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의 교육철학
1. 교육이란 무엇인가
차례
○교육의 참뜻·14
○참된 스승, 참된 교육·19
○교육의 목표와 잣대·25
교육의 참뜻
여러분은 아들딸을 어떻게 길러야 되느냐?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짓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들딸을 곱고 훌륭하게 하나님과 같이 길러야 됩니다. 이것이 교육의 표준입니다.
그럼 하나님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같이 얼굴이 크고 생명력이 있는 능력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같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그거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완전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과 같은 사랑을 할 줄 알면 됩니다. 하나님을 닮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을 닮으려면 하나님과 같이 사랑했다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뭐냐? 그것을 분석하면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이에요. 그 이외에는 없습니다. 그 세 가지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요, 부부끼리 하나되는 것이요, 자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3단계, 이 3대가 하나돼야 합니다.
학교에 가서 공부하더라도 나를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자연의 묘미를 내가 깊이 알아 하나님의 심정세계를 파악하기 위해서 공부하자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멋집니까! 하나님을 앎으로써 더 깊은 사랑을 하고, 더 높은 사랑을 하게 됩니다. 선생님이 내게 엄격한 교육을 하더라도 그것은 나로 하여금 하늘의 사랑과 자연의 사랑을 흡수하게 하고, 나를 중심인물로 만들기 위해서 그런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사랑의 주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내가 사회에 나가 일하는 것도, 그 모진 바람이 불고 해도 사랑을 펴기 위해서, 사랑의 진가를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실력은 잠깐 동안에 갖추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일을 거침으로 말미암아, 실제로 부대껴 봄으로 말미암아 실력을 연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목적이 뭐냐 하면, 사람들이 실천한 모든 경험을 그냥 그대로 인수하기 위해서입니다. 배움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그냥 그대로 인수하기 위한 것이 학교 교육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의 좋은 실적을 인수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전부 해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결국 알고 실천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은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나 배움의 길, 혹은 교육의 길을 따라가는데 그 목적이 무엇이냐? 보다 선한 세계로 전진하기 위해서입니다. 보다 가치적인 내용을 지니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보다 높은 차원의 전진을 다짐하는 것은 보다 가치적인 중심과 일치하기 위한 것입니다. 간접적이나마 그러한 목적 추구의 길을 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사인하여 추천하는 것이 아니고는 나라와 통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부모가 “우리 아들딸 좋소!” 하고 추천하더라도 안 통합니다. 그것은 왜 그래야 되느냐 하면, 사회의 사랑의 공약의 법도를 통하지 않고는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회에 나가는 데 있어 첫 관문이 학교라는 것입니다.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사랑받는 것이 이 나라와 이 세계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을 구원하는 데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인간 조상이 무지한 가운데서 타락했습니다. 원리결과주관권에서 직접주관권까지 가야 할 단계에 있던 아담 해와는 무지했습니다. 소년시대에 있었어요. 어릴 적부터 자라 나가는 가운데서 하나님 섭리의 전반적인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이 뭐냐? 아는 자리에서 타락하지 않았어요. 모르는 자리에서 타락했습니다. 우리 조상이 가야 할 본연의 길을 알지 못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타락한 이후의 인간들은 우리 조상이 알지 못하였던 그 기준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무지한 인간을 교육해 나가야 합니다.
교육 강화는 언제든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지금까지 반대를 받으면서도, 아무리 무슨 어려움이 있더라도 교육을 했습니다. 돈이 있다 하면 그것을 딴 데 쓰려고 하지 않고 교육하는 데 쓰려고 했습니다. 이번에도 승공연합 활동을 중심삼아서 대중을 교육하는 것입니다. 사상을 투입시켜서 교육하는 거지요. 강화하는 것입니다. 강화하는 것은 현재보다도 한 차원 높은 데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거쳐가는 데는 반드시 손해를 끼치지 않아야 됩니다. 내가 왔다 갔던, 내가 어디 어디 거쳐가는 데는 지금 현재보다 일보라도 전진은 있을 수 있지만 후퇴는 있을 수 없습니다. 후퇴했다 하면 교육 강화라는 그런 논리가 성립 안 됩니다.
