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사랑이야기 - 제 3권 예수님 사랑편 - 제 1장 예수님의 사랑)

무지... | 20180604071232

3.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1) 실체의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실체의 하나님으로, 실체의 아버지로 오셨다. 그 아버지도 실체의 아버지가 계시는 동시에 무형의 아버지가 계신다. 우리 사람과 마찬가지다. 몸이 있는 동시에 마음이 있다. 내 마음의 실체가 몸인 것과 같이 무형의 하나님을 닮아 실체를 쓰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다. (8-124, 59.11.29) 
  
하나님은 무형(無形)의 신(神)으로서 눈물 흘리고 무형의 신으로서 피와 땀을 흘리는 것을 개의치 않았으나, 그것을 인간 앞에 실체(實體)로 보여 주지는 못했다. 그것을 실체로서 인간 앞에 보여 주고, 실체로서 인간을 품어 주기 위해 인류의 참아버지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다. (10-278, 60.11.6) 
  
하나님의 아들이 누구냐?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닮은 분이다. 하나님을 닮은 예수님인데, 그 하나님은 어땠느냐? 예수님이 원수를 사랑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원수를 잊어버리고 또 사랑하고 또 사랑하면서 나온 분이 하나님이다. (138-174, 86.1.21)
  
실체의 하나님으로 만든 것이 아담 해와다. 그러니 아담 해와는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했다. 예수님도 하나님과 일체가 되기 위해 오셨다.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할 아담이 빵꾸를 냈으니 그것을 때우기 위해 오신 것이다. 빵꾸라는 말이 속된 표현이긴 하지만 실감이 나기 때문에 쓴 것이다. (19-162, 68.1.1)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의 부르는 음성을 듣지 못하는 연고로 실체의 하나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 주고, 실체되시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무형의 하나님의 심정을 나타내게 하여 선포하신 말씀이 곧 복음의 말씀이다. (1-47, 56.5.20) 
  
예수님은 하나님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의 동산을 성취해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다. 예수님의 몸은 하나님이 안식할 수 있는 실체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이 인간을 사랑하듯 예수님을 중심삼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있어야 한다. (3-323, 58.2.2)
  
  
2) 예수님은 하나님의 황태자
  
예수님은 이 땅의 구세주로 보낸 하늘의 황태자요,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독생자다. 만군의 여호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10-264-20, 60.11.6)
  
예수님은 하늘의 황태자요, 만민의 구주요, 온 피조세계의 주인공으로 오셨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분으로,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고, 만민의 심정을 대신한 분으로 만민이 추앙할 수 있으며, 만물의 심정을 대신한 분으로 만물이 노래할 메시아, 구주로 보냈다. (9-328-7, 59.6.21)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의 황태자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천지 모든 만물의 대주재, 곧 주인이 다. 천지를 지은 분이요, 영원무궁토록 왕 중의 왕으로 계시는 분이다. 그러니 우리가 형용하지 못할 정도로 높고 크다. 예수님은 그렇게 크신 분의 아들로 태어난 하나님의 황태자다. 이렇게 말해야 실감이 난다. 메시아, 구주 하면 실감이 잘 안 나지만 하나님의 황태자라 하면 실감이 난다. 하나님의 독생자,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로 태어난 분이 예수님이다. 그런 예수님을 인간들이 잡아죽였으니 하나님이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는가? (12-213, 63.5.15) 
  
예수님은 하늘의 황태자, 하늘의 왕자인데도 불구하고 이 땅 위에 태어나실 때, 마굿간이 웬 말인가? 서러움에 북받쳐 있는 예수님의 서러움도 서러움이지만 그 예수님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내적 서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1-300-8, 56.12.23)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그분은 하늘의 독생자요 하늘의 황태자이며, 만민의 구세주요 영광의 메시아로서, 고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분이다. 그러한 메시아를 바라보고 하나님이 기뻐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분을 맞이하는 만민도 그분을 찬양하며 기뻐하여야 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그분을 불신하고 저주했기 때문에 그 기쁨이 서러움이 되었다. (2-303, 57.6.30)
  
2천년 전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요, 황태자다. 이런 예수님이 와서 해야 할 사명은 무엇인가?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를 수습하고 로마와 대결하여 로마를 점령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죽은 400년 후에 로마제국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로마를 점령해야 했다. 그러면 그때 이미 예수님의 이념은 세계적인 승리의 기반을 갖추었을 것이다. (13-167-9, 64.3.15)
  
예수님께서 30여 생애를 불쌍히 사시는 것이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낸 목적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황태자요, 홀로 창조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천상천하의 주인공으로 오셨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독자 예수님이 땅에 와서 고난당한 것은 예수님이 잘못하여서 그런 것이 아니다. 민족과 교단이 몰라서 그랬고, 사회와 가정이 몰라서 고난의 길을 갔던 것이다. (3-332-8, 58.2.9) 
  
예수님은 하늘의 황태자요, 만우주의 주인공이요, 만왕의 왕으로 오셨지만 자신을 자랑하지 않았다. 악을 대한 싸움이 끝날 때까지는 자랑할 수 없었다. 예수님이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참으신 것은 어느 한날 하늘의 법도를 완전히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4-187-6, 58.4.20)
  
예수님은 인류의 고난을 짊어지고 인간의 말단의 자리에서 출발하여 최후에는 골고다 산정까지 갔다. 그 자리는 예수님 일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자리였다. '오! 하나님의 아들, 하늘의 황태자, 하늘의 왕자의 모습은 어디로 갔던고! 인류의 메시아, 구세주로서의 그 모습은 어디 갔던고!' 그 자리는 자신의 어떠한 가치를 일푼어치도 주장할 수 없는 분하고 억울한 자리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죽음의 고개를 넘어 하늘을 바라보시며, 하늘의 이념동산을 향하여 나가실 수 있었다. 그것은 그의 이념이 사망의 힘보다 강했고, 역사적인 어떠한 힘보다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런고로 사망권을 헤치고 부활이 벌어졌고, 반대하는 인간들을 회개시켜 오늘날의 기독교가 승리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5-279-9, 59.2.22) 
  
