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의 뜻과 메시아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한 인간
전세계 기독교인들은 주님이 다시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주님이 왜 다시 와야 되느냐? 주님은 먼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다시 와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영원하고 불변하고 절대적인 분이기 때문에 그분의 뜻은 단 하나지 둘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기 때문에 그분이 정하고 그분이 뜻한 것은 반드시 성사하고야 맙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이 아담 해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분부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따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경고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경고의 말씀을 한 것은, 선악과를 따먹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악과를 따먹지 않고 이루어질 뜻의 세계로 가게 하기 위해서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하나님이 본래 의도한 뜻의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타락은 공중이나 혹은 높은 데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본래 뜻하던 그 뜻에서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가 뜻 가운데 있었다면 영원할 수 있는 영생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뜻에서 떨어짐으써 사망의 세계에 있게 된 것입니다. 떨어졌다는 것은 병난 것을 말하는 것이요, 고장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6장 6절을 보게 되면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한 것을 탄식했습니다. 그토록 하나님이 후회한 것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타락하기를 바랐던 것이 아니라 타락하지 않기를 바랐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는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74-137, 74.11.28)
본래 하나님이 의도한 뜻의 세계는 어떠한 세계인가
타락하지 않았던, 본래 하나님의 의도한 뜻의 세계는 어떠한 세계냐?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서, 하나님의 선 가운데서 완성을 향하여 자랐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오늘날 인류역사노정에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자란 참다운 형제의 전통이 성립되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형제의 전통 위에서 이들이 성숙하였더라면 ─하나님이 일남 일녀를 지은 것은 이들이 성숙하면 반드시 성례식을 이루어 주기 위해서임에 틀림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불러다가 친히 축복하여 결혼식을 올려 주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됐더라면 참된 부부의 전통이 남아졌을 것입니다. 또한 서로 사랑하는 참된 부부 사이에서 자녀가 태어남으로써 참된 부모가 성립되었을 것이며, 이 참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딸은 죄 없는 선한 아들딸이 되었을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인류역사는 하나님이 보증하는 사랑 가운데서 참된 부모의 죄 없는 자녀로서 시작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참된 가정이 생겨났으면 그 가정을 중심삼고 횡적으로 벌어짐으로써 참된 종족이 형성되었을 것이고, 그 종족은 참된 국가로 발전되었을 것이며, 그 국가는 참된 세계로 발전되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는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고, 하나님을 세계를 다스리는 왕으로 모실 수 있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주권국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섰다면, 오늘날 우리 인류는 단일민족, 즉 아담의 전통을 이어받은 아담의 후손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서 그 아담이 하던 말과, 아담이 이룬 생활 방도를 전통으로 해서 이상적 문화세계를 창조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는 하나님을 영원히 주권자로 모시고 하나님의 주관을 받는 나라기 때문에 그곳이 바로 지상천국입니다.
하나님에게 치리 받던 사람들이 지상에서 살다가 가는 곳이 영계의 천국입니다. 그렇게 산 어머니 아버지가 천국에 가게 됨과 동시에 그 가족이 같이 가고, 그 종족․민족․국가․세계가 몽땅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영원한 천국입니다. 그 자리에는 구주가 필요 없습니다. 거기에는 종교가 필요 없습니다. 기도니 하나님을 믿는다느니 하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오늘날 신앙이니, 종교니, 구주니, 지옥이니 하는 말이 생겨나게 된 동기는 타락으로 인해 초래된 결과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하나님이 구상한 뜻의 세계를 한 번도 이루어 본 적이 없으며, 지금까지 타락한 결과의 세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74-138, 74.11.28)
타락으로 말미암은 결과의 세계
타락한 결과 우리는 사망권 내에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따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한 그 말씀과 같이 우리는 사망권 내에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예수님은 사탄 마귀가 우리 인류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셔야 할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써 사탄 마귀를 아버지로 모시게 됐다는 이 원통한 사실이 바로 타락의 보응입니다.
