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인류의 조상이요 참부모로 오신 예수님
인류역사는 타락하지 않은 종지조상을 찾아나온 역사
타락한 세상에서 인간이 구원받기를 원할 때, 이들을 구원할 수 있는 대표자나 책임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가의 통치자도 아니요, 어느 한 시대 하늘의 사명자나 선지자도 아닙니다. 인간 구원의 중심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이면(裏面)에서 조상의 책임을 대신 상속받아 오시는 분이어야 합니다. 그런 분이 아니고는 세계적인 승리의 조건을 결정지을 수 없습니다.
인류 시조로부터 타락이 빚어졌고 그 이후 인간들도 계속 실패했습니다. 이 실패를 걷어치우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인간 조상의 입장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러한 분을 찾아 인류 앞에 소개하는 것이 세계의 수많은 종교가 해야 할 사명입니다. 양심이 목표로 하는 이상을 중심삼고 세계의 인류를 하나로 수습해야 합니다. 이것을 수습하려면 타락한 조상의 후손으로서 그 모든 죄의 보따리를 청산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구원 완성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조상되는 대신자는 천상세계로부터 대(代)를 이어 이 땅 위에 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완전 탕감하여 승리권을 세울 수 없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승리의 권한을 세운 기준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모로서의 기준도 아니요, 아들로서의 기준도 아니며, 종으로서의 기준입니다. 또 야곱이 천사와 얍복강에서 씨름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천사장이 인간을 타락시켰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천사장을 대신한 천사를 굴복시키고 승리의 권한을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 기준의 이스라엘을 계대(繼代)하여 실체적인 이스라엘권을 조성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 기준의 이스라엘권을 가졌던 이스라엘 민족도 실체적인 기준, 즉 아벨의 입장에서 승리의 권한을 세우지 못하게 될 때는 번번이 망했습니다.
오늘날까지의 기독교 역사는 무엇이며, 선민사상이란 무엇이냐? 기독교 역사는 종의 터전 위에 양자를 세운 역사였습니다. 아들은 아들인데 직계 아들이 아닌 양자였습니다. 양자에게도 물론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상속권은 있습니다. 그러나 양자와 직계자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양자는 그 핏줄이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자는 자기의 핏줄을 잘라 버리고 접을 붙여 직계의 혈통으로 전환돼야 합니다.
혈통이 다르다는 것은 아버지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다른 혈통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은 본래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부모에 의하지 않고는 죄를 탕감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역사는 타락하지 아니한 종지조상(宗之祖上)이 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분이 올 때까지 종교의 이념을 중심으로 연결시켜 왔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어야 천국에 가고, 안 믿으면 못 간다고 합니다. 도대체 예수님이 누구입니까? 기독교인은 만민의 구세주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불교나 유교에서는 '우리도 세계적인 종교인데 기독교만 중심삼고 만민을 구원할 것이 무엇이냐'고 말할 것입니다. 하여튼 불교나 유교도 동서양의 문화를 묶기 위해 하늘이 특별히 세운 종교입니다. 세계적인 아벨, 혹은 양자로서 책임을 할 수 있는 역사를 대표한 종교입니다. 그렇지만 불교나 유교에서는 인류의 조상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 땅 위에 죄악이 출발되었던 것은 인류의 종지조상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책임지고 탕감할 수 있는 입장에서 '나는 인류 조상이다'라고 할 수 있는 분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라고 주장한 분이 예수님입니다. 이 한마디가 세계사를 출발시키는 새로운 선민적 표어(選民的標語)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이 말은 예수님이 세상 사람과 다르다는 뜻입니다. 독생자라는 말이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독생자라는 말이 예수님이 주장하시는 말씀인 복음 가운데 나타났다는 사실이 오늘날 이 땅 위에 새로운 시대가 출발할 수 있는 기원이요, 새로운 세계가 출발할 수 있는 터전이 된 것입니다. (20-114, 68.5.1)
제2의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이 가르친 진리와 다른 종교의 말씀을 비교해 보면 다릅니다. 다른 종교는 국가와 인류의 도덕을 가르치며, 영계에 관한 내용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불교는 영계를 가르쳐 주고, 유교는 사회의 인륜 도덕을 가르쳐 줍니다. 이들은 땅에 대한 치리, 영계에 대한 치리법(治理法)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가정을 세울 수 있는 혈통적 기원인 사랑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이러한 입장이 기독교가 타종교보다 우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내 안에 있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결국 전부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피와 살이 얼크러져 일체로서 움직일 수 있는 부자의 관계를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요, 예수님은 신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랑인 예수님은 신부를 맞이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서로가 형제입니다. 이러한 아버지와 신랑 신부, 아들딸이 일체가 되어 사탄세계를 청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조상으로 오셨습니다. 아담이 타락하여 실패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제2의 아담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은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신랑의 입장에서 신부를 맞아 부부를 이루어야 했고, 인류의 참부모가 되어야 했습니다.