예수님은 진정한 아들로 왔고, 오빠로 왔고, 남편으로 왔고, 그 다음에 진정한 아버지로 왔고, 진정한 아저씨로 왔고, 진정한 할아버지로 왔고, 진정한 왕으로 온 분인데도 불구하고 이분을 잡아죽인 죄, 한 사람만 죽여도 용서 못 받는데, 역사 이래에 전체를 총합한 대왕의 권위를 갖고 왔던 그분을 죽인 죄는 무엇으로 용서받을 것인가? 용서할 법이 없다. (68-327, 73.8.5) 
  
예수님은 하나님의 주권을 대신한 형상적인 실체다. (153-123, 63.11.15)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유의 주요, 하나님의 황태자요, 하나님의 왕자다. 오늘날 대통령 아들만 돼도 뽐내고 그러는데 전무후무한 역사적인 주인공이요, 시대적인 주인공이요, 미래적인 주인공으로 계실 수 있는, 영광된 자리에 주체로 계시는, 홀로 계시는 절대자 하나님의 아들이다. (150-96-11, 60.9.4) 
  
예수님은 억천만상을 다 지은 하나님의 독생자다. 독생자는 하나님의 황태자다. 하늘 왕국에 영원무궁토록 계실 독생자 황태자다. 이런 목적을 바라보고 세운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바라는 목의 날이 곧 그 분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재림의 날이다. (7-173-10, 59.9.6) 
  
오시는 주님은 무슨 예물을 갖고 찾아오시느냐? 인류의 메시아요, 하나님의 독생자요, 하늘의 황태자인 예수님의 신부가 될 수 있는 영광을 우리에게 허락하시기 위해 찾아오신다. 예수님과 같은 입장이 될 수 있는 영광스런 왕관을 부여하기 위해 찾아오신다. (8-331-11, 60.2.28) 
  
예수님은 누구인가? 하나님이 보낸 황태자다. 하나님이 보낸 왕자다. 황태자로 오시는 메시아, 그 메시아 앞에 신부될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자격을 갖추어야 되느냐? 신랑 될 그분 앞에 안팎으로 상대될 수 있는 자라야 한다. 그가 인류를 사랑하듯이 그 신부도 인류를 사랑해야 되고, 그가 하나님을 대하여 염려하듯이 그 신부도 염려해야 되고, 그가 현세로부터 앞으로의 세계를 책임지듯이 그 신부도 책임을 져야 된다. 
그러한 신부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복 달라고 기도하면 안 된다. '화를 저에게 주시옵소서'라고 먼저 기도해야 한다. 왜냐? 복을 주러 왔던 예수님을 배반해 버렸기 때문에 그 역사적 죄를 나를 희생하여 탕감하고 그 원한을 풀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아는 신부관은 그렇다. 내 죄를 용서받기 전에 '역사적인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라고 해야 된다. 아담 해와가 저끄린 죄의 뿌리까지 몽땅 뽑아 뒤넘이칠 수 있는 결의와 함께 슬픔과 고통, 곡절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 모든 것을 탕감하겠다고 하는 사람이라야 신부가 되는 것이다. (14-212-6, 64.12.27)
  
  
3) 사람이신 예수님
  
예수님도 역시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감성은 우리와 같다. 그렇지만 자기 일신의 죄를 해결하지 못하는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전 인류의 과거와 미래의 죄를 책임지신 예수님은 수고로움도 잊으시고 외로운 자리에서 자기의 죄를 원망하는 개인 개인을 위로해 주시는 입장에 섰다. (1-162-7, 56.7.11) 
  
예수님은 인자로 이 땅에 오셨다 가셨다. 예수님은 체(體)를 갖춘 하나의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다 가셨다. 우리가 영계를 통하여 보면 예수님은 우리와 일문일답할 수 있는 체를 갖고 계시기에, 우리의 영안이 열리면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고 감사드릴 수 있지만, 성신을 대해서는 이 일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신은 체를 갖고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1-162-8, 56.7.11)
  
하나님은 어떠한 수고를 해 나오는가? 본연의 개인, 즉 본연의 남성을 찾아 나온다. 또한 그 본연의 남성을 통하여 본연의 부모를 찾겠다는 것이다. 이 대표적인 본연의 남성이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본연의 남성으로서 본연의 사랑을 중심삼고 부모의 인연을 맺으려고 신랑 신부라는 이름을 찾아 나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는 이러한 테두리 안에서 발전해 나오게 된 것이다. (22-9, 69.1.1)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잉태됐다는 사실은 비로소 인간세상에 하나님의 사람이 복중에 잉태되었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장자권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예수님이 구세주가 된 원인이 여기에 있다. 예수님이 불교의 석가모니나 공자나 혹은 마호메트와 다른 게 뭐냐? 예수님은 혈통을 전부 다 깨끗이 해서, 사탄이 남겼던 장자권 참소권을 청산지어서, 복중에서 이것을 전부 다 전환시켜서 태어난 전통적 입장에 섰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로소 인간의 혈육을 갖고 태어났지만 인류역사노정에 복중에서부터 하나님의 장자의 위치를 취해 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독생자다'라고 했다. 독생자라는 것이 무슨 말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된다. (137-17, 86.1.1)
  
사람 중에서 참다운 사람은 누구냐?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아담의 대신자다. (34-273, 70.9.13) 
  
예수님은 참사람으로 왔다. 참사람으로 왔는데, 하나님과 같을 수 있는 기준은 뭐냐? 참사랑에 일치될 수 있는 내적 인연을 가진 것이다. 그 자리가 뭐냐? 타락하기 전의 아담 해와가 완성해서 인류의 시조로서 참사랑의 대상권을 찾아 이상세계에 전개할 수 있었던 하나님의 참된 혈통적 인연을 파탄시켰으니, 이것을 청산해 놓고 본래의 참사랑을 중심삼은 부모의 자리를 연결시키기 위해서 오셨던 분이 메시아다. 그 메시아는 완성한 아담격이다. 그래서 성경에도 예수님을 제2 아담이라고 한 것이다. (138-249, 86.1.24) 
  
예수님은 어떠한 분으로 오셨느냐?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다. 참감람나무로 오신 것이다. 돌감람나무와 참감람나무는 무엇이 다르냐? 외모로 보면 다 마찬가지다. 예수님도 눈이 있고, 코가 있고, 귀가 있고, 입이 있고, 입고 먹고 자고 해야 된다. 우리와 모두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적으로 보면 그 근본 뿌리가 다르다. (21-186, 68.11.20 )
  
