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야기 - 제 2권 사랑 원론편 - 제 3장 인간과 우주의 사랑

참사랑 | 20180122093916


사랑이야기 


제 2권 사랑 원론편 


제 3장 인간과 우주의 사랑

소목차

1. 인간과 우주
2. 우주의 존재 원칙 
3. 천운과 우주의 공법 
4. 우주완성의 본거지
5. 우주의 핵과 인생노정    
6. 우주의 공법과 인간의 갈 길
7. 사랑의 축을 중심한 생활


1. 인간과 우주 


'나'라는 존재는 본래 기원이 어디냐

󰡐나󰡑라는 존재는 본래 기원이 어디냐? 󰡐나󰡑라는 사람은 아버지가 기원이 되어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기원이 되어서 어머니를 통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아버지는 뼈를 주고 어머니는 살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살이라는 것은 아무리 좋다 해도 골격에 따라서 붙게 마련입니다. 그걸 보면 아버지에게서 모든 원칙적인 틀을 이어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라를 두고 볼 때에도 그렇습니다. 한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국민이 있어야 되는데, 그 국민을 이룰 수 있는 전통적인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전통이라는 것은 외적으로 볼 수 있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조직 가운데 숨어 있습니다. 우리 몸의 골격이 밖으로 나타나 있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동양사상이나 일반적인 관념으로 볼 때, 󰡐하늘󰡑 하면 높은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무한한 인격을 상징합니다. 하늘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관념적 세계의 어떠한 전통적인 인격을 상징합니다. 또 땅은 어머니를 상징합니다. 땅은 우리가 실제로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실체 대상물입니다. 다시 말해서 동양에서는 󰡐우주󰡑 하면 하늘땅을 말하는데, 하늘은 아버지를 상징하고 땅은 어머니를 상징합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 인간은 하늘에서부터 생겨나서 땅을 거쳐 태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하늘은 아버지에게서 골격을 받는 거와 마찬가지로 내적인 입장이고, 땅은 어머니에게서 살을 받는 거와 마찬가지로 외적인 입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성을 타고납니다. 그리고 인성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습성, 습관적으로 이루어진 인격적인 형태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는 무엇을 말하느냐? 하늘은 아버지를 상징하고, 땅은 어머니를 상징하고, 자기 생활은 인격을 상징하기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품을 닮아야 되고, 그 어머니 아버지의 생활적인 성품을 닮아야 된다는 것을 종합해서 하는 말입니다.
그러한 역사적 인연을 거쳐서 살고 있는 존재가 󰡐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를 닮아야 되고, 아버지를 닮아야 되고, 어머니 아버지가 바라는 전통을 따라서 습관적인 인격을 조성하기 위해 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나󰡑라는 존재는 오늘의 내가 기원이 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역사적인 유래를 거쳐서 태어났습니다. (72-179)


인간은 3대 부모의 혜택을 받고 태어난다
 
우리 인간에게는 세 가지의 소성이 들어 있습니다. 내 몸은 흙에서 왔습니다. 몸은 이 땅을 대표합니다. 우리는 땅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땅은 우리의 제1 부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나 가운데는 나를 낳아준 부모가 들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늘 부모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3대 부모의 혜택을 받고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람은 몸의 사람이 있고, 마음의 사람이 있고, 그 다음에는 영(靈)의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과 영은 다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 인간은 이런 3대 요소의 인연을 거쳐서 태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3수의 인연을 대표해서 종합적인 실체로 태어난 존재가 󰡐나󰡑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은 3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모든 존재는 사위기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위기대의 각 4위(位)가 소생․장성․완성의 3단계를 거쳐야 하니까 12수가 나옵니다. 그래서 일년은 열두 달로 되어 있고, 우주의 운세는 이 열두 달을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4수는 춘하추동 4계절을 상징합니다. 우주는 일월성신(日月星辰), 즉 해와 달과 별이 운행하는 가운데 움직입니다.
우리 몸의 팔도 세 부분으로 되어 있고, 몸 전체도 머리․몸통․다리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전부 다 3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72-180)
우리 몸의 갈비뼈가 몇 개냐 하면 스물 네 개입니다. 이것은 일년의 24절기와 같습니다. 우리 몸의 장기도 폐장․위장․심장의 중요한 세 기관이 있습니다. 얼굴을 보면 눈․코․입의 3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94-66)
이렇게 볼 때, 󰡐나󰡑는 우연한 나가 아닙니다. 이 우주의 본래 인연이 종합되어 결과적인 존재로 열매맺힌 것이 󰡐나󰡑입니다. (72-181)


우주 가운데 절대 불변의 기준이 되는 분은 하나님

그러면 원인적인 존재와 결과적인 존재 중에서 어떤 것이 더 귀중하냐? 보다 원인적인 것이 귀중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은 무엇을 존중시하느냐? 지금까지 일생, 혹은 역사를 두고 볼 때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존중시해 왔느냐? 대개 물질을 존중시하고 사랑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러면 물질과 부모 중에 무엇이 더 귀하냐? 부모가 귀합니다. 또 부모와 하나님 중에 어떤 것이 귀하냐? 하나님이 귀합니다. 그러면 인간이 가야 할 참된 길은 어떤 길이냐? 보다 원칙적인 길을 따라가야 된다는 점에서 볼 때에, 우리는 물질을 버리고 부모를 따라가야 됩니다.
물질세계는 변합니다. 있다가도 없어집니다. 그러면 이 우주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냐? 여기에 변하지 않는 한 분이 있어야 됩니다. 보물 가운데 최고의 보물, 전체에서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있고 모든 것을 비교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 참된 하나의 보물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런 변하지 않는 것이 물질이냐? 물질은 감정이 통하지 않고, 생활적인 면에서 우리와 관계지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우리 부모가 해당되는데, 우리 부모는 일생 동안밖에 관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저나라에 가서는 우리가 어머니 아버지를 따라다니는 게 아닙니다. 영계에 가면 국가와 국민을 초월해서 하나님을 따라다니게 되어 있습니다. 그 세계는 부모를 중심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금이 경제에서 하나의 기준이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저나라에서도 어떤 불변의 한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이 우주 가운데 변하는 존재가 이 우주를 끌고 간다면 큰 불행 중의 불행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원치 않습니다. 그 존재가 역사의 흐름과 함께 변하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변하지 않는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 부모의 근원이 되는 것을 찾아 올라가면, 우리 인류의 시조인 아담 해와가 있고, 인류 시조의 부모 되는 분이 있는데 그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근본이고, 영원히 변치 않고, 최고의 가치를 지닌 분입니다. 그런 존재를 내가 가질 수 있고 인연맺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분을 완전히 가지려면 그분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나는 우주 가운데서 누구보다도 귀하고 누구보다도 변하지 않는 사람이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주의 근본 존재요, 불변의 존재요, 유일적이요, 무한한 가치의 존재인 하나님을 우리의 주체로 모실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잘생겼든 못생겼든 누구나 과거․현재․미래에 있어서 꼭대기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건 왜냐? 나는 보이는 가치적인 실체로서 보이지 않는 가치적인 실체와 하나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뼈가 되고 우리 인간은 살이 됩니다. 이런 점에서 나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이 우주 전체를 총합한 실체상이라는 말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변하지 않는 무한한 가치의 주체를 얼마나 닮았느냐, 그 기준에 몇 퍼센트나 가까우냐에 따라서 내 가치가 좌우됩니다. 오늘날 세계의 경제 동향도 금값이 오르고 내림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도 변하지 않는 부모와 얼마만큼 하나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인격의 가치가 좌우됩니다. (72-181)



보이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이 귀하다

부모에게 잘하는 효자가 있으면 그는 그가 사는 사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그래서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 사회를 보면 어떻게 되어 있느냐? 부부관계가 중심입니다. 그것을 뜯어고쳐야 됩니다. 그것은 영원히 가지 않습니다. 결혼해서 석 달도 못 살고 갈라지고 맙니다.
그렇지만 서양이나 동양이나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전부 다 아버지의 성을 따라갑니다. 여자의 성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한국은 그렇지 않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여자가 시집가게 되면 남편의 성을 따라갑니다. 그런데도 여자가 오히려 남편을 컨트롤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고입니다. 남자는 뼈와 같습니다. 그러니 남자가 가정의 중심이 되어야지 여자가 중심이 되면 안 됩니다. 선생님이 동양 사람이라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여자가 잘 변하느냐, 남자가 잘 변하느냐? 누가 더 잘 변합니까? 여자가 잘 변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중심이기 때문에 남자가 중심입니다. 우주의 모든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일년 춘하추동 4계절은 태양 주위를 궤도를 따라 돌고 있는 이 지구와 태양의 각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이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돕니다. 물론 지구 자체도 돌긴 하지만 태양을 중심으로 해서 돕니다. 그렇지만 아름답기는 태양보다 지구가 더 아름답습니다. 태양은 불덩어리입니다.
우리 몸의 뼈가 식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뼈는 언제나 섭씨 36.5도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됩니다. 태양은 이 우주의 중심이기 때문에 뜨거워야 합니다. 그건 상징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름다운 것은 뼈가 아닙니다. 죽은 사람의 뼈를 보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뼈는 앙상하지만 살이 붙으면 아릅답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하나님이 이 우주를 바라보게 될 때 제일 아름다운 것이 지구입니다. 여자는 땅을 상징하기 때문에 아름다워야 합니다. 그래서 여자는 얼굴을 아름답게 하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남자는 꿋꿋해야 됩니다. 여자 같은 남자한테 시집가겠다는 여자는 없을 것입니다. 남자는 장대같이 꿋꿋해야 됩니다. 또 남자는 남자 같은 여자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이 우주는 상대적 관계로 되어 있습니다. (72-184)


인간의 얼굴은 우주를 상징한다

󰡐나󰡑는 땅을 대표하고 부모를 대표하고 하나님을 대표합니다. 그래서 내가 귀합니다. 그렇게 귀한 것, 변하지 않는 것들을 드러낼 수 있고,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상대적 존재기 때문에 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만한 가치가 있고, 우리 부모가 그만한 가치가 있고, 땅이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 가치 평가기준에서 상대적 관계를 취할 수 있으니 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볼 때는, 얼굴을 바라봅니다. 얼굴보다 큰 몸통이 있지만, 얼굴을 바라봅니다. 왜 그러냐? 이 얼굴이 3세계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눈은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몸이 생겨날 때에는 눈이 먼저 생겨납니다. 개구리도 눈부터 생겨납니다. 그런데 이 눈은 왜 도느냐? 우주를 관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코는 인간을 상징합니다. 아담 해와를 상징합니다. 이 콧구멍이 하나라도 막혀 있으면 안 됩니다. 둘 다 뚫려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얼굴에서 드러나 있는 것은 코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이 우주에 드러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우주의 숨구멍 같은 것이 인간입니다. 코가 숨을 쉬어야 눈도 살고 입도 살고 다 삽니다.
그 다음에 입은 만물을 상징합니다. 이것은 횡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하늘을 상징하는 눈도 평면이요, 만물을 상징하는 입도 평면이지만 사람을 상징하는 코만 종적입니다. 사람의 이는 만물을 상징합니다. 이는 32개인데, 이것은 4수와 8수를 곱한 수입니다. 그러므로 32는 전체 수를 상징합니다. 즉 만물 전체를 상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만물을 이 이로 씹는 것입니다. 입에서 섞어 가지고 내 생명을 만드는 데 원료를 공급합니다.
귀는 동서남북 사방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목은 전체를 위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목운동은 눈 때문에 합니다. 이 눈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눈이 돌아가면 전체가 움직여야 됩니다. 하나님이 하는 대로 따라가야지 따로 행동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갈 때에는 부모도 따라가고 땅도 따라가고 언제나 같이 가야 됩니다. 이와 같이 눈은 하나님을 상징하기 때문에, 그 눈을 보면 그 사람의 본성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코는 부모를 상징하고, 입은 만물을 상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 가지가 잘생겨야 됩니다. 그래서 얼굴에 있는 구멍 수를 보면 일곱 개입니다. 여기에는 3수도 들어가 있고, 4수도 들어가 있고, 전체 수가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얼굴은 우주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우주를 상징하는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의 얼굴은 우주를 상징하기 때문에 잘생겨야 합니다.
그러면 왜 얼굴이 잘생긴 사람을 원하느냐? 얼굴은 우주를 드러낸 표상으로, 이 얼굴이 잘생겨야만 우주의 상대적인 가치를 많이 지닐 수 있어서 비례적인 가치를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생긴 사람󰡑 하면 얼굴을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누구든지 얼굴이 잘생긴 사람이 있으면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우주를 내 것 만들고 나와 많은 상관이 있게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의 인상을 보게 될 때, 눈이 먼저 웃는 사람은 종교적인 사람입니다. 또 입이 먼저 웃는 사람은 물질적인 사람입니다. 또 웃을 때 코가 벌렁거리는 사람은 변덕이 많고 성질이 일정하지 않습니다. 웃을 때에 얼굴 전체가 조화 있게 원형을 그리는 사람은 잘삽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원형을 닮아야 합니다. 원만한 인간이 돼야 합니다. 척 봐서 뒤가 잘생기고 앞이 잘생긴 사람은 전부 원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골상학을 봐도 그렇게 나옵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자기 멋대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우주를 닮아 났습니다. (72-186)



모든 면에서 조화의 미를 이루어야

우리 인간은 우주를 닮아 났기 때문에, 이 우주를 보는 그런 관을 가지고 사람의 모든 것을 척 보면 압니다. 선생님은 그런 면에서 상당히 잘 압니다. 틀림없이 그게 적중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눈이 크고, 동양 사람들은 눈이 작습니다. 그러니 서양 사람들은 가까이밖에 못 봅니다. 그래서 서양 사람은 현실적입니다. 눈이 크니까 가까운 것은 잘 보지만 전체를 보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동양 사람은 눈이 작으니까 멀리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깊은 세계의 철학이라든가 깊은 세계의 관을 발견하는 사람은 서양 사람이 아니라 동양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선생님은 동양인 중에서도 눈이 작고 깁니다. 그게 특징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은 모든 민족을 감정할 수 있고, 동서양을 감정할 수 있고, 운명도 감정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우주의 상징체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서양 사람들은 잘났다고 뻐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코의 폭이 좁고 깁니다. 왜 그러냐? 추운 데서 사니까 코 폭이 넓었다가는 심장병이나 폐렴에 걸리기 쉽습니다. 그러니까 할 수 없이 하나님이 코 길이를 길게 하고 폭을 좁게 만든 것입니다.
반면에 흑인들은 코가 폭이 넓고 길이가 짧습니다. 왜 그러냐? 더운 데 사니까 코가 길었다가는 큰일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환경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피부색깔도 환경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것이 천지 창조의 조화입니다.
북극과 가까운 곳에서 사는 서양 사람들은 흰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물이 그립고, 푸른 빛이 그립기 때문입니다. 푸른 자연이 그립고, 푸른 바다가 그립다는 것입니다. 높은 데는 눈이 있고, 낮은 데는 골짜기가 있고, 골짜기에는 썩은 것이 있으니 검어지는 것입니다. 나뭇잎도 검어지고 다 검어집니다. 그런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니 꼭대기만 좋다고 하면 안 됩니다. 골짜기를 무시한 꼭대기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조화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색깔 가운데 󰡐나는 흰색이 제일 좋다󰡑 할 수 있습니까? 전부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왜 서양문명을 이룬 백인들에 의하여 세계가 수습되었느냐? 무지개 빛을 합하면 백색이 됩니다. 그것은 완성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산꼭대기, 높은 곳은 백색으로 상징했습니다. 높은 곳은 완성을 상징했습니다. 그래서 산꼭대기에는 눈이 와서 쌓이는 것입니다. 전부 조화의 상징으로 그렇게 전개되어 있습니다. (94-67)



자살은 죄 중에 제일 큰 죄

나는 아버지로부터 왔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왔고, 땅 위의 아버지로부터 왔고, 그 다음에는 땅에서 내 몸이 자랄 수 있는 진액을 뽑아서, 아버지의 중심 골자를 빼서 내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살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과거에 그런 생각을 해본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자살하겠다는 것은 하나님을 죽이겠다는 말이요, 부모를 죽이겠다는 말이요, 땅을 죽이겠다는 말입니다. 그건 죄 중에 제일 큰 죄입니다. 3세계의 법에 치리받아야 하는데 자살은 그것을 위반하는 범죄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도 자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근본은 아버지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집에 들어가면 아버지를 좋아하느냐, 어머니를 좋아하느냐? 어머니를 좋아하는 게 원칙입니다. 우리 몸을 만져 볼 때 보들보들한 것을 좋아하듯이 살과 같은 어머니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더 가깝게 생각하고 느끼고, 모든 사정을 어머니를 통해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하고는 가깝게 사랑하면서 아버지를 하늘같이 높여야 됩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태양과 같은 분이 아버지기 때문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돌아야 되고, 지구와 같은 분이 어머니기 때문에 달과 같은 아들딸은 어머니를 중심으로 돌아야 합니다. 이런 우주 형태와 같은 가정조직이 되어야 하고, 모든 사회조직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그런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도 그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 책임자를 아버지와 같이 대해야 합니다. 교회에는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있어야 되고, 어머니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어머니 역할을 하는 사람은 교인을 길러서 하나된 가정 형태를 만들어야 됩니다.
나라도 마찬가지고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이 세계 조직은 한 사람과 하나의 가정 형태를 갖추어야 됩니다. 세계는 조직이 클 뿐이지 한 사람, 한 가정과 같습니다. (72-188)


인간은 하나님의 어느 한 부분의 세포와 같다

그런 점에서 영계를 볼 때, 영계의 조직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나님의 대상인 사람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전인류는 한 사람과 같은 상대적 형태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전부 하나님과 같은 형상으로 만들어졌으니 하나님과 같은 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 가운데는 눈 같은 사람, 코 같은 사람, 입 같은 사람, 귀 같은 사람, 손 같은 사람 등 여러 유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또 전체 장기(臟器) 부위의 한 모양을 닮아서 태어나기도 합니다. 즉 하나님은 우주를 대표한 인격자로서의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영계에는 한국 사람, 미국 사람, 흑인, 백인이란 관념이 없습니다. 있을 수 없습니다. 한 사람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어느 한 부분의 세포와 같습니다. 우리 몸은 4백조 개 정도의 세포로 되어 있습니다. 무수히 많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우리 인간은 하나의 세포와 같은 존재입니다. 따라서 세포 하나하나가 죽으면 그 자체에 고통이 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다 다릅니다. 전부 다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사람을 안다 하면 나도 너를 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알고 예수님도 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위하게 되면 나도 위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요, 하나님의 살과 같은 것이 인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살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인간을 만들자는 것은 하나님의 살을 만들자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영계의 조직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영계의 관념이 들어올 것입니다.
우리 몸은 기름과 연결되어야 하고, 피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물론 세포와 세포가 연결되어 있지만 기름과 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안팎으로 되어 있습니다. 피는 움직이고 기름은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운동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통하지 않으면 운동이 마비됩니다. 이렇게 안팎으로 우주적인 내용을 갖추어서 우리 인체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려면 어떤 길을 통해야 하느냐? 어머니와 같은 몸을 통하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몸과 같은 곳입니다. 어머니와 같은 곳입니다. 따라서 천국을 통해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72-190)

 


우주의 중심은 인간

지상세계의 모든 존재물은 반드시 원형(圓形)을 닮았습니다. 지구도 그러하지만 우주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주는 평면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원형을 닮았습니다. 도는 작용으로 연결되어 움직이는 세계니만큼 원형을 갖추어야 됩니다. 이것은 필연적인 사실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역시 하나님 자리에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돌아야 됩니다. 돌기 위해서는 반드시 출발점과 목적점을 이을 수 있는 과정적인 존재가 있어야 합니다. 그 존재는 어떤 존재냐?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요, 전체의 위치를 결정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한 존재가 바로 사람입니다.
이것을 절반으로 가르면 한쪽은 영계가 되고, 다른 한쪽은 육계가 됩니다. 또 절반으로 가르면 상하가 되고, 좌우가 됩니다. 전후․좌우․상하가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또 서로 크고 작고 하는 것이 아니라 좌와 우, 상과 하, 전과 후가 모두 같은 일체의 평등 기원을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자리가 중앙점입니다. 중앙점을 통해야 전체의 통일성을 기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높은 것은 높은 것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낮은 것을 돕기 위해 있습니다. 또한 낮은 것은 낮은 것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높은 것을 위해 있습니다. 오른쪽은 오른쪽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왼쪽을 돕기 위해 있고, 또 왼쪽은 왼쪽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른쪽을 위해 있습니다. 전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존재 원칙을 두고 볼 때, 자기 자체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그것을 영원히 정(正)이라고 판정할 수 있는, 어느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절대적 기준을 확정지을 수 있는 자리는 중심자리요, 그 한계선은 중심선입니다.
타락은 무엇이냐? 중심과의 간격을 넓혀 놓은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중심과의 거리가 넓은 사람입니다. 이 중심점으로부터의 이탈범위를 확대시키는 작용이 악의 작용입니다.
악의 작용과 반대로 중심점에 일치시키려고 하는 작용이 있어야 되는데, 그것이 선의 작용입니다. 악은 무한히 분립시키는 작용을 하고, 선은 무한히 통일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절대적인 선이라면 절대적인 통일을 해야 하는데, 그 통일은 영원히 가야 합니다. 만일 절대적인 악이 있다면 그 악은 확산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개인 개인이 분열되어서 세계 끝까지 나누어집니다. 한 가정으로서 살면서 영원히 통일의 가망성을 보지 못하는 가정은 악한 가정입니다. 나아가 한 나라의 국민성을 볼 때 하나될 수 없는 국민이라면 그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종합된 하나의 기원을 확정지어야 할 그 존재는, 인간 세상을 보나 우주를 보나 하나님도 아니요, 어떠한 목적에 있는 것도 아닌 우리 인간 자체입니다.
따라서 하늘이 기원이 되어 있는 모든 것은 내 마음을 통하고, 외적인 세계가 기원이 되어 있는 모든 존재들은 내 몸을 통해야 합니다. 이것이 엇갈린 자리에서 이중으로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직선상에 서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갈라진 인간을 반대로 접근시키는 일을 누가 해야 됩니다. 그것이 도의 길입니다. (49-20)

 


