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사랑의 축을 중심한 생활(사랑이야기 - 제 2 권 사랑 원론편 - 제 3장 인간과 우주의 사랑)

무지... | 20180524092143

7. 사랑의 축을 중심한 생활
 

부모의 사랑의 기쁨 가운데서 출발한 나
 
인간은 사랑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떤 존재냐? 귀한 존재입니다. 왜 귀하냐? 사랑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귀하듯이 내가 귀하고, 내가 귀하듯이 부모가 귀합니다. 이것은 내가 부모의 사랑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부모의 사랑에 동참했습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 정자와 난자 자체는 몰랐지만, 그 정자와 난자로서 부모의 사랑이 교류하는 데에 내가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사랑, 이 양면의 사랑에 동참한 기반을 거치지 않고는 '나'라는 존재는 태어날 수 없습니다. 부모의 사랑이 교류될 때 상대를 통해 느끼는 기쁨으로 내가 태어났습니다.
사랑할 때는 기쁨을 느낍니다. 슬픔 가운데서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기뻐하는 것은 뭐냐?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영과 육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그런 작용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작용으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으로 인한 슬픔이 최고의 슬픔입니다. 아내가 죽든, 남편이 죽든, 자식이 죽든, 부모가 죽든 그때 느끼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슬픔 중에 무엇이 제일 큰 슬픔이냐? 사랑이 침범받았을 때의 슬픔 이상 큰 슬픔은 없습니다. 돈이나 무슨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의 슬픔은 방향적 슬픔입니다. 그것은 각도만 조금 달리하면 다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축이기 때문에 사랑으로 인한 슬픔은 영원히 갑니다.
나는 부모의 사랑에 동참한 존재로서, 부모 사랑의 기쁨 가운데서 출발했습니다. 본래 인간은 사랑을 중심하고 기쁨 가운데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나는 부모 사랑의 기쁨의 자리에 동참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일생은 기쁨을 통해서 가야 합니다. 어떻게 기쁨을 통해서 가느냐? 부모 사랑의 그 기준을 중심으로 좌우편을 벌리고 그 중앙선을 따라가야 합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렇게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중앙선에 서서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어머니만 있어도 안 되고, 아버지만 있어도 안 됩니다. 성숙할 때까지, 자기가 성숙해서 어머니 아버지가 될 때까지는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 가운데서 자라야 그 중심성을 갖습니다. 그래야 출발을 중심선상에서 하고, 또 그 중심선상에서 자랍니다. 그 중심선상에서는 상하가 연결됩니다. 그 중심선상의 사랑 가운데서 부모의 키움을 받은 아들딸은 성숙한 후에는 부모와 갈라지게 됩니다.
그런 다음에는 이들이 부부를 이뤄야 합니다. 이 우주와 세계는 우리를 낳아준 또 다른 부모입니다. 이 세계 부모권에서는 누구를 중심으로 해야 하느냐 하면, 부부를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인류는 남성과 여성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아버지와 어머니 같은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라도 그렇습니다. (136-18)