  
4)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혈통적 내용을 갖추고 오신 세계적인 대표자이다. 또한 역사적인 내용을 전부 가려 가지고 오신 분이기에 그야말로 하나님을 위주한 혈통적인 내용을 지니고 태어난 첫사람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은 이런 동기와 과정을 거쳐 하나님의 참된 아들로 이 땅 위에 탄생하게 된 것이다. (35-222, 70.10.19) 
  
'예수님이 누구냐?' 하고 물을 때 '누구긴 누구야? 하나님의 독생자지' 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독생자는 대관절 어떤 분이냐? 우리 인간 세상에서 높다는 분을 치자면 독생자라는 건 아무개 집의 맏아들이라는 그 말인데, 그것보다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왕자다' 하면 조금 더 실감이 날 것이다. (159-210, 69.5.12) 
  
예수님은 남자 중의 남자다. 남자 중에서 비로소 4천년만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장성한 아들이다. 타락한 인류가 생겨난 이후 그 후손은 많았지만 그 후손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아들 된 자가 없었다. (160-38, 68.8.11)
  
예수님이 누구냐? 어떠한 분으로 왔느냐?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로 왔다. 그리하여 독생자로서의 사랑을 받았다.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처음 받을 수 있는 독생자였다. 부모의 사랑을 몽땅 받을 수 있는 외아들로 왔던 것이다. (61-26, 72.8.20) 
  
예수님은 4천년 동안 하나님이 그리워하던 하나님의 독생자로 오신 분이었다. 그리워하던 실체를 보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기뻤겠는가? 그가 마굿간에서 탄생하던 그날, 하늘의 천군천사도 그를 환영하며 송영을 드렸다. 이방의 동방박사들도 그에게 경배하고 예물을 드렸으며 양치는 목자도 그에게 경배했다. 예수님이 누우신 자리가 비록 말구유였지만 4천년만에 비로소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들이었기에 그들이 그렇게 예수님을 대했던 것이다. (8-97, 59.11.22) 
  
예수님은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했는가? 그에게는 하나님이 친구의 아버지도 아니요, 나라의 통치자도 아니요, 세계적인 어떤 통치자도 아니라고 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이시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했다. 하나님이 있으면 아들이 있어야 하는데, 예수님이 첫째 아들이자 외아들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출발 때부터 '하나님은 내 아버지요, 나는 그의 독생자다'고 했다. (23-18, 69.5.11)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잘하는 것 없이 그저 나무나 베어다가 툭툭 깎는 까뀌질이나 했던 사람이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 하는 마음을 품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는 분은 딴 사람의 아버지가 아닌 바로 내 아버지야!' 하는 마음을 갖고 나왔다는 것이다. (41-151, 71.2.14) 
  
예수님은 어떤 분이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했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라고 예수님은 말했다. 아버지면 됐지 그것도 편치 않아서 그 다음에는 '나는 독생자다'라고 했다. 독생자는 첫사랑을 받을 수 있는 왕자라는 뜻이다. 이것이야말로 근사한 말이다. 하나님의 아들 중에서도 시시한 아들이 아니다. 첫사랑을 받을 수 있는 독생자라는 것이다. 독생자니까 하나님도 첫사랑을 해야 된다. 첫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아들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하나님과 제일 가까운 길을 딱 뚫어 놨다. (160-270, 69.5.17)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냐? 예수님께서는 국가를 통치하고 세계를 통치하고 인류를 통치할 수 있는 이념과 자격을 가지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셨으며,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주장하신 분이다. (5-321, 59.3.1)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다. 원래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류의 조상 아담이 독생자였다. 그러나 아담이 타락하여 죽어 버렸기 때문에 다시 찾아야 했던 것이다. 그러면 해와는 누구냐? 독생녀였다. 이 아담과 해와가 사춘기를 지나 성숙하여서 인생의 봄 절기를 맞이하게 되면 하나님이 결혼시켜 주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의 결혼식을 해주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못 해주었기 때문에 기독교를 중심삼고 어린양 잔치라는 명사를 세운 것이다. (23-164, 69.5.18) 
  
예수님은 자기를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말했다. 그가 발표한 내용 가운데 세계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제일 중요한 것이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라고 한 말이다. 독생자란 무엇이냐?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그 사랑을 몽땅 독차지할 수 있는 대표자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주장한 골자가 그것이다. (50-123, 71.11.6)
  
하나님이 이 땅 위에서 축복하려면 제일 사랑하는 아들에게 축복해 줘야 된다. 그러므로 제일 사랑 받을 수 있는 하나의 아들이 이 땅 위에 와야 되는데, 그가 만민의 구세주인 예수님이다. (156-224, 66.5.25)
  
  
5) 제2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 
  
4천년을 거쳐 6천년을 역사해 오는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은 잃어버린 아담을 다시 찾는 것이다. 아담 대신 보내신 예수님은 제2 아담이다. 예수님을 놓고 하나님이니 뭐니 하고 있으나 그게 아니다. 성경에도 예수님을 후아담이라 했다. (7-116, 59.7.26)
  
예수님은 타락한 세상에 하나님편의 장자권을 지니고 왔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담을 통해서 이루려던 하나님의 본래의 이상과 목적을 달성시킬 수 있는 하나밖에 없는 맏아들이다. 4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났지만 전부 사탄의 아들딸이었지 하나님의 아들딸이 아니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독생자이며 제2의 아담이다. 제1의 아담은 타락했지만 제2의 아담인 예수님은 타락하지 않고 완성한, 하나님의 심정과 일체된 아들이다. (19-197, 68.1.7) 
  
예수님은 타락한 기준을 넘어선 아담으로 오신 분이다. 아담의 대신자로 오신 분이다. 예수님은 후아담, 즉 둘째 아담이다.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복귀된 사람으로서 이 지구상에 나타난 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19-192, 68.1.7) 
  
예수님은 아담이 타락했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에 일치될 수 있는 완성한 아담으로 오신 분이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을 보면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둘째번 아담이라고 지적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부여할 수 있는 참된 아들의 자리, 부부의 자리, 부모의 자리를 결정짓지 않고는 하나님이 계획한 가정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지상에 나타나야 되는 것이다. (54-108, 72.3.20) 
  
