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랑의 도리(사랑이야기 - 제 2 권 사랑 원론편 - 제 4장 사랑의 이상)

무지... | 20180529085321

5. 사랑의 도리
    
나를 알아야
  
나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냐 하면, 종적인 하나님을 중심한 사랑의 계승자요, 횡적인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한 계승자의 결실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은 몸과 마음이 자동적으로 90각도로 하나되어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타락되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혈통을 통해서 태어났습니다.
사탄은 상대이상이 되는 아담과 해와를 보호하지 못하고 파괴시켰습니다. 우주의 원칙에 반발한 것입니다. 우주력이 보호하는 아담 해와에 침범해서 겁탈해 버렸습니다. 그 핏줄을 이어받아서는 하나님의 본질인 사랑 앞에 또 다른 플러스로 등장했기 때문에, 이율배반적인 입장이 됐기 때문에 몸과 마음은 영원히 원수가 되어 싸워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을 제거하는 것이 종교의 사명입니다. 종교가 아무리 하더라도 그 진리를 모르면 해방이 안 됩니다. 이론의 모든 걸 깨쳐서 그것을 해명해야 그 실체, 실제적 사회환경의 존재성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이론에 맞지 않는 존재성은 남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사랑길을 찾아가야 할 인간입니다. 인간 하면 남자 여자인데, 남자는 무엇이고 여자는 무엇이냐? 왜 태어났느냐? 여자로 태어난 걸 한탄한 여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남자로 태어나지 왜 여자로 태어났어?' 하고 한탄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탄할 것 없습니다.
남자는 밖에 나가 온갖 것을 잡아서 집에 돌아와 누구한테 자랑하느냐? 평면적으로 자랑할 사람은 아내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남자는 춘하추동 사계절 동서남북으로 돌아다녀서 무엇을 얻든지 잡든지 해서 아내에게 다 줍니다. 남자의 수확물을 거두어서 지킬 수 있는 주인이 여자입니다. 나중에는 사랑까지도 갖다 줍니다. 남자는 주려고 하고, 여자는 받으려고 합니다.
시집가는 사람한테 '너 왜 시집가?' 하면 사랑받기 위해서 간다고 그럽니다. 사랑하기 위해서 시집간다는 말 들어 봤습니까? 그런 말들이 왜 나오느냐? 그건 활동시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자는 사랑을 받는 동시에 사랑을 해야 됩니다. 구형이니까 양(陽)쪽으로 왔으면 남자는 음(陰)쪽으로 돌려줘야 됩니다. 돌려주면 그 사랑을 중심하고 생명으로 돌아가려고 그럽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는 남편의 생사지권을 염려하면서 '아이구, 영원히 계시오' '아이구, 건강하소' 이러는 것입니다. 자기는 못먹더라도 남편이 건강하기를 바라고, 뒷면으로 높아져야 됩니다. 뒷면이 있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밀어줬으면 그걸 반대로 일으켜서 돌아가야 됩니다.
남편도 사랑 가운데서 아내의 뒷골목을 거쳐 넘어가야 되고, 아내도 남편의 뒷골목을 거쳐 넘어가야 됩니다. 그래야 구형이 형성됩니다. 구형 가운데 포괄된 부부로서 서야만 90각도를 중심한 중앙선에 가까이 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남자나 여자나 왜 태어났느냐 하는 문제의 답은 간단합니다. 남자는 여자 때문에 태어났고, 여자는 남자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싸우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좋아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좋아하는 데는 지식이나 무슨 물질이 문제가 아닙니다. 환경적인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아내라는 걸 생각할 때는 다 용서해줍니다. 사랑하는 남편이라고 생각할 때는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화를 내서는 안 됩니다. 화가 나더라도 구형을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첫번 눈을 맞춘 그 인연을 존중해야 됩니다. 그걸 벗어나면 우주에서 추방당합니다. (187-76)
  
