타내고자 하셨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4천년 섭리의 증거적인 실체로서 나타나야 했는데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 뜻이 사탄에게 짓밟힌 바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원한 실체로서, 4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부활의 영광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부활의 영광을 나타내신
예수
그 부활은 4천년 역사에 있어서 처음으로 사탄과의 싸움을 승리한 영광을 대신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승리적인 기준을 영적으로나 실체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죽은 예수님을 다시 일으켜 새로운 섭리를 전개하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림으로 인하여 4천년 섭리역사의 책임을 맡고, 선조들의 책임을 맡아 가지고 하늘의 영광을 대신하여 저 나라에 가신 것이 부활 승천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내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이 땅 위에 실체적으로 이루기 위하여, 즉, 하나님의 완전한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오신 분입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영광은 내적인 영광과 외적인 영광이 합해져야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사명을 하기 위해 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완전히
이루어지려면, 하나님의 내적인 영광의 실체로 오신 독생자 예수와 유대민족이
멀어지지 아니하고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속에 있는 하나님의 내적인 영광이 지상의 영광이 되어야 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4천년 섭리역사를 도맡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지상에서 실현시켜야 할 예수님이 유대인의 불신으로 인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하늘의 내적인 영광은 영적인 영광이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미완의 영광을 이루어 가지고 승천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한 후에
영계에서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사탄 대해 벌이던 하늘의 싸움과, 인간을 복귀하기 위해 벌이던 참의 싸움과, 뜻을 이루기 위한 섭리의 싸움과 성신을 대신하여 사랑의 싸움을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영계에 가셔서 하나님이 해 오시던 이 싸움을 인계
받아 가지고 하나님 대신 싸워 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4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 앞에 인간을 대신하고 만물을 대신하고 하늘의 사랑을
대신하였던 예수 그리스도가 진실로 승리해야 할 터전은 어디인고? 다름 아닌
이 땅이라는 것입니다.
땅 위의 싸움을 책임진
성신
그러면 땅 위에 남아 있는 이 싸움의 노정을 누가 책임져야 되겠느냐 이겁니다. 예수님이 영계에서 하나님의 내적인 싸움을 인계 받아 싸우고 계시는데 성신과 우리는 지상에서 합력하여, 내적인 싸움과 내적인 섭리를 실체적으로 완결하기 위한 사랑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부가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영육 아울러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이겨야 할 운명이 우리
인간에게 남아 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즉, 예수님이 영계에서 하나님의 내적인 싸움을 인계 받아 지금까지 싸워 나오시던 것과
이 땅에서 30여 평생을 희생해가며 인류 구원을 위해 싸워 나오신 것을
우리들이 인계 받아 이겨야 할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들은 '아버지여! 예수여!
성신이여 나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부르짖으면서
지상에서 하늘의 역사적인 소망을 이루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4천년 수고의 결실체로 오셨고, 하나님이 소망하던 최초의 완성체로 오신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다 이루어 드리지 못한 한이 남아
있고, 또 십자가의 피 흘린 사랑의 심정이 땅 위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님이 지상에서 못다 이룬 사명을 인계 받아 영육 아울러 이루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생애노정을 다 바치어 예수 그리스도의 가던 길을 계승하여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내 한 개체를
아버지 앞에 세워 놓고 비판해 보게 될 때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탄과 싸웠고, 예수님이
가신 이후 2천년 동안에도 성신과 함께 수고해 나오셨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을 여러분이 닮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아버지 앞에 자기 일신을 세워 승리의 싸움을 전개한 것이 어느
한날이 아니고 30여 평생의 기간이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6천년 동안 섭리하신 아버지의 마음, 뜻을 이루기 위해 안타까워하던 예수의 마음, 성신의 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여러분이
참아야 할 노정에 있어서 마음을 다해서 참지 못한다면, 여러분 하나로
말미암아 6천년 동안 슬퍼하시던 하나님의 뜻, 예수님이 평생 수고하신 뜻,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후 성신이 2천년 동안 수고한 뜻이 다 좌절되고 맙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이
뜻을 위한 싸움을 전개하여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사명
예수님은 원수들의 반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 성에서 몰리면 저 성으로 찾아갔고, 이 곳에서 천대하면 저 곳으로 피해 다녔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예수님은 자기의 일신을 변명할 줄 몰랐습니다. 하늘의 전체 생명을 갖고 오셨으나 그러한 가치를 나타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무언의 싸움의 노정을 거쳐 나온 예수, 나아가 십자가의 산정에서도 자기 일신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중심삼고 증거하기 위해 사탄과 싸우시던 예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에게
예수님 자체를 찾아 세우려는 어떠한 사랑의 마음이 있다 할진대는 그것이 예수님을 슬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실을 생각해서 오늘날 여러분이 예수님의 사무친 30여 평생을 대신해야 되겠고, 오늘날까지 참아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해야 되겠습니다.
4천년 동안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제단을 세우고 민족을 통하여 섭리하시던 선지자들의 마음을 대신해야 되겠고,
예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던 그 마음을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자기를 세우지 않고,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마음으로 승리의 기준을 세워 사탄을 슬프게 하셨던 것과 같은 그러한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6천년 동안의 모든 싸움을 종결 지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참음의 모든 싸움
노정에서 승리해야 됩니다. 또 하늘의 뜻을 증거하는 싸움에서 승리하여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한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야
되겠습니다. 4천년 동안 하나님께서 참으신 뜻, 참으신 영광,
참으신 사랑의 승리의 심정을 지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망각하고 오직 하늘 뜻 만을 이루기 위해 수고하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자기 한 자체를 망각하고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전체의 영광을 결실해
드리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마음으로 몸으로 승리의 결실을 맺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으로는
예수님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고, 몸으로는 성신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음으로는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을 대신하고
몸으로는 성신을 통한 부활의 영광을 대신하지 못한다면, 성신은 부활의
영광의 자리에 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할 수 있는
영광을 갖추었지만 성신은 아직까지 부활 승천할 수 있는 영광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오늘날까지 6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하여 영육을 갖춘 하나의 실체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한 승리의 영광을 대신한 사람이
나와야 되고, 성신으로 말미암은 부활의 영광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4천년 섭리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몸 마음으로 싸울 수 있었던 것과 같은 그러한
하나의 실체로 나타나지 않으면 6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뜻은
영광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이후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다함의 뜻과 다함의 마음과 다함의 성품을 갖춘
성신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뜻을 대신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대신실체, 성신의 대신실체가 이 땅에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
땅위에서 성신까지 해방시켜 드려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끝날인 오늘날 이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6천년 섭리의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하나님과 예수님, 성신이 바라는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싸움의 노정에 승리해야 되겠습니다. 삼위신의 부활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그 싸움의 노정, 인내의 노정을 넘어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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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려 하는 말씀의 제목은 '예수와 같이 부활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자'입니다. '예수와 같이 부활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자.' 이러한 제목으로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① 창조이상과 예수의 강림 목적
에덴 동산은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영광을 누리시고, 온 피조만물이 하나님께 환희의 경배를 드리고 기뻐하며 사는 동산입니다. 이런 동산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습니다. 또 인간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망의 영광을 땅 위에 나타내야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실체로 나타내야 할 것이 우리 조상 아담 해와의 책임이었는데, 그들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뜻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이상을 이루어 가지고 기뻐하시려던 본연의 그 동산은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전 인류는 부활의 영광을 소망하면서 어둠의 세력과 대결하여 싸움의 길을 거쳐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6천년 역사의 노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역사를 경과하면서 전체적인 부활의 영광과 전체적인 부활의 유업을 이루고, 이 땅 위의 억조창생과 영계의 천천만 천군천사 그리고 피조만물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며 감사의 경배를 드릴 수 있는 한 날을 맞이하고자 하셨습니다. 그 한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선지자들을 이 땅 위에 보내셨고, 4천년 역사가 경과한 후에 하나님 자신의 내적 심정을, 외적 실체를 갖추어 영광의 실체로 보내 주신 그 분이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의 존재가 나타났으므로 뭇 백성은 즐거워하고 감사를 돌려야 했었는데, 즉 택해 세웠던 이스라엘민족과 섭리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세웠던 유대교단이 예수님의 영광을 대신 나타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서러움의 탄식과 원한의 탄식을 남기셔야 했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남긴 말씀을 오늘날 우리들이 보게 될 때, 그의 말씀은 믿지 않는 백성만을 대해서 부르짖은 말씀이 아닙니다. 만민을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위해 죽음을 각오했습니다. 남아진 길이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운명의 길임을 아셨고, 타락한 인간들이 어느 한 때 어느 한 역사과정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지 못했는데, 이걸 아신 예수님은 당당하게 나서서 부르짖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한 마디의 말씀이 여러분 일신에만 해당되는 말씀으로만 알아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② 예수님이 주신 말씀
그러면 이 한 마디의 말씀은 무엇을 나타내는 말씀인가. 예수님은 4천년 역사과정에 스며있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내적 심정을 절절히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하나님을 시봉하여야 할 책임을 느끼고, 어느 때, 어느 한 시간에라도 자신은 지금까지 4천년 역사과정에 없었던 마음을 다하는 대표자가 되어야 하고, 목숨을 다하는 대표자가 되어야 하고, 뜻을 다하는 대표자가 되어야 할 것을 여기에서 재차 천명하신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이 예수님의 영광으로 나타나고 예수님의 영광이 만민의 영광으로 나타나고, 만민의 영광이 온 피조만물의 어느 것에도 미쳐져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민족이 단절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일신에 이루어졌던 부활의 영광, 감사의 영광은 오늘날 인류의 소망으로 남아 졌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화신으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신 하나의 존재, 역사과정에 없었던 승리의 화신이 바로 예수님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일신에는 하나님의 심정이 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아가 여러분은 예수님이 마음을 다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마음을 다하셨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뜻을 다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뜻을 다하셨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성품을 다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성품을 다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의 화신으로서 중보적인 존재로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 진리 말씀은 비단 곁에서 느껴지는 것을 통한 바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 창조이념을 통한 말씀이요, 전체의 가치를 드높일 수 있는 영광의 이념으로 세워진 말씀이요, 아버지의 숨겨진 마음을 나타낸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자기만을 사랑하셔서 하셨다고 생각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러한 말씀을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우기 위하여 수고하신 그 뜻을, 자기가 이제 실체적으로 이루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대해 다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들이 하나님을 대해 다해야 한 책임이 있다고 증거한 그 말씀을 아직까지 이루지 못한 채 내려오고 있습니다.
③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해 찾아오신 하나님
따라서 이제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공경해야 되겠고, 하나님 자신이 먼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우리를 찾아 나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4천년 동안 인간 대해 어떠한 마음을 갖고 나오셨는가. 자기를 위하려는 마음을 갖고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당장 죽어 마땅할 인간이요. 고통 당해 마땅할 인간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대해 마음을 다하는 입장에서 참음의 4천년 역사노정을 걸어오셨고, 또 뜻을 다하여 4천년 동안 사탄을 분별하는 싸움의 노정을 걸어오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불변의 사랑의 마음을 갖고 4천년 동안 참아오셨고, 싸워오셨고, 사랑하여 오셨던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이스라엘민족을 중심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자기 일신의 마음을 다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30여 평생의 노정은 마음을 다하는 희생의 기간이었던 것입니다. 30여 평생의 노정에 있어서 민족 앞에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묵묵히 4천년 동안 참아오신 하늘의 심정을 체휼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4천년 역사 과정에 있어서 사탄과 관계된 곡절의 사실들을 느끼고 그것을 영계에서 내적으로 증거받고 밝혀내셨습니다. 나아가 4천년 역사 속에 숨겨져 있는 천륜의 비밀을 밝히고, 하나님의 내적인 참으심의 실체기대를 이루고, 외적인 실체기대를 30여 평생에 세워 놓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을 짊어졌던 예수님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어려운 입장에 처하면 처할수록 자아를 찾을 입장에 있었지만 찾을 생각을 해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4천년 역사를 경과하면서 예수님 자신을 찾기 위하여 참아 나오신 그 하나의 마음, 인간 하나 하나를 찾기 위해 참으시던 그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그 마음을 해원하기 위한 실체로 나타나기 위해 30여년 준비의 생활을 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까지 누구를 대하여도 자신의 입장을 변명하시지 않았습니다. 만민을 대하여 변명하지 못하셨고, 원수 사탄을 대해서도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전체의 심정을 체휼하려는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외로운 입장에 처할지라도 어느 누구에게도 변명하지 않고 참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참으심의 생활을 여러분은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를 위하여 참으셨고, 예수님은 자기를 위하여 참으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위하여 참으셨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기 위해 수고의 노정을 걸어오신 것을 느끼고 자기를 위하며 참으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위하여 참으셨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30여 평생 자신을 떠나 하나님을 위해 참으신 연고로 사탄의 참음을 능가하였습니다. 사탄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참아나오신 길, 그 길을 파괴하기 위하여 발버둥쳐 나왔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참은 이상의 아버지의 참음이 있었다는 것을 아신 예수님은 그 아버지를 믿고 아버지와 같이 참았기 때문에 참음의 화신이 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 스스로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참아오신 심정의 기대 위에 서서, 그것을 승리의 발판으로 하여 그 위에 서가지고 사탄과 싸우는데 있어서, 인내심을 가지고 싸워 이겼으되 실체적인 승리의 기반을 갖추지 못하게 될 때에는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참아나오신 심정은 파괴를 당하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④ 참음의 심정으로 사탄을 이기신 예수
예수님께서 30여 평생을 통하여 자신이 참지 못한 환경에 처하게 되었어도 하나님의 뜻을 놓고 참았기 때문에, 또 사탄이 참을 수 없는 입장에서 참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었기 때문에, 또 참는 자의 표상으로서 세워졌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탄 대해 싸울 수 있는 주인공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한 분을 찾기에 4천년 역사의 피흘리는 노정을 거치셨습니다. 또 인간은 자기 개인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허덕이는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은 인간을 위하여 싸움의 역사노정을 걸어 오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4천년 동안 사탄과 싸워 나오셨지만 하나님은 자신을 중심하고 싸우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오늘날까지 싸워나오면서 원하는 것은 자기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또 지금까지 자기를 중심하고 하나님과 싸워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해서 싸우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싸우시는 목적은 사탄품에 있는 불쌍한 인류를 위한 것이었고 택한 민족을 통하여 예수님 한분을 내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떠한 존재로 나타나셨던가.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사탄과 싸워 이긴 승리의 대신 실체요, 화신으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하나님을 대신한 싸움의 주인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적으로 승리의 기준을 세웠던 하나님의 뜻을 상속받아 외적으로 승리의 기준을 땅 위에 세워야 할 책임을 지고 실천했던 노정이 바로 3년 공생애 노정이었습니다.
이 3년의 공생애 기간에 있어서 사탄은 자기 일신의 승리를 위하여 예수님과 싸웠으나 패배하였으므로 다시금 민족을 동원하여 예수님과 싸우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3년 공생애 기간에 어떠한 어려운 싸움의 자리에서도 결코 자기를 중심하고 싸운 때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행한 일을 보고 행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대신 싸움의 화신으로,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을 토로하는 하나님의 대신 실체로서 3년 공생애 노정을 걸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변명하는 싸움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변명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 자신도 만민 앞에서 사탄과 싸우는 입장에서 자신을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자기를 위해 섭리해 나오신 그 수고에 대해 변치 않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받들었던 예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섭리의 싸움의 노정으로 나타났던 이 한 사실을 깨달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내적으로 세우신 그 전체의 뜻을 외적으로 이루기 위해 싸움을 전개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사탄의 싸움에 있어서, 사탄은 자기를 위하여 싸우는 것이었으나 예수님은 하늘을 위해 싸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승리의 기준이 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패배한 원인은 무엇인가? 자기를 위하여 싸웠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싸움의 목적은 자기에게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싸움의 목적을 하늘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이 변치않는 이상 끝까지 변치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뜻을 다해 싸웠기 때문에 승리의 기준을 세웠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한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인류 앞에 그러한 자세를 보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⑤ 예수님은 하나님의 대신 실체
그리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의 내적인 성품을 대신하여, 모든 어려움과 슬픔을 참으면서 사랑하시던 하나님의 심정을 인계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어느 자리 어느 곳에 있든지 오직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한 실체로서 사탄과 싸워 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사탄과 싸우는 과정에서, 사탄이 자기를 위한 목적을 중심삼고 공격하게 될 때 그 영향은 예수 자신에게만 미쳐지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에게까지 미쳐진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어떤 수난을 당하게 되더라도 '하나님이 자신(예수)을 위하여 참으신 것 같이, 또 만민을 위하여 참으신 것 같이, 그리고 당시까지의 섭리노정에서 사탄 대해 하나님이 싸워 나오신 것'과 마찬가지로 30여 평생을 홀로 참으시면서 사탄 대해 싸우셨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십자가 상에서 운명하는 그 절정의 순간까지의 예수님의 생애는 하나님의 실체로서 줄곧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나타낸 생애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생애노정 곧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신 노정은 사탄과 싸우면서 걸은 시련 과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사탄 앞에 내주어 십자가에 죽게 하셨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시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사랑하시는데 어느 정도까지 사랑하셨는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은 실상 죽음을 넘어서는 자리에서 받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 대신 오신 예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죽음의 고개도 넘을 수 있다는 절절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사탄이 굴복하고야 말기 때문입니다.
4천년 동안 하나님 홀로 전체의 세계를 바라보며 슬퍼하고 걱정하고 수고하셨었는데 예수님 한분이 지상에 세워짐으로 말미암아 그를 중심삼은 사탄과의 새로운 싸움이 전개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자기의 모든 것을 잊고 하나님을 위해 싸워나갔을 뿐만 아니라, 죽는 자리에서도 자기를 위한 욕망을 지니지 않았기 때문에 부활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그러한 승리의 과정을 거쳐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쳤습니다. 그리고 죄악의 인간들을 위해 자기 일신을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우리는 사탄이 반대하는 것까지도 잊을 정도의 입장에서 인류를 위해 손을 들어 기도하신 예수의 사랑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탄세계에서 나타낼 수 없는 사랑을 예수님께서는 나타냈기 때문에, 사탄이 그의 사랑 앞에 굴복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탄은 자기로서의 찾을 바의 뜻이 있었지만 예수님을 통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십자가로 인하여 4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이 서러워하기 시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간도 서러워하기 시작하였고, 또한 사탄도 서러워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을 놓고 하나님과 인간만이 슬퍼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죽음을 놓고 사탄도 슬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사탄의 슬픔이 커지면 커질수록 예수의 사랑의 결실은 더 많이 맺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랑을 실증하는 십자가의 승리로 말미암아 4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과 불변의 인연을 맺었고, 불변의 승리, 불변의 사랑의 실체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 인간을 대신하여 하나님과 하나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변하지 않는 이상 예수 그리스도 또한 변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4천년 동안 영광을 나타내려고 하셨지만 그 뜻이 이루어 지지 않았는데 예수 한 분을 세워 비로소 그 뜻을 이루시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을 통하여, 그 뜻을 이 땅 위에 나타내고자 하셨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4천년 섭리의 증거적인 실체로서 나타나야 했는데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 뜻이 사탄에게 짓밟힌 바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원한 실체로서, 4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부활의 영광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⑥ 부활의 영광을 나타내신 예수
그 부활은 4천년 역사에 있어서 처음으로 하늘의 영광을 대신한 것이요, 4천년간의 사탄과의 싸움을 승리한 영광을 대신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승리적인 기준을 영적으로나 실체적으로 보여 주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죽은 예수님을 다시 일으켜 새로운 섭리를 전개하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림으로 인하여 4천년 섭리역사의 책임을 맡고, 선조들의 책임을 맡아가지고 하늘의 영광을 대신하여 저나라에 가신 것이 부활 승천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내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이 땅 위에 실체적으로 이루기 위하여, 즉, 하나님의 완전한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오신 분입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영광은 내적인 영광과 외적인 영광이 합해져야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사명을 하기 위해 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완전히 이루어지려면, 하나님의 내적인 영광의 실체로 오신 독생자 예수와 유대민족이 멀어지지 아니하고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속에 있는 하나님의 내적인 영광이 지상의 영광이 되어야 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4천년 섭리역사를 도맡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지상에서 실현시켜야 할 예수님이 유대인의 불신으로 인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하늘의 내적인 영광은 영적인 영광이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미완의 영광을 이루어가지고 승천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한 후에 영계에서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사탄 대해 벌이던 하늘의 싸움과, 인간을 복귀하기 위해 벌이던 참의 싸움과, 뜻을 이루기 위한 섭리의 싸움과 성신을 대신하여 사랑의 싸움을 하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영계에 가셔서 하나님이 해 오시던 이 싸움을 인계받아 가지고 하나님 대신 싸워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4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 앞에 인간을 대신하고 만물을 대신하고 하늘의 사랑을 대신하였던 예수 그리스도가 진실로 승리해야 할 터전은 어디인고? 다름 아닌 이 땅이라는 것입니다.
⑦ 땅 위의 싸움을 책임진 성신
그러면 땅위에 남아 있는 이 싸움의 노정을 누가 책임져야 되겠느냐 이겁니다. 예수님이 영계에서 하나님의 내적인 싸움을 인계받아 싸우고 계시는데 성신과 우리는 지상에서 합력하여, 내적인 싸움과 내적인 섭리를 실체적으로 완결하기 위한 사랑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부가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영적으로만 싸우는 싸움이 아닙니다. 영육 아울러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이겨야 할 운명이 우리 인간에게 남아 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즉, 예수님이 영계에서 하나님의 내적인 싸움을 인계받아 지금까지 싸워 나오시던 것과 이 땅에서 30여 평생을 희생해가며 인류 구원을 위해 싸워 나오신 것을 우리들이 인계받아 이겨야 할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들은 '아버지여! 예수여! 성신이여 나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부르짖으면서 지상에서 하늘의 역사적인 소망을 이루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4천년 수고의 결실체로 오셨고, 하나님이 소망하던 최초의 완성체로 오신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30여 평생에 못다 이룬 노정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3년 공생애 기간의 싸움의 노정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다 이루어드리지 못한 한이 남아 있고, 또 십자가의 피흘린 사랑의 심정이 땅 위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님이 지상에서 못다 이룬 사명을 인계받아 영육 아울러 이루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생애노정을 다 바치어 예수 그리스도의 가던 길을 계승하여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내 한 개체를 아버지 앞에 세워 놓고 비판해 보게 될 때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탄과 싸웠고, 예수님이 가신 이후 2천년 동안에도 성신과 함께 수고해 나오셨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을 여러분이 닮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아버지 앞에 자기 일신을 세워 승리의 싸움을 전개한 것이 어느 한날이 아니고 30여 평생의 기간이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6천년 동안 섭리하신 아버지의 마음, 뜻을 이루기 위해 안타까워하던 예수의 마음, 성신의 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여러분이 참아야 할 노정에 있어서 마음을 다해서 참지 못한다면, 여러분 하나로 말미암아 6천년 동안 슬퍼하시던 하나님의 뜻, 예수님이 평생 수고하신 뜻,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후 성신이 2천년 동안 수고한 뜻이 다 좌절되고 맙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이 뜻을 위한 싸움을 전개하여야 되겠습니다.
⑧ 우리의 사명
예수님은 원수들의 반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 성에서 몰리면 저 성으로 찾아갔고, 이 곳에서 천대하면 저 곳으로 피해 다녔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예수님은 자기의 일신을 변명할 줄 몰랐습니다. 하늘의 전체 생명을 갖고 오셨으나 그러한 가치를 나타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무언의 싸움의 노정을 거쳐 나온 예수, 나아가 십자가의 산정에서도 자기 일신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중심삼고 증거하기 위해 사탄과 싸우시던 예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에게 예수님 자체를 찾아 세우려는 어떠한 사랑의 마음이 있다 할진대는 그것이 예수님을 슬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실을 생각해서 오늘날 여러분이 예수님의 사무친 30여 평생을 대신해야 되겠고, 오늘날까지 참아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해야 되겠습니다.
4천년 동안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제단을 세우고 민족을 통하여 섭리하시던 선지자들의 마음을 대신해야 되겠고, 예수님께서 인간을 사랑 하시던 그 마음을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자기를 세우지 않고,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마음으로 승리의 기준을 세워 사탄을 슬프게 하셨던 것과 같은 그러한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6천년 동안의 모든 싸움을 종결지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참음의 모든 싸움노정에서 승리해야 됩니다. 또 하늘의 뜻을 증거하는 싸움에서 승리하여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한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야 되겠습니다. 4천년 동안 하나님께서 참으신 뜻, 참으신 영광, 참으신 사랑의 승리의 심정을 지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망각하고 오직 하늘 뜻만을 이루기 위해 수고하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자기 한 자체를 망각하고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전체의 영광을 결실해 드리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마음으로 몸으로 승리의 결실을 맺어야 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으로는 예수님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고, 몸으로는 성신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음으로는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을 대신하고 몸으로는 성신을 통한 부활의 영광을 대신하지 못한다면, 성신은 부활의 영광의 자리에 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할 수 있는 영광을 갖추었지만 성신은 아직까지 부활 승천할 수 있는 영광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오늘날까지 6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하여 영육을 갖춘 하나의 실체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한 승리의 영광을 대신한 사람이 나와야 되고, 성신으로 말미암은 부활의 영광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4천년 섭리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몸 마음으로 싸울 수 있었던 것과 같은 그러한 하나의 실체로 나타나지 않으면 6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뜻은 영광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이후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다함의 뜻과 다함의 마음과 다함의 성품을 갖춘 성신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뜻을 대신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대신실체, 성신의 대신실체가 이 땅에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생명을 주신 아버지 앞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 땅위에서 성신까지 해방시켜 드려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끝날인 오늘날 이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6천년 섭리의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하나님과 예수님, 성신이 바라는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싸움의 노정에 승리해야 되겠습니다. 삼위신의 부활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그 싸움의 노정, 인내의 노정을 넘어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말씀선집 제1권 6편
통일하려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뜻을 이루자 (훈독본)
1956.06.06 (수), 한국 전본부교회
* 성경 봉독은 녹음되어 있지 않아서 성경 구절을 밝히지 못했음.
통일하려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뜻을 이루자(말씀선집 제1권 6편)
오늘 드리려 하는 말씀의 제목은 '통일하려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뜻을 이루자' 입니다.
이 말씀은 여러분들이 자신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으로 잘 알고 있고 잘 외우고 있으며, 잘 살기 위한 생활의 중심으로 여기고 있는 말씀입니다.
선지자들을 세워 섭리하신 하나님의 소망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역사노정을 거치면서 복귀섭리는 거듭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의 뜻을 중심삼고 하나의 사랑에 화합하여 살고, 온 하늘 땅이 하나님의 사랑을 즐거워하면서 그 사랑을 실제 생명의 중심으로 세운 가운데 전부가 하나되어 사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본연의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남아지게 되었습니다. 즉, 인간과 관계를 맺어야 할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과 관계맺지 못하고 인간에게서 떠나게 되었고, 온 피조세계에서 떠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늘의 섭리역사를 회고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한 사람을 세워 인간에 대한 소망과 인간에 대한 이상과 인간에 대한 사랑의 변치않는 기준을 세우고자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날이 와야만, 그런 사랑의 중심이 세워지는 날이 와야만, 하나님과 인간과 관계가 맺어질 수 있게 되고, 그 맺어진 관계의 토대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이상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에 아브라함을 택해 세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사랑의 중심을 세우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그 이후 예수님 시대에 이르기까지 하늘의 사랑의 뜻을 세우기 위한 발판을 닦아 나오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까지의 4천년 역사는 전체 섭리의 뜻 앞에 있어서 하나님의 소망과 믿음과 사랑을 이룬 하나의 실증적인 존재를 세워야 하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러한 존재를 세우지 못하면 하나님의 소망과 믿음과 사랑은 각기 따로 분리되어 어느 한 시기에도 통일을 볼 수 없는 역사로 점철되겠기에, 하나님께서는 먼저 소망의 터전을 닦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터전 위에 믿음의 터전을 닦고, 그 믿음의 터전 위에 사랑의 터전을 닦으시려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이 모든 것을 결실한 하나의 화신체, 즉 전체의 소망의 실증적 자체, 전체의 믿음의 실증적 자체, 전체의 사랑의 실증적 자체를 하늘 땅 앞에 내세울 수 있는 한날을 맞이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러한 한 날을 맞이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의 이념은 이 땅 위에 성취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한 날을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모세를 거쳐 세례 요한에 이르기까지 4천년 섭리역사를 3단계로 나누어 소망의 터전을 닦으면서 수고해 나오셨던 것입니다. 그러한 소망의 토대 위에 하나의 실체로 나타나신 분이 누구였느냐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소망하신 하나의 실체로 나타나신 존재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소망을 두고 섭리해 오신 총 결실체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와 같은 결실체로 이 땅 위에 오셔서 뿌려놓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신의의 노정으로 세워진 신약의 복음, 즉 믿음의 복음이었습니다. 그후 이 믿음의 복음을 중심삼고 오늘날까지 2천년 역사가 경과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믿음의 복음이 결실된 터전 위에 하늘 땅을 대신하고 절대 사랑의 실체로 나타나는 하나의 존재가 누구냐 하면 그가 바로 오시게 될 재림주이심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재림시대에 무엇을 하려고 하시는가? 오시는 재림주를 중심삼고 이제까지 닦아온 믿음의 토대 위에 하나의 생명의 씨를 뿌려 가지고 결실케 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6천년 섭리역사의 목적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성약시대의 중심 요소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을 자신들의 소망의 주인공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믿음의 주인공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또 우리들의 사랑의 주인공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소망과 믿음과 사랑의 주인공으로 계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역사과정에서 소망을 대신한 구약시대, 믿음을 대신한 신약시대를 거치게 하셨으니 앞으로는 사랑을 대신한 성약시대를 거쳐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러한 성약시대, 즉 재림시대에 있어서 영원 불변의 하나의 중심 요소로 남아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것은 전체의 중심 요소인 동시에 전체의 이상의 요소도 되는 것입니다.
소망의 터전 위에 믿음의 중심으로 나타나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위에 믿음을 세우기 위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일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그 당시 인간들이 믿음의 실체로 받들었다면, 즉 예수를 하나님의 4천년 섭리역사의 소망의 결실체, 영원무궁한 신앙노정에 있어서의 믿음의 중심존재 또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통합시킬 수 있는 하나의 실체로서 알고 모셨다면, 그 당시의 인간들은 예수님 한 분으로 말미암아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소망을 가질 수 있었고,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믿음을 가질 수 있었고,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본연의 사랑을 체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의 승리의 기준은 무엇인가? 천상천하의 어떤 존재물이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사랑의 화신으로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가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뜻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4천년간 수고를 수반한 소망의 존재요, 만물의 주인공으로 오셔서 하나님과 일체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원래 인간 조상이 하나님과 일체되기를 바랐던 것이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깨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이념과 하나되어 영육 아우른 믿음의 실체로 나타나야 할 것이었으나 영적인 면에서만 완결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이제 예수님께서 남기고 가신 그 유업을 계승해서 이루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일신이 영 육을 쓴 하나의 소망의 실체가 된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그러한 사람이 되어 그를 대신할 수 있어야겠고, 또 예수님이 믿음의 실체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그러한 사람이 되어 그를 대신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또 사랑을 중심한 하나의 실체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서 가지고 예수의 소망과 믿음과 사랑을 대신하고 나아가 성신의 소망의 실체로서, 성신의 믿음의 실체로서, 성신의 사랑의 실체로서 그 사명을 대신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예수가 왔다 가신 이후, 오늘날 이 땅 위의 인간들이 아버지 앞에 이루어드려야 할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 사명을 완수하게 될 때 예수의 소망의 종결, 성신의 소망의 종결을 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 예수의 믿음과 성신의 믿음, 예수의 사랑과 성신의 사랑의 종결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그 모든 것을 종결할 수 있는 그 날을 이루어야 이 땅 위에 재림주님이 나타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믿음, 소망, 사랑의 실체가 되어야 할 인간
하나님의 소망은 하나님 자체의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소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믿음도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믿음이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도 하나님 자신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사랑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그러한 하나님의 소망을 대신하고 믿음을 대신하고 사랑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그러한 인간 한 자체를 전체의 소망, 전체의 믿음, 전체의 사랑을 대신한 존재로서 하나님께서 만물만상 앞에 자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한 중보적인 화신으로 나타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과 믿음과 사랑을 받아 이 땅 위에 어떠한 악한 사람 앞에도 하나의 소망의 실증체, 믿음의 실증체, 사랑의 실증체로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부분적인 소망에 대해 보답할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분적인 믿음에 대해 보답할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분적인 사랑에 대해 보답할 것이 아니라 전체에 대해 보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들은 지금까지 그 하나의 기준을 이 땅 위에 찾아 세우고 보답하고자 했지만 전체를 보답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 제자를 통하여 그러한 과정형을 나타내고자 하셨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믿음의 결실체로서 나타난 사람은 누구였던가? 이는 베드로였습니다. 또 소망의 결실체로서 나타난 사람은 누구였던가? 이는 야고보 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결실체로서 나타난 사람은 누구였던가? 이는 요한이 었습니다.
이 세 사람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한 부분부분을 책임맡아 가지고 하나 되어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내가 소망의 결실을 양보받을 수 있고 믿음의 결실을 양보받을 수 있고 사랑의 결실을 양보받을 수 있게 되었고, 또 섭리역사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흘러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 사람이 화합하여 하나의 완성체로 완결지어야 할 것이 최후의 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이 땅 위에 남기신 최후의 가르침이었 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들이 최후의 완성자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대신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세 제자를 뿌리로 한 하나의 불변의 실체로서 서지 않으면, 세 제자를 세워놓고 가셨던 신랑되신 예수님 앞에 나설 수 없게 됩니다. 이걸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우리들은 내 한 자체에서 베드로를 세우셨던 그 믿음의 소망을 이루어 드려야 하겠습니다. 야고보를 세우셨던 소망의 열매를 내 한자체에서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요한을 세우셨던 그 사랑의 열매를 내 한 자체에서 거두어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여러분이 된다면. 즉 여러분이 끝날의 예수 앞에 설 수 있는 하나의 신부가 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안타까와하셨던 소망의 뜻이 자기 한 자체에서 결실되는 기쁨을 느끼게 되어 아버지 앞에 감사를 돌리게 될 것입니다.
섭리가 요구하는 것
그러면 여러분 한 자체가 '아바 아버지여'라고 부르면서 소망의 결실을 갖추어야 할 때, 믿음의 결실을 갖추어야 할 때, 사랑의 결실을 갖추어야 할 때가 되었는데 이제 여러분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소망을 품고 애달퍼하시던 그 애달픔을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6천년 동안 믿음을 세우기 위해서 수고하시던 그 수고를 느낄 줄 알아야 되겠고, 6천년 동안 하나님께서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희생의 노정을 거듭해 나오신 그 사실을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 일신에 있어서 하나님의 4천년 소망의 결실을 대신한 실천적인 노정을 세운 것이 믿음의 섭리역사였고, 그 믿음을 대신한 실천적인 노정으로 세워진 것이 뭐냐 하면 신령역사였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사랑을 대신한 실천적인 노정을 보여 준 것이 뭐냐하면 통일의 역사였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소망으로써 섭리의 길을 세웠고, 신령으로써 거기에 씨를 심어 번식시켰고, 그 번식한 자체들을 통합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 예수의 사랑, 성신의 사랑을 실현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소망이 하나님의 소망으로 변화하는 시대가 재림시대요, 예수의 믿음이 하나님의 믿음으로 변화하는 시대가 재림시대요, 예수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뿌려지는 시대가 재림시대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의 소망의 결실, 예수의 믿음의 결실, 예수의 사랑의 결실이 여러분 자체에서 맺혀지지 않았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또 다시 하나님의 새로운 소망의 중심을 찾아세워야 되고 하나님의 새로운 믿음의 중심을 찾아야 되고, 하나님의 사랑의 중심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부여된 과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들을 찾기 위해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여러분 한 자체가 예수의 소망을 이루고, 성신의 소망을 계승하고, 예수와 성신의 믿음을 계승하고, 예수와 성신의 사랑을 계승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여, 성신의 수고하심을 알았나이다. 성신의 소망을 알았나이다. 성신의 믿고 나오는 역사를 알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알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알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았나이다.'라고 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아버지 앞에 나설 수 있는 그 하나의 존재가 오늘날 이 땅 위에 나타나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하나의 존재는 어떠한 존재인가? 그 하나의 존재가 지닌 소망은 그리스도의 소망이요, 믿음은 그리스도의 믿음이요,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의 존재가 이것들을 하나님적인 소망과 하나님적인 믿음과 하나님적인 사랑으로 종결시킬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으로서 남아진 그 목적을 종결지어 뜻을 세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하나의 존재는 하나님 대신 예수 그리스도가 기도하던 역사,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까지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하던 그러한 역사를 넘어서야 되고 나아가 영육을 갖춘 완성체로서 하늘 앞에 나설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그런 존재가 나와 하늘의 기쁨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체휼하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될 수 있습니다. 그런 위치까지 나아가야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해 세우신 그리스도의 심정, 또 그리스도 이후 2천년 동안 수고하여 세우려 하신 재림주의 심정까지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적인 완성의 입장을 넘어 육적으로 완결지어야 할 소망의 실체를 완결짓지 못했고 믿음의 실체를 완결짓지 못했고 또 사랑의 실체를 완결짓지 못했기 때문에, 그 실체를 완결지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재림주는 믿음, 소망, 사랑의 대표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중심으로 하여 오실 바의 재림주를 세워 놓고, 하나님과 연락할 수 있는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이 일을 위하여 어떻게 해야 되는가? 실증적인 소망의 실체로 나타나야 되겠고, 믿음의 실체로 나타나야 되겠고, 사랑의 실체로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의 토대 위에 재림주가 오신다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워놓고 소망하시던 그 소망이 여러분 자체들로 말미암아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재림주는 내 전체의 소망으로 나타나고 내 전체의 믿음으로 나타나고 내 전체의 사랑으로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림주가 그와 같이 사랑으로, 소망으로, 믿음으로 나타나게 될 때에 여러분은 여러분 일신에서 즐거워만 할 것이 아닙니다. 그 즐거움, 소망의 기쁨이 그분으로 말미암았으니 그분에게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믿음의 실체로 선 그 사실에 대해 감사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에 온 하늘 땅이 여러분에게 화답하고 여러분을 사랑의 실체로서 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온 하늘 땅이 움직이는 느낌을 여러분은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느낌 가운데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해 소망 하시던 것을, 소망을 대신한 실천의 노정을 통해 개척해야 되겠습니다. 또 믿음을 대신한 심령적인 역사를 개척하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나아가 사랑을 대신한 모심의 생활을 실천하고 통일의 역사를 이루어, 모든 만민이 영광으로 모셔드릴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후의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실천적인 소망, 심령적인 믿음, 심령적인 사랑을 다 갖추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들은 주를 모시고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 하나님을 모시고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내 한 자체는 하늘의 기쁨으로 충일되고, 땅 위의 만물 앞에 기쁨으로 충일되고, 땅 위의 인간 앞에 기쁨으로 충일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하나의 기쁨을 온 세계가 동일하게 느끼면서 영원히 살수 있는 시대를 여러분들이 건설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있는 곳곳마다 거기는 하나님의 소망의 실천적인 터가 되고, 믿음의 실천적인 터가 되고, 사랑의 화신적인 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소망하던 뜻을 지상에서 이루어 가지고, 하나님이 예수를 통하여 이루시려던 소망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져 가지고 땅위의 만물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기쁨이 인간을 통하고 만물에까지 연결되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이 바라던 통일의 역사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소망의 존재로 서기 위해서는 먼저 천상천하의 모든 만물을 대신하여 소망의 결실체로서 즐거워하였는가 자문자답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또 여러분은 지금까지 지상의 수많은 인간들이 하늘을 믿고 나온 그 믿음의 전체를 대신하여 즐거워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는가, 나아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사랑 하는 그 사랑의 감을 느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는가를 반문해 보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의 완결체로 오시는 하나의 존재가 누구냐 하면 바로 재림주입니다. 즉 그 재림주는 전체의 소망, 전체의 믿음, 전체의 사랑을 대표해서 나타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나타나게 될때, 여러분은 그를 모실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그의 소망과 그의 신령적인 믿음과 그의 사랑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럴 때에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아니 갈래야 아니갈 수 없고, 아니 행할래야 아니 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오늘날 이 땅의 타락권내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의 감정을 초월한 소망의 화신으로서, 믿음의 실체로서, 사랑의 실체로서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만일 이러한 존재가 이 땅에 있다면, 재림주는 그런 존재를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존재를 찾아오시는 목적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남긴 사명, 육적으로 완결지어야 할 사명을 위하여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6천년 전부터 하나님께서 소망하신 영육을 중심삼은 그 뜻을 이루시고자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뜻을 조건삼고 본보기될 수 있는 숨은 존재가 이 땅 위에 나타나게 될 때, 어떠한 존재라도 그를 소망의 존재로, 믿음의 존재로, 사랑의 존재로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을 중심하여 통일의 이념이 이룩된 하나의 세계는 소망을 지나고 믿음도 지난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에게는 사랑을 중심한 자신의 생활에 천상천하가 화답할 수 있는 날을 이루어야 할 중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재림주의 실천적인 발판
아무리 재림주가 이 땅 위에 오신다 할지라도 인간의 실천적인 발판이 없으면 안 됩니다. 아무리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한 존재라 할지라도 인간, 바로 여러분의 발판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대한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여러분 한 개체는 24억 인류를 대신하고, 지금까지 천상에 있는 억조의 선조들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내 한 개체는 하늘 땅의 모든 존재물이 소망하는 존재라는 것이며, 온 하늘 땅은 내 한 개체가 믿음의 개체, 사랑의 실증적인 개체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그런 마음을 느껴가지고 먹거나 굶거나, 사나 죽으나 그 일상생활에 있어서 전체의 중심을 증거하고 보호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연만물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이러한 역사까지 여러분들이 해야겠습니다. 이러한 중대한 책임을 오늘날 여러분들이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과거 신앙생활을 헤아려 보게 될 때, 소망을 이루었다 할 수 있는 증거적 개체가 되어 있느냐? 믿음을 이루었다 할 수 있는 증거적 자체, 사랑을 이루었다 할 수 있는 증거적 자체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이, 예수그리스도의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여러분에게서 하나님의 소망으로, 하나님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체휼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존재가 된다면, 여러분이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의 소망을 나눠 줄 수 있고,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의 믿음을 나눠 줄 수 있으며,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나눠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그렇게 해야 오시는 재림주를 땅 위에서 하나님대신 모실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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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통일하려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뜻을 이루자
1956.06.06 (수), 한국 전본부교회
오늘 드리려 하는 말씀의 제목은 '통일하려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뜻을 이루자' 입니다. 이러한 제목으로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말씀은 여러분들이 자신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으로 잘 알고 있고 잘 외우고 있으며, 잘 살기 위한 생활의 중심으로 여기고 있는 말씀입니다.
선지자들을 세워 섭리하신 하나님의 소망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역사노정을 거치면서 복귀섭리는 거듭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의 뜻을 중심삼고 하나의 사랑에 화합하여 살고, 온 하늘 땅이 하나님의 사랑을 즐거워하면서 그 사랑을 실제 생명의 중심으로 세운 가운데 전부가 하나되어 사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본연의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남아지게 되었습니다. 즉, 인간과 관계를 맺어야 할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과 관계맺지 못하고 인간에게서 떠나게 되었고, 온 피조세계에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세우시려는 그 사랑을 중심삼고 온 만물을 규합하여 하나님과 만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그 한 날을 소망하시면서 지금까지 6천년 역사를 경과해 나오고 계십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온 피조만상이 하나로 통일되지 못한 채 그 하나님의 이념은 이념대로 남아 있고 찾아야 할 소망의 사랑도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뜻을 기필코 이루기 위하여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 타락 이후 지금까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고, 인간을 대하여 믿을 수 있는 마음과 사랑할 수 있는 하나의 마음을 찾기 위하여 오랜 동안 섭리해 오셨으나 아직까지 그것 들을 이루지 못하고 찾지 못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의 섭리역사를 회고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한 사람을 세워 인간에 대한 소망과 인간에 대한 이상과 인간에 대한 사랑의 변치않는 기준을 세우고자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날이 와야만, 그런 사랑의 중심이 세워지는 날이 와야만, 하나님과 인간과 관계가 맺어질 수 있게 되고, 그 맺어진 관계의 토대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이상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에 아브라함을 택해 세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사랑의 중심을 세우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그 이후 예수님 시대에 이르기까지 하늘의 사랑의 뜻을 세우기 위한 발판을 닦아 나오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까지의 4천년 역사는 전체 섭리의 뜻 앞에 있어서 하나님의 소망과 믿음과 사랑을 이룬 하나의 실증적인 존재를 세워야 하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러한 존재를 세우지 못하면 하나님의 소망과 믿음과 사랑은 각기 따로 분리되어 어느 한 시기에도 통일을 볼 수 없는 역사로 점철되겠기에, 하나님께서는 먼저 소망의 터전을 닦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터전 위에 믿음의 터전을 닦고, 그 믿음의 터전 위에 사랑의 터전을 닦으시려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이 모든 것을 결실한 하나의 화신체, 즉 전체의 소망의 실증적 자체, 전체의 믿음의 실증적 자체, 전체의 사랑의 실증적 자체를 하늘 땅 앞에 내세울 수 있는 한날을 맞이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러한 한 날을 맞이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의 이념은 이 땅 위에 성취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한 날을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모세를 거쳐 세례 요한에 이르기까지 4천년 섭리역사를 3단계로 나누어 소망의 터전을 닦으면서 수고해 나오셨던 것입니다. 그러한 소망의 토대 위에 하나의 실체로 나타나신 분이 누구였느냐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소망하신 하나의 실체로 나타나신 존재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소망을 두고 섭리해 오신 총 결실체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와 같은 결실체로 이 땅 위에 오셔서 뿌려놓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신의의 노정으로 세워진 신약의 복음, 즉 믿음의 복음이었습니다. 그후 이 믿음의 복음을 중심삼고 오늘날까지 2천년 역사가 경과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믿음의 복음이 결실된 터전 위에 하늘 땅을 대신하고 절대 사랑의 실체로 나타나는 하나의 존재가 누구냐 하면 그가 바로 오시게 될 재림주이심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재림시대에 무엇을 하려고 하시는가? 오시는 재림주를 중심삼고 이제까지 닦아온 믿음의 토대 위에 하나의 생명의 씨를 뿌려 가지고 결실케 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6천년 섭리역사의 목적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성약시대의 중심 요소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을 자신들의 소망의 주인공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믿음의 주인공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또 우리들의 사랑의 주인공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소망과 믿음과 사랑의 주인공으로 계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역사과정에서 소망을 대신한 구약시대, 믿음을 대신한 신약시대를 거치게 하셨으니 앞으로는 사랑을 대신한 성약시대를 거쳐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러한 성약시대, 즉 재림시대에 있어서 영원 불변의 하나의 중심 요소로 남아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것은 전체의 중심 요소인 동시에 전체의 이상의 요소도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인간들은 이 사랑을 인해 소망의 섭리노정과 믿음의 섭리노정을 거쳐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랑의 섭리노정을 여러분 한 자체들이 걷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사랑을 중심삼고 이루어야 할 통일의 발판은 붕괴되고 만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소망의 터전 위에 믿음의 중심으로 나타나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위에 믿음을 세우기 위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일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그 당시 인간들이 믿음의 실체로 받들었다면, 즉 예수를 하나님의 4천년 섭리역사의 소망의 결실체, 영원무궁한 신앙노정에 있어서의 믿음의 중심존재 또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통합시킬 수 있는 하나의 실체로서 알고 모셨다면, 그 당시의 인간들은 예수님 한 분으로 말미암아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소망을 가질 수 있었고,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믿음을 가질 수 있었고,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본연의 사랑을 체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민족의 불신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우리는 신앙노정에서 영적인 소망의 실체만을 완성하게 되고, 영적인 믿음의 실체만을 완성하게 되고, 영적인 사랑의 실체만을 완성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의 승리의 기준은 무엇인가? 천상천하의 어떤 존재물이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사랑의 화신으로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가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뜻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4천년간 수고를 수반한 소망의 존재요, 만물의 주인공으로 오셔서 하나님과 일체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원래 인간 조상이 하나님과 일체되기를 바랐던 것이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깨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이념과 하나되어 영육 아우른 믿음의 실체로 나타나야 할 것이었으나 영적인 면에서만 완결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이제 예수님께서 남기고 가신 그 유업을 계승해서 이루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일신이 영 육을 쓴 하나의 소망의 실체가 된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그러한 사람이 되어 그를 대신할 수 있어야겠고, 또 예수님이 믿음의 실체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그러한 사람이 되어 그를 대신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또 사랑을 중심한 하나의 실체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서 가지고 예수의 소망과 믿음과 사랑을 대신하고 나아가 성신의 소망의 실체로서, 성신의 믿음의 실체로서, 성신의 사랑의 실체로서 그 사명을 대신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예수가 왔다 가신 이후, 오늘날 이 땅 위의 인간들이 아버지 앞에 이루어드려야 할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 사명을 완수하게 될 때 예수의 소망의 종결, 성신의 소망의 종결을 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 예수의 믿음과 성신의 믿음, 예수의 사랑과 성신의 사랑의 종결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그 모든 것을 종결할 수 있는 그 날을 이루어야 이 땅 위에 재림주님이 나타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믿음, 소망, 사랑의 실체가 되어야 할 인간
하나님의 소망은 하나님 자체의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소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믿음도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믿음이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도 하나님 자신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사랑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그러한 하나님의 소망을 대신하고 믿음을 대신하고 사랑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그러한 인간 한 자체를 전체의 소망, 전체의 믿음, 전체의 사랑을 대신한 존재로서 하나님께서 만물만상 앞에 자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한 자체를 이 모든 만물이 바라는 소망의 중심체라고 자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온 피조만물, 즉 하늘 땅에 있는 어떤 존재물이든지 믿고 살 수 있는 주인공으로 자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가 사랑할 수 있는 하나의 사모의 중심체로 자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한 중보적인 화신으로 나타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과 믿음과 사랑을 받아 이 땅 위에 어떠한 악한 사람 앞에도 하나의 소망의 실증체, 믿음의 실증체, 사랑의 실증체로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존재가 되지 않으면 그 어디에 가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의 기준, 믿음의 기준, 사랑의 기준을 탕감하는 조건을 성립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이 사탄세계 앞에 하나님의 소망, 하나님의 믿음,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보답하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부분적인 소망에 대해 보답할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분적인 믿음에 대해 보답할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분적인 사랑에 대해 보답할 것이 아니라 전체에 대해 보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들은 지금까지 그 하나의 기준을 이 땅 위에 찾아 세우고 보답하고자 했지만 전체를 보답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 제자를 통하여 그러한 과정형을 나타내고자 하셨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믿음의 결실체로서 나타난 사람은 누구였던가? 이는 베드로였습니다. 또 소망의 결실체로서 나타난 사람은 누구였던가? 이는 야고보 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결실체로서 나타난 사람은 누구였던가? 이는 요한이 었습니다.
이 세 사람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한 부분부분을 책임맡아 가지고 하나 되어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내가 소망의 결실을 양보받을 수 있고 믿음의 결실을 양보받을 수 있고 사랑의 결실을 양보받을 수 있게 되었고, 또 섭리역사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흘러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 사람이 화합하여 하나의 완성체로 완결지어야 할 것이 최후의 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이 땅 위에 남기신 최후의 가르침이었 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들이 최후의 완성자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대신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세 제자를 뿌리로 한 하나의 불변의 실체로서 서지 않으면, 세 제자를 세워놓고 가셨던 신랑되신 예수님 앞에 나설 수 없게 됩니다. 이걸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우리들은 내 한 자체에서 베드로를 세우셨던 그 믿음의 소망을 이루어 드려야 하겠습니다. 야고보를 세우셨던 소망의 열매를 내 한자체에서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요한을 세우셨던 그 사랑의 열매를 내 한 자체에서 거두어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여러분이 된다면. 즉 여러분이 끝날의 예수 앞에 설 수 있는 하나의 신부가 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안타까와하셨던 소망의 뜻이 자기 한 자체에서 결실되는 기쁨을 느끼게 되어 아버지 앞에 감사를 돌리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6천년 동안 바라고 나온 그 믿음의 소망이 예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이루어졌다는, 온 만상을 대신하여 이루어졌다는 그 기쁨의 사실을 나타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기뻐하고 사랑하는 가운데 그 사랑의 기쁨을 느끼고 아버지 앞에 감사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이 일이 오늘날 여러분에게 역사적인 책임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섭리가 요구하는 것
그러면 여러분 한 자체가 '아바 아버지여'라고 부르면서 소망의 결실을 갖추어야 할 때, 믿음의 결실을 갖추어야 할 때, 사랑의 결실을 갖추어야 할 때가 되었는데 이제 여러분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소망을 품고 애달퍼하시던 그 애달픔을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6천년 동안 믿음을 세우기 위해서 수고하시던 그 수고를 느낄 줄 알아야 되겠고, 6천년 동안 하나님께서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희생의 노정을 거듭해 나오신 그 사실을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 일신에 있어서 하나님의 4천년 소망의 결실을 대신한 실천적인 노정을 세운 것이 믿음의 섭리역사였고, 그 믿음을 대신한 실천적인 노정으로 세워진 것이 뭐냐 하면 신령역사였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사랑을 대신한 실천적인 노정을 보여 준 것이 뭐냐하면 통일의 역사였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소망으로써 섭리의 길을 세웠고, 신령으로써 거기에 씨를 심어 번식시켰고, 그 번식한 자체들을 통합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 예수의 사랑, 성신의 사랑을 실현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소망이 하나님의 소망으로 변화하는 시대가 재림시대요, 예수의 믿음이 하나님의 믿음으로 변화하는 시대가 재림시대요, 예수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뿌려지는 시대가 재림시대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의 소망의 결실, 예수의 믿음의 결실, 예수의 사랑의 결실이 여러분 자체에서 맺혀지지 않았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또 다시 하나님의 새로운 소망의 중심을 찾아세워야 되고 하나님의 새로운 믿음의 중심을 찾아야 되고, 하나님의 사랑의 중심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부여된 과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들을 찾기 위해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여러분 한 자체가 예수의 소망을 이루고, 성신의 소망을 계승하고, 예수와 성신의 믿음을 계승하고, 예수와 성신의 사랑을 계승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여, 성신의 수고하심을 알았나이다. 성신의 소망을 알았나이다. 성신의 믿고 나오는 역사를 알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알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알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았나이다.'라고 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아버지 앞에 나설 수 있는 그 하나의 존재가 오늘날 이 땅 위에 나타나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하나의 존재는 어떠한 존재인가? 그 하나의 존재가 지닌 소망은 그리스도의 소망이요, 믿음은 그리스도의 믿음이요,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의 존재가 이것들을 하나님적인 소망과 하나님적인 믿음과 하나님적인 사랑으로 종결시킬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으로서 남아진 그 목적을 종결지어 뜻을 세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하나의 존재는 하나님 대신 예수 그리스도가 기도하던 역사,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까지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하던 그러한 역사를 넘어서야 되고 나아가 영육을 갖춘 완성체로서 하늘 앞에 나설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그런 존재가 나와 하늘의 기쁨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체휼하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될 수 있습니다. 그런 위치까지 나아가야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해 세우신 그리스도의 심정, 또 그리스도 이후 2천년 동안 수고하여 세우려 하신 재림주의 심정까지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적인 완성의 입장을 넘어 육적으로 완결지어야 할 소망의 실체를 완결짓지 못했고 믿음의 실체를 완결짓지 못했고 또 사랑의 실체를 완결짓지 못했기 때문에, 그 실체를 완결지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재림주는 믿음, 소망, 사랑의 대표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중심으로 하여 오실 바의 재림주를 세워 놓고, 하나님과 연락할 수 있는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이 일을 위하여 어떻게 해야 되는가? 실증적인 소망의 실체로 나타나야 되겠고, 믿음의 실체로 나타나야 되겠고, 사랑의 실체로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의 토대 위에 재림주가 오신다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워놓고 소망하시던 그 소망이 여러분 자체들로 말미암아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재림주는 내 전체의 소망으로 나타나고 내 전체의 믿음으로 나타나고 내 전체의 사랑으로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림주가 그와 같이 사랑으로, 소망으로, 믿음으로 나타나게 될 때에 여러분은 여러분 일신에서 즐거워만 할 것이 아닙니다. 그 즐거움, 소망의 기쁨이 그분으로 말미암았으니 그분에게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믿음의 실체로 선 그 사실에 대해 감사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에 온 하늘 땅이 여러분에게 화답하고 여러분을 사랑의 실체로서 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온 하늘 땅이 움직이는 느낌을 여러분은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느낌 가운데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해 소망 하시던 것을, 소망을 대신한 실천의 노정을 통해 개척해야 되겠습니다. 또 믿음을 대신한 심령적인 역사를 개척하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나아가 사랑을 대신한 모심의 생활을 실천하고 통일의 역사를 이루어, 모든 만민이 영광으로 모셔드릴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후의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실천적인 소망, 심령적인 믿음, 심령적인 사랑을 다 갖추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들은 주를 모시고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 하나님을 모시고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내 한 자체는 하늘의 기쁨으로 충일되고, 땅 위의 만물 앞에 기쁨으로 충일되고, 땅 위의 인간 앞에 기쁨으로 충일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하나의 기쁨을 온 세계가 동일하게 느끼면서 영원히 살수 있는 시대를 여러분들이 건설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있는 곳곳마다 거기는 하나님의 소망의 실천적인 터가 되고, 믿음의 실천적인 터가 되고, 사랑의 화신적인 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소망하던 뜻을 지상에서 이루어 가지고, 하나님이 예수를 통하여 이루시려던 소망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져 가지고 땅위의 만물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기쁨이 인간을 통하고 만물에까지 연결되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이 바라던 통일의 역사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소망의 존재로 서기 위해서는 먼저 천상천하의 모든 만물을 대신하여 소망의 결실체로서 즐거워하였는가 자문자답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또 여러분은 지금까지 지상의 수많은 인간들이 하늘을 믿고 나온 그 믿음의 전체를 대신하여 즐거워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는가, 나아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사랑 하는 그 사랑의 감을 느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는가를 반문해 보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의 완결체로 오시는 하나의 존재가 누구냐 하면 바로 재림주입니다. 즉 그 재림주는 전체의 소망, 전체의 믿음, 전체의 사랑을 대표해서 나타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나타나게 될때, 여러분은 그를 모실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그의 소망과 그의 신령적인 믿음과 그의 사랑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럴 때에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아니 갈래야 아니갈 수 없고, 아니 행할래야 아니 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오늘날 이 땅의 타락권내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의 감정을 초월한 소망의 화신으로서, 믿음의 실체로서, 사랑의 실체로서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만일 이러한 존재가 이 땅에 있다면, 재림주는 그런 존재를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존재를 찾아오시는 목적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남긴 사명, 육적으로 완결지어야 할 사명을 위하여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6천년 전부터 하나님께서 소망하신 영육을 중심삼은 그 뜻을 이루시고자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뜻을 조건삼고 본보기될 수 있는 숨은 존재가 이 땅 위에 나타나게 될 때, 어떠한 존재라도 그를 소망의 존재로, 믿음의 존재로, 사랑의 존재로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을 중심하여 통일의 이념이 이룩된 하나의 세계는 소망을 지나고 믿음도 지난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에게는 사랑을 중심한 자신의 생활에 천상천하가 화답할 수 있는 날을 이루어야 할 중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재림주의 실천적인 발판
아무리 재림주가 이 땅 위에 오신다 할지라도 인간의 실천적인 발판이 없으면 안 됩니다. 아무리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한 존재라 할지라도 인간, 바로 여러분의 발판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대한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여러분 한 개체는 24억 인류를 대신하고, 지금까지 천상에 있는 억조의 선조들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내 한 개체는 하늘 땅의 모든 존재물이 소망하는 존재라는 것이며, 온 하늘 땅은 내 한 개체가 믿음의 개체, 사랑의 실증적인 개체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그런 마음을 느껴가지고 먹거나 굶거나, 사나 죽으나 그 일상생활에 있어서 전체의 중심을 증거하고 보호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연만물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이러한 역사까지 여러분들이 해야겠습니다. 이러한 중대한 책임을 오늘날 여러분들이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과거 신앙생활을 헤아려 보게 될 때, 소망을 이루었다 할 수 있는 증거적 개체가 되어 있느냐? 믿음을 이루었다 할 수 있는 증거적 자체, 사랑을 이루었다 할 수 있는 증거적 자체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이, 예수그리스도의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여러분에게서 하나님의 소망으로, 하나님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체휼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남아진 하나님의 소망을, 남아진 하나님의 믿음을, 남아진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느낌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은사를 입고 있는 사람입니다. 또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소망을 안 나타낼래야 안 나타낼 수 없고, 하나님의 믿음을 안 나타낼래야 안 나타낼 수 없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안 나타낼래야 안 나타낼 수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존재가 된다면, 여러분이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의 소망을 나눠 줄 수 있고,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의 믿음을 나눠 줄 수 있으며,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나눠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그렇게 해야 오시는 재림주를 땅 위에서 하나님대신 모실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말씀선집 제1권 6편
통일하려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뜻을 이루자(훈독본)
1956.06.06 (수), 한국 전본부교회
* 성경 봉독은 녹음되어 있지 않아서 성경 구절을 밝히지 못했음.
말씀선집, 통일하려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뜻을 이루자1.mp3
오늘 드리려 하는 말씀의 제목은 '통일하려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뜻을 이루자' 입니다.
이 말씀은 여러분들이 자신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으로 잘 알고 있고 잘 외우고 있으며, 잘 살기 위한 생활의 중심으로 여기고 있는 말씀입니다.
선지자들을 세워 섭리하신 하나님의
소망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역사노정을 거치면서 복귀섭리는 거듭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의 뜻을 중심삼고 하나의 사랑에
화합하여 살고, 온 하늘 땅이 하나님의 사랑을 즐거워하면서 그 사랑을 실제 생명의 중심으로 세운 가운데 전부가 하나되어 사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본연의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남아지게 되었습니다. 즉, 인간과 관계를
맺어야 할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과 관계맺지 못하고 인간에게서 떠나게 되었고, 온 피조세계에서 떠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늘의 섭리역사를 회고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한 사람을 세워 인간에 대한 소망과 인간에 대한 이상과 인간에 대한 사랑의 변치않는 기준을 세우고자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날이 와야만, 그런 사랑의 중심이 세워지는 날이 와야만, 하나님과 인간과 관계가 맺어질 수 있게
되고, 그 맺어진 관계의 토대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이상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에 아브라함을 택해 세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사랑의 중심을 세우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그 이후 예수님 시대에 이르기까지 하늘의 사랑의 뜻을 세우기 위한 발판을 닦아 나오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까지의 4천년
역사는 전체 섭리의 뜻 앞에 있어서 하나님의 소망과 믿음과 사랑을 이룬 하나의 실증적인 존재를 세워야 하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러한 존재를 세우지
못하면 하나님의 소망과 믿음과 사랑은 각기 따로 분리되어 어느 한 시기에도 통일을 볼 수 없는 역사로 점철되겠기에, 하나님께서는 먼저 소망의
터전을 닦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터전 위에 믿음의 터전을 닦고, 그 믿음의 터전 위에 사랑의 터전을 닦으시려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이 모든 것을 결실한 하나의 화신체, 즉 전체의 소망의 실증적 자체, 전체의 믿음의 실증적 자체, 전체의 사랑의 실증적 자체를 하늘 땅 앞에
내세울 수 있는 한날을 맞이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러한 한 날을 맞이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의 이념은 이 땅
위에 성취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한 날을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모세를 거쳐 세례 요한에 이르기까지 4천년 섭리역사를 3단계로 나누어 소망의 터전을 닦으면서 수고해
나오셨던 것입니다. 그러한 소망의 토대 위에 하나의 실체로 나타나신 분이 누구였느냐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소망하신 하나의 실체로 나타나신 존재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소망을 두고 섭리해 오신 총 결실체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와 같은
결실체로 이 땅 위에 오셔서 뿌려놓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신의의 노정으로 세워진 신약의 복음, 즉 믿음의 복음이었습니다. 그후 이
믿음의 복음을 중심삼고 오늘날까지 2천년 역사가 경과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믿음의 복음이 결실된
터전 위에 하늘 땅을 대신하고 절대 사랑의 실체로 나타나는 하나의 존재가 누구냐 하면 그가 바로 오시게 될 재림주이심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재림시대에 무엇을 하려고 하시는가? 오시는 재림주를 중심삼고 이제까지 닦아온 믿음의 토대 위에 하나의 생명의 씨를
뿌려 가지고 결실케 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6천년 섭리역사의 목적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성약시대의 중심
요소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을 자신들의 소망의 주인공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믿음의 주인공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또 우리들의 사랑의 주인공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소망과 믿음과 사랑의 주인공으로 계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역사과정에서 소망을 대신한 구약시대, 믿음을 대신한 신약시대를 거치게 하셨으니 앞으로는 사랑을 대신한 성약시대를 거쳐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러한 성약시대, 즉
재림시대에 있어서 영원 불변의 하나의 중심 요소로 남아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것은 전체의 중심 요소인
동시에 전체의 이상의 요소도 되는 것입니다.
소망의 터전 위에 믿음의 중심으로
나타나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위에 믿음을 세우기 위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일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그 당시 인간들이 믿음의 실체로
받들었다면, 즉 예수를 하나님의 4천년 섭리역사의 소망의 결실체, 영원무궁한 신앙노정에 있어서의 믿음의 중심존재 또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통합시킬 수 있는 하나의 실체로서 알고 모셨다면, 그 당시의 인간들은 예수님 한 분으로 말미암아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소망을 가질 수
있었고,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믿음을 가질 수 있었고,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본연의 사랑을 체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의 승리의
기준은 무엇인가? 천상천하의 어떤 존재물이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사랑의 화신으로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가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뜻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4천년간
수고를 수반한 소망의 존재요, 만물의 주인공으로 오셔서 하나님과 일체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원래 인간 조상이 하나님과 일체되기를 바랐던 것이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깨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이념과 하나되어 영육 아우른 믿음의 실체로 나타나야 할
것이었으나 영적인 면에서만 완결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이제
예수님께서 남기고 가신 그 유업을 계승해서 이루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일신이 영 육을 쓴 하나의 소망의 실체가 된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그러한 사람이 되어 그를 대신할 수 있어야겠고, 또 예수님이 믿음의 실체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그러한 사람이 되어 그를 대신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또 사랑을 중심한 하나의 실체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서 가지고
예수의 소망과 믿음과 사랑을 대신하고 나아가 성신의 소망의 실체로서, 성신의 믿음의 실체로서, 성신의 사랑의 실체로서 그 사명을 대신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예수가 왔다 가신 이후,
오늘날 이 땅 위의 인간들이 아버지 앞에 이루어드려야 할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 사명을 완수하게 될 때 예수의 소망의 종결,
성신의 소망의 종결을 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 예수의 믿음과 성신의 믿음, 예수의 사랑과 성신의 사랑의 종결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그 모든 것을 종결할 수 있는 그 날을 이루어야 이 땅 위에 재림주님이 나타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믿음, 소망, 사랑의 실체가 되어야 할
인간
하나님의 소망은 하나님 자체의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소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믿음도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믿음이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도 하나님 자신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사랑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그러한 하나님의 소망을 대신하고 믿음을 대신하고 사랑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그러한 인간 한 자체를 전체의 소망, 전체의 믿음, 전체의 사랑을 대신한 존재로서 하나님께서 만물만상 앞에 자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한 중보적인 화신으로 나타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과 믿음과 사랑을 받아 이 땅 위에 어떠한 악한 사람
앞에도 하나의 소망의 실증체, 믿음의 실증체, 사랑의 실증체로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부분적인
소망에 대해 보답할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분적인 믿음에 대해 보답할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분적인 사랑에 대해 보답할 것이
아니라 전체에 대해 보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들은 지금까지 그 하나의 기준을 이 땅 위에 찾아 세우고 보답하고자 했지만 전체를 보답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 제자를 통하여 그러한 과정형을 나타내고자 하셨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믿음의 결실체로서 나타난
사람은 누구였던가? 이는 베드로였습니다. 또 소망의 결실체로서 나타난 사람은 누구였던가? 이는 야고보 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결실체로서
나타난 사람은 누구였던가? 이는 요한이 었습니다.
이 세 사람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한
부분부분을 책임맡아 가지고 하나 되어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내가 소망의 결실을 양보받을 수 있고 믿음의 결실을 양보받을 수 있고 사랑의
결실을 양보받을 수 있게 되었고, 또 섭리역사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흘러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 사람이 화합하여 하나의 완성체로
완결지어야 할 것이 최후의 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이 땅 위에 남기신 최후의 가르침이었 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들이 최후의
완성자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대신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세 제자를 뿌리로 한 하나의 불변의 실체로서 서지
않으면, 세 제자를 세워놓고 가셨던 신랑되신 예수님 앞에 나설 수 없게 됩니다. 이걸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우리들은 내 한 자체에서 베드로를
세우셨던 그 믿음의 소망을 이루어 드려야 하겠습니다. 야고보를 세우셨던 소망의 열매를 내 한자체에서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요한을 세우셨던 그
사랑의 열매를 내 한 자체에서 거두어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여러분이 된다면. 즉
여러분이 끝날의 예수 앞에 설 수 있는 하나의 신부가 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안타까와하셨던 소망의 뜻이 자기 한 자체에서
결실되는 기쁨을 느끼게 되어 아버지 앞에 감사를 돌리게 될 것입니다.
섭리가 요구하는
것
그러면 여러분 한 자체가 '아바 아버지여'라고 부르면서 소망의 결실을 갖추어야 할 때, 믿음의 결실을 갖추어야 할 때, 사랑의 결실을 갖추어야 할 때가 되었는데 이제 여러분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소망을 품고 애달퍼하시던 그 애달픔을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6천년 동안 믿음을 세우기 위해서 수고하시던 그 수고를 느낄 줄 알아야 되겠고, 6천년 동안 하나님께서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희생의 노정을 거듭해 나오신 그 사실을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 일신에 있어서 하나님의
4천년 소망의 결실을 대신한 실천적인 노정을 세운 것이 믿음의 섭리역사였고, 그 믿음을 대신한 실천적인 노정으로 세워진 것이 뭐냐 하면
신령역사였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사랑을 대신한 실천적인 노정을 보여 준 것이 뭐냐하면 통일의 역사였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소망으로써
섭리의 길을 세웠고, 신령으로써 거기에 씨를 심어 번식시켰고, 그 번식한 자체들을 통합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 예수의 사랑, 성신의 사랑을 실현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소망이 하나님의 소망으로 변화하는 시대가 재림시대요, 예수의 믿음이
하나님의 믿음으로 변화하는 시대가 재림시대요, 예수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뿌려지는 시대가 재림시대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의 소망의 결실, 예수의 믿음의
결실, 예수의 사랑의 결실이 여러분 자체에서 맺혀지지 않았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또 다시 하나님의 새로운 소망의 중심을 찾아세워야 되고 하나님의
새로운 믿음의 중심을 찾아야 되고, 하나님의 사랑의 중심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부여된 과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들을 찾기 위해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여러분 한 자체가 예수의 소망을 이루고, 성신의 소망을 계승하고, 예수와 성신의 믿음을 계승하고, 예수와 성신의
사랑을 계승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여, 성신의 수고하심을 알았나이다. 성신의 소망을 알았나이다. 성신의 믿고 나오는 역사를
알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알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알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았나이다.'라고 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아버지 앞에 나설 수 있는 그 하나의 존재가 오늘날 이 땅 위에 나타나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하나의 존재는 어떠한
존재인가? 그 하나의 존재가 지닌 소망은 그리스도의 소망이요, 믿음은 그리스도의 믿음이요,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의
존재가 이것들을 하나님적인 소망과 하나님적인 믿음과 하나님적인 사랑으로 종결시킬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으로서 남아진 그
목적을 종결지어 뜻을 세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하나의 존재는 하나님 대신 예수 그리스도가 기도하던 역사,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까지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하던 그러한 역사를 넘어서야 되고 나아가 영육을 갖춘 완성체로서 하늘 앞에 나설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그런
존재가 나와 하늘의 기쁨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체휼하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될 수 있습니다. 그런 위치까지 나아가야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해 세우신 그리스도의 심정, 또 그리스도 이후 2천년 동안 수고하여 세우려 하신 재림주의 심정까지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적인 완성의 입장을 넘어 육적으로 완결지어야 할 소망의 실체를 완결짓지 못했고 믿음의
실체를 완결짓지 못했고 또 사랑의 실체를 완결짓지 못했기 때문에, 그 실체를 완결지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재림주는 믿음, 소망, 사랑의
대표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중심으로 하여 오실 바의 재림주를 세워 놓고, 하나님과 연락할 수 있는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이 일을
위하여 어떻게 해야 되는가? 실증적인 소망의 실체로 나타나야 되겠고, 믿음의 실체로 나타나야 되겠고, 사랑의 실체로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의 토대 위에 재림주가 오신다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워놓고 소망하시던 그 소망이 여러분 자체들로 말미암아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재림주는 내 전체의 소망으로 나타나고 내 전체의 믿음으로 나타나고 내 전체의 사랑으로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림주가 그와 같이
사랑으로, 소망으로, 믿음으로 나타나게 될 때에 여러분은 여러분 일신에서 즐거워만 할 것이 아닙니다. 그 즐거움, 소망의 기쁨이 그분으로
말미암았으니 그분에게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믿음의 실체로 선 그 사실에 대해 감사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에 온 하늘 땅이 여러분에게
화답하고 여러분을 사랑의 실체로서 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온 하늘 땅이 움직이는 느낌을 여러분은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느낌 가운데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해 소망 하시던 것을, 소망을 대신한 실천의 노정을 통해 개척해야 되겠습니다. 또 믿음을 대신한 심령적인 역사를
개척하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나아가 사랑을 대신한 모심의 생활을 실천하고 통일의 역사를 이루어, 모든 만민이 영광으로 모셔드릴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후의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실천적인 소망, 심령적인 믿음, 심령적인 사랑을 다 갖추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들은 주를 모시고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 하나님을 모시고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내 한 자체는
하늘의 기쁨으로 충일되고, 땅 위의 만물 앞에 기쁨으로 충일되고, 땅 위의 인간 앞에 기쁨으로 충일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하나의 기쁨을 온
세계가 동일하게 느끼면서 영원히 살수 있는 시대를 여러분들이 건설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있는 곳곳마다
거기는 하나님의 소망의 실천적인 터가 되고, 믿음의 실천적인 터가 되고, 사랑의 화신적인 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소망하던
뜻을 지상에서 이루어 가지고, 하나님이 예수를 통하여 이루시려던 소망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져 가지고 땅위의 만물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기쁨이 인간을 통하고 만물에까지 연결되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이 바라던 통일의 역사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소망의 존재로 서기 위해서는 먼저 천상천하의 모든 만물을 대신하여 소망의 결실체로서 즐거워하였는가 자문자답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또 여러분은 지금까지 지상의 수많은 인간들이 하늘을 믿고 나온 그 믿음의 전체를 대신하여 즐거워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는가,
나아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사랑 하는 그 사랑의 감을 느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는가를 반문해 보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의 완결체로
오시는 하나의 존재가 누구냐 하면 바로 재림주입니다. 즉 그 재림주는 전체의 소망, 전체의 믿음, 전체의 사랑을 대표해서 나타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나타나게 될때, 여러분은 그를 모실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그의 소망과 그의 신령적인 믿음과 그의 사랑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럴 때에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아니 갈래야 아니갈 수 없고, 아니 행할래야 아니 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오늘날 이 땅의 타락권내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의 감정을 초월한 소망의 화신으로서, 믿음의 실체로서, 사랑의 실체로서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만일 이러한 존재가 이 땅에 있다면, 재림주는 그런 존재를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존재를 찾아오시는
목적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남긴 사명, 육적으로 완결지어야 할 사명을 위하여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6천년 전부터 하나님께서 소망하신
영육을 중심삼은 그 뜻을 이루시고자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뜻을 조건삼고
본보기될 수 있는 숨은 존재가 이 땅 위에 나타나게 될 때, 어떠한 존재라도 그를 소망의 존재로, 믿음의 존재로, 사랑의 존재로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을 중심하여 통일의 이념이 이룩된 하나의 세계는 소망을 지나고 믿음도 지난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에게는 사랑을 중심한
자신의 생활에 천상천하가 화답할 수 있는 날을 이루어야 할 중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재림주의 실천적인
발판
아무리 재림주가 이 땅 위에 오신다 할지라도 인간의 실천적인 발판이 없으면 안 됩니다. 아무리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한 존재라 할지라도 인간, 바로 여러분의 발판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대한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여러분 한 개체는 24억 인류를 대신하고, 지금까지 천상에 있는 억조의 선조들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내 한 개체는 하늘 땅의 모든 존재물이 소망하는 존재라는 것이며, 온 하늘 땅은 내 한 개체가 믿음의 개체, 사랑의 실증적인 개체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그런 마음을
느껴가지고 먹거나 굶거나, 사나 죽으나 그 일상생활에 있어서 전체의 중심을 증거하고 보호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연만물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이러한 역사까지 여러분들이 해야겠습니다. 이러한 중대한 책임을 오늘날 여러분들이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과거 신앙생활을
헤아려 보게 될 때, 소망을 이루었다 할 수 있는 증거적 개체가 되어 있느냐? 믿음을 이루었다 할 수 있는 증거적 자체, 사랑을 이루었다 할 수
있는 증거적 자체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이, 예수그리스도의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여러분에게서 하나님의 소망으로, 하나님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체휼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존재가 된다면, 여러분이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의 소망을 나눠 줄 수 있고,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의 믿음을 나눠 줄 수 있으며,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나눠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그렇게 해야 오시는 재림주를 땅 위에서 하나님대신 모실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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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통일하려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뜻을 이루자
1956.06.06 (수), 한국 전본부교회
오늘 드리려 하는 말씀의 제목은 '통일하려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뜻을 이루자' 입니다. 이러한 제목으로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말씀은 여러분들이 자신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으로 잘 알고 있고 잘 외우고 있으며, 잘 살기 위한 생활의 중심으로 여기고 있는 말씀입니다.
선지자들을 세워 섭리하신 하나님의 소망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역사노정을 거치면서 복귀섭리는 거듭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의 뜻을 중심삼고 하나의 사랑에 화합하여 살고, 온 하늘 땅이 하나님의 사랑을 즐거워하면서 그 사랑을 실제 생명의 중심으로 세운 가운데 전부가 하나되어 사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본연의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남아지게 되었습니다. 즉, 인간과 관계를 맺어야 할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과 관계맺지 못하고 인간에게서 떠나게 되었고, 온 피조세계에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세우시려는 그 사랑을 중심삼고 온 만물을 규합하여 하나님과 만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그 한 날을 소망하시면서 지금까지 6천년 역사를 경과해 나오고 계십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온 피조만상이 하나로 통일되지 못한 채 그 하나님의 이념은 이념대로 남아 있고 찾아야 할 소망의 사랑도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뜻을 기필코 이루기 위하여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 타락 이후 지금까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고, 인간을 대하여 믿을 수 있는 마음과 사랑할 수 있는 하나의 마음을 찾기 위하여 오랜 동안 섭리해 오셨으나 아직까지 그것 들을 이루지 못하고 찾지 못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의 섭리역사를 회고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한 사람을 세워 인간에 대한 소망과 인간에 대한 이상과 인간에 대한 사랑의 변치않는 기준을 세우고자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날이 와야만, 그런 사랑의 중심이 세워지는 날이 와야만, 하나님과 인간과 관계가 맺어질 수 있게 되고, 그 맺어진 관계의 토대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이상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에 아브라함을 택해 세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사랑의 중심을 세우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그 이후 예수님 시대에 이르기까지 하늘의 사랑의 뜻을 세우기 위한 발판을 닦아 나오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까지의 4천년 역사는 전체 섭리의 뜻 앞에 있어서 하나님의 소망과 믿음과 사랑을 이룬 하나의 실증적인 존재를 세워야 하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러한 존재를 세우지 못하면 하나님의 소망과 믿음과 사랑은 각기 따로 분리되어 어느 한 시기에도 통일을 볼 수 없는 역사로 점철되겠기에, 하나님께서는 먼저 소망의 터전을 닦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터전 위에 믿음의 터전을 닦고, 그 믿음의 터전 위에 사랑의 터전을 닦으시려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이 모든 것을 결실한 하나의 화신체, 즉 전체의 소망의 실증적 자체, 전체의 믿음의 실증적 자체, 전체의 사랑의 실증적 자체를 하늘 땅 앞에 내세울 수 있는 한날을 맞이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러한 한 날을 맞이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의 이념은 이 땅 위에 성취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한 날을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모세를 거쳐 세례 요한에 이르기까지 4천년 섭리역사를 3단계로 나누어 소망의 터전을 닦으면서 수고해 나오셨던 것입니다. 그러한 소망의 토대 위에 하나의 실체로 나타나신 분이 누구였느냐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소망하신 하나의 실체로 나타나신 존재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소망을 두고 섭리해 오신 총 결실체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와 같은 결실체로 이 땅 위에 오셔서 뿌려놓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신의의 노정으로 세워진 신약의 복음, 즉 믿음의 복음이었습니다. 그후 이 믿음의 복음을 중심삼고 오늘날까지 2천년 역사가 경과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믿음의 복음이 결실된 터전 위에 하늘 땅을 대신하고 절대 사랑의 실체로 나타나는 하나의 존재가 누구냐 하면 그가 바로 오시게 될 재림주이심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재림시대에 무엇을 하려고 하시는가? 오시는 재림주를 중심삼고 이제까지 닦아온 믿음의 토대 위에 하나의 생명의 씨를 뿌려 가지고 결실케 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6천년 섭리역사의 목적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성약시대의 중심 요소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을 자신들의 소망의 주인공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믿음의 주인공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또 우리들의 사랑의 주인공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소망과 믿음과 사랑의 주인공으로 계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역사과정에서 소망을 대신한 구약시대, 믿음을 대신한 신약시대를 거치게 하셨으니 앞으로는 사랑을 대신한 성약시대를 거쳐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러한 성약시대, 즉 재림시대에 있어서 영원 불변의 하나의 중심 요소로 남아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것은 전체의 중심 요소인 동시에 전체의 이상의 요소도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인간들은 이 사랑을 인해 소망의 섭리노정과 믿음의 섭리노정을 거쳐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랑의 섭리노정을 여러분 한 자체들이 걷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사랑을 중심삼고 이루어야 할 통일의 발판은 붕괴되고 만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소망의 터전 위에 믿음의 중심으로 나타나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위에 믿음을 세우기 위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일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그 당시 인간들이 믿음의 실체로 받들었다면, 즉 예수를 하나님의 4천년 섭리역사의 소망의 결실체, 영원무궁한 신앙노정에 있어서의 믿음의 중심존재 또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통합시킬 수 있는 하나의 실체로서 알고 모셨다면, 그 당시의 인간들은 예수님 한 분으로 말미암아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소망을 가질 수 있었고,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믿음을 가질 수 있었고,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본연의 사랑을 체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민족의 불신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우리는 신앙노정에서 영적인 소망의 실체만을 완성하게 되고, 영적인 믿음의 실체만을 완성하게 되고, 영적인 사랑의 실체만을 완성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의 승리의 기준은 무엇인가? 천상천하의 어떤 존재물이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사랑의 화신으로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가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뜻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4천년간 수고를 수반한 소망의 존재요, 만물의 주인공으로 오셔서 하나님과 일체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원래 인간 조상이 하나님과 일체되기를 바랐던 것이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깨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이념과 하나되어 영육 아우른 믿음의 실체로 나타나야 할 것이었으나 영적인 면에서만 완결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이제 예수님께서 남기고 가신 그 유업을 계승해서 이루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일신이 영 육을 쓴 하나의 소망의 실체가 된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그러한 사람이 되어 그를 대신할 수 있어야겠고, 또 예수님이 믿음의 실체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그러한 사람이 되어 그를 대신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또 사랑을 중심한 하나의 실체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서 가지고 예수의 소망과 믿음과 사랑을 대신하고 나아가 성신의 소망의 실체로서, 성신의 믿음의 실체로서, 성신의 사랑의 실체로서 그 사명을 대신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예수가 왔다 가신 이후, 오늘날 이 땅 위의 인간들이 아버지 앞에 이루어드려야 할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 사명을 완수하게 될 때 예수의 소망의 종결, 성신의 소망의 종결을 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 예수의 믿음과 성신의 믿음, 예수의 사랑과 성신의 사랑의 종결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그 모든 것을 종결할 수 있는 그 날을 이루어야 이 땅 위에 재림주님이 나타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믿음, 소망, 사랑의 실체가 되어야 할 인간
하나님의 소망은 하나님 자체의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소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믿음도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믿음이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도 하나님 자신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사랑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그러한 하나님의 소망을 대신하고 믿음을 대신하고 사랑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그러한 인간 한 자체를 전체의 소망, 전체의 믿음, 전체의 사랑을 대신한 존재로서 하나님께서 만물만상 앞에 자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한 자체를 이 모든 만물이 바라는 소망의 중심체라고 자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온 피조만물, 즉 하늘 땅에 있는 어떤 존재물이든지 믿고 살 수 있는 주인공으로 자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가 사랑할 수 있는 하나의 사모의 중심체로 자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한 중보적인 화신으로 나타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과 믿음과 사랑을 받아 이 땅 위에 어떠한 악한 사람 앞에도 하나의 소망의 실증체, 믿음의 실증체, 사랑의 실증체로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존재가 되지 않으면 그 어디에 가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의 기준, 믿음의 기준, 사랑의 기준을 탕감하는 조건을 성립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이 사탄세계 앞에 하나님의 소망, 하나님의 믿음,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보답하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부분적인 소망에 대해 보답할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분적인 믿음에 대해 보답할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분적인 사랑에 대해 보답할 것이 아니라 전체에 대해 보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들은 지금까지 그 하나의 기준을 이 땅 위에 찾아 세우고 보답하고자 했지만 전체를 보답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 제자를 통하여 그러한 과정형을 나타내고자 하셨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믿음의 결실체로서 나타난 사람은 누구였던가? 이는 베드로였습니다. 또 소망의 결실체로서 나타난 사람은 누구였던가? 이는 야고보 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결실체로서 나타난 사람은 누구였던가? 이는 요한이 었습니다.
이 세 사람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한 부분부분을 책임맡아 가지고 하나 되어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내가 소망의 결실을 양보받을 수 있고 믿음의 결실을 양보받을 수 있고 사랑의 결실을 양보받을 수 있게 되었고, 또 섭리역사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흘러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 사람이 화합하여 하나의 완성체로 완결지어야 할 것이 최후의 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이 땅 위에 남기신 최후의 가르침이었 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들이 최후의 완성자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대신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세 제자를 뿌리로 한 하나의 불변의 실체로서 서지 않으면, 세 제자를 세워놓고 가셨던 신랑되신 예수님 앞에 나설 수 없게 됩니다. 이걸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우리들은 내 한 자체에서 베드로를 세우셨던 그 믿음의 소망을 이루어 드려야 하겠습니다. 야고보를 세우셨던 소망의 열매를 내 한자체에서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요한을 세우셨던 그 사랑의 열매를 내 한 자체에서 거두어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여러분이 된다면. 즉 여러분이 끝날의 예수 앞에 설 수 있는 하나의 신부가 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안타까와하셨던 소망의 뜻이 자기 한 자체에서 결실되는 기쁨을 느끼게 되어 아버지 앞에 감사를 돌리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6천년 동안 바라고 나온 그 믿음의 소망이 예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이루어졌다는, 온 만상을 대신하여 이루어졌다는 그 기쁨의 사실을 나타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기뻐하고 사랑하는 가운데 그 사랑의 기쁨을 느끼고 아버지 앞에 감사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이 일이 오늘날 여러분에게 역사적인 책임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섭리가 요구하는 것
그러면 여러분 한 자체가 '아바 아버지여'라고 부르면서 소망의 결실을 갖추어야 할 때, 믿음의 결실을 갖추어야 할 때, 사랑의 결실을 갖추어야 할 때가 되었는데 이제 여러분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소망을 품고 애달퍼하시던 그 애달픔을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6천년 동안 믿음을 세우기 위해서 수고하시던 그 수고를 느낄 줄 알아야 되겠고, 6천년 동안 하나님께서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희생의 노정을 거듭해 나오신 그 사실을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 일신에 있어서 하나님의 4천년 소망의 결실을 대신한 실천적인 노정을 세운 것이 믿음의 섭리역사였고, 그 믿음을 대신한 실천적인 노정으로 세워진 것이 뭐냐 하면 신령역사였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사랑을 대신한 실천적인 노정을 보여 준 것이 뭐냐하면 통일의 역사였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소망으로써 섭리의 길을 세웠고, 신령으로써 거기에 씨를 심어 번식시켰고, 그 번식한 자체들을 통합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 예수의 사랑, 성신의 사랑을 실현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소망이 하나님의 소망으로 변화하는 시대가 재림시대요, 예수의 믿음이 하나님의 믿음으로 변화하는 시대가 재림시대요, 예수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뿌려지는 시대가 재림시대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의 소망의 결실, 예수의 믿음의 결실, 예수의 사랑의 결실이 여러분 자체에서 맺혀지지 않았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또 다시 하나님의 새로운 소망의 중심을 찾아세워야 되고 하나님의 새로운 믿음의 중심을 찾아야 되고, 하나님의 사랑의 중심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부여된 과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들을 찾기 위해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여러분 한 자체가 예수의 소망을 이루고, 성신의 소망을 계승하고, 예수와 성신의 믿음을 계승하고, 예수와 성신의 사랑을 계승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여, 성신의 수고하심을 알았나이다. 성신의 소망을 알았나이다. 성신의 믿고 나오는 역사를 알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알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알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았나이다.'라고 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아버지 앞에 나설 수 있는 그 하나의 존재가 오늘날 이 땅 위에 나타나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하나의 존재는 어떠한 존재인가? 그 하나의 존재가 지닌 소망은 그리스도의 소망이요, 믿음은 그리스도의 믿음이요,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의 존재가 이것들을 하나님적인 소망과 하나님적인 믿음과 하나님적인 사랑으로 종결시킬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으로서 남아진 그 목적을 종결지어 뜻을 세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하나의 존재는 하나님 대신 예수 그리스도가 기도하던 역사,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까지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하던 그러한 역사를 넘어서야 되고 나아가 영육을 갖춘 완성체로서 하늘 앞에 나설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그런 존재가 나와 하늘의 기쁨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체휼하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될 수 있습니다. 그런 위치까지 나아가야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해 세우신 그리스도의 심정, 또 그리스도 이후 2천년 동안 수고하여 세우려 하신 재림주의 심정까지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적인 완성의 입장을 넘어 육적으로 완결지어야 할 소망의 실체를 완결짓지 못했고 믿음의 실체를 완결짓지 못했고 또 사랑의 실체를 완결짓지 못했기 때문에, 그 실체를 완결지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재림주는 믿음, 소망, 사랑의 대표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중심으로 하여 오실 바의 재림주를 세워 놓고, 하나님과 연락할 수 있는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이 일을 위하여 어떻게 해야 되는가? 실증적인 소망의 실체로 나타나야 되겠고, 믿음의 실체로 나타나야 되겠고, 사랑의 실체로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의 토대 위에 재림주가 오신다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워놓고 소망하시던 그 소망이 여러분 자체들로 말미암아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재림주는 내 전체의 소망으로 나타나고 내 전체의 믿음으로 나타나고 내 전체의 사랑으로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림주가 그와 같이 사랑으로, 소망으로, 믿음으로 나타나게 될 때에 여러분은 여러분 일신에서 즐거워만 할 것이 아닙니다. 그 즐거움, 소망의 기쁨이 그분으로 말미암았으니 그분에게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믿음의 실체로 선 그 사실에 대해 감사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에 온 하늘 땅이 여러분에게 화답하고 여러분을 사랑의 실체로서 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온 하늘 땅이 움직이는 느낌을 여러분은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느낌 가운데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해 소망 하시던 것을, 소망을 대신한 실천의 노정을 통해 개척해야 되겠습니다. 또 믿음을 대신한 심령적인 역사를 개척하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나아가 사랑을 대신한 모심의 생활을 실천하고 통일의 역사를 이루어, 모든 만민이 영광으로 모셔드릴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후의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실천적인 소망, 심령적인 믿음, 심령적인 사랑을 다 갖추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들은 주를 모시고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 하나님을 모시고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내 한 자체는 하늘의 기쁨으로 충일되고, 땅 위의 만물 앞에 기쁨으로 충일되고, 땅 위의 인간 앞에 기쁨으로 충일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하나의 기쁨을 온 세계가 동일하게 느끼면서 영원히 살수 있는 시대를 여러분들이 건설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있는 곳곳마다 거기는 하나님의 소망의 실천적인 터가 되고, 믿음의 실천적인 터가 되고, 사랑의 화신적인 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소망하던 뜻을 지상에서 이루어 가지고, 하나님이 예수를 통하여 이루시려던 소망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져 가지고 땅위의 만물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기쁨이 인간을 통하고 만물에까지 연결되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이 바라던 통일의 역사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소망의 존재로 서기 위해서는 먼저 천상천하의 모든 만물을 대신하여 소망의 결실체로서 즐거워하였는가 자문자답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또 여러분은 지금까지 지상의 수많은 인간들이 하늘을 믿고 나온 그 믿음의 전체를 대신하여 즐거워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는가, 나아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사랑 하는 그 사랑의 감을 느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는가를 반문해 보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의 완결체로 오시는 하나의 존재가 누구냐 하면 바로 재림주입니다. 즉 그 재림주는 전체의 소망, 전체의 믿음, 전체의 사랑을 대표해서 나타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나타나게 될때, 여러분은 그를 모실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그의 소망과 그의 신령적인 믿음과 그의 사랑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럴 때에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아니 갈래야 아니갈 수 없고, 아니 행할래야 아니 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오늘날 이 땅의 타락권내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의 감정을 초월한 소망의 화신으로서, 믿음의 실체로서, 사랑의 실체로서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만일 이러한 존재가 이 땅에 있다면, 재림주는 그런 존재를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존재를 찾아오시는 목적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남긴 사명, 육적으로 완결지어야 할 사명을 위하여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6천년 전부터 하나님께서 소망하신 영육을 중심삼은 그 뜻을 이루시고자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뜻을 조건삼고 본보기될 수 있는 숨은 존재가 이 땅 위에 나타나게 될 때, 어떠한 존재라도 그를 소망의 존재로, 믿음의 존재로, 사랑의 존재로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을 중심하여 통일의 이념이 이룩된 하나의 세계는 소망을 지나고 믿음도 지난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에게는 사랑을 중심한 자신의 생활에 천상천하가 화답할 수 있는 날을 이루어야 할 중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재림주의 실천적인 발판
아무리 재림주가 이 땅 위에 오신다 할지라도 인간의 실천적인 발판이 없으면 안 됩니다. 아무리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한 존재라 할지라도 인간, 바로 여러분의 발판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대한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여러분 한 개체는 24억 인류를 대신하고, 지금까지 천상에 있는 억조의 선조들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내 한 개체는 하늘 땅의 모든 존재물이 소망하는 존재라는 것이며, 온 하늘 땅은 내 한 개체가 믿음의 개체, 사랑의 실증적인 개체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그런 마음을 느껴가지고 먹거나 굶거나, 사나 죽으나 그 일상생활에 있어서 전체의 중심을 증거하고 보호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연만물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이러한 역사까지 여러분들이 해야겠습니다. 이러한 중대한 책임을 오늘날 여러분들이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과거 신앙생활을 헤아려 보게 될 때, 소망을 이루었다 할 수 있는 증거적 개체가 되어 있느냐? 믿음을 이루었다 할 수 있는 증거적 자체, 사랑을 이루었다 할 수 있는 증거적 자체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이, 예수그리스도의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여러분에게서 하나님의 소망으로, 하나님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체휼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남아진 하나님의 소망을, 남아진 하나님의 믿음을, 남아진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느낌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은사를 입고 있는 사람입니다. 또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소망을 안 나타낼래야 안 나타낼 수 없고, 하나님의 믿음을 안 나타낼래야 안 나타낼 수 없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안 나타낼래야 안 나타낼 수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존재가 된다면, 여러분이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의 소망을 나눠 줄 수 있고,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의 믿음을 나눠 줄 수 있으며,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나눠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그렇게 해야 오시는 재림주를 땅 위에서 하나님대신 모실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말씀선집 제1권 7편
진 빚을 갚는 자가 되자(훈독본)
1956.06.10 (일), 한국 전본부교회
마태복음 18:21-35
오늘 잠깐 '진 빚을 갚는 자가 되자.' 이러한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① 죄의 빚과 수고의 빚을 지고 있는 인간
본래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는 빚지라는 원칙을 세워 놓지 않았습니다. 서로 주고 받을 수 있으며, 그대 것이자 내 것이요 내 것이자 그대의 것으로, 둘의 모양은 하고 있으되 하나의 실증체로서 인간과 일체의 관계를 맺으려 했던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습니다.
이러한 목적으로 지음받은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타락한 연고로, 그 이후 지금까지의 억조창생은 하늘 앞에 무한한 빚을 진 자들이 되었습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여지없이 떨어진 인간으로 하여금 다시 빚을 갚을 수 있는 길을 세워 주기 위해서 대표적인 하나의 존재로 보내심을 받은 분이 누구였느냐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역사과정을 거치면서 빚을 갚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또 이러한 생애를 통하여 우리는 영생을 바라며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자체가 만 우주 앞에 내세울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줄 알고 있으나, 여러분의 일신에는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수천년 역사를 통하여 타락의 혈통을 받은 죄의 빚이 남아 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우리에게는 그 죄의 빚 외에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대하여 섭리하셨던 수고의 빚이 남아 있으며, 그 외에 천천만 선지선열, 혹은 천군천사들이 복귀역사를 해온 수고의 빚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내 한 개체는 천륜 앞에 진 빚을 갚을래야 갚을 수 없고, 체면을 세울래야 새울 수 없는 인간인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체면을 세워 천륜 앞에 세우기 위하여 우리를 대표해서 세워진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② 영생의 빚, 생애의 빚, 사랑의 빚, 인연의 빚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중심삼고 영원한 생명을 가져야 할 인간이었습니다. 부모를 통하여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해야 할 존재였습니다. 또 부부를 중심삼고 부모를 대신한 사랑을 가져야 할 존재 였습니다. 만물과도 사랑의 인연을 맺었어야할 인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인간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대하여서는 영생의 빚을 지고 있고, 부모를 대하여서는 생애의 빚을 지고 있고, 부부에 있어서는 사랑의 빚을 지고 있으며, 만물을 대해서는 인연의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으신 후 그 만물의 주인공으로 아담 해와를 세우신 목적은 어디 있었는가 하면, 사람에게 영원한 책임을 지워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영원히 사랑해야 할 책임이 지워져 있었습니다. 즉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고 사탄의 품으로 끌려감으로 말미암아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생명의 빚이 오늘날 우리 각자에게 머물게 되었습니다.
또한 부모를 중심삼고 태어난 이후 부모님이 생애를 통하여 사랑해 주시고 염려해 주신 빚을 지고 있습니다. 부부를 중심삼고 생활적으로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빚도 지고 있습니다. 만물을 대해서는 자연이 준 사랑의 빚도 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에게는 영원한 사랑의 빚을, 부모에게는 생애의 빚을, 부부에 있어서는 생애를 중심삼은 사랑의 빚을, 만물에 대해서는 시간시간의 생활에서 진 사랑의 인연의 빚을 진 자들이 바로 오늘날 우리 한 자체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만물의 주인공으로서 하늘 앞에 체면을 지킬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인간은 하늘에 대한 영원한 빚과 부모에 대한 생애의 빚, 부부에 대한 사랑의 빚, 만물에 대한 생활의 빚 등을 지고 있는데, 만물은 인간이 이 모든 빚을 갚을 것을 은연 중에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③ 인간의 빚을 대신 갚으러 오셨던 예수
그런데 인간의 능력으로는 그 빚을 갚을래야 갚을 수 없고 청산할래야 청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입장에 있는 인간들로 하여금 영원한 하늘 앞에 설 수 있도록, 즉 영원한 부모를 대신하며 하늘 앞에 설 수 있고, 영원한 부부를 대신하여 하늘 앞에 설 수 있고, 영원한 만물의 사랑을 대신하여 하늘 앞에 설 수 있는 하나의 중심존재로 세워진 분이 누구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인간들에게 바라시던 사랑의 실적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부모를 대신한 사랑의 실체로 나타난 분이 예수였습니다. 또 영원한 부부를 대신한 사랑의 실체로 나타난 분도 예수였습니다. 만물의 사랑과 영원한 인연을 맺고 나선 존재도 바로 예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일신에는 4천년이라는 기나긴 역사가 연하여 있었고, 나아가 영원한 미래까지 연하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지게 된 빚과 영원 하신 참부모님 앞에 지게 된 빚과 악으로부터 침범받지 않은 선한 만물 앞에 지게 된 인연의 빚을 갚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지만 다 갚지 못하고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예수가 남긴 그 빚을 다 갚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만물과의 인연으로부터 부부의 인연과 부모의 인연과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인연을 맺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를 위해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 목적은 또 다시 미완성 단계에 머물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과정을 곰곰이 관찰해 보게 될 때, 예수가 오기 전까지는 시대적으로 만물숭배시대였습니다. 만물을 하나님 대신 믿고, 만물을 하나님 대신 가까이한 시대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들이 모든 것보다도 자신들의 아들 딸에게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렇게 만물숭배시대를 거치고 자녀를 숭배하는 시대를 거친 다음 신랑 신부를 숭배하는 시대로 들어섰다가 이제는 신랑 신부를 숭배하던 시대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남은 시대가 무엇이냐 하면 부모를 숭배하는 시대입니다. 부모를 좀더 온전히 세울 수 있는 시대가 반드시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의 몸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어야 되겠습니다. 내 한 자체가 예수와 하나되는 자리에 들어가서 오늘의 이 미묘한 모든 자연현상들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생명의 인연에서 벗어나지 않는 직감적인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내리쬐는 태양이라든가 불어오는 바람 등 모든 만물들과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의 맥박을 대신한 관계를 맺어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던 우리지만 예수를 중심삼으면 새로운 것을 느낄 수 있으며 만물과 새로운 심정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소유 원칙을 중심삼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후에는 내가 만물과 즐길 수 있는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권내로 끌려갈 수 있고 또 그 사랑이 내 마음에로 끌려올 수 있는 생활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깊은 은사의 자리에 들어가 하늘 앞에 서게 될 때에는 어떠한 만물과도 속삭일 수 있습니다.
바람소리나 그 외 존재하는 모든 만물 중 어떠한 존재도 인간과의 인연을 맺고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위하여 지음받은 모든 만물은 인간과 인연된 그 인연의 가치를 인간 앞에 나타내고 인간 앞에 인정받기 위하여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④ 만물에 대한 빚을 갚으려면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은 타락권내에 있으므로 이 만물의 가치를 인정할 줄 모르는 입장입니다. 그런고로 오늘날 여러분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새로운 사랑을 느끼게 될 때 만물도 새로운 생명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여러분이 깨닫고 어떤 만물을 붙들고라도 최고의 생명의 기준을 세울 수 있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홀로라도 하늘의 무한하신 사랑을 노래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된다면, 우리는 구속받지 않은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만물이 우리로 인하여 화동할 수 있기 때문에 내 한 자체가 어느 곳에 머물지라도 펑화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떠한 힘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의 기준을 창조의 목적으로 세우시고 그 목적을 이루는 대신자로 인간을 세우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만물을 주관토록 하셨는데, 오늘날 인간들은 그 만물 앞에 체면을 세울 수 없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오늘날 만물 앞에 말할 수 없는 탄식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서 8장에 있는 말씀과 마찬가지로 만물이 우리를 대하여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래의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한 인간을 중보로 하나님과 연락되어져야 할 만물이 인간이 부패하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만물의 이상체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께서 왔다 가신 이후 2천년 역사가 경과한 오늘날에 있어서도 만물은 그들에 대한 하나의 목적이 우리 인간들에게 이루어지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만물 앞에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만물이 요구하는 소망의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내 한 자체가 이 소망의 빚을 청산해야 합니다. 만물과 하나될 수 있는 자격자가 되는 동시에 만물이 사랑할 수 있는, 만물이 위해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어야겠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할 우리들인 것입니다.
⑤ 사랑의 빚을 갚을 수 있는 자격자
예수와 성신은 오늘날 여러분을 새로이 낳는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예수와 성신의 요소를 받아 가지고 어느 곳을 표준하여 나아가고 있느냐 하면, 자녀의 자리를 거쳐 신랑 신부의 자리를 표준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예수를 믿어서 은혜받고 성신의 감동을 받아 그 힘들을 의지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내 한 자체에 있어서 이루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예수의 은혜가 없을지라도 성신의 감동이 없을지라도 내 한 자체가 예수의 은혜를 받은 대신, 성신의 감동을 받은 대신 하나의 신부체로 완성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에서 실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의 우리들까지도 성신이 역사할 때만 신부로서의 사랑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성신의 역사를 통하여 자녀로서 장성하였으니, 성신의 역사를 받지 않아도 예수님을 신랑으로 사모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계속 성신의 협조로 이루어져야 한다면 여러분이 땅 위에서 부부의 사랑에 대한 빚을 갚을 도리가 없게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 하나의 개체를 통하여 성신의 감동을 받지 않고도 예수를 신랑으로 모실 줄 아는 신부의 자리까지 나아가야만 우리가 천륜 앞에 본연의 위치로 세워졌던 부부, 그 부부의 사랑의 빚을 갚을 수 있는 자격자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타락해 떨어진 인간이 복귀섭리를 통하여 만물로부터 자녀의 입장을 거쳐 신랑 신부의 입장까지 복귀된 후에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 다음에는 우리의 생애를 책임지고 사랑해 주신 참부모의 사랑과 인연맺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창조의 뜻으로 세우신 그 참부모의 사랑의 빚을 우리가 탕감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참부모가 내 일생을 염려해 주시는, 그러한 천륜적인 사랑의 빚을 여러분이 영과 육을 합하여 갚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물로부터 자녀의 자리를 거쳐 신랑 신부로 복귀된 후에는 무엇을 찾아야 될 것인가. 참부모를 찾아야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온 세계 인류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부모를 위해 타락치 않은 참부모를 찾아야 되는데 이 참부모가 어느 때에 나타나실 것인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부모는 재림 시기에 나타나십니다.
⑥ 참부모에 대한 빚을 갚아야 할 때
기독교에서는 신랑 신부의 이념을 통하여 어린양잔치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어린양잔치의 중심 존재인 신랑 신부는 어떠한 사람들인가. 땅위에서 참부모의 사랑과 인연맺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내가 참부모를 모시고 참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2천년 섭리역사를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 우주와 인류를 대신하여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인류가 짊어진 빚을 탕감하기 위한 역사를 지금까지 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 만물의 자리를 거치고 자녀의 자리를 거쳐서 신랑 신부의 자리까지 거친 후 예수를 중심삼고 참부모를 모실 수 있는 한때를 맞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하여 참부모를 모시는 사명을 완결지어야만 영원하신 하나님을 대신한 참부모의 사랑이 땅 위에 나타날 수 있고, 또 그럴 때에 예수의 사명이 비로소 끝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세계에서 복귀섭리의 목적이 이 땅 위의 만물 가운데 실체적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부활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예수가 갚아야 할 신랑 신부의 빚을 갚는 동시에 땅 위에서 예수가 달성해야 했던 그 참부모의 목적을 달성하여 하나님 앞에 만민을 대신한 복귀의 기도를 올릴 수 있는 한날을 이 땅에서 맞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빚을 갚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도 2천년 동안 빚진 자의 입장에 있었습니다. 참부모의 뜻을 다 완수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짊어진 이 빚을 온 만민을 대신하여 갚아야 할 책임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책임은 영적 책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영 육을 합한,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아담 해와의 입장을 복귀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중심삼고 만물 만상 가운데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며 경배드릴 수 있는 참부모를 대신한 가정을 이루어야만, 예수 그리스도의 2천년 역사노정의 목적이 종결됩니다.
이 하나의 목적을 이룰 것을 바라셔서 예수는 2천년 동안 하나님 앞에 간곡한 심정을 가지고 기원해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본연의 세계를 찾을 수 있는 제일 기준을 완결하려 하셨습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참부모의 사랑을 원점으로 하여 부부 그리고 자녀와 만물에까지 인연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거꿀잡이로 끌어 올리는 섭리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만물과 자녀와 부부가 인연을 맺어. 참부모로 나타난 예수를 중심삼고 신랑 신부의 기준을 중심삼아 억조창생 전부가 참부모의 말씀에 응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있는 그 세계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무궁세(無窮世)입니다.
이제 재림역사 시기에 있는 우리는 예수의 2천년 수고의 전부를 맡아야 되겠습니다. 2천년 동안 예수가 수고하던 그 역사의 전부를 내가 대신할 수 있는 결심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심을 가져야만 비로소 참부모 앞에 진 사랑의 빚을 갚은 자녀의 위치에 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대신 만물을 주관하는 하나의 중심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축복하시던 하늘의 뜻이 완결되어지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참부모로부터 진 빚을 갚고, 참부부의 빚을 갚고, 참만물의 빚을 갚고 나서 하나님을 대하게 될 때, 여러분의 마음과 몸이 하나님 앞에 나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자체들이 되게 됩니다. 하나님을 대하여 감사의 경배를 드리지 않을래야 드리지 않을 수 없는 내가 되어야겠습니다. 생각하기 전에 행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요구하기 전에 목적을 나타낼 수 있는 내가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⑦ 하나님에 대한 빚을 갚으려면
그렇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천지의 운세는 하늘로부터 부모, 부모로부터 부부, 부부로부터 만물에까지 돌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 모든 단계와 인연을 맺고 나설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존재가 돼야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고, '하나님이여 !' 하고 부를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직접주관권의 세계입니다. 그런 자리에 나타나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위치에까지 우리는 나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2천년 동안 예수가 영계에서 싸우고 성신이 땅에서 싸우던 것을 오늘날 우리가 인계받아 이제까지 진 빚을 갚음으로써, 참부모를 대신한 입장에서 만물을 대할 수 있고 이 땅에 있는 사탄을 대하여 싸워 이길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가 될 때 영원하신 하나님이 타락한 인류를 대하여 복귀섭리를 하시면서 염려하며 탄식하던 그 마음을 해원할 수 있는 동시에, 내 한 자체가 비로소 사탄에 의하여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로소이다'하고 증거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창조적 존재가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같이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고로 우리에게는 중대한 사명이 있습니다. 오늘날 신앙생활을 통하여, 여러분은 내 한 자체에 미쳐진 모든 주위환경 가운데서 빚을 갚아야 됩니다. 갚아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활 가운데서 내가 응당히 빚 갚는 생활을 하고 있는가 스스로 검토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신앙생활하는데도 영원하신 하나님의 빚과 부모의 빚과 부부의 빚 그리고 만물의 빚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모든 빚을 탕감할 시대와 인연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되겠는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타락한 직후에는 하나님 앞에 설래야 설 수 없고 하나님을 대할래야 대할 수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대하여 원망하려면 한없이 원망할 수 있었습니다. 탄식하고 증오하려면 한없이 탄식하고 증오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는 타락의 빚도 있지만 역사과정의 모든 원한의 빚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⑧ 우리가 참아야 할 원인이 어디있느냐?
오늘날 우리들이 참고 참아야 할 원인이 어디 있느냐? 우리가 참지 못하면 우리가 진 빚을 갚을 수가 없고, 하늘이 품고 참아온 원한을 해원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천지의 운세는 하나님의 섭리와 더불어 돌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이 노할 때 같이 노할 줄 알고, 하나님의 분함과 하나님의 울분에 대해서 편들면 사탄세계는 심판받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노정을 가고 있는 우리를 대해서 하늘이 온유겸손하고 화내지 말고 참고 견뎌라 하는 이런 모든 가르침이 다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거기에 같이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하나님의 섭리와의 사이에 틈이 나게 되면 사탄이 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믿는 사람들은 무조건 희생하고 무조건 순종하여 사랑의 내적인 부분만을 따라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우주적인 천리법도를 파탄시킨 파탄자로서 또 빚진 자로서 만물 앞에 부끄러운 생활을 해왔고, 하늘 앞에 염려를 끼치는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 부부는 주를 대신할 수 있는 부부가 돼야겠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대신 하고 땅을 대신해서 내 생애에 부모로 모실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계를 맺어 가지고 하늘을 대신해서 참부모, 참부부, 참만물을 대할 수 있는 관계를 우리가 평면적으로나 입체적으로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되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는 드디어 승리했습니다. 아바 아버지시여 ! 나는 나의 생애를 바쳐, 인류가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사탄을 하나님 대신 따르고, 사탄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시험을 받아오던 이 모든 관계를 다 물리쳤나이다. 그리고 나는 만 우주의 빚을 다 갚고 사탄을 완전히 굴복시킨 완성한 자녀로소이다'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되어야만 우리에게 머물러 있는 천륜의 빚을 갚은 자로서 하늘과 만 우주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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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진 빚을 갚는 자가 되자
1956.06.10 (일), 한국 전본부교회
오늘 잠깐 동안 말씀드리려 하는 제목은 '진 빚을 갚는 자가 되자'입니다. '진 빚을 갚는 자가 되자.' 이러한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죄의 빚과 수고의 빚을 지고 있는 인간
본래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는 빚지라는 원칙을 세워 놓지 않았습니다. 서로 주고 받을 수 있으며, 그대 것이자 내 것이요 내 것이자 그대의 것으로, 둘의 모양은 하고 있으되 하나의 실증체로서 인간과 일체의 관계를 맺으려 했던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습니다.
이러한 목적으로 지음받은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타락한 연고로, 그 이후 지금까지의 억조창생은 하늘 앞에 무한한 빚을 진 자들이 되었습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여지없이 떨어진 인간으로 하여금 다시 빚을 갚을 수 있는 길을 세워 주기 위해서 대표적인 하나의 존재로 보내심을 받은 분이 누구였느냐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역사과정을 거치면서 빚을 갚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또 이러한 생애를 통하여 우리는 영생을 바라며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자체가 만 우주 앞에 내세울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줄 알고 있으나, 여러분의 일신에는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수천년 역사를 통하여 타락의 혈통을 받은 죄의 빚이 남아 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우리에게는 그 죄의 빚 외에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대하여 섭리하셨던 수고의 빚이 남아 있으며, 그 외에 천천만 선지선열, 혹은 천군천사들이 복귀역사를 해온 수고의 빚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내 한 개체는 천륜 앞에 진 빚을 갚을래야 갚을 수 없고, 체면을 세울래야 새울 수 없는 인간인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체면을 세워 천륜 앞에 세우기 위하여 우리를 대표해서 세워진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영생의 빚, 생애의 빚, 사랑의 빚, 인연의 빚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중심삼고 영원한 생명을 가져야 할 인간이었습니다. 부모를 통하여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해야 할 존재였습니다. 또 부부를 중심삼고 부모를 대신한 사랑을 가져야 할 존재 였습니다. 만물과도 사랑의 인연을 맺었어야할 인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인간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대하여서는 영생의 빚을 지고 있고, 부모를 대하여서는 생애의 빚을 지고 있고, 부부에 있어서는 사랑의 빚을 지고 있으며, 만물을 대해서는 인연의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으신 후 그 만물의 주인공으로 아담 해와를 세우신 목적은 어디 있었는가 하면, 사람에게 영원한 책임을 지워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영원히 사랑해야 할 책임이 지워져 있었습니다. 즉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고 사탄의 품으로 끌려감으로 말미암아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생명의 빚이 오늘날 우리 각자에게 머물게 되었습니다.
또한 부모를 중심삼고 태어난 이후 부모님이 생애를 통하여 사랑해 주시고 염려해 주신 빚을 지고 있습니다. 부부를 중심삼고 생활적으로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빚도 지고 있습니다. 만물을 대해서는 자연이 준 사랑의 빚도 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에게는 영원한 사랑의 빚을, 부모에게는 생애의 빚을, 부부에 있어서는 생애를 중심삼은 사랑의 빚을, 만물에 대해서는 시간시간의 생활에서 진 사랑의 인연의 빚을 진 자들이 바로 오늘날 우리 한 자체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만물의 주인공으로서 하늘 앞에 체면을 지킬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인간은 하늘에 대한 영원한 빚과 부모에 대한 생애의 빚, 부부에 대한 사랑의 빚, 만물에 대한 생활의 빚 등을 지고 있는데, 만물은 인간이 이 모든 빚을 갚을 것을 은연 중에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의 빚을 대신 갚으러 오셨던 예수
그런데 인간의 능력으로는 그 빚을 갚을래야 갚을 수 없고 청산할래야 청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입장에 있는 인간들로 하여금 영원한 하늘 앞에 설 수 있도록, 즉 영원한 부모를 대신하며 하늘 앞에 설 수 있고, 영원한 부부를 대신하여 하늘 앞에 설 수 있고, 영원한 만물의 사랑을 대신하여 하늘 앞에 설 수 있는 하나의 중심존재로 세워진 분이 누구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인간들에게 바라시던 사랑의 실적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부모를 대신한 사랑의 실체로 나타난 분이 예수였습니다. 또 영원한 부부를 대신한 사랑의 실체로 나타난 분도 예수였습니다. 만물의 사랑과 영원한 인연을 맺고 나선 존재도 바로 예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일신에는 4천년이라는 기나긴 역사가 연하여 있었고, 나아가 영원한 미래까지 연하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지게 된 빚과 영원 하신 참부모님 앞에 지게 된 빚과 악으로부터 침범받지 않은 선한 만물 앞에 지게 된 인연의 빚을 갚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지만 다 갚지 못하고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예수가 남긴 그 빚을 다 갚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만물과의 인연으로부터 부부의 인연과 부모의 인연과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인연을 맺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를 위해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 목적은 또 다시 미완성 단계에 머물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과정을 곰곰이 관찰해 보게 될 때, 예수가 오기 전까지는 시대적으로 만물숭배시대였습니다. 만물을 하나님 대신 믿고, 만물을 하나님 대신 가까이한 시대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들이 모든 것보다도 자신들의 아들 딸에게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렇게 만물숭배시대를 거치고 자녀를 숭배하는 시대를 거친 다음 신랑 신부를 숭배하는 시대로 들어섰다가 이제는 신랑 신부를 숭배하던 시대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남은 시대가 무엇이냐 하면 부모를 숭배하는 시대입니다. 부모를 좀더 온전히 세울 수 있는 시대가 반드시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의 몸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어야 되겠습니다. 내 한 자체가 예수와 하나되는 자리에 들어가서 오늘의 이 미묘한 모든 자연현상들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생명의 인연에서 벗어나지 않는 직감적인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내리쬐는 태양이라든가 불어오는 바람 등 모든 만물들과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의 맥박을 대신한 관계를 맺어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던 우리지만 예수를 중심삼으면 새로운 것을 느낄 수 있으며 만물과 새로운 심정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소유 원칙을 중심삼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후에는 내가 만물과 즐길 수 있는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권내로 끌려갈 수 있고 또 그 사랑이 내 마음에로 끌려올 수 있는 생활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깊은 은사의 자리에 들어가 하늘 앞에 서게 될 때에는 어떠한 만물과도 속삭일 수 있습니다.
바람소리나 그 외 존재하는 모든 만물 중 어떠한 존재도 인간과의 인연을 맺고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위하여 지음받은 모든 만물은 인간과 인연된 그 인연의 가치를 인간 앞에 나타내고 인간 앞에 인정받기 위하여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만물에 대한 빚을 갚으려면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은 타락권내에 있으므로 이 만물의 가치를 인정할 줄 모르는 입장입니다. 그런고로 오늘날 여러분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새로운 사랑을 느끼게 될 때 만물도 새로운 생명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여러분이 깨닫고 어떤 만물을 붙들고라도 최고의 생명의 기준을 세울 수 있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홀로라도 하늘의 무한하신 사랑을 노래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된다면, 우리는 구속받지 않은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만물이 우리로 인하여 화동할 수 있기 때문에 내 한 자체가 어느 곳에 머물지라도 펑화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떠한 힘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의 기준을 창조의 목적으로 세우시고 그 목적을 이루는 대신자로 인간을 세우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만물을 주관토록 하셨는데, 오늘날 인간들은 그 만물 앞에 체면을 세울 수 없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오늘날 만물 앞에 말할 수 없는 탄식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서 8장에 있는 말씀과 마찬가지로 만물이 우리를 대하여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래의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한 인간을 중보로 하나님과 연락되어져야 할 만물이 인간이 부패하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만물의 이상체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께서 왔다 가신 이후 2천년 역사가 경과한 오늘날에 있어서도 만물은 그들에 대한 하나의 목적이 우리 인간들에게 이루어지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만물 앞에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만물이 요구하는 소망의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내 한 자체가 이 소망의 빚을 청산해야 합니다. 만물과 하나될 수 있는 자격자가 되는 동시에 만물이 사랑할 수 있는, 만물이 위해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어야겠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할 우리들인 것입니다.
사랑의 빚을 갚을 수 있는 자격자
예수와 성신은 오늘날 여러분을 새로이 낳는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예수와 성신의 요소를 받아 가지고 어느 곳을 표준하여 나아가고 있느냐 하면, 자녀의 자리를 거쳐 신랑 신부의 자리를 표준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예수를 믿어서 은혜받고 성신의 감동을 받아 그 힘들을 의지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내 한 자체에 있어서 이루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예수의 은혜가 없을지라도 성신의 감동이 없을지라도 내 한 자체가 예수의 은혜를 받은 대신, 성신의 감동을 받은 대신 하나의 신부체로 완성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에서 실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의 우리들까지도 성신이 역사할 때만 신부로서의 사랑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성신의 역사를 통하여 자녀로서 장성하였으니, 성신의 역사를 받지 않아도 예수님을 신랑으로 사모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계속 성신의 협조로 이루어져야 한다면 여러분이 땅 위에서 부부의 사랑에 대한 빚을 갚을 도리가 없게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 하나의 개체를 통하여 성신의 감동을 받지 않고도 예수를 신랑으로 모실 줄 아는 신부의 자리까지 나아가야만 우리가 천륜 앞에 본연의 위치로 세워졌던 부부, 그 부부의 사랑의 빚을 갚을 수 있는 자격자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타락해 떨어진 인간이 복귀섭리를 통하여 만물로부터 자녀의 입장을 거쳐 신랑 신부의 입장까지 복귀된 후에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 다음에는 우리의 생애를 책임지고 사랑해 주신 참부모의 사랑과 인연맺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창조의 뜻으로 세우신 그 참부모의 사랑의 빚을 우리가 탕감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참부모가 내 일생을 염려해 주시는, 그러한 천륜적인 사랑의 빚을 여러분이 영과 육을 합하여 갚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물로부터 자녀의 자리를 거쳐 신랑 신부로 복귀된 후에는 무엇을 찾아야 될 것인가. 참부모를 찾아야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온 세계 인류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부모를 위해 타락치 않은 참부모를 찾아야 되는데 이 참부모가 어느 때에 나타나실 것인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부모는 재림 시기에 나타나십니다.
참부모에 대한 빚을 갚아야 할 때
기독교에서는 신랑 신부의 이념을 통하여 어린양잔치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어린양잔치의 중심 존재인 신랑 신부는 어떠한 사람들인가. 땅위에서 참부모의 사랑과 인연맺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내가 참부모를 모시고 참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2천년 섭리역사를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 우주와 인류를 대신하여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인류가 짊어진 빚을 탕감하기 위한 역사를 지금까지 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 만물의 자리를 거치고 자녀의 자리를 거쳐서 신랑 신부의 자리까지 거친 후 예수를 중심삼고 참부모를 모실 수 있는 한때를 맞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하여 참부모를 모시는 사명을 완결지어야만 영원하신 하나님을 대신한 참부모의 사랑이 땅 위에 나타날 수 있고, 또 그럴 때에 예수의 사명이 비로소 끝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세계에서 복귀섭리의 목적이 이 땅 위의 만물 가운데 실체적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부활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예수가 갚아야 할 신랑 신부의 빚을 갚는 동시에 땅 위에서 예수가 달성해야 했던 그 참부모의 목적을 달성하여 하나님 앞에 만민을 대신한 복귀의 기도를 올릴 수 있는 한날을 이 땅에서 맞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빚을 갚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도 2천년 동안 빚진 자의 입장에 있었습니다. 참부모의 뜻을 다 완수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짊어진 이 빚을 온 만민을 대신하여 갚아야 할 책임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책임은 영적 책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영 육을 합한,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아담 해와의 입장을 복귀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중심삼고 만물 만상 가운데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며 경배드릴 수 있는 참부모를 대신한 가정을 이루어야만, 예수 그리스도의 2천년 역사노정의 목적이 종결됩니다.
이 하나의 목적을 이룰 것을 바라셔서 예수는 2천년 동안 하나님 앞에 간곡한 심정을 가지고 기원해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본연의 세계를 찾을 수 있는 제일 기준을 완결하려 하셨습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참부모의 사랑을 원점으로 하여 부부 그리고 자녀와 만물에까지 인연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거꿀잡이로 끌어 올리는 섭리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만물과 자녀와 부부가 인연을 맺어. 참부모로 나타난 예수를 중심삼고 신랑 신부의 기준을 중심삼아 억조창생 전부가 참부모의 말씀에 응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있는 그 세계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무궁세(無窮世)입니다.
이제 재림역사 시기에 있는 우리는 예수의 2천년 수고의 전부를 맡아야 되겠습니다. 2천년 동안 예수가 수고하던 그 역사의 전부를 내가 대신할 수 있는 결심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심을 가져야만 비로소 참부모 앞에 진 사랑의 빚을 갚은 자녀의 위치에 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대신 만물을 주관하는 하나의 중심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축복하시던 하늘의 뜻이 완결되어지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참부모로부터 진 빚을 갚고, 참부부의 빚을 갚고, 참만물의 빚을 갚고 나서 하나님을 대하게 될 때, 여러분의 마음과 몸이 하나님 앞에 나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자체들이 되게 됩니다. 하나님을 대하여 감사의 경배를 드리지 않을래야 드리지 않을 수 없는 내가 되어야겠습니다. 생각하기 전에 행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요구하기 전에 목적을 나타낼 수 있는 내가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빚을 갚으려면
그렇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천지의 운세는 하늘로부터 부모, 부모로부터 부부, 부부로부터 만물에까지 돌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 모든 단계와 인연을 맺고 나설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존재가 돼야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고, '하나님이여 !' 하고 부를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직접주관권의 세계입니다. 그런 자리에 나타나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위치에까지 우리는 나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2천년 동안 예수가 영계에서 싸우고 성신이 땅에서 싸우던 것을 오늘날 우리가 인계받아 이제까지 진 빚을 갚음으로써, 참부모를 대신한 입장에서 만물을 대할 수 있고 이 땅에 있는 사탄을 대하여 싸워 이길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가 될 때 영원하신 하나님이 타락한 인류를 대하여 복귀섭리를 하시면서 염려하며 탄식하던 그 마음을 해원할 수 있는 동시에, 내 한 자체가 비로소 사탄에 의하여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로소이다'하고 증거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창조적 존재가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같이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고로 우리에게는 중대한 사명이 있습니다. 오늘날 신앙생활을 통하여, 여러분은 내 한 자체에 미쳐진 모든 주위환경 가운데서 빚을 갚아야 됩니다. 갚아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활 가운데서 내가 응당히 빚 갚는 생활을 하고 있는가 스스로 검토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신앙생활하는데도 영원하신 하나님의 빚과 부모의 빚과 부부의 빚 그리고 만물의 빚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모든 빚을 탕감할 시대와 인연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되겠는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타락한 직후에는 하나님 앞에 설래야 설 수 없고 하나님을 대할래야 대할 수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대하여 원망하려면 한없이 원망할 수 있었습니다. 탄식하고 증오하려면 한없이 탄식하고 증오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는 타락의 빚도 있지만 역사과정의 모든 원한의 빚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아야 할 원인이 어디 있느냐?
오늘날 우리들이 참고 참아야 할 원인이 어디 있느냐? 우리가 참지 못하면 우리가 진 빚을 갚을 수가 없고, 하늘이 품고 참아온 원한을 해원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천지의 운세는 하나님의 섭리와 더불어 돌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이 노할 때 같이 노할 줄 알고, 하나님의 분함과 하나님의 울분에 대해서 편들면 사탄세계는 심판받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노정을 가고 있는 우리를 대해서 하늘이 온유겸손하고 화내지 말고 참고 견뎌라 하는 이런 모든 가르침이 다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거기에 같이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하나님의 섭리와의 사이에 틈이 나게 되면 사탄이 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믿는 사람들은 무조건 희생하고 무조건 순종하여 사랑의 내적인 부분만을 따라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우주적인 천리법도를 파탄시킨 파탄자로서 또 빚진 자로서 만물 앞에 부끄러운 생활을 해왔고, 하늘 앞에 염려를 끼치는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 부부는 주를 대신할 수 있는 부부가 돼야겠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대신 하고 땅을 대신해서 내 생애에 부모로 모실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계를 맺어 가지고 하늘을 대신해서 참부모, 참부부, 참만물을 대할 수 있는 관계를 우리가 평면적으로나 입체적으로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되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는 드디어 승리했습니다. 아바 아버지시여 ! 나는 나의 생애를 바쳐, 인류가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사탄을 하나님 대신 따르고, 사탄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시험을 받아오던 이 모든 관계를 다 물리쳤나이다. 그리고 나는 만 우주의 빚을 다 갚고 사탄을 완전히 굴복시킨 완성한 자녀로소이다'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되어야만 우리에게 머물러 있는 천륜의 빚을 갚은 자로서 하늘과 만 우주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말씀선집 1권 7편
진 빚을 갚는 자가 되자 (훈독본)
1956.06.10 (일), 한국 전본부교회
마태복음 18:21-35
오늘 잠깐 '진 빚을 갚는 자가 되자.' 이러한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죄의 빚과 수고의 빚을 지고 있는 인간
본래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는 빚지라는 원칙을 세워 놓지 않았습니다. 서로 주고 받을 수 있으며, 그대 것이자 내 것이요 내 것이자 그대의 것으로, 둘의 모양은 하고 있으되 하나의 실증체로서 인간과 일체의 관계를 맺으려 했던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습니다.
이러한 목적으로 지음받은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타락한 연고로, 그 이후 지금까지의 억조창생은 하늘 앞에 무한한 빚을 진 자들이 되었습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여지없이 떨어진 인간으로 하여금 다시 빚을 갚을 수 있는 길을 세워 주기 위해서 대표적인 하나의 존재로 보내심을 받은 분이 누구였느냐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역사과정을 거치면서 빚을 갚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또 이러한 생애를 통하여 우리는 영생을 바라며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자체가 만 우주 앞에 내세울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줄 알고 있으나, 여러분의 일신에는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수천년 역사를 통하여 타락의 혈통을 받은 죄의 빚이 남아 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우리에게는 그 죄의 빚 외에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대하여 섭리하셨던 수고의 빚이 남아 있으며, 그 외에 천천만 선지선열, 혹은 천군천사들이 복귀역사를 해온 수고의 빚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내 한 개체는 천륜 앞에 진 빚을 갚을래야 갚을 수 없고, 체면을 세울래야 새울 수 없는 인간인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체면을 세워 천륜 앞에 세우기 위하여 우리를 대표해서 세워진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영생의 빚, 생애의 빚, 사랑의 빚, 인연의 빚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중심삼고 영원한 생명을 가져야 할 인간이었습니다. 부모를 통하여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해야 할 존재였습니다. 또 부부를 중심삼고 부모를 대신한 사랑을 가져야 할 존재 였습니다. 만물과도 사랑의 인연을 맺었어야할 인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인간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대하여서는 영생의 빚을 지고 있고, 부모를 대하여서는 생애의 빚을 지고 있고, 부부에 있어서는 사랑의 빚을 지고 있으며, 만물을 대해서는 인연의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으신 후 그 만물의 주인공으로 아담 해와를 세우신 목적은 어디 있었는가 하면, 사람에게 영원한 책임을 지워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영원히 사랑해야 할 책임이 지워져 있었습니다. 즉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고 사탄의 품으로 끌려감으로 말미암아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생명의 빚이 오늘날 우리 각자에게 머물게 되었습니다.
또한 부모를 중심삼고 태어난 이후 부모님이 생애를 통하여 사랑해 주시고 염려해 주신 빚을 지고 있습니다. 부부를 중심삼고 생활적으로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빚도 지고 있습니다. 만물을 대해서는 자연이 준 사랑의 빚도 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에게는 영원한 사랑의 빚을, 부모에게는 생애의 빚을, 부부에 있어서는 생애를 중심삼은 사랑의 빚을, 만물에 대해서는 시간시간의 생활에서 진 사랑의 인연의 빚을 진 자들이 바로 오늘날 우리 한 자체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만물의 주인공으로서 하늘 앞에 체면을 지킬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인간은 하늘에 대한 영원한 빚과 부모에 대한 생애의 빚, 부부에 대한 사랑의 빚, 만물에 대한 생활의 빚 등을 지고 있는데, 만물은 인간이 이 모든 빚을 갚을 것을 은연 중에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의 빚을 대신 갚으러 오셨던 예수
그런데 인간의 능력으로는 그 빚을 갚을래야 갚을 수 없고 청산할래야 청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입장에 있는 인간들로 하여금 영원한 하늘 앞에 설 수 있도록, 즉 영원한 부모를 대신하며 하늘 앞에 설 수 있고, 영원한 부부를 대신하여 하늘 앞에 설 수 있고, 영원한 만물의 사랑을 대신하여 하늘 앞에 설 수 있는 하나의 중심존재로 세워진 분이 누구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인간들에게 바라시던 사랑의 실적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부모를 대신한 사랑의 실체로 나타난 분이 예수였습니다. 또 영원한 부부를 대신한 사랑의 실체로 나타난 분도 예수였습니다. 만물의 사랑과 영원한 인연을 맺고 나선 존재도 바로 예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일신에는 4천년이라는 기나긴 역사가 연하여 있었고, 나아가 영원한 미래까지 연하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지게 된 빚과 영원 하신 참부모님 앞에 지게 된 빚과 악으로부터 침범받지 않은 선한 만물 앞에 지게 된 인연의 빚을 갚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지만 다 갚지 못하고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예수가 남긴 그 빚을 다 갚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만물과의 인연으로부터 부부의 인연과 부모의 인연과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인연을 맺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를 위해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 목적은 또 다시 미완성 단계에 머물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과정을 곰곰이 관찰해 보게 될 때, 예수가 오기 전까지는 시대적으로 만물숭배시대였습니다. 만물을 하나님 대신 믿고, 만물을 하나님 대신 가까이한 시대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들이 모든 것보다도 자신들의 아들 딸에게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렇게 만물숭배시대를 거치고 자녀를 숭배하는 시대를 거친 다음 신랑 신부를 숭배하는 시대로 들어섰다가 이제는 신랑 신부를 숭배하던 시대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남은 시대가 무엇이냐 하면 부모를 숭배하는 시대입니다. 부모를 좀더 온전히 세울 수 있는 시대가 반드시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의 몸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어야 되겠습니다. 내 한 자체가 예수와 하나되는 자리에 들어가서 오늘의 이 미묘한 모든 자연현상들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생명의 인연에서 벗어나지 않는 직감적인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내리쬐는 태양이라든가 불어오는 바람 등 모든 만물들과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의 맥박을 대신한 관계를 맺어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던 우리지만 예수를 중심삼으면 새로운 것을 느낄 수 있으며 만물과 새로운 심정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소유 원칙을 중심삼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후에는 내가 만물과 즐길 수 있는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권내로 끌려갈 수 있고 또 그 사랑이 내 마음에로 끌려올 수 있는 생활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깊은 은사의 자리에 들어가 하늘 앞에 서게 될 때에는 어떠한 만물과도 속삭일 수 있습니다.
바람소리나 그 외 존재하는 모든 만물 중 어떠한 존재도 인간과의 인연을 맺고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위하여 지음받은 모든 만물은 인간과 인연된 그 인연의 가치를 인간 앞에 나타내고 인간 앞에 인정받기 위하여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만물에 대한 빚을 갚으려면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은 타락권내에 있으므로 이 만물의 가치를 인정할 줄 모르는 입장입니다. 그런고로 오늘날 여러분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새로운 사랑을 느끼게 될 때 만물도 새로운 생명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여러분이 깨닫고 어떤 만물을 붙들고라도 최고의 생명의 기준을 세울 수 있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홀로라도 하늘의 무한하신 사랑을 노래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된다면, 우리는 구속받지 않은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만물이 우리로 인하여 화동할 수 있기 때문에 내 한 자체가 어느 곳에 머물지라도 펑화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떠한 힘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의 기준을 창조의 목적으로 세우시고 그 목적을 이루는 대신자로 인간을 세우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만물을 주관토록 하셨는데, 오늘날 인간들은 그 만물 앞에 체면을 세울 수 없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오늘날 만물 앞에 말할 수 없는 탄식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서 8장에 있는 말씀과 마찬가지로 만물이 우리를 대하여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래의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한 인간을 중보로 하나님과 연락되어져야 할 만물이 인간이 부패하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만물의 이상체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께서 왔다 가신 이후 2천년 역사가 경과한 오늘날에 있어서도 만물은 그들에 대한 하나의 목적이 우리 인간들에게 이루어지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만물 앞에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만물이 요구하는 소망의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내 한 자체가 이 소망의 빚을 청산해야 합니다. 만물과 하나될 수 있는 자격자가 되는 동시에 만물이 사랑할 수 있는, 만물이 위해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어야겠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할 우리들인 것입니다.
