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아버님의 교육철학 (아버님의 교육철학)

무지... | 20180508060111

 3. 선명 선생의 교육철학


○교육, 무엇이 문제인가·78

○교육이 필요 없는 사랑의 세계·83

○남을 사랑할 수 있는 교육·88

○양심이 가르치는 곳으로 가라·92

○희생과 봉사 그리고 공적인 것을 위한 교육·100

○지도자의 책임과 자세·106

○교육, 이렇게 달라져야 한다·112

 

교육, 무엇이 문제인가

 

세계를 다녀 보면 거의 모든 분야에서 미국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과학분야는 무슨 분야든 미국인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그러니 구라파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해 연구해 봤자 누더기 보따리 취급밖에 못 받습니다. 자주적인 관념을 강하게 하여 교육을 실시해 자기들이 미국 사회권 내에서 최고의 어떤 자리를 차지해 보려고 하지만, 그것은 미국 사람들이 이미 다 해놨습니다. 그들이 해봤댔자 별것이 없습니다. 결국은 남이 한 것을 따라간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교육방법은 자주적인 사상을 중심삼아서 강력히 개인 사상을 주입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학자의 학설을 듣고 절대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전부 다 비판적인 입장에서 보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유한 전통사상을 인계받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현재 미국 교육제도에서의 크나큰 암입니다.

 

지금까지의 교육이나 수양, 종교는 개인을 위주로 해 나왔습니다. 기나긴 역사과정을 거쳐왔지만 그 모든 목적을 달성하여 완전한 개인과 완전한 가정이 형성되었느냐고 할 때, 지금까지 인륜 도덕을 세워 강조해 나오던 모든 교양의 표준을 넘어서서 참다운 가정을 이룬 사람이 없었다고 단적으로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배운 교육이나 주의, 사상,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사탄세계의 모든 것을 완전 부정해야 합니다. 백퍼센트를 부정해야 되는데 만약 98퍼센트까지만 부정하게 되면 2퍼센트가 문제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떠한 세상이냐? 마음을 중심삼아야 하는데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생각지도 않는 물질주의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교육 현실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전부 물질문명 위주의 교육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귀하고 훌륭한 이 마음을 눈에 보이는 돈 때문에 등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제는 마음이 없다고 부정하는 자리, 그리고 하나님도 없다고 부정하는 자리까지 흘러가고 있습니다.

 

행복도 참의 자리에서 성립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섭리도 참의 자리에서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참’이 문제입니다. 이 ‘참’ 가운데서는 참된 자기가 필요합니다. 그 참된 자기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교육을 통해서 수양이니 하는 것을 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제반 교육제도는 인간개조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짜여진 것이요, 그것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혁신운동을 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참의 자리가 아직까지 결정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성인의 도리가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의 교육이 이것을 안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에 오면 다 가르쳐 줍니다. 그렇다면 통일교회 식구들은 성인이 되겠습니까, 성인을 지도하는 성인의 왕자가 되겠습니까?

 

인류역사, 인간 조직 형태의 핵을 개인주의에 세울 수 있어요? 그건 안 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전부 다 갈라집니다. 오늘날 미국의 교육 방법은 자주성 있는 인간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자주성 있는 인간을 만들자고 강조하다 보니 상대성을 망각해 버렸습니다. 이게 틀린 것입니다.

 

상대성을 위하는 자주성을 강조하지 않고 상대성을 망각하는 자주성을 강조함으로 말미암아 개인주의로 몰락되었습니다. 그래도 기독교사상이 있었기 때문에 종교가 이것을 보충했는데, 이제 기독교까지 다 때려치우면 망하는 것입니다.

 

세계 모든 나라의 교육제도에서, 경쟁에서 승리한 자만이 획득할 수 있다는 경쟁의 장점과 그에 가장 적합한 삶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왔습니다. 이것은 한 인간 가족 구성원으로 인류를 이끎으로써 평화로운 공존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한 건전한 인간의 노력을 잠식하는 전염병과 같습니다.

 

어쨌든 현재 인류는, 지성인 사이에서 그러한 경쟁의 강조가 변천되고 있고 생존을 위해 협동이 불가결한 요소임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견해에 비춰 볼 때, 교육의 목적과 교육철학은 심층으로부터 변혁을 겪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을 보더라도 대학이면 대학을 졸업했으면 그냥 졸업장을 줘서 내보냅니다. 그런데 그 대학에서 교육받은 것이 사회에 나가 실효를 보지 못해요. 이것이 완전히 동떨어져 서로서로 분립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에 기관이 있지만 대학기관에 자신들의 졸업생, 동창생이면 동창생에 대한 그 관계가 모호합니다.

 

대학기관에서 좀더 강력한 조직을 가지고 자기 동창생 조직까지 관리하면서 지방을 순회해 그들이 졸업한 전문분야에서 어떻게 활용되느냐 하는 데이터를 내고, 거기에서 몇 사람을 뽑아 국가에서 공인할 수 있게끔 해야 합니다. 이러한 교육제도를 만들면 사회에 나가 상당히 공헌할 수 있습니다.

 

부모에 대한 사랑을 모르고, 선생에 대한 사랑을 모르고, 그 나라의 주권자에 대한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거기에는 불평밖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가르쳐 줘야 할 곳은 교육기관과 종교밖에 없어요. 두 곳뿐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교파 싸움이나 하고, “나라가 어떻고 세계가 어떻든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나라야 어떻든, 세계야 어떻든 관계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교육받은 것은 타락한 세계에서 출세를 바라고 “더 높아져라. 더 훌륭해져라” 했을 것입니다. 공부고 뭣이고 그 표준으로 했지, 반대의 길을 가려고는 안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도 노력을 안 했습니다. 그러니 큰일입니다.

 

가면 갈수록,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하늘과 멀어집니다. 가면 갈수록 멀어지는 것입니다. 지식이 있으면 있을수록 하늘과 멀어집니다. 창조가 아니고 무슨 뭐 진화야? “진화가 아니고 창조다!” 이것이 우리가 밝혀야 할 일입니다.

 

현실 사회제도는 개인주의 사상을 중심한 문화권입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 나올 때까지 자기 중심삼은 교육을 받은 개인주의 사상체제권 세계인데, 그런 인격이 형성되어 있는 인간을 그 환경을 차 버리고 격파해 버리고 도약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쉽겠어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렇지만 단 하나, 사랑의 힘은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힘입니다. 참사랑의 힘은 사망까지도 소화해 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미국의 현재 젊은이들을 보세요. 2세는 이미 다 산송장들입니다. 민주주의를 가지고 지금까지 나라를 거느리고 교육해 나왔지만 현재 젊은 사람들을 보세요. 마약을 먹고 프리섹스를 하고 개인주의 사상에 몰락하고 있는 사실을 지금 보고 있는 거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상적인 혼란입니다. 기독교가 사상적 지주가 되어 있는데 전부 다 혼란되어 방향을 잡지 못하는 현실에 처해 있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세속적 인본주의를 만들어 하나님을 추방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정의의 도리, 성인 성자들이 가르쳐 준 도리를 추방하고 프리 섹스, 성 개방이 다 무엇입니까? 이 망국의 사탄 피, 지옥의 소()에 송두리째 빠져 들어가는 걸 모르고…. 일본도 그렇고, 한국의 교육방법에 비수를 가해야 합니다. 이것을 방어해야 할 사명이 통일교회에 있습니다.

 

전쟁은 후세를 통해서 언제든 계속되어 끝이 없는 비참사를 빚어낼 있다는 입장에 있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 수많은 역사적·종교적 대표라든가 성인들이 와서 인류를 지도하고 교육했지만 외적 교육을 했습니다. 나라를 다스리고, 가정을 다스리고, 사회가 평화롭게 되는 이런 외적인 것을 말해 평화세계를 위한 외적인 가르침은 주었지만, 우리 인간 자체에서 몸과 마음이 싸우고 있는 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가르침을 주지 못했습니다.

