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우주의 공법과 인간의 갈 길
나는 움직이는 우주다
'나'는 도대체 어디에서 태어났느냐? 나는 이 지구성의 축소체입니다. 우주의 축소체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소우주라고 합니다. 우리 몸은 지구에 있는 모든 원소가 다 들어 있습니다. 우주가 가담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주가 나를 만들었다고 봐야 합니다. 우주가 나를 만들었기 때문에 우주가 '야, 내 것 다 찾아간다'고 하면, 나는 전부 빼앗길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나는 뭐냐 하면, 우주의 원소를 빌려서 형성됐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우주가 나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주는 나를 낳아준 첫째 부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고 하는 존재는 우주의 모든 원소를 종합한 실체입니다. 우주의 모든 요소가 나에게 전부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움직이는 우주, 활동하는 우주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주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자연 가운데 앉아서 자연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신비롭습니다. 자연을 지극히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우러나면 인간도 자동적으로 사랑해야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래사장에 누우면 '아, 내가 어머니 품에 눕는다'고 생각하고, 나무에 기대면 '아, 나는 형제들의 품에 기댄다'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럴 때 우주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꽃과 나비, 모든 만물을 보고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나는 자연의 독생자요, 너 또한 자연의 독생자다. 그러니까 이 우주는 나와 너를 위해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나는 너를 위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태양을 대해 '태양아, 너는 나를 위해 있지? 나를 보기 위해서 웃지? 너는 내 노래가 듣고 싶지? 그래, 노래 하나 하자' 그러면서 '아름다운 태양아, 광명한 태양아, 너는 나를 위해 있으니 내 생명과 함께한다'고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읊으면 태양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오늘날 시를 짓는 사람들이 이런 심정으로 시를 지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그저 떠돌이처럼 읊고 있습니다. (105-106)
너와 나는 우주의 중심이요 인류의 중심
자연은 우리의 첫째 부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을 부모를 사랑하듯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둘째 부모가 누구냐? 나를 낳아준 친부모입니다. 나는 그 친부모를 통해서 우주의 모든 요소를 가지고 태어난 실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와 나는 우주의 중심이고 인류의 중심입니다. 그리고 내 부모는 선생 대신이요, 친구 대신이요, 모든 사랑을 주는 주체 대신입니다. 그래서 인류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인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 앞에 효도해야 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부부, 자녀를 포함한 그 가정은 세계를 대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 많은 사람은 자기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어머니 아버지와 같은 연령의 사람은 자기 어머니 아버지같이, 형님과 같은 연령의 사람은 형님과 같이, 동생과 같은 연령의 사람은 동생과 같이 대해야 합니다. 가정적 사랑을 확대할 수 있는 이러한 원칙에 입각해야 되는 것이 인류가 살아 갈 길입니다.
참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외적인 세계 사람 가운데 부모와 같은 연령의 사람은 자기 부모와 같이 생각하고, 형님과 같은 연령의 사람은 형님과 같이 생각하고, 누이동생과 같은 연령의 사람은 누이동생과 같이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전부 다 자기 가정을 대신해서 그것을 연장하여 세계 국경을 초월해서 사랑할 수 있는 심정을 가진 사람이 참사람입니다.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내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을 갖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할아버지를 한번 모셔 봐야 되겠다, 흑인 아주머니의 시중을 한번 들어 봐야 되겠다고 해야 합니다. 어려운 사람을 자기 부모 대신으로 모시고 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늙으면 보따리 싸서 자기 아들딸 집으로 가지 않고 양로원으로 갑니다.