예수님은 잃어버린 아담을 대신하여 하늘이 찾아 세운 존재였다. 그러므로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의 탄생과 동시에 하나님의 가슴속에서 4천년 동안 사무쳤던 슬픔을 체휼하여 아기 예수를 붙들고 신 울어 줄 수 있고, 기뻐해 줄 수 있어야 했다. 그러한 사람들이 많아야 할 것이었는데, 탄생하신 예수님을 붙들고 기뻐해 주고, 하나님 대신 울어 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5-90, 59.1.3) 
  
제1 아담이 타락함으로써 원한이 맺히게 되었는데 제2의 아담, 즉 복귀된 아담격으로 오신 예수님은 어떤 일을 하셔야 했던가? 먼저 예수님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이 오시도록 해야 했고, 자신의 몸에 참사람의 뜻을 지녀야 했으며, 참다운 주관자가 되어야 했다. 이런 실체로 오셔서 천적인 사랑을 증거하고, 인간적인 사랑을 증거하고, 만물의 정(情)까지도 증거하여 하나로 통합시킬 수 있는 하나의 주체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다. (4-13, 58.2.16) 
  
하나님은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였다. 5일 동안에 모든 만물을 창조하고 6일째 되는 날에 아담을 창조하였는데 그 아담과 같은 분이 예수님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제2의 아담, 즉 후아담인 것이다.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아담이다. 하나님이 태초에 아담을 창조하고 그 아담을 중심삼고 해와를 창조하였으니, 이 후아담을 중심삼아서 후해와를 세워야 했는데 세우지 못했다. 해와는 누가 세워야 하느냐? 아담이 세워야 한다. 해와가 타락할 때 아담이 책임을 못했기 때문에 잃어버린 해와를 아담이 찾아 세워야 한다. (17-190, 66.12.18) 
  
예수님은 누구냐? 아담 대신이다. 잃어버린 아담 대신이다. 아담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권내에서 다시 품기 위해 찾아진 아담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여러분과 다르다. (39-86, 71.1.10) 
  
  
6) 인류의 조상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인류의 조상으로 오신 분이다. 우리 인류의 조상 아담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이 조상이 없어졌기 때문에 역사노정의 한때에 이런 분이 나타나야 된다. 하나님이 그런 분을 보내지 않고는 하나님이 없다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역사노정에서 하나님은 필시 그런 아들을 하나 보내야 된다. 그 아들로서 태어난 분이 예수님이다. (159-210, 69.5.12) 
  
예수님은 인류 앞에 참아버지로 서려고 했다. 하나님이 인류의 조상을 세우려다가 실패해서 구멍이 이렇게 뺑뻥 뚫어졌으니 이것을 때우기 위해서 오신 분이 예수님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인류의 타락한 거짓 조상이 아니라 타락하지 않고 본래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서 축복을 받고 이루어야 할 인류의 참된 아버지적 존재로 왔다. (160-38, 68.8.11) 
  
예수님은 어떤 분이냐? 본래 인류의 참조상이 되어야 할 인류의 조상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거짓 조상이 되었기 때문에 참조상의 인연을 다시 복귀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다. (160-210, 69.5.15) 
  
인류의 조상인 아담 해와가 인류의 참부모가 되어야 하는데 타락함으로써 그 자리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그 잃어버린 자리를 찾기 위해 오신 분이 예수님이다. (23-162, 69.5.18) 
  
예수님은 인류의 참부모요, 인류의 참조상으로 오신 분이다. 이러한 예수님을 죽인 것은 자기 부모를 죽인 것과 마찬가지다. 세상의 죄악된 부모를 죽였어도 목을 잘라야 할 텐데, 천륜을 대표하고 역사를 대표하고 인류의 소망을 대표하여 오셨던 참부모를 잡아 죽였으니, 하늘의 법도에 걸리지 않을 자가 없다. (15-335, 65.12.7) 
  
  
7) 인류의 참부모로 오신 예수님
  
역사상에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부모로 등장할 수 있었던 사람이 누구냐? 아담 해와다. 그 아담 해와가 타락한 후에 메시아를 보냈는데, 그 메시아는 누구냐? 아담 해와가 잃어버렸던 참부모의 자리를 이어받기 위해서 오신 분이 메시아요, 예수님이다. (120-186, 82.10.15)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써 참부모가 되지 못하고 거짓 부모가 되어 거짓 자손을 낳았으니, 이를 다시 복귀하기 위한 참부모로 오셨던 분이다. 아담 해와는 참부모가 못 된 동시에 참부부도 못 되었고, 참부부가 못 되었으니 참자녀도 못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완전히 믿고 예수님과 하나되면 참자녀 복귀, 참부부 복귀, 참부모 복귀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을 제일 사랑하라 한 것이다. 
참부모는 하늘이 공인하고 땅이 공인하고 천정이 공인하는 부모다. 하나님도 천사들도 이 땅의 피조만물도 '옳소이다' 하는 부모다. 참부모로서 공인을 받고 나타나신 분이 누구였느냐 하면 예수님이다. 또한 오시는 주님이다. (8-109, 59.11.22) 
  
아담이 완성하여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하나님의 혈족이 되었더라면 참부모의 역사를 중심삼고 인류는 참하나님의 직계 자녀로서 완성하여 완성 세계인 이상적 세계, 하나님이 주관하는 사랑의 세계에서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걸 상실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타락한 부모가 생겨났기 때문에 타락한 인류의 원죄를 청산할 부모로 왔다. 그러므로 그 부모는 영계의 부모로 와서는 안 된다. 지상의 우리와 같이 육을 쓴 모습,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흙으로 빚어 만들었듯이 그런 모습으로 와야 한다. (145-133, 86.5.1) 
  