일상 사회생활에서나 대인관계의 활동에서나 혹은 교섭하는 모든 분야에서 그 사람들을 격려해 주고 그 사람들에게 힘을 가해 주어 매일 매일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영향을 주어서 좋은 결의와 더불어 내일의 희망의 결과를 좋게 할 수 있는 그런 동기를 제시하는 거기에서 교육이 강화됩니다.
책을 가지고 단에서 가르치는 것만이 교육이 아니라 말 한마디 하는 것, 행동 하나가 다 교육입니다. 여자들 옷차림도 다 그렇습니다. 통일교회는 여자가 옷 입는 것도 교육입니다. 그건 잘 입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잘 입지 않았지만 옷차림을 보게 되면 자기들의 몸과 마음에 반영이 되어서, 몸뚱이는 반드시 마음의 반영체이니만큼 옷차림은 그 사람의 인격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에서 우리 일상생활의 전부가 교육하는 생활권을 이룸으로 말미암아 그 생활권 자체가 모든 사람 앞에 자극적인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교육 강화의 실효성을 우리 생활을 통해서 연결시켜 나가면 거기서부터 사회의 발전이 이루어져 갑니다. 세계의 새로운 희망이 그 자리에서부터 벌어집니다.
여러분이 생각해야 할 것은, 앞으로는 돈도 문제가 아니고 권력도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문제입니다. 사람을 어떻게 교육하느냐, 사람을 누가 잘 기르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에 따라 그 국가를 살릴 수 있는 단체가 될 수 있고, 국민이 될 수 있습니다.
원래 교육은 어려운 과학이나 전부를 가르쳐 주는 게 아닙니다. 그것도 가르쳐 주어야지요. 그렇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사람을 만들어 줘야 됩니다. “네 어미 아비가 이랬으니 너도 어미 아비 따라 이렇게 해라” 해야 됩니다. 그런데 어미 아비가 자식 대해서 가르치는데 “가서 도둑질해 오너라” 하는 게 아닙니다. “네가 남을 위해서, 하늘땅을 위해서, 수많은 인류를 위해서 이렇게…”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건 천도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학교는 유아시대에서부터 자라는 동안, 성년이 되어서 사회에 진출할 때까지 교육을 하는 거예요. 대학은 학사·석사·박사 코스, 사회에 진출할 때까지 교육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사회에 나간 사람들을 교육하는 건 언론기관입니다. 이게 파탄시키고 있습니다. 언론기관이 세상에서 지금 자기들을 중심삼아 돈 벌기 위해서 별의별 짓을 다 하는 것입니다. 세계의 사회적인 도의의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섰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되는 거예요.
참된 스승, 참된 교육
하나님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데는 아기도 필요하고, 어른도 필요하고, 아들도 딸도 다 필요합니다. 하나의 종족을 중심삼고 다 필요합니다. 그 어떠한 사람이라도, 즉 감옥에 있는 죄인도 필요한 것이고, 죽어가는 사람도 그 세계에서는 다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인류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나서 나를 사랑하자” 이것이 하늘 가는 길입니다. 인류를 사랑하고 나서 자기 가정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앞으로 여러분이 교육받을 전통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죽는 교육을 받아 왔기 때문에 죽는 데는 도통한 사람들입니다. 죽는 교육, 잘 죽는 법을 가르쳐 주는 교육이 도의 정수 교육입니다.
선지선열들이나 효자효녀들에게 참아버지와 참아들딸을 알고 있느냐고 물어 보면 모른다고 말할 것입니다. 세계 30억 인류 어느 누구를 붙들고 물어 보아도 모릅니다. 이것을 교육시킨다면 교육 중에서 최고의 교육이 될 것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르치면 하나님도 이 교육에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인연을 갖게 할 수 있는 교육은 단 하나, 이 길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와 참자식의 인연을 가르쳐 주는 교육자는 천상천하에 그 어느 누구보다도 위대한 스승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스승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역사적인 흠모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언제든지 인류가 가는 길 앞에 반드시 안내자가 되는 것입니다.