사랑의 빚을 갚을 수 있는 자격자
예수와 성신은 오늘날 여러분을 새로이 낳는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예수와 성신의 요소를 받아 가지고 어느 곳을 표준하여 나아가고 있느냐 하면, 자녀의 자리를 거쳐 신랑 신부의 자리를 표준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예수를 믿어서 은혜받고 성신의 감동을 받아 그 힘들을 의지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내 한 자체에 있어서 이루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예수의 은혜가 없을지라도 성신의 감동이 없을지라도 내 한 자체가 예수의 은혜를 받은 대신, 성신의 감동을 받은 대신 하나의 신부체로 완성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에서 실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의 우리들까지도 성신이 역사할 때만 신부로서의 사랑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성신의 역사를 통하여 자녀로서 장성하였으니, 성신의 역사를 받지 않아도 예수님을 신랑으로 사모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계속 성신의 협조로 이루어져야 한다면 여러분이 땅 위에서 부부의 사랑에 대한 빚을 갚을 도리가 없게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 하나의 개체를 통하여 성신의 감동을 받지 않고도 예수를 신랑으로 모실 줄 아는 신부의 자리까지 나아가야만 우리가 천륜 앞에 본연의 위치로 세워졌던 부부, 그 부부의 사랑의 빚을 갚을 수 있는 자격자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타락해 떨어진 인간이 복귀섭리를 통하여 만물로부터 자녀의 입장을 거쳐 신랑 신부의 입장까지 복귀된 후에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 다음에는 우리의 생애를 책임지고 사랑해 주신 참부모의 사랑과 인연맺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창조의 뜻으로 세우신 그 참부모의 사랑의 빚을 우리가 탕감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참부모가 내 일생을 염려해 주시는, 그러한 천륜적인 사랑의 빚을 여러분이 영과 육을 합하여 갚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물로부터 자녀의 자리를 거쳐 신랑 신부로 복귀된 후에는 무엇을 찾아야 될 것인가. 참부모를 찾아야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온 세계 인류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부모를 위해 타락치 않은 참부모를 찾아야 되는데 이 참부모가 어느 때에 나타나실 것인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부모는 재림 시기에 나타나십니다.
참부모에 대한 빚을 갚아야 할 때
기독교에서는 신랑 신부의 이념을 통하여 어린양잔치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어린양잔치의 중심 존재인 신랑 신부는 어떠한 사람들인가. 땅위에서 참부모의 사랑과 인연맺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내가 참부모를 모시고 참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2천년 섭리역사를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 우주와 인류를 대신하여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인류가 짊어진 빚을 탕감하기 위한 역사를 지금까지 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 만물의 자리를 거치고 자녀의 자리를 거쳐서 신랑 신부의 자리까지 거친 후 예수를 중심삼고 참부모를 모실 수 있는 한때를 맞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하여 참부모를 모시는 사명을 완결지어야만 영원하신 하나님을 대신한 참부모의 사랑이 땅 위에 나타날 수 있고, 또 그럴 때에 예수의 사명이 비로소 끝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세계에서 복귀섭리의 목적이 이 땅 위의 만물 가운데 실체적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부활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예수가 갚아야 할 신랑 신부의 빚을 갚는 동시에 땅 위에서 예수가 달성해야 했던 그 참부모의 목적을 달성하여 하나님 앞에 만민을 대신한 복귀의 기도를 올릴 수 있는 한날을 이 땅에서 맞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빚을 갚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도 2천년 동안 빚진 자의 입장에 있었습니다. 참부모의 뜻을 다 완수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짊어진 이 빚을 온 만민을 대신하여 갚아야 할 책임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책임은 영적 책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영 육을 합한,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아담 해와의 입장을 복귀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중심삼고 만물 만상 가운데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며 경배드릴 수 있는 참부모를 대신한 가정을 이루어야만, 예수 그리스도의 2천년 역사노정의 목적이 종결됩니다.
이 하나의 목적을 이룰 것을 바라셔서 예수는 2천년 동안 하나님 앞에 간곡한 심정을 가지고 기원해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본연의 세계를 찾을 수 있는 제일 기준을 완결하려 하셨습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참부모의 사랑을 원점으로 하여 부부 그리고 자녀와 만물에까지 인연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거꿀잡이로 끌어 올리는 섭리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만물과 자녀와 부부가 인연을 맺어. 참부모로 나타난 예수를 중심삼고 신랑 신부의 기준을 중심삼아 억조창생 전부가 참부모의 말씀에 응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있는 그 세계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무궁세(無窮世)입니다.
이제 재림역사 시기에 있는 우리는 예수의 2천년 수고의 전부를 맡아야 되겠습니다. 2천년 동안 예수가 수고하던 그 역사의 전부를 내가 대신할 수 있는 결심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심을 가져야만 비로소 참부모 앞에 진 사랑의 빚을 갚은 자녀의 위치에 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대신 만물을 주관하는 하나의 중심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축복하시던 하늘의 뜻이 완결되어지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참부모로부터 진 빚을 갚고, 참부부의 빚을 갚고, 참만물의 빚을 갚고 나서 하나님을 대하게 될 때, 여러분의 마음과 몸이 하나님 앞에 나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자체들이 되게 됩니다. 하나님을 대하여 감사의 경배를 드리지 않을래야 드리지 않을 수 없는 내가 되어야겠습니다. 생각하기 전에 행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요구하기 전에 목적을 나타낼 수 있는 내가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빚을 갚으려면
그렇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천지의 운세는 하늘로부터 부모, 부모로부터 부부, 부부로부터 만물에까지 돌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 모든 단계와 인연을 맺고 나설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존재가 돼야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고, '하나님이여 !' 하고 부를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직접주관권의 세계입니다. 그런 자리에 나타나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위치에까지 우리는 나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2천년 동안 예수가 영계에서 싸우고 성신이 땅에서 싸우던 것을 오늘날 우리가 인계받아 이제까지 진 빚을 갚음으로써, 참부모를 대신한 입장에서 만물을 대할 수 있고 이 땅에 있는 사탄을 대하여 싸워 이길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가 될 때 영원하신 하나님이 타락한 인류를 대하여 복귀섭리를 하시면서 염려하며 탄식하던 그 마음을 해원할 수 있는 동시에, 내 한 자체가 비로소 사탄에 의하여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로소이다'하고 증거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창조적 존재가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같이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고로 우리에게는 중대한 사명이 있습니다. 오늘날 신앙생활을 통하여, 여러분은 내 한 자체에 미쳐진 모든 주위환경 가운데서 빚을 갚아야 됩니다. 갚아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활 가운데서 내가 응당히 빚 갚는 생활을 하고 있는가 스스로 검토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신앙생활하는데도 영원하신 하나님의 빚과 부모의 빚과 부부의 빚 그리고 만물의 빚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모든 빚을 탕감할 시대와 인연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되겠는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타락한 직후에는 하나님 앞에 설래야 설 수 없고 하나님을 대할래야 대할 수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대하여 원망하려면 한없이 원망할 수 있었습니다. 탄식하고 증오하려면 한없이 탄식하고 증오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는 타락의 빚도 있지만 역사과정의 모든 원한의 빚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아야 할 원인이 어디있느냐?
오늘날 우리들이 참고 참아야 할 원인이 어디 있느냐? 우리가 참지 못하면 우리가 진 빚을 갚을 수가 없고, 하늘이 품고 참아온 원한을 해원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천지의 운세는 하나님의 섭리와 더불어 돌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이 노할 때 같이 노할 줄 알고, 하나님의 분함과 하나님의 울분에 대해서 편들면 사탄세계는 심판받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노정을 가고 있는 우리를 대해서 하늘이 온유겸손하고 화내지 말고 참고 견뎌라 하는 이런 모든 가르침이 다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거기에 같이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하나님의 섭리와의 사이에 틈이 나게 되면 사탄이 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믿는 사람들은 무조건 희생하고 무조건 순종하여 사랑의 내적인 부분만을 따라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우주적인 천리법도를 파탄시킨 파탄자로서 또 빚진 자로서 만물 앞에 부끄러운 생활을 해왔고, 하늘 앞에 염려를 끼치는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 부부는 주를 대신할 수 있는 부부가 돼야겠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대신 하고 땅을 대신해서 내 생애에 부모로 모실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계를 맺어 가지고 하늘을 대신해서 참부모, 참부부, 참만물을 대할 수 있는 관계를 우리가 평면적으로나 입체적으로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되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는 드디어 승리했습니다. 아바 아버지시여 ! 나는 나의 생애를 바쳐, 인류가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사탄을 하나님 대신 따르고, 사탄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시험을 받아오던 이 모든 관계를 다 물리쳤나이다. 그리고 나는 만 우주의 빚을 다 갚고 사탄을 완전히 굴복시킨 완성한 자녀로소이다'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되어야만 우리에게 머물러 있는 천륜의 빚을 갚은 자로서 하늘과 만 우주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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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진 빚을 갚는 자가 되자
1956.06.10 (일), 한국 전본부교회
오늘 잠깐 동안 말씀드리려 하는 제목은 '진 빚을 갚는 자가 되자'입니다. '진 빚을 갚는 자가 되자.' 이러한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죄의 빚과 수고의 빚을 지고 있는 인간
본래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는 빚지라는 원칙을 세워 놓지 않았습니다. 서로 주고 받을 수 있으며, 그대 것이자 내 것이요 내 것이자 그대의 것으로, 둘의 모양은 하고 있으되 하나의 실증체로서 인간과 일체의 관계를 맺으려 했던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습니다.
이러한 목적으로 지음받은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타락한 연고로, 그 이후 지금까지의 억조창생은 하늘 앞에 무한한 빚을 진 자들이 되었습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여지없이 떨어진 인간으로 하여금 다시 빚을 갚을 수 있는 길을 세워 주기 위해서 대표적인 하나의 존재로 보내심을 받은 분이 누구였느냐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역사과정을 거치면서 빚을 갚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또 이러한 생애를 통하여 우리는 영생을 바라며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자체가 만 우주 앞에 내세울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줄 알고 있으나, 여러분의 일신에는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수천년 역사를 통하여 타락의 혈통을 받은 죄의 빚이 남아 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우리에게는 그 죄의 빚 외에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대하여 섭리하셨던 수고의 빚이 남아 있으며, 그 외에 천천만 선지선열, 혹은 천군천사들이 복귀역사를 해온 수고의 빚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내 한 개체는 천륜 앞에 진 빚을 갚을래야 갚을 수 없고, 체면을 세울래야 새울 수 없는 인간인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체면을 세워 천륜 앞에 세우기 위하여 우리를 대표해서 세워진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영생의 빚, 생애의 빚, 사랑의 빚, 인연의 빚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중심삼고 영원한 생명을 가져야 할 인간이었습니다. 부모를 통하여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해야 할 존재였습니다. 또 부부를 중심삼고 부모를 대신한 사랑을 가져야 할 존재 였습니다. 만물과도 사랑의 인연을 맺었어야할 인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인간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대하여서는 영생의 빚을 지고 있고, 부모를 대하여서는 생애의 빚을 지고 있고, 부부에 있어서는 사랑의 빚을 지고 있으며, 만물을 대해서는 인연의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으신 후 그 만물의 주인공으로 아담 해와를 세우신 목적은 어디 있었는가 하면, 사람에게 영원한 책임을 지워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영원히 사랑해야 할 책임이 지워져 있었습니다. 즉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고 사탄의 품으로 끌려감으로 말미암아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생명의 빚이 오늘날 우리 각자에게 머물게 되었습니다.
또한 부모를 중심삼고 태어난 이후 부모님이 생애를 통하여 사랑해 주시고 염려해 주신 빚을 지고 있습니다. 부부를 중심삼고 생활적으로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빚도 지고 있습니다. 만물을 대해서는 자연이 준 사랑의 빚도 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에게는 영원한 사랑의 빚을, 부모에게는 생애의 빚을, 부부에 있어서는 생애를 중심삼은 사랑의 빚을, 만물에 대해서는 시간시간의 생활에서 진 사랑의 인연의 빚을 진 자들이 바로 오늘날 우리 한 자체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만물의 주인공으로서 하늘 앞에 체면을 지킬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인간은 하늘에 대한 영원한 빚과 부모에 대한 생애의 빚, 부부에 대한 사랑의 빚, 만물에 대한 생활의 빚 등을 지고 있는데, 만물은 인간이 이 모든 빚을 갚을 것을 은연 중에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의 빚을 대신 갚으러 오셨던 예수
그런데 인간의 능력으로는 그 빚을 갚을래야 갚을 수 없고 청산할래야 청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입장에 있는 인간들로 하여금 영원한 하늘 앞에 설 수 있도록, 즉 영원한 부모를 대신하며 하늘 앞에 설 수 있고, 영원한 부부를 대신하여 하늘 앞에 설 수 있고, 영원한 만물의 사랑을 대신하여 하늘 앞에 설 수 있는 하나의 중심존재로 세워진 분이 누구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인간들에게 바라시던 사랑의 실적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부모를 대신한 사랑의 실체로 나타난 분이 예수였습니다. 또 영원한 부부를 대신한 사랑의 실체로 나타난 분도 예수였습니다. 만물의 사랑과 영원한 인연을 맺고 나선 존재도 바로 예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일신에는 4천년이라는 기나긴 역사가 연하여 있었고, 나아가 영원한 미래까지 연하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지게 된 빚과 영원 하신 참부모님 앞에 지게 된 빚과 악으로부터 침범받지 않은 선한 만물 앞에 지게 된 인연의 빚을 갚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지만 다 갚지 못하고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예수가 남긴 그 빚을 다 갚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만물과의 인연으로부터 부부의 인연과 부모의 인연과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인연을 맺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를 위해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 목적은 또 다시 미완성 단계에 머물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과정을 곰곰이 관찰해 보게 될 때, 예수가 오기 전까지는 시대적으로 만물숭배시대였습니다. 만물을 하나님 대신 믿고, 만물을 하나님 대신 가까이한 시대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들이 모든 것보다도 자신들의 아들 딸에게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렇게 만물숭배시대를 거치고 자녀를 숭배하는 시대를 거친 다음 신랑 신부를 숭배하는 시대로 들어섰다가 이제는 신랑 신부를 숭배하던 시대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남은 시대가 무엇이냐 하면 부모를 숭배하는 시대입니다. 부모를 좀더 온전히 세울 수 있는 시대가 반드시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의 몸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어야 되겠습니다. 내 한 자체가 예수와 하나되는 자리에 들어가서 오늘의 이 미묘한 모든 자연현상들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생명의 인연에서 벗어나지 않는 직감적인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내리쬐는 태양이라든가 불어오는 바람 등 모든 만물들과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의 맥박을 대신한 관계를 맺어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던 우리지만 예수를 중심삼으면 새로운 것을 느낄 수 있으며 만물과 새로운 심정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소유 원칙을 중심삼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후에는 내가 만물과 즐길 수 있는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권내로 끌려갈 수 있고 또 그 사랑이 내 마음에로 끌려올 수 있는 생활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깊은 은사의 자리에 들어가 하늘 앞에 서게 될 때에는 어떠한 만물과도 속삭일 수 있습니다.
바람소리나 그 외 존재하는 모든 만물 중 어떠한 존재도 인간과의 인연을 맺고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위하여 지음받은 모든 만물은 인간과 인연된 그 인연의 가치를 인간 앞에 나타내고 인간 앞에 인정받기 위하여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만물에 대한 빚을 갚으려면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은 타락권내에 있으므로 이 만물의 가치를 인정할 줄 모르는 입장입니다. 그런고로 오늘날 여러분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새로운 사랑을 느끼게 될 때 만물도 새로운 생명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여러분이 깨닫고 어떤 만물을 붙들고라도 최고의 생명의 기준을 세울 수 있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홀로라도 하늘의 무한하신 사랑을 노래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된다면, 우리는 구속받지 않은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만물이 우리로 인하여 화동할 수 있기 때문에 내 한 자체가 어느 곳에 머물지라도 펑화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떠한 힘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의 기준을 창조의 목적으로 세우시고 그 목적을 이루는 대신자로 인간을 세우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만물을 주관토록 하셨는데, 오늘날 인간들은 그 만물 앞에 체면을 세울 수 없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오늘날 만물 앞에 말할 수 없는 탄식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서 8장에 있는 말씀과 마찬가지로 만물이 우리를 대하여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래의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한 인간을 중보로 하나님과 연락되어져야 할 만물이 인간이 부패하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만물의 이상체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께서 왔다 가신 이후 2천년 역사가 경과한 오늘날에 있어서도 만물은 그들에 대한 하나의 목적이 우리 인간들에게 이루어지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만물 앞에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만물이 요구하는 소망의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내 한 자체가 이 소망의 빚을 청산해야 합니다. 만물과 하나될 수 있는 자격자가 되는 동시에 만물이 사랑할 수 있는, 만물이 위해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어야겠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할 우리들인 것입니다.
사랑의 빚을 갚을 수 있는 자격자
예수와 성신은 오늘날 여러분을 새로이 낳는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예수와 성신의 요소를 받아 가지고 어느 곳을 표준하여 나아가고 있느냐 하면, 자녀의 자리를 거쳐 신랑 신부의 자리를 표준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예수를 믿어서 은혜받고 성신의 감동을 받아 그 힘들을 의지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내 한 자체에 있어서 이루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예수의 은혜가 없을지라도 성신의 감동이 없을지라도 내 한 자체가 예수의 은혜를 받은 대신, 성신의 감동을 받은 대신 하나의 신부체로 완성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에서 실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의 우리들까지도 성신이 역사할 때만 신부로서의 사랑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성신의 역사를 통하여 자녀로서 장성하였으니, 성신의 역사를 받지 않아도 예수님을 신랑으로 사모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계속 성신의 협조로 이루어져야 한다면 여러분이 땅 위에서 부부의 사랑에 대한 빚을 갚을 도리가 없게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 하나의 개체를 통하여 성신의 감동을 받지 않고도 예수를 신랑으로 모실 줄 아는 신부의 자리까지 나아가야만 우리가 천륜 앞에 본연의 위치로 세워졌던 부부, 그 부부의 사랑의 빚을 갚을 수 있는 자격자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타락해 떨어진 인간이 복귀섭리를 통하여 만물로부터 자녀의 입장을 거쳐 신랑 신부의 입장까지 복귀된 후에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 다음에는 우리의 생애를 책임지고 사랑해 주신 참부모의 사랑과 인연맺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창조의 뜻으로 세우신 그 참부모의 사랑의 빚을 우리가 탕감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참부모가 내 일생을 염려해 주시는, 그러한 천륜적인 사랑의 빚을 여러분이 영과 육을 합하여 갚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물로부터 자녀의 자리를 거쳐 신랑 신부로 복귀된 후에는 무엇을 찾아야 될 것인가. 참부모를 찾아야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온 세계 인류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부모를 위해 타락치 않은 참부모를 찾아야 되는데 이 참부모가 어느 때에 나타나실 것인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부모는 재림 시기에 나타나십니다.
참부모에 대한 빚을 갚아야 할 때
기독교에서는 신랑 신부의 이념을 통하여 어린양잔치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어린양잔치의 중심 존재인 신랑 신부는 어떠한 사람들인가. 땅위에서 참부모의 사랑과 인연맺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내가 참부모를 모시고 참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2천년 섭리역사를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 우주와 인류를 대신하여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인류가 짊어진 빚을 탕감하기 위한 역사를 지금까지 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 만물의 자리를 거치고 자녀의 자리를 거쳐서 신랑 신부의 자리까지 거친 후 예수를 중심삼고 참부모를 모실 수 있는 한때를 맞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하여 참부모를 모시는 사명을 완결지어야만 영원하신 하나님을 대신한 참부모의 사랑이 땅 위에 나타날 수 있고, 또 그럴 때에 예수의 사명이 비로소 끝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세계에서 복귀섭리의 목적이 이 땅 위의 만물 가운데 실체적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부활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예수가 갚아야 할 신랑 신부의 빚을 갚는 동시에 땅 위에서 예수가 달성해야 했던 그 참부모의 목적을 달성하여 하나님 앞에 만민을 대신한 복귀의 기도를 올릴 수 있는 한날을 이 땅에서 맞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빚을 갚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도 2천년 동안 빚진 자의 입장에 있었습니다. 참부모의 뜻을 다 완수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짊어진 이 빚을 온 만민을 대신하여 갚아야 할 책임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책임은 영적 책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영 육을 합한,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아담 해와의 입장을 복귀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중심삼고 만물 만상 가운데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며 경배드릴 수 있는 참부모를 대신한 가정을 이루어야만, 예수 그리스도의 2천년 역사노정의 목적이 종결됩니다.
이 하나의 목적을 이룰 것을 바라셔서 예수는 2천년 동안 하나님 앞에 간곡한 심정을 가지고 기원해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본연의 세계를 찾을 수 있는 제일 기준을 완결하려 하셨습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참부모의 사랑을 원점으로 하여 부부 그리고 자녀와 만물에까지 인연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거꿀잡이로 끌어 올리는 섭리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만물과 자녀와 부부가 인연을 맺어. 참부모로 나타난 예수를 중심삼고 신랑 신부의 기준을 중심삼아 억조창생 전부가 참부모의 말씀에 응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있는 그 세계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무궁세(無窮世)입니다.
이제 재림역사 시기에 있는 우리는 예수의 2천년 수고의 전부를 맡아야 되겠습니다. 2천년 동안 예수가 수고하던 그 역사의 전부를 내가 대신할 수 있는 결심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심을 가져야만 비로소 참부모 앞에 진 사랑의 빚을 갚은 자녀의 위치에 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대신 만물을 주관하는 하나의 중심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축복하시던 하늘의 뜻이 완결되어지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참부모로부터 진 빚을 갚고, 참부부의 빚을 갚고, 참만물의 빚을 갚고 나서 하나님을 대하게 될 때, 여러분의 마음과 몸이 하나님 앞에 나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자체들이 되게 됩니다. 하나님을 대하여 감사의 경배를 드리지 않을래야 드리지 않을 수 없는 내가 되어야겠습니다. 생각하기 전에 행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요구하기 전에 목적을 나타낼 수 있는 내가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빚을 갚으려면
그렇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천지의 운세는 하늘로부터 부모, 부모로부터 부부, 부부로부터 만물에까지 돌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 모든 단계와 인연을 맺고 나설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존재가 돼야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고, '하나님이여 !' 하고 부를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직접주관권의 세계입니다. 그런 자리에 나타나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위치에까지 우리는 나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2천년 동안 예수가 영계에서 싸우고 성신이 땅에서 싸우던 것을 오늘날 우리가 인계받아 이제까지 진 빚을 갚음으로써, 참부모를 대신한 입장에서 만물을 대할 수 있고 이 땅에 있는 사탄을 대하여 싸워 이길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가 될 때 영원하신 하나님이 타락한 인류를 대하여 복귀섭리를 하시면서 염려하며 탄식하던 그 마음을 해원할 수 있는 동시에, 내 한 자체가 비로소 사탄에 의하여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로소이다'하고 증거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창조적 존재가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같이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고로 우리에게는 중대한 사명이 있습니다. 오늘날 신앙생활을 통하여, 여러분은 내 한 자체에 미쳐진 모든 주위환경 가운데서 빚을 갚아야 됩니다. 갚아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활 가운데서 내가 응당히 빚 갚는 생활을 하고 있는가 스스로 검토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신앙생활하는데도 영원하신 하나님의 빚과 부모의 빚과 부부의 빚 그리고 만물의 빚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모든 빚을 탕감할 시대와 인연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되겠는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타락한 직후에는 하나님 앞에 설래야 설 수 없고 하나님을 대할래야 대할 수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대하여 원망하려면 한없이 원망할 수 있었습니다. 탄식하고 증오하려면 한없이 탄식하고 증오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는 타락의 빚도 있지만 역사과정의 모든 원한의 빚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아야 할 원인이 어디 있느냐?
오늘날 우리들이 참고 참아야 할 원인이 어디 있느냐? 우리가 참지 못하면 우리가 진 빚을 갚을 수가 없고, 하늘이 품고 참아온 원한을 해원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천지의 운세는 하나님의 섭리와 더불어 돌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이 노할 때 같이 노할 줄 알고, 하나님의 분함과 하나님의 울분에 대해서 편들면 사탄세계는 심판받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노정을 가고 있는 우리를 대해서 하늘이 온유겸손하고 화내지 말고 참고 견뎌라 하는 이런 모든 가르침이 다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거기에 같이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하나님의 섭리와의 사이에 틈이 나게 되면 사탄이 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믿는 사람들은 무조건 희생하고 무조건 순종하여 사랑의 내적인 부분만을 따라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우주적인 천리법도를 파탄시킨 파탄자로서 또 빚진 자로서 만물 앞에 부끄러운 생활을 해왔고, 하늘 앞에 염려를 끼치는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 부부는 주를 대신할 수 있는 부부가 돼야겠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대신 하고 땅을 대신해서 내 생애에 부모로 모실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계를 맺어 가지고 하늘을 대신해서 참부모, 참부부, 참만물을 대할 수 있는 관계를 우리가 평면적으로나 입체적으로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되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는 드디어 승리했습니다. 아바 아버지시여 ! 나는 나의 생애를 바쳐, 인류가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사탄을 하나님 대신 따르고, 사탄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시험을 받아오던 이 모든 관계를 다 물리쳤나이다. 그리고 나는 만 우주의 빚을 다 갚고 사탄을 완전히 굴복시킨 완성한 자녀로소이다'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되어야만 우리에게 머물러 있는 천륜의 빚을 갚은 자로서 하늘과 만 우주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말씀선집 제1권 8편
하나님의 주관세계를 찾아드리자 (훈독본)
1956.06.27 (수), 한국 전본부교회
마태복음 22:15-22
하나님의 주관세계를 찾아드리자(말씀선집 제1권 8편 )
봉독한 성경 본문(마 22:15-22 )을 중심삼고 이 시간에 말씀드리려 하는 제목은 '하나님의 주관세계를 찾아드리자' 입니다.
주관주 하나님을 찾는 일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지으신 모든 만물은 아직까지 하나님을 주관주로 모시지 못한 채 슬프고 어려운 입장에 머물러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복귀과정에서 기필코 해결해야 할 운명으로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 한 개체가 하늘 앞에 맹세하고 승리할 수 있는 제물로 서기를 바란다면, 하나님이 바라시는 주관성 복귀를 완결지어 드려야 합니다. 그러지 못한다 할진대는 도저히 승리의 제물로 설 수 없습니다. 인간 앞에 이런 과정이 있게 되는 이유는 타락 이후에 어느 누구도 원치 않는, 사탄이 주관하는 세계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피조물을 세워 놓고 그의 소원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그것은 어떤 존재물도 '주관주 하나님을 찾는 일'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이렇듯 만물 만상이 찾고 있는 것이 참된 주관주인 하나님인 것을 하나님 자신도 잘 알고 계시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만물을 직접 주관할래야 주관할 수 없는 입장에 계십니다. 이것이 하늘의 서러움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주관주 하나님을 잃어버린 우리 인간들이 몸으로 마음으로 바라는 소망은 무엇인가? 피조 만물 전체가 바라고 이상하는 대로 주관해 주시던 창조주 하나님, 그 하나님이 다시 직접 주관해 주시는 일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이와 같은 소망과 뜻을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고 그 일을 완수하기 위한 소명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주관성을 복귀해 드려야 되겠고, 그와 더불어 만물의 주인으로서의 주관성도 복귀해 드려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관해 주시는 은사에 대해 감사의 영광을 돌려드려야 되겠습니다. 이런 책임이 만물에 있는 것도 아니요, 하늘의 천군천사에게 있는 것도 아니요,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한번 책임을 하지 못하게 되면 하늘의 전체의 주관성을 잃게 되는 것이요, 본연의 하늘을 잃게 되면 만물의 소망 전부를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우리들이 생활을 통하여 그 역사적인 운명을 대신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을 것이요, 또 만물 앞에 만물의 영장으로서 나타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은 피조세계 전체의 중심인 동시에 하나님의 창조성을 가진, 내적인 세계의 중심으로 창조된 내 한 자체가 나아가야 할 노정은 오늘날의 내 일개에 머무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전체를 주관하시고 전체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 한 자체가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주관물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결과
그러면 오늘날 우리의 서러움은 무엇인가, 우리의 슬픔과 탄식은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6천년 동안 복귀역사 과정에 숨겨진 간절한 소원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내가, 만민이, 만우주가, 하늘 땅이 잃어버린 하나님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찾아야 할 소망의 본체이신 동시에 전체의 가치를 대표하는 영광의 본체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전체의 주관성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여러분 한 자체에서 하나님을 소유하고 하나님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자기 마음에 사무쳐 있는 죄악의 뿌리를 뽑아 내고, 만민을 대신하여 오늘날까지 6천년 동안 하늘을 배반해 싸워 나오던 사탄을 굴복시키어 하나님의 세계를 이루지 못하면,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주관적인 행사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마음으로 자유를 찾고 있는데, 어떠한 자유를 찾고 있는가?
여러분이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사탄의 종이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소유하지 못하고 사탄을 소유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천리원칙을 대적하는 역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소유하려면
그러면 하나님께서 천륜의 법도를 가르쳐 주신 이유는 어디 있는가?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방편,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편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방편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섭리해 나오신 노정이 6천년 역사 노정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동서남북의 어디로 달리든, 또는 어떠한 과정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변하지 않는 이상, 여러분이 갖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소유권은 변경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자리에 서지 못한다면, 여러분을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하나님의 소망은 그때까지 미완성 상태로 있을 것이요, 불비(不備)한 입장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러한 나로 말미암아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이 남아 있게 되고 하나님의 서러움이 남아 있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과 영원한 상대기준을 조성할 때 여러분이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마음대로 주관하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예수님의 마음이 하나되듯이. 오늘날 여러분이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된 입장에 들어가 하나님의 마음과 일체적인 관계를 이룬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만일 그러한 입장에 서지 못한다면 여러분의 그러한 마음에는 사탄의 참소조건이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뜻 가운데서 내 마음이 원하는 목적대로 살아서 하나님의 전체적인 이념을 대신함으로써 제 2의 하나님의 입장에 서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럴 수 있는 본성의 마음을 타락으로 인하여 잃어버림으로써 오늘날 인간들은 이 본성의 마음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조건, 슬픈 운명의 노정을 걸어야 할 조건이 남아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마음을 맑혀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서러움에 사로잡혀 있는 마음이지만 천륜을 대하게 될 때 새로운 마음을 일으켜 가지고 어둠을 헤쳐나갈 수 있는 본성의 마음을 세워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천상에 계신 하나님의 심정과 통하고 사망권에 싸인 인간들의 마음까지 관계맺어,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마음의 형태를 찾아 세워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마음을 갖지 못했음을 알고 회개라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소유하신 예수
아직까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인간들이 하나님 대신 체계적인 권한을 세워 행동하지 못하는 서러운 입장에 머물러있습니다. 그렇다 할진대는 인간들이 머물러 있는 만큼 사탄이 즐거워하는 무대를 남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서러움에 거할 수 있는 조건으로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천지의 이치는 둘이 합하지 아니하면 하나되는 원칙을, 또는 하나의 새것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소유한 자로서 완결지어진 분으로 세우심을 받은 분이 누구였느냐 하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또 인간세계에 있어서 인간들의 마음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심정의 외적 부분을 대신한 형태를 갖춘 존재, 영계의 무형세계와 실체적인 유형세계에 있어서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존재로 보내진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 위에 오셔서 하나님을 소유하고, 나아가 그의 마음이 인간과 상대기준을 조성함으로 말미암아 그의 몸은 하나님의 몸을 대신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소유하고 만물을 소유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서 나타나신 예수님은, 그 몸이 원칙적인 소유권을 가지고 나타났기 때문에, 그가 나타나신 날은 천륜을 대신한 하나님의 날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전체 적인 소유권, 불변의 소유권을 가졌다 할진대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그 소유권을 중심한 가치적인 기준과 여러분의 마음이 결합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지상에 남겨 놓고 가신 육신을 중심한 전체적인 소유권의 가치를 온 천상천하에 나타내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한날이 오기를 바라는 것이 오늘날 재림사상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 재림주가 오셔서 해야 할 사명은 무엇인가. 끝날의 기독신도들이 이루어야 할 최후의 목적은 무엇인가.끝날의 기독신도들이 이루어야 할 최후의 목적은 무엇인가. 기독신도들이 아무리 마음으로 하나님을 소유했고 또는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소유했다 할지라도 한가지 조건이 남아 있으니 그것은 몸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이 몸의 소유권을 종결지어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 하나님의 본성을 실증할 수 있는 화신체로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존재가 어느 세월에 나타날 것인가? 그러한 존재를 찾아 세우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왔다 가셨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몸의 복귀와 전체적인 주관권 복귀
예수님이 가신 이후 이 땅 위에 성신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이 예수님이 가지신 마음의 주관성과 하나님의 전체 주관성과 하나되고, 자신의 소유권과 하나님의 소유권과 하나되어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몸이 성신적인 가치를 나타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영이 분리됨으로 말미암아 몸적인 가치를 나타내지 못했지만 예수의 마음적인 부분과 하나님과 하나된 가치의 성신이 나타난 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4천년 역사가 무엇이었던가 하면, 인간들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소유권을 인습적인 권내에서 자연적인 소유권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인식을 통하여 몸에서 완결시켜 그 인식의 가치를 상대적인 가치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섭리노정에서의 어려움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 자신은 33년의 생애를 통해 하나님을 소유하고 그 마음을 소유했지만, 아직까지 2천년 역사 속에서 사탄 참소의 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성신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은 영계에서 사탄의 참소를 받고 있고, 성신은 육계에서 사탄의 참소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인간들은 신앙노정에 있어서 자기 몸을 쳐야하는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면 몸을 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몸을 치는 것은 사탄을 없애자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 몸을 침으로 말미암아 그 몸을 누가 점령할 수 있는가 하면 성신이 점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몸을 치는 것은 성신이 몸을 점령하게 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한 것입니다. 내 몸을 치는 것은 결과적으로 사탄을 치는 것이 되므로 내 몸을 침으로 말미암아 사탄을 치고 사탄을 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점령했던 것을 대신 성신이 점령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고, 본연의 양심을 소유할 수 있고, 몸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거기에서 비로소 천상천하의 모든 만물을 대신한 영원 불변한 하나의 소유권을 비로소 완결지었다고 할 수 있는 가치를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경지를 못 찾으면, 여러분은 자신의 몸을 쳤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찾아야 여러분은 정적인 면에 있어서 전체의 주관적인 기준을 세워 하나님을 대신하여 영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이러한 뜻이 있었기에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신 이후 지금까지 역사하고 계시며 성신이 수고하시는 역사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육을 가진 어떠한 사람, 사탄권 내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성신이 점령할 수 있는 그날을 바라고 섭리해 나온 것이 예수 이후 하나님의 애달픈 2천년 섭리역사였던 것입니다.
자기가 지은 죄를 회개하는 것은 자기 마음적인 가치를 찾기 위한 것입니다. 전체의 주관주로 계시는 하나님을 소유했다고 할 수 있는 그러한 가치적인 회개를 해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하는 이유
몸을 치는 목적은 성신으로 하여금 그 몸을 점령시켜 몸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망각하고 있습니다. 2천년 동안 이것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육의 사랑이 도외시된 가운데서 영의 사랑은 완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던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되고 마음과 몸이 하나되면, 몸은 자연히 움직이고 마음과 몸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완전히 주고 받는 데서 발전 하는 것이 천리원칙이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인 기준을 조성하여 서로 하나되고 잘 주고 잘 받는 수수작용이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실증적인 하나의 실체가 창조되는 것이 창조의 법도요, 그래야 완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게 된 원인이 어디 있느냐 하면, 하나님 자신이 기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이 하나될 수 있는 그 관계적인 일을 이루기 위해서 실천을 다하게 될 때에는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고, 나아가 땅 위의 인간과 하나될 수 있는 기준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땅에 하늘의 섭리가 새롭게 전개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여러분 일신에 있어서도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성신과 인연을 맺게 될때, 하나님의 승리적인 전체 주관성을 복귀할 수 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알고 보니 하나님의 뜻을 향하여 나아가는데 있어서는 하나의 방향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전후 좌우 사방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에게는 사탄을 향할 방향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마음 몸을 찾으려 해도 또 여러분의 몸 마음이 종적인 면을 갖추고 횡적인 면을 갖추려 해도 사방에 사탄이 있고, 나아가 전후 좌우 상하 6방향에서 사탄이 어둠의 장막을 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사탄의 장막을 뚫고 나가 자기 일신을 세워,하나님은 영원한 나의 소유요, 내 마음은 하나님의 소유요, 내 몸도 하나님의 소유요, '그자 나요, 나자 그'인 이러한 가치를 만물 앞에 드러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하나의 가치적 존재, 성신과 예수님과 하나님이 임할 수 있는 하나의 가치적 존재가 이 피조세계 가운데 어디에 있겠는가. 그 하나의 존재가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애달프게 소망하신 실체요, 찾으시려던 복귀의 이상의 실체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애달프게 찾아오신 실체
이제 여러분들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소유했다고 할진대는, 영원한 중심으로 세울 수 있는 여러분 자체의 마음을 소유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여러분의 몸을 영원한 생명을 조성할 수 있는 실체로 완결지어 여러분이 소유했다 할진대는,여러분 자체가 머무는 곳이 어디든 그 곳에선 승리의 호산나의 개가가 울릴 것입니다. 온 피조만물이 '그대는 과연 영광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하면서 자연굴복할 수 있는 입장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그러한 가치를 지닌 입장에서 만물 만상을 전체를 대신하여 하늘의 영광을 갖추어 하나님 앞에 호산나의개가를 돌려야 합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천상에 있는 천군천사와 천천만 성도들이 기쁨의 한날, 즐거움의 한날을 맞이하게 되고, 나아가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완결되지 않으면 이를 위한 길을 인간들은 억조만년이라도 가야 할 것입니다.
아직까지 이것을 완결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누구때문에 그렇게 되었는가. 이것은 물론 내가 불완전하고 나 자신이 나빠서 그렇기도 하지만, 나보다도 하늘을 대하여 참소하는 사탄들이 있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전체의 주인, 주관주 되시는 그 한 분으로 말미암아 우주 만상을 주관할 수 있었더라면, 그가 전체의 복귀를 완성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괜찮아요. 전체적인 힘을 이용하여 집중적으로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전체의 역사를 하나의 방향으로 나가도록 이끌려고 하셨지만 사탄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을 다 완결짓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사탄을 무조건 굴복시키기 위해, 또 완성하지 못하고 간 천상의 모든 뭇 영인들이 완성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는 은사를 주시기 위하여 한 분을 보내시기로 약속하셨었는데, 그 분이 누구냐 하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여야 할 입장에서 이제 내가 가져야 할 것은 무엇인가. 원래 인간 대한 하늘의 이상은 하늘의 소유권, 마음의 소유권, 몸의 소유권을 지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러한 이상권에 나아가지 못했다면,여러분은 악의 소유권과 선의 소유권을 살필 줄 아는 눈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또 그러한 눈을 가졌다면, 다음엔 선의 소유권과 악의 소유권을 분별하여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그런 오관을 다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한날의 생활에 있어서 사탄의 참소를 끊고 막을 수 있는 자신이 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재림주님이 오셔도 모르게 됩니다.
분별할 줄 아는 신앙
여러분들은 재림주 하면 눈을 껍죽껍죽 하며 좋아합니다. 좋긴 뭐가 좋아요. 예수님을 이스라엘민족, 즉 바리새인, 제사장들이 바로 보지 못했습니다. 로마 병정이 그를 보지 못했고, 반대하던 사람들은 그를 볼래야 볼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심성에서 마음이 통하고 몸이 통하여 하나의 전체를 대신한 가치의 기준이 잡혀진 사람만이 예수를 보았던 것입니다. 보고 듣는 것은 인간 자신의 심성에 의한 면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들이 만 인간 앞에 의로운 선의 가치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몸은 그것을 반대합니다. 이것이 사탄의 본질입니다.
그러면 숨어서 나타나지 않은 가운데, 남이 모르는 가운데 하나님과 본연의 마음을 소유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런 사람을 찾는 사람은 영원하신 하나님이 같이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그러한 자리에 못 나갔다 할진대는 악의 주관권과 선의 주관권이라도 분별할 줄 알아야되겠습니다. 그것들을 마음 몸으로 분별할 줄 알아야 될 뿐만 아니라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분별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그리하여 여러분이 하늘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다면 예수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어요. 그러므로 사탄의 모든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천상천하에 남겨진 악의 모든 주관적인 요소를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하나님 앞에서 승리적인 완결 조건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조건을 세울 수 있다면, 여러분은 이 땅 위에 살면서 고통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소유한 사람으로서 마음은 그리스도한테 붙들린 바 되고, 몸은 성신에게 붙들린 바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마음적인 세계에 대한 섭리과정이었기 때문에 몸의 고통이 병존했습니다. 몸이 고통당했어요. 마음과 몸이 분열되었던 거예요.
나아가 여러분이 생애를 통하여 체휼적인 신앙을 함에 있어서 분별적인 원칙의 노정을 걸고, 만물 만상 앞에 영원을 대신한 불변의 승리자라고 자랑한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기준을 여러분이 세우지 못한다면, 이 땅 위에 슬픔의 조건이 남아지게 됩니다. 또 슬픔의 조건이 남아 있는 이상, 천상에 가서도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찾아나가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마음적인 예수, 몸적인 성신을 통한 생명체로 하나님의 영광의 실체로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여러분이 믿음의 실체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이 삼위신의 협조 없이 그 일을 대신할 수 있는 영광의 자아를 복귀했다 할진대, 이 천지가 운행하는 법도와 마찬가지로 기쁜 마음이 여러분 전체를 주관할 것입니다. 그런 생활은 한 순간이 아니라 영원히 해야 되겠습니다.그리하여 '아버지가 나의 것, 주가 나의 것, 성신이 나의 것, 나도 나의 것'이라고 하면서 만물 앞에 당당히 그 주관자로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하늘을 대하여 '오 아버지여! 감사합니다' 라고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천지운세의 법도에 있어서는 상충적인 존재는 없습니다. 인간은 창조주의 전체 이념을 대신하고, 창조주의 주관성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로 세움받았기 때문에, 마음과 몸이 있는 이상, 이 둘의 관계를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 땅 위에서 천상천하의 모든 것과 관계지을 수 있는 주관의 세계를 이루어야 주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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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하나님의 주관세계를 찾아드리자
1956.06.27 (수), 한국 전본부교회
봉독한 성경 본문을 중심삼고 이 시간에 말씀드리려 하는 제목은 '하나님의 주관세계를 찾아드리자' 입니다. 이런 내용으로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주관주 하나님을 찾는 일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지으신 모든 만물은 아직까지 하나님을 주관주로 모시지 못한 채 슬프고 어려운 입장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복귀과정에서 기필코 해결해야 할 운명으로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 한 개체가 하늘 앞에 맹세하고 승리할 수 있는 제물로 서기를 바란다면, 하나님이 바라시는 주관성 복귀를 완결지어 드려야 합니다. 그러지 못한다 할진대는 도저히 승리의 제물로 설 수 없습니다. 인간 앞에 이런 과정이 있게 되는 이유는 타락 이후에 어느누구도 원치 않는, 사탄이 주관하는 세계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담 해와를 통하여 기쁨을 누리시고자 피조 만물을 지으셨던 하나님께서는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지으신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담 해와도 잃어버렸고 만물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생각지도 않았던 사탄이 창조주 하나님의 입장을 대신해서 만물을 주관해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서러움이요, 지금까지 복귀역사노정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닮기 위해 하늘 향해 기원해 나오던 양심적인 사람들과 성도들의 서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만일 어떤 피조물을 세워 놓고 그의 소원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그 피조물들은 그들이 바라는 소원이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가. 그것은 어떤 존재물도 '주관주 하나님을 찾는 일'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이렇듯 만물 만상이 찾고 있는 것이 참된 주관주인 하나님인 것을 하나님 자신도 잘 알고 계시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만물을 직접 주관할래야 주관할 수 없는 입장에 계십니다. 이것이 하늘의 서러움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주관주 하나님을 잃어버린 피조물 중의 하나인 오늘날 우리 인간들이 몸으로 마음으로 바라는 소망은 무엇인가? 피조 만물 전체가 바라고 이상하는 대로 주관해 주시던 창조주 하나님, 그 하나님이 다시 직접 주관해 주시는 일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이와 같은 소망과 뜻을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고 그 일을 완수하기 위한 소명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주관성을 복귀해 드려야 되겠고, 그와 더불어 만물의 주인으로서의 주관성도 복귀해 드려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관해 주시는 은사에 대해 감사의 영광을 돌려드려야 되겠습니다. 이런 책임이 만물에 있는 것도 아니요, 하늘의 천군천사에게 있는 것도 아니요, 오늘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한번 책임을 하지 못하게 되면 하늘의 전체의 주관성을 잃게 되는 것이요, 본연의 하늘을 잃게 되면 만물의 소망 전부를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우리들이 생활을 통하여 생명을 통하여 그 역사적인 운명을 대신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을 것이요, 또 만물 앞에 만물의 영장으로서 나타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은 피조세계 전체의 중심인 동시에 하나님의 창조성을 가진, 내적인 세계의 중심으로 창조된 내 한 자체가 나아가야 할 노정은 오늘날의 내 일개에 머무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천륜을 위하여 사는 생활에 있어서 자기만을 생각하며 사는 생활을 한다면, 하나님의 창조적인 주관성은 그러한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중단될 것입니다. 만물이 여러분을 대하여 주관해 주기를 바라는 그 소망도 중단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 한 자체가 하늘이 전체를 주관하는 그 입장을 대신하고, 만물의 주관주를 대신하는 그 가치를 드러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자기 입으로 '당신이 찾고자 하는 하나의 존재, 전체를 대신한 본래의 주관주 자체로서 세움받은 뜻을 다 이루었사오니, 하나님이여, 명령하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입장에 설 수 있는 그 하나의 존재가 6천년 동안 섭리하시며 찾아나오신 하나님이 바라시는 존재인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6천년 섭리역사 속에서 고난과 싸우고 역경과 싸워, 원수 사탄을 물리치고 인간을 복귀시켜야 할 것이 우리들의 전체적인 의무인 것입니다.
그와 같이 전체를 대신한 우리 한 자체가 찾아야 할 주관성의 권한을 생각해 볼 때, 오늘날 우리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찾아야 되겠는가.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전체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전체를 주관하시고 전체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 한 자체가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하나님의 주관물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결과
그러면 오늘날 우리의 서러움은 무엇인가, 우리의 슬픔은 무엇이고, 우리의 탄식은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6천년 동안 복귀역사 과정에 숨겨진 간절한 소원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내가, 만민이, 만우주가, 하늘 땅이 잃어버린 하나님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찾아야 할 소망의 본체이신 동시에 전체의 가치를 대표하는 영광의 본체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전체의 주관성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여러분 한 자체에서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은 어떠한 분인가. 억조만상을 지으신 하나님이시요, 만물에 대한 전체 주관의 행사를 하시기 위하여 복귀의 수고를 해 나오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이제 여러분이 하나님을 소유했다 하면, 그 하나님은 여러분의 하나님이시므로 그가 영원하시면 여러분도 영원하게 되고, 그가 전체의 피조세계에 대하여 주관성을 가지게 되면 여러분 자체도 실체를 쓴 하나님적인 자리에 서 가지고 만물을 대하여 주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여러분 자체를 찾아 세우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소유했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의 모든 비애와 사망이 있게 된 것은 기실 하나님을 잃어버린 데서 연유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주인 행세를 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원래 창조원칙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을 하나의 주인으로 모셔야 할 피조물이었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대신 사탄을 주인으로 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사랑의 하나님을 다시 소유해야 할 운명적인 책임이 남아 있는데, 그 길을 가로막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지음받은 이 피조세계에서 하나님을 하나의 주인공으로 모셔야 할 그 뜻을 반대하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오늘날 여러분에게 죄악을 품게하고 있는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이 자기 마음에 사무쳐 있는 죄악의 뿌리를 뽑아 내고, 만민을 대신하여 오늘날까지 6천년동안 하늘을 배반해 싸워 나오던 사탄을 굴복시키어 하나님의 세계를 이루지 못하면,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주관적인 행사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마음으로 자유를 찾고 있는데, 어떠한 자유를 찾고 있는가. 여러분이 하나님을 찾지 앉으면 사탄의 종이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소유하지 못하고 사탄을 소유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천리원칙을 대적하는 역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소유하려면
그러면 하나님께서 천륜의 법도를 가르쳐 주신 이유는 어디 있는가?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방편,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편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방편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섭리해 나오신 노정이 6천년 역사 노정이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실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하나님의 본성이 전 피조만물의 중심의 성품으로 나타나 있다는 것을 우리 식구 들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있는 그 하나님이 여러분의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영원히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야 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이 동으로 달리든 서로 달리든, 남북의 어디로 달리든, 또는 어떠한 과정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변하지 않는 이상, 여러분이 갖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소유권은 변경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자리에 서지 못한다면, 여러분을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하나님의 소망은 그때까지 미완성 상태로 있을 것이요, 불비(不備)한 입장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러한 나로 말미암아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이 남아 있게 되고 하나님의 서러움이 남아 있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우리 인간이 오늘날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먼저 사탄의 참소를 벗어나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과연 그대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는 자격이 있고 하나님과 일체적인 관계를 이룬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예수님과 같이 증거받을 수 있는 한 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러한 한 날을 복귀하지 못한다면, 온 피조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여러분은 만물의 주인공으로 나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잃어버린 동시에 무엇을 잃어버렸느냐 하면, 창조본연의 심성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내 자체를 분석해 볼 때, 하나님을 잃어버린 동시에 본연의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이 의지해야 할 것은 여러분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마음대로 못하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소유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도 여러분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과 영원한 상대기준을 조성할 때 여러분이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마음대로 주관하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예수님의 마음이 하나되듯이. 오늘날 여러분이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된 입장에 들어가 하나님의 마음과 일체적인 관계를 이룬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만일 그러한 입장에 서지 못한다면 여러분의 그러한 마음에는 사탄의 참소조건이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뜻 가운데서 내 마음이 원하는 목적대로 살아서 하나님의 전체적인 이념을 대신함으로써 제 2의 하나님의 입장에 서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럴 수 있는 본성의 마음을 타락으로 인하여 잃어버림으로써 오늘날 인간들은 서러워하면서 이 본성의 마음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조건, 슬픈 운명의 노정을 걸어야 할 조건이 남아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마음을 맑혀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서러움에 사로잡혀 있는 마음이지만 천륜을 대하게 될 때 새로운 마음을 일으켜 가지고 어둠을 헤쳐나갈 수 있는 본성의 마음을 세워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천상에 계신 하나님의 심정과 통하고 사망권에 싸인 인간들의 마음까지 관계맺어,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마음의 형태를 찾아 세워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마음을 갖지 못했음을 알고 회개라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여 성심을 다하는데 있어서는 어느 특정한 때와 시기에만 정성을 다하는 생활을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변치 않는 이상 여러분이 자신의 생애노정에 있어서 하늘 대해 변치 않는 불변의 심정을 세워야 되겠다는 것, 즉 사탄의 어떠한 조건으로도 침범할 수 없는 마음의 토대를 세워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금후에는 불변의 체계로 세워져야 할 것이요, 천륜의 길을 향하여 나아가는 근본적인 원칙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자랑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니지 못했다 할진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대해 가엾다 할 수 있는 입장에 세우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소유하신 예수
이제 인간들이 이 본성의 마음을 찾음으로써 전체의 주관권을 복귀하게 될 때에는, 만물 가운데 어떠한 존재물이든지 그 마음의 작용을 통하여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이 세워지게 되는데, 어느누구도 아직까지 이러한 마음의 주관성을 완결짓지 못했습니다.
또 아직까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인간들이 하나님 대신 체계적인 권한을 세워 행동하지 못하는 서러운 입장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렇다 할진대는 인간들이 머물러 있는 만큼 사탄이 즐거워하는 무대를 남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서러움에 거할 수 있는 조건으로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천지의 이치는 둘이 합하지 아니하면 하나되는 원칙을, 또는 하나의 새것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준비하여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신 소원은 무엇이었던가. 4천년 역사 과정을 거쳐 나오면서 어느누구도 잃어버린 하나님을 소유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인간으로 하여금 그를 통하여 잃어버린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소유한 자로서 완결지어진 분으로 세우심을 받은 분이 누구였느냐 하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또 인간세계에 있어서 인간들의 마음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심정의 외적 부분을 대신한 형태를 갖춘 존재, 영계의 무형세계와 실체적인 유형세계에 있어서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존재로 보내진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왔다 가신 이후 2천년이 경과하고 있는데, 이제 어떠한 민족, 어떠한 종족, 어떠한 개인이든지 그들이 영광의 조건으로서 가져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 예수님이 바라신 요구요, 예수님을 보내셨던 하나님의 요구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 위에 오셔서 하나님을 소유하고, 나아가 그의 마음이 인간과 상대기준을 조성함으로 말미암아 그의 몸은 하나님의 몸을 대신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소유하고 만물을 소유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서 나타나신 예수님은, 그 몸이 원칙적인 소유권을 가지고 나타났기 때문에, 그가 나타나신 날은 천륜을 대신한 하나님의 날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전체 적인 소유권, 불변의 소유권을 가졌다 할진대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그 소유권을 중심한 가치적인 기준과 여러분의 마음이 결합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지상에 남겨 놓고 가신 육신을 중심한 전체적인 소유권의 가치를 온 천상천하에 나타내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한날이 오기를 바라는 것이 오늘날 재림사상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 재림주가 오셔서 해야 할 사명은 무엇인가. 끝날의 기독신도들이 이루어야 할 최후의 목적은 무엇인가. 끝날의 기독신도들이 이루어야 할 최후의 목적은 무엇인가. 기독신도들이 아무리 마음으로 하나님을 소유했고 또는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소유했다 할지라도 한가지 조건이 남아 있으니 그것은 몸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이 몸의 소유권을 종결지어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 하나님의 본성을 실증할 수 있는 화신체로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존재가 어느 세월에 나타날 것인가? 그러한 존재를 찾아 세우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왔다 가셨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몸의 복귀와 전체적인 주관권 복귀
그 일을 위해서 예수님이 가신 이후 이 땅 위에 성신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이 예수님이 가지신 마음의 주관성과 하나님의 전체 주관성과 하나되고, 자신의 소유권과 하나님의 소유권과 하나되어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몸이 성신적인 가치를 나타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영이 분리됨으로 말미암아 몸적인 가치를 나타내지 못했지만 예수의 마음적인 부분과 하나님과 하나된 가치의 성신이 나타난 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4천년 역사가 무엇이었던가 하면, 인간들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소유권을 인습적인 권내에서 자연적인 소유권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인식을 통하여 몸에서 완결시켜 그 인식의 가치를 상대적인 가치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섭리노정에서의 어려움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 자신은 33년의 생애를 통해 하나님을 소유하고 그 마음을 소유했지만, 아직까지 2천년 역사 속에서 사탄 참소의 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사탄의 시험을 받지 않는 완전한 자리에 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성신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은 영계에서 사탄의 참소를 받고 있고, 성신은 육계에서 사탄의 참소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들이 육적인 권에서 창조의 원칙인 3단계 기준을 넘지 못한 과정이 남아 있으므로 사탄이 오늘날까지 예수님을 대해 싸울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는 것이요, 하나님을 대해서, 성신을 대해서 싸움의 조건을 내세울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여러분들은 예수님께서 30여 년의 생애를 통해서 마음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을 소유했지만 몸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주관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인간들은 신앙노정에 있어서 자기 몸을 쳐야하는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면 몸을 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몸을 치는 것은 사탄을 없애자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 몸을 침으로 말미암아 그 몸을 누가 점령할 수 있는가 하면 성신이 점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몸을 치는 것은 성신이 몸을 점령하게 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한 것입니다. 내 몸을 치는 것은 결과적으로 사탄을 치는 것이 되므로 내 몸을 침으로 말미암아 사탄을 치고 사탄을 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점령했던 것을 대신 성신이 점령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고, 본연의 양심을 소유할 수 있고, 몸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거기에서 비로소 천상천하의 모든 만물을 대신한 영원 불변한 하나의 소유권을 비로소 완결지었다고 할 수 있는 가치를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경지를 못 찾으면, 여러분은 자신의 몸을 쳤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찾아야 여러분은 정적인 면에 있어서 전체의 주관적인 기준을 세워 하나님을 대신하여 영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이러한 뜻이 있었기에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신 이후 지금까지 역사하고 계시며 성신이 수고하시는 역사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육을 가진 어떠한 사람, 사탄권 내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성신이 점령할 수 있는 그날을 바라고 섭리해 나온 것이 예수 이후 하나님의 애달픈 2천년 섭리역사였던 것입니다.
이제 이런 내용을 갖고 우리는 우리의 뒤를 돌아보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소유할 권한이 남아 있는 이상, 자신에게 남아진 소유권이 있는 이상, 주관주로 계시는 아버지의 슬픔이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피조세계에 안겨 준 그 슬픔은 여러분으로 말미암았음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여러분은 자기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자기가 지은 죄를 회개하는 것은 자기 마음적인 가치를 찾기 위한 것입니다. 전체의 주관주로 계시는 하나님을 소유했다고 할 수 있는 그러한 가치적인 회개를 해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하는 이유
그리고 지금까지 믿는 성도들이 자신의 몸을 치는 생활을 해왔는데 영원히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몸을 치는 목적은 성신으로 하여금 그 몸을 점령시켜 몸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망각하고 있습니다. 2천년 동안 이것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육의 사랑이 도외시된 가운데서 영의 사랑은 완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던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되고 마음과 몸이 하나되면, 몸은 자연히 움직이고 마음과 몸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완전히 주고 받는 데서 발전 하는 것이 천리원칙이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인 기준을 조성하여 서로 하나되고 잘 주고 잘 받는 수수작용이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실증적인 하나의 실체가 창조되는 것이 창조의 법도요, 그래야 완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게 된 원인이 어디 있느냐 하면, 하나님 자신이 기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이 하나될 수 있는 그 관계적인 일을 이루기 위해서 실천을 다하게 될 때에는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고, 나아가 땅 위의 인간과 하나될 수 있는 기준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땅에 하늘의 섭리가 새롭게 전개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여러분 일신에 있어서도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성신과 인연을 맺게 될때, 하나님의 승리적인 전체 주관성을 복귀할 수 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알고 보니 하나님의 뜻을 향하여 나아가는데 있어서는 하나의 방향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전후 좌우 사방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에게는 사탄을 향할 방향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마음 몸을 찾으려 해도 또 여러분의 몸 마음이 종적인 면을 갖추고 횡적인 면을 갖추려 해도 사방에 사탄이 있고, 나아가 전후 좌우 상하 6방향에서 사탄이 어둠의 장막을 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사탄의 장막을 뚫고 나가 자기 일신을 세워, 하나님은 영원한 나의 소유요, 내 마음은 하나님의 소유요, 내 몸도 하나님의 소유요, '그자 나요, 나자 그'인 이러한 가치를 만물 앞에 드러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천상과 지상에서 삼위신이 합동으로 찾고 있는 이 하나의 실체가 어서 나와야 됩니다.
이러한 하나의 가치적 존재, 성신이 가셔서 그에게 임할 수 있고, 예수님이 임할 수 있고, 하나님이 임할 수 있는 하나의 가치적 존재가 이 피조세계 가운데 어디에 있겠는가. 그 하나의 존재가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애달프게 소망하신 실체요, 찾으시려던 복귀의 이상의 실체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애달프게 찾아오신 실체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가치적 존재가 이 땅 위에 나타난다면 하나님께서 그에 대하여 어떠한 불비한 조건도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탄까지도 하나님까지도 그를 붙들고 위로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들은 내 개체가 어느 환경에 처해 있는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전체적인 책임권내에 선 여러분 한 자체를 무시해서는 안되고, 그런 큰 책임을 통감해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소유했다고 할진대는, 영원한 중심으로 세울 수 있는 여러분 자체의 마음을 소유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여러분의 몸을 영원한 생명을 조성할 수 있는 실체로 완결지어 여러분이 소유했다 할진대는, 여러분이 동으로 가나 서로 가나 남으로 가나 북으로 가나 어느 방향이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 자체가 머무는 곳이 어디든 그 곳에선 승리의 호산나의 개가가 울릴 것입니다. 온 피조만물이 '그대는 과연 영광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하면서 자연굴복할 수 있는 입장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그러한 일이 일부에만 나타나서는 안 되고 전체에 다 나타나야 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전체의 주관권을 대신한 인간으로서 원칙적인 소유의 문제를 다 종결짓고, 그 가치의 영광을 갖추어 만물 만상 앞에 나타난 존재가 없기 때문에, 그러한 하나의 존재가 되는 것이 여러분의 소망으로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처한 인간을 대해 나도 슬퍼하고 여러분도 슬퍼하고 하나님도 슬퍼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그러한 가치를 지닌 입장에서 만물 만상을 대신하여 전체를 대신하여 하늘의 영광을 갖추어 하나님 앞에 호산나의 개가를 돌려야 합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천상에 있는 천군천사와 천천만 성도들이 기쁨의 한날, 즐거움의 한날을 맞이하게 되고, 나아가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완결되지 않으면 이를 위한 길을 인간들은 억조만년이라도 가야 할 것입니다.
아직까지 이것을 완결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누구때문에 그렇게 되었는가. 이것은 물론 내가 불완전하고 나 자신이 나빠서 그렇기도 하지만, 나보다도 하늘을 대하여 참소하는 사탄들이 있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전체의 주인, 전체의 주관주 되시는 한 분이 계셨더라면, 그 한 분으로 말미암아 우주 만상을 주관할 수 있었더라면, 그가 전체의 복귀를 완성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괜찮아요. 전체적인 힘을 이용하여 집중적으로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전체의 역사를 하나의 방향으로 나가도록 이끌려고 하셨지만 사탄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을 다 완결짓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사탄을 무조건 굴복시키기 위해, 또 완성하지 못하고 간 천상의 모든 뭇 영인들이 완성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는 은사를 주시기 위하여 한 분을 보내시기로 약속하셨었는데, 그 분이 누구냐 하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여야 할 입장에 서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제 내가 가져야 할 것은 무엇인가. 원래 인간 대한 하늘의 이상은 하늘의 소유권, 마음의 소유권, 몸의 소유권을 지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러한 이상권에 나아가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악의 소유권과 선의 소유권을 살필 줄 아는 눈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또 그러한 눈을 가졌다면, 다음엔 선의 소유권과 악의 소유권을 분별하여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그런 오관을 다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한날의 생활에 있어서 사탄의 참소를 끊고 막을 수 있는 자신이 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재림주님이 오셔도 모르게 됩니다.
분별할 줄 아는 신앙
여러분들은 재림주 하면 눈을 껍죽껍죽 하며 좋아합니다. 좋긴 뭐 좋아요. 예수님을 이스라엘민족, 즉 바리새인, 제사장들이 바로 보지 못했습니다. 로마 병정이 그를 보지 못했고, 반대하던 사람들은 그를 볼래야 볼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심성에서 마음이 통하고 몸이 통하여 하나의 전체를 대신한 가치의 기준이 잡혀진 사람만이 예수를 보았던 것입니다. 보고 듣는 것은 인간 자신의 심성에 의한 면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들이 만 인간 앞에 의로운 선의 가치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몸은 그것을 반대합니다. 이것이 사탄의 본질입니다.
그러면 숨어서 나타나지 않은 가운데, 남이 모르는 가운데 하나님을 소유한 사람, 남이 모르는 가운데 본연의 마음을 소유한 사람, 이런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런 사람을 찾는 사람은 영원하신 하나님이 같이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그러한 자리에 못 나갔다 할진대는 악의 주관권과 선의 주관권이라도 분별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들을 마음 몸으로 분별할 줄 알아야 될 뿐만 아니라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분별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하늘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다면 예수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어요. 그러므로 사탄의 모든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천상천하에 남겨진 악의 모든 주관적인 요소를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하나님 앞에서 승리적인 완결 조건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조건을 세울 수 있다면, 여러분은 이 땅 위에 살면서 고통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소유한 사람으로서 마음은 그리스도한테 붙들린 바 되고, 몸은 성신에게 붙들린 바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마음적인 세계에 대한 섭리과정이었기 때문에 몸의 고통이 병존했습니다. 몸이 고통당했어요. 마음과 몸이 분열되었던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합하여 영계는 육계를 찾아오고 육계는 영계를 찾아가 서로 합동하여 역사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성부 성자 성신이 함께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이러한 때에 있어서 예수 앞에 경배할 수 있고, 성신 앞에 경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경배할 수 있는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여러분이 생애를 통하여 체휼적인 신앙을 함에 있어서 분별적인 원칙의 노정을 걸고, 만물 만상 앞에 영원을 대신한 불변의 승리자라고 자랑한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기준을 여러분이 세우지 못한다면, 이 땅 위에 슬픔의 조건이 남아지게 됩니다. 또 슬픔의 조건이 남아 있는 이상, 천상에 가서도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찾아나가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마음적인 예수, 몸적인 성신을 통한 생명체로 하나님의 영광의 실체로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여러분이 믿음의 실체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이 삼위신의 협조 없이 그 일을 대신할 수 있는 영광의 자아를 복귀했다 할진대, 이 천지가 운행하는 법도와 마찬가지로 기쁜 마음이 여러분 전체를 주관할 것입니다. 그런 생활은 한 순간이 아니라 영원히 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가 나의 것, 주가 나의 것, 성신이 나의 것, 나도 나의 것'이라고 하면서 만물 앞에 당당히 그 주관자로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하늘을 대하여 '오 아버지여 !감사합니다' 라고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천지운세의 법도에 있어서는 상충적인 존재는 없습니다. 인간은 창조주의 전체 이념을 대신하고, 창조주의 주관성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로 세움받았기 때문에, 마음과 몸이 있는 이상, 이 둘의 관계를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 땅 위에서 천상천하의 모든 것과 관계지을 수 있는 주관의 세계를 이루어야 주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말씀선집 제1권 8편
하나님의 주관세계를 찾아드리자 (훈독본)
1956.06.27 (수), 한국 전본부교회
마태복음 22:15-22
봉독한 성경 본문(마 22:15-22 )을 중심삼고 이 시간에 말씀드리려 하는 제목은 '하나님의 주관세계를 찾아드리자' 입니다.
① 주관주 하나님을 찾는 일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지으신 모든 만물은 아직까지 하나님을 주관주로 모시지 못한 채 슬프고 어려운 입장에 머물러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복귀과정에서 기필코 해결해야 할 운명으로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 한 개체가 하늘 앞에 맹세하고 승리할 수 있는 제물로 서기를 바란다면, 하나님이 바라시는 주관성 복귀를 완결지어 드려야 합니다. 그러지 못한다 할진대는 도저히 승리의 제물로 설 수 없습니다. 인간 앞에 이런 과정이 있게 되는 이유는 타락 이후에 어느 누구도 원치 않는, 사탄이 주관하는 세계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피조물을 세워 놓고 그의 소원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그것은 어떤 존재물도 '주관주 하나님을 찾는 일'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이렇듯 만물 만상이 찾고 있는 것이 참된 주관주인 하나님인 것을 하나님 자신도 잘 알고 계시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만물을 직접 주관할래야 주관할 수 없는 입장에 계십니다. 이것이 하늘의 서러움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주관주 하나님을 잃어버린 우리 인간들이 몸으로 마음으로 바라는 소망은 무엇인가? 피조 만물 전체가 바라고 이상하는 대로 주관해 주시던 창조주 하나님, 그 하나님이 다시 직접 주관해 주시는 일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이와 같은 소망과 뜻을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고 그 일을 완수하기 위한 소명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주관성을 복귀해 드려야 되겠고, 그와 더불어 만물의 주인으로서의 주관성도 복귀해 드려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관해 주시는 은사에 대해 감사의 영광을 돌려드려야 되겠습니다. 이런 책임이 만물에 있는 것도 아니요, 하늘의 천군천사에게 있는 것도 아니요,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한번 책임을 하지 못하게 되면 하늘의 전체의 주관성을 잃게 되는 것이요, 본연의 하늘을 잃게 되면 만물의 소망 전부를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우리들이 생활을 통하여 그 역사적인 운명을 대신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을 것이요, 또 만물 앞에 만물의 영장으로서 나타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은 피조세계 전체의 중심인 동시에 하나님의 창조성을 가진, 내적인 세계의 중심으로 창조된 내 한 자체가 나아가야 할 노정은 오늘날의 내 일개에 머무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전체를 주관하시고 전체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 한 자체가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주관물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② 하나님을 잃어버린 결과
그러면 오늘날 우리의 서러움은 무엇인가, 우리의 슬픔과 탄식은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6천년 동안 복귀역사 과정에 숨겨진 간절한 소원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내가, 만민이, 만우주가, 하늘 땅이 잃어버린 하나님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찾아야 할 소망의 본체이신 동시에 전체의 가치를 대표하는 영광의 본체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전체의 주관성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여러분 한 자체에서 하나님을 소유하고 하나님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자기 마음에 사무쳐 있는 죄악의 뿌리를 뽑아 내고, 만민을 대신하여 오늘날까지 6천년 동안 하늘을 배반해 싸워 나오던 사탄을 굴복시키어 하나님의 세계를 이루지 못하면,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주관적인 행사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마음으로 자유를 찾고 있는데, 어떠한 자유를 찾고 있는가?
여러분이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사탄의 종이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소유하지 못하고 사탄을 소유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천리원칙을 대적하는 역적이 되는 것입니다.
③ 하나님을 소유하려면
그러면 하나님께서 천륜의 법도를 가르쳐 주신 이유는 어디 있는가?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방편,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편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방편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섭리해 나오신 노정이 6천년 역사 노정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동서남북의 어디로 달리든, 또는 어떠한 과정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변하지 않는 이상, 여러분이 갖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소유권은 변경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자리에 서지 못한다면, 여러분을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하나님의 소망은 그때까지 미완성 상태로 있을 것이요, 불비(不備)한 입장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러한 나로 말미암아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이 남아 있게 되고 하나님의 서러움이 남아 있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과 영원한 상대기준을 조성할 때 여러분이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마음대로 주관하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예수님의 마음이 하나되듯이. 오늘날 여러분이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된 입장에 들어가 하나님의 마음과 일체적인 관계를 이룬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만일 그러한 입장에 서지 못한다면 여러분의 그러한 마음에는 사탄의 참소조건이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뜻 가운데서 내 마음이 원하는 목적대로 살아서 하나님의 전체적인 이념을 대신함으로써 제 2의 하나님의 입장에 서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럴 수 있는 본성의 마음을 타락으로 인하여 잃어버림으로써 오늘날 인간들은 이 본성의 마음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조건, 슬픈 운명의 노정을 걸어야 할 조건이 남아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마음을 맑혀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서러움에 사로잡혀 있는 마음이지만 천륜을 대하게 될 때 새로운 마음을 일으켜 가지고 어둠을 헤쳐나갈 수 있는 본성의 마음을 세워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천상에 계신 하나님의 심정과 통하고 사망권에 싸인 인간들의 마음까지 관계맺어,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마음의 형태를 찾아 세워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마음을 갖지 못했음을 알고 회개라도 해야 합니다.
④ 하나님을 소유하신 예수
아직까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인간들이 하나님 대신 체계적인 권한을 세워 행동하지 못하는 서러운 입장에 머물러있습니다. 그렇다 할진대는 인간들이 머물러 있는 만큼 사탄이 즐거워하는 무대를 남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서러움에 거할 수 있는 조건으로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천지의 이치는 둘이 합하지 아니하면 하나되는 원칙을, 또는 하나의 새것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소유한 자로서 완결지어진 분으로 세우심을 받은 분이 누구였느냐 하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또 인간세계에 있어서 인간들의 마음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심정의 외적 부분을 대신한 형태를 갖춘 존재, 영계의 무형세계와 실체적인 유형세계에 있어서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존재로 보내진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 위에 오셔서 하나님을 소유하고, 나아가 그의 마음이 인간과 상대기준을 조성함으로 말미암아 그의 몸은 하나님의 몸을 대신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소유하고 만물을 소유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서 나타나신 예수님은, 그 몸이 원칙적인 소유권을 가지고 나타났기 때문에, 그가 나타나신 날은 천륜을 대신한 하나님의 날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전체 적인 소유권, 불변의 소유권을 가졌다 할진대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그 소유권을 중심한 가치적인 기준과 여러분의 마음이 결합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지상에 남겨 놓고 가신 육신을 중심한 전체적인 소유권의 가치를 온 천상천하에 나타내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한날이 오기를 바라는 것이 오늘날 재림사상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 재림주가 오셔서 해야 할 사명은 무엇인가. 끝날의 기독신도들이 이루어야 할 최후의 목적은 무엇인가.끝날의 기독신도들이 이루어야 할 최후의 목적은 무엇인가. 기독신도들이 아무리 마음으로 하나님을 소유했고 또는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소유했다 할지라도 한가지 조건이 남아 있으니 그것은 몸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이 몸의 소유권을 종결지어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 하나님의 본성을 실증할 수 있는 화신체로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존재가 어느 세월에 나타날 것인가? 그러한 존재를 찾아 세우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왔다 가셨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⑤ 몸의 복귀와 전체적인 주관권 복귀
예수님이 가신 이후 이 땅 위에 성신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이 예수님이 가지신 마음의 주관성과 하나님의 전체 주관성과 하나되고, 자신의 소유권과 하나님의 소유권과 하나되어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몸이 성신적인 가치를 나타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영이 분리됨으로 말미암아 몸적인 가치를 나타내지 못했지만 예수의 마음적인 부분과 하나님과 하나된 가치의 성신이 나타난 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4천년 역사가 무엇이었던가 하면, 인간들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소유권을 인습적인 권내에서 자연적인 소유권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인식을 통하여 몸에서 완결시켜 그 인식의 가치를 상대적인 가치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섭리노정에서의 어려움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 자신은 33년의 생애를 통해 하나님을 소유하고 그 마음을 소유했지만, 아직까지 2천년 역사 속에서 사탄 참소의 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성신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은 영계에서 사탄의 참소를 받고 있고, 성신은 육계에서 사탄의 참소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인간들은 신앙노정에 있어서 자기 몸을 쳐야하는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면 몸을 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몸을 치는 것은 사탄을 없애자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 몸을 침으로 말미암아 그 몸을 누가 점령할 수 있는가 하면 성신이 점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몸을 치는 것은 성신이 몸을 점령하게 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한 것입니다. 내 몸을 치는 것은 결과적으로 사탄을 치는 것이 되므로 내 몸을 침으로 말미암아 사탄을 치고 사탄을 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점령했던 것을 대신 성신이 점령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고, 본연의 양심을 소유할 수 있고, 몸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거기에서 비로소 천상천하의 모든 만물을 대신한 영원 불변한 하나의 소유권을 비로소 완결지었다고 할 수 있는 가치를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경지를 못 찾으면, 여러분은 자신의 몸을 쳤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찾아야 여러분은 정적인 면에 있어서 전체의 주관적인 기준을 세워 하나님을 대신하여 영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이러한 뜻이 있었기에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신 이후 지금까지 역사하고 계시며 성신이 수고하시는 역사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육을 가진 어떠한 사람, 사탄권 내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성신이 점령할 수 있는 그날을 바라고 섭리해 나온 것이 예수 이후 하나님의 애달픈 2천년 섭리역사였던 것입니다.
자기가 지은 죄를 회개하는 것은 자기 마음적인 가치를 찾기 위한 것입니다. 전체의 주관주로 계시는 하나님을 소유했다고 할 수 있는 그러한 가치적인 회개를 해야 되겠습니다.
⑥ 자기가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하는 이유
몸을 치는 목적은 성신으로 하여금 그 몸을 점령시켜 몸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망각하고 있습니다. 2천년 동안 이것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육의 사랑이 도외시된 가운데서 영의 사랑은 완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던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되고 마음과 몸이 하나되면, 몸은 자연히 움직이고 마음과 몸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완전히 주고 받는 데서 발전 하는 것이 천리원칙이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인 기준을 조성하여 서로 하나되고 잘 주고 잘 받는 수수작용이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실증적인 하나의 실체가 창조되는 것이 창조의 법도요, 그래야 완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게 된 원인이 어디 있느냐 하면, 하나님 자신이 기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이 하나될 수 있는 그 관계적인 일을 이루기 위해서 실천을 다하게 될 때에는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고, 나아가 땅 위의 인간과 하나될 수 있는 기준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땅에 하늘의 섭리가 새롭게 전개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여러분 일신에 있어서도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성신과 인연을 맺게 될때, 하나님의 승리적인 전체 주관성을 복귀할 수 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알고 보니 하나님의 뜻을 향하여 나아가는데 있어서는 하나의 방향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전후 좌우 사방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에게는 사탄을 향할 방향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마음 몸을 찾으려 해도 또 여러분의 몸 마음이 종적인 면을 갖추고 횡적인 면을 갖추려 해도 사방에 사탄이 있고, 나아가 전후 좌우 상하 6방향에서 사탄이 어둠의 장막을 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사탄의 장막을 뚫고 나가 자기 일신을 세워,하나님은 영원한 나의 소유요, 내 마음은 하나님의 소유요, 내 몸도 하나님의 소유요, '그자 나요, 나자 그'인 이러한 가치를 만물 앞에 드러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하나의 가치적 존재, 성신과 예수님과 하나님이 임할 수 있는 하나의 가치적 존재가 이 피조세계 가운데 어디에 있겠는가. 그 하나의 존재가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애달프게 소망하신 실체요, 찾으시려던 복귀의 이상의 실체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⑦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애달프게 찾아오신 실체
이제 여러분들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소유했다고 할진대는, 영원한 중심으로 세울 수 있는 여러분 자체의 마음을 소유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여러분의 몸을 영원한 생명을 조성할 수 있는 실체로 완결지어 여러분이 소유했다 할진대는,여러분 자체가 머무는 곳이 어디든 그 곳에선 승리의 호산나의 개가가 울릴 것입니다. 온 피조만물이 '그대는 과연 영광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하면서 자연굴복할 수 있는 입장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그러한 가치를 지닌 입장에서 만물 만상을 전체를 대신하여 하늘의 영광을 갖추어 하나님 앞에 호산나의개가를 돌려야 합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천상에 있는 천군천사와 천천만 성도들이 기쁨의 한날, 즐거움의 한날을 맞이하게 되고, 나아가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완결되지 않으면 이를 위한 길을 인간들은 억조만년이라도 가야 할 것입니다.
아직까지 이것을 완결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누구때문에 그렇게 되었는가. 이것은 물론 내가 불완전하고 나 자신이 나빠서 그렇기도 하지만, 나보다도 하늘을 대하여 참소하는 사탄들이 있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전체의 주인, 주관주 되시는 그 한 분으로 말미암아 우주 만상을 주관할 수 있었더라면, 그가 전체의 복귀를 완성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괜찮아요. 전체적인 힘을 이용하여 집중적으로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전체의 역사를 하나의 방향으로 나가도록 이끌려고 하셨지만 사탄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을 다 완결짓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사탄을 무조건 굴복시키기 위해, 또 완성하지 못하고 간 천상의 모든 뭇 영인들이 완성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는 은사를 주시기 위하여 한 분을 보내시기로 약속하셨었는데, 그 분이 누구냐 하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여야 할 입장에서 이제 내가 가져야 할 것은 무엇인가. 원래 인간 대한 하늘의 이상은 하늘의 소유권, 마음의 소유권, 몸의 소유권을 지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러한 이상권에 나아가지 못했다면,여러분은 악의 소유권과 선의 소유권을 살필 줄 아는 눈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또 그러한 눈을 가졌다면, 다음엔 선의 소유권과 악의 소유권을 분별하여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그런 오관을 다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한날의 생활에 있어서 사탄의 참소를 끊고 막을 수 있는 자신이 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재림주님이 오셔도 모르게 됩니다.
⑧ 분별할 줄 아는 신앙
여러분들은 재림주 하면 눈을 껍죽껍죽 하며 좋아합니다. 좋긴 뭐가 좋아요. 예수님을 이스라엘민족, 즉 바리새인, 제사장들이 바로 보지 못했습니다. 로마 병정이 그를 보지 못했고, 반대하던 사람들은 그를 볼래야 볼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심성에서 마음이 통하고 몸이 통하여 하나의 전체를 대신한 가치의 기준이 잡혀진 사람만이 예수를 보았던 것입니다. 보고 듣는 것은 인간 자신의 심성에 의한 면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들이 만 인간 앞에 의로운 선의 가치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몸은 그것을 반대합니다. 이것이 사탄의 본질입니다.
그러면 숨어서 나타나지 않은 가운데, 남이 모르는 가운데 하나님과 본연의 마음을 소유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런 사람을 찾는 사람은 영원하신 하나님이 같이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그러한 자리에 못 나갔다 할진대는 악의 주관권과 선의 주관권이라도 분별할 줄 알아야되겠습니다. 그것들을 마음 몸으로 분별할 줄 알아야 될 뿐만 아니라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분별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그리하여 여러분이 하늘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다면 예수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어요. 그러므로 사탄의 모든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천상천하에 남겨진 악의 모든 주관적인 요소를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하나님 앞에서 승리적인 완결 조건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조건을 세울 수 있다면, 여러분은 이 땅 위에 살면서 고통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소유한 사람으로서 마음은 그리스도한테 붙들린 바 되고, 몸은 성신에게 붙들린 바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마음적인 세계에 대한 섭리과정이었기 때문에 몸의 고통이 병존했습니다. 몸이 고통당했어요. 마음과 몸이 분열되었던 거예요.
나아가 여러분이 생애를 통하여 체휼적인 신앙을 함에 있어서 분별적인 원칙의 노정을 걸고, 만물 만상 앞에 영원을 대신한 불변의 승리자라고 자랑한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기준을 여러분이 세우지 못한다면, 이 땅 위에 슬픔의 조건이 남아지게 됩니다. 또 슬픔의 조건이 남아 있는 이상, 천상에 가서도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찾아나가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마음적인 예수, 몸적인 성신을 통한 생명체로 하나님의 영광의 실체로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여러분이 믿음의 실체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이 삼위신의 협조 없이 그 일을 대신할 수 있는 영광의 자아를 복귀했다 할진대, 이 천지가 운행하는 법도와 마찬가지로 기쁜 마음이 여러분 전체를 주관할 것입니다. 그런 생활은 한 순간이 아니라 영원히 해야 되겠습니다.그리하여 '아버지가 나의 것, 주가 나의 것, 성신이 나의 것, 나도 나의 것'이라고 하면서 만물 앞에 당당히 그 주관자로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하늘을 대하여 '오 아버지여! 감사합니다' 라고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천지운세의 법도에 있어서는 상충적인 존재는 없습니다. 인간은 창조주의 전체 이념을 대신하고, 창조주의 주관성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로 세움받았기 때문에, 마음과 몸이 있는 이상, 이 둘의 관계를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 땅 위에서 천상천하의 모든 것과 관계지을 수 있는 주관의 세계를 이루어야 주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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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하나님의 주관세계를 찾아드리자
1956.06.27 (수), 한국 전본부교회
봉독한 성경 본문을 중심삼고 이 시간에 말씀드리려 하는 제목은 '하나님의 주관세계를 찾아드리자' 입니다. 이런 내용으로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주관주 하나님을 찾는 일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지으신 모든 만물은 아직까지 하나님을 주관주로 모시지 못한 채 슬프고 어려운 입장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복귀과정에서 기필코 해결해야 할 운명으로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 한 개체가 하늘 앞에 맹세하고 승리할 수 있는 제물로 서기를 바란다면, 하나님이 바라시는 주관성 복귀를 완결지어 드려야 합니다. 그러지 못한다 할진대는 도저히 승리의 제물로 설 수 없습니다. 인간 앞에 이런 과정이 있게 되는 이유는 타락 이후에 어느누구도 원치 않는, 사탄이 주관하는 세계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담 해와를 통하여 기쁨을 누리시고자 피조 만물을 지으셨던 하나님께서는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지으신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담 해와도 잃어버렸고 만물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생각지도 않았던 사탄이 창조주 하나님의 입장을 대신해서 만물을 주관해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서러움이요, 지금까지 복귀역사노정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닮기 위해 하늘 향해 기원해 나오던 양심적인 사람들과 성도들의 서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만일 어떤 피조물을 세워 놓고 그의 소원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그 피조물들은 그들이 바라는 소원이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가. 그것은 어떤 존재물도 '주관주 하나님을 찾는 일'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이렇듯 만물 만상이 찾고 있는 것이 참된 주관주인 하나님인 것을 하나님 자신도 잘 알고 계시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만물을 직접 주관할래야 주관할 수 없는 입장에 계십니다. 이것이 하늘의 서러움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주관주 하나님을 잃어버린 피조물 중의 하나인 오늘날 우리 인간들이 몸으로 마음으로 바라는 소망은 무엇인가? 피조 만물 전체가 바라고 이상하는 대로 주관해 주시던 창조주 하나님, 그 하나님이 다시 직접 주관해 주시는 일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이와 같은 소망과 뜻을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고 그 일을 완수하기 위한 소명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주관성을 복귀해 드려야 되겠고, 그와 더불어 만물의 주인으로서의 주관성도 복귀해 드려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관해 주시는 은사에 대해 감사의 영광을 돌려드려야 되겠습니다. 이런 책임이 만물에 있는 것도 아니요, 하늘의 천군천사에게 있는 것도 아니요, 오늘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한번 책임을 하지 못하게 되면 하늘의 전체의 주관성을 잃게 되는 것이요, 본연의 하늘을 잃게 되면 만물의 소망 전부를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우리들이 생활을 통하여 생명을 통하여 그 역사적인 운명을 대신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을 것이요, 또 만물 앞에 만물의 영장으로서 나타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은 피조세계 전체의 중심인 동시에 하나님의 창조성을 가진, 내적인 세계의 중심으로 창조된 내 한 자체가 나아가야 할 노정은 오늘날의 내 일개에 머무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천륜을 위하여 사는 생활에 있어서 자기만을 생각하며 사는 생활을 한다면, 하나님의 창조적인 주관성은 그러한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중단될 것입니다. 만물이 여러분을 대하여 주관해 주기를 바라는 그 소망도 중단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 한 자체가 하늘이 전체를 주관하는 그 입장을 대신하고, 만물의 주관주를 대신하는 그 가치를 드러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자기 입으로 '당신이 찾고자 하는 하나의 존재, 전체를 대신한 본래의 주관주 자체로서 세움받은 뜻을 다 이루었사오니, 하나님이여, 명령하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입장에 설 수 있는 그 하나의 존재가 6천년 동안 섭리하시며 찾아나오신 하나님이 바라시는 존재인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6천년 섭리역사 속에서 고난과 싸우고 역경과 싸워, 원수 사탄을 물리치고 인간을 복귀시켜야 할 것이 우리들의 전체적인 의무인 것입니다.
그와 같이 전체를 대신한 우리 한 자체가 찾아야 할 주관성의 권한을 생각해 볼 때, 오늘날 우리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찾아야 되겠는가.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전체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전체를 주관하시고 전체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 한 자체가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하나님의 주관물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결과
그러면 오늘날 우리의 서러움은 무엇인가, 우리의 슬픔은 무엇이고, 우리의 탄식은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6천년 동안 복귀역사 과정에 숨겨진 간절한 소원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내가, 만민이, 만우주가, 하늘 땅이 잃어버린 하나님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찾아야 할 소망의 본체이신 동시에 전체의 가치를 대표하는 영광의 본체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전체의 주관성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여러분 한 자체에서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은 어떠한 분인가. 억조만상을 지으신 하나님이시요, 만물에 대한 전체 주관의 행사를 하시기 위하여 복귀의 수고를 해 나오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이제 여러분이 하나님을 소유했다 하면, 그 하나님은 여러분의 하나님이시므로 그가 영원하시면 여러분도 영원하게 되고, 그가 전체의 피조세계에 대하여 주관성을 가지게 되면 여러분 자체도 실체를 쓴 하나님적인 자리에 서 가지고 만물을 대하여 주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여러분 자체를 찾아 세우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소유했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의 모든 비애와 사망이 있게 된 것은 기실 하나님을 잃어버린 데서 연유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주인 행세를 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원래 창조원칙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을 하나의 주인으로 모셔야 할 피조물이었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대신 사탄을 주인으로 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사랑의 하나님을 다시 소유해야 할 운명적인 책임이 남아 있는데, 그 길을 가로막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지음받은 이 피조세계에서 하나님을 하나의 주인공으로 모셔야 할 그 뜻을 반대하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오늘날 여러분에게 죄악을 품게하고 있는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이 자기 마음에 사무쳐 있는 죄악의 뿌리를 뽑아 내고, 만민을 대신하여 오늘날까지 6천년동안 하늘을 배반해 싸워 나오던 사탄을 굴복시키어 하나님의 세계를 이루지 못하면,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주관적인 행사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마음으로 자유를 찾고 있는데, 어떠한 자유를 찾고 있는가. 여러분이 하나님을 찾지 앉으면 사탄의 종이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소유하지 못하고 사탄을 소유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천리원칙을 대적하는 역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소유하려면
그러면 하나님께서 천륜의 법도를 가르쳐 주신 이유는 어디 있는가?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방편,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편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방편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섭리해 나오신 노정이 6천년 역사 노정이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실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하나님의 본성이 전 피조만물의 중심의 성품으로 나타나 있다는 것을 우리 식구 들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있는 그 하나님이 여러분의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영원히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야 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이 동으로 달리든 서로 달리든, 남북의 어디로 달리든, 또는 어떠한 과정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변하지 않는 이상, 여러분이 갖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소유권은 변경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자리에 서지 못한다면, 여러분을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하나님의 소망은 그때까지 미완성 상태로 있을 것이요, 불비(不備)한 입장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러한 나로 말미암아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이 남아 있게 되고 하나님의 서러움이 남아 있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우리 인간이 오늘날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먼저 사탄의 참소를 벗어나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과연 그대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는 자격이 있고 하나님과 일체적인 관계를 이룬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예수님과 같이 증거받을 수 있는 한 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러한 한 날을 복귀하지 못한다면, 온 피조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여러분은 만물의 주인공으로 나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잃어버린 동시에 무엇을 잃어버렸느냐 하면, 창조본연의 심성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내 자체를 분석해 볼 때, 하나님을 잃어버린 동시에 본연의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이 의지해야 할 것은 여러분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마음대로 못하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소유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도 여러분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과 영원한 상대기준을 조성할 때 여러분이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마음대로 주관하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예수님의 마음이 하나되듯이. 오늘날 여러분이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된 입장에 들어가 하나님의 마음과 일체적인 관계를 이룬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만일 그러한 입장에 서지 못한다면 여러분의 그러한 마음에는 사탄의 참소조건이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뜻 가운데서 내 마음이 원하는 목적대로 살아서 하나님의 전체적인 이념을 대신함으로써 제 2의 하나님의 입장에 서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럴 수 있는 본성의 마음을 타락으로 인하여 잃어버림으로써 오늘날 인간들은 서러워하면서 이 본성의 마음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조건, 슬픈 운명의 노정을 걸어야 할 조건이 남아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마음을 맑혀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서러움에 사로잡혀 있는 마음이지만 천륜을 대하게 될 때 새로운 마음을 일으켜 가지고 어둠을 헤쳐나갈 수 있는 본성의 마음을 세워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천상에 계신 하나님의 심정과 통하고 사망권에 싸인 인간들의 마음까지 관계맺어,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마음의 형태를 찾아 세워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마음을 갖지 못했음을 알고 회개라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여 성심을 다하는데 있어서는 어느 특정한 때와 시기에만 정성을 다하는 생활을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변치 않는 이상 여러분이 자신의 생애노정에 있어서 하늘 대해 변치 않는 불변의 심정을 세워야 되겠다는 것, 즉 사탄의 어떠한 조건으로도 침범할 수 없는 마음의 토대를 세워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금후에는 불변의 체계로 세워져야 할 것이요, 천륜의 길을 향하여 나아가는 근본적인 원칙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자랑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니지 못했다 할진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대해 가엾다 할 수 있는 입장에 세우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소유하신 예수
이제 인간들이 이 본성의 마음을 찾음으로써 전체의 주관권을 복귀하게 될 때에는, 만물 가운데 어떠한 존재물이든지 그 마음의 작용을 통하여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이 세워지게 되는데, 어느누구도 아직까지 이러한 마음의 주관성을 완결짓지 못했습니다.
또 아직까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인간들이 하나님 대신 체계적인 권한을 세워 행동하지 못하는 서러운 입장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렇다 할진대는 인간들이 머물러 있는 만큼 사탄이 즐거워하는 무대를 남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서러움에 거할 수 있는 조건으로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천지의 이치는 둘이 합하지 아니하면 하나되는 원칙을, 또는 하나의 새것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준비하여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신 소원은 무엇이었던가. 4천년 역사 과정을 거쳐 나오면서 어느누구도 잃어버린 하나님을 소유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인간으로 하여금 그를 통하여 잃어버린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소유한 자로서 완결지어진 분으로 세우심을 받은 분이 누구였느냐 하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또 인간세계에 있어서 인간들의 마음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심정의 외적 부분을 대신한 형태를 갖춘 존재, 영계의 무형세계와 실체적인 유형세계에 있어서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존재로 보내진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왔다 가신 이후 2천년이 경과하고 있는데, 이제 어떠한 민족, 어떠한 종족, 어떠한 개인이든지 그들이 영광의 조건으로서 가져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 예수님이 바라신 요구요, 예수님을 보내셨던 하나님의 요구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 위에 오셔서 하나님을 소유하고, 나아가 그의 마음이 인간과 상대기준을 조성함으로 말미암아 그의 몸은 하나님의 몸을 대신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소유하고 만물을 소유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서 나타나신 예수님은, 그 몸이 원칙적인 소유권을 가지고 나타났기 때문에, 그가 나타나신 날은 천륜을 대신한 하나님의 날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전체 적인 소유권, 불변의 소유권을 가졌다 할진대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그 소유권을 중심한 가치적인 기준과 여러분의 마음이 결합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지상에 남겨 놓고 가신 육신을 중심한 전체적인 소유권의 가치를 온 천상천하에 나타내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한날이 오기를 바라는 것이 오늘날 재림사상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 재림주가 오셔서 해야 할 사명은 무엇인가. 끝날의 기독신도들이 이루어야 할 최후의 목적은 무엇인가. 끝날의 기독신도들이 이루어야 할 최후의 목적은 무엇인가. 기독신도들이 아무리 마음으로 하나님을 소유했고 또는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소유했다 할지라도 한가지 조건이 남아 있으니 그것은 몸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이 몸의 소유권을 종결지어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 하나님의 본성을 실증할 수 있는 화신체로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존재가 어느 세월에 나타날 것인가? 그러한 존재를 찾아 세우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왔다 가셨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몸의 복귀와 전체적인 주관권 복귀
그 일을 위해서 예수님이 가신 이후 이 땅 위에 성신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이 예수님이 가지신 마음의 주관성과 하나님의 전체 주관성과 하나되고, 자신의 소유권과 하나님의 소유권과 하나되어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몸이 성신적인 가치를 나타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영이 분리됨으로 말미암아 몸적인 가치를 나타내지 못했지만 예수의 마음적인 부분과 하나님과 하나된 가치의 성신이 나타난 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4천년 역사가 무엇이었던가 하면, 인간들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소유권을 인습적인 권내에서 자연적인 소유권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인식을 통하여 몸에서 완결시켜 그 인식의 가치를 상대적인 가치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섭리노정에서의 어려움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 자신은 33년의 생애를 통해 하나님을 소유하고 그 마음을 소유했지만, 아직까지 2천년 역사 속에서 사탄 참소의 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사탄의 시험을 받지 않는 완전한 자리에 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성신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은 영계에서 사탄의 참소를 받고 있고, 성신은 육계에서 사탄의 참소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들이 육적인 권에서 창조의 원칙인 3단계 기준을 넘지 못한 과정이 남아 있으므로 사탄이 오늘날까지 예수님을 대해 싸울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는 것이요, 하나님을 대해서, 성신을 대해서 싸움의 조건을 내세울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여러분들은 예수님께서 30여 년의 생애를 통해서 마음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을 소유했지만 몸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주관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인간들은 신앙노정에 있어서 자기 몸을 쳐야하는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면 몸을 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몸을 치는 것은 사탄을 없애자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 몸을 침으로 말미암아 그 몸을 누가 점령할 수 있는가 하면 성신이 점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몸을 치는 것은 성신이 몸을 점령하게 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한 것입니다. 내 몸을 치는 것은 결과적으로 사탄을 치는 것이 되므로 내 몸을 침으로 말미암아 사탄을 치고 사탄을 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점령했던 것을 대신 성신이 점령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고, 본연의 양심을 소유할 수 있고, 몸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거기에서 비로소 천상천하의 모든 만물을 대신한 영원 불변한 하나의 소유권을 비로소 완결지었다고 할 수 있는 가치를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경지를 못 찾으면, 여러분은 자신의 몸을 쳤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찾아야 여러분은 정적인 면에 있어서 전체의 주관적인 기준을 세워 하나님을 대신하여 영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이러한 뜻이 있었기에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신 이후 지금까지 역사하고 계시며 성신이 수고하시는 역사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육을 가진 어떠한 사람, 사탄권 내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성신이 점령할 수 있는 그날을 바라고 섭리해 나온 것이 예수 이후 하나님의 애달픈 2천년 섭리역사였던 것입니다.
이제 이런 내용을 갖고 우리는 우리의 뒤를 돌아보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소유할 권한이 남아 있는 이상, 자신에게 남아진 소유권이 있는 이상, 주관주로 계시는 아버지의 슬픔이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피조세계에 안겨 준 그 슬픔은 여러분으로 말미암았음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여러분은 자기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자기가 지은 죄를 회개하는 것은 자기 마음적인 가치를 찾기 위한 것입니다. 전체의 주관주로 계시는 하나님을 소유했다고 할 수 있는 그러한 가치적인 회개를 해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하는 이유
그리고 지금까지 믿는 성도들이 자신의 몸을 치는 생활을 해왔는데 영원히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몸을 치는 목적은 성신으로 하여금 그 몸을 점령시켜 몸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망각하고 있습니다. 2천년 동안 이것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육의 사랑이 도외시된 가운데서 영의 사랑은 완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던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되고 마음과 몸이 하나되면, 몸은 자연히 움직이고 마음과 몸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완전히 주고 받는 데서 발전 하는 것이 천리원칙이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인 기준을 조성하여 서로 하나되고 잘 주고 잘 받는 수수작용이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실증적인 하나의 실체가 창조되는 것이 창조의 법도요, 그래야 완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게 된 원인이 어디 있느냐 하면, 하나님 자신이 기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이 하나될 수 있는 그 관계적인 일을 이루기 위해서 실천을 다하게 될 때에는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고, 나아가 땅 위의 인간과 하나될 수 있는 기준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땅에 하늘의 섭리가 새롭게 전개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여러분 일신에 있어서도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성신과 인연을 맺게 될때, 하나님의 승리적인 전체 주관성을 복귀할 수 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알고 보니 하나님의 뜻을 향하여 나아가는데 있어서는 하나의 방향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전후 좌우 사방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에게는 사탄을 향할 방향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마음 몸을 찾으려 해도 또 여러분의 몸 마음이 종적인 면을 갖추고 횡적인 면을 갖추려 해도 사방에 사탄이 있고, 나아가 전후 좌우 상하 6방향에서 사탄이 어둠의 장막을 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사탄의 장막을 뚫고 나가 자기 일신을 세워, 하나님은 영원한 나의 소유요, 내 마음은 하나님의 소유요, 내 몸도 하나님의 소유요, '그자 나요, 나자 그'인 이러한 가치를 만물 앞에 드러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천상과 지상에서 삼위신이 합동으로 찾고 있는 이 하나의 실체가 어서 나와야 됩니다.
이러한 하나의 가치적 존재, 성신이 가셔서 그에게 임할 수 있고, 예수님이 임할 수 있고, 하나님이 임할 수 있는 하나의 가치적 존재가 이 피조세계 가운데 어디에 있겠는가. 그 하나의 존재가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애달프게 소망하신 실체요, 찾으시려던 복귀의 이상의 실체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애달프게 찾아오신 실체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가치적 존재가 이 땅 위에 나타난다면 하나님께서 그에 대하여 어떠한 불비한 조건도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탄까지도 하나님까지도 그를 붙들고 위로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들은 내 개체가 어느 환경에 처해 있는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전체적인 책임권내에 선 여러분 한 자체를 무시해서는 안되고, 그런 큰 책임을 통감해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소유했다고 할진대는, 영원한 중심으로 세울 수 있는 여러분 자체의 마음을 소유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여러분의 몸을 영원한 생명을 조성할 수 있는 실체로 완결지어 여러분이 소유했다 할진대는, 여러분이 동으로 가나 서로 가나 남으로 가나 북으로 가나 어느 방향이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 자체가 머무는 곳이 어디든 그 곳에선 승리의 호산나의 개가가 울릴 것입니다. 온 피조만물이 '그대는 과연 영광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하면서 자연굴복할 수 있는 입장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그러한 일이 일부에만 나타나서는 안 되고 전체에 다 나타나야 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전체의 주관권을 대신한 인간으로서 원칙적인 소유의 문제를 다 종결짓고, 그 가치의 영광을 갖추어 만물 만상 앞에 나타난 존재가 없기 때문에, 그러한 하나의 존재가 되는 것이 여러분의 소망으로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처한 인간을 대해 나도 슬퍼하고 여러분도 슬퍼하고 하나님도 슬퍼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그러한 가치를 지닌 입장에서 만물 만상을 대신하여 전체를 대신하여 하늘의 영광을 갖추어 하나님 앞에 호산나의 개가를 돌려야 합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천상에 있는 천군천사와 천천만 성도들이 기쁨의 한날, 즐거움의 한날을 맞이하게 되고, 나아가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완결되지 않으면 이를 위한 길을 인간들은 억조만년이라도 가야 할 것입니다.
아직까지 이것을 완결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누구때문에 그렇게 되었는가. 이것은 물론 내가 불완전하고 나 자신이 나빠서 그렇기도 하지만, 나보다도 하늘을 대하여 참소하는 사탄들이 있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전체의 주인, 전체의 주관주 되시는 한 분이 계셨더라면, 그 한 분으로 말미암아 우주 만상을 주관할 수 있었더라면, 그가 전체의 복귀를 완성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괜찮아요. 전체적인 힘을 이용하여 집중적으로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전체의 역사를 하나의 방향으로 나가도록 이끌려고 하셨지만 사탄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을 다 완결짓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사탄을 무조건 굴복시키기 위해, 또 완성하지 못하고 간 천상의 모든 뭇 영인들이 완성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는 은사를 주시기 위하여 한 분을 보내시기로 약속하셨었는데, 그 분이 누구냐 하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여야 할 입장에 서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제 내가 가져야 할 것은 무엇인가. 원래 인간 대한 하늘의 이상은 하늘의 소유권, 마음의 소유권, 몸의 소유권을 지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러한 이상권에 나아가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악의 소유권과 선의 소유권을 살필 줄 아는 눈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또 그러한 눈을 가졌다면, 다음엔 선의 소유권과 악의 소유권을 분별하여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그런 오관을 다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한날의 생활에 있어서 사탄의 참소를 끊고 막을 수 있는 자신이 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재림주님이 오셔도 모르게 됩니다.
분별할 줄 아는 신앙
여러분들은 재림주 하면 눈을 껍죽껍죽 하며 좋아합니다. 좋긴 뭐 좋아요. 예수님을 이스라엘민족, 즉 바리새인, 제사장들이 바로 보지 못했습니다. 로마 병정이 그를 보지 못했고, 반대하던 사람들은 그를 볼래야 볼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심성에서 마음이 통하고 몸이 통하여 하나의 전체를 대신한 가치의 기준이 잡혀진 사람만이 예수를 보았던 것입니다. 보고 듣는 것은 인간 자신의 심성에 의한 면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들이 만 인간 앞에 의로운 선의 가치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몸은 그것을 반대합니다. 이것이 사탄의 본질입니다.
그러면 숨어서 나타나지 않은 가운데, 남이 모르는 가운데 하나님을 소유한 사람, 남이 모르는 가운데 본연의 마음을 소유한 사람, 이런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런 사람을 찾는 사람은 영원하신 하나님이 같이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그러한 자리에 못 나갔다 할진대는 악의 주관권과 선의 주관권이라도 분별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들을 마음 몸으로 분별할 줄 알아야 될 뿐만 아니라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분별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하늘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다면 예수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어요. 그러므로 사탄의 모든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천상천하에 남겨진 악의 모든 주관적인 요소를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하나님 앞에서 승리적인 완결 조건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조건을 세울 수 있다면, 여러분은 이 땅 위에 살면서 고통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소유한 사람으로서 마음은 그리스도한테 붙들린 바 되고, 몸은 성신에게 붙들린 바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마음적인 세계에 대한 섭리과정이었기 때문에 몸의 고통이 병존했습니다. 몸이 고통당했어요. 마음과 몸이 분열되었던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합하여 영계는 육계를 찾아오고 육계는 영계를 찾아가 서로 합동하여 역사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성부 성자 성신이 함께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이러한 때에 있어서 예수 앞에 경배할 수 있고, 성신 앞에 경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경배할 수 있는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여러분이 생애를 통하여 체휼적인 신앙을 함에 있어서 분별적인 원칙의 노정을 걸고, 만물 만상 앞에 영원을 대신한 불변의 승리자라고 자랑한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기준을 여러분이 세우지 못한다면, 이 땅 위에 슬픔의 조건이 남아지게 됩니다. 또 슬픔의 조건이 남아 있는 이상, 천상에 가서도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찾아나가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마음적인 예수, 몸적인 성신을 통한 생명체로 하나님의 영광의 실체로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여러분이 믿음의 실체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이 삼위신의 협조 없이 그 일을 대신할 수 있는 영광의 자아를 복귀했다 할진대, 이 천지가 운행하는 법도와 마찬가지로 기쁜 마음이 여러분 전체를 주관할 것입니다. 그런 생활은 한 순간이 아니라 영원히 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가 나의 것, 주가 나의 것, 성신이 나의 것, 나도 나의 것'이라고 하면서 만물 앞에 당당히 그 주관자로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하늘을 대하여 '오 아버지여 !감사합니다' 라고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천지운세의 법도에 있어서는 상충적인 존재는 없습니다. 인간은 창조주의 전체 이념을 대신하고, 창조주의 주관성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로 세움받았기 때문에, 마음과 몸이 있는 이상, 이 둘의 관계를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 땅 위에서 천상천하의 모든 것과 관계지을 수 있는 주관의 세계를 이루어야 주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말씀선집 제1집 9편
뿌리된 자들의 책임(훈독본)
1956.07.01 (일), 한국 전본부교회
창세기 18:22-19:12, 이사야 6:11-13
이 시간 여러분에게 하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 '뿌리된 자들의 책임'입니다.
이사야서 6장 11절 이하의 성경말씀을 보게 되면 "그 중에 10분의 1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고 적혀 있는데, 여기서 하나님은 남아 있는 뿌리가 있다면 그 뿌리로 말미암아 다시 새로운 순을 돋게 하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실 것을 거듭 말씀하고 계십니다.
인간의 조상인 아담 해와는 하늘 땅의 영원히 변치 않을 하나의 뿌리로서 인간들의 전체의 희망과 이상을 이루어야 할 것이었는데, 그만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근본 뿌리가 찍히움을 당하고 뽑히움을 당하여 사탄세계로 옮겨졌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중심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경륜해 나오신 하나님의 섭리의 그 중심점은 아담 해와를 통하여 세우려 하셨던 에덴동산에서 인간의 행복과 이상, 생명, 사랑의 뿌리가 될 수 있었던 그 근본의 뿌리를 다시 찾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늘의 섭리가 출발한 이래 4천년이 경과하여 예수님이 나타나기까지는,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하늘 뜻을 중심으로 하여 피눈물을 뿌리는 수고의 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으로서 세워질 수 있는 뿌리를 완결시키어 민족과 세계에까지 뿌리를 완결시키는 실체로 보내심을 받았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의 30여년 평생의 그 수고와 돌아가신 이후 지금까지 2천년 역사의 모든 수고는 세계를 대표해서 수고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완성한 하나의 뿌리로서 하나님 앞에 세워질 때까지 그 배후에서 숨겨진 뿌리로서 역사의 어려운 고비 고비를 대행하여 원수와 싸워나온 선지선열의 수고를 여러분이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숨은 수고의 생애를 산 아브라함
예수가 이렇듯 하나의 완성된 존재로서 세움받을 수 있었던 역사적인 배후의 존재가 누구였느냐 하면 아브라함이 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남이 알아주지 않는 환경 속에서, 즉 사탄권내인 원수의 나라에 사로잡혀 천륜의 뜻을 배반할 수 있는 입장에서도 하늘을 배반하지 아니한 숨은 인격의 소유자였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시대가 악하고 역사가 혼란되고 환경이 어지러울지라도 극복해 나갔으며, 오히려 몰락해 가는 소돔과 고모라를 향하여 안타까운 마음으로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비록 나쁘고 악할지라도 자기가 그 무엇을 가졌다 할진대 그것을 자랑하려는 것이 인간들의 속성인데, 아브라함은 오랜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마음에 약속된 그 크나큰 섭리의 뜻을 갖고 있으면서, 이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소망 가운데서 오직 세움받은 하나의 뿌리로서, 어느 누가 건드려도, 뽑으려 해도 끄떡없이 확고부동한 기준을 닦기 위해 온갖 핍박과 수모 가운데서도 참고 극복해 온 숨은 수고의 생애를 살다 가셨던 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늘 앞에 자기 일신의 불변의 기대를 세우는 것은 물론, 자기 일신의 희생적인 생활이 뿌려진 씨가 되어 온 지상 만민을 위함과 동시에 악한 민족까지도 하늘 앞으로 돌이킬 수 있는 하나의 불변의 기대를 세우게 되는 날에는 이 기준을 붙들고 변치 않겠다는 애달픈 심정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6천년 역사의 종결시기를 맞이한 오늘날, 여러분들이 편한 잠을 자고,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자신이 잘 나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알았다가는 큰일납니다.
오늘날 세상이 이렇게라도 지탱해 나가는 것은 여러분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배후에서 숨은 뿌리가 되어 피눈물 나는 호소의 제단을 쌓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 주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만일 소돔과 고모라성 중에 아브라함의 간절한 기도가 천상에 사무쳐 하나님과 일문일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무리가 있었다면, 또 그 무리 가운데 아브라함을 알아보는 의인 몇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아브라함은 하늘 앞에 간절히 호소하여 소돔과 고모라에 내릴 심판을 면케 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했을 것입니다. 의인 몇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성이 아무리 악하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의인이 있다는 것을 조건삼아 하나님께 '공의로 판단하시고 심판하시는 아버지시여, 의인과 악인을 함께 불로 심판하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라고 호소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만이, 자기 혼자만이 소돔 고모라를 대표하여 기도하게 되는 것을 느꼈을 때 아브라함의 서러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
아브라함에게는 자기 일신의 행복, 자기 일신의 안위를 돌보는 것보다도 종족을 위하여 생명을 걸어 놓고 호소했던 숨은 기준이 있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예수님이 믿음의 열매로서 나타나실 수 있었던 것도 아브라함과 같은 분이 하늘의 섭리 앞에 세워져서 땅 위에 나타나지 아니한 숨은 뿌리의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섭리역사과정에 다른 모든 것이 다 꺾였을지라도 천상을 대하여 영원히 변치 않는 불변의 믿음을 실증할 수 있는 아브라함같은 분이 있어서 신앙의 뿌리 역할을 함으로 말미암아 그 터전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개인 입장의 아브람(번역하면 '큰 아버지')에서 믿음의 조상이 될 것을 결정받은 아브라함(번역하면 '열국의 아버지')이 된 이 한 자체보다도 그가 남이 모르는 크나큰 수고의 경로를 거쳤다 할진대, 우리는 오늘의 역사를 바라보며 나와 아브라함을 1대 1의 입장에 세워놓고 비교하고 나 자신을 반성해 보아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입장을 체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성에 대하여 숨은 뿌리의 제단을 쌓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사는 지방과 그 곳 주민들을 향해 간절히 호소하고 기도하던 아브라함의 불타는 심정을 여러분 자신들도 가져야 되겠으며, 아브라함의 수고의 노정으로 세워졌던 믿음의 기대, 숨은 뿌리와 같은 기준을 여러분 자신들이 인계받아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가정이 복의 기관의 약속을 받았는데, 이것이 이삭과 야곱을 거쳐서 모세를 통하여 민족적인 형태를 이루고 예수를 통하여 세계적인 범위로 확대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늘 앞에 사무치는 충성심과 믿음이 없었더라면 이 땅 위에는 하늘과 접속시킬 수 있는 한 인연이 나올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자기에게 좋은 것이 있으면 나타내려고 합니다. 드러내고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드러내서 남에게 알리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의 가지와 같은 책임은 할는지 모르지만, 하나의 뿌리로서의 책임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 무엇이었는지 압니까? 오직 하늘을 향하여 사모하는 마음과 땅을 위하는 마음이 지극했기 때문에 하늘 아버지와의 넓고 깊은 인연의 발판을 가질 수 있었고,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민족의 지도자가 된 모세
모세 역시 그렇습니다. 모세 자신이 민족 앞에 세움을 받기까지에는 하나의 숨은 뿌리로서 지낸 바로 궁중에서의 40년 수고의 기간이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호화찬란한 바로 궁중에 머무는 동안 영화롭게 입고 먹고 환희에 넘치는 생활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가 궁중에 머무는 동안, 시종일관 먹고 입고 자고 하는 그 생활의 어느 한 순간에 있어서도 이스라엘민족을 염려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애급에 있는 이스라엘민족 중에서 모세 혼자서만 그 민족이야 알든 모르든 하늘을 향한 충성심이 변치 않았던 것입니다.
모세에게 이러한 하늘에 대한 불변의 심정과 정성 드리는 40년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후에 민족에 대한 사랑의 힘이 폭발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모세가 혈기 당당한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애급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고 애급인을 때려 죽일 모세의 의분심은 그 순간에 충격받아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게 될 때, 모세는 40년 동안 하늘을 향하여 애달픈 마음으로 민족을 위해 호소하였던 내적 슬픔의 심정이 폭발되었던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선민이 억울함을 당하는 것을 보고 억제할 수 없는 의분심이 솟아나 애급인을 때려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사랑과 애급에 대한 의분심이 그러한 모세의 행동의 내적인 원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세의 행동에는 섭리적인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울분에 못이겨 애급인을 쳐죽인 것은 이스라엘민족의 운명을 염려하고 책임진 입장에서 죽인 것이고, 그것은 애급인이 이스라엘민족을 박해한 죄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므로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민족을 위해 염려하는 모세를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민족은 모세를 오해하고 애급인을 쳐죽인 것을 폭로함으로써 모세는 자기의 행동이 탄로 난 것을 알고 할 수 없이 미디안 광야로 피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생활하던 모세는 바로 궁중에서 호화롭게 살던 것을 부끄럽게 여겼으며, 바로왕의 딸이 자기를 위하여 모든 청을 다 들어 줄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살았던 지난 날의 부귀영화를 다 잊었습니다. 그리고 양치는 옷을 입고 양떼를 몰고 다니는 무명의 목동의 신세였지만 그 양떼를 바라보며 옛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을 그리워했습니다.
지금은 비록 양떼를 몰고 다니지만 언젠가는 양떼를 몰고 가듯이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겠다는 사무친 마음으로 하늘 앞에 호소했던 모세였습니다.
모세는 애급의 박해와 도탄 중에서 고역을 당하는 이스라엘민족을 바라보게 될 때 뼈가 녹는 듯한 슬픔을 느꼈으며, 하늘을 향하여, '여호와여 ! 나를 보셔서 이 민족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라고 호소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호소의 정성이 지극한 모세를 60만 대중을 애급땅에서 이끌어 내는 지도자로 세웠고, 남이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닌것 같은, 미디안 광야에서 일개 목동의 생활을 하던 모세를 선조들로부터 내려온 숨은 뿌리의 절개를 계승받게 했고 민족의 대표자로 세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민족이 이러한 모세와 하나가 되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셨던 것입니다.
모세의 숨은 정성의 발판을 몰랐던 유대민족
모세가 하늘로부터 허락하신 바의 약속을 받고 애급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는 기쁨에 사무쳤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결코 그 기쁨에만 만족해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생애를 바치겠다고 하늘 앞에 호소하던 그 뜻이 이루어져 민족의 살길을 개척하게 되었지만 그러한 기쁨에만 만족해 있지 않고. 이제부터 제 2의 책임을 충실히 감당하겠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모세는 자기를 중심삼고 행동하지 않았고, 조그만 일이나 큰일이나 어느 한가지 일이라도 하나님과 인연을 맺지 않고 수행한 것이 없었습니다.
이리하여 모세가 포악한 바로 궁중에 들어가 그들의 신 앞에 10회 이상의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이스라엘민족을 험난한 광야로 이끌어 나오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민족은 모세와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즉 험난한 광야이지만 자유로운 환경으로 탈출해 나온 이스라엘민족은 가나안 복지를 향해 가는데 있어서 모세의 마음이 곧 자기들의 마음이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바로 궁중으로부터 구출해 준 모세와 마음이 달라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세와 하나되지 못하여 천륜에 어긋나는 길을 감으로써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이렇게 멸망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가?
그들은 모세가 민족의 지도자가 되는 과정에서 하늘 앞에 호소했던 숨은 정성의 발판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세가 자기들을 이끌고 애급을 탈출한 그 날로부터 갖은 어려움을 겪으며 자기들을 위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모세의 수고와 고생을 알아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모세는 광야에서 갈라졌고, 결국 그들은 광야에서 엎드러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민족이 모세를 불신했던 역사적인 사실이 오늘날 끝날의 성도들에게도 다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각성해야 할 끝날의 성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 오셔서 30여 평생을 인류를 위해 수고하셨고, 돌아가신 이후 2천년 동안 인간들을 찾아 주시고 사랑과 은사로써 역사해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그러한 예수님을 생활 속에서 진정으로 모시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민족이, 모세가 남 모르는 애달픈 마음을 가지고 금식하는 것이 모세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을 위하는 것임을 알았던들 그들은 모세의 40일 금식 기간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숭배하는 불신의 놀음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그들이 민족의 축복을 대신한 모세가 하나의 숨은 제물로서 하늘 앞에 바쳐지게 될 때 모세의 마음을 동정하고 그의 수고를 염려해서 시내산에 있는 모세와 같이 눈물 흘리며 하늘 앞에 호소할 수 있었던들, 그들은 하나님의 품을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모세가 홀로 민족을 대표하여 외로운 길을 갔던 것과 같이 예수님도 그러한 길을 가셨습니다. 즉 아브라함의 역사적인 희생과 모세의 민족을 대표한 제물의 노정을 통하여 세계의 중심으로 세워진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이 가정을 대표하여 사탄의 참소조건을 막았고 모세가 민족을 대표하여 사탄의 참소조건을 막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 인류를 대신해서 홀로 사탄의 모든 참소조건을 막아야 했고 승리적인 탕감의 발판을 닦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승리의 중심이자 만민의 구세주
오늘날 믿는 성도들은 예수님이 일대의 십자가를 지신 분으로 믿고 있는데 여러분은 그러한 예수님으로만 믿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있기까지에는 아브라함이 쌓았던 수고의 재단이 있었고 모세가 수고한 제물의 노정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고난과 도탄 중에 있는 민족과 세계 인류의 고통을 느껴 '저들의 고통의 짐을 나에게 지워 주시고 저들에게는 자기들이 요구하는 영원한 이상을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하늘 앞에 호소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 그들의 고통을 책임지기 위해 하루도 편한 생활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원수의 품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염려해 주었고 자신의 기쁨보다도 전체의 뜻을 책임진 입장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사탄세계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중심존재로, 만민의 구세주로 세움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끝날에 처한 우리 믿는 성도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제까지 악인을 위하여 눈물 흘리며 염려하고 기도해 주는 생활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끝날에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더욱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염려하며 기도해 주시는 예수님이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예수님을 망각하고 불신한다면 우리는 끝날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뿌리의 사명을 해야 할 끝날의 성도들
만약 옛날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들이 아브라함과 롯을 통해서 예고해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를 받아들여 자신들의 악행을 반성하고 회개하였던들 그들은 심판을 면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역사적인 사실은 앞으로 되어질 일을 실증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이므로 끝날에 처한 오늘 우리도 지난날의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고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불신하는 유대민족을 위해 기도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지금 이 시간도 영적 시내산상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2천년 동안 하늘 보좌에 계시면서 인간을 위하여 기도하시는 그 마음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불신하는 유대민족을 붙들고 기도하던 애달픈 마음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땅 위에 있는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서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옛날에 아브라함이 의인 10인이 있으면 그들을 보아서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면케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그 소돔 고모라에는 의인 열사람이 없어 하나님의 심판을 당했던 것입니다.
끝날 이 땅 위에 이처럼 뿌리로서 남아지는 자가 단 한 사람이라도 없다면, 이스라엘민족이 광야에서 쓰러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도 세계적인 종말기를 맞이하게 될 때 두려운 심판을 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은 숨은 떨기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고 역사노정을 거쳐나오면서 하나의 중심 뿌리를 고대해 온 선조들의 바라심에 응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2천년을 하루와 같이 재림의 한날을 고대하며 수고해 나온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통감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역사적 중심인물들의 상대적인 입장에 세워놓고 검토하고 분석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즉 여러분 자신을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수님의 상대의 입장에 세워놓고 그들의 마음이자 여러분의 마음이요, 그들의 소원이자 여러분의 소원이며, 그들의 원한이자 여러분의 원한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이 되었는가 하는 것을 분석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적수공권으로 하늘 앞에 나서서 담판하는 호소의 제단을 높이 쌓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하늘 앞에 호소하던 심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하여 기도한 것은 자기 아들딸이나 조카 롯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모든 것을 잊고 숨은 정성의 제단을 쌓았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관계되어 있던 롯은 심판을 면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내 뜻을 이루어 주시옵소서'하고 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런 기도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하늘의 뜻이 이루어질 때는 내가 고대하던 뜻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있는 정성을 다하여 '아바 아버지여, 나를 세우셨사오니, 나를 부르셨 사오니, 소자를 통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옵소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여러분은 모세 이래의 모든 지파를 대신해야 되고, 예수님이 필요로 했던 지파를 대신해서 하늘이 요구하는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땅은 악할지라도, 이 땅은 어두울지라도, 이땅은 망할지라도 여러분은 하늘이 세우신 숨은 뿌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늘이 이 시대에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
오늘 이 때의 하늘의 요구가 무엇이냐 하면 아브라함과 같은 책임을 다하고 모세가 이스라엘민족을 위해 애달픈 심정을 가지고 애쓰던 것과 같이 여러분이 한국 삼천만 민족이 도탄 중에 있게 될 때 뜻과 마음을 다해서 애달퍼하고 애썼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같은 뜻과 심정을 가지고 만민을 위해 예수님 대신 수고했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아브라함, 모세, 예수와 같은 삶을 살았느냐고 반문을 받게 될 때에, '옳소이다, 당신이 저희들을 아시지 않나이까. 감추어진 바의 뿌리는 저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속에도 있나이다' 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될 때에, 아브라함이 자기 일신을 통하여 믿음의 절개를 세운 뜻과 모세가 민족을 통하여 애원하던 뜻과 예수님께서 세계를 대해 품었던 모든 슬픔의 요소가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해원될 것입니다.
만일에 그러한 사람이 이 땅 위에 있다 할진대는,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수님이 지금까지 애달퍼하신 마음이 풀릴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없다면 여러분이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러한 사람이 있거든 그 사람을 아브라함대신 모세대신 예수님대신 높이고, 모실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민족을 위해 더욱 기도하시옵소서, 더욱 활동하시옵소서'라고 해야 되겠고, 나아가 여러분이 하늘 앞에 바쳐질 수 있는 제물은 못 될망정 제단이라도 쌓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하나님을 대해 '아버지여'라고 불러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천지창조 이래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주인의 행세를 하지 못한 그 아버지를 실감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일대에 해원받지 못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그 모든 것을 대신하여 아브라함, 모세, 예수님이 기도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도의 제단을 쌓아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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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뿌리된 자들의 책임
1956.07.01 (일), 한국 전본부교회
이 시간 여러분에게 하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 '뿌리된 자들의 책임'입니다. 이사야서 6장 11절 이하의 성경말씀을 보게 되면 "그 중에 10분의 1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고 적혀 있는데, 여기서 하나님은 남아 있는 뿌리가 있다면 그 뿌리로 말미암아 다시 새로운 순을 돋게 하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실 것을 거듭 말씀하고 계십니다.
인간의 조상인 아담 해와는 하늘 땅의 영원히 변치 않을 하나의 뿌리로서 인간들의 전체의 희망과 이상을 이루어야 할 것이었는데, 그만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근본 뿌리가 찍히움을 달하고 뽑히움을 당하여 사탄세계로 옮겨졌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중심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경륜해 나오신 하나님의 섭리의 그 중심점은 에덴동산에서 인간의 행복의 뿌리도 될 수 있고, 이상의 뿌리도 될 수 있고, 생명의 뿌리도 될 수 있고, 사랑의 뿌리도 될 수 있었던 그 근본의 뿌리, 곧 아담 해와를 통하여 세우려 하셨던 그 근본의 뿌리를 다시 찾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섭리의 뜻을 받들어 온 역사과정의 수많은 선지선열들도 비록 천륜의 사정은 잘 몰랐지만, 그들이 뜻을 대하여 수고해 나온 것은 섭리의 목적으로서 이루어드려야 할 그 잃어버린 뿌리를 불변의 실체로 맞이하기 위한 토대를 닦아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섭리의 역사를 시작한 이후 4천년이 경과하는 가운데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렸던 그 뿌리를 다시 찾아 세우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았던 분이 누구였느냐 하면, 여러분들이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은 영원히 남아질 뿌리로서 하나님이 취하여 이 뿌리를 근거로 삼아 마음대로 경영하실 수 있는 하나의 포도원과 같은 형태를 타락한 지상에 다시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하늘의 섭리가 출발한 이래 4천년이 경과하여 예수님이 나타나기까지는,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하늘 뜻을 중심으로 하여 피눈물을 뿌리는 수고의 길이 있었음을 여러분이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즉, 종족을 대표한 섭리의 뜻도 있었고, 민족과 국가, 세계를 대신한 섭리의 뜻도 있었으며 역사를 대신한 섭리의 뜻도 있었는데, 그 종족과 역사를 중심한 섭리의 뜻을 대신한 그 한 지역이면 지역, 환경이면 환경을 거쳐 나올 때까지 뿌리의 요소가 될 수 있는 수많은 선지선열들의 수고의 터가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리고 개인으로서 세워질 수 있는 뿌리를 완결시키어 민족으로서 세워질 수 있는 뿌리로 완결시키고 나아가서 세계로서 세워질 수 있는 뿌리까지 완결시키는 실체로 보내심을 받았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고 있는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예수의 30여년 평생의 그 수고와 돌아가신 이후 지금까지 2천년 역사의 모든 수고는 세계를 대표해서 수고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완성한 하나의 뿌리로서 하나님 앞에 세워질 때까지 그 배후에서 숨겨진 뿌리로서 역사의 어려운 고비 고비를 대행하여 원수와 싸워나온 선지선열의 수고를 여러분이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숨은 수고의 생애를 산 아브라함
예수가 이렇듯 하나의 완성된 존재로서 세움받을 수 있었던 역사적인 배후의 존재가 누구였느냐 하면 아브라함이 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남이 알아주지 않는 환경 속에서, 즉 사탄권내인 원수의 나라에 사로잡혀 천륜의 뜻을 배반할 수 있는 입장에서도 하늘을 배반하지 아니한 숨은 인격의 소유자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숨겨진 뿌리와 같은 아브라함은 시대가 악하고 역사가 혼란되고 환경이 어지러울지라도 그러한 모든 처지를 피하지 아니하고 극복해 나갔으며, 오히려 몰락해 가는 소돔과 고모라를 향하여 안타까운 마음으로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비록 나쁘고 악할지라도 자기가 그 무엇을 가졌다 할진대 그것을 자랑하려는 것이 인간들의 속성인데, 아브라함은 오랜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마음에 약속된 그 크나큰 섭리의 뜻을 갖고 있으면서, 이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소망 가운데서 오직 세움받은 하나의 뿌리로서, 어느 누가 건드려도, 뽑으려 해도 끄떡없이 확고부동한 기준을 닦기 위해 온갖 핍박과 수모 가운데서도 참고 극복해 온 숨은 수고의 생애를 살다 가셨던 분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은 하늘 앞에 자기 일신의 불변의 기대를 세우는 것은 물론, 자기 일신의 희생적인 생활이 뿌려진 씨가 되어 온 지상 만민을 위함과 동시에 악한 민족까지도 하늘 앞으로 돌이킬 수 있는 하나의 불변의 기대를 세우게 되는 날에는 이 기준을 붙들고 변치 않겠다는 애달픈 심정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의 형벌을 받아 마땅한 곳이었고 아브라함이 있는 곳과는 상관도 관계도 없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성이 하늘의 뜻을 알든 모르든, 그 민족이야 당하게 되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하늘 앞에 섭리적인 사명감을 가져서만이 아니라,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책임을 느꼈기 때문에 낮이나 밤이나 소돔과 고모라성에 대하여 안타까워하고 염려했던 것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의 내적 심정이 나타나 있는 것이 여기에 쓰인 말씀입니다.
6천년 역사의 종결시기를 맞이한 오늘날, 여러분들이 편한 잠을 자고,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자신이 잘 나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알았다가는 큰일납니다.
오늘날 세상이 이렇게라도 지탱해 나가는 것은 여러분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배후에서 숨은 뿌리가 되어 피눈물 나는 호소의 제단을 쌓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 주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만일 소돔과 고모라성중에 아브라함의 간절한 기도가 천상에 사무쳐 하나님과 일문일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무리가 있었다면, 또 그 무리 가운데 아브라함을 알아보는 의인 몇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아브라함은 하늘 앞에 간절히 호소하여 소돔과 고모라에 내릴 심판을 면케 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했을 것입니다. 의인 몇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성이 아무리 악하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의인이 있다는 것을 조건삼아 하나님께 '공의로 판단하시고 심판하시는 아버지시여, 의인과 악인을 함께 불로 심판하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라고 호소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만이, 자기 혼자만이 소돔 고모라를 대표하여 기도하게 되는 것을 느꼈을 때 아브라함의 서러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
아브라함에게는 자기 일신의 행복, 자기 일신의 안위를 돌보는 것보다도 종족을 위하여 생명을 걸어 놓고 호소했던 숨은 기준이 있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예수님이 믿음의 열매로서 나타나실 수 있었던 것도 아브라함과 같은 분이 하늘의 섭리 앞에 세워져서 땅 위에 나타나지 아니한 숨은 뿌리의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섭리역사과정에 다른 모든 것이 다 꺾였을지라도 천상을 대하여 영원히 변치 않는 불변의 믿음을 실증할 수 있는 아브라함같은 분이 있어서 신앙의 뿌리 역할을 함으로 말미암아 그 터전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개인 입장의 아브람(번역하면 '큰 아버지')에서 믿음의 조상이 될 것을 결정받은 아브라함(번역하면 '열국의 아버지')이 된 이 한 자체보다도 그가 남이 모르는 크나큰 수고의 경로를 거쳤다 할진대, 우리는 오늘의 역사를 바라보며 나와 아브라함을 1대 1의 입장에 세워놓고 비교하고 나 자신을 반성해 보아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입장을 체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성에 대하여 숨은 뿌리의 제단을 쌓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사는 지방과 그 곳 주민들을 향해 간절히 호소하고 기도하던 아브라함의 불타는 심정을 여러분 자신들도 가져야 되겠으며, 아브라함의 수고의 노정으로 세워졌던 믿음의 기대, 숨은 뿌리와 같은 기준을 여러분 자신들이 인계받아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가정이 복의 기관의 약속을 받았는데, 이것이 이삭과 야곱을 거쳐서 모세를 통하여 민족적인 형태를 이루고 예수를 통하여 세계적인 범위로 확대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늘 앞에 사무치는 충성심과 믿음이 없었더라면 이 땅 위에는 하늘과 접속시킬 수 있는 한 인연이 나올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자기에게 좋은 것이 있으면 나타내려고 합니다. 드러내고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드러내서 남에게 알리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의 가지와 같은 책임은 할는지 모르지만, 하나의 뿌리로서의 책임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 무엇이었는지 압니까? 오직 하늘을 향하여 사모하는 마음과 땅을 위하는 마음이 지극했기 때문에 하늘 아버지와의 넓고 깊은 인연의 발판을 가질 수 있었고,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민족의 지도자가 된 모세
모세 역시 그렇습니다. 모세 자신이 민족 앞에 세움을 받기까지에는 하나의 숨은 뿌리로서 지낸 바로 궁중에서의 40년 수고의 기간이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호화찬란한 바로 궁중에 머무는 동안 영화롭게 입고 먹고 환희에 넘치는 생활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가 궁중에 머무는 동안, 시종일관 먹고 입고 자고 하는 그 생활의 어느 한 순간에 있어서도 이스라엘민족을 염려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애급에 있는 이스라엘민족 중에서 모세 혼자서만 그 민족이야 알든 모르든 하늘을 향한 충성심이 변치 않았던 것입니다.
원수의 품 안에 있으면서도 불변의 핵심체로서, 어떠한 환경이 자신을 압박하고 천륜의 뜻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가로막는 그 무엇이 있다 할지라도 변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던 모세였습니다. 모세에게 이러한 하늘에 대한 불변의 심정과 정성 드리는 40년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후에 민족에 대한 사랑의 힘이 폭발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모세가 혈기 당당한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애급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고 애급인을 때려 죽일 모세의 의분심은 그 순간에 충격받아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게 될 때, 모세는 40년 동안 하늘을 향하여 애달픈 마음으로 민족을 위해 호소하였던 내적 슬픔의 심정이 폭발되었던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선민이 억울함을 당하는 것을 보고 억제할 수 없는 의분심이 솟아나 애급인을 때려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사랑과 애급에 대한 의분심이 그러한 모세의 행동의 내적인 원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세의 행동에는 섭리적인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울분에 못이겨 애급인을 쳐죽인 것은 이스라엘민족의 운명을 염려하고 책임진 입장에서 죽인 것이고, 그것은 애급인이 이스라엘민족을 박해한 죄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므로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민족을 위해 염려하는 모세를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민족은 모세를 오해하고 애급인을 쳐죽인 것을 폭로함으로써 모세는 자기의 행동이 탄로 난 것을 알고 할 수 없이 미디안 광야로 피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생활하던 모세는 바로 궁중에서 호화롭게 살던 것을 부끄럽게 여겼으며, 바로왕의 딸이 자기를 위하여 모든 청을 다 들어 줄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살았던 지난 날의 부귀영화를 다 잊었습니다. 그리고 양치는 옷을 입고 양떼를 몰고 다니는 무명의 목동의 신세였지만 그 양떼를 바라보며 옛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을 그리워했습니다.
지금은 비록 양떼를 몰고 다니지만 언젠가는 양떼를 몰고 가듯이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겠다는 사무친 마음으로 하늘 앞에 호소했던 모세였습니다. 모세는 먹으나 굶으나 자나깨나 노심초사 그 모든 정성을 다하여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 사람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민족을 위해 염려하고 기도했습니다.
모세는 애급의 박해와 도탄 중에서 고역을 당하는 이스라엘민족을 바라보게 될 때 뼈가 녹는 듯한 슬픔을 느꼈으며, 하늘을 향하여, '여호와여 ! 나를 보셔서 이 민족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라고 호소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호소의 정성이 지극한 모세를 60만 대중을 애급땅에서 이끌어 내는 지도자로 세웠고, 남이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닌것 같은, 미디안 광야에서 일개 목동의 생활을 하던 모세를 선조들로부터 내려온 숨은 뿌리의 절개를 계승받게 했고 민족의 대표자로 세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민족이 이러한 모세와 하나가 되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셨던 것입니다.
모세의 숨은 정성의 발판을 몰랐던 유대민족
모세가 하늘로부터 허락하신 바의 약속을 받고 애급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는 기쁨에 사무쳤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결코 그 기쁨에만 만족해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생애를 바치겠다고 하늘 앞에 호소하던 그 뜻이 이루어져 민족의 살길을 개척하게 되었지만 그러한 기쁨에만 만족해 있지 않고. 이제부터 제 2의 책임을 충실히 감당하겠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모세는 자기를 중심삼고 행동하지 않았고, 조그만 일이나 큰일이나 어느 한가지 일이라도 하나님과 인연을 맺지 않고 수행한 것이 없었습니다.
이리하여 모세가 포악한 바로 궁중에 들어가 그들의 신 앞에 10회 이상의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이스라엘민족을 험난한 광야로 이끌어 나오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민족은 모세와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즉 험난한 광야이지만 자유로운 환경으로 탈출해 나온 이스라엘민족은 가나안 복지를 향해 가는데 있어서 모세의 마음이 곧 자기들의 마음이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바로 궁중으로부터 구출해 준 모세와 마음이 달라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세와 하나되지 못하여 천륜에 어긋나는 길을 감으로써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이렇게 멸망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가?