예수님이 도대체 누구냐? 예수님은 잘못되어 잃어버린 부모 대신 하늘로부터 새로이 보내심을 입은 완성격 아버지다. (140-149, 86.2.9)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냐? 아담이 거짓 부모, 거짓 아버지가 되어 타락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참아버지로서 오신 분이다. 예수님이 참아버지로 올 때는 하나님과 사랑을 맺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했다. 또 잃어버린 해와를 찾아야 되기 때문에 독생녀, 또는 성신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성신이 곧 어머니다. 인류의 부모가 악을 뿌렸기 때문에 인류의 부모로서, 책임자로서 하나님을 중심삼은 이런 부모가 나와서 참부모가 되어야 한다. 참부모는 기독교를 통해서 와야 되기 때문에 이런 내용이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다. (160-281, 69.5.17)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다.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으니 하나님 대신자요, 인류의 참아버지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참아버지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참아버지 대신 존재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다. 여러분은 아버지를 잃어버렸다. 아무리 잘났다고 할지라도 타락한 후손임에 틀림없기 때문에 본연의 참아버지를 잃어버린 고아다. 의지할 곳이 없어 허덕이고 발버둥치는 고아다. 마음세계에 있어서는 고아와 같으니 허덕일 수밖에 없다. (8-125, 59.11.29)
  
예수님은 타락으로 잃어버린 인류의 참아버지가 될 수 있는 존재였다. 오랜 역사와 더불어 말씀의 실천적 기반 위에 세워진 말씀의 실체로서, 아버지 대신 존재로 오신 분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장 6절)'고 말씀하셨다. 오직 예수님만이 도의 중심이요, 마음의 중심이요, 심정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왜냐? 예수님이 아버지라는 내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만민의 구세주며 하늘땅을 대표하는 것이다. (7-267, 59.9.27) 
  
예수님은 무형의 아버지를 대신한 실체의 아버지였다. 그는 우리의 아버지다. 죽어서도 우리의 아버지, 살아서도 우리의 아버지다. 생애를 바쳐 모셔야 할 아버지요, 영생의 나라에서도 모셔야 할 아버지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아들딸을 만나 한번도 아들이라고 불러 보지 못하고 한번도 딸이라고 불러 보지 못한 채, 아들한테 몰리고 딸한테 몰리다 나중에는 창에 찔려 죽어갔다. 비통한 일 중에 이 이상 더 비통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8-250, 60.1.17) 
  
예수님은 누구냐? 메시아는 메시아인데, 형님 오빠격의 메시아가 아니고 아버지 어머니격의 메시아다. 성신은 어머니요, 예수님은 아버지다. 즉 예수님은 참부모의 자격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갈 자가 한 사람도 없다. (22-16, 69.1.1)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신랑과 신부라는 표준을 세우셨다. 아담과 해와가 뿌렸던 죄악의 쓴 뿌리를 몽땅 뽑아 버리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와 같은 입장에서 오셔서 이 땅 위에 아담 해와와 같은 입장을 재현시켜 놓고 그것을 뽑아 버려야 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직접 낳아 줄 아버지 입장이 되어야 한다. (21-183, 68.11.20) 
  
예수님은 도대체 누구냐, 메시아는 도대체 누구냐? 인간은 타락함으로써 거짓 부모가 생겨나 망할 수 있는, 지옥갈 수 있는 아들딸을 낳았다. 원리적으로 볼 때, 본래 인간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천국의 백성으로서 이 땅 위에 살아야 할 텐데, 타락의 보응으로 말미암아 원수세계에 품겼기 때문에 메시아가 필요하게 되었다. 메시아라는 분은 타락된 부모가 아니고 본연의 부모의 자격을 가지고 오는 분이다. 오늘날 인류가 자신들이 가야 할 탕감길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메시아는 탕감길을 가려서 인류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온다. (135-315, 85.12.15)
  
  
8) 선의 실체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4천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범죄로 인한 두려움을 느끼지 아니하고, 죄로 말미암은 슬픔을 감촉하지 아니한 사람, 즉 하나님이 선의 감촉과 선의 심정에 사무쳐서 지었던 본연의 아담 해와를 동경했다. 예수님에게는 인류의 참된 선의 조상이 되어야 할 아담 해와의 모습을 대신 복귀하기 위한 역사적인 인연과 하나님의 창조의 이념을 대신하여 왔다고 하는 신념이 사회의 어떠한 환경보다도, 살아가는 자기의 어떤 심적 동향(動向)보다도 컸다. (6-73, 59.3.29)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원한과 땅의 원한을 제거할 수 있는 선의 실체로 오신 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고, 하늘을 대신할 수 있고, 땅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님이 고대하던 이상적인 선의 실체로 이 땅에 오셔서 생활을 통하여 본연의 선의 수확물이 되어 하나님에게 바쳐지는 것이 그분의 사명이었다. 그러한 사명을 갖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불신으로 골고다에서 십자가를 지게 됨으로써 선의 수확이 되어야 할 분이 희생의 제물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2-79, 57.3.3)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인가? 예수님은 이 악한 세상에 하나의 누룩으로 오신 분이다. 여러분이 성경 말씀을 통하여 많은 내용을 알고 있겠지만, 누룩이란 어떤 것을 화합시키고 변화시키는 하나의 원료다. 예수님이 누룩으로 오셨다는 말은 예수님이 타락성을 갖고 있는 인간들을 본성의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사명을 갖고 오셨다는 뜻이다. (2-139, 57.3.17) 
  
상징적으로 볼 때 예수님은 우리 인류의 본연의 성품을 대신한 분, 즉 천성의 중심인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 계셨던 분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성품의 본바탕을 중심삼고 움직여야 하는 것이 인간의 양심이고, 그 양심을 중심삼고 나타나야 하는 것이 인간의 행동이다. 이것은 천적인 전체의 섭리를 총괄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2-65, 57.2.24) 
  
예수님은 천적인 이념을 세우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념을 인간생활 속에 실체화시키기 위해 순수성과 고결성을 지니고 나타났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처럼 하나님의 성상(性相)을 대신하여 순수성과 고결성을 지니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인격을 알아주는 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2-315, 57.7.7) 
  
  
9) 믿음 소망 사랑의 실체 되신 예수님
  
예수님은 어떤 분이냐? 4천년 역사가 흘러오는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대할 수 없었던 온 만민들 앞에 예수님은 믿음의 왕으로 나타나신 분이다. (1-31, 56.5.16)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 앞에 하나님을 대신한 하나의 실체로서, 하늘의 혈통을 대표할 수 있는 분으로서 예수님을 이 땅 위에 보냈다. 즉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제일 처음으로 하나님의 역사적인 소망을 성취해 드리기 위해 오셨던 분이다. (3-117, 57.10.13) 
  