그런 연고로 사탄의 품에 품겨 자라는 아담과 해와는 서로가 원수의 입장에 섰습니다. 해와가 아담을 타락시켰기 때문에 타락한 아담의 입장에서 보게 되면 타락시킨 해와는 아담의 원수입니다. 이처럼 타락으로 서로 원수와 같은 형제의 전통, 죄를 가질 수밖에 없는 형제의 전통이 세워졌습니다.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성숙한 것이 아니라 사탄 마귀의 지배하에서 자라 결혼식을 올렸는데, 그 결혼식으로 인하여 죄 있는 부부의 기원이 성립되었습니다. 죄 있는 부부의 성립과 더불어 죄 있는 가운데서 아들딸을 낳음으로써 죄 있는 부모가 성립되었고, 죄 있는 아들딸이 번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가 원수와 같은 입장에서 싸우는 악한 형제들이 번식되어 그 가정들이 종족을 이루고, 종족들이 분립되어 국가를 이루고, 국가들이 분립되어 세계를 이루어 놓은 것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성경은 여러 곳에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31절에 이 세상 임금을 사탄 마귀라고 했듯이, 자연히 이 세계는 사탄 마귀가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이 세계 가운데서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야 할 텐데 어떻게 사탄 마귀, 하나님의 원수가 이 세상을 지배하는 왕이 되었느냐? 이것은 인간 타락의 결과입니다. 더 나아가 공중 권세까지도 사탄 마귀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정녕 하나님이 원하던 뜻의 세계냐? 아닙니다. 타락함으로 인해 슬픈 결과의 세계가 초래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세계에 떨어진 인간들이, 하나님의 원수, 사탄 마귀 앞에 지배받는 이 인간들이 자기 스스로 하나님이 원하는 본연의 뜻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느냐? 불가능합니다. 사탄이 돌이켜 주지 않는데, 그걸 뚫고 나갈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밖에 할 수 없습니다.
이제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타락함으로 인해 사탄 마귀가 생겨났다는 것과 사탄이 세계를 지배하여 사탄주권세계가 되었다는, 사탄이 이 땅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죄를 청산하고 사탄 마귀의 주권을 타파해서 인류를 하늘편으로 찾아오고 사탄을 완전히 매장할 수 있는 계획을 하나님은 다시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74-140, 74.11.28)
메시아의 사명
오늘날 기독교니 뭐니 하는 종교권을 왜 만들어 놓았느냐? 그것은 악한 사탄 마귀에게서 분립해 본연의 뜻의 세계로 돌아가게 하기 위한 준비의 터전입니다.
하나님이 이 사탄 마귀의 주권을 빼앗기 위해서는 개인으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편에 선 강력한 하나의 나라를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하나님이 주류적인 입장에서 택해 준비한 나라가 이스라엘 나라요, 그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지금 우리는 구원섭리과정에 있습니다.
구원이라는 말은 본연의 자리에서 떨어진 것을 다시 찾아가는, 복귀해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복귀의 길이 곧 구원의 길입니다. 구원섭리의 뜻은 본래 하나님이 계획하셨던 뜻이 아닙니다. 이 구원섭리를 끝내고, 타락하지 않았던 본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책임자로 오시는 분이 바로 구세주, 메시아입니다.
메시아는 사탄세계의 주권을 빼앗아 인류로 하여금 속죄하고 하늘나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본연의 뜻의 세계로 데리고 들어가기 위해서 오십니다. 메시아가 이 땅에 와서 본연의 세계로 들어갈 때는 종교도 끝나고, 구세주의 사명도 끝나고, 지옥도 끝나고, 사탄 마귀와 이 사탄세계의 모든 것이 끝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중심삼은 하늘나라, 하나님이 통치하는 본연의 뜻의 세계로 돌아가게 됩니다.