선은 순식간에 되는 법이 없습니다. 선한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과거로부터 이어받아 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이 필요합니다. 학교에 가서 배워야 합니다. 뭘 배우느냐? 자고로 역사과정에서 선의 길을 닦기 위하여 희생한 사람들은 잘살고 간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희생하고 간 사람들의 역사적 사상을 이어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흑인 할머니를 자기 할머니같이 사랑하라” 이 교육이 이 인간세계에서 최고의 교육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하나님도 그 이상 가르쳐 줄 수 없습니다. 어떤 성인이 와도 그 이상 가르쳐 줄 수 없다 하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 아무리 성인이라도 그 이상 가르쳐 줄 도리가 없습니다.
올바른 지도자는 “죽을 때에는 사랑을 위해 죽어라” 합니다. 교육 중에 최대의 교육이 뭐냐? “죽겠으면 사랑을 위해 죽어라” 하는 게 제일 큰 교육이라는 걸 알아야 돼요. 그것은 하버드 대학에 가서 학위를 열 개 타는 것보다도 더 위대한 교육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뭘 하자는 것이냐? “최고의 사랑을 위해서 죽자. 하나님과 인류와 세계를 위해 죽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작용도 사랑을 위해서 시작됐고, 이런 방향도 사랑을 위해서 시작됐고, 이런 목적도 사랑을 위해 시작됐다. 남자 여자도 사랑을 위해서 시작됐고, 어머니 아버지도 사랑을 위해서 시작됐고, 아들딸도 사랑을 위해서 시작됐고, 우주의 모든 것도 사랑의 선물을 위해서 시작됐다” 하는 것을 가르칠 때 이 이상의 교육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이상의 교육이 없어요! 이렇게 살고 간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 앞에 가기에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의 생명력이 그대로 통할 수 있는 가정을 사랑하는 것이 효자의 길이요, 나라의 생명력을 중심삼고 사랑하는 것이 충신의 길이요, 세계의 생명력과 사랑을 연결해서 가는 길이 성인의 길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런 방향을 통해서 인륜도덕을 교육해 왔다는 개념은 확실합니다. 그것이 옳았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세계를 사랑하는 것이 성인의 도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인륜도덕 교육의 표준이 되어 왔습니다. 그것이 그르지 않고 옳았다고 하는 것을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학교문제가 시급한 사회문제로 미국이나 일본이나 전세계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스승은 부모 대신 사랑으로 그 제자들을 교육해야 됩니다. 영원한 사랑을 가지고 교육해야 됩니다. 그 학급에서 만날 그때의 인연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르쳐 준 제자에 대해서 일생 동안 잊을 수 없어야 합니다. 이럴 수 있는 사랑의 인연을 맺기에 노력해야 됩니다. 그러니 자기의 모든 지식을 사랑과 더불어 연결시키는 스승이 참된 스승입니다. 무슨 생활방편으로 월급을 받기 위해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못 이겨서 안 가르쳐 줄 수 없는, 자기가 생활에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가르쳐야 되겠다는 그런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밤이나 낮이나 찾아가 자기 있는 지식을 사랑으로써 영원히 전수해 주고, 또 그걸 받고 싶은 그런 사제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스승이요, 참된 제자입니다.