 
인간은 수직 사랑의 축을 중심으로 나가야 한다
 
역사는 수직과 평형을 그려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형선상에서 부모의 보호를 받아 나올 때까지는 외적인 사랑을 느낄 수 있었지만, 부모로부터 내적으로 퍼져 나가는 사랑은 못 느꼈습니다. 그 내적으로 폭발되는 사랑이 바로 부부의 사랑입니다. 이것을 되풀이하면서 역사는 연결되어 나갑니다.
'나'는 부모의 사랑에 동참한 자로서 부모의 보호하에서 성숙하여 상대를 만나 부부를 이루어 부부의 사랑권에서 자식을 낳습니다. 성숙하여 결혼할 그때까지는 부모의 사랑을 받다가 결혼해서는 자기 자식을 낳아 사랑할 수 있는 부모의 자리에 들어갑니다. 아들에서부터 남편을 거쳐 부모인 아버지의 자리에 들어갑니다. 그러면서 후대를 연결합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를 둔 걸 생각해 볼 때, 비로소 중앙선에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성숙해서 결혼하여 자녀를 낳아 중앙선에 올라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의 중앙점과 접할 수 있습니다. 전부 이 중앙선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중앙의 축과 같은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우주적인 한 직계, 하나님을 중심으로 직계 축의 혈족이 있음과 동시에 우리는 그 축에 평형선을 이루어야 됩니다. 위에서 보면 수평선이 그려져 나가야 합니다. 축에서 갈라져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들을 보면, 가정들이 우주의 축을 모르고 외딴 곳에서 살더라도 제멋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부부의 사랑을 중심으로 한 가정의 제도라는 것은 어디나 같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은 어디나 다르지 않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반드시 수직선을 향합니다. 그 수직선과 언제나 평형선을 갖추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왜 그러냐? 하나님이 부모로서 자식을 사랑하던 최초의 그 수직 사랑이 축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축의 사랑을 따라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는 하나님이 자녀를 사랑하던 우주의 근본 되는 그 축과 언제나 평행선상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기준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인간세계에 행복의 기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축에 맞지 않고 거꾸로 되는 날에는 다 파탄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부모 없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왜 불행하냐? 이 우주의 축과 평행선으로 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축을 중심으로 바로 돌 수 있으면 우주의 보호를 받을 수 있고, 구형운동권인 그 큰 우주의 힘이 자기 마음과 더불어 작용함으로써 그 큰 가치만큼 사랑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일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저 사람이 마음이 곧은 사람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라고 말합니다. 한국 말이 참 재미있습니다. '마음이 바르다' '마음이 곧은 사람이다' 하는 말을 하는데, 무엇을 중심으로 해서 그렇게 말하느냐? 수직선을 중심으로 해서 그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왜 서서 다니느냐? 사람은 설 때는 언제나 축에 대해서 평행입니다. 이것은 동물과 다릅니다. 젖먹이 동물은 대부분 네 발을 가졌기 때문에 언제나 평형선뿐입니다. 그러나 사람만이 수직으로 설 수 있습니다. 구조상으로 볼 때 수직과 관계맺을 수 있는 존재는 사람뿐입니다. 그러니 바르다, 똑바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수직으로 맞추지 않으면 안정점을 찾을 수 없습니다. 건축물을 세울 때에도 전부 다 수직선에 맞춥니다. 수직을 중심으로 하여 수평을 맞춥니다. (136-20)