그들은 모세가 민족의 지도자가 되는 과정에서 하늘 앞에 호소했던 숨은 정성의 발판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세가 자기들을 이끌고 애급을 탈출한 그 날로부터 갖은 어려움을 겪으며 자기들을 위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모세의 수고와 고생을 알아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모세는 광야에서 갈라졌고, 결국 그들은 광야에서 엎드러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민족이 모세를 불신했던 역사적인 사실이 오늘날 끝날의 성도들에게도 다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각성해야 할 끝날의 성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 오셔서 30여 평생을 인류를 위해 수고하셨고, 돌아가신 이후 2천년 동안 인간들을 찾아 주시고 사랑과 은사로써 역사해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그러한 예수님을 생활 속에서 진정으로 모시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민족이 모세를 불신함으로써 모세가 이스라엘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받들지 못했던 것과 같은 두려운 일이 끝날의 성도들에게도 벌어질지 모릅니다. 이스라엘민족과 자신이 하나되지 못하는 사실에 직면하게 될 때 모세는 불신하는 민족을 책망하기 전에 자기 자신의 부족을 하늘 앞에 호소했습니다. 즉 그는 시내 산에 올라가 40일 동안 금식기도하면서 '아버지여, 이 민족이 어찌하여 허락하신 땅이 눈 앞에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그 책임은 나에게 있습니다. 내가 책임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를 제물삼아 민족의 멸망의 길을 막아 주시옵소서'라고 호소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세의 숨은 정성의 기간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이스라엘민족이, 모세가 남 모르는 애달픈 마음을 가지고 금식하는 것이 모세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을 위하는 것임을 알았던들 그들은 모세의 40일 금식 기간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숭배하는 불신의 놀음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그들이 민족의 축복을 대신한 모세가 하나의 숨은 제물로서 하늘 앞에 바쳐지게 될 때 모세의 마음을 동정하고 그의 수고를 염려해서 시내산에 있는 모세와 같이 눈물 흘리며 하늘 앞에 호소할 수 있었던들, 그들은 하나님의 품을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모세가 홀로 민족을 대표하여 외로운 길을 갔던 것과 같이 예수님도 그러한 길을 가셨습니다. 즉 아브라함의 역사적인 희생과 모세의 민족을 대표한 제물의 노정을 통하여 세계의 중심으로 세워진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이 가정을 대표하여 사탄의 참소조건을 막았고 모세가 민족을 대표하여 사탄의 참소조건을 막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 인류를 대신해서 홀로 사탄의 모든 참소조건을 막아야 했고 승리적인 탕감의 발판을 닦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승리의 중심이자 만민의 구세주
여러분은 예수님에게 이러한 책임이 있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세계적으로 승리하여 불변의 터전을 갖출 때까지 예수님의 일신은 자신의 일신으로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4천년 역사 과정에서 하늘 앞에 충성했던 어떠한 믿음의 중심인물보다도 더 충실했으며, 전체를 위해서 자신의 일신을 희생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30여 평생을 통하여 자신의 사명 분야에서 역사상 어느누구도 갖추지 못하였던 전체를 대신한 중심의 형태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중심인물이 되지 못했다면, 예수님은 세계적인 섭리의 책임을 진 선봉장이 될 수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믿는 성도들은 예수님이 일대의 십자가를 지신 분으로 믿고 있는데 여러분은 그러한 예수님으로만 믿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있기까지에는 아브라함이 쌓았던 수고의 재단이 있었고 모세가 수고한 제물의 노정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고난과 도탄 중에 있는 민족과 세계 인류의 고통을 느껴 '저들의 고통의 짐을 나에게 지워 주시고 저들에게는 자기들이 요구하는 영원한 이상을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하늘 앞에 호소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 그들의 고통을 책임지기 위해 하루도 편한 생활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원수의 품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염려해 주었고 자신의 기쁨보다도 전체의 뜻을 책임진 입장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사탄세계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중심존재로, 만민의 구세주로 세움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끝날에 처한 우리 믿는 성도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제까지 악인을 위하여 눈물 흘리며 염려하고 기도해 주는 생활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끝날에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더욱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염려하며 기도해 주시는 예수님이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예수님을 망각하고 불신한다면 우리는 끝날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뿌리의 사명을 해야 할 끝날의 성도들
만약 옛날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들이 아브라함과 롯을 통해서 예고해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를 받아들여 자신들의 악행을 반성하고 회개하였던들 그들은 심판을 면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역사적인 사실은 앞으로 되어질 일을 실증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이므로 끝날에 처한 오늘 우리도 지난날의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고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불신하는 유대민족을 위해 기도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지금 이 시간도 영적 시내산상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2천년 동안 하늘 보좌에 계시면서 인간을 위하여 기도하시는 그 마음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불신하는 유대민족을 붙들고 기도하던 애달픈 마음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땅 위에 있는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서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옛날에 아브라함이 의인 10인이 있으면 그들을 보아서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면케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그 소돔 고모라에는 의인 열사람이 없어 하나님의 심판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후 오늘날까지 천상에 계시면서 인간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 것과 같이, 또 모세가 시내 산정에서 기도했던 것과 같이 그 애달픈 심정을 체휼하여 이 시대를 붙들고 예수님대신 염려하고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님의 세계적인 뜻을 대신할 수 있고 역사상의 선지선열들을 대신할 수 있는 하늘이 세우신 자가 어느 곳에 있는가 하고 깨어 기도하고 정성드리며 찾는 일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끝날 이 땅 위에 이처럼 뿌리로서 남아지는 자가 단 한 사람이라도 없다면, 이스라엘민족이 광야에서 쓰러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도 세계적인 종말기를 맞이하게 될 때 두려운 심판을 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은 숨은 떨기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고 역사노정을 거쳐나오면서 하나의 중심 뿌리를 고대해 온 선조들의 바라심에 응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2천년을 하루와 같이 재림의 한날을 고대하며 수고해 나온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통감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역사적 중심인물들의 상대적인 입장에 세워놓고 검토하고 분석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즉 여러분 자신을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수님의 상대의 입장에 세워놓고 그들의 마음이자 여러분의 마음이요, 그들의 소원이자 여러분의 소원이며, 그들의 원한이자 여러분의 원한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이 되었는가 하는 것을 분석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적수공권으로 하늘 앞에 나서서 담판하는 호소의 제단을 높이 쌓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하늘 앞에 호소하던 심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하여 기도한 것은 자기 아들딸이나 조카 롯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모든 것을 잊고 숨은 정성의 제단을 쌓았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관계되어 있던 롯은 심판을 면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내 뜻을 이루어 주시옵소서'하고 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런 기도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하늘의 뜻이 이루어질 때는 내가 고대하던 뜻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뜻을 이루어 주시옵소서'하는 기도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있는 정성을 다하여 '아바 아버지여, 나를 세우셨사오니, 나를 부르셨 사오니, 소자를 통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옵소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이 이어받은 유업은 여러분 일대만의 유업이 아니라 아브라함으로부터 모세와 예수님을 거쳐 내려온 유업이라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여러분은 모세 이래의 모든 지파를 대신해야 되고, 예수님이 필요로 했던 지파를 대신해서 하늘이 요구하는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땅은 악할지라도, 이 땅은 어두울지라도, 이땅은 망할지라도 여러분은 하늘이 세우신 숨은 뿌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늘이 이 시대에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
하늘은 오늘 이 때에 개인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종교의 사명을 이룰 것을 요구하고 있나니 그 요구가 무엇이냐 하면, 아브라함이 했던 것 같은 책임을 다했느냐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모세가 이스라엘민족을 위해 애달픈 심정을 가지고 애쓰던 것과 같이 여러분이 한국 삼천만 민족이 도탄중에 있게 될 때 모세처럼 여러분의 뜻과 마음을 다해서 애달퍼하고 애썼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창세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수고하시던 것처럼 같은 뜻과 심정을 가지고 만민을 위해 예수님대신 수고했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이 아브라함, 모세, 예수와 같은 삶을 살았느냐고 반문을 받게 될 때에, '옳소이다, 당신이 저희들을 아시지 않나이까. 감추어진 바의 뿌리는 저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속에도 있나이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될 때에, 아브라함이 자기 일신을 통하여 믿음의 절개를 새운 뜻이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결실되어질 것이고, 모세가 민족을 통하여 애원하던 뜻이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해원될 것이고, 예수님께서 세계를 대해 품었던 모든 슬픔의 요소가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해원될 것입니다.
만일에 그러한 사람이 이 땅 위에 있다 할진대는, 아브라함이 일대에 애달퍼하던 마음, 모세가 일대에 애달퍼하던 마음, 예수님이 지금까지 애달퍼하신 마음이 풀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를 정성을 다해서 모셔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없다면 여러분이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그러한 사람이 있거든 그 사람을 아브라함대신 모세대신 예수님대신 높이고, 모실 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민족을 위해 더욱 기도하시옵소서, 더욱 활동하시옵소서'라고 해야 되겠고, 나아가 여러분이 하늘 앞에 바쳐질 수 있는 제물은 못 될망정 제단이라도 쌓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하나님을 대해 '아버지여'라고 불러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천지창조 이래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주인의 행세를 하지 못한 그 아버지를 실감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일대에 해원받지 못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그 모든 것을 대신하여 아브라함이 기도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모세가 기도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기도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도의 제단을 쌓아야 되겠습니다. *
말씀선집 제1집 9편
뿌리된 자들의 책임(훈독본)
1956.07.01 (일), 한국 전본부교회
창세기 18:22-19:12, 이사야 6:11-13
이 시간 여러분에게 하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 '뿌리된 자들의 책임'입니다.
이사야서 6장 11절 이하의 성경말씀을 보게 되면 "그 중에 10분의 1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고 적혀 있는데, 여기서 하나님은 남아 있는 뿌리가 있다면 그 뿌리로 말미암아 다시 새로운 순을 돋게 하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실 것을 거듭 말씀하고 계십니다.
인간의 조상인 아담 해와는 하늘 땅의 영원히 변치 않을 하나의 뿌리로서 인간들의 전체의 희망과 이상을 이루어야 할 것이었는데, 그만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근본 뿌리가 찍히움을 당하고 뽑히움을 당하여 사탄세계로 옮겨졌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중심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경륜해 나오신 하나님의 섭리의 그 중심점은 아담 해와를 통하여 세우려 하셨던 에덴동산에서 인간의 행복과 이상, 생명, 사랑의 뿌리가 될 수 있었던 그 근본의 뿌리를 다시 찾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늘의 섭리가 출발한 이래 4천년이 경과하여 예수님이 나타나기까지는,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하늘 뜻을 중심으로 하여 피눈물을 뿌리는 수고의 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으로서 세워질 수 있는 뿌리를 완결시키어 민족과 세계에까지 뿌리를 완결시키는 실체로 보내심을 받았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의 30여년 평생의 그 수고와 돌아가신 이후 지금까지 2천년 역사의 모든 수고는 세계를 대표해서 수고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완성한 하나의 뿌리로서 하나님 앞에 세워질 때까지 그 배후에서 숨겨진 뿌리로서 역사의 어려운 고비 고비를 대행하여 원수와 싸워나온 선지선열의 수고를 여러분이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숨은 수고의 생애를 산 아브라함
예수가 이렇듯 하나의 완성된 존재로서 세움받을 수 있었던 역사적인 배후의 존재가 누구였느냐 하면 아브라함이 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남이 알아주지 않는 환경 속에서, 즉 사탄권내인 원수의 나라에 사로잡혀 천륜의 뜻을 배반할 수 있는 입장에서도 하늘을 배반하지 아니한 숨은 인격의 소유자였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시대가 악하고 역사가 혼란되고 환경이 어지러울지라도 극복해 나갔으며, 오히려 몰락해 가는 소돔과 고모라를 향하여 안타까운 마음으로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비록 나쁘고 악할지라도 자기가 그 무엇을 가졌다 할진대 그것을 자랑하려는 것이 인간들의 속성인데, 아브라함은 오랜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마음에 약속된 그 크나큰 섭리의 뜻을 갖고 있으면서, 이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소망 가운데서 오직 세움받은 하나의 뿌리로서, 어느 누가 건드려도, 뽑으려 해도 끄떡없이 확고부동한 기준을 닦기 위해 온갖 핍박과 수모 가운데서도 참고 극복해 온 숨은 수고의 생애를 살다 가셨던 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늘 앞에 자기 일신의 불변의 기대를 세우는 것은 물론, 자기 일신의 희생적인 생활이 뿌려진 씨가 되어 온 지상 만민을 위함과 동시에 악한 민족까지도 하늘 앞으로 돌이킬 수 있는 하나의 불변의 기대를 세우게 되는 날에는 이 기준을 붙들고 변치 않겠다는 애달픈 심정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6천년 역사의 종결시기를 맞이한 오늘날, 여러분들이 편한 잠을 자고,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자신이 잘 나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알았다가는 큰일납니다.
오늘날 세상이 이렇게라도 지탱해 나가는 것은 여러분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배후에서 숨은 뿌리가 되어 피눈물 나는 호소의 제단을 쌓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 주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만일 소돔과 고모라성 중에 아브라함의 간절한 기도가 천상에 사무쳐 하나님과 일문일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무리가 있었다면, 또 그 무리 가운데 아브라함을 알아보는 의인 몇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아브라함은 하늘 앞에 간절히 호소하여 소돔과 고모라에 내릴 심판을 면케 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했을 것입니다. 의인 몇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성이 아무리 악하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의인이 있다는 것을 조건삼아 하나님께 '공의로 판단하시고 심판하시는 아버지시여, 의인과 악인을 함께 불로 심판하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라고 호소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만이, 자기 혼자만이 소돔 고모라를 대표하여 기도하게 되는 것을 느꼈을 때 아브라함의 서러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아브라함에게는 자기 일신의 행복, 자기 일신의 안위를 돌보는 것보다도 종족을 위하여 생명을 걸어 놓고 호소했던 숨은 기준이 있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예수님이 믿음의 열매로서 나타나실 수 있었던 것도 아브라함과 같은 분이 하늘의 섭리 앞에 세워져서 땅 위에 나타나지 아니한 숨은 뿌리의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섭리역사과정에 다른 모든 것이 다 꺾였을지라도 천상을 대하여 영원히 변치 않는 불변의 믿음을 실증할 수 있는 아브라함같은 분이 있어서 신앙의 뿌리 역할을 함으로 말미암아 그 터전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개인 입장의 아브람(번역하면 '큰 아버지')에서 믿음의 조상이 될 것을 결정받은 아브라함(번역하면 '열국의 아버지')이 된 이 한 자체보다도 그가 남이 모르는 크나큰 수고의 경로를 거쳤다 할진대, 우리는 오늘의 역사를 바라보며 나와 아브라함을 1대 1의 입장에 세워놓고 비교하고 나 자신을 반성해 보아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입장을 체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성에 대하여 숨은 뿌리의 제단을 쌓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사는 지방과 그 곳 주민들을 향해 간절히 호소하고 기도하던 아브라함의 불타는 심정을 여러분 자신들도 가져야 되겠으며, 아브라함의 수고의 노정으로 세워졌던 믿음의 기대, 숨은 뿌리와 같은 기준을 여러분 자신들이 인계받아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가정이 복의 기관의 약속을 받았는데, 이것이 이삭과 야곱을 거쳐서 모세를 통하여 민족적인 형태를 이루고 예수를 통하여 세계적인 범위로 확대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늘 앞에 사무치는 충성심과 믿음이 없었더라면 이 땅 위에는 하늘과 접속시킬 수 있는 한 인연이 나올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자기에게 좋은 것이 있으면 나타내려고 합니다. 드러내고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드러내서 남에게 알리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의 가지와 같은 책임은 할는지 모르지만, 하나의 뿌리로서의 책임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 무엇이었는지 압니까? 오직 하늘을 향하여 사모하는 마음과 땅을 위하는 마음이 지극했기 때문에 하늘 아버지와의 넓고 깊은 인연의 발판을 가질 수 있었고,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민족의 지도자가 된 모세
모세 역시 그렇습니다. 모세 자신이 민족 앞에 세움을 받기까지에는 하나의 숨은 뿌리로서 지낸 바로 궁중에서의 40년 수고의 기간이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호화찬란한 바로 궁중에 머무는 동안 영화롭게 입고 먹고 환희에 넘치는 생활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가 궁중에 머무는 동안, 시종일관 먹고 입고 자고 하는 그 생활의 어느 한 순간에 있어서도 이스라엘민족을 염려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애급에 있는 이스라엘민족 중에서 모세 혼자서만 그 민족이야 알든 모르든 하늘을 향한 충성심이 변치 않았던 것입니다.
모세에게 이러한 하늘에 대한 불변의 심정과 정성 드리는 40년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후에 민족에 대한 사랑의 힘이 폭발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모세가 혈기 당당한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애급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고 애급인을 때려 죽일 모세의 의분심은 그 순간에 충격받아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게 될 때, 모세는 40년 동안 하늘을 향하여 애달픈 마음으로 민족을 위해 호소하였던 내적 슬픔의 심정이 폭발되었던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선민이 억울함을 당하는 것을 보고 억제할 수 없는 의분심이 솟아나 애급인을 때려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사랑과 애급에 대한 의분심이 그러한 모세의 행동의 내적인 원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세의 행동에는 섭리적인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울분에 못이겨 애급인을 쳐죽인 것은 이스라엘민족의 운명을 염려하고 책임진 입장에서 죽인 것이고, 그것은 애급인이 이스라엘민족을 박해한 죄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므로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민족을 위해 염려하는 모세를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민족은 모세를 오해하고 애급인을 쳐죽인 것을 폭로함으로써 모세는 자기의 행동이 탄로 난 것을 알고 할 수 없이 미디안 광야로 피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생활하던 모세는 바로 궁중에서 호화롭게 살던 것을 부끄럽게 여겼으며, 바로왕의 딸이 자기를 위하여 모든 청을 다 들어 줄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살았던 지난 날의 부귀영화를 다 잊었습니다. 그리고 양치는 옷을 입고 양떼를 몰고 다니는 무명의 목동의 신세였지만 그 양떼를 바라보며 옛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을 그리워했습니다.
지금은 비록 양떼를 몰고 다니지만 언젠가는 양떼를 몰고 가듯이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겠다는 사무친 마음으로 하늘 앞에 호소했던 모세였습니다.
모세는 애급의 박해와 도탄 중에서 고역을 당하는 이스라엘민족을 바라보게 될 때 뼈가 녹는 듯한 슬픔을 느꼈으며, 하늘을 향하여, '여호와여 ! 나를 보셔서 이 민족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라고 호소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호소의 정성이 지극한 모세를 60만 대중을 애급땅에서 이끌어 내는 지도자로 세웠고, 남이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닌것 같은, 미디안 광야에서 일개 목동의 생활을 하던 모세를 선조들로부터 내려온 숨은 뿌리의 절개를 계승받게 했고 민족의 대표자로 세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민족이 이러한 모세와 하나가 되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셨던 것입니다.
모세의 숨은 정성의 발판을 몰랐던 유대민족
모세가 하늘로부터 허락하신 바의 약속을 받고 애급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는 기쁨에 사무쳤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결코 그 기쁨에만 만족해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생애를 바치겠다고 하늘 앞에 호소하던 그 뜻이 이루어져 민족의 살길을 개척하게 되었지만 그러한 기쁨에만 만족해 있지 않고. 이제부터 제 2의 책임을 충실히 감당하겠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모세는 자기를 중심삼고 행동하지 않았고, 조그만 일이나 큰일이나 어느 한가지 일이라도 하나님과 인연을 맺지 않고 수행한 것이 없었습니다.
이리하여 모세가 포악한 바로 궁중에 들어가 그들의 신 앞에 10회 이상의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이스라엘민족을 험난한 광야로 이끌어 나오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민족은 모세와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즉 험난한 광야이지만 자유로운 환경으로 탈출해 나온 이스라엘민족은 가나안 복지를 향해 가는데 있어서 모세의 마음이 곧 자기들의 마음이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바로 궁중으로부터 구출해 준 모세와 마음이 달라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세와 하나되지 못하여 천륜에 어긋나는 길을 감으로써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이렇게 멸망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가?
그들은 모세가 민족의 지도자가 되는 과정에서 하늘 앞에 호소했던 숨은 정성의 발판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세가 자기들을 이끌고 애급을 탈출한 그 날로부터 갖은 어려움을 겪으며 자기들을 위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모세의 수고와 고생을 알아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모세는 광야에서 갈라졌고, 결국 그들은 광야에서 엎드러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민족이 모세를 불신했던 역사적인 사실이 오늘날 끝날의 성도들에게도 다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각성해야 할 끝날의 성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 오셔서 30여 평생을 인류를 위해 수고하셨고, 돌아가신 이후 2천년 동안 인간들을 찾아 주시고 사랑과 은사로써 역사해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그러한 예수님을 생활 속에서 진정으로 모시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민족이, 모세가 남 모르는 애달픈 마음을 가지고 금식하는 것이 모세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을 위하는 것임을 알았던들 그들은 모세의 40일 금식 기간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숭배하는 불신의 놀음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그들이 민족의 축복을 대신한 모세가 하나의 숨은 제물로서 하늘 앞에 바쳐지게 될 때 모세의 마음을 동정하고 그의 수고를 염려해서 시내산에 있는 모세와 같이 눈물 흘리며 하늘 앞에 호소할 수 있었던들, 그들은 하나님의 품을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모세가 홀로 민족을 대표하여 외로운 길을 갔던 것과 같이 예수님도 그러한 길을 가셨습니다. 즉 아브라함의 역사적인 희생과 모세의 민족을 대표한 제물의 노정을 통하여 세계의 중심으로 세워진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이 가정을 대표하여 사탄의 참소조건을 막았고 모세가 민족을 대표하여 사탄의 참소조건을 막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 인류를 대신해서 홀로 사탄의 모든 참소조건을 막아야 했고 승리적인 탕감의 발판을 닦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승리의 중심이자 만민의 구세주
오늘날 믿는 성도들은 예수님이 일대의 십자가를 지신 분으로 믿고 있는데 여러분은 그러한 예수님으로만 믿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있기까지에는 아브라함이 쌓았던 수고의 재단이 있었고 모세가 수고한 제물의 노정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고난과 도탄 중에 있는 민족과 세계 인류의 고통을 느껴 '저들의 고통의 짐을 나에게 지워 주시고 저들에게는 자기들이 요구하는 영원한 이상을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하늘 앞에 호소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 그들의 고통을 책임지기 위해 하루도 편한 생활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원수의 품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염려해 주었고 자신의 기쁨보다도 전체의 뜻을 책임진 입장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사탄세계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중심존재로, 만민의 구세주로 세움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끝날에 처한 우리 믿는 성도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제까지 악인을 위하여 눈물 흘리며 염려하고 기도해 주는 생활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끝날에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더욱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염려하며 기도해 주시는 예수님이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예수님을 망각하고 불신한다면 우리는 끝날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뿌리의 사명을 해야 할 끝날의 성도들
만약 옛날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들이 아브라함과 롯을 통해서 예고해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를 받아들여 자신들의 악행을 반성하고 회개하였던들 그들은 심판을 면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역사적인 사실은 앞으로 되어질 일을 실증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이므로 끝날에 처한 오늘 우리도 지난날의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고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불신하는 유대민족을 위해 기도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지금 이 시간도 영적 시내산상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2천년 동안 하늘 보좌에 계시면서 인간을 위하여 기도하시는 그 마음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불신하는 유대민족을 붙들고 기도하던 애달픈 마음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땅 위에 있는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서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옛날에 아브라함이 의인 10인이 있으면 그들을 보아서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면케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그 소돔 고모라에는 의인 열사람이 없어 하나님의 심판을 당했던 것입니다.
끝날 이 땅 위에 이처럼 뿌리로서 남아지는 자가 단 한 사람이라도 없다면, 이스라엘민족이 광야에서 쓰러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도 세계적인 종말기를 맞이하게 될 때 두려운 심판을 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은 숨은 떨기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고 역사노정을 거쳐나오면서 하나의 중심 뿌리를 고대해 온 선조들의 바라심에 응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2천년을 하루와 같이 재림의 한날을 고대하며 수고해 나온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통감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역사적 중심인물들의 상대적인 입장에 세워놓고 검토하고 분석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즉 여러분 자신을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수님의 상대의 입장에 세워놓고 그들의 마음이자 여러분의 마음이요, 그들의 소원이자 여러분의 소원이며, 그들의 원한이자 여러분의 원한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이 되었는가 하는 것을 분석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적수공권으로 하늘 앞에 나서서 담판하는 호소의 제단을 높이 쌓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하늘 앞에 호소하던 심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하여 기도한 것은 자기 아들딸이나 조카 롯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모든 것을 잊고 숨은 정성의 제단을 쌓았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관계되어 있던 롯은 심판을 면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내 뜻을 이루어 주시옵소서'하고 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런 기도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하늘의 뜻이 이루어질 때는 내가 고대하던 뜻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있는 정성을 다하여 '아바 아버지여, 나를 세우셨사오니, 나를 부르셨 사오니, 소자를 통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옵소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여러분은 모세 이래의 모든 지파를 대신해야 되고, 예수님이 필요로 했던 지파를 대신해서 하늘이 요구하는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땅은 악할지라도, 이 땅은 어두울지라도, 이땅은 망할지라도 여러분은 하늘이 세우신 숨은 뿌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늘이 이 시대에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
오늘 이 때의 하늘의 요구가 무엇이냐 하면 아브라함과 같은 책임을 다하고 모세가 이스라엘민족을 위해 애달픈 심정을 가지고 애쓰던 것과 같이 여러분이 한국 삼천만 민족이 도탄 중에 있게 될 때 뜻과 마음을 다해서 애달퍼하고 애썼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같은 뜻과 심정을 가지고 만민을 위해 예수님 대신 수고했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아브라함, 모세, 예수와 같은 삶을 살았느냐고 반문을 받게 될 때에, '옳소이다, 당신이 저희들을 아시지 않나이까. 감추어진 바의 뿌리는 저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속에도 있나이다' 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될 때에, 아브라함이 자기 일신을 통하여 믿음의 절개를 세운 뜻과 모세가 민족을 통하여 애원하던 뜻과 예수님께서 세계를 대해 품었던 모든 슬픔의 요소가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해원될 것입니다.
만일에 그러한 사람이 이 땅 위에 있다 할진대는,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수님이 지금까지 애달퍼하신 마음이 풀릴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없다면 여러분이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러한 사람이 있거든 그 사람을 아브라함대신 모세대신 예수님대신 높이고, 모실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민족을 위해 더욱 기도하시옵소서, 더욱 활동하시옵소서'라고 해야 되겠고, 나아가 여러분이 하늘 앞에 바쳐질 수 있는 제물은 못 될망정 제단이라도 쌓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하나님을 대해 '아버지여'라고 불러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천지창조 이래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주인의 행세를 하지 못한 그 아버지를 실감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일대에 해원받지 못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그 모든 것을 대신하여 아브라함, 모세, 예수님이 기도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도의 제단을 쌓아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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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뿌리된 자들의 책임
1956.07.01 (일), 한국 전본부교회
이 시간 여러분에게 하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 '뿌리된 자들의 책임'입니다. 이사야서 6장 11절 이하의 성경말씀을 보게 되면 "그 중에 10분의 1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고 적혀 있는데, 여기서 하나님은 남아 있는 뿌리가 있다면 그 뿌리로 말미암아 다시 새로운 순을 돋게 하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실 것을 거듭 말씀하고 계십니다.
인간의 조상인 아담 해와는 하늘 땅의 영원히 변치 않을 하나의 뿌리로서 인간들의 전체의 희망과 이상을 이루어야 할 것이었는데, 그만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근본 뿌리가 찍히움을 달하고 뽑히움을 당하여 사탄세계로 옮겨졌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중심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경륜해 나오신 하나님의 섭리의 그 중심점은 에덴동산에서 인간의 행복의 뿌리도 될 수 있고, 이상의 뿌리도 될 수 있고, 생명의 뿌리도 될 수 있고, 사랑의 뿌리도 될 수 있었던 그 근본의 뿌리, 곧 아담 해와를 통하여 세우려 하셨던 그 근본의 뿌리를 다시 찾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섭리의 뜻을 받들어 온 역사과정의 수많은 선지선열들도 비록 천륜의 사정은 잘 몰랐지만, 그들이 뜻을 대하여 수고해 나온 것은 섭리의 목적으로서 이루어드려야 할 그 잃어버린 뿌리를 불변의 실체로 맞이하기 위한 토대를 닦아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섭리의 역사를 시작한 이후 4천년이 경과하는 가운데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렸던 그 뿌리를 다시 찾아 세우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았던 분이 누구였느냐 하면, 여러분들이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은 영원히 남아질 뿌리로서 하나님이 취하여 이 뿌리를 근거로 삼아 마음대로 경영하실 수 있는 하나의 포도원과 같은 형태를 타락한 지상에 다시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하늘의 섭리가 출발한 이래 4천년이 경과하여 예수님이 나타나기까지는,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하늘 뜻을 중심으로 하여 피눈물을 뿌리는 수고의 길이 있었음을 여러분이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즉, 종족을 대표한 섭리의 뜻도 있었고, 민족과 국가, 세계를 대신한 섭리의 뜻도 있었으며 역사를 대신한 섭리의 뜻도 있었는데, 그 종족과 역사를 중심한 섭리의 뜻을 대신한 그 한 지역이면 지역, 환경이면 환경을 거쳐 나올 때까지 뿌리의 요소가 될 수 있는 수많은 선지선열들의 수고의 터가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리고 개인으로서 세워질 수 있는 뿌리를 완결시키어 민족으로서 세워질 수 있는 뿌리로 완결시키고 나아가서 세계로서 세워질 수 있는 뿌리까지 완결시키는 실체로 보내심을 받았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고 있는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예수의 30여년 평생의 그 수고와 돌아가신 이후 지금까지 2천년 역사의 모든 수고는 세계를 대표해서 수고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완성한 하나의 뿌리로서 하나님 앞에 세워질 때까지 그 배후에서 숨겨진 뿌리로서 역사의 어려운 고비 고비를 대행하여 원수와 싸워나온 선지선열의 수고를 여러분이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숨은 수고의 생애를 산 아브라함
예수가 이렇듯 하나의 완성된 존재로서 세움받을 수 있었던 역사적인 배후의 존재가 누구였느냐 하면 아브라함이 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남이 알아주지 않는 환경 속에서, 즉 사탄권내인 원수의 나라에 사로잡혀 천륜의 뜻을 배반할 수 있는 입장에서도 하늘을 배반하지 아니한 숨은 인격의 소유자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숨겨진 뿌리와 같은 아브라함은 시대가 악하고 역사가 혼란되고 환경이 어지러울지라도 그러한 모든 처지를 피하지 아니하고 극복해 나갔으며, 오히려 몰락해 가는 소돔과 고모라를 향하여 안타까운 마음으로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비록 나쁘고 악할지라도 자기가 그 무엇을 가졌다 할진대 그것을 자랑하려는 것이 인간들의 속성인데, 아브라함은 오랜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마음에 약속된 그 크나큰 섭리의 뜻을 갖고 있으면서, 이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소망 가운데서 오직 세움받은 하나의 뿌리로서, 어느 누가 건드려도, 뽑으려 해도 끄떡없이 확고부동한 기준을 닦기 위해 온갖 핍박과 수모 가운데서도 참고 극복해 온 숨은 수고의 생애를 살다 가셨던 분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은 하늘 앞에 자기 일신의 불변의 기대를 세우는 것은 물론, 자기 일신의 희생적인 생활이 뿌려진 씨가 되어 온 지상 만민을 위함과 동시에 악한 민족까지도 하늘 앞으로 돌이킬 수 있는 하나의 불변의 기대를 세우게 되는 날에는 이 기준을 붙들고 변치 않겠다는 애달픈 심정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의 형벌을 받아 마땅한 곳이었고 아브라함이 있는 곳과는 상관도 관계도 없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성이 하늘의 뜻을 알든 모르든, 그 민족이야 당하게 되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하늘 앞에 섭리적인 사명감을 가져서만이 아니라,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책임을 느꼈기 때문에 낮이나 밤이나 소돔과 고모라성에 대하여 안타까워하고 염려했던 것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의 내적 심정이 나타나 있는 것이 여기에 쓰인 말씀입니다.
6천년 역사의 종결시기를 맞이한 오늘날, 여러분들이 편한 잠을 자고,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자신이 잘 나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알았다가는 큰일납니다.
오늘날 세상이 이렇게라도 지탱해 나가는 것은 여러분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배후에서 숨은 뿌리가 되어 피눈물 나는 호소의 제단을 쌓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 주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만일 소돔과 고모라성중에 아브라함의 간절한 기도가 천상에 사무쳐 하나님과 일문일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무리가 있었다면, 또 그 무리 가운데 아브라함을 알아보는 의인 몇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아브라함은 하늘 앞에 간절히 호소하여 소돔과 고모라에 내릴 심판을 면케 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했을 것입니다. 의인 몇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성이 아무리 악하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의인이 있다는 것을 조건삼아 하나님께 '공의로 판단하시고 심판하시는 아버지시여, 의인과 악인을 함께 불로 심판하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라고 호소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만이, 자기 혼자만이 소돔 고모라를 대표하여 기도하게 되는 것을 느꼈을 때 아브라함의 서러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
아브라함에게는 자기 일신의 행복, 자기 일신의 안위를 돌보는 것보다도 종족을 위하여 생명을 걸어 놓고 호소했던 숨은 기준이 있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예수님이 믿음의 열매로서 나타나실 수 있었던 것도 아브라함과 같은 분이 하늘의 섭리 앞에 세워져서 땅 위에 나타나지 아니한 숨은 뿌리의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섭리역사과정에 다른 모든 것이 다 꺾였을지라도 천상을 대하여 영원히 변치 않는 불변의 믿음을 실증할 수 있는 아브라함같은 분이 있어서 신앙의 뿌리 역할을 함으로 말미암아 그 터전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개인 입장의 아브람(번역하면 '큰 아버지')에서 믿음의 조상이 될 것을 결정받은 아브라함(번역하면 '열국의 아버지')이 된 이 한 자체보다도 그가 남이 모르는 크나큰 수고의 경로를 거쳤다 할진대, 우리는 오늘의 역사를 바라보며 나와 아브라함을 1대 1의 입장에 세워놓고 비교하고 나 자신을 반성해 보아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입장을 체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성에 대하여 숨은 뿌리의 제단을 쌓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사는 지방과 그 곳 주민들을 향해 간절히 호소하고 기도하던 아브라함의 불타는 심정을 여러분 자신들도 가져야 되겠으며, 아브라함의 수고의 노정으로 세워졌던 믿음의 기대, 숨은 뿌리와 같은 기준을 여러분 자신들이 인계받아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가정이 복의 기관의 약속을 받았는데, 이것이 이삭과 야곱을 거쳐서 모세를 통하여 민족적인 형태를 이루고 예수를 통하여 세계적인 범위로 확대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늘 앞에 사무치는 충성심과 믿음이 없었더라면 이 땅 위에는 하늘과 접속시킬 수 있는 한 인연이 나올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자기에게 좋은 것이 있으면 나타내려고 합니다. 드러내고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드러내서 남에게 알리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의 가지와 같은 책임은 할는지 모르지만, 하나의 뿌리로서의 책임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 무엇이었는지 압니까? 오직 하늘을 향하여 사모하는 마음과 땅을 위하는 마음이 지극했기 때문에 하늘 아버지와의 넓고 깊은 인연의 발판을 가질 수 있었고,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민족의 지도자가 된 모세
모세 역시 그렇습니다. 모세 자신이 민족 앞에 세움을 받기까지에는 하나의 숨은 뿌리로서 지낸 바로 궁중에서의 40년 수고의 기간이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호화찬란한 바로 궁중에 머무는 동안 영화롭게 입고 먹고 환희에 넘치는 생활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가 궁중에 머무는 동안, 시종일관 먹고 입고 자고 하는 그 생활의 어느 한 순간에 있어서도 이스라엘민족을 염려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애급에 있는 이스라엘민족 중에서 모세 혼자서만 그 민족이야 알든 모르든 하늘을 향한 충성심이 변치 않았던 것입니다.
원수의 품 안에 있으면서도 불변의 핵심체로서, 어떠한 환경이 자신을 압박하고 천륜의 뜻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가로막는 그 무엇이 있다 할지라도 변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던 모세였습니다. 모세에게 이러한 하늘에 대한 불변의 심정과 정성 드리는 40년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후에 민족에 대한 사랑의 힘이 폭발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모세가 혈기 당당한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애급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고 애급인을 때려 죽일 모세의 의분심은 그 순간에 충격받아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게 될 때, 모세는 40년 동안 하늘을 향하여 애달픈 마음으로 민족을 위해 호소하였던 내적 슬픔의 심정이 폭발되었던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선민이 억울함을 당하는 것을 보고 억제할 수 없는 의분심이 솟아나 애급인을 때려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사랑과 애급에 대한 의분심이 그러한 모세의 행동의 내적인 원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세의 행동에는 섭리적인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울분에 못이겨 애급인을 쳐죽인 것은 이스라엘민족의 운명을 염려하고 책임진 입장에서 죽인 것이고, 그것은 애급인이 이스라엘민족을 박해한 죄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므로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민족을 위해 염려하는 모세를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민족은 모세를 오해하고 애급인을 쳐죽인 것을 폭로함으로써 모세는 자기의 행동이 탄로 난 것을 알고 할 수 없이 미디안 광야로 피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생활하던 모세는 바로 궁중에서 호화롭게 살던 것을 부끄럽게 여겼으며, 바로왕의 딸이 자기를 위하여 모든 청을 다 들어 줄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살았던 지난 날의 부귀영화를 다 잊었습니다. 그리고 양치는 옷을 입고 양떼를 몰고 다니는 무명의 목동의 신세였지만 그 양떼를 바라보며 옛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을 그리워했습니다.
지금은 비록 양떼를 몰고 다니지만 언젠가는 양떼를 몰고 가듯이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겠다는 사무친 마음으로 하늘 앞에 호소했던 모세였습니다. 모세는 먹으나 굶으나 자나깨나 노심초사 그 모든 정성을 다하여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 사람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민족을 위해 염려하고 기도했습니다.
모세는 애급의 박해와 도탄 중에서 고역을 당하는 이스라엘민족을 바라보게 될 때 뼈가 녹는 듯한 슬픔을 느꼈으며, 하늘을 향하여, '여호와여 ! 나를 보셔서 이 민족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라고 호소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호소의 정성이 지극한 모세를 60만 대중을 애급땅에서 이끌어 내는 지도자로 세웠고, 남이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닌것 같은, 미디안 광야에서 일개 목동의 생활을 하던 모세를 선조들로부터 내려온 숨은 뿌리의 절개를 계승받게 했고 민족의 대표자로 세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민족이 이러한 모세와 하나가 되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셨던 것입니다.
모세의 숨은 정성의 발판을 몰랐던 유대민족
모세가 하늘로부터 허락하신 바의 약속을 받고 애급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는 기쁨에 사무쳤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결코 그 기쁨에만 만족해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생애를 바치겠다고 하늘 앞에 호소하던 그 뜻이 이루어져 민족의 살길을 개척하게 되었지만 그러한 기쁨에만 만족해 있지 않고. 이제부터 제 2의 책임을 충실히 감당하겠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모세는 자기를 중심삼고 행동하지 않았고, 조그만 일이나 큰일이나 어느 한가지 일이라도 하나님과 인연을 맺지 않고 수행한 것이 없었습니다.
이리하여 모세가 포악한 바로 궁중에 들어가 그들의 신 앞에 10회 이상의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이스라엘민족을 험난한 광야로 이끌어 나오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민족은 모세와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즉 험난한 광야이지만 자유로운 환경으로 탈출해 나온 이스라엘민족은 가나안 복지를 향해 가는데 있어서 모세의 마음이 곧 자기들의 마음이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바로 궁중으로부터 구출해 준 모세와 마음이 달라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세와 하나되지 못하여 천륜에 어긋나는 길을 감으로써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이렇게 멸망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가?
그들은 모세가 민족의 지도자가 되는 과정에서 하늘 앞에 호소했던 숨은 정성의 발판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세가 자기들을 이끌고 애급을 탈출한 그 날로부터 갖은 어려움을 겪으며 자기들을 위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모세의 수고와 고생을 알아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모세는 광야에서 갈라졌고, 결국 그들은 광야에서 엎드러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민족이 모세를 불신했던 역사적인 사실이 오늘날 끝날의 성도들에게도 다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각성해야 할 끝날의 성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 오셔서 30여 평생을 인류를 위해 수고하셨고, 돌아가신 이후 2천년 동안 인간들을 찾아 주시고 사랑과 은사로써 역사해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그러한 예수님을 생활 속에서 진정으로 모시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민족이 모세를 불신함으로써 모세가 이스라엘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받들지 못했던 것과 같은 두려운 일이 끝날의 성도들에게도 벌어질지 모릅니다. 이스라엘민족과 자신이 하나되지 못하는 사실에 직면하게 될 때 모세는 불신하는 민족을 책망하기 전에 자기 자신의 부족을 하늘 앞에 호소했습니다. 즉 그는 시내 산에 올라가 40일 동안 금식기도하면서 '아버지여, 이 민족이 어찌하여 허락하신 땅이 눈 앞에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그 책임은 나에게 있습니다. 내가 책임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를 제물삼아 민족의 멸망의 길을 막아 주시옵소서'라고 호소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세의 숨은 정성의 기간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이스라엘민족이, 모세가 남 모르는 애달픈 마음을 가지고 금식하는 것이 모세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을 위하는 것임을 알았던들 그들은 모세의 40일 금식 기간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숭배하는 불신의 놀음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그들이 민족의 축복을 대신한 모세가 하나의 숨은 제물로서 하늘 앞에 바쳐지게 될 때 모세의 마음을 동정하고 그의 수고를 염려해서 시내산에 있는 모세와 같이 눈물 흘리며 하늘 앞에 호소할 수 있었던들, 그들은 하나님의 품을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모세가 홀로 민족을 대표하여 외로운 길을 갔던 것과 같이 예수님도 그러한 길을 가셨습니다. 즉 아브라함의 역사적인 희생과 모세의 민족을 대표한 제물의 노정을 통하여 세계의 중심으로 세워진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이 가정을 대표하여 사탄의 참소조건을 막았고 모세가 민족을 대표하여 사탄의 참소조건을 막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 인류를 대신해서 홀로 사탄의 모든 참소조건을 막아야 했고 승리적인 탕감의 발판을 닦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승리의 중심이자 만민의 구세주
여러분은 예수님에게 이러한 책임이 있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세계적으로 승리하여 불변의 터전을 갖출 때까지 예수님의 일신은 자신의 일신으로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4천년 역사 과정에서 하늘 앞에 충성했던 어떠한 믿음의 중심인물보다도 더 충실했으며, 전체를 위해서 자신의 일신을 희생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30여 평생을 통하여 자신의 사명 분야에서 역사상 어느누구도 갖추지 못하였던 전체를 대신한 중심의 형태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중심인물이 되지 못했다면, 예수님은 세계적인 섭리의 책임을 진 선봉장이 될 수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믿는 성도들은 예수님이 일대의 십자가를 지신 분으로 믿고 있는데 여러분은 그러한 예수님으로만 믿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있기까지에는 아브라함이 쌓았던 수고의 재단이 있었고 모세가 수고한 제물의 노정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고난과 도탄 중에 있는 민족과 세계 인류의 고통을 느껴 '저들의 고통의 짐을 나에게 지워 주시고 저들에게는 자기들이 요구하는 영원한 이상을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하늘 앞에 호소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 그들의 고통을 책임지기 위해 하루도 편한 생활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원수의 품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염려해 주었고 자신의 기쁨보다도 전체의 뜻을 책임진 입장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사탄세계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중심존재로, 만민의 구세주로 세움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끝날에 처한 우리 믿는 성도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제까지 악인을 위하여 눈물 흘리며 염려하고 기도해 주는 생활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끝날에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더욱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염려하며 기도해 주시는 예수님이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예수님을 망각하고 불신한다면 우리는 끝날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뿌리의 사명을 해야 할 끝날의 성도들
만약 옛날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들이 아브라함과 롯을 통해서 예고해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를 받아들여 자신들의 악행을 반성하고 회개하였던들 그들은 심판을 면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역사적인 사실은 앞으로 되어질 일을 실증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이므로 끝날에 처한 오늘 우리도 지난날의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고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불신하는 유대민족을 위해 기도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지금 이 시간도 영적 시내산상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2천년 동안 하늘 보좌에 계시면서 인간을 위하여 기도하시는 그 마음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불신하는 유대민족을 붙들고 기도하던 애달픈 마음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땅 위에 있는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서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옛날에 아브라함이 의인 10인이 있으면 그들을 보아서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면케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그 소돔 고모라에는 의인 열사람이 없어 하나님의 심판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후 오늘날까지 천상에 계시면서 인간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 것과 같이, 또 모세가 시내 산정에서 기도했던 것과 같이 그 애달픈 심정을 체휼하여 이 시대를 붙들고 예수님대신 염려하고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님의 세계적인 뜻을 대신할 수 있고 역사상의 선지선열들을 대신할 수 있는 하늘이 세우신 자가 어느 곳에 있는가 하고 깨어 기도하고 정성드리며 찾는 일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끝날 이 땅 위에 이처럼 뿌리로서 남아지는 자가 단 한 사람이라도 없다면, 이스라엘민족이 광야에서 쓰러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도 세계적인 종말기를 맞이하게 될 때 두려운 심판을 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은 숨은 떨기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고 역사노정을 거쳐나오면서 하나의 중심 뿌리를 고대해 온 선조들의 바라심에 응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2천년을 하루와 같이 재림의 한날을 고대하며 수고해 나온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통감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역사적 중심인물들의 상대적인 입장에 세워놓고 검토하고 분석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즉 여러분 자신을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수님의 상대의 입장에 세워놓고 그들의 마음이자 여러분의 마음이요, 그들의 소원이자 여러분의 소원이며, 그들의 원한이자 여러분의 원한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이 되었는가 하는 것을 분석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적수공권으로 하늘 앞에 나서서 담판하는 호소의 제단을 높이 쌓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하늘 앞에 호소하던 심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하여 기도한 것은 자기 아들딸이나 조카 롯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모든 것을 잊고 숨은 정성의 제단을 쌓았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관계되어 있던 롯은 심판을 면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내 뜻을 이루어 주시옵소서'하고 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런 기도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하늘의 뜻이 이루어질 때는 내가 고대하던 뜻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뜻을 이루어 주시옵소서'하는 기도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있는 정성을 다하여 '아바 아버지여, 나를 세우셨사오니, 나를 부르셨 사오니, 소자를 통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옵소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이 이어받은 유업은 여러분 일대만의 유업이 아니라 아브라함으로부터 모세와 예수님을 거쳐 내려온 유업이라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여러분은 모세 이래의 모든 지파를 대신해야 되고, 예수님이 필요로 했던 지파를 대신해서 하늘이 요구하는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땅은 악할지라도, 이 땅은 어두울지라도, 이땅은 망할지라도 여러분은 하늘이 세우신 숨은 뿌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늘이 이 시대에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
하늘은 오늘 이 때에 개인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종교의 사명을 이룰 것을 요구하고 있나니 그 요구가 무엇이냐 하면, 아브라함이 했던 것 같은 책임을 다했느냐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모세가 이스라엘민족을 위해 애달픈 심정을 가지고 애쓰던 것과 같이 여러분이 한국 삼천만 민족이 도탄중에 있게 될 때 모세처럼 여러분의 뜻과 마음을 다해서 애달퍼하고 애썼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창세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수고하시던 것처럼 같은 뜻과 심정을 가지고 만민을 위해 예수님대신 수고했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이 아브라함, 모세, 예수와 같은 삶을 살았느냐고 반문을 받게 될 때에, '옳소이다, 당신이 저희들을 아시지 않나이까. 감추어진 바의 뿌리는 저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속에도 있나이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될 때에, 아브라함이 자기 일신을 통하여 믿음의 절개를 새운 뜻이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결실되어질 것이고, 모세가 민족을 통하여 애원하던 뜻이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해원될 것이고, 예수님께서 세계를 대해 품었던 모든 슬픔의 요소가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해원될 것입니다.
만일에 그러한 사람이 이 땅 위에 있다 할진대는, 아브라함이 일대에 애달퍼하던 마음, 모세가 일대에 애달퍼하던 마음, 예수님이 지금까지 애달퍼하신 마음이 풀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를 정성을 다해서 모셔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없다면 여러분이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그러한 사람이 있거든 그 사람을 아브라함대신 모세대신 예수님대신 높이고, 모실 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민족을 위해 더욱 기도하시옵소서, 더욱 활동하시옵소서'라고 해야 되겠고, 나아가 여러분이 하늘 앞에 바쳐질 수 있는 제물은 못 될망정 제단이라도 쌓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하나님을 대해 '아버지여'라고 불러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천지창조 이래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주인의 행세를 하지 못한 그 아버지를 실감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일대에 해원받지 못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그 모든 것을 대신하여 아브라함이 기도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모세가 기도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기도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도의 제단을 쌓아야 되겠습니다. *
말씀선집 제1권 10편
이루어야 할 새로운 언약 (훈독본)
1956.07.08 (일), 한국 전본부교회
누가복음 22:14-34
오늘 말씀드리려 하는 제목은 '이루어야 할 새로운 언약' 입니다.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떼어 주신 떡과 포도주의 의미
4천년 동안 부활의 섭리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해 오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부활시키시는 섭리만으로는 천상의 뜻과 지상의 뜻을 합하여 완결지을 수 없기에 새로운 언약을 세워 놓고, 이것으로써 천상과 지상의 뜻을 합하여 약속하신 본연의 동산을 찾는 섭리를 해 오신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예수님께서 주시던 잔과 예수님께서 떼어 주시던 떡이 곧 새로운 언약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왔다 가신 이후에 우리는 그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받았으니, 이는 곧 이루어야 할 전체의 생명을 대신한 동시에 전체의 진리를 대신한 것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피와 예수님의 살을 받음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그것은 예수 일개인의 살과 피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크게 말하면 하늘과 땅을 뜻함이요, 작게 말하면 중심과 개체를 뜻함입니다. 또 살은 진리를 상징하고 피는 신령을 상징합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조건 주시었습니다. 그와 같이 주신 바의 예수님의 일신은 그 자체에 국한된 문제도 물론 문제려니와 그를 중심삼고 연하여 있는 천상 천하의 어떠한 존재의 문제도 전부 그의 문제였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것이 무엇인가. 하늘의 뜻이 땅 위에 나타나고 땅 위에 전체 상황이 하늘의 뜻으로 귀결되어 하나의 목적으로 움직여져야 하는데, 이것이 막혔습니다. 그리하여 사랑의 주인공이셨던 예수님께서는 승리적인 하늘의 영광을 대신하여 나타날 그 하나의 뜻을 표상하여 지금까지 수고해 오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여 예수님 한분을 세우셨음은 하늘 전체를 소유할 수 있음과, 땅 전체를 소유할 수 있음을 표상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늘 전부를 소유할 수 있고 땅 전부를 소유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소유한 것을 자기 것으로만 귀결지을 것이 아니라 소유했다가 다시 하늘 앞에 돌려 드려야 할 전체적인 섭리의 뜻을 우리는 위탁받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새로운 언약을 세우고 가셨기 때문에, 그가 돌아가신 이후에는 영적인 세계와 육적인 세계가 사람, 즉 예수님을 따르는 사도들을 중심삼고 연락되어야 할 조건이 남아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늘과 땅이 연락되었을 것인데,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하늘의 조건을 대신하게 되었고, 성신은 땅의 조건을 대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와 성신의 뜻을 대신하는 사람
그러면 하늘과 땅의 중간 입장에 서서 예수님의 뜻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 성신의 뜻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 것인가. 지금까지 땅위에서 새로운 약속의 말씀을 믿고 나오는 사도들 또는 우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소원은 어디에 있는가. 그 소원은 천상에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소원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 또한 지상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소원은 지상의 뜻을 연하고 지상에 있는 인간들의 소원은 천상의 뜻을 연하여야 됩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하늘을 중심삼고 예수님께서 친히 떼어 주시던 그 피와 살을 대신한 성체로서 하늘 땅을 대신한 하나의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고 할진대 예수님과 성신은 영원무궁토록 하나될 수 없습니다. 성신은 성신대로 땅 위에서 역사를 계속할 것이요, 예수님은 예수님대로 하늘에서 역사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내 피를 먹고 내 살을 먹으라'하신 그 말씀은 무엇인가. 거기에는 '나는 갈지라도 천성의 섭리권내에 들어간 전부를 너희들이 가져서 나의 소원을 성취해 달라'는 예수님의 간곡한 심정이 내포되어 있음을 여러분이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서 받은 피는 예수님의 영적인 면을 상징하고, 살은 육적인 면을 상징한 것으로 곧 성신을 나타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과 성신은 그 피와 살로 인하여 하나의 성체를 갖추어서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중심존재로 세워지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피와 살은, 피는 하늘을 상징하고 살은 땅을 상징하였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거기에 예수님의 크나큰 소망과 포부가 나타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성신을 통해서 거룩한 몸이 된 후에 마음이 예수의 성체와 연하여져야 합니다. 이것은 복귀역사의 과정을 상징합니다. 아담 해와를 창조할 때에도 몸을 짓고 영혼을 지었습니다. 육을 지어 놓고 나중에 코에 생명을 불어 넣어 아담 해와를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두 조건의 원칙을 합하여 하나의 사람을 지은 것과 마찬가지로 복귀섭리 노정에서도 예수님을 중심삼은 성신이 새로운 언약을 세운 연고로 그 이후 지금까지 천상과 지상이 합한 예수님과 성신의 역사가 연락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오늘 우리들에게 얼마만큼 중요한 책임이 지워져 있는가를 여러분은 알아야겠습니다.
보잘것없는 사도들, 보잘것없는 우리들의 움직임에 따라 하늘이 좌우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들을 대신한 여러분 ! 예수님의 성체를 받고 난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예수님의 생명력이 나타나야 됩니다. 하늘을 대신할 수 있는 성신의 감동의 역사가 나타나야 됩니다. 그리하여 온 피조세계를 복귀하기 위한 예수님의 뜻 앞에 여러분이 하나로 일치되어 나아가게 될 때, 여러분이 좌향하면 하늘도 좌향하고, 여러분이 우향하면 하늘도 우향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움직이는 대로 하늘도 움직일 것입니다.
하늘이 인간을 통하여 움직일 수 있는 기준을 여러분이 세워 종결짓지 않는다 할진대 예수님과 성신은 여러분을 대해 호소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남겼던 우주적인 사명이 여러분을 참소한다는 거예요. 오늘날 이것을 생각할 때, 아무것도 아닌 미미한 우리들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천상을 좌우할 수 있고 지상을 좌우할 수 있는 대우주적인 뜻을 이루려 하신다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인간 없이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성신에게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오로지 결정의 권한은 우리들 인간에게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피와 살에 대한 보답
지금까지의 신약역사는 '당신이 해주시옵소서'하는 역사였습니다.
소망을 위하여 요구하던 한계권내의 역사였습니다. 어느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신약역사였습니다. 우리는 그 신약의 말씀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 한계권내의 역사를 넘어서서 하늘의 은사를 받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 일신으로 천상 천하의 모든 것을 소유하려 하던 예수님의 전체 가치성을 갖고 나아가 그 신약의 한계권내를 넘어서 '아버지시여 ! 나에게 새로운 약속을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예수님의 피의 호소와 십자가에서 살을 찢기시면서 호소하시던 호소를 오늘 여러분이 생활에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들이 천상을 가는 데도 완결 지어야 할 인간의 책임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약속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약속에 그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전체의 은사와 전체의 소망 전체의 생명을 내 한몸이 소유하여,내 한 생명의 이상을 갖고 그 한계를 넘어, 마음 놓고 줄 수 있는 기준을 땅 위에 세워 완결짓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원한은 풀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소망 성취의 과정에 머물러 있습니다. 어떤 목적을 바라보고 그 소망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움직였다 할진대 여러분은 세웠던 신앙의 약속을 종결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한계를 넘어선 한 자체는 최후의 한 때에 주의 피와 살을 받은 것을 보답하는 존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예수님의 전후 좌우 상하, 또 성신의 전후 좌우 상하, 하나님의 전후 좌우 상하를 감히 대신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천상의 뜻인 동시에 지상의 뜻인 인간을 통하여 귀결짓는 한계의 날을 땅 위에 세우지 못한다 할진대는 예수님의 뜻도 하나님의 뜻도 성사될 수 없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뜻을 생각 하면 오늘날 미미한 우리들의 가치는 너무나 크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피와 살을 떼어 주시고 한가지 요구한 것이 무엇인가? '이에 잔을 받으사 사례하시고 가라사대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눅22:17)"고 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피살을 받았으니 예수님의 사명을 대신하여 하늘의 문제도 우리가 책임지고 나가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천상의 소망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예수님의 피와 살을 받은 조건으로 우리끼리 관계를 지어 승리의 제단을 찾아가야 할 끝날의 책임이 있습니다. 이런 우리의 책임을 여러분은 절실히 느껴야 되겠습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부탁하신 주님의 뜻
위로부터 내려오는 원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변함없는 상하 원칙 그리고 좌우로 연결지어져야 할 관계는 누가 찾을 것인가, 여러분이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성신은 역사가 변하고 시대가 변할지라도 변치 않는 중심으로 한 방향만을 지향해 나왔습니다. 예수님과 성신이 주고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자체끼리 그러한 관계를 맺어야 됩니다. 만일 그러한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되면 하나님이 운행하실 수 있는 제단은 지상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신의 피와 살을 나눠 주시던 그 예수님의 심정을 아시겠습니까? 이루 말할 수 없이 비통한 심정이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서도 뜻을 아는 사람, 뜻을 위하려는 사람은 비통하고 처참한 자리에서 뼛골이 녹아지는 시련을 홀로 넘으면서도 뜻을 나타내고자 합니다. 따라서 이를 느끼지 못한 사람들, 이런 뜻을 대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 할 것인가를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할진대, 여러분끼리의 횡적인 성만찬도 나눌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연락될 때, 또 예수님이 성신과 연락될 때 나누던 그 사랑의 마음을 우리 끼리끼리 나눌 수 있는, 즉 성체의 사랑을 나타내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개인 개인을 연하여, 교단과 교단을 연하여, 또 교단을 넘어서 어떠한 형태로라도 하늘의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의 권내에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 너희들끼리 서로 사랑의 마음을 나누라 하던 예수님의 부탁의 뜻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여러분 중에 내 한 자체를 주고 그 한 자체를 대신 받을 수 있는 동지를 갖지 못한 사람, 그는 불쌍한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서의 성신은, 사람은 변할지라도 성신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와 주고 받아 나오고 계십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그와 같이 주고 받을 수 있는 기준에서 영적인 세계의 역사를 대신해 싸워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남겨 준 최후의 하나의 소망을 우리들이 완결지을 때가 왔습니다. 이 하나의 소망을 여러분들이 좌우로 연결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땅 위에서 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땅위에서 싸워 순교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땅 위에서 의인을 섬길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은 섬김받는 사람이 된다'고 했고 '스스로 높아지려 하는 사람은 낮아진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오늘날 우리들이 평면적인 면에서 느끼는 하나의 생활의 중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든 섬길 줄 알고, 모두의 친구가 될 수 있고, 또한 그들을 보호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새로운 언약을 이루려면
이제 새로운 신약의 말씀이 약속되었으니, 우리는 예수님의 분부하시던 그 내적 심정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을 헤아리는 동시에 그의 이상과 실천적인 방면까지 헤아릴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과 성신의 뜻을 대신 이루어 드려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뜻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진대는 끝날에는 예수님과 성신의 역사가 거두어 집니다.
예수님과 성신의 역사가 거두어질진대는 거두어지는 그날에 홀로 서 가지고 예수님의 소망과 성신의 소망을 알고, 예수님께서 가신 실천적인 노정을 대신 갈 수 있는 나, 예수님과 성신을 대신하여 새로운 이상을 갖고 그것을 옹위해 나갈 수 있는 그러한 입장의 내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새로운 약속의 피 살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남아진 사명은 무엇인가. 새로운 언약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한 자체가 끝날에 있어서 삼위신의 협조가 없을지라도 사탄 대하여 능히 승리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사탄 대하여 승리할 수 있는 그 중심은 무엇인가. 사탄이 하지 못하는 행동을 할 줄 아는 것입니다. 사탄이 할 수 없는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탄의 본질은 교만입니다. 사탄의 본질은 시기입니다. 사탄의 본질은 자기만을 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과 성신의 교훈은 '온유 겸손하라, 희생하라, 제물되라'는 것들입니다. 이것들은 다 사탄이 할 수 없는 일이예요. 사탄이 온유하려면 하나님 앞에 모든 죄를 회개하고 돌아서야 됩니다. 사탄에게 만일 질투하는 마음이 없다면 오늘날 이 세계는 전부 다 하늘 앞에 빨리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사탄에 반대되는 요소를 내 일신에 갖추어야 합니다. 나아가 여러분이 그 한계권내에 머물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넘어서서 새로운 약속권내에 들어가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변치 않는 하나의 중심을 세우게 될 때에, 예수님의 피 살을 받은 자로서 새로운 약속의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의논하지 못하였던 것을, 예수님이 성신과 나누지 못하던 것을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다시 의논할 수 있는 자리에 여러분이 서지 못한다면, 즉 여러분이 하늘 땅의 모든 기준을 대신하는 중심존재로 서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약속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 동시에 하나님이 바라는 새로운 약속의 뜻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세상의 어떤 것을 갖지 못했을지라도 예수님의 몸과 마음은 완전히 가져야겠습니다. 하늘 땅을 대신한 하나의 중심가치를 하늘로부터 인정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인정받은 우리의 가치가 어느 한계권내에 머물러서는 아니 됩니다. 천상의 어떤 존재도 우리를 환영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러한 가치적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와 예수님의 살은 땅 위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땅위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노정이 천상에서도 적용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은 하늘에서도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예수님의 피와 살을 완전히 받았다 할진대는, 내 소원이 천상에서 완성되고 지상에서도 완성되게 됩니다. 그리고 완성된 그것이 천상에서 예수님의 소원을 대신하고, 지상에서 성신의 소원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둘이 하나되어 예수님과 성신이 하던 일을 맡아 가지고 예수님과 성신을 쉬게 하고 하나님과 다시금 약속할 수 있는 그 기준까지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 전체적인 하늘의 섭리역사가 여러분을 통하여 승리의 기준을 잡아 진행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
(아래 원문입니다.)
이루어야 할 새로운 언약
1956.07.08 (일), 한국 전본부교회
오늘 말씀드리려 하는 제목은 '이루어야 할 새로운 언약' 입니다.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떼어 주신 떡과 포도주의 의미
4천년 동안 부활의 섭리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해 오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부활시키시는 섭리만으로는 천상의 뜻과 지상의 뜻을 합하여 완결지을 수 없기에 새로운 언약을 세워 놓고, 이것으로써 천상과 지상의 뜻을 합하여 약속하신 본연의 동산을 찾는 섭리를 해 오신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예수님께서 주시던 잔과 예수님께서 떼어 주시던 떡이 곧 새로운 언약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왔다 가신 이후에 우리는 그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받았으니, 이는 곧 이루어야 할 전체의 생명을 대신한 동시에 전체의 진리를 대신한 것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피와 예수님의 살을 받음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그것은 예수 일개인의 살과 피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크게 말하면 하늘과 땅을 뜻함이요, 작게 말하면 중심과 개체를 뜻함입니다. 또 살은 진리를 상징하고 피는 신령을 상징합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조건 주시었습니다. 그와 같이 주신 바의 예수님의 일신은 그 자체에 국한된 문제도 물론 문제려니와 그를 중심삼고 연하여 있는 천상 천하의 어떠한 존재의 문제도 전부 그의 문제였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것이 무엇인가. 하늘의 뜻이 땅 위에 나타나고 땅 위에 전체 상황이 하늘의 뜻으로 귀결되어 하나의 목적으로 움직여져야 하는데, 이것이 막혔습니다. 그리하여 사랑의 주인공이셨던 예수님께서는 승리적인 하늘의 영광을 대신하여 나타날 그 하나의 뜻을 표상하여 지금까지 수고해 오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여 예수님 한분을 세우셨음은 하늘 전체를 소유할 수 있음과, 땅 전체를 소유할 수 있음을 표상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늘 전부를 소유할 수 있고 땅 전부를 소유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소유한 것을 자기 것으로만 귀결지을 것이 아니라 소유했다가 다시 하늘 앞에 돌려 드려야 할 전체적인 섭리의 뜻을 우리는 위탁받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새로운 언약을 세우고 가셨기 때문에, 그가 돌아가신 이후에는 영적인 세계와 육적인 세계가 사람, 즉 예수님을 따르는 사도들을 중심삼고 연락되어야 할 조건이 남아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늘과 땅이 연락되었을 것인데,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하늘의 조건을 대신하게 되었고, 성신은 땅의 조건을 대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와 성신의 뜻을 대신하는 사람
그러면 하늘과 땅의 중간 입장에 서서 예수님의 뜻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 성신의 뜻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 것인가. 지금까지 땅위에서 새로운 약속의 말씀을 믿고 나오는 사도들 또는 우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소원은 어디에 있는가. 그 소원은 천상에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소원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 또한 지상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소원은 지상의 뜻을 연하고 지상에 있는 인간들의 소원은 천상의 뜻을 연하여야 됩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하늘을 중심삼고 예수님께서 친히 떼어 주시던 그 피와 살을 대신한 성체로서 하늘 땅을 대신한 하나의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고 할진대 예수님과 성신은 영원무궁토록 하나될 수 없습니다. 성신은 성신대로 땅 위에서 역사를 계속할 것이요, 예수님은 예수님대로 하늘에서 역사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내 피를 먹고 내 살을 먹으라'하신 그 말씀은 무엇인가. 거기에는 '나는 갈지라도 천성의 섭리권내에 들어간 전부를 너희들이 가져서 나의 소원을 성취해 달라'는 예수님의 간곡한 심정이 내포되어 있음을 여러분이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서 받은 피는 예수님의 영적인 면을 상징하고, 살은 육적인 면을 상징한 것으로 곧 성신을 나타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과 성신은 그 피와 살로 인하여 하나의 성체를 갖추어서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중심존재로 세워지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피와 살은, 피는 하늘을 상징하고 살은 땅을 상징하였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거기에 예수님의 크나큰 소망과 포부가 나타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성신을 통해서 거룩한 몸이 된 후에 마음이 예수의 성체와 연하여져야 합니다. 이것은 복귀역사의 과정을 상징합니다. 아담 해와를 창조할 때에도 몸을 짓고 영혼을 지었습니다. 육을 지어 놓고 나중에 코에 생명을 불어 넣어 아담 해와를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두 조건의 원칙을 합하여 하나의 사람을 지은 것과 마찬가지로 복귀섭리 노정에서도 예수님을 중심삼은 성신이 새로운 언약을 세운 연고로 그 이후 지금까지 천상과 지상이 합한 예수님과 성신의 역사가 연락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오늘 우리들에게 얼마만큼 중요한 책임이 지워져 있는가를 여러분은 알아야겠습니다.
보잘것없는 사도들, 보잘것없는 우리들의 움직임에 따라 하늘이 좌우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들을 대신한 여러분 ! 예수님의 성체를 받고 난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예수님의 생명력이 나타나야 됩니다. 하늘을 대신할 수 있는 성신의 감동의 역사가 나타나야 됩니다. 그리하여 온 피조세계를 복귀하기 위한 예수님의 뜻 앞에 여러분이 하나로 일치되어 나아가게 될 때, 여러분이 좌향하면 하늘도 좌향하고, 여러분이 우향하면 하늘도 우향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움직이는 대로 하늘도 움직일 것입니다.
하늘이 인간을 통하여 움직일 수 있는 기준을 여러분이 세워 종결짓지 않는다 할진대 예수님과 성신은 여러분을 대해 호소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남겼던 우주적인 사명이 여러분을 참소한다는 거예요. 오늘날 이것을 생각할 때, 아무것도 아닌 미미한 우리들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천상을 좌우할 수 있고 지상을 좌우할 수 있는 대우주적인 뜻을 이루려 하신다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인간 없이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성신에게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오로지 결정의 권한은 우리들 인간에게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피와 살에 대한 보답
지금까지의 신약역사는 '당신이 해주시옵소서'하는 역사였습니다.
소망을 위하여 요구하던 한계권내의 역사였습니다. 어느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신약역사였습니다. 우리는 그 신약의 말씀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 한계권내의 역사를 넘어서서 하늘의 은사를 받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 일신으로 천상 천하의 모든 것을 소유하려 하던 예수님의 전체 가치성을 갖고 나아가 그 신약의 한계권내를 넘어서 '아버지시여 ! 나에게 새로운 약속을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예수님의 피의 호소와 십자가에서 살을 찢기시면서 호소하시던 호소를 오늘 여러분이 생활에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들이 천상을 가는 데도 완결 지어야 할 인간의 책임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약속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약속에 그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전체의 은사와 전체의 소망 전체의 생명을 내 한몸이 소유하여,내 한 생명의 이상을 갖고 그 한계를 넘어, 마음 놓고 줄 수 있는 기준을 땅 위에 세워 완결짓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원한은 풀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소망 성취의 과정에 머물러 있습니다. 어떤 목적을 바라보고 그 소망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움직였다 할진대 여러분은 세웠던 신앙의 약속을 종결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한계를 넘어선 한 자체는 최후의 한 때에 주의 피와 살을 받은 것을 보답하는 존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예수님의 전후 좌우 상하, 또 성신의 전후 좌우 상하, 하나님의 전후 좌우 상하를 감히 대신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천상의 뜻인 동시에 지상의 뜻인 인간을 통하여 귀결짓는 한계의 날을 땅 위에 세우지 못한다 할진대는 예수님의 뜻도 하나님의 뜻도 성사될 수 없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뜻을 생각 하면 오늘날 미미한 우리들의 가치는 너무나 크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피와 살을 떼어 주시고 한가지 요구한 것이 무엇인가? '이에 잔을 받으사 사례하시고 가라사대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눅22:17)"고 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피살을 받았으니 예수님의 사명을 대신하여 하늘의 문제도 우리가 책임지고 나가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천상의 소망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예수님의 피와 살을 받은 조건으로 우리끼리 관계를 지어 승리의 제단을 찾아가야 할 끝날의 책임이 있습니다. 이런 우리의 책임을 여러분은 절실히 느껴야 되겠습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부탁하신 주님의 뜻
위로부터 내려오는 원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변함없는 상하 원칙 그리고 좌우로 연결지어져야 할 관계는 누가 찾을 것인가, 여러분이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성신은 역사가 변하고 시대가 변할지라도 변치 않는 중심으로 한 방향만을 지향해 나왔습니다. 예수님과 성신이 주고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자체끼리 그러한 관계를 맺어야 됩니다. 만일 그러한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되면 하나님이 운행하실 수 있는 제단은 지상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신의 피와 살을 나눠 주시던 그 예수님의 심정을 아시겠습니까? 이루 말할 수 없이 비통한 심정이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서도 뜻을 아는 사람, 뜻을 위하려는 사람은 비통하고 처참한 자리에서 뼛골이 녹아지는 시련을 홀로 넘으면서도 뜻을 나타내고자 합니다. 따라서 이를 느끼지 못한 사람들, 이런 뜻을 대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 할 것인가를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할진대, 여러분끼리의 횡적인 성만찬도 나눌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연락될 때, 또 예수님이 성신과 연락될 때 나누던 그 사랑의 마음을 우리 끼리끼리 나눌 수 있는, 즉 성체의 사랑을 나타내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개인 개인을 연하여, 교단과 교단을 연하여, 또 교단을 넘어서 어떠한 형태로라도 하늘의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의 권내에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 너희들끼리 서로 사랑의 마음을 나누라 하던 예수님의 부탁의 뜻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여러분 중에 내 한 자체를 주고 그 한자체를 대신 받을 수 있는 동지를 갖지 못한 사람, 그는 불쌍한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서의 성신은, 사람은 변할지라도 성신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와 주고 받아 나오고 계십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그와 같이 주고 받을 수 있는 기준에서 영적인 세계의 역사를 대신해 싸워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남겨 준 최후의 하나의 소망을 우리들이 완결지을 때가 왔습니다. 이 하나의 소망을 여러분들이 좌우로 연결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땅 위에서 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땅위에서 싸워 순교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땅 위에서 의인을 섬길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은 섬김받는 사람이 된다'고 했고 '스스로 높아지려 하는 사람은 낮아진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오늘날 우리들이 평면적인 면에서 느끼는 하나의 생활의 중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든 섬길 줄 알고, 모두의 친구가 될 수 있고, 또한 그들을 보호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새로운 언약을 이루려면
이제 새로운 신약의 말씀이 약속되었으니, 우리는 예수님의 분부하시던 그 내적 심정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을 헤아리는 동시에 그의 이상과 실천적인 방면까지 헤아릴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과 성신의 뜻을 대신 이루어 드려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뜻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진대는 끝날에는 예수님과 성신의 역사가 거두어 집니다.
예수님과 성신의 역사가 거두어질진대는 거두어지는 그날에 홀로 서 가지고 예수님의 소망과 성신의 소망을 알고, 예수님께서 가신 실천적인 노정을 대신 갈 수 있는 나, 예수님과 성신을 대신하여 새로운 이상을 갖고 그것을 옹위해 나갈 수 있는 그러한 입장의 내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새로운 약속의 피 살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남아진 사명은 무엇인가. 새로운 언약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한 자체가 끝날에 있어서 삼위신의 협조가 없을지라도 사탄 대하여 능히 승리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사탄 대하여 승리할 수 있는 그 중심은 무엇인가. 사탄이 하지 못하는 행동을 할 줄 아는 것입니다. 사탄이 할 수 없는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탄의 본질은 교만입니다. 사탄의 본질은 시기입니다. 사탄의 본질은 자기만을 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과 성신의 교훈은 '온유 겸손하라, 희생하라, 제물되라'는 것들입니다. 이것들은 다 사탄이 할 수 없는 일이예요. 사탄이 온유하려면 하나님 앞에 모든 죄를 회개하고 돌아서야 됩니다. 사탄에게 만일 질투하는 마음이 없다면 오늘날 이 세계는 전부 다 하늘 앞에 빨리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사탄에 반대되는 요소를 내 일신에 갖추어야 합니다. 나아가 여러분이 그 한계권내에 머물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넘어서서 새로운 약속권내에 들어가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변치 않는 하나의 중심을 세우게 될 때에, 예수님의 피 살을 받은 자로서 새로운 약속의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의논하지 못하였던 것을, 예수님이 성신과 나누지 못하던 것을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다시 의논할 수 있는 자리에 여러분이 서지 못한다면, 즉 여러분이 하늘 땅의 모든 기준을 대신하는 중심존재로 서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약속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 동시에 하나님이 바라는 새로운 약속의 뜻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세상의 어떤 것을 갖지 못했을지라도 예수님의 몸과 마음은 완전히 가져야겠습니다. 하늘 땅을 대신한 하나의 중심가치를 하늘로부터 인정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인정받은 우리의 가치가 어느 한계권내에 머물러서는 아니 됩니다. 천상의 어떤 존재도 우리를 환영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러한 가치적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와 예수님의 살은 땅 위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땅위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노정이 천상에서도 적용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은 하늘에서도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예수님의 피와 살을 완전히 받았다 할진대는, 내 소원이 천상에서 완성되고 지상에서도 완성되게 됩니다. 그리고 완성된 그것이 천상에서 예수님의 소원을 대신하고, 지상에서 성신의 소원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둘이 하나되어 예수님과 성신이 하던 일을 맡아 가지고 예수님과 성신을 쉬게 하고 하나님과 다시금 약속할 수 있는 그 기준까지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 전체적인 하늘의 섭리역사가 여러분을 통하여 승리의 기준을 잡아 진행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말씀선집 제1권 10편
이루어야 할 새로운 언약 (훈독본)
1956.07.08 (일), 한국 전본부교회
누가복음 22:14-34
오늘 말씀드리려 하는 제목은 '이루어야 할 새로운 언약' 입니다.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떼어 주신 떡과 포도주의 의미
4천년 동안 부활의 섭리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해 오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부활시키시는 섭리만으로는 천상의 뜻과 지상의 뜻을 합하여 완결지을 수 없기에 새로운 언약을 세워 놓고, 이것으로써 천상과 지상의 뜻을 합하여 약속하신 본연의 동산을 찾는 섭리를 해 오신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예수님께서 주시던 잔과 예수님께서 떼어 주시던 떡이 곧 새로운 언약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왔다 가신 이후에 우리는 그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받았으니, 이는 곧 이루어야 할 전체의 생명을 대신한 동시에 전체의 진리를 대신한 것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피와 예수님의 살을 받음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그것은 예수 일개인의 살과 피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크게 말하면 하늘과 땅을 뜻함이요, 작게 말하면 중심과 개체를 뜻함입니다. 또 살은 진리를 상징하고 피는 신령을 상징합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조건 주시었습니다. 그와 같이 주신 바의 예수님의 일신은 그 자체에 국한된 문제도 물론 문제려니와 그를 중심삼고 연하여 있는 천상 천하의 어떠한 존재의 문제도 전부 그의 문제였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것이 무엇인가. 하늘의 뜻이 땅 위에 나타나고 땅 위에 전체 상황이 하늘의 뜻으로 귀결되어 하나의 목적으로 움직여져야 하는데, 이것이 막혔습니다. 그리하여 사랑의 주인공이셨던 예수님께서는 승리적인 하늘의 영광을 대신하여 나타날 그 하나의 뜻을 표상하여 지금까지 수고해 오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여 예수님 한분을 세우셨음은 하늘 전체를 소유할 수 있음과, 땅 전체를 소유할 수 있음을 표상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늘 전부를 소유할 수 있고 땅 전부를 소유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소유한 것을 자기 것으로만 귀결지을 것이 아니라 소유했다가 다시 하늘 앞에 돌려 드려야 할 전체적인 섭리의 뜻을 우리는 위탁받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새로운 언약을 세우고 가셨기 때문에, 그가 돌아가신 이후에는 영적인 세계와 육적인 세계가 사람, 즉 예수님을 따르는 사도들을 중심삼고 연락되어야 할 조건이 남아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늘과 땅이 연락되었을 것인데,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하늘의 조건을 대신하게 되었고, 성신은 땅의 조건을 대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와 성신의 뜻을 대신하는 사람
그러면 하늘과 땅의 중간 입장에 서서 예수님의 뜻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 성신의 뜻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 것인가. 지금까지 땅위에서 새로운 약속의 말씀을 믿고 나오는 사도들 또는 우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소원은 어디에 있는가. 그 소원은 천상에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소원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 또한 지상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소원은 지상의 뜻을 연하고 지상에 있는 인간들의 소원은 천상의 뜻을 연하여야 됩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하늘을 중심삼고 예수님께서 친히 떼어 주시던 그 피와 살을 대신한 성체로서 하늘 땅을 대신한 하나의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고 할진대 예수님과 성신은 영원무궁토록 하나될 수 없습니다. 성신은 성신대로 땅 위에서 역사를 계속할 것이요, 예수님은 예수님대로 하늘에서 역사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내 피를 먹고 내 살을 먹으라'하신 그 말씀은 무엇인가. 거기에는 '나는 갈지라도 천성의 섭리권내에 들어간 전부를 너희들이 가져서 나의 소원을 성취해 달라'는 예수님의 간곡한 심정이 내포되어 있음을 여러분이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서 받은 피는 예수님의 영적인 면을 상징하고, 살은 육적인 면을 상징한 것으로 곧 성신을 나타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과 성신은 그 피와 살로 인하여 하나의 성체를 갖추어서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중심존재로 세워지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피와 살은, 피는 하늘을 상징하고 살은 땅을 상징하였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거기에 예수님의 크나큰 소망과 포부가 나타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성신을 통해서 거룩한 몸이 된 후에 마음이 예수의 성체와 연하여져야 합니다. 이것은 복귀역사의 과정을 상징합니다. 아담 해와를 창조할 때에도 몸을 짓고 영혼을 지었습니다. 육을 지어 놓고 나중에 코에 생명을 불어 넣어 아담 해와를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두 조건의 원칙을 합하여 하나의 사람을 지은 것과 마찬가지로 복귀섭리 노정에서도 예수님을 중심삼은 성신이 새로운 언약을 세운 연고로 그 이후 지금까지 천상과 지상이 합한 예수님과 성신의 역사가 연락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오늘 우리들에게 얼마만큼 중요한 책임이 지워져 있는가를 여러분은 알아야겠습니다.
보잘것없는 사도들, 보잘것없는 우리들의 움직임에 따라 하늘이 좌우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들을 대신한 여러분 ! 예수님의 성체를 받고 난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예수님의 생명력이 나타나야 됩니다. 하늘을 대신할 수 있는 성신의 감동의 역사가 나타나야 됩니다. 그리하여 온 피조세계를 복귀하기 위한 예수님의 뜻 앞에 여러분이 하나로 일치되어 나아가게 될 때, 여러분이 좌향하면 하늘도 좌향하고, 여러분이 우향하면 하늘도 우향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움직이는 대로 하늘도 움직일 것입니다.
하늘이 인간을 통하여 움직일 수 있는 기준을 여러분이 세워 종결짓지 않는다 할진대 예수님과 성신은 여러분을 대해 호소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남겼던 우주적인 사명이 여러분을 참소한다는 거예요. 오늘날 이것을 생각할 때, 아무것도 아닌 미미한 우리들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천상을 좌우할 수 있고 지상을 좌우할 수 있는 대우주적인 뜻을 이루려 하신다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인간 없이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성신에게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오로지 결정의 권한은 우리들 인간에게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피와 살에 대한 보답
지금까지의 신약역사는 '당신이 해주시옵소서'하는 역사였습니다.
소망을 위하여 요구하던 한계권내의 역사였습니다. 어느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신약역사였습니다. 우리는 그 신약의 말씀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 한계권내의 역사를 넘어서서 하늘의 은사를 받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 일신으로 천상 천하의 모든 것을 소유하려 하던 예수님의 전체 가치성을 갖고 나아가 그 신약의 한계권내를 넘어서 '아버지시여 ! 나에게 새로운 약속을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예수님의 피의 호소와 십자가에서 살을 찢기시면서 호소하시던 호소를 오늘 여러분이 생활에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들이 천상을 가는 데도 완결 지어야 할 인간의 책임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약속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약속에 그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전체의 은사와 전체의 소망 전체의 생명을 내 한몸이 소유하여,내 한 생명의 이상을 갖고 그 한계를 넘어, 마음 놓고 줄 수 있는 기준을 땅 위에 세워 완결짓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원한은 풀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소망 성취의 과정에 머물러 있습니다. 어떤 목적을 바라보고 그 소망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움직였다 할진대 여러분은 세웠던 신앙의 약속을 종결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한계를 넘어선 한 자체는 최후의 한 때에 주의 피와 살을 받은 것을 보답하는 존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예수님의 전후 좌우 상하, 또 성신의 전후 좌우 상하, 하나님의 전후 좌우 상하를 감히 대신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천상의 뜻인 동시에 지상의 뜻인 인간을 통하여 귀결짓는 한계의 날을 땅 위에 세우지 못한다 할진대는 예수님의 뜻도 하나님의 뜻도 성사될 수 없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뜻을 생각 하면 오늘날 미미한 우리들의 가치는 너무나 크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피와 살을 떼어 주시고 한가지 요구한 것이 무엇인가? '이에 잔을 받으사 사례하시고 가라사대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눅22:17)"고 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피살을 받았으니 예수님의 사명을 대신하여 하늘의 문제도 우리가 책임지고 나가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천상의 소망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예수님의 피와 살을 받은 조건으로 우리끼리 관계를 지어 승리의 제단을 찾아가야 할 끝날의 책임이 있습니다. 이런 우리의 책임을 여러분은 절실히 느껴야 되겠습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부탁하신 주님의 뜻
위로부터 내려오는 원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변함없는 상하 원칙 그리고 좌우로 연결지어져야 할 관계는 누가 찾을 것인가, 여러분이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성신은 역사가 변하고 시대가 변할지라도 변치 않는 중심으로 한 방향만을 지향해 나왔습니다. 예수님과 성신이 주고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자체끼리 그러한 관계를 맺어야 됩니다. 만일 그러한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되면 하나님이 운행하실 수 있는 제단은 지상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신의 피와 살을 나눠 주시던 그 예수님의 심정을 아시겠습니까? 이루 말할 수 없이 비통한 심정이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서도 뜻을 아는 사람, 뜻을 위하려는 사람은 비통하고 처참한 자리에서 뼛골이 녹아지는 시련을 홀로 넘으면서도 뜻을 나타내고자 합니다. 따라서 이를 느끼지 못한 사람들, 이런 뜻을 대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 할 것인가를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할진대, 여러분끼리의 횡적인 성만찬도 나눌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연락될 때, 또 예수님이 성신과 연락될 때 나누던 그 사랑의 마음을 우리 끼리끼리 나눌 수 있는, 즉 성체의 사랑을 나타내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개인 개인을 연하여, 교단과 교단을 연하여, 또 교단을 넘어서 어떠한 형태로라도 하늘의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의 권내에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 너희들끼리 서로 사랑의 마음을 나누라 하던 예수님의 부탁의 뜻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여러분 중에 내 한 자체를 주고 그 한 자체를 대신 받을 수 있는 동지를 갖지 못한 사람, 그는 불쌍한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서의 성신은, 사람은 변할지라도 성신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와 주고 받아 나오고 계십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그와 같이 주고 받을 수 있는 기준에서 영적인 세계의 역사를 대신해 싸워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남겨 준 최후의 하나의 소망을 우리들이 완결지을 때가 왔습니다. 이 하나의 소망을 여러분들이 좌우로 연결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땅 위에서 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땅위에서 싸워 순교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땅 위에서 의인을 섬길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은 섬김받는 사람이 된다'고 했고 '스스로 높아지려 하는 사람은 낮아진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오늘날 우리들이 평면적인 면에서 느끼는 하나의 생활의 중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든 섬길 줄 알고, 모두의 친구가 될 수 있고, 또한 그들을 보호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새로운 언약을 이루려면
이제 새로운 신약의 말씀이 약속되었으니, 우리는 예수님의 분부하시던 그 내적 심정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을 헤아리는 동시에 그의 이상과 실천적인 방면까지 헤아릴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과 성신의 뜻을 대신 이루어 드려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뜻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진대는 끝날에는 예수님과 성신의 역사가 거두어 집니다.
예수님과 성신의 역사가 거두어질진대는 거두어지는 그날에 홀로 서 가지고 예수님의 소망과 성신의 소망을 알고, 예수님께서 가신 실천적인 노정을 대신 갈 수 있는 나, 예수님과 성신을 대신하여 새로운 이상을 갖고 그것을 옹위해 나갈 수 있는 그러한 입장의 내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새로운 약속의 피 살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남아진 사명은 무엇인가. 새로운 언약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한 자체가 끝날에 있어서 삼위신의 협조가 없을지라도 사탄 대하여 능히 승리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사탄 대하여 승리할 수 있는 그 중심은 무엇인가. 사탄이 하지 못하는 행동을 할 줄 아는 것입니다. 사탄이 할 수 없는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탄의 본질은 교만입니다. 사탄의 본질은 시기입니다. 사탄의 본질은 자기만을 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과 성신의 교훈은 '온유 겸손하라, 희생하라, 제물되라'는 것들입니다. 이것들은 다 사탄이 할 수 없는 일이예요. 사탄이 온유하려면 하나님 앞에 모든 죄를 회개하고 돌아서야 됩니다. 사탄에게 만일 질투하는 마음이 없다면 오늘날 이 세계는 전부 다 하늘 앞에 빨리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사탄에 반대되는 요소를 내 일신에 갖추어야 합니다. 나아가 여러분이 그 한계권내에 머물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넘어서서 새로운 약속권내에 들어가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변치 않는 하나의 중심을 세우게 될 때에, 예수님의 피 살을 받은 자로서 새로운 약속의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의논하지 못하였던 것을, 예수님이 성신과 나누지 못하던 것을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다시 의논할 수 있는 자리에 여러분이 서지 못한다면, 즉 여러분이 하늘 땅의 모든 기준을 대신하는 중심존재로 서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약속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 동시에 하나님이 바라는 새로운 약속의 뜻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세상의 어떤 것을 갖지 못했을지라도 예수님의 몸과 마음은 완전히 가져야겠습니다. 하늘 땅을 대신한 하나의 중심가치를 하늘로부터 인정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인정받은 우리의 가치가 어느 한계권내에 머물러서는 아니 됩니다. 천상의 어떤 존재도 우리를 환영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러한 가치적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와 예수님의 살은 땅 위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땅위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노정이 천상에서도 적용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은 하늘에서도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예수님의 피와 살을 완전히 받았다 할진대는, 내 소원이 천상에서 완성되고 지상에서도 완성되게 됩니다. 그리고 완성된 그것이 천상에서 예수님의 소원을 대신하고, 지상에서 성신의 소원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둘이 하나되어 예수님과 성신이 하던 일을 맡아 가지고 예수님과 성신을 쉬게 하고 하나님과 다시금 약속할 수 있는 그 기준까지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 전체적인 하늘의 섭리역사가 여러분을 통하여 승리의 기준을 잡아 진행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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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이루어야 할 새로운 언약
1956.07.08 (일), 한국 전본부교회
오늘 말씀드리려 하는 제목은 '이루어야 할 새로운 언약' 입니다.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떼어 주신 떡과 포도주의 의미
4천년 동안 부활의 섭리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해 오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부활시키시는 섭리만으로는 천상의 뜻과 지상의 뜻을 합하여 완결지을 수 없기에 새로운 언약을 세워 놓고, 이것으로써 천상과 지상의 뜻을 합하여 약속하신 본연의 동산을 찾는 섭리를 해 오신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예수님께서 주시던 잔과 예수님께서 떼어 주시던 떡이 곧 새로운 언약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왔다 가신 이후에 우리는 그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받았으니, 이는 곧 이루어야 할 전체의 생명을 대신한 동시에 전체의 진리를 대신한 것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피와 예수님의 살을 받음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그것은 예수 일개인의 살과 피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크게 말하면 하늘과 땅을 뜻함이요, 작게 말하면 중심과 개체를 뜻함입니다. 또 살은 진리를 상징하고 피는 신령을 상징합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조건 주시었습니다. 그와 같이 주신 바의 예수님의 일신은 그 자체에 국한된 문제도 물론 문제려니와 그를 중심삼고 연하여 있는 천상 천하의 어떠한 존재의 문제도 전부 그의 문제였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것이 무엇인가. 하늘의 뜻이 땅 위에 나타나고 땅 위에 전체 상황이 하늘의 뜻으로 귀결되어 하나의 목적으로 움직여져야 하는데, 이것이 막혔습니다. 그리하여 사랑의 주인공이셨던 예수님께서는 승리적인 하늘의 영광을 대신하여 나타날 그 하나의 뜻을 표상하여 지금까지 수고해 오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여 예수님 한분을 세우셨음은 하늘 전체를 소유할 수 있음과, 땅 전체를 소유할 수 있음을 표상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늘 전부를 소유할 수 있고 땅 전부를 소유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소유한 것을 자기 것으로만 귀결지을 것이 아니라 소유했다가 다시 하늘 앞에 돌려 드려야 할 전체적인 섭리의 뜻을 우리는 위탁받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새로운 언약을 세우고 가셨기 때문에, 그가 돌아가신 이후에는 영적인 세계와 육적인 세계가 사람, 즉 예수님을 따르는 사도들을 중심삼고 연락되어야 할 조건이 남아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늘과 땅이 연락되었을 것인데,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하늘의 조건을 대신하게 되었고, 성신은 땅의 조건을 대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와 성신의 뜻을 대신하는 사람
그러면 하늘과 땅의 중간 입장에 서서 예수님의 뜻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 성신의 뜻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 것인가. 지금까지 땅위에서 새로운 약속의 말씀을 믿고 나오는 사도들 또는 우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소원은 어디에 있는가. 그 소원은 천상에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소원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 또한 지상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소원은 지상의 뜻을 연하고 지상에 있는 인간들의 소원은 천상의 뜻을 연하여야 됩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하늘을 중심삼고 예수님께서 친히 떼어 주시던 그 피와 살을 대신한 성체로서 하늘 땅을 대신한 하나의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고 할진대 예수님과 성신은 영원무궁토록 하나될 수 없습니다. 성신은 성신대로 땅 위에서 역사를 계속할 것이요, 예수님은 예수님대로 하늘에서 역사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내 피를 먹고 내 살을 먹으라'하신 그 말씀은 무엇인가. 거기에는 '나는 갈지라도 천성의 섭리권내에 들어간 전부를 너희들이 가져서 나의 소원을 성취해 달라'는 예수님의 간곡한 심정이 내포되어 있음을 여러분이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서 받은 피는 예수님의 영적인 면을 상징하고, 살은 육적인 면을 상징한 것으로 곧 성신을 나타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과 성신은 그 피와 살로 인하여 하나의 성체를 갖추어서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중심존재로 세워지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피와 살은, 피는 하늘을 상징하고 살은 땅을 상징하였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거기에 예수님의 크나큰 소망과 포부가 나타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성신을 통해서 거룩한 몸이 된 후에 마음이 예수의 성체와 연하여져야 합니다. 이것은 복귀역사의 과정을 상징합니다. 아담 해와를 창조할 때에도 몸을 짓고 영혼을 지었습니다. 육을 지어 놓고 나중에 코에 생명을 불어 넣어 아담 해와를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두 조건의 원칙을 합하여 하나의 사람을 지은 것과 마찬가지로 복귀섭리 노정에서도 예수님을 중심삼은 성신이 새로운 언약을 세운 연고로 그 이후 지금까지 천상과 지상이 합한 예수님과 성신의 역사가 연락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오늘 우리들에게 얼마만큼 중요한 책임이 지워져 있는가를 여러분은 알아야겠습니다.
보잘것없는 사도들, 보잘것없는 우리들의 움직임에 따라 하늘이 좌우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들을 대신한 여러분 ! 예수님의 성체를 받고 난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예수님의 생명력이 나타나야 됩니다. 하늘을 대신할 수 있는 성신의 감동의 역사가 나타나야 됩니다. 그리하여 온 피조세계를 복귀하기 위한 예수님의 뜻 앞에 여러분이 하나로 일치되어 나아가게 될 때, 여러분이 좌향하면 하늘도 좌향하고, 여러분이 우향하면 하늘도 우향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움직이는 대로 하늘도 움직일 것입니다.
하늘이 인간을 통하여 움직일 수 있는 기준을 여러분이 세워 종결짓지 않는다 할진대 예수님과 성신은 여러분을 대해 호소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남겼던 우주적인 사명이 여러분을 참소한다는 거예요. 오늘날 이것을 생각할 때, 아무것도 아닌 미미한 우리들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천상을 좌우할 수 있고 지상을 좌우할 수 있는 대우주적인 뜻을 이루려 하신다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인간 없이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성신에게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오로지 결정의 권한은 우리들 인간에게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피와 살에 대한 보답
지금까지의 신약역사는 '당신이 해주시옵소서'하는 역사였습니다.
소망을 위하여 요구하던 한계권내의 역사였습니다. 어느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신약역사였습니다. 우리는 그 신약의 말씀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 한계권내의 역사를 넘어서서 하늘의 은사를 받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 일신으로 천상 천하의 모든 것을 소유하려 하던 예수님의 전체 가치성을 갖고 나아가 그 신약의 한계권내를 넘어서 '아버지시여 ! 나에게 새로운 약속을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예수님의 피의 호소와 십자가에서 살을 찢기시면서 호소하시던 호소를 오늘 여러분이 생활에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들이 천상을 가는 데도 완결 지어야 할 인간의 책임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약속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약속에 그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전체의 은사와 전체의 소망 전체의 생명을 내 한몸이 소유하여,내 한 생명의 이상을 갖고 그 한계를 넘어, 마음 놓고 줄 수 있는 기준을 땅 위에 세워 완결짓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원한은 풀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소망 성취의 과정에 머물러 있습니다. 어떤 목적을 바라보고 그 소망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움직였다 할진대 여러분은 세웠던 신앙의 약속을 종결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한계를 넘어선 한 자체는 최후의 한 때에 주의 피와 살을 받은 것을 보답하는 존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예수님의 전후 좌우 상하, 또 성신의 전후 좌우 상하, 하나님의 전후 좌우 상하를 감히 대신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천상의 뜻인 동시에 지상의 뜻인 인간을 통하여 귀결짓는 한계의 날을 땅 위에 세우지 못한다 할진대는 예수님의 뜻도 하나님의 뜻도 성사될 수 없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뜻을 생각 하면 오늘날 미미한 우리들의 가치는 너무나 크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피와 살을 떼어 주시고 한가지 요구한 것이 무엇인가? '이에 잔을 받으사 사례하시고 가라사대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눅22:17)"고 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피살을 받았으니 예수님의 사명을 대신하여 하늘의 문제도 우리가 책임지고 나가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천상의 소망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예수님의 피와 살을 받은 조건으로 우리끼리 관계를 지어 승리의 제단을 찾아가야 할 끝날의 책임이 있습니다. 이런 우리의 책임을 여러분은 절실히 느껴야 되겠습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부탁하신 주님의 뜻
위로부터 내려오는 원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변함없는 상하 원칙 그리고 좌우로 연결지어져야 할 관계는 누가 찾을 것인가, 여러분이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성신은 역사가 변하고 시대가 변할지라도 변치 않는 중심으로 한 방향만을 지향해 나왔습니다. 예수님과 성신이 주고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자체끼리 그러한 관계를 맺어야 됩니다. 만일 그러한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되면 하나님이 운행하실 수 있는 제단은 지상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신의 피와 살을 나눠 주시던 그 예수님의 심정을 아시겠습니까? 이루 말할 수 없이 비통한 심정이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서도 뜻을 아는 사람, 뜻을 위하려는 사람은 비통하고 처참한 자리에서 뼛골이 녹아지는 시련을 홀로 넘으면서도 뜻을 나타내고자 합니다. 따라서 이를 느끼지 못한 사람들, 이런 뜻을 대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 할 것인가를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할진대, 여러분끼리의 횡적인 성만찬도 나눌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연락될 때, 또 예수님이 성신과 연락될 때 나누던 그 사랑의 마음을 우리 끼리끼리 나눌 수 있는, 즉 성체의 사랑을 나타내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개인 개인을 연하여, 교단과 교단을 연하여, 또 교단을 넘어서 어떠한 형태로라도 하늘의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의 권내에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 너희들끼리 서로 사랑의 마음을 나누라 하던 예수님의 부탁의 뜻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여러분 중에 내 한 자체를 주고 그 한자체를 대신 받을 수 있는 동지를 갖지 못한 사람, 그는 불쌍한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서의 성신은, 사람은 변할지라도 성신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와 주고 받아 나오고 계십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그와 같이 주고 받을 수 있는 기준에서 영적인 세계의 역사를 대신해 싸워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남겨 준 최후의 하나의 소망을 우리들이 완결지을 때가 왔습니다. 이 하나의 소망을 여러분들이 좌우로 연결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땅 위에서 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땅위에서 싸워 순교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땅 위에서 의인을 섬길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은 섬김받는 사람이 된다'고 했고 '스스로 높아지려 하는 사람은 낮아진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오늘날 우리들이 평면적인 면에서 느끼는 하나의 생활의 중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든 섬길 줄 알고, 모두의 친구가 될 수 있고, 또한 그들을 보호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새로운 언약을 이루려면
이제 새로운 신약의 말씀이 약속되었으니, 우리는 예수님의 분부하시던 그 내적 심정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을 헤아리는 동시에 그의 이상과 실천적인 방면까지 헤아릴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과 성신의 뜻을 대신 이루어 드려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뜻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진대는 끝날에는 예수님과 성신의 역사가 거두어 집니다.
예수님과 성신의 역사가 거두어질진대는 거두어지는 그날에 홀로 서 가지고 예수님의 소망과 성신의 소망을 알고, 예수님께서 가신 실천적인 노정을 대신 갈 수 있는 나, 예수님과 성신을 대신하여 새로운 이상을 갖고 그것을 옹위해 나갈 수 있는 그러한 입장의 내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새로운 약속의 피 살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남아진 사명은 무엇인가. 새로운 언약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한 자체가 끝날에 있어서 삼위신의 협조가 없을지라도 사탄 대하여 능히 승리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사탄 대하여 승리할 수 있는 그 중심은 무엇인가. 사탄이 하지 못하는 행동을 할 줄 아는 것입니다. 사탄이 할 수 없는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탄의 본질은 교만입니다. 사탄의 본질은 시기입니다. 사탄의 본질은 자기만을 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과 성신의 교훈은 '온유 겸손하라, 희생하라, 제물되라'는 것들입니다. 이것들은 다 사탄이 할 수 없는 일이예요. 사탄이 온유하려면 하나님 앞에 모든 죄를 회개하고 돌아서야 됩니다. 사탄에게 만일 질투하는 마음이 없다면 오늘날 이 세계는 전부 다 하늘 앞에 빨리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사탄에 반대되는 요소를 내 일신에 갖추어야 합니다. 나아가 여러분이 그 한계권내에 머물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넘어서서 새로운 약속권내에 들어가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변치 않는 하나의 중심을 세우게 될 때에, 예수님의 피 살을 받은 자로서 새로운 약속의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의논하지 못하였던 것을, 예수님이 성신과 나누지 못하던 것을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다시 의논할 수 있는 자리에 여러분이 서지 못한다면, 즉 여러분이 하늘 땅의 모든 기준을 대신하는 중심존재로 서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약속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 동시에 하나님이 바라는 새로운 약속의 뜻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세상의 어떤 것을 갖지 못했을지라도 예수님의 몸과 마음은 완전히 가져야겠습니다. 하늘 땅을 대신한 하나의 중심가치를 하늘로부터 인정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인정받은 우리의 가치가 어느 한계권내에 머물러서는 아니 됩니다. 천상의 어떤 존재도 우리를 환영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러한 가치적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와 예수님의 살은 땅 위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땅위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노정이 천상에서도 적용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은 하늘에서도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예수님의 피와 살을 완전히 받았다 할진대는, 내 소원이 천상에서 완성되고 지상에서도 완성되게 됩니다. 그리고 완성된 그것이 천상에서 예수님의 소원을 대신하고, 지상에서 성신의 소원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둘이 하나되어 예수님과 성신이 하던 일을 맡아 가지고 예수님과 성신을 쉬게 하고 하나님과 다시금 약속할 수 있는 그 기준까지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 전체적인 하늘의 섭리역사가 여러분을 통하여 승리의 기준을 잡아 진행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말씀선집 제1권 11편
예수는 왜 세상 죄를 지신 어린 양이 되었나 (훈독본)
1956.07.11 (수), 한국 전본부교회
요한복음 1:24-34
예수는 왜 세상 죄를 지신 어린 양이 되었나(말씀선집 제1권 11편 )
오늘 저녁 말씀 드리려 하는 제목은 '예수는 왜 세상 죄를 지신 어린 양이 되었나?'입니다.
예수님이 강림하신 배경
하나님은 자기의 내적인 이상을 실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중심존재로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로 말미암아 숨겨진 하늘의 미와 숨겨진 하늘의 사랑과 숨겨진 하늘의 영광을 인간인 아담 해와의 생활을 통하여, 생애를 통하여, 영생의 노정을 통하여 이루고, 어느 때에나 간격이 없는 기쁨의 세계를 만드시려 하셨습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뜻하시던 이런 본연의 뜻은 근본적으로 끊어지고, 인간들은 원치 아니했던 사탄을 하나님 대신 세워 놓고 그 사탄의 주관권내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을 돌리며 하나님을 모시는 생활을 해야 할 인간이 하나님 대신 사탄을 중심삼고 그를 모시고 따르는 수모의 역사를 거듭하여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을 중심삼고 찾아야 할 영광이 남아 있고, 사랑해야 할 뜻이 남아 있고, 권고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서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고 계신데, 사탄은 반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파괴하기 위한 싸움, 하나님의 사랑을 파괴하기 위한 싸움, 하늘의 생명을 파괴하기 위한 싸움, 오늘날 인간들을 자기의 수중에 매어 놓고 이를 하나님편으로 넘겨 보내지 않으려는 싸움을 계속하여 나오고 있다는 사실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세우셔서 사탄을 원망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을 세우셔야 하고, 사람을 세우셔서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중심삼고 사탄에게 항의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셔야 하며, 하나님 대신 인간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사탄 대해 항의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탄이 전체 생명의 권한을 갖고 있으니, 하나님은 이것도 항의할 수 있는 사람을 세워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책임이 하나님에게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찾고자 하시는 창조 본연의 인간, 사탄 대하여 공격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이 나오지 않으면 다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길이 없고, 사랑을 돌릴 길이 없으며, 생명을 돌릴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의 중심존재를 세우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4천년 동안 수고하시며 섭리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비로소 하나님이 만민 앞에 찾고자 하셨던 하나의 신앙의 중심, 인간의 대표적인 중심, 하나님의 영광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생명을 증거하기 위해서 세우셨던 분이 누구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님의 책임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해야 할 책임이 무엇이었나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생명을 회복해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가로막고 있는 것이 무엇이었나 하면, 죄라는 것이었습니다.
죄악은 만민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사랑으로 느끼지 못하게 하고, 하늘의 생명을 생명으로 느끼지 못하게 하여 영생의 중심을 세우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무슨 연고인가. 그것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혈통적인 죄와 자범적인 죄가 인간을 중심삼고 온 피조만물에까지 사무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이 죄를 뿌리뽑기 위해 만민의 죄를 자기 일신이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이유 때문에 죄를 대신 짊어지셔야 했던가. 그것은 인간들이 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더군다나 인간들은 진리를 알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이 영광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갖고 만민을 구하기 위해 오셨는데, 그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하나의 조건이 있었으니 그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이 사람과 저 사람, 이 모임과 저 모임, 이 사회와 저 사회, 이 국가와 저 국가 사이에 하나의 철망같이 짜여 있는 죄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죄를 자진하여 청산하기 전에는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영광도 볼 수 없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도 볼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의 생명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로 하여금 이 죄를 청산하도록 해오셨습니다. 인간들이 이 죄를 청산하게 되면, 그로 말미암아 그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부여할 수 있고, 하나님의 생명을 부여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부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이 인간들로 하여금 이 죄를 청산하게 하신 것은, 인간들 스스로 지금까지 알지 못하였던 주인공을 알게 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그 주인공을 하늘의 영광을 대신하여 섬길 수 있으며, 하늘의 사랑을 대신하여 섬길 수 있으며, 하늘의 생명을 대신하여 섬길 수 있다면, 그런 우리가 된다면 하늘이 중심으로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를 끊을 수 있는 힘은 없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연고로 이 세계가 종말이 될 때까지는 나와 예수님과 성신 사이에는 없애지 않으면 안 될 죄의 짐이 남아 있습니다. 이 죄의 짐은 개인을 중심삼은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 하늘땅에 남아 있는데, 이 세계 하늘 땅 전체의 죄짐을 맡을 수 있는 한 존재가 오신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쁜 소식이요 구원과 승리의 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자체들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죄를 맡겼습니까? 또 우리 가족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죄를 맡겼습니까? 우리의 사회, 국가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죄를 맡겼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죄를 맡겼습니까? 아직까지 죄악의 미해탈권내에 남아 있는 성도가 이 땅 위에 몇명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일상의 신앙생활을 통해 여러분이 해야 할 일
여러분은 이 시간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연장시키는 일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께 '내 죄를 몽땅 맡으십시오'라는 회개의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주여! 내 죄를 맡으십시오'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내 마음 몸을 합하고 예수의 마음 몸을 합하여 예수께 맡겨진 죄의 보따리를 짊어지고 예수의 손을 거치고 내 손을 거쳐서 죄의 밑창까지 뚫고 나올 수 있는 혁명의 노정을 거치지 않으면, 성신을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대하여 죄를 완전히 청산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가 이 땅에 와서 죄를 맡겠다고 하시는 뜻은 무엇인가? 우리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잃어버렸고, 참부모님을 잃어버렸으며, 나를 지켜 주고 사랑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을 잃어버렸는데, 이 중심존재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모든 죄를 맡고 난 후에는 하늘과 땅, 사탄이 예수님 한분을 놓고 결판을 벌이게 되는 때를 맞을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자신의 죄를 전부 예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맡기지 않는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주인으로서 간섭해 주고 싶어도 간섭해 주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예수님은 박복자 중의 박복자
우리는 예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을 찾아오신 예수의 심정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 예수의 심정은 온 우주의 죄를 짊어지고 싶은 심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예수님은 불쌍한 분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예수와 같이 박복한 사람이 없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찾기 위하여, 은사를 입히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건만, 어느누구 한 사람 예수의 소원을 알고 '예수님은 나의 영원한 이상이요, 불변의 주인이로소이다'라고 하면서 모시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역시 한 인간으로서 그 느끼는 감성은 여러분과 같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지만 자기 일신의 죄를 해결하지 못하는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전 인류의 과거와 미래의 죄를 책임지신 예수님은 수고로움도 잊으시고 외로운 자리에서 자기의 죄를 원망하는 개인 개인을 위로해 주는 입장에 서셨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죄를 맡으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내적인 수고와 고통, 서러움을 우리들이 위로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의 죄를 놓고 서러워해야 하겠습니다. 서러워하는데는 어떤 이유로 서러워해야 되느냐 하면 이 서러움이 직접 하늘에 사무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 서러움을 위로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 성신입니다.
이에 우리들은 예수와 성신의 협조를 받아 우리의 죄를 벗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위하여 죄를 맡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민은 이 땅 위에서 풀리지 않고 하늘에서도 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성신은 우리의 죄를 하늘 앞에 사죄하는 일을 담당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인간이 천상에 계신 하나님이나 예수님과 직접적인 관계가 맺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상에서 역사하시는 성신의 협조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속죄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실제 우리의 죄를 맡아 수고하시는 분은 성신입니다. 성신은 우리를 위하여, 죄인같이 불쌍한 나의 신세를 대신하여 중간입장에서 수고하고 계심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성신의 수고는 어떤 수고인가.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수고는 우리의 죄를 맡으신 수고였고, 성신의 수고는 여러분들이 울면 같이 우시고, 여러분이 십자가에 달리면 같이 달리신 수고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고비를 넘는 수고의 역사를 오늘도 여러분을 위해서 계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와 성신의 수고가 나를 중간에 놓고 하나가 되어 하늘이 요구하는 그 수고의 기준을 넘어서게 될 때에 땅위에서 우리가 저지른 죄가 모두 속죄되는 것입니다.
성신의 수고에 대한 인간의 책임
우리들은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맞기 위하여 나만 수고한 줄 알았는데 나의 배후에서 나 이상 수고하신 성신이 계심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바라시는 것은 인간들의 수고보다도 성신의 수고가 크기 때문에 이 성신을 세우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대신하고 인간들을 규합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한 날이 찾아지지 않으면 예수가 이 땅에 다시 오셔서 만민의 주인공으로 서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이 악을 대하여 나서게 될 때, 우리가 저지른 죄로 말미암아 성신이 대신 땅에서 수고하시게 되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하늘 땅 어디에 가더라도 우리는 하늘의 원한을 벗어날 도리가 없는 죄인들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죄를 깨달아서 이제 우리는 마음과 몸을 다 바쳐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먼저는 성신의 수고에 의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의 도수를 채움으로써 그 수고의 짐을 벗겨 드려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나로 말미암아 성신의 수고가 끝이 나고 예수님의 수고가 끝이 나고 하나님의 수고가 끝이 나야 우리를 위해 죄를 맡기에 수고하신 하늘의 복귀섭리의 뜻이 종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체들은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의 주인공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자로 이 땅에 오셨다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체(體)를 갖춘 하나의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다 가셨습니다. 여러분이 영계를 통하여 보면 예수님은 우리와 일문일답할 수 있는 체를 갖고 계시기에, 여러분의 영안이 열리면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고 감사드릴 수 있지만, 성신을 대해서는 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신은 체를 갖고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실체를 쓴 하늘의 주인공으로, 피조세계의 중심으로 이 땅에 오셨었습니다. 그런데 성신은 아직까지 체를 갖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성신의 수고에 대해 직접 위로해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원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 2천년의 수고의 역사를 경과하면서 신랑신부의 이념을 세웠던 것인데 이것을 오늘날 크리스찬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신랑 되신 천상의 예수 앞에 신부가 될 수 있는 지상의 실체 성신은 언제 이 땅에 나타날 것인가.
우리가 저지른 범죄는 예수 그리스도만 죽음의 고개를 넘게 한 것이 아니라 성신까지도 그러한 수고의 고개를 넘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내 한 자체를 통하여 그 수고의 원한을 해원하게 되면 그 기쁨과 영광을 예수님께는 돌려 드릴 수 있으되 성신께는 돌려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맡기면 먼저는 성신께서 우리의 죄를 맡으십니다. 그런 뒤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맡으시고, 그런 다음에 하나님으로부터 청산을 받는데, 오늘날 우리들은 이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 일, 이런 사명을 아는 성도들이 나온다면 성신의 감동의 역사는 그들을 통하여 온 인류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다가 가셨는데, 우리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들은 예수님과 같은 입장의 신랑격 주인공과 성신과 같은 입장의 신부격 주인공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속죄의 은사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성신과 예수님을 붙들고, '성신과 성자, 그리고 하나님이여! 축복해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2천년의 수고와 성신의 2천년의 수고는 이 땅 위에서 완결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어찌하여 세상죄를 담당하셨는고? 그것은 우리를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자유를 소유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주인을 찾게 한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본연의 모습을 갖추게 해서 사탄의 지배를 받던 입장에서 사탄을 지배할 수 있는 입장으로 옮겨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 노정을 다 거친 후에 자유의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탄을 격멸하고 죄에서 자유로와지려면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은 죄입니다. 그런데 죄 자체가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조건으로 사탄이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인을 찾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이고, 죄를 벗는 것도 몸과 마음을 중심삼고 싸워야 하나, 자유를 찾으려면 사탄과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과 싸우게 될 때 내 일신만으로는 사탄을 격멸할 수 없습니다. 성신만으로도 사탄을 격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만으로도 사탄을 격멸할 수 없고 하나님만으로도 사탄을 격멸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 어폐가 있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자체만으로 사탄을 격멸할 수 있다면 어찌하여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의 30여 평생과 십자가의 희생이 필요했겠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 개체가 복된 천리의 한 길을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해 하늘이 동원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땅에도 동원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즉, 천상에는 하나님이 동원되어 있고, 예수가 동원되어 있고, 성신이 동원되어 있으며, 지상에는 여러분이 모르고 있지만 여러분을 위하여 많은 선각자들이 동원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와 같이 수많은 분들이 천상과 지상에서 동원되어 여러분에게 자유를 부여하기 위해 싸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 보답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도 여러분의 마음과 몸을 자유의 자리로 인도하기 위하여 많은 분들이 수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상에서 오랜 동안 하나님이 수고하고 계시고, 예수님과 성신이 수고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천천만 성도와 천군천사들이 수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또한 인간들이 구속되어 있는 어두운 환경을 수습하기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책임을 수행하는 성도들이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도 안 되겠습니다.
땅 위에서 천륜의 사명을 하며 수고하는 것이 저 나라에서는 영광을 받는다는 것을 우리가 알진대는 하늘 앞에 체면을 세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심판날이 다가오면 여러분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예수의 수고와 같은 수고를 여러분에게 요구할 것입니다. 성신의 수고와 같은 수고를 요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수고와 같은 수고를 요구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수많은 선지성현들이 수고한 것과 같은 수고를 요구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 하나가 편안하고, 나 하나가 안일하고, 나 하나가 즐겁다 하여 그것으로 만족하는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생활을 하면, 자기 일신에 미쳐지는 어려움은 모면할지 모르지만 수고의 역사를 해오신 성신과 예수님과 하나님, 그리고 천천만 성도들이 요구하는 것은 피할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자유를 찾고, 자유의 일신이 되고, 자기의 일신을 들어 '아버지여! 감사합니다'라고 하려면, 예수님을 중심삼고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천상에서 성신과 천천만 성도들은 자신들의 수고의 보답을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돌려 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원한은 땅 위의 만민이 해원해 드려야 하고, 예수의 목적은 땅위의 만민이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땅 위에서 완결지어야 하는 동시에 하늘에서도 완결지어야 할 사명이 인간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해방을 위해 수고한 분들에 대한 보답
예수를 통해서 속죄함을 받고 자유와 해방을 얻었다 할진대, 예수님이 소원하는 것을 이루어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한 사람을 찾는 것이 하늘의 소망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유의 환경을 만들지 못한 연고로 하나님의 이념과 예수의 이념과 성신의 이념이 우리들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념이 연결되지 않으면 천상에서 움직이는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와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크리스찬들은 자유로운 신앙을 함으로써 해방의 은사를 받은 자리에 서 있다고 하면서, 어찌하여 영원을 바라보고 나가지 못하고 있는가. 영광의 주를 통하여 기쁨과 자유의 환경에 처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영원한 생명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시간시간에 따라, 또 때에 따라 변하고, 몇 해를 넘기지 못하는 자신을 놓고 탄식하고 원망하는 자리에 서 있습니까? 이런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면 하나님의 선의 생명과 여러분과는 관계가 먼 입장에 놓여지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자체들이 귀하지만 여러분은 자기의 귀한 가치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귀한 가치를 인정하여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리고, 하늘의 자유의 주인공을 세워 놓는 이 일을 땅 위에서 책임져야 하겠습니다. 그런 하나의 주인공이 나온다면, 그는 예수 앞에서 둘도 없는 특등신부가 안 될래야 안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때와 장소를 초월하여 싸움으로써 하나님의 내적인 사랑의 기준을 찾아 세워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남에게 무엇을 주려는 사랑의 마음을 영원을 중심삼고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그 참주인공을 대함에 있어서도 일시에만 그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한날의 자유와 한날의 기쁨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러분은 영원히 변치 않는 기쁨과 자유의 기준을 그 마음의 터 위에 확고히 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그 기준을 세워야만 영생에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영생의 기준과 일방적인 환경이 아니라 사방적인 환경을 이루어야만 성신의 사랑이 미쳐지고, 성자의 사랑이 미쳐지고, 성부의 사랑이 미쳐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죄를 담당하신 이유
예수님이 우리들 자신의 죄를 맡으시고, 세상죄를 지신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인류의 주인공으로서, 자유의 주인공으로서, 생명의 주인공으로서, 사랑의 주인공으로서, 화동의 중보자로서 여러분과 같이 영원을 표준하고 동고동락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지상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받을 것이고, 하나님의 창조이념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 의해 창조이념이 이뤄지면 하나님이 친히 '사탄을 이긴 영원한 승리자'라고 축복하시고 사랑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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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예수는 왜 세상죄를 지신 어린 양이 되었나
1956.07.11 (수), 한국 전본부교회
오늘저녁 말씀 드리려 하는 제목은'예수는 왜 세상죄를 지신 어린 양이 되었나?'입니다.'예수는 왜 세상죄를 지신 어린양이 되었나,' 이런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이 강림하신 배경
하나님은 자기의 내적인 이상을 실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중심존재로 인간을 지으셨습니다.그래서 그로 말미암아 숨겨진 하늘의 미와 숨겨진 하늘의 사랑과 숨겨진 하늘의 영광을 인간인 아담 해와의 생활을 통하여, 생애를 통하여, 영생의 노정을 통하여 이루고, 어느 때에나 간격이 없는 기쁨의 세계를 만드시려 하셨습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뜻하시던 이런 본연의 뜻은 근본적으로 끊어지고, 인간들은 원치 아니했던 사탄을 하나님 대신 세워 놓고 그 사탄의 주관권내에 거하게 되었습니다.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을 돌리며 하나님을 모시는 생활을 해야 할 인간이 하나님 대신 사탄을 중심삼고 그를 모시고 따르는 수모의 역사를 거듭하여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이것은 여러분들이 잘 아는 바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을 중심삼고 찾아야 할 영광이 남아 있고, 사람을 중심삼고 사랑해야 할 뜻이 남아 있고, 사람을 중심삼고 권고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서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고 계신데, 사탄은 반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파괴하기 위한 싸움, 하나님의 사랑을 파괴하기 위한 싸움, 하늘의 생명을 파괴하기 위한 싸움, 오늘날 인간들을 자기의 수중에 매어 놓고 이를 하나님편으로 넘겨 보내지 않으려는 싸움을 계속하여 나오고 있다는 사실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세우셔서 사탄을 원망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을 세우셔야 하고, 사람을 세우셔서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중심삼고 사탄에게 항의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셔야 하며, 하나님 대신 인간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사탄 대해 항의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또,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탄이 전체 생명의 권한을 갖고 있으니, 하나님은 이것도 항의할 수 있는 사람을 세워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이런 책임이 하나님에게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찾고자 하시는 창조 본연의 인간, 사탄 대하여 공격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이 나오지 않으면 다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길이 없고, 사랑을 돌릴 길이 없으며, 생명을 돌릴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의 중심존재를 세우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4천년 동안 수고하시며 섭리를 하셨습니다.그래서 비로소 하나님이 만민 앞에 찾고자 하셨던 하나의 신앙의 중심, 인간의 대표적인 중심, 하나님의 영광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생명을 증거하기 위해서 세우셨던 분이 누구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님의 책임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해야 할 책임이 무엇이었나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생명을 회복해야 했었습니다.그런데 여기에 가로막고 있는 것이 무엇이었나 하면, 죄라는 것이었습니다.
죄악은 만민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사랑으로 느끼지 못하게 하고, 하늘의 생명을 생명으로 느끼지 못하게 하여 영생의 중심을 세우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무슨 연고인가.그것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혈통적인 죄와 자범적인 죄가 인간을 중심삼고 온 피조만물에까지 사무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먼저 수행해야 할 책임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하기 전에, 하나님의 생명을 회복하기 전에 만민과 온 피조만물 가운데 사무쳐 있는 죄악의 뿌리를 뽑는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이 죄를 뿌리뽑기 위해 만민의 죄를 자기 일신이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이유 때문에 죄를 대신 짊어지셔야 했던가. 그것은 인간들이 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그리고 더군다나 인간들은 진리를 알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이 영광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갖고 만민을 구하기 위해 오셨는데, 그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하나의 조건이 있었으니 그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이 사람과 저 사람, 이 모임과 저 모임, 이 사회와 저 사회, 이 국가와 저 국가 사이에 하나의 철망같이 짜여 있는 죄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죄를 자진하여 청산하기 전에는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영광도 볼 수 없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도 볼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의 생명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로 하여금 이 죄를 청산하도록 해오셨습니다.인간들이 이 죄를 청산하게 되면, 그로 말미암아 그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부여할 수 있고, 하나님의 생명을 부여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부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이 인간들로 하여금 이 죄를 청산하게 하신 것은, 인간들 스스로 지금까지 알지 못하였던 주인공을 알게 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그 주인공을 하늘의 영광을 대신하여 섬길 수 있으며, 하늘의 사랑을 대신하여 섬길 수 있으며, 하늘의 생명을 대신하여 섬길 수 있다면, 그런 우리가 된다면 하늘이 중심으로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를 끊을 수 있는 힘은 없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연고로 이 세계가 종말이 될 때까지는 나와 예수님과 성신 사이에는 없애지 않으면 안 될 죄의 짐이 남아 있습니다.이 죄의 짐은 개인을 중심삼은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 하늘땅에 남아 있는데, 이세계 하늘 땅 전체의 죄짐을 맡을 수 있는 한 존재가 오신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쁜 소식이요 구원과 승리의 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자체들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죄를 맡겼습니까?또 우리 가족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죄를 맡겼습니까?우리의 사회, 국가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죄를 맡겼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죄를 맡겼습니까?아직까지 죄악의 미해탈권내에 남아 있는 성도가 이 땅 위에 몇명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일상의 신앙생활을 통해 여러분이 해야 할 일
여러분 자신들이 일상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의 죄를 몽땅 예수님께 맡겨 드리는 일입니다.여러분은 여러분의 죄를 몽땅 예수님께 넘겨 드렸습니까?스스로 반문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실제로'아버지여!내게 남아 있는 죄는 내 스스로 풀 수 없사옵니다. 나의 죄를 아버님께 맡기옵니다' 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이 땅 위에 나와야 합니다.그렇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상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나에게 아직까지 죄의 짐이 남아 있고, 내 가정에 아직까지 죄의 짐이 남아 있고, 우리 사회, 우리 국가, 우리 세계, 하늘 땅에 아직까지 죄로 인한 탄식의 요소가 남아 있다 할진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은 연장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시간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연장시키는 일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께'내 죄를 몽땅 맡으십시오'라는 회개의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주여!내 죄를 맡으십시오'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내 마음 몸을 합하고 예수의 마음 몸을 합하여 예수께 맡겨진 죄의 보따리를 짊어지고 예수의 손을 거치고 내 손을 거쳐서 죄의 밑창까지 뚫고 나올 수 있는 혁명의 노정을 거치지 않으면, 성신을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대하여 죄를 완전히 청산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가 이 땅에 와서 죄를 맡겠다고 하시는 뜻은 무엇인가? 우리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잃어버렸고, 참부모님을 잃어버렸으며, 나를 지켜 주고 사랑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을 잃어버렸는데, 이 중심존재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었습니다.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모든 죄를 맡고 난 후에는 하늘과 땅, 사탄이 예수님 한분을 놓고 결판을 벌이게 되는 때를 맞을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자신의 죄를 전부 예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맡기지 않는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주인으로서 간섭해 주고 싶어도 간섭해 주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예수님은 박복자 중의 박복자
우리는 예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하겠습니다.이 세상을 찾아오신 예수의 심정을 알아야 하겠습니다.그 예수의 심정은 온 우주의 죄를 짊어지고 싶은 심정이었다는 것입니다.인간적으로 보면 예수님은 불쌍한 분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예수와 같이 박복한 사람이 없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찾기 위하여, 은사를 입히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건만, 어느누구 한 사람 예수의 소원을 알고'예수님은 나의 영원한 이상이요, 불변의 주인이로소이다'라고 하면서 모시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민족을 위해 오셨고, 국가를 위해 오셨고, 세계를 위해 오셨고, 하늘 땅을 위해 오셨지만 인류 앞에 세워진 예수 그리스도는 말할 수 없이 박복한 사람 중의 박복한 사람이었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이땅에 오셔서 말씀하신 말씀과 움직이신 행동을 놓고'오 환영하옵니다'라고 하면서 믿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이와 같이 인간적으로 보면 예수님 개인이 처한 환경은 말할 수 없이 불안한 환경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역시 한 인간으로서 그 느끼는 감성은 여러분과 같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그렇지만 자기 일신의 죄를 해결하지 못하는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전 인류의 과거와 미래의 죄를 책임지신 예수님은 수고로움도 잊으시고 외로운 자리에서 자기의 죄를 원망하는 개인 개인을 위로해 주는 입장에 서셨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그리고 인류의 죄를 맡으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내적인 수고와 고통, 서러움을 우리들이 위로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의 죄를 놓고 서러워해야 하겠습니다.서러워하는데는 어떤 이유로 서러워해야 되느냐 하면 이 서러움이 직접 하늘에 사무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이 서러움을 위로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 성신입니다.
이에 우리들은 예수와 성신의 협조를 받아 우리의 죄를 벗어야 하겠습니다.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위하여 죄를 맡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민은 이 땅 위에서 풀리지 않고 하늘에서도 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성신은 우리의 죄를 하늘 앞에 사죄하는 일을 담당하고 계십니다.이것은 인간이 천상에 계신 하나님이나 예수님과 직접적인 관계가 맺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상에서 역사하시는 성신의 협조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속죄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실제 우리의 죄를 맡아 수고하시는 분은 성신입니다. 성신은 우리를 위하여, 죄인같이 불쌍한 나의 신세를 대신하여 중간입장에서 수고하고 계심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성신의 수고는 어떤 수고인가.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수고는 우리의 죄를 맡으신 수고였고, 성신의 수고는 여러분들이 울면 같이 우시고, 여러분이 십자가에 달리면 같이 달리신 수고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고비를 넘는 수고의 역사를 오늘도 여러분을 위해서 계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이것을 여러분은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와 성신의 수고가 나를 중간에 놓고 하나가 되어 하늘이 요구하는 그 수고의 기준을 넘어서게 될 때에 땅위에서 우리가 저지른 죄가 모두 속죄되는 것입니다.
성신의 수고에 대한 인간의 책임
우리들은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맞기 위하여 나만 수고한 줄 알았는데 나의 배후에서 나 이상 수고하신 성신이 계심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바라시는 것은 인간들의 수고보다도 성신의 수고가 크기 때문에 이 성신을 세우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대신하고 인간들을 규합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그러한 한 날이 찾아지지 않으면 예수가 이 땅에 다시 오셔서 만민의 주인공으로 서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이 악을 대하여 나서게 될 때, 우리가 저지른 죄로 말미암아 성신이 대신 땅에서 수고하시게 되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또 하늘 땅 어디에 가더라도 우리는 하늘의 원한을 벗어날 도리가 없는 죄인들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죄를 깨달아서 이제 우리는 마음과 몸을 다 바쳐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먼저는 성신의 수고에 의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의 도수를 채움으로써 그 수고의 짐을 벗겨 드려야 하겠습니다.이와 같이 나로 말미암아 성신의 수고가 끝이 나고 예수님의 수고가 끝이 나고 하나님의 수고가 끝이 나야 우리를 위해 죄를 맡기에 수고하신 하늘의 복귀섭리의 뜻이 종결되는 것입니다.그리고 우리 자체들은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의 주인공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인자로 이 땅에 오셨다 가셨습니다.예수님은 체(體)를 갖춘 하나의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다 가셨습니다.여러분이 영계를 통하여 보면 예수님은 우리와 일문일답할 수 있는 체를 갖고 계시기에, 여러분의 영안이 열리면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고 감사드릴 수 있지만, 성신을 대해서는 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신은 체를 갖고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실체를 쓴 하늘의 주인공으로, 피조세계의 중심으로 이 땅에 오셨었습니다.그런데 성신은 아직까지 체를 갖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성신의 수고에 대해 직접 위로해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이런 원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 2천년의 수고의 역사를 경과하면서 신랑신부의 이념을 세웠던 것인데 이것을 오늘날 크리스찬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신랑 되신 천상의 예수 앞에 신부가 될 수 있는 지상의 실체 성신은 언제 이 땅에 나타날 것인가.
우리가 저지른 범죄는 예수 그리스도만 죽음의 고개를 넘게 한 것이 아니라 성신까지도 그러한 수고의 고개를 넘게 한 것입니다.그런데 내 한 자체를 통하여 그 수고의 원한을 해원하게 되면 그 기쁨과 영광을 예수님께는 돌려 드릴 수 있으되 성신께는 돌려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맡기면 먼저는 성신께서 우리의 죄를 맡으십니다.그런 뒤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맡으시고, 그런 다음에 하나님으로부터 청산을 받는데, 오늘날 우리들은 이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이 일, 이런 사명을 아는 성도들이 나온다면 성신의 감동의 역사는 그들을 통하여 온 인류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다가 가셨는데, 우리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우리들은 예수님과 같은 입장의 신랑격 주인공과 성신과 같은 입장의 신부격 주인공을 찾아야 되겠습니다.그래서 속죄의 은사를 받아야 하겠습니다.그리고 성신과 예수님을 붙들고,'성신과 성자, 그리고 하나님이여!축복해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2천년의 수고와 성신의 2천년의 수고는 이 땅 위에서 완결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어찌하여 세상죄를 담당하셨는고? 그것은 우리를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자유를 소유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주인을 찾게 한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본연의 모습을 갖추게 해서 사탄의 지배를 받던 입장에서 사탄을 지배할 수 있는 입장으로 옮겨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 노정을 다 거친 후에 자유의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탄을 격멸하고 죄에서 자유로와지려면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은 죄입니다.그런데 죄 자체가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우리가 지은 죄를 조건으로 사탄이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인을 찾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이고, 죄를 벗는 것도 몸과 마음을 중심삼고 싸워야 하나, 자유를 찾으려면 사탄과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과 싸우게 될 때 내 일신만으로는 사탄을 격멸할 수 없습니다. 성신만으로도 사탄을 격멸할 수 없습니다.그리고 예수님만으로도 사탄을 격멸할 수 없고 하나님만으로도 사탄을 격멸할 수 없습니다.이렇게 말을 하면 어폐가 있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자체만으로 사탄을 격멸할 수 있다면 어찌하여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의 30여 평생과 십자가의 희생이 필요했겠습니까?
이제 우리들이 사탄과의 싸움을 전개해야 하겠습니다.그리고 싸움을 전개하는 데는 누구를 위해서 싸우는가 하는 것을 잘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우리는 먼저 성부 성자 성신을 위해서, 그 다음에 나를 위해서 싸운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우리 크리스찬들은 하늘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나를 위해서 싸우고 있다 하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습니다.그러면, 하늘을 위하여 싸우는 것은 무엇때문인가. 사탄의 공세와 침범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개체가 복된 천리의 한 길을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해 하늘이 동원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땅에도 동원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즉, 천상에는 하나님이 동원되어 있고, 예수가 동원되어 있고, 성신이 동원되어 있으며, 지상에는 여러분이 모르고 있지만 여러분을 위하여 많은 선각자들이 동원되어 있다는 것입니다.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와 같이 수많은 분들이 천상과 지상에서 동원되어 여러분에게 자유를 부여하기 위해 싸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 보답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도 여러분의 마음과 몸을 자유의 자리로 인도하기 위하여 많은 분들이 수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천상에서 오랜 동안 하나님이 수고하고 계시고, 예수님과 성신이 수고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그뿐만 아니라 천천만 성도와 천군천사들이 수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여러분은 이것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또한 인간들이 구속되어 있는 어두운 환경을 수습하기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책임을 수행하는 성도들이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도 안 되겠습니다.
땅 위에서 천륜의 사명을 하며 수고하는 것이 저 나라에서는 영광을 받는다는 것을 우리가 알진대는 하늘 앞에 체면을 세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심판날이 다가오면 여러분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예수의 수고와 같은 수고를 여러분에게 요구할 것입니다.성신의 수고와 같은 수고를 요구할 것입니다.그리고 하나님의 수고와 같은 수고를 요구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수많은 선지성현들이 수고한 것과 같은 수고를 요구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 하나가 편안하고, 나 하나가 안일하고, 나 하나가 즐겁다 하여 그것으로 만족하는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여러분이 이런 생활을 하면, 자기 일신에 미쳐지는 어려움은 모면할지 모르지만 수고의 역사를 해오신 성신과 예수님과 하나님, 그리고 천천만 성도들이 요구하는 것은 피할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자유를 찾고, 자유의 일신이 되고, 자기의 일신을 들어'아버지여!감사합니다'라고 하려면, 예수님을 중심삼고 감사해야 하겠습니다.천상에서 성신과 천천만 성도들은 자신들의 수고의 보답을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돌려 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의 원한은 땅 위의 만민이 해원해 드려야 하고, 예수의 목적은 땅위의 만민이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그리고 그 목적을 땅 위에서 완결지어야 하는 동시에 하늘에서도 완결지어야 할 사명이 인간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해방을 위해 수고한 분들에 대한 보답
예수를 통해서 속죄함을 받고 자유와 해방을 얻었다 할진대, 예수님이 소원하는 것을 이루어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그럴 수 있는 한 사람을 찾는 것이 하늘의 소망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땅이 죄악되고 땅이 악하고 땅이 패역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고, 천륜의 심정을 통하고, 선지성현들의 심정을 통하고, 인류를 대신하여 사탄 앞에 당당히 나설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탄을 대해'너희들이 아무리 강폭할지라도, 너희들의 힘이 강하더라도 너희들에게 지지 않겠다'고 하면서 당당히 공격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자유의 심정을 갖추어 가지고 만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됩니다.이런 하나의 주인공이 나오지 않으면 하늘의 영광과 하늘의 사랑과 하늘의 생명이 우리에게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유의 환경을 만들지 못한 연고로 하나님의 이념과 예수의 이념과 성신의 이념이 우리들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이념이 연결되지 않으면 천상에서 움직이는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와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크리스찬들은 자유로운 신앙을 함으로써 해방의 은사를 받은 자리에 서 있다고 하면서, 어찌하여 영원을 바라보고 나가지 못하고 있는가.영광의 주를 통하여 기쁨과 자유의 환경에 처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영원한 생명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시간시간에 따라, 또 때에 따라 변하고, 몇 해를 넘기지 못하는 자신을 놓고 탄식하고 원망하는 자리에 서 있습니까?이런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면 하나님의 선의 생명과 여러분과는 관계가 먼 입장에 놓여지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자체들이 귀하지만 여러분은 자기의 귀한 가치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귀한 가치를 인정하여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리고, 하늘의 자유의 주인공을 세워 놓는 이 일을 땅 위에서 책임져야 하겠습니다.그런 하나의 주인공이 나온다면, 그는 예수 앞에서 둘도 없는 특등신부가 안 될래야 안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때와 장소를 초월하여 싸움으로써 하나님의 내적인 사랑의 기준을 찾아 세워야 하겠습니다.그리고 남에게 무엇을 주려는 사랑의 마음을 영원을 중심삼고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또 그 참주인공을 대함에 있어서도 일시에만 그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한날의 자유와 한날의 기쁨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러분은 영원히 변치 않는 기쁨과 자유의 기준을 그 마음의 터 위에 확고히 해야 하겠습니다.여러분은 그 기준을 세워야만 영생에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이런 영생의 기준과 일방적인 환경이 아니라 사방적인 환경을 이루어야만 성신의 사랑이 미쳐지고, 성자의 사랑이 미쳐지고, 성부의 사랑이 미쳐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죄를 담당하신 이유
예수님이 우리들 자신의 죄를 맡으시고, 세상죄를 지신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인류의 주인공으로서, 자유의 주인공으로서, 생명의 주인공으로서, 사랑의 주인공으로서, 화동의 중보자로서 여러분과 같이 영원을 표준하고 동고동락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지상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받을 것이고, 하나님의 창조이념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 의해 창조이념이 이뤄지면 하나님이 친히'사탄을 이긴 영원한 승리자'라고 축복하시고 사랑하실 것입니다.