  
왜 결혼해야 되느냐
  
남자 여자는 사랑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종적인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될 때 횡적인 사랑의 열매를 맺음으로써 종적인 사랑과 횡적인 사랑이 하나될 때는, 참사랑으로 몸과 마음이 하나되면 동위권을 갖습니다. 같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밀실에 들어가면 나도 거기에 찾아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이 가는 데는 어디든지 같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남편이 벌거벗고 자는데 아내가 벌거벗고 남편 이불에 들어가면 죄입니까, 죄 아닙니까? 그럴 때 남편이 '왜 벌거벗고 들어와?'하며 발길로 차는 것이 아니라 어서 들어오라고 환영합니다. 아내도 그렇습니다. 자기가 벗고 자는데 남편이 벌거벗고 들어오려고 하면 어서 들어오라고 이불을 젖혀줍니다. 남자 여자는 사랑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남자 여자는 왜 결혼해야 되느냐?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하고 영존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영존하느냐?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완전히 하나될 때는 사랑을 중심한 우주력이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할머니식구들이 선생님을 찾아오는 것은 사랑의 힘이 끌고 오기 때문입니다. 
소가 암내를 낸다는 것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암소가 새끼를 배려고 할 때는 수놈 냄새가 나면 담이 있건 뭣이 있건 다리가 부러져도 받아 버리고 수놈한테 달려갑니다. 주인이 있어도 주인을 받아 치고 나갑니다.
동물의 사랑도 그렇게 직행하는데 인간의 사랑은 얼마나 강하겠습니까? 젊은이들을 보면, 남녀가 서로 사랑할 때는 죽자 살자 결혼하겠다고 합니다. 여자는 남자 사랑을 받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자기 젖가슴이고 뭣이고 짓눌러주고 밟아주고 마음대로 해주는 남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가 좋습니다.
여자의 젖가슴이 큰 것도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서고, 궁둥이가 튀어나온 것도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서입니다. 여자들은 20세가 되면 얼굴보다는 입술이 더 빨개집니다. 보통 때 보면 입술이 더 빨개집니다. 이게 신호등입니다.
여자 몸의 신호등이 바로 입술입니다. 입술이 빨개지면 눈, 코, 귀, 입, 손, 할 것 없이 온 몸이 민감해집니다. 사랑만이 오관의 자극을 통일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폭발적으로 흥분하는 것입니다. 눈도 만세, 코도 만세, 입도 만세, 귀도 만세, 궁둥이도 만세, 다 만세입니다. (187-78)
  
  
가정의 화목은 여자가 잘 해야
  
그러면 여자가 남자를 따라다녀야 되겠습니까, 남자가 여자를 따라다녀야 되겠습니까? 생리적으로 볼 때 여자가 빨리 성숙합니까, 남자가 빨리 성숙합니까? 여자가 빨리 성숙합니다. 그렇지만 남자는 모릅니다. 그러니 여자들이 남자보다 냄새를 더 피웁니다.
꽃이 먼저 향기를 피웁니까, 나비가 먼저 날기 시작합니까? 꽃이 향기를 피워야 나비가 납니다. 이건 여자와 마찬가지입니다. 천지이치가 그렇습니다. 여자는 15, 16세가 되면 '내 상대는 어디에 있느냐?' 하면서 야단입니다. 곱게 치장을 하고는 자기 짝을 찾습니다. 아무리 얌전한 여자라도 사춘기가 되면 남자들이 걸어가는 궁둥이를 훔쳐보면서 '저놈의 자식, 나를 몰라보고 가는구나' 그럽니다. 얌전한 것 같아도 속으로는 '아이고, 휘파람이라도 한번 불고 가지'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여자는 가짜 여자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할 때 좋아하는 것이 남자하고 여자가 다르겠습니까, 같겠습니까? 벼락을 칠 때 큰소리가 나는데, 플러스 전기하고 마이너스 전기가 같이 크게 들릴까요, 따로 크게 들릴까요? 같이 크게 들립니다. 남자 여자가 전기가 통했는데 같겠습니까, 다르겠습니까? 같습니다.
그러면 여자가 쉰 살이 넘어서 혼자 되면 시집가고 싶겠습니까, 안 가고 싶겠습니까? 또 쉰 살 된 홀아비는 장가가고 싶겠습니까, 안 가고 싶겠습니까? 가고 싶어합니다.
혼자 사는 쉰 살이 넘은 어머니를 시집 보내드리는 딸이 불효 여자입니까, 시집 안 보내드리는 딸이 불효 여자입니까? 어떤 여자가 효녀입니까? 보내드리는 여자가 효녀입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언젠가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선생님, 이제라도 상대를 하나 맺어주세요' 했습니다. 독신축복을 받았는데도 상대를 또 맺어 달라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상대가 없으니까 적적했던 모양입니다. 여자들도 그렇습니다. 못된 영감이 방안에서 똥을 싸면서 소리를 질러도 그게 싫지 않습니다. 영감이 죽기를 바라는 아내는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영감이 그러고 있으면 '저거 죽으면 좋겠다' 하면서 갖다 내버리려는 여자들이 많습니다.
어떤 통일교인의 아버지가 한 5년 동안 반신불수가 되어 자리에 누워 있어서 어머니가 뒤를 받아냈는데, 그 어머니가 아버지 몸이 쇠약해져 식물인간이 되다시피 했어도 숨을 쉬면 숨소리라도 듣고, 자기를 바라보면 눈동자라도 맞추고, 남편 몸이라도 거둘 수 있으니 행복하다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가 슬퍼하는 것을 보니까 처량하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무슨 힘이 어머니를 그렇게 했겠습니까? 사람은 그런 길을 찾아갑니다. 싸구려 풋내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귀중한 것이 사랑입니다.
항상 여자들이 문제입니다. 미국에서 가정 불화를 일으킨 원인이 80퍼센트가 여자 때문입니다. 여자들은 자꾸 뭘 나타내려고 그럽니다. 잘 보이려고 합니다. 무엇을 걸고, 머리를 지지고, 옷을 알록달록하게 입고 남자에게 잘 보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여자는 꽃과 같습니다. 꽃 향기가 오래갑니까? 오래 안 갑니다. 여자들은 아기를 둘만 낳으면 아무리 미인이라 해도 보기 싫게 됩니다. 그때에는 오히려 처녀 때 두툼하고 보기 싫던 여자들이 보기에도 잘 익은 동치미 같습니다. (187-80)
  