 
우주에 있어서 천륜의 도리는 수직선
 
수직선을 중심하고 보면 남자는 바른쪽이고 여자는 왼쪽입니다. 이것을 연장하면 위쪽은 플러스고 아래쪽은 마이너스가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상대적 관계가 주고받을 때 바르게 주고받는 관계가 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주고받는 것도 그렇습니다.
우주에 있어서 천륜의 도리는 수직선인데, 그 수직선을 중심으로 남자 여자는 반드시 수평선에 서야 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그러한 자리에서 사랑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주고받는데 무엇을 주고받느냐? 주고받아서 뭘 할 것이냐? '우리 둘만 주고받으면 그만이지' 하는 건 안 됩니다. 주고받아서 어디에 연결되어야 하느냐? 축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림을 그릴 때 한 점에서부터 그려 나갑니다. 마찬가지로 수직선을 중심으로 해서 개인에서부터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 이렇게 연결되어야 합니다.
축은 하나입니다. 개인이 바라는 욕망의 축도 하나요, 가정이 바라는 욕망의 축도 하나입니다. 국가가 바라는 욕망의 축, 세계가 바라는 욕망의 축, 우주가 바라는 욕망의 축, 하나님이 바라는 욕망의 축도 하나입니다. 둘일 수 없습니다. 단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을 중심으로 서야 합니다. 축을 무시하고 움직이는 것은 사탄입니다. 그것은 자꾸 깨져 나갑니다. 우주가 몰아냅니다. 아무리 가운데 붙어 있으려 해도 몰아내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다 해도 책임을 못 하면 장애아가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전부 다 후손이 피해를 봅니다. 쭉정이가 되어 버리는 그런 현상이 벌어집니다.
그러니 축을 중심으로 돌아야 합니다. 개인도 축을 중심으로 돌고, 가정도 축을 중심으로 돌고, 종족․민족․국가․세계도 축을 중심으로 돌아야 합니다. (136-22)
구형은 뭐냐? 구형은 아무리 굴리더라도 설 때에는 반드시 수직을 따라서 섭니다. 그 서 있는 초점은 반드시 축과 수직입니다. 언제나 축을 중심으로 해서 섭니다. 서는 것이 보이지 않지만 축을 중심으로 해서 수직으로 선다는 것입니다.
우주의 축이 있다면, 우주의 어떤 수직적 축이 있다면 모든 존재는 그 축을 중심으로 평형을 이루고 거리가 같은 수직형을 갖추어 서 있습니다. 모두 그렇게 서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자리에서 돌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직을 중심으로 서 있는 것은 구형입니다.
이 우주의 모든 존재는 운동하는데 제멋대로 운동하지 않습니다. 그 축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인간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 자체도 인격을 중심으로 돌고 있습니다. 부부도 가정이라는 축을 중심으로 서로 주고받으며 돌아갑니다.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그 축을 중심으로 돕니다.
그렇다면 피조세계는 어떻게 존재하고 있느냐? 축을 갖추고 있는데 두 축이 있습니다. 보이는 축과 보이지 않는 축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주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그 주체 자신도 돌아갑니다. 몸과 마음이 서로 주고받으면 도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존재물은 이와 같은 원칙에 의하여 존재합니다. (136-13)


 
하나님은 축의 중심이요 축의 시작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를 거쳐나왔느냐? 인간은 몰랐지만, 하나님은 주류역사를 거쳐나왔습니다. 역사를 횡적으로 보면, 역사의 출발부터 끝까지 횡적으로 축을 중심으로 인류가 뭉쳐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많은 종교를 볼 때, 동서남북 사방이 다르고 여러 가지 종교 형태가 있지만 그 가운데에는 축이 있습니다. 그 축은 처음이자 끝입니다. 맨 처음 시작하는 데서부터 축을 받들어주는 받침이 있다면 그 받침의 맨 끝까지 이어지는 처음이자 끝이라는 것입니다. 그 축이 시작하는 맨 처음은 하나님의 자리요, 축이 닿을 수 있는 맨 나중이 인간 완성의 자리입니다. 그게 인간 완성의 기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축의 중심이요 축의 시작입니다.
인간을 완성시킬 수 있는 축의 처음과 끝을 연결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입니다. 예를 들어 라디오를 들을 때 안테나가 높으면 잘 들리는 것과 같이 사랑의 선이 높으면 높을수록, 길면 길수록 높은 인연을 가지고 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축의 끝을 연결시켜서 무엇을 가지고 돌리느냐? 사랑의 힘을 가지고 돌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사랑의 힘에 의해서 돌아야 됩니다. 사랑에 동화될 수 있는, 돌아가는 거기에 상응할 수 있는 소성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우주 가운데서 비로소 참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도는 거기에 박자를 맞추어야 상충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거기에 안정점이 생깁니다.
지금 우리가 호흡을 하고, 또 각 기관과 혈관, 모든 신경과 세포가 운동을 하는데, 그것들이 균형을 이루어 가면서 운동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운동하는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안정점이 형성돼 있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서로 잘 주고 잘 받는 운동권에는 자극이 없습니다. 만약 이것이 기울어지면 아픔을 느낍니다. 아픈 것은 뭐냐 하면, 안정된 세력권이 파괴되는 것을 예고해주는 것입니다. 그 파괴되는 곳에 안정되게 할 수 있는 것을 보급해주지 않으면 전체에 피해가 옵니다. 신체의 모든 기관이 균형을 이루어 평균선상에 있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지 않는 안정된 자리에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기울어집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에 동화된 개체면 개체가 가정을 이루는 데 있어서 균형이 이뤄진 안정점을 찾기 전에는 자기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찾을 수 없고, 존재의 기쁨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존재에는 중심이 있습니다. 중심이 없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축을 중심으로 해서 작용이 벌어집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의 행정조직을 보면, 대통령을 수반으로 해서 장관과 도지사, 군수, 면장, 그 다음 이장, 반장이 축이 되어 있습니다. 국민은 그 축을 중심으로 동화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되지 못하는 날에는 풍화작용에 의해 파괴됩니다. 깨지기 시작합니다. (136-15)
  