 

교육이 필요 없는 사랑의 세계

 

여러분은 가정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까? 어떤 아버지가 그의 자녀에게 아버지한테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합니까? 그렇게 교육을 받았습니까? 또 어머니도 자녀에게 어머니한테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합니까? 또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법을 누구에게 배웠습니까? 여러분은 누구로부터 신랑 신부는 이렇게 사랑해야 한다고 배웠습니까? 배운 바가 없지만 잘 합니다. 참 신비로운 일입니다. 모든 인간은 배우지 않았지만 잘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배우지 않고도 압니다. 마음이 누구에게 “야 마음아, 누가 이러이러하게 하면 나쁜 것이니까 그때는 네가 파수병이 되어라” 하는 것을 배웠습니까? 배우지는 않았지만 이 마음이란 것은 몸뚱이가 크고 큰 힘으로 대들더라도 문제삼지 않습니다.

 

오히려 힘에 비례해서 즉각적으로 전기보다 빠르게 반응을 일으킵니다. 다른 마음을 먹게 되면 그 즉시 그만두게 합니다. 얼마나 교육받아야 그렇게 되겠습니까? 만약 사람이 교육을 해 언제든지 그렇게 될 수 있게 만든다면 이것은 대성공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교육자라도 이렇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런 것을 배워 보았어요, 못 배워 보았어요? 모두가 배우지 않고도 잘 알고 잘 합니다.

 

여러분, 장가가는 아들에게 “너 장가가기 위해서 20년 동안 교육받았느냐?”고 그래요? 나면서부터 “야, 네가 색시를 얻으려면 이렇게 해야 되는 거야”라고 교육받았어요? 여기 아저씨들! 교육받고 갔어요? 사랑의 길은 모든 것을 초월해 있습니다.

 

사랑만 알게 된다면 남편이 어떻다는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아내가 어떻다는 것도 사랑만 알게 된다면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자식이 어떻다는 것도 사랑만 알게 되면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교육이 있으면 도리어 방해가 됩니다.

 

부처끼리 재미있게 사는데 그의 어머니 아버지가 열고 들어가 “야! 너희들 사랑하니?” 한다면 그것 기분 좋겠어요? 그 자리는 평등권이요, 동등권이요, 또한 해방권입니다. 그 누가 간섭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랑이 좋다는 겁니다.

 

사랑은 교육이 필요 없는 세계를 관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교육이 필요 없어요! 사랑을 누가 교육하나요? 생각해 보세요. 참새가 새끼들을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다 가르쳐 줄 수 있어요? 하나님이 지휘봉을 들고 요렇게 하라고 가르쳐 줬습니까? 만나면 적당히 알아서 합니다. 그건 전기가 통하는 것입니다.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상하지 않아요? 그게 어떻게 새끼를 칩니까? 고기들도 물에서 어떻게 새끼를 쳐요? 그 얼마나 신비롭습니까? 그걸 누가 가르쳐 줘요? 가르쳐 줄 필요가 없습니다. 절대 교육이 필요 없어요. 자연이치로, 순환이치로, 모든 천리에 의해서 하게 되니 가르쳐 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교육이 필요 없고, 누구의 간섭도 필요 없습니다. 자율적인 내용에 따라 내가 몸으로 느낍니다. 누구의 설명으로, 머리를 통해서, 의식구조를 통해서, 체험을 통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벌써 몸을 통해서 다 아는 것입니다. 체험하고 나서 아는 것이 아니라, 의식하고 나서 체험을 통해 아는 것이 아니라 벌써 느끼고 체험하기 전에 아는 것입니다. 느끼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는 완전히 하나됩니다. 그러나 내 몸과 마음이 갈라져 한 번도 하나된 적이 없습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그래요.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의 본질적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중심삼은 사랑의 세계에는 교육이 없습니다. 스승이 없어요. 하나님만이 스승입니다. 가르쳐 주지 않아도 벌써 아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면 우주가 . 전부 다 우주의 축소체입니다. 다 아는 것입니다. 배울 필요 없어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칠 필요가 없어요. 윤리도덕이 필요 없어요. 보세요. 참새세계에, 동물의 세계에 무슨 윤리도덕 교육을 해요? 자기들끼리 다 보호하고, 생리적으로 자기 족속을 연결시켜 살 줄 아는데, 만물의 영장은 왜 그래요? 타락되었기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핵이 됩니다. 핵은 천년 돌아도 그 자리입니다. 핵이 원형을 이루었으면 핵 자체는 어디나 수직입니다. 아무 데나 갖다 놔도 수직은 순식간에 잡아요. 교육이 필요 없어요. 척 멎으면 수직이 벌어져요. 천지 도수를 맞추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가르침은 심신(心身)통일입니다. 그것은 비법이 없어요. 돈 가지고도 안 돼요. 무슨 훈련 가지고 안 됩니다. 교육 가지고도 안 돼요. 참사랑에 서야 될 수 있습니다.

 

참사랑이란 어떻게 심을 있느냐? 사탄세계의 조상으로부터 씨를 심을 때의 그 사랑과 그 생명과 핏줄이 연결된 그 이상의 자리에서만이 하나님이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봐야 성경의 역설적 논리가 통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있다면 사랑의 귀착지가 어디냐 하는 문제를 이론적으로 탐구해야 텐데 이것이 해결 되면 이론이 편성 됩니다. 이론이 편성 안 되면 대중화할 수 없어요. 교육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사랑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어디 가서 정착하는 데는 그 정착지가 변하는 것이냐 불변하느냐? 이것은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알게 된 것이 뭐냐 하면 “사랑은 직단거리를 통하느니라!”입니다. 이 한마디를 알고 천년을 넘을 수 있는 기쁨에 사무쳐 춤을 출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수직과 수평이 어디서 합하느냐? 이것은 운동하기 때문에, 구형적 내용이기 때문에 제일 중앙선에서 합해야 된다는 논리가 나옵니다. 이걸 중심삼고 긋게 될 때 그 선에 딱 들어가면 전 우주가 공명합니다. 영계도 훤히 알고….

 

사랑을 중심삼고 관계되는 세계는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교육이 필요 없어요. 누가 지배할 필요가 없어요. 그 자체가 나를 지배합니다. 하나님까지도 절대복종한다고 했지요? 그 자체가 방향성이 틀리면 나를 바로잡아 줍니다.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를 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귀중한 가치를 만점으로 만드는 것은 참사랑과 일체가 때에 가능합니다. 심신일체는 양심과 육신이 공명권에 서 있는 것을 말합니다. 소리굽쇠의 주파수가 같을 때, 하나를 땡 치면 그 반대의 소리굽쇠가 울립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참사랑으로 양심을 치면 육신이 울립니다. 참사랑으로 육신을 땡 치면 양심이 공명권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그 한가운데 들어가면 가르쳐야 할 모든 것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참사랑은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자동적으로 알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시집가게 될 때, 사춘기 될 때 남자를 생각하라고 가르쳐 줬어요? 가르쳐 주지 않지만 암만 사대부 여자라 해도, 엄한 어머니가 감추어서 기르더라도 담 너머에서 남자들 소리가 ‘왕왕왕’ 나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뛰어가서 이러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무슨 프리섹스니 성교육이니 하는데, 그만두라는 것입니다. 동물세계에서 성교육을 해요? 그 옆에만 가면 자동적으로 맞춥니다. 어떤 것은 생식기가 날갯죽지 안에 있는데 발뒤꿈치로 그걸 맞춥니다. 자연히 맞게 되어 있습니다.

 

지남철이 남북으로 통하는 것을 맞추라고 해서 맞춰요? 자동적으로 맞춥니다. 참사랑에 일치될 수 있는 몸 마음이 되면, 하나님의 사랑이 있으면 내버려두어도 자기가 동서남북의 방향을 잘 찾아서 자동적으로 가서 맞춘다는 것입니다.