교수들의 단호한 결심과 명확한 가치관에 의한 후진교육이야말로 이 시대의 요청일 뿐 아니라 가르치는 자의 기본자세이기도 합니다. 이 점에서는 종교지도자와 교수들이 공통점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지식을 전달하고 또 연구결과를 교육하는 것만이 아니고 인생을 책임 있게 가르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선생 하면, 그 선생이라는 것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인간적인 면, 인격적인 면에서 모든 것이 본이 될 수 있는 표제가 돼야 합니다. 중심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 선생들 많이 왔지요? 어머니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주인 된 마음을 가지고 내 집을 지키듯 학교를 지키고, 학생들을 내 아들딸같이 교육해 봤느냐?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가짜입니다. 형제끼리도 같은 도리입니다. 그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상과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 이렇게 했으니 자식도 부모를 진짜 사랑한다면 그렇게 해야 됩니다. 마찬가지의 이론입니다. 참다운 형님이 되려면 동생을 위해 자기 이상 투입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으로 화합된 이상적 터전과 가치관의 기본이 이 우주에 설정된다면 모략 중상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부정부패라는 것은 완전히 해소됩니다. 그렇게 되면 오늘날 마을 마을에서의 싸움과 역사과정에서의 투쟁논리는 적응이 안 되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이 사회나 국가 전체 앞에 필요한 요건이 뭐냐?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뭐냐? 부모가 필요합니다. 또 하나는 뭐냐? 선생이 필요하지요.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 다음은 뭐냐? 주인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낳아서 길러 주고 세워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승은 세 가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마음, 그 다음에는 자기 후계자가 될 수 있는, 자기 가문을 맡겨 줄 수 있는 사람을 기른다고 하는 마음, 자기 나라를 맡겨 줄 수 있는 사람을 기른다고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집안이라든가 나라라든가 어디든지 잘 되는 것입니다. 천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를 봐도 그렇잖아요? 나라의 대통령이 부모의 자리이고, 학교의 교육자는 스승의 자리이고, 그 다음 회사 같은 데나 행정부처가 무엇입니까? 주종관계입니다. 회사 같은 데는 주인이 있잖아요? 망해 가고 있는 이 혼란한 세상에 이 세 가지 가운데 한 가지만 나오더라도 살 수 있습니다. 참된 주인을 만나게 되면 참된 스승은 자연히 찾게 되고, 참된 부모 또한 자연히 찾게 됩니다. 한 가지만 만나면 돼요. 참된 스승만 있으면 참된 부모도 거기에 있고, 참된 주인도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그런 분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스승은 참된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내 대신자로서 어머니 대신 교육한다는 그런 자리에 선 스승입니다. 그리고 참된 부모는 낳아 놓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길러 주어야 합니다. 교육해서 자기 일가의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주인을 만들어야 해요. 가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참부모요, 참스승이요, 참왕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그것을 하나님이 할 수 없으니 하나님 대신, 부모 대신 참교육을 하라는 것입니다. 부모 대신입니다. 부모 대신 사랑해야 해요. 학비를 못 내는 학생이 있으면 자기들이 지원해야 됩니다. 모금운동을 해서라도 대주는 그런 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에 학교에서 미치지 못하면 반을 중심삼고 부모와 선생들이 합해서 그들을 서로가 교육해 나가겠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자기 가정 제일주의는 망하는 거예요. 영계의 자유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교육의 목표와 잣대
과거의 역사가 지금 우리의 역사보다 찬란했었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국사를 중심삼고 볼 때, 우리 대한민국 역사는 이래서 망했고, 미국이면 미국의 선조들은 이래서 흥했다 하는 것은 앞으로 역사를 교육하는 하나의 표준으로 세울 수가 있습니다. 시대를 수습할 수 있는 하나의 표준으로 세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럴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우리가 생활하는 데 자기 개체의 목적을 중심삼고 그것을 위해서 사는 것보다도 전체의 목적을 위해서 살라는 것이 지금까지 교육이나 도덕이 지향해 나오는 표준입니다. 따라서 개체를 위하는 것보다도 전체를 위하여야 할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사람은 반드시 자기를 위하는 것보다도 공적인 것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만약 부모가 자식에게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를 위해 애쓰고, 너를 위해 수고하며 땀을 흘리는 것은 나를 생각하지 말고 이 나라를 더 사랑하라는 뜻에서이다” 하는 애국지사의 심정을 가지고 교육하면, 그런 부모 밑에서 사랑의 교육을 받는 자식은 부모가 원하는 애국지사가 되기 위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그는 부모님의 사랑을 회상할 때마다 삼천만 민족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민족을 위하는 입장에서 공부를 할 것이며, 자기 민족이 비참함을 당할 때는 자기 부모 이상으로 비참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입장에 선다고 해서 애국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서 이루어 놓은 터전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국민이 천년 만년 흠모할 수 있는 요인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다 지나갑니다. 이러한 모든 문제를 생각할 때 심각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세계적인 가정이 되어 있어요? 만일 그런 가정이 되었다면 동네방네 소문이 나서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사노?” 하고 물어 보고 싶을 것입니다. 본받고 싶어하고 교육받고 싶어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가 챔피언의 가정이 되어 세계 사람들이 옳다고 인정할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한 집안에서 형제가 서로 의견이 달라서 싸운다고 할 때 부모는 어느 편을 드느냐? 주먹질을 먼저 하고 자기 욕심을 위해 싸우는 자식 편을 드는 부모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역사과정에서 교육과 인륜도덕의 표준은 ‘선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고차적인 것을 위해 희생하고 싶고 나라에 충성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충신은 대번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정에서부터, 개인의 심성으로부터 나옵니다. 다시 말하면 나 자체의 인격 심성과 그 가정의 교육을 중심한 가정생활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회활동을 거쳐 그 국가의 국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반을 바탕으로 하여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자리에 서야지, 그런 기반이 없으면 간신 모리배밖에 될 수 없습니다.