예수님은 어떤 심정을 지니고 이땅에 나타나셨던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신해서 나타났고, 하나님의 역사적인 말씀을 대신하여 나타났으며, 하나님이 찾으려던 소망의 실체로 나타나셨던 분이다. (3-155, 57.10.20)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예스, 예스' 한 게 예수님이다. 선생님도 하나님 앞에 '예스, 예스, 예스'다. 내가 예수님한테 지려고 안 한다. 예수님보다 앞서려고 한다. (104-212, 79.5.6) 
  
4천년 역사노정에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기쁨을 소개할 수 없었으나,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비로소 하나님의 기쁨이 소개될 수 있었고 하나님이 허락하는 행복의 동산이 건설될 수 있었다. 예수님은 그와 같이 역사적인 새로운 존재다. 예수님의 한 모습은 선조들이 소망하던 하나의 실체요, 선조들이 싸워나오면서 찾고자 하던 소망의 존재였다. (6-271, 59.6.7)
  
예수님은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을 인계받은 인격자요, 하나님의 소원을 성취시킬 수 있는 진리의 말씀을 인계받은 분이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분이요, 하나님의 말씀의 열매를 거둘 수 있는 분이요, 하나님의 창조이상의 열매를 거둘 수 있는 실체인 동시에 사랑의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완전한 사랑의 인연을 갖추고 나온 분이다. (27-334, 70.1.1)
  
예수님은 선한 일을 행하며 살아라, 옳은 일을 해야만 천국 간다는 말씀은 안 했다. 그 분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배우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따라오라고 했던 것이다. 따라가게 되면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을 닮게 되는 것이다. (23-20, 69.5.11)
  
예수님은 본연의 주인공이요, 맨 처음으로 하늘의 이념을 갖춘 실체, 하늘과 영원히 동거할 수 있는 이념을 완성한 실체로 나타나셨던 분이다. 그 분은 인류를 전체적으로 대할 때에는 지도자시고, 우리 개인 개인을 대할 때에는 아버지시며, 본래의 창조이념세계를 찾아가는 입장에서는 신랑이시다. 예수님은 이것을 결론지어 놓고 가셨다. (6-110, 59.4.12) 
  
예수님은 우주적인 사랑의 표준이었다. (2-67, 57.2.24) 
  
  
10) 섭리역사 속의 예수님
  
우리 선조들 가운데 개인적인 뜻을 대표하여 세운 사람은 아브라함이요, 가정적인 뜻을 대표하여 세운 사람은 야곱이요, 민족적인 뜻을 대표하여 세운 사람은 모세요, 세계적인 뜻을 대표하여 이 땅에 세운 분이 예수님이다. (14-295, 65.1.10) 
  
예수님은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는 아담을 대신했고, 종족을 중심삼고 볼 때는 야곱을 대신했고, 민족을 중심삼고 볼 때는 모세를 대신했고, 나아가 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는 온 인류를 대신하는 책임을 지고 오셨다. 더 나아가서는 세계뿐만 아니라 하늘의 서러움까지도 그 마음에 지니고 이 땅에 오셨던 것이다. (4-165, 58.4.6)
  
예수님은 세계적으로 개인을 대표한 분이요. 세계적으로 가정을 대표한 분이요, 세계적으로 종족을 대표한 분이요, 세계적으로 민족을 대표한 분이요, 세계적으로 국가를 대표한 분이다. 그런 예수님이 국가를 중심삼고 싸우는 데 있어서 그 승패의 기준은 무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얼마만큼 사랑했느냐 하는 것이다. (48-309, 71.9.26) 
  
예수님은 아들의 사명을 하기 위하여 왔는데도 불구하고 아들의 사명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이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를 수습하고 예수님이 설 수 있는 가정을 수습하는 책임을 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책임을 못 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그것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 단계 떨어져 내려와 제자들을 모아서 가정 대표를 만들려고 했고, 교회 대표를 만들려고 했고, 나라 대표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50-205, 71.11.7)
  
예수님은 역사적인 열매다. 예수님은 역사적인 결실체인데 타락한 세계의 결실체가 아니다. 타락한 세계를 두고 말한 것이 아니다. 복귀섭리를 해 나온 하나님을 중심삼은 역사적인 결실이다. 사탄세계의 결실과는 다르다. (57-157, 72.5.31)
  
기독교를 볼 때 구약시대는 종의 도리를 한 역사다. 구약 전 시대는 종의 도리를 이어받기 위한 것이요, 구약시대로 들어오면서 양자의 도리를 이어받아 그 책임을 하고, 그 다음에는 아들을 이어받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메시아 사상이다. 메시아는 누구냐? 하나님의 사랑을 이어 받을 수 있는 아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독생자라고 했다. (113-94, 81.5.1)
  
메시아란 4천 년 동안 인간 세상을 대표해서, 혹은 지금까지 하늘땅을 대표해서 진액을 총합해 뽑아 내온 결실이다. 그 결실은 땅만의 결실이 아니다. 결실하기 위해서는 농사짓는 주인의 정성이 부합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주인과 같은 하나님이 들인 정성에 부합되어 완전한 결실체로 세워진 존재다. 예수님이 만세의 인간을 대표한 결실적인 기준에 섰기 때문에 그를 중심삼고 세계적으로 탕감할 수 있는 중심이 결정된 것이다. 그런 입장에 서지 않고는 제물이 될 수 없다. (157-76, 67.2.14) 
  
예수님은 어떠한 분인가? 그는 세상의 권세를 가진 분이 아니었다. 세상적인 학식을 가진 분이 아니었다. 그는 시대적인 반역자로 몰림받은 분이다. 죄악세상 가운데에 공의를 대신하여 몰림받았던 대표적인 주인공이었다. (4-76, 58.3.9) 
  
예수님은 소생, 장성, 완성의 단계를 거쳐 완성한 아들로서 당당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순수한 단계에서 태어난 분이다. 예수님은 소생․장성․완성의 단계로 볼 때, 완성단계에 올라설 수 있는 대표적인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과 이스라엘 민족과는 차이가 있다. 단계적으로 볼 때 하나는 타락한 아담 복귀형에 선 것이요, 또 하나는 완성한 아담형에 섰다는 것이다. (61-178, 72.8.30) 
  
