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랑이상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과 인간은 사랑이상을 중심한 필연적 관계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인간시조 아담 해와를 통한 사랑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에 우리 인류시조가 타락하지 않고 완성을 했더라면 완성한 그 자리에서 사랑의 이상이 실현되었을 것입니다. 사랑의 이상이 실현된다는 것은 곧 인간이 사랑을 중심으로 완전히 완성되는 동시에 하나님도 이 사랑을 중심으로 창조이상을 완성하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랑은 하나님일지라도 혼자서는 이룰 수 없습니다. 사랑을 이루려면 반드시 상대적 기반이 있어야 됩니다. 이게 없으면 사랑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어디서부터 나오느냐 하면, 자기에게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로부터 자극을 받아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사랑의 인연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한 것도 결국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을 지은 것도 하나님의 사랑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대상이 되는 하나의 영원한 실존자로서, 영원한 실체로서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이상을 인간과 하나님이 공히 완성하기 위해서 필연적인 관계를 가지고 지었습니다. 이건 운명적입니다. 운명적이라 하면 아니 가려야 아니 갈 수 없는, 피해 갈 수 없는 것을 두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기에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 피해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이것은 필연적이요, 가지 않으면 안 될 길입니다.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중심으로 필연적인 목적성사, 운명적 완성점을 향해 가는 데 있어서 중심이 되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을 통해 살게 될 때 인간세계에는 행복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인간이 이루고자 하는 완성이라든가 이상실현이라는 것은 사랑의 기준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우주의 모든 존재는 사랑을 바탕으로 해서 살아 갑니다. 창조된 모든 만물의 시작도 어디서부터였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하고 시작되었습니다. 그러기에 피조세계의 중심인 인간은 더욱이나 사랑을 중심으로 출발했습니다. 사랑에서 출발해서 사랑을 완성해서 영계에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137-208)
하나님과 인간은 본래 부자의 관계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는 부자의 관계입니다. 부자의 관계는 뭘 두고 하는 말이냐? 부자관계는 핏줄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막연히 '하나님 아버지!' 합니다. 왜 하나님 주인이라고 하지 않고 아버지라고 하느냐? 아버지라는 말 가운데는 사랑이 개재돼 있고 핏줄이 개재돼 있습니다. 직계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사랑으로 한 몸이 돼야 합니다. 핏줄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피는 생명을 구성하는 요소입니다. 그러니 자녀는 부모의 혈통을 이어받은 생명을 지닌 존재인데, 부모의 혈통은 사랑에 의해서 이어받았습니다.
그러면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태어난 아담과 해와가 자랄 때에 요즘과 같이 돈이 필요했겠느냐? 우리 시대에나 돈이 귀하다고 하지 그때에는 돈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요즘 보석으로 취급하는 다이아몬드나 금도 없었습니다. 그런 것이 있었다면 광석 가운데 박혀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금광석을 제련한 24금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벌거벗고 사는 거기에 권력이 있었겠느냐? 오직 사랑만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부모로서 자녀인 아담 해와를 사랑하고, 그 자녀는 부모의 사랑의 품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타락은 무엇이냐? 아담 해와는 몇 살쯤에 타락했겠느냐? 지금까지 신앙인들은 그것도 생각 안 했습니다. 또 아담 해와를 지을 때 성숙한 사람으로 지은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 이치대로 아기에서부터 자랐습니다. 자랄 때에는 천사가 보호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과정이 통일원리에서 말하는 원리결과주관권(간접주관권)입니다.
원리결과주관권은 피조세계의 만물들이 공통적으로 거쳐야 하는 그 기준을 말합니다. 모든 동물들이 자라듯이, 알에서 깨어나든가 새끼로 태어나 자라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도 유아(乳兒)시대부터 성숙할 때까지 자라 나갑니다. 유아 때에는 자기 아버지 어머니를 모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니까 지능이 점점점 발달함에 따라서 대외관계를 넓고 높고 깊게 앎으로써 성숙하게 됩니다. 자연계와의 관계,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과의 종적인 관계에서 심정적 지표가 되는 것이 태어나면서부터 체계화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자람에 따라서 갖춰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의 주인공인 하나님이 사랑을 중심으로 아담 해와에게 '야, 내가 바라던 표준대로 이제는 다 자랐구나. 너는 아들로서 다 자랐고, 너는 딸로서 다 자랐구나. 내가 바라던 그때가 다 되었으니 이제 너희들을 축복해주마'할 수 있는 한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때가 성숙한 때입니다. (142-266)
아담 해와가 성숙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면 성숙한 것은 무엇이 상징하느냐? 남자면 남자로서 자기만을 아는 것을 성숙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물론 자기가 남자라는 것을 알지만 상대를 아는 때가 성숙한 때입니다. 남자에게 필요한 것이 여자고 여자에게 필요한 것이 남자라는 것을 알 때, 서로 이성에 대한 관계를 알 때 사랑이 움틉니다. 10대를 거쳐서 20대가 되어 갈 쯤에는 이성에 대한 눈이 떠집니다.