인간이 태어난 목적은 우주의 사랑을 완결하는 것

그러면 인간이 태어난 목적은 무엇이냐? 사랑을 성사하기 위해서, 이 우주의 사랑을 결실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결실하고, 이 땅의 주체로서의 사랑을 결실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아이고, 내가 사는 것은 지식을 위해서야. 그러니 대학을 가야 돼!󰡑할는지 모르지만,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권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생명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사랑을 위해서는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과 땅의 소원과 인류의 소원이 지극히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완성함으로써 하나님도 사랑을 찾는 데서 해방될 수 있고, 내가 완성함으로써 땅도 주체적인 사랑, 주인의 사랑을 찾는 데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인류 자체도 스스로의 모든 것을 완성했기 때문에, 일을 다 끝냈기 때문에 행복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 사랑의 완성은 누구에게 달려 있느냐? 물론 하나님에게도 달려 있지만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한 하나의 생명이 우주보다 크다고 한 내용이 해명됩니다. 그러니 그 사랑을 찾아 세움으로써 인간의 권리와 우주의 권리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81-18)
  
 
2. 우주의 존재 원칙


 
존재하는 것에는 목적 없는 것이 없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있어야 하느냐? 힘이 있어야 합니다. 힘이 있기 위해서는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주체와 대상은 왜 필요하냐? 목적을 위해서입니다. 이중목적, 공동목적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그래서 전부가 이중목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역사도 이런 면에서 나왔습니다. 역사는 무엇을 중심으로 해서 가느냐? 목적을 중심으로 해서 가는데, 그 중심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원형을 그릴 수 있는 핵심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상적인 기준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위주로 해서 이념을 찾아야 합니다.
존재하려면 힘이 있어야 하고, 존재물이 나왔다 하면 벌써 힘이 작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힘이 작용했다 하면 상대적 여건이 형성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기 전에 힘이 있어야 하고, 힘이 있기 전에 상대적 여건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자체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하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힘이 생겨나려면 작용을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에게도 플러스 마이너스가 있고, 여자에게도 플러스 마이너스가 있습니다. 전부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복잡하지만 하나의 목적권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상과 인간의 이상은 사랑을 중심으로 해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이상권에 만우주가 동원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주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상대적 여건에서 수수작용을 해야 되고, 그렇게 존재함으로써 창조목적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존재하는 것은 목적 없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변증법은 근본적으로 틀립니다. 대립물이 투쟁하여 통합한다는 논리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건 근본적으로 틀립니다. 그들은 목적의 세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 투쟁 발전을 인정하는 데 변증법을 쓰고 있습니다. (157-271)


 
3단계 존재의 원칙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작용을 해야 됩니다. 작용은 목적 없이 이뤄지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목적을 이루려면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플러스가 있으면 반드시 마이너스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원리로 볼 때, 어떤 관점으로 봐야 되느냐? 제일 문제 되는 것이 목적관입니다. 우주는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상대적 여건이 있어야 하고, 상대적 여건이 있으면 그것을 연결시켜주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힘을 통하지 않으면 존재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려면 힘이 필요하고, 힘이 있으려면 상대적 여건이 필요합니다. 상대적 여건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떻게 돼 있느냐 하면 주체와 대상, 이성성상으로 계십니다. 맨 처음 창조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나오기 위해서는, 즉 존재가 출발하기 위해서는 상대적 여건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체에서 이성성상이라는 말을 끄집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통일원리에 이성성상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성성상이 왜 필요하냐? 작용하려니까 필요합니다. 작용하면 존재합니다. 존재하면 반드시 목적을 이룹니다. 그리고 목적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성상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성성상이 있으면 어떻게 되느냐? 작용을 합니다. 수수작용이 벌어집니다. 수수작용이 벌어지면, 주고받으면 어떻게 되느냐? 목적이 나옵니다.
창조목적이 나오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되느냐? 3단계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아담과 해와가 주고받으면 자녀가 나옵니다. 그래서 3단계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갈라놓으면 마음과 몸으로 나뉘는데, 마음은 내적이요, 몸은 외적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중심으로 무형실체세계와 유형실체세계가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절대적 기준에서 필요로 합니다. 존재하는 데는 혼자서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이 존재는 주고받는 결합체입니다. 그러므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작용을 해야 하고, 작용을 하려면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 힘은 곧 작용입니다. 작용을 하면 반드시 목적이 개재됩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이 창조를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벌써 목적 성사를 위해서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다시 말해서 존재하려면 힘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반드시 작용을 해야 됩니다. 작용하지 않으면 해체되기 때문에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작용을 해야 합니다. (157-264)



우주는 어떻게 작용하는가
 
선생님이 창조원리를 찾아내서 쓰게 될 때, 어떻게 썼느냐? 먼저 존재를 인정한 바탕 위에서 썼습니다. 존재하려면 무엇이 있어야 하느냐? 힘이 있어야 합니다. 힘은 무엇이냐? 작용의 결과로 나오는 것입니다. 즉 작용할 때 나옵니다. 
그러면 작용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작용이 있기 전에 상대적인 여건이 필요합니다. 존재를 이루는 것도 작용의 힘이 있어야 하고, 존재하기 위해서도 역시 작용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작용하려면 반드시 상대적인 여건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고받는 작용을 할 수 있습니다. 주고받는 것도 맹목적으로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갑이면 갑, 을이면 을이 같이 주고받을 수 있는 목적권에 들어가서 주고받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손해보는 데서는 작용하지 않습니다. 나쁜 데서는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빠지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지기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주 창조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할 때 좋기 위해서 지었기 때문에, 절대로 나빠지게는 작용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은 화학작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이 작용하여 두 목적이 결합함으로써 서로 이익이 되어야 작용을 시작하지, 손해난다면 절대 작용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의 작용도 그렇고, 모든 존재가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도 󰡐내가 무엇을 좋아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엇인가 보탬이 된다. 더 좋아진다󰡑 할 수 있어야 주고받는 작용을 하지, 󰡐아이고, 나는 싫다󰡑 하면 주고받는 작용을 하지 않습니다. 싫은데 주고받으면 결국 자기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존재물이 선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하고, 힘이 나오려면 작용을 해야 하고, 작용하려면 반드시 상대적 여건이 필요합니다. 이 상대는 왜 나오느냐? 혼자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목적을 위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157-267)

 


병이 나면 아픈 이유
 
하나님은 천지를 좋아하기 위해서 지었는데, 하나님과 사람의 공동목적을 위해서 지었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왜 영생하려고 하느냐? 하나님이 영생하므로 그분 앞에 완전한 상대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영생을 바라고 이상적인 사랑을 바랍니다. 이것은 인간만이 가지는 특이한 권한입니다. 다른 동물에게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뜻을 완성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관계내에 인간이 들어가고, 그 관계내에 영계도 들어가고 지상도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려면 우리의 마음과 몸이 주고받아야 합니다. 마음과 몸이 종적인 관계와 횡적인 관계를 맺어 주고받아야 합니다. 그 길이 막혀 버리면 병이 납니다. 마음과 몸이 상충을 일으키면 병이 납니다. 우리 체내의 기관에 결함이 있어서 병이 나기도 하지만, 정신과 육체의 관계가 상충되어도 병이 난다는 것입니다.
병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우주의 공법에 일치되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일치되지 않은 만큼 병이 나는 것입니다. 우주의 공법은 일치한 물건을 흡수해서 그것을 보호하고 육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공법에 배치되면 배치된 만큼 우주의 힘이 몰아내고, 몰아낸 만큼 아픈 것입니다.
병이 나면 아픕니다. 왜 아프냐? 주고받는 것이 그만큼 막혔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공법은 서로 잘 주고받는 것을 보호하고 육성하게 되어 있는데, 병이 나면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적 여건이 막혀니 막힌 부분만큼 우주의 공법에 제거당합니다. 우주의 힘이 몰아내기 때문에 밀어내는 그 작용이 고통으로 느껴집니다. (157-268)


󰡐내 양심이 고통스럽다󰡑할 때, 왜 고통스러우냐? 우주의 공법에 의해 몸과 마음이 이념을 중심으로 일치화되어 잘 주고받으면 기쁜데, 몸과 마음이 어떠한 목적관을 중심으로 잘 주고 잘 받지 못하니까 그 목적관의 이념을 완성하기 위한 우주의 힘에 배치된 만큼 내 마음에 고통이 옵니다. 전부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상대적 여건입니다. 그래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되고, 힘이 있으려면 상대적 여건이 필요합니다.
상대적 여건은 왜 필요하냐? 그것은 목적 때문입니다. 그 목적은 주고받는 상대적 목적입니다. 그 목적은 나 하나만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 이중목적을 요합니다. 플러스 마이너스, 몸과 마음의 이중목적을 요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리고 우주는 전부 이중목적권 내에 귀결되어 있습니다. (157-269)
 

우주의 상응작용과 상충작용

주체와 대상이 하나될 때는 우주가 보호합니다. 마찬가지로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고 마음과 몸이 하나된 자리에 들어가면 어머니 아버지가 보호합니다. 그런 자리에 들어간 사람은 말한 대로 행동합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입니다. 이중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종횡이 하나입니다. 이 천리 법도는 사방성을 지녔기 때문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존재하는 것은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주체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 주체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주체고 몸이 대상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면 우주가 보호합니다. 왜 우주가 보호하느냐? 사랑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하나되면 우주가 보호한다는 공법이 있습니다.
전기는 플러스와 마이너스는 합하지만 플러스 플러스, 마이너스 마이너스는 반발합니다. 그러면 이 대기 중에서 일어나는 수억 볼트의 번갯불은 플러스 마이너스 전기가 한꺼번에 수억 볼트가 됐겠습니까, 조그마한 게 하나하나 합해져서 수억 볼트가 됐겠습니까? 조그마한 게 합해져서 수억 볼트가 되었습니다.
전기 이론은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하나된다는 논리입니다. 전기는 플러스끼리나 마이너스끼리는 무조건 반발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이 이론은 틀립니다. 왜 틀리냐? 이것은 학교 선생님한테 물어 보면 모릅니다. 물리 선생님에게 물어 봐도 마이너스 플러스가 어떻게 한꺼번에 수억 볼트가 되는지를 모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어릴 때는 남자는 남자끼리 모여서 놀지만, 어느 정도 커서 장가갈 무렵에는 남자보다는 여자와 만나서 노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플러스 플러스끼리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선생님도 어렸을 때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몇십 리 떨어진 곳도 걸어서 찾아다녔습니다. 여자들도 시집가기 전에는 여자 친구들과 몰려다니면서 놀지만 시집갈 때가 되면 여자 친구보다는 남자 친구와 어울립니다.
전기도 플러스 전기는 플러스 전기와 합할 수 있습니다. 남자나 여자가 결혼하기 전에는 끼리끼리 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합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상대가 결정된 순간부터는 남자는 남자를, 여자는 여자를 배척합니다. 이러한 우주의 법칙을 알아야 합니다. 상대와 통일권을 이룬 다음에는 플러스에 플러스가 오면 반발합니다. 또 마이너스에 마이너스가 오면 반발합니다. 왜 그러냐? 이는 우주의 보호원칙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우주에는 상응작용과 상충작용이 있어서 두 작용이 이 우주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플러스 전기가 있으면 마이너스 전기는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상대가 있기 전에는 플러스 전기끼리 합합니다. 마이너스 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가 결정되지 않았을 때에는 끼리끼리 합합니다. 이렇게 따라가다가 상대가 결정되면 플러스와 플러스는 반발하고 마이너스와 마이너스는 반발합니다. 사람도 결혼하기 전에는 동성끼리 좋다고 다 합하지만, 상대가 생길 때에는 아무리 가깝던 친구라도 발길로 차는 것입니다. 친구에게 󰡐우리 방에 들어오지 마라, 들어오지 마라󰡑 합니다. 결혼하고 나면 그렇게 됩니다.
그리고 친구가 󰡐내가 너를 네 신랑보다 더 사랑한다󰡑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좋겠습니까, 어떻겠습니까? 󰡐야, 저리 가!󰡑 합니다. 그건 왜 그러냐? 우주의 원칙이 상대이상을 보호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주력이 그 플러스 마이너스 앞에 오는 것을 밀쳐 버립니다. (187-63)

 


우주력이 보호하는 사람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고, 상하가 하나되면 우주가 보호합니다. 그리고 전후가 하나되고, 좌우가 하나되면 영원히 보호합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전후․좌우․상하의 융화(融和)입니다. 내가 중심이 되어 상대와 하나되면 보호를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를 가지면 우주가 보호합니다.
그러면 남자와 여자는 사랑을 중심하고 왜 만나려고 하느냐? 번개 치고 천둥 치는 것은 우주가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연의 사랑입니다. 자연의 결혼입니다. 번개 치고 천둥 치고는 비가 옵니다. 자연이 눈물 흘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자 여자가 사랑할 때 나타나는 현상과 마찬가지입니다.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고, 코에서는 콧물이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중심으로 이와 같이 전후 좌우의 중심자리에 들어가면 하나님과 영계, 그리고 사람들이 보호합니다. 우주력, 사랑을 중심으로 한 힘이 보호합니다.
우리 인간은 때로는 병이 나서 아픕니다. 왜 아프냐? 이건 의사들도 잘 모릅니다. 의사에게 병이 나면 왜 아프냐고 물어 보면 󰡐병이 났으니까 아프지󰡑 그럽니다. 병이 났으니까 아프다는 것은 답이 아닙니다. 그런 답변은 초등학교 학생들도 할 수 있습니다. 왜 아프냐? 우리 몸의 모든 혈관에서는 주고받는 수수작용에 의해서 순환운동을 합니다. 이렇게 순환운동을 하면 우주가 보호하기 때문에 아프지 않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는 달리 불편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는 지금 대기로부터 1기압의 압력을 평면적으로 받고 있는데, 이런 가운데서 순환운동을 하기 때문에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하지만, 만일 돌아가는 길이 막히면 막힌 부분이 대기의 압력에 의해서 찌그러져 불편을 느낍니다. 찌그러질 때는 이 우주 존재세계의 원칙에 위배됩니다. 그러니 이것을 시정하지 않으면 추방당하기 때문에 아픈 것입니다. 그래서 꼬집으면 순환운동을 하던 것이 막히기 때문에 아픔을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되어야 어머니 아버지 형님 누나가 다 좋아합니다. 말한 대로 행동하면 전체가 좋아합니다. 그렇게 해서 가족을 밟고 위로 올라가더라도 가족 전체가 󰡐어서 가라. 어서 밟고 올라가라󰡑고 합니다. 그렇게 올라가면 맨 마지막에는 자기들도 따라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보호하고 협조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 자리에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하나님 자리에까지 올라가면 하나님은 플러스고 나는 마이너스이므로 하나님이 높으니까 내려오는 것입니다. 내가 올라갈 때는 하나님이 내려옵니다. 수직으로 한번 넘는 것이 최고 이상입니다. 거기에는 모든 행복의 기원이 있기 때문에 생명력을 초월한 기쁨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세계에 들어가면 기뻐서 눈물이 나옵니다. 마음이 나자빠질 정도로 기쁩니다. 그런 세계에 들어가면 영계가 보이고 하나님이 꿈속에 나타나서 나하고 얘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 세계는 참사랑이 주관하는 세계입니다. 그런 세계를 이상세계라고 합니다.
󰡐이상󰡑 하면 가정적 이상기준을 말하는데, 그런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은 천리를 업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기준 위에 부부에 의한 가정이 있고, 가정기준 위에 종족이 있고, 종족 위에 민족․국가․세계가 있습니다. 전부 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효도하는 자가 충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나를 버리고 나라의 충신이 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랏님도 나라를 버리고 세계를 위해서 충신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가정을 버리고 자기 나라를 버리고 세계를 살리기 위한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역사상에 나타난 성인들입니다.
그러나 성인들도 천자(天子)는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 사랑의 도리를 몰랐습니다. 세계 4대 성인 가운데서 사랑의 도리를 중심하고 살다 간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말을 통해 종적인 사랑을 연결시켰습니다. 그리고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는 말을 통해 횡적인 사랑의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말들은 가정을 중심으로 한 말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사랑으로 맺어진 주의 사상을 말했고, 천지의 대도를 밝히려고 했기 때문에 그분은 성인 중의 성인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87-65)

 


마음은 종적인 나요, 몸은 횡적인 나
 
그러면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와 하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참사랑의 주체입니다. 그 주체가 가진 사랑의 직단거리를 세우기 위해서 창조한 존재가 인간과 만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종적인 사랑의 부모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으로 종적인 부모의 자리에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고, 참사랑을 중심으로 본연의 90각도에 일치되는 횡적인 자리에 계시는 분이 참부모입니다. 그래서 90각도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연결됩니다.
왜 90각도를 중심으로 연결되느냐? 사랑은 직행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최단거리로 가기 때문에 참사랑이 만나서 합할 수 있는 자리는 90각도 되는 자리입니다. 이것이 한번 합하게 되면 이것을 떼어놓을 자가 없습니다. 이것은 핵입니다. 그러한 본질적 요소, 동기적 요소를 통해 지금까지 핏줄로써 연결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조상들이 나왔습니다. 조상들이 횡적인 면에서 1도, 2도…, 360도의 환경을 맞추어서 나왔지만 중심은 하나입니다. 통일교인들은 하나님을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고, 자기를 낳아준 아버지도 󰡐아버지󰡑라고 합니다. 그리고 선생님도 참부모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게 어떻게 다르냐? 종적인 것은 하나입니다. 천년 전의 하나님이나 천년 후의 하나님이나 우리 인간 마음의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종(縱)은 하나, 절대지만 횡(橫)은 무한히 벌어집니다.
참부모는 뭐냐?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세계에서 하나님은 종적인 참된 사랑의 부모고, 참부모는 그 종적인 사랑에 90각도로 동과 서에서 연결시키는 횡적인 부모입니다. 그렇게 묶어진 것이 씨가 되어 종적인 것을 닮아서 난 것이 마음이고, 횡적인 것을 닮아 나온 것이 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과 마음은 언제나 90도로 맞아야 합니다. 위에 가서 거짓말하고 아래에 가서 거짓말하고 동에 가서 거짓말하면 안 됩니다. 동서남북 전후 좌우 어디에 가더라도 맞아야 합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하나되면 우주력이 우리를 동조하지만 틀어지면 몰아냅니다. 우주력이 몰아냅니다. 그래서 몸이 아프게 되고, 양심이 고통을 받습니다.
마음은 종적인 나고, 몸은 횡적인 나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은 뼈와 같고 몸은 살과 같습니다. 뼈가 있는 데에 살이 있어야 합니다. 뼈는 커졌다 작아졌다 하지 않지만 살은 커졌다 작아졌다 합니다. 그래서 종적인 것이 오래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이 하자는 대로 하는 사람은 멸망으로 가는 것이요,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치에 맞는 말입니다. (87-68)



마음은 천지의 도수를 맞출 수 있는 기준

마음은 천지의 도수를 맞출 수 있는 하나의 기준입니다. 천지의 도수를 맞출 수 있는 기준이 없으면 내가 그 본성을 만들어서 천지의 도리를 맞춰야 합니다.
이 지구 가운데 존재위치를 알기 위해서도 경도와 위도를 알아야 됩니다. 경도 위도를 그려서 거기서부터 위치를 결정합니다. 마찬가지로 우주의 모든 것은 어떤 기준을 중심으로 맞춥니다. 그럴 수 있는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종적 기준, 횡적 기준입니다. 전과 후가 되어 있으면 그것은 언제나 맞추기 쉽습니다. 남북이 되어 있든가 전후가 되어 있든가 상하가 되어 있든가 하면 맞추기 쉽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한 다음에는 종횡관계에서 종(縱)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본성의 종적인 기준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몸은 악마의 편이 되어 선한 것을 대해 싸우는 초소가 되어 있습니다. 각도가 틀어졌습니다.
우리 자체를 두고 볼 때, 내가 생겨나게 된 최초의 동기가 뭐냐? 생명이 아닙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생명이 아닙니다. 어머니 아버지 생명이 사랑에 의해 연결되어 혈통을 통해 태어납니다. 어머니의 피와 아버지의 뼈를 받아, 피살이 연결되어 자라서 10개월이 지나 태어납니다. 핏줄을 따라 어머니 아버지의 생명력을 지니고 태어납니다. 그러니 태어난 나의 근본은 나 자신이 아닙니다. 근본은 어머니의 생명이요 아버지의 생명입니다. 그 생명을 하나되게 한 것은 생명에 앞서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 모든 존재의 기원, 창조된 존재의 기원은 사랑입니다. (187-43)



완전히 주고받을 때 구형을 이루고 영생한다
 
우리는 수평을 잘 세워야 되고 수직을 잘 세워야 합니다. 건축물도 그렇습니다. 십자를 그려서 완전히 원형권, 구형권을 이룬 형태를 갖추느냐 못 갖추느냐에 따라서 그 건축물이 오래가느냐 오래가지 못하느냐가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집을 지으려면 완전한 수평과 수직을 이루어야 합니다. 조금만 찌그러져도 안 됩니다. 이것은 완전 원형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세계는 전부 다 원형을 닮았습니다.
수수작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주고 잘 받으면 원형을 그립니다. 잘 주고 잘 받을수록 원형을 그립니다. 잘 못 주고 잘 못 받을수록 기울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상대적 여건이 잘 안 될수록 주고받는 거리가 달라집니다. 그러나 완전히 잘 주고 잘 받으면 반드시 완전한 원형이 벌어집니다. 이렇게 해서 구형을 이룹니다.
그러면 영생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느냐? 수직관계와 수평관계를 구형관계로 볼 때, 완전한 구형이 되느냐 안 되느냐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람도 몸과 마음이 수평과 수직을 이루어 사방으로 완전히 주고받아야 합니다. 완전히 주고받을 때 완전한 구형이 되므로 영생하게 됩니다. 그래야 이상적입니다. 이상적인 것은 힘이 언제나 사방팔방 평균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오래갑니다. 그러나 그것이 조금만 틀어지면 파괴가 벌어집니다. (157-270)


그러므로 우주의 존재 공법은 완전히 주고받는 데 있습니다. 완전히 주고받는 데서 영원이 벌어집니다. 힘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전기로 말하면, 입력이 있고 출력이 있습니다. 들어오는 힘과 나가는 힘이 같으면 영원히 돌아갈 수 있습니다. 작용의 원칙은 들어오는 힘보다 나가는 힘이 작습니다. 출력이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점점점 전기는 감소합니다. 그러므로 영원히 존재하려면 완전히 주고받아야 합니다.
주고받는 데서 차이가 없으면 어떻게 되느냐? 영원히 갑니다. 돌도 오래 가는 것은 어떤 것이냐? 완전히 주고받은 것은 오래갑니다. 그러나 돌에 불순물이 끼어 있으면 완전히 주고받지 못하므로 오래가지 않습니다. 주고받는 데 있어서 차이가 크면 클수록 빨리 붕괴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의 공법에서 존재의 법칙은 무엇이냐? 그것은 주고받는 것입니다. 완전히 주고받아야 합니다. 잘 주고 잘 받으면 오래 존재하는 것이요, 못 주고 못 받으면 붕괴되어 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영원하기를 바랍니다. 영생을 바랍니다. 영생을 바라는데,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다른 것은 다 변합니다. 환경도 변합니다. 그러면 사랑은 왜 변하지 않느냐? 사랑은 모든 생명력의 중심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랑은 이상적인 요건의 중심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에 변하지 않습니다. 중심은 그 주위가 전부 없어지기 전에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사랑이 우주의 중심이기 때문에 사랑과 하나되면 하나님과 일체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남아 있는 한 남습니다. 그러니 영원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모든 사물을 관찰해야 합니다. (157-266)