  
사랑이 가지는 특권
  
결혼을 하면 동거권이 있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병이 났을 때나 피곤할 때나 외로울 때나 언제나 같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게 동거권입니다. 그게 동참권입니다. 그가 왕의 자리에 올라갔으면 왕의 자리에 찾아갈 수 있고 어디라도 찾아갈 수 있습니다. 경계선이 없습니다.
그 다음에 결혼에는 무슨 권한이 있느냐 하면 상속권이 있습니다. 둘이 사랑하게 되면 그분 것이 내 것이 됩니다. 부부끼리 저금통장을 따로 가져야 되겠습니까, 하나만 가져야 되겠습니까? 하나만 가져야 됩니다. 왜? 그 저금통장은 우리 것이 아니라 우리 아들딸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 것을 '우리 것' 하는 것과 '내 것' 하는 것 중에 어느 게 더 좋습니까? '우리 것' 하는 게 더 좋습니다. 거기에는 사랑이 깃들 수 있습니다. '내 것' 할 때는 사랑의 상대권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지금 세계를 위해 빚을 져 가며 일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빚을 져 가면서 일하던 것을 후대에 물려주더라도 원수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부모는 귀하신 분!'이라고 할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빚을 졌기 때문에 그 나라가 머리 숙이고 만국이 머리 숙이는 것입니다.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자기 후손한테 빚을 남겨줘 보십시오.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기를 위하고 부자관계 하나만 생각하기는 쉽습니다. 사랑을 가지고 후손 앞에 세계를 위하고 하늘땅을 위해서 빚을 남겨주는 것은 후대가 갚고도 또 갚고 또 갚고 억천만 년 갚아 갑니다. 후손이 아니고는 그 갚는 것을 받아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후손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아들딸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행복했겠습니까, 불행했겠습니까? 선생님 아들딸들은 지금까지 불행했습니다. 이제 젊은이들이 되었지만, 그 애들이 어렸을 때는 아버지를 미워한 적이 많았습니다. 자기들로서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밥도 같이 먹어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언제 같이 앉아서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여 본 기억이 없습니다. 맛있는 고기가 있어도 먹으라고 준 기억이 없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살다 보니 그랬습니다.
살림살이 걱정을 한 번도 안 해봤지만 하나님이 보호하사, 내가 걱정하는 것보다도 더 잘 지켜준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외적인 면에서 고생해 봤지만 선생님 가정에는 내적인 환란이 없습니다. 탕감원칙에 의해서 할 수 없었던 그런 일들은 있었지만 병이 나고 죽고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잘 자랍니다. 그게 복입니다. 선생님이 걱정 안 해도 다 보호해줍니다. 자기들이 무럭무럭 잘 자랐습니다. 감기를 앓고 그래도 그냥 놔둡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면 깨끗이 낫습니다. 하늘이 보호해준다는 것입니다. (187-82)
  
  
남자에게 업혀 올라가는 여자가 되어야
  
사람은 남자와 여자입니다. 여자는 절반밖에 안 되는 존재인데, 남자를 품어서 사랑으로 소화해야만 원만한 여자 인격이 완성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한 여자들은 가끔 남편한테 맞아야 됩니다.
여자들은 입이 문제입니다. 그러니 입을 벌리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됩니다. 여자는 입이 무기입니다. 그리고 표정이 무기입니다. 여자들 무기는 그 두 가지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말 때문에 망합니다.
영화나 방송 드라마를 보아도, 여자가 말 한마디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소화할 수 있는데 '아이구, 나가지!' 하고 보따리 싸들고 한번 나갔다가는 못 들어옵니다. 그걸 보는 아들딸도 '엄마가 저러니 아버지한테 박대받는 것이 이치다'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보따리를 싸면 안 됩니다.
매를 맞으면 보따리 싸지 말고 차라리 이불에 누워서 앓으라는 것입니다. 누워서 복수하는 게 낫습니다. 밥을 한 일주일 안 먹고 천연덕스럽게 오는 것 다 간섭하고 '지금 오시나요?'그러면 남편이 잠을 안 자고 일주일 동안 지켜줄 테고, 그러면 화(和)가 벌어집니다. 그게 얼마나 멋진 복수입니까? 위하면서 복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편은 나쁜 것, 남편은 나보다 나쁜 것!'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악한 남편이요 부족한 남편이라 해도 그분은 나를 위해서 역사시대를 찾아왔다. 죽고 살고 망하고 하는 그 남성세계 역사 가운데서 그 깃발을 이어받아 나라는 여성을 찾아왔다' 이렇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 깃발을 여기에 꽂고 둘이 평화의 왕국을 이루자고, 사랑의 나라를 이루자고 만난 것입니다. 이게 부부입니다.
사랑이 살아 있어야 됩니다. 사랑이 죽으면 안 됩니다. 맹세는 다 집어던지고 남편한테 '이 자식아!' 해서는 안 됩니다. 여자는 반현(半弦)입니다. 반쪽 구(球)입니다. 경계를 넘어서면 안 됩니다. 여자의 갈 길은 아래서부터 왼쪽의 절반을 그려야 됩니다. 남자를 침범하면 안 됩니다. 남자를 밟고 올라서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여자는 어떻게 올라가느냐? 남자가 다 내려오게끔 해놓고서 나는 거기에 업혀 올라가는 것입니다. 올라갈 때는 업혀 올라갑니다. 남자를 위하는 사람은 자연히 그 동네에서 올라갑니다. 할아버지 등도 타고 올라가고, 동네 사람들 앞에 올라갑니다.
그런 후덕한 마음을 가진 아주머니가 사는 집안이라면 그 집안에서는 3대 이내에 그 가문을 이어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나옵니다. 그게 무슨 이치에서 그러냐? 3대에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 전체를 지배할 수 있고 이 양면까지 지배할 수 있기 때문에, 3단계만 넘어서면 새로운 소망의 세계가 연결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나선형으로 커집니다. (187-85)
  