그러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면 어디에 가서 사는 것이 이상적이냐? 아들 집이나 손자 집에 가서 사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미국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양로원으로 갈 때, '아, 좋다' 하면서 가겠습니까? 아들이나 손자 집에 가서 살고 싶지만 갈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처량한 마음으로 양로원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주의 공법은 그렇게 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105-108)
우주의 근본은 부자의 관계를 중심삼은 사랑
우리는 어머니 아버지한테서 태어났습니다. 그 다음에 근본적인 입장에서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머니 아버지의 뱃속을 빌려서 나왔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우리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태어난 것은 참부모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우주의 부모를 통하고 육신의 부모를 통해서 참된 부모를 찾아가야 합니다. 우주의 부모와 육신의 부모는 통과의 부모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는 순간은 참된 부모를 만나러 가는 환희의 시간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거기에는 참된 부모의 참된 사랑이 있습니다. 그곳을 영적 천국이라고 합니다. 영적 천국의 구성요소는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이 충만한 곳입니다. 그 사랑은 나를 위한 사랑이 아니라 봉사와 희생의 원칙을 통한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이 일방적인 법도를 통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합격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 만우주를 내가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상생활은 인류를 사랑하기 위한 시험장이요, 훈련장소입니다. 이 지상생활이 사랑의 훈련장소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근본입니다. 인간이 살아생전에 이런 체험과 사랑을 가지고 살다가 합격되어 가면 틀림없이 하나님 앞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이 우주의 근본이 뭐냐?'고 기도하고 찾아들어가 보니 답은 간단했습니다. '우주의 근본은 부자의 관계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우주에 대해서도 그렇고, 인류를 대해서도 그렇고, 하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원칙입니다. 여기에 중심이 뭐냐 하면 사랑입니다. 이러한 과제를 풀어주고, 이 과제를 완성시켜야 할 훈련장소가 통일교회입니다. 그것을 완성시키는 것이 선생님의 책임입니다. (105-109)
좋은 사람이라는 정의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우리 인간은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천태만상의 사람이 있습니다. 통일교회를 보더라도 '내가 제일이다' 하는 사람도 있고, '나 아니면 안 된다' 하는 사람도 있고, 별의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는 중요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어느누구나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가 자기를 약간만 침해하더라도 기분 나빠합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냅니다. 그리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합니다.
우리가 '좋은 사람이다' 또는 '나쁜 사람이다' 하는데,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좋은 사람도 천태만상입니다.
그러면 좋은 사람의 정의를 찾아야 합니다. 좋은 사람이라는 정의를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 나에게서 찾을 것이냐,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 내가 결정하느냐, 전체가 결정해야 되느냐? 내가 결정하는 것보다 공적인 입장에서 전체를 중심으로 이것이 좋으냐 나쁘냐를 결정하는 것이 보다 가치가 있고 좋은 것입니다.
내가 잘생겼다고 할 때, 눈도 잘생기고 코도 잘생기고 입도 잘생기고 다 잘생겼지만 손가락 하나가 없다면 어떻게 되느냐? 눈이나 코나 입을 자랑할 수 있지만 손은 자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손가락을 감추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전체의 기준을 대표할 수 있는 공인된 기반 위에 서야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듯 전체의 기준을 대표할 수 있는 공인된 기반 위에 서야 그것을 선이라고 할 수 있고, 좋다고 할 수 있고, 자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우리 집안에서 제일 좋다고 하는 내가 되기 위해서는 어때야 하느냐? 내가 제일 좋다고 해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집 전체가 좋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내가 제일 좋다고 하는 입장에 서게 됩니다. (105-88)
우주의 공법은 어떻게 작용하느냐
이렇듯 가정에서 제일 좋다고 하는 사람이 되려면 좋게 해줄 수 있는, 보다 높은 차원을 지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좋다'는 결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과 봉사가 절대 필요합니다. 그런데 '희생과 봉사가 필요한데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어머니 아버지와 전체 식구가 다 함께 해야 된다'고 하면, 그는 어떤 사람이냐? 제일 좋은 사람이냐? 아닙니다. 어떻게 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냐? 자기가 희생하고 봉사하겠다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범위를 넓혀서 '내가 미국 사람인데, 미국 사람 중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다' 이런 결론을 내렸다면, 진짜 미국 사람 중에서 좋은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이건 지극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면 '미국 사람은 전부 나를 위해라. 나를 대해서 희생하고 봉사해라'고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전체 미국 사람을 위해서 나는 희생하고 봉사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미국 사람을 대표할 수 있는 선한 사람입니다.
미국에는 흑인도 있고, 백인도 있고, 황인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백인들은 흑인을 멸시하고 천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백인들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 나쁜 사람입니다. 그것이 흑인으로 볼 때만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백인의 눈으로 볼 때도 나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아무리 부모로서 잘했고 백인으로서 제일 좋다고 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흑인을 멸시하고 천대했다면 그는 우주의 공법에 의해 나쁜 사람으로 결정됩니다. 그런 사람은 이 우주의 공법에 걸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주의 공법은 어떻게 작용하느냐? 우주의 공법은 전체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겠다는 사람은 보호하지만,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희생을 싫어하는 사람은 제거하려고 합니다.
남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선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선한 일은 남을 위해서 희생하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보편적으로 미국 청년이나 미국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냐? 선한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105-90)
희생 봉사하는 사람이 공적인 사람이다
예수님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엇을 회개하라는 것이냐? 희생하고 봉사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자기가 지은 죄를 회개하라고 하는데, 그 죄는 어디에서 나오느냐? 남을 위하지 않고 자기를 위한 데서 모든 죄악이 발생합니다.