원래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인류의 부모가 되어 하나님을 중심한 세계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타락함으로 써 사탄이 주관하는 거짓부모가 되어 버렸습니다. 따라서 본래 하나님의 창조이상으로 세우고자 했던 참부모는 없어졌습니다. 참된 인류의 조상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20-116, 68.5.1)
예수님의 공생애 노정은 슬픈 노정이었다
6천년 전,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짓고 창조이상을 이룰 날을 소망하며 즐거워했습니다. 아담 해와, 즉 참아들딸을 중심삼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생활 터전을 그리워하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가 깨져 나감으로써 역사적인 비참상이 벌어졌습니다. 아담 해와가 죽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천지가 생긴 이후 처음 벌어진 비참한 장면이었습니다. 이것을 회복하기 위해 오셨던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참부모로 오셨습니다.
타락 전의 영광의 세계는 전부 아담의 것이었습니다. 그 영광의 세계의 주인인 하나님도 아담의 것이었습니다. 세계가 모두 아담의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그가 움직이는 데 장애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가 행하고자 하는 것에 장애가 없어야 하고, 그가 하고자 할 때 제재를 받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천하가 전부 그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소원을 이루기 위해 아담과 해와를 창조했으나 그들이 깨져 나갔기 때문에 모든 것이 전부 끊어져 버렸습니다. 예수님을 보낸 목적은 이 아담과 해와가 실수한 전부를 회복하여 본연의 아담 해와에게 부여해 주려고 한 전체의 이념을 생활 가운데서 내적으로 느끼고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메시아가 태어난 첫날부터 시작했어야 할 생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하에 능통하지 못함이 없어야 할 입장에 선 분이 메시아입니다.
그런데 유대나라의 환경이 어땠느냐? 유대는 로마의 속국이었습니다. 유대교단은 모세 오경의 틀에 잡혀 있었습니다. 요셉 가정도 그랬습니다. 하늘적인 맡은 바의 책임과 생활관과 세계관과 우주관을 가지고 제재 받지 않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생활해야 할 텐데 그럴 수 없는 예수님의 내적 고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예수님이 그런 내적 고충을 느낀 반면 요셉과 마리아는 어떠했는가? 하루하루의 생활에서 예수님이 고충을 당하고 슬픔을 느끼면 그를 붙들고 '우리가 있으니 네 소원은 기필코 이룰 것이다' 하며 그의 내적 슬픔을 위로해 주는 것이 어머니 아버지가 해야 할 일이요, 형제들이 할 도리인데, 그들은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30여 년의 준비 기간에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기대도 다 무너지고 깨져 나갔습니다. 성경에는 없지만 어머니 아버지를 향한 예수님의 기대는 몇 번씩 꺾여 나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하고 싶은 말이 한없이 많아도 말을 못했습니다. 그저 묵묵했다는 것입니다. 왜냐? 자신이 메시아의 사명을 짊어지고 온 것을 아는 어머니가 해야 할 책임, 즉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메시아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못하고 있으니 메시아로서 인간 세계의 전체를 말할 수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자기 자식이지만 메시아로 모셔야 했습니다. 요셉도 아침마다 일어나면 경배해야 했습니다. 부모를 중심삼고 형제 친척들도 전부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는 부모인데 부모에게 천법을 적용할 수 없는 착잡한 예수님의 사정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래서 자신의 갈 길이 이렇고 이러이러한 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을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간접적으로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알아주지 못하고 환영받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30세에 집을 나갔습니다. 공생애 노정을 출발한 것입니다.
공생애노정은 거룩한 노정이 아니고 예수님의 슬픈 노정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집을 나갔을 때 그의 동생들이 따라다녔습니까? 그의 어머니가 따라다녔습니까? 아무도 없이 혼자 다녔습니다. 모친과 동생들이 와서 예수님을 찾을 때 예수님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또 어머니에게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도 하셨습니다.