역사상에 나타난 영웅이나 위인은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개인의 욕망을 가지고 세계를 제패했다면, 개인적인 소원을 가지고 출발하여 고생의 과정을 거쳤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입장에 서서 고생하지 않은 그러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는 역사적으로 비판을 받습니다. 그 길은 사면팔방으로 막히게 됩니다. 그것은 도리어 악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을 경계하는 교육의 교재가 됩니다. 그러한 일이 있으면 있을수록 악을 방비하는 하나의 조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에 입각한 고생은 그것이 만민의 양심이 인정하는 입장에 섰을 경우에는 그것을 하늘 목표의 계율(戒律)을 표준으로 해서, 혹은 사회적인 협력을 바탕으로 해서 역사적인 중심으로, 또는 세계적 사상의 중심으로 세우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 양심의 작용으로 재어 볼 때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볼 때,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통해서 발전의 도리를 더해 온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만한 발전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금후의 문제입니다.
애국자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선조로부터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부모로부터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는 교훈을 뼛골 깊이 사무치게 받은 인연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서 생애의 지침을 가려서 목적을 정해야 합니다. 자기가 스스로 동기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애국자라도 자기 스스로가 동기가 되어서 애국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자기 선조로부터 교육을 받든가 혹은 양심의 깊은 곳에서 어떠한 충격적인 감동을 받은 것이 동기가 되어서, 생애노정 전체가 그 동기로 말미암은 결과를 찾아 나가게 될 때 애국자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악한 부모라 할지라도 자식들에게 “내가 살인강도였으니까 너희들도 살인강도가 되어라” 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자기는 악하더라도 자식에게 교육할 때는 절대 나쁜 사람이 되지 말라고 합니다. 자식 대해 “너는 나쁜 사람이 되지 말아라” 하는 것은 부모 된 자신은 나빴다는 말입니다. “너는 잘 되어라” 하는 것은 나는 못 되었다는 말인 것입니다.
자식을 위해서는 자기를 잊고 완전히 투입하는 것이 선이요, 그래야만 남아진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이 만고의 교육 원칙입니다. 이것을 사회화하고 세계화하면 됩니다. 그렇지 않아요? 부모 나쁘다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얼마 전에 어떤 부모가 자기 아들을 고아원에 보내 놓고 세계 유람에 나섰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는데, 그렇게 하기 때문에 그 자식들이 나빠지는 것이지, 어디 가든지 부모가 자식과 함께 다니는데 자식이 나쁘게 되는 것 보았어요?