 

 

남을 사랑할 있는 교육

 

사랑의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래, 네가 이렇게 하면 아버지 어머니가 슬퍼하니까 안 되겠지?” 하면서 사랑의 교육을 해야 됩니다. 그러니 부모는 자식의 친구 중의 친구요, 스승 중의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교육은 누구로부터 받아야 되느냐? 부모로부터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하나되어 비둘기같이 재미있게 ‘구구구구’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야,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저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니까 나 혼자는 외로워. 나도 우리 어머니 아버지같이 ‘구구구구’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상대가 필요하다” 이렇게 돼야 하고, 부모는 그렇게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결혼하여 사랑하는 것을 본받을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아들딸들이 아버지 어머니가 하던 놀음을 반복하게 되니, 세계는 선한 세계가 되는 것이요, 인류역사는 선한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끼리, 두 청춘남녀가 동산에서 사랑을 속삭이면서 찔레꽃 잎사귀 다 시든 것이라도 하나 준 것, 그것이 영원히 잊혀져요? 안 잊혀진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통한 교육, 사랑을 통한 신앙생활, 그것이 천국입니다. 지식을 통한 국가, 권한을 통한 국가, 이것은 망국판입니다. 사랑을 통한 지식, 사랑을 통한 경제, 사랑을 통한…. 천국은 이렇게 된 곳입니다.

 

교육에 대한 문제는 뭐냐? 사랑의 교육을 하는 것이 제일 좋은 교육인데 그 사랑의 교재가 어디 있느냐? 교재는 나라입니다. 여러분, 진짜 사랑해 봤어요? 내가 부모를 사랑하니 부모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아내를 사랑하니 아내도 나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마이너스가 생겨나면 플러스가 생겨나고, 완전한 플러스가 있으면 마이너스가 생겨나게 마련입니다.

 

사랑은 내게 달려 있습니다. 내가 사랑한 만큼 나를 사랑하게 마련입니다.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누가 사랑의 교재입니까? 그것이 어렵습니다. 남의 남편 노릇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자식 있는 사람이 사랑을 모르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남편으로서 남편 책임을 다하고, 아내로서 아내 책임을 다하고, 부모로서 부모 책임을 다하면 교육을 잘 한 것입니다. 교육 재료로서 가장 좋은 재료가 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교육을 어머니 아버지를 중심삼고, 그 다음엔 식구를 중심삼고, 국가를 중심삼고 합니다. 천국에 가서 살 수 있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개인·가정·사회·국가·세계적으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머니라면 아기들을 대해서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벌써 눈짓만 하면 압니다.

 

여러분은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스승의 사랑, 나라의 사랑, 성인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갖고 나아가야 합니다. 부모를 좋아할 때가 대개 18세까지입니다. 그 다음에는 선생을 좋아합니다. 이 소년시대·청년시대·장년시대까지는 교육을 받아야 해요. 사랑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부모를 잊지 못하듯이 선생님을 잊으면 되고, 선생님을 잊지 못하듯이 나랏님을 잊어서는 안 돼요. 또 나랏님을 잊지 못하듯이 성인을 잊으면 안 되고, 성인을 잊지 못하듯이 하나님을 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일생 동안 거기에 대해 감사하면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통일교회 아무개라는 사람은 하는 사람이냐? 모든 사랑을 할 수 있는 교재로서 등장한 사나이입니다. 레버런 문을 사랑하는 이상 부모를 사랑하라, 그게 선생님의 교육입니다. 여러분이 부모를 사랑하지 못했는데 레버런 문을 중심삼고 사랑을 배웠기 때문에, 레버런 문을 사랑하는 이상 부모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가정의 사랑을 세계무대에 입체적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어머니 아버지, 부모를 생각하고 자식을 생각하는 것같이 생각하는 것을 세계화하자, 이 교육받은 것을 세계적으로 확대시키자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연령에 있는 사람들을 여러분의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 연령과 같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아버지 어머니같이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남자를 바라볼 때는 “이는 우리 남편의 연장선이다, 연장선이다” 하고 생각하고, 자기 손아랫사람은 자기 동생과 같이 생각하고, 아들 같은 연령에 있는 사람은 아들같이 생각하는 그 사랑으로 세계인을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남자란 인격과 여자란 인격이 주체 대상의 상대관계를 중심삼고 힘의 작용을 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뭐냐?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힘을 중심삼고 가정 형성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애국이 무엇입니까? 나라의 주권과 국민의 생활기반이 사랑을 중심삼고 엉클어진 것입니다. 성인이 무엇입니까? 세계 주체의 자리에서 사랑을 중심삼고 모든 역사와 엉클어질 수 있는 작용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다 종교지도자더라는 것입니다.

 

성인의 생활의 기본이 뭐냐 하면 사랑의 원칙입니다. 전부 그것을 교육했습니다. 불교로 말하면 자비, 기독교로 말하면 사랑, 전부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 작용 전부는 우리가 일반적으로는 몰랐지만 우주의 핵적인 사랑의 작용과 연결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한 우주적인 공통분모의 작용 원칙이 있는데 원칙에 부합되지 못할 때는 유리(遊離)하는 것입니다. 유리하다가 상대를 못 찾으면 깨집니다. 그러나 이 주체적 사랑, 핵의 주축적 사랑에 연결되면 해체되지 않습니다. 분해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상실이 없어요. 영속하는 것입니다.

 

며느리가 만약에 “아이구, 나는 교육을 민주주의식으로 받았어.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다 마찬가지고 아들딸도 마찬가지야”라고 불평을 시작했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질서가 서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교육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하나의 교육이 세계 앞에 남았다면….

 

법을 중심삼은 교육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돈을 가지고 흥정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힘을 가지고 치리(治理)하겠다는 시대는 다 지나갔어요. 그것들은 적응이 안 됩니다. 암만 한다고 해도 적응이 안 되는 것입니다. 갔다가는 되돌아옵니다. 정착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제 남은 한 가지는 공의에 입각한 사랑의 질서만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양심이 가르치는 곳으로 가라

 

악이 가는 길에는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교육을 받지 않고도 누구든지 갈 수 있습니다. 악으로부터 시작된 역사이기 때문에 교육을 받지 않고도 누구든지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악의 길을 가게끔 교육할 필요성이 있어요? 스스로 그렇게 됐기 때문에 오늘날 인륜도덕을 중심삼고 양심의 표준 앞에 가려 가라고 교육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한 교육이냐? 선을 중심삼고, 양심을 중심삼고 교육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교육의 표준에 입각한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악한 것은 배우지 않고도 누구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다 만점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고집부리는 사람도 자신의 마음은 알고 있습니다. 마음은 자신이 잘하는지 못하는지 다 압니다. 그러기에 마음세계에는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마음세계는 자기가 해 놓은 일에 대해서 잘했는지 못했는지 다 압니다.

 

그런데도 떼를 쓰며 고집을 부리게 때에는 어떻게 됩니까? 거기에는 사탄 상속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독사가 와서 물고 있다는 것입니다. 독사가 물고 있는데도 가만히 있겠어요? 그러나 그것은 독사에게 물리는 것보다 더 무섭습니다. 독사에게 물리면 자기 일대만 망하지만 마음세계가 잘못되면 수천만 대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을 누가 교육합니까? “나는 마음 소학교 다녔소. 나는 마음 중학교 다녔소” 하는 말을 들어 봤습니까? 이것은 교육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절대 교육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법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마음 이상의 도리를 가르쳐 줄 수 있는 법은 없습니다.

 

사람은 좋지 않은 일을 하게 되면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됩니다. 양심은 바른 것입니다. 대개 관념이 그렇습니다. 양심이 꼬부라졌느냐 반듯하냐 할 때, 양심이 꼬부라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보편적으로 양심은 바르다고 생각합니다.

 

악에 교육이 필요한가요, 필요하지 않은가요? 악하게 만드는 데는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가르쳐 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면 자연히 악한 사람이 됩니다.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하면 틀림없이 악한 사람이 됩니다. 선한 사람이 되려고 생각지도 못합니다. 틀림없이 악한 사람이 됩니다.