메시아가 찾는 개인은 어디 갔으며, 메시아가 찾는 가정은 어디 갔으며, 종족은 어디 갔으며, 교단은 어디 갔으며, 민족은 어디 갔는가? 아무 것도 찾지 못한 메시아의 울부짖음 소리를 누가 들었던가? 아직까지도 기독교는 깊은 잠에 빠져 이러한 사실들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무리 성경을 봐도 이런 내용은 알 수 없습니다. (14-277, 65.1.3)
참부모의 사명을 갖고 오신 예수님
메시아가 온 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나라의 주권자라면 그 입장에서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것처럼, 세상을 구할 구세주로 온 예수님도 구세주의 입장에서 민족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보낸 구세주의 인격 기준에 상대가 될 수 있는 기준을 갖추어서 예수님을 만나야 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사명이었는데 이스라엘 민족은 무엇을 했습니까? 메시아가 오시는 줄이나 알았습니까? 죄를 지긋지긋하게 지어 놓고도 천국이 이루어지면 거기서 한 자리 해먹을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는 나라를 찾기 전에 교단이 필요했고, 교단을 찾기 전에 민족이 필요했으며, 민족을 찾기 전에 종족이 필요했고, 종족을 찾기 전에 가정이 필요했으며, 가정을 찾기 전에 개인이 필요했습니다. 그 개인이 누구였습니까? 여자의 대표자는 마리아요, 남자의 대표자는 요셉이었습니다. 그들을 세상적으로 보면 어머니 아버지였지만 뜻을 중심삼고 보면 부모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타락하지 않은 참부모였습니다. 참부모의 사명을 갖고 왔습니다.
인간 조상 아담 해와는 타락함으로써 타락된 혈통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바라는 본연의 이상세계, 타락하지 않은 그 세계에서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 하나님의 직계 혈통을 받아 아들딸을 낳는 참부모가 되지 못하고, 사탄과 인연을 맺어 죽은 자식을 낳은 사탄의 괴수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인류는 전부 거짓부모를 만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거짓부모의 혈통을 부정하고 참부모를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타락하지 않은 참부모로 왔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세상적으로 보면 예수님의 아버지고 어머니지만 뜻으로 보면 참부모인 예수님 앞에 부모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기 위해 왔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는 참부모의 사명을 갖고 온 메시아기 때문에, 아무리 그를 낳은 사람이라도 그 메시아 앞에서는 자녀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조상이라는 것입니다. 믿어집니까? 천지개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이 천지개벽이냐?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들이 그 아버지 앞에 아버지가 되어 일을 하는 것이 천지개벽이라고 봅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메시아 앞에 효자는 요셉이요, 효녀 중의 효녀는 마리아요, 메시아 앞에 충신은 요셉이요, 충녀는 마리아가 되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는 죽더라도 먼저 죽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제자가 필요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할 말을 다 못하고 갔습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할 말을 다 못하고 갔습니다. 천적인 사명을 짊어진 예수님이 세상적으로는 아버지요, 내적으로는 아들과 같은 입장에 있는 요셉에게도 자신의 비밀을 다 말하지 못하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서러웠겠습니까?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장 12~13절)'고 했습니다. (14-279, 65.1,3)
이스라엘 나라를 준비해 나온 이유
예수님이라는 분은 본래 인류의 참조상이 되어야 할 인류의 조상이 타락함으로써 거짓 조상이 되었기 때문에 참조상의 인연을 다시 복귀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아담과 해와의 아들인 가인과 아벨이 싸웠습니다. 부모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아들인 가인을 복귀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부모를 복귀하지 못 합니다. 원리가 그렇습니다.