3. 천운과 우주의 공법
  

 
모든 존재는 어떠한 목적을 향하여 달리고 있다


이 땅 위에 존재하는 어떤 존재물도 쓸데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목적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존재물은 각기 어떠한 목적을 두고 그 목적이 이루어질 때까지 시간의 과정을 거쳐 나갑니다. 그 기간은 하루에서 일년, 십년, 혹은 자기 일생 동안에 걸칩니다. 국가를 예로 들면, 국가는 수백 수천년의 역사를 두고 그 하나의 목적인 선을 향하여 달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존재는 자기들이 존재하기 위한 목적의 기대를 향하여 달리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소년시대․청년시대․장년시대․노년시대가 있습니다. 소년시대는 청년시대와 다르고, 청년시대는 장년시대와 다르고, 장년시대는 노년시대와 다릅니다. 또한 그 시대 시대를 살아 가는 자신들에게 맞는 책임과 사명이 있습니다. 따라서 소년시대에 해야 할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청년시대를 힘차게 맞을 수 없고, 청년시대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장년시대를 힘차게 맞을 수 없습니다. 또한 장년시대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노년시대를 힘차게 맞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일생에서도 각 시대 시대에 주어진 그 사명을 다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서 자기의 후대, 다시 말하면 앞으로 다가오는 목적기준을 이루는 데 자신들이 책임을 다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문제가 좌우됩니다.
대한민국 역사를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은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대한민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세계 모든 국가들과 협조하기 위한 분담된 목적으로서 책임을 지는만큼 대한민국 자체의 목적을 완수함과 더불어 세계의 목적과 보조를 맞춰 나가야 됩니다.
복귀섭리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복귀섭리역사 가운데에도 소년시대가 있고, 청년시대가 있고, 장년시대가 있고, 노년시대가 있습니다. 또 하루에도 아침이 있고, 낮이 있고, 저녁이 있고, 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침은 아침에 해당하는 준비를 갖추어야 되고, 낮은 낮으로서, 저녁은 저녁으로서, 밤은 밤으로서 그 시간권에 분담된 책임이 있습니다.
오늘날 타락한 이 땅을 복귀해 나가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을 복귀해 나가는 데 있어서도 소생시대․장성시대․완성시대를 거쳐 나갑니다. 이와 같이 복귀섭리의 전체 분야에서 소생시대․장성시대․완성시대로 갈라지듯이, 오늘날 우리 생애노정에도 이러한 원칙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자기가 소생기에 있는지 장성기에 있는지 완성기에 있는지를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런 자기 입장을 몰라서는 자기 목적을 위해 준비하고, 그 목적을 향해 나아가야 할 주체적인 사명을 완결지을 수 없습니다. (24-211)



개체의 목적은 전체의 목적과 방향을 맞추어야 한다
 
사람은 각자 천품이 다르니만큼 일생을 살아 가는 각자의 목적도 다릅니다. 개인이 가진 성품에 따라 각자가 바라보는 목적기준이 다릅니다. 이렇게 개인은 개체의 목적이 있는데, 그 개체의 목적은 전체의 목적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전체의 목적과 연결되어야만 그 사람이 전체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서 때나 운세를 맞출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생활하는 데 있어서, 자기 개체의 목적을 위해서 사는 것보다 전체의 목적을 위해서 살라는 것이 지금까지 교육이나 도덕이 지향해 나오는 표준입니다. 따라서 개체를 위하기보다 전체를 위해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에 사람은 반드시 자기보다 공적인 것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공적인 것은 하나가 아닌 전체를 대표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적인 것은 자기를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볼 때, 자기라는 것은 혼자 있을 수 없고, 전체가 살고 있는 환경 가운데서 자기가 서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체가 전체를 중심으로 보조를 맞추어 수직으로 서서 전체 앞에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45도나 60도로 각도가 벌어지면 그 각도의 차이에 해당하는 만큼 공적인 것에 피해를 줍니다.
사람들은 󰡐바르게 살아야 된다󰡑 혹은 󰡐곧게 살아야 된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 바르게 살아야 된다는 그 기준이 무엇이냐? 자기를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산에 있는 나무를 보고 󰡐저 나무는 똑바르다󰡑 하는 것은 자기 입장에서 보고 내린 판단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는 땅과 환경의 그 터전을 보았을 때 90각도로 자라는 나무라야 똑바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은 자기가 아닙니다. 공적인 기준, 자연적인 기준은 순리나 천리를 중심으로 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확실히 모르고 있지만, 막연하게나마 그러한 원칙에 의해 󰡐바르다󰡑 혹은 󰡐그르다󰡑는 말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자체 목적보다 전체 목적을 위해서 나가야 됩니다. 따라서 언제나 전체 목적 앞에 그 방향을 맞춰 나가야 됩니다. (24-212)

 


천운과 방향을 같이할 때 영원히 존재한다
 
인간이 일생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자기의 목적을 천지의 방향과 평행선을 이루어 나가는 사람은 기필코 천운과 더불어 영원히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이것이 부딪치는 날에는 개체의 운은 천운에 깔립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한민국의 운세에 보조를 맞추어 나가야 됩니다. 더욱이 우리 통일교회는 대한민국의 운세와 더불어 천운에 보조를 맞추어 나가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입장에 있는 천운이나 대한민국에 대하여 평행선을 그어 나가야 할 중간 위치에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것이 오늘날 통일교인들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복귀섭리 목적을 모르기 때문에, 이 나라면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시대 현상이나 환경에 일치되는 사회생활을 하는 그것만으로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생활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복귀섭리의 책임을 짊어진 통일교인들은 천운을 중심하고 대한민국과 보조를 맞추어 나가야 됩니다. 또한 대한민국도 천운을 중심으로 평행선으로 걸어가야 됩니다. 또한 통일교인들도 이 나라의 백성으로서 평행선에 서서 가야 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천운에 보조를 맞추지 않고 백성만을 위한 길을 간다면 언젠가는 천운과 부딪칩니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그릇된 것이 깨지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망하게 됩니다. 그것은 어떤 국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의 목적을 이루지 못합니다. 설령 그 국가의 목적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이 역사적인 운세와 관계를 맺지 못하면 그 민족이나 국가는 반드시 후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이 나라가 어떻게 하면 천운과 평행되게 운행할 수 있느냐? 천지의 운세 앞에 대한민국의 법을 맞추어 나가야 합니다. 세계 정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국가든지 자국을 중심으로 자국의 이념만을 향하여 나가게 되면 절대 통하지 않습니다. 미국도 그렇습니다. 미국이 지금까지 세워 나온 미국 자체의 정책으로 세계의 운세를 좌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천운을 중심으로 평행선을 그리는 민족이 되면 그 민족은 기필코 세계적인 권한을 가지고 나타나게 됩니다. 그 민족이 가는 방향이 세계의 운세와 영원히 일치되면 그 민족은 영원히 망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세계의 운세나 지구의 운세, 혹은 하늘의 운세 자체가 대우주의 법도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구도 지구 자체 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태양계의 한 행성으로서 모든 힘의 균형을 취하여 공전합니다. 만일 그 궤도에서 벗어나면 그것은 우주 파탄의 요인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가 돌기 위해서는 그 궤도를 따라, 언제나 이 우주의 운동법칙에 해당하는 힘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위치를 취하여 보조를 맞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원히 존재합니다. (24-213)

 


천운의 때를 잘 맞춰 나가자
 
그리고 때를 잘 맞춰 나가야 합니다. 때에는 우주적인 때, 세계적인 때, 국가적인 때가 있습니다. 대한민국도 대한민국 자체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대한민국에는 종족․가정․개인이 있으니 개인의 때, 가정의 때, 종족의 때, 민족의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타락한 우리 인간은 어떤 때에 맞추어야 하느냐? 이 우주의 때를 우리 가정에 맞추어 종족의 때를 대표할 수 있고, 민족의 때를 대표할 수 있고, 국가의 때, 세계의 때를 대표할 수 있는 입장에서 살아야 합니다. 
아침에 해가 정상적으로 떠올랐다가 져서 다음날 아침에 다시 떠오를 때까지의 24시간을 24시간으로서 가치 있게 정상적으로 완전히 천운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우리 개인의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24시간과 더불어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때입니다. 때를 잘 알아야 합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동쪽에 해가 떠오르기 전에는 아침인지 저녁인지 잘 모릅니다. 노을이 지는 것만 보고서는 아침 해가 뜰 때인지 저녁 해가 질 때인지 잘 모릅니다. 잠을 자다가 일어나서 보면 아침인지 저녁인지 혼동할 때가 있습니다. 그와 같이 상대적으로 엇갈리게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 이 세계의 운세를 두고 볼 때, 운세가 쇠해 가는지 흥해 가는지 모양이 같기 때문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세계가 이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것이나, 불교에서 말하는 것이나 그 이치는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안팎입니다. 하나는 안에서 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밖에서 본 것입니다. 그런데 천운은 반드시 목적을 향해 통합운동을 해 나가기 때문에 내외관계에 봉착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내외 그 자체가 같으냐 하면 같지 않습니다. 방향이 다릅니다.
손과 손이 마주보게 되면 그 모양은 같습니다. 그러나 방향이 반대입니다. 한 손은 오른쪽이요, 다른 한 손은 왼쪽입니다. 어떻게 보면 같은 것 같지만 서로 다릅니다. 따라서 오른쪽 왼쪽을 분별해서 어느 것이 앞에 가는 것이고 어느 것이 따라가는 것이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인들이 그런 운세권에 있습니다. 반드시 전후관계를 중심으로 걸어나가게 됩니다. 통일교인의 입장에서 볼 때, 통일원리를 가지고 세상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이런 전후관계의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즉 상대방과 비슷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이런 때는 혼동을 가져옵니다. 그 환경에서 자칫 잘못 분석하여 내적인 것을 외적인 것으로, 외적인 것을 내적인 것으로 판단하게 되면 망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내외․전후․좌우․상하관계를 갖추어 운행하여야 합니다. (24-215)

 


우주의 중심은 무엇이냐
 
우주의 중심은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절대적인 실체가 우주의 중심입니다. 그 절대적인 중심의 요소와 일치되는 내용을 지닌 존재가 그 중심에 가까이 설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내용에 일치되는 요소를 갖추어서, 심정적으로나 사정적으로나 또는 소망적으로 1백 퍼센트 일치되면 그 중심과 가까운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세계의 중심을 가리는 데 있어서도 그 방향이 있습니다. 세계가 동서남북을 중심으로 도는 방향이 있습니다. 한꺼번에 사방을 붙들고만 있으면 돌지 못합니다. 움직이는 세계기 때문에 반드시 정면으로 대하는 방향이 있습니다. 이것을 가려내야 됩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지금 때는 신앙세계에서도 비상시입니다. 이때는 어느누구나 자기를 주장하고 나옵니다. 불교면 불교, 기독교면 기독교, 혹은 그 외 어떠한 종교도 자기네 종교가 최고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최후에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 인간세계를 볼 때에, 지금까지 자기를 주장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주장한 것들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것들은 중심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는 내용들이기 때문에 해결지을 수 있는 방안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최후에 중심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이것은 인간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하늘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지금과 같은 정세를 해결할 수 있는 중심은 인간이 아니요, 세계정세를 수습하려는 어떤 정치세력도 아닙니다. 지금까지 그런 것들은 천운과 보조가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전체의 주체는 누가 될 것이냐? 우주의 전체를 움직이는 실체가 있다면 그 실체가 주체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 양심이 작용하여 하나의 선의 목적을 지향해 나가는 데에 있어서도, 이 양심작용 전체가 통합해서 전체를 수습하여 󰡐합했다󰡑 하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이 있어야 됩니다. 동양 사람은 󰡐그렇다󰡑 하는데 서양 사람은 󰡐아니다󰡑 하면 안 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됐다󰡑 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됩니다. 과거 사람은 아니라고 하는데 현재 사람만 그렇다고 해도 안 됩니다. 현재의 사람은 그렇다고 하는데 미래의 사람은 아니라고 해도 안 됩니다. 동서고금의 어떤 사람을 막론하고 그들의 양심에서 󰡐그것이다!󰡑 하는 소리가 나와야 됩니다. 그래야 그것이 원인과 결과의 초점이 됩니다.
그러면 그런 하나의 중심이란 무엇이냐? 원인적인 존재요, 결과적인 존재요, 전후관계․좌우관계․상하관계를 통합한 하나의 집약적인 기준입니다. 그 중심으로 인해서 전후관계도 있고, 좌우관계도 있고, 상하관계도 있습니다. 이런 것을 중심으로 삼아야 됩니다.
사람은 그러한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시간의 한계권에 있는 인간은 역사의 전체 섭리 앞에, 전체 운세 앞에 전후관계와 좌우관계를 갖출 수 없습니다. 시간의 중심이 될 수 있고, 공간의 중심이 될 수 있고, 역사적인 전후관계와 좌우관계에서, 세계무대에서 동서고금의 하나의 중심 실체가 될 수 있는 것은 시간이나 공간의 제한을 받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또 현시점에서, 현 생활권에서 과거․현재․미래를 능히 움직일 수 있는 능동적인 입장의 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럴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이러한 최후의 결정적인 시점을 가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그 한때의 중심이 될 수 있으며, 시운을 움직이는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한 세계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 방향을 갖추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인류에게 그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위대한 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부모입니다. (24-220)
 


슬픔과 기쁨은 어떻게 생기느냐
 
사람이 사는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사업에 있다, 혹은 세계적인 학자가 되는 데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진짜 인생이 지향해야 할 목적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심정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큰 사업가가 되고, 세계적인 학자가 되고, 세계 사람들이 추구하는 명망 높은 존재가 되었다 하더라도, 자기 마음이 만족할 수 있는 심정적인 안식을 갖기 전에는 불행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만나서 부부로 살다가 남편이 죽든가 아내가 죽든가 하면 왜 눈물을 흘리느냐? 좋고 나쁜 것이 무엇이며, 왜 나빠야 하느냐? 그러한 것들은 자기에게서 규정되어 자기에게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그런 동기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는 언제나 피동적인 입장입니다.
그러면 좋은 것은 왜 좋고, 나쁜 것은 왜 나쁘냐? 자기를 중심으로 󰡐좋다󰡑 󰡐나쁘다󰡑가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좋다󰡑 󰡐나쁘다󰡑 하는 기준은 무엇이냐? 선의 목적에 플러스되면 좋은 것이고, 마이너스되면 나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들이 좋은 길을 찾아가는 데는 혼자서는 못 갑니다. 상응관계를 중심으로 상대적 관계를 맺어 서로 보조를 맞추어 가야 합니다. 그러니 반드시 남자와 여자가 같이 가야 합니다.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가는 데도 혼자서는 못 갑니다. 길을 걸어갈 때에도 두 발이 방향을 달리해서 간다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길을 걸을 때에도 두 발이 한 방향을 향해서 가야 됩니다. 우주의 공법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남자와 여자가 같이 가는데 아침 저녁으로 서로 싸우면서 몇 시간만 맞추어서 가면 되느냐? 그래서는 안 됩니다. 어디서부터 맞추어야 되느냐? 골짜기 밑창에서부터 시작해서 끝까지 맞추어야 됩니다. 그 골짜기 밑창이 어디냐? 힘든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선을 그려 나가야 합니다. 부부 사이에 직선을 그려 나가서 그 선상을 지탱해 갈 수 있으면 이것이 이상적입니다. 그것이 본래 인간이 태어나서 가야 할 공통적인 노정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플러스될 수 있는 십자가의 크고 작음에 따라서 희비극이 벌어집니다.
그러면 왜 슬프냐? 가슴이 아프게 슬플 때도 있는데, 왜 슬프냐? 무슨 힘이 나에게 작용해서 슬프냐? 그것은 생명력을 좌우할 수 있는 우주 대운세, 우주 공법의 작용 때문입니다. 이 공법에 부합되지 못하고 반대되면 제거당합니다. 우주의 힘은 밀기도 하고 잡아당기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반대 방향으로 밀어내는 힘이 크면 클수록 슬픔을 느낍니다.
부부가 같이 살다가 한 사람이 먼저 죽으면 슬퍼서 울음이 나옵니다. 왜 그러냐? 우주의 공법 기준에 불합격되어 우주력이 몰아내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 공법에 불합격 기준이 되면 이 우주의 공적인 힘이 그 사람을 밀어내게 되고, 또 그렇게 될 때에 슬픔의 강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울음이 나옵니다.
그러면 기쁨은 어떻게 생기느냐? 그러한 우주 공법에 일치되면 우주의 힘이 그를 안으려고 합니다. 그 힘이 크면 클수록 강하게 부여안게 되고, 강하게 안으면 안을수록 그 사람은 그 내적인 중심에 들어가기 때문에 기쁨이 옵니다. 그러므로 슬픔과 기쁨은 어디에서 벌어지느냐? 자기 자신에게서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힘의 원칙, 즉 우주 공법의 중심입니다. (24-222)



우주 존속의 공식

남자가 혼자 살면 불쌍하다고 합니다. 홀아비가 되면 불쌍하다고 합니다. 또 여자가 아무리 미인이라도 과부가 되면 불쌍하다고 합니다. 그 집이 아무리 훌륭하고 뭐 어떻더라도 혼자 있으면 불쌍하다고 합니다. 왜 불쌍하다고 하느냐? 사랑의 상대를 못 가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사랑의 상대가 필요하냐? 사랑의 상대는 온 우주가 보호합니다. 사랑의 상대와 완전히 주고받으면 천운과 모든 운이 보호하게 되어 있습니다.
병이 나면 아픕니다. 의사한테 찾아가서 󰡐의사 선생님, 병이 나면 왜 아픕니까?󰡑 하고 물으면, 󰡐아프긴 왜 아파? 병이 났으니 아프지󰡑라고 합니다. 이것은 근본문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병이 나면 왜 아프냐?
이 우주의 환경권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이 환경을 주체와 대상으로 지었습니다. 주체와 대상이 있으면 보호하게 되어 있습니다. 천운이 보호합니다.
우리 몸의 세포를 보더라도 핵을 중심으로 부체(副體)가 있습니다. 그게 우주 존속의 공식입니다. 그것이 무너지게 되면 못 쓰게 되니 우주 전체의 힘, 천운이 냅다 밀어내는 것입니다. 
우리 몸의 사지백체는 전부 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어느 하나가 없어졌다고 하면 천운이 그 불합격자를 몰아냅니다. 우주 공법에 의해 완전히 하나되어 있는 것을 보호하게 되어 있는데, 여기에 해당 안 되니 밀어내는 것입니다. 그 밀어내는 힘이 아픔으로 나타납니다. 제3의 힘이 밀어내기 때문에 아프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죽으면 왜 가슴이 아프고, 왜 통곡을 하느냐? 그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느냐? 사랑을 중심하고 주체와 대상으로 완전히 주고받을 때는 우주의 보호를 받지만, 하나가 없어지면 원칙에 불합격자가 되니 자체에서 제거하기 때문에 가슴이 아프고 통곡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사업할 때, 둘이 하나되면 흥한다고 합니다. 완전한 플러스 마이너스가 하나되면 흥하게 됩니다. 유교의 도리 가운데도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했습니다. 󰡐가화(家和)󰡑는 왜 󰡐만사성(萬事成)󰡑이냐?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여덟 식구면 여덟 식구가 완전히 하나되어 있으면 균형을 취함으로써 여덟 식구의 운을 보호할 수 있는 천운이 가해지기 때문에 󰡐가화만사성󰡑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원합니다. 사랑을 원하는데, 사랑의 상대가 하나님보다 더 잘나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자기의 상대가 자기보다 못나기를 바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또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못나기를 바라는 어머니 아버지도 없습니다. 그건 누구를 닮아서 그러냐? 근본을 닮아서 그렇습니다. 이렇게 볼 때, 결국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서 하나님 자신도 그렇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서 자기 사랑의 상대가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고,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는 것이 원형이정(元亨利貞)입니다. 천도지상(天道之常)입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갖고 있는 것을 1백 퍼센트만 투입하면 하나님과 같은 것밖에는 안 됩니다. 천만 배 이상 낫기를 바라기 때문에 1백 퍼센트를 천만 번이라도 투입해서 잊어버리면 그 세계에서는 상대가 자기보다 나은 기준이 영원히 유지되는 것입니다. (239-60)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데서 참이 성립된다
 
하나님은 주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릴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으로 영생의 논리가 형성됩니다.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다 보면 점점점 더 큰 사랑의 상대가 나타나기 때문에 여기에서 영생의 논리가 이루어집니다.
참사랑이란 무엇이냐?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훌륭한 부모는 투입하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부모입니다. 대학에 보내줬으니까 우리가 늙으면 봉양해야 되고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서 수첩에 기록해 계산서를 미리 준비하는 부모는 거짓부모입니다. 나라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애국자는 나라를 위해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사람입니다. 나라를 위해 논밭을 다 팔고, 생명까지도 투입하는 사람이 애국자입니다.
그래서 참사람은 하나님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하는 식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형제 중의 참형제도 하나님이 하는 것과 같이 모양을 닮아 가려고 하는 형제입니다. 참남편, 참아내, 참아들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를 위하고 잊어버리고, 위하고 잊어버리고, 또 위하는 아들딸이 참아들딸입니다. 여기에서 참이 성립됩니다.
참사랑이 있으면 무한한 가치의 상대가 됩니다.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는 상대이므로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함부로 대하는 것은 참사랑이 아닙니다. 그리고 참사랑은 투입하고 절대 작아지는 법이 없습니다.
공기를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해서 최저의 저기압이 되면 최고의 고기압이 생깁니다. 그러면 고기압이 저기압권을 찾아갑니다. 하늘을 대해서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면 하나님이 찾아오게 되고, 나라를 위해서 투입하고 잊어버리면 나랏님이 찾아옵니다. 최고의 주인이 되고 주체가 되는 그분이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239-62)

 