도둑질이 왜 나쁘냐? 조그마한 물건 하나에도 희생의 대가가 들어가 있고 봉사의 대가가 들어가 있습니다. 공적인 것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것을 아무 대가 없이 그냥 가져가기 때문에 죄가 됩니다.
거짓말은 왜 하느냐? 자기 이익을 위해서 합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나쁜 것입니다. 만일 보기 싫은 원수를 살해했다면, 원수를 살해했기 때문에 죄가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죄입니다. 아무리 보기 싫은 원수라 하더라도 그 나라를 대표하고 우주를 대표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원수라 하더라도 죽이면 우주의 공법을 유린한 것이기 때문에 죄가 됩니다. 이렇듯 원칙에 위배되면 전부 걸립니다.
그런 것을 전부 종합해 보면, 무엇이 들어가 있느냐? 회개라는 말에 귀결되는 것이 아니고 희생과 봉사라는 말에 귀결됩니다.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을 공판할 수 있는 법은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을 악하다고 벌을 주는 법이 없습니다. 공법이라는 것이 좋게 하기 위한 법이기 때문에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을 벌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나라의 대통령이 그 사람을 불러다가 나라를 대표해서 상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희생과 봉사는 왜 전체를 위해 하라고 하느냐? 남이 나를 위해 희생하게 만들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만약 그런 법을 세웠다면 한 집안에 뭉쳐서 살 수 없습니다. 그 집안은 산산조각이 납니다. 열 사람이면 열 사람이 그런 주장을 하면 열 조각이 납니다. 또 백 사람이면 백 조각으로 동강이 납니다.
그런 법을 정했다면 물질세계에서부터 어떤 존재세계에도 다 적용해야 합니다. 사람만 그럴 수 없습니다. 눈 안에 있는 하나의 세포가 '나도 존재기 때문에, 내 존재를 중심으로 온 우주는 나를 위해 있어라'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자기를 주장하는 것이 존재 파괴의 원인이 됩니다.
그런데 눈을 대해 '이놈아, 눈 세포 너도 귀하지만 너는 보다 공적인 존재인 내 앞에 흡수되어 있으니 우주의 공법대로 따르는 거야!' 하면 '예' 하게 돼 있습니다. 보다 가치 있는 것이 공적입니다. 거기에는 어디에서나 '예, 예' 해야 됩니다. 이런 원칙이 있는 걸 알기 때문에 불평할 수 없습니다. (105-92)
우주의 공법은 희생하고 봉사하고 사랑하는 것
우리는 매일 밥을 먹습니다. 그리고 잘 자라고 있는 야채를 무정하게 칼로 뚝 잘라다가 반찬을 만들어 먹을 때 미안한 생각을 갖지 않습니다. 삶지도 않고 소금만 쳐서 토끼처럼 와작와작 먹는다고 야채가 '아이구, 나 죽는다. 이놈의 자식, 복수하겠다' 하지 않습니다. 야채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무정합니까? 그렇지만 야채는 '나는 고맙게 생각합니다. 당신은 나보다 더 가치 있는 이 우주의 공적인 존재기 때문에, 공적인 가치의 존재에게 희생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감사하며 먹힙니다'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먹은 나는 그 먹힌 음식들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몸짓을 하게끔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들이 기분이 좋아 내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것입니다. 불평불만해서는 안 됩니다. 나 때문이 아니라 전체 때문에 '하하하!'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는 것을 모든 음식물이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자기를 위해서 '허허허!' 하는 것은 '이런 나쁜 놈 같으니라구!'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몸은 우주의 공법에 의해 반동이 벌어지기 때문에 병이 나고 나쁜 일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이 우주의 공법에 의해 쇠퇴하여 망합니다.
눈물도 악한 눈물이 있고 선한 눈물이 있습니다. 눈도 그렇습니다. 듣는 귀도 그렇습니다. 전부 경계선이 있습니다. 우리 눈을 볼 때, 어떤 눈이 좋은 눈이냐? '내가 전체를 위하고, 내가 위해줄 수 있는 무엇이 없나? 봉사할 수 있는 무엇이 없나?' 이렇게 보는 눈이 좋은 눈입니다. 누구를 볼 때, '저놈을 이용하고, 저놈을 잡아치워야 되겠다' 하면서 보는 눈은 나쁜 눈입니다.
한때 세계적으로 디스코 댄스가 선풍적으로 유행하면서 노래를 부르며 미친 듯이 춤을 추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댄스곡들이 유행하면서 젊은이들이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통일교인들에게 그런 곳에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못 가게 하느냐?