아담시대도 그러한데 예수시대는 어떻겠느냐? 인류의 부모로 등우지 않고 부모가 될 수 없습니다. 아담가정에서 가인, 아벨, 셋, 이 세 아들을 중심삼고 여덟 식구를 잃어버린 결과가 됐기 때문에 예수님도 인류의 참된 조상이 되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것을 틀림없이 다 찾아 놓고서야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와서 가인 아벨과 같은 기준을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미리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하늘은 세계의 수많은 사탄 국가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승리한 하나의 조상을 만들어 하나님 편에 일편단심 일체가 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 가정을 번식시켜 종족, 종족을 번식시켜 민족, 민족을 번식시켜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승리'라는 뜻입니다. 승리한 나라라는 뜻입니다. 타락한 세계에서 하나님편의 승리한 나라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수많은 국가가 있지만 하나님은 지금까지 당신의 발판이 될 수 있는 한 평의 땅도 없었고, 하나의 가정도 없었고 하나의 민족과 하나의 국가, 하나의 주권도 없었습니다. 이런 땅 위에서 하나님이 사탄세계를 빼앗아 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의 주권국가를 성립시키지 않고는 안 됩니다. 대결할 수 있는 비슷비슷한 국가 기준을 닦지 않고는 세계적인 싸움을 못할 것을 잘 아는 하나님은 훌륭한 민족, 하나님편 울타리 안에 완전히 들어 온 훈련된 하나의 가정을 통해서 애급에 60만 대군을 남기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복귀노정을 중심삼고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4천년 역사를 통하여 유대 나라 주권을 만들어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주권이 사탄세계에 지배받는 주권이 됐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가인이 아벨을 지배했기 때문에 반드시 아벨이 가인을 굴복시키지 않고는 아벨의 목적을 완성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벨의 책임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강대국인 로마의 속국권내에 예수님이 와서 가정을 다시 결속시켜―이건 내적 싸움입니다─ 외적 싸움을 할 수 있는 내적 국가의 표준으로서 가정을 다시 예수님과 결속시킨 다음에 종족을 결속시키고, 종족을 결속시킨 다음에 민족을 결속시키고, 민족을 결속시킨 다음에 국가를 결속시켰습니다. 그렇게 해서 준비된 것이 이스라엘 나라였습니다.
그렇지만 로마제국의 속국이 돼 있기 때문에 이 속국에서 해방의 기치를 들어 먼저 나왔던 형님격인 사탄의 대표적인 국가 로마제국을 깔아뭉개고 굴복시켜야 합니다. 예수님이 살았더라면 로마제국을 40년이면 굴복시킬 것이었는데 예수님이 죽었기 때문에 4백년 후에야 굴복시킨 것입니다. (160-210, 69.5.15)
예수님을 핍박한 이스라엘 민족
택한 이스라엘 민족은 2천년 동안 그렇게 고대하던 메시아가 왔으니 그 메시아를 중심으로 철석같이 단결해야 했습니다. 그가 동으로 가면 동으로 가고, 서로 가면 서로 가고, 사지가 떨어져도 같이 떨어지고, 목을 매도 같이 매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4천년 동안 준비된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약속했던 한때를 맞이한 그 민족은 그 주인공을 어떻게 대했습니까? '야, 네가 뭐냐' 이런 식으로 대했습니다.
하늘의 때를 맞추어 30년의 준비기간을 거친 예수님은 필시 이 때가 민족을 구할 때라고 생각하시고 하나님이 허락한 때를 붙들고 나왔지만, 4천년 동안 수고하여 택한, 땅 위의 이스라엘 민족은 그러한 하늘의 때를 몰랐습니다. 누가 알았습니까? 아무도 몰랐습니다. 때를 모른 이스라엘 민족이니 지옥 가야 합니다. 당연히 심판 받아야 합니다.
환경을 준비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4천년 동안 수많은 선지자를 보내서 그들로 하여금 피 흘리고 찢기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의 공적을 두둔했어야 할 이스라엘 민족, 때를 갖고 오신 주인공을 두둔해야 할 이스라엘 민족, 오신 주인공 앞에 환경의 터전이 되어야 할 이스라엘 민족이 오히려 예수님을 배반하고 십자가에 못박았으니, 그들은 세계 도처에서 죽도록 고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천적인 때를 맞추기 위해 심정적으로 준비했고 그 환경을 그리워하면서 밤낮으로 애썼으나, 그가 준비한 때를 알아주고 맞이하기 위해 나타난 무리가 어디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찾아 나섰던, 예수님의 환경이 되어야 했던 성전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오히려 예수님을 보고 바알신에 접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4천년 동안 많은 수고를 해 굳게굳게 약속한 메시아를 보냈는데 그렇게 박대할 줄이야! 예수님은 하늘의 입장에서 볼 때 하늘의 때를 가지고 온 분이요, 하늘의 배경을 갖춘 분이요, 하늘의 주권을 가진 왕자요, 하늘의 황태자입니다. 하늘의 배경을 갖추고 지상을 치리하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을 맞이해야 할 이스라엘 민족, 때를 맞아 환경을 갖추어야 할 이스라엘 민족은 오히려 예수님이 세우시려는 때를 무너뜨리고 환경을 개척하려는 것을 가로막기에 급급하였습니다. 이런 죄를 저지른 것이 우리 선조들입니다.