말씀선집 제1권 11편
예수는 왜 세상 죄를 지신 어린 양이 되었나(훈독본)
1956.07.11 (수), 한국 전본부교회
요한복음 1:24-34
말씀선집, 예수는 왜 세상 죄를 지신 어린양이 되었나1.mp3
오늘저녁 말씀 드리려 하는 제목은 '예수는 왜 세상 죄를 지신 어린 양이 되었나?'입니다.
예수님이 강림하신 배경
하나님은 자기의 내적인 이상을 실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중심존재로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로 말미암아 숨겨진 하늘의 미와 숨겨진 하늘의 사랑과 숨겨진 하늘의 영광을 인간인 아담 해와의 생활을 통하여, 생애를 통하여, 영생의 노정을 통하여 이루고, 어느 때에나 간격이 없는 기쁨의 세계를 만드시려 하셨습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뜻하시던 이런 본연의 뜻은 근본적으로 끊어지고, 인간들은 원치 아니했던 사탄을 하나님 대신 세워 놓고 그 사탄의 주관권내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을 돌리며 하나님을 모시는 생활을 해야 할 인간이 하나님 대신 사탄을 중심삼고 그를 모시고 따르는 수모의 역사를 거듭하여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을 중심삼고 찾아야 할 영광이 남아 있고, 사랑해야 할 뜻이 남아 있고, 권고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서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고 계신데, 사탄은 반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파괴하기 위한 싸움, 하나님의 사랑을 파괴하기 위한 싸움, 하늘의 생명을 파괴하기 위한 싸움, 오늘날 인간들을 자기의 수중에 매어 놓고 이를 하나님편으로 넘겨 보내지 않으려는 싸움을 계속하여 나오고 있다는 사실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세우셔서 사탄을 원망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을 세우셔야 하고, 사람을 세우셔서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중심삼고 사탄에게 항의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셔야 하며, 하나님 대신 인간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사탄 대해 항의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탄이 전체 생명의 권한을 갖고 있으니, 하나님은 이것도 항의할 수 있는 사람을 세워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책임이 하나님에게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찾고자 하시는 창조 본연의 인간, 사탄 대하여 공격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이 나오지 않으면 다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길이 없고, 사랑을 돌릴 길이 없으며, 생명을 돌릴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의 중심존재를 세우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4천년 동안 수고하시며 섭리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비로소 하나님이 만민 앞에 찾고자 하셨던 하나의 신앙의 중심, 인간의 대표적인 중심, 하나님의 영광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생명을 증거하기 위해서 세우셨던 분이 누구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님의 책임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해야 할 책임이 무엇이었나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생명을 회복해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가로막고 있는 것이 무엇이었나 하면, 죄라는 것이었습니다.
죄악은 만민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사랑으로 느끼지 못하게 하고, 하늘의 생명을 생명으로 느끼지 못하게 하여 영생의 중심을 세우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무슨 연고인가. 그것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혈통적인 죄와 자범적인 죄가 인간을 중심삼고 온 피조만물에까지 사무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이 죄를 뿌리뽑기 위해 만민의 죄를 자기 일신이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이유 때문에 죄를 대신 짊어지셔야 했던가. 그것은 인간들이 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더군다나 인간들은 진리를 알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이 영광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갖고 만민을 구하기 위해 오셨는데, 그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하나의 조건이 있었으니 그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이 사람과 저 사람, 이 모임과 저 모임, 이 사회와 저 사회, 이 국가와 저 국가 사이에 하나의 철망같이 짜여 있는 죄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죄를 자진하여 청산하기 전에는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영광도 볼 수 없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도 볼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의 생명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로 하여금 이 죄를 청산하도록 해오셨습니다. 인간들이 이 죄를 청산하게 되면, 그로 말미암아 그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부여할 수 있고, 하나님의 생명을 부여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부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이 인간들로 하여금 이 죄를 청산하게 하신 것은, 인간들 스스로 지금까지 알지 못하였던 주인공을 알게 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그 주인공을 하늘의 영광을 대신하여 섬길 수 있으며, 하늘의 사랑을 대신하여 섬길 수 있으며, 하늘의 생명을 대신하여 섬길 수 있다면, 그런 우리가 된다면 하늘이 중심으로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를 끊을 수 있는 힘은 없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연고로 이 세계가 종말이 될 때까지는 나와 예수님과 성신 사이에는 없애지 않으면 안 될 죄의 짐이 남아 있습니다. 이 죄의 짐은 개인을 중심삼은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 하늘땅에 남아 있는데, 이 세계 하늘 땅 전체의 죄짐을 맡을 수 있는 한 존재가 오신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쁜 소식이요 구원과 승리의 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자체들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죄를 맡겼습니까? 또 우리 가족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죄를 맡겼습니까? 우리의 사회, 국가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죄를 맡겼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죄를 맡겼습니까? 아직까지 죄악의 미해탈권내에 남아 있는 성도가 이 땅 위에 몇명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일상의 신앙생활을 통해 여러분이 해야 할 일
여러분은 이 시간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연장시키는 일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께 '내 죄를 몽땅 맡으십시오'라는 회개의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주여! 내 죄를 맡으십시오'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내 마음 몸을 합하고 예수의 마음 몸을 합하여 예수께 맡겨진 죄의 보따리를 짊어지고 예수의 손을 거치고 내 손을 거쳐서 죄의 밑창까지 뚫고 나올 수 있는 혁명의 노정을 거치지 않으면, 성신을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대하여 죄를 완전히 청산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가 이 땅에 와서 죄를 맡겠다고 하시는 뜻은 무엇인가? 우리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잃어버렸고, 참부모님을 잃어버렸으며, 나를 지켜 주고 사랑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을 잃어버렸는데, 이 중심존재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모든 죄를 맡고 난 후에는 하늘과 땅, 사탄이 예수님 한분을 놓고 결판을 벌이게 되는 때를 맞을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자신의 죄를 전부 예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맡기지 않는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주인으로서 간섭해 주고 싶어도 간섭해 주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예수님은 박복자 중의 박복자
우리는 예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을 찾아오신 예수의 심정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 예수의 심정은 온 우주의 죄를 짊어지고 싶은 심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예수님은 불쌍한 분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예수와 같이 박복한 사람이 없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찾기 위하여, 은사를 입히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건만, 어느누구 한 사람 예수의 소원을 알고 '예수님은 나의 영원한 이상이요, 불변의 주인이로소이다'라고 하면서 모시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역시 한 인간으로서 그 느끼는 감성은 여러분과 같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지만 자기 일신의 죄를 해결하지 못하는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전 인류의 과거와 미래의 죄를 책임지신 예수님은 수고로움도 잊으시고 외로운 자리에서 자기의 죄를 원망하는 개인 개인을 위로해 주는 입장에 서셨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죄를 맡으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내적인 수고와 고통, 서러움을 우리들이 위로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의 죄를 놓고 서러워해야 하겠습니다. 서러워하는데는 어떤 이유로 서러워해야 되느냐 하면 이 서러움이 직접 하늘에 사무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 서러움을 위로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 성신입니다.
이에 우리들은 예수와 성신의 협조를 받아 우리의 죄를 벗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위하여 죄를 맡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민은 이 땅 위에서 풀리지 않고 하늘에서도 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성신은 우리의 죄를 하늘 앞에 사죄하는 일을 담당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인간이 천상에 계신 하나님이나 예수님과 직접적인 관계가 맺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상에서 역사하시는 성신의 협조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속죄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실제 우리의 죄를 맡아 수고하시는 분은 성신입니다. 성신은 우리를 위하여, 죄인같이 불쌍한 나의 신세를 대신하여 중간입장에서 수고하고 계심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성신의 수고는 어떤 수고인가.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수고는 우리의 죄를 맡으신 수고였고, 성신의 수고는 여러분들이 울면 같이 우시고, 여러분이 십자가에 달리면 같이 달리신 수고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고비를 넘는 수고의 역사를 오늘도 여러분을 위해서 계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와 성신의 수고가 나를 중간에 놓고 하나가 되어 하늘이 요구하는 그 수고의 기준을 넘어서게 될 때에 땅위에서 우리가 저지른 죄가 모두 속죄되는 것입니다.
성신의 수고에 대한 인간의 책임
우리들은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맞기 위하여 나만 수고한 줄 알았는데 나의 배후에서 나 이상 수고하신 성신이 계심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바라시는 것은 인간들의 수고보다도 성신의 수고가 크기 때문에 이 성신을 세우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대신하고 인간들을 규합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한 날이 찾아지지 않으면 예수가 이 땅에 다시 오셔서 만민의 주인공으로 서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이 악을 대하여 나서게 될 때, 우리가 저지른 죄로 말미암아 성신이 대신 땅에서 수고하시게 되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하늘 땅 어디에 가더라도 우리는 하늘의 원한을 벗어날 도리가 없는 죄인들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죄를 깨달아서 이제 우리는 마음과 몸을 다 바쳐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먼저는 성신의 수고에 의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의 도수를 채움으로써 그 수고의 짐을 벗겨 드려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나로 말미암아 성신의 수고가 끝이 나고 예수님의 수고가 끝이 나고 하나님의 수고가 끝이 나야 우리를 위해 죄를 맡기에 수고하신 하늘의 복귀섭리의 뜻이 종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체들은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의 주인공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자로 이 땅에 오셨다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체(體)를 갖춘 하나의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다 가셨습니다. 여러분이 영계를 통하여 보면 예수님은 우리와 일문일답할 수 있는 체를 갖고 계시기에, 여러분의 영안이 열리면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고 감사드릴 수 있지만, 성신을 대해서는 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신은 체를 갖고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실체를 쓴 하늘의 주인공으로, 피조세계의 중심으로 이 땅에 오셨었습니다. 그런데 성신은 아직까지 체를 갖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성신의 수고에 대해 직접 위로해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원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 2천년의 수고의 역사를 경과하면서 신랑신부의 이념을 세웠던 것인데 이것을 오늘날 크리스찬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신랑 되신 천상의 예수 앞에 신부가 될 수 있는 지상의 실체 성신은 언제 이 땅에 나타날 것인가.
우리가 저지른 범죄는 예수 그리스도만 죽음의 고개를 넘게 한 것이 아니라 성신까지도 그러한 수고의 고개를 넘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내 한 자체를 통하여 그 수고의 원한을 해원하게 되면 그 기쁨과 영광을 예수님께는 돌려 드릴 수 있으되 성신께는 돌려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맡기면 먼저는 성신께서 우리의 죄를 맡으십니다. 그런 뒤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맡으시고, 그런 다음에 하나님으로부터 청산을 받는데, 오늘날 우리들은 이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 일, 이런 사명을 아는 성도들이 나온다면 성신의 감동의 역사는 그들을 통하여 온 인류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다가 가셨는데, 우리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들은 예수님과 같은 입장의 신랑격 주인공과 성신과 같은 입장의 신부격 주인공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속죄의 은사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성신과 예수님을 붙들고, '성신과 성자, 그리고 하나님이여! 축복해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2천년의 수고와 성신의 2천년의 수고는 이 땅 위에서 완결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어찌하여 세상죄를 담당하셨는고? 그것은 우리를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자유를 소유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주인을 찾게 한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본연의 모습을 갖추게 해서 사탄의 지배를 받던 입장에서 사탄을 지배할 수 있는 입장으로 옮겨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 노정을 다 거친 후에 자유의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탄을 격멸하고 죄에서 자유로와지려면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은 죄입니다. 그런데 죄 자체가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조건으로 사탄이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인을 찾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이고, 죄를 벗는 것도 몸과 마음을 중심삼고 싸워야 하나, 자유를 찾으려면 사탄과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과 싸우게 될 때 내 일신만으로는 사탄을 격멸할 수 없습니다. 성신만으로도 사탄을 격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만으로도 사탄을 격멸할 수 없고 하나님만으로도 사탄을 격멸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 어폐가 있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자체만으로 사탄을 격멸할 수 있다면 어찌하여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의 30여 평생과 십자가의 희생이 필요했겠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 개체가 복된 천리의 한 길을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해 하늘이 동원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땅에도 동원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즉, 천상에는 하나님이 동원되어 있고, 예수가 동원되어 있고, 성신이 동원되어 있으며, 지상에는 여러분이 모르고 있지만 여러분을 위하여 많은 선각자들이 동원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와 같이 수많은 분들이 천상과 지상에서 동원되어 여러분에게 자유를 부여하기 위해 싸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 보답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도 여러분의 마음과 몸을 자유의 자리로 인도하기 위하여 많은 분들이 수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상에서 오랜 동안 하나님이 수고하고 계시고, 예수님과 성신이 수고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천천만 성도와 천군천사들이 수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또한 인간들이 구속되어 있는 어두운 환경을 수습하기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책임을 수행하는 성도들이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도 안 되겠습니다.
땅 위에서 천륜의 사명을 하며 수고하는 것이 저 나라에서는 영광을 받는다는 것을 우리가 알진대는 하늘 앞에 체면을 세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심판날이 다가오면 여러분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예수의 수고와 같은 수고를 여러분에게 요구할 것입니다. 성신의 수고와 같은 수고를 요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수고와 같은 수고를 요구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수많은 선지성현들이 수고한 것과 같은 수고를 요구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 하나가 편안하고, 나 하나가 안일하고, 나 하나가 즐겁다 하여 그것으로 만족하는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생활을 하면, 자기 일신에 미쳐지는 어려움은 모면할지 모르지만 수고의 역사를 해오신 성신과 예수님과 하나님, 그리고 천천만 성도들이 요구하는 것은 피할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자유를 찾고, 자유의 일신이 되고, 자기의 일신을 들어 '아버지여! 감사합니다'라고 하려면, 예수님을 중심삼고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천상에서 성신과 천천만 성도들은 자신들의 수고의 보답을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돌려 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원한은 땅 위의 만민이 해원해 드려야 하고, 예수의 목적은 땅위의 만민이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땅 위에서 완결지어야 하는 동시에 하늘에서도 완결지어야 할 사명이 인간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해방을 위해 수고한 분들에 대한 보답
예수를 통해서 속죄함을 받고 자유와 해방을 얻었다 할진대, 예수님이 소원하는 것을 이루어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한 사람을 찾는 것이 하늘의 소망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유의 환경을 만들지 못한 연고로 하나님의 이념과 예수의 이념과 성신의 이념이 우리들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념이 연결되지 않으면 천상에서 움직이는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와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크리스찬들은 자유로운 신앙을 함으로써 해방의 은사를 받은 자리에 서 있다고 하면서, 어찌하여 영원을 바라보고 나가지 못하고 있는가. 영광의 주를 통하여 기쁨과 자유의 환경에 처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영원한 생명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시간시간에 따라, 또 때에 따라 변하고, 몇 해를 넘기지 못하는 자신을 놓고 탄식하고 원망하는 자리에 서 있습니까? 이런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면 하나님의 선의 생명과 여러분과는 관계가 먼 입장에 놓여지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자체들이 귀하지만 여러분은 자기의 귀한 가치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귀한 가치를 인정하여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리고, 하늘의 자유의 주인공을 세워 놓는 이 일을 땅 위에서 책임져야 하겠습니다. 그런 하나의 주인공이 나온다면, 그는 예수 앞에서 둘도 없는 특등신부가 안 될래야 안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때와 장소를 초월하여 싸움으로써 하나님의 내적인 사랑의 기준을 찾아 세워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남에게 무엇을 주려는 사랑의 마음을 영원을 중심삼고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그 참주인공을 대함에 있어서도 일시에만 그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한날의 자유와 한날의 기쁨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러분은 영원히 변치 않는 기쁨과 자유의 기준을 그 마음의 터 위에 확고히 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그 기준을 세워야만 영생에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영생의 기준과 일방적인 환경이 아니라 사방적인 환경을 이루어야만 성신의 사랑이 미쳐지고, 성자의 사랑이 미쳐지고, 성부의 사랑이 미쳐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죄를 담당하신 이유
예수님이 우리들 자신의 죄를 맡으시고, 세상죄를 지신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인류의 주인공으로서, 자유의 주인공으로서, 생명의 주인공으로서, 사랑의 주인공으로서, 화동의 중보자로서 여러분과 같이 영원을 표준하고 동고동락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지상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받을 것이고, 하나님의 창조이념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 의해 창조이념이 이뤄지면 하나님이 친히 '사탄을 이긴 영원한 승리자'라고 축복하시고 사랑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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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예수는 왜 세상죄를 지신 어린 양이 되었나
1956.07.11 (수), 한국 전본부교회
오늘저녁 말씀 드리려 하는 제목은'예수는 왜 세상죄를 지신 어린 양이 되었나?'입니다.'예수는 왜 세상죄를 지신 어린양이 되었나,' 이런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이 강림하신 배경
하나님은 자기의 내적인 이상을 실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중심존재로 인간을 지으셨습니다.그래서 그로 말미암아 숨겨진 하늘의 미와 숨겨진 하늘의 사랑과 숨겨진 하늘의 영광을 인간인 아담 해와의 생활을 통하여, 생애를 통하여, 영생의 노정을 통하여 이루고, 어느 때에나 간격이 없는 기쁨의 세계를 만드시려 하셨습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뜻하시던 이런 본연의 뜻은 근본적으로 끊어지고, 인간들은 원치 아니했던 사탄을 하나님 대신 세워 놓고 그 사탄의 주관권내에 거하게 되었습니다.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을 돌리며 하나님을 모시는 생활을 해야 할 인간이 하나님 대신 사탄을 중심삼고 그를 모시고 따르는 수모의 역사를 거듭하여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이것은 여러분들이 잘 아는 바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을 중심삼고 찾아야 할 영광이 남아 있고, 사람을 중심삼고 사랑해야 할 뜻이 남아 있고, 사람을 중심삼고 권고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서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고 계신데, 사탄은 반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파괴하기 위한 싸움, 하나님의 사랑을 파괴하기 위한 싸움, 하늘의 생명을 파괴하기 위한 싸움, 오늘날 인간들을 자기의 수중에 매어 놓고 이를 하나님편으로 넘겨 보내지 않으려는 싸움을 계속하여 나오고 있다는 사실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세우셔서 사탄을 원망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을 세우셔야 하고, 사람을 세우셔서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중심삼고 사탄에게 항의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셔야 하며, 하나님 대신 인간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사탄 대해 항의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또,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탄이 전체 생명의 권한을 갖고 있으니, 하나님은 이것도 항의할 수 있는 사람을 세워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이런 책임이 하나님에게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찾고자 하시는 창조 본연의 인간, 사탄 대하여 공격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이 나오지 않으면 다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길이 없고, 사랑을 돌릴 길이 없으며, 생명을 돌릴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의 중심존재를 세우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4천년 동안 수고하시며 섭리를 하셨습니다.그래서 비로소 하나님이 만민 앞에 찾고자 하셨던 하나의 신앙의 중심, 인간의 대표적인 중심, 하나님의 영광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생명을 증거하기 위해서 세우셨던 분이 누구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님의 책임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해야 할 책임이 무엇이었나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생명을 회복해야 했었습니다.그런데 여기에 가로막고 있는 것이 무엇이었나 하면, 죄라는 것이었습니다.
죄악은 만민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사랑으로 느끼지 못하게 하고, 하늘의 생명을 생명으로 느끼지 못하게 하여 영생의 중심을 세우지 못하게 하였습니다.그것은 무슨 연고인가.그것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혈통적인 죄와 자범적인 죄가 인간을 중심삼고 온 피조만물에까지 사무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먼저 수행해야 할 책임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하기 전에, 하나님의 생명을 회복하기 전에 만민과 온 피조만물 가운데 사무쳐 있는 죄악의 뿌리를 뽑는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이 죄를 뿌리뽑기 위해 만민의 죄를 자기 일신이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이유 때문에 죄를 대신 짊어지셔야 했던가. 그것은 인간들이 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그리고 더군다나 인간들은 진리를 알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이 영광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갖고 만민을 구하기 위해 오셨는데, 그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하나의 조건이 있었으니 그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이 사람과 저 사람, 이 모임과 저 모임, 이 사회와 저 사회, 이 국가와 저 국가 사이에 하나의 철망같이 짜여 있는 죄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죄를 자진하여 청산하기 전에는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영광도 볼 수 없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도 볼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의 생명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로 하여금 이 죄를 청산하도록 해오셨습니다.인간들이 이 죄를 청산하게 되면, 그로 말미암아 그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부여할 수 있고, 하나님의 생명을 부여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부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이 인간들로 하여금 이 죄를 청산하게 하신 것은, 인간들 스스로 지금까지 알지 못하였던 주인공을 알게 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그 주인공을 하늘의 영광을 대신하여 섬길 수 있으며, 하늘의 사랑을 대신하여 섬길 수 있으며, 하늘의 생명을 대신하여 섬길 수 있다면, 그런 우리가 된다면 하늘이 중심으로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를 끊을 수 있는 힘은 없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연고로 이 세계가 종말이 될 때까지는 나와 예수님과 성신 사이에는 없애지 않으면 안 될 죄의 짐이 남아 있습니다.이 죄의 짐은 개인을 중심삼은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 하늘땅에 남아 있는데, 이세계 하늘 땅 전체의 죄짐을 맡을 수 있는 한 존재가 오신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쁜 소식이요 구원과 승리의 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자체들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죄를 맡겼습니까?또 우리 가족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죄를 맡겼습니까?우리의 사회, 국가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죄를 맡겼습니까?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죄를 맡겼습니까?아직까지 죄악의 미해탈권내에 남아 있는 성도가 이 땅 위에 몇명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일상의 신앙생활을 통해 여러분이 해야 할 일
여러분 자신들이 일상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의 죄를 몽땅 예수님께 맡겨 드리는 일입니다.여러분은 여러분의 죄를 몽땅 예수님께 넘겨 드렸습니까?스스로 반문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실제로'아버지여!내게 남아 있는 죄는 내 스스로 풀 수 없사옵니다. 나의 죄를 아버님께 맡기옵니다' 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이 땅 위에 나와야 합니다.그렇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상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나에게 아직까지 죄의 짐이 남아 있고, 내 가정에 아직까지 죄의 짐이 남아 있고, 우리 사회, 우리 국가, 우리 세계, 하늘 땅에 아직까지 죄로 인한 탄식의 요소가 남아 있다 할진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은 연장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시간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연장시키는 일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께'내 죄를 몽땅 맡으십시오'라는 회개의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주여!내 죄를 맡으십시오'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내 마음 몸을 합하고 예수의 마음 몸을 합하여 예수께 맡겨진 죄의 보따리를 짊어지고 예수의 손을 거치고 내 손을 거쳐서 죄의 밑창까지 뚫고 나올 수 있는 혁명의 노정을 거치지 않으면, 성신을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대하여 죄를 완전히 청산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가 이 땅에 와서 죄를 맡겠다고 하시는 뜻은 무엇인가? 우리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잃어버렸고, 참부모님을 잃어버렸으며, 나를 지켜 주고 사랑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을 잃어버렸는데, 이 중심존재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었습니다.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모든 죄를 맡고 난 후에는 하늘과 땅, 사탄이 예수님 한분을 놓고 결판을 벌이게 되는 때를 맞을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자신의 죄를 전부 예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맡기지 않는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주인으로서 간섭해 주고 싶어도 간섭해 주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예수님은 박복자 중의 박복자
우리는 예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하겠습니다.이 세상을 찾아오신 예수의 심정을 알아야 하겠습니다.그 예수의 심정은 온 우주의 죄를 짊어지고 싶은 심정이었다는 것입니다.인간적으로 보면 예수님은 불쌍한 분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예수와 같이 박복한 사람이 없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찾기 위하여, 은사를 입히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건만, 어느누구 한 사람 예수의 소원을 알고'예수님은 나의 영원한 이상이요, 불변의 주인이로소이다'라고 하면서 모시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민족을 위해 오셨고, 국가를 위해 오셨고, 세계를 위해 오셨고, 하늘 땅을 위해 오셨지만 인류 앞에 세워진 예수 그리스도는 말할 수 없이 박복한 사람 중의 박복한 사람이었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이땅에 오셔서 말씀하신 말씀과 움직이신 행동을 놓고'오 환영하옵니다'라고 하면서 믿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이와 같이 인간적으로 보면 예수님 개인이 처한 환경은 말할 수 없이 불안한 환경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역시 한 인간으로서 그 느끼는 감성은 여러분과 같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그렇지만 자기 일신의 죄를 해결하지 못하는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전 인류의 과거와 미래의 죄를 책임지신 예수님은 수고로움도 잊으시고 외로운 자리에서 자기의 죄를 원망하는 개인 개인을 위로해 주는 입장에 서셨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그리고 인류의 죄를 맡으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내적인 수고와 고통, 서러움을 우리들이 위로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의 죄를 놓고 서러워해야 하겠습니다.서러워하는데는 어떤 이유로 서러워해야 되느냐 하면 이 서러움이 직접 하늘에 사무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이 서러움을 위로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 성신입니다.
이에 우리들은 예수와 성신의 협조를 받아 우리의 죄를 벗어야 하겠습니다.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위하여 죄를 맡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민은 이 땅 위에서 풀리지 않고 하늘에서도 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성신은 우리의 죄를 하늘 앞에 사죄하는 일을 담당하고 계십니다.이것은 인간이 천상에 계신 하나님이나 예수님과 직접적인 관계가 맺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상에서 역사하시는 성신의 협조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속죄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실제 우리의 죄를 맡아 수고하시는 분은 성신입니다. 성신은 우리를 위하여, 죄인같이 불쌍한 나의 신세를 대신하여 중간입장에서 수고하고 계심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성신의 수고는 어떤 수고인가.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수고는 우리의 죄를 맡으신 수고였고, 성신의 수고는 여러분들이 울면 같이 우시고, 여러분이 십자가에 달리면 같이 달리신 수고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고비를 넘는 수고의 역사를 오늘도 여러분을 위해서 계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이것을 여러분은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와 성신의 수고가 나를 중간에 놓고 하나가 되어 하늘이 요구하는 그 수고의 기준을 넘어서게 될 때에 땅위에서 우리가 저지른 죄가 모두 속죄되는 것입니다.
성신의 수고에 대한 인간의 책임
우리들은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맞기 위하여 나만 수고한 줄 알았는데 나의 배후에서 나 이상 수고하신 성신이 계심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바라시는 것은 인간들의 수고보다도 성신의 수고가 크기 때문에 이 성신을 세우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대신하고 인간들을 규합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그러한 한 날이 찾아지지 않으면 예수가 이 땅에 다시 오셔서 만민의 주인공으로 서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이 악을 대하여 나서게 될 때, 우리가 저지른 죄로 말미암아 성신이 대신 땅에서 수고하시게 되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또 하늘 땅 어디에 가더라도 우리는 하늘의 원한을 벗어날 도리가 없는 죄인들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죄를 깨달아서 이제 우리는 마음과 몸을 다 바쳐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먼저는 성신의 수고에 의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의 도수를 채움으로써 그 수고의 짐을 벗겨 드려야 하겠습니다.이와 같이 나로 말미암아 성신의 수고가 끝이 나고 예수님의 수고가 끝이 나고 하나님의 수고가 끝이 나야 우리를 위해 죄를 맡기에 수고하신 하늘의 복귀섭리의 뜻이 종결되는 것입니다.그리고 우리 자체들은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의 주인공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인자로 이 땅에 오셨다 가셨습니다.예수님은 체(體)를 갖춘 하나의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다 가셨습니다.여러분이 영계를 통하여 보면 예수님은 우리와 일문일답할 수 있는 체를 갖고 계시기에, 여러분의 영안이 열리면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고 감사드릴 수 있지만, 성신을 대해서는 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신은 체를 갖고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실체를 쓴 하늘의 주인공으로, 피조세계의 중심으로 이 땅에 오셨었습니다.그런데 성신은 아직까지 체를 갖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성신의 수고에 대해 직접 위로해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이런 원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 2천년의 수고의 역사를 경과하면서 신랑신부의 이념을 세웠던 것인데 이것을 오늘날 크리스찬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신랑 되신 천상의 예수 앞에 신부가 될 수 있는 지상의 실체 성신은 언제 이 땅에 나타날 것인가.
우리가 저지른 범죄는 예수 그리스도만 죽음의 고개를 넘게 한 것이 아니라 성신까지도 그러한 수고의 고개를 넘게 한 것입니다.그런데 내 한 자체를 통하여 그 수고의 원한을 해원하게 되면 그 기쁨과 영광을 예수님께는 돌려 드릴 수 있으되 성신께는 돌려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맡기면 먼저는 성신께서 우리의 죄를 맡으십니다.그런 뒤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맡으시고, 그런 다음에 하나님으로부터 청산을 받는데, 오늘날 우리들은 이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이 일, 이런 사명을 아는 성도들이 나온다면 성신의 감동의 역사는 그들을 통하여 온 인류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다가 가셨는데, 우리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우리들은 예수님과 같은 입장의 신랑격 주인공과 성신과 같은 입장의 신부격 주인공을 찾아야 되겠습니다.그래서 속죄의 은사를 받아야 하겠습니다.그리고 성신과 예수님을 붙들고,'성신과 성자, 그리고 하나님이여!축복해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2천년의 수고와 성신의 2천년의 수고는 이 땅 위에서 완결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어찌하여 세상죄를 담당하셨는고? 그것은 우리를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자유를 소유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주인을 찾게 한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본연의 모습을 갖추게 해서 사탄의 지배를 받던 입장에서 사탄을 지배할 수 있는 입장으로 옮겨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 노정을 다 거친 후에 자유의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탄을 격멸하고 죄에서 자유로와지려면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은 죄입니다.그런데 죄 자체가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우리가 지은 죄를 조건으로 사탄이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인을 찾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이고, 죄를 벗는 것도 몸과 마음을 중심삼고 싸워야 하나, 자유를 찾으려면 사탄과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과 싸우게 될 때 내 일신만으로는 사탄을 격멸할 수 없습니다. 성신만으로도 사탄을 격멸할 수 없습니다.그리고 예수님만으로도 사탄을 격멸할 수 없고 하나님만으로도 사탄을 격멸할 수 없습니다.이렇게 말을 하면 어폐가 있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자체만으로 사탄을 격멸할 수 있다면 어찌하여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의 30여 평생과 십자가의 희생이 필요했겠습니까?
이제 우리들이 사탄과의 싸움을 전개해야 하겠습니다.그리고 싸움을 전개하는 데는 누구를 위해서 싸우는가 하는 것을 잘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우리는 먼저 성부 성자 성신을 위해서, 그 다음에 나를 위해서 싸운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우리 크리스찬들은 하늘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나를 위해서 싸우고 있다 하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습니다.그러면, 하늘을 위하여 싸우는 것은 무엇때문인가. 사탄의 공세와 침범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개체가 복된 천리의 한 길을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해 하늘이 동원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땅에도 동원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즉, 천상에는 하나님이 동원되어 있고, 예수가 동원되어 있고, 성신이 동원되어 있으며, 지상에는 여러분이 모르고 있지만 여러분을 위하여 많은 선각자들이 동원되어 있다는 것입니다.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와 같이 수많은 분들이 천상과 지상에서 동원되어 여러분에게 자유를 부여하기 위해 싸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 보답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도 여러분의 마음과 몸을 자유의 자리로 인도하기 위하여 많은 분들이 수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천상에서 오랜 동안 하나님이 수고하고 계시고, 예수님과 성신이 수고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그뿐만 아니라 천천만 성도와 천군천사들이 수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여러분은 이것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또한 인간들이 구속되어 있는 어두운 환경을 수습하기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책임을 수행하는 성도들이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도 안 되겠습니다.
땅 위에서 천륜의 사명을 하며 수고하는 것이 저 나라에서는 영광을 받는다는 것을 우리가 알진대는 하늘 앞에 체면을 세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심판날이 다가오면 여러분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예수의 수고와 같은 수고를 여러분에게 요구할 것입니다.성신의 수고와 같은 수고를 요구할 것입니다.그리고 하나님의 수고와 같은 수고를 요구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수많은 선지성현들이 수고한 것과 같은 수고를 요구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 하나가 편안하고, 나 하나가 안일하고, 나 하나가 즐겁다 하여 그것으로 만족하는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여러분이 이런 생활을 하면, 자기 일신에 미쳐지는 어려움은 모면할지 모르지만 수고의 역사를 해오신 성신과 예수님과 하나님, 그리고 천천만 성도들이 요구하는 것은 피할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자유를 찾고, 자유의 일신이 되고, 자기의 일신을 들어'아버지여!감사합니다'라고 하려면, 예수님을 중심삼고 감사해야 하겠습니다.천상에서 성신과 천천만 성도들은 자신들의 수고의 보답을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돌려 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의 원한은 땅 위의 만민이 해원해 드려야 하고, 예수의 목적은 땅위의 만민이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그리고 그 목적을 땅 위에서 완결지어야 하는 동시에 하늘에서도 완결지어야 할 사명이 인간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해방을 위해 수고한 분들에 대한 보답
예수를 통해서 속죄함을 받고 자유와 해방을 얻었다 할진대, 예수님이 소원하는 것을 이루어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그럴 수 있는 한 사람을 찾는 것이 하늘의 소망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땅이 죄악되고 땅이 악하고 땅이 패역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고, 천륜의 심정을 통하고, 선지성현들의 심정을 통하고, 인류를 대신하여 사탄 앞에 당당히 나설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탄을 대해'너희들이 아무리 강폭할지라도, 너희들의 힘이 강하더라도 너희들에게 지지 않겠다'고 하면서 당당히 공격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자유의 심정을 갖추어 가지고 만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됩니다.이런 하나의 주인공이 나오지 않으면 하늘의 영광과 하늘의 사랑과 하늘의 생명이 우리에게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유의 환경을 만들지 못한 연고로 하나님의 이념과 예수의 이념과 성신의 이념이 우리들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이념이 연결되지 않으면 천상에서 움직이는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와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크리스찬들은 자유로운 신앙을 함으로써 해방의 은사를 받은 자리에 서 있다고 하면서, 어찌하여 영원을 바라보고 나가지 못하고 있는가.영광의 주를 통하여 기쁨과 자유의 환경에 처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영원한 생명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시간시간에 따라, 또 때에 따라 변하고, 몇 해를 넘기지 못하는 자신을 놓고 탄식하고 원망하는 자리에 서 있습니까?이런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면 하나님의 선의 생명과 여러분과는 관계가 먼 입장에 놓여지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자체들이 귀하지만 여러분은 자기의 귀한 가치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귀한 가치를 인정하여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리고, 하늘의 자유의 주인공을 세워 놓는 이 일을 땅 위에서 책임져야 하겠습니다.그런 하나의 주인공이 나온다면, 그는 예수 앞에서 둘도 없는 특등신부가 안 될래야 안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때와 장소를 초월하여 싸움으로써 하나님의 내적인 사랑의 기준을 찾아 세워야 하겠습니다.그리고 남에게 무엇을 주려는 사랑의 마음을 영원을 중심삼고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또 그 참주인공을 대함에 있어서도 일시에만 그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한날의 자유와 한날의 기쁨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러분은 영원히 변치 않는 기쁨과 자유의 기준을 그 마음의 터 위에 확고히 해야 하겠습니다.여러분은 그 기준을 세워야만 영생에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이런 영생의 기준과 일방적인 환경이 아니라 사방적인 환경을 이루어야만 성신의 사랑이 미쳐지고, 성자의 사랑이 미쳐지고, 성부의 사랑이 미쳐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죄를 담당하신 이유
예수님이 우리들 자신의 죄를 맡으시고, 세상죄를 지신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인류의 주인공으로서, 자유의 주인공으로서, 생명의 주인공으로서, 사랑의 주인공으로서, 화동의 중보자로서 여러분과 같이 영원을 표준하고 동고동락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지상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받을 것이고, 하나님의 창조이념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 의해 창조이념이 이뤄지면 하나님이 친히'사탄을 이긴 영원한 승리자'라고 축복하시고 사랑하실 것입니다.
말씀선집 제1권 12편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영광에 참여하자
1956.07.19 (목), 한국 전본부교회
마태복음 11:25-30
오늘 드리려 하는 말씀은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영광에 참여하자' 입니다.
나를 알아준다는 것
천륜의 뜻을 증거해야 할 세례 요한이 뭇 세계 앞에 그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연고로 예수는 사탄과 싸워야 하는 어려운 관문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사정을 알아주어야 할 이스라엘민족이 예수의 사정을 알아주지 못하고, 사탄이 예수 앞에 놓인 어려운 고난의 길을 재촉하는 입장에서, 온 천상천하의 어떠한 존재라도 예수를 알아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입장에 홀로 서서, 천상의 뜻을 알지 못하는 민족에게 예수는 그 뜻을 전하려 하였습니다.
자신이 내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무지한 백성 앞에 전해야 할 사명을 느낀 예수는 자기의 일신을 만민 앞에 세워 놓고 하나님만이 알아준다는 하나의 마음에 의지하여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희망과 새로운 결심을 민족앞에 선포하기 위해 나섰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내용으로서 중요한 말씀입니다.
사람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하면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가질 때 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자신의 과거를 알아주고 현실을 알아주고 나아가서 자신의 미래까지 알아주는 어떤 친구나 어떠한 동지, 또는 스승을 가졌다 할진대 그는 행복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안식의 터는 그런 분들의 품을 중심하고 이루어지는 것이고, 또 그런 분들이 계시는 환경을 통해서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상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해서 자신을 알고 계셨고, 30평생을 통하여 자신을 아시며, 영원하신 섭리의 뜻을 통하여 자신을 알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신을 알아주셨듯이 인간 세상에서 만 인간들을 역사를 통하여 알아주어야 했었고, 그들의 생활을 통하여 알아주어야 했었으며, 미래를 통하여 알아주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아신 예수님은 인간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해야 할 중심적인 존재가 바로 자기 자신임을 느끼면 느낄수록 어떠한 형태로라도 민족 앞에 하나님의 앎을 증거해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알아주심을 민족에게 증거해야 했던 예수님
먼저 예수가 증거하고자 한 것은, 자신은 하나님의 뜻 앞에 4천년 동안 거쳐온 섭리노정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의 인연을 대표한 존재라는 것이었습니다. 4천년 섭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예수를 알아주었듯이 전체 이스라엘민족을 하나님에게 영도해야 할 책임을 느낀 예수는 자신의 생애노정에서 하나님의 앎을 민족 앞에 나타내려 했던 것입니다.
또 그의 30평생 이후의 섭리노정에서 온 인류가 자신의 미래의 이상과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게 될 때, 예수는 하늘로부터 인류가 자기를 알아주는 이상세계까지 그의 일신을 통하여 인류 앞에 알려주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을 느꼈습니다.
과거로부터 현실로, 현실로부터 미래에 이루어질 영원한 천상세계의 일이나 지상의 일이나, 또 어떤 존재물이 무한한 시기를 거쳐 예수님 한 분에게로 미쳐지는 섭리역사가 남아 있음을 생각할 때, 이 섭리를 하늘 앞에 알려주는 것이 예수만의 사명이 아니었고, 천천만 성도들 앞에 알려주는 것도 예수만의 사명이 아니었으며, 역사적인 선조들 앞에 알려주는 것도 예수만의 사명이 아니었습니다.
전체를 대신하여 뜻 앞에 선 예수는 하나님이 자신을 알아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민족을 알아줘야 되었고, 예수가 하나님을 대신하듯이 민족이 예수를 대신해야 함을 민족에게 알게 해야 했으며, 예수가 하나님을 알아주듯이 민족이 예수를 알아주어야 할 관계를 맺지 않으면 예수는 일생에서 앎의 행복을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상을 향하여서는 하나님과 더불어 기뻐할 수 있으되 지상을 대하여서는 사람을 알아주지 못한 연고로 기뻐할 수 없는 입장에 설 수밖에 없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하늘만을 알아달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전한 복음은 하늘만을 위한 복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말씀이나 수고하심이나 모든 어려운 싸움은 역사적인 민족을 위함이었고, 역사를 이끌어 갈 미래의 민족을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예수를 대하던 당시의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을 알듯이 땅 위의 사람들이 예수를 알아주었던들, 예수의 생애가 그토록 서러움으로 엉클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서로 알아주신 정도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수를 알아주었는데 어디까지 알아주셨는가. 하나님은 예수를 어떻게 알아주셨는가. 창조 역사의 기원에서부터 인류 역사의 과정을 통하여, 역사의 인연을 통하여, 그 당시 현실사회 전체에까지, 더 나아가서는 예수의 미래의 이상까지 알아주셨습니다.
무지한 백성 앞에 나타난 예수는 하늘의 분부를 받고 자기 일신을 세워 수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역사노정에서 무한정 수고하신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에 사무쳐 싸웠습니다. 또, 역사 과정에 수고하신 선조들을 위로하고 역사 과정에 어려 있는 서러움을 해원하려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이러한 존재로 세우신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을 위한 마음이 있었고, 그 마음을 인간 앞에 전하고 싶은 애달픈 심정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애달픈 마음이 예수님에게 남아있는 이상 예수님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애달플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책임을 못한 연고로 하나님이 서러움 속에, 그리고 슬픔 속에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예수를 어느 정도까지 아셨는가. 아담 가정을 중심삼은 신랑 신부의 이념을 통하여 자녀의 영광을 온 세계에 드러낼 수 있는 예수로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있었는가. 자신을 역사를 대신한 존재로 알아주신다는 것을 아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중심한 가정생활에서부터 현실 생애노정에까지 신랑 신부의 믿음을 자신으로 인해 지상에 나타내고 선의 영광까지 지상에 나타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씀은 역사의 원한을 풀어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복종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리아의 사정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누구보다도 낮은 자리에서 출발의 터를 닦아야 할 신랑 신부의 믿음을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또 억조창생 중에서 선의 기대를 원하시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는 앎을 인간들이 알아주었어야 예수님이 가지신 사랑의 뜻과 인간들이 관계맺을 수 있었는데 당시의 인간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은 하나님과 의논할 수 있었으되 사람과는 의논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앎과 원한의 심정, 그리고 땅 위에서의 구원섭리를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니 예수님의 서러움이 온 천하를 잃은 서러움보다 더 큰 것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겠습니다.
사랑은 3시대를 거쳐 완성
사랑은 1대에서 완성하지 못하면 3시대를 거쳐 갑니다. 맨 처음에는 천륜의 사랑을 거쳐 부모의 사랑을 거쳐 부부의 사랑을 거쳐갑니다. 우리는 이렇듯 타락과 인간들의 거듭되는 실수 때문에 복귀노정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 중에서 성년이 될 때까지는 부모의 사랑을 받는 시기입니다. 그 시기가 지난 후 자기를 중심삼은 사랑의 시기가 신랑 신부 시기입니다. 그 다음에는 자녀를 대하는 사랑의 시기가 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6천년 역사를 섭리해 오시는데 있어서 예수님이 올 때까지는 어떠한 사랑의 시기였는가. 예수님을 내세워서 하나님이 친히 부모로서 사랑을 주는 시기였습니다. 그 뒤 예수님이 부모의 사랑권을 벗어나 자신의 가정생활을 건설하는 것이 신랑신부의 시기입니다.
그러면 이제 와야 할 시기는 어떤 시기인가. 신랑 신부의 이념을 땅 위에서 종결짓는 시기입니다. 그리하여 땅 위에서 예수님이 내적인 하나님의 뜻을 중심하고 가정적인 기대를 땅 위에 전개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영적 신랑 신부의 생활을 땅 위에 전개시켜야 합니다. 영적인 하늘의 가정생활을 땅 위에 전개시켜 지상에서 역사를 대표한 가정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후 2천년 역사를 거친 후 이제는 천상과 지상이 합하여 내적인 형과 외적인 형이 결부하여 하나의 실체를 이룸으로써 그와 관계를 맺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자체를 중심삼고 새로운 부모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부모의 시기에는 새로운 자녀를 양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새로운 자녀로 말미암아 새로운 신랑 신부의 이념을 땅 위에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상이 역사노정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
그러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무엇이냐. 내적인 가정형과 외적인 신랑 신부의 이념과 자녀의 생활을 총결산하는 것이었습니다. 외적인 기반에서만이 아니라 안팎이 연하여 상대적인 기준을 종결지음으로써 천륜의 운세는 어느 누구에게든지 내적인 것으로부터 하나의 기준을 세울 수 있는 역사적인 가정 형태의 복귀노정을 거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를 통해서든지 현실과 역사적인 사실 뿐만 아니라 결정적인 사실로서 여러분은 하나님이 예수를 세울 때까지의 가정적인 생활형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신약을 중심삼고 2천년 동안 섭리하던 노정의 신랑 신부의 실증적인 내용을 여러분 자체들이 갖지 않으면 신랑 신부의 기준을 당당히 찾아 나설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존할 수 있고 실존할 수 있는 하나의 실체적인 선의 자녀를 땅 위에 두고, 부끄러움의 자녀가 아니라 죄악 역사를 완전히 벗어난, 어떠한 원수도 참소 못할 자녀를 세운 후에는 감추었던 천상의 비밀의 심정을 알고 실체형인 나를 세워 하늘의 사랑을 받고, 하늘과 의논하고, 주고 받게 되는 하늘과의 인연을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신앙생활을 통하여 믿고 있는 예수, 하나님이 알아주셨던 그 예수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여러분이 예수를 아는 정도는 어느 정도인가? 여러분은 신랑 신부의 모습을 예수와 성신으로만 알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일생에서 가정의 실체적인 사랑을 통하고 내적인 사랑을 거쳐서 영원한 생의 발판, 영원한 구원을 이루는 승리의 발판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하늘의 이상과 하늘의 소망은 여러분과 관계가 없게 됩니다. 나아가 그것은 하나님 것은 될 수 있고 예수와 성신의 것은 될 수 있으되 내 것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님 알기를 예수님 그 자체만을 알아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를 중심삼고 화합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예수를 알아주시던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와 이퀄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지상에서 역사를 대신하고 현세를 대신하고 미래를 대신하여 당당코 나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의 존재가 이 땅 위에 나타난다 할진대는, 그 자체는 역사를 아는 자요 예수의 섭리를 아는 자요 예수가 소망하는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자일 것입니다.
이러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을 제시하여도 하나님 앞에 감사드릴 수 있는 사람, 어떠한 환경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는 내가 어떤 무엇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강한 하나님의 희망과 사랑이 동해야 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이 변하고 역사가 변하고 천지가 혼돈되는 마당에서도, 최후의 순간에서까지도 예수가 생각했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하면, 인간이었습니다. 인간을 위해 끊을 수 없는 영원한 관계를 맺어 영원한 생명과 중심의 심정을 대신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십자가도 오너라, 죽음도 어서 오너라'고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생활을 통하여, 생애를 통하여 그러한 느낌을 느끼지 못한다 할진대, 여러분은 예수를 안다 해도 모르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섭리노정의 전반적인 역사 형태를 대표하고, 전체 역사를 대표하고 영원한 역사를 대표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동적인 심정과 정적인 심정에까지 통할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역사에 맺힌 한을 해원하여 만민 앞에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사람으로 나타나지 못한다 할진대, 예수가 찾고 또 요구하고 있는, 즉 하늘이 알아주는 자녀라 할 수 없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러한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자신이 먹는 밥 한 숟갈을 놓고도 하나님께 감사를 돌릴 것이고, 숨쉬는 그 한 숨결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이 알아주는 자녀
천지의 운세가 말없이 돌아가는 것과 같이 내 마음도 새롭게 무한히 돌아가기를 바라는데, 어찌하여 그러하지 못하는가, 천지의 힘과 사랑이 연하여 천륜의 원칙의 기준이 연하여 있다는 것을 우리는 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오늘날 우리들은 내 생활에서, 예수가 하나님을 알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가 하나님의 한을 알아 예수 일신의 영광이 하늘 앞에 돌아간 것과 같이, 나를 통하여 나의 영광을 예수에게 돌릴 수 있게끔 예수를 따라가겠다는 마음이라도 가져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아는데 우리가 예수를 알지 못하면 예수의 숙명적인 소원은 어디에 가서 풀 것인가, 오늘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를 위하여 순간 순간은 산다고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뭇 나라와 뭇 민족을 위하여 존재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역사의 종말시대까지 그 흐름과 천륜의 심정을 영원히 느끼며 만물의 주인공으로서 하늘의 영광을 노래하고 하늘에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의 소망이라 할진대 내 한 자체가 예수를 대신하여 하늘 앞에 영광을 돌려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꿈과 같은 사실을 꿈이 아닌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그러한 뜻을 종결짓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의 심정에 사무쳐 있던 그 요구와 그 소망이 여러분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습니다. 만일 이런 예수님의 심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좇아 아버지의 대신자가 되고 예수님의 대신자가 될 수 있는, 땅 위에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을 알아준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알아줄 것이요, 하나님이 알아 주는 동시에 예수와 성신도 알아줄 것입니다. 또 예수와 성신이 알아주는 동시에 예수와 성신을 연하여 있는 천군천사들이 알아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인간들은 이런 영광의 은사를 은사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⑦ 승리의 영광을 돌리려면
예수님은 하나님만 알아주셨으나 우리는 하나님도 알아주시고 예수와 성신이 알아줄 것이며 하늘에 있는 천천만 성도들이 알아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 위에서 내가 천상의 하나님을 알 수 있다면 하늘로부터 예수와 성신을 통하여 영계에까지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내 한 자체가 이런 인정권 내에 서서 예수님을 통하여 2천년 동안 섭리하시던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이념은 여러분들을 통해서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복된 무리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나아가던 때보다 더 복된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위하여 홀로 죽어 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고 예수와 성신을 위해서도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천천만 성도들이 우리의 나아가는 길을 옹위하고 우리를 환영할 수 있는 자체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내가 깨달았사오니, 아버지여, 운행하시어서 천천만 성도들이 오늘 나로 말미암아 위로받을 수 있게 하소서'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은 하늘의 섭리 전체를 대표하여 승리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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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영광에 참여하자
1956.07.19 (목), 한국 전본부교회
오늘 드리려 하는 말씀은'하나님이 알아주시는 영광에 참여하자''하나님이 알아주시는 영광에 참여하자'입니다.이러한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를 알아준다는 것
천륜의 뜻을 증거해야 할 세례 요한이 뭇 세계 앞에 그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연고로 예수는 사탄과 싸워야 하는 어려운 관문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사정을 알아주어야 할 이스라엘민족이 예수의 사정을 알아주지 못하고, 사탄이 예수 앞에 놓인 어려운 고난의 길을 재촉하는 입장에서, 온 천상천하의 어떠한 존재라도 예수를 알아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입장에 홀로 서서, 천상의 뜻을 알지 못하는 민족에게 예수는 그 뜻을 전하려 하였습니다.
자신이 내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무지한 백성 앞에 전해야 할 사명을 느낀 예수는 자기의 일신을 만민 앞에 세워 놓고 하나님만이 알아준다는 하나의 마음을 의지하여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희망과 새로운 결심을 민족앞에 선포하기 위해 나섰던 것입니다.오늘 말씀은 이러한 내용으로서 중요한 말씀입니다.
사람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하면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가질 때 오는 것입니다.더군다나 자신의 과거를 알아주고 현실을 알아주고 나아가서 자신의 미래까지 알아주는 어떤 친구나 어떠한 동지, 또는 스승을 가졌다 할진대 그는 행복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안식의 터는 그런 분들의 품을 중심하고 이루어지는 것이고, 또 그런 분들이 계시는 환경을 통해서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상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해서 자신을 알고 계셨고, 30평생을 통하여 자신을 아시며, 영원하신 섭리의 뜻을 통하여 자신을 알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신을 알아주셨듯이 인간 세상에서 만 인간들을 역사를 통하여 알아주어야 했었고, 그들의 생활을 통하여 알아주어야 했었으며, 미래를 통하여 알아주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이것을 아신 예수님은 인간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해야 할 중심적인 존재가 바로 자기 자신임을 느끼면 느낄수록 어떠한 형태로라도 민족 앞에 하나님의 앎을 증거해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알아주심을 민족에게 증거해야 했던 예수님
먼저 예수가 증거하고자 한 것은, 자신은 하나님의 뜻 앞에 4천년 동안 거쳐온 섭리노정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의 인연을 대표한 존재라는 것이었습니다.4천년 섭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예수를 알아주었듯이 전체 이스라엘민족을 하나님에게 영도해야 할 책임을 느낀 예수는 자신의 생애노정에서 하나님의 앎을 민족 앞에 나타내려 했던 것입니다.
또 그의 30평생 이후의 섭리노정에서 온 인류가 자신의 미래의 이상과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게 될 때, 예수는 하늘로부터 인류가 자기를 알아주는 이상세계까지 그의 일신을 통하여 인류 앞에 알려주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을 느꼈습니다.
과거로부터 현실로, 현실로부터 미래에 이루어질 영원한 천상세계의 일이나 지상의 일이나, 또 어떤 존재물이 무한한 시기를 거쳐 예수님 한분에게로 미쳐지는 섭리역사가 남아 있음을 생각할 때, 이 섭리를 하늘 앞에 알려주는 것이 예수만의 사명이 아니었고, 천천만 성도들 앞에 알려주는 것도 예수만의 사명이 아니었으며, 역사적인 선조들 앞에 알려주는 것도 예수만의 사명이 아니었습니다.
전체를 대신하여 뜻 앞에 선 예수는 하나님이 자신을 알아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민족을 알아줘야 되었고, 예수가 하나님을 대신하듯이 민족이 예수를 대신해야 함을 민족에게 알게 해야 했으며, 예수가 하나님을 알아주듯이 민족이 예수를 알아주어야 할 관계를 맺지 않으면 예수는 일생에서 앎의 행복을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예수님은 천상을 향하여서는 하나님과 더불어 기뻐할 수 있으되 지상을 대하여서는 사람을 알아주지 못한 연고로 기뻐할 수 없는 입장에 설 수밖에 없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하늘만을 알아달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그가 전한 복음은 하늘만을 위한 복음이 아니었습니다.그의 말씀이나 수고하심이나 모든 어려운 싸움은 역사적인 민족을 위함이었고, 역사를 이끌어 갈 미래의 민족을 위함이었습니다.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예수를 대하던 당시의 사람들은 몰랐습니다.예수가 하나님을 알듯이 땅 위의 사람들이 예수를 알아주었던들, 예수의 생애가 그토록 서러움으로 엉클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서로 알아주신 정도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수를 알아주었는데 어디까지 알아주셨는가. 하나님은 예수를 어떻게 알아주셨는가.창조 역사의 기원에서부터 인류 역사의 과정을 통하여, 역사의 인연을 통하여, 그 당시 현실사회 전체에까지, 더 나아가서는 예수의 미래의 이상까지 알아주셨습니다.
무지한 백성 앞에 나타난 예수는 하늘의 분부를 받고 자기 일신을 세워 수고하였습니다.그리고 역사노정에서 무한정 수고하신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에 사무쳐 싸웠습니다.또, 역사과정에 수고하신 선조들을 위로하고 역사과정에 어려 있는 서러움을 해원하려 했던 것입니다.하나님은 예수를 이러한 존재로 세우신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을 위한 마음이 있었고, 그 마음을 인간 앞에 전하고 싶은 애달픈 심정이 있었습니다.이러한 애달픈 마음이 예수님에게 남아있는 이상 예수님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애달플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인간이 책임을 못한 연고로 하나님이 서러움 속에, 그리고 슬픔 속에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예수를 어느 정도까지 아셨는가.아담 가정을 중심삼은 신랑 신부의 이념을 통하여 자녀의 영광을 온 세계에 드러낼 수 있는 예수로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있었는가.자신을 역사를 대신한 존재로 알아주신다는 것을 아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중심한 가정생활에서부터 현실 생애노정에까지 신랑 신부의 믿음을 자신으로 인해 지상에 나타내고 선의 영광까지 지상에 나타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씀은 역사의 원한을 풀어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복종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리아의 사정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도 알았습니다.누구보다도 낮은 자리에서 출발의 터를 닦아야 할 신랑 신부의 믿음을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또 억조창생 중에서 선의 기대를 원하시는 사실도 알았습니다.이렇듯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는 앎을 인간들이 알아주었어야 예수님이 가지신 사랑의 뜻과 인간들이 관계맺을 수 있었는데 당시의 인간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은 하나님과 의논할 수 있었으되 사람과는 의논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입니다.예수님의 앎과 원한의 심정, 그리고 땅 위에서의 구원섭리를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니 예수님의 서러움이 온 천하를 잃은 서러움보다 더 큰 것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겠습니다.
사랑은 3시대를 거쳐 완성
사랑은 1대에서 완성하지 못하면 3시대를 거쳐 갑니다.맨 처음에는 천륜의 사랑을 거쳐 부모의 사랑을 거쳐 부부의 사랑을 거쳐갑니다. 우리는 이렇듯 타락과 인간들의 거듭되는 실수 때문에 복귀노정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 중에서 성년이 될 때까지는 부모의 사랑을 받는 시기입니다.그 시기가 지난 후 자기를 중심삼은 사랑의 시기가 신랑 신부 시기입니다.그 다음에는 자녀를 대하는 사랑의 시기가 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6천년 역사를 섭리해 오시는데 있어서 예수님이 올 때까지는 어떠한 사랑의 시기였는가.예수님을 내세워서 하나님이 친히 부모로서 사랑을 주는 시기였습니다.그 뒤 예수님이 부모의 사랑권을 벗어나 자신의 가정생활을 건설하는 것이 신랑신부의 시기입니다.
그러면 이제 와야 할 시기는 어떤 시기인가.신랑 신부의 이념을 땅위에서 종결짓는 시기입니다.그리하여 땅 위에서 예수님이 내적인 하나님이 뜻을 중심하고 가정적인 기대를 땅 위에 전개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영적 신랑 신부의 생활을 땅 위에 전개시켜야 합니다.영적인 하늘의 가정생활을 땅 위에 전개시켜 지상에서 역사를 대표한 가정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후 2천년 역사를 거친 후 이제는 천상과 지상이 합하여 내적인 형과 외적인 형이 결부하여 하나의 실체를 이룸으로써 그와 관계를 맺어야 된다는 것입니다.여러분들은 자체를 중심삼고 새로운 부모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부모의 시기에는 새로운 자녀를 양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새로운 자녀로 말미암아 새로운 신랑 신부의 이념을 땅 위에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이러한 이상이 역사노정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
그러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무엇이냐.내적인 가정형과 외적인 신랑 신부의 이념과 자녀의 생활을 총결산하는 것이었습니다.외적인 기반에서만이 아니라 안팎이 연하여 상대적인 기준을 종결지음으로써 천륜의 운세는 어느누구에게든지 내적인 것으로부터 하나의 기준을 세울 수 있는 역사적인 가정 형태의 복귀노정을 거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누구를 통해서든지 현실과 역사적인 사실 뿐만 아니라 결정적인 사실로서 여러분은 하나님이 예수를 세울 때까지의 가정적인 생활형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신약을 중심삼고 2천년 동안 섭리하던 노정의 신랑 신부의 실증적인 내용을 여러분 자체들이 갖지 않으면 신랑 신부의 기준을 당당히 찾아 나설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존할 수 있고 실존할 수 있는 하나의 실체적인 선의 자녀를 땅 위에 두고, 부끄러움의 자녀가 아니라 죄악 역사를 완전히 벗어난, 어떠한 원수도 참소 못할 자녀를 세운 후에는 감추었던 천상의 비밀의 심정을 알고 실체형인 나를 세워 하늘의 사랑을 받고, 하늘과 의논하고, 주고 받게 되는 하늘과의 인연을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신앙생활을 통하여 믿고 있는 예수, 하나님이 알아주셨던 그 예수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여러분이 예수를 아는 정도는 어느 정도인가?여러분은 신랑 신부의 모습을 예수와 성신으로만 알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일생에서 가정의 실체적인 사랑을 통하고 내적인 사랑을 거쳐서 영원한 생의 발판, 영원한 구원을 이루는 승리의 발판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하늘의 이상과 하늘의 소망은 여러분과 관계가 없게 됩니다.나아가 그것은 하나님 것은 될 수 있고 예수와 성신의 것은 될 수 있으되 내 것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님 알기를 예수님 그 자체만을 알아서는 아니 되겠습니다.그런고로 예수를 중심삼고 화합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예수를 알아주시던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와 이퀄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그는 지상에서 역사를 대신하고 현세를 대신하고 미래를 대신하여 당당코 나설 수 있을 것입니다.그러한 하나의 존재가 이 땅위에 나타난다 할진대는, 그 자체는 역사를 아는 자요 예수의 섭리를 아는 자요 예수가 소망하는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자일 것입니다.
이러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을 제시하여도 하나님 앞에 감사드릴 수 있는 사람, 어떠한 환경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예수는 내가 어떤 무엇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강한 하나님의 희망과 사랑이 동해야 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이 변하고 역사가 변하고 천지가 혼돈되는 마당에서도, 최후의 순간에서까지도 예수가 생각했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하면, 인간이었습니다.인간을 위해 끊을 수 없는 영원한 관계를 맺어 영원한 생명과 중심의 심정을 대신하려 했던 것입니다.그런고로'십자가도 오너라, 죽음도 어서 오너라'고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생활을 통하여, 생애를 통하여 그러한 느낌을 느끼지 못한다 할진대, 여러분은 예수를 안다 해도 모르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섭리노정의 전반적인 역사 형태를 대표하고, 전체 역사를 대표하고 영원한 역사를 대표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동적인 심정과 정적인 심정에까지 통할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그리하여 역사에 맺힌 한을 해원하여 만민 앞에 나타나야 되겠습니다.그러한 사람으로 나타나지 못한다 할진대, 예수가 찾고 또 요구하고 있는, 즉 하늘이 알아주는 자녀라 할 수 없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러한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자신이 먹는 밥 한 숟갈을 놓고도 하나님께 감사를 돌릴 것이고, 숨쉬는 그 한 숨결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이 알아주는 자녀
천지의 운세가 말없이 돌아가는 것과 같이 내 마음도 새롭게 무한히 돌아가기를 바라는데, 어찌하여 그러하지 못하는가, 천지의 힘과 사랑이 연하여 천륜의 원칙의 기준이 연하여 있다는 것을 우리는 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오늘날 우리들은 내 생활에서, 예수가 하나님을 알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를 알아야 되겠습니다.그리고 예수가 하나님의 한을 알아 예수 일신의 영광이 하늘 앞에 돌아간 것과 같이, 나를 통하여 나의 영광을 예수에게 돌릴 수 있게끔 예수를 따라가겠다는 마음이라도 가져야 되겠습니다.예수가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아는데 우리가 예수를 알지 못하면 예수의 숙명적인 소원은 어디에 가서 풀것인가, 오늘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를 위하여 순간 순간은 산다고 할는지 모르겠습니다.여러분은 뭇 나라와 뭇 민족을 위하여 존재할 수 있어야겠습니다.역사의 종말시대까지 그 흐름과 천륜의 심정을 영원히 느끼며 만물의 주인공으로서 하늘의 영광을 노래하고 하늘에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의 소망이라 할진대 내 한 자체가 예수를 대신하여 하늘 앞에 영광을 돌려야 되겠습니다.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꿈과 같은 사실을 꿈이 아닌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어야겠습니다.하나님의 소원은 그러한 뜻을 종결짓는 것입니다.하나님과 예수의 심정에 사무쳐 있던 그 요구와 그 소망이 여러분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습니다.만일 이런 예수님의 심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좇아 아버지의 대신자가 되고 예수님의 대신자가 될 수 있는, 땅 위에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을 알아준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알아줄 것이요, 하나님이 알아 주는 동시에 예수와 성신도 알아줄 것입니다.또 예수와 성신이 알아주는 동시에 예수와 성신을 연하여 있는 천군천사들이 알아줄 것입니다.그런데 오늘의 인간들은 이런 영광의 은사를 은사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승리의 영광을 돌리려면
예수님은 하나님만 알아주셨으나 우리는 하나님도 알아주시고 예수와 성신이 알아줄 것이며 하늘에 있는 천천만 성도들이 알아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 위에서 내가 천상의 하나님을 알 수 있다면 하늘로부터 예수와 성신을 통하여 영계에까지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그런고로 내 한 자체가 이런 인정권 내에 서서 예수님을 통하여 2천년 동안 섭리하시던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이념은 여러분들을 통해서 나타나야 합니다.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복된 무리입니다.예수님이 십자가에 나아가던 때보다 더 복된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위하여 홀로 죽어 갔습니다.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고 예수와 성신을 위해서도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그리하여 천천만 성도들이 우리의 나아가는 길을 옹위하고 우리를 환영할 수 있는 자체들이 되어야겠습니다.`내가 깨달았사오니, 아버지여, 운행하시어서 천천만 성도들이 오늘 나로 말미암아 위로받을 수 있게 하소서'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그럴 때에 여러분은 하늘의 섭리 전체를 대표하여 승리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말씀선집 제1권 12편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영광에 참여하자
1956.07.19 (목), 한국 전본부교회
마태복음 11:25-30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영광에 참여하자(말씀선집 제1권 12편 ) - YouTube
오늘 드리려 하는 말씀은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영광에 참여하자' 입니다.
나를 알아준다는 것
천륜의 뜻을 증거해야 할 세례 요한이 뭇 세계 앞에 그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연고로 예수는 사탄과 싸워야 하는 어려운 관문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사정을 알아주어야 할 이스라엘민족이 예수의 사정을 알아주지 못하고, 사탄이 예수 앞에 놓인 어려운 고난의 길을 재촉하는 입장에서, 온 천상천하의 어떠한 존재라도 예수를 알아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입장에 홀로 서서, 천상의 뜻을 알지 못하는 민족에게 예수는 그 뜻을 전하려 하였습니다.
자신이 내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무지한 백성 앞에 전해야 할 사명을 느낀 예수는 자기의 일신을 만민 앞에 세워 놓고 하나님만이 알아준다는 하나의 마음에 의지하여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희망과 새로운 결심을 민족앞에 선포하기 위해 나섰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내용으로서 중요한 말씀입니다.
사람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하면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가질 때 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자신의 과거를 알아주고 현실을 알아주고 나아가서 자신의 미래까지 알아주는 어떤 친구나 어떠한 동지, 또는 스승을 가졌다 할진대 그는 행복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안식의 터는 그런 분들의 품을 중심하고 이루어지는 것이고, 또 그런 분들이 계시는 환경을 통해서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상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해서 자신을 알고 계셨고, 30평생을 통하여 자신을 아시며, 영원하신 섭리의 뜻을 통하여 자신을 알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신을 알아주셨듯이 인간 세상에서 만 인간들을 역사를 통하여 알아주어야 했었고, 그들의 생활을 통하여 알아주어야 했었으며, 미래를 통하여 알아주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아신 예수님은 인간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해야 할 중심적인 존재가 바로 자기 자신임을 느끼면 느낄수록 어떠한 형태로라도 민족 앞에 하나님의 앎을 증거해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알아주심을 민족에게 증거해야 했던 예수님
먼저 예수가 증거하고자 한 것은, 자신은 하나님의 뜻 앞에 4천년 동안 거쳐온 섭리노정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의 인연을 대표한 존재라는 것이었습니다. 4천년 섭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예수를 알아주었듯이 전체 이스라엘민족을 하나님에게 영도해야 할 책임을 느낀 예수는 자신의 생애노정에서 하나님의 앎을 민족 앞에 나타내려 했던 것입니다.
또 그의 30평생 이후의 섭리노정에서 온 인류가 자신의 미래의 이상과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게 될 때, 예수는 하늘로부터 인류가 자기를 알아주는 이상세계까지 그의 일신을 통하여 인류 앞에 알려주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을 느꼈습니다.
과거로부터 현실로, 현실로부터 미래에 이루어질 영원한 천상세계의 일이나 지상의 일이나, 또 어떤 존재물이 무한한 시기를 거쳐 예수님 한 분에게로 미쳐지는 섭리역사가 남아 있음을 생각할 때, 이 섭리를 하늘 앞에 알려주는 것이 예수만의 사명이 아니었고, 천천만 성도들 앞에 알려주는 것도 예수만의 사명이 아니었으며, 역사적인 선조들 앞에 알려주는 것도 예수만의 사명이 아니었습니다.
전체를 대신하여 뜻 앞에 선 예수는 하나님이 자신을 알아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민족을 알아줘야 되었고, 예수가 하나님을 대신하듯이 민족이 예수를 대신해야 함을 민족에게 알게 해야 했으며, 예수가 하나님을 알아주듯이 민족이 예수를 알아주어야 할 관계를 맺지 않으면 예수는 일생에서 앎의 행복을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상을 향하여서는 하나님과 더불어 기뻐할 수 있으되 지상을 대하여서는 사람을 알아주지 못한 연고로 기뻐할 수 없는 입장에 설 수밖에 없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하늘만을 알아달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전한 복음은 하늘만을 위한 복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말씀이나 수고하심이나 모든 어려운 싸움은 역사적인 민족을 위함이었고, 역사를 이끌어 갈 미래의 민족을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예수를 대하던 당시의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을 알듯이 땅 위의 사람들이 예수를 알아주었던들, 예수의 생애가 그토록 서러움으로 엉클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서로 알아주신 정도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수를 알아주었는데 어디까지 알아주셨는가. 하나님은 예수를 어떻게 알아주셨는가. 창조 역사의 기원에서부터 인류 역사의 과정을 통하여, 역사의 인연을 통하여, 그 당시 현실사회 전체에까지, 더 나아가서는 예수의 미래의 이상까지 알아주셨습니다.
무지한 백성 앞에 나타난 예수는 하늘의 분부를 받고 자기 일신을 세워 수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역사노정에서 무한정 수고하신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에 사무쳐 싸웠습니다. 또, 역사 과정에 수고하신 선조들을 위로하고 역사 과정에 어려 있는 서러움을 해원하려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이러한 존재로 세우신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을 위한 마음이 있었고, 그 마음을 인간 앞에 전하고 싶은 애달픈 심정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애달픈 마음이 예수님에게 남아있는 이상 예수님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애달플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책임을 못한 연고로 하나님이 서러움 속에, 그리고 슬픔 속에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예수를 어느 정도까지 아셨는가. 아담 가정을 중심삼은 신랑 신부의 이념을 통하여 자녀의 영광을 온 세계에 드러낼 수 있는 예수로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있었는가. 자신을 역사를 대신한 존재로 알아주신다는 것을 아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중심한 가정생활에서부터 현실 생애노정에까지 신랑 신부의 믿음을 자신으로 인해 지상에 나타내고 선의 영광까지 지상에 나타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씀은 역사의 원한을 풀어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복종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리아의 사정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누구보다도 낮은 자리에서 출발의 터를 닦아야 할 신랑 신부의 믿음을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또 억조창생 중에서 선의 기대를 원하시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는 앎을 인간들이 알아주었어야 예수님이 가지신 사랑의 뜻과 인간들이 관계맺을 수 있었는데 당시의 인간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은 하나님과 의논할 수 있었으되 사람과는 의논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앎과 원한의 심정, 그리고 땅 위에서의 구원섭리를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니 예수님의 서러움이 온 천하를 잃은 서러움보다 더 큰 것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겠습니다.
사랑은 3시대를 거쳐 완성
사랑은 1대에서 완성하지 못하면 3시대를 거쳐 갑니다. 맨 처음에는 천륜의 사랑을 거쳐 부모의 사랑을 거쳐 부부의 사랑을 거쳐갑니다. 우리는 이렇듯 타락과 인간들의 거듭되는 실수 때문에 복귀노정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 중에서 성년이 될 때까지는 부모의 사랑을 받는 시기입니다. 그 시기가 지난 후 자기를 중심삼은 사랑의 시기가 신랑 신부 시기입니다. 그 다음에는 자녀를 대하는 사랑의 시기가 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6천년 역사를 섭리해 오시는데 있어서 예수님이 올 때까지는 어떠한 사랑의 시기였는가. 예수님을 내세워서 하나님이 친히 부모로서 사랑을 주는 시기였습니다. 그 뒤 예수님이 부모의 사랑권을 벗어나 자신의 가정생활을 건설하는 것이 신랑신부의 시기입니다.
그러면 이제 와야 할 시기는 어떤 시기인가. 신랑 신부의 이념을 땅 위에서 종결짓는 시기입니다. 그리하여 땅 위에서 예수님이 내적인 하나님의 뜻을 중심하고 가정적인 기대를 땅 위에 전개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영적 신랑 신부의 생활을 땅 위에 전개시켜야 합니다. 영적인 하늘의 가정생활을 땅 위에 전개시켜 지상에서 역사를 대표한 가정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후 2천년 역사를 거친 후 이제는 천상과 지상이 합하여 내적인 형과 외적인 형이 결부하여 하나의 실체를 이룸으로써 그와 관계를 맺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자체를 중심삼고 새로운 부모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부모의 시기에는 새로운 자녀를 양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새로운 자녀로 말미암아 새로운 신랑 신부의 이념을 땅 위에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상이 역사노정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
그러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무엇이냐. 내적인 가정형과 외적인 신랑 신부의 이념과 자녀의 생활을 총결산하는 것이었습니다. 외적인 기반에서만이 아니라 안팎이 연하여 상대적인 기준을 종결지음으로써 천륜의 운세는 어느 누구에게든지 내적인 것으로부터 하나의 기준을 세울 수 있는 역사적인 가정 형태의 복귀노정을 거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를 통해서든지 현실과 역사적인 사실 뿐만 아니라 결정적인 사실로서 여러분은 하나님이 예수를 세울 때까지의 가정적인 생활형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신약을 중심삼고 2천년 동안 섭리하던 노정의 신랑 신부의 실증적인 내용을 여러분 자체들이 갖지 않으면 신랑 신부의 기준을 당당히 찾아 나설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존할 수 있고 실존할 수 있는 하나의 실체적인 선의 자녀를 땅 위에 두고, 부끄러움의 자녀가 아니라 죄악 역사를 완전히 벗어난, 어떠한 원수도 참소 못할 자녀를 세운 후에는 감추었던 천상의 비밀의 심정을 알고 실체형인 나를 세워 하늘의 사랑을 받고, 하늘과 의논하고, 주고 받게 되는 하늘과의 인연을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신앙생활을 통하여 믿고 있는 예수, 하나님이 알아주셨던 그 예수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여러분이 예수를 아는 정도는 어느 정도인가? 여러분은 신랑 신부의 모습을 예수와 성신으로만 알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일생에서 가정의 실체적인 사랑을 통하고 내적인 사랑을 거쳐서 영원한 생의 발판, 영원한 구원을 이루는 승리의 발판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하늘의 이상과 하늘의 소망은 여러분과 관계가 없게 됩니다. 나아가 그것은 하나님 것은 될 수 있고 예수와 성신의 것은 될 수 있으되 내 것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님 알기를 예수님 그 자체만을 알아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를 중심삼고 화합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예수를 알아주시던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와 이퀄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지상에서 역사를 대신하고 현세를 대신하고 미래를 대신하여 당당코 나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의 존재가 이 땅 위에 나타난다 할진대는, 그 자체는 역사를 아는 자요 예수의 섭리를 아는 자요 예수가 소망하는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자일 것입니다.
이러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을 제시하여도 하나님 앞에 감사드릴 수 있는 사람, 어떠한 환경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는 내가 어떤 무엇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강한 하나님의 희망과 사랑이 동해야 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이 변하고 역사가 변하고 천지가 혼돈되는 마당에서도, 최후의 순간에서까지도 예수가 생각했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하면, 인간이었습니다. 인간을 위해 끊을 수 없는 영원한 관계를 맺어 영원한 생명과 중심의 심정을 대신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십자가도 오너라, 죽음도 어서 오너라'고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생활을 통하여, 생애를 통하여 그러한 느낌을 느끼지 못한다 할진대, 여러분은 예수를 안다 해도 모르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섭리노정의 전반적인 역사 형태를 대표하고, 전체 역사를 대표하고 영원한 역사를 대표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동적인 심정과 정적인 심정에까지 통할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역사에 맺힌 한을 해원하여 만민 앞에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사람으로 나타나지 못한다 할진대, 예수가 찾고 또 요구하고 있는, 즉 하늘이 알아주는 자녀라 할 수 없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러한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자신이 먹는 밥 한 숟갈을 놓고도 하나님께 감사를 돌릴 것이고, 숨쉬는 그 한 숨결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이 알아주는 자녀
천지의 운세가 말없이 돌아가는 것과 같이 내 마음도 새롭게 무한히 돌아가기를 바라는데, 어찌하여 그러하지 못하는가, 천지의 힘과 사랑이 연하여 천륜의 원칙의 기준이 연하여 있다는 것을 우리는 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오늘날 우리들은 내 생활에서, 예수가 하나님을 알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가 하나님의 한을 알아 예수 일신의 영광이 하늘 앞에 돌아간 것과 같이, 나를 통하여 나의 영광을 예수에게 돌릴 수 있게끔 예수를 따라가겠다는 마음이라도 가져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아는데 우리가 예수를 알지 못하면 예수의 숙명적인 소원은 어디에 가서 풀 것인가, 오늘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를 위하여 순간 순간은 산다고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뭇 나라와 뭇 민족을 위하여 존재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역사의 종말시대까지 그 흐름과 천륜의 심정을 영원히 느끼며 만물의 주인공으로서 하늘의 영광을 노래하고 하늘에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의 소망이라 할진대 내 한 자체가 예수를 대신하여 하늘 앞에 영광을 돌려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꿈과 같은 사실을 꿈이 아닌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그러한 뜻을 종결짓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의 심정에 사무쳐 있던 그 요구와 그 소망이 여러분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습니다. 만일 이런 예수님의 심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좇아 아버지의 대신자가 되고 예수님의 대신자가 될 수 있는, 땅 위에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을 알아준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알아줄 것이요, 하나님이 알아 주는 동시에 예수와 성신도 알아줄 것입니다. 또 예수와 성신이 알아주는 동시에 예수와 성신을 연하여 있는 천군천사들이 알아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인간들은 이런 영광의 은사를 은사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승리의 영광을 돌리려면
예수님은 하나님만 알아주셨으나 우리는 하나님도 알아주시고 예수와 성신이 알아줄 것이며 하늘에 있는 천천만 성도들이 알아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 위에서 내가 천상의 하나님을 알 수 있다면 하늘로부터 예수와 성신을 통하여 영계에까지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내 한 자체가 이런 인정권 내에 서서 예수님을 통하여 2천년 동안 섭리하시던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이념은 여러분들을 통해서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복된 무리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나아가던 때보다 더 복된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위하여 홀로 죽어 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고 예수와 성신을 위해서도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천천만 성도들이 우리의 나아가는 길을 옹위하고 우리를 환영할 수 있는 자체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내가 깨달았사오니, 아버지여, 운행하시어서 천천만 성도들이 오늘 나로 말미암아 위로받을 수 있게 하소서'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은 하늘의 섭리 전체를 대표하여 승리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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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영광에 참여하자
1956.07.19 (목), 한국 전본부교회
오늘 드리려 하는 말씀은'하나님이 알아주시는 영광에 참여하자''하나님이 알아주시는 영광에 참여하자'입니다.이러한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를 알아준다는 것
천륜의 뜻을 증거해야 할 세례 요한이 뭇 세계 앞에 그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연고로 예수는 사탄과 싸워야 하는 어려운 관문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사정을 알아주어야 할 이스라엘민족이 예수의 사정을 알아주지 못하고, 사탄이 예수 앞에 놓인 어려운 고난의 길을 재촉하는 입장에서, 온 천상천하의 어떠한 존재라도 예수를 알아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입장에 홀로 서서, 천상의 뜻을 알지 못하는 민족에게 예수는 그 뜻을 전하려 하였습니다.
자신이 내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무지한 백성 앞에 전해야 할 사명을 느낀 예수는 자기의 일신을 만민 앞에 세워 놓고 하나님만이 알아준다는 하나의 마음을 의지하여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희망과 새로운 결심을 민족앞에 선포하기 위해 나섰던 것입니다.오늘 말씀은 이러한 내용으로서 중요한 말씀입니다.
사람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하면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가질 때 오는 것입니다.더군다나 자신의 과거를 알아주고 현실을 알아주고 나아가서 자신의 미래까지 알아주는 어떤 친구나 어떠한 동지, 또는 스승을 가졌다 할진대 그는 행복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안식의 터는 그런 분들의 품을 중심하고 이루어지는 것이고, 또 그런 분들이 계시는 환경을 통해서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상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해서 자신을 알고 계셨고, 30평생을 통하여 자신을 아시며, 영원하신 섭리의 뜻을 통하여 자신을 알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신을 알아주셨듯이 인간 세상에서 만 인간들을 역사를 통하여 알아주어야 했었고, 그들의 생활을 통하여 알아주어야 했었으며, 미래를 통하여 알아주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이것을 아신 예수님은 인간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해야 할 중심적인 존재가 바로 자기 자신임을 느끼면 느낄수록 어떠한 형태로라도 민족 앞에 하나님의 앎을 증거해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알아주심을 민족에게 증거해야 했던 예수님
먼저 예수가 증거하고자 한 것은, 자신은 하나님의 뜻 앞에 4천년 동안 거쳐온 섭리노정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의 인연을 대표한 존재라는 것이었습니다.4천년 섭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예수를 알아주었듯이 전체 이스라엘민족을 하나님에게 영도해야 할 책임을 느낀 예수는 자신의 생애노정에서 하나님의 앎을 민족 앞에 나타내려 했던 것입니다.
또 그의 30평생 이후의 섭리노정에서 온 인류가 자신의 미래의 이상과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게 될 때, 예수는 하늘로부터 인류가 자기를 알아주는 이상세계까지 그의 일신을 통하여 인류 앞에 알려주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을 느꼈습니다.
과거로부터 현실로, 현실로부터 미래에 이루어질 영원한 천상세계의 일이나 지상의 일이나, 또 어떤 존재물이 무한한 시기를 거쳐 예수님 한분에게로 미쳐지는 섭리역사가 남아 있음을 생각할 때, 이 섭리를 하늘 앞에 알려주는 것이 예수만의 사명이 아니었고, 천천만 성도들 앞에 알려주는 것도 예수만의 사명이 아니었으며, 역사적인 선조들 앞에 알려주는 것도 예수만의 사명이 아니었습니다.
전체를 대신하여 뜻 앞에 선 예수는 하나님이 자신을 알아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민족을 알아줘야 되었고, 예수가 하나님을 대신하듯이 민족이 예수를 대신해야 함을 민족에게 알게 해야 했으며, 예수가 하나님을 알아주듯이 민족이 예수를 알아주어야 할 관계를 맺지 않으면 예수는 일생에서 앎의 행복을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예수님은 천상을 향하여서는 하나님과 더불어 기뻐할 수 있으되 지상을 대하여서는 사람을 알아주지 못한 연고로 기뻐할 수 없는 입장에 설 수밖에 없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하늘만을 알아달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그가 전한 복음은 하늘만을 위한 복음이 아니었습니다.그의 말씀이나 수고하심이나 모든 어려운 싸움은 역사적인 민족을 위함이었고, 역사를 이끌어 갈 미래의 민족을 위함이었습니다.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예수를 대하던 당시의 사람들은 몰랐습니다.예수가 하나님을 알듯이 땅 위의 사람들이 예수를 알아주었던들, 예수의 생애가 그토록 서러움으로 엉클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서로 알아주신 정도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수를 알아주었는데 어디까지 알아주셨는가. 하나님은 예수를 어떻게 알아주셨는가.창조 역사의 기원에서부터 인류 역사의 과정을 통하여, 역사의 인연을 통하여, 그 당시 현실사회 전체에까지, 더 나아가서는 예수의 미래의 이상까지 알아주셨습니다.
무지한 백성 앞에 나타난 예수는 하늘의 분부를 받고 자기 일신을 세워 수고하였습니다.그리고 역사노정에서 무한정 수고하신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에 사무쳐 싸웠습니다.또, 역사과정에 수고하신 선조들을 위로하고 역사과정에 어려 있는 서러움을 해원하려 했던 것입니다.하나님은 예수를 이러한 존재로 세우신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을 위한 마음이 있었고, 그 마음을 인간 앞에 전하고 싶은 애달픈 심정이 있었습니다.이러한 애달픈 마음이 예수님에게 남아있는 이상 예수님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애달플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인간이 책임을 못한 연고로 하나님이 서러움 속에, 그리고 슬픔 속에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예수를 어느 정도까지 아셨는가.아담 가정을 중심삼은 신랑 신부의 이념을 통하여 자녀의 영광을 온 세계에 드러낼 수 있는 예수로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있었는가.자신을 역사를 대신한 존재로 알아주신다는 것을 아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중심한 가정생활에서부터 현실 생애노정에까지 신랑 신부의 믿음을 자신으로 인해 지상에 나타내고 선의 영광까지 지상에 나타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씀은 역사의 원한을 풀어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복종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리아의 사정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도 알았습니다.누구보다도 낮은 자리에서 출발의 터를 닦아야 할 신랑 신부의 믿음을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또 억조창생 중에서 선의 기대를 원하시는 사실도 알았습니다.이렇듯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는 앎을 인간들이 알아주었어야 예수님이 가지신 사랑의 뜻과 인간들이 관계맺을 수 있었는데 당시의 인간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은 하나님과 의논할 수 있었으되 사람과는 의논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입니다.예수님의 앎과 원한의 심정, 그리고 땅 위에서의 구원섭리를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니 예수님의 서러움이 온 천하를 잃은 서러움보다 더 큰 것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겠습니다.
사랑은 3시대를 거쳐 완성
사랑은 1대에서 완성하지 못하면 3시대를 거쳐 갑니다.맨 처음에는 천륜의 사랑을 거쳐 부모의 사랑을 거쳐 부부의 사랑을 거쳐갑니다. 우리는 이렇듯 타락과 인간들의 거듭되는 실수 때문에 복귀노정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 중에서 성년이 될 때까지는 부모의 사랑을 받는 시기입니다.그 시기가 지난 후 자기를 중심삼은 사랑의 시기가 신랑 신부 시기입니다.그 다음에는 자녀를 대하는 사랑의 시기가 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6천년 역사를 섭리해 오시는데 있어서 예수님이 올 때까지는 어떠한 사랑의 시기였는가.예수님을 내세워서 하나님이 친히 부모로서 사랑을 주는 시기였습니다.그 뒤 예수님이 부모의 사랑권을 벗어나 자신의 가정생활을 건설하는 것이 신랑신부의 시기입니다.
그러면 이제 와야 할 시기는 어떤 시기인가.신랑 신부의 이념을 땅위에서 종결짓는 시기입니다.그리하여 땅 위에서 예수님이 내적인 하나님이 뜻을 중심하고 가정적인 기대를 땅 위에 전개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영적 신랑 신부의 생활을 땅 위에 전개시켜야 합니다.영적인 하늘의 가정생활을 땅 위에 전개시켜 지상에서 역사를 대표한 가정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후 2천년 역사를 거친 후 이제는 천상과 지상이 합하여 내적인 형과 외적인 형이 결부하여 하나의 실체를 이룸으로써 그와 관계를 맺어야 된다는 것입니다.여러분들은 자체를 중심삼고 새로운 부모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부모의 시기에는 새로운 자녀를 양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새로운 자녀로 말미암아 새로운 신랑 신부의 이념을 땅 위에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이러한 이상이 역사노정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
그러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무엇이냐.내적인 가정형과 외적인 신랑 신부의 이념과 자녀의 생활을 총결산하는 것이었습니다.외적인 기반에서만이 아니라 안팎이 연하여 상대적인 기준을 종결지음으로써 천륜의 운세는 어느누구에게든지 내적인 것으로부터 하나의 기준을 세울 수 있는 역사적인 가정 형태의 복귀노정을 거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누구를 통해서든지 현실과 역사적인 사실 뿐만 아니라 결정적인 사실로서 여러분은 하나님이 예수를 세울 때까지의 가정적인 생활형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신약을 중심삼고 2천년 동안 섭리하던 노정의 신랑 신부의 실증적인 내용을 여러분 자체들이 갖지 않으면 신랑 신부의 기준을 당당히 찾아 나설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존할 수 있고 실존할 수 있는 하나의 실체적인 선의 자녀를 땅 위에 두고, 부끄러움의 자녀가 아니라 죄악 역사를 완전히 벗어난, 어떠한 원수도 참소 못할 자녀를 세운 후에는 감추었던 천상의 비밀의 심정을 알고 실체형인 나를 세워 하늘의 사랑을 받고, 하늘과 의논하고, 주고 받게 되는 하늘과의 인연을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신앙생활을 통하여 믿고 있는 예수, 하나님이 알아주셨던 그 예수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여러분이 예수를 아는 정도는 어느 정도인가?여러분은 신랑 신부의 모습을 예수와 성신으로만 알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일생에서 가정의 실체적인 사랑을 통하고 내적인 사랑을 거쳐서 영원한 생의 발판, 영원한 구원을 이루는 승리의 발판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하늘의 이상과 하늘의 소망은 여러분과 관계가 없게 됩니다.나아가 그것은 하나님 것은 될 수 있고 예수와 성신의 것은 될 수 있으되 내 것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님 알기를 예수님 그 자체만을 알아서는 아니 되겠습니다.그런고로 예수를 중심삼고 화합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예수를 알아주시던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와 이퀄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그는 지상에서 역사를 대신하고 현세를 대신하고 미래를 대신하여 당당코 나설 수 있을 것입니다.그러한 하나의 존재가 이 땅위에 나타난다 할진대는, 그 자체는 역사를 아는 자요 예수의 섭리를 아는 자요 예수가 소망하는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자일 것입니다.
이러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을 제시하여도 하나님 앞에 감사드릴 수 있는 사람, 어떠한 환경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예수는 내가 어떤 무엇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강한 하나님의 희망과 사랑이 동해야 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이 변하고 역사가 변하고 천지가 혼돈되는 마당에서도, 최후의 순간에서까지도 예수가 생각했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하면, 인간이었습니다.인간을 위해 끊을 수 없는 영원한 관계를 맺어 영원한 생명과 중심의 심정을 대신하려 했던 것입니다.그런고로'십자가도 오너라, 죽음도 어서 오너라'고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생활을 통하여, 생애를 통하여 그러한 느낌을 느끼지 못한다 할진대, 여러분은 예수를 안다 해도 모르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섭리노정의 전반적인 역사 형태를 대표하고, 전체 역사를 대표하고 영원한 역사를 대표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동적인 심정과 정적인 심정에까지 통할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그리하여 역사에 맺힌 한을 해원하여 만민 앞에 나타나야 되겠습니다.그러한 사람으로 나타나지 못한다 할진대, 예수가 찾고 또 요구하고 있는, 즉 하늘이 알아주는 자녀라 할 수 없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러한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자신이 먹는 밥 한 숟갈을 놓고도 하나님께 감사를 돌릴 것이고, 숨쉬는 그 한 숨결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이 알아주는 자녀
천지의 운세가 말없이 돌아가는 것과 같이 내 마음도 새롭게 무한히 돌아가기를 바라는데, 어찌하여 그러하지 못하는가, 천지의 힘과 사랑이 연하여 천륜의 원칙의 기준이 연하여 있다는 것을 우리는 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오늘날 우리들은 내 생활에서, 예수가 하나님을 알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를 알아야 되겠습니다.그리고 예수가 하나님의 한을 알아 예수 일신의 영광이 하늘 앞에 돌아간 것과 같이, 나를 통하여 나의 영광을 예수에게 돌릴 수 있게끔 예수를 따라가겠다는 마음이라도 가져야 되겠습니다.예수가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아는데 우리가 예수를 알지 못하면 예수의 숙명적인 소원은 어디에 가서 풀것인가, 오늘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를 위하여 순간 순간은 산다고 할는지 모르겠습니다.여러분은 뭇 나라와 뭇 민족을 위하여 존재할 수 있어야겠습니다.역사의 종말시대까지 그 흐름과 천륜의 심정을 영원히 느끼며 만물의 주인공으로서 하늘의 영광을 노래하고 하늘에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의 소망이라 할진대 내 한 자체가 예수를 대신하여 하늘 앞에 영광을 돌려야 되겠습니다.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꿈과 같은 사실을 꿈이 아닌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어야겠습니다.하나님의 소원은 그러한 뜻을 종결짓는 것입니다.하나님과 예수의 심정에 사무쳐 있던 그 요구와 그 소망이 여러분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습니다.만일 이런 예수님의 심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좇아 아버지의 대신자가 되고 예수님의 대신자가 될 수 있는, 땅 위에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을 알아준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알아줄 것이요, 하나님이 알아 주는 동시에 예수와 성신도 알아줄 것입니다.또 예수와 성신이 알아주는 동시에 예수와 성신을 연하여 있는 천군천사들이 알아줄 것입니다.그런데 오늘의 인간들은 이런 영광의 은사를 은사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승리의 영광을 돌리려면
예수님은 하나님만 알아주셨으나 우리는 하나님도 알아주시고 예수와 성신이 알아줄 것이며 하늘에 있는 천천만 성도들이 알아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 위에서 내가 천상의 하나님을 알 수 있다면 하늘로부터 예수와 성신을 통하여 영계에까지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그런고로 내 한 자체가 이런 인정권 내에 서서 예수님을 통하여 2천년 동안 섭리하시던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이념은 여러분들을 통해서 나타나야 합니다.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복된 무리입니다.예수님이 십자가에 나아가던 때보다 더 복된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위하여 홀로 죽어 갔습니다.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고 예수와 성신을 위해서도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그리하여 천천만 성도들이 우리의 나아가는 길을 옹위하고 우리를 환영할 수 있는 자체들이 되어야겠습니다.`내가 깨달았사오니, 아버지여, 운행하시어서 천천만 성도들이 오늘 나로 말미암아 위로받을 수 있게 하소서'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그럴 때에 여러분은 하늘의 섭리 전체를 대표하여 승리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말씀선집 제1권 13편
복귀의 가치를 나타내자(훈독본)
1956.07.03 (화), 한국 전본부교회
사도행전 1:6-11
이 시간은 사도행전 1장 6절 이하의 말씀을 중심삼고 '복귀의 가치를 나타내자'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세계복귀의 사명을 띠고 오신 예수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려고 하시는 목적이 어디 있느냐 하면,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인간에게 창조본연의 상태를 회복해 주려는 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깨달은 수많은 선지성현들은 그 시대 시대를 거쳐나오면서 이러한 복귀의 목적을 책임지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수고해 나온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의 4천년 역사도 그러한 역사였고,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30여 평생 싸웠던 노정도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노정이었으며, 돌아가신 이후 2천년 동안 성신과 함께 싸움의 역사를 전개하신 것도 역시 이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싸움의 노정이었던 것입니다.
예수가 이 땅 위에 오셨던 목적은 역사의 복귀를 위해서였으며, 또한 자기 일신의 복귀와 더 나아가서 세계 복귀의 사명을 띠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셔서 하신 그 복음의 말씀은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복하기 위한 말씀이었고, 30여 평생의 자신을 복귀하기 위한 말씀이었고, 나아가서는 세계 인류를 복귀하기 위한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날까지 인간들은 예수님이 남겨 놓은 그 말씀을 통하여 복귀섭리를 분담하면서 역사과정을 거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여러분은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해 주신 신약의 말씀을 중심삼고 과거 6천년 역사를 탕감하고 금후의 영원한 생애를 대신할 수 있는 충신의 모습을 갖추어 자기의 일신을 회복하는 동시에 역사를 회복하고 미래를 회복할 수 있는 승리적인 가치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4천년 역사를 대신하고 자신의 30여 평생을 대신한 복음의 말씀과 만민을 회복하기 위한 생명의 말씀으로서 남기셨던 그 복음의 말씀은 아무런 결심도 맺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4천년 역사를 대신했던 예수님의 원한을 풀어드리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고, 30여 생애를 통하여 만민 앞에 새로운 복귀의 이념을 세워 하늘의 승리적인 기반을 이루려 했던 예수님 자신의 복귀의 사명, 또 성신과 더불어 2천년 동안 수고하신 그 사명을 완결짓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역사를 대신한 입장에서 승리적인 복귀의 영광을 아버지 앞에 돌려드리고, 승리적 생애를 거치신 예수님 일대의 가치 이상의 가치로써 아버지 앞에 영광을 돌려 드려야 되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새로운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심으로써 2천년의 구원섭리역사를 이루어 오신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여러분들은 다시 하늘로부터 새로운 말씀을 인계받아서 전체 복귀의 위업을 종결짓고, 그것을 억조만대에 길이길이 남겨 주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사명이 오늘날 여러분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잠시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 자신은 하나님의 복귀역사를 성취하기 위해서 인간 앞에 전부 나타내면서 역사를 해 나오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은 복귀섭리의 구체적인 내용을 나타내지 못하시고 복귀역사를 해 나오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원리를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을 감추어 놓고 상징적인 증거의 말씀을 통하여 하늘뜻을 이 땅 위에 이루기 위한 복귀역사를 해오셨고, 하늘의 영광도 인간 앞에 전부 나타내지 않고 복귀섭리역사를 해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섭리의 구체적인 내용을 확실히 나타내지 않고 복귀역사를 추진시켜 나오신 예수님의 내적 심정을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속 마음을 발표하지 못한 이유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이 복귀의 영광을 갖추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인가?
여러분은 먼저 생활을 통해서 예수님이 나타내지 못하였던 감춰진 복귀의 가치를 알아야 하겠고, 다음에는 마음을 통해서 예수님이 나타내지 못하셨던 숨겨진 복귀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영원한 생명의 가치를 나타내지 못하셨던 예수의 감추어진 복귀의 내용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천륜을 대신하여 복귀의 영광을 완결지으려 하실 때에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인가.
예수님께서 30여 평생의 생활과정에서 마음속 깊숙히 숨겨 놓고 만민 앞에 다 말씀하지 못하시고 밝히지 못하셨던 내용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이러한 내용을 여러분이 알지 못한다면,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천상천하를 대신한 전체의 복귀의 가치를 땅에서부터 천상에까지 나타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께서 밝혀놓은 복음의 말씀을 살펴보면, 그 속에는 예수님의 구체적인 생활내용이 전혀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무엇으로 암시하였느냐 하면, 봉사의 생활로써 자신의 숨은 생활의 일면을 암시했습니다. 즉, 자신이 높여질 수 있는 영광의 아들이었지만 영광된 자기 일신을 낮추어 뭇 죄인의 발밑에 들어가 봉사하는 생활로써 숨겨진 바의 일면을 나타냈던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마음 속에 숨겨진 일면을 무언의 생활로써 나타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12제자들에게도 자신의 속마음을 발표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왜 예수님이 그러한 비밀을 발표하지 못했느냐 하면, 천상의 비밀을 마음 속에 가졌을지라도, 그 비밀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을 때 그것을 발표하면 사탄 앞에 농락받게 된다는 것을 예수님은 아셨기 때문에 발표하지 못했습니다. 즉,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알려진 사실을 홀로 간직하고 인간 앞에 옮겨주어야겠다는 애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지만, 자신의 그런 마음을 헤아리고 찾아와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천상의 비밀을 인간들 앞에 발표하지 못했고, 숨긴 마음의 일면을 인간들 앞에 나타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의 절정에까지 나아가, 교법사들과 빌라도 앞에서'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죄목으로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침묵으로 일관하시다가 빌라도가'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을 그때에야 비로소 자신을 밝히셨습니다.
선하고 의로운 하늘편 사람들이 예수님을 저희들의 왕으로 모시는 것을 평생의 영광으로 알고 예배드려야 할 것이었는데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 죄수의 이름으로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피치 못할 입장에서 사탄의 심문을 받게 되자, 하나님의 서글픔을 대신한 입장에서 침묵을 지키시던 입을 열어 사실을 사실대로 토로하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보게 될 때 아무리 하늘의 역사라도 사탄이 하늘편에 대하여 사실을 밝혀내어 반문하게 되면 하늘편에서도 숨은 마음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요, 또 사탄편에서도 하나님편에 있는 성도들이 사탄의 숨은 비밀의 마음을 적발해 내면 그것을 드러내어 직고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 속에 누구에게도 밝히지 못한 복귀의 내용을 지니시고 평소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 무언의 봉사를 통해 천륜의 섭리를 추진시켰을뿐만 아니라 그 실천적인 면에 있어서도 어느누구보다 선봉자의 입장에 서서 숨겨진 복귀의 내용을 나타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러한 복귀의 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예수님의 마음을 헤치고 들어가 '당신의 마음은 이렇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신의 협조를 받아 숨겨진 섭리의 비밀을 알아야
만일에 그러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역사가 아무리 경과하더라도 예수님의 마음 속에 숨겨진 섭리의 비밀은 이 땅 위에 드러날 수가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여러분들은 예수님께서 생활을 통해 나타내신 복귀의 비밀을 알아야 되겠고, 마음 속에 있는 복귀의 내용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후에야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자신있게 설 수 있고, 사탄 앞에 자신있게 나설 수 있는 자, 즉 하나의 승리적인 생명을 복귀완성한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30여년의 생애를 통해서 4천년 역사를 탕감했고, 천상천하의 모든 것을 대신해서 복귀의 중심을 완결지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이러한 예수님의 완결된 가치, 즉 예수님이 품고 있던 마음속의 비밀과 알려지지 않은 예수님의 생활의 가치를 인계받을 수 있는 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예수님의 내적 비밀과 생활적인 비밀을 누가 대신 갖고 나타났느냐 하면 성신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을 믿지만 그 말씀 자체만 믿어 가지고는 복귀가 안 됩니다. 거기에 필요한 것은 성신이 나의 생활을 협조하고 나와 함께 동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희생 봉사의 노정을 거쳤던 것과 같이 여러분도 그러한 노정을 거쳐 십자가의 절정까지 나아가야만 예수님의 감추어 두었던 생활적인 비밀이 예수와 성신을 통하여 비로소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마음 속에 가지고 있던 내적인 비밀도 그렇게 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성신이 협조하는 생활을 통해서 성신의 마음과 하나됨으로써 마음과 생활이 하나되고, 예수님과 성신이 하나된 인연을 내 한 개체를 중심삼고 맺어놓지 않는다면 참 생명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겠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우리들은 성신의 협조를 받아, 예수님께서 생활적인 측면에서 숨겨 나왔던 비밀에 싸인 복귀의 내용과, 마음에 감추어진 복귀의 내용을 이루어 나가는 중요한 과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과정에 있는 우리들은 예수님과 성신이 하나된 것과 마찬가지로 성신과 내가 하나되어 예수님을 중심삼은 삼위일체의 형을 갖는 기준을 가져야만이 땅 위에 하나님의 승리적인 발판을 조성할 수 있는 평면적인 기대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비장되어 있는 참 생명의 내용을 찾아 나아가는데 있어서 예수님과 성신의 협조를 받는 생활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생활은 전체 생명을 복귀하는데 있어서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체 생명 복귀의 비밀은 아직까지 천상의 비밀로 남아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와 성신을 통하여 생명적인 가치의 내용을 어느 정도까지 완성했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서는 종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성신을 통하여 나타내지 않은 생명의 감춘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오늘날 전체적인 복귀의 가치를 완결지어야 할 우리에게 있어서는, 예수님의 생애의'비밀의 가치'를 뭇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함과 동시에 예수님이 지니셨던 비밀의 가치를 대신하고, 예수님과 성신이 합한 우주적인 가치를 하나님으로부터 다시금 인정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은 어떠한 상태에 있는가?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제대로 사랑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와 성신이 합력하여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기 위해 봉사와 섬김의 생활을 계속하여 나온 것과 예수님이 만물만상을 대신하여 수고하신 그 가치만큼 하나님이 예수를 대해서 사랑하지 못했던 그 사랑의 내용을 여러분이 배워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그러한 사랑의 내용을 알고 이루어 나가지 않으면, 하늘의 사무친 한을 풀어 드리고 하나님의 남겨진 복귀의 역사를 이 땅 위에서 완결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님의 3년 공생애노정과 십자가노정, 승천하셔서 2천년 동안 예수님과 성신이 함께 수고해 오신 협조의 노정을 통하여 생명 복귀와 장성 복귀섭리의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이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와 성신을 사랑하시고 6천년 동안 온 우주를 품고 사랑하셨던 이 선의 표준의 마음을 본받아 우리의 마음과 예수님과 성신의 마음이 합하여 하나로서 일할 수 있는 사랑의 중심을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생활적인 복귀, 마음적인 복귀, 생명적인 복귀를 완수하여 전체의 생명과 영광의 가치를 완결지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으려면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될 것인가. 우리는 예수님이 걸어가신 전 생애의 중심의 내용을 거치고,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인류를 위해 수고하신 그 마음을 거쳐야 되겠습니다.
즉, 역사과정에서 만민을 대하여 안타까와하시던 예수님의 내적 심정을 통하고,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지금까지 역사해 나온 성신의 내적 심정을 통해야겠으며, 창조이후 6천년 동안 섭리하시고 또한 앞으로 다가올 이상 세계를 이루기 위해 수고하시는 하나님의 애달픈 내적 심정을 동정하고 체휼할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 할진대, 여러분은 영원히 남아질 생명의 영광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전체적인 복귀의 가치를 완결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예수님이 걸어가신 것과 마찬가지로, 성신이 하던 것과 마찬가지의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또 사도들이 걸어간 노정, 즉 자기 일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의식까지 다 잊어버리고 오로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신을 위해 살아가던 그 사도들의 생활을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노정을 가게 될 때 비로소 내 마음과 내 생활을 주관할 수 있을 것이요, 내 생명이 흘러 넘쳐 하나님의 사랑과 인연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사랑이 나로 말미암아 나타나고 성신의 사랑이 나의 생활적인 분야에까지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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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복귀의 가치를 나타내자
1956.07.03 (화), 한국 전본부교회
이 시간은 사도행전 1장 6절 이하의 말씀을 중심삼고'복귀의 가치를 나타내자'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세계복귀의 사명을 띠고 오신 예수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려고 하시는 목적이 어디 있느냐 하면,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인간에게 창조본연의 상태를 회복해 주려는 데 있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뜻을 먼저 깨달은 수많은 선지성현들은 그 시대 시대를 거쳐나오면서 이러한 복귀의 목적을 책임지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수고해 나온 것입니다.즉,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의 4천년 역사도 그러한 역사였고,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30여 평생 싸웠던 노정도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노정이었으며, 돌아가신 이후 2천년 동안 성신과 함께 싸움의 역사를 전개하신 것도 역시 이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싸움의 노정이었던 것입니다.
예수가 이 땅 위에 오셨던 목적은 역사의 복귀를 위해서였으며, 또한 자기 일신의 복귀와 더 나아가서 세계 복귀의 사명을 띠고 오셨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셔서 하신 그 복음의 말씀은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복하기 위한 말씀이었고, 30여 평생의 자신을 복귀하기 위한 말씀이었고, 나아가서는 세계 인류를 복귀하기 위한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날까지 인간들은 예수님이 남겨 놓은 그 말씀을 통하여 복귀섭리를 분담하면서 역사과정을 거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여러분은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해 주신 신약의 말씀을 중심삼고 과거 6천년 역사를 탕감하고 금후의 영원한 생애를 대신할 수 있는 충신의 모습을 갖추어 자기의 일신을 회복하는 동시에 역사를 회복하고 미래를 회복할 수 있는 승리적인 가치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4천년 역사를 대신하고 자신의 30여 평생을 대신한 복음의 말씀과 만민을 회복하기 위한 생명의 말씀으로서 남기셨던 그 복음의 말씀은 아무런 결심도 맺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4천년 역사를 대신했던 예수님의 원한을 풀어드리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고, 30여 생애를 통하여 만민 앞에 새로운 복귀의 이념을 세워 하늘의 승리적인 기반을 이루려 했던 예수님 자신의 복귀의 사명, 또 성신과 더불어 2천년 동안 수고하신 그 사명을 완결짓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역사를 대신한 입장에서 승리적인 복귀의 영광을 아버지 앞에 돌려드리고, 승리적 생애를 거치신 예수님 일대의 가치 이상의 가치로써 아버지 앞에 영광을 돌려 드려야 되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새로운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심으로써 2천년의 구원섭리역사를 이루어 오신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여러분들은 다시 하늘로부터 새로운 말씀을 인계받아서 전체 복귀의 위업을 종결짓고, 그것을 억조만대에 길이길이 남겨 주어야 하겠습니다.이러한 사명이 오늘날 여러분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잠시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 자신은 하나님의 복귀역사를 성취하기 위해서 인간 앞에 전부 나타내면서 역사를 해 나오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지금까지 예수님은 복귀섭리의 구체적인 내용을 나타내지 못하시고 복귀역사를 해 나오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원리를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을 감추어 놓고 상징적인 증거의 말씀을 통하여 하늘뜻을 이 땅 위에 이루기 위한 복귀역사를 해오셨고, 하늘의 영광도 인간 앞에 전부 나타내지 않고 복귀섭리역사를 해오셨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섭리의 구체적인 내용을 확실히 나타내지 않고 복귀역사를 추진시켜 나오신 예수님의 내적 심정을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속 마음을 발표하지 못한 이유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이 복귀의 영광을 갖추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인가?
여러분은 먼저 생활을 통해서 예수님이 나타내지 못하였던 감춰진 복귀의 가치를 알아야 하겠고, 다음에는 마음을 통해서 예수님이 나타내지 못하셨던 숨겨진 복귀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그 다음에는 영원한 생명의 가치를 나타내지 못하셨던 예수의 감추어진 복귀의 내용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천륜을 대신하여 복귀의 영광을 완결지으려 하실 때에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인가.
예수님께서 30여 평생의 생활과정에서 마음속 깊숙히 숨겨 놓고 만민 앞에 다 말씀하지 못하시고 밝히지 못하셨던 내용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이러한 내용을 여러분이 알지 못한다면,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천상천하를 대신한 전체의 복귀의 가치를 땅에서부터 천상에까지 나타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께서 밝혀놓은 복음의 말씀을 살펴보면, 그 속에는 예수님의 구체적인 생활내용이 전혀 나와 있지 않습니다.그러면 예수님께서 무엇으로 암시하였느냐 하면, 봉사의 생활로써 자신의 숨은 생활의 일면을 암시했습니다.즉, 자신이 높여질 수 있는 영광의 아들이었지만 영광된 자기 일신을 낮추어 뭇 죄인의 발밑에 들어가 봉사하는 생활로써 숨겨진 바의 일면을 나타냈던 것입니다.또 예수님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마음 속에 숨겨진 일면을 무언의 생활로써 나타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12제자들에게도 자신의 속마음을 발표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왜 예수님이 그러한 비밀을 발표하지 못했느냐 하면, 천상의 비밀을 마음 속에 가졌을지라도, 그 비밀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을 때 그것을 발표하면 사탄 앞에 농락받게 된다는 것을 예수님은 아셨기 때문에 발표하지 못했습니다. 즉,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알려진 사실을 홀로 간직하고 인간 앞에 옮겨주어야겠다는 애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지만, 자신의 그런 마음을 헤아리고 찾아와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천상의 비밀을 인간들 앞에 발표하지 못했고, 숨긴 마음의 일면을 인간들 앞에 나타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의 절정에까지 나아가, 교법사들과 빌라도 앞에서'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죄목으로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침묵으로 일관하시다가 빌라도가'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을 그때에야 비로소 자신을 밝히셨습니다.
선하고 의로운 하늘편 사람들이 예수님을 저희들의 왕으로 모시는 것을 평생의 영광으로 알고 예배드려야 할 것이었는데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 죄수의 이름으로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이렇게 피치 못할 입장에서 사탄의 심문을 받게 되자, 하나님의 서글픔을 대신한 입장에서 침묵을 지키시던 입을 열어 사실을 사실대로 토로하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보게 될 때 아무리 하늘의 역사라도 사탄이 하늘편에 대하여 사실을 밝혀내어 반문하게 되면 하늘편에서도 숨은 마음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요, 또 사탄편에서도 하나님편에 있는 성도들이 사탄의 숨은 비밀의 마음을 적발해 내면 그것을 드러내어 직고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 속에 누구에게도 밝히지 못한 복귀의 내용을 지니시고 평소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 무언의 봉사를 통해 천륜의 섭리를 추진시켰을뿐만 아니라 그 실천적인 면에 있어서도 어느누구보다 선봉자의 입장에 서서 숨겨진 복귀의 내용을 나타냈던 것입니다.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러한 복귀의 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예수님의 마음을 헤치고 들어가'당신의 마음은 이렇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신의 협조를 받아 숨겨진 섭리의 비밀을 알아야
만일에 그러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역사가 아무리 경과하더라도 예수님의 마음 속에 숨겨진 섭리의 비밀은 이 땅 위에 드러날 수가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여러분들은 예수님께서 생활을 통해 나타내신 복귀의 비밀을 알아야 되겠고, 마음 속에 있는 복귀의 내용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후에야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자신있게 설 수 있고, 사탄 앞에 자신있게 나설 수 있는 자, 즉 하나의 승리적인 생명을 복귀완성한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30여년의 생애를 통해서 4천년 역사를 탕감했고, 천상천하의 모든 것을 대신해서 복귀의 중심을 완결지었습니다.그런데 오늘날까지 이러한 예수님의 완결된 가치, 즉 예수님이 품고 있던 마음속의 비밀과 알려지지 않은 예수님의 생활의 가치를 인계받을 수 있는 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예수님의 내적 비밀과 생활적인 비밀을 누가 대신 갖고 나타났느냐 하면 성신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을 믿지만 그 말씀 자체만 믿어 가지고는 복귀가 안 됩니다.거기에 필요한 것은 성신이 나의 생활을 협조하고 나와 함께 동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희생 봉사의 노정을 거쳤던 것과 같이 여러분도 그러한 노정을 거쳐 십자가의 절정까지 나아가야만 예수님의 감추어 두었던 생활적인 비밀이 예수와 성신을 통하여 비로소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마음 속에 가지고 있던 내적인 비밀도 그렇게 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성신이 협조하는 생활을 통해서 성신의 마음과 하나됨으로써 마음과 생활이 하나되고, 예수님과 성신이 하나된 인연을 내 한 개체를 중심삼고 맺어놓지 않는다면 참 생명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겠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우리들은 성신의 협조를 받아, 예수님께서 생활적인 측면에서 숨겨 나왔던 비밀에 싸인 복귀의 내용과, 마음에 감추어진 복귀의 내용을 이루어 나가는 중요한 과정에 있다는 것입니다.따라서 그러한 과정에 있는 우리들은 예수님과 성신이 하나된 것과 마찬가지로 성신과 내가 하나되어 예수님을 중심삼은 삼위일체의 형을 갖는 기준을 가져야만이 땅 위에 하나님의 승리적인 발판을 조성할 수 있는 평면적인 기대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비장되어 있는 참 생명의 내용을 찾아 나아가는데 있어서 예수님과 성신의 협조를 받는 생활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생활은 전체 생명을 복귀하는데 있어서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왜냐하면, 전체 생명 복귀의 비밀은 아직까지 천상의 비밀로 남아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와 성신을 통하여 생명적인 가치의 내용을 어느 정도까지 완성했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서는 종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성신을 통하여 나타내지 않은 생명의 감춘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오늘날 전체적인 복귀의 가치를 완결지어야 할 우리에게 있어서는, 예수님의 생애의'비밀의 가치'를 뭇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함과 동시에 예수님이 지니셨던 비밀의 가치를 대신하고, 예수님과 성신이 합한 우주적인 가치를 하나님으로부터 다시금 인정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은 어떠한 상태에 있는가?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제대로 사랑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와 성신이 합력하여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기 위해 봉사와 섬김의 생활을 계속하여 나온 것과 예수님이 만물만상을 대신하여 수고하신 그 가치만큼 하나님이 예수를 대해서 사랑하지 못했던 그 사랑의 내용을 여러분이 배워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그러한 사랑의 내용을 알고 이루어 나가지 않으면, 하늘의 사무친 한을 풀어 드리고 하나님의 남겨진 복귀의 역사를 이 땅 위에서 완결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님의 3년 공생애노정과 십자가노정, 승천하셔서 2천년 동안 예수님과 성신이 함께 수고해 오신 협조의 노정을 통하여 생명 복귀와 장성 복귀섭리의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이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와 성신을 사랑하시고 6천년 동안 온 우주를 품고 사랑하셨던 이 선의 표준의 마음을 본받아 우리의 마음과 예수님과 성신의 마음이 합하여 하나로서 일할 수 있는 사랑의 중심을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만일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생활적인 복귀, 마음적인 복귀, 생명적인 복귀를 완수하여 전체의 생명과 영광의 가치를 완결지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으려면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될 것인가.우리는 예수님이 걸어가신 전 생애의 중심의 내용을 거치고,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인류를 위해 수고하신 그 마음을 거쳐야 되겠습니다.
즉, 역사과정에서 만민을 대하여 안타까와하시던 예수님의 내적 심정을 통하고,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지금까지 역사해 나온 성신의 내적 심정을 통해야겠으며, 창조이후 6천년 동안 섭리하시고 또한 앞으로 다가올 이상 세계를 이루기 위해 수고하시는 하나님의 애달픈 내적 심정을 동정하고 체휼할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 할진대, 여러분은 영원히 남아질 생명의 영광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전체적인 복귀의 가치를 완결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여러분은 이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예수님이 걸어가신 것과 마찬가지로, 성신이 하던 것과 마찬가지의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또 사도들이 걸어간 노정, 즉 자기 일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의식까지 다 잊어버리고 오로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신을 위해 살아가던 그 사도들의 생활을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노정을 가게 될 때 비로소 내 마음과 내 생활을 주관할 수 있을 것이요, 내 생명이 흘러 넘쳐 하나님의 사랑과 인연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사랑이 나로 말미암아 나타나고 성신의 사랑이 나의 생활적인 분야에까지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말씀선집 제1권 13편
복귀의 가치를 나타내자 (훈독본)
1956.07.03 (화), 한국 전본부교회
사도행전 1:6-11
이 시간은 사도행전 1장 6절 이하의 말씀을 중심삼고 '복귀의 가치를 나타내자'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세계복귀의 사명을 띠고 오신 예수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려고 하시는 목적이 어디 있느냐 하면,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인간에게 창조본연의 상태를 회복해 주려는 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깨달은 수많은 선지성현들은 그 시대 시대를 거쳐나오면서 이러한 복귀의 목적을 책임지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수고해 나온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의 4천년 역사도 그러한 역사였고,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30여 평생 싸웠던 노정도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노정이었으며, 돌아가신 이후 2천년 동안 성신과 함께 싸움의 역사를 전개하신 것도 역시 이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싸움의 노정이었던 것입니다.
예수가 이 땅 위에 오셨던 목적은 역사의 복귀를 위해서였으며, 또한 자기 일신의 복귀와 더 나아가서 세계 복귀의 사명을 띠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셔서 하신 그 복음의 말씀은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복하기 위한 말씀이었고, 30여 평생의 자신을 복귀하기 위한 말씀이었고, 나아가서는 세계 인류를 복귀하기 위한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날까지 인간들은 예수님이 남겨 놓은 그 말씀을 통하여 복귀섭리를 분담하면서 역사과정을 거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여러분은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해 주신 신약의 말씀을 중심삼고 과거 6천년 역사를 탕감하고 금후의 영원한 생애를 대신할 수 있는 충신의 모습을 갖추어 자기의 일신을 회복하는 동시에 역사를 회복하고 미래를 회복할 수 있는 승리적인 가치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4천년 역사를 대신하고 자신의 30여 평생을 대신한 복음의 말씀과 만민을 회복하기 위한 생명의 말씀으로서 남기셨던 그 복음의 말씀은 아무런 결심도 맺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4천년 역사를 대신했던 예수님의 원한을 풀어드리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고, 30여 생애를 통하여 만민 앞에 새로운 복귀의 이념을 세워 하늘의 승리적인 기반을 이루려 했던 예수님 자신의 복귀의 사명, 또 성신과 더불어 2천년 동안 수고하신 그 사명을 완결짓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역사를 대신한 입장에서 승리적인 복귀의 영광을 아버지 앞에 돌려드리고, 승리적 생애를 거치신 예수님 일대의 가치 이상의 가치로써 아버지 앞에 영광을 돌려 드려야 되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새로운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심으로써 2천년의 구원섭리역사를 이루어 오신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여러분들은 다시 하늘로부터 새로운 말씀을 인계받아서 전체 복귀의 위업을 종결짓고, 그것을 억조만대에 길이길이 남겨 주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사명이 오늘날 여러분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잠시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 자신은 하나님의 복귀역사를 성취하기 위해서 인간 앞에 전부 나타내면서 역사를 해 나오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은 복귀섭리의 구체적인 내용을 나타내지 못하시고 복귀역사를 해 나오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원리를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을 감추어 놓고 상징적인 증거의 말씀을 통하여 하늘뜻을 이 땅 위에 이루기 위한 복귀역사를 해오셨고, 하늘의 영광도 인간 앞에 전부 나타내지 않고 복귀섭리역사를 해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섭리의 구체적인 내용을 확실히 나타내지 않고 복귀역사를 추진시켜 나오신 예수님의 내적 심정을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속 마음을 발표하지 못한 이유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이 복귀의 영광을 갖추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인가?
여러분은 먼저 생활을 통해서 예수님이 나타내지 못하였던 감춰진 복귀의 가치를 알아야 하겠고, 다음에는 마음을 통해서 예수님이 나타내지 못하셨던 숨겨진 복귀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영원한 생명의 가치를 나타내지 못하셨던 예수의 감추어진 복귀의 내용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천륜을 대신하여 복귀의 영광을 완결지으려 하실 때에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인가.
예수님께서 30여 평생의 생활과정에서 마음속 깊숙히 숨겨 놓고 만민 앞에 다 말씀하지 못하시고 밝히지 못하셨던 내용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이러한 내용을 여러분이 알지 못한다면,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천상천하를 대신한 전체의 복귀의 가치를 땅에서부터 천상에까지 나타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께서 밝혀놓은 복음의 말씀을 살펴보면, 그 속에는 예수님의 구체적인 생활내용이 전혀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무엇으로 암시하였느냐 하면, 봉사의 생활로써 자신의 숨은 생활의 일면을 암시했습니다. 즉, 자신이 높여질 수 있는 영광의 아들이었지만 영광된 자기 일신을 낮추어 뭇 죄인의 발밑에 들어가 봉사하는 생활로써 숨겨진 바의 일면을 나타냈던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마음 속에 숨겨진 일면을 무언의 생활로써 나타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12제자들에게도 자신의 속마음을 발표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왜 예수님이 그러한 비밀을 발표하지 못했느냐 하면, 천상의 비밀을 마음 속에 가졌을지라도, 그 비밀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을 때 그것을 발표하면 사탄 앞에 농락받게 된다는 것을 예수님은 아셨기 때문에 발표하지 못했습니다. 즉,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알려진 사실을 홀로 간직하고 인간 앞에 옮겨주어야겠다는 애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지만, 자신의 그런 마음을 헤아리고 찾아와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천상의 비밀을 인간들 앞에 발표하지 못했고, 숨긴 마음의 일면을 인간들 앞에 나타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의 절정에까지 나아가, 교법사들과 빌라도 앞에서'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죄목으로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침묵으로 일관하시다가 빌라도가'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을 그때에야 비로소 자신을 밝히셨습니다.
선하고 의로운 하늘편 사람들이 예수님을 저희들의 왕으로 모시는 것을 평생의 영광으로 알고 예배드려야 할 것이었는데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 죄수의 이름으로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피치 못할 입장에서 사탄의 심문을 받게 되자, 하나님의 서글픔을 대신한 입장에서 침묵을 지키시던 입을 열어 사실을 사실대로 토로하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보게 될 때 아무리 하늘의 역사라도 사탄이 하늘편에 대하여 사실을 밝혀내어 반문하게 되면 하늘편에서도 숨은 마음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요, 또 사탄편에서도 하나님편에 있는 성도들이 사탄의 숨은 비밀의 마음을 적발해 내면 그것을 드러내어 직고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 속에 누구에게도 밝히지 못한 복귀의 내용을 지니시고 평소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 무언의 봉사를 통해 천륜의 섭리를 추진시켰을뿐만 아니라 그 실천적인 면에 있어서도 어느누구보다 선봉자의 입장에 서서 숨겨진 복귀의 내용을 나타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러한 복귀의 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예수님의 마음을 헤치고 들어가 '당신의 마음은 이렇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신의 협조를 받아 숨겨진 섭리의 비밀을 알아야
만일에 그러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역사가 아무리 경과하더라도 예수님의 마음 속에 숨겨진 섭리의 비밀은 이 땅 위에 드러날 수가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여러분들은 예수님께서 생활을 통해 나타내신 복귀의 비밀을 알아야 되겠고, 마음 속에 있는 복귀의 내용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후에야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자신있게 설 수 있고, 사탄 앞에 자신있게 나설 수 있는 자, 즉 하나의 승리적인 생명을 복귀완성한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30여년의 생애를 통해서 4천년 역사를 탕감했고, 천상천하의 모든 것을 대신해서 복귀의 중심을 완결지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이러한 예수님의 완결된 가치, 즉 예수님이 품고 있던 마음속의 비밀과 알려지지 않은 예수님의 생활의 가치를 인계받을 수 있는 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예수님의 내적 비밀과 생활적인 비밀을 누가 대신 갖고 나타났느냐 하면 성신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을 믿지만 그 말씀 자체만 믿어 가지고는 복귀가 안 됩니다. 거기에 필요한 것은 성신이 나의 생활을 협조하고 나와 함께 동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희생 봉사의 노정을 거쳤던 것과 같이 여러분도 그러한 노정을 거쳐 십자가의 절정까지 나아가야만 예수님의 감추어 두었던 생활적인 비밀이 예수와 성신을 통하여 비로소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마음 속에 가지고 있던 내적인 비밀도 그렇게 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성신이 협조하는 생활을 통해서 성신의 마음과 하나됨으로써 마음과 생활이 하나되고, 예수님과 성신이 하나된 인연을 내 한 개체를 중심삼고 맺어놓지 않는다면 참 생명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겠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우리들은 성신의 협조를 받아, 예수님께서 생활적인 측면에서 숨겨 나왔던 비밀에 싸인 복귀의 내용과, 마음에 감추어진 복귀의 내용을 이루어 나가는 중요한 과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과정에 있는 우리들은 예수님과 성신이 하나된 것과 마찬가지로 성신과 내가 하나되어 예수님을 중심삼은 삼위일체의 형을 갖는 기준을 가져야만이 땅 위에 하나님의 승리적인 발판을 조성할 수 있는 평면적인 기대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비장되어 있는 참 생명의 내용을 찾아 나아가는데 있어서 예수님과 성신의 협조를 받는 생활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생활은 전체 생명을 복귀하는데 있어서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체 생명 복귀의 비밀은 아직까지 천상의 비밀로 남아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와 성신을 통하여 생명적인 가치의 내용을 어느 정도까지 완성했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서는 종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성신을 통하여 나타내지 않은 생명의 감춘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오늘날 전체적인 복귀의 가치를 완결지어야 할 우리에게 있어서는, 예수님의 생애의'비밀의 가치'를 뭇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함과 동시에 예수님이 지니셨던 비밀의 가치를 대신하고, 예수님과 성신이 합한 우주적인 가치를 하나님으로부터 다시금 인정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은 어떠한 상태에 있는가?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제대로 사랑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와 성신이 합력하여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기 위해 봉사와 섬김의 생활을 계속하여 나온 것과 예수님이 만물만상을 대신하여 수고하신 그 가치만큼 하나님이 예수를 대해서 사랑하지 못했던 그 사랑의 내용을 여러분이 배워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그러한 사랑의 내용을 알고 이루어 나가지 않으면, 하늘의 사무친 한을 풀어 드리고 하나님의 남겨진 복귀의 역사를 이 땅 위에서 완결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님의 3년 공생애노정과 십자가노정, 승천하셔서 2천년 동안 예수님과 성신이 함께 수고해 오신 협조의 노정을 통하여 생명 복귀와 장성 복귀섭리의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이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와 성신을 사랑하시고 6천년 동안 온 우주를 품고 사랑하셨던 이 선의 표준의 마음을 본받아 우리의 마음과 예수님과 성신의 마음이 합하여 하나로서 일할 수 있는 사랑의 중심을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생활적인 복귀, 마음적인 복귀, 생명적인 복귀를 완수하여 전체의 생명과 영광의 가치를 완결지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으려면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될 것인가. 우리는 예수님이 걸어가신 전 생애의 중심의 내용을 거치고,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인류를 위해 수고하신 그 마음을 거쳐야 되겠습니다.
즉, 역사과정에서 만민을 대하여 안타까와하시던 예수님의 내적 심정을 통하고,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지금까지 역사해 나온 성신의 내적 심정을 통해야겠으며, 창조이후 6천년 동안 섭리하시고 또한 앞으로 다가올 이상 세계를 이루기 위해 수고하시는 하나님의 애달픈 내적 심정을 동정하고 체휼할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 할진대, 여러분은 영원히 남아질 생명의 영광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전체적인 복귀의 가치를 완결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예수님이 걸어가신 것과 마찬가지로, 성신이 하던 것과 마찬가지의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또 사도들이 걸어간 노정, 즉 자기 일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의식까지 다 잊어버리고 오로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신을 위해 살아가던 그 사도들의 생활을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노정을 가게 될 때 비로소 내 마음과 내 생활을 주관할 수 있을 것이요, 내 생명이 흘러 넘쳐 하나님의 사랑과 인연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사랑이 나로 말미암아 나타나고 성신의 사랑이 나의 생활적인 분야에까지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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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복귀의 가치를 나타내자
1956.07.03 (화), 한국 전본부교회
이 시간은 사도행전 1장 6절 이하의 말씀을 중심삼고'복귀의 가치를 나타내자'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세계복귀의 사명을 띠고 오신 예수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려고 하시는 목적이 어디 있느냐 하면,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인간에게 창조본연의 상태를 회복해 주려는 데 있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뜻을 먼저 깨달은 수많은 선지성현들은 그 시대 시대를 거쳐나오면서 이러한 복귀의 목적을 책임지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수고해 나온 것입니다.즉,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의 4천년 역사도 그러한 역사였고,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30여 평생 싸웠던 노정도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노정이었으며, 돌아가신 이후 2천년 동안 성신과 함께 싸움의 역사를 전개하신 것도 역시 이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싸움의 노정이었던 것입니다.
예수가 이 땅 위에 오셨던 목적은 역사의 복귀를 위해서였으며, 또한 자기 일신의 복귀와 더 나아가서 세계 복귀의 사명을 띠고 오셨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셔서 하신 그 복음의 말씀은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복하기 위한 말씀이었고, 30여 평생의 자신을 복귀하기 위한 말씀이었고, 나아가서는 세계 인류를 복귀하기 위한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날까지 인간들은 예수님이 남겨 놓은 그 말씀을 통하여 복귀섭리를 분담하면서 역사과정을 거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여러분은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해 주신 신약의 말씀을 중심삼고 과거 6천년 역사를 탕감하고 금후의 영원한 생애를 대신할 수 있는 충신의 모습을 갖추어 자기의 일신을 회복하는 동시에 역사를 회복하고 미래를 회복할 수 있는 승리적인 가치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4천년 역사를 대신하고 자신의 30여 평생을 대신한 복음의 말씀과 만민을 회복하기 위한 생명의 말씀으로서 남기셨던 그 복음의 말씀은 아무런 결심도 맺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4천년 역사를 대신했던 예수님의 원한을 풀어드리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고, 30여 생애를 통하여 만민 앞에 새로운 복귀의 이념을 세워 하늘의 승리적인 기반을 이루려 했던 예수님 자신의 복귀의 사명, 또 성신과 더불어 2천년 동안 수고하신 그 사명을 완결짓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역사를 대신한 입장에서 승리적인 복귀의 영광을 아버지 앞에 돌려드리고, 승리적 생애를 거치신 예수님 일대의 가치 이상의 가치로써 아버지 앞에 영광을 돌려 드려야 되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새로운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심으로써 2천년의 구원섭리역사를 이루어 오신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여러분들은 다시 하늘로부터 새로운 말씀을 인계받아서 전체 복귀의 위업을 종결짓고, 그것을 억조만대에 길이길이 남겨 주어야 하겠습니다.이러한 사명이 오늘날 여러분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잠시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 자신은 하나님의 복귀역사를 성취하기 위해서 인간 앞에 전부 나타내면서 역사를 해 나오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지금까지 예수님은 복귀섭리의 구체적인 내용을 나타내지 못하시고 복귀역사를 해 나오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원리를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을 감추어 놓고 상징적인 증거의 말씀을 통하여 하늘뜻을 이 땅 위에 이루기 위한 복귀역사를 해오셨고, 하늘의 영광도 인간 앞에 전부 나타내지 않고 복귀섭리역사를 해오셨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섭리의 구체적인 내용을 확실히 나타내지 않고 복귀역사를 추진시켜 나오신 예수님의 내적 심정을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속 마음을 발표하지 못한 이유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이 복귀의 영광을 갖추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인가?
여러분은 먼저 생활을 통해서 예수님이 나타내지 못하였던 감춰진 복귀의 가치를 알아야 하겠고, 다음에는 마음을 통해서 예수님이 나타내지 못하셨던 숨겨진 복귀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그 다음에는 영원한 생명의 가치를 나타내지 못하셨던 예수의 감추어진 복귀의 내용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천륜을 대신하여 복귀의 영광을 완결지으려 하실 때에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인가.
예수님께서 30여 평생의 생활과정에서 마음속 깊숙히 숨겨 놓고 만민 앞에 다 말씀하지 못하시고 밝히지 못하셨던 내용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이러한 내용을 여러분이 알지 못한다면,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천상천하를 대신한 전체의 복귀의 가치를 땅에서부터 천상에까지 나타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께서 밝혀놓은 복음의 말씀을 살펴보면, 그 속에는 예수님의 구체적인 생활내용이 전혀 나와 있지 않습니다.그러면 예수님께서 무엇으로 암시하였느냐 하면, 봉사의 생활로써 자신의 숨은 생활의 일면을 암시했습니다.즉, 자신이 높여질 수 있는 영광의 아들이었지만 영광된 자기 일신을 낮추어 뭇 죄인의 발밑에 들어가 봉사하는 생활로써 숨겨진 바의 일면을 나타냈던 것입니다.또 예수님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마음 속에 숨겨진 일면을 무언의 생활로써 나타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12제자들에게도 자신의 속마음을 발표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왜 예수님이 그러한 비밀을 발표하지 못했느냐 하면, 천상의 비밀을 마음 속에 가졌을지라도, 그 비밀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을 때 그것을 발표하면 사탄 앞에 농락받게 된다는 것을 예수님은 아셨기 때문에 발표하지 못했습니다. 즉,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알려진 사실을 홀로 간직하고 인간 앞에 옮겨주어야겠다는 애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지만, 자신의 그런 마음을 헤아리고 찾아와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천상의 비밀을 인간들 앞에 발표하지 못했고, 숨긴 마음의 일면을 인간들 앞에 나타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의 절정에까지 나아가, 교법사들과 빌라도 앞에서'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죄목으로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침묵으로 일관하시다가 빌라도가'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을 그때에야 비로소 자신을 밝히셨습니다.