 
인간의 욕망과 공평한 하나님의 사랑
 
인간을 두고 생각해 볼 때, 남자 여자의 욕망이 얼마나 크냐? 하나님만큼 큽니다. 왜 하나님만큼 크냐?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아들딸로 지었으니 이들이 크게 되면 누구를 닮느냐? 하나님을 닮습니다. 실체의 하나님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욕망도 하나님만큼 큰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만물세계를 사랑합니다. 곤충을 보면 사랑스럽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보면 곤충이나 원숭이 같은 동물이고 물고기들입니다. 그런 만물을 통해서 사랑의 마음이 싹틉니다. 이것은 부모의 사랑과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변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동물세계나 식물세계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지음을 받은 사람이 낮은 차원으로 지어 놓은 동물을 사랑하면서 점점 커서 성숙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욕심이 많아집니다. '이 세계를 내가 가져야 되겠다. 저것도 내 것, 이것도 내 것, 개미도 내 것, 새도 내 것, 뱀도 내 것, 고기도 내 것, 저 산도 내 것, 전부 다 내 것이다' 합니다.
해와와 아담의 놀음놀이가 그랬을 것입니다. 소꿉장난하면서 조그만 자갈을 집어서 '요것도 내 것이고, 저것도 내 것이야'라고 했을 것입니다. 또 좋은 나뭇가지가 있으면 '그것도 내 것' 그랬을 것입니다. '저 산도 내 것, 저 해도 내 것' 하다가 싸움도 하고 그랬을 것입니다. 다 커서 남자가 '이것 전부 다 내 것이다' 할 때 여자가 가질 것이 없으면 항의를 할 것입니다. '왜 모두 당신 것이야? 당신이 남자니까 수놈세계는 당신 것인지 모르지만, 암놈세계는 내 것이야'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한 분입니다. 인간이 이 세계를 갖고 네 것, 내 것 하며 싸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둘로 딱 갈라놓고는 서로 네 것, 내 것 하며 싸우면 안 되겠으니까 남자의 것은 여자에게 갖다 심어 놓고, 여자의 것은 남자에게 갖다 심어 놓았습니다. 사랑이란 것이 흉측한 것 같지만 참 기가 막힌 것입니다.
여자가 갖고 있는 그 생식기는 여자의 것이 아닙니다. 남편의 것입니다. 남편 하면 한 사람밖에 안 들어갑니다. 또 남편의 그 늘어진 게 뭡니까? 아내는 거기에 붙어 삽니다. 거기에 목을 매고 살다가 그게 고장나면 다 도망갑니다. 남자의 그것이 조금 고장이 났다 하면 남자가 아무리 외모가 잘생겼다 해도 다 도망가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 것, 내 것 전부 다 갈라 가지고 있었지만, 사랑이라는 요지경이 벌어지면 '야, 이것 봐라! 내가 네 것 되고, 네가 내 것 되니 전부 다 우리 것이다' 이렇게 됩니다. (136-23)