우주의 공법과 사위기대
 
우주의 공법은 남자와 여자가 맨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일치되어 가는 길입니다. 이 길은 천운이 가는 길입니다. 혼자서 가는 것이 아니라 남자 여자가 일치되어, 즉 부부가 일심이 되어 가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싸우고 울고불고 죽겠다고 야단법석을 하는 사람들은 빨리 제거당합니다. 공적 법도권에서 불합격품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쓰레기통으로 가게 됩니다. 마음은 그것을 알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슬픔을 느낍니다.
또 자기 아들딸이 없으면 불행을 느낍니다. 󰡐아들딸이 없어도 부부끼리 사이좋게 지내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천리 법도가 사위기대 원칙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하나되었으면 반드시 아들딸을 낳아서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주의 공법입니다. 
사위기대를 이루지 못하면 우주의 공법에 합격할 수 없습니다. 또한 아들만 있어서도 안 됩니다. 아들만 있으면 아들에 대한 사랑의 맛은 알지만 딸에 대한 사랑의 맛은 모릅니다. 꿀맛이 어떻다고 누가 설명을 해서 그 맛을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설명만으로는 안 됩니다. 직접 입을 벌려 먹여주고 나서 이것이 꿀맛이라고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아들이 없으면 왜 섭섭하고 불행하다고 하느냐? 딸만 가진 사람은 아들을 가진 사람을 보면 아들을 갖는 것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조금 둔합니다. 그들은 개인주의 사상을 강조하다 보니 그런 감정들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다시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은 것은 얼굴을 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랑의 법도를 세우기 위해서 인간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 선입니다. 사랑의 참된 줄로 연결된 것이 참된 가정이고 참된 국가며 참된 세계입니다. 여기에서 근본은 가정입니다. (24-224)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주의
 
통일교회는 세계적으로 어떤 권력 기반을 닦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통일원리는 성경 66권을 풀어서 가정(家庭)에 결론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인류가 남아지는 한 통일교회의 사상을 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어느 누가 내세운 사상보다도 구체적인 내용을 갖추어서, 사실적인 근거의 터전 하에 역사적인 실증을 기반으로 하여 이상적인 가정의 형태를 제시해 놓았기 때문에, 이 사상은 세계를 정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 세계를 정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24-274)
그러니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고, 아들딸이 있는 가정을 이뤄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완전히 하나되어 처음부터 목적지점까지 천운에 보조를 맞추어 나가면 이 가정은 영생합니다. 그런 가정이라야 영생하지 혼자서는 영생하지 못합니다. 설령 영생을 한다 하더라도 영원한 세계에서 고생 보따리를 싸 가지고 다니게 됩니다.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예수님은 영생의 세계에 못 들어갔습니다. 하나님 나라, 이상세계에 못 들어갔습니다. (24-225)
세계는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대립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세계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부딪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기준을 중심으로 우주의 운세가 지향해 나가는 그 목적 앞에 소련을 중심한 공산세계와 미국을 중심한 민주세계를 하나 만들어야 하는데, 무엇으로 하나 만드느냐? 민주주의로도 하나 만들 수 없고, 공산주의로도 하나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하나 만드느냐? 천주주의로 하나 만들어야 합니다. (24-215)
아들주의라는 말은 없습니다. 부모도 아들주의, 아들도 아들주의 입장에서 하나되어야 한다는 말은 없습니다. 이것은 가정주의 권내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가정주의는 가정을 합해서 국가를 형성하려니 필요합니다. 또 국가주의 앞에는 이 가정주의도 흡수됩니다. 그리고 국가주의는 세계주의 앞에 흡수되고, 세계주의는 천주주의 앞에 흡수되며, 또한 천주주의는 심정주의 앞에 흡수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무슨 주의냐? 심정주의입니다.
󰡐천주주의󰡑의 󰡐주󰡑는 󰡐집 주(宙)󰡑 자입니다. 천대주의(天大主義) 혹은 천왕주의(天王主義)라고 하든지 천주주의(天主主義)라고 하든지 할 것이지, 왜 이 󰡐천주󰡑라는 말에 󰡐집 주(宙)󰡑 자를 썼겠습니까? 이것은 가정을 의미합니다. 󰡐집 주(宙)󰡑 자를 쓰는 것은 하늘의 집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24-276)
그러면 우리 인간이 바라야 할 것이 뭐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천국창건이라는 목표를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습니다. 사는 것도 세상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또 우리는 이 세상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주인입니다. (24-226)
  
 
4. 우주완성의 본거지



하나님은 무엇을 향하여 가느냐
 
우주는 왜 존재하느냐 하는 것은 누구나 생각하는 문제입니다. 소년시대부터 장년시대, 노년시대, 죽을 때까지 그 생각을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남자도 그렇게 생각하고, 여자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또 하나님이 왜 우주를 만들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는데, 하나님이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이냐? 그리고 어디를 향해서 가느냐? 하나님도 움직이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가야 되고, 남자도 여자도 가야 됩니다. 나라도 가야 되고, 세계도 가야 됩니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향하여 가느냐? 또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은 사람, 남자면 남자는 무엇을 향하여 가느냐? 하나님은 주체고 피조세계는 대상이라 할 때, 서로 가야 할 목적이 같겠느냐, 다르겠느냐? 하나님이 뒤로 돌아섰더라도 하나님이 돌아와야지 그 목적이 돌아올 수 없습니다. 그 목적이 서쪽에 있으면 하나님이 동쪽으로 가다가도 서쪽으로 가야 합니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도 방학 때 아무리 동서남북으로 돌아다니더라도 학기가 시작되면 학교에 돌아와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학교가 돌아갑니다. 우리 가정을 봐도 아버지 어머니 아들딸들이 다 헤어졌더라도 반드시 가정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우주를 움직이는 하나님은 어디로 가느냐? 꽃 피는 경치 좋은 동산으로 가느냐, 음악이 있는 곳으로 가느냐? 하나님이 가는 곳은 싸움하는 곳이 아닙니다. 서로가 등지고 있는 곳이 아닙니다. 좋아하면서 하나된 곳입니다.
세상에서 평화와 사랑과 행복, 자유를 얘기하지만, 이것은 무엇을 근거로 하는 말이냐? 사랑을 근거로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사랑을 빼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랑 중에서도 참사랑입니다. 그래서 남자도 참사랑을 찾으러 가고, 여자도 참사랑을 찾으러 갑니다. 우리 통일교회도 참사랑을 찾으러 갑니다. 그리고 미국도 세계도 참사랑을 찾으러 갑니다. 우주가 생긴 것은 참사랑 때문입니다.

 


우주 운동의 시원
 
우주는 운동하고 있습니다. 이 운동이 어떻게 시작되느냐? 과학자들은 이 우주가 힘으로 되어 있다고 하지만, 힘이 먼저냐, 작용이 먼저냐, 주체 대상이 먼저냐 하는 것을 가려놓지 않았습니다. 이론적으로 이것을 가려놓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막연한 결론밖에 안 나옵니다. 그런 막연한 결론은 미완성으로 끝납니다.
우주의 운동은 어떻게 시작되느냐? 직선상에서는 운동하지 못합니다. 두 점을 연결한 것이 직선이기 때문에 직선상에서는 조화가 불가능합니다. 3점에서부터 창조의 조화가 시작됩니다. 3점에서부터 포물선을 통해서 원형이 그려집니다.
그러면 운동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운동은 미는 데서부터 시작되겠느냐, 잡아당기는 데서부터 시작되겠느냐?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주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운동은 미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어떤 게 쉬우냐 하면 미는 게 쉽습니다. 당기는 것은 이중의 힘이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미는 것은 주는 것이고, 당기는 것은 받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볼 때, 받고 싶으냐, 주고 싶으냐? 통일원리에 수수작용(授受作用)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수수(授受)󰡑는 󰡐줄 수(授)󰡑 자가 먼저입니다. 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줍니까, 자식이 부모를 위해서 줍니까?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줍니다. 이것을 볼 때, 존재의 최초 기원이 되는 그분으로부터 주는 일이 시작되어서 작용이 연결되었다는 논리를 인정해야 됩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이렇습니다. 파이프가 있고 하나님이 있다 할 때, 하나님은 파이프를 통해서 자꾸 주고 잊어버리고 주고 잊어버리고 합니다. 계속 그렇게 주다 보면 받는 쪽이 꽉차서 나중에는 돌아 들어옵니다. 자꾸 무한히 주고 잊어버리려고 하면 어떻게 되느냐? 나중에는 꽉차서 하나님 자신까지도 밀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작용을 함으로써 작은 존재로부터 큰 존재가 시작되었다는 논리는 정상적인 논리입니다.
작은 것을 투입하고 또 투입하면 자꾸 커집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우주가 어떻게 커졌느냐 하는 문제는 보태줄 수 있는 작용이 계속됨으로써 확대된 존재로 전개되는 데서 풀립니다. 이것은 논리에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분입니다. (239-59)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하나님의 참사랑에서 발생했습니다. 남자 여자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무슨 계획을 세우고 숫자적으로 맞아서 하는 게 아닙니다. 자기들도 모르게 자연히 화(和)하며 사랑합니다. 사랑에는 그런 자동적인 힘이 있습니다. 사랑이 싹트면 자연히 하나됩니다. 자연히 운동이 벌어집니다. 영원을 향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참사랑의 주체요, 자주자(自主者)요, 영원한 존재입니다. 자존하며 영원할 수 있는 그 재능을 참된 사랑에서밖에 찾아낼 길이 없습니다. (106-108)

 


참사랑에서만 자동적이요 영원한 운동이 벌어져
 
참사랑을 가진 어머니 아버지가 만나면 어떻게 됩니까? 또 아들딸이 만나면 어떻게 됩니까? 서로가 좋아서 하나됩니다. 그리고 붙들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돌아갑니다. 자동적으로 운동합니다. 사랑을 중심으로 운동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자존할 수 있고, 영원할 수 있고, 운동할 수 있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참사랑을 필요로 하고, 원칙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돈 버는 것도 한계가 있고, 권력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무한입니다. 그런 관념을 가지고 내가 가는 데는 우주가 가고, 하나님이 가고, 나라와 세계가 갑니다. 이러한 이론적 원칙에 따라 선생님이 가기 때문에 선생님이 가는 데는 오색인종이 따라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참사랑에서만 자동적이요 영원한 운동이 벌어집니다.
실험실에서 실험자가 원소와 원소를 강제로 하나되게 하려고 해도 자기 상대하고만 하나됩니다. 자기 상대와는 자동적으로 하나됩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혼자여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도 성상과 형상이 있다. 그래서 운행한다󰡑는 논리가 얼마나 이론적인지 모릅니다.
우리 인간도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남자도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고, 여자도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은 다 이성성상으로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게 원칙입니다. 우주는 말하기를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라!󰡑 합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된 자체가 나입니다. 그건 우주 어디를 가든지 당당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당당한 합격자입니다.
우리 눈도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눈이 둘이지만 하나의 초점에 맞춰서 보고 있습니다. 코도 둘이지만 하나되어 있습니다. 입술도 둘이지만 서로 하나되어 있습니다. (106-108)

 


우주의 완성은 사랑으로만 가능하다
 
우주의 완성이라는 말을 하기는 쉽지만 그 우주를 완성하려면 내가 완성돼야 됩니다. 아무리 우주가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내가 완성되지 못하면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아무리 외적인 세계가 다 좋아하고 춤을 춘다 하더라도 자기가 지금 고통 속에 있다면 그 모든 외적인 세계의 기뻐하는 환경도 자기와 관계가 없습니다.
우주의 완성은 외적인 세계도 좋아하지만 내적인 나 자신도 좋아해야 합니다. 좋은데 마음도 좋아하고 몸도 좋아해야 됩니다. 내 세포로 보면 세포가 전부 다 좋아해야 됩니다. 눈의 세포와 발바닥에 있는 세포는 다르지만 그 모든 세포들이 다 좋아하고, 몸과 마음 어디 하나 남기지 않고 전체가 좋아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냥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돼서 연체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모두가 사랑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세계라야 우주가 완성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무엇으로 연결하느냐? 그건 사랑 외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외국에 유학을 보낸 아들을 둔 부모는 그 아들이 건강하게 공부를 잘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기쁩니다. 고통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그 소식에 만족해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마음이 있어서 그러냐? 사랑의 마음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사랑의 마음은 언제나 같이 있으려고 합니다. 사랑만이 그렇습니다. 이것은 돈의 작용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저 사람은 내 마음에 맞아󰡑 이런 말을 합니다. 󰡐마음에 맞다. 마음에 꼭 맞아!󰡑 이러는데, 마음에 꼭 맞는다는 것은 빈틈이 없다는 것입니다. 꼭 맞는 것은 이 우주가 이상적 박물관과 같이 돼 있기 때문에 박물관에 갖다가 보관하게 되어 있지, 버리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남자나 여자가 상대를 보고 󰡐저 사람은 마음에 꼭 맞다󰡑 할 때에 남자 여자의 그 마음에 꼭 맞게 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남자 여자 둘이 마음이 맞아 닻줄로 요동하지 않게 매어서 땜을 때우듯이 때우는 것, 벗어날 수 없게끔 꼭 맞춰서 하나되게 하는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한번 묶어 놓으면 영원합니다. 아무리 바람이 불고 요동하더라도 닻에 매인 배는 그 닻을 중심으로 돕니다. 그것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 닻에 매인 배는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그러나 그건 또 그것대로 멋있습니다. 운동은 그렇게 합니다. (166-210)

 


나와 제일 가까운 사람이 누구냐
 
우주의 중심은 뭐냐? 수직선입니다. 사람은 높은 것을 좋아합니다. 또 깊은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미국이 자랑하는 게 뭐냐 하면, 높은 산과 깊은 바다입니다. 넓은 것은 2차입니다. 종적인 것이 중심이기 때문에 이런 관념을 갖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나와 제일 가까운 사람이 누구냐? 제일 가깝고 제일 높은 사람이 누구냐? 나와 제일 가까운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하고 나하고는 거리가 없습니다. 그 하나님은 얼마나 높고 깊은지 모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나에게는 하나님이 절대 필요합니다. 그 하나님은 우주의 모든 것과는 다릅니다. 우주가 여기에 있고 나는 이 가운데만 서 있어도 내가 제일 높고 제일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나보다 높은 것을 싫어하고, 나보다 깊은 것을 싫어합니다. 그런 관념은 어디에서 왔느냐? 사랑의 자리에서만 하나님하고 내가 하나됩니다. 그러니 나를 가깝고 높게 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 다음에는 또 누가 가까우냐? 여기에서 상대세계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무엇이 넓게 하느냐? 하나님하고 나하고는 종(縱)으로 되어 있지만, 무엇으로 넓게 하느냐? 상대의 사랑으로 넓게 합니다. 남자는 하나님과 하나되어서 여자를 찾아갑니다. 여자도 하나님과 하나되어서 남자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21세까지는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된 다음에 갖다 붙여야 금이 안 가고 완전히 1백 퍼센트 하나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되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되느냐? 중심이 굵어집니다. 거기에서부터 활동 범위가 넓어집니다. 그 다음에는 아들딸과 하나됩니다. 아들딸과 하나되어 사위기대가 넓어지니까 넓어진 만큼 활동 범위가 또 넓어집니다. 그러니까 내 활동 무대는 계속 넓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에서만 크려고 하느냐, 더 크려고 하느냐? 더 크려고 합니다. 여기에서 가정을 복귀하면 종족복귀를 해야 됩니다. 그러면 또 넓어집니다. 그 다음에는 민족복귀를 해야 됩니다. 이렇게 점점 넓어집니다. 그 다음에는 국가복귀․세계복귀․천주복귀,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106-110)

 


완성권은 우주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
 
그렇게 볼 때, 세계는 하나의 세계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의 세계가 되는 데 있어서 어떤 단일민족이라도 특권과 권력을 가질 수 없고, 지금 세계의 주도국이라는 그 어떤 나라를 중심하고도 하나될 수 없습니다. 그 나라 전체가 완성권에 서 있지 않기 때문에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볼 때에는 전부 낙제입니다.
오히려 그런 나라가 다른 나라를 속이고,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싶어하는 그런 악한 사람이 더 많습니다. 외교무대에서 왕도둑같이 행동하고 자기 나라의 이익만을 꾀합니다. 그것은 세계적인 차원에서 볼 때 용서할 수 없습니다. 깡패보다 나쁘고, 마피아보다 나쁘고, 일본의 야쿠자보다도 나쁩니다.
그렇게 생각해 볼 때, 인간의 완성권은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 아무리 개인이 완성했다고 하더라도 가정 완성권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가정이 자기를 원만하게 맞이해주지 않습니다. 또 가정 완성권을 이루고 종족 완성권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국가 완성권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면 나라가 가정과 종족을 잘 맞이해주지 않습니다.
옛날 일본 영주들이 싸움하던 것을 생각하면 어떻습니까? 비참합니다. 셋, 넷으로 갈라져서 싸움을 합니다. 그렇게 완성했다고 해서 세계로 통하는 완성권이 허락되겠느냐? 그런 식으로 지상 완성권을 이루었다고 해서 하나님이 계시는 천상 완성권에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느냐?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볼 때, 완성권이라는 것은 우주적입니다. 완성의 목표가 개인이라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개인 완성에 있어서, 국가를 대표하고 세계를 대표하고 천주를 대표한 입장의 개인이라면 그 개인을 표준으로 취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큰 나라면 큰 나라일수록 배척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천주에서 가장 큰 나라는 도대체 어디냐? 그건 미국도 아니고 소련도 아닙니다. 영계입니다. 그러면 영계의 국민은 얼마나 되겠느냐? 정말로 영계가 있다면 영계의 국민이 얼마나 되겠느냐? 이건 지상의 어떤 나라하고는 상대가 안 됩니다. 장군 앞에 개미 같은 존재입니다.
국가로서 역사적으로 가장 대표되는 곳이 영계입니다. 영계는 아무리 가고 싶지 않다 하더라도 누구나 가야 됩니다. 자기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칼을 꽂아 놓고 맹세하더라도 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죽으면 영계에 갑니다. 거기는 바다와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큰 강이라 하더라도 흘러서 바다로 가야 됩니다. 󰡐바다에 갈 수 없다. 바다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것은 살아 있지만 죽은 것입니다. 있는 자리에서 무시당합니다. 그것은 존재가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이라면 반드시 바다로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 지류는 본류를 향해서 흘러갑니다. 작은 것은 큰 것에 플러스되고, 큰 것은 더 큰 것에 플러스됩니다. 그렇게 플러스 플러스되어서 인연을 연장해서 흘러가면 큰 세계적인 강을 이룹니다.
강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모양은 전부 마찬가지입니다. 큰 강은 주류가 있는데, 사방 팔방의 지류가 거기에서 합쳐집니다. 본류, 즉 주류는 한 방향으로 일정하게 흐르지만, 지류는 밑에서부터 반대로 흐르기도 하고 뒤죽박죽입니다. 그렇게 동서남북 360도로 쭉 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류가 󰡐본류는 전부 다 내가 가는 방향대로 쭉 따라와야 된다!󰡑 하고 아무리 명령하더라도 본류의 방향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런 명령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인간은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자기 나름대로, 흘러가는 대로 가려고 하지만 결국 본류를 향해 가야 합니다. (229-88)

 


사랑은 절대적이고 거룩한 것
 
그러면 우주를 완성하는 데 무엇이 동기가 되느냐? 나와 아내입니다. 지금까지 이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남자도 우주의 절반을 완성시키는 것이요, 여자도 우주의 절반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사람은 남자와 여자입니다. 남자 여자는 각각 하나님의 절반 성품을 가졌습니다. 하나님도 이성성상이고 인간도 이성성상이므로 서로 잡아당기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지남철과 같은 참사랑의 힘입니다.
그래서 번개처럼 부딪쳐서 사랑의 불빛을 내는데, 그 사랑의 불빛은 번갯불빛보다 더 강합니다. 번갯불보다 더 밝고 우레 소리보다 더 큽니다.
우리 인간이 지금 하는 사랑은 똥개 같은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사랑하는 그날은 하나님의 오관이 완전히 열리는 날이요, 우주가 완전히 놀라 자빠지는 날입니다. 사건 중에 제일 큰 사건입니다. 소리 중에 제일 크고, 밝은 것 중에 제일 밝고, 좋은 것 중에 제일 좋고, 무엇이든 제일입니다. 춤을 춘다면 그 이상의 춤이 없습니다.
비둘기도 사랑할 때 󰡐구구구󰡑 합니다. 비둘기를 왜 평화의 사자(使者)라고 하느냐? 동물 중에 서로 사랑하면서 제일 큰 소리를 내는 것이 비둘기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눈물을 많이 흘려도 좋고, 목이 터지도록 노래해도 좋고, 있는 기운을 다 써도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지극히 거룩한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의 남자 여자들이 사랑하는 것은 제일 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타락으로 인해 거짓된 사랑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거룩한 사랑을 해야 됩니다. 최고 거룩한 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그러니 이 여자 저 남자, 이 남자 저 여자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절대적입니다. 한번 정했으면 영원해야 합니다. (106-111)

 


우주가 쌍쌍으로 된 것은 사랑을 완성하기 위한 것
 
이 우주는 광물세계나 식물세계나 동물세계나 전부 다 쌍쌍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쌍쌍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왜 천지가 쌍쌍으로 만들어졌느냐? 새끼를 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놈과 암놈, 전기로 말하면 플러스와 마이너스, 양 이온과 음 이온이 상대와 서로 합하려고 합니다. 무엇을 중심으로 합하느냐? 차원은 다르지만 사랑을 중심으로 합합니다. 사랑은 누구나 좋아합니다. 사랑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대하는 자연은 전부 쌍쌍제도로 만들어졌습니다. 이게 뭐냐 하면 사랑의 하나님이 창조한 살아 있는 박물관입니다.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골동품같이 죽어 있는 기념물이 아닙니다. 화폭에 그려진 그림과 같이 죽어 있는 그런 기념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기념물입니다.
소나무한테 󰡐네 나이가 얼마냐?󰡑 하고 물어 볼 때 소나무가 대답한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내 나이야 하나님과 같지 뭐󰡑라고 답변해도 󰡐뭐가 그래!󰡑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속에서부터 내가 나왔다󰡑 이런 말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기 전에 구상을 했는데 거기서부터 내가 출발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이와 같지 뭐󰡑 그런다는 것입니다. 나이를 헤아릴 수 있는 그런 물건들은, 󰡐하나님의 상대 물건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인간이 나와서 나이를 세게 되었으니 내 나이는 너보다 많다󰡑 하더라도 반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큰 나무를 대해 󰡐오, 얼마나 위대하게 컸느냐! 어떤 나무든지 다 저렇게 크기를 바라는데, 크지 못할 환경 가운데서도 저렇게 컸으니 훌륭하다!󰡑 하고 숭배할 때는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할 때는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195-137)