선하고 의로운 하늘편 사람들이 예수님을 저희들의 왕으로 모시는 것을 평생의 영광으로 알고 예배드려야 할 것이었는데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 죄수의 이름으로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이렇게 피치 못할 입장에서 사탄의 심문을 받게 되자, 하나님의 서글픔을 대신한 입장에서 침묵을 지키시던 입을 열어 사실을 사실대로 토로하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보게 될 때 아무리 하늘의 역사라도 사탄이 하늘편에 대하여 사실을 밝혀내어 반문하게 되면 하늘편에서도 숨은 마음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요, 또 사탄편에서도 하나님편에 있는 성도들이 사탄의 숨은 비밀의 마음을 적발해 내면 그것을 드러내어 직고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 속에 누구에게도 밝히지 못한 복귀의 내용을 지니시고 평소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 무언의 봉사를 통해 천륜의 섭리를 추진시켰을뿐만 아니라 그 실천적인 면에 있어서도 어느누구보다 선봉자의 입장에 서서 숨겨진 복귀의 내용을 나타냈던 것입니다.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러한 복귀의 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예수님의 마음을 헤치고 들어가'당신의 마음은 이렇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신의 협조를 받아 숨겨진 섭리의 비밀을 알아야
만일에 그러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역사가 아무리 경과하더라도 예수님의 마음 속에 숨겨진 섭리의 비밀은 이 땅 위에 드러날 수가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여러분들은 예수님께서 생활을 통해 나타내신 복귀의 비밀을 알아야 되겠고, 마음 속에 있는 복귀의 내용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후에야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자신있게 설 수 있고, 사탄 앞에 자신있게 나설 수 있는 자, 즉 하나의 승리적인 생명을 복귀완성한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30여년의 생애를 통해서 4천년 역사를 탕감했고, 천상천하의 모든 것을 대신해서 복귀의 중심을 완결지었습니다.그런데 오늘날까지 이러한 예수님의 완결된 가치, 즉 예수님이 품고 있던 마음속의 비밀과 알려지지 않은 예수님의 생활의 가치를 인계받을 수 있는 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예수님의 내적 비밀과 생활적인 비밀을 누가 대신 갖고 나타났느냐 하면 성신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을 믿지만 그 말씀 자체만 믿어 가지고는 복귀가 안 됩니다.거기에 필요한 것은 성신이 나의 생활을 협조하고 나와 함께 동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희생 봉사의 노정을 거쳤던 것과 같이 여러분도 그러한 노정을 거쳐 십자가의 절정까지 나아가야만 예수님의 감추어 두었던 생활적인 비밀이 예수와 성신을 통하여 비로소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마음 속에 가지고 있던 내적인 비밀도 그렇게 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성신이 협조하는 생활을 통해서 성신의 마음과 하나됨으로써 마음과 생활이 하나되고, 예수님과 성신이 하나된 인연을 내 한 개체를 중심삼고 맺어놓지 않는다면 참 생명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겠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우리들은 성신의 협조를 받아, 예수님께서 생활적인 측면에서 숨겨 나왔던 비밀에 싸인 복귀의 내용과, 마음에 감추어진 복귀의 내용을 이루어 나가는 중요한 과정에 있다는 것입니다.따라서 그러한 과정에 있는 우리들은 예수님과 성신이 하나된 것과 마찬가지로 성신과 내가 하나되어 예수님을 중심삼은 삼위일체의 형을 갖는 기준을 가져야만이 땅 위에 하나님의 승리적인 발판을 조성할 수 있는 평면적인 기대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비장되어 있는 참 생명의 내용을 찾아 나아가는데 있어서 예수님과 성신의 협조를 받는 생활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생활은 전체 생명을 복귀하는데 있어서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왜냐하면, 전체 생명 복귀의 비밀은 아직까지 천상의 비밀로 남아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와 성신을 통하여 생명적인 가치의 내용을 어느 정도까지 완성했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서는 종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성신을 통하여 나타내지 않은 생명의 감춘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오늘날 전체적인 복귀의 가치를 완결지어야 할 우리에게 있어서는, 예수님의 생애의'비밀의 가치'를 뭇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함과 동시에 예수님이 지니셨던 비밀의 가치를 대신하고, 예수님과 성신이 합한 우주적인 가치를 하나님으로부터 다시금 인정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은 어떠한 상태에 있는가?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제대로 사랑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와 성신이 합력하여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기 위해 봉사와 섬김의 생활을 계속하여 나온 것과 예수님이 만물만상을 대신하여 수고하신 그 가치만큼 하나님이 예수를 대해서 사랑하지 못했던 그 사랑의 내용을 여러분이 배워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그러한 사랑의 내용을 알고 이루어 나가지 않으면, 하늘의 사무친 한을 풀어 드리고 하나님의 남겨진 복귀의 역사를 이 땅 위에서 완결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님의 3년 공생애노정과 십자가노정, 승천하셔서 2천년 동안 예수님과 성신이 함께 수고해 오신 협조의 노정을 통하여 생명 복귀와 장성 복귀섭리의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이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와 성신을 사랑하시고 6천년 동안 온 우주를 품고 사랑하셨던 이 선의 표준의 마음을 본받아 우리의 마음과 예수님과 성신의 마음이 합하여 하나로서 일할 수 있는 사랑의 중심을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만일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생활적인 복귀, 마음적인 복귀, 생명적인 복귀를 완수하여 전체의 생명과 영광의 가치를 완결지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으려면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될 것인가.우리는 예수님이 걸어가신 전 생애의 중심의 내용을 거치고,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인류를 위해 수고하신 그 마음을 거쳐야 되겠습니다.
즉, 역사과정에서 만민을 대하여 안타까와하시던 예수님의 내적 심정을 통하고,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지금까지 역사해 나온 성신의 내적 심정을 통해야겠으며, 창조이후 6천년 동안 섭리하시고 또한 앞으로 다가올 이상 세계를 이루기 위해 수고하시는 하나님의 애달픈 내적 심정을 동정하고 체휼할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 할진대, 여러분은 영원히 남아질 생명의 영광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전체적인 복귀의 가치를 완결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여러분은 이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예수님이 걸어가신 것과 마찬가지로, 성신이 하던 것과 마찬가지의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또 사도들이 걸어간 노정, 즉 자기 일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의식까지 다 잊어버리고 오로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신을 위해 살아가던 그 사도들의 생활을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노정을 가게 될 때 비로소 내 마음과 내 생활을 주관할 수 있을 것이요, 내 생명이 흘러 넘쳐 하나님의 사랑과 인연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사랑이 나로 말미암아 나타나고 성신의 사랑이 나의 생활적인 분야에까지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말씀선집 제1권 14편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찾아드리자 (훈독본)
1956.10.07 (일), 한국 전본부교회
고린도전서 13:1-13
이 시간 말씀드리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찾아드리자'입니다.
① 하나님의 창조이상
어두운 이 땅 위에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의 역사를 시작하실 때 세우신 하나의 표준은 자신의 내적 심정에 남아진 이상적인 형상을 영원한 하나의 실체로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하나의 실체를 세워 놓고 그 영원한 기쁨을 느끼면서 둘이 아닌 하나의 상대적인 이상을 갖추어 살고자 창조역사를 시작하였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수고를 거쳐 지은 피조물 중에서 인간 하나를 모든 이상의 중심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의 사람이 하나님께서 본래 요구하신 희망과는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 이후 지금까지 오랜 역사가 경과하였지만 하나님께서 바라신 그 이상과는 관계가 없는 인간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하나의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사람을 다시 찾아나오는 역사노정이 섭리의 노정이요, 구원의 노정이요, 개척의 노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내적 심정으로서 소망하신 하나의 이상은 온 피조만물 전체에까지 미쳐지는 이상이었는데, 사람 하나가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그 이상은 피조물 전체 가운데에서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개척의 역사와 구원의 역사를 통하여 섭리의 뜻을 세워 찾고자 하시는 하나의 중심되는 뜻이 무엇이냐 하면, 사람을 세워 하나님의 내적 심정으로 그리던 이상을 실현시킴으로써 하나님 자신이 즐기는 것은 물론이요, 그 즐거움의 이상을 사람의 영원한 이상으로 삼아 영광의 조건으로 돌려드리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천상에 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자체를 부르고 계심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자체가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는 하나의 중심체가 되기를 바라셔서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라시는 그 이상은 우리가 불완전한 권내에 있는 한,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뜻 그리고 사탄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한 실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좌로 보나 우로 보나 상하로 보나 이루어 놓아야 할 것이 하나님의 이상입니다. 그래서 좌나 우에 속하여 있는 무리나, 또는 땅 위에 있는 모든 존재, 천상에 있는 천천만 성도까지 그 하나의 이상을 무슨 일인지 모르게 흠모하여 나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원리를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의 새로운 광명의 이상이 나타나야 할 그 날은 어느 때일 것인가'라고 하면서 수많은 성현 현철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 모르는 길을 개척해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광명한 이상의 심정을 통한 후 그들을 대하여 '그대가 마음으로 그리던 소망이 이것이요, 그대가 지향하던 이상이 이것이로다'라고 할 수 있는 불변의 영원한 이상의 요소를 지녀야 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마음과 몸, 환경을 통하여 실현되는 하나의 기쁨의 터전을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기쁨의 터전을 여러분이 이루지 못한다 할진대는 하나님의 이상은 피조세계에서 찾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② 하나님의 이상 실현과 인간의 책임
그러면 여기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문제가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지어 놓은 만물에 있는 것이 아니요, 영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천상에 있는 천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중심이요 하나의 표준이요 하나의 핵심이요 만물의 주인공인 여러분 자체에게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자체가 하나님의 이상을 좌우하는 중심이요 표준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망에 눌려 있는 이 천지간에 그 하나의 표준점, 그 하나의 중심점이 나타나는 한날의 기쁨이 오늘날 역사노정을 거쳐가는 우리의 소망이요, 수많은 악령들과 싸워 나오는 하나님의 섭리의 뜻인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하나님의 이상을 흠모하는 마음을 갖고 지내려면 먼저는 하나님의 내적 심정과 동감 동화될 수 있는 자아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연이 법도대로 움직여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의 마음이 천심을 중심삼고 움직여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하늘의 우주적인 종말점까지 연락시킬 수 있는 마음의 중심을 세워 놓지 않는 한,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은 피조세계와 영원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 자신의 마음과 몸을 헤아려보게 될 때, 우리의 마음과 몸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담이 있습니까? 내 몸과 만물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담이 있습니까? 그러한 담이 있는 한,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상은 여러분과 이미 관계를 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마음의 문을 열어야 되겠고, 몸의 모든 죄악을 제거하여 화동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세워야 됩니다. 그리하여 천상의 성품을 아니 느낄래야 아니 느낄 수 없고, 아니 행할래야 아니 행할 수 없는 자연적인 은사를 받아 하나님을 대하고 그의 이상을 이루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그 하나의 기준과 먼 거리에 처하여 있기 때문에 그 기준 위로 끌어올리기 위한 수고의 역사가 있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복귀섭리역사입니다. 그 뜻을 이루기 위한 섭리역사가 지금까지 선지선열들을 보내 이끌어 나온 역사인 것을 우리는 마음 깊이 명심하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이제 오로지 여러분은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만물을 상징하여 지음받은 몸의 가치, 천품을 대신하여 몸의 중심으로서 지음받은 마음의 가치를 소유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온 피조만물의 중심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내적 심성, 전체의 중심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하나님의 내적 심성이 우리의 마음을 거치고 몸을 거치고 우리의 생활 무대를 거치어 만물 만상까지 하나의 움직임으로서 나타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우리의 한 몸에서 이루어 놓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③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와 사탄의 활동목표
하나님께서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주관권에서 떨어진 인간을 본연의 위치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6천년 동안을 역사하셨는데, 그 역사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은 창조원리에 의해 상징적인 실체대상으로 만물을 창조했고, 형상적인 실체대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하나의 실존체가 우리 마음의 이상적인 표준이 되어 있는 한, 우리는 하나님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둘이 아닌 하나의 연관성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연관성을 막아 놓고, 연락의 길을 중단시켜 놓고 역사하는 존재가 누구냐 하면 여러분의 원수인 사탄, 여러분이 그와 싸워 영원한 승리의 인연을 세워 그를 자연굴복시키지 않으면 아니 될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도 내일도 하나님의 이상의 동산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 바라시던 소망의 이상이 내 몸 마음을 통하여 온 천주 우주간에 이루어지지 않는 한, 그 사탄은 제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우리의 마음을 대한 이상, 우리의 몸을 대한 이상, 만물을 대한 이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이것과 반대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탄을 세계적으로 책임지고 굴복시킬 수 있는 소망의 한 날이 나타나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의 사탄으로 말미암아 맺혀진 조건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제거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이상은 우리와 관계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사탄과 대립하여 승리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을 세우셨는데, 그 분이 누구냐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만물에서 몸으로, 몸에서 마음으로, 마음에서 천상까지 연락되는 그 문이 막혀 있습니다. 이 요구하는 마음과 몸, 요구하는 상대의 막힌 문을 뚫어 연락시켜 주는 역사를 해 오신 분이 예수님과 성신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던 불변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님의 이상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먼저는 인간의 마음을 복귀하고 몸을 복귀하고 그 다음에는 만물세계까지 복귀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전체적인 이념과 전체적인 이상을 갖고 오셨으나, 믿도록 택하여 세웠던 이스라엘민족이 믿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의 성상을 대신한 마음적인 이상만을 세우시고 가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그 마음적인 이상, 즉 영적인 이상을 세우실 때까지의, 예수님의 생애와 예수님의 역사를 알지 않으면 아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마음적인 승리의 길, 즉 사탄 대해 승리할 수 있는 길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의지하여 이상을 찾아 나가는 것은 어떠한 시간권내에 이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니셨던 인격, 예수님이 갖고 오셨던 소망, 예수님이 믿었던 이념, 예수님이 갖고 있던 생명, 예수님이 갖고 있던 사랑, 그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한 사명이며 또한 그것은 일시적인 사명이 아니고 영원을 대신한 사명이었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싸우신 예수님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이상을 찾아 나아가 그 이상을 이루고자 하는 우리들은 오늘날 무엇을 가져야 되겠느냐. 하나님의 영원하신 요소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때와 시대는 변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원하신 실체는 변치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지닌 이상도 영원하신 이상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날 인간들이 찾아 나아가야 할 최후에 남아진 이상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영원한 이상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영원한 이상을 내 것으로 만드는 날까지 오늘도 싸워야 되겠고, 내일도 싸워야 되겠고, 생애를 바쳐 싸워나가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④ 예수님이 세운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생명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오셔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이상을 찾아 나가는데 있어서 믿지 못하는 이스라엘민족을 대신하여 영원한 믿음을 세우기 위해서 싸우신 분입니다. 역사과정의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믿는 그 소망과 믿음의 한계는 자기 개인에 국한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한 분만은 믿음과 소망을 자기 자신만의 믿음과 소망으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으로 세워져 있는 한, 그 이상의 요소를 갖출 수 있는 믿음, 즉 영원한 믿음을 세우기 위하여 일생을 바쳤습니다.
예수님께서 30여 평생을 통하여 바라신 하나의 중심이 무엇인가. 그때까지 4천년 역사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믿음의 기준을 세웠으나 그들의 믿음은 민족적인 한계를 넘지 못했고 세계적인 한계를 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러한 기준을 넘어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이루기 위한 것, 영원한 믿음을 세우기 위한 것이 그의 일생의 중심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믿음은 자기 일신의 구원을 목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구원이 목적이 아니었고 이 땅만을 구원하기 위한 목적도 아니었습니다. 역사의 기원에서부터 그 과정과 미래의 어느 한 종점까지 전부를 섭리해 오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아시고 그 모든 것을 복귀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님을 붙들려면 먼저 예수님 한 분에게는 역사적인 전체 인류의 뜻이 개재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4천년 역사과정의 수많은 신앙인들, 또는 그 당시의 모든 인류의 믿음을 통합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천추만대의 미래 역사를 대신하고 전체 인류의 믿음을 통합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 영원불변의 하나의 중심을 갖고 오셨던 분이었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예수님의 소망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소망은 역대의 수많은 선조들이 오랫동안 소망해 나오던 그 모든 소망을 전부 흡수한 소망이었습니다. 또 천상과 지상에 사무쳐 있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소망을 대신한 소망을 지니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역사이래 어느누구도 갖지 못하였던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이룰 수 있는 소망의 중심을 세웠기에 우리의 소망을 대신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대한 믿음을 세워 소망을 갖추고 생명의 인연과 사랑의 인연을 갖추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소망을 영원한 소망으로서, 생명도 영원한 생명으로서 세우기 위해 30여 평생의 싸움의 노정을 거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신의 생애과정에 있어서 생의 가치를 느꼈던 것은, 피조세계 전체를 대신하여 영원 실존하시고 생명의 중심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의 요소를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영원한 생명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어떠한 사탄의 힘의 작용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세우신 사랑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죽을 수 있는 불변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 천상에 계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예수님의 마음은 만민을 대신할 수 있었습니다. 천상천하에 비로소 하나님의 마음적인 영원한 이상을 대신하고 온 우주 인간을 대신하여 불변하는 사랑의 마음을 예수님은 지니고 계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⑤ 예수님에 대한 바른 믿음
예수님께서 그와 같이 믿음으로, 소망으로, 생명으로, 사랑으로 세워 놓은 섭리의 뜻을 오늘날 우리는 인계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고의 노정을 거치어 세워 놓은 구원의 뜻을 우리는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또 십자가의 방패로서 자기 일신을 불살라 대속의 기준을 세우신 그 노정을 우리는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더 나아가 오늘날 한계권내에 있는 우리들은 무한대의 하나님을 믿음으로부터 무한대의 하나님의 소망과 생명, 사랑까지 그리워하며 30여 평생을 서럽게 보내신 예수님의 생애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만 우주의 주인공이요, 만민의 구주요, 땅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소망과 믿음, 생명, 사랑의 전체에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조건들을 세우기 위해 생애를 걸고 싸우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몸을 통하여 예수님의 성상을 느끼려 하고 만물을 통하여 예수님의 성상을 느끼려고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성상과 우리의 성상이 합하여 온 천주를 대신하는 영원한 하나님의 이상에 합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운명하심이 무엇을 예고한 것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십자가의 고개는 영원한 믿음을 성취한 십자가요, 영원한 하나님의 소망을 체휼케 하고 권고하던 십자가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사랑을 우리들도 가지라고 권고하던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속의 역사를 거쳐 남겨진 구원의 도리는 예수님의 영원한 믿음과 영원한 소망과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사랑을 우리에게 넘겨 줄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만 우주의 인간 전체를 대신하여 오셨던 예수님의 믿음이 전체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즉 온 인류를 대신해서 소망하던 그 소망이 세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원한의 호소를 하셨던 것입니다. 생명과 사랑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만일 당시에 예수님께서 바라신 믿음, 예수님께서 바라신 소망, 예수님께서 바라신 생명, 예수님께서 바라신 사랑이 나타날 수 있었던들, 십자가의 원한의 호소는 없었을 것입니다.
⑥ 십자가를 통해 갖추어야 할 것
끝날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찾아오시어 예수 그리스도가 남기신 영원한 믿음의 빚을 갚았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남기신 소망의 빚, 생명의 빚, 사랑의 빚을 갚았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게 될 때,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듯이 여러분도 그래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당신이 남겨 준 영원한 하나님의 유업을 내 일신에서'다 이루었나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하나의 사람이 이 땅위에 나타나지 않는 한 하나님의 종말적인 섭리의 뜻은 완결되지 못합니다.
4천년 역사노정에 있어서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이상하신 중심의 요소를 예수님이 세웠습니다. 영적이고 내적인 구원의 조건을 확장시켜 세계적인 기준까지 늘리기 위해 오늘날까지 예수님과 성신이 역사해 오셨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의 내적인 이상의 요소를 외적으로 이룰 수 있는 영원한 믿음과 소망과 생명과 사랑을 세우지 못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2천년 섭리의 뜻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마음까지 느끼고자 하는 믿음의 노정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자신의 어느 정도까지 믿고 있는가를 스스로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혹시 자기 일신의 관념으로서 세워진 자신의 주장권내에서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주 전체를 대신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비교하여 차이가 있다면 그 차이가 있는 만큼 끝날에 심판의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갖고 있는 소망은 어떠한 것입니까. 여러분이 관념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 소망은 여러분 자신을 위한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넘어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대신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의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과 차이가 있으면 그만큼 끝날의 심판의 조건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생명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생명을 얻었다면, 그 생명은 내 일신이 살기 위해서 있는 생명이 아닙니다. 그 생명은 이 민족을 복귀시키고 천천만 성도들까지 화동시켜야 할 생명입니다. 십자가를 앞에 놓고, 사탄의 공격 앞에서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대신하였던 예수 그리스도의 태연자약한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기의 생명이 죽어지는 입장에 처해 있을지라도 원수들의 반격에 대해 일체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익히 알고 있는, 그러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4천년 동안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원수와 싸우신 그 심정을 헤아리면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느끼고자 하신 분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그 무한하신 심정을 동경하게 될 때, 자신 앞에 그것이 신앙의 기지가 되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⑦ 십자가의 사랑
오늘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어서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무한하신 생명을 받은 자신일진대, 그 생명이 어느 권내에 처해 있는가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 즉 온 천지를 지으시고 그것을 품기 위하여 애달파하시는 영원하시고 이상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아셨기 때문에, 이 땅 위해서 자기의 일신과 가족, 민족, 세계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끝날의 심판이 있다고 할진대는,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와 예수님에 의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 자체에게 미치게 될 때, 여러분 자신이 그 사랑을 받아 가지고 여러분 일신에 영원히 지닐 수 있는 마음의 토대가 없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그러한 마음의 토대가 없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끝날 심판 때에 하나님 앞에 떳떳이 나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 앞에 그리스도의 크고도 높은 소망과 이상이 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크고 높은 이상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비로소 지상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그를 본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계에 가셔서도 세계를 대신하여 사탄과 싸우고 계십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상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성신과 천천만 천군천사와 함께 우리를 대신해서 사탄과 싸워 나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믿음과 소망, 생명, 사랑을 이제 우리는 내 것으로써만 가져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만일 그것을 내 것으로만 갖고 있다 할진대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상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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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찾아드리자
1956.10.07 (일), 한국 전본부교회
이 시간 말씀드리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찾아드리자'입니다.`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찾아드리자' 이러한 제목으로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
어두운 이 땅 위에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의 역사를 시작하실 때 세우신 하나의 표준은 자신의 내적 심정에 남아진 이상적인 형상을 영원한 하나의 실체로 세우는 것이었습니다.그리하여 이 하나의 실체를 세워 놓고 그 영원한 기쁨을 느끼면서 둘이 아닌 하나의 상대적인 이상을 갖추어 살고자 창조역사를 시작하였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수고를 거쳐 지은 피조물 중에서 인간 하나를 모든 이상의 중심으로 세우셨습니다.그런데 그 하나의 사람이 하나님께서 본래 요구하신 희망과는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 이후 지금까지 오랜 역사가 경과하였지만 하나님께서 바라신 그 이상과는 관계가 없는 인간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하나의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사람을 다시 찾아나오는 역사노정이 섭리의 노정이요, 구원의 노정이요, 개척의 노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내적 심정으로서 소망하신 하나의 이상은 온 피조만물 전체에까지 미쳐지는 이상이었는데, 사람 하나가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그 이상은 피조물 전체 가운데에서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개척의 역사와 구원의 역사를 통하여 섭리의 뜻을 세워 찾고자 하시는 하나의 중심되는 뜻이 무엇이냐 하면, 사람을 세워 하나님의 내적 심정으로 그리던 이상을 실현시킴으로써 하나님 자신이 즐기는 것은 물론이요, 그 즐거움의 이상을 사람의 영원한 이상으로 삼아 영광의 조건으로 돌려드리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천상에 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자체를 부르고 계심을 알아야 되겠습니다.천상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자체가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는 하나의 중심체가 되기를 바라셔서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라시는 그 이상은 우리가 불완전한 권내에 있는 한,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뜻 그리고 사탄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한 실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좌로 보나 우로 보나 상하로 보나 이루어 놓아야 할 것이 하나님의 이상입니다.그래서 좌에 속하여 있는 무리나 우에 속하여 있는 무리나, 또는 땅 위에 있는 모든 존재, 천상에 있는 천천만 성도까지 그 하나의 이상을 무슨 일인지 모르게 흠모하여 나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원리를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의 새로운 광명의 이상이 나타나야 할 그 날은 어느 날일 것인가, 그 한 시간은 어느 시간일 것인가, 그 때는 어느 때일 것인가'라고 하면서 수많은 성현 현철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 모르는 길을 개척해 나오기를 오늘날까지 계속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광명한 이상의 심정을 통한 후 그들을 대하여'그대가 마음으로 그리던 소망이 이것이요, 그대가 지향하던 이상이 이것이로다'라고 할 수 있는 불변의 영원한 이상의 요소를 지녀야 됩니다.그리하여 여러분의 마음을 통하여, 몸을 통하여, 환경을 통하여 실현되는 하나의 기쁨의 터전을 이루어야 되겠습니다.그러한 기쁨의 터전을 여러분이 이루지 못한다 할진대는 하나님의 이상은 피조세계에서 찾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상 실현과 인간의 책임
그러면 여기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문제가 어디에 있느냐?그것은 지어 놓은 만물에 있는 것이 아니요, 영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또 천상에 있는 천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중심이요 하나의 표준이요 하나의 핵심이요 만물의 주인공인 여러분 자체에게 있는 것입니다.따라서 여러분 자체가 하나님의 이상을 좌우하는 중심이요 표준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망에 눌려 있는 이 천지간에 그 하나의 표준점, 그 하나의 중심점이 나타나는 한날의 기쁨이 오늘날 역사노정을 거쳐가는 우리의 소망이요 수많은 악령들과 싸워 나오는 하나님의 섭리의 뜻인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하나님의 이상을 흠모하는 마음을 갖고 지내려면 먼저는 하나님의 내적 심정과 동감 동화될 수 있는 자아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그리하여 자연이 법도대로 움직여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의 마음이 천심을 중심삼고 움직여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하늘의 우주적인 종말점까지 연락시킬 수 있는 마음의 중심을 세워 놓지 않는 한,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은 피조세계와 영원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 자신의 마음과 몸을 헤아려보게 될 때, 우리의 마음과 하늘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담이 있습니까?내 마음과 몸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담이 있습니까?내 몸과 만물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담이 있습니까? 그러한 담이 있는 한,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상은 여러분과 이미 관계를 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마음의 문을 열어야 되겠고, 몸의 모든 죄악을 제거하여 화동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세워야 됩니다.그리하여 천상의 성품을 아니 느낄래야 아니 느낄 수 없고, 아니 행할래야 아니 행할 수 없는 자연적인 은사를 받아 하나님을 대하고 그의 이상을 이루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그 하나의 기준과 먼 거리에 처하여 있기 때문에 그 기준 위로 끌어올리기 위한 수고의 역사가 있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복귀섭리역사입니다.그 뜻을 이루기 위한 섭리역사가 지금까지 선지선열들을 보내 이끌어 나온 역사인 것을 우리는 마음 깊이 명심하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이제 오로지 여러분은 나아가야 되겠습니다.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만물을 상징하여 지음받은 몸의 가치, 천품을 대신하여 몸의 중심으로서 지음받은 마음의 가치를 소유해야 됩니다.그리하여 온 피조만물의 중심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내적 심성, 전체의 중심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하나님의 내적 심성이 우리의 마음을 거치고 몸을 거치고 우리의 생활 무대를 거치어 만물 만상까지 하나의 움직임으로서 나타날 수 있어야 합니다.이러한 모든 것을 우리의 한 몸에서 이루어 놓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와 사탄의 활동목표
하나님께서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주관권에서 떨어진 인간을 본연의 위치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6천년 동안을 역사하셨는데, 그 역사가 어떠했습니까?하나님은 창조원리에 의해 상징적인 실체대상으로 만물을 창조했고, 형상적인 실체대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하나의 실존체가 우리 마음의 이상적인 표준이 되어 있는 한, 우리는 하나님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둘이 아닌 하나의 연관성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연관성을 막아 놓고, 연락의 길을 중단시켜 놓고 역사하는 존재가 누구냐 하면 여러분의 원수인 사탄, 여러분이 그와 싸워 영원한 승리의 인연을 세워 그를 자연굴복시키지 않으면 아니 될 사탄이라는 것입니다.그런데 오늘도 내일도 하나님의 이상의 동산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 바라시던 소망의 이상이 내 몸 마음을 통하여 온 천주 우주간에 이루어지지 않는 한, 그 사탄은 제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우리의 마음을 대한 이상, 우리의 몸을 대한 이상, 만물을 대한 이상이 있습니다.그런데 사탄은 이것과 반대하여 싸우고 있습니다.그러므로 그 사탄을 세계적으로 책임지고 굴복시킬 수 있는 소망의 한 날이 나타나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의 사탄으로 말미암아 맺혀진 조건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제거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이상은 우리와 관계가 없다는 거예요.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사탄과 대립하여 승리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을 세우셨는데, 그 분이 누구냐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만물에서 몸으로, 몸에서 마음으로, 마음에서 천상까지 연락되는 그 문이 막혀 있습니다.이 요구하는 마음과 몸, 요구하는 상대의 막힌 문을 뚫어 연락시켜 주는 역사를 해 오신 분이 예수님과 성신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던 불변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그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님의 이상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먼저는 인간의 마음을 복귀하고 몸을 복귀하고 그 다음에는 만물세계까지 복귀하는 것이었습니다.예수님께서 이런 전체적인 이념과 전체적인 이상을 갖고 오셨으나, 믿도록 택하여 세웠던 이스라엘민족이 믿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의 성상을 대신한 마음적인 이상만을 세우시고 가셨던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그 마음적인 이상, 즉 영적인 이상을 세우실 때까지의, 예수님의 생애와 예수님의 역사를 알지 않으면 아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마음적인 승리의 길, 즉 사탄 대해 승리할 수 있는 길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의지하여 이상을 찾아 나가는 것은 어떠한 시간권내에 이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니셨던 인격, 예수님이 갖고 오셨던 소망, 예수님이 믿었던 이념, 예수님이 갖고 있던 생명, 예수님이 갖고 있던 사랑, 그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한 사명이며 또한 그것은 일시적인 사명이 아니고 영원을 대신한 사명이었습니다.바로 그와 같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싸우신 예수님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이상을 찾아 나아가 그 이상을 이루고자 하는 우리들은 오늘날 무엇을 가져야 되겠느냐.하나님의 영원하신 요소를 가져야 되겠습니다.왜냐하면 때와 시대는 변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원하신 실체는 변치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지닌 이상도 영원하신 이상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그런 연고로 오늘날 인간들이 찾아 나아가야 할 최후에 남아진 이상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영원한 이상입니다.이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영원한 이상을 내 것으로 만드는 날까지 오늘도 싸워야 되겠고, 내일도 싸워야 되겠고, 생애를 바쳐 싸워나가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세운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생명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오셔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이상을 찾아 나가는데 있어서 믿지 못하는 이스라엘민족을 대신하여 영원한 믿음을 세우기 위해서 싸우신 분입니다.역사과정의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믿는 그 소망과 믿음의 한계는 자기 개인에 국한되는 것이었습니다.그러나 예수님 한 분만은 믿음과 소망을 자기 자신만의 믿음과 소망으로 세우지 않았습니다.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으로 세워져 있는 한, 그 이상의 요소를 갖출 수 있는 믿음, 즉 영원한 믿음을 세우기 위하여 일생을 바쳤습니다.
예수님께서 30여 평생을 통하여 바라신 하나의 중심이 무엇인가.그때까지 4천년 역사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믿음의 기준을 세웠으나 그들의 믿음은 민족적인 한계를 넘지 못했고 세계적인 한계를 넘지 못했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은 그러한 기준을 넘어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이루기 위한 것, 영원한 믿음을 세우기 위한 것이 그의 일생의 중심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믿음은 자기 일신의 구원을 목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자기 구원이 목적이 아니었고 이 땅만을 구원하기 위한 목적도 아니었습니다.역사의 기원에서부터 그 과정과 미래의 어느 한 종점까지 전부를 섭리해 오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아시고 그 모든 것을 복귀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그 영원한 이상을 찾아 세우기 위해 먼저 역사상에 전무후무한 영원한 기준,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사탄과 싸우셨습니다.그러한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영원한 이상을 찾아 나오시는 하나님 앞에 영원한 믿음의 조건을 세우실 수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님을 붙들려면 먼저 예수님 한 분에게는 역사적인 전체 인류의 뜻이 개재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그는 4천년 역사과정의 수많은 신앙인들, 또는 그 당시의 모든 인류의 믿음을 통합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었습니다.뿐만 아니라 천추만대의 미래 역사를 대신하고 전체 인류의 믿음을 통합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 영원불변의 하나의 중심을 갖고 오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믿음을 본받아야 되겠습니다.그리고 자기 개인을 넘고, 사회를 넘고, 국가를 넘고, 세계를 넘고, 천주를 넘어 영원하신 하나님의 소망의 기준, 영원불변의 확고한 하나의 믿음의 발판을 세우기 위하여 이 땅 위에서 30여 평생을 보내신 예수님이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우리가 예수를 믿되, 전무후무한 영원한 믿음의 기준을 세웠던 그러한 예수님을 닮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예수님의 소망을 상속받아야 합니다.예수님의 소망은 그의 일신의 소망이 아니었습니다.역대의 수많은 선조들이 오랫동안 소망해 나오던 그 모든 소망을 전부 흡수한 소망이었습니다.또 천상과 지상에 사무쳐 있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소망을 대신한 소망을 지니셨던 것입니다.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역사이래 어느누구도 갖지 못하였던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이룰 수 있는 소망의 중심을 세웠기에 우리의 소망을 대신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예수님께서는 하늘을 대한 믿음을 세워 소망을 갖추고 생명의 인연과 사랑의 인연을 갖추었습니다.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소망을 영원한 소망으로서, 생명도 영원한 생명으로서 세우기 위해 30여 평생의 싸움의 노정을 거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신의 생애과정에 있어서 생의 가치를 느꼈던 것은, 피조세계 전체를 대신하여 영원 실존하시고 생명의 중심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의 요소를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영원한 생명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어떠한 사탄의 힘의 작용도 미치지 못했습니다.또 예수님께서 세우신 사랑은 오늘날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자기를 중심한 한계권내에 머물 수 있는 사랑이 아니었습니다.영원하신 하나님의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죽을 수 있는 불변의 사랑이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 천상에 계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예수님의 마음은 만민을 대신할 수 있었습니다.천상천하에 비로소 하나님의 마음적인 영원한 이상을 대신하고 온 우주 인간을 대신하여 불변하는 사랑의 마음을 예수님은 지니고 계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바른 믿음
예수님께서 그와 같이 믿음으로, 소망으로, 생명으로, 사랑으로 세워 놓은 섭리의 뜻을 오늘날 우리는 인계받고 있습니다.이렇게 수고의 노정을 거치어 세워 놓은 구원의 뜻을 우리는 깨달아야 되겠습니다.또 십자가의 방패로서 자기 일신을 불살라 대속의 기준을 세우신 그 노정을 우리는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더 나아가 오늘날 한계권내에 있는 우리들은 무한대의 하나님을 믿음으로부터 무한대의 하나님의 소망, 무한대의 하나님의 생명, 무한대의 하나님의 사랑까지 그리워하며 30여 평생을 서럽게 보내신 예수님의 생애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만 우주의 주인공이요, 만민의 구주요, 땅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소망과 믿음, 생명, 사랑의 전체에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조건들을 세우기 위해 생애를 걸고 싸우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러한 예수의 심정으로 바라보아야 되겠고, 예수가 느끼던 감정을 같이 체휼해야 합니다.또 그러한 포부와 그러한 소망, 그러한 이상을 흠모하면서 싸워 나오신 예수님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저 막연히 2천년 전에 왔다 가신 역사적인 인물로 생각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오늘날 여러분의 마음에 있고 여러분의 일신 가운데에 동행하고 있는 예수님으로 느껴야 합니다.영원하신 하나님의 이상을 이룰 수 있는 생명적인 요소를 여러분은 다시금 재인식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믿음이 예수님의 믿음과 비할 수 있고, 여러분의 소망도 예수님의 크나큰 소망과 비할 수 있으며 여러분의 생명도 사랑도 역시 예수님의 그것들과 비할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체 이상적인 요소를 대신했던 예수님의 중심을 여러분이 본받아야 합니다.예수님께서 믿음으로나 소망으로나 생명으로나 사랑으로나 그것들을 모두 세우기 위해 싸워 나오시던 그 중심의 마음을 오늘날 여러분들이 유업으로 받아 이루어드려야 되겠습니다.그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사람이 없다 할진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인하여 이 땅 위에 오셔서 이루려다 못다 이룬 그 뜻은 이루어질 수가 없게 됩니다.예수님께서 못다 걸으신 노정이 남아 있는 고로 섭리의 뜻은 오늘날 우리의 일신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몸을 통하여 예수님의 성상을 느끼려 하고 만물을 통하여 예수님의 성상을 느끼려고 해야 합니다.그리하여 예수님의 성상과 우리의 성상이 합하여 온 천주를 대신하는 영원한 하나님의 이상에 합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운명하심이 무엇을 예고한 것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그 십자가의 고개는 영원한 믿음을 성취한 십자가요, 영원한 하나님의 소망을 체휼케 하고 권고하던 십자가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사랑을 우리들도 가지라고 권고하던 십자가입니다.그리고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속의 역사를 거쳐 남겨진 구원의 도리는 예수님의 영원한 믿음과 영원한 소망과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사랑을 우리에게 넘겨 줄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만 우주의 인간 전체를 대신하여 오셨던 예수님의 믿음이 전체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즉 온 인류를 대신해서 소망하던 그 소망이 세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원한의 호소를 하셨던 것입니다.생명과 사랑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만일 당시에 예수님께서 바라신 믿음, 예수님께서 바라신 소망, 예수님께서 바라신 생명, 예수님께서 바라신 사랑이 나타날 수 있었던들, 십자가의 원한의 호소는 없었을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갖추어야 할 것
따라서 이제 우리들이 십자가를 통해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품고 있던 영원한 믿음, 예수 그리스도가 지녔던 영원한 소망, 예수 그리스도가 사신 영원한 생명, 예수 그리스도가 그리워하던 영원한 사랑을 지녀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십자가 앞에 세워진 영원한 믿음, 영원한 소망, 영원한 생명, 영원한 사랑을 그저 예수님의 것으로만 돌려서는 아니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십자가를 지고, 그의 영원한 믿음을 내 믿음으로, 그의 영원한 소망을 나의 소망으로, 그의 영원한 생명과 사랑을 나의 생명과 사랑으로 소유해야 되겠습니다.나아가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면서까지 넘겨 주던 하나님의 이상의 요소들을 우리는 가져야 합니다.그 다음에는 예수님께서 영원한 믿음, 영원한 소망, 영원한 생명, 영원한 사랑을 넘겨줄 수 있는 수제자를 가졌던 것과 같이 우리도 그러한 사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바의 믿음,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바의 소망,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바의 생명과 사랑을 여러분 때문에 이루지 못했다는 조건이 남는다 할진대는 그것들이 끝날에 여러분을 대하여 심판의 조건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끝날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찾아오시어 예수 그리스도가 남기신 영원한 믿음의 빚을 갚았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가 남기신 소망의 빚, 생명의 빚, 사랑의 빚을 갚았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그러한 입장에 서게 될 때,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상에서'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듯이 여러분도 그래야 됩니다.오늘날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당신이 남겨 준 영원한 하나님의 유업을 내 일신에서'다 이루었나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그러한 하나의 사람이 이 땅위에 나타나지 않는 한 하나님의 종말적인 섭리의 뜻은 완결되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4천년 역사노정에 있어서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이상하신 중심의 요소를 예수님이 세웠습니다.영적이고 내적인 구원의 조건을 확장시켜 세계적인 기준까지 늘리기 위해 오늘날까지 예수님과 성신이 역사해 오셨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의 내적인 이상의 요소를 외적으로 이룰 수 있는 영원한 믿음과 소망과 생명과 사랑을 세우지 못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2천년 섭리의 뜻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마음까지 느끼고자 하는 믿음의 노정에 들어섰습니다.그런데 여러분은 자신의 어느 정도까지 믿고 있는가를 스스로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혹시 자기 일신의 관념으로서 세워진 자신의 주장권내에서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우주 전체를 대신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비교하여 차이가 있다면 그 차이가 있는 만큼 끝날에 심판의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갖고 있는 소망은 어떠한 것입니까.여러분이 관념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 소망은 여러분 자신을 위한 소망이라는 것입니다.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여러분의 소망으로 증거해야 합니다.그리하여 여러분 자신을 넘어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대신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가져야 되겠습니다.그런데 만일 여러분의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과 차이가 있으면 그만큼 끝날의 심판의 조건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생명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생명을 얻었다면, 그 생명은 내 일신이 살기 위해서 있는 생명이 아닙니다.그 생명은 이 민족을 복귀시키고 천천만 성도들까지 화동시켜야 할 생명입니다.십자가를 앞에 놓고, 사탄의 공격 앞에서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대신하였던 예수 그리스도의 태연자약한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기의 생명이 죽어지는 입장에 처해 있을지라도 원수들의 반격에 대해 일체 저주하지 않았습니다.예수님은 그들이 익히 알고 있는, 그러한 분이 아니었습니다.4천년 동안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원수와 싸우신 그 심정을 헤아리면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느끼고자 하신 분이었습니다.여러분이 예수님의 그 무한하신 심정을 동경하게 될 때, 자신 앞에 그것이 신앙의 기지가 되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느끼신 하늘의 사랑에 대한 감도는 땅 위의 어떠한 비난과 어떠한 고난도 넘어설 수 있는 영원한 하나님의 이상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그러한 입장에 선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원수들의 잘못으로 인해 죽음의 길을 가야 하는 것도 다 잊어버리고 인류를 위해 기도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십자가의 사랑
오늘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어서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무한하신 생명을 받은 자신일진대, 그 생명이 어느 권내에 처해 있는가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 즉 온 천지를 지으시고 그것을 품기 위하여 애달파하시는 영원하시고 이상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아셨기 때문에, 이 땅 위해서 자기의 일신을 사랑하고, 자기의 가족을 사랑하고, 자기의 민족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모든 사랑의 중심이 되는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역사노정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선열 전체를 대신하여 그들이 못다 이룬 섭리의 뜻을 성사시키기 위해 그 어떠한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그것을 잊고 인류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심정을 느끼면서 남겨 준 것이 십자가의 사랑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끝날의 심판이 있다고 할진대는,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와 예수님에 의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 자체에게 미치게 될 때, 여러분 자신이 그 사랑을 받아 가지고 여러분 일신에 영원히 지닐 수 있는 마음의 토대가 없어서는 안 되겠습니다.만일 여러분에게 그러한 마음의 토대가 없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끝날 심판 때에 하나님 앞에 떳떳이 나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 앞에 그리스도의 크고도 높은 소망과 이상이 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그 크고 높은 이상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비로소 지상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그를 본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계에 가셔서도 세계를 대신하여 사탄과 싸우고 계십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상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성신과 그리고 하늘에 있는 천천만 천군천사와 함께 우리를 대신해서 사탄과 싸워 나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믿음, 우리에게 소망하시던 소망, 우리에게 요구했던 생명, 우리에게 바라신 사랑을 이제 우리는 내 사랑만으로서만, 내 생명으로서만, 내 소망으로서만, 내 믿음으로서만 가져서는 아니 되겠습니다.만일 그것을 내 것으로만 갖고 있다 할진대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상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말씀선집 제1권 14편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찾아드리자 (훈독본)
1956.10.07 (일), 한국 전본부교회
고린도전서 13:1-13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찾아드리자(말씀선집 제1권 14편) - YouTube
이 시간 말씀드리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찾아드리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
어두운 이 땅 위에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의 역사를 시작하실 때 세우신 하나의 표준은 자신의 내적 심정에 남아진 이상적인 형상을 영원한 하나의 실체로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하나의 실체를 세워 놓고 그 영원한 기쁨을 느끼면서 둘이 아닌 하나의 상대적인 이상을 갖추어 살고자 창조역사를 시작하였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수고를 거쳐 지은 피조물 중에서 인간 하나를 모든 이상의 중심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의 사람이 하나님께서 본래 요구하신 희망과는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 이후 지금까지 오랜 역사가 경과하였지만 하나님께서 바라신 그 이상과는 관계가 없는 인간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하나의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사람을 다시 찾아나오는 역사노정이 섭리의 노정이요, 구원의 노정이요, 개척의 노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내적 심정으로서 소망하신 하나의 이상은 온 피조만물 전체에까지 미쳐지는 이상이었는데, 사람 하나가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그 이상은 피조물 전체 가운데에서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개척의 역사와 구원의 역사를 통하여 섭리의 뜻을 세워 찾고자 하시는 하나의 중심되는 뜻이 무엇이냐 하면, 사람을 세워 하나님의 내적 심정으로 그리던 이상을 실현시킴으로써 하나님 자신이 즐기는 것은 물론이요, 그 즐거움의 이상을 사람의 영원한 이상으로 삼아 영광의 조건으로 돌려드리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천상에 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자체를 부르고 계심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자체가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는 하나의 중심체가 되기를 바라셔서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라시는 그 이상은 우리가 불완전한 권내에 있는 한,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뜻 그리고 사탄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한 실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좌로 보나 우로 보나 상하로 보나 이루어 놓아야 할 것이 하나님의 이상입니다. 그래서 좌나 우에 속하여 있는 무리나, 또는 땅 위에 있는 모든 존재, 천상에 있는 천천만 성도까지 그 하나의 이상을 무슨 일인지 모르게 흠모하여 나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원리를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의 새로운 광명의 이상이 나타나야 할 그 날은 어느 때일 것인가'라고 하면서 수많은 성현 현철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 모르는 길을 개척해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광명한 이상의 심정을 통한 후 그들을 대하여 '그대가 마음으로 그리던 소망이 이것이요, 그대가 지향하던 이상이 이것이로다'라고 할 수 있는 불변의 영원한 이상의 요소를 지녀야 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마음과 몸, 환경을 통하여 실현되는 하나의 기쁨의 터전을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기쁨의 터전을 여러분이 이루지 못한다 할진대는 하나님의 이상은 피조세계에서 찾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상 실현과 인간의 책임
그러면 여기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문제가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지어 놓은 만물에 있는 것이 아니요, 영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천상에 있는 천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중심이요 하나의 표준이요 하나의 핵심이요 만물의 주인공인 여러분 자체에게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자체가 하나님의 이상을 좌우하는 중심이요 표준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망에 눌려 있는 이 천지간에 그 하나의 표준점, 그 하나의 중심점이 나타나는 한날의 기쁨이 오늘날 역사노정을 거쳐가는 우리의 소망이요, 수많은 악령들과 싸워 나오는 하나님의 섭리의 뜻인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하나님의 이상을 흠모하는 마음을 갖고 지내려면 먼저는 하나님의 내적 심정과 동감 동화될 수 있는 자아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연이 법도대로 움직여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의 마음이 천심을 중심삼고 움직여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하늘의 우주적인 종말점까지 연락시킬 수 있는 마음의 중심을 세워 놓지 않는 한,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은 피조세계와 영원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 자신의 마음과 몸을 헤아려보게 될 때, 우리의 마음과 몸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담이 있습니까? 내 몸과 만물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담이 있습니까? 그러한 담이 있는 한,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상은 여러분과 이미 관계를 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마음의 문을 열어야 되겠고, 몸의 모든 죄악을 제거하여 화동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세워야 됩니다. 그리하여 천상의 성품을 아니 느낄래야 아니 느낄 수 없고, 아니 행할래야 아니 행할 수 없는 자연적인 은사를 받아 하나님을 대하고 그의 이상을 이루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그 하나의 기준과 먼 거리에 처하여 있기 때문에 그 기준 위로 끌어올리기 위한 수고의 역사가 있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복귀섭리역사입니다. 그 뜻을 이루기 위한 섭리역사가 지금까지 선지선열들을 보내 이끌어 나온 역사인 것을 우리는 마음 깊이 명심하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이제 오로지 여러분은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만물을 상징하여 지음받은 몸의 가치, 천품을 대신하여 몸의 중심으로서 지음받은 마음의 가치를 소유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온 피조만물의 중심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내적 심성, 전체의 중심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하나님의 내적 심성이 우리의 마음을 거치고 몸을 거치고 우리의 생활 무대를 거치어 만물 만상까지 하나의 움직임으로서 나타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우리의 한 몸에서 이루어 놓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와 사탄의 활동목표
하나님께서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주관권에서 떨어진 인간을 본연의 위치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6천년 동안을 역사하셨는데, 그 역사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은 창조원리에 의해 상징적인 실체대상으로 만물을 창조했고, 형상적인 실체대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하나의 실존체가 우리 마음의 이상적인 표준이 되어 있는 한, 우리는 하나님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둘이 아닌 하나의 연관성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연관성을 막아 놓고, 연락의 길을 중단시켜 놓고 역사하는 존재가 누구냐 하면 여러분의 원수인 사탄, 여러분이 그와 싸워 영원한 승리의 인연을 세워 그를 자연굴복시키지 않으면 아니 될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도 내일도 하나님의 이상의 동산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 바라시던 소망의 이상이 내 몸 마음을 통하여 온 천주 우주간에 이루어지지 않는 한, 그 사탄은 제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우리의 마음을 대한 이상, 우리의 몸을 대한 이상, 만물을 대한 이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이것과 반대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탄을 세계적으로 책임지고 굴복시킬 수 있는 소망의 한 날이 나타나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의 사탄으로 말미암아 맺혀진 조건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제거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이상은 우리와 관계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사탄과 대립하여 승리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을 세우셨는데, 그 분이 누구냐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만물에서 몸으로, 몸에서 마음으로, 마음에서 천상까지 연락되는 그 문이 막혀 있습니다. 이 요구하는 마음과 몸, 요구하는 상대의 막힌 문을 뚫어 연락시켜 주는 역사를 해 오신 분이 예수님과 성신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던 불변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님의 이상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먼저는 인간의 마음을 복귀하고 몸을 복귀하고 그 다음에는 만물세계까지 복귀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전체적인 이념과 전체적인 이상을 갖고 오셨으나, 믿도록 택하여 세웠던 이스라엘민족이 믿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의 성상을 대신한 마음적인 이상만을 세우시고 가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그 마음적인 이상, 즉 영적인 이상을 세우실 때까지의, 예수님의 생애와 예수님의 역사를 알지 않으면 아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마음적인 승리의 길, 즉 사탄 대해 승리할 수 있는 길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의지하여 이상을 찾아 나가는 것은 어떠한 시간권내에 이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니셨던 인격, 예수님이 갖고 오셨던 소망, 예수님이 믿었던 이념, 예수님이 갖고 있던 생명, 예수님이 갖고 있던 사랑, 그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한 사명이며 또한 그것은 일시적인 사명이 아니고 영원을 대신한 사명이었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싸우신 예수님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이상을 찾아 나아가 그 이상을 이루고자 하는 우리들은 오늘날 무엇을 가져야 되겠느냐. 하나님의 영원하신 요소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때와 시대는 변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원하신 실체는 변치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지닌 이상도 영원하신 이상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날 인간들이 찾아 나아가야 할 최후에 남아진 이상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영원한 이상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영원한 이상을 내 것으로 만드는 날까지 오늘도 싸워야 되겠고, 내일도 싸워야 되겠고, 생애를 바쳐 싸워나가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세운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생명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오셔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이상을 찾아 나가는데 있어서 믿지 못하는 이스라엘민족을 대신하여 영원한 믿음을 세우기 위해서 싸우신 분입니다. 역사과정의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믿는 그 소망과 믿음의 한계는 자기 개인에 국한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한 분만은 믿음과 소망을 자기 자신만의 믿음과 소망으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으로 세워져 있는 한, 그 이상의 요소를 갖출 수 있는 믿음, 즉 영원한 믿음을 세우기 위하여 일생을 바쳤습니다.
예수님께서 30여 평생을 통하여 바라신 하나의 중심이 무엇인가. 그때까지 4천년 역사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믿음의 기준을 세웠으나 그들의 믿음은 민족적인 한계를 넘지 못했고 세계적인 한계를 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러한 기준을 넘어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이루기 위한 것, 영원한 믿음을 세우기 위한 것이 그의 일생의 중심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믿음은 자기 일신의 구원을 목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구원이 목적이 아니었고 이 땅만을 구원하기 위한 목적도 아니었습니다. 역사의 기원에서부터 그 과정과 미래의 어느 한 종점까지 전부를 섭리해 오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아시고 그 모든 것을 복귀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님을 붙들려면 먼저 예수님 한 분에게는 역사적인 전체 인류의 뜻이 개재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4천년 역사과정의 수많은 신앙인들, 또는 그 당시의 모든 인류의 믿음을 통합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천추만대의 미래 역사를 대신하고 전체 인류의 믿음을 통합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 영원불변의 하나의 중심을 갖고 오셨던 분이었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예수님의 소망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소망은 역대의 수많은 선조들이 오랫동안 소망해 나오던 그 모든 소망을 전부 흡수한 소망이었습니다. 또 천상과 지상에 사무쳐 있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소망을 대신한 소망을 지니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역사이래 어느누구도 갖지 못하였던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이룰 수 있는 소망의 중심을 세웠기에 우리의 소망을 대신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대한 믿음을 세워 소망을 갖추고 생명의 인연과 사랑의 인연을 갖추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소망을 영원한 소망으로서, 생명도 영원한 생명으로서 세우기 위해 30여 평생의 싸움의 노정을 거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신의 생애과정에 있어서 생의 가치를 느꼈던 것은, 피조세계 전체를 대신하여 영원 실존하시고 생명의 중심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의 요소를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영원한 생명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어떠한 사탄의 힘의 작용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세우신 사랑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죽을 수 있는 불변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 천상에 계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예수님의 마음은 만민을 대신할 수 있었습니다. 천상천하에 비로소 하나님의 마음적인 영원한 이상을 대신하고 온 우주 인간을 대신하여 불변하는 사랑의 마음을 예수님은 지니고 계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바른 믿음
예수님께서 그와 같이 믿음으로, 소망으로, 생명으로, 사랑으로 세워 놓은 섭리의 뜻을 오늘날 우리는 인계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고의 노정을 거치어 세워 놓은 구원의 뜻을 우리는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또 십자가의 방패로서 자기 일신을 불살라 대속의 기준을 세우신 그 노정을 우리는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더 나아가 오늘날 한계권내에 있는 우리들은 무한대의 하나님을 믿음으로부터 무한대의 하나님의 소망과 생명, 사랑까지 그리워하며 30여 평생을 서럽게 보내신 예수님의 생애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만 우주의 주인공이요, 만민의 구주요, 땅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소망과 믿음, 생명, 사랑의 전체에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조건들을 세우기 위해 생애를 걸고 싸우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몸을 통하여 예수님의 성상을 느끼려 하고 만물을 통하여 예수님의 성상을 느끼려고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성상과 우리의 성상이 합하여 온 천주를 대신하는 영원한 하나님의 이상에 합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운명하심이 무엇을 예고한 것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십자가의 고개는 영원한 믿음을 성취한 십자가요, 영원한 하나님의 소망을 체휼케 하고 권고하던 십자가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사랑을 우리들도 가지라고 권고하던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속의 역사를 거쳐 남겨진 구원의 도리는 예수님의 영원한 믿음과 영원한 소망과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사랑을 우리에게 넘겨 줄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만 우주의 인간 전체를 대신하여 오셨던 예수님의 믿음이 전체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즉 온 인류를 대신해서 소망하던 그 소망이 세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원한의 호소를 하셨던 것입니다. 생명과 사랑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만일 당시에 예수님께서 바라신 믿음, 예수님께서 바라신 소망, 예수님께서 바라신 생명, 예수님께서 바라신 사랑이 나타날 수 있었던들, 십자가의 원한의 호소는 없었을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갖추어야 할 것
끝날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찾아오시어 예수 그리스도가 남기신 영원한 믿음의 빚을 갚았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남기신 소망의 빚, 생명의 빚, 사랑의 빚을 갚았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게 될 때,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듯이 여러분도 그래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당신이 남겨 준 영원한 하나님의 유업을 내 일신에서'다 이루었나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하나의 사람이 이 땅위에 나타나지 않는 한 하나님의 종말적인 섭리의 뜻은 완결되지 못합니다.
4천년 역사노정에 있어서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이상하신 중심의 요소를 예수님이 세웠습니다. 영적이고 내적인 구원의 조건을 확장시켜 세계적인 기준까지 늘리기 위해 오늘날까지 예수님과 성신이 역사해 오셨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의 내적인 이상의 요소를 외적으로 이룰 수 있는 영원한 믿음과 소망과 생명과 사랑을 세우지 못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2천년 섭리의 뜻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마음까지 느끼고자 하는 믿음의 노정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자신의 어느 정도까지 믿고 있는가를 스스로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혹시 자기 일신의 관념으로서 세워진 자신의 주장권내에서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주 전체를 대신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비교하여 차이가 있다면 그 차이가 있는 만큼 끝날에 심판의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갖고 있는 소망은 어떠한 것입니까. 여러분이 관념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 소망은 여러분 자신을 위한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넘어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대신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의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과 차이가 있으면 그만큼 끝날의 심판의 조건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생명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생명을 얻었다면, 그 생명은 내 일신이 살기 위해서 있는 생명이 아닙니다. 그 생명은 이 민족을 복귀시키고 천천만 성도들까지 화동시켜야 할 생명입니다. 십자가를 앞에 놓고, 사탄의 공격 앞에서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대신하였던 예수 그리스도의 태연자약한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기의 생명이 죽어지는 입장에 처해 있을지라도 원수들의 반격에 대해 일체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익히 알고 있는, 그러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4천년 동안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원수와 싸우신 그 심정을 헤아리면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느끼고자 하신 분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그 무한하신 심정을 동경하게 될 때, 자신 앞에 그것이 신앙의 기지가 되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
오늘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어서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무한하신 생명을 받은 자신일진대, 그 생명이 어느 권내에 처해 있는가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 즉 온 천지를 지으시고 그것을 품기 위하여 애달파하시는 영원하시고 이상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아셨기 때문에, 이 땅 위해서 자기의 일신과 가족, 민족, 세계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끝날의 심판이 있다고 할진대는,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와 예수님에 의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 자체에게 미치게 될 때, 여러분 자신이 그 사랑을 받아 가지고 여러분 일신에 영원히 지닐 수 있는 마음의 토대가 없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그러한 마음의 토대가 없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끝날 심판 때에 하나님 앞에 떳떳이 나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 앞에 그리스도의 크고도 높은 소망과 이상이 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크고 높은 이상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비로소 지상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그를 본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계에 가셔서도 세계를 대신하여 사탄과 싸우고 계십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상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성신과 천천만 천군천사와 함께 우리를 대신해서 사탄과 싸워 나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믿음과 소망, 생명, 사랑을 이제 우리는 내 것으로써만 가져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만일 그것을 내 것으로만 갖고 있다 할진대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상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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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찾아드리자
1956.10.07 (일), 한국 전본부교회
이 시간 말씀드리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찾아드리자'입니다.`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찾아드리자' 이러한 제목으로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
어두운 이 땅 위에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의 역사를 시작하실 때 세우신 하나의 표준은 자신의 내적 심정에 남아진 이상적인 형상을 영원한 하나의 실체로 세우는 것이었습니다.그리하여 이 하나의 실체를 세워 놓고 그 영원한 기쁨을 느끼면서 둘이 아닌 하나의 상대적인 이상을 갖추어 살고자 창조역사를 시작하였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수고를 거쳐 지은 피조물 중에서 인간 하나를 모든 이상의 중심으로 세우셨습니다.그런데 그 하나의 사람이 하나님께서 본래 요구하신 희망과는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 이후 지금까지 오랜 역사가 경과하였지만 하나님께서 바라신 그 이상과는 관계가 없는 인간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하나의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사람을 다시 찾아나오는 역사노정이 섭리의 노정이요, 구원의 노정이요, 개척의 노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내적 심정으로서 소망하신 하나의 이상은 온 피조만물 전체에까지 미쳐지는 이상이었는데, 사람 하나가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그 이상은 피조물 전체 가운데에서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개척의 역사와 구원의 역사를 통하여 섭리의 뜻을 세워 찾고자 하시는 하나의 중심되는 뜻이 무엇이냐 하면, 사람을 세워 하나님의 내적 심정으로 그리던 이상을 실현시킴으로써 하나님 자신이 즐기는 것은 물론이요, 그 즐거움의 이상을 사람의 영원한 이상으로 삼아 영광의 조건으로 돌려드리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천상에 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자체를 부르고 계심을 알아야 되겠습니다.천상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자체가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는 하나의 중심체가 되기를 바라셔서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라시는 그 이상은 우리가 불완전한 권내에 있는 한,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뜻 그리고 사탄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한 실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좌로 보나 우로 보나 상하로 보나 이루어 놓아야 할 것이 하나님의 이상입니다.그래서 좌에 속하여 있는 무리나 우에 속하여 있는 무리나, 또는 땅 위에 있는 모든 존재, 천상에 있는 천천만 성도까지 그 하나의 이상을 무슨 일인지 모르게 흠모하여 나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원리를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의 새로운 광명의 이상이 나타나야 할 그 날은 어느 날일 것인가, 그 한 시간은 어느 시간일 것인가, 그 때는 어느 때일 것인가'라고 하면서 수많은 성현 현철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 모르는 길을 개척해 나오기를 오늘날까지 계속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광명한 이상의 심정을 통한 후 그들을 대하여'그대가 마음으로 그리던 소망이 이것이요, 그대가 지향하던 이상이 이것이로다'라고 할 수 있는 불변의 영원한 이상의 요소를 지녀야 됩니다.그리하여 여러분의 마음을 통하여, 몸을 통하여, 환경을 통하여 실현되는 하나의 기쁨의 터전을 이루어야 되겠습니다.그러한 기쁨의 터전을 여러분이 이루지 못한다 할진대는 하나님의 이상은 피조세계에서 찾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상 실현과 인간의 책임
그러면 여기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문제가 어디에 있느냐?그것은 지어 놓은 만물에 있는 것이 아니요, 영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또 천상에 있는 천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중심이요 하나의 표준이요 하나의 핵심이요 만물의 주인공인 여러분 자체에게 있는 것입니다.따라서 여러분 자체가 하나님의 이상을 좌우하는 중심이요 표준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망에 눌려 있는 이 천지간에 그 하나의 표준점, 그 하나의 중심점이 나타나는 한날의 기쁨이 오늘날 역사노정을 거쳐가는 우리의 소망이요 수많은 악령들과 싸워 나오는 하나님의 섭리의 뜻인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하나님의 이상을 흠모하는 마음을 갖고 지내려면 먼저는 하나님의 내적 심정과 동감 동화될 수 있는 자아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그리하여 자연이 법도대로 움직여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의 마음이 천심을 중심삼고 움직여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하늘의 우주적인 종말점까지 연락시킬 수 있는 마음의 중심을 세워 놓지 않는 한,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은 피조세계와 영원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 자신의 마음과 몸을 헤아려보게 될 때, 우리의 마음과 하늘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담이 있습니까?내 마음과 몸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담이 있습니까?내 몸과 만물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담이 있습니까? 그러한 담이 있는 한,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상은 여러분과 이미 관계를 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마음의 문을 열어야 되겠고, 몸의 모든 죄악을 제거하여 화동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세워야 됩니다.그리하여 천상의 성품을 아니 느낄래야 아니 느낄 수 없고, 아니 행할래야 아니 행할 수 없는 자연적인 은사를 받아 하나님을 대하고 그의 이상을 이루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그 하나의 기준과 먼 거리에 처하여 있기 때문에 그 기준 위로 끌어올리기 위한 수고의 역사가 있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복귀섭리역사입니다.그 뜻을 이루기 위한 섭리역사가 지금까지 선지선열들을 보내 이끌어 나온 역사인 것을 우리는 마음 깊이 명심하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이제 오로지 여러분은 나아가야 되겠습니다.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만물을 상징하여 지음받은 몸의 가치, 천품을 대신하여 몸의 중심으로서 지음받은 마음의 가치를 소유해야 됩니다.그리하여 온 피조만물의 중심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내적 심성, 전체의 중심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하나님의 내적 심성이 우리의 마음을 거치고 몸을 거치고 우리의 생활 무대를 거치어 만물 만상까지 하나의 움직임으로서 나타날 수 있어야 합니다.이러한 모든 것을 우리의 한 몸에서 이루어 놓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와 사탄의 활동목표
하나님께서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주관권에서 떨어진 인간을 본연의 위치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6천년 동안을 역사하셨는데, 그 역사가 어떠했습니까?하나님은 창조원리에 의해 상징적인 실체대상으로 만물을 창조했고, 형상적인 실체대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하나의 실존체가 우리 마음의 이상적인 표준이 되어 있는 한, 우리는 하나님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둘이 아닌 하나의 연관성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연관성을 막아 놓고, 연락의 길을 중단시켜 놓고 역사하는 존재가 누구냐 하면 여러분의 원수인 사탄, 여러분이 그와 싸워 영원한 승리의 인연을 세워 그를 자연굴복시키지 않으면 아니 될 사탄이라는 것입니다.그런데 오늘도 내일도 하나님의 이상의 동산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 바라시던 소망의 이상이 내 몸 마음을 통하여 온 천주 우주간에 이루어지지 않는 한, 그 사탄은 제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우리의 마음을 대한 이상, 우리의 몸을 대한 이상, 만물을 대한 이상이 있습니다.그런데 사탄은 이것과 반대하여 싸우고 있습니다.그러므로 그 사탄을 세계적으로 책임지고 굴복시킬 수 있는 소망의 한 날이 나타나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의 사탄으로 말미암아 맺혀진 조건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제거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이상은 우리와 관계가 없다는 거예요.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사탄과 대립하여 승리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을 세우셨는데, 그 분이 누구냐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만물에서 몸으로, 몸에서 마음으로, 마음에서 천상까지 연락되는 그 문이 막혀 있습니다.이 요구하는 마음과 몸, 요구하는 상대의 막힌 문을 뚫어 연락시켜 주는 역사를 해 오신 분이 예수님과 성신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던 불변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그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님의 이상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먼저는 인간의 마음을 복귀하고 몸을 복귀하고 그 다음에는 만물세계까지 복귀하는 것이었습니다.예수님께서 이런 전체적인 이념과 전체적인 이상을 갖고 오셨으나, 믿도록 택하여 세웠던 이스라엘민족이 믿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의 성상을 대신한 마음적인 이상만을 세우시고 가셨던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그 마음적인 이상, 즉 영적인 이상을 세우실 때까지의, 예수님의 생애와 예수님의 역사를 알지 않으면 아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마음적인 승리의 길, 즉 사탄 대해 승리할 수 있는 길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의지하여 이상을 찾아 나가는 것은 어떠한 시간권내에 이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니셨던 인격, 예수님이 갖고 오셨던 소망, 예수님이 믿었던 이념, 예수님이 갖고 있던 생명, 예수님이 갖고 있던 사랑, 그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한 사명이며 또한 그것은 일시적인 사명이 아니고 영원을 대신한 사명이었습니다.바로 그와 같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싸우신 예수님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이상을 찾아 나아가 그 이상을 이루고자 하는 우리들은 오늘날 무엇을 가져야 되겠느냐.하나님의 영원하신 요소를 가져야 되겠습니다.왜냐하면 때와 시대는 변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원하신 실체는 변치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지닌 이상도 영원하신 이상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그런 연고로 오늘날 인간들이 찾아 나아가야 할 최후에 남아진 이상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영원한 이상입니다.이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영원한 이상을 내 것으로 만드는 날까지 오늘도 싸워야 되겠고, 내일도 싸워야 되겠고, 생애를 바쳐 싸워나가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세운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생명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오셔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이상을 찾아 나가는데 있어서 믿지 못하는 이스라엘민족을 대신하여 영원한 믿음을 세우기 위해서 싸우신 분입니다.역사과정의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믿는 그 소망과 믿음의 한계는 자기 개인에 국한되는 것이었습니다.그러나 예수님 한 분만은 믿음과 소망을 자기 자신만의 믿음과 소망으로 세우지 않았습니다.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으로 세워져 있는 한, 그 이상의 요소를 갖출 수 있는 믿음, 즉 영원한 믿음을 세우기 위하여 일생을 바쳤습니다.
예수님께서 30여 평생을 통하여 바라신 하나의 중심이 무엇인가.그때까지 4천년 역사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믿음의 기준을 세웠으나 그들의 믿음은 민족적인 한계를 넘지 못했고 세계적인 한계를 넘지 못했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은 그러한 기준을 넘어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이루기 위한 것, 영원한 믿음을 세우기 위한 것이 그의 일생의 중심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믿음은 자기 일신의 구원을 목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자기 구원이 목적이 아니었고 이 땅만을 구원하기 위한 목적도 아니었습니다.역사의 기원에서부터 그 과정과 미래의 어느 한 종점까지 전부를 섭리해 오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아시고 그 모든 것을 복귀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그 영원한 이상을 찾아 세우기 위해 먼저 역사상에 전무후무한 영원한 기준,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사탄과 싸우셨습니다.그러한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영원한 이상을 찾아 나오시는 하나님 앞에 영원한 믿음의 조건을 세우실 수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님을 붙들려면 먼저 예수님 한 분에게는 역사적인 전체 인류의 뜻이 개재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그는 4천년 역사과정의 수많은 신앙인들, 또는 그 당시의 모든 인류의 믿음을 통합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었습니다.뿐만 아니라 천추만대의 미래 역사를 대신하고 전체 인류의 믿음을 통합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 영원불변의 하나의 중심을 갖고 오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믿음을 본받아야 되겠습니다.그리고 자기 개인을 넘고, 사회를 넘고, 국가를 넘고, 세계를 넘고, 천주를 넘어 영원하신 하나님의 소망의 기준, 영원불변의 확고한 하나의 믿음의 발판을 세우기 위하여 이 땅 위에서 30여 평생을 보내신 예수님이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우리가 예수를 믿되, 전무후무한 영원한 믿음의 기준을 세웠던 그러한 예수님을 닮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예수님의 소망을 상속받아야 합니다.예수님의 소망은 그의 일신의 소망이 아니었습니다.역대의 수많은 선조들이 오랫동안 소망해 나오던 그 모든 소망을 전부 흡수한 소망이었습니다.또 천상과 지상에 사무쳐 있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소망을 대신한 소망을 지니셨던 것입니다.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역사이래 어느누구도 갖지 못하였던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이룰 수 있는 소망의 중심을 세웠기에 우리의 소망을 대신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예수님께서는 하늘을 대한 믿음을 세워 소망을 갖추고 생명의 인연과 사랑의 인연을 갖추었습니다.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소망을 영원한 소망으로서, 생명도 영원한 생명으로서 세우기 위해 30여 평생의 싸움의 노정을 거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신의 생애과정에 있어서 생의 가치를 느꼈던 것은, 피조세계 전체를 대신하여 영원 실존하시고 생명의 중심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의 요소를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영원한 생명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어떠한 사탄의 힘의 작용도 미치지 못했습니다.또 예수님께서 세우신 사랑은 오늘날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자기를 중심한 한계권내에 머물 수 있는 사랑이 아니었습니다.영원하신 하나님의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죽을 수 있는 불변의 사랑이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 천상에 계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예수님의 마음은 만민을 대신할 수 있었습니다.천상천하에 비로소 하나님의 마음적인 영원한 이상을 대신하고 온 우주 인간을 대신하여 불변하는 사랑의 마음을 예수님은 지니고 계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바른 믿음
예수님께서 그와 같이 믿음으로, 소망으로, 생명으로, 사랑으로 세워 놓은 섭리의 뜻을 오늘날 우리는 인계받고 있습니다.이렇게 수고의 노정을 거치어 세워 놓은 구원의 뜻을 우리는 깨달아야 되겠습니다.또 십자가의 방패로서 자기 일신을 불살라 대속의 기준을 세우신 그 노정을 우리는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더 나아가 오늘날 한계권내에 있는 우리들은 무한대의 하나님을 믿음으로부터 무한대의 하나님의 소망, 무한대의 하나님의 생명, 무한대의 하나님의 사랑까지 그리워하며 30여 평생을 서럽게 보내신 예수님의 생애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만 우주의 주인공이요, 만민의 구주요, 땅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소망과 믿음, 생명, 사랑의 전체에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조건들을 세우기 위해 생애를 걸고 싸우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러한 예수의 심정으로 바라보아야 되겠고, 예수가 느끼던 감정을 같이 체휼해야 합니다.또 그러한 포부와 그러한 소망, 그러한 이상을 흠모하면서 싸워 나오신 예수님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저 막연히 2천년 전에 왔다 가신 역사적인 인물로 생각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오늘날 여러분의 마음에 있고 여러분의 일신 가운데에 동행하고 있는 예수님으로 느껴야 합니다.영원하신 하나님의 이상을 이룰 수 있는 생명적인 요소를 여러분은 다시금 재인식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믿음이 예수님의 믿음과 비할 수 있고, 여러분의 소망도 예수님의 크나큰 소망과 비할 수 있으며 여러분의 생명도 사랑도 역시 예수님의 그것들과 비할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체 이상적인 요소를 대신했던 예수님의 중심을 여러분이 본받아야 합니다.예수님께서 믿음으로나 소망으로나 생명으로나 사랑으로나 그것들을 모두 세우기 위해 싸워 나오시던 그 중심의 마음을 오늘날 여러분들이 유업으로 받아 이루어드려야 되겠습니다.그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사람이 없다 할진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인하여 이 땅 위에 오셔서 이루려다 못다 이룬 그 뜻은 이루어질 수가 없게 됩니다.예수님께서 못다 걸으신 노정이 남아 있는 고로 섭리의 뜻은 오늘날 우리의 일신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몸을 통하여 예수님의 성상을 느끼려 하고 만물을 통하여 예수님의 성상을 느끼려고 해야 합니다.그리하여 예수님의 성상과 우리의 성상이 합하여 온 천주를 대신하는 영원한 하나님의 이상에 합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운명하심이 무엇을 예고한 것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그 십자가의 고개는 영원한 믿음을 성취한 십자가요, 영원한 하나님의 소망을 체휼케 하고 권고하던 십자가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사랑을 우리들도 가지라고 권고하던 십자가입니다.그리고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속의 역사를 거쳐 남겨진 구원의 도리는 예수님의 영원한 믿음과 영원한 소망과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사랑을 우리에게 넘겨 줄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만 우주의 인간 전체를 대신하여 오셨던 예수님의 믿음이 전체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즉 온 인류를 대신해서 소망하던 그 소망이 세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원한의 호소를 하셨던 것입니다.생명과 사랑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만일 당시에 예수님께서 바라신 믿음, 예수님께서 바라신 소망, 예수님께서 바라신 생명, 예수님께서 바라신 사랑이 나타날 수 있었던들, 십자가의 원한의 호소는 없었을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갖추어야 할 것
따라서 이제 우리들이 십자가를 통해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품고 있던 영원한 믿음, 예수 그리스도가 지녔던 영원한 소망, 예수 그리스도가 사신 영원한 생명, 예수 그리스도가 그리워하던 영원한 사랑을 지녀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십자가 앞에 세워진 영원한 믿음, 영원한 소망, 영원한 생명, 영원한 사랑을 그저 예수님의 것으로만 돌려서는 아니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십자가를 지고, 그의 영원한 믿음을 내 믿음으로, 그의 영원한 소망을 나의 소망으로, 그의 영원한 생명과 사랑을 나의 생명과 사랑으로 소유해야 되겠습니다.나아가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면서까지 넘겨 주던 하나님의 이상의 요소들을 우리는 가져야 합니다.그 다음에는 예수님께서 영원한 믿음, 영원한 소망, 영원한 생명, 영원한 사랑을 넘겨줄 수 있는 수제자를 가졌던 것과 같이 우리도 그러한 사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바의 믿음,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바의 소망,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바의 생명과 사랑을 여러분 때문에 이루지 못했다는 조건이 남는다 할진대는 그것들이 끝날에 여러분을 대하여 심판의 조건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끝날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찾아오시어 예수 그리스도가 남기신 영원한 믿음의 빚을 갚았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가 남기신 소망의 빚, 생명의 빚, 사랑의 빚을 갚았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그러한 입장에 서게 될 때,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상에서'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듯이 여러분도 그래야 됩니다.오늘날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당신이 남겨 준 영원한 하나님의 유업을 내 일신에서'다 이루었나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그러한 하나의 사람이 이 땅위에 나타나지 않는 한 하나님의 종말적인 섭리의 뜻은 완결되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4천년 역사노정에 있어서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이상하신 중심의 요소를 예수님이 세웠습니다.영적이고 내적인 구원의 조건을 확장시켜 세계적인 기준까지 늘리기 위해 오늘날까지 예수님과 성신이 역사해 오셨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의 내적인 이상의 요소를 외적으로 이룰 수 있는 영원한 믿음과 소망과 생명과 사랑을 세우지 못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2천년 섭리의 뜻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마음까지 느끼고자 하는 믿음의 노정에 들어섰습니다.그런데 여러분은 자신의 어느 정도까지 믿고 있는가를 스스로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혹시 자기 일신의 관념으로서 세워진 자신의 주장권내에서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우주 전체를 대신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비교하여 차이가 있다면 그 차이가 있는 만큼 끝날에 심판의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갖고 있는 소망은 어떠한 것입니까.여러분이 관념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 소망은 여러분 자신을 위한 소망이라는 것입니다.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여러분의 소망으로 증거해야 합니다.그리하여 여러분 자신을 넘어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대신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가져야 되겠습니다.그런데 만일 여러분의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과 차이가 있으면 그만큼 끝날의 심판의 조건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생명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생명을 얻었다면, 그 생명은 내 일신이 살기 위해서 있는 생명이 아닙니다.그 생명은 이 민족을 복귀시키고 천천만 성도들까지 화동시켜야 할 생명입니다.십자가를 앞에 놓고, 사탄의 공격 앞에서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대신하였던 예수 그리스도의 태연자약한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기의 생명이 죽어지는 입장에 처해 있을지라도 원수들의 반격에 대해 일체 저주하지 않았습니다.예수님은 그들이 익히 알고 있는, 그러한 분이 아니었습니다.4천년 동안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원수와 싸우신 그 심정을 헤아리면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느끼고자 하신 분이었습니다.여러분이 예수님의 그 무한하신 심정을 동경하게 될 때, 자신 앞에 그것이 신앙의 기지가 되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느끼신 하늘의 사랑에 대한 감도는 땅 위의 어떠한 비난과 어떠한 고난도 넘어설 수 있는 영원한 하나님의 이상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그러한 입장에 선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원수들의 잘못으로 인해 죽음의 길을 가야 하는 것도 다 잊어버리고 인류를 위해 기도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십자가의 사랑
오늘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어서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무한하신 생명을 받은 자신일진대, 그 생명이 어느 권내에 처해 있는가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 즉 온 천지를 지으시고 그것을 품기 위하여 애달파하시는 영원하시고 이상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아셨기 때문에, 이 땅 위해서 자기의 일신을 사랑하고, 자기의 가족을 사랑하고, 자기의 민족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모든 사랑의 중심이 되는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역사노정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선열 전체를 대신하여 그들이 못다 이룬 섭리의 뜻을 성사시키기 위해 그 어떠한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그것을 잊고 인류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심정을 느끼면서 남겨 준 것이 십자가의 사랑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끝날의 심판이 있다고 할진대는,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와 예수님에 의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 자체에게 미치게 될 때, 여러분 자신이 그 사랑을 받아 가지고 여러분 일신에 영원히 지닐 수 있는 마음의 토대가 없어서는 안 되겠습니다.만일 여러분에게 그러한 마음의 토대가 없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끝날 심판 때에 하나님 앞에 떳떳이 나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 앞에 그리스도의 크고도 높은 소망과 이상이 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그 크고 높은 이상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비로소 지상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그를 본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계에 가셔서도 세계를 대신하여 사탄과 싸우고 계십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상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성신과 그리고 하늘에 있는 천천만 천군천사와 함께 우리를 대신해서 사탄과 싸워 나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믿음, 우리에게 소망하시던 소망, 우리에게 요구했던 생명, 우리에게 바라신 사랑을 이제 우리는 내 사랑만으로서만, 내 생명으로서만, 내 소망으로서만, 내 믿음으로서만 가져서는 아니 되겠습니다.만일 그것을 내 것으로만 갖고 있다 할진대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상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말씀선집 제1권 15편
예수님은 우주적인 혁명의 주인공 (훈독본)
1956.11.11 (일), 한국 전본부교회
요한복음 14:1-21
예수님은 우주적인 혁명의 주인공(말씀선집 제1권 15편)
오늘 이 시간은 '예수님은 우주적인 혁명의 주인공'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인간이 새로움의 실체로 완성되기를 바라셨던 하나님
새것이 창조되는 과정을 지켜보면 그것은 하나의 혁명적인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엿새 동안에 지어진 미물인 곤충으로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피조물을 볼 때, 보다 더 새롭고 보다 더 나은 존재를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최후로 사람까지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내적인 성상과 외적인 형상을 완결지으시고, 그것이 아버지께서 영원히 자랑할 수 있는 새롭고도 변치 않는 실체를 갖추기를 바라셨던 것이 창조주의 이상이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하나님이 즐길 수 있는 영원한 새로움의 실체로서, 만물 만상을 대신하고 어떠한 피조물과 비교해 보아도 '이는 과연 아름답고 과연 좋다' 할 수 있는 하나의 모습으로 지어 놓은 것입니다. 바로 아담 해와였습니다.
하나님의 본연의 선하심과 내적인 영광을 실지 생활을 통하여 즐거워해야 할 아담 해와였습니다. 그런데 타락하여 그 뜻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대신하여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했을 망정 하나님의 뜻은 불변의 뜻으로서 기필코 완결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창조주로서의 위신을 지킬 수 없으며 권한을 나타낼 수 없기에, 이것을 다시 세워가기 위한 것이 복귀의 역사요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러면 하늘이 이러한 입장에서 우주의 만물 만상을 대하게 될 때, 하늘과 땅, 피조물 가운데서 찾아볼 수 없는 하나의 귀한 존재, 하나님 내부에 감추어져 있는 전체의 성상을 새롭게 드러낼 수 있는 보다 차원 높은 새로움의 실체가 주인공으로 나타나서 하나님의 뜻을 성사시킬 수 있는 날은 언제일 것인가? 이런 감격적이고도 충격적인 한날을 맞기 위해 오늘날까지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의 목적을 세워 놓으시고 복귀섭리를 거치면서 끊임없는 수고로써 역사해 나오고 계십니다.
창세 이후에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이 피조물을 전부 다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지금까지 없었던 기쁨을 누리게 할 새로운 우주적인 존재를 찾게 되는 그 한 날이 어느 때에나 올 것인고? 하나님은 그 한 날, 그 한 존재를 애타게 고대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요구하시는 뜻은 무엇인가?
천상천하의 모든 것을 깨뜨려버릴지라도 놓을 수 없는 단 하나의 뜻이 있다면 그것은 완성인간입니다. 인간이 완성될 때까지는 원리적인 창조의 법도를 거쳐서 진리의 실체가 되어야 하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비원리적인 실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되 그의 내적인 성품과 외적인 형이 하나님을 대신한 분신체로 나타나지 못했습니다.
그런 연고로 타락한 인간은 인간의 형은 갖추고 있으되 창조이상의 형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 인간에게 창조이상의 형을 다시 주입시켜 새로운 하나의 실증체를 찾기 위해 수고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이루기 위해 오신 예수
이 하나의 중심되는 본체, 소망의 존재로서 오셨던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창조 이후 비로소 화동할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존재로, 만물 만상 앞에 보여줄 수 있는 존재로 예수님을 보내셨으나, 인간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소원의 푯대되는 존재로서 대하지 못하고 반대하는 타락한 역사를 다시 벌였습니다.
잃어버린 선의 기준을 찾기 위하여 수고하신 하나님은 4천년 역사를 거쳐 오면서 사탄의 참소하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모아 민족적인 발판을 만들어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이 민족적인 발판은 하나님과 만물을 대신하고 천상천하의 모든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으로 세우신 예수님을 위한 발판이 되어야 할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예수님대로 민족은 민족대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의 사명과 하나님의 사명이 결정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만우주를 새로움의 세계로 다시 이루어 놓기 위해 전체의 대신 존재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체의 주인공으로 모셔야 할 유대백성들이 모시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전체의 주인공된 사명을 가진 예수는 예수대로 백성은 백성대로 사라져 버리게 되었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서러움은 더욱 가중되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 당시 유대백성을 대하여 하시던 말씀과 그가 나타내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대신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대해야 하는 타락권내의 백성과 예수님 사이에 상충적인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타락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날 때, 말씀이 개인 앞에 나타나면 개인을, 민족앞에 나타나면 민족을, 세계 가운데 나타나면 세계를 혁명시킬 수 있는 말씀이 될 것이요, 또한 하늘 땅을 새로이 혁명시킬 수 있는 말씀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그때의 유대백성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은 4천년 동안 줄곧 모세를 통해 내려 주신 율법과 야곱에게 내린 언약이 자기들의 이상을 이루어 줄 수 있고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맨 하급에서부터 점진적으로 끌어 올리는 역사를 하셨습니다. 소생적 구약역사를 거쳐나온 후에는 장성적인 신약시대를 거쳐서 완성급까지 나아가는 천지 창조의 원칙적인 순로를 다시 거쳐 나가는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스라엘민족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말씀은 그 시대 사람들이 용납할 수 없는 생명의 말씀이었습니다. 구약 율법보다 더 높은 새로운 말씀이요, 종래의 것보다 더 높은 새로운 가치와 인연맺기 위한 말씀이었다는 것을 그때의 백성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바라시던 것은 하나님의 전체적인 창조이상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 땅을 대신하여 우주적인 사명을 완수하려고 끊임없이 혁명적인 과정을 거쳐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나타나서 우주적인 뜻의 길을 가게 될 때에는 타락 인간을 본연의 위치로 끌어 올리는 과정이 있었고, 그 과정에는 무수한 싸움의 곡절과 혁명적인 과정이 있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소망과 유대민족의 불신
그러면 이 혁명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은 세계를 넘어 무한대의 하나님나라까지 연결될 수 있는 소망입니다.
이 소망은 예수의 소망인 동시에 예수와 하나된 하나님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에게 소망을 거시고 하나님의 뜻을 예수를 통하여 나타내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유대백성 앞에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과 하나님의 전체적인 뜻을 대표한 실증체로서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한 것이었느냐? 지금까지 역사상에 없었던 새로운 진리의 주인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부르짖었지만 그것은 개인 차원의 진리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민족과 민족 그리고 모든 국가를 대신할 수 있는 진리라고 주장했을지 모르지만, 실제 그러한 진리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기에 하늘과 땅을 다시 비춰줄 수 있는 진리를 갖추어 나타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그런 고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그 말씀은 그 시대, 그 세계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적인 것이요, 새롭고도 혁명적인 것이었습니다.
혁명적인 이 진리의 말씀을 유대백성들이 알았다면 이 진리를 갖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서야 할 유대민족이 이루어야 할 한날을 깨뜨려 놨으니 우리가 이것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맺힌 것을 풀어줘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희생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의 민족을 세워 놓고 그 민족 가운데서 하나의 중심을 세워 그 중심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을 나타내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민족이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30여년간에 걸쳐 영원한 진리의 말씀을 나타내셔야 할 것이었는데 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버려진 바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인류는 말씀의 실체를 찾는 그 순간까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과 심정을 대신하여 이 땅 위에 전파하려 하셨던 새로운 진리를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믿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이루어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증거하신 말씀은 예수님 당시에 민족적인 말씀으로, 또 세계적인 말씀으로 나타났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세계적인 말씀으로 나타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기독교는 고난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이 그 당시에 이 땅을 구원할 수 있는 중심의 말씀으로 나타났다면 하나님의 능권을 나타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 앞에 따르는 개인이 있고, 민족이 있고, 세계가 있었던들, 하나님의 뜻을 책임진 예수님께서는 이 땅 위에서 그 뜻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개인과 민족과 세계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삼고 예수님을 대신해야 할 사랑하는 제자들과 가정, 교단, 국가가 예수님과 하나되어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었어야 했는데, 자기들의 교단적인 차원에서 자기들이 알고 있는 진리를 가지고 예수님을 대하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은 말씀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갈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님께서 끝날의 성도인 여러분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부끄러운 우리 자신에게 우주적인 존재가 되기를 소망하셔서 우주적인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한 개인으로 오셨으되 천하만상의 피조물 전체를 대신한 분이요, 진리를 대신한 분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
이런 가치적인 존재로 오셨지만 가치의 주인공, 우주의 주인공이 못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이 이런 우주적인 가치의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우리 자신들은 예수님의 심령을 통하여 개인적으로 진리와 만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이 신령역사를 거칠 때 무한한 은혜가 내려오면 그것을 개인적인 은사로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시일이 지나 환경적인 은사, 교단적인 은사를 거쳐 세계적인 은사로 까지 뻗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은사가 내리면 개인적인 생각에서 자신만의 은사로 여기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개인적인 입장에서 은혜를 받고 개인적인 입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진리를 얻었다 하면, 그것을 내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동시에 이 진리를 책임지고 세계에까지 전파시켜 나갈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세계와 더불어 나간다면, 그것은 나의 은사가 되는 동시에 하늘 땅의 은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의 신앙 관념이 여러분 하나를 구원하려는 개인적인 구원관념에 머물다간 거기에서 끝나고 맙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마음에 넘치는 은사가 개인적인 것으로만 머물러 있다 할진대 옛날 유대백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잘못을 다시 저지르게 될 것입니다.
나의 얻은 바 진리가 나 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종교에 머물러 있다 할진대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개인을 통하고 가정을 통하고 사회를 통하고 세계를 통하여 하늘의 섭리사에 미쳐지는 소망의 중심을 갖고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의 개인적인 은사를 통하여 부활과 중생의 역사를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이고 민족적이고 국가적이고 세계적인 구원을 여러분들을 통하여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개인적인 구원과 민족적인 구원과 세계적인 구원과 우주적인 구원이 남아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버지 앞에 감사할 때도 개인적인 감사 뿐만 아니라 가정적, 사회적, 국가적,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감사를 드릴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회개한다고 하면, 개인적인 회개로부터 가정적인 회개, 국가적인 회개, 세계적인 회개, 하늘 땅을 놓고 회개하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개인적인 구원관념을 넘고 가정적인 구원관념을 넘고 사회와 국가적인 구원관념을 넘고 세계적인 구원관념을 넘어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만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세계적인 탕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유대백성들이 민족적인 구원관념을 가지고 세계적인 구원관념까지 가졌었다면 예수님은 이 유대백성을 통해서 세계인류를 구원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주적인 혁명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선조들이 지나온 전체의 역사와 생활을 초월하여 여러분에게 구원을 베풀 수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의 말씀이야말로 우주적인 혁명의 말씀이었음을 여러분들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그때까지 믿어왔던 모든 율법주의 앞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모든 율법은 완성을 보아야 한다' 이렇게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우주적인 신앙관이 들어 있는 말씀, 우주적인 가치의 말씀의 뜻을 이스라엘민족이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그 말씀은 그 시대에는 우주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사랑면에 있어서도 예수님은 우주적인 혁명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치 않는 자는 내게 합당치 못하다. 또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치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걸 볼 때 하나님이 창조이상으로 바라시던 우주적인 하나의 완성체를 이룰 때까지 진리를 찾아 나가는 데는 우주적인 노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과 인간끼리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데에 있어서 지극히 중요한 것은 우주적인 사랑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우주적인 사랑으로 하나님과 관계맺지 못했기 때문에 천사장의 사랑과 관계맺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과의 이상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의 문을 꿰뚫고 올라갈 수 있는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다시 이 사랑의 문을 뚫을 수 있으려면 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누구보다 더 사랑하라' 하신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 자신이 사랑받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들이 그 말씀을 믿고 예수를 사랑하면, 예수께서 사탄권내에 붙들려 있는 힘보다도 더 강한 힘으로 붙들어 주심으로써 인간들을 하나님과 본연의 사랑을 주고 받는 자리까지 끌어 올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나를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라'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언적인 혁명의 말씀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진리의 혁명을 일으키셨고, 또한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하여 천적인 사랑의 혁명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 대 개인의 사랑은 물론이요, 가정적 사회적 국가적 세계적인 진리를 대신한 사랑이었습니다. 우주를 대신한 사랑의 혁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의 사랑은 자기를 중심삼은 사랑입니다. 혹은 국가를 중심삼은 사랑입니다. 지금까지는 자기의 나라를 사랑한다든가 혹은 자기의 가정을 사랑한다든가 하는 정도였습니다. 국가 이상, 국가권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랑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예수님의 소망은 한 민족, 한 나라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중심해서 하늘과 땅이 하나될 수 있는 이상적인 세계를 갖추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사랑은 세상적인 사랑, 자기를 중심삼은 민족이나 국가적인 차원의 사랑이 아니고 세계를 넘어서 하늘 땅에까지 연결되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진리의 혁명, 사랑의 혁명
그러면 예수님께서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세워 놓으신 참의 길은 무엇이었던가. 예수 그리스도는 개인 앞에 서지 않았습니다. 가정이나 국가 앞에 서지도 않았습니다. 그러자니 우주적인 사랑의 주인공 되시고 신랑 되신 예수님은 가정적인 핍박과 국가적인 핍박을 받으셨습니다.
하늘 땅의 억조 창생들,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였던 모든 피조물이 예수를 기원으로 하여 비로소 사랑의 인연을 맺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연을 맺게 해 주는 책임이 예수님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개척하여 찾아 세운 사랑은 어떠한 사랑인가. 세상적인 사랑과는 정반대되는 사랑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기껏해야 나라를 위하는 사랑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주적인 사랑입니다. 즉, 개인을 넘고, 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고, 세계를 넘어 하늘에까지 사무치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사랑인가. 양면을 갖추는 사랑입니다. 나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들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시에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개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하면 사탄까지도 위해 주는 사랑입니다. 사탄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임을 알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이 표준을 걸어 놓고 '원수까지 사랑하라(마 5:44)'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우주적인 사랑의 기준을 이 땅에 찾아 세워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죽을 때까지 이 일을 완수하지 못하면 우리의 후손을 통해서라도 이 기준을 세워 놓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가정을 대신하고, 종족을 대신하고, 민족을 붙안고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도 원수들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신 그 우주적인 사랑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설움을 이기고 사랑의 심정으로 원수들을 바라보신 예수님의 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며'다 이루었다(요 19:30)'고 하셨는데, 그렇게 말씀하실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슬픔과 자기의 억울함도 다 잊어버리고 하늘 뜻을 이루기 위해 고생하신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자기의 일신을 통하여 우주적인 생명을 다시 찾는 일이 저끄러지려고 하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아픔도 잊어버리고, 자기의 억울함도 잊어버리고 온갖 고난을 이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자신만이 살려는 생애가 아니라 민족과 나라는 물론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생애였다는 것입니다.
각성해야 할 끝날의 성도들
오늘날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찾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고, 민주주의 세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활시키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크신 은사를 받고 큰 책임을 지고 있는 민족이나 그렇지 않은 민족이나 똑같습니다. 이 땅 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남아 있고, 땅 위에 없었던 새로운 우주적인 참진리와 사랑과 생명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 우주적인 진리와 우주적인 사랑과 우주적인 생명은 여러분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의 인류를 구하기 위해 수고하신 분으로서 불쌍하다면 예수님보다 불쌍한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세계를 대신한 말씀이었습니다. 땅 위에 뿌려졌어야 할 진리의 말씀이요, 땅 위에 받아들여졌어야 할 하늘의 말씀이었으며, 땅 위에 심어졌어야 할 우주적인 생명의 말씀이었는데 땅 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신 예수님은 부정당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예수님 당시의 백성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홀로 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수고해 오셨는데, 이 하나님의 수고를 덜어드릴 수 있는 생명의 주인공, 진리의 주인공이 이 땅에 오신다면 땅 위의 모든 양심적인 사람은 그를 사모할 것입니다. 땅 위에 도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생명의 길을 찾아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 더불어 갈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하늘의 소망하는 기준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간들은 개인적인 사랑의 기준, 개인주의를 갖고 살고 있습니다. 옛날의 유대교인들도 이런 마음을 갖고 살았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예수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하늘 땅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말씀과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념적인 말씀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실체화할 수 있는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날인 오늘날, 여러분은 각성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진리와 생명과 사랑을 가지고 민족을 구하고 세계를 구하고 하늘 땅의 6천년의 원한을 해원해야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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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예수님은 우주적인 혁명의 주인공
1956.11.11 (일), 한국 전본부교회
오늘 이 시간은'예수님은 우주적인 혁명의 주인공'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인간이 새로움의 실체로 완성되기를 바라셨던 하나님
새것이 창조되는 과정을 지켜보면 그것은 하나의 혁명적인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엿새 동안에 지어진 모든 물건 즉, 미물인 곤충으로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피조물을 볼 때, 보다 더 새롭고 보다 더 나은 존재를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최후로 사람까지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내적인 성상과 외적인 형상을 완결지으시고, 그것이 아버지께서 영원히 자랑할 수 있는 새롭고도 변치 않는 실체를 갖추기를 바라셨던 것이 창조주의 이상이었음을 여러분들은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하나님이 즐길 수 있는 영원한 새로움의 실체로서, 만물 만상을 대신하고 어떠한 피조물과 비교해 보아도'이는 과연 아름답고 과연 좋다' 할 수 있는 하나의 모습으로 지어 놓은 것입니다.이렇게 지어 놓은 것이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아담 해와였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있습니다.
하나님의 본연의 선하심과 내적인 영광을 실지 생활을 통하여 즐거워해야 할 아담 해와였습니다.그런데 아담 해와는 타락함으로 인하여 그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대신하여 새로움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는 자리에 머물게 된 것이 타락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했을 망정 하나님의 뜻은 불변의 뜻으로서 기필코 완결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창조주로서의 위신을 지킬 수 없으며 권한을 나타낼 수 없기에, 이것을 다시 세워가기 위한 것이 복귀의 역사요 구원의 역사라는 것을 여러분은 원리를 통해서 잘 아는 바입니다.
그러면 하늘이 이러한 입장에서 우주의 만물 만상을 대하게 될 때, 하늘과 땅 가운데서 찾아볼 수 없고 피조물 가운데서 찾아볼 수 없는 하나의 귀한 존재, 하나님 내부에 감추어져 있는 전체의 성상을 새롭게 드러낼 수 있는 보다 차원 높은 새로움의 실체가 주인공으로 나타나서 하나님의 뜻을 성사시킬 수 있는 날은 언제일 것인가?이런 감격적이고도 충격적인 한날을 맞기 위해 오늘날까지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의 목적을 세워 놓으시고 복귀섭리를 거치면서 끊임없는 수고로써 역사해 나오고 계십니다.
창세 이후에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이 피조물을 전부 다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지금까지 없었던 기쁨을 누리게 할 새로운 우주적인 존재를 찾게 되는 그 한 날이 어느 때에나 올 것인고 하나님은 그 한 날, 그 한 존재를 애타게 고대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과 인간과 만물이 같이 즐기고 기뻐하며 화동할 수 있는 창조이상세계를 이미 다 설계해 놓고 계시며, 이상적인 생활면까지도 이미 다 구상해 놓고 계시다는 것입니다.그리하여 내적인 상징으로 이루어진 하늘과 외적인 상징으로 이루어진 땅이 함께 즐거워 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을 중심삼고 즐기게 될 때, 하늘과 땅이 함께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이런 하나의 기준을 찾기 위해서 하늘이 수고하고 계시다는 것도 여러분이 잘 알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요구하시는 뜻은 무엇인가?
천상천하의 모든 것을 깨뜨려버릴지라도 놓을 수 없는 단 하나의 뜻이 있다면 그것은 완성인간입니다.인간이 완성될 때까지는 원리적인 창조의 법도를 거쳐서 진리의 실체가 되어야 하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비원리적인 실체가 되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인간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되 그의 내적인 성품과 외적인 형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실체를 대신한 분신체로 나타나지 못했습니다.
그런 연고로 타락한 인간은 인간의 형은 갖추고 있으되 창조이상의 형을 잃어버렸습니다.하나님은 이 인간에게 창조이상의 형을 다시 주입시키고 계십니다.새로운 하나의 실증체를 찾기 위해 수고하시는 하늘의 역사를 여러분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이루기 위해 오신 예수
그러면 이 하나의 중심되는 본체, 소망의 존재로서 오셨던 분이 누구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예수 그리스도를 보낼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4천년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창조 이후 비로소 화동할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존재로, 만물 만상 앞에 보여줄 수 있는 존재로 예수님을 보내셨으나, 인간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소원의 푯대되는 존재로서 대하지 못하고 반대하는 타락한 역사를 다시 벌였습니다.
잃어버린 선의 기준을 찾기 위하여 수고하신 하나님은 4천년 역사를 거쳐 오면서 사탄의 참소하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모아 민족적인 발판을 만들어 나왔습니다.그러므로 이 민족적인 발판은 하나님과 만물을 대신하고 천상천하의 모든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으로 세우신 예수님을 위한 발판이 되어야 할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예수님대로 민족은 민족대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여기에서 우리들의 사명과 하나님의 사명이 결정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만우주를 새로움의 세계로 다시 이루어 놓기 위해 전체의 대신 존재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체의 주인공으로 모셔야 할 유대백성들이 모시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전체의 주인공된 사명을 가진 예수는 예수대로 백성은 백성대로 사라져 버리게 되었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서러움은 더욱 가중되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 당시 유대백성을 대하여 하시던 말씀과 그가 나타내신 모든 것은 자기 일신의 뜻이 아니었습니다.누구의 뜻이었느냐 하면 하늘의 뜻이었습니다.예수님은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대신하였던 것입니다.그러나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대해야 하는 타락권내의 백성과 예수님 사이에 상충적인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타락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난다 할 때, 이 말씀이 민족앞에 나타나면 민족을 혁명시킬 수 있는 말씀이 될 것이요, 개인에게 나타나면 개인을 혁명시킬 수 있는 말씀이 될 것이요, 세계 가운데 나타나면 세계를 혁명시킬 수 있는 말씀, 또한 하늘 땅을 새로이 혁명시킬 수 있는 말씀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그때의 유대백성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은 4천년 동안 줄곧 모세를 통해 내려 주신 율법과 야곱에게 내린 언약이 자기들의 이상을 이루어 줄 수 있고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것으로 알았습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맨 하급에서부터 점진적으로 끌어 올리는 역사를 하셨습니다.소생적 구약역사를 거쳐나온 후에는 장성적인 신약시대를 거쳐서 완성급까지 나아가는 천지 창조의 원칙적인 순로를 다시 거쳐 나가는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스라엘민족이었습니다.그렇기에 예수님의 말씀은 그 시대 사람들이 용납할 수 없는 생명의 말씀이었습니다.구약 율법보다 더 높은 새로운 말씀이요, 종래의 것보다 더 높은 새로운 가치와 인연맺기 위한 말씀이었다는 것을 그때의 백성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바라시던 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하나님의 전체적인 창조이상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하늘 땅을 대신하여 우주적인 사명을 완수하려고 끊임없이 혁명적인 과정을 거쳐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나타나서 우주적인 뜻의 길을 가게 될 때에는 타락 인간을 본연의 위치로 끌어 올리는 과정이 있었고, 그 과정에는 무수한 싸움의 곡절과 혁명적인 과정이 있었음을 오늘날 끝날에 처해 있는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소망과 유대민족의 불신
그러면 이 혁명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은 어느 정도의 소망인고? 오늘날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땅덩어리에서 가지는 그런 소망이 아닙니다. 세계를 넘어 무한대의 하나님나라까지 연결될 수 있는 소망입니다.
이 소망은 예수의 소망인 동시에 예수와 하나된 하나님의 소망이기도 합니다.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에게 소망을 거시고 하나님의 뜻을 예수를 통하여 나타내려 하셨다는 것을 인간들은 알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유대백성 앞에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과 하나님의 전체적인 뜻을 대표한 실증체로서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한 것이었느냐?지금까지 역사상에 없었던 새로운 진리의 주인공으로 나타나셨습니다.수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부르짖었지만 그것은 개인 차원의 진리일 뿐이었습니다.그들은 그것을 민족과 민족 그리고 모든 국가를 대신할 수 있는 진리라고 주장했을지 모르지만, 실제 그러한 진리가 되지 못하였습니다.그러기에 하늘과 땅을 다시 비춰줄 수 있는 진리를 갖추어 나타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그런 고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그 말씀은 그 시대, 그 세계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적인 것이요, 새롭고도 혁명적인 것이었습니다.
혁명적인 이 진리의 말씀을 하나님의 뜻을 고대하던 유대백성들이 알았다면 여태까지의 자기들의 생활을 버리고 이 진리를 갖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서야 할 유대민족이 이루어야 할 한날을 깨뜨려 놨으니 우리가 이것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맺힌 것을 풀어줘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희생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의 민족을 세워 놓고 그 민족 가운데서 하나의 중심을 세워 그 중심으로 하여금 우주적인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을 나타내려 하셨습니다.그러나 이스라엘민족이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30여년간에 걸쳐 영원한 진리의 말씀을 나타내셔야 할 것이었는데 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버려진 바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인류는 말씀의 실체를 찾는 그 순간까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과 심정을 대신하여 이 땅 위에 전파하려 하셨던 우주적인 새로운 진리를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믿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이루어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증거하신 말씀은 예수님 당시에 민족적인 말씀으로, 또 세계적인 말씀으로 나타났어야 했습니다.그런데 세계적인 말씀으로 나타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기독교는 고난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이 그 당시에 이 땅을 구원할 수 있는 중심의 말씀으로 나타났다면 하나님의 능권을 나타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일개인인 예수 앞에 따르는 개인이 있고, 개인인 예수 앞에 따르는 민족이 있고, 개인인 예수 앞에 따르는 세계가 있었던들, 하나님의 뜻을 책임진 예수님께서는 이 땅 위에서 그 뜻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앞에 그러한 개인과 민족과 세계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삼고 예수님을 대신해야 할 사랑하는 제자들, 사랑하는 가정, 사랑하는 교단, 사랑하는 국가가 예수님과 하나되어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었어야 했는데, 자기들의 교단적인 차원에서 자기들이 알고 있는 진리를 가지고 예수님을 대하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은 말씀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갈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님께서 끝날의 성도인 여러분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부끄러운 우리 자신에게 우주적인 존재가 되기를 소망하셔서 우주적인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한 개인으로 오셨으되 그는 평범한 개인이 아니요, 천하만상의 피조물 전체를 대신한 분이었습니다.온 피조세계의 창조 원리적인 전체의 진리를 대신한 분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
이런 가치적인 존재로 오셨지만 가치의 주인공, 우주의 주인공이 못되셨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이 이런 우주적인 가치의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우리 자신들은 예수님의 심령을 통하여 개인적으로 진리와 만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이 신령역사를 거칠 때 무한한 은혜가 내려오면 그것을 개인적인 은사로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그것은 시일이 지나 환경적인 은사, 교단적인 은사를 거쳐 세계적인 은사로 까지 뻗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그래야 우리는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은사가 내리면 개인적인 생각에서 자신만의 은사로 여기면 안 되는 것입니다.여러분들이 개인적인 입장에서 은혜를 받고 개인적인 입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진리를 얻었다 하면, 그것을 내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동시에 이 진리를 책임지고 세계에까지 전파시켜 나갈 줄 알야야 되겠습니다.이와 같이 세계와 더불어 나간다면, 그것은 나의 은사가 되는 동시에 하늘 땅의 은사가 되는 것입니다.그러나 만약 여러분의 신앙 관념이 여러분 하나를 구원하려는 것이라면, 여러분은 개인적인 구원관념에 머물다간 거기에서 끝나고 맙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마음에 넘치는 은사가 개인적인 것으로만 머물러 있다 할진대 옛날 유대백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잘못을 다시 저지르게 될 것입니다.
나의 얻은 바 진리가 나 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종교에 머물러 있다 할진대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개인을 통하고 가정을 통하고 사회를 통하고 세계를 통하여 하늘의 섭리사에 미쳐지는 소망의 중심을 갖고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의 개인적인 은사를 통하여 부활과 중생의 역사를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개인적이고 민족적이고 국가적이고 세계적인 구원을 여러분들을 통하여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개인적인 구원과 민족적인 구원과 세계적인 구원과 우주적인 구원이 남아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버지 앞에 감사할 때도 개인적인 감사 뿐만 아니라 가정적, 사회적, 국가적,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감사를 드릴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또한 여러분이 회개한다고 하면, 개인적인 회개로부터 가정적인 회개, 국가적인 회개, 세계적인 회개, 하늘 땅을 놓고 회개하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개인적인 구원관념을 넘고 가정적인 구원관념을 넘고 사회와 국가적인 구원관념을 넘고 세계적인 구원관념을 넘어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만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세계적인 탕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유대백성들이 민족적인 구원관념을 가지고 세계적인 구원관념까지 가졌었다면 예수님은 이 유대백성을 통해서 세계인류를 구원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주적인 혁명의 말씀
역사과정을 거쳐 결실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은 진리의 말씀입니다.그것은 선조들이 지나온 전체의 역사와 생활을 초월하여 여러분에게 구원을 베풀 수 있는 말씀이었습니다.이와 같은 예수의 말씀이야말로 우주적인 혁명의 말씀이었음을 여러분들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그때까지 믿어왔던 모든 율법주의 앞에 반기를 들었습니다.`나로 말미암아 모든 율법은 완성을 보아야 한다' 이렇게 선포하셨던 것입니다.이러한 예수님의 우주적인 신앙관이 들어 있는 말씀, 우주적인 가치의 말씀의 뜻을 이스라엘민족이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그 말씀은 그 시대에는 우주적인 말씀이었습니다.사랑면에 있어서도 예수님은 우주적인 혁명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누구보다도 나를 사랑치 않는 자는 내게 합당치 못하다. 또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치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이걸 볼 때 하나님이 창조이상으로 바라시던 우주적인 하나의 완성체를 이룰 때까지 진리를 찾아 나가는 데는 우주적인 노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과 인간끼리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데에 있어서 지극히 중요한 것은 우주적인 사랑입니다.그런데 인간이 우주적인 사랑으로 하나님과 관계맺지 못했기 때문에 천사장의 사랑과 관계맺게 된 것입니다.그래서 인간은 하나님과의 이상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의 문을 꿰뚫고 올라갈 수 있는 힘을 잃어버렸습니다.다시 이 사랑의 문을 뚫을 수 있으려면 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나를 누구보다 더 사랑하라' 하신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 자신이 사랑받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인간들이 그 말씀을 믿고 예수를 사랑하면, 예수께서 사탄권내에 붙들려 있는 힘보다도 더 강한 힘으로 붙들어 주심으로써 인간들을 하나님과 본연의 사랑을 주고 받는 자리까지 끌어 올리기 위한 것입니다.그러기 위해'나를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라' 하신 것입니다.이 말씀은 예언적인 혁명의 말씀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진리의 혁명을 일으키셨고, 또한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하여 천적인 사랑의 혁명을 일으키신 것입니다.이것은 개인 대 개인의 사랑은 물론이요, 가정적 사회적 국가적 세계적인 진리를 대신한 사랑이었습니다.우주를 대신한 사랑의 혁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의 사랑은 자기를 중심삼은 사랑입니다.혹은 국가를 중심삼은 사랑입니다.지금까지는 자기의 나라를 사랑한다든가 혹은 자기의 가정을 사랑한다든가 하는 정도였습니다.국가 이상, 국가권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랑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예수님의 소망은 한 민족, 한 나라가 아닙니다.그것은 하나님을 중심해서 하늘과 땅이 하나될 수 있는 이상적인 세계를 갖추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사랑은 세상적인 사랑, 자기를 중심삼은 민족이나 국가적인 차원의 사랑이 아니고 세계를 넘어서 하늘 땅에까지 연결되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진리의 혁명, 사랑의 혁명
그러면 예수님께서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세워 놓으신 참의 길은 무엇이었던가.오늘날 여러분 자신은 어느 정도의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개인 앞에 서지 않았습니다.가정이나 국가 앞에 서지도 않았습니다.그러자니 우주적인 사랑의 주인공 되시고 신랑 되신 예수님은 가정적인 핍박과 국가적인 핍박을 받으셨습니다.
하늘 땅의 억조 창생들,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였던 모든 피조물이 예수를 기원으로 하여 비로소 사랑의 인연을 맺게 되어 있었습니다.이러한 인연을 맺게 해 주는 책임이 예수님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개척하여 찾아 세운 사랑은 어떠한 사랑인가. 세상적인 사랑과는 정반대되는 사랑입니다.인간의 사랑은 기껏해야 나라를 위하는 사랑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주적인 사랑입니다. 즉, 개인을 넘고, 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고, 세계를 넘어 하늘에까지 사무치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사랑인가.양면을 갖추는 사랑입니다. 나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들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시에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개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하면 사탄까지도 위해 주는 사랑입니다.사탄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임을 알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이 표준을 걸어 놓고'원수까지 사랑하라(마 5:44)'하신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우주적인 사랑의 기준을 이 땅에 찾아 세워야 하겠습니다.우리들이 죽을 때까지 이 일을 완수하지 못하면 우리의 후손을 통해서라도 이 기준을 세워 놓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은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그리스도의 은사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내가 살고 있고, 하늘의 은사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내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리스도와 하늘 앞에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내가 구함을 입은 것도 감사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사명을 대신하는 것도 감사한 일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완결짓기 위해 사는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가정을 대신하고, 종족을 대신하고, 민족을 붙안고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도 원수들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신 그 우주적인 사랑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그리고 설움을 이기고 사랑의 심정으로 원수들을 바라보신 예수님의 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며'다 이루었다(요 19:30)'고 하셨는데, 그렇게 말씀하실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슬픔과 자기의 억울함도 다 잊어버리고 하늘 뜻을 이루기 위해 고생하신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자기의 일신을 통하여 우주적인 생명을 다시 찾는 일이 저끄러지려고 하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아픔도 잊어버리고, 자기의 억울함도 잊어버리고 온갖 고난을 이기신 것입니다.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자신만이 살려는 생애가 아니라 민족과 나라는 물론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생애였다는 것입니다.
각성해야 할 끝날의 성도들
오늘날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찾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고, 민주주의 세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활시키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크신 은사를 받고 큰 책임을 지고 있는 민족이나 그렇지 않은 민족이나 똑같습니다.이 땅 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남아 있고, 땅 위에 없었던 새로운 우주적인 참진리와 사랑과 생명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 우주적인 진리와 우주적인 사랑과 우주적인 생명은 여러분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의 인류를 구하기 위해 수고하신 분으로서 불쌍하다면 예수님보다 불쌍한 사람이 없습니다.예수님의 말씀은 세계를 대신한 말씀이었습니다.땅 위에 뿌려졌어야 할 진리의 말씀이요, 땅 위에 받아들여졌어야 할 하늘의 말씀이었으며, 땅 위에 심어졌어야 할 우주적인 생명의 말씀이었는데 땅 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신 예수님은 부정당했습니다.예수님의 말씀을 예수님 당시의 백성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홀로 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수고해 오셨는데, 이 하나님의 수고를 덜어드릴 수 있는 생명의 주인공, 진리의 주인공이 이 땅에 오신다면 땅 위의 모든 양심적인 사람은 그를 사모할 것입니다.땅 위에 도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생명의 길을 찾아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 더불어 갈 것입니다.이러한 것이 하늘의 소망하는 기준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간들은 개인적인 사랑의 기준, 개인주의를 갖고 살고 있습니다. 옛날의 유대교인들도 이런 마음을 갖고 살았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이러한 것이 예수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하늘 땅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말씀과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사랑이 필요합니다.그런데 이념적인 말씀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실체화할 수 있는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날인 오늘날, 여러분은 각성해야 되겠습니다.여러분은 새로운 진리와 생명과 사랑을 가지고 민족을 구하고 세계를 구하고 하늘 땅의 6천년의 원한을 해원해야 되겠습니다.
말씀선집 제1권 15편
예수님은 우주적인 혁명의 주인공(훈독본)
1956.11.11 (일), 한국 전본부교회
요한복음 14:1-21
오늘 이 시간은 '예수님은 우주적인 혁명의 주인공'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① 인간이 새로움의 실체로 완성되기를 바라셨던 하나님
새것이 창조되는 과정을 지켜보면 그것은 하나의 혁명적인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엿새 동안에 지어진 미물인 곤충으로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피조물을 볼 때, 보다 더 새롭고 보다 더 나은 존재를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최후로 사람까지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내적인 성상과 외적인 형상을 완결지으시고, 그것이 아버지께서 영원히 자랑할 수 있는 새롭고도 변치 않는 실체를 갖추기를 바라셨던 것이 창조주의 이상이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하나님이 즐길 수 있는 영원한 새로움의 실체로서, 만물 만상을 대신하고 어떠한 피조물과 비교해 보아도 '이는 과연 아름답고 과연 좋다' 할 수 있는 하나의 모습으로 지어 놓은 것입니다. 바로 아담 해와였습니다.
하나님의 본연의 선하심과 내적인 영광을 실지 생활을 통하여 즐거워해야 할 아담 해와였습니다. 그런데 타락하여 그 뜻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대신하여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했을 망정 하나님의 뜻은 불변의 뜻으로서 기필코 완결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창조주로서의 위신을 지킬 수 없으며 권한을 나타낼 수 없기에, 이것을 다시 세워가기 위한 것이 복귀의 역사요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러면 하늘이 이러한 입장에서 우주의 만물 만상을 대하게 될 때, 하늘과 땅, 피조물 가운데서 찾아볼 수 없는 하나의 귀한 존재, 하나님 내부에 감추어져 있는 전체의 성상을 새롭게 드러낼 수 있는 보다 차원 높은 새로움의 실체가 주인공으로 나타나서 하나님의 뜻을 성사시킬 수 있는 날은 언제일 것인가? 이런 감격적이고도 충격적인 한날을 맞기 위해 오늘날까지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의 목적을 세워 놓으시고 복귀섭리를 거치면서 끊임없는 수고로써 역사해 나오고 계십니다.
창세 이후에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이 피조물을 전부 다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지금까지 없었던 기쁨을 누리게 할 새로운 우주적인 존재를 찾게 되는 그 한 날이 어느 때에나 올 것인고? 하나님은 그 한 날, 그 한 존재를 애타게 고대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요구하시는 뜻은 무엇인가?
천상천하의 모든 것을 깨뜨려버릴지라도 놓을 수 없는 단 하나의 뜻이 있다면 그것은 완성인간입니다. 인간이 완성될 때까지는 원리적인 창조의 법도를 거쳐서 진리의 실체가 되어야 하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비원리적인 실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되 그의 내적인 성품과 외적인 형이 하나님을 대신한 분신체로 나타나지 못했습니다.
그런 연고로 타락한 인간은 인간의 형은 갖추고 있으되 창조이상의 형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 인간에게 창조이상의 형을 다시 주입시켜 새로운 하나의 실증체를 찾기 위해 수고하고 계십니다.
②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이루기 위해 오신 예수
이 하나의 중심되는 본체, 소망의 존재로서 오셨던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창조 이후 비로소 화동할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존재로, 만물 만상 앞에 보여줄 수 있는 존재로 예수님을 보내셨으나, 인간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소원의 푯대되는 존재로서 대하지 못하고 반대하는 타락한 역사를 다시 벌였습니다.
잃어버린 선의 기준을 찾기 위하여 수고하신 하나님은 4천년 역사를 거쳐 오면서 사탄의 참소하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모아 민족적인 발판을 만들어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이 민족적인 발판은 하나님과 만물을 대신하고 천상천하의 모든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으로 세우신 예수님을 위한 발판이 되어야 할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예수님대로 민족은 민족대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의 사명과 하나님의 사명이 결정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만우주를 새로움의 세계로 다시 이루어 놓기 위해 전체의 대신 존재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체의 주인공으로 모셔야 할 유대백성들이 모시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전체의 주인공된 사명을 가진 예수는 예수대로 백성은 백성대로 사라져 버리게 되었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서러움은 더욱 가중되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 당시 유대백성을 대하여 하시던 말씀과 그가 나타내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대신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대해야 하는 타락권내의 백성과 예수님 사이에 상충적인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타락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날 때, 말씀이 개인 앞에 나타나면 개인을, 민족앞에 나타나면 민족을, 세계 가운데 나타나면 세계를 혁명시킬 수 있는 말씀이 될 것이요, 또한 하늘 땅을 새로이 혁명시킬 수 있는 말씀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그때의 유대백성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은 4천년 동안 줄곧 모세를 통해 내려 주신 율법과 야곱에게 내린 언약이 자기들의 이상을 이루어 줄 수 있고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맨 하급에서부터 점진적으로 끌어 올리는 역사를 하셨습니다. 소생적 구약역사를 거쳐나온 후에는 장성적인 신약시대를 거쳐서 완성급까지 나아가는 천지 창조의 원칙적인 순로를 다시 거쳐 나가는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스라엘민족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말씀은 그 시대 사람들이 용납할 수 없는 생명의 말씀이었습니다. 구약 율법보다 더 높은 새로운 말씀이요, 종래의 것보다 더 높은 새로운 가치와 인연맺기 위한 말씀이었다는 것을 그때의 백성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바라시던 것은 하나님의 전체적인 창조이상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 땅을 대신하여 우주적인 사명을 완수하려고 끊임없이 혁명적인 과정을 거쳐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나타나서 우주적인 뜻의 길을 가게 될 때에는 타락 인간을 본연의 위치로 끌어 올리는 과정이 있었고, 그 과정에는 무수한 싸움의 곡절과 혁명적인 과정이 있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③ 예수님의 소망과 유대민족의 불신
그러면 이 혁명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은 세계를 넘어 무한대의 하나님나라까지 연결될 수 있는 소망입니다.
이 소망은 예수의 소망인 동시에 예수와 하나된 하나님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에게 소망을 거시고 하나님의 뜻을 예수를 통하여 나타내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유대백성 앞에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과 하나님의 전체적인 뜻을 대표한 실증체로서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한 것이었느냐? 지금까지 역사상에 없었던 새로운 진리의 주인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부르짖었지만 그것은 개인 차원의 진리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민족과 민족 그리고 모든 국가를 대신할 수 있는 진리라고 주장했을지 모르지만, 실제 그러한 진리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기에 하늘과 땅을 다시 비춰줄 수 있는 진리를 갖추어 나타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그런 고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그 말씀은 그 시대, 그 세계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적인 것이요, 새롭고도 혁명적인 것이었습니다.
혁명적인 이 진리의 말씀을 유대백성들이 알았다면 이 진리를 갖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서야 할 유대민족이 이루어야 할 한날을 깨뜨려 놨으니 우리가 이것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맺힌 것을 풀어줘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희생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의 민족을 세워 놓고 그 민족 가운데서 하나의 중심을 세워 그 중심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을 나타내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민족이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30여년간에 걸쳐 영원한 진리의 말씀을 나타내셔야 할 것이었는데 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버려진 바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인류는 말씀의 실체를 찾는 그 순간까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과 심정을 대신하여 이 땅 위에 전파하려 하셨던 새로운 진리를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믿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이루어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증거하신 말씀은 예수님 당시에 민족적인 말씀으로, 또 세계적인 말씀으로 나타났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세계적인 말씀으로 나타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기독교는 고난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이 그 당시에 이 땅을 구원할 수 있는 중심의 말씀으로 나타났다면 하나님의 능권을 나타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 앞에 따르는 개인이 있고, 민족이 있고, 세계가 있었던들, 하나님의 뜻을 책임진 예수님께서는 이 땅 위에서 그 뜻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개인과 민족과 세계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삼고 예수님을 대신해야 할 사랑하는 제자들과 가정, 교단, 국가가 예수님과 하나되어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었어야 했는데, 자기들의 교단적인 차원에서 자기들이 알고 있는 진리를 가지고 예수님을 대하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은 말씀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갈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님께서 끝날의 성도인 여러분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부끄러운 우리 자신에게 우주적인 존재가 되기를 소망하셔서 우주적인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한 개인으로 오셨으되 천하만상의 피조물 전체를 대신한 분이요, 진리를 대신한 분이었던 것입니다.
④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
이런 가치적인 존재로 오셨지만 가치의 주인공, 우주의 주인공이 못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이 이런 우주적인 가치의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우리 자신들은 예수님의 심령을 통하여 개인적으로 진리와 만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이 신령역사를 거칠 때 무한한 은혜가 내려오면 그것을 개인적인 은사로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시일이 지나 환경적인 은사, 교단적인 은사를 거쳐 세계적인 은사로 까지 뻗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은사가 내리면 개인적인 생각에서 자신만의 은사로 여기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개인적인 입장에서 은혜를 받고 개인적인 입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진리를 얻었다 하면, 그것을 내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동시에 이 진리를 책임지고 세계에까지 전파시켜 나갈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세계와 더불어 나간다면, 그것은 나의 은사가 되는 동시에 하늘 땅의 은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의 신앙 관념이 여러분 하나를 구원하려는 개인적인 구원관념에 머물다간 거기에서 끝나고 맙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마음에 넘치는 은사가 개인적인 것으로만 머물러 있다 할진대 옛날 유대백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잘못을 다시 저지르게 될 것입니다.
나의 얻은 바 진리가 나 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종교에 머물러 있다 할진대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개인을 통하고 가정을 통하고 사회를 통하고 세계를 통하여 하늘의 섭리사에 미쳐지는 소망의 중심을 갖고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의 개인적인 은사를 통하여 부활과 중생의 역사를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이고 민족적이고 국가적이고 세계적인 구원을 여러분들을 통하여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개인적인 구원과 민족적인 구원과 세계적인 구원과 우주적인 구원이 남아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버지 앞에 감사할 때도 개인적인 감사 뿐만 아니라 가정적, 사회적, 국가적,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감사를 드릴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회개한다고 하면, 개인적인 회개로부터 가정적인 회개, 국가적인 회개, 세계적인 회개, 하늘 땅을 놓고 회개하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개인적인 구원관념을 넘고 가정적인 구원관념을 넘고 사회와 국가적인 구원관념을 넘고 세계적인 구원관념을 넘어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만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세계적인 탕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유대백성들이 민족적인 구원관념을 가지고 세계적인 구원관념까지 가졌었다면 예수님은 이 유대백성을 통해서 세계인류를 구원하셨을 것입니다.
⑤ 예수님의 말씀은 우주적인 혁명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선조들이 지나온 전체의 역사와 생활을 초월하여 여러분에게 구원을 베풀 수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의 말씀이야말로 우주적인 혁명의 말씀이었음을 여러분들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그때까지 믿어왔던 모든 율법주의 앞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모든 율법은 완성을 보아야 한다' 이렇게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우주적인 신앙관이 들어 있는 말씀, 우주적인 가치의 말씀의 뜻을 이스라엘민족이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그 말씀은 그 시대에는 우주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사랑면에 있어서도 예수님은 우주적인 혁명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치 않는 자는 내게 합당치 못하다. 또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치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걸 볼 때 하나님이 창조이상으로 바라시던 우주적인 하나의 완성체를 이룰 때까지 진리를 찾아 나가는 데는 우주적인 노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과 인간끼리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데에 있어서 지극히 중요한 것은 우주적인 사랑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우주적인 사랑으로 하나님과 관계맺지 못했기 때문에 천사장의 사랑과 관계맺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과의 이상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의 문을 꿰뚫고 올라갈 수 있는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다시 이 사랑의 문을 뚫을 수 있으려면 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누구보다 더 사랑하라' 하신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 자신이 사랑받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들이 그 말씀을 믿고 예수를 사랑하면, 예수께서 사탄권내에 붙들려 있는 힘보다도 더 강한 힘으로 붙들어 주심으로써 인간들을 하나님과 본연의 사랑을 주고 받는 자리까지 끌어 올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나를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라'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언적인 혁명의 말씀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진리의 혁명을 일으키셨고, 또한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하여 천적인 사랑의 혁명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 대 개인의 사랑은 물론이요, 가정적 사회적 국가적 세계적인 진리를 대신한 사랑이었습니다. 우주를 대신한 사랑의 혁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의 사랑은 자기를 중심삼은 사랑입니다. 혹은 국가를 중심삼은 사랑입니다. 지금까지는 자기의 나라를 사랑한다든가 혹은 자기의 가정을 사랑한다든가 하는 정도였습니다. 국가 이상, 국가권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랑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예수님의 소망은 한 민족, 한 나라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중심해서 하늘과 땅이 하나될 수 있는 이상적인 세계를 갖추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사랑은 세상적인 사랑, 자기를 중심삼은 민족이나 국가적인 차원의 사랑이 아니고 세계를 넘어서 하늘 땅에까지 연결되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⑥ 진리의 혁명, 사랑의 혁명
그러면 예수님께서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세워 놓으신 참의 길은 무엇이었던가. 예수 그리스도는 개인 앞에 서지 않았습니다. 가정이나 국가 앞에 서지도 않았습니다. 그러자니 우주적인 사랑의 주인공 되시고 신랑 되신 예수님은 가정적인 핍박과 국가적인 핍박을 받으셨습니다.
하늘 땅의 억조 창생들,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였던 모든 피조물이 예수를 기원으로 하여 비로소 사랑의 인연을 맺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연을 맺게 해 주는 책임이 예수님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개척하여 찾아 세운 사랑은 어떠한 사랑인가. 세상적인 사랑과는 정반대되는 사랑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기껏해야 나라를 위하는 사랑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주적인 사랑입니다. 즉, 개인을 넘고, 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고, 세계를 넘어 하늘에까지 사무치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사랑인가. 양면을 갖추는 사랑입니다. 나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들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시에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개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하면 사탄까지도 위해 주는 사랑입니다. 사탄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임을 알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이 표준을 걸어 놓고 '원수까지 사랑하라(마 5:44)'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우주적인 사랑의 기준을 이 땅에 찾아 세워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죽을 때까지 이 일을 완수하지 못하면 우리의 후손을 통해서라도 이 기준을 세워 놓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가정을 대신하고, 종족을 대신하고, 민족을 붙안고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도 원수들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신 그 우주적인 사랑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설움을 이기고 사랑의 심정으로 원수들을 바라보신 예수님의 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며'다 이루었다(요 19:30)'고 하셨는데, 그렇게 말씀하실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슬픔과 자기의 억울함도 다 잊어버리고 하늘 뜻을 이루기 위해 고생하신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자기의 일신을 통하여 우주적인 생명을 다시 찾는 일이 저끄러지려고 하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아픔도 잊어버리고, 자기의 억울함도 잊어버리고 온갖 고난을 이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자신만이 살려는 생애가 아니라 민족과 나라는 물론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생애였다는 것입니다.
⑦ 각성해야 할 끝날의 성도들
오늘날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찾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고, 민주주의 세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활시키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크신 은사를 받고 큰 책임을 지고 있는 민족이나 그렇지 않은 민족이나 똑같습니다. 이 땅 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남아 있고, 땅 위에 없었던 새로운 우주적인 참진리와 사랑과 생명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 우주적인 진리와 우주적인 사랑과 우주적인 생명은 여러분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의 인류를 구하기 위해 수고하신 분으로서 불쌍하다면 예수님보다 불쌍한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세계를 대신한 말씀이었습니다. 땅 위에 뿌려졌어야 할 진리의 말씀이요, 땅 위에 받아들여졌어야 할 하늘의 말씀이었으며, 땅 위에 심어졌어야 할 우주적인 생명의 말씀이었는데 땅 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신 예수님은 부정당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예수님 당시의 백성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홀로 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수고해 오셨는데, 이 하나님의 수고를 덜어드릴 수 있는 생명의 주인공, 진리의 주인공이 이 땅에 오신다면 땅 위의 모든 양심적인 사람은 그를 사모할 것입니다. 땅 위에 도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생명의 길을 찾아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 더불어 갈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하늘의 소망하는 기준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간들은 개인적인 사랑의 기준, 개인주의를 갖고 살고 있습니다. 옛날의 유대교인들도 이런 마음을 갖고 살았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예수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하늘 땅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말씀과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념적인 말씀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실체화할 수 있는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날인 오늘날, 여러분은 각성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진리와 생명과 사랑을 가지고 민족을 구하고 세계를 구하고 하늘 땅의 6천년의 원한을 해원해야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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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예수님은 우주적인 혁명의 주인공
1956.11.11 (일), 한국 전본부교회
오늘 이 시간은'예수님은 우주적인 혁명의 주인공'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인간이 새로움의 실체로 완성되기를 바라셨던 하나님
새것이 창조되는 과정을 지켜보면 그것은 하나의 혁명적인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엿새 동안에 지어진 모든 물건 즉, 미물인 곤충으로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피조물을 볼 때, 보다 더 새롭고 보다 더 나은 존재를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최후로 사람까지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내적인 성상과 외적인 형상을 완결지으시고, 그것이 아버지께서 영원히 자랑할 수 있는 새롭고도 변치 않는 실체를 갖추기를 바라셨던 것이 창조주의 이상이었음을 여러분들은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하나님이 즐길 수 있는 영원한 새로움의 실체로서, 만물 만상을 대신하고 어떠한 피조물과 비교해 보아도'이는 과연 아름답고 과연 좋다' 할 수 있는 하나의 모습으로 지어 놓은 것입니다.이렇게 지어 놓은 것이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아담 해와였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있습니다.
하나님의 본연의 선하심과 내적인 영광을 실지 생활을 통하여 즐거워해야 할 아담 해와였습니다.그런데 아담 해와는 타락함으로 인하여 그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대신하여 새로움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는 자리에 머물게 된 것이 타락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했을 망정 하나님의 뜻은 불변의 뜻으로서 기필코 완결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창조주로서의 위신을 지킬 수 없으며 권한을 나타낼 수 없기에, 이것을 다시 세워가기 위한 것이 복귀의 역사요 구원의 역사라는 것을 여러분은 원리를 통해서 잘 아는 바입니다.
그러면 하늘이 이러한 입장에서 우주의 만물 만상을 대하게 될 때, 하늘과 땅 가운데서 찾아볼 수 없고 피조물 가운데서 찾아볼 수 없는 하나의 귀한 존재, 하나님 내부에 감추어져 있는 전체의 성상을 새롭게 드러낼 수 있는 보다 차원 높은 새로움의 실체가 주인공으로 나타나서 하나님의 뜻을 성사시킬 수 있는 날은 언제일 것인가?이런 감격적이고도 충격적인 한날을 맞기 위해 오늘날까지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의 목적을 세워 놓으시고 복귀섭리를 거치면서 끊임없는 수고로써 역사해 나오고 계십니다.
창세 이후에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이 피조물을 전부 다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지금까지 없었던 기쁨을 누리게 할 새로운 우주적인 존재를 찾게 되는 그 한 날이 어느 때에나 올 것인고 하나님은 그 한 날, 그 한 존재를 애타게 고대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과 인간과 만물이 같이 즐기고 기뻐하며 화동할 수 있는 창조이상세계를 이미 다 설계해 놓고 계시며, 이상적인 생활면까지도 이미 다 구상해 놓고 계시다는 것입니다.그리하여 내적인 상징으로 이루어진 하늘과 외적인 상징으로 이루어진 땅이 함께 즐거워 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을 중심삼고 즐기게 될 때, 하늘과 땅이 함께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이런 하나의 기준을 찾기 위해서 하늘이 수고하고 계시다는 것도 여러분이 잘 알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요구하시는 뜻은 무엇인가?
천상천하의 모든 것을 깨뜨려버릴지라도 놓을 수 없는 단 하나의 뜻이 있다면 그것은 완성인간입니다.인간이 완성될 때까지는 원리적인 창조의 법도를 거쳐서 진리의 실체가 되어야 하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비원리적인 실체가 되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인간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되 그의 내적인 성품과 외적인 형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실체를 대신한 분신체로 나타나지 못했습니다.
그런 연고로 타락한 인간은 인간의 형은 갖추고 있으되 창조이상의 형을 잃어버렸습니다.하나님은 이 인간에게 창조이상의 형을 다시 주입시키고 계십니다.새로운 하나의 실증체를 찾기 위해 수고하시는 하늘의 역사를 여러분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이루기 위해 오신 예수
그러면 이 하나의 중심되는 본체, 소망의 존재로서 오셨던 분이 누구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예수 그리스도를 보낼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4천년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창조 이후 비로소 화동할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존재로, 만물 만상 앞에 보여줄 수 있는 존재로 예수님을 보내셨으나, 인간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소원의 푯대되는 존재로서 대하지 못하고 반대하는 타락한 역사를 다시 벌였습니다.
잃어버린 선의 기준을 찾기 위하여 수고하신 하나님은 4천년 역사를 거쳐 오면서 사탄의 참소하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모아 민족적인 발판을 만들어 나왔습니다.그러므로 이 민족적인 발판은 하나님과 만물을 대신하고 천상천하의 모든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으로 세우신 예수님을 위한 발판이 되어야 할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예수님대로 민족은 민족대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여기에서 우리들의 사명과 하나님의 사명이 결정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만우주를 새로움의 세계로 다시 이루어 놓기 위해 전체의 대신 존재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체의 주인공으로 모셔야 할 유대백성들이 모시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전체의 주인공된 사명을 가진 예수는 예수대로 백성은 백성대로 사라져 버리게 되었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서러움은 더욱 가중되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 당시 유대백성을 대하여 하시던 말씀과 그가 나타내신 모든 것은 자기 일신의 뜻이 아니었습니다.누구의 뜻이었느냐 하면 하늘의 뜻이었습니다.예수님은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대신하였던 것입니다.그러나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대해야 하는 타락권내의 백성과 예수님 사이에 상충적인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타락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난다 할 때, 이 말씀이 민족앞에 나타나면 민족을 혁명시킬 수 있는 말씀이 될 것이요, 개인에게 나타나면 개인을 혁명시킬 수 있는 말씀이 될 것이요, 세계 가운데 나타나면 세계를 혁명시킬 수 있는 말씀, 또한 하늘 땅을 새로이 혁명시킬 수 있는 말씀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그때의 유대백성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은 4천년 동안 줄곧 모세를 통해 내려 주신 율법과 야곱에게 내린 언약이 자기들의 이상을 이루어 줄 수 있고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것으로 알았습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맨 하급에서부터 점진적으로 끌어 올리는 역사를 하셨습니다.소생적 구약역사를 거쳐나온 후에는 장성적인 신약시대를 거쳐서 완성급까지 나아가는 천지 창조의 원칙적인 순로를 다시 거쳐 나가는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스라엘민족이었습니다.그렇기에 예수님의 말씀은 그 시대 사람들이 용납할 수 없는 생명의 말씀이었습니다.구약 율법보다 더 높은 새로운 말씀이요, 종래의 것보다 더 높은 새로운 가치와 인연맺기 위한 말씀이었다는 것을 그때의 백성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바라시던 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하나님의 전체적인 창조이상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하늘 땅을 대신하여 우주적인 사명을 완수하려고 끊임없이 혁명적인 과정을 거쳐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나타나서 우주적인 뜻의 길을 가게 될 때에는 타락 인간을 본연의 위치로 끌어 올리는 과정이 있었고, 그 과정에는 무수한 싸움의 곡절과 혁명적인 과정이 있었음을 오늘날 끝날에 처해 있는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소망과 유대민족의 불신
그러면 이 혁명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은 어느 정도의 소망인고? 오늘날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땅덩어리에서 가지는 그런 소망이 아닙니다. 세계를 넘어 무한대의 하나님나라까지 연결될 수 있는 소망입니다.