 
결혼이란 서로의 주인을 만나기 위한 것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엮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로 오게 되어 있느냐 하면, 남자와 여자의 경계선으로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경계선에 닿지 않게, 서로가 침범하지 않게끔 해놓은 것입니다. 어느 쪽에 조금이라도 치우쳐서는 안 되기 때문에 멀고 먼 저 꼭대기에서부터 멀고 먼 저 밑창까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수직으로 연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아담편에 가까이했다 하면 해와가 '앵앵앵' 하고, 또 해와편에 가까이 가게 되면 아담이 '왕왕왕' 합니다. 그래서 수직은 저 꼭대기에서부터 저 밑창까지 공통의 직선을 내려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거기에 둘이 딱 갖다 맞추면 맞습니다. 남자 여자가 상대가 되어 그 중심을 놓고 딱 하나가 됩니다. 용접하는 것입니다. 그 용접이 결혼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할 때는 몸과 마음이 공명합니다. 사랑으로 영적 세포와 육적 세포가 완전히 하나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사랑으로 하나되어 살지 못하고 혼자 살다가 영계에 간 사람은 곤란합니다. 세상에서 잡되게 살았을망정 사랑을 중심으로 생활했던 사람들은 동화되는 작용이 빠릅니다. 그 사랑이 나쁜 것이었지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여튼 남자와 여자는 수평선과 같습니다. 부인들이 자기 남편을 부를 때 '여보!' 하고 크게 부릅니까, 아니면 작게 기어들어가듯이 부릅니까? 소리를 질러 '여보!' 하고 부를 때에는 수직을 맞추는 것입니다. 크게 '여보!' 하고 부르지 작게 부르지 않습니다. 크다는 것은 저 끝까지 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작용하는 것이 이상을 그려 가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모양을 따르다 보니 거기에 도수를 맞추고 박자를 맞추어 그러한 표정,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유교에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있습니다. 여자는 왜 남자가 필요하냐? 주인을 찾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주인을 왜 찾느냐? 주인이 없으면 그것이 웁니다. 집이 비어서 썩습니다. 구새가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는 왜 여자가 필요하냐?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주인을 만나기 위해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왜 그렇게 만들었느냐? 남자의 자리와 여자의 자리를 바꾸어 가면서 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주가 돌고 있는데 돌지 않으면, 거기에 박자가 맞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빠르게 돌든 천천히 돌든 돌아야 존재하지 돌지 않으면 추락합니다. (136-26)


 
결혼은 축(軸)과 하나되는 것
 
그러면 결혼은 왜 하느냐? 왜 남자를 끌어당기고, 여자를 끌어당기느냐? 처녀 총각이 서로 사랑하는데 어머니 아버지가 반대하면, '아이구, 나 죽는다' 하면서 목을 매 자살하고, 둘이 꽁꽁 동여매서 투신 자살하는 일이 많이 벌어집니다. 그거 왜 그렇습니까? 왜 결혼하려고 하느냐?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꿈자리가 사나울 정도로 못생긴 상대라 해도 자기가 결혼해서 살 때는 안 보면 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은 포괄하는 힘이 있습니다. 사랑의 안경을 끼고 보면 전부 다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 둘이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첫사랑에 인연된 사람은 그 상대를 잊을 수 없습니다. 사랑의 묘미가 그런 것입니다. 못생긴 것이 도리어 아름답습니다. '이게 있기 때문에 나는 사랑한다'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입술이 됐든 이마가 됐든 잘생긴 무엇을 바라보고 사랑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혼을 왜 하느냐? 축(軸)과 하나되기 위해서 결혼합니다. 그 축은 뭐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면 천리의 법도, 원칙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지 못하면 똥개들과 마찬가지입니다.
결혼하면 축을 만납니다. 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결혼하면 하나님과 우주의 축에 연결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수평선에서 90각도로 하나님의 사랑에 접해야 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붙들고 '아이고, 좋다!' 할 때는 벌써 그 가운데 하나님이 들어와 계십니다. 하나님을 빼놓고 좋다고 하게 되면 축이 없습니다. 그 조건이 없으면 흘러가 버립니다.
그러니 축을 중심으로 360도 돌아야 합니다. 사랑하게 되면 높아졌다가 낮아집니다. 부부가 좋다고 씩씩거리다가 한잠 자야 됩니다.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내려왔다가는 또 올라가고 해야 됩니다. 그런데 나이가 많아지면 그것이 싫어집니다. 그것이 싫다고 하게 될 때는 끝장입니다. 우주가 추방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사랑에 접붙이기 위한 것이 결혼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사랑의 축에 접붙이기 위한 것이 결혼입니다. 여기에 접붙여 놓아야 영원히 갑니다. 그렇지 않고 축이 없이 돌아가면 어디 가서 부딪쳐서 언제 옥살박살 깨져 나갈지 모릅니다. (136-29)