오늘날 이 세계는 타락한 세계임에 틀림없기 때문에 우리는 구주를 바라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메시아가 오시는 뜻이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의 본연의 세계로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았고, 인류가 본연의 세계로 돌아가려면 개인보다도 국가 형태를 갖추어 세계 형태로 확대시켜서 하나님 편의 공고한 터전을 넓히고 사탄세계를 굴복시켜 사탄주권을 빼앗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렇게 하여 하나님 편으로 돌이키려는 것이 메시아의 사명인 것을 알았습니다. (74-142, 74.11.28)
하나님의 소원과 예수님을 보낸 목적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낸 목적은 잃어버린 아담을 찾기 위한 것이요, 잃어버린 아담을 찾아서 잃어버린 해와를 재창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담으로 지음받은 기준에서 아담 대신 사명을 짊어지고 해와를 이 땅에서 다시 찾아 참된 부모의 자리에 서야 됩니다. 예수님을 그런 자리에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예수님을 보낸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세워 그를 위주로 참다운 부모가 생겨났으면 참다운 자녀를 번성시켜 그 자녀들로 하여금 참다운 부모의 축복을 받아 참된 가정들이 되게 해야 합니다. 이 가정들을 점점점 발전시켜 참다운 종족, 참다운 민족, 참다운 국가, 참다운 세계를 이뤄야 합니다. 이와 같이 참부모의 혈연을 통한 백성을 세워 한 나라를 이루려는 것이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낸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아담 입장이면 예수님은 아담이 타락하여서 실수하였던 모든 내용을 탕감해야 됩니다. 아담의 자리에서 하나의 가정을 찾아, 여기에 자녀를 세워서 가인적인 자녀를 아벨적인 자녀로 복귀시켰다는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그리하여 잃어버린 세계를 가인적인 세계에 세움으로써 찾아진 메시아의 후손을 아벨적인 세계형으로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상극적인 입장에 서지 아니하고 하나의 주체를 대해 대상적인 입장에 서 가지고, 예수님을 아벨적인 국가를 대신할 수 있는 중심 대표자로 모시고 그 앞에 굴복했더라면, 거기서부터 하늘나라의 부모가 생겨나고 하늘 나라의 가정이 생겨나고 하늘나라의 족속과 민족과 나라가 생겨나니, 그 나라를 중심삼고 하늘 왕궁을 위주한 천지의 중심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낸 목적이었습니다.
오늘날 타락한 우리에게는 아벨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천하를 대표할 수 있는, 하늘과 땅을 대신하고 아버지의 창조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실체, 즉 아버지의 본성상과 본형상을 대표할 수 있는 실체로 빚어 만든 것이 아담이었는데, 그 아담이 깨져 나감으로써 다 잃어버렸던 것을 다시 후아담으로 오시는 예수님이 찾아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소원하던 아버님 대신의 실체를 위주로 하여 오늘날 인간과 하늘을 연결시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인간은 타락한 후손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모셔야 합니다. 메시아로 모시는 데 있어서는 세계적인 아벨적 대표로서 그 가치를 하늘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로 알고, 그 앞에 굴복하여 내 본질을 잘라 버리고 접붙임으로써 나도 그와 같은 가치의 자리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알고 굴복했더라면 거기에서 가인과 아벨세계를 복귀하여 종에서 양자의 과정을 거쳐 직계 자녀의 자리까지 나가게 됩니다.
직계 자녀의 자리까지 나간 다음에는 부모를 찾아야 합니다. 부모를 찾아서는 뭘 할 것이냐? 이 천지간에 사탄이 나라를 만들어 놓고 세계를 호령하고 있으니, 이 사탄세계를 대신한 하나의 국가를 만들고, 하나의 주권을 세워서 사탄세계를 호령하는 선의 국가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해야 할 책임이었습니다. (153-221, 64.1.3)
예수님 앞에 이스라엘 민족이 취해야 했던 자세
아담이 타락한 이후 예수님 때까지의 4천년 이스라엘 역사는 외적으로는 세계를 찾는 역사였지만, 내적으로는 단 한 사람을 찾는 역사였습니다. 그 한 사람이 와서 세계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그 한 사람이 가정의 기반과, 종족의 기반, 민족의 기반, 국가의 기반을 닦지 않고는 이 세계를 선한 세계로 복귀할 수 없습니다. 그런 연고로 하나님은 그 한 사람이 오기 전에 선민권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의 선한 가정, 하나의 선한 씨족, 하나의 선한 민족, 하나의 선한 국가를 미리 세워 놓았습니다. 그렇게 세워 놓은 것이 이스라엘 민족이었던 것입니다.
그 이스라엘 나라에 하나의 남성이 나타나 그 나라와 하나되는 날에는 자연히 가정이 찾아지는 것이요, 종족이 찾아지는 것이요, 자동적으로 민족이 찾아지는 것이요, 나라도 저절로 찾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라를 중심으로 준비했습니다. 외적으로 보게 될 때에는 나라를 위해 준비했지만, 내적인 입장에서는 한 사람을 위해 나라를 약속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이스라엘 민족은 몰랐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위해 이스라엘 나라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이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오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에서부터 섭리의 방향과 엇갈리게 되었고, 죽음의 길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세운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예수님으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 민족이 비참하니까 비참한 이스라엘을 구할 구주가 영광 가운데에 오셔서 로마를 누르고 원수의 세계를 정복해 줄 것으로 알았습니다. 이렇듯 이스라엘이 요구하는 주님으로서, 구주로서 예수님이 오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입장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 앞에 굴복해야 했습니다. 로마제국 앞에 굴복하는 것 이상으로 굴복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이런 것을 몰랐습니다.