이 소망은 예수의 소망인 동시에 예수와 하나된 하나님의 소망이기도 합니다.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에게 소망을 거시고 하나님의 뜻을 예수를 통하여 나타내려 하셨다는 것을 인간들은 알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유대백성 앞에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과 하나님의 전체적인 뜻을 대표한 실증체로서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한 것이었느냐?지금까지 역사상에 없었던 새로운 진리의 주인공으로 나타나셨습니다.수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부르짖었지만 그것은 개인 차원의 진리일 뿐이었습니다.그들은 그것을 민족과 민족 그리고 모든 국가를 대신할 수 있는 진리라고 주장했을지 모르지만, 실제 그러한 진리가 되지 못하였습니다.그러기에 하늘과 땅을 다시 비춰줄 수 있는 진리를 갖추어 나타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그런 고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그 말씀은 그 시대, 그 세계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적인 것이요, 새롭고도 혁명적인 것이었습니다.
혁명적인 이 진리의 말씀을 하나님의 뜻을 고대하던 유대백성들이 알았다면 여태까지의 자기들의 생활을 버리고 이 진리를 갖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서야 할 유대민족이 이루어야 할 한날을 깨뜨려 놨으니 우리가 이것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맺힌 것을 풀어줘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희생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의 민족을 세워 놓고 그 민족 가운데서 하나의 중심을 세워 그 중심으로 하여금 우주적인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을 나타내려 하셨습니다.그러나 이스라엘민족이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30여년간에 걸쳐 영원한 진리의 말씀을 나타내셔야 할 것이었는데 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버려진 바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인류는 말씀의 실체를 찾는 그 순간까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과 심정을 대신하여 이 땅 위에 전파하려 하셨던 우주적인 새로운 진리를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믿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이루어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증거하신 말씀은 예수님 당시에 민족적인 말씀으로, 또 세계적인 말씀으로 나타났어야 했습니다.그런데 세계적인 말씀으로 나타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기독교는 고난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이 그 당시에 이 땅을 구원할 수 있는 중심의 말씀으로 나타났다면 하나님의 능권을 나타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일개인인 예수 앞에 따르는 개인이 있고, 개인인 예수 앞에 따르는 민족이 있고, 개인인 예수 앞에 따르는 세계가 있었던들, 하나님의 뜻을 책임진 예수님께서는 이 땅 위에서 그 뜻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앞에 그러한 개인과 민족과 세계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삼고 예수님을 대신해야 할 사랑하는 제자들, 사랑하는 가정, 사랑하는 교단, 사랑하는 국가가 예수님과 하나되어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었어야 했는데, 자기들의 교단적인 차원에서 자기들이 알고 있는 진리를 가지고 예수님을 대하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은 말씀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갈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님께서 끝날의 성도인 여러분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부끄러운 우리 자신에게 우주적인 존재가 되기를 소망하셔서 우주적인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한 개인으로 오셨으되 그는 평범한 개인이 아니요, 천하만상의 피조물 전체를 대신한 분이었습니다.온 피조세계의 창조 원리적인 전체의 진리를 대신한 분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
이런 가치적인 존재로 오셨지만 가치의 주인공, 우주의 주인공이 못되셨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이 이런 우주적인 가치의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우리 자신들은 예수님의 심령을 통하여 개인적으로 진리와 만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이 신령역사를 거칠 때 무한한 은혜가 내려오면 그것을 개인적인 은사로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그것은 시일이 지나 환경적인 은사, 교단적인 은사를 거쳐 세계적인 은사로 까지 뻗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그래야 우리는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은사가 내리면 개인적인 생각에서 자신만의 은사로 여기면 안 되는 것입니다.여러분들이 개인적인 입장에서 은혜를 받고 개인적인 입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진리를 얻었다 하면, 그것을 내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동시에 이 진리를 책임지고 세계에까지 전파시켜 나갈 줄 알야야 되겠습니다.이와 같이 세계와 더불어 나간다면, 그것은 나의 은사가 되는 동시에 하늘 땅의 은사가 되는 것입니다.그러나 만약 여러분의 신앙 관념이 여러분 하나를 구원하려는 것이라면, 여러분은 개인적인 구원관념에 머물다간 거기에서 끝나고 맙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마음에 넘치는 은사가 개인적인 것으로만 머물러 있다 할진대 옛날 유대백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잘못을 다시 저지르게 될 것입니다.
나의 얻은 바 진리가 나 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종교에 머물러 있다 할진대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개인을 통하고 가정을 통하고 사회를 통하고 세계를 통하여 하늘의 섭리사에 미쳐지는 소망의 중심을 갖고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의 개인적인 은사를 통하여 부활과 중생의 역사를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개인적이고 민족적이고 국가적이고 세계적인 구원을 여러분들을 통하여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개인적인 구원과 민족적인 구원과 세계적인 구원과 우주적인 구원이 남아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버지 앞에 감사할 때도 개인적인 감사 뿐만 아니라 가정적, 사회적, 국가적,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감사를 드릴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또한 여러분이 회개한다고 하면, 개인적인 회개로부터 가정적인 회개, 국가적인 회개, 세계적인 회개, 하늘 땅을 놓고 회개하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개인적인 구원관념을 넘고 가정적인 구원관념을 넘고 사회와 국가적인 구원관념을 넘고 세계적인 구원관념을 넘어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만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세계적인 탕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유대백성들이 민족적인 구원관념을 가지고 세계적인 구원관념까지 가졌었다면 예수님은 이 유대백성을 통해서 세계인류를 구원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주적인 혁명의 말씀
역사과정을 거쳐 결실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은 진리의 말씀입니다.그것은 선조들이 지나온 전체의 역사와 생활을 초월하여 여러분에게 구원을 베풀 수 있는 말씀이었습니다.이와 같은 예수의 말씀이야말로 우주적인 혁명의 말씀이었음을 여러분들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그때까지 믿어왔던 모든 율법주의 앞에 반기를 들었습니다.`나로 말미암아 모든 율법은 완성을 보아야 한다' 이렇게 선포하셨던 것입니다.이러한 예수님의 우주적인 신앙관이 들어 있는 말씀, 우주적인 가치의 말씀의 뜻을 이스라엘민족이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그 말씀은 그 시대에는 우주적인 말씀이었습니다.사랑면에 있어서도 예수님은 우주적인 혁명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누구보다도 나를 사랑치 않는 자는 내게 합당치 못하다. 또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치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이걸 볼 때 하나님이 창조이상으로 바라시던 우주적인 하나의 완성체를 이룰 때까지 진리를 찾아 나가는 데는 우주적인 노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과 인간끼리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데에 있어서 지극히 중요한 것은 우주적인 사랑입니다.그런데 인간이 우주적인 사랑으로 하나님과 관계맺지 못했기 때문에 천사장의 사랑과 관계맺게 된 것입니다.그래서 인간은 하나님과의 이상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의 문을 꿰뚫고 올라갈 수 있는 힘을 잃어버렸습니다.다시 이 사랑의 문을 뚫을 수 있으려면 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나를 누구보다 더 사랑하라' 하신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 자신이 사랑받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인간들이 그 말씀을 믿고 예수를 사랑하면, 예수께서 사탄권내에 붙들려 있는 힘보다도 더 강한 힘으로 붙들어 주심으로써 인간들을 하나님과 본연의 사랑을 주고 받는 자리까지 끌어 올리기 위한 것입니다.그러기 위해'나를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라' 하신 것입니다.이 말씀은 예언적인 혁명의 말씀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진리의 혁명을 일으키셨고, 또한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하여 천적인 사랑의 혁명을 일으키신 것입니다.이것은 개인 대 개인의 사랑은 물론이요, 가정적 사회적 국가적 세계적인 진리를 대신한 사랑이었습니다.우주를 대신한 사랑의 혁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의 사랑은 자기를 중심삼은 사랑입니다.혹은 국가를 중심삼은 사랑입니다.지금까지는 자기의 나라를 사랑한다든가 혹은 자기의 가정을 사랑한다든가 하는 정도였습니다.국가 이상, 국가권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랑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예수님의 소망은 한 민족, 한 나라가 아닙니다.그것은 하나님을 중심해서 하늘과 땅이 하나될 수 있는 이상적인 세계를 갖추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사랑은 세상적인 사랑, 자기를 중심삼은 민족이나 국가적인 차원의 사랑이 아니고 세계를 넘어서 하늘 땅에까지 연결되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진리의 혁명, 사랑의 혁명
그러면 예수님께서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세워 놓으신 참의 길은 무엇이었던가.오늘날 여러분 자신은 어느 정도의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개인 앞에 서지 않았습니다.가정이나 국가 앞에 서지도 않았습니다.그러자니 우주적인 사랑의 주인공 되시고 신랑 되신 예수님은 가정적인 핍박과 국가적인 핍박을 받으셨습니다.
하늘 땅의 억조 창생들,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였던 모든 피조물이 예수를 기원으로 하여 비로소 사랑의 인연을 맺게 되어 있었습니다.이러한 인연을 맺게 해 주는 책임이 예수님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개척하여 찾아 세운 사랑은 어떠한 사랑인가. 세상적인 사랑과는 정반대되는 사랑입니다.인간의 사랑은 기껏해야 나라를 위하는 사랑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주적인 사랑입니다. 즉, 개인을 넘고, 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고, 세계를 넘어 하늘에까지 사무치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사랑인가.양면을 갖추는 사랑입니다. 나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들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시에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개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하면 사탄까지도 위해 주는 사랑입니다.사탄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임을 알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이 표준을 걸어 놓고'원수까지 사랑하라(마 5:44)'하신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우주적인 사랑의 기준을 이 땅에 찾아 세워야 하겠습니다.우리들이 죽을 때까지 이 일을 완수하지 못하면 우리의 후손을 통해서라도 이 기준을 세워 놓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은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그리스도의 은사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내가 살고 있고, 하늘의 은사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내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리스도와 하늘 앞에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내가 구함을 입은 것도 감사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사명을 대신하는 것도 감사한 일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완결짓기 위해 사는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가정을 대신하고, 종족을 대신하고, 민족을 붙안고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도 원수들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신 그 우주적인 사랑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그리고 설움을 이기고 사랑의 심정으로 원수들을 바라보신 예수님의 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며'다 이루었다(요 19:30)'고 하셨는데, 그렇게 말씀하실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슬픔과 자기의 억울함도 다 잊어버리고 하늘 뜻을 이루기 위해 고생하신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자기의 일신을 통하여 우주적인 생명을 다시 찾는 일이 저끄러지려고 하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아픔도 잊어버리고, 자기의 억울함도 잊어버리고 온갖 고난을 이기신 것입니다.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자신만이 살려는 생애가 아니라 민족과 나라는 물론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생애였다는 것입니다.
각성해야 할 끝날의 성도들
오늘날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찾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고, 민주주의 세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활시키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크신 은사를 받고 큰 책임을 지고 있는 민족이나 그렇지 않은 민족이나 똑같습니다.이 땅 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남아 있고, 땅 위에 없었던 새로운 우주적인 참진리와 사랑과 생명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 우주적인 진리와 우주적인 사랑과 우주적인 생명은 여러분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의 인류를 구하기 위해 수고하신 분으로서 불쌍하다면 예수님보다 불쌍한 사람이 없습니다.예수님의 말씀은 세계를 대신한 말씀이었습니다.땅 위에 뿌려졌어야 할 진리의 말씀이요, 땅 위에 받아들여졌어야 할 하늘의 말씀이었으며, 땅 위에 심어졌어야 할 우주적인 생명의 말씀이었는데 땅 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신 예수님은 부정당했습니다.예수님의 말씀을 예수님 당시의 백성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홀로 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수고해 오셨는데, 이 하나님의 수고를 덜어드릴 수 있는 생명의 주인공, 진리의 주인공이 이 땅에 오신다면 땅 위의 모든 양심적인 사람은 그를 사모할 것입니다.땅 위에 도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생명의 길을 찾아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 더불어 갈 것입니다.이러한 것이 하늘의 소망하는 기준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간들은 개인적인 사랑의 기준, 개인주의를 갖고 살고 있습니다. 옛날의 유대교인들도 이런 마음을 갖고 살았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이러한 것이 예수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하늘 땅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말씀과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사랑이 필요합니다.그런데 이념적인 말씀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실체화할 수 있는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날인 오늘날, 여러분은 각성해야 되겠습니다.여러분은 새로운 진리와 생명과 사랑을 가지고 민족을 구하고 세계를 구하고 하늘 땅의 6천년의 원한을 해원해야 되겠습니다.
말씀선집 제1권 16편
세상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훈독본)
1956.11.25 (일), 한국 전본부교회
마태복음 5:43-48, 요한복음 1:19-34
세상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말씀선집 제1권 16편)
'세상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이런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과 인간의 사명
타락이 있은 이후 예수님이 오시기까지의 4천년의 역사는 선의 역사가 아니었고 죄악의 역사였습니다. 수많은 선지자들이 이 땅 위에 와서 4천년 동안 섭리의 뜻을 받들어 죄와 싸웠으나, 남아진 죄를 다 청산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죄와 싸우다가 실패하고 또 실패하여 4천년까지 섭리는 연장되어 나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은 이 죄를 완전히 청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죄가 완전히 청산되는 날까지는 싸움의 역사는 중지될 수 없는 것이요, 복귀의 역사는 중지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섭리의 일꾼으로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뜻을 이루기 위하여 타락한 아담가정 대신 노아가정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노아가정이 다시 실패한 연고로 아브라함 그리고 이삭 야곱을 세웠고, 그리고 민족을 대신한 모세를 세웠습니다. 그후 사울왕, 다윗왕, 솔로몬왕을 거치고, 4대선지와 12소선지를 거쳐서 세례 요한까지 왔습니다.
이제 하늘 앞에 인간으로서 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는데, 그 사명은 무엇인가? 인간이 타락한 연고로 죄의 뿌리를 심어 나왔으니 인간으로 하여금 죄의 뿌리되는 사탄을 굴복시키어 하나님 앞에 선과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들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4천년 동안 역사하여 나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원인-세례 요한의 불신
그러면 세례 요한이 이 땅 위에 와서 해야 했던 사명이 무엇이었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모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타락하지 않은 완성한 아담의 입장에 세워졌기 때문에 나면서부터 하늘 앞에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즐거워하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온 인류 앞에 자랑하고 사탄 앞에 자랑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나면서부터 고난의 길을 가서는 안 될 분이었습니다. 나면서부터 인간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기쁨을 돌려드리는 영광의 중보자가 되어야 할 분이요, 사랑의 중보자가 되어야 할 분이요, 선의 중보자가 되어야 할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의 인간들이 받들어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죄와는 아무런 관계와 인연이 없는 가운데 오직 선과 기쁨만이 그의 생활에 충만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세례 요한이 예수님 앞에 책임을 못한 연고로 사탄이 예수님에게 침범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원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끝날에 처한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무슨 사명이 남아 있느냐? 세례 요한의 사명을 완수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즉 4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 앞에 승리한 영광의 아들 딸로서, 예수와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선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서러움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탄이 끌고 다니면서 시험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왔다 가신 이후 2천년 동안 사탄과 싸움을 하게 된 것은 그 당시 유대교인들이 불신했기 때문이었고, 세례 요한이 실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탄을 굴복시키고 죄를 청산해야 할 인간
이제 세기말적인 시기가 다시 목전에 당도한 이 때, 여러분은 죄와 싸워야 하고 사탄과 싸워야 합니다. 6천년을 대신하여, 세례 요한 대신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자신에게는 사탄의 흔적이 없게 해야할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책임을 하는 여러분이 되지 못하면 오시는 재림주가 여러분을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의 창조이상의 동산은 사탄의 흔적이 없는 동산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이 지상에 이루려면 우리들이 사탄을 굴복시켜 타락하지 않은 완성한 아담급에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하고 사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모습들이 되지 않는다 할진대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탄 앞에 시험받았던 그 원한을 풀어 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인간을 유린하고 온 땅을 지배하고 있는데, 이것을 돌이키려면 탕감의 원칙에 의해야 합니다. 인간이 사탄에 유린되었으므로 예수와 성신,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 않더라도, 인간들 자신의 힘으로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들이 사탄이 제시하는 죄의 조건들을 극복할 수 있어야 승리의 아들 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주적인 사탄과 홀로 싸워 승리할 수 있는 아들 딸이 되지 않는다 할진대는, 여러분과 예수와는 관계가 없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길은 우리에게는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운명의 길인 것입니다. 살아서 못 간다 할진대 죽어서라도 가야만 하는 운명의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는 살아서 이루어야 할 뜻을 살아서 이루지 못하게 되자, 죽어서라도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2천년 역사가 경과한 오늘날까지도 자신의 실체를 대신할 수 있는 영광의 아들 딸을 고대하고 계십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6천년의 역사가 영광의 역사가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예수와 성신이 사탄 대하여 싸우고 있는 한, 예수와 성신의 뜻을 따르는 아들 딸들이 사탄의 시험을 받고 있는 한, 하나님의 창조본연의 이념이 이 땅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연고로 땅 위에 사무친 원한은 하나님의 원한으로 남아지게 되었고, 땅 위에 원한을 풀기 위한 새 역사는 하나님의 십자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성신의 십자가로, 오늘날 믿는 사람들의 십자가로 남아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신과 예수,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명령을 받아 살아 나왔습니다. 이제 이후의 우리들은 도리어 '성신을 위로할 수 있는 나, 예수를 위로할 수 있는 나,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는 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신의 뜻과 예수의 뜻,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개인을 거쳐, 세계를 거쳐, 하늘 땅까지 연한 뜻입니다. 이러한 뜻을 대신하여 우주적인 하늘의 심정을 위로할 수 있는 우주적인 아들 딸은 누가 되겠는고! 하늘은 이러한 아들 딸을 찾기 위하여 섭리하여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이렇듯 역사에 맺혀진 죄악의 담을 청산하기 위하여 오늘도 싸우고 내일도 싸워야 하겠습니다. 생애를 바쳐서라도 넘어야 할, 즉 있는 정력을 다하고 생명을 바쳐서라도 넘어야 할 그 죄악의 고개를 향하여 여러분은 새로운 각오를 갖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교의 율법주의자들과 수많은 유대백성들이 반대할지라도 그 중심은 변치 않고 하늘을 증거하시고 새로운 세례를 주신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도 그래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최후의 단계에서 교파를 초월하는 동시에 세계 인류의 모든 사상을 초월하여 홀로라도 사탄 대하여 싸울 수 있는 자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모든 사탄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한다면, 하늘의 영광과 기쁨이 여러분과 같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을 대신해야 할 우리
오늘 이 시간에도 여러분 앞에는 죄악의 담이 막혀 있는데, 그 담은 어떠한 죄의 담인가. 4천년 동안 하나님을 사랑하던 선지선열들을 잡아먹은 죄,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리게 한 죄의 담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일대에서 그 죄를 청산하지 못한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죄가 없는 선의 천국과는 관계가 없게 됩니다. 그 죄악의 담을 헐지 못하면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해요.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대하여 우주적인 세례 요한의 입장을 대신하여 섰다 할진대는, 우주적인 죄를 관찰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원한, 그리고 성신의 원한을 홀로 안고 죄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수고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과 하나님을 위로해 드려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안식의 날까지 인도할 수 있는 그 한 모습이 여러분 가운데 나타나지 않으면, 이 땅 위에 주님이 다시 오신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끝날에 세례 요한을 대신하여 죄와 싸워야 합니다. 또 거기에 가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싸움의 노정을 체험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왔다 간 이후에 남아진 것은 십자가의 도리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의 도리를 거쳐 영원한 승리의 기준을 세우려 했으나 영적으로 밖엔 세우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영육을 합하여 세례 요한적인, 우주적인, 천륜적인 사명을 대신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땅 위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으로부터 영광받지 못한 원한의 심정을 체휼하여 그 원한을 풀어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사명이 인간에게 있었기에 예수와 성신은 2천년 동안 인간을 대하여 역사하였습니다.
그러면 사탄은 누구인가. 천사장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만물을 지배해야 할 인간이 그 지배권을 천사장에게 빼앗기고 행사하지 못하게 된 것이 타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복귀의 과정에 있어서 사탄까지 지배하는 그러한 입장을 거쳐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길을 가려면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세례 요한이 증거하던 생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본받아 그분들과 같은 길을 걸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죄악의 담을 헐기 위해 예수님이 가신 길
끝날에 처한 오늘날 여러분들은 자신의 생애노정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가신 그 길을 다시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탄과 싸울 때에, 우주적인 죄를 없애기 위해 공격하는 입장에 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죄를 없애고 굴복시키기 위해서 그 죄를 가로맡는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입니다.
죄는 악한 것이요 나쁜 것입니다. 창조의 본성을 통하여 갖고 있는 마음이 있는데 여기에 반대되는 작용을 하는 것이 죄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죄를 청산하기 위하여 이 죄를 맡았다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죄를 맡았다는 것은 개인에서부터 가정, 사회, 국가, 세계, 인류, 천상에 있는 영인들의 죄까지 맡았다는 것입니다. 창세이후 4천년 역사상의 수많은 영인들의 죄까지 맡았던 예수 그리스도였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심지어는 지옥에 가 있는 영인들의 죄까지 맡아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완성한 아담의 입장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원한이 천상에까지 휩쓸게 되었으니 예수님은 타락으로 인해 발생한 그 모든 것을 끌어내려 매장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새로운 노정을 개척해 나가는 그 생활은 사탄세계의 생활과는 반대의 것이었습니다. 사탄세계의 요소와 본질은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아시고 그에 반대하여 온유와 겸손의 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진리는 세상을 이탈하고 세상에 대해서 반발하는 것으로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오는 죄를 맡아야 할 섭리적인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생애를 사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주적인 모든 죄를 맡아 승리할 그 시간까지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신 불쌍한 분이었다는 거예요. 오늘도 저 나라에 계시지만 쉬지 못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땅 위의 어느 한 분이 그 모든 죄를 책임맡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갖은 수모와 고난을 겪으신 예수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생각해 보면, 이 땅 위에 오셔서 인간들이 당하는 모든 어려운 사정을 겪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쌍한 사람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서 불쌍한 자리에 처해 보았고, 굶주린 사람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서 굶주리는 자리에 처해 보았으며, 외로운 사람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서 외로운 자리에 처해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개인의 죄를 감당할 수 있는 입장에 선 다음에 가정적 죄를 감당하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가정적 죄를 감당하기 위하여 가정 앞에 나타났는데, 그 가정이 예수님을 반대했습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부모가 반대했고 동생들까지 반대했던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은 유대교단으로부터 배척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가정적 죄를 맡는 동시에 교단적인 죄를 맡아야 하기 때문이었다는 거예요. 또 빌라도와 헤롯왕까지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뜻이 자기들의 소망과 다르다고 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몰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그러한 원수들을 대하여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오늘날 여러분은 마음깊이 새겨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최하의 천한 자리 마굿간에서 출발하여 최고의 자리인 하나님의 아들의 입장에까지 나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의 인간, 이 땅 위의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친구된 사람은 누구였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에 사랑하는 세 제자마저 졸았습니다. 십자가의 산정을 향해서 가게 될 때 마음과 마음을 합해야 할 입장이었는데 세 제자는 그러한 사정과는 상관이 없는 입장을 취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주의 모든 죄를 맡아야 할 사명을 지닌 자신임을 깨닫고, 어느 누가 채찍질해도 감사히 받았고, 비난과 조소를 하여도 감사히 받았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죄를 청산하기 위해서 그 죄를 쳐서 깨뜨려서 없애 버리려 하시지 않고, 사탄과 관계된 모든 우주적인 죄를 자신이 도맡아 감당하려 하셨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죄가 완전히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그 죄를 청산하는 역사를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핍박과 버림을 당하더라도 불변의 신앙을 견지해야
이러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있는 여러분이라 할진대, 여러분은 여러분이 모시고 있는 구주 앞에서 '나는 어느 정도까지 죄를 맡았던가' '어느 정도나 죄를 짊어지려 하였던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사셨던 환경과 같은 환경에 처해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제 개인과 가정의 죄를 짊어져야 할 세기말적인 운명에 처해 있다 할진대는, 언젠가는 개인적으로 핍박받을 때가 올 것이고 또 가정적으로 핍박받을 때가 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개인적인 반대와 가정적인 반대와 교단적인 반대를 받던 것과 마찬가지로 끝날에 처해 있는 오늘날의 기독교인들도 그러한 반대를 받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반대받고, 국가적으로 반대받고, 세계적으로 반대받는 하나의 종교가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죄를 청산하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싸움이 아직까지 완전히 종결되지 않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지상에서 우주적인 모든 죄악을 도맡기 위해 개인으로부터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 더 나아가 영계의 영인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신앙자가 나올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성부 성자 성신으로부터도 비난을 받을 것입니다.
구약을 믿고 나오던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는 원수가 되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예수님을 믿어나온 사람들이 새로운 하나님의 섭리 앞에 원수의 입장에 서기 쉽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상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최후의 판결을 짓는 그 마당에 있어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여러분이 지금까지의 모든 죄악역사를 책임지려고 자신의 한 몸을 바치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여러분은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도 변치 않았듯이 변치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뿐인 몸을 뜻을 위해 바쳤다고 생각한다면, 이미 여러분은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혁명적인 믿음을 제시해야 할 것이 기독교인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또, 여러분을 반대하는 가정이 있고 교단이 있으면 그들에게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국가와 세계가 반대하더라도 감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계와 육계가 반대하고, 하늘이 여러분을 모른다 하더라도 영원 불변의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변치 않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담 해와를 타락시킨 사탄이 반대하고, 예수님과 성신과 하나님까지 모른다 하더라도 변치 않는 믿음을 가진 신앙자가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후에 남아진 사명인데, 오늘날 24억 인류, 예수님을 믿고 있는 크리스찬들이 이것을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신앙을 가진 개인이 되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런 신앙을 가진 성도가 되지 않으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됩니다. 예수님이 여러분 앞에 신랑으로 찾아오실 그 길이 막힐 것입니다.
사랑으로 핍박을 소화하고 승리하라
예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만 우주의 어떤 존재물이라 할지라도 반대해서 꺾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럴려면 여러분은 이 세상의 모든 죄를 여러분에게 뒤집어 씌우고, 사탄이 여러분을 시험할지라도 그들을 늠름히 소화시킬 수 있고 그것에 의해 넘어지지 않을 수 있는 승리의 아들 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우주의 힘의 중심, 실존의 중심으로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는 관계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의 인간들로 말미암아 억울함을 당하였지만 오히려 그들을 염려하여 눈물을 흘리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끝날에 그럴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런 성도들이 많게 되면 교단 교단의 분리는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순교를 당하지 않더라도, 양심작용, 진리의 작용, 천리의 힘의 작용이 크므로 온 천지가 그런 성도들을 따라 안 움직일래야 안 움직일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 서야 비로소 승리의 푯대를 세울 수 있고, 승리의 가정, 승리의 제단, 승리의 세계를 건설할 수 있고, 승리를 하늘에까지 연결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여러분 개인을 중심하고 일어나는 싸움이나 모든 일들은 여러분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 개인이 잘못하면 그것이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앞에 방해가 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전체를 위해서 희생하는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선한 사람이 있으면 그를 잘 모셔야 합니다. 악한 사람이 있더라도 그 사람 이상 더 염려하고 안타까와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개인이 되어서 그러한 가정과 사회와 세계를 만들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까지 짊어지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참고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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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세상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
1956.11.25 (일), 한국 전본부교회
'세상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이런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과 인간의 사명
타락이 있은 이후 예수님이 오시기까지의 4천년의 역사는 선의 역사가 아니었고 죄악의 역사였습니다. 수많은 선지자들이 이 땅 위에 와서 4천년 동안 섭리의 뜻을 받들어 죄와 싸웠으나, 남아진 죄를 다 청산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죄와 싸우다가 실패하고 또 실패하여 4천년까지 섭리는 연장되어 나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은 이 죄를 완전히 청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죄가 완전히 청산되는 날까지는 싸움의 역사는 중지될 수 없는 것이요, 복귀의 역사는 중지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섭리의 일꾼으로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뜻을 이루기 위하여 타락한 아담가정 대신 노아가정을 세웠습니다.그런데 노아가정이 다시 실패한 연고로 아브라함 그리고 이삭 야곱을 세웠고, 그리고 민족을 대신한 모세를 세웠습니다. 그후 사울왕, 다윗왕, 솔로몬왕을 거치고, 4대선지와 12소선지를 거쳐서 세례 요한까지 왔습니다.
이제 하늘 앞에 인간으로서 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는데, 그 사명은 무엇인가?인간이 타락한 연고로 죄의 뿌리를 심어 나왔으니 인간으로 하여금 죄의 뿌리되는 사탄을 굴복시키어 하나님 앞에 선과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이런 인간들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4천년 동안 역사하여 나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원인-세례 요한의 불신
그러면 세례 요한이 이 땅 위에 와서 해야 했던 사명이 무엇이었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모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타락하지 않은 완성한 아담의 입장에 세워졌기 때문에 나면서부터 하늘 앞에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즐거워하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하나님은 온 인류 앞에 자랑하고 사탄 앞에 자랑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나면서부터 고난의 길을 가서는 안 될 분이었습니다.나면서부터 인간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기쁨을 돌려드리는 영광의 중보자가 되어야 할 분이요, 사랑의 중보자가 되어야 할 분이요, 선의 중보자가 되어야 할 분이었습니다.그런데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의 인간들이 받들어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죄와는 아무런 관계와 인연이 없는 가운데 오직 선과 기쁨만이 그의 생활에 충만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세례 요한이 예수님 앞에 책임을 못한 연고로 사탄이 예수님에게 침범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원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끝날에 처한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무슨 사명이 남아 있느냐? 세례 요한의 사명을 완수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즉 4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 앞에 승리한 영광의 아들 딸로서, 예수와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선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이것이 우리의 사명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서러움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탄이가 끌고 다니면서 시험하였던 것입니다.그리고 예수님께서 왔다 가신 이후 2천년 동안 사탄과 싸움을 하게 된 것은 그 당시 유대교인들이 불신했기 때문이었고, 또 새로운 증거의 사명을 갖고 왔던 세례 요한이 실수했기 때문이었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탄을 굴복시키고 죄를 청산해야 할 인간
이제 세기말적인 시기가 다시 목전에 당도한 이 때, 여러분은 죄와 대립하여 싸워야 합니다.그리고 여러분은 4천년 동안 하나님과 대립하여 싸워나오던 사탄에 대항하여 싸워야 했던 세례 요한의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고 사탄과 싸워야 합니다.6천년을 대신하여, 세례 요한의 사명을 대신하여 싸워서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그리하여 여러분 자신에게는 사탄의 흔적이 없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그러한 책임이 여러분에게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그러한 책임을 하는 여러분이 되지 못하면 오시는 재림주가 여러분을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의 창조이상의 동산은 사탄의 흔적이 없는 동산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이 지상에 이루려면 우리들이 사탄을 굴복시켜 타락하지 않은 완성한 아담급에 올라가야 합니다.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하고 사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모습들이 되지 않는다 할진대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탄 앞에 시험받았던 그 원한을 풀어 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인간을 유린하고 온 땅을 지배하고 있는데, 이것을 돌이키려면 탕감의 원칙에 의해야 합니다.인간이 사탄에 유린되었으므로 예수가 도와 주시지 않고, 성신이 도와 주시지 않고,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 않더라도, 인간들 자신의 힘으로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인간들이 사탄이 제시하는 죄의 조건들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래야 승리의 아들 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주적인 사탄과 홀로 싸워 승리할 수 있는 아들 딸이 되지 않는다 할진대는, 여러분과 예수와는 관계가 없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길은 우리에게는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운명의 길인 것입니다.살아서 못 간다 할진대 죽어서라도 가야만 하는 운명의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는 살아서 이루어야 할 뜻을 살아서 이루지 못하게 되자, 죽어서라도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2천년 역사가 경과한 오늘날까지도 자신의 실체를 대신할 수 있는 영광의 아들 딸을 고대하고 계십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6천년의 역사가 영광의 역사가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하나님 앞에 영광의 역사가 아니었다는 것이에요.그리고 아직까지 예수와 성신이 사탄 대하여 싸우고 있는 한, 예수와 성신의 뜻을 따르는 아들 딸들이 사탄의 시험을 받고 있는 한, 하나님의 창조본연의 이념이 이 땅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연고로 땅 위에 사무친 원한은 하나님의 원한으로 남아지게 되었고, 땅 위에 원한을 풀기 위한 새 역사는 하나님의 십자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성신의 십자가로, 오늘날 믿는 사람들의 십자가로 남아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신의 보호를 받고 명령을 받아, 예수의 보호를 받고 명령을 받아,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명령을 받아 살아 나왔습니다.이제 이후의 우리들은 도리어'성신을 위로할 수 있는 나, 예수를 위로할 수 있는 나,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는 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신의 뜻과 예수의 뜻,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어떤 개인을 대한 뜻이 아닙니다.이 뜻은 개인을 거쳐, 세계를 거쳐, 하늘 땅까지 연한 뜻입니다.이러한 뜻을 대신하여 우주적인 하늘의 심정을 위로할 수 있는 우주적인 아들 딸은 누가 되겠는고!하늘은 이러한 아들 딸을 찾기 위하여 섭리하여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이렇듯 역사에 맺혀진 죄악의 담을 청산하기 위하여 오늘도 싸우고 내일도 싸워야 하겠습니다.생애를 바쳐서라도 넘어야 할, 즉 있는 정력을 다하고 생명을 바쳐서라도 넘어야 할 그 죄악의 고개를 향하여 여러분은 새로운 각오를 갖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교의 율법주의자들과 수많은 유대백성들이 반대할지라도 그 중심은 변치 않고 하늘을 증거하시고 새로운 세례를 주신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도 그래야 되겠습니다.이제 우리는 최후의 단계에서 교파를 초월해야 되겠습니다.또 교파를 초월하는 동시에 세계 인류의 모든 사상을 초월하여 홀로라도 사탄 대하여 싸울 수 있는 자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모든 사탄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한다면, 하늘의 영광이 여러분과, 또 하늘의 기쁨이 여러분과 같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을 대신해야 할 우리
오늘 이 시간에도 여러분 앞에는 죄악의 담이 막혀 있는데, 그 담은 어떠한 죄의 담인가.4천년 동안 하나님을 사랑하던 선지선열들을 잡아먹은 죄,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리게 한 죄의 담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일대에서 그 죄를 청산하지 못한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죄가 없는 선의 천국과는 관계가 없게 됩니다.그 죄악의 담을 헐지 못하면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해요.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대하여 우주적인 세례 요한의 입장을 대신하여 섰다 할진대는, 우주적인 죄를 관찰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원한과 예수 그리스도의 원한, 그리고 성신의 원한을 홀로 안고 죄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수고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과 하나님을 여러분이 위로해 드려야겠습니다.그리하여 안식의 날까지 인도할 수 있는 그 한 모습이 여러분 가운데 나타나지 않으면, 이 땅 위에 주님이 다시 오신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우리는 이 끝날에 세례 요한을 대신하여 죄와 싸워야 합니다.6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우주적인 세례요한의 사명을 대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또 거기에 가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싸움의 노정을 체험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왔다 간 이후에 남아진 것은 십자가의 도리입니다. 세례의 도리를 통하여, 십자가의 죽음의 도리를 거쳐 영원한 승리의 기준을 세우려 했으나 영적으로 밖엔 세우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영육을 합하여 세례 요한적인, 우주적인, 천륜적인 사명을 대신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여러분은 이 땅 위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으로부터 영광받지 못한 원한의 심정을 체휼하여 그 원한을 풀어드려야 합니다.이러한 사명이 인간에게 있었기에 예수와 성신은 2천년 동안 인간을 대하여 역사하였습니다.그런데 오늘날 믿는 성도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예수와 성신을 그저 인간을 위한 종으로 알고 믿어 나오고 심부름꾼으로 알고 믿어 나왔습니다.
그러면 사탄은 누구인가.천사장입니다.에덴 동산에서 만물을 지배해야 할 인간이 그 지배권을 천사장에게 빼앗기고 행사하지 못하게 된 것이 타락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복귀의 과정에 있어서 사탄까지 지배하는 그러한 입장을 거쳐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길을 가려면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세례 요한이 증거하던 생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본받아 그분들과 같은 길을 걸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죄악의 담을 헐기 위해 예수님이 가신 길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죄악의 담을 헐기 위하여 어떤 길을 가셨던가…. 끝날에 처한 오늘날 여러분들은 자신의 생애노정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가신 그 길을 다시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탄과 싸울 때에, 우주적인 죄를 뽑기 위해 그 죄를 공격하는 입장에 서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없애기 위해서 죄에 대해서 공격하는 입장에 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죄를 없애기 위하여, 죄를 굴복시키기 위해서 그 죄를 가로맡는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죄는 악한 것이요 나쁜 것입니다.창조의 본성을 통하여 갖고 있는 마음이 있는데 여기에 반대되는 작용을 하는 것이 죄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죄를 청산하기 위하여 이 죄를 맡았다는 거예요.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죄를 맡았다는 것은 개인에서부터 가정, 사회, 국가, 세계, 인류, 천상에 있는 영인들의 죄까지 맡았다는 것입니다. 창세이후 4천년 역사상의 수많은 영인들의 죄까지 맡았던 예수 그리스도였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심지어는 지옥에 가 있는 영인들의 죄까지 맡아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완성한 아담의 입장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원한이 천상에까지 휩쓸게 되었으니 예수님은 타락으로 인해 발생한 그 모든 것을 끌어내려 매장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새로운 노정을 개척해 나가는 그 생활은 사탄세계의 생활과는 반대의 것이었습니다.사탄세계의 요소와 본질은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아시고 그에 반대하여 온유와 겸손의 도리를 가르치셨습니다.따라서 기독교의 진리는 세상을 이탈하는 진리였습니다.기독교의 진리는 세상에 대해서 반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오는 죄를 앞으로 지지 않고 뒤로 돌아서서 맡아야 할 섭리적인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생애를 사셨던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는 우주적인 모든 죄를 맡아 승리할 그 시간까지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신 불쌍한 분이었다는 거예요.오늘도 저 나라에 계시지만 쉬지 못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땅 위의 어느 한 분이 그 모든 죄를 책임맡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갖은 수모와 고난을 겪으신 예수
우리가 인간의 죄를 감당하기 위해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생각해 보면, 이 땅 위에 오셔서 돌아가실 때까지의 30여 평생동안 인간들이 당하는 모든 어려운 사정을 겪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불쌍한 사람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서 불쌍한 자리에 처해 보았고, 굶주린 사람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서 굶주리는 자리에 처해 보았으며, 외로운 사람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서 외로운 자리에 처해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개인의 죄를 감당할 수 있는 입장에 선 다음에 가정적 죄를 감당하고자 했습니다.그리하여 가정적 죄를 감당하기 위하여 가정 앞에 나타났는데, 그 가정이 예수님을 반대했습니다.자기의 사랑하는 부모가 반대했고 동생들까지 반대했던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은 유대교단으로부터 배척을 받았습니다.이것은 가정적 죄를 맡는 동시에 교단적인 죄를 맡아야 하기 때문이었다는 거예요.또 빌라도와 헤롯왕까지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그들은 예수님의 뜻이 자기들의 소망과 다르다고 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몰았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은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그러한 원수들을 대하여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 주었다는 것입니다.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오늘날 여러분은 마음깊이 새겨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마굿간에서 탄생하셨습니다.예수님은 최하의 천한 자리에서 출발하여 최고의 자리인 하나님의 아들의 입장에까지 나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의 인간을 위해서 오셨고, 이 땅 위의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친구된 사람은 누구였던가.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에 사랑하는 세 제자마저 졸았습니다.십자가의 산정을 향해서 가게 될 때 마음과 마음을 합해야 할 입장이었는데 세 제자는 그러한 사정과는 상관이 없는 입장을 취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주의 모든 죄를 맡아야 할 사명을 지닌 자신임을 깨닫고, 어느 누가 채찍질해도 감사히 받았고, 비난과 조소를 하여도 감사히 받았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죄를 청산하기 위해서 그 죄를 쳐서 깨뜨려서 없애 버리려 하시지 않고, 사탄과 관계된 모든 우주적인 죄를 자신이 도맡아 감당하려 하셨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죄가 완전히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그 죄를 청산하는 역사를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핍박과 버림을 당하더라도 불변의 신앙을 견지해야
이러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있는 여러분이라 할진대, 여러분은 여러분이 모시고 있는 구주 앞에서'나는 어느 정도까지 죄를 맡았던가' '어느 정도나 죄를 짊어지려 하였던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사셨던 환경과 같은 환경에 처해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제 개인의 죄와 가정의 죄를 짊어져야 할 세기말적인 운명에 처해 있다 할진대는, 언젠가는 개인적으로 핍박받을 때가 올 것입니다. 또 가정적으로 핍박받을 때가 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개인적인 반대와 가정적인 반대와 교단적인 반대를 받던 것과 마찬가지로 끝날에 처해 있는 오늘날의 기독교인들도 그러한 반대를 받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반대받고, 국가적으로 반대받고, 세계적으로 반대받는 하나의 종교가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죄를 청산하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싸움이 아직까지 완전히 종결되지 않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지상에서 우주적인 모든 죄악을 도맡기 위해 개인으로부터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 더 나아가 영계의 영인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신앙자가 나올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그는 성부 성자 성신으로부터도 비난을 받을 것입니다. 이러한 한 고비를 향하여 역사는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구약을 믿고 나오던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는 원수가 되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예수님을 믿어나온 사람들이 새로운 하나님의 섭리 앞에 원수의 입장에 서기 쉽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상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최후의 판결을 짓는 그 마당에 있어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여러분이 지금까지의 모든 죄악역사를 책임지려고 자신의 한 몸을 바치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여러분은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도 변치 않았듯이 변치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뿐인 몸을 뜻을 위해 바쳤다고 생각한다면, 이미 여러분은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혁명적인 믿음을 제시해야 할 것이 기독교인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습니까?여러분은 그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또, 여러분을 반대하는 가정이 있습니까? 그 가정에게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반대하는 교단이 있습니까? 그 교단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국가와 세계가 반대하더라도 감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계와 육계가 반대하고, 하늘이 여러분을 모른다 하더라도 영원 불변의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변치 않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담 해와를 타락시킨 사탄이 반대하고, 예수님과 성신과 하나님까지 모른다 하더라도 변치 않는 믿음을 가진 신앙자가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후에 남아진 사명인데, 오늘날 24억 인류, 예수님을 믿고 있는 크리스찬들이 이것을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신앙을 가진 개인이 되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런 신앙을 가진 성도가 되지 않으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됩니다. 예수님이 여러분 앞에 신랑으로 찾아오실 그 길이 막힐 것입니다.
사랑으로 핍박을 소화하고 승리하라
예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한 것입니다.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만 우주의 어떤 존재물이라 할지라도 반대해서 꺾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여러분은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그럴려면 여러분은 이 세상의 모든 죄를 여러분에게 뒤집어 씌우고, 사탄이 여러분을 시험할지라도 그들을 늠름히 소화시킬 수 있고 그것에 의해 넘어지지 않을 수 있는 승리의 아들 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렇지 않으면 이 우주의 힘의 중심, 실존의 중심으로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는 관계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의 인간들로 말미암아 억울함을 당하였지만 오히려 그들을 염려하여 눈물을 흘리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끝날에 그럴 수 있는 성도가 믿는 성도들 가운데 많이 나와야 되겠습니다. 그런 성도들이 많게 되면 교단 교단의 분리는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순교를 당하지 않더라도, 양심작용, 진리의 작용, 천리의 힘의 작용이 크므로 온 천지가 그런 성도들을 따라 안 움직일래야 안 움직일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 서야 비로소 승리의 푯대를 세울 수 있고, 승리의 가정, 승리의 제단, 승리의 세계를 건설할 수 있고, 승리를 하늘에까지 연결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그러한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여러분 개인을 중심하고 일어나는 싸움, 여러분 개인을 중심삼고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여러분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만일 여러분 개인이 잘못하면 그것이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앞에 방해가 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전체를 위해서 희생하는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선한 사람이 있으면 그를 잘 모셔야 합니다.악한 사람이 있더라도 그 사람 이상 더 염려하고 안타까와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개인이 되어서 그러한 가정과 사회와 세계를 만들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까지 짊어지고 나가야 하겠습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참고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말씀선집 제1권 16편
세상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훈독본)
1956.11.25 (일), 한국 전본부교회
마태복음 5:43-48, 요한복음 1:19-34
말씀선집, 세상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1.mp3
'세상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이런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①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과 인간의 사명
타락이 있은 이후 예수님이 오시기까지의 4천년의 역사는 선의 역사가 아니었고 죄악의 역사였습니다. 수많은 선지자들이 이 땅 위에 와서 4천년 동안 섭리의 뜻을 받들어 죄와 싸웠으나, 남아진 죄를 다 청산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죄와 싸우다가 실패하고 또 실패하여 4천년까지 섭리는 연장되어 나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은 이 죄를 완전히 청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죄가 완전히 청산되는 날까지는 싸움의 역사는 중지될 수 없는 것이요, 복귀의 역사는 중지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섭리의 일꾼으로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뜻을 이루기 위하여 타락한 아담가정 대신 노아가정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노아가정이 다시 실패한 연고로 아브라함 그리고 이삭 야곱을 세웠고, 그리고 민족을 대신한 모세를 세웠습니다. 그후 사울왕, 다윗왕, 솔로몬왕을 거치고, 4대선지와 12소선지를 거쳐서 세례 요한까지 왔습니다.
이제 하늘 앞에 인간으로서 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는데, 그 사명은 무엇인가? 인간이 타락한 연고로 죄의 뿌리를 심어 나왔으니 인간으로 하여금 죄의 뿌리되는 사탄을 굴복시키어 하나님 앞에 선과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들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4천년 동안 역사하여 나오셨습니다.
②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원인-세례 요한의 불신
그러면 세례 요한이 이 땅 위에 와서 해야 했던 사명이 무엇이었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모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타락하지 않은 완성한 아담의 입장에 세워졌기 때문에 나면서부터 하늘 앞에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즐거워하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온 인류 앞에 자랑하고 사탄 앞에 자랑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나면서부터 고난의 길을 가서는 안 될 분이었습니다. 나면서부터 인간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기쁨을 돌려드리는 영광의 중보자가 되어야 할 분이요, 사랑의 중보자가 되어야 할 분이요, 선의 중보자가 되어야 할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의 인간들이 받들어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죄와는 아무런 관계와 인연이 없는 가운데 오직 선과 기쁨만이 그의 생활에 충만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세례 요한이 예수님 앞에 책임을 못한 연고로 사탄이 예수님에게 침범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원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끝날에 처한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무슨 사명이 남아 있느냐? 세례 요한의 사명을 완수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즉 4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 앞에 승리한 영광의 아들 딸로서, 예수와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선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서러움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탄이 끌고 다니면서 시험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왔다 가신 이후 2천년 동안 사탄과 싸움을 하게 된 것은 그 당시 유대교인들이 불신했기 때문이었고, 세례 요한이 실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③ 사탄을 굴복시키고 죄를 청산해야 할 인간
이제 세기말적인 시기가 다시 목전에 당도한 이 때, 여러분은 죄와 싸워야 하고 사탄과 싸워야 합니다. 6천년을 대신하여, 세례 요한 대신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자신에게는 사탄의 흔적이 없게 해야할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책임을 하는 여러분이 되지 못하면 오시는 재림주가 여러분을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의 창조이상의 동산은 사탄의 흔적이 없는 동산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이 지상에 이루려면 우리들이 사탄을 굴복시켜 타락하지 않은 완성한 아담급에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하고 사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모습들이 되지 않는다 할진대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탄 앞에 시험받았던 그 원한을 풀어 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인간을 유린하고 온 땅을 지배하고 있는데, 이것을 돌이키려면 탕감의 원칙에 의해야 합니다. 인간이 사탄에 유린되었으므로 예수와 성신,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 않더라도, 인간들 자신의 힘으로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들이 사탄이 제시하는 죄의 조건들을 극복할 수 있어야 승리의 아들 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주적인 사탄과 홀로 싸워 승리할 수 있는 아들 딸이 되지 않는다 할진대는, 여러분과 예수와는 관계가 없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길은 우리에게는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운명의 길인 것입니다. 살아서 못 간다 할진대 죽어서라도 가야만 하는 운명의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는 살아서 이루어야 할 뜻을 살아서 이루지 못하게 되자, 죽어서라도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2천년 역사가 경과한 오늘날까지도 자신의 실체를 대신할 수 있는 영광의 아들 딸을 고대하고 계십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6천년의 역사가 영광의 역사가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예수와 성신이 사탄 대하여 싸우고 있는 한, 예수와 성신의 뜻을 따르는 아들 딸들이 사탄의 시험을 받고 있는 한, 하나님의 창조본연의 이념이 이 땅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연고로 땅 위에 사무친 원한은 하나님의 원한으로 남아지게 되었고, 땅 위에 원한을 풀기 위한 새 역사는 하나님의 십자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성신의 십자가로, 오늘날 믿는 사람들의 십자가로 남아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신과 예수,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명령을 받아 살아 나왔습니다. 이제 이후의 우리들은 도리어 '성신을 위로할 수 있는 나, 예수를 위로할 수 있는 나,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는 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신의 뜻과 예수의 뜻,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개인을 거쳐, 세계를 거쳐, 하늘 땅까지 연한 뜻입니다. 이러한 뜻을 대신하여 우주적인 하늘의 심정을 위로할 수 있는 우주적인 아들 딸은 누가 되겠는고! 하늘은 이러한 아들 딸을 찾기 위하여 섭리하여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이렇듯 역사에 맺혀진 죄악의 담을 청산하기 위하여 오늘도 싸우고 내일도 싸워야 하겠습니다. 생애를 바쳐서라도 넘어야 할, 즉 있는 정력을 다하고 생명을 바쳐서라도 넘어야 할 그 죄악의 고개를 향하여 여러분은 새로운 각오를 갖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교의 율법주의자들과 수많은 유대백성들이 반대할지라도 그 중심은 변치 않고 하늘을 증거하시고 새로운 세례를 주신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도 그래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최후의 단계에서 교파를 초월하는 동시에 세계 인류의 모든 사상을 초월하여 홀로라도 사탄 대하여 싸울 수 있는 자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모든 사탄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한다면, 하늘의 영광과 기쁨이 여러분과 같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④ 세례 요한의 사명을 대신해야 할 우리
오늘 이 시간에도 여러분 앞에는 죄악의 담이 막혀 있는데, 그 담은 어떠한 죄의 담인가. 4천년 동안 하나님을 사랑하던 선지선열들을 잡아먹은 죄,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리게 한 죄의 담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일대에서 그 죄를 청산하지 못한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죄가 없는 선의 천국과는 관계가 없게 됩니다. 그 죄악의 담을 헐지 못하면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해요.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대하여 우주적인 세례 요한의 입장을 대신하여 섰다 할진대는, 우주적인 죄를 관찰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원한, 그리고 성신의 원한을 홀로 안고 죄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수고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과 하나님을 위로해 드려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안식의 날까지 인도할 수 있는 그 한 모습이 여러분 가운데 나타나지 않으면, 이 땅 위에 주님이 다시 오신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끝날에 세례 요한을 대신하여 죄와 싸워야 합니다. 또 거기에 가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싸움의 노정을 체험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왔다 간 이후에 남아진 것은 십자가의 도리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의 도리를 거쳐 영원한 승리의 기준을 세우려 했으나 영적으로 밖엔 세우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영육을 합하여 세례 요한적인, 우주적인, 천륜적인 사명을 대신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땅 위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으로부터 영광받지 못한 원한의 심정을 체휼하여 그 원한을 풀어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사명이 인간에게 있었기에 예수와 성신은 2천년 동안 인간을 대하여 역사하였습니다.
그러면 사탄은 누구인가. 천사장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만물을 지배해야 할 인간이 그 지배권을 천사장에게 빼앗기고 행사하지 못하게 된 것이 타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복귀의 과정에 있어서 사탄까지 지배하는 그러한 입장을 거쳐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길을 가려면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세례 요한이 증거하던 생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본받아 그분들과 같은 길을 걸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⑤ 죄악의 담을 헐기 위해 예수님이 가신 길
끝날에 처한 오늘날 여러분들은 자신의 생애노정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가신 그 길을 다시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탄과 싸울 때에, 우주적인 죄를 없애기 위해 공격하는 입장에 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죄를 없애고 굴복시키기 위해서 그 죄를 가로맡는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입니다.
죄는 악한 것이요 나쁜 것입니다. 창조의 본성을 통하여 갖고 있는 마음이 있는데 여기에 반대되는 작용을 하는 것이 죄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죄를 청산하기 위하여 이 죄를 맡았다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죄를 맡았다는 것은 개인에서부터 가정, 사회, 국가, 세계, 인류, 천상에 있는 영인들의 죄까지 맡았다는 것입니다. 창세이후 4천년 역사상의 수많은 영인들의 죄까지 맡았던 예수 그리스도였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심지어는 지옥에 가 있는 영인들의 죄까지 맡아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완성한 아담의 입장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원한이 천상에까지 휩쓸게 되었으니 예수님은 타락으로 인해 발생한 그 모든 것을 끌어내려 매장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새로운 노정을 개척해 나가는 그 생활은 사탄세계의 생활과는 반대의 것이었습니다. 사탄세계의 요소와 본질은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아시고 그에 반대하여 온유와 겸손의 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진리는 세상을 이탈하고 세상에 대해서 반발하는 것으로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오는 죄를 맡아야 할 섭리적인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생애를 사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주적인 모든 죄를 맡아 승리할 그 시간까지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신 불쌍한 분이었다는 거예요. 오늘도 저 나라에 계시지만 쉬지 못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땅 위의 어느 한 분이 그 모든 죄를 책임맡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⑥ 갖은 수모와 고난을 겪으신 예수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생각해 보면, 이 땅 위에 오셔서 인간들이 당하는 모든 어려운 사정을 겪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쌍한 사람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서 불쌍한 자리에 처해 보았고, 굶주린 사람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서 굶주리는 자리에 처해 보았으며, 외로운 사람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서 외로운 자리에 처해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개인의 죄를 감당할 수 있는 입장에 선 다음에 가정적 죄를 감당하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가정적 죄를 감당하기 위하여 가정 앞에 나타났는데, 그 가정이 예수님을 반대했습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부모가 반대했고 동생들까지 반대했던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은 유대교단으로부터 배척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가정적 죄를 맡는 동시에 교단적인 죄를 맡아야 하기 때문이었다는 거예요. 또 빌라도와 헤롯왕까지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뜻이 자기들의 소망과 다르다고 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몰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그러한 원수들을 대하여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오늘날 여러분은 마음깊이 새겨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최하의 천한 자리 마굿간에서 출발하여 최고의 자리인 하나님의 아들의 입장에까지 나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의 인간, 이 땅 위의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친구된 사람은 누구였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에 사랑하는 세 제자마저 졸았습니다. 십자가의 산정을 향해서 가게 될 때 마음과 마음을 합해야 할 입장이었는데 세 제자는 그러한 사정과는 상관이 없는 입장을 취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주의 모든 죄를 맡아야 할 사명을 지닌 자신임을 깨닫고, 어느 누가 채찍질해도 감사히 받았고, 비난과 조소를 하여도 감사히 받았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죄를 청산하기 위해서 그 죄를 쳐서 깨뜨려서 없애 버리려 하시지 않고, 사탄과 관계된 모든 우주적인 죄를 자신이 도맡아 감당하려 하셨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죄가 완전히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그 죄를 청산하는 역사를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⑦ 핍박과 버림을 당하더라도 불변의 신앙을 견지해야
이러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있는 여러분이라 할진대, 여러분은 여러분이 모시고 있는 구주 앞에서 '나는 어느 정도까지 죄를 맡았던가' '어느 정도나 죄를 짊어지려 하였던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사셨던 환경과 같은 환경에 처해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제 개인과 가정의 죄를 짊어져야 할 세기말적인 운명에 처해 있다 할진대는, 언젠가는 개인적으로 핍박받을 때가 올 것이고 또 가정적으로 핍박받을 때가 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개인적인 반대와 가정적인 반대와 교단적인 반대를 받던 것과 마찬가지로 끝날에 처해 있는 오늘날의 기독교인들도 그러한 반대를 받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반대받고, 국가적으로 반대받고, 세계적으로 반대받는 하나의 종교가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죄를 청산하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싸움이 아직까지 완전히 종결되지 않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지상에서 우주적인 모든 죄악을 도맡기 위해 개인으로부터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 더 나아가 영계의 영인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신앙자가 나올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성부 성자 성신으로부터도 비난을 받을 것입니다.
구약을 믿고 나오던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는 원수가 되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예수님을 믿어나온 사람들이 새로운 하나님의 섭리 앞에 원수의 입장에 서기 쉽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상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최후의 판결을 짓는 그 마당에 있어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여러분이 지금까지의 모든 죄악역사를 책임지려고 자신의 한 몸을 바치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여러분은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도 변치 않았듯이 변치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뿐인 몸을 뜻을 위해 바쳤다고 생각한다면, 이미 여러분은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혁명적인 믿음을 제시해야 할 것이 기독교인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또, 여러분을 반대하는 가정이 있고 교단이 있으면 그들에게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국가와 세계가 반대하더라도 감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계와 육계가 반대하고, 하늘이 여러분을 모른다 하더라도 영원 불변의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변치 않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담 해와를 타락시킨 사탄이 반대하고, 예수님과 성신과 하나님까지 모른다 하더라도 변치 않는 믿음을 가진 신앙자가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후에 남아진 사명인데, 오늘날 24억 인류, 예수님을 믿고 있는 크리스찬들이 이것을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신앙을 가진 개인이 되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런 신앙을 가진 성도가 되지 않으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됩니다. 예수님이 여러분 앞에 신랑으로 찾아오실 그 길이 막힐 것입니다.
⑧ 사랑으로 핍박을 소화하고 승리하라
예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만 우주의 어떤 존재물이라 할지라도 반대해서 꺾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럴려면 여러분은 이 세상의 모든 죄를 여러분에게 뒤집어 씌우고, 사탄이 여러분을 시험할지라도 그들을 늠름히 소화시킬 수 있고 그것에 의해 넘어지지 않을 수 있는 승리의 아들 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우주의 힘의 중심, 실존의 중심으로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는 관계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의 인간들로 말미암아 억울함을 당하였지만 오히려 그들을 염려하여 눈물을 흘리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끝날에 그럴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런 성도들이 많게 되면 교단 교단의 분리는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순교를 당하지 않더라도, 양심작용, 진리의 작용, 천리의 힘의 작용이 크므로 온 천지가 그런 성도들을 따라 안 움직일래야 안 움직일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 서야 비로소 승리의 푯대를 세울 수 있고, 승리의 가정, 승리의 제단, 승리의 세계를 건설할 수 있고, 승리를 하늘에까지 연결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여러분 개인을 중심하고 일어나는 싸움이나 모든 일들은 여러분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 개인이 잘못하면 그것이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앞에 방해가 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전체를 위해서 희생하는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선한 사람이 있으면 그를 잘 모셔야 합니다. 악한 사람이 있더라도 그 사람 이상 더 염려하고 안타까와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개인이 되어서 그러한 가정과 사회와 세계를 만들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까지 짊어지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참고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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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세상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
1956.11.25 (일), 한국 전본부교회
'세상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이런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과 인간의 사명
타락이 있은 이후 예수님이 오시기까지의 4천년의 역사는 선의 역사가 아니었고 죄악의 역사였습니다. 수많은 선지자들이 이 땅 위에 와서 4천년 동안 섭리의 뜻을 받들어 죄와 싸웠으나, 남아진 죄를 다 청산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죄와 싸우다가 실패하고 또 실패하여 4천년까지 섭리는 연장되어 나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은 이 죄를 완전히 청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죄가 완전히 청산되는 날까지는 싸움의 역사는 중지될 수 없는 것이요, 복귀의 역사는 중지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섭리의 일꾼으로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뜻을 이루기 위하여 타락한 아담가정 대신 노아가정을 세웠습니다.그런데 노아가정이 다시 실패한 연고로 아브라함 그리고 이삭 야곱을 세웠고, 그리고 민족을 대신한 모세를 세웠습니다. 그후 사울왕, 다윗왕, 솔로몬왕을 거치고, 4대선지와 12소선지를 거쳐서 세례 요한까지 왔습니다.
이제 하늘 앞에 인간으로서 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는데, 그 사명은 무엇인가?인간이 타락한 연고로 죄의 뿌리를 심어 나왔으니 인간으로 하여금 죄의 뿌리되는 사탄을 굴복시키어 하나님 앞에 선과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이런 인간들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4천년 동안 역사하여 나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원인-세례 요한의 불신
그러면 세례 요한이 이 땅 위에 와서 해야 했던 사명이 무엇이었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모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타락하지 않은 완성한 아담의 입장에 세워졌기 때문에 나면서부터 하늘 앞에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즐거워하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하나님은 온 인류 앞에 자랑하고 사탄 앞에 자랑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나면서부터 고난의 길을 가서는 안 될 분이었습니다.나면서부터 인간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기쁨을 돌려드리는 영광의 중보자가 되어야 할 분이요, 사랑의 중보자가 되어야 할 분이요, 선의 중보자가 되어야 할 분이었습니다.그런데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의 인간들이 받들어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죄와는 아무런 관계와 인연이 없는 가운데 오직 선과 기쁨만이 그의 생활에 충만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세례 요한이 예수님 앞에 책임을 못한 연고로 사탄이 예수님에게 침범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원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끝날에 처한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무슨 사명이 남아 있느냐? 세례 요한의 사명을 완수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즉 4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 앞에 승리한 영광의 아들 딸로서, 예수와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선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이것이 우리의 사명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서러움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탄이가 끌고 다니면서 시험하였던 것입니다.그리고 예수님께서 왔다 가신 이후 2천년 동안 사탄과 싸움을 하게 된 것은 그 당시 유대교인들이 불신했기 때문이었고, 또 새로운 증거의 사명을 갖고 왔던 세례 요한이 실수했기 때문이었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탄을 굴복시키고 죄를 청산해야 할 인간
이제 세기말적인 시기가 다시 목전에 당도한 이 때, 여러분은 죄와 대립하여 싸워야 합니다.그리고 여러분은 4천년 동안 하나님과 대립하여 싸워나오던 사탄에 대항하여 싸워야 했던 세례 요한의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고 사탄과 싸워야 합니다.6천년을 대신하여, 세례 요한의 사명을 대신하여 싸워서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그리하여 여러분 자신에게는 사탄의 흔적이 없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그러한 책임이 여러분에게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그러한 책임을 하는 여러분이 되지 못하면 오시는 재림주가 여러분을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의 창조이상의 동산은 사탄의 흔적이 없는 동산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이 지상에 이루려면 우리들이 사탄을 굴복시켜 타락하지 않은 완성한 아담급에 올라가야 합니다.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하고 사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모습들이 되지 않는다 할진대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탄 앞에 시험받았던 그 원한을 풀어 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인간을 유린하고 온 땅을 지배하고 있는데, 이것을 돌이키려면 탕감의 원칙에 의해야 합니다.인간이 사탄에 유린되었으므로 예수가 도와 주시지 않고, 성신이 도와 주시지 않고,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 않더라도, 인간들 자신의 힘으로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인간들이 사탄이 제시하는 죄의 조건들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래야 승리의 아들 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주적인 사탄과 홀로 싸워 승리할 수 있는 아들 딸이 되지 않는다 할진대는, 여러분과 예수와는 관계가 없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길은 우리에게는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운명의 길인 것입니다.살아서 못 간다 할진대 죽어서라도 가야만 하는 운명의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는 살아서 이루어야 할 뜻을 살아서 이루지 못하게 되자, 죽어서라도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2천년 역사가 경과한 오늘날까지도 자신의 실체를 대신할 수 있는 영광의 아들 딸을 고대하고 계십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6천년의 역사가 영광의 역사가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하나님 앞에 영광의 역사가 아니었다는 것이에요.그리고 아직까지 예수와 성신이 사탄 대하여 싸우고 있는 한, 예수와 성신의 뜻을 따르는 아들 딸들이 사탄의 시험을 받고 있는 한, 하나님의 창조본연의 이념이 이 땅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연고로 땅 위에 사무친 원한은 하나님의 원한으로 남아지게 되었고, 땅 위에 원한을 풀기 위한 새 역사는 하나님의 십자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성신의 십자가로, 오늘날 믿는 사람들의 십자가로 남아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신의 보호를 받고 명령을 받아, 예수의 보호를 받고 명령을 받아,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명령을 받아 살아 나왔습니다.이제 이후의 우리들은 도리어'성신을 위로할 수 있는 나, 예수를 위로할 수 있는 나,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는 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신의 뜻과 예수의 뜻,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어떤 개인을 대한 뜻이 아닙니다.이 뜻은 개인을 거쳐, 세계를 거쳐, 하늘 땅까지 연한 뜻입니다.이러한 뜻을 대신하여 우주적인 하늘의 심정을 위로할 수 있는 우주적인 아들 딸은 누가 되겠는고!하늘은 이러한 아들 딸을 찾기 위하여 섭리하여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이렇듯 역사에 맺혀진 죄악의 담을 청산하기 위하여 오늘도 싸우고 내일도 싸워야 하겠습니다.생애를 바쳐서라도 넘어야 할, 즉 있는 정력을 다하고 생명을 바쳐서라도 넘어야 할 그 죄악의 고개를 향하여 여러분은 새로운 각오를 갖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교의 율법주의자들과 수많은 유대백성들이 반대할지라도 그 중심은 변치 않고 하늘을 증거하시고 새로운 세례를 주신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도 그래야 되겠습니다.이제 우리는 최후의 단계에서 교파를 초월해야 되겠습니다.또 교파를 초월하는 동시에 세계 인류의 모든 사상을 초월하여 홀로라도 사탄 대하여 싸울 수 있는 자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모든 사탄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한다면, 하늘의 영광이 여러분과, 또 하늘의 기쁨이 여러분과 같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을 대신해야 할 우리
오늘 이 시간에도 여러분 앞에는 죄악의 담이 막혀 있는데, 그 담은 어떠한 죄의 담인가.4천년 동안 하나님을 사랑하던 선지선열들을 잡아먹은 죄,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리게 한 죄의 담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일대에서 그 죄를 청산하지 못한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죄가 없는 선의 천국과는 관계가 없게 됩니다.그 죄악의 담을 헐지 못하면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해요.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대하여 우주적인 세례 요한의 입장을 대신하여 섰다 할진대는, 우주적인 죄를 관찰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원한과 예수 그리스도의 원한, 그리고 성신의 원한을 홀로 안고 죄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수고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과 하나님을 여러분이 위로해 드려야겠습니다.그리하여 안식의 날까지 인도할 수 있는 그 한 모습이 여러분 가운데 나타나지 않으면, 이 땅 위에 주님이 다시 오신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우리는 이 끝날에 세례 요한을 대신하여 죄와 싸워야 합니다.6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우주적인 세례요한의 사명을 대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또 거기에 가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싸움의 노정을 체험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왔다 간 이후에 남아진 것은 십자가의 도리입니다. 세례의 도리를 통하여, 십자가의 죽음의 도리를 거쳐 영원한 승리의 기준을 세우려 했으나 영적으로 밖엔 세우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영육을 합하여 세례 요한적인, 우주적인, 천륜적인 사명을 대신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여러분은 이 땅 위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으로부터 영광받지 못한 원한의 심정을 체휼하여 그 원한을 풀어드려야 합니다.이러한 사명이 인간에게 있었기에 예수와 성신은 2천년 동안 인간을 대하여 역사하였습니다.그런데 오늘날 믿는 성도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예수와 성신을 그저 인간을 위한 종으로 알고 믿어 나오고 심부름꾼으로 알고 믿어 나왔습니다.
그러면 사탄은 누구인가.천사장입니다.에덴 동산에서 만물을 지배해야 할 인간이 그 지배권을 천사장에게 빼앗기고 행사하지 못하게 된 것이 타락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복귀의 과정에 있어서 사탄까지 지배하는 그러한 입장을 거쳐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길을 가려면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세례 요한이 증거하던 생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본받아 그분들과 같은 길을 걸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죄악의 담을 헐기 위해 예수님이 가신 길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죄악의 담을 헐기 위하여 어떤 길을 가셨던가…. 끝날에 처한 오늘날 여러분들은 자신의 생애노정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가신 그 길을 다시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탄과 싸울 때에, 우주적인 죄를 뽑기 위해 그 죄를 공격하는 입장에 서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없애기 위해서 죄에 대해서 공격하는 입장에 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죄를 없애기 위하여, 죄를 굴복시키기 위해서 그 죄를 가로맡는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죄는 악한 것이요 나쁜 것입니다.창조의 본성을 통하여 갖고 있는 마음이 있는데 여기에 반대되는 작용을 하는 것이 죄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죄를 청산하기 위하여 이 죄를 맡았다는 거예요.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죄를 맡았다는 것은 개인에서부터 가정, 사회, 국가, 세계, 인류, 천상에 있는 영인들의 죄까지 맡았다는 것입니다. 창세이후 4천년 역사상의 수많은 영인들의 죄까지 맡았던 예수 그리스도였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심지어는 지옥에 가 있는 영인들의 죄까지 맡아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완성한 아담의 입장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원한이 천상에까지 휩쓸게 되었으니 예수님은 타락으로 인해 발생한 그 모든 것을 끌어내려 매장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새로운 노정을 개척해 나가는 그 생활은 사탄세계의 생활과는 반대의 것이었습니다.사탄세계의 요소와 본질은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아시고 그에 반대하여 온유와 겸손의 도리를 가르치셨습니다.따라서 기독교의 진리는 세상을 이탈하는 진리였습니다.기독교의 진리는 세상에 대해서 반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오는 죄를 앞으로 지지 않고 뒤로 돌아서서 맡아야 할 섭리적인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생애를 사셨던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는 우주적인 모든 죄를 맡아 승리할 그 시간까지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신 불쌍한 분이었다는 거예요.오늘도 저 나라에 계시지만 쉬지 못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땅 위의 어느 한 분이 그 모든 죄를 책임맡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갖은 수모와 고난을 겪으신 예수
우리가 인간의 죄를 감당하기 위해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생각해 보면, 이 땅 위에 오셔서 돌아가실 때까지의 30여 평생동안 인간들이 당하는 모든 어려운 사정을 겪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불쌍한 사람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서 불쌍한 자리에 처해 보았고, 굶주린 사람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서 굶주리는 자리에 처해 보았으며, 외로운 사람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서 외로운 자리에 처해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개인의 죄를 감당할 수 있는 입장에 선 다음에 가정적 죄를 감당하고자 했습니다.그리하여 가정적 죄를 감당하기 위하여 가정 앞에 나타났는데, 그 가정이 예수님을 반대했습니다.자기의 사랑하는 부모가 반대했고 동생들까지 반대했던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은 유대교단으로부터 배척을 받았습니다.이것은 가정적 죄를 맡는 동시에 교단적인 죄를 맡아야 하기 때문이었다는 거예요.또 빌라도와 헤롯왕까지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그들은 예수님의 뜻이 자기들의 소망과 다르다고 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몰았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은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그러한 원수들을 대하여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 주었다는 것입니다.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오늘날 여러분은 마음깊이 새겨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마굿간에서 탄생하셨습니다.예수님은 최하의 천한 자리에서 출발하여 최고의 자리인 하나님의 아들의 입장에까지 나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의 인간을 위해서 오셨고, 이 땅 위의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친구된 사람은 누구였던가.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에 사랑하는 세 제자마저 졸았습니다.십자가의 산정을 향해서 가게 될 때 마음과 마음을 합해야 할 입장이었는데 세 제자는 그러한 사정과는 상관이 없는 입장을 취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주의 모든 죄를 맡아야 할 사명을 지닌 자신임을 깨닫고, 어느 누가 채찍질해도 감사히 받았고, 비난과 조소를 하여도 감사히 받았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죄를 청산하기 위해서 그 죄를 쳐서 깨뜨려서 없애 버리려 하시지 않고, 사탄과 관계된 모든 우주적인 죄를 자신이 도맡아 감당하려 하셨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죄가 완전히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그 죄를 청산하는 역사를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핍박과 버림을 당하더라도 불변의 신앙을 견지해야
이러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있는 여러분이라 할진대, 여러분은 여러분이 모시고 있는 구주 앞에서'나는 어느 정도까지 죄를 맡았던가' '어느 정도나 죄를 짊어지려 하였던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사셨던 환경과 같은 환경에 처해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제 개인의 죄와 가정의 죄를 짊어져야 할 세기말적인 운명에 처해 있다 할진대는, 언젠가는 개인적으로 핍박받을 때가 올 것입니다. 또 가정적으로 핍박받을 때가 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개인적인 반대와 가정적인 반대와 교단적인 반대를 받던 것과 마찬가지로 끝날에 처해 있는 오늘날의 기독교인들도 그러한 반대를 받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반대받고, 국가적으로 반대받고, 세계적으로 반대받는 하나의 종교가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죄를 청산하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싸움이 아직까지 완전히 종결되지 않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지상에서 우주적인 모든 죄악을 도맡기 위해 개인으로부터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 더 나아가 영계의 영인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신앙자가 나올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그는 성부 성자 성신으로부터도 비난을 받을 것입니다. 이러한 한 고비를 향하여 역사는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구약을 믿고 나오던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는 원수가 되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예수님을 믿어나온 사람들이 새로운 하나님의 섭리 앞에 원수의 입장에 서기 쉽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상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최후의 판결을 짓는 그 마당에 있어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여러분이 지금까지의 모든 죄악역사를 책임지려고 자신의 한 몸을 바치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여러분은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도 변치 않았듯이 변치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뿐인 몸을 뜻을 위해 바쳤다고 생각한다면, 이미 여러분은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혁명적인 믿음을 제시해야 할 것이 기독교인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습니까?여러분은 그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또, 여러분을 반대하는 가정이 있습니까? 그 가정에게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반대하는 교단이 있습니까? 그 교단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국가와 세계가 반대하더라도 감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계와 육계가 반대하고, 하늘이 여러분을 모른다 하더라도 영원 불변의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변치 않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담 해와를 타락시킨 사탄이 반대하고, 예수님과 성신과 하나님까지 모른다 하더라도 변치 않는 믿음을 가진 신앙자가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후에 남아진 사명인데, 오늘날 24억 인류, 예수님을 믿고 있는 크리스찬들이 이것을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신앙을 가진 개인이 되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런 신앙을 가진 성도가 되지 않으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됩니다. 예수님이 여러분 앞에 신랑으로 찾아오실 그 길이 막힐 것입니다.
사랑으로 핍박을 소화하고 승리하라
예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한 것입니다.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만 우주의 어떤 존재물이라 할지라도 반대해서 꺾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여러분은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그럴려면 여러분은 이 세상의 모든 죄를 여러분에게 뒤집어 씌우고, 사탄이 여러분을 시험할지라도 그들을 늠름히 소화시킬 수 있고 그것에 의해 넘어지지 않을 수 있는 승리의 아들 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렇지 않으면 이 우주의 힘의 중심, 실존의 중심으로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는 관계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의 인간들로 말미암아 억울함을 당하였지만 오히려 그들을 염려하여 눈물을 흘리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끝날에 그럴 수 있는 성도가 믿는 성도들 가운데 많이 나와야 되겠습니다. 그런 성도들이 많게 되면 교단 교단의 분리는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순교를 당하지 않더라도, 양심작용, 진리의 작용, 천리의 힘의 작용이 크므로 온 천지가 그런 성도들을 따라 안 움직일래야 안 움직일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 서야 비로소 승리의 푯대를 세울 수 있고, 승리의 가정, 승리의 제단, 승리의 세계를 건설할 수 있고, 승리를 하늘에까지 연결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그러한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여러분 개인을 중심하고 일어나는 싸움, 여러분 개인을 중심삼고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여러분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만일 여러분 개인이 잘못하면 그것이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앞에 방해가 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전체를 위해서 희생하는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선한 사람이 있으면 그를 잘 모셔야 합니다.악한 사람이 있더라도 그 사람 이상 더 염려하고 안타까와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개인이 되어서 그러한 가정과 사회와 세계를 만들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까지 짊어지고 나가야 하겠습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참고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말씀선집 제1권 17편
하나님의 섭리와 초현실적인 모험성 (훈독본)
1956.12.02 (일), 한국 전본부교회
누가복음 22:24-46
하나님의 섭리와 초현실적인 모험성(말씀선집 제1권 17편)
오늘 봉독한 말씀을 중심하고 '하나님의 섭리와 초현실적인 모험성'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날 믿고 있는 우리들은 우주적인 심판의 날을 앞에 놓고 끊임없이 싸움의 노정을 거쳐 나가고 있습니다. 이 노정은 평탄한 노정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일대 모험적인 중심을 세워 놓고 남아진 우주의 원한의 심판을 밀어낼 수 있는 승리적인 중심을 갖지 못한다 할진대는, 역사노정과 생애노정의 패배자가 될 것입니다.
최후의 우주적인 심판과 자기 인식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역사는 모험적으로 출발하여 모험적인 종결을 예고하는 섭리역사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과 여러 조건들이 갖추어진 것은 여러분 자신들이 이루어 놓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조들이 수많은 모험의 고개를 넘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생활에서나 신앙노정에서 이것을 뼈저리게 느끼지 못한다 할진대는, 최후의 우주적인 심판의 고개를 넘을 수 없다는 것도 깨닫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에 앞서 여러분은 하늘이 오늘의 나 한 자체를 불러 세우신 것은 무슨 연유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6천년의 역사적인 원한의 고개를 넘고 있는 나 한 자체는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을 스스로 해명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오늘의 나는 천추의 원한과 사탄으로 말미암아 막혀진 우주적인 원한의 고개를 넘을 수 있는 자유의 중심을 만들어 놓았는가, 또 미래에 남아진 원한의 심판대를 자신있게 넘을 수 있는 승리적인 중심을 가졌는가 하는 문제 등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의 신앙은 어느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까?
여러분은 역사적인 과정을 거치고, 현실적인 과정을 거치고, 미래적인 과정을 통하여 전체적인 하늘의 섭리가 완결될 때까지 하늘과 관계맺고 있는 나로서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여러가지 문제들을 생각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이 영원무궁토록 살아갈 수 있는 신천지의 기준과 승리적인 자유의 환경을 갖추지 못한다면 역사과정을 거쳐 오신 하나님의 섭리 앞에 여러분은 승리자로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험의 길을 걸어간 노아
이제 과거의 우리 선조들을 회고해 봅시다. 먼저 노아의 일생을 보면 평탄한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120년 후에 세상을 물로 심판할 것이니 아라랏산 꼭대기에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을 받게 될 때의 노아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열 이틀도 아니요, 십이년도 아니요, 120년이었으니…. 아라랏산 꼭대기에 방주를 지으라는 그 말씀은 그때의 현실과는 부합될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그러한 명령을 받고 실행해 나가는 노아의 그때의 실정으로 보면, 그야말로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명령을 받은 노아는 내적으로 굳은 각오와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루도 아닌 120년이란 기간을 꾸준히 한날을 바라보고 생활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노아야말로 1600년 역사과정에 없었던, 1600년 역사를 대신하여 하늘 앞에 세워진 모험적인 선봉자였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정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이야 주관해 주시든 말든, 세상 사람들이야 욕을 하든 말든, 한번 내리신 명령을 변치 않는 약속의 뜻으로 믿고 나가는 노아에게는 그 모든 조건들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뜻을 위해 출발한 기준, 생명을 각오하고, 생애를 포기하고 나선 그의 발걸음 앞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120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통해 거듭되는 수고의 노정을 말없이 걸어가셨던 것입니다.
그런 노아에게는 가정적인 비난과 사회적인 비난도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1600년 역사과정에 아무도 가보지 않은 그 길, 오직 천상의 길을 타개하기 위해 나선 노아의 발걸음을 어느 누구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노아는 그때의 사회환경이 가로막고 온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밀어제친다 하더라도, 그것을 당당히 물리칠 수 있는 모험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노아는 자신의 앞길에 어떠한 시험이나 어려움이 닥쳐올지라도 그것을 기필코 헤쳐나갔고, 120년이 지난 후에는 아담 가정이 잃어버린 복귀된 하나의 가정을 찾아 세웠던 것입니다. 이러한 노아의 역사적인 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는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은 그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든 고향 산천을 뒤로하고 일가친척과 이웃을 다 포기한 채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하실 때, 아브라함의 심정은 참으로 막연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은 자기가 지금까지 살던 모든 환경을 초월했습니다. 가정을 초월하여 지금까지 알뜰하게 살아온 살림을 전부 포기하고 보따리를 들고 나섰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걸음은 그야말로 당시의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뜻을 두고 느끼는 사람, 뜻을 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해도, 어느 누가 아브라함 편에 서서 '옳소이다. 당신이 가는 길이 지당하오니 어서 나를 인도하소서'라고 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브라함의 초현실적인 신앙
하나님께서는 우상장수 데라의 맏아들인 아브라함을 빼앗아 가지고 그런 자리에 세우신 것입니다. 그렇게 세움받은 아브라함은 '이제 내가 가는 길에, 내 부모가 붙들고, 형제, 친구가 붙들어도 나의 이 중심은 변할 수 없다'는 확고한 각오를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백세에 만득자로 얻은 이삭까지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받았을때 거기에 순종했습니다. 그 명령은 역사상에 없었던 하나의 모험적인 조건이 되는 명령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늘 땅을 대신하고, 천상의 일이나 지상의 일 등 억천만사를 좌우하는 조건이었는데 이것을 모르면서도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는 그 명령을 받은 후 아들을 제단에 놓고 제사드리려 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제물삼아 칼을 들어 찌르려 했던 아브라함을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행동은 곧 아브라함이 하늘에 속한 몸이고 아브라함의 가족이 하늘에 속한 몸들이니, 아브라함은 물론이요 그의 가족과 그의 모든 물질까지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야 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브라함은 아들을 번제드리는 과정에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 아들은 내가 낳았으나 당신 것이오니 당신께 드리겠나이다' 하는 마음으로 이삭을 번제하려 했고, 현실적인 환경을 타개했던 것입니다.
야곱 역시 그러했고 모세 역시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세우실때 평탄한 길을 걷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야곱은 출생한 후 에서로부터 장자의 기업(基業)을 빼앗는 싸움을 해야 했고, 모세도 나면서부터 싸움의 조건에 걸려 있었습니다.
모험과 혁명의 길을 걸은 모세
모세는 이스라엘민족이 애급땅 원수들의 나라에서 4백년 고난을 거치던 때에 하늘이 불러 세우셨습니다. 이리하여 바로의 두려운 압정하에서 3개월 동안 어머니의 보호를 받다가 그 후 바로의 딸에게 붙들림을 받아 궁중에 들어가 40년 생활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모세의 바로 궁중에서의 생활이 호화롭고 좋은 환경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뜻을 대하는 모세는 애급 궁중에 있었지만 애급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대표한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것이 날이 가면 갈수록 그의 가슴에 사무쳤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40평생 홀로 이스라엘의 지조를 품고 생활하던 모세가 궁중을 나왔을 때, 이스라엘 사람이 애급 사람 앞에 억울함을 당하는 것을 보고 참을래야 참을 수 없는 의분심이 폭발되어 애급 사람을 때려 죽였던 것입니다.
그뒤 모세가 옮긴 발걸음은 모두 모험적인 것이었습니다. 현실을 초월한 하나님의 섭리의 중심을 품었기 때문에 그의 삶 전체도 초현실적인 것이요, 바라보는 것도 나가 싸운 것도 초현실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미 각오한 몸이었으니 죽든지 살든지 뜻 하나만 이루어지기를 비는 심정으로써 하나님이 가로막고 사탄이 가로막는 시험의 조건을 넘어섰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로 궁중에서 하나님의 실존을 확신하여 10여차 이상의 이적 기사를 일으켰던 모세는 4천년 역사상에 없었던 우주적인 모험의 혁명가였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모세는 어떤 사람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뜻을 대한 초현실적인 믿음으로 60만 이스라엘민족을 인도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모세의 생애 전체는 초현실적인 모험의 행로였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모험의 역사를 각오하신 예수
민족복귀의 대표자인 모세 다음에 세계복귀의 사명자로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과거 4천년 역사과정의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초현실적인 생활을 해 나왔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일신이야말로 선지 선열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위해 왔다가 이루지 못하고 간 뜻을 완성해야 할 책임을 진 일신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역사를 회고하여 본 예수님은 수많은 선지 선열들의 원한이 남아져 있고 아직까지 복귀섭리가 종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종결지어야겠다고 각오했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4천년의 노정을 개척하기 위한 초현실적인 모험의 노정을 걸어가겠다는 각오를 가졌습니다. 수많은 선지 선열들의 모험적인 역사노정을 총합한 노정을 걷고도 남을 수 있는 각오를 가졌던 예수님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의 생애는 무엇을 바탕으로 한 생애였는가?
4천년 역사를 총결산하는 생애였으며, 그때까지 하늘의 원한에 사무쳤던 모험적인 노정을 종결하는 생애였으며, 새로운 승리의 터전을 이루기 위한 지상에 없는 초현실적인 승리의 생애였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의 순종심
이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모험적인 생애를 갖고 오시는 예수님 앞에 성모 마리아와 같은 사람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될 뻔 했는가. 성모 마리아와 같은 동정녀 마리아, 즉 하늘의 여성이 없었던들 예수 그리스도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땅 위에 마리아와 같은 모험적인 제물의 토대가 없었다 할진대 예수의 탄생은 있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고 일러 주었을 때 마리아는 '내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그게 무슨 일이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천사는 다시 '능치 못함이 없으신 하나님이 너를 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때 마리아는 '주여 저는 계집종이오니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한마디가 우주적인 모험을 나타내는 말이었습니다.
그 당시 처녀가 잉태한 사실이 밝혀지면 모세를 통하여 세워 놓은 율법에 의하여 당장에 돌멩이에 맞아 죽을 것을 알면서도 마리아는 현실의 환경을 넘어서 '주여 뜻대로 하시옵소서. 계집종이오니 뜻대로 하시옵소서. 저는 죽어도 당신의 것이요, 망해도 당신의 것이오니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늘은 이처럼 지상에 산 실체적인 제물 마리아가 있음으로 해서 예수님을 탄생시켰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신앙생활에도 여러분이 알 수 없는 모험의 길이 많습니다.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가 잉태한 사실을 몽시를 통해 예고받고 요셉은 인간적인 여러가지 고충 때문에 마리아와의 인연을 끊으려고도 하였습니다. 자기와 약혼한 처녀가 잉태했다는 사실은 요셉에게 여러가지 인간적인 고충을 안겨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되어진 모든 사실을 자기가 책임지고 마리아를 구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쉽지않은 초현실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날 여러분에게는 야곱이 간 길, 요셉이 간 길을 가야 할 사명이 있고 예수님이 간 길, 마리아가 간 길을 따라가야 할 사명이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초현실적인 모험적인 고개가 여러분 앞에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탄생부터 초현실적인 모험의 길을 걸으신 예수
4천년 역사의 서러움을 안고, 죽든지 살든지 뜻 하나를 위하여 제물로 바쳐질 것을 각오하고 나선 예수님을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만민의 구세주 메시아인 사실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예수님은 탄생부터가 초현실적이었고, 새로운 이상적인 모험의 생애를 보내셨습니다. 오늘날 이것이 미완성된 채 재림시에 요구되는 뜻으로 남아져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의 30여 평생의 생활은 요셉이 예수님에 대해 처음가진 마음 그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예수님보다 자기의 친아들을 더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가정적인 불화에 부딪치면서도 예수님은 그것을 다 넘어갔습니다. 마침내 만민의 메시아인 것을 증거하고 나서는 일 역시 현실적이 아니었습니다.
유대교의 율법의 차원을 넘어서 새로운 하늘의 복음을 들고 나섰던 예수님이었기에 현실적으로 환영받은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는 가정으로부터 세례 요한으로부터 유대교로부터 몰림받아 의지할 곳 없는 자리에 섰습니다. 그러나 의지할 곳 없는 자리에서도 자신을 위안해 줄 곳을 찾은 예수님이 아니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는 예수님은 새로운 신약의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처음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하였을 때는 유대교의 모든 제사장들 혹은 서기관들이 알아줄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졌었습니다. 그런데 3년 공생애 노정을 거치면서부터 예수님의 위치는 점점 떨어져 나중에는 어부들과 보잘것 없는 부녀자들만이 따르는 입장에 처하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유대백성들이 환영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성도들이 인정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회적으로, 교회적으로 어느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길을 가야 했습니다.
예수의 비통한 심정
모세가 이스라엘민족 60만 대중을 이끌고 나올 때 그의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혔고 뒤에는 바로의 병거가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60만 대중을 대신하여 그런 죽음의 시험에서 이기고 남을 수 있는 하나의 신조를 갖고 부딪쳤던 것입니다. 그것은 60만 대중을 회생시킬 수 있는 길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5병 2어로 5천여 명의 무리를 배불리 먹였던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날 저무는 무렵 들에 널려 있는 수많은 군중을 바라보시던 예수님의 심정이야 말로 현실적으로는 땅 위의 어떤 사람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심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심정을 갖고 아버지 앞에 부르짖었기 때문에 모험적인 창조역사를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믿고 있는 자신을 재분석하여 예수님의 생애노정에 맞추어 보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다 할진대, 여러분은 예수님의 출생 당시부터 30평생의 모험적인 생활을 거쳐 골고다 산정, 수모와 역경의 생활에서부터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의 운명의 길, 모험적인 죽음의 길을 가신 그 생애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 끝날에 있어서 여러분이 예수님께 드릴 수 있는 선물이 있다 할진대 그것은 무엇일 것인가. 생애를 바쳐 모험적인 과정을 거쳐간 예수 그리스도의 안타까운 마음을 가슴에 품고, 온 세계를 대하여 온 하늘 땅을 대하여 누구보다도 훌륭한 제물, 하늘 땅 전체를 동원시켜도 찾을 수 없는 유일한 우주적인 모험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자신을 위해 오시지 않았습니다. 먼저는 역사를 위해 오셨고, 이스라엘백성과 교단을 위해 오셨습니다. 따르고 있는 제자들을 위해서 오셨고, 나아가서는 민족과 국가, 세계 그리고 천주를 위해서 오셨습니다. 죽음까지도 자신을 위한 죽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의 걸음을 어느 누가 옳다고 하였습니까? 죽음의 고개에서는 사랑하는 제자들로부터도 배반당하고, 홀로 남겨져 모든 것을 책임지고 나서야 했던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에 인간들 대해 서러워하고 원망하려면 땅을 치며 울고 울어도 30평생의 원한을 다 풀 수 없고 그동안 받았던 고충을 보상받을 길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시 인류가 사탄 치하에서 고통당할 것을 염려하여 긍휼의 심정으로써 십자가에 못박히는 죽음의 자리에서까지도 배반한 민족, 배반한 제자, 배반한 모든 인류를 위하여 기도하신 분이었습니다. 서러움의 예수였던 연고로 그분은 이 땅의 선조들이 4천년의 역사를 들어 호소하여도, 그 당시의 모든 인간을 들어 호소하여도 그들의 친구가 될 수 있었고, 반대하던 민족을 위하여 자신을 치고 반대하는 원수들을 위하여 기도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천상과 지상에 사무친 죄악의 담을 헐기 위한 우주적인 모험의 행사였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라면, 여러분은 그 만왕의 왕의 왕비가 되기 위해 그의 약속을 믿고 죽든 살든 모든 것을 뜻 앞에 맡기고 생활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생애, 예수님의 소망은 뜻을 위해 살다 뜻을 위해 그렇게 죽는 것이었습니다.
선조들과 예수를 본받아 모험의 길을 가야 할 우리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 것인가?
죽음의 자리에서도 인류를 위해 복을 빌어 주셨고 원한의 심정에 사무친 내적 슬픔을 모두 지니고 가신 예수님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땅 위에 뜻 하나를 세워 놓고 모험의 길을 가신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들의 마음에 옮겨 가져야 하겠고, 예수님의 죽음을 깨달아 오늘날 우리들이 우주적인 모험의 길을 통하여 예수님의 마음속에 사무친 원한을 풀어드려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아버지 앞에 복을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복 달라고 빌기 전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 못했던 내적 슬픔의 심정을 깨달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 선지 선열들의 걸어간 생애노정과 예수 그리스도가 걸어가신 생애노정을 오늘날 우리들이 본받아 걸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어느 누가 어느 때 어떠한 조건을 제시한다 할지라도 초현실적인 자신을 세워 우주만상 앞에 호소할 수 있고, 천상의 뜻을 대신한 자로서 나설 수 있는 각오와 배짱을 갖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모험적인 제물로 바쳐져야 할 우리
이제 재림의 날이 가까운 오늘날에 있어서 여러분은 6천년 역사의 최후에 남은 하나의 우주적이고 모험적인 임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여기서 모험적인 내적 각오를 갖고 나서야만이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초현실적인 모험의 노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는 진전되어 나왔습니다.
이런 우주적인 모험의 관문을 거쳐야만이 최후의 승리의 깃발을 들고 아버지 앞에 호산나의 개가를 부를 수 있으며, 우주적인 신부의 입장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또 그래야만 어떠한 조건에도 걸리지 않을 것이고, 또한 어떤 환경에서 어떤 핍박과 비난이 있을지라도 초현실적인 모험의 기준을 세우는 하늘의 왕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왕자가 되겠다는 각오를 가진 자라야만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최종적으로 책임지고 그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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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초현실적인 모험성
1956.12.02 (일), 한국 전본부교회
오늘 봉독한 말씀 가운데는 예수님이 최후의 십자가를 앞에 놓고 일대 모험적인 각오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그래서 오늘 여러분과 생각하려는 말씀의 제목은'하나님의 섭리와 초현실적인 모험성'입니다.'하나님의 섭리와 초현실적인 모험성'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날 믿고 있는 우리들은 우주적인 심판의 날을 앞에 놓고 끊임없이 싸움의 노정을 거쳐 나가고 있습니다.이 노정은 평탄한 노정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일대 모험적인 중심을 세워 놓고 남아진 우주의 원한의 심판을 밀어낼 수 있는 승리적인 중심을 갖지 못한다 할진대는, 여러분들은 역사노정의 패배자가 될 것이며, 생애노정의 패배자가 될 것입니다.
① 최후의 우주적인 심판과 자기 인식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역사는 모험적으로 출발하여 모험적인 종결을 예고하는 섭리역사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과 여러 조건들이 갖추어진 것은 여러분 자신들이 이루어 놓은 것이 아닙니다.내가 이렇게 자유로운 입장에서 하나님을 부르고, 자유로운 입장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우리의 선조들이 수많은 모험의 고개를 넘어 왔기 때문입니다.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그리고 여러분이 생활에서나 신앙노정에서 이것을 뼈저리게 느끼지 못한다 할진대는, 최후의 우주적인 심판의 고개를 넘을 수 없다는 것도 깨닫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에 앞서 여러분은 하늘이 오늘의 나 한 자체를 불러 세우신 것은 무슨 연유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6천년의 역사적인 원한의 고개를 넘고 있는 나 한 자체는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을 스스로 해명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오늘의 나는 천추의 원한과 사탄으로 말미암아 막혀진 우주적인 원한의 고개를 넘을 수 있는 자유의 중심을 만들어 놓았는가, 또 미래에 남아진 원한의 심판대를 자신있게 넘을 수 있는 승리적인 중심을 가졌는가 하는 문제 등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오늘날 여러분의 신앙은 어느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까?
여러분은 역사적인 과정을 거치고, 현실적인 과정을 거치고, 미래적인 과정을 통하여 전체적인 하늘의 섭리가 완결될 때까지 하늘과 관계맺고 있는 나로서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여러가지 문제들을 생각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이제 하늘이 내 한 자체를 세워서 끝날의 전체적인 사명을 위탁하시고, 나를 세워 승리의 영광을 드러내려고 하시는 뜻이 있다 할진대, 그 뜻은 6천년의 섭리의 뜻을 대신한 뜻일 것입니다.그리고 하늘이 나를 찾아 세우시려는 기준은 최후의 심판의 고개를 넘어서는 것입니다.즉, 신천지의 새로운 기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이 영원무궁토록 살아갈 수 있는 신천지의 기준과 승리적인 자유의 환경을 갖추지 못한다면 역사과정을 거쳐 오신 하나님의 섭리 앞에 여러분은 승리자로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과거를 회고해 볼 때, 하늘이 오늘날 나를 세우신 것은 나 하나만을 구하기 위해서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역사적인 원한을 해명하기 위한 결실체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이것을 여러분은 명심하여 아담으로부터 맺혀진 타락의 원한을 풀어드려야 되겠습니다.또 노아의 모험적인 원한의 심정을 풀어드려야 되겠고, 노아의 모험적인 생애를 풀어드려야 되겠습니다.
그 이후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삭, 야곱, 그리고 모세 등 역대 선지 선열들이 걸어간 모험적인 생애, 그분들이 남기신 유업을 여러분이 맡아 가지고 그것을 하나의 발판으로 삼아 미래에 남아진 심판대를 자신있게 넘을 수 있는 자신있는 중심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그렇지 않는다 할진대는 사탄과의 역사적인 싸움에서 낙오자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② 모험의 길을 걸어간 노아
이제 과거의 우리 선조들을 회고해 봅시다. 먼저 노아의 일생을 보면 평탄한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120년 후에 세상을 물로 심판할 것이니 아라랏산 꼭대기에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을 받게 될 때의 노아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열 이틀도 아니요, 십이년도 아니요, 120년이었으니…. 아라랏산 꼭대기에 방주를 지으라는 그 말씀은 그때의 현실과는 부합될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그러한 명령을 받고 실행해 나가는 노아의 그때의 실정으로 보면, 그야말로 미친 사람이요, 그 시대에 도저히 부합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명령을 받은 노아는 내적으로 굳은 각오와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그리고 하루도 아닌 120년이란 기간을 꾸준히 한날을 바라보고 생활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노아야말로 1600년 역사과정에 없었던, 1600년 역사를 대신하여 하늘 앞에 세워진 모험적인 선봉자였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정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이야 주관해 주시든 말든, 세상 사람들이야 욕을 하든 말든, 한번 내리신 명령을 변치 않는 약속의 뜻으로 믿고 나가는 노아에게는 그 모든 조건들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뜻을 위해 출발한 기준, 생명을 각오하고, 생애를 포기하고 나선 그의 발걸음 앞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120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통해 거듭되는 수고의 노정을 말없이 걸어가셨던 것입니다.
그런 노아에게는 가정적인 비난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회적인 비난도 컸을 것입니다.그러나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길,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 1600년 역사과정에 아무도 가보지 않은 그 길, 오직 천상의 길을 타개하기 위해 나선 노아의 발걸음을 어느 누구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노아는 그때의 사회환경이 가로막고 온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밀어제친다 하더라도, 그것을 당당히 물리칠 수 있는 모험적인 사람이었음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노아는 자신의 앞길에 어떠한 시험이나 어려움이 닥쳐올지라도 그것을 기필코 헤쳐나갔고, 120년이 지난 후에는 아담 가정이 잃어버린 복귀된 하나의 가정을 찾아 세웠던 것입니다. 이러한 노아의 역사적인 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는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은 그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든 고향 산천을 뒤로하고 일가친척과 이웃을 다 포기한 채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하실 때, 아브라함의 심정은 참으로 막연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은 자기가 지금까지 살던 모든 환경을 초월했습니다. 가정을 초월하여 지금까지 알뜰하게 살아온 살림을 전부 포기하고 보따리를 들고 나섰습니다.이러한 아브라함의 걸음은 그야말로 당시의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뜻을 두고 느끼는 사람, 뜻을 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해도, 어느 누가 아브라함편에 서서'옳소이다.당신이 가는 길이 지당하오니 어서 나를 인도하소서'라고 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세상이 알아주든 몰라주든 뜻을 대한 일편단심의 마음으로 영원히 갈대아 우르를 떠나는 마음으로 나섰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이 이끄시는 대로 발걸음을 옮길 때, 어떠한 모험이 따르는 태산준령이 가로막고, 죽음의 고개가 가로막을지라도 참고 그것들을 뚫고 나갔던 것입니다.
③ 아브라함의 초현실적인 신앙
하나님께서는 우상장수 데라의 맏아들인 아브라함을 빼앗아 가지고 그런 자리에 세우신 것입니다.그렇게 세움받은 아브라함은'이제 내가 가는 길에, 내 사랑하는 부모가 붙들어도, 사랑하는 친구가 붙들어도, 사랑하는 형제가 나를 붙들어도 나의 이 중심은 변할 수 없다'는 확고한 각오를 했습니다.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아브라함은 축복을 이루기 위하여 백세에 만득자로 얻은 이삭까지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받았을때 거기에 순종했습니다.그 명령은 역사상에 없었던 하나의 모험적인 조건이 되는 명령이었습니다.그것은 하늘 땅을 대신하고, 천상의 일이나 지상의 일 등 억천만사를 좌우하는 조건이었는데 이것을 모르면서도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는 그 명령을 받은 후 아들을 제단에 놓고 제사드리려 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제물삼아 칼을 들어 찌르려 했던 아브라함을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이것은 그야말로 초현실적인 의식이었습니다.그 당시에 어느 누가 아브라함의 그런 신앙을 인정해 줄 수 있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제시한 이 모험적인 행동은 곧 아브라함이 하늘에 속한 몸이고 아브라함의 가족이 하늘에 속한 몸들이니, 아브라함은 물론이요 그의 가족과 그의 모든 물질까지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야 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이러한 사실을 아브라함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번제드리는 과정에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이 아들은 내가 낳았으나 당신 것이오니 당신께 드리겠나이다' 하는 마음으로 이삭을 번제하려 했고, 현실적인 환경을 타개했던 것입니다.이러한 역대 선조들의 신앙의 중심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야곱 역시 그러했고 모세 역시 그러했습니다.하나님은 이들을 세우실때 평탄한 길을 걷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야곱은 출생한 후 에서로부터 장자의 기업(基業)을 빼앗는 싸움을 해야 했고, 모세도 나면서부터 싸움의 조건에 걸려 있었습니다.
④ 모험과 혁명의 길을 걸은 모세
모세는 이스라엘민족이 애급땅 원수들의 나라에서 4백년 고난을 거치던 때에 하늘이 불러 세우셨습니다.이리하여 바로의 두려운 압정하에서 3개월 동안 어머니의 보호를 받다가 그 후 바로의 딸에게 붙들림을 받아 궁중에 들어가 40년 생활하였습니다.여러분은 모세의 바로 궁중에서의 생활이 호화롭고 좋은 환경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뜻을 대하는 모세는 애급 궁중에 있었지만 애급 백성이 아니었습니다.이스라엘을 대표한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것이 날이 가면 갈수록 그의 가슴에 사무쳤던 것입니다.그리하여 40평생 홀로 이스라엘의 지조를 품고 생활하던 모세가 궁중을 나왔을 때, 이스라엘 사람이 애급 사람 앞에 억울함을 당하는 것을 보고 참을래야 참을 수 없는 의분심이 폭발되어 애급 사람을 때려 죽였던 것입니다.
그 후 바로 궁중을 나와 가지고 남겨진 이스라엘의 축복의 뜻을 마음에 품고 미디안목자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그 생활은 편안한 생활이 아니었습니다.그 시대의 어떤 사람도 그토록 호화로운 바로 궁중을 버리고 목자 생활을 하는 모세를 이해해 주지 못했습니다.그러나 모세는 낙망하지 않고 하늘을 위한 남 모르는 제단, 이스라엘을 위한 숨은 제단을 쌓아 나갔습니다.이런 모세였던 연고로 80세가 되던 해에 하나님은 그를 택하셨고 민족의 원한을 풀어 줄 수 있는 주인공으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뒤 모세가 옮긴 발걸음은 모두 모험적인 것이었습니다.현실을 초월한 하나님의 섭리의 중심을 품었기 때문에 그의 삶 전체도 초현실적인 것이요, 바라보는 것도 나가 싸운 것도 초현실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모세가 바로 궁중으로 가게 될 때, 하나님이 가라하신 그 길을 가는 모세를 축복해 주고 보호해 주어야 할 텐데,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모세의 가는 길을 막고 모세를 죽이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찌하여 자신의 명령을 받고 가는 모세를 가로막고 죽이려 하셨는가?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여기에 우리 인간이 알 수 없는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고개였습니다.그러나 모세는, 이미 각오한 몸이었으니 죽든지 살든지 뜻 하나만 이루어지기를 비는 심정으로써 하나님이 가로막고 사탄이 가로막는 시험의 조건을 넘어섰던 것입니다.그리하여 바로 궁중에서 초현실적인 하나님의 실존을 확신하여 10여차 이상의 이적 기사를 일으켰던 모세는 4천년 역사상에 없었던 우주적인 모험의 혁명가였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이처럼 모세는 어떤 사람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뜻을 대한 초현실적인 믿음으로 60만 이스라엘민족을 인도했습니다.이런 것을 볼 때 모세의 생애 전체는 초현실적인 모험의 행로였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⑤ 모험의 역사를 각오하신 예수
민족복귀의 대표자인 모세 다음에 세계복귀의 사명자로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예수님은 과거 4천년 역사과정의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초현실적인 생활을 해 나왔다는 것을 아셨습니다.그리고 자기 일신이야말로 선지 선열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위해 왔다가 이루지 못하고 간 뜻을 완성해야 할 책임을 진 일신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역사를 회고하여 본 예수님은 수많은 선지 선열들의 원한이 남아져 있고 아직까지 복귀섭리가 종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종결지어야겠다고 각오했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4천년의 노정을 개척하기 위한 초현실적인 모험의 노정을 걸어가겠다는 각오를 가졌습니다.수많은 선지 선열들의 모험적인 역사노정을 총합한 노정을 걷고도 남을 수 있는 각오를 가졌던 예수님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우주적인 모험의 역사를 청산해야 할 사명을 짊어졌기 때문에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모험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그의 생활 역시 초현실적인 모험의 생활이었습니다. 그리고 최후에는 십자가에 달리는 죽음의 길까지도 초현실적인 모험의 길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의 생애는 무엇을 바탕으로 한 생애였는가. 4천년 역사를 총결산하는 생애였으며, 그때까지 하늘의 원한에 사무쳤던 모험적인 노정을 종결하는 생애였으며, 새로운 승리의 터전을 이루기 위한 지상에 없는 초현실적인 승리의 생애였습니다.
⑥ 마리아와 요셉의 순종심
이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모험적인 생애를 갖고 오시는 예수님 앞에 성모 마리아와 같은 사람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될 뻔 했는가. 성모 마리아와 같은 동정녀 마리아가, 즉 하늘의 여성이 없었던들 예수 그리스도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땅 위에 마리아와 같은 모험적인 제물의 토대가 없었다 할진대 모험적인 노정을 거쳐 새로운 생명을 갖고 태어나야 했던 예수의 탄생은 있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서'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고 일러 주었을 때 마리아는'내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그게 무슨 일이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천사는 다시'능치 못함이 없으신 하나님이 너를 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때 마리아는'주여 저는 계집종이오니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한마디가 우주적인 모험을 나타내는 말이었습니다.
그 당시 처녀가 잉태한 사실이 밝혀지면 모세를 통하여 세워 놓은 율법에 의하여 당장에 돌멩이에 맞아 죽을 것을 알면서도 마리아는 현실의 환경을 넘어서'주여 뜻대로 하시옵소서. 계집종이오니 뜻대로 하시옵소서. 저는 죽어도 당신의 것이요, 망해도 당신의 것이오니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늘은 이처럼 지상에 산 실체적인 제물 마리아가 있음으로 해서 예수님을 탄생시켰던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믿고 나가는 신앙생활에도 여러분이 알 수 없는 모험의 길이 많습니다.자기와 약혼한 마리아가 잉태한 사실을 몽시를 통해 예고받고 요셉은 인간적인 여러가지 고충 때문에 마리아와의 인연을 끊으려고도 하였습니다. 자기와 약혼한 처녀가 잉태했다는 사실은 요셉에게 여러가지 인간적인 고충을 안겨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되어진 모든 사실을 자기가 책임지고 마리아를 구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초현실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날 여러분에게는 야곱이 간 길, 요셉이 간 길을 가야 할 사명이 있고 예수님이 간 길, 마리아가 간 길을 따라가야 할 사명이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초현실적인 장면이 여러분에게 가로놓여 있다는 것, 초현실적으로 통할 수 있는 모험적인 고개가 여러분 앞에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⑦ 탄생부터 초현실적인 모험의 길을 걸으신 예수
4천년 역사의 서러움을 안고, 죽든지 살든지 뜻 하나를 위하여 제물로 바쳐질 것을 각오하고 나선 예수님을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만민의 구세주 메시아인 사실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예수님은 탄생부터가 초현실적이었고, 새로운 이상적인 모험의 생애를 보내셨습니다. 오늘날 이것이 미완성된 채 재림시에 요구되는 뜻으로 남아져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에서 생활하고 자라게 될 때부터 뜻에 대한 근심과 걱정이 있었습니다. 동생들의 비난도 받고 참소도 받았습니다. 예수의 30여 평생의 생활은 요셉이 예수님에 대해 처음가진 마음 그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예수님보다 자기의 친아들을 더 사랑했다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역시 당시 사회형태에 맞는 가정 환경을 갖지 못하였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의붓자식처럼 사시다가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되었던 예수님의 모든 생활은 초현실적인 생활이었습니다. 그러한 환경에서 모든 가정적인 불화에 부딪치면서도 예수님은 묵묵한 가운데 그것을 다 넘어갔습니다. 마침내 뜻을 갖고 나타나 만민의 메시아인 것을 증거하고 나서는 일 역시 현실적이 아니었습니다.
오랜 역사를 통하여 유대교의 신조로 세워 놓은 율법의 차원을 넘어서 새로운 하늘의 복음을 들고 나섰던 예수님이었기에 가는 곳곳마다 머무는 곳곳마다 현실적으로 환영받은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는 가정으로부터 세례 요한으로부터 유대교로부터 몰림받아 의지할 곳 없는 자리에 섰습니다. 그러나 의지할 곳 없는 자리에서도 자신을 위안해 줄 곳을 찾은 예수님이 아니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는 예수님은 새로운 신약의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처음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하였을 때는 유대교의 모든 제사장들 혹은 서기관들이 알아줄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졌었습니다. 그런데 3년 공생애 노정을 거치면서부터 예수님의 위치는 점점 떨어져 나중에는 어부들과 보잘것 없는 부녀자들만이 따르는 입장에 처하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념을 세워야 할 예수님 앞에 약속으로는 영원한 약속이 있어야 했고 뜻으로서는 영원한 뜻이 있어야 했었는데, 현실에서는 그런 것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빈들에서 5천여명의 무리를 모아 놓고 그들을 위하여 하늘을 향해 축사하시던 예수님의 심정,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간곡히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심정은 땅 위의 어느누구와도 비할 수 없는 서러움에 사무친 심정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4천년 역사상에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모험적인 생활을 하는 비장한 각오와 내적인 서러움을 품고 싸웠으나, 예수님의 내적 서러움에 비길 바가 못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4천년 역사의 모든 원한의 심정을 뚫고 올라가 하나님의 내적 서러움의 심정을 충족시켜드려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유대백성들이 환영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유대성도들이 인정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회적으로, 교회적으로 어느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길을 가야 했습니다.어디를 가나 자유로운 환경에 머무를 수도 없는 입장에 처했던 예수님이었습니다.
⑧ 예수의 비통한 심정
모세가 이스라엘민족 60만 대중을 이끌고 나올 때 그의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혔고 뒤에는 바로의 병거가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60만 대중을 대신하여 그런 죽음의 시험에서 이기고 남을 수 있는 하나의 신조를 갖고 부딪쳤던 것입니다. 그것은 60만 대중을 회생시킬 수 있는 길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5병 2어로 5천여 명의 무리를 배불리 먹였던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날 저무는 무렵 들에 널려 있는 수많은 군중을 바라보시던 예수님의 심정이야 말로 현실적으로는 땅 위의 어떤 사람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심정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하늘 앞에 찾아져야 할 일대 모험의 심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심정을 갖고 아버지 앞에 부르짖었기 때문에 모험적인 창조역사를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모험적으로 탄생하신 예수님, 살면서 모험의 길을 가신 예수님, 최후에 십자가에 못박힘을 당할 때까지도 모험적인 표준으로 돌아가셨던 예수님이신 것을 우리는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예수의 생활은 그저 있으나마나한 미미한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점잖고 멋있는 그런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믿고 있는 자신을 재분석하여 예수님의 생애노정에 맞추어 보아야 되겠습니다.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다 할진대, 여러분은 예수님의 출생 당시부터 30평생의 모험적인 생활을 거쳐 골고다 산정, 수모와 역경의 생활에서부터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의 운명의 길, 모험적인 죽음의 길을 가신 그 생애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야말로 예수님의 생애는 모험으로 출발하여 모험으로 끝나는 생애였습니다.신랑으로 오셨으나 쓸쓸하게 죽음의 길을 가신 예수님, 나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님, 나를 구하기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님의 뼈살에 사무치는 비통한 심정을 우리는 시간시간 마음으로 느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 끝날에 있어서 여러분이 예수님께 드릴 수 있는 선물이 있다 할진대 그것은 무엇일 것인가.생애를 바쳐 모험적인 과정을 거쳐간 예수 그리스도의 안타까운 마음을 가슴에 품고, 온 세계를 대하여 온 하늘 땅을 대하여 누구보다도 훌륭한 제물, 하늘 땅 전체를 동원시켜도 찾을 수 없는 유일한 우주적인 모험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거쳐 오신 하나님의 원한의 심정을 깨달아 천한 자리에서부터 올라가야 되겠습니다. 즐거운 자리에서 어떤 일을 맡고자 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뜻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심정을 갖고 생활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땅을 위하여 죽은 예수 그리스도가 땅을 대하여 원망한다면 그 이상 원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을 위해 오시지 않았습니다. 먼저는 역사를 위해 오셨고, 이스라엘교단을 위해서 오셨고, 이스라엘백성을 위해 오셨습니다. 따르고 있는 제자들을 위해서 오셨고, 나아가서는 민족과 국가, 세계 그리고 천주를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의 삶은 민족과 국가와 세계 그리고 천주를 위한 삶이었고 죽음까지도 자신을 위한 죽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의 걸음을 어느 누가 옳다고 하였습니까? 죽음의 고개에서는 사랑하는 제자들로부터도 배반당하고, 홀로 남겨져 모든 것을 책임지고 나서야 했던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에 인간들 대해 서러워하고 원망하려면 땅을 치며 울고 울어도 30평생의 원한을 다 풀 수 없고 그동안 받았던 고충을 보상받을 길이 없을 것입니다.그러나 예수님은 당시 인류가 사탄 치하에서 고통당할 것을 염려하여 긍휼의 심정으로써 십자가에 못박히는 죽음의 자리에서까지도 배반한 민족, 배반한 제자, 배반한 모든 인류를 위하여 기도하신 분이었습니다. 서러움의 예수였던 연고로 그분은 이 땅의 선조들이 4천년의 역사를 들어 호소하여도, 그 당시의 모든 인간을 들어 호소하여도 그들의 친구가 될 수 있었고, 반대하던 민족을 위하여 자신을 치고 반대하는 원수들을 위하여 기도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4천년 인류 역사상에 없었던 일입니다.또한 이것이 천상과 지상에 사무친 죄악의 담을 헐기 위한 우주적인 모험의 행사였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라면, 여러분은 그 만왕의 왕의 왕비가 되기 위해 그의 약속을 믿고 죽든 살든 모든 것을 뜻 앞에 맡기고 생활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길을 가셨습니다.예수님의 생애는 그러한 생애였습니다. 예수님의 소망은 뜻을 위해 살다 뜻을 위해 그렇게 죽는 것이었습니다.
⑨ 선조들과 예수를 본받아 모험의 길을 가야 할 우리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 것인가. 죽음의 자리에서도 인류를 위해 복을 빌어 주셨고 원한의 심정에 사무친 내적 슬픔을 모두 지니고 가신 예수님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땅 위에 뜻 하나를 세워 놓고 모험의 길을 가신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들의 마음에 옮겨 가져야 하겠고, 예수님의 죽음을 깨달아 오늘날 우리들이 우주적인 모험의 길을 통하여 예수님의 마음속에 사무친 원한을 풀어드려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아버지 앞에 복을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복 달라고 빌기 전에 예수의 가슴 속에 사무친 서러움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의 생애와 십자가의 노정까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예수님과 하나님만이 알고 있는 모험적인 행로의 서러움이 있었음을 오늘날 여러분이 알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 못했던 내적 슬픔의 심정을 깨달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주여! 당신의 원한과 역사적인 모든 원한을 저희가 풀어드리겠사옵니다. 저희를 채찍질하여 주시옵소서. 역사적인 모든 민족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신 그 뜻을 이룰 수 있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 한 자체가 쓰러지지 않고 우주적인 역사를 대신하고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남긴 원한을 해원해 드리는 모험적인 제물로 설 수 있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바라는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가 땅 위에 유업으로 남긴 뜻을 이루는 일입니다. 극한에 떨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다시 이루어야 할 운명이 우리들의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역사는 개체의 모험적인 노정을 거쳐서, 가정을 통하고, 사회를 통하고, 국가를 통하고, 세계를 통하여 흘러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 가운데에서 개인이 뜻을 이루려 할 때는 그 개인의 행로에 모험적인 노정이 가해졌습니다. 가정도 역시 그렇고, 사회도 역시 그러했으며, 국가도 역시 그러했고, 세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이런 모험적인 관문이 여러분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들은 모험적인 생사의 기로와 우주적인 심판대 앞에 서 있는 내 일신의 모험, 내 일신의 생명을 대신하여 민족의 생명을 대신하여, 세계 인류를 대신하여 모험적인 제물로 바쳐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과거 선지 선열들의 걸어간 생애노정과 예수 그리스도가 걸어가신 생애노정을 오늘날 우리들이 어떠한 시대 어떠한 환경에서도 본받아 걸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어느 누가 어느 때 어떠한 조건을 제시한다 할지라도 초현실적인 자신을 세워 우주만상 앞에 호소할 수 있고, 천상의 뜻을 대신한 자로서 나설 수 있는 각오와 배짱을 갖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⑩ 모험적인 제물로 바쳐져야 할 우리
이제 재림의 날이 가까운 오늘날에 있어서 여러분은 6천년 역사의 최후에 남은 하나의 우주적이고 모험적인 임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그 임무가 우주적이라면 여러분도 상대적으로 우주적인 존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모험적인 내적 각오를 갖고 나서야만이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들이 하고 있는 신앙생활과 달리 이뤄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까지 초현실적인 모험의 노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는 진전되어 나왔습니다.
이런 우주적인 모험의 관문을 거쳐야만이 최후의 승리의 깃발을 들고 아버지 앞에 호산나의 개가를 부를 수 있으며, 우주적인 신부의 입장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또 그래야만 어떠한 조건에도 걸리지 않을 것이고, 또한 어떤 환경에서 어떤 핍박과 비난이 있을지라도 초현실적인 모험의 기준을 세우는 하늘의 왕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왕자가 되겠다는 각오를 가진 자라야만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최종적으로 책임지고 그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도합시다.
말씀선집 제1권 17편
하나님의 섭리와 초현실적인 모험성 (훈독본)
1956.12.02 (일), 한국 전본부교회
누가복음 22:24-46
누가복음 22:24-46
오늘 봉독한 말씀을 중심하고 '하나님의 섭리와 초현실적인 모험성'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날 믿고 있는 우리들은 우주적인 심판의 날을 앞에 놓고 끊임없이 싸움의 노정을 거쳐 나가고 있습니다. 이 노정은 평탄한 노정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일대 모험적인 중심을 세워 놓고 남아진 우주의 원한의 심판을 밀어낼 수 있는 승리적인 중심을 갖지 못한다 할진대는, 역사노정과 생애노정의 패배자가 될 것입니다.
① 최후의 우주적인 심판과 자기 인식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역사는 모험적으로 출발하여 모험적인 종결을 예고하는 섭리역사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과 여러 조건들이 갖추어진 것은 여러분 자신들이 이루어 놓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조들이 수많은 모험의 고개를 넘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생활에서나 신앙노정에서 이것을 뼈저리게 느끼지 못한다 할진대는, 최후의 우주적인 심판의 고개를 넘을 수 없다는 것도 깨닫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에 앞서 여러분은 하늘이 오늘의 나 한 자체를 불러 세우신 것은 무슨 연유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6천년의 역사적인 원한의 고개를 넘고 있는 나 한 자체는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을 스스로 해명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오늘의 나는 천추의 원한과 사탄으로 말미암아 막혀진 우주적인 원한의 고개를 넘을 수 있는 자유의 중심을 만들어 놓았는가, 또 미래에 남아진 원한의 심판대를 자신있게 넘을 수 있는 승리적인 중심을 가졌는가 하는 문제 등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의 신앙은 어느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까?
여러분은 역사적인 과정을 거치고, 현실적인 과정을 거치고, 미래적인 과정을 통하여 전체적인 하늘의 섭리가 완결될 때까지 하늘과 관계맺고 있는 나로서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여러가지 문제들을 생각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이 영원무궁토록 살아갈 수 있는 신천지의 기준과 승리적인 자유의 환경을 갖추지 못한다면 역사과정을 거쳐 오신 하나님의 섭리 앞에 여러분은 승리자로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② 모험의 길을 걸어간 노아
이제 과거의 우리 선조들을 회고해 봅시다. 먼저 노아의 일생을 보면 평탄한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120년 후에 세상을 물로 심판할 것이니 아라랏산 꼭대기에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을 받게 될 때의 노아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열 이틀도 아니요, 십이년도 아니요, 120년이었으니…. 아라랏산 꼭대기에 방주를 지으라는 그 말씀은 그때의 현실과는 부합될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그러한 명령을 받고 실행해 나가는 노아의 그때의 실정으로 보면, 그야말로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명령을 받은 노아는 내적으로 굳은 각오와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루도 아닌 120년이란 기간을 꾸준히 한날을 바라보고 생활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노아야말로 1600년 역사과정에 없었던, 1600년 역사를 대신하여 하늘 앞에 세워진 모험적인 선봉자였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정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이야 주관해 주시든 말든, 세상 사람들이야 욕을 하든 말든, 한번 내리신 명령을 변치 않는 약속의 뜻으로 믿고 나가는 노아에게는 그 모든 조건들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뜻을 위해 출발한 기준, 생명을 각오하고, 생애를 포기하고 나선 그의 발걸음 앞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120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통해 거듭되는 수고의 노정을 말없이 걸어가셨던 것입니다.
그런 노아에게는 가정적인 비난과 사회적인 비난도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1600년 역사과정에 아무도 가보지 않은 그 길, 오직 천상의 길을 타개하기 위해 나선 노아의 발걸음을 어느 누구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노아는 그때의 사회환경이 가로막고 온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밀어제친다 하더라도, 그것을 당당히 물리칠 수 있는 모험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노아는 자신의 앞길에 어떠한 시험이나 어려움이 닥쳐올지라도 그것을 기필코 헤쳐나갔고, 120년이 지난 후에는 아담 가정이 잃어버린 복귀된 하나의 가정을 찾아 세웠던 것입니다. 이러한 노아의 역사적인 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는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은 그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든 고향 산천을 뒤로하고 일가친척과 이웃을 다 포기한 채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하실 때, 아브라함의 심정은 참으로 막연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은 자기가 지금까지 살던 모든 환경을 초월했습니다. 가정을 초월하여 지금까지 알뜰하게 살아온 살림을 전부 포기하고 보따리를 들고 나섰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걸음은 그야말로 당시의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뜻을 두고 느끼는 사람, 뜻을 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해도, 어느 누가 아브라함 편에 서서 '옳소이다. 당신이 가는 길이 지당하오니 어서 나를 인도하소서'라고 할 수 있었겠습니까?
③ 아브라함의 초현실적인 신앙
하나님께서는 우상장수 데라의 맏아들인 아브라함을 빼앗아 가지고 그런 자리에 세우신 것입니다. 그렇게 세움받은 아브라함은 '이제 내가 가는 길에, 내 부모가 붙들고, 형제, 친구가 붙들어도 나의 이 중심은 변할 수 없다'는 확고한 각오를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백세에 만득자로 얻은 이삭까지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받았을때 거기에 순종했습니다. 그 명령은 역사상에 없었던 하나의 모험적인 조건이 되는 명령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늘 땅을 대신하고, 천상의 일이나 지상의 일 등 억천만사를 좌우하는 조건이었는데 이것을 모르면서도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는 그 명령을 받은 후 아들을 제단에 놓고 제사드리려 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제물삼아 칼을 들어 찌르려 했던 아브라함을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행동은 곧 아브라함이 하늘에 속한 몸이고 아브라함의 가족이 하늘에 속한 몸들이니, 아브라함은 물론이요 그의 가족과 그의 모든 물질까지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야 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브라함은 아들을 번제드리는 과정에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 아들은 내가 낳았으나 당신 것이오니 당신께 드리겠나이다' 하는 마음으로 이삭을 번제하려 했고, 현실적인 환경을 타개했던 것입니다.
야곱 역시 그러했고 모세 역시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세우실때 평탄한 길을 걷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야곱은 출생한 후 에서로부터 장자의 기업(基業)을 빼앗는 싸움을 해야 했고, 모세도 나면서부터 싸움의 조건에 걸려 있었습니다.
④ 모험과 혁명의 길을 걸은 모세
모세는 이스라엘민족이 애급땅 원수들의 나라에서 4백년 고난을 거치던 때에 하늘이 불러 세우셨습니다. 이리하여 바로의 두려운 압정하에서 3개월 동안 어머니의 보호를 받다가 그 후 바로의 딸에게 붙들림을 받아 궁중에 들어가 40년 생활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모세의 바로 궁중에서의 생활이 호화롭고 좋은 환경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뜻을 대하는 모세는 애급 궁중에 있었지만 애급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대표한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것이 날이 가면 갈수록 그의 가슴에 사무쳤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40평생 홀로 이스라엘의 지조를 품고 생활하던 모세가 궁중을 나왔을 때, 이스라엘 사람이 애급 사람 앞에 억울함을 당하는 것을 보고 참을래야 참을 수 없는 의분심이 폭발되어 애급 사람을 때려 죽였던 것입니다.
그뒤 모세가 옮긴 발걸음은 모두 모험적인 것이었습니다. 현실을 초월한 하나님의 섭리의 중심을 품었기 때문에 그의 삶 전체도 초현실적인 것이요, 바라보는 것도 나가 싸운 것도 초현실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미 각오한 몸이었으니 죽든지 살든지 뜻 하나만 이루어지기를 비는 심정으로써 하나님이 가로막고 사탄이 가로막는 시험의 조건을 넘어섰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로 궁중에서 하나님의 실존을 확신하여 10여차 이상의 이적 기사를 일으켰던 모세는 4천년 역사상에 없었던 우주적인 모험의 혁명가였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모세는 어떤 사람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뜻을 대한 초현실적인 믿음으로 60만 이스라엘민족을 인도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모세의 생애 전체는 초현실적인 모험의 행로였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⑤ 모험의 역사를 각오하신 예수
민족복귀의 대표자인 모세 다음에 세계복귀의 사명자로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과거 4천년 역사과정의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초현실적인 생활을 해 나왔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일신이야말로 선지 선열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위해 왔다가 이루지 못하고 간 뜻을 완성해야 할 책임을 진 일신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역사를 회고하여 본 예수님은 수많은 선지 선열들의 원한이 남아져 있고 아직까지 복귀섭리가 종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종결지어야겠다고 각오했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4천년의 노정을 개척하기 위한 초현실적인 모험의 노정을 걸어가겠다는 각오를 가졌습니다. 수많은 선지 선열들의 모험적인 역사노정을 총합한 노정을 걷고도 남을 수 있는 각오를 가졌던 예수님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의 생애는 무엇을 바탕으로 한 생애였는가?
4천년 역사를 총결산하는 생애였으며, 그때까지 하늘의 원한에 사무쳤던 모험적인 노정을 종결하는 생애였으며, 새로운 승리의 터전을 이루기 위한 지상에 없는 초현실적인 승리의 생애였습니다.
⑥ 마리아와 요셉의 순종심
이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모험적인 생애를 갖고 오시는 예수님 앞에 성모 마리아와 같은 사람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될 뻔 했는가. 성모 마리아와 같은 동정녀 마리아, 즉 하늘의 여성이 없었던들 예수 그리스도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땅 위에 마리아와 같은 모험적인 제물의 토대가 없었다 할진대 예수의 탄생은 있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고 일러 주었을 때 마리아는 '내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그게 무슨 일이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천사는 다시 '능치 못함이 없으신 하나님이 너를 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때 마리아는 '주여 저는 계집종이오니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한마디가 우주적인 모험을 나타내는 말이었습니다.
그 당시 처녀가 잉태한 사실이 밝혀지면 모세를 통하여 세워 놓은 율법에 의하여 당장에 돌멩이에 맞아 죽을 것을 알면서도 마리아는 현실의 환경을 넘어서 '주여 뜻대로 하시옵소서. 계집종이오니 뜻대로 하시옵소서. 저는 죽어도 당신의 것이요, 망해도 당신의 것이오니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늘은 이처럼 지상에 산 실체적인 제물 마리아가 있음으로 해서 예수님을 탄생시켰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신앙생활에도 여러분이 알 수 없는 모험의 길이 많습니다.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가 잉태한 사실을 몽시를 통해 예고받고 요셉은 인간적인 여러가지 고충 때문에 마리아와의 인연을 끊으려고도 하였습니다. 자기와 약혼한 처녀가 잉태했다는 사실은 요셉에게 여러가지 인간적인 고충을 안겨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되어진 모든 사실을 자기가 책임지고 마리아를 구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쉽지않은 초현실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날 여러분에게는 야곱이 간 길, 요셉이 간 길을 가야 할 사명이 있고 예수님이 간 길, 마리아가 간 길을 따라가야 할 사명이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초현실적인 모험적인 고개가 여러분 앞에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⑦ 탄생부터 초현실적인 모험의 길을 걸으신 예수
4천년 역사의 서러움을 안고, 죽든지 살든지 뜻 하나를 위하여 제물로 바쳐질 것을 각오하고 나선 예수님을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만민의 구세주 메시아인 사실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예수님은 탄생부터가 초현실적이었고, 새로운 이상적인 모험의 생애를 보내셨습니다. 오늘날 이것이 미완성된 채 재림시에 요구되는 뜻으로 남아져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의 30여 평생의 생활은 요셉이 예수님에 대해 처음가진 마음 그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예수님보다 자기의 친아들을 더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가정적인 불화에 부딪치면서도 예수님은 그것을 다 넘어갔습니다. 마침내 만민의 메시아인 것을 증거하고 나서는 일 역시 현실적이 아니었습니다.
유대교의 율법의 차원을 넘어서 새로운 하늘의 복음을 들고 나섰던 예수님이었기에 현실적으로 환영받은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는 가정으로부터 세례 요한으로부터 유대교로부터 몰림받아 의지할 곳 없는 자리에 섰습니다. 그러나 의지할 곳 없는 자리에서도 자신을 위안해 줄 곳을 찾은 예수님이 아니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는 예수님은 새로운 신약의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처음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하였을 때는 유대교의 모든 제사장들 혹은 서기관들이 알아줄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졌었습니다. 그런데 3년 공생애 노정을 거치면서부터 예수님의 위치는 점점 떨어져 나중에는 어부들과 보잘것 없는 부녀자들만이 따르는 입장에 처하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유대백성들이 환영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성도들이 인정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회적으로, 교회적으로 어느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길을 가야 했습니다.
⑧ 예수의 비통한 심정
모세가 이스라엘민족 60만 대중을 이끌고 나올 때 그의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혔고 뒤에는 바로의 병거가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60만 대중을 대신하여 그런 죽음의 시험에서 이기고 남을 수 있는 하나의 신조를 갖고 부딪쳤던 것입니다. 그것은 60만 대중을 회생시킬 수 있는 길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5병 2어로 5천여 명의 무리를 배불리 먹였던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날 저무는 무렵 들에 널려 있는 수많은 군중을 바라보시던 예수님의 심정이야 말로 현실적으로는 땅 위의 어떤 사람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심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심정을 갖고 아버지 앞에 부르짖었기 때문에 모험적인 창조역사를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믿고 있는 자신을 재분석하여 예수님의 생애노정에 맞추어 보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다 할진대, 여러분은 예수님의 출생 당시부터 30평생의 모험적인 생활을 거쳐 골고다 산정, 수모와 역경의 생활에서부터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의 운명의 길, 모험적인 죽음의 길을 가신 그 생애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 끝날에 있어서 여러분이 예수님께 드릴 수 있는 선물이 있다 할진대 그것은 무엇일 것인가. 생애를 바쳐 모험적인 과정을 거쳐간 예수 그리스도의 안타까운 마음을 가슴에 품고, 온 세계를 대하여 온 하늘 땅을 대하여 누구보다도 훌륭한 제물, 하늘 땅 전체를 동원시켜도 찾을 수 없는 유일한 우주적인 모험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자신을 위해 오시지 않았습니다. 먼저는 역사를 위해 오셨고, 이스라엘백성과 교단을 위해 오셨습니다. 따르고 있는 제자들을 위해서 오셨고, 나아가서는 민족과 국가, 세계 그리고 천주를 위해서 오셨습니다. 죽음까지도 자신을 위한 죽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의 걸음을 어느 누가 옳다고 하였습니까? 죽음의 고개에서는 사랑하는 제자들로부터도 배반당하고, 홀로 남겨져 모든 것을 책임지고 나서야 했던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에 인간들 대해 서러워하고 원망하려면 땅을 치며 울고 울어도 30평생의 원한을 다 풀 수 없고 그동안 받았던 고충을 보상받을 길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시 인류가 사탄 치하에서 고통당할 것을 염려하여 긍휼의 심정으로써 십자가에 못박히는 죽음의 자리에서까지도 배반한 민족, 배반한 제자, 배반한 모든 인류를 위하여 기도하신 분이었습니다. 서러움의 예수였던 연고로 그분은 이 땅의 선조들이 4천년의 역사를 들어 호소하여도, 그 당시의 모든 인간을 들어 호소하여도 그들의 친구가 될 수 있었고, 반대하던 민족을 위하여 자신을 치고 반대하는 원수들을 위하여 기도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천상과 지상에 사무친 죄악의 담을 헐기 위한 우주적인 모험의 행사였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라면, 여러분은 그 만왕의 왕의 왕비가 되기 위해 그의 약속을 믿고 죽든 살든 모든 것을 뜻 앞에 맡기고 생활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생애, 예수님의 소망은 뜻을 위해 살다 뜻을 위해 그렇게 죽는 것이었습니다.
⑨ 선조들과 예수를 본받아 모험의 길을 가야 할 우리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 것인가?
죽음의 자리에서도 인류를 위해 복을 빌어 주셨고 원한의 심정에 사무친 내적 슬픔을 모두 지니고 가신 예수님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땅 위에 뜻 하나를 세워 놓고 모험의 길을 가신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들의 마음에 옮겨 가져야 하겠고, 예수님의 죽음을 깨달아 오늘날 우리들이 우주적인 모험의 길을 통하여 예수님의 마음속에 사무친 원한을 풀어드려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아버지 앞에 복을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복 달라고 빌기 전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 못했던 내적 슬픔의 심정을 깨달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 선지 선열들의 걸어간 생애노정과 예수 그리스도가 걸어가신 생애노정을 오늘날 우리들이 본받아 걸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어느 누가 어느 때 어떠한 조건을 제시한다 할지라도 초현실적인 자신을 세워 우주만상 앞에 호소할 수 있고, 천상의 뜻을 대신한 자로서 나설 수 있는 각오와 배짱을 갖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⑩ 모험적인 제물로 바쳐져야 할 우리
이제 재림의 날이 가까운 오늘날에 있어서 여러분은 6천년 역사의 최후에 남은 하나의 우주적이고 모험적인 임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여기서 모험적인 내적 각오를 갖고 나서야만이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초현실적인 모험의 노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는 진전되어 나왔습니다.
이런 우주적인 모험의 관문을 거쳐야만이 최후의 승리의 깃발을 들고 아버지 앞에 호산나의 개가를 부를 수 있으며, 우주적인 신부의 입장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또 그래야만 어떠한 조건에도 걸리지 않을 것이고, 또한 어떤 환경에서 어떤 핍박과 비난이 있을지라도 초현실적인 모험의 기준을 세우는 하늘의 왕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왕자가 되겠다는 각오를 가진 자라야만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최종적으로 책임지고 그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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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초현실적인 모험성
1956.12.02 (일), 한국 전본부교회
오늘 봉독한 말씀 가운데는 예수님이 최후의 십자가를 앞에 놓고 일대 모험적인 각오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그래서 오늘 여러분과 생각하려는 말씀의 제목은'하나님의 섭리와 초현실적인 모험성'입니다.'하나님의 섭리와 초현실적인 모험성'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날 믿고 있는 우리들은 우주적인 심판의 날을 앞에 놓고 끊임없이 싸움의 노정을 거쳐 나가고 있습니다.이 노정은 평탄한 노정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일대 모험적인 중심을 세워 놓고 남아진 우주의 원한의 심판을 밀어낼 수 있는 승리적인 중심을 갖지 못한다 할진대는, 여러분들은 역사노정의 패배자가 될 것이며, 생애노정의 패배자가 될 것입니다.