  
투입하는 데서 순환법도가 벌어진다
  
사람은 여자와 남자입니다. 남자는 왜 태어나고 여자는 왜 태어났느냐?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선생님은 위하는 철학을 제시했습니다. 하나님도 하나님 자신을 위하라고 하면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을 때 사랑으로 자기 전체를 투입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을 중심으로 최고의 저기압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대기 중에 고기압권이 만들어지면 공기가 자연히 저기압권으로 돌아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돌아갑니다. 대기는 제일 저기압권, 낮은 데로 흘러서 돌아갑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최고 사랑의 표적으로 삼고 창조에 모든 것을 완전히 투입하다 보니 사람이 최고 사랑의 대신자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도수가 차면 그냥 그대로 순환합니다.
왜 투입해야 되느냐? 투입하는 데서 순환법도가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순환하는 데는 소모가 벌어집니다. 그렇지만 사랑의 힘은 소모가 벌어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하면 할수록 커집니다. 역학에서는 언제나 입력이 출력보다 큽니다. 그러나 사랑의 세계에서는 입력보다 출력이 큽니다. 그것은 영적 기준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인간들을 대해서 자연세계는 균형을 취할 수 있습니다. 둘 다 없어지면 떨어져 나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샘에서 솟는 물과 같이 퍼내고 퍼내도 또 나옵니다.
하나님이 자기 전체를 투입한 것은 순환법도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은 폭발작용을 일으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돌아와서 만나게 될 때는 폭발작용을 해서 자연히 순환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폭발작용을 합니다. 그러니 영원히 컸다 작았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의 이치는 사인(sign) 곡선을 그립니다. 바다 물결이 왜 그렇게 출렁이느냐 하면, 바람이 그렇게 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러냐? 그래야 천지의 모든 것이 같이 삽니다. 그렇게 호흡해야 됩니다. 올라갔다내려갔다 하는 운동을 해야 사는 것입니다. 물도 가만히 두면 썩습니다. 흘러가면 썩지 않습니다. 일년 열두 달 계속 운동하면 썩지 않습니다. 천지 이치는 유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구도 숨을 쉽니다. 그건 잘 모를 것입니다. 한 호흡을 할 때 1미터 가까이 차이가 납니다. 사람도 숨을 쉬는데, 숨을 내쉬면 들이마셔야 됩니다. 내쉬는 시간이 길면 들이마시는 시간도 길어야 이상적인데, 이때 한꺼번에 들이마시면 부작용이 생깁니다. 순리대로 안 할 때는 부작용이 일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리대로, 주는 대로 환경에 맞춰 나가야 됩니다. 그렇지 않을 때에는 병이 납니다. 순리와 차이가 나면 우주력이 나를 칩니다. 나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허물어뜨립니다. 반작용이 일어나서 나를 파괴한다는 것입니다. (187-87)
  