 

악한 사람이 되는 데에는 교육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교육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필요가 없습니다. 악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대번에 악해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교육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악한 사람이 되라고 교육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한 사람이 되려면 자동적으로 되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선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즉 선을 따라 행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선과 악이 가는 길은 서로 상반된 길이기 때문에 선을 행하기 위해 가는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그 길을 쉽게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악을 행하는 데는 교육도 필요 없고 제재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당장 뛰쳐나가도 세계에서 일등 가는 악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길가에 서서 사람이 올 때 칼로 찔러 버리면 그렇게 됩니다.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한다면 천하라도 다 베어 버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악한 자가 되는 데에는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그냥 그대로 두어도 얼마든지 악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악한 사람이 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선한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제재와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이것 자체가 뭐냐 하면 악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본심은 압니다. 본심에는 설명이 필요 없어요. 자동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건 위대한 것입니다. 본심에는 교육이 필요 없어요. 리더가 필요 없습니다. 자동으로 아는 것입니다, 자동적으로. 자석같이 N극과 S극이 자동적으로 수수작용을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참으로 주는 데에서 자동적으로 참으로 받는 힘이 결합되어 거기에서 우주적인 존재 분위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분위기를 자연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본연의 인간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내 마음의 중심입니다. 마음은 하늘 종적인 부모를 이어받아 태어났는데, 종적인 부모를 통해서 태어난 마음은 횡적인 부모를 통해서 태어난 몸과 하나돼야 합니다. 어디서? 90각도에서 하나되게 될 때 하나님이 누구인지, 뭐 지옥이 어디에 있는지, 천지천하가 다 보입니다. 교육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양심은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왜 그러냐? 그것은 수직이기 때문입니다. 수직이 머무를 수 있는 곳은 단 하나 한 점밖에 없고 위에도 한 점밖에 없어요. 그 다음엔 수평이 완전히 돼 있으면 수평이란 존재를 교육할 수 있어요? “너 이렇게 고쳐라. 저렇게 맞춰라” 할 수 있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나 수평을 교육할 수 있다” 하는 사람 손 들어 보세요. 그건 미친 녀석이지요. 그것은 영원히 영원히, 수평 하게 되면 벌써 영원한 불변의 틀로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수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양심이 몸을 위해서 얼마나 희생당했습니까? 일생 동안 유린당하는 양심의 사정을 여러분은 알아요? 밤이나 낮이나 나를 관리하기에 피곤한 것이 양심입니다. 그래도 지치지 않고 몸이 나쁜 행동을 하려 하면 막는 것입니다. “그만큼 했으면 이제 그만두어야 할 것 아니냐? 내 말 좀 들어야 될 것 아니냐?” 그렇게 하지요? 자기 앞에 제일 가까운 부모 대신, 하나님 대신, 스승 대신의 존재가 양심입니다.  마음 자체에게는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몸뚱이에게는 교육이 절대 필요합니다.  

 

우리의 양심세계와 몸을 두고 보면 어떻게 되어 있느냐? 양심은 교육을 받지 않아도 모든 선한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섯 나라가 있다면 다섯 나라의 주권자들이 서로 다르게 헌법을 만들어서 그것이 선한 것이라고 결론지어 그것에 따라서 치리한다고 하더라도, 양심적인 사람은 그 다섯 나라의 주권자들 가운데 어느 주권자가 더 선한 주권자인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느 나라가 1등인가를 측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다섯 나라 가운데 제일 좋은 것을 고르고 제일 나쁜 것을 고를 수 있습니다. 양심은 그런 것을 판단할 줄 알기 때문에 그 다섯 나라 가운데 제일 선한 편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교육의 목적이 무엇이겠어요? 양심을 교육하는 것이 목적이겠어요, 몸뚱이를 교육시키는 것이 목적이겠어요? 양심은 다섯 나라 가운데 어느 나라가 선한가 악한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언제든지 자기 주체성을 지니고 나를 관리하고 있는데, 몸뚱이는 모든 것이 엉망진창입니다. 그러니까 몸뚱이를 치리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양심은 이미 주체성을 지녀 영원히 자리잡고 있는데 무슨 교육이 필요해요? 벌써 좋은 사람을 대하면 마음이 압니다. 한 번 대하고, 두 번 대하고, 세 번만 대하면 아는 것입니다. “아, 그와 하나되고 싶다!” 합니다.

 

그래, 몸과 마음은 하나되는 것이 어때요? 몸과 마음이 싸우게 되면 양심세계는 싫어합니다. 양심이 그런 변하지 않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영계가 양심을 터전으로 해서 활동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타당합니다.

 

계시를 받는다든가 하는 경우와 같이 영계에 접하게 때는 어떻게 되어 있어야 하느냐? 그것이 수평이 되어 요동이 없어야만 영계가 자연히 연결되는 것입니다. 몸뚱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양심과 육신의 이중성을 갖고 있습니다. 자신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어떤 때는 양심과 육신이 반대하고 싫어하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되지 못하고 계속 부딪칩니다.

 

양심과 육신이 통일해서 하나되지 못하면 이상향으로 있는 길이 없습니다. 역사를 통해서 볼 때도 지금까지 이 전쟁을 멈추게 한 것은 없었습니다. 교육으로도 멈추게 할 수 없었습니다.

 

양심은 양친부모보다 낫습니다. 아무에게도 묻지 말라, 부모가 필요치 않다는 거예요. 부모의 생활방식이라든가 가르침이 필요 없습니다. 양심은 교육할 필요가 없습니다. 양심을 교육한다는 이야기 들어 봤어요? 양심은 교육을 초월해 있습니다. 국가법을 넘는 절대 권한이 있는 것입니다.

 

양심은 양친보다 낫다! 양심은 선생님보다 낫다! 선생님이 필요 없습니다. 양심에게는 교육이 필요 없다는 거예요. 그런 위대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양심은 하나님보다 낫다!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랑을 잇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에 연결된 경우에는 하나님이 언제나 일체가 되어 있습니다.

 

절대적인 양심은 절대적인 하나님 자리입니다. 하나님한테 물어 볼 필요 없습니다. 양심을 대해서 교육하는 사람 봤어요? 부모가 양심을 대해서 명령할 수 없습니다. 몸뚱이가 잘못했기 때문에 부모의 간섭을 받지, 양심적으로 생각하게 되면 부모보다 앞서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기 때문에 양심은 부모보다 앞서 있습니다. 양심은 스승을 앞서는 거예요. 스승한테 물어 볼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한테 물어 볼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은 양심에 대해 교육하지 않아요. 다 가르쳐 줬습니다. 양심을 절대시해야 합니다. 절대시하지 않고는 몸 마음을 하나 만들 길이 영원히 없습니다.

 

양심은 2의 하나님입니다. 양심을 교육하겠다는 사람 봤어요? 양심을 교육하겠다는 사람은 못 봤습니다. 어느 누구나 만나서 당신은 양심적이냐고 묻습니다. 외교무대에서도 양심적인 외교관이냐를 묻고, 정치하는데도 양심을 중심삼고 묻습니다. 경제인도 양심적이냐를 묻습니다.

 

“양심은 부모보다 낫다” 커다란 소리로 말하면서 쓰세요. 잊지 않도록 빨간 선을 세 번이라도 백 번이라도 그으세요. 잊으면 안 됩니다. 어머니와, 부모와 상담할 필요 없습니다. 자신은 백퍼센트 알고 있습니다. 양심은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양심에는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영원히. 알겠습니까?

 

우리 양심만이 (3) 주체사상을 달성할 대상의 자리에서 절대 일체가 되어야 하므로, 양심의 위치는 우리를 낳아 준 부모보다, 스승보다, 어떤 나라의 왕보다 나은 자리에 서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 자리가 될 수 없습니다. 양심은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 대신 절대 모셔야 합니다.