예수님은 인류의 제물이다. 예수님이 양과 다른 것이 무엇이냐? 양은 아무것도 모른다. 예수님이 양과 다른 것은 우리 인간의 고통을 느낄 줄 안다는 것이다. 죄를 지은 것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인간이 어떻게 되었다는 것, 타락이 어떻게 되었다는 것, 타락한 그 비참함이 어떻다는 것, 그 결과가 어떻다는 것…. 과거를 잘 알고 현재를 잘 알고 미래를 잘 아는 분이다. (99-76, 78.9.1)
  
예수님은 외로우신 분이며, 서러움의 주인공이요, 서러움의 왕자이셨다. 그는 말할 수 없이 불쌍한 분이다. 이 땅 위에 어떤 불쌍한 사람, 어떤 외로운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보다 더 불쌍하고 외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2-214, 57.5.26) 
  
예수님은 천지의 만왕의 왕이요. 인류의 부모 중의 부모요, 스승 중의 스승이다. 3대 명함을 가졌다. (41-226, 71.2.16) 
  
  
11) 부활의 권한을 갖고 계신 예수님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은 영원하다. 예수님은 말씀과 실체가 하나되신 분인 동시에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과 생명을 대신한 분이었기 에 이 세상의 어떤 사망과 고난도 예수님을 영원히 죽일 수 없었다. 예수님은 부활의 권한을 이미 갖고 계셨던 것이다. (3-325, 58.2.2) 

예수님은 개인으로부터 얻어맞은 분이다. 나아가 제자들로부터 얻어맞았고, 교회로부터 얻어맞고, 국가로부터 얻어맞고, 세계로부터 얻어맞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것에 굴하지 아니했다. 어떤 개인에게 굴하지 아니했고 교회 앞에 굴하지 아니했으며, 민족과 국가 세계 앞에 굴하지 아니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역사적이고 내적인 파란곡절을 거치고 난 후에도 하늘 대한 불변의 충성심을 지녔기에 부활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4-148, 58.3.30)
  
예수님은 4천년 역사와 바꿀 수 있는 새로운 부활의 실체였다. 그는 역사노정에서 일찍이 보지 못했던 새로운 분, 하늘 땅을 대신해서 새로 오신 분이었다. (6-281, 59.6.7)
    
  
12) 만민의 구주이신 예수님
  
오늘날 기독교의 모든 교직자, 수많은 세계의 신학자들은 '메시아는 이 세계를 구해주러 오는 구주다' 하는데, 그 구주는 어떤 구주냐? 배고플 때 밥을 먹게 해주는 것도 구주요, 목 마를 때 물을 먹게 해주는 것도 구주요, 슬플 때 슬픔을 거두어 주는 것도 구주요, 고통스러울 때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도 구주요, 일국이 망할 수 있는 운명길에 설 때 그걸 해방권 내로, 자주적인 국가 형태가 되게끔 구해 줄 수 있는 사람도 국가의 구주가 된다. 그러나 그런 구주가 아니다. (108-228, 80.10.16) 
  
예수님은 심정적인 주의와 이념을 갖고 이 땅 위에 오셨다. 그렇지 않으면 구주가 될 수 없다. 설혹 구주가 되더라도 외적인 물건을 구할 수 있는 구주는 될지 모르나, 심정을 기반으로 하여 생명을 연결시켜 나가는 구주는 못 된다. 진정한 구주는 심정적인 내용을 갖춘 분이라야 한다. (9-251, 60.6.5)
  
예수님은 어떠한 분인가? 그분은 믿음의 메시아요, 생명의 메시아요, 사랑의 메시아다. 즉 그는 믿음의 구주요, 생명의 구주요, 사랑의 구주로 오신 분이었다.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인류역사를 주관해 오면서 자신의 생명과 사랑이 심적 기준을 이루기를 소망했는데 이것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실현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비로소 하나님의 섭리역사가 이 지상에서 다시 시작되었으며 복귀의 새로운 뜻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4-76, 58.3.9) 
  
타락한 인간을 구원해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시는 분은 어떤 분인가? 그분은 인간을 대표하는 입장에 계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영원히 끊어질 수 없는 인연을 맺고 나타나는 주인공이다. 이런 인연과 사명을 띠고 이 땅에 강림하셨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면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또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다. (3-32, 57.9.15)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셨다. 예수님이 가신 길이 어떤 길은 부모의 인연, 부부의 인연, 국가의 인연을 연결짓는 길이었다. 예수님은 천륜의 심정을 통하신 분이요, 천국의 심정을 통하신 분이요, 섭리역사를 주관하는 창조자의 심정을 통하신 선의 중심이다. (3-53, 57.9.22) 
  
오시는 주님은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주기 위해서, 인류를 사망에서 구해 주기 위해서 인류의 어머니를 찾아오신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아버지로 오셔야 한다. 기독교 사상의 중심이 사랑으로 되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님의 중심은 무엇이냐? 사랑이다. 그러기에 주님은 신부와 인연을 맺어야 할 신랑으로 오시는 것이다. (16-183, 66.3.22) 
  
예수님은 만민의 구주요, 4천년 동안 선민이 바라던 소원의 실체요, 천적인 사정과 천적인 심정을 품고 오신 분이었다. (10-57, 60.7.3) 
예수님의 눈은 창세 이후 4천년 역사를 거쳐온 하나님의 성상을 바라보는 눈이요, 인간의 잘못으로 인하여 영계의 지옥에 있는 뭇영인들을 바라보는 눈이요, 낙원에 있는 영인들의 원한을 풀어주어야 할 책임감을 느끼면서 바라보는 눈이었다. 또 하나님의 슬픔을 대신하여 땅에서 택한 이스라엘 민족과 온 세계 인류가 그와 하나된 인연을 갖지 못하고 반대하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예수님의 시선은 아담 해와 타락 이후 4천년간 슬퍼하던 하나님의 슬픔을 대신한 시선이었다. (4-175, 58.4.13)
  
예수님의 사랑, 인내심, 충성심 같은 것들은 예수님 자신에서 기원된 것이 아니다. 다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들에게 연결시키는 중보의 역할을 하신다. 무지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의 화신(化身)이요, 하나님적인 가치의 실체(實體)다. (2-344, 57.8.4)
  
  
13) 참된 구세주요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세계의 중심존재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온 분이다. 예수님을 믿는다 할 때 그 믿음 가운데는 세계가 다 들어간다. 하나님도 들어가고, 땅도 들어가고, 전체가 들어간다. (124-293, 83.3.1) 
  