 
사랑은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남편은 하루종일 밖에 나가서 일하다가 궁둥이가 아프고 눈이 쌍꺼풀이 되어서 집에 들어오는데, 아내는 아침 때 한숨 자고 점심 때 한숨 자고, 하루종일 자다가 저녁에 남편이 들어와서 사랑을 안 해주면 불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구미호(九尾狐) 같은 여자들이 많습니다.
여자로서 갖출 것을 모두 갖추고 남자를 사랑하겠다고 해야지, 동물만도 못한 자리에서 남자에게 호령하면 안 됩니다. 암소보다는 나아야 됩니다. 남자들은 아내를 사랑하려면 젖가슴을 체크하십시오. 젖꼭지 주변이 새까맣고 딴딴한지 만져 보고 안 그러면 차 버려도 됩니다. 여자들이 갖출 바를 갖추지 못하고 사랑하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여자가 기분 나쁘게 하면 돌아다니면서 들개 같은 것들하고도 맞붙습니다. 집개가 들개하고 맞붙는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상대만 보면 언제나 늘어진 생식기가 동합니다. 여자는 생리하기 일주일 전이나 일주일 후를 중심으로 절정에 오르지만, 남자는 언제나 가능합니다. 그러니 남자들은 여자를 대할 때는 언제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소는 그렇습니다. 암소가 1년 만에 음부가 부풀어서 뛰는데 황소는 가만히 있다가 뛰어오는 암소를 보고 '저거 왜 뛰어오노?' 하는 표정으로 서 있습니다. 그런 황소 앞에 암소가 척 서면 황소는 벌써 암소가 왜 왔는지 압니다. 그 다음엔 황소가 암소의 무엇을 핥느냐 하면 부풀어오른 그 음부를 핥습니다. 소는 그렇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동물들이 수놈 앞에 나타난 암놈을 보고 발길로 차고 뿔로 받습니까? 아무리 뿔질을 요란스럽게 하던 수사슴이라도 암놈이 오면 들이받지 않습니다. '오! 너 왔구나. 좋다!' 하면서 입으로 그걸 표현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남자들은 여자를 대할 때 그렇게 해야 됩니다. 동물보다 나아야 됩니다. 그러니 인사도 먼저 하고 그래야 합니다.
그리고 여자는 사랑하는 남편의 그 몽둥이가 더럽습니까? 그걸 더럽다고 하는 여자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여자들이 잘못해서 문제가 생깁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가장 큽니다. 부모는 자식이 열병에 걸리면 똥의 맛을 봅니다. 그런 말을 들어 봤습니까? 그 이상의 사랑이 인간세계의 가정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종적인 부자관계는 되어 있지만 횡적인 부부의 관계가 안 되어 있는 것이 타락입니다. 왜 그러냐? 타락한 부모는 횡적인 90각도에 맞출 수 있는 중앙점까지 못 올라갔습니다. 미성년까지는 올라갔지만 중앙점까지는 못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앙점에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본래 구형운동을 해야 될 것이 전부 깨져 버렸습니다. (136-35)