만약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성숙했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하나님은 무형의 신입니다. 인간은 그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성경 창세기에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었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닮았는데, 하나님의 남성적 성상을 실체화시킨 존재가 아담이요, 여성적 성상을 실체화시킨 존재가 해와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두 가지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과 몸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마음은 주체고 몸은 대상체인데, 이 몸 마음이 나 하나로는 자극을 못 느낍니다. 상대적인 실체로 분할되어서 그들이 크는 것을 볼 때에, 상대적으로 사랑을 느끼고 또 그들도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가 성숙했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느냐? 성경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 마음은 무한히 큽니다. 마음이 얼마나 크냐 하면, 그 위대하고 엄청난 하나님을 모시고도 끄떡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마음속에 임재하고 해와의 마음속에 임재해서 둘의 몸 마음을 하나되게 합니다. 이들의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서 순환운동을 할 때, 몸과 마음이 종적으로 순환운동을 한다면 아담 해와는 횡적으로 순환운동을 합니다. 이것이 이성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래 가지고 부딪쳐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완전히 접붙여야 됩니다. 만약 완전히 하나됐다면 그것을 떼어낼 사람이 없습니다.
아담 해와가 성숙하면 자연히 동쪽의 아담과 서쪽의 해와가 서로 그리워서 가운데로 와서 둘이 이마를 맞대고 뺑뺑 돕니다. 옛날에는 서로 밀치며 '야! 왜 오는 거야?' 했는데, 서로 붙들고 돈다는 것입니다. 해와는 '옛날엔 오빠인 줄 알았는데 이게 뭐야?' 하면서 돕니다. 이때는 오빠가 아닙니다. 서로 좋아하며 머리를 맞대고 뺑뺑 돕니다. 어떻게 하고 뺑뺑 돌겠느냐? 붙들고 돕니다. 완전히 일자로 딱 붙들고 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 여자가 무엇으로 하나되느냐? 사랑으로 하나됩니다. (142-268)
하나님도 사랑에는 꼼짝못한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지만 한 가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나님은 금도 만들 수 있고, 다이아몬드도 만들 수 있고, 힘도 있습니다. 다 할 수 있고, 다 만들 수 있는 그분이 마음대로 못 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우리 마음에도 사랑이 있습니다. 있기는 있는데, 자기 혼자 '내 사랑, 내 사랑!' 이러면 미친 사람입니다.
하나님도 별수없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라도 홀로 있는 자리에서는 사랑을 찾을 수 없습니다. 상대적인 지점에서 상대권을 세워 놓지 않고는 사랑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혼자서는 외로우니까 사랑을 찾기 위해서 이 세상을 지었습니다.
사랑은 혼자서는 못 합니다. 반드시 상대가 있어야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학은 '창조주는 거룩하고 피조물은 속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건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서 사랑을 찾을 것이냐? 상대관계에서 사랑이 이루어진다면 하나님은 어디에서 사랑을 찾을 것이냐? 혼자 하늘 끝까지 올라가서 '아, 내 사랑', 지옥 끝에 내려가서 '내 사랑' 찾아봐야 찾을 수 없습니다. 사랑을 찾으려면 사랑의 대상자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빼고는 전부 다 하나님이 지은 것인데, 그 피조만물 가운데 그래도 하나님을 대해서, 사랑을 대해서 쑥덕공론하고, 욕심이 커서 '아이구, 그거 나 한번 갖고 싶다' 할 수 있는 존재가 무엇이냐? 그게 원숭이겠느냐, 고릴라겠느냐? 하나님이 원숭이를 사랑하겠다고 하겠느냐? 달고 다니는 꼬리만 봐도 정이 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존재를 하나님의 창조 박물관을 아무리 뒤지고 뒤져 봐도 피조물 가운데는 사람이라는 여자와 남자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도 사랑이 필요하다면 남자를 잡아다가, 여자를 잡아다가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헌금 많이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입니다. '이처럼'이 뭐냐? 독생자를 죽이면서라도 그 이상 사랑하려는 것입니다. 독생자를 죽여서라도 찾아야 할 것이 사랑입니다.