① 최후의 우주적인 심판과 자기 인식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역사는 모험적으로 출발하여 모험적인 종결을 예고하는 섭리역사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과 여러 조건들이 갖추어진 것은 여러분 자신들이 이루어 놓은 것이 아닙니다.내가 이렇게 자유로운 입장에서 하나님을 부르고, 자유로운 입장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우리의 선조들이 수많은 모험의 고개를 넘어 왔기 때문입니다.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그리고 여러분이 생활에서나 신앙노정에서 이것을 뼈저리게 느끼지 못한다 할진대는, 최후의 우주적인 심판의 고개를 넘을 수 없다는 것도 깨닫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에 앞서 여러분은 하늘이 오늘의 나 한 자체를 불러 세우신 것은 무슨 연유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6천년의 역사적인 원한의 고개를 넘고 있는 나 한 자체는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을 스스로 해명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오늘의 나는 천추의 원한과 사탄으로 말미암아 막혀진 우주적인 원한의 고개를 넘을 수 있는 자유의 중심을 만들어 놓았는가, 또 미래에 남아진 원한의 심판대를 자신있게 넘을 수 있는 승리적인 중심을 가졌는가 하는 문제 등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오늘날 여러분의 신앙은 어느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까?
여러분은 역사적인 과정을 거치고, 현실적인 과정을 거치고, 미래적인 과정을 통하여 전체적인 하늘의 섭리가 완결될 때까지 하늘과 관계맺고 있는 나로서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여러가지 문제들을 생각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이제 하늘이 내 한 자체를 세워서 끝날의 전체적인 사명을 위탁하시고, 나를 세워 승리의 영광을 드러내려고 하시는 뜻이 있다 할진대, 그 뜻은 6천년의 섭리의 뜻을 대신한 뜻일 것입니다.그리고 하늘이 나를 찾아 세우시려는 기준은 최후의 심판의 고개를 넘어서는 것입니다.즉, 신천지의 새로운 기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이 영원무궁토록 살아갈 수 있는 신천지의 기준과 승리적인 자유의 환경을 갖추지 못한다면 역사과정을 거쳐 오신 하나님의 섭리 앞에 여러분은 승리자로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과거를 회고해 볼 때, 하늘이 오늘날 나를 세우신 것은 나 하나만을 구하기 위해서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역사적인 원한을 해명하기 위한 결실체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이것을 여러분은 명심하여 아담으로부터 맺혀진 타락의 원한을 풀어드려야 되겠습니다.또 노아의 모험적인 원한의 심정을 풀어드려야 되겠고, 노아의 모험적인 생애를 풀어드려야 되겠습니다.
그 이후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삭, 야곱, 그리고 모세 등 역대 선지 선열들이 걸어간 모험적인 생애, 그분들이 남기신 유업을 여러분이 맡아 가지고 그것을 하나의 발판으로 삼아 미래에 남아진 심판대를 자신있게 넘을 수 있는 자신있는 중심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그렇지 않는다 할진대는 사탄과의 역사적인 싸움에서 낙오자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② 모험의 길을 걸어간 노아
이제 과거의 우리 선조들을 회고해 봅시다. 먼저 노아의 일생을 보면 평탄한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120년 후에 세상을 물로 심판할 것이니 아라랏산 꼭대기에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을 받게 될 때의 노아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열 이틀도 아니요, 십이년도 아니요, 120년이었으니…. 아라랏산 꼭대기에 방주를 지으라는 그 말씀은 그때의 현실과는 부합될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그러한 명령을 받고 실행해 나가는 노아의 그때의 실정으로 보면, 그야말로 미친 사람이요, 그 시대에 도저히 부합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명령을 받은 노아는 내적으로 굳은 각오와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그리고 하루도 아닌 120년이란 기간을 꾸준히 한날을 바라보고 생활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노아야말로 1600년 역사과정에 없었던, 1600년 역사를 대신하여 하늘 앞에 세워진 모험적인 선봉자였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정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이야 주관해 주시든 말든, 세상 사람들이야 욕을 하든 말든, 한번 내리신 명령을 변치 않는 약속의 뜻으로 믿고 나가는 노아에게는 그 모든 조건들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뜻을 위해 출발한 기준, 생명을 각오하고, 생애를 포기하고 나선 그의 발걸음 앞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120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통해 거듭되는 수고의 노정을 말없이 걸어가셨던 것입니다.
그런 노아에게는 가정적인 비난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회적인 비난도 컸을 것입니다.그러나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길,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 1600년 역사과정에 아무도 가보지 않은 그 길, 오직 천상의 길을 타개하기 위해 나선 노아의 발걸음을 어느 누구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노아는 그때의 사회환경이 가로막고 온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밀어제친다 하더라도, 그것을 당당히 물리칠 수 있는 모험적인 사람이었음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노아는 자신의 앞길에 어떠한 시험이나 어려움이 닥쳐올지라도 그것을 기필코 헤쳐나갔고, 120년이 지난 후에는 아담 가정이 잃어버린 복귀된 하나의 가정을 찾아 세웠던 것입니다. 이러한 노아의 역사적인 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는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은 그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든 고향 산천을 뒤로하고 일가친척과 이웃을 다 포기한 채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하실 때, 아브라함의 심정은 참으로 막연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은 자기가 지금까지 살던 모든 환경을 초월했습니다. 가정을 초월하여 지금까지 알뜰하게 살아온 살림을 전부 포기하고 보따리를 들고 나섰습니다.이러한 아브라함의 걸음은 그야말로 당시의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뜻을 두고 느끼는 사람, 뜻을 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해도, 어느 누가 아브라함편에 서서'옳소이다.당신이 가는 길이 지당하오니 어서 나를 인도하소서'라고 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세상이 알아주든 몰라주든 뜻을 대한 일편단심의 마음으로 영원히 갈대아 우르를 떠나는 마음으로 나섰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이 이끄시는 대로 발걸음을 옮길 때, 어떠한 모험이 따르는 태산준령이 가로막고, 죽음의 고개가 가로막을지라도 참고 그것들을 뚫고 나갔던 것입니다.
③ 아브라함의 초현실적인 신앙
하나님께서는 우상장수 데라의 맏아들인 아브라함을 빼앗아 가지고 그런 자리에 세우신 것입니다.그렇게 세움받은 아브라함은'이제 내가 가는 길에, 내 사랑하는 부모가 붙들어도, 사랑하는 친구가 붙들어도, 사랑하는 형제가 나를 붙들어도 나의 이 중심은 변할 수 없다'는 확고한 각오를 했습니다.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아브라함은 축복을 이루기 위하여 백세에 만득자로 얻은 이삭까지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받았을때 거기에 순종했습니다.그 명령은 역사상에 없었던 하나의 모험적인 조건이 되는 명령이었습니다.그것은 하늘 땅을 대신하고, 천상의 일이나 지상의 일 등 억천만사를 좌우하는 조건이었는데 이것을 모르면서도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는 그 명령을 받은 후 아들을 제단에 놓고 제사드리려 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제물삼아 칼을 들어 찌르려 했던 아브라함을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이것은 그야말로 초현실적인 의식이었습니다.그 당시에 어느 누가 아브라함의 그런 신앙을 인정해 줄 수 있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제시한 이 모험적인 행동은 곧 아브라함이 하늘에 속한 몸이고 아브라함의 가족이 하늘에 속한 몸들이니, 아브라함은 물론이요 그의 가족과 그의 모든 물질까지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야 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이러한 사실을 아브라함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번제드리는 과정에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이 아들은 내가 낳았으나 당신 것이오니 당신께 드리겠나이다' 하는 마음으로 이삭을 번제하려 했고, 현실적인 환경을 타개했던 것입니다.이러한 역대 선조들의 신앙의 중심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야곱 역시 그러했고 모세 역시 그러했습니다.하나님은 이들을 세우실때 평탄한 길을 걷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야곱은 출생한 후 에서로부터 장자의 기업(基業)을 빼앗는 싸움을 해야 했고, 모세도 나면서부터 싸움의 조건에 걸려 있었습니다.
④ 모험과 혁명의 길을 걸은 모세
모세는 이스라엘민족이 애급땅 원수들의 나라에서 4백년 고난을 거치던 때에 하늘이 불러 세우셨습니다.이리하여 바로의 두려운 압정하에서 3개월 동안 어머니의 보호를 받다가 그 후 바로의 딸에게 붙들림을 받아 궁중에 들어가 40년 생활하였습니다.여러분은 모세의 바로 궁중에서의 생활이 호화롭고 좋은 환경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뜻을 대하는 모세는 애급 궁중에 있었지만 애급 백성이 아니었습니다.이스라엘을 대표한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것이 날이 가면 갈수록 그의 가슴에 사무쳤던 것입니다.그리하여 40평생 홀로 이스라엘의 지조를 품고 생활하던 모세가 궁중을 나왔을 때, 이스라엘 사람이 애급 사람 앞에 억울함을 당하는 것을 보고 참을래야 참을 수 없는 의분심이 폭발되어 애급 사람을 때려 죽였던 것입니다.
그 후 바로 궁중을 나와 가지고 남겨진 이스라엘의 축복의 뜻을 마음에 품고 미디안목자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그 생활은 편안한 생활이 아니었습니다.그 시대의 어떤 사람도 그토록 호화로운 바로 궁중을 버리고 목자 생활을 하는 모세를 이해해 주지 못했습니다.그러나 모세는 낙망하지 않고 하늘을 위한 남 모르는 제단, 이스라엘을 위한 숨은 제단을 쌓아 나갔습니다.이런 모세였던 연고로 80세가 되던 해에 하나님은 그를 택하셨고 민족의 원한을 풀어 줄 수 있는 주인공으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뒤 모세가 옮긴 발걸음은 모두 모험적인 것이었습니다.현실을 초월한 하나님의 섭리의 중심을 품었기 때문에 그의 삶 전체도 초현실적인 것이요, 바라보는 것도 나가 싸운 것도 초현실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모세가 바로 궁중으로 가게 될 때, 하나님이 가라하신 그 길을 가는 모세를 축복해 주고 보호해 주어야 할 텐데,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모세의 가는 길을 막고 모세를 죽이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찌하여 자신의 명령을 받고 가는 모세를 가로막고 죽이려 하셨는가?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여기에 우리 인간이 알 수 없는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고개였습니다.그러나 모세는, 이미 각오한 몸이었으니 죽든지 살든지 뜻 하나만 이루어지기를 비는 심정으로써 하나님이 가로막고 사탄이 가로막는 시험의 조건을 넘어섰던 것입니다.그리하여 바로 궁중에서 초현실적인 하나님의 실존을 확신하여 10여차 이상의 이적 기사를 일으켰던 모세는 4천년 역사상에 없었던 우주적인 모험의 혁명가였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이처럼 모세는 어떤 사람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뜻을 대한 초현실적인 믿음으로 60만 이스라엘민족을 인도했습니다.이런 것을 볼 때 모세의 생애 전체는 초현실적인 모험의 행로였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⑤ 모험의 역사를 각오하신 예수
민족복귀의 대표자인 모세 다음에 세계복귀의 사명자로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예수님은 과거 4천년 역사과정의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초현실적인 생활을 해 나왔다는 것을 아셨습니다.그리고 자기 일신이야말로 선지 선열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위해 왔다가 이루지 못하고 간 뜻을 완성해야 할 책임을 진 일신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역사를 회고하여 본 예수님은 수많은 선지 선열들의 원한이 남아져 있고 아직까지 복귀섭리가 종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종결지어야겠다고 각오했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4천년의 노정을 개척하기 위한 초현실적인 모험의 노정을 걸어가겠다는 각오를 가졌습니다.수많은 선지 선열들의 모험적인 역사노정을 총합한 노정을 걷고도 남을 수 있는 각오를 가졌던 예수님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우주적인 모험의 역사를 청산해야 할 사명을 짊어졌기 때문에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모험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그의 생활 역시 초현실적인 모험의 생활이었습니다. 그리고 최후에는 십자가에 달리는 죽음의 길까지도 초현실적인 모험의 길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의 생애는 무엇을 바탕으로 한 생애였는가. 4천년 역사를 총결산하는 생애였으며, 그때까지 하늘의 원한에 사무쳤던 모험적인 노정을 종결하는 생애였으며, 새로운 승리의 터전을 이루기 위한 지상에 없는 초현실적인 승리의 생애였습니다.
⑥ 마리아와 요셉의 순종심
이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모험적인 생애를 갖고 오시는 예수님 앞에 성모 마리아와 같은 사람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될 뻔 했는가. 성모 마리아와 같은 동정녀 마리아가, 즉 하늘의 여성이 없었던들 예수 그리스도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땅 위에 마리아와 같은 모험적인 제물의 토대가 없었다 할진대 모험적인 노정을 거쳐 새로운 생명을 갖고 태어나야 했던 예수의 탄생은 있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서'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고 일러 주었을 때 마리아는'내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그게 무슨 일이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천사는 다시'능치 못함이 없으신 하나님이 너를 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때 마리아는'주여 저는 계집종이오니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한마디가 우주적인 모험을 나타내는 말이었습니다.
그 당시 처녀가 잉태한 사실이 밝혀지면 모세를 통하여 세워 놓은 율법에 의하여 당장에 돌멩이에 맞아 죽을 것을 알면서도 마리아는 현실의 환경을 넘어서'주여 뜻대로 하시옵소서. 계집종이오니 뜻대로 하시옵소서. 저는 죽어도 당신의 것이요, 망해도 당신의 것이오니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늘은 이처럼 지상에 산 실체적인 제물 마리아가 있음으로 해서 예수님을 탄생시켰던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믿고 나가는 신앙생활에도 여러분이 알 수 없는 모험의 길이 많습니다.자기와 약혼한 마리아가 잉태한 사실을 몽시를 통해 예고받고 요셉은 인간적인 여러가지 고충 때문에 마리아와의 인연을 끊으려고도 하였습니다. 자기와 약혼한 처녀가 잉태했다는 사실은 요셉에게 여러가지 인간적인 고충을 안겨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되어진 모든 사실을 자기가 책임지고 마리아를 구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초현실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날 여러분에게는 야곱이 간 길, 요셉이 간 길을 가야 할 사명이 있고 예수님이 간 길, 마리아가 간 길을 따라가야 할 사명이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초현실적인 장면이 여러분에게 가로놓여 있다는 것, 초현실적으로 통할 수 있는 모험적인 고개가 여러분 앞에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⑦ 탄생부터 초현실적인 모험의 길을 걸으신 예수
4천년 역사의 서러움을 안고, 죽든지 살든지 뜻 하나를 위하여 제물로 바쳐질 것을 각오하고 나선 예수님을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만민의 구세주 메시아인 사실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예수님은 탄생부터가 초현실적이었고, 새로운 이상적인 모험의 생애를 보내셨습니다. 오늘날 이것이 미완성된 채 재림시에 요구되는 뜻으로 남아져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에서 생활하고 자라게 될 때부터 뜻에 대한 근심과 걱정이 있었습니다. 동생들의 비난도 받고 참소도 받았습니다. 예수의 30여 평생의 생활은 요셉이 예수님에 대해 처음가진 마음 그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예수님보다 자기의 친아들을 더 사랑했다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역시 당시 사회형태에 맞는 가정 환경을 갖지 못하였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의붓자식처럼 사시다가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되었던 예수님의 모든 생활은 초현실적인 생활이었습니다. 그러한 환경에서 모든 가정적인 불화에 부딪치면서도 예수님은 묵묵한 가운데 그것을 다 넘어갔습니다. 마침내 뜻을 갖고 나타나 만민의 메시아인 것을 증거하고 나서는 일 역시 현실적이 아니었습니다.
오랜 역사를 통하여 유대교의 신조로 세워 놓은 율법의 차원을 넘어서 새로운 하늘의 복음을 들고 나섰던 예수님이었기에 가는 곳곳마다 머무는 곳곳마다 현실적으로 환영받은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는 가정으로부터 세례 요한으로부터 유대교로부터 몰림받아 의지할 곳 없는 자리에 섰습니다. 그러나 의지할 곳 없는 자리에서도 자신을 위안해 줄 곳을 찾은 예수님이 아니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는 예수님은 새로운 신약의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처음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하였을 때는 유대교의 모든 제사장들 혹은 서기관들이 알아줄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졌었습니다. 그런데 3년 공생애 노정을 거치면서부터 예수님의 위치는 점점 떨어져 나중에는 어부들과 보잘것 없는 부녀자들만이 따르는 입장에 처하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념을 세워야 할 예수님 앞에 약속으로는 영원한 약속이 있어야 했고 뜻으로서는 영원한 뜻이 있어야 했었는데, 현실에서는 그런 것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빈들에서 5천여명의 무리를 모아 놓고 그들을 위하여 하늘을 향해 축사하시던 예수님의 심정,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간곡히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심정은 땅 위의 어느누구와도 비할 수 없는 서러움에 사무친 심정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4천년 역사상에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모험적인 생활을 하는 비장한 각오와 내적인 서러움을 품고 싸웠으나, 예수님의 내적 서러움에 비길 바가 못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4천년 역사의 모든 원한의 심정을 뚫고 올라가 하나님의 내적 서러움의 심정을 충족시켜드려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유대백성들이 환영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유대성도들이 인정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회적으로, 교회적으로 어느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길을 가야 했습니다.어디를 가나 자유로운 환경에 머무를 수도 없는 입장에 처했던 예수님이었습니다.
⑧ 예수의 비통한 심정
모세가 이스라엘민족 60만 대중을 이끌고 나올 때 그의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혔고 뒤에는 바로의 병거가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60만 대중을 대신하여 그런 죽음의 시험에서 이기고 남을 수 있는 하나의 신조를 갖고 부딪쳤던 것입니다. 그것은 60만 대중을 회생시킬 수 있는 길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5병 2어로 5천여 명의 무리를 배불리 먹였던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날 저무는 무렵 들에 널려 있는 수많은 군중을 바라보시던 예수님의 심정이야 말로 현실적으로는 땅 위의 어떤 사람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심정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하늘 앞에 찾아져야 할 일대 모험의 심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심정을 갖고 아버지 앞에 부르짖었기 때문에 모험적인 창조역사를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모험적으로 탄생하신 예수님, 살면서 모험의 길을 가신 예수님, 최후에 십자가에 못박힘을 당할 때까지도 모험적인 표준으로 돌아가셨던 예수님이신 것을 우리는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예수의 생활은 그저 있으나마나한 미미한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점잖고 멋있는 그런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믿고 있는 자신을 재분석하여 예수님의 생애노정에 맞추어 보아야 되겠습니다.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다 할진대, 여러분은 예수님의 출생 당시부터 30평생의 모험적인 생활을 거쳐 골고다 산정, 수모와 역경의 생활에서부터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의 운명의 길, 모험적인 죽음의 길을 가신 그 생애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야말로 예수님의 생애는 모험으로 출발하여 모험으로 끝나는 생애였습니다.신랑으로 오셨으나 쓸쓸하게 죽음의 길을 가신 예수님, 나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님, 나를 구하기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님의 뼈살에 사무치는 비통한 심정을 우리는 시간시간 마음으로 느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 끝날에 있어서 여러분이 예수님께 드릴 수 있는 선물이 있다 할진대 그것은 무엇일 것인가.생애를 바쳐 모험적인 과정을 거쳐간 예수 그리스도의 안타까운 마음을 가슴에 품고, 온 세계를 대하여 온 하늘 땅을 대하여 누구보다도 훌륭한 제물, 하늘 땅 전체를 동원시켜도 찾을 수 없는 유일한 우주적인 모험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거쳐 오신 하나님의 원한의 심정을 깨달아 천한 자리에서부터 올라가야 되겠습니다. 즐거운 자리에서 어떤 일을 맡고자 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뜻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심정을 갖고 생활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땅을 위하여 죽은 예수 그리스도가 땅을 대하여 원망한다면 그 이상 원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을 위해 오시지 않았습니다. 먼저는 역사를 위해 오셨고, 이스라엘교단을 위해서 오셨고, 이스라엘백성을 위해 오셨습니다. 따르고 있는 제자들을 위해서 오셨고, 나아가서는 민족과 국가, 세계 그리고 천주를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의 삶은 민족과 국가와 세계 그리고 천주를 위한 삶이었고 죽음까지도 자신을 위한 죽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의 걸음을 어느 누가 옳다고 하였습니까? 죽음의 고개에서는 사랑하는 제자들로부터도 배반당하고, 홀로 남겨져 모든 것을 책임지고 나서야 했던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에 인간들 대해 서러워하고 원망하려면 땅을 치며 울고 울어도 30평생의 원한을 다 풀 수 없고 그동안 받았던 고충을 보상받을 길이 없을 것입니다.그러나 예수님은 당시 인류가 사탄 치하에서 고통당할 것을 염려하여 긍휼의 심정으로써 십자가에 못박히는 죽음의 자리에서까지도 배반한 민족, 배반한 제자, 배반한 모든 인류를 위하여 기도하신 분이었습니다. 서러움의 예수였던 연고로 그분은 이 땅의 선조들이 4천년의 역사를 들어 호소하여도, 그 당시의 모든 인간을 들어 호소하여도 그들의 친구가 될 수 있었고, 반대하던 민족을 위하여 자신을 치고 반대하는 원수들을 위하여 기도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4천년 인류 역사상에 없었던 일입니다.또한 이것이 천상과 지상에 사무친 죄악의 담을 헐기 위한 우주적인 모험의 행사였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라면, 여러분은 그 만왕의 왕의 왕비가 되기 위해 그의 약속을 믿고 죽든 살든 모든 것을 뜻 앞에 맡기고 생활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길을 가셨습니다.예수님의 생애는 그러한 생애였습니다. 예수님의 소망은 뜻을 위해 살다 뜻을 위해 그렇게 죽는 것이었습니다.
⑨ 선조들과 예수를 본받아 모험의 길을 가야 할 우리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 것인가. 죽음의 자리에서도 인류를 위해 복을 빌어 주셨고 원한의 심정에 사무친 내적 슬픔을 모두 지니고 가신 예수님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땅 위에 뜻 하나를 세워 놓고 모험의 길을 가신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들의 마음에 옮겨 가져야 하겠고, 예수님의 죽음을 깨달아 오늘날 우리들이 우주적인 모험의 길을 통하여 예수님의 마음속에 사무친 원한을 풀어드려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아버지 앞에 복을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복 달라고 빌기 전에 예수의 가슴 속에 사무친 서러움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의 생애와 십자가의 노정까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예수님과 하나님만이 알고 있는 모험적인 행로의 서러움이 있었음을 오늘날 여러분이 알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 못했던 내적 슬픔의 심정을 깨달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주여! 당신의 원한과 역사적인 모든 원한을 저희가 풀어드리겠사옵니다. 저희를 채찍질하여 주시옵소서. 역사적인 모든 민족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신 그 뜻을 이룰 수 있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 한 자체가 쓰러지지 않고 우주적인 역사를 대신하고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남긴 원한을 해원해 드리는 모험적인 제물로 설 수 있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바라는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가 땅 위에 유업으로 남긴 뜻을 이루는 일입니다. 극한에 떨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다시 이루어야 할 운명이 우리들의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역사는 개체의 모험적인 노정을 거쳐서, 가정을 통하고, 사회를 통하고, 국가를 통하고, 세계를 통하여 흘러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 가운데에서 개인이 뜻을 이루려 할 때는 그 개인의 행로에 모험적인 노정이 가해졌습니다. 가정도 역시 그렇고, 사회도 역시 그러했으며, 국가도 역시 그러했고, 세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이런 모험적인 관문이 여러분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들은 모험적인 생사의 기로와 우주적인 심판대 앞에 서 있는 내 일신의 모험, 내 일신의 생명을 대신하여 민족의 생명을 대신하여, 세계 인류를 대신하여 모험적인 제물로 바쳐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과거 선지 선열들의 걸어간 생애노정과 예수 그리스도가 걸어가신 생애노정을 오늘날 우리들이 어떠한 시대 어떠한 환경에서도 본받아 걸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어느 누가 어느 때 어떠한 조건을 제시한다 할지라도 초현실적인 자신을 세워 우주만상 앞에 호소할 수 있고, 천상의 뜻을 대신한 자로서 나설 수 있는 각오와 배짱을 갖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⑩ 모험적인 제물로 바쳐져야 할 우리
이제 재림의 날이 가까운 오늘날에 있어서 여러분은 6천년 역사의 최후에 남은 하나의 우주적이고 모험적인 임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그 임무가 우주적이라면 여러분도 상대적으로 우주적인 존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모험적인 내적 각오를 갖고 나서야만이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들이 하고 있는 신앙생활과 달리 이뤄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까지 초현실적인 모험의 노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는 진전되어 나왔습니다.
이런 우주적인 모험의 관문을 거쳐야만이 최후의 승리의 깃발을 들고 아버지 앞에 호산나의 개가를 부를 수 있으며, 우주적인 신부의 입장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또 그래야만 어떠한 조건에도 걸리지 않을 것이고, 또한 어떤 환경에서 어떤 핍박과 비난이 있을지라도 초현실적인 모험의 기준을 세우는 하늘의 왕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왕자가 되겠다는 각오를 가진 자라야만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최종적으로 책임지고 그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도합시다.
말씀선집 제1권 18편
소망의 천국을 소유할 자들(훈독본)
1956.12.16 (일), 한국 전본부교회
마태복음 11:1-15
마태복음 11:1-15
오늘 '소망의 천국을 소유할 자들'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으로 볼 때, 하나님은 무형세계의 천국도 소망하셨지만 당신이 친히 임재할 수 있는 실체세계에서의 구체적인 천국을 소망하시어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천상천국과 지상천국이 하나님과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이루어짐으로써 영적인 천국과 실체적인 천국의 영광을 보시기 위해 피조세계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① 하나님의 창조이상과 인간 타락의 결과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지상에서 천국을 이룸으로써 지상에서 천국생활을 하던 인간들이 영원한 천국세계에 들어가 살 수 있게끔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천지 창조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천국과 실체적인 지상천국은 간 곳이 없어지고 천상세계와 지상세계는 사탄이 마음대로 하나님 앞에 참소할 수 있는 서러움의 세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② 구약시대의 섭리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셔야 하고 하나님의 영광으로써 친히 인간을 대해야 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그 섭리가 완성되지 못했으므로 슬픔을 품고 제2차로 천사들을 통하여 인간들을 대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해 나온 것이 구약시대의 섭리역사인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심부름꾼과 같은 입장의 사명자로 세워진 노아와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해 나왔습니다. 어둠에 잠긴 이 땅위의 만민들을 아버지가 대할 수 있는 자리로 끌어올리기 위하여 아브라함 일족을 택하시고 이스라엘민족을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민족을 통하여 인간들이 점진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개척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은 천사들을 시키어 역사하실 수 있는 그 하나의 기준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는 아담 해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완성했다는 기준을 갖춤으로써 아버지를 직접 대할 수 있는 승리적인 터전을 조성하기 위하여 예수가 올 때까지 4천년 동안 수고하셨다는 것입니다.
심부름꾼이 대하는 입장에 놓여 있는 인간을 아들이 대할 수 있는 입장으로 높여 주기 위하여 세우신 분이 예수님이요, 주신 복음이 신약입니다. 그래서 예수 이후의 인간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입장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타락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받지 못한 타락한 인간은 연고로, 6천년 역사를 경과하면서 아들의 사랑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사랑까지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나가는 것입니다.
③ 예수의 사명과 성신의 역할
예수님은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세워야 했습니다. 그것도 영육 아울러 예수와 같은 아들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사명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는데, 인간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들을 영육 아울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리까지 세워 주는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영적으로만 우리를 아들이라, 딸이라 할 수 있는 자리까지 개척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최후의 목적은 이 땅위에서 영육을 갖춘 실체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 수 있는 기준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완성하기 위하여 예수 이후 2천년 동안 역사하고 계신 분이 성신입니다. 성신이 우리가 그를 통하여 하늘 앞에 갈 수 있도록 다리의 역할을 하는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④ 천국 백성의 자격
하나님의 창조의 기준으로 보면 그런 곳이 소망의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권내에서 하나님의 창조목적이던 소망의 천국을 바라고 있는 모습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묵시록 14장 1절에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14만 4천이셨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날 크리스찬들은 신랑 신부의 은사를 표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함께 14만 4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라고 한 것과 같이 아버지의 이름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신랑 되신 예수를 믿고 신부의 자격을 갖춘 그 예수의 사랑을 발판으로 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전체 목적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2천년 동안 수고하여 나오신 목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인간들을 영계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실체세계에서 찾을 때까지 하나님의 섭리는 끝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와서 영적인 아들 딸의 사랑의 권한을 획득할 수 있는 기대를 조성하셨기 때문에, 지상의 인간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어서 하나로 화하고 그 사랑의 권한을 이어받는다 할진대는 영계에서 참소하던 사탄들이, 지상에서 인간들의 죄를 조건삼아 참소하던 사탄들이 참소할 도리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⑤ 완전구원을 위한 수고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최후의 싸움의 표준을 어디에 두었는가? 그것은 예수를 따르던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적인 사랑만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이 영육 아울러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되는 데 두었습니다. 영육 아울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소망이기 때문에, 영적인 구원섭리만을 하신 예수님은 하늘에 가서 완전한 영광을 누리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이 아직까지 지상에서 완전히 이루어지지 못한 연고로 예수를 중심삼은 12사도 이하 낙원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 이 하나의 소망을 표준으로 총동원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끝날에 처해 있는 우리들에게는 섭리노정에서 협조하던 천사들과 수많은 사도들의 수고의 실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수고의 모든 실적과 조건들을 오늘날 우리는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과거의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대신하여 수고하고 협조하던 천천만 성도들과 예수 이하 영계에 있는 모든 영인들의 원한도 우리가 해원해 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끝날에 처한 우리는 과거 역사를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나가게 될 때에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과 삼위신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⑥ 인정단계, 결정단계, 판정단계
여기서의 인정단계란 결혼식 전의 약혼단계라고 할 수 있고 결정단계란 우리가 신부로서 성례식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단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최후에 남아 있는 단계는 판정단계입니다. 이 단계는 하나님이 인간들을 대해 '이는 나의 사랑하는, 나와 영원히 동고동락할 수 있는, 창조이상으로 바라고 소망하던 영원불변의 실체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존재'라고 내세워 하나님이 친히 손을 들어 만물 앞에 반포하는 한날을 갖게 되는 단계입니다.
이 한날을 표준하여 판정을 내리시는 것이 심판입니다.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정을 받고 다음에 성신의 인정을 받는 자리에 서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섭리역사에 비춰 보면 인정단계는 구약시대이고, 결정단계는 신약시대이며, 판정단계는 재림시대입니다.
오늘날까지 역사는 수많은 과정 과정을 거쳐서 종적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종적으로 내려오던 역사가 횡적으로 전개될 때가 옵니다. 6천년 동안 인정적인 섭리, 결정적인 섭리를 거쳐서 판정적인 섭리를 앞두고 있는 우리는 종적으로 흘러 나오던 역사와 세기말적인 횡적인 역사를 거쳐 나가야만 됩니다.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간 수많은 선지 선열들의 뜻을 지상에서 '이루었다' 할 수 있는 한때를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끝날인 오늘날에 있어서는 여러분이 알 수 없는 수많은 이상한 현상들이 벌어집니다. '나는 엘리야, 나는 모세, 나는 바울,나는 사무엘'이라고 하는 사람도 나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남긴 사명을 마저 탕감복귀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끝날에 처해 있는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6천년 동안의 인정적인 섭리와 결정적인 섭리, 그리고 판정적인 섭리 전부를 일신에 걸어 놓고 영육이 합한 하나의 실체로서 통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어야만 사탄의 참소조건에서 벗어나서 하늘 앞에 나갈 수 있다는 거예요.
⑦ 모든 복귀의 단계를 거치려면
하늘의 무한한 세계, 우리의 이상으로 창조하였던 영원한 천국의 이상은 영계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지상의 인간을 통하여 찾아야 합니다.
예수와 성신은 천상에 계시되 실체가 없기 때문에 그 천국 이상을 지상에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체를 가진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 지상에 영원한 천국 이념을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6천년 동안 역사과정을 거쳐 오면서 사탄이 참소하던 그 모든 조건도 벗어나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세 제물, 비둘기와 양과 소를 바칠 때, 양과 소는 쪼개었지만 비둘기 하나를 쪼개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취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최후의 성별의 문을 통과해야 됩니다. 내 개체의 죄 즉, 자범죄와 유전죄, 혈통죄, 역사적인 모든 죄악까지 성별할 수 있고, 밟고 올라서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면 만물을 주관하라 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아들 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친히 나를 사랑한다는 음성이나 혹은 명령을 받았을 때, 그것이 자기 한 개체에 머무는 사랑인 줄 알았다면 큰 오해입니다. 여러분이 그 사랑을 받을 때까지는 6천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은 역사적인 사랑이요, 6천년 역사의 결실을 위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⑧ 인간의 우주적인 가치
그래서 그 존재는 하나님의 품성을 닮고 역사적인 섭리의 뜻 앞에 남아질 수 있는 사랑의 성품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표준하여 하나님은 투쟁의 섭리역사를 전개해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복음을 순간적인 입장에서 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의 뭇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앞으로 영원무궁한 미래의 사람들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복음을 전하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이 영원히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인계해 나가고 있다 할진대, 그 인계해 나가고 있는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 의해 비롯되어졌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여러분의 움직임은 하늘 땅을 대신한 움직임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이 되는 것은 예수와 성신의 소망이요, 천상의 천천만 성도들의 소망입니다. 그들은 참아들 딸이 땅 위에 나와 가지고 하나의 승리의 기준을 세워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또한 그런 기준을 세운 하나님의 친 아들 딸, 참다운 실체가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천하를 얻고도 네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고 하신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⑨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신앙을 하고 있는 여러분들은 얼마나 이러한 우주적인 가치를 느껴 보았습니까? 여러분 자신이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얼마나 인식해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자신있게 외치신 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본받아야 할 하나의 표어입니다. 역사의 종말기인 오늘날 자신을 세워 '나는 변치 않는 하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할 수 있는 존재, 하늘 앞에서 나 사탄 앞에서나 어떠한 사람 앞에서도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 딸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존재를 예수는 찾고 있습니다.
하늘은 역사노정에서 우주적인 사명을 대신하여 싸울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하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있게 맹세하고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아들 딸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분별한 사탄의 참소조건에도 굴하지 않고, 하늘의 어떤 천사가 와서 밀어내려하고, 예수와 성신이 와서 밀어내려고 할지라도 이를 능히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4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와서 십자가를 지고 피 살이 찢겨져 운명하는 그 찰나까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변치 않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운명 당시, 하늘이 자신을 모른다 할 때도, 예수님은 4천년의 복귀역사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변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 영육을 갖춘 하나님의 아들 딸은 그때까지 없었습니다.
⑩ 하나님이 예수를 버리신 이유와 변함 없었던 예수
오랜 역사를 거쳐오면서 인간들이 하나님의 심정을 유린하고 배반했기 때문에, 탕감복귀원리에 의해 예수님이 인간 대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입장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말씀을 하시며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우리의 선조인 아담 해와로부터 그후 4천년 동안 인간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저지른 죄의 탕감을 위해서였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저버렸기 때문에 탕감원칙에 의해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저버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사탄세계에 던져 놓아도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아들은 지옥에 갈지라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신랑되신 예수 앞에 신부가 되기 위해 믿어나온 여러분은 6천년 역사를 대신한 하나님의 아들로 설 수 있어야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사탄을 멋들어지게 참소할 수 있는 사람을 하늘이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역사과정의 수많은 성도들은 어찌하여 예수 그리스도나 성신까지도 사탄의 시험을 받아야 되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영육을 갖추어서 완결지어야 할 사명이 아직까지 완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예수와 성신이 사탄과 벌여온 이 싸움은 언제 끝날 것인가? 하나님에 대한 사탄의 참소가 언제 끝날 것인가? 이것이 끝나려면 예수 그리스도가 실체를 가지고 땅 위에서 4천년 역사를 대신해서 죄와 사탄을 물리쳐 이긴 하나님의 아들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만 6천년 동안 하나님께 참소해온 사탄을 물리치고, 또 예수와 성신이 사탄과 벌여 온 싸움이 끝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식을 갖고, '하나님과 예수, 성신의 체면이 나로 하여금 세워지이다'라고 기도할 수 있는 제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예수님, 성신의 체면을 세워드려야 하겠습니다.
인류를 사랑하여야 할 천륜의 인연을 갖고도 인류를 사랑하시지 못하는 안타까운 입장에 계신 하나님은 내적으로 바로 이러한 조건에 걸려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하늘 땅을 대신하여 자랑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나의 아들'이라고 친히 말씀하실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나오기만 한다면 그때에는 사탄이 참소 못합니다.
하나님은 아들딸의 의식을 완결시켜서 승리의 한날을 아버지 앞에 내세워 가지고 사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존재를 찾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⑪ 하나님이 찾고 있는 사람
지금까지 6천년 역사가 경과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영육이 완결된 하나의 존재를 사탄 앞에 세우고 '네가 지금까지 반대하던 인간들 가운데 영원히 반대할 수 없는 나의 참아들과 참딸을 세우니, 너는 이 앞에 굴복해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이런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재림주가 오신다는 것입니다.
6천년의 역사가 경과한 오늘, 우리는 6천년의 역사적 사명을 결정짓고 판정할 수 있는 하나님의 권한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 대신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서, 철장을 갖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 주님을 거들어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로서 하나님의 일을 대신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싸움질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예요.
인간이 싸우고 사탄이 싸우는 천지가 되기를 바라고 지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천리법도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사랑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그 사랑의 역할을 성신이 대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예수와 성신을 통해 하늘을 찾아나올 수 있었습니다.
⑫ 우리가 특별히 넘어야 할 고개
이제 우리가 특별히 넘어야 할 고개는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과 예수와 성신을 대하여 싸워나오던 사탄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사탄이 어떻게 조건을 세워 침입해 나왔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면 사탄을 자연굴복시킬 수 있고 사탄을 굴복시킨 후에야 하나님은 여러분을 대하여 '나의 영원한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사탄과 싸우기 위해 광야에 설 때, 하루를 금식해서 안되니 열흘을 하고 40일을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한 번 쏜 총알 같은 운명,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예수도 이런 것을 의식하고 나설 때 그 길에서 돌아설래야 돌아설 수 없었던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온 여러분도 돌아설 수 없는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모든 사실들을 여러분들이 알아, 전후좌우로 사탄이 참소하지 못하도록 방비하여 사탄의 침입을 물리치고, 나아가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창조이념으로 볼 때, 비로소 실체를 쓰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아들 딸이 되어가지고 인간 앞에 주관받아야 할 존재를 당당하게 주관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이런 사람이 되기 전에는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천국에 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까지 사탄을 완전히 물리칠 수 있는 사람, 당신의 수고의 심정을 알아줄 수 있는 참아들딸을 찾아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만약 인간들이 하나님의 이 한 수고를 몰라드린다면 이 땅 위에 지상천국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계에서도 천국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⑬ 천국을 소유한 사람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땅 위에서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의 일로를 개척하는 개척자로서 선봉에 서서 깃발을 들고 나서야 하겠습니다.
이제 영육을 갖춘, 실체를 쓴 우리가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이 땅위에 그런 산 존재가 나와야만이 비로소 6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의 심정도 해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관하실 수 있는 하늘과 땅은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해 땅 위에서 책임지고 싸워 승리하는 사람만이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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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소망의 천국을 소유할 자들
1956.12.16 (일), 한국 전본부교회
오늘 여러분들과 같이 생각하려는 말씀의 제목은'소망의 천국을 소유할 자들'입니다.`소망의 천국을 소유할 자들'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으로 볼 때, 하나님은 무형세계의 천국도 소망하셨지만 당신이 친히 임재할 수 있는 실체세계에서의 구체적인 천국을 소망하시어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잘 아는 바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천상천국과 지상천국이 하나님과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이루어짐으로써 영적인 천국과 실체적인 천국의 영광을 보시기 위해 피조세계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① 하나님의 창조이상과 인간 타락의 결과
그런데 인간의 실수, 즉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이렇게 소망하시던 천상천국과 지상천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 또한 여러분이 잘 아는 바입니다. 이러한 천상의 천국이나 지상의 천국도 하나님을 위하여 지은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지으셨던 것입니다.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지상에서 천국을 이룸으로써 지상에서 천국생활을 하던 인간들이 영원한 천국세계에 들어가 살 수 있게끔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천지 창조의 목적이었습니다.그런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천국과 실체적인 지상천국은 간 곳이 없어지고 천상세계와 지상세계는 사탄이 마음대로 하나님 앞에 참소할 수 있는 서러움의 세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타락한 이후 지상은 물론이거니와 천상의 하늘 보좌 밑까지 사탄의 활동 범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영육계의 인간들을 참소해 왔습니다. 사탄이 이런 권한을 갖고 움직여 왔다는 것을 오늘날 믿는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영광의 창조이상을 노래하고 즐거워해야 할 피조세계가 인간의 잘못으로 인해 사탄 앞에 몽땅 넘어가게 된 것은 창조하신 아버님 앞에 서러움을 안겨 드리는 결과가 되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뼈에 사무치게 느끼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더렵혀진 땅을 다시 회복하시려고 남아진 천사들을 통하여 인간과 관계를 맺는 구원섭리를 해 나오고 계십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거룩하신 하나님을 배반한 입장에 서 있는 인간들, 만물에게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여지없이 떨어진 인간들을 하나님께서 다시 대하시기 위하여 구원섭리를 해 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사탄이 지배하고 사탄이 참소하는 인간을 하나님이 주관하시기 위하여, 다리를 놓아서 역사해 나오신 것이 구약시대를 거치고 신약시대를 거쳐서 지금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② 구약시대의 섭리
구약시대에는 주로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셔야 하고 하나님의 영광으로써 친히 인간을 대해야 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그 섭리가 완성되지 못했으므로 슬픔을 품고 제2차로 천사들을 통하여 인간들을 대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해 나온 것이 구약시대의 섭리역사인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심부름꾼과 같은 입장의 사명자로 세워진 노아와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해 나왔습니다. 어둠에 잠긴 이 땅위의 만민들을 아버지가 대할 수 있는 자리로 끌어올리기 위하여 아브라함 일족을 택하시고 이스라엘민족을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민족을 통하여 인간들이 점진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개척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은 천사들을 시키어 역사하실 수 있는 그 하나의 기준을 세우셨습니다.그리고는 아담 해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완성했다는 기준을 갖춤으로써 아버지를 직접 대할 수 있는 승리적인 터전을 조성하기 위하여 예수가 올 때까지 4천년 동안 수고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심부름꾼이 대하는 입장에 놓여 있는 인간을 아들이 대할 수 있는 입장으로 높여 주기 위하여 세우신 분이 예수님이요, 주신 복음이 신약입니다. 그래서 예수 이후의 인간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입장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받아야 할 인간들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받지 못한 연고로, 6천년 역사를 경과하면서 지금까지 우리들이 소망하고 나오는 것은 아들의 사랑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사랑까지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나가는 것입니다.
아들의 사랑을 받아 창조이상을 이룸으로써 사랑을 중심삼고 즐기려 하셨던 하나님과 동고동락할 수 있는 실체를 갖춘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영적으로만이 아니고 이 몸 자체가 하나님이 직접 사랑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은 인간이 타락한 연고로 우리에게 남아지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겠습니다.
③ 예수의 사명과 성신의 역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세워야 했습니다. 그것도 영육 아울러 예수와 같은 아들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사명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는데, 인간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들을 영육 아울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리까지 세워 주는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습니다.영적으로만 우리를 아들이라, 딸이라 할 수 있는 자리까지 개척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정녕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최후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 땅위에서 영육을 갖춘 실체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 수 있는 기준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완성하기 위하여 예수 이후 2천년 동안 역사하고 계신 분이 성신입니다. 성신이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후 지금까지 역사하고 계시지만 하나님의 창조이상의 뜻을 완결지을 섭리적인 발판을 땅 위에 직접 세우고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를 통하여 하늘 앞에 갈 수 있도록 다리의 역할을 하는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지상에서 천국생활을 하며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인가. 무한한 영계, 천상천국에서 살 수 있는 영인체는 어떠한 영인체들인가. 땅 위에서 예수와 성신의 사랑을 받고, 그것을 넘어 직접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사랑의 이상을 중심삼고 화동의 승리자가 된 사람만이 살 수 있는 곳이 지상천국이요, 영원한 천상천국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④ 천국 백성의 자격
하나님의 창조의 기준으로 보면 그런 곳이 소망의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인정할진대, 오늘을 살고 있는 여러분 자체들은 어느 권내에서 하나님의 창조목적이던 소망의 천국을 바라고 있는 모습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묵시록 14장 1절에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14만 4천이셨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에 있는 크리스찬들이 소망하는 하늘의 은사는 무엇을 표준으로 하고 있는가 하면 신랑 신부의 은사를 표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만이 전부인 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함께 14만 4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라고 한 것과 같이 아버지의 이름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신랑되신 예수를 믿고 신부의 자격을 갖춘 다음에는 예수의 사랑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그 예수의 사랑을 발판으로 하여 6천년 동안 친히 인간을 사랑할 수 없었던 하나님이 친히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전체 목적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2천년 동안 수고하여 나오신 목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성도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어느 때에 신랑 신부의 입장을 넘어서서 승리한 영원한 실존체로서 지상에서부터 천상까지, 즉 영생의 천국에 가서까지 아버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화동할 수 있는 실체가 될 것인가. 여러분은 이러한 사랑의 인연을 갖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목적이요,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목적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신랑 신부의 사랑을 소망하여 믿어 나왔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붙들고 아버지 앞에 나아가서'아버님이여! 소원하시던 6천년의 뜻을 저희들이 이루었다는 입장으로 대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이것인 줄 아오니, 아버님이여! 친히 사랑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인간들을 영계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실체세계에서 찾을 때까지 하나님의 섭리는 끝날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와서 영적인 아들 딸의 사랑의 권한을 획득할 수 있는 기대를 조성하셨기 때문에, 지상의 인간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어서 하나로 화하고 그 사랑의 권한을 이어받는다 할진대는 영계에서 참소하던 사탄들이, 지상에서 인간들의 죄를 조건삼아 참소하던 사탄들이 참소할 도리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⑤ 완전구원을 위한 수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담 해와를 사탄이 빼앗아갔는데, 영만 가져간 것이 아니라 영과 육을 합하여 가져갔기 때문에, 하늘편에서는 이 영과 육을 합한 아담 해와를 사탄에게서 되찾아 와 가지고 하나님께서 친히 사랑하실 수 있는 길을 개척하기 위해 오늘 우리 믿는 성도들을 세우셨음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놀라운 우주의 창조적인 하나의 중심을 표준하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최후의 싸움의 표준을 어디에 두었는가? 그것은 예수를 따르던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적인 사랑만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이 영육 아울러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되는 데 두었습니다. 영육 아울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소망이기 때문에, 영적인 구원섭리만을 하신 예수님은 하늘에 가서 완전한 영광을 누리지 못합니다. 하늘에 가서도 땅 위에 있는 우리 인간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이 아직까지 지상에서 완전히 이루어지지 못한 연고로 예수를 중심삼은 12사도 이하 낙원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 이 하나의 소망을 표준으로 총동원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끝날에 처해 있는 우리들에게는 섭리노정에서 협조하던 천사들의 수고의 실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밖에 수많은 사도들의 수고의 실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수고의 모든 실적과 조건들을 오늘날 우리는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과거의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대신하여 수고하고 협조하던 천천만 성도들과 예수 이하 영계에 있는 모든 영인들의 원한도 우리가 해원해 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끝날에 처한 우리는 과거 역사를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나가게 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인정을 받아야 되겠고, 성신의 인정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와 성신의 인정을 받는 단계를 거친 후에는 삼위신이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가를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단계까지 역사하고 있는 것이 신약섭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⑥ 인정단계, 결정단계, 판정단계
여기서의 인정단계란 무엇이냐 하면, 결혼식 전의 약혼단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결정단계란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신부로서 성례식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단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최후에 남아 있는 단계는 어떤 것인가. 이는 판정단계입니다.이 단계는 하나님이 인간들을 대해'이는 나의 사랑하는, 나와 영원히 동고동락할 수 있는, 창조이상으로 바라고 소망하던 영원불변의 실체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존재'라고 내세워 하나님이 친히 손을 들어 만물 앞에 반포하는 한날을 갖게 되는 단계입니다. 이것이 왈 판정의 단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섭리해 나오셨지만 아직까지 우주적인 판정의 날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이 한날을 표준하여 내리시는 것이 심판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판정의 문을 거쳐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만물을 주관하라 하시며 축복하시던 그 축복을 인계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늘백성답게 나서가지고'아버지여! 사랑하시옵소서. 나의 이러이러한 역사적인 조건을 보시사 그리스도의 소망의 뜻을, 성신과 하나님의 바라신 뜻을 제가 알았사오니, 아버님, 축복하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인물이 끝날 지상에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을 내세워 판정한 후에야 온 피조만물도 우리들을 하나님의 친 아들딸로 섬겨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과 친아들딸의 관계를 맺고 난 연후에야 사탄이 굴복합니다.
이러한 섭리역사를 앞에 둔 여러분에게는 여러분 자체를 분별하여 어떠한 위치에 설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정을 받고 다음에 성신의 인정을 받는 자리에 서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섭리역사에 비춰 보면 인정단계는 구약시대이고, 결정단계는 신약시대이며, 판정단계는 재림시대입니다.
오늘날까지 역사는 수많은 과정 과정을 거쳐서 종적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종적으로 내려오던 역사가 횡적으로 전개될 때가 옵니다. 6천년 동안 인정적인 섭리, 결정적인 섭리를 거쳐서 판정적인 섭리를 앞두고 있는 우리는 종적으로 흘러 나오던 역사와 세기말적인 횡적인 역사를 거쳐 나가야만 됩니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하나님의 역사는 사탄과의 싸움의 역사였습니다. 6천년 동안 그렇게 사탄과 싸워 나왔지만 아직까지 결판이 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와서 수고하였지만 땅 위에서 하나님이 요구하던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간 수많은 선지 선열들의 뜻을 지상에서'이루었다' 할 수 있는 한때를 여러분이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끝날인 오늘날에 있어서는 여러분이 알 수 없는 수많은 이상한 현상들이 벌어집니다.'나는 엘리야다' 하는 사람도 나올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올 것입니다.'나는 엘리야, 나는 모세, 나는 바울'이라 하는 사람, 혹은 사무엘이라고 하는 사람도 나올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왜 벌어지는가 하면 탕감복귀의 원리 때문입니다. 즉, 그들이 남긴 사명을 마저 탕감복귀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탕감복귀 과정에서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중심삼고 사탄과 싸웠으나 승리의 기준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의 사명이 후대에까지 연장되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사명을 맡은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들이 사명을 대신 맡은 것을 모르고 자기가 바울이다, 엘리야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끝날에 처해 있는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6천년 동안의 인정적인 섭리와 결정적인 섭리, 그리고 판정적인 섭리 전부를 일신에 걸어 놓고 영육이 합한 하나의 실체로서 통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어야만 역사과정에 맺혀진 사탄의 참소조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하늘 앞에 나갈 수 있다는 거예요.
⑦ 모든 복귀의 단계를 거치려면
이제 여러분, 끝날의 성도들은 마음을 넓혀야 되겠습니다. 하늘의 무한한 세계, 우리의 이상으로 창조하였던 영원한 천국의 이상을 오늘날 지상의 인간들이 찾아야 됩니다.영계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찾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인간을 통하여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와 성신은 천상에 계시되 실체가 없기 때문에 그 천국 이상을 지상에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체를 가진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 지상에 영원한 천국 이념을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6천년 동안 역사과정을 거쳐 오면서 사탄이 참소하던 그 모든 조건도 벗어나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세 제물, 비둘기와 양과 소를 바칠 때, 양과 소는 쪼개었지만 비둘기 하나를 쪼개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취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최후의 성별의 문을 통과해야 됩니다. 내 개체의 죄 즉, 자범죄와 유전죄, 혈통죄, 역사적인 모든 죄악까지 성별할 수 있고, 밟고 올라서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면 만물을 주관하라 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아들 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탕감복귀역사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여러분은 개체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개인을 대하고 있고 여러분을 사랑한다지만 그 사랑은 여러분 하나를 위한 사랑이 아닙니다. 6천년 동안 복귀 섭리해 나오는 과정에서 수고하던 선조들의 결실로서 베푸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이 끝날에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친히 나를 사랑한다는 음성이나 혹은 명령을 받았을 때, 그것이 자기 한 개체에 머무는 사랑인 줄 알았다면 큰 오해입니다. 여러분이 그 사랑을 받을 때까지는 6천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은 역사적인 사랑이요, 6천년 역사의 결실을 위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⑧ 인간의 우주적인 가치
그래서 그 존재는 하나님의 품성을 닮고 역사적인 섭리의 뜻 앞에 남아질 수 있는 사랑의 성품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이러한 것을 표준하여 하나님은 투쟁의 섭리역사를 전개해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4천년 복귀섭리 역사가 경과한 후 하나의 사랑의 실체로 나타나게 될 때에 수많은 종교와 수많은 종족을 통합하여 결실시킬 수 있는 하나의 실체로 하늘이 자신을 세우셨음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유대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도 자기의 주장을 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예수가 주장한 복음은 4천년 역사를 거쳐 오면서 수고한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대신하여 실체로서 주장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복음을 순간적인 입장에서 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의 뭇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앞으로 영원무궁한 미래의 사람들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복음을 전하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이 영원히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인계해 나가고 있다 할진대, 그 인계해 나가고 있는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 의해 비롯되어졌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움직임은 하늘 땅을 대신한 움직임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이 되는 것은 예수와 성신의 소망이요, 천상의 천천만 성도들의 소망입니다. 그들은 참아들 딸이 땅 위에 나와 가지고 하나의 승리의 기준을 세워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또한 그런 기준을 세운 하나님의 친 아들 딸, 참다운 실체가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우리는 깨달아 내 한 자체를 지극히 미미한 존재로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천하를 얻고도 네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고 하신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신앙을 하고 있다는 크리스찬들, 믿고 있다는 오늘 여기 모인 여러분들, 여러분들은 얼마나 이러한 우주적인 가치를 느껴 보았습니까? 여러분 자신이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얼마나 인식해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자신있게 외치신 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본받아야 할 하나의 표어입니다. 역사의 종말기인 오늘날 자신을 세워'나는 변치 않는 하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할 수 있는 존재, 하늘 앞에서나 사탄 앞에서나 어떠한 사람 앞에서도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딸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존재를 예수는 찾고 있습니다. 이런 존재를 예수가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⑨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생명의 표준을 신앙적으로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늘은 역사노정에서 우주적인 사명을 대신하여 싸울 수 있는 사람,'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하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있게 맹세하고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아들 딸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분별한 사탄의 참소조건에도 비굴하지 않고, 하늘의 어떤 천사가 와서 밀어내려고 할지라도 이를 막아낼 수 있으며, 예수와 성신이 와서 밀어내려고 할지라도 이를 능히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4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와서 십자가를 지고 피 살이 찢겨져 운명하는 그 찰나까지'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변치 않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운명 당시, 하늘이 자신을 모른다 할 때도, 예수님은 4천년의 복귀역사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변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 영육을 갖춘 하나님의 아들 딸은 그때까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의 서러움에 부딪치고 쓰러지고 또 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나 나갈 수 있었던 하나의 기준을 세운 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자신은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는 아들이라는 인식이었습니다. 이 인식을 가지고 예수님은 어떤 어려움도 물리치면서 당당하게 싸워 나가셨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소망과 포부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 이 소망과 포부를 인간 세계에서 실천해야 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생각지도 않았던 십자가가 웬 말입니까? 여러분이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에 공명될 수 있는 입장에서 아무리 땅을 치고 만물을 저주해도 그의 서러움은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⑩ 하나님이 예수를 버리신 이유와 변함없었던 예수
오랜 역사를 거쳐오면서 인간들이 하나님의 심정을 유린하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에, 탕감복귀원리에 의해 예수님이 인간 대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입장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말씀을 하시며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우리의 선조인 아담 해와로부터 그후 4천년 동안 인간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저지른 죄의 탕감을 위해서였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저버렸기 때문에 탕감원칙에 의해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저버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사탄세계에 던져 놓아도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아들은 지옥에 갈지라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런 중심을 갖고 30여 년의 생애를 바쳐 수고하다 가신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이제 이런 예수님을 믿고 있는 오늘날 여러분, 신랑되신 예수 앞에 신부가 되기 위해 믿어나온 오늘날 여러분들, 여러분은 6천년 역사를 대신한 하나님의 아들로 설 수 있어야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사탄을 멋들어지게 참소할 수 있는 사람을 하늘이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역사과정의 수많은 성도들은 어찌하여 예수 그리스도나 성신까지도 사탄의 시험을 받아야 되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영육을 갖추어서 완결지어야 할 사명이 아직까지 완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예수와 성신이 사탄과 벌여온 이 싸움은 언제 끝날 것인가. 하나님에 대한 사탄의 참소가 언제 끝날 것인가? 이것이 끝나려면 예수 그리스도가 실체를 가지고 땅 위에서 4천년 역사를 대신해서 죄와 사탄을 물리쳐 이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신있게 말한것과 같은 중심을 가진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만 6천년 동안 하나님께 참소해온 사탄을 물리치고, 또 예수와 성신이 사탄과 벌여 온 싸움이 끝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기독교인들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알고 보면 그런 것입니다.
낙원에 있는 불쌍한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날까지도 죄인된 인간들을 찾아야 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다 쉬는 시간에도 예수는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신도 쉬지 못합니다. 하나님도 쉬시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조금도 쉴 시간이 없는 역사를 거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식을 갖고,'하나님의 체면과 예수의 체면과 성신의 체면이 나로 하여금 세워지이다'라고 기도할 수 있는 제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체면을 세워드려야 하겠습니다. 예수의 체면을 세워드려야 하겠습니다. 성신의 체면을 세워드려야 하겠습니다.
인류를 사랑하여야 할 천륜의 인연을 갖고도 인류를 사랑하시지 못하는 안타까운 입장에 계신 하나님은 내적으로 바로 이러한 조건에 걸려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하늘 땅을 대신하여 자랑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나의 아들'이라고 친히 말씀하실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나온다면, 나오기만 한다면 그때에는 사탄이 참소 못합니다. 그때에는 사탄이 참소하지 못한다는 것이예요.
예수 그리스도가'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식을 가지셨던 것과 같이, 이제 예수와 성신의 수고를 인계받아서 6천년 역사의 종말기인 오늘날, 온 우주와 대립해 서서도'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바라시는 뜻이 이것입니다.나는 역사를 대신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할 수 있는 성도들, 이런 관념을 찾아 나아가려는 성도가 이 나라 한국에 많다면, 그러한 성도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한국에 많다면 한국은 세계의 중심국가가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아들딸의 의식을 완결시켜서 승리의 한날을 아버지 앞에 내세워 가지고 사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존재, 하늘이 이런 존재를 찾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⑪ 하나님이 찾고 있는 사람
지금까지 6천년 역사가 경과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영육이 완결된 하나의 존재를 사탄 앞에 세우고'네가 지금까지 반대하던 인간들 가운데 영원히 반대할 수 없는 나의 참아들을 세우니, 참딸을 세우니, 너는 이 앞에 굴복해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이런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재림주가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한다고 성한 사람을 미쳤다고 합니다. 생각할 것은 생각하지 않고서…. 그러나 이것은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겠습니다.
6천년의 역사가 경과한 오늘, 우리는 6천년의 역사적 사명을 결정짓고 판정할 수 있는 하나님의 권한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 대신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서, 철장을 갖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 주님을 거들어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다음에 예수님은 어떻게 했는가 하면, 하나님의 뜻을 위해 싸웠다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지금까지 몰랐던, 아무도 주장하지 않았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된 나, 하나님의 일을 대신 맡은 나라고 인식하고 자신있게 나설 수 있었다는 거예요. 오늘날까지의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있었으나 하나님이 아들로서'하나님의 일을 전부 맡겠나이다'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구주가 되신 것입니다.
오늘날 끝날에 처해 있는 우리는 6천년 역사를 섭리해오신 아버지 앞에'6천년 역사를 대신한 아버지의 아들이오니, 딸이오니, 아버지의 일을 내가 대신 맡겠나이다'하고 나설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예수를 보십시오. 아버지의 일을 할 때에는 망하는 것도 죽는 것도 개의하지 않았습니다. 망하든지 죽든지 개의치 말아야 된다는 거예요. 조건이 없어요, 조건이 없어. 예수님을 보십시오. 사탄을 굴복시키는 길이라면 몸이야 어찌 되든 그 길을 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된, 하나님의 일을 맡을 수 있는 충절의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죽음도 개의치 않고 걸어가신….
이 끝날에 있어서 하나님의 일을 맡았던 예수 그리스도가 남기신 유업을 우리가 인계받았다 할진대, 우리는 죽든 살든, 사탄을 굴복시키는 길이라면 몸이 천갈래 만갈래 찢기는 한이 있더라도 개의치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길을 알고 그 길로 한꺼번에 갈 수 있는 성별된 무리가 나온다면, 이 세상은 하나님의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일을 대신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싸움질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예요.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평화와 사랑의 동산을 이루기 위해 피조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즐거운 가운데서 만물과 관계를 맺기 위해 만물을 지으셨고, 즐거운 가운데서 인간과 관계를 맺기 위해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인간이 싸우고 사탄이 싸우는 천지가 되기를 바라고 지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천리법도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사랑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그 사랑의 역할을 성신이 대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예수와 성신을 통해 하늘을 찾아나올 수 있었습니다.
'성신이여! 예수여! 하나님이여!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라고 하면서 올라가기만 하면 은혜는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끝날이 될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내려오는 때이기에 예수님이 재림한다는 거예요.
오늘날 도의 세계는 올라가는 일로를 개척하고, 이제 영원히 올라갈 길을 찾으려는 사람들만이 있습니다. 그런데 올라갈 줄만 알아서도 안 됩니다. 때와 시기를 통하여 올라가는 단계를 거쳐, 다시 그 은혜를 찾아 내려와서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⑫ 우리가 특별히 넘어야 할 고개
이제 우리가 하늘의 은사를 찾고, 하나님의 아들된 예수를 중심삼아 하나님의 일을 대행하려 하고 대신하려 한다 할진대는, 예수와 성신을 대하여 사탄이 싸워나오던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방편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특별히 넘어야 할 고개는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과 예수와 성신을 대하여 싸워나오던 사탄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사탄이 싸워 나오던 방패가 무엇인가, 사탄이 어떻게 조건을 세워 침입해 나왔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면 사탄을 자연굴복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그런 후에야 하나님은 여러분을 대하여'나의 영원한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은 어떤 존재인가. 사탄은 어떻게 생겼는가. 여기에도 사탄을 닮은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요….
우리 앞에는 우리가 살아서 못가면 죽어서라도 가야 할 우주적인 운명길이 있습니다. 몇억천만년 걸려서라도 내 영이 죽지 않는 이상, 그 영에 의해서라도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영원한 생명노정에서 살아서 이 길을 거쳐나가지 못하면 죽어서라도 가야 합니다. 과거의 선지 선열들도 영원한 생을 위하여 일신상의 문제를 생각지 않고 그 길을 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사탄과 싸우기 위해 광야에 설 때, 하루를 금식해서 안되니 이틀을 하고 열흘을 하고 20일을 하고 40일을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한번 쏜 총알 같은 운명, 폭탄같은 운명, 다시 갈 수 없는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예수도 이런 것을 의식하고 나설 때 그 길에서 돌아설래야 돌아설 수 없었던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온 여러분, 여러분도 돌아설 수 없는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이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도 죽음의 장벽이 가로막게 될 때 비참했습니다. 온 민족이 돌아서고, 온 백성이 돌아서고, 예수를 따르던 사도들이 돌아설 때, 모든 사람이 돌아설 때, 불쌍하다면 이 이상 불쌍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들은 돌아설 수 있는데 죽음의 길에서도 돌아설 수 없는 예수의 입장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고 하늘 뜻을 받들어 나가는 데 있어서도 이러한 결심을 갖고 교회를 인도하고 민족을 인도하고 세계를 위하여 호소한다면 하나님의 아들 딸이 안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각오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영계에 가셨다고 해서 쉬고 계시지 않습니다. 영계에 가서까지도 십자가의 고난과 그 이상의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를 찾기 위하여, 이 땅을 찾기 위하여 사탄과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천주적인 시련과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이때에 여러분은'사탄아 오겠으면 오고 말겠으면 말아라. 나는 변함없이 간다'는 기백을 갖고 시련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왈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아들 딸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딸로서 아버지를 중심삼고 가정을 이루고, 민족을 이루고, 아버지가 사랑하실 수 있는 국가와 세계를 이루고, 나아가 하나님 앞에 합당할 수 있는 지상천국까지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뜻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모든 사실들을 여러분들이 알아, 전후좌우로 사탄이 참소하지 못하도록 방비하여 사탄의 침입을 물리치고, 나아가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창조이념으로 볼 때, 비로소 실체를 쓰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아들 딸이 되어가지고 인간 앞에 주관받아야 할 존재를 당당하게 주관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이런 사람이 되기 전에는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아직까지 천국에 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낙원이라는 것은 중간과정의 영계입니다.
이런 우주적인 운명의 장벽을 헤쳐가려면 공격해오는 사탄을 완전히 물리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이런 사람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수고는 여러분을 통하여 해원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그래서 하나님은 오늘날까지 사탄을 완전히 물리칠 수 있는 사람, 당신의 수고의 심정을 알아줄 수 있는 참아들딸을 찾아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만약 인간들이 하나님의 이 한 수고를 영원히 몰라드린다면 이 땅 위에 지상천국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영계에서도 천국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⑬ 천국을 소유한 사람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땅 위에서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의 일로를 개척하는 개척자로서 선봉에 서서 깃발을 들고 나서야 하겠습니다. 이런 각오와 결심이 여러분에게는 필요합니다.
여러분에게 아버지 앞에 나가고자 하는 소망이 있다 할진대는, 자기 혼자서'억천만 사탄아,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가는 길을 24억 인류가 반대할지라도, 하늘 땅이 반대할지라도 나는 가겠노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각오 밑에서 아버지 앞에 맹세하고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내 한 가정의 핍박, 민족의 핍박, 국가의 핍박, 모든 인류의 핍박이 있다 하더라도, 24억 인류가 통일교회를 없애기 위해서 발버둥친다 하더라도, 나는 거기에서 깨어질 수 없다는 각오를 가지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나갈 것인가, 나가지 말 것인가 하고 망서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나선 길이니 안 갈 수 없는 입장에 있는 우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사탄과 싸우기 위해 나섰다고 하는 여러분, 사탄을 이기고 4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제2의 승리의 아벨로 세워질 수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가 품었던 맹세와 각오, 하나님의 일을 맡아가지고 싸우겠다는 책임감을 여러분은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각오와 맹세, 그런 책임감을 가지고 싸웠기 때문에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영육을 갖춘, 실체를 쓴 우리가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이 땅위에 그런 산 존재가 나와야만이 비로소 6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수고의 심정도,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의 심정도 해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관하실 수 있는 하늘도 우리 것이요, 하나님이 주관 하실 수 있는 땅도 우리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해 땅 위에서 책임지고 싸워 승리하는 사람만이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말씀선집 제1권 18편
소망의 천국을 소유할 자들 (훈독본)
1956.12.16 (일), 한국 전본부교회
마태복음 11:1-15
오늘 '소망의 천국을 소유할 자들'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으로 볼 때, 하나님은 무형세계의 천국도 소망하셨지만 당신이 친히 임재할 수 있는 실체세계에서의 구체적인 천국을 소망하시어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천상천국과 지상천국이 하나님과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이루어짐으로써 영적인 천국과 실체적인 천국의 영광을 보시기 위해 피조세계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과 인간 타락의 결과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지상에서 천국을 이룸으로써 지상에서 천국생활을 하던 인간들이 영원한 천국세계에 들어가 살 수 있게끔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천지 창조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천국과 실체적인 지상천국은 간 곳이 없어지고 천상세계와 지상세계는 사탄이 마음대로 하나님 앞에 참소할 수 있는 서러움의 세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구약시대의 섭리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셔야 하고 하나님의 영광으로써 친히 인간을 대해야 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그 섭리가 완성되지 못했으므로 슬픔을 품고 제2차로 천사들을 통하여 인간들을 대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해 나온 것이 구약시대의 섭리역사인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심부름꾼과 같은 입장의 사명자로 세워진 노아와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해 나왔습니다. 어둠에 잠긴 이 땅위의 만민들을 아버지가 대할 수 있는 자리로 끌어올리기 위하여 아브라함 일족을 택하시고 이스라엘민족을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민족을 통하여 인간들이 점진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개척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은 천사들을 시키어 역사하실 수 있는 그 하나의 기준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는 아담 해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완성했다는 기준을 갖춤으로써 아버지를 직접 대할 수 있는 승리적인 터전을 조성하기 위하여 예수가 올 때까지 4천년 동안 수고하셨다는 것입니다.
심부름꾼이 대하는 입장에 놓여 있는 인간을 아들이 대할 수 있는 입장으로 높여 주기 위하여 세우신 분이 예수님이요, 주신 복음이 신약입니다. 그래서 예수 이후의 인간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입장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타락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받지 못한 타락한 인간은 연고로, 6천년 역사를 경과하면서 아들의 사랑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사랑까지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의 사명과 성신의 역할
예수님은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세워야 했습니다. 그것도 영육 아울러 예수와 같은 아들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사명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는데, 인간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들을 영육 아울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리까지 세워 주는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영적으로만 우리를 아들이라, 딸이라 할 수 있는 자리까지 개척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최후의 목적은 이 땅위에서 영육을 갖춘 실체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 수 있는 기준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완성하기 위하여 예수 이후 2천년 동안 역사하고 계신 분이 성신입니다. 성신이 우리가 그를 통하여 하늘 앞에 갈 수 있도록 다리의 역할을 하는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 백성의 자격
하나님의 창조의 기준으로 보면 그런 곳이 소망의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권내에서 하나님의 창조목적이던 소망의 천국을 바라고 있는 모습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묵시록 14장 1절에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14만 4천이셨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날 크리스찬들은 신랑 신부의 은사를 표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함께 14만 4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라고 한 것과 같이 아버지의 이름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신랑 되신 예수를 믿고 신부의 자격을 갖춘 그 예수의 사랑을 발판으로 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전체 목적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2천년 동안 수고하여 나오신 목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인간들을 영계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실체세계에서 찾을 때까지 하나님의 섭리는 끝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와서 영적인 아들 딸의 사랑의 권한을 획득할 수 있는 기대를 조성하셨기 때문에, 지상의 인간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어서 하나로 화하고 그 사랑의 권한을 이어받는다 할진대는 영계에서 참소하던 사탄들이, 지상에서 인간들의 죄를 조건삼아 참소하던 사탄들이 참소할 도리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완전구원을 위한 수고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최후의 싸움의 표준을 어디에 두었는가? 그것은 예수를 따르던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적인 사랑만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이 영육 아울러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되는 데 두었습니다. 영육 아울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소망이기 때문에, 영적인 구원섭리만을 하신 예수님은 하늘에 가서 완전한 영광을 누리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이 아직까지 지상에서 완전히 이루어지지 못한 연고로 예수를 중심삼은 12사도 이하 낙원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 이 하나의 소망을 표준으로 총동원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끝날에 처해 있는 우리들에게는 섭리노정에서 협조하던 천사들과 수많은 사도들의 수고의 실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수고의 모든 실적과 조건들을 오늘날 우리는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과거의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대신하여 수고하고 협조하던 천천만 성도들과 예수 이하 영계에 있는 모든 영인들의 원한도 우리가 해원해 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끝날에 처한 우리는 과거 역사를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나가게 될 때에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과 삼위신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인정단계, 결정단계, 판정단계
여기서의 인정단계란 결혼식 전의 약혼단계라고 할 수 있고 결정단계란 우리가 신부로서 성례식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단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최후에 남아 있는 단계는 판정단계입니다. 이 단계는 하나님이 인간들을 대해 '이는 나의 사랑하는, 나와 영원히 동고동락할 수 있는, 창조이상으로 바라고 소망하던 영원불변의 실체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존재'라고 내세워 하나님이 친히 손을 들어 만물 앞에 반포하는 한날을 갖게 되는 단계입니다.
이 한날을 표준하여 판정을 내리시는 것이 심판입니다.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정을 받고 다음에 성신의 인정을 받는 자리에 서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섭리역사에 비춰 보면 인정단계는 구약시대이고, 결정단계는 신약시대이며, 판정단계는 재림시대입니다.
오늘날까지 역사는 수많은 과정 과정을 거쳐서 종적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종적으로 내려오던 역사가 횡적으로 전개될 때가 옵니다. 6천년 동안 인정적인 섭리, 결정적인 섭리를 거쳐서 판정적인 섭리를 앞두고 있는 우리는 종적으로 흘러 나오던 역사와 세기말적인 횡적인 역사를 거쳐 나가야만 됩니다.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간 수많은 선지 선열들의 뜻을 지상에서 '이루었다' 할 수 있는 한때를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끝날인 오늘날에 있어서는 여러분이 알 수 없는 수많은 이상한 현상들이 벌어집니다. '나는 엘리야, 나는 모세, 나는 바울,나는 사무엘'이라고 하는 사람도 나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남긴 사명을 마저 탕감복귀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끝날에 처해 있는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6천년 동안의 인정적인 섭리와 결정적인 섭리, 그리고 판정적인 섭리 전부를 일신에 걸어 놓고 영육이 합한 하나의 실체로서 통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어야만 사탄의 참소조건에서 벗어나서 하늘 앞에 나갈 수 있다는 거예요.
모든 복귀의 단계를 거치려면
하늘의 무한한 세계, 우리의 이상으로 창조하였던 영원한 천국의 이상은 영계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지상의 인간을 통하여 찾아야 합니다.
예수와 성신은 천상에 계시되 실체가 없기 때문에 그 천국 이상을 지상에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체를 가진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 지상에 영원한 천국 이념을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6천년 동안 역사과정을 거쳐 오면서 사탄이 참소하던 그 모든 조건도 벗어나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세 제물, 비둘기와 양과 소를 바칠 때, 양과 소는 쪼개었지만 비둘기 하나를 쪼개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취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최후의 성별의 문을 통과해야 됩니다. 내 개체의 죄 즉, 자범죄와 유전죄, 혈통죄, 역사적인 모든 죄악까지 성별할 수 있고, 밟고 올라서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면 만물을 주관하라 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아들 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친히 나를 사랑한다는 음성이나 혹은 명령을 받았을 때, 그것이 자기 한 개체에 머무는 사랑인 줄 알았다면 큰 오해입니다. 여러분이 그 사랑을 받을 때까지는 6천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은 역사적인 사랑이요, 6천년 역사의 결실을 위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우주적인 가치
그래서 그 존재는 하나님의 품성을 닮고 역사적인 섭리의 뜻 앞에 남아질 수 있는 사랑의 성품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표준하여 하나님은 투쟁의 섭리역사를 전개해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복음을 순간적인 입장에서 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의 뭇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앞으로 영원무궁한 미래의 사람들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복음을 전하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이 영원히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인계해 나가고 있다 할진대, 그 인계해 나가고 있는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 의해 비롯되어졌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여러분의 움직임은 하늘 땅을 대신한 움직임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이 되는 것은 예수와 성신의 소망이요, 천상의 천천만 성도들의 소망입니다. 그들은 참아들 딸이 땅 위에 나와 가지고 하나의 승리의 기준을 세워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또한 그런 기준을 세운 하나님의 친 아들 딸, 참다운 실체가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천하를 얻고도 네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고 하신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신앙을 하고 있는 여러분들은 얼마나 이러한 우주적인 가치를 느껴 보았습니까? 여러분 자신이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얼마나 인식해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자신있게 외치신 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본받아야 할 하나의 표어입니다. 역사의 종말기인 오늘날 자신을 세워 '나는 변치 않는 하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할 수 있는 존재, 하늘 앞에서 나 사탄 앞에서나 어떠한 사람 앞에서도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 딸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존재를 예수는 찾고 있습니다.
하늘은 역사노정에서 우주적인 사명을 대신하여 싸울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하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있게 맹세하고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아들 딸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분별한 사탄의 참소조건에도 굴하지 않고, 하늘의 어떤 천사가 와서 밀어내려하고, 예수와 성신이 와서 밀어내려고 할지라도 이를 능히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4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와서 십자가를 지고 피 살이 찢겨져 운명하는 그 찰나까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변치 않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운명 당시, 하늘이 자신을 모른다 할 때도, 예수님은 4천년의 복귀역사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변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 영육을 갖춘 하나님의 아들 딸은 그때까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버리신 이유와 변함 없었던 예수
오랜 역사를 거쳐오면서 인간들이 하나님의 심정을 유린하고 배반했기 때문에, 탕감복귀원리에 의해 예수님이 인간 대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입장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말씀을 하시며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우리의 선조인 아담 해와로부터 그후 4천년 동안 인간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저지른 죄의 탕감을 위해서였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저버렸기 때문에 탕감원칙에 의해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저버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사탄세계에 던져 놓아도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아들은 지옥에 갈지라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신랑되신 예수 앞에 신부가 되기 위해 믿어나온 여러분은 6천년 역사를 대신한 하나님의 아들로 설 수 있어야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사탄을 멋들어지게 참소할 수 있는 사람을 하늘이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역사과정의 수많은 성도들은 어찌하여 예수 그리스도나 성신까지도 사탄의 시험을 받아야 되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영육을 갖추어서 완결지어야 할 사명이 아직까지 완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예수와 성신이 사탄과 벌여온 이 싸움은 언제 끝날 것인가? 하나님에 대한 사탄의 참소가 언제 끝날 것인가? 이것이 끝나려면 예수 그리스도가 실체를 가지고 땅 위에서 4천년 역사를 대신해서 죄와 사탄을 물리쳐 이긴 하나님의 아들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만 6천년 동안 하나님께 참소해온 사탄을 물리치고, 또 예수와 성신이 사탄과 벌여 온 싸움이 끝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식을 갖고, '하나님과 예수, 성신의 체면이 나로 하여금 세워지이다'라고 기도할 수 있는 제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예수님, 성신의 체면을 세워드려야 하겠습니다.
인류를 사랑하여야 할 천륜의 인연을 갖고도 인류를 사랑하시지 못하는 안타까운 입장에 계신 하나님은 내적으로 바로 이러한 조건에 걸려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하늘 땅을 대신하여 자랑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나의 아들'이라고 친히 말씀하실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나오기만 한다면 그때에는 사탄이 참소 못합니다.
하나님은 아들딸의 의식을 완결시켜서 승리의 한날을 아버지 앞에 내세워 가지고 사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존재를 찾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찾고 있는 사람
지금까지 6천년 역사가 경과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영육이 완결된 하나의 존재를 사탄 앞에 세우고 '네가 지금까지 반대하던 인간들 가운데 영원히 반대할 수 없는 나의 참아들과 참딸을 세우니, 너는 이 앞에 굴복해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이런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재림주가 오신다는 것입니다.
6천년의 역사가 경과한 오늘, 우리는 6천년의 역사적 사명을 결정짓고 판정할 수 있는 하나님의 권한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 대신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서, 철장을 갖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 주님을 거들어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로서 하나님의 일을 대신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싸움질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예요.
인간이 싸우고 사탄이 싸우는 천지가 되기를 바라고 지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천리법도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사랑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그 사랑의 역할을 성신이 대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예수와 성신을 통해 하늘을 찾아나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특별히 넘어야 할 고개
이제 우리가 특별히 넘어야 할 고개는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과 예수와 성신을 대하여 싸워나오던 사탄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사탄이 어떻게 조건을 세워 침입해 나왔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면 사탄을 자연굴복시킬 수 있고 사탄을 굴복시킨 후에야 하나님은 여러분을 대하여 '나의 영원한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사탄과 싸우기 위해 광야에 설 때, 하루를 금식해서 안되니 열흘을 하고 40일을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한 번 쏜 총알 같은 운명,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예수도 이런 것을 의식하고 나설 때 그 길에서 돌아설래야 돌아설 수 없었던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온 여러분도 돌아설 수 없는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모든 사실들을 여러분들이 알아, 전후좌우로 사탄이 참소하지 못하도록 방비하여 사탄의 침입을 물리치고, 나아가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창조이념으로 볼 때, 비로소 실체를 쓰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아들 딸이 되어가지고 인간 앞에 주관받아야 할 존재를 당당하게 주관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이런 사람이 되기 전에는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천국에 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까지 사탄을 완전히 물리칠 수 있는 사람, 당신의 수고의 심정을 알아줄 수 있는 참아들딸을 찾아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만약 인간들이 하나님의 이 한 수고를 몰라드린다면 이 땅 위에 지상천국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계에서도 천국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을 소유한 사람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땅 위에서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의 일로를 개척하는 개척자로서 선봉에 서서 깃발을 들고 나서야 하겠습니다.
이제 영육을 갖춘, 실체를 쓴 우리가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이 땅위에 그런 산 존재가 나와야만이 비로소 6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의 심정도 해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관하실 수 있는 하늘과 땅은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해 땅 위에서 책임지고 싸워 승리하는 사람만이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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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소망의 천국을 소유할 자들
1956.12.16 (일), 한국 전본부교회
오늘 여러분들과 같이 생각하려는 말씀의 제목은'소망의 천국을 소유할 자들'입니다.`소망의 천국을 소유할 자들'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으로 볼 때, 하나님은 무형세계의 천국도 소망하셨지만 당신이 친히 임재할 수 있는 실체세계에서의 구체적인 천국을 소망하시어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잘 아는 바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천상천국과 지상천국이 하나님과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이루어짐으로써 영적인 천국과 실체적인 천국의 영광을 보시기 위해 피조세계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① 하나님의 창조이상과 인간 타락의 결과
그런데 인간의 실수, 즉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이렇게 소망하시던 천상천국과 지상천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 또한 여러분이 잘 아는 바입니다. 이러한 천상의 천국이나 지상의 천국도 하나님을 위하여 지은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지으셨던 것입니다.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지상에서 천국을 이룸으로써 지상에서 천국생활을 하던 인간들이 영원한 천국세계에 들어가 살 수 있게끔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천지 창조의 목적이었습니다.그런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천국과 실체적인 지상천국은 간 곳이 없어지고 천상세계와 지상세계는 사탄이 마음대로 하나님 앞에 참소할 수 있는 서러움의 세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타락한 이후 지상은 물론이거니와 천상의 하늘 보좌 밑까지 사탄의 활동 범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영육계의 인간들을 참소해 왔습니다. 사탄이 이런 권한을 갖고 움직여 왔다는 것을 오늘날 믿는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영광의 창조이상을 노래하고 즐거워해야 할 피조세계가 인간의 잘못으로 인해 사탄 앞에 몽땅 넘어가게 된 것은 창조하신 아버님 앞에 서러움을 안겨 드리는 결과가 되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뼈에 사무치게 느끼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더렵혀진 땅을 다시 회복하시려고 남아진 천사들을 통하여 인간과 관계를 맺는 구원섭리를 해 나오고 계십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거룩하신 하나님을 배반한 입장에 서 있는 인간들, 만물에게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여지없이 떨어진 인간들을 하나님께서 다시 대하시기 위하여 구원섭리를 해 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사탄이 지배하고 사탄이 참소하는 인간을 하나님이 주관하시기 위하여, 다리를 놓아서 역사해 나오신 것이 구약시대를 거치고 신약시대를 거쳐서 지금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② 구약시대의 섭리
구약시대에는 주로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셔야 하고 하나님의 영광으로써 친히 인간을 대해야 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그 섭리가 완성되지 못했으므로 슬픔을 품고 제2차로 천사들을 통하여 인간들을 대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해 나온 것이 구약시대의 섭리역사인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심부름꾼과 같은 입장의 사명자로 세워진 노아와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해 나왔습니다. 어둠에 잠긴 이 땅위의 만민들을 아버지가 대할 수 있는 자리로 끌어올리기 위하여 아브라함 일족을 택하시고 이스라엘민족을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민족을 통하여 인간들이 점진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개척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은 천사들을 시키어 역사하실 수 있는 그 하나의 기준을 세우셨습니다.그리고는 아담 해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완성했다는 기준을 갖춤으로써 아버지를 직접 대할 수 있는 승리적인 터전을 조성하기 위하여 예수가 올 때까지 4천년 동안 수고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심부름꾼이 대하는 입장에 놓여 있는 인간을 아들이 대할 수 있는 입장으로 높여 주기 위하여 세우신 분이 예수님이요, 주신 복음이 신약입니다. 그래서 예수 이후의 인간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입장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받아야 할 인간들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받지 못한 연고로, 6천년 역사를 경과하면서 지금까지 우리들이 소망하고 나오는 것은 아들의 사랑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사랑까지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나가는 것입니다.
아들의 사랑을 받아 창조이상을 이룸으로써 사랑을 중심삼고 즐기려 하셨던 하나님과 동고동락할 수 있는 실체를 갖춘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영적으로만이 아니고 이 몸 자체가 하나님이 직접 사랑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은 인간이 타락한 연고로 우리에게 남아지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겠습니다.
③ 예수의 사명과 성신의 역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세워야 했습니다. 그것도 영육 아울러 예수와 같은 아들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사명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는데, 인간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들을 영육 아울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리까지 세워 주는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습니다.영적으로만 우리를 아들이라, 딸이라 할 수 있는 자리까지 개척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정녕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최후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 땅위에서 영육을 갖춘 실체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 수 있는 기준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완성하기 위하여 예수 이후 2천년 동안 역사하고 계신 분이 성신입니다. 성신이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후 지금까지 역사하고 계시지만 하나님의 창조이상의 뜻을 완결지을 섭리적인 발판을 땅 위에 직접 세우고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를 통하여 하늘 앞에 갈 수 있도록 다리의 역할을 하는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지상에서 천국생활을 하며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인가. 무한한 영계, 천상천국에서 살 수 있는 영인체는 어떠한 영인체들인가. 땅 위에서 예수와 성신의 사랑을 받고, 그것을 넘어 직접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사랑의 이상을 중심삼고 화동의 승리자가 된 사람만이 살 수 있는 곳이 지상천국이요, 영원한 천상천국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④ 천국 백성의 자격
하나님의 창조의 기준으로 보면 그런 곳이 소망의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인정할진대, 오늘을 살고 있는 여러분 자체들은 어느 권내에서 하나님의 창조목적이던 소망의 천국을 바라고 있는 모습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묵시록 14장 1절에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14만 4천이셨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에 있는 크리스찬들이 소망하는 하늘의 은사는 무엇을 표준으로 하고 있는가 하면 신랑 신부의 은사를 표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만이 전부인 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함께 14만 4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라고 한 것과 같이 아버지의 이름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신랑되신 예수를 믿고 신부의 자격을 갖춘 다음에는 예수의 사랑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그 예수의 사랑을 발판으로 하여 6천년 동안 친히 인간을 사랑할 수 없었던 하나님이 친히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전체 목적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2천년 동안 수고하여 나오신 목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성도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어느 때에 신랑 신부의 입장을 넘어서서 승리한 영원한 실존체로서 지상에서부터 천상까지, 즉 영생의 천국에 가서까지 아버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화동할 수 있는 실체가 될 것인가. 여러분은 이러한 사랑의 인연을 갖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목적이요,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목적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신랑 신부의 사랑을 소망하여 믿어 나왔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붙들고 아버지 앞에 나아가서'아버님이여! 소원하시던 6천년의 뜻을 저희들이 이루었다는 입장으로 대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이것인 줄 아오니, 아버님이여! 친히 사랑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인간들을 영계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실체세계에서 찾을 때까지 하나님의 섭리는 끝날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와서 영적인 아들 딸의 사랑의 권한을 획득할 수 있는 기대를 조성하셨기 때문에, 지상의 인간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어서 하나로 화하고 그 사랑의 권한을 이어받는다 할진대는 영계에서 참소하던 사탄들이, 지상에서 인간들의 죄를 조건삼아 참소하던 사탄들이 참소할 도리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⑤ 완전구원을 위한 수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담 해와를 사탄이 빼앗아갔는데, 영만 가져간 것이 아니라 영과 육을 합하여 가져갔기 때문에, 하늘편에서는 이 영과 육을 합한 아담 해와를 사탄에게서 되찾아 와 가지고 하나님께서 친히 사랑하실 수 있는 길을 개척하기 위해 오늘 우리 믿는 성도들을 세우셨음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놀라운 우주의 창조적인 하나의 중심을 표준하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최후의 싸움의 표준을 어디에 두었는가? 그것은 예수를 따르던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적인 사랑만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이 영육 아울러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되는 데 두었습니다. 영육 아울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소망이기 때문에, 영적인 구원섭리만을 하신 예수님은 하늘에 가서 완전한 영광을 누리지 못합니다. 하늘에 가서도 땅 위에 있는 우리 인간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이 아직까지 지상에서 완전히 이루어지지 못한 연고로 예수를 중심삼은 12사도 이하 낙원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 이 하나의 소망을 표준으로 총동원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끝날에 처해 있는 우리들에게는 섭리노정에서 협조하던 천사들의 수고의 실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밖에 수많은 사도들의 수고의 실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수고의 모든 실적과 조건들을 오늘날 우리는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과거의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대신하여 수고하고 협조하던 천천만 성도들과 예수 이하 영계에 있는 모든 영인들의 원한도 우리가 해원해 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끝날에 처한 우리는 과거 역사를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나가게 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인정을 받아야 되겠고, 성신의 인정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와 성신의 인정을 받는 단계를 거친 후에는 삼위신이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가를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단계까지 역사하고 있는 것이 신약섭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⑥ 인정단계, 결정단계, 판정단계
여기서의 인정단계란 무엇이냐 하면, 결혼식 전의 약혼단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결정단계란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신부로서 성례식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단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최후에 남아 있는 단계는 어떤 것인가. 이는 판정단계입니다.이 단계는 하나님이 인간들을 대해'이는 나의 사랑하는, 나와 영원히 동고동락할 수 있는, 창조이상으로 바라고 소망하던 영원불변의 실체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존재'라고 내세워 하나님이 친히 손을 들어 만물 앞에 반포하는 한날을 갖게 되는 단계입니다. 이것이 왈 판정의 단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섭리해 나오셨지만 아직까지 우주적인 판정의 날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이 한날을 표준하여 내리시는 것이 심판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판정의 문을 거쳐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만물을 주관하라 하시며 축복하시던 그 축복을 인계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늘백성답게 나서가지고'아버지여! 사랑하시옵소서. 나의 이러이러한 역사적인 조건을 보시사 그리스도의 소망의 뜻을, 성신과 하나님의 바라신 뜻을 제가 알았사오니, 아버님, 축복하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인물이 끝날 지상에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을 내세워 판정한 후에야 온 피조만물도 우리들을 하나님의 친 아들딸로 섬겨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과 친아들딸의 관계를 맺고 난 연후에야 사탄이 굴복합니다.
이러한 섭리역사를 앞에 둔 여러분에게는 여러분 자체를 분별하여 어떠한 위치에 설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정을 받고 다음에 성신의 인정을 받는 자리에 서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섭리역사에 비춰 보면 인정단계는 구약시대이고, 결정단계는 신약시대이며, 판정단계는 재림시대입니다.
오늘날까지 역사는 수많은 과정 과정을 거쳐서 종적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종적으로 내려오던 역사가 횡적으로 전개될 때가 옵니다. 6천년 동안 인정적인 섭리, 결정적인 섭리를 거쳐서 판정적인 섭리를 앞두고 있는 우리는 종적으로 흘러 나오던 역사와 세기말적인 횡적인 역사를 거쳐 나가야만 됩니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하나님의 역사는 사탄과의 싸움의 역사였습니다. 6천년 동안 그렇게 사탄과 싸워 나왔지만 아직까지 결판이 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와서 수고하였지만 땅 위에서 하나님이 요구하던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간 수많은 선지 선열들의 뜻을 지상에서'이루었다' 할 수 있는 한때를 여러분이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끝날인 오늘날에 있어서는 여러분이 알 수 없는 수많은 이상한 현상들이 벌어집니다.'나는 엘리야다' 하는 사람도 나올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올 것입니다.'나는 엘리야, 나는 모세, 나는 바울'이라 하는 사람, 혹은 사무엘이라고 하는 사람도 나올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왜 벌어지는가 하면 탕감복귀의 원리 때문입니다. 즉, 그들이 남긴 사명을 마저 탕감복귀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탕감복귀 과정에서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중심삼고 사탄과 싸웠으나 승리의 기준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의 사명이 후대에까지 연장되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사명을 맡은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들이 사명을 대신 맡은 것을 모르고 자기가 바울이다, 엘리야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끝날에 처해 있는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6천년 동안의 인정적인 섭리와 결정적인 섭리, 그리고 판정적인 섭리 전부를 일신에 걸어 놓고 영육이 합한 하나의 실체로서 통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어야만 역사과정에 맺혀진 사탄의 참소조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하늘 앞에 나갈 수 있다는 거예요.
⑦ 모든 복귀의 단계를 거치려면
이제 여러분, 끝날의 성도들은 마음을 넓혀야 되겠습니다. 하늘의 무한한 세계, 우리의 이상으로 창조하였던 영원한 천국의 이상을 오늘날 지상의 인간들이 찾아야 됩니다.영계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찾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인간을 통하여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와 성신은 천상에 계시되 실체가 없기 때문에 그 천국 이상을 지상에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체를 가진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 지상에 영원한 천국 이념을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6천년 동안 역사과정을 거쳐 오면서 사탄이 참소하던 그 모든 조건도 벗어나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세 제물, 비둘기와 양과 소를 바칠 때, 양과 소는 쪼개었지만 비둘기 하나를 쪼개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취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최후의 성별의 문을 통과해야 됩니다. 내 개체의 죄 즉, 자범죄와 유전죄, 혈통죄, 역사적인 모든 죄악까지 성별할 수 있고, 밟고 올라서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면 만물을 주관하라 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아들 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탕감복귀역사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여러분은 개체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개인을 대하고 있고 여러분을 사랑한다지만 그 사랑은 여러분 하나를 위한 사랑이 아닙니다. 6천년 동안 복귀 섭리해 나오는 과정에서 수고하던 선조들의 결실로서 베푸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이 끝날에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친히 나를 사랑한다는 음성이나 혹은 명령을 받았을 때, 그것이 자기 한 개체에 머무는 사랑인 줄 알았다면 큰 오해입니다. 여러분이 그 사랑을 받을 때까지는 6천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은 역사적인 사랑이요, 6천년 역사의 결실을 위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⑧ 인간의 우주적인 가치
그래서 그 존재는 하나님의 품성을 닮고 역사적인 섭리의 뜻 앞에 남아질 수 있는 사랑의 성품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이러한 것을 표준하여 하나님은 투쟁의 섭리역사를 전개해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4천년 복귀섭리 역사가 경과한 후 하나의 사랑의 실체로 나타나게 될 때에 수많은 종교와 수많은 종족을 통합하여 결실시킬 수 있는 하나의 실체로 하늘이 자신을 세우셨음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유대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도 자기의 주장을 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예수가 주장한 복음은 4천년 역사를 거쳐 오면서 수고한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대신하여 실체로서 주장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복음을 순간적인 입장에서 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의 뭇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앞으로 영원무궁한 미래의 사람들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복음을 전하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이 영원히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인계해 나가고 있다 할진대, 그 인계해 나가고 있는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 의해 비롯되어졌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움직임은 하늘 땅을 대신한 움직임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이 되는 것은 예수와 성신의 소망이요, 천상의 천천만 성도들의 소망입니다. 그들은 참아들 딸이 땅 위에 나와 가지고 하나의 승리의 기준을 세워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또한 그런 기준을 세운 하나님의 친 아들 딸, 참다운 실체가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우리는 깨달아 내 한 자체를 지극히 미미한 존재로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천하를 얻고도 네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고 하신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신앙을 하고 있다는 크리스찬들, 믿고 있다는 오늘 여기 모인 여러분들, 여러분들은 얼마나 이러한 우주적인 가치를 느껴 보았습니까? 여러분 자신이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얼마나 인식해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자신있게 외치신 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본받아야 할 하나의 표어입니다. 역사의 종말기인 오늘날 자신을 세워'나는 변치 않는 하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할 수 있는 존재, 하늘 앞에서나 사탄 앞에서나 어떠한 사람 앞에서도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딸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존재를 예수는 찾고 있습니다. 이런 존재를 예수가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⑨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생명의 표준을 신앙적으로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늘은 역사노정에서 우주적인 사명을 대신하여 싸울 수 있는 사람,'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하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있게 맹세하고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아들 딸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분별한 사탄의 참소조건에도 비굴하지 않고, 하늘의 어떤 천사가 와서 밀어내려고 할지라도 이를 막아낼 수 있으며, 예수와 성신이 와서 밀어내려고 할지라도 이를 능히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4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와서 십자가를 지고 피 살이 찢겨져 운명하는 그 찰나까지'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변치 않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운명 당시, 하늘이 자신을 모른다 할 때도, 예수님은 4천년의 복귀역사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변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 영육을 갖춘 하나님의 아들 딸은 그때까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의 서러움에 부딪치고 쓰러지고 또 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나 나갈 수 있었던 하나의 기준을 세운 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자신은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는 아들이라는 인식이었습니다. 이 인식을 가지고 예수님은 어떤 어려움도 물리치면서 당당하게 싸워 나가셨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소망과 포부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 이 소망과 포부를 인간 세계에서 실천해야 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생각지도 않았던 십자가가 웬 말입니까? 여러분이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에 공명될 수 있는 입장에서 아무리 땅을 치고 만물을 저주해도 그의 서러움은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⑩ 하나님이 예수를 버리신 이유와 변함없었던 예수
오랜 역사를 거쳐오면서 인간들이 하나님의 심정을 유린하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에, 탕감복귀원리에 의해 예수님이 인간 대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입장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말씀을 하시며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우리의 선조인 아담 해와로부터 그후 4천년 동안 인간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저지른 죄의 탕감을 위해서였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저버렸기 때문에 탕감원칙에 의해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저버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사탄세계에 던져 놓아도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아들은 지옥에 갈지라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런 중심을 갖고 30여 년의 생애를 바쳐 수고하다 가신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이제 이런 예수님을 믿고 있는 오늘날 여러분, 신랑되신 예수 앞에 신부가 되기 위해 믿어나온 오늘날 여러분들, 여러분은 6천년 역사를 대신한 하나님의 아들로 설 수 있어야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사탄을 멋들어지게 참소할 수 있는 사람을 하늘이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역사과정의 수많은 성도들은 어찌하여 예수 그리스도나 성신까지도 사탄의 시험을 받아야 되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영육을 갖추어서 완결지어야 할 사명이 아직까지 완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예수와 성신이 사탄과 벌여온 이 싸움은 언제 끝날 것인가. 하나님에 대한 사탄의 참소가 언제 끝날 것인가? 이것이 끝나려면 예수 그리스도가 실체를 가지고 땅 위에서 4천년 역사를 대신해서 죄와 사탄을 물리쳐 이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신있게 말한것과 같은 중심을 가진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만 6천년 동안 하나님께 참소해온 사탄을 물리치고, 또 예수와 성신이 사탄과 벌여 온 싸움이 끝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기독교인들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알고 보면 그런 것입니다.
낙원에 있는 불쌍한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날까지도 죄인된 인간들을 찾아야 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다 쉬는 시간에도 예수는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신도 쉬지 못합니다. 하나님도 쉬시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조금도 쉴 시간이 없는 역사를 거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식을 갖고,'하나님의 체면과 예수의 체면과 성신의 체면이 나로 하여금 세워지이다'라고 기도할 수 있는 제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체면을 세워드려야 하겠습니다. 예수의 체면을 세워드려야 하겠습니다. 성신의 체면을 세워드려야 하겠습니다.
인류를 사랑하여야 할 천륜의 인연을 갖고도 인류를 사랑하시지 못하는 안타까운 입장에 계신 하나님은 내적으로 바로 이러한 조건에 걸려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하늘 땅을 대신하여 자랑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나의 아들'이라고 친히 말씀하실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나온다면, 나오기만 한다면 그때에는 사탄이 참소 못합니다. 그때에는 사탄이 참소하지 못한다는 것이예요.
예수 그리스도가'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식을 가지셨던 것과 같이, 이제 예수와 성신의 수고를 인계받아서 6천년 역사의 종말기인 오늘날, 온 우주와 대립해 서서도'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바라시는 뜻이 이것입니다.나는 역사를 대신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할 수 있는 성도들, 이런 관념을 찾아 나아가려는 성도가 이 나라 한국에 많다면, 그러한 성도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한국에 많다면 한국은 세계의 중심국가가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아들딸의 의식을 완결시켜서 승리의 한날을 아버지 앞에 내세워 가지고 사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존재, 하늘이 이런 존재를 찾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⑪ 하나님이 찾고 있는 사람
지금까지 6천년 역사가 경과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영육이 완결된 하나의 존재를 사탄 앞에 세우고'네가 지금까지 반대하던 인간들 가운데 영원히 반대할 수 없는 나의 참아들을 세우니, 참딸을 세우니, 너는 이 앞에 굴복해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이런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재림주가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한다고 성한 사람을 미쳤다고 합니다. 생각할 것은 생각하지 않고서…. 그러나 이것은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겠습니다.
6천년의 역사가 경과한 오늘, 우리는 6천년의 역사적 사명을 결정짓고 판정할 수 있는 하나님의 권한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 대신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서, 철장을 갖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 주님을 거들어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다음에 예수님은 어떻게 했는가 하면, 하나님의 뜻을 위해 싸웠다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지금까지 몰랐던, 아무도 주장하지 않았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된 나, 하나님의 일을 대신 맡은 나라고 인식하고 자신있게 나설 수 있었다는 거예요. 오늘날까지의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있었으나 하나님이 아들로서'하나님의 일을 전부 맡겠나이다'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구주가 되신 것입니다.
오늘날 끝날에 처해 있는 우리는 6천년 역사를 섭리해오신 아버지 앞에'6천년 역사를 대신한 아버지의 아들이오니, 딸이오니, 아버지의 일을 내가 대신 맡겠나이다'하고 나설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예수를 보십시오. 아버지의 일을 할 때에는 망하는 것도 죽는 것도 개의하지 않았습니다. 망하든지 죽든지 개의치 말아야 된다는 거예요. 조건이 없어요, 조건이 없어. 예수님을 보십시오. 사탄을 굴복시키는 길이라면 몸이야 어찌 되든 그 길을 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된, 하나님의 일을 맡을 수 있는 충절의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죽음도 개의치 않고 걸어가신….
이 끝날에 있어서 하나님의 일을 맡았던 예수 그리스도가 남기신 유업을 우리가 인계받았다 할진대, 우리는 죽든 살든, 사탄을 굴복시키는 길이라면 몸이 천갈래 만갈래 찢기는 한이 있더라도 개의치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길을 알고 그 길로 한꺼번에 갈 수 있는 성별된 무리가 나온다면, 이 세상은 하나님의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일을 대신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싸움질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예요.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평화와 사랑의 동산을 이루기 위해 피조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즐거운 가운데서 만물과 관계를 맺기 위해 만물을 지으셨고, 즐거운 가운데서 인간과 관계를 맺기 위해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인간이 싸우고 사탄이 싸우는 천지가 되기를 바라고 지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천리법도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사랑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그 사랑의 역할을 성신이 대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예수와 성신을 통해 하늘을 찾아나올 수 있었습니다.
'성신이여! 예수여! 하나님이여!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라고 하면서 올라가기만 하면 은혜는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끝날이 될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내려오는 때이기에 예수님이 재림한다는 거예요.
오늘날 도의 세계는 올라가는 일로를 개척하고, 이제 영원히 올라갈 길을 찾으려는 사람들만이 있습니다. 그런데 올라갈 줄만 알아서도 안 됩니다. 때와 시기를 통하여 올라가는 단계를 거쳐, 다시 그 은혜를 찾아 내려와서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⑫ 우리가 특별히 넘어야 할 고개
이제 우리가 하늘의 은사를 찾고, 하나님의 아들된 예수를 중심삼아 하나님의 일을 대행하려 하고 대신하려 한다 할진대는, 예수와 성신을 대하여 사탄이 싸워나오던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방편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특별히 넘어야 할 고개는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과 예수와 성신을 대하여 싸워나오던 사탄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사탄이 싸워 나오던 방패가 무엇인가, 사탄이 어떻게 조건을 세워 침입해 나왔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면 사탄을 자연굴복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그런 후에야 하나님은 여러분을 대하여'나의 영원한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은 어떤 존재인가. 사탄은 어떻게 생겼는가. 여기에도 사탄을 닮은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요….
우리 앞에는 우리가 살아서 못가면 죽어서라도 가야 할 우주적인 운명길이 있습니다. 몇억천만년 걸려서라도 내 영이 죽지 않는 이상, 그 영에 의해서라도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영원한 생명노정에서 살아서 이 길을 거쳐나가지 못하면 죽어서라도 가야 합니다. 과거의 선지 선열들도 영원한 생을 위하여 일신상의 문제를 생각지 않고 그 길을 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사탄과 싸우기 위해 광야에 설 때, 하루를 금식해서 안되니 이틀을 하고 열흘을 하고 20일을 하고 40일을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한번 쏜 총알 같은 운명, 폭탄같은 운명, 다시 갈 수 없는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예수도 이런 것을 의식하고 나설 때 그 길에서 돌아설래야 돌아설 수 없었던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온 여러분, 여러분도 돌아설 수 없는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이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도 죽음의 장벽이 가로막게 될 때 비참했습니다. 온 민족이 돌아서고, 온 백성이 돌아서고, 예수를 따르던 사도들이 돌아설 때, 모든 사람이 돌아설 때, 불쌍하다면 이 이상 불쌍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들은 돌아설 수 있는데 죽음의 길에서도 돌아설 수 없는 예수의 입장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고 하늘 뜻을 받들어 나가는 데 있어서도 이러한 결심을 갖고 교회를 인도하고 민족을 인도하고 세계를 위하여 호소한다면 하나님의 아들 딸이 안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각오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영계에 가셨다고 해서 쉬고 계시지 않습니다. 영계에 가서까지도 십자가의 고난과 그 이상의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를 찾기 위하여, 이 땅을 찾기 위하여 사탄과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천주적인 시련과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이때에 여러분은'사탄아 오겠으면 오고 말겠으면 말아라. 나는 변함없이 간다'는 기백을 갖고 시련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왈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아들 딸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딸로서 아버지를 중심삼고 가정을 이루고, 민족을 이루고, 아버지가 사랑하실 수 있는 국가와 세계를 이루고, 나아가 하나님 앞에 합당할 수 있는 지상천국까지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뜻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모든 사실들을 여러분들이 알아, 전후좌우로 사탄이 참소하지 못하도록 방비하여 사탄의 침입을 물리치고, 나아가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창조이념으로 볼 때, 비로소 실체를 쓰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아들 딸이 되어가지고 인간 앞에 주관받아야 할 존재를 당당하게 주관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이런 사람이 되기 전에는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아직까지 천국에 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낙원이라는 것은 중간과정의 영계입니다.
이런 우주적인 운명의 장벽을 헤쳐가려면 공격해오는 사탄을 완전히 물리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이런 사람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수고는 여러분을 통하여 해원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그래서 하나님은 오늘날까지 사탄을 완전히 물리칠 수 있는 사람, 당신의 수고의 심정을 알아줄 수 있는 참아들딸을 찾아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만약 인간들이 하나님의 이 한 수고를 영원히 몰라드린다면 이 땅 위에 지상천국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영계에서도 천국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⑬ 천국을 소유한 사람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땅 위에서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의 일로를 개척하는 개척자로서 선봉에 서서 깃발을 들고 나서야 하겠습니다. 이런 각오와 결심이 여러분에게는 필요합니다.
여러분에게 아버지 앞에 나가고자 하는 소망이 있다 할진대는, 자기 혼자서'억천만 사탄아,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가는 길을 24억 인류가 반대할지라도, 하늘 땅이 반대할지라도 나는 가겠노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각오 밑에서 아버지 앞에 맹세하고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내 한 가정의 핍박, 민족의 핍박, 국가의 핍박, 모든 인류의 핍박이 있다 하더라도, 24억 인류가 통일교회를 없애기 위해서 발버둥친다 하더라도, 나는 거기에서 깨어질 수 없다는 각오를 가지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나갈 것인가, 나가지 말 것인가 하고 망서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나선 길이니 안 갈 수 없는 입장에 있는 우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사탄과 싸우기 위해 나섰다고 하는 여러분, 사탄을 이기고 4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제2의 승리의 아벨로 세워질 수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가 품었던 맹세와 각오, 하나님의 일을 맡아가지고 싸우겠다는 책임감을 여러분은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각오와 맹세, 그런 책임감을 가지고 싸웠기 때문에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영육을 갖춘, 실체를 쓴 우리가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이 땅위에 그런 산 존재가 나와야만이 비로소 6천년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수고의 심정도,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의 심정도 해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관하실 수 있는 하늘도 우리 것이요, 하나님이 주관 하실 수 있는 땅도 우리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해 땅 위에서 책임지고 싸워 승리하는 사람만이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말씀선집 제1권 19편
만민을 위하여 오신 주를 모시는 자가 되자 (훈독본)
1956.12.23 (일), 한국 전본부교회
마태복음 8:18-34
말씀선집, 만민을 위하여 오신 주를 모시는 자가 되자1.mp3
여러분들과 같이 '만민을 위하여 오신 주를 모시는 자가 되자'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① 하나님의 창조이상과 인간 타락의 결과
타락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인류는 먼저 마음으로 몸으로 하나님의 서러움이 사무쳐 있는 것을 느끼는 사람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너나 할것 없이 타락했지만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관계가 있는 이상, 또 섭리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수고하고 계시는 아버님이 있는 이상 우리들은 무의미한 입장에 서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 자체가 악하고 악한 자리에 처해 있을지라도 역사과정을 거쳐 나오면서 섭리하신 아버지의 수고의 눈물 자국이 여러분의 몸에 남아 있음을 먼저 인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요, 다음에는 우리들을 다시 찾아 회복시켜 주기 위한 섭리, 즉 복귀섭리를 해오신 아버지의 수고와 고난의 흔적을 느껴야 될 것입니다. 또 그뿐만 아니라 창조본연의 이상이, 하나님 속에 남아 있는 내적인 소원이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무형의 신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서러움이 내 한 자체에 사무쳐 있고, 복귀의 섭리를 하시는 하나님의 수고의 표적이 내 몸에 소망의 터전으로서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② 예수의 강림 목적과 유대백성의 불신
그러면 이제, 무형의 아버지께서 인간과 만물을 지으시고 기쁨과 영광을 누리시려던 창조 이상은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 마음 속에 한으로서 남아졌는데, 이것을 풀어드릴 사명을 가지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내적인 원한의 핵심을 실체적으로 풀어드리기 위하여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를 모셔야 했던 존재, 예수를 대망하였던 존재, 예수와 영원히 동락할 수 있었던 존재는 어디에 있었던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사무친 원한의 심정을 대신한 분이요, 하나님의 실체상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원한을 실체적으로 풀어드릴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당시의 유대백성들이 알아야 했습니다.
무형의 하나님의 서러움은 유형의 인간을 통해서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서러움과 만민의 서러움을 대신할 수 있는 분이 예수였었습니다.
메시아를 바라고 있던 이스라엘민족에게는 하늘의 독생자, 하늘의 황태자로 태어나신 예수가 이렇듯 서럽고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모실 수 있는 하나의 존재를 찾으셨지만 그런 존재를 하나도 찾지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에 죽은 예수는 만민이 모시는데,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갖고 오셔서 인간들에게 그 사랑을 옮겨 줄 수 있는 살아계신 예수는 어찌하여 아무도 모시지 않았던가. 그 책임은 인간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 우리 선조들의 죄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책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연장된 연고로, 하나님의 서러움은 예수님의 서러움으로, 하나님의 수고는 예수의 수고로, 하나님의 소망은 예수의 소망으로 남아졌고, 그 모든 것은 성신에게까지 미쳐졌습니다.
③ 예수가 오늘의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이렇게 하나님과 예수와 성신의 서러움을 풀어드려야 할 책임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6천년의 서러움의 원한을 풀어 드리고 수고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예수님은 바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④ 다시 오시는 예수에 대한 우리의 책임
그것은 예수의 마음과 예수의 서러움과 예수의 수고의 짐을 실체적으로 대신 맡는 것입니다.
예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하는 여러분들은 예수가 나실 때와 예수가 사실 때와 예수가 가실 때의 사정이 여러분의 사정으로 체휼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애달픈 마음을 품고서 만민을 구속해야 할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느끼신 것과 같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악한 땅에 태어나 홀로 누우신 예수님의 말구유에 여러분이 친히 누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황태자, 하늘의 왕자인데도 불구하고 이 땅 위에 태어나실 때, 마굿간이 웬 말입니까? 서러움에 북받쳐 있는 예수의 서러움도 서러움이지만 그 예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내적 서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사실을 놓고 서러움을 뼈에 사무치도록 느껴야 합니다. 또한 끝날에 처해 있는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사명을 내가 홀로 맡았다는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민족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준비되었던 유대교단이 예수님을 몰랐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하나님의 서러움을 다시 한번 거듭되게 한 것이었습니다. 어느누구 하나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예수를 편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의 말구유 위에 누워 있는 예수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외쳤을 때 온 예루살렘 성 중은 소동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동은 기쁜 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⑤ 다시 오시는 주님을 위한 준비
땅 위에 주님이 오시면 먹고, 입고, 계시고 활동하실 것인데, 메시아가 오시기를 고대하던 유대 백성들은 이것을 모르고 메시아를 모실 준비를 해 놓고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입을 옷 한벌 준비 해 놓고 기다리는 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간절한 마음을 갖고 준비한 사람이 있었다면, 동방박사 세 사람이 예루살렘에 와서 그렇게 말했을 때, 동방박사의 뒤를 따라 베들레헴까지 찾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방박사 세 사람 뿐이었습니다.
메시아 오기를 바라던 유대백성들이 메시아가 탄생했을 때 계실 곳을 준비하는 백성들이 되었던들, 예수를 말구유 위에 눕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메시아가 탄생하면 계실 곳을 준비할 수 있는 기독교인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⑥ 오시는 주님을 위한 예물
예수가 강보에 싸여 말구유 위에 누워 있는 것을 여러분은 기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만민이 합하여 이 땅 위의 어느누구보다, 4천년 역사상의 어느누구보다 영광된 자리에 눕혀 드렸어야 했던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만민에게 귀여움을 받고 찬양받아야 했던 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탄 앞에 자랑해야 할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민족이 그렇게 예수님을 모시지 못하는 장면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서러움이 어떠했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런 하나님의 서러움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아버지 앞에, 세계를 위하여 오시는 주를 위해 준비를 하되, 이 땅 위에 없는, 이 땅 위의 무엇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예물을 준비해야 될 것입니다.
⑦ 예수의 눈물과 기도
여러분이 이제 참되게 아버지를 찾아 나가려고 한다면, 예수의 사랑의 품을 찾아 나가려고 한다면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4천년 동안 서러워하시면서도 그 서러움을 나타내시지 못하셨는데 예수는 실체적으로 눈물을 흘리시며 사셨습니다. 성경상에는 서너곳 밖에 나타나 있지 않지만 실제 예수께서 눈물 흘리신 숨겨진 사실은 무한히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수천년 동안 섭리역사를 통해 사랑해 오신 유대백성들을 바라보게 될 때, 어느 한 순간도 눈물 흘리지 않은 때가 없었다는 거예요. 어렵고 외로운 일에 부딪칠 적마다 예수는 아버지만이 알아주시는 가운데 서러워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러한 서러움을 제자들에게 말하지 못하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감람산에 올라가 밤을 새워 기도하시던 것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만 기도하신 것이 아니예요.
예수님은 철이 들면서부터 서러움을 가졌습니다. 세상의 인간들이 예수를 모시어 드리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자랄 적부터 서러움을 겪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요셉가정에서 의붓자식으로 자랐습니다. 그래서 온 동리가 예수를 대하여 많은 말을 했지만 그는 말없는 생활을 했다는 거예요. 말할 수 없는 하늘의 뜻, 크고 놀라운 뜻을 품었으면서도 보통 아이로 자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30평생을 목수일을 하며 사신 그 생활이 좋은 생활이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민족의 어느누구보다 더 고귀한 자리에 서서 아버지의 즐거움과 영광을 드러내면서 살아야 할 예수님이 요셉의 생활을 협조해 주기 위하여 까뀌를 들고 대패를 들고 생활했다니 이게 웬 말입니까?
오늘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하나님의 원한의 심정을 풀어드리기를 바라는 참다운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는, 예수께서 걸어가신 생애를 본보기로 해서 갈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흔히 자기의 십자가와 자기의 서러움도 하늘에 넘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서러움은 나로 말미암은 서러움이니 그 서러움을 내가 지겠나이다. 하나님이여, 염려하지 마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의 신념, 예수의 생활의 일면을 통한 사람인 것입니다
⑧ '너는 나의 친구인가?'
이제 30여 평생 눈물로 사셨던 예수의 서러움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할진대, 여러분은 이것을 풀어드려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최후의 순간에 이르러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하면서도 뜻을 이루어야겠다는 애달픈 심정에 사무쳤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이 '나는 예수의 친구다'라는 마음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면, 여러분은 눈물 없이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믿고 있는 성도들 중에 하늘 앞에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예수의 친구가 될 것입니다.
만약 오늘날 이 땅에 주님이 오시면 '너는 과연 고난의 30여 평생을 보낸 나의 친구가 되어 있는가'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또, '너는 어느 정도까지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을 품었으며, 세계적인 서러움을 갖고 몇날 며칠을 살아 보았느냐'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땅 위에 오신 예수를 인간들이 받들지 못함으로 인해 예수님을 사탄 앞에 하나의 조건으로 내어 주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 조건을 넘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왜 살아 있느냐? 이 몸이 죽기 전에 있는 충성을 다하여 예수의 생애를 붙들고 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예수의 생애에서 밟혔던 것을 일으켜 세워드릴 수 있는 참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살아 있는 동안에 이러한 책임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온 연령만의 단순한 나로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 각자 각자는 아담 해와로부터 예수까지의 4천년, 예수 이후 지금까지의 2천년을 합한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여러분 일신에서 결실해야 할 우주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 자신이라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원수들 앞에서 당당하셨듯이 여러분도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더라도 당당해야 되겠습니다. 눈물을 흘리더라도 자기를 위해서 흘리지 말고, 예수를 위해 흘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의 고난에 부딪치게 될 때에 진정 아버지의 사랑을 느낀다면 기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고난을 가볍게 해 달라는 기도는 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서러운 입장에 계신 아버지에게 '아버지, 나 이런 짐을 지고 있나이다'라고 기도하게 되면 아프신 아버지의 마음에 제2의 서러움을 안겨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까지 여러분들은 알아 가지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삼천만 민족 속에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몇 사람만 있다 해도 이 민족의 서러움을 막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자기의 서러움 때문에 우는 모습이 절대로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⑨ 아버지를 위로하시기에 노심초사하신 예수
예수는 우주적인 사명을 갖고 이 땅에 오셨으나 일생 동안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도리어 아버지의 마음 상하심과 염려를 위로하시기에 노심초사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인간들의 무지함을 용납하여 주기 위하여 애달파하신 예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는 아버지의 뜻만을 영광되게 해 드리려는 마음을 갖고 살았습니다.
예수는 생명과 친구가 되지 않고 죽음과 친구가 되신 분이었습니다. 역사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길을 갔지만 만민의 죽음을 대신하여 죽음의 친구가 되고, 만민을 대신하여 죽으신 분은 예수뿐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여유의 생애를 살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나중에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하나님까지도 '모른다' 하셨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셨는데, 이것은 소망이 절망으로, 생애의 전부가 수포로 돌아갈 것 같기 때문에 외치신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죽음으로 인하여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고 가지 못하는 것을 염려하여 외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로서는 할바의 책임을 다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자기를 천당으로 보내시든 지옥으로 보내시든 개의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죽음의 친구가 되어야 할 입장에 있었던 예수는 죽는 것으로서 만족하고 죽는 것으로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려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있는 정성을 다해 나가더라도 끝에 가서는 하늘이 모른다 할 때가 있습니다. 하늘이 모른다 하는 것은 세계적인 사명이 우리 앞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도 예수님처럼 그런 일이 있을 것입니다. 충성을 다하고 생활을 다 바쳐 아버지께 매달리더라도 하늘이 모른다 하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죽어도 아버지 뜻이요, 살아도 아버지 뜻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못 먹는 것도 못 입는 것도 기쁜 일이옵니다'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⑩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의 최후의 고개
천당가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 죽기 위하여 예수를 믿는 사람은 천당에 갈 것입니다. 잘 살기 위하여 예수를 믿는 것보다 잘 죽기 위하여 예수를 믿는다면 그것은 지극히 귀한 믿음이 될 것입니다. 잘 살기를 바라며 믿던 12사도들은 예수가 죽을 때 다 어디로 갔습니까?
여러분은 잘 살기 위하여 믿을 것이 아니라 여러분 한 생명을 잘 희생하기 위하여, 즉 잘 죽기 위하여 믿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의 일생을 닮아야 하겠습니다. 예수의 생애를 가져야 예수의 사랑을 가질 수 있고 예수를 모셔 드려야만 예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예수께서 2천년 동안 수고하신 것을 본받을 수 있는 신앙 인격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주를 모실 수 있는 신부의 자격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6천년의 하나님의 서러움을 책임지고 위로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크나큰 사명이 우리들 앞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의 내적인 심정과 예수의 내적인 소망이 오늘 우리 한 사람을 중심삼고 돌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망하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 가슴을 칠 때가 올 것입니다.
⑪ 오실 주님을 모시려면
마음으로 모시고, 몸으로 모시고, 사회로 모시고, 세계로 모시고, 하늘땅으로 모시는 일이 우리들의 책임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여러분 자신은 마음으로도 예수를 모시지 못하여 모시는 출발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마음과 몸으로 모시고, 사회,국가, 세계, 하늘 땅이 모심으로써 영광이 여러분 개인은 물론이요,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와 온 피조세계를 채우고도 남음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천주적인 사명이 여러분들에게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상상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와 가정을 위해 정성드리는 그것으로 만족하는 크리스찬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교회 하나를 중심삼고 만족하는 크리스찬도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삼천만 민족이 전부 다 크리스찬이라 하더라도 민족을 대표하여 나설 수 있는 크리스찬, 세계 인류가 전부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그 24억 인류를 대신하여 설 수 있는 대표적인 크리스찬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영계에 있는 모든 천사들 앞에서도 이렇게 가치 있는 일을 했다고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 누가 오셨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⑫ 절개와 충절의 아들 딸
여러분들은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운명의 길에 선 여러분은 일생 동안 신념과 내적인 충절을 지니고 그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나는 주님을 모시더라도 세계적인 주, 우주적인 주, 6천년의 역사를 넘고 넘어 영원한 이상세계를 품고도 남을 수 있는 주, 이러한 주님을 모셔야 할 나인데, 이제까지 가정의 주를 모시고 즐거워하는 내가 되었고, 혹은 민족과 국가의 주를 모시고 기뻐하는 그 정도밖에 되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회개하며 통곡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이 시대에 대한 책임과 사명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까? 혹은 태초부터 창조의 이념이 완결되는 끝날까지 전체의 인류가 소망해 오던 이상을 내가 대신 이루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까? 그런 우주적인 사명감을 느끼어 보았습니까?
말씀을 하기 전에 마음의 직감적인 충격에 의해 서슴치 않고 나서서 모실 수 있는 자격을 갖춰야 하는 자리에 우리는 나섰습니다. 그런 보화를 가지고 우리는 나섰습니다. 여러분은 생애노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지금 어느 기준까지 달렸습니까? 여러분은 개인에서 출발하여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거쳐 하늘 땅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를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승리의 영광, 아버님의 사랑, 영원한 생명을 받아 만물 만상, 온 천주를 대신한 신부가 되고, 아버님과 영원히 동고동락할 수 있는 아들 딸이 될 때까지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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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만민을 위하여 오신 주를 모시는 자가 되자
1956.12.23 (일), 한국 전본부교회
여러분들과 같이 생각하려는 제목은 '만민을 위하여 오신 주를 모시는 자가 되자'입니다. '만민을 위하여 오신 주를 모시는 자가 되자'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① 하나님의 창조이상과 인간 타락의 결과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 이 모두는 하나의 창조이상을 중심삼고 영원히 하나되어야 할 것이었는데, 하늘과 만물의 중간에 있는 인간이 실수한 연고로 만물은 만물대로, 하늘은 하늘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나뉘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창조 본연의 세계를 다시 찾기 위하여 만물부터 시작해서 인간과 마지막에는 하늘까지 찾는 복귀의 역사를 하시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아버지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여러분이 되어선 안 될 것입니다.
타락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오늘날의 우리들, 타락의 종족으로서 우거하고 있는 오늘날의 인류는 먼저 마음으로 몸으로 하나님의 서러움이 사무쳐 있는 것을 느끼는 사람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너나 할것없이 타락했지만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관계가 있는 이상, 또 섭리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수고하고 계시는 아버님이 있는 이상 우리들은 무의미한 입장에 서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 자체가 악하다 할지라도, 악한 자리에 처해 있을지라도 스스로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거쳐 나오면서 섭리하신 아버지의 수고의 눈물 자국이 여러분의 몸에 남아 있음을 먼저 인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요, 다음에는 우리들을 다시 찾아 회복시켜 주기 위한 섭리, 즉 복귀섭리를 해오신 아버지의 수고와 고난의 흔적을 여러분이 역사를 대신하여 여러분의 몸에 지니고 있음을 느껴야 될 것입니다. 또 그뿐만 아니라 창조본연의 이상이, 하나님 속에 남아 있는 내적인 소원이 끝날에 있는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들은 무형의 신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서러움이 내 한 자체에 사무쳐 있고, 무형의 신으로 계시어서 복귀의 섭리를 하시는 하나님의 수고의 표적이 내 몸에 소망의 터전으로서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땅 위에 있는 우리들은 하나님이 당신의 애달픈 심정만큼 애달파하고, 수고하신 당신의 고난의 흔적만큼 수고하고, 소망으로 두고 나오던 당신의 본연의 선의 심정만큼 몸과 마음을 굽혀 그 서러움을 대신할 수 있는 서러움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하나님의 수고를 대신하는 고난의 심정을 갖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고난을 보이는 체를 갖추어 나타낼 수 있는 모습을 이 날도 요구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모든 종교를 판가리지어 소원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소망의 한 종교를 아버지께서는 찾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활동하나, 어느 한 순간의 생활과정이나 찰나의 시간에 있어서도 마음에 어리고 몸에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참다운 성도가 이 땅 위에 나타나기를 아버지께서는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오늘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은 마음으로 체휼할 수 있는 자리에 나아가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② 예수의 강림 목적과 유대백성의 불신
그러면 이제, 무형의 아버지께서 인간과 만물을 지어 놓으시고 기쁨과 영광을 누리시려던 창조 이상, 만물 앞에 인간을 내세우시고 모두가 선의 이상에 취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자랑하며 동고동락하기를 소망하셨던 하나님의 창조 이념은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 마음 속에 한으로서 남아졌는데, 이것을 풀어드릴 사명을 가지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4천년 수고의 역사를 대신하여, 인류를 대신하여, 만물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내적인 원한의 핵심을 실체적으로 풀어드리기 위하여 오신 분이 누구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를 모셔야 했던 존재, 예수를 대망하였던 존재, 예수와 영원히 동락할 수 있었던 존재는 어디에 있었던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 사무친 원한의 심정을 대신한 분이요, 무형의 실존체로 실존하시는 하나님의 실체상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원한을 실체적으로 풀어드릴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당시의 유대백성들이 알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위로받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내적인 섭리의 뜻을 알아서'이 분은 4천년 동안 하나님이 서러워하셨던 그 마음을 풀어드릴 수 있는 분이요, 아버지가 찾으시던 영원한 소망의 존재'라고 찬양하면서 하나님의 소망의 심정과 동감할 수 있고 그 예수를 모실 수 있었던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무형의 하나님의 서러움은 유형의 인간을 통해서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서러움과 만민의 서러움을 대신할 수 있는 분이 예수였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일평생 동안 기쁨의 날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4천년 동안 흘리신 하나님의 서러움의 눈물이 그의 마음에 사무쳐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만민들이 예수와 하나되어 하나님의 서러움을 풀어드려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누구 하나 예수님의 서러움을 체휼하여 예수 앞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의 일생을 처음에서부터 끝까지 살펴볼 때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그래서 그러한 원한의 자국이 오늘날의 우리에게까지 연장되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메시아를 바라고 있던 이스라엘민족에게는 하늘의 독생자, 하늘의 황태자로 태어나신 예수가 이렇듯 서럽고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당신을 모실 수 있는 하나의 존재를 찾으셨다는 것입니다. 찾으시되,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찾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을 대신하여 찾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서러움에 동참하고, 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수고를 대신하고, 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소망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를 찾으셨으나 마굿간에서 태어나 30여 평생을 거쳐 십자가의 고개를 넘으실 때까지 그런 존재를 하나도 찾지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에 죽은 예수는 만민이 모시는데,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갖고 오셔서 인간들에게 그 사랑을 옮겨 줄 수 있는 살아계신 예수는 어찌하여 아무도 모시지 않았던가. 그 책임은 인간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서러움을 풀어드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수고의 노정을 제하기 위하여 오셨던 예수였는데도 불구하고, 소망의 동산을 건설하기 위해 하나님의 소망의 실체로 오셨던 예수였는데도 불구하고, 그 예수의 서러움을 붙안고, 그의 고난을 자기 일신에 지니고 그의 소망을 느끼어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 우리 선조들의 죄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가 오늘의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고! 하나님의 모든 원한을 예수의 일신을 통하여 풀려고 하던 일이 우리의 선조들이 책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연장된 연고로, 하나님의 서러움은 예수님의 서러움으로, 하나님의 수고는 예수의 수고로, 하나님의 소망은 예수의 소망으로 남아졌고,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은 성신에게까지 미쳐졌습니다.
③ 예수가 오늘의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이렇게 2천년의 역사를 통해 연장되어 온 하나님과 예수와 성신의 서러움을 풀어드려야 할 책임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감추어져 있는 6천년의 서러움의 원한을 풀어 드릴 수 있는 사람, 6천년의 수고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6천년의 하나님의 소망을 이 땅 위에 다시 나타낼 사람이 우리들 가운데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찾아지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놀라운 아버지의 은사 앞에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사 앞에 나서게 될 때, 여러분이 나서는 그날이 시작인 줄 알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이 아버지 앞에 서 있는 것은 여러분 일개인이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믿는 것도 여러분의 일생만을 걸어 놓고 믿는 것이 아니라 6천년 역사를 걸어 놓고 믿고 있다는 실감을 가져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버지 앞에 자기의 죄를 회개하는 자리에 설 때에도 이것은 나 자신에 대한 회개뿐만이 아니라 6천년을 대신한 회개라고 하는 것을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주의 은사와 주의 사랑 앞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에도 여러분은 어느 한 시간권내에서 여러분 혼자 감사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6천년 동안 해오신 아버지의 전체의 섭리, 평면적인 역사와 입체적인 역사를 대신하여, 소망적인 하나의 기준을 대신하여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서러움을 풀어드릴 사람, 하나님의 수고를 대신 맡을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소망을 대신 이루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오늘날 땅위에 나타나기를 예수님은 바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실체적으로 해원하기 위해서 오셨던 예수님은 이 땅위에서 그 일을 다하지 못하셨기 때문에 다시 와야 할 운명을 안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러기에 이 예수께서는 다시 6천년의 역사를 대신하는 서러움의 심정을 갖고 보잘것없는 여러분들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4천년의 서러움뿐만 아니라, 거기에 2천년의 서러움을 가하여 가지고 여러분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또한 서러움뿐만 아니라 2천년의 수고의 원한을 가하여 가지고 여러분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④ 다시 오시는 예수에 대한 우리의 책임
6천년의 소망을 갖고 찾아오시는 예수님이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될 때에 인간들이 해야 할 책임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의 마음과 예수의 서러움과 예수의 수고의 짐을 실체적으로 대신 맡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4천년의 수고를 대신하여 4천년의 서러움을 풀어드리기 위해 이스라엘민족 앞에 오셨던 예수님을 이스라엘민족이 믿지 않고 반대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됐던 것입니다.이와 같이 예수님을 아버지의 수고와 4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4천년의 서러움을 풀러 오셨던 분으로 알고 믿고 모실 수 있는 사람이 이스라엘민족 중에 없었던 연고로 예수는 십자가에 돌아가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고로 이 일을 완결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재림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6천년 역사를 총결산해야 하는 끝날의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삼위신 앞에 홀로 서서'하나님의 서러움을 나의 서러움으로 맡겨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수고를 나의 수고로 맡겨 주시옵소서.하나님의 소망을 나의 소망으로 맡겨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여러분은 한 개체이지만, 하늘 땅을 대신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갖고 예수의 올 날을 준비하는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세계의 크리스찬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하는 여러분들은 오셨다가 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다시 한번 더듬어 보아야 합니다. 예수가 나실 때와 예수가 사실 때와 예수가 가실 때의 사정이 여러분의 사정으로 체휼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애달픈 마음을 품고서 만민을 구속해야 할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느끼신 것과 같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악한 땅에 태어나 홀로 누우신 예수님의 말구유에 여러분이 친히 누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황태자, 하늘의 왕자인데도 불구하고 이 땅 위에 태어나실 때, 마굿간이 웬 말입니까? 서러움에 북받쳐 있는 예수의 서러움도 서러움이지만 그 예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내적 서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사실을 놓고 서러움을 뼈에 사무치도록 느껴야 합니다. 또한 끝날에 처해 있는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사명을 내가 홀로 맡았다는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만민을 위하여 오셨는데도 불구하고 푸대접을 받으며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자리에 계셨던 예수님의 사정을 내 사정으로 바꾸어 생각해 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당신의 서러움을 위로해 줄 수 있는 합당한 존재가 있었다면, 그 한 사람을 붙들고 자기의 모든 소망을 풀어 놓고 싶을 정도의 사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4천년의 세월을 통하여 택해 놓은 이스라엘민족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준비되었던 유대교단이 예수님을 몰랐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베들레헴 성중의 말구유 위에 누워 있던 예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하나님의 서러움을 다시 한번 거듭되게 한 것이었습니다. 어느누구 하나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예수를 편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들은 이제 하나님의 원한과 이 땅 위에 왔다 가신 예수의 원한을 거두어서 다 풀어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사탄의 침범 조건을 내 몸에서 제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주가 6천년의 역사를 대신하여 이 땅 위에 나타날 것을 안다 할진대는 부디 여러분은 이스라엘민족과 같은 입장에 서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예수 중심도 아니었고, 메시아 중심도 아니었고, 하나님 중심도 아니었고, 자기 중심한 것이었습니다. 메시아는 기필코 오실 것인데 그것을 알면서도 메시아를 모시기 위한 준비를 아무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의 말구유 위에 누워 있는 예수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외쳤을 때 온 예루살렘 성중은 소동했습니다. 이방나라의 점쟁이들이 예수를 찾아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동은 기쁜 일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기쁜 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⑤ 다시 오시는 주님을 위한 준비
오늘날 하늘을 믿고 있는 여러분, 6천년의 역사를 대신하여 믿고 있는 여러분들은 잘못을 저지른 유대교의 입장과 같은 입장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오시는 메시아를 위하여 준비할 수 있어야 하고, 초림 예수의 서러움을 여러분 자신이 풀어드릴 뿐만 아니라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신령한 단계, 아버지와 의논하는 자리에 들어가면 여러분에게 이것을 해라, 혹은 저것을 해라 하는 지시가 많이 내릴 것입니다.
땅 위에 주님이 오시면 먹을 것이고, 입을 것이고, 계실 것이며, 활동하실 것인데, 메시아가 오시기를 고대하던 유대 백성들은 이것을 모르고 메시아를 모실 준비를 해 놓고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입을 옷 한벌 준비 해 놓고 기다리는 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간절한 마음을 갖고 준비한 사람이 있었다면, 동방박사 세 사람이 예루살렘에 와서 그렇게 말했을 때, 온 유대백성이 소동했을 때, 동방박사의 뒤를 따라 베들레헴까지 찾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는 길에는 동방박사 세 사람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서러움의 자국을 남겨 놓은 것이 하나님을 따라 나오던, 하나님의 뜻을 위한다고 하던 우리의 선조들이 저질러 놓은 죄였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그러한 입장에 서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마음으로 몸으로, 안팎으로, 오시는 주님을 모실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끝날에 처해 있는 우리들, 전세계 기독교인들이 동원되어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메시아 오기를 바라던 유대백성들이 메시아가 탄생했을 때 계실 곳을 준비하는 백성들이 되었던들, 예수를 말구유 위에 눕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메시아가 탄생하면 계실 곳을 준비할 수 있는 기독교인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⑥ 오시는 주님을 위한 예물
예수가 강보에 싸여 말구유 위에 누워 있는 것을 여러분은 기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만민이 합하여 이 땅 위의 어느누구보다, 4천년 역사상의 어느누구보다 영광된 자리에 눕혀 드렸어야 했던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만민에게 귀여움을 받고 찬양받아야 했던 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탄 앞에 자랑해야 할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민족이 그렇게 예수님을 모시지 못하는 장면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서러움이 어떠했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런 하나님의 서러움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하고, 2천년 전의 예수의 서러운 심정을 알아 가지고, 내적으로 남 모르게 예물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하늘의 예물은 사탄 앞에 보일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 앞에도 보일 수 없다는 것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보면 제일 귀한 예물은 나타내는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 이건 누가 먼저 알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알아야 할 사람이 먼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먼저 알면 미련을 갖고 대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아버지 앞에, 세계를 위하여 오시는 주를 위해 준비를 하되, 이 땅 위에 없는, 이 땅 위의 무엇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예물을 준비해야 될 것입니다.