 
가정완성은 우주완성의 기초
 
내 개인이 완성하면 뭘 해야 되느냐? 사랑을 중심한 횡적인 기반을 연결시켜야 합니다. 그것이 결혼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결혼할 때까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면 결혼은 도대체 뭐냐?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던 것을 인계받는 것입니다. 또 무엇을 인계받느냐? 나를 얼마만큼 사랑하고 얼마만큼 사랑해야 된다는 것을 인계받습니다. 교훈적인 모든 것을 인계받습니다. 부모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 사랑을 인계받습니다. 내가 사랑을 받고, 사랑받은 것을 알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랑받은 것을 확실히 알고, 사랑할 줄 아는 확실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을 완전히 받을 수 있고, 완전히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의 완전한 남성으로, 여성으로 성숙하는 것입니다.
결혼해서 그렇게 사랑을 주고받고 살다가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느냐? 제2의 출생을 합니다. 이것이 사망입니다. 새로운 그 세계에 들어가서는 뭘 하느냐? 우주 전체를 대표한 이상적인 사랑을 공급받습니다. 그러니 여기에서는 통일이 안 될 수 없습니다.
복중시대에는 아기가 배를 통해 숨을 쉽니다. 물속에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배꼽으로 해결했습니다. 그러다가 공기 가운데로 나옵니다. 물과 공기는 다릅니다. 그래서 생활무대를 물세계에서 공기세계로 바꾸는 것이 낳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제3의 세계로 들어가면 어떻게 되느냐? 거기에서는 사랑의 공기로 숨을 쉽니다. 사랑의 공기 가운데로 들어가서 삽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숨만 쉬는 날에는 행복하고 좋습니다. 불만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저 행복하고 좋습니다.
복중에서는 배꼽으로 숨쉬고 지상에서는 코로 숨쉬지만 영계에서는 정수리, 머리 위쪽에 있는 숨구멍으로 숨쉽니다. 수직으로 숨을 쉽니다. 그래서 사람은 3세계가 있습니다. 인간만이 3세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물질을 좋아하고 돈을 좋아합니다. 그 다음에는 이상을 좋아하고 사랑을 좋아합니다. 우리 인간에게서 이것을 뺄 수 없습니다. 이런 3세계로 연결되는 권내에 있는 인생길을 걸어갑니다.
나는 부모님의 사랑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가정은 부부의 사랑을 중심으로 하여 모든 현실세계의 중심이 됩니다. 가정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 가정이 우주를 대표하고 세계를 대표하고 나라를 대표한 가정인 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파탄시키고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은 우주에 대한 반항이요, 이 세계에 대한 반항이요, 나라에 대한 반항입니다. 우리가 사는 가정이 그러한 자리에 있습니다.
가정완성은 우주완성의 기초입니다. 가정에서 사랑하는 것과 같이 우주를 사랑하면 어디든지 통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복중세계도 사랑이요, 지상세계도 사랑인데, 영계에 가서는 뭘 할 것이냐? 하나님은 전체 우주의 부모로서 사랑의 복합적인 센터입니다. 거기로 들어가는 것이 죽음입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결실돼서 사랑으로 거두어집니다. (107-40)


 

사위기대를 이루지 못하면 참사랑권에서 존속할 수 없다
 
이런 관념을 가지고 미국 청년들을 교육했다면 미국이 오늘날과 같이 안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가 없으면 절대 안 됩니다. 이것은 우주의 원칙입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딸이 없으면 안 됩니다. 아들딸이 없으면 사위기대를 이루지 못합니다. 사위기대를 이루지 못하면 우주의 사랑권에서 존속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모르기 때문에 오늘날 동성연애자 같은 패들이 생겨나고, 어머니 아버지를 부정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남편이 아내를 두고도 별의별 짓을 다 하고, 또 아내도 별의별 짓을 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주의 천법에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주의 형법에 따라 저나라에 가서 치리받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웁니다. 왜 우느냐? 또 아들딸이 죽어도 슬퍼서 웁니다. 왜 슬프냐? 이것은 사위기대 완성을 위한 우주의 공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죽으면 남편은 이뤄야 할 전체 완성기준까지 못 가고 우주의 미완성품으로 끝나기 때문에, 우주의 공법에 불합격자니 우주에서 몰아내는 힘의 작용에 의해서 슬픈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지금까지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것을 모르고 있지만, 마음은 그것을 알고 우주를 사랑하고 하늘땅을 사랑할 수 있는 기준에 불합격되어서는 안 되겠으니 슬픈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자기가 정성들여 사랑했다는 사실이 귀합니다. 그러므로 아내면 아내, 남편이면 남편, 자식이면 자식을 중심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106-113)

 


가정은 우주 완성의 본거지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종적으로는 하늘땅을 연결하고, 횡적으로는 각 나라로부터 세계에 연결할 수 있는 도리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전체적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렇게 움직여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움직였고, 선생님이 종횡(縱橫)으로 그렇게 움직였습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그렇게 묶어지느냐? 종과 횡이 만나는 90각도에서 묶어집니다. 왜 90각도냐? 사랑은 직단거리를 통하기 때문입니다. 남자나 여자는 횡적인 대표자입니다. 동에서 서로 가는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절대적입니다. 둘이 아닙니다. 사랑은 직단거리를 통하기 때문에 90각도를 맞추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습니다. 왜곡됐다는 것은 뭐냐? 수직과 수평이 사랑을 중심으로 직단거리를 통하기 때문에 90도 외에는 필요가 없습니다. 90도가 아닌 것을 왜곡됐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91도만 되어도 왜곡된 것입니다.
그러면 종적 사랑과 횡적 사랑이 묶어져서 회오리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곳은 어디냐? 바람도 회오리바람이 붑니다. 회오리바람이 일 때는 자리를 떠나서 올라가든가 내려가든가 해야 됩니다. 올라가게 되면 전체가 우르르 올라가고, 내려가면 전체가 우르르 내려옵니다.
남자 여자가 자랄 때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전부 다 올라갑니다. 다 올라가서 󰡐내려갈 때다!󰡑 할 때가 포화상태입니다. 그래서 남자 여자가 표준에 가게 되면, 하나님과 남자와 여자 셋입니다. 종횡권을 중심으로 중앙이 생기는데, 이 중앙이라는 것은 언제나 사탄도 빼앗으려고 하고 하나님도 빼앗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종횡의 핵이 정착할 수 있는 이상적인 곳이 어디냐? 사랑을 중심으로, 하나의 핵을 중심으로 종횡의 구형체와 같은 모양을 갖춘 이상형이 가정입니다. 이곳이 곧 우주 완성의 본거지입니다.
이러한 가정 가운데 있는 사랑은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종에서 내려오는 사랑이요, 부부의 사랑은 횡으로 가는 사랑입니다. 그러니 가정을 중심으로 말하고 있는 통일원리가 위대합니다. (187-60)

 


5. 우주의 핵과 인생노정  


    
우주의 중심 핵은 부자관계
 
선생님은 본래 과학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종교의 길에 몸을 담게 되었느냐? 문제의 해결점이 인간에게는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인본주의라든가 소위 물본주의적 공산주의의 유물사관으로는 세계를 수습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몸과 마음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당신은 마음이 없다󰡑고 말하면 그 사람은 섭섭해합니다. 몸과 마음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몸적 인격, 그 다음엔 마음적 인격이 있습니다. 이 두 인격이 합해져서 한 인간으로 완성됩니다. 소위 인간의 존재가치 완성을 위한 근본 해결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그 문제에 대해서 모르고 있습니다. 보이는 평면적 세계는 알 수 있지만, 마음이 근원이 되어 있는 배후세계가 얼마나 방대한 세계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에서는 이 외적인 세계만을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영계, 즉 영적 세계를 취급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을 알려면 영적 세계를 통하지 않고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영계의 중심존재라면 그 중심존재와 통하기 위해서는 영적 세계의 개인적 기반을 넘고, 가정적 기반, 종족․민족․국가․세계적 기반을 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그 중앙에 계시는 하나님 앞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런 방대한 배후세계를 지금까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문제의 해결점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을 만나는 데에 있습니다. 선생님은 젊은 청춘시대에 오랜 수도의 길을 통해서 그 해결점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이 하나님을 붙드는 날에는 놓지 않고 담판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배후의 세계를 파악하고, 하나님의 실재성을 파악하고 난 후에 󰡐이 우주의 근본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고심한 끝에 해답을 받았는데, 그것은 지극히 간단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누구냐? 우리 인간은 뭐냐? 거기에 대한 답은 간단했습니다. 우주의 모든 중심의 핵은 부자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부자의 관계가 우주의 중심 핵입니다. (137-49)
 


우주의 축을 이루고 있는 힘은 참사랑의 힘
 
그러면 이 우주의 핵, 다시 말하면 역사의 흐름과 이 우주의 핵은 도대체 무엇이냐? 하나님이 붙들고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그 핵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이상 하는 그 기점과 그분이 아버지라면 그 자녀가 바라는 기점도 같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우주의 축을 이루고 있는 힘인데, 그 힘은 참사랑의 힘입니다.
학문을 하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자기들이 학문한 지식을 절대시하고 있지만, 그 지식은 어디로 가느냐? 그 귀결점이 어디냐? 무엇을 축으로 하고, 어떤 방향을 통해서 갈 것이냐? 지식이 제일이라고 하고서 지식을 만유 존재물의 공통분모로 삼을 수 있느냐? 없습니다. 지식은 방향감각을 자극하고 촉구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체의 중심이 되는 핵의 작용으로 동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은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지식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또 권력과 권세가 그런 힘이 있느냐? 권세의 방향이 우주의 공통분모가 될 수 없습니다.
요즘 황금만능시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소위 미국의 실용주의자들은 공산주의도 황금의 능력으로 소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건 사상을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돈이, 황금이 모든 문제 해결의 공통분모가 될 수 있느냐? 없습니다. 정치․경제․문화 어떠한 것도 이 우주 전체의 공통분모로서, 모든 것과 연관지을 수 있는 동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내세운 그런 공통분모는 뭐냐? 사랑입니다. 이 우주에 사랑의 축이 몇 개냐? 축이 있어야 합니다. 운동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축을 가지고 있습니다. 축을 중심으로 운동하지 않는 것은 방향감각과 위치감각을 상실해 버립니다. 지구가 도는 데도 누가 설정해주지는 않았지만 축을 중심으로 돌고 있습니다. 예외일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생활하는 데도 자신은 모르지만 인생이란 자기 목표의 축을 중심으로 돌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요즘 과학계에서는 우주의 크기가 2백10억 광년이나 된다고 하는데, 이와 같은 방대한 우주도 그냥 정착해 있지 않고 운동하고 있습니다. 축을 중심으로 운동하고 있습니다. 이 우주는 연결 관계로 되어 있습니다. 모든 세계는 관계로 엮어져 있습니다. 높고 낮은 관계, 넓고 좁은 관계, 전후좌우 관계, 이렇게 세계는 관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연결에서 그 분모가 될 수 있는 기준은 뭐냐? 경제인들은 경제가 제일이라고 하고, 정치인들은 정치가 제일이라고 하고, 사상가들은 사상이 제일이라고 하고, 종교인들은 종교가 제일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제일이라고 하는 것이 이 우주가 공인하는 공통분모가 될 수 있느냐?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분열 혹은 발전하는 데 있어서 공통분모로서 연결될 수 있는 그 기점은 무엇이냐? 이것은 지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이 우주의 모든 존재물이 공통분모로 설정할 수 있는 하나의 핵이 있다면 그것은 참사랑입니다. 일반 사랑이 아니라 참사랑입니다.
구(球)를 잘라 보면 자른 면은 평면이지만 360도로 엮어집니다. 그러나 통할 수 있는 중심기준, 공통의 점은 하나입니다. 완전한 구는 그 중심을 통해서 작용합니다. 중심을 통하지 않는 작용 원칙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이 중심을 통해서 나오는 힘이나 순환운동 또는 동화작용은 인정되지만, 이 중심점을 벗어난 힘은 파괴적 힘으로 나타납니다. 자체 내에 모순, 파괴 요소로 잠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참사랑은 천년 전이나 몇억만년 후나 같습니다. 왜 그러냐? 사랑은 절대적인 하나님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절대적입니다. 그 사랑은 시작부터 영원히 그 작용과 힘의 원칙에 있어서 변함이 없습니다. (137-50)


 
하나님이 제일 필요로 하는 것은 참사랑의 대상자
 
선생님은 영계의 전문가입니다. 영계의 모든 것이 지상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는데, 어디를 초점으로 하고, 어디를 공통분모로 하고 관계가 맺어지느냐? 참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우주의 핵, 우주의 축이 되어서 모든 것이 이것을 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지구는 북극이 있고 남극이 있어서 플러스 마이너스 작용을 하고 이것을 축으로 해서 돕니다.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랑을 중심한 우주의 축이 둘이겠느냐, 하나겠느냐? 절대적으로 하나입니다. 이 하나의 축에 닿기만 하면 절대적인 힘의 작용을 영원히 계속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그런 기원이 돼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에게 󰡐도대체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면, 하나님은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이 돈입니까, 지식입니까, 권력입니까?󰡑라고 물으면 하나님은 󰡐그것은 다 내가 자유로이 소유할 수 있는 권한 내의 것이다󰡑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식이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지식의 대왕입니다. 아무리 물리학자가 무엇을 연구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해서 공식을 세우고 측정을 하고 단위를 만들어서 어떻다고 평가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식이 필요없습니다. 지식을 창조한 분입니다.
또 하나님은 권력도 필요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합니다. 하나님은 돈도 필요없습니다. 황금도 다이아몬드도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은 뭐냐? 하나님에게는 필요한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사랑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느냐? 절대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에게도 사랑이 있습니다. 개개인에게도 사랑이 있습니다. 그 사랑은 어디에서 나타나느냐?
사랑은 혼자서는 작용을 못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박사고,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권력자고, 천하를 장악하고 소유하고 있는 황금의 대왕이라 할지라도 혼자서는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을 발동시킬 수 없습니다. 누구를 닮아서 그러냐? 아버지 어머니를 닮았습니다. 그 어머니 아버지가 혼자서는 사랑을 발동 못 하기 때문에 나도 그렇습니다. 결국 인간은 누구를 닮았느냐 하면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절대적인 분이라면, 그 절대적인 분이 왜 인간을 지었느냐? 돈 때문에 지은 것이 아닙니다. 지식 때문에 지은 것도 아니요, 권력 때문에 지은 것도 아닙니다. 사랑 때문에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인간이라는 상대를 통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하나님은 아버지고 인간은 아들딸이다 하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이 하나의 축입니다. 만약 이 축이 연결됐더라면 인간과 하나님은 사랑으로 일체가 됩니다. 이렇게 일체가 된 관계는 그 무엇이 떼려고 해도 뗄 수 없습니다. 저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참사랑을 나눌 수 있는 대상자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걸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을 나눌 수 있는 대상자가 필요합니다. (137-52)
  

 
작용을 통하지 않은 힘은 없다
 
과학자들에게 우주는 무엇으로 되어 있느냐고 물으면, 󰡐뭣으로 돼 있긴? 힘으로 돼 있지󰡑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간단히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힘은 그냥 생기지 않습니다. 우주는 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작용을 통하지 않은 힘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전기의 힘도 플러스 마이너스의 수수작용을 통해 나온 결과물입니다. 힘이 있기 전에 작용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작용이 먼저냐, 힘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할 때 계란이 먼저입니다. 우주의 모든 발전 원칙으로 볼 때, 힘이 있기 전에 작용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작용은 어떻게 하느냐? 주체 대상 개념을 떠나서는 작용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주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육신은 원소의 종합 구성체인데, 그 원소세계의 작용은 자기 나름의 상대적 원소와 통하는 힘이 있습니다. 상대 여건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작용을 시키려고 해도, 하나님이 명령을 해도 작용하지 않습니다. 그 누가 폭력을 가한다 해도 안 합니다. 상대 여건이 조성돼야 원소끼리 작용합니다.
원소끼리 작용하는 데도 손해나는 자리에서는 절대 작용하지 않습니다. 모든 작용은 서로에게 좋은 결과를 추구합니다. 자꾸 더 좋은 것을 추구합니다. 더 좋은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갈수록 사랑의 축에 접근할 수 있는 거리가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의 작용하는 모든 것은 사랑을 중심으로 창조됐습니다.
교수나 사업가도 작용을 하려고 합니다. 무엇과 작용하려고 하느냐? 남자끼리, 여자끼리 작용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물론 자기와 관계된 학문이나 사업적인 작용은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분야에서 또 다른 평면적이고 또 다른 방향의 작용입니다. 근본적인 핵의 작용은 무엇이냐? 남성은 여성과의 작용을 요구합니다.
근본적으로 남자란 인격과 여자란 인격이 주체 대상의 상대관계를 중심으로 힘의 작용을 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가정도 형성됩니다. 애국이란 나라의 주권과 국민의 생활기반이 사랑을 중심으로 엉클어진 것입니다. 성인도 세계의 주체 자리에서 사랑을 중심으로 모든 역사가 엉클어지게끔 작용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들은 전부 다 종교 지도자입니다.
그래서 성인의 생활 기본은 사랑입니다. 사랑의 원칙에 따라 살았고, 그것을 교육했습니다. 불교는 자비, 기독교는 사랑, 전부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러한 우주적인 공통분모의 작용 원칙이 있는데, 이 원칙에 부합되지 못할 때는 유리(遊離)하는 것입니다. 유리하다가 상대를 못 찾으면 깨집니다. 그러나 이 주체 사랑, 핵의 주축 사랑에 연결되면 해체되지 않고 영속합니다. (137-56)


 
우주의 축의 사랑에 연결돼야
 
우리 인간에게 만유가 작용하는 사랑의 축에 연결된 기준이 있었다면 사랑을 중심한 가정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완성된 인간 대 인간, 남성과 여성이 하나되어 사랑을 중심으로 한 가정이 현현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 사랑을 축으로 해서 이루어진 종족․민족․국가․세계가 현현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할 텐데 세계가 어찌된 연고로 이렇게 되었느냐? 
오늘날 미국에서의 사랑은 일일 사랑입니다. 길을 가다가 만나서 교제하는 그런 사랑입니다. 사랑은 절대적입니다. 절대적인 공통분모가 우주에 설정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세계는 타락한 세상입니다. 고장이 났습니다. 고장이 났으니 하나님은 이것을 수리공장을 만들어서 재생하는 일을 역사를 통해서 해나왔습니다. 그 수리공장이 종교입니다. 어떤 종교는 다리를 만들고, 어떤 종교는 팔을 만들고, 어떤 종교는 머리를 만들고, 어떤 종교는 눈을 만들어서 하나의 고장난 인간을 재생시킵니다. 이런 분(分)공장들이 여러 종교입니다. 이것을 확장해서 문화 배경이 다른 분야에서 수습해 올라갑니다. 그렇게 하여 최후에 종합수리공장에서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으로 복귀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복귀를 말합니다. 병난 사람이 구원받았다는 것은 병이 나기 전의 입장으로 돌아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본연의 나, 절대자인 하나님 앞에 영원한 절대 대상자가 되어서 사랑을 축으로 하여 완전히 일체가 될 때는 그 누구도, 하나님 자신도 분립시킬 수 없습니다. 그런 이상형이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을 처음부터 온전하게 만들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은 밑에서부터 올라가서 중앙점에 도달해야 이룰 수 있습니다. 중앙점까지 찾아가기에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것은 성숙기간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숙해야 중앙에 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의 축의 사랑이 하나님과 인간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축을 지지하는 축받침의 입장이고, 지상에 있는 인간들, 즉 아들딸은 축을 만드는 입장입니다. 아들딸은 사랑을 통해서 자꾸 크면서 올라가 중앙점으로 갑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상봉한 다음에 내려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의 수직선 사랑권과 평형선 사랑권이 핵을 중심으로 90각도로 합할 수 있는, 이 우주의 공통분모가 되고 핵이 될 수 있는 그 기준을 찾아 거기에 맞추기 위해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해 놓고 인간이 거기까지 찾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자녀로서 성숙함에 따라 우주를 알고 배우게 됩니다. 성경에는 이런 말이 없습니다. (137-57)
이렇게 해서 개인으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접촉함으로써 가정권을 이루고, 가정권을 중심으로 우주의 축인 사랑이상권을 이루게 됩니다. 횡적인 사랑은 90각도의 중앙점을 통하지 않고서는 작용할 수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공통분모점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여기를 통하게 될 때에는 상하가 연결되고, 전후가 연결되고, 좌우가 연결됩니다. 여기를 떠나서는 상하도 상충이요, 전후도 상충입니다. 작용하면 할수록 혼란과 파탄, 비애의 결과에 부닥치게 됩니다.
그렇지만 영계와 지상세계가 공통분모인 사랑의 축을 갖다 놓게 될 때는 무한한 힘이 발생합니다. 우주의 모든 것을 움직일 수 있는 힘, 감화의 힘의 작용이 여기에서 발동합니다. (137-66)


 
우주는 사랑이상을 가르쳐주는 교재
 
하나님은 우주를, 피조세계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아들딸이 사랑이상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교재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전부 다 상대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광물도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작용합니다. 물질의 구성단위인 원자도 양자와 전자가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작용합니다. 작용하지 않고서는 존속할 수 없습니다. 운동을 하지 않고는 영속, 존속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작용을 해야 합니다.
인간은 커 가면서 자연을 보고 습득합니다. 󰡐곤충세계가 이렇구나!󰡑 하고 배웁니다. 달이 비치고 별이 빛나는 가을 밤에 가만히 들어 보면 곤충들의 울음소리가 하나의 오케스트라 연주로 들립니다. 무엇 때문에 곤충들이 그렇게 우느냐? 그것은 상대를 찾아 이상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속삭이는 것입니다. 새나 다른 모든 동물들도 슬픈 소리, 기쁜 소리를 무엇으로 표시하느냐 하면 사랑이라는 공통분모를 따라서 소리를 냅니다. 급은 낮지만, 축에서 먼 거리에 있지만 그 축을 중심으로 평형선을 취하며 돌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는 성숙해 감에 따라서 󰡐아, 저렇게 사랑하는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만물세계를 인간 사랑이상을 성숙시킬 수 있는 교재로 펼쳐 놓았습니다. 그걸 배워 가는 것입니다. 점점점 커 감에 따라 󰡐아하, 옛날에는 동생과 같이, 오빠와 같이 지냈는데 가만 보니까…󰡑 이렇게 감정이 달라집니다. 󰡐아, 이렇구나!󰡑 하며 배워 갑니다. 그래서 󰡐너와 나는 죽더라도 안 만나면 안 되겠다. 딴 데 못 간다󰡑 하고 평형선으로 직행하면서 부딪치게 됩니다.
그러면 어디에 가서 부딪쳐야 되느냐? 수직선에서 부딪쳐야 됩니다. 수직선에 부딪치게 되면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이루어집니다. 이상적 공통분모인 사랑이 우주에 연결됩니다. 이렇게 되면 축은 하나입니다. 축은 둘일 수 없습니다. 아담 해와가 이 축의 사랑을 연결시키지 못해서 고장이 났습니다. 각도가 다름에 따라 비스듬하게 도니 불평하게 되고, 파괴와 혼란이 벌어집니다.
그러니 어떻게 타락한 인간을 점점점 찾아 들어가서 본연의 축의 자리에 이어 놓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이 인간을 구하려는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이러한 주체 대상의 사랑의 개념을 가지고 우주의 핵과 접할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해야 합니다.
모든 경서(經書)를 그런 점에서 볼 때, 기독교만 그런 내용으로 돼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요, 나는 그의 독생자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건 놀라운 선포입니다. 또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될 수 있는 사랑의 결합점, 공통분모점, 그리고 신랑 신부가 될 수 있는 공통분모점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여기에 평화가 있습니다. 이것을 통하지 않고서는 화합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통하지 않고서는 원만한 구형작용은 역사과정에서 찾을 길이 없습니다. (137-59)