또 성경은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다. 둘째는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냐? 하나님은 사랑을 제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사랑이냐 하면 참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에 미치고 싶겠느냐, 사랑 앞에서 뻣뻣하게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쇠꼬챙이처럼 서 있고 싶겠느냐? 하나님도 사랑에 미치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에 미쳐서 눈이 처지고, 코가 늘어지고, 팔다리가 제멋대로 되어 뒹굴뒹굴 굴러다니면서 '나 행복하다' 하며 춤출 줄도 알고, 웃을 줄도 알고, 냄새 맡을 줄도 압니다. 하나님도 인간과 똑같으니까 인간이 하는 것은 다 할 수 있습니다. (142-269)
모든 존재물은 상대를 위해 있어
성경 창세기에 하나님은 아담을 창조해 놓고 아담 홀로 있으니 외롭다고 해서 해와를 지었습니다. 지어 놓고는 '지극히 선한지라'라고 했습니다. '선한지라' 하는 말은 창세기에 있는데 '웃었더라' 하는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타락했다는 말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은 웃어 보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웃을 줄 아는데 왜 웃어 보지 못했느냐? 인간의 타락으로 보고 웃을 수 있는 상대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동네에 미남자로 소문난 남자가 있다 할 때, 제비 꼬리같이 잘생긴 여자들이 전부 다 '그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잘났으면 뭘하고, 아무리 생각했으면 뭘합니까? 만나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인연이 맺어져야지 혼자 아무리 생각해 봤자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또 혼자 웃을 수 있습니까? 웃을 수 있는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도 혼자 웃겠습니까? 하나님이 혼자 웃으면 그 하나님은 미치광이 하나님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하나님이 눈이 있겠느냐, 없겠느냐? 있습니다. 귀, 코, 입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다 무엇을 위한 것들이냐? 자기를 위해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눈은 상대를 보기 위해서 있습니다. 또 귀도 상대가 말하는 걸 듣기 위해서, 상대 때문에 있습니다. 코도 그렇고, 입도 그렇습니다. 입은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이야기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도 틀림없이 눈이 있고, 코가 있고, 귀가 있으니 '햐, 기분 좋구나!' 하면서 확 풀어지게 한번 '하하하!' 하고 웃어 보았겠습니까? 아무리 미남자라 해도, 그 동네 여자들이 아무리 프로포즈를 하더라도 때를 놓쳐 상대를 못 찾고 할미새 꽁지처럼 하얗게 되었다면 행복하겠습니까?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비참한 분입니다. 돈이 없어서 비참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없어서 비참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지을 수 없어서 비참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대를 잃어버려서 비참합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사랑을 소유하기 위해서 지었던 사람이 타락했다고 해서 사람을 다시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다시 접붙여서 순을 올바르게 해야 합니다. 돌감람나무를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서 참감람나무의 열매를 맺게 하여 새로운 씨를 뿌려 타락하지 않았다는 결과를 가져오는 역사를 하면 했지, 다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세웠던 아담 해와를 단 하나밖에 없는 절대적인 사랑을 중심으로 지었기 때문에 그 기준은 변할 수 없습니다.
아담 해와가 다 성장했을 때 하나님이 아담 해와 속에 들어가 서로가 사랑할 수 있게 됐다면 이들을 누가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타락한 인류의 청춘남녀들도 사랑을 할 때는 부모가 반대하고 누가 아무리 뭐라 하더라도 죽느니 사느니 합니다. 상사병에 걸리면 약으로 못 고칩니다. 그 병에 걸리는 날에는 고질통입니다. 타락한 세계의 청춘남녀들도 그런데, 급이 낮은 천사장 사랑의 혈통을 이어받은 인간의 사랑도 이만한데, 본연의 세계 하나님의 직접적인 사랑의 혈통을 이어받아 접붙인 그 사랑을 누가 떼어놓겠느냐? 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 자신도 떼어놓지 못합니다. 아무리 떼려 해도 뗄 수 없습니다. (142-272)
남녀의 가장 거룩한 곳이란
여자를 살펴보면, 가슴이 나오고 궁둥이가 튀어 나왔습니다. 그렇게 생긴 것이 무엇 때문이냐? 자기 때문이 아니라 아들딸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편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자가 여자 때문에 태어나지 않았고, 남자가 남자 때문에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여자 때문에, 여자는 남자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때문에 태어난 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고입니다.