  
위하는 데서 완전한 통일권이 벌어져
  
하나님은 독재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서 투입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서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천년 만년 하나님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위하는 천리의 우주 존재세계에서 자기 스스로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위해서 존재해야 합니다. 위하는 데 있어서 동서양을 통할 수 있고 고금을 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동양을 대해서나 서양을 대해서나 다 같은 사랑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동양 서양을 극복할 수 있고, 과거․현재․미래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과거․현재․미래를 극복할 수 있으니 언제나 발전할 수 있고, 동서양을 극복할 수 있으니 동서양을 통일할 수 있습니다. 이건 사랑으로만 가능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몸을 위해서 언제나 투입해야 됩니다. 몸을 위해서 언제나 투입하려니 얼마나 고달프겠습니까? 내 조그만 몸이 원하기만 하면 벌써 마음이 사인합니다. 언제나 나를 위해 투입해주려고 합니다. 투입해줬으면 돌아와야 될 텐데 돌아오지 않으면 마음은 슬픕니다.
그래서 주려야 줄 수 없고 받으려야 받을 수 없을 때 불행합니다. 밤이나 낮이나, 언제나 주고 싶을 때 주고 받고 싶을 때 받을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사랑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랑을 혼자 주고받을 수 있습니까?
통일원리는 무엇이냐? 통일원리를 어디에서 찾느냐? 위하는 길 외에는 통일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얘기해 봅시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제일 귀한 것을 서로 차지하고 싶을 것입니다. 제일 좋은 것이 있으면 남편과 아내가 서로 먼저 갖고 싶어할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사랑을 받는다면 여자가 먼저 받고 싶겠습니까, 남자가 먼저 받고 싶겠습니까? 그게 문제입니다. 귀한 것을 자기가 먼저 갖겠다고 하면 큰일입니다. 자기를 주장했다가는 전부 파괴됩니다. 하나님은 위해서 존재하는 분이기 때문에 개인을 위하는 사람은 상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전체를, 자기보다 큰 것을 위해야 됩니다. 천지 이치가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아이구, 여자로 말하면 나보다 모든 면에서 작고 부족한데, 남자인 내가 먼저 가져야지 네가 먼저 가져?' 하고, 여자는 당신이 뭐냐고 하면서 먼저 갖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정적인 면에서는 남자보다도 여자가 뾰쪽하고 깁니다. 그렇게 자기를 주장하면 문제가 벌어집니다.
여기에서 어떻게 해야 통일을 가져올 수 있느냐? 남자가 '내가 먼저 이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려는 것은 당신을 위해서요' 이래야 됩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을 잡는 것은 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래야만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여자가 '내가 먼저 잡는 것은 당신 때문이오. 내가 아끼는 당신을 위해서 하는 거요' 할 때는 남자도 오케이입니다. 하나님도 서로 위하는 걸 볼 때 '나를 잡아라. 나도 오케이다'라고 합니다. 전체가 완성이 벌어집니다.
그렇지만 자기를 주장할 때는 자기 파괴, 상대 파괴, 하나님 파괴가 벌어집니다. 완전히 분리됩니다. 거기에서는 통일의 이론을 찾을 수 없습니다. 간단하지만 중요한 말입니다. 우리가 이상을 찾아가는 최후에는, 궁극에 가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종적인 통일을 바라는데, 그 종적 기준이 어서 오라고 당겨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서로 위해야 됩니다. 위하는 데서 완전 통일권이 벌어집니다. (187-89)
  
  
위하는 자가 중심존재가 된다
  
성경에도 그랬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게 첫째 되는 계명이다'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했습니다.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몸은 타락한 몸이 아닙니다. 부모를 위해서 끝까지 희생하는 사랑으로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생각하고 그 부모를 사랑하던 이상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천지 어디에 가든지 받아들여집니다. 이것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왼손이 자기를 위한다고 자기를 주장해 보십시오. 이게 한번 고장나면 바른손이 위해주겠습니까? 점점점 '잘한다. 너 죽어라! 너 죽어라!' 합니다. 그러면 이 생명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눈이 '발아! 너는 나 때문에 걸어다니지? 내가 보지 않으면 길을 마음대로 걷지 못해' 하면서 자기를 주장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위하는 데서 모든 것이 평준이 벌어집니다.
그러면 위하는 자는 어떻게 되느냐? 중심존재가 됩니다. 중심존재는 전체를 위해서 있습니다. 또 책임자는 뭘 하느냐? 전체를 보호합니다. 위하는 자는 중심존재가 되고 책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출세를 해서 중심존재가 되어 전체를 책임지려고 하지만, 나라의 책임자는 나라를 위하는 사람입니다. 그걸 망각하고 있습니다. 나라를 자기 몸보다, 자기 가정보다 더 위하는 사람입니다. 나라를 이용해서 자기 중심으로 자기 일족만을 위하는 책임자는 왱가당댕가당 우주가 파괴해 버립니다.
선생님은 욕을 먹더라도 정의를 위해 돈을 쓰려고 합니다. 돈을 대한민국을 위해 쓰기보다 세계를 위해 쓰는 것이 복입니다. 우리가 세계를 위한 본부를 짓겠다는데 왜 못 짓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세계본부를 지으면 대한민국에 얼마나 큰 복입니까?
거기에 세계 정상급의 사람들이 왕래할 테니, 돈이 들어오고 물질이 들어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왔다갔다 합니다. 선생님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세계의 챔피언들입니다. 그러니 한국에는 얼마나 이익이 되겠습니까? 오늘도 세계의 전략가들을 수습하는 그런 왕초가 아침에 선생님을 찾아와서 얘기를 듣고 갔습니다.
선생님은 중국과 대만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대만이 싸우면 안 됩니다. 그래서 이들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 여러 일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문총재 외에는 하나 만들 수 없다' 해서 중국정부가 불이 붙어 있고, 대만정부가 불이 붙어 있습니다. 중국과 대만의 통일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187-91)
   