 
수평적 사랑을 세운 후에는 수직적 사랑을 그리워해야
 
결혼은 왜 하느냐? 결혼은 축에 연결되기 위해서 합니다. 그런데 축은 몇 도냐? 중앙점에서 90도입니다. 중앙점은 하나님의 사랑에 연결될 수 있는 공통분모입니다. 공통분모 점은 하나입니다. 수직에 통할 수 있는 중앙선은 우주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중앙선은 그 거리가 다 같고 각도가 다 같습니다. 길이가 모두 같습니다. 그래서 수직도 하나요, 수직의 중심점도 하나요, 평형선이 교차되는 중심점도 하나입니다. 그 하나의 자리에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 축의 사랑이 연결됩니다. 거기에 합하게 되면, 거기에 부딪치는 날에는 360도 사방으로 가는 모든 힘의 작용은 그 점을 거칩니다. 이러한 사랑의 힘이 폭발하게 되면 남자와 여자는 완전히 하나되어 그 가운데에 하나님이 들어갑니다.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입니다. 그 주체의 본질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절대적 사랑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닮았는데, 그 개인에 존재하는 주체적인 중심이 뭐냐?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이 그리워서 내 일생을 사랑을 중심하고 살아 왔습니다. 그리워 그리워하다가 부모가 되어 그 다음에 무엇을 그리워해야 되느냐? 수직적인 사랑을 그리워해야 됩니다. 생명보다 더 좋은 것, 천륜의 수직선 각도를 자기 후손이 전통으로 이어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놓아야 이 수직선이 쭉 중앙선에 놓이게 됩니다. 거기에서 또 다른 개인, 또 다른 세계가 연결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랑했듯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 전통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이어받는 그 선은 수직선입니다. 달라서는 안 됩니다. 그 위치는 언제나 마찬가지입니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거기에 맞추어 가정이 확대됩니다. 그러면 그러한 가정은 자동적으로 이 수직선에 평형을 취하게 됩니다. 수직선과 평형선에 하나된 사랑의 핵을 씨로 심은 것이 가정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종족․민족․국가로 새로운 축이 되어서 발전해 나옵니다. 우리가 그런 축과 연결되어 있느냐?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간접주관권을 지나 직접주관권과 연결될 수 있을 때 결혼해야 됩니다. 그것은 모든 우주의 힘이 동화될 수 있고, 모든 힘이 응결되어 작용할 수 있는 그 초점에서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동시에 하늘과 영계와 육계가 만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계에서 맺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간 사람이 없다는 말은 이 초점에 맞춰서 사진 찍고 간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전부 다 희미합니다. 이것은 사진과 마찬가지입니다. 초점이 안 맞습니다. 평면적 초점, 수직의 초점이 딱 중앙점에 맞을 때 '째까닥' 해야 할 텐데 그렇게 사진을 못 찍었습니다. 사랑의 완성적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부부가 이러한 초점을 못 만나면 저나라에 가서 영원히 돌고 돌게 됩니다. 가정을 끌고 유리(遊離)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제일 무섭습니다. 원칙에 일치되지 않을 때는 전부 다 제거될 것이고 산산조각으로 깨져 버립니다. (136-37)