그리고 남자의 생식기가 있고 여자의 생식기가 있는데, 그 주인이 누구냐? 여자의 생식기 주인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고, 남자의 생식기의 주인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그러니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기 때문에 도덕이 문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건 절대적입니다. 그곳이 뭐냐 하면, 사랑의 왕궁입니다. 생명의 왕궁이고, 혈통의 왕궁입니다. 가장 거룩한 곳입니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것 붙들고 살고, 어머니 아버지도 그것 붙들고 살고, 우리도 그것 붙들고 살고, 우리의 아들딸들도 그것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왜 오늘날 세계적으로 제일 나쁜 욕설로 쓰이느냐? 그것이 인간을 망쳤기 때문입니다. 개인 자기만을 생각했습니다. 자기만을 생각하는 악마의 사랑, 악마의 생명, 악마의 핏줄을 이어받았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10대에 그렇게 뿌렸기 때문에 수확기가 된 지금 전세계 청소년들을 윤락화, 악마의 천국으로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수습하느냐? 이걸 수습하지 못하면 이상세계는 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시정하느냐? 오직 선생님이 아니고는 수습할 도리가 없습니다. (210-159)
사탄의 정체를 알아야
그러면 지금까지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과 관계가 있느냐, 없느냐? 하나님이 이상적 존재로 완성시키기 위해 세운 아담 해와가 이상적 존재로 완성하여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할 텐데 타락하여 그런 부모가 못 되었습니다. 타락한 그 부모에서 이어내려온 인류의 후손 전체가 하나님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나님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누구하고 관계를 맺었느냐? 사탄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사탄과 문제가 되었습니다. 사탄이라는 존재는 하나님이 창조할 당시 원리에 없는 존재입니다. 비원리적인 존재입니다. 원리에는 없는 존재가 나와서, 다시 말하면 주인이 될 수 없는 존재가 나와서 오늘날 인류를 주관하는 주인 놀음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그 사탄이 주인이 되었느냐? 무슨 힘에 의해서 주인이 되었느냐, 그렇지 않으면 돈을 주고 사 갔느냐? 인간이 무엇 때문에 사탄한테 침해를 받았느냐? 이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탄은 무엇이냐? 사탄의 정체에 대해서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사탄이 된 동기를 알아야 합니다. 병이 나면 그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병의 원인을 확실히 규명해서 거기에 해당하는 처방을 통해 투약을 해야지, 맹목적으로 '그럴 것이다' 해서는 병을 고칠 수 없습니다.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그렇습니다.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날다가 폭발해 버렸습니다. 최고의 과학 공식에 입각한 지식 기반 위에서, 완전히 공식화된 과정을 통해 이것은 틀림없다 해서 발사했는데도 사고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곧 확실치도 않고 알지도 못하는 입장에서는 완성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데서는 이상이 실현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악마는 도대체 무엇이냐? 우주의 대왕님으로 군림하여야 할 우리 인류시조의 기반을, 다시 말하면 우주의 왕과 왕후의 자리를 하나님의 종이 겁탈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인 천사가 이런 놀라운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악마가 되었습니다. 아담 해와가 우주 대왕의 권한을 갖고 즉위하는 한 날을 하나님은 고대하고 있었는데, 요사스러운 해와의 행동으로 왕후와 왕권을 사탄이 타고 앉았습니다. 무엇을 통해서 타고 앉았느냐? 사랑을 통해서 타고 앉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능력이 많은 분이니까 사탄이 실수를 했어도 그까짓 것 집어치우고 하나님 마음대로 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는 안 됩니다. 원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원리는 헌법입니다.