 

“양심적인 인사는 양심 만능권을 주장하고, 양심 해방권을 부여해 만세의 승자가 될지어다! 아멘!” 할 수 있는 만국만 되면, 양심을 하나님보다도, 자기 부모보다, 그 나라의 무엇보다 가치 있게 존중할 수 있는 시대가 오면, 양심 해방을 받은 사람들이 천하를 지배할 때가 옵니다.

 

그래서 요즘에 가르치는 것이 양심은 부모보다 앞서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시집 장가가서 자기가 어려움이 있으면 갈라질 수 있지만, 양심은 나와 더불어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 부모의 사랑 이상의 사랑을 가지고 천상세계로 환고향하는 길에 안내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양심은 스승보다 앞서 있습니다. 양심세계는 교육이 필요 없어요. 오늘날 세계에서 교육부 장관이 양심을 교육하자고 선포했다는 말을 들어 봤어요? 양심은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양심은 내 갈 길을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어떤 일을 하려 양심에 상충되게 때는 해서는 되는 것입니다. 그 길은 지옥 가는 길입니다. 양심은 스승보다 앞서 있습니다. 양심은 하나님보다 앞서 있습니다. ? 사랑하는 상대는 자기보다 높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양심은 부모보다 앞서 있습니다. 양심은 스승보다 앞서 있습니다. 양심은 주인보다 앞서 있다 이거예요. 부모나 스승과 주인은 갈라져 살 수 있습니다. 양심은 갈라질 수 없습니다. 영원히 갈라지질 않아요. 그 양심의 마음, 양심이 하라는 대로 하면 완전히 하나님의 직계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침과 오후가 되면 그림자가 생기지만 오정(午正)이 되면 그림자가 없어져요. 실체라는 것입니다. 그림자가 없으니 이 자리에 들어가면 하나가 됩니다. 본체와 이퀄이 되어야 그림자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양심은 스승보다 앞섭니다. 양심을 붙들고 교육하자는 교육부 장관이 있습니까? 없잖아요? 양심은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본성의 양심은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자연적으로 자신이 생애의 이상 교육의 방향을 제시하게끔 돼 있는데, 육신이 그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절연관계가 되어 있어 방해하고 있으므로 불가능하게 돼 버린 거예요. 양심은 스승보다 먼저입니다.

 

자신의 교육에 의해 그렇게 알게 되면, 선생님보다 먼저 양심에 물었을 때, 진리인가 아닌가 금방 압니다. 자신이 정착해야 될 영원한 세계의 주인을 맞이해야 할 그런 입장에 서든가, 그 이상의 입장에 설 수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주인권 왕권 이상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아무리 그 나라의 가르침이 훌륭해도 그 나라에 있고 싶지 않은 거예요.

 

희생과 봉사 그리고 공적인 것을 위한 교육

 

뜻을 위하다가 상처를 입은 것은 후일까지 자신에게 교육이 되고 후손에게도 훌륭한 교육이 됩니다.

 

여러분이 초등학교 선생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어린이들을 교육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항상 그들 마음대로 하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자기들 마음대로만 하려고 하는 어린이를 훈련 또는 교육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선생으로서, 그 어린이를 사랑하고, 어려워도 참고, 관찰하고, 그리고 그를 도우려고 해야 됩니다. 그것은 쉽지 않습니다.

 

만일 아이가 선생님이 형님, 누나, 부모보다도 자기를 더 사랑하는 것을 느낀다면 그 선생은 참으로 자격 있는 사람이요, 훌륭한 선생일 것입니다. 초등학교 어린이의 이러한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은 것이 우리가 생명들을 교육하려고 하는 데에도, 우리가 하고 있는 영원 불멸의 교육 훈련에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생명들을 데려와서 교육하고 훈련시키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야 할까요? 그 생명들에 대한 우리의 봉사, 희생과 헌신이 없이는 이 역사적인 과업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탁월한 종교지도자들은 선생님이 말씀하고 있는 이러한 봉사와 희생의 방법을 제외하고는 이 세계나 생명들을 지도할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타락한 우리 인간을 교육할 있는 길이 있다면 길은 어떤 길일 것이냐? 인간이 하나님과 상대할 수 있는 입장에 못 서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을 가까이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면 무엇이냐 생각할 때, 마음으로 찾아오는 길—당신이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다시 구원하고, 인간을 다시 사랑하고 싶은 생각을 가졌다면 그 하나님이 가르치는 도리가 무엇이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남을 위하여 희생하라는 그런 도리일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철칙이요, 멋진 교육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희생한다는 것은 멋진 교육입니다.

 

성경에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사랑이 없다고 했습니다. 성경 가운데 어디를 찾아보나 그와 같은 것을 표준하고 가르쳐 준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틀림없이 계신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미국을 위해서 희생하라!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라!” 하는 교육을 해왔습니다. 내가 미국에 와서 이렇게 고생하는 것입니다. 내게 있는 재산 전부 털어놓고 이 놀음을 합니다. 미국 때문에 한국 사람을 고생시키고, 일본 사람을 고생시키고, 구라파 사람까지 전부 고생시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고생 할래요? 그건 망해요.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을 더 고생시키려고 합니다. 구라파 사람보다도, 일본 사람보다도, 한국 사람보다도 더 고생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야 사랑 받고 전통이 생기는 것입니다.

 

몸뚱이가 하자는 것의 180도 반대의 길을 가라 하는 것이 종교의 주류 교육입니다. 그래서 “봉사해라. 희생해라. 교만하지 말라” 합니다. 아래로 내려가라는 것입니다. 머리 들지 말고 아래로 내려가라는 거예요. 그러니 사탄은 지옥밖에 갈 데가 없습니다.

 

여러분, 복 받기를 원합니까? 영생하기를 원합니까? 그러려면 공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식을 교육하는 데 내 아들딸로만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계인을 위한 제물적인 아들딸로서 사랑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식을 품에 안고 젖을 먹일 때는 지구성의 인류를 대표한 어머니의 입장에서 인류를 대표한 어린아이에게 젖을 준다는 마음으로 먹여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식에게만 예쁘다고 젖을 먹일 것이 아니라, 남의 자식도 내 자식 같다는 심정으로 대하는 어머니가 되어 보십시오.

 

그런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라나는 아기들은 반드시 위대한 사람이 것입니다. 당장에는 안 되더라도 1, 2대를 거쳐 나가는 동안 반드시 그 후손 가운데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인물이 탄생될 것입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사적인 것은 악에 속하는 것이요, 공적인 것은 선에 속합니다.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적인 역사는 사탄의 역사요, 망하는 역사입니다. 공적인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요, 선의 역사입니다.

 