예수님이 죽으러 왔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보내는 데 왜 4천년이나 걸렸습니까? 왜 선한 선조를 죽여 가면서 그런 일을 하느냐는 거예요. 예수님은 할 수 없으니 패배의 장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비밀리에 제자들을 찾아 하늘의 뜻을 이루어 달라고 부탁하고 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출발점입니다. 예수님은 패배의 장군입니다. 땅위에 왔다가 때를 잃어버린 패자요, 환경을 잃어버린 패자입니다. 때를 이루고 환경을 개척해야 할 사명이 있는 예수님 앞에 죽음이 웬 말입니까?
그 때를 소망하면서, 그 환경을 소망하면서 그 때와 그 환경을 이루어 달라고 맡긴 사명을 완성하기 위하여 나온 것이 사도 이후의 기독교사입니다. 예수님은 다 남기고 갔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이 땅 위에서 때를 맞이하고 환경을 맞이하여 황태자로 등장했다면 천지는 모두 그의 수하에서 치리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렇게 못 되었습니다. (9-257, 60.6.5)
기독교인들이 이루어야 할 사명
예수님은 만우주를 통치하여야 할 우리 인간의 참조상입니다. 예수님은 아담 이후 4천년이 지난 후에 이 땅에 오신 역사적인 조상입니다. 잃어버린 것을 꺼꿀잡이로 찾아 세우니 참조상인 것입니다. 제1아담이 실패해서 타락한 조상이 되었으니, 제2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은 천상과 지상의 모든 법을 장중(掌中)에 넣고 때와 환경을 정리한 다음 하늘 주권국가를 세워 이 땅 위에 백성들을 지휘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되었던들 오늘날 우리는 타락된 세상에서 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했습니까? 못 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가시면서 다시 올 테0니 참고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복 받고 편안히 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이 길을 가는 데는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하였습니다. 생명을 얻고자 하는 자는 잃고, 잃고자 하는 자는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역사의 뒤안길에서 몰림뱅이로 지내온 무리였습니다. 역사의 뒷골목에서 은밀히 약속해 나온 무리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무리들을 수습하여 제2 이스라엘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는 제2 이스라엘의 사명이 있습니다.
이 기독교인들이 이루어야 할 사명은 무엇이냐? 주가 이 땅 위에 오셔서 때를 잃어버렸으니 때를 찾아야 됩니다. 우리의 선조 이스라엘 민족이 때를 잃어버렸으니 때를 찾아야 됩니다. 환경을 잃어버렸으니 환경을 찾아야 됩니다. 때와 환경을 갖추어 '주인공이여, 어서 오시옵소서'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이것이 끝날의 성도들이 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9-259, 60.6.5)
예수님이 돌아가심으로써 아벨의 사명을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수습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종에서 양자권을 찾아 세우고 여기서 다시 기독교를 중심삼고 제2 이스라엘을 형성했습니다. 그 터 위에 재림의 한날을 고대하면서 2천년 동안 투쟁의 역사를 이끌어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2의 아담으로 오셨지만 앞으로 오시는 주님은 제3의 아담으로 오십니다. 제3의 아담이 왜 와야만 되느냐? 그것은 이 땅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땅 위에서 사고가 났으니 이것을 수리해 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수리할 수 있는, 고장나지 아니한 새로운 주인이 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새로운 주인이 와서 사고 난 것을 고쳐 주시기를 고대해야 됩니다.
제3의 아담이 누구냐? 이 땅 위에 인류 조상의 이름을 지니고 세번째로 오시는 분입니다. (20-121, 68.5.1)
조상적 사명을 짊어지고 천사장의 사명을 하는 예수 그리스도
탕감법이 생기게 된 것은 인류의 조상인 아담 때문입니다. 결국은 부모 때문에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오시는 주님은 누구냐? 메시아는 누구냐? 그는 참된 부모입니다. 참된 부모는 이 세상을 이기기 위해 오시는 분이요, 영적 사탄세계를 이기기 위해서 오시는 분입니다. 세계의 끝날이 되어 가지고 세상의 사탄을 완전히 청산하고, 영적 사탄세계를 완전히 굴복시키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참된 부모입니다.