 
인간이 찾아가야 할 인생행로
 
우리 인간은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영과 육, 마음과 몸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언제 합하느냐? 혼자 아무리 수양을 하고, 아무리 기도를 하고, 아무리 도통을 해도 완전히 하나되지 못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오관이 있습니다. 사람의 양심에도 오관이 있습니다. 이 외적 오관과 영적인 내적 오관이 하나되어 꽉차 폭발할 수 있는 선까지 돌아올 수 있게 하는 힘은 오로지 우주의 공통분모 되는 하나님의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 외에는 불가능합니다.
사랑의 도취경, 이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술이 문제가 아닙니다. 먹는 것을 극복할 수 있고 잠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놀라운 세계입니다. 이러한 본연의 가치를 지녀야 할 인간인데, 그 가치를 상실해 버렸기 때문에 평면적으로라도 보급하고 자극을 받기 위해서 술에 취하려고 합니다. (137-67)
그러므로 사랑에 녹아나면 󰡐저 사람이 저럴 수가! 미쳤지, 미쳤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사랑에 녹아난 다음에는 입이 벌어지고, 별의별 모습이 나옵니다. 사랑에 접붙으면 남자 체면을 다 잊고 여자에게 붙들려 삽니다.
그렇게 한번 잡혀서 살고 싶습니까? 선생님은 거기에 붙들려 일생 동안 그렇게 삽니다. 세계 어디에 가도 욕을 먹고, 문제가 벌어집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불행한 사람이 아닙니다.
국경을 넘어 어디 가든지 선생님을 맞이하겠다고 밤을 새워 가면서 정성들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선생님이 무슨 음식을 좋아하노?󰡑 하면서 한국에 편지를 해서 전부 조사하여 준비하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자기들은 그 방법을 모르니까 한국 출신 부인들을 이탈리아에서, 아프리카에서 데려와서 준비하고 야단합니다. 정성을 들여도 부족한 자신임을 느끼면서 정성을 들이는 그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건 왜 그러냐? 밤을 새워 가면서 주고 또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무한히 주고도 또 주고 싶고, 무한히 받더라도 또 무한히 돌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무한히 주고 무한히 받을 수 있는 사랑에 취해 사는 사람 이상 행복한 사람은 이 우주 어디에도 없습니다.
불행이 뭐냐? 주려야 줄 사람이 없으면 불행합니다. 주려고 해도 못 주니 불행을 느낍니다. 주고 싶을 때 주고, 받고 싶을 때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귀한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이 여기에 왕래할 수 있는 수수(授受)의 예물이 되는 한, 우주의 모든 불평불만, 모든 원한의 궁지를 격파하고 직행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생명까지 줬으니 자식은 부모를 위해서 생명을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생명이 사랑에서 생겼으니, 본질적인 사랑 앞에 생명을 희생하며 가는 것이 논리적인 결론입니다. 그러니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스승은 제자들을 위해서 피눈물을 흘리고 뼛골이 울리는 심정을 가지고 단에 서야 합니다. 찾아가야 할 미래의 세계, 본연의 세계를 망각한 몰지각한 무리를 앞에 놓고서는 눈물 없이는 단상에 설 수 없습니다. 온 세포가 떨립니다. 그런 죄책감으로 자책하면서 단상에서 눈물을 흘리며 가르쳐야 됩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피를 토하고 눈물이 터져 나오는 그런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망할 줄 알았는데 망하지 않았습니다. 동서남북 온 세상에 괴수라고 소문날 줄 알았는데, 동서남북에서 대문을 다 열어놓고 밤이든 낮이든 들어와 주인이 돼 달라고 합니다. 당신만 있으면 열쇠도 필요없고 모든 것이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데서만 천국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철학은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자기를 위해 사는 존재는 상대권을 보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창조 자체를 그렇게 했습니다. 상대를 위해서 창조했습니다. 동등한 가치와 동등한 권한, 소유의 권한을 부여하는 놀라운 그 사랑을 위하면서 주겠다고 하는 이 길이 인생에서 얼마나 행복한 길이냐? 하나님은 그렇게 위하면서 주겠다는 사람에게 천지 우주를 상속해줍니다. 그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일생의 행로입니다. (137-75)


 
무한한 인간의 욕망
 
사랑에 취해서 사는 인생행로가 되어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하느냐? 본래 사람은 사랑에서 태어났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부모의 사랑의 동참자입니다. 나의 기원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내가 귀합니다. 부모의 사랑에 동참했고, 우주의 핵에 동참했기 때문에 내가 귀합니다. 타락은 했을망정 그 형은 같습니다.
인간은 사랑에서 태어나서 사랑으로 길리움 받아 우주의 핵과 통할 수 있는 남성 여성으로 성숙하여 결혼을 해서, 사랑에 품겨 사랑하며 살다가 자녀를 낳아 사랑으로 자녀를 기릅니다. 사랑을 횡적으로 줄 뿐만 아니라 종적으로도 줘야 합니다. 왜 종적으로 줘야 하느냐? 그래야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운동을 합니다. 모든 힘은 원형운동을 해서 중앙을 통해 사방으로 뻗치는 작용을 합니다. 그리고 죽고 난 후에는 사랑으로 영생합니다. 하나님이 절대적 주체인 아버지라면, 나는 그분의 절대적인 대상의 가치를 지녔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으로 영생의 개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절대적 주체인 하나님 앞에 사랑의 대상의 가치를 지녀야 하고,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영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영원한 사랑의 대상권을 차지합니다. 그 자리에 서게 되면 위나 아래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자 나입니다. 하나님이 내 호주머니에 들어오려고 하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사랑의 호주머니는 큽니다.
우리 마음이 얼마나 크냐? 몸은 아주 조그마해도 욕심은 큽니다. 보기에는 조그마하고 지붕에 열려 있는 호박통같이 형편없이 생긴 사람이라 해도 󰡐키가 작으니 욕심이라도 커야지󰡑 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마음의 보따리는 세계를 갖다 줘도 만족하지 않습니다. 더 큰 것이 있으면 그것도 내가 갖겠다고 하고, 더 높은 곳은 내가 가겠다고 합니다.
그것은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하나님을 집어넣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하나님을 집어넣고도 차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마음 보따리에 집어넣고는 하나님이 좋아하는 비밀까지도 집어넣으려고 합니다. 그 하나님의 비밀이 뭐냐? 하나님이 제일 원하는 비밀이 뭐냐 하면 사랑입니다. 이 사랑까지도 집어넣겠다는 것이 마음입니다. 이것을 딱 점령하고 나서야 󰡐이젠 됐어. 이젠 필요없어󰡑 합니다.
인간은 최고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마음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인간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다󰡑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이 말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그건 위대한 말입니다. 아무리 큰 하나님이라 해도 그 하나님과 내가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이 되면, 사랑으로 하나되면 우주를 상속받을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과 하나되면 사랑이라는 원칙을 통해서 하나님이 지은 무형세계와 유형세계 전부를, 이 우주를 상속받을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됩니다. 이것은 놀라운 내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감옥에 갇혀 있더라도, 그 감옥이 문제가 아닙니다. 수난 가운데, 피 흘리며 쓰러질 수 있는 자리에 있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이 같이합니다. 그 죽음의 자리를 격파하고도 남을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모든 핍박, 동족의 핍박, 자연의 핍박, 모든 어려움이 있었지만 주 너의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누구냐?󰡑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런 경지를 느꼈습니다. 타락의 선 너머 본연의 세계 선상에 방대하고 놀라운 우주의 공통분모의 작용, 그 위대한 원칙이 있는데, 그 경계선을 뚫고 나오지 못하는 인간이니 인생은 고해(苦海)일 수밖에 없습니다. (137-67)


 
중심 책임자는 축을 모시고 가는 사람
 
중심 책임자는 고해 가운데 사는 인간을 본연의 세계로 이끌고 가기 위해서 축을 모시고 가야 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세계 운세의 축을 모신 자리에서 나라 백성을 세계 민족으로 이끌어 가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반대를 받고 있지만 축을 모시고 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밤이나 낮이나, 감옥에 가나 어디를 가나, 죽을 자리에 가더라도 축을 따라 살고 축을 따라 행동합니다. 책임자, 지도자의 입장은 다릅니다. 그러나 돼먹지 못한 사람들이 축이 되겠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책임자가 되기를 바라는데, 그냥은 안 됩니다. 보다 위할 수 있는, 360도 구형 전체의 각도에 맞아 핵의 자리에 서서 그것을 지탱시킬 수 있는 축의 자리요, 핵심 자리요, 공통분모의 자리에 섰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책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책임자에게는 보호의 책임이 있습니다. 책임자는 잘되고 잘못되고, 좋고 나쁘고 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절박한 시기를 만난 이때에 축을 가진 사나이로서 횡적인 기준에서 여러 사람 앞에 관계성을 확대시키려고 합니다. 이것은 누구도 점령 못 하고 파탄시키지 못합니다. 그 어떤 힘으로도 파탄시키지 못합니다. 우주력은 이 힘을 옹호하고 보호하는 작용을 하게 되어 있지, 파탄시키는 작용을 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주는 보다 차원 높은 사랑의 주체를 위해서 존속합니다. 또한 우주력은 관계 세계를 맞아 개인에서부터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로 종횡의 사랑의 인연을 기준으로 하여 벌려 나갑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축이 되는 중심 앞에 평형적인 입장이 돼야 합니다. 축과 90각도가 되게끔 해서 평형선으로 이 각도를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자기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부부도 역시 이 평형선에 맞추어야 되고, 자녀도 이 평형선에 맞추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 가정은 그 360도 권내에, 구형 내에 존재하게 되므로 우주력의 보호를 받습니다. (137-73)


 
가정은 천국을 이룰 수 있는 교재
 
가정에서 부모는 종적인 사랑의 축을 온전히 계승해야 됩니다. 그 축에 맞추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 부부는 횡적으로 90각도를 맞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 가정은 그 질서가 서지 않았습니다. 국가도 그 기준에 맞추어야 합니다. 그 기준은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의 축의 자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 축을 중심으로 보면 가정은 조그마하고, 종족은 조금 더 크고, 민족은 더 크고, 세계는 더 큽니다. 이렇게 사랑의 축을 중심으로 확대됩니다. 이 사랑의 축의 중심으로 인연 관계를 사방으로 확대시킴으로써 이상권이 이루어집니다.
지금 선생님이 하는 것은 세계를 하나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세계를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축을 바로잡아 방향을 설정해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상의 왕 자리를 점령해야 하는데, 강제로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소화해서 점령해야 합니다. 그러니 남자는 여자를 위해, 부모는 자녀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도 제자들을 그런 마음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가르칠 수 있는 교재가 뭐냐 하면 가정입니다. 가정은 천국을 이룰 수 있는 교재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에 있는 할아버지 연령의 사람을 자기 할아버지와 같이 사랑하면 그 사람은 천국 가게 되어 있습니다. 또 자기 부모 연령과 같은 사람을 자기 부모와 같이 사랑하면 어디를 가도 통합니다. 만국 공통입니다. 영계에 가도 경계선이 생기지 않습니다. 만국의 젊은 사람을 자기 아들딸로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는 천국 어디든지, 열두 진주문이 있고 방향이 달라도 어디든지 통할 수 있습니다.
가정은 천국과 인연 맺게 하기 위한 교재입니다. 교과서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랑의 축을 나라에 적용하면 애국자가 되고, 세계에 적용하면 성인이 되고, 하늘땅을 중심으로 적용하게 되면 하나님의 아들딸, 성자(聖子)가 됩니다. 󰡐성자󰡑는 󰡐놈 자(者)󰡑 자가 아니고 󰡐아들 자(子)󰡑입니다. 인간은 다 그런 욕심을 갖고 있습니다.
다 잊어도 좋지만, 축이 되는 사람과 일치될 수 있는 기준을 갖지 않으면 인간세계에서 낙오자가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거기에는 철학적인 논리도 필요할 것이고, 종교적인 해명도 필요할 것입니다.
철학은 간단합니다. 철학은 하나님을 재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오히려 놓쳐 버렸습니다. 󰡐사람이 제일이다󰡑 하는 인본주의를 세워 놓고 사람도 바로 못 찾고, 󰡐물질이 제일이다󰡑 하는 유물주의를 세웠습니다.
종교는 뭐냐 하면 하나님에게 접붙여져서 생활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생활권을 말합니다. 오늘날 기성 종교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생활권을 마련하자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 생활권을 개인 생활권으로부터 우주 생활권으로 확대해서 세계 구도의 완성을 표준합니다. 무엇을 중심으로 생활하느냐?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중심으로 생활합니다.
이제 재창조를 하는 데 동참해야 합니다. 타락 세상이기 때문에 주체는 재창조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상을 가지고 하나님 대신 상대를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축을 중심으로 가정을 새로 만들어야 하고, 국가를 새로 만들어야 하고, 세계를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명이 천도(天道)라는 명제 하에 24시간 시간을 초월해서 작용하고 있으니, 이것을 받아들여서 새로운 인생의 봄을 맞이하여 세계를 품고 노래하며 갈 수 있는 인생행로의 성공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37-77)


 
6. 우주의 공법과 인간의 갈 길



나는 움직이는 우주다
 
󰡐나󰡑는 도대체 어디에서 태어났느냐? 나는 이 지구성의 축소체입니다. 우주의 축소체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소우주라고 합니다. 우리 몸은 지구에 있는 모든 원소가 다 들어 있습니다. 우주가 가담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주가 나를 만들었다고 봐야 합니다. 우주가 나를 만들었기 때문에 우주가 󰡐야, 내 것 다 찾아간다󰡑고 하면, 나는 전부 빼앗길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나는 뭐냐 하면, 우주의 원소를 빌려서 형성됐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우주가 나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주는 나를 낳아준 첫째 부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고 하는 존재는 우주의 모든 원소를 종합한 실체입니다. 우주의 모든 요소가 나에게 전부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움직이는 우주, 활동하는 우주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주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자연 가운데 앉아서 자연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신비롭습니다. 자연을 지극히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우러나면 인간도 자동적으로 사랑해야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래사장에 누우면 󰡐아, 내가 어머니 품에 눕는다󰡑고 생각하고, 나무에 기대면 󰡐아, 나는 형제들의 품에 기댄다󰡑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럴 때 우주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꽃과 나비, 모든 만물을 보고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나는 자연의 독생자요, 너 또한 자연의 독생자다. 그러니까 이 우주는 나와 너를 위해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나는 너를 위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태양을 대해 󰡐태양아, 너는 나를 위해 있지? 나를 보기 위해서 웃지? 너는 내 노래가 듣고 싶지? 그래, 노래 하나 하자󰡑 그러면서 󰡐아름다운 태양아, 광명한 태양아, 너는 나를 위해 있으니 내 생명과 함께한다󰡑고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읊으면 태양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오늘날 시를 짓는 사람들이 이런 심정으로 시를 지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그저 떠돌이처럼 읊고 있습니다. (105-106)


 
너와 나는 우주의 중심이요 인류의 중심

 
자연은 우리의 첫째 부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을 부모를 사랑하듯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둘째 부모가 누구냐? 나를 낳아준 친부모입니다. 나는 그 친부모를 통해서 우주의 모든 요소를 가지고 태어난 실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와 나는 우주의 중심이고 인류의 중심입니다. 그리고 내 부모는 선생 대신이요, 친구 대신이요, 모든 사랑을 주는 주체 대신입니다. 그래서 인류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인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 앞에 효도해야 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부부, 자녀를 포함한 그 가정은 세계를 대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 많은 사람은 자기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어머니 아버지와 같은 연령의 사람은 자기 어머니 아버지같이, 형님과 같은 연령의 사람은 형님과 같이, 동생과 같은 연령의 사람은 동생과 같이 대해야 합니다. 가정적 사랑을 확대할 수 있는 이러한 원칙에 입각해야 되는 것이 인류가 살아 갈 길입니다.
참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외적인 세계 사람 가운데 부모와 같은 연령의 사람은 자기 부모와 같이 생각하고, 형님과 같은 연령의 사람은 형님과 같이 생각하고, 누이동생과 같은 연령의 사람은 누이동생과 같이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전부 다 자기 가정을 대신해서 그것을 연장하여 세계 국경을 초월해서 사랑할 수 있는 심정을 가진 사람이 참사람입니다.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내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을 갖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할아버지를 한번 모셔 봐야 되겠다, 흑인 아주머니의 시중을 한번 들어 봐야 되겠다고 해야 합니다. 어려운 사람을 자기 부모 대신으로 모시고 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늙으면 보따리 싸서 자기 아들딸 집으로 가지 않고 양로원으로 갑니다.
그러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면 어디에 가서 사는 것이 이상적이냐? 아들 집이나 손자 집에 가서 사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미국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양로원으로 갈 때, 󰡐아, 좋다󰡑 하면서 가겠습니까? 아들이나 손자 집에 가서 살고 싶지만 갈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처량한 마음으로 양로원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주의 공법은 그렇게 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105-108)


 
우주의 근본은 부자의 관계를 중심삼은 사랑
 
우리는 어머니 아버지한테서 태어났습니다. 그 다음에 근본적인 입장에서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머니 아버지의 뱃속을 빌려서 나왔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우리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태어난 것은 참부모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우주의 부모를 통하고 육신의 부모를 통해서 참된 부모를 찾아가야 합니다. 우주의 부모와 육신의 부모는 통과의 부모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는 순간은 참된 부모를 만나러 가는 환희의 시간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거기에는 참된 부모의 참된 사랑이 있습니다. 그곳을 영적 천국이라고 합니다. 영적 천국의 구성요소는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이 충만한 곳입니다. 그 사랑은 나를 위한 사랑이 아니라 봉사와 희생의 원칙을 통한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이 일방적인 법도를 통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합격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 만우주를 내가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상생활은 인류를 사랑하기 위한 시험장이요, 훈련장소입니다. 이 지상생활이 사랑의 훈련장소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근본입니다. 인간이 살아생전에 이런 체험과 사랑을 가지고 살다가 합격되어 가면 틀림없이 하나님 앞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이 우주의 근본이 뭐냐?󰡑고 기도하고 찾아들어가 보니 답은 간단했습니다. 󰡐우주의 근본은 부자의 관계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우주에 대해서도 그렇고, 인류를 대해서도 그렇고, 하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원칙입니다. 여기에 중심이 뭐냐 하면 사랑입니다. 이러한 과제를 풀어주고, 이 과제를 완성시켜야 할 훈련장소가 통일교회입니다. 그것을 완성시키는 것이 선생님의 책임입니다. (105-109)


 
좋은 사람이라는 정의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우리 인간은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천태만상의 사람이 있습니다. 통일교회를 보더라도 󰡐내가 제일이다󰡑 하는 사람도 있고, 󰡐나 아니면 안 된다󰡑 하는 사람도 있고, 별의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는 중요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어느누구나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가 자기를 약간만 침해하더라도 기분 나빠합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냅니다. 그리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합니다.
우리가 󰡐좋은 사람이다󰡑 또는 󰡐나쁜 사람이다󰡑 하는데,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좋은 사람도 천태만상입니다.
그러면 좋은 사람의 정의를 찾아야 합니다. 좋은 사람이라는 정의를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 나에게서 찾을 것이냐,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 내가 결정하느냐, 전체가 결정해야 되느냐? 내가 결정하는 것보다 공적인 입장에서 전체를 중심으로 이것이 좋으냐 나쁘냐를 결정하는 것이 보다 가치가 있고 좋은 것입니다.
내가 잘생겼다고 할 때, 눈도 잘생기고 코도 잘생기고 입도 잘생기고 다 잘생겼지만 손가락 하나가 없다면 어떻게 되느냐? 눈이나 코나 입을 자랑할 수 있지만 손은 자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손가락을 감추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전체의 기준을 대표할 수 있는 공인된 기반 위에 서야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듯 전체의 기준을 대표할 수 있는 공인된 기반 위에 서야 그것을 선이라고 할 수 있고, 좋다고 할 수 있고, 자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우리 집안에서 제일 좋다고 하는 내가 되기 위해서는 어때야 하느냐? 내가 제일 좋다고 해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집 전체가 좋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내가 제일 좋다고 하는 입장에 서게 됩니다. (105-88)


 
우주의 공법은 어떻게 작용하느냐
 
이렇듯 가정에서 제일 좋다고 하는 사람이 되려면 좋게 해줄 수 있는, 보다 높은 차원을 지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좋다󰡑는 결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과 봉사가 절대 필요합니다. 그런데 󰡐희생과 봉사가 필요한데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어머니 아버지와 전체 식구가 다 함께 해야 된다󰡑고 하면, 그는 어떤 사람이냐? 제일 좋은 사람이냐? 아닙니다. 어떻게 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냐? 자기가 희생하고 봉사하겠다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범위를 넓혀서 󰡐내가 미국 사람인데, 미국 사람 중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다󰡑 이런 결론을 내렸다면, 진짜 미국 사람 중에서 좋은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이건 지극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면 󰡐미국 사람은 전부 나를 위해라. 나를 대해서 희생하고 봉사해라󰡑고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전체 미국 사람을 위해서 나는 희생하고 봉사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미국 사람을 대표할 수 있는 선한 사람입니다.
미국에는 흑인도 있고, 백인도 있고, 황인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백인들은 흑인을 멸시하고 천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백인들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 나쁜 사람입니다. 그것이 흑인으로 볼 때만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백인의 눈으로 볼 때도 나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아무리 부모로서 잘했고 백인으로서 제일 좋다고 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흑인을 멸시하고 천대했다면 그는 우주의 공법에 의해 나쁜 사람으로 결정됩니다. 그런 사람은 이 우주의 공법에 걸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주의 공법은 어떻게 작용하느냐? 우주의 공법은 전체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겠다는 사람은 보호하지만,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희생을 싫어하는 사람은 제거하려고 합니다.
남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선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선한 일은 남을 위해서 희생하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보편적으로 미국 청년이나 미국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냐? 선한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105-90)