여러분이 교육을 때도 그런 관념으로 해야 합니다. 눈으로 볼 때도 사적으로 보느냐, 공적으로 보느냐? 코로 냄새를 맡게 될 때에도 사적으로 맡느냐, 공적으로 맡느냐? 귀로 듣게 될 때에도 사적으로 듣느냐, 공적으로 듣느냐? 일할 때에도 사적으로 하느냐, 공적으로 하느냐? 걸을 때에도 사적으로 걷느냐, 공적으로 걷느냐? 이 기준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받고 있는 교육 중에 참된 교육이 뭐냐? 진짜 교육, 참된 교육은 남을 위해서 죽으라고 가르치는 교육입니다. 그 이상 최고의 교육이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 망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러면 흥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흥하는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간단합니다. 참되면 흥합니다. 왜 흥하느냐? 전부가 그 사람 편이 되어 주니까, 전부를 위해 주겠다고 하니까 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망하는 것은 망하느냐? 전부가 뜯어 가려고 하고 깎아 내리려고 하니까 망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주로 해서 설치게 되면 오래 못 갑니다. 반면에 남을 위주로 해서 나가게 될 때는 오래가게 되어 있습니다. 선악의 기원은 여기서부터 갈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이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나에게 아들을 주면 나는 이런 아들을 만들고 내가 뜻을 위해 다하지 못한 것을 소원성취하기 위해 대를 이어 아버지 위업을 성사시키겠습니다” 해야 합니다. 자녀들을 그렇게 교육하고 그렇게 길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이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여러분의 땀과 눈물과 피의 희생에 비례하는 축복이 여러분의 아들딸에게 있을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그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서 기뻐하는 생활보다도 공적인 일을 위해서 슬퍼하는 생활을, 자기를 위해서 좋은 생활을 하는 것보다도 공적인 일을 위해서 고통을 받는 것을 행복으로 아는 생활을 하게 되면 그 아들딸은 몇십 배, 몇백 배 복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레버런 문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가르치기를 “너는 애국자 중의 애국자가 되라” 했습니다. 이게 선언입니다. “너는 애국자 중의 애국자가 되라” 이게 통일교회 교육의 제1조입니다. 애국자 중의 애국자가 되라! 그 다음에는 뭐냐? “교회의 신자 중 어느 누구보다, 어떤 종교의 신자보다 제일 높은 자리에 서라!” 그렇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가문에서 훌륭한 어버이 교육의 교훈은 뭐냐? “너는 이 동네를 위하여 희생하고 동네를 위하여 본되게 살아야 돼, 아무리 어렵더라도” 이래야 합니다. 그렇게 훈시하는 부모는 선한 부모입니다.

 

교육이 있기 전에 사랑이 있습니다. 처음 창조물이 존재하기 전에 그 원칙적 기반이 사랑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본질이 그렇게 돼 있습니다. 물질도 그렇고, 물질을 규합해 인체가 된 사람도 물질의 그릇 속에 담겨 있는 사랑,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에 돌아가려고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본심이 그렇다는 겁니다.

 

교육이념을 어떻게 세우느냐? 미국만을 위하는 교육은 뒤떨어집니다. 국경을 넘어 세계의 모든 사람을 이끌어 갈 수 있는 교육을 해야 됩니다. “세계는 하나다” 하고, “공부하는 것도 전부 세계를 위해서 한다” 해야 됩니다. 어차피 세계는 하나 안 되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에는 하나가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교육하는 내용을 두고 종교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국경을 넘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사상적인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세계적입니다.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상적인 내용과 종교적인 내용을 겸한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앞으로 어떤 국가라 하더라도 세계를 위한 교육이념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세계 인류 앞에 설 수 없게 됩니다.

 

지도자의 책임과 자세

 

통일교회의 뜻을 따라가는 사람들 중에는 1등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꼴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낙오자도 있을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내에서도 차이가 벌어집니다. 그리고 실제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현상이 여러분의 가정이나 혹은 활동하는 터전에서도 벌어집니다. 그런데 문제되는 국가면 국가, 단체면 단체에서 잘 달리는 선수를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입니다. 즉 어떻게 교육하고 어떻게 훈련을 시켜 우수한 선수로 만드느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 사명이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선수들을 교육하고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여러분 자신들이 그만한 실력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지도를 받는 후배들이 여러분의 기록을 능가하도록 훈련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통일교회의 뜻을 중심삼은 마라톤 경기에서 국가를 대표하여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을 키워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길러낸 지도자는 그와 더불어 역사적으로 남아지게 됩니다.

 

앞으로 후계자를 보게 때는 냉정하게 비판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자기와 어떤 부분은 맞고 어떤 부분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전체의 책임을 완전히 상속해 줄 수 있는 적격자가 못 되면, 몇 사람을 세워서라도 이 전체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가르쳐 줄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갑이 가야 할 길, 을이 가야 할 길, 병이 가야 할 길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각자 해당되는 분야를 중심삼고 교육해야 됩니다. 교육을 해서 하나될 수 있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선생님은 1960년대에 전국을 순회하면서 핵심요원을 키웠습니다. ()에 세 사람만 있으면 됩니다. 많아도 필요 없습니다. 핵심요원으로 세 사람만 있으면 됩니다. 세 사람의 핵심요원 중 한 사람은 교육적인 분야, 한 사람은 교회적인 분야, 한 사람은 경제적인 분야를 책임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 분야를 세 사람이 하나씩 책임져 뜻과 더불어 죽을 수 있다면 틀림없이 전국을 움직일 수 있는 때가 옵니다. 그러한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기 책임자들이 정성의 기준에 퍼센트나 접근했느냐 하는 것을 감정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지식을 표준으로 하여 보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두고 봅니다. 어떤 사람은 일부러 고생 길로 내모는 것입니다. 인사조치할 때 그러한 사람은 엉뚱한 곳으로 보냅니다. “이 녀석, 두고 보자. 선생님의 특별명령이다” 해서 난데없는 곳에 배치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구, 내가 지금까지는 이렇게 했는데 좌천이구만!” 할 것입니다. 좌천? 그 좌천이라는 인식을 누구한테 교육받았어요? 선생님이 무슨 직책을 갖고 있습니까?

 

교회는 원리만 위주로 해서는 됩니다. 물론 원리를 중심삼고 사상적 기조를 세워 신앙생활의 기틀을 튼튼히 해야 되겠지만, 거기에 동반해서 대 사회운동, 그 중에서도 교육을 해야 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교육입니다. 교육을 잘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교육에서부터 부락이면 부락의 공공생활면을 중심삼고 교육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면에 영향을 미쳐야 교회를 중심삼고 전부 다 둘러싸여 엉켜 나가게 됩니다. 교인들에게 신앙만 교육해서 주일에만 집회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면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농사 개량 같은 것이 있습니다. 생활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직접 경제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우리가 지도하는 것입니다. 농사짓는 방법이라든가, 교육적인 면에서 영향을 주든가 아무튼 그들한테 이익을 주어야 합니다. 손해를 주면 따라오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물질적인 면이라든가 정신적인 면이라든가 일반 교육적인 면이라든가, 무엇이든지 교회가 플러스될 수 있는 길을 가지고 있다 하게 될 때, 언제나 플러스되는 내용이 보급되게 될 때 거기에 관계된 사람은 자동적으로 끌려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교역자가 되려면 종합적인 기초 교육을 받아 모든 면을 갖춘 사람이 아니면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결국 교역자는 뭐냐 하면 하나님의 대신자인데, 하나님이 일방적입니까? 하나님은 전세계를 수습해서 하나의 이상권으로 지도하는 총책임자이니만큼 교회 책임자도 교회만 위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행정 분야의 사람들, 지서면 지서의 사람들까지 와서 의논할 정도로 영향을 미칠 수 있게끔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우리 교회 기관이 정신적인 면을 지도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생활적인 면이라든가 교육적인 면에 플러스될 수 있는 여건을 어떻게 제시하느냐 하는 문제를 언제나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서 “교회가 없으면 안 되겠다” 하게 되면 자연히 교회도 그들이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체적인 활동을 여러분이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도 이제 말할 아는 사람, 외교를 잘 하는 사람, 돈을 마련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면 어떻게 되느냐? 전부 책임자가 됩니다. 이렇게 될 수 있게 훈련하고 교육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활동밖에 없습니다. 돈 없이 맨손 들고 가서 만나 돈을 긁어내려니 얼마나 심각해야 되겠어요? 그저 있는 아양을 다 하고, 말 다 하고, 머리를 다 써야 되고 그러니 매일같이 연구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종과 같은 입장에 있는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는 인간들을 내적으로 다시 교육해서 환경을 뛰쳐나가게 하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종의 종의 자리에 서서 그들을 지도하고 가르치는 책임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종교를 믿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겠다는 사람들은 먹고 잘살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제주도면 제주도에 살고 있는 도민을 중심삼고 “나는 제일 어려운 자리에서 이들을 교육해야 할 책임이 있다. 거지 굴에 가서 거지 괴수도 교육해야 되겠지만 여기 도지사도 교육해야 되겠다. 이 나라의 대통령도 교육해야 되겠다” 그럴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을 필요로 합니다.