그가 지상에 나타날 때에는 반드시 영적 기반을 승리한 후에야 지상의 실체기반을 통해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영적 사탄세계를 이기려면 영적 사탄세계를 몰라서는 안 됩니다. 또 육적 사탄세계를 이기려면 육적 사탄세계를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말한 그 원칙은 타락하기 전의 아담 해와와 타락한 이후의 아담 해와의 입장을 가리는 길입니다. 결국 우리는 천사장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천사장은 개인을 대표한 천사장 입장, 가정을 대표한 천사장 입장, 종족을 대표한 천사장 입장, 국가나 세계를 대표한 천사장 입장이어야 합니다. 그 천사장 입장의 조상이 여러분의 조상들입니다. 세계를 대표해서 그 조상의 사명을 대신해 온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조상으로서의 참된 개인을 대신하고, 종족, 민족, 국가를 대신해서 세계를 향해 넘어가는 데 있어서 우리의 조상적 사명을 짊어지고 천사장의 사명을 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가 사탄세계지만 예수님은 타락하기 전 아담 해와를 협조하던 천사장의 입장이기 때문에, 여기에 협조할 수 있는 길을 닦아 나왔습니다. 즉, 예수님은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전에 천사장이 협조하던 그 원칙적인 기반 밑에서 협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계에서 개인적인 모든 것을 탕감했더라도 예수님이 오기 전까지는 올라갔다가 떨어질 수 있었습니다. 또, 종족적인 기준에서도 올라갔다가 떨어질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올라갔다 내려갔다 언제나 이 놀음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개인적인 기준, 가정적 기준, 종족적 기준, 민족적 기준, 국가적 기준, 세계적 기준으로 언제나 발전의 행진을 해 나왔습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이 없어졌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예수님이 영적인 면에서 개인적으로 승리하고, 가정적으로 승리하고, 종족적으로 승리하고, 민족적으로 승리하고, 국가적으로 승리하고, 세계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와 하나되면 오늘 우리도 그와 같은 자리에 올라가게 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믿고, 가정적으로 믿고, 종족적으로 믿고, 민족적으로 믿는 그 분야의 책임 여하에 따라서 세계적인 발전 현상이 벌어지게 됩니다. 예수시대가 옴으로써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를 향해 나갈 수 있는 영적 승리의 전통적 기반이 성립됐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 나는 그 자리에 서게 됩니다.
영적 천국은 사탄을 영적으로 승리한 기반 위에 있습니다. 결국은 개인적으로 승리하고, 가정적으로 승리하고, 국가적으로 승리해서 넘어가야 천국입니다. 예수님이 그런 전통을 가지면 그와 더불어 하나가 됨으로써 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천국이 거기서 열립니다. 그러면 영계의 조직이 어떻게 돼 있다는 것을 전부 다 환하게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영적인 세계에 대한 모든 것은 승리했지만, 실체 세계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걸 남기고 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이루기 위해서 재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영적 승리를 한 다음에는 육적인 승리를 해야 됩니다. 그러려면 영적으로 와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구름 타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다시 와야 된다는 원칙이 여기서 나옵니다.
오시는 주님은 영적 세계에 세워 놓은 승리의 전통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세계적인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메시아, 즉 천사장적 사명을 완결시킨 그분으로부터 협조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전부 인계를 받아야 됩니다. 영적으로 모든 것을 이어받기 위해서 영적인 신약시대 이상의 모든 것을 재탕감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 그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을 완전히 이어받을 수 있는 기준을 결정해야만 영적 사탄세계까지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영적 기준을 세워 그 전통을 인계 받은 기반에서 실체세계의 승리만 하면 됩니다. 영적으로 세워 놓은 원칙을 따라서 육적으로 갖다 맞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73-97, 74.8.4)
메시아라는 분은 참부모 대역자로 오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세계에 와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어머니 아버지와 형제를 다 버리고 따라오도록 하는 운동을 일으켜야 됩니다. 그런 다음 사랑의 힘을 가지고 하늘나라의 전통을 다시 세우는 일을 하려는 것이 기독교의 출발입니다. 그런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오늘날 선생님은 이 세계에 있어서 예수님이 이루지 못한 참부모의 전통을 어떻게 재현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고 통일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역사 가운데는 개인적인 하나님의 사랑의 전통이 있어야 합니다. 다음에는 형제의 전통, 그 다음에는 신랑 신부의 전통, 그 다음에는 부모의 전통, 할아버지의 전통, 종족의 전통이 그 일가에 남아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것이 세계적이어야 됩니다. 초민족적이어야 됩니다. 지금 이 세계는 타락권입니다. 반대입니다. 이걸 넘어서야 됩니다. 그러려면 개인적 전통, 가정적 전통, 종족적 전통, 국가적 전통을 세운 다음 이걸 넘어가야 됩니다. 타락권을 전부 끊어 버리고 하나님의 참된 사랑의 종족, 국가, 세계의 전통을 상속해서 넘어가야 합니다. 통일교회가 이상한 것이 그것입니다. (107-158, 8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