  
지옥 밑창을 뚫고 넘어가면 거기가 천국
  
그러면 통일교인들의 중심이요 책임자인 선생님이 통일교인들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원래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이 얽혀 있기 때문에 관계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절대적으로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다른 종교와 다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부자관계의 인연을 중심으로 하여 사랑의 도리를 통한 가정이상을 가르치고, 그 가정이상을 확대하면 지상천국이 된다고 말하고, 그 이념이 세계 박애주의라고 제시합니다. 이것을 볼 때 사랑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돌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위대한 것이 그것입니다.
선교사들이 세계 각 나라에 선교하러 나가서 얼마나 고생하는지 모릅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 선생님이 죄를 짓고 있는 죄인같이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남방 같은 데는 사철이 여름이기 때문에 악어나 하마가 득실득실합니다. 그런 강을 한 달에 한 번씩 비자 문제 때문에 건너갔다 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한 선교사도 있습니다. 그런 강을 헤엄쳐서 왔다갔다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것도 여자 몸으로 그런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악어가 득실거리는 강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헤엄쳐서 건너다닌다는 것은 신앙이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러면 죽더라도 천국 갑니다.
그렇게 하려고 하면 벌써 영계에서 '몇 시에 떠나라' 하고 가르쳐줍니다. '몇 시만 되면 들어가서 숨을 쉬지 말고 건너가야 된다' 하고 가르쳐준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만 맞춰서 그대로 하면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리에 가 봐야 하나님이 계시는 걸 압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을 고생시키겠다는 것은 뭐냐? 부모도 몰라주고, 형제가 몰라주고, 참부모님이 몰라주어도, 누가 들이 박게 될 때 '아이고! 나는 왜 고독단신이야?' 해서는 안 됩니다. 이 길을 돌아서 찾아와야 됩니다. 그냥 그대로는 못 찾아옵니다. 찾았다 하더라도 다시 떠나서 돌아와야 됩니다.
그래서 전부 쫓아내서 들이 몰아대니까 할 수 없이 갑니다. 안 갈 수 없습니다. 몰아내는 것이 밀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평이 안 되어서 그렇지 수평으로만 돌아오게 되면 자연순환이 벌어집니다. 운동하는 것은 절반만 넘으면 자연히 돌아갑니다. 그러지 않고는 천국 못 갑니다. 지옥 밑을 돌아서 가는 그곳이 천국입니다. 인간이 싫다 하는 저쪽편 길을 개척해서 새로운 차원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지옥 밑창을 뚫고 돌아가야 됩니다.
선생님은 한국의 지옥 밑창, 일본의 지옥 밑창, 미국의 지옥 밑창에 들어갔습니다.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감옥이 선생님을 막지 못했습니다. 감옥을 뚫고 넘어간 그곳에는 언제나 평화의 종소리가 선생님을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30세까지는 고생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187-93)
  
  
몸과 마음이 하나된 자리는 어떤 자리인가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된 자리에서는 배고픈 것을 잊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제일 참기 힘든 것은 배고픈 것과 자는 것, 그 다음에는 정욕입니다. 몸 마음이 하나된 자리에 들어가면 이것들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습니다. 배고픈 것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밤에 잠을 자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밤에 잘 때에는 우리 몸의 모든 기관이 청소작업을 합니다. 동맥과 정맥을 중심으로 심장을 깨끗이 하고, 모든 장기를 깨끗이 합니다. 그런데 잠을 안 자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가지고는 그것을 전부 다 정화시키고도 남습니다.
몸 마음이 하나되면 또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아무리 남자 여자라 하더라도 원리원칙에 위배되는 그런 사랑은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벌거벗고 있는 1백 명의 미인 가운데에 누워 있더라도 남자로서 사랑하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여자로 말하면, 미남들 가운데 혼자 들어가 있어도 아무 사랑의 감정 없이 숫처녀가 혼자 자는 거와 같이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 자리까지 거치지 않고는 해방권이 안 생깁니다. 그걸 극복해야 됩니다.
해와는 영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아내입니다. 하나님은 아담 속에 들어가고 해와 속에 들어가서 사랑하려고 합니다. 이성성상으로 분립해서 사랑으로 규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방을 사랑으로만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적인 나입니다. 그런데 이성성상의 분립된 입장에 있기 때문에 다릅니다. 왜 분립했느냐? 사랑을 보다 자극적으로 느끼기 위해서입니다. 자극적이면서 위치를 이동시키기 위한 것이고, 또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위치를 변화시키니까 번식이 벌어집니다. 종적인 하나님 가지고는 번식하지 못합니다. 종적인 자리는 한 자리지 두 자리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왜 인간을 창조했느냐? 횡적인 기준은 360도가 있기 때문에 번식의 터전이 됩니다. 종적인 기준은 선밖에 없기 때문에 번식이 안 됩니다. 그래서 번식을 하기 위해서 인간을 창조한 것입니다.
종적인 기준의 하나님은 번식을 할 수 없으니 종적 사랑을 중심으로 최후에 횡적인 것에 들어가서 다시 합합니다. 그래서 번식이 벌어집니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360도를 확대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 기준을 중심으로 상하로 평형선을 통해서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두 방수, 열두 수가 나옵니다. 띠도 열두 띠입니다. 춘하추동 열두 방수를 중심으로 해서 분열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도 전부 같지 않습니다. (187-94)
  