 
희생 봉사하는 사람이 공적인 사람이다
 
예수님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엇을 회개하라는 것이냐? 희생하고 봉사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자기가 지은 죄를 회개하라고 하는데, 그 죄는 어디에서 나오느냐? 남을 위하지 않고 자기를 위한 데서 모든 죄악이 발생합니다.
도둑질이 왜 나쁘냐? 조그마한 물건 하나에도 희생의 대가가 들어가 있고 봉사의 대가가 들어가 있습니다. 공적인 것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것을 아무 대가 없이 그냥 가져가기 때문에 죄가 됩니다.
거짓말은 왜 하느냐? 자기 이익을 위해서 합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나쁜 것입니다. 만일 보기 싫은 원수를 살해했다면, 원수를 살해했기 때문에 죄가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죄입니다. 아무리 보기 싫은 원수라 하더라도 그 나라를 대표하고 우주를 대표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원수라 하더라도 죽이면 우주의 공법을 유린한 것이기 때문에 죄가 됩니다. 이렇듯 원칙에 위배되면 전부 걸립니다.
그런 것을 전부 종합해 보면, 무엇이 들어가 있느냐? 회개라는 말에 귀결되는 것이 아니고 희생과 봉사라는 말에 귀결됩니다.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을 공판할 수 있는 법은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을 악하다고 벌을 주는 법이 없습니다. 공법이라는 것이 좋게 하기 위한 법이기 때문에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을 벌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나라의 대통령이 그 사람을 불러다가 나라를 대표해서 상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희생과 봉사는 왜 전체를 위해 하라고 하느냐? 남이 나를 위해 희생하게 만들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만약 그런 법을 세웠다면 한 집안에 뭉쳐서 살 수 없습니다. 그 집안은 산산조각이 납니다. 열 사람이면 열 사람이 그런 주장을 하면 열 조각이 납니다. 또 백 사람이면 백 조각으로 동강이 납니다.
그런 법을 정했다면 물질세계에서부터 어떤 존재세계에도 다 적용해야 합니다. 사람만 그럴 수 없습니다. 눈 안에 있는 하나의 세포가 󰡐나도 존재기 때문에, 내 존재를 중심으로 온 우주는 나를 위해 있어라󰡑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자기를 주장하는 것이 존재 파괴의 원인이 됩니다.
그런데 눈을 대해 󰡐이놈아, 눈 세포 너도 귀하지만 너는 보다 공적인 존재인 내 앞에 흡수되어 있으니 우주의 공법대로 따르는 거야!󰡑 하면 󰡐예󰡑 하게 돼 있습니다. 보다 가치 있는 것이 공적입니다. 거기에는 어디에서나 󰡐예, 예󰡑 해야 됩니다. 이런 원칙이 있는 걸 알기 때문에 불평할 수 없습니다. (105-92)


 
우주의 공법은 희생하고 봉사하고 사랑하는 것
 
우리는 매일 밥을 먹습니다. 그리고 잘 자라고 있는 야채를 무정하게 칼로 뚝 잘라다가 반찬을 만들어 먹을 때 미안한 생각을 갖지 않습니다. 삶지도 않고 소금만 쳐서 토끼처럼 와작와작 먹는다고 야채가 󰡐아이구, 나 죽는다. 이놈의 자식, 복수하겠다󰡑 하지 않습니다. 야채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무정합니까? 그렇지만 야채는 󰡐나는 고맙게 생각합니다. 당신은 나보다 더 가치 있는 이 우주의 공적인 존재기 때문에, 공적인 가치의 존재에게 희생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감사하며 먹힙니다󰡑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먹은 나는 그 먹힌 음식들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몸짓을 하게끔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들이 기분이 좋아 내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것입니다. 불평불만해서는 안 됩니다. 나 때문이 아니라 전체 때문에 󰡐하하하!󰡑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는 것을 모든 음식물이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자기를 위해서 󰡐허허허!󰡑 하는 것은 󰡐이런 나쁜 놈 같으니라구!󰡑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몸은 우주의 공법에 의해 반동이 벌어지기 때문에 병이 나고 나쁜 일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이 우주의 공법에 의해 쇠퇴하여 망합니다.
눈물도 악한 눈물이 있고 선한 눈물이 있습니다. 눈도 그렇습니다. 듣는 귀도 그렇습니다. 전부 경계선이 있습니다. 우리 눈을 볼 때, 어떤 눈이 좋은 눈이냐? 󰡐내가 전체를 위하고, 내가 위해줄 수 있는 무엇이 없나? 봉사할 수 있는 무엇이 없나?󰡑 이렇게 보는 눈이 좋은 눈입니다. 누구를 볼 때, 󰡐저놈을 이용하고, 저놈을 잡아치워야 되겠다󰡑 하면서 보는 눈은 나쁜 눈입니다.
한때 세계적으로 디스코 댄스가 선풍적으로 유행하면서 노래를 부르며 미친 듯이 춤을 추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댄스곡들이 유행하면서 젊은이들이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통일교인들에게 그런 곳에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못 가게 하느냐?
그렇게 춤추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 전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춤을 춥니다. 그리고 그 춤과 노래를 통해서 누구를 이용해 먹습니다. 여자를 이용해 먹고, 남의 돈을 이용해 먹고, 전부 이용해 먹습니다. 남을 이용해 먹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나쁜 것입니다. 또한 그런 장소는 공적인 목적을 위한 보편적인 곳이냐, 사적인 목적을 위한 보편적인 곳이냐? 사적인 목적을 위한 장소입니다. 그래서 통일교인들에게 그런 곳에 못 가게 한 것입니다.
학생들은 대개 어머니 아버지가 󰡐공부해라. 제발 공부해라. 연애가 뭐고 데이트가 뭐냐?󰡑 하면 싫어합니다. 그럴 때 󰡐그래야 장래에 한국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는 사람이 되는 거야!󰡑 이렇게 말하면서 공부하라고 하는 부모는 선한 부모지만, 󰡐네가 하고픈 대로 해라. 네 마음대로 해라!󰡑 하는 부모는 선한 부모가 아닙니다. 󰡐이놈의 자식!󰡑 하면서 그저 때려서라도 공부를 시키는 부모가 보다 좋은 부모입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아이구 선생님, 오늘 비가 와서 축축하고 그래서 기분도 별로 좋지 않은데, 공부하지 말고 놉시다󰡑라고 할 때 그대로 하는 선생님이 있다면 학생들은 그런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놈아, 나는 너희들을 위해서 가르칠 책임이 있다󰡑고 하면서, 비가 오든 어떻든 날마다 하나라도 더 가르치겠다고 5분 먼저 들어오고 5분 늦게 나가는 선생님은 싫어합니다. 그렇지만 그 선생님은 우주가 인정하는 공적인 선생님이요, 선한 선생님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면서 한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희생하면서 󰡐전인류를 위해서 내가 죽어간다󰡑는 희생정신을 가진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서 민족 반역자로 피 흘리며 죽어 갔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나폴레옹이나 히틀러같이 󰡐세계를 내 마음대로 하겠다. 세계를 내 앞에 굴복시키겠다󰡑 하는 녀석들은 전부 세계 사람들이 싫어하며 추방했습니다. 그러한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우주 공법에 의한 결론적 입장을 자동적으로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주의 공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05-94)
  

 
희생봉사하면 우주의 공법이 보호한다
 
하나님이란 어떤 분이냐? 우주의 공법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러면 우주의 공법은 뭐냐?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하는 것입니다. 그 속성은 희생과 봉사입니다.
희생 봉사가 왜 필요하냐? 물론 우주의 공법에 일치되기 위한 것도 있지만, 하나님과 주고받기 위해서 희생 봉사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주고받으면 하나되고, 하나님과 하나되면 영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영생하니까 하나님과 하나된 우리도 영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전능하고 유일한 분이기 때문에 나도 최고 유아독존(唯我獨尊)적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희생과 봉사가 필요합니다.
그 다음에는 절대적인 존재가 됩니다. 누가 나를 침범할 수 없고, 누가 나를 주관할 수 없습니다. 나를 보호해주는 법도권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은 사랑의 중심이기 때문에 무한한 사랑의 힘이 내 전체에 넘쳐 흐르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의 태양권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태양이 모든 생명의 원천인 거와 마찬가지로 나도 생명과 사랑의 원천이 되어 누구든지 나를 보면 󰡐하하하!󰡑 웃으며 좋아하게 됩니다. 세계 어디를 가든지 자기를 닮은 사람은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히 압니다. (105-100)
그러면 개인이 영원히 남아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가 개인으로서 세상에 존경받는 사람이 되려면 자기를 높여서는 안 됩니다. 높임을 받으려면 희생을 해야 됩니다. 열 명의 친구가 있으면, 그 열 명의 친구를 위해서 오랫동안 희생하는 사람은 그 열 명의 친구 앞에 중심존재가 됩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친척과 그들의 친구까지도 그와 하나가 되려고 합니다. 반대로 그 열 명의 친구에 대해서 󰡐너희들은 나를 위해라. 나를 위해라󰡑 하면 그 친구들은 다 떨어져 나가고 결국 외톨이가 됩니다. 나중에는 자기도 갈 곳이 없어집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있어서 선과 악의 구별점이 됩니다.
또 한 나라의 애국자도 그렇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링컨 대통령이라든가 케네디 대통령을 지극히 존경합니다. 왜 존경합니까? 똑같은 대통령이지만 미국을 위해서 생명을 바쳤기 때문에 존경합니다. 이와 같이 대통령 가운데서도 미국을 위해서 비참하게 희생한 대통령일수록 지극히 높은 애국자요, 지극히 높은 대통령의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만약 많은 대통령 가운데서 제일 나라를 위한 대통령을 뽑는다면 죽지 않은 대통령은 축에도 못 들어갑니다. 생명을 바쳐 나라를 사랑한 대통령일수록, 그것도 비참히 희생당한 대통령일수록 위대합니다.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그것이 한때는 비참하지만 역사시대가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점점점 환경의 범위를 넓혀 그를 중심으로 뭉치게 됩니다.
예수님의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를 위해서 희생했느냐 하면 세계의 인류를 위해서, 세계의 나라를 위해서 희생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인류를 사랑하고,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원수까지 사랑한 입장에서 복을 빌고 비참히 돌아갔습니다. 그 당시에 이름없이 민족 반역자로 몰렸던 예수님이 오늘날 세계적인 기독교 문화권을 창건할 줄은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원칙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큰 무대를 위해서, 공적인 큰 일을 위해서 희생한 사람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역사적인 성현들입니다. (53-17)


 
기독교 사상은 희생과 봉사의 사상
 
그러면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나쁜 것이냐? 희생하고 나면 결과는 어떻게 되느냐? 사람들은 자연히 그를 모시려고 합니다. 끝까지 자기를 위해주는 사람에게 지배를 받으려고 합니다. 지도해주기를 원합니다.
이것을 볼 때,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이 악의 세계를 대해 싸울 수 있는 작전이 있으면 그 작전법은 어떠한 작전법이냐?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전법입니다. 악은 그 반대입니다. 자기 때문에 남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하면 개인의 반대를 받고, 가정적으로, 혹은 국가적으로 그렇게 나가면 반드시 역사 앞에 규탄받는 독재자가 됩니다.
악의 전법은 남을 희생시켜서 자기가 출세하려는 전법이요, 하나님의 전법은 남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가 희생하는 전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과정에 선을 주장하고 나왔던 사람들은 그 시대에는 환영을 못 받고 희생을 당했습니다. 자기 몸을 희생하면서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간 사람들은 역사가 지나간 후에 그 이름이 드러납니다. 이것이 사실인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사상은 봉사의 사상이요, 희생의 사상입니다. 기독교가 하나의 교단을 중심하고 자기 교단만 위하는 기독교가 되면 망합니다. 만일 미국의 어떠한 기독교단이 활동하는 모든 목적을 미국을 구하는 데 두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온갖 희생을 각오하고 나선다면 하늘은 이 교단을 협조할 것입니다. 이렇게 미국을 구해서 기독교화한 국가로 만들어 세계를 구하기 위해 미국 국민을 희생시킬 수 있는 기독교가 되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기독교 세계가 됩니다. (53-18)


 
종교 중에 어떤 종교가 좋은 종교냐
 
그러면 종교 중에서 어떤 종교가 좋은 종교냐? 가톨릭의 교황이 어디에 가면 수십만 가톨릭 신자들이 모입니다. 거기에 모인 것은 무엇 때문이냐? 세계 인류와 하나님을 위해서냐, 교황을 위해서냐? 환영하는 소리가 가톨릭을 위한 소리냐, 세계를 구하자는 소리냐? 가톨릭만을 위한 것이라면 세계 인류와 하나님을 위한 것보다는 나쁜 교회입니다. 하나님을 위하고 인류를 위해서 모이고, 보다 희생하기 위해서 모여야 합니다.
그렇게 볼 때, 통일교회는 좋은 종교냐, 나쁜 종교냐? 통일교회는 통일교회만을 위해서 모이지 않습니다. 미국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하나님의 해방과 인류의 해방을 위해서 모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복받기 위해서 모인 게 아닙니다. 그리고 인류 앞에 신세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통일교회는 인류를 해방하고 하나님을 해방하자는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통일교회는 좋은 교회고, 그런 교회를 지도하는 선생님은 좋은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러한 원리적 원칙에 의해 나를 비판하고 통일교회를 비판하고 역사와 현재와 미래를 통해서 비춰 볼 때에,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정정당당한 길이요, 백전백승할 수 있는 길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을 해방하자는 것이 선생님의 사상입니다. 인류만을 해방하자는 게 아니라 영계를 해방하고 지옥을 해방하고 하나님을 해방하자는 것입니다. 말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러기 위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통일교인들은 선생님을 잘 만난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그 누구를 시켜서라도 해야 할 사명이 역사과정에 남아 있습니다. 엄숙한 과정이요, 엄숙한 사명입니다. 칭찬받고 환영받는 사람이 아니라, 핍박받고 억울하게 몰리는 가운데서 이러한 역사적인 출발이 소생합니다. 그러니까 희생봉사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인류를 해방하고 하나님을 해방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하늘나라 건국사상이요, 이상세계의 기준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에게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랑을 상속받는 길입니다. 그 길을 통일교인들이 가야 합니다. (105-102)


 
7. 사랑의 축을 중심한 생활
 


부모의 사랑의 기쁨 가운데서 출발한 나
 
인간은 사랑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떤 존재냐? 귀한 존재입니다. 왜 귀하냐? 사랑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귀하듯이 내가 귀하고, 내가 귀하듯이 부모가 귀합니다. 이것은 내가 부모의 사랑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부모의 사랑에 동참했습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 정자와 난자 자체는 몰랐지만, 그 정자와 난자로서 부모의 사랑이 교류하는 데에 내가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사랑, 이 양면의 사랑에 동참한 기반을 거치지 않고는 󰡐나󰡑라는 존재는 태어날 수 없습니다. 부모의 사랑이 교류될 때 상대를 통해 느끼는 기쁨으로 내가 태어났습니다.
사랑할 때는 기쁨을 느낍니다. 슬픔 가운데서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기뻐하는 것은 뭐냐?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영과 육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그런 작용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작용으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으로 인한 슬픔이 최고의 슬픔입니다. 아내가 죽든, 남편이 죽든, 자식이 죽든, 부모가 죽든 그때 느끼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슬픔 중에 무엇이 제일 큰 슬픔이냐? 사랑이 침범받았을 때의 슬픔 이상 큰 슬픔은 없습니다. 돈이나 무슨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의 슬픔은 방향적 슬픔입니다. 그것은 각도만 조금 달리하면 다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축이기 때문에 사랑으로 인한 슬픔은 영원히 갑니다.
나는 부모의 사랑에 동참한 존재로서, 부모 사랑의 기쁨 가운데서 출발했습니다. 본래 인간은 사랑을 중심하고 기쁨 가운데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나는 부모 사랑의 기쁨의 자리에 동참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일생은 기쁨을 통해서 가야 합니다. 어떻게 기쁨을 통해서 가느냐? 부모 사랑의 그 기준을 중심으로 좌우편을 벌리고 그 중앙선을 따라가야 합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렇게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중앙선에 서서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어머니만 있어도 안 되고, 아버지만 있어도 안 됩니다. 성숙할 때까지, 자기가 성숙해서 어머니 아버지가 될 때까지는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 가운데서 자라야 그 중심성을 갖습니다. 그래야 출발을 중심선상에서 하고, 또 그 중심선상에서 자랍니다. 그 중심선상에서는 상하가 연결됩니다. 그 중심선상의 사랑 가운데서 부모의 키움을 받은 아들딸은 성숙한 후에는 부모와 갈라지게 됩니다.
그런 다음에는 이들이 부부를 이뤄야 합니다. 이 우주와 세계는 우리를 낳아준 또 다른 부모입니다. 이 세계 부모권에서는 누구를 중심으로 해야 하느냐 하면, 부부를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인류는 남성과 여성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아버지와 어머니 같은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라도 그렇습니다. (136-18)


 
인간은 수직 사랑의 축을 중심으로 나가야 한다
 
역사는 수직과 평형을 그려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형선상에서 부모의 보호를 받아 나올 때까지는 외적인 사랑을 느낄 수 있었지만, 부모로부터 내적으로 퍼져 나가는 사랑은 못 느꼈습니다. 그 내적으로 폭발되는 사랑이 바로 부부의 사랑입니다. 이것을 되풀이하면서 역사는 연결되어 나갑니다.
󰡐나󰡑는 부모의 사랑에 동참한 자로서 부모의 보호하에서 성숙하여 상대를 만나 부부를 이루어 부부의 사랑권에서 자식을 낳습니다. 성숙하여 결혼할 그때까지는 부모의 사랑을 받다가 결혼해서는 자기 자식을 낳아 사랑할 수 있는 부모의 자리에 들어갑니다. 아들에서부터 남편을 거쳐 부모인 아버지의 자리에 들어갑니다. 그러면서 후대를 연결합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를 둔 걸 생각해 볼 때, 비로소 중앙선에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성숙해서 결혼하여 자녀를 낳아 중앙선에 올라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의 중앙점과 접할 수 있습니다. 전부 이 중앙선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중앙의 축과 같은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우주적인 한 직계, 하나님을 중심으로 직계 축의 혈족이 있음과 동시에 우리는 그 축에 평형선을 이루어야 됩니다. 위에서 보면 수평선이 그려져 나가야 합니다. 축에서 갈라져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들을 보면, 가정들이 우주의 축을 모르고 외딴 곳에서 살더라도 제멋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부부의 사랑을 중심으로 한 가정의 제도라는 것은 어디나 같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은 어디나 다르지 않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반드시 수직선을 향합니다. 그 수직선과 언제나 평형선을 갖추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왜 그러냐? 하나님이 부모로서 자식을 사랑하던 최초의 그 수직 사랑이 축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축의 사랑을 따라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는 하나님이 자녀를 사랑하던 우주의 근본 되는 그 축과 언제나 평행선상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기준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인간세계에 행복의 기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축에 맞지 않고 거꾸로 되는 날에는 다 파탄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부모 없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왜 불행하냐? 이 우주의 축과 평행선으로 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축을 중심으로 바로 돌 수 있으면 우주의 보호를 받을 수 있고, 구형운동권인 그 큰 우주의 힘이 자기 마음과 더불어 작용함으로써 그 큰 가치만큼 사랑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일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저 사람이 마음이 곧은 사람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라고 말합니다. 한국 말이 참 재미있습니다. 󰡐마음이 바르다󰡑 󰡐마음이 곧은 사람이다󰡑 하는 말을 하는데, 무엇을 중심으로 해서 그렇게 말하느냐? 수직선을 중심으로 해서 그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왜 서서 다니느냐? 사람은 설 때는 언제나 축에 대해서 평행입니다. 이것은 동물과 다릅니다. 젖먹이 동물은 대부분 네 발을 가졌기 때문에 언제나 평형선뿐입니다. 그러나 사람만이 수직으로 설 수 있습니다. 구조상으로 볼 때 수직과 관계맺을 수 있는 존재는 사람뿐입니다. 그러니 바르다, 똑바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수직으로 맞추지 않으면 안정점을 찾을 수 없습니다. 건축물을 세울 때에도 전부 다 수직선에 맞춥니다. 수직을 중심으로 하여 수평을 맞춥니다. (136-20)


 
우주에 있어서 천륜의 도리는 수직선
 
수직선을 중심하고 보면 남자는 바른쪽이고 여자는 왼쪽입니다. 이것을 연장하면 위쪽은 플러스고 아래쪽은 마이너스가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상대적 관계가 주고받을 때 바르게 주고받는 관계가 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주고받는 것도 그렇습니다.
우주에 있어서 천륜의 도리는 수직선인데, 그 수직선을 중심으로 남자 여자는 반드시 수평선에 서야 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그러한 자리에서 사랑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주고받는데 무엇을 주고받느냐? 주고받아서 뭘 할 것이냐? 󰡐우리 둘만 주고받으면 그만이지󰡑 하는 건 안 됩니다. 주고받아서 어디에 연결되어야 하느냐? 축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림을 그릴 때 한 점에서부터 그려 나갑니다. 마찬가지로 수직선을 중심으로 해서 개인에서부터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 이렇게 연결되어야 합니다.
축은 하나입니다. 개인이 바라는 욕망의 축도 하나요, 가정이 바라는 욕망의 축도 하나입니다. 국가가 바라는 욕망의 축, 세계가 바라는 욕망의 축, 우주가 바라는 욕망의 축, 하나님이 바라는 욕망의 축도 하나입니다. 둘일 수 없습니다. 단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을 중심으로 서야 합니다. 축을 무시하고 움직이는 것은 사탄입니다. 그것은 자꾸 깨져 나갑니다. 우주가 몰아냅니다. 아무리 가운데 붙어 있으려 해도 몰아내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다 해도 책임을 못 하면 장애아가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전부 다 후손이 피해를 봅니다. 쭉정이가 되어 버리는 그런 현상이 벌어집니다.
그러니 축을 중심으로 돌아야 합니다. 개인도 축을 중심으로 돌고, 가정도 축을 중심으로 돌고, 종족․민족․국가․세계도 축을 중심으로 돌아야 합니다. (136-22)
구형은 뭐냐? 구형은 아무리 굴리더라도 설 때에는 반드시 수직을 따라서 섭니다. 그 서 있는 초점은 반드시 축과 수직입니다. 언제나 축을 중심으로 해서 섭니다. 서는 것이 보이지 않지만 축을 중심으로 해서 수직으로 선다는 것입니다.
우주의 축이 있다면, 우주의 어떤 수직적 축이 있다면 모든 존재는 그 축을 중심으로 평형을 이루고 거리가 같은 수직형을 갖추어 서 있습니다. 모두 그렇게 서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자리에서 돌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직을 중심으로 서 있는 것은 구형입니다.
이 우주의 모든 존재는 운동하는데 제멋대로 운동하지 않습니다. 그 축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인간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 자체도 인격을 중심으로 돌고 있습니다. 부부도 가정이라는 축을 중심으로 서로 주고받으며 돌아갑니다.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그 축을 중심으로 돕니다.
그렇다면 피조세계는 어떻게 존재하고 있느냐? 축을 갖추고 있는데 두 축이 있습니다. 보이는 축과 보이지 않는 축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주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그 주체 자신도 돌아갑니다. 몸과 마음이 서로 주고받으면 도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존재물은 이와 같은 원칙에 의하여 존재합니다. (136-13)