세상이 그렇습니다. 잘한 것도 자꾸만 잘했다고 하면 싫어하고, 못한 것을 못했다고 하면 더 싫어합니다. 못했지만 잘했다고 하면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수습 방법이 다릅니다. 못한 것도 잘했다고 추켜세우면서 달래야 합니다. 철이 없는 어린애들은 추켜세워야 좋아합니다. 아이들을 보게 되면 전부 자기 중심삼고 생각합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자기가 가지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은 어떤 때냐 하면 몸과 마음이 싸우는 사상전 시대입니다. 마음을 보라는 것입니다. 누구의 생각이 좋으냐, 그것 아니에요? 마음 싸움인 것입니다. 역사는 뭘 해 나왔느냐? 하나의 사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람을 재창조, 복귀해 나오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뚱이적인 세계의 제패를 꿈꾸고 나오는 왕자들이여, 혹은 영웅들이여, 나와서 해봐라! 망하게 된다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교육자료로 삼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지요. 이게 하나님입니다. 그 누가 자기 마음을 중심삼고 자랑할 수 있는 무엇이나 체제가 있으면 나와서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망하게 되면 그 전통적 자료를 수집할 겁니다. 그래서 참다운 아들딸로 교육할 수 있는 교본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선생님 자신도 그 감옥에서 외로운 적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외로운 자리에 있을 때 와서 위로해 주고 간 사실이 언제나 잊혀지지 않습니다. 친척이나 다른 누가 왔던 것은 잊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랑의 인연을 맺은 사람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걸 보면 원수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자리를 통해서 교육이 될 수 있고 배울 것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내가 느껴 보았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식구 중에 누가 군대를 가든가, 혹은 감옥에 가든가 하게 되면, 선생님도 물론 찾아가야 하겠지만 못 갈지라도 여러분은 그런 인생을 남기고 그런 인연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리하면 상대방에게 일생 동안 이렇게 좋을 일을 해야 된다는 교재로서, 하나의 교육 표준으로서 남길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체험을 한 사람은 자기가 죽게 되더라도 그 후손들 앞에 “그런 사람과 같이 되어라” 하는 유언을 하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감옥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를 친구 삼아 노래할 수 있고, 친구 삼아 의논할 수 있고 놀 수 있게끔, 이를 상대할 수 있는 그런 교육이 됐다면 교육 중에 최고의 교육입니다. 이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은 감방밖에 없기 때문에, 감옥은 나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얘기를 하려면 한이 없습니다. 파리 한 마리도 그리움의 대상이 됩니다. “야, 네가 말을 할 줄 알면 내 소원을 들려주어 고향에도 보낼 텐데” 고향까지 날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식을 가져오기도 할 텐데” 파리 한 마리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물의 곤충 파리 하면 전부 다 싫어하지만, 이렇게 친구 중의 친구요, 사람의 대상이자 의논의 상대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이상 교육받을 수 있는 곳은 천지에 감방 외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감방이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사람이라면 못해도 일년 반쯤은 공식적으로 감방 교육을 시켜야 되겠다 하는 것이, 앞으로 내가 문교부 장관이 되거나 나라를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면 한번 해보고 싶은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감옥까지는 안 가더라도 감옥에 갔다 하는 탕감적 훈련이라도 해줘야 되겠다 하는 것이 통일교회 교육법이요 훈련방법입니다.
교육이라든가 윤리라든가 하는 것은 모두 선을 표준삼고 나갑니다. 선을 표준삼고 나가는 길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고통의 길입니다. 내 몸이 원하는 모든 것은 전부 다 본질에서 상충되는 역리적인 노정입니다. 그 길을 가지 않고는 선한 결과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오늘 우리 사회생활에서의 가르침을 받는 표준입니다.