  
인간이 태어난 것은 사랑의 세계를 여행하기 위해서다
  
인간이 태어난 것은 사랑의 세계를 여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의 우주를 여행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그게 불행한 것입니까, 행복한 것입니까? 나는 어머니 아버지에게서 핏줄을 이어받았는데, 그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 가운데 동참했습니다. 그게 위대한 것입니다. 생명의 출발지는 뭐냐?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나에게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을 연결시켰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몰랐지만 그 사랑의 근본 동참자입니다. 그러니까 위대한 것입니다.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나는 동위권을 갖습니다. 작다고 어머니가 나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작은 나를 밤낮 들여다보고 몸을 굽혀서 그저 하늘같이 위하고, 땅같이 위하고, 우주같이 사랑하려고 합니다. 사랑은 동위권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상대에게는 모든 것을 주고 싶어합니다. 사랑도 주고 싶고, 생명까지도 주고 싶어합니다. 사랑에는 상속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사랑하는 아들인 동시에 내 것이요, 내 것인 동시에 우주의 것이요, 우주의 것인 동시에 하나님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될 때 나는 부모 사랑의 동참자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전통을 불러 보면 선조로부터 그 원칙은 마찬가지기 때문에 천년 만년 마찬가지의 종적인 대(代)를 이어 나옵니다. 그래서 이것이 핏줄로 이어 나오는 것입니다.
김씨면 김씨 핏줄이 있고, 문씨면 문씨 핏줄이 있습니다. 문씨가 지금까지 전국에 40만 명이나 퍼져 있지만 문씨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런 핏줄로서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 핏줄을 더럽힌 사람은 역사를 배반한 사람입니다.
미국이 자유를 부르짖다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자유에는 원리원칙이 있습니다. 평화는 혼자일 때는 있을 수 없습니다. 평화라는 것은 상대와 같이 어떤 형태에서 완전히 채우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은 싫은데 나만을 위하는 게 자유입니까?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 우주가 원하는 자유입니다. 위하는 자유를 만들어야지, 자기 독자적인 면에서 고립적 자세를 지니고 나가면 그 독재자의 자유는 파괴를 가져옵니다.
선생님이 미국에서 돈을 많이 썼는데, 그것은 사랑을 소개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사랑을 위해 돈을 투자한 것이지 돈 때문에 돈을 투자한 게 아닙니다. 사랑은 영원하니 영원한 사랑을 가지면 미국 국민은 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하나님 앞에 가나 어디에 가나 부끄럽지 않습니다. 감옥에 있는 죄수를 대해서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내가 감옥에서 그들에게 한 일이 있습니다. 그들을 자기 어머니 아버지 이상 사랑했습니다.
선생님은 댄버리 교도소에서 1년 2개월 동안 있다가 나왔습니다. 선생님이 출소하는 시간이 오전 여덟 시인데, 그곳에 있는 모든 소원(所員)들이 환송하게 생겨서 문제가 벌어지겠으니 뒷문을 열고 다른 길을 통해 나가게 했습니다.
왜 그렇게 뒷문으로 나가게 했느냐? 댄버리 관계자들이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오히려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옥중에서 선생님은 그들을 사랑했지만 그들은 사랑하지 못했으니 부끄러운 것입니다.
선생님은 통일교회를 사랑하며 나왔습니다. 이제 그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열매를 맺으려면 부부가 되어 아들딸을 낳아서 책임을 다하고 난 다음에 선생님의 뜻을 사랑해야 됩니다. 선생님의 모든 이루어진 뜻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해야 됩니다. (187-96)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마치는 인생길
  