 
하나님은 축의 중심이요 축의 시작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를 거쳐나왔느냐? 인간은 몰랐지만, 하나님은 주류역사를 거쳐나왔습니다. 역사를 횡적으로 보면, 역사의 출발부터 끝까지 횡적으로 축을 중심으로 인류가 뭉쳐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많은 종교를 볼 때, 동서남북 사방이 다르고 여러 가지 종교 형태가 있지만 그 가운데에는 축이 있습니다. 그 축은 처음이자 끝입니다. 맨 처음 시작하는 데서부터 축을 받들어주는 받침이 있다면 그 받침의 맨 끝까지 이어지는 처음이자 끝이라는 것입니다. 그 축이 시작하는 맨 처음은 하나님의 자리요, 축이 닿을 수 있는 맨 나중이 인간 완성의 자리입니다. 그게 인간 완성의 기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축의 중심이요 축의 시작입니다.
인간을 완성시킬 수 있는 축의 처음과 끝을 연결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입니다. 예를 들어 라디오를 들을 때 안테나가 높으면 잘 들리는 것과 같이 사랑의 선이 높으면 높을수록, 길면 길수록 높은 인연을 가지고 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축의 끝을 연결시켜서 무엇을 가지고 돌리느냐? 사랑의 힘을 가지고 돌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사랑의 힘에 의해서 돌아야 됩니다. 사랑에 동화될 수 있는, 돌아가는 거기에 상응할 수 있는 소성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우주 가운데서 비로소 참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도는 거기에 박자를 맞추어야 상충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거기에 안정점이 생깁니다.
지금 우리가 호흡을 하고, 또 각 기관과 혈관, 모든 신경과 세포가 운동을 하는데, 그것들이 균형을 이루어 가면서 운동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운동하는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안정점이 형성돼 있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서로 잘 주고 잘 받는 운동권에는 자극이 없습니다. 만약 이것이 기울어지면 아픔을 느낍니다. 아픈 것은 뭐냐 하면, 안정된 세력권이 파괴되는 것을 예고해주는 것입니다. 그 파괴되는 곳에 안정되게 할 수 있는 것을 보급해주지 않으면 전체에 피해가 옵니다. 신체의 모든 기관이 균형을 이루어 평균선상에 있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지 않는 안정된 자리에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기울어집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에 동화된 개체면 개체가 가정을 이루는 데 있어서 균형이 이뤄진 안정점을 찾기 전에는 자기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찾을 수 없고, 존재의 기쁨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존재에는 중심이 있습니다. 중심이 없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축을 중심으로 해서 작용이 벌어집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의 행정조직을 보면, 대통령을 수반으로 해서 장관과 도지사, 군수, 면장, 그 다음 이장, 반장이 축이 되어 있습니다. 국민은 그 축을 중심으로 동화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되지 못하는 날에는 풍화작용에 의해 파괴됩니다. 깨지기 시작합니다. (136-15)
  

 
인간의 욕망과 공평한 하나님의 사랑
 
인간을 두고 생각해 볼 때, 남자 여자의 욕망이 얼마나 크냐? 하나님만큼 큽니다. 왜 하나님만큼 크냐?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아들딸로 지었으니 이들이 크게 되면 누구를 닮느냐? 하나님을 닮습니다. 실체의 하나님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욕망도 하나님만큼 큰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만물세계를 사랑합니다. 곤충을 보면 사랑스럽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보면 곤충이나 원숭이 같은 동물이고 물고기들입니다. 그런 만물을 통해서 사랑의 마음이 싹틉니다. 이것은 부모의 사랑과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변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동물세계나 식물세계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지음을 받은 사람이 낮은 차원으로 지어 놓은 동물을 사랑하면서 점점 커서 성숙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욕심이 많아집니다. 󰡐이 세계를 내가 가져야 되겠다. 저것도 내 것, 이것도 내 것, 개미도 내 것, 새도 내 것, 뱀도 내 것, 고기도 내 것, 저 산도 내 것, 전부 다 내 것이다󰡑 합니다.
해와와 아담의 놀음놀이가 그랬을 것입니다. 소꿉장난하면서 조그만 자갈을 집어서 󰡐요것도 내 것이고, 저것도 내 것이야󰡑라고 했을 것입니다. 또 좋은 나뭇가지가 있으면 󰡐그것도 내 것󰡑 그랬을 것입니다. 󰡐저 산도 내 것, 저 해도 내 것󰡑 하다가 싸움도 하고 그랬을 것입니다. 다 커서 남자가 󰡐이것 전부 다 내 것이다󰡑 할 때 여자가 가질 것이 없으면 항의를 할 것입니다. 󰡐왜 모두 당신 것이야? 당신이 남자니까 수놈세계는 당신 것인지 모르지만, 암놈세계는 내 것이야󰡑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한 분입니다. 인간이 이 세계를 갖고 네 것, 내 것 하며 싸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둘로 딱 갈라놓고는 서로 네 것, 내 것 하며 싸우면 안 되겠으니까 남자의 것은 여자에게 갖다 심어 놓고, 여자의 것은 남자에게 갖다 심어 놓았습니다. 사랑이란 것이 흉측한 것 같지만 참 기가 막힌 것입니다.
여자가 갖고 있는 그 생식기는 여자의 것이 아닙니다. 남편의 것입니다. 남편 하면 한 사람밖에 안 들어갑니다. 또 남편의 그 늘어진 게 뭡니까? 아내는 거기에 붙어 삽니다. 거기에 목을 매고 살다가 그게 고장나면 다 도망갑니다. 남자의 그것이 조금 고장이 났다 하면 남자가 아무리 외모가 잘생겼다 해도 다 도망가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 것, 내 것 전부 다 갈라 가지고 있었지만, 사랑이라는 요지경이 벌어지면 󰡐야, 이것 봐라! 내가 네 것 되고, 네가 내 것 되니 전부 다 우리 것이다󰡑 이렇게 됩니다. (136-23)


 
결혼이란 서로의 주인을 만나기 위한 것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엮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로 오게 되어 있느냐 하면, 남자와 여자의 경계선으로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경계선에 닿지 않게, 서로가 침범하지 않게끔 해놓은 것입니다. 어느 쪽에 조금이라도 치우쳐서는 안 되기 때문에 멀고 먼 저 꼭대기에서부터 멀고 먼 저 밑창까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수직으로 연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아담편에 가까이했다 하면 해와가 󰡐앵앵앵󰡑 하고, 또 해와편에 가까이 가게 되면 아담이 󰡐왕왕왕󰡑 합니다. 그래서 수직은 저 꼭대기에서부터 저 밑창까지 공통의 직선을 내려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거기에 둘이 딱 갖다 맞추면 맞습니다. 남자 여자가 상대가 되어 그 중심을 놓고 딱 하나가 됩니다. 용접하는 것입니다. 그 용접이 결혼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할 때는 몸과 마음이 공명합니다. 사랑으로 영적 세포와 육적 세포가 완전히 하나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사랑으로 하나되어 살지 못하고 혼자 살다가 영계에 간 사람은 곤란합니다. 세상에서 잡되게 살았을망정 사랑을 중심으로 생활했던 사람들은 동화되는 작용이 빠릅니다. 그 사랑이 나쁜 것이었지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여튼 남자와 여자는 수평선과 같습니다. 부인들이 자기 남편을 부를 때 󰡐여보! 하고 크게 부릅니까, 아니면 작게 기어들어가듯이 부릅니까? 소리를 질러 󰡐여보!󰡑 하고 부를 때에는 수직을 맞추는 것입니다. 크게 󰡐여보!󰡑 하고 부르지 작게 부르지 않습니다. 크다는 것은 저 끝까지 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작용하는 것이 이상을 그려 가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모양을 따르다 보니 거기에 도수를 맞추고 박자를 맞추어 그러한 표정,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유교에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있습니다. 여자는 왜 남자가 필요하냐? 주인을 찾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주인을 왜 찾느냐? 주인이 없으면 그것이 웁니다. 집이 비어서 썩습니다. 구새가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는 왜 여자가 필요하냐?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주인을 만나기 위해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왜 그렇게 만들었느냐? 남자의 자리와 여자의 자리를 바꾸어 가면서 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주가 돌고 있는데 돌지 않으면, 거기에 박자가 맞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빠르게 돌든 천천히 돌든 돌아야 존재하지 돌지 않으면 추락합니다. (136-26)


 
결혼은 축(軸)과 하나되는 것
 
그러면 결혼은 왜 하느냐? 왜 남자를 끌어당기고, 여자를 끌어당기느냐? 처녀 총각이 서로 사랑하는데 어머니 아버지가 반대하면, 󰡐아이구, 나 죽는다󰡑 하면서 목을 매 자살하고, 둘이 꽁꽁 동여매서 투신 자살하는 일이 많이 벌어집니다. 그거 왜 그렇습니까? 왜 결혼하려고 하느냐?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꿈자리가 사나울 정도로 못생긴 상대라 해도 자기가 결혼해서 살 때는 안 보면 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은 포괄하는 힘이 있습니다. 사랑의 안경을 끼고 보면 전부 다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 둘이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첫사랑에 인연된 사람은 그 상대를 잊을 수 없습니다. 사랑의 묘미가 그런 것입니다. 못생긴 것이 도리어 아름답습니다. 󰡐이게 있기 때문에 나는 사랑한다󰡑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입술이 됐든 이마가 됐든 잘생긴 무엇을 바라보고 사랑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혼을 왜 하느냐? 축(軸)과 하나되기 위해서 결혼합니다. 그 축은 뭐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면 천리의 법도, 원칙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지 못하면 똥개들과 마찬가지입니다.
결혼하면 축을 만납니다. 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결혼하면 하나님과 우주의 축에 연결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수평선에서 90각도로 하나님의 사랑에 접해야 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붙들고 󰡐아이고, 좋다!󰡑 할 때는 벌써 그 가운데 하나님이 들어와 계십니다. 하나님을 빼놓고 좋다고 하게 되면 축이 없습니다. 그 조건이 없으면 흘러가 버립니다.
그러니 축을 중심으로 360도 돌아야 합니다. 사랑하게 되면 높아졌다가 낮아집니다. 부부가 좋다고 씩씩거리다가 한잠 자야 됩니다.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내려왔다가는 또 올라가고 해야 됩니다. 그런데 나이가 많아지면 그것이 싫어집니다. 그것이 싫다고 하게 될 때는 끝장입니다. 우주가 추방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사랑에 접붙이기 위한 것이 결혼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사랑의 축에 접붙이기 위한 것이 결혼입니다. 여기에 접붙여 놓아야 영원히 갑니다. 그렇지 않고 축이 없이 돌아가면 어디 가서 부딪쳐서 언제 옥살박살 깨져 나갈지 모릅니다. (136-29)


 
사랑은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남편은 하루종일 밖에 나가서 일하다가 궁둥이가 아프고 눈이 쌍꺼풀이 되어서 집에 들어오는데, 아내는 아침 때 한숨 자고 점심 때 한숨 자고, 하루종일 자다가 저녁에 남편이 들어와서 사랑을 안 해주면 불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구미호(九尾狐) 같은 여자들이 많습니다.
여자로서 갖출 것을 모두 갖추고 남자를 사랑하겠다고 해야지, 동물만도 못한 자리에서 남자에게 호령하면 안 됩니다. 암소보다는 나아야 됩니다. 남자들은 아내를 사랑하려면 젖가슴을 체크하십시오. 젖꼭지 주변이 새까맣고 딴딴한지 만져 보고 안 그러면 차 버려도 됩니다. 여자들이 갖출 바를 갖추지 못하고 사랑하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여자가 기분 나쁘게 하면 돌아다니면서 들개 같은 것들하고도 맞붙습니다. 집개가 들개하고 맞붙는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상대만 보면 언제나 늘어진 생식기가 동합니다. 여자는 생리하기 일주일 전이나 일주일 후를 중심으로 절정에 오르지만, 남자는 언제나 가능합니다. 그러니 남자들은 여자를 대할 때는 언제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소는 그렇습니다. 암소가 1년 만에 음부가 부풀어서 뛰는데 황소는 가만히 있다가 뛰어오는 암소를 보고 󰡐저거 왜 뛰어오노?󰡑 하는 표정으로 서 있습니다. 그런 황소 앞에 암소가 척 서면 황소는 벌써 암소가 왜 왔는지 압니다. 그 다음엔 황소가 암소의 무엇을 핥느냐 하면 부풀어오른 그 음부를 핥습니다. 소는 그렇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동물들이 수놈 앞에 나타난 암놈을 보고 발길로 차고 뿔로 받습니까? 아무리 뿔질을 요란스럽게 하던 수사슴이라도 암놈이 오면 들이받지 않습니다. 󰡐오! 너 왔구나. 좋다!󰡑 하면서 입으로 그걸 표현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남자들은 여자를 대할 때 그렇게 해야 됩니다. 동물보다 나아야 됩니다. 그러니 인사도 먼저 하고 그래야 합니다.
그리고 여자는 사랑하는 남편의 그 몽둥이가 더럽습니까? 그걸 더럽다고 하는 여자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여자들이 잘못해서 문제가 생깁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가장 큽니다. 부모는 자식이 열병에 걸리면 똥의 맛을 봅니다. 그런 말을 들어 봤습니까? 그 이상의 사랑이 인간세계의 가정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종적인 부자관계는 되어 있지만 횡적인 부부의 관계가 안 되어 있는 것이 타락입니다. 왜 그러냐? 타락한 부모는 횡적인 90각도에 맞출 수 있는 중앙점까지 못 올라갔습니다. 미성년까지는 올라갔지만 중앙점까지는 못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앙점에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본래 구형운동을 해야 될 것이 전부 깨져 버렸습니다. (136-35)


 
수평적 사랑을 세운 후에는 수직적 사랑을 그리워해야
 
결혼은 왜 하느냐? 결혼은 축에 연결되기 위해서 합니다. 그런데 축은 몇 도냐? 중앙점에서 90도입니다. 중앙점은 하나님의 사랑에 연결될 수 있는 공통분모입니다. 공통분모 점은 하나입니다. 수직에 통할 수 있는 중앙선은 우주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중앙선은 그 거리가 다 같고 각도가 다 같습니다. 길이가 모두 같습니다. 그래서 수직도 하나요, 수직의 중심점도 하나요, 평형선이 교차되는 중심점도 하나입니다. 그 하나의 자리에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 축의 사랑이 연결됩니다. 거기에 합하게 되면, 거기에 부딪치는 날에는 360도 사방으로 가는 모든 힘의 작용은 그 점을 거칩니다. 이러한 사랑의 힘이 폭발하게 되면 남자와 여자는 완전히 하나되어 그 가운데에 하나님이 들어갑니다.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입니다. 그 주체의 본질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절대적 사랑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닮았는데, 그 개인에 존재하는 주체적인 중심이 뭐냐?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이 그리워서 내 일생을 사랑을 중심하고 살아 왔습니다. 그리워 그리워하다가 부모가 되어 그 다음에 무엇을 그리워해야 되느냐? 수직적인 사랑을 그리워해야 됩니다. 생명보다 더 좋은 것, 천륜의 수직선 각도를 자기 후손이 전통으로 이어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놓아야 이 수직선이 쭉 중앙선에 놓이게 됩니다. 거기에서 또 다른 개인, 또 다른 세계가 연결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랑했듯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 전통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이어받는 그 선은 수직선입니다. 달라서는 안 됩니다. 그 위치는 언제나 마찬가지입니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거기에 맞추어 가정이 확대됩니다. 그러면 그러한 가정은 자동적으로 이 수직선에 평형을 취하게 됩니다. 수직선과 평형선에 하나된 사랑의 핵을 씨로 심은 것이 가정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종족․민족․국가로 새로운 축이 되어서 발전해 나옵니다. 우리가 그런 축과 연결되어 있느냐?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간접주관권을 지나 직접주관권과 연결될 수 있을 때 결혼해야 됩니다. 그것은 모든 우주의 힘이 동화될 수 있고, 모든 힘이 응결되어 작용할 수 있는 그 초점에서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동시에 하늘과 영계와 육계가 만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계에서 맺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간 사람이 없다는 말은 이 초점에 맞춰서 사진 찍고 간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전부 다 희미합니다. 이것은 사진과 마찬가지입니다. 초점이 안 맞습니다. 평면적 초점, 수직의 초점이 딱 중앙점에 맞을 때 󰡐째까닥󰡑 해야 할 텐데 그렇게 사진을 못 찍었습니다. 사랑의 완성적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부부가 이러한 초점을 못 만나면 저나라에 가서 영원히 돌고 돌게 됩니다. 가정을 끌고 유리(遊離)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제일 무섭습니다. 원칙에 일치되지 않을 때는 전부 다 제거될 것이고 산산조각으로 깨져 버립니다. (136-37)


 
사랑의 절대적인 포인트는 우주에 하나밖에 없다
 
자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가만히 놔둬도 저나라에 가면 재까닥 걸립니다. 원리가 그렇습니다. 천년 만년 걸리더라도 이 규격을 맞추어야 합니다.
원리는 하나입니다. 그리고 절대적입니다. 하나님도 절대적인 포인트, 인간도 절대적인 사랑의 포인트에 결합합니다. 이건 하나밖에 없습니다. 절대로 둘이 아닙니다. 여기를 통해 사진 찍힌 부부가 들어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여기에 불합격된 자는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천국은 혈육이 같고 모양이 같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눈이 희미한 사람들은 전부 다 중간 영계에 가서 머무릅니다. 우리 가정이 그런 원칙에 일치되었느냐 안 되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주가 시작될 때, 그 근원의 자리에는 오로지 남자와 여자 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나라도 없었고 세계도 없었습니다. 그 안에는 천사장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정환경은 어떻습니까? 자기 혈족관계만을 두터이 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갈 길을 못 갑니다. 이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문제입니다. 부부끼리 토닥거리고 싸우는 사람들은 어디에 가서 이야기도 못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평면적 세계의 모든 물건을 사랑하게 되면 그것을 주관할 수 있습니다. 동물들이 사랑하는 모양을 보면, 동물세계는 하나님이 우리를 교육하기 위해 지은 세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물세계라는 사랑의 박물관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지었습니다. 그러니 만물을 사랑해야 합니다.
어떤 남자들은 자기 아내를 사냥개보다도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그런 한심한 남자들이 있습니다. 지식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아내를 중요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지금까지도 자리를 못 잡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그 누가 우주의 혁명을 일으키고, 뭘 어떻게 해서 평화의 세계를 건설한다고 유토피아 논리를 전개하면서 인간 행복의 에덴동산이 저기에 있다고 꿈같은 말을 하더라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원칙에 일치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요사스런 예언을 하고 별난 기적을 행해도 전부 다 허깨비 놀음입니다.
결혼을 왜 하느냐?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의 축과 일치되자는 것입니다. 일치되면 어떻게 되느냐? 왜 일치되려고 하느냐? 절대적이고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되면 영생이 벌어집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렇게 접촉된 거기에서부터 우주의 상속권이 전수됩니다. 하나님이 사랑으로 지은 피조세계를, 하나님의 것을 내 것으로 상속받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우리가 소유자, 주인이 됩니다.
우리가 만물의 주인 되는 자리를 어떻게 결정하느냐? 사랑의 축이 되어 하나님 대신 동서남북 사방에 서 있게 될 때, 하나님 대신 자리에 선 사랑의 상대가 되기 때문에 영생하게 되고, 일체 이상이 완성 복귀됨으로써 하나님의 소유이자 내 소유라는 상속권이 결정됩니다.
그것을 기쁨으로 느끼고 사는 사람은 굶어 죽지 않습니다. 우주가 그렇게 도와주는데 굶어 죽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세상이 제아무리 목을 치고 없애려고 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우주가 보호해줍니다. 죽을 자리에 갖다 놓았더라도 나올 때에는 손해를 안 보고 이익이 납니다. 나와서 선 자리가 천하 꼭대기면 그 밑에 있는 모든 존재는 굴복하게 됩니다. 결국 지배하게 됩니다. 하늘의 역사는 그렇습니다. (136-39)


 
왜 축의 사랑과 하나되어야 하느냐
 
그러면 왜 축의 사랑과 하나되어야 하느냐? 우주의 모든 것을 상속받기 위해서입니다. 그 사랑과 하나만 되면 영계가 내 것이요, 지상세계가 내 것이요, 천주가 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 사랑과 관계를 맺지 않을 존재가 없고, 내 사랑의 치리 가운데서 벗어나겠다는 존재가 없습니다. 그런 특권적인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와 같은 원수의 세계에서 핍박을 받으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별의별 소리를 듣고 몰리고 뜯기고 했지만 결국 이겼습니다. 싸우면 싸울수록 선생님은 올라가고 그들은 내려갔습니다. 우주가 선생님을 보호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도리를 따르면 전체 우주가 옹호할 수 있도록 피조세계를 만들었습니다. 거기에는 상충과 파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주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영생은 물론이요, 온 우주의 존재는 내 것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굶고 살더라도 걱정이 없습니다. 죽더라도 걱정이 없습니다.
이러한 원칙을 모르고 다른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어떤 것을 생각하기보다 가정을 천리의 중심에 결합시켰느냐 못 시켰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못사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못사는 것은 다 해결됩니다. 우주를 몰아 춤을 추고 박자를 맞추면 우주 자체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어디에 가더라도 굶어 죽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경제기반 같은 어떤 외적인 기반도 없이 흥남감옥에서 맨손으로 닦아 왔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쳐도 가야 할 이 원칙적 천리(天理)가 틀림없기 때문에 이걸 붙들고 몸부림쳤습니다. 일생을 바쳐서 이렇게 이루어 나왔습니다. 이제라도 천국 가기 위해서는 마음자세를 고쳐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13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