그때 사탄세계를 대표한 세계적인 왕국 앞에 굴복당한 이스라엘 민족이 취해야 했던 본연의 자세는 어떤 것이었는가? 로마제국 앞에 강제로 굴복당한 이상으로 예수님 앞에 굴복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로마제국 앞에 굴복하는 것 이상으로 예수님 앞에 굴복하지 못했습니다. 거기서부터 예수님의 수난의 길이 시작되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로마를 제쳐놓고 로마의 압제 하에 있을 때보다 더한 수난이 있더라도 예수님을 위해 죽겠다고 하며 예수님과 규합하였더라면 예수님은 절대 죽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었더라면 예수님은 가정을 찾을 수 있었고, 이스라엘을 대표할 여성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4천년 역사를 탕감할 수 있는 여성을 찾을 수 있게끔 내적인 인연을 미리 준비해 놓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과 하나되기만 했으면 이러한 하나의 여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그 여성을 찾음과 동시에 하나의 씨족을 찾는 것도 문제없었습니다. 하나의 종족, 하나의 민족을 찾아서 일시에 출발함으로써 세계적인 행차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렇게 되어야 할 섭리는 근본적으로 전복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나라가 받들지 못하니 민족을 찾아 헤매야 했고, 민족이 받들지 못하니 종족을 찾아 헤매야 했으며, 종족이 받들지 못하니 가정을 중심삼고 섭리해야 될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정마저도 그를 받들지 못했습니다. 결국 가정이 깨어져 나가니 가정을 이루어야 할 해와, 즉 상대적 여성을 찾는 것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30-212, 70.3.23)
예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의 처지
반드시 국가와 민족과 종족과 씨족과 가정을 중심삼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반으로 한 가정을 중심삼은 여성을 찾지 않고는 이스라엘을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배반을 하고, 민족과 종족과 가정이 전부 예수님을 배반하는 자리에 섰기 때문에 외로운 자리에 선 예수님 앞에는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을 위해야 했던 나라는 망해야 됩니다. 예수님을 위해야 했던 민족도 망해야 됩니다. 그 종족, 그 가정 전부가 산산조각이 나야 됩니다. 그래서 2천년 동안 이스라엘 나라가 그러한 역사노정을 걸어온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존재가 증명됩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세웠는데 그들이 예수님을 배반했으니 그들은 원수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예수님이 왔다 간 이후 2천년 가까운 역사시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인간들에게 밟힘을 당하고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세계를 위하여 오신 만왕의 왕 되시는 메시아를 모시지 못한 것을 탕감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몇천 년 동안 탕감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다시 나라를 회복해서 이스라엘 주권을 찾게 되면 또 싸워야 됩니다. 옛날 로마제국과의 싸움 이상의 싸움을 사방으로 해야 됩니다. 그때는 일방적인 싸움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출발할 때 국가적 기반 위에서 사방으로 세계를 향하여 출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국가를 대신해서 싸워 이겨야 할 책임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었는데도 이스라엘 민족이 그 책임을 못했고, 예수님을 중심삼고 그 시대에 무난히 로마제국을 굴복시켰더라면 세계 전체가 굴복했을 것인데 도리어 예수님을 죽음의 자리로 몰아넣었기 때문에 그것을 탕감해야 됩니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때 이스라엘 민족 600만이 학살당했던 것입니다.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되지만 국권을 회복한 그 자리에서는 사방의 국가들, 즉 아랍국가들을 상대로 극복해 나가지 않으면 새로운 역사시대에 소생하는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입장입니다. (30-214, 70.3.23)
유대교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들어야 했다
만일 유대교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받아들였더라면 오늘날 기독교는 나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죽은 예수님을 중심삼고 세계 기독교가 민주 세계권을 움직일 수 있는 기반을 닦았는데, 산 예수님을 중심삼고 유대교 터전이 일치되었더라면 단시일 내에 세계를 제패했을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오늘날처럼 유대교인이 중동에서 이스라엘 주권 기반을 완전히 닦아 세계로 진출하는 데 있어서 신음하는 터전이 아니라, 벌써 세계를 지배하고 세계를 하나 만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교를 위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왔지, 오늘날 기독교를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4천 년 동안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그 메시아를 맞게끔 하기 위해 4천 년 동안 준비했던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이 바라던 메시아가 왔는데 어찌하여 맞아들이지 못했느냐?