 

무가치한 아들딸이 되어서는 돼요. 하나님 대신 인류를 대해서 밑에서부터 최고까지 틀렸으니 교육을 해야 합니다. 생애를 바쳐 모든 것을 가르치고 교육하겠다는 그 길을 가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못 되는 것입니다.

 

이제 책임자 여러분은 오늘 선생님 말씀을 듣고 “나는 새로운 존재로서 이 나라, 이 땅 위에 새로운 생활양식으로 전통을 세워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선두에 서야 합니다. 36가정, 72가정을 지금도 내가 데리고 교육하고 있어요. 지금도 교육합니다. 여기 뉴욕에 있을 때는 반드시 이스트가든으로 오라고 해서 교육하는 것입니다. 시간만 있으면 지금도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미국에 있을 때는 한국 책임자들 교육을 하니, 죽을 때까지 교육할 책임이 있습니다. 시작을 했으니 끝까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까지 가고 하늘까지 올바로 갈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야 할 책임을 알기 때문에…. 그것이 간단하지 않아요. 1년 가지고 안 됩니다.

 

줄기가 그러면 가지가 그래요. 큰 가지가 작은 가지로, 작은 가지는 세부 가지로….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 뿌리인데 이 뿌리가 가지로 갈 수 없고, 가지가 잎사귀로 갈 수 없잖아요? 그래서 각 통일교회 책임자를 보고 통일교회의 전통적 사상을 캐치할 수 있고 엿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가지가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의 방침이 그렇기 때문에 원칙에 일치되지 않는 지도자는 전부 교체해 것입니다. 그런 지도자는 지나가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지나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강원도 금강산에 들어가 교육 장소를 결정해서 다시 교육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자립하여 생활대책을 세우면서 하늘 백성을 길러야 합니다. 기르는 데는 전문 분야의 교육을 받아 자기 생계를 도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두 배의 노력을 해야 됩니다. 가치로 볼 때에 어느 것이 중요하냐 하면 두 배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인한테 신세도 안 지고 교인들이 살 수 있는 기반, 앞으로 협조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앞으로 지도자는 경제문제만을 다루는 지도자가 중요한 사람이 아닙니다. 정치문제나 사회문제나 과학문제가 문제가 아닙니다. 앞으로 통일사상을 완전히 무장해서 하나님 사람으로서 새로운 사상을 중심삼고 가르쳐 주고 교육할 수 있는 지도자가 중심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교육, 이렇게 달라져야 한다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교육문제입니다. 교육은 비디오를 통해서 합니다. 앞으로 학교가 없어집니다. 유명한 선생의 강의를 세 시간짜리, 일곱 시간짜리, 열 시간짜리 비디오로 만들어서 교육하는 것입니다. 대학교도 그래요. 비디오를 갖고 다니면서 언제든지 공부하게 되면 4년씩 다닐 것도 없습니다. 1년에도 다 해치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시험에 패스하면 그 분야에서 어디든지 초국가적으로 취직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제일 문제되는 뭐냐? 교육문제, 학교문제입니다. 그러나 학교도 문제없습니다. 최후에는 언어가 문제되지만 언어 교육은 비디오로 할 때가 옵니다. 그렇게 되면 학교는 없어집니다.  연차적으로 국가가 지정한 장소에 가서 시험을 치러서 채점을 받아 합격만 하면 학교 안 가고 졸업할 수 있고, 학사 박사도 다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고등학교나 대학의 교육은 의무제도가 됩니다. 의무제도라기보다 대학도 없어지게 됩니다. 중·고등학교나 대학의 경계선도 없어져요. 비디오를 가지고 다니면서 공부해서 국가시험만 치르게 되면 초등학교도 졸업할 수 있고, 중·고등학교도 졸업할 수 있고, 대학교도 졸업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재적인 사람은 5년 동안에 대학 아니라 대학원까지 나올 수 있습니다. 언어가 통일되면 그런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앞으로 학교가 필요 없게 됩니다.  내가 지금 그것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비디오 교육시대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모든 학자들을 내가 다 쥐고 있기 때문에 각 분야에 해당하는 학자들을 초청해서 비디오 테이프를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워싱턴 텔레비전 센터를 중심삼고 하는 것입니다. 이건 뭐냐?  지금까지는 문자통신 사회였지만, 이제부터는 영상·영화통신 사회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그걸 내가 처음으로 개발해서 이미 280개 방송국을 통해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이 뭐냐? 지금 미국이 망해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들을 동원해서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미국에서는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하루 24시간 방송합니다. 그러나 시사에 관해서는 한 시간 반 이상이 안 돼요. 그 다음에 교육방송이라고 해야 3시간 이상이 안 됩니다. 그 외에는 다 음악하고 영화입니다. 이것이 망국의 방향입니다.

 

시사 내용을 중심삼은 영화를 일주일에 편씩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세계의 정치가로부터 대학졸업 수준 이상의 모든 사람들은 시사적인 지식을 기준으로 출세할 수 있는 길이 가려지기 때문에 이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중심삼고 시리즈로 영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교육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매주 영화 한 편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건 세계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교회 신축 문제를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해야 됩니다. 교회 신축 문제가 뭐냐 하면, 33백 개 ()를 대신한 17백 개 교회를 만들어서 문화교육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나라가 못 합니다. 2천 편의 건전한 영화를 선정해서 그것을 한국어로 번역해서 교육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지리학에서부터 동물학에 이르기까지 문화활동을 통해서 가르쳐 주려고 합니다. 땅에서 사는 동물을 비롯하여 모든 생물세계에 대한 학술적인 면에서 문화수준을 높여야 민족이 아시아를 지도하고, 세계 문화권에 동참하더라도 동역자가 되어 협조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민족이…. 여러분들이 이것을 받아 소개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됩니다.  

 

이렇게 해서 한국의 모든 노래, 민요 가락으로 다 시정해 버려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손대려고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가 그러한 교육장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교육이 문제입니다. 앞으로 비디오 교육시대가 와요. 선생님이 벌써 그런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워싱턴 텔레비전 센터에서 일주일에 하나씩 영화를 만들어 냅니다. 시사영화를 만듭니다. 유명한 학자를 내가 다 데리고 있습니다. 문 총재가 “동원하라” 하면 어느 학자든 다 동원됩니다.

 

지금 워싱턴 타임스라든가 인사이트, 월드 앤드 아이 등에서 세계의 난다긴다하는 사람의 원고 청탁도 전화 통화로 “문 총재가 하는 회사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런 원고를 원하는데…” 하면 ‘노(no)!’ 하는 박사들이 없을 만큼 되었어요. 기술 분야에 세계 최첨단 과학자와 학자들이 수두룩합니다.

 

대학교에 뭐하러 가요? 선생의 강의를 들으면서 학과 공부를 언제 기록해서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유명한 교수들이 재미있는 일화 같은 것을 삽입하기도 하고 조크도 하면서 멋지게 강의하는 것을 비디오테이프로 담는 것입니다. 그것을 앉아서 하나 둘 취미대로 들으면 그 학과를 통과할 수 있는 실력이 됩니다.