주께서 친히 임재하시어 활동하시게 될 때, 주께서 마음적으로나 몸적으로나 어려움을 느끼시지 않도록 모심의 터를 여러분의 한 몸에 찾아 놓아야 합니다. 이것은 왜 그러냐 하면,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 제일 귀한 것이 여러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귀한 분이요, 만 우주를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실체이니, 그 아버님의 아들,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독생자가 오시게 될 때에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평화의 터를 건설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서 예수가 다시 오시면 예수의 손발이 되고 예수의 생애를 대신하고, 예수를 편안히 모셔야 하겠습니다. 또, 예수가 2천년 전에 싸우시던 그 싸움을 대신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2천년 동안 싸워 나오셨는데 이제 그 사탄과의 싸움을 내가 다 책임지고 싸우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고, 그 싸움을 위한 방패까지도 내 한 일신이 준비하겠다고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태어나실 때의 예수의 사정을 통감해야 하는 동시에 그 다음에는 지상에서 사실 때의 예수의 심정을 통감해야 되겠습니다.
⑦ 예수의 눈물과 기도
여러분이 이제 참되게 아버지를 찾아 나가려고 한다면, 예수의 사랑의 품을 찾아 나가려고 한다면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4천년 동안 서러워하시면서도 그 서러움을 나타내시지 못하셨는데 예수는 실체적으로 눈물을 흘리시며 사셨습니다. 성경상에는 서너곳 밖에 나타나 있지 않지만 실제 예수께서 눈물 흘리신 숨겨진 사실은 무한히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수천년 동안 섭리역사를 통해 사랑해 오신 유대백성들을 바라보게 될 때, 어느 한 순간도 눈물 흘리지 않은 때가 없었다는 거예요. 예수는 하나님 앞에 기도할 적마다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어렵고 외로운 일에 부딪칠 적마다 예수는 아버지만이 알아주시는 가운데 서러워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러한 서러움을 제자들에게 말하지 못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예수의 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감람산에 올라가 밤을 새워 기도하시던 것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만 기도하신 것이 아니예요.
어려운 길을 걸으시면서도 서러움의 사정을 아뢸 수 있는 곳은 하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그렇다고 해서 그 서러움을 하늘에게 맡기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서러움을 자기가 도맡아 지게 해달라고 했던 것입니다.'아버님이여! 나를 보고 서러워하시는 그 서러움을 내가 맡을 것이오니, 아버님이여! 나를 보시고 위안받으시옵소서! 아버님의 서러움을 내가 감당하겠사오니 서러워하지 마시옵소서'라고 호소했던 것입니다. 그리고'4천년의 수고를 내가 책임지겠사오니, 아버님이여,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내가 있사오니 아버님의 소망이 남아 있다고 염려하지 마시옵소서'라는 기도만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철이 들면서부터 서러움을 가졌습니다. 세상의 인간들이 예수를 모시어 드리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자랄 적부터 서러움을 겪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요셉가정에서 의붓자식으로 자랐습니다. 그래서 온 동리가 예수를 대하여 많은 말을 했지만 그는 말없는 생활을 했다는 거예요. 말할 수 없는 하늘의 뜻, 크고 놀라운 뜻을 품었으면서도 보통 아이로 자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30평생을 목수일을 하며 사신 그 생활이 좋은 생활이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민족의 어느누구보다 더 고귀한 자리에 서서 아버지의 즐거움과 영광을 드러내면서 살아야 할 예수님이 요셉의 생활을 협조해 주기 위하여 까뀌를 들고 대패를 들고 생활했다니 이게 웬 말입니까?
오늘날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를 원하는 아들 딸, 하나님의 원한의 심정을 풀어드리기를 바라는 참다운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는, 그들은 예수께서 걸어가신 생애를 본보기로 해서 갈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예수의 사신 생애를 알려고 할진대는, 여러분은 놀라운 은사를 대신한 예수의 심정에 동감하고, 그 심정을 체휼하고, 그 어려운 입장에 들어가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의 서러움은 시간 시간, 생활 생활을 넘어선 서러움이요, 예수님의 생활은 어느 한 순간 평안함을 느낄 수 없는 생활이었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땅을 위하여 오셨던 예수는 땅으로 말미암아 당하는 서러움을 하늘 앞에 돌리지 않기 위해서 안타까와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흔히 자기의 십자가와 자기의 서러움도 하늘에 넘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하늘의 서러움은 나로 말미암은 서러움이니 그 서러움을 내가 지겠나이다. 하나님이여, 염려하지 마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의 신념, 예수의 생활의 일면을 통한 사람인 것입니다.
⑧ '너는 나의 친구인가?'
이제 30여 평생 눈물로 사셨던 예수의 서러움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할진대, 여러분은 이것을 풀어드려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30여 평생 서러움 속에서 사시다가 마침내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운명하게 되셨는데, 최후의 순간에 이르러'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하면서도 뜻을 이루어야겠다는 애달픈 심정에 사무쳤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이'나는 예수의 친구다'라는 마음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면, 여러분은 눈물 없이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는 발걸음을 옮길 적마다 몸을 움직일 적마다 눈물을 흘렸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 때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믿고 있는 성도들 중에 하루 하루 생활하는 가운데서 하늘 앞에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예수의 친구가 될 것입니다.
교회 교회에서, 가정 가정에서 서로 서로를 위하여, 예수의 심정을 알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거기에는 분명히 하나님에게 요구하지 않아도 무한한 생명과 사랑이 같이할 것입니다.이렇게 하나님은 사정이 통하고, 정이 통하고, 내용이 통할 수 있는 크리스찬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약 오늘날 이 땅에 주님이 오시면 '너는 과연 고난의 30여 평생을 보낸 나의 친구가 되어 있는가'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또, '너는 어느 정도까지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을 품었으며, 세계적인 서러움을 갖고 몇날 며칠을 살아 보았느냐'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땅 위에 오신 예수를 인간들이 받들지 못함으로 인해 예수님을 사탄 앞에 하나의 조건으로 내어 주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 조건을 넘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왜 살아 있느냐? 이 몸이 죽기 전에 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있는 충성을 다하여 예수의 생애를 붙들고 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예수의 생애에서 밟혔던 것을 일으켜 세워드릴 수 있는 참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살아 있는 동안에 이러한 책임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나는 단순한 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온 연령만의 여러분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 각자 각자는 아담 해와로부터 예수까지의 4천년, 예수 이후 지금까지의 2천년을 합한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여러분 일신에서 결실해야 할 우주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 자신이라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원수들 앞에서 당당하셨듯이 여러분도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더라도 당당해야 되겠습니다. 눈물을 흘리더라도 자기를 위해서 흘리지 말고, 울더라도 자기를 위해 울지 말라는 것입니다.
울려거든 예수를 위해 울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위하고 여러분을 생각하시는 예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사정을 알아주실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더라도 그런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자기를 위해 눈물 흘리는 자는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의 고난에 부딪치게 될 때에 진정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고, 아버지의 사랑권내에 내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낀다면 기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것을 느껴 보았습니다. 어깨에 천톤이나 되는것 같은 무거운 짐이 얹혀졌어도'아버지, 이것을 가볍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도는 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아버지께서는 이런 입장에 있는 나를 잘 아십니다. 그러지 않아도 서러운 입장에 계신 아버지에게'아버지, 나 이런 짐을 지고 있나이다'라고 기도하게 되면 아프신 아버지의 마음에 제2의 서러움을 안겨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까지 여러분들은 알아 가지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삼천만 민족 속에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몇 사람만 있다 해도 이 민족의 서러움을 막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자기의 서러움 때문에 우는 모습이 절대로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⑨ 아버지를 위로하시기에 노심초사하신 예수
예수는 우주적인 사명을 갖고 이 땅에 오셨으나 일생 동안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서러움을 위해 기도하시지 않고 도리어 아버지의 마음 상하심과 염려를 위로하시기에 노심초사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땅을 바라보고 인간들의 무지함을 용납하여 주기 위하여 애달파하신 예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는 30여 평생의 눈물의 생애로서만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수고를 대신하여 나섰기 때문에 죽든지 살든지 아버지의 뜻만을 영광되게 해 드리려는 마음을 갖고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알아주시든지 말든지 땅 위의 인간들이 알아주든지 말든지 그런 것은 상관하지 않고, 때와 장소를 개의치 않고 뜻을 위해 사셨습니다.
뜻을 완전히 이루려고 오셨던 예수였으나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되었다고 해서 고심하거나 낙망하지 않은 예수였습니다. 죽음의 자리까지 나가서도 예수는 자기를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것과 같이 빌라도의 법정을 통하여 골고다의 산정을 거쳐 십자가에 못박혀 운명하는 자리까지 나가면서도 예수는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무변명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인간들이 저렇게 반대하는 것도 자기의 책임이라고 느낄 수 있었던 예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우리들은 나신 예수로부터 사신 예수를 거쳐 가신 예수의 친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는 무엇과 친구가 되었느냐 하면, 생명과 친구가 되지 않고 죽음과 친구가 되신 분이었습니다. 역사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길을 갔지만 만민의 죽음을 대신하여 죽음의 친구가 되고, 만민을 대신하여 죽으신 분은 예수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죽음과 희생의 종교요, 기독교의 진리는 죽음을 이기는 진리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활동은 자기 일신을 파괴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원망없이 사랑할 수 있는 예수의 행로였음을 여러분이 인식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친구이셨기 때문에 죽음을 재촉할 때에도 죽음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원수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여유의 생애를 살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나중에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하나님까지도'모른다' 하셨습니다. 그때 예수께서'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셨는데, 이것은 소망이 절망으로, 생애의 전부가 수포로 돌아갈 것 같기 때문에 외치신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죽음으로 인하여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고 가지 못하는 것을 염려하여 외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로서는 할바의 책임을 다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자기를 천당으로 보내시든 지옥으로 보내시든 개의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죽음의 친구가 되어야 할 입장에 있었던 예수는 죽는 것으로서 만족하고 죽는 것으로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려 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주적인 사랑을 가지고 오셨으나 그것을 안 자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놀라우신 은사를 가지고 오셨지만 일단 죽음의 친구가 되기 위하여 나선 이상에는 아무런 미련을 갖지 않았습니다. 하늘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오셨는데도, 하늘이 소망의 존재로 대해 주시지 않으셔도 반박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던 예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나가는 데에는 최후의 고개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있는 정성을 다해 나가더라도 끝에 가서는 하늘이 모른다 할 때가 있습니다. 하늘이 모른다 하는 것은 세계적인 사명이 우리 앞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예수도 세계적인 사명을 담당해야 했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도 그런 일이 있을 것입니다. 충성을 다하고 생활을 다 바쳐 아버지께 매달리더라도 하늘이 모른다 하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죽어도 아버지 뜻이요, 살아도 아버지 뜻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희망을 갖는다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오직 이 하나의 희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못 먹는 것도 못 입는 것도 기쁜 일이옵니다'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⑩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의 최후의 고개
오늘날 여러분은 천당가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죽기 위하여 예수를 믿는 사람은 천당에 갈 것입니다. 잘 살기 위하여 예수를 믿는 것보다 잘 죽기 위하여 예수를 믿는다면 그것은 지극히 귀한 믿음이 될 것입니다. 잘 살기를 바라며 믿던 12사도들은 예수가 죽을 때 다 어디로 갔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한 생명이 잘 살기 위하여 믿을 것이 아니라 여러분 한 생명을 잘 희생하기 위하여, 즉 잘 죽기 위하여 믿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의 일생을 닮아야 하겠습니다. 예수의 일생을 역사를 대신하여 받들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생애를 우리가 가져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생애를 가져야 예수의 사랑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를 모셔 드려야만 예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예수께서 2천년 동안 수고하신 것을 본받을 수 있는 신앙 인격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6천년 동안 하나님의 섭리가 연장되었으니 6천년의 섭리를 대신하여 책임지고 오실 이를 모실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아버지께서 혹은 주께서 나타나셨을 때 주를 초대하여 모실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 시간은 한 시간 두 시간도 아니고 영원히 모실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를 모실 수 있는 신부의 자격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6천년의 하나님의 서러움을 책임지고 위로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수고하신 주님 앞에 나가 나는 이렇게 이렇게 하겠나이다. 나는 이렇게 이렇게 당신을 모시겠나이다. 나는 이렇게 이렇게 준비했나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주적인 준비를 갖추어 '주여, 오시옵소서. 주여, 나타나시옵소서' 할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가 망할 리 없는 것입니다.
이런 크나큰 사명이 우리들 앞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내적인 심정과 예수의 내적인 소망이 오늘 우리 한 사람을 중심삼고 돌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가! 모르는 사람은 망하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 가슴을 칠 때가 올 것입니다.
⑪ 오실 주님을 모시려면
마음으로 모시고, 몸으로 모시고, 사회로 모시고, 세계로 모시고, 하늘땅으로 모시는 일, 이것이 아들의 책임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여러분 자신은 마음으로도 예수를 모시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예수님을 모시는 일에 출발도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마음으로 모시고, 몸으로 모시고, 사회가 모시고, 국가가 모시고, 세계가 모시고, 하늘 땅이 모심으로써 영광이 여러분 개인은 물론이요,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와 온 피조세계를 채우고도 남음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천주적인 사명이 여러분들에게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상상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사명을 띠고 남달리 모인 여러분은 째째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비굴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되겠습니다. 수많은 원수들 앞에 나가더라도 당당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우주적인 영광과 우주적인 사랑을 가지고 오시는 예수를 모셔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우주적인 자리에 마음과 실체를 가지고 나서야 할 여러분인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위해 정성드리고 가정을 위해 정성드리는 그것으로 만족하는 크리스찬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교회 하나를 중심삼고 만족하는 크리스찬도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삼천만 민족이 전부 다 크리스찬이라 하더라도 민족을 대표하여 나설 수 있는 크리스찬, 세계 인류가 전부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그 24억 인류를 대신하여 설 수 있는 대표적인 크리스찬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영계에 있는 모든 천사를 주관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할 우리라 할진대, 그들 앞에서도 버젓하게 이렇게 가치 있는 일을 했다고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 누가 오셨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이렇듯 크나큰 사명을 하려고 오신 예수, 이렇듯 우리가 지극하게 모셔드려야 할 예수인데, 그 예수를 바라보고 나가는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습니까? 면목이 없는 것입니다. 면목이 없어서 6천년 동안 눈물을 흘리더라도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와 가슴을 치고 6천년 동안 통곡하여도 부족할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우리인데도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당장 죽는 한이 있더라도, 쓰러지고 밟히는 한이 있더라도 가진 바의 절개심, 가진 바의 충절의 마음만은 변치 말아야 하고, 우주 만상 앞에 버젓이 드러내어 하늘의 아들딸의 위신을 세울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⑫ 절개와 충절의 아들 딸
여러분들은 어려운 길에 섰습니다.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운명의 길에 선 것입니다. 이런 운명의 길에 선 여러분은 일생 동안 신념과 내적인 충절을 지니고 그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울어야 될 것입니다.'나는 주님을 모시더라도 세계적인 주, 우주적인 주, 6천년의 역사를 넘고 넘어 영원한 이상세계를 품고도 남을 수 있는 주, 이러한 주님을 모셔야 할 나인데, 나는 이제까지 가정의 주를 모시고 즐거워하는 내가 되었고, 혹은 민족과 국가의 주를 모시고 기뻐하는 그 정도밖에 되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회개하며 통곡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이 시대에 대한 책임과 사명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까? 혹은 태초부터 창조의 이념이 완결되는 끝날까지 전체의 인류가 소망해 오던 이상을 내가 대신 이루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까? 그런 우주적인 사명감을 느끼어 보았습니까?
뿐만 아니라 여러분은'나는 이러한 사명을 다하고도 남을 수 있는, 자신이 있는 사람이다'라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기도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기도할 때에는 많은 기도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선 자가 있다 할진대 '아버지!'하는 한 마디로 다 통할 것입니다. 설명이 필요없다는 것이예요. 논리가 필요 없다는 것이예요.
말씀을 하기 전에 마음의 직감적인 충격에 의해 서슴치 않고 나서서 모실 수 있는 자격을 갖춰야 하는 자리에 우리는 나섰습니다. 그런 보화를 가지고 우리는 나섰습니다. 이제 출발한 여러분은 어떤 조건에 걸려 있지는 않습니까? 가다가 어느 과정에 멈추어 서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생애노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지금 어느 기준까지 달렸습니까? 여러분은 개인에서 출발하여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거쳐 하늘 땅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이러한 천주적인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주를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모실 수 있는 참사람을 찾아서, 6천년의 한숨을 다 벗어버리고, 그를 붙들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시며 '아버지, 당신이 찾고자 원하시던 존재가 여기 있나이다. 아버지! 즐거워하십시오'라고 하실 때 하늘로부터'그렇다'고 하는 영광의 대답이 나오는 한날이 인간 앞에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날을 표준으로 하고 싸워나가는 여러분은 오늘도 싸우고 내일도 싸우며 온 생애를 바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영생의 노정에서 개척자가 되고, 선봉자가 되고, 우주적인 신부로 단장하여 우주적인 주를 모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승리의 영광, 아버님의 사랑, 영원한 생명을 받아 만물 만상, 온 천주를 대신한 신부가 되고, 아버님과 영원히 동고동락할 수 있는 아들 딸이 될 때까지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선집 제1권 19편
만민을 위하여 오신 주를 모시는 자가 되자 (훈독본)
1956.12.23 (일), 한국 전본부교회
마태복음 8:18-34
만민을 위하여 오신 주를 모시는 자가 되자 (말씀선집 제1권 19편) - YouTube
여러분들과 같이 '만민을 위하여 오신 주를 모시는 자가 되자'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과 인간 타락의 결과
타락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인류는 먼저 마음으로 몸으로 하나님의 서러움이 사무쳐 있는 것을 느끼는 사람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너나 할것 없이 타락했지만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관계가 있는 이상, 또 섭리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수고하고 계시는 아버님이 있는 이상 우리들은 무의미한 입장에 서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 자체가 악하고 악한 자리에 처해 있을지라도 역사과정을 거쳐 나오면서 섭리하신 아버지의 수고의 눈물 자국이 여러분의 몸에 남아 있음을 먼저 인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요, 다음에는 우리들을 다시 찾아 회복시켜 주기 위한 섭리, 즉 복귀섭리를 해오신 아버지의 수고와 고난의 흔적을 느껴야 될 것입니다. 또 그뿐만 아니라 창조본연의 이상이, 하나님 속에 남아 있는 내적인 소원이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무형의 신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서러움이 내 한 자체에 사무쳐 있고, 복귀의 섭리를 하시는 하나님의 수고의 표적이 내 몸에 소망의 터전으로서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의 강림 목적과 유대백성의 불신
그러면 이제, 무형의 아버지께서 인간과 만물을 지으시고 기쁨과 영광을 누리시려던 창조 이상은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 마음 속에 한으로서 남아졌는데, 이것을 풀어드릴 사명을 가지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내적인 원한의 핵심을 실체적으로 풀어드리기 위하여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를 모셔야 했던 존재, 예수를 대망하였던 존재, 예수와 영원히 동락할 수 있었던 존재는 어디에 있었던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사무친 원한의 심정을 대신한 분이요, 하나님의 실체상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원한을 실체적으로 풀어드릴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당시의 유대백성들이 알아야 했습니다.
무형의 하나님의 서러움은 유형의 인간을 통해서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서러움과 만민의 서러움을 대신할 수 있는 분이 예수였었습니다.
메시아를 바라고 있던 이스라엘민족에게는 하늘의 독생자, 하늘의 황태자로 태어나신 예수가 이렇듯 서럽고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모실 수 있는 하나의 존재를 찾으셨지만 그런 존재를 하나도 찾지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에 죽은 예수는 만민이 모시는데,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갖고 오셔서 인간들에게 그 사랑을 옮겨 줄 수 있는 살아계신 예수는 어찌하여 아무도 모시지 않았던가. 그 책임은 인간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 우리 선조들의 죄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책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연장된 연고로, 하나님의 서러움은 예수님의 서러움으로, 하나님의 수고는 예수의 수고로, 하나님의 소망은 예수의 소망으로 남아졌고, 그 모든 것은 성신에게까지 미쳐졌습니다.
예수가 오늘의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이렇게 하나님과 예수와 성신의 서러움을 풀어드려야 할 책임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6천년의 서러움의 원한을 풀어 드리고 수고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예수님은 바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다시 오시는 예수에 대한 우리의 책임
그것은 예수의 마음과 예수의 서러움과 예수의 수고의 짐을 실체적으로 대신 맡는 것입니다.
예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하는 여러분들은 예수가 나실 때와 예수가 사실 때와 예수가 가실 때의 사정이 여러분의 사정으로 체휼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애달픈 마음을 품고서 만민을 구속해야 할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느끼신 것과 같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악한 땅에 태어나 홀로 누우신 예수님의 말구유에 여러분이 친히 누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황태자, 하늘의 왕자인데도 불구하고 이 땅 위에 태어나실 때, 마굿간이 웬 말입니까? 서러움에 북받쳐 있는 예수의 서러움도 서러움이지만 그 예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내적 서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사실을 놓고 서러움을 뼈에 사무치도록 느껴야 합니다. 또한 끝날에 처해 있는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사명을 내가 홀로 맡았다는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민족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준비되었던 유대교단이 예수님을 몰랐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하나님의 서러움을 다시 한번 거듭되게 한 것이었습니다. 어느누구 하나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예수를 편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의 말구유 위에 누워 있는 예수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외쳤을 때 온 예루살렘 성 중은 소동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동은 기쁜 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을 위한 준비
땅 위에 주님이 오시면 먹고, 입고, 계시고 활동하실 것인데, 메시아가 오시기를 고대하던 유대 백성들은 이것을 모르고 메시아를 모실 준비를 해 놓고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입을 옷 한벌 준비 해 놓고 기다리는 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간절한 마음을 갖고 준비한 사람이 있었다면, 동방박사 세 사람이 예루살렘에 와서 그렇게 말했을 때, 동방박사의 뒤를 따라 베들레헴까지 찾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방박사 세 사람 뿐이었습니다.
메시아 오기를 바라던 유대백성들이 메시아가 탄생했을 때 계실 곳을 준비하는 백성들이 되었던들, 예수를 말구유 위에 눕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메시아가 탄생하면 계실 곳을 준비할 수 있는 기독교인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을 위한 예물
예수가 강보에 싸여 말구유 위에 누워 있는 것을 여러분은 기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만민이 합하여 이 땅 위의 어느누구보다, 4천년 역사상의 어느누구보다 영광된 자리에 눕혀 드렸어야 했던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만민에게 귀여움을 받고 찬양받아야 했던 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탄 앞에 자랑해야 할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민족이 그렇게 예수님을 모시지 못하는 장면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서러움이 어떠했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런 하나님의 서러움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아버지 앞에, 세계를 위하여 오시는 주를 위해 준비를 하되, 이 땅 위에 없는, 이 땅 위의 무엇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예물을 준비해야 될 것입니다.
예수의 눈물과 기도
여러분이 이제 참되게 아버지를 찾아 나가려고 한다면, 예수의 사랑의 품을 찾아 나가려고 한다면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4천년 동안 서러워하시면서도 그 서러움을 나타내시지 못하셨는데 예수는 실체적으로 눈물을 흘리시며 사셨습니다. 성경상에는 서너곳 밖에 나타나 있지 않지만 실제 예수께서 눈물 흘리신 숨겨진 사실은 무한히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수천년 동안 섭리역사를 통해 사랑해 오신 유대백성들을 바라보게 될 때, 어느 한 순간도 눈물 흘리지 않은 때가 없었다는 거예요. 어렵고 외로운 일에 부딪칠 적마다 예수는 아버지만이 알아주시는 가운데 서러워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러한 서러움을 제자들에게 말하지 못하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감람산에 올라가 밤을 새워 기도하시던 것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만 기도하신 것이 아니예요.
예수님은 철이 들면서부터 서러움을 가졌습니다. 세상의 인간들이 예수를 모시어 드리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자랄 적부터 서러움을 겪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요셉가정에서 의붓자식으로 자랐습니다. 그래서 온 동리가 예수를 대하여 많은 말을 했지만 그는 말없는 생활을 했다는 거예요. 말할 수 없는 하늘의 뜻, 크고 놀라운 뜻을 품었으면서도 보통 아이로 자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30평생을 목수일을 하며 사신 그 생활이 좋은 생활이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민족의 어느누구보다 더 고귀한 자리에 서서 아버지의 즐거움과 영광을 드러내면서 살아야 할 예수님이 요셉의 생활을 협조해 주기 위하여 까뀌를 들고 대패를 들고 생활했다니 이게 웬 말입니까?
오늘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하나님의 원한의 심정을 풀어드리기를 바라는 참다운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는, 예수께서 걸어가신 생애를 본보기로 해서 갈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흔히 자기의 십자가와 자기의 서러움도 하늘에 넘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서러움은 나로 말미암은 서러움이니 그 서러움을 내가 지겠나이다. 하나님이여, 염려하지 마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의 신념, 예수의 생활의 일면을 통한 사람인 것입니다
'너는 나의 친구인가?'
이제 30여 평생 눈물로 사셨던 예수의 서러움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할진대, 여러분은 이것을 풀어드려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최후의 순간에 이르러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하면서도 뜻을 이루어야겠다는 애달픈 심정에 사무쳤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이 '나는 예수의 친구다'라는 마음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면, 여러분은 눈물 없이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믿고 있는 성도들 중에 하늘 앞에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예수의 친구가 될 것입니다.
만약 오늘날 이 땅에 주님이 오시면 '너는 과연 고난의 30여 평생을 보낸 나의 친구가 되어 있는가'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또, '너는 어느 정도까지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을 품었으며, 세계적인 서러움을 갖고 몇날 며칠을 살아 보았느냐'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땅 위에 오신 예수를 인간들이 받들지 못함으로 인해 예수님을 사탄 앞에 하나의 조건으로 내어 주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 조건을 넘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왜 살아 있느냐? 이 몸이 죽기 전에 있는 충성을 다하여 예수의 생애를 붙들고 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예수의 생애에서 밟혔던 것을 일으켜 세워드릴 수 있는 참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살아 있는 동안에 이러한 책임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온 연령만의 단순한 나로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 각자 각자는 아담 해와로부터 예수까지의 4천년, 예수 이후 지금까지의 2천년을 합한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여러분 일신에서 결실해야 할 우주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 자신이라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원수들 앞에서 당당하셨듯이 여러분도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더라도 당당해야 되겠습니다. 눈물을 흘리더라도 자기를 위해서 흘리지 말고, 예수를 위해 흘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의 고난에 부딪치게 될 때에 진정 아버지의 사랑을 느낀다면 기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고난을 가볍게 해 달라는 기도는 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서러운 입장에 계신 아버지에게 '아버지, 나 이런 짐을 지고 있나이다'라고 기도하게 되면 아프신 아버지의 마음에 제2의 서러움을 안겨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까지 여러분들은 알아 가지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삼천만 민족 속에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몇 사람만 있다 해도 이 민족의 서러움을 막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자기의 서러움 때문에 우는 모습이 절대로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를 위로하시기에 노심초사하신 예수
예수는 우주적인 사명을 갖고 이 땅에 오셨으나 일생 동안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도리어 아버지의 마음 상하심과 염려를 위로하시기에 노심초사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인간들의 무지함을 용납하여 주기 위하여 애달파하신 예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는 아버지의 뜻만을 영광되게 해 드리려는 마음을 갖고 살았습니다.
예수는 생명과 친구가 되지 않고 죽음과 친구가 되신 분이었습니다. 역사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길을 갔지만 만민의 죽음을 대신하여 죽음의 친구가 되고, 만민을 대신하여 죽으신 분은 예수뿐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여유의 생애를 살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나중에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하나님까지도 '모른다' 하셨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셨는데, 이것은 소망이 절망으로, 생애의 전부가 수포로 돌아갈 것 같기 때문에 외치신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죽음으로 인하여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고 가지 못하는 것을 염려하여 외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로서는 할바의 책임을 다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자기를 천당으로 보내시든 지옥으로 보내시든 개의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죽음의 친구가 되어야 할 입장에 있었던 예수는 죽는 것으로서 만족하고 죽는 것으로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려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있는 정성을 다해 나가더라도 끝에 가서는 하늘이 모른다 할 때가 있습니다. 하늘이 모른다 하는 것은 세계적인 사명이 우리 앞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도 예수님처럼 그런 일이 있을 것입니다. 충성을 다하고 생활을 다 바쳐 아버지께 매달리더라도 하늘이 모른다 하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죽어도 아버지 뜻이요, 살아도 아버지 뜻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못 먹는 것도 못 입는 것도 기쁜 일이옵니다'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의 최후의 고개
천당가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 죽기 위하여 예수를 믿는 사람은 천당에 갈 것입니다. 잘 살기 위하여 예수를 믿는 것보다 잘 죽기 위하여 예수를 믿는다면 그것은 지극히 귀한 믿음이 될 것입니다. 잘 살기를 바라며 믿던 12사도들은 예수가 죽을 때 다 어디로 갔습니까?
여러분은 잘 살기 위하여 믿을 것이 아니라 여러분 한 생명을 잘 희생하기 위하여, 즉 잘 죽기 위하여 믿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의 일생을 닮아야 하겠습니다. 예수의 생애를 가져야 예수의 사랑을 가질 수 있고 예수를 모셔 드려야만 예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예수께서 2천년 동안 수고하신 것을 본받을 수 있는 신앙 인격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주를 모실 수 있는 신부의 자격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6천년의 하나님의 서러움을 책임지고 위로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크나큰 사명이 우리들 앞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의 내적인 심정과 예수의 내적인 소망이 오늘 우리 한 사람을 중심삼고 돌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망하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 가슴을 칠 때가 올 것입니다.
오실 주님을 모시려면
마음으로 모시고, 몸으로 모시고, 사회로 모시고, 세계로 모시고, 하늘땅으로 모시는 일이 우리들의 책임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여러분 자신은 마음으로도 예수를 모시지 못하여 모시는 출발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마음과 몸으로 모시고, 사회,국가, 세계, 하늘 땅이 모심으로써 영광이 여러분 개인은 물론이요,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와 온 피조세계를 채우고도 남음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천주적인 사명이 여러분들에게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상상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와 가정을 위해 정성드리는 그것으로 만족하는 크리스찬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교회 하나를 중심삼고 만족하는 크리스찬도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삼천만 민족이 전부 다 크리스찬이라 하더라도 민족을 대표하여 나설 수 있는 크리스찬, 세계 인류가 전부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그 24억 인류를 대신하여 설 수 있는 대표적인 크리스찬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영계에 있는 모든 천사들 앞에서도 이렇게 가치 있는 일을 했다고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 누가 오셨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절개와 충절의 아들 딸
여러분들은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운명의 길에 선 여러분은 일생 동안 신념과 내적인 충절을 지니고 그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나는 주님을 모시더라도 세계적인 주, 우주적인 주, 6천년의 역사를 넘고 넘어 영원한 이상세계를 품고도 남을 수 있는 주, 이러한 주님을 모셔야 할 나인데, 이제까지 가정의 주를 모시고 즐거워하는 내가 되었고, 혹은 민족과 국가의 주를 모시고 기뻐하는 그 정도밖에 되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회개하며 통곡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이 시대에 대한 책임과 사명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까? 혹은 태초부터 창조의 이념이 완결되는 끝날까지 전체의 인류가 소망해 오던 이상을 내가 대신 이루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까? 그런 우주적인 사명감을 느끼어 보았습니까?
말씀을 하기 전에 마음의 직감적인 충격에 의해 서슴치 않고 나서서 모실 수 있는 자격을 갖춰야 하는 자리에 우리는 나섰습니다. 그런 보화를 가지고 우리는 나섰습니다. 여러분은 생애노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지금 어느 기준까지 달렸습니까? 여러분은 개인에서 출발하여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거쳐 하늘 땅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를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승리의 영광, 아버님의 사랑, 영원한 생명을 받아 만물 만상, 온 천주를 대신한 신부가 되고, 아버님과 영원히 동고동락할 수 있는 아들 딸이 될 때까지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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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만민을 위하여 오신 주를 모시는 자가 되자
1956.12.23 (일), 한국 전본부교회
여러분들과 같이 생각하려는 제목은 '만민을 위하여 오신 주를 모시는 자가 되자'입니다. '만민을 위하여 오신 주를 모시는 자가 되자'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① 하나님의 창조이상과 인간 타락의 결과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 이 모두는 하나의 창조이상을 중심삼고 영원히 하나되어야 할 것이었는데, 하늘과 만물의 중간에 있는 인간이 실수한 연고로 만물은 만물대로, 하늘은 하늘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나뉘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창조 본연의 세계를 다시 찾기 위하여 만물부터 시작해서 인간과 마지막에는 하늘까지 찾는 복귀의 역사를 하시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아버지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여러분이 되어선 안 될 것입니다.
타락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오늘날의 우리들, 타락의 종족으로서 우거하고 있는 오늘날의 인류는 먼저 마음으로 몸으로 하나님의 서러움이 사무쳐 있는 것을 느끼는 사람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너나 할것없이 타락했지만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관계가 있는 이상, 또 섭리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수고하고 계시는 아버님이 있는 이상 우리들은 무의미한 입장에 서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 자체가 악하다 할지라도, 악한 자리에 처해 있을지라도 스스로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거쳐 나오면서 섭리하신 아버지의 수고의 눈물 자국이 여러분의 몸에 남아 있음을 먼저 인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요, 다음에는 우리들을 다시 찾아 회복시켜 주기 위한 섭리, 즉 복귀섭리를 해오신 아버지의 수고와 고난의 흔적을 여러분이 역사를 대신하여 여러분의 몸에 지니고 있음을 느껴야 될 것입니다. 또 그뿐만 아니라 창조본연의 이상이, 하나님 속에 남아 있는 내적인 소원이 끝날에 있는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들은 무형의 신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서러움이 내 한 자체에 사무쳐 있고, 무형의 신으로 계시어서 복귀의 섭리를 하시는 하나님의 수고의 표적이 내 몸에 소망의 터전으로서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땅 위에 있는 우리들은 하나님이 당신의 애달픈 심정만큼 애달파하고, 수고하신 당신의 고난의 흔적만큼 수고하고, 소망으로 두고 나오던 당신의 본연의 선의 심정만큼 몸과 마음을 굽혀 그 서러움을 대신할 수 있는 서러움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하나님의 수고를 대신하는 고난의 심정을 갖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고난을 보이는 체를 갖추어 나타낼 수 있는 모습을 이 날도 요구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모든 종교를 판가리지어 소원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소망의 한 종교를 아버지께서는 찾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활동하나, 어느 한 순간의 생활과정이나 찰나의 시간에 있어서도 마음에 어리고 몸에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참다운 성도가 이 땅 위에 나타나기를 아버지께서는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오늘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은 마음으로 체휼할 수 있는 자리에 나아가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② 예수의 강림 목적과 유대백성의 불신
그러면 이제, 무형의 아버지께서 인간과 만물을 지어 놓으시고 기쁨과 영광을 누리시려던 창조 이상, 만물 앞에 인간을 내세우시고 모두가 선의 이상에 취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자랑하며 동고동락하기를 소망하셨던 하나님의 창조 이념은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 마음 속에 한으로서 남아졌는데, 이것을 풀어드릴 사명을 가지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4천년 수고의 역사를 대신하여, 인류를 대신하여, 만물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내적인 원한의 핵심을 실체적으로 풀어드리기 위하여 오신 분이 누구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를 모셔야 했던 존재, 예수를 대망하였던 존재, 예수와 영원히 동락할 수 있었던 존재는 어디에 있었던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 사무친 원한의 심정을 대신한 분이요, 무형의 실존체로 실존하시는 하나님의 실체상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원한을 실체적으로 풀어드릴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당시의 유대백성들이 알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위로받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내적인 섭리의 뜻을 알아서'이 분은 4천년 동안 하나님이 서러워하셨던 그 마음을 풀어드릴 수 있는 분이요, 아버지가 찾으시던 영원한 소망의 존재'라고 찬양하면서 하나님의 소망의 심정과 동감할 수 있고 그 예수를 모실 수 있었던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무형의 하나님의 서러움은 유형의 인간을 통해서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서러움과 만민의 서러움을 대신할 수 있는 분이 예수였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일평생 동안 기쁨의 날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4천년 동안 흘리신 하나님의 서러움의 눈물이 그의 마음에 사무쳐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만민들이 예수와 하나되어 하나님의 서러움을 풀어드려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누구 하나 예수님의 서러움을 체휼하여 예수 앞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의 일생을 처음에서부터 끝까지 살펴볼 때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그래서 그러한 원한의 자국이 오늘날의 우리에게까지 연장되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메시아를 바라고 있던 이스라엘민족에게는 하늘의 독생자, 하늘의 황태자로 태어나신 예수가 이렇듯 서럽고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당신을 모실 수 있는 하나의 존재를 찾으셨다는 것입니다. 찾으시되,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찾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을 대신하여 찾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서러움에 동참하고, 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수고를 대신하고, 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소망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를 찾으셨으나 마굿간에서 태어나 30여 평생을 거쳐 십자가의 고개를 넘으실 때까지 그런 존재를 하나도 찾지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에 죽은 예수는 만민이 모시는데,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갖고 오셔서 인간들에게 그 사랑을 옮겨 줄 수 있는 살아계신 예수는 어찌하여 아무도 모시지 않았던가. 그 책임은 인간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서러움을 풀어드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수고의 노정을 제하기 위하여 오셨던 예수였는데도 불구하고, 소망의 동산을 건설하기 위해 하나님의 소망의 실체로 오셨던 예수였는데도 불구하고, 그 예수의 서러움을 붙안고, 그의 고난을 자기 일신에 지니고 그의 소망을 느끼어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 우리 선조들의 죄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가 오늘의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고! 하나님의 모든 원한을 예수의 일신을 통하여 풀려고 하던 일이 우리의 선조들이 책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연장된 연고로, 하나님의 서러움은 예수님의 서러움으로, 하나님의 수고는 예수의 수고로, 하나님의 소망은 예수의 소망으로 남아졌고,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은 성신에게까지 미쳐졌습니다.
③ 예수가 오늘의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이렇게 2천년의 역사를 통해 연장되어 온 하나님과 예수와 성신의 서러움을 풀어드려야 할 책임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감추어져 있는 6천년의 서러움의 원한을 풀어 드릴 수 있는 사람, 6천년의 수고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6천년의 하나님의 소망을 이 땅 위에 다시 나타낼 사람이 우리들 가운데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찾아지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놀라운 아버지의 은사 앞에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사 앞에 나서게 될 때, 여러분이 나서는 그날이 시작인 줄 알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이 아버지 앞에 서 있는 것은 여러분 일개인이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믿는 것도 여러분의 일생만을 걸어 놓고 믿는 것이 아니라 6천년 역사를 걸어 놓고 믿고 있다는 실감을 가져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버지 앞에 자기의 죄를 회개하는 자리에 설 때에도 이것은 나 자신에 대한 회개뿐만이 아니라 6천년을 대신한 회개라고 하는 것을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주의 은사와 주의 사랑 앞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에도 여러분은 어느 한 시간권내에서 여러분 혼자 감사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6천년 동안 해오신 아버지의 전체의 섭리, 평면적인 역사와 입체적인 역사를 대신하여, 소망적인 하나의 기준을 대신하여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서러움을 풀어드릴 사람, 하나님의 수고를 대신 맡을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소망을 대신 이루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오늘날 땅위에 나타나기를 예수님은 바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실체적으로 해원하기 위해서 오셨던 예수님은 이 땅위에서 그 일을 다하지 못하셨기 때문에 다시 와야 할 운명을 안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러기에 이 예수께서는 다시 6천년의 역사를 대신하는 서러움의 심정을 갖고 보잘것없는 여러분들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4천년의 서러움뿐만 아니라, 거기에 2천년의 서러움을 가하여 가지고 여러분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또한 서러움뿐만 아니라 2천년의 수고의 원한을 가하여 가지고 여러분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④ 다시 오시는 예수에 대한 우리의 책임
6천년의 소망을 갖고 찾아오시는 예수님이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될 때에 인간들이 해야 할 책임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의 마음과 예수의 서러움과 예수의 수고의 짐을 실체적으로 대신 맡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4천년의 수고를 대신하여 4천년의 서러움을 풀어드리기 위해 이스라엘민족 앞에 오셨던 예수님을 이스라엘민족이 믿지 않고 반대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됐던 것입니다.이와 같이 예수님을 아버지의 수고와 4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4천년의 서러움을 풀러 오셨던 분으로 알고 믿고 모실 수 있는 사람이 이스라엘민족 중에 없었던 연고로 예수는 십자가에 돌아가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고로 이 일을 완결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재림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6천년 역사를 총결산해야 하는 끝날의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삼위신 앞에 홀로 서서'하나님의 서러움을 나의 서러움으로 맡겨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수고를 나의 수고로 맡겨 주시옵소서.하나님의 소망을 나의 소망으로 맡겨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여러분은 한 개체이지만, 하늘 땅을 대신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갖고 예수의 올 날을 준비하는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세계의 크리스찬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하는 여러분들은 오셨다가 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다시 한번 더듬어 보아야 합니다. 예수가 나실 때와 예수가 사실 때와 예수가 가실 때의 사정이 여러분의 사정으로 체휼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애달픈 마음을 품고서 만민을 구속해야 할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느끼신 것과 같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악한 땅에 태어나 홀로 누우신 예수님의 말구유에 여러분이 친히 누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황태자, 하늘의 왕자인데도 불구하고 이 땅 위에 태어나실 때, 마굿간이 웬 말입니까? 서러움에 북받쳐 있는 예수의 서러움도 서러움이지만 그 예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내적 서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사실을 놓고 서러움을 뼈에 사무치도록 느껴야 합니다. 또한 끝날에 처해 있는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사명을 내가 홀로 맡았다는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만민을 위하여 오셨는데도 불구하고 푸대접을 받으며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자리에 계셨던 예수님의 사정을 내 사정으로 바꾸어 생각해 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당신의 서러움을 위로해 줄 수 있는 합당한 존재가 있었다면, 그 한 사람을 붙들고 자기의 모든 소망을 풀어 놓고 싶을 정도의 사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4천년의 세월을 통하여 택해 놓은 이스라엘민족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준비되었던 유대교단이 예수님을 몰랐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베들레헴 성중의 말구유 위에 누워 있던 예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하나님의 서러움을 다시 한번 거듭되게 한 것이었습니다. 어느누구 하나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예수를 편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들은 이제 하나님의 원한과 이 땅 위에 왔다 가신 예수의 원한을 거두어서 다 풀어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사탄의 침범 조건을 내 몸에서 제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주가 6천년의 역사를 대신하여 이 땅 위에 나타날 것을 안다 할진대는 부디 여러분은 이스라엘민족과 같은 입장에 서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예수 중심도 아니었고, 메시아 중심도 아니었고, 하나님 중심도 아니었고, 자기 중심한 것이었습니다. 메시아는 기필코 오실 것인데 그것을 알면서도 메시아를 모시기 위한 준비를 아무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의 말구유 위에 누워 있는 예수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외쳤을 때 온 예루살렘 성중은 소동했습니다. 이방나라의 점쟁이들이 예수를 찾아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동은 기쁜 일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기쁜 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⑤ 다시 오시는 주님을 위한 준비
오늘날 하늘을 믿고 있는 여러분, 6천년의 역사를 대신하여 믿고 있는 여러분들은 잘못을 저지른 유대교의 입장과 같은 입장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오시는 메시아를 위하여 준비할 수 있어야 하고, 초림 예수의 서러움을 여러분 자신이 풀어드릴 뿐만 아니라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신령한 단계, 아버지와 의논하는 자리에 들어가면 여러분에게 이것을 해라, 혹은 저것을 해라 하는 지시가 많이 내릴 것입니다.
땅 위에 주님이 오시면 먹을 것이고, 입을 것이고, 계실 것이며, 활동하실 것인데, 메시아가 오시기를 고대하던 유대 백성들은 이것을 모르고 메시아를 모실 준비를 해 놓고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입을 옷 한벌 준비 해 놓고 기다리는 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간절한 마음을 갖고 준비한 사람이 있었다면, 동방박사 세 사람이 예루살렘에 와서 그렇게 말했을 때, 온 유대백성이 소동했을 때, 동방박사의 뒤를 따라 베들레헴까지 찾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는 길에는 동방박사 세 사람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서러움의 자국을 남겨 놓은 것이 하나님을 따라 나오던, 하나님의 뜻을 위한다고 하던 우리의 선조들이 저질러 놓은 죄였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그러한 입장에 서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마음으로 몸으로, 안팎으로, 오시는 주님을 모실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끝날에 처해 있는 우리들, 전세계 기독교인들이 동원되어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메시아 오기를 바라던 유대백성들이 메시아가 탄생했을 때 계실 곳을 준비하는 백성들이 되었던들, 예수를 말구유 위에 눕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메시아가 탄생하면 계실 곳을 준비할 수 있는 기독교인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⑥ 오시는 주님을 위한 예물
예수가 강보에 싸여 말구유 위에 누워 있는 것을 여러분은 기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만민이 합하여 이 땅 위의 어느누구보다, 4천년 역사상의 어느누구보다 영광된 자리에 눕혀 드렸어야 했던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만민에게 귀여움을 받고 찬양받아야 했던 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탄 앞에 자랑해야 할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민족이 그렇게 예수님을 모시지 못하는 장면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서러움이 어떠했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런 하나님의 서러움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하고, 2천년 전의 예수의 서러운 심정을 알아 가지고, 내적으로 남 모르게 예물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하늘의 예물은 사탄 앞에 보일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 앞에도 보일 수 없다는 것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보면 제일 귀한 예물은 나타내는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 이건 누가 먼저 알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알아야 할 사람이 먼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먼저 알면 미련을 갖고 대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아버지 앞에, 세계를 위하여 오시는 주를 위해 준비를 하되, 이 땅 위에 없는, 이 땅 위의 무엇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예물을 준비해야 될 것입니다.
주께서 친히 임재하시어 활동하시게 될 때, 주께서 마음적으로나 몸적으로나 어려움을 느끼시지 않도록 모심의 터를 여러분의 한 몸에 찾아 놓아야 합니다. 이것은 왜 그러냐 하면,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 제일 귀한 것이 여러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귀한 분이요, 만 우주를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실체이니, 그 아버님의 아들,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독생자가 오시게 될 때에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평화의 터를 건설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서 예수가 다시 오시면 예수의 손발이 되고 예수의 생애를 대신하고, 예수를 편안히 모셔야 하겠습니다. 또, 예수가 2천년 전에 싸우시던 그 싸움을 대신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2천년 동안 싸워 나오셨는데 이제 그 사탄과의 싸움을 내가 다 책임지고 싸우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고, 그 싸움을 위한 방패까지도 내 한 일신이 준비하겠다고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태어나실 때의 예수의 사정을 통감해야 하는 동시에 그 다음에는 지상에서 사실 때의 예수의 심정을 통감해야 되겠습니다.
⑦ 예수의 눈물과 기도
여러분이 이제 참되게 아버지를 찾아 나가려고 한다면, 예수의 사랑의 품을 찾아 나가려고 한다면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4천년 동안 서러워하시면서도 그 서러움을 나타내시지 못하셨는데 예수는 실체적으로 눈물을 흘리시며 사셨습니다. 성경상에는 서너곳 밖에 나타나 있지 않지만 실제 예수께서 눈물 흘리신 숨겨진 사실은 무한히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수천년 동안 섭리역사를 통해 사랑해 오신 유대백성들을 바라보게 될 때, 어느 한 순간도 눈물 흘리지 않은 때가 없었다는 거예요. 예수는 하나님 앞에 기도할 적마다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어렵고 외로운 일에 부딪칠 적마다 예수는 아버지만이 알아주시는 가운데 서러워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러한 서러움을 제자들에게 말하지 못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예수의 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감람산에 올라가 밤을 새워 기도하시던 것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만 기도하신 것이 아니예요.
어려운 길을 걸으시면서도 서러움의 사정을 아뢸 수 있는 곳은 하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그렇다고 해서 그 서러움을 하늘에게 맡기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서러움을 자기가 도맡아 지게 해달라고 했던 것입니다.'아버님이여! 나를 보고 서러워하시는 그 서러움을 내가 맡을 것이오니, 아버님이여! 나를 보시고 위안받으시옵소서! 아버님의 서러움을 내가 감당하겠사오니 서러워하지 마시옵소서'라고 호소했던 것입니다. 그리고'4천년의 수고를 내가 책임지겠사오니, 아버님이여,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내가 있사오니 아버님의 소망이 남아 있다고 염려하지 마시옵소서'라는 기도만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철이 들면서부터 서러움을 가졌습니다. 세상의 인간들이 예수를 모시어 드리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자랄 적부터 서러움을 겪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요셉가정에서 의붓자식으로 자랐습니다. 그래서 온 동리가 예수를 대하여 많은 말을 했지만 그는 말없는 생활을 했다는 거예요. 말할 수 없는 하늘의 뜻, 크고 놀라운 뜻을 품었으면서도 보통 아이로 자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30평생을 목수일을 하며 사신 그 생활이 좋은 생활이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민족의 어느누구보다 더 고귀한 자리에 서서 아버지의 즐거움과 영광을 드러내면서 살아야 할 예수님이 요셉의 생활을 협조해 주기 위하여 까뀌를 들고 대패를 들고 생활했다니 이게 웬 말입니까?
오늘날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를 원하는 아들 딸, 하나님의 원한의 심정을 풀어드리기를 바라는 참다운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는, 그들은 예수께서 걸어가신 생애를 본보기로 해서 갈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예수의 사신 생애를 알려고 할진대는, 여러분은 놀라운 은사를 대신한 예수의 심정에 동감하고, 그 심정을 체휼하고, 그 어려운 입장에 들어가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의 서러움은 시간 시간, 생활 생활을 넘어선 서러움이요, 예수님의 생활은 어느 한 순간 평안함을 느낄 수 없는 생활이었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땅을 위하여 오셨던 예수는 땅으로 말미암아 당하는 서러움을 하늘 앞에 돌리지 않기 위해서 안타까와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흔히 자기의 십자가와 자기의 서러움도 하늘에 넘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하늘의 서러움은 나로 말미암은 서러움이니 그 서러움을 내가 지겠나이다. 하나님이여, 염려하지 마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의 신념, 예수의 생활의 일면을 통한 사람인 것입니다.
⑧ '너는 나의 친구인가?'
이제 30여 평생 눈물로 사셨던 예수의 서러움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할진대, 여러분은 이것을 풀어드려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30여 평생 서러움 속에서 사시다가 마침내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운명하게 되셨는데, 최후의 순간에 이르러'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하면서도 뜻을 이루어야겠다는 애달픈 심정에 사무쳤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이'나는 예수의 친구다'라는 마음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면, 여러분은 눈물 없이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는 발걸음을 옮길 적마다 몸을 움직일 적마다 눈물을 흘렸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 때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믿고 있는 성도들 중에 하루 하루 생활하는 가운데서 하늘 앞에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예수의 친구가 될 것입니다.
교회 교회에서, 가정 가정에서 서로 서로를 위하여, 예수의 심정을 알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거기에는 분명히 하나님에게 요구하지 않아도 무한한 생명과 사랑이 같이할 것입니다.이렇게 하나님은 사정이 통하고, 정이 통하고, 내용이 통할 수 있는 크리스찬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약 오늘날 이 땅에 주님이 오시면 '너는 과연 고난의 30여 평생을 보낸 나의 친구가 되어 있는가'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또, '너는 어느 정도까지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을 품었으며, 세계적인 서러움을 갖고 몇날 며칠을 살아 보았느냐'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땅 위에 오신 예수를 인간들이 받들지 못함으로 인해 예수님을 사탄 앞에 하나의 조건으로 내어 주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 조건을 넘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왜 살아 있느냐? 이 몸이 죽기 전에 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있는 충성을 다하여 예수의 생애를 붙들고 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예수의 생애에서 밟혔던 것을 일으켜 세워드릴 수 있는 참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살아 있는 동안에 이러한 책임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나는 단순한 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온 연령만의 여러분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 각자 각자는 아담 해와로부터 예수까지의 4천년, 예수 이후 지금까지의 2천년을 합한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여러분 일신에서 결실해야 할 우주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 자신이라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원수들 앞에서 당당하셨듯이 여러분도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더라도 당당해야 되겠습니다. 눈물을 흘리더라도 자기를 위해서 흘리지 말고, 울더라도 자기를 위해 울지 말라는 것입니다.
울려거든 예수를 위해 울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위하고 여러분을 생각하시는 예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사정을 알아주실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더라도 그런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자기를 위해 눈물 흘리는 자는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의 고난에 부딪치게 될 때에 진정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고, 아버지의 사랑권내에 내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낀다면 기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것을 느껴 보았습니다. 어깨에 천톤이나 되는것 같은 무거운 짐이 얹혀졌어도'아버지, 이것을 가볍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도는 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아버지께서는 이런 입장에 있는 나를 잘 아십니다. 그러지 않아도 서러운 입장에 계신 아버지에게'아버지, 나 이런 짐을 지고 있나이다'라고 기도하게 되면 아프신 아버지의 마음에 제2의 서러움을 안겨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까지 여러분들은 알아 가지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삼천만 민족 속에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몇 사람만 있다 해도 이 민족의 서러움을 막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자기의 서러움 때문에 우는 모습이 절대로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⑨ 아버지를 위로하시기에 노심초사하신 예수
예수는 우주적인 사명을 갖고 이 땅에 오셨으나 일생 동안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서러움을 위해 기도하시지 않고 도리어 아버지의 마음 상하심과 염려를 위로하시기에 노심초사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땅을 바라보고 인간들의 무지함을 용납하여 주기 위하여 애달파하신 예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는 30여 평생의 눈물의 생애로서만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수고를 대신하여 나섰기 때문에 죽든지 살든지 아버지의 뜻만을 영광되게 해 드리려는 마음을 갖고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알아주시든지 말든지 땅 위의 인간들이 알아주든지 말든지 그런 것은 상관하지 않고, 때와 장소를 개의치 않고 뜻을 위해 사셨습니다.
뜻을 완전히 이루려고 오셨던 예수였으나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되었다고 해서 고심하거나 낙망하지 않은 예수였습니다. 죽음의 자리까지 나가서도 예수는 자기를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것과 같이 빌라도의 법정을 통하여 골고다의 산정을 거쳐 십자가에 못박혀 운명하는 자리까지 나가면서도 예수는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무변명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인간들이 저렇게 반대하는 것도 자기의 책임이라고 느낄 수 있었던 예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우리들은 나신 예수로부터 사신 예수를 거쳐 가신 예수의 친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는 무엇과 친구가 되었느냐 하면, 생명과 친구가 되지 않고 죽음과 친구가 되신 분이었습니다. 역사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길을 갔지만 만민의 죽음을 대신하여 죽음의 친구가 되고, 만민을 대신하여 죽으신 분은 예수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죽음과 희생의 종교요, 기독교의 진리는 죽음을 이기는 진리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활동은 자기 일신을 파괴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원망없이 사랑할 수 있는 예수의 행로였음을 여러분이 인식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친구이셨기 때문에 죽음을 재촉할 때에도 죽음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원수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여유의 생애를 살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나중에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하나님까지도'모른다' 하셨습니다. 그때 예수께서'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셨는데, 이것은 소망이 절망으로, 생애의 전부가 수포로 돌아갈 것 같기 때문에 외치신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죽음으로 인하여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고 가지 못하는 것을 염려하여 외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로서는 할바의 책임을 다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자기를 천당으로 보내시든 지옥으로 보내시든 개의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죽음의 친구가 되어야 할 입장에 있었던 예수는 죽는 것으로서 만족하고 죽는 것으로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려 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주적인 사랑을 가지고 오셨으나 그것을 안 자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놀라우신 은사를 가지고 오셨지만 일단 죽음의 친구가 되기 위하여 나선 이상에는 아무런 미련을 갖지 않았습니다. 하늘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오셨는데도, 하늘이 소망의 존재로 대해 주시지 않으셔도 반박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던 예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나가는 데에는 최후의 고개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있는 정성을 다해 나가더라도 끝에 가서는 하늘이 모른다 할 때가 있습니다. 하늘이 모른다 하는 것은 세계적인 사명이 우리 앞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예수도 세계적인 사명을 담당해야 했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도 그런 일이 있을 것입니다. 충성을 다하고 생활을 다 바쳐 아버지께 매달리더라도 하늘이 모른다 하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죽어도 아버지 뜻이요, 살아도 아버지 뜻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희망을 갖는다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오직 이 하나의 희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못 먹는 것도 못 입는 것도 기쁜 일이옵니다'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⑩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의 최후의 고개
오늘날 여러분은 천당가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죽기 위하여 예수를 믿는 사람은 천당에 갈 것입니다. 잘 살기 위하여 예수를 믿는 것보다 잘 죽기 위하여 예수를 믿는다면 그것은 지극히 귀한 믿음이 될 것입니다. 잘 살기를 바라며 믿던 12사도들은 예수가 죽을 때 다 어디로 갔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한 생명이 잘 살기 위하여 믿을 것이 아니라 여러분 한 생명을 잘 희생하기 위하여, 즉 잘 죽기 위하여 믿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의 일생을 닮아야 하겠습니다. 예수의 일생을 역사를 대신하여 받들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생애를 우리가 가져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생애를 가져야 예수의 사랑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를 모셔 드려야만 예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예수께서 2천년 동안 수고하신 것을 본받을 수 있는 신앙 인격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6천년 동안 하나님의 섭리가 연장되었으니 6천년의 섭리를 대신하여 책임지고 오실 이를 모실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아버지께서 혹은 주께서 나타나셨을 때 주를 초대하여 모실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 시간은 한 시간 두 시간도 아니고 영원히 모실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를 모실 수 있는 신부의 자격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6천년의 하나님의 서러움을 책임지고 위로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수고하신 주님 앞에 나가 나는 이렇게 이렇게 하겠나이다. 나는 이렇게 이렇게 당신을 모시겠나이다. 나는 이렇게 이렇게 준비했나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주적인 준비를 갖추어 '주여, 오시옵소서. 주여, 나타나시옵소서' 할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가 망할 리 없는 것입니다.
이런 크나큰 사명이 우리들 앞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내적인 심정과 예수의 내적인 소망이 오늘 우리 한 사람을 중심삼고 돌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가! 모르는 사람은 망하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 가슴을 칠 때가 올 것입니다.
⑪ 오실 주님을 모시려면
마음으로 모시고, 몸으로 모시고, 사회로 모시고, 세계로 모시고, 하늘땅으로 모시는 일, 이것이 아들의 책임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여러분 자신은 마음으로도 예수를 모시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예수님을 모시는 일에 출발도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마음으로 모시고, 몸으로 모시고, 사회가 모시고, 국가가 모시고, 세계가 모시고, 하늘 땅이 모심으로써 영광이 여러분 개인은 물론이요,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와 온 피조세계를 채우고도 남음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천주적인 사명이 여러분들에게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상상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사명을 띠고 남달리 모인 여러분은 째째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비굴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되겠습니다. 수많은 원수들 앞에 나가더라도 당당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우주적인 영광과 우주적인 사랑을 가지고 오시는 예수를 모셔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우주적인 자리에 마음과 실체를 가지고 나서야 할 여러분인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위해 정성드리고 가정을 위해 정성드리는 그것으로 만족하는 크리스찬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교회 하나를 중심삼고 만족하는 크리스찬도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삼천만 민족이 전부 다 크리스찬이라 하더라도 민족을 대표하여 나설 수 있는 크리스찬, 세계 인류가 전부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그 24억 인류를 대신하여 설 수 있는 대표적인 크리스찬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영계에 있는 모든 천사를 주관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할 우리라 할진대, 그들 앞에서도 버젓하게 이렇게 가치 있는 일을 했다고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 누가 오셨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이렇듯 크나큰 사명을 하려고 오신 예수, 이렇듯 우리가 지극하게 모셔드려야 할 예수인데, 그 예수를 바라보고 나가는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습니까? 면목이 없는 것입니다. 면목이 없어서 6천년 동안 눈물을 흘리더라도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와 가슴을 치고 6천년 동안 통곡하여도 부족할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우리인데도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당장 죽는 한이 있더라도, 쓰러지고 밟히는 한이 있더라도 가진 바의 절개심, 가진 바의 충절의 마음만은 변치 말아야 하고, 우주 만상 앞에 버젓이 드러내어 하늘의 아들딸의 위신을 세울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⑫ 절개와 충절의 아들 딸
여러분들은 어려운 길에 섰습니다.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운명의 길에 선 것입니다. 이런 운명의 길에 선 여러분은 일생 동안 신념과 내적인 충절을 지니고 그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울어야 될 것입니다.'나는 주님을 모시더라도 세계적인 주, 우주적인 주, 6천년의 역사를 넘고 넘어 영원한 이상세계를 품고도 남을 수 있는 주, 이러한 주님을 모셔야 할 나인데, 나는 이제까지 가정의 주를 모시고 즐거워하는 내가 되었고, 혹은 민족과 국가의 주를 모시고 기뻐하는 그 정도밖에 되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회개하며 통곡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이 시대에 대한 책임과 사명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까? 혹은 태초부터 창조의 이념이 완결되는 끝날까지 전체의 인류가 소망해 오던 이상을 내가 대신 이루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까? 그런 우주적인 사명감을 느끼어 보았습니까?
뿐만 아니라 여러분은'나는 이러한 사명을 다하고도 남을 수 있는, 자신이 있는 사람이다'라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기도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기도할 때에는 많은 기도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선 자가 있다 할진대 '아버지!'하는 한 마디로 다 통할 것입니다. 설명이 필요없다는 것이예요. 논리가 필요 없다는 것이예요.
말씀을 하기 전에 마음의 직감적인 충격에 의해 서슴치 않고 나서서 모실 수 있는 자격을 갖춰야 하는 자리에 우리는 나섰습니다. 그런 보화를 가지고 우리는 나섰습니다. 이제 출발한 여러분은 어떤 조건에 걸려 있지는 않습니까? 가다가 어느 과정에 멈추어 서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생애노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지금 어느 기준까지 달렸습니까? 여러분은 개인에서 출발하여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거쳐 하늘 땅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이러한 천주적인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주를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모실 수 있는 참사람을 찾아서, 6천년의 한숨을 다 벗어버리고, 그를 붙들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시며 '아버지, 당신이 찾고자 원하시던 존재가 여기 있나이다. 아버지! 즐거워하십시오'라고 하실 때 하늘로부터'그렇다'고 하는 영광의 대답이 나오는 한날이 인간 앞에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날을 표준으로 하고 싸워나가는 여러분은 오늘도 싸우고 내일도 싸우며 온 생애를 바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영생의 노정에서 개척자가 되고, 선봉자가 되고, 우주적인 신부로 단장하여 우주적인 주를 모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승리의 영광, 아버님의 사랑, 영원한 생명을 받아 만물 만상, 온 천주를 대신한 신부가 되고, 아버님과 영원히 동고동락할 수 있는 아들 딸이 될 때까지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선집 제1권 20편
천국 복귀를 위하여 택한 무리들 (훈독본)
1956.12.30 (일), 한국 전본부교회
요한복음 15:1-22
천국 복귀를 위하여 택한 무리들 (말씀선집 제1권 20편)
여러분들과 함께 생각하려는 제목은 '천국 복귀를 위하여 택한 무리들'입니다.
① 자기 위치를 확인해야 할 섭리역사의 끝날
창조 이후의 역사는 6천년이 경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땅위에 하나님께서 완성하셔야 할 복귀섭리는 여러분 24억 인류를 통하여 이루어야 합니다.
우주적인 복귀역사를 협조하고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나선 우리들은 자기의 위치를 명백히 찾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여러분 한 자체가 6천년 역사를 넘어 최후의 복귀의 이상이요, 창조의 중심인 아담 해와의 기준까지 도달해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온 세계 인류가 전부 그 기준을 넘어야 되고 그 기준을 넘기 전에는 하나님의 섭리는 이 땅 위에서 종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선조들이 감당치 못하고 남긴 부분을 후손인 오늘날 우리들이 대신 책임지고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천국이념이 근본적으로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하늘 나라를 찾지 못하고 있고, 나라를 이루기 위한 백성도 찾지 못하고 있고, 백성을 이루기 위한 가정도 찾지 못하고 있고, 가정을 이루기 위한 부부와 자녀 형제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② 천국 복귀와 인간의 바른 삶
하나님의 중심 목적은 천국 복귀라는 것입니다. 하늘 백성으로부터 하늘의 자녀, 하늘의 형제, 하늘의 부부, 하늘의 가정까지 복귀하여 천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하늘 나라 천국에 반대되는 사탄의 세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악의 세상이 선의 천국으로 회복되는 역사적인 분수령이 역사의 종말시기에 반드시 나타날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는 이 복귀의 고개를 넘어가기 위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개인복귀로부터 가정복귀, 사회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의 고개를 넘어오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전한 복음의 중심된 목적도 천국복귀였습니다. 천국 복귀라는 이 표준은 여러분 개체의 복귀도 복귀려니와 개체를 넘어 가정, 사회, 국가, 세계를 거쳐 천주까지 복귀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 전부가 세계를 위하여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를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종족을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자기를 위하여 살아야 할 인간들이 그러한 입장을 근본적으로 잃어버리고 악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마음을 중심삼고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육을 중심삼고, 자기를 중심삼고 육적인 만족만을 위해서 사는 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타락한 인간을 복귀시키기 위하여 몸을 마음에 굴복시키고, 개인을 가정에 굴복시키고, 가정을 세워 민족 앞에 굴복시키고, 민족을 세워 국가 앞에 굴복시키고, 국가를 세워 세계 앞에 굴복시키는 역사를 지금까지 해 나오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사회에서든지 개인주의적인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오는 혁명적인 노정의 반대입장에 서 왔습니다.
③ 우리가 지향해야 할 중심과 복귀의 순서
오늘날 6천년 역사가 종결되는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념이 복귀의 이념으로 세워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를 중심한 이념이 전세계의 중심 이념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원수의 이념의 반격을 받아 두 갈래가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입장에 우리들은 어느 기준을 지향해 나가야 되겠는가. 천국복귀의 이념을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통해서 보면 이상의 동산은 이 세계, 이 땅만이 아닙니다. 하늘과 땅이 합하여 하나로 일체가 된 이념의 동산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 일신이 죄악사의 모든 것을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게 될 때에도 개인적인 싸움, 몸과 마음의 싸움이 전개될 것입니다. 몸을 중심삼은 악의 움직임이 마음을 굴복시키려 할 때, 그것을 굴복시키어 승리하지 못한다 할진대는 천국백성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세계로부터 국가, 민족, 가정, 부부, 자녀, 형제까지 복귀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천국 이념의 원칙적인 기준이 있는 연고로 우리는 먼저 자신을 복귀해야 합니다.
'천국이 네 마음에 있다' 했으니 우주적인 천국도 완성해야겠지만 먼저 개인적인 천국을 완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몸과 마음의 상대기준을 세워서 천주 앞에 설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하늘의 전체 이상의 어느 분야에도 흡수될 수 있으며 화합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의 나무로 말하면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로서 어느 면에 속해서도 하나의 가지의 모양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가지인 여러분이 줄기를 통해 나가는 것, 이것이 복귀라는 것입니다.
④ 천국백성으로의 복귀단계
이제는 천국백성 단계에 들어가야 할 운명이 여러분 앞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한 존재가 나를 위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천국백성인 하늘 나라의 동포를 위하겠다는 관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 나라를 위하여 애쓰고자 하는 관념을 가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부분적인 관념이 아니라 우주적인 관념입니다. 그러한 우주적인 관념을 여러분이 가져야 되겠습니다.
또 오늘날 여러분들이 사회에 속하여 생활하면 그 사회의식을 가져야 되겠고, 국가에 속하여 살면 국가적인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의 국가에 속하여 살면 그 나라의 국민을 사랑할 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천국 건설을 위하여 섭리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뜻을 마음 몸으로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천국백성을 사랑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천국 건설을 위하여, 아버지의 뜻인 세계복귀를 위하여 존재한다는 인식을 가질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저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무작정 예수를 받들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천지의 운세에 화합하여 예수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천국복귀의 이념을 세워 나오고 계십니다. 우리는 거기에 설 수 있는 아들 딸 그리고 백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천국동포를 사랑할 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옆에, 여러분의 주위에 믿는 백성이 있다면 그들을 형제로 또 동포로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끝날에 우리 믿는 성도들이 동원되어 천국의 동산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런 고로 개인 개인이 단합하고 민족 민족이 단합하여 천국 동포를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천국동포의 이념을 중심으로 천국을 건설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천국자녀, 천국형제, 천국부부의 이념에 의지하여 천국을 건설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⑤ 천국법도의 기준과 천국생활의 표준
이제 여러분은 생활 속에서 천국 법도를 지킬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늘이 요구하시는, 천국건설을 위해서는 천국법도를 지킬 줄 아는 동시에 천국생활을 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천국생활을 할 줄 아는 동시에 천국의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천국을 복귀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역사해 나오는데 우리들은 무엇을 중심삼고 천국의 법도를 지켜야 하는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 준 성경말씀을 중심삼고 천국의 법도를 지켜야 하겠습니다. 말씀이 곧 천국 법도이므로 말씀을 중심삼고 살아야 됩니다. 특히 여러분은 그 성경말씀을 통하여 내적인 사실을 증거한 원리말씀을 중심삼고 천국법도를 지키며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생활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예수님의 30여 평생을 대신한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생활로 만민 앞에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었던 것과 같은 그러한 생활을 여러분도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법도인 말씀을 중심삼고 예수님의 생애를 대신하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소망과 이상은 하나님의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런 고로 하나님의 사랑과 연결시키기 위해서 화목의 조건을 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세계의 모든 크리스찬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한 나무 가지의 진액은 다른 가지로도 흐릅니다. 어느 잎사귀, 어느 가지에도 순환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서로서로 화목하여 위해 줄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런 사람은 이상으로 남아진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⑥ 자기를 중심한 관념을 버리라
그러므로 우리 크리스찬들은 자기 개체를 중심한 관념을 떠나서 내 한자체는 세계를 대신하고 우주를 대신한 존재라는 새로운 관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우리 식구들도 6천년 역사를 대신했고, 영원한 섭리를 대신했고, 인류를 대신한 존재라는 사실을 느껴야 될 것입니다. 어느 한 사람일지라도 그에게 우주적인 하나님의 사랑의 약속의 뜻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러한 사람 앞에 협조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명이 여러분에게 있으므로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바로 볼 줄 알아서 그 뜻을 대신하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개인생활이나 가정생활에서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자녀, 여러분 자신의 부모, 그리고 부부가 여러분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국가를 넘어, 세계를 넘어 천주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알고 그러한 차원에서 자녀나 형제, 그리고 부모를 대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여러분이 인식하고 생활에서 느낀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어떤 사람도 말로 평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한 개체에는 우주적인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내 한 존재는 나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하여, 하늘 땅을 위하여 있는, 복귀의 사명을 대신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여러분 모두가 하나되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소위 남다른 길을 따라 나온 여러분은 이제 자기 중심적인 생활과 관념을 버려야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도 통일교회만을 중심삼은 생활관을 버려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우주의 한 세포요, 분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사탄과 싸우려 할 때, 여러분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생각, 갖고 있는 관념이나 모든 주의가 자신을 위한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사탄권내에서 벗어날 도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세계를 항하여 나아가는 우리 크리스찬들도 세계적인 역사의식을 넘어서서 우주적인 역사의식으로 세계를 파악하고 감정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⑦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러면 이제 복귀를 위해서는 말씀에 의지하여 살아야 하겠고, 예수 그리스도의 봉사적인 마음을 가져야 되겠으며, 서로 화목케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마 5:9)"이라 했습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화목케 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모든 개인을 화목케 해야 할 책임이 있고, 온 민족과 세계를 화목케 해야 할 책임, 하늘과 땅을 화목케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생활환경에서 이러한 실증적인 책임을 느끼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마음으로라도 느껴야 되겠습니다. 개인을 화목케 할 수 있는 제물, 가정을 화목케 할 수 있는 제물, 사회를 화목케 할 수 있는 제물, 국가를 화목케 할 수 있는 제물, 세계 전체를 화목케 할 수 있는 제물이 되겠다는 마음이라도 가져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탄과 대립하여 아버지 앞에 나설 수 있는 마음을 갖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러한 관계를 맺고 생활한다 할진대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을 보면 머리를 숙여 그를 높여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또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을 인도하는 일은 내가 할 일이다. 내가 책임지겠다'는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체휼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자기 개인과 가정을 위한 기도를 안 해도 됩니다. 여러분 각자가 하나님께서 소망하신 천국을 이 땅 위에 건설하기 위한 각오와 맹세를 하고, 그것을 위해 산다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손에 손을 잡고 화목의 제단을 쌓을 줄 아는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은 세계를 향하여 줄기찬 새로운 혁명을 일으킬 것입니다. 또 교회도 그럴 것입니다. 손에 손을 잡고 그리스도의 본을 받아 화목의 제물이 되겠다고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는 무리가 있다면 그들이 나아가는 걸음걸이가 보기에는 안 될 것 같고, 보기에는 깨질 것 같지만 지상천국 건설을 향한 굳건한 걸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땅의 놀라운 사명을 짊어지고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4천년 역사과정에 있어서 하늘을 위하는 충신이 없고, 하늘을 위하는 효자가 없는 때에, 하늘이 요구하는 하나의 충신 효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30여 평생의 삶은 하늘을 위한 삶이었고 세계적이고 우주적인 삶이었습니다. 또 그분의 생애는 하늘을 위한 제물의 생애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천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천국이 무엇이냐 하면, 전세계 인류가 손에 손을 잡고 화동하고, 서로서로 화목하고, 하나의 사랑에 엉키어 쌍수를 들어 하늘 앞에 영광을 돌리며 감사하며 사는 세계인 것입니다. 이걸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너무나 철부지한 신앙생활이었습니다. 이제 그 철부지한 신앙생활을 청산해야 됩니다.
⑧ 통일의 이념을 지향하시는 하나님
이제는 어떠한 교단주의나 민족주의 시대도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세계주의적인 복귀이념과 신앙이념을 찾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백성은 불쌍한 민족입니다. 불쌍한 이 백성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역사는 개인을 깨뜨려 가정을 세우고, 가정을 깨뜨려 사회를 세우고, 그 사회를 깨뜨려 국가를 세우고, 국가를 깨뜨려 세계를 찾아 세우는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심판입니다.
인류는 이렇게 심판을 거쳐 왔는데 이제 최후에 남은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대립하여 싸워 나온 가인 아벨의 두 노선 중에서 가인의 노선을 완전히 깨뜨려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여러분은 예수님의 말씀을 법도로 세워서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대신한 하늘의 충신과 하늘의 효자가 다 되어야만 된다는 거예요.
그리하여 '하나님이시여, 지금까지 당신이 세계를 하나로 통합하여 한 품에 품고 사랑하지 못하던 그 원한을 나를 통하여 해원하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크리스찬들은 역사적인, 우주적인, 천주적인 크나큰 사명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믿음과 생명을 어느 정도까지 갖추었는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은혜는 우주적인 은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천국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나는 천국의 대신자다'라는 마음, 그런 관념을 갖고 생활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만민 앞에 욕을 먹고 화가 버럭버럭 날 때도 여러분 하나가 화를 냄으로 말미암아 24억 인류가 욕을 먹을 것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그것을 억제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분해하고 혈기를 내고 하나님의 뜻을 어길것이 아니라 모든 지체가 연합하여 서로서로 협조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려움 가운데 있으면 그 사람의 어려움을 여러분의 몸에 상처를 입은 것과 같이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협조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한국 민족만이 아닌 온 인류가 모두 협조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천국복귀를 위한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천주의 사랑을 받고 사는 아들 딸이 되어 천주의 중심인 하나님을 모실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만을 위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오직 자신을 위한 예수요, 자신을 위한 하나님으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소망과 뜻은 그것이 아니예요. 하나님은 온 하늘 땅의 중심이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그렇게 모실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천국생활을 하는 자라야만 가능할 것입니다.
⑨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
그러면 하나님께서 6천년 역사를 섭리하신 까닭은 역사 전체를 당신의 한 품에 품기 위함이셨습니다. 비단 지상 뿐만이 아니라 영계까지도 당신의 사랑으로 전체가 하나되기를 바라시고 그 한날을 흠모해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 앞에 여러분들이 은혜를 받고자 한다면, '아버지여! 저를 불러 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하늘이 주신 바의 은사는 여러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여러분을 살리는 동시에 전체 인류를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은 자기를 중심삼고 살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고자 원하는데도 은혜받은 사람들은 거의 없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은 것을 타파하여 천주적인 하나님을 모셔 드려야 되겠습니다. 이런 우주적인 하나님 앞에 몸 마음에 사무치는 책임을 느끼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신 동시에 인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세계적인 하나님이시요, 세계적인 하나님이신 동시에 하늘 땅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우주적인 부모라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신앙을 보면 '나의 하나님이 되시옵소서'라고 하고 있고, 조금 더 나아간 것이 겨우 '우리 가정의 하나님이 되십시오'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조금 더 올라가서는 '우리 교파의 하나님이 되십시오'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관념을 가져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오늘날 세계에는 하나님을 부르짖는 교파가 많습니다. 그러나 교파권(敎派圈) 안에서 부르짖는 하나님은 이제 필요없습니다. 교파를 초월하여 온 천지의 중심으로 믿으며 부를 수 있는 그 한 존재, 전체를 대신하여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존재, 그런 존재들이 모여야만이 이 땅 위에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내게 느껴지는 관념이 가정을 통하여 전체에까지 관계맺게 해야 합니다. 새로운 길에 들어선 여러분은 이제 지금까지의 생활을 버리고 우주적인 생활관념을 향해 새롭게 역사적인 출발을 해야 됩니다.
이러한 때 여러분은 우주적인 하나님의 실존을 모실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하나님과 여러분이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 되겠습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여러분은 우주적인 신부의 이념을 종결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주적인 신부의 이념을 종결지은 후에 민족과 백성과 형제, 그리고 자녀와 부부까지 복귀해야만 우주적인 하나님의 실존 앞에 내가 신부격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맺어진 부부가 이 땅을 주관할 수 있는, 천국에 살 수 있는 부부입니다. 또한 그런 부부로서 자녀를 낳아야만이 천국가정을 건설할 것이요, 그런 형제와 자녀로서 백성을 이루어야만이 비로소 지상천국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⑩ 천국복귀를 완성하여 승리의 영광을 돌리려면
그리고 이 민족만이 아니고 세계 인류, 나아가서는 영계에 있는 모든 영인들까지도 하늘을 대해 충신의 도리와 효자의 도리를 할 줄 알게 만들어야 아버지 앞에 천국복귀를 완성한 승리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아들이요, 자녀요, 형제요, 가정이요, 혹은 민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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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천국 복귀를 위하여 택한 무리들
1956.12.30 (일), 한국 전본부교회
여러분들과 함께 생각하려는 제목은'천국 복귀를 위하여 택한 무리들'입니다.'천국 복귀를 위하여 택한 무리들' 이런 제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① 자기 위치를 확인해야 할 섭리역사의 끝날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이 한해에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면 다음 해에 완수해야 하고, 오늘 하루의 책임을 오늘 감당하지 못하면 내일에라도 기필코 감당해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복귀원리를 통하여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창조 이후의 역사는 하루를 거쳐, 일년을 거쳐, 오랜 시일이 지나고, 때와 절기가 변하는 가운데 6천년이 경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땅위에 전세계적으로 대심판이 벌어지고 하나님께서 완성하셔야 할 복귀섭리는 오늘날의 여러분을 통하여, 24억 인류를 통하여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또한 잘 아는 바입니다.
그러면 이제 6천년 섭리역사의 끝날을 대하고 있는 우리들, 우주적인 복귀역사를 협조하기 위하여 가담한 우리들,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나선 우리들이 이제 스스로 머물러 있는 자기의 위치를 명백히 찾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여러분 한 자체가 6천년 역사를 넘어 최후의 복귀의 이상이요, 창조의 중심인 아담 해와의 기준까지 도달해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여러분의 가정과 사회, 온 세계 인류가 전부 그 기준을 넘어야 되겠습니다. 그 기준을 넘기 전에는 하나님의 섭리는 이 땅 위에서 종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마어마하고 두려운 수고의 복귀섭리, 우리의 선조들이 저지른 허물, 우리의 선조들이 감당치 못하고 남긴 부분을 후손인 오늘날 우리들이 대신 책임지고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우주적인 사명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을 이 시간 느끼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천국이념이 근본적으로 파괴되어 버렸고, 인간을 통하여 완성해야 할 천국이념이 여지없이 하늘로부터 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하늘 나라를 찾지 못하고 있고, 하늘 나라를 이루기 위한 백성도 찾지 못하고 있고, 백성을 이루기 위한 가정도 찾지 못하고 있고, 가정을 이루기 위한 부부와 자녀 형제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② 천국 복귀와 인간의 바른 삶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하나의 중심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천국 복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 나라를 복귀하는 운동은 거꿀잡이로 해야 합니다. 하늘 백성으로부터 하늘의 자녀, 하늘의 형제, 하늘의 부부, 하늘의 가정까지 복귀하여 천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런 사명이 우리에게 남아져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땅은,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하늘 나라의 땅이 아니고 하늘 나라의 세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세상이 아니라 사탄을 중심한, 천국에 반대되는 세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악의 세상이 선의 천국으로 회복되는 역사적인 분수령이 역사의 종말시기에 반드시 나타날 것입니다.
오늘날 24억 인류는 이 복귀의 고개를 넘어가기 위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개인복귀로부터 가정복귀, 사회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의 고개를 넘어오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 오셔서 전한 복음의 중심된 목적도 천국복귀였습니다.천국 복귀라는 이 표준은 여러분 개체의 복귀도 복귀려니와 개체를 넘어 가정, 사회, 국가, 세계를 거쳐 천주까지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고 나선 그 날부터 복귀를 위하여 싸움의 일로를 거쳐 나온 것입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의 생활은 세계를 위하여 사는 생활이 아닙니다. 국가를 위해 산다고 하지만 국가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야. 가정을 위해 산다고 하지만 가정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예요. 또 나를 위해 산다고 하지만 진정으로 나를 위해 사는 입장에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악의 세상에 있는 인간들 전부가 세계를 위하여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를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종족을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자기를 위하여 살아야 할 인간들이 그러한 입장을 근본적으로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나를 중심삼고 사는 데도 마음을 중심삼고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 자체를 바라볼 때에 어느 정도까지 떨어졌는가 하면, 마음을 중심삼고 살아야 할 나인데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을 중심삼고 살지 못하는 정도만큼 떨어졌습니다. 육을 중심삼고 사는 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육적인 만족만을 위해서 사는 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타락한 인간을 복귀시키기 위하여 몸을 세워 가지고 마음에 굴복시키고, 개인을 세워 가정에 굴복시키고, 가정을 세워 민족 앞에 굴복시키고, 민족을 세워 국가 앞에 굴복시키고, 국가를 세워 세계 앞에 굴복시키는 역사를 지금까지 해 나오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사회에서든지 개인주의적인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오는 혁명적인 노정의 반대입장에 서 왔습니다. 또 가정을 중심삼고 나온 사람도 역시 반대입장에 서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진전에 따라, 즉 개인적인 시대, 가정적인 시대, 민족적인 시대, 국가적인 시대의 진행에 따라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 진전하는 과정에서 인간들이 따라갈 수 없는 어려운 고비가 있었던 것입니다.
③ 우리가 지향해야 할 중심과 복귀의 순서
오늘날 6천년 역사가 종결되는 끝날인 이 시대에 있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념이 땅 위에서 전체 세계의 복귀의 이념으로 세워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기독교를 중심한 이념이 전세계의 중심 이념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원수의 이념의 반격을 받아 이 두 갈래가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입장에 선 오늘날 우리들은 어느 기준을 지향해 나가야 되겠는가. 천국복귀의 이념을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통해서 보면 우리들이 가야 할 이상의 동산은 이 세계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려는 이상의 복귀의 기준은 이 땅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합하여 둘이 아닌 하나로 일체가 된 이념의 동산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을 중심삼고 화동하고 노래할 수 있는 영광의 한날을 찾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처한 오늘날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 일신이 죄악사의 모든 것을 탕감복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게 될 때에도 개인적인 싸움이 전개될 것입니다. 몸과 마음의 싸움이 전개될 것입니다. 그 싸움에서 낙오자가 되는 사람은 천국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몸을 중심삼은 악의 움직임이 마음을 굴복시키려 할 때, 그것을 굴복시키어 승리하지 못한다 할진대는 천국백성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세계로부터 국가, 국가로부터 민족, 민족으로부터 가정, 가정으로부터 부부, 부부로부터 자녀, 형제까지 복귀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천국 이념의 원칙적인 기준이 있는 연고로 우리는 먼저 자신을 복귀해야 합니다.
'천국이 네 마음에 있다' 했으니 우주적인 천국도 완성해야겠지만 먼저 개인적인 천국을 완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몸과 마음의 상대기준을 세워서 천주 앞에 설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하늘의 전체 이상의 어느 분야에도 흡수될 수 있으며 화합될 수 있는, 하나의 나무로 말하면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포도나무의 가지로서 어느 면에 속해서도 하나의 가지의 모양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가지인 여러분이 줄기를 통해 나가는 것, 이것이 복귀라는 것입니다.
④ 천국백성으로의 복귀단계
이제 여러분이 찾아야 할 맨처음의 단계는 어떠한 단계인가 하면 천국 백성이 되는 단계입니다. 천국백성 단계에 들어가야 할 운명이 여러분 앞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러분은 역사적인 의식을 새롭게 가져야 되겠습니다. 내 한 존재가 나를 위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천국백성인 하늘 나라의 동포를 위하겠다는 관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의 형제를 위하여, 하늘 나라의 부부를 위하여, 하늘 나라의 부모를 위하여 애쓰고자 하는 관념을 가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부분적인 관념이 아니라 우주적인 관념입니다. 그러한 우주적인 관념을 여러분이 가져야 되겠습니다.
또 오늘날 여러분들이 사회에 속하여 생활하면 그 사회의식을 가져야 되겠고, 국가에 속하여 살면 국가적인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의 국가에 속하여 살면 그 나라의 국민을 사랑할 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천국 건설을 위하여 섭리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뜻을 마음 몸으로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천국백성을 사랑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천국 건설을 위하여, 아버지의 뜻인 세계복귀를 위하여 존재한다는 인식을 가질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저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무작정 예수를 받들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천지의 운세에 화합하여 예수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적인 섭리를 중심삼고 천국복귀의 이념을 세워 나오고 계십니다. 우리는 거기에 설 수 있는 아들 딸 그리고 백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천국동포를 사랑할 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옆에, 여러분의 주위에 있는 뭇 백성들 가운데 믿는 백성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들을 형제로 또 동포로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여러분의 책임은 말할 수 없이 큰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끝날인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믿는 성도들이 동원되어 천국의 동산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런 고로 개인 개인이 단합하고 민족 민족이 단합하여 천국 동포를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6천년 역사를 종적으로 보면, 구약시대에는 하늘 백성을 모았고, 신약시대에는 하늘의 자녀를 모았습니다. 이렇듯이 역사는 거꿀잡이로 흘러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천국동포의 이념을 중심으로 천국을 건설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또 천국자녀, 천국형제, 천국부부의 이념에 의지하여 천국을 건설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⑤ 천국법도의 기준과 천국생활의 표준
이제 여러분은 생활 속에서 천국 법도를 지킬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늘이 요구하시는, 천국건설을 위해서는 천국의 법도를 지킬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 천국법도를 지킬 줄 아는 동시에 천국생활을 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천국생활을 할 줄 아는 동시에 천국의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천국을 복귀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역사해 나오는데 우리들은 무엇을 중심삼고 천국의 법도를 지켜야 하는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 준 성경말씀을 중심삼고 천국의 법도를 지켜야 하겠습니다. 말씀이 곧 천국 법도이므로 말씀을 중심삼고 살아야 됩니다. 여기에 여러분의 길이 있습니다. 특히 여러분은 그 성경말씀을 통하여 내적인 사실을 증거한 원리말씀을 중심삼고 천국법도를 지키며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생활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예수님의 30여 평생을 대신한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끝날에 처한 오늘날 여러분의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생활이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생활을 만민 앞에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었던 것과 같은 그러한 생활을 여러분도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삼고 법도를 지키던 예수님의 생애를 본받아 화목한 생활을 함으로써 하늘을 위하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하늘의 법도인 말씀을 중심삼고 예수님의 생애를 대신하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소망과 이상은 하나님의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런 고로 하나님의 사랑과 연결시키기 위해서 화목의 조건을 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세계의 모든 크리스찬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한 나무 가지의 진액은 다른 가지로도 흐릅니다 어느 잎사귀, 어느 가지에도 순환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서로서로 화목하여 위해 줄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런 사람은 이상으로 남아진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⑥ 자기를 중심한 관념을 버리라
그러므로 우리 크리스찬들은 자기 개체를 중심한 관념을 떠나서 내 한자체는 세계를 대신하고 우주를 대신한 존재라는 새로운 관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우리 식구들을 보아도 오늘의 그가 그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6천년 역사를 대신했고, 영원한 섭리를 대신했고, 평면적으로는 24억 인류를 대신한 존재라는 사실을 여러분은 느껴야 될 것입니다. 어느 한 사람일지라도 그에게 우주적인 하나님의 사랑의 약속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러한 사람 앞에 협조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명이 여러분에게 있으므로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바로 볼 줄 알아서 그 뜻을 대신하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개인생활이나 가정생활에서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자녀, 여러분 자신의 부모, 그리고 부부가 여러분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도 여러분을 위한 자녀가 아니요, 형제도 여러분을 위한 형제가 아니요,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국가를 넘어, 세계를 넘어 천주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알고 그러한 차원에서 자녀나 형제, 그리고 부모를 대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이러한 사실을 여러분이 인식하고 생활에서 느낀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어떤 사람도 말로 평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한 개체에는 우주적인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내 한 존재는 나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하여, 하늘 땅을 위하여 있는, 복귀의 사명을 대신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여러분 모두가 하나되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소위 남다른 길을 따라 나온 여러분은 이제 자기 중심적인 생활에서 떠나야 되겠습니다.나 중심한 관념을 버려야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도 통일교회만을 중심삼은 생활관을 버려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우주의 한 세포요, 분자이기 때문입니다.
끝날에 처한 오늘날 우리들은 역사적인 작용을 느껴야 되겠고, 천륜의 섭리적인 작용을 느껴야 되겠고, 하나님의 전체적인 사랑의 작용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한 몸을 세워 우주적인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자가 되어야만 여러분은 천국의 동산에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고, 또 그럴 때에 천국은 여러분과 관계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한 소망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왔다 갔고, 이 한 소망을 성사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예수와 성신의 삼위신이 합심하여 사탄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사탄과 싸우려 할 때, 여러분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생각, 갖고 있는 관념이나 모든 주의가 자신을 위한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사탄권내에서 벗어날 도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세계를 항하여 나아가는 우리 크리스찬들도 세계내적인 역사의식을 넘어서야 되겠습니다.그것을 넘어서서 우주적인 역사의식으로 세계를 파악하고 감정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⑦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러면 이제 복귀를 위한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이냐. 복귀를 위한 사회, 복귀를 위한 가정, 복귀를 위한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복귀를 위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여러분은 이 모든 것을 알고 넘어서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에 의지하여 살아야 하겠고, 예수 그리스도의 봉사적인 마음을 가져야 되겠으며, 서로 화목케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마 5:9)"이라 했습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화목케 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모든 개인을 화목케 해야 할 책임이 있고, 온 민족을 화목케 해야 할 책임, 세계를 화목케 해야 할 책임, 하늘과 땅을 화목케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생활환경에서 이러한 실증적인 책임을 느끼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마음으로라도 느껴야 되겠습니다. 내가 개인 개인을 화목케 할 수 있는 제물이 되고, 가정 가정을 화목케 할 수 있는 제물이 되고, 사회 사회를 화목케 할 수 있는 제물이 되고, 국가 국가를 화목케 할 수 있는 제물이 되고, 세계 전체를 화목케 할 수 있는 제물이 되겠다는 마음이라도 가져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탄과 대립하여 아버지 앞에 나설 수 있는 마음을 갖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러한 관계를 맺고 생활한다 할진대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을 보면 머리를 숙여 그를 높여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또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을 보면'저 사람을 인도하는 일은 내가 할 일이다. 내가 책임지겠다'는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체휼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자기 개인을 위한 기도를 안 해도 됩니다. 자기 가정을 위한 기도를 안 해도 돼요. 여러분 각자가 하나님께서 소망하신 천국을 이 땅 위에 건설하기 위한 각오와 맹세를 하고, 그것을 위해 산다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손에 손을 잡고 화목의 제단을 쌓을 줄 아는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은 세계를 향하여 줄기찬 새로운 혁명을 일으킬 것입니다. 또 교회도 그럴 것입니다. 손에 손을 잡고 그리스도의 본을 받아 화목의 제물이 되겠다고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는 무리가 있다면 그들이 나아가는 걸음걸이가 보기에는 안 될 것 같고, 보기에는 깨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걸음은 지상천국 건설을 향한 굳건한 걸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땅의 놀라운 사명을 짊어지고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4천년 역사과정에 있어서 하늘을 위하는 충신이 없고, 하늘을 위하는 효자가 없는 때에, 하늘이 요구하는 하나의 충신 효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30여 평생의 삶은 하늘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세계적이고 우주적인 삶이었습니다. 또 그분의 생애는 하늘을 위한 제물의 생애였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상에 없었던, 하늘을 위한 하나의 효자로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은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천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천국이 무엇이냐 하면, 전세계 인류가 손에 손을 잡고 화동하고, 서로서로 화목하고, 하나의 사랑에 엉키어 쌍수를 들어 하늘 앞에 영광을 돌리며 감사하며 사는 세계인 것입니다. 이걸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우리가 믿고 나온 신앙생활은 너무나 철부지한 신앙생활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철부지한 신앙생활을 청산해야 됩니다.
⑧ 통일의 이념을 지향하시는 하나님
이제는 어떠한 교단주의 시대도 지나갔습니다. 어떠한 민족주의 시대도 지나갔습니다.이제는 세계주의적인 복귀이념, 세계주의적인 신앙이념을 찾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왔다는 것이예요.
오늘날 한국백성은 불쌍한 민족입니다. 불쌍한 이 백성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역사는 개인을 깨뜨려 가정을 세우고, 가정을 깨뜨려 사회를 세우고, 그 사회를 깨뜨려 국가를 세우고, 국가를 깨뜨려 세계를 찾아 세우는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심판입니다.
인류는 이렇게 심판을 거쳐 왔는데 이제 최후에 남은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대립하여 싸워 나온 가인 아벨의 두 노선 중에서 가인의 노선을 완전히 깨뜨려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여러분은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한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해요. 예수님의 말씀을 법도로 세워서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대신한 하늘의 충신과 하늘의 효자가 다 되어야만 된다는 거예요.
그리하여 통일의 이념을 지향하는 하나님 앞에 나서 가지고'하나님이시여, 지금까지 당신이 세계를 하나로 통합하여 한 품에 품고 사랑하지 못하던 그 원한을 나를 통하여 해원하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크리스찬들은 그들 앞에 이렇듯 역사적인, 우주적인, 천주적인 크나큰 사명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어느 정도 나타냈는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믿음과 생명을 어느 정도까지 갖추었는가. 여러분은 그 한계선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은혜는 우주적인 은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천국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여러분의 일거수일투족의 행동, 그리고 오늘의 모든 느낌까지도'나는 천국의 대신자다'라는 중심된 마음을 갖고, 그런 관념을 갖고 생활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만민 앞에 욕을 먹고 화가 버럭버럭 날 때도 여러분 하나가 화를 냄으로 말미암아 24억 인류가 욕을 먹을 것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그것을 억제해야 합니다. 하늘은 지금까지 그런 느낌을 갖고 나오셨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여러분이 분해하고 혈기를 내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일이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모든 지체가 연합하여 서로서로 협조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려움 가운데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 사람의 어려움을 여러분의 몸에 상처를 입은 것과 같이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협조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한국 민족만이 해서는 안 돼요. 온 인류가 모두 협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천국복귀를 위한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천주의 사랑을 받고 사는 아들 딸이 되어야만 돼요. 그 다음에는 천주의 중심인 하나님을 모실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부르짖고 있는 하나님, 여러분들이 찾고,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만을 위한 하나님이 아니요, 여러분만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오직 자신을 위한 예수요, 자신을 위한 하나님으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소망은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것이 아니예요. 하나님의 위치는 온 하늘 땅의 중심이십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하나님을 그렇게 모실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천국생활을 하는 자라야만 가능할 것입니다.
⑨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
그러면 하나님께서 6천년 역사를 섭리하신 까닭은 무엇인가. 역사 전체를 당신의 한 품에 품기 위함이셨습니다. 비단 지상 뿐만이 아니라 영계까지도 당신의 사랑으로 전체가 하나되기를 바라시고 그 한날을 흠모해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 앞에 여러분들이 은혜를 받고자 한다면,'아버지여! 저를 불러 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에게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오늘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하늘이 주신 바의 은사는 여러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살리는 동시에 전체 인류를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은 자기를 중심삼고 살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고자 원하는데도 은혜받은 사람들은 거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여기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이것을 뚫고 타파하여 천주적인 하나님을 천주적인 하나님으로 모셔 드려야 되겠습니다. 이런 우주적인 하나님 앞에 몸 마음에 사무치는 책임을 느끼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여러분이 믿고 바라고 있는 소망의 동산은 여러분만의 소망의 동산이 아닙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하나님을 찾고 믿으려 했기 때문에 천사장은 타락했습니다.
오늘날 인류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신 동시에 인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세계적인 하나님이시요, 세계적인 하나님이신 동시에 하늘 땅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그와 동시에 우주적인 부모라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신앙을 보면'나의 하나님이 되시옵소서'라고 하고 있고, 조금 더 나아간 것이 겨우'우리 가정의 하나님이 되십시오'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조금 더 올라가서는'우리 교파의 하나님이 되십시오'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관념을 가져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오늘날 세계에는 하나님을 부르짖는 교파가 많습니다. 그러나 교파권(敎派圈) 안에서 부르짖는 하나님은 이제 필요없습니다. 교파를 초월하여 온 천지의 중심으로 믿으며 부를 수 있는 그 한 존재, 전체를 대신하여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존재, 그런 존재들이 모여야만이 이 땅 위에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내게 느껴지는 관념이 가정을 통하여 전체에까지 관계맺게 해야 합니다. 새로운 길에 들어선 여러분은 이제 지금까지의 생활을 버리고 우주적인 생활관념을 향해 새롭게 역사적인 출발을 해야 됩니다.
이러한 때 여러분은 어떤 마음을 가져야 되느냐 하면, 우주적인 하나님의 실존을 모실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그리하여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그 하나님과 여러분이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 되겠습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여러분은 우주적인 신부의 이념을 종결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주적인 신부의 이념을 종결지은 후에 복귀된 세계를 찾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민족과 백성과 형제, 그리고 자녀와 부부까지 복귀해야만 우주적인 하나님의 실존 앞에 내가 신부격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 자리까지 가야만 거기에서 우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우주적인 하나님의 실존 앞에 서서 그 사랑과 하나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맺어진 부부가 이 땅을 주관할 수 있는, 천국에 살 수 있는 부부입니다. 또한 그런 부부로서 자녀를 낳아야만이 천국가정을 건설할 것이요, 그런 형제와 자녀로서 백성을 이루어야만이 비로소 복귀섭리를 종결지어 지상천국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크나큰 천국복귀의 운동이 오늘날 여러분을 통하여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여러분은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가일층 노력해야 하고 사탄 앞에 비굴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뜻 하나를 위해서 충신 효자의 도리를 다했던 것과 같이 우리들도 충신 효자의 도리를 갖추어야 됩니다.
⑩ 천국복귀를 완성하여 승리의 영광을 돌리려면
그리고 이 민족만이 아니고 세계 인류, 나아가서는 영계에 있는 모든 영인들까지도 하늘을 대해 충신의 도리와 효자의 도리를 할 줄 알게 만들어야 아버지 앞에 천국복귀를 완성한 승리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아들이요, 자녀요, 형제요, 가정이요, 혹은 민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말씀선집 제1권 20편, 축약본
천국 복귀를 위하여 택한 무리들 (훈독본)
1956.12.30 (일), 한국 전본부교회
요한복음 15:1-22
여러분들과 함께 생각하려는 제목은 '천국 복귀를 위하여 택한 무리들'입니다.
① 자기 위치를 확인해야 할 섭리역사의 끝날
창조 이후의 역사는 6천년이 경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땅위에 하나님께서 완성하셔야 할 복귀섭리는 여러분 24억 인류를 통하여 이루어야 합니다.
우주적인 복귀역사를 협조하고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나선 우리들은 자기의 위치를 명백히 찾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여러분 한 자체가 6천년 역사를 넘어 최후의 복귀의 이상이요, 창조의 중심인 아담 해와의 기준까지 도달해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온 세계 인류가 전부 그 기준을 넘어야 되고 그 기준을 넘기 전에는 하나님의 섭리는 이 땅 위에서 종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선조들이 감당치 못하고 남긴 부분을 후손인 오늘날 우리들이 대신 책임지고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천국이념이 근본적으로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하늘 나라를 찾지 못하고 있고, 나라를 이루기 위한 백성도 찾지 못하고 있고, 백성을 이루기 위한 가정도 찾지 못하고 있고, 가정을 이루기 위한 부부와 자녀 형제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② 천국 복귀와 인간의 바른 삶
하나님의 중심 목적은 천국 복귀라는 것입니다. 하늘 백성으로부터 하늘의 자녀, 하늘의 형제, 하늘의 부부, 하늘의 가정까지 복귀하여 천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하늘 나라 천국에 반대되는 사탄의 세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악의 세상이 선의 천국으로 회복되는 역사적인 분수령이 역사의 종말시기에 반드시 나타날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는 이 복귀의 고개를 넘어가기 위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개인복귀로부터 가정복귀, 사회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의 고개를 넘어오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전한 복음의 중심된 목적도 천국복귀였습니다. 천국 복귀라는 이 표준은 여러분 개체의 복귀도 복귀려니와 개체를 넘어 가정, 사회, 국가, 세계를 거쳐 천주까지 복귀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 전부가 세계를 위하여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를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종족을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자기를 위하여 살아야 할 인간들이 그러한 입장을 근본적으로 잃어버리고 악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마음을 중심삼고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육을 중심삼고, 자기를 중심삼고 육적인 만족만을 위해서 사는 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타락한 인간을 복귀시키기 위하여 몸을 마음에 굴복시키고, 개인을 가정에 굴복시키고, 가정을 세워 민족 앞에 굴복시키고, 민족을 세워 국가 앞에 굴복시키고, 국가를 세워 세계 앞에 굴복시키는 역사를 지금까지 해 나오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사회에서든지 개인주의적인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오는 혁명적인 노정의 반대입장에 서 왔습니다.
③ 우리가 지향해야 할 중심과 복귀의 순서
오늘날 6천년 역사가 종결되는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념이 복귀의 이념으로 세워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를 중심한 이념이 전세계의 중심 이념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원수의 이념의 반격을 받아 두 갈래가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입장에 우리들은 어느 기준을 지향해 나가야 되겠는가. 천국복귀의 이념을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통해서 보면 이상의 동산은 이 세계, 이 땅만이 아닙니다. 하늘과 땅이 합하여 하나로 일체가 된 이념의 동산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 일신이 죄악사의 모든 것을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게 될 때에도 개인적인 싸움, 몸과 마음의 싸움이 전개될 것입니다. 몸을 중심삼은 악의 움직임이 마음을 굴복시키려 할 때, 그것을 굴복시키어 승리하지 못한다 할진대는 천국백성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세계로부터 국가, 민족, 가정, 부부, 자녀, 형제까지 복귀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천국 이념의 원칙적인 기준이 있는 연고로 우리는 먼저 자신을 복귀해야 합니다.
'천국이 네 마음에 있다' 했으니 우주적인 천국도 완성해야겠지만 먼저 개인적인 천국을 완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몸과 마음의 상대기준을 세워서 천주 앞에 설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하늘의 전체 이상의 어느 분야에도 흡수될 수 있으며 화합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의 나무로 말하면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로서 어느 면에 속해서도 하나의 가지의 모양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가지인 여러분이 줄기를 통해 나가는 것, 이것이 복귀라는 것입니다.
④ 천국백성으로의 복귀단계
이제는 천국백성 단계에 들어가야 할 운명이 여러분 앞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한 존재가 나를 위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천국백성인 하늘 나라의 동포를 위하겠다는 관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 나라를 위하여 애쓰고자 하는 관념을 가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부분적인 관념이 아니라 우주적인 관념입니다. 그러한 우주적인 관념을 여러분이 가져야 되겠습니다.
또 오늘날 여러분들이 사회에 속하여 생활하면 그 사회의식을 가져야 되겠고, 국가에 속하여 살면 국가적인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의 국가에 속하여 살면 그 나라의 국민을 사랑할 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천국 건설을 위하여 섭리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뜻을 마음 몸으로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천국백성을 사랑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천국 건설을 위하여, 아버지의 뜻인 세계복귀를 위하여 존재한다는 인식을 가질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저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무작정 예수를 받들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천지의 운세에 화합하여 예수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천국복귀의 이념을 세워 나오고 계십니다. 우리는 거기에 설 수 있는 아들 딸 그리고 백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천국동포를 사랑할 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옆에, 여러분의 주위에 믿는 백성이 있다면 그들을 형제로 또 동포로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끝날에 우리 믿는 성도들이 동원되어 천국의 동산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런 고로 개인 개인이 단합하고 민족 민족이 단합하여 천국 동포를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천국동포의 이념을 중심으로 천국을 건설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천국자녀, 천국형제, 천국부부의 이념에 의지하여 천국을 건설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⑤ 천국법도의 기준과 천국생활의 표준
이제 여러분은 생활 속에서 천국 법도를 지킬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늘이 요구하시는, 천국건설을 위해서는 천국법도를 지킬 줄 아는 동시에 천국생활을 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천국생활을 할 줄 아는 동시에 천국의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천국을 복귀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역사해 나오는데 우리들은 무엇을 중심삼고 천국의 법도를 지켜야 하는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 준 성경말씀을 중심삼고 천국의 법도를 지켜야 하겠습니다. 말씀이 곧 천국 법도이므로 말씀을 중심삼고 살아야 됩니다. 특히 여러분은 그 성경말씀을 통하여 내적인 사실을 증거한 원리말씀을 중심삼고 천국법도를 지키며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생활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예수님의 30여 평생을 대신한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생활로 만민 앞에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었던 것과 같은 그러한 생활을 여러분도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법도인 말씀을 중심삼고 예수님의 생애를 대신하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소망과 이상은 하나님의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런 고로 하나님의 사랑과 연결시키기 위해서 화목의 조건을 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세계의 모든 크리스찬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한 나무 가지의 진액은 다른 가지로도 흐릅니다. 어느 잎사귀, 어느 가지에도 순환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서로서로 화목하여 위해 줄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런 사람은 이상으로 남아진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⑥ 자기를 중심한 관념을 버리라
그러므로 우리 크리스찬들은 자기 개체를 중심한 관념을 떠나서 내 한자체는 세계를 대신하고 우주를 대신한 존재라는 새로운 관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우리 식구들도 6천년 역사를 대신했고, 영원한 섭리를 대신했고, 인류를 대신한 존재라는 사실을 느껴야 될 것입니다. 어느 한 사람일지라도 그에게 우주적인 하나님의 사랑의 약속의 뜻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러한 사람 앞에 협조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명이 여러분에게 있으므로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바로 볼 줄 알아서 그 뜻을 대신하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개인생활이나 가정생활에서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자녀, 여러분 자신의 부모, 그리고 부부가 여러분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국가를 넘어, 세계를 넘어 천주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알고 그러한 차원에서 자녀나 형제, 그리고 부모를 대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여러분이 인식하고 생활에서 느낀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어떤 사람도 말로 평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한 개체에는 우주적인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내 한 존재는 나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하여, 하늘 땅을 위하여 있는, 복귀의 사명을 대신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여러분 모두가 하나되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소위 남다른 길을 따라 나온 여러분은 이제 자기 중심적인 생활과 관념을 버려야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도 통일교회만을 중심삼은 생활관을 버려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우주의 한 세포요, 분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사탄과 싸우려 할 때, 여러분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생각, 갖고 있는 관념이나 모든 주의가 자신을 위한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사탄권내에서 벗어날 도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세계를 항하여 나아가는 우리 크리스찬들도 세계적인 역사의식을 넘어서서 우주적인 역사의식으로 세계를 파악하고 감정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⑦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러면 이제 복귀를 위해서는 말씀에 의지하여 살아야 하겠고, 예수 그리스도의 봉사적인 마음을 가져야 되겠으며, 서로 화목케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마 5:9)"이라 했습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화목케 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모든 개인을 화목케 해야 할 책임이 있고, 온 민족과 세계를 화목케 해야 할 책임, 하늘과 땅을 화목케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생활환경에서 이러한 실증적인 책임을 느끼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마음으로라도 느껴야 되겠습니다. 개인을 화목케 할 수 있는 제물, 가정을 화목케 할 수 있는 제물, 사회를 화목케 할 수 있는 제물, 국가를 화목케 할 수 있는 제물, 세계 전체를 화목케 할 수 있는 제물이 되겠다는 마음이라도 가져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탄과 대립하여 아버지 앞에 나설 수 있는 마음을 갖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러한 관계를 맺고 생활한다 할진대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을 보면 머리를 숙여 그를 높여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또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을 인도하는 일은 내가 할 일이다. 내가 책임지겠다'는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체휼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자기 개인과 가정을 위한 기도를 안 해도 됩니다. 여러분 각자가 하나님께서 소망하신 천국을 이 땅 위에 건설하기 위한 각오와 맹세를 하고, 그것을 위해 산다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손에 손을 잡고 화목의 제단을 쌓을 줄 아는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은 세계를 향하여 줄기찬 새로운 혁명을 일으킬 것입니다. 또 교회도 그럴 것입니다. 손에 손을 잡고 그리스도의 본을 받아 화목의 제물이 되겠다고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는 무리가 있다면 그들이 나아가는 걸음걸이가 보기에는 안 될 것 같고, 보기에는 깨질 것 같지만 지상천국 건설을 향한 굳건한 걸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땅의 놀라운 사명을 짊어지고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4천년 역사과정에 있어서 하늘을 위하는 충신이 없고, 하늘을 위하는 효자가 없는 때에, 하늘이 요구하는 하나의 충신 효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30여 평생의 삶은 하늘을 위한 삶이었고 세계적이고 우주적인 삶이었습니다. 또 그분의 생애는 하늘을 위한 제물의 생애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천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천국이 무엇이냐 하면, 전세계 인류가 손에 손을 잡고 화동하고, 서로서로 화목하고, 하나의 사랑에 엉키어 쌍수를 들어 하늘 앞에 영광을 돌리며 감사하며 사는 세계인 것입니다. 이걸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너무나 철부지한 신앙생활이었습니다. 이제 그 철부지한 신앙생활을 청산해야 됩니다.
⑧ 통일의 이념을 지향하시는 하나님
이제는 어떠한 교단주의나 민족주의 시대도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세계주의적인 복귀이념과 신앙이념을 찾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백성은 불쌍한 민족입니다. 불쌍한 이 백성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역사는 개인을 깨뜨려 가정을 세우고, 가정을 깨뜨려 사회를 세우고, 그 사회를 깨뜨려 국가를 세우고, 국가를 깨뜨려 세계를 찾아 세우는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심판입니다.
인류는 이렇게 심판을 거쳐 왔는데 이제 최후에 남은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대립하여 싸워 나온 가인 아벨의 두 노선 중에서 가인의 노선을 완전히 깨뜨려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여러분은 예수님의 말씀을 법도로 세워서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대신한 하늘의 충신과 하늘의 효자가 다 되어야만 된다는 거예요.
그리하여 '하나님이시여, 지금까지 당신이 세계를 하나로 통합하여 한 품에 품고 사랑하지 못하던 그 원한을 나를 통하여 해원하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크리스찬들은 역사적인, 우주적인, 천주적인 크나큰 사명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믿음과 생명을 어느 정도까지 갖추었는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은혜는 우주적인 은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천국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나는 천국의 대신자다'라는 마음, 그런 관념을 갖고 생활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만민 앞에 욕을 먹고 화가 버럭버럭 날 때도 여러분 하나가 화를 냄으로 말미암아 24억 인류가 욕을 먹을 것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그것을 억제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분해하고 혈기를 내고 하나님의 뜻을 어길것이 아니라 모든 지체가 연합하여 서로서로 협조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려움 가운데 있으면 그 사람의 어려움을 여러분의 몸에 상처를 입은 것과 같이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협조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한국 민족만이 아닌 온 인류가 모두 협조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천국복귀를 위한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천주의 사랑을 받고 사는 아들 딸이 되어 천주의 중심인 하나님을 모실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만을 위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오직 자신을 위한 예수요, 자신을 위한 하나님으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소망과 뜻은 그것이 아니예요. 하나님은 온 하늘 땅의 중심이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그렇게 모실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천국생활을 하는 자라야만 가능할 것입니다.
⑨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
그러면 하나님께서 6천년 역사를 섭리하신 까닭은 역사 전체를 당신의 한 품에 품기 위함이셨습니다. 비단 지상 뿐만이 아니라 영계까지도 당신의 사랑으로 전체가 하나되기를 바라시고 그 한날을 흠모해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 앞에 여러분들이 은혜를 받고자 한다면, '아버지여! 저를 불러 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하늘이 주신 바의 은사는 여러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여러분을 살리는 동시에 전체 인류를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은 자기를 중심삼고 살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고자 원하는데도 은혜받은 사람들은 거의 없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은 것을 타파하여 천주적인 하나님을 모셔 드려야 되겠습니다. 이런 우주적인 하나님 앞에 몸 마음에 사무치는 책임을 느끼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신 동시에 인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세계적인 하나님이시요, 세계적인 하나님이신 동시에 하늘 땅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우주적인 부모라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신앙을 보면 '나의 하나님이 되시옵소서'라고 하고 있고, 조금 더 나아간 것이 겨우 '우리 가정의 하나님이 되십시오'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조금 더 올라가서는 '우리 교파의 하나님이 되십시오'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관념을 가져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오늘날 세계에는 하나님을 부르짖는 교파가 많습니다. 그러나 교파권(敎派圈) 안에서 부르짖는 하나님은 이제 필요없습니다. 교파를 초월하여 온 천지의 중심으로 믿으며 부를 수 있는 그 한 존재, 전체를 대신하여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존재, 그런 존재들이 모여야만이 이 땅 위에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내게 느껴지는 관념이 가정을 통하여 전체에까지 관계맺게 해야 합니다. 새로운 길에 들어선 여러분은 이제 지금까지의 생활을 버리고 우주적인 생활관념을 향해 새롭게 역사적인 출발을 해야 됩니다.
이러한 때 여러분은 우주적인 하나님의 실존을 모실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하나님과 여러분이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 되겠습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여러분은 우주적인 신부의 이념을 종결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주적인 신부의 이념을 종결지은 후에 민족과 백성과 형제, 그리고 자녀와 부부까지 복귀해야만 우주적인 하나님의 실존 앞에 내가 신부격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맺어진 부부가 이 땅을 주관할 수 있는, 천국에 살 수 있는 부부입니다. 또한 그런 부부로서 자녀를 낳아야만이 천국가정을 건설할 것이요, 그런 형제와 자녀로서 백성을 이루어야만이 비로소 지상천국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⑩ 천국복귀를 완성하여 승리의 영광을 돌리려면
그리고 이 민족만이 아니고 세계 인류, 나아가서는 영계에 있는 모든 영인들까지도 하늘을 대해 충신의 도리와 효자의 도리를 할 줄 알게 만들어야 아버지 앞에 천국복귀를 완성한 승리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아들이요, 자녀요, 형제요, 가정이요, 혹은 민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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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원문입니다.)
천국 복귀를 위하여 택한 무리들
1956.12.30 (일), 한국 전본부교회
여러분들과 함께 생각하려는 제목은'천국 복귀를 위하여 택한 무리들'입니다.'천국 복귀를 위하여 택한 무리들' 이런 제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① 자기 위치를 확인해야 할 섭리역사의 끝날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이 한해에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면 다음 해에 완수해야 하고, 오늘 하루의 책임을 오늘 감당하지 못하면 내일에라도 기필코 감당해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복귀원리를 통하여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창조 이후의 역사는 하루를 거쳐, 일년을 거쳐, 오랜 시일이 지나고, 때와 절기가 변하는 가운데 6천년이 경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땅위에 전세계적으로 대심판이 벌어지고 하나님께서 완성하셔야 할 복귀섭리는 오늘날의 여러분을 통하여, 24억 인류를 통하여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또한 잘 아는 바입니다.
그러면 이제 6천년 섭리역사의 끝날을 대하고 있는 우리들, 우주적인 복귀역사를 협조하기 위하여 가담한 우리들,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나선 우리들이 이제 스스로 머물러 있는 자기의 위치를 명백히 찾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여러분 한 자체가 6천년 역사를 넘어 최후의 복귀의 이상이요, 창조의 중심인 아담 해와의 기준까지 도달해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여러분의 가정과 사회, 온 세계 인류가 전부 그 기준을 넘어야 되겠습니다. 그 기준을 넘기 전에는 하나님의 섭리는 이 땅 위에서 종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마어마하고 두려운 수고의 복귀섭리, 우리의 선조들이 저지른 허물, 우리의 선조들이 감당치 못하고 남긴 부분을 후손인 오늘날 우리들이 대신 책임지고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우주적인 사명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을 이 시간 느끼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천국이념이 근본적으로 파괴되어 버렸고, 인간을 통하여 완성해야 할 천국이념이 여지없이 하늘로부터 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하늘 나라를 찾지 못하고 있고, 하늘 나라를 이루기 위한 백성도 찾지 못하고 있고, 백성을 이루기 위한 가정도 찾지 못하고 있고, 가정을 이루기 위한 부부와 자녀 형제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② 천국 복귀와 인간의 바른 삶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하나의 중심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천국 복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 나라를 복귀하는 운동은 거꿀잡이로 해야 합니다. 하늘 백성으로부터 하늘의 자녀, 하늘의 형제, 하늘의 부부, 하늘의 가정까지 복귀하여 천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런 사명이 우리에게 남아져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땅은,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하늘 나라의 땅이 아니고 하늘 나라의 세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세상이 아니라 사탄을 중심한, 천국에 반대되는 세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악의 세상이 선의 천국으로 회복되는 역사적인 분수령이 역사의 종말시기에 반드시 나타날 것입니다.
오늘날 24억 인류는 이 복귀의 고개를 넘어가기 위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개인복귀로부터 가정복귀, 사회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의 고개를 넘어오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 오셔서 전한 복음의 중심된 목적도 천국복귀였습니다.천국 복귀라는 이 표준은 여러분 개체의 복귀도 복귀려니와 개체를 넘어 가정, 사회, 국가, 세계를 거쳐 천주까지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고 나선 그 날부터 복귀를 위하여 싸움의 일로를 거쳐 나온 것입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의 생활은 세계를 위하여 사는 생활이 아닙니다. 국가를 위해 산다고 하지만 국가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야. 가정을 위해 산다고 하지만 가정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예요. 또 나를 위해 산다고 하지만 진정으로 나를 위해 사는 입장에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악의 세상에 있는 인간들 전부가 세계를 위하여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를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종족을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자기를 위하여 살아야 할 인간들이 그러한 입장을 근본적으로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나를 중심삼고 사는 데도 마음을 중심삼고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 자체를 바라볼 때에 어느 정도까지 떨어졌는가 하면, 마음을 중심삼고 살아야 할 나인데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을 중심삼고 살지 못하는 정도만큼 떨어졌습니다. 육을 중심삼고 사는 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육적인 만족만을 위해서 사는 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타락한 인간을 복귀시키기 위하여 몸을 세워 가지고 마음에 굴복시키고, 개인을 세워 가정에 굴복시키고, 가정을 세워 민족 앞에 굴복시키고, 민족을 세워 국가 앞에 굴복시키고, 국가를 세워 세계 앞에 굴복시키는 역사를 지금까지 해 나오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사회에서든지 개인주의적인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오는 혁명적인 노정의 반대입장에 서 왔습니다. 또 가정을 중심삼고 나온 사람도 역시 반대입장에 서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진전에 따라, 즉 개인적인 시대, 가정적인 시대, 민족적인 시대, 국가적인 시대의 진행에 따라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 진전하는 과정에서 인간들이 따라갈 수 없는 어려운 고비가 있었던 것입니다.
③ 우리가 지향해야 할 중심과 복귀의 순서
오늘날 6천년 역사가 종결되는 끝날인 이 시대에 있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념이 땅 위에서 전체 세계의 복귀의 이념으로 세워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기독교를 중심한 이념이 전세계의 중심 이념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원수의 이념의 반격을 받아 이 두 갈래가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입장에 선 오늘날 우리들은 어느 기준을 지향해 나가야 되겠는가. 천국복귀의 이념을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통해서 보면 우리들이 가야 할 이상의 동산은 이 세계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려는 이상의 복귀의 기준은 이 땅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합하여 둘이 아닌 하나로 일체가 된 이념의 동산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을 중심삼고 화동하고 노래할 수 있는 영광의 한날을 찾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처한 오늘날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 일신이 죄악사의 모든 것을 탕감복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게 될 때에도 개인적인 싸움이 전개될 것입니다. 몸과 마음의 싸움이 전개될 것입니다. 그 싸움에서 낙오자가 되는 사람은 천국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몸을 중심삼은 악의 움직임이 마음을 굴복시키려 할 때, 그것을 굴복시키어 승리하지 못한다 할진대는 천국백성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세계로부터 국가, 국가로부터 민족, 민족으로부터 가정, 가정으로부터 부부, 부부로부터 자녀, 형제까지 복귀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천국 이념의 원칙적인 기준이 있는 연고로 우리는 먼저 자신을 복귀해야 합니다.
'천국이 네 마음에 있다' 했으니 우주적인 천국도 완성해야겠지만 먼저 개인적인 천국을 완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몸과 마음의 상대기준을 세워서 천주 앞에 설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하늘의 전체 이상의 어느 분야에도 흡수될 수 있으며 화합될 수 있는, 하나의 나무로 말하면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포도나무의 가지로서 어느 면에 속해서도 하나의 가지의 모양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가지인 여러분이 줄기를 통해 나가는 것, 이것이 복귀라는 것입니다.
④ 천국백성으로의 복귀단계
이제 여러분이 찾아야 할 맨처음의 단계는 어떠한 단계인가 하면 천국 백성이 되는 단계입니다. 천국백성 단계에 들어가야 할 운명이 여러분 앞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러분은 역사적인 의식을 새롭게 가져야 되겠습니다. 내 한 존재가 나를 위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천국백성인 하늘 나라의 동포를 위하겠다는 관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의 형제를 위하여, 하늘 나라의 부부를 위하여, 하늘 나라의 부모를 위하여 애쓰고자 하는 관념을 가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부분적인 관념이 아니라 우주적인 관념입니다. 그러한 우주적인 관념을 여러분이 가져야 되겠습니다.
또 오늘날 여러분들이 사회에 속하여 생활하면 그 사회의식을 가져야 되겠고, 국가에 속하여 살면 국가적인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의 국가에 속하여 살면 그 나라의 국민을 사랑할 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천국 건설을 위하여 섭리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뜻을 마음 몸으로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천국백성을 사랑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천국 건설을 위하여, 아버지의 뜻인 세계복귀를 위하여 존재한다는 인식을 가질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저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무작정 예수를 받들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천지의 운세에 화합하여 예수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적인 섭리를 중심삼고 천국복귀의 이념을 세워 나오고 계십니다. 우리는 거기에 설 수 있는 아들 딸 그리고 백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천국동포를 사랑할 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옆에, 여러분의 주위에 있는 뭇 백성들 가운데 믿는 백성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들을 형제로 또 동포로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여러분의 책임은 말할 수 없이 큰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끝날인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믿는 성도들이 동원되어 천국의 동산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런 고로 개인 개인이 단합하고 민족 민족이 단합하여 천국 동포를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6천년 역사를 종적으로 보면, 구약시대에는 하늘 백성을 모았고, 신약시대에는 하늘의 자녀를 모았습니다. 이렇듯이 역사는 거꿀잡이로 흘러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천국동포의 이념을 중심으로 천국을 건설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또 천국자녀, 천국형제, 천국부부의 이념에 의지하여 천국을 건설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⑤ 천국법도의 기준과 천국생활의 표준
이제 여러분은 생활 속에서 천국 법도를 지킬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늘이 요구하시는, 천국건설을 위해서는 천국의 법도를 지킬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 천국법도를 지킬 줄 아는 동시에 천국생활을 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천국생활을 할 줄 아는 동시에 천국의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천국을 복귀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역사해 나오는데 우리들은 무엇을 중심삼고 천국의 법도를 지켜야 하는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 준 성경말씀을 중심삼고 천국의 법도를 지켜야 하겠습니다. 말씀이 곧 천국 법도이므로 말씀을 중심삼고 살아야 됩니다. 여기에 여러분의 길이 있습니다. 특히 여러분은 그 성경말씀을 통하여 내적인 사실을 증거한 원리말씀을 중심삼고 천국법도를 지키며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생활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예수님의 30여 평생을 대신한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끝날에 처한 오늘날 여러분의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생활이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생활을 만민 앞에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었던 것과 같은 그러한 생활을 여러분도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삼고 법도를 지키던 예수님의 생애를 본받아 화목한 생활을 함으로써 하늘을 위하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하늘의 법도인 말씀을 중심삼고 예수님의 생애를 대신하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소망과 이상은 하나님의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런 고로 하나님의 사랑과 연결시키기 위해서 화목의 조건을 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세계의 모든 크리스찬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한 나무 가지의 진액은 다른 가지로도 흐릅니다 어느 잎사귀, 어느 가지에도 순환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서로서로 화목하여 위해 줄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런 사람은 이상으로 남아진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⑥ 자기를 중심한 관념을 버리라
그러므로 우리 크리스찬들은 자기 개체를 중심한 관념을 떠나서 내 한자체는 세계를 대신하고 우주를 대신한 존재라는 새로운 관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우리 식구들을 보아도 오늘의 그가 그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6천년 역사를 대신했고, 영원한 섭리를 대신했고, 평면적으로는 24억 인류를 대신한 존재라는 사실을 여러분은 느껴야 될 것입니다. 어느 한 사람일지라도 그에게 우주적인 하나님의 사랑의 약속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러한 사람 앞에 협조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명이 여러분에게 있으므로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바로 볼 줄 알아서 그 뜻을 대신하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개인생활이나 가정생활에서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자녀, 여러분 자신의 부모, 그리고 부부가 여러분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도 여러분을 위한 자녀가 아니요, 형제도 여러분을 위한 형제가 아니요,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국가를 넘어, 세계를 넘어 천주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알고 그러한 차원에서 자녀나 형제, 그리고 부모를 대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이러한 사실을 여러분이 인식하고 생활에서 느낀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어떤 사람도 말로 평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한 개체에는 우주적인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내 한 존재는 나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하여, 하늘 땅을 위하여 있는, 복귀의 사명을 대신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여러분 모두가 하나되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소위 남다른 길을 따라 나온 여러분은 이제 자기 중심적인 생활에서 떠나야 되겠습니다.나 중심한 관념을 버려야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도 통일교회만을 중심삼은 생활관을 버려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우주의 한 세포요, 분자이기 때문입니다.
끝날에 처한 오늘날 우리들은 역사적인 작용을 느껴야 되겠고, 천륜의 섭리적인 작용을 느껴야 되겠고, 하나님의 전체적인 사랑의 작용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한 몸을 세워 우주적인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자가 되어야만 여러분은 천국의 동산에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고, 또 그럴 때에 천국은 여러분과 관계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한 소망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왔다 갔고, 이 한 소망을 성사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예수와 성신의 삼위신이 합심하여 사탄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사탄과 싸우려 할 때, 여러분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생각, 갖고 있는 관념이나 모든 주의가 자신을 위한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사탄권내에서 벗어날 도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세계를 항하여 나아가는 우리 크리스찬들도 세계내적인 역사의식을 넘어서야 되겠습니다.그것을 넘어서서 우주적인 역사의식으로 세계를 파악하고 감정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⑦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러면 이제 복귀를 위한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이냐. 복귀를 위한 사회, 복귀를 위한 가정, 복귀를 위한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복귀를 위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여러분은 이 모든 것을 알고 넘어서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에 의지하여 살아야 하겠고, 예수 그리스도의 봉사적인 마음을 가져야 되겠으며, 서로 화목케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마 5:9)"이라 했습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화목케 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모든 개인을 화목케 해야 할 책임이 있고, 온 민족을 화목케 해야 할 책임, 세계를 화목케 해야 할 책임, 하늘과 땅을 화목케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생활환경에서 이러한 실증적인 책임을 느끼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마음으로라도 느껴야 되겠습니다. 내가 개인 개인을 화목케 할 수 있는 제물이 되고, 가정 가정을 화목케 할 수 있는 제물이 되고, 사회 사회를 화목케 할 수 있는 제물이 되고, 국가 국가를 화목케 할 수 있는 제물이 되고, 세계 전체를 화목케 할 수 있는 제물이 되겠다는 마음이라도 가져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탄과 대립하여 아버지 앞에 나설 수 있는 마음을 갖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러한 관계를 맺고 생활한다 할진대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을 보면 머리를 숙여 그를 높여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또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을 보면'저 사람을 인도하는 일은 내가 할 일이다. 내가 책임지겠다'는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체휼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자기 개인을 위한 기도를 안 해도 됩니다. 자기 가정을 위한 기도를 안 해도 돼요. 여러분 각자가 하나님께서 소망하신 천국을 이 땅 위에 건설하기 위한 각오와 맹세를 하고, 그것을 위해 산다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손에 손을 잡고 화목의 제단을 쌓을 줄 아는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은 세계를 향하여 줄기찬 새로운 혁명을 일으킬 것입니다. 또 교회도 그럴 것입니다. 손에 손을 잡고 그리스도의 본을 받아 화목의 제물이 되겠다고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는 무리가 있다면 그들이 나아가는 걸음걸이가 보기에는 안 될 것 같고, 보기에는 깨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걸음은 지상천국 건설을 향한 굳건한 걸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땅의 놀라운 사명을 짊어지고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4천년 역사과정에 있어서 하늘을 위하는 충신이 없고, 하늘을 위하는 효자가 없는 때에, 하늘이 요구하는 하나의 충신 효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30여 평생의 삶은 하늘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세계적이고 우주적인 삶이었습니다. 또 그분의 생애는 하늘을 위한 제물의 생애였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상에 없었던, 하늘을 위한 하나의 효자로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은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천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천국이 무엇이냐 하면, 전세계 인류가 손에 손을 잡고 화동하고, 서로서로 화목하고, 하나의 사랑에 엉키어 쌍수를 들어 하늘 앞에 영광을 돌리며 감사하며 사는 세계인 것입니다. 이걸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우리가 믿고 나온 신앙생활은 너무나 철부지한 신앙생활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철부지한 신앙생활을 청산해야 됩니다.
⑧ 통일의 이념을 지향하시는 하나님
이제는 어떠한 교단주의 시대도 지나갔습니다. 어떠한 민족주의 시대도 지나갔습니다.이제는 세계주의적인 복귀이념, 세계주의적인 신앙이념을 찾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왔다는 것이예요.
오늘날 한국백성은 불쌍한 민족입니다. 불쌍한 이 백성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역사는 개인을 깨뜨려 가정을 세우고, 가정을 깨뜨려 사회를 세우고, 그 사회를 깨뜨려 국가를 세우고, 국가를 깨뜨려 세계를 찾아 세우는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심판입니다.
인류는 이렇게 심판을 거쳐 왔는데 이제 최후에 남은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대립하여 싸워 나온 가인 아벨의 두 노선 중에서 가인의 노선을 완전히 깨뜨려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여러분은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한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해요. 예수님의 말씀을 법도로 세워서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대신한 하늘의 충신과 하늘의 효자가 다 되어야만 된다는 거예요.
그리하여 통일의 이념을 지향하는 하나님 앞에 나서 가지고'하나님이시여, 지금까지 당신이 세계를 하나로 통합하여 한 품에 품고 사랑하지 못하던 그 원한을 나를 통하여 해원하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크리스찬들은 그들 앞에 이렇듯 역사적인, 우주적인, 천주적인 크나큰 사명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어느 정도 나타냈는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믿음과 생명을 어느 정도까지 갖추었는가. 여러분은 그 한계선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은혜는 우주적인 은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천국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여러분의 일거수일투족의 행동, 그리고 오늘의 모든 느낌까지도'나는 천국의 대신자다'라는 중심된 마음을 갖고, 그런 관념을 갖고 생활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만민 앞에 욕을 먹고 화가 버럭버럭 날 때도 여러분 하나가 화를 냄으로 말미암아 24억 인류가 욕을 먹을 것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그것을 억제해야 합니다. 하늘은 지금까지 그런 느낌을 갖고 나오셨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여러분이 분해하고 혈기를 내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일이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모든 지체가 연합하여 서로서로 협조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려움 가운데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 사람의 어려움을 여러분의 몸에 상처를 입은 것과 같이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협조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한국 민족만이 해서는 안 돼요. 온 인류가 모두 협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천국복귀를 위한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천주의 사랑을 받고 사는 아들 딸이 되어야만 돼요. 그 다음에는 천주의 중심인 하나님을 모실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부르짖고 있는 하나님, 여러분들이 찾고,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만을 위한 하나님이 아니요, 여러분만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오직 자신을 위한 예수요, 자신을 위한 하나님으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소망은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것이 아니예요. 하나님의 위치는 온 하늘 땅의 중심이십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하나님을 그렇게 모실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천국생활을 하는 자라야만 가능할 것입니다.
⑨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
그러면 하나님께서 6천년 역사를 섭리하신 까닭은 무엇인가. 역사 전체를 당신의 한 품에 품기 위함이셨습니다. 비단 지상 뿐만이 아니라 영계까지도 당신의 사랑으로 전체가 하나되기를 바라시고 그 한날을 흠모해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 앞에 여러분들이 은혜를 받고자 한다면,'아버지여! 저를 불러 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에게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오늘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하늘이 주신 바의 은사는 여러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살리는 동시에 전체 인류를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은 자기를 중심삼고 살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고자 원하는데도 은혜받은 사람들은 거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여기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이것을 뚫고 타파하여 천주적인 하나님을 천주적인 하나님으로 모셔 드려야 되겠습니다. 이런 우주적인 하나님 앞에 몸 마음에 사무치는 책임을 느끼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여러분이 믿고 바라고 있는 소망의 동산은 여러분만의 소망의 동산이 아닙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하나님을 찾고 믿으려 했기 때문에 천사장은 타락했습니다.
오늘날 인류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신 동시에 인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세계적인 하나님이시요, 세계적인 하나님이신 동시에 하늘 땅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그와 동시에 우주적인 부모라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신앙을 보면'나의 하나님이 되시옵소서'라고 하고 있고, 조금 더 나아간 것이 겨우'우리 가정의 하나님이 되십시오'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조금 더 올라가서는'우리 교파의 하나님이 되십시오'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관념을 가져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오늘날 세계에는 하나님을 부르짖는 교파가 많습니다. 그러나 교파권(敎派圈) 안에서 부르짖는 하나님은 이제 필요없습니다. 교파를 초월하여 온 천지의 중심으로 믿으며 부를 수 있는 그 한 존재, 전체를 대신하여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존재, 그런 존재들이 모여야만이 이 땅 위에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내게 느껴지는 관념이 가정을 통하여 전체에까지 관계맺게 해야 합니다. 새로운 길에 들어선 여러분은 이제 지금까지의 생활을 버리고 우주적인 생활관념을 향해 새롭게 역사적인 출발을 해야 됩니다.
이러한 때 여러분은 어떤 마음을 가져야 되느냐 하면, 우주적인 하나님의 실존을 모실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그리하여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그 하나님과 여러분이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 되겠습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여러분은 우주적인 신부의 이념을 종결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주적인 신부의 이념을 종결지은 후에 복귀된 세계를 찾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민족과 백성과 형제, 그리고 자녀와 부부까지 복귀해야만 우주적인 하나님의 실존 앞에 내가 신부격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 자리까지 가야만 거기에서 우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우주적인 하나님의 실존 앞에 서서 그 사랑과 하나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맺어진 부부가 이 땅을 주관할 수 있는, 천국에 살 수 있는 부부입니다. 또한 그런 부부로서 자녀를 낳아야만이 천국가정을 건설할 것이요, 그런 형제와 자녀로서 백성을 이루어야만이 비로소 복귀섭리를 종결지어 지상천국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크나큰 천국복귀의 운동이 오늘날 여러분을 통하여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여러분은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가일층 노력해야 하고 사탄 앞에 비굴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뜻 하나를 위해서 충신 효자의 도리를 다했던 것과 같이 우리들도 충신 효자의 도리를 갖추어야 됩니다.
⑩ 천국복귀를 완성하여 승리의 영광을 돌리려면
그리고 이 민족만이 아니고 세계 인류, 나아가서는 영계에 있는 모든 영인들까지도 하늘을 대해 충신의 도리와 효자의 도리를 할 줄 알게 만들어야 아버지 앞에 천국복귀를 완성한 승리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아들이요, 자녀요, 형제요, 가정이요, 혹은 민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