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냐? 로마 총독 빌라도가 못박은 것이 아니라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님을 잡아 죽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것은 마치 오늘날 기독교가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주님이 오면 그를 잡아 죽이게 되는 것과 딱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 에 와서 죽지 않고 이루어야 할 뜻을 다 못 이루었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사탄 마귀의 주권을 깨부수고 사탄 지배하에 있는 세계 인류를 하나님의 본연의 뜻 세계로 돌아가게 해야 하는 것이 본연의 뜻인데도 불구하고 그 일을 하지 못했으니 주님이 다시 오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다시 오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유대교를 평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역사적 사실을 밝힘으로써 그릇된 것을 회개하고 이제라도 바른 길을 찾아가게 하기 위해서 이것을 밝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라도 유대교인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회개하고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기독교를 대표하는 이 미국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 길이 유대교인이 국가적으로 세계무대에 나설 수 있는 하나의 길입니다. (74-144, 74.11.28)
유대교와 기독교와 통일교회가 바라는 메시아는 하나
그러면 도대체 기독교의 사명이 무엇이고 유대교의 사명이 무엇이냐? 주님이 오시면 주님과 완전히 하나돼야 합니다. 메시아가 와서 '자, 이리로 전체가 가자' 하고 지향하면 전체가 가야 됩니다. 전체가 하나되어 돌아가야 됩니다. 사탄세계를 정복하기 위해서 나서면 거기에 협조해야 됩니다. 사탄을 추방하는 데 있어서 최대의 협조적 기반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유대교인과 기독교인과 오늘날 통일교회가 바라는 분은 딴 사람이 아니라, 메시아 한 분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나고, 그 하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대표자가 메시아이기 때문에 유대교인이 바라는 메시아와 기독교인이 바라는 메시아와 통일교회가 바라는 메시아가 다를 수 없습니다. 한 사람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방 종교에도 재림사상이 있어서 자기들의 도주가 다시 온다고 믿고 있지만, 다시 온다는 그 말이 그 교주를 지적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앞으로 올 메시아 한 사람 앞에 귀결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방계적 섭리의 뜻 가운데서 그렇게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메시아입니다. 메시아가 문제입니다. 메시아를 만나지 못하면 본래의 하나님의 뜻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계 만민은 구세주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성립됩니다.
메시아 한 분을 중심삼고 보면 유대교는 맏형님과 같고, 기독교는 둘째 형님과 같고 통일교회는 세째와 마찬가지입니다. 형제입니다,형제. 그러면 유대교인들이 바라던 메시아와 기독교인들이 바라던 메시아가 한 사람인데, 유대교인들이 바라던 그 한 사람의 메시아가 기독교에서 믿는 예수님이냐? 만일에 예수님이 유대교인들이 바라던 메시아였다면 유대교인들은 책임 못 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기독교에서는 재림주를 바라고 있습니다. 두번째 주님을 바라고 있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도 재림주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하나님은 메시아를 맞기 전에 유대교와 기독교와 통일교회에 하나되지 못한 내용이 있다면 이것을 밝혀서 하나 만드는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하나의 메시아를 두고 보면 모두 형제이기 때문에 유대교는 기독교를 받아들여야 할 입장이었고, 기독교는 통일교회를 받아들여야 할 입장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영계에 들어가 보니까 이 땅에 왔던 예수 그리스도는 2천 년 전에 유대교인들이 오기를 바라던 바로 그 메시아였습니다. (74-143, 74.11.28)
기독교는 선생님과 통일교회를 대해 이단이니 뭐니 하며 상당히 논란을 벌이고 있는데, 선생님이 이단이 아닙니다. 기독교와 유대교를 하나 만들고, 앞으로 주님이 어떻게 오시는가를 밝히 가르쳐 줘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내가 이런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아모스 3장 7절에 하나님은 그 종 선지자에게 밝히 가르쳐 주지 않고는 역사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끝날에 벌어질 일을 예고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을 두고 볼 때, 선생님이 그런 사명을 못 한다고 하는 근거가 있습니까? 결과를 두고 보십시오. 하나님이 같이 하면 흥할 것이고, 하나님이 같이 안 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유대교나 기독교나 통일교회는 하나의 메시아를 중심삼은 한 형제이므로 엇갈린 모든 것을 다 해소해서 메시아와 더불어 죽든지 살든지 완전히 하나되어 메시아를 맞아야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하나님이 원하는 종교에 대한 뜻입니다. (74-146, 74.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