그렇게 춤추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 전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춤을 춥니다. 그리고 그 춤과 노래를 통해서 누구를 이용해 먹습니다. 여자를 이용해 먹고, 남의 돈을 이용해 먹고, 전부 이용해 먹습니다. 남을 이용해 먹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나쁜 것입니다. 또한 그런 장소는 공적인 목적을 위한 보편적인 곳이냐, 사적인 목적을 위한 보편적인 곳이냐? 사적인 목적을 위한 장소입니다. 그래서 통일교인들에게 그런 곳에 못 가게 한 것입니다.
학생들은 대개 어머니 아버지가 '공부해라. 제발 공부해라. 연애가 뭐고 데이트가 뭐냐?' 하면 싫어합니다. 그럴 때 '그래야 장래에 한국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는 사람이 되는 거야!' 이렇게 말하면서 공부하라고 하는 부모는 선한 부모지만, '네가 하고픈 대로 해라. 네 마음대로 해라!' 하는 부모는 선한 부모가 아닙니다. '이놈의 자식!' 하면서 그저 때려서라도 공부를 시키는 부모가 보다 좋은 부모입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아이구 선생님, 오늘 비가 와서 축축하고 그래서 기분도 별로 좋지 않은데, 공부하지 말고 놉시다'라고 할 때 그대로 하는 선생님이 있다면 학생들은 그런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놈아, 나는 너희들을 위해서 가르칠 책임이 있다'고 하면서, 비가 오든 어떻든 날마다 하나라도 더 가르치겠다고 5분 먼저 들어오고 5분 늦게 나가는 선생님은 싫어합니다. 그렇지만 그 선생님은 우주가 인정하는 공적인 선생님이요, 선한 선생님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면서 한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희생하면서 '전인류를 위해서 내가 죽어간다'는 희생정신을 가진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서 민족 반역자로 피 흘리며 죽어 갔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나폴레옹이나 히틀러같이 '세계를 내 마음대로 하겠다. 세계를 내 앞에 굴복시키겠다' 하는 녀석들은 전부 세계 사람들이 싫어하며 추방했습니다. 그러한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우주 공법에 의한 결론적 입장을 자동적으로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주의 공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05-94)
희생봉사하면 우주의 공법이 보호한다
하나님이란 어떤 분이냐? 우주의 공법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러면 우주의 공법은 뭐냐?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하는 것입니다. 그 속성은 희생과 봉사입니다.
희생 봉사가 왜 필요하냐? 물론 우주의 공법에 일치되기 위한 것도 있지만, 하나님과 주고받기 위해서 희생 봉사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주고받으면 하나되고, 하나님과 하나되면 영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영생하니까 하나님과 하나된 우리도 영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전능하고 유일한 분이기 때문에 나도 최고 유아독존(唯我獨尊)적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희생과 봉사가 필요합니다.
그 다음에는 절대적인 존재가 됩니다. 누가 나를 침범할 수 없고, 누가 나를 주관할 수 없습니다. 나를 보호해주는 법도권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은 사랑의 중심이기 때문에 무한한 사랑의 힘이 내 전체에 넘쳐 흐르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의 태양권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태양이 모든 생명의 원천인 거와 마찬가지로 나도 생명과 사랑의 원천이 되어 누구든지 나를 보면 '하하하!' 웃으며 좋아하게 됩니다. 세계 어디를 가든지 자기를 닮은 사람은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히 압니다. (105-100)
그러면 개인이 영원히 남아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가 개인으로서 세상에 존경받는 사람이 되려면 자기를 높여서는 안 됩니다. 높임을 받으려면 희생을 해야 됩니다. 열 명의 친구가 있으면, 그 열 명의 친구를 위해서 오랫동안 희생하는 사람은 그 열 명의 친구 앞에 중심존재가 됩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친척과 그들의 친구까지도 그와 하나가 되려고 합니다. 반대로 그 열 명의 친구에 대해서 '너희들은 나를 위해라. 나를 위해라' 하면 그 친구들은 다 떨어져 나가고 결국 외톨이가 됩니다. 나중에는 자기도 갈 곳이 없어집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있어서 선과 악의 구별점이 됩니다.
또 한 나라의 애국자도 그렇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링컨 대통령이라든가 케네디 대통령을 지극히 존경합니다. 왜 존경합니까? 똑같은 대통령이지만 미국을 위해서 생명을 바쳤기 때문에 존경합니다. 이와 같이 대통령 가운데서도 미국을 위해서 비참하게 희생한 대통령일수록 지극히 높은 애국자요, 지극히 높은 대통령의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만약 많은 대통령 가운데서 제일 나라를 위한 대통령을 뽑는다면 죽지 않은 대통령은 축에도 못 들어갑니다. 생명을 바쳐 나라를 사랑한 대통령일수록, 그것도 비참히 희생당한 대통령일수록 위대합니다.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그것이 한때는 비참하지만 역사시대가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점점점 환경의 범위를 넓혀 그를 중심으로 뭉치게 됩니다.