하나님이 제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예수 그리스도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메시아가 됐다. 그래서 유대 나라에서 방향을 제시하고 나왔다. (107-18, 80.2.21)
오늘날 기독교에서 예수님을 주님이라 하고, 구세주라 하고 혹은 신랑이라 하는데, 그 모든 상징적인 말이 문제가 아니라 그 중심존재가 누구냐가 문제다. 진리를 말하되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된 자리에서 진리를 말하는 사람, 참된 행동을 하되 사랑을 동기로 삼아 행동하는 사람, 참된 삶을 살되 형식과 규례에 따라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기준으로 해서 살아가는 사람, 세상을 구하되 방법과 수단을 가지고 구하는 게 아니라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말과 행동을 통해 구하고자 하는 사람, 그런 분이 메시아다. (113-315, 81.5.10) 
  
예수님 뒤에는 하나님이 어디나 따라갈 수 있다. 예수님이 가는 데는 어디나 갈 수 있고, 예수님이 사는 데는 어디나 하나님도 살 수 있다. 그런 대표자가 구세주요, 메시아다. (237-269, 92.11.17) 
  
세계 중심자가 누구냐 할 때, 그는 종교에서 말하는 메시아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란 말은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이다. 그 만왕의 왕이 총칼을 가지고 지배하거나, 돈 또는 지식 가지고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이 24시간 화합할 수 있고, 24시간 좋아할 수 있는 본성의 사랑의 힘을 가지고 있어서, 세계 모든 사람들이 국가를 넘어 울타리로 삼고 싶고 품기고 싶어하는 사랑의 품을 갖고 있는 분이 메시아다. (121-199, 82.10.27)
  
  
14) 예수님과 성신은 어떤 분인가
  
예수님과 성신은 하나님의 아들딸이다. 그 아들딸을 기반으로 하여 아버지의 마음과 아버지의 심정을 접붙여야 한다. 그래야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 (8-207, 59.12.20)
  
예수님은 사랑할 수 있는 아들이요, 성신은 사랑할 수 있는 딸로 왔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잘 모르고 있다. 성신은 어머니신이다. 어머니신이 성신이다. 예수님은 아들이요 성신은 딸이다.이것이 인간의 표본이다. 인간은 예수님과 성신을 표본삼아 이들과 인연을 맺음으로써 하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다. (8-276, 60.2.7)
  
예수님은 후아담이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 예수님을 후아담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후해와가 있어야 할 텐데 후해와는 누구냐? 기독교에선 성신을 상징적으로 말해 왔는데 성신이 바로 후해와, 어머니 신이다. 인류의 어머니인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후해와로 어머니 신인 성신을 보낸 것이다. 구멍이 뚫어졌으면 뚫어진 구멍을 때워야 하고, 잃어버린 것이 있으면 잃어버린 곳에 가서 찾아야 하듯이, 해와로 말미암아 이 땅 위의 인간들이 전부 사망세계에 들어갔으니, 성신이 와서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9-138, 60.5.1)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아버지로 계시는 하나님 대신자로 예수님을 보냈다. 예수님은 구주의 입장이요, 아버지의 입장으로서 자식을 구하기 위해서 오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참아버지고 성신은 참어머니다. (19-164, 68.1.1)
  
세워진 인류의 조상이 타락했기 때문에 새로운 조상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새로운 조상을 중심삼고 섭리하기 때문에 새로운 조상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이치가 딱 맞다. 예수님 한분으로는 통하지 않기에, 예수님과 성신을 통해야 한다. 즉 예수님은 아버지 신이고 성신은 어머니 신이니 타락한 인간들은 누구나 그런 부모의 인연을 통하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다. (20-268, 68.7.7)
  
성신은 어머니 신이다. 그 어머니 신 앞에 예수님은 아버지의 신이자, 구주(救主)다. 인간을 진짜 사랑하는 하나님이라면 인간에게 종의 구주가 아니라 아버지 구주를 보낼 것이다. 종의 구주로서 인간을 구해 주면 인간도 기분 나쁘다. 만일 사랑하는 아들딸이 물에 빠졌다면 어머니 아버지가 '야! 이 종 녀석아. 우리 아들딸이 빠졌으니 빨리 들어가서 건져 오거라, 이놈의 자식' 그러겠는가? 사랑하는 아들딸이 물에 빠졌다면 형제보다도 부모가 먼저 뛰어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주 중에서 형제 구주도 원치 않는다. 부모 구주를 원한다. (48-226, 71.9.19)
  
예수님과 성신이 지금까지 무엇을 하느냐 하면, 해산의 사명을 하고 있다. 예수님과 성신이 해야 할 사명은 아들딸을 해산하는 일이다. (75-38, 75.1.1)
  
암탉만 있으면 홀알(무정란)을 낳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람을 다시 낳으려면 어머니 아버지가 있어야 한다. 자기가 못 낳겠으면 접붙여서라도 낳았다는 조건을 세워야 할 텐데 예수님이 죽음으로써 그럴 수 있는 기반이 없어졌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영적 부모의 자리에 서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님은 구세주인 동시에 나를 다시 낳아 준 영적인 아버지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면서 성신을 보내 준 것이다. 성신은 어머니 신이다. (95-170, 77.11.11) 
  
아담 해와가 이 땅 위에서 참된 사랑을 하다 저나라에 가면 하나님 아버지 어머니가 생겨난다. 무형의 하나님이 실체를 쓰는 것이다. 인간의 아버지로 실체로 나타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담의 모습으로, 해와의 모습으로, 하나님 아버지 어머니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예수님이 왔다 가기 이전까지 성신은 참어머니의 성상이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와 천년 만년, 여자는 남자와 천년 만년 같이 살고 싶어하는 것이다. (128-329, 83.10.2)
  
인간이 거듭나려면 예수님과 성신을 통해서 예수님과 관계를 맺고, 예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중심삼고 다시 태어나야 된다. 그 조건을 거쳐야 된다. 그렇다고 직접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통해서 다시 태어났다는 조건을 거쳐야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 품에 품겨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아버지를 더 사랑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구보다 나를 더 사랑하라'고 한 것이다. 아버지를 더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아버지 뼛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참부모, 영적 부모다. 예수님을 누구보다 사모해야 한다. (132-33, 84.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