 

언어만 통일하면 세계 어디든 대학에 필요가 없습니다. 테이프를 배낭에 넣어 들고 다니면서 듣기만 해도 국가를 통해서 시험에 패스하면 학점도 따고 졸업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돈이 안 들어가요. 교육하는 사람들 중에 사기꾼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준비들을 다 해 놓았습니다. 이젠 도서관도 다 없어집니다. 미국이 이젠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인구 도시집중 현상이 사라집니다. 지금까지는 아이들 교육문제라든가 생활이 편리한 무엇이 있기 때문에 도시에 집중하지, 앞으로 텔레비전이나 기타 현대 문명권의 모든 이기를 통해 앉아서 취미를 즐기고, 오케스트라 연주를 감상할 수 있고, 춤추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텔레비전 하나 가지고 전세계의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 비밀, 연예 등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시대에 들어왔습니다. 어디에다 집 짓고 살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선생님이 워싱턴에서 노스탤지아를 중심삼아 세계의 유명한 학자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학자들이 가르치는 모든 커리큘럼(교육과정)을 짜 가지고 세계적으로 텔레커뮤니케이션(전신·전화·텔레비전 등에 의한 원격통신)을 통해 교육해서 학점을 주는 운동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20시간 강의면 20시간 강의 비디오 테이프를 보게 해서 그 교수가 1년에 세 번이나 네 번 공부한 것에 대해 텔레비전을 통해서 직접 문답하면서 교육하는 거예요. 그러니 학교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럴 때가 왔습니다. 전문적인 비디오 강의를 한 그 학자가 나와서 문답으로 지도하는 것입니다. 대학교와 딱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런 일을 지금 미국에서 하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하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가지고 어느 산골짜기에 가서도 있습니다. 앞으로 학교가 없어집니다. 전부 다 비디오를 가지고 교육하는 거예요. 벌써 그런 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학교도 없어질 정도예요. 국제 관리 체제에서 초등학교 과정을 비디오를 통해 교육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6년씩 할 필요 없어요. 머리 좋은 사람은 2년 이내에 졸업할 수 있습니다.

 

대학까지도 비디오를 중심삼고 공부해서 국가가 공인하는 시험만 패스하면 같은 레벨에서 어디 가든지 공인됩니다. 언어만 통하면 미국의 교육부 차관이 한국의 교육부 차관과 같이 됩니다. 그렇게 교육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정착시대가 지나가는 거예요. 새와 같이, 경치를 따라서, 자기가 원하는 곳을 따라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학교가 다 없어져요. 행정부처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지금 학제를 철폐하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어요. 학교가 있기 때문에, 교육문제가 있기 때문에 도시집중 현상이 벌어집니다. 이걸 비디오를 중심삼아 모든 학교를 만들어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공부하게 된다면 16, 20년 공부할 것을 머리 좋으면 5년 동안에 졸업할 수 있습니다. 그런 체제를 지금 만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도시집중 체제로 인하여 환경적 여건이 망해 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공해문제! 불을 때서 음식을 해먹으면 안 돼요. 분산시켜야 합니다. 산업지대의 모든 것을 해체해야 돼요. 지금 그런 때가 왔습니다.

 

앞으로는 학교가 없어집니다. 무엇으로 가르치느냐 하면, 언론매체 중심삼고, 비디오 중심삼고 가르칠 때가 왔어요. 지금 우리 브리지포트 대학에서 전세계 대학교과정을 교육하려고 합니다. 이래서 언어만 통일되면 순식간에 합니다.

 

선생님의 배후에는 수많은 학자들이  있기 때문에 대학 교수 중에 유명한 교수들을 중심삼고 사람들이 강의할 있는 내용을 비디오로 전부 잡아내는 거예요. 한 시간 반만 해도 그 사상을 집어넣을 수 있고, 열 시간 강의, 수 시간 강의할 내용을 전부 다 비디오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비디오를 그 전문 분야의 세 사람 것만 딱 총괄해서 집어넣게 되면 그 분야의 모든 지식을 파악하고도 남습니다.

 

전세계 목장에 텔레비전이 있고 VTR(녹화재생기)만 있으면 미국 방송을 틀고 미국에서 교육하는 그 교재를 가지고 공부합니다.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이라든가 2주일에 한 번씩 모이게 해서 공부한 것을 총 문답해 주고 지도할 수 있는 체제가 되니, 그들이 모일 수 있는 차가 필요한 때 앰뷸런스(구급차)를 중심삼고 학교를 안내할 수 있는 그런 일까지 시킵니다. 이중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의 인구에 비례해서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만들고 중·고등학교를 만들어서 대학으로 연결할 수 있는 교육체제를 만듭니다. 초등학교 4학년에서부터 농사짓는 방법, 나무 심는 방법, 광야를 다룰 수 있는 방법, 양식하는 방법을 하나 둘 중심삼고 교육합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는 거기의 전문적인 요원이 되는 것입니다. 대학교까지 가면 세계적인 그 지역 대학의 스승이 되고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열두 , 열세 살이니만큼 4학년에서부터 할 수 있습니다. 여덟 살, 아홉 살부터는 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고등학생들이 목장 지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목장을 개발하고 앞으로 경쟁하는 모든 걸 가르쳐 줍니다. 고등학교 졸업해서 대학교 졸업하는 16년간에, 박사 코스까지 해서 20년간 목장에서 이런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일단 우리 체제에 들어온다면 자기 집에 먹을 것이 필요 없어요. 다 자급자족할 수 있습니다.

 

통신교육을 해야 합니다. 어느 누구든 통신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 다 됐으니까 중·고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통신교육을 합니다. 인터넷을 중심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세계 교육을 하라고 인터넷 시대가 왔습니다. 옛날 50년 전에 이런 꿈 같은 얘기를 할 때 다 미친 사람 취급을 했어요. 앉아서 세계를 교육한다고 하니까 미쳤다고 한 것입니다. 지금 앉아서 세계를 다 통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선생님이 죽기 전에 그런 환경, 자유천지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누구보다 행복한 자리에서 한계선을 다 갈 수 있는 모든 걸 보고 죽어야 돼요.

 

앞으로 학교가 필요 없는 시대가 옵니다. 백 과목의 과정을 완전히 준비해서 세계적으로 학교 폐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대혼란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습니다. 만민을 평등하게 교육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실천해 나가는 선생님을 반대하는 국가라든가 개인은 이 땅에 남아 있지 못하고 자동적으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없다고 생각해요? 가능성이 절대적으로 있습니다.

 

여기에는 젊은 사람이 많습니다. 사십이 넘지 않는 사람들은 희망이 벅찬데, 앞날에 정착해서 맨션을 가지고 살고 싶어요, 밴을 중심삼고 살고 싶고 놀고 싶고 자고 싶은 그런 환경적인 여건을 갖추어 세계를 여행하면서 살고 싶어요? 어느 것을 원하느냐 하면, 이상적인 타입의 청년 남녀들은 여행하면서 살겠다고 하는 대답이 90퍼센트더라 이거예요.

 

대신 공부가 문제인데, 그것은 원거리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서 하는 것입니다. 중·고등학교는 테이프 60개 정도만 지고 다니면서 그것을 백 번 정도 들으면 어디에서든지 시험을 쳐서 패스할 수 있습니다. 그런 체제를 만들어 놓으면 20년씩 공부해서 박사가 되는 그런 것이 필요 없습니다. 10년 이내에 박사를 만들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입니다. 학교가 필요 없어요. 다 폐지해야 됩니다.

 

세계적으로 간판을 붙여서 며칟날 원거리 테스트를 합니다. 초등학교 몇 학년, 중·고등학교 몇 학년, 대학교 몇 학년 시험이라고 시험 날짜를 발표해서 시험을 치게 합니다. 그래서 신문을 보면 어디에 합격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어디서든지 학교 없이 졸업해서 학위를 딸 수 있습니다. 그런 환경이 되면 학교를 다 헐어 버려야 합니다. 학교에 가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중에서 가지, 엑스 표시나 무슨 표시를 해서 그것을 모르게 될 때는 보고 시험을 쳤다고 판정하는 것입니다. 커닝했다는 것도 앉아서 다 알 수 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시험을 치는데 다 알고 써야 할 텐데 모르면서 쓸 경우가 있으니까 암호 표시를 해 무엇이냐고 해서 그것을 맞추지 못할 때는 커닝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 완전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학교를 헐어 버려라 이거예요. 아이비리그(미국 동북부의 여러 명문 대학) 10개 대학이니 무엇이니 그거 모릅니다. 륙색(배낭)에 유명한 교수의 강의와 유명한 책을 넣고 다니면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져요! 그런 때가 옵니다. 그렇게 만들려고 선생님이 지금 계획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