한 국가가 제정한 그 헌법은 주권자나 국민이 준수해야 할 원칙과 약속, 규약입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규약이 있으면 그 규약을 지키고 나서 그것이 나쁘다 할 때에는 뜯어고칠 수는 있습니다. 그것을 지켜서 좋고 나쁜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자리에서 나쁘다 했을 때에는 그걸 시정할 수 있지만, 좋다 했을 때에는 시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운 절대적인 원리의 법도는 변할 수 없습니다. 절대적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왜 하나님이 타락한 천사장을 제거하고 인간을 빨리 구원하는 섭리를 못 하느냐 하는 문제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랑 때문에 그렇게 됐습니다. (142-265)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류를 통일해야
사탄은 하나님의 사랑의 간부(姦夫)입니다. 이 요사스러운 것이 천리의 대도를 파탄시켜 놓고도 뻔뻔스럽게 아직까지 이 지구성에서 인류를 놓지 않고 갉아먹고, 벗겨먹고, 훑어먹고 있습니다. 이놈을 쓰레기통에 처넣어야 됩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사랑의 간부요, 우리 인류시조 아담의 간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용서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했는데, 왜 그런 하나님이 사탄 마귀는 용서하지 못하느냐? 사탄이 접해 있는 사람은 용서하되 사탄 마귀는 용서하지 못합니다. 사탄한테 붙들린 사람은 찾아와야 될 입장에 있기 때문에 용서하지만, 악마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에게 돌아가려는 본심이 있습니다. 봄철만 되면 빼빼 말랐던 나뭇가지도 봄볕에 움이 트는 거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본심은 가만히 자유만 주면 자연히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못살게 막 처넣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자기의 운명이 그렇게 비참하게 되어 있는 것을 모르는 이 인류를 전부 다 해방시켜 하나로 통일하자는 것입니다. 악마의 사랑으로 통일하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통일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내 눈이 영원히 좋아하는 사랑입니다. 내 귀가 듣고 듣고 또 들어도, 24시간, 일생 동안 계속 들어도 듣기 싫지 않은 말이 하나님의 사랑의 말입니다. 지금까지 귀가 그런 사랑의 말을 들어 봤느냐? 또 눈이 보고 보고 영원히 보더라도 싫지 않고 피곤하지 않은 사랑의 상대가 나왔느냐? 하나님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이구, 졸음이 온다. 이제 사랑의 말 그만둬라!' 그러겠습니까? 하나님도 사랑을 한번 붙들면 영원히 붙들고도 '더, 더, 더' 하며 '좋고 좋다!' 할 것입니다. 붙들면서 싫다고 하겠습니까, 죽을 힘을 다하여 죽어 나자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영원히 붙들고 늘어지겠습니까? 사랑 얘기를 할 때는, 하나님도 '그래, 그래. 좋다!' 합니다. 그 사랑은 본연의 사랑, 이상적인 사랑입니다. (142-281)
본연의 세계에 들어가려면
타락하기 전 아담 해와가 사랑했던 그 사랑은 참사랑입니다. 타락권의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가 탕감복귀해서 본연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전에 했던 사랑 이상의 사랑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과 만우주를 대해서 주인의 자격으로 사랑하지 못하면 하늘나라에 못 갑니다.
그리고 눈이 물크러지도록 하나님이 그리워야 됩니다. 교회에 가고 싶어서 밤에도 잠을 못 잘 정도로 그리워야 됩니다. 선생님이 계시는 곳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보고 보고 보고도 또 보고 싶고, 가고 가고 가고도 또 가고 싶고, 만나서 살면서도 영원히 살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은 그런 세계입니다. 좋다면 영원히 좋은 세계입니다. 그 세계를 지금 우리가 겨냥해서 가고 있습니다.
이걸 두고 볼 때, 모두가 여기에 불합격자입니다. 그러니 한 가지 길로 선생님이 가는 데를 따라가야 됩니다. 선생님 궁둥이를 따라다녀야 됩니다. 따라다닐 때는 바로 보고 따라다녀야지, 얼굴을 돌리면 안 됩니다. 한발짝 잘못 디디면 악마의 그물에 걸려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악마를 어떻게 처치하느냐? 사탄보다 더 높은 하나님의 본연의 사랑 줄기만 나타내면 사탄을 이길 수 있습니다. 타락권 이상의 사랑이 나타나면 사탄도 어쩔수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못 된다'고 선포했습니다. 그 말은 타락권 이상의 사랑으로 나와 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 합니다. 사랑을 말할 때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신랑으로 오신다고 말합니다. 신랑 신부라는 말을 했고, 또 만민은 형제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내용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가족 편성을 기반으로 한 기독교기 때문에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그것이 어떻게 되었으며 어떻게 가는가를 모릅니다. 덮어놓고 믿으면 천국 간다고 그럽니다.
세상에는 요사스러운 젊은 청년 남녀들이 많습니다. 악마의 앞잡이가 되어서 난장판 삶을 살고 있습니다. 거기에 따라가면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인들은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웁니다. 왜 그러냐? 악마의 그물에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걸 청산지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런 내용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천주까지 이것을 확실히 아는 사람은 역사 이래 인간세계에 태어난 사람 가운데 선생님 외에는 없습니다.
악마의 핏줄로 얽힌 그물을 어떻게 벗어날 것이냐? 할 수 없습니다. 땜질을 해야 됩니다. 그걸 째 버리고 땜을 때워야 됩니다. 땜질을 하려면 그물코와 같은 코를 매달아서 땜질해야 됩니다. 그렇게 땜질하지 않고서는, 다시 말하면 접붙이지 않고서는 하늘나라에 못 갑니다. (142-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