예수님의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를 위해서 희생했느냐 하면 세계의 인류를 위해서, 세계의 나라를 위해서 희생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인류를 사랑하고,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원수까지 사랑한 입장에서 복을 빌고 비참히 돌아갔습니다. 그 당시에 이름없이 민족 반역자로 몰렸던 예수님이 오늘날 세계적인 기독교 문화권을 창건할 줄은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원칙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큰 무대를 위해서, 공적인 큰 일을 위해서 희생한 사람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역사적인 성현들입니다. (53-17)
기독교 사상은 희생과 봉사의 사상
그러면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나쁜 것이냐? 희생하고 나면 결과는 어떻게 되느냐? 사람들은 자연히 그를 모시려고 합니다. 끝까지 자기를 위해주는 사람에게 지배를 받으려고 합니다. 지도해주기를 원합니다.
이것을 볼 때,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이 악의 세계를 대해 싸울 수 있는 작전이 있으면 그 작전법은 어떠한 작전법이냐?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전법입니다. 악은 그 반대입니다. 자기 때문에 남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하면 개인의 반대를 받고, 가정적으로, 혹은 국가적으로 그렇게 나가면 반드시 역사 앞에 규탄받는 독재자가 됩니다.
악의 전법은 남을 희생시켜서 자기가 출세하려는 전법이요, 하나님의 전법은 남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가 희생하는 전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과정에 선을 주장하고 나왔던 사람들은 그 시대에는 환영을 못 받고 희생을 당했습니다. 자기 몸을 희생하면서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간 사람들은 역사가 지나간 후에 그 이름이 드러납니다. 이것이 사실인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사상은 봉사의 사상이요, 희생의 사상입니다. 기독교가 하나의 교단을 중심하고 자기 교단만 위하는 기독교가 되면 망합니다. 만일 미국의 어떠한 기독교단이 활동하는 모든 목적을 미국을 구하는 데 두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온갖 희생을 각오하고 나선다면 하늘은 이 교단을 협조할 것입니다. 이렇게 미국을 구해서 기독교화한 국가로 만들어 세계를 구하기 위해 미국 국민을 희생시킬 수 있는 기독교가 되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기독교 세계가 됩니다. (53-18)
종교 중에 어떤 종교가 좋은 종교냐
그러면 종교 중에서 어떤 종교가 좋은 종교냐? 가톨릭의 교황이 어디에 가면 수십만 가톨릭 신자들이 모입니다. 거기에 모인 것은 무엇 때문이냐? 세계 인류와 하나님을 위해서냐, 교황을 위해서냐? 환영하는 소리가 가톨릭을 위한 소리냐, 세계를 구하자는 소리냐? 가톨릭만을 위한 것이라면 세계 인류와 하나님을 위한 것보다는 나쁜 교회입니다. 하나님을 위하고 인류를 위해서 모이고, 보다 희생하기 위해서 모여야 합니다.
그렇게 볼 때, 통일교회는 좋은 종교냐, 나쁜 종교냐? 통일교회는 통일교회만을 위해서 모이지 않습니다. 미국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하나님의 해방과 인류의 해방을 위해서 모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복받기 위해서 모인 게 아닙니다. 그리고 인류 앞에 신세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통일교회는 인류를 해방하고 하나님을 해방하자는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통일교회는 좋은 교회고, 그런 교회를 지도하는 선생님은 좋은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러한 원리적 원칙에 의해 나를 비판하고 통일교회를 비판하고 역사와 현재와 미래를 통해서 비춰 볼 때에,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정정당당한 길이요, 백전백승할 수 있는 길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을 해방하자는 것이 선생님의 사상입니다. 인류만을 해방하자는 게 아니라 영계를 해방하고 지옥을 해방하고 하나님을 해방하자는 것입니다. 말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러기 위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통일교인들은 선생님을 잘 만난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그 누구를 시켜서라도 해야 할 사명이 역사과정에 남아 있습니다. 엄숙한 과정이요, 엄숙한 사명입니다. 칭찬받고 환영받는 사람이 아니라, 핍박받고 억울하게 몰리는 가운데서 이러한 역사적인 출발이 소생합니다. 그러니까 희생봉사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인류를 해방하고 하나님을 해방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하늘나라 건국사상이요, 이상세계의 기준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에게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랑을 상속받는 길입니다. 그 길을 통일교인들이 가야 합니다. (105-102)