 
사랑의 절대적인 포인트는 우주에 하나밖에 없다
 
자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가만히 놔둬도 저나라에 가면 재까닥 걸립니다. 원리가 그렇습니다. 천년 만년 걸리더라도 이 규격을 맞추어야 합니다.
원리는 하나입니다. 그리고 절대적입니다. 하나님도 절대적인 포인트, 인간도 절대적인 사랑의 포인트에 결합합니다. 이건 하나밖에 없습니다. 절대로 둘이 아닙니다. 여기를 통해 사진 찍힌 부부가 들어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여기에 불합격된 자는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천국은 혈육이 같고 모양이 같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눈이 희미한 사람들은 전부 다 중간 영계에 가서 머무릅니다. 우리 가정이 그런 원칙에 일치되었느냐 안 되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주가 시작될 때, 그 근원의 자리에는 오로지 남자와 여자 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나라도 없었고 세계도 없었습니다. 그 안에는 천사장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정환경은 어떻습니까? 자기 혈족관계만을 두터이 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갈 길을 못 갑니다. 이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문제입니다. 부부끼리 토닥거리고 싸우는 사람들은 어디에 가서 이야기도 못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평면적 세계의 모든 물건을 사랑하게 되면 그것을 주관할 수 있습니다. 동물들이 사랑하는 모양을 보면, 동물세계는 하나님이 우리를 교육하기 위해 지은 세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물세계라는 사랑의 박물관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지었습니다. 그러니 만물을 사랑해야 합니다.
어떤 남자들은 자기 아내를 사냥개보다도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그런 한심한 남자들이 있습니다. 지식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아내를 중요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지금까지도 자리를 못 잡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그 누가 우주의 혁명을 일으키고, 뭘 어떻게 해서 평화의 세계를 건설한다고 유토피아 논리를 전개하면서 인간 행복의 에덴동산이 저기에 있다고 꿈같은 말을 하더라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원칙에 일치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요사스런 예언을 하고 별난 기적을 행해도 전부 다 허깨비 놀음입니다.
결혼을 왜 하느냐?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의 축과 일치되자는 것입니다. 일치되면 어떻게 되느냐? 왜 일치되려고 하느냐? 절대적이고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되면 영생이 벌어집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렇게 접촉된 거기에서부터 우주의 상속권이 전수됩니다. 하나님이 사랑으로 지은 피조세계를, 하나님의 것을 내 것으로 상속받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우리가 소유자, 주인이 됩니다.
우리가 만물의 주인 되는 자리를 어떻게 결정하느냐? 사랑의 축이 되어 하나님 대신 동서남북 사방에 서 있게 될 때, 하나님 대신 자리에 선 사랑의 상대가 되기 때문에 영생하게 되고, 일체 이상이 완성 복귀됨으로써 하나님의 소유이자 내 소유라는 상속권이 결정됩니다.
그것을 기쁨으로 느끼고 사는 사람은 굶어 죽지 않습니다. 우주가 그렇게 도와주는데 굶어 죽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세상이 제아무리 목을 치고 없애려고 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우주가 보호해줍니다. 죽을 자리에 갖다 놓았더라도 나올 때에는 손해를 안 보고 이익이 납니다. 나와서 선 자리가 천하 꼭대기면 그 밑에 있는 모든 존재는 굴복하게 됩니다. 결국 지배하게 됩니다. 하늘의 역사는 그렇습니다. (136-39)


 
왜 축의 사랑과 하나되어야 하느냐
 
그러면 왜 축의 사랑과 하나되어야 하느냐? 우주의 모든 것을 상속받기 위해서입니다. 그 사랑과 하나만 되면 영계가 내 것이요, 지상세계가 내 것이요, 천주가 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 사랑과 관계를 맺지 않을 존재가 없고, 내 사랑의 치리 가운데서 벗어나겠다는 존재가 없습니다. 그런 특권적인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와 같은 원수의 세계에서 핍박을 받으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별의별 소리를 듣고 몰리고 뜯기고 했지만 결국 이겼습니다. 싸우면 싸울수록 선생님은 올라가고 그들은 내려갔습니다. 우주가 선생님을 보호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도리를 따르면 전체 우주가 옹호할 수 있도록 피조세계를 만들었습니다. 거기에는 상충과 파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주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영생은 물론이요, 온 우주의 존재는 내 것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굶고 살더라도 걱정이 없습니다. 죽더라도 걱정이 없습니다.
이러한 원칙을 모르고 다른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어떤 것을 생각하기보다 가정을 천리의 중심에 결합시켰느냐 못 시켰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못사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못사는 것은 다 해결됩니다. 우주를 몰아 춤을 추고 박자를 맞추면 우주 자체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어디에 가더라도 굶어 죽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경제기반 같은 어떤 외적인 기반도 없이 흥남감옥에서 맨손으로 닦아 왔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쳐도 가야 할 이 원칙적 천리(天理)가 틀림없기 때문에 이걸 붙들고 몸부림쳤습니다. 일생을 바쳐서 이렇게 이루어 나왔습니다. 이제라도 천국 가기 위해서는 마음자세를 고쳐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136-41)


출처: http://cafe.daum.net/THEKINGDOMofGOD/TpQM/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