“만민은 선한 것을 바라고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하기 전에 사람을 위해라. 전체 인류를 위해라. 사람을 사랑해라. 사람을 위해 살라. 사람을 위해서 태어났다” 하는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서 태어났다면 천사장 복귀의 노정을 가려낼 수 없습니다. 천사장이 인간을 위하지 못하는 자리에 섬으로 말미암아 타락을 가져왔는데, 자신만을 위한다면 이것을 탕감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좋은 마음을 가지고 희생하는 사람은 좋게 된다는 것이,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지만 막연하나마 오늘날 인륜도덕을 중심삼아 일률적으로 교육의 목표가 되어 있고 교양의 목표가 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떨어진 자리에서 보다 높은 한 점을 바라고 있어 하늘은 불가피하게 그런 것을 일대일의 자리에서 세밀하게 가르쳐 줄 수 없기 때문에, 암암리에 상징적으로 혹은 비유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르쳐 준 것이 오늘날 선을 행하라는, 적선하라는 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교재가 필요합니다. 나라를 대표해서 가르치려면 나라를 대표한 교재가 필요한데, 그 교재의 재료를 어디서 수습할 것이냐? 나라의 국민에게서 수습하는 것입니다. 주권자와 국민을 중심삼고, 위정자와 국민을 중심삼아서 재료를 수습해야 됩니다. 한국정부는 어떻고 한국 나라는 어떻게 돼야 하느냐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세계적인 교육을 하려면 세계 복귀의 교재를 만들어야 할 텐데, 그것을 어디서 만들 것이냐? 그 재료는 그 나라를 위해서, 그 백성을 위해서 희생하고 누구보다 고생한 선한 군주와 선한 백성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그 백성은 고생한 백성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는 자랑할 만하지만 그것이 없게 될 때는 자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한국을 자랑하려면 한국 패들을 죽도록 고생시키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만 위하는 뜻입니까, 세계를 위한 뜻입니까? 붉은 심정을 가지고 희생하는 그것이 세계적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륜도덕의 기준은 선한 사람은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요, 악한 사람은 남을 착취하는 사람이라는 것에 세운 것입니다. 교육의 표준을 그렇게 세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떠냐? “너희들이 날 사랑하여라! 너희들이 나를 위해서 희생해라!” 이런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전통을 세우기 위해서는 당신이 먼저 아기 똥을 치우고, 어머니 아버지 똥을 치우고, 먼저 희생 봉사하고 온유겸손한 교육 텍스트(교재)의 센터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미국에서 백인들은 지금까지 자기 자식들을 하버드 같은 훌륭한 대학·대학원에 보내고, 박사코스를 밟게 모든 정성을 들였는데, 통일교인이 되어서는 꽃을 팝니다. 인간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천만인이 너를 찌를 것이다! 조롱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고 교육합니다. 훈련입니다. 문전에서 별의별 수모를 다 당하는 것입니다. 침을 뱉는 건 보통입니다. 발길에 차이고, 여자들은 담뱃불로 지짐을 당하지 않나, 옆구리를 차이지 않나, 참 악랄하게도 당했습니다. 통일교회에는 별의별 역사가 다 있습니다. 그 역사를 여러분이 모르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평화의 교육재료를 이 땅 위의 인간들에게 가르쳐 주려면 어떤 재료를 구할 것이냐? 사랑의 재료를 구할 것입니다. 사랑의 재료를 구하려면 사랑이란 말, 그것은 보이질 않으니 사랑을 가진 남자 여자를 구할 것입니다. 그건 필연적 귀결입니다. 자기 몸 이상 여자가 남자를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개념을 어떻게 발굴하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통일의 기원, 평화의 기원을 어떻게 찾아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걸 가능하게 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 힘이 사랑이라 할 때, 그 사랑 가지고 자기 위치를 부정하고 상대의 위치를 높일 수 있는 이런 것을 이론적으로 무엇을 추구하여 세워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자녀 교육의 재료가 나와 있어야 합니다. 또 형제 교육의 재료, 그 다음에는 부부 교육의 재료, 부모 교육의 재료, 그리고 가정이 어떻게 자라겠다는 교재, 종족이 어떻게 자라나겠다는 종족적 재료가 나와야 합니다. 이래서 소생적 가정을 중심삼고 소생·장성·완성으로 다 끝나는 것입니다. 종족 편성, 이것을 모델로 해서 세계화하면 나라가 되고 세계가 됩니다. 그러한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재가 이 땅에는 없는 것입니다. 비로소 하늘나라나 땅 위에 이제부터의 가정은 어떻게 되어야 하고, 이상적 가정은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교재가 문 총재의 가르침의 도리를 통해 이제는 백악관의 도서관에, 세계 도서관에 납입될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