하나님의 뜻이 뭐냐? 창조이상입니다. 창조이상은 뭐냐? 책임분담이 뭐냐? 사랑을 중심으로 모든 소유 결정을 해서 자주적인 대상 아니면 주체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을 중심하고 하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가 한 마음을 갖고 남편을 사랑하면 여자는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으면 쌍년이 됩니다. 바람피우고 돌아다니고 개 같은 짓을 한다고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합니다.
사람은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받습니다. 10개월 동안 어머니 아버지가 그저 만지고 품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태어나서도 사랑합니다. 학교를 다 마칠 때까지 사랑합니다. 대학교 마칠 때까지 부모의 사랑권에서 자라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자기 아들딸을 최고로 사랑하는데, 남과 같이 해주지 못하면 가슴이 아프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들딸을 낳아 봐야 '우리 부모가 이랬겠구만' 하고 압니다. '아들딸들을 그렇게 사랑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이렇게 놔두고 돌아다닐 때 부모는 어떻게 편안한 잠을 자겠으며, 언제 편안한 시간을 가졌겠느냐? 언제나 초조한 마음, 불안한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하는 걸 알고 '우리 부모가 훌륭하다' 하는 걸 깨달아야 됩니다.
태어나서 18세에서 20세가 되면 철이 들고 결혼할 때를 맞습니다. 결혼해서도 사랑입니다. 결혼하고 또 몇년 동안 아들딸을 낳고 사랑합니다. 그렇게 사랑하다가 아들딸을 시집 장가 보내게 되면 이제는 손자를 사랑하게 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들딸보다도 손자 손녀를 더 사랑합니다. 할머니가 있는 사람은 다 느낄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보다도 할머니 사랑을 더 많이 받습니다. 할머니의 소원이 뭐냐 하면 손자 손녀를 쓰다듬는 것입니다.
전부 사랑에 엉켜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손이 많으면 많을수록 복입니다. 사랑에서 낳아 사랑에 의해 흘러 나오게 돼 있습니다. 인생행로가 그렇게 사랑길을 이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 때문에 태어난 인생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아기를 낳아 본 여자에게 물어 보면, 낳을 때는 죽을 것 같지만 낳아 놓으면 그것이 순식간에 없어진다고 합니다. 배멀미를 하는 사람은 죽겠다며 토하고 야단하지만, 육지에 닿아 한발짝만 내려놓으면 대번에 낫습니다. 딱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옛날 선생님 어머니가 한 말을 잊지 못합니다. 선생님이 조그마했을 때 누나가 시집간다고 삼촌을 비롯해 사돈의 팔촌까지 한 자리에 모였는데, 그 자리에서 어머니가 한 말이 '세상에 뭐니뭐니 해도 아이를 낳아서 키울 때가 제일 좋다'는 것입니다. 고생은 되지만 그때가 제일 좋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아기가 배가 고프면 어머니 젖이 불어 옵니다. 1백 사람이면 1백 사람이 젖이 불어서 아파 오면 안 조이는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젖이 제일 예민합니다. 그런데 배고픈 애를 안고 젖을 먹일 때의 기분이라는 건 말로 표현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아기 어머니가 아니고는 모릅니다. 그 불었던 젖이 줄어들면 얼마나 시원하고 기분이 좋은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또 아기가 젖을 쪽쪽 빨아먹으면서 만지는 걸 볼 때 어머니의 사랑이 거기에서 우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희로애락의 쌍곡선이 부딪치는 그 어머니의 마음은 체험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하는 말이, 8남매를 시집 장가 보내고 나니까 세상에 그렇게 적적할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던 아들딸 집을 마음대로 갈 수도 없습니다. 가려고 하면 못 갈 것은 없지만 시집을 먼 데로 갔으니 하루에 한 번씩 돌아다닐 수도 없고, 그러니까 언제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워하는 사랑으로 아들딸이 잘 있나 가 보고 싶어도 못 가게 되면 기도를 하고 복을 빌고 그럽니다. 그게 귀한 마음입니다. 그러면서 늙어 갑니다.
그러니까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일생을 마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순리적인 법도요, 지상세계에서 천상세계까지 그냥 그대로 계속됩니다. (187-99)
  
  
사랑의 도리는 위하는 것
  
사랑의 도리는 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계에 가면 위해 살던 사람들이 높은 천국에 가게 됩니다. 그러니 남자로서 여자로서 사랑의 길을 가기 위해서 하는 것이 결혼이므로 결혼의 귀중함을 깨닫고 결혼이라는 배를 잘 몰고 가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는 뱃사공입니다. 배는 남자가 사공이 돼도 가고, 여자가 사공이 돼도 갑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이끌고 가던 남편이 병이 나든가 지치면 아내가 배를 몰 줄 알아야 됩니다. 남편을 태우고 건널 줄 알아야 되고, 업어서 건널 줄도 알아야 됩니다. 죽겠으면 죽으라고 차 버리면 안 됩니다. 아내가 지쳐서 못 가면 남편이 아내 대신 그냥 그대로 순리적으로 이어갈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것이 부부입니다. (187-101)
또한 부부는 앞으로 자식한테 양심적으로 당당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길을 올바로 가야 됩니다. '내가 너희들을 사랑했지' 할 수 없어서는 부모로서 자식을 대해 부끄러움을 느껴야 됩니다. 부부간에 도 '당신을 근본적으로 사랑했지' 할 수 있어야 부끄럽지 않습니다. 부모 대해서도 사랑을 해야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렇게 볼 때 자유와 해방을 어디에서 잡을 수 있느냐? 자유에서는 해방이 없습니다. 책임 없는 자유는 망동입니다. 그러니 부모를 봐도 부끄럽지 않고, 아내를 보나 남편을 봐도 부끄럽지 않고, 자식을 봐도 부끄럽지 않고, 나라를 봐도 부끄럽지 않고, 세계를 보나 하늘땅을 보나 부끄럽지 않은 입장에 있는 사람이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제재를 받지 않고 부모도 환영하고 모두가 환영합니다. 춤을 추고 노래를 해도 그저 마음대로입니다. 사랑에서만 마음대로가 벌어집니다. 그래서 사랑에는 상속권이 있고, 자유의 모든 근본 형이 있습니다.
영계와 육계는 평형입니다. 종이 한 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으로 이 땅 위에서 땅 끝을 거쳐갈 때 내가 합격자라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면 그냥 그대로 순리적으로 천상세계 어디든지 가더라도